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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9 11

주자124

卷一百 공문서[公移] 주현관에 관한 첩지[州縣官牒] 【해제】이것은 주자가 1190년(소희 원년, 경술) 그의 나이 61세에 계통과 절차에 관하여 피력한 것인데 그는 여기에서 현재 시행되는 관청의 압인 절차가 두서가 없고 문란해서 서로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여 일의 계통을 제대로 시행할 수 없어 예전에 관청의 부서를 나누고 직분을 분리하여 일을 수행하려는 정신이 퇴색되어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였다. 공손히 생각해 보니 조정에서 관청을 설치해서 직분을 나눔에 등급이 분명하고 대소가 서로 묶여서 각각 받들어 붙임이 있습니다. 대개 한 사람의 지혜로 두루 많은 일에 미칠 수 없어서 사존을 건립해서 재상으로 하여금 총체적으로 거느리게 하지만 일에는 거느리는 기강이 있어서 비록 번거롭..

카테고리 없음 2025.09.09

주자123

卷九十九 공문서[公移] 남강군 지사의 방문[知南康榜文] 【해제】이 작품은 주자가 1179년(순희 6년, 기해) 그의 나이 50세에 남강군 지사로 있으면서 민풍을 교화하고 진작시킨 과정을 품신한 것이다. 그는 세목에서 군의 역사적인 내력과 지형지세 민풍이 쇠락하게 된 원인을 소상하게 밝히고 천자께서 학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부흥시키는 것이 천자의 덕스런 업적을 높이 하는 방법이라고 역설하고 첩지를 붙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을 간청하였다. 제가 오래된 병으로 물러나 마을에 있었는데 근자에 그릇된 은혜를 입어 임시로 이 땅을 지키게 되었으니 간절한 말이 채택되지 못하여 부축하고 끌며 왔습니다. 도임한 초기에 엎드려 스스로 생각하기를 성스런 천자께서 그윽한 곳에서 찾아 드러내..

카테고리 없음 2025.09.09

주자122

卷九十八 행장[行狀] 조봉대부 직비각 주관건녕부무이산충우관 부공 행장朝奉大夫直秘閣主管建寧府武夷山冲佑觀傅公行狀 본관은 맹주 제원현이다. 증조 군유는 본래 통직랑에 임명되어 경조부 봉천현 지사를 맡았고 정봉대부에 추증되었다. 증조비 장씨는 석인에 추증되었다. 조부 유지는 본래 조의대부에 임명되어 남경 홍경궁을 주관했고 제원현 개국남, 식읍 삼백호를 받았다. 조비 전씨는 공인에 봉해졌다. 부친 찰은 본래 조산랑 상서이부원외랑에 임명되었고 휘유각대제에 추증되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추증되어 소사에 이르렀고 시호는 충숙이다. 비는 조씨인데 청원군태부인에 봉해졌고 진국부인에 추증되었다.本貫孟州濟源縣. 曾祖桾兪, 故任通直郞, 知京兆府奉天縣事, 贈正奉大夫. 曾祖妣張氏, 贈碩人.祖裕之, 故任朝議大夫, 主管南京鴻慶..

주자121

卷九十七 행장[行狀] 관문전 학사 태중대부 지건강군부사 겸 관내권농사 충강남동로안무사 마보군 도총관 영전사 겸 행궁유수 수팽성군 개국후 식읍일천육백호 식실봉이백호 사자금어대 증광록대부 유공(劉公)의 행장(觀文殿學士太中大夫知建康軍府事兼管內勸農使充江南東路安撫使馬步軍都總管營田使兼行宮留守彭城郡開國侯食邑一千六百戶食實封二百戶賜紫金魚袋贈光祿大夫劉公行狀代平父作) 본관은 건녕부(建寧府) 숭안현(崇安縣) 개요향(開耀鄕) 오부리(五夫里)이다. 증조는 민선(民先)이니 사후에 승사랑(承事郞)에 제수되고 누차 증직되어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추증(追贈)되었다. 비(妣)는 황씨(黃氏)이니 팽성군부인(彭城郡夫人)이다. 조(祖)는 겹(韐)이니, 사후에 자정전학사(資政殿學士)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충현(..

주자120

卷九十六 행장[行狀] 소사(少師) 관문전 대학사(觀文殿大學士) 치사 위국공(致仕魏國公) 증 태사(贈太師) 시 정헌(諡正獻) 진공(陳公)의 행장(少師觀文殿大學士致仕魏國公贈太師謚正獻陳公行狀) 본관(本貫)은 흥화군(興化軍) 포전현(莆田縣) 함덕향(咸德鄕) 호공리(胡公里)이다. 증조(曾祖)는 증 태사(贈太師) 기국공(沂國公)이요, 비는 황씨(黃氏)이니 서국부인(徐國夫人)에 추증되었다. 조(祖)는 증 태사(贈太師) 촉국공(蜀國公)이요, 비는 이씨(李氏)이니 촉국부인(蜀國夫人)에 추증되었다. 부(父)는 증 태사(贈太師) 기국공(冀國公)이요, 비는 황씨(黃氏)이니 월국부인(越國夫人)에 추증되었으며, 탁씨(卓氏)는 기국부인(冀國夫人)에 추증되었다. 공의 휘는 준경(俊卿)이요 자는 응구(應求)이니, 그 선세(先世..

주자119

卷九十五下 행장(行狀) 소사보 신군절도사 위국공치사 증태보 장공 행장 하(少師保信軍節度使魏國公致仕贈太保張公行狀下) 공이 조정(趙鼎)과 함께 나라를 담당할 때, 휘종(徽宗)께서 사막에 계시니 마땅히 신통(信通)을 보내어 문안을 해야 한다고 의론하여 드디어 문안사(問安使) 하소(何蘇) 등의 일행을 파견했다. 이 해 정월 25일에 소가 돌아와 휘종황제와 영덕황후(寧德皇后)께서 잇달아 붕어(崩御)하셨음을 보고했다. 상께서 소리 내어 통곡하시고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시며[擗踊]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공이 상주하기를, “천자(天子)의 효는 사서인(士庶人)과 같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러러 종묘(宗廟)를 계승하고 사직(社稷)을 받드는 까닭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재궁(梓宮 : 곧 靈柩)이 돌아오지 못하였고 ..

주자118

卷九十五上 행장(行狀) 소사 보신군절도사 위국공치사 증태보 장공 행장 상(少師保信軍節度使巍圜公致仕贈太保張公行狀上) 본관(本貫)은 한주(漢州) 면죽현(綿竹縣) 인현향(仁賢鄕) 무도리(武都里)이다. 증조(曾祖)인 문구(文矩)는 본디 벼슬하지 않았다. 태사(太師) 기국공(沂國公)에 추증되었다. 비(妣)는 기국부인(沂國夫人) 양씨(楊氏)이다. 조(祖)인 현(絃)은 본디 전중승(殿中丞)에 임명되었고 치사(致仕)했다. 태사(太師) 기국공(冀國公)에 추증되었다. 비(妣)는 기국부인(冀國夫人) 조씨(趙氏)와 왕씨(王氏)이다. 부(父)인 함(咸)은 본디 선덕랑(宣德郞)에 임명되었는데 태사(太師) 옹국공(雍國公)에 추증되었다. 비(妣)는 진국부인(秦國夫人) 계씨(計氏)이다. 공의 휘(諱)는..

주자117

卷九十二묘지명[墓誌銘] 악주사군 곽공 묘갈명(岳州史君郭公墓碣銘) 공의 성은 곽(郭)씨이고, 휘는 빈(份)이며 자는 중질(仲質)이다. 그 선조는 길수(吉水)에서 신감(新淦)으로 옮겼는데, 증조 단(亶)과 조부 휘(麾)는 모두 벼슬하지 않았다. 부친 미약(彌約)이 비로소 벼슬을 했는데, 유능하여 칭송을 받았고, 조산랑(朝散郞)에 이르러서 졸하였다. 그의 행적을 조문한 자는 모두 당세의 직위가 높은 명사(名士)들이었다. 공은 어려서 침착하고 영민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학문을 할 수 있었다. 약관이 되어 진사에 급제하여 진주(辰州)․도주(道州)․남웅(南雄)의 주학(州學) 교수(敎授)와 형호남로(荊湖南路) 전운사간판공사(轉運司幹辦公事)가 되었다. 호남(湖南)은 군(軍)이 전함(戰艦)을 일으켜 관리하면..

주자116

빙사유선생묘표(聘士劉公先生墓表) 선생의 성은 유(劉)씨이고 건주(建州) 숭안현(崇安縣) 오부리(五夫里)의 백수(白水) 사람이다. 그 증조부의 휘(諱)는 자(滋)인데, 농사를 짓다가 진사시에 높은 성적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상서직방랑중(尙書職方郞中)에까지 이르렀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이부상서(吏部尙書)로 누차 증직되었다. 조부의 휘는 조(照)로 조청랑(朝靑郞)이었다. 2대에 걸쳐 모두 청덕(淸德)이 있었는데, 중간에 벼슬을 쉬고 물러나 있다가 늙어서 죽었다. 아버지 의 휘는 원진(元振)으로 처음에는 벼슬하지 않았으나, 순행(馴行)으로 일컬어졌다. 선생의 휘는 면지(勉之)이고, 자는 치중(致中)이며,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하루에 수천마디의 말을 외웠다. 한 번만 보고 들으면 다시는 잊어먹지..

주자115

卷九十묘표[墓表] 유병산(劉屛山) 선생 묘표(墓表)(屛山先生劉公墓表) 병산선생(屛山先生) 유공(劉公)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21년이 되던 어느 날, 그 사자(嗣子)인 평(玶)이 체읍(涕泣)하며 선생의 오랜 제자인 주희(朱熹)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평(玶)이 불행(不幸)하여 일찍이 고자(孤子)가 되었습니다. 선인(先人)의 장례(葬禮)를 마쳤는데도 아직 명(銘)을 마련하지 못했고 묘도(墓道) 또한 지금까지 표창(表彰)할 수 없었습니다. 몹시도 두려운 것은, 평(玶)의 불효(不孝)가 또 유명(幽明) 간에 획려(獲戾)하게 된 점입니다. 이에 급히 돌을 세우고 탁사(琢辭)하여 후세(後世)에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생각건대, 선인(先人)께서는 세상에 쓰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사업(事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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