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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꾸디

외꾸디 답(논) 내가 알는 정도로 기록함.지금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부산할매인데,(물어보기도, 본인의 소유가 아니기에) 외꾸디 답에 있는 산소는 우리의 고조부 묘소임.아릿대, 나의 증조부(감지떨)의 아버지 외꾸디 답은 누구의 것도 아니고, 고조부의 묘소에 딸린 위토답(제향에 쓸 비용 마련)임. 고조부의 형제 2남 3녀(대략 부정확)이 분들이 돈을 모아서 마련한 것이라고 하였음.3녀 가운데 한분이 양지각단에 시집감.우리 할배, 부산 할배 등이양지각단에 있는 분들과는 외사촌 간임.(작고한 분들)우리와는 지금 있는 사람들 외8촌 정도됨.(예, 성태) 외꾸디 위토답.부산에 성호, 경익 아재, 내가 공동 소유한다고부산 변호사 아재가 작성한 서류가 있음. 외꾸디 고조부 위토답외꾸디 고조부 묘소 주변부남아재집앞(지금..

카테고리 없음 2026.10.29

경주 김씨 족보서

我東方姓氏之繁衍者, 莫如金氏, 世代之綿遠者, 亦莫如金氏, 而尙無譜牒, 豈不歎哉?今者數三宗人, 來會京城, 始發刊譜之議, 而緣於財力之不逮, 纔及半歲, 今始告厥. 우리 동방의 성씨 중 번성하기로는 김씨(金氏) 만한 성씨가 없고, 대대로 면면이 이어지는 성씨도 김씨 만한 성씨가 없다. 하지만 아직 족보가 없으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이번에 두세 명의 종인(宗人)이 경성(京城)에 모여 비로소 족보를 간행하자는 논의를 발기하였지만 재정적인 문제로 난관에 봉착했다가 겨우 반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일을 끝마치게 되었다. 噫! 自先祖敬順王讓國以來, 不知幾百年之後, 《大譜》之刊出, 在於今日者, 此莫非事間待時而然者歟! 於戱! 惟我金氏, 系出鷄林, 自大輔公, 至于敬順王, 敬順王有子八人, 各有姓貫, 而永芬公及殷說公二派, 遂..

카테고리 없음 2026.10.27

주석

1) 陽: 底本에는 “襄”으로 되어 있다. 《論語^微子》에 根據하여 修正하였다. 2) 衼: 文脈에 根據할 때 “袂”의 誤字인 듯하다.3) 正: 《周易^乾卦^文言傳》에 根據할 때 “精”이 되어야 한다. 4) 駸駸: 《晦峯集》에는 “沈沈”으로 되어 있다.5) 由: 文脈에 根據할 때 “瞻”이 되어야 한다. 6) 저 기수……찬미하였다: 《시경》의 〈억(抑)〉을 가리킨다. 예성공은 위 무공(衛武公)으로 시호가 예성무공(睿聖武公)이다. 주희(朱熹)의 주(注)에 의하면 나이가 95세였으나 의계(懿戒)를 지어 스스로 경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계가 〈억(抑)〉이다.7) 죽포(竹圃): 박기종(朴淇鍾, 1824~1898)으로,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공진(公振), 호가 죽포이다. 1861년 식년문과에 급제..

카테고리 없음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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