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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씨 족보서

황성 2026. 10. 2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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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東方姓氏之繁衍者, 莫如金氏, 世代之綿遠者, 亦莫如金氏, 而尙無譜牒, 豈不歎哉?今者數三宗人, 來會京城, 始發刊譜之議, 而緣於財力之不逮, 纔及半歲, 今始告厥.

우리 동방의 성씨 중 번성하기로는 김씨(金氏) 만한 성씨가 없고, 대대로 면면이 이어지는 성씨도 김씨 만한 성씨가 없다. 하지만 아직 족보가 없으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이번에 두세 명의 종인(宗人)이 경성(京城)에 모여 비로소 족보를 간행하자는 논의를 발기하였지만 재정적인 문제로 난관에 봉착했다가 겨우 반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일을 끝마치게 되었다.

 

噫! 自先祖敬順王讓國以來, 不知幾百年之後, 《大譜》之刊出, 在於今日者, 此莫非事間待時而然者歟! 於戱! 惟我金氏, 系出鷄林, 自大輔公, 至于敬順王, 敬順王有子八人, 各有姓貫, 而永芬公及殷說公二派, 遂爲慶州之金, 赫世冠冕, 不絶如綿. 多少雲仍, 散在各處, 而或間不以祖爲祖, 而冒稱某公之子孫, 或有不以子爲子, 而稱爲某家之近族, 無子而間子, 間子而失子, 豈不痛歎者哉?

아, 선조인 경순왕(敬順王)께서 나라를 물려주신 이래로 몇 백 년이 지난 뒤 대동보의 간행이 비로소 오늘날 이루어진 것은 모두 세상일에 때를 기다림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아, 우리 김씨는 세계가 계림(鷄林)에서 나와 대보공(大輔公)으로부터 경순왕에 이르렀다. 경순왕은 아들 여덟을 두어 각각 본관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중 영분공파(永芬公派)와 은설공파(殷說公派)가 마침내 경주 김씨(慶州金氏)가 되어 대대로 벼슬과 명망이 끊이지 않고 길게 이어졌다. 수많은 후손이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간혹 조상을 조상으로 여기지 않고 함부로 아무개 공의 자손이라 칭하거나 간혹 자식을 자식으로 삼지 아니하고 아무개 집안의 가까운 친족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자식이 없는 사람에게 끼워 넣어 자식이 되기도 하고, 끼워 넣다 보니 참된 자식을 잃어버리기도 하였으니, 어찌 가슴 깊이 탄식할 일이 아니겠는가.

 

近者治洞之譜, 換父易祖, 刊行八路. 嗚呼! 後世之失祖失子者, 不可勝筭. 且間永川師喆之變, 則斷可以校正世系, 期永其傳. 而序文則以判書公自撰舊譜之序, 仍舊刊行. 此後五宗中同是譜者, 咸知某子孫某先世之所自眞假, 以親百代之義, 可不勉哉!

壬午之春二月下澣, 後孫金東燮謹跋.

근래 치동(治洞)의 족보는 아버지를 바꾸고 할아버지를 바꾸어 팔도에 간행되었으니, 아, 후세에 조상을 잃고 자식을 잃은 자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또 얼마 전 영천(永川) 사철(師喆)의 변고를 겪고 나서는 단연코 세계(世系)를 교정하여 그 전해짐을 영원히 기약할 수 있게 되었고, 서문은 판서공(判書公)이 직접 지으신 옛 족보의 서문을 그대로 사용하여 간행한다. 이후로 우리 5종(宗) 중에 이 족보를 함께 보는 이들은 모두 어느 자손이 어느 선조에게서 나왔는가 하는 진위(眞僞)를 알게 되어 백대(百代)에 이르는 친목의 의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힘쓰지 않겠는가?

임오년(1942) 봄 2월 하한(下澣), 후손 김동섭(金東燮)은 삼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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