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第二十四卷與劉平甫書 次第亦須見怒 箚疑云汪尙書怒之也 竊意此所謂見怒者 恐亦指陳公也 盖報汪兩書 斥陳甚嚴 故其後與陳書 有試取而觀知我罪我之語 此正謂陳見其與汪書 斥己不少饒而怒之也 淺見則如此 未知果是否也 제 24권 여유평보서(與劉平甫書) 차례로 또한 모름지기 노여움을 받았다라 하.. 잡저/운양만록 2009.05.11
서, 범례 騎驢隨筆序 從古忠臣節士 遭邦國革命之秋 殺身而成仁 自靖而秉義者 各求其心之所安 而無負秉彛之天衷而已 曷嘗有意於垂名而求知哉 然而後之君子 必載之銅管 編之野史 惟恐其不章焉 盖不惟褒其人尙其節 實有以明人紀於旣晦 而勸忠義於來後也 惟其興亡之形判 而向背之勢分 則凡爲勝國盡節者 皆.. 잡저/기려수필(서,범례) 2009.02.02
경성재 기 재사를 경성(景惺)으로 이름한 것은 성성재(惺惺齋) 성공을 경모하는 뜻이다. 세운 것은 여러 후손이고 경모하는 것은 원근의 선비들이 함께 하는 바이다. 어찌 선비들이 함께 하는가? 공의 학덕(學德)과 풍휘(風徽)가 오래 되어도 사라지지 않아 한 집의 자손만이 높이는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오호.. 잡저/창녕성씨 2008.07.24
남호재 주련시 남호재 주련시 교리가 부친이고 남명의 벗이니 정자에 오름에 천고의 시원한 바람일세. 우리 가문 경의(敬義)의 간곡한 가르침 남호재 일월 가운데 살펴 비추네. 잡저/창녕성씨 2008.07.24
남호재 기 진강(晋康)의 성씨는 영남에서 이름난 문벌이다. 그 선조 가운데 교리공 휘 안중(安重)이 있으니 높은 재능과 덕행으로 명망이 우리 유림에 무거웠다. 그 다섯 아들이 또 모두 남전옥(藍田玉)이었는데, 그 넷째 아들이 남호(南湖)이니 휘가 일장(日章)이다. 남호공은 재주와 생각이 범인을 초월하였고 .. 잡저/창녕성씨 2008.07.24
수양재 기 거창의 성재명(成在明) 군이 나를 괴산서사(槐山書舍)로 방문하여 그의 선대인 처사 우포공(愚圃公)의 수양재기(修陽齋記)를 부탁하였다. 나는 마침 노쇠하고 병들어 자리에 누워 있어서 글짓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효자가 멀리 와서 간곡하게 구하는 뜻을 저버릴 수 없어서 마침내 사양.. 잡저/창녕성씨 2008.07.24
사과공 단비(壇碑) 음기 공의 휘는 수도(壽道), 자는 경복(景福), 성은 성씨이다. 관향은 창녕이니, 고려 중윤 호장 휘 인보(仁輔)를 시조로 삼는다. 2세 휘 송국(松國)은 문하시중인데, 백행의 근원인 효가 극진하여 『효행록』이 있고, 물계서원(勿溪書院)의 주벽에 제향되었다. 3세 휘 한필(漢弼)은 문하찬성사이다. 4세 휘 군.. 잡저/창녕성씨 2008.07.24
통덕랑 창녕성공 하달(夏達) 묘갈명 공의 휘는 하달(夏達), 자는 상언(尙彦), 관직은 통덕랑이다. 성씨의 계보는 창녕에서 나왔는데 고려 중윤 호장 휘 인보(仁輔)를 비조(鼻祖)로 한다. 2세 휘 송국(松國)은 문하시중인데 백행의 근원인 효를 극진히 하여 『효행록』이 있다. 3세 휘 한필(漢弼)은 문하찬성사이다. 4세 휘 군백(君百)은 광정.. 잡저/창녕성씨 2008.07.24
창녕성씨 찬성공 12세손 통덕랑 휘 안리공파 가첩 서 창녕성씨 찬성공 12세손 통덕랑 휘 안리공파 가첩 서 족보는 선조를 높이고 친족을 수습하는 보감(寶鑑)이다. 만약 족보가 아니라면 세대를 살필 수 없다. 그러므로 가문이 있는 사람은 족보가 있지 아니함이 없는데 혹 운수가 막혀 떠돌아다녀 그 거처가 일정하지 않아 친족과 서로 막히게 되면 족보.. 잡저/창녕성씨 2008.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