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2/기타

문징명

황성 2016. 8. 16. 11:38

문 징 명
(文徵明, Wen Zheng ming, 1470-1559)


 명나라 중기의 문인, 서예가, 화가이다. 호남성(湖南省) 형양(衡陽)에서 출생하였다. 초명은 벽(壁), 자는 징명(徵明), 뒤에 자를 징중(徵仲)이라 고쳤다. 호는 형산(衡山), 정운생(停雲生) 등이다. 부친인 문림(文林)은 성화 8년(1472)에 진사에 급제하여 온주지부(溫州知府)까지 이르렀다.
 시문은 오관(吳寬)에게 배웠다. 서예는 이응정(李應禎)에게 배웠는데 재능이 있어 ‘시화삼절’이라고 하였다. 가정 2년(1523) 세공생(歲貢生)으로서 경사(京師)로 나아가 한림대조(翰林待詔)가 되어 『무종실록(武宗實錄)』의 편집에 종사하였고, 가정 5년 겨울에 귀양 갔다. 이듬해 옥경산방(玉磬山房)을 지어 은둔생활을 하였다.
 서예는 모든 체(體)에 능했는데 처음에는 왕희지(王羲之) 필법을 배웠고, 만년에는 황정견(黃庭堅)을 배웠다. 그 주려(週麗)한 서풍은 일세를 풍미하였고 만년에는 승두(蠅頭)의 소해(小楷)를 많이 썼다. 『정운관법첩(停雲館法帖)』을 간행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이소구가권(離騷九歌卷)』, 『도연명시(陶淵明詩)』, 『초서천자문』, 『자객열전(刺客列傳)』등이 있다.  
 그림은 심주(沈周)의 영향을 받아 산수·인물·화조·난죽화 등 폭이 넓었으며 그 중에서도 산수화는 조맹부(趙孟頫)와 원말 4대가를 배우고, 차차 예찬풍(倪瓚風)의 간결한 구도에 의한 담채(淡彩), 담묵(淡墨)의 세치(細緻)한 묘법을 추구해서 심주의 화법과는 다른 양식에 도달하여 오파문인화(吳派文人畫)의 특색을 결정지었다. 대표작으로는『산수도권(山水圖卷)』(1502), 『춘심고수도(春深高樹圖)』(상하이박물관) 『강남춘도(江南春圖)』, 『절학고간도(絶壑高間圖)』, 『천암경수도(千巖競秀圖)』(타이페이, 고궁박물원) 등이 있다.
 고결하고 온화하며 근직(謹直)한 성격은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였으니, 그의 문하에서 축윤명(祝允明), 서정경(徐楨卿), 당인(唐寅), 왕수(王守), 왕총(王寵) 등 여러 문인이 배출되었다. 아들 문팽(文彭), 문가(文嘉)도 서화를 잘하였다. 후세에 심주와 함께 심(沈)·문(文)이라 병칭되어 남종화 중흥의 조(祖)라 일컬어졌는데, 오파의 중심인물이다. 저서로는 『보전집(甫田集)』이 있다.


*文徵明墓

문징명의 묘는 육묘진(陸墓鎮) 문릉촌(文陵村) 이가빈(李家浜)에 있다. 묘소는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봉토(封土)의 높이는 약 1m이다. 묘 앞에는 조지(照池)가 있다. 1984년에 발견된 석마(石馬)와 석호(石虎) 등의 석각을 묘지로 운반하여 잠시 보존하고 아울러 분상을 수리하여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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