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75

황성 2025. 8. 11. 21:03
728x90

45

 

편지(친구와 제자들과의 문답)(知舊門人問答)

 

 

 

우사붕(태중)에게 답함答虞士朋太中

 

역에 태극이 있고 이것이 양의를 낳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치가 나뉘어 처음으로 하나의 기()와 하나의 우()를 낳아서 한 획을 이룬 것이 둘이라는 것입니다. “양의가 사상을 낳는다는 것은 양의의 위에 각각 한 기()와 한 우()를 낳아서 두 획을 이룬 것이 넷이라는 것입니다.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는 것은 사상의 위에 각각 한 기와 한 우를 낳아서 삼 획을 이룬 것이 여덟이라는 것입니다. 효에 기수와 우수가 있고, 괘가 삼 획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두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이니 안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인이 또 이미 분명하게 말하여서 밝혔으니, 다시 말을 덧붙여서 따로 의론을 세운 다음에 분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학의 강령이요, 책을 편 근본 뜻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는 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소강절 선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선천의 학을 전수해서 그 설을 얻었고, 또 이것을 복희의 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괘전천지가 자리를 잡는다는 한 장은 선천도의 건1, 2, 3, 4, 5, 6, 7, 8의 순서가 모두 여기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만일 팔괘의 위에 다시 이것을 본 따서 획을 만들어서, 6획에까지 이르게 한다면 8괘가 서로 중첩되어 64괘를 이룹니다.(64괘의 위에 다시 이것을 모방해서 획을 만들고, 12획이 되게 하면, 64괘가 서로 중첩되어 4096괘가 되는데, 초공[초연수(焦延壽)]󰡔역림󰡕이 이것입니다.)

易有太極, 是生兩儀, 一理之判, 始生一奇一偶, 而爲一畫者二也. ‘兩儀生四象, 兩儀之上, 各生一奇偶, 而爲二畫者四也. ‘四象生八卦, 四象之上, 各生一奇一偶, 而爲三畫者八也. 爻之所以有奇有偶, 卦之所以三畫而成者, 以此而已. 是皆自然流出, 不假安排 : 聖人又已分明說破, 亦不待更著言語, 別立議論而後明也. 此乃學綱領, 開卷第一義, 然古今未見有識之者. 康節先生, 始傳先天之學而得其說, 且以此爲伏羲氏. 說卦天地定位一章, 先天圖乾八之序, 皆本於此. 若自八卦之上, 又放此而生之, 至于六畫, 則八卦相重而成六十四卦矣. 六十四卦之上, 又放此而生之, 至十二畫, 則六十四卦相重而成四千九十六卦矣. 焦貢易林是也.

 

강함과 부드러움은 비록 각각 치우침이 있는 것 같지만, 반드시 서로 착종한 다음에 알맞음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건 곤 두 괘의 전체는 마땅히 강해야 할 곳에 강하고, 마땅히 부드러워야 할 곳에 부드러워서, 서로 착종하지 않더라도 온전함에 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효의 위치가 넘침과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이 마치 건괘와 곤괘의 2, 5효와 같으니 서로 착종하지 않더라도 알맞음에 해가 되지 않습니다. 음양이 변화하는데 태극의 묘리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여기에서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건은 강하고 곤은 부드럽다고 한 것은 곧 치우침이 있으나 두 괘의 단사(彖詞) 2효와 5효의 효사에 통하지 않을까 걱정해서입니다. 그것이 4효의 넘침과 미치지 못함의 깊고 얕음을 논한 것은 정밀하여 다른 설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剛柔雖若各有所偏, 必相錯而後得中, 然在乾坤二卦之全體, 當剛而剛, 當柔而柔, 則不待相錯而不害其爲全矣. 其爻位之無過不及者, 乾坤之二, 亦不待相錯而不害其爲中矣. 陰陽變化而太極之妙無不在焉, 於此蓋可見也. 今謂, 便有所偏, 恐於二卦之彖及二五之爻詞有不通者. 其論四爻過不及之淺深, 則爲精密, 非它說之所及矣.

 

용구(用九) 용육(用六)은 마땅히 구양공의 설을 따라서 시초를 세고 괘를 변화시키는 범례로 삼아야 합니다. 대개 양효 192는 모두 구()를 쓰지 칠()을 쓰지 않습니다. 음효 192는 모두 육()을 쓰지 팔()을 쓰지 않습니다. 특별히 건괘와 곤괘 두 괘는 순전히 양이고 순전히 음이므로 편의 맨머리에 위치하며 따라서 여기에 나아가서 발현합니다. 이것이 구양공의 옛 설입니다. 나는 일찍이 그 설에 근거하여 추론하였는데,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건괘를 얻었는데 6효가 순수한 9이며 곤괘를 얻었는데 6효가 순수한 6인 것은 모두 마땅히 이러한 예에 따라 관련된 말을 점친 것이니, 반드시 다시 변화하는 괘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좌전󰡕에서 채묵이 건지곤(乾之坤)에 이르기를 떼 지은 용들이 우두머리가 없는 것을 보면 길하다라고 한 것이니 하나의 우수를 볼 수 있습니다. 대개 떼 지은 용들의 우두머리가 없다는 것은 곧 곤괘의 암말[牝馬]이 먼저 혼미하다는 것입니다. 건괘의 영원히 바름이 이롭다'[利永貞]는 것은 곧 건괘의 이익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用九用六, 當從歐陽公, 爲揲蓍變卦之凡例. 蓋陽爻百九十二, 皆用九而不用七 : 陰爻百九十二, 皆用六而不用八也. 特以乾坤二卦純陽純陰而居篇首, 故就此發之. 歐陽公舊說也. 而愚又嘗因其說而推之, 竊以爲凡得而六爻純九, 而六爻純六者, 皆當直就此例占其所繫之辭, 不必更看所變之卦. 左傳蔡墨所謂曰見羣龍無首者, 可以見其一隅也. 蓋羣龍無首, 牝馬先迷. ‘利永貞’, 不言所利.

 

학이편 첫 장은 대단히 좋습니다만, 단지 ()’ 한 글자는 실제로 치지(致知)와 역행(力行)을 아울러 말한 것이므로 한 쪽에 치우쳐서 거론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인용한 안자의 공부는 오로지 역행을 일삼은 것일 뿐입니다.

學而首章甚善, 之一字實兼致知力行而言, 不可偏擧. 今所引顔子功夫, 乃專爲力行事耳.

 

2장에서 사랑하고 공경하는 본래의 마음을 잃지 않으면 인은 쓰이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대단히 좋습니다. 다만 유자(有子) 또한 실질적인 이치에 근거하여 바르게 말한 것이니, 왜곡시켜 당시의 세상을 위하여 발표한 것은 아닙니다.

二章所謂不失其愛敬之本心, 則仁不可勝用者甚善, 有子亦據實理而正言之, 非曲爲當世而發也.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색을 좋게 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하는 것은 본래의 마음의 덕을 잃은 것이니 자신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을 기다린 뒤에야 불인(不仁)하는 것은 아닙니다.

巧言今色, 求以悅人, 則失其本心之德矣, 不待利己害人然後爲不仁也.

 

삼년 동안 아버지의 뜻을 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사량좌의 말입니다. 그 뜻은 좋지만, 지나쳐서 유작(游酢)이나 윤돈(尹焞)의 실제적인 것만 못할 까 걱정됩니다.

三年無改’, 謝氏之說. 其意美矣, 然恐過之, 不若游氏尹氏之爲實也.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다.’라는 한 장의 글 뜻은 소동파가 깨우쳤습니다.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것은 일에 따 조심할줄 알아서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의 용공(用功)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 깨우침이 있는 것입니다. ‘즐거움[]’예를 좋아함[好禮]’은 그 마음에 지니고 있는 것이 가난과 부유에 메어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니, 이것이 자공이 절차탁마에 비유한 까닭입니다. 뼈와 뿔을 다루는 사람은 먼저 자르고 다시 갈며, 옥과 돌을 다루는 사람은 먼저 다듬고(쪼고) 다시 가는 것이니, 모두가 먼저 개략적으로 한 뒤에 상세하게 하며, 먼저 거칠게 다룬 뒤에 정밀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대학󰡕은 필요한 부분만을 잘라내어 의미를 취한 것[斷章取義]이니 반드시 인용하여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無諂無驕一章文義, 東坡得之. 蓋無諂無驕, 隨事知戒, 足以自守矣. 然未見其於全體用功而有自得處也. ‘好禮’, 乃見其心之所存有非貧富之所能累者, 子貢所以有切磋琢磨之譬也. 治骨角者旣切而復磋之, 治玉石者旣琢而復磨之, 皆先略而後詳先粗而後精之意. 大學乃斷章取義, 不必引以爲說也.

 

여우의 설,위부지의 설,언득지의 설,관과의 설은 모두 잃어버린 것이 지나치게 높아서 뒤에 또한 대부분 이런 사람일까 걱정됩니다. 그 의미를 상세히 살펴보니 아마도 장무구의 의론 가운데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득이 되고 실이 되는 것은 다만 글의 뜻을 훈고하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다음에 자세하게 의론해야 할 것이니 지금은 감히 쉽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如愚之說爲不知之說焉得知之說觀過之說, 皆恐失之過高, 後亦多類此者. 詳其意味, 似從張無垢議論中來. 其爲得失, 非但訓詁文義之間而已. 此須異日子細商量, 今未敢容易說也.

 

일이관지는 유학에서 뒤에 친히 전한 은밀한 뜻이 아니지만, 그것이 유학의 큰 줄거리를 제시하고 근본을 거느려서 모아놓은 까닭은 대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증자는 그 뜻에 묵묵히 들어맞았기 때문에 곧 문인들의 물음에 따라서 충서두 글자를 붙여서 형용하였다면 그것의 일본만수(一本萬殊)와 맥락이 유통(流通)하는 실상을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한대 이후로 유학자들은 모두 (이를) 깨우치지 못하였고, 곧장 이정선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것을 발명하였으며, 그의 문인 가운데서도 오직 사량좌, 후중량 만이 그 말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살펴보지도 않고 다만 상대와 나를 잊는다고 말을 하니 저는 그 잘못이 지나칠까 걱정이 됩니다. 하물며 공자께서 이렇게 말하여 자공을 깨우쳐 준 것은 널리 배워서 많이 아는 데 근거하여 말한 것인데, 그것과 대상과 나를 잊는다는 것이 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一以貫之’, 乃聖門末後親傳密旨, 其所以提綱挈領統宗會元, 蓋有不可容言之妙. 當時曾子黙契其意, 故因門人之問, 便著忠恕二字形容出來, 則其一本萬殊脈絡流通之實益可見矣. 然自秦漢以來, 儒者皆不能曉. 直至二程先生, 始發明之, 而其門人又獨謝氏侯氏爲得其說. 今不考焉, 而但以忘物我者爲言, 吾恐其失之遠也. 况夫子以此語告子貢, 乃因博學多識而發, 其與忘物我者又有何關涉耶?

 

 

 

 

우사붕에게 답함 答虞士朋

 

지난번에 부쳐 주신 조창(趙倉)󰡔주역󰡕󰡔논어󰡕을 받아보니 깊은 근심을 씻을 만 하였습니다. 󰡔주역󰡕 설은 간단하고 쉬우면서 정밀하여 제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는 곳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저를) 경계하여 깨우쳐 주는 것도 깊고 근세에 여러 유학자들의 설에서 이르지 못한 곳도 대단히 많아서 그것을 완색(玩索)하여 여기에 이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번 뵙지 못한 것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니 만나 뵙고 그 상세한 내용을 묻겠습니다. 다만 상수(象數)는 역을 지은 근본이며, 복서(卜筮)는 그것을 적용한 실상이니, 여러 유학자들이 구하려 하여도 그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여 지나치게 자세하여 어지럽게 얽히는데 이르렀으므로 요즈음 사람들은 듣기 싫어합니다. 이제 한결같이 간략(簡略)한 것을 버리고 다시 유의하지 않으시면 도리어 강령을 만드는 것과 어의의 내력을 알지 못하여 대단히 편치 못할 까 걱정이 됩니다. 지난번에 건괘와 곤괘에 대해 개략적으로 기록한 것에 의심난 곳이 한두 군데 있었는데 이제야 뒤늦게 기록하여 올리니 상세하게 살펴봐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저는 당신과 더불어 서로 알지 못하면서 급하게 서로 옳고 그름을 따져 변론하고 싶지 않으니 제가 말한 것을 반드시 언급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습니다. 󰡔논어󰡕설은 옛 사람들이 자신을 수양하는 학문[爲己之學]에 유의하였으며, 뜻도 대단히 정확합니다. 다만 장무구(張無垢)의 글이 너무 익숙하고 용의(用意)가 너무 절실하며 입설(立說)이 너무 높아서 도리어 성인이 본래 가리킨 곳을 잃어버린 곳이 많지만, 이제 또한 급하게 논하려 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설은 뒤늦게 보내며 번거롭게 물음 드리니 또한 제가 부친 것이라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昨承寄示趙倉論語, 足浣愁疾. 說簡易精密, 不惟鄙意多所未及, 警發之深, 而近世諸儒說不到處亦甚多, 甚不易其玩索至此. 深恨末得一見, 面扣其詳也. 但象數乃作根本, 卜筮乃其用處之實, 而諸儒求之不得其要, 以至苛細繳繞, 今人厭聽. 今乃一向屛棄闊略, 不復留意, 却恐不見制作綱領語意來歷, 似亦未甚便也. 昨於乾坤二卦略記所疑之一二, 今謾錄呈, 幸爲詳之. 試因話次, 以盛意扣之, 看有何說, 却以見報. 與之未相識, 不欲遽相辯難, 千萬不必云所說也. 論語說有意古人爲己之學, 意亦甚正. 但覺看得張無垢文字太熟, 用意太切, 立說太高, 反致失却聖人本指處多. 今亦未欲遽論. 二說謾往, 幷煩扣之, 亦勿云所寄也.

 

 

유성지(구언)에게 답함 答游誠之(九言)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건도(乾道) 7(癸巳, 1173), 주자 나이 44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09)

 

보내오신 편지에서 책을 일고 이치를 음미하는 차례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저의 마음에 매우 위안이 됩니다. 다만 공부하는 과정을 엄격하게 세우고 느긋하게 생각을 가지고 오래 되면 저절로 마땅히 음미할 수 있게 될 것이니, 빨리 이루는 공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일상적인 공부에 대해서 논하신 곳에서 더욱 자기수양을 위한 뜻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마음은 하나일 뿐이니, 이른바 깨달음이란 것도 또한 마음입니다. 이제 깨달음으로써 마음을 구하고, 깨달음으로써 마음을 쓰느라고 어지럽게 뒤섞여서 박절(迫切)하니, 그 병통이 단지 모를 뽑아 올리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생깁니다. 일상생활에서 경()을 위주로 하여 마음에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본래의 마음이 미혹되지 않아 사물에 따라 느껴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기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깨닫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단지 자신의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지, ‘깨달음에 이르고 경()을 쓰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맹자께서도 마음은 잡으면 존재하고 놓으면 없어진다는 것만 말씀하셨지, ‘깨달음이 있으면 우매(愚昧)함이 없어진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사선생(謝先生: 사량좌)이 비록 깨달음을 가지고서 인()을 말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또한 반드시 지각(知覺)이 있어야 한다[必有知覺]’고 말씀하셨지, ‘이 마음을 지각하게 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청컨대 이 점을 미루어 증험(證驗)해보시면 논하신 바의 득실(得失)을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示喩讀書玩理次第, 甚慰所懷. 但嚴立功程寬著意思, 久之自當有味, 不可求欲速之功也. 所諭日用功夫, 尤見其爲己之意. 但心一而已, 所謂覺者亦心也. 今以覺求心, 以覺用心, 紛拏迫切, 恐其爲病不但揠苗而已. 不若日用之間以敬爲主而勿忘焉, 則自然本心不昧, 隨物感通, 不待致覺而無不覺矣. 孔子只言克己復禮, 而不言致覺用敬 : 孟子只言操存舍亡, 而不言覺存昧亡. 謝先生雖喜以覺言仁, 然亦曰心有知覺, 而不言知覺此心也. 請推此以驗之, 所論得失自可見矣.

 

만약 명의(名義)로 말하면 인()은 저절로 사랑의 본체이고 깨달음[]은 저절로 앎의 작용이니, 맥락이 나누어져 저절로 서로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인은 사덕을 거느리므로 사람이 어질면 깨닫지 않음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량좌의 말에 대해, 후중량이 부정하여 말하기를 어질지 못한 사람은 지각할 수 없다고 한다면 옳지만, 곧 마음에 지각이 있는 것은 인이라 한다면 옳지 않다.’고 하였으니, 이 말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라건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若以名義言之, 則仁自是愛之體, 覺自是知之用, 界分脈絡, 自不相關. 但仁統四德, 故人仁則無不覺耳. 謝子之言, 侯子非之曰謂不仁者無所知覺則可, 便以心有知覺爲仁則不可’, 此言亦有味, 請試思之.

 

극재기는 요사이 다시 고쳐 썼는데, 이제 따로 베껴 써서 보냅니다. 뒷면에 요즘 사람들의 잘못을 심하게 비난하고 싶지 않아서 파동위박(波動危迫)’ 등의 말은 모두 이미 삭제했습니다. 다만 전에 논한 성정(性情)의 맥락과 공부의 순서는 저절로 안에 간직되어 있는 실정을 알 수 있으니, 말로 다하지 않아도(말을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은 뒤에도) 깨달을 것입니다. 따라서 장남헌을 만나 다시 이러한 뜻으로 질문하시면 마땅히 서로 의미를 깨달아서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克齋記近復改定, 今別寫去. 後面不欲深詆近世之失, ‘波動危迫等語皆已削去. 但前所論性情脈絡功夫次第自亦可見底裏, 不待盡言而後喩也. 因見南軒, 試更以此意質之, 當有以相發明爾.

 

 

유성지에게 답함 答游誠之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건도(乾道) 7(癸巳, 1173), 주자 나이 44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09)

 

()과 각()에 대한 말은 앞서 보낸 편지에서 이미 상세하게 알려드렸습니다. 당신이 보내온 이 편지에서 측은은 마음은 깨달음에서 나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대단히 좋습니다. 다만 이른바 ()이라는 한 글자는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에 대해서, 저는 각()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만 공부할 때 힘을 쓰는 곳은 경에 있지 깨달음에 있지 않다고 말할 뿐입니다. 사상채가 경은 항상 깨어있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그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다만 깨어 있는 것을 인의 뜻으로 여기는 데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것이 이치에 알맞지 않을 뿐입니다.

覺之說, 前書已詳報矣. 此書所喩側隱似非出於覺, 此語甚佳. 但所謂覺之一字未必不佳, 鄙意亦非以覺爲不佳, 但謂功夫用力處在敬而不在覺耳. 上蔡敬是常惺惺法’, 此言得之. 但不免有便以惺惺爲仁之意, 此則未穩當耳.

 

보내오신 편지에서 종전에 마음이 이리저리 치달리는 허물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당신과 같이 밝은 사람이 아니면 스스로 알기가 어려운 것이니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이미 스스로 알았다면 또한 스스로 고칠 따름이지, 다른 사람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궁리(窮理)와 함양(涵養)의 공부는 마땅히 병행해야 합니다. 대개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있지 않으면 함양(涵養)의 공부에 이를 수가 없고, 깊이 간직한 것이 있지 않으면 의리(義理)의 오묘함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바로 마땅히 서로 작용을 해야 각각 그 공()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所喩從前馳騖之過, 此非明者不能自知, 甚善. 然旣自知之, 則亦自改之而已, 它人不得而與也. 窮理涵養, 要當竝進. 蓋非稍有所知, 無以致涵養之功 : 非深有所存, 無以盡義理之奧. 正當交相爲用而各致其功耳.

 

 

유성지에게 답함 答游誠之

 

마음의 체()는 진실로 본디 고요한 것이지만, 또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의 용()은 본디 진실로 착한 것이지만 또한 흘러서 착하지 않은 데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릇 움직여서 착하지 않은 데로 흐르는 것은 진실로 마음의 체()가 본래 그런 것이다라고 이를 수는 없습니다. 또한 그러나 마음이 아니라고 이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사물에 유혹되어 그럴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옛 성인께서는 다만 잡으면 보존되고, 보존되면 고요하여 움직여도 선하지 않음이 없다. 놓으면 잃어서, 이 때에야 움직여서 불선(不善)한 데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들락날락하는 것은 일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도 알 수 없다. 나가는 것은 잃게 되고 들어오는 것은 보존되는데, 본래 일정한 때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일정한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이 잡느냐 놓느냐에 달린 것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만 이 네 구절에서 마음의 체()와 용(), 시작과 끝, 참됨과 망령됨, 사악함과 바름 등을 이야기하여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이 마음은 잡지 않으면 곧 놓는 것이고, 나가지 않으면 곧 들어 오는 것으로 따로 한가한 곳에서 편안히 있을 수 없다는 뜻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논하신 것처럼 마음이 들락날락 하는데 정해진 때가 있는 것이 마음이 바른 상태라고 한다면, 공자께서 말한 들락날락하는 데 일정한 때가 없다는 것은 마음이 병든 상태입니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라는 한 구절만을 곧장 가리켜 총괄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석자중(石子重)과 여자약(呂子約所)에게 답한 두 통의 편지에서 (이에 대해) 써서 드렸는데, 다만 여자약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의 말은 오히려 흠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자세하게 분석할 겨를이 없었으니, 당신께서 가려주시면 좋겠습니다.

 

心體固本靜, 然亦不能不動. 其用固本善, 然亦能流而入於不善. 夫其動而流於不善者, 固不可謂心體之本然 : 然亦不可不謂之心也, 但其誘於物而然耳. 故先聖只說操則存, 存則靜, 而其動也無不善矣. 舍則亡, 於是乎有動而流於不善者. 出入無時, 莫知其鄕. 出者亡也, 入者存也, 本無一定之時, 亦無一定之處, 特係於人之操舍如何耳.’ 只此四句, 說得心之體用始終眞妄邪正無所不備 : 又見得此心不操卽舍, 不出卽入, 別無閑處可安頓之意. 若如所論, 出入有時者爲心之正, 然則孔子所謂出入無時者, 乃心之病矣. 不應却以惟心之謂與一句直指而總結之也. 所答二書寫呈, 子約書中語尙有病, 當時不暇子細剖析. 明者擇焉可也.

 

 

오백기에게 답함 答吳伯起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12(乙巳, 1185), 주자 나이 56세 때 쓴 것이다.(󰡔편년고증󰡕 230)

 

성도(成都)의 허락이 이처럼 쉽게 떨어진 것은 이상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도록 만든 것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니, 다만 마땅히 스스로 반성해야지,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조여우]가 최근에 도중(韜仲: 유병(劉炳))을 불렀으나, (도중이) 가려 하지 않아서, 순서에 따라 더욱 손을 움츠리게 된 것입니다. 조총경(趙總卿)으로부터 얼마 전에 편지를 받았는데,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허락한 것이 마침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했듯이 의리는 끝이 없지만, 저들이 말과 증거를 갖추어서 파헤치며 추문(推問)하고 조사하여 직위를 바꾸는[낮추는] 것에는 끝이 있으니, 다만 하루 종일 항상 절실(切實)하게 돌보아서 빠뜨린 곳이 없게 하면, 저들이 파헤치고 조사하여 관직을 바꾸려[낮추려] 해도 문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 천명(天命)을 믿지 못하는 것은 진실로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을 조물주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또한 아주 진지한 말이 아닙니다. 이런 의리상에서 분명하게 보려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한 마디 전해 다니는 짧은 말에만 의지하여 만족한다면, 사변(事變)이 닥쳐오면 감당할 수가 없어 큰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成都之諾乃爾輕發, 可怪. 然亦在我者有以致之, 但當自省, 不當責人也. 渠近辟韜仲不下, 次第愈縮手矣. 趙總卿頃得書, 甚相念, 不知所許竟如何. 然吾之所謂義者無窮, 而彼之具析體究對移者有盡, 但十二時中常切照管, 勿令有滲漏處, 則彼之來者不足問矣. 今人戚戚不能信命者, 固無足道 : 然謂付之造物, 亦非極摯之語. 此處儘要見得分明, 便不動心. 不可只靠一言半句海上單方, 便以爲足. 恐事變之來, 抵當不去, 恐成好笑也.

 

 

(4-2144)오백기에게 답함 答吳伯起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12(乙巳, 1185), 주자 나이 56세 때 쓴 것이다.(󰡔편년고증󰡕 230)

 

편지를 받아 보니, 착함을 듣고서 느낌이 발하여 의리와 이익의 구분이 분명해졌다고 하셨더군요. 노쇠하고 나약해진 나머지 경계하고 성찰(省察)하게 해 주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 때의 뜻과 기운은 쉽게 소멸됩니다. 바로 아침저녁으로 의리를 강구하여 배양해 나가야지, 오로지 이것만을 믿고서 최종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且審聞善感發, 判然義利之間, 衰懦之餘, 警省多矣. 然一時意氣, 易得消歇. 正要朝夕講求義理以培植之, 不可專恃此便爲究竟也.

 

 

구양경사(광조)에게 답함 答歐陽慶似光祖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2(乙未, 1175), 주자 나이 44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33)

 

頃在里中, 雖屢獲見, 而常苦匆匆, 不及盡所欲言. 然已固知所志之不凡矣. 今唇惠問, 乃慨然有志於學, 甚善甚善.

 

일찍이 제가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의 배우는 사람들은 옛사람들의 자신을 위하는 뜻을 알지 못하여 독서로 자기를 다스리는 것을 급선무로 삼지 않고 도()를 듣는 것을 급선무로 삼기 때문에 문채(文彩)가 바탕을 이기고, 말이 행실보다 과장되어 끝내 멈출 곳을 알지 못합니다. 가만히 이 점을 돌이켜 (그 원인을) 찾으려 하였지만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대가 저 같은 사람에게 근면하게 물어준 것을 받으니 부끄럽습니다. 대답할 수가 없기에 감히 사사로이 저의 견해를 밝혔는데, 현명하신 그대가 그렇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抑嘗病今之學者不知古人爲己之意, 不以謂書治己爲先, 而急於聞道, 是以文勝其質, 言浮於行, 而終不知所底止. 方竊以是反而求之而未之有得也, 愧辱下問之勤, 無以稱塞, 敢私布之. 不識明者謂之然否?

 

 

구양경사(광조)에게 답함 答歐陽慶似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2(乙未, 1175), 주자 나이 44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33)

 

써주기 바라신 서문은 시간이 임박하여 붓을 들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학문을 하고 자기를 다스리는 방법은 이전에 익히 말씀드렸습니다. 관직의 업무를 보면서 이를 헤아려서 다다른다면 법을 받들어 백성을 사랑하며 명성과 현달(顯達)을 구하지 않는 것은 모두 나 자신의 일일 뿐입니다. 이것도 본래 저같이 졸렬한 사람의 말을 기다리지 않는데 또 하물며 그 밖의 글에서이겠습니까? 여씨[呂本中]󰡔동몽훈󰡕 하권에 관직을 지키는 법을 논하였는데 또한 자못 명확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짬을 내서 다시 살펴보시면 마땅히 유익할 것입니다.

所需序文, 迫歲冗甚, 不暇執筆. 然爲學治己之方, 前此講之熟矣. 當官之務推此而達之, 則奉法愛民, 不求聞達, 皆吾分內事耳. 此固不待拙者之言, 又况其外之文乎. 呂氏童蒙訓下卷論守官之法亦頗明備, 暇日更試考之, 當有益也.

 

 

엄거후(사돈)에게 답함 答嚴居厚士敦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10(癸卯, 1183), 주자 나이 54세 때 쓴 것이다.(󰡔편년고증󰡕 211)

 

보내오신 편지에서, ‘학문에 나아가 공을 들이는 것에 대해 말한 곳은 매우 좋습니다. 사물에 접촉하면 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다만 일에 마주치지 않았을 때 마음을 간직하고 본성을 기르는 공부가 충분하지 못해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또 따로 다른 길이 없으므로 빨리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항상 이런 마음을 간직하여 중간에 끊어짐이 없도록 하여 의리를 강명하여 기르고 북돋우면 오래 되어 완전히 익혀지고 명쾌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공부를 익히는 것은 옛날의 현인들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니, 다만 이치를 따르고 천명을 편안히 여겨 시속(時俗)을 좇지 않는다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져 저절로 두려워서 쫓기는 듯한 얽매임은 없어질 것입니다.

示喩進學加功處, 甚善. 觸事未能不爲事物所奪, 只是未遇事時存養未熟, 所以如此. 然又別無他岐, 不可欲速, 但常存此心, 勿令間斷, 講明義理以栽培之, 則久當純熟明快矣. 科擧之習前賢所不免, 但循理安命, 不追時好, 則心地恬愉, 自無怵迫之累.

 

지난번에 염우민자안연은 모든 재주를 갖추었으나 미약하다고 논한 것은 너무 시호(時好)를 주창하는 것을 면치 못할 듯 합니다. 그러나 기이하고 높은 것에 힘쓰면 도리어 말의 뜻이 함께 두루 통달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랫동안 편지 올려 안부 물으려 하였으나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저의 생각을) 펼쳐 올립니다.

昨見所論三子具體而微, 似未免太徇時好. 然務爲奇險, 反使詞義俱不通暢. 久欲奉告, 而未及也, 因此布陳, 僭易僭易.

 

별지에서 말씀하신 기를 기르는 것에 관한 설에서, 강학을 게을리 하지 않는 뜻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장의 글의 뜻은 저절로 밝히기 어려우니, 마땅히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화평하게 하여 반복하여 외워서 오래되면 마땅히 음미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급박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그것을 구하는 것은 마치 실을 추리고자 하면서 얽히게 하는 것과 같으니, 비록 억지로 설을 만들려 해도 마침내 내 마음에 편안하지 않고, 지나치게 파고들고 지리(支離)하여져 더욱 도에서 어긋나게 됩니다.

別紙喩及養氣之說, 足見講學不倦之意. 但此章文義正自難明, 且當虛心平氣, 反復諷誦, 久當有味. 今以迫切之心求之, 正猶治絲而棼之, 雖欲彊爲之說, 終非吾心所安, 穿鑿支離, 愈叛於道矣.

 

이제 또 보내주신 편지에 의거해서 대략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자는 [바르다]’으로 뜻풀이 하였는데, 예서에 이와 같은 곳이 많으니 옛 유학자들의 말은 바꿔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자는 ()’로 뜻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니, 곧 이 ()’자는 전일(專一)’의 뜻일 뿐입니다. 정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뜻이 매우 치우쳐 있다면, 어떻게 기가 움직이지 않겠는가? 기가 전적으로 기쁨과 노여움 속에 놓여 있다면, 어찌 뜻이 움직이지 않겠는가?” 시험 삼아 이것으로 생각해보면, 말을 아는 것은 의리가 있는 곳을 아는 것이니 조그마한 어긋남도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의를 모아서 호연지기를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피음사둔(詖淫邪遁)’ 네 글자는 순서가 있으나 저것과 이것의 구분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양주묵자석가노자의 말은 이 네 가지를 갖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쉽게 급하게 논할 것은 아닙니다. 청컨대, 앞의 설과 같이 반복하여 완미하고 오랫동안 요긴하게 여기면 저절로 마땅하게 분명히 깨달은 곳이 있을 것입니다. 不必廣求, 徒勞曰力. 다만 두 선생님이 말씀하신 곳은 베껴서 함께 보면 좋을 것입니다.

 

 

今且據來喩而略言之. ‘字訓’, 禮書如此處多, 先儒之言, 似不可易. ‘字非訓’, 便只是, 專一之意耳. 記得程先生有說: ‘志專在淫僻, 豈不動氣? 氣專在喜怒, 豈不動志?’ 試以是思之, 知言則知義理之所在, 無毫釐之差, 故日用之間有以集義而生浩然之氣. ‘詖淫邪遁四字有次序, 而無彼此之分. 釋老之言, 無不具此四者. 然今亦未易遽論也. 請且如前說, 反復玩味, 要之以久, 自當釋然有解悟處. 不必廣求, 徒勞曰力. 只二先生有說處, 抄出同看可也.

 

 

 

 

구자야에게 답함 答丘子野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10(癸卯, 1183), 주자 나이 54세 때 쓴 것이다.(󰡔편년고증󰡕 211)

 

보내오신 편지에 ()’()’의 구별은 생각건대 이미 완성된 설이 있습니다. 이에 물음을 주셨기 때문에 일찍이 가만히 생각해보고 감히 (제 생각을) 당신께 펼칩니다. 대개 󰡔󰡕에는 상팔괘육효가 있은 뒤에 사()[괘와 효의 사]가 있으며, 점을 치는 데는 변화가 있은[노음과 노양] 뒤에 점이 있습니다. [변화하는 효의 사] 상의 변화입니다. 이치에 있어서 일에 나타나지 않으며, 사는 각기 상에 따라서 그 길함과 흉함을 가리키니, 점을 치면 또한 내가 마주치는 사에 따라서 결정하며 사람들에게 보여서 더욱 상세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거처할 때 역을 배운다면 이미 상을 보고 또 사를 살펴봄으로써 그 처한 곳의 마땅함과 마땅치 않음을 살핍니다. 움직여서 점을 물으면 이미 변화를 보고, 또 점을 살펴보아 마주치는 길흉을 상고합니다. 선하여서 길한 것은 행하고 선하지 않아서 흉한 것은 그만 둡니다. 이로써 움직임과 고요함 사이에서 거동하여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으며 하늘이 도와주는 길함으로부터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대개은 한 번 보고 결정하는 것이고 은 반복하여 버리지 않은 말입니다.

 示喩觀玩之別, 想已有成說. 玆因下問之及, 嘗竊思之, 敢布左右. 有象八卦六爻然後有辭, 卦爻之辭筮有變老陰老陽然後有占. 變爻之辭象之變也, 在理而末形於事者也, 辭則各因象而指其吉凶, 占則又因吾之所値之辭而決焉, 其示人也益以詳矣. 故君子居而學, 則旣觀象矣, 又玩辭以考其所處之當否 : 動而諏筮, 則旣觀變矣, 又玩占以考其所値之吉凶. 善而吉者則行, 否而凶者則止. 是以動靜之間, 擧無違理, 而自天祐之吉, 無不利也. 蓋觀者一見而決, 玩者反復而不舍之辭也.

 

산가지로 치는 점은 영험하지 않고 거북점은 영험하다.’는 설은 오직 󰡔춘추좌전󰡕 두예의 주에 보이니, (이러한) 이치는 본래 있었습니다. 다만 선왕이 복서의 법을 제정할 때 지극히 엄격하고 경건하게 하였으며, 그 마음을 비우고 귀신에게 들어, (마음을) 한결 같이 하면 응할 것이고 의심하거나 두 마음을 품으면 어긋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에 거북점과 시초점을 서로 잇달아 하지 않는다한 것도 대개 이를 위한 것입니다. 진나라 헌공이 여희를 부인으로 삼으려 한 것은 이치로써 살펴보면 거북점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길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거북점의 길하지 않음에 이르면 또한 매우 절실하게 분명하고 밝습니다. 이미 점을 마쳤는데 그 사사로운 뜻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시초점을 쳤으니, 이로써 사사로운 마음을 주로 삼아 신명에게서 기필(期必)할 것을 취하였으니, 어찌 감동하여 통하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산가지로 점친 것이 비록 길하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흉함을 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 귀신에게 들은 것이 한결같지 않는 이유를 헤아리지 않고 급히 이에 나아가서 거북점은 영험하고 시초점은 영험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였으니 아마도 그 말을 바꾸는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筮短龜長之說, 惟見於左氏元凱之注, 理固有之. 但先王制卜筮之法至嚴至敬, 虛其心以聽於鬼神, 專一則應, 疑貳則差. 卜筮不相襲’, 蓋爲此也. 晉獻之欲立麗姬, 以理觀之, 不待卜而不吉可知. 及其卜之不吉也, 則亦深切著明. 已矣乃不勝其私意而復筮之, 是以私心爲主而取必於神明也, 豈有感通之理哉此所以筮之雖吉, 而卒不免於凶也. 今不推其所以聽於鬼神者之不專不一, 而遽欲卽此以校龜筮之短長, 恐末免乎易其言之責也.

 

이치는 하나일 뿐인데, 그것의 형체가 있는 것을 기라하고 형체가 없는 것을 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도는 기가 아니면 형체를 띨 수 없고(나타날 수가 없고) 기는 도가 아니면 설 수가 없습니다. 대개 음양은 기이고 음양이 되는 까닭은 도입니다. 이로써 한번 음으로 변하고 한번 양으로 변하여 가고 오는 것이 그치지 않으니, 성인은 이를 가리켜서 도의 온전한 본체를 밝혔습니다. 이것이한번 음으로 변하고 한 번 양으로 변하는 것을 도라 한다.’는 말입니다. 당신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理則一而已矣, 其形者則謂之器, 其不形者則謂之道. 然而道非器不形, 器非道不立. 蓋陰陽亦器也, 而所以陰陽者道也. 是以一陰一陽, 往來不息, 而聖人指是以明道之全體也. 一陰一陽之謂道之說也, 不審高明以爲然否?

   

 

구자복()에게 답함 答丘子服膺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4(戊午, 1198), 주자 나이 69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455)

 

총애나 모욕이나 깜짝 놀란 듯이 대하고, 큰 근심을 제 몸처럼 귀하게 여겨라하였는데,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과 같습니다. 총애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는 것이 자그마한 일이지만 그것을 얻었을 때는 깜짝 놀란 듯이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세상의 큰 근심이라면 더욱 귀하고 중요하게 여겨 범해서는 안 되니, 마치 그 몸을 아끼듯이 해야 합니다. ‘총애가 변하여 아래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총애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윗사람으로 대우받고 사람들에게 총애 받는 자는 사람들에게 아랫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욕됨은 본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총애 또한 높이 여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총애를 받거나 욕을 당해도 오히려 놀란 듯이 하는데 하물며 큰 환란이 내 몸과 하나가 되었다면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들로 하여금 큰 환란에 모두 그것이 장차 내 몸에 미쳐도 귀하고 중요하게 여기게 한다면 반드시 그 몸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깊이 세상의 일을 내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을 얻어서 세상을 맡긴다면 그는 세상에서 반드시 삼가고 지켜서 그의 몸을 아끼듯이 할 것이니, 어찌 재난과 실패가 미칠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도의 진리로 몸을 다스리라 말하고 또 몸과 명성 가운데 어느 것이 가까운 것인가를 말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을 내버려 두고 자신을 뒤로 물리는 것을 말한 것이나, 실제로는 자신이 앞서게 되고 보존되는 것이니, 그 자신을 아끼는 것이 지극합니다. 이것이 그의 학문이 전해 내려와 양주의 위아(爲我)설이 된 이유입니다. 소철[소자유]이 자신을 잊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불가의 꿈과 허깨비처럼 덧없고 물거품과 그림자처럼 무상하다는 뜻이니 노자의 본래 참모습이 아닙니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貴猶重也. 言寵辱細故, 而得之猶若驚焉 : 若世之大患, 則尤當貴重之而不可犯, 如愛其身也. 寵爲下者, 寵人者上於人者也, 寵於人者下於人者也. 是辱固不待言而寵亦未足尙. 今乃得之而猶若驚, 而况大患與身爲一, 而可以不貴乎? 若使人於大患皆若其將及於身而貴重之, 則必不敢輕以其身深預天下之事矣. 得如是之人而以天下托之, 則其於天下必能謹守, 如愛其身, 而豈有禍敗之及哉? 老子言道之眞以治身, 又言身與名孰親, 而其言外其身後其身者, 其實乃所以先而存之也, 其愛身也至矣. 此其學之傳所以流而爲楊氏之爲我也. 蘇子由乃以忘身爲言, 是乃佛家夢幻泡影之遺意, 而非老氏之本眞矣.

 

 

구자복에게 답함 答丘子服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4(戊午, 1198), 주자 나이 69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455)

 

이틀 동안 이어서 손수 쓰신 편지를 받아보니 위안이 됩니다. 큰 근심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진실로 좋으나, 다만 뒤의 [귀하게 여긴다]’ 한 글자를 따로 하나의 뜻으로 해석한 것은 온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오는 것은 삶이고 들어가는 것은 죽음이다장에 대해, 여러 사람들의 설이 모두 사람들의 뜻에 흡족하지 않으니, 아마도 반드시 노자의 본래의 뜻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 다만 무슨 까닭인가이하로 보면 말의 의미가 저절로 분명합니다. 대개 사람이 삶으로부터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삶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임을 말하였습니다. 말소리와 얼굴빛 냄새와 맛, 거처와 봉양, 권세와 이기적 욕망은 모두 삶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너무 집착하기만 하면 사물을 얻어도 해가 됩니다. 삶을 잘 운용하는 사람이 이러한 얽매임에서 멀리 벗어나면 죽음을 의식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현실세계의 일상적인 일이니, 곧 받아들여 지킬 수 있으면 여타의 이미 밝히기 어려운 것은 반드시 깊이 궁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兩日連得手示, 爲慰. 貴大患如此說固好, 但後一字別爲一義, 似未安耳. ‘出生入死, 諸家說皆不愜人意, 恐未必得老子本指. 今只自夫何故以下看, 則語意自分明. 蓋言人所以自生而趨死者, 以其生生之厚耳. 聲色臭味居處奉養權勢利欲, 皆所以生之者. 惟於此太厚, 所以物得而害之. 善攝生者遠離此累, 則無死地矣. 此却只是目前日用事, 便可受持, 他旣難明, 似亦不必深究也. 如何如何?

 

 

 

이심경()에게 답함 答李深卿泳

[해제] 이 편지는 송나라 효종(孝宗) 건도(乾道) 6(庚寅, 1170), 주자 나이 41세 때 쓴 것이다.(󰡔편년고증󰡕 76)

 

어제 임택지가 당신의 별지(別紙)를 갖고 와서 보여 주었는데, 가르쳐 깨우쳐 주신 뜻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는 답장드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는 편에 구두(口頭)로 저의 생각을 말씀 드렸는데, 뛰어나신 당신께서는 그렇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릇 유교와 불교의 바르고 바르지 못함의 차이는 쉽게 입씨름으로 다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깨달은 것이 분명하면 일에 부딪쳐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제 멀리서 인용할 겨를이 없으니, 보내오신 편지에서 거론하신 󰡔중용󰡕의 머리장을 가지고 논하겠습니다. 우리 유학에서 하나로 여기는 것을 불교에서는 둘로 만들고, 우리 유교에서 실()이라고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허()라고 하니, 그것의 바름과 바르지 못함 얻음과 잃음이 이미 여기서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배우는 사람들은 우리 유학에 대해서 애초에 확실하게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불교의 설에 대해서는 도리어 힘써 연구합니다. 이런 까닭에 불교의 설에 대해서는 날마다 그 뛰어난 점만 보고서 우리 유학을 부족한 것으로 여깁니다. (불교에) 빠져드는 것이 더욱 깊어지면 마침내 다시는 자신이 빠졌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이는 비록 맹자의 변론으로 지켜서 가르쳐 주어도 아마도 쉽게 뿌리 뽑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오늘날 재주가 낮고 덕이 적은 사람에서이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는 아마도 구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개 천리와 인심은 저절로 지극히 마땅한 점이 있어서, 우리는 따르는데 저들은 거스르니 체세(體勢)가 같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 유학을 하는 사람들은 깊이 거부하고 힘써 배척하여 일찍이 불교에 합치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학문을 하는 자들은 지리하게 말하고 뒤엉키게 이야기하면서 오직 그들의 견해가 우리에게 거절당할까 두려워합니다. 이는 그 마음에 의심스러워 불안해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다면 시험 삼아 우리 유학에서 힘써 노력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과거에 저 불교에 한결같이 뜻을 두어 종사하던 것처럼 하면 됩니다. 불교에 투자한 시간만큼 들여 중간에 끊임이 없게 한다면, 아마도 본래의 마음의 바름을 얻어서 이전의 잘못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擇之持示別紙, 敎告甚悉. 時亦不暇奉報, 然因其行, 嘗口附區區, 不知高明以爲然否. 夫儒正邪之異, 未易以口舌爭. 但見得分明, 則觸事可辨. 今未暇遠引, 且以來敎所擧中庸首章論之, 則吾之所謂一者彼以爲二, 吾之所謂實者彼以爲虛, 其邪正得矢於此已判然矣. 然世之學者於吾學初未嘗端的用功, 而於彼說顧嘗著力硏究, 是以於彼說日見其高妙, 而視吾學爲不足爲. 陷溺益深, 則遂不復自知其爲陷溺. 是雖以孟子之辨守而告之, 恐未易拔, 而况今日才卑德薄之人乎. 然有一於此, 疑若可救. 蓋天理人心, 自有至當, 我順彼逆, 體勢不侔. 是以爲吾學者深拒力排, 末嘗求合於彼 : 而爲彼學者支辭蔓說, 惟恐其見絶於我. 是於其心疑亦有所不安矣. 誠如是也, 則莫若試於吾學求其所以用力者, 如往時之一意於彼而從事焉. 假以歲時, 不使間斷, 則庶乎其可以得本心之正而悟前日之非矣.

 

후학(後學)이 선배를 가벼이 보는 폐단을 열어 주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논하신 것은 지당한 논의이니, 제가 감히 가르침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성현께서 의론한 것을 보면, 비록 선배들을 우러러 공경했지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 있어서는 또한 일찍이 조금이라도 사정을 봐주는 사사로움이 없었습니다. 맹자가 이윤백이유하혜를 논할 때는 눌렀다 높였다 하였으니, 한결같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공저의 학문으로 보면, 근세에 있어서는 또한 바른 것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여공저[정헌공]가 신종의 공적(空寂)에 대한 질문에 대답한 것을 보면, 요순(堯舜)의 안 것과 급하게 여긴 것을 두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여희철[原明]이 여공저가 불교를 배운 일을 기록한 것을 보면 여공저가 배운 것과 말한 것이 두 갈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류에 대해서는 모두 열거할 수 없습니다. 대개 오히려 습속의 가림[]을 벗어나지 못했는데도 선배라는 이유로 줄곧 우러러 공경하여도 다시 그 잘못을 논의하는 것은 금할 수가 없으니, 이는 공자가 장문중(臧文仲)의 어질지 못함과 지혜롭지 못함을 논한 것을 합당하지 않게 여기고, 또한 곧장 영윤자문(令尹子文)과 공문자(孔文子)를 어질다고 인정한 것을 마땅하게 여긴 뒤에야 옳다는 것입니다. 임택지는 강론이 자세하고 치밀하며, 힘써 지극히 당연한 것을 구하려는데 힘쓰니, 잘못을 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서 실로 선배를 가볍게 보는 마음이 있음을 면하지 못할 것인데, 이 점은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난 해 편지를 보내서 일찍이 경계하도록 하였으니, 바로 당신의 뜻과 꼭 같습니다. 다만 이것 때문에 모두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명백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所論不當啓後學輕視前輩之弊, 此則至論, 敢不承敎. 然觀聖賢議論, 雖未嘗不推尊前輩, 而其是是非非之際, 亦未嘗有毫髮假借之私. 孟子之論伊尹抑揚其辭, 不一而足, 亦可見矣. 呂氏之學, 在近世則亦近正矣. 然觀正獻神祖空寂之問, 則以堯舜所知所急爲兩途 : 原明正獻學佛之事, 則見正獻所學所言爲二致. 諸若此類, 不可殫擧. 蓋猶未免於習俗之蔽, 而以前輩之故一例推尊, 禁不得復議其失, 孔子不當論臧文仲之不仁不智, 且當直許子文文子以仁然後爲可也. 擇之講論精密, 務求至當, 似末爲過. 但其間却實不免有輕視前輩之心, 此則不可. 去年因書蓋嘗箴之, 正如老兄之意. 但不敢謂緣此都不得別白是非也.     

 

무릇 이 두 가지는 모두 요즈음 세상의 배우는 사람들이 깊이 얽매여있는 폐단이니, 이 때문에 보내 주신 편지에서 언급한 것에 따라 자세하게 논했습니다. 원컨대, 시험 삼아 저의 말에 근거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시되, 한 가지 일이 바르게 되면 나머지 일은 모두 바르게 될 것입니다. 대개 이치에는 두 갈래가 없으니, 당신이 󰡔중용󰡕의 맨 머리 장의 세 구절을 따로 두 가지 일로 나누어 논한 것과 여공저의 아는 바와 급한 바, 배운 바와 말한 것과는 피차(彼此)의 다름이 있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저의 생각은 이와 같으나, 혹시라도 타당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글을 보내 가르쳐 주기 바라며 반복하는 것을 꺼리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간절하게 바랍니다.

凡此二條, 皆近世學者深錮之弊, 是以因來喩之及而極論之. 願試以愚言思之, 一事正則其餘皆正矣. 蓋理無二致, 非如老兄所論中庸首章三句別爲兩事, 呂氏所知所急所學所言有彼此之殊也. 鄙見如此, 或有末當, 因來却望見敎, 勿憚反復. 不有益於彼, 則必有益於此矣. 千萬至懇至懇.

 

 

호관부에게 답함 答胡寬夫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乾道(건도) 9(癸巳, 1173), 주자 나이 44세 때 쓴 것이다.(󰡔편년고증󰡕 110)

 

보내 주신 의의(疑義) 몇 조에서, 헤어진 뒤로 학문에 나아가는 독실함을 볼 수 있어서 크게 위안이 됩니다. 대강은 이렇게 보시고, 다시 모름지기 얕고 가까우며 평이한 곳으로부터 이해하고, 응용하여 몸에 간절한 곳으로부터 몸소 살펴보아 점차적으로 계속해 나가 중간에 끊어지지 않도록 하면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여러 가지에 두루 꿰뚫어 통할 수가 있습니다. 쉽고 조급하게 생각하여 늘 있는 것은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여, 오로지 최상등의 이해하기 어렵고 형체도 그림자도 없는 언어를 가려 뽑아 남모르게 상상하여 엉터리로 지어내고 지나치게 파고들어 마음과 정신을 잘못 쓰고 시일과 힘을 허비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불교의 장단점에 대해서 변론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소견이 없으면 그것을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긴요하고 절실한 공부는 팽개쳐 둔 채,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한 바탕 쓸 데 없는 입씨름을 해 본들, 손해만 있지 유익할 게 없으니, 더욱 마땅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주일(主一)의 공부는, 배우는 사람들이 힘써 노력해야할 절실하고 요긴한 곳인데, 편지를 받아 보니 여기에 뜻을 두고 계시다니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그밖에 추론한 설은 지나치게 어지러워 병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의 관점으로는, 반드시 이렇게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모여서 글을 읽으면서 이해해 나간다면 곧 점점 나아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자기가 보는 글이나 학생들의 공부를 지도하고 감독할 적에는 모두 모름지기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규칙 안에서 항상 절실하게 마음을 간직하고, 규칙을 벗어나 망상을 해서는 안 됩니다.(만약 󰡔논어󰡕를 본다면, 오늘 이 단락까지 보았으면 곧 마음을 집중하고 뜻을 다하여 다만 이 단락만 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 단락이 비록 좋다 해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곧장 이 단락을 분석하고 이해하여 반복하여 말해도 어긋남이 없을 때를 기다려, 이어서 온 종일 의미를 음미하고 다음날 다음 단락을 보아야 합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일에 다 이렇게 유추하여 나간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좋은 일이라도 또한 망상(妄想)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일(主一) 공부의 점진적인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음속에서 잠깐 사이에 천 가지 만 가지 실마리를 갑자기 주일(主一)하려고 한들 어떻게 순응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示喩疑義數條, 足見別後進學之篤, 甚慰甚慰. 大槪如此看, 更須從淺近平易處理會, 應用切身處體察, 漸次接續, 勿今間斷, 久之自然意味浹洽, 倫類貫通. 切不可容易躁急, 厭常喜新, 專揀一等難理會無形影底言語暗中想像, 杜撰穿鑿, 枉用心神, 空費日力 : 更勿與人辨論釋氏長短, 自家未有所見, 判斷它不得. 况廢却自家合做底緊切工夫, 却與人爭一場閑囗舌, 有損無益, 尤當深戒也. 主一之功, 學者用力切要處, 承於此留意, 甚善. 但其它推說似太汗漫, 多病痛. 觀之, 似不必如此. 只就如今做書會處理會, 便見漸次. 大抵自家所看文字及提督學生工夫皆須立下一定格目, 格目之內, 常切存心 : 格目之外, 不要妄想. 如看論語, 今日看到此段, 卽專心致意只看此段. 後段雖好, 且未要看. 直待此段分曉, 說得反復不差, 仍且盡日玩味. 明日却看後段. 日用凡事皆如此, 以類推之可見. 不然, 雖是好事, 亦名妄想. 此主一之漸也. 若不如此, 方寸之間頃刻之際千頭萬緖, 卒然便要主一, 如何按伏得下? 試更思之.

 

나는 남이 나에게 공격하기를 바라지 않거니와 나도 남에게 공격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사의 이른바 나에게 베풀기를 원치 않으면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 이 말은 또한 각각 본래 구절 가운데서 의미를 체득하고 실천하여 오랫동안 익히면[純熟] 저절로 얕고 깊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제 반드시 억지로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我不欲人之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 子思所謂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此言且只各就本句中體味踐履, 久之純熟, 自見淺深. 今亦不須彊分別也.

 

대저 배우는 사람들의 병은 고묘(高妙)한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면서, 자기 자신의 발은 실질적인 땅을 밟고 있지 않은 데 있습니다. 바로 이른바 도는 가까이 있는데 먼 데서 구하고, 일은 쉬운 곳에 있는데 어려운 데서 구하는 격입니다.

大抵學者之患在於好談高妙, 而自己脚根却不點地. 正所謂道在邇而求諸遠, 事在易而求諸難也.

 

󰡔대학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보지 못했는데, 넷째가 일이 있어 그를 방해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은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곽자화󰡔중용󰡕은 최근에 보았는데, 절대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니, 볼 때마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어지럽게 합니다. 그 밖에 요청한 책은 필요한 것은 이미 부쳤습니다만 그 밖에 급하지 않은 것은 다시 보내지 않으니, 스스로 이 뜻을 깨우치십시오.

大學解想亦看未到, 四哥又自有日課, 不欲妨它. 敎人者須常存此心. 郭子和中庸頃曾見之, 切不可看, 看著轉迷悶也. 其它所欲文字, 合用者前已附去, 其他非所急者更不上內, 想自曉此意. 千萬息却此心,

 

또한 일과(日課) 가운데서 성실하고 실질적인 것들을 이해하여 실천해야만 바야흐로 의미가 있을 것이니, 천만 번 부탁드리고 천만 번 부탁드립니다. 후생(後生)들이 책을 외우는 것도 또한 우리들이 강학(講學)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역량을 헤아려야지 많은 것을 탐내서는 안 되고, 그리하여 모름지기 반복하여 자세히 읽어 때때로 복습을 하는 것이 중요한 법입니다.

且就日課中逐些理會, 慤實踐履, 方有意味. 千萬千萬. 後生輩誦書亦如吾人講學, 只是量力, 不要貪多. 仍須反覆熟讀, 時時溫習, 是要法耳.

 

 

오덕부()에게 답함 答吳德夫獵

 

보내주신 편지에 ()’자에 관한 설은 공력(功力)을 들인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앉아서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다만 곧장 공자나 정자가 제시한 인을 구하는 방법 가운데서 자신에게 간절한 한두 가지를 골라, 뜻을 독실하게 하고 힘써 실천하여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 말하거나 조용히 있을 때에도 끊어짐이 없게 한다면 오래 지나서 저절로 마땅히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간직하는 것 또한 보는 바에 의거하여 없애기도 하고 간직하기도 합니다. 공부가 깊으면 이른바 천리인 것 같으면서 실제로는 인욕인 것을 차제(次第)에 가히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대체(大體)도 아직 바로잡지 못했는데, 미세한 것까지 살피려고 하시니, “많은 밥을 먹고 길게 마시며 마른 고기를 이로 자르는 것을 묻는다.”는 비난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어떻습니까?

 承喩字之說, 足見用力之深. 意不欲如此坐談, 但直以孔子程子所示求仁之方, 擇其一二切於吾身者, 篤志而力行之, 於動靜語黙間, 勿令間斷, 則久久自當知味矣. 去人欲存天理, 且據所見去之存之. 功夫旣深, 則所謂似天理而實人欲者次第可見. 今大體未正而便欲察及細微, 恐有放飯流啜而問無齒決之譏也. 如何如何?

 

()’의 뜻은 유행하고 변화하여 바뀌는 본체를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이 본체는 생겨나고 생겨나서 원래 끊임이 없는데, 다만 그 사이에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해서 처음과 끝이 될 뿐입니다. 정자가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니 그 본체는 역이라 하고, 그 이치는 도라고 하며, 그 쓰임은 신이라고 한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본체가 사람에게 있으면 심일 뿐입니다. 그 이치로 말하면 성이라 하고, 그 쓰임으로 말하면 정이라 하며, 그것의 움직임과 고요함으로 말하면 미발이발의 때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것이 하늘과 사람의 구분이 다르다 하더라도 고요할 때 이것의 이치가 이미 갖추어져 있고 움직여서 이것의 쓰임이 실제로 행해지면 그것은 역과 하나가 됩니다. 만약 갖추어진 이치와 유행하고 있는 쓰임을 합하여 말하면 이것이 역에 태극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장남헌이 일찍이 태극은 움직임과 고요함의 온축(蘊蓄)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한 것은 대개 (의미를) 얻은 것입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불역변역을 미발이발이라고 한 것은 완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험 삼아 이 설로 미루어보면 자의 뜻이 분명해질 뿐만 아니라 인을 구하여 힘써 노력해야 할 긴요한 곳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之爲義, 乃指流行變易之體而言. 此體生生, 元無間斷, 但其間一動一靜相爲始終耳. 程子: ‘上天之載, 無聲無臭. 其體則謂之易, 其理則謂之道, 其用則謂之神.’ 正謂此也. 此體在人, 則心是巳. 其理則所謂性, 其用則所謂情, 其動靜則所謂未發已發之時也. 此其爲天人之分雖殊, 然靜而此理已具, 動而此用實行, 則其爲易一也. 若其所具之理所行之用合而言之, 則是易之有太極者. 昨來南軒嘗謂太極所以明動靜之蘊, 蓋得之矣. 來喩以不易變易爲未發已發, 恐末安. 試以此說推之, 非惟見得字意義分明, 而求仁用力要處亦可得矣.

 

 

 

 

 

양자직()에게 답함 答楊子直方1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건도(乾道) 7(辛卯, 1171), 주자 나이 42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85)

 

태극에 관한 설을 받아 보고 당신이 부지런히 힘쓴 것을 알 수 있어서 깊이 탄식하고 으러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에는 여러 곳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곳이 있어서 이제 대략 그 가운데 한 두 곳 중요한 부분을 논하고 그 곡절에 대해서는 채계통에게 부탁하여 말했습니다.

承喩太極之說, 足見用力之勤, 深所歎仰. 然鄙意多所未安, 今且略論其一二大者, 而其曲折, 則託季通言之.

 

대개 하늘과 땅 사이에 다만 움직임과 고요함 두 극단이 있어서 끊이지 않고 순환하여 다시 나머지 다른 일이 없으니 이를 일러 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움직임과 고요함에는 반드시 움직이고 고요함의 까닭이 되는 이치가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태극입니다. 성인이 이미 그 실제를 가리켜서 이름 붙였고, 주자[주돈이] 또한 도를 그려 형상하였으니, 이렇게 밝혀내고 겉으로 드러낸 이유는 다른 뜻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대개 추극(樞極)의 뜻을 취한 것입니다. 성인이 태극이라고 한 것은 천지 만물의 뿌리를 가리킨 것입니다. 주자가 이에 근거하여 무극이라고 한 것은 (태극의)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묘함을 드러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극이면서 태극이고 태극은 본래 무극이라 한 것은 무극 뒤에 따로 태극이 생겼다거나 태극 위에 먼저 무극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오행이 음양이고 음양이 태극이라고 한 것은 태극 뒤에 따로 음양과 오행이 생겼다거나 태극위에 먼저 무극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를 이루고 여자를 이루고 만물이 변화되어 생겨남에 이르러서는 무극의 묘함이 대개 처음에 여기에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 하나의 도의 강령은 대역(大易)의 전해 내려온 뜻이니, 노자의 이른바 사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는 것과 함께 조화에 진실로 시작과 끝이 있다고 한 것으로써 남과 북을 바로 한 것입니다.

蓋天地之間, 只有動靜兩端, 循環不已, 更無餘事, 此之謂易. 而其動其靜, 則必有所以動靜之理焉, 是則所謂太極者也. 聖人旣指其實而名之, 周子又爲之圖以象之, 其所以發明表著, 可謂無餘蘊矣. 原極之所以得名, 蓋取樞極之義. 聖人謂之太極者, 所以指夫天地萬物之根也. 周子因之而又謂之無極者, 所以著夫無聲無臭之妙也. 然曰無極而太極, 太極本無極, 則非無極之後別生太極, 而太極之上先有無極也. 又曰五行陰陽, 陰陽太極, 則非太極之後別生二五, 而二五之上先有太極也. 以至於成男成女, 化生萬物, 而無極之妙蓋未始不在是焉. 此一圖之綱領, 大易之遺意, 老子所謂物生於有, 有生於無, 而以造化爲眞有始終者正南北矣.

 

보내온 편지에 노자설에 부합하여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하였는데, 이 도의 설이 여러 곳에서 어긋나고 막힌 곳이 있어서 그 이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태극을 체(), 움직임과 고요함을 용()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에 본래 잘못이 있어서 뒤에 이미 고쳐서 태극은 본연의 묘함이고, 움직임과 고요함은 (태극이) 타는 기틀이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한다면 거의 (본래의 뜻에) 가깝게 될 것입니다. 보내온 편지에 체용이라고 한 말에 의문이 생긴다고 한 것은 대단히 타당합니다. 다만 의심하는 이유를 말한 것은 제가 고치려한 뜻과 서로 비슷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개 태극이 움직임과 고요함을 품고 있다고 한다면 옳기 때문에 본체로써 말하였습니다. 태극에 움직임과 고요함이 있다고 한다면 옳기 때문에 유행(流行)으로써 말하였습니다. 만약 태극이 곧 움직임과 고요함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형이상과 형이하를 나눌 수 없게 되고 역에 태극이 있다는 말 또한 군더더기가 됩니다. 그 외의 것은 채계통이 논한 것이 이미 지극히 정확하고 상세하니, 또 마땅히 이것을 따라서 마음을 비우고 구하여 오랫동안 지내면 마땅히 저절로 분명해 질 것이니, 따로 의문 나는 생각을 품어 한갓 스스로 사소한 곳에 얽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來喩乃欲一之, 所以於此圖之說多折乖礙而不得其理也. 向以太極爲體, 動靜爲用, 其言固有病, 後已改之曰太極者, 本然之妙也 : 動靜者, 所乘之機也’, 此則庶幾近之. 來喩疑於體用之云甚當, 但所以疑之之說則與之所以改之之意又若不相似然. 蓋謂太極含動靜則可, 以本體而言也. 謂太極有動靜則可, 以流行而言也. 若謂太極便是動靜, 則是形而上下者不可分, 易有太極之言亦贅矣. 其它則季通論之已極精詳, 且當就此虛心求之, 久當自明, 不可別生疑慮, 徒自繳繞也.

 

지경(持敬)에 관한 설()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정제(整齊), 엄숙(嚴肅), 엄위(嚴威), 엄각(儼恪), 용모를 움직임, 생각을 정돈함, 의관을 바로함, 눈 가짐을 존엄하게 가짐 등등 이런 몇 단어를 자세히 맛보아, 실질적으로 공력(功力)을 들인다면, 이른바 안을 바르게 하는 것[直內]’와 주일(主一) 공부가 자연스럽게 힘들이지 않고 안배(安排)되어 심신이 숙연(肅然)해지고, 안팎이 하나로 될 것입니다. 어찌 육당(陸棠)같은 사람을 일컫겠습니까? 그는 사기성을 띠고서 사람을 속인 것이니, 곧 경()의 적일 따름입니다. 이제 도리어 경의 이름을 그에게 돌려 경의 실체가 진실로 족히 행할 것이 못되는 것으로 생각하시니, 어찌 잘못됨이 심하지 않겠습니까?

持敬之說不必多言, 但熟味整齊嚴肅嚴威儼恪動容貌整思慮正衣冠尊瞻視此等數語而實加功焉, 則所謂直內, 所謂主一, 自然不費安排而身心肅 , 表裏如一矣. 陸棠之謂哉? 彼其挾詐欺人, 是乃敬之賊耳. 今反以敬之名歸之而謂敬之實眞有不足行者, 豈不誤甚矣哉

 

무릇 심신(心身)의 안팎은 애초에 간격이 없습니다. 이른바 마음이란 것은 본디 안을 주관하는데, 시청(視聽), 언동(言動), 출처(出處), 어묵(語黙) 등 밖으로 나타난 모든 것이 또한 이 마음의 작용으로서 일찍이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이제 공허(空虛)하여 쓸 데 없는 곳에서는 간직하여 존재하게 하고, 유행하고 존재하는 실체(實體)는 버리고서 살피지 않습니다. 이는 마음의 전체에서는 비록 그 반을 얻고 반을 잃었지만, 그 얻은 것의 반에서도 또 반드시 안배(安排)하고 포치(布置)함이 있기를 기다린 뒤에라야 능히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존재하게 해도 벼싹을 뽑아 올려 조장(助長)하는 염려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버려 두고서 가꾸지 않는 잘못이 있게 됩니다. 이는 그 얻은 것의 반은 또 장차 족히 스스로 존재할 가치가 없어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경()을 주로하여 이 마음이 우뚝하여 내외(內外)와 동정(動靜)의 사이에서 한 터럭의 틈이나 한 순간의 정지도 없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 숙경(叔京)이 보내 온 편지에서 전날의 설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고, 그대가 보내 온 편지에서 말한 것도, 내외(內外)의 간격이 없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설을 만들어 아울러 숙경에게 부쳐 보내고, 숙경에게 회답한 것도 아울러 적어 보내 드리니, 자세하게 생각하셔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大抵身心內外, 初無間隔. 所謂心者 固主乎內, 而凡視聽言動出處語黙之見於外者, 亦卽此心之用而未嘗離也. 今於 其空虛不用之處則操而存之, 於其流行運用之實則棄而不省, 此於心之全體雖得其半, 而失其半矣. 然其所得之半, 又必待有所安排布置然後能存, 故存則有揠苗助長之患, 否則有舍而不芸之失. 是則其所得之半又將不足以自存而失之. 孰若一主於敬而此心卓然, 內外動靜之間, 無一亳之隙一息之停哉? 叔京來書尙執前說, 而來喩之云亦似未見內外無間之實. 故爲此說, 幷以寄叔京, 而所以答叔京者亦幷寫呈. 幸詳思之, 却以見告也.

 

 

 

양자직에게 답함 答楊子直2

 

[해제] 이 편지는 광종(光宗) 소희(紹熙) 원년(庚戌, 1190), 주자 나이 61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306)

 

보내온 편지에서 꾸짖어서 조금도 내버려두지 않았는데, 전날의 편지에서 무엇이라고 했으며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줄곧 두려울 따름입니다. 다만 보내 온 편지에서, “내쳐서 꾸짖음이 정성스럽고 간절하다고 일렀다가, 그 뒤에 가서 또, “가르치지 않고 버린다.”고 일렀으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전날의 편지가 아직도 있다면 심부름하는 사람을 시켜 적어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하나하나 답변해 드리고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스스로 깨닫고 잘 참아 당신처럼 노발대발하여 깊이 원망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습니다. 또 지난 번에 천촉(川蜀)에서 나올 때 보내온 편지에도 원망하는 말이 아닌 것이 없었는데, 이것이 저를 원망하는 말이 아닌지 생각해보면 저절로 기억이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용히 의심해보건대, 사군자(士君子)가 떠나고 나아가며, 떨어지고 합할 때 마땅히 이와 같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답장 가운데 자못 너그럽게 이해하는 말을 써서 서로 폄하하거나 도외시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뒤에 정사조목을 보내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 글 가운데 한 두군데 만족스럽지 못한 곳이 있어서 글을 써 스스로 해명한 것이지 서로 폄하하거나 도외시 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폄하하고 도외시했다고 한 것이 무슨 말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폄하하고 도외시한 말이) 있었는데 제가 깨닫지 못한 것이 있을까 걱정이 되니, 바라건대 한두 군데 소시(疏示)하여 그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허용하여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來書譙責不少置, 不記前書云何? 何所得罪? 一味皇恐而已. 但來書旣云鐫責諄切, 其後又謂不敎而棄之, 殊不可曉. 如前書尙在, 望今小吏錄以見寄, 當一一供答, 以聽裁處. 却自覺尙且耐煩, 不至如老兄激發怨懟之深也. 且如向來出時所予書, 無非怨懟之語, 此非怨之詞, 想自記得. 故竊疑之, 以爲士君子去就離合之際不當如此. 因答書中頗致寬解之詞, 未有相貶外處. 如後來見敎政事絛目, 其間亦有一二心未安處, 故因筆自解, 卽非相貶外. 不知今來所謂貶外是指何語? 恐實有之而不自覺者, 卽望一二疏示, 容其改過, 幸甚幸甚.

 

또 이번 편지의 사자(四子)’의 설은 대단히 가르침을 받았으나 이 책의 세목은 단지 한 때에 뜻하지 않게 󰡔대학󰡕을 보았는데 너무 얇아서 책으로 만들 수 없고 표제를 쓰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베껴 썼으며, 또한 사서의 순서를 알아서 뒷사람들이 쉽게 전도되는 것을 면하게 하였습니다. 다만 󰡔대학󰡕의 경우 정선생의 말에 의거하면 곧 공씨유서이니, 그 외는 󰡔논어󰡕 󰡔맹자󰡕만 못하다고 하였는데, 그가 󰡔대학󰡕을 우러러 보아서 진실로 󰡔논어󰡕의 오른 쪽에 둔 것으로 저의 사사로운 말이 아닙니다. 이제 반드시 󰡔대학󰡕을 억누르고 󰡔논어󰡕를 우러르고자 한다면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적이 걱정이 되어 말씀드리건대, (저의) 이러한 뜻이 반드시 󰡔대학󰡕을 위하여 󰡔논어󰡕를 누르려고 나온 것이 아니며, 또 걱정이 되는 것은 다만 경우(景迂: 조설지)가 작숭(作崇)하여 의도적으로 󰡔맹자󰡕를 배척하려 한 것입니다. 만일 헤아려보셔서 잘못이 마땅하고 말한 것이 옳지 않다면 또한 마음을 차분히 하고 노여움을 가라앉히셔서 자세하게 가르침을 주셔서 반복하여 실제로 옳은 것의 귀착점을 궁구할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대단히 다행이겠습니다.

 且如今書四子之說極荷見敎, 然此書之目只是一時偶見大學太薄, 裝不成冊, 難作標題, 故如此寫, 亦欲見得四書次第, 免被後人移易顚倒. 只如大學, 程先生, 乃是孔氏遺書, 而謂其他莫如論孟, 則其尊之固在論語之右, 之私說矣. 今必欲抑之而尊論語, 復何說乎? 竊恐此意未必爲大學論語, 恐又只是景迂作崇, 意欲擯斥孟子. 萬一揣料失當, 所言非是, 亦告且爲平心息怒, 子細見敎, 使得反復, 以究實是之歸, 幸甚幸甚

 

평소에 그대와 더불어 강론함에 늘 의견이 합치된 적이 없습니다. 중간에 한 구절이 그대의 견해에 합치되지 않아 곧 그대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다시는 전의 말씀의 시비(是非)를 논할 겨를도 없이 줄곧 쓸 데 없는 기() 다툼만 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그대가 가르쳐 주려는 아름다운 뜻과 저의 의심스러운 의견을 개진하는 정성스러움이 모두 그 유익함을 보지 못한 채, 도리어 쌓여 뒷날의 끝없는 원한과 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충고하여 잘 인도하다가 안되면 그만두라는 것이 어찌 이렇겠습니까? 세상은 쇠퇴하고 도의는 사라져 가고, 우리 유가(儒家)는 날로 외로워 가고 현재 뚜렷한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일마다 고의로 트집을 잡아 서로 괴롭혀 곁에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목하여 더욱 더 도학(道學)의 병으로 여기도록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는 곧 저들이 공격하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른바, ‘장차 싸우려고 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한 쪽 팔을 잘라 반드시 이기기를 구한다는 격입니다. 원컨대 그대는 지금부터 혹 다르냐 같으냐 하는 논의가 있으면 또한 번거로움을 참고 성질을 죽여 이치의 옳고 그름을 끝까지 논한다면, 이치는 날로 더욱 밝아지고 기운은 날로 더욱 화평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열 번 반복하여 극도로 격렬하게 자기 의견을 고집할지라도 또한 저절로 성내거나 원망함 때문에 방해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대가 다른 사람의 말을 끝가지 다 듣지 않아 전후의 원망하고 성낸 말이 이러한 데까지 이르렀다고 저를 책망하셨지만, 우리 두 사람의 편지를 꺼내어 식견 있는 사람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심판하도록 한다면, 누가 말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왕숙(王肅)이 일에 있어 사람들이 자기에게 아부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는 자기 위치에서 자기 할 일을 다하지 못하는 허물입니다. 원컨대 다시 생각하셔서 얕고 용렬한 저에게 내려 주시기를 매우 바라 마지 않습니다.

平時與老兄講論, 常是不曾合殺, 只被中間一句不合尊意, 便蒙見怒, 更不暇復論前語之是非, 而一向且爭閑氣. 所以老兄見敎之美意與區區獻疑之誠懇皆不見其有益, 而反積爲後日無窮之怨隙. 所謂忠告善道, 不可則止者, 豈若是乎? 世衰道喪, 吾黨日孤. 見自無事, 不要似此尋事厮炒, 使旁觀指目, 益爲道學之病, 乃是助彼自攻, 古人所謂將鬪而自斷一手以求必勝者也. 願老兄自今或有異同之論, 且耐煩息怒而極輪理之是非, 則理日益明, 氣日益和, 雖使十反, 樋其紛拏, 亦自無忿懟之撓矣. 老兄見責不能受人盡言, 而前後怨忿之詞至於如此, 請出兩家之書付之識者, 使其審訂, 則誰爲不能受言者, 必有在矣. 王肅方於事上而好人佞己, 此不絜矩之過也. 願更思之, 下交淺劣, 不勝至望.

 

 

양자직에게 답함 答楊子直3

 

[해제] 이 편지는 광종(光宗) 소희(紹熙) 원년(庚戌, 1190), 주자 나이 61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306)

 

배우는 사람들이 언어(言語)에 빠져서 마음에 실제로 얻은 바가 없는 것은 진실로 큰 흠입니다. 그러나 언어에 있어서도 철두철미하게 궁구하는 사람은 보기 드뭅니다. 대개 자질이 이미 옛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는 데다 공부도 또 대충대충 합니다. 그런 까닭에 종신토록 여기서 (뭔가) 있는 듯 없는 듯하여 뚜렷하게 믿을만한 실질적인 것이 있지 않습니다. 요사이 병이 든 이후로 감히 힘을 다하여 글을 읽지 못했지만, 한가한 가운데서 도리어 깨달음에 진보한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개 맹자께서 말한 그 놓친 마음을 구한다는 말이 요결(要訣)일 따름입니다.

學者墮在語言, 心實無得, 固爲大病, 然於語言中罕見有究竟得徹頭徹尾者. 蓋資質已是不及古人, 而工夫又草草, 所以終身於此若存若亡, 未有卓然可恃之實. 近因病後不敢極力讀書, 閑中却覺有進步處. 大抵孟子所論求其放心是要訣爾.

 

 

 

양자직에게 답함 答楊子直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6(庚申, 1200), 주자 나이 71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491)

 

 

 

 

전날 유약에게서 사람이 돌아와서 이미 편지를 올렸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일을 기록하는 것을 잊었으니, 번거로우시겠지만 조그마한 해서(楷書)사물잠(四勿箴)’백 십자를 써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칸과 줄을 지른 종이를 보내오니, 여가에 글씨를 써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 잠()을 옛날에 볼 적에는 다만 평이한 이야기 같았는데, 요즈음에서야 그 의미가 정밀(精密)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른바 지팡이로 한 번 때리면 한 줄기 자국이 생기고, 손바닥으로 한 번 때리면 핏물이 든 손바닥 자국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자리 모퉁이에 걸어 두고서 저의 행동이 실추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일 따름입니다. 시절은 마땅하지 않고, 자학(字學) 역시 끊어졌으므로 좋은 글씨를 얻어 보면서 병든 생각을 없애려고 하노니,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前日晦伯人還, 已上狀矣. 但忘記一事, 欲煩爲作小楷四箴百十字. 今納界行去, 暇日得爲揮染, 甚幸. 此箴舊見只是平常說話, 近乃覺其旨意之精密, 眞所謂一棒一條痕, 一摑一掌血者. 故欲揭之座隅, 使不失墜云耳. 時節不是當, 字學亦絶, 故又欲得妙札, 時以寓目, 以袪病思. 幸勿靳也.

 

 

양자직에게 답함(이 편지는 경신년 윤 227일에 보낸 편지인데 答楊子直 此庚申閏二月二十七日書, 去夢奠十二日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6(庚申, 1200), 주자 나이 71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491)

 

저는 병이 날로 위중하고 깊어짐을 느끼는데, 의원들은 모두 나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약을 먹어도 전혀 효험을 보지 못하는데 또한 약만 줄 뿐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편안히 앉아서 팔짱을 끼고 천명(天命)을 기다릴 따름입니다. 증광조(曾光祖)가 여기에서 모두 보았으니 마땅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의 여러 가지 상황과 자세한 내용은 또한 상세하게 말씀드릴 겨를이 없으니, 증광조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病日覺沈重, 而醫者咸以爲可治, 但服藥殊不見效, 亦付之無可奈何, 安坐拱手以聽天命耳. 曾光祖在此備見, 當能道之也. 此間諸况曲折, 亦不暇詳布, 渠亦可問也.

 

앞의 편지에서 요청한 묘찰(妙札)은 일찍이 다 쓰셨습니까? 인편 중에 보내서 보여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최근에 편지를 보내 익공(益公)에게 간청하여 선인(先人)의 묘비를 지어줄 것을 청하였는데 그 분께서 기꺼이 써주실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기꺼이 써주시고 또 아울러 편지까지 주신다면 감히 삼가 부탁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또한 마땅히 요청이 있을 것입니다. 하소정(夏小正)의 글은 이미 󰡔예서󰡕에 끼워서 넣었습니다. 다만 보여준 몇 권의 책은 대체로 착오가 있고, 보여준 것들은 참고할 겨를이 없습니다. 얼마간 공부를 하고 나서 자세하게 교정을 마치면 곧 돌려 보내드리겠습니다. 사민월령(四民月令)또한 당시의 풍속 및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음을 보여주니, 엄격하게 치평(致平)하는 뜻으로 추구(推究)하는 데까지 나아가서 또한 베껴 쓰기를 기다렸다가 돌려 보내드리겠습니다.

前書所求妙札, 曾爲落筆否? 便中早得寄示爲幸. 近以書懇益公, 求作先人墓碑, 不知渠肯作否. 若肯作又幷書, 卽不敢奉凂, 不然又當有請也. 夏小正文已編人禮書, 但所見數本率多舛誤, 所示未暇參考. 少俟功夫, 子細校畢, 卽納還也. 四民月今亦見當時風俗及其治家齊整, 卽以嚴致平之意推尋也, 亦俟抄了幷納還.

 

요즈음 다시 어떤 특이한 책을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편이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또한 옛날 책을 읽고 있습니다. 다만 단련하기를 더욱 순숙(純熟)하게 하면 자못 실용적인 것이 있으니, 전적으로 빈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참동계(參同契)󰡕의 원본을 새로 고정(考定)하고 있으니, 부쳐 보낼까요? 만약 깨우쳐 주실 곳이 없으면 마땅히 바로 돌려주십시오. 이 책은 이해하려 해도 손을 댈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문장이 고아(古雅)한 것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교정하게 되었습니다만, 궤짝만 사고 그 안에 든 구슬은 돌려주는 격이니, 웃음이 나옵니다.

不知近日更得何異書? 便中望見告. 此却亦讀得舊書, 但鍛鍊得愈純熟, 亦頗有實用, 不專是空言也. 此間新定參同契曾寄去否? 如未有, 可喩及, 當續致也. 此書理會他下手處不得, 但愛其文古雅, 因校此本. 買櫝還珠, 甚可笑也.

 

증광조의 집에 천석(泉石)이 있어 자못 아름다운데, 이미 (증광조에게) 부탁하여 시를 구해오게 하였으니 몇 마디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왕재신(王才臣)부쳐 와서 얻어 본 여러 그림은 그윽하고 담박한데 그 곳의 풍속과 기호가 달라서 반드시 이와 같이 그윽하고 담박한 맛을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光祖家有泉石頗佳, 已屬令去求詩, 能爲出數語否? 王才臣寄示所得諸圖幽閑淡泊, 彼間風俗嗜好不同, 未必識此味也.

 

 

여계극에게 답함 答呂季克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7(庚子, 1180), 주자 나이 51세 때 쓴 것이다.(󰡔편년고증󰡕 181)

 

환수(環叟)의 편지를 받아보고 나서 조금이나마 의심스러운 것이 풀렸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유평보범백숭 모두 그와 더불어 서로 아는 사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가 염계 가문의 자제라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가 지은 책이 이와 같이, 만약 원설같은 것이라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할만합니다. 도학이 밝혀지지 못하고 이단이 다투어 일어나니 선비들이 비록 학문에 뜻을 두고 있지만, 세상의 일에 따라 부침(浮沈)하여 성인의 말을 도탑게 믿어 몸소 실천하고 말없이 체득하여 의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고, (이단에) 깊이 빠지지 않은 사람은 드물게 있으니 깊이 한숨만 나옵니다. 팔계에서는 오랫동안 편지를 받지 못했는데, 지난번에 당신이 보내온 편지에서 원설을 논한 것을 보았는데 대체적인 의뜻이 대단히 정확했습니다. 다만 그 책의 교묘하게 속이는 말의 뜻은 아직 궁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承示及環叟之書, 粗釋所疑. 此公舊亦聞之, 平父伯崇皆與之相識, 然不聞其爲濂溪家子弟也. 其所著書乃如此, 原說, 則可謂靑過於藍矣. 道學不明, 異端競起, 士雖有意於學, 而浮沈世故, 不能篤信聖言, 窮行黙體以至不疑之地, 鮮有不沒溺者, 甚可歎也. 八桂久不得書, 昨亦見其所與尊兄書論原說, 大意甚正. 但似未究其巧議之情耳.

 

요자회(덕명)에게 답함 答廖子晦德明1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원년(甲午, 1174), 주자 나이 45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24)

 

덕명 그대는 옛적부터 일찍이 힘을 다해 찾고 궁구하여 일상적인 일에서 느낀 바가 있어서 내 몸에 갖추어진 것이 넓고 크며 비어서 고요하다는 것을 알아 하늘과 땅을 범위로 하고 만물을 근본으로 하였으니, 󰡔주역󰡕에 이른바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寂然不動]’한 것, 󰡔중용󰡕기뻐하고 화내는 감정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다 한 것이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오직 익히기만 하고 살피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귀중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군자는 이것을 알고, 다시 자기수양과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노력을 더하기 때문에 거의 근본에 가깝게 됩니다. 덕명 그대는 장차 이것을 큰 근본으로 삼고 점차 자기수양과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노력을 더한다 하였는데 나의 생각으로는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德明舊嘗極力尋究, 於日用事上若有所感, 而知吾身之具有者廣大虛靜, 範圍天地, 根本萬物, 所謂寂然不動’, 中庸所謂喜怒之未發者是也. 人惟習而不察, 故不知有貴於己者爲何物. 君子知夫此, 復加修治之功, 庶幾於本歟. 德明將以此爲大本, 漸加修治之功, 未知所見是否.

 

성인문하의 학문은 하학하여 상달하는 것인데, 신묘함을 궁구하고 변화를 아는 데 이르는 것 또한 덕이 성대하고 인이 무르익어 저절로 이르는 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불교처럼 이치는 모름지기 돈오해야지 점수할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상달하여 하학하는 것이니, (불교와) 성인의 학문은 또한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세상에 배우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것의 가깝고 비슷한 점에 근거하여 말하여 합치시키고자 하는데, 이 때문에 설을 만든 것이 비록 상세하고 마음으로 비록 애를 쓰지만 마침내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중용󰡕에서 이른바, “락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을 이라 하고, 발현하여 절도에 맞는 것을 라 한다.”고 한 것은 단지 정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 때에 이르러서는 온갖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서 천하의 만물이 이로부터 말미암아 나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여기서 무젖어 기르고 가꾸어 북돋워야 정이 발현된 것이 자연스럽게 절도에 맞지 않는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용󰡕에서 또 “‘이란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고, ‘란 것은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모두 일상생활의 분명한 일이니, 반드시 힘을 다해 찾고 궁구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갑자기 느낌이 있는 것이니, 그대가 보내 온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한 후에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와 같이 말한다면, 이것은 불씨의 학문에 빠진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저 불교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견해가 있다고 말하지만, 사단오륜양지양능천리인심 등의 실질적이면서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일찍이 대강이나마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습니다. 심한 자는 (유학의) 뿌리를 파 헤쳐 이리저리 뒤집고 어지럽게 만들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저들의 이른바 견해란 것은 거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지나치고 생각이 모두 없어져 황홀한 사이에 언뜻 심성의 그림자나 허상을 보는 것일 뿐입니다. 성인 문하의 진실되게 알고 확실하게 실천하여 위와 아래를 꿰뚫고 한 가지 원리로써 관통하는 학문과 어찌 같은 수준에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聖門之學, 下學而上達, 至於窮神知化, 亦不過德盛仁熟而自至耳. 若如釋氏理須頓悟, 不假慚修之云, 則是上達而下學也, 其與聖學亦不同矣. 而近世學者每欲因其近似而說合之. 是以爲說雖詳, 用心雖苦而卒不近也. 中庸所謂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只是說情之未發, 無所偏倚. 當此之時, 萬理畢具, 而天下萬物無不由是而出焉. 故學者於此涵養栽培, 而情之所發自然無不. 中節耳. 故又曰中者, 天下之大本 : 和者, 天下之達道. ’此皆日用分明底事, 不必待極力尋究, 忽然有感, 如來喩之云, 然後爲得也. 必若此云, 則是溺於佛氏之學而已. 然爲彼學者自謂有見, 而於四端五典良知良能天理人心之實然而不可易者, 皆未嘗略見彷彿. 甚者披根拔本, 顚倒錯鏐, 無所不至. 則夫所謂見者, 殆亦用心大過, 意慮泯絶, 恍愡之間, 瞥見心性之影象耳. 與聖門眞實知見, 端的踐履, 徹上徹下, 一以貫之之學, 豈可同年而語哉.

 

 

정자는 경으로써 사람을 가르쳤는데 스스로 주일(主一)을 경이라 하여 동쪽으로도 가지 않고 서쪽으로도 가지 않으며, 이 쪽으로도 가지 않고 저 쪽으로도 가지 않았으니, 이와 같이 하면 어는 때인들 보존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공부를 얻는 데까지 이르려면 모름지기 불교의 마음을 굳건히 유지하여 좌선하는 것과 같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덕명 당신도 이것이 미리 기대하고 억지로 조장하는 것을 이루는데 이를까 걱정하였기 때문에 요사이 점차 예와 악은 잠시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을 몸소 연구하게 된 것입니다. 대개 예는 엄격하고 삼가는 것이며, 악은 화평하고 즐거운 것이니, 예와 악이 서로를 필요로 한 뒤에 잘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명도선생이 이미 경으로써 사람을 가르쳤으며 또 스스로 밖의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조금 여유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얻은 뒤에 곧 반드시 놓아야하니 그렇지 않으면 단지 지키기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程子以敬敎人, 自言主一之謂敬, 不之東又不之西, 不之此又不之彼, 如此則何時而不存? 然欲到得此功夫, 須如釋氏攝心坐襌始得. 德明又慮至此成正與助長, 故近日又稍體究禮樂不可斯須去身之說. 蓋禮則嚴謹, 樂則和樂, 兩者相須而後能. 明道先生旣以敬敎人, 又自謂於外事思慮儘悠悠. 又曰旣得後便須放開, 不然却只是守.’ 謝子因之爲展托之論. 德明又恐初學勢須把持, 未敢便習展托. 於斯二者, 孰從孰違? 雖然, 是固操存舍亡之意, 孔氏敎人求仁爲先. 竊謂仁, 人心也. 克己之私而循夫之理, 則本心之仁得矣, 夫復何事? 嘗試求之, 覺得難甚. 先難後獲, 寧不信然

 

두 선생께서 자를 논하신 것은 모름지기 움직임과 고요함을 관통하여 보아야만 (그 본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릇 바야흐로 그 일이 없을 때도 보존하고 주재하여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진실로 경입니다. 사물에 대응하여 서로 작용하면서 어지러워지지 않는 것 또한 경입니다. 그래서 󰡔예기󰡕공경하지 않음이 없어서 단정하고 엄숙하기가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 같이 한다.” 했고, 일할 때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일을 집행할 때는 경건함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어찌 꼭 마음을 잡고 좌선하는 것만을 경이라 이르겠습니까? 예와 악은 본디 반드시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악이라고 하는 것은 가슴 속에 아무런 (얽매인) 일이 없어 저절로 화평하고 즐거운 것을 말한데 불과할 뿐이지, 마음을 먹고서 한 길을 열어서 화평하고 즐겁게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슴속에 아무런 (얽매인) 일이 없으려 하면 경이 아니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자께서 말하기를, “경은 자연스럽게 화평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했고, 주자(周子: 주돈이) 또한 예가 먼저이고 음악은 다음이다고 했는데,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스스로 깨우친 뒤에 모름지기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단지 지키는 것일 뿐이다.”라고 한 것은 이미 스스로 깨우친 뒤로는 저절로 마음과 이치가 일치되어 예법의 구애받지 않고 저절로 절도에 맞게 됩니다. 만약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 깨우친 바가 없어서 겨우 예법이나 지키는 사람일 뿐입니다. 자득했다거나 또 모름지기 펼쳐 열었다고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은 진실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안자(顔子)가 힘을 쓴 것도 바로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과 예와 비례(非禮) 사이에 있었으므로, 이것은 그 본심(本心)을 얻어서 전혀 한 가지 일도 없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은 것[이익이 되는 일은]을 뒤에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말하기는 매우 쉽지만, 애써 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또한 여기서 고찰하지 않을 뿐입니다.

二先生所論敬字, 須該貫動靜看方得. 夫方其無事而存主不懈者, 固敬也 : 及其應物而酬酢不亂者, 亦敬也. 故曰: ‘毋不敬, 儼若思. ’又曰 : ‘事思敬, 執事敬.’ 豈必以攝心坐禪而謂之敬哉? 禮樂固必相須, 然所謂樂者, 亦不過謂胸中無事而自和樂耳, 非是著意放開一路而欲其和樂也. 然欲胸中無事, 非敬不能. 程子敬則自然和樂’, 周子亦以爲禮先而樂後, 此可見也. ‘旣得後須放開, 不然却只是守, 此言旣自得之後, 則自然心與理會, 不爲禮法所拘而自中節也. 若未能如此, 則是末有所自得, 纔方是守禮法之人爾. 亦非謂旣自得之, 又却須放敎開也. 克己復禮, 固非易事, 顔子用力乃在於視聽言動禮與非禮之間, 未敢便道是得其本心而了無一事也. 此其所以先難而後獲歟. 今言之甚易而苦其行之之難, 亦不考諸此而已矣.

 

 

 

명도선생이 말했다.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고 하였으니, 위 아래로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으로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을 일삼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덕명 그대는 적이 만물이 우리의 본성 안에 있는 것이 마치 거울 안에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아서 하늘을 우러러 솔개가 나는 것을 보고 연못을 굽어 물고기가 뛰노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위 아래로 보이는 것은 도의 본체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바야흐로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을 일삼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을 때, 반드시 앞 일에 참여하여 따져서 캐물을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 뛰노는 것도 모두 내 안의 일일 뿐입니다. 활발발(活潑潑)하여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明道先生: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必有事焉而勿正心󰡕,’ 德明竊謂萬物在吾性分中, 如鑑中之影, 仰天而見鳶飛, 俯淵而見魚躍, 上下之見, 無非道體之所在也. 方其有事而勿正之時, 必有參乎其前而不可致詰者. 鳶飛魚躍, 皆其分內耳. 活潑潑地, 智者當自知之.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논다는 것은 도의 본체가 있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억지로) 조장하지도 말고 완전히 잊어버리지도 않는 사이에서 천리가 유행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을 뿐입니다.

鳶飛魚躍, 道體無乎不在. 當勿忘勿助之間, 天理流行正如是爾.

 

만약 만물이 우리의 본성 안에 있는 것이 거울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성은 하나의 사물이 되고 사물도 하나의 사물이 되어 이것[]으로 저것[사물]을 비추고 저것으로 이것을 들이게 된다. 장횡거 선생의 이른바 만약 온갖 사물이 태허(太虛) 가운데서 발견된다고 한다면 사물과 허()는 서로 밑바탕이 되는 것이 아니어서 형은 저저로 형이고 성은 저절로 성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점을 비판 한 것입니다.

 

若謂萬物在吾性分中, 如鑑之影, 則性是一物, 物是一物, 以此照彼, 以彼入此也. 橫渠先生所謂若謂萬象爲太虛中所見, 則物與虛不相資, 形自形, 性自性, 正譏此爾.

 

공자가 자로를 깨우쳐 사람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 라고 한 뜻은 만약 사람의 이치를 안다면 귀신의 이치를 알 것이고 삶의 이치를 안다면 죽음의 이치를 알 것이니 나에게 보존해야 할 것은 두 가지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정몽󰡕에서 모인 것도 나의 몸이요 흩어진 것도 나의 몸이니 (나의 몸이)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함께 성을 말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하건대 삶과 죽음 귀신의 이치를 말한 것은 이 말로 다하였습니다. 군자의 학문은 자신을 수양하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 부지런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하여 맑음을 구하는 것이니, 대개 그 본래의 마음을 잃지 않고자 하여서 응연(凝然: 단정하고 진중하게)히 항상 보존하여 조화와 음양에 메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삶과 죽음 귀신의 이치는 장차 나에게 한결같아서 천하의 일을 마칠 수 있습니다. 저 불교의 윤회설이 어찌 이것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夫子告子路: ‘未能事人, 焉能事鬼? 未知生, 焉知死? ’ 意若曰知人之理則知鬼之理, 知生之理則知死之理, 存乎我者, 無二物也. 正蒙聚亦吾體, 散亦吾體, 知死而不亡者, 可與言性矣.’ 竊謂死生鬼神之理, 斯言盡之. 君子之學汲汲修治, 澄其濁而求淸者, 蓋欲不失其本心, 凝然而常存, 不爲造化陰陽所累. 如此則死生鬼神之理將一於我而天下之能事畢矣. 釋氏輪回之說, 安足以語此?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귀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현인을 존경하는 도를 다하면 귀신을 섬기는 마음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천지의 변화와 만물이 천명을 받은 이치를 안다면 삶 속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미루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의 말은 본래 자로를 깊이 깨우치는 것이었으나 배움은 등급을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기서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 말하는 사람들은 다수가 선성(先聖)의 말을 빌려 불교의 뜻을 글로 쓰는데 그 본래의 뜻을 잃음이 심합니다.

盡愛親敬長貴貴尊賢之道, 則事鬼之心不外乎此矣. 知乾坤變化萬物受命之理, 則生之有死可得而推矣. 夫子之言固所以深曉子路, 然學不躐等, 於此亦可見矣. 近世說者多借先聖之言以文釋氏之旨, 失其本意遠矣.

 

 

덕명 당신은 선생의 󰡔태극도해의󰡕 2장을 읽고 말하기를 움직여서 양을 낳으니 성()이 통한 것이요. 이를 계승하는 것은 선이니, 만물이 여기서 시작한다.[만물의 바탕이 되어 시작되는 것이다.] 고요하여 음을 낳으니 성이 돌아온 것이다. 이를 이루는 것은 성이니, 만물이 각각 그 성과 명을 바르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덕명 당신은 무극의 참된 성이라 하였는데, 움직여서 양을 낳고 고요하여 음을 낳으니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침이 없어 만물이 이를 계승하여 나오고 이로 인하여 이루는 것은 모두 성의 드러남입니다. 본래 불선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또한 본성이 아님이 없는 것이니 아마도 음양을 나누어서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예컨대 바탕이 되어 비롯됨[資始]’을 양에 연관지우고 성과 명을 바르게 함을 음에 연관지운다면 양 홀로 낳고 음 홀로 이룬다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의 뜻을 상세하게 연구하면 반드시 양은 음에 뿌리를 두고 음은 양에 뿌리를 둬서 음과 양은 원래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와 같다면 말로 표현한 것에서 얻지 않은 것은 이것에 비유할 수 없습니다.

德明伏讀先生太極圖解義第二章曰: ‘動而生陽, 誠之通也. 繼之者善, 萬物之所資始也. 靜而生陰, 誠之復也. 成之者性, 萬物各正其性命也.’ 德明謂無極之眞誠也, 動而生陽, 靜而生陰, 動靜不息, 而萬物繼此以出與因此而成者, 皆誠之著. 固無有不善者, 亦無非性也, 似不可分陰陽而爲辭. 如以資始爲繫於陽, 以正性命爲繫於陰, 則若有獨陽而生獨陰而成者矣. 詳究先生之意, 必謂陽根於陰, 陰根於陽, 陰陽元不相離. 如此, 則非得於言表者不能喩此也.

 

 

계승한 것이 선이고 이를 이룬 것이 성이라 하여 음과 양에 나누어 소속시킨 것은 통서 머리 장의 뜻이니 다만 익숙하게 읽으면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하늘과 땅의 변화는 음이 없어서는 될 수 없으나, 사물이 아직 형체가 없다면 양에 속합니다. 그러나 형기가 이미 정해졌다면 음에 속합니다. 일찍이 장충정공[張詠]의 말에 공사는 서명을 하기 이전에는 양에 속하고 서명을 한 뒤에는 음에 속한다고 한 것을 읽었는데 또한 이러한 뜻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繼善成性分屬陰陽, 通書首章之意, 但熟讀之, 自可見矣. 蓋天地變化不爲無陰, 然物之未形則屬乎陽. 物正其性不爲無陽, 然形器已定則屬乎陰. 嘗讀張忠定公語云公事未著字以前屬陽, 著字以後屬陰’, 似亦窺見此意.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2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원년(甲午, 1174), 주자 나이 45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24)

 

덕명 당신의 일상적인 견해는 자신을 위주로 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대개 하늘과 땅, 사람과 사물의 줄기가 되는 본체[統體]는 단지 하나의 성일뿐입니다. 살아 있을 때 이러한 성이 있는데, 죽었다고 어찌 갑자기 없어지겠습니까? 무릇 물이 부딪쳐 흘러 꺾이고 막히면 거품이 이는 것은 마치 두개의 기틀이 열리고 닫힘이 그치지 않아 묘하게 합하여 사람과 만물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무릇 물은 본디 물이니 거품 또한 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나 단지 그 모양은 거품이니 없어지면 다시 돌아오는 것은 본래의 물입니다. 사람과 만물이 생겨나는 것은 비록 하나의 형체가 하나의 성을 갖춘 것이지만, 기가 흩어져 없어지는데 이르면 다시 줄기가 되는 본체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일 뿐이니, 어찌 다시 사람과 사물의 성을 분별하겠습니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자는 바로 제사지내는 한 가지 일만 할 뿐 이를 미루어서 통하게 하지 않습니다. 만약 과연 흡향할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신은 제사지낼 사람이 아닌 사람이 지내는 제사는 흠향하지 않아서 크게 한계가 있으니, 줄기가 되는 본체가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는 설과 서로 비슷하지 않습니다. 만약 흠향하는 것과 흠향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물을 것이 없고 다만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는 도리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면, 󰡔시경󰡕󰡔서경󰡕신이 음식을 즐긴다’,조고(祖考)가 와서 이른다와 같은 구절에서 도리어 분명히 말했으니, 또한 지극하게 그것을 흠향한 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사람이 비록 죽으면 지각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지각의 근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여기서 진심으로 감동하면 저기서 같은 부류로써 부응합니다. 만약 지각의 근원마저 완전히 없어서 단지 한 조각의 커다랗게 비어있는 고요한 것이라 한다면 끊어져 없어진 것과 같아서 다시 실제로 그러할 수 있는 이치가 없게 되니, 또한 완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군자는 마친다하고, 소인은 죽는다고 한다면 여기에서 지혜와 우둔함은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새와 짐승, 풀과 나무와 다르고, 우둔한 사람은 성인과 다르며, 비록 공공의 도리라 하더라도 사람이 모름지기 온전하게 이를 돌이킨 뒤에야 충분히 나의 죽음을 편안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 무엇 때문에 현인과 성인에 이르기를 구하겠으며, 무엇 때문에 천지와 서로 비슷하겠습니까?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여도 한번 죽는다는 점에서는 같으며 그것이 사람됨을 해치지 않으니, 이것이 곧 새와 짐승, 날짐승과 물고기 함께 죽는다는 것이나, 부끄럽게도 그 보존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합니다.

 

德明平日鄙見, 未免以我爲主. 蓋天地人物, 統體只是一性. 生有此性, 死豈遽亡之? 夫水有所激與折礙則成漚, 正如二機闔闢不已, 妙合而成人物. 夫水固水也, 漚亦不得不謂之水, 特其形則漚, 滅則還復是本水也. 人物之生, 雖一形具一性, 及氣散而滅, 還復統體是一而己, 豈復分別是人是物之性? 所未瑩者, 正惟祭享一事, 推之未行. 若以爲果饗耶, 神不歆非類, 大有界限, 與統體還一之說不相似. 若曰饗與不饗蓋不必問, 但報本之道不得不然, 詩書却明言神嗜飮食祖考來格之類, 則又極似有饗之者. 竊謂人雖死無知覺, 知覺之原仍在. 此以誠感, 彼以類應. 若謂盡無知覺之原, 只是一片太虛寂, 則似斷滅, 無復實然之理, 亦恐未安. 君子曰終, 小人曰死, 則智愚於此亦各不同. 故人不同於鳥獸草木, 愚不同於聖, 雖以爲公共道理, 然人須全而歸之, 然後足以安吾之死. 不然, 則人何用求至賢聖, 何用與天地相似? 倒行逆施, 均於一死而不害其爲人, 是直與鳥獸禽魚俱壞, 懵不知其所存也.

 

삶과 죽음에 관한 논의는 지난번에 보낸 편지에 삶을 알고 사람을 모시는 물음에 답하면서 이미 그 단서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근래에 연숭경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더욱 상세하게 논했습니다. 생각건대 당신이 한번 읽어보면 마땅히 환하게 뚫려 의심난 곳이 없을 것입니다. 보내주신 편지의 글도 오히려 이와 같습니다. 비록 그 유를 이어가고 뜻을 인용한 것이 마치 끝이 없는 것 같지만 그 대체적인 요지를 살펴보면 모두 이전의 두 편지에서 논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어찌 일찍이 깊이 저의 말에 근거하여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예전에 들었던 것을 으뜸으로 삼으십니까? 이미 (저의 생각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고 받아주시니 또한 답장을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험삼아 생각해보시면 다행이겠습니다.

死生之論, 向來奉答所諭知生事人之問已發其端. 而近答嵩卿, 論之尤詳. 意明者一讀當已洞然無疑矣. 而來書之諭, 尙復如此. 雖其連類引義, 若無津涯, 然尋其大指, 則皆不出前此兩書所論之中也. 豈末嘗深以鄙說思之而直以舊聞爲王乎? 旣承不鄙, 又不得不有以奉報, 幸試思之.

 

현명한 당신의 견해 가운데 잘못된 것이 없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나를 위주로 하고 지각을 본성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무릇 성이란 것은 리일 뿐입니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여 만물이 명을 받았는데, 내려준 것은 나에게 있지만, 그 이치는 내가 사사로이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자신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고 한 것은 대개 자기에게 얻은 이치를 다하면 온 세상의 만물의 이치가 애초에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나의 이 지각을 다하면 뭇 사람들의 지각도 모두 이것과 같다는 것을 이른 것이 아닙니다. 성은 리일 뿐이니 모이고 흩어지는 것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모이면 생겨나고 흩어지면 죽는 것은 기일 뿐입니다. 이른바 정신과 혼백은 앎[]이 있고 깨우침[]이 있는 것이니 모두 기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이면 있고 흩어지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리는 애초부터 모이거나 흩어지거나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리가 있으면 이 기가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기가 여기에 모이면 그 리도 또한 여기에 부여될 뿐이니, 물거품으로써 비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蓋賢者之見所以不能無失者, 正坐以我爲主, 以覺爲性爾. 夫性者, 理而已矣. 乾坤變化, 萬物受命, 雖所禀之在我, 然其理則非有我之所得私也. 所謂反身而誠, 蓋謂盡其所得乎己之理, 則知天下萬物之理初不外此, 非謂盡得我此知覺, 則衆人之知覺皆是此物也. 性只是理, 不可以聚散言. 其聚而生, 散而死者, 氣而已矣. 所謂精神魂魄, 有知有覺者, 皆氣之所爲也. 故聚則有, 散則無. 若理則初不爲聚散而有無也. 但有是埋, 則有是氣. 苟氣聚乎此, 則其理亦命乎此耳, 不得以水漚比也.

 

귀신은 곧 정신과 혼백이니, 정자가 천지의 공용(功用)이요, 조화의 자취라고 한 것과, 장자(張子)두 기운의 양능(良能)’이라 한 것은, 본성을 이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사의 예는 해당되는 같은 유()로써 감동[]하고 같은 유로써 대응[]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이라면 어찌 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기가 이미 흩어진 것은 이미 변화하여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리에 뿌리를 두고 날마다 생겨나는 것은 실로 광대하여[浩然]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상채(謝上蔡)나의 정신은 곧 조상의 정신이다라고 말한 것은 대개 이러한 것을 말한 것입니다.

鬼神便是精神魂魄. 程子所謂天地之功用, 造化之迹, 張子所謂二氣之良能, 皆非性之謂也. 故祭祀之禮以類而感, 以類而應. 若性則又豈有類之可言耶? 然氣之已散者, 旣化而無有矣, 其根於理而日生者, 則固浩然而無窮也. 上蔡我之精神卽祖考之精神’, 蓋謂此也.

 

그러나 성인이 제사의 예를 만들 때, 신주(神主)를 만들고 신상(神象)을 세우며 쑥을 사르고 울창주(鬱鬯酒)를 붓거나, 혹은 음에서 구하고 혹은 양에서 구하여 그 지극함을 다하지 않는 바가 없는데도, 오히려 다만 혹 이것을 흠향(歆饗)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할 따름이니, 그 지극한 정성으로 슬퍼하고 정미(精微)하고 황홀한 뜻은 대개 성인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이니 세속의 거칠고 얕은 지식과 견해를 가지고 하나만을 고집하여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일단 사람으로서 형태를 받았다고 한다면 이 성()은 마침내 내가 지닌 것이 되어 비록 죽을지라도 오히려 없어지지 않고, 절연히(截然)히 저절로 한 가지 물건이 되어 고요한 한 몸 가운데 감추어져서 자손이 구하기를 기다려서 때맞춰 나와 흠향하겠습니까? 반드시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 한계의 넓음과 좁음, 잘 정돈된 곳에 대해 반드시 가리켜 말할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또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로 오늘날까지 쌓이어 (귀신이) 많이 모여 겹겹이 쌓여있으니, 생각건대 이미 받아들일만한 땅이 없을 것입니다. 또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然聖人之制祭祀也, 設主立尸, 焫蕭灌鬯, 或求之陰, 或求之陽, 無所不用其極, 而猶止曰庶或享之而已. 其至誠側怛, 精微恍惚之意, 蓋有聖人所不欲言者, 非可以世俗粗淺知見執一而求也. 豈曰一受其成形, 則此性遂爲吾有, 雖死而猶不滅, 截然自爲一物, 藏乎寂然一體之中, 以俟夫子孫之求而時出以饗之耶? 必如此說, 則其界限之廣狹安頓之處所必有可指言者. 且自開闢以來, 積至于今, 其重倂積疊, 計已無地之可容矣. 是又安有此理耶?

 

또 하늘과 땅의 조화는 큰 용광로와 같아 인물(人物)이 끊임없이 생겨나서 조금도 휴식(休息)이 없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실제로 그러한 리[實然之理]로써 그것이 끊어지거나 없어질까 근심하지 않습니다. 이제 곧 하나의 크게 텅비어 고요한 것으로 지목하여 도리어 인물(人物)이 이미 죽고 난 뒤의 지각을 실제로 그러한 리로 인식하고 있으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且乾坤造化, 如大洪爐, 人物生生, 無少休息, 是乃所謂實然之理, 不憂其斷滅也. 今乃以一片大虛寂目之, 而反認人物已死之知覺謂之實然之理, 豈不誤哉?

 

또 성현의 이른바 온전하게 돌아가고 편안하게 죽는다.’는 것도, 또한 하늘에서 받은 이치를 잃지 않으면 부끄럼 없이 죽을 수 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실제로 하나의 물건을 받들어 지니고서 돌아갈 수 있는 뒤에야 나의 끊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 어둡고 막막한 가운데서 편안하게 잘 지낸다고 여긴 것이 아닙니다. 일찍 죽거나 오래 살거나 (천명을) 의심하지 않고 몸을 닦아 기다리는 것, 인위적으로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나, 이단은 살고 죽는 일이 크고 덧없이 빠르다고 여긴 뒤에 배우는 사람들이니, 이들과는 차이가 너무 커서 함께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섞어서 말하여 저쪽의 견해를 이쪽의 설이라 함으로 설이 많을수록 더욱 합치가 되지 않습니다.

又聖賢所謂歸全安死者, 亦曰無失其所受乎天之理, 則可以無愧而死耳. 非以爲實有一物可奉持而歸之, 然後吾之不斷不滅者得以晏然安處乎冥漠之中也. 夭壽不貳, 脩身以俟之, 是乃無所爲而然者. 與異端爲生死事大無常迅速然後學者, 正不可同日而語. 今乃混而言之, 以彼之見爲此之說, 所以爲說愈多而愈不合也.

 

무릇 이런 것들은 그 실마리만 대충 들어 이야기했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글과 말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이전의 두 설을 아울러서 참고하여 깊이 생각하시면 반드시 얻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쉽사리 통하지 않으면 놓아두고, 우선 리 가운데서 절실하게 가깝고 평이한 것에 나아가서 실제로 궁리(窮理)하고 격물(格物)하는 공부를 하여, 그것이 쌓이고 관통(貫通)하게 하면 여기서 저절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따로 하나의 도리를 만들어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옛날의 설을 고수하여 이렇게 공력(功力)을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부족한 제가 비록 다시 말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도움 되는 바가 없을까 걱정이 될 뿐입니다.

凡此皆亦粗擧其端, 其曲折則有非筆舌所能盡者. 幸倂前兩說參考而熟思之, 其必有得矣. 若未能遽通, 則且置之, 姑卽夫理之切近而平易者實下窮格工夫, 使其積累而貫通焉, 則於此自當曉解, 不必別作一道理求也. 但恐固守舊說, 不肯如此下工, 則拙者雖復多言, 終亦無所補耳.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3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원년(甲午, 1174), 주자 나이 45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24)

 

덕명 당신이 스스로 깨달아 가르침을 주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손을 거두지 않고 실을 뽑듯이 풀어내어 곱씹어 음미하였으나 다 궁구할 수 없어, 또한 일찍이 아는 것에 따라 말씀드립니다. 대개 하늘과 인간은 두 가지 이치가 없으며, 근본과 말단은 두 치() 인도를 다하면 천도 또한 다 되며, 말단에서 얻으면 근본도 또한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또한 인륜(人倫)의 지극함일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과 분리하여 하늘을 말하며 근본과 말단을 갈래지어서 고르는 것이 있으니 사단과 오상(五常)이 본성에 있는 것을 이장(理障)이라고 합니다.: 부모와 자식군주와 신하남편과 아내어른과 어린 아이는 없을 수 없는 것이니 연합(緣合)이라고 합니다.: 지나치면 하늘과 땅음과 양사람과 만물은 (실성(實性)이 없는) 환화(幻化)가 되며, 일찍이 혹 지나쳐서 묻지 않고, 곧바로 태허의 성이라고 말합니다. 무릇 세상에는 두 가지 이치가 없는데 하늘과 인간, 근본과 말단이 있어 (여기서) 문득 취하고 버리는 것이 생기니 어찌 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그들의 견해가 이와 같다면 또한 치우치고 협소하여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위와 아래를 꿰뚫어 하나로 관통한 학문이라 하겠습니까? 성문(聖門)은 아래에서 배워 높은 데 통달하는 것이며 씻고 청소하는 것손님 접대하는 것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가는 것이니 비록 먹고 마시는 것이나 남녀의 관계[飮食男女]라 할지라도 경()을 쓰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대개 군자의 도는 (쓰임은) 넓으면서도 (본체는) 은미한 것이니, ‘()’는 쓰임을 말하고 ()’은 곧 하늘의 이치입니다. 날마다 쓰는데 하늘의 이치가 있으면 군주와 신하부모와 자식남편과 아내어른과 어린 아이 사이에서 응대수작식식(食息)시청하는 즈음에 하나라도 이치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니 또한 하나도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하나라도 어지러워진 것이 있게 되면 하늘의 이치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경을 쓰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굳건하게 잡고 익숙하게 익히면 숨겨진 것과 드러난 것이 섞이어 융화되고 안과 밖이 하나로 합쳐져 도가 나에게 있게 됩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깨침[] 또한 언뜻 단예(端倪)를 보는 것일 뿐입니다.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마음이 실제로 그러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일찍이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닦음[] 또한 마음을 굳게 지켜 고요하게 앉아있을 뿐입니다. 인륜을 버리고 천리를 없애면서 그것이 얻음이 있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당신께서 불교는 마침내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德明自得賜誨, 日夕不去手, 紬繹玩味, 末能盡究, 亦嘗隨所知而爲之說. 蓋天人無二理, 本末無二致. 盡人道卽天道亦盡, 得於末則本亦未離. 雖謂之聖人, 亦曰人倫之至而已. 佛氏離人而言天, 岐本末而有所擇, 四端五常之有於性者, 以爲理障 : 父子君臣夫婦長幼所不能無者, 以爲緣合 : 甚則以天地陰陽人物爲幻化, 未嘗或過而問焉, 而直語太虛之性. 夫天下無二理, 豈有天人本末輒生取舍而可以爲道乎? 夫其所見如此, 則亦偏小而不全矣. 豈所謂徹上徹下, 一以貫之之學哉? 聖門下學而上達, 由灑掃應對進退而往, 雖飮食男女, 無所不用其敬. 蓋君子之道費而隱, 費卽曰用也, 隱卽天理也. 卽日用而有天理, 則於君臣父子夫婦長幼之間, 應對酬酢食息視聽之頃, 無一而非理者, 亦無一之可紊. 一有所紊, 天理喪矣. 故君子無所不用其敬. 由是而操之固習之熟, 則隱顯混融, 內外合一而道在我矣. 佛者烏足以語是哉佛氏之所謂悟, 亦瞥見端倪而已. 天理人心, 實然而不可易者, 則未嘗見也. 其所謂修, 亦攝心寂坐而已. 棄人倫滅天理, 未見其有得也. 此先生所以謂其卒不近也.

 

 희노애락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은 곧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마음이며, 하늘과 땅의 근본이 됩니다. 세상에는 두개의 근본이 없기 때문에 건곤이 변화하고 온갖 부류들이 어지럽게 뒤섞이는 것은 이로 말미암아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형태가 있고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에는 각각 천부적인 본성이 있으니 이것이 본원과 말단이 나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 신령한 것을 얻어 사람이 되니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네 가지 감정 사이에서 못과 같이 깊어 비어있고 고요하기가 이름을 붙여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자사는 치우치거나 의존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하고, 맹자는 그 순수한 것을 선이라 하였으며, 공자는 끊임없는 생명의 본체를 일러 인으로써 말하였으니, 이름은 다르지만 본체는 하나이며, 또한 일찍이 일상적인 삶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께서 그것은 분명히 깊이 연구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喜怒哀樂之未發, 卽寂然不動者是也. 卽此爲天地之心, 卽此爲天地之本. 天下無二本, 故乾坤變化, 萬類紛揉, 無不由是而出 : 而形形生生, 各有天性, 此本末之所以不可分也. 得其靈而爲人, 而於四者之際淵然而虛靜, 若不可以名言者. 子思以其無所偏倚而謂之中, 孟子以其純粹而謂之善, 夫子卽謂生生之體而言之以仁, 名不同而體一, 亦未嘗離於日用之間. 此先生所以謂其分明不待尋究者也.

 

저는 예전에 어지러이 일관되지 않게 책을 읽어서 그 요령을 얻지 못하고, 하늘과 땅 음과 양사람과 만물 귀신에 대해 두루 살펴보면서도 일관되게 볼 수 없었으며, 가까이 있는 데도 멀리서 구하여 온힘을 써서 깊이 연구하는 잘못을 벗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일찍이 양구산 선생의 말을 들었는데 (그 말씀에) 이르기를 마음을 다하는 것을 말하지 말고 먼저 반드시 마음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만약 확실하고 분명하게 몸소 이해하였다면 그런 뒤에 (마음을) 다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이전의 말도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는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어서, 일상 속에서 밝게 비추니 어찌 깊이 연구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이것이 당신(선생)께서 반드시 (저를) 깨우쳐 주려는 것인데, 저는 감히 공경하여 받들지 못했습니다.

某昔者讀紛然不一之書而不得其要領, 泛觀乎天地陰陽人物鬼神而不能一, 在邇求遠, 未免有極力尋究之過. 亦嘗聞於龜山先生之說曰: ‘未言盡心, 先須理會心是何物. 若體得了然分明, 然後可以言盡.’ 某前日之說, 正坐是也. 然道無須臾可離, 日用昭昭, 奚俟於尋究? 此先生所爲丁寧開喩, 某敢不敬承.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와 관련된 의혹에 이르러서는 당신의 가르침이 거의 위태롭지는 않습니다. 제가 예전에 한가로이 머무르면서 조용히 앉아서 이른바 두루 채워 통달(洞達)한다고 한 것을 보았는데, 온갖 사물들은 그 가운데서 각각 드러나니 마침내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의 비유를 비근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것을 미루어서 소리개와 고기의 설을 만든 것은 생각건대 그럴 듯 합니다. 당신은 태허와 만상(萬象)이라 함으로써 그 잘못을 범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책을 읽은 지 오래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을 나는 소리개와 물 속에서 뛰노는 고기는 우리의 성품을 두 가지 사물로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을 상세하게 연구하면, 대개 소리개와 물고기의 삶은 반드시 소리개와 고기가 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도의 본체가 있는 곳입니다. 소리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노는 것이 어찌 소리개와 물고기의 사사로움이겠습니까? 대개 천리는 빼어나서 그칠 수 없습니다. 마음에 잊지도 않고 억지로 조장도 하지 않는 사이에 천리가 유행하여 미세한 사사로움도 없으니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명도 선생이 같다고 한 이유입니다. 저의 얕은 견해는 이와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의 생각과 합치되지 않은지요? 그 외에 삶과 죽음, 귀신에 관한 설은 모름지기 직접 만날 날을 기다려서 가르침 받겠습니다.

至於鑑影之惑, 非先生之敎幾殆也. 某昔者閒居黙坐, 見夫所謂充周而洞達者, 萬物在其中, 各各呈露, 遂以鑑影之譬爲近, 故推之而爲鳶魚之說, 竊以爲似之. 先生以太虛萬象而闢其失, 某讀之久, 始大悟其非. 若爾, 則鳶魚吾性分爲二物矣. 詳究先生之意, 蓋鳶魚之生, 必有所以爲鳶魚者, 此道體之所在也. 其飛其躍, 豈鳶魚之私? 蓋天理發越而不可已也. 勿忘勿助長之間, 天理流行, 無纖毫之私, 正類是. 此明道先生所以謂之同. 某鄙見如此, 未知合於先生之意否乎? 其它死生鬼神之說, 須俟面求敎誨.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이 하나하나 모두 저의 생각과 부합하여 정밀하고 민첩함을 알 수 있으니, 본래 이전에 마음속으로 잘못이 없기를 바랐음을 알겠습니다. 그 사이에 오히려 한두 가지 합치되지 않은 점은 큰 일이 아닙니다. 이번에 여행중에 번거로워서 한 두군데 조목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바라건대 더욱 학문을 분별하는 노력을 더한다면 당신의 견해가 마땅히 점차 진실될 것입니다.

來喩一一皆契鄙懷, 足見精敏, 固知前此心期之不謬也. 其間尙一二末合, 亦非大故. 屬此客中冗冗, 未及一二條對. 更願益加辨學之功, 所見當漸眞實也.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4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4(丁酉, 1177), 주자 나이 48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48)

 

깨우쳐주신 시에 관한 설은 선유들이 본래 주공이 지었을 때 정한 것은 정풍, 정아라 하고 그 뒤에 유형별로 덧붙여 나타난 것은 변풍, 변아라고 하였으니 본래 변이라는 것이 모두 아름다움 시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대서의 글 또한 의심할만 곳이 있으며, 소아의 편의 순서는 더욱 알 수 없는 것이 많으니 이것은 쉽게 밝힐 수가 없습니다. 다만 성인의 뜻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좋은 점을 본받게 하고 나쁜 점은 경계하게 한 것이니, 이것이 해와 별처럼 빛날 뿐입니다. 이제 편과 장의 순서와 사실의 옳고 그름이 어떠한가를 묻지 않고 단지 성인이 가르침을 베풀고 권장하여 경계한 뜻을 깊이 음미하면 시의 쓰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정풍(鄭風)과 위풍(衛風)의 시는 편마다 이와 같으니, 이에 그 풍속이 심히 아름답지 못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한 두 편을 싣는데 그친다면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무릇 성인의 마음은 관대하고 화평하고 온화하여 요즘 사람들의 좁은 식견이나 앞뒤가 꽉 막힌 의사와 다릅니다. 이 말은 또한 잠깐 동안 사람들과 말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천천히 생각하여 다음에 직접 뵙고 이야기 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所諭, 先儒本謂周公制作時所定者爲正風雅, 其後以類附見者爲變風雅, 固不謂變者皆非美詩也. 大序之文, 亦有可疑處, 小雅篇次尤多不可曉者, 此未易考. 但聖人之意, 使人法其善戒其惡, 此則炳如日星耳. 今亦不須問其篇章次序事實是非之如何, 但玩味得聖人垂示勸戒之意, 之用在我矣. 鄭衛之詩, 篇篇如此, 乃見其風俗之甚不美. 若止載一兩篇, 則人以爲是適然耳. 大抵聖人之心寬大平夷, 與今人小小見識遮前掩後底意思不同. 此語亦卒乍與人說不得, 且徐思之, 俟它日面講也.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5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4(丁酉, 1177), 주자 나이 48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48)

 

건괘의 사덕에서 정()을 겨울에 짝지은 것은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네 가지 덕에서 지혜[]를 겨울에 짝지은 것은 오히려 밝지 못합니다. 어찌 한 해의 일과 만물의 이루어짐이 모두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 지혜가 밝게 분별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지혜는 머금어 감추고 나누어 구별하는 것을 주관하니 지각은 있으나 운용이 없는 것이 겨울의 형상입니다.

乾之四德, 以貞配冬, 無可疑. 人之四德, 以智配冬, 猶未瑩. 豈以一歲之功萬物之成畢見於此, 如智之明辨者乎? 智主含藏分別, 有知覺而無運用, 冬之象也.

 

오상의 도를 오전(五典)의 순서에 짝지우면 인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서 행해지고 의는 군주와 신하 사이에서 행해지며, 예는 어른과 어린애 사이에서, 지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행해지니 지는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은 벗 사이에서 행해지니 모두 바꿀 수 없는 정해진 이치입니다. 󰡔중용혹문󰡕의 머리 장에서 예로써 어른과 어린애를 주로 삼지 않고 지로써 남편과 아내를 주로 삼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어찌 예와 지를 사이가 없이 통행하게 하여 지정(指定)하여 분배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자를 나누어서 짝지우는 것은 조금 힘을 써야 할 것 같은데 반드시 이와 같이 끌어다 합치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以五常之道配五典之倫, 則仁行於父子, 義行於君臣, 禮行於長幼智行於夫婦, 智所以別. 信行於朋友, 皆不易之定理. 中庸或問首章不以禮主長幼, 智主夫婦, 何也? 豈以禮與智通行無間, 不當指定分配也歟? 智字分配, 似稍費力, 正不必如此牽合也.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이 도라 하였으니 그것은 사람에 있어서 인과 의의 두 단서를 넘어서지 않을 뿐입니다. 음은 인이 되고 음의 의가 됩니다, 이로부터 사단을 미루어보면, 생각건대 예 또한 양의 덕이니 인에 속합니다. 지혜 또한 음의 덕이니 의에 속합니다. 마치 화와 목이 모두 양이고 수와 금이 모두 음의 부류인 것과 같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단락은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一陰一陽之謂道, 其在人者不越仁義兩端而已. 陽爲仁, 陰爲義. 自此推之四端, 竊謂禮亦陽德, 仁之屬也 : 智亦陰德, 義之屬也. 如火木皆陽, 水金皆陰之類. 不識然否? 此段無可疑者.

 

덕명 당신이 선생의 시전을 읽고 지극히 감동하여 마음이 움직여서 비로소 󰡔시경󰡕이 참으로 일으킬만 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의심한 정풍과 정아, 변풍과 변아에 대해서는 이미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또 글읽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에서 또한 성인의 마음은 관대하고 화평하며 온화하여 요즈음 사람들의 좁은 식견과 앞뒤가 꽉 막힌 뜻과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도탑고 두터우며, 관대하고 화평하고 편안한 것은 본래 󰡔시경󰡕의 가르침입니다. 녹의」․「종풍」․「백주」․「고반에서 구한 것은 더욱 환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른바 좁은 식견과 앞뒤가 꽉 막혔다는 것은 어떤 뜻에 주안점을 두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시경과 무슨 관계입니까? 어찌 성인이 보존하면서 없애지 않았겠습니까? 의심하면서도 깨우치지 못한 것은 바라건대 비평하여 깨우쳐 주십시오. 저의 뜻도 처음에 바로 이와 같았다 할 것입니다. 다만 관대하고 화평하며 온화하다는 것은 또한 대체를 들어서 말한 것이니 전적으로 이러한 한 가지 부류를 가리킨 것은 아닙니다.

德明讀先生詩傳, 極有感發, 始知眞可以興也. 所疑正風雅, 已荷開曉. 又見敎讀書之說, 且云聖人之心寬大平夷, 與今人小小見識遮前淹後底意不同. 夫溫柔敦厚, 寬大平夷, 之敎. 求諸綠衣終風柏舟考槃, 尤曉然可見. 但所謂小小見識遮前掩後者, 不知所主何意? 何與? 豈只以所載剌詩有淫褻不可告語者, 聖人亦存而不刪也耶? 所疑末得, 伏乞批誨. 鄙意初亦正謂如此. 但寬大平夷, 亦擧大體而言, 不專指此一類也.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6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7(庚子, 1180), 주자 나이 51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82)

 

저의 여기의 여러 가지 상황은 이미 유평보에 보낸 편지에 갖추어 보냈습니다.

 頓首再拜: 使至奉告, 欣審比日秋淸, 尊履佳福. 此諸况, 已具平父書中矣.

 

세상의 화난(禍難)을 섣불리 범한 것은 이처럼 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낭패를 당하는 것은 또한 능히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따름입니다. 요컨대 오직 세상에 나서지 말았어야 일이 없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번 관리가 되고 나면 곧 이렇게 되어 따질 수가 없게 됩니다. 따지거나 이리저리 회피하는 것처럼 되면 곧 사사로운 뜻입니다. 유씨(劉氏) 집안의 큰 아들은 들으니 매우 배우기를 좋아할 줄 안다고 하는데, 이는 모두 그대가 가르치고 인도해 준 힘이니, 말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이 쇠약하고 졸렬한 사람이 맡아야 할 일을 당신이 담당하여 그 효과가 이러하니,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가는 기일은 생각건대 정한 생각이 있을 것이나, 유평보의 조카의 뜻이 대단히 정성스럽습니다.

輕犯世禍, 非欲如此, 顧恐邂逅蹉跌, 亦非所能避耳. 要之惟是不出, 可以無事. 一行作吏, 便如此計較不得. 才捗計較回互, 便是私意也. 家大哥聞甚知好學, 皆敎導之力, 感不可言. 此衰拙之任, 而老兄當之, 其救又如此, 爲幸甚矣. 行期想有定論, 渠家叔姪意甚拳拳也.

 

남강학사(南康學舍)의 차제(次第)에 대해 물었는데 여기서는 학사의 일에서 이미 손을 떼었으며 또한 생도(生徒)들도 드물고 적어서 특별히 차제를 이룰 수 없어서 말씀드릴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닦는 일로써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지만 아침저녁으로 더불어 친히 만날 방법이 없고 또 그 사이에 자기를 수양하여 유익함을 구함을 아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힘쓸 수 없을 따름입니다. 󰡔논어집주󰡕는 이미 두 현에 옮겼으며, 아울러 글을 써서 부탁하였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책을 얻어 읽지 않고 단지 돈을 써서 책을 사려고 할 뿐이니, 무슨 식견이 있겠습니까? 여은이 간행한 책에 대해서는 들은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글들은 쓸 만한 체계를 이루지 못해서 장차 저절로 소멸할 것이니 관득(管得)할 수 없습니다. 정태주[정감(鄭監)]가 유배당했다는 소식 듣고 놀랐으니, 하늘의 뜻을 특히 알 수 없어서 요즈음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돌아와서 급히 이 글을 쓰니, 다른 것은 언급할 겨를이 없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라면서 이만 마칩니다.

 問及學舍次第, 此間事旣隔手, 又生徒希少, 殊不成次第, 無可言者. 然亦未嘗不告之以窮理修身之事, 但無緣朝夕與之親接, 又其間知爲己求益者絶少, 故亦無以用其力耳. 論語集注已移文兩縣, 幷作書囑之矣. 今人得書不讀, 只要賣錢, 是何見識? 苦惱殺人, 奈何奈何佘隱之所刊聞之已久, 亦未之見. 此等文字不成器, 將來亦自消滅, 不能管得也. 鄭台州奇禍可駭, 天意殊不可曉, 今人憂懼. 人還草此, 未暇它及. 惟千萬自愛, 不宣.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7

 

󰡔역전(易傳)󰡕의 무망괘(无妄卦)에 대한 설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비록 사악한 마음은 없지만, 바른 이치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실로 동정(動靜)을 두루 갖추어서 말한 것이지, 오로지 모습을 엄숙하고 공손하게 하고 마음을 간직하고 길러 이 마음이 이미 존재해 있는 것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개 편안히 혼자 거처할 때 사물에 (마음이) 감동하면 리()는 마땅히 대응하는데, 이 마음은 뻣뻣하게 고집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곧 바른 리가 아닙니다. 또 사물에 대응하여 접촉하는 곳에서 이치는 마땅히 저러해야 하나, 내가 응하는 것이 이러하다면, 비록 꼭 혈기나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 해도, 다만 이와 같기만 하다면 역시 바른 이()에 합치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바른 이()에 합치되지 않음이 있으면, 사특하고 망령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어지러움을 면치 못하여 경을 행할 수 없는 뒤에 망령된 사특한 마음이 있게 되는 것을 반드시 말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所論易傳無妄之說甚善, 但所謂雖無邪心而不合正理者, 實該動靜而言, 不專爲莊敬持養此心旣存設也. 蓋如燕居獨處之時, 物有來感, 理所當應, 而此心頑然固執不動, 則此不動處便非正理. 又如應事接物處理當如彼, 而吾所以應之者乃如此, 則雖未必出於血氣人欲之私, 然只似此, 亦是不合正理. 旣有不合正理, 則非邪妄而何? 恐不必言末免紛擾, 敬不得行, 然後爲有妄之邪心也.

 

요즈음 세상의 마음을 알려는 폐단에 대해서 논하신 것은, 그 잘못에 깊이 적중했습니다. 옛사람의 학문이 마음을 간직하는 것을 귀하에 여기는 것은, 대개 여기에 나아가서 세상의 이치를 궁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이른바 마음을 간직한다는 것은, 곧 간직한 마음을 믿고서 천하의 리를 외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득실(得失)의 실마리를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폐단은 걷잡을 수 없이 망령되고 거리낌 없이 방자한 데로 흐르지 않음이 없는데도, 그 잘못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所論近世識心之弊, 則深中其失. 古人之學所貴於存心者, 蓋將卽此而窮天下之理. 今之所謂存心者, 乃欲恃此而外天下之理. 其得失之端, 於此亦可見矣. 故近日之弊, 無不流於狂妄恣肆而不自知其非也.

 

 

(4-2174)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8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원년(乙卯, 1195), 주자 나이 66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376)

 

관직을 지키는 것은 상관과 서로 알고 있어야 자신의 뜻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관(의 마음)을 얻는데도 도가 있으니,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 또한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옥사(獄事)는 사람의 생명과 연관되는 것이니 더욱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요즈음의 일반적인 풍속은 음덕(陰德)에 관한 논의에 미혹되어, 죄 있는 사람을 석방하는 것은 아주 잘하면서도 선량한 사람들이 하소연 할 데가 없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가장 나쁜 일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쌍히 여겨 기뻐하지 않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보여 주신 의의(疑義)’는 매우 좋습니다만, 다만 한두 군데 조금 원만하게 갖추어지지 않아서 별지(別紙)에 갖추어 보냅니다. 직무의 여가에 다시 의의(疑義)에서 의미를 음미하실 수 있다면 진실로 좋겠습니다. 그러나 책을 볼 적에는 모름지기 첫머리부터 차례에 따라 나아가, 의미의 얕음과 깊음, 어려움과 쉬움에 따라 취하고 버리는 것이 있지 않아, 자연스럽게 의미가 상세하고 세밀해져, 무젖어 관통하는 데까지 이르면 긴요한 곳이 없어도 공부해 나가는 것 또한 헛된 곳으로 귀착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어려운 것, 좋은 것을 가려서 보는 사람이 많은데, 성현의 말씀은 이렇게 구별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또한 이런 마음은 안정되지가 않습니다. 비록 마음을 써서 의미를 캐어 찾을지라도 자기의 이 마음과는 서로 관계가 없이 불쑥 튀어나와 서로 어긋나고, 안정할 바탕이 없는 것입니다. 이 병통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守官得上官相知, 可以行志. 然獲上有道, 自守亦不可失也. 獄事人命所繫, 尤當盡心. 近世流俗惑於陰德之論, 多以縱出有罪爲能, 而不思善良之無告. 此最弊事, 不可不戒. 然哀矜勿喜之心, 則不可無也. 所示疑義甚善, 但一二處小未圓備, 別紙具去. 職事之餘, 更能玩意於此, 固佳. 然觀書亦須從頭循序而進, 不以淺深難易有所取舍, 自然意味詳密, 至於浹洽貫通, 則無緊要處所下功夫亦不落空矣. 今人多是揀難底好底看, 非惟聖賢之言不可如此間別, 且是只此心意便不定疊, 縱然用心探索得到, 亦與自家這裏不相干, 突兀聱牙, 無田地可安頓, 此病不可不知也.

 

 

자회 당신의 시종의 조리에 관해 논한 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에 삼산(三山)에 유람 가서 뵙고 여러 가지 논의한 것은 모두 이해할 수 없으니 무엇 때문일까요? 어찌 동료라 해도 견해가 다르니 힘써 따지는 데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지중(至中)은 본래 마땅히 시종(始終)으로 말해서는 안 되지만, 화살을 쏘아 적중하는 것은 또한 아직 힘을 쓰지 않았을 때, 눈에 친절(親切)하게 보이기 때문에 화살을 쏘아 적중할 수 있을 뿐이며, 화살을 쏜 곳에서 바야흐로 힘을 얻어 쓰게 됩니다. 그 외에 논한 것은 모두 좋습니다.

子晦所論始終條理甚善. 然去歲見三山上游諸論皆不可曉, 何耶? 豈同官所見不同, 難力爭耶? 至中固不當以始終言, 然射之所以中者, 亦是其未用力時眼中見得親切, 故其發而能中耳, 發處方用得力也. 其它則所論皆善矣.

 

가국재(柯國材)가 인을 마음에 비유한 설은 아마도 그가 잘못 기록한 것 같은데 응당 이와 같이 착오를 범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일분수(理一分殊)는 인의(仁義)의 이치가 행해지기를 기다린 뒤에 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하는 것을 의라고 한 것은 곧 고자가 의를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설이니 한자(韓子: 한유)로부터 잘못을 범했습니다. 대개 인의예지는 모두 마음의 이치이며 인은 그 가운데에 있어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맹자는 인심(人心)으로 말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단은 모두 마음의 쓰임인데 측은한 마음이 관통하지 않은 바가 없으니 또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약속한 것이 의리에 가까우면 말한 것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말은 믿게 하기를 기필(期必)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대개 말을 믿음 있게 하고자 하나 반드시 의리에 가까운 뒤에라야 말한 것을 실천하여 그 믿음을 온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말은 끝맺을 것을 생각한다는 뜻입니다.온힘을 다한다는 것은 감히 그 몸을 두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침내 감히 거만하지 않은 데 이르렀다한 것은 말에 더욱 차례가 없으니 모두 반드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사단에 관한 한 단락은 매우 좋은데, 이것은 의리의 강령(綱領)이니 이와 같이 미루어 밝힐 수 있어야 바라던 것에 크게 위안이 될 것입니다.

國材以仁喩心之說, 恐渠記之誤, 不應如此謬妄也. 理一分殊, 便是仁義之理不待行之而後爲義也. 以行之爲義, 乃是告子義外之說, 韓子失之矣. 大抵仁義禮智皆心之理, 而仁在其中又無所不包, 孟子以人心言之. 如四端皆心之用, 而側隱之心無所不貫, 亦可見也. ‘信近於義, 言可復也’, 未可便說言不必信. 蓋言欲其信, 然須是近義, 然後言可復而能全其信. 此正言慮所終之意也. ‘竭力非不敢有其身之謂, ‘卒至於不敢慢’, 語尤無序, 皆不必如此說. 四端一段甚好, 此義理之綱領, 能如此推明, 甚慰所望也.

 

대인(大人)을 유세함의 뜻에 대해서, 저는 일찍이 맹자가 사람을 가르칠 때 대인을 가볍게 여기라 한 것이 아니고, 다만 사람을 가르칠 때 그 드높은 것을 보지 말라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대인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드높은 모습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예컨대 소진(蘇秦)의 형수가 계자(季子: 소진의 자)의 지위가 존귀하고 재물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식견입니다. 만약 드높은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대인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이 곧 참으로 대인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아래 글의 자신을 돌이켜 보고’ ‘서에 힘쓴다고 한 것은 모두 이 구절에 힘입어 의미를 갖게 되니,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한 구절만을 떼어내어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른바 자신을 돌이켜보아 참되다라는 것도 이치를 궁구하고 힘써 행하며, 공부하여 이루어낸 효과가 꿰뚫어 통하고 매우 익숙하여 이치와 하나가 된 곳이니 단지 경()자 만으로 다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說大人之義, 嘗說孟子不是敎人去藐大人, 但敎人勿視其巍巍然者而已. 今人不是畏大人, 只是畏其巍巍然者而已. 蘇秦嫂所謂見季子位高金多, 正是此見識也. 若能勿視其巍巍然而不失夫畏大人之心, 則是乃眞能畏大人者矣. ‘萬物皆備於我’, 下文反身强恕皆蒙此句爲義, 不可只說一截. 所謂反身而誠, 乃窮理力行功夫成就之效, 貫通純熟, 與理爲一處, 不可只以敬字盡之也.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9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원년(乙卯, 1195), 주자 나이 66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380)

 

말을 좋게 하고 얼굴색을 곱게 꾸미는 것은 본심을 잃게 된다.”하였는데, 이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요사이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맹자의 말에 따라 마침내 ()’자를 도리어 ()’자로 바꾸는데,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땅히 다시 이에 대해 생각하여, 그 설을 얻으면 무릇 인()을 말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알 수 있을 것이니 단지 이 장의 뜻일 뿐만은 아닙니다. 또 말을 좋게 하는 것은 오로지 실상에 지나치게 사람을 칭찬하는 것만이 아니고, 대체로 말과 얼굴빛에서 아름답게 꾸며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을 기쁘게 하는데 힘쓰는 것이 이것입니다.

 

巧言令色爲失其本心’, 此語非不是, 但近時說者多因孟子之言, 遂以字替却, 此則不可. 當更於此思之, 得其說, 則凡言仁者皆可黙識, 不但此章之義而巳. 且巧言亦不專爲譽人過實, 大凡辭色之間務爲華飾以悅人之觀聽者皆是. 上蔡語錄中說寫柬請客之類皆是

 

사사로운 마음이 어디서부터 일어나는 가를 살펴본 것, 당시에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평상시 아무 일도 없을 때 일어나는 것을 엿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마음을 잡고 보존하는데 공효(功效)가 있어 곧 생각의 싹이 지각(知覺)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할 수 없으면, 이 마음이 사물에 응하는 때에, 그것의 그름과 올바름공과 사를 살펴서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겨 예로 돌아가는[()()] 노력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察私心所從起’, 亦不記當時如何說. 然亦非謂平居無事而伺其所起, 但操存有功, 卽念慮之萌無不知覺 : 未能如此, 卽此心應物之際, 不可不審其邪正公私而施克復之功也.

 

증자가 삿자리를 바꾼 것은 기록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니, 논한 것에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曾子易簀非記者之誤, 所論得之.

 

천승의 설은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습니다. 󰡔사마법(司馬法)󰡕의 말은 비록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대단히 넓지만, 󰡔주례󰡕에 의거하여 살펴보면 또 여기에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컨대 “9부로써 정을 만들고, 4정으로 읍을 만들고, 4읍으로 구를 만들고, 4구로 전을 만든다.”고 했는데, 정씨[정현(鄭玄)]()’()’으로 읽었으며, 4구의 땅에서 수레 1승을 낸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16정입니다. 일곱 집이 한 사람의 노동력을 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한 것은 뒤에 우문주(宇文周)가 부를 만들어 법을 지켰는데[부위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일곱 집이 한 사람의 군사를 낸 것이며 아마도 옛 제도에 또한 살펴볼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아마도 마땅히 세밀하게 살펴보고 보존하여 아는 사람을 기다려 결정해야지 반드시 저절로 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千乘之說, 未有端的證據. 司馬法說雖占地太廣, 然以周禮考之, 又不止此. 如云九夫爲井, 四井爲邑, 四邑爲丘, 四丘爲甸, 鄭氏’, 云四丘之地出車一乘, 乃是十六井也. 所云未聞七家出一人之役, 後來宇文周制府衛法, 乃是七家共出一兵, 疑於古制亦有所考. 然今不可知矣. 此類恐當細考而兼存之, 以俟知者決焉, 不必自爲之說也.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10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원년(乙卯, 1195), 주자 나이 66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381)

 

보내오신 편지의 뜻은 이미 다 알았습니다. 다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고요히 기다리는 것이 낫겠습니다. 우리들이 배운 바가 바로 이런데서 징험(徵驗)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조금 이해(利害)를 보았다 하면 곧 입을 열어 다른 사람에게 일러 주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면, 배우지 않은 사람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옛날에 이선생(李先生)의 말씀을 보니, 이러하더군요. 만약 대단한 일로써 떨쳐 버릴 수가 없다면, 다만 옛사람들이 만난 환난 가운데서 대단하여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여 그것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비교한다면, 조금 편안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아주 대수롭잖게 생각했는데 어찌 이런 데까지 이르리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이 이후로 일에 임하여 득력(得力)할 곳이 있으면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각중(閣中)에서 당한 불쾌한 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일이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이미 펼쳐 오무릴 수가 없고, 이미 나아갔으므로 물러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줏대를 갖고 뜻을 굳게 가져 저와 더불어 서로 당당하게 대처하여, 그가 어떻게 하는 가를 보아 자신도 결정할 일입니다. 입을 열어 그에게 잘 보이려고 말하려 하지 마시고 있다가, 임기가 만료되면 곧 그가 다른 데로 좌천시키는 공문을 만들면 그 임지를 떠날 버릴 것이니, 그의 대단한 위풍도 부릴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동파(東坡)가 호주(湖州)에서 체포될 때 얼굴이 산 사람 빛이 아니었고, 두 다리는 풀어져 거의 걷지를 못했답니다. 들어가 집안 사람과 작별하려고 했으나, 사자(使者)가 들어 주지 않았답니다. 비록 이천(伊川)선생이라도 부릉(涪陵)으로 귀양갈 적에 역시 들어가 숙모에게 알리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진료옹(陳了翁)만은 체포될 적에 명령을 듣고 곧 바로 가니,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들어가서 행장을 꾸리기를 청하자 요옹(了翁)은 도리어 듣지 않았다고 하니, 기걸(奇傑)하도다! 기걸하도다! 원컨대 자회(子晦)도 이점에 힘써 후세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되지 마십시오.

所喩已悉, 但事已如此, 不若且靜以聽之. 吾人所學, 正要此處呈驗. 若着些利害, 便不免開口告人, 却與不學之人何異? 向見李先生, 若大段排遺不去, 只思古人所遭患難有大不可堪者, 持以自比, 則亦可以少安矣. 始者甚卑其說, 以爲何至如此. 後來臨事, 却覺有得力處, 不可忽也. 若閤中不快, 亦無可奈何. 事已至此, 已展不縮, 已進不退, 只得硬著脊粱與它廝崖, 看他如何自家決定, 不肯開囗告他. 若到任滿, 便作對移批書離任, 則它許多威風都無使處矣, 豈不怏哉東坡湖州被逮時面無人色, 兩足俱軟, 幾不能行. 求人與家人訣, 而使者不聽. 伊川先生涪陵, 亦欲人告叔母而不可得. 陳了翁被逮, 聞命卽行, 使人駭之. 請其人治行裝, 而翁反不聽. 奇哉奇哉子晦勉旃, 毋爲後人羞也.

 

여기에 오백기(吳伯起)란 사람이 있는데, 일찍이 강학(講學)한 적이 없었는데 뒤에 육자정(陸子靜) 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스스로 이해하여 깨달은 바가 있어 이해(利害)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고을원이 되었다가 곧 다른 고을의 주부(主簿)로 좌천되게 되었는데, 가지 않으려고 백방으로 좌천을 면할 방법을 구하고 있답니다. 저가 웃으면서 생각하기를, “어찌 이와 같은 데까지 이르는가?”라고 했습니다. 만약 좌천이 되어 관청의 심부름하는 사령(使令)이 되면 날마다 형장(刑杖)을 갖고서 지부(知府)의 관청 앞으로 가서 공손히 읍을 드리며 문안을 드릴 것이요, 만약 좌천이 되어 서리(書吏)가 되면 날마다 문서(文書)를 끌어 안고서 지현(知縣)의 안전(案前)에 가서 보고를 드릴 것이요, 다시 향임(鄕任)의 심부름꾼이 될지라도 또한 그와 더불어 가서 일하는 것이 해롭지 않을텐데, 하물며 주부(主簿)임에랴? ()가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울분으로 병을 이루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만약 다 털어 버렸더라면 반드시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죽음을 면치 못하여 쓸 데 없이 뭇 사람들의 신경을 쓰게 만들었으니, 잃은 바가 더욱 많습니다. 비록 사기(事機)에 임하여 결단함을 잃은 것이지만, 또한 평소에 갖고 있던 논의가 결핍했던 것입니다.

此間有吳伯起, 不曾講學, 後聞陸子靜門人說話, 自謂有所解悟, 便能不顧利害. 及其作今, 纔被對移它邑主簿, 却不肯行, 而百方求免. 嘗笑之, 以爲何(4-2178)至如此. 若對移作指使, 卽逐日執杖子去知府廳前唱喏. 若對移做押錄, 卽逐日抱文案去知縣案前呈覆. 更做耆長壯丁, 亦不妨與它去做, 况主簿乎? 不能用, 竟至憤鬱成成而死. 當時若放得下, 却未必死. 今不免死, 而枉陪了許多下情, 所失愈多. 雖其臨機失於斷決, 亦是平日欠了持論也.

 

뜻있는 사람은 죽어 도랑이나 골짜기에 버려지는 것을 잊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머리를 잃는 것을 잊지 않는다라는 이 말은 공자가 동산을 지키는 사람에게서 취한 것으로서, 맹자가 그 의의를 밝힌 것입니다. 이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잊지 않는다[不忘]’는 두 글자는 살아 있는 구절로서 모름지기 여기에서 의의를 참고해서 취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생각건대, “만약 과연 이 뜻을 알고 이런 마음을 갖춘다면, 어디를 간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고, 저 사람의 권세와 위력도 또한 베풀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此夫子所以有取於, 孟子亦發明之. 李先生不忘二字是括句, 須向遺裏參取. 愚謂若果識得此意, 辨得此心, 則無人而不自得, 而彼之權勢威力亦皆無所施矣.

 

이전의 편지에 저의 소견을 다 말하지 못해서 다시 이와 같이 제 생각을 펼치니 시험삼아 반복해서 보시면 마땅히 저절로 판가름되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前幅未盡鄙意, 故復布此. 試反復之, 當自有判決處.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11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원년(乙卯, 1195), 주자 나이 66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381)

 

당신(唐臣)이 물었다. “중부(中孚)괘의 전에 가운데가 비어 있는 것은 중부의 상()이 되고, 가운데가 차있는 것도 부신(孚信)의 뜻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가운데가 비어 있는 것은 믿음의 근본이요, 가운데가 차 있는 것은 믿음의 바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운데가 비어 있는 것은 성신(誠信)의 상이 되고, 가운데가 비어 있는 것은 부신(孚信)의 상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무릇 근본이 있으면 바탕이 있고, 정성[]이 있으면 미쁨[]이 있습니다. 대개 바탕은 근본에서 생겨나고 미쁨[]은 정성[]에서 나옵니다. 마치 시작과 끝마침이 있고, 앞과 뒤가 있는 듯하지만 가리켜서 이름 붙여 시작과 끝마침, 앞과 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나누어 말하면 가운데가 채워있다 하고, 합해서 말하면 가운데가 비어 있다고 합니다. 나누어서 두 체를 말하면 태()와 손()이요, 합쳐서 전체를 말하면 중부입니다. 두 체는 굳건함[]으로 위아래의 중()을 얻었으므로 비록 찼다고 하지만, 체를 이룸에 이르러서는 두 유효(柔爻)가 가운데에 있고, 또 비어있는 데서 생깁니다. 가운데가 비어있어도 채워있음[]이 없을 수 없고, 가운데가 채워있다 해도 비어있음[]이 없을 수 없습니다. 비어있음을 채워있음의 체()라 하고, 채있음을 비어있음의 용()이라 해서 비록 체다 용이다 말들 하지만, 또한 나누어 둘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대체로 비어있음은 채워있음에 뿌리박고 있으며, 채워있음은 비어있음에서 나옵니다. 그 비어있음에 이르러서는, 채워있음의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고, 채워있음에서는 비어있음의 뜻이 보존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다만 비어있는 것을 붙잡고서 채워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니, 그 채워있음을 잊으면 바탕[]도 미더움[]도 없게 됩니다. 또 채워있음에 빠져서 비어있음을 잃어서도 안 되니, 비어있음을 잃으면 근본도 성()도 없습니다. 이것은 음()은 양()에 뿌리를 두고, 양은 음에 뿌리를 두며, 고요할 때는 없는 듯하고 움직일 때는 있는데, 도가 함께 행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 사이에 일원(一元)의 기가 아득히 깊숙하고 멀어서 자취가 없으니 어찌 비어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물이 생성하면서 각각 형기를 갖추었으니 어찌 채워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물[]이 비록 형태를 이루지만, 어찌 일원의 기에서 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일원의 기 역시) 어찌 이러한 물을 버리고 스스로 쓰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배우는 자들이 하늘과 땅의 변화를 체득하고, 형색(形色)의 법칙을 극진히 궁구하면 가운데는 비어있지 않을 수 없고, 또 채워있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노력이 나에게 있다면 마음[中心]은 넓어져 커지고 어떠한 사욕도 그 속에 머물지 못하니, 미더움의 근본을 잃지도 않을 것이요, 성신(誠信)의 상을 잊지도 않을 것이니 어찌 비어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밖에서 응접(應接)한다면 반드시 자잘한 일[細行]도 세심히 살피고, 작은 물건도 능히 신중하게 다룬다면 미더움의 바탕을 잃지 않을 것이요 부신(孚信)의 상을 잊지 않을 것이니, 어찌 채워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또 이천(伊川) 선생이 마음으로부터 외부에 대응하며, 외부로부터 억제하여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말한 뜻입니다. 이렇다면 체와 용이 하나의 근원이요, 안과 밖이 서로 자랄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제가 󰡔역전󰡕을 읽어보니 이러한 의심스런 뜻이 있으니 상세하게 가르쳐주시기를 바랍니다.”

唐臣: ‘中孚傳曰: 󰡔中虛爲中孚之象, 中實亦爲孚義.󰡕又曰: 󰡔中虛信之本, 中實信之質.󰡕又曰: 󰡔中虛爲誠之象, 中實爲孚之象.󰡕夫有本則有質, 有誠則有孚, 蓋卽質生於本而孚出於誠也. 似有終始, 似有先後, 然不可得指而名之, 以爲終始先後也. 故分而言之則曰中實, 合而言之則曰中虛. 分謂二體, . 合謂全體, 中孚是也. 二體以剛而得上下之中, 雖曰實矣, 及其成體, 則二柔在中而又生於虛焉. 蓋虛中未嘗無實, 而中實未嘗不虛也. 以虛爲實之體, 而實爲虛之用, 雖曰體曰用, 又不可岐而爲二也. 大抵虛根於實, 實出於虛. 及其虛也, 實之理未嘗不在焉 : 於其實也, 虛之義未嘗不存焉. 但不可執其虛而忘其實, 忘其實則無質也, 無信也 : 又不可泥其實而失其虛, 失其虛則無本也, 不誠也. 是猶陰根於陽, 陽根於陰, 靜無而動有, 道並行而不相悖者也. 今夫天地之間, 一元之氣杳冥無迹, 豈非虛耶? 萬物生成, 各具形器, 豈非實耶? 然物雖成形, 豈能離於一元之氣? 豈能捨於物而自用哉? 在今學者, 體天地之化, 盡形色之則, 中不可不虛, 亦不可不實. 存養在我, 則中心廣大, 纖毫不留, 不失於信之本, 不忘於誠之象, 豈非虛耶? 應接於外, 則必矜細行, 克勤小物, 不失於信之質, 不忘於孚之象, 豈非實耶? 此亦伊川先生所謂󰡔由乎中以應乎外, 制於外所以養其中󰡕之義也. 如是則體用一源, 內外交養, 豈不美哉! 某讀易傳而有此疑義, 萬望詳敎.’

 

덕명이 대답했다. “중부(中孚)의 뜻은 은미하고 깊은데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괘체(卦體)에서 살펴보건대 구이(九二)구오(九五)는 모두 양()이면서 가운데가 가득 찬 것이니, 중심(中心)이 가득 차 있어서 미더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안과 밖이 모두 차고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것은 중심이 허명(虛明)하여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장한 것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가운데가 가득 찬 것은 믿음의 바탕이 되고, 느끼는 것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것은 믿음의 근본이 됩니다. 또 택()()이란 두 상으로 말하자면, 물이 허()로써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아래는 허()로써 위의 감응을 받아들이니 모두 미덥게 되는 이유입니다. ()와 실()과 허()는 모두 믿음[]으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역()이 변화하면서 각각의 도를 극진히 발휘하지 않음이 없는 까닭이요, 중부(中孚)의 뜻이 드러난 것입니다. 보내신 글에서 텅 빈 것 가운데 가득 찬 것이 없을 수 없고, 가득 찬 것 가운데 텅 빈 것이 없을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또 텅 빈 것이 가득 찬 것에 뿌리를 두고 있고 가득 찬 것이 텅 빈 것 가운데 뿌리를 갖고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또 일원기지(一元之氣)를 비어있음이라 하셨고, 만물이 생성하는 것을 채워있음이라 하셨는데, 그 말들은 아마도 병폐가 있는 듯 합니다. 󰡔주역정의(周易精義)󰡕조용하게 비어 있어 조짐이 없지만 모든 것이 이미 빽빽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하였는데, ‘모든 것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하면 비록 조용하게 비어 있어 조짐이 없을 때일지라도 이미 비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일원지기(一元之氣)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비어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노자의 존재하는 것은 무에서 생겨난다.’는 논리에 가까우며, 󰡔정몽󰡕에서 배척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안에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른다[存養於中]와 밖에서 응접한다[應接於外]로 두 가지로 끊은 것은 아마도 정자가 말한 마음으로부터 외부에 대응한다는 말의 본뜻을 잃은 듯 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德明答云: ‘中孚之義微奧, 德明所能識? 嘗試考諸卦體, 五皆陽而中實者, 中心純實而有信之義也. 內外皆實而中虛者, 中心虛明而能信之義也. 就所主而言, 則中實爲信之質 : 就所感而言, 則中虛爲信之本. 又以澤風二象言之, 則水以虛而受風之入, 下以虛而受上之感, 皆所以爲信也. 其體其實其虛, 一歸於信, 之所以變易而無不各極其道, 而中孚之義著矣. 來說謂虛中未嘗無實, 實中未嘗無虛, 固善 : 又謂虛根於實, 實根於虛, 又以一元之氣爲虛, 萬物生成爲實, 其言竊恐有病. 精義: 󰡔冲漠無朕而萬象森然已具.󰡕 其曰萬象已具, 則雖冲漠無朕之際已不爲虛矣, 况於一元之氣所旣有者, 得爲虛乎? 此幾於老氏󰡔有生於無󰡕之論, 見闢於正蒙之書者也. 又以存養於中應接於外爲兩截, 恐失程子󰡔由乎中以應乎外󰡕之本意. 不審高明以爲如何? ’

 

당신(唐臣)이 물었다. “여여숙(呂與叔)이 일찍이 생각이 많은데 몰아낼 수가 없습니다고 하자, 정자(程子)가 말했다. “이는 바로 부서진 집에서 도적을 막는 것과 같습니다. 동쪽으로 도적이 온 것을 미처 쫓아내기도 전에, 서쪽으로 또 한 사람이 옵니다. 사방으로 쫓아내느라 숨쉴 겨를도 없습니다. 대개 집의 사면이 모두 허술해서 도적이 들어오기가 쉽고, 주인으로서도 손을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마치 빈 그릇을 물에 넣는 것과 같아서 물이 저절로 들어옵니다. 만약 한 그릇에 물을 가득 채워 물 속에 넣는다면 물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대개 안에 주인이 있으면 가득 차고 가득 차면 바깥의 근심거리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여, 자연히 아무 일이 없게 됩니다.” “배우는 사람들이 먼저 힘써야 할 일은 진실로 마음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견문(見聞)과 지식과 생각을 물리치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성스러움을 끊고 슬기로움 버리는 짓이고, 사려(思慮)를 물리치려 하여 마음의 어지러움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름지기 좌선(坐禪)하여 입정(入定)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밝은 거울이 여기에 있으면 만물은 다 비추는데, 이것이 거울의 정상적인 상태로서, 그것으로 하여금 비추지 않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과 교감(交感)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마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지 않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사려는 있어도 마음의 어지러움이 없게 하려면, 오직 마음에 주인이 있는 것뿐 입니다. 무엇이 주인이 되느냐? ()일 뿐입니다. 마음에 주인이 있으면 마음이 텅 비게 됩니다. 여기서 텅 빈다고 이른 것은 사악한 것이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으면 가득 차게 되니, 여기서 가득 찬다고 이른 것은 밖으로부터 사물이 들어와서 마음을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동시에) 두 갈래로 쓸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쓰면 다른 일은 다시는 들어 올 수가 없으니, 일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도 오히려 사려가 흩으러 질 염려는 없으니, 만약 경()을 주로 한다면 또 어찌 이런 걱정이 있겠습니까? 이른바 ()’이란 것은 하나를 주로 하는 것을 일러 경이라 한다. 이른바 ()’이란 것은 마음이 다른 데로 가지 않는 것을 일러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주일(主一)의 뜻에 무젖어 들게 하려는 경우, 하나가 아니면 두 가지 세 가지로 됩니다. ‘감히 속이지 않는다’, ‘감히 태만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구석에 혼자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할 일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경()의 일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조목에서 하나는 가득 찬 것을 주인으로 삼았고, 하나는 텅 빈 것을 주인으로 삼았는데, 모두근사록(近思錄)󰡕에 들어 있습니다. 당신(唐臣)은 저의 생각을 헤아려서, 텅 빈 것으로 경을 말하고, 가득 차 있는 것으로 사물을 말했습니다. 경을 주인으로 삼으면 텅 비게 되고, 비게 되면 사악한 것이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사물을 주인으로 삼으면 가득 차게 되고 가득 차게 되면 바깥의 근심거리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선생이 주인이 있으면 가득 찬다라는 말 아래에 자연히 아무 일도 없게 된다.’고 했으며, ‘주인이 없으면 가득 찬다는 말 아래에 가득 찬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사물이 들어와서 마음을 빼앗는 것을 말한다.’라고 한 것입니다. 상고해 보건대, 이 두 조목의 뜻은 각각 그 의미하는 바가 있어 아울러 한 가지 뜻으로 간주할 수는 안 됩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唐臣問: ‘呂與叔嘗言思慮多, 不能驅除, : 󰡔此正如破屋中禦寇, 東面人來未逐得, 西面又一人至矣. 左右前後, 驅逐不暇. 蓋四面空疎, 盜固易入, 無緣作得主定. 又如虛器入水, 水自然入. 若以一器實之以水, 置之水中, 水何能入來? 蓋中有主則實, 實則外患不能入, 自然無事.󰡕󰡔學者先務, 固在心志, 然有謂欲屛去聞見知思, 則是絶聖棄智 : 有欲屛去思慮, 患其紛亂, 則須坐禪入定. 如明鑑在此, 萬物畢照, 是鑑之常, 難爲使之不照. 人心不能不交感萬物, 難爲使之不思慮. 若欲免此, 唯是心有主. 如何爲主? 敬而已矣. 有主則虛, 虛謂邪不能入 : 無主則實, 實爲物來奪之. 大凡人心不可二用, 用於一事則它事更不能入者, 事爲之主也. 事爲之主, 尙無思慮紛擾之患, 若主於敬, 又焉有此患乎? 所謂敬者, 主一之謂敬. 所謂一者, 無適之謂一. 且欲涵泳主一之意, 不一則二三矣. 至於不敢欺, 不敢慢, 尙不媿於屋陋, 皆是敬之事也.󰡕 此二條一以實爲主, 一以虛爲主, 而皆收入近思錄. 唐臣以愚意度之, 虛以敬言, 實以事言. 以敬爲之主則虛, 虛則邪不能入 : 以事爲之主則實, 實則外患不能入. 程先生󰡔有主則實󰡕下云: 󰡔自然無事󰡕, 󰡔無主則實󰡕下云: 󰡔實謂物來奪之.󰡕 詳此二條之意, 各有所在, 不可倂作一意看. 未知是否? ’

 

요덕명이 답했다. ‘주인이 있으면 가득 차고[], 주인이 있으면 텅 빈다[]’고 했는데, ()와 실()에 관한 두 가지 설은 비록 같지 않으나, 그 뜻은 저절로 서로 통하니, 모두 경()을 주로 삼은 것입니다. 경을 주로 하면 그 마음을 잡아 보존하므로 어지럽지 않고, 고요히 비어있어 사물을 비출 수가 있습니다. 마음을 잡아 보존하여 어지러워지지 않으면 바깥의 근심거리가 저절로 들어올 수가 없고, 고요히 비어 있어 사물을 비출 수 있으면 바깥 사물이 저절로 간섭하지 못하여, 두 가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정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경이라고 한다고 하였고, 경은 절로 고요히 비어있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경이 온갖 사악한 것을 이긴다고 하셨는데 그 뜻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여씨가 생각이 많은 것을 걱정한다고 한 것과 관련하여, 정자는 마음에 주인이 없는 것이라 하여, 빈 그릇을 물속에 넣고, 부서진 집에 도적이 드는 것을 예로 드는 데까지 이르렀으므로 주인이 있으면 가득 차고 가득 차면 바깥의 근심이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뒤의 학자들은 또 견문과 지식, 사려를 다 물리치려 하였는데, 정자는 인간의 마음은 감동이 없을 수 없어 마치 거울이 비추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다만 무젖어 마음을 맑고 밝게 기르면 저절로 어지러워짐이 없어지니 물리쳐 없앰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인이 있으면 텅 비고 텅 비어 있는 것은 사악한 마음이 들어올 수 없음을 일컫는다.’고 말했습니다. 각각 마땅한 점이 있는데 모두 경을 주인으로 삼은 것입니다. 만약 갈래지어 둘로 한다면 아마도 정자의 본 뜻이 아닐 것입니다. 또 앞에서 주인이 있으면 가득 찬다.’고 말했다면 이 마음은 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뒤에서 주인이 없으면 가득 찬다.’고 말했다면, 이것은 (밖으로부터) 사물이 들어와서 마음을 빼앗는 것이니, 마음이 어둡고 막히게 됩니다. 비록 말은 같지만 뜻은 다릅니다. ()라고 말한 것도 또한 그렇습니다.

德明答云: ‘有主則實, 有主則虛, 虛實二說雖不同, 然意自相通, 皆謂以敬爲主也. 敬則其心操存而不亂, 虛靜而能照. 操存不亂, 外患自不能入 : 虛靜而能照, 外物自不能干, 無有二事. 程子󰡔主一之謂敬󰡕, 又曰󰡔敬則自虛靜󰡕, 又曰󰡔敬勝百邪󰡕, 意亦可見. 只緣呂氏患思慮多, 程子謂其中心無主, 所致如虛器入水破室致寇, 故言有主則實, 實則外患不能入. 後來學者又欲盡屛見聞知思, 程子以爲人心不能無感, 如鑑不能不照, 但涵養淸明, 則自無紛擾, 不待屛除也, 故言有主則虛, 虛謂邪不能入’. 各有攸當, 皆是以敬爲主. 若岐而爲二, 恐非程子本意. 又前言有主則實, 則是心有主也. 後言無主則實, 則是物來奪之, 中心昏塞也. 辭雖同而意則異. 所言虛者亦然.’

 

이군(이요경(李堯卿))의 두 설 또한 좋으나, 다만 너무 지엽으로 흐르는 것이 흠이 될 것입니다. “근본이 있으면 바탕이 있고, 정성이 있으면 믿음이 있으니, 대개 바탕은 근본에서 생겨나고, 믿음은 정성에서 나온다.”하는 네 구절은 자체로 좋으나, “시작과 마침이 있는 것 같다이하는 군더더기 말입니다. 나누고 합하는 것은 괘의 체를 논하는 것인데 선후(先後)로써 이름을 가리켜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텅 빈 것 가운데 가득 찬 것이 없지 않다이하 또한 넘치는 말[衍說]이니, 이 뜻과 애당초 서로 관계가 없습니다. “가득 찬 것은 텅 빈 것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이 말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텅 빈 것[]을 잡아 가득 찬 것[]을 잊고, 가득 찬 것에 빠져 텅 빈 것을 잃는 것은 모두 지극히 해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이제 한번 생각하는 사이에 마음 가운데 사사로운 주인이 없는 것이 곧 허(), 일이 모두 망령되지 않은 것을 곧 실()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두 가지 일이 아닙니다. 그 말 가운데 또 마음 속에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을 허라 하고, 외부의 사물에 응접하는 것을 실이라 한 것 또한 잘못입니다. 여자회의 설은 대체로 가깝지만, 다만 말에 친절하지 못한 곳이 있을 뿐입니다. 뒤 단락의 허와 실에 관한 설 또한 이와 비슷합니다.

李君二說亦佳, 但太支蔓作病耳. ‘有本則有質, 有誠則有孚, 蓋質生於本, 而孚出於誠’, 此四句自好, ‘似有始終以下則贅矣. 分合則是論卦體, 非爲不可以先後指名而言也. ‘虛中未嘗無實以下亦是衍說, 與此義初不相干. 所云實出於虛, 此尤無理. 至謂執虛忘實, 泥實失虛, 皆極有害. 大抵如今一念之間, 中無私主, 便謂之虛 : 事皆不妄, 便謂之實, 不是兩件事也. 其說又以存養於中爲虛, 應接於外爲實, 亦誤矣. 子晦之言大抵近之, 但語有未親切處耳. 後段虛實之說亦類此,

 

자회(子晦)의 설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경()은 안에서 욕심이 싹트지 않고 바깥의 유혹이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욕심이 싹트지 않는 것으로부터 말한다면 ()’, 바깥의 유혹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부터 말하기 때문에 ()’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만 같은 시기에 일어나는 일이므로, 두 부분으로 떼어내어 보아서는 안 됩니다.

子晦之說甚善. 但敬則內欲不萌, 外誘不入. 自其內欲不萌而言則曰虛, 自其外誘不入而言故曰實. 只是一時事, 不可作兩截看也.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12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원년(乙卯, 1195), 주자 나이 66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381)

 

보내주신 편지에 예에 관한 글은, 이러한 일에 대해 예전에 일찍이 강구(講究)한 적이 없어, 하루 나절에 혼미하여 또 물을 겨를이 없고, 예로 들고 있는 것도 참으로 간단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사(喪事)는 형식을 갖추기 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하는 것이니, 다만 그 큰 절목(節目)은 보존하되 우리의 슬퍼하고 아파하는 참된 마음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을 시급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비록 조금 갖추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또한 그만 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복 제도는 󰡔의례󰡕에 상세하게 나타나 있어서, 여러 학자들이 이를 근본으로 삼아 다시 변화만 줄 뿐이니, 반드시 상세하게 연구하고자 하면,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시급한 것에 따라 말씀드리면, 복장(卜葬)을 먼저하고 장사 후에 삼우제를 지내며 졸곡(卒哭) 하고 부제(祔祭)를 지냅니다. 부제가 끝나면 신주를 다시 정침에 모셨다가 3년을 기다린 뒤에 궤연(几筵)을 철거합니다. 이것은 󰡔예경󰡕에 모두 명확하게 언급한 글이 있으니, 반드시 다른 설을 써서 고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所喩禮文, 此等事平昔不曾講究, 一旦荒迷, 又不暇問, 所以例多苟簡, 不滿人意. 喪與其易也寧戚’, 但存其大節, 使不失吾哀痛之誠心爲急. 此等雖小不備, 亦不得己也. 禮服制度見於儀禮爲詳, 諸家皆祖之而有更變爾, 若必欲致詳, 可細考也. 據今所急, 卜葬爲先, 葬後三虞, 卒哭而祔. 祔畢, 主復于寢, 以俟三年而後撤几筵. 禮經皆有明文, 不必用它說改易也.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13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원년(乙卯, 1195), 주자 나이 66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381)

 

묘제(廟制)에 관한 논의는 당시에는 다만 형공(荊公: 왕안석)의 설만을 썼는데, 대개 이천선생의 생각과 같았습니다. 이른바 ‘9묘의 제도를 갖추지 못한다고 한 것은 대개 의론하는 사람들이 희조와 선조의 신주를 옮겨 함께 조묘(祧廟)에 합사(合祀)하고, 효종을 한 실에서 부묘(祔廟)에 합사(合祀)하고자 한다면, 태조로부터 효종에 이르기까지 겨우 8세에 불과할 뿐입니다.(형제는 모두 1세가 된다.) 설령 왕안석의 설이 반드시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 하더라도, 선조 또한 조훼(祧毁)의 경계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일은 마땅히 사사로이 의론해서는 안 되나, 물음을 받았기 때문에 늦게나마 말씀드리니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어온 장례법에 대해서는 대체로 알았습니다. 다만 뒤에 강구해야겠지만, 목곽(木槨)에 역청(瀝靑)을 하는 것은 이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구멍 밑에 먼저 숯가루를 깔아 쌓되 두께는 한 치를 허용하고, 숯가루를 깔아놓은 가운데에 모래와 회를 깔며, 사방(四傍)에 숯가루를 사용하고 측면의 두께는 한 치를 허용하여 아래에 먼저 깔아놓은 것과 서로 접하게 합니다. 쌓고 나서 평평하게 된 뒤에 석곽을 그 위에 안전하게 놓고 사방에 또한 세 가지 사물인 숯, , 모래를 앞에서와 같이 내려놓습니다. 곽의 밑과 관의 사방(四傍)의 윗면에 다시 모래와 재를 사용하여 채웁니다. 다 채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뚜껑을 덮고 다시 모래와 회를 넓게 깔아, 그 위에 숯가루를 더한 뒤에 위로 쌓고, 구멍을 메운 다음 그칩니다. 대개 모래와 회는 땅강아지나 개미를 막는데,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좋습니다. 지난번에 일찍이 호적계(胡籍溪; 호헌(胡憲)) 선생의 설을 보았는데, 일찍이 회를 사용하여 매장한 것을 보았으며, 뒤에 천장(遷葬)하니 회가 이미 변하여 돌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숯가루는 나무뿌리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니 또한 마을 사람들이 개장하는 것에서 또한 친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이제 모래와 회의 바깥에 사면을 두루 촘촘하게 하여 모두 붙인 틈을 없앤 뒤에라야 단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법전(法典)에서 석곽을 허용하기 않기 때문에 이것은 완전한 돌을 사용하지 않고 다만 여러 조각을 합하여 쓰면 거의 제도의 뜻에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廟議當時只用荊公之說, 伊川先生之意也. 所謂不備九廟之制, 蓋議者欲幷祧二祖而祔孝宗一室, 則自太祖而至孝宗纔八世耳.(兄弟共爲一世.) 正使荊公之說未必當理, 宣祖亦未合在祧毁之限也. 此事不當私議, 然蒙見問, 故謾及之, 不必爲它人言也. 所問葬法, 大槪得之. 但後來講究, 木椁瀝靑似亦無益. 但於穴底先鋪炭屑築之, 厚一寸許, 其上之中卽鋪沙灰, 四傍卽用炭屑, 側厚寸許, 下與先所鋪者相接. 築之旣平, 然後安石椁於其上, 四傍又下三物如前. 椁底及棺四傍上面, 復用沙灰實之. 俟滿, 加蓋, 復布沙灰, 而加炭屑於其上, 然後以上築之, 盈坎而止. 蓋沙灰以隔螻蟻, 愈厚愈佳. 頃嘗見籍溪先生, 嘗見用灰葬者, 後因遷葬, 則見灰已化爲石矣. 炭屑則以隔木根之自外入者, 亦里人改葬者所親見. 故須今嘗在沙灰之外, 四面周密, 都無縫罅, 然後可以爲固. 但法中不許用石椁, 故此不敢用全石, 只以數片合成, 庶幾不戾法意耳.

()..正訛家禮改作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14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14(丁未, 1187), 주자 나이 58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256)

 

물음: 제가 지난 날 선생을 모시고 앉아서, 일찍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에 오전(五典)의 떳떳함을 갖추었는지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는데, 이미 그것을 알고서 행했지만 혹 이르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단지 사사로운 욕심에 어지러워졌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 요점은 욕심을 막는데 있습니다. 선생께서 가르침을 내리시기를 일분(一分)의 사욕이 있으면 곧 일분의 보지 못함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생을 모시고서 길 가는 도중에 망령되이 소견을 아뢰어 무극(無極), 태극(太極), 동정(動靜), 음양(陰陽), 오기(五氣), 오성(五性)과 저 만사(萬事)의 선악(善惡)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대단한 인륜(人倫)은 단지 이와 같다고 말하고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만 바야흐로 모두 다 볼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선생께서 이르시기를, “그대가 말하는 것에 의거하면 또한 단지 이와 같은 것으로, 사색(思索)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는 곧 좇아 나아가려고 해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라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때때로 익히고, 항상 독서하여 늘 눈앞에 있게 하여 오래 되면, 자연히 제가 늘 지니고 있는 지극한 가르침을 보게 될 것이니, 감히 떨어뜨리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편지를 받아 보고 또 가르침을 입게 되어, 사람들을 떠나 쓸쓸하게 홀로 사는 때에 스스로 능히 분발시켜 강학(講學)하여 익히고 체험하는 공()을 팽개치지 않게 해 주었으니, 같은 집에서 자리를 같이하여 아침저녁으로 강마(講磨)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는 편지를 잡고서 세 번 반복하여 읽으니, 감격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저를 낳아 준 분은 아버지이지만, 저를 가르쳐 주신 분은 선생이십니다. 부지런히 힘써 죽은 뒤에라야 그만 두겠습니다. 그리하여 안자(顔子), “꿰뚫으려 하면 더욱 단단하고 우러러 보면 더욱 높구나라는 말을 외우니, 앞뒤로 황홀해지고 한숨지으며 탄식하니, 이미 도의 체가 끝이 없고 또 힘을 쓸 데가 없음을 알아서 장차 그만두려고 해도 이러한 이치가 가운데에 생생하게 나타나니 그만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차례에 따라 잘 인도하시고 다시 노력하는 방법을 보여주시어 (넓은) 지식으로 풍부하게 해 주셨고, (엄숙한) 예로 규제해 주셨습니다. 안자가 이치를 궁구하여 이르고 사사로운 마음을 이겨 예로 돌아가서 이미 자신의 재능을 다하였고, 쉬지 않고 날마다 새로워졌으니 여기에서 실제로 이러한 이치가 우뚝함을 볼 수 있으며, 만약 세운 것이 있다면 밝게 빛나서 속일 수 없으며 또한 힘써 행해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좇아 나아가려고 해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안자와 같은 사람이 참으로 아는 자이겠지요. 넓은 지식으로 픙부하게 해주고 엄숙한 예로 규제해주는 것[博文約禮]은 선생께서 말씀하신 강습(講習)하고 체험(體驗)하는 공부입니다. ‘우뚝하게 서 있는 것또한 어찌 하늘에서 부여받은 본성과 본래 지니고 있는 도덕법칙에서 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안연의 참된 앎이 저와 같으니, 뒷사람들이 미칠 수 없음이 또 이와 같아서 한 마디를 나아가면 한 자를 물러나 언제나 스승의 말을 암송하면서 척연(惕然)히 두려워합니다. 문득 감히 선생의 말씀을 널리 미루어서 다시 가르침을 구하니 상세하게 깨우쳐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德明向者侍坐, 嘗問降衷之性具有五典之彝, 旣已知之而行之, 或有未至, 只是爲私欲所撓耳. 其要在窒欲. 先生賜敎云: ‘一分私欲, 便有一分見不盡().’ 時道中妄陳所見, 以及無極太極動靜陰陽五氣五性與夫萬事善惡之出, 因言. ‘大端人倫, 似只如此不審如何著工夫, 方見得盡?’ 先生云: ‘據說亦只是如此, 無可思索. 此乃 雖欲從之, 末由也已. 只要時習, 常讀書, 今常在目前, 久之自然見得. ’某佩服至訓, 罔敢失墜. 玆者辱書, 又蒙誨以離羣索居之際自能提撕, 不廢講習體驗之功, 則與同堂合席, 朝夕講磨無以異矣. 某執書三復, 不勝感發. 生我者父也, 敎我者夫子也. 俛焉孶孶, 斃而後已. 因念顔子鑽仰堅高, 恍惚前後, 喟然發嘆, 旣知道體之無窮, 又無所用其力, 將欲罷之, 而此理已躍如于中, 有不容已者. 而夫子循循善誘, 復示以用力之方, 博之以文, 約之以禮. 顔子窮格克復, 旣竭吾才, 日新不息, 於是實見此理卓然, 若有所立, 昭昭而不可欺, 且又非力行之所能至, 故曰雖欲從之, 末由也已.’ 顔子, 可謂眞知者哉夫博文約禮, 先生所謂講習體驗之功也. 所立卓爾, 亦豈離降衷之性固有之彝哉. 顔氏之眞知如彼, 後人之不能及又如此, 進寸退尺, 每誦師言, 惕然警懼. 輒敢推廣先生之說, 復以求敎, 詳賜開曉. 幸甚

 

대답: 안자(顔子)의 탄식에 대해서 논한 것은 대충 터득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너무 번잡한 곳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높고 단단하고 앞에 있다가 문득 뒤에 있다고 한 것은, 안자가 처음 만났을 때 본 것입니다. 넓은 지식으로 픙부하게 해주고 엄숙한 예로 규제해주는 것[博文約禮]은 중간에 공력(功力)을 들이는 방법입니다. ‘그만 두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는 말 이후의 것은, 나중에 득력(得力)한 뒤의 효험인 것이니, 󰡔중용󰡕에서 이른바, “한 가지 착함을 얻으면 정성스레 가슴속에 넣어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박문약례(博文約禮) 공부를 중간에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했을 따름인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능히 실질적으로 공력(功力)을 들여 오래 되면, 자연히 이 도리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또 가만히 웅크린 채 쓸데없이 한 가지 사물만 지키면서 고정적으로 배치가 되어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수고롭게 사색하고 그럴 듯하게 이야기할지라도 또한 곧 손 대는 곳마다 사라지고 흩어져 나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융회(融會) 관통(貫通)하여 자기와 하나로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옛날에 이선생(李先生)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어려서는 스승과 벗들을 따라서 들은 바가 있었는데, 중간에 강학하고 익히는 도움이 없어 거의 팽개쳐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늘 영혼의 도움으로 이 도리(道理)가 늘 마음과 눈 사이에 있게 되어, 일찍이 감히 잊은 적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히 그 간직하여 지키는 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는 바가 어찌 정밀(精密)하지 않겠으며, 기르는 바가 어찌 곰삭지 않겠습니까? 요즈음 친구들은 학문한다고 아무렇게나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독서를 한다 해도 그 본문도 능히 기억하지 모하고, 강설(講說)을 한다 해도 훈고(訓詁)에도 통하지 않습니다. 어물어물 구차하게 공부하여 하루쯤 햇빛을 쪼였다가 열흘쯤 찬 기운을 쏘이고, 한 달에 하루 이틀 왔다 갔다 하는 식으로 지내다가 점점 늙어지면, 드디어 아득히 그것을 잊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이을만한 실마리도 없게 되어, 강학(講學)의 이로움은 얻지 못한 채 한갓 폐고(廢錮)되는 화만 불러 오니, 매우 탄식이 나옵니다. 보내오신 편지에서는 대개 이런 것의 대의는 터득했더군요. 그러나 그것을 간직하여 오래도록 가는 것은 완전히 일상생활의 공부에 달려 있습니다. 중간에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마땅히 진실하게 보는 곳이 절로 있을 것입니다.

所論顔子之, 大槪得之, 然亦覺有太煩雜處. 約而言之, 則高堅前後者, 顔子始時之所見也 : 博文約禮者, 中間用力之方也 : 欲罷不能以後者, 後來得力之效驗也. 中庸所謂得一善則拳拳服膺而不矢者, 正謂此博文約禮工夫不可間斷耳. 若能如此實用其力, 久之自然皃得此箇道埋無處不在, 不是塊然徒守一物, 而硬定差排, 作心性也. 若不如此, 政使思索勞苦, 說得相似, 亦恐隨手消散, 不爲吾有, 况欲望其融會貫通而與己爲一耶? 舊見李先生常說少從師友, 幸有所聞, 中間無講習之助, 幾成廢墮. 然賴天之靈, 此箇道理時常只在心目間, 末嘗敢忘. 此可見其持守之功矣. 然則所見安得而不精, 所養安得而不熟邪? 近時朋友漫說爲學, 然讀書尙不能記得本文, 講說尙不能通得訓詁, 因循苟且, 一暴十寒, 日往月來, 漸次老大, 則遂漠然忘之, 更無頭緖可以接續. 至有不獲講學之利而徒取廢錮之禍者, 甚可嘆也. 來喩蓋己得此大意, 然持之以久, 全在日用工夫, 勿今間斷, 久當自有眞實見處也.

 

물음: “조정에 반열하고 군대를 다스리며, 벼슬에 나아가고 법을 집행하는 일도 예가 아니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 기도하고 제사지내는 일도 예가 아니면 정성스럽지도 단정하지도 못하다.” 선생께서는 옛 사람들은 정성과 단정함을 위엄과 짝지우고, 대개 정치를 하는데 엄격함을 근본으로 삼았으며, 너그러움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것을 구제하였다고 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그 말씀을 들었는데 오히려 깊이 살피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몽()괘 초육(初六)몽매함을 개발하되 사람에게 형벌을 써서 질곡을 벗겨주는 것이 이롭다.고 하였는데, 정씨의 전에 “(예로부터 성왕이 정치를 할 때에는) 형벌을 만들어서 백성들을 통일시키고, 교화를 밝혀 선하게 하여, 형벌이 세워진 뒤에 교화가 행해졌으니 몽매함을 다스리는 일은 만약 형벌로써 위엄을 보여 어둡게 가리어진 질곡을 벗기지 않는다면, 선한 가르침이 들어갈 방법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반복(反覆)하여 깊이 생각해 보니, 만일 위엄 있는 말이 세워지지 않으면 참으로 정치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인데,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듭니다. 공자는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하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런 사람을 알아주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조용히 생각해보건대,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러움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인데, 너그러우면 대중(의 지지)을 얻고, 엄격함으로 너그러움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구제할 뿐입니다. 만일 한결같은 생각으로 위엄에 맡긴다면, 이것은 몽괘의 초육(初六)의 효사(爻辭)형벌만으로 해나가면 인색하리라라고 한 것이니, 그 폐단이 장차 법령을 소털처럼 여기는 데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듣건대, 사덕의 원()은 오상(五常)의 인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은 선의 으뜸이며, 인은 의()()() 세 가지를 포괄하므로, 인으로 먼저하고 의로 마름질하는 것입니다. 삼대(三代)는 인으로 천하를 얻어서 애처로워하고 슬퍼하는 사랑과 충서(忠恕)와 이익의 가르침이 있지 않음이 없어서, 형벌을 면하지 못한 사람들도 또한 인을 좋아하고 불인(不仁)을 미워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주와 현을 맡은 사람이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생각하지 않고, 형벌에도 형평성을 잃고, 세금을 거두는데 정해진 법이 없으며, 곤장으로[채찍과 회초리로] 때려 피를 흘리게 하니, 진실로 윗자리를 차지한 관리의 책임에서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너그러운 사람도 또한 모든 것이 무너져 없어져 설수 없게 되니, 자리만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진실로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선왕이 정치를 하는 근본은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먼저하고 뒤에 하는 차이에 따라 베푸는 것이니 감히 상세하게 강구(講究)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르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班朝治軍蒞官行法, 非禮威嚴不行 ; 禱祠祭祀, 非禮不誠不莊.’ 先生謂古人以誠莊對威嚴, 蓋爲政以嚴爲本, 寬以濟嚴之太過也. 某向聞其語, 猶末深訂. 近讀卦初六曰: ‘發蒙利用刑人, 用脫桎梏.’ 程氏傳: ‘聖王設刑罰以齊其衆, 明敎化以善其俗, 刑罰立而後敎化行. 治蒙之功, 若非威之以刑, 使之脫去昏蒙之桎梏, 則善敎無由而人.’ 某反覆深思, 若威信不立, 誠不足以立政, 然猶有疑焉. 孔子: ‘居上不寬, 吾何以觀之哉?’ 竊謂居上以寬爲本, 寬則得衆, 嚴以濟寬之不及耳. 若一意任威, 是蒙爻所謂 以往吝, 其弊將有至於法令如牛毛者. 抑又聞之: 四德之元, 猶五常之仁. 故元爲善之長, 仁包義智三者, 先之以仁, 裁之以義. 三代得天下以仁, 莫不有慘怛之愛, 忠利之敎, 所以不免於刑者, 亦好仁惡不仁耳. 今之爲州縣者, 不念民生之艱, 刑罰失平, 征取無藝, 箠楚流血, 苟以逃上官之責; 而過於寬者, 又一切廢弛不立, 所在有之. 此固不足道, 然先王爲政之本, 寬嚴先後之異施者, 不敢不詳講. 伏乞賜誨

 

대답: 정치를 하는 데 있어 너그러움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은 그 대체적인 규모(規模)와 생각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치를 자세하고 면밀하게 살피고, 몸을 가지런하고 엄숙하게 유지하여 게으르고 장난치며 노는 때가 없었으므로 그들의 정치는 의도적으로 위엄을 만들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엄격했습니다. 다만 그들의 뜻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근본으로 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정사(政事)를 베푸는 데 있어서, 모름지기 기강과 문장 관방 금약이 있어서 결코 범할 수 없습니다. 그런 뒤에 저의 이른바 너그러운 사람은 일에 따라 사람을 대할 수 있어서 무너지고 넘어져서 들지 못할 곳이 없고, 사람들이 나에게 혜택을 입은 것도 또한 통달명백할 수 있어서 실제로 내려 준 것을 받아서 간격사폐의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성인은 정치는 너그러움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제 도리어 정치를 엄격하게 하려고 하니 마치 옛날의 음악은 조화를 위주로 하는데 주자(周子)는 도리어 정치를 담박하게 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대개 오늘날의 너그럽다고 하는 것은 제멋대로 방자한 것이며, ()라는 것은 비속하고 음란한 것이니, 옛날의 이른바 너그러움[]과 조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엄격함과 담박함]으로 바로잡아 그 평평함을 얻었을 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비록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일에 큰 줄기가 없다면, (일을) 늦추고 빨리하고, 먼저 하고 뒤에 하며, 가부(可否)를 결정하고 주거나 빼앗는 권리가 모두 나에게 있으니, 이에 간사한 호족(豪族)들이 뜻을 얻어 선량한 백성들은 도리어 그 혜택을 입지 못합니다. 이러한 일이 이로운가 해로운가 하는 것은 눈앞에 있을 뿐이니 반드시 전기(傳記)를 인용하거나 옛날과 지금을 상고한 뒤에 아는 것은 아닙니다.(늦추거나 빨리하는 것, 가부를 결정하는 것은 두 가지 일이니, 정해진 기한이 없다면 늦추거나 빨리하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을) 친히 임하여 하지 않으면 가부를 결정하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송사를 벌이고 있는 사람이 관아에 도착한 것을 보았는데, 일상적인 고통을 드러내 놓고 하소연하지 않고 모름지기 안리(案吏)에게 의논한 뒤에야 드러내놓고 하소연할 수 있으니, 곧 정사가 없음을 알 수 있어서 가부(可否)가 마땅함을 잃기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그 잘못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현과 도에서는 두 통의 조세장부를 상주(上州)에 보내서 살피게 하는데, 모두 기한이 있으니 틀리거나 빠진 것이 있으면 바로잡고, 틀리거나 빠진 것이 없으면 서명 날인하여 돌려보냅니다. 지금은 수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어도 수쉬(守倅)는 멋대로 살펴보려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부류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너그럽다고 한다면, 공자께서 생각하신 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치를 하는 데는 반드시 척도가 있어 간사한 백성과 교활한 관리가 사사로움을 행할 수 없도록 한 뒤에야 형벌이 덜어지고 세금을 거두는 것이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이른바 너그러움을 근본으로 삼아 인을 체득하고 사람을 어른처럼 모시면[體仁長人] 무엇이 이것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

爲政以寬爲本者, 謂其大體規模意思當如此耳. 古人察理精密, 持身整肅, 無偷惰戱豫之時, 故其政不待作威而自嚴. 但其意則以愛人爲本耳. 及其施之於政事, 便須有綱紀文章關防禁約, 截然而不可犯. 然後吾之所謂寬者得以隨事及人, 而無頹弊不擧之處, 人之蒙惠於我者亦得以通達明白, 實受其賜, 而無間隔欺蔽之患. 聖人說政以寬爲本, 而今反欲其嚴, 正如古樂以和爲主, 周子反欲其淡. 蓋今之所謂寬者, 乃縱弛, 所謂和者, 乃哇淫, 非古之所謂寬與和者. 故必以是矯之, 乃得其平耳. 如其不然, 則雖有愛人之心, 而事無統紀, 緩急先後可否與奪之權皆不在己, 於是姦豪得志而善良之民反不被其澤矣. 此事利害只在目前, 不必引書傳考古今然後知也. 緩急可否是兩事, 無程限則緩急不在己, 不親臨則可否不在己.(今見爭訟人到官常苦不得呈覆, 須當計會案吏, 然後得之, 便可見其無政事, 不待可否失當, 然後知其繆矣. 又如縣道送兩稅簿上州磨審, 皆有日限, 有違失則糾正之, 無卽簽押用印給還. 今有數月不還者, 守倅漫不加省. 如此之類, 不可勝數. 以此爲寬, 不知孔子意裏道如何也.) 但爲政必有規矩, 使姦民猾吏不得行其私, 然後刑罰可省, 賦歛可薄. 所謂以寬爲本, 體仁長人, 孰有大於此者乎

 

물음: 황하에서 도()가 나오고 낙수에서 서()가 나와 8괘와 9주의 수를 일으켰으며, 봉황이 우는 소리를 듣고 육율(六律) 육여(六呂)의 소리가 생겨났습니다. 생각건대 황제가 율()을 만든 한 가지 일은 복희가 괘를 그리고 대우(大禹)9주를 내려준 것과 공이 같습니다. 하물며 도량(度量) 권형(權衡)은 모두 율에서 일어나는데 형운(衡運)이 규를 낳고 규가 원을 낳고 원이 구를 낳고 먹줄과 같이 곧고 수준기(水準器)와 같이 평평하여 사시가 정해지고 육악(六樂)이 일어나기에 이른 것도 모두 이로 말미암아 나옵니다. 그러므로 율이 모든 일의 근본이라고 하는 것인데, 학자들이 어찌 이것을 없애고 강구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무릇 황종(黃鐘)의 관은 9치인데 (그 길이의) 3분의 1을 덜어내어 아래로 임종이 생겨나고, 임종(林鐘)의 관은 여섯 치인데 3분의 1을 더하여, 위로 태주(太簇)가 생겨납니다. 십이율을 두루 돌아 다시 황종이 생겨나고돌아서 서로 궁이 됩니다. 또 한 궁은 각각 오성을 낳으며, 십이율을 거느려 모두 60성을 낳습니다. 팔괘를 거듭하여 64괘가 되는 것과 같으니 모두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사마천의 율수가 반고의 지와 같지 않은 것은 많이 깨닫지 못했으나 그 실상을 살펴보면 다른 것이 없는데, 다만 사마천의 󰡔역서󰡕는 은미하여 이러한 것들은 더욱 사색을 해야 합니다. 예컨대 황종의 길이는 87푼인데 혹은 ()’자는 잘못이라고 하니, 대개 10푼이며, 이것은 9치가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십이율은 돌아서 서로 궁()이 되는데, 이제 예운편의 소()의 뜻을 살펴보면, 황종은 제1궁이 되어 아래로 임종을 낳아 치()가 되며, 위로 태주를 낳아 상()이 됩니다. 아래로 남려를 낳아 우()가 되며, 위로 고선을 낳아 각()이 됩니다. 임종은 제2궁이 되며, 마지막으로 중려가 제12궁이 되어 각각 상생(上生)과 하생(下生)이 소관(所管)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수는 대개 사마천의 󰡔역서󰡕에 근본을 두고 있지만, 황종이 궁이 되고, 태주가 상이 되고, 고선이 우가 되고, 임종이 치가 되고, 남려가 우가 되고, 응종이 변궁(變宮)이 되고, 유빈이 변치(變徵)가 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그 다음은 대려태주이며, 마지막으로 무역응종에 이르러 모두 십이율인데, (이것들이) 서로 갈마들어 궁이 되며, 그 아래에 각각 상변궁변치의 소리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서당에서 칠현금을 이러한 법을 적용하여 맑고 흐리고, 높고 낮은 소리를 정하는 것을 보았는데, 다만 소()의 뜻이 각각 하나의 설이 되는지 알 수 없으니,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것은 반드시 각각 주관하는 것이 있습니다. 변궁과 변치는 그 소리가 맑습니까? 모르겠습니다만, 고율(古律)이 이미 사용되지 않았다면 혹시 뒤에 와서 증가한 것입니까? 율관을 (갈대의 재로) 메워 절기의 변화를 점을 쳐 증험하는 한 가지 일에 이르러서는 더욱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기에 실려 있는 후기(候氣)의 법은 십이율을 밀실에 두고, 갈대의 재를 관()에 채워 땅 속에 묻고, 일기(一氣)가 이르면 하나의 율관에서 재가 날아오릅니다. 혹 의심스러운 것은 여러 율을 둔 곳이 바야흐로 몇 자를 넘지 못하면, 기가 이르더라도 오직 본래의 율[本律]만이 응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조화가 밀접하게 서로 감동하여 부르는 이치가 있습니다. 혹은 󰡔수지(隋志)󰡕의 설을 살펴보면, “율관의 길고 짧음은 같지 않으나, 각각 그 위를 가지런하게 하면 깊고 얕음에 따라 땅 속으로 들어간다. 동지에는 양기가 지면과의 거리가 9치에 그치므로 오직 황종의 율관이 9치이므로 도달한다.”고 하였는데 이 설은 이치에 맞는 듯 합니다. 이제 그 설에 근거하여 미루어 살펴보면, 11월은 (율관의) 황종에 해당하는데 관의 길이가 9치이다. 12월은 대려에 해당하는데 관의 길이가 84푼입니다. 정월(正月)은 태주에 해당하는데 관의 길이가 8치입니다. 2월은 협종에 해당하는데, 관의 길이가 7치입니다. (이로) 미루어서 내려가면, 관의 길이가 차례로 감소하여, 9월에 이르면 무역에 해당하는데 관의 길이가 5치이며, 시월은 응종에 해당하는데 관의 길이가 45푼입니다. 비록 율관을 매운 땅이 몇 자를 넘지 못할지라도 기는 도달하지 못할 곳이 없으나, 후관(候管: 절기의 변화를 나타내는 율관)은 길고 짧음이 다르므로, 율관이 긴 것은 기가 반드시 먼저 도달하고, (갈대의) 재도 먼저 움직입니다. 율관이 짧은 것은 기가 뒤에 도달하니, 이른바 남쪽으로 뻗은 가지는 봄이 먼저 이르고, 북쪽으로 뻗은 가지는 더디게 이를 뿐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까?

, 而起八卦九疇之數, 聽鳴鳳而生六律六呂之聲. 因思黃帝造律一事, 伏義晝卦大禹錫疇同功. 况度量權衡皆起於律, 而衡運生規, 規生圓, 圓生矩, 繩直凖平, 至於定四時興六樂, 悉由是出, 故曰律者萬事之根本, 學者詎可廢而不講哉夫黃鍾之管九寸, 三分損一, 下生林鍾. 林鐘之管六寸, 三分益一, 上生太蔟. 周旋十二律, 復生黃鐘而還相爲宮之義. 又一宮各生五聲, 總十二律, 凡生六十聲(). 如八卦重而爲六十四, 皆自然之理也. 司馬遷律數與班固不同者多未曉, 考其實亦無不同, 司馬曆書微隱, 此等尤費思索耳. 如黃鐘長八寸七分, 或謂字是誤, 蓋十分也, 是爲九寸. 此等不審然否? 十二律還相 爲宮, 今考禮運疏義, 黃鐘爲第一宮, 下生林鐘, 爲徵. 上生太蔟, 爲商. 下生南呂, 爲羽. 上生姑洗, 爲角. 林鐘爲第二宮, 終於中呂, 爲第十二宮, 各有上生下生所管之聲. 此數蓋本於司馬遷曆書, 然與黃鐘爲宮太蔟爲商姑洗爲羽林鐘爲微南呂爲羽應鐘爲變宮蕤賓爲變徵者不同. 其次大呂太蔟, 終於無射應鐘, 凡十二律, 迭相爲宮, 其下各有商變自變徵之聲. 向見書堂七絃琴準用此法以定淸濁高下之聲, 但不知疏義各爲一說, 孰是孰否? 其必各有所主也. 變宮變徵, 其聲淸耶? 不知古律已用之杏? 或後來增加之也. 至於埋律候氣一事, 尤所未曉. 書傳所載候氣之法, 置十二律於密室, 實葭灰管埋之地中, 一氣至則一律飛灰. 或疑所置諸律方不踰數尺, 氣至, 獨本律應之, 何也? 此必有造化密相感召之理. 或又按隋志之說曰 : ‘律之長短不同, 各齊其上, 隨深淺入地中. 冬至陽氣距地面九寸而止, 惟黃鐘之管九寸, 故達. ’此說似爲有理. 今因其說而推之. 十一月亅黃鐘, 管長九寸. 十二月, 大呂, 八寸四分. 正月, 太蔟, 管長八寸. 二月, 夾鐘, 長七寸. 推而下之, 其長者遞減. 至九月, 無射, 五寸. 十月, 應鐘, 四寸五分. 雖埋律之地方不踰數尺, 氣至無有不達, 然候管長短不同, 管長者氣必先達, 灰亦先動 : 管短者氣達在後. 亦如所謂南枝春先到, 北枝差遲耳. 不審然否?

 

대답: 율려(律呂)에 관한 설은 이제 채서산(蔡西山)이 지은 󰡔율려신서(律呂新書)󰡕율려증변(律呂證辨)각각 한 책이 있는데, 지난번에 지은 서문 한편을 아울러 가져갔으니, 자세히 살펴보면 마땅히 그 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십이율은 각각 본래의 율을 궁으로 하여 네 개의 율을 낳습니다. 예컨대 황종이 궁이라면 태주는 상, 고선은 우, 임종은 치, 남려는 각이 되는데, 이것이 황종의 한결같이 고른 소리[一均之聲]입니다. 만약 임종이 궁이 되면 남려는 상, 응종은 각, 태주는 치, 고선은 우가 되는데, 이것이 임종의 한결같이 고른 소리입니다. 각각 그 율의 궁에 나아가서 사성을 일으킨 뒤에 60율의 소리가 갖추어집니다. 황종을 궁, 태주를 상, 고선을 우, 임종을 치, 남려를 각이라고 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황()()()()()()()()()()()()은 십이율의 길고 짧음의 차례이며 궁우는 오성의 길고 짧음의 차례입니다. 황종의 한결같이 고른 것은 위로 생겨나고 아래로 생겨나는 율의 길고 짧음이 모두 (차례에) 따랐으므로 각각 전율(全律)의 바른 소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십이율의 이름은 지금은 속악에서도 또한 사용합니다. (속악에서는) 글자와 이름을 합한 것이 곧 황종인데, 다만 그 율의 차이가 (고율(古律)보다) 높을 뿐입니다. 심존중(沈存中: 심괄(沈括))󰡔필담(筆談)󰡕에 이에 대해 말한 것이 대단히 상세하니, 속세의 악공[俗工]을 불러 물어봐도 될 것입니다.

律呂之說, 今有新書辨證各一冊, 及向時所撰序一篇幷往, 可細考之, 當得其說. 凡十二律, 各以本律爲宮而生四律. 如黃鐘爲宮, 則太蔟爲商, 姑洗爲羽, 林鐘爲徵, 南呂爲角. 是黃鐘一均之聲也. 若林鐘爲宮, 則南呂爲商, 應鐘爲角, 太蔟爲徵, 姑洗爲羽. 是林鐘一均之聲也. 各就其宮以起四聲, 而後六十律之聲備. 非以黃鐘定爲宮, 太蔟定爲商, 姑洗定爲羽, 林鐘定爲徵, 南呂定爲角也. 但黃應爲十二律長短之次, 羽爲五聲長短之次. 黃鐘一均, 上生下生長短皆順, 故得各用其全律之正聲. 十二律名, 今俗樂亦用之. 合字卽是黃鐘, 但其律差高耳. 筆談言之甚詳, 可呼俗工問之.

 

 

임종의 궁으로부터 태주의 치()를 낳았다면, 임종은 6치이고 태주는 8치여서 치()가 도리어 궁보다 길어 소리가 그 순서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십이율에 근거하여 말하면 비록 마땅히 임종이 위로 태주를 낳았다 하더라도 오성으로 말하면 마땅히 궁이 되어 아래로 치를 낳게 되며, 태주의 반율(半律: 子聲) 4치의 관을 얻어 그 소리가 바야흐로 (차례를) 따르게 됩니다. 또 태주 반율 4치의 치[]로부터 남려 5치를 낳아 기수(奇數)의 상성(商聲)이 있게 되면 율()에 있어서는 비록 본래 하생(下生)이나, ()에 있어서는 도리어 상생(上生)이 됩니다. 남려 5치 기수의 상성으로부터 고선 7치를 낳아 기수의 우성(羽聲)이 있게 되면 율에 있어서는 비록 상생이나, ()에 있어서는 또 마땅히 그 절반을 사용하여 하생이 됩니다. 고선 반율 3치의 기수의 우성으로부터 응종 4치를 낳아 기수의 각성(角聲)이 있게 되면 율에 있어서는 비록 하생이 되지만, 성에 있어서는 도리어 상생이 됩니다. 그 나머지 십율도 모두 그러합니다. 공영달(孔穎達)예운편의 소()에서도 대체로 이러한 법을 알았으나, 다만 말한 것이 상세하지 않을 뿐입니다.(반율(半律)은 두우의 󰡔통전(通典)󰡕에서 자성(子聲)이 이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옛날의 법인데, 다만 뒤의 사람들이 잃어서 황종대려태주협종 4율과 네 가지 맑은 소리만 존재하니 이것이 반성(半聲)입니다. 변궁변치는 󰡔국어󰡕주 가운데 및 후한의 󰡔악지󰡕에서 비로소 발견되는데, 십이율의 본래의 성은 궁으로부터 아래로는 육변(六變)칠변(七變)하여 얻은 것이니 맑은 소리가 아닙니다. 예컨대 황종이 궁이 되면 육변(六變)하여 응종을 얻어 변궁(變宮)이 되며, 칠변(七變)하여 유빈을 얻어 변치(變祉)가 됩니다. 예컨대 임종이 궁이 되면 육변(六變)하여 유빈을 얻어 변궁이 되며, 칠변(七變)하여 대려를 얻어 변치가 된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무릇 십이율은 모두 이변(二變)이 있으며, 한 율의 안에서 앞의 오성(五聲) 통틀어 합하여 칠균(七均)이 됩니다. 조효손(祖孝孫)왕박(王朴)의 음악도 모두 같아서 84조가 있게 되는 것이니, 매 율은 각각 이 이성(二聲)을 더하여 얻은 것입니다. 󰡔율려신서(律呂新書󰡕)에서 이 설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自林鐘之宮而生太蔟之祉, 則林鐘六寸而太蔟八寸, 祉反長於宮而聲失其序矣. 故以十二律而言, 雖當爲林鐘上生太蔟, 而以五聲而言, 則當爲宮下生祉, 而得太蔟半律四寸之管, 其聲方順. 又自太蔟半律四寸之祉而生南呂五寸有奇之商, 則於律雖本爲下生, 而於聲反爲上生矣. 自南呂五寸有奇之商而生姑洗七寸有奇之羽, 則於律雖本爲上生, 而於聲則又當用其半而爲下生矣. 自姑洗半律三寸有奇之羽而生應鐘四寸有奇之角, 則於律雖爲下生, 而於聲反爲上生矣. 其餘十律皆然. 疏蓋知此法, 但言之不詳耳.(半律, 杜佑通典謂之子聲者是也) 此是古法, 但後人失之, 而唯存黃鐘大呂太蔟夾鐘四律, 有四淸聲, 卽此半聲是也. 變宮變祉始見於國語注中及後漢樂志, 乃十二律之本聲, 自宮而下, 六變七變而得之者, 非淸聲也. 如黃鐘爲宮, 則第六變得應鐘, 爲變宮, 第七變得蕤賓, 爲變祉 : 如林鐘爲宮, 則第六變得蕤賓, 爲變宮, 第七變得大呂, 爲變祉是也. 凡十二律, 皆有二變, 一律之內, 通前五聲合爲七均. 祖李孫王朴之樂皆同. 所以有八十四調者, 蓋每律各添此二聲而得之也. 新書此說甚詳.

후기(候氣)의 설은 그 가운데서 이미 논하였습니다. 대개 (갈대의 재로) ()을 메우는 것은 서로 비스소하지만, 그 관의 길고 짧음과 들어가는 땅의 깊고 얕음이 같지 않기 때문에 기가 응하는데도 선후(先後)가 있으며, 방위로써 앞과 뒤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그림을 그려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외우고 인하여 손가락과 손바닥 사이에서 윤지(輪之)하여 오래토록 저절로 익숙해지면 그 묘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또 증험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일들이 모두 그러한 것이지, 따로 기발한 기교는 없으니, 다만 오랫동안 익숙하도록 익히면 곧 신기하고 미묘한 곳입니다.(󰡔예서󰡕에 이 한권이 있는데, 󰡔율려신서󰡕와 비교하여 다소 축약(縮約)되어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다른 곳에 있으니, 취하기를 기다렸다가 가져가서 보십시오.)

候氣之說, 其中亦已論之. 蓋埋管雖相近, 而其管之長短入地深淺有不同, 故氣之應有先後耳, 非以方位而爲先後也. 但畫一圖, 朝夕看誦, 仍於指掌間輪之, 久久自熟, 乃見其妙. 此又可驗凡事皆然, 別無奇巧, 只是久而習熟, 便是妙處也.(禮書有此一卷, 新書差約. 偶在他處, 俟取到寄去看也.)

 

물음: 하늘에는 황도와 적도 두 길이 있는데 심존중(沈存中)이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으며, 특히 역가(曆家)에는 색깔을 넣어서 해와 달의 운행을 기록하였을 뿐입니다. 무릇 해가 경유(經由)하는 곳을 황도라고 합니다. 사가들은 또 달에는 구행(九行)이 있다고 합니다. 흑도(黑道)는 둘이 있는데 황도(黃道)의 북쪽에서 나옵니다. 적도(赤道)는 둘이 있는데 황도의 남쪽에서 나옵니다. 백도(白道)는 둘이 있는데 황도의 서쪽에서 나옵니다. 청도(靑道)는 둘이 있는데 황도의 동쪽에서 나옵니다. 황도와 아울러서 9가 됩니다. 이와 같이 보면 해와 달의 운행은 그 길이 각기 다릅니다. 하물며 양기(陽氣)가 일마다 운용되면 해가 나아가서 북쪽에 이르고, 낮이 나아가서 길어지며, 음기(陰氣)가 일마다 운용되면 해가 물러나 남쪽에 이르고, 낮이 물러나 짧아집니다. 달이 운행하면 봄에는 동쪽으로 청도를 따라가며, 여름에는 남쪽으로 적도를 따라가며, 가을에는 서쪽으로 백도를 따라가며, 겨울에는 북쪽으로 흑도를 따라갑니다. 해와 달의 운행이 이와 같이 그 길이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 달에 합삭(合朔)하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같은 (척도로) 헤아릴 수 있을까요? 소회지진(所會之眞)에 모여서 또한 혹은 식()이 있고 혹은 식이 없다는 것은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에 지적하여 깨우쳐주신 점은 편지를 통해 받아보았습니다만 그 운행이 혹은 높아서 황도의 위에서 나오고 혹은 낮아서 황도의 아래에서 나와서 혹은 서로 가까워서 다가서고, 혹은 차이가 멀어서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면 모두 식()이 아닙니다. 지금은 반복(反覆)할 수 없사오니, 이제 가르침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天有黃赤二道, 沈存中云非夫實有之, 特曆家設色以記日月之行耳. 夫日之所由, 謂之黃道. 史家又謂月有九行: 黑道二, 出黃道北 : 赤道二, 出黃道南 : 白道二, 出黃道西 : 靑道二, 出黃道東; 幷黃道而九. 如此卽日月之行, 其道各異. 况陽用事則日進而北, 晝進而長 : 陰用事則日退而南, 晝退而短. 月行則春東, 從靑道 : 夏南, 從赤道 : 秋西, 從白道 : 冬北, 從黑道. 日月之行, 其不同道又如此. 然每月合朔, 不知何以同度? 而會於所會之辰, 又有或蝕或不蝕, 悉未能曉. 向承指喩其行或高而出黃道之上, 或低而出黃道之下, 或相近而偪, 或差遠而不相値, 則皆不蝕. 是時不能反覆, 今望賜誨.

 

대답: 해와 달이 운행하는 길에 관한 말씀은 인용한 것이 타당합니다. 해의 남쪽과 북쪽은 비록 같지 않지만, 모두 황도를 따라 운행할 뿐입니다. 달이 운행하는 길은 비록 같지 않지만, 또한 항상 황도를 따라 그 곁으로 나갈 뿐입니다. 그것이 합삭(合朔)할 때는 해와 달이 똑같이 하나의 도()에 있습니다. 그것[해와 달이 운행하는 길]이 보름이 되면 해와 달이 지극히 멀어져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상현과 하현이 되면, 해와 달이 가까워져서 하나가 되고 멀어져서 셋이 됩니다.(예컨대 해가 오()에 있으며 달은 혹 묘()에 혹은 유()에 있는 부류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합삭할 때에 해와 달의 동쪽과 서쪽은 비록 같지만 하나의 도()에 있으며, 달이 가는 길의 남쪽과 북쪽은 혹 어긋나서 멀어지며, 해에는 일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혹시 남쪽과 북쪽이 비록 서로 가깝지만 해는 안에 있고 달은 바깥에 있다면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한 사람은 촛불를 잡고, 한 사람은 부채를 쥐고, 서로 교차하며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은 안에서 그것을 보고 그 두 사람이 서로의 거리가 어긋나서 멀어지면 비록 부채는 안에 있고 촛불은 밖에 있다 하더라도 부채는 촛불을 가릴 수 없습니다. 혹시 촛불을 잡은 사람이 안에 있고, 부채를 쥔 사람이 밖에 있다면 비록 가까워지는 하지만 부채도 또한 촛불을 가릴 수 없습니다. 이로써 헤아려 보면 대체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설은 󰡔시경󰡕 시월지교(十月之交)’편에 있습니다. 공영달의 소에 말한 것이 대단히 자세합니다. 이우중이 인용한 것도 또한 넓으니, 아울러서 검토하여 보시면 마땅히 그 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日月道之說, 所引皆是. 日之南北雖不同, 然皆隨黃道而行耳. 月道雖不同, 然亦常隨黃道而出其旁耳. 其合朔時, 日月同在一度 : 其望日, 則日月極遠而相對 : 其上下弦, 則日月近一而遠三. 如日在午, 則月或在卯, 或在酉之類是也. 故合朔之時, 日月之東西雖同在一度, 而月道之南北或差遠, 於日則不蝕. 或南北雖亦相近, 而日在內, 月在外, 則不蝕. 此正如一人秉燭, 一人執扇, 相交而過. 一人自內觀之, 其兩人相去差遠, 則雖扇在內, 燭在外, 而扇不能掩燭. 或秉燭者在內, 而執扇在外, 則雖近而扇亦不能掩燭. 以此推之, 大略可見. 此說在詩十月之交, 疏說得甚詳. 李迂仲引證亦博, 可幷檢看, 當得其說.

 

물음: 󰡔역학계몽󰡕[소옹이] 이르기를 둥근 것은 하도의 수이고 네모난 것은 낙서의 무늬이다.”라고 하였으니 대저 하도는 네 모서리의 자리가 없고, 절연(截然)히 네 모서리가 바르고 네모진데 둥글다고 한 것은 무엇때문인가? [소옹이] 또 말하기를 둥근 것은 별이다. 역기의 수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주에서 말했다. “역법은 하늘의 수가 시작하는 1과 땅의 수가 시작하는 2를 합하여 강과 유를 결정하고 하늘의 가운데 수 5와 땅의 가운데 수 6으로써 율력을 정하며, 하늘의 수가 끝나는 9와 땅의 수가 끝나는 10으로써 윤달을 잡았다.” 이제 반고의 󰡔예문지󰡕를 살펴보니 하늘의 수는 1에서 시작하고 가운데 수는 3이며, 25에서 끝난다. 땅의 수는 2에서 시작하고 가운데 수는 6이며, 30에서 끝난다. 무릇 시작중간마지막은 대개 이와 같으니, 강유율력윤달을 미루어 보면 도리어 깊이 밝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易啓蒙: ‘圓者河圖之數, 方者洛書之文. ’河圖無四隅之位, 截然四正而方, 謂之圓, 何也? 又曰: ‘圓者, 星也, 曆紀之數, 其肇於此乎. ’’ 注云: ‘曆法合二始以定剛柔, 二中以定律曆, 二終以紀閠餘.’ 今考班固, 天數始於一, 中於三, 終於二十五 : 地數始於二, 中於六, 終於三十. 夫始終蓋如此, 推之於剛柔律曆閠餘, 却有末深瑩者. 抑亦履端於始, 擧正於中, 歸餘於終之義乎? 然亦不合. 願求其說.

 

대답: 하도가 이미 네 모퉁이가 없다면 낙서와 비교하여 본래 둥급니다. 주 가운데 세 구절은 󰡔당서󰡕 「역지(曆志)의 일행(一行) 설에 근본한 것입니다. 두 가지 시작하는 수는 12입니다. 1은 기수이기 때문에 강건하고 2는 우수이기 때문에 유순합니다. 두 가지 가운데가 되는 수는 56입니다. 5라는 것은 10일이고, 6이라는 것은 12진입니다. 두 가지가 끝나는 수는 109입니다. 윤달을 잡는 법은 19세를 1()으로 삼기 때문에 그 말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1장의 수는 끌어다 붙인 듯 하니, 당시에는 우선 그 말을 빌려서 10이라는 수를 밝혀 하도로 삼았습니다.

河圖旣無四隅, 則比之洛書固爲圓矣. 注中三句, 唐書曆志一行之說. 二始者, 二也. 一奇, 故爲剛 : 二耦, 故爲柔. 二中者, 六也. 五者, 十日 : 六者, 十二辰也. 二終者, 十與九也. 閠餘之法, 以十九歲爲一章, 故其言如此. 然一章之數似亦附會, 當時姑借其說以明十數之爲河圖.

 

물음: “영무자는 나라가 질서가 잡힐 때는 지혜로웠고 나라가 질서가 잡히지 않을 때는 어리석었다. 그의 지혜에는 미칠 수 있지만 그의 어리석음에는 미칠 수 없다.” 이 장의 첫 구절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논어집주󰡕을 읽고 󰡔춘추좌씨전󰡕을 참고하여, 영무자가 위나라 성공이 무도(無道)하여 나라를 잃었을 때를 당해 그 사이를 주선하고 마음과 힘을 다하였으며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공이 경사(의 깊은 골방)에 가두어졌을 때, 영무자는 (성공을) 구하기 위하여 옷가지와 죽을 담당하였으며, (의사 연에게) 뇌물을 주어 짐독(酖毒)을 묽게 타게 하여서 성공을 죽음에서 구하고 결국은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원훤과의 재판에서 영무자는 홀로 충심으로 인하여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자신의 몸을 지키면서 그의 군주를 구제하였으니, 지혜롭다 해도 좋을 것입니다. 공자께서 일찍이 그의 어리석음에는 미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공자께서는 군자답구나!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을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 들여 감출 수가 있구나.”라고 하여 거백옥의 일로써 영무자를 꾸짖어서 비록 어리석어서 때를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무자는 정성스럽게 군주에게 충성을 했으며, 험하고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으니, 또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그의 어리석음에는 미칠 수 없다.”하였으니, 대체로 그를 가엾게 여긴 것입니다. 이제 󰡔논어󰡕 한권을 읽고, 도가 있고 도가 없는 세상에 언제나 뜻을 두었습니다. 공자께서는 남용을 일컬어 나라가 평화스러울 때에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며, 나라가 어지러울 때도 형벌을 면할 만한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영무자가 죽음을 면한 것도 또한 행운입니다. 그러나 영무자가 위나라에서 두 대에 걸쳐 벼슬하였고 그의 군주가 신임하였으며, 의로움을 포기하여 버리지 않았으니, 그는 동한의 왕윤에 가깝습니다. 왕윤 또한 피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찍이 선생께서 주자(周子)의 말을 암송하면서 안자의 학문을 배우고, 이윤의 뜻에 뜻을 두라하였으니, 이윤은 천하로써 자기의 임무를 삼은 사람이서, (천하가)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성탕(成湯)으로 하여금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빙폐(聘幣: 사람을 초빙할 때 준비하는 예물)가 이르지 않았으니(초빙을 받지 못했으니), 비록 다섯 번 걸에게 나아갔다 하더라도 그 뜻이 어떻게 베풀어졌겠습니까? 진번은 한 대의 호걸인데, 험난한 도중에도 밀치고 나아가 부패한 형인(刑人)들과 같은 조정에서 우열을 다투었으며, 여러 차례 물러났으나 떠나지는 않은 사람이었으니, 인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하여 인륜으로 서로 불쌍히 여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모략하는 상소로 인해 죽임을 당했으니, 공자의 형벌을 면하는 타이름에는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진번과 왕윤은 오히려 당시의 조정에서 신임을 받았고 몸소 중신의 지위[鼎軸]에 있었기 때문에 의리상 마땅히 나라와 존망(存亡)을 함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자는 마땅하지 않게 어리석은 자가 있었으니, 비간이 이런 사람이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말에 책임을 지지 않고 관리로서 직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동해의 봉맹이 선한(先漢)의 난을 당하여 삼강이 이미 끊어짐을 결내고, 동쪽 성문에 관을 벗어 걸어놓고(벼슬을 그만두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서 오직 혹시라도 느려질까 걱정했습니다. 군자의 도는 혹은 나가기도 하고 혹은 머물기도 하며, 혹은 묵묵하기도 하고 혹은 말을 하기도 하지만, 어찌 시기(時幾)를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애오라지 광언(狂言)을 지껄였으니 증험하여 바로잡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寧武子邦有道則智, 邦無道則愚. 其智可及也, 其愚不可及也.’ 此章一句, 初理會不得. 今讀集注, 參考左氏傳, 乃知武子衛成公無道失國之時, 周旋其間, 盡心竭力而不去. 成公囚京師, 武子求掌槖饘, 賂醫薄酖, 侯於死, 終以復國. 元咺之訟, 武子又獨以忠而獲免. 其能保身以濟其君如此, 雖謂之智可也. 而夫子曰 其愚不可及.’ 夫子嘗曰: ‘君子哉, 蘧伯玉邦有道則仕, 邦無道則可卷而懷之.’ 伯玉之事責武子, 雖謂之愚不識時, 亦可也. 武子惓惓忠君, 不避險艱, 能爲人所不能爲, 抑亦難矣. 故夫子曰其愚不可及, 蓋閔之也. 今觀論語一書, 於有道無道之世屢致意焉. 其稱南容: ‘邦有道則仕, 邦無道則免於刑戮.’ 武子之免者亦幸矣. 武子兩世, 其君信任之, 義不可棄之而去, 其幾於東漢王允. 又不免被害. 嘗聞先生誦周子之言曰: ‘顔子之學, 伊尹之志.’ 伊尹以天下爲己任者也, 洽亦進, 亂亦進. 然使成湯不興, 聘幣不至, 雖五就, 其志曷施? 陳蕃, 代人豪, 驅馳險阨之中, 與刑人腐夫同朝爭衡, 屢退而不去者, 以仁而爲己任, 非人倫莫相恤也. 卒以謀疎見殺, 亦眛於夫子免刑戮之戒矣. 陳蕃王允猶是當時朝廷倚任, 身居鼎軸, 義當與國存亡. 程子曰亦有不當愚者, 比干是也. 若無言責官守, 則如東海逢萌, 先漢之亂, 憤三綱之旣絶, 挂冠東都門, 浮海而去, 惟恐其或緩也. 君子之道或出或處, 或黙或語, 詎可不識時幾? 聊發狂言, 以驗中否.

 

대답: 당신이 의문을 제기한 영무자의 일은 대체로 의미를 얻었습니다. 다만 거백옥과 남용의 어리석음과 같이 되기는 쉽지만, 영무자의 어리석음과 같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성인께서 미칠수 없구나.’라고 탄식한 까닭입니다. 진번과 왕윤이 본래 거백옥과 남용의 어리석음을 얻지 못하였으나, 진번이 한 일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나 모의(謀議)는 이미 새어 나갔으며, 왕윤의 공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뜻은 이미 교만해졌다면 또한 영무자의 어리석음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가 화를 가져온 까닭입니다. 그러나 봉맹이 되는 것은 매우 쉬우나 두 공[진번과 왕윤]이 되기는 매우 어려우니, 저것으로 이것을 꾸짖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단지 마땅히 시의(時義)가 어떠했는가와 머문 것이 마땅했는지를 물을 뿐입니다.

所疑寧武子事大槪得之. 但爲蘧伯玉南容之愚則易, 而爲武子之愚則難. 所以聖人有不可及之歎也. 陳蕃王允固不得爲伯玉南容之愚, 事未成而謀已泄, 功未就而志已驕, 則又不能爲寧武子之愚矣. 此其所以取禍也. 然爲逢萌則甚易, 爲二公則甚難, 又不可以彼而責此. 但當問其時義之如何與其所處之當否耳.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15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5(己未, 1199), 주자 나이 70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477)

 

진군(陳君)은 마음을 쓰는 곳이 전혀 없고, 서로 만나도 도무지 유익한 것이 없습니다. 요즈음 후생(後生)들 가운데는 이러한 사람이 많으니, 향상(向上)하는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노소(老蘇)처럼 학문을 하는 것이 사소한 언어나 문자만 관심을 갖습니다. 성현의 말씀은 오똑하게 단정히 앉아 종일토록 읽기를 칠팔 년은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말하기를, “열흘의 노력만 들이면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일찍이 실행한 적도 기억한 적도 없습니다. 이러면서 성취가 있기를 바란다면, 아아! 또한 어렵습니다.

陣君全未有用心處, 相見殊未有益. 近時後生多只如此, 難可以向上事期望之. 只如老蘇, 但爲學做些小語言文字, 直將聖賢之言兀然端坐終日讀了七八年. 今人說要學道, 乃不曾略拚得旬月工夫讀一卷書, 不曾成行記得. 如此而望有成, 吁亦難矣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16

 

[해제] 이 편지는 영종(寧宗) 경원(慶元) 5(己未, 1199), 주자 나이 70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477)

 

안연의 탄식에 관한 한 단락은 안자가 본 것이니, 지금은 실제에 들어맞게 증험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의리로써 헤아려보면, 또한 여러 선생 및 󰡔집주󰡕의 설과 같이 본다면 거의 잘못이 적을 것입니다.

顔淵之歎一段, 顔子見處, 今無的慤證驗之可言. 但以義理推之, 且得如諸先生及集註之說, 庶幾少病.

 

선 것이 우뚝히 있는 듯하다는 것은, 옛날에 견주면 보는 것이 더욱 친절(親切)한 것입니다. 지난날 무언가 잡을 곳이 없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도 그 사이로 들어가 자리 잡아 자기의 것이 될 도리(道理)가 있지 않는 것일 따름입니다. 이제 이것을 일러, “안자(顔子)의 마음과 눈 사이에 있다면 이는 먼저 본 것이고, 안자의 마음과 눈 사이에 있지 않다면, 막 온 것은 실제로 보는 것이지만, 이 앞의 것은 실제로 본 것이 아니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저 이러한 곳은, 우리들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억측하여 말하는 것이니, 대강 이야기할지라도 진실되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 가운데서 반복하여 푹 젖어 들어, 안자가 공부한 곳을 알아서, 자기 분수에 맞는 공부를 하여 오래 되면 자연히 마땅히 마음이 녹아 들고 정신으로 이해가 되어 가만히 합치가 될 것입니다. 만약 다만 이처럼 바로 오늘 본 것을 가지고 견강부회하고 지나치게 파고들어, 성취했다고 이야기하여 완전히 한 글자의 잘못도 없애려고 한다면 또한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가까운 것을 가지고서 먼 것을 보려 하고,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보려 하는데, 저절로 잘못하는 바가 또 없을 수 있겠습니까?

如有所立卓爾, 只是見得比之舊時愈見親切, 不似鄕來無捉摸處, 但亦未有道埋便得人於其間, 據爲己物耳. 今此謂在顔子心目之間, 則是先來所見者不在顔子心目之間 : 又以爲方是實見, 則前此非是實見矣, 恐不然也. 大抵此等處吾輩旣未到彼地位, 臆度而言, 只可大槪實說, 却於其中反覆涵泳, 認取它做工夫處做自己分上工夫, 久之自當心融神會, 黙與契合. 若只似此直以今日所見附會穿鑿, 只要說得成就, 正使全無一字之差, 亦未有益. 况以近觀遠, 以小觀大, 又自不能無所失乎.

 

심과 성에 관한 한 단락은 대체로 그러합니다. 다만 중간에 심을 주로 말하였는데,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에 말했듯이 태극음양오행사단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때, 이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다시 생각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心性一段, 大槪則然, 但中間方說心爲之主, 不知從前說太極二五四端之未發時, 此心却在甚處? 可更思之.

 

실제로 보았다.’는 한 단락의 큰 뜻은 지극히 좋으나, 제가 주장하는 설은 아닙니다. 정선생이 󰡔유서󰡕 가운데 한 단락에서 지극히 분명하게 말했습니다.(그 장의 머리에서 모두가 실제적인 이치이니, 사람들이 알아서 믿는 것이 어렵다.”라고 한 것이 이러한 뜻입니다.) 󰡔대학󰡕성의장에서 나쁜 냄새를 싫어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또한 이러한 뜻입니다. 아울러 자세히 살펴보면 좋을 것입니다.

實見一段大意極善, 然非熹之說也, 程先生遺書中自有一段說得極分明. 章首云皆實理也, 人知而信者爲難云云, 卽此意也. 大學誠意章說如惡惡臭, 如好好色, 亦是此意, 可幷詳之.

 

증점한 단락은 󰡔집주󰡕가운데서 인용한 여러 선생의 설이 이미 지극히 상세하고 분명합니다. 대개 (제가) 본 것으로 말씀드리면, 근원으로부터 지류(支流)로 나아가고, 근본으로 말미암아 말단을 만드니 요와 순의 사업이 무슨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만약 사실로 말씀드리면 날마다 행해도 가림이 없을 것입니다.

曾點一段, 集註中所引諸先生說已極詳明. 蓋以其所見而言, 則自源徂流, 由本制末, 堯舜事業, 何難之有? 若以事實言之, 則旣日行有不揜,

 

증점(曾點)이 자기가 한 말대로 실행한 것은 아니지만, 성인(聖人)께서 그것을 허여(許與)한 것은, 그 보는 바가 높고 간직하는 바가 넓은 것을 취했을 따름입니다. 학문의 도가 다만 이런 경지에 이르면, 곧 지극한 것이 되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는 것을 이른 것은 아닙니다. 사상채가 그렇다면 즉 배우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서 마땅히 자기 자신에게 돌이켜서, 모름지기 증점이 본 바를 보아야 하고, 증점이 간직한 바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공부에 안자를 스승 삼는다면, 아마도 발과 눈이 다 이르러서야 빠진 바가 없을 것입니다. 횡거(橫渠)선생이 이른바, “마음은 크게 펼쳐야 하고 글은 치밀해야 한다고 한 것도 역시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보내오신 편지를 대체로 살펴보건대, 그 사이에 말에 잘못이 많이 있는데, 근원과 학문을 둘로 나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으니, 마땅히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便是曾點實未做得, 又何疑哉? 聖人與之, 蓋取其所見之高, 所存之廣耳, 非謂學問之道只到此處便爲至極而無以加也. 上蔡所記伊川先生與之答問天下何思何慮一段, 語意亦正類此. 見於外書, 可幷檢看. 然則學者觀此, 要當反之於身. 須是見得曾點之所見, 存得曾點之所存, 而曰用克己復禮之功却以顔子爲師, 庶幾足目俱到, 無所欠闕. 橫渠先生所謂心要弘放, 文要密察, 亦謂此也. 來喩大槪得之, 然其間言語亦多有病, 其分根原學問爲兩節者, 尤不可曉, 恐當更人思慮也.

 

󰡔예서󰡕가운데 청사씨(靑史氏)의 기록은 󰡔대대례󰡕에 보입니다.

禮書中靑史氏之記, 大戴禮.

 

󰡔경세기년(經世紀年)󰡕은 그 논지가 대단히 바르지만, 옛 사람들이 이미 말한 것입니다. 예컨대 한나라 고후(高后) 년간에 대해서는 당나라 사람들이 이미 󰡔무후·중종기󰡕에서 그 범례를 밝혔습니다. 촉한의 통일에 대해서는 습착치(習鑿齒)󰡔진춘추󰡕에서 이미 이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가 갑진년에 즉위하였는데, 소강절의 󰡔황극경세󰡕에서 말했으며, 여러 사람들의 설 또한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바빠서 연구하여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장경부의 말과 어긋나는 곳은 반드시 무왕이 상()을 이긴 해를 말한다. 태서󰡕의 서문에는 11년으로 쓰여 있고, 󰡔서경󰡕에는 13년으로 쓰여 있는데, 편년(編年) 서는 서설을 따라 정했습니다. 지난번에 가국재의 설을 보았는데, 홍범에 근거하여 고찰하여, 무왕이 기자를 방문한 것은 13년의 일이니, 반드시 그 해 초에 무왕이 상나라를 이겨 죄수를 석방하고 방문하였으며, 11년에 이미 상나라를 이겼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2년 뒤에 방문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의 설은 이치에 맞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일찍이 장경부에게 알려주었는데, 장경부도 크게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 책이 이미 간행되었으니, 여기에서 인쇄하여 배포하는 것을 그만둘까 합니다. 장경부의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점이 이와 같으니 (제가) 미치기 어렵습니다.

經世紀年, 其論甚正, 然古人已嘗言之. 漢高后之年, 人已於武后中宗發之 : 蜀漢之統, 習鑿齒晉春秋己有此論矣. 以甲辰年卽位, 邵康節皇極經世, 諸家之說亦有同者. 此則荒忽, 不可究知. 敬夫所說牴牾處, 必是謂武王之年. 泰誓序作十一年, 經作十三年, 而編年之書乃定從序說. 鄕見柯國材, 洪範考之, 訪于箕子是十三年事, 必是當年初克時便釋其囚而問之, 不應十一年已克, 至兩年後乃問之也. 其說似有理. 亦嘗以告敬夫, 敬夫大以爲然. 其書巳嘗刊行, 至是遂止. 敬夫之服善如此, 亦難及也.

 

조주의 왕상서는 예전에 일찍이 알고 지냈는데, 그 사람됨이 굳세고 바르며, 충직하고 성실하여 여유가 있었으며 언로에서 일찍이 탕사퇴의 간사함을 논하고 쫓아냈습니다. 다만 사람됨이 자못 직선적이고, 학문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고집해서 여러 경전에 대해 극히 기이한 설이 있으며, 조정에서 의론하는 것도 또한 극진(極盡)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대의 올바른 사람이 되는데는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주의(奏議)를 얻어서 번거롭겠지만 한 부를 베껴서 부쳐주십시오. 부경초는 그의 사위이니 반드시 한 부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빠른 시간 내에 편지를 써서 물어보십시오.

潮州王尙書舊嘗識之, 其人勁正, 忠實有餘, 在言路嘗論湯思退之姦而逐之. 但爲人頗疎率, 學問偏任己見, 諸經極有怪說, 立朝議論亦有不到頭處. 然不害爲一代正人. 今所得奏議, 煩錄一本見寄. 傳景初是其壻, 恐必有本, 旦夕當寄書問之也.

 

베껴서 보내주신 󰡔악기도보󰡕는 고맙게 받았습니다만, 오히려 율을 사용하는 순서는 분명하지 않숩니다. 요즈음 자못 속악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 물어보려고 하였으나, 마침 번거로운 일로 겨를이 없습니다. 이것은 본래 옛날의 제도에 완전히 합치될 수는 없으나, 백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와 같이 폐하게 되었으니 탄식이 나옵니다.

樂記圖譜甚荷錄示, 但尙未曉用律次第. 此間有人頗知俗樂, 方欲問之, 偶以事冗未暇. 此固未必盡合古制, 然未及百年而淪廢已如此, 是可嘆也.

 

󰡔한문고이󰡕는 원자질과 정문진이 베껴 써서 그 곳에 가서 판각(板刻)하고자 하는데, 거기에 자못 위학(僞學)의 기풍이 있어 사단(事端)을 일으킬 까 걱정이 되지만, 한 면을 베껴서 부칩니다. 다만 개판(開版)하는 일은 다시 (사정을) 헤아려 볼 뿐입니다. 만약 개판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이 책에 의존하여 따로 한 권의 󰡔한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또한 한갓 비용과 공력만 허비할까 걱정이 될 뿐입니다.

韓文考異袁子質鄭文振欲寫本就彼刻版, 恐其間頗有僞氣, 引惹生事. 然當一面錄付之. 但開版事須更斟酌耳. 若欲開版, 須依此本別刊一本韓文方得, 又恐枉複勞費工力耳.

 

󰡔예서(禮書)󰡕의 경문에 붙인 것은, 여기에서 이미 빙례이전의 스무 편을 교정하여 이제 그 목록을 베껴서 부쳤습니다. 그 가운데 편찬한 것은 일찍이 잘 되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이미 복주에 보내서 이제 황직경과 유이지 형제가 참조하여 교정해서 정본을 베껴 써서 완성하였는데 아직 부쳐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덧붙일 곳이 있다면 스스로 보태 넣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의 소를 한번 보는 것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글들[禮疏]은 지저깨비[木札]를 씹듯이 하여 반드시 공부하여 볼 필요는 없습니다.

禮書人疏者, 此間已校定得聘禮以前二十餘篇, 今錄其目附去. 彼中所編, 早得爲佳. 此間者已送福州, 直卿劉履之兄弟參校, 寫成定本, 尙未寄來. 若有可增益處, 自不妨添人也. 然因此得看疏一番, 亦非小補. 不然, 此等如嚼木札, 定無功夫看得也.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

 

[해제] 이 편지는 효종(孝宗) 순희(淳熙) 원년(甲午, 1174), 주자 나이 45세 때 쓴 것이다. (󰡔편년고증󰡕 125)

 

보내오신 편지에 생사와 귀신의 설에 의문을 제기하셨는데, 말씀드릴만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라는 글자에 따라 (사물과 나의) 경계를 나누었기 때문에 그대로 둘 수 없을 뿐입니다. 이 글자를 제외하고 단지 태극과 양의건부(乾父)와 곤모(坤母)를 보고 성의 본연이라 한다면 여전히 이러한 간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來書疑著生死鬼神之說, 此無可說. 只緣有箇私字分了界至, 故放不下耳. 除了此字, 只看太極兩儀乾父坤母體性之本然, 還有此間隔否耶?

 

 

요자회에게 답함 答廖子晦

 

이전에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강론한 적이 있었는데, 늘 적이 그 말에 두서가 없음을 의심하였으나 그 이유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다만 한 때의 저의 견해가 온전치 못한 곳에 의거하여 서둘러 답장 올리니 이따금씩 피상적인 면을 말할 수 있으나 그 잘못을 확실하게 꼬집지는 못했습니다. 현명하신 당신께서도 아직 깊이 궁구하지 못하였는데 오히려 오늘의 논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록 미루(微陋)하고 소솔(疎率)한 저의 잘못이지만, 이것을 계기로 당신께서 밝게 분변하시어 힘써 깨우쳐 주시고 미혹한 데서 펼쳐서 상세하게 밝힌 뒤에야 앞뒤로 말한 본래 뜻을 의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저의 견해는 또한 있는 능력을 다하였으나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前此屢辱貽書, 有所講論, 每竊怪其語之不倫, 而未能深曉其故, 只據一時鄙見所未安處, 草草奉答, 往往只是說得皮膚, 不能切中其病, 所以賢者亦末深悉, 而猶有今日之論也. 此雖微陋疎率之罪, 然因此却得左右明辨力扣, 敷迷詳明, 然後乃能議得前後所說之本意 : 而區區愚見亦因得以自竭, 非小補也.

 

보내오신 편지를 상고해 보니, 바로 일상생활에 따로 한 가지 물건이 있어 환하게 빛나고 번쩍이며 빛나 움직여 유전(流轉)한다고 한 것은 곧 이른바 무극(無極)의 참됨이고, ‘곡신(谷神)이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말은 모두 보내오신 편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른바 자리 없는 진인이라는 이 말은 석씨(釋氏)의 말이니, 바로 곡신의 추장입니다. 배우는 사람들은 당장 이것을 안 뒤에라야 마음으로 상상하여 살펴보고 항상 눈앞에 있게 해야 근본적인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학문과 실천이 떨어져 부서졌다 하나로 그러모아진 데 이르면 이로부터 아래로 한 단계의 일이니, 이것과는 거칠고 세밀함이 뚜렷하게 다릅니다. 비록 안자(顔子)가 처음에,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척 보기에 앞에 있는 듯하더니 홀연히 뒤에 가 있구나.라고 했음에도 또한 이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볼 수 없을 뿐입니다. 이것은 그 뜻은 좋으나,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성인이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먼저 철저하게 언어를 사용하여 곧장 이 사물을 가리켜, 사람으로 하여금 긴절(緊切)하게 몸소 살펴서 실제로 보게 하고, 긴절하게 파악하여 항상 눈앞에 있게 하는 것을 바로 근원(根源)에 닿을 수 있는 계책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런 설은 없고 단지 사람들에게 격물치지(格物致知)와 극기복례(克己復禮)만 가르쳐 줄곧 지엽적인 자질구레한 데에 나아가서 공부하게 하니, 어찌 사람을 잘못 인도하여 시간과 힘을 쓸 데 없이 낭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논어󰡕󰡔맹자󰡕의 말은 평이하고 명백하여 본래 이런 현묘(玄妙)한 이이야기는 없습니다. 비록 자사나 주자(周子)가 긴요하게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중용󰡕태극도설을 지어서 도체(道體)의 극치를 밝혔지만,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단지 착함을 가려 굳게 지키고,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여 독실하게 행하라는 것과, ‘중정(中正)과 인의(仁義)로써 정하여 정()을 주로 하라’,군자가 그것을 닦으면 길하다는 것일 따름이었습니다. 일찍이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이 천명(天命)의 성()’무극(無極)의 참됨을 구하여서 굳이 그것을 지키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궁구해 보면 비록 매우 미묘하지만, 그 실체는 단지 사람의 마음 가운데 많이 있는 마땅히 행해야할 도리일 뿐입니다. 다만 그 근본을 미루어 보면, 그것이 인심(人心)에서 나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천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비록 온갖 사물과 온갖 변화가 모두 여기에서 흘러 나왔으나, 실제로 가리킬만한 형상이 없기 때문에 무극이라고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공부에 대해 논하자면, 다만 착함을 가려 굳게 잡으라는 것과 중정과 인의가 바로 이러한 일을 이회(理會)하는 곳이니, 따로 한 단계의 근본적인 공부가 있고 또 학문을 강론하고 사물에 응하는 것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놓친 마음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다만 일상생활 가운데 마음을 거둬들이고 가지런하게 하여 마음과 생각이 밖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 가운데 있는 많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道理)가 점차 분명해져서 몸소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꽉 잡아서 가슴 속에 감춰 둔 뒤에 따로 한 마음을 나누어 밖으로 사물에 응접하는 것은 아닙니다.

蓋詳來喩, 正謂日用之間別有一物光輝閃爍, 動蕩流轉, 是卽所謂無極之眞, 所謂谷神不死. 二語皆來書所引, 所謂無位眞人, 釋氏, 正谷神之酉長也. 學者合下便要識得此物, 而後將心想象照管, 要得常在目前, 乃爲根本功夫. 至於學問踐履, 零碎湊合, 則自是下一截事, 與此粗細逈然不同. 雖以顔子之初鑽高仰堅, 膽前忽後, 亦是未見此物, 故不得爲實見耳. 此其意則善矣, 然若果是如此,則聖人設敎, 首先便合痛下言語, 直指此物, 敎人著緊體察, 要令實見, 著緊把捉, 要常在目前, 以爲直截根原之計 : 而却都無此說, 但只敎人格物致知, 克己復禮, 一向就枝葉上雰碎處做工夫, 豈不誤人枉費日力耶? 論孟之言平易明白, 固無此等玄妙之談. 雖以子思周子喫緊爲人, 特著中庸太極之書以明道體之極致, 而其所說用功夫處只說擇善固執, 學間思辨而篤行之, 只說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君子修之吉而已, 未嘗使人日用之間必求見此天命之性無極之眞而固守之也. 蓋原此理之所自來雖極微妙, 然其實只是人心之中許多合當做底道理而已. 但推其本, 則見其出於人心, 而非人力之所能爲, 故曰天命 : 雖萬事萬化皆自此中流出, 而實無形象之可指, 故曰無極耳. 若論功夫, 則只擇善固執中正仁義便是理會此事處, 非是別有一段根原功夫又在講學應事之外也. 如說求其放心, 亦只是說日用之間收歛整齊, 不使心念向外走作, 庶幾其中許多合做底道理漸次分明, 可以體察 : 亦非捉取此物藏在胸中, 然後別分一心出外, 以應事接物也.

 

보내오신 편지에 각각의 사물마다 모두 실제의 이치가 있는데, 마치 인의예지의 본성과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법칙이 모두 천명 가운데서 나오는 것과 같으니, 모름지기 안자증자가 전체를 꿰뚫어 본 것과 같이 해야 곧 하나라도 선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은 비록 잘못이 없는 듯하지만 그 말의 맥락을 상세하게 살피고 그 뜻이 가리키는 것을 궁구하면 또한 천명 전체를 하나의 사물의 혼연으로 삼고 인의예지의 성,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법칙은 모두 그 가운데 부서져 떨어지는 찌꺼기가 되니 애초부터 앞의 설과 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배우는 이유를 논하면, 또한 각각의 사물의 실리에 있지 않고 특별히 전체를 꿰뚫어 보는 것을 공으로 삼습니다. 대체로 이것도 또한 예전의 잘못이 있는 듯합니다. 또한 전체를 꿰뚫어 본 뒤에 일에 선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면 하나하나 이치를 궁구하여 관통하기를 기다리기 이전에는 볼 수가 없으니, 줄곧 의식 속에서 상상할 뿐입니다. 이것과 정자가 불탑에 대해 말하면서 상륜(相輪)을 비판한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

來書又云, 事事物物皆有實理, 如仁義禮智之性, 視聽言動之則, 皆從天命中來, 須如洞見全體, 卽無一不善. 此說雖似無病, 然詳其語脈, 究其意指, 亦是以天命全體者爲一物之渾然, 而仁義禮智之性視聽言動之則皆是其中零碎査滓之物, 初不異於前說也. 至論所以爲學, 則又不在乎事事物物之實理, 而特以洞見全體爲功. 凡此似亦只是舊病也. 且曰洞見全體而後事無不善, 則是末見以前嘗一一窮格以待其貫通, 而直以意識想象之耳. 是與程子所訶對塔而說相輪者何以異哉?

 

보내오신 편지에서 또 제가 󰡔한문고이(韓文考異)󰡕에서, ‘한공(韓公)은 도의 용은 보았지만, 그 체를 얻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의심하여, 제가 또한 근원적인 공부와 학문적인 공부에는 각각 일종의 공부가 있다고 말한 것인 양 여기시는데, 이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전날 제가 말한 뜻은, ‘한공은 단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데는 공을 들였지만, 일찍이 그 심신(心身) 상에서 강구하고 간직하여 지킨 적은 없었다는 뜻일 뿐이지, 그가 일찍이 이것을 잡아 품속에 간수하지 않은 것을 잘못으로 여긴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학문적인 공부의 위와 아래를 꿰뚫은 세밀하고 긴요한 곳인데도, 만약 당신이 보내 온 편지에 상세하지 말하지 않았더라면, 또한 그 병통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끝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다행히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부디 이 설을 상세히 보시고 그 뜻을 자세히 찾으셔서, 다시 그 부류를 미루어 평소 알고 있는 것 가운데서 서로 관계있는 것을 일일이 대조하여 징험(徵驗)하면, 마땅히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합치 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다시 반복해서 의론해야지 섣불리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안경(安卿)의 병통도 바로 이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난 번 여기에 왔을 때 이야기를 했으나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속내를 감추고 다시 말하지 않아 마침내 함께 끝까지 논의할 도리가 없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한이 됩니다. 혹시라도 그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면 또한 이것으로써 깨우쳐 주어, 오랫동안 홀로 얽매여 있지 않도록 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來喩又疑考異中說韓公見道之用而未得其體, 以爲亦若自謂根原學問各有一種功夫者, 此亦不然. 前日鄙意正爲韓公只於治國平天下處用功, 而未嘗就其身心上講究持守耳, 非病其不曾捉得此物藏在懷袖間也. 此是學問功夫徹上徹下細密緊切處, 向使不因來喩之詳, 終亦末覺其病之在是. 今幸見得, 不是小事. 千萬詳看此說, 子細尋繹, 更推其類, 盡將平生所認有相關處一 一勘驗, 當自見得. 如有未契, 更宜反覆, 不可容易放過也. 安卿之病正亦坐此, 向來至此, 說得旣不相合, 渠便藏了, 更不說著, 遂無由與之極論, 至今以爲恨. 或因與書, 幸亦以此曉之, 勿今久自拘縶也.

 

대전(大顚)과 문답한 것, 처음에는 단지 승려 무리들이 위작한 것으로 의심했는데, 뒤에 자세히 생각해 보니, 조금은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생각건대, 산속에 사는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인지라 비록 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수행의 경지에 있어서는 착실하게 공부했기 때문에 그 말에 힘이 있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공이 일찍이 들어 보지 못했던 것으로서 그의 병통에 딱 들어맞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이 이미 그 말을 듣고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침내 기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여기서 한공의 본체에 대한 공부가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스스로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이 단지 조정에서 좌천 한 번 했다고 하여 이교(異敎)의 한 마디 말에 곧 이와 같이 평상시의 법도를 잃는단 말입니까? 이러한 곳은 대충 보아 넘겨서는 안 되니, 다시 깊이 살펴보십시오. 나머지는 󰡔고이외집󰡕 가운데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이제 다시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비()를 보지 못하였다면 여러 가지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大顚間答初疑只是其徒僞作, 後細思之, 想亦有些彷彿. 計其爲人山野質樸, 雖不會說, 而於修行地位做得功夫著實, 故其言語有力, 感動得人. 又是韓公所未嘗聞, 而亦切中其病, 故公旣聞其語, 而不覺遂悅之也. 然亦只此便見得韓公本體功夫有缺闕處, 如其不然, 豈其自無主宰, 只被朝廷一貶, 異敎一言而便如此失其常度哉? 此等處極不可草草看過, 更宜深體之也. 其餘已具見於考異外集卷中者, 今不復論. 然若不得此碑, 亦無由見得許多曲折也.

 

동파(東坡)의 해외(海外)의 정경(情景)은 깊이 탄식할 만 합니다. 요즈음 그가 만년에 지은 짧은 사()를 보니, “새로운 은혜는 비록 바랄만하지만, 옛날 학문은 끝내 고치기 어렵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늘 소리내어 읊으면, 족히 사람으로 하여금 개연(慨然)하게 만듭니다. 두 시 또한 아직 깨닫지 못해서 감히 경솔하게 답장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단지 예전의 뜻 그대로일까 걱정이 되니, 청하건대 이전의 설에 나아가서 살펴보면 스스로 깨우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개 성명(性命)의 이치는 비록 정미(精微)하지만,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실제적인 일 위에 나아가 보면 또한 매우 명백합니다. 꼭 형상(形象)이 없는 곳을 향해서 바람을 잡듯 그림자를 싸매듯 이리저리 더듬어 댈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을 쓰는 것은 더욱 깊지만 도()와는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坡公海外意況深可歎息. 近見其晩年所作小詞, 新恩雖可冀, 舊學終難改之句, 每諷詠之, 亦足令人慨然也. 二詩亦未甚曉, 不敢又便率然奉答. 然恐亦只是舊來意思, 但請只就前說觀之, 恐亦可自見得矣. 蓋性命之理雖微, 然就博文約禮實事上看, 亦甚明白, 正不須向無形象處東撈西摸, 如捕風繫影, 用意愈深而去道愈遠也.

728x90

'고전원전자료 > 주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자77  (3) 2025.08.11
주자76  (4) 2025.08.11
주자74  (3) 2025.08.11
주자73  (4) 2025.08.11
주자72  (2)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