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72

황성 2025. 8. 1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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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친구와 제자들과의 문답) (知舊門人問答)

 

 

 

 

호광중에게 답함 答胡廣仲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6(경인, 1170, 41)에 호식(胡寔)에게 쓴 편지이다.장식의 미발(未發)설을 비판하면서 경()과 격물치지에 대해 설명하였다.

 

흠부(欽夫: 張軾)의 미발(未發)에 관한 논의는 참으로 구분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없다라는 것은 본래 이 이치가 없다는 것을 이른 것이 아니고, 다만 물욕이 서로 끌어 당겨 다시는 맑고 고요한 때가 없다는 것을 일렀을 따름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이것 또한 사람이 품부 받은 바가 같지 않음에 따라, 성품이 고요한 사람은 혹 이런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경()으로써 주재할 줄 모르면 혼미하고 박잡(駁雜)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서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 따름입니다. 그래서 정자는 말씀하기를, “()하여 잃지 않는 것이 중()하게 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지극히 요약되어 있으니 진실로 공력을 들일 곳입니다. 원컨대 일상의 말하거나 고요히 있을 때, 움직이거나 가만있을 때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신다면 망령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즈음 와서야 경()이라는 한 글자가 진실로 성학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요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접 때 반드시 먼저 앎을 이룬致知뒤에라야 경에 힘을 쓸 수 있다고 한 논의는 온당치 못한 듯합니다. 대개 옛 사람들은 소학(小學)을 거쳐서 대학(大學)에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응대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때에 잡아 지키는 것이 굳고 안정되고 함양공부가 순수하고 익숙해졌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진실로 오래 되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대학의 순서는 특히 소학에서 이미 이룬 공에 말미암고 나서 사물에 이르기格物와 앎을 이루기로써 시작을 삼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하루도 소학에 종사한 적이 없으면서도 반드시 먼저 앎을 이룬 뒤에라야 경()을 베풀 곳이 있다고 말하니, 무엇을 위주로 하여 사물에 이르고 앎을 이루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자는 말하기를, “()에 들어가는 데는 경()만 한 것이 없다. 앎을 이룰 수 있으면서 경을 간직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경()을 논하여 이르기를, “다만 경을 오래도록 간직하면 천리(天理)가 저절로 밝아진다.”라고 하였습니다. 미루어서 올라가면 옛 성현들의 말도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말을 상고하여 몸으로 체험해 보시면, 지금 사람들의 말과 정자의 말의 득실(得失)을 볼 수 있습니다.

欽夫未發之論誠若分別太深, 然其所謂無者, 非謂本無此理, 但謂物欲交引, 無復澄靜之時耳. 熹意竊恐此亦隨人禀賦不同, 性靜者須或有此時節. 但不知敬以主之, 則昏憒駁雜, 不自覺知, 終亦必亡而已矣. 故程子曰: ‘敬而無失乃所以中’, 此語至約, 是眞實下功夫處. 願於日用語黙動靜之間試加意焉, 當知其不妄矣. 近來覺得之一字眞聖學始終之要, 向來之論謂必先致其知然後有以用力於此, 疑若未安. 蓋古人由小學而進於大學, 其於灑掃應對進退之間, 持守堅定, 涵養純熟, 固已久矣. 是以大學之序, 特因小學已成之功而以格物致知爲始. 今人未嘗一日從事於小學, 而曰必先致其知然後敬有所施, 則未知其以何爲主而格物以致其知也. 故程子曰: ‘入道莫如敬, 未有能致知而不在敬者.’ 又論敬云: ‘但存此久之, 則天理自明.’ 推而上之, 凡古昔聖賢之言, 亦莫不如此者. 試考其言而以身驗之, 則彼此之得失見矣.

 

 

호광중에게 답함 答胡廣仲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7(신묘, 1171, 42)에 호식에게 쓴 편지이다. 주돈이, 호굉, 사량좌 등의 말을 논하였다.

 

󰡔태극도󰡕 구본에 대해 매우 수고하시면서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 의의에 대해서는 끝내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음정(陰靜)’이 위에 있고, ‘양동(陽動)’이 아래에 있으며, 검은 부분 가운데 흰 부분이 있고, 흰 부분 가운데 검은 부분이 없으며, 오행이 상생하는 앞뒤의 순서기 모두 분명하지 못합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태극의 오묘함[太極之妙]은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반드시 그에 대한 설명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바라건대 태극의 오묘함이 바뀔 수 없는 것이라는 까닭을 자세하게 설명해서 가르침을 주신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太極圖舊本極荷垂示, 然其意義終未能曉. 如陰靜在上而陽動在下, 黑中有白而白中無黑, 及五行相生先後次序, 皆所未明. 而來諭以爲太極之妙不可移易, 是必知其說矣. 更望子細指陳所以爲太極之妙而不可移易處以見敎, 幸甚幸甚

 

문장의 의미를 해석할 때 각각 귀착처가 있게 한 것은 바로 도를 말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문장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장차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지금 보내주신 편지에서 문장의 의미를 해석하면 당연히 이와 같지만 도를 말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을 세운 뒤에야 도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인의에 대한 설명은 지난 번 회숙에게 답하면서 이미 자세하게 말했습니다. 이제 인을 반드시 의와 짝해서 말할 수 없다고 한다면 󰡔주역󰡕 「설괘전󰡔맹자󰡕의 말은 모두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보내주신 편지에서 말하기를 인은 성인의 매우 오묘한 기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종류의 말에는 병이 있습니다. 성현들이 인을 말한 곳만을 살펴볼 때 한 구절이라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解釋文義, 使各有指歸, 正欲以語道耳. 不然, 則解釋文義將何爲邪? 今來諭有云: ‘解釋文義則當如此, 而不可以語道’, 不知如何立言而後可以語道也? 仁義之說, 頃答晦叔兄已詳. 今必以爲仁不可對義而言, 則說卦孟子之言皆何謂乎? 來諭又云: ‘仁乃聖人極妙之機’, 此等語亦有病. 但看聖賢言仁處, 還曾有一句此等說話否? 

 

보내주신 글에서 또 이르기를, “움직임과 고요함의 밖에 따로 움직임에 짝하지 않은 고요함이 있거나 고요함에 짝하지 않은 움직임이 있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더욱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움직임과 고요함이란 대대적(待對的)인 관계로서 서로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천리(天理)여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움직임과 짝하지 않는다면 고요함이라고 부를 수 없고, 고요함과 짝하지 않는다면 역시 움직임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다만 보통 사람들의 움직임은 움직임으로 치우쳐 고요함이 없고, 고요함은 고요함에 빠져서 움직임이 없습니다. 이는 주자(周子: 周敦頤)사물은 통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인만이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이 없고 천리(天理)를 온전히 간직합니다. 그러므로 움직일 때 고요함의 이치가 없는 적이 없고, 고요할 때 움직임의 기틀이 쉰 적이 없습니다. 이는 주자(周子)신은 만물을 오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고요함에 주로 한다고 말하는 것은 서로 돕는 형세로써 보자면 움직임은 고요함에서 도움을 받지만 고요함은 움직임에서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마치 건()이 전일(專一)하지 않으면 곧게 이룰 수가 없고, ()이 수렴(收斂)하지 않으면 발산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용이나 뱀이 웅크리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고, 자벌레가 구부리지 않으면 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천리입니다.

來諭又謂動靜之外別有不與動對之靜, 不與靜對之動, 此則尤所未諭. ‘動靜二字相爲對待, 不能相無, 乃天理之自然, 非人力之所能爲也. 若不與動對, 則不名爲靜 : 不與靜對, 則亦不名爲動矣. 但衆人之動則流於動而無靜, 衆人之靜則淪於靜而無動, 此周子所謂物則不通者也. 惟聖人無人欲之私而全乎天理, 是以其動也, 靜之理未嘗亡 : 其靜也, 動之機未嘗息. 此周子所謂神妙萬物者也. 然而必曰主靜云者, 蓋以其相資之勢言之, 則動有資於靜, 而靜無資於動. 如乾不專一則不能直遂, 坤不翁聚則不能發散, 龍蛇不蟄則無以奮, 尺蠖不屈則無以伸, 亦天理之必然也.

 

보내주신 편지에 움직이면 본성에서 떠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더욱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개 사람이 태어나면서 고요한 것이 하늘에서 부여받은 본성일지라도 사물에 느껴서 움직이는 것도 본성의 욕구입니다. 만약 감정이 발생하여 절도(節度)에 맞고 욕구할만한 것을 욕구한다면 어찌 본성을 떠난 적이 있겠습니까? 오직 보통 사람들의 움직임은 움직일 뿐 고요함이 없으므로 혹 그 본성을 잃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문정공(文定公: 胡安國)󰡔춘추전(春秋傳󰡕에서 말하기를, “성인의 마음은 사물에 느껴서 움직인다.”라고 했고, 호굉의 󰡔지언(知言)󰡕에서도 이르기를, “고요함은 하늘과 덕()을 같이 하고 움직임은 하늘과 도()를 같이 한다.”라고 했습니다. 성인에게 움직임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나중에 사물에 느껴서 통하는 것과 사물에 느껴서 움직이는 것을 분별하자, 말뜻이 박절해지고 많은 지엽적인 것이 생겨났습니다. 뒷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게 지키면서 기력을 낭비하고 여러 가지로 안배하고 있지만, 어떻게 세 개의 귀[三耳]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는 아주 난해한 주장이지만 실제로는 잘못이니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來諭又有動則離性之說, 此尤所未諭. 蓋人生而靜雖天之性, 感物而動, 亦性之欲. 若發而中節, 欲其可欲, 則豈嘗離夫性哉? 惟夫衆人之動, 動而無靜, 則或失其性耳. 故文定春秋傳曰: ‘聖人之心感物而動’, 知言亦云: ‘靜與天同德, 動與天同道’, 皆未嘗有聖人無動之說也. 却是後來分別感物而通感物而動’, 語意迫切, 生出許多枝節. 而後人守之太過, 費盡氣力, 百種安排, 幾能令臧三耳矣. 然甚難而實非, 恐不可不察也.

 

호굉의 󰡔지언󰡕에서 본성이 하나인 까닭性之所以一과 관련된 구절은 처음 보았던 판본에는 자가 없었는데 나중에 보았던 다른 판본에는 자가 있었습니다. 오자라고 의심되어 계속해서 두루 책의 앞뒤를 살펴보니 하나가 아니다[不一]’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사가 말하기를이라는 구절이 바로 이런 종류였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본성에 차별이 있다고 했으므로 마침내 다른 판본에 의거해서 자를 첨가했습니다. 이제 호굉의 유고에 이미 자가 없으니 마땅히 고쳐야 할 것입니다. 다만 그가 성이 하나가 아니라고 말한 곳은 더욱 의심나게 할 따름입니다. 지난번에 지언의의가운데서 이미 논했습니다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知言性之所以一’, 初見一本無, 後見則本有之, 尙疑其誤. 繼而遍考此書前後說頗有不一之意, 子思子曰一章是也. 故恐賓謂性有羞別, 遂依別本添人. 今旣遺稿無之, 則當改正. 但其它說性不一處, 愈使人不能無疑耳. 昨來知言疑義中已論之, 不識高明以爲然否?

 

상채(上蔡: 謝良佐)에 의하면 명도(明道: 程顥)는 우선 학자들로 하여금 알게 하면서도 도리어 경()으로부터 들어가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두 선생의 말을 기록한 것에 의하면 앎을 이루면서致知()을 간직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했습니다. 상채 스스로도 이르기를, ‘그대들은 따로 깨우침을 구하지 말고 경()을 간직하여 이치를 궁구하기만 하면 덕()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두 선생도 말하기를 근본을 먼저 배양한 뒤라야 나아갈 방향을 세울 수 있다.”라고 했고, 또 말하기를 씩씩하고 단정하고 제계하고 엄숙한 것이 오래 되면 저절로 천리가 밝아진다.’라고 했습니다. 오봉(五峰: 胡宏 )이 앎이 먼저 이르지 않으면 경()을 실천할 수 없다고 했을지라도, 그러나 또 이르기를 사물에 이르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경()에 거처하여 뜻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들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제가 보건대 명도가 말하였던 먼저 안다는 것은 사특함과 바름을 구별하여 나아갈 방향을 안다는 것일 따름이므로, 느닷없이 앎이 지극해지는 일을 언급해서는 온당치 않습니다. 상채(上蔡)와 오봉(五峰)이 이미 미루어 헤아리는 것이 너무 지나쳤는데, 보내주신 편지에서처럼 이라는 한 글자가 성문(聖門)에서 전수한 기틀이라고 한다면, 이는 두 분의 과실보다 더 지나친 과실을 저지른 것입니다. 성현의 말을 헤아려보더라도 이와 같은 말의 뜻은 전혀 없으며, 도리어 요즈음 선가(禪家)의 말이 대부분 이러한 것 같습니다. 만약 기어이 이와 같이 한다면 이전 것을 알지 못한 채 게으르고 방자하면도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공자가 나의 도는 일관된다고 말하자 증자가 라고 대답한 것과 같은 뒤라야 경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말이 유행한다면 배우는 사람들의 일용 공부에 크게 해를 끼쳐 장차 현묘한 이야기만 하며 한평생을 보내면서 경에 힘을 쓰는 데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니, 표현상의 조그만 허물을 지적한 것만은 아닙니다.

上蔡雖說明道先使學者有所知識, 却從敬入, 然其記二先生語, 却謂未有致知而不在敬者. 又自云: ‘諸君不須別求見處, 但敬與窮理則可以入德矣.’ 二先生亦言根本須先培擁, 然後可立趨向. 又言莊整齊肅, 久之則自然天理明. 五峰雖言知不先至則敬不得施, 然又云格物之道必先居敬以持其志, 此言皆何謂邪? 熹竊謂明道所謂先有知識者, 只爲知邪正識趨向耳, 未便遽及知至之事也. 上蔡五峰旣推之太過, 而來喩又謂之一字便是聖門授受之機, 則是因二公之過而又過之. 試以聖賢之言考之, 似皆未有此等語意, 却是近世禪家說話多如此. 若必如此, 則是未知已前, 可以怠慢放肆, 無所不爲, 而必若曾子一唯之後, 然後可以用力於敬也. 此說之行, 於學者日用工夫大有所害, 恐將有談玄說妙以終其身而不及用力於敬者, 非但言語之小疵也.

 

상채(上蔡)가 또 논하기를, “횡거(橫渠: 張載)가 예()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잘못 때문에 그 학문이 전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선생이 논한 것에 의거한다면 도리어 이와 같지 않고, 대개 말하기를 자후(子厚: 張載)의 경우 예로써 배우는 사람들을 가르친 것이 가장 좋다.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근거하여 지키도록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정자는 횡거가 말한 맑고 빈 하나의 큰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여 경을 말하는 것만 못하다고 나무랐습니다. 이러한 곳 등에서는 상채의 말이 다 병이 있습니다. 예컨대 상채가 용모를 바르게 하고 절도를 신중히 하면서 밖을 위엄스럽게 하는 것은 예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더욱 온당하지 못합니다. 자문(子文)과 문자(文子)에 대해서는 지언의의에서도 이미 논했습니다. 주제넘게도 바르게 처신하지 못한 점 깊이 부끄럽습니다. 다만 강학할 때는 타당성을 추구하고 감히 모호하게 지나쳐서는 안 되므로 어쩔 수 없이 말을 다 하였습니다.

上蔡又論橫渠以禮敎人之失, 故其學至於無傳. 據二先生所論, 却不如此. 蓋曰子厚以禮敎學者最善, 使人先有所據守.’ 但譏其說淸虛一大, 使人向別處走, 不如且道敬耳. 此等處上蔡說皆有病, 如云正容謹節外面威儀, 非禮之本, 尤未穩當. 子文文子, 知言疑議亦已論之矣. 僭冒不韙, 深以愧懼. 但講學之際務求的當, 不敢含糊, 不得不盡言耳.

 

 

호광중에게 답함 答胡廣仲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7(신묘, 1171, 42)에 호식에게 쓴 편지이다. 허물을 관찰하는[觀過] 공부, 천리와 인욕 등에 대해서 논하였다.

 

인을 안다[知仁]’는 말에 대해서는 전에 회숙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이미 갖추어 논했습니다. 지금 자세히 보내주신 편지를 살펴보니 불교[釋氏]에는 애초부터 허물을 관찰하는[觀過] 공부가 없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지난 번 편지에서 답하지 못했습니다. 저들에게는 본래 허물을 관찰하는 공부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논하신 것도 허물을 관찰하는 것을 빌어다 관찰을 아는 것이 인이라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비록 허물을 관찰한다고 하지만 그 의미[指意]는 오히려 애초부터 허물을 고쳐 선으로 옮기고[改過遷善] 천리에 합하기를 추구하기 위하여 기술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들과 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불교의 선사가 그 문도에게 너는 어느 곳 사람인가?’라고 묻자, ‘유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너는 그곳을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언제나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산천과 성읍과 인물과 수레와 말의 성대함을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말하기를 그대는 돌이켜 생각해보시게. 그대가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허다한 일이 아닌가?’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논하신 허물을 보는 것에 따라서 관찰을 안다는 것은 그 요점이 이와 같습니다. 만약 참으로 이와 같다고 한다면 성인께서 당시에 오로지 허물을 관찰하는 것으로만 말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대개 눈에 접촉하고 일을 만난 모든 경우에 관찰할 수 있고 나아가 이미 관찰된 것이 있으니, 관찰에 대해 아는 것으로부터 인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로써 저들을 나무라는 것이 함께 목욕하고서 옷 벗은 사람을 나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知仁之說, 前日答晦叔書已具論之. 今細觀來敎謂釋氏初無觀過功夫, 不可同日而語, 則前書未及報也. 夫彼固無觀過之功矣, 然今所論亦但欲借此觀過, 而知觀者之爲仁耳. 則是雖云觀過, 而其指意却初不爲遷善改過求合天理設也. 然則與彼亦何異邪? 嘗聞釋氏之師有問其徒者曰: ‘汝何處人?’ 對曰: ‘幽州.’: ‘汝思彼否?’ : ‘常思.’ : ‘何思?’ : ‘思其山川城邑, 人物車馬之盛耳.’ 其師曰 : ‘汝試反思, 思底還有許多事否?’ 今所論因觀過而識觀者, 其切要處正與此同. 若果如此, 則聖人當時自不必專以觀過爲言. 蓋凡觸目遇事, 無不可觀, 而已有所觀, 亦無不可因以識觀者而知夫仁矣. 以此譏彼, 是何異同浴而譏裸裎也耶?

 

인욕(人欲)은 본성이 아니다.”라는 말도 바르게 이해하셨습니다. 제가 생각건대 천리는 참으로 상대가 없지만 이미 인욕이 있으므로 천리는 인욕과 더불어 줄어들거나 늘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 본래 상대가 없지만 이미 악이 있으므로 선은 곧 악과 더불어 왕성해지거나 쇠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넓은 하늘 아래 어딘들 임금의 땅 아닌 곳이 없고, 땅의 끝까지 임금의 신하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이 본성에 상대가 있겠습니까? () 나라 때에는 다섯 오랑캐五胡가 있게 되었고, 당나라 때에는 삼진(三鎭)이 있게 되자 중화 족과 오랑캐 족 사이에 거스르고 따르면서 서로 더불어 상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처음에는 선만 있고 악은 없었고 천명만 있고 인욕은 없었을 따름일 것입니다. 구산(龜山)의 뜻은 바로 이 털끝만한 사이에서 쪼개고 분석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공부에 힘쓰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치 맹자가 본성이 선하다고 말한 것이 다만 이러한 말과 같을 뿐이며, 역시 명백하고 절실하므로 정신을 소비하지 마십시오. 󰡔역전(易傳)󰡕대유괘(大有卦)’󰡔이정유서󰡕 22에 있는 구절(체가 공자와 맹자가 말한 본성에 대해 묻는 장)에서 이에 대해 논한 것이 또한 매우 분명합니다. 이것은 천하의 공정한 도리이지, 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사사로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화평하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높고 먼 것을 좋아하지 말고, 선입견을 위주로 하지 마십시오. 일상에서 참된 일의 이치를 익숙하게 살피면 그 얻음과 잃음, 부합됨과 어긋남 등을 어렵지 않게 알 것입니다.

人欲非性之語, 此亦正合理會. 熹竊謂天理固無對, 然旣有人欲, 卽天理便不得不與人欲爲消長. 善亦本無對, 然旣有惡, 卽善便不得不與惡爲盛衰. 譬如普天之下莫非王土, 率土之濱莫非王臣, 此本豈有對哉? 至於晉有五胡, 唐有三鎭, 則華夷逆順不得不相與爲對矣. 但其初則有善而無惡, 有天命而無人欲耳. 龜山之意, 正欲於此毫釐之間剖判分析, 使人於克己復禮之功便有下手處. 如孟子道性善只如此說, 亦甚明白慤實, 不費心力. 而易傳大有卦遺書第二十二篇. (棣問孔孟言性章) 論此又極分明, 是皆天下之公理, 非一家所得而私者. 願虛心平氣, 勿以好高爲意, 毋以先入爲主, 而熟察其事理之實於日用之間, 則其得失從違不難見矣.

 

천명이 사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은 괜찮지만, 선에 소속되지 않는다고 여긴다면 하늘이 하늘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악으로써 본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괜찮지만, 선으로써 본성을 이야기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은 선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지언(知言)󰡕 가운데 있는 이러한 의론은 다른 부분의 좋은 곳과 서로 모순이 매우 많아서 도리어 고자(告子), 양자(楊子), 석씨(釋氏), 소씨(蘇氏) 등의 말과 거의 다름이 없습니다. 예전부터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애석하게도 오봉(五峰: 胡宏)의 문하에서 물 뿌리고 마당 쓸면서 직접 질의하지 못하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뜻이 같은 사람들과 강론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혹 여러 사람에게 자못 죄를 지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뜻은 도리를 밝혀 위로는 성현을 저버리지 않고 중간으로는 자기를 그르치지 않고 아래로는 후학들을 미혹치 않게 하고자 바랄 뿐이어서 거기에는 진실로 피하지 못할 바가 있습니다.

蓋謂天命爲不囿於物可也, 以爲不囿於善, 則不知天之所以爲天矣. 謂惡不可以言性可也, 以爲善不足以言性, 則不知善之所自來矣. 知言中此等議論與其他好處自相矛盾者極多, 却與告子楊子釋氏蘇氏之言幾無以異. 昨來所以不免致疑者, 正爲如此. 惜乎不及供灑掃於五峰之門而面質之, 故不得不與同志者講之耳. 亦聞以此或頗得罪於人, 然區區之意只欲道理分明, 上不負聖賢, 中不誤自己, 下不迷後學而已, 它固有所不得而避也.

 

 

호광중에게 답함 答胡廣仲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호식에게 쓴 편지이다. 사단과 칠정, 천리와 인욕 등에 대하여 정이(程頤)의 말, 󰡔예기󰡕 「악기, 󰡔중용󰡕 등을 끌어들여 논의하였다.

 

이천(伊川)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천지에서 정기를 모으고 오행(五行)의 빼어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다. 그 근본은 참되고 고요하다. 그 근본이 발하지 않았을 때는 다섯 가지 본성이 갖추어져 있으니, 그것은 인(), (), (), (), () 따위이다. 형체가 이미 생겨나면 바깥의 사물이 그 형체에 닿아서 안을 움직인다. 그 안이 움직여서 일곱 가지 정()이 나오니, 그것은 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 아낌(), 미워함(), 바람() 따위이다. 감정이 이미 타올라 더욱 흔들리면 본성이 끊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이 몇 마디를 상세히 음미해 보니 󰡔예기󰡕 「악기(樂記)편의 말과 뜻이 다르지 않습니다. 고요함이란 아직 느끼지 않았을 때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때에 마음에 있는 것은 혼연한 천리이고 인욕의 거짓이 아직 있지 않기 때문에 하늘이 부여한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사물에 느껴 움직이게 되면 옳음과 그름, 참됨과 거짓됨이 이때부터 나뉩니다. 그러나 본성이 아니면 또한 유래하여 발생할 곳이 없으므로 본성의 욕구라고 말합니다. ‘움직임이란 󰡔중용(中庸)󰡕드러남과 다르지 않고 그 옳음과 그름, 참됨과 거짓됨은 특히 절도(節度)가 있느냐 없느냐와 절도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될 따름입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말한 바로 여기에서 참됨과 망령됨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함양(涵養) 공부가 있어야만 일에 임하여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흐릿하게 전혀 주재(主宰)하지 않다가 일이 이른 뒤에 안배(安排)한다면, 이미 늦어서 일에 미칠 수가 없습니다.

伊川先生曰: ‘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眞而靜, 其未發也五性具焉, 曰仁. 形旣生矣, 外物觸其形而動於中矣, 其中動而七情出焉, 曰喜. 情旣熾而益蕩, 其性鑿矣.’ 熹詳味此數語, 與樂記之說指意不殊. 所謂靜者, 亦指末感時言爾. 當此之時, 心之所存渾是天理, 未有人欲之僞, 故曰天之性’. 及其感物而動, 則是非眞妄自此分矣. 然非性則亦無自而發, 故曰性之欲’. ‘字與中庸字無異, 而其是非眞妄特決於有節與無節中節與不中節之間耳. 來敎所謂正要此處識得眞妄是也. 然須是平日有涵養之功, 臨事方能識得. 若茫然都無主宰, 事至然後安排, 則已緩而不及於事矣.

 

고요함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의 오묘함을 형용한 것으로 움직임과 고요함, 참됨과 거짓됨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서 저는 도리어 의심이 있습니다. 대개 본성에는 움직임과 고요함의 이치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습니다. 오로지 고요함이라는 말로만 형용한다면 도리어 본성이라는 말에 치우치게 됩니다. 악기편에서 고요함을 하늘이 부여한 본성이라고 한 것은 단지 아직 사물을 느끼지 않았을 때는 사사로운 욕심이 아직 싹트지 않아 혼연히 천리(天理)인 상태를 이른 것입니다. 고요함으로서 본성의 오묘함으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참됨과 거짓됨은 움직임과 고요함과는 같지 않습니다. 본성의 본성됨을 천하에서 갖추지 않음이 없으니, 그것은 단지 거짓됨이 없는 것일 따름입니다. 이제 당신이 그 참된 것마저도 없애려고 하시니, 이는 한공(韓公)()에는 참됨과 거짓됨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가 명도(明道)에게 꾸지람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이천(伊川)이 말한 그 본성은 참되고 고요하다는 말 가운데의 참됨[]’고요함[]’ 두 글자 역시 저절로 다릅니다. 대개 참됨이란 본체(本體)를 가리킨 말이고, ‘고요함이란 처음에 아직 사물에 느끼지 않았을 때를 말합니다. 명도 선생은 사람이 태어날 때 고요한 것 이상은 말로 할 수 없다. 본성을 말하자마자 이미 본성이 아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대개 사람이 나면서 고요하다는 것은 단지 감정이 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는 천성(天性)의 온전함을 볼 수 있을 뿐이지 진실로 고요함으로써 본성을 형상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뜻은 이러한데 맞는지요?

至謂字所以形容天性之妙, 不可以動靜眞妄言, 則熹却有疑焉. 蓋性無不該, 動靜之理具焉. 若專以靜字形容, 則反偏却性字矣. 記以靜爲天性, 只謂未感物之前, 私欲未萌, 渾是天理耳, 不必以靜字爲性之妙也. 眞妄又與動靜不同, 性之爲性, 天下莫不具焉, 但無妄耳. 今乃欲幷與其眞而無之, 此韓公道無眞假之言所以見譏於明道也. 伊川所謂其本眞而靜者, ‘’‘兩字亦自不同. 蓋眞則指本體而言, 靜則但言其初未感物耳. 明道先生云: ‘人生而靜之上不容說, 纔說性時便已不是性矣.’ 蓋人生而靜只是情之未發, 但於此可見天性之全, 非眞以靜狀性也. 愚意如此, 未知中否?

 

 

호광중에게 답함 答胡廣仲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호식에게 쓴 편지이다. 함양(涵養)공부, 󰡔태극도설󰡕의 태극과 음양, 본성과 욕구 등에 대해서 논하였다.

 

편지에서 전날의 학문하는 병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보니 당신이 왕성하게 진보하여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후학들이 두터운 은혜를 입었지만 제가 보기에 아직도 미진한 것이 있는 듯합니다. 대개 함양(涵養)에 힘쓰지 않고 앎을 이루는 것에만 오로지 하는 것이 참으로 전에 병을 얻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이 정밀하지 못하여 함양(涵養)에 해를 끼치는 것이 오늘날 몸에 절실한 병입니다. 만약 현재 아는 것을 지키면서 함양의 공력을 가하여 그 부족함을 보충하려고 할 뿐이라면, 끝내 병이 생겨 안팎을 합하는 도에 합치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반드시 현재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버리고서, 함양과 사물에 이르기의 두 가지 공부에 나아간다면 옳을 것입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논한 내용은 다 과거에 앎을 이루어 얻은 것으로, 그 병은 왼쪽에만 베푸는 것과 같습니다. 수용하여 도모하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熹承諭向來爲學之病, 足見高明所進日新之盛. 一方後學, 蒙惠厚矣. 然以熹觀之, 則恐猶有所未盡也. 蓋不務涵養而專於致知, 此固前日受病之原 : 而所知不精, 害於涵養, 此又今日切身之病也. 若但欲守今日之所知而加涵養之功以補其所不足, 竊恐終未免夫有病, 而非所以合內外之道. 必也盡棄今日之所已知而兩進夫涵養格物之功焉, 則庶乎其可耳. 蓋來書所論, 皆前日致知之所得也, 而其病有如左方所陳者, 伏惟幸垂聽而圖之.

 

태극(太極)의 뜻은 주자(周子: 周敦頤)가 앞에 그림을 그리고 뒤에 설명을 달아서 연관하여 뜻을 밝혔습니다. 그것은 바르고 통달하여 절대 털끝만치라도 의심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예전에 전하는 󰡔태극도설󰡕은 모두 오류가 있었는데, 다행히 이 판본에서 빠진 부분이 다른 판본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서로 참고하여 개정하였습니다. 다시 개정한 부분은 다 전거가 있으며 사사로운 내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구본 󰡔태극도󰡕들은 그림이 이미 서로 다르다. 그리고 설명靜而生陰이라는 구절의 자 아래 대부분 자가 있다. 그림과 위아래 문맥에 따라 헤아려서 삭제하였다.) 만약 논하신 바와 같이 반드시 구본 그림을 근거로 삼아서 곡진하게 해설한다면 뜻은 정교합니다. 그러나 이미 첫 번째 구역을 음정(陰精)으로 삼고 두 번째 구역을 양동(陽動)으로 삼는다면, 태극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먼저 양()이 없는 음()이 있다가 나중에 음을 겸한 양이 있다.’라고 했는데, 주자(周子)의 본래 말에는 애초부터 이런 뜻이 없고 천지의 조화도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정자가 말한 딱 끊어져 음이 되고 양이 되는 이치는 없다.’라는 것은 곧 주자(周子)가 말한 서로 그 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정자가 말한 오르고 내리는 것과 살리고 죽이는 것의 큰 구분은 없을 수 없다.’라는 것은 주자(周子)가 말한 나누어진 음()과 나누어진 양()’입니다. 두 구절이 서로 결합되어야 뜻이 완비됩니다. 그러므로 두 선생께서는 두 구절을 말하면서 편파적으로 어느 하나를 폐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편파적으로 어느 하나만을 들어 제시하면서 적용하는 것 또한 그 자리에 마땅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논하신 내용에서 먼저 전일(專一)한 음이 있은 뒤에 본체를 겸한 양이 있다고 한 것은 심하게 단절된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첫 번째로 의심하는 것입니다.

夫太極之旨, 周子立象於前, 爲說於後, 互相發明, 平正洞達, 絶無毫髮可疑. 而舊傳圖說皆有繆誤, 幸其失於此者猶或有存於彼, 是以向來得以參互考證, 改而正之. 凡所更改, 皆有據依, 非出於己意之私也. (舊本圖子旣差, 而說中靜而生陰’, ‘下多一, 亦以圖及上下文意考正而削之矣.) 若如所論, 必以舊圖爲據而曲爲之說, 意則巧矣. 然旣以第一圈爲陰靜, 第二圈爲陽動, 則夫所謂太極者果安在耶? 又謂先有無陽之陰, 後有兼陰之陽, 則周子本說初無此意, 而天地之化似亦不然. 且程子所謂無截然爲陰爲陽之理, 卽周子所謂互爲其根也. 程子所謂升降生殺之大分不可無者, 卽周子所謂分陰分陽也. 兩句相須, 其義始備. 故二夫子皆兩言之, 未嘗偏有所廢也. 今偏擧其一, 而所施又不當其所, 且所論先有專一之陰, 後有兼體之陽, 是乃截然之甚者, 此熹之所疑者一也.

 

사람이 태어나면서 고요하다.”는 것은 사람이 태어난 처음에 아직 느낌이 없을 때가 곧 혼연(渾然)한 천리라는 것을 말합니다. “사물에 느껴서 움직이는 것은 본성의 욕구이다.”는 것은 느낌이 있을 때 곧 이치가 발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자(程子: 程頤)안자소호하학론(顔子所好何學論)에서 이것을 매우 상세히 논했습니다. 다만 마음을 화평하게 갖고 기운을 편안하게 하여 자세히 음미하면서 천천히 생각한다면 저절로 마땅히 의리가 밝혀지고 온당한 곳을 볼 수가 있게 될 것이니, 꼭 이렇게 억지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과 힘을 허비할 것이 없습니다. 정자가 말한 항구적인 이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감응 이전의 때에 이치의 정체(定體)가 이러할 뿐이라는 것이지, 보내주신 편지에서 말한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두 번째로 의심하는 것입니다.

人生而靜, 天之性, 言人生之初, 未有感時便是渾然天理也. ‘感物而動, 性之欲, 言及其有感, 便是此理之發也. 程子於顔子好學論中論此極詳, 但平心易氣, 熟玩而徐思之, 自當見得義理明白穩當處, 不必如此强說, 枉費心力也. 程子所謂常理不易者, 亦是說未感時理之定體如此耳, 非如來諭之云也. 此熹之所疑者二也.

 

󰡔지언의의(知言疑義)󰡕에서 말한 감정도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이다.”라고 한 구절은 곡절이 좀 있지만 그 본래의 뜻은 저절로 분명합니다. 이제 다만 감정도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가 되는 까닭이다.’라고 고친다면 말의 뜻이 곡절하게 갖추어집니다. 대개 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 등이 발하지 않으면 절도에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없습니다. 발생하여 절도(節度)에 맞지 않는다면 또한 어떻게 ()’라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본성과 감정을 주재하고 이치도 분명하다면 지금 증거를 따로 끌어 올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내 마음을 가지고 본다면 감정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 지각(知覺)이 어둡지 않는 것이, 어찌 마음이 본성을 주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미 발생하여 품절(品節)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어찌 마음이 감정을 주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는 그윽한 곳과 밝은 곳, 위와 아래 등에 관통하여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장소나 형체로서 논할 수 없습니다. 이제 감정에 대해 두루 통하는 도라고 여긴다면 꼭 마음을 말할 것은 없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마음을 이미 발생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으로 예전의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에는 마음이 없다고 하여도 괜찮을까요? 이런 뜻은 정자가 여박사(呂博士: 呂大臨)에게 답한 마지막 편지에서 이미 분명합니다. 지금 그것을 살펴보지 않고 반드시 옛 주장의 잘못을 고집하시니, 이것이 제가 세 번째로 의심하는 것입니다.

知言疑義所謂情亦天下之達道’, 此句誠少曲折, 然其本意却自分明. 今但改云情亦所以爲天下之達道也’, 則語意曲折備矣. 蓋非喜怒哀樂之發, 則無以見其中節與否 : 非其發而中節, 則又何以謂之和哉? 心主性情, 理亦曉然. 今不暇別引證據. 但以吾心觀之, 未發而知覺不昧者, 豈非心之主乎性者乎? 已發而品節不差者, 豈非心之主乎情者乎? 心字貫幽明通上下, 無所不在, 不可以方體論也. 今曰以情爲達道, 則不必言心矣’, 如此則是專以心爲已發, 如向來之說也. 然則謂未發時無心可乎? 此義程子答呂博士最後一書說已分明, 今不察焉而必守舊說之誤, 此熹之所疑者三也.

 

성선설(性善說)의 선()이 악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은, 본래 구산(龜山)이 승려 상총(常摠)한테 들은 것을 완곡히 돌려서 말한 것으로 또한 병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성의 선()에 아직 상대할 만한 악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옳지만, ‘끝내 상대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옳지 않습니다. 대개 본성은 하나일 따름이므로 이미 선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말하면 본성의 가운데 다시는 본성과 상대될 악이 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 이름을 얻게 된 까닭은 곧 악을 상대로 해서 말한 것이니, ‘성선(性善)’이라고 말하는 것은 천리를 인욕에서 분별하려는 까닭입니다. 비록 천리와 인욕이 동시에 같이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 앞과 뒤, 공평함과 사사로움, 사특함과 바름 등의 반대됨으로써 본다면 상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상대가 없는 선이 따로 있다.’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이 또한 제가 네 번째로 의심하는 것입니다.

性善之善不與惡對, 此本龜山所聞於浮屠常總者, 宛轉說來, 似亦無病. 然謂性之爲善未有惡之可對則可, 謂終無對則不可. 蓋性一而已, 旣曰無有不善, 則此性之中無復有惡與善爲對亦不待言而可知矣. 若乃善之所以得名, 是乃對惡而言. 其曰性善, 是乃所以別天理於人欲也. 天理人欲雖非同時竝有之物, 然自其先後公私邪正之反而言之, 亦不得不爲對也. 今必謂別有無對之善, 此又熹之所疑者四也.

 

󰡔중용󰡕에 대한 그림과 설명은 참으로 부당합니다. 그 설명의 병은 바로 너무 심하게 분석하면서 다시 남은 맛으로 학자들이 무젖어서 씹어보기를 기다리지 않은 데 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는 반대로 분석하여 말하였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분석하여 설명하는 것일까요? 하늘이 명한 본성은 형용할 수도 없고 꼭 찬탄(贊歎)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그 골자와 실체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본성을 말하는데 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만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네 글자로써 그것을 말하는 것이 가장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성을 따르는 도()란 곧 이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가 아님이 없고, 역시 이 네 글자를 떠나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정자는 ()은 본성이고, 효제(孝悌)는 쓰임이다. 본성 가운데는 인의예지만 있다. 어찌 효제가 있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천지 만물의 이치는 이 네 가지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 이것을 거꾸로 이야기하면서 도리어 인의(仁義)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해서 이름을 얻었다.’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이 제가 다섯 번째로 의심하는 것입니다.

中庸鄙說誠有未當, 然其說之病正在分曉太過, 無復餘味, 以待學者涵泳咀嚼之功. 而來諭反謂未曾分曉說出, 不知更欲如何, 乃爲分曉說出耶? 天命之性不可形容, 不須贊歎, 只得將它骨子實頭處說出來, 乃於言性爲有功. 故熹只以仁智四字言之, 最爲端的. ‘率性之道’, 便是率此之性, 無非是道, 亦離此四字不得. 如程子所謂, ‘仁性也, 孝悌是用也. 性中只有仁智而已, 曷嘗有孝弟來? ’此語亦可見矣. 蓋父子之親兄弟之愛固性之所有, 然在性中只謂之仁, 而不謂之父子兄弟之道也. 君臣之分朋友之交亦性之所有, 然在性中只謂之義, 而不謂之君臣朋友之道也. 推此言之, 曰禮曰智, 無不然者. 蓋天地萬物之理無不出於此四者. 今以此爲倒說, 而反謂仁義因父子君臣而得名, 此熹之所疑者五也.

 

중화(中和)와 체용(體用)에 관한 말도 구절 가운데 의미가 굽히고 꺾인 곳이 있습니다. 대개 ()’이란 본성의 덕과 도의 본체를 형용한 것이고, ‘()’란 감정의 바름과 도의 쓰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저의 이전의 말에서 과실은 중화(中和)로써 체용으로 삼은 것이니, 이것은 네모와 원을 하늘과 땅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이미 이런 뜻체용을 형용한 뜻으로 옛 말을 개정하였습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의심한 내용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말하기를 ()이란 지나침과 모자람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아직 발하지 않은 중이 드러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여섯 번째로 의심하는 것입니다.

中和體用之語, 亦只是句中少曲折耳. 蓋中者所以狀性之德而形道之體, 和者所以語情之正而顯道之用. 熹前說之失, 便以中和爲體用, 則是猶便以方圓爲天地也. 近已用此意改定舊語. 如來諭所疑, 却恐未然. 又云中自過不及而得名, 此亦恐說未發之中不著. 此熹之所疑者六也.

 

()에 대한 말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두 번에 걸쳐 흠부(欽夫: 張軾)의 편지를 받고는 매우 정밀하게 힐난하여 다 이미 답하였습니다. 근래에 답장을 받아 보니 이미 의심이 풀렸습니다. 이제 당신의 편지를 보니 그 때의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다시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인용하신 󰡔맹자󰡕지각(知覺)’이라는 두 글자는 상채(上蔡: 謝良佐)가 말한 뜻과 다른 것 같습니다. 맹자가 말한 지각이란 이 일을 알고 이 이치를 깨달아야 배움과 앎이 지극해진다는 것입니다. 상채가 말한 지각이란 아프고 가려운 곳을 알고 반응酬酌할 수 있는 것이 곧 마음의 쓰임이요 앎의 단서라는 것을 뜻합니다. 이 두 가지도 서로 다르지만 그 대체(大體)는 모두 앎의 일입니다. 지금 인()에 대해 말한 것은 모순이 많고 합치되는 것이 적습니다. 번민하고 교만하고 험하고 얇다고 하는 것이 어찌 상채를 가리켜 말한 것이겠습니까? 다만 배우는 사람들 가운데서 인()의 말뜻을 모른데다 또 어떻게 존양(存養)하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부릅뜨고서 지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컨대 상채의 말투 사이에도 미세한 지각에 대하여 적으나마 애착이 있으니 반드시 이런 병에 관련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릇 사랑을 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옳지 않지만 사랑의 이치는 곧 인()의 본체()입니다. 천지 만물이 나와 한 몸이 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이치가 이것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 네 글자가 다 본성의 덕()이어서, 곧 자연스레 내재하고 있는 이치란 억지로 의도한다고 하여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은 곧 사랑의 이치이고 삶의 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에 나아가서 또한 네 가지 덕목을 포괄할 수 있는 것이 학문의 요점입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자세히 보면 다 이러한 내용을 살피지 않은 것 같으니, 이것이 제가 일곱 번째로 의심하는 것입니다. (회숙(晦叔)의 편지에서 논한 것이 대략 내 뜻과 같으므로 다시 다른 답을 하지 않고 다만 이 부분만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대저 인() 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와 예()와 지() 자를 관통해서 보아야 경계가 분명해지고 혈맥이 관통됩니다. 근세의 학자들이 인() 자를 탐내어 말하면서 나머지 세 덕목을 소홀히 함으로써 그 근거가 사라지게 되었고, 끝내는 인 자와 함께 관련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至於仁之爲說, 昨兩得欽夫書, 詰難甚密, 皆已報之. 近得報云却已皆無疑矣. 今觀所諭, 大槪不出其中者, 更不復論. 但所引孟子知覺二字, 却恐與上蔡意旨不同. 蓋孟子之言知覺, 謂知此事覺此理, 乃學之至而知之盡也. 上蔡之言知覺, 謂識痛庠能酬酢者, 乃心之用而知之端也. 二者亦不同矣. 然其大體皆智之事也. 今以言仁, 所以多矛盾而少契合也. 憤驕險薄, 豈敢輒指上蔡而言? 但謂學者不識仁之名義, 又不知所以存養, 而張眉努眼, 說知說覺者, 必至此耳. 如上蔡詞氣之間亦微覺少些小溫粹, 恐亦未必不坐此也. 夫以名仁固不可, 然愛之理則所謂仁之體也. 天地萬物與吾一體, 固所以無不愛, 然愛之理則不爲是而有也. 須知仁智四字一般, 皆性之德, 乃天然本有之理, 無所爲而然者. 但仁乃愛之理, 生之道, 故卽此而又可以包夫四者, 所以爲學之要耳. 細觀來諭, 似皆未察乎此, 此熹之所疑者七也. (晦叔書中論此大略與吾丈意同, 更不及別答, 只乞轉以此段呈之. 大抵理會字須幷三字通看, 方見界分分明, 血脈通貫. 近世學者貪說字而忽略三者, 所以無所據依, 卒幷與字而不識也.)

 

무릇 보내주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몇 가지는 모두 옛날 책에서 전해들은 것과는 현격하게 다르니, 이것은 앎을 이루는 공부가 또한 정밀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의심하는 바로써 본다면 정밀함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도리어 하나만을 파고드는 과실을 범한 듯합니다. 대저 천하 사물의 이치는 정당(停當)하고 균등하여 상대가 없는 것이 없으나 도()만은 상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형이상과 형이하로 이것을 논한다면 또한 반드시 상대가 있습니다. ‘상대라고 하는 것은 왼쪽-오른쪽, -아래, -, 많음-적음, 같은 것끼리의 상대, 반대되는 것끼리의 상대 등이 있습니다. 반복해서 미루어 나가면 천지 사이에 우뚝 솟아 상대 없이 고립적인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이것이 정자(程子)가 한밤중에 생각하다가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손을 너울거리고 발을 굴렀던 까닭입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궁구해 보면 조목은 참으로 많지만 그 뜻은 항상 상대가 없는 한 가지를 따로 두어 그것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릇 왼쪽-오른쪽의 상대에 대해서는 그 한 쪽만 붙들어 일으키고, -뒤의 상대에 대해서는 한 부분을 잘라 버립니다. 이미 상대가 없는 존귀한 이름으로써 그 주된 것을 강제로 첨가하면서도, 그 천시되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개념을 열거하여 다시 별도의 한 자리로써 배정하는 것을 피하지 못합니다. 이에 왼쪽-오른쪽 중에서 한쪽만 피폐해지고, 머리-꼬리가 단절되고, 위치가 중첩되고, 조리가 뒤엉킵니다. 그래서 세상 이치의 정황상 모든 것에 우수리와 혹이 생기고 옆이 솟아 있고 끝이 경사져 다시는 정제(整齊)되거나 평정(平正)한 곳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무릇 논의하신 음-, 움직임-고요함, -, -의 등에 대한 설명은 다 한 가지 틀에서 이탈하여 나온 것입니다. 항상 이런 의미와 규모를 가슴 속에다 안배(安排)하고 있으면 끝내 중정(中正)하고 화락(和樂)한 경지에 이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아는 것이 정밀하지 않으면 함양(涵養)하는 데 방해가 된다.”라고 말했던 까닭입니다. 만약 반드시 이런 것하나의 틀로 환원하는 것을 고수하면서 함양의 공()을 조금만 가하고, 따로 한 가지 일로 밖을 도움으로써 안팎의 도를 합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 반드시 오래된 습관을 깔끔히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평안하게 하여 의리가 놓여 있는 곳을 서서히 관찰하신다면 좋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저의 어리석음을 비루하게 여기지 말고 함께 논의하면서 지극히 타당한 귀결 처를 추구하였으면 합니다. 품은 뜻을 다하고 문장을 널리 배우되 예로써 요약하기를 감히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개 천하의 공적인 이치는 한 가문에서 사사로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당신에게 유익함이 없다고 한다면 꼭 저의 얕고 고루한 점을 경계해 주십시오.

 

夫來敎之爲此數說者, 皆超然異於簡冊見聞之舊, 此其致知之功亦足以爲精矣. 然以熹之所疑考之, 則恐求精之過而反失之於鑿也. 大抵天下事物之理亭當均平, 無無對者, 唯道爲無對. 然以形而上下論之, 則亦未嘗不有對也. 蓋所謂對者, 或以左右, 或以上下, 或以前後, 或以多寡, 或以類而對, 或以反而對, 反復推之, 天地之間眞無一物兀然無對而孤立者. 此程子所以中夜以思, 不覺手舞而足蹈也. 究觀來敎, 條目固多, 而其意常主於別有一物之無對, 故凡以左右而對者則扶起其一邊, 以前後而對者則截去其一段. 旣彊加其所主者以無對之貴名, 而於其所賤而列於有對者又不免別立一位以配之, 於是左右偏枯, 首尾斷絶, 位置重疊, 條理交倂. 凡天下之理勢, 一切畸零贅剩, 側峻尖斜, 更無齊整平正之處. 凡此所論陰陽動靜善惡仁義等說, 皆此一模中脫出也. 常安排此箇意思規模橫在胸中, 竊恐終不能到得中正和樂廣大公平底地位. 此熹所以有所知不精害於涵養之說也. 若必欲守此, 而但少加涵養之功, 別爲一事以輔之於外, 以是爲足以合內外之道, 則非熹之所敢知矣. 要須脫然頓舍舊習, 而虛心平氣, 以徐觀義理之所安, 則庶乎其可也. 仰恃知照, 不鄙其愚, 引與商論, 以求至當之歸, 敢不磬竭所懷, 以求博約. 蓋天下公理非一家之私, 儻不有益於執事之高明, 則必有警乎熹之淺陋矣.

 

 

 

호광중에게 답함 答胡廣仲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6(경인, 1170, 41)에 호식에게 쓴 편지이다. 모친상을 당했을 때의 근황이 드러나 있다.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못하여 우러르는 마음 매우 깊습니다. 날씨가 서늘한데 평소 도를 맛볼 때 신령께서 살펴주고, 존체에 만복이 깃들길 바랍니다. 저는 슬프고 괴로워하면서도 죽지 못하고 있는데 불현듯 가을이 되어 아프고 쪼개지는 감정을 스스로 견딜 수 없자 이에 분산(墳山)에 왔습니다. 다행히 예부터 사귄 친근한 한 두 벗이 있어서 날을 보내지만, 실제로는 죽는 것만 못합니다. 흠부(欽夫: 張軾)가 부름을 받아 임용된 것이 사람들의 소망을 위로하였지만, 다만 조정에 나아간 뒤로 지금까지 아직 편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듣자하니 회숙(晦叔: 吳昱)도 돌아왔다고 하는데 오래도록 오지 않으니 마음에 어른거릴 따름입니다. 당신께서는 요즘에 어떤 글을 보시는지요? 어떻게 공부하는지요? 하시는 바가 날로 증진되리라 생각하지만 그와 관련하여 질문이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예전에 인편을 통해 흠부와 택지(擇之: 林用中)에게 두 편지를 붙인 적이 있는데, 당신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이 편지는 새로 청원주부(淸遠主簿)에 부임하는 양자직(楊子直)에게 주어 그가 광서로 들어가 악전을 들렀을 때 위촉받은 심부름꾼이 만나서 전해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두어 달을 머물면서 강론이 더 상세해지자 움직임과 고요함을 물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독실하게 학문에 뜻을 두었으니, 벗들 사이에서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양자직가 혹시라도 편지를 보내고자 한다면 인편을 찾아서 보내라고 해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여기에 급하게 쓰느라 다른 것을 언급하지 못하였습니다. 멀리서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없으니, 항상 건강하시고 많은 행운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久不聞問, 向仰良深. 卽日秋凉, 伏惟燕居味道神相, 尊候萬福. 熹哀苦不死, 忽見秋序, 觸緖傷割, 不能自堪, 時來墳山. 幸有一二朋友溫繹舊聞, 且爾遣日, 實則不若無生之愈也. 欽夫召用, 甚慰人望. 但自造朝, 至今未收書. 傳聞晦叔且歸, 亦久未至, 使人懸情耳. 吾丈比來觀何書? 作何功夫? 想所造日益高明, 恨無從質問. 向嘗附便寄呈與欽夫擇之兩書, 不審於尊意云何? 有未中理, 幸賜指誨. 此書附新淸遠主簿楊子直(), 因其入廣西, 取道嶽前, 屬使求見. 渠在此留幾兩月, 講會稍詳, 此間動靜可問而知. 其人篤志於學, 朋友間亦不易得也. 恐其或欲寓書, 告爲尋便遣來, 幸甚幸甚今日當還家, 臨行草草布此, 不能它及. 邈無承敎之期, 惟冀以時珍衛, 千萬幸甚

 

다시 인사 올리면서 부인의 안부를 묻습니다. 만복이 깃드시고 가족 모두에게 경사가 있기를 빕니다. 백봉(伯逢: 호굉의 막내아들) 형께는 인사하는 편지를 보내지 못하던 차에 마침 어제 정사법(鄭司法)이 갈 때 편지를 보냈는데 도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양자직도 그를 만나고자 하니 파견한 사람에게 이 뜻을 함께 전해주시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다시 인사 올리면서 안부를 묻습니다.

熹再拜上問閣政孺人, 伏惟懿候萬福, 郞娘均慶. 伯逢兄不及拜狀, 昨鄭司法行, 已嘗寓書矣, 不知達否? 子直亦欲求見, 幸遣人導之, 幷及此意, 此委勿外. 熹再拜上問.

 

 

지난번에 계립 형의 위문을 받은 것에 대하여 소를 갖추어 감사의 말을 올리고자 하는데, 또한 양자직이 여러 곳을 들러 가므로 오히려 늦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집에 돌아와 편지를 써서 자비(子飛)가 있는 곳에 붙였는데 먼저 도착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인사 올립니다.

昨承季立兄慰問, 欲具疏上謝, 又恐子直之行繚繞, 反致稽緩. 旦夕還家, 作書附子飛處, 未必不先達也. 熹又覆.

 

오회숙에게 보냄 與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6(경인, 1170, 41)에 오욱(吳昱)에게 쓴 편지이다. 묘와 신주의 위치에 대해서 논하였다.

 

문숙(文叔)이 내보인 여러 선생과 함께 고친 제의에 대해서 그간에 조금 의심이 있었습니다. 제 의심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노니, 여러 선생과 함께 평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묘는 반드시 동향으로 한다.”는 한 구절에 대해 의심이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묘당을 남향으로 하였고, ()은 그 북쪽에 두었는데 동쪽에 문을 두고 서쪽에 창문을 두었습니다.(모두 남향) 실의 서남 모퉁이를 깊숙한 곳으로 삼아 높은 자가 거처하였으므로 신주를 거기에 모셨습니다. 󰡔󰡕에서 말한 종실의 창 아래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신주가 이미 서쪽 벽 아래에 있다면 동향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을 거행할 때 주인이 문으로 들어와 서향하여 경배합니다. 󰡔의례󰡕특생궤식례소뢰궤식례 등의 편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통전󰡕 「개원례󰡕석전의등에는 당 위 서쪽 벽 아래에 옛 성현을 동향으로 자리를 설한다. 그러므로 삼헌관이 서향인 것은 옛 제도와 흡사하다. 지금 신위가 남향이면서 헌관은 오히려 서향인 것은 과실이다.) 모든 묘는 다 남향이고 신주는 다 동향입니다. 협제(袷祭) 때에만 많은 묘의 신주가 다 올라갑니다. 그렇게 하여 태조와 함께 음식상을 차릴 때에는 태조의 신주를 예전대로 동향으로 하고, 모든 소()는 남향으로, 모든 목()은 북향으로 하여 태조의 앞에 배열합니다. 이것은 전대의 예관이 태조는 정동향의 자리에 둔다고 말한 것으로 협제 때를 가리킵니다. 협제 때가 아니라면 모든 묘의 신주는 그 묘의 가운데 두어 동향으로 합니다. 따라서 묘란 애초부터 동향이 아닙니다.

文叔出示近與諸公更定祭儀, 其間少有疑, 輒以請敎, 幸與諸公評之. ‘廟必東向’, 此一句便可疑. 古人廟堂南向, 室在其北, 東戶西牖. (皆南向) 室西南隅爲奧, 尊者居之, 故神主在焉. 詩所謂宗室牖下者是也. 主旣在西壁下, 卽須東向, 故行事之際, 主人入戶, 西向致敬. 試取儀禮特牲少牢饋食等篇讀之, 卽可見矣. (今通典開元禮釋莫儀猶於堂上西壁下設先聖東向之位, 故三獻官皆西向, 彷佛古制. 今神位南向, 而獻官猶西向, 失之矣.) 凡廟皆南向, 而主皆東向, 惟袷祭之時, 群廟之主皆升, 合食于太祖之時, 則太祖之主仍舊東向, 而群昭南向, 群穆北向, 列於太祖之前. 此前代禮官所謂太祖正東向之位者, 爲袷祭時言也, 非袷時則群廟之主在其廟中無不東向矣, 廟則初不東向也.

 

주공섬(朱公掞)이 기록한 두 선생 어록에 처음으로 묘를 동향으로 한다는 말이 있는데, 상고해보아도 자세하지 않으니 아마도 잘못된 기록인 듯합니다. 게다가 예서에서 종묘를 왼쪽으로 한다.”고 하였다면 묘는 이미 거처의 동남쪽에 있습니다. (예가들에 따르면 마땅히 사병(巳丙)쪽을 위쪽으로 해야 한다.) 또한 동향이라고 한다면 중정(中庭)에서 묘로 들어가는 문도(門道)와 완전히 배치되므로 사람들의 정서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어록에서는 자가 바뀌어 잘못 들어간 것으로 의심됩니다. 그러나 그 뒤 구절에서 태조를 동향으로 한다고 했으니 묘는 남향으로 하여 협제의 신위처럼 신주를 배열하니 (당 나라 󰡔예각신의󰡕의 제사 그림에서 신위를 설한 것을 보면 증조는 서쪽 벽 아래 동향으로 하고, 조부는 북쪽 벽 아래 남향으로 하고 아버지는 동쪽 계단 위에 북향으로 한다.) 또한 요즘 사람들의 정사와 부합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와 같이 모순되어 다 따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또한 그 말을 헤아려보면 나중에 이천 선생이 교정한 제의(祭儀)의 법식과도 부합하지 않으니, (이천 선생은 사월 중월에 제사를 드렸으나 이 기록에서는 가을 중양절이라고 하였고 중월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천 선생은 신주를 만들어 칠을 바르고 글 등을 썼으니, 이것을 패자(牌子)를 새긴다고 표현하였다.) 의심컨대 당시 초창기의 결정되지 않은 의론입니다. 이것은 다 어록의 오류입니다.

至朱公掞錄二先生語, 始有廟必東向之說, 恐考之未詳, 或記錄之誤也. 且禮左宗廟’, 則廟已在所居之東南. (禮家謂當直巳丙上.) 若又東向, 則正背却中庭門道, 於人情亦不順矣. 故疑語錄恐是錯. 然其後又言太祖東向, 則廟當南向而列主, 如袷祭之位. (唐禮閣新儀祭圖設位, 曾祖在西璧下, 東向 : 祖北壁下, 南向 : 父阼階上, 北向.) 又恐於今人情或不相稻. 抵牾如此, 似難盡從. 又考其說, 與後來伊川所定祭儀主式亦不相合, (伊川以四仲月祭, 而此錄秋用重陽, 非仲月. 伊川作主, 粉塗書屬稱, 而此云刻牌子.) 疑亦當時草創末定之論. 此皆語錄之誤也.

 

또한 지금의 의례는 동지에 시조(始祖)와 조묘(祧廟)의 신주에 제사를 드립니다. 동지에 시조에게 제사를 드리고 입춘에 선조에게 제사를 드리고 계추에 녜묘(禰廟)에 제사를 드리니, 이것은 이천의 제의에서 유래합니다. 대개 천시를 취하고 사물의 모습을 참작하여서 그 뜻이 정밀합니다. 이제 실천할 수 없다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예컨대 실천하면서도 다하지 못하고, 다시 자기의 뜻으로 옛 문장을 뜯어 고치어 선현이 세워놓은 정미한 뜻을 잃는다고 한다면, 차라리 행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신의(新義)의 오류입니다. 기타 완비되지 않은 소소한 문장들은 하나하나 정돈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 두 개의 큰 절목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험사아 여러 선생들과 의논해 보십시오.

又今儀冬至祭始祖幷及祧廟之主, 夫冬至祭始祖, 立春祭先祖, 季秋祭禰廟, 此伊川之所義起也. 蓋取諸天時, 參以物象, 其義精矣. 今不能行則已, 如其行之而又不盡, 更以己意竄易舊文, 失先賢義起精微之意, 愚意以爲殆不若不行之爲愈也. 此則新儀之誤矣. 其餘小小節文未備處, 末暇一一整頓, 只此兩大節目, 似不可不正. 試與諸公議之. 如何如何?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6(경인, 1170, 41)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귀신의 굴신왕래, 주 나라의 정월이 간지(干支) 중 어디에 해당하는 지 등에 대해서 논하였다.

 

별지에서 물었던 세 가지 일은 다 제가 언급할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즘 옛 글을 읽을 때면 예전의 강설에 항상 지나치게 고원한 폐단이 있었던 것을 후회합니다. 예컨대 문왕과 무왕의 도는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주 나라 선왕이 제작하여 세상에 전했던 것이 공자 당시에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공자가 어찌 배우지 않았으랴만, 또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겠는가?”라는 구절도 자공의 진실한 말입니다. 예컨대 공자가 비록 나면서 알았을지라도 어찌 배운 적이 없겠습니까? 또한 어느 것인들 스승이 아니었겠습니까? 다만 그의 학문은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예컨대 순 임금이 하나의 좋은 말을 듣고 하나의 좋은 행동을 보면 양자강과 황하를 트면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배우지 않을 수 없고 스승을 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인이 나면서 아는 까닭입니다. 예컨대 예전에는 도의 본체가 사라진 때가 없으므로 성인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하는 것마다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하였는데, 이런 설명이 비록 이치를 해치지 않을지라도 끝내 자공이 당시에 문답했던 뜻이 아닙니다. 기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에서 하나하나 분석할 겨를이 없습니다.

別紙所詢三事, 皆非淺陋之所及. 然近者竊讀舊書, 每恨向來講說常有過高之弊. 如文武之道未墜於地, 此但謂周之先王所以制作傳世者, 當孔子時夫盡亡耳. ‘夫子焉不學 而亦何常師之有?’, 此亦是子貢實語. 如孔子雖是生知, 然何嘗不學, 亦何所不師? 但其爲學與他人不同, 如舜之聞一善行, 便若決江河, 莫之能禦耳. 然則能無不學, 無不師者, 是乃聖人之所以爲生知也. 若向來則定須謂道體無時而亡, 故聖人目見耳聞, 無適而非學, 雖不害有此理, 終非當日答問之本意矣. 其他亦多類此不暇一一辨析也.

 

귀신이란 조화의 자취이며, 굽힘/폄과 감/옴은 두 기의 타고난 능력입니다. 천지가 오르고 내리는 것, 해와 달이 차고 기우는 것, 만물이 불어났다 죽는 것, 변화하면서 차고 비는 것 등에는 하나라도 귀신이 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귀신에게 비록 형체와 소리가 없을지라도 만물에 두로 통하는 본체가 되어 어떤 사물이라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귀신의 조화는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제계하고 깨끗이 하여 옷을 입고서 제사를 모시게 하면서, 충만하여 흐르듯 그 위에 있는 것과 같고 그 좌우에 있는 같으므로, 빠뜨릴 수 없이 환하게 드러나게 되고 가릴 수 없습니다. 이전 선배들이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혹 자가 탈락되어 귀신은 사물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이 생긴 것 같지만, 사물이란 본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보내주신 편지에도 이 글자가 탈락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붓으로 옮겨 쓰면서 잘못되지 않았을까요?

鬼神者, 造化之迹, 屈伸往來, 二氣之良能也. 天地之升降, 日月之盈縮, 萬物之消息, 變化盈虛, 無一非鬼神之所爲者. 是以鬼神雖無形聲, 而遍體乎萬物之中, 物莫能遺. 觀其能使天下之人齊明盛服以承祭祀, 便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便見不可遺, 著見章灼, 不可得而揜矣. 前輩引用此句, 或有脫了字者, 乃似鬼神有不遺物之意, 非物自不可得而遺也. 來喩亦脫此字, 恐或筆誤而然耶?

 

󰡔춘추󰡕에서 정월이란 이천의 말에 근거한다면 주 나라가 자()의 달을 정월로 삼은 것일 뿐입니다. 다만 봄이 아닌데도 봄이라고 쓴 것은, 공자에게 하 나라 역을 행하려는 뜻이 있어서 천시에 가탁하여 뜻을 세웠을 따름입니다. 문정(文定: 胡安國)󰡔상서󰡕“12”, 한 나라 역사책에 나오는 겨울 10등을 인용하여 주 나라가 월력을 바꾸지 않았다고 증명하니,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맹자󰡕로써 본다면 7월과 8월은 오()와 미()의 달에 해당하므로 덥고 비가 내리면서 새싹이 자라는 때이고, 11월과 12월은 무()와 해()의 달에 해당하므로 추워져서 다리를 만드는 때입니다. (󰡔국어󰡕에서는 󰡔하령을 인용하여 ‘10월에 다리를 만든다.’고 하였다.) 또 월의 명칭도 바꾸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또 무슨 뜻일까요? 아마 당시에는 두 종류가 함께 사람들에게 통용되었는데 다만 󰡔춘추󰡕는 나라의 정사였으므로 당시의 왕이 쓰던 정월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상서󰡕와 다른 것은 후세에 부가한 문장 때문입니다. 진 나라와 한 나라 시대에 곧바로 10월이라고 부른 것은 그 제도가 매우 간략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석가들에 의하면 10월은 나중 사람들이 미루어서 고친 것이므로 마땅히 개정해야 한다.) 저의 이러한 생각이 맞는지요? 인편을 통하여 다시 가르침을 구합니다. 한 마디 말로써 가부를 알려주시기를 깊이 바랍니다.

春秋書正, 據伊川說, 則只是周正建子之月. 但非春而書春, 則夫子有行夏時之意, 而假天時以立義耳. 文定引商書十有二月, 漢史冬十月爲證, 以明周不改月, 此固然矣. 然以孟子考之, 則七八月乃建牛建未之月, 暑雨苗長之時, 而十一月,十二月乃建戌建亥之月, 將寒成梁之候. (國語引夏今曰, ‘十月成梁’.) 又似倂改月號, 此又何耶? 或是當時二者並行, 惟人所用, 但春秋旣是國史, 則必用時王之正. 其比商書不同者, 蓋後世之彌文. 而秦漢直稱十月者, 則其制度之闊略耳. (注家謂十月乃後人追改, 當更攷之.) 愚意如此, 夫知是否? 因便復以求敎, 幸還以一言可否之, 此區區所深望也.d

 

형님께서는 요즘 무슨 책을 보는지요? 어떻게 공부하는지요? 반드시 성취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직접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경부(敬夫: 張栻)가 조그만 시험에 합격하자 이미 배운 것을 등지지 않고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았습니다. 다만 여유롭게 강론할 때에 당신이 음으로 그를 도와준 것이 적지 않습니다.

尊兄近日所觀何書? 如何用力? 想必有成規, 恨夫得面扣. 敬夫小試, 已不負所學, 使人增氣. 但從容講貫之際, 陰助爲不少矣.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6(경인, 1170, 41)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음양과 태극의 관계, 󰡔예기󰡕 「표기에 나오는 인이 오른쪽이고 도가 왼쪽이다.”는 구절등에 대해 설명했다.

 

음양과 태극의 관계는 본래 떼어놓고 말하지 않지만 우선 그렇게 해야 대체적인 뜻이 분명해집니다. 그 정밀하고 미세한 부분에 대해서 조금 잘못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선 보존하셨다가 다른 때에 조금씩 진전시켜서 자연스럽게 참뜻을 이해하게 되면 잘못을 고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이처럼 절실하게 한 두 글자를 비교하면서 에누리 없이 흠을 찾으시니, 큰 진전이 없이 그 맛을 위축시킬까 걱정됩니다. 이천의 󰡔답횡거서󰡕에서 말하기를 원컨대 다시 수양하고 사려하고 의리에 무젖어 들어가기를 오래하면 저절로 조리가 성숙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에서 옛 현자들의 마음 씀을 알 수 있습니다. 제 말이 어떠한지요? ‘()이 오른쪽이고 도가 왼쪽이라는 구절에 대한 선생(이천)의 설명에는 참으로 이유가 있어서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인이란 이처럼 친절한 경지이고, 도란 모든 것이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왼쪽과 오른쪽, 음과 양의 구별이 있습니다. 옛 사람은 도를 말할 때 신중하면서도 평온하여 하나하나 귀결처가 있었으니, 요즘 사람들이 넓게 언급하면서도 통일된 요점이 없는 것과 다릅니다.

陰陽太極之間本自難不語, 然却且要得大槪如此分明. 其間精微處, 恐儘有病在. 且得存之, 異時或稍長進, 自然見得諦當, 改易不難. 今切切如此, 較計一兩字, 迫切追尋, 恐無長進, 少氣味也. 伊川答橫渠書只云 願更完養思慮, 涵泳義理, 久之自當條暢.’ 此可見前賢之用心矣. 如何如何? 仁右道左一段, 先生說得極有曲折, 無可疑者. 蓋仁是這裏親切處, 道是衆所共由, 故有左右陰陽之別. 古人言道實平穩, 一一有下落處, 不若今人之漫無統約也.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6(경인, 1170, 41)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태극의 움직임과 고요함, 미발과 이발에 대해서 말했다.

 

()이란 변역이며 움직임과 고요함, 이발(已發)과 미발(未發)을 겸하여 말한 것입니다. 태극이란 본성과 감정의 오묘함이어서 움직임과 고요함, 미발과 이발을 통일하는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역에 태극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움직이고 고요하고 닫히고 열리는 때에 항상 이 이치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자가 이발만을 지시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또한 이발의 설을 기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참으로 온당치 못하며 정 선생의 말이 분명합니다. 형님의 뜻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夫易, 變易也, 兼指一動一靜, 已發未發而言之也. 太極者, 性情之妙也, 乃一動靜, 未發已發之理也. 故曰易有太極, 言卽其動靜闔闢而皆有是理也. 若以字專指已發爲言, 是又以必爲已發之說也. 此固未當, 程先生言之明矣, 不審尊意以爲如何?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6(경인, 1170, 41)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주 나라의 정월이 언제인지에 대해 논하였다.

 

이전 편지에서 말씀하신 주 나라의 정월에 대한 설명은 끝내 온당치 않습니다. 맹자가 말한 7월과 8월은 지금의 5월과 6월이고, 11월과 12월이란 지금의 9월과 10월이므로 주 나라 사람들은 이미 달을 바꾸었습니다. 다만 천시라면 고칠 수 없었으므로 󰡔󰡕에서 가을에 풍년이 들었으나 아직 수확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의 가을은 곳 지금의 가을과 같습니다. 대개 유()와 술()의 달이 아니라면 풍년이 들었으나 아직 수확하지 않을 시절을 볼 수 없습니다. 이로써 헤아린다면 지금 󰡔춘추󰡕에 나오는 달 수는 노 나라 역사에 나오는 옛 문장이고, 네 계절의 순서는 공자의 미언대의입니다. 이천이 말한 천시에 가탁하여 뜻을 세웠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만약 주 나라 사람들이 처음부터 달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명확한 전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정(文定: 胡安國)은 다만 상 나라와 진 나라의 두 가지 일로 증거를 삼았습니다. 저렇게 넓게 찾고 정밀하게 힘쓰면서 모은 것이 오히려 이러한 데, 그친다면 다른 것은 살펴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10월에 서리가 내린 기이한 일에 의한 증명은 달을 고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대개 지금 10월에 서리가 내린 것은 이상할 것이 없고, 주 나라 시대의 10월에 그랬다면 기이한 것인데, 어째서 반드시 역사서에서는 8월 이후에 내린 것을 기이하다고 했을까요? 하물며 노 나라의 역사는 전하지 않아서 그 때의 사실을 알 수 없으므로, 󰡔맹자󰡕󰡔상서󰡕에 의거하여 밝히느니만 못합니다. 만약 아직도 의심이 있다면 머리를 비워두는 것이 더 낫지 강제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 에 나오는 달 수 또한 고친 적이 없는 것 같다. 예컨대 “4월 여름에”, “6월 더위가 갈 무렵등과 같은 것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저는 예전에 두 가지가 병행되었다고 의심했다.)

前書所諭周正之說, 終未穩當. 孟子所謂七八月, 乃今之五六月, 所謂十一月, 十二月, 乃今之九月, 十月. 是周人固已改月矣. 但天時則不可改, 故書云 秋大熟, 未穫’, 此卽止是今時之秋. 蓋非酉戌之月, 則未有以見夫歲之大熟而未穫也. 以此考之, 今春秋月數乃魯史之舊文, 而四時之序則孔子之微意. 伊川所謂假夫時以立義, 正謂此也. 若謂周人初不改月, 則未有明據. 故文定只以商秦二事爲證. 以彼之博洽精勤所取, 猶止於此, 則無它可考必矣. 今乃欲以十月隕霜之異證之, 恐未足以爲不改月之驗也. 蓋隕霜在今之十月則不足怪, 在周之十月則爲異矣, 又何必史書人月然後爲異哉? 况魯史不傳, 無以必知其然, 不若只以孟子尙書爲據之明且審也. 若尙有疑, 則不若且闕之之爲愈, 不必彊爲之說矣. (詩中月敷又似不曾改, 四月維夏六月徂暑之類, 故熹向者疑其竝行也.)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편지는 건도(乾道) 7(신묘, 1171, 42)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허물을 관찰하는 것에 대해서 논하면서 마음의 허물에 대한 관찰자 위에 다시 관찰자를 상정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하였다.

 

허물을 관찰한다.”는 뜻에 대해서는 매우 세심히 생각하십시오. 예컨대 보내주신 편지에서 백봉 형을 언급하면서 성인이 사람을 가르칠 때 스스로 다스리는 것을 중요시했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말은 절실히 체험하는 공부가 있으니, 참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남을 아는 것에 대해 말한 것도 적지 않으므로,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 매우 중요할지라도 어찌 스스로 다스리는데 치우쳐서 남을 아는 이치에 힘쓰지 않겠습니까? 또한 사람의 허물이 두터움, 얕음, 아낌, 인색함 등의 네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천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뜻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천은 한 모퉁이를 들었을 뿐입니다. 예컨대 군자는 청렴에 지나치고 소인은 탐내는 데 지나치다.”라고 한 것과 군자는 절개에 지나치고 소인은 화통한데 지나치다.”고 한 것 등이 다 이것으로 네 가지에 그칠 뿐이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경지에 나아가서 본다면 사람이 어진지 어질지 않은지를 알 수 있고, ()의 기상도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허물을 보면 그가 어진지 알 수 있다.”라고만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전 유자의 옛 말도 매우 짧으면서도 의미심장합니다. 익숙하게 맛보아야만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논하신 내용은 참으로 절실하지만 박절하고 얕아서 성인의 기상과는 더욱 멉니다. 게다가 마음에 이미 허물이 있으면서도 버리지 않고 다른 하나의 마음을 써서 관찰하려고 합니다. 또 이미 마음의 허물을 관찰하였으면서도 다른 하나의 마음을 써서 지금 관찰하는 것이 인이라는 것을 알려고 합니다. 만약 이와 같이 세 가지 것이 교대로 관조한다면 어지럽게 뒤섞여서 도리를 이루지 못합니다. 만약 단지 하나의 마음이라고만 말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도 이 세 가지 쓰임이 있다면 역시 너무 급박한 것이 않을까요? 이러한 점들은 더욱 온당치 않습니다만, 어쨌든 먼저 가르침을 바랍니다.

觀過一義, 思之甚審. 如來喩及伯逢兄說, 必謂聖人敎人以自治爲急, 如此言乃有親切體驗之功, 此固是也. 然聖人言知人處亦不爲少, 自治固急, 亦豈有偏自治而不務知人之理耶? 又謂人之過不止於厚薄愛忍四者, 而疑伊川之說爲未盡. 伊川止是擧一隅耳. 君子過於廉, 小人過於貪’, ‘君子過於介, 小人過於通之類皆是, 亦不止於此四者而已也. 但就此等處看, 則人之仁不仁可見, 而仁之氣象亦自可識. 故聖人但言斯知仁矣’. 此乃先儒舊說, 爲說甚短而意味甚長. 但熟玩之, 自然可見. 若如所論, 固若親切矣, 然乃所以爲迫切淺露而去聖人氣象愈遠也. 且心旣有此過矣, 又不舍此過而別以一心觀之 : 旣觀之矣, 而又別以一心知此觀者之爲仁, 若以爲有此三物遞相看覰, 則紛紜雜擾, 不成道理. 若謂止是一心, 則頃刻之間有此三用, 不亦匆遽急迫之甚乎? 凡此尤所未安, 姑且先以求敎.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7(신묘, 1171, 42)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임금이 나라를 잃을 때 그 신하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 지각설, 허물을 관찰하는 것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신하가 바로잡지 않을 때 내리는 형벌이란 임금과 대부가 나라와 집을 잃은 경우에 시행됩니다. 임금과 신하는 한 몸이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한 나라가 창읍왕(昌邑王)이었던 하()를 폐하고 그의 신하들을 벌주어 죽였습니다. 본조에서는 태조가 영남(嶺南)에 내려갔을 때 난신 공징추(龔澄樞)와 이탁(李托)을 벌주어 죽인 것이 그러합니다. (공징추 등은 참으로 유씨(劉氏: 劉鋹)를 망하게 하였고 비렴과 악래에 비견되니, 벌주어 죽이더라도 스스로 원망하지 않았다. 창읍의 많은 신하들 중에서 하()와 악을 함께한 자는 참으로 벌주어 죽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나머지는 옛 연좌되어 묵형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등급을 나누지 않고 줄지어서 죽이는 것은 곽광의 사사로운 의도에 해당한다.) 또한 문정이 논하였듯이 초자(楚子)가 공(: 公孫寧)과 의(: 儀行父)를 받아들인 경우는 사례가 다를지라도 뜻은 같습니다. 그 기사를 참고하신다면 성왕과 탕왕이 제정한 관부의 형법이 바로 천자가 토벌할 때에 털끝만치의 어긋남도 없는 경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슨 의심이 있겠습니까?

臣下不匡之刑, 蓋施於邦君大夫之喪國亡家者, 君臣一體, 不得不然. 如漢廢昌邑王賀, 則誅其群臣, 而本朝太祖下嶺南, 亦誅其亂臣龔澄樞李托之類是也. (澄樞等實亡劉氏, 乃飛廉惡來之比, 說之自不爲寃. 若昌邑群臣 與賀同惡者固不得不誅, 其餘正可當古者墨刑之坐耳. 乃不分等級, 例行誅殺, 是則霍光之私意也.) 又如文定論楚子納孔儀處, 事雖不同, 意亦類此. 試參考之, 則知成湯之制官刑, 正是奉行天討毫髮不差處, 何疑之有哉?

 

󰡔맹자󰡕지각(知覺)’ 두 글자에 대해 정자가 말하기를 아는 것이란 이 일을 아는 것이고, 깨달음이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라는 말이 다하였으므로 다른 설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어버이를 모실 때는 효도하고, 형님을 모실 때는 공손한 것이 일이다. 효도하고 공손해야 하는 까닭이 이치이다.)

孟子知覺二字, 程子云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此言盡之, 自不必別立說也. (事親當孝, 事兄當悌者, 事也. 所以當孝, 所以當悌者, 理也.)

 

()나라가 둘로 나뉠 때 동위(東魏)에는 고환(高歡), 서위(西魏)에는 우문(宇文)이 통치하였지만 이미 위나라 왕실은 다시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기미(幾微)를 안 사람들은 진실로 벼슬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불행히도 벼슬자리에 선 사람들 가운데 자리가 낮은 사람은 또한 떠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위가 높으면서 좌우에서 모시는 측근의 임금을 따라 서쪽으로 갔고, 사직을 지키는 대신들은 동쪽에서 나라를 지켰습니다. 모두가 반드시 어떻게 하면 나라를 안정시키고 난()을 평정하여, 국운을 회복하여 오래도록 보존할 계책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잘 되지 않자 죽음으로써 뜻을 이었습니다. 이밖에 다시 무슨 계책이 있었겠습니까?

兩魏之分, 東則高歡, 西則宇文, 已非復有魏室矣. 當是之時, 見微之士固已不立乎其位. 不幸而立乎其位, 其賤者乎, 則亦去之可也 : 其貴者乎, 則左右近臣從君於西, 社稷大臣守國於東, 而皆必思折以爲安國靖難興復長久之計, 不濟則以死繼之而已. 此外復何策哉?

 

이전의 편지에서 논했던 허물을 관찰한다.”와 관련된 말은 당시 표장(彪丈)이 서둘러 가는 바람에 급하게 대충 글을 썼으므로 소회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체는 알 수 있는데, 타당한지 모르겠습니다. 미진한 것은 광중과 백봉에게 보낸 글에 있으므로 얻어다 볼 수 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은 곳은 다시 반복하여 힐난해주시길 깊이 바랍니다. 그러나 전에 보내주신 편지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강의목눌(剛毅木訥)’이라는 두 조목을 끌어와 성인(聖人)이 인()을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체득(體得)하도록 한 것이라고 여겼는데, 저는 오히려 이 점에 대해서 의심이 있었지만 이전 편지에서 논하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이 두 조목의 말은 바로 성인이 사람들에게 실천하는 공부와 근심을 막아 마음을 세우는 기술을 가르친 것입니다. 과연 교묘한 말재주와 화려한 낯빛을 경계하면서 두텁고 소박한 근본에 힘쓴다면 마음이 방종하지 않으면서 인에 가깝게 될 것이니, 사람들로 하여금 이로 말미암아 인을 알게 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前書所論觀過之說, 時彪丈行速, 匆遽草率, 不能盡所懷. 然其大者亦可見, 不知當否如何? 其未盡者, 今又見於廣仲伯逢書中, 可取一觀. 未中理處, 更得反復詰難, 乃所深望. 然前所示敎引巧言今色剛毅木謂兩條, 以爲聖人所以開示爲仁之方, 使人自得者, 熹猶竊有疑焉, 而前書亦未及論也. 蓋此兩語正是聖人敎人實下功夫防患立心之一術, 果能戒巧今務敦樸, 則心不恣縱而於仁爲近矣, 非徒使之由是而知仁也.

 

무릇 전날의 말은 모두 고심하고 힘써서 ()’자를 알려고 하였으므로 그 말이 더욱 정교하면 할수록 기상은 더욱 얕아졌습니다. 요즈음 성인의 문하에서 가르쳤던 뜻을 살펴보니, 도리어 사람들에게 몸소 실천하고 마음 안을 바르게 하여 사사로움을 이기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경솔하고 각박하면서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사물을 천하게 여기는 태도를 아득한 곳으로 잠기어 사라지게 하고, 자기 본래 마음의 혼후(渾厚)하고 공명정대한 본체를 항상 보존하여 잃지 않게 하는 것이 곧 인()입니다. 그 공력(功力)을 들이는 것은 사람의 얕고 깊음에 따라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요컨대 반드시 힘써 행하기를 오래도록 익숙히 하여 실지로 이런 경지에 도달해야 이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상상으로 억측해서 알 수 없으니, 상상으로 억측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근래에 남헌이 보내준 󰡔언인록(言仁錄)󰡕을 보고서 다시 편지를 써서 논한 적이 있는데 그 의심한 대용은 대개 이와 같습니다. 뒤에 붙인 글에서 논한 인지(仁智)’ 두 글자는 더욱 분명하므로 생각해보면 다 이미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옳은지를 참고하여 살피시고 다시 가르쳐 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大抵向來之說, 皆是苦心極力要識, 故其說愈巧而氣象愈薄. 近日究觀聖門垂敎之意, 却是要人躬行實踐, 直內勝私, 使輕浮刻薄貴我賤物之態潛消於冥冥之中, 而吾之本心渾厚慈良公平正大之體常存而不矢, 便是仁處. 其用功著力, 隨人淺深, 各有次第. 要之須是力行久熟, 實到此地, 方能知此意味, 蓋非可以想象臆度而知, 亦不待想象臆度而知也. 近因南軒寄示言仁錄, 亦嘗再以書論, 所疑大槪如此. 而後書所論仁智兩字尤爲明白, 想皆已見矣. 幷爲參詳可否, 復以見敎, 幸甚幸甚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7(신묘, 1171, 42)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 등에 나오는 다섯 가지 형벌에 대해 설명하였다.

 

다섯 가지 형벌 부분에 대하여 요즘 󰡔대기󰡕의 여러 의론을 얻어서 살펴보니 그 설명이 상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해되지 못한 곳이 있으니 다시 가르쳐 주십시오. 대개 이 경문에는 본래 일곱 구절이 있는데 지금은 그 사이에서 복잡하게 이 다섯 구절을 취하여 다섯 가지 형벌의 조목으로 삼았습니다. 나아가 유배 보내는 형벌을 버리고 속죄하는 형벌을 취했다는 것은 형벌의 경중에 어긋나니, 이것이 첫 번째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속죄하는 것을 먼저하고 죽이는 것을 나중에 하였다면 무거운 형벌로써 가벼운 형벌을 언급한 것이 아니고, 채찍을 먼저하고 속죄를 나중에 하였다면 가벼운 형벌에서 무거운 형벌에 이른 것이 아니니, 앞과 뒤에 순서가 없는 것이 두 번째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일정한 형벌을 보여준다.”는 구절을 사대부에게 적용하여 그들의 과실을 드러내지 않고 편의에 따라 관직의 차서를 고침으로써 다섯 가지 형벌을 용서한다고 말한다면, 바르게 일정한 형벌을 보여주는 것이 어떠한 견책인지 알지 못하게 되니, 이것에 세 번째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또한 고요가 군사를 만든 것이 본래 오랑캐와 도적이 난을 일으키는 것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면, 󰡔󰡕에서 말한 고요가 그 기술된 것을 공경히 이어서 형벌을 밝게 드러내었다.”는 구절은 유독 그가 사대부에게 시행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명관(命官)의 본뜻이 아닐 뿐만 아니라 본 책의 위 문장과도 상응하지 않으니, 이것이 네 번째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또한 채찍과 회초리는 본디 가벼운 형벌인데 용서하여 유배를 보낸다는 것은 가벼운 형벌을 버리고 무거운 형벌을 받게 한 것이므로 은혜라고 할 수 없으니, 이것이 다섯 번째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금으로 속죄하는 것과 유배 보내어 형벌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은 본디 한 가지 사례로 형벌을 받을 때 속죄하여 유배보다 가볍게 벌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속죄한다는 것을 하나의 형벌 조목에 나열하고 있으나, 마땅히 속죄하여 용서하는 것이 도리어 연좌되어 유배되므로 더욱 어긋나게 되니, 이것이 여섯 번째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유배라고 하는 것이 뜻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편의대로 관직을 바꾸어 가석(嘉石)에 앉히고 환토(圜土)에 들어가게 하였다면 유배의 뜻과 다르니, 이것이 일곱 번째로 의심됩니다. 이 일곱 가지는 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다시 개정하여 알려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五刑一段, 近得大紀諸論考之, 其說詳矣. 然有所未曉, 復以求敎. 蓋此經文本有七句, 今於其間雜然取此五句以爲五刑之目, 而又去流取贖, 輕重不倫, 一也. 先贖後賊, 則非以重及輕 : 先鞭後贖, 又非從輕至重, 先後無序, 二也. 象以典刑施於士大夫, 而以不顯其過隨宜改敍爲近於流宥之法, 卽不知正象刑是作如何行遣, 三也. 又皐陶作士, 本以治夫蠻夷寇賊之爲亂者, 若如此說, 則書所稻皐陶方施, 象刑惟明’, 乃獨以其施於士大夫者言之, 不惟非命官之本意, 亦與本篇上文不相應, 四也. 又鞭樸自是輕刑, 得宥反遭流徙, 去輕卽重, 不足爲恩, 五也. 金贖流宥本是一例, 而就其間贖又輕於流者. 今贖乃列於一刑之目, 而當贖得宥者, 反從流徙之坐, 尤爲乖戾, 六也. 移鄕謂之流, 猶爲近之. 改敍他官及坐嘉石入圜土, 則與字意義不同矣, 七也. 凡此七倏, 皆所未曉. 更望參訂下諭, 幸甚幸甚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또한 󰡔절보󰡕에 의하면 답장경부15서에 근거하여 볼 때에도 이 편지를 쓴 것이 임진년임을 알 수 있다. ‘앎을 먼저하고 실천을 나중에 하는 것[先知後行]’에 대해 󰡔대학󰡕󰡔주역󰡕 등을 인용하여 논하였다.

 

보내주신 편지를 받아 보니, ‘앎을 먼저하고 실천을 나중에 하는 것[先知後行]’에 대한 논의는 반복하여 상세히 설명하였고 인용한 근거가 정밀하여 많이 놀랐습니다. 정히 의심이 가는 것에 대해서 가르침을 구하고자 합니다. 또 남헌이 붙여온 글의 초고를 얻어 읽어보면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이미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 중에 조금 미비한 곳이 있어 자세히 논하고자 합니다.

熹伏承示及先知後行之說, 反復詳明, 引據精密, 警發多矣. 所未能無疑者, 方欲求敎, 又得南軒寄來書藁讀之, 則凡熹之所欲言者, 蓋皆已先得之矣. 特其曲折之間小有未備, 請得而細論之.

 

보통 논의하는 앎과 실천의 이치를 하나의 사례 안에서 본다면, 앎이 먼저이고 실천이 나중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맹자가 말한 모두 넓혀서 채울 줄 안다.”라는 것과, 정자가 말한 비유하자면 길을 갈 때 반드시 빛을 얻어야 하는 것과 같다.”라는 것과, 󰡔주역󰡕 「문언전에서 말한 이르는 것을 알아 그것을 이르게 하고 끝을 알아 끝낸다.”라고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앎의 깊고 얕음과 실천의 크고 작음을 합쳐서 말한다면, 먼저 그 작은 것을 이루지 않고서 장차 어떻게 그 큰 것을 따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자하가 사람을 가르칠 때 물 뿌리고 비질하고 응대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 등을 먼저 한 것과, 정자가 앎을 이루면서 경건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라고 말한 것과, 󰡔주역󰡕문언에서 말한 이르는 것을 알고 끝을 안다는 것은 다 충신(忠信)’수사(修辭)’의 뒤에 있다고 한 것 등이 이것이다.) 대개 옛 사람의 가르침은 어려서부터 실질적인 효제(孝悌)와 성경(誠敬)으로써 가르쳤습니다. 조금 더 자라면 󰡔󰡕, 󰡔󰡕, 󰡔󰡕, 󰡔󰡕 등의 글로써 넓혀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의 일 하나의 사물에 나아가 각각 그 의리가 있는 곳을 알아서 함양(涵養)하고 실천하는 공부를 이루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소학의 일로 앎 중에서 얕은 것이고 실천 중에서 작은 것이다.) 열다섯 살 어린이는 대학(大學)에서 배웠습니다. 즉 물 뿌리고 비질하고 응대하는 동안에, 그리고 예, , 활쏘기, 수레몰기 등을 익히는 동안에 함양하고 실천하는 것이 이미 조금 이루어집니다. 이에 이러한 공부에서 떠나지 않을 때 사물에 나아가 앎을 이루는 것을 가르칩니다. 앎을 이루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미루어 나아가 자기가 아직 모르는 것에 미쳐서 지극함을 다합니다. 반드시 천지 만물의 이치를 하나로 꿰뚫은 뒤에 앎이 지극해집니다.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은 앎을 지극히 하여 그 도()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는 대학(大學)의 도로서, 앎 중에서 깊은 것이고 실천 중에서 큰 것이다.) 이제 한 가지 일 안에 나아가서 논한다면, 앎이 먼저고 실천이 나중으로 삼은 것은 각각 그 순서를 두는 것입니다. 진실로 소학을 완성하고서 대학의 시작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함양과 실천의 바탕이 없고서야 어찌 한갓 혼잡하고 어지러운 마음으로써 사물에 나아가 앎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夫泛論知行之理, 而就一事之中以觀之, 則知之爲先, 行之爲後, 無可疑者. (如孟子所謂知皆擴而充之’, 程子所謂譬如行路, 須得光照’, 及易文言所謂知至至之, 知終終之之類是也.) 然合夫知之淺深行之大小而言, 則非有以先成乎其小, 亦將何以馴致乎其大者哉? (如子夏敎人以灑掃應對進退爲先, 程子謂未有致知而不在敬, 及易文言所言知至知終’, 皆在忠信修辭之後之類是也.) 蓋古人之敎, 自其孩幼而敎之以孝悌誠敬之實. 及其少長, 而博之以詩書禮樂之文, 皆所以使之卽夫一事一物之間, 各有以知其義理之所在而致涵養踐履之功也. (此小學之事, 知之淺而行之小者也.) 及其十五成童, 學於大學, 則其灑掃應對之間, 禮樂射御之際, 所以涵眷踐履之者略已小成矣. 於是不離乎此而敎之以格物, 以致其知焉. 致知云者, 因其所已知者推而致之, 以及其所未知者而極其至也. 是必至於擧天萬物之理而一以貫之, 然後爲知之至. 而所謂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者, 至是而無所不盡其道焉. (此大學之道, 知之深而行之大者也.) 今就其一事之中而論之, 則先知後行, 固各有其序矣. 誠欲因夫小學之成以進乎大學之始, 則非涵養履踐之有素, 亦豈能居然以夫雜亂紛糾之心而格物以致其知哉?

 

게다가 󰡔주역󰡕에서 말한 충성스러움과 신뢰말을 닦음’’은 성학(聖學)의 실제적인 일로 처음과 끝을 꿰뚫어 말한 것입니다. 그 얕고 작은 측면에서 말한다면 항상 바른 것을 보여 속임수를 가르치지 말라.’남자는 ()’라고 대답하고, 여자는 ()’라고 대답하는 것은 진실로 이미 알고서 할 수 있습니다. ‘이르는 것을 알고서 이르게 하는 것이란 이것을 실천함으로써 이르는 내용을 아는 것이니, 이것은 앎 중에서 깊은 것입니다. ‘끝을 알아 끝내는 것이란 앎이 이르는 것에서 진전시켜 끝내는 것이니, 이것은 실천 중에서 큰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이란 책에서 비록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공부의 처음으로 삼고 있지만, 애초부터 함양(涵養)하거나 실천하지 말고 곧 바로 여기에 종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아직 사물이 이르지 않거나 아직 앎이 이르지 않았을 때에는 뜻을 성실하게 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을 바로 잡지 않아도 되고 몸을 바로 잡지 않아도 되고 집을 가지런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반드시 앎이 이른 뒤라야만 자기를 다스리고 남을 다스리는 과정이 비로소 그 도를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 따름입니다. 만약 반드시 앎이 이르기를 기다린 뒤에라야 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고 윗사람을 받들고 아랫사람을 접하는 것과 같이 인생에서 하루도 버려 둘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어찌 나의 앎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하여 잠시 제쳐두었다가 그 이르는 것을 기다린 뒤에 행할 수 있겠습니까? (오봉이 지은 󰡔복재기󰡕를 보면 뜻을 세워 경건하고, 몸으로는 친히 사물에 나아간다.”는 말이 있으니, 그는 사물에 나아가 앎을 이루는 것을 깊게 이해하였을 것이다. 다만 󰡔지언󰡕에 논한 내용은 앎의 얕고 깊음을 깊게 구별하지 않고, 앎이 먼저고 실천이 나중이라는 것으로 정리하였으니 편안치 못한 곳이 있다.)

且易之所謂忠信修辭者, 聖學之實事, 貫始終而言者也. 以其淺而小者言之, 則自其常視毋誑男唯女兪之時固巳知而能之矣. 知至至之, 則由行此而又知其所至也, 此知之深者也. 知終終之, 則由知至而又進以終之也, 此行之大者也. 故大學之書雖以格物致知爲用力之始, 然非謂初不涵善履踐而直從事於此也. 又非謂物未格知未至則意可以不誠, 心可以不正, 身可以不修, 家可以不齊也. 但以爲必知之至, 然後所以治己治人者始有以盡其道耳. 若曰必俟知至而後可行, 則夫事觀從兄承上接下, 乃人生之所不能一日廢者, 豈可謂吾知未至而暫輟, 以俟其至而後行哉? 按五峰作復齋記, 立志居敬, 身親格之之說, 蓋深得乎此者. (但知言所諭, 於知之淺深不甚區別, 而一以知先行後槪之, 則有所未安耳.)

 

성현이 말한 앎에 비록 얕고 깊음이 있을지라도 전에 논한 두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확연(廓然)히 관통한다면 안과 밖, 정밀함과 조야함이 본디 두 가지 다른 곳으로 흐르지 않으니, 보내주신 편지 및 전후에 말씀하신 허물을 관찰하고 인을 아는 것이 마음 안에 어떤 기계를 설치하여 그것을 보고서 도리어 이 인()을 알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후자가 총로(總老)묵묵히 아는 것에서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말을 물리쳤던 것이 바로 이 뜻을 설파한 것이다. 예컨대 남헌이 아는 일이라고 했던 것도 총로와 같은 잘못을 변치 못하는 것 같다.) 또한 보내주신 편지에서 말한 단정하고 신중히 하여 앎을 이룬다는 것과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겨 뭇 이치를 모은다는 것 따위는 실천을 우선시하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겸하여 진전시킨다는 것은 앎을 이루는 것과 힘써 실천하는 것에 애초부터 선후의 구분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제가 깊이 의심하는 내용이며 남헌의 논의가 완전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다시 가르침을 구하니, 깊이 살피시고 자세히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抑聖賢所謂知者雖有淺深, 然不過如前所論二端而已. 但至於廓然貫通, 則內外精粗自無二致, 非如來敎及前後所諭觀過知仁者, 乃於方寸之間設爲機械, 欲因觀彼而反識乎此也. (侯子所闢總老黙而識之是識甚底之言, 正是說破此意. 如南軒所謂知底事者, 恐亦末免此病也.) 又來諭所謂端謹以致知, 所謂克己私集衆理者, 又似有以行爲先之意 : 而所謂在乎兼進者, 又若致知力行初無先後之分也. 凡此皆鄙意所深疑, 而南軒之論所未備者, 故敢復以求敎. 幸深察而詳諭之.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복괘와 천지의 마음의 관계, 맹자의 형체를 실천한다는 것’, 공자의 네 가지를 끊은 것, ()과 지각의 관계 등에 대해 논하였다.

 

복괘가 천지의 마음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말과 음양인 까닭이 도이다.”는 말이 뜻이 다르다는 것은, 단지 󰡔역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천지는 사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으니 복괘의 맨 아래 양효가 곧 천지가 사물을 낳는 마음을 그렸습니다. 복괘라고 부르는 것은 맨 아래 양효가 다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나서 임괘, 태괘, 대장괘, 쾌괘 등에서 자라나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복괘라는 이름만을 가리켜서 천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복괘에서 하나의 양효가 아래에서 싹터 오르니 이것은 돌아오는 것에 근거하여 천지의 마음을 보는 것일 따름입니다. “천지는 사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는 구절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전에 남헌에게 편지를 써서 논의하였던 것을 근래에 답장을 받았는데, 역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근래의 학자들은 사랑으로써 인을 말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께서 하나의 양효가 사물을 낳는 것으로써 천지의 마음을 논한 것을 본다면, 반드시 아쉬워하면서 그러한 뜻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그 말 밖에서 설을 만들어 고원한 것을 헤아릴 것이지만, 천지의 마음이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것입니다. 이것에서 벗어나 말한다면 반드시 허무와 고요에 빠져서 체용과 본말이 긴밀하게 관련되지 않습니다. 성인은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의 마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대개 천지의 기 중에 돌아오는 양이 있는 까닭은 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인의 마음에 돌아오는 선()이 있는 까닭은 그에게 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성인의 마음이라면 천리가 혼연하여 애초부터 사이와 단절이 없으니, 그 누가 그의 마음이 일어났다가 소멸하는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고요하였다가 다시 움직이는 경우라면 있겠지만, 선과 악으로써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 뜻이 이러한데 혹 틀렸다면 다시 상세히 알려 주십시오.

復非天地心, 復則見天地心’, 此語與所以陰陽者道之意不同, 但以易傳觀之, 則可見矣. 蓋天地以生物爲心, 而此卦之下一陽爻卽天地所以生物之心也. 至於復之得名, 則以此陽之復生而已, 猶言臨泰大壯夬也, 豈得遂指此名以爲天地之心乎? 但於其復而見此一陽之萌於下, 則是因其復而見天地之心耳. ‘天地以生物爲心’, 此句自無病. 昨與南軒論之, 近得報云亦已無疑矣. 大抵近年學者不肯以愛言仁 故見先生君子以一陽生物論天地之心, 則必欿然不滿於其意, 復於言外生說, 推之使高, 而不知天地之所以爲心者, 實不外此. 外此而言, 則必溺於虛, 淪於靜, 而體用本末不相管矣. 聖人無復, 故未嘗見其心者. 蓋天地之氣所以有陽之復者, 以其有陰故也. 衆人之心所以有善之復者, 以其有惡故也. 若聖人之心則天理渾然, 初無間斷, 人孰得以窺其心之起滅耶? 若靜而復動, 則亦有之, 但不可以善惡而爲言耳. 愚意如此, 恐或末然, 更乞詳諭.

 

형체를 실천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은 보내주신 편지가 맞습니다만, 문장의 뜻에 대한 설명이 분명하지 못합니다. 제가 보건대 형체를 실천하다에서 실천이란 말을 실천하다에서의 실천과 같으며, 정자가 말한 사람의 이름을 충실하게 한다.”가 그것입니다. 대개 사람의 형체와 용모는 하늘이 준 본성이 아닌 경우가 없습니다. 예컨대 시각에는 밞음이 있고, 청각에는 잘 들음이 있고, 움직임에는 절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준 본성이란 애초부터 형체와 용모의 사이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일상 사람들이 자기의 본성을 잃기 때문에, 시각이 밝지 못하고 청각이 잘 들리지 않고 움직임이 절도에 맞지 않습니다. 이와 같으면 비록 형체가 있을지라도 그 형체를 실천하지 못합니다. 오직 성인이라야 본성을 다하므로, 시각이 밝고 청각이 잘 들리고 움직임이 절도에 맞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형체가 있으면서 나아가 그 형체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형체를 실천할 수 있다면 형체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헤아려서 말해야 더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踐形之說來諭得之. , 但說得文義末分明耳. 熹謂踐形 如踐言’, 程子所謂充人之名是也. 蓋人之形色莫非天性, 如視則有明, 聽則有聰, 動則有節, 是則所謂天性者, 初不外乎形色之間也. 但常人失其性, 故視有不明, 聽有不聰, 動有不中, 是則雖有是形而無以踐之. 惟聖人盡性, 故視明聽聰而動無不中, 是以旣有是形而又可以踐其形也. 可以踐形, 則無愧於形矣. 如此推說, 似稍分明. 不知是否?

 

네 가지를 끊었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일설에서는 공자 스스로 이 네 가지가 없었다고 해석합니다. ‘자가 곧 자와 같으며 옛 글에서는 통용되었을 뿐입니다. 󰡔사기󰡕 「공자세가에서는 자로 적고 있습니다. 다른 일설에서는 공자가 학자들에게 이 네 가지를 갖지 말라고 금지시킨 것으로 해석합니다. 지금 보내신 편지도 이 뜻입니다. 두 설이 다 의미가 있지만 문장의 뜻으로 본다면 분명하고 평이한 앞 설이 나은 것 같습니다. 또한 보내주신 편지의 사사로운 뜻이 없었다.”는 구절에 대한 설명도 온당치 못한 것 같습니다. ‘사사로운 뜻이란 사사로운 의도로 계교하는 것을 가리키지, 반드시 지나친 아름다움이나 지나친 나쁨으로써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문장의 뜻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습니다. 나머지 세 구절에서는 논하신 것이 옳으며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대저 사사로운 뜻이란 나에게서 발생한 것이어서 야말로 뜻의 뿌리입니다. ‘기필이란 일하기 전에 있고, ‘집착이란 일이 끝난 뒤에 있습니다. 항상 이 두 가지 사이의 과정은 사사로운 뜻에서 생겨나서 자기를 앞세움에서 완성됩니다. 이것이 네 가지의 순서입니다.

絶四有兩說, 一說爲孔子自無此四者, ‘, 古書通用耳. 史記孔子世家正作字也. 一說爲孔子禁絶學者毋得有此四者, 今來諭者乃此意也. 兩說皆有意思, 然以文意攷之, 似不若只用前說之爲明白平易也. 又來諭毋意一句似亦未安, ‘只是私意計較之謂, 不必以溢美溢惡證之, 恐太遠却文意也. 餘三句則所諭得之, 無可議者矣. 大抵是我之發, ‘是意之根. ‘在事前, ‘在事後, 嘗在二者之間, 生於意而成於我, 此又四者之序也.

 

보내주신 편지에서 아래서 배워 위로 통달한다는 것은 어려움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한다.’고 하였는데, 그 말은 공허한 말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실제로 얻고자 힘쓰는 것으로 뜻을 세움이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그 말들을 살펴보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논의하고자 합니다. ()이란 본성의 덕()이고 사랑의 이치입니다. 사랑이란 감정의 발생이요 인()의 쓰임입니다. 공평함이란 인()이 인 되는 까닭으로서 도()입니다. ()이란 하늘이 인 되는 까닭으로서 덕()입니다. 인이란 사람이 본디 가진 것이지만, 사사로움이 혹 그것을 가려서 인하지 못한 데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인을 실천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기를 이겨야 합니다. 자기를 이기면 공평하고, 공평하면 인하고, 인하면 사랑합니다. 먼저 자기를 이기지 않으면 공평함을 어떻게 얻어서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 인에 이르지 않았다면 사랑을 어떻게 먼저 체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란 인이 하늘에 있는 것일 따름이지, 한 사람의 마음에 원()이 있은 뒤에 저 인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지각(知覺)은 지혜의 작용이자 인자(仁者)가 겸한 것입니다. ()이란 네 가지 덕의 어른이므로 형(), (), ()을 겸합니다. ()이란 오상(五常)의 어른이므로 의(), (), (), ()을 겸합니다. ()이란 반드시 지각이 생기게 하는 까닭이지만, 지각으로써 인을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

所示下學上達, 先難後獲之說, 不貴空言, 務求實得, 立意甚美. 顧其間不能無可疑者, 請試論之. 蓋仁者, 性之德而愛之理也. 愛者, 情之發而仁之用也. 公者, 仁之所以爲仁之道也. 元者, 天之所以爲仁之德也. 仁者, 人之所固有, 而私或蔽之, 以陷於不仁. 故爲仁者必先克己, 克己則公, 公則仁, 仁則愛矣. 不先克己, 則公豈可得而徒存? 未至於仁, 則愛明可以先體哉? 至於元, 則仁之在天者而已, 非一人之心旣有是元而後有以成夫仁也. 若夫知覺, 則智之用而仁者之所兼也. 元者四德之長, 放兼亨. 仁者五常之長, 故兼義. 此仁者所以必有知覺而不可便以知覺名仁也.

 

무릇 의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분석하여 이름과 의미의 경계(境界)가 어디인지를 얻은 뒤라야 자연스럽게 중도를 관통할 것입니다. 비록 관통한다고 말하였지만 혼연(渾然)한 중도는 환히 밝은 것이어서 애초부터 어지러운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보내주신 편지를 상고해 보니, 이름의 경계를 분석하지 않고 갑작스레 하나의 이치로써 포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논한 내용에 견강부회한 흐름이 있고, 나아가 난잡하고 중복되고 지리하고 산만한 병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말한 어려운 것을 먼저 하는 아래서 배우는 실제적인 공부 또한 다 뒤바뀌어 있어 받들어 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다시 하나하나 자세히 증거를 들어 제시할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이 설명을 가지고서 고찰하더라도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大凡理會義理, 須先剖析得名義界分各有嚴著, 然後於中自然有貫通處. 雖日貫通, 而渾然之中所謂粲然者初未嘗亂也. 今詳來示, 似於名字界分未嘗剖析, 而遽欲以一理包之, 故其所論旣有巴攬牽合之勢, 又有雜亂重複支離浼散之病. 而其所謂先難下學實用功處, 又皆倒置錯陳, 不可承用. 今更不暇一 一疏擧, 但詳以此說考之, 亦自可見矣.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순희(淳熙) 1(갑오, 1174, 45)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정밀하고 한결같은 수양으로 사람의 마음과 사사로운 욕구를 이겨 도의 마음을 실천하라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과 사사로운 욕구에 대한 설명은 보내주신 편지처럼 글자를 고치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본래 했던 말의 과실도 근원이 아직 명료하지 못한 병이지, 한 구절 한 의미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예전에 반드시 일에 종사할 때가 있다.”는 말을 인용하여 헛되이 논하였다.’고 한 말도 여전히 대부분 타당하지 않다고 의심됩니다. 대개 순 임금과 우 임금이 가르침을 주고받을 때 말한 사람의 마음과 사사로운 욕구란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사사로운 욕구와 같지 않습니다. 조그만 것이라도 털끝만치의 붙들어 쥐고 있는 생각이 있다고 한다면, 본래 도의 마음이 발생한 것일지라도 끝내 사람의 마음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연유하여 움직이면 거짓됨이 있으니, 안자가 가지고 있는 좋지 않음이 바로 이 사이에 있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미 거짓됨이 있다면 사사로운 욕구가 아니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사람의 마음에 따르는 생각이 사라져야 저절로 중도에 맞아서 순수하게 도의 마음이 될 것입니다. “반드시 일에 종사할 때가 있다.”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알고서 보존하여 기르는 실천의 경지여서, 순수한 도의 마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본원을 살펴보았다면 이로부터 정밀하고 한결같게 하는 공부를 더하여 수순한데로 나아갈 따름이며, 그 과정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정밀하고 한결같게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이와 같아야만 사사로운 욕구를 이겨서 없애고 완전하게 천리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끝내 도달할 수 있는 이치는 없을 것입니다. (이전 편지에서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에 나아가서 도의 마음을 안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본래 해롭지 않다. 다시 이 편지를 쓸 때 그 말을 잊었기 때문에 다시 변론하였을 따름이다.)

人心私欲之說, 如來敎所改字極善. 本語之失, 亦是所謂本源未明了之病, 非一句一義上見不到也. 但愚意猶疑向來妄論引必有事焉之語亦多未的當. 蓋舜禹授受之際, 所謂人心私欲者, 非若衆人折謂私欲也. 但微有一毫把捉底意思, 則雖云本是道心之發, 然終未離人心之境也. 所謂動以人則有妄, 顔子之有不善, 正在此間者是也. 旣有妄, 則非私欲而何? 須是都無此意思, 自然從容中道, 才方純是道心. ‘必有事焉’, 却是見得此理, 而存養下功處與所謂純是道心者蓋有間矣. 然旣察見本源, 則自此可加精一之功而進夫純爾, 中間儘有次第也. ‘惟精惟一’, 亦未離夫人心. 特須如此, 乃可以克盡私欲, 全復天理. 儻不如此, 則終無可至之理耳. (前書云卽人心而議道心’, 此本無害, 再作此書時忘記本諸, 故復辯之耳.)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순희(淳熙) 1(갑오, 1174, 45)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맹자󰡕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는다.”는 구절을 설명하면서 여자약의 설을 취하고 방백모의 설을 일부 부정하였다.

 

󰡔맹자󰡕에서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는다.”는 한 구절은 학자들을 깜짝 놀라 깨닫게 하고, 몸소 살펴서 항상 잡고 보존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자약(呂子約: 呂祖儉)에 의하면 잡고 놓은 것으로써 마음을 보존하기가 어렵고 놓치기가 쉽다는 것을 밝혔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가리켜서 마음의 본체가 유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틀립니다. 지금 석자중과 방백모가 취하여 평론한 것이 훌륭하지만, 백모가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 위태로운 것이라고 본 것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사사로운 욕구일 뿐인데 어찌 맹자가 잡아서 보존하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그러니 변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孟子操舍一章, 正爲警悟學者, 使之體察, 常操而存之. 呂子約云 : ‘因操舍以明其難存而易放’, 固也, 而又指此爲心體之流行, 則非矣. 今石子重方伯謨取以評之者大意良是, 但伯謨以爲此乃人心惟危’, 又似未然. 人心, 私欲耳, 豈孟子所欲操存哉? 又不可不辨也.

 

 

오회숙에게 답함 答吳晦叔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5(기축, 1169, 40)에 오욱에게 쓴 편지이다. 마음으로 깨치는 것과 경전의 독서를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에 대해서는 이미 허가를 받아서 의심이 없습니다. 또한 책에 의지하지 말고 모름지기 스스로 생각하여 자신의 견해에 의심이 없어야 자신할 수 있다.”라고 가르쳐주셨는데, 이것은 저의 평상시 잘못인데도 감히 받들어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일한 뜻입니다. 먼저 책에서 뜻을 얻지 못하면 전해들은 인습적인 견문을 죽을 때까지 성현의 뜻으로 착각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아가 하물며 책에 나오는 말이 다 옛 성현이 후학에게 사랑을 베풀고 무궁한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성인이 먼저 우리의 마음에 똑같이 있는 것을 얻었다.”고 하는 말이 책에 있으니, 한사코 여러 책에서 구해서는 안 될지라도 갑자기 책을 버리고서 다른데서 구해서도 안 됩니다. 정자가 말하기를 잘 배우는 자는 말을 구할 때 반드시 비근한 것에서부터 한다. 비근한 것을 쉽게 여기는 것은 말을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도리어 형님께서 이 뜻을 깊게 맛보시고, 급히 하면서 소홀하지 마십시오. 내 마음에서 얻은 내용은 반드시 성현의 글에서 헤아려야 합니다. 만일 거기에서 벗어나서 한 글자라도 다름이 있다고 한다면 다시 정밀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변론하여 매우 타당한 귀착 처를 추구하십시오. 단번에 궁구하고 사색하여 조그만 의혹만을 겨우 해결하고 큰 의혹이 더 불어나게 하지 마십시오.

未發之旨, 旣蒙許可, 足以無疑矣. 又蒙敎以勿恃簡策, 須是自加思索, 超然自見無疑, 方能自信. 此又區區平日之病, 敢不奉承. 然此一義, 向非得之簡策, 則傳聞襲見, 終身錯認聖賢旨意必矣. 又况簡策之言皆古先聖賢所以加惠後學垂敎無窮, 所謂先得我心之同然者將於是乎在, 雖不可一向尋行數墨, 然亦不可據舍此而他求也. 程子曰: ‘善學者求言必自近, 易於近者非知言也. ’愚意却願尊兄深味此意, 毋據忽易. 凡吾心之所得, 必以考之聖賢之書, 脫有一字之不同, 則更精思明辨, 以益求至當之歸, 毋憚一時究索之勞, 使小惑苟解而大礙愈張也.

 

 

석자중에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1(을유, 1165, 36)에 석돈(石惇)에게 쓴 편지이다. 성현의 글에서부터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가면서 이치를 구하라고 조언하였다.

 

제가 생각건대 사람이 배우는 까닭은 내 마음이 아직 성인의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아직 성인의 마음과 같지 못하므로 이치를 밝히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고 법도로 삼는 것도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높은 것에 대해서는 지나치고 낮은 것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과하거나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만일 나의 마음이 천지나 성인의 마음과 차이가 없다면 무엇을 더 배우겠습니까?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반드시 선인들이 통달한 말에 근거하여 성인의 뜻을 구하고, 성인의 뜻에 근거하여 천지의 이치에 통달하며, 얕은 데서부터 깊은 곳에 이르기를 구하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에 이르면서, 차근차근 순서를 따라야지 급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이 해야 점점 과정을 거치면서 세밀하고 익숙하게 설명하게 됩니다. 단계를 뛰어넘거나 공허하게 말하는 폐단이 사라지고 궁극에 도달한 이후에 나의 마음이 바름을 얻으면, 천지와 성인의 마음도 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진실로 천하고 가까운 것을 구획하기 위하여 깊고 먼 것을 잊는 것도 아니요, 나의 마음을 버리고서 성인의 마음을 구하는 것도 아니요, 나의 말을 버리고서 선유의 말을 맹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熹竊謂人之所以爲學者, 以吾之心未若聖人之心故也. 心未能若聖人之心, 是以燭理未明, 無所準則, 隨其所好, 高者過, 卑者不及, 而不自知其爲過且不及也. 若吾之心卽與天地聖人之心無異矣, 則尙何學之爲哉? 故學者必因先達之言以求聖人之意, 因聖人之意以達天地之理, 求之自淺以及深, 至之自近以及遠, 循循有序, 而不可以欲速迫切之心求也. 夫如是, 是以浸漸經歷, 審熟詳明, 而無躐等空言之弊. 馴致其極, 然後吾心得正, 天地聖人之心不外是焉. 非固欲畫於淺近而忘深遠, 舍吾心以求聖人之心, 棄吾說以狥先儒之說也.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1(을유, 1165, 36)에 석돈에게 쓴 편지이다. 함께 사욕을 이기는 공부에 힘쓰자고 독려하였다.

 

논하신 인의 본체와 쓰임은 매우 타당합니다. 이런 뜻으로 유추해나가면 고금의 성현의 뜻이 하나라도 합치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다만 힘써야 할 것은 자기의 사사로운 욕구를 극복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사로운 욕구도 이기기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민첩하지는 못하지만 형님과 함께 각자 여기에 힘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추락하고 무너져 자강불식하지 못할까 걱정스럽습니다. 그럴 때라도 오히려 때때로 경계하고 책망해 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所論仁之體用, 甚當甚當. 以此意推之, 古今聖賢之意歷歷可見, 無一不合者. 但其用力則不過克己之私, 而私之難克, 亦已甚矣. 區區不敏, 竊願與長者各盡力於斯焉. 猶恐墮廢, 不克自彊, 尙賴時有以警策之. 幸甚幸甚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순희(淳熙) 1(갑오, 1174, 45)에 석돈에게 쓴 편지이다. 󰡔맹자󰡕 「고자상에 나오는 마음을 보존하는 것에 대해서 논하였다.

 

공자가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사라지고, 나고 드는 것에 일정한 때가 없어 그 방향을 알지 못한다.”라는 네 구절을 말하고, 이어서 그것은 오직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라고 한 구절로 끝맺은 것을 살펴보면, 이것은 바로 마음의 체용(體用)을 가리켜서 그 두루 유행하는 변화와 헤아릴 수 없는 신명(神明)의 정묘(精妙)함을 말하였습니다. 만약 놓으면 사라진다는 것을 이처럼 내달려야 이를 수 있다고 말할 것 같으면, 공자가 마음의 본체를 이야기한 까닭이 다만 마음을 얻는 병만 이야기한 것이 됩니다. 성인이 말을 만들고 사물에 이름 붙인 뜻이 아마도 이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나감과 들어옴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으니, 놓아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按孔子言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四句, 而以惟心之謂與一句結之, 正是直指心之體用而言其周流變化神明不測之妙也. 若謂以其舍之而亡, 致得如此走作, 則是孔子所以言心體者乃只說得心之病矣. 聖人立言命物之意, 恐不如此. 出入兩字有善有惡, 不可皆謂舍之而亡之所致也.

 

또한 마음의 본체를 있다없다등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한 것도 온당하지 않습니다. 만약 잡아서 보존된 것이 애초에 본체가 아니라고 한다면 보존된 것이 과연 무엇이며, 또한 어째서 꼭 보존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약(子約: 呂祖儉)은 마음을 보존해야 할 때 아직 살펴서 알지 못했는데도 옮겨서 움직였다면, 이것은 보존한 것이 익숙하지 못하면서 급히 살펴서 알려는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어제 그 편지에 답하면서 상세히 논했으므로 이제 그것을 기록하여 가르침을 구합니다. 그 나머지는 자약이 대부분 옳으므로 따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又如所謂心之本體不可以存亡言, 此亦未安. 蓋若所操而存者初非本體, 則不知所存者果爲何物, 而又何必以其存爲哉? 但子約謂當其存時, 未及察識而已遷動, 此則存之未熟而遽欲察識之過. 昨報其書, 嘗極論之, 今錄求敎. 其餘則彼得之已多, 不必別下語矣.

 

이 때문에 우연히 호문정공(胡文定公: 胡安國)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것이 마음의 본체이고, 바로 생겨났다가 바로 소멸하는 것이 마음의 쓰임이므로, 늘 잡아서 보존한다면 하루에 백 번 생겨났다가 백 번 소멸하더라도 마음은 진실로 그대로이다.”라고 한 말을 다시 기억해냈는데, 그것이 본래 좋은 말입니다. 다만 독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라고 한 구절이 덩어리로 뭉쳐 움직이지 않으면서 지각이 없는 것을 가리킨 것이 아니며, 나아가 백 번 생겨나고 백 번 소멸하는 과정 안에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은 별도의 한 가지 사물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 마음이 빛이 나서 전혀 사사로운 뜻이 없다면, 이것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본체입니다. 이치에 따라서 생겨나고 이치에 따라서 소멸되는 것은 느끼어 마침내 천하의 연고(緣故)에 통하는 것을 말할 따름입니다. 예전에 이에 대해 분명하지 못하여 도리어 그 말 중에 매우 지나친 것이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지금 본다면 나의 해석에 잘못이 있었지, 말한 사람의 과실이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因此偶復記憶胡文定公所謂不起不滅心之體, 方起方滅心之用. 能常操而存, 則雖一日之間百起百滅, 而心固自若, 自是好語. 但讀者當知所謂不起不滅者, 非是塊然不動, 無所知覺也, 又非百起百滅之中別有一物不起不滅也. 但此心瑩然, 全無私意, 是則寂然不動之本體. 其順理而起, 順理而滅, 斯乃所以感而遂通天下之故者云爾. 向來於此未明, 反疑其言之太過. 自今觀之, 却是自家看得有病, 非立言者之失也. 不審高明以爲如何? 因風却望示敎.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순희(淳熙) 1(갑오, 1174, 45)에 석돈에게 쓴 편지이다. 유가의 마음의 수양법이 불교와 다르다고 언급하면서 호굉을 비판하였다.

 

마음에 대한 말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더욱 수렴(收斂)하여 요점을 이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써 마음을 부린다는 말에 대해서 의심하신 것도 좋습니다. 대개 정자(程子)의 뜻도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산만하게 달아나지 않도록 한 것일 따름입니다. 맹자가 말한 잡으면 보존된다.”는 것이나 놓으면 사라진다.”는 것이 다 이런 종류입니다. 어찌 이것으로써 저것을 부리는 것을 이른 것이겠습니까? 다만 지금 사람들이 살펴 안다.’는 말에만 집착하여 이리저리 찾아서 붙들려는 뜻이 있으니, 성현들이 말한 잡아 보존하고 주재한다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털끝만치의 차이일지라도 확실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석씨(釋氏)의 설로 흐르게 됩니다. 예컨대 호씨(胡氏: 胡宏)의 글은 이러한 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전에 숙경(叔京: 何鎬)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에 대해 논의한 것이 특히 통쾌하지 못하여 이렇게 답하면서 별지로 가르침을 구합니다. 이 편지에서처럼 말한다면 잘못일까요?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을 다하는 것 등에 대한 말은 거론하는 맥락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것도 큰 절목이 있는 곳이 아니니 서서히 강론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心說甚善, 但恐更須收歛造約爲佳耳. ‘以心使心’, 所疑亦善. 蓋程子之意亦謂自作主宰, 不使其散漫走作耳. 如孟子云操則存’, 求放心’, 皆是此類, 豈以此使彼之謂邪? 但今人著箇察識, 便有箇尋求捕捉之意, 與聖賢所云操存主宰之味不同. 此毫釐間須看得破, 不爾則流於釋氏之說矣. 如胡氏之書, 未免此弊也. 昨日得叔京書, 論此殊未快, 答之如此, 別紙求敎. 如此言之, 莫無病否? 窮理盡性等說, 不記話頭是如何. 然此亦非大節所存, 俟徐講之未晩也.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건도 4(무자, 1168, 39)에 석돈에게 쓴 편지이다. 왜냐하면 편지에서 정해(1167, 38)8월에 악록서원에 있는 남헌을 방문한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식을 방문한 내력, 호굉의 제자들이 선불교에 가깝다는 비판, () 공부의 의미, 석자중의 거처인 극재(克齋)의 기문(記文)을 짓는 일 등에 대해 나와 있다.

 

저는 지난 가을에 장사(長沙)로 떠난 지 달포 뒤에나 도착하였고, 두 달 동안 머문 뒤에 돌아왔는데, 길을 빙 돌아 50여 일이 걸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다행히 노모는 건강하고 여러 정황도 그런 대로 괜찮았습니다. 다른 일들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흠부(欽夫: 張軾)는 견해가 탁월하여 미칠 수 없습니다. 그와 교류한 지 오래였는데 계속해서 유익하게 열어준 것이 많았습니다. 다만 그는 타고난 자질이 명민하여 처음부터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 이런 경지를 얻었으므로, 오늘날 사람들에게 말할 때 너무 고원한 것에 과실이 많습니다. () 강 지역의 배우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따라 노는 사람들이 마침내 공허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그에 따르는 폐단 또한 장차 해가 될 것입니다. 남헌은 근래에 이 잘못에 대해서 절실히 깨닫고는 나와 헤어진 뒤로 마땅히 그러한 폐단을 구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따라 배우는 학자들 역시 절대로 얻기 어려운 실질 처를 이해하려고 하니, 이로부터 이 도가 밝히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씨(胡氏)의 자제 및 그의 문인들 가운데도 이 도()를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모두 실제로 얻은 것은 없으면서도 몽둥이를 잡고 먼지털이를 세우는 것이 마치 선()을 이야기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호문정공(胡文定公)의 본래의 취지와는 크게 어긋나니, 다시 논의할 곳이 없습니다. 오직 흠부(欽夫)만이 안팎을 꿰뚫어 통하였습니다. 옛 습관이나 견해에는 조금 치우친 곳이 있었는데 이번에 만나보니 다 깨닫고서 풀어버려서 논의하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백숭(伯崇)이 정진하는 뜻은 도리어 전날에 미치지 못하였고, 택지(擇之)의 견해와 지조는 더욱 정밀하였습니다.

熹自去秋之中走長沙, 閱月而後至, 留兩月而後歸. 在道練繚繞, 又五十餘日. 還家幸老人康健, 諸况粗適, 他無足言. 欽夫見處卓然不可及, 從游之久, 反復開益爲多. 但其夫姿明敏, 從初不歷階級而得之, 故今日語人亦多失之太高. 湘中學子從之游者遂一例學爲虛談, 其流弊亦將有害. 比來頗覺此病矣, 別後當有以救之. 然從游之士亦自絶難得撲實頭理會者, 可見此道之難明也. 胡氏子弟及它門人 亦有語此者, 然皆無實得, 拈槌竪拂, 幾如說禪矣, 與文定合下門庭大段相反, 更無商量處. 惟欽夫見得表裏通徹, 舊來習見微有所偏, 今此相見, 盡覺釋去, 儘好商量也. 伯崇精進之意反不逮前, 而擇之見趣操持愈見精密.

 

당신의 ()’자에 대한 말은 저의 생각과 잘 들어맞습니다. 󰡔대학(大學)󰡕의 순서도 모름지기 이렇게 보아야만 뜻을 얻습니다. 격물(格物)과 치지(致知)가 완전히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쓰지 않은 것이 아니고, 성의와 정심이 도리어 격물과 치지를 전혀 쓰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래에서 배우기를 조밀하게 해야 나중에 넓게 나아가 태연하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처음과 끝의 다름입니다. 실제로는 처음과 끝이 하나의 ()’자입니다. 다만 경() 가운데서 모름지기 체찰(體察)하는 공부가 있어야만 실천으로 나타나고 익혀서 살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멍청히 경()만 잡고서 진보하는 곳이 없습니다. 공자가 인()을 묻는 문인들에게 답변한 것이 서로 다르지만, 큰 요점은 경()을 입문 처로 삼음으로써 일상생활의 익숙한 곳에서 깨달아 아무렇게나 내달리지 못하도록 한데 있습니다. 지금의 배우는 사람들이 앞과 뒤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실천과 해석이 각각 서로 바탕이 되지 못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요즘에야 이런 의미를 알았으나, 역시 한 덩어리를 이루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큰 조화 안에 저절로 편안한 집이 있다.”고 한 말에는 참으로 병이 있지만, 당시의 의도는 스스로 주재하는 경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조화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이것을 안 뒤에 솔개가 하늘에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 뛰는이치를 환하게 접하는 것입니다. 만약 범범하게 하늘과 땅을 가리켜서 큰 조화가 곧 편안한 집이고, 편안한 집이 곧 큰 조화라고 한다면, 도리어 밋밋한 멍텅구리와 같아서 성인의 문하에서 인을 구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敬字之說, 深契鄙懷. 只如大學次序, 亦須如此看始得. 非格物致知全不用誠意正心, 及其誠意正心, 却都不用致知格物. 但下學處須是密察, 見得後便泰然行將去, 此有始終之異耳. 其實始終是箇, 但敬中須有體察功夫, 方能行著習察. 不然, 兀然持敬, 又無進步處也. 觀夫子答門人爲仁之問不同, 然大要以敬爲人門處, 正要就日用純熟處識得, 便無走作. 非如今之學者, 前後自爲兩段, 行解各不相資也. 近方見此意思, 亦患末得打成一片耳. ‘大化之中, 自有安宅’, 此立語固有病, 然當時之意却是要見自家主宰處. 所謂大化, 須就此識得, 然後鳶飛魚躍, 觸處洞然. 若但泛然指天指地, 說箇大化便是安宅, 安宅便是大化, 却恐顢頇儱侗, 非聖門求仁之學也. 不審高明以爲如何?

 

극재(克齋)의 기문(記文)은 아마도 제가 감히 지을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꼭 얻으려고 하신다면, 몇 년의 여유를 좀 주어 다시 공력을 들여서, 혹 견해에 차츰 진보가 있어야만 감히 명을 받들 수 있을 것입니다. 흠부(欽夫)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한 편의 󰡔극재명󰡕을 써서 주어 그 글 여러 편이 함께 왕래되는데, 높이 평가해 줄만 곳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것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흠부가 선생님의 풍모(風貌)를 듣고서 또한 매우 경모(傾慕)하였는데, 이제야 제가 그가 사귀고 싶어 한다는 뜻을 전합니다.

克齋恐非熹所敢記者, 必欲得之, 少假歲年, 使得更少加功, 或所見稍復有進, 始敢承命耳. 欽夫爲人作一克齋銘錄呈, 它文數篇幷往, 有可評處, 幸與聞之. 欽夫聞老兄之風, 亦甚傾企, 今熹致願交之意也.

 

순지(順之)가 이곳에 왔었지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수양이 더욱 순수해지고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편지를 남겨 신중함을 보인 것이 매우 지극했지만 결국은 불교의 승려나 거사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뒤에 또 편지를 부쳐 이곳의 친척들에게 장사(長沙)에서 한 논의에 대해서 물으면서 말하기를, “석씨(釋氏)를 비방하는 사람에게는 꼭 보낼 필요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 유가(儒家) 안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 그가 이르기를 마음을 담박(淡泊)하게 하고, 세상에서 구하는 것이 적게 하고, 때때로 성현의 말씀을 음미하여 내 정신과 참 자아를 기르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습니다. 그 구절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이야기는 모두 다 큰 병통인 듯합니다. 접때 서로 모였을 때 주의를 준 적이 있는지요?

順之此來不及一見, 所養想更純熟. 留書見儆甚至, 但終有桑門伊蒲塞氣味. 到家後又寄書來, 與此間親戚問湘中議論, 而曰: ‘謗釋氏者不須寄來.’ 觀此意見, 恐於吾儒門中全末有見. 又云: ‘不如且棲心淡泊, 於世少求, 時玩聖賢之言, 可以資吾神, 養吾眞, 一一勘過, 似此說話皆是大病. 不知向來相聚, 亦嘗徽之否?

 

이 도()가 쓸쓸한데 요사이 또 사악한 말이 어지럽게 낭자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고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듣자하니 홍괄(洪适)이 회계(會稽)에서 장자소(張子韶)의 경전 주석을 모두 가져다가 판각(板刻)하여 간행한다고 하니, 이 화()는 매우 참혹한 것이어서 홍수나 오랑캐나 맹수의 피해보다 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한심하게 생각합니다. 제 사람됨이 미천하고 배운 것이 얕은데다가 그것을 막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더 생각하고 스스로 힘써서 더욱 벗들의 도움을 구하여 겨우 성인의 무리를 뒤좇아 가면서, 조금이나마 후세 사람들이 비뚤어진 길에서 나오도록 지적하여 완전히 그 해독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니, 그것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입니다. 순지(順之)가 이 말을 들으면 도리어 자소(子韶)를 비방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此道寂寥, 近來又爲邪說汨亂, 使人駭懼. 聞洪适在會稽盡取張子韶經解板行, 此禍甚酷, 不在洪水夷狄猛獸之下, 今人寒心. 人微學淺, 又未有以遏之. 惟益思自勉, 更求朋友之助, 庶有以追蹤聖徒, 稍爲後人指出邪徑, 俾不至全然陷溺, 亦一事耳. 順之聞之, 必反以爲謗子韶也.

 

화답(和答)을 주시니 대단한 영광입니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의 기상처럼 마음 안이 맑고 시원하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합니다. 다만 저에게 기대하는 뜻이 너무 지나치고 호칭도 여러 차례 고쳐 줄 것을 청했지만 고쳐 주지 않으니, 더욱 스스로 편안치 않습니다. 이제부터 아무쪼록 저의 말을 받아주시어 저를 아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어 보내주신 편지에 두 번 절하고서 사양하게 된다면, 다시는 자기보다 뛰어난 유익한 친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그렇게 해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갑자기 추밀원편수관대차의 명이 뜻밖에 내렸는데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다시 물어보니 그 자리가 비기까지 아직 많이 남았으므로 여러 이유를 대며 피할 수 있었는데, 마침내 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공허한 이름을 쓰고 있을 수 없어서 아침저녁으로 피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순지 또한 반드시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和篇拜賜甚寵, 足見比來胸中灑落, 如光風霽月氣象. 但見屬之意甚過, 而稱謂屢請不蒙改更, 深不自安. 自此萬望垂聽, 乃荷愛予, 不然, 恐與來敎再拜而辭之, 則不得復資勝己之益矣. 千萬誠告, 伏惟裁之. 熹忽有編摩之命, 出於意外, 卽不敢當. 復聞闕期尙遠, 足以逡巡引避, 遂且拜受. 然亦不敢久冒空名, 旦夕便爲計矣. 但順之又未必以爲是耳.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석돈에게 쓴 편지이다. 학교에서 강학하는 일을 석자중의 친구인 경로(耕老)가 담당하기에 부적합하다는 내용이다.

 

말하신 현의 학교에 대한 일은 이전 편지에서 이미 조리를 갖추었습니다. 만약 이번에 말하신 대로라면 일이 더욱 귀중한 것이니, 반드시 도를 전하고 과업을 주어서 의혹을 푸는 참됨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현도(縣道)의 일을 갑자기 이렇게 처리한다면 법을 담당하는 상관의 꾸지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옛 친구인 경로(耕老)가 비록 가난하여 마음으로 깊이 유념한다고 할지라도, 형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잘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보고 싶으니 그를 한 번 불러 열흘 나절 뒤에 본다면 좋겠습니다. 그에게 보내는 편지 한통을 올립니다. 편지 안의 말은 단지 형님께서 서로 만자고자 하였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내용입니다.

所諭縣庠事, 前書已具禀矣. 若如今者所諭, 則事體尤重, 須有傳道授業解惑之實, 乃能當之. 不然, 則以縣道事力遽爲此事, 典憲譏訶, 恐有所不能免. 耕老雖故舊食貧, 心極念之, 然不敢贊兄爲此也. 必欲相見, 招其一來, 爲旬日之款則不妨. 一書納上, 書中之說只云老兄欲相見, 它不敢及也.

 

대저 강학(講學)할 때에 마땅함을 얻기가 어렵고, 사물을 접할 때에 절도에 맞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전에 이치를 보는 것이 스스로 분명하지 못하여, ()으로 들어가는 문을 얻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급급하였습니다. 그래서 거짓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자기를 잃고 남을 그르친 것이 한 번이 아닙니다. 이제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논의할 때 모두 두렵고 겁이 나서, 다시 예전과 같은 용기와 날카로움이 사라졌습니다. 오직 이 몸을 닦고 다스려야만 과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깊이 믿어 뜻을 얻고 아래에서 실질적인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감히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노여움을 산 것이 여려 번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짓된 말과 거짓된 행동으로 성인에게 죄를 얻기보다는 이렇게 신중히 함으로써 세속의 사람들에게 죄를 얻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한 번 뵈옵고 마주 보고서 논의하기를 깊이 바라면서도, 아직 할 수 없었습니다. 형님은 요즘 책을 보고 논의를 세우는 것이 전날에 비하여 어떠신지요? 편지로 한두 가지 내용을 알려 주신다면 이것이 곧 평소에 받아서 쓰이게 하는 곳입니다.

大抵講學難得是當, 而應事接物尤難中節. 向來見理自不分明, 不得人德門戶, 而汲汲爲人妄有談說, 其失己誤人, 非一事矣. 今每思之, 不覺心悸. 故近日議論率多畏怯, 無復向來之勇銳. 惟欲修治此身, 庶幾寡過. 自非深信得及, 下得樸實功夫者, 未嘗敢輒告語. 以此取怒於人蓋多. 然與其以妄言妄作得罪於聖人, 不若以此得罪於流俗之爲愈. 私心甚欲一見長者面論而未可得, 不知尊兄近日觀書立論比向曰如何? 因書得示一二, 便是平日受用處矣.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석돈에게 쓴 편지이다. 학교를 운영하는 일과 관련하여 정호와 정이의 선례를 참고하라고 조언하였다.

 

국재(國材)가 괴롭게 배우는 것이 가장 염려되며, 잡박하여 스스로 힘을 받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정말로 한번 만나고 싶은데 혹시라도 그가 도착하게 되면 채비를 챙겨서 파견하여 한번 오게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명도(明道)의 문집 안에서 논하는 학교 제도가 가장 근본이 서 있는데 생각해보신 적 있는지요? 매번 그 글을 잃고 그가 논의한 강학 처를 볼 때면 놀라면서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그 때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이천(伊川)이 원우(元祐) 연간에 학교 제도와 조목을 마련하고 존도당(尊道堂)과 같은 건물을 세운 것도 이 뜻입니다. 그러나 때에 맞게 행하고 마땅함을 따르는 것에도 곡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울러서 참고해 보신다면 마땅히 부합하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國材苦學最可念, 所恨駁雜滯泥, 自無受用處. 深欲一見之, 或到, 能津遣一來爲幸. 明道集中所論學制最爲有本, 曾經意否? 每讀其書, 觀其論講學處, 未嘗不慨然發歎, 恨此生之不生於彼時也. 伊川元祐所修條制, 立尊道堂之類, 亦是此意, 然時措從宜處亦有曲折. 幸倂取觀之, 當有所契.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석돈에게 쓴 편지이다. 󰡔논어󰡕의 여러 구절을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배움과 익힘의 해석과 관련하여 장식을 비판하면서 양시, 사량좌, 정이 등의 학설을 인용하여 풀이하였다.

 

남헌(南軒: 張軾)󰡔논어해󰡕 1장의 과실은 배움익힘두 개념을 구별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또한 배우는 자의 공부에 이미 사이와 단절이 없어야 한다면서도 도리어 때때로 익히는 것이 두 번째 일이라고 하니 의심스럽습니다. 비록 택지(擇之)배움익힘두 개념을 구별하였을지라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니, 마침내 멋대로 배치하여 억지로 우기면서, 어지러이 뒤섞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리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대체로 배움익힘두 개념은 도리어 구산(龜山: 楊時)이 안자(顔子: 顔回)의 일을 형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상채(上蔡: 謝良佐)가 말한 전수받음이란 남에게서 얻은 것이고, 익힘이란 자기에게서 얻는 것이다.”라는 구절도 옳습니다. 그러나 통합하여 말한다면 배움이라고만 말하므로, 이천이 말하기를 널리 배움, 살펴 물음, 신중히 생각함, 밝게 변론함, 두터이 실천함 등 다섯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폐하면 학문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누어서 말하자면 배움이란 아직 모르므로 알기를 구하는 공부이고, 익힘이란 아직 능하지 않으므로 능하기를 구하는 공부입니다. 반드시 널리 배움, 살펴 물음, 신중히 생각함, 밝게 변론함, 두터이 실천함 등으로써 익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천은 생각함이라는 개념으로써 익힘을 풀었으니, 그것은 그 요점을 든 것입니다. 배움이란 이미 배워서 알고, 익혀서 능하고, 때때로 익혀서 잊지 않은 뒤라야 사이와 단절이 없는 경지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미 사이와 단절이 없다고 한다면 또한 무엇 때문에 다시 때때로 배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익힘에 대한 남헌의 설명은 완전히 전도되어 있고, 택지가 논의한 것도 분명하지 않아서 문체가 조화롭지 못하고 의미가 가볍고 방자하여 작은 잘못이 아닙니다. 마땅히 깊게 경계해야 합니다.

南軒語解首章其失在於不曾分別’‘二字, 又謂學者工夫巳無間斷, 却要時習, 只此二事, 可疑耳. 擇之雖欲分別’‘二字, 而不曾見得分明, 却遂便差排硬說, 尤覺紛拏, 不成條理. 大抵’‘二字却是龜山將顔子事形容得分明, 上蔡所謂傳者得之於人, 習者得之於己’, 其說亦是. 然統而言之, 則只謂之學, 故伊川有博學蕃問愼思明辯篤行, 五者廢其一, 非學也之語. 分而言之, 則學是未知而求知底功夫, 習是未能而求能底功夫. 須以博學蕃問爲學, 愼思明辯篤行爲習. 故伊川只以字解, 蓋擧其要也. 學字者旣學而知之, 又當習以能之, 及其時習而不忘, 然後無間斷者始可得而馴致矣. 若已無間斷, 則又何必更時習乎? ‘字南軒之說正顚倒了 擇之所論又不分明, 而詞氣不和, 意象輕肆, 尤非小病, 所宜深警省也.

 


실천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이라는 구절에 대한 변론은 특히 분명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실천하고 남은 힘이 있다는 것은 여러 일을 행한 이외에 남은 공부가 있으니 이러한 공부로써 글자와 기예를 배울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지, 실천이 자연스러운 경지에 올라 여력이 생기게 되면 이런 뒤에야 반드시 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行有餘力’, 此章所辨詞意殊不分明. 大率行有餘力, 止是言行此數事之外有餘剩底工夫, 方可將此工夫去學文藝耳, 非謂行到從容地位爲有餘力, 必如此然後可學文也.

 

이천이 말한 효자가 상을 치룰 때 부모가 살아 계셨을 때의 도를 보존하고 지키는데 뜻을 둔다.”는 구절과, 장씨(張氏: 張軾)가 풀이한 뜻이 슬퍼서 다른 것을 물을 겨를이 없다.”는 말은 다릅니다. 유씨가 말한 마땅히 고쳐야 하지만 아직 고치지 않을 수 있는 것과 장씨가 풀이한 혹 고칠 수도 있으나 아직 고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또한 택지가 변론한 말이 많을지라도 이에 미치지 못한 것을 왜일까요?

伊川言孝子居喪, 志存守父在之道與張解志哀而不暇它問之語不同, 游氏說在所當改而可以未改與張解可以改, 可以未改之語亦異. 擇之辨說雖多, 却不及此, 何也?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석돈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논어󰡕에 나오는 이에 종사하는 것’, ‘두텁게 믿는 것등의 여러 구절과 기타 󰡔맹자󰡕, 정이의 말, 주돈이의 말 등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였다.

 

물음: ‘이에 종사하는 것이 힘쓰는 것일까요? 만약 힘쓰는 것이라면 도리어 자기의 능력과 자기가 많이 안 것에 대해 알면서도 능력이 없고 아는 것이 적은 사람에게 꼭 물어야 하고, 스스로 자기의 소유와 실력을 알면서도 없는 것처럼 혹은 빈 것처럼 해야 하니, 사기에 가깝지 않을까요? 예컨대 도리어 힘쓰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성인의 경지일 것입니다. 만약 안자가 자기의 부족함과 타인의 남음을 알았을 뿐이라면 어떻게 자기가 능력이 있고, 많이 알고, 소유하고 있고,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겠습니까? 도리어 증가가 보기에 안자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도 조금 아는 사람에게 묻고,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하고, 실력이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듯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안자가 이와 같이 한 것을 찬탄하였지, 안자가 힘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인에 도달한다면 하늘과 땅처럼 능력과 무능력, 많이 아는 것과 조금 아는 것, 소유와 무소유, 실력과 헛됨 등을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것이에 종사하는 것은 다만 안자의 경지입니다.

從事於斯’, 是著力否? 若是著力, 却是知自己能自己多, 須要去問不能與寡者. 自知己有己實, 須要若無若虛, 不幾於詐乎? 若說不著力, 却是聖人地位. , 顔子只見在己不足, 在人有餘, 何嘗以己爲能爲多爲有爲實? 曾子却見得顔子以能問不能, 以多問寡, 有若無, 實若虛, 故贊歎其所爲如此, 非謂其著力也. 到得聖人, 則如天地, 不必言能不能多寡有無虛實矣. 此只是顔子地位.

 

대답: 제가 보건대 이것은 안자가 자기의 부족한 것과 남의 남은 것을 안 것이라는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다만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묻고, 아는 것이 적은 사람에게 묻고, 없는 듯이 하고, 빈 듯이 한 것에 힘써야 할 곳이 있지만, 다만 이 네 가지 일에만 힘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성인이라면 참으로 하늘이나 땅과 같은데도 스스로 남음이 있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熹按, 此謂顔子只見在己不足, 在人有餘者得之矣, 然只問不能問寡, 若無若虛, 便是更有用力處在, 但不是著力作此四事耳. 若聖人則固如天地, 然亦未嘗自以爲有餘也.

 

물음: ‘두텁게 믿는 것이란 깊이 믿는 것과 같습니다. 이천에 의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직 깊은 맛을 모르는 것일 뿐임을 뜻합니다. 맛을 알고서 사랑하는 것이 믿음이 두터운 것입니다. 만약 두텁게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배우기를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지키는 것이란 죽음에도 도리가 있음을 뜻합니다. ‘도를 잘 실천하는 것이란 장인이 자기의 일에 뛰어나려고 하는 것이나 자기의 직분에 뛰어나다고 할 때의 뛰어남과 같이 도에 뛰어난 것을 뜻합니다. 죽음을 지키는 것이 도에 뛰어난 까닭입니다.

篤信猶曰深信’. 伊川謂只是無愛心, 其實只是未知味. 知味而愛, 所謂信之篤者也. 若不篤信, 安能好學? ‘守死謂死得有落著, ‘善道謂善其道, 工欲善其事善於其職’. 守死所以善道.

 

대답: ‘두텁다는 것은 후하다는 뜻이고, ‘깊다는 글자에 대한 설명은 뜻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지킨다는 것은 죽도록 스스로 지키는 것일 뿐이어서, 죽음에 도리가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개 두텁게 믿어야 배우기를 좋아할 수 있고, 죽도록 지켜야 도에 뛰어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두텁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한 뒤에야 죽음을 지키어 도에 뛰어날 수 있습니다. 두텁게 믿는 것은 죽도록 지킬 수 있는 까닭이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도에 뛰어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또한 두텁게 믿으면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고, 죽도록 지키려면 도를 얻는데 뛰어나야만 합니다. (이것이 죽음에 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텁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려면 죽도록 지키면서 도에 뛰어나야 합니다. (여러 뜻을 종합해야 개념이 완비됩니다.)

‘.有厚意, ‘字說不盡. 守死只是以死自守, 不必謂死得有落著. 蓋篤信乃能好學, 而守死乃能善道也. 又能篤信好學然後能守死善道 : 又篤信所以能守死, 好學所以能善道 : 又篤信不可以不好學, 守死須要善得道. (此所謂死得有落著也.) 又篤信好學須要守死善道. (數義錯綜, 其意始備.)

 

물음 : 자신이 태학(太學)의 관직을 맡거나 관각(館閣)의 직책을 맡은 경우에 조정에서 발생하는 이해득실의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혹 재집(宰執)과 대간(臺諫)의 직무를 맡으면서, 마땅히 이해해야 할 일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스스로 입을 닫고 침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국가가 화()를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을 경우에는 나서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 정사를 도모한다는 혐의를 받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예컨대 다른 일을 맡는 것은 안 된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러한 이치를 임금에게 알리는 것은 무슨 까닭에 안 될까요?

且如自己爲學官, 爲館職, 遇朝廷有利害得失, 或是宰執臺諌, 所當理會者它不理會, 自己要縅黙. 又不忍國家受禍, 要出來說. 又有出位謀政之嫌. 如之何則可? , 若任他事却不可, 若以其理告君, 何故不可?

 

대답 : 만약 큰 일이 국가의 안위(安危)와 백성의 화복(禍福)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어찌 입을 닫고 침묵할 수가 있겠습니까? 관각의 직책은 또 태학의 관직과 달라서 신종(神宗)이 진실로 그렇게 논의한 일을 허락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일이 사소하다면 모든 일마다 자주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若是大事, 繫國家安危生靈休戚, 豈容緘黙? 館職又與學官不同, 神宗固嘗許其論事矣. 但事之小者, 則亦不必每事數言也.

 

물음: “공자가 아홉 오랑캐의 지역에서 살고 싶어 했다.”는 것과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다닌다.”는 것은 같은 뜻입니다. 당시에 도가 시행되지 않고 중국의 고루함을 아파하면서 실제로 아홉 오랑캐의 지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떠나지 않았던 것은 이치를 따르는 것으로 아무런 사사로운 뜻이 없습니다. “군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는 구절은 군자가 사는 곳이 감화되므로 어떤 누추함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묻기를 아홉 오랑캐도 감화될 수 있는데 왜 중국을 감화시키지 못할까요?”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도가 이미 시행되지 않고 중국이 이미 감화되지 않아서 아홉 오랑캐의 지역에서 살고 싶어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감화되느냐 감화되지 않느냐의 차이는 대상에게 있으니, 어찌 성인이 사는 곳이라고 하여 반드시 감화될 수 있겠습니까? 이치는 이러한 뿐입니다. 중국이 감화되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子欲居九夷’, 與乘桴浮海同意. 當時傷道之不行, 中國之陋, 實起欲居九夷之念. 已而不去, 亦是順理, 都無私意. ‘君子居之, 何陋之有?’, 言君子所居則化, 何陋之有? 或問九夷尙可化, 何故不化中國? , 此是道已不行, 中國已不化, 所以起欲居九夷之意. 化與不化在彼聖人, 豈得必所居則化? 理如此耳. 中國之不化, 亦怎奈何?

 

대답: 당시 중국은 성인의 감화를 입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임금이 쓰지 않은 통에 그 도를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當時中國未嘗不被聖人之化, 但時君不用, 不得行其道耳.

 

물음: “그가 그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구절에서 그침이란 성인이 끝까지 이룬 경지로 ()’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안자는 중을 분명하게 알았으나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도달하면 성인이 되므로 공자가 탄식하였습니다. “내가 그치는 것이다.”는 구절과 그가 그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구절에 대해 의미가 같은지 다른지를 따져봅시다. 그친다는 말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쓰이는 곳이 다릅니다. “그가 그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그쳐야 할 곳에 그치는 것이지만, “내가 그치는 것이다.”는 그치지 않아야 할 곳에서 그치는 것입니다.

未見其止’, 止是聖人極致處, 所謂中是也. 顔子見得中分明, 只是未到, 到便是聖人, 故夫子嘆之. 吾止也未見其止同異, , 止則一般, 但用處別. ‘未見其止是止於其所止, ‘吾止也是於其所不當止而止.

 

대답: 위와 아래의 문장으로써 살펴본다면 아마도 내가 그치는 것이다.”그침과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以上下文考之, 恐與吾止.

 

물음: 앎으로써 밝히고, ()으로써 지키고, 용기로써 실천하라고 할 때 그 요점은 앎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앎이 밝더라도 인으로써 지키지 않으면 안 되고, 인으로써 지키더라도 용기 있게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는 어느 하나라도 생략해서는 안 되지만 앎이 제일 먼저입니다.

知以明之, 仁以守之, 勇以行之, 其要在致知. 知之明, 非仁以守之則不可 : 以仁守之, 非勇而行之亦不可. 三者不可闕一, 而知爲先.

 

대답: 이 말은 매우 좋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힘써야 할 내용입니다.

此說甚善, 正吾人所當自力也.

 

물음: “아는 사람은 의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택지에 의하면 덕을 진전시키는 일입니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의혹되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덕을 이루는 일입니다. 앎을 먼저 하고 인을 나중에 하는 것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행하는 것이요, 쓰임에서부터 본체에 이르는 것이요, 밝음에서부터 정성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정성스러워지는 것은 사람의 도입니다. 인을 먼저 하고 지혜를 나중에 하는 것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행하는 것이요, 본체로부터 쓰임에 미치는 것이요, 정성스러움에서 밝아지는 것입니다. 정성스러움이란 하늘의 도입니다. 세 구절이 비록 같을지라도 인과 지혜의 앞뒤는 다르다면 덕을 이루는 것과 덕을 진전시키는 것에도 차이가 있으므로 분별해야 합니다.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擇之云此是進德事. 仁者不憂, 智者不惑, 勇者不懼, 此是成德事. 先知後仁, 從外做入, 由用以至體, 自明而誠. 誠之者, 人之道也. 先仁後智, 從裏做出, 由體以及用, 自誠而明. 誠者, 天之道也. 三句雖同, 只仁智先後不同, 便有成德進德之間, 不可不辨也.

 

대답: 정 선생(程先生: 程頤)이 스스로 이 두 조목을 분별하였으며, 지금 이렇게 헤아려서 말한 것도 상세하게 의미를 다하였습니다.

程先生自分別此兩條, 今如此推說, 亦詳盡也.

 

물음: “공자의 도는 충()과 서()일 따름이다.”는 것은 하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요, 인과 의에 따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정성스러움은 하늘의 도여서, 하려고 하지 않아도 얻고, 힘쓰지 않아도 도리에 맞습니다. 비유컨대 들보와 기둥을 만들 때처럼 성인이 곧 척도이므로 따로 척도를 쓰지 않더라도, 하는 대로 척도에 착 들어맞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척도를 사용하여 큰지 작은지, 넓은지 좁은지, 네모인지 둥근지 등을 비교하여 재보아야만 비로소 들어맞습니다.

夫子之道忠恕’, 動以天者也, 由仁義行也. 誠者, 天之道也, 不思而得, 不勉而中也. 譬如做粱柱, 聖人便是尺度了, 不用尺度, 纔做便揍著它. 人須用尺度比量大小闊狹方圓後, 方始揍著.

 

대답: 이 말도 좋습니다.

此說亦善.

 

물음 : 안연(顔淵)이 죽었을 때 만약 공자(孔子)에게 재물이 있었다면 그에게 곽()을 만들어 주었을까요? 순지(順之)가 말하기를 만들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상례(喪禮)는 그 집 재산의 유무에 따르는 것이다. 안연의 집에 본래 재산이 없었으면 곽을 쓰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만약 공자가 곽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면 이는 안연에게 마땅함을 잃게 만드니, 공자는 분명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개 곽이란 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관()이 없었다면 반드시 만들어 주었을 것.”라고 했습니다.

顔淵死, 孔子若有財, 還與之,椁否? 順之曰: ‘不與. 喪稻家之有無, 顔淵家本無, 則其無椁乃爲得宜. 孔子若與之椁, 便是使顔淵失宜, 孔子必不肯. ,椁者, 可有可無者也, 若無棺, 則必與之矣.’

 

대답 : 만약 공자에게 재산이 있었다면 반드시 안연을 위해서 곽을 만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대개 친구 사이에는 재물을 함께 사용하는 의리가 있습니다. 하물며 공자가 안연에 대해서 아들처럼 보았으니 어떻게 했겠습니까? 상례에서 갖추어야 할 도구는 집 재산의 유무에 맞추어야 한다는 말은, 단지 옳지 않은 방법으로 다른 것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 따름입니다.

孔子若有財, 必與顔淵爲椁. 蓋朋友有通財之義, 况孔子之於顔淵, 視之如子耶? 所謂喪具稱家之有無者, 但不可以非義它求耳.

 

물음: “증석의 비파 연주가 드문드문 하더니, 쨍그렁 비파를 놓고 일어나 대답기하기를 다른 세 사람이 품은 것과는 다릅니다.’고 하였다.”라는 구절에 대해. 천기(天機)는 스스로 움직이거늘 그렇게 되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鼓瑟希, 鏗爾, 舍瑟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天機自動, 不知其所以然.

 

대답: 문인들이 증석이 비파를 놓았던 일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다만 그가 여유롭고 급박하지 않으며, 걸림 없이 자연스럽다는 뜻을 보이려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이렇게만 말한다면 장자나 열자의 말로 흐르게 됩니다. 게다가 사람의 거동 중에서 어느 것이 천기(天機)의 자연스러운 운동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곧 증석의 광기를 본 것일 뿐으로, 보는 것이 높지만 함양공부가 아직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門人詳記曾皙舍瑟之事, 但欲見其從容不迫灑落自在之意耳. 若如此言, 則流於莊列之說矣. 且人之擧動, 孰非天機之自動耶? 然亦只此便見曾皙狂處, 蓋所見高而涵養未至也.

 

물음 : 이천(伊川)이 이르기를,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응대하는 것이 곧 형이상자라는 것은, 이치에는 크고 작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란 다만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 달려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응대하는 것은 일이고,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응대하는 까닭이 이치입니다. 일이 곧 이치이고 이치가 곧 일입니다. ()는 모든 일에 흩어져 있으니 어느 것인들 도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일에서 털끝만치라도 어긋남이 생기게 되면, 이치에서도 곧 단절과 흠이 생깁니다. 그래서 군자가 과실을 범하지 않는 이유는 홀로 아는 것에 신중한데 달려 있습니다.

伊川云, ‘灑掃應對, 便是形而上者, 理無大小故也. 故君子只在謹獨.’ 灑掃應對是事, 所以灑掃應對是理. 事卽理, 理卽事. 道散在萬事, 那箇不是? 若事上有毫髮蹉過, 則理上便有間斷欠闕. 故君子直是不放過, 只在愼獨.

 

대답 : 이 뜻은 매우 좋습니다만,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홀로 아는 것에 신중함은 반드시 움직임과 고요함을 꿰뚫어서 공부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此意甚好, 但不知無事時當如何耳. 愼獨須貫動靜做功夫始得.

 

물음: 이천이 이르기를 자기를 이기기가 가장 어렵다. 그러므로 중용은 능히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반드시 일에 종사하면서도 효과를 미리 기필하지 말라는 뜻이 있으니,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것이 흡사합니다.

伊川云, ‘克己最難, 故曰中庸不可能也.’ 此有必有事焉而勿正之意, 過猶不及, 只要恰好.

 

대답: 자기의 사사로움을 다 이겨서 혼연히 사사로운 뜻과 기필함이 없어야 중용과 흡사한 경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자기를 이기지 못한다면 중용을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사와 명도(明道: 程顥)의 뜻입니다. “반드시 일에 종사하면서도 효과를 미리 기필하지 말라는 것은 호연지기를 기르는 법을 말하니, 이와 다릅니다.

克盡己私, 渾無意必, 方見得中庸恰好處. 若未能克己, 則中庸不可得而道矣. 此子思明道之意也. ‘必有事焉而勿正’, 是言養氣之法, 與此不同.

 

물음: 말과 행동은 예()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고 듣는 것을 어떻게 예로 실천할까요? 예컨대 나쁜 색을 보고 나쁜 소리를 듣는 경우에 만약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쁜 색과 나쁜 소리를 알 수 있을까요? 나쁜 색과 나쁜 소리를 알았다면 이미 듣고 이미 본 것입니다. 󰡔논어󰡕에서 보고 듣는 것이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약 귀와 눈에 지나가는 것이라면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마음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곧 보지 않고 듣지 않은 것입니다.

言動猶可以禮, 視聽如何以禮? 且如見惡色, 聞惡聲, 若不視不聽, 何以知得是惡色惡馨? 知得是惡色惡馨, 便是已聽已視了. , 此之視聽是以心受之, 若從耳目過, 如何免得? 但心不受, 便是不視不聽.

 

대답: 보고 듣는 것과 보이고 들리는 것은 다릅니다. 소리와 색이 눈에 접촉하면 보이고 들립니다. 보고 듣는 것이란 귀와 눈이 소리와 색을 쫒는 것으로, 마음이 받아들인 것이냐 아니냐를 논한 것이 아닙니다.

視聽與見聞不同. 馨色接於耳目, 見聞也. 視聽則耳目從乎聲色矣, 不論心受與不受也.

 

물음: “나라에서도 원망이 없고, 집에서도 원망이 없다.”는 것은 유감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타인이 원망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감히 기필할 수 없습니다. 천지가 크지만 사람에게 오히려 유감이 있습니다.

在邦無怨, 在家無怨’, 猶言無可憾者. 若它人之怨不怨, 則不敢必. 天地之大, 人猶有所憾.

 

대답: 문맥적 의미로 본다면 타인의 원망일 것입니다.

以文意觀之, 恐是他人之怨.

 

물음: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만나는 것처럼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모시는 것처럼 한다.”는 구절은 본체의 측면에서 말하였습니다. “자기가 바라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구절은 쓰임의 측면에서 말하였습니다. “나라에서도 원망이 없고, 집에서도 원망이 없다.”는 구절은 효과의 측면에서 말하였습니다.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就體上說. ‘己所不欲, 勿施於人’, 就用上說. ‘在邦無怨, 在家無怨’, 就效處說.

 

대답: 이 말은 매우 좋습니다. 택지는 문을 나서는 것백성을 부리는 것이 이미 쓰임의 측면이라고 의심했는데, 그러나 당신의 말도 무방합니다. 대개 이 두 가지 일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경건히 하는 것일 뿐으로, 베풀어서 적용한 것이 아직 없습니다.

此說甚好. 擇之疑出門使民已是用處, 然亦不妨. 蓋此兩事只是自家敬其心耳, 未有施爲措置也.

 

물음: “말할 때 참아서 한다.”라는 것은 조용히 보존하여 말하지 않아도 믿게 되는 것은 덕을 실천하는데 달렸다.”라는 구절과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네 계절이 바뀌고 만물이 생겨날 때에.”라는 구절의 뜻이 있습니다. 혹자에 의하면 말뜻이 깊지만 단지 사마우(司馬牛)가 말을 많이 하는 과실을 경계한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어진 사람은 말할 때 참아서 한다.”라는 구절에서의 어진 사람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에서의 어진 사람은 그 의미가 다르고, “어짐이란 사람이다, 의란 마땅함이다.”라는 구절에서의 어짐과 같습니다.

其言也訒’, 嘿而存之, 不言而信, 存乎德行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之意. 或曰, 說得深了, 只是箴司馬牛多言之失. ‘仁者其言也訒’, 仁者仁者不憂仁者安仁仁者不同, 正與仁者人也, 義者宜也仁者一般.

 

대답: 앞의 말은 참으로 너무 깊습니다. “어진 사람은 말할 때 참아서 한다.”라는 것은 마음을 보존하고 이치를 실천하는 것으로 본디 허황된 말이 아닙니다. 뒤의 말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前說誠太深. ‘仁者其言也訒’, 蓋心存理著, 自是不胡說耳. 後說亦恐未然.

 

물음: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의 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씨는 위아주의를 의에 가깝다고 주장하였고, 묵씨는 겸애가 인에 가깝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한 주장이 인과 의라고 생각하고 무리지어 추종하면서 그러한 말을 공격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성인의 인의에 관련된 이치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양주와 묵적의 사상이 인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의 무리입니다.

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 楊氏爲我近乎義, 墨氏兼愛近乎仁, 當時人皆以爲眞仁義也, 靡然從之, 未有言距之者. 若不是見得聖人這邊道理明白, 如何識得楊墨之非仁義? 故曰能言距楊墨者, 亦聖人之徒也.

 

대답: 사특함에서 벗어나면 바름으로 들어가고, 바름에서 벗어나면 사특함으로 들어갑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는 털끝만치도 다른 것이 끼어들 수 없습니다. 비록 아직 모르고서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자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그 마음 씀은 바름을 향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무리로서 허락하였으며, 이것은 󰡔춘추󰡕에서 잔적을 토벌하는 뜻과 같습니다.

出邪則入正, 出正則入邪, 兩者之間, 蓋不容髮也. 雖未知道而能言距楊墨者, 已是心術向正之人, 所以以聖人之徒許之, 與春秋討賊之意同.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승의 나라를 사양할 수 있지만, 진실로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을 때는 한 소쿠리의 밥과 한 사발의 국에 대해서도 그 진의가 낯빛에 드러난다.”라고 하였습니다. 순지가 이르기를 이 구절은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이 천승의 나라를 사양하는 것은 지나침이다. 진실로 이러한 사람이 아니라면 한 소쿠리의 밥과 한 사발의 국에 대해서도 반드시 낯빛에 드러난다는 것은 미치지 못함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그르다.”라고 하였습니다. 택지가 이르기를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이 천승의 나라를 사양할 수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닐 경우에는 명예를 사모하여 사양할 수 있을지라도 한 소쿠리의 밥과 한 사발의 국에 대해서는 때때로 낯빛에 드러나게 되니, 그의 본심이 이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천금이나 나가는 옥을 깰 수 있으나, 깨진 쇠솥에서 소리를 잃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경우입니다.

好名之人能讓千乘之國, 苟非其人, 簞食豆羹見於色.’ 順之云, ‘此言過不及也. 好名之人能讓千乘之國, 過也. 苟不是這樣人, 簞食豆羹必見於色, 此不及也. 二者俱非也.’ 擇之云, ‘好名之人能讓千乘之國, 若非有德之人, 雖以慕名而能讓, 然於簞食豆羹有時却見於顔色, 其心本不如是故也.’ 正所謂人能碎千金之璧, 不能無失聲於破釜者也.

 

대답: 두 설이 다 통합니다. 옛날부터 뒤의 학설과 같이 해석하였지만

兩說皆通. 舊來只如後說, 然亦嘗疑其費力. 但前說又無甚意味耳. 請更商確之

 

물음: “몸소 도를 실천하지 않으면 처자에게도 시행되지 못하고, 사람을 도로써 부리지 않으면 처자에게도 시행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도를 실천하지 않으면 처자가 모범을 취할 곳이 없어서 전혀 두려워함이 없게 되지만, 여전히 부릴 수는 있다. 만약 사람을 도로써 부리지 않는다면 처자도 부릴 수 없다.” 택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순지가 이르기를 “‘처자에게 도가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일이 시행되지 못하는 것으로, 부릴 수 없다는 의미도 그 안에 있다. ‘처자에게 시행될 수 없다는 것은 도리어 부리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로써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身不行道, 不行於妻子. 使人不以道, 不能行於妻子.’ 言身若不行道, 則妻子無所取法, 全無畏憚了, 然猶可使也. 若使人不以道, 則妻子亦不可使矣. 擇之如此說. 順之云, 不行於妻子, 百事不行, 不可使亦在其中. 不能行於妻子, 却只指使人一事言之.

 

대답: 순지가 옳다.

順之說是.

 

물음: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인의 실제이고, 형을 따르는 것은 의의 실제이다.’라고 했습니다. 대개 사람이 태어나면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알고, 커서는 자기의 형에게 공손할 줄 압니다. 이것들이 가장 먼저 드러나고 기타의 것들이 다 이로부터 확충됩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말하기를 다름이 아니라 온 천하게 공통된 것이다.”라고 하였고, 유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 근본이 서야 도가 생긴다. 효도와 공손은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맹자에 의하면 천천히 어른보다 뒤에서 걷는 것을 공손이라고 하고, 빠르게 어른 앞에서 걷는 것을 공손하지 못한 것입니다. 요순의 도는 효도와 공손함일 따름입니다. 어찌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인의 실제가 아니며, 형을 따르는 것이 의의 실제가 아니겠습니까?

事親仁之實, 從兄義之實. 蓋人之生也, 莫不知愛其親 : 及其長也, 莫不知敬其兄, 此乃最初一著, 其它皆從此充去. 故孟子曰: ‘無它, 達之天下也.’ 有子曰: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歟?’ 孟子又謂徐行後長者謂之弟, 疾行先長者謂之不弟. 堯舜之道, 孝弟而已矣. 豈非事親仁之實, 從兄義之實乎?

 

대답: 인과 의는 이치일 따름이며, 어버이를 섬기는 것과 형을 따르는 것은 그 일의 제입니다.

仁義只是理, 事親從兄乃其事之實也.

 

물음: 하늘에 있는 것이 명()이고 사람에 있는 것이 본성입니다. 사람이 없다면 명을 말할 수 없고, 하늘이 없다면 본성을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명을 말할 때는 하늘을 위주로 하고, 본성을 말 때는 사람을 위주로 할 따름입니다. 정성스러움이란 안팎을 합하는 도리로서 본성과 명을 함께 말한 것입니다.

在天爲命, 在人爲性. 無人言命不得, 無天言性亦不得. 但言命則主於天, 言性則主於人耳. 誠者, 合內外之道, 兼性命而爲言者也.

 

대답: ‘정성스러운 것이하의 말에 병이 있는 듯합니다.

誠者以下語似有病.

 

마음이란 정성스러움과 신묘함을 갖추고 있고 본체와 쓰임을 갖추고 있으므로, 고요하면서도 느낄 수 있고 느끼면서도 고요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고요하면서 움직이지 않은 경우가 정성스러움이자 본체이고, 느끼어 통하는 경우가 신묘함이자 쓰임입니다. 본체와 쓰임은 근원이 하나이며, 드러남과 은미함에 사이가 없다는 것은 마음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心該誠, 備體, 故能寂而感, 感而寂. 其寂然不動者, 誠也, 體也 : 感而遂通者, 神也, 用也. 體用一源, 顯微無間, 惟心之謂歟.

 

대답: 이 말은 매우 좋습니다.

此說甚善.

 

물음: 움직이면서 바르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고, 쓰임에 조화가 없으면 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動而不正不可謂道, 用而不和不可謂德.

 

대답: 이 두 구절의 핵심은 바름조화에 있습니다.

此兩句緊要在字上.

 

물음: “마음 안에 있는 의()”라고 하였을 때의 의란 이치입니다. 다만 이 이치가 안에 있는 경우를 중()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경우를 조화라고 합니다. 중이란 본성의 풍격이고 조화란 감정의 풍격입니다.

在中之義’, 義者, 理也. 只是這箇理, 在中者, 中也, 在外者, 和也. 中者性之體段, 和者情之體段也.

 

대답: ‘()’자에 대한 설명이 너무 심합니다. 이천의 본래 뜻은 풍격을 말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조화란 감정의 풍격이라고 한 것은 말뜻이 완비되지 못하였습니다.

字說得太重. 伊川本意亦似只說體段云爾. ‘和者情之體段’, 語意未備.

 

물음: “지극한 선에 그친다.”는 구절에서 지극한 선이란 궁극적 법칙입니다. 확지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지극한 선이란 근본이며, 모든 선이 다 여기에서 나온다.”라고 하였습니다.

止於至善’, 至善乃極則. 擴之曰, 不然, 至善者本也, 萬善皆於此乎出.

 

대답: 지극한 선은 궁극적 법칙입니다.

至善乃極則.

 

물음: 생각이란 드러내어 쓰는 기틀로, 군자는 그것으로써 선을 도모하고 소인은 그것으로써 악을 도모합니다. 어떤 일이 이로부터 나오지 않겠습니까? 다만 군자는 간략하게 하여 안으로 들어가고, 소인은 펼치면서 밖으로 내보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이란 성스러운 공능(功能)의 근본이자 길흉이 나뉘는 기틀이라고 말합니다.

思是發用之機, 君子爲善, 小人爲惡, 那事不從這上出? 但君子約入裏面來, 小人施出外面去, 故曰思者, 聖功之本而吉凶之機也.

 

대답: 마땅히 이에 신중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군자가 홀로 아는 것에 신중히 하는 까닭입니다.

正當於此謹之, 君子所以貴愼獨也.

 

물음: “성인은 중정인의(中正仁義)로써 안정시키고 고요함을 위주로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고요함을 위주로 하는 까닭은 그 근본을 고요하게 하는 것으로, 고요함이 끝에 이르면 움직이고 움직임이 끝에 이르면 다시 고요해집니다. 고요함이란 사물의 끝과 처음입니다. 만물은 고요함에서 시작하고 고요함에서 끝나므로 성인은 고요함을 위주로 합니다.

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所以主靜者, 以其本靜, 靜極而動, 動極復靜. 靜也者, 物之終始也. 萬物始乎靜, 終乎靜, 故聖人主靜.

 

대답: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움직임과 고요함에는 단서가 없고, 음과 양에는 시작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 한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움직임과 고요함의 이치는 공평한 것인데 고요함에만 힘이 실릴 뿐입니다. 이 부분을 다시 깊게 헤아리십시오.

伊川先生曰: ‘動靜無端, 陰陽無始.’ 若如此, 則倚於一偏矣. 動靜理均, 字勢重耳. 此處更宜深玩之.

 

물음: 움직임과 고요함에는 끝과 처음 그리고 손님과 주인이 있습니다. 움직일 때에는 움직임이 주인이고 고요함이 손님입니다. 고요할 때에는 고요함이 주인이고 움직임이 손님입니다. 움직임이 끝에 도달하여 고요해지면 움직임이 끝나고 고요함이 시작됩니다. 고요함이 끝에 도달하여 다시 움직이면 움직임이 시작하고 고요함이 끝납니다.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움직일 때에는 고요함의 이치가 보존되지 않은 적이 없고, 고요할 때에는 움직임의 이치가 보존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動靜有終始賓主, 方其動也, 動爲主, 靜爲賓. 及其靜也, 靜却爲主, 動却爲賓. 動極而靜, 則動却終, 靜却始. 靜極復動, 則動却始, 靜却終. 雖然, 方其動也, 靜之理未嘗不存也. 及其靜也, 動之理亦未嘗不存也.

 

대답: 택지가 말하기를 이 부분은 매우 좋지만 고요함을 위주로 한다는 뜻에 대한 설명에는 부족함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擇之云, ‘此段甚好, 但更欠說主靜之意.’

 

물음: 몽괘는 배우는 사람의 일에 해당하며, 시작하는 일입니다. 간괘는 덕을 이루는 일에 해당하며 끝내는 일입니다.

, 學者之事, 始之之事也. , 成德之事, 終之之事也.

 

대답: 주자(周子: 周敦頤)의 뜻도 이와 같지만, 이곳에서도 고요함을 위주로 하는 뜻을 볼 수 있습니다.

周子之意當是如此. 然於此亦可見主靜之意.

 

물음: 정성스러움과 공경은 어떻게 나뉠까요? 순지가 말하기를 정성스러움이란 본체적인 측면이 크고, 공경이란 힘을 쓰는 측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천이 말하기를 “‘거처에 공손하고, 일을 처리할 때 공경하고, 타인을 접할 때 충성스럽다.’라는 구절은 만사에 해당하는 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끝내 공경으로는 정성스러움을 만들 수 없습니다. 정성스러움에 도달해야만 공손과 공경과 충성이 다 쌓입니다.

敬如何分? 順之曰, 誠字體面大, 敬字却用力. , 伊川曰: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是徹上徹下語. ’如此敬亦是聖人事. , 固是, 畢竟將敬做誠不得. 到得誠, 則恭忠皆其蘊也.

 

대답: 정성스러움이란 참된 이치이자 성인의 일이니, ‘오로지 하나로 한다는 것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 뜻을 미루어보면 공경과 다르다는 것이 저절로 분명해집니다. 성인은 진실로 공경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예컨대 요 임금의 신중하고 밝은 것이나, 순 임금의 자기를 공손히 한 것이나, 탕 임금의 성스러움과 공경이 날로 늘어난 것 등이 이것입니다. 다만 본래 성인의 공경과 현인 이하의 공경은 다를 뿐입니다.

誠是實理, 聖人之事, 非專之謂也. 推此意則與字不同自分明矣. 聖人固未嘗不敬, 如堯欽明, 舜恭己, 湯聖敬日躋, 是也. 但自是聖人之敬, 與賢人以下不同耳.

 

물음: “한 번 음이고 한 번 양인 것을 도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음과 양은 기이고, 음이게 하고 양이게 하는 근거가 도입니다. 도란 음과 양의 이치입니다.

一陰一陽之謂道’, 陰陽, 氣也 : 所以陰陽, 道也. 道也者, 陰陽之理也.

 

대답: 이 말이 옳습니다.

此說得之.

 

물음: “()과 화()를 지극히 한다.”는 구절에서 지극히 한다.’는 것은 끝까지 한다.’는 것이니, ‘다하다와 같습니다. 중과 화를 지극히 하는 것이란 곧 본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致中和’, , 極也, 字同. 致中和便是盡性.

 

대답: 이 말도 옳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한다.’는 말은 공부의 측면으로, 미루어서 끝까지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확지의 편지 안에서도 이 부분을 강의하였으나 그 뜻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것을 여기에 붙여서 보입니다. 그는 또한 홀로 아는 것에 신중함에 대해 논의하였으나 뜻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대체로 홀로라는 것은 귀와 눈이 볼 수 없고 마음만이 알고 있는 곳을 가리킬 뿐입니다. 예컨대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나 마음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 지시하는 의미가 잘려나갈까 걱정해서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의 마음을 신중히 한다.’라고 고친다면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此說亦是. 字是功夫處, 有推而極之之意. 擴之書中亦講此段, 然其意亦雜, 幸幷以此示之. 渠又論愼獨, 意亦未盡. 大抵字只是耳目見聞之所不及而心獨知之之地耳. 若謂指心而言而不謂之心, 蓋恐指殺, 似不然也. ‘故君子愼其心’, 是何言耶?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석돈에게 쓴 편지이다. 󰡔맹자󰡕입이 맛에 대하여”, 󰡔중용󰡕떨어져서는 안 된다.不可離, 󰡔󰡕덕에는 정해진 스승이 없으니등의 구절에 대해 논하였다.

 

입이 맛에 대하여 등의 일은 그 중에서 당연한 것이 천리입니다. 만약 전부 일괄적으로 이치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석씨에서 물과 땔나무를 나른다는 말이 될 뿐입니다.

口之於味等事, 其當然者, 天理也. 若槪謂之理, 則便只成釋氏運水般柴之說.

 

떨어져서는 안 된다.不可離라는 구절에는 떨어질 수 없다不可得而離라는 뜻이 아직 없다는 것을 아래의 문장에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不可離恐未有不可得而離之意, 以下文觀之可見.

 

이 하나의 절은 마땅히 두 부분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은 도에 신중하고 들리지 않은 도에 두려워하는 것.’이란 소리 없는 데서 듣고 형체 없는 것을 본다고 말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아직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때에 보호하여 도의 본체를 온전히 하는 것입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란 장차 드러나려고 하는 것을 따져서 그 기미를 살피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此一節當分作兩事. ‘戒謹不睹, 恐懼不聞’, 如言聽於無聲, 視於無形也. 是防於未然, 以全其體. ‘謹獨是察之於將然, 以蕃其幾. 不知高明以爲如何?

 

도란 없는 때가 없으나, 체득하면 자신에게 합하여지고 어기면 떨어집니다. 한 번이라도 떨어지게 되면 도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시라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군자가 보이지 않은 때를 신중히 하고 들리지 않은 때를 두려워하는 것은 잠시라도 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 아래의 문장으로 본다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此道無時無之, 然體之則合, 背之則離也. 一有離之, 則當此之時, 失此之道矣. 故曰不可須臾離.’ 君子所以戒謹不睹, 恐懼不聞, 則不敢以須臾離也. 所謂以下文觀之者如此.

 

소인은 한가로이 거처할 때 좋지 않은 일을 한다.”라는 것은 악을 싫어하는 것이 악취를 싫어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군자를 본 뒤에야 자기의 선을 드러낸다.”라는 것은 선을 좋아함이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함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다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입니다.

小人閒居爲不善’, 惡惡不如惡惡臭也. ‘必見君子然後著其善’, 好善不如好好色也. 皆所以自欺而已.

 

덕에는 정해진 스승이 없으니 선을 추구하는 것을 스승으로 삼는다. 선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으니 하나로 통일하는데 합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세상의 덕에 하나로 정해진 스승이 없으니 선만을 따르면 모든 선한 사람들이 다 스승이 될 수 있고, 세상의 선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으니 마음을 통일한다면 취한 내용이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합한다.’는 것은 일치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예컨대 네 계절과 달을 같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德無常師, 主善爲師. 善無常主, 協于克一.” 此言於天下之德無一定之師, 惟善是從, 則凡有善者皆可師也. 於天下之善無一定之主, 惟一其心, 則其所取者無不善矣. ‘猶齊也, 如所謂協時月’.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석돈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논어󰡕에 나오는 효도와 공손, ()과 서(), 주자의 󰡔극재기󰡕 등에 대한 물음에 답하였다.

 

물음: “효도와 공손은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라는 구절은 인의 실천이 효도와 공손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인의 도가 효도와 공손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따르는 마음에 나아가서 익히고 살피는 것이 곧 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효도하고 공손하더라도) 윗사람을 범하고 난을 일으키는 경우가 반드시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므로 드물다고 하였습니다. 혹 그러한 경우가 있는 것은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따르는 마음을 익히면서도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자(有子)의 말은 모든 사람이 이러한 마음이 있고 이것이 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근심은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예기󰡕 「표기에서 말하기를 임금을 섬길 때 자신의 자리에 있으면서 해당하는 일을 실천하지 않은 것이 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윗사람을 범한다는 것을 낯빛을 범하는 것이고, 난을 일으킨다는 것은 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孝弟也者, 其爲仁之本歟’, 是爲仁自孝弟始也. 仁道之大而自孝弟始者, 以其卽愛親從兄之心習而察則仁矣. 然而不敢說必無犯上作亂, 故曰’. 其或有之, 以其習而不察. 故有子之言以人人有是心, 是以爲仁, 患在不察故爾. 表記曰, ‘事君, 處其位, 不履其事, 則亂也. ’謂違君命爲亂, 此所謂犯上者, 犯顔. 作亂者, 違命也.

 

효도와 공손은 덕에 따르는 것이고, 윗사람을 범하고 난을 일으키는 것은 덕에 거스르는 것입니다. 효도와 공손을 논하면서 도리어 윗사람을 범하고 난을 일으키는 일을 말한 것은 단지 효도와 공손을 불러내기 위한 것으로 소인의 중용은 소인배여서 꺼리는 것이 없다.”라는 사례와 흡사합니다. 군자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근본을 이해하여 근본이 서면 도가 이로부터 생겨나니, 어찌 그칠 수가 있겠습니까? 허순지에 의하면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손하다.”라는 것은 포괄적으로 논의한 것입니다. 마치 군자의 도에 대해 부부의 어리석음과 불초함으로도 알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경우가 효도와 공손이지만 알고 힘쓰는 것은 군자만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효도와 공손은 덕에 따르는 것이어서 결국 선하지 않은 마음이 드뭅니다.

孝弟順德, 犯上作亂逆德, 論孝弟却說犯上作亂底事, 只爲是它喚做孝弟, 恰似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一般. 君子則不然. 先理曾箇根本, 根本旣立, 道自此生, 曷惟其已? 許順之云, 其爲人也孝弟, 猶是泛而論之. 如君子之道, 夫婦之愚不肖可與知, 可能行, 非不孝弟也, 惟知務之不如君子也. 然孝弟順德, 終是不善之心鮮矣.

 

대답: 이 두 가지 설명은 대저 구하는 과실입니다. ‘드물다는 것은 적다는 것입니다. 성현의 말이 대체로 부드러워서 지금 사람들이 급박하게 잘라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 문장도 이천의 말을 보면 깊은 맛이 있습니다.

此二說, 大抵求之過矣. 鮮只是少, 聖賢之言大槪寬裕, 不似今人蹙迫, 便說殺了. 此章且看伊川說, 深有意味.

 

물음: “남이 나에게 가하기를 바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나 역시 남에게 가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천 선생의 해설을 보면, “남이 나에게 가하기를 바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나 역시 남에게 가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인()이고, 남에 자기에게 베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이 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어록에서 이르기를 󰡔중용󰡕에서 말한 남에 자기에게 베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말이 위의 두 구절을 바르게 해석하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남이 나에게 가하기를 바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나 역시 남에게 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서()이며, ()에 가깝지만 아직 인에 이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바라다는 낱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我不欲人之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 伊川解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仁也. 施諸己而不願, 亦勿施諸人, 恕也.’ 又語錄曰: ‘施諸己而不願, 亦勿施諸人, 正解此兩句.’ 又曰: ‘我不欲人之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 恕也, 近於仁矣, 然未至於仁也. 以有󰡔󰡕字耳. ’前以爲仁, 後以爲恕而未仁, 二義不同. 若以有字便以爲未仁, 我欲仁, 斯仁至矣亦有, 不知如何?

 

대답: 두 선생이 경전을 설명한 것들은 이와 같이 다른 곳도 많습니다. 어떤 곳은 때로 앞과 뒤가 조리 있고 어떤 곳은 어긋남이 있으므로, 의리로써 은밀하게 헤아려서 취사해야 합니다. 이 부분의 말은 󰡔논어해󰡕가 옳습니다. 그곳에서 풀이한 의리가 가장 좋을 뿐만 아니라 선생이 만년에 스스로 지은 것이어서 더욱 믿을 만합니다. “내가 인을 하고자 바란다.”라고 할 때의 바라다남이 나에게 가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할 때의 바라다는 글의 뜻이 다르므로 서로 견줄 수 없습니다. 다시 상세히 헤아려 보십시오.

二先生說經如此不同處亦多, 或是時有先後, 或是差舛, 當以義理隱度而取捨之. 如此說則當以解爲正. 蓋其義理最長, 而亦先生晩年所自著, 尤可信也. ‘欲仁欲無加諸我文意不同, 不可以相比. 更推詳之.

 

물음: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도리는 세 가지가 있다. 몸의 거동이 사나움과 거만함에서 멀고, 낯빛을 바르게 하는 것이 믿음에 가깝고, 말하는 것이 비루함과 배반에서 멀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도가 말하기를 몸의 거동이 두루 예법에 맞으므로 사나움과 거만함 거만함에서 멀다. 낯빛을 바르게 하여 거짓되지 않으므로 믿음에 가깝다. 말하는 것이 마음 안에서 나오므로 비루함과 배반에서 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몸의 거동, 낯빛을 바르게 하는 것, 말하는 것 등이 다 힘을 쓰지 않고서 덕을 이룬 일입니다. 사나움과 거만함에서 멀고, 믿음에 가깝고, 비루함과 배반에서 먼 것 등은 사나움과 거만함에서 멀어지고, 믿음에 가까워지고, 비루함과 배반에서 멀어지는 것이 이와 같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이천이 말하기를 말을 할 때 비루함과 배반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도리어 멀다라는 낱말에 힘을 써야 합니다. 상채(上蔡: 謝良佐)가 이르기를 몸의 거동, 낯빛을 바르게 하기, 말하기 등은 군자가 스스로 기르는 경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긴요한 부분은 각 절의 앞에 나오는 세 문장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설명이 다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明道曰: ‘動容貌周旋中禮, 暴慢斯遠. 正顔色則不妄, 斯近信矣. 出辭氣正由中出, 斯遠鄙倍.’ 此動容貌正顔色出辭氣皆不著力, 是成德之事. 斯遠暴慢斯近信遠鄙倍, 猶云便遠暴慢, 便近信, 便遠鄙倍, 自然如此也. 伊川曰: ‘辭氣之出, 不使至於鄙倍.’ 却是就字上用工.’ 上蔡云: ‘動也, 正也, 出也, 君子自牧處.’ 又曰, ‘緊要在上三字’, 說不同. 如何?

 

대답: 제가 이 부분의 뜻을 상세히 살펴보았는데 명도의 말이 옳고 상채의 말에는 병이 있습니다.

熹詳此意, 當以明道之說爲正, 上蔡之說尤有病.

 

물음: 󰡔극재기󰡕에서 천하귀인(天下歸仁)”에 대해 말한 곳에 대해. 이전의 판본에서는 천하의 사람들도 장차 그에게 인이라는 이름을 귀결시킨다.”라고 하였는데, 나중 판본에서는 천하를 보는 것이 하나의 사물이라도 내가 사물을 살리려는 기상 안에 있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하여습니다. 이처럼 이전의 판본과 나중 판본의 뜻이 매우 다릅니다. 결국 天下歸仁의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克齋記說天下歸仁, 先本云: ‘天下之人亦將無不以仁歸之’, 後本云: ‘視天下無一物不在吾生物氣象之中’, 先後意甚異. 畢竟天下歸仁當如何說?

 

대답: 애초의 뜻은 이천의 말이었으나, 나중에 온당치 않다고 생각하여 이와 같이 고쳤으니, 여박사(呂博士: 呂大臨)의 말에 근거한 것입니다. 아마도 나중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이천이 말한 것은 단지 󰡔이정외서󰡕의 잡설 중에 나오는 것이어서 간혹 부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初意伊川說, 後覺未穩, 改之如此, 乃呂博士說. 恐當以後說爲正. 蓋所謂伊川說, 亦止見於外書雜說中, 容或未必然也.

 

물음: 󰡔극재기󰡕는 지각을 취하지 않고서 인을 말하였으니 사랑이라는 개념을 위주로 한 듯합니다. 근래에 자세히 완미해보니 지각도 버려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대개 지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지각하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지각과 사랑은 병행하면서도 서로 어긋나지 않으니, 인을 말하는데 해로움이 없습니다. 다만 오로지 지각만을 인이라고 해서는 안 될 뿐입니다. 의사들은 팔다리가 마비된 것을 인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팔다리가 마비되면 통증을 모르니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저의 생각을 개발해 주십시오.

克齋記不取知覺言仁之說, 似以愛之說爲主. 近子細玩味, 似若知覺亦不可去. 蓋不知覺則亦必不愛, 惟知覺故能愛. 知覺與愛, 並行而不相悖, 恐亦無害於言仁. 但不可專以知覺爲仁耳. 醫者以四支頑痺爲不仁, 頑痺則不知痛痒, 又安能愛? 更乞開發.

 

대답: 이 뜻에 대해서는 근래에 호남 지역의 여러분들과 논의한 것이 매우 상세하므로 여기서는 대략적으로 한두 가지만 적어서 올리더라도 대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호광중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논한 인에 대한 설명이고, 하나는 장경부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此義近與湖南諸公論之甚詳, 今略錄一二上呈, 亦可見大意矣. (答胡廣仲書仁之說, 一答張敬夫書).

 

 

석자중에게 답함 答石子重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석돈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인이 네 가지 덕을 포괄한다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물음: 의심스러운 내용에 대해서 비평과 가르침을 주시어 이제 다 풀렸습니다. 인이란 마음에 지각이 있는 것이지만, 지각이 인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지각은 앎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치는 하나이지만 다르게 나뉘므로 사랑에도 차등이 있습니다. 다름과 차등으로 절목을 나누는 것이 예에 속합니다. 실천할 때 타당함을 얻는 것이 의에 속합니다. , , 앎 등은 다 인이므로, 인만이 나머지 세 가지를 포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이름에는 각자의 경계와 구분이 있으므로 마땅히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혼란하게 하나로 합치면 어떤 것이 인이고, 어떤 것이 의이고, 어떤 것이 앎일까요?

所疑荷批誨, 今皆已釋然. 蓋仁者心有知覺, 謂知覺爲仁則不可, 知覺却屬智也. 理一而分殊, 愛有差等, 殊與差等品節之, 却屬禮. 施之無不得宜, 却屬義. 義也, 禮也, 智也, 皆仁也, 惟仁可以包夫三者. 然所以得名, 各有界分, 須索分別. 不然, 混雜爲一, 孰爲仁? 孰爲義? 孰爲智?

 

대답: 인에 대한 말은 매우 좋습니다. 요컨대 인의예지를 하나로 하여 보아야 합니다. 서로 참조하면 경계가 분명해지지만 경계가 분명해지는 에도 저절로 관통하여 전체를 포괄하는 곳이 있으니, 이것이 인이 네 가지 덕을 포괄한다는 것입니다. 근년에 학자들이 오로지 ()’자만을 말하면서 나머지 세 가지 덕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므로 두루뭉수리 합니다. 걸핏하면 인이 네 가지 덕을 포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인이 네 가지 덕을 포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이제 형님께서 이와 같이 정밀히 생각하고 분병하게 논변하시어, 배우는 사람들이 더욱 의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字之說甚善. 要之須將仁智作一處看. 交相參照, 方見疆界分明. 而疆界分明之中却自有貫通總攝處, 是乃所謂仁包四者之實也. 近年學者專說, 而於三者不復致思, 所以含胡溟涬, 動以仁包四者爲言, 而實不識其所以包四者之果何物也. 今得尊兄精思明辯如此, 學者益有賴矣. 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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