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71

황성 2025. 8. 1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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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친구와 제자들과의 문답) (知舊門人問答)

 

 

 

풍작숙에게 답함 答馮作肅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풍윤중에게 쓴 편지이다. 󰡔논어󰡕의 인()과 서()에 대해 논하였다.

 

 

보내주신 두 조목에서 언급하기를, 예컨대 숙경(叔京: 何鎬) 형께서 논하신 것처럼 공자가 자공(子貢)에게 (네가 미칠 바가) 아니라고 저지함으로써 학문의 진전을 면려하였다.’고 한 것은 그 뜻이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의심한 부분도 의심치 않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다만 󰡔논어󰡕의 이 구절에 대해 반드시 별도의 해석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천 선생의 해설을 보면, “남이 나에게 가하기를 바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나 역시 남에게 가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인()이고, 내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은 서()이다. 서란 자공이 힘써서 가능한 것이지만, 인이란 자공이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그 의미가 매우 분명합니다. “널리 베풀고 대중을 구제한다(博施濟衆).”에 대한 물음은 이 구절 (위에서 언급한 인과 서에 관련된 구절)과 더불어 그 선후를 고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심컨대 가까이에서 비유를 취할 수 있다(能近取譬).”는 말에 따라서 노력하여 성과가 있은 다음에 남에게 가하지 않기를 바란다(欲無加人).”는 말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전에 남을 세우고자 하고 남을 달성시키고자 하는 것은, 자공이 말했던 남에게 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欲無加人)’이며 인의 일에 해당한다. ‘가까이에서 비유를 취할 수 있다(能近取譬).’는 것은 인을 구하는 방법이니, 즉 공자가 말했던 남에게 베풀지 말라(勿施於人).’는 것이며 서의 일에 해당한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관련된) 문장들을 완미해보면 마땅히 나의 해설과 같아야 할 듯싶지만, 여러 선학(先達)들께서 (저와 같은 의견을) 말한 적이 없으니 옳은지의 여부를 알지 못하겠으니, 시험 삼아 생각해 보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다시 숙경 형에게 내 해설의 가부를 질정하시어 가르쳐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나아가 증점(曾點)을 허여하는 부분을 인용하여 증거로 삼으셨는데, 아마도 공자가 증점을 허여한 뜻은 이러한 논의에만 한정되지 않으므로 그 점도 함께 헤아려야 합니다.

所諭兩條, 如叔京兄所論, 孔子非沮子貢, 乃勉其進, 此意甚善. 而作肅所疑, 亦有不得不疑者. 但此章自不必別爲之說, 但看伊川先生解云: ‘我不欲人之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 仁也. 己所不欲, 勿施於人, 恕也. 恕則子貢可勉而能, 仁則非子貢之所及. ’此意極分明矣. 博施濟衆之問, 與此語先後不可考, 疑却因能近取譬之言用力有功, 而有欲無加人之說也. 熹嘗謂欲立人欲達人, 卽子貢所謂欲無加人’, 仁之事也. 能近取譬, 求仁之方. 卽孔子所謂勿施於人’, 恕之事也. 熟玩文意, 似當如此. 然諸先達未之嘗言, 未知是否. 幸試思之, 更白叔京兄質其可否. 復以見諭, 幸甚又所引與點爲證, 恐聖人與點之意不止如此, 亦可幷商量也.   

 

 

풍작숙에게 답함 答馮作肅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풍윤중에게 쓴 편지이다. 학자가 천착과 의심에 빠져서 궁리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후생(後生)들이 망령되이 짓는 폐단을 징계하는 부분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궁리하는 일을 늦추어서도 안 됩니다. 기이하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면서 구하지 않아야 하고, 남을 비난하면서 자기를 옳다고 하지 않아야만 지식이 더욱 밝아져서 쓸 데 없이 파고드는 폐해가 없을 것입니다. 예컨대 고루함에 인하여 의심을 쌓는 것은 용기 있게 결단하는 계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기질의 치우침을 바로 잡아서 날로 새로워지는 데에 나아가는 바도 아닙니다.

所諭懲創後生妄作之弊甚善, 然亦不可以此而緩於窮理. 但勿好異求新, 非人是己, 則知識益明而無穿穴之害矣. 若因陋畜疑, 不爲勇決之計, 又非所以矯氣質之偏而進乎日新也.

 

 

풍작숙에게 답함 答馮作肅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풍윤중에게 쓴 편지이다. 의리를 함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보내주신 편지에 보면, “다른 걱정에 이끌려 한결같은 뜻으로 학문을 강습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명백한 의리에 흠뻑 젖어 함양함으로써 의리의 마음으로 하여금 늘 이기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긴요하고 절실한 공부로, 오래 해야만 반드시 힘을 얻습니다.

示諭頗爲他慮所牽, 不得一意講習, 只得且將明白義理澆灌涵養, 令此義理之心常勝, 便是緊切功夫, 久之須得力也.

 

 

풍작숙에게 답함 答馮作肅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풍윤중에게 쓴 편지이다. 인과 지의 관계, 이윤이 탕왕에게 벼슬한 경위, 󰡔󰡕 「주남소남의 용도, 본성()과 이치()의 관계 등을 말하였다.

 

()과 의()에 대한 설명은 매우 좋지만 거경(居敬)과 궁리(窮理) 두 가지는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한 쪽을 폐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치우치거나 폐함이 있으면 덕이 고립되어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움직임과 고요함은 인()과 지()의 체득이다.”라는 말은 아래의 즐거움과 장수(長壽)는 인과 지의 효과이다.”라고 한 문장과 대비하여 말한 것으로, 그 체득한 풍모體段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지, 본체와 쓰임의 관계를 이른 것은 아닙니다. 학자가 인과 지를 실천하려고 할 경우에도 위 문장의 거경과 궁리의 설명처럼 힘을 써야 합니다. 만약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을 구하고 고요함 속에서 움직임을 구하려고 한다면 도리어 너무 지리멸렬하게 되어, 구할 수 있는 이치가 없을 것입니다.

敬義之說甚善, 然居敬窮理二者不可偏廢, 有所偏廢 則德孤而無所利矣. ‘動靜仁智之體’, 對下文樂壽爲仁智之效而言, 猶言其體段如此耳, 非體用之謂也. 學者求爲仁智之事, 亦只如上章居敬窮理之說, 便是用力處. 若欲動中求靜, 靜中求動, 却太支離, 然亦無可求之理也.

 

이윤(伊尹)을 하늘이 내린 백성으로 여기는 것은 그가 해놓은 일로써 말한 것입니다. 예컨대 이윤이 신() 나라에서 밭을 갈다가 (탕왕의) 초빙에 응대한 일에서 분명하게 하늘이 내린 백성天民의 자취를 볼 수 있습니다. 이윤이 치세에도 벼슬에 나아가고 난세에도 벼슬에 나아갔다는 것은 다섯 번 탕()왕에게 나아가고 다섯 번 걸()왕에게 나아간 것을 가리키며, 결국 탕왕에게 나아간 뒤에는 탕왕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삼았으니, 행해야 할 때를 기다리지 않고 급히 행한 것을 이른 것은 아닙니다. 부열(傅說)은 위대한 현자이나 이윤보다 조금 못합니다. 그가 옳다고 안 것에 대해 행하는 것은 이윤과 같지만, 행하였던 도리는 혹 미치지 못하였을 따름입니다. 주공과 공자는 (이윤보다) 뛰어나서 단지 자기를 바르게 하여 다른 사물이 바르게 되는 일을 했으며, 행해야 할 것을 행한 것可行而行이라는 말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以伊尹爲天民, 蓋以其事言之. 如耕莘應聘之事, 卽分明見得有此蹤跡也. 治亦進, 亂亦進, 是指五就湯五就桀而言, 乃是就湯之後, 以湯之心爲心, 非不待可行而遽行之謂也. 傅說是大賢, 比伊尹須少貶, 其見可而後行雖同, 但所以行者或不及耳. 孔又高, 直是正己而物正之事, ‘可行而行’, 亦有所不足道矣.

 

󰡔󰡕주남소남은 천자와 제후가 연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으로 지방민과 나라의 백성에게 사용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일에 따라서 본래 정악(正樂)이 있는 경우에는 (주남소남) 겸했으니, (예컨대 연회의 예법에 본래 󰡔󰡕녹명등을 사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정악이 없는 경우에는 (주남소남)만을 사용하였으니. (향음주례에서처럼 별도의 정해진 시가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고증해보지는 못했습니다.

二南乃天子諸侯燕樂, 用之鄕人, 用之邦國, 所以風天下也. 然隨事自有正樂者, 則兼及之. (如燕禮自有鹿鳴等詩) 無正樂者, 則專用之. (如鄕飮酒別無詩也.) 恐是如此, 然亦未及考也.

 

󰡔맹자󰡕에서 욕구할 만한 것을 선이라고 한 것과 󰡔주역󰡕에서 계승하는 것이 선()이라고 한 것은 동일합니다. 󰡔맹자󰡕에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신()이라고 한 것과 󰡔주역󰡕에서 이루는 것을 본성이라고 한 것은 이치는 같더라도 적용하는 바가 다르니, 마땅히 다시 깊게 살피십시오.

可欲之善與繼善之善同, 有諸己之信與成之者性理雖一, 而所施則異, 當更深察之.

 

본성과 감정 등에 대한 설명은 이미 숙경(叔京)에게 보내는 편지에 드러나 있으니, 다만 당신이 숭경(崇卿: 연숭경)에게 보냈던 논의에 대하여 이 편지에서 그 득실을 논하겠습니다. 숭경이 이르기를, “이치가 곧 본성이므로, 둘 중 어느 것이 근본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맞습니다. (정자도 본성이 곧 이치다.”고 하였으며, 󰡔유서󰡕 22권상에 나온다.) 다만 그 아래에서 숭경이 말한 느낌()에 안과 밖이 있다고 분별한 말에는 병이 있으므로 당신이 그르다고 비판한 것은 옳습니다. 당신은 또 이르기를, “본성이란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이치란 반드시 그러한 것이어서 어그러지고 혼란스러울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 뜻도 이치에 가깝지만 표현에는 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 이르기를, “이치는 본성을 기다린 뒤에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본성에 말미암은 뒤에 드러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에는 큰 병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설명과 같다면 본성과 이치는 둘로 나뉠 것입니다. 그 아래 부분에서 본성은 이치들의 모임이라고 한 것은 도리어 훌륭하지만, “이치는 본성의 통함이라고 한 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개 이치란 본성이 소유하고 있는 이치이며, 본성이란 이치가 모여 있는 장소입니다. 숭경이 지나치게 분별하지 않는 과실을 범하였다면, 당신은 너무 분별하는 과실을 범함으로써, 각자 한 쪽만을 말했을 따름입니다. 당신이 말하기를, “감정은 본성에 근본하므로 본성과 짝이 된다. 마음이란 이 두 가지에 대하여 지각하는 바가 생길 때 거느려 제어할 수 있다. (마음이) 아직 움직이지 않아서 거느림이 없다면, 공적(空寂)한 상태일 따름이다. (마음이) 이미 움직였는데도 거느림이 없다면 제멋대로 방치한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여러 구절은 좋습니다. 다만 반드시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서만 마음을 삼은 것은 그릅니다. 마음이 본래 움직이지 않는다면 맹자는 하필 40세가 되어서야 부동심을 얻었겠습니까? 모름지기 움직이지 않았을 때가 본성이고, 이미 움직였을 때가 감정이며, 마음이란 움직임과 고요함을 관통하여 존재하지 않을 때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이 세 가지(본성, 감정, 마음)에 대한 설명을 알 것입니다. 호굉은 󰡔지언󰡕 3에서 말하기를, “본성은 천하의 사물들을 세우고, 감정은 천하의 움직임을 본받고, 마음은 본성과 감정의 특성을 절묘하게 통일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매우 정밀하여 (호굉의) 기타 설명들과 다릅니다. 시험 삼아 완미한다면 당신이 말했던 내용의 과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性情等說有已見叔京書者, 但所與嵩卿論者, 今議其得失於此. 嵩卿云: ‘理卽性也, 不可言本.’ 此言得之. (程子亦云性卽理也, 今見遺書二十二.) 但其下分別感有內外, 則有病. 作肅非之, 是也. 作肅又云: ‘性者自然, 理則必然而不可悖亂者’, 此意亦近之. 語亦有病. 但下云理不待性而後有, 必因性而後著’, 此則有大病. 蓋如此則以性與理爲二也. 下云性者理之會却好, ‘理者性之通則又未然. 蓋理便是性之所有之理, 性便是理之所會之地, 而嵩卿失之於太無分別, 作肅又失之於太分別, 所以各人只說得一邊也. 作肅云: ‘情本於性, 故與性爲對. 心則於斯二者有所知覺而能爲之統御者也. 未動而無以統之, 則空寂而已 : 已動而無以統之, 則放肆而已.’ 此數句却好, 但必以不動爲心, 則又非矣. 若心本不動, 則孟子又何必四十而後不動心乎? 須知未動爲性, 已動爲情, 心則貫乎動靜而無不在焉, 則知三者之說矣. 知言曰: ‘性立天下之有, 情效天下之動, 心妙性情之德’, 此言甚精密, 與其他說話不同. 試玩味之, 則知所言之失矣.

 

 

연숭경에게 답함 答連嵩卿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에 풍윤중에게 쓴 편지이다. 유가 경전의 의심나는 부분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천지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 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불가를 비판하였다.

 

󰡔논어󰡕낯빛을 바르게 하는 것이 믿음에 가깝다.”는 구절은 수양을 붙잡고서 오래도록 익힌 효과를 말합니다. 낯빛을 바르게 하는 것이 믿음에 가깝다는 것은, 안과 밖이 통일되는 것으로 낯빛만 씩씩한 것은 아닙니다. 위와 아래의 두 구절을 참고해서 본다면 낯빛을 바르게 하는 것 자체가 곧 믿음에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수양을 붙잡지 않는다면 낯빛을 바르게 하더라도 믿음에 가깝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正顔色, 斯近信矣’, 此言持養久熟之功. 正其顔色, 卽近於信, 蓋表裏如一, 非但色莊而已. 以上下兩句考之, 可見非謂正顔色卽是近信也. 若非持養有素, 則正顔色而不近信者多矣.

 

󰡔논어󰡕약속을 묵힌다는 것은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면서 미리 약속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요즘 사람들이 특정의 사물이 있기 전에 먼저 그 사물을 남에게 허락하는 것과 같습니다.(󰡔논어집해󰡕에서는 이 설을 쓰지 않는다.)

宿諾者, 未有以副其諾而預諾之, 如今人未有此物而先以此物許人之類.(集解不用此義.)

 

󰡔맹자󰡕마음을 다한다.”는 구절은 인식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요, “본성을 다한다.”는 구절은 행위의 차원에서 말한 것입니다.

盡心以見處而言, 盡性以行處而言.

 

증자가 죽을 때 자리를 바꾼 일과 자로가 죽을 때 갓끈을 묶은 일은 반드시 우열을 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옛사람들이 예법에 신중한 것을 본다면, 죽어가는 때에도 자신이 지키던 바를 바꾸지 않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라도 불의를 행하고 한 명이라도 무고한 이를 죽여서 천하를 얻는 따위를 추구하지 않는 마음이 생겨나게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로가 위 나라에 벼슬한 과실은 선학들이 논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로는 오히려 견해가 완전하지 못한 것이지, 불의를 알고도 구차하게 행한 것은 아닙니다.

易簀結纓, 未須論優劣, 但看古人謹於禮法, 不以死生之變易其所守如此, 便使人有行一不義殺一不辜而得天下不爲之心, 此是緊要處. 子路仕衛之失, 前輩論之多矣. 然子路却是見不到, 非知其非義而苟爲也.

 

()를 왼쪽으로 보는 학설을 무용하게 여긴다면 도란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니 어찌 옳겠습니까? 다만 인()이란 사람 마음의 친절한 오묘 처를 곧바로 가리킨 것이고, 도란 공평한 의리의 이름들을 통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들 사이에는 친함과 소원함의 차이가 있으나, 그 실질은 두 가지 것이 아닙니다. 󰡔중용󰡕에서는 인으로써 도를 닦는다.”고 하였고, 호 선생도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도의가 사라진다.”고 하였으니, 역시 그러한 의미를 볼 수 있습니다.

以道左爲無用, 則道乃無用之物也, 而可乎? 但仁是直指人心親切之妙, 道是統言義理公共之名, 故其言有親疏, 其實則無二物也. 中庸曰修道以仁’, 胡子亦謂人而不仁則道義息’, 意亦可見.

 

󰡔주역󰡕 「계사상에서 하늘과 땅이 만물의자리를 베풀자 역이 그 가운데 행한다.”는 구절은 조화로써 말한 것이고, “건과 곤이 배열을 이루자 역이 그 가운데 세워졌다.”는 구절은 괘의 자리로써 말한 것입니다.

天地設位而易行乎其中’, 以造化言之也. ‘乾坤成列而易立乎其中’, 以卦位言之也.

 

()이란 만물의 처음으로, ()에 대비하여 말한다면 천지의 도입니다. ()이란 만물의 처음으로, , , 정에 대비하여 말한다면 사 계절의 순서입니다. 대비되는 측면을섞어서 구하면 그 뜻을 다 알 수 있습니다.

乾者萬物之始, 對坤而言, 天地之道也. 元者萬物之始, 對亨貞而言, 四時之序也. 錯綜求之, 其義乃盡.

 

공용(功用)과 묘용(妙用)에 대한 설명은 보내주신 내용이 옳습니다.

功用妙用之說, 來諭得之.

 

천지의 본성이 곧 나의 본성이니, 어찌 죽는다고 갑자기 사라지는 이치가 있겠는가?’라고 한 것은 그릇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천지를 위주로 하는지 나를 위주로 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천지를 위주로 한다면, 이 본성이란 본래 천지 사이의 공평하고 보편적인 도리여서, 다시 사람과 사물의 간격 혹은 저것과 이것의 간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과 삶의 구별 혹은 과거와 현재의 구별도 없을 것입니다. 죽어서 없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사사로이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위주로 한다는 것은 다만 자기 몸에서 정신, 혼백, 어떤 지각 있는 것 따위를 인식하면 그것이 곧 자기의 본성이라고 지목하여, 그것들을 잡고 놀리다가 죽을 때도 놓지 않으려고 하면서 죽어서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매우 사사로운 견해이니, 어찌 사생(死生)의 학설과 성명(性命)의 이치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의 학문은 본래 이와 같습니다. 이제 그 무리 가운데서 영리한 자들은 왕왕 스스로 불가의 고루함을 알고는 점차 꺼리면서도, 도리어 높은 곳으로 가서 따로 온갖 현묘한 도리를 말합니다. 비록 깊고 넓어서 다 변론하여 따질 수 없더라도, 그 귀결 처는 실로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과연 이와 같다면 천지의 본성은 하나인데 그 가운데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따로 있게 됩니다. 나아가 각 사물의 본성에는 경계가 있어서, 서로 교류하여 섞이지 않고 단지 이름과 성씨를 바꾸면서 절로 태어났다 절로 죽게 되니, 다시는 천지 음양의 조화로 말미암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천지의 음양도 그 조화를 베풀 곳이 없습니다.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번거롭겠지만 이 점을 자회(子晦: 寥德明)에게 물어 보시면, 그가 반드시 어떤 설명을 할 것이니, 다시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所謂天地之性卽我之性, 豈有死而遽亡之理, 此說亦未爲非. 但不知爲此說者以天地爲主耶? 以我爲主耶? 若以天地爲主, 則此性卽自是天地間一箇公共道理, 更無人物彼此之間死生古今之別. 雖曰死而不亡, 然非有我之得私矣. 若以我爲主, 則只是於自己身上認得一箇精神魂魄, 有知有覺之物, 卽便目爲己性, 把持作弄, 到死不肯放舍. 謂之死而不亡, 是乃私意之尤者, 尙何足與語死生之說性命之理哉? 釋氏之學本是如此, 今其徒之黠者往往自知其陋而稍諱之, 却去上頭別說一般玄妙道理, 雖若滉漾不可致詰, 然其歸宿實不外此. 若果如此, 則是一箇天地性中別有若干人物之性, 每性各有界限, 不相交雜, 改名換姓, 自生自死, 更不由天地陰陽造化, 而爲天地陰陽者亦無所施其造化矣. 是豈有此理乎? 煩以此問子晦, 渠必有說, 却以見諭.

 

 

연숭경에게 답함 答連嵩卿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에 연숭(連崧)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맹자󰡕에 나오는 호연지기 등의 구절과 공자의 제 나라 환공에 대한 평가 등을 논하였다.

 

물음: 󰡔맹자󰡕에서 견문이 많기 때문이며, 현명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왜 견문이 많으면 스승이라고 부릅니까? 현명함에도 크고 작은 차이가 있으므로, 󰡔예기󰡕 「표기에서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사람을 파악해보면 현명한 자인지 알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의 말과 행적을 많이 알아서 자신의 덕을 쌓으므로” (󰡔주역󰡕의 대축괘)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爲其多聞也, 爲其賢也’, 多聞何以謂之師? 夫賢有小大, 記曰: ‘以人望人則賢者可知.’ 至於多識前言往行以畜其德, 易之大畜, 故可以爲師.

 

대답: 현명함과 견문이 많음이란 자세히 나누어 보면 마땅히 구별이 있지만, 그렇게만 이해한다면 왕안석의 󰡔신경(新經)󰡕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반드시 깊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아래 단락에서 봄과 가을에 보조한다는 말도 이와 같습니다.

賢與多聞細分固當有別, 但若只如此理會, 則與王氏新經何異? 恐不必深致意也. 下段春秋補助之說放此.

 

물음: “의와 도에 짝한다.”라고 하면서 인()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호연지기가천지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다면 그 속에 인이 있습니다. 맹자가 기()를 말한 것은 의를 모으는 것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配義與道’, 而不言仁, 充塞天地之間, 則仁在其中矣. 孟子言氣, 主於集義故也.

 

대답: 다시 󰡔맹자󰡕에 나오는 위와 아래의 문장들을 익숙하게 살펴보고 자세하게 생각해야지, 이와 같이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更熟看上下文, 子細思索, 不可只如此草草說過.

 

물음: 악정자를 가리켜 자기에게 있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는 경지와, 자신을 돌아보아 정성스럽다면 남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경지는 어떻습니까? 믿음이란 자기에게 있고, 정성스러움이란 남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樂正子有諸己之謂信反身而誠則能動人也’, 如何? 信有諸己, 誠則能動人也.

 

대답: 믿음과 정성스러움은 대체로 서로 비슷합니다. 다만 자신을 돌아보아 정성스럽다는 것은 지시하는 경지가 더 높지만 아직 남을 움직일 수 있는 지의 여부를 논한 것은 아닙니다.

信與誠大槪相似, 但反身而誠, 所指處地位稍高, 亦未論能動人否也.

 

물음: 맹자가 저자(儲子)를 만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예의가 선물에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평륙에서 특별히 사람을 파견하고 선물을 보내어 맹자와 교류한 것을 본다면, 그의 접대는 예로써 한 것이 아닙니다. 맹자는 왜 그의 선물을 받고서 만나지 않았을까요? 어찌 맹자의 달갑지 않게 가르치는 도리가 공자가 유비(孺悲)를 만나지 않으면서 북과 비파를 연주한 뜻과 같지 않겠습니까?

孟子不見儲子, 謂其儀不及物. 夫儲子之平陸, 特遣人致幣, 交於孟子, 則其接也不以禮. 孟子何以受其幣而不見? 豈非不屑敎誨之道, 與孔子不見孺悲而鼓瑟之義同?

 

대답: 처음에 자발적으로 오지 않고 선물만으로 교류한 것은 예를 그르친 것은 아니지만, 맹자가 이미 선물을 받은 뒤에는 마땅히 와서 만나야 함에도 또 오지 않았으니, 그의 정성스러움이 지극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지나가면서도 만나지 않았던 것은 마땅한 대응이며, 마찬가지로 달갑지 않게 대함으로써 가르친 것입니다.

初不自來, 但以幣交, 未爲非禮. 但孟子旣受之, 後便當來見, 而又不來, 則其誠之不至可知矣. 故孟子過而不見, 施報之宜也, 亦不屑之敎誨也.

 

물음: 초 나라의 영윤이었던 공자 남의 아들인 기질과 옹규의 처의 경우는 한 번 밀고하여 남편을 죽이고, 한번 밀고하지 않아 아버지를 죽였으니, 이 두 경우는 불행하게 이러한 사태를 만난 것입니다. 마땅히 어떻게 했어야 옳을까요?

楚令尹子南之子棄疾雍糾之妻, 一告而殺夫, 一不告而殺父, 二者亦不幸而遇此. 然當如何爲正?

 

대답: 그러한 두 경우에 조율하여 그치기를 권면하고, 서로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권해도 따르지 않으면 죽음을 택하여 몸을 받침으로써 깨닫도록 하는 것이 다음입니다. 이것들을 제외하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居二者之間, 調護勸止, 使不至於相夷者, 上也. 勸之不從, 死而以身悟之, 次也. 舍是亦無策矣.

 

물음: 제 나라 환공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니, 백성은 옷의 왼쪽을 위로 하는 오랑캐의 풍속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관중이 죽지 않았더라면 인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혹자는 관중이 자신의 재주를 자임하고 있었으므로, 비록 때를 만나지 못하였더라도 관중의 인은 그 자체로 분명한 것이며, 공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桓公不足以有爲, 民不免左袵. 管仲之不死, 得爲仁乎? 或以爲管仲自信其才, 雖不遇, 而仲之仁自若也, 若夫成功, 則天也.

 

대답: 공자가 관중에게 인을 허여한 것은 그의 공로로써 말했을 뿐이지, 관중을 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에게 공로가 없었다면 어찌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孔子許管仲以仁, 正以其功言之耳, 非以管仲爲仁人也. 若其無功, 又何得爲仁乎?

 

 

연숭경에게 답함 答連嵩卿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에 연숭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논어󰡕󰡔맹자󰡕에 나오는 공손()과 공경()에 대해서, 그리고 󰡔이정유서󰡕에 나오는 귀신 등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물음: ‘()과 경()’ 두 글자는 󰡔논어󰡕󰡔맹자󰡕에서 많이 언급하였습니다. 예컨대 공경하면서 과실이 없다.”, “남과 함께 있을 때 공손하면서 예법을 지킨다.”, “거처할 때 공손 하고 일을 처리할 때 공경한다.”, “행동할 때는 공손으로써 하고, 윗사람을 섬길 때는 공경으로써 한다.”, “임금에게 어려운 일을 꾸짖는 것을 공손이라고 하고, 선을 베풀고 사사로움을 막는 것을 공경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천 선생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공손이라고 하고, 안에 있는 것을 공경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공손과 공경이란 단지 이치의 안팎을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논어󰡕󰡔맹자󰡕의 구절들을 해석한다면 부합하지 않을 것도 같은데, 양자의 비중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恭敬二字, 語孟之言多矣. 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居處恭, 執事敬’, ‘行己也恭, 事上也敬’, ‘責難於君謂之恭, 陳善閉邪謂之敬.’ 伊川先生言發於外者謂之恭, 有諸中者謂之敬’, 蓋恭敬只一理表裏之言. 以此意解語孟之言, 似不契, 莫是有輕重否?

 

대답: 공손은 용모를 주로 하였고, 공경은 일을 주로 하였습니다. 배우는 사람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공손은 공경의 효력만 못합니다. 덕을 이루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공경은 공손의 편안함만 못합니다.

恭主容, 敬主事. 自學者而言, 則恭不如敬之力. 自成德而言, 則敬不如恭之安.

 

물음: 귀신들림에도 이치가 있으니, 숨은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없고 작은 것보다 현저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정성스러움은 가릴 수 없다.”느껴서 통한다.”는 뜻이 아닐 런지요?

鬼神馮依, 此亦有理, 莫見乎隱, 莫顯乎微而已. 此莫只是誠之不可揜’, ‘感而遂通之意否?

 

대답: 귀신들림에 대한 설명은 대체적으로 정확합니다. 그러나 이천 선생께서 말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했으니 왜 그랬는지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鬼神馮依之說, 大槪固然. 然先生蓋難言之, 亦不可不識其意也.

 

물음: “()을 궁구한다면 역()이란 없다.”에 대해서.

窮神則無易矣.’

 

대답: 이 구절은 사람이 신을 궁구할 수 있으면 󰡔주역󰡕의 도리가 자기에게 있으므로, 다시 따로 󰡔주역󰡕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此言人能窮神, 則易之道在我矣, 豈復別有易哉?

 

물음: “()은 성인의 도리이고 곤()은 현인의 도리이다.”에 대해서.

乾是聖人道理, 坤是賢人道理.’

 

대답: 건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지만 곤은 노력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乾是自然而然, 坤便有用力處.

 

물음: “본성을 논하면서 기()를 논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고, 기를 논하면서 본성을 논하지 않는다면 밝지 못한 것이다.”에 대해서.

論性不論氣不備, 論氣不論性不明.’

 

대답: 본성을 논하면서 기를 논하지 않으면 타고난 기질의 차이를 알 수 없고, 기를 논하면서 본성을 논하지 않으면 모든 이치와 의리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論性不論氣, 則無以見生質之異 : 論氣不論性, 則無以見理義之同.

 

물음: “병법에서 먼 곳과 교류하고 가까운 곳을 공격한다고 하였으니 그러한 도리를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지혜가 높고 예의가 낮다는 의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학자는 지혜가 고명해야 하고 실천은 가까운 것에 절실해야 합니다. “서면 그것(정성스러움과 공경)이 앞에 참여하는 것을 본다라고 하였는데, 거기에서 보이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생각건대 말은 정성스럽고 믿음직스러우며 행동은 독실하고 공경스럽게 한다.”는 말은, 정성스러움과 공경을 주로 합니다. 그 주로 하는 바가 정성스러움과 공경이라면 보이는 내용도 그러한 이치를 갖추어서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앉을 때는 반드시 제사의 시동처럼 하고, 설 때는 반드시 제사에서 재계하듯이 하니, 그러한 이치가 앞에 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兵法遠交近攻, 須是審行此道.’ (智崇禮卑之意.) 蓋學者其知要高明, 其行須切近. ‘立則見其參於前’, 所見者何事? 竊謂言忠信行篤敬”, 所主者誠敬而已. 所主者旣誠敬, 則所見者亦此理而無妄矣. 故坐必如尸, 立必如齊, 此理未嘗不在前也.

 

대답: 두 가지 설명은 다 좋습니다.

二說皆善.

 

물음: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인과 예()로써 설명하였습니다. 인과 예는 과연 다를까요? 생각건대 오륜과 온갖 행실에 이치가 관통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인이란 이치를 사랑하는 것이고, ()란 이치에 마땅한 것이고, 예란 이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인과 예는 그 명칭이 다를지라도 각기 마땅한 바가 있으니 다 천리(天理)입니다. 사람이 천리를 해치는 까닭은 사람의 욕심人欲이 이기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사로움을 제거할 수 있다면 천리는 저절로 회복되어 모든 행동이 예절에 합당할 것이니 이보다 큰 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顔淵問仁, 孔子告之以仁與禮. 仁與禮果異乎? 竊謂五常百行, 理無不貫. 仁者人此者也, 義者宜此, 禮者履此. 仁之與禮, 其命名雖不同, 各有所當, 皆天理也. 人之所以滅天理者, 以爲人欲所勝耳. 人能克去己私, 則天理自復, 動容周旋中禮, 仁孰大焉

 

대답: 인과 예에 대한 설명은 옳습니다. 다만 인이란 통괄하는 본체이고 예란 절도 있게 꾸미는 것節文입니다.

仁禮之說亦得之, 但仁其統體, 而禮其節文耳.

 

 

연숭경에게 답함 答連嵩卿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에 연숭에게 쓴 편지이다. 󰡔중용󰡕덕은 털과 같이 가벼워서.)” 구절과 󰡔논어󰡕죽고 사는 것에는 명이 있다.”라는 구절 등을 논하였다.

 

󰡔중용󰡕에서 덕은 털과 같이 가벼워서, 백성 중에 들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라고 한 것은 공자가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서 말미암는다.”고 말했던 것을 뜻합니다. 󰡔논어󰡕에서 인을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역시 신중하지 않겠는가?”라고 한 것은 정자가 자기를 이기는 것이 가장 어렵다.”라고 말했던 것을 뜻합니다. 주자(周子: 周敦頤 선생도 이르기를 “(이치란) 지극히 쉽지만 행하기는 어려우므로 과단성 있고 확고히 해야만 어렵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치가) 가볍기 때문에 쉽고, (이치를 행하기가) 무겁기 때문에 어렵고, 이치가 쉽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할 때에는 반드시 과단성 있게 해야 하고, 이치를 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지키는 것이 확고해야 합니다. 과단성 있게 확고히 지킬 수 있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요 임금과 순 임금도 병으로 여기셨다고 하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의 임무에 신중한 것에 대한 증거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德輶如毛, 民鮮克擧之’, 孔子所謂爲仁由己.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程子所謂克己最難. 周子亦曰: ‘至易而行難, 果而確, 無難焉.’ 蓋輕故易, 重故難. 知其易故行之必果, 知其難則守之宜確. 能果能確, 則又何難之有乎? 恐不必引堯舜病諸, 以爲任重之證也.

 

󰡔논어󰡕에서 죽고 사는 것에는 명이 있다.”라는 구절은 품부 받은 바가 본래 정해져 있어서 지금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논어󰡕에서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라는 구절은 (부귀를 다스리는 것이) 하늘에 달려 있어서 사람의 힘으로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알려주신 바와 같아서는 도리어 힘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死生有命’, 言禀之素定, 非今日所能移. ‘富貴在天’, 言制之在彼, 非人力所能致. 如所諭却費力也.

 

󰡔논어󰡕에서 천하가 인하다고 칭한다.”는 것은 경문과 정씨의 설을 숙고해보면 단지 천하의 사람들이 인하다고 칭하는 것을 뜻하므로 여씨(呂氏: 呂大臨)의 말과는 다릅니다. 대개 모든 일이 이치에 맞으면 사람들이 그가 어질다고 일컫지 않음이 없습니다. 예컨대 친족에서는 효자라고 일컫고 마을에서는 공손하다고 일컫는 것에 비견됩니다. 만약 털끝만치의 사사로움이 마음 안에 있다면 밖으로 드러날 때 반드시 가리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도 그 사실에 근거하여 일컬을 것이니, 어떻게 인하다고 일컬을 수 있겠습니까?

天下歸仁, 熟考經文及程氏說, 似只謂天下之人以仁歸之, 與呂氏贊不同. 蓋事事合理則人莫不稱其仁, 如宗族稱孝, 鄕黨稱悌之比. 若有亳髮之私留於胸中, 則見乎外者必有所不可揜矣, 人亦必以其實而稱之, 又何歸仁之有?

 

변화를 안다.”는 것은 변화와 생육의 도리를 아는 것일 뿐으로 반드시 앎을 위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을 궁구하여 변화를 안다.”신을 보존하여 지나가는 곳마다 감화된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이천과 횡거의 설명이 서로 다릅니다. 그 설명을 상고한다면 마땅히 어느 것을 따라야 할까요?

知化只是知化育之道, 不必以知爲主. 窮神知化存神過化’, 伊川橫渠說此二義皆不同. 試考其說, 當孰從耶?

 

(), (), () 등의 개념은 경전에서 보이지 않지만 역시 이치가 있습니다. 대개 충이란 성실이며, 질이란 문()을 덜고 질()에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文不見於經, 然亦有理. 蓋忠則只是誠實, 質便有損文就質之意矣.

 

증자가 󰡔예기󰡕 「제의에서 인이란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고 의란 이것에 마땅한 것이라고 한 말은 효()에 나아가 설명한 것입니다. 맹자는 인의 참됨과 의의 참됨을 말할 때 효와 공손함을 겸하였습니다. 정자가 인과 의를 말하는 것이 비록 하나의 이치이더라도 반드시 분별될 수 있으니, 이것은 이치는 하나이면서 나뉘면 다르다理一分殊는 뜻입니다. 모든 도리는 이와 같습니다. (이것은 󰡔이정유서󰡕 1에서 인은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부분을 말한다.)

曾子言仁人此義宜此’, 只就孝上說. 孟子言仁之實義之實, 則兼孝悌而言. 程子言此雖只是一理, 然須分別得出, 是亦理一而分殊之意. 大凡道理皆如此也. (此是說遺書第一卷中仁人此一段.)

 

󰡔논어󰡕에서 ()이란 자기가 서고자 하되 남을 세우고, 자기가 달성하고자 하되 남을 달성시킨다.”라고 하였으니, 이른바 자기로써 남에게 미치는 것이 인입니다. “가까이에서 비유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인의 방법이라고 부를만하다.”고 하였으니, 이른 바 자기를 미루어서 사물에 미치는 것이 서()입니다.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所謂以己及物, 仁也.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所謂推己及物, 恕也.

 

󰡔중용󰡕함께 행하면서 거스르지 않는다.”는 구절은 매우 좋습니다. 이것은 군자가 명이라고 말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다만 요 임금과 순 임금과 공자는 소원하거나 가까운 차이가 있다고 한 것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이것은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하나의 일을 밝힌 것이지만 모두 하늘 때문에 사람을 폐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이라는 것도 하늘일 뿐입니다. 이것이 함께 행하면서 서로 거스르지 않은 까닭입니다.

並行不悖一章甚善, 此君子所以不謂命也. 但堯孔子爲疏戚之異, 似未然. 此各是發明一事, 皆不以天而廢人者. 然所謂人者, 是亦天而已矣. 此所以並行而不相悖也.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소흥 30(경진, 1160, 31)에 연숭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소철(蘇轍)호연지기등을 설명하면서 도가와 불가에 습합된 것 등에 대해 비판하면서 유가의 실천공부를 설명하였다.

 

물음: 소씨(蘇氏)의 글을 읽어보고서 그 논의가 공허하지 않음을 좋아하여 속으로 경모하게 되었습니다.

讀蘇氏書, 愛其議論不爲空言, 竊敬慕焉.

 

대답: 소씨(蘇氏)의 의론 가운데서 일의 실정에 절실한 것은 참으로 좋아할 만한 곳이 있지만, 역시 속임수가 있습니다. 화려한 수식을 자랑하면서 근본 사실을 잊고, 통달하는 것만 귀하게 여기면서 명분과 검속(檢束)을 천히 여긴 데에 이르니, 해를 끼치는 것이 공허만 말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좋아할 만하다고 말한 것은 그 요지를 헤아려보면 역시 공허한 말을 면치 못합니다.

蘇氏議論切近事情, 固有可喜處, 然亦譎矣. 至於衒浮華而忘本實, 貴通達而賤名檢, 此其爲害, 又不但空言而已. 然則其所謂可喜者, 考其要歸, 恐亦未免於空言也.

 

물음: 학문의 도리가 서로 부딪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爲學之道, 戛戛乎難哉!

 

대답: 학문의 도리는 지극히 간단하고 쉽지만 그 방법을 모르고서 주변의 쓸모없는 곳에 마음이 빠지는 것만을 근심하면 도리어 학문이 어렵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爲學之道至簡至易, 但患不知其方而溺心於淺近無用之地, 則反見其難耳.

 

물음: 영빈(穎濱: 蘇轍)이 논의한 호연지기에 대한 부분은 어느 곳을 버리고 취해야 할지를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穎濱浩然一段, 未知所去取.

 

대답: 󰡔맹자󰡕의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는다면 소씨의 과실이 저절로 드러날 것입니다.

反復讀孟子此章, 則蘇氏之失自見.

 

물음: 󰡔맹자집해󰡕에서는 먼저 긴요한 곳 한두 가지를 적었습니다. 예컨대 기운을 기르는 것에 대한 논의와 본성에 대한 논의 등이 그것입니다.

孟子集解先錄要切處一二事, 如論養氣論性之類.

 

대답: 󰡔맹자집해󰡕는 비록 이미 초고를 완성했지만 아직 의심 가는 부분이 많은데도 헤아려서 바로잡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의미는 더욱 밝히기 어려우니, 어찌 가볍게 학설을 만들어서 망령되이 사람들에게 보이겠습니까? 보내주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이 두 가지 의미는 매우 절실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학자라면 마땅히 넓은 데서부터 요점을 간추려 가고,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으로 가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가고, 낮은 데서부터 높은 곳으로 가야지 학문의 순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일곱 편을 버리고 단지 이것만을 논의하려고 하는 것은 단계를 소홀히 하고 넘어가는 것獵等입니다. 학문의 순서가 이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는 두 가지 의미만을 돌아보면서 찾으려고 하니 기상이 가볍고 방자하여 그 병폐가 매우 큽니다.

孟子集解雖已具稿, 然尙多所疑, 無人商確. 此二義尤難明, 豈敢輕爲之說而妄以示人乎? 來書謂此二義爲甚切處, 固然. 然學者當自博而約, 自易而難, 自近而遠, 自下而高, 乃得其序. 今舍七篇而直欲論此, 是躐等也. 爲學之序不當如此. 而來書指顧須索, 氣象輕肆, 其病尤大.

 

물음: “이치를 궁구하는 요점은 반드시 깊이 구할 필요는 없다.”라고 하였으니, 선학들이 말했던 행하여 터득하면 옳다.”라고 한 것이 가장 지극한 논의입니다. 만약 논의가 높을지라도 행하지 못하면 너무 비뚤어지거나 너무 강직한데서 도리를 잃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것으로 중용을 잃은 데서는 한가지입니다.

窮理之要, 不必深求’, 先儒所謂行得卽是, 此最至論. 若論雖高而不可行, 失之迂且矯, 此所謂過猶不及, 其爲失中一也.

 

대답: “이치를 궁구하는 요점은 반드시 깊이 구할 필요는 없다.”라는 말에는 큰 병이 있어서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행하여 터득하면 옳다.”라는 것은 지극한 논의입니다. 그러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깊지 못하면 어찌 실천할 바가 옳은지 않은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재여(宰予)가 삼년상을 줄이는 것을 편안하게 여겼는데, 이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야 할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자로(子路)는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을 우활(迂闊)하다고 했으니, 이는 해야 할 것을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저 두 사람은 성인이었던 공자를 만나 날마다 좋은 가르침을 듣고서도 오히려 이런 과실이 있었는데, 하물며 나머지 사람들이야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밝아지면 이치가 있는 곳을 반드시 행위 할 때의 근원으로 삼게 되니, 높은 것일지라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치란 없습니다. 다만 세속에서 구차하고 얕은 견해로써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할 따름입니다. 마치 길을 갈 때 지름길로 가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우활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사사로이 알현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바로잡았다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더욱이 어찌 이치가 있는 곳을 알더라도 말하는 것이 매우 높다고 한다면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이치가 있는 곳이란 곧 중도(中道)입니다. 오직 깊게 궁구하지 못하면 기준이 없고 과불급(過不及)의 병이 있게 됩니다. 이치를 궁구함이 깊어지고서도 도리어 이런 근심이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주역󰡕에서, “의리를 정밀히 하여 신의 경지에 들어감으로써 씀을 이룬다.”라고 했는데, 오직 이렇게 한 뒤에라야 가히 일에 응할 수가 있습니다. 아직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모든 하는 짓이 사사로운 뜻으로 파고들어 남몰래 실천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비록 어쩌다 들어맞더라도 군자라면 그러한 일을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窮理之要不必深求’, 此語有大病, 殊駭聞聽. ‘行得卽是固爲至論, 然窮理不深, 則安知所行之可否哉? 宰予以短喪爲安, 是以不可爲可也. 子路以正名爲迂, 是以可爲不可也. 彼親見聖人, 日聞善誘, 猶有是失, 况於餘人, 恐不但如此而已. 窮理旣明, 則理之所在動必由之, 無論高而不可行之理. 但世俗以苟且淺近之見謂之不可行耳. 行不由徑’, 固世俗之所謂迂 : 不行私謁, 固世俗之所謂矯, 又豈知理之所在, 言之雖若甚高, 而未嘗不可行哉? 理之所在, 卽是中道. 惟窮之不深, 則無所準則而有過不及之患. 未有窮理旣深而反有此患也. 易曰: ‘精義人神, 以致用也. ’蓋惟如此, 然後可以應務, 未至於此, 則凡所作爲皆出於私意之鑿, 冥行而已. 雖使或中, 君子不貴也.

 

물음: 전에 소영빈(蘇穎濱: 蘇轍)에 대해서 논의하였는데, 그가 일을 실천한 것에 대해서는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前所論蘇穎濱, 正以其行事爲可法耳.  

 

대답: 소황문(蘇黃門: 蘇轍)을 일러, ‘근세의 이름난 벼슬아치라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예전의 서신에서 안자(顔子)에 견준 것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여기 논하신 바에서는 그가 일을 실천한 것에 대해서는 본받을만하다.”라고 하였는데, 우리 송()나라는 인물이 가장 많으므로 치적을 본받을만한 분이 매우 많아서 소공(蘇公: 蘇轍) 뿐만이 아닙니다. 학자라면 도()를 아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소공은 어려서부터 소진(蘇秦)장의(張儀)의 끄트머리를 줍고, 만년에는 불가와 노자의 찌꺼기에 취하였으니, 이런 사람이 도를 안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소철의 󰡔고사(古史)󰡕에서 황제(皇帝), 요 임금, 순 임금, 우 임금, (), 자로(子路), 관중(管仲),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노담(老聃) 등을 논했는데, 모두 이치에 맞지 않은지라 쉽게 개괄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의 변론은 수식을 충분하게 하는지라 학자들이 이치를 깊이 궁구하지 못하면 그 때문에 현혹됩니다. 저도 수년 전에 현혹된 적이 있었는데, 근년에야 비로소 그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蘇黃門謂之近世名卿則可, 前書以顔子方之, 僕不得不論也. 今此所論, 又以爲行事可法, 本朝人物最盛, 行事可法者甚衆, 不但蘇公而巳. 大抵學者貴於知道, 蘇公早拾蘇張之緖餘, 晩醉佛老之糟粕, 謂之知道, 可乎? 古史中論黃帝子路管仲曾子子思孟子老聃之屬, 皆不中理, 未易槪擧. 但其辯足以文之, 世之學者窮理不深, 因爲所眩耳. 僕數年前亦嘗惑焉, 近歲始覺其繆.

 

물음: 일을 실천한다는 것은 안으로는 자기를 처신하고 밖으로는 사물에 응하여 안팎이 다 갖추어져야 뉘우침이 없습니다. 옛 사람이 시중(時中)을 높였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에게서 얻어도 사물에서 잃게 되니, 이것은 홀로 실천하는 것일 뿐입니다.

所謂行事者, 內以處己, 外以應物, 內外俱盡, 乃可無悔. 古人所貴於時中者, 此也. 不然, 得於己而失於物, 是亦獨行而已矣.

 

대답: 자기를 처신하는 것과 사물에 응하는 것은 안팎으로 두 가지 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서 얻었으면 사물에서 잃는 경우가 없습니다. 사물에서 잃는다는 것은 모두 아직 자기 자신에게서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얻는다는 것은 이 이치를 얻음을 말하고, ‘잃는다는 것은 이 이치를 잃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세속에서 말하는 득실(得失)’은 아닙니다. 예컨대 세속에서 말하는 득실이란 군자가 마땅히 논할 내용이 아닙니다. 시중(時中)의 학설 또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내주신 서신에서 말씀하신 내용은 과거의 인습에 안주하는 것으로, 더러운 습속에 휩쓸리는 소인의 거리낌 없는 중용입니다. 후한(後漢)의 호광(胡廣)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어찌 이것을 시중(時中)’이라고 하겠습니까? 대저 세속의 학자들 가운데 이런 말을 하여 구차하고 방자한 경지를 연 사람이 많은데, 소씨(蘇氏)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심합니다. 그 원류(源流)는 이와 같아서 후학들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處己接物, 內外無二道也. 得於己而失於物者無之. 故凡失於物者, 皆未得於己者也. 然得謂得此理, 失謂失此理, 非世俗所謂得失也. 若世俗所謂得失者, 則非君子所當論矣. 時中之說, 亦未易言. 若如來諭, 則是安常習故, 同流合汗, 小人無忌憚之中庸, 後漢之胡廣是也, 豈所謂時中者哉? 大抵俗學多爲此說, 以開苟且放肆之地, 而爲蘇學者爲尤甚. 蓋其源流如此, 其誤後學多矣.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소흥(紹興) 30(경진, 1160, 31)에 정순(程洵)에게 쓴 편지이다. 문장을 짓기보다 의리의 함양에 힘쓰라고 당부하였다.

 

보내주신 시문(詩文)은 필력이 매우 시원스러우나, 편지에서 거론한 내용에 대해서는 감히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별지(別紙)에 조목조목 분석하여 보내니 몇 차례 자세히 보시면 마땅히 저절로 이해할 것입니다. 대저 도학(道學)이 밝지 않은 것이 천여 년이 되고 보니, 선비들이 눈과 귀로만 보고 듣는 고루함에 익숙해져서 지식과 취향이 이러한 따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문장을 익히는 선비만 되고 말 터라면 내 아우의 재주로서 조금만 더 힘쓰면 응당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의리(義理)에 대해서 헛되이 이야기해서 괜히 식자들에게 책망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옛 사람의 학문에 뜻이 있다면 보내주신 내용은 모두 바른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반드시 큰 일 하나를 파악하려고 한다면 깊이 생각하고 힘껏 궁구하여 두터이 기르고 힘껏 실천한 뒤에야 논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속 없는 화려한 말에 이미 깊게 물들어, 용감하게 결단하여 저런 고루한 학문을 버리고 이러한 도학을 취하지 못한다면, 내가 감히 알 바가 아닙니다.

所示詩文筆力甚快, 書中所云, 則未敢聞命. 別紙絛析以往, 試熟看數過, 當自見得. 大抵自道學不明, 千有餘年, 爲士者習於耳目見聞之陋, 所識所趣不過如此. 如欲爲文章之士而已, 則以吾弟之才少加勉勵, 自應不在人後. 但不當妄談義理, 徒取誚於識者. 若果有意於古人之學, 則如所示, 皆未得其門而入者. 要須把作一件大事, 深思力究, 厚養力行, 然後可議耳. 但恐浮艶之詞染習已深, 未能勇決, 棄彼而取此, 則非僕之所敢知也.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소흥(紹興) 30(경진, 1160, 31)에 정순에게 쓴 편지이다. 소철의 학문이 진실하지 못하여 맹자나 이정 선생의 학문과 다르다는 것을 변론하였다.

 

보내주신 편지를 살펴보았지만 모두 이치에 맞지 않으니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내주신 편지에 의하면 내가 소씨(蘇氏)의 조잡한 것만 논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논해야 소씨의 정수를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내 아우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다시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도()가 하나일 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도가 바르면 안팎이 모두 바르고 간교하면 안팎이 모두 간교하게 되니, 어찌 정밀한 것과 조잡한 것으로 나누어 두 가지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도를 모르는 잘못입니다.

熹承寄示前書所諭皆未中理, 不得不相曉. 來書謂熹之言乃論蘇氏之粗者, 不知如何而論, 乃得蘇氏之精者? 此在吾弟必更有說. 然熹則以爲道一而已, 正則表裏皆正, 譎則表裏皆譎, 豈可以析精粗爲二致? 此正不知道之過也.

 

, “때를 씻어서 허물을 찾는다면 맹자 이하 모든 사람이 다 논의의 대상이다.”라고 일렀는데, 이는 소씨의 허물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맹자마저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씨의 실수는 뚜렷합니다. 도를 더 밝게 알고 더 간절하게 살핀다면 비록 그를 위하여 덮어 감추려고 해도 감추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때를 씻고서 허물을 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맹자 같은 분은 푸른 하늘에 뜬 밝은 해와 같아서 씻을만한 때도 없고 찾을만한 허물도 없습니다. 이제 소씨의 허물을 덮고 그의 학설을 끌어다가 맹자에 견주려고 하지만, 어찌 허물만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철(蘇轍: 1039-1112)을 그의 형 소식(蘇軾: 1036-1101)에 비교하자면 조금은 간결하고 고요한 듯합니다. 그러나 간결함과 고요함을 일러 도()가 있다고 한다면, 자장(子張)이 청렴함과 충성스러움을 가리켜 인()이라고 이른 것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한 뜻을 깊이 상고한다면 간결함과 고요함이 도가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하물며 소공(蘇公: 蘇轍)은 비록 그의 이름이 간결함과 고요함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음험합니다. 그는 원우(元祐: 철종(哲宗)의 연호. 서기 10861094.) 말년에 정승의 자리를 얻으려고 소인인 양외(楊畏)를 힘써 끌어 들여 범충선공(范忠宣公)을 넘어뜨린 다음 자기가 대신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효과가 없자 좌석에서 탄핵하는 글을 외워 범공(范公)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이 어찌 도가 있는 군자가 할 짓이겠습니까?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니고, 선배들이 이미 책에 써 놓은 것입니다. 내 아우는 그가 몸소 실천하는 것이 두 분 정자(程子)에게 뒤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어찌 상세히 고찰해 보지도 않고서 말을 쉽게 하는지요?

又謂洗垢索瘢, 則孟子以下皆有可論, 此非獨不見蘇氏之失, 又幷孟子而不知也. 夫蘇氏之失著矣, 知道愈明, 見之愈切, 雖欲爲之覆藏而不可得, 何待洗垢而索之耶? 若孟子, 則如靑天白日, 無垢可洗, 無瘢可索. 今欲掩蘇氏之疵而援以爲比, 豈不適所以彰之耶? 黃門比之乃兄, 似稍簡靜. 然謂簡靜爲有道, 則與子張之指淸忠爲仁何以異? 第深考孔子所答之意, 則知簡靜之與有道蓋有間矣. 况蘇公雖名簡靜, 而實陰險. 元祐末年, 規取相位, 力引小人楊畏, 使傾范忠宣公而以己代之. 旣不效矣, 則誦其彈文於坐, 以動范公. 此豈有道君子所爲哉? 此非熹之言, 前輩固已筆之於書矣. 吾弟乃謂其躬行不後二程, 何其考之不詳而言之之易也

 

두 분 정자의 학문은 처음에는 그 요점을 얻지 못하여 불교와 노장(老莊)을 들락날락했지만, 돌아와서 육경(六經)에서 구하여 도를 얻었으니 어찌 불교와 노장을 옳다고 여겼겠습니까? 소씨의 학문이라면 젊고 기개가 호방했을 때 망령되이 선학(禪學)을 접하였습니다. ‘대비각기(大悲閣記)중화원기(中和院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중년에 불우하게 떠돌면서, 울분으로 뜻을 잃고 지내다가 기어서 선학에 귀의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혹(迷惑)되고 진퇴에 아무런 기준도 없었습니다. 정씨(程氏)에게 견주자면 양자(楊子: 揚雄)가 말한 먼저 병들었다가 나중에 나은 경우와, 먼저 나았다가 나중에 병든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내 아우는 견주어 같다고 여기니, 이는 때를 씻어서 맹자의 허물을 찾으려는 격입니다.

二程之學始焉未得其要, 是以出入於佛老. 及其反求而得諸六經也, 則豈固以佛老爲是哉? 如蘇氏之學, 則方其年少氣豪, 固嘗妄觝禪學, 如大悲閣中和院等記可見矣. 及其中歲, 流落不偶, 鬱鬱失志, 然後匍匐而歸焉, 始終迷惑, 進退無據. 以比程氏, 正揚子先病後廖, 先廖後病之說. 吾弟比而同之, 是又欲洗垢而索孟子之瘢也.

 

또 당신이 정씨(程氏)는 불교와 노장의 학설에 대해 겉으로는 비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것을 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치면 도둑이라고 부르는데, 하물며 정씨의 학문은 정성스러움()’을 으뜸으로 삼으면서도 이제 몰래 이단의 설을 훔치면서 공개적으로는 배척하며 그 자취를 덮으려고 하니, 또한 도둑이 주인을 미워하는 뜻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이 말과 같다면, 이른바 정성스러움이란 것이 어디에 있으며, 우리 아우가 존경하여 추앙하는 뜻은 과연 무엇을 이른 것입니까? 천자(天子)를 끼고서 제후들을 호령하는 것은 권신(權臣)들이 발호하여 힘을 빌려서 세상에서 중망을 받으려는 것이니, 어찌 진실로 임금을 높이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유자(儒者)가 도를 논하면서 위세로써 마음을 삼는다면, 역시 진실로 육경(六經)을 높이는 자가 아닙니다. 이는 마음을 쓰는 사이에 반대로 뒤집어서 안 좋은 곳으로 이끌리니, 도에서 멀어진 것이 이미 백천만 리를 넘습니다. 게다가 스스로 간사한 말과 편파적인 행동을 하느라고 겨를이 없는데, 또 어느 겨를에 백가(百家)들을 공격하여 자기에게 복종하기를 바라겠습니까?

又謂程氏於佛老之言皆陽抑而陰用之, 夫竊人之財猶謂之盜, 况程氏之學以誠爲宗, 今乃陰竊異端之說而公 排之以蓋其跡, 不亦盜憎主人之意乎? 必若是言, 則所謂誠者安在? 而吾弟之所以敬仰之意果何謂也? 挾天子以令諸侯, 乃權臣跋扈, 借資以取重於天下, 豈眞尊主者哉? 若儒者論道而以是爲心, 則亦非眞尊六經者. 此其心術之間反覆畔援, 去道已不啻百千萬里之遠, 方且自爲邪說詖行之不暇, 又何暇攻百氏而望其服於己也?

 

이것이 다 소씨(蘇氏)가 마음을 쓰는心術폐단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말을 하거나 논의를 세우는 것 중에서 이러한 폐단에서 나온 것이 십에 팔구입니다. 내 아우가 그의 글을 읽고서 그 문장이 교묘한 것을 좋아하면서 그것이 의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살피지 못한 채, 세월이 흐르자 마침내 거기에 동화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절인 어물전에 들어가 오래 있으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유가의 도리는 즐길만한 소리나 빛깔이나 냄새나 맛이 없어서, 과장된 화려함으로 굉장하게 펼치는 말이나 종횡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언변으로 세속의 이목을 현혹하여 그 마음을 좀먹는 것과 같으므로, 본디 마음과 사려를 씻어내어서 도리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힘쓰는 것이 오래 되면 도리의 본체(本體)가 둘이 아니어서 다시 털끝만치라도 간사하고 망령된 것이 그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연하게 스스로 깨친다면, 어찌 갑자기 평소 존경하고 사모하던 바를 버리고서 이 한 사내(소씨)의 말을 믿으려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천(伊川)이 명도(明道)의 묘표(墓表)를 지어 말하기를 배우는 사람은 도에 있어서 지향할 곳을 안 뒤에야 이 사람(정명도)이 공이 있음을 알 것이고, 지극한 곳을 안 뒤에야 그 이름이 실정에 맞음을 알 것이다.”라고 한 것은 대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쇠퇴하고 도리가 미약해져 간사함과 거짓이 다투어 극성을 부리니, 선비들은 견문이 고루한 데로 빠져서 각자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바를 옳다고 자부합니다. 만약 통렬하게 분석하여 사사로움과 옳음, 참과 거짓을 분명히 나누지 못한다면 배우는 사람들이 장차 어디에서 지향할 곳을 알겠습니까? 하물며 그들이 목표에 이르기를 바랄 수나 있겠습니까? 이 점이 내가 어쩔 수 없이 아우를 위해서 극언을 하며 분수에 넘는 죄를 잊게 된 이유입니다.

凡此皆蘇氏心術之蔽, 故其吐辭立論, 出於此者十而八九. 吾弟讀之, 愛其文辭之工而不察其義理之悖, 曰往月來, 遂與之化, 如入鮑魚之肆, 久則不聞其臭矣. 而此道之傳, 無聲色臭味之可娛, 非若侈麗閎衍之辭, 縱橫捭闔之辨, 有以眩世俗之耳目而蠱其心, 自非眞能洗心滌慮以入其中. 眞積力久, 卓然自見道體之不二, 不容復有毫髮邪妄雜於其間, 則豈肯遽然舍其平生之所尊敬向慕者而信此一夫之口哉? 故伊川之爲明道墓表曰, ‘學者於道知所向, 然後見斯人之爲功. 知所至, 然後見斯名之稱情.’ 蓋爲此也. 然世衰道微, 邪僞交熾, 士溺於見聞之陋, 各自是其所是, 若非痛加剖析, 使邪正眞僞判然有歸, 則學者將何所適從以知所向? 况欲望其至之乎? 此熹之所不得不爲吾弟極言而忘其僭越之罪也.

 

정씨(程氏)의 책이 세상에 유포되어 갖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소유한 것은 이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야 정씨의 󰡔대전집(大全集)󰡕 한 질과 구산(龜山: 楊時)이 기록한 󰡔정자어록(程子語錄)󰡕 한 질을 보냅니다. 󰡔대전집󰡕 가운에 다른 사람의 글이 있다는 것은 목록 안에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이미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만약 갖고 있지 않다면 우선 두고 보시다가 여름 중으로 붙여주셔도 늦지 않습니다. 정씨의 뛰어난 제자인 윤공(尹公: 尹焞)이 일찍이 󰡔이천역전󰡕은 곧 이천 선생이 스스로 지은 것이니, 이천 선생의 도()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구하면 충분하며 다른 책을 꼭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개 󰡔어록󰡕은 간혹 다른 사람이 기록한 것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생의 뜻을 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선생은 몸소 󰡔주역󰡕의 모든 부분을 실천해보았으니, 󰡔이천역전󰡕을 지은 것은 경험에 근거하여 글로 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더욱 의미가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믿으시고 여러 해 동안 공을 들여서 잡학(雜學)을 물리치고 󰡔이천역전󰡕에 정력을 들인다면 저절로 도리를 터득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예전에 소씨(蘇氏)와 정씨(程氏)의 귀착처가 같다고 하신 말이 한 그릇 안에 향기로운 풀과 악취 나는 풀을 섞거나 한 그릇 안에 얼음과 숯을 섞어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지라, 향기롭게 하고자 하여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程氏書布在天下, 所至有之. 此間所有, 不過是耳. 謾寄大全集一本龜山語錄一本去. 大全中有他人之文, 目錄中已題出矣. 恐已自有之, 如未有, 且留看, 夏中寄來未晩也. 程氏高弟尹公嘗謂易傳乃夫子自著, 欲知其道者, 求之於此足矣, 不必傍觀他書. 蓋語錄或有他人所記, 未必盡得先生意也. 又言先生踐履盡一部易, 其作傳只是因而寫成. 此言尤有味, 試更思之. 若信得及, 試用年歲之功, 屛去雜學, 致精於此, 自當有得, 始知前日所謂蘇程之室者, 無以異於雜薰蕕冰炭於一器之中, 欲其芳潔而不汗, 蓋亦難矣.

 

소씨(蘇氏)는 문사(文辭)가 웅장하고 미려하여 근세에 짝할 이가 없습니다. 문장을 지을 때 모범으로 삼아도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 말의 뜻이 자랑하고 호탕하고 궤변이어서 도를 아는 군자들이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까닭으로 평소 그의 글을 읽으면 기뻐하지 않은 적이 없을지라도, 기뻐하고 나면 싫증나지 않은 적이 없으므로 왕왕 책을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서 그만 두게 됩니다. 일부러 그만두려고 의도해서가 아니라 이치의 형세 상 저절로 그렇게 되므로 대개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따라서 소씨의 학설에 심취한 저들이 우리 유교의 문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것이 어찌 내가 저 사람들의 책을 읽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북쪽의 호족(胡族)과 남쪽의 월()나라 사람이 되어 끝내 합치되지 못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소공(蘇公)과 정자(程子)는 함께 조정에 벼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자가 조정을 떠날 적에 소식이 공문중(孔文仲)을 사주해 정자를 공격하여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가령 소씨와 정씨의 도가 내 아우가 논의한 것처럼 같다고 한다면 비록 다른 세대 간에도 정신적인 교유를 할 터인데, 어찌 이와 같은 괴리에까지 이르렀겠습니까? 공문중은 소씨의 사주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만년에야 크게 깨닫고서 울분으로 고민하다가 피를 토하고는 죽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여정헌공(呂正獻公)󰡔유서(遺書)󰡕에 보이므로 지금도 고찰할 수가 있는데 내 아우는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붓이 여기에 이르니 너무 정직한 듯합니다. 그러나 곧지 않으면 도가 나타나지 않는 법이니, 내 아우가 이 점을 살펴 주었으면 다행이겠습니다.

蘇氏文辭偉麗, 近世無匹. 若欲作文, 自不妨模範. 但其詞意矜豪譎詭, 亦有非知道君子所欲聞. 是以平時每讀之, 雖未嘗不喜, 然旣喜, 未嘗不厭, 往往不能終帙而罷. 非故欲絶之也, 理勢自然, 蓋不可曉. 然則彼醉於其說者欲入吾道之門, 豈不猶吾之讀彼書也哉? 亦無怪其一胡一越而終不合矣. 蘇程固嘗同朝, 程子之去, 蘇公嗾孔文仲齕而去之也. 使其道果同, 如吾弟之所論, 則雖異世亦且神交, 豈至若是之戾耶? 文仲爲蘇所嗾, 初不自知, 晩乃大覺, 憤悶嘔血以至於死.見於呂正獻公之遺書, 尙可考也. 吾弟未之見耳. 因筆及此, 似傷直矣. 然不直則道不見, 吾弟察之. 幸甚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4(무자, 1168, 39)에 정순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논어󰡕에 나오는 인, 예 등의 여러 물음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물음: 인이란 하늘의 이치입니다. 이치의 발생하는 곳에는 자연스런 절도가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자연스런 절도에 맞으면 자연스런 조화가 생기니, 이것이 예와 악이 나오는 유래입니다.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하늘의 이치를 멸하게 되니, 어찌 예와 악이 있겠습니까?

仁者, 天理也. 理之所發, 莫不有自然之節. 中其節則有自然之和, 此禮樂之所自出也. 人而不仁, 滅天理矣, 何有於禮樂?

 

대답: 이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인이 하늘의 이치라는 구절은 마땅히 자세하게 설명해야지, 이와 같이 말하고서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此說甚善. , 天理也’, 此句更當消詳, 不可只如此說過.

 

물음: 드러난 것에는 예와 악이 있고, 숨은 것에는 귀와 신이 있습니다. 귀신이란 조화의 오묘한 쓰임이고, 예악이란 사람 마음의 오묘한 쓰임입니다.

明則有禮樂, 幽則有鬼神. 鬼神者, 造化之妙用 : 禮樂者, 人心之妙用.

 

대답: 이 설명도 좋습니다.

此說亦善.

 

물음: “예의 쓰임은 조화를 귀하게 여긴다.”라고 하였으니, 예의 쓰임이란 조화를 귀하게 여깁니다. 조화란 국을 조리할 때 더 넣어야 할 것과 덜 넣어야 할 것이 서로 돕는 것과 같습니다. 선왕이 예법을 제정하여 사람의 감정을 조절할 때, 너무 과도한 것을 누르고 미치지 못한 것을 끌어주었습니다. 만약 조화만을 알아서 조화만을 추구한다면 치우침이 있게 됩니다. 예컨대 물로써 물을 돕는다면 누가 먹을 수 있겠습니까? 󰡔중용󰡕에서 이르기를 드러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조화라고 한다.”고 하였으니, 조화만을 알아서 조화만을 추구한다면 절도에 맞지 않습니다.

禮之用, 和爲貴’, 禮之用以和爲貴也. 和如和羹, 可否相濟. 先王制禮, 所以節人情, 抑其太過而濟其不及也. 若知和而和, 則有所偏勝. 如以水濟水, 誰能食之? 中庸曰: ‘發而皆中節謂之和’, 知和而和, 則不中節矣.  

 

대답: ‘조화()’같음()’을 대비하여 본다면 조화라는 말에는 이미 ()’라는 뜻이 있습니다. ‘조화와 대비하여 본다면 이 두 가지는 구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국을 끓일 때의 조미료의 맛을 조절하는 설명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 字中已有字意思. ’, 則二者又不可不分. 恐不必引和羹相濟之說.   

 

물음: 정치란 법도입니다. 법도란 형벌이 아니면 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치로써 백성을 이끌려고 한다면 반드시 형벌로써 백성을 다스려야 합니다. 덕이란 의리입니다. 의리란 예가 아니면 실천되니 않습니다. 그러므로 덕으로써 백성을 이끌려고 한다면 반드시 예로써 백성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없이는 왕이나 제후가 나뉘게 되므로, 임금은 이것들을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한번 임금을 바르게 하여 나라가 안정되는 기틀입니다.

政者, 法度也. 法度非刑不立, 故欲以政道民者必以刑齊民. 德者, 義理也. 義理非禮不行, 故欲以德道民者必以禮齊民. 二者之決而王伯分矣, 人君於此不可不審. 此一正君而國定之機也.

 

대답: 이 설명도 좋습니다. 그러나 선왕은 형벌을 정치에서 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오로지 그것에만 의지하여 정치를 한 것이 아닙니다.

此說亦善. 然先王非無政刑也, 但不專恃以爲治耳.

 

물음: 공씨(孔氏: 孔子)의 문하에는 비록 배우는 내용에 깊고 얕음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성실하면서 속이지 않은 것을 주로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 子路),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진심으로 가르친 것입니다. 만약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고, 증험하지 못한 것을 증험했다고 한다면 스스로 속인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근본이 이미 틀려 있으니 어찌 함께 도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번지(樊遲)가 지혜에 대해 묻자 공자가 이미 설명해 주었는데도 다시 자하(子夏)에게 질문하여 반복하면서 그칠 줄 몰랐으니, 감히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 못한 것이니, 무릇 이것은 다 배움을 위해 힘쓰는 단계입니다.

孔氏之門雖所學者有淺深, 然皆以誠實不欺爲主. 子曰: ‘, 誨汝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敎之以誠也. 若未得謂得, 未證謂證, 是謂自欺. 如此人者, 其本已差, 安可與入道? 樊遲問智, 孔子旣告之矣, 又質之子夏, 反覆不知已, 不敢以不知爲知也. 凡此皆爲學用力處.

 

대답: 이 설명도 좋습니다.

此說亦善.

 

물음: “자신의 조상이 아닌데도 제사지내는 것은 아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귀신에게 아첨한다면 남에게 어떻게 대할지도 알 수 있습니다.

非其鬼而祭之, 諂也. 諂於鬼, 則於人可知矣.

 

대답: 공자의 설명을 추리하면 그와 같다는 것도 옳습니다. 다만 󰡔논어󰡕 본문에서 아첨()’이라는 것은 귀신에게 아첨하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推說則如此亦可. 但本文字止謂諂於鬼神耳.

 

물음: “공자가 계씨를 일러 팔일 춤을 뜰에서 행하는 것계씨가 태산에 가서 제사지낸 것이라는 다섯 단락은 다 공자가 장차 사라지려는 천리를 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이 애통하고 격절하여 󰡔춘추󰡕와 뜻이 같습니다.

孔子謂季氏八佾舞於庭季氏旅於泰山五段, 皆聖人欲救天理於將滅, 故其言哀痛激切, 與春秋同意.

 

대답: 이 설명도 옳습니다.

此說亦然.

 

물음: 하 나라와 은 나라의 예법을 기 나라와 송 나라가 징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성인이 때와 자리를 얻어서 제작하게 된다면, 비록 징험하지 않더라도 의리로써 일으킬 수 있으니, 반드시 장차 하 나라와 은 나라의 사라진 예법을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마도 후생이 사사로운 뜻으로 선왕의 전례(典禮)를 망령되이 의론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夏殷之禮, 杞宋固不足徵. 然使聖人得時得位, 有所制作, 雖無所徵而可以義起者, 亦必將有以處之. 爲是言者, 恐後生以私意妄議先王典禮耳.

 

대답: 하 나라와 은 나라의 예법은 공자가 설명하신 적 있습니다. 다만 기 나라와 송 나라가 쇠미하여 자신의 말을 고증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만약 때를 얻어서 제작하였다면 마땅히 의리로써 하였을 것이지, 반드시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말이 나온 것은 후생이 망령되이 의론한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夏殷之禮, 夫子固嘗講之, 但杞宋衰微, 無所考以證吾言耳. 若得時有作, 當以義起者, 固必有以處之. 但此言之發, 非謂後生妄議而云耳.

 

물음: 몸에는 죽고 사는 것이 있지만 본성에는 죽고 사는 것이 없으므로, 귀신의 감정이 곧 사람의 감정입니다.

身有死生而性無死生, 故鬼神之情人之情也.

 

대답: 죽고 사는 것과 귀신의 이치는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지극하지 않으면 이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논한다면 석씨(釋氏)의 학설에 빠질까 우려스럽습니다. 본성에는 진실로 죽고 사는 것이 없지만, ‘본성이라는 말을 자세히 이해해야지, 정신과 지각(知覺)으로 본성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死生鬼神之理, 非窮理之至未易及. 如此所論, 恐墮於釋氏之說. 性固無死生, 字須子細理曾, 不可將精神知覺做性字看也.

 

물음: “윗자리에 처해서 관대하지 않고, 예법을 행하면서 공경하지 않고, 상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써 볼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관대함, 공경, 슬퍼함 등은 모두 근본입니다. 공자가 사람을 볼 때 반드시 그 근본을 보았습니다. 실질이 부족하고서 꾸밈이 남은 자는 다 도에 들어가기에 부족합니다.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 皆其本也. 聖人觀人必觀其本, 實不足而文有餘者, 皆不足以入道.

 

대답: 이 설명은 옳습니다.

此說得之

 

물음: 마음에 지각하는 바가 있으면 밝고 밝으면 공평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어진 자라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싫어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心有所知覺則明, 明則公, 故曰惟仁者能好人, 能惡人.

 

대답: 어진 자에게는 진실로 지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각을 인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땅히 인의예지네 글자를 사유하여 그 가운데서 ()’자를 알아야 합니다.

仁者固有知覺, 然以知覺爲仁則不可. 更請合四字思惟, 就中識得字乃佳.

 

물음: 줄곧 선을 생각하면 악이 소멸되고, 줄곧 악을 생각하면 선이 소멸됩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인()에 뜻을 두면 악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소인이면서 어진 자는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一念之善則惡消矣, 一念之惡則善消矣, 故曰苟志於仁矣, 無惡也’, 又曰未有小人而仁者也.’

 

대답: 그러한 뜻은 옳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너무 가볍고 경솔합니다. 몸에 익은 기운의 병폐인 듯하니 다시 경계하고 살펴서 고치십시오.

此意亦是, 然語太輕率, 似是習氣之病, 更當警察療治也.

 

 

물음: 실천할 때 도리에 말미암지 않고서 부귀를 얻는 것은 요행이니, 어찌 구차하게 처하겠습니까? 실천할 때 도리에 말미암지 않고서 가난과 천함을 얻는 것은 당연하니, 어찌 구차하게 버리겠습니까? 그렇다면 군자가 가난과 천함이나 부귀에 처할 때에는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지를 볼 따름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도리에 부끄럽지 않다면 가난과 천함을 버리고 부귀에 처해도 옳습니다. 그러므로 부귀는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도리로써 얻지 못하면 처하지 않고, 가난과 천함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도리로써 얻지 못하면 버리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에서 도리로서--않는다不以其道가 한 구절이고, ‘얻는다得之가 한 구절입니다. (선생의 비평: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자가 둘 곳이 없어서 문장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行不由道而得富貴, 是僥倖也, 其可苟處乎? 行不由道而得貧賤, 是當然也, 其可苟去乎? 然則君子處貧賤富貴之際, 視我之所行如何耳. 行無愧於道, 去貧賤而處富貴可也. 故曰富與貴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不處也. 貧與賤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不去也.’ 當以不以其道爲一句, ‘得之爲一句. (先生批如此說則字無下落, 恐不成文理也.’)

 

대답: 이 문장은 마땅히 앞 선유(先儒)의 말에 의거하여 부귀를 얻는 도리가 있고, 가난과 천함을 얻는 도리가 있다고 해야 옳습니다. 장자소(張子韶: 張九成)가 이르기를 이것은 군자가 부귀를 살피고, 가난과 천함에 편안한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매우 간단하면서도 타당합니다.

此章只合依先儒說有得富貴之道, 有得貧賤之道爲是. 張子韶云 : ‘此言君子審富貴而安貧賤横浦集’, 亦甚簡當.

 

물음: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라고 하였습니다. 천하의 일이란 죽고 사는 사이에도 거짓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면 죽고 사는 사이에 임했을 때 혼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를 들은 선비는 처음을 근원하여 끝을 돌이켜서 삶의 유래를 압니다. 그러므로 살고 죽는 이치와 버리고 취하는 이치가 마음에 분명하여 털끝만치라도 의심되어 막히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데 임하여서도 낮과 밤 혹은 꿈꿀 때와 깨어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고 사는 것이) 항상된 이치라고 생각하면서, 오직 바르지 않게 죽을까를 걱정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어찌 혼란이 있겠습니까? 학문이 여기에 이른 뒤라야 어린 고아를 맡길 수 있고, 백리의 영토를 다스리라고 맡길 수 있으니, 큰 절개에 임하여 빼앗을 수 없습니다.

朝聞道, 夕死可矣.’ 天下之事, 惟死生之際不可以容僞, 非實有所悟者, 臨死生未嘗不亂. 聞道之士原始反終, 知生之所自來, 故知死之所自去. 生死去就之理了然於心, 無毫髮疑礙, 故其臨死生也如晝夜, 如夢覺, 以爲理之常然, 惟恐不得正而斃耳, 何亂之有? 學至於此, 然後可以託六尺之孤, 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대답: 이 설명은 또한 석씨의 학설이 섞여 있습니다. 다시 마땅히 이정 선생이 이 부분을 설명한 것에 따라 익숙하게 맛보고 깊이 구하셔야 합니다. 우리 유학자들이 도라고 말하는 것과 석씨가 말하는 것은 확연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만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此又雜於釋氏之說. 更當以二程先生說此處熟味而深求之. 知吾儒之所謂道者與繹氏逈然不同, 則知朝聞夕死之說矣.

 

물음: 공자는 군자는 덕을 품고 소인은 땅을 탐낸다. 군자는 형벌을 생각하고 소인은 봐주기를 바란다.”라고 하였습니다. 군자가 덕과 의리에 편안한 것이 마치 소인이 거처에 편안한 것과 같고, 군자가 법도에 편안한 것이 마치 소인이 은혜나 이로움에 편안한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마음을 쓰는 까닭이 다를 뿐입니다.

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 君子安於德義, 如小人安於居處 : 君子安於法度, 如小人之安於惠利. 心之所安一也, 所以用其心不同耳.

 

대답: 이것은 소씨의 학설 중에서 정밀한 것이어서 취할 만합니다.

此蘇氏說之精者, 亦可取也.

 

물음: 공자는 이로움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움과 해로움은 상대적이어서, 자기에게 이로운 것은 반드시 남에게 해롭고 남에게 이로운 것은 반드시 자기에게 해롭습니다. 나에게 해로우면 내가 원망하고 남에게 해로우면 남이 원망하니, 이 이로움이란 것은 원망의 창고입니다. 군자는 이치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치가 있는 곳에 이로움과 해로움이 없지 않지만 군자는 이로움과 해로움을 대하는 방식이 공정합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원망하지 못합니다. 남들도 원망하지 못한데 하물며 자기에게 있어서야 어떻겠습니까?

放於利而行多怨’, ‘爲對. 利於己必害於人, 利於人必害於己. 害於己則我怨, 害於人則人怨. 是利者, 怨之府也. 君子循理而行, 理之所在, 非無利害也, 而其爲利害也公, 故人不得而怨. 人且不得而怨, 而况於己乎?

 

대답: 이 설명은 옳습니다.

此說得之.

 

물음: 덕은 외롭지 않은 것은 올바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르면 반드시 이웃이 있습니다. 공자의 도는 이제까지 천하에서 으뜸으로 여겼는데 이웃이 없겠습니까?

德不孤, 中德也, 中必有鄰. 夫子之道至今天下宗之, 非有鄰乎?

 

대답: 이 설명은 옳지 않다.

此說非是.

 

물음: 마음은 본래 어질므로 그러한 마음을 어긴다면 어질지 못한 것입니다. 안자(顔子: 顔回)가 세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은 어진 마음을 어기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心本仁, 違之則不仁. 顔子三月不違仁, 不違此心也.

 

대답: 성인의 말뜻을 익숙하게 맛보면 당신의 설명과 같지 않은 듯합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왜 (: 顔回)는 그 몸이 세 달 동안 마음을 어기지 않았도다!’라고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熟味聖人語意, 似不如此. 然則何以不言: ‘回也, 其身三月不違心?

 

물음: 사람이 여기에서 얻음이 있으면 반드시 여기에서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즐거우면 잠자는 것도 잊을 만합니다. 대개 그 즐거운 소이연을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 체득해야만 저절로 깨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렴계(周廉溪: 周敦頤)는 이정 선생으로 하여금 안자(顔子: 顔回)가 즐거워했던 것이 무슨 일이었는지 구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정 선생께서도 안자가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았다는 구절은 자에 묘미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르기를 안자로 하여금 도를 즐기게 하였다면 안자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안자가 도를 버리고서 다시 무엇을 즐기겠습니까? 그러나 이정 선생이 배우는 자들이 이러한 견해처럼 하기를 바라지 않은 것은 사람의 마음에 얽매인 곳이 있으면 비록 도를 즐기더라도 물건과 같이 될까 걱정하여서입니다. 반드시 도와 하나가 되어야만 즐거움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고 도는 도여서 밖에 있는 사물과 무엇이 다를까요? 반드시 스스로 체득해야만 얻습니다.

凡人有得於此, 必有樂於此. 方其樂於此也, 寢可忘也, 食可廢也. 蓋莫能語人以其所以然者, 唯以心體之乃可自見. 周廉溪嘗使二程先生求顔子所樂者何事, 而先生亦謂顔子不改其樂, ‘字有味. 又云使顔子樂道, 則不爲顔子. 夫顔子舍道, 亦何所樂? 然先生不欲學者作如是見者, 正恐人心有所繫, 則雖以道爲樂, 亦猶物也. 須要與道爲一, 乃可言樂. 不然, 我自我, 道自道, 與外物何異也? 須自體會乃得之.

 

대답: 이것은 단지 즐거움()’이라는 한 글자를 기려서 찬미한 것입니다. 성현의 즐거운 경지를 바로 말로 표현한 적이 없으니 마땅히 실제적인 곳에서 구해야 합니다.

此只是贊咏得一箇, 未嘗正當說著聖賢樂處. 更宜於著實處求之.

 

물음: 󰡔주역󰡕에서 ()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을 방정하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경으로써 마음을 길러서 털끝만치라도 사사로운 생각이 없어야 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에서 생겨나서 베푸는 바가 각각 마땅함을 얻게 되면 이것을 의라고 합니다. 이 구절과 󰡔중용󰡕에서 말한 희로애락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하고, 발생하여 모두 절도에 맞으면 조화()라고 한다.”는 구절은 서로 안팎을 이룹니다. 󰡔중용󰡕에서는 이치는 말하였고 󰡔주역󰡕에서는 배움을 말하였습니다.

易曰: ‘敬以直內, 義以方外.’ 敬以養其心, 無一毫私念, 可以言直矣. 由此心而發, 所施各得其當, 是之謂義. 此與中庸言喜怒哀樂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相表裏. 中庸言理, 易言學.

 

대답: 이 설명은 옳습니다.

此說是也.

 

물음: 성스러움()이란 행한 것을 말하고 지혜()란 아는 것을 말합니다. 성스러움과 지혜 둘 다를 다한 사람이 공자입니다. 백이와 이윤과 유하혜는 그 힘이 성인의 일을 행할 수 있었으나 지혜는 공자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각각 깨끗함(), 조화(), 임무()에 처해서는 지혜를 다하고 행위를 지극히 했으나 나머지에 대해서는 두루 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역시 성인이란 이 세 가지 것을 이미 극진히 하였으니, 설사 공자로 하여금 처하게 하더라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선배들에 의하면 사람 중에는 진실로 힘써 행하더라도 도를 알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위의 세 사람(백이, 이윤, 유하혜)은 도를 알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지혜가 두루 하지 못하였을 따름입니다. 지혜가 두루 하지 못하였으므로 백이는 깨끗함에는 적중하였으나 임무와 조화에는 적중하지 못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윤과 유하혜는 임무화 조화에 적중하였으나 깨끗함에는 적중하지 못한 바가 있었습니다. 󰡔역대전󰡕에서 논하는 지혜는 항상 신()과 서로 짝하고, 󰡔중용󰡕에서는 요 임금을 가리켜서 큰 지혜(大智)’라고 지목합니다. 그렇다면 지혜라는 말은 천하의 지극한 신령스러움이 아니라면 누가 이에 간여할 수 있겠습니까?

聖言其所行, 智言其所知. 聖智兩盡, 孔子是也. 若伯夷伊尹柳下惠者, 其力皆足以行聖人之事, 而其知不逮孔子, 故惟能於淸任處知之盡行之至, 而其他容有所未周. 然亦謂之聖者, 以其於此三者已臻其極, 雖使孔子處之, 亦不過如此故也. 前輩言人固有力行而不知道者, 若三子非不知道, 知之有所未周耳. 知之未周, 故伯夷於淸則中, 而於任於和未必中也. 伊尹柳下惠於任於和則中, 而於淸未必中也. 易大傳論智常與神相配, 而中庸稱舜亦以大智目之, 則智之爲言, 非天下之至神,孰能與於此?

 

대답: 이 설명도 옳습니다. 다만 󰡔역대전󰡕과 관련된 논의는 반드시 당신의 설명과 같지는 않습니다. 지혜에는 깊고 얕음이 있습니다. 예컨대 공자를 쇠로 만든 악기에 비유하는 것은 지혜를 다하여 두루 하지 않음이 없음을 뜻합니다. 배우는 자들이라면 자신의 지혜가 미치는 정도에 따라서 지혜의 크고 작음이 나뉠 따름입니다. 그러니 어찌 천하의 지극한 신묘함이라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此說亦是. 但易大傳以下不必如此說. 智有淺深, 若孔子之金聲, 則智之極而無所不周者也. 學者則隨其知之所及而爲大小耳. 豈可槪以爲天下之至神乎?

 

물음: 도를 배우는 사람은 아는 데서 시작하여 행하는 데서 끝납니다. 예컨대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쇠로 만든 악기로 시작하여 옥으로 만든 악기로 절주(節奏)하는 것과 같습니다. 맹자의 설명은 특히 끝내고 시작하는 것을 취하여 말하였으므로 반드시 쇠로 만든 악기와 옥으로 만든 악기에서 그 의미를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學道者始於知之, 終於行之, 猶作樂者始以金奏, 終以玉節也. 孟子之意特取其終始言之, 不必於金玉上求其義.

 

대답: 이 설명은 옳습니다. 다만 맹자는 바로 쇠로 만든 악기와 옥으로 만든 악기로써 시작과 끝냄, 지혜와 성스러움의 뜻을 밝혔습니다. 대개 쇠로 만든 악기의 소리는 넓고 섬세하고, 옥으로 만든 악기의 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하고 한결같기 때문입니다.

此說亦是. 但孟子正取金玉以明始終智聖之義, 蓋金聲有洪纖, 而玉聲則首尾純一故也.

 

물음: 마음을 동요치 않는 것이 같더라도 수양에 두텁고 옅은 차이가 있고 견해에 바르고 그른 차이가 있다면 도달하는 바에 얕고 깊은 차이가 생깁니다. 증자, 자하, 자로, 맹자, 고자, 북궁유, 맹시사에 관한 논의에서 빠르고 더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不動心一也, 所養有厚薄, 所見有正否, 則所至有淺深. 觀曾子子夏子路孟子告子北官黝孟施舍之議論趨操則可見矣.

 

대답: 이 장의 말을 다시 자세하게 완미해야지 이처럼 대충 말하고 지나서는 안 됩니다.

此章之說更須子細玩索, 不可如此草草說過.

 

물음: 곽립지(郭立之: 郭忠孝)는 마음을 동요치 않은 것으로 처신하였고, 그 마음을 확충하는 학문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왕개보(王介父: 王安石)가 고명(高明)과 중용(中庸)을 둘로 나눈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郭立之以不動心處己, 以擴充之學敎人, 與王介父以高明中庸之學析爲二 致何以異?

 

대답: 곽립지의 논의 중에서 깨치지 못한 것은 대부분 이와 같습니다. 윤화정(尹和靖: 尹焞)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당파에서 논의가 생겨나자 다시 정씨(程氏)의 문하에 나가지 않았고, 이천(伊川)이 죽었을 때도 조문과 제사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얻은 경지를 알만 합니다. 이 논의는 (고명과 중용이) 둘로 나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말한 마음을 동요치 않는 것이 맹자의 마음을 동요치 않는 것이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郭立之議論不可曉多類此. 尹和靖言其自黨論起, 不復登程氏之門, 伊川沒, 亦不弔祭, 則其所得可知矣. 此論未理會析爲二致, 恐其所謂不動心者, 未必孟子之不動心也.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4(무자, 1168, 39)에 쓴 편지이다. 󰡔구산역전󰡕󰡔이정유서󰡕의 간행, 󰡔정몽󰡕 필사본의 입수, 장식의 󰡔간재명󰡕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지난겨울에 동정호(洞庭湖)와 상수(湘水)를 갔다 왔는데, 강론의 유익함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반드시 가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공부해야만 저절로 깨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뒤에 이로부터 잡고 보존하여 끝까지 가야만 자기의 것이 됩니다. 경부(敬夫: 張栻)의 견해는 우뚝한 경지에 나아가 있어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부가 요사이 지은 글이 매우 많아 적어 올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 이 하나의 명()을 베꼈으니 그것은 이 글이 다른 글보다 더욱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추밀원(樞密院)의 자리가 빌 시기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야인의 성질을 길들이기 어려워 다시 벼슬아치가 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우선 벼슬에 임하는 것이 먼저이니 미리 걱정할 수는 없습니다.

去冬走湖湘, 講論之益不少. 然此事須是自做工夫於日用間行住坐臥處, 方自有見處. 然後從此操存, 以至於極, 方爲己物爾. 敬夫所見超詣卓然, 非所可及. 近文甚多, 未暇錄, 且今寫此一銘去, 此尤勝他文也. 密院闕期尙遠, 野性難馴, 恐不堪復作吏. 然亦姑任之, 不能預以爲憂耳.

 

보여 준 󰡔논어󰡕󰡔맹자󰡕에 대한 여러 설명에서 요사이 학문을 진척시킨 힘을 깊이 볼 수 있었습니다. 별지(別紙)에 하나하나 답하여 보내니 더욱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그치지 않고 탐구한다면 마땅히 얻게 될 것입니다. 정령 섭인이 돌아올 때 당신에게 가서 당신의 편지를 받아서 돌아오게 하였으니, 다시 헤아려야 할 곳이 있으면 하나하나 언급하십시오. 고루하여 마음 쓸 데가 없는 차에 오직 친구를 얻어 강론할 수 있다면 기쁘게 하루를 보내면서 이 마음을 위로할 것입니다. 맹자의 욕구할 만한 것을 선이라고 한다.”라는 구절을 평소에 어떻게 보았는지요? 편지를 보낼 때 알려주십시오. 󰡔구산역전󰡕은 전하여 출간할 때 이미 건괘와 곤괘가 결손 되고 단지 초고의 몇 단락만 남아 있어서 매우 불완전하였습니다. 계사서너 단락은 글이 끊어진 것은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글을 이루지 못했는데, 여기에 필사본이 있어서 보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역시 심히 만족할 수준이 아니어서 󰡔이천역전󰡕이 아주 만족스러운 것만 같지 못합니다. 반자순의 글을 근래에 보았는데 불가와 노자를 섞어서 말한 것들은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예전에 논했던 소씨(蘇氏) 학문의 폐단을 내 아우가 믿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어떠한지요? 앞으로 스스로 배우는 과정에서 깨침이 있게 되면 소씨의 그러한 폐단은 저절로 얼음 녹듯이 기와가 깨지듯이 되어 설 곳이 없을 것입니다. 성인의 문하에 노니는 것에 대해 말로 하기 어렵다는 것이 참으로 빈말이 아닙니다. 󰡔정몽󰡕은 이미 받았습니다. 근래에 천주(泉州)에서 󰡔정씨유서󰡕를 간행하였으니 그 내용은 두 선생의 어록입니다. 그곳에서 기록한 내용은 항상 근본을 얻었으므로 먼저 보냅니다.

所示語孟諸說, 深見日來進學之力. 別紙一一答去, 更且加意. 如此探討不已, 當有得耳. 丁寧葉仁來時去取書, 恐更有商量處, 一一示及. 孤陋無所用心, 惟得朋友講論則欣然終日, 千萬有以慰此懷也. ‘可欲之謂善’, 此句尋常如何看? 因來諭及. 龜山易傳傳出時已缺乾坤, 只有草稿數段, 不甚完備 : 繫辭三四段不絶筆, 亦不成書. 此有寫本, 謾附去. 然細看亦不甚滿人意, 不若程傳之厭飫充足. 潘子淳書頃亦見之, 蓋雜佛老而言之者, 亦不必觀. 向所論蘇學之蔽, 吾弟相信未及. 今竟以爲如何? 他時於己學上有見處, 此等自然冰消瓦解, 無立脚處. 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眞不虛語. 正蒙已領. 近泉州刊行程氏遺書, 乃二先生語錄, 此間所錄, 旦夕得本, 首當奉寄也.

 

유가의 학문은 적막하여 사우(士友)들이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아우는 다행히 뜻이 있는데다 재주까지 있어서 매양 편지를 받을 때마다 기상이 늘어납니다. 공부에 몰두하여 여러 해가 지난다면 마땅히 힘 쓸 곳이 있게 될 것입니다. 예컨대 간재명(艮齋銘)’은 공부를 하는 절차입니다. 요즈음 서로 모여서 옛 성인이 전하는 뜻을 고증하여 이러한 종지(宗旨)를 세워놓고 함께 지키고 있습니다. 내 아우도 이것을 깊이 음미해 보고서 의문이 있으면 알려 주기 바랍니다. 가을에 있었던 시험의 득실은 이미 결정 났을 것입니다. 이 하나의 일(과거시험)을 일찍 끝내 버리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는 운명이 있는 것이므로 깊이 마음을 두지 않아도 됩니다.

此學寂寥, 士友不肯信向. 吾弟幸有其志, 又有其才, 每一得書, 爲之增氣. 更願專一工夫, 期以數年, 當有用力處. 如艮齋銘, 便是做工夫底節次. 近日相與考證古聖所傳門庭, 建立此箇宗旨, 相與守之. 吾弟試熟味之, 有疑却望示諭. 秋試得矢當已決, 早了此一事亦佳. 然是有命焉, 亦不足深留意也.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5(기축, 1169, 40)에 정순에게 쓴 편지이다. 앞에서는 경()에 대해 설명하였고, 뒤에서는 유학의 도맥을 그린 종파도(宗派圖)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욕구할 만한 것[可欲]”에 관한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옳은 것을 욕구하고 옳지 않은 것을 욕구하지 않으면 선하지 않겠는가?”라고 한 말은 온당치 않습니다. 욕구할 만한 것만이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것으로 저절로 발생한 단서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바로 이것을 알아서 확충할 따름입니다. 만약, ‘옳은 것을 바란다.’라고 말한다면 이미 확충하는 일이 되므로, ()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이유가 아닙니다. “()을 붙잡을 수 있으면 욕심이 저절로 적어진다.”라는 말은 매우 타당합니다. 다만 편지 끝부분에 따르면 반드시 먼저 본 바가 있을 때라야 손을 대고 마음을 쓸 곳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대저 경()을 붙잡고 공을 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이천(伊川)이 상세히 말했습니다. “오직 단정하고 엄숙하면 마음이 한결같아지고, 한결같아지면 저절로 그릇되고 편벽되는 간사함이 사라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천은 또, “용모를 공손히 움직이고 생각을 바르게 하면 저절로 경()이 생겨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천하여 힘쓰는 경지로 먼저 본 바가 있은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해야만 이치를 궁구하여 보이는 바가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있어야만 욕구할 만한 것의 기미가 밝게 보이고 저절로 일에 종사하는 것이 즐거워져서, 그만 두려고 해도 그만 두지 못하고 경()이 날로 높아집니다. 이천은 또 말하기를 무젖어 수양할(涵養) 때는 반드시 경()을 써야 하고, 학문에 진척시키는 것은 앎을 이루는(致知) 데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또 말하기를 ()에 들어가는 데는 경만한 것이 없다. 앎을 이루면서 경이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성현의 말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로부터 성인의 학문이란 특별히 오묘한 것要妙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자일 따름임을 알게 됩니다.

可欲之說甚善, 但云可者欲之, 不可者不欲, 非善矣乎’, 此語却未安. 蓋只可欲者便是純粹至善自然發見之端, 學者正要於此識得而擴充之耳. 若云可者欲之, 則已是擴充之事, 非善所以得名之意也. 又謂能持敬則欲自寡’, 此語甚當. 但紙尾之意以爲須先有所見, 方有下手用心處, 則又未然. 夫持敬用功處, 伊川言之詳矣. 只云但莊整齊肅, 則心便一, 一則自無非僻之干.’ 又云但動容貌整思慮, 則自然生敬’, 只此便是下手用功處, 不待先有所見而後能也. 須是如此, 方能窮理而有所見. 惟其有所見, 則可欲之幾瞭然在目, 自然樂於從事, 欲罷不能, 而其敬日躋矣. 伊川又言, ‘涵養須是用敬, 進學則在致知.’ 又言入道莫如敬, 未有致知而不在敬者. 考之聖賢之言, 如此類者亦衆, 是知聖門之學別無要妙, 徹頭徹尾只是箇敬字而已.

 

또한 편지에 보니, 망령된 생각으로 괴로워하다가 석씨(釋氏)의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원래부터 실제 생활에서 경()을 잡는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경()을 붙잡고서 이치를 궁구한다면 천리(天理)가 저절로 밝혀지고 사람의 욕심이 저절로 소멸되어 저들(석씨)의 사특하고 망령됨은 공격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격파될 것입니다. 󰡔중용󰡕의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鳶飛魚躍]에 대한 물음에 이르면 다른 사람이 말로 간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마찬가지로 경에 힘을 들여 스스로 깨치십시오. 자사(子思)가 말하기를 군자의 도는 광대하면서도 은미하다.군자가 큰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다 실을 수가 없고,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깨트릴 수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두 구절을 인용하여 천리(天理)가 유행하는 오묘함을 형용했습니다. 명도(明道)와 상채(上蔡: 謝良佐)가 이미 상세히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생각에 이해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믿음이 미치지 못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믿음이 미치게 하려면 경을 붙잡고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버려두고서야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又承苦於妄念而有意於釋氏之學, 此正是元不曾實下持敬工夫之故. 若能持敬以窮理, 則天理自明, 人欲自消, 而彼之邪妄將不攻而自破矣. 至於鳶飛魚躍之問, 則非他人言語之所能與. 亦請只於此用力, 自當見得. 蓋子思言君子之道費而隱, 以至于天下莫能載, 莫能破. 因擧此兩句以形容天理流行之妙. 明道上蔡言之已詳. 想非有所不解, 正是信不及耳. 欲信得及, 捨持敬窮理則何以哉

 

보내주신 종파도(宗派圖)는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옛날에 자공(子貢)이 사람들을 비교하자 공자는 스스로 자신은 그렇게 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학문의 도가 그보다 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종파도를 그린 사람에게 이러한 이치를 알게 했더라면 마땅히 그도 그렇게 할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또 무엇에 의거해서 도()의 전함을 가볍게 논하겠습니까? 다만 문자에 전하는 바에 의거한다면 그 가운데 어긋나거고 뒤섞인 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논할 겨를이 없습니다. 게다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과 선배들이 일찍이 논한 것을 가지고서 말한다면, 그림 안에는 유정부(游定夫)의 도를 전한 네 사람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내가 세 사람을 아는데 모두 유공(游公)을 만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 사람 모두 반자순(潘子醇)을 스승으로 섬겼으며, 또한 반자순이 유공의 문하에서 나왔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아마도 유공과 네 사람이 모두 건주(建州) 사람인 것을 보고서 스승이나 제자일 것이라고 근거 없이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자소(張子韶)와 유자재(喩子才)의 문도(門徒)가 구산(龜山: 楊時)을 직접 만났을지라도, 그 문체와 말투, 규모와 기상 등을 볼 적에 구산과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호문정공(胡文定公)이 깊이 물리친 적이 있고, 내가 그의 말을 󰡔정씨유서(程氏遺書)󰡕의 뒤에 실었습니다. 깊이 상고해 보시면 유학으로 스스로 이름을 이룬 자들에 대하여 진위(眞僞)를 모두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호공(胡公)이 중병(仲幷)에게 답하는 말은 요즈음 배우는 사람들의 깊은 병에 해당하므로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所示宗派, 不知何人爲之. 昔子貢方人而孔子自謂不暇, 蓋以學問之道爲有急乎此者故也. 使此人而知此理, 則宜亦有所不暇矣. 無見於此, 則又何所依據而輕議此道之傳乎? 若云只據文字所傳, 則其中差互叢雜, 亦不可勝道. 今亦未暇泛論, 且以耳目所及與前輩所嘗論者言之. 圖內游定夫所傳四人, 熹識其三, 皆未嘗見游公, 而三公皆師潘子醇, 亦不云其出游公之門也. 此殆見游公與四人者皆建人, 而妄意其爲師弟子耳. 至於張子韶喩子才之徒, 雖云親見龜山, 然其言論風旨規葦氣象自與龜山大不相似. 胡文定公蓋嘗深闢之, 而熹載其說於程氏遺書之後. 試深考之, 則世之以此學自名者, 其眞僞皆可覈矣. 胡公答仲幷語切中近時學

者膏肓之病, 尤可發深省也.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삼년 동안 고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다만 효자의 마음이 이래야 함을 말한 것이지 특정 사실을 가리켜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비록 어쩔 수 없이 고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역시 효도를 함에 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원우(元祐: 1086-1094, 철종 재위) 연간과 희령(熙寧: 1068-1077, 신종 재위)원풍(元豊: 1078-1085, 신종 재위) 연간에 발생했던 일은 진실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여러 관료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소공(蘇公: 蘇軾)의 시에 나오는 들꽃과 우는 새라는 구절은 화()를 기뻐하는 마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三年無改’, 只是說孝子之心如此, 非指事而言也. 存得此心, 則雖或不得已而改焉, 亦無害其爲孝矣. 元祐之於熙, 固有所謂不得已者. 然未知當時諸公之心如何? 若蘇公野花蹄鳥之句, 得無亦有幸禍之心耶?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4(무자, 1168, 39)에 정순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논어󰡕, 󰡔이정유서󰡕, 󰡔상채어록󰡕 등의 구절들에 대한 물음에 답하였다.

 

물음: 공자가 안회에 대해 역시 충분히 발휘하였다.”라고 말한 구절에 대하여.

亦足以發

 

대답: 안자(顔子: 顔回)가 들은 것은 귀로 들어가서 마음에서 드러나고, 사지로 퍼져서 움직임과 고요함에서 드러났으니 공자의 말을 드러내어 밝힐 수 있었습니다.

顔子所聞, 入耳著心, 布乎四體, 形乎動靜, 則足以發明夫子之言矣.

 

물음: ()()()()의 구별에 대하여.

仁之別

 

대답: ()이란 마음의 온전한 본체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이란 마음이 사물에 응한 측면에서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의리의 본래 이름이다.) 예컨대 증자가 말한 충과 서는 성인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충은 성과, 서는 인과 더불어 관통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서는 본래 자기를 헤아려 사물에 미치는 것을 말한 것이니, 성인이라면 자기를 헤아려서 다른 사물에 미친다.) 후씨(侯氏: 侯仲良)가 말한 일찍이 만물을 그르게 한 적이 없다.”라고 한 것은 참으로 병이 있습니다.

字以心之全體而言, ‘字以其應事接物而言(此義理之本名也). 若曾子之言忠恕, 則是聖人之事, 故其忠與誠恕與仁得通言之. (恕本以推己及物得名, 在聖人則爲以己及物矣.) 侯氏說未嘗誤萬物者, 誠有病.

 

물음: 공자가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이 있고,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의 측면에서 본다면 말이 이치 맞는 것을 기필해야 합니다. 어진 사람이 반드시 용기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의리에 대해서는 행하기 위해 반드시 힘쓰도록 기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있다라고 하였습니다.

有德者必有言, 有仁者必有勇.’洵竊謂有德者未必有言, 然因事而言, 則言之中理可必也. 仁者未必有勇, 然義所當爲, 則爲之必力可必也. 故皆日必有.

 

대답: 덕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말 실력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아니며, 어진 자가 반드시 용기로써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지만이하는 각각 당신이 말한 대로입니다.

有德者未必以能言稱, 仁者未必以勇著. (云云)以下, 各如所說.

 

물음: “천하에 도가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의론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에서 의론하지 않는다는 것은 함께 나라의 정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지, 금지하여 말하지 못하게 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양호와 같은 부류가 보통 사람들의 자격으로 국정에 간여한 것과 같습니다.

天下有道則庶人不議, 不議謂不得與聞國政, 非謂禁之使勿言也. 如陽虎之流, 以庶人而與國政者也.

 

대답: 이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양호가 공자에게 돼지고기를 선물한 것은 대부로서 자처하였기 때문이지 보통 사람이어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소씨의 말이 틀립니다.

恐不如此. 陽虎饋豚於孔子, 蓋以大夫自處, 非庶人也. 蘇說之誤.

 

물음: 공자는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네 계절이 운행하면서 만물이 자라날 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보건대 네 계절이 운행하면서 만물이 자라나는 것은 다 천명의 흘러감입니다. 그러한 이치는 매우 분명하여 말로써 표현한 뒤에 밝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인의 도는 이와 같습니다. 움직이고 멈추고 말하고 침묵할 때 모두 도에 맞으므로 말의 있고 없음 때문에 덜어지거나 더해지지 않습니다. 성인의 말이란 어쩔 수 없이 배우는 사람을 위해서 한 것일 뿐입니다. 명도 선생이 말한 만약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진실로 선()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구절도 성인의 말 중에 선()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성인의 도는 평탄하고 명백하여 다만 성인의 말을 분명하게 이해한다면 도란 거기에 있으므로 참선하여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洵竊謂四時行百物生, 皆天命之流行, 其理甚著, 不待言而後明. 聖人之道亦猶是也, 行止語黙無非道者, 不爲言之有無而損益也. 有言, 乃不得已爲學者發耳. 明道先生言: ‘若於此上看得破, 便信是會禪’, 亦非謂此語中有禪, 蓋言聖人之道坦然明白, 但於此見得分明, 則道在是矣, 不必參禪以求之也.

 

대답: 이와 같은 변론은 매우 좋습니다. 근세에 (명도의) 이 말을 심히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항상 당신이 변론한 뜻과 같이 깨우쳐 주었지만, 당신의 말처럼 통쾌하지는 못했습니다.

如此辨別甚善. 近世甚有病此言者, 每以此意曉之, 然不能如是之快也.

 

물음: “자하가 말하기를 벼슬하되 여력이 있으면 배우고, 배우되 여력이 있으면 벼슬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보건대 벼슬살이에 여력이 있는데도 배우지 않는다면 덕을 진전시킬 수 없고, 배움에 여력이 있는데도 벼슬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벼슬살이에 여력이 있으면서도 배우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의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배움에 여력이 있으면서도 벼슬하지 않은 것도 성인의 올바른 도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그릅니다. 벼슬살이에 여력이 있는데도 배우지 않는 것은 원백로(原伯魯)가 배움을 말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배움에 여력이 있으면서 벼슬하지 않은 것은 하조장인의 유파와 같습니다. 자하의 말은 상황을 고려하여 밝힌 것으로, 그 말이 비록 환치시켰을 때 서로의 원인이 되고 있을지라도 각각 따로 지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혹자는 이 구절을 벼슬하되 여력이 있으면 더 배우고, 배우되 여력이 있으면 다시 벼슬한다고 여깁니다. 만약 이러하다면 그 문장의 순서가 마땅히 배우되 여력이 있으면 벼슬하고, 벼슬하되 여력이 있으면 배운다.’라고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문장은 그 반대로 되어 있으니 앞과 뒤를 환치시킬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설명이 맞을 런지요?

子夏曰,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 洵竊謂仕優而不學則無以進德, 學優而不仕則無以及物. 仕優而不學, 固無足議者, 學優而不仕, 亦非聖人之中道也. 故二者皆非也. 仕優而不學, 如原伯魯之不說學是也. 學優而不仕, 如荷蓧丈人之流是也. 子夏之言似爲時而發, 其言雖反覆相因, 而各有所指. 或以爲仕而有餘, 則又學 : 學而有餘, 則又仕. 如此則其序當云學而優則仕, 仕而優則學.’ 今反之, 則知非相因之辭也. 不知此說是否?

 

대답: 이 설명은 좋습니다. 예전에도 이 두 구절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다고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각각 따로 지시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니, 매우 좋습니다.

此說亦佳. 舊亦嘗疑兩句次序顚倒, 今云各有所指, 甚佳.

 

물음: 󰡔정씨유서(程氏遺書)󰡕에 의하면 사마온공(司馬溫公: 司馬光, 1019-1086)이 일찍이 이천(伊川)선생에게 묻기를, “한 사람을 급사중(給事中)에 제수하려고 하는데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건대 사마광이 무슨 피해야 할 혐의가 있겠는가?’라고 말했지만, 어째서 이천 선생은 이에 대해서도 자신하지 못했을까요?

遺書載司馬溫公嘗問伊川先生欲除一人爲給事中云云, 洵竊謂若以公言之, 何嫌之足避? 豈先生於此亦未能自信邪?

 

대답 : 선현들이 말과 침묵에 있는 절도(節度)는 소상하게 음미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다만 이러한 곳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뉘우치거나 인색한 경우가 많을 따름입니다. 근래에 바로 한두 가지 후회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 질문을 읽자 그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前賢語黙之節更宜詳味. 吾輩只爲不理會此等處, 故多悔吝耳. 近正有一二事可侮, 忽讀此問, 爲之矍然.

 

물음: 󰡔상채어록󰡕에서는 참된 나를 말합니다. 제가 보건대 반드시 그렇게 입론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도 나중 사람들의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폐단을 열 것입니다. 공자의 나 없음이란 맹자의 내가 참으로 가진 것에서 언급한 와 글자는 같지만 뜻이 다르다는 것은 본디 저절로 분명합니다. 다만 참된이라는 말 아래에 붙이면 쓸데없는 일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정 선생의 의론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상채의 학문은 이룬 것이 진실로 깊으며, 이것도 작은 흠인 것 같습니다.

上蔡語錄中有眞我之語, 洵竊謂不必如此立論, 恐啓後人好奇之弊. 毋我我所固有字同義異, 本自分明, 只下一, 便似生事, 二程先生議論不如此. 上蔡之學所造固深, 此亦似是其小疵也.

 

대답: 이 말은 매우 타당합니다. 상채가 말한 나로써 보고, 나로써 듣는다.” 라는 것에는 병이 있습니다.

此說甚當. 上蔡所云以我視, 以我聽, 語亦有病.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정순에게 쓴 편지이다. 양시, 정이, 󰡔논어󰡕 등에 나오는 말을 논하였다.

 

구산(龜山: 楊時)이 말하기를 재아가 공자에게 삼년상을 물은 것은 상의 기간을 줄이는 것이 박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의심이 있었으므로 공자에게 자신의 심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숨김이 없어야만 성인이 실천하는 경지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龜山曰: ‘宰我問三年之喪, 非不知其爲薄也, 只爲有疑, 故不敢隱於孔子. 只此無隱, 便是聖人作處.’

 

대답: 구산의 뜻은 마땅히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숨기지 않음과 재아의 숨기지 않음에서는 그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龜山之意當是如此. 然聖人之無隱與宰我之無隱, 亦當識其異處.

 

물음: 이천이 배를 타고 갈 때 바람을 만나자 단정히 앉아서 얼굴색이 변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정성스러움과 공경의 힘을 생각하였습니다. 매섭게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치면서 비가 내리더라도 순 임금은 미혹되지 않았으니, 그것 역시 정성스러움과 공경의 힙입니까?

伊川舟行遇風, 端坐不爲之變, 自以爲誠敬之力. 烈風雷雨而舜不迷錯, 其亦誠敬之力歟?

 

대답: 순 임금이 미혹되지 않은 것은 말로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舜之不迷, 此恐不足以言之.

 

물음: 말을 잘할 경우 덕행에서는 미진할 수 있습니다. 좋은 말과 덕 있는 행위를 둘다 겸비하고 있다면 말한 내용이 다 자신의 일일 것입니다.

善爲說辭, 則於德行或有所未至. 善言德行, 則所言皆其自己分上事也.

 

대답: 이 말은 옳습니다.

此說得之.

 

물음: “좋음()을 남과 함께 한다.”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좋음을 헤아려서 남과 함께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른다.”는 것은 즐거이 남에게서 취하는 것을 좋다고 여기는 것으로, 남에게 있는 좋음을 자기의 좋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善與人同’, 以己之善推而與人同爲之也. ‘舍己從人’, 樂取諸人以爲善, 以人之善爲己之善也.

 

대답: 이 말도 좋다.

此說亦善.

 

물음: 현자를 현자로서 대하는 것, 부모를 섬기는 것, 임금을 섬기는 것, 친구와 사귀는 것 네 가지를 모두 자하의 말처럼 실천할 수 있다면 그를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배우지 않았을지라도라는 말이 있으므로 여전히 배우는 자를 신뢰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이처럼 할 수 있으면서도 이처럼 할 수 있는 까닭을 모르는 것은 어디에서 유래하느냐면, 이른바 행하고서도 드러내지 않고 익히고서도 살피지 않기 때문입니다.

賢賢事父母事君與朋友交, 此四者皆能若子夏之言, 可以言學矣. 然猶有雖曰未學之語, 若猶賴乎學者. 蓋雖能如是而不知其所以能如是者, 從何而來, 則所謂行之而不著習矣而不察者也.

 

대답: 이 구절에 대한 뜻은 아직 귀결 처를 모릅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그래야만 그 득실을 의론할 수 있습니다.

此句意思未見下落, 請詳言之, 方可議其得失也.

 

물음: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므로 남들이 나로 하여금 부끄러움이 없게 할 수 없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다면 자신의 의를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없으니 어떻게 변화할 수 있겠습니까? 성인이 백성으로 하여금 반드시 부끄러워하면서 좋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羞惡之心義之端, 故人不可使之無廉耻. 無廉耻則無以起其好義之心, 若之何而可化? 聖人之於民, 必使之有耻且格者, 此也.

 

대답: 사람이란 본래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으므로 부그러워하면서 의를 좋아한다는 것을 끌어들여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人自是不可無耻, 不必引羞惡好義爲言也.

 

물음: 어버이를 공경할 줄 아는 자는 그 낯빛이 반드시 공손하고, 어버이를 사랑할 줄 아는 자는 그 낯빛이 반드시 온화합니다. 이것은 다 성실함이 드러난 것이어서 거짓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하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가 낯빛이 어렵다고 대답했습니다.

知敬親者其色必恭, 知愛親者其色必和, 此皆誠實之發見, 不可以僞爲. 故子夏問孝, 孔子答之以色難.

 

대답: 아래 단락의 문장에 의거한다면 부모를 모시고 따르는 낯빛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 듯합니다. 그러나 이 설명도 좋습니다.

據下文, 恐是言承順父母之色爲難, 然此說亦好.

 

물음: 공자는 군자는 두루 하되 편당하지 않고, 소인은 편당하되 두루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군자는 이치가 있는 곳을 좇아 천지 사이에 두루 유행하면서 옳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가 친한 것들은 이치로 볼 때 마땅히 친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가 멀리하는 것들은 이치로 볼 때 마땅히 멀리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니 어찌 편당함이 있겠습니까?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君子循理之所在, 周流天地之間, 無不可者. 其親之也, 理之所當親也 : 其遠之也, 理之所當遠也, 何比之有?

 

대답: 현자를 존중하면서도 대중을 포용하고, 뛰어난 사람을 찬미하면서도 능력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일러 두루 한다고 합니다. 애착과 사사로움에 빠져서 자기와 같은 사람과 무리를 지으면서 자기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일러 편당한다고 합니다. 두루 한다는 것은 두루 널리 한다는 것이고, 편당한다는 것은 치우쳐서 함께하는 것입니다. ‘천지 사이에 두루 유행하면서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尊賢容衆, 嘉善而矜不能, 此之謂周. 溺愛狥私, 黨同伐異, 此之謂比. , 周徧也 : , 偏比也. 不必言周流天地之間.

 

물음: 사상채가 말하기를 그 나머지를 신중히 말하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행동한다는 것에는 깊은 뜻이 있으니, 자기 가까이서 생각하는 자라야 뜻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말과 행동에 털끝만치라도 신중하지 않음이 있으면 이치에도 털끝만치의 과실이 생겨나므로 천지와 더불어 서로 비슷하지 않습니다.

謝上蔡曰: ‘愼言其餘, 愼行其餘, 皆有深意, 惟近思者可以得之.’ 蓋言行有絲毫不愼, 則於理有絲毫之失, 則與天地不相似矣.

 

대답: “그 나머지를 신중히 말하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행동한다는 것 흰 띠를 깔아서 쓴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추리하여 말한다면 이치에 해롭지는 않을 것이지만, 아마도 공자의 설명이 갑자기 이러한 뜻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愼言其餘, 愼行其餘’, 藉用白茅之意. 似此推言, 於理不害, 然恐未遽說到此也.

 

소인이 무덤 앞에서 했던 행위는 애초부터 미천하게 예법을 어기는 말단일 뿐입니다. 예법을 어기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끝내 아버지와 임금을 시해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다 서슴없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자가 계씨에 대해 천자의 팔일무(八佾舞)를 뜰에서 추는 것을 서슴지 않고 할 정도라면 무엇인들 못하리오!”라고 하였습니다.

小人之陵上, 其初蓋微僭其禮之末節而已. 及充其僭禮之心, 遂至於弑父弑君, 此皆生於忍也. 故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대답: 감히 해당 예법을 어기는 것은 임금과 아버지를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敢僭其禮, 便是有無君父之心.

 

물음: 사람 중에는 마음에서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밖으로 힘껏 애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군자라면 자신의 마음에서 구해야 합니다. 마음이란 진실하고 밖이란 거짓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계실 때에는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는 뜻을 보아야 합니다. 실천이란 자신의 뜻을 실천하여 완성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는 큰 절개의 처음과 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는 행동을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를 섬기는 행동에 항상 부끄러움이 없고, 삼년 동안에도 자신이 평상시에 아버지를 섬겼던 도리를 잃지 않는다면 효자가 아니겠습니까?

人有中雖不然而能勉彊於其外者, 君子當求之於其中. 中者, 誠也 : 外者, 僞也. 故父在當觀其事父之志. 行者, 行其志而有成者也. 父沒, 則人子所以事父之大節始終可睹矣, 故父沒當觀其事父之行. 事父之行旣已終始無愧, 而於三年之間又能不失其平日所以事父之道, 非孝矣乎?

 

대답: 이 말은 매우 좋지만 문장의 의미가 적절치 않은 듯합니다.

此說甚好, 然文義似未安.

 

물음: 공자의 일에 민첩하다.”는 말은 맹자의 반드시 일에 종사해야 할 때가 있다.”의 일처럼 마땅히 해야할 것을 즉시 하여서 그 기회를 잃지 않은 것입니다.

敏於事必有事焉’, 當爲卽爲, 不失其幾也.

 

대답: 일이란 실천하는 일입니다. 맹자의 반드시 일에 종사해야 할 때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니 자세히 논의해 주어야 가리키는 뜻을 알 것입니다. 경전을 설명할 때는 다른 구절로 특정의 구절을 밝히는 것이 매우 편리합니다. 그러나 간혹 본의를 잃는 경우에는 다른 구절과 특정의 구절이 다 분명하지 못하므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事只是所行之事. ‘必有事焉’, 不知尋常如何說, 請詳論之, 乃見所指之意. 大抵說經以彼明此固爲簡便, 然或失其本意, 則彼此皆不分明, 所以貴於詳說也.

 

물음: 󰡔논어󰡕에서 자공이 말하기를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지나간 것을 말해주자 올 것을 아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배움을 위한 법도로서 성인과 현자가 깨달아 들어간 깊고 얕은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치를 궁구하는 데에는 본디 극치의 경지가 있습니다. 공자가 이와 같이 자공을 이끌어 깨우쳐주는 곳을 본다면 알 수 있습니다.

子貢曰貧而無諂告諸往而知來者’, 此爲學之法也, 亦可以見聖賢悟入深淺處. 凡窮理自有極致, 觀聖人如此發明子貢, 則可見矣.

 

물음: 이 구절은 배움을 진전시키는 실제를 논하였지 깨달음의 깊고 얕은 차이를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깨달아 들어감悟入이라는 것은 석씨의 말로, 그 기상이 공자나 자공과 같은 경지에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此章論進學之實效, 非論悟入深淺也. ‘悟入兩字旣是釋氏語, 便覺氣象入此不得.

 

대답: 󰡔대학󰡕에서 앎을 지극히 하고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고 한 것은 깨달아 들어감을 이른 것이 아닙니다.

大學所謂知至格物者, 非悟入之謂.

 

물음: 죽고 사는 것은 하나의 이치입니다. 죽으면 귀신이 되는 것은 살았을 때 사람인 것과 같습니다. 다만 가고 옴, 숨고 드러남 등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마치 하루의 밤과 낮에 어두움과 밝음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천리가 변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死生一理也, 死而爲鬼, 猶生而爲人也, 但有去來幽顯之異耳. 如一晝一夜, 晦明雖異而天理未嘗變也.

 

대답: 죽은 것은 가면 오지 않으며, 거기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이치일 뿐입니다. 어떤 사물이라도 영원히 존재하면서 변하지 않은 것이란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死者去而不來, 其不變者只是理, 非有一物常在而不變也. 更思之.

 

공자가 듣고 말하기를 이것이 예법이다.”라고 한 구절에서 성인의 기상이 넓고 커서 후세의 여러 학자들이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子聞之曰: ‘是禮也’, 三字可以見聖人氣象宏大, 後世諸子所不及也.

 

물음: “󰡔󰡕 삼백 편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이 사특하지 않다는 것이다.”라는 구절과 󰡔󰡕 「관저편은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퍼하면서도 조화를 해치지 않는다.”라고 구절은 모두 성인이 사람들에게 󰡔󰡕를 읽는 방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詩三百, 一言以蔽之曰思無邪’, 關雎樂而不淫, 哀而不傷’, 皆聖人敎人讀詩之法.

 

대답: 이런 종류의 문장은 말하는 것이 너무 간략하므로 핵심적인 뜻을 알지 못하면, 정확한 의미와 차이가 생겨나 천리만큼이나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此類言之太略, 不曉所主之意, 恐其間有差, 或致千里之繆也.

 

물음: 참된 이치를 아는 것이 지혜이고, 참된 이치를 얻는 것이 인()입니다.

見實理是爲智, 得實理是爲仁.

 

대답: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이치를 얻을 수 있고 참된 이치를 얻는 것이 인이므로, ()이라는 이름과 뜻은 숨어 있습니다.

惟仁者能得是理, 而以得實爲仁, 則仁之名義隱矣.

 

물음: 이치 중에서 지극히 참되어 바꿀 수 없는 것에 인()만한 것이 없습니다. (), (), (), () 등은 인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 (), (), (), (), (), (), () 등은 다 인의 쓰임입니다.

理之至實而不可易者莫如仁. , 非仁不成. 如孝, 皆仁之用也.

 

대답: 이 여러 구절도 아직 귀결 처를 모르겠습니다.

此數句亦未見下落.

 

물음: 배우는 자라면 마땅히 먼저 세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서른에 섰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어떻게 서는지를 근심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설 수 있을까요? 이치를 궁구하여 도를 밝힌다고 한다면 어떻게 서는지를 압니다.

學者須先有所立, 故孔子三十而立’. 又曰患所以立.’ 然則若何而能立? 曰窮理以明道, 則知所立矣.

 

대답; 선다는 것은 붙들어 지켜서 실천하는 것의 효과이니, 설명하신 내용이 틀렸습니다. “어떻게 서는지를 근심한다.”라는 것은 위 문장인 자리 없음을 근심하지 않고를 이어서 말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자리에 설 능력이 없음을 근심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立是操存踐履之效, 所說非是. ‘患所以立不患無位而言, 蓋曰患無以立乎其位云爾.

 

물음: 공자는 옛날에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던 것은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컨대 제갈공명이 초막 안에서 선왕에게 조조와 손자의 성패를 논한 다음 촉을 도왔을 때, 그의 말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옛 사람에게 번거로운 마음이 없었으므로 이와 같이 번거로운 말이 없었습니다.

古者言之不出, 耻躬之不逮也.’ 如諸葛孔明草廬中對先王論曹孫利害, 其後輔蜀抗魏, 其言無一不酬者. 蓋古人無侈心, 故無侈言如此.

 

대답: 인용한 일이 서로 같지 않습니다.

所引事不相類.

 

물음: 유기지가 정성스러움에 대한 조목을 온공(溫公: 사마광)에게 묻자 대답하기를 스스로 망령된 말이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역󰡕에서 말을 수양하여 그 정성스러움을 세운다.”고 했던 것입니다.

劉器之問誠之目於溫公, : ‘當自不妄語入’. 此易所謂修辭立其誠.

 

대답: 가깝다.

近之.

 

물음: “공자가 공야장에 대하여 사위로 삼을만하다.” 공야장을 사위로 삼을만한 것은 그의 평소 행동에 근거해서이지, 죄 없이 포승줄에 묶였기 때문에 사위로 삼을만한 것은 아닙니다.

子謂公冶長可妻也.’ 長之可妻, 以其平昔之行也, 非以無罪陷於縲紲爲可妻也.

 

대답: 비록 포승줄에 묶이게 된 적이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다면 그의 평소 행동을 알 수 있습니다.

雖嘗陷於縲紲, 而非其罪, 則其平昔之行可知.

 

물음: “저는 아직 벼슬하는 것에 자신이 없습니다.”라는 말은, 내가 아직 이 일에 의심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어찌 감히 벼슬과 정치에 나아가서 쓰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吾斯之未能信’, 言我於此事猶未到不疑之地, 豈敢莅官臨政, 發之於用乎?

 

대답: ‘이 일이란 무슨 일입니까?

此事謂何事?

 

물음: “공자가 자공에게 말하기를 너와 회 중에서 누가 낫냐?”고 물었습니다. 공자가 자공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면 자공의 재주도 안회나 증삼에 버금갑니다. 그러나 자공이 안회나 증삼에 미치지 못한 것은 보고 듣는 것으로 학문을 삼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보고 듣는 밖의 일로써 말하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나는 네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날 공자가 자공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너는 내가 많은 것을 배워서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도가 많이 배워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한 가지를 듣고서 열 가지를 아는 것도 안자(顔子: 顔回)가 되는 까닭이 아닙니다.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孔子以此問子貢, 則子貢之才亦顔曾之亞. 然其所以不及二子者, 正在於以見聞爲學. 孔子未欲以見聞外事語之, 故姑云吾與女弗如.’ 他日乃警之曰: ‘汝以予爲多學而識之者歟?’ 道非多學所能識, 則聞一知十, 亦非所以爲顔子.

 

대답: 자공이 말한 한 가지를 듣고 두 가지를 알거나 열 가지를 안다는 것은 앎을 말한 것이지 들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보고 듣는 것의 밖이란 무슨 일을 가리키는지요? 다시 말해주십시오.

子貢言聞一知二知十乃語知, 非語聞也. 見聞之外, 復謂何事? 請更言之.

 

물음: 충성스러움과 깨끗함은 다 인의 쓰임입니다. 마음에서 깨우침이 있다면 충성스러움과 깨끗함이 다 인입니다. 마음에서 깨우침이 없다면 인이 다 충성스러움과 깨우침입니다.

忠與淸皆仁之用. 有覺於中, 忠淸皆仁 : 無覺於中, 仁皆忠淸.

 

대답: 깨우침을 인으로 삼는 것은 요즘에 학문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큰 병입니다. 당신의 네 구절과 같이 한다면 더욱 괴리가 심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인이 깨우침과 둘이 되어 그 아래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以覺爲仁, 近年語學之大病, 如此四句, 尤爲乖戾. 蓋若如此, 則仁又與覺爲二而又在其下矣.

 

물음: 공자의 더욱 공경하며 어기지 않는다.”라는 말은 부모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예로써 부모를 섬김으로써 예를 어기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것은 공경과 효도를 일으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又敬不違’, 非從父之令, 謂事親以禮, 無違於禮也. 所謂起敬起孝.

 

대답: “부모의 뜻이 나와 맞지 않더라도, 더욱 공경하며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부모의 명령을 따르는 경우가 있음을 뜻합니다. “수고하면서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기󰡕기뻐하시면 다시 간하는 것으로 감히 원망을 급히 하지 않음입니다. 만약 나와 뜻이 맞지 않아서 끝내 어기게 된 경우에는 부모 자식 사이에 서로 상처를 주는데 이릅니다.

見志不從, 又敬不違’, 則不得已而從父之令者有矣. ‘勞而不怨’, 則所謂悅則復諫’, 不敢疾怨也. 若不從而遂違之, 則父子或至於相夷矣.

 

물음; 간략함에 처하여 간략함을 행한다면 뜻이 크나 작은 것을 생략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세로 일에 임한다면 반드시 게으르게 소홀히 하면서 실천하지 않은 경우게 있습니다. 공경에 처하여 간략함을 행한다면 마음이 공경에 집중하므로 일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공경심에 빼고 더할 것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세로 일에 임한다면 반드시 간략하면서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居簡而行簡, 則有志大略小之患, 以之臨事, 必有怠忽不擧之處. 居敬而行簡, 則心一於敬, 不以事之大小而此敬有所損益也. 以之臨事, 必簡而盡.

 

대답: 공경에 처하면 일의 기틀을 훤히 밝혀 어지럽게 사사로운 뜻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그 행동이 반드시 간략합니다.

居敬則明燭事幾而無私意之擾, 故其行必簡.

 

물음: ()을 실천하는 것은 진실로 어렵습니까? 공자는 쉬운 것으로 사람의 소홀한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것으로도 사람의 게으른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 멀리 있던가! 내가 인()하고자 하면 인이 이른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말하기를 인을 실천하기가 어려우므로 말할 때 삼가서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爲仁固難歟? , 孔子不以易啓人之忽心, 亦不以難啓人之怠心. 故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又曰: ‘爲之難, 言之得無訒乎? ’

 

대답: 인이란 진실로 멀리 있지 않지만 실천하려고 하지 않으면 오지 않습니다. 인이란 진실로 어렵지만 실천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仁固不遠, 然不欲則不至. 仁固難, 爲之則無難.

 

물음 : 앎을 이루어서 밝히고 공경심을 붙들어서 기르는 것이 학문의 요체입니다. 앎을 이루지 않으면 공경심을 붙들기가 어렵고, 공경심을 붙들지 않으면 앎을 이룰 수 가 없습니다.

致知以明之, 持敬以養之, 此學之要也. 不致知則難於持敬, 不持敬亦無以致知.

 

대답 : 두 가지가 서로 쓰임 되는 것이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각각 경우에서 그 힘을 다해야지, 이것을 믿고서 저것을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二者交相爲用固如此, 然亦當各致其力, 不可恃此而責彼也.

 

물음: 공자는 내가 빈지 오래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인은 천지와 덕을 합하고 귀신과 길흉을 합하므로, 그 자신이 곧 천지의 귀신이고 천지의 귀신이 곧 그 자신입니다. 그러니 어찌 빌겠습니까?

丘之禱久矣’, 聖人與天地合其德, 與鬼神合其吉凶, 我卽天地鬼神, 天地鬼神卽我, 何禱之有?

 

대답: 다른 사람의 측면에서 보자면 성인이란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마음이 어찌 이에 자처하겠습니까? “내가 빈지 오래다.”라는 말을 자세하게 완미해보면 말뜻이 깊고 두텁습니다. 성인의 기상, 하늘과 사람의 나뉨,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것 등을 다 볼 수 있습니다.

自他人言之, 謂聖人如此可也. 聖人之心豈以此而自居耶? 細味丘之禱也久矣’, 語意深厚, 聖人氣象與天人之分自求多福之意皆可見.

 

물음: “능력이 있으면서 능력이 없는 이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 적게 아는 이에게 묻고,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하고, 차 있으면서도 비어 있듯이 하고, 남이 나에게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인의 일이어서 하늘과 함께 헤아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합니다. 안자(顔子: 顔回)는 한 단계를 도달하지 못하여 바로 이런 경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어서 말하기를 이 경지에 종사한 적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자기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此聖人之事也, 非與天同量者不能. 顔子所以未達一間者, 正在此. 故第曰嘗從事於斯’, 非謂己能爾也.

 

대답: 이것은 안자의 일입니다. 만약 공자라면 이와 같은 자취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말한 것이 있다면 안팎을 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순 임금의 경우에는 좋음()을 남과 함께 하면서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랐고 가까운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면서 바른 것을 백성에게 썼으므로 반드시 겸하여 말을 하였습니다. 안자는 실천이 완성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이 단지 이와 같은데 그쳤을 따름입니다.

此正是顔子事, 若聖人則無如此之迹. 有如此說處, 便有合內外之意. 舜善與人同, 舍己從人’, 好察邇言, 用中於民, 必兼言之. 惟顔子行而未成, 故其事止於如此耳.

 

물음: “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행위로써 사람들을 가르쳤으므로 말라()’라는 금지사를 썼습니다. ‘말라라는 것은 경계하는 말입니다.

子絶四’, 蓋以此敎人也, 故曰’. 毋者, 戒之之辭.

 

대답: ‘말라라는 글자가 󰡔사기󰡕에서는 없다()’라는 글자로 되어 있으므로 마땅히 없다는 뜻이 바를 것입니다.

’, 史記作’, 當以爲正.

 

물음: 공자는 안회를 두고 그가 그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학문이란 반드시 올바른 데에 그쳐야 합니다. ‘그치다()’는 말은 쉰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데 그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백 척의 장대 끝에서도 일보를 더 내디뎌야 하거늘, 어찌 그치는 법이 있겠습니까?

未見其止也’, 學必止於中, 非息也, 於中止行耳. 百尺竿頭猶須進步, 豈有止法乎?

 

대답: 위와 아래의 문장에 의한다면 그치다라는 말은 다 그쳐서 쉰다는 뜻일 뿐입니다. ‘학문이 올바른 데 그친다는 것은 바른 처소에 그치는 것이지 그쳐서 쉰다는 뜻이 아닙니다. 글자는 같지만 용법이 다르므로 각각 쓰인 맥락을 살펴야 합니다. 장대 끝에서 일보를 나간다는 것은 미치고 거짓된 말이지 비유에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據上下章, ‘字皆但爲止息之意. 學止於中, 乃止其所之止, 非止息之意, 字同用異, 各審其所施. 竿頭進步, 狂妄之言, 非長於譬喩者.

 

물음: 공자가 언급한 네 부류란 공씨(孔氏: 孔子) 문인의 왕성함이 이와 같았음을 기록하는 것이지 공자의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글자가 이름을 쓰지 않았고 위의 문장과도 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혹자는 󰡔논어󰡕가 증자와 유자의 문인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증자와 유자 두 사람은 네 부류에 열거되지 않았으니 어찌 문인이 스승을 높이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四科乃述論語者記孔氏門人之盛如此, 非孔子之言, 故皆字而不名, 與上文不當相屬. 或曰論語之書出於曾子有子之門人, 然則二子不在品題之列者, 豈非門人尊師之意歟?

 

대답: 네 부류는 다 진 나라와 채 나라에서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록한 사람이 공자의 문하에 있지 않다라는 탄식에 이어서 그들을 열거하였습니다.

四科皆從於陳蔡者, 故記者因夫子不及門之歎而列之.

 

물음: 군자의 도는 근본과 말단이 일치합니다.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응대할 때에도 본성과 천도가 간직됩니다. 본성과 천도를 실천하여 드러내고 익히면서 살피는 것이 지극합니다. 누가 근본이란 의당 우선적으로 전해야 한다고 하며, 말단은 의당 뒤로 하여 게을리 해도 좋다고 하였을까요? 마치 풀과 나무를 처음 심을 때에 구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뿌려서 크게 자라면 싹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릴 때까지 그 순서를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배우는 자들이 대부분 먼 것을 추구하면서 가까운 것을 소홀히 하면서 본성과 천도라면 마땅히 먼저 전해야 한다고들 생각하고,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응대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뒤로 하여 게을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순서를 뛰어 넘고 절차를 업신여기면서 서로 속이는 것을 높다고 여깁니다. 학문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 반드시 이 때문입니다. 성인만이 아래서 배워 위로 통달하여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자의 배움에 뜻을 둠이 충실한 데서 시작하여 마음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은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맹자의 욕구할 만한 좋음이 충실한 데서 시작하여 알 수 없는 신묘함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거기에는 언제나 순서가 있어서 전 과정이 완성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맹자가 말한 천천히 어른 뒤에서 걷는 것이요 임금과 순 임금의 효도와 공손함이다.”라는 구절을 보면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응대할 때에 진실로 행동이 드러나고 학습이 자세합니다. 그러니 어찌 성인의 경지에 이르니 않을 수 있겠습니까?

君子之道, 本末一致. 灑掃應對之中, 性與天道存焉, 行之而著, 習之而察, 則至矣. 孰謂此本也宜先而可傳, 此末也宜後而可倦哉? 譬諸草木, 其始植也, 爲之區別而已. 灌漑之, 長養之, 自芽蘖以至華實, 莫不有序, 豈可誣也. 然學者多慕遠而忽近, 告之以性與天道, 則以爲當先而傳. 敎之以灑掃應對, 則以爲當後而倦焉, 躐等陵節, 相欺以爲高. 學之不成, 常必由此. 惟聖人下學上達, 有始有卒, 故自志學充而至於從心不踰矩, 自可欲之善充而至於不可知之神莫不有序, 而其成也不可禦焉. 觀孟子謂徐行後長者爲堯舜之孝弟, 則灑掃應對進退之際苟行著而習察焉, 烏有不可至於聖者?

 

대답: 자하에 의하면 그는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응대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전한 것이 아니요, 본성과 천명과 천도를 뒤로 하여 게을리 가르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도리에 본래 크고 작은 것의 구별이 있어서 자신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서 남들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성인이라야 처음과 끝을 갖추어 하나로 관통하므로 순서로써 말할 수 없습니다. 두 선생의 말도 이와 같습니다. 다만 배우는 사람이 살피지 않고서 큰 말을 하나의 예로 들면서 근본과 말단, 정밀함과 거침의 구별이 없어서 반대로 이 부분의 뜻이 도무 귀결 처가 없게 만듭니다. 마땅히 이치가 하나로 귀결되므로 이치에 대한 가르침에서 어느 것을 빠뜨려서는 안 되며 이치를 실천하는 순서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치가 하나로 귀결되므로 이치에 대한 가르침에서 어느 것을 빠뜨려서는 안 되고 이치에 대한 순서도 어지럽혀서는 안 됩니다. 다시 자세히 생각해보십시오.

子夏言我非以灑掃應對爲先而傳之, 非以性命天道爲後而倦敎, 但道理自有大小之殊, 不可誣人以其所未至. 唯聖人然後有始有卒, 一以貫之, 無次序之可言耳. 二先生之說亦是如此. 但學者不察, 一例大言, 無本末精粗之辨, 反使此段意指都無歸宿. 須知理則一致, 而其敎不可闕, 其序不可紊耳. 蓋惟其理之一致, 是以其敎不可闕, 其序不可紊也. 更細思之.

 

물음: ‘두텁다()’는 것은 참되다는 뜻입니다. 학문은 참됨을 논의해야 합니다. 참됨을 논의할 때 군자와 함께 할까요? 아니면 얼굴색이 씩씩한 사람과 함께 할까요? 군자란 참됨이 있는 사람이고, 얼굴색이 씩씩한 사람이란 참됨이 없는 사람입니다.

, 實也, 學當論其實. 論其實則與君子者乎, 與色莊者乎? 君子, 有實者也. 色莊, 無實者也.

 

대답: 옳다.

得之.

 

물음: 자기를 이기는 도리란 공경심을 두터이 하여 앎을 이루는 것일 뿐입니다. 예가 아니면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공경심을 두터이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에서 예가 아닌 것들을 아는 것이 앎을 이루는 것입니다.

克己之道, 篤敬致知而已. 非禮勿視勿聽勿言勿動, 篤敬也. 所以知其爲非禮者, 致知也.

 

대답: 자기를 이겨야 두터이 실천하는 일이 진실로 앎의 공효에서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말한다면 도리어 절실하지 않은 듯합니다. 마땅히 마음을 쥐어 간직하고 붙들어 기르는 곳에 나아가 말해야만 힘써야 할 절실한 곳을 압니다.

克己乃篤行之事, 固資知識之功, 然以此言之, 却似不切. 只合且就操存持養處說, 方見用力切要處.

 

물음: 󰡔중용󰡕에서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본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므로 옛 성현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고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중용󰡕에서 말하기를 힘써 실천하는 것은 어진 자에 가깝다.”라고 하였습니다. 󰡔논어󰡕에서 사마우가 인()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인을 실천하기가 어려우므로 말할 때 삼가서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言顧行, 行顧言’, 故古者言之不出, 耻躬之不逮也. 中庸曰: ‘力行近乎仁.’ 論語司馬牛問仁, 子曰 : ‘爲之難, 言之得無訒乎?’

 

대답: 사마우에게 답한 뜻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答司馬牛之意更宜思之.

 

물음: “바탕이 곧고 의로움을 좋아한다면몸을 수양할 수 있고, “말을 살피고 낯빛을 살핀다면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으로는 몸을 수양할 수 있고 밖으로는 사람을 알 수 있은 데다가 겸손함까지 갖춘다면 덕을 이룬 학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통달하지 않으려고 할지라도 그렇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녹이 그 가운데 있다.”라는 뜻과 같습니다.

이름과 실제가 서로 대응하는 것을 통달한다고 말하고, 이름만 있고 실제가 없는 것을 들은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남의 말을 살피고 낯빛을 보는 것은 맹자가 말한 남의 말을 듣고 그의 눈동자를 보면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숨기리오?”라는 구절과 같습니다.

質直而好義’, 則能修身, ‘察言而觀色’, 則能知人. 內能修身, 外能知人, 而又持之以謙, 此盛德之士也. 雖欲不達, 得乎? 此與祿在其中同意. 名實相稱之謂達, 有名無實之謂聞. 察言觀色, 如孟子所謂聽其言也, 觀其眸子, 人焉廋

 

대답: 공자가 말한 세 구절은 모두 성실하고 겸손히 물러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통달을 기약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통달합니다. 몸을 수양하고 남을 아는 데서 나아가 겸손함까지 갖추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남을 아는 것에 대해 말하면 오히려 바른 뜻에서 멀어집니다.

孔子所言三句, 皆誠實退讓之事. 能如此, 則不期達而自達矣, 非謂能修身知人而持之以謙也. 說知人猶遠正意.

 

물음: “자로가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솔선하고 부지런히 하라.’고 하였고, 더 청하자 게으름이 없다.’라고 하였다.”는 구절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고 죽이고, 경계하지 않고 완성을 바라고, 명령을 태만히 하면서 기한을 각박하게 하는 것은 다 솔선하지 않은 것입니다. 요 임금이 말하기를 위로하여 오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살리면서 다치지 않게 하고, 두텁게 해주면서 곤란하지 않게 하는 것이 모두 위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 임금과 순 임금의 정치이며 그 요점은 힘써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게으름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子路問政, 子曰: 先之勞之. 請益, : 無倦.’ 凡不敎而殺, 不戒視成, 慢令致期, 皆無以先之也. 旣有以先之, 又當有以勞之. 帝堯曰: ‘勞之來之.’ 凡生之而不傷, 厚之而不困, 皆勞之之謂也. 此堯舜之政也. 其要在力行耳, 故復告之以無倦.

 

대답: ‘솔선 한다는 것은 몸소 앞장서는 것이며, ‘위로한다는 것이란 사랑으로써 만져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없을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게을러집니다. 그러므로 더 청하여 묻자 게으름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先之謂以身率之, 勞之謂以恩撫之. 二者苟無誠心, 久必倦矣, 故請益, 則曰無倦而已.

 

물음: 문서의 정리와 재물의 출납 등에는 각각 담당자가 있습니다. 그런 뒤라야 교화하는 일에 뜻을 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담당자에게 시킨다.’라고 하였습니다.

簿書期會, 各有司存, 然後吾得以留意敎化之事. 故曰先有司’.

 

대답: 먼저 담당자를 둔 뒤라야 기강이 서고 책임의 소재가 있게 됩니다.

先有司, 然後綱紀立而責有所歸.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정순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장재의 본성론,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이치 등에 대한 물음에 답하였다.

 

물음: 장자(張子: 張載)가 말하기를 천성(天性)이 사람에게 있는 것은 물의 본성이 얼음에 있는 것과 같다. 얼음이라는 고체와 물이라는 액체가 서로 다를지라도 그것들의 사물 됨은 한가지다.”라고 하였습니다. 장자의 뜻을 보면 물이 얼어 얼음이 될 때 한번 얼고 한번 녹지만 물의 본성은 움직인 적이 없고, 마찬가지로 기가 모여서 사람이 될 때 한번 모이고 한번 흩어지지만 사람의 본성은 움직인 적인 없다는 것을 말한 듯합니다. 이것은 얼음으로 사람을 비유하고 물의 본성으로 천성을 비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궁구해보면 석씨의 학설로 흘러듭니다. 형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張子曰, ‘天性在人, 猶水性之在冰, 凝釋雖異, 其爲物一也.’ 觀張子之意, 似謂水凝而爲冰, 一凝一釋而水之性未嘗動. 氣聚而爲人, 一聚一散而人之性未嘗動. 此所以以冰喩人, 以水性喩天性也. 然極其說, 恐未免流於釋氏. 兄長以爲如何?

 

대답: 정자(程子: 程頤)는 횡거(橫渠: 張載)의 말 중에서 허물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바로 이러한 부분을 가리킵니다. 공자, 자사, 맹자 등이 본성을 논한 것을 보면 다 이와 같지 않습니다. 강절(康節: 邵雍)이 말하기를 본성이란 도의 형체이고, 마음이란 본성의 성곽이고, 몸이란 마음의 집이고, 사물이란 몸의 탈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程子以爲橫渠之言誠有過者, 正謂此等發耳. 觀孔子子思孟子論性, 似皆不如此. 康節云 : ‘性者, 道之形體也. 心者, 性之郛郭也. 身者, 心之區宇也. 物者, 身之舟車也.’

 

물음: 귀신의 이치에 대해서는 제가 예전에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요지에 의하면 기의 옴이 신()이고 기의 감이 귀()이다. 하늘을 신이라고 하고 땅을 기()라고 하니 기의 옴이다. 사람을 귀()라고 하니 기의 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장재가 말한 사물의 처음 생성은 기()가 나날이 이르러서 불어나는 것이고, 사물이 이미 다 자라면 기가 나날이 (자연으로) 돌아가 흩어진다. (기가) 이르는 것을 신()이라고 하는 것은 펼치기 때문이다. (기가) 돌아가는 것을 귀()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라는 것과 의미가 같습니다. 근래에 형님께서 지으신 󰡔중용설󰡕을 보니 이 부분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장자가 말한 사물이란 만물을 통틀어 말한 것일까요? 아니면 귀신만을 지목한 것일까요? 만약 귀신만을 지목한 것이라고 한다면 사물이란 󰡔역대전󰡕에서 말한 정밀한 기가 사물이 되다.”에서의 사물과 같을 것입니다. 만약 모든 사물을 통틀어 말한 것이라고 한다면 위의 네 구절은 사물이 모이고 흩어지고 시작하고 끝나는 이치를 이와 같이 넓게 표현한 것이고, 아래의 네 구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귀와 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밀한 기가 사물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예전에 계통(季通: 蔡元定)과 함께 강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정밀한 기가 사물이 되는 것이란 기가 모여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떠다니는 혼이 변한다는 것이란 기가 흩어져서 귀신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어떻습니까? 비평하는 가르침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鬼神之理, 某向嘗蒙指示, 大意云: ‘氣之來者爲神, 往者爲鬼. 天地曰神曰祇, 氣之來者也 : 人曰鬼, 氣之往者也.’ 此說與張子所謂物之始生, 氣日至而滋息 : 物生旣盈, 氣日反而遊散. 至之謂神, 以其伸也 : 反之謂鬼, 以其歸也之意同. 近見兄長所著中庸說亦引此, 然張子所謂物者, 通言萬物耶? 抑特指鬼神也? 若特指鬼神, 則所謂物者, 如易大傳言精氣爲物. 若通言萬物, 則上四句乃泛言凡物聚散始終之理如此, 而下四句始正言鬼神也. 精氣爲物, 嚮亦嘗與季通講此. 渠云 : ‘精氣爲物者, 氣聚而爲人也. 遊魂爲變者, 氣散而爲鬼神也.’ 此說如何? 更望詳賜批敎.

 

대답: 󰡔역대전󰡕에서 말한 사물과 장자가 말한 사물은 다 만물을 가리킵니다. 다만 그러한 곳에서 사물이라고 하는 것은 다 음기와 양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덕은 사물의 본체가 되어 빠트릴 수 없습니다. 기가 흩어져서 귀신이 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易大傳所謂物, 張子所謂物, 皆指萬物而言, 但其所以爲此物者, 皆陰陽之聚散耳. 故鬼神之德, 體物而不可遺也. 所謂氣散而爲鬼神者非是.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건도(乾道) 8(임진, 1172, 43)에 정윤부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귀신에 관한 정이, 양시, 󰡔중용󰡕 등의 구절을 논했다.

 

물음: 정자가 말하기를 귀신이란 천지의 신묘한 작용이요 조화의 자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기의 오고 감과 모이고 흩어짐은 천지의 작용이 아닌 것이 없고 귀신이란 더욱 신묘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기에서 움직였다면 작용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형이하자이므로 조화의 자취라고 하였다.) 여씨가 말하기를 만물은 기가 아닌 것이 없으며 기란 신()의 왕성함이다. 만물은 백()이 아닌 것이 없으며 백이란 귀()의 왕성함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귀신이 모인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중용설󰡕에서 말하기를 귀신의 덕을 귀와 눈으로 보고 듣고서 접할 수 없을지라도 만물의 모이고 흩어지고 시작하고 끝나는 것은 음기와 양기가 굽히고 펴고 가고 오는 것이 아님이 없다. 귀신의 덕은 사물의 본체여서 어떤 사물이라도 그것을 버릴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각주: 예전에 이 두 가지 학설을 살펴보았는데 장자(張子: 張載)가 말한 사물의 처음 생성은 기()가 나날이 이르러서 불어나는 것이고, 사물이 이미 다 자라면 기가 나날이 (자연으로) 돌아가 흩어진다.”라는 것은 만물의 모이고 흩어지고 시작하고 끝나는 이치를 이처럼 넓게 말한 것입니다. 귀신도 사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만 귀신의 덕이 사물 가운데 매우 왕성하므로 사물의 본체가 되어 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람도 사물 가운데 하나이며, 거두고 흩고 끝나고 시작하는 것도 음기와 양기의 굽히고 펴고 가고 오는 것이 귀신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여씨가 말하기를 사람도 귀신이 모인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람만이 아니라 보든 천지 사이의 금수와 초목이 모이고 흩어지고 시작하고 끝나는 것에도 그 이치가 이와 같다. 그 이치는 하나이나 사물들이 얻은 기에 숨음과 드러남, 치우침과 바름, 두터움과 얇음 등의 차이 가 있다. 이것이 귀신과 사람과 사물 사이의 차이일 것이다.) 사씨(謝氏: 謝良佐)가 말하기를 귀신이란 천지의 신묘한 작용으로 널리 퍼져 가득 차서 눈에 보이는 것이 다 귀신으로, 귀신이 있고자 바라면 있고 귀신이 없고자 바라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각주: 귀신이란 기이고,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기이다. 기로써 기를 느끼므로 상대적으로 있거나 없을 수 있다. 여씨가 말한 귀신이 천지 사이에 두루 퍼져서 없는 곳이 없다. 비록 고요히 움직이지 않을지라도 느낌으로써 반드시 통한다.”라고 한 것이 이 뜻이다.)

程子曰: ‘鬼神者, 天地之妙用, 造化之迹也.’ (凡氣之往來聚散, 無非天地之用而鬼神尤其妙者也. 然旣已動於氣, 見於用矣, 是形而下者也, 故曰造化之迹.) 呂氏曰: ‘萬物之莫不有是氣, 氣也者, 神之盛也. 莫不有是魄, 魄也者, 鬼之盛也. 故人亦鬼神之會爾.’ 中庸說曰: ‘鬼神之爲德, 雖不可以耳目見聞接, 然萬物之聚散始終, 無非二氣之屈伸往來者, 是鬼神之德爲物之體, 而無物能遺棄之者也.’ (向按此二說則張子所謂物之始生, 氣日至而滋息 : 物生旣盈, 氣日返而游散’, 乃泛言萬物聚散始終之理如此. 而鬼神者, 亦物之一爾. 但其德在物之中爲尤盛, 故爲物之體而莫有能遺之者. 人亦物之一也, 其歛散終始亦二氣之屈伸往來, 與鬼神同. 故呂氏曰 : ‘人亦鬼神之會耳.’ 然則非特人也, 凡天地之間, 禽獸草木之聚散始終, 其理皆如此也. 其理一而其得於氣者有隱顯偏正厚薄之不同, 玆其所以有鬼神人物之異歟.) 謝氏曰: ‘鬼神是天地妙用, 流行充塞, 觸目皆是, 欲其有則有, 欲其無則無.’ (鬼神, 氣也, 人心之動亦氣也. 以氣感氣, 故能相爲有無. 呂氏曰: ‘鬼神周流天地之間, 無所不在, 雖寂然不動, 然因感而必通’, 卽此意也.)

 

대답: 이 두 단락을 자세히 보면 모두 사람과 사물 그리고 귀신이 각각 하나의 것이라고 하면서 묘 안의 진흙으로 만든 귀신泥塑鬼神을 볼 따름입니다. 여씨가 말한 사람도 귀신이 모인 것이라는 구절이 가장 정밀합니다.

詳此兩段, 皆是人物鬼神各爲一物, 是殆見廟中泥塑鬼神耳. 呂氏所謂人亦鬼神之會者甚精, 更請細推之.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순희(淳熙) 2(을미, 1175, 46)에 정순의 물음에 답하는 편지이다.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대하여 논하였다.

 

물음: 󰡔태극해의󰡕에서는 태극의 움직임은 정성스러움의 통함으로 양에 짝하고, ‘그것을 계승하는 것이 좋음이라는 말이 거기에 속한다. 태극의 고요함은 정성스러움의 회복으로 음에 짝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본성이라는 말이 거기에 속한다.”라고 하였는데, 그러한 설명은 󰡔통서󰡕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혹자는 오히려 주자(周子: 周敦頤)의 말에는 본래 둘로 나누는 뜻이 없으므로 양이 좋고 음이 나쁘다는 것은 종류로써 나눈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또 말하기를 (), (), ()은 양()이고 태극의 작용이 운행하는 까닭이다. (), (), ()은 음()이고 태극의 본체가 서는 까닭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혹자는 이와 같이 분배한다면 학자가 그 때문에 점자 지루하게 한 곳을 파고드는 데 빠진다고 의심합니다. 그러한 의심이 어떠한지요?

太極解義以太極之動爲誠之通, 麗乎陽, 而繼之者善屬焉. 靜爲誠之復, 麗乎陰, 而成之者性, 屬焉. 其說本乎通書. 而或者猶疑周子之言本無分隸之意, 陽善陰惡, 又以類分. 又曰中也, 仁也, 感也, 所謂陽也, 極之用所以行也. 正也, 義也, 寂也, 所謂陰也, 極之體所以立也.’ 或者疑如此分配, 恐學者因之, 或漸至於支離穿鑿. 不審如何?

 

대답: 이 두 가지 뜻은 마음을 비우고 음미하여 오래되어야 저절로 알게 됩니다. 만약 선입견을 위주로 한다면 변론이 어지러이 뒤섞여 이해할 수 없습니다.

此二義但虛心味之, 久當自見. 若以先入爲主, 則辯說紛拏, 無時可通矣.

 

물음: 인의(仁義)와 중정(中正)에 대해서. 제가 생각건대 인의란 참된 덕을 가리키고, 중정이란 풍격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본성의 덕에 네 가지 단서가 있는데 성현은 대부분 인의만을 표방하면서 예지(禮智)에 미치지 않은 것은 왜인지 항상 의심을 품어왔습니다.

仁義中正, 洵竊謂仁義指實德而言, 中正指體段而言. 然常疑性之德有四(4-1941), 而聖賢多獨擧仁義, 不及禮智, 何也?

 

대답: 중정이 곧 예지입니다.

中正卽是禮智.

 

물음: 󰡔태극해의󰡕에서 말하기를 정씨가 말한 본성과 천도가 󰡔태극도󰡕에서 많이 나오지만 끝내 태극도를 사람들에게 제시하여 밝힌 적이 없었던 것은 당시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제 갑자기 󰡔태극도󰡕에 대해 설명을 지어서 전하니 이것이 어찌 선생님의 뜻이겠습니까?

解義曰: ‘程氏之言性與天道多出此圖, 然卒未嘗明以此圖示人者, 疑當時未有能受之者也.’ 是則然矣, 然今乃遽爲之說以傳之, 是豈先生之意耶?

 

대답: 당시에는 이 글이 간행되지 못하였으므로 숨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널리 유포되었으므로 설파하지 않으면 배우는 자들에게 그릇되게 의혹을 만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한 설명을 지었습니다.

當時此書未行, 故可隱. 今日流布已廣, 若不說破, 却令學者枉生疑惑, 故不得已而爲之說爾.

 

물음: 염계(濂溪: 周敦頤)가 지은 󰡔태극도󰡕는 도의 변화에 대한 근원을 밝혔습니다. 횡거(橫渠: 張載)가 지은 󰡔서명󰡕은 학문을 진척시키는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선생의 학문 중에서 누구의 업적이 더 심오할까요?

濂溪作太極圖, 發明道化之原. 橫渠作西銘, 揭示進爲之方. 然二先生之學, 不知所造爲孰深?

 

대답: 이것은 쉽게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또한 학자가 가볍게 의론할 대상이 아닙니다.

此未易窺測, 然亦非學者所當輕議也.

 

물음: 정자가 말하기를 망령됨이 없는 것이 정성스러움이고 속이지 않은 것이 그 다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망령됨이 없는 것이 성인의 정성스러움이고, 속이지 않은 것이 배우는 사람의 정성스러움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程子曰: ‘無妄之謂誠, 不欺其次矣.’ 無妄是聖人之誠, 不欺是學者之誠, 如何?

 

대답: 정자의 이 구절은 이치를 명명하는 말이지 사람의 차등을 위해서 밝힌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程子此段似是名理之言, 不爲人之等差而發也.

 

물음: 󰡔근사록󰡕에 횡거(橫渠: 張載)가 기를 논한 구절 두 개가 실려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횡거의 말과 󰡔태극도󰡕에 나오는 움직임과 고요함, ()과 양() 따위의 말과 서로 같고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횡거의 논의는 충분히 일관되지 못하여 주자(周子: 周敦頤)의 말에 근본과 말단의 순서가 있는 것만 못한 듯합니다.

近思錄載橫渠論氣二章, 其說與太極圖動靜陰陽之說相出入. 然橫渠立論, 不一而足, 似不若周子之言有本末次第也.

 

대답: 횡거가 논한 기는 󰡔서명󰡕이나 󰡔태극도󰡕와 더불어 각기 다른 한 가지 일을 밝혔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를 취하고 다를 것을 폐해서는 안 됩니다. 그 우열도 가볍게 의론해서는 안 됩니다.

橫渠論氣與西銘太極各是發明一事, 不可以此而廢彼. 其優劣亦不當輕議也.

 

물음: 정자가 말하기를 공자의 말은 구절마다 자연스럽고, 맹자의 말은 구절마다 사태의 진실事實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태의 진실이란 행해야 할 일 혹은 행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아직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어찌 맹자의 말이 애써 생각해서 얻었기 때문이겠습니까?

程子曰: ‘孔子言語句句是自然, 孟子言語句句是事實.’ 所謂事實者, 豈非是當行可行底事耶? 然未可謂自然者, 豈以其猶是思焉而得之歟?

 

대답: 대체적으로 이와 같습니다. 다시 완미 하십시오.

大槪如此, 更翫味之.

 

물음: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논맹정의󰡕를 보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건대 배우는 자라면 먼저 스승과 벗을 따라서 익혀서 거칠게나마 윤곽을 안 뒤라야 이와 같이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학설의 다름과 같음에 현혹될 것입니다.

所敎學者看精義說甚善. 然竊以爲學者須先從師友講貫, 粗識梗槪, 然後如此用工. 不然, 恐眩於衆說之異同也.

 

대답: 이것은 수고하기를 싫어하면서 빨리 달성하려는 논의로 감히 들을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시 이 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진정으로 학문에 뜻을 두었다면 읽어서는 안 될 글이란 없습니다. 다만 정밀하게 분석하여 완미하는 것이 오래되면 여러 학설의 다름과 같음에 저절로 현혹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내가 갈고 닦아야 할 밑천이 되어줄 것입니다.

此乃憚煩欲速之論, 非所敢聞. 然亦非獨此書爲然. 若果有志, 無書不可讀. 但能剖析精微, 翫味久熟, 則衆說之異同自不能眩, 而反爲吾磨礪之資矣.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순희(淳熙) 2(을미, 1175, 46)에 정순에게 쓴 편지이다. 실천공부를 독려하였다.

 

예전에 의문 나는 뜻을 물어 오신 것에 대해서 오래도록 답장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크게 진보하고 보니 전날의 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아우와 강론할 때마다 내 아우가 명민하여 글을 보는 데 힘을 크게 쓰지 않고도 도리를 쉽고 분명하게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만 음미하고 실천하는 공부가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도리를 보는 것이 분명한 것 같지만 도리어 자신의 몸과 마음에 관련되지 않으므로 맛이 오래 가지 못하고 조금만 지나도 그치고 맙니다. 오히려 느리고 둔한 사람이 공부에 공력을 많이 들여 보는 것이 더 오래도록 뜻이 간직되는 것만 못합니다. 이는 본원에 생긴 하나의 큰 병으로서 말 한 마디나 뜻 한 가지를 잃은 것이 아닙니다. 전날 고사(高沙)에서 내 아우가 깨우침에 대해 논의한 것이 이러한 토론처럼 도무지 귀결 처가 없었으므로, 내가 답장을 보내어 토론을 하고서 나중에 실천하면 귀결 처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맛이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언급하므로 이 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을 초안하여 회답하느라고 많은 내용을 언급할 수가 없습니다. 나머지는 아무쪼록 힘써 배우고 스스로를 아끼십시오.

昨來疑義久不奉報, 然後來長進, 又見得前說之是非也. 每與吾弟講論, 覺得吾弟明敏, 看文字不費力, 見得道理容易分明. 但似少却玩味踐履功夫, 故此道理雖看得相似分明, 却與自家身心無干涉, 所以滋味不長久, 纔過了便休. 反不如遲鈍之人多費功夫方看得出者, 意思却久遠. 此是本原上一大病, 非一詞一義之失也. 記得向在高沙, 因吾弟說覺得如此講論都無箇歸宿處, 曾奉答云 : ‘講了便將來踐履, 卽有歸宿.’ 此語似有味, 更告思之. 草此爲報, 不能多及. 餘惟力學自愛.

 

 

정윤부에게 답함 答程允夫

 

해제이 글은 순희(淳熙) 2(을미, 1175, 46)에 정순에게 쓴 편지이다. 호구 장부를 잘 정리할 것, 석고서원(石鼓書院)을 중수하는 일 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당신이 호구 장부를 직분으로 맡고 있으나 형세에 짓눌려 처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반헌(潘憲)이 도리어 일을 이해해야 한다면 들고 나는 것이 조금 안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아뢰어서 혹시 수락할 수 있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호구 장부를 분명히 하는 것은 본래 현도(縣道)에서 재무를 관리할 때 급히 힘써야할 부분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단지 거듭 세금을 독촉하는 것이 좋다고만 알고서 향리들이 은밀히 배를 채우는 해로움을 살피지 않기 때문에 호구 장부 정리하기를 꺼립니다. 이것은 위와 아래가 함께 타락하는 것이 향리厮兒의 계책 안에 있는 것으로 매우 탄식할만한 일입니다. 석고서원(石鼓書院)을 중수하는 일은 그 뜻이 매우 좋습니다. 다만 택지(擇之: 林用中)가 난처할까 걱정됩니다. 위공(魏公)이 불교를 좋아하는 것을 경부(敬夫: 張軾)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도(明道)선생이 말하였던 지금 불교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 고명함 때문이다.”라는 것으로, 그 폐해가 더욱 심합니다. 이렇게 사특한 불교의 견해들이 세상의 많은 좋은 사람들을 무너뜨리고 세상의 많은 좋은 일들을 파괴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 자에 힘을 얻은 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안 것이 너무 늦었습니다. 모든 일을 실제적인 곳에 나가서 더욱 힘써야 좋을 것입니다.

版籍固所職, 然勢有所壓而不得爲, 則亦無可奈何. 潘憲却要理會事, 俟出入少定, 試更白之, 或能相聽, 亦百里之幸也. 版籍分明, 自是縣道理財之急務. 今人只見重疊催稅之利, 而不察鄕吏隱瞞之害, 故不肯整理. 此是上下俱落在厮兒計中, 甚可歎也. 石鼓之役, 意思甚好, 但恐擇之却難處耳. 魏公好佛, 敬夫無如之何. 此正明道先生所謂今之入人, 因其高明,’ 所以爲害尤甚. 不知這些邪見, 是壞却世間多少好人, 破却世間多少好事也. ‘字得力甚善, 然知之亦已晩矣. 凡百就實事上更著力爲佳.

 

 

황자후에게 답함 答黃子厚

 

󰡔논맹정의(論孟精義)󰡕를 읽고서 얻은 것이 있다니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요지는 실로 두 선생의 말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울러 다른 책들을 널리 참고하여 아주 미세한 사이에서 그 깊고 얕음의 차이와 성기고 세밀함의 차이를 본다면, 더욱 사람들의 생각을 분발시켜 두 선생의 말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믿게 할 것입니다. ()과 신()은 다만 한 가지 일이니, 나로부터 본다면 충이라 하고, 저쪽으로부터 본다면 신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선생께서 자기를 다하는 것을 충이라 하고, 사물을 다하는 것을 신이라 한다.”라고 논한 까닭입니다. 저의 뜻은 이와 같으니 옳은지 생각해보고 알려 주십시오. 등산을 즐기려던 계획은 예전에 가기 바로 전에 놓친 적이 있습니다. 이제 다시 더위를 무릅쓰고 가기는 불가능 합니다. 혹시 옛날 약속을 추궁할까 두려운지라 들리시게 되면 갈 계획을 의논하고자 부탁합니다. 백공(伯恭: 呂祖謙)이 상람(上嵐)의 산수를 매우 사랑하여 예전에 유람하였는데 마침 비바람을 만나서 더욱 마음과 눈이 상쾌했다고 합니다.

知讀精義有得, 尤以爲喜. 大指固不出二先生之說, 然竝觀博考, 見其淺深疎密於毫釐之間, 尤能發人意思, 使人益信二先生之說不可易也. 忠信只是一事, 但自我而觀謂之忠, 自彼而觀謂之信, 此先生所以有盡己爲忠, 盡物爲信之論也. 鄙意如此, 試思之然否, 却見諭. 登山之興, 前日失之於跬步之間, 今復冒暑而往, 則有所不能矣. 或恐欲尋舊約, 卽請見過, 却議行計也. 伯恭甚愛上嵐山水, 前日經行, 適値風雨, 尤快心目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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