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권
편지(친구와 제자들과의 문답) 書(知舊門人問答)
채계통(원정)에게 답함 答蔡季通(元定)
[해제] 이 편지는 순희 3년(병신 1176년), 주자 나이 47세 때 채계통에게 쓴 첫 번째 편지다.
지난번에 보낸 편지는 이미 도착했을 텐데, 여기에 사람이 이르러 또 편지를 받고 보니 다시 더욱 감탄하는 마음을 그칠 수 없습니다. 이른바 ‘한 칼에 두 토막 낸다’고 하는 것은 잘못을 고치는 용기가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고치는 데는 용기를 귀하게 여기지만, 환난을 막는 데는 겁내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보완을 이룬 뒤에 참으로 간특함을 고치고 미혹함을 분변하여, 의리를 실천에 옮기고 덕을 높이는 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번에 허물을 뉘우치는 말을 들었는데, 간절하고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전날의 편지는 갑자기 여기에 이르렀으니, 잘못을 고치고 환난을 막지 못했다는 것을 증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후로 설령 한 칼로 두 토막 낼 수 있다고 해도, 이것만을 혼자 믿지 마시고, 평소 아무 일이 없을 때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간직하여 허물의 근원을 막는다면 아마도 괜찮을 것입니다.
昨日上狀必已達, 此人至, 又辱書, 三復感歎, 不能自已. 所謂一劍兩段者, 改過之勇固當如此. 改過貴勇而防患貴怯, 二者相須, 然後眞可以修慝辨惑而成徙義崇德之功. 不然, 則向來竊聆悔過之言非不切至, 而前日之書頓至於此, 亦可驗矣. 自今以往, 設使眞能一劍兩段, 亦不可以此自恃, 而平居無事常存祗畏警懼之心以防其源, 則庶乎其可耳.
역설의 세 조문에 대해서 지난번에 생각해 보았는데 여기의 앞뒤의 글이 저절로 일관되게 통하였는데, 이 전에 그 설을 구하려 했으나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각각 자체로 (하나의) 설을 만들어 서로 통하지 않을 뿐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엄숙히 하여 경계하는 것은, 특히 상을 관찰하고 말을 음미하며 변화를 관찰하고 점을 치는 데 중요한 것이니, 다만 물러나 감추더라도 백성과 더불어 근심하는 다스림이 이미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변화에 대응하는 것에 이른다면 또한 엄숙하게 하여 경계하는 것이며 정신으로 그 덕을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니 정의치용(精義致用)과 이용숭덕(利用崇德) 또한 자못 서로 비슷합니다. 이것이 아래서 말할 닫히고 열리며 가고 오는 것이니 곧 역의 도입니다. ‘역에 태극이 있다’고 한 것은 위의 글을 이어서 가고 오며 닫히고 열려 끝이 없는 것에 이러한 이치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가 있으면 천지가 자리를 베풀고 역은 그 가운데서 행해집니다. 둘이면서 넷을 낳고, 넷이면서 여덟을 낳으니, 여덟에 이르면 세 번 변하여 서로 원인이 되며 (천지인) 삼재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것을 원인으로 삼아 팔괘를 만들었으며, 변역의 묘를 드러내어 길흉을 정하고, 이런 연후에 서를 말할 수 있습니다. 전에 이른바 ‘역에 태극이 있다’고 한 것은 아마도 글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생각은 이와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易說三條, 昨亦思之, 此上下文本自通貫, 前此求其說而不得, 故各自爲說而不能相通耳. 洗心齋戒, 特觀象玩辭․觀變玩占之大者, 但方其退藏, 而與民同患之用已具. 及其應變, 則又所以齋戒而神明其德. 此則非聖人不能, 與精義致用․利用崇德亦頗相類. 此下所言闔闢往來, 乃易之道. ‘易有太極’, 則承上文而言所以往來闔闢而無窮者, 以其有是理耳. 有是理則天地設位而易行乎其中矣. 兩而生四, 四而生八, 至於八則三變相因而三才可見. 故聖人因之, 畫爲八卦, 以形變易之妙而定吉凶, 至此然後可以言書耳. 前所謂‘易有太極’者, 恐未可以書言也. 愚意如此, 不審如何?
채계통에게 답함 答蔡季通
[해제] 이 글은 순희 3년(병신, 1176, 47세)에 채계통에게 답하는 두 번째 편지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 성과 기가 합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합해 있는 것을 분석하여 말하면 성은 리를 주로 하여 형체가 없고 기는 형체를 주로 하여 질이 있습니다. 성은 리를 주로 하여 형체가 없기 때문에 공공성을 지니므로 선하지 않음이 없고, 기는 형체를 주로 하여 질이 있기 때문에 사사롭기 때문에 때로 불선이 있는 것입니다. 성은 공공성을 지녀 선하기 때문에 그 발현한 것도 모두 천리가 행해진 것이고, 기는 사사로워서 때로 불선이 있기 때문에 발현한 것도 모두 인간의 욕구가 일으킨 것입니다. 이것이 순이 우를 경계하여 인심과 도심을 구별한 까닭이니, 대개 그 근본에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기가 행한 바가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는 후에 인욕으로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만 인심이라 해서 본래 모두가 다 사악하다고 한 것도 아니고, 위태롭다고 해서 본래 흉구(凶咎)에 이르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미 리를 주로 하지 않고 형을 주로 한다면 그 유행하는 것도 사악하게 되어 흉구에 이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가 위태롭게 되는 까닭으로, 도심이 필연적으로 선하여 악이 없으며, 안정되어 치우침이 없어서, 표준[준칙]이 되어 기대어 의지할 수 있는 것만 같지 못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둘 사이에서 정일(精一)에 이르러, 공공성을 지녀 선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항상 내 몸과 세상의 모든 일의 주재자가 되고, 사사로워서 때로 불선한 것이 관여할 수 없게 된다면 무릇 넘침과 미치지 못함 사이에서 선택을 기다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중도에 맞게 될 것입니다. 무릇 사물을 갈라서 판단(剖判)하는 시초에는 또한 마땅히 그것의 선과 불선을 논하여야 하겠지만, 둘로 이미 나누어진 이후에는 그것이 중도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논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정밀하게 하고 오직 한결같이 하는’[惟精惟一] 것은 그것의 선과 불선을 살피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 중도를 지킨다.’면 넘침과 미치지 못함이 없어서 저절로 중도를 얻을 것이니, 정밀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 중도를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人之有生, 性與氣合而已. 然卽其已合而析言之, 則性主於理而無形, 氣主於形而有質. 以其主理而無形, 故公而無不善 : 以其主形而有質, 故私而或不善. 以其公而善也, 故其發皆天理之所行 : 以其私而或不善也, 故其發皆人欲之所作. 此舜之戒禹所以有人心道心之別, 蓋自其根本而已然, 非爲氣之所爲有過不及而後流於人欲也. 然但謂之人心, 則固未以爲悉皆邪惡 : 但謂之危, 則固未以爲便致凶咎. 但旣不主於理而主於形, 則其流爲邪惡以致凶咎亦不難矣. 此其所以爲危, 非若道心之必善而無惡, 有安而無傾, 有準的而可憑據也. 故必其致精一於此兩者之間, 使公而無不善者常爲一身萬事之主, 而私而或不善者不得與焉, 則凡所云爲不待擇於過與不及之間而自然無不中矣. 凡物剖判之初, 且當論其善不善, 二者旣分之後, 方可論其中不中. ‘惟精惟一’, 所以審其善不善也. ‘允執厥中’, 則無過不及而自得中矣, 非精一以求中也.
이는 순임금이 우임금을 경계한 본래의 뜻으로, 제가『중용장구』의 서문에서 기술했는데, 진실로 곧장 형기가 발한 것은 모두 불선이라 하여, 보내 온 편지에서 의심한 것처럼 청명하고 순수한 때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이른바 청명하고 순수한 것이 이미 형기의 뜻하지 않게 그러한 것에 속하는 것이라면, 또한 리에서 떨어지지 않아야만 기의 발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을 곧 도심으로 여겨서 거기에 의거하여 정일한 것의 바탕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맹자가 비록 밤에 자라난 맑은 기운[夜氣]을 말했지만, 그가 보존하고 싶어 한 것은 곧 인의의 마음에 있는 것이지, 다만 이 밤에 자라난 맑은 기운만을 위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맹자가 비록 ‘기운을 기른다.’고 말했지만, 그가 힘을 쓴 바는 의리를 모으는 데[集義] 있었지, 바로 이 기운 가운데로 나아가서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을 가려서 기른 것은 아닙니다. 보내온 편지에서 주장하신 ‘기’자는 너무 지나쳐서 여기서는 살피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나머지 중기(中氣)의 넘침과 미치지 못함을 분별한 것은 또한 깨달음에 잘못이 있습니다. 다만 이미 도심의 은미함에 관계가 없으므로 변론한 겨를이 없습니다.
此舜戒禹之本意, 而序文述之, 固未嘗直以形氣之發盡爲不善, 而不容其有淸明純粹之時, 如來諭之所疑也. 但此所謂淸明純粹者旣屬乎形氣之偶然, 則亦但能不隔乎理而助其發揮耳, 不可便認以爲道心而欲據之以爲精一之地也. 如孟子雖言夜氣, 而其所欲存者乃在乎仁義之心, 非直以此夜氣爲主也. 雖言養氣, 而其所用力乃在乎集義, 非直就此氣中擇其無過不及者而養之也. 來諭主張‘氣’字太過, 故於此有不察. 其他如分別中氣過不及處, 亦覺有差. 但旣無與乎道心之微, 故有所不暇辨耳.
채계통에게 답함答蔡季通
[해제] 이 편지는 순희 3년(병신 1176년), 주자 나이 47세 때 채계통에게 쓴 세 번째 편지다.
보내온 편지에 “예를 우선해야 한다”는 말은 또한 “조화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과 비슷하지만 하나의 대상에 의존함을 면치 못하여 친밀하고 절실한 공부는 아닙니다. 대체로 주렴계 선생은 타당하게 설명하면서 통서 가운데서 여러 차례 ‘기(幾)’라는 글자를 제시하였는데, 마땅히 그와 같기를 바란 것입니다. 잠깐 동안에 곧 자연스럽게 힘을 절약해야 할 곳이 있으니, 규칙이 없는 가운데 도리어 규칙이 있고, 조화가 없을 때 이미 조화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후에 감춰진 것에 근본하여 나타나게 되며 드러남을 미루어 감춰진 것에 이르니, 어느 곳에서도 들어맞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所喩‘以禮爲先’之說, 又似‘識造化’之云, 不免倚於一物, 未是親切工夫耳. 大抵濂溪先生說得的當, 通書中數數拈出‘幾’字, 要當如此, 瞥地卽自然有箇省力處, 無規矩中却有規矩, 未造化時已有造化. 然後本隱之顯推見至隱, 無處不吻合也.
채계통에게 답함 答蔡季通
[해제] 이 편지는 건도 7년(신묘 1171년), 주자 나이 42세 때 채계통에게 쓴 네 번째 편지다.
저의 ‘잘못을 보면 (인을 알 수 있다)’는 설은 아직 완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전에 두 문하생이 베껴서 알린 것은 거두어서 없애십시오. 시험 삼아 따로 좀더 생각해보시고, 다만 장흠부의 옛 설 가운데 지난번에 공격한 잘못을 없애신다면 곧 저절로 알맞고 간약(簡約)하여 타당할 것입니다. 나라의 보물과 같은 이정전서는 알려서 빨리 교정하여 보여주십시오. 서당에서는 참으로 빨리 성취하려 하겠지만, 백이로 하여금 제방을 쌓게 한 것처럼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觀過說猶未安, 前日二生所寫告爲收毁. 仍試別加思索, 只於欽夫舊說中去得昨來所攻之病, 便自妥帖簡當也. 國寶程書告早爲校正示及. 書堂誠欲速就, 然當使伯夷築之乃佳耳.
어린애들은 번잡하게 제약을 가하여 가르치면 더욱 부담스러워하고 불안하게 생각할 것이니, 다만 제멋대로 하는 행동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엄하게 제약을 가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보여준 맹자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은 자세하게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살펴보건대 큰 뜻은 모두 좋습니다만, 미세한 곳에 대해서는 완전하지 못한 점이 있는 듯 합니다. 보내주신 양자직의 서론(書論)도 대본(大本)이 되는 곳은 대단히 좋습니다. 비록 보통 사람과 성인이 본성은 같다 하더라도 또한 (기질 상에서) 밝음과 밝지 못함의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양자직의 말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너무 불완전하고 미숙했는데, 이제 이 글을 보니 의문이 풀렸습니다.
小兒輩又煩收敎, 尤劇愧荷. 但放逸之久, 告痛加繩約爲幸. 所示孟子數說, 未及細觀. 略看大意皆好, 但恐微細有所未盡耳. 所與子直書論大本處甚佳, 雖云凡聖本同, 亦有明與不明之異. 昨見子直說及, 正疑其太儱侗, 今得此書, 乃釋然耳.
통감은 동한 이후로는 도리어 쓰이지 않고 있는데, 그러나 지난 번에 개략적으로 살펴보니, 다시 한 예에 군주를 ‘상(上)’이라 부르고, ‘군주의 수레가 행차하니 다행이다’라고 일컬은 것은 모두 신하에 관한 말이라 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스승’․‘우리 행인’과 같은 것은 모두 나라 안의 일을 기록하는 말[내사(內詞)]이니, 모두 다른 대에 쓰는 것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따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만 도의를 모르는 군주가 아무 이유 없이 신하들의 집에 들어가서, 말없이 글을 쓰는데, 다만 마땅히 ‘행(幸)’이라고 씀으로써 그것이 사사로운 은혜에서 나온 것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나머지 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시고 만약 심부름꾼이 잠시 나가게 되면 알려서 편집한 범례를 보여 주십시오. 고치고자 할 곳은 자세하게 알려서 깨우쳐주시기 바랍니다.
通鑑東漢已後却未用得, 然昨日略看, 更有一例, 如人主稱‘上’, 稱‘車駕行幸’, 皆臣子之詞 : ‘我師’․‘我行人’之屬, 皆內詞, 皆非所宜施於異代. 此類更須別考也. 但無道之君無故而入諸臣之家, 無詞以書, 只當書‘幸’, 以見其出於私恩耳. 餘卷想看了, 若行李暫出, 告幷所編例示及. 所欲改處, 望子細開諭也.
「환중도」는 이미 보았는데, 애초의 뜻은 편지 가운데서 따로 은밀하게 전하려 했습니다. 악도(樂圖)는 곧 이해하셨습니까? 이것이 곧 7균 84조의 법이니, ‘변(變)’은 당연히 변치(變徵)이고 ‘윤(閏)’은 마땅히 변궁(變宮)입니다. 아마도 대악(大樂) 또한 이와 같이 미루어서 고쳐가야 할 것입니다. 다만 율의 높고 낮음에는 준칙이 없습니다. 왕박의 악도 생각건대 이러한 법을 얻은 것일 뿐 율의 높고 낮음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말씀하신 황종의 관과 지금의 황종의 소리는 서로 원인이 되어서, 이로 인하여 미루어 나가 십이율을 얻어서 이에 단지 당시에 현존하는 율을 준거로 삼았으니, 이와 같이 하여 어찌 그 본래의 모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구공(歐公: 歐陽修)이 “무릇 (왕박이) 한 것은 당시에는 감히 어려운 것이라 할 수 없었지만 또한 더할 수도 없었다.”라고 하였는데, 또한 이러한 것들을 의심한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귀장을 교정하여 보여줄 것을 부탁했고, 조이도의 역설 또한 빌려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 책은 최근에 자세히 읽어보니 정전(程傳)에서 얻은 것이 많은데, 다만 전체의 설명이 의리를 행하는 데 부합되지 않아 복서에 나아가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설은 귀착처가 없게 될 따름입니다. 이제 복서를 보고 그 말로써 유추해 가면 도리는 저절로 바꿀 수가 없으니, 다만 그 사이에 이와 같은 말을 반드시 얻을 수 없어서, 도리에 도리를 남게 했을 뿐입니다. 마치 시에 흥취가 있는 것과 같이 옛 설도 항상 절반의 도리는 남아 있습니다.
環中圖已見之, 初意書中別有密傳耳. 樂圖曾理會否? 此便是七均八十四調之法, ‘變’當是變徵, ‘閏’當是變宮耳. 疑大樂亦只是如此推校, 但律之高下未有準則. 王朴之樂想亦只是得此法, 而不得律之高下. 所云黃鍾之管與今黃鍾之聲相因, 因而推之, 得十二律, 乃是只以當時見存之律爲準, 如此安 能得其眞耶? 故歐公云: ‘凡其所爲, 當時莫敢難者, 然亦莫能加也.’ 似亦以此等爲疑耳. 向所托校歸藏告示及, 晁以道易說亦望借及. 此書近細讀之, 恐程傳得之已多, 但不合全說作義理, 不就卜筮上看, 故其說有無頓著處耳. 今但作卜筮看, 而以其說推之, 道理自不可易, 但其間有不須得如此說處, 剩着道理耳. 正如詩之興者, 舊說常剩却一半道理也.
채계통에게 답함(答蔡季通5)
[해제] 이 편지는 건도 6년(경인 1170년), 주자 나이 41세 때 채계통에게 쓴 다섯 번째 편지다. 편지 가운데 “집으로 돌아온지 반달이 되가는데, 절중의 애통함을 견딜 수 없다”, “이제 저도 한천을 지나가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범백숭에게 답함」9에서 “나는 두 아들을 데리고 한천을 갔다.”고 하였다. 주자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룬 후, 묘지가 있는 한천에서 거주하였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처음 어머니의 장례를 치룬 후 아직 한천에 거주하지 않았을 때 있었으며, 경인년(1170년) 봄에 쓴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지 반달이 되었는데, 절중의 애통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두 아들을 오래 전부터 보내려고 했으나 우물쭈물하다가 여태까지 이르렀는데, 저도 한천에서 지내려고 하니 삼가 부탁드리건대 당신 곁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좇아가서 곧 학문에 입문하도록 하였으니, 장난치면서 노는데 빠져 학업을 팽개치지 않도록 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큰 애는 시문(時文)을 읽지 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만, 요 몇 년 사이의 깊이 없고 궁색한[淺切] 문장을 보니, 아주 좋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수십 년 전의 문장으로서 느긋하게 논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록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더라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요컨대, 장래에 만약 과거시험장에 들어간다면 그 되고 안 되고는 모름지기 운명이 있는 것이니, 전적으로 시속을 쫓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접 때 자면(子勉)의 구본(舊本) 서의(書義)를 빌려 봤더니, 모두 지금 사람들이 읽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 가운데는 아름다운 작품도 많이 있었습니다. 또 몇 년 전에 일찍이 논수집(論粹集)전후 편을 대략 본 기억이 나는데, 그 가운데도 좋은 논의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오히려 속된 풍속이라 여겨서 보지 않았는데, 오늘날 와서 이런 태도를 가질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탄식이 나옵니다. 이 애는 좌전을 거의 다 읽어 갑니다. 경서의 중요한 곳을 지금 한 번 더 익히고 궁구하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예기는 몇 편을 가려 뽑아 읽게 하십시오. 한유, 구양수, 증공, 소식의 문장 가운데서 기세 있고 명백한 것 수십 편을 가려 뽑아 베끼게 하여, 반복하여 외우게 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장자나 순자같은 책은 다 읽지 않았으니, 다시 겸선(兼善)과 함께 짐작(斟酌)하여 그 완급(緩急)을 헤아려서 가르쳐 주십시오. 이 애는 글 짓는 것이 더욱 기복(起伏)이나 변화의 형세가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틀로 서너 단락 짓고 말아서, 다시 볼 수 없으니, 의심스러운 일입니다. 바라건대 법도에 맞게 바로 잡아 주십시오. 작은 애에 대해서는 더욱 말하기 곤란합니다만, 짧은 시만 짓는 것은 유익할 것이 없을 것이니, 다시 그 재질을 헤아려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지난 날 보다 조금 나아진 것을 느꼈습니다만, 결국에 조금이라도 나아진 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염려스럽습니다. 돈과 물품은 이미 지니고 가도록 했는데, 1000량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쌀은 제가 후산(后山)에 도착하기를 기다려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당신이 계신 그 곳의 쌀값이 싸다면 돈을 부쳐 드릴 테니, 번거롭더라도 쌀을 사 들이십시오.
還家半月, 節中哀痛不自勝. 兩兒久欲遣去, 因循至今, 今熹亦欲過寒泉矣, 謹令詣左右. 告便令入學, 勿令遊嬉廢業子幸. 大兒不免令讀時文, 然觀近年一種淺切文字殊不佳, 須尋得數十年前文字寬舒有議論者與看爲佳. 雖不入時, 無可奈何. 要之將來若能入場屋, 得失又須有命, 決不專在趨時也. 向借得子勉舊本書義, 皆今人所不讀者, 其間儘有佳作. 又記向年曾略看論粹前後集, 其間亦多好論. 然當時猶以爲俚俗而不觀, 安知今日乃作此曲拍乎? 可歎!此兒讀左傳向畢, 經書要處更令溫繹爲佳. 如禮記令揀篇讀. 韓․歐․曾․蘇之文滂沛明白者, 揀數十篇, 令寫出, 反復成誦尤善. 莊․荀之屬皆未讀, 可更與兼善斟酌, 度其緩急而授之也. 此兒作文更無向背往來之勢, 自首至尾, 一樣數段, 更看不得, 可怪. 望與鎨之. 小者尤難說, 然只作小詩無益, 更量其材而誘之爲幸. 近來覺得稍勝往年, 不知竟能少進否, 可慮!錢物已令携去一千足, 米俟到後山遣致. 或彼價廉, 卽寄錢去, 煩爲糴也.
며칠 동안 집에 있으면서 맹자두 편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등문공’편을 읽었는데, 맹자가 경춘(景春)의 물음에 답하는 것을 보면서 곧장 통쾌하여 세 번 반복하여 읽으니, 사람의 마음을 호연하게 하여 마치 강수(江水)나 한수(漢水)에 씻은 듯, 가을볕을 쬔 듯합니다. 호문정이 주자발에게 답한 한통의 편지는 남천신묘화를 거론한 것인데 문집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곳을 본다는 것이 바로 좋은 안목입니다.
數日在家看得孟子兩篇, 今日讀滕文公篇, 觀其答景春之問, 直是痛快, 三復令人胸中浩然, 如濯江漢而暴秋陽也. 胡文定一書答朱子發, 擧南泉新猫話者, 集中有之否? 看此等處直是好著眼目也.
논한 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리가 대단히 정미하고 세밀하며 소강절의 뜻을 인용한 것도 더욱 합당합니다. 아관은 맹자를 인용한 것을 반드시 좋게 여기지 않았는데, 예전의 악가에 스스로 이런 말이 있어서 따라서 인용한 것일 뿐입니다. 대개 전한시대 사람들은 맹자를 그다지 많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 또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다만 이전에 말한 것 가운데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없으며, 또 그 글이 너무 쓸모가 없어서, 반드시 다시 간정하여 간약한 것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간직하여 무젖어 기르는[(涵養] 공부는 생각건대 날로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요컨대 그렇게 오래도록 한다면, 남을 이기려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욕심내는 사사로운 마음이 저절로 마땅히 물러나 복종할 것입니다. 장흠부․여백공․오민숙의 편지를 받아보았는데, 장흠부의 편지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요. 여백공은 결국 벗어나지 못하여 이전의 답서는 극론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지양흠장(持養欽莊)’은 실로 그 말에 부끄러운 점이 있으나, 감히 그 몸을 사사롭게 하려는 뜻은 아니니 마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서를 베껴갈 겨를이 없었지만 대체로 이와 같은 뜻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임택지가 보낸 편지를 받아 보았는데, 가운데 몇 개 조항이 있어서 이제 다시 보냅니다. 몇 통의 편지의 말은 시간을 내셔서 세세하게 논하고 서로 만나 뵙고 날마다 강론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전날 제가 이백간의 집에 들렀더니, 당시에게서 온 편지를 보여 주면서, 그는 당신의 학문이 정밀하게 되고 진보한 것에 대해서 매우 탄복하였습니다. 오공제는 고립되어 있으니, 매우 염려 됩니다. 그를 끌어 돌아오게 할 힘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所論始終條理甚精密矣, 引康節志文尤當. 兒寬未必是引孟子, 恐是古來樂家自有此語而因用之耳. 蓋前漢人多不甚說孟子也. 此亦無緊要, 但前日說中亦不曾如此說, 又其文太冗, 須更刊定趨約乃佳耳. 持養之功, 想日有味, 要之以久, 則克伐怨欲之私自當退聽矣. 欽夫․伯恭․晦叔得書, 納去一觀, 却付此便回. 欽夫書勿以示人也. 伯恭竟未脫然, 前日答書, 不免又極論. ‘持養欽莊’, 實有愧於其語, 然不敢私其身之意, 當有能識之者. 所答書無暇寫去, 大槪是此意, 可見也. 擇之亦得書, 中有數條, 今再以往. 數書之說, 得暇試爲一一論之, 相見日面講也. 伯諫前日過宿其家, 來書示之, 渠甚歎服精進. 但公濟孤立甚可念, 恨無力能挽回耳.
도간(道間)에 ‘구가(久假)’의 설에 생각해 보았는데, 말씀하시기를 “오백이 빌려서 공은 당시사람들에 베풀고, 이름은 후세에 드러나는데 이르렀다면 이것은 오래도록 빌리고 돌아가지 않은 것이니, 사람들이 또한 그 근본은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맹자의 말은 대개 거짓이 참을 어지럽히는 것을 빨리 바로잡고, 당시 사람들의 쉽게 미혹되는 것을걱정한 것이지, 오백의 말을 허여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번거롭겠지만, 원례와 가대 두 사람이 의논한 것을 보내니 살펴보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오늘 이런 의미를 생각하다가 우연히 하나의 법을 터득했습니다. 대저 의리를 사색(思索)함에 있어서, 어지럽고 막힌 곳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일체를 싹 쓸어 없애 가슴속으로 하여금 완전히 텅 비게 한 뒤에 들어서 한 번 보면 곧 결말이 지어지는 곳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이 설은 전에 이선생(李先生)을 뵈옵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에 와서 바야흐로 이렇게 참되게 실험하였으니, 헛된 말이 아닙니다.
道間思‘久假’之說, 欲下語云: ‘五伯假之而至於功施當時, 名顯後世, 則是久假而不歸矣, 人亦安能知其本非眞有哉? 孟子之言, 蓋疾矯僞之亂眞, 傷時人之易惑, 而非與五伯之辭也.’ 煩爲呈似元禮․可大二兄商量看如何. 今日因思此義, 偶得一法, 大抵思索義理到紛亂窒塞處, 須是一切掃去, 放敎胸中空蕩蕩地了, 却擧起一看, 便自覺得有下落處. 此說向見李先生曾說來, 今日方眞實驗得如此, 非虛語也.
강목은 며칠동안 보셨습니까? 고기 가운데 몆개의 조(詔)는 대단히 좋은데, 예를 들면 입구부법(立口賦法) 및 구현조(求賢詔)는 모두 마땅히 넣어야 할 것이니, 번거롭겠지만 다시 이러한 것들을 미루어서 더해야 할 것입니다. 강목을 다 보셨다면 이 아이에게 돌려 보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역학변혹 및 소씨변무는 잠시 빌려주셔서 모두 저에게 부쳐주실 수 있으면 곧 이용하고 싶습니다.
綱目數日曾看得否? 高紀中數詔極佳, 如立口賦法及求賢詔皆合入, 更煩推此類添入. 有看了冊, 旋付此童來, 幸甚!易學辨惑及邵氏辨誣暫借, 皆可付此人, 便欲用也.
해어진 지 열흘 남짓 되었는데, 당신을 그리는 마음은 더욱 더 합니다. 당신의 주신 편지를 받았는데, 요즈음 가을날씨가 서늘하고, 당신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고, 어머님과 가족들 모두 잘 계신다니 위안이 됩니다. 전날의 탄식은, 대개 요사이 친구들의 담론(談論)은 어지러우나 몸소 실행하는 데는 힘을 쏟지 않고, 이야기하고 행동하는데 이르러서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을 보고서 걱정한 것입니다. 물어 주신 편지의 언급을 받들어 보니 이러한 점에 의심을 품는 것이 어찌 아니겠습니까? 저의 생각으로는 백간(伯諫)과 함께 그대로 하여금 이곳에 한 번 오게 하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의문이 좀 풀릴 것 같습니다. 한번 와주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의논해야 할 일이 매우 많으니, 편지로써 분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감의 첨부한 쪽지[簽貼]의 내용은 대단히 정밀한데 갑자기 이곳에 이르러 자세하게 볼 겨를이 없으니 서로 만나 논의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서 글을 써서 저에게 보내주셨는데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습니다. 빨리 오시면 좋겠습니다.
別又旬日, 已劇馳情. 奉告, 承卽日秋暑, 侍履吉慶, 壽堂眷集一一佳勝, 爲慰. 前日之歎, 蓋見近日朋友談說紛然而躬行不力, 以至言談擧止之間猶未有以異於衆人, 是以憂之. 承問之及, 豈亦致疑於此耶? 古易納上, 坊中更有王日休所刊, 求之未獲. 可訪問, 考訂孰爲得失也. 鄙意與伯諫深欲季通一來, 稍霽便望命駕. 有合商量事甚多, 非書札所能辨也. 通鑑簽貼甚精密, 乍到此, 未暇子細, 幷俟相見面論. 撥冗作書, 遣此人歸, 不及詳悉. 千萬早來爲佳.
겸선(兼善)이 멀리 방문하였지만, 그의 뜻을 감당할 수가 없어 부끄럽고 두려움을 스스로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옛날 학문의 그릇됨을 버렸던데, 계통 당신이 깊이 배척하고 통렬하게 막아낸 힘이 아니었다면, 또한 이렇게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친구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합니다. 노쇠하고 게을러 떨치지 못하니, 저버린 듯하여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그는 잠시 머무르려 하지도 않아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그대가 여기에 있지 않아 함께 비평하고 바로 잡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제가 전에 논한 중화(中和) 등의 관한 설은, 요즈음 자세히 생각해 보니, 병통과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이치는 진실로 쉽게 궁구할 수가 없으나, 이와 같이 정신이 흐릿하고 심란하니, 대단히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만나 뵙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오신다는 소식을 기다리며, 아침저녁으로 따로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묻습니다.
兼善遠訪, 無以堪其意, 愧惕不自勝. 然捐其舊學之非, 非季通深排痛抵之力, 亦不能辨. 朋友正當如此. 衰懶不振, 負愧多矣. 渠不肯少留, 未及子細, 亦恨賢者不在此共評訂耳. 熹向所論中和等說, 近細思之, 病敗不少. 理固未易窮, 然昏憒如此, 殊可懼. 安得卽面言之? 佇俟來音, 旦夕別遣人奉候.
역학계몽은 최근에 또 미루어서 처음 시초를 덜고 난 나머지가 5가 아니면 9라는 것을 미루어서 알았는데, 그 수는 모두 기수이며 그것이 수의 실상이 되어 5가 3의 근본이 되고, 9가 1의 근본이 되며, 둘레가 3이고 경이 1인의 수에 응하게 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시초를 덜고 난 나머지가 4가 아니면 8이니 그 수는 모두 우수이며, 그것이 수의 실상이 되어 4가 8의 근본이 되니 모두 2입니다. 또한 둘레가 4이고 용이 반인 수에 응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 번 설을 하는 차례이니 저절로 기수와 우수의 구분이 있습니다. 만약 두 번째 세 번째 시초를 덜어내고 걸지 않는다면 다시는 이러한 차별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啓蒙近又推得初揲之餘不五則九, 其數皆奇, 而其爲數之實, 五三而九一之, 應圍三徑一之數. 第二三揲之餘不四則八, 其數皆偶, 而其爲數之實 四八皆二, 亦應圍四用半之數. 是三揲之次, 亦已自有奇偶之分. 若第二三揲不掛, 則不復有此差別矣. 如何?
성경에 자원은 본래 마땅히 (뭇별들에) 앞서며, 태미와 천시도 이에 이십팔사 가운데 있으,니 만약 이전에 늘어놓은 것처럼 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있는 곳을 가리키겠습니까? 아마도 마땅히 자원의 옆에 있으며, 어느 별은 어느 별의 밖에 이르고, 어떤 별자리는 몇 도에서 뜨고, 어떤 별자리는 몇 도에서 지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제왕 자리가 있는 곳을 기록하여 어떤 별자리가 몇 도에 있으며, 자원과의 거리는 몇 도이며, 적도는 몇 도이고, 자원의 네 면의 거리는 각각 몇 도이며, 원 밖의 어떤 별과 서로 바로 서 있는가를 언급해야 합니다. 해질녁과 나타날 때 및 해질녁과 해돋을 무렵에 중에 해당하는 별을 기록해야 합니다. 원의 네 면에 있는 별은 원 밖의 어떤 별과 서로 바로 서 있는 가를 반드시 기록해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참동계 두 책과 종유(鍾乳) 한 두개를 보냈습니다. 참동계고이는 제가 어떻게 그것의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글의 뜻과 음독에 헤아려봐야 할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
星經紫垣固所當先, 太微․天市乃在二十八舍之中, 若列於前, 不知如何指其所在? 恐當云在紫垣之旁, 某星至某星之外, 起某宿幾度, 盡某宿幾度. 又記其帝坐處須云在某宿幾度, 距紫垣幾度, 赤道幾度, 距垣四面各幾度, 與垣外某星相直. 及記其昏見及昏旦夜半當中之星. 其垣四面之星, 亦須注與垣外某星相直, 乃可易曉, 不知盛意如何也? 參同二冊․鍾乳一兩納上. 考異熹安能決其是非? 但恐文義音讀間有可商量處耳.
종률편은 대개 성편(盛篇)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그 앞뒤가 같지 않습니다. 대개 단지 고서의 본문의 말과 혹은 주소만을 사용하고 자신의 생각을 그 아래 쪽에 붙여서 대단히 간략(簡略)하면서도 두루 다 갖추어서 악(樂)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 번 보면 대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밖에 (당신이) 헤아려서 말한 것의 너무 많은 부분과 방증의 같고 다름에 대해서는 다 싣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당신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올리니 정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셋째[蔡沈]에게 그 일을 마치도록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빨리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보천가를 구해 교정하였는데 적잖게 좋은 곳이 있는데, 그 설이 비록 깊지 못하고 말이 대단히 속되지만 또한 처음 배우는 단계입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말할만한 사람을 얻기 어려워서 도움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저절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어서 사람을 꽉 막히게 하여도 일을 나누어서 시킬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또한 이러한 탄식이 없을 수 없습니다.
鐘律之篇大槪原於盛編, 而其先後不同. 蓋但用古書本語或注疏, 而以己意附其下方, 甚簡約而極周盡, 學樂者一覽可得梗槪. 其他推說之汎濫, 旁證之異同, 不盡載也. 當俟歸日面呈, 決求訂正. 星經可付三哥畢其事否? 甚願早見之也. 近校得步天歌, 頗不錯, 其說雖淺而詞甚俚, 然亦初學之階梯也. 但恨難得人說話, 非惟不能有助, 亦自不曉人意, 令人鬱鬱, 無分付處. 想亦不能無此歎也.
채계통에게 답함 答蔡季通
사람이 돌아와 편지를 받고 보니 위안이 됩니다. 또 행일괘효(行日卦爻)에 대해 언급하신 말씀을 받아보니 더욱 유념이 됩니다. 이번 봄은 따뜻한데 아울러 당신께도 만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아픈 곳은 요즈음 얼마나 회복되셨는지요? 녹용을 구하여 가지고 가셨으니, 좋은 결과 있을 것입니다.(효험을 볼 것입니다.) 통감본말은 강목제요의 아래에 아울러 기재하여, 9책과 10책은 이 때문에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이 베껴 쓸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대단히 쓰기 어려운데 서법은 진실로 춘추를 근본으로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완전히 춘추만을 쓸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 「범례」 한 책이 있었는데, 함께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홍범신설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듣지 못했는데, 직접 만나 뵙기를 기다렸다가 청하겠습니다. 산공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또한 하나의 격목(格目)을 세워야 하니, 어떤 사람이든지 비로소 할 수 있는 사람을 얻어야만 합니다. 주현의 산공(算工)들은 모두 계산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다만 산법과 역상(曆象)에 능하지 못할까 걱정이 됩니다.
人還承書, 爲慰. 又承示及行日卦爻之說, 尤荷留念. 卽此春暖, 共惟尊履萬福. 所苦比復如何? 須鹿茸納去, 視至. 通鑑本末幷注綱目提要, 第九․第十冊以是未定, 不曾寫. 此物甚難作, 書法固不可不本春秋, 然又全用春秋不得. 舊有例一冊, 不知曾幷送去了? 洪範新說恨未得聞, 俟面見以請. 算工俟爲尋訪, 然亦須立一格目, 要得甚樣人始得. 如州縣攢司, 儘有能算者, 但恐不能算曆耳.
사람이 돌아와 편지를 받고 보니 친한 친구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위안이 됩니다. 역도는 대단히 자세하지만, 발례(發例) 가운데 다 기술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개략적으로 설명하고 서적과 그림으로 전해야 합니다. 진법도 대략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니, 마땅히 최근에 말한 바와 같이 하여야 하나 다만 그 사정을 완전히 깨달을 수 없을 뿐입니다. 악도는 번거로워서 다시 자본에게 물어보았는데, 이것은 단지 열두 가지 모양인데 조의 명칭이 많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금설 또한 틈을 내서 살펴보시고 곧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人還承書, 知已還舍, 爲慰. 易圖甚精, 但發例中不能盡述, 當略提破而籍圖以傳耳. 陳法大略亦可見, 當如近日所說, 但未能洞曉其曲折耳. 樂圖煩更問子本, 此只有十二樣, 而調名之多, 何耶? 琴說亦告尋便示及, 千萬.
등산실사(登山失事)는 오랫동안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았지만 비록 일을 끝내고 간하지 않았지만 또한 짐작할만 하여 그 공정을 간략하게 했습니다. 이보(二譜)는 이미 받았는데, 지난날에 원선에게 들렀다가 그가 연주한 현가(弦歌) 이남과 칠월을 들었는데 자못 들을 만하여 부질없이 공부자를 놀라게 하여 달아나게 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경(磬) 제도에 대해 당신이 세운 논의의 잘못을, 어찌 범촉공(范蜀公)에게 핑계 댈 수 있겠습니까? 촉공이 만약, ‘채계통이 이야기한 여러 곳에서 모두 나를 핑계대지 않았으면서도,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잡아서 나를 고단하게 하는구나[殢]’라고 이야기한다면, 장차 무슨 말로 대답하시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이 앞서는 것을 막는다면 아마도 심술(心術)의 해가 될 것이니, 단지 한 가지 일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登山失事, 久知如此, 雖遂事不諫, 亦可斟酌, 簡其功程也. 二譜已領, 昨日過元善, 聽其弦歌二南․七月, 頗可聽, 但恐嚇走孔夫子耳. 磬制乃賢者立論之失, 豈可推范蜀公? 蜀公若道‘季通許多說著處都不推我, 只這一事錯了, 便相執殢’, 則將何詞以對耶? 如此護前, 恐爲心術之害, 不但一事之失也.
통서주의 고쳐 쓴 것은 대단히 자세합니다. 원래 「성기덕(誠幾德)」은 태극과 음양오행이니, 이러한 공부들은 모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앞뒤로 그가 몇 번 읽었는지 아십니까? 모두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하니, 이에 더욱 독서의 어려움을 알게 됩니다. 최근에 임황중(林黃中)의 편지를 받았는데, 소강절의 수학과 장횡거의 『서명』을 크게 비판했으며, 원기중(袁機仲)도 이곳에 와서 소강절을 공격하는 것이 아주 급박하였는데, 가소로운 일입니다. 일찍이 공보(共甫)가 말한 것이 기억나는데, 사대부 가운데 통감(通鑑)의 책판(冊版)을 헐기를 요청하다가 죄에 걸려 유배당한 사람이 있었는데, 뒤에 풀려나와 복관(復官)될 적에 사신(詞臣)이 제서(制書)를 지었는데, 그 가운데 한 연(聯)에 이르기를, “꾀꼬리가 어둑어둑한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가듯, 짐(朕)은 너그러운 은혜를 보이노라. 솔개나 올빼미가 비웃는 것이니 너는 미혹(迷惑)한 지식에 빠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무리들도 이제 아울러 죄에 적용하여 다스리는 것이 옳습니다. 한번 웃습니다.
通書注修改甚精, 元來‘誠幾德’便是太極二五, 此老些子活計盡在裏許也. 前後知他讀了幾過? 都不曾見此意思. 於此益知讀書之難也. 近得林黃中書, 大嗎康節數學․橫渠西銘, 袁機仲亦來攻邵氏甚急, 可笑. 嘗記共甫說往時有亡大夫坐乞毁通鑑板被責, 發來復官, 詞臣草其制, 有一聯云: ‘出幽谷而遷喬木, 朕姑示於寬恩 : 以鳲鶚而笑鳳凰, 爾無沉於迷識. ’此輩今亦可幷按也. 一笑.
이전의 칠팔구육의 설은 (당신의) 뜻에 어떻습니까? 근래에 자세하게 헤아려보니, 하도에서 온 것입니다.(곧 당신이 말한 낙서라는 것입니다.) 역학계몽의 앞에 이 한 편을 더하여 하도와 낙서를 함께 배열함으로써 그 단서를 열었습니다. 설시법 가운데 다만 대연(大衍)이하로부터 또 변괘도를 나누어서 따로 한 편이 되니, 이 괘 이후는 비록 괘를 긋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괘명을 열거하였으니 거의 역검(易檢)과 비슷합니다. 기록해서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前日七八九六之說, 於意云何? 近細推之, 乃自河圖而來. (卽老兄所謂洛書者.) 欲於啓蒙之首增此一篇, 幷列河圖洛書以發其端. 而揲蓍法中, 只自大衍以下, 又分變卦圖別爲一篇, 此卦以後雖不畫卦, 亦列卦名, 庶幾易檢. 幸爲錄示也.
하도와 낙서에 대한 변설은 대단히 자세합니다. 그러나 모두 공자가 전을 지은 이후, 그 사이에 근거로 삼아 말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의 생각은 다만 구궁지도의 의의와 정당하고 간결한 점을 깨우쳤기 때문에 먼저 나온 것을 의심합니다. 팔괘십수, 구주오행은 각각 하나의 도에서 나왔으므로 저절로 서로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중효가 음효일 경우 역이 되고 중효가 양효일 경우 범이 된다는 설은 저절로 자못 그 본지를 얻었다 하겠습니다. 이제 상세하게 논한 것도 또한 하나의 설이니, 다시 만나서 논의할 날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마침내 정론이 없을 것 같으니 둘을 보존하여 후인들이 뛰어나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 귀기의 많고 적음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일찍이 받은 편지에 보여준 것은 의심할 수 없으니, 아마도 도 가운데 합쳐서 붙여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도리어 돌려 부쳐 드리니 사상 뒤에 베껴서 넣으면 좋겠습니다. 율여신서도 함께 보냅니다.
河洛辨說甚詳, 然皆在夫子作傳之後, 其間極有不足據以爲說者. 鄙意但覺九宮之圖意義精約, 故疑其先出. 而八卦․十數․九疇․五行各出一圖, 自不相妨. 故有虛中爲易, 實中爲範之說, 自謂頗得其旨. 今詳所論, 亦是一說, 更俟面論. 然恐卒未有定論, 不若兩存以俟後人之爲愈也. 歸奇多寡不同, 向時嘗辱見示, 無可疑者, 似合附入圖中. 今却附還, 幸便寫入四象之後也. 律呂新書幷往.
소학제사에 율을 맞춘 것은 아직 듣지 못한 것이 한스러우며 또한 그 사의가 걸맞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고 있습니다. 제례는 다만 사마온공의 의(儀) 안에서 조금씩 보태거나 덜어내서 바로 헤아려서 바로잡으려 합니다. 모름지기 봄이 오면 조금씩 틈을 내서 하면 될 것입니다. 정씨가 말한 동지와 입춘에 행하는 두 제사는 옛날에 일찍이 행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못 윗사람을 참람하는 것이라 의심한 것 또한 이치가 없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울러 상세한 논의를 기다립니다.
題辭協律, 恨未得聞, 且愧其詞義之不稱也. 祭禮只是於溫公儀內少增損之, 正欲商訂. 須俟開春稍暇, 乃可爲也. 程氏冬至․立春二祭昔嘗爲之, 或者頗以僭上爲疑, 亦不爲無理. 亦幷俟詳議也.
풍작숙(作肅)이 저에게 관직을 구해 달라고 하지만, 저는 관리 선발을 맡은 사람과 본래 서 잘 알지 못했고, 이제 겨우 한 번 만났을 따름입니다. 실로 편지를 쓸 형편이 못됩니다. 요즈음 친구들이 도(道)를 걱정하는 것이 가난을 걱정하는 것의 간절함보다 못한 것을 보니, 마음에 매우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평소에 강론한 바가 과연 무슨 일을 위한 것인데, 일단 조그마한 이해를 당하면 욕망을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을 지키고 도를 잘 하려 해도 어렵습니다.
作肅所求, 熹與其人本不相熟, 今才一見耳, 固不容便作書. 亦見近日朋友憂道不如憂貧之切, 心甚愧恐. 平日所講果爲何事? 而一旦小利害, 便打不過, 欲望其守死善道難矣.
채계통에게 답함 答蔡季通
임강에 이르러 갑자기 관직을 바꿔 제수하는 명을 받았는데, (상식을) 뛰어 넘고 상도가 아니어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시작하는 사람이 오히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이제 이미 이와 같이 관직을 바꿔 제수하였으니, 또 말하기를 “주상은 마음을 비우고 학문을 좋아해서 강원을 늘려서 배치하고 교육과정을 넓혀 세워서 깊이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이와 같다면 실로 국가의 영원히 좋은 일이니 의리상 한 번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침내 임천에서 수레를 바꿔 타고 신주로 올라가며 사면하는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다만 악록서원에 관한 일은 이전의 편지에서 받들어 말씀드렸는데, 이것은 정노(廷老)가 정한 것입니다. 이틀 뒤에 언충이 도착하였는데, 다른 말씀은 생략하고, 풍우정 부근의
至臨江, 忽被改除之命, 超越非常, 不敢當也. 始者猶欲且歸里中, 俟辭召命予決. 今旣如此, 又得朝士書, 皆云召旨乃出上意親批, 且屢問及, 不可不來 : 又云主上虛心好學, 增置講員, 廣立程課, 深有願治之意. 果如此, 實國家萬萬無疆之休, 義不可不一往. 遂自臨川改轅趨信上, 以俟辭免之報. 但嶽麓事前書奉報, 乃廷老所定. 後兩日彦忠到, 却說合在風雩右手僧寺菜畦之中, 背負亭脚, 面對筆架山, 面前便有右邊橫按掩抱, 左邊坂亦拱揖, 勢似差勝. 但地盤直淺而橫闊, 恐須作排廳堂乃可容耳. 已屬廷老更畫圖來, 納去求正, 而未至. 更俟其來, 當別遣人. 但代者乃毁道學之人, 未知其能不敗此否耳. 熹老矣, 方學做官, 甚可笑. 朝從奔走, 皆非所堪. 但叨冒過分, 上恩深厚, 未敢言去耳. 經筵陳說, 不敢不盡區區. 上意亦頗相嚮, 但未蒙下問反復, 未得傾竭鄙懷耳. 君擧在上前陳說極詳緩勤懇, 其所長自不可及. 區區實敬愛之, 非但如來敎所云也. 通理宗敎之命已行, 前(4-2069)日亦已歸矣. 渠年少家溫, 所欠者腹中書耳. 得闕遠官閑, 更讀數年書, 未必不爲福也, 何必汲汲於此乎?
공제(公濟)는 크게 진보하지 못했고 다만 관직 청탁하는 편지를 얻는 데만 신경을 씁니다. 만약 공제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저절로 제가 꼭 말할 필요가 없지만, 만약 없다면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까요? 그의 대단한 선학(禪學)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조그마한 이해에 임해서 곧 이렇게 수족을 다 드러내는군요. 이제 이미 떠났는지 아직 안 떠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가지 않았다면 번거롭겠지만 성사가 되지 않은 뜻을 전해 주십시오. 그는 인생의 종말에 가서도 역시 다른 사람한테 편지를 구하여 염라대왕을 만나볼 것인지요? 여러 공들이 이미 자신들의 뜻을 분명히 밝혔는데, 단지 황문숙이 이미 세상을 떠나서 제가 왔을 때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애석하게 여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조정과 나라에도 애석한 일입니다.
公濟不長進, 只管來討書. 若有相識, 自不須說, 若無, 如何寫得? 不知他許多禪寄放甚處? 臨此等小小利害, 便如此手足皆露也. 不知今已行未? 如未行, 煩致意, 不成臘月三十日亦問人討書, 去見閻家老子也. 諸公已各爲致意, 但黃文叔已逝去, 熹來亦不及見之. 此非獨吾黨惜之, 亦爲宗社惜也.
오늘 임금께 강의하려 나아갔는데, 삼가 임금의 목소릴 들어보니, 심기는 점차 편안해지고 있다고 생각되나, 다만 오히려 건망증은 악화되었으니 발인하기 전에 (광종과 영종이) 반드시 서로 만날 것입니다. 이것 또한 중요한 일이니, 참으로 다행입니다만 알려할까 걱정이 됩니다.
今日進講, 恭聞玉音, 以爲太上心氣漸寧, 但尙苦健忘, 發引之前, 必得相見. 此亦是一大事, 幸甚幸甚, 恐欲知之也. 不知何時可赴三衢之約? 能乘興東下, 爲數日款, 幸甚!樓․陳諸公亦數奉問也.
修曆事若下, 須更商量. 蓋但測驗, 卽人皆可爲, 或須改造, 則恐不免一出, 亦非今日一時事也. 史遷不可謂不知孔子, 然亦知孔子之粗耳. 歷代世變, 卽六國表序是其極致, 乃是俗人之論. 知孔子者, 固如是耶? 正朔服色, 乃當時論者所共言, 如賈生․公孫臣․新垣平之徒皆言之, 豈獨遷也. 此等處自是渠輩眼目低, 故見得高了, 亦可笑耳. 祭法須以宗法參之, 古人所謂始祖, 亦但謂始爵及別子耳. 非如程氏所祭之遠, 上僭則過於禘, 下僭則奪其宗之爲未安也.
曆事不知後來有何施行? 若如其說, 不知可爲一行否? 祭法世數明有等差, 未(4-2070)易遽改. 古人非不知祖不可忘, 而立法如此, 恐亦自有精意也. 史記不知渠說好處是如何好, 必須曾擧一二尤緊切處. 若只如曹器遠輩所說, 則亦不足言也.
채계통에게 답함(계축년 3월 21일) 答蔡季通(癸丑三月二十一日)
[해제]
중간에 당신의 집에 도착하여, 이 날 아들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깊이 축하드립니다. 여위고 어리석은 저는 평소에 크게 이로움을 얻지 못해서 나이 삼십이 넘어서부터 언제나 (사람들이) 사는 집에 이르면 늘 사람들이 딸을 낳았는데 이와 같은 경우가 쉰일곱 곳이나 되었습니다. 올해 마침 경사롭게도 당신께서 아들을 얻었다니 점차 막힌 곳을 해소하고 어려움을 형통케 하는 모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받들어 축하드렸지만, 또 (마음속으로) 하례하며, 늦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할 뿐입니다.
中間到宅上, 聞是日得子, 深爲贊喜. 衰鈍之蹤素不利市, 自年三十餘時, 每到人家, 輒令人生女, 如是凡五七處. 今年乃値慶門得男, 則又似漸有傾否亨屯之象. 旣以奉慶, 又竊自賀, 但恨其已晩耳.
하구와 무창 일대의 형세에 대해서는 이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둘러 쌓인 호수를 건너서 형산(衡山)과 상수(湘水)를 구경하고, 양양(襄陽)과 한수(漢水)를 지나 오나라 땅의 회계(會稽)까지 내려가 구경하고 돌아오면, 얻은 것이 당연히 더욱 많을 것입니다. 손가락을 꼽아 가며 돌아 올 일정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삼가 당신께 쾌활한 이야기를 들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夏口武昌一帶形勢旣聞命矣, 涉重湖․窺衡湘․歷襄漢․下吳會, 方羊而歸, 所得當益富. 屈指計歸程, 冀得傾竦以聽劇談也.
율준은 이전에 첫째[채연]가 여기에 가지고 왔는데, 이미 글자를 새기고 현을 조율하여 갔습니다. 다만 가운데 현은 반드시 율관이 있은 후에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악기는 음악을 하는 집에서는 두 번째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각기는 진실로 빨리 갖추기 어려운데, 또 요사이 며칠 동안 다리 병이 생겨 비록 심하지는 않지만 아직 낫지 않았고, 오늘 아침에는 오른쪽 팔 아래로는 손톱과 손바닥으로부터 위로는 어깨와 등으로 이어져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며, 한기와 열기가 크게 생겨, 그 형세가 다시 며칠이 지나지 않고서는 마침내 안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허교의 임기가 이미 찼는데, 저들 가운데 (허교)를 대신할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혹시 같은 직의 관리 가운데 따로 맡겨서 이 일[閣役]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또한 (이에 대해서는) 이미 글을 써서 허교에게 답장을 보냈으니, 원선과 함께 말씀해보시고, 그 사이에 병이 나아지기를 기다려 한번 모여서 뵙고 합해서, 마땅히 (깊이) 생각할 곳은 곧 설경에게 부쳐서 함께하게 하면 당연히 도달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律準前日一哥來此, 已刻字調絃而去. 但中絃須得律管, 然後可定. 然則此器亦是樂家第二義也. 閣記固難遽辦, 又適此數日脚氣雖輕而未愈, 今旦右臂下自爪掌以上連肩背無處不痛, 寒熱大作, 其勢非更數日, 卒未能定. 不知許敎旣滿, 彼中代者爲誰? 或同官中別有可託以竟此事者爲誰? 亦已作書報之, 及與元善說, 俟此間病愈, 一面捻合成, 當尋的便寄薛卿處與之, 當無不達也.
올 해에 병은 비록 심하지는 않지만 기운과 체력은 아주 쇠약해져서 어제는 말할 힘도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친구들이 멀리서 와서 지키고 있으므로, 또 그들의 뜻을 심히 저버리고 싶지 않아 억지로 힘서 응접은 합니다만, 서로 만나는 날이 다시 오래가지 못할까 늘 걱정 됩니다. 계통(季通)께서도 여행에 싫증이 날만도 하니, 바라건대 빨리 돌아와 서로 더불어 열심히 학문에 힘쓰며 남은 인생을 다하십시오. 이것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今年病雖不重, 而氣體極衰, 至於昨日, 遂至無力說話. 朋友遠來相守, 又不欲甚孤其意, 勉强應接, 常慮相見之日不復更能長久. 季通倦游, 亦望早歸, 相與切磋, 以盡餘年, 寔所願望.
역학계몽은 고치지 않으셨습니까? 빨리 보고 싶습니다. 통서와 황극례 등의 설은 이미 끝낸 것 아닙니까? 아직 끝내지 못했다면 빨리 마무리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돌아오느라 고생이 심하겠지만, 불을 때서 밥을 지어도 시원함을 바랄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 단지 당신같이 현명한 사람이 한번 와서 며칠 동안 모여서 말하면 좋겠습니다. 결코 반드시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니, ‘헛되이 쓴다’는 말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다른 뜻으로 거절할 수 있으니, 반드시 ‘헛되이 쓴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드러내지 않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啓蒙修了未? 早欲得之. 通書皇極例等說不知已下手否? 如未, 幸早爲之. 乍歸窘甚, 爨無欲淸之人, 只欲得賢者一來, 會語數日爲幸. 切不必多與人同, 虛費又難語也. 可以他意却之, 不必露此. 千萬千萬!
또한 더욱 더 방문을 허락해주시니 대단히 다행입니다. 단지 저는 한결같이 한천으로 가려고 하지만 날짜를 미리 정할 수 없으니, 혹시 도중에 서로 엇갈릴까 걱정이 됩니다. 이번 나선 길에는 임금을 뵈었는데 저를 칭찬하심이 너무 지극하여, 말은 비록 방자하고 분별이 없었지만, 또한 싫어하는 안색이 없었으니, 생각건대 적으나마 보잘것 없는 것을 드리는 것을 가상히 여긴 것입니다. 일의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선천과 정완의 사이에서 발생하였으니,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所苦且喜向安, 亦宜更加將護也. 許見訪, 甚幸. 但亦自欲一到寒泉, 未能預定日子, 恐或塗中相失也. 此行見上, 褒予甚至, 言雖狂妄, 亦無忤色, 意謂可以少效尺寸. 而事之不可料者, 乃發於先天訂頑之間, 是可笑也. 已專人自劾, 及盡還江右迓兵矣. 此等小小怪謬議論如蝟毛而起, 更不可開口, 奈何? 始者信書太過而閱人不廣, 不謂萬物之靈者乃如此不靈也, 奈何? 更五七日, 當有後命, 未知如何也. 元善說欲下州郡月致筆札之費, 然此事亦當審處, 恐此事面生, 後或有悔也.
이백간이 이곳에 온 지 이미 이삼 일이 되었습니다. 본래는 내일 돌아가려고 했는데, 더불어 의논하다가 그대가 오면 같이 만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제 이 사람을 오로지 보내어 그대를 초청해 오는 것입니다. 그도 또한 사람을 보내어 돌아가 그 시중하는 사람들에게 훈계하여 하루 이틀 좀 늦추도록 했습니다. 부디 한 번 행차를 해 주십시오. 그가 논하는 바는 다투는 것이 전혀 많지 않으니, 외로운 성이 다 뽑혀 갑니다. 그대와 군대를 합치고 힘을 아우른다면, 한 번 북을 울려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伯諫來此已兩三日, 初欲來日歸, 因與商量, 約左右一來相聚. 今專遣此人相挽, 渠亦遣人歸戒徒御, 少緩一兩日來矣. 千萬卽命駕. 其所論極不爭多, 孤城悉拔, 合軍幷力, 一鼓可克也.
사상(四象)의 수는 전날에 이따금 유추해 보았습니다. 세 획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수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대개 태양은 일(一)에 있으면서 구(九)를 함유하고 있고, 소음은 이(二)에 있으면서 팔(八)을 함유하고 있고, 소양은 삼(三)에 있으면서 칠(七)을 함유하고 있고, 태음(太陰)은 사(四)에 있으면서 육(六)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시초를 나누어 가지기 전에부터 있는 것입니다. 시초를 나누어 가져 남는 것을 돌려보내는 수는, 곧 이 수를 지나치게 나누어 가진 수를 끼워 넣는 것이고[揍], 또 남은 수를 돌려보내는 수를 끼워 넣는 것일 따름입니다.
四象之數, 前日間推只自三畫未成之時已具此數, 蓋太陽居一而含九, 少陰居二而含八, 少陽居三而含七, 太陰居四而含六, 不待揲蓍而後有也. 揲蓍歸奇之數, 乃是揍着此數, 過揲之數又是揍着歸奇之數耳.
요즈음 논하는 사람들을 보니, 오로지 지나치게 나누어 가진 수로써 칠 팔 구 육을 끊는다는 설만 가지고서 하고, 홀수를 돌려보내는 수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능히 여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이를 위해서 설을 만들어 가로되, “사상(四象)의 획(劃)은 육 칠 팔 구의 할아버지이고, 사상의 다음은 육 칠 팔 구의 아버지다. 홀수를 돌려보내는 것은 그 아들이고, 지나치게 나누어 가지는 것은 그 손자다”라고 했습니다. 이 논의는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사상의 차례는 십에서부터 거꾸로 헤아려 육에서 다 끝나 태음(太陰)의 사(四)를 얻습니다.(이상도 다 그렇다.) 또 다섯 손가락을 굽혀서 헤아려 보면, 일과 구가 같고, 이와 팔이 같고, 삼과 칠이 같고, 사와 육이 같습니다. 이 또한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오묘함입니다. 다만 우스운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안배(安排)할 수 없는 것입니다.
近見論者專以過揲之數斷七․八․九․六之說, 至於歸奇之數, 尙不能明, 况能及此乎? 嘗爲之說曰: ‘四象之畫, 六․七․八․九之祖也. 四象之次, 六․七․八․九之父也. 歸奇者, 其子也. 過揲者, 其孫也. ’此論似不可易. 又曰: ‘象之次自十倒數, 畫六而得太陰之四, 以上皆然. 又屈五指而計之, 一與九同, 二與八同, 三與七同, 四與六同.’ 此亦自然不言之妙, 直是可笑, 不由人安排也.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명철하신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학계몽의 의심이 되는 곳은 마땅히 만나서 물어봐야겠지만, 비시
不知明者以爲如何? 啓蒙所疑當得面扣, 然得先批示大略尤佳. 歸奇已具卦象, 固平日所常論, 但亦其中一小支節耳. 蓋其多寡不均, 無所發明於蓍卦之說, 正自不足深論也. 如何如何? 律說幸早改定, 過彼卽借看. 或能相伴入城, 途中得款曲商訂尤幸也.
중용서문에 이르기를 “만약 우리 부자(夫子)로 말하면 비록 그 지위를 얻지 못하셨으나 …… ”라고 하셨는데, 지난번에 여기서 베낀 책에 ‘오(吾)’자가 탈락된 것을 보았으니, 번거롭겠지만 첫째에게 보여서 (탈락한 글자)가 적으면 곧 보충하도록 하십시요. 이것은 비록 의리와 관계된 것은 아니지만 얻은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비은(費隱)’설은 오늘 하루 내내 배치하려고 했지만 마침내 정할 수 없었습니다. 대개 천지에 드러난다는 것은 마침내 ‘은(隱)’자를 얻지 못하게 됨을 말한 것이니, 여러 가지로 비교해도 다시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부지(不知)’, ‘불능(不能)’, ‘유감(有憾)’등의 어구는 허무하고 미묘해서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바람을 잡아 그림자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성인의 평상시의 말씀이 아마도 이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지혹지(未之或知)’, ‘불가능야(不可能也)’라는 말과는 같지 않습니다. 어떠한지 살펴봐 주십시오. 상세히 살펴보시고 깨우쳐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中庸序云 : ‘若吾夫子, 則雖不得其位’, 昨看此間寫本脫一‘吾’字, 煩一哥爲看, 如少, 卽添之. 此雖不繫義理, 然亦覺少不得也. ‘費隱’之說, 今日終日安排, 終不能定. 蓋察乎天地終是說做‘隱’字不得, 百種計較, 更說不來. 且是所說‘不知’․‘不能’․‘有憾’等句虛無恍愡, 如捕風繫影, 聖人平日之言恐無是也. 與‘未之或知’․‘不可能也’不同. 不審看得如何? 幸詳以見喩也.
인의의 설은 본래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과 같으나, 다만 설괘(說卦) 육획 가운데 안배한다면 인은 군세고[剛]하고 의는 유부드러워[柔]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인은 부드럽고 의가 굳세다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설이니, 서로 섞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선생은 천지간에 완전히 갈라져서 음이 되고 양이 되는 이치는 없다고 했지만, 그것이 올라가고 내려오며 생겨나고 없어지는 큰 구분은 없을 수 없으니, 바로 이러한 뜻입니다. 이러한 곳에 대해서 원기중도 모두 밝지 못하여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仁義之說固如來喩, 但於說卦六畫中安排, 則仁剛義柔, 不可易矣. 仁柔義剛, 又別是一說, 不相參雜也. 程先生謂天地間無截然爲陰爲陽之理, 然其升降生殺之大分不可無也, 正是此意. 而袁於此等處都瞢然不曉, 所以難說話也.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는 진실로 마땅히 경계하고 성찰하여야 합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에 관한 염려에 이르러서는 우선 그대로 맡겨 두어야지, 절절(切切)하게 마음에 넣어 둘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이런 곳을 다시 놓아 두지 못한다면, 곧 수행하는 것이 도리어 무력하게 됩니다. 이런 것에 구구하게 걱정할만한 것은 당신보다 제가 더 큽니다. 그러나 역시 단지 일에 따라 발산해 버려서, 눈을 감은 뒤에는 일체를 되는 대로 맡겨 두어 다시는 자기의 영역 안에 속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修身齊家固當警省, 至於有無之慮, 姑直任之, 不必切切介意. 若此等處更放不下, 卽脩行轉無力矣. 區區於此可憂者大於老兄, 然亦只得隨事驅遣, 瞑目之後, 一切任之, 亦不復屬自己界分矣.
중용시전은 빨리 고쳐서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중용은 고쳐야 할 곳이 여러 곳이 있어서 이제 아울러 기록하여 보내 드리니, 곧 부쳐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中庸詩傳幸速脩改示及. 中庸更有數處, 今幷錄呈, 幸卽付之也.
서산(西山)에서 만나려고 약속했는데, 어찌 그렇게 한결 같이 손님을 심하게 막으십니까? 제가 무이산(武夷山)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려, 따로 마땅히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람 부는 데 서서 고개를 빼 당신 있는 쪽을 바라다보니, 벌써 고비 캐는 노래를 듣는 것 같습니다. 돌아와서 또 백공(伯恭)의 편지를 받아 보니,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하여 이익의 근원을 끊어야 한다. 정신을 모아서 푹 젖어 들어야만 비로소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고 했더군요. 이 논의가 매우 타당하기에 감히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西山之約, 一何拒客之深耶? 俟武夷歸, 別當奉扣. 然臨風引領, 似已聞釆薇之歌矣. 歸來又得伯恭書云: ‘學者須是專心致志, 絶利一源, 凝聚渟滀, 方始收拾得上.’此論甚當, 不敢不以告也.
오증의 글은 이미 받았는데, 또한 대단히 어렵습니다. 다만 무역세 편은 조리가 있거나 통달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며칠 동안 잠자리 들기 전에 사기한 두 권을 읽었는데 마음이 가라앉고 통쾌한 것을 참으로 언급할 수가 없습니다. 영가(永嘉)의 여러 사람들이 이 책을 우러러 신봉하는지 말로써 도를 얻는데 도리어 서로 다른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뛰어난 학자인 유하혜가 진실로 이와 같겠습니까?
吳曾文字已領, 亦甚不易. 但無斁三篇似不甚條暢耳. 數日臨睡讀史記一兩卷, 沈着痛快, 眞不可及. 不知永嘉諸人尊信此書, 而道得言語却不相似是何故也. 豈善學柳下惠者固如是耶?
원길(元吉)이 아직 가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그가 여기에 왔을 때 충고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다만 그 스스로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분연(憤然)히 결별하고 떠났습니다. 어찌 내가 그를 끊은 것이겠습니까? 계통 당신도 역시 꼭 심력(心力)을 허비할 것 없습니다. 송원헌공(宋元憲公)이 계략을 쓴 일은, 제가 할 수 없는 바이고, 성인(聖人)도 이미 본디 ‘분명하게 사람을 대하라’는 교훈이 있습니다. 만약 사람 사람마다에게 말을 해 주어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어찌 수고롭지 않겠습니까?
元吉尙未行, 何耶? 渠來此未嘗不忠告之. 但渠自不耐煩而憤然訣去, 豈長者之絶子乎? 季通似亦不須枉費心力. 宋元憲公牢籠之事, 吾所不能, 而聖人亦已固有顯比之訓矣. 若必人人贈言以悅之, 豈不勞哉!
오공제와 이백간의 편지는 받아보셨습니까? 제가 돌아오는 길에 이백간에게 들러서 (그를) 만나 오공제의 글을 얻었는데 대체로 분명하지 못하여 어지럽고 조리가 없었습니다. 대학의 성의(誠意) 설은 이미 다시 보았는데 과연 논한 바와 같았습니다. 생각건대 다른 글도 이와 비슷한 곳이 많을 것이니, 반드시 하나하나 정돈해야할 것입니다. 정명도의 유문은 한 권 얻었습니다.
公濟․伯諫得書否? 某歸塗過伯諫, 見收公濟書, 大段手忙脚亂也. 大學誠意之說已再觀之, 果如所論. 想他書似此處多, 須一一整頓也. 明道遺文納去一本.
채계통에게 답함 答蔡季通
율서 가운데 고치고 싶은 것이 있어 별지로 올립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빨리 답장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역 가운데 7․8․9․6의 수는 여태까지는 단지 설시(揲蓍)하는 곳에 따라서 추기(推起)하였는데, 비록 완전하게 들어맞는다 하더라도 그러나 마침내 곡절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 아마도 수를 얻는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최근에 틈틈이 사상의 차례를 살펴보았는데, 뜻하지 않게 그 설을 얻게 되어 대단히 간편해졌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와 같이 미루어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언급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기
律書中有欲改更, 別紙奉呈. 不審如此是否? 幸早報及也. 易中七八九六之數, 向來只從揲蓍處推起, 雖亦脗合, 然終覺曲折太多, 不甚簡易, 疑非所以得數之原. 近因間看四象次第, 偶得其說, 極爲徑捷. 不審亦嘗如此推尋否, 亦幸語及.
「본원」제1장은 위경(圍徑)설은 대단히 분명하지 않은데, 이것은 가장 중요한 절목이어서 대충 써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후기」장은 아마도 마땅히 제4장과 5장의 사이로 옮겨야 하며, 대개 율의 마디를 나누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관을 메우고 기를 기다려서 그것의 반응을 증험해야 할 것입니다. 오성(五聲)을 퍼뜨려서 이변(二變)하는데 이르서 60조가 되는 것은 그 나머지 일 뿐입니다. 하물며 「심탁(審度)」․「가량(嘉量)」․「근권(謹權)」 은 더욱 「후기」의 앞에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후기」장은 이미 황종의 변화의 반 수에 있는데 앞 장에서 분명한 문장이 없으니, 아마도 「정율(正律)」․「분촌(分寸)」장 뒤에 따로 한 장을 둬서, 육변율(六變律) 및 정반(正半)․변반(變半) 성율(聲律)의 길고 짧음과 분촌(分寸)을 구체적으로 싫어야 완전하게 구비된 것입니다. 후단의 논설은 이 장이 가리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놓은 것이니 아울러 옮겨서 붙여 넣으십시요.
「심탁」장에서 말한 것처럼 “생어황종지장(生於黃鐘之長)”아래에 마땅히 고쳐서 “자곡(子穀), 거서(秬黍) 가운데 90매로 헤아려서 1분으로 하고 모든 기장을 관 가운데 채우면 13매가 되어 일중(一重)에 가득하고, 90중을 쌓으면 1200매가 되어 그 약에 약(龠)에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90매의 수는 아래 장과 함께 1200매의 수가 그 실상은 하나이니 십분이 촌(寸)이 된다.”고 해야 합니다.
「가량」장에 약․합․승․두․곡은 모두 실제로 넓고 좁음과 분촌(分寸)을 헤아려야 합니다.
本原第一章圍徑之說殊不分明, 此是最大節目, 不可草草. 候氣章恐合移在第四․五間, 蓋律之分寸旣定, 便當埋管候氣, 以驗其應否. 至於播之五聲二變而爲六十調者, 乃其餘耳. 况審度․嘉量․謹權, 尤不當在候氣之前也. 但候氣章已有黃鍾之變半分數, 而前章未有明文, 恐合於正律․分寸章後別立一章, 具載六變律及正半․變半聲律之長短分寸, 乃爲完備耳. 後段論說有發明此章指者, 幷移附入.
審度章云云, ‘生於黃鐘之長’下, 當改云‘以子穀秬黍中者九十枚度之一爲一分, 凡黍實於管中, 則十三枚而滿一重, 積九十重則千二百枚而滿其龠矣. 故此九十枚之數, 與下章千二百枚之數其實一也. 十分爲寸’云云.
嘉量章龠․合․升․斗․斛皆當實計廣狹分寸.
證辨第一章‘今欲求聲氣之中’下當改云‘而莫適爲準, 則莫若且多截竹以擬黃鍾之管, 或極其短, 或極其長. 長短之內, 每差一分而爲一管, 皆卽以其長權爲九寸而度其圍徑, 如黃鐘之法焉, 如是則更迭以吹’云云.
司馬貞九分爲寸之說, 本原旣不載, 恐合於證辨中立爲一條, 以證前篇之說.
諸尺是非後來考得如何? 已改定, 幸幷錄示.
채계통에게 답함(答蔡季通10)
전날 야(埜)가 가서 이미 편지를 받았을 터인데, 오늘 행차는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멀리 이별한 것을 생각하면 구슬픔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책을 읽고 이치를 음미함에 이르러서는 강론을 하려고 해도 어울릴 사람이 없으니, 보통 사람들이 이별을 생각하는 것에 그치는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 날 동안 계속해서 참동계를 읽었는데 자못 재미가 있어서, ‘천 바퀴를 돌고 만 번을 두루 펼친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이전에 만나서 여쭈어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지난 번에 「괘기소식」 한 책을 베꼇는데, 아직 모르고 계십니까? 첫째에게 주어서 저에게 보여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또 「악기후어」를 읽었는데 ‘하야(何也)’ 몇 개의 조항은 더욱 기이합니다. 대개 전에는 이러한 체(體)가 없어 그 설을 궁구할 수 없었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평소에 서로 모여 있을 때는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하였는데, 이별한 뒤에서야 빈자리를 깨달았으니, 한 숨만 나옵니다.
前日埜行已拜狀, 不審卽日行次何許? 每念遠別, 不勝惆悵. 至於讀書玩理, 欲講而無從, 又不但常人離別之思也. 云云熹連日讀參同頗有趣, 知‘千周萬遍’非虛言也. 但恨前此不得面扣耳. 向見爲抄一冊卦氣消息者, 不知了未? 幸語一哥取以見予也. 又讀握機後語‘何也’數條尤奇, 昔蓋未有此體, 亦恨不得究其說耳. 平日相聚, 未知其樂, 別後乃覺闕事, 可歎可歎!
채계통에게 답함(答蔡季通11)
헤어진 후에 단지 풍성 및 의춘에 이르러 편지를 받고, 도중의 여러 상황을 알게 되니 마음에 위안이 됩니다. 다만 여기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춘능[도주]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지 못하여 다시 깊이 마음에 걸립니다. 항상 독서와 강학을 하면서 물어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어서, 더욱 당신의 덕을 우러르는 마음이 깊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요사이 삼가 건강은 좋으시고, 셋째[채침]는 자능에서 한결같이 편안하게 잘 있는지요. 여기서 때때로 첫째 형의 편지를 받았는데, 여덟째가 지난날 성에 들어갈 때 여기를 들렸습니다. 저는 어제 발병이 몇 번이나 도지더니 이제 조금 수그러들었습니다만 끝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신은 날로 소모되고, 혈기도 날마다 쇠약해져, 옛 학문은 거칠어져 후퇴할 뿐 진보는 없으니, 마침내 세상에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 죽게 될까 두렵습니다. 악서는 감히 잊지 않았습니다만, 바야흐로 이렇게 말을 하지 못하면서[齰舌] 어찌 감히 다시 망령되게 쓰겠습니까? 이 책[율려신서]은 확실히 없어져 얻지 못했는데 최근에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을 보았으나, 다시는 귀담아 들을 수 조차 없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평상시에 저와 함께 머물면서 일찍이 자세한 곳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셨는지요? 다만 종자기가[제가] 듣지 않을까 걱정되어 일찍이 말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여러 사람들이 거문고를 논함에 따라 당신이 그린 그림을 빌려서 보았는데, 저의 생각과 들어맞았습니다. 조서(朝瑞)는 다만 황종의 한결같이 균등하게 되어 있는 것 안에서 가장 위에 있는 현을 말했을 뿐인데, 갑자기 거문고의 전체를 논함으로써 고집스럽게 치우쳐 지키려 하니 합치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학문은 고루하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어찌 믿지 않으십니까? 우연히 소주에 가는 인편이 있어서 언중에게 부탁하여 이 편지를 부치고 또한 첫째 형이 있는 곳을 들러 안부를 전하게 했습니다. 설령 멀리 있다하더라도, 몸 건강하십시오.
別後只得到豐城及宜春書, 知途中諸况, 足以爲慰. 但至今尙未聞到舂陵, 復深以爲懸念. 每至讀書講學無可咨扣․無可告語, 尤覺仰德之深也. 比日恭惟尊候萬福, 三哥子陵一一安佳. 此亦時得一哥書, 八哥前日入城, 亦過此. 熹足病前日幾作, 今又小定, 未知竟如何. 但精神日耗, 血氣日衰, 舊學荒蕪, 有退無進, 恐遂沒沒無聞而死耳. 樂書非敢忘之, 但方此齰舌, 豈敢更妄作耶? 此書決然泯沒不得, 近看他人所說, 更無堪入耳者. 不知老兄平日與元善相處, 曾說到子細處否? 但恐子期不曾聽得, 便只似不曾說也. 近因諸人論琴, 就一哥借得所畫圖子, 適合鄙意. 乃知朝瑞只說得黃鐘一均內最上一弦, 而遽以論琴之全體, 宜乎膠固偏執而無所合也. ‘學不欲陋’, 豈不信然!偶有邵州便, 託彦中附此, 亦令過一哥處取安問矣. 政遠, 千萬爲道自愛.
채계통에게 답함(答蔡季通12)
언급하셨듯이, 지난번에 부친 금설(琴說)은 오히려 말에 분명하지 못한 곳이 있어서, 이제 따로 한 조를 고쳐서 기록하여 보내니 예전의 것과 비교하여 차이가 분명한 것 같은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거문고는 본래 매 현마다 각각 오성이 있으나, 하나의 현은 자체로 하나의 소리가 되는 법이 있으므로 심존중[沈括]의 설이 다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개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그 사이에 의리가 정밀하고 미묘하며 무궁하여 모두 쉽게 한마디로 그 시작과 마침을 단정할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분명하고 꿰뚫어서 통하게 살펴보아서 서로 방해나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물격(物格)의 증험입니다.
云云. 琴說向寄去者尙有說不透處, 今別改定一條錄呈, 比舊似差明白, 不審盛意以爲如何? 琴固每絃各有五聲, 然亦有一絃自有爲一聲之法, 故沈存中之說未可盡以爲不然. 大抵世間萬事其間義理精妙無窮, 皆未易以一言己斷其始終. 須看得玲瓏透脫, 不相妨礙, 方是物格之驗也.
배우려는 사람들이 무리로 몰려오는 걱정은 어진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여러 학생들을 흩어 보냈다고 편지에서 알려 오셨는데, 어째서입니까? 이 또한 그들이 가고 오는 대로 맡겨 두어야 합니다. 만약 환난이 있다면 비록 문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衆至之患, 賢者所未免, 乃以散遣諸生見敎, 何耶? 此亦任其去來, 若有患難, 雖杜門齰舌亦未必可免也.
채계통에게 답함(答蔡季通13)
거문고 가운데 선궁(旋宮: 돌아가면서 궁성이 된다.)이라는 한 가지 일은 처음의 현에 긴밀함과 늦춰짐이 있고 여러 현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만약 한결같이 정해져 있어 옮겨지지 않는다면 선궁의 법이 어떻게 행해질 수 있겠는가? 다만 오와 미 이후로는 소리가 너무 높고 급박해서 작은 현은 끊어질까 걱정하였기 때문에 아마도 이른바 오강(五降)이라는 것은 유빈이하는 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말은 본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제 한결같이 정해져 있어 바꿀 수 없다 한 것과 옛날에 12월을 따라서 궁이 된다고 한 것은 중용의 도에 부합하여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어떠한지 헤아려 보시고 다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琴中旋宮一事, 正爲初絃有緊慢, 而衆絃隨之耳. 若一定而不可移, 則旋宮之法何所施耶? 但恐午未以後聲太高急而小絃斷絶, 故疑所謂五降者, 乃謂蕤賓以下不可爲宮耳. 此說固未必然, 然與今所謂一定而不可易, 古所謂隨十二月爲宮者, 似得中制. 試更推之如何, 復以見敎也.
참동의 설을 자세히 미루어 뜻을 찾아보면, 숨 한 번 쉬는 동안에도 그믐과 초하루 상현과 하현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상현은 숨을 막 쉬려고 할 때로서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고, 하현은 숨이 바야흐로 사라지는 때로서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보름은 숨이 가득한 것으로서, 해는 아래로 지고 달이 위에서 둥근 것입니다. 그믐과 초하루의 사이에 해와 달이 위에서 합하니, 이른바 ‘물을 들어서 불을 없앤다’, ‘금(金)이 돌아와 본성의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 등이 그런 유(類)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이렇게 분명하지만, 다만 손 댈 곳이 없을 따름입니다. 이별한 뒤로부터는 이런 일에 대해서 의론할 곳이 없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심란하게 합니다. 이제 이처럼 병을 앓고 있어서 또 온갖 일은 감히 생각하고 헤아릴 수도 없으니, 다른 날 당신이 돌아오면 다시 만나서 이 일을 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參同之說子細推尋, 見得一息之間便有晦朔弦望. 上弦者, 氣之方息, 自上而下也. 下弦者, 氣之方消, 自下而上也. 望者, 氣之盈也, 日沈于下而月圓于上也. 晦朔之間者, 日月之合乎上, 所謂‘擧水以滅火, 金來歸性初’之類是也. 眼中見得了了如此, 但無下手處耳. 自從別後, 此等事更無商量處, 劇令人憒憒. 今此病中, 又百事不敢思量, 未知異時賢者之歸, 得復相見論此否耳.
채계통에게 답함(答蔡季通 14)
저는 올해 초부터 병이 들어 지금까지도 평온하지 못합니다. 오늘에야 바야흐로 붓을 들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발로는 오히려 천천히 걸을 수도 없습니다. 혈기는 날로 노쇠하여,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해 보니 또한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병든 가운데 홀로 앉아 있노라니, 또 마음을 편안히 하고 쉴 수가 없어, 책을 뒤적여 보았는데, 선배들의 저서는 너무 넓어 자세하지 못하고 결점이 많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해도 알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또 문득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이는 것을 벗어날 수 없었으니, 이 또한 한가한 가운데 마귀가 희학질하며 가로막는 것이어서 힘써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전날 당신과 이야기하던 즐거웠던 시절이 아주 생각나는데, 살아서 다시 지난날처럼 서로 어울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熹自開正卽病, 至今未平. 今日方能把筆作書, 足猶未能平步也. 氣血日衰, 前去光景想亦不多. 病中塊坐, 又未能息心休養, 才方繙動冊子, 便覺前人闊略病敗, 欲以告人而無可告者, 又不免輒起著述之念, 亦是閑中一大魔障, 欲力去之而未能. 以此極思向來承晤之樂, 未知此生能復相從如往時否耳.
논어와 맹자를 읽어보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셨는데 제가 바라던 바에 깊이 위로가 됩니다. 이미 가르침을 주실 것을 허락해서 다행히 일찍 편지를 부쳐주셨습니다. 앞의 편지에서 금보(琴譜)의 선궁지법에 대해 물어보셨는데 살펴보아도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현이 한결같이 정해져 있다면 다시 (현을) 팽팽하게 하거나 늦출 필요가 없을 것이니 아마도 이러한 이치는 없을 것 같습니다.
知看語․孟有味, 深慰所願. 已許誨示, 幸早寄及也. 前書奉扣琴譜旋宮之法, 不知考得果如何? 若初弦一定, 不復更可緊慢, 恐無是理也.
방백모(사요)에게 답함[答方伯謨(士繇)]
【해제】이 글은 건도 7년(신묘, 1171, 42세) 직전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답하는 편지로 추정된다. 주역정씨전을 중심으로 역학을 논하고 있다.
‘때에 따라 변하면서 도를 좇는다’는 것은 괘와 효를 중심으로 말했지만 하늘의 이치[天理]와 사람의 일[人事]이 모두 그 안에 있습니다. 이제 건괘[乾]의 ‘잠겼다[潛]․드러났다[見]․난다[飛]․뛰어오른다[躍]는 표현으로 살펴보면, 그것이 유행하여 여기에까지 이른 것이 역(易)이요, 그 정해진 이치의 당연함은 도(道)입니다. 그래서 명도(明道) 또한 “그 본체는 역이라 하고 그 이치는 도라고 한다”고 했고, 이천(伊川)은 또 ‘변한 다음에 도와 합치한다. 역이란 글자와 도란 글자는 서로 비슷하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또 “사람이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도를 좇으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구절들 모두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 속에 있는 낱낱의 괘와 효는 모두 이 이치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그 근원을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隨時變易以從道’主卦爻而言, 然天理人事皆在其中. 今且以乾卦潛․見․飛․躍觀之, 其流行而至此者, 易也 : 其定理之當然者, 道也. 故明道亦曰‘其體則謂之易, 其理則謂之道’, 而伊川又謂變易而後合道, ‘易’字與‘道’字不相似也. 又云‘人隨時變易爲何? 爲從道也.’ 此皆可以見其意矣. 易中無一卦一爻不具此理, 所以沿流而可以求其源也.
‘모였다[會]’는 것은 이치가 모인 것으로 말한 것이요, ‘통한다[通]’는 것은 일의 마땅함으로 말했지만 그 실상은 한 가지입니다.
‘會’以理之所聚而言, ‘通’以事之所宜而言, 其實一也.
‘간혹 연못에서 뛰어오른다’는 것은 (건괘의) 구사가 가운데로는 사람에게 있지도 않다는 것이니, 나아가서 구오의 자리에 이르더라도 혐의가 없습니다. 다만 군자에게 본래 이런 마음이 있지 않기 때문에 ‘간혹 뛰어오른다’고 말했고, 「문언전」에서도 ‘삿된 것이 되지 않는다’는 등의 말로 해석했습니다.
‘或躍在淵’, 九四中不在人, 則其進而至乎九五之位亦無嫌矣. 但君子本非有此心, 故云‘或躍’, 而文言又以‘非爲邪也’等語釋之.
9․6에 대한 설명은 (이정유서에 실린) 양준도(楊遵道)의 기록 가운데 「주역정씨전」의 뜻을 발명한 한 문단과 보낸 편지의 내용과는 다릅니다만 그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예전에 저는 ‘오행의 수를 완성하면서 땅의 10에 해당하는 토(土)를 버리고 쓰지 않으면 7․8․9․6이 남을 뿐입니다. 양은 홀수이고 음은 짝수이므로 7․9는 양이 되고, 6․8은 음이 됩니다. 양이 나아가면 음은 물러가기 때문에 9․6은 노(老)가 되고, 7․8은 소(少)가 됩니다. 그러나 양은 9에서 극에 달하므로 8로 물러나 음이 되고, 음은 6에서 극에 달하기 때문에 7로 나아가 양이 됩니다. 한번씩 나아가고 물러나는 순환이 끝이 없습니다. 이것이 설시하는 방법에서 9․6을 쓰면서 7․8을 쓰지 않는 이유이니, 그 변화를 취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설명에 따라 추론해가기만 한다면 아마도 막히는 곳이 없을 겁니다. 구산(龜山)이 말한 “셋으로 나누면 9가 되고 둘로 나누면 6이 된다”는 것은 바로 강절(康節)이 3을 참된 수[眞數]로 여겨 3․2를 곱해서 9․6의 수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1․3․5로 9를 만들고, 2․4로 6을 만드는 것은 쌓아서 만든 수[積數]이지, 셋으로 혹은 둘로 곱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또 이렇게 해서 9․6을 만든다면 7․8은 또 어디에서 유래한단 말입니까? 아마도 온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九六之說, 楊遵道錄中一段發明傳意與來喩不同, 然亦未曉其說. 嘗謂五行成數, 去其地十之土而不用, 則七八九六而已. 陽奇陰耦, 故七九爲陽, 六八爲陰. 陽進陰退, 故九六爲老, 七八爲少. 然陽極於九, 則退八而爲陰 : 陰極於六, 則進七而爲陽. 一進一退, 循環無端. 此揲蓍之法所以用九六而不用七八, 蓋取其變也. 只以此說推之, 似無窒礙. 龜山所謂‘參之爲九, 兩之爲六’, 乃康節以三爲眞數, 故以三兩乘之而得九六之數. 今以一三五爲九, 二四爲六, 則乃是積數, 非參之兩之之謂. 且若此而爲九六, 則所謂七八者又何自而來乎? 疑亦未安.
“크게 처음과 끝을 밝힌다[大明終始]”는 것은 주역정씨전의 의미가 자체로 분명합니다. ‘밝다[明]’, ‘본다[見]’, ‘알맞게 한다[當]’고 말한 것이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양준도가 기록한 한 문단을 살펴본다면 더욱 분명할 것입니다. 하늘과 사람이 같은 이치이니 사람의 움직임은 바로 하늘의 운행입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뜻으로 움직인다면 사람일 뿐 하늘은 아닙니다. 오직 잠기고․드러나고․날고․뛰어오르는 것이 각각 그 때를 얻는다면 이 때문에 사람이 하늘에 알맞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천(當天)’이라고만 말하고 ‘어천(御天)’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늦거나 빠르거나, 나아가서나 물러가거나 하는 것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비록 ‘자신에게 달렸다’고 하지만 마음과 이치가 합일하니 애초부터 두 가지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마음을 중심으로 말했을 뿐입니다).
‘大明終始’, 傳意自明. 其曰明, 曰見, 曰當, 非人而何? 更看楊遵道錄中一段, 則尤分明矣. 天人一理, 人之動乃天之運也. 然以私意而動, 則人而不天矣. 惟其潛․見․飛․躍各得其時, 則是以人當天也. 然不言‘當天’而言‘御天’, 以見遲速進退之在我爾(雖云在我, 然心理合一, 初無二體, 但主心而言爾).
원(元)이란 작용의 단서로서 형통함[亨]․이로움[利]․바름[貞]의 이치를 갖추었습니다. 형통함․이로움․바름에 이르는 것 역시 원(元)이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원이 네 가지 덕을 포함하는 이유입니다. 만일 나눠서 말한다면 '원․형은 정성스러움이 통한 것이요[誠之通], 이․정은 정성스러움을 회복하는 것[誠之復]'이니 그 본체와 발용은 본시 고유한 측면이 달리 있어서, 구산처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발용으로 말한다면 원이 주(主)가 되고 본체로 말한다면 정이 주가 됩니다 ―.
元者用之端, 而亨․利․貞之理具焉. 至於爲亨, 爲利, 爲貞, 則亦元之爲爾. 此元之所以包四德也. 若分而言之, 則元․亨誠之通, 利․貞誠之復, 其體用固有在矣, 恐亦不得如龜山之說也. 以用言則元爲主, 以體言則貞爲主.
단사(彖詞)는 점쳐서 얻은 말이요, 단사를 풀이한 것[釋彖]은 부자께서 그 이치를 추론해서 풀이한 것입니다. ‘올바름을 편히 여기는 길함이 끝없는 땅에 호응한다[安貞之吉, 應地無疆]’는 구절을 점쳐서 얻은 말이라고 하는 것은 기록의 잘못인 듯 합니다.
彖詞乃卜筮詞, 釋彖則夫子推其理以釋之也. 以‘安貞之吉, 應地無疆’爲卜筮之詞, 恐記之誤也.
방백모에게 답함[答方伯謨]
【해제】이 글은 건도 7년(신묘, 1171, 42세) 직전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답하는 편지로 추정된다. 논어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자께서 꿈속에서까지 주공을 만나신 것은 바로 성인의 지극한 정성이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때로 그치시거나 때로 행하시면서도 전혀 막히거나 정체되는 법이 없으셨으니 또한 마음 속이 환하니 트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그막에 이르러 다시 (주공을 뵙는) 꿈을 꾸지 못한 것 역시 알만한 일입니다. 이처럼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소홀하거나 잊을 수 있겠습니까? 외물을 잊어버리는 것을 높은 경지라고 여기는 것은 노장의 치우친 학설입니다. 상채가 증점의 일을 논한 것이 좋은 것 같지만 그의 설명도 말류로 흘러가면 아마도 이런 폐단을 벗어나지 못할 듯 합니다.
夫子夢寐周公, 正是聖人至誠不息處. 然時止時行, 無所凝滯, 亦未嘗不灑落也. 故及其衰, 則不復夢亦可見矣. 若是合做底事, 則豈容有所忽忘耶? 以忘物爲高, 乃老莊之偏說. 上蔡所論曾點事似好, 然其說之流恐不免有此弊也.
“도에 뜻을 둔다”는 구절에서 ‘뜻을 둔다[志]’는 글자에는 예를 들자면 바라고 찾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대학의 ‘격물치지’는 곧 그와 같은 종류의 일입니다.
‘志於道’, ‘志’字如有向望求索之意. 大學格物致知卽其事也.
위나라 첩(輒)의 고사에 대해 구산은 영공(靈公)의 명이 있었다고 여겼습니다만 좌전과 사기 어디에도 이런 주장은 없습니다. 염유(冉有)와 자공(子貢)의 의심은 단지 적손(嫡孫)이 중통을 계승하는 정상적인 법도로만 말한다면 아마도 나라를 얻을 수 있는 이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백이 숙제가 나라를 버린 것이 부당하다고 하셨는데 이 주장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쳐두어야 좋겠습니다.
衛輒事龜山以爲有靈公之命, 左傳․史記皆無此說. 冉有․子貢之疑, 只以嫡孫承重之常法言之, 似有可以得國之理耳. 謂夷齊不當去, 此說深所未曉, 且當闕之.
‘의롭지 않은 부유함과 귀함’이란 구절에서 ‘부유함과 귀함’이란 천위(天位)와 천직(天職)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과 지위 및 봉양의 융성함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것들을 의로운 과정을 통해 얻는다면 성인은 경우에 따라 마치 본시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하되, 비루하거나 만족해하거나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의롭지 않은 과정을 통해 얻게 되면 나의 거친 밥과 물을 먹고 마시는 즐거움과 맞바꾸지 않으실 뿐입니다.
‘不義而富且貴’, 所謂富貴, 非指天位天職而言, 但言勢位奉養之盛耳. 此等物若以義而得, 則聖人隨其所遇, 若固有之, 無鄙厭之心焉. 但以不義而得, 則不以易吾飯疏飮水之樂耳.
‘부유함을 추구할 만 하다면’이란 구절은 문장의 의미로 추론해보면 사씨와 양씨의 설명을 좇아야 합니다. 동파의 설명도 이런 의미이어서 더욱 분명한 것 같습니다. 위 구절은 가설적인 말이고, 아래 구절이 올바른 뜻입니다. 아래 구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고 한 데서 위 구절의 말채찍을 잡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이(而)’․‘수(雖)’․‘역(亦)’자를 음미해 보면 문장의 강조점이 아래 구절에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富而可求’, 以文義推之, 當從謝․楊之說. 東坡說亦是此意, 似更分明. 蓋上句是假設之詞, 下句方是正意. 下句說‘從吾所好’, 便見上句執鞭之事非所好矣. 更味‘而’字․‘雖’字․‘亦’字, 可見文勢重處在下句也.
방백모에게 답함[答方伯謨]
【해제】이 글은 건도 7년(신묘, 1171, 42세) 직전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답하는 편지로 추정된다. 역과 맹자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올바름이 이 때문에 확립된다’는 말은 근사합니다. ‘전(全)’자는 온당치 않습니다. 다시 기다렸다 생각해 보십시오.
‘正所以立’近之, ‘全’字不穩當, 俟更思之.
제(齊)나라 왕이 소를 본 일을 두 단계로 나누어 보셨는데, 아직 발견하지 않았을 때는 함양(涵養)공부에 합당합니다. 오직 평소에 함양공부가 있어야만 발견이 분명하고 확충이 원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반드시 발견한 다음에야 그 미발(未發)의 이치를 보전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발(未發)일 때는 멍하니 잊고 있다가, 발(發)한 뒤에 조장하는 것이 됩니다.
齊王見牛兩段, 當未發見時, 便合涵養. 惟其平日有涵養之功, 是以發見著明而擴充遠大也. 若必俟其發見然後保夫未發之理, 則是未發之時漠然忘之, 及其發然後助之長也.
설류(泄柳)․신상(申詳)에 대해서는 예전에 이선생의 설명이 참으로 이와 같았습니다. 임씨[林]의 설명은 틀린 것 같습니다.
泄柳申詳, 向聞李先生說正如是, 林說恐非.
‘천지가 만물을 낳아 근본을 똑같이 만들었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예전의 설명이 옳습니다.
‘天之生物, 使之一本’, 前說是.
왕환에 대한 설명도 옳습니다.
王驩之說亦是.
‘주공의 허물’에 대해서는 옛 설명에만 의지할 뿐입니다.
周公之過只依舊說.
맹자가 “전날에 등용한 사람들 가운데 오늘 도망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제선왕[王]은 “어떻게 내가 그 사람이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버린단 말입니까?”라고 말했고, 이어서 맹자는 “현명한 이를 등용하면서 부득이한 것처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등용하거나 버리거나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 사람을 버리거나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만 살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孟子言昔者所進, 今日不知其亡, 故王問何以識其不才而舍之, 而孟子告以進賢如不得已. 蓋於進退之間無所不審, 非但使之致察於去人殺人也.
명도선생은 말했습니다. “성은 곧 기이고, 기는 곧 성이니 타고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또 “성을 논하면서 기를 논하지 않으면 갖추어지지 않고, 기를 논하면서 성을 논하지 않으면 분명하지 않다. (성과 기를) 둘로 간주하면 곧 옳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도 뚜렷하게 구별되는 두 가지 것이 아닙니다. 지난 날의 주장은 단지 성에 비록 다섯 가지가 있지만 하나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제대로 갈고 닦은 명료한 뜻이 없었습니다.
明道先生言: ‘性卽氣, 氣卽性, 生之謂也.’ 又云: ‘論性不論氣不備, 論氣不論性不明, 二之便不是.’ 大抵本然之性與氣質之性亦非判然兩物也. 前日之說只是論性雖有五, 然却亦不離乎一, 未有磨瑩澄治之意也.
어짐[仁]․깨달음[覺]에 관한 두 문단에는 서로 득실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논의가 정미해지면 질수록 말은 더욱 잘못되기 쉽상인 법입니다. 단지 이천선생의 설명을 따라서 ‘공(公)’이란 글자로 생각하고 헤아려보면서 극기복례의 실제 일에 종사한다면 오랜 후에 저절로 견해가 생기게 될 겁니다.
‘仁’․‘覺’兩段互有得失, 然論愈精微, 言愈易差, 不若只遵伊川先生之說, 以‘公’字思量而從事乎克復之實, 久當自有見也.
올바름이란 진실로 일의 근간입니다. 그래서 주역정씨전에서는 “형통함과 올바름의 체는 각각 그 일에 걸맞아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괘에서 나타나는 형․정의) 의미가 건괘․곤괘와 다르지 않지만, 각각 해당하는 일을 중심으로 말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밝힌 것입니다. 관괘[觀]의 육삼(六三)에 대한 주역정씨전의 전문을 보면 다만 ‘도를 잃는 데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하고 또 ‘도를 잃지 않기를 추구한다’고 했을 뿐 곧장 ‘도를 잃지 않았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正固便是事之榦, 故傳曰: ‘亨貞之體, 各稱其事’, 明其義與乾坤不殊, 但各主於其事而言耳.
觀六三傳, 但以爲未至失道而求不失道耳, 非直以爲不失道也.
귀신의 공능과 작용에 대한 설명은 옳습니다. 이씨의 설명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 자체로 일종의 의미가 있는 지도 모르겠고, 또 그 문장의 의미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鬼神功用之說得之. 李說不可曉, 不知如何自有一種意, 亦不解其文義也.
설시하는 방법에 따르면 양효는 모두 구(九)를 쓰지 칠(七)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순수한 양효로 이루어진 괘에서 이러한 범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설시해서 여섯 효가 모두 구를 얻은 경우에는 이런 말로 점을 치니, ‘무리지은 용을 본다’는 것은 이 여섯 효가 모두 구인 경우를 만났다는 말입니다. ‘머리가 없다’는 것은 양이 변해서 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강하면서서 부드러울 수 있기 때문에 길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께서도 이로 인해서 강하면서도 강함을 쓰는 도가 되는 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발명한 것입니다. 춘추좌전에서 채묵(蔡墨)은 “건괘가 곤으로 변한 것에 대해 “무리지은 용을 보나 머리가 없다. 길하리라”고 했습니다. 두예의 주 역시 이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揲法陽爻皆用九而不用七, 故於純陽之卦發此凡例. 凡揲而六爻皆九者, 則以此辭占之. ‘見群龍’, 謂値此六爻皆九也. ‘無首’謂陽變而陰也. 剛而能柔, 故吉, 而聖人因之以發明剛而不過爲用剛之道也. 左傳蔡墨云: ‘在乾之坤, 曰見群龍無首, 吉. ’杜注亦如此說.
“이를 데를 알아서 이르고, 끝마칠 데를 알아서 끝마친다”는 구절에 대해 이전에 설명한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정유서에서는 “이를 데를 알아서 이른다는 것은 앎을 위주로 한 것이요, 끝마칠 데를 알아서 끝마친다는 것은 끝마침을 위주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위 구절은 ‘이를 데를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지지(至之)’란 두 글자를 가볍게 여긴데 반해서 아래 구절은 ‘끝마칠 데를 안다’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종지(終之)’란 두 글자를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의를 보존한다[存義]’는 것은 이 이치를 보존해서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보존하는 데) 불과하다’는 뜻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知至至之, 知終終之’, 舊來所說未是. 遺書‘知至至之主知, 知終終之主終’, 蓋上句則以‘知至’爲重而‘至之’二字爲輕, 下句則以‘知終’爲輕而‘終之’二字爲重也. ‘存義’言其有以存是理而不失, 非有取乎不過之義也.
“큰 과일이 먹히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먹히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는 뜻이 있다는 것일 뿐 이니 유추 확장해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碩果不食’, 只不食便有復生之意, 不必云推廣而言也.
방백모에게 답함[答方伯謨]
【해제】이 글은 건도 7년(신묘, 1171, 42세) 혹은 그 직후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답하는 편지로 추정된다.
지난 번에 편지를 받고서 오래도록 회답을 보낼 인편이 없어 매번 벗들과 강론할 때마다 생각이 나곤 했을 뿐이었습니다. 글쓰는 게 번거롭고 초록이 부끄러워 최근에 다시 한 두 군데를 고쳤지만 아직 남들에게 보일만한 것은 못됩니다. 논의하신 몇 조목에서 당신께서 깊이 사색한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 이것은 제 소망에 깊이 부합하는 것입니다. ‘올바름이 이 때문에 지켜진다’는 대목에서 ‘지킨다[守]’는 글자는 정말이지 편치 못합니다. 다만 이 글자를 버리기도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으로 오시는 기회에 언급할 수 있다면 서로간에 반복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昨承致書, 久無便可報. 但每朋友講論, 未嘗不奉懷耳. 文字煩抄錄爲愧, 比復有更定一二, 且未可出以示人也. 所論數條, 足見思索之深, 甚副所望. ‘正所以守’, ‘守’字誠未安, 但此字難下, 不知曾爲思之否? 因來及之, 得以反復也.
성현의 입언(立言)의 뜻을 논한 것은 얕고 고루한 저의 잘못에 딱 들어 맞습니다. 대개 그 당시 돌아 보고 머뭇거리고 의심하는 폐단을 바로 잡고자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지나쳐서 병통이 되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요사이 일찍이 백공(伯恭)에게, ‘이는 우리 두 사람의 기질의 치우침이니 마땅히 바로 잡아 고쳐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옛사람이 다룬 가죽과 활시위의 교훈이 아마도 바로 이를 위해서 베푼 것 같습니다.
所論聖賢立言之意, 亦中淺陋之失. 蓋當時欲矯其顧慮遲疑之弊, 不自覺其過而生病耳. 頃嘗語伯恭, 此是吾二人氣質之偏, 當各加矯革. 古人韋弦之戒, 殆正爲此設也.
남녀와 음양에 대해 논하신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음양일 뿐입니다. 사람으로 나누면 남과 여이고, 일로 나누면 선과 악입니다. 어디를 간들 이런 분류 방식을 쓰지 못하겠습니까? 중(中)․정(正)․인(仁)․의(義)에 대해서 예를 들자면 ‘君子時中’, ‘順受其正’, ‘仁者愛人’, ‘義以爲質’과 같은 종류는 모두 주자(周子)의 뜻입니다. 다른 곳에 있는 다른 내용은 각각 주장하는 것을 따라 말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서로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자공(子貢)이 배우기를 물려하지 않는 것을 지혜[智]라고 여기고,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을 어짐[仁]이라고 여겼고, 중용에서는 ‘자기를 완성하는 것을 어짐이라 여기고, 사물을 완성하는 것을 지혜라고 여겼는데, 이런 종류 역시 추론이 가능합니다. 생각은 깊고 말씀은 분명한데도 가을 이전에는 생각건대 오실 수 없을 듯 하니, 인편이 있으면 때때로 의문스런 내용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所論陰陽男女之說則未然. 天地之間, 陰陽而已. 以人分之, 則男女也 : 以事言之, 則善惡也. 何適而不得其類哉? 中正仁義, 如‘君子時中’, ‘順受其正’, ‘仁者愛人’, ‘義以爲質’之類, 皆周子之意. 他處有不同者, 各隨所主而言, 初不相妨. 如子貢以學不厭爲智, 敎不倦爲仁, 而中庸則以成己爲仁, 成物爲智, 此類亦可推矣. 甚思晤語, 秋前想未能來, 有便時寄所疑爲望.
방백모에게 답함[答方伯謨]
【해제】이 글은 건도 9년(계사, 1173, 44세) 가을 9월 경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저는 지난 봄부터 여름을 지나도록 병도 많고 사고도 많아서 분주하게 출입하느라고 잠시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요즈음 술을 멀리하고 나서야 병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다만 일이 끝이 없어 편안히 쉴 시기가 없습니다. 또 ‘핑계를 대면서 벼슬에 나오지 않고 머뭇거리는 사람을 조사하라‘는 조정의 지휘에 내몰려 형편상 어쩔 수 없이 한 번 나가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앞을 보아도 걱정스럽고 뒤를 보아도 부끄러우니,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熹自春涉夏多病多故, 奔走出入不得少休. 近屛杯杓, 病才少愈. 惟是事端無窮, 未有寧息之期, 又迫朝命有‘託故稽留, 令憲府覺察’指揮, 勢或當一出. 前憂後愧, 未知所以爲計也.
백모(伯謨)와 매우 만나고 싶은데, 틈을 내어 한번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다가오는 달 초에는 숙모의 상여를 따라 정화로 돌아갔다가, 월말에나 돌아오면 길 떠날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택지(擇之)가 여기에 온 지 벌써 두달이 되었는데, 가을쯤에는 돌아갈 것입니다. 요즈음 때때로 강론을 합니다만 일 때문에 중단했다가 계속했다가 하면서 전일(專一)하지 못하는 것이 괴롭습니다. 만약 백모(伯謨)가 한번 와서 열흘 정도 즐겁게 지내게 된다면 기다리는 마음이 아주 위로가 될 것입니다(자징(子澄)도 여기에 도착했는데 3, 4일 정도 있다 떠납니다).
甚欲一與伯謨相見, 不知能乘隙一見過否? 來月之初, 須且扶送叔母之喪還政和, 歸來月末, 方得爲去計也. 擇之來此已兩月, 秋間方歸. 日間時有講論, 然苦人事斷續, 不得專一. 若伯謨能一來, 爲旬日款, 殊慰所望也(子澄亦到此 三四日而行).
장인이신 부판어른을 모시고 있다니 번거롭더라도 문안을 여쭈어 주십시오. 이 인편이 조금 급한 바람에 따로 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극명(克明)의 근황은 어떻습니까? 광택에는 다시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편지를 쓰고 또 조재에게 보내는 편지를 맡기고 싶은데 겨를이 없습니다. 번거롭더라도 일일이 제 뜻을 알려 주십시오. 혹 백모(伯謨)가 올 수 없다면 요즘 강학을 통해 생긴 의문점들을 돌아오는 인편에 대충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이군(李君)이 그곳에 도착하면 두루 돌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가가 없더라도 배움에 힘쓰시고 스스로를 돌보시기 바랍니다.
令舅府判侍次, 煩爲致問訊意. 此便少遽, 未及拜書. 克明爲况何如? 曾再往光澤否? 欲作書及附趙宰書, 亦未暇, 悉煩道區區. 或伯謨未能來, 近日講學所得所疑, 便還略告批喩. 李君到彼, 略周顧之爲幸. 未間, 千萬力學自愛.
방백모에게 답함[答方伯謨]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세) 여름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어제 왕변이 돌아와, 편지를 받고 지극히 위로가 되었습니다. 소식을 듣지 못한 지도 또 무척 오래입니다. 찌는 듯이 더운데 지내시기에는 좋으신지요. 일러주신 마음에 대한 주장[心說]은 아마도 편치 않은 것 같습니다. 공자께서 이 네 구절을 말씀하시면서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라는 말로 결론을 맺으셨으니, 이렇게 힘을 쓰는 것은 도리어 하나의 좋지 않은 마음을 묘사하는 것일 뿐이어서 온당치 않습니다. 보낸 편지에서 주장하신 내용에는 자체로 모순을 이루는 곳이 많으니 다시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장인이신 부판어른 모시고 계시면서 이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까? 한 번 물어모시면 반드시 지당한 설명을 하실 겁니다. 극명 및 여러 벗들에게도 모두 번거롭지만 이것을 물어보십시오. 성지는 돌아간 지 오래라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 만나시면 제 뜻을 전해 주십시오. 남헌이 그에게 편지를 맡겨서 보냈다고 하는데 빨린 인편을 찾아 제게 보내달라고 해주십시오.
昨王變還, 承書至慰. 不聞問又許久, 劇暑, 伏惟侍履佳勝. 所喩心說似未安. 蓋孔子說此四句, 而以‘惟心之謂與’, 結之, 不應如此著力, 却只形容得一箇不好底心也. 來書所說自相矛盾處亦多, 可更詳之. 令舅府判侍次嘗及此否? 試爲質之, 必有至當之說也. 克明及諸朋友皆煩以此詢之. 誠之聞歸已久, 不知今在甚處, 或見煩致意. 南軒云有書附渠來, 告早尋便示及也.
방백모에게 답함[答方伯謨]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답하는 편지로 추정된다.
며칠 전에 유위에게 보내는 편지 한통을 딸려 보냈는데 도착했을 겁니다. 요즘 (장인을) 모시고 강학하느라 학문이 더욱 깊어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전에 장인 부판형에게 글자를 써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이미 붓을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二月甲子’ 아래에 ‘삭(朔)’ 한 글자를 넣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속히 적당한 인편에 딸려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사이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象贊)」을 지었는데 늦었지만 써보냅니다. 번거롭더라도 장인께서 한 번 보시고 타당하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오래지 않아 그림이 완성되면 함께 의뢰해서 빨리 체제를 정해 간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적미(李積微)의 전서 한 본을 근래에 우연히 얻었습니다만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작은 기예에서조차 정치하게 다듬기가 이렇게 힘든데 그보다 큰 것이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연숭경의 편지를 받았더니 “요자회가 천지의 성이 곧 나의 성인데 어떻게 죽은 다음에 갑자기 사라지는 이치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대전집(대전집) 가운데 요순이 환생했다[託生]는 말로 증거를 댔다고 하는데 그곳의 사람들이 논박하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백모가 극명과 함께 한 말씀 하셔서 인편을 통해 가르침을 주십시오.
前日託兪尉附一書, 當達. 比日遠惟侍學增勝. 前所懇令舅府判兄作字, 不知已爲落筆否? ‘二月甲子’下更著一‘朔’字尤佳, 仍望早附的便示及也. 近作得六先生畫象贊, 謾錄去, 煩呈令舅一觀, 求其未當處. 旦夕畫成, 當幷以拜浼, 早得刊定爲幸耳. 李積微篆字墨本近偶得之, 似亦不滿人意. 小技難精猶如此, 况其大者乎. 得連嵩卿書云: ‘廖子晦言天地之性卽我之性, 豈有死而遽亡之理? ’因引大全集中堯舜託生之語爲證, 渠諸人未有以折之. 伯謨可與克明各下一語, 便中見喩也.
이 달 초에 한천에 도착했습니다. 숙경이 와서 열흘 여를 함께 있겠다고 약속했는데,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이 모임에 참석할 수 있을런지요? 다만 여러 학생들에게 학업을 그만두게 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 때문에 걱정일 뿐입니다.
月初至寒泉, 叔京約來相聚旬日, 不知能約諸同志者同爲此會否? 但恐不欲令諸生又廢業耳.
방백모에게 답함[答方伯謨]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답하는 편지로 추정된다.
지난 번에 유위(兪尉)와 숭화(崇化)에게 보낼 편지를 맡겼는데 모두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겸선(兼善)의 답장을 받았더니 부탁한 글은 이미 떠나 보냈다고 하니 생각건대 이미 오래 전에 도착했을 겁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장인어른에게 아뢰어 달라고 부탁을 드린 예전에 의뢰한 「경잠」의 주에 필요한 글자 ― 乾道癸巳二月甲子 新安朱熹作 建安呂○○書 ―에 대해서는 나중 편지에서 ‘甲子’ 아래에 ‘朔’자를 추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이미 써버렸는지 여부를 모르겠습니다. 이미 써버렸다면 빈 곳에 이 글자를 따로 써넣어도 무방할 듯 하니 종이를 바꿀 필요는 없겠습니다. 여섯 선생의 초상을 보내 드립니다. 귀찮더라도 함께 글씨를 청해 주십시오. 다만, 지난 번에 보낸 글에 대해 이미 정정을 거쳤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따로 기록해서 보내는데, 그 안에는 몇몇 고친 곳이 있습니다. 또 숙경이 「이천찬」의 뒤쪽 네 구절이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제 본 뜻은 이천의 말은 평이하면서도 심원해서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숙경의 생각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昨附兪尉及崇化兩書, 不知皆達否? 得兼善報云, 所要文字已發去, 想亦已到久矣. 前書託禀令舅, 向日所浼敬箴更求注字, ‘乾道癸巳二月甲子, 新安朱熹作, 建安呂囗囗書. ’後書欲‘甲子’下增一‘朔’字, 不知已爲寫否? 如已寫下, 卽於空處別寫此字不妨, 不必易紙也. 六先生象內去, 幷煩求揮翰. 但不知前日所呈本子曾經參訂否? 今別錄去, 內略有改更處. 又叔京疑伊川贊後四句不相應, 本意謂伊川之言平易深遠, 人所難識耳, 不知叔京之意如何?
그는 또 「횡거찬」 가운데 ‘도(逃)’자에 대해 의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행장」에서 “이에 옛 학문을 모두 버렸으니 이처럼 순수했다”고 한 것에 근거해 보면 과거에 잡다한 학문을 익힌 적이 있었던 것이니 이 글자를 쓰더라도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어떤 지 보아달라고 장인어른께 올려 주십시오. 만일 의심스러운 점이 없다면 즉시 글씨를 써주기를 빌고 인편에 딸려 돌려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간청했던 「경잠」도 함께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 찬은 그림의 위쪽에 한 벌을 쓰고 ― 반드시 지금 써보낸 글의 전체적인 방향과 순서를 따르십시오. 글은 전체적으로 그림의 얼굴이 바라보는 방향을 향해 쓰여 있습니다 ― 그림 아래 여백의 종이에도 한 벌을 쓰십시오 ― 전체적인 체제는 역시 써보낸 글의 체제에 의거하십시오. 이 글은 백간이 돌에다 새기고 싶다고 합니다. 만일 종이가 좋지 않고, 여백이 충분치 못하다면 번거롭더라도 종이를 바꿔주십시오. ― 숙경의 말대로 고쳐야 한다거나 혹여 따로 의문스러운 곳이 있다면 또 이것을 저기에 써넣는 것을 멈추고 인편이 돌려보내면서 내용을 보내주시고, 회답을 기다려 주십시오. 「경잠」의 ‘큰 근본이 이에 확립된다[大本乃立]’는 한 구절에서 ‘내(乃)’자는 과거에 어떤 글자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판본들이 서로 다르다면 ‘내’자로 고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주 못난 제 말로 인해 신묘한 붓끝을 더럽히는 격이라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동안 우연히 별다른 일이 없어 몇 편의 글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베껴 쓸 사람을 구하지 못해 다음 인편을 기다려야겠습니다. 지난 번 호공의 첩에 대해 썼던 발문은 번거롭더라도 한 부 보내 주시고, 아울러 발문 역시 이 인편에 딸려 보내주십시오. 이번 인편은 아주 적당한 사람이니 혹여 강론할 것이 있으면 이 사람 편에 보내셔도 됩니다.
渠又疑橫渠贊中‘逃’字, 據行狀云‘於是盡棄舊學 淳如也’, 卽是舊時嘗有雜學, 下此字似亦不妨. 更禀令舅看如何. 若無可疑, 卽乞爲書, 付此便回(幷所懇敬箴). 此贊就畫象上寫一本, 須依今寫去本, 首尾向背蓋隨面所向也. 就此界紙上寫一本. 首尾亦依寫去本. 此本伯諫欲刻石, 如紙不好, 界不勻, 卽煩爲易之. 如叔京之說當改或別有可疑處, 卽且留此畫於彼, 人回喩及, 俟却報去也. 敬箴‘大本乃立’一句, ‘乃’字不知舊作甚字? 恐舊本不同, 卽改作‘乃’字爲佳. 數以鄙語塵溷妙筆, 何愧如之!數日偶無事, 了得數篇文字, 未有人寫得去, 俟後便也. 向跋胡公帖, 煩錄一本, 幷跋語付此人回. 或有講論, 亦可付此便, 此便甚的也.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순희 2년(을미, 1175, 46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인편이 돌아와 편지를 받고서 위로가 됩니다. 요즘 어른을 모시고 지내시는 생활은 좋으십니까? 전서 글씨는 아주 좋습니다만 중간에 그렇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이미 봉투에 넣어 (남헌에게) 보냈습니다. 다만 남헌은 암벽에 새기려는 것인데 크게 쓴 글자라고는 하지만 충분치 못할까 걱정됩니다. 지금 남헌이 그곳을 지나고 있을 터이니 번거롭더라도 따로 지름이 한 자가 넘는 큰 글씨를 써서 성지에게 주어 그가 남헌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다만 붓의 움직임을 반드시 조금 두텁게써야 하는 것이, 절벽의 바위가 거칠어서 만일 글자나 획이 지나치게 가늘다면 식별하기 곤란할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 보낸 두 가지 각한 것은 꼭 돌려보낼 필요는 없고, 문갑 사이에 놔둬도 괜찮습니다. 새 봄에 지나가면서 만날 수 있다면 아주 좋겠습니다. 다만 정초에는 아마도 조금 집을 나서야 할 것 같고 숙경이 또 소무에서 모임을 갖자고 약속을 잡았으니, 그곳에서 서로 모일 수 있다면 더욱 편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 사이의 일이란 것이 어지러워 차분히 진행할 수 없을가 걱정일 뿐입니다. 하고픈 말은 많은데 곧바로 만날 수는 없이 부디 스스로를 자중자애하시기 바랍니다.
맹자에 대한 주장을 딸려 보냅니다. 그곳의 벗들 가운데 이 글에 있는 의심스러운 점들을 헤아려볼 사람이 있을런지요?
人還承書, 至慰. 比日遠惟侍履佳勝. 篆字甚佳, 然其間不能無病筆, 已封寄去. 但恐彼欲磨崖, 則所書大字或不堪用. 今其人過彼, 更煩別爲大書徑尺以上者封與誠之, 令轉呈南軒. 但筆路亦須稍重, 蓋恐崖石粗, 若字畫太細, 卽不可辨(4-2090)耳. 向寄二刻不必寄來, 只留几間可也. 許來春見過, 幸甚. 但正初恐亦須略出, 叔京又約相會於邵武, 若至此相聚尤便. 但恐人事擾擾, 不能從容耳. 所欲言者無窮, 未卽會面, 千萬自愛.
孟子說附還. 彼中朋友商量此書有疑處否?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순희 3년(병신, 1176, 47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로 추정된다.
지난 번 찾아주셨다가 헤어진 지 어느 덧 몇 달이 지나 보고픈 마음만 깊습니다. 요즘 늦 봄에 어른을 모시고서 학문을 닦는 것은 더욱 건승하신지요? 더불어 있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떤 종류의 공부를 하시고 계시는지요? 일러줄만한 것이 있으면 글로 일러주시면 좋겟습니다. 저는 최근에 한 번 운곡을 가서 10여일을 머문 적이 있습니다. 벗들이 와서 함게 모여 때때로 조금이나마 강론을 했는데 대부분 옛날의 주장 가운데 지나치게 고원한 것을 쫓아가 바로잡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극명(饒克明)․덕병(德柄: 黃謙)에게는 모두 글을 보내지 못합니다. 번거롭더라도 뜻을 전해 주십시오. 직옹은 소식이 있습니까? 글을 쓰고 싶어도 겨를이 없으니 다음 인편을 기다려야겠습니다. 제지에게 얼마간의 서책이 있어서 그곳에 가서 팔고 싶은 모양입니다. 인도해 줄만한 곳이 있으면 대충이나마 힘써 주신다면 아주 좋겠습니다. 장사의 사람은 돌아갔는지요?
昨承枉顧, 別遽累月, 馳向深矣. 比日春晩, 狀惟侍學增勝. 所與處者爲誰? 見作何等工夫? 有可以見告者, 便中及之爲幸. 近嘗一至雲谷, 留十餘日. 朋友來集, 隨分有少講論, 大率追正舊說之太高者爲多也. 克明․德柄皆未及書, 煩爲致意. 直翁聞問否? 欲作書亦未暇, 俟後便也. 濟之有少文字, 欲至彼粥之. 有可爲鄕導處, 幸略爲致力, 幸甚. 長沙人歸未耶?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순희 3년(병신, 1176, 47세) 이후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로 추정된다.
헤어진 후에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만 인편이 없어 회답을 못드렸습니다. 지금껏 오래도록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그리워하는 마음 헤아릴 길 있겠습니까! 요즘 들어 날씨가 무척 덕습니다. 어른을 모시고 지내시는 데 편안하신지요. 저는 전과 다름 없이 늙고 쇠약한지라 무실을 조문하러 가고 싶지은데도 지금껏 못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내 글이나 보내는 지경을 벗어나지 못할 듯 한데도 다시 예전처럼 미적대며 사람을 보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눈 앞의 모든 일들의 사람의 뜻을 꺾고, 한낮의 더운 때가 되면 두 눈이 거의 사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 지은 평보의 여러 작은 시들은 아주 좋습니다. 장진주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시를 청하는데 너무 게으르고 좋은 생각도 없어서 답답합니다. 그는 본래 위현(韋賢)과 관련된 말을 빌려다 전각의 이름을 붙이려는 것인데 그의 뜻을 조금은 훼손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어떤 책을 읽으십니까? 지난 번에 상당히 과거의 인습을 따르는 병폐가 드러났으니 마땅히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못난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계통은 병인 깊은데도 억지로 건양엘 가서 묘소를 손보려 한다는데 며칠 동안 편지를 받지 못해 근황이 어떤지를 모르겠습니다. 들리는 소식에는 결국 소무를 지났다고 하는데 어떤 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을 보내면서 원래는 자세하게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마침 뜻과 생각도 좋지 앟아서 급하게 이렇게 덧붙이느라 품은 생각의 한 두 가지조차 다 말하지 못합니다. 계극과 좌경(佐卿: 趙善佐)은 모두 군을 다스리는 관직을 얻었다는데 계극은 여전히 궐석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좌경은 관직에 부임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나시거든 너무 피로해서 편지를 뛰우지 못한다고 제 뜻을 전해 주십시오. 더위가 시작됩니다. 몸조심 하십시오.
別後一得手書, 亦無便可報. 今復久不聞問, 懷想可量! 比想劇暑, 侍履佳慶. 熹衰悴如昨, 欲往弔茂實, 至今未能. 不免且遣人致書, 亦復因循, 不能得遣. 蓋目前百事敗人意, 當此午暑時, 兩眼幾不復可視物也. 向見所作平父諸小詩甚佳, 章辰州爲人求詩, 懶甚, 無佳思, 輒以奉煩. 渠本取韋賢語名閣, 須略點破也. 近讀何書? 向見頗有因循之病, 更宜勉彊. 區區所望於賢者, 不但如此而已也. 季通病甚, 彊起如建陽料理墳墓. 數日不得書, 不知爲况如何. 聞欲遂過邵武, 不知是否. 遣此人本欲子細作書, 適意思不佳, 草草附此, 殊不及所懷之一二. 季克․佐卿皆已得郡, 季克待闕否? 佐卿想便赴官也. 因見致意, 倦甚, 未及拜狀也. 方暑自愛.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순희 3년(병신, 1176, 47세) 10월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저는 여기서 조금 안정되었습니다. 사면장에 대한 회신은 없습니다만 여러 사람들이 이미 허락을 뜻을 내비췄으니 장이 내려오면 청을 이루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난 번에 말했던 백공은 혼례일은 편지로 물었더니 그 형제들이 회답을 보내왔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고 정숙하고 착하며 가난을 편히 여기고 친족들에게 화목하기만을 원할 뿐 다른 것은 계산치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거기에 인내심 많고 조용한 성격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 이미 모든 것을 무실에게 맡겼고, 또 대충 주좌에게도 말해서 조용하게 처리하되 백모와만 상의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7~80% 이상 성사될 성 싶으면 그 즉시 의사 타진은 그만두고 무실에게 부탁해서 사람을 시켜 알려 주십시오. 부디 깊이 신경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실(茂實)․본중(仲本: 黃瀚)은 어제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산을 오르지는 못했지만 조용히 앉아 이틀간 말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자못 좋았습니다. 본중이 「복재기(復齋記)」를 부탁해서 이미 초벌을 보냈으니 반드시 살펴봐 주십시오. 우사(虞祠)의 각을 보내 왔는데 크기가 아주 커서 문장이 제대로 걸맞지 않고 전서의 편액에도 다소 어긋남이 있을 뿐입니다. 다른 여벌이 없어서 다른 것을 얻기를 기다렸다 나눠서 보내드려야겠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귀찮게 글자를 써달라고 한 것은 인편 중에 보내주시면 좋겠고, 보관해 둔 물건들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 계통(季通)은 결국 집안에 우환을 당했으니 궁핍한 사정이 염려됩니다. 그곳의 장례치루는 일은 어떻습니까? 형세상 요거(堯擧)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본중이 떠났을 때 딸려 보낸 편지는 이미 보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일은 그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熹此粗安, 免章雖未報, 然諸公已見許, 章下必遂請無疑也. 前日所說伯恭昏事, 以書問之, 得其兄弟報字, 只要年長淑善, 安貧睦族, 他所不計. 以吾輩度之更須耐靜. 已悉以屬茂實, 亦略與周佐說來, 祝其密之, 只與伯謨商量. 若有七八分以上可問, 卽爲微扣之, 却託茂實專人來報也. 千萬留意, 至祝至祝!茂實․仲本前日到此, 不及登山, 然却得靜坐兩日說話, 頗款. 仲本託爲齋記, 已爲草寄, 當必見之也. 虞祠刻已寄來, 規模甚大. 文固不稱, 篆額似亦差小耳. 未有別本, 俟續得之當分去也. 前書所煩作字, 便中示及爲幸, 置物亦然. 季通竟罹家難, 窘迫可念. 彼中葬事如何? 勢須俟堯擧復來耳. 仲本別時所寄聲奉聞者想已發之, 此不可已也.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순희 3년(병신, 1176, 47세)과 순희 4년 사이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로 추정된다.
지난 번에 먼 곳까지 찾아주신 것은 정말이지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별 후에 망망하더니 인편이 돌아와 소식을 듣고서야 요즘 어른을 모시고 잘 지내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저는 시든 채로 슬픈 생활이 전과 다를 것이 없어 말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아껴주시고 권면하시는 뜻에는 깊이 감사드리지만 일을 당해 상처받은 마음이 갑자기 평온해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수저와 젓가락, 옷과 이불은 모두 잘 받았습니다. 계통에게서 여러 번 편지를 받았는데, 결정된 논의도 없다지만 서쪽으로 떠날 기약도 알 수 없으니 과연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써보내 주신 구강에 대한 문자는 깊이 사람의 뜻을 발흥시킵니다. 대체는 다만 이와 같다면 득실은 이미 스스로 아실 것입니다. 다만 그 실상과 거짓, 곡절의 변화를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저들이 혹 우리들을 정말로 속일 수 있다고 여기게 될까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응당 눈밝은 이들이 있을 것이니 이 또한 처음부터 변론하기에는 충분치 못한 일입니다. 백공의 편지를 받았는데 회계에 도착해서 백간(伯諫)이 자신이 배운 내용을 지키는 것이 감옥으로도 깨트릴 수 없는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이처럼 독실하게 신뢰하다니 또한 참으로 가상할 뿐입니다. 상덕에 보내는 두 통의 편지는 귀찮더라도 전해 주십시오. 날마다 서로 모일 것이니 강론한 내용에도 응당 더욱 단서를 얻었을 것입니다. 인편을 통해 한 두 가지를 가르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손거원이 이곳을 지나게 되어 이 글을 딸려 보냅니다. 이만 줄입니다.
일을 도운 다음에 이곳에 한 번 와서 이 사람의 울적한 마음을 위로해 주실수 있을런지요? 상덕의 관이 지난 이후에 따로 학생들이 와서 따릅니까? 인편을 통해 속히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昨承遠訪, 愧感良深. 別去惘惘, 人還奉告, 聞比日侍履佳勝, 爲幸. 熹悲悴如昨, 無可言. 甚感愛念寬勉之意, 然觸事傷懷, 亦未能遽平也. 匕筯衣被幷領. 季通屢得書, 殊未有定論, 然亦未聞其西去之期, 不知果如何爾. 錄示九江文字甚發人意, 大體只須如此, 得失已自可見. 但恐未足以盡其情僞曲折之變, 彼或以吾曹爲眞可欺耳. 然世間自當有明眼人, 此亦初不足辨也. 得伯恭書云, 到會稽見伯諫守其所聞, 牢不可破. 自信之篤如此, 亦良可尙耳. 常德二書煩達之, 想日相聚, 所講論當益有緖, 因便示一二爲幸. 因孫巨源見過附此, 草草. 襄事之後, 能一來顧, 慰此幽鬱否乎? 常德之官後, 別有學徒相從否? 因便早及之爲望.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순희 7년(경자, 1180, 51세) 초가을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어제 편지를 받았지만, 인편이 바삐 돌아가는 바람에 회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요즘 가을 날씨가 덮습니다. 지내시기에는 평안하신지요. 영복(永福)에서 최근 소식을 들었습니까? 이곳에 있는 제 형편은 정노에게 보낸 편지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이후로도 끝내 비가 오지 않아 사방에 기도를 드리느라 평생동안 하고싶지 않았던 것을 모두 해 보았습니다만 결국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초례를 위한 제단을 차리는 곳 마다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천사(天師) 앞에 나가 향을 살랐는데, 그 때마다 후한서의 기록들이 떠올랐으니, 또한 무슨 연고로 효과가 있겠습니까!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준비는 힘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오늘날 상하가 서로 돌보지 않으니 비록 이미 주장으로 중앙의 여러 기관들에 보고하기는 했습니다만 다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 날의 의리로는 관직을 떠나려는 것은 부당하지만 만일 제가 청한 내용대로 되지 않느다면 그 때는 그만 둘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헌사(憲司)가 함께 처리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또 듣기로는 신주(信州)의 임자방(林子方: 林枅)을 탄핵했다고 하니, 이 역시 명독(鳴犢: 竇鳴犢)을 죽였다는 소식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간혹 이것 때문에 떠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며칠 전에 조수(趙帥) 형제에게 쓴 글을 정서해서 한 번 치전을 하고자 했는데, 지금 이런 재앙을 만났으니 모든 일을 그만두고 빈 글만 보냅니다. 도달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거인(居仁)은 누구의 상을 당했습니까? 어제 편지를 쓰려 했는데, 우연히 보내온 편지를 발견하지 못해서 붓을 들지 못했으니, 편지를 발견하면 다시 회답하겠습니다. 건안으로 옮긴다는 것은 정말이지 편합니다만 이곳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걱정입니다. 가을 날씨가 서늘해 져서 올 수 있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다만 천거되어 조정에 이름이 보고되었다면 또 올 수 없을까 걱정일 뿐입니다. 여러가지 판각은 이미 보냈으니 도착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 진중하시기 바랍니다.
前日承書, 人還匆匆, 不能作報. 比日秋暑, 德履佳勝. 永福收近信否? 熹此(4-2094)諸况, 如前所與廷老書. 此後竟未得雨, 祈禱萬方, 平生所不欲爲者皆爲之, 亦卒無驗. 然每設醮處, 爲人引去天師前燒香, 卽記著後漢書, 此亦何緣有效也. 救災之備不敢不勉, 但今日上下不相恤, 雖已具奏及申省部諸司, 未知復如何也. 在今日義不當求去, 萬一所請不從, 則亦可以已矣. 但憲司有相料理之意, 今日又聞其劾信州林子方, 此亦是殺鳴犢底消息. 旦夕或自以此去不可知耳. 數日前寫得趙帥兄弟書, 因欲致一奠, 今爲此災傷, 凡百皆廢, 且往空書, 因見幸略及之也. 居仁遭誰喪? 昨日欲作書, 偶檢來書不見, 下筆不得, 因書更報及也. 搬過建安良便, 恐此間動未得, 秋凉能來爲幸. 但恐薦送, 卽又不容來耳. 諸刻昨已遣去, 想已達. 未相見, 珍重.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2년(병진, 1196, 67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한문고이에서 큰 글씨는 국자감의 판본을 위주로 하고 차이나는 부분은 주로 표기하고 ― 예를 들자면 ‘○○판본에서는 ○자를 ○로 썼다’는 형식으로 표기합니다 ― 옳고 그름을 가리며 ― 예를 들자면 ‘지금 살펴보면 ……’이라는 형식으로 표기합니다 ― 취사 선택을 판단하고 ― 국자감 판본이 이미 단정한 것을 따르는 경우에는 ‘○○판본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여러 다른 판본들이 각기 다르면 ‘모두 옳지 않다’고 합니다. 국자감의 판본에서도 결정하지 못한 부분은 각각 ‘의심컨대[疑]’라는 글자를 덧붙입니다. 다른 판본에서 이미 결정이 난 경우에는 ‘결정은 ○○판본을 따라야 한다’라고 하고, 다른 판본에서도 미정인 경우에는 ‘또 ○○판본을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간혹 국자감 판본과 그 외 다른 판본이 모두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비워두어야 한다[當闕]’고 하거나 혹은 ‘자세하지 않다[未詳]’고 합니다 ― 논변하기에 불충분한 부분은 짧게 주를 달 뿐 구태여 논변해서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지는 못하지만 한문고이는 반드시 이와 같이 해야 주리가 설 것이니 다시 자세히 살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韓文考異大字以國子監版本爲主, 而注其同異, 如云‘某本某作某’. 辨其是非, 如云‘今按云云’. 斷其取舍, 從監本者已定, 則云‘某本非是’. 諸別本各異, 則云‘皆非是’. 未定則各加‘疑’字. 別本者已定則云‘定當從某本’, 未定則云‘且當從某本’. 或監本․別本皆可疑, 則云‘當闕’, 或云‘未詳’. 其不足辨者略注而已, 不必辨而斷也.
熹不及奉書, 考異須如此, 方有條理, 幸更詳之.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2년(병진, 1196, 67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사람을 통해 편지를 받고서 요즘 잘 지내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이 됩니다.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일은 그만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새 차까지 보내주신 은혜가 두터워 너무 감사합니다. 병든 몸은 이렇게 덥고 습한 데도 요행이 병이 일어나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도 그런데로 괜찮습니다. 다만 원하는 것은 또 이와 같을 수만 있다면 견책이 있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일 뿐 다른 것은 계산할 것도 못됩니다. 한문고이는 이미 잘 베껴 썼습니까? 베껴쓸 사람이 없다면 원선(元善)에게 부탁해서 한 두 사람의 글쓰는 서리를 빌릴 수 있을 터이니 빨리 써서 보내 주십시오. 다만 이 한 가지 일이 조금씩 시간을 넘기고 있으니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 공이 염전에서 시험친 말을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便中承書, 具審卽日所履佳勝, 爲慰. 親闈安問想不輟收也. 惠及新茶, 極感厚意. 病軀更此蒸濕, 却幸不動, 飯食亦粗喫得. 只願且得如此, 則譴何之及有以當之, 他不足計也. 韓文考異已寫成未? 如無人寫, 可懇元善轉借一二筆吏, 速寫以來. 只有此一事稍梢趨時, 不可緩也. 聞公試簾前語否?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2년(병진, 1196, 67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요즘도 잘 지내시리라 생각합니다. 단오에는 반드시 한 번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한문고이는 귀찮더라도 빨리 손을 합쳐 써 보내주시되, 이 사람에게 딸려 보내주시면 더욱 다행이겠습니다. 듣기로는 장인과 사위[氷玉]가 모두 위학(僞學)의 당적에 들었다고 하는데 이를 어쩌겠습니까? 수괴된 자는 스스로 도모할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을 위해 마음 속 깊이 걱정할 뿐입니다. 인편 때문에 이만 줄입니다.
比想所履日佳, 端午莫須一歸否耶? 韓考煩早爲幷手寫來, 便付此人尤幸. 聞氷玉皆入僞黨, 爲之奈何? 爲之魁者不暇自謀, 特爲賢者慮破頭耳. 因便草草.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2년(병진, 1196, 67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마침 사람을 보내 글을 보내려 했는데 불현듯 편지를 받게 되어 위안이 됩니다. 유공의 편지는 이미 받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손이 글씨를 쓸 수 있게 되면 함께 회답을 보내겠습니다. 다만 그의 떠날 기약이 어느 때일찌 알 수는 없지만 회답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습니다. 한문고이는 받았습니다. 지금 속히 보내는 것을 다시 자세하게 교열해서 첨서해 주십시오. 마침 삼구에서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쇄달(瑣闥)이 진원(陳源)을 논한 것 때문에 외직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첨경(詹卿: 詹體仁)을 만나거든 귀찮더라도 일러 주십시오. 인편이 돌아가느라 이만 줄입니다.
양자(揚子) 서문에 ‘冠乎群倫’ 운운한 대목이 있습니다. 의리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야 본시 가소롭습니다만 출처가 어디냐고 묻는 사람도 우활하다 하겠습니다.
適方遣人奉簡, 忽承手示, 爲慰. 幼恭書已領, 少須手可作字, 幷奉報章. 但不知其行期在幾時? 幸批報也. 韓考已領, 今早遣去者更煩詳閱籤示. 適有人自三衢來, 云瑣闥以論陳源故補外, 見詹卿煩及之. 人還草草.
揚子序篇有‘冠乎群倫’之云, 以爲無義者固可笑, 而問人出處者亦疏脫也.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2년(병진, 1196, 67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를 받고서 잘 지내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습니다. 한문고이를 교정한 것은 모두 좋습니다. 최근 따로 한 가지 사례를 더 다듬었는데 조금 더 분명합니다. 오부의 사람이 도착하는 날 이곳을 지나다가 2, 3일 묶게 되면 좋겠습니다. 동행한 무리가 먹는 문제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백반(白飯)과 청추(靑芻)는 마련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겸하여 다시 물어 볼 것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편이 돌아가느라 이만 줄입니다.
承簡, 喜聞佳勝. 韓考所訂皆甚善, 比亦別修得一例稍分明. 五夫人到日, 能略過此少款一二日爲幸. 勿以徒御爲憂, 白飯靑芻不難辦也. 兼更欲有所扣耳. 人還草草.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2년(병진, 1196, 67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저는 금년 들어 병이 오래가고 무척 쇠약해졌다가 이 달에 들어서야 먹고 마시게 되었고, 또 적(炙)으로 인해서 비혈과 신혈이 자주 튼튼해졌으니 아마도 상당히 힘을 얻은 듯 합니다. 한문고이는 처음부터 한 번 정돈을 했습니다. 지금 또 10권을 붙였으니 귀찮더라도 보아주시고, 의심나거나 잘못된 곳을 뽑아 따로 표시해주시고, (10권) 아래 권들과 바꿔서 보내주십시오. 다만 제 생각은 다시 따를만한 정자가 결정되기를 기다린 다음에 수정해 나가되, 지금 결정한 판본을 위주로 해서 여러 판본들의 득실을 아래에 주로 단다면 방송경의 판본[方本]은 저절로 그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니, 변론하는데 지장도 없고, 체제의 면모도 정당해서 뚜렷하게 배척한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겨를이 없을 뿐입니다 ― 그 사이에 결정치 못한 곳이 있는데 다시 자세하게 검토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 기억하기로는 적계선생(籍溪先生: 胡憲)이 예전에 「진희이묘표(陳希夷墓表)」를 베껴 쓴 적이 있다는데―사람들은 여동빈(呂洞賓)이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보았습니까? 저는 찾아보아도 발견하지를 못했습니다. 귀찮더라도 자단(子端)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판본이 있을 터이니 빌려다 한 벌 베껴서 보내주십시오. 사당의 편액은 명반수로 물들인 종이에다 아침 저녁으로 베끼고 있으니 이를 좇아 보내드리겠습니다. 제가 바랬던 감실의 편액은 인편을 통해 빨리 보내주기를 바랍니다. 날씨가 좋기는 한데 며칠 동안 계속될 수 있을까요?
熹今年之病久而甚衰, 此月來方能飮食, 亦緣炙得脾腎兪數壯, 似頗得力也. 韓考已從頭整頓一過, 今且附去十卷, 更煩爲看, 簽出疑誤處附來換下卷. 但鄙意更欲俟審定所當從之正字後, 却修過, 以今定本爲主, 而注諸本之得失於下, 則方本自在其間, 亦不妨有所辨論. 而體面正當, 不見排抵顯然之迹. 但今未暇耳. 緣其間有未甚定處, 須更子細爲難也. 記得籍溪先生曾寫得陳希夷墓表云是呂洞賓所撰. 見與, 偶尋不見. 煩爲問子端, 恐有本, 卽爲寫一本附來也. 廟額方礬得紙, 旦夕寫得, 自從此寄去. 所求龕額, 便中望早寄也. 天氣甚好, 能下來數日否?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3년(정사, 1197, 68세) 봄 정월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헤어진 지 열흘여가 지났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에는 바빴고 또 병이 일어나 갑자기 돌아오는 바람에 존부인에게 인사도 드리지 못했으니 죄송스런 마음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대가가 와서 듣기로는 슬프게도 자단(子端)이 결국 자식의 상을 당했다니 정신이 없습니다. 글을 보내서 조문하지는 못합니다만 제 마음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귀찮더라도 전서 수십 글자를 종이 두 장에 나눠 보내드립니다. 각각 제식이 있으니 붓을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서에 보내 암석에 각을 하려는 것이고, 인편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시간을 길게 끌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돌아가는 편에 딸려 보낼 수 있도록 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꼭 크게 써야겠다고 작심할 필요는 없고 다만 비유하자면 가볍게 기분내키는 대로 쓰듯이만 한다면 정신은 완전하고 기는 안정되어 자연히 글을 쓰려는 뜻에 부합하게 될 것입니다. 또 전서로 쓴 64괘의 명칭 및 한 등급 작은 수십 글자를 써주시길 바라니, 그 계지(界紙)는 또 한 통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청컨대 함께 써 주십시오. 베껴 쓸 글자는 각각 봉해서 보내 드립니다. 제가 갑자기 들은 소식에 의하면 체직하고 사관직도 그만두라는 명이 있었다는 데 아직 접수하지는 못했습니다만 황공한 마음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어느 때나 와서 서로 며칠 동안 함께할 수 있을까요? 인편을 통해 맘을 전하느라 이만 줄입니다.
대가는 오늘 이미 떠났습니다. 빨리 가라고 훈계는 했습니다만 비가 뒤집힐까 걱정입니다. 편지로 인해 다시 재촉해도 괜찮을 겁니다.
別近旬日, 不審爲况復何如? 前日匆匆, 又以病作遽歸, 不及拜尊夫人, 皇恐不可言也. 大哥來, 聞子端竟有哭子之悲, 深爲惘然. 且煩致意, 不及附書爲問也. 欲煩篆數十字, 納去紙兩卷, 各有題識, 幸便爲落筆. 欲寄江西, 刻之巖石, 有人在此等候, 不能久也. 千萬便付此人回. 仍不須大作意, 只譬如 等閑胡寫, 則神全氣定, 自然合作矣. 更欲篆六十四卦名及一等小字數十, 其界紙又作一封, 請幷書之. 所寫之字, 各在封內矣. 熹忽聞有鎨職罷祠之命, 尙未被受, 不勝皇恐. 何時可來相聚數日耶? 專人馳布, 不宣.
大哥今日已行矣, 已戒令速去, 恐碑倒也. 可因書更促之.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3년(정사, 1197, 68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한문고이의 체제와 초사의 한 구절에 대해 논하고 있다.
첨경(詹卿)이 어제 이곳을 지났으니 아직 남림(南林)에 있을 것이요, 다시 2, 3일 정도라야 떠날 듯 하니, 길을 떠나기 전에 그를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한유의 문집은 외집 및 순종실록과 함께 고이로 만들려 하는데 백모가 능히 이런 공덕을 원만히 이룰 수 있겠습니까? ‘宓子賤’에 대해 홍경선(洪慶善: 洪興祖)은 초사보주(楚辭補注)에서 안지추(顔之推)의 설명을 인용해서 (복(宓)자는) ‘복(伏)’이라고 했고 제남의 복생(伏生)은 그 뒤에 같은 주장을 했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詹卿昨日過此, 尙在南林, 更兩三日方行. 不出見之否? 韓文欲幷外集及順錄作考異, 能爲員滿此功德否耶? ‘宓子賤’, 洪慶善楚辭補注中引顔之推說云是‘伏’字, 濟南伏生卽其後也. 如何如何?
방백모에게 보냄[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3년(정사, 1197, 68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지난 번에 편지를 받고서 위안이 되었습니다. 다만 원흥(元興: 周明作)과 우리 작은 애를 만났는데 둘 다 ‘백모(伯謨)가 상당히 노쇠하고 초췌해졌습니다’라고 말하던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입니까? 생각건대 지금은 이미 건강해졌겠지요. 마땅히 다시 조절하면서 자신을 아껴야 할 것입니다. 뜻을 강하게 가지기만 한다면 기운은 저절로 (뜻을) 따라서 사소한 바깥의 사특(邪慝)함이 해칠 수가 없습니다.
昨辱惠書, 爲慰. 但見元興及小兒皆說伯謨頗覺衰悴, 何爲如此? 今想已彊健矣. 更宜節適自愛, 但彊其志則氣自隨之, 些小外邪不能爲害也.
제 병든 몸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러 가지 증상들도 때때로 왔다 갔다 합니다. 다만 일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날 뿐 결국 보약을 많이 먹는다 해도 낫지는 않을 겁니다. 자제분은 이미 돌아갔다고 들었습니다. 한문외집고이를 가지고 돌아갔습니까? 인편을 통해 빨리 보내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집은 이미 베껴 썼고 이것을 구해서 보충하게 되면 다시 보내 자세히 교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중(莊仲: 沈僩)이 교점을 한 것이 자못 상세합니다. 또 요즘 초사(楚詞)를 보고서 초록한 것이 몇 권 됩니다. 세상의 문자들이라는 것이 착오가 없는 것이 없으니 한탄할 만한 일입니다.
熹病軀粗遣, 諸證亦時往來, 但亦隨事損益, 終是多服補藥不得. 令子聞已歸, 韓文外集考異曾帶得歸否? 便中得早寄示, 幸幸. 正集者已寫了, 更得此補足, 須更送去詳定. 莊仲爲點勘, 已頗詳細矣. 近又看楚詞, 抄得數卷. 大抵世間文字無不錯誤, 可歎也.
간판공사 조씨(趙氏)의 깨우침은 저를 외면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이런 험난한 상황을 무릎쓰고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에서 그의 마음 속에 세속의 사람들과 남다른 뜻을 갖고 있음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대부분의 (호의나 부탁을) 사절하기 때문에 유독 그만을 위해 제 맹세를 깨트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바라건대 이런 간절한 마음을 저를 위해서 말씀해 주시고, 또 그 뜻에 감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른 날 죽기 전에 위학을 금지하는 법이 좀 느슨해지면 서로 학문에 힘 쓸 수도 있겠습니다. 이곳에 머물게 된 인편으로 인해 글을 쓰느라 이만 줄입니다.
趙幹之喩荷其不彼, 冒此巇險, 尤見所存異於流俗之意. 但憂畏之餘, 多所謝絶, 固不容獨破戒. 幸爲道此區區, 多謝其意可也. 異時未死之間, 禁網稍寬, 則或尙可勉彊也. 因便寓此, 草草.
방백모에게 보냄 與方伯謨
【해제】이 글은 경원 3년(정사, 1197, 68세)에 방사요(方士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어제 부쳐주신 「여공주의(呂公奏議)」를 받았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모시고 지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제분이 과거를 치루는 것도 반드시 뜻대로 될 것입니다. 듣기로는 보름 하루 전에 방을 건다고 하는데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바랍니다. 「주의」는 한 번 상쾌한 기분으로 읽었더니 아주 좋습니다. 조정에 이런 의론이 사라진 지 60년이나 되었으니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마지막 권에 「걸조정대거책(乞詔定大擧策)」 한 편이 제대로 끝마쳐지지 않았고 「정책대거(定策大擧)」 한 편은 전체가 누락되었으니 다시 보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문고의의 후권은 어떻습니까? 빨리 검토해서 보여주시면 아주 좋겠습니다. 늙고 병든 저는 이리저리 변해가느라 버틸 겨를이 없습니다. 요즘에 또 한 가지 이상한 증세가 생겼는데 산증과 비슷합니다. 게다가 중간에 간혹 배 속에서 기운이 끊어질 듯이 아프기도 하니 결국 어떻게 될른지는 모르겠고 우선은 가는 데로 맡겨둘 뿐입니다.
昨日承寄示呂公奏議, 至感至感. 比想侍奉佳慶. 令子程試必甚如意, 聞將以望前一日揭牓, 冀聞吉語也. 奏議得一怏讀, 甚幸. 朝廷無此議論六十年矣, 可爲慨歎也. 但末卷乞詔定大擧策一篇未竟, 而定策大擧一篇全無, 幸更爲補之乃佳耳. 韓考後卷如何? 得早檢示幸甚. 熹衰病百變, 支吾不暇, 近又得一奇證, 若寒疝者. 間或腹中氣刺而痛, 未知竟如何, 姑復任之耳.
양문숙(전)에게 답함 答梁文叔(瑑)
담대(澹臺)의 석각(石刻)에 대해 이미 명령을 내렸으니 고증을 상세하고 정밀하게 하는 것도 본디 하나의 공부입니다. 제도에 대해 간략하다는 말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흔히 물음이 번잡하고 자잘한 경우가 많은데, 배우는 사람이 우선할 것이 아닙니다. 혹 예부터 분석하여 판별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예컨대 논어의 ‘천승의 나라〔千乘之國〕’에 대하여 주석가들에게 두 가지 학설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어떻게 강제로 통하게 하겠습니까? 하물며 급히 해야 할 의리를 놓아두고 여기에 종사하여 설령 그 말의 뜻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요? 지난번에 어떤 사람이 역사서 보는 법에 대해 묻자, 제가 우선 경을 다스려서 성현이 자기를 닦고 남을 다스렸던 요체를 구한 뒤에야 역사서 부분에 미칠 수 있으며, 전해 오는 것을 보려고 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역사서를 보지 말라고 말해 줍니다.
澹臺石刻已領, 考證詳密, 亦自是一種工夫也. 略於制度之說, 不知謂何? 往往亦多是問得繁碎, 非學者所先. 或是從來剖判不得, 如論語‘千乘之國’, 注家自是兩說, 此等如何强通? 况又舍所急之義理而從事於此, 縱得其說, 亦何所用乎? 昨日有人問看史之法, 熹告以當且治經, 求聖賢脩己治人之要, 然後可以及此. 想見傳聞又說不敎人看史矣.
양문숙에게 답함 答粱文叔
일상생활의 공부는 이렇게 하시면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모름지기 실제로 공부해야지 말로만 이해한다면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이 선생(李先生: 李侗)의 뜻은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요한 가운데에 주재하여 존양(存養)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렇게 하는 것 또한 옳지 않습니다. ‘황극(皇極)’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보내주신 편지의 설명도 옳습니다. 대저 이 장은 “왕이 표준을 세운다.”는 구절 이하부터는 모두 왕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아서 크게 바르고 지극히 옳은 표준을 세움으로써 천하에 보여 천하를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치우침이 없고 기울어짐이 없다.”는 구절 이하는 반복적으로 찬탄한 것으로 황극(皇極)의 풍모를 말하였습니다. “황극에 대해 부연한 말” 이하는 근본을 미루어서 한 장의 뜻을 결말지은 것입니다. 전에 제갈성지(諸葛誠之)의 말을 보았더니, 대략 이와 같았지만, 그의 말에는 지나친 곳이 있습니다.
日用功夫如此甚善, 然須實下功夫, 只說得不濟事也. 李先生意只是要得學者靜中有箇主宰存養處, 然一向如此, 又不得也. 皇極之說, 來說亦得之. 大抵此章自‘皇建其有極’以下是總說人君正心脩身, 立大中至正之標準以觀天下, 而天下化之之義, ‘無偏無陂’以下乃是反覆贊歎, 正說皇極體段 : ‘曰皇極之敷言’以下是推本結殺一章之大意. 向見諸葛誠之說略是如此, 但渠說有過當處耳.
양문숙에게 답함 答梁文叔
알려주신 내용은 매우 좋습니다. 기도(幾道)와 서로 모여서 무슨 공부를 하시는지요? 요즈음 살펴보니, 맹자가 사람을 만나면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고 말하면서 요순(堯舜)을 일컬었는데, 이것이 제일 중요한 뜻입니다. 만약 이 부분에 대해 투절하게 보고 믿을 수 있다면 곧바로 성현이이서 다시 털끝만한 사사로운 사람의 욕심이 병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믿음이 이에 이르지 못했다면 맹자가 다시 두 번째 절목의 공부를 말하였습니다. 거기에서도 다만 성간(成覵), 안연(顔淵), 공명의(公明儀) 등에 대한 세 경우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이들처럼 의욕을 내어 용맹스럽게 정진하면서 일상생활에서 털끝만치의 사사로운 사람의 욕심이 자신에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으니, 이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이것에 대해 재빨리 떨쳐 일어난 경지가 있다면 비로소 공부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생깁니다. 그렇지 않다면 기름덩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얼음에 조각을 새기는 것처럼 참되게 힘을 쓸 곳이 사라집니다. 요즈음 안 것이 이와 같으니, 스스로 깨우친 것이 매우 힘을 얻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올리니 기도(幾道)에게 알려주어도 괜찮습니다.
示喩所處, 甚善. 不知幾道相聚作何工夫? 近看孟子見人卽道性善, 稱堯舜, 此是第一義. 若於此看得透, 信得及, 直下便是聖賢, 更無一毫人欲之私做得病痛. 若信不及, 孟子又說箇第二節功夫, 又只引成覵․顔淵․公明儀三段說話敎人. 如此發憤, 勇猛向前, 日用之間, 不得存留一毫人欲之私在這裏, 此外更無別(4-2102)法. 若於此有箇奮迅興起處, 方有田地, 可下功夫. 不然, 卽是畫脂鏤冰, 無眞實得力處也. 近日見得如此, 自覺頗得力, 與前日不同, 故此奉報, 可以呈幾道也.
양문숙에게 답함 答梁文叔
물음: 정강성이 말한 기와 백에 대해서 잡학변(雜學辨)에서 말하기를, “정(精)이 모이면 백(魄)도 모이고, 기(氣)가 모이면 혼(魂)이 모인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정(精)은 음기(陰氣)이니 귀가 듣고 눈이 보는 것이 곧 음정(陰精)이 하는 것이므로 백(魄)이라고 합니다. 혹은 백(魄) 가운데서 혼(魂)을 구하려고 하고 혼 가운데서 백을 구하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건대 기(氣)는 사람의 몸에 있는 것으로 양기(陽氣)는 혼이 되고 음기(陰氣)는 백이 되며, 숨을 마시고 뱉을 때와 눈과 귀로 보고 들을 때에 곧 몸 안의 혼과 백이 드러나서 쉽게 보일 따름입니다. 혼 가운데서 백을 구하고 백 가운데서 혼을 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鄭康成所說氣魄, 雜學辨云: ‘精聚則魄聚, 氣聚則魂聚. ’蓋精是陰氣, 如耳目之聰明, 乃陰精之所爲, 故謂之魄. 或欲於魄中求魂, 魂中求魄. 瑑竊謂氣在人之一身, 陽卽爲魂, 陰則爲魄, 噓吸聰明乃是一身之中魂魄之所發見而易見者耳, 恐不必於魂中求魄, 魄中求魂也.
대답 : 정밀한 기(氣)가 두루 흘러 한 몸 안에 가득 차 있으며 숨을 마시고 뱉을 때와 눈과 귀로 보고 들을 때 밖으로 드러나 쉽게 보인다는 것은, 진실로 보내 주신 편지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의 몸 안에 두루 흐르며 가득 차 있다고 한다면, 코가 냄새를 아는 것과 입이 맛을 아는 것은 백(魄)이 아닐까요? 귀와 눈 안에도 따뜻한 기운이 있으니 혼(魂)이 아닐까요? 온 몸에 미루어 보면 다 그렇지 않음이 없습니다. 불가의 책에서 사대(四大)를 논한 것은 또한 이런 뜻을 으뜸으로 삼아 기술한 것 같습니다.
精氣周流, 充滿於一身之中, 噓吸聰明乃其發而易見者, 固如來喩. 然旣周流充滿於一身之中, 則鼻之知臭, 口之知味, 非魄耶? 耳目之中皆有煖氣, 非魂耶? 推之遍體, 莫不皆然. 佛書論四大處, 似亦祖述此意.
물음 : ‘체(體)와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 선생께서 말하기를 “체와 백은 본디 두 가지 사물이다.”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구별하는지요? 눈으로 보는 것으로써 말한다면 눈의 동공이 완성되어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체(體)이고, 눈동자 안의 감각이 만 가지 형상을 비추는 것은 백(魄)입니다. 백이 이미 내려가면 눈의 동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정밀한 빛이 없습니다. 귀로 듣는 것이 투철하지 않는 것은, 귀에 구멍만 드러나 있고 그 밖의 것이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體魄歸于地, 先生云: ‘體․魄自是兩物. ’不知如何分別? 以目之明言之, 則目之輪一成而不可變者, 體也 : 睛中之明而能照鑑萬象者, 魄也. 魄旣降, 則目之輪雖存, 而其精光則無矣. 以耳之聰求之未透, 蓋耳但見其竅而不見其他故(4-2103)也.
대답 : 눈의 체(體)와 백(魄)에 대해서 논하신 것은 옳습니다. 귀는 구멍이 곧 체인데, 어찌 다른 데서 구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所論目之體魄得之, 耳則竅卽體也, 何暇他求耶?
물음: 체와 백은 이미 두 가지 사물이라면 혼과 기도 두 가지 사물이 아닐까요? 공영달에 의하면 “혼이 기에 부가된다.”고 하였는데 중용혹문에서는 곧바로 강성(康成: 鄭玄)의 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씨의 말도 통용되는 논의일 수 없습니다. 체와 백에 대해서 이전부터 전해져 온 말에 의하면 단지 하나의 사물을 가리킬 따름이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달의 백(魄)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 검은 부분을 백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예컨대 ‘눈의 빛이 땅에 떨어진다.’는 말로서 헤아려 본다면 달의 온전한 동그라미가 빛을 받는 부분이 백이고, 그 달빛이 점차 이지러지더라도, 사람의 백이 하강하듯이 그 검은 부분은 도리어 체입니다. 그러나 주소의 설명은 다 그렇지 않으므로 생각이 통하지 않습니다.
體魄旣是兩物, 不知魂與氣亦爲兩物否? 孔穎達謂魂附於氣, 中庸或問直指康成之說, 則孔氏之說亦未得爲通論. 體魄從前所聞只指爲一物, 是以今人言月魄, 亦皆以黑處爲魄. 若以眼光落地之說推之, 竊恐月之全輪受光處爲魄, 及其月光漸虧, 亦如人之魄降, 其黑處却是體. 注疏之說皆不然, 思之未通.
대답: 혼과 기에 대해 자세히 헤아려보면 역시 거기에도 정밀함과 조야함의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그 정밀함과 조야함의 차이가 미세하여 체와 백이 현격히 다른 것과 같지 않습니다. 혹문의 뜻에는 참으로 덜 자세합니다. 논의하신 달의 백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해와 달은 체로써 말할 수 없고 혼과 백이 있을 뿐입닏. 달의 백은 곧 그 온전한 체이고, 빛나는 부분이 혼이 나옵니다.
魂氣細推之亦有精粗, 但其爲精粗也微, 非若體魄之懸殊耳. 或問之意誠少子細也. 所論月魄恐不然, 日月不可以體言, 只有魂魄耳. 月魄卽其全體, 而光處乃其魂之發也.
물음: 또한 귀신과 혼백은 몸에 나아가서 종합하여 말한다면 음기와 양기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귀신이라고 말해놓고선 다시 혼백이라고 말하니, 어째서입니까? 제가 생각건대 굴신(屈伸)과 왕래(往來)로써 말하므로 귀신이라고 하고, 신령스럽게 지각을 가진 것으로써 말하므로 혼백이라고 합니다. 혹자에 의하면 굴신과 왕래로는 귀신을 충분히 말할 수 없으니, 대개 합하여 말하면 하나의 기(氣)가 왕래하고 굴신하는 것이 이것이고, 나누어 말하면 신(神)은 양(陽)의 신령함이고 귀(鬼)는 음(陰)의 신령함이라고 합니다. 합하여 말할 수 있고 나누어 말할 수 있으므로 귀신이라고 부릅니다. 나누어 말할 수 있고 합하여 말할 수 없으므로 혼백이라고 부릅니다. 혹은 남헌이 “양(陽)과 혼(魂)이 신(神)이고, 음(陰)과 백(魄)이 귀(鬼)이다.”다고 한 말에 근거하여 귀신과 혼백이 다시 분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제가 생각건대 중용혹문에서 “하나의 기의 굴신과 왕래”라고 말했을지라도, 굽히는 것은 음이고, 펴는 것은 양이고, 가는 것은 음이고, 오는 것은 양입니다. 양의 신령함이나 음의 신령함이라고 말하는 것들도 굴신과 왕래를 가리켜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且鬼神魂魄, 就一身而總言之, 不外乎陰陽二氣而已. 然旣謂之鬼神, 又謂之魂魄, 何耶? 瑑竊謂以其屈伸往來而言, 故謂之鬼神. 以其靈而有知有覺而言, 故謂之魂魄. 或者乃謂屈伸往來不足以言鬼神, 蓋合而言之, 則一氣之往來屈伸者是也, 分而言之, 則神者陽之靈, 鬼者陰之靈也. 以其可合而言, 可分而言, 故謂之鬼神. 以其可分而言, 不可合而言, 故謂之魂魄. 或又執南軒‘陽魂爲神, 陰魄爲鬼’之說, 乃謂鬼神魂魄不容更有分別. 瑑竊謂如中庸或問雖曰‘一(4-2104)氣之屈伸往來’, 然屈者爲陰, 伸者爲陽, 往者爲陰, 來者爲陽. 而所謂陽之靈者, 陰之靈者, 亦不過指屈伸往來而爲言也.
대답: 귀신은 천지 사이의 하나의 기(氣)를 관통하여 말한 것이고, 혼백은 사람의 몸을 위주로 말한 것입니다. 기가 펼 때는 정백(精魄)이 진실로 갖추어져 있지만 신이 주재자가 됩니다. 기가 굽힐 때는 혼기(魂氣)가 비록 보존되어 있으나 귀(鬼)가 주재자가 됩니다. 기가 다하면 백이 내려 수순한 귀(鬼)가 되므로, 사람이 죽으면 귀(鬼)라고 말합니다. 남헌의 말에 대해서는 머리와 꼬리가 무엇인지 적지 않았으나, 단지 이 두 구절에 의거하더라도 구별이 없을 수 없습니다.
鬼神通天地間一氣而言, 魂魄主於人身而言. 方氣之伸, 精魄固具, 然神爲主. 及氣之屈, 魂氣雖存, 然鬼爲主. 氣盡則魄降而純於鬼矣, 故人死曰鬼. 南軒說不記首尾云何, 然只據二句, 亦不得爲無別矣.
오무실(영)에게 보냄 與吳茂實(英)
예전의 공부할 때는 단지 글의 뜻을 강론하는 것이 의리(義理)를 쌓아 모으는 것이며 오래 되면 마땅히 저절로 힘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일용(日用)의 공부에 대해서는 조금도 점검(點檢)을 하지 않았음을 요즈음 스스로 깨닫습니다. 여러 친구들도 자주 단지 이렇게 공부를 하기 때문에 힘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제야 깊이 성찰(省察)하여 통렬하게 징계하니, 여러 동지들과 함께 힘쓰고 싶습니다. 형님께서 두루 설명해주기를 바랍니다. 육자수(陸子壽) 형제의 요즈음 의론(議論)이 예전과 크게 다르지만, 그런데도 이해(理解)하고 강학하려고 합니다. 그 문도 가운데 조립지(曹立之)와 만정순(萬正淳)이 왔기에 만나 보았는데 모두 기상이 아주 좋았고, 그나마 성정(性情)을 간직하여 지키는 데 힘쓰는 것을 우선하니 이런 뜻은 저절로 좋습니다. 다만 자기의 주장을 너무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한꺼번에 갑자기 깨우치려 하기 때문에 괴이(怪異)한 데로 흐를 따름입니다. 만약 그 단점을 없애고 그 장점을 모은다면 덕(德)으로 들어가는 문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리들 가운데는 또한 선입견(先入見)을 주장하며 버리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만군(萬君)이나 조군(曹君)에게는 도리어 이런 병통이 없습니다.
近來自覺向時工夫止是講論文義, 以爲積集義理, 久當自有得力處, 却於日用功夫全少點檢. 諸朋友往往亦只如此做工夫, 所以多不得力. 今方深省而痛懲之, 亦願與諸同志勉焉, 幸老兄徧以告之也. 陸子壽兄弟近日議論與前大不同, 却方要理會講學. 其徒有曹立之․萬正淳者來相見, 氣象皆儘好. 却是先於情性持守上用力, 此意自好. 但不合自主張太過, 又要得省發覺悟, 故流於怪異耳. 若去其所短, 集其所長, 自不害爲入德之門也. 然其徒亦多有主先入, 不肯捨棄者, 萬․曹二君却無此病也.
오무실(영)에게 보냄 (4-2105)與吳茂實
말하고 싶은 것들이 전날 저녁의 말에 불과하지만, 역시 완전히 그러한 마음에 종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차례와 등급에 바탕하여 갑자기 순서를 뛰어넘으려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사물이 이르고 앎이 이르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所欲言者不過前夕. 然亦非謂全然不事其心, 但資次等級未應遽爾超躐, 須物格知至, 然後意可誠, 心可正耳.
임백기(희이)에게 답함 答任伯起(希夷)
보내신 편지에서, ‘고요한 가운데서 사사로운 뜻이 멋대로 생겨난다.’고 하였는데 이는 배우는 사람들에게 공통된 근심입니다. 스스로 성찰(省察)하여 이 정도에까지 이르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마땅히 경(敬)을 위주로 하고, 사사로운 뜻이 싹트는 것이 대부분 무슨 일 때문인지를 깊이 살펴, 그 중요한 곳에 나아가서 징계하여 막아 나가기를, 오래도록 순수하고 익숙하게 하면 자연히 마땅히 효과를 보게 됩니다. 하루아침에 공을 헤아리거나 많은 이야기를 하여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논어 별본은 개정하지 못했으니, 뒷날 인편으로 보내겠습니다. 또 뜻을 집중하여 일상생활에 나아가 함양(涵養)과 성찰의 공부를 하는 것이 반드시 독서보다 못한 것은 아닙니다.
示喩靜中私意橫生, 此學者之通患. 能自省察至此, 甚不易得. 此當以敬爲主, 而深察私意之萌多爲何事, 就其重處痛加懲窒, 久之純熟, 自當見效. 不可計功於旦暮而多爲說以亂之也. 論語別本未曾改定, 俟後便寄去. 然且專意就日用處(4-2106)做涵養省察功夫, 未必不勝讀書也.
임백기에게 답함 答任伯起
정성스럽게 공경하는 것과 욕심을 줄이는 것이 다 절실하게 힘쓸 곳이어서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를 나눌 수 없으며, 또한 빠트리는 것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모든 항목에 힘써야 하는 것은 아니니, 다만 실제에서 붙들고 지키면서 체찰(體察)해 보시면 마땅히 저절로 알 것입니다.
誠敬寡欲皆是緊切用力處, 不可分先後, 亦不容有所遺也. 然非逐項用力, 但試著實持守體察, 當自見耳.
임백기에게 답함 答任伯起
보내신 편지에 의하면 학업이 이미 황폐해졌을 뿐만 아니라고, 이것마저도 매우 의심이 된다고 하였더군요. 제가 생각건대 세상의 맛이 점점 깊어져 마침내 이미 이런 뜻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니, 이제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한스러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선한 단서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고치는 것이 마치 문지도리를 돌리듯이 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저는 몸이 쇠약하고 병들어 마시고 먹고 기거하는 것이 오히려 옛전과 같지 않습니다만, 귀양 보내고 추방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생각지 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여러 학생들이 멀리서 오니 돌려 보낼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조정에서 만약 귀양을 가라는 문서가 오면 그에 따를 뿐이지 다급하게 스스로 서두르기는 어렵습니다. 보내신 편지를 자세히 보니 다른 사람의 숨소리를 살펴서 자기의 근심과 즐거움으로 삼으려는 뜻이 있는 듯합니다. 만약 마음속이 날마다 이와 같다고 한다면 늘 슬퍼하는 소인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만약 도(道)를 배우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먼저 이런 마음을 버린 뒤라야 높은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상채(上蔡) 선생이 말하기를 “명리(名利)의 관문을 통과해야 조금 쉴 수 있다.”고 하였고, 또한 “지금의 사대부들이 어찌 말할 수 있을까요? 말할 줄 아는 것이 참으로 앵무새와 같다.”고 하였는데, 이 글을 본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所喩己業荒廢, 比亦甚以爲疑. 意謂世味漸深, 遂已無復此志, 今乃猶有愧恨之心, 足以見善端之未泯也. 一旦幡然如轉戶樞, 亦何難之有哉? 熹衰病之軀, 飮食起居尙未能如舊, 流竄放殛, 久已置之度外. 諸生遠來, 無可遣去之理. 朝廷若欲行遣, 亦須符到奉行, 難以遽自匆匆也. 詳觀來諭, 似有仰人鼻息以爲慘舒之意. 若方寸之間日日如此, 則與長戚戚者無以異矣. 若欲學道, 要須先去此心, 然後可以語上. 上蔡先生言: ‘透得名利關, 方是小歇處. ’今之士大夫何足道? 能言眞如鸚鵡也. 不知曾見此書否?
강덕공(묵)에게 답함 答江德功(黙)
물음: ‘천승의 나라를 다스릴 때’의 구절에 대해서.
道千乘之國
대답: 이 다섯 가지를 임금의 덕으로 삼는다고 한 것은 뜻이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정 선생(程先生)은 단지 “그 보존한 것을 논한 것이므로 다스리는 도구에까지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고, 상산(龜山)은 단지 “진실로 이런 마음이 없다면 비록 정사가 있더라도 행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두 구절로 본다면 ‘덕(德)’자는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아울러 “덕으로써 인도한다.”는 구절을 인용하여 증명할 필요도 없으니, 그렇게 하면 도리어 견강부회의 병이 있는 것 같습니다.
以此五者爲人君之德, 意則甚善. 然程先生只云‘論其所存, 故不及治具.’ 龜山只云‘苟無是心, 雖有政不行焉.’ 以此二言觀之, 則‘德’字似太重矣. 兼亦不必引‘道之以德’爲證, 似有牽合之病.
물음: ‘공자가 태묘에 들어갈 때마다’
子入太廟
대답: 언급하신 것은 이미 실천하는 집행하는 일에 해당하며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진실로 옳습니다. 그렇더라도 성인이 평소에 예에 대해서 진실로 이미 모르는 것이 없음에도 일에 임할 때 공경하고 신중히 한 것이 또한 이와 같았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所云已當執事, 不可不問, 固然. 然亦須知聖人平日於禮固已無所不知, 而臨事敬愼又如此也.
물음: “덕은 외롭지 않다.”는 구절에 대해.
德不孤
대답: 이 문장의 뜻에 의거한다면 단지 같은 소리끼리 응하고 같은 기운끼리 구하므로,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같은 무리가 온다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 만약 뜻을 새기신 것과 같다면 그 문장은 마땅히 ‘덕은 자기에게 사사롭지 않고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사롭지 않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다고 한다면 어떤게 문장의 의미가 통하겠습니까?
據此文意, 但言同聲相應, 同氣相求, 德不孤立, 必以類至而已. 若如所訓, 則其文當云‘德不私於己, 必不私於人’, 如此則成何文理耶?
물음: “나의 도는 하나로 궤뚫었다.”는 구절에 대하여.
吾道一以貫之
대답: ‘하나로 꿰뚫었다는 것’은 오로지 대상과 나에 대해서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충(忠)과 서(恕)도 오로지 대상과 나를 하나로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정 선생(二程先生)이 이에 대해 논의한 것이 매우 상세하므로 마땅히 깊게 살펴봐야지 가볍게 논의해서는 안 됩니다.
一以貫之, 不專爲彼己而發, 忠恕亦非專爲一彼己而已也. 二程先生論此甚詳, 且宜潛心, 未容輕議也.
물음: “공자가 중궁에 대해 일러”라는 구절에 대하여.
子謂仲弓
대답: 이 뜻은 매우 좋으며, 동파(東坡)의 말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다만 꼭 ‘중궁(仲弓)’에서 구절을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예컨대 “공자가 안연에 대해 일러…그가 그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子謂顔淵未見其止〕”는 구절에서도 안연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此意甚佳, 東坡之說正如此. 但不必以‘仲弓’字爲絶句, 如‘子謂顔淵未見其止’, 亦非與顔淵言也.
물음: “나에게 몇 년을 더 주어”라는 구절에 대하여.
加我數年
대답: ‘큰 허물이 없다.’는 것은 단지 성인의 겸사일 것입니다. 대개 길하고 흉하고 소멸하고 자라나는 이치와 나아가고 물러나고 보존되고 망하는 도리를 안 뒤라야, 큰 허물이 없을 수 있습니다. ‘역(易)의 도리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것이 비록 정 선생(程先生)의 말일지라도 문장의 뜻에는 매우 온당치 못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나중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가볍게 학설을 세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성인에게 이러한 뜻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배우는 자들에게 그것으로써 경계할 만합니다.
無大過, 恐只是聖人之謙辭. 蓋知吉凶消長之理, 進退存亡之道, 然後可以無大過耳. 謂易道無大過差, 雖是程先生說, 然文意恐不甚安. 謂使後人不敢輕立說, 聖人未必有此意. 然在今日, 深足以有警於學者.
물음: “성인을 내가 보지 못하였다.”는 구절에 대하여.
聖人吾不得而見之矣
대답: 이것은 단지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을 바라지만 얻지 못하였으므로 그 다음을 생각한다는 뜻이니, 그 자질을 관찰하여 그 배우는 뜻을 보는 것이다. 만약 자질과 배움의 차이를 논한다면 성인과 군자는 배움으로써 말한 것이고, 선인(善人)과 항상됨이 있는 사람은 그 자질이 아름다운 것이다. 장경부(張敬夫)의 말이 이와 같으니, 상당히 이치에 맞는 것 같다.
此但爲思其上者而不可得, 故思其次之意, 無不觀其質而觀其學之意也. 若論質學之異, 則聖人君子以學而言, 善人有常者則其質美而已. 張敬夫說如此, 似頗有理.
물음: “증자가 병이 들자”
曾子有疾
대답: 이 단락의 뜻은 평소에 정밀함과 조야함, 근본과 말단 등이 도(道)가 아닌 것이 없지만, 군자가 그 사이에 귀하게 여기는 것이 세 가지 일에 있을 뿐임을 말하였습니다. 즉 몸의 거동이 부드럽고 공경하여 사나움과 거만함이 없고, 낯빛을 바르게 하여 겉으로만 씩씩한 것이 아니라 신뢰를 가까이 할 수 있고, 말할 때에 이치에 합당하여 비루함과 배반이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다 평소의 함양 공부를 하여 도달한 경험이며, 몸을 바르게 하여 사물에까지 미치는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그것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만약 제사지낼 때 그릇을 배치하는 일이라면 비록 도가 거기에도 있다고 할지라도, 그 분서는 유사가 해야 할 것이지 군자가 처리할 일이 아닙니다. 대개 평소에 함양하는 공부가 지극하지 않으면 몸의 거동이 사나움과 거만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색이 참됨에서 나오지 못하고, 말할 때 비루함과 배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 몸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소소하게 예절과 법도의 말단을 지키려고 할지라도, 어찌 다스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성인 문하의 학문이 자기를 이루고 사물을 이루는 공부가 사실에 근거하여 효험을 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자가 죽으려 할 때 타이르면서 그렇게 말하였으니, 이단(異端)에서 미간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거리면서 거짓으로 헛된 말을 지어내는 것과 다릅니다. 도가 거동, 낯빛, 말 등에 있다고 말한 것은, 문장의 뜻과 이치에 모두 통하지 않습니다. 기어이 이 말과 같다고 한다면 도란 진실로 없는 곳이 없을 것이니,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것이 어찌 세 가지에만 그치겠습니까? 게다가 그들의 기상에 광기와 황홀함이 있어서 성현의 뜻에 가깝지 않으니, 제가 감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此章之指, 蓋言日用之間, 精粗本末無非道者, 而君子於其間所貴者, 在此三事而已. 謂其動容貌, 則能和敬而無暴慢也. 其正顔色, 則非色莊而能近信也. 其出詞氣, 則能當於理而無鄙倍也. 凡此三者, 皆其平日涵養功夫至到之驗, 而所以正身及物之本也, 故君子貴之. 若夫籩豆之事, 則道雖不外乎此, 然其分則有司之守, 而非君子之所有事矣. 蓋平日涵養功夫不至, 則動容貌不免暴慢, 正顔色不出誠實, 出詞氣不免鄙倍矣. 一身且不能治, 雖欲區區於禮文度數之末, 是何足以爲治哉? 此乃聖門學問成己成物著實效驗, 故曾子將死, 諄諄言之, 非如異端揚眉瞬目, 妄作空言之比也. 所謂道在容貌․顔色․詞氣者, 文意義理皆有所不通. 必若此言, 則道固無所不在, 君子所貴, 又何止於三乎? 且其氣象狂易恍惚, 不近聖賢意味, 尤非區區之所敢聞也.
물음: “선비는 넓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절에 대하여.
士不可以不弘毅
대답: “인으로써 자기의 임무로 삼는다.”는 것은 몸소 실천하면서 인을 어기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프고 가려운 곳을 아는 것이 다 인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성현의 본래 뜻이 아닙니다. 몸소 실천하면서 어기지 않은 것은 단지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 하나의 생각에도 인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는 것은 보내신 편이의 말이 역시 너무 과도합니다. 만약 ‘삶에 한계가 있으나, 인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면 어찌 죽은 뒤에 그만둘 수 있을까요?
謂仁以爲己任者, 體之而不違是也. 若曰循頂至踵, 知痛癢處都是仁, 則非聖賢之本意矣. 體而不違, 只是克己復禮, 無一念之不仁耳. 死而後已, 來說亦太過. 若曰生有限量, 仁無紀極, 則豈以死而遂已耶?
물음: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라는 구절에 대하여.
吾有知乎哉
대답: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성인의 겸사입니다. “그 양쪽의 끝을 두드려서 다한다.”는 것 또한, 자기가 모를지라도 남에게 충고할 적에 감히 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성인의 기상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실제에 근거해서 본다면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으로, 세상에 허다하게 유포된 현묘하고 공허한 말이 아닙니다. “양쪽의 끝을 두드린다.”는 것에 대해서는 오직 정 선생(程先生), 범(范)씨, 윤(尹)씨 등의 말이 뜻을 다하였습니다. 만약 단지 ‘양쪽의 끝을 들어서 사람들에게 말없이 알게 하여 중간의 것을 얻게 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또한 근세의 선학의 지류입니다. 삼대(三代) 이전에는 풍속이 순수하고 두터워서 이와 같이 위험하고 가볍고 거짓된 뜻이 없었습니다.
無知者, 聖人之謙詞. 叩其兩端而竭焉, 又言己雖無知, 而於告人不敢不盡. 大凡聖人氣象只是如此. 著實看自然見得, 無世俗許多玄妙虛浮之說也. 扣兩端而竭, 只如程先生․范․尹諸公說盡之. 若曰只擧兩端, 敎人黙識, 取中間底, 此又近世禪學之餘. 三代以前風俗淳厚, 亦未有此等險薄浮誕意思也.
물음: “당체 꽃이여.”라는 구절에 대하여.
唐棣之華
대답: 따로 하나의 구절로 삼는 것이 매우 옳습니다. 논맹정의에서 범공(范公)이 이미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파(東坡)도 그렇게 말했지만 다만 그 말이 미진할 따름입니다.
別爲一章甚是, 精義中范公已有此說. 東坡亦然, 但其爲說或未盡耳.
물음: “그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는 구절에 대하여.
其言似不足者
대답: 이 말은 사씨(謝氏)가 옳습니다. “뜻에 남음이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此說謝氏得之. 所謂意有餘者, 恐未是.
물음: “더울 때는 가는 갈포와 굵은 갈포로 홑옷을 만들어”라는 구절에 대하여.
當暑袗絺綌
대답: 이전 유자들의 말은 다 보내주신 편지에서와 같습니다. 다만 저는 항상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먼저 속옷을 입고, 겉에 가는 갈포 옷과 굵은 갈포 옷을 입어 밖으로 드러낸다고 해야 문장의 뜻을 얻는 것 같은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先儒之說皆如來喩, 但鄙意常疑其不然, 似却是先著裏衣, 表絺綌而出之於外, 乃得文意. 不知如何?
물음: “생강 먹기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구절에 대하여.
不撤薑食
대답: 마땅히 옛 설명에 의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말하신 대로라면 다른 것들 중에는 땅에 버릴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하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恐只合依舊說. 若如所云, 則是他物有可棄之於地者矣, 恐不然也.
물음: “남쪽 사람들에게 말이 있으니”라는 구절에 대하여.
南人有言
대답: 이것은 다만 항상됨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말한 것이니, 애초부터 도(道)와 기술을 구별한 것이 아니다.
此但甚言無常之不可, 初不論道藝之別也.
물음: “그 말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이라는 구절에 대하여.
其言之不怍
대답: 이것은 다만 큰소리 치고서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실제에서 부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보내주신 말의 뜻도 좋지만, 글의 맥락이 조금 바뀌어 있으니, 옛 설명에 의거하는 것만 못하는 듯합니다.
此但謂大言不怍者, 其實難副耳. 來說理意亦善, 但文勢稍倒, 恐不若依舊說.
물음: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묻자”라는 구절에 대하여.
子路問君子
대답: 여러 말 중에서 이 조목에 대한 것이 더욱 거칠고 기괴하니, 졸렬한 제가 감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자기를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면 언제나 편안하게 할까요? 그러므로 요 임금과 순 임금도 그것에 부족하다고 여긴다고 하였다.’라고 설명할 것 같으면, “자기를 닦아서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고 말하면서 “요 임금과 순 임금도 그것에 부족하다고 여겼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또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諸說之中, 此條尤爲險怪, 深非鄙拙之所敢聞也. 若曰脩己以安百姓, 幾時安得了? 故曰‘堯舜其猶病諸.’ 然則其曰‘修己以安人’而不曰‘堯舜病諸’者, 又何謂耶?
물음: “군자는 죽을 때까지 이름이 칭송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구절에 대하여.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대답: 마땅히 정 선생(程先生)의 말에 의거해야 한다.
只合依程先生說.
물음: “누구를 헐뜯고 누구를 칭송하리오?”라는 구절에 대하여.
誰毁誰譽
대답: ‘헐뜯음’과 ‘칭송함’이 더하고 빼는 것이라고 한 논의는, 매우 타당합니다. 다만 이 구절은 다른 곡절이 있을 것이니 익숙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칭송하는 것이 있다면”이라는 구절은 또한 무슨 말일까요?
所論毁譽, 是加減了底, 甚當, 但此章更有曲折, 當熟玩之. 所謂‘如有所譽’者, 又何謂耶?
물음: “선을 보기를 미치지 못할 듯이 하고”라는 구절에 대하여.
見善如不及
대답: 성인이 쓰고 놓고 나아가고 숨는 것이 단지 뜻을 구하고 의를 실천하는데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또한 이 구절의 문맥이 끊어지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니, 아마도 빠진 문장이 있거나 한 구절이 아닐 것입니다. 다 고찰할 수 없으니 강제로 말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聖人之用舍行藏, 非但求志行義而已. 且此章文勢斷續, 或有闕文, 或非一章, 皆不可考, 不必彊爲之說.
물음: “성품은 서로 비슷하나”라는 구절에 대하여.
性相近也
대답: 이곳은 마땅히 정 선생(程先生)의 말에 의거해야 합니다. 예컨대 논의하신 것은 깊어지고자 하나 얕아지고, 세밀해지려고 하나 반대로 성글어진다는 것 같습니다. 본성이 사람에게 있는 것에 대하여 어찌 서로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此只合依程先生說. 若如所論, 似欲深而反淺, 欲密而反疏也. 性之在人, 豈得以相近而爲言耶?
물음: “자장이 인에 대해 묻자”라는 구절에 대하여.
子張問仁
대답: 논의하신 ‘행(行’자의 뜻은 매우 좋습니다. 성인의 말이 실제에 근거하는 것이 대부분 이와 같습니다. 그것들을 미루어서 나머지 일에 적용한다면 성인의 뜻을 얻을 수 있고, 허황된 견해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所論‘行’字之意, 甚善, 聖言著實, 大抵類此. 推之以及其餘, 則聖人之意可得, 而浮誕之見無所入於其中矣.
물음: “종일 배불리 먹고”라는 구절에 대하여.
飽食終日
대답: 이에 대한 당신의 말은 장기와 바둑의 단서를 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려가 매우 조밀해지도록 경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이것에 의탁하여 저것을 심하다고 하는 말이 지나치게 꾸민 말일 필요는 없습니다. 문장의 뜻이 통하지 않자 도리어 천착하게 된 것입니다.
此不欲啓博奕之端, 防慮甚密. 然聖人乃假此以甚彼之辭, 不必過爲之說, 文義不通, 却成穿鑿也.
물음: “군자에게 미워함이 있다.”는 구절에 대하여.
君子有惡
대답: 여러 선생의 말에 의하면, 공자는 미워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경계하였고, 자공은 미워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경계했다고 하였으니, 이 뜻이 옳습니다. 하늘과 사람의 구별을 없는 것 같습니다.
諸先生有說夫子所惡以戒人, 子貢所惡以自警者, 此意得之, 恐無天人之別.
물음: “자하의 문인인 젊은이들”에 대한 구절에 대하여.
子夏之門人小子
대답: 이 구절에 대해서 명도(明道: 程顥) 선생이 말하기를 “선차적인 것이라고 전수하고 후차적인 것이라고 게을리 하겠는가? 군자(君子)가 사람을 가르침에는 순서가 있으니, 먼저 작은 것과 비근한 것을 가르친 뒤에 큰 것과 먼 것을 가르치는 것이요, 먼저 작은 것과 비근한 것을 가르친 뒤에 큰 것과 먼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여러 학파의 설명을 살펴보았는데 오직 이 몇 구절이 명백하고 적당합니다. 자세히 헤아려 보신다면 문장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초목(草木)에 비유하자면 종류에 따라 구별되는 것과 같다.”는 구절은 큰 것과 작은 것에 순서가 있어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말하였습니다. “ 군자의 도를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동파(東坡)가 뜻을 얻었습니다. “처음과 끝을 구비한 것은 성인(聖人)뿐이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윤씨(尹氏)가 뜻을 얻었습니다.
此章之說, 明道先生曰: ‘先傳後倦, 君子敎人有序, 先傳以小者近者而後敎以遠者大者, 非是先傳以近小而後不敎以遠大也.’ 愚按諸家之說唯此數句明白的當. 試詳味之, 可見文義. ‘譬諸草木, 區以別矣’, 只是說大小有序, 不可躐等之․(4-2113)意. ‘君子之道, 焉可誣也’, 東坡得之. ‘有始有卒, 其惟聖人’, 尹氏得之.
물음: “균등하게 줄 것이면서도”
猶之與人也
대답: 옛 설명은 ‘유(猶)’자가 단지 ‘비유하다〔譬〕’라는 뜻이라고 하였으니, 문장의 뜻도 통합니다. 만약 온당치 않다고 여긴다면 빼 두어야지 억지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舊說‘猶’字只爲‘譬’字之意, 文義亦通. 若覺未穩, 卽且闕之, 不必强爲之說也.
강덕공에게 답함 答江德功
“예가 있으면 편안하다.”는 말에 대해 뜻을 세운 것이 매우 좋지만, 다만 본문의 뜻을 자세히 보면 단지 베풀고 보답하여 가고 오는 예에 대해 말했을 뿐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물에 거스르지 않아 몸이 편안할 따름이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옛 사람들이 반드시 예에 말미암은 까닭은 예가 마땅히 이와 같을 뿐이어서 말미암지 않을 수 없었으니, 어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 뒤에 말미암으려고 했겠습니까? 만약 반드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 뒤에야 예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접대하려고 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다 이로움과 해로움을 헤아리는 사사로움에서 나온 것이지 이치에 따르는 공평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대저 요즈음 배우는 사람들은 불교의 학문에 빠져, 본래 성현의 말이 비근(卑近)한 것이어서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그렇다고 천리(天理)와 백성들의 떳떳한 원칙과 같이 다 소멸시킬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우리 유가(儒家)의 말을 다 배반하고서 저들에게로 귀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가 가슴 속에서 서로 싸워 결정할 길을 알지 못하자, 이에 유교와 불교의 서로 비슷한 말에 근거하여 억지로 끌어다 합하여 말합니다. 즉 우리 유교에서 사물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끌어다 자기에게 붙이고, 몸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을 끌어다가 마음에 포함시키면서, 요행이 저 불교와 다르지 않은 것에 근거하여 둘 다 옳다고 하는 사사로움에 편의대로 들락날락 합니다. 성현의 본래 뜻에 대해서 비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라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대개 그들은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의 견해가 이미 성현보다 높으므로 힘들이지 않고 성현을 지시하여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또한 하물며 ‘그것을 미루어 높게 하고 파고들어 깊게 하여 그 정신과 기상을 이전보다 증가시켰으니, 내가 성현보다 공이 있다.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라고 할 정도이지만, 정작 그들이 말하는 고원하고 깊다는 것이 곧 비천하고 고루(固陋)한 것임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이 점이 요즈음 잡학(雜學)을 하는 학자들의 마음씀이 은미하게 깃든 큰 병입니니, 단지 다른 점과 같은 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有禮則安”說, 立意甚善, 但詳本文之意, 只說施報往來之禮, 人能有此, 則不忤於物而身安耳, 未遽及夫心安也. 况古人之所以必由於禮, 但爲禮當如此, 不得不由, 豈爲欲安吾心而後由之也哉? 若必爲欲安吾心然後, 由禮以接於人, 則是皆出於計度利害之私, 而非循理之公心矣. 大抵近世學者溺於佛學, 本以聖賢之言爲卑近而不滿於其意, 顧天理民彝有不容殄滅者, 則又不能盡叛吾說以歸於彼, 兩者交戰於胸中而不知所定, 於是因其近似之言以附會而說合之. 凡吾敎之以物言者, 則挽而附之於己 : 以身言者, 則引而納之於心, 苟以幸其不異於彼而便於出入兩是之私. 至於聖賢之本意, 則雖知其不然, 而有所不顧也. 蓋其心自以爲吾之所見已高於聖賢, 可以咄嗟指顧而左右之矣. 又况推而高之, 鑿而深之, 使其精神氣象有加於前, 則吾又爲有功於聖賢, 何不可者? 而不自知其所謂高且深者, 是乃所以卑且陋也. 此近世雜學之士心術隱微之大病, 不但講說異同之間而已. 不審賢者以爲如何?
대학(大學)에 관한 여러 설명은 역시 이전 편지의 뜻과 같습니다. 대개 일에 나아가서 이치를 궁구하려고 하지 않고 곧바로 마음으로써 이해하려고 하므로, 반드시 격물(格物)에 대해 마음이 사물에 접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일을 청정(淸淨)하고 적멸(寂滅)한 일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자신을 위하는데 두텁게 하면서도 집을 위하지 못합니다. 신민(新民), 지본(知本), 혈구(絜矩)의 등의 말에 이르러서도 또한 반대로 자신에다 귀속시킵니다. 대개 이것은 마음이 밖으로 나와 사물들과 교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임금, 재상, 제후, 경(卿), 대부, 사(士), 서인의 학문을 구별하는 것에 대해서도 홀로 선하려는 사사로운 뜻이 있어서 대상과 나를 공평하게 하고 안과 밖을 화합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는 대개 석씨(釋氏)의 학문이 마음을 위주로 하면서도 밖에 대해서는 억지로 유자(儒者)의 논의를 하려는 것으로, 마치 우리와 같은 족속이 아니면서도 억지로 웃는 낯빛을 지으면서 서로 친해지려는 것과 같이, 생각에 끝내 사이와 막힘이 있어서 합쳐지지 않습니다. 만약 성현 본래의 뜻을 진실로 보려고 한다면 마땅히 이런 마음을 없앤 뒤에 말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大學諸說亦放前意, 蓋不欲就事窮理, 而直欲以心會理, 故必以格物爲心接乎物 : 不欲以愛親敬長而易其所謂淸淨寂滅者, 故必以所厚爲身而不爲家, 以至新民知本絜矩之說, 亦反而附之於身. 蓋惟恐此心之一出而交乎事物之間也. 至於分別′君․相․諸侯․卿․大夫․士․庶人之學, 亦似有獨善自私之意, 而無公物我․合內外之心. 此蓋釋氏之學爲主於中, 而外欲强爲儒者之論. 正如非我族類而欲强以色笑相親, 意思終有間隔礙阻不浹洽處. 若欲眞見聖賢本意, 要當去此心而後可語耳.
격물(格物)에 관한 설명은 정자(程子)가 상세히 논하였으니, “‘격(格)’이란 ‘이른다〔至〕’는 뜻으로, 격물이란 사물에 이르면 사물의 이치가 다 밝혀지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뜻과 구두(句讀)가 다 적절하여 바꿀 수 없습니다. 저의 설도 실제로 그 뜻에 근본을 두었으나 또한 구차하게 같게 한 것은 아닙니다. 대개 십오륙 세 때부터 이 책을 읽었지만 격물(格物)의 뜻을 분명히 알지 못하여 마음속으로 이래저래 생각한 것이 삼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근년에 실질적으로 힘쓰는데 나아가 그것을 구하고, 다른 경전과 주석 등을 참고하여 안-팎과 근본-말단 등에 대하여 반복하여 증험(證驗)하고서야 이 설이 당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하루아침에 갑자기 말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대저 “하늘이 백성을 낼 적에 사물이 있고 법칙도 있었다.”하였으니, 사물이란 형체이고 법칙이란 이치입니다. 형체란 형이하자라는 것이고, 이치란 형이상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는 진실로 사물이 없을 수가 없으며, 그 사물의 이치를 밝히지 않으면 성명(性命)의 바름을 따르고 사물의 마땅함에 처할 수가 없으므로 반드시 이 사물에 나아가서 그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 이치를 구할 줄만 알고서 사물의 지극한 데에 이르지 않는다면, 사물의 이치는 궁구하지 못함이 있고 나의 앎도 다하지 않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사물의 지극한 데에 이른 뒤에 끝내니, 이것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사물에 이르고, 그렇게 하면 사물의 이치가 다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사물의 이치가 다 밝혀지면 나의 지식도 훤히 관통되어 덮임과 막힘이 없고, 뜻이 성실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이 바르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는 대학 본경(本經)의 뜻이고, 정자의 말도 그렇습니다. 대학의 큰 강령(綱領)이 실제로 쓰이는 곳이 진실로 이미 훤하여 의심할 만한 것이 없고, 미세한 부분에서도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의 순서가 있고 글의 뜻과 훈고(訓詁) 등이 정밀하고 정당하여, 한 터럭만큼이라도 맞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 깊이 고구(考究)해 보지도 않고서 반드시 ‘치지(致知)’의 뜻을 ‘궁리(窮理)’라고 풀이하려고 한다면, 주인과 손님을 나눌 때 온당치 못한 것이 생깁니다. (‘앎’이란 내 마음의 앎이고, ‘이치’란 사물의 이치이다. 이것으로써 저것을 아는 것에는 저절로 주인과 손님의 구분이 있으니, ‘차(此)’자를 ‘피(彼)’자의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격물(格物)’의 뜻을 ‘사물에 접하다.’라고 풀이한다면, 끝까지 궁구하는 공부에 밝히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물과 접하지 않음이 없지만, 다만 어떤 사람은 한갓 접하기만 하고 이치를 구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대충 구하기는 하나 끝까지 궁구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비록 사물과 접할지라도, 이치의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을 알 수 없다. 이제 말하기를 ‘한번 사물과 접하면 이치가 다 궁구되지 않음이 없다.’라고 한다면, 너무 가볍고 쉽게 보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다만 ‘소리를 듣고 도(道)를 깨닫고, 사물을 보고서 마음을 밝힌다.’는 논의 따위에서 나온 것으로서, 내가 말하는 궁리(窮理)가 아니니 진실로 함께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다른 책을 상고해 보더라도 ‘격(格)’자에 ‘접한다.’는 뜻이 없다.) 의리(義理)로써 말하면 통하지 않고 훈고(訓詁)로써 고찰하면 맞지 않고, 실천하는 공부로써 구하면 손댈 실제적인 곳이 없습니다. 적이 생각건대 성현의 말은 반드시 이렇게 어긋나거나 소략하여 후세의 배우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지는 않습니다.
格物之說, 程子論之詳矣. 而其所謂‘格至也. 格物而至於物, 則物理盡’者, 意句俱到, 不可移易. 熹之謬說實本其意, 然亦非苟同之也. 蓋自十五六時知(4-2115)讀是書, 而不曉格物之義, 往來於心, 餘三十年. 近歲就實用功處求之, 而參以他經傳記, 內外本末反復證驗, 乃知此說之的當, 恐未易以一朝卒然立說破也. 夫‘天生烝民, 有物有則’, 物者, 形也 : 則者, 理也. 形者所謂形而下者也, 理者所謂形而上者也. 人之生也固不能無是物矣, 而不明其物之理, 則無以順性命之正而處事物之當, 故必卽是物以求之. 知求其理矣, 而不至夫物之極, 則物之理有未窮, 而吾之知亦未盡. 故必至其極而後巳. 此所謂‘格物而至於物, 則物理盡’者也. 物理皆盡, 則吾之知識廓然貫通, 無有蔽礙, 而意無不誠, 心無不正矣. 此大學本經之意, 而程子之說然也. 其宏綱實用, 固已洞然無可疑者 : 而微細之間, 主賓次第․文義訓詁詳密精當, 亦無一毫之不合. 今不深考, 而必欲訓致知以․窮理’, 則於主賓之分有所末安 : 知者吾心之知, 理者事物之理. 以此知彼, 自有主賓之辨, 不當以此字訓彼字也. 訓格物以‘接物’, 則於究極之功有所未明. 人莫不與物接, 但或徒接而不求其理, 或粗求而不究其極, 是以雖與物接, 而不熊知其理之所以然與其所當然也. 今曰一與物接而理無不窮, 則亦太輕易矣. 蓋特出於聞聲悟道․見色明心之餘論, 而非吾之所謂窮理者, 固未可同年而語也. 且考之他書, ‘格’字亦無訓‘接’者. 以義理言之則不通, 以訓詁考之則不合, 以功用求之則又無可下手之實地, 竊意聖人之言必不如是之差殊疎略, 以病後世之學者也.
또한 “단지 형체를 접한 곳이 뜻이 이르는 곳이라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라는 언급과 “격물(格物)은 소학(小學)과 같고 치지(致知)는 소학과 다르다.”는 언급도 모두 타당하지 않은 말입니다. 그것은 글자를 빠트리고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도리어 독자로 하여금 의심이 많아지게 합니다. 정자의 말에 자기의 뜻을 덧붙여서 억지로 해석하기까지 하니, 다른 말들에 대해서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또한 제가 격물과 치지를 합쳐서 하나의 말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고찰도 상세하지 않습니다. 또한 노자(老子)와 불가의 학문은 치지(致知)하면서 사물에서 떨어진다고 하니, 이것도 더욱 옳지 않습니다. 대저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할 수 있는 것은 마치 음식을 먹는 것은 배를 불리려는 까닭인 것과 같습니다. 이제 격물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앎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러한 앎은 망령된 것입니다. 먹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배부르다고 여기니, 그러한 배부름은 병입니다. 만약 노자와 불가의 학문이 자신들의 앎을 이루려고 하면서도 격물하는 것이 람을 이루는 것임을 모르므로, 아는 것이 가리고 빠지고 이탈하고 막히는 잘못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거의 옳을 것입니다.
又所謂‘非特形之所接, 乃志之所至’, 所謂‘格物與小學同, 致知與小學異’, 亦皆無當之言. 其爲闕字增語, 反致讀者之疑多矣. 至於彊解程子之意以附己說, 其如他語之可證何? 又謂熹解以格物致知混爲一說, 則其考之亦未詳也. 又謂老佛之學乃致知而離乎物者, 此尤非是. 夫格物可以致知, 猶食所以爲飽也. 今不格物而自謂有知, 則其知者妄也 : 不食而自以爲飽, 則其飽者病也. 若曰老佛之學欲致其知, 而不知格物所以致其知, 故所知者不免乎蔽陷離窮之失而不足爲知, 則庶乎其可矣.
두터이 해야 하는 것은 부자와 형제 등 골육(骨肉) 간의 은혜로서 이치의 당연한 것이자 사람의 마음에 그만 둘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반드시 이것을 외면하면서 자신을 두터이 한다면, 이는 곧 석씨(釋氏)가 천리를 인멸하고 인륜을 버리고 그 자신을 사사로이 하는 뜻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자신이 수양된다면, 비록 여섯 가지 법도와 만 가지 행실이 원만히 갖추어지는데 이를지라도 역시 그 효도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는 형벌을 속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아는 것이다.”는 말에 대해 사례를 들어 헤아려보면, “이것을 일러”라고 말하는 겨우는 다 전하는 문장이어서 경을 맺는 구절이 아닙니다.
所厚者謂父子兄弟骨肉之恩, 理之所當然而人心之不能已者. 今必外此而厚其身, 此卽釋氏滅天理․去人倫以私其身之意也. 必若是而身修, 則雖至於六度萬行具足圓滿, 亦無以贖其不孝不弟之刑矣. ‘此謂知本’, 以例推之, 凡言‘此謂’者, 皆傳文, 非經之結句也.
“그 궁극을 쓰지 않음이 없다.”는 구절에 대하여. 그 위 문장에서 세 번 시와 서를 인용하면서 ‘~이 없다.〔無所〕’는 두 글자가 없이 종합하여 맺고 있음을 볼 때, “스스로 새롭다〔自新〕”와 “백성을 새롭게 한다〔新民〕”는 구절은 다 그 궁극을 쓰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새로운 것이 진실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근본이지만, 세상에는 하나의 사물이라도 나의 헤아림 안에 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하나의 사물일지라도 내가 마땅하게 해야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없습니다. 예컨대 백심(百尋)이나 되는 큰 나무에는 뿌리와 줄기와 잎이 자라나게 하는 의지가 있지 않음이 없으나, 다만 우선적인 것과 후차적인 것을 알아야 도에 가까울 뿐입니다. 어찌 오로지 그 근본만을 쓰고 그 말단을 버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백성을 새롭게 하기를 구하지 않고 오로지 덕에 의함 교화만을 구한다면, 그것은 또한 저들을 천하게 여기고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사로운 마음이어서 안팎을 합하는 도리가 없습니다.
‘無所不用其極’, 觀上文三引詩書而此以‘無所’二字總而結之, 則於自新新民皆欲用其極可知矣. 自新固新民之本, 然天下無一物非吾度內者, 亦無一事非吾之所當爲者. 譬如百尋之木, 根本枝葉, 生意無不在焉. 但知所先後, 則近道耳. 豈日專用其本而直棄其末哉? 今曰不求爲新民而專求之德化, 則又賤彼貴我之私心, 而無以合內外之道矣.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을 백성이 잊을 수 없다.”는 구절에 대해. 이곳은 대개 성인의 일이 혼연(渾然)한 하나의 덩어리여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말하지만, 다만 사람의 측면에서 말하면 덕(德)이고, 이치의 측면에서 말하면 선(善)이다는 것에 대래서는 변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말하기를 “지극한 선을 체득하여 덕을 이룬다.”고 한다면, 이것은 배우는 사람의 일이어서 대학 전문(傳文)에서 가리키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체득하여 덕을 이루는 것이 성대함에 이르러 생각하고 힘쓰는 누추함이 없다고 한다면 역시 성인일 따름입니다.
‘盛德至善, 民不能忘’, 此言聖人之事蓋渾然一體, 不可得而分焉者也. 但以人言則曰德, 以理言則曰善, 又不爲無辨耳. 今曰‘體至善以成德’, 則乃學者之事, 而非傳文所指矣. 然體而成德以至於盛, 而無思勉之累焉, 則亦聖人而已矣.
‘송사를 들음’과 ‘백성을 새롭게 함’에 대한 말은 대략 같으니 함께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또한 옛 사람의 말에는 순서가 있으니, 전문(傳文)은 ‘격물’ 이하의 여러 구절을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맺는 구절을 풀이해서는 맞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한다.”는 말 또한 경문의 맺는 구절이 아닌데 있어서 어떻겠습니까?
聽訟與新民之說略同, 請倂詳之. 又古人言語有序, 此傳未解格物以下數節, 不應先解結句. 况‘此謂知本’之云, 又非經之結句乎.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구절은 대의가 매우 좋지만, 대학 전문(傳文)의 뜻은 단지 경문(經文)에서 말한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을 푼 것으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속이지 말도록 가르쳐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기를 좋은 여색을 좋아하고 악취를 싫어하는 것처럼 하게 하려는 실제일 뿐이니, 성인에 대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말씀하신 ‘성인이 사물에 나아가서 지극한 선에 그쳤다.’는 것 또한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걱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에 나아가 밝혔다.‘고 한다면 그 뜻을 잃습니다.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진다.”는 구절에 대한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친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치우친다.”는 구절에 대하여 ‘之’자를 ‘이르다.〔至〕’로 새긴 것을 옳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비록 대의하고는 관련되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마음을 비우고 차분한 기상으로 천천히 잃고 자세히 생각해보아야 성현의 본뜻을 알고 자기에 대해서도 실제에 근거하여 실천하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힘을 허비하여 말을 만들어내면서 헛되이 본뜻을 잃어 쓸모없게 될 필요가 없습니다.
‘誠意’一章大意頗善, 然此傳文意但解經文所謂誠意者, 只是敎人不得自欺, 而欲其好善惡惡, 皆如好色․惡臭之實然耳, 非以聖人而言也. 今之所發‘聖人所以卽事卽物而止於至善, 又恐人不信, 故卽人所知者以明之’, 則失其指矣. ‘心廣體胖’之說, 甚善甚善. ‘人之其所親愛而辟焉’, 訓‘之’爲‘至’非是. 此等處雖非大義所係, 然亦須虛心平氣, 徐讀而審思之, 乃見聖賢本意, 而在己亦有著實用處. 不必如此費力生說, 徒失本指而無所用也.
“이쪽에서 마음으로 느끼고 저쪽에서 마음으로 응하니 그 효과가 이처럼 빠르다.”고 한 것은 감응(感應)이 신처럼 빠르다는 것으로 이치가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만, 다만 ‘以’자 하나에만 착안한다면 빨리 하려는 뜻이 생기며, “마음을 울렁거리며 왕래하면 벗이 너의 생각을 따를 것이다.”고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병이 있습니다.
‘此以心感, 彼以心應, 其效如此之速’, 感應神速, 理固如此. 但著一′‘以’字, 便有欲速之意. 所謂‘憧僮往來, 朋從爾思’者, 正病此也.
‘혈구(絜矩)’란 사물을 재어 네모를 얻는 것이니, 아래 문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말하기를 구(矩)로써 사물을 잰다고 하였는데, 마땅히 ‘구혈(矩絜)’이라고 해야 그 뜻을 얻습니다.
絜矩者, 度物而得其方也, 以下文求之可見. 今曰度物以矩, 則當爲‘矩絜’, 乃得其義矣.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것’과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고, 집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단지 하나의 이치여서 격물과 치지라는 것도 이것을 아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대학의 본뜻입니다. 이제 반드시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 임금과 재상의 일이어서 배우는 사람이 간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안팎의 도리가 근본을 달리하여 귀착처가 달라질 것이며, 경의 본뜻과도 정면으로 모순될 것입니다. 우 임금, 후직, 안회 등이 도를 같았으니, 어찌 반드시 자리에 있으면서 정치를 했겠습니까? ‘바람이 일고 물결이 세차다.’는 말도 아직 깨치지 못한 것입니다. 이 편(篇)에서 논한 것은 몸에서부터 헤아려서 천하에 미친다는 것입니다. 태도를 바르고 쉽게 해야지 자잘한 곳에 기력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횡거(橫渠: 張載)가 논의한 주례 「주관총재(周官冢宰)」에서 법제의 일과는 뜻이 다릅니다.
治國․平天下與誠意․正心․脩身․齊家只是一理, 所謂格物致知, 亦曰知此而已矣. 此大學一書之本指也. 今必以治國平天下爲君相之事而學者無與焉, 則內外之道異本殊歸, 與經之本旨正相南北矣. 禹․稷․顔回同道, 豈必在位乃爲爲政哉? 風濤洶湧之說, 亦所未喩. 此篇所論自一身而推之以及天下, 平正簡易, 不費纖毫氣力, 與橫渠所論周官冢宰法制之事意思不同.
강덕공에게 답함 答江德功
‘격물치지’에 관해서는 예전에 이미 상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보내주신 편지에서는 한 단락만 거론할 뿐, 당연히 설명해야 할 ‘격(格)’자와 ‘치(致)’자는 빠뜨리고 말씀하지 않으시니, 아마도 자세히 살피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만약 ‘격(格)’을 법도의 뜻으로 새기고 그 법도로써 세상의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자 한다면, 아직 이치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지식 역시 아직 미숙할 때는 어떻게 무엇을 법도를 삼아 그것을 집행하겠습니까? 또 이 일정한 법도만 지키는 것은 다시 각각의 상황을 추론하여 그것의 궁극적인 것을 추궁해가는 공부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의 의미는 마땅히 정선생님의 학설을 위주로 하고 저의 설명으로 추론한다면, 억지 이론을 세우거나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致知格物前說已詳. 來書只擧得一截, 正當說‘格’字‘致’字處, 乃遺而不道, 恐考之有未詳. 若但以‘格’爲法度之稱, 而欲執之以齊天下之物, 則理旣未窮, 知旣未至, 不知如何爲法而執之? 且但守此一定之法, 則亦無復節節推窮以究其極之功矣. 此義且當以程子之說爲主, 而以熹說推之, 不必彊立說, 徒費力也.
경전 끝부분의 두 구절에 관해, 보내주신 글은 구설(舊說)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후의 순서를 논한 것은 경전의 윗 문장에서 이미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근본이 어지럽게 되면 말단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는 부분은 또 이미 자세하게 거론했으니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성인이 여기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독자들이 인도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아서, 백성을 사랑하고 사물을 아끼는 사례와 똑같이 여기고 한결같이 말단으로 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이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또다시 몸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석씨(釋氏)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연문(衍文)의 득실에 관해서는 깊이 변론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연문을 지은 사람의 관점을 벗어나서 그것을 보면, 구차하고 영합적인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믿을 수 없으시다면, 차라리 두 구절을 다 놓아두고서 천천히 깊이 새겨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꼭 오늘 취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를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經文末後兩句, 來喩固與舊說有間矣. 但所論先後之序, 經中上文已屢言之, 而‘本亂末治’之云, 又已該擧, 自不須說. 但聖人於此特下此語, 正要讀者有以知夫人道之大有在於此, 不可同於仁民愛物之例, 而一以末視之. 此意不可不著眼耳. 今不領此, 而又必以身言, 非釋氏之意而何哉? 衍文得失不足深辨, 然以所謂免作衍文者觀之, 便見苟且遷就之意. 若信未及, 莫若兩存而徐玩之, 不必決取舍於今日也.
‘성덕지선(盛德至善)’장에서, 성(盛)하고, 지극(至)하다는 것은 모두 다시 더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위아래 문장의 규모와 기상이 모두 성인의 일이니, 이것만 현인의 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또 부시(賦詩)의 일부를 끊고서, 단지 감탄하고 잊지 못한다는 뜻만 취한 것이니, 논어 위영공과는 애당초 관계가 없습니다.
‘盛德至善’, 盛也, 至也, 皆無以復加之詞, 而上下文規模氣象皆聖人事, 則此不得獨爲賢人事矣. 且賦詩斷章, 此但取其咏歎不忘之意, 與衛武公初無干涉也.
‘혈구(絜矩)’의 설은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사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 일을 처리하는 법도입니다. 보내주신 글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른바 먼저 스스로 헤아린다는 것은 더욱 부당합니다. 지금 저의 설명을 두 개의 그림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둘을 합쳐서 보시면 올바른 형태가 저절로 눈에 보일 것입니다.
‘絜矩’之說, 蓋以己之心度物之心, 而爲所以處之之道爾. 來喩殊不可曉, 而所謂先自度者尤無所當. 今以鄙說畫爲兩圖, 合而觀之, 則方正之形隱然在目中矣.
(4-2120) 그림
(4-2121)예기 「곡례 상」의 ‘예가 있으면 편안하고, 예가 없으면 위태롭다’에서, 만약 ‘어질면 영화롭고 어질지 못하면 욕되다’고 말하는 것은 애당초 몸과 마음, 근본과 말단의 구별이 없습니다. 성현의 말씀은 각각 그것이 가리키는 바가 있으니, 그것의 얕고 깊음을 따르면 지극한 이치의 극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제 반드시 내외(內外)를 정추(精粗)로 간주하고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는 것은 그 마음이 잘못된 것에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학자가 힘써 실천하는 것 역시 학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에 힘쓰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힘써 노력해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얻을 것을 먼저 하고 힘든 것은 뒤로 하며 이익을 도모하고 공적을 계산하는 사람이 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에서도 유학과 이단의 차이를 대략 볼 수 있습니다. 깊이 살펴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有禮則安, 無禮則危’, 如云仁則榮, 不仁則辱, 初無身心本末之辨. 蓋聖賢之言各有所指, 隨其淺深而莫非至理之極也. 今必以內外爲精粗而欲去彼取此, 豈非有所陷溺其心而然耶? 且學者之勉彊力行, 亦勉其所當爲者而已. 若曰勉焉以冀其有以自慰, 則是先獲後難而爲謀利計功者之所爲矣. 聖學異端之別於此亦略可見. 試深察之可也.
강덕공에게 답함 答江德功
‘원이신(圓而神)’이란 지나간 일을 갈무리해 두는 것이니, 전에 말한 이른바 ‘방이지(方以知)’란 것입니다. ‘신무불살(神武不殺)’은 성인이 복서에 의지하지 않고도 길흉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是以明於天之道’ 이하는 복서로 백성을 가르치는 일로서, 성인도 복서를 공경하고 신뢰하여 그 덕을 신명스럽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 장의 뜻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정선생의 설은 아마 한 때 잘못 생각해서 하신 말씀 같지만 그 문장의 뜻을 자세히 고찰할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은 단지 그 뜻을 깊이 사색하고 달리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약 경전의 취지에 억지로 끌어들인다면 힘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圓而神’也, 其所以藏往者, 向之所謂‘方以知’者也. ‘神武不殺’, 言聖人不假卜筮而知吉凶也. ‘是以明於天之道’以下, 言敎民卜筮之事, 而聖人亦未嘗不敬而信之, 以神明其德也. 此章文義, 只如此. 程先生說, 或是一時意到而言, 不暇考其文義. 今但玩味其意, 別看可也. 若牽合經旨, 則費力矣.
강덕공에게 답함(●해 11월 5일) (4-2122)答江德功亥十一月五日
질문 : 중용집해에서 “정선생님이 말씀하신 ‘타고난 것을 일러 성이라고 하니, 성은 곧 기이고, 기는 곧 성이다’”에서 ‘순임금은 천하를 소유하고도 관여하지 않으셨다’는 부분에 이르는 구절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 문단이 반복하여 비유하는 것은 모두 타고난 것을 일러 성이라 한다는 것으로, 반드시 성선의 설을 그 중간에 넣어서 나중에 성선의 말로 그것을 증명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만약 성이 단지 리(理)일 뿐이라면, 악을 범하는 것은 리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인데, 왜 악 역시 성이며 탁한 것도 물이라고 하는가? 이 이치는 요임금이나 걸임금 때문에 있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닌데, 왜 흐름의 원근과 맑음의 지속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는 모두 기품을 비유하는 것이니, 성선의 설과는 마땅히 구별해야 하는데도 도리어 크게 설하니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직옹(直翁)은 물로 기품을 비유하고, 맑음으로 천리를 비유하고, 탁함으로 인욕을 비유하였으니, 처음에는 역시 좋았지만, ‘맨 처음 물일뿐’이라는 한 구절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직옹(直翁)은 또 그것을 설명하여 “이른바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 선이다’로부터 그 아래는 모두 성선을 말하는 것으로 인해 설했으니, 물은 성을 비유하고, 아래로 흐르는 것과 맑음 성선을 비유하며, 흘러 바다에 이르도록 끝내 오염된 바가 없다는 것은 성인이 천리를 온전히 하는 것을 비유하며, 흘러가면서 탁하게 된다는 것은 인욕을 비유한다. ‘탁한 것도 물이 아니라 할 수 없다’는 것은 사물과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은 모두 성의 욕구임을 말한다. ‘그것이 청명함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맨 처음의 물일 뿐이다’는 것은 그 본연의 선을 회복한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 설명에서, ‘탁한 것도 물이 아니라 할 수 없다’는 한 구절은 성선의 의미를 벗어난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변 : 이 설은 단지 성선을 근본으로 삼고, 기품에 선악이 있다는 것을 거기에 착종하여 반복해서 완미하면 저절로 알 것입니다.
中庸集解‘程先生曰生之謂性, 性卽氣, 氣卽性’止‘舜有天下而不與焉者也’, 黙竊謂此段反復譬喩, 皆是生之謂性, 而必以性善之說間乎其中, 以性善之言證之於後, 何也? 若曰性只是理, 則夫爲惡者謂之非理可也, 何以言惡亦是性, 濁亦是水? 此理不爲堯桀存亡, 何以言流之遠近, 淸之遲速? 此皆氣稟之譬, 於性善之說自當分別, 却衮說了, 不知如何. 直翁以水譬氣禀, 淸譬天理, 濁譬人欲, 初亦可喜, 恐‘只是元初水’一句又解不得. 直翁又爲之說曰: ‘夫所謂繼之者善者以下皆因言性善而爲說, 水譬性, 就下與淸譬性善 : 流而至於海, 終無所汚者, 此譬聖人之全天理 : 流而濁者譬人欲也. 不可以濁者不爲水, 謂感物而動, 皆性之欲也. 及其淸明, 却只是元初水, 謂復其本然之善也. ’此說於‘不可以濁者不爲水’一句似失性善之意, 不知先生以爲何如?
此說但以性善爲本, 而以氣禀有善惡者錯綜之, 反復玩味, 自然見得.
질문 : 중용에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마시지 않는 이가 없지만, 맛을 아는 이는 드물다.’ 저는 이 두 구절의 대의는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선생님이 생뢰(牲牢: 신명에게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로 비유한 것은 도리어 일찍이 음식으로 먹고 마시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따르면, 도와 같은 것은 사람이 생뢰를 먹는 것처럼 반드시 먹어보고나서 비로소 맛을 아는 것을 비유한 것이니, 이 장과는 같지 않습니다. 여여숙이 말한 가축의 본성․초목의 번식․불을 때는 정도를 조절함․음식을 알맞게 조절하는 것 등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는 것은 아마도 본지가 아닐 듯합니다. 저는 ‘맛’은 바로 음식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는 이가 없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하는 것은 곧 음식에서 도를 실천하고 드러내고 익히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맛’과 ‘음식’은 서로 넘나들며 쓸 수 있는 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직옹은 음식으로 일상적 사용을 비유하고, 맛으로 이치를 비유했는데, 이 설명 역시 맞는 것 같습니다. 맞는지요?
답변 : 직옹의 설이 맞습니다.
(4-2123)中庸曰: ‘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竊謂此兩句大意言百姓日用而不知. 程先生牲牢之譬, 却是不曾飮食而不知, 非日用不知也. 據程先生所言, 只譬如道者, 如人食牲牢, 須曾喫了方知, 非爲此章. 至於呂與叔謂必察於芻豢之性․草木之滋․火齊之節․調飫之宜, 恐非本旨. 黙竊謂‘味’卽指飮食而言, 若曰‘人莫不飮食, 鮮能知味也’, 卽飮食則行之而著․習矣而察者也. ‘味’與‘飮食’只是作互用文耳. 不知如何? 直翁以飮食譬日用, 味譬理, 此說亦似當, 不知是否?
直翁說是.
중용 제12장에 ‘군자의 도는 단서가 부부에게서 시작되니,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천지에 밝게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네 구절을 위의 글에 근거하여 보자면, 도는 부부와 같은 평범한 데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는 비교적 적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망령스럽게도 ‘상하에 밝게 드러남’은 이 이치를 아는 것이며, ‘천지에 밝게 드러남’은 실천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자의 도가 부부에게서 비롯한다는 것에 대해, 자사는 아래 장에서 이미 그 점을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군자의 도는 비유하면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하며, 높은 데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함과 같다.’ “시경에 ‘처자간(妻子間)에 정이 좋고 뜻이 합함이 금슬(琴瑟)을 타는 듯하며, 형제간이 이미 화합하여 화락(和樂)하고 또 즐겁도다. 너의 집안을 마땅하게 하며 너의 처자들을 즐겁게 한다.’ 하였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이렇게 되면) 부모가 그 편안하실 것이다.’라 하셨다.” 이는 천지의 순서를 드러낸 것입니다. 본래의 의미는 군자가 하는 말을 말하는 것이므로 상하에 밝게 드러난다는 것으로 잇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저는 이것은 이 이치를 아는 것으로, 맹자의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군자의 도를 말하면서 천지에 밝게 드러난다는 것으로 잇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는 실천한 곳으로, 문왕이 ‘과처(寡妻)에게 모범이 되었다’는 기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직옹은 선생님의 혹문에 ‘易重咸恒’이라는 설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대답 : 이 ‘찰(察)’자는 ‘드러나다(著)’로 새기고, ‘도달하다(到)’로 새기지 않습니다. 이 두 구절을 살펴보면, 단지 위 문장의 뜻을 거듭 설명하고 있을 뿐, 알았다, 행했다는 뜻은 없습니다.
中庸曰: ‘君子之道造端乎夫婦, 及其至也, 察乎天地.’ 黙竊謂此四句若本上文, 謂道始於夫婦之愚不肖, 意味殊少. 黙竊妄意謂‘上下察’是知得此理, ‘察乎天地’是行到處. 君子之道造端乎夫婦者, 子思下章已申言之曰: ‘君子之道, 譬如行遠必自邇, 譬如登高必自卑.’ 詩云: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和樂且耽. 宜爾室家, 樂爾妻孥. ’子曰: ‘父母其順矣乎. ’此察乎天地之次序也. 本意言君子所語, 而繼之以上下察, 故黙謂是知此理, 蓋孟子難言之意也. 言君子之道而繼之以察乎天地, 故黙謂是行到處, 蓋文王‘刑于(4-2124)寡妻’之氣象也. 不知如何? 直翁云先生或問中已有‘易重咸恒’之說, 黙未之見也.
此‘察’字訓著, 不訓到. 觀此兩句, 只是疊說上文意思, 未有知到行到之意.
질문 : 논어정의에 “이천 선생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학문에는 반드시 그 마음을 다해야 하니, 그 마음을 다하면 그 본성을 알게 되고, 그 본성을 알고 돌이켜서 성실하게 하는 것은 성인이다. 그러므로 서경 「홍범」에 ‘생각함은 지혜롭고, 지혜로움은 성스러움을 만든다’고 했다. 성실하게 하는 도는 도를 돈독하게 믿는 데에 있다. 도를 독실하게 믿으면 행동에 과단성이 있게 되고, 행동에 과단성이 있으면 지킴이 견고하다.”고 했습니다. 직옹은 의심스러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배우면서 마음을 다하면 도와 간격이 없게 되니(하나가 되니), 도에 대한 믿음이 독실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것을 성실하게 하는 것은 존양에 달려있을 뿐인데, 왜 도에 대한 독실한 믿음이 필요하겠는가? 이천의 말씀은 도에 대한 믿음은 상하를 관통한다는 것이다. 학문의 시작은 진실로 도에 대한 독실한 믿음에 있지만, 마음을 다하고 난 뒤에도 역시 도에 대한 독실한 믿음에 있다.’ 저는 도와 간격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독실할 수 있지만, 만약 도와 간격이 있게 되면 아직 도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도를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믿는 것은 단지 성현의 말씀일 뿐이지 스스로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천 선생은 도에 대한 독실한 믿음은 마음을 다하고 본성을 아는 것 다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학자는 마음과 본성을 다하는 것이 어떤 학문인지를 먼저 밝힌 다음에 학문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변 : 믿음에는 얕고 깊음이 있으니, 성현을 독실하게 믿고서 믿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도리의 당연함을 깨닫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천의 뜻은 대체로 덕공의 설명과 같지만, 이와 같이 한 뒤라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칩니다. 또 ‘도’라는 글자의 뜻에 대해서도 이천의 생각과 덕공이 다릅니다.
論語精義: ‘伊川先生曰, 學必盡其心, 盡其心則知其性, 知其性云云. 反而誠之, 聖人也. 故洪範曰: 思曰睿, 睿作聖. 誠之之道在乎信道篤, 信道篤則行之果, 行之果則守之固.’ 直翁所疑曰: ‘學而至於盡心, 則與道不隔, 非信道篤者能之也. 則所以誠之者特在存養而已, 至此豈待言信道篤? 而伊川云爾者, 蓋信道者通貫上下者也. 爲學之始, 固在夫信道之篤 : 至於盡心之後, 亦在夫信道之篤也.’ 黙以爲惟與道不隔者爲能信篤, 若與道隔, 則尙未識道, 安能信哉? 其所信者, 特信聖賢之言爾, 非自信也. 故伊川信道篤必在於盡心知性之後. 學者要當先明盡心性爲何學, 然後知學之可以爲聖人決矣. 不知先生以爲如何?
信有淺深, 有是篤信聖賢而信之者, 有是自見得道理當然而信之者. 伊川之意蓋如德功之說, 然謂如此然後能信, 則又過矣. 又‘道’字之義, 恐伊川之意與德功亦不同也.
이천 선생이 ‘인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사욕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으면 곧 불인이다’고 했습니다. 직옹이 그것을 추론하여 ‘인이란 천리이다. 사람이 사욕이 없으면 오묘한 천리가 마음의 가운데에 혼연할 것이니, 그 마음이 인에서 벗어남이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저 생각으로는 ‘월(越)’자는 ‘위(違)’와 다르니, ‘위(違)’자는 위배의 의미이니, 사욕이 인을 덮어버리는 것이 바로 위(違)입니다. ‘월(越)’자는 도리어 위월(違越)의 의미이니, 어떻게 그것을 위월할 수 있겠습니까? 직옹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곧 인을 위월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방심이란 것 역시 그 마음을 보존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 했고, 방심은 월(越)이 아니라 했습니다. 예에는 품절이 있기 때문에 월(越)이라 말할 수 있지만, 인에는 밖이 없기 때문에 월이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변 : 위(違)는 리(離)와 같으니, 떠나가는 것입니다.
伊川先生曰: ‘不違仁是無纖毫私欲, 有少私欲便是不仁. ’直翁推之曰: (4-2125)‘仁者, 天理也. 人能無欲, 則天理之妙渾然于中, 其心無所越於仁矣. 黙謂‘越’字與‘違’別, ‘違’字乃違背之意, 只私欲蔽了仁便是違也. ‘越’字却是違越之意, 豈得違越得他? 直翁云: ‘纔有放心, 便是違越仁矣. ’黙云放心亦只是不能存其心, 云放心非是越也. 惟禮有品節, 可以言越, 仁者無外, 不可言越. 不知先生以爲如何?
違猶離也, 去也.
질문 : 이 부분은 저의 견해에 의거해서 말씀드리니,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복해서 논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답변 : 역에 대한 설은 매우 거칠고 간략해서 점검할 수 없어 감히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알려준 것이 자세하긴 하지만, 이와 같이 함부로 이론을 내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발 자중하시길 바랍니다.
此卷據鄙見奉報, 未知是否, 幸反復論之也.
易說則全然草率, 不通點檢, 未敢奉報. 告且子細, 未要如此容易立論. 千萬千萬! 至懇至懇!
강덕공에게 답함 (●해 11월 초5일) 答江德功亥十一月初五
보내오신 편지 속의 역경과 중용에 관한 설에서, 그대가 마음을 씀이 간절하다는 것을 족히 볼 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좋은 곳도 또한 많습니다. 다만 성현의 말씀은 의미가 심원(深遠)하여 자세히 반복하여 십 년 이십 년 동안 공부해도 오히려 그 10분의 1, 2도 보지 못하는데, 어찌 이처럼 막 자질구레한 일을 물리치고서 한 번 보고서 곧 감히 급작스레 이처럼 설을 내놓을 수 있는지요? 문장의 뜻을 해석하는 데 틀린 곳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상이 경박하고 얕아, 도리와 서로 같지 않습니다. 원컨대 이런 뜻을 내버려두고서, 성현의 말씀을 반복해서 음미하여, 곧 통하지 않는 곳이 있을 때는 임시로 의의(疑義)를 만들어 친구들과 더불어 논의한다면, 침착하고 훈훈한 기상을 조금 간직할 수가 있을 것이니, 관계되는 바가 실로 적지 않습니다. 직옹은 자세히 살피기를 원하고, 서로 모여 강습하는 것을 좋아하며, ‘차란(遮攔)’에 관해 논한 의미 역시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옛 현인들이 말씀하였으니, 관건은 힘써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所喩易中庸之說足見用心之切, 其間好處亦多. 但聖賢之言意旨深遠, 子細反覆, 十年二十年尙未見到一二分, 豈可如此纔方撥冗看得一過, 便敢遽然立論? 似此恐不但解釋文義有所差錯, 且是氣象輕淺, 直與道理不相似. 願且放下此意思, 將聖賢言語反覆玩味, 直是有不通處, 方可權立疑義, 與朋友商量, 庶幾稍存沉浸醲郁氣象, 所繫實不輕也. 直翁謹願詳審, 好相聚講習, 所論‘遮攔’意亦佳. 然前賢固已言之矣, 但在力行如何.
강덕공에게 답함 答江德功
보내주신 글에서 성과 경을 구별하였는데, 이는 지위로 말한 것과 같습니다. 모름지기 그 ‘명(命)’이라는 글자의 본뜻을 보아야 하니, 성은 진실이요 경은 삼가고 경외하는 것으로 가리키는 뜻 자체가 같지 않습니다. 또 옛날과 오늘날의 공부의 차이를 논했는데, 이는 참으로 명쾌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있고 옛날에는 없다는 것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서로 방해가 됩니까 안 됩니까? 다시 나중에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자세히 논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감히 섣불리 가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명(二銘)의 뜻은 참 좋습니다만, 모두 미진한 곳이 있습니다. 예컨대 ‘천리를 따르고, 인욕을 스스로 이겨내며’, ‘저것과 내가 융화하여 만물과 한 몸이 된다’ 등의 말은 만나 강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아야 합니다. 이 이치를 가슴속에 묵묵히 간직하면서 실제로 일을 처리하면서 체험하는 것만 못합니다.
示喩誠․敬之別, 此猶是以地位而言. 須看其‘命’字之本意, 則誠是眞實, 敬是畏謹, 指意自不同也. 又論今昔用功之異, 此固曉然. 但不知今日之有․昔日之無是同是別? 是相妨是不相妨? 更須他日款曲面論, 今未敢懸斷可否也. 二銘意甚佳, 然亦皆有未安處. 如‘天理旣循, 人欲自克’, ‘彼己旣融, 萬物同體’等語, 亦當俟面講之. 但此等文字非有不得已者, 亦不必作, 不若黙存此理於胸中而驗之行事之實也.
강덕공에게 답함(신축년 정월 2일) 答江德功辛丑正月二日
보내주신 편지의 여러 이론은 이미 자세하게 읽었습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논했던 성과 경의 자의가 같지 않은 것은 바야흐로 경을 논하면서 부당하게 성을 인용하여 설명했는데, 이는 본래 매우 오묘하게 보이려 한 것이지만 도리어 지리멸렬해졌기 때문입니다. 뜻이란 모두 사물로 인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물은 밖에서 오지만 뜻의 실질은 안에서 생기고, 다만 그 가운데에는 올바름과 삿됨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의를 안이라 하고 사의를 밖이라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또 보내주신 글에서 말씀하시기를 ‘성은 사물의 본체로서 빠뜨릴 수 없고, 경 역시 사물의 본체이니 빠뜨릴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자못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개 예전에 당신이 문의(文義)를 자세하게 이해하고 의리를 반복하여 체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곳에서 매우 거칠고 조잡한 것입니다.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에 배운 학문의 잘못을 깨닫기만 하고 장차 실제 행사에서 시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절로 의리와 합일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의리에 나아가 공부하더라도, 또 의리와 온전히 합일하지 못함을 걱정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자세히 살펴 옛날 학문의 소견으로 인해 일로 시험하는 공부를 더해 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소견에 차이가 있으면 근본이 틀려버립니다. 비록 일로 시험하는 공부를 하더라도 끝내 합일하지 못하고 따로따로 놀게 됩니다. 의리라고 부르는 이름 자체에 착오가 있는데 어떻게 의리와 완전하게 합일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곳은 순서를 뛰어넘어 빨리만 가려는 옛날의 병폐의 의미이니, 더욱 주의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示喩諸說已悉. 前書所論誠敬字義不同, 正爲方此論敬, 不當引誠爲說, 本欲高妙, 反成支離耳. 意皆因事物而有, 然事物外至而意實內生, 但於中有邪正耳. 難以誠意爲內, 邪意爲外也. 來喩又云: ‘誠者體物而不可遺, 敬亦體物而不遺’, 此語殊不可曉. 大率左右向來不曾子細理會文義, 反復涵泳義理, 故於此等處多是鹵莽. 恐更須加詳細也. 所喩舊學之誤但爲不將事試, 故不能自合義理. 今就義理上用工, 又患未能全合. 詳此意思, 似是欲因舊學所見而加事試之功, 以補其闕耳. 正恐所見有差, 根脚便不是了. 雖加事試之功, 終不免兩截也. 義理名字呼喚得尙自有差, 却如何便得全合義理耶? 此等處仍是舊病躐等欲速之意, 尤不可不察也.
강덕공에게 답함 答江德功
(질문하신) 이해하기 어려운 뜻은 자세히 살펴보고 난 뒤에 답변하겠습니다. 역설을 상당히 많이 수정하였던데, 참 좋습니다.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의미를 캐고 실천하는 것으로서 급선무로 삼아야지, 저술에 급급해서는 안 됩니다. 일상생활의 자기에게 절실한 공부에 방해만 될 뿐만 아니라, 또 말하는 바가 꼭 옳은 것도 아니니, 한갓 정력만 허비하게 됩니다. 저의 이런 전날의 절실한 병통을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진 그대가 이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우기를 끊고 책을 버려라’는 말은, 피곤해진 뒤에는 글을 봐도 되지 않습니다. 이는 바로 전날 힘을 너무 지나치게 써서, 마음과 힘이 다 쇠약해진 것이니, 우선 쉬라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또한 생각이 안정된 것을 깨달아, 끌리거나 흔들리는 소란스러움이 없고 성찰하는 공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정말 장자(莊子)가 말한 것처럼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疑義俟細看奉報. 易說知頗改更, 甚善. 然學者以玩索踐履爲先, 不當汲汲於著述. 旣妨日用切己工夫, 而所說又未必是, 徒費精力. 此區區前日之病, 今始自悔, 故不願賢者之爲之也. 絶學捐書, 是病倦後看文字不得. 正緣前日費力過甚, 心力俱衰, 且爾休息耳. 然亦覺意思安靜, 無牽動之擾, 有省察之功, 非眞若莊生所謂也.
강덕공에게 답함 答江德功
보내주신 역설 등의 글은 무엇을 말했는지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감히 책을 펼 수가 없습니다. 累承喩及, 必欲見彊, 使同其說, 隱之於心, 有未能安者, 遂不敢奉報. 지금 당신의 말을 들으니, 책을 완성하고 싶지만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명예를 추구한다는 비난을 피하고자 한다 하니,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자는 생각과 무엇이 다릅니까? 당신의 소견이 무엇 때문에 나날이 치우치고 잘못된 데로 흘러 이러한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천하의 이치는 오직 올바름뿐입니다. 만약 옳다면, 세상에 이름을 알린들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만약 옳지 않다면, 세상에 이름을 내놓지 않는다한들 무엇이 이롭겠습니까? 당신이 논한 ‘건곤(乾坤)’ 같은 경우, 어떤 부분은 주역의 첫머리부터 헷갈렸으니, 어떻게 역의 도를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들이 세 성인을 직접 뵙고 그를 스승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이는 더더욱 사려 깊지 못한 말입니다. 말씀하신 ‘건곤’ 자의(字義)의 경우, 아마 자신도 꿈에도 세 성인을 보지 못했을 것인데, 어떻게 감히 함부로 말하십니까? 편지를 쓰고 마무리하면서. 저의 주변이 없고 고지식한 저의 말은 이 편지에서 끝내고 이제 다시는 당신의 가르침을 요청하는 글을 받지 않겠습니다. 잘 살펴주십시오.
示及易說等書, 實不曉所謂, 不敢開卷. 累承喩及, 必欲見彊, 使同其說, 隱之於心, 有未能安者, 遂不敢奉報. 今承見語, 欲成書而不出姓名, 以避近名之譏, 此與掩耳偸鈴之見何異? 不知賢者所見何故日見邪僻, 至於如此? 夫天下之理, 唯其是而已. 若是, 則出名何害? 若不是, 則不出名何益? 若如所論‘乾坤’(4-2129)二字, 乃是將一部周易從頭鶻突了, 豈能使易道著明乎? 若曰人人親見三聖而師之, 此尤不揆之言. 如所說‘乾坤’字義, 恐自家未夢見三聖在, 如何敢開此大口耶? 元書謹用封納. 拙直之言, 盡於此書, 今後不復敢聞命矣. 千萬見察.
강덕공에게 답함 答江德功
보내주신 경전에 관한 설명 가운데. 맹자의 대의는 상당히 좋습니다. 그리고 다소 미흡한 곳도 조금 있지만, 천천히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가 지은 역설은 보면 볼수록 어긋나, 세 번 반복해서 읽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개탄하며 생각했습니다. 시골의 친구 가운데 맑고 소박하고 진실한 사람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글을 읽어도 세상의 갖가지 병통은 없으니, 덕공(德功) 같은 사람은 아직 없었습니다. 평소에 내 마음으로 남 몰래 늘 사랑하고 사모하고 있었던 까닭에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될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한 덕공이 저를 더럽다 여기지 않으시는 덕분에 몇 년 동안 강론하는 바가 일치되지 않고, 저의 성질까지도 깊지 못하고 좁아서, 헐뜯고 배척한 것이 이르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도, 저에게 질문해 주시는 뜻이 더욱 근면하여 게을러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은 다른 사람들이 어찌 능히 미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얼마 전부터 지금까지 날이 오래 될수록 집착하는 바는 더 굳어가고 보는 바는 더욱 치우쳐 갑니다. 부지런히 열심히 밤낮으로 궁구하여, 마음을 공평하게 가지고 기상을 온화하게 하여, 다른 사람과 자기의 설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참고하고 일치시켜 반복하여 논란하여 지극히 타당한 데로 돌아갈 것을 구할 겨를은 없고, 오로지 자기의 뜻만 따라 새롭고 기이한 것을 다투어 내놓아, 자기의 설이 이기기만을 구하다 보니, 이리저리 돌고 지리하게 되어 날로 어그러져 가는 데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마음을 씀이 잘못된 것이 무슨 까닭에 여기에까지 이르렀습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이해시킬 수가 없습니다. 다만 혼자서 한탄만 할 따름입니다. 이제 그대가 보내온 글에서, 그 중 한두 가지를 말해보겠습니다.
所示經說, 孟子大意頗佳, 其間亦有少未合處, 徐議未晩也. 但易說愈見乖戾, 三復駭然. 因復慨念鄕里朋友淸素樸實, 刻意讀書, 無世間種種病痛, 未有如德功者, 所以平日私心常竊愛慕, 思有以補萬分者. 亦荷德功不鄙, 三數年來, 雖所論不合, 加以鄙性淺狹, 譏誚排斥無所不至, 而下問之意愈勤不懈. 此在他人, 亦豈能及? 然自頃至今, 爲日愈久而所執愈堅, 所見愈僻, 孜孜矻矻, 日夜窮忙, 不暇平心和氣, 參合彼己異同之說, 反覆論難, 以求至當之歸, 而專狥己意, 競出新奇, 以求己說之勝, 以至於展轉支離, 日益乖張而不悟. 不知用心錯誤何故至此? 使人更不可曉, 但竊歎恨而已. 今且據來示而擧其一二言之.
만약 ‘건(乾)은 강건함(健)이다’라 하고, 또 ‘그 강건함을 체득하는 것을 건(乾)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건이 본래 강건함이라면 이 강건함을 따로 체득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 다시 이 강건함을 체득해야 하는 것을 건이라 하면, 이 건은 강건함 밖에 있게 되니, 이것을 저것과 합한 이후에 건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또 ‘군룡무수(羣龍無首)’ 같은 경우, 이천역전의 무망괘 육이의 설을 쓰고 있는데, 이치로 보면 비록 틀린 게 없지만, 안착해야 할 자리(지위)도 아니며 문리(文理)도 전혀 맞지 않습니다. 또 그것을 갈라서 둘로 만드는 것은 서로 모순됩니다. 대개 건은 만물의 시작이 되기 때문에 천하의 사물은 모두 그것에 의지하여 시작됩니다. 다만 그 육효는 때에 따라 모두 변화하기 때문에 ‘군룡무수’의 상이 있는 것입니다. 군자는 그것을 체득하면, 당연히 겸손하고 공손하며 자신을 낮추어 순응하지 감히 천하의 앞에 서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천덕(天德)으로서 첫머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며, 또한 건이 첫머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아닙니다. 천덕은 가능하지만 첫머리는 될 수 없다는 것은 문리에도 맞지 않으니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만약 건이 첫머리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면, 만물은 어디서 생겨나며, 또 누가 그로 하여금 첫머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까? 또 이천역전의 설은 사람이 사사로운 생각으로 시작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했을 뿐입니다. 건이 시작이 된다는 것은 천리의 자연으로, 형체와 심사를 가진 사람이 사사로운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如旣曰‘乾健也’, 而又曰‘能體其健之謂乾’, 若乾本是健, 卽別無體此健者. 若更要體得此健方謂之乾, 則是乾在健外, 以此合彼, 而後得謂之乾也. 又如‘羣龍無首’, 乃用程傳無妄六二之說, 雖於理不謬, 然安頓不是地頭, 全然不是文理. 又且岐而爲二, 互相矛盾. 蓋乾爲萬物之始, 故天下之物無不資之以始. 但其六爻有時而皆變, 故有羣龍無首之象. 而君子體之, 則當謙恭卑順, 不敢爲天下先耳. 非謂可天德而不可爲首也, 又非謂乾不爲首也. 可天德而不可爲首, 不成文理, 無可言者. 若曰乾不爲首, 則萬物何所資始, 而又誰使爲之首乎? 且程傳之說, 爲人不可以私意造始, 故爲之戒耳. 若乾之爲始, 乃是天理自然, 非若人有形體心思而能以私意造始也.
이 두 가지 설은 그 착오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까닭을 탐구해보면, 대체로 옛날에 불학의 현묘한 소견을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를 밖으로 삼고 일을 조잡한 것으로 여기며 심법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게도 그것은 대역의 본질과는 어긋나서 엉터리로 날조하는 데 이르고야 말 것이니, 높아지려다가 도리어 낮아지고 정밀하려다가 도리어 소략해질 뿐입니다. 이는 의리의 근본이 크게 잘못된 것으로 단지 문자의 의미가 잘못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병통은 오히려 부차적이요, 오히려 일상생활을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분수에 맞는 실제 공부를 하지 않고 억지로 끌어다 붙이려는 계책만 생각하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설령 꿰어 맞춘 것들이 모두 옳다 하더라도 쓸모가 없을 것이고 효력도 없을 것인데, 하물며 그것이 날이 갈수록 더 어긋나니 어찌 헛되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여 이로움은 없고 도리어 해로움만 있지 않겠습니까?
此二說者, 其失甚不難見. 原其所以失之, 大抵只是日前佛學玄妙之見尙在, 故以理爲外, 以事爲粗, 而必以心法爲主. 然又苦其與大易體面不同, 須至杜撰捏合, 所以欲高而反下, 欲密而反疎耳. 此是義理本原大差謬處, 不但文義之失. 然在今日德功病痛, 尙是第二義. 却是日用之間, 自己分上更不曾實下功夫, 而窮日夜之力, 以爲穿鑿附會之計, 此是莫大之害. 正使撰得都是, 亦無用處, 不得力. 况其乖戾日甚一日, 豈不枉費功夫, 虛度光陰, 不惟無益, 而反有害乎?
저의 비루한 뜻으로 저윽이 바라건대, 덕공(德功)은 전날의 현묘한 혼잡한 여러 가지를 버리고, 일상생활의 간직하고 위주로 삼는 바가 있고 응접하는 곳에 나아가 실질적인 공부를 하여, 공경과 방자함, 의리와 이익, 옳음과 그름, 득과 실의 차이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만약 책을 읽으려면, 장차 논어, 맹자, 시경, 서경 등의 책을 읽어, 평이하고 명백하고 가히 의거할만한 지취가 있는 데로 나아가서 도리의 면모를 보고, 덕성의 본원을 함양하여, 오래 되면 점차 실제적인 땅을 밟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모름지기 스스로 흑백을 보려고 꼭 이렇게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힘을 들일 것이 없습니다. 만약 반드시 이 설을 끝까지 궁구하려고 한다면, 또한 먼저 이전의 견해에 지나치게 파고드는 것을 버리고서, 오늘날 이전에 저가 이야기한 것과 덕공(德功)이 동의하지 않은 것을 기억을 살려 생각하여, 두 사람의 것을 한 곳에 써 모아, 자세히 비교하여 그 옳고 그름을 고찰하여 통렬하게 분석하고 비판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아마도 궁극적으로 귀결되는 곳이 있게 되어, 오늘날처럼 한 쪽만 보고 서로 대조하여 참고할 줄을 모른 채 끝도 없이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고 붓 가는 대로 쓰느라 끝날 기약이 없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병이 깊어지고 게으름은 심해져 가슴속에 품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이처럼 간략하게 답장하니 자세히 헤아려 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만약 내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더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만약 그르다고 생각되면, 번거롭게 이 편지에 답장하지 마시고, 또 앞으로 다시는 질문하는 편지도 하지 말아주십시오.
熹之鄙意竊願德功放下日前許多玄妙骨董, 卽就日用存主應接處實下功夫, 理(4-2131)會箇敬肆義利․是非得失之判. 若要讀書, 卽且讀語孟詩書之屬, 就平易明白․有事迹可按據處看取道理體面, 涵養德性本原, 久之漸次踏著實地, 卽此等說話須自見得黑白, 不須如此勞心費力矣. 若必欲便窮竟此說, 亦請先罷穿鑿己見, 且更追思今日以前凡熹所說與德功不同者, 幷合兩家, 寫作一處, 子細較量, 考其是非, 痛加辯詰, 亦庶幾有究竟處. 不至如今日只見一邊, 不相照應, 而信口信筆, 無有了期也. 病起倦甚, 懷不能已, 略此奉報, 千萬詳之. 若以爲是, 幸卽加功. 若以爲非, 卽此書不煩見答, 今後亦不須更下喩矣.
강덕공에게 답함 答江德功
좋지 못한 질병이 잇달아 말할 수 없이 쇠약하고 피곤한데, 지난번 갑자기 강서제형의 명을 받았는데 판단하건대 임지로 갈 수가 없습니다. 올 초에 문득 임금을 뵙고 일을 아뢰라는 지휘를 받고 병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나아갔지만 너무 힘들어 특별히 사람을 보내 간곡히 사양하였지만 끝내 허락을 받지 못했으니, 곧바로 길을 나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편지를 보냈는데, 일단 길을 나서서 조정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만일 조정에서 별다른 명령이 없으면 곧바로 서울로 한번 가서 임금을 뵙고 간청하고 돌아오라 합니다. 이처럼 늙고 병들었으니, 임금께서 반드시 헤아려주실 것입니다. 보내주신 여러 경전의 서문에 대한 해석은 이와 같은 번거로운 일들 때문에 아직 자세하게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략 보건대, 아직도 옛날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혼의의 시는 참 좋고, 그 가운데 황부의 이른바 혼상이 이것입니다. 삼구 지방에 소자용 승상이 편찬한 의상법요란 책 판본이 있는데, 바로 이 부시가 혼상이라고 합니다. 다만 오연이 말하는 4개의 구멍으로 똑같이 나누고 중성(中星)을 더한다는 것이 어떻게 제작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이해하기도 상당히 어려우니, 아직 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熹災病相仍, 衰悴萬狀, 昨被按刑之命, 判不能往赴矣. 正初忽聞奏事指揮, 疲曳進趨, 尤覺費力, 專人懇辭, 竟不得命, 旦夕不免就道. 或入文字, 而於前路俟報. 萬一不獲, 卽一到都下, 面懇而歸. 度此衰殘, 必蒙聖照也. 所示諸經序解, 偶此冗劇, 未及細看. 然觀大略, 似亦未離舊處也. 渾儀詩甚佳, 其間黃簿所謂渾象者是也. 三衢有印本蘇子容丞相所撰儀象法要, 正謂此俯視者爲渾象也. 但詳吳掾所說平分四孔, 加以中星者, 不知是物如何制作, 殊不可曉, 恨未得見也.
강덕공에게 답함 答江德功
제가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조정에 가서 모욕을 당했습니다. 다행이 임금께서 변명해주시기는 했지만 끝내 모든 죄를 다 씻어내지는 못해서 봉사직(사록관)을 적극 요청했습니다. 이치는 곧고 도의는 밝으니 요청한 봉사직은 반드시 허락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죄를 얻는다 하더라도 수치를 참고 벼슬을 할 것입니다. 기형(璣衡)의 제작과 관련해서는, 서울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다리의 통증 때문에 아직 가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들은 바가 매우 소략하니, 만약 수륜(水輪)을 만들 수 없다면, 이렇게만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요컨대, 형(衡)으로 기(璣)를 살피고, 우러러 실제 천상(天象)을 관찰하여 헤아리는 것도 자체로 하나의 기구요, 오늘날 사람들이 만든 작은 혼상도 자체로 하나의 기구이니,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설명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원우 시기(1086년-1093년)에 제작한 것이 매우 정밀합니다만, 그러나 그 책 역시 갖추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핵심처입니다. 제조한 사람이 이 부분을 비밀로 한 것은 모두 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음이 틀림없습니다.
熹老病之餘, 扶曳造朝, 自取羞辱. 雖幸天日有以辨明, 然罪終有未盡滌者, 已力請奉祠矣. 理直義明, 計必可得. 不然, 雖使得罪, 亦勝忍耻作官也. 璣衡之制, 在都下不久, 又苦足痛, 未能往觀. 然聞極疎略, 若不能作水輪, 則姑亦如此可矣. 要之以衡窺璣, 仰占天象之實, 自是一器, 而今人所作小渾象自是一器, 不當幷作一說也. 元祐之制極精, 然其書亦有不備, 乃最是緊切處. 必是造者秘此一節, 不欲盡以告人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