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논어혹문

팔일

황성 2009. 3. 3. 21:55

 

八佾 第三

 

凡二十六章通前篇末二章皆論禮樂之事

 

1. 孔子謂季氏하시되八佾로舞於庭하니是可忍也면孰不可忍也리오

공자가 계씨를 두고 이르시되 팔일무로 뜰에서 춤을 추니 이것을 차마 할 수 있다면 무엇을 차마하지 않으리오?

 

季氏는 魯大夫季孫氏也라 佾은 舞列也니 天子八이요 諸侯六이요 大夫四요 士二 며 每佾人數는 如其佾數라 或曰 每佾八人이라하나 未詳孰是라 季氏以大夫而僭用天子之禮樂하니 孔子言其此事를 尙忍爲之면 則何事不可忍爲리오하시니라 或曰 忍은 容忍也니 蓋深疾之之辭라

계씨는 노나라 대부 계손씨이다. 일은 춤의 대열이니, 천자는 여덟 줄, 제후는 여섯 줄, 대부는 네 줄, 사는 두 줄이며, 매번 줄의 사람 숫자는 그 줄의 숫자와 같다. 혹이 말하기를 매 줄은 여덟 사람이라고 하니, 누가 옳은 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계씨가 대부로 참람되이 천자의 예악을 사용하니, 공자가 그 이 일을 오히려 차마 한다면 무슨 일을 차마 하지 않으리오 하시니, 혹이 말하기를, 인은 용인이라 하니, 대개 깊이 미워한 말이다.

 

○ 范氏曰 樂舞之數는 自上而下하여 降殺以兩而已라 故로 兩之間에不可以毫髮僭差也라 孔子爲正에 先正禮樂하시니則季氏之罪는 不容誅矣니라 謝氏曰君子於其所不當爲에 不敢須臾處는 不仁故也어늘 以季氏忍此矣면 則雖弑父與君이라도 亦何所憚而不爲乎리오

범씨왈, 악무의 수는 위로부터 내려와서 2줄씩 줄어들 뿐이다. 그리므로 둘의 사이에는 털끈 만치라도 어긋날 수 없으니, 공자가 정사를 함에 먼저 예악을 바로잡는다면 계씨의 죄는 주벌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씨가 말하기를, 군자는 마땅히 하지 않을 바에 잠시라도 처할 수 없음은 차마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계씨가 이것을 차마 할 것이라면 비록 아버지와 군주를 주어더라도 또한 무엇을 꺼려서 하지 않으리오.

 

2. 三家者以雍徹이러니子曰 相維辟公이어늘天子穆穆을奚取於三家之堂고

삼가가 옹 음악으로 철상하였더니, 공자가 돕는 이 제후이거늘 천자가 목목하다 하는 것을 어찌 삼가의 집에서 쓸 수 있단 말인가?

 

三家는 魯大夫孟孫叔孫季孫之家也라 雍은 周頌篇名이라 徹은 祭畢而收其俎也라 天子宗廟之祭에는 則歌雍以徹하나니 是時에 三家僣而用之라 相은 助也요 辟公은 諸僕也라 穆穆은 深遠之意니 天子之容也라 此는 雍時之辭니 孔子引之하여 言三家之堂에 非有此事어늘 亦何取於此義而歌之乎아하시니 譏其無知妄作하여 以取僣窮之罪시니라

삼가는 노나라 대부 맹손 숙손 계손의 집안이다. 옹은 주송 편명이다. 철은 제사가 끝남에 그 제기를 거두어 들이는 절차이다. 천자 종묘의 제사에는 옹을 노래하여 철상하니, 이때에 삼가가 분수에 넘치게 사용하였다. 상은 도움이다. 벽공은 제후이다. 목목은 심원한 뜻이니, 천자의 용모이다. 이것은 옹시의 어지러움이니 공자가 인용하여 삼가의 당에 이 일이 있어서는 안되거늘 또한 이 뜻에서 취하여 노래하는가?라고 하여 그 무지하고 망작하여 참람되고 훔치는 죄를 취함을 기롱하였다.

 

○ 程子曰 周公之功이 固大矣나 皆臣子之分所當爲니 魯安得獨用天下禮樂哉리오 成王之賜와 伯禽之受가 皆非也라 其因襲之弊가 遂使季氏僭八佾하고 三家僭雍徹이라 故로 仲尼譏之시니라

정자가 말하기를, 주공의 공로가 진실로 위대하나 모두 신자의 직분에 마땅히 해야할 바이니, 노나라가 어찌 유독 천자의 예악을 쓸 수 이었겠는가? 성왕의 하사와 백금의 받음이 모두 잘못되었는지라 그 인습의 폐단이 마침내 계씨로 하여금 참람되게 팔일무를 추게하고 삼가로 하여금 참람되게 옹으로 철상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중니가 기롱하였다.

 

3. 子曰 人而不仁이면如禮何며人而不仁이면如樂何리오

자왈, 사람이고서 인하지 못하면 예에 어떻게 하며, 사람이고서 인하지 못하면 악에 어떻게 하리오.

 

游氏曰 人而不仁이면 則人心亡矣니 其如禮樂에 何哉리오 言雖欲用之 나而禮樂不爲之用也라

유씨왈, 사람이고서 인하지 못하면 인심이 망실되니(사라지게 되니) 그 예악에 어떻게 하리오. 말하자면, 비록 쓰고자 하나 예악이 사용되지 않는다.

 

○ 程子曰 仁者는 天下之正理니 失正理則無序而不和니라 李氏曰 禮樂은 待人而後行이니 苟非其人이면 則雖玉帛交錯하고 鍾鼓鏗鏘이라도 亦將如之何哉리오 然이나 記者序此於八佾雍徹之後하니 疑其爲僭禮樂者發也니라

정자왈, 인자는 천하의 정리이니 정리를 잃는다면 순서(예)가 없어서 조화(악)롭지 못한다. 이씨왈, 예악은 사람을 기다린 이후에 행해지니 또한 그 마땅한 사람이 아니면 비록 옥백(예물, 예)이 서로 어긋나며 종고(악기, 예)가 울리나 또한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기록하는 사람이 이것을 팔일과 옹철의 뒤에 서술하니, 의심컨대, 예악을 참람되게 하는 사람을 위하여 발설한 듯 하다.

 

4. 林放이 問禮之本한대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었는데

 

林放은魯人이니見世之爲禮者專事繁文하고而疑其本之不在是也라 故로 以爲問이라

임방은 노나라 사람이니 세상에서 예를 하는 사람이 오로지 번거로운 문식을 일삼는 것을 보고 그 근본이 여기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물음을 삼았다.

 

子曰 大哉라問이여

자왈 크도다 질문이여

 

孔子以時方逐末이어늘 而放獨有志於本이라 故로 大其問이라 蓋得其本이면 則禮之全體無不在其中矣라

공자가 당시에 바야흐로 말단을 쫓았는데 임방이 유독 근본에 뜻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 질문을 크게 여겼다. 대개 그 근본을 얻는 다면 예의 전체가 그 가운데에 있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禮는與其奢也론寧儉이요 喪은與其易也로寧戚이니라

예는 그 사치함과 더불어서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그 절차가 갖추어짐과 더불어서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

 

易는治也라 孟子曰易其田疇라하시니 在喪禮則節文習熟而無哀痛慘怛之實者也라 戚은 則一於哀而文不足耳라 禮貴得中이니 奢易則過於文이요 儉戚則不及而質이니 二者皆未合禮라 然이나 凡物之理는 必先有質而後有文하니 則質乃禮之本也라

이는 다스림이다. 맹자가 말하기를(학민, 하 457쪽) 그 밭두둑을 다스린다 하니, 상례에 있어서는 절도와 문식이 익숙하여 애통하고 참달한 실재가 없는 것이다. 척은 슬픔에서 한결 같아 문식이 부족할 따름이다. 예는 중을 얻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사치하고 절차가 갖추어진다면 문식에서 지나치고, 검소하고 슬퍼한다면 미치지 못하고 질박하니, 두 가지는 모두 예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무릇 사물의 이치는 반드시 먼저 질박함이 있고 뒤에 문식이 있으니 질은 곧 예의 근본이다.

 

○ 范氏曰 夫祭는 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론 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며 喪은 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론 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니 禮失之奢와 喪失之易는 皆不能及本而隨其未故也라 禮奢而備가 不若儉而不備之愈也요 喪易而文이 不若戚而不文之愈也니 儉者는 物之質이요 戚者는 心之誠이라 故로 爲禮之本이니라 楊氏曰 禮始諸飮食이라 故로 汙尊而抔飮이러니 爲之簠簋籩豆罍爵之飾은所以文之也니則其本儉而已라 喪不可以徑情而直行일새 爲之衰麻哭踊之數는 所以節之也니 則其本戚而已라 周衰에世方以文滅質이어늘 而林放獨能問禮之本이라 故로 夫子大之而告之以此시니라

범씨왈, 대저 제사는 그 공경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기 보다는 예가 부족하고 공경이 남음이 있는 것만 못하며, 상은 그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기 보다는 예가 부족하고 예가 남은이 있는 것만 못하니, 예가 사치함에서 근본을 상실함과 상이 갖추어져 근본을 상실함은 모두 능히 근본에 미치지 못하고 그 말단을 따르기 때문이다. 예가 사치하여 완비됨이 검소하여 갖추어짐의 나음만 못하고, 상이 갖추어져 꾸며짐이 슬퍼하여 꾸미지 않음의 나음만 못하니, 검소함은 사물의 바탕이요, 척은 마음의 성실함이다. 그러므로 예의 근본이 된다.

양씨왈, 예는 음식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웅덩이에 그릇을 만들어 움켜서 마셨더니 보궤 변두 뇌작의 치장을 만듦은 문식한 바이니 그 근본은 검소할 따름이다. 상은 정을 가로질러 곧바로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쇠마 곡용의 수를 만듦은 조절하는 바이니, 그 근본은 슬퍼할 따름이다. 주나라가 쇠락함에 세상이 바야흐로 문으로 바탕을 멸하거늘 임방이 홀로 능히 예의 근본을 물었다. 그러므로 부자가 크게 여기고 고해주기를 이것으로 하였다.

 

5. 子曰 夷狄之有君이 不如諸夏之亡也니라

자왈, 이적이 군장이 있음이 제하에 없는 것과 같지 않다.

 

吳氏曰 亡 古無字通用이라 程子曰 夷狄 且有君長하니 不如諸夏之僭亂하여 反無上下之分也니라

오씨왈, 무는 옛날에 무자와 더불어 통용되었다. 정자왈 이적에 또 군장이 있으니 제하가 참람되어 도리어 상하의 구분(분수)이 없는 것과 같지 않다.

○ 尹氏曰 孔子傷時之亂而歎之也시니非實無也 雖有之 不能盡其道爾니라

윤씨왈, 공자가 당시의 어지러움을 상심하여 탄식하셨다. 무는 진실로 없는 것이 아니요, 비록 있지만 그 도리를 다할 수 없을 따름이다.

 

6. 季氏旅於泰山이러니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아 對曰 不能이로소이다 子曰 嗚呼라 曾謂泰山不如林放乎아

계씨가 태산에 여제사를 지냈더니, 공자가 염유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능히 허물을 구원하지 못하는가? 대답하기를, 능하지 못합니다. 자왈, 아, 일찍이 태산이 임방만 못하겠는가?

 

祭名이라 泰山 山名이니 在魯地 諸侯祭封內山川하니 季氏祭之 僭也冉有孔子弟子 名求 時爲季氏宰 謂救其陷於僭竊之罪嗚呼 歎辭 言神不享非禮 欲季氏知其無益而自止 又進林放以厲冉有也시니라

여는 제사 이름이다. 태산은 산 이름이니 노나라 땅에 있다. 예에 제후가 봉지 내의 산천에 제사 지내니, 계씨가 제사 지냄은 참람됨이다. 염유는 공자의 제자이니 이름은 구이다. 당시에 계씨의 총재가 되었다. 구는 참절의 죄에 빠짐을 구원함을 이른다. 오호는 탄식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신은 예가 아닌 것을 흠향하지 않으니 계씨로 하여금 그가 무익함을 알아 스스로 그치게 하고자 함이요, 또 임방을 칭찬하여 염유를 힘쓰게 함이다.

 

○ 范氏曰 冉有從季氏하니 夫子豈不知其不可告也리오 然而聖人不輕絶人하여 盡己之心하시니 安知冉有之不能救 季氏之不可諫也리오 旣不能正이면 則美林放以明泰山之不可誣하시니 是亦敎誨之道也니라

범씨가 말하기를 염유가 계씨를 추종하니 부자가 어찌 그가 고할 수 없음을 알지 못하였겠는가? 그런데도 가볍게 사람을 끊지 아니하여 자기의 마음을 다하시니, 염유가 능히 구원할 수 없음과 계씨를 간할 수 없음을 관계할까 보랴? 이미 능히 바로잡지 못한다면 임방을 칭찬하여 태산을 속일 수 없음을 밝히시니, 이것은 또한 가르치는 도리이다.

 

7. 子曰 君子無所爭이나 必也射乎인저 揖讓而升하여 下而飮하나니 其爭也君子라

자왈,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으나 반드시 활쏘기 일 것이다. 읍하고 사양하여 사선에 올라서 내려와 마시니 그 다툼이 군자이다.

 

揖讓而升者大射之禮 耦進三揖而後升堂也下而飮 謂射畢揖降하여 以俟衆耦皆降하여 勝者乃揖하면 不勝者升하여 取觶立飮也言君者恭遜하여 不如人爭이요 惟於射而後有爭이라 이나 其爭也雍容揖遜乃如此하니 則其爭也君子而非若小人之爭也

읍하고 사양하여 오름은 대사례에 짝지어 나아가 세 번 읍한 이후에 당에 오름이다. 내려와서 마심은 활쏘기가 끝남에 읍하고 내려와서 여러 짝이 모두 내려오기를 기다려 이긴 사람이 곧 읍하면 이기지 못한 사람이 당에 올라 술잔을 잡고 서서 마심을 이른다. 말하자면 군자는 공손하여 타인의 다툼과는 같지 않고 오직 활쏜 이후에 다툼이 있다. 그러나 그 다툼이 화하고 용납하고 읍하고 공손함이 곧 이와 같으니 그 다툼이 군자답고 소인의 다툼과는 같지 않다.

 

8. 子夏問曰 巧笑倩兮며 美目盼兮여 素以爲絢兮라하니 何謂也잇고

자하가 묻기를 공교로운 웃음에 보조개가 아름다우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 소로써 채색을 한다라고 하니,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逸詩也好口輔也 目黑白分也 粉地 畵之質也 采色이니 畵之飾也言人有此倩盼之美質하고 而又加以華采之飾이니 如有素地而加采色也子夏疑其反謂以素爲飾이라 問之

이것은 잃어버린 시이다. 천은 보조개가 아름다움이다. 변은 눈의 흑백이 분명함이다. 소는 분지이니 그림의 바탕이요, 현은 채색이니 그림의 장식이다. 말하자면 사람이 이 아름답고분명한 아름다운 바탕이 있고 또 화려한 채색의 장식을 더하니, 마치 흰종이가 있고 채색을 더하는 것과 같다. 자하가 의심하기를 그 도리어 흰종이로 장식을 삼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물었다.

 

子曰 繪事後素니라

자왈, 그림 그리는 일은 소보다는 뒤이다.

 

繪事 繪畵之事也後素 後於素也 考工記曰 繪畵之事後素功이라하니 謂先以粉地爲質而後施五采하니 猶人有美質然後可加文飾이라

회사는 그림 그리는 일이다. 후소는 소보다 뒤이다. 고공기에 말하기를, 회사의 일은 소의 일보다 뒤이다라고 하니 먼저 분지로 바탕을 삼은 이후에 채색을 칠하니, 오히려 사람이 아름다운 바탕이 있은 연후에 문식을 더할 수 있음과 같다.

 

曰 禮後乎인저 子曰 起予者는 商也로다 始可與言詩已矣로다

자하왈, 예가 뒷일 것입니다. 자왈, 나를 기발하는 사람은 상이로다.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도다.

 

必以忠信爲質이니 猶繪事必以粉素爲先이라 猶發也 起予言能起發我之志意謝氏曰 子貢 因論學而知詩하고 子夏 因論詩而知學이라 皆可與言詩

예는 반드시 충신으로 바탕을 삼으니 오히려 회사는 반드시 분소를 우선을 삼는다. 기는 발과 같다. 나를 일으킴은 능히 나의 뜻을 일으켜 드러냄이다.

사씨왈, 자공은 학문을 논함으로 인하여 시를 알았고, 자하는 시를 논함으로 인하여 학문을 알았다. 그러므로 모두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었다.

 

○ 楊氏曰 甘受和하고 白受采하고 忠信之人이라야 可以學禮 苟無其質이면 禮不虛行이니 此繪事後素之說也孔子曰 繪事後素라하신대 而子夏曰 禮後乎인저하니 可謂能繼其志矣로다 非得之言意之表者 能之乎 商賜可與言詩者 以此 若夫玩心於章句之末이면 則其爲詩也固而已矣니라 所謂起予則亦相長之義也니라

양씨왈, 감은 화를 받고 백은 채색을 받나니 충신한 사람이라야 예를 배울 수 있다. 진실로 그 바탕이 없으면 예가 헛되게 행해지지 않으니 이것은 회사후소의 설명이다. 공자왈, 회사후소라고 하신대 자하가 말하기를, 예가 뒤입니다하니, 능히 그 뜻을 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의의 밖을 얻은 사람이 아니면 능하겠는가? 상과 사는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장구의 말단에서 마음을 완상하면 그 시를 해석(이해)함이 고루할 따름이다. 이른 바 나를 일으킴은 또한 교학상장의 뜻이다.

 

9. 子曰 夏禮를 吾能言之나 杞不足徵也며 殷禮를 吾能言之나 宋不足徵也는 文獻不足故也니 足則吾能徵之矣로리라

자왈, 하나라의 예를 내 능히 말할 수 있지만 기에서 현재 증명하여 찾을 수 없으며, 은나라의 예를 내 능히 말할 수 있지만 송나라에 가서 증명하여 찾을 수 없다.

 

夏之後殷之後證也 典籍也 賢也言二代之禮我能言之而二國不足取以爲證하니 以其文獻不足故也文獻若足이면 則我能取之하여 以證吾言矣리라

기는 하의 후예요, 송은 은의 후예이다. 징은 증명함이다. 문은 전적이요, 헌은 어진 사람이다. 말하자면, 2대의 예를 내 능히 말할 수 있지만 두 나라에서 족히 취하여 증명하지 못하니 그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써이다. 문헌이 만약 풍족할 것 같으면 내 능히 취하여 나의 말을 증명할 것이다.

 

10. 子曰 禘自旣灌而往者는 吾不欲觀之矣로라

자왈, 체제사는 이미 관신제를 지냄으로부터 이후로는 내 보고자 하지 않는다.

 

趙伯循曰 禘 王者之大祭也 王者旣立始祖之廟하고 又推始祖所自出之帝하여 祀之於始祖之廟하고 而以始祖配之也成王以周公有大勳勞라하여 賜魯重祭 得禘於周公之廟하고 以文王爲所出之帝而周公配之이나 非禮矣灌者 方祭之始 用鬱鬯之酒하여 灌之以降神也魯之君臣當此之時하여는 誠意未散하여 猶有可觀이요 自此以後則浸以懈怠而無足觀矣蓋魯祭非禮 孔子本不欲觀이요 至此而失禮之中又失禮焉이라 發此歎也시니라

조백순이 왈, 체는 왕천하하는 사람(천자)의 큰 제사이다. 왕자는 이미 시조의 사당을 세우고 또 시조가부터 나온 바의 제왕을 추존하여 시조의 사당에서 제자 지내고 시조로 배향한다. 성왕이 주공이 크게 훈로가 있다는 것으로써 노나라의 중한 제사를 하사하였다. 그러므로 주공의 묘에서 체제사를 지낼 수 있고, 문왕으로 부터나온 바의 제왕으로 삼아 주공으로 배향하였다. 그러나 예가 아니다. 관은 바야흐로 제사지내는 처음에 울창주를 사용하여 부어서 강신한다. 노나라의 군신이 이때를 당하여 성의가 흩어지지 않아서 오히려 위의를 볼만 한 것이 있었고, 여기부터 이후엔 점차로 해이하고 태만하여 족히 위의를 볼만 한 것이 없었다. 대개 노나라의 제사는 예가 아니니, 공자가 본래 보고자 하지 않았고, 여기에 이르러서는 예를 잃은 가운데 또 실례함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탄식을 드러내었다.

 

○ 謝氏曰 夫子嘗曰 我欲觀夏道하여 是故之杞而不足證也 我欲觀商道하여 是故之宋而不足證也라하시고 又曰 我觀周道하니 幽厲傷之 吾舍魯何適矣리오 魯之郊禘 非禮也 周公其衰矣라하시니 考之杞宋 已如彼하고 考之當今 又如此하니 孔子所以深歎也시니라

사씨왈, 부자가 일찍이 내 하나라의 도를 보고자하여 이 때문에 기나라에 갔지만 족히 증명하지 못했고, 내 상나라의 도를 보고자하여 이 때문에 송나라에 갔지만 족히 증명하지 못했다라고 하셨고, 또 말하기를, 내 주도를 보니 유왕과 려왕이 상실하였다. 내 노나라를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노나라의 교제사와 체제사는 예가 아니니, 주공의 정신이 쇠하고 말았구나 라고 하시니, 기송에서 상고함에 저와 같고, 지금에서 상고함에 이와 같으니, 공자가 길이 탄식한 바이다.

 

11. 惑問禘之說한대 子曰 不知也로라 知其說者之於天下也에 其如示諸斯乎인저하시고 指其掌하시다

혹이 체제사의 설명을 물었는데, 자왈, 알지 못한다. 그 설명를 아는 사람은 천하에 그 이것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시고, 그 손바닥을 가리켰다.

 

先王報本追遠之意莫深於禘하니 非仁孝誠敬之至 不足以與此 非或人之所及야요 而不王不禘之法又魯之所當諱者 以不知答之 與視同이라 指其掌 弟子記夫子言此而自指其掌이니 言其明且易也蓋知禘之說이면 則理無不明하고 誠無不格하여 而治天下不難矣聖人於此 豈眞有所不知也哉시리오

선왕이 근본에 보답하고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는 의사는 체제사보다 깊은 것이 없으니, 인효성경의 지극한 사람이 아니면 족히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니, 혹인이 미칠 바가 아니요, 제왕이 아니면 체제사를 지내지 않는 법은 또 노나라가 마땅히 피해야할 바이다. 그러므로 부지로 답하였다. 시는 시와 더불어 같다. 지기장은 제자가 부자가 이것을 말하고 스스로 그 손바닥을 가리킨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 분명하고 또 쉬움을 말한다. 대개 체의 설을 안다면 이치가 밝지 않음이 없고 정성이 이르지 않음이 없어서 천하를 다스림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여기에서 어찌 참으로 알지 못하는 바가 있었겠는가?

 

12. 祭如在하시며 祭神如神在러시다

제사지냄에는 신이 있는 듯 하시며, 귀신에게 제사 지냄에는 귀신이 있는 듯하시더라

 

程子曰 祭 祭先祖也 祭神 祭外神也祭先 主於孝하고 祭神主於敬이니라 愚謂此 門人記孔子祭祀之誠意

정자왈, 제는 선조에게 제사지냄이다. 제신은 외신에게 제사지냄이다. 선조에게 제사지냄은 효에서 주장하고 제신은 경에서 주장한다. 나는 생각건대, 이것은 문인이 공자가 제사지내는 성의를 기록한 것이다.

 

子曰 吾不與祭면 如不祭니라

자왈, 내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 지내지 않은 듯 여겼다.

 

又記孔子之言以明之 言己當祭之時하여 或有故不得與하여 而使他人攝之則不得致其如在之誠이라 雖已祭 而此心缺然하여 如未嘗祭也니라

또 공자의 말을 기록하여 밝혔다. 말하자면, 자기가 제사 지내는 때를 당하여 혹 연고가 있어 참여할 수 없어서 타인으로 하여금 제사 대신하게 하면 그 있는 듯한 정성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이미 제사 지냈지만 이 마음이 빠져서 마치 마음으로 제사 지내지 않는 듯하였다.

 

○ 范氏曰 君子之祭 七日戒하고 三日齊하여 必見所祭者 誠之至也是故郊則天神格하고 廟則人鬼享하니 皆由己以致之也 有其誠則有其神이요 無其誠則無其神이니 可不謹乎吾不與祭如不祭誠爲實이요 禮爲虛也니라

범씨왈, 군자가 제사 지냄에 7일 재계하고 3일 제게하여 반드시 제사지낼 바를 봄은 성의 지극함이다. 이 때문에 교제사는 천신이 이르고 사당 제사는 인귀가 흠향함은 모두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른다. 그 정성이 있다면 그 신이 있고, 그 정성이 없다면 그 신이 없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13. 王遜賈問曰 與其媚於奧론 寧媚於竈라하니 何謂也잇고

왕손가가 묻기를, 오에 친하기 보다는 차라리 조에 친한 것이 낫다라고 하니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王孫賈衛大夫親順也室西南隅爲奧 竈者 五祀之一이니 夏所祭也 凡祭五祀 皆先設主而祭於其所하고 然後迎尸而祭於奧하니 略如祭宗廟之儀如祀竈則設主於竈陘하고 祭畢而更設饌於奧하여 以迎尸也 時俗之語 因以奧有常尊이나 而非祭之主 竈雖卑踐이나 而當時用事하니 喩自結於君 不如阿附權臣也衛之權臣이라 以此諷孔子

왕손가는 위나라 대부이다. 미는 친순함이다. 집의 서남 모퉁이가 오가 된다. 조라는 것은 오사의 한가지이니, 여름에 제사지내는 것이다. 무릇 오사에 제사지냄에 모두 먼저 신주를 설치하고 그 곳에 제사 지낸 연후에 시동을 맞이하여 오에 제사 지내니 대략 종묘에 제사 지내는 의례와 같다. 만일 조에 제사 지낸다면 조의 모퉁이에 신주를 설치하고 제사가 마침에 다시 오에 음식을 설치하여 시동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시속의 말에 인하여 오에 항상 높임이 있지만 제사 지내는 주신이 아니요, 조는 비록 비천하나 당시에 좌지우지 하니, 스스로 군주에게 결탁함이 권신에게 아부함만 못함을 비유하였다. 가는 위나라의 권신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공자를 풍자하였다.

 

子曰 不然하다 獲罪於天이면 無所禱也니라

자왈,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卽理也 其尊無對하여 非奧竈之可比也 逆理則獲罪於天矣 豈媚於奧竈하여 所能禱而免乎言但當順理非特不當媚竈亦不可媚於奧也니라

천은 곧 이치이니, 그 높음은 상대함이 없어서 오와 조가 견줄만 한 것이 아니다. 이치를 거스른다면 하늘에 죄를 얻으니 어찌 오와 조에 아첨하여 빌어서 면할 바이겠는가? 말하자면 다만 마땅히 이치에 순해야 하니, 다만 조에 아첨함이 마땅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오에 아첨할 수 없다.

 

○ 謝氏曰 聖人之言遜而不迫하시니 使王孫賈而知此意 不爲無益이요 使其不知라도 亦非所以取禍니라

사씨왈, 성인의 말이 손순하여 박절하지 아니 하시니 왕손가로 하여금 이 뜻을 알더라도 무익함이 되지 않고, 가령 그가 알지 못하더라도 또한 화를 취하는 바가 아니다.

 

14. 子曰 周監於二代하니 郁郁乎文哉라 吾從周하리라

자왈, 주가 2대에서 보니 욱욱하다 문채나는도다. 내 주나라를 따르리라

視也二代 夏商也 言其視二代禮而揖益之郁郁 文盛貌

감은 시이이다. 2대는 하나라와 상나라이다. 말하자면 그 2대의 예를 보아 손익함이다. 욱욱은 문채가 성대한 모양이다.

○ 尹氏曰 三代之禮至周大備하니 夫子美其文而從之시니라

윤씨왈 3대의 예는 주나라에 이르러 크게 갖추어지니 부자가 그 문채남을 찬미하여 따랐다.

 

15. 子入大廟하사 每事問하신대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아 入大廟하여 每事問이온여 子聞之하시고曰 是禮也니라

공자가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물으신대, 혹이 말하기를, 누가 추땅 사람의 자식을 일러 예를 안다고 하는가?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묻는구나. 자 듣고서, “이것이 바로 예이다.”라고 하셨다.

 

大廟는魯周公廟라 此는 蓋孔子始仕之時에 入而助祭라 鄹는魯邑名이니 孔子父叔梁紇이嘗爲其邑大夫라 孔子自少로 以知禮文이라 故로 或人因此而譏之라 孔子言是禮者는 敬謹之至가 乃所以爲禮也라

태묘는 노나라 주공의 사당이다. 이는 아마도 공자께서 처음 벼슬할 때에 태묘에 들어가 제사를 도운 것인 듯하다. 추는 노나라 읍의 이름인데,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이 일찍이 그 읍의 대부가 되었었다. 공자는 젊어서부터 예를 안다고 소문이 났으므로, 혹자가 이를 인하여 비아냥거린 것이다. 공자께서 이것이 바로 예이다, 라고 말씀한 것은, 공경과 삼감이 지극한 것이 바로 예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尹氏曰 禮者는 敬而已矣니 雖知나 亦問은 謹之至也라 其爲敬이 莫大於此어늘 謂之不知禮者는 豈足以知孔子哉리오

윤씨가 말하기를, 예는 경일 뿐이니, 비록 알더라도 또한 묻는 것이 삼감이 지극한 것이다. 그 경을 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는데, 이를 일러 예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자는 어찌 공자를 알 수 있겠는가?

 

16. 子曰 射不主皮는 爲力不同科니 古之道也니라

자왈, 활 쏨에 가죽을 뚫는 것을 주장하지 않음은 힘이 등급이 같지 않기 때문이니, 옛날의 도리이다.

 

射不主皮는 鄕射禮文이라 爲力不同科는 孔子解禮之意如此라 皮는 革也니 布侯而棲革於其中하여 以爲的이니 所謂 鵠也라 科는 等也 古者에 射以觀德하여 但主於中하고 而不主於貫革하니 蓋以仁之力有强弱不同等也라 記曰 武王克商하고 散軍郊射에 而貫革之射息이라하니 正謂此也라 周衰에 禮廢하고 列國兵爭하여 復尙貴革이라 故로 孔子歎之시니

사불주피는 향사려의 문장이다. 힘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것은 공자가 향사례를 해석한 뜻이 이와 같음이다. 피는 가죽이니 후를 베로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가죽을 붙여서 표적으로 삼은 것이니, 이른 바 곡이라는 것이다. 과는 등급이다. 옛날에는 활쏘기로써 덕행을 관찰하여 다만 적중시미는 것만을 주장하고 가죽을 뚫는 것을 위주로 하지 않았으니, 이는 사람의 힘이 강약이 있어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기에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군대를 해산하여 교외에서 활쏘기를 함에 가죽을 꿰뜷는 활쏘기가 종식되었다. 주나라가 쇠퇴하여 예가 폐지되고 열국이 무력으로 다투어 다시 가죽을 꿰뚫는 풍습을 숭상하였으므로 공자가 한탄하신 것이다.

○ 楊氏曰 中은 可以學而能이어니와 力은 不可以强而至니 聖人言古之道는 所以正今之失이시니라

양씨가 말하였다. 적중시키는 것은 배워서 능할 수 있으나, 힘은 억지로 이르게 할 수 없으니, 성인께서 옛날의 도를 말씀하심은 지금의 잘못됨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17. 子貢이 欲去告朔之餼羊한대

자공이 초하룻날 고유하면서 바치는 희생을 없애려 한데,

*告를 곡이라고 발음할 때에는 정성이 지극함을 이른다.

 

告朔之禮는 古者에 天子常以季冬에 頒來歲十二月之朔于諸侯어든 諸侯受而藏之祖廟라가 月朔則以特羊告廟하여 請而行之라 餼는 生牲也라 魯自文公으로 始不視朔하되 而有司猶供此羊이라 故로 子貢欲去之라

곡삭의 예는 옛날에 천자가 항상 섣달에 다음해 12개울의 달력을 제후들에게 반포하면, 제후는 이것을 받아서 조상의 사당에 보관하였다가 매월 초하룻날이 되면 숫양 한 마리를 가지고 사당에 고유하고 청하여 시행하는 것이다. 희는 날고기의 희생이다. 노나라는 문공 때부터 비로소 초하루에 고유하는 예(삭을)를 살펴보지 않았으나, 유사가 오히려 이 양을 바쳤기 때문에 자공이 이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子曰 賜也아 爾愛其羊가 我愛其禮하노라

자왈,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는가 나는 그 예를 아까워한다.

 

愛는 猶惜也라 子貢이 蓋惜其無實而妄費라 然이나 禮雖廢라도 羊存이면 猶得以識之而可復焉이어니와 若倂去其羊이면 則此禮遂亡矣니 孔子所以惜之시니라

애는 석과 같다. 자공이 대개 그 실상이 없음을 아까워한 것이다. 그러나 예가 비록 폐지되었더라도 양이 남아 있으면 오히려 기억할 수 있어서 복구될 수 있거니와 만약 그 양머저 함께 없애버린다면 이 예가 마침내 없어질 것이니, 공자가 이 때문에 아까워하신 것이다.

 

○ 楊氏曰 告朔은 諸侯所以稟命於君親이니 禮之大者라 魯不視朔矣나 然이나 羊存則告朔之名未泯하여 而其實因可擧니 此夫子所以惜之也시니라

양씨가 말하여다. 곡삭은 제후가 천자와 조상에게 명을 품부하는 것이니, 예의 큰 것이다. 이때 노나라는 군주가 초하루에 고유하는 예를 살펴보지 않았으나, 양이라도 남아있으면 곡삭이란 명칭이 없어지지 않아, 그 실상을 이로 인하여 거행할 수 있으니, 이것이 공자가 아까워하신 것이다.

 

18. 子曰 事君盡禮를 仁以爲諂也로다

자왈, 임금 섬김에 예를 다함을 사람들이 아첨한다고 하는구나.

 

黃氏曰 孔子於事君之禮에 非有所可也요 如是而後盡爾어늘 時人不能하고 反以爲諂이라 故로 孔子言之하여 以明禮之當然也시니라

황씨왈, 공자가 사군의 예에 있어서 더한 바가 있었던 것이 아니요, 이와 같이 한 뒤에 극진히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능히 하지 못하고 도리어 아첨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이를 말씀하여 도리의 당연함을 밝히신 것이다.

 

○ 程子曰 聖人事君盡禮를 當時以爲諂이라하니 若他人言之면 必曰 我事君盡禮어늘 小人以爲諂이로되 而孔子之言이 止於如此하시니 聖人道大德宏을 此亦可見이니라

정자왈, 성인이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함을 당시 사람들이 아첨한다고 말하였으니, 만일 다른 사람이 이 상황을 말했더라면 반드시 내가 임금을 섬김에 예를 극진히 하거늘 소인들이 아첨한다고 하는구나 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말씀은 이와 같음에 그쳤으니, 성인의 도가 크고 덕이 넓음을 여기에서 또한 볼 수 있다.

 

19. 定公問 君使臣하며 臣事君하되 如之何잇고 孔子對曰 君使臣以禮하며 臣事君以忠이니이다

정공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며,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어찌 해야 합니까? 하지 공자가 대다하였다. 임금은 신하를 부리기를 예로써 하고, 신하는 임금을 섬기기를 충성으로써 해야 합니다.

 

定公은 魯君이니 名宋이라 二者는 皆理之當然이니 各欲自盡而已니라

정공은 노나라 군주이니, 이름은 송이다. 두 가지는 모두 이치의 당연함이니, 각각 스스로 다하고자 할 따름이다.

 

○ 呂氏曰 使臣에 不患其不忠이요 患禮之不至하며 事君에 不患其無禮요 患忠之不足이니라 尹氏曰 君臣은 以義合者也라 故로 君使臣以禮면 則臣事君以忠이니라

여씨왈, 신하를 부름에 그 불충을 근심하지 않고, 예의 지극하지 못함을 근심하며, 임금을 섬김에 예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충성이 부족함을 근심한다.

윤씨왈, 군신은 의로 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신하를 부리기를 예로써 하면 신하가 임금 섬기기를 충성으로써 하는 것이다.

 

20. 子曰 關雎는 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니라

자왈, 관저는 즐겁고 넘치지 아니하고 슬프며 해지지 않는다.

 

關雎는 周南國風이니 詩之首篇也라 淫者는 樂之過而失其正者也요 傷者는 哀之過而害於和者也라 關雎之詩는 言后妃之德이 宜配君子니 求之未得이면 則不能無寤寐反側之憂하고 求而得之면 則宜其有琴瑟鍾鼓之樂이니 蓋其憂雖深이나 而不害於和하고 其樂雖成이나 而不失其情이라 故로 夫子稱之如此하시니 欲學者玩其辭하고 審其音하여 而有以識其性情之情也시니라

관저는 주남 국풍이니 시의 머리 편이다. 음은 즐거움이 지나쳐 그 바름을 잃음는 것이다. 상은 슬픔이 지나쳐 화에 해지는 것이다. 관저의 시는 후비의 덕이 마땅히 군자에 짝할 만하니, 구하여 얻지 못하면 자나깨나 생각하며 몸을 뒤척거리는 근심이 없을 수 없고, 구하여 얻으면 금슬과 종고의 즐거움이 있음이 마땅하다고 말하였다. 그 근심이 비록 깊으나 화에 해치지 아니하고 그 즐거움이 비록 성대하지만 그 바름을 잃지 않기 때문에 부자가 일컬기를 이와 같이 하여 학자로 하여금 그 시의 말을 완상하고 그 시의 음악을 살펴서 성정의 바람을 알게 함이 있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21. 哀公이 問社於宰我한대 宰我對曰 夏后氏는 以松이요 殷人은 以柏이요 周人은 以栗이니 曰使民戰栗이니이다

애공이 재아에게 사에 대하여 물으니, 재아가 대답하기를 하후씨는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 사람은 측벽을 심어 사용하였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심어 사용하였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하게 한 것입니다. 하였다.

 

宰我는 孔子弟子니 名予라 三代之社不同者는 古者立社에 各樹其土之所宜木 以爲主也라 戰栗은 恐懼貌라 宰我又言周所以用栗之意如此하니 豈以古者戮人於社라 故로 附會其說與아

재아는 공자의 재자이니, 명은 여이다. 삼대의 사는 같지 않는 것은 옛날에 사를 세움에 각각 그 토양의 마땅한 나무를 심어서 주체로 삼았다. 전율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재아가 또 말하기를, 주나라가 밤나무를 사용한 이유의 듯이 이와 같다고 말하였으니, 어쩌면 옛날 사에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그 말을 부회한 것인가?

 

子聞之하시고 曰 成事라 不說하며 遂事라 不諫하며 旣往이라 不咎로라

공자 듣고서 말하기를 이루어진 일이라 말하지 않으며, 되어가는 일이라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탓하지 않는다.

 

遂事는 謂事雖未成이나 而勢不能己者라 孔子以宰我所對非立社之本意요 又啓時君殺伐之心이나 而其言己出하여 不可復救라 故로 歷言此以深責之하시니 欲使謹其後也시니라

수사는 일이 비록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형세가 그만 둘 수 없음을 이른다. 공자가 재아가 대답한 것이 사를 세운 본뜻이 아니고, 또 당시 임금의 살벌한 마음을 열어 주었으나, 그 말이 이미 이에서 나와 다시 구제할 수 없으므로, 이것을 일일이 말씀하여 깊이 꾸짖으셨으니, 이는 그로 하여금 그 뒤를 삼가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 尹氏曰 古者에 各以所宜木名其社하니 非取義於木也어늘 宰我不知而妄對라 故로 夫子責之시니라

윤씨왈, 고자에 각각 토질에 적당한 나무로써 그 사에 이름을 분ㅌ였을 뿐이다. 나무에서 뜻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재아가 이것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답하였기 때문에 부자가 책망하신 것이다.

 

22. 子曰 管仲之器小哉라

자왈, 관중은 그릇이 작도다.

 

管中은 齊大夫로 名夷吾니 相桓公하여 覇諸侯라 器小는 言其不知聖賢大學之道라 故로 局量褊淺하고 規模卑狹하여 不能正身修德以致主於王道라

관중은 제나라 대부로 이름은 이오이니, 환공을 도와 제후에 패자가 되었다. 기소는 말하자면, 성현의 대학의 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국량이 편협하고 비천하고 규모가 비루하고 좁아서 자신을 바루고 덕을 닦아서 군주를 왕동에 이르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或曰 管中은 儉乎잇가 曰管氏有三歸하며 官事를 不攝하니 焉得儉이리오

혹인이 말하기를, 관중은 검소합니까? 대답하기를, 관씨가 삼귀대를 두었으며, 관의 일을 섭행치 않으니 어찌 검소할 수 있겠는가?

 

或人은 蓋疑器小之爲儉이라 三歸는 臺名이니 事見說苑이라 攝은 兼也니 家臣不能具官하고 一人常兼數事어늘 管中不然하니 皆言其侈라

혹인은 대개 그릇이 작음이 검소함이 됨을 의심하였다. 삼귀는 누대 이름이니 일이 설원에 보인다. 섭은 겸섭함이니, 가신이 능히 관을 갖출 수 없고 한 사람이 항상 여러 일을 겸임하거늘 관중은 그렇지 아니하니 모두 그 사치함을 말한다.

 

然則管中은 知禮乎잇가 曰 邦君이야 樹塞門이어늘 管氏亦樹塞門하며 邦君이야 爲兩君之好에 有反坫이어늘 管氏亦有反坫이어늘 管氏而知禮면 孰不知禮리오

그렇다면 관중은 예를 아는 것입니까? 대답하기를, 나라의 군주라야 수로 문을 가리거늘 관씨도 또한 수로 문을 가리며, 나라의 군주라야 두 군주의 우호를 함에 반점을 두거늘 관씨 또한 반점을 두거늘 관씨이고서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는가?

 

或人은 又疑不儉爲知禮라 屛을 謂之樹라 塞은 猶廢也니 設屛於門하여 以蔽內外也라 好는 謂好會라 坫은 在兩楹之間이니 獻酒飮畢이면 則反爵於其上이라 此皆諸侯之禮어늘 而管中僭之하니 不知禮也라

혹인은 또 검소하지 않음이 예를 안다고 의심하였다. 병을 수라고 말한다. 색은 가림과 같으니, 병을 문에 설치하여 내외를 차단한다. 호는 좋게 잘 만남을 이른다. 점은 두 기둥의 상이에 있으니 헌수하여 마심이 끝나면 작을 그 위에 돌리니 이것은 모두 제후의 예이거늘 관중이 참람하게 쓰니, 예를 알지 못함이다.

 

○ 愚謂 孔子譏管中之器小하시니 其旨深矣라 或人不知而疑其儉이라 故로 斥其奢하여 以明其非儉하시고 或又疑其知禮라 故로 又斥其僭하여 以明其不知禮하시니 蓋雖不復明言小 器之所以然이나 而其所以小者를 於此亦可見矣라 故로 程子曰 奢而犯禮하니 其器之小를 可知라 蓋器大면 則自知禮而無此失矣라하시니 此言을 當深味也니라 蘇氏曰 自修身正家로 以及於國이면 則其本心하고 其及者遠이니 是謂大器라 揚雄所謂大器는 有規矩準繩이니 先自治而後治人者是也라 管中은 三歸反坫하고 桓公은 內嬖六人而覇天下하니 其本이 固己淺矣라 管中死하고 桓公薨에 天下不復宗齊하니라 梁氏曰 夫子大管中之功而小其器하시니 蓋非王佐之才면 雖能合諸侯正天下라도 其器不足稱也라 道學不明하여 而王覇之略을 混爲一途라 故로 聞管中之器小면 則疑其爲儉하고 以不儉告之면 則又疑其知禮하니 蓋世方以詭遇爲功하여 而不知爲之範하니 則不悟其小가 宜矣로다

나는 생각건대, 공자가 관중의 그릇이 작음을 기롱하시니, 그 뜻이 깊도다. 혹인이 알지 못하고 그 검소함을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그 사치함을 배척하여 검소하지 않음을 밝히시고, 혹이 또 그 예를 안다고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그 참람됨을 배척하여 그 예를 알지 못함을 밝히시니, 대개 비록 다시 작은 그릇의 소이연을 밝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작은 바를 여기에서 또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자가 말하기를, 사치하면서 예를 범하니 그 그릇의 작음을 알 수 있으니, 대개 그릇이 크다면 저절로 예를 알아 이 실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니 이 말은 마땅히 깊이 음미해야 한다. 수신과 집안을 바로잡음으로부터 국가에 미친다면 그 근본이 깊고 그 미침이 머니, 이것을 큰 그릇이라고 말한다. 양웅이 이른 바, 대기는 규구 준승과 같은 법이니, 먼저 스스로 다스린 이후에 남을 다스린다는 것이 이것이다. 관중은 삼귀대와 반점하고 환공은 안으로 6명의 사랑하는 첩을 두어 천하를 제패하니 그 근본이 진실로 이미 비천하다. 관중이 죽고 환공이 죽음에 천하가 다시 제나라를 종주로 삼지 않았다. 양씨왈, 부가가 관중의 공을 크게 여기시고 그 그릇을 작게 여기시니, 대개 왕도로 보좌하는 재주가 아니다. 비록 능히 제후를 통합하고 천하를 바로잡았더라도 그 그릇은 족히 말할 것이 못된다. 도학이 밝지 못하여 왕도와 패도 의 대략이 뒤섞여 한 길이 되기 때문에 관중의 그릇이 작음을 들으면 그 검소함을 의심하고 검소하지 않음으로 고해준 즉 또 그 예를 안다고 의심하니, 대개 세상이 바야흐로 부정한 방법으로 공로여 여기고 위하여 법으로 할 줄을 알지 못한다면 그 작음을 깨닫지 못함이 마땅하다.

 

23. 子語魯大師樂曰 樂은 其可知也니 始作에 翕如也하여 從之에 純如也하며 皦如也하며 繹如也하여 以成이니라

자 노나라 태사에게 음악을 이르시되, 음악은 그 알 수 있으니, 시작에 흡여한 듯하여 따름에 순여한 듯하며 밝은 듯하며 이어지면서 끊어지지 않은 듯하여 한 장을 마친다.

 

語는 告也라 大師는 樂官名이라 時音樂廢缺이라 故로 孔子敎之라 翕은合也요 從은 放也요 純은 和也요 교은 明也요 繹은 相續不絶也라 成은 樂之一終也라

어는 고함이다. 태사는 악관의 명칭이다. 당시에 음악이 폐하고 이지러졌다. 그러므로 공자가 가르쳤다. 흡은 합함이다. 종은 놓음이다. 순은 화함이다. 교는 밝음이다. 역은 서로 이어지면서 끊어지지 않음이다. 성은 음악이 한 번 끝남이다.

 

○ 謝氏曰 五音六律不具면 不足以言樂이니 翕如는 言其合也라 五音合矣면 淸濁高下如五味之相濟而後和라 故로 曰純如요 合而和矣면 欲其無相奪論이라 故로 曰皦如也 然이나 豈宮自宮而商自商乎아 不相反而相連하여 如貫珠可也라 故로 曰繹如也以成이라하시니라

사씨왈, 5음 6율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족히 음악을 말할 수 없으니, 흡여는 그 합함을 말한다. 5음이 합하면 청탁과 고하가 마치 오미가 서로 어울린 뒤에 화하기 때문에 순여하고 합하여 화함에 그 서로 차례를 빼앗지 않기 때문에 교여하다. 그러나 어쩌 궁은 저절로 궁이며 상은 저절로 상이리오. 위반되지 아니하고 서로 이어짐이 마치 구슬을 꿴 듯함이 옳다. 그러므로 역여하여 이룬다.

 

24. 儀封人이 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에 吾未嘗不得見也로라 從者見之한대 出曰 二三者는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久矣라 天將以夫子爲木鐸이시리라

의봉인이 뵙기를 청하여 말하기를, 군자가 여기에 이름에 내 일찍이 보지 않음이 없었도다. 시종하는 사람이 보도록하였다. 나와서 말하기를, 그대들은 상에 대해서 무엇을 근심하는가? 천하가 도없음이 오래되었다. 하늘이 장차 부자로 목탁을 삼으려 하신다.

 

儀는 封邑이라 封人은 掌封疆之官이니 蓋賢而隱於下位者也라 君子는 爲當時賢者하여 至此에 皆得見之는 自言其平日不見絶於賢者하여 而求以自通也라 見之는 謂通使得見이라 喪은 謂失位去國이니 禮曰 喪欲速貧이 是也라 木鐸은 金口木舌이니 豕政敎時에 所振以警衆者也라 言亂極當治니 天必將使夫子得位說敎하여 不久失位也라 封人이 一見夫子而遽以是稱之하니 其得於觀感之間者深矣라 或曰 木鐸은 所以徇于道路니 言天使夫子失位하고 周流四方하여 以行其敎를 如木鐸之徇于道路也라

의는 위나라 읍이다. 봉인은 봉강을 맡은 관리이니, 대개 어질고서 아래 지위에 은거한 사람이다. 군자는 당시의 어진사람이다. 여기에 이름에 모두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평소에 현자에게 거절을 당하지 않고 구하여 스스로 통함이다. 견지는 시자를 통하여 볼 수 있음을 이른다. 상은 지위를 잃고 나라를 떠남이니, ??예기??에 상에는 빨리 가난하고자 함이 이것이다. 목탁은 쇠 입에 나무 혀이니, 정교를 베푸는 때에 울려 무리를 깨우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지러움이 지극하면 마땅히 다스려지니 하늘이 반드시 장차 부자로 하여금 지위를 얻어 설교하여 오래도록 지위를 잃지 않음이다. 봉인이 한번 부자를 보고서 문득 이것으로 지칭하니 그 보고 느끼는 사이에서 얻음이 깊도다.

혹자가 말하기를, 목탁은 도로에 순찰하는 바이니, 말하자면 하늘이 부자로 하여금 지위를 잃어서 사방을 두루 다니게 하여 그 가르침을 실행하게 하기를 마치 목탁이 도로에 순찰하는 것과 같다.

 

25. 子謂韶하시대 盡美矣요 又盡善也라하시고 謂武하시되 盡美矣요 未盡善也라하시다

자가 소음악을 이르시되, 모두 아름답고 또 모두 선하다라고 하시고 무음악을 이르시되 다 아름답고 다 선하지는 않다라고 하시다.

 

韶는 舜樂이요 武는 武王樂이라 美者는 聲容之盛이요 善者는 美之實也라 舜은 紹堯治하고 武王은 伐紂救民하니 其功一也라 故로 其樂皆盡美라 然이나 舜之德은 性之也요 又以揖遜而有天下하고 武王之德은 反之也요 又以征誅而得天下라 故로 其實有不同者라

소는 순의 음악이요, 무는 무왕의 음악이다. 미라는 것은 소리와 용모의 성대함이요. 선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의 실상이다. 순은 요를 이어서 치세를 이루시고, 무왕은 주왕을 정벌하여 백성을 구원하시니 그 공은 한가지이다. 그러므로 그 음악이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순의 덕은 본성대로 한 것이요, 또 읍하고 사양하여 천하를 소유하시고, 무왕의 덕은 돌이킨 것이다. 또 정벌과 주벌로 천하를 얻었으니, 그러므로 그 실상은 같지 않는 것이 있다.

 

○ 程子曰 成湯放桀에 惟有慙德 하시니 武王亦然이라 故로 未盡善이라 堯舜湯武는 其揆一也니 征伐은 非其所欲이요 所遇之時가 然爾니라

정자왈, 성탕(성탕의 성은 미칭으로 덕을 이루었다는 의미) 걸을 추방하고, 오직 부끄러운 덕이 있으니, 무왕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다 선하지는 않다. 요순 탕무는 그 법은 한가지이니, 정벌은 그 원한 바가 아니라 만난 것이 그러할 따름이다.

 

26. 子曰 居上不寬하며 爲禮不敬하며 臨喪不哀면 吾何以觀哉리오.

자왈, 위에 거처하여 관대하지 않으며, 예를 행하면서 공경하지 않으며 상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 무엇으로 보겠는가?

 

居上엔 主於愛人이라 故로 以寬爲本이라 爲禮엔 以敬爲本이요 臨喪엔 以哀爲本이니 旣無其本이면 則以何者而觀其所行之得失哉아

거상엔 남을 사랑함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관대함으로 근본을 삼고, 위례는 경으로 근본을 삼고 임상은 애로 근본을 삼으니 이미 그 근본이 없다면 어떤 것으로써 그 행하는 바의 득실을 관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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