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논어혹문

5장

황성 2008. 11. 17. 23:33

5. 或問道之為治 何也 曰道者 治之理也 以為政者之心而言也

 혹이 묻기를, 도가 다스림이 됨은 어떻습니까?

 왈, 도는 다스림의 이치이니, 위정자의 사람의 마음으로 말한다.


曰然則曷為不言治 曰治者 政教號令之為治之事也 夫子之所言者 心也 非事也 若范氏以魯變至道為言 則其失既逺 至其卒章 又以富之而未及夫教為言 則其自相矛盾 又甚矣 游氏引養引恬之說 似以道為引導之義 然與孔氏書傳不合 豈新義之云耶 然下文五者 亦非引導之事 其說不得通矣

 묻기를, 그렇다면 어찌 다스림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왈, 치(治)라는 것은 정교와 호령이 다스림을 하는 일이다. 부자가 말한 것은 마음이요. 일로써가 아니다.

 범씨의 노나라가 변하여 도에 이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실수가 이미 아득하다. 그 마지막 장에 이르러 또 부유하게 하고 아직 가르침에 미치지 않는 것으로 말한다면 그 절로 모순이 됨이 또 심하다.

 유씨의 인양(引養) 인념(引恬)의 설명은 도로 인도하는 뜻으로 보는 것 같지만 그러나 공씨 『서전』//과 합치하지 않으니, 어쩌면 새로운 뜻을 말하였는가? 그러나 아래 문장 다섯 가지는 또한 인도하는 일이 아니니, 그 설명이 통하지 못한다.


曰千乗之說 包氏馬氏 孰為得耶 曰此義 蓋嘗考之 疑馬氏為可據 蓋如馬氏之說 則八百家而出車一乘 如包氏之說則八十家而出車一乗 凡車一乗 甲士歩卒合七十五人 而馬牛兵甲糧糗芻茭具焉 恐非八十家之力所能給也 然與孟子1)王制之說不同 疑孟子未嘗盡見班爵分土之籍 特以傳聞言之 故不能無小誤 若王制 則固非三代古書 其亦無足據矣

 묻기를, 천승의 설명은 포씨와 마씨 가운데 누가 옳습니까?

 왈, 이 뜻은 대개 일찍이 헤아려 보건대, 의심컨대, 마씨가 의거할 만하다. 대개 마씨의 설명과 같다면 8백가에서 전차 한 대가 나오고, 포씨의 설명과 같다면 8십가에서 천차 한 대가 나온다. 무릇 전차 한 대에는 갑병과 보병이 도합 75인이고 말  소 병갑 양식 건초가 갖추어지니, 아마 8십가의 힘으로 능히 공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맹자』와 「왕제(王制)」의 설명과 같지 않다. 의심컨대, 맹자가 일찍이 작위를 반열함과 토지를 나누어 준 문서를 다 보지 못하고, 다만 전해들은 것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조금의 오류가 없을 수 없다. 「왕제」와 같은 것은 진실로 3대 고서가 아니니, 그 또한 족히 의거할 만한 것이 못된다.


曰五者之目 諸說孰為得之 曰程子張子至矣 楊氏之說 曲折詳備 周氏以愛人為主 而四者為之先後 雖非本文之意 然其說亦善 尹氏後世不能先此以下 蓋本二夫子之意 而其卒章尤切也 若范氏則疎而不切 謝氏以子路何必讀書之言為是 當於本章辯之 其曰古人得百里之地 而君之 皆能以朝諸侯有天下 則千乗之國 亦足以用心者 則又若以為小國寡民本不足治 特以其治之之道 與天下同 而治之之效 有如此者 然後勉而治之耳 蓋其素論 嘗有不屑卑近之意 是以其言多類此 若如其說則其所以敬事而愛民者 亦豈出於誠心哉

 묻기를, 다섯 가지의 조목은 여러 사람의 설명 가운데 누가 옳습니까?

 왈, 정자와 장자가 지극하다. 양씨의 설명은 곡절이 상세하게 갖추어져 있다. 주씨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주장으로 삼아 4가지가 선후가 된다고 함은 비록 본문의 뜻이 아니지만 그러나 그 설명은 또한 좋다. 윤씨의 ‘후세에 능히 이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한 이하는 대개 두 부자(정자와 장자)의 뜻에 근본 하였고 주씨의 마지막 장은 더욱 절실하다. 범씨는 성글면서 절실하지 못하고, 사씨는 자로의 말 가운데 ‘하필 독서하리오.’라는 말을 옳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본장에서 변론하리라. 그가 말하기를, 고인이 백리의 땅을 얻어서 왕노릇하면 모두 제후에게 조회를 받고 천하를 소유할 수 있으니 천승의 나라도 또한 마음을 쓸 수 있다. 또 만약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은 본디 다스리지 못하니, 다만 그 다스리는 방도는 천하와 함께하고 다스림의 효과가 이와 같은 것이 있은 이후에 힘써서 다스린다고 생각하였을 따름이다. 대개 그의 평소 논의는 일찍이 비근함을 좋아하지 않는 뜻이 있다. 이 때문에 그의 말이 대체로 이와 같다. 만약 그의 설명과 같다면 일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또한 어찌 성심에게 나오겠는가?


曰節用愛人 游楊之說不同孰為得耶 曰互相發明而義各有當也蓋楊氏之說胡氏發明之為尤詳而游氏所譏則申子韓侯敝袴之說耳

胡氏曰節用者愛人之本也 然愛人者 其名覆衆 故慕之而易道 節用者 其事切已 故憚之而難行 徒以愛人之名 揚于衆 而不能以節用之實本諸已 則雖曰愛人而人終不蒙其愛矣 호씨가 말하기를, 쓰임을 절제하여 남을 사랑함은 남을 사랑하는 근본이다. 그러나 남을 사랑함은 그 이름이 무리에 덮히기 때문에 사모하여 말하기가 쉽고 절용은 그 일이 자신에게 간절하게 때문에 꺼려서 행하기 어렵다. 한갓 남을 사랑하는 이름이 무리에 드날려서 쓰임의 절제하는 실상으로 자신에게 근본할 수 없다면 비록 남을 사랑하지만 사람이 끝내 그 사랑을 입지 못할 것이다.

 묻기를, 節用愛人은 유씨와 양씨의 설명이 같지 않으니 누가 옳습니까?

 왈, 서로 밝혔으니 뜻은 각각 합당함이 있다. 대개 양씨의 설명은 호씨가 발명한 것이 더욱 상세하고 유씨가 기롱한 것은 신자와 한후의 폐고(敝袴)//의 설명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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