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논어혹문

위정 2 해석

황성 2009. 2. 5. 13:32

爲政 第二

 

凡二十四章이라

 

1. 子曰 爲政以德이 譬如北辰居其所어든 而衆星共(拱)之니라

자왈 정치하기를 덕으로써 함이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 뭇 별들이 향하는 것과 같다.

 

政之爲言은 正也니 所以正人之不正也요 德之爲言은 得也니 行道而有得於心也라 北辰은 北極이니 天之樞也라 居其所는 不動也라 共은 向也니 言衆星四面旋繞而歸向之也라 爲政以德이면 則無爲而天下歸之리니 其象如此라

정의 말됨은 바룸이니 사람의 바르지 않음을 바로잡는 바이다. 덕의 말됨은 얻음이니 도를 실천하여 마음에 얻음이 있음이다. 북신은 북극이니 하늘의 지도리이다. 거기소는 움직이지 않음이다. 공은 향함이니, 말하자면 뭇 별들이 사방으로 둘러 귀의하여 향함이다. 정치하기를 덕으로써 한다면 인위적으로 함이 없이 천하가 귀의하니 그 형상이 이와 같다.

 

○ 程子왈 爲政以德然後에 無爲니라 范氏曰 爲政以德이면 則不動而化하고 不言而信하고 無爲而成하여 所守者至簡而能御煩하고 所處者至靜而能制動하고 所務者至寡而能服衆이니라

정자왈, 정치하기를 덕으로써 한 이후에 인위적으로 함이 없다. 범씨왈 정치하기를 덕으로써 한다면 움직이지 않아도 교화되고 말하지 않아도 믿고 인위적으로 함이 없이 이루어져서 지키는 것이 지극한 간이하지만 능히 번잡함을 막고 처리하는 것이 지극히 고요하지만 능히 움직임을 제어하고 힘쓰는 바가 지극히 적지만 능히 무리를 복종시킨다.

 

2. 子曰 詩三百을 一言以蔽之하니 曰 思無邪니라

자왈 시 3백을 한 마디 말로 가리니 생각함이 사악함이 없다.

 

詩는 三百十一篇이니 言三百者는 擧大數也라 蔽는 猶蓋也라 思無邪는 魯頌駉篇之辭라 凡詩之言이 善者는 可以感發人之善心하고 惡者는 可以徵創人之逸志하니 其用은 歸於使人得其情性之正而已라 然이나 其言微婉하여 且或各因一事而發하여 求其直指全體면 則未有若此之明且盡者라 故로 夫子言詩三百篇을 而惟此一言이 足以盡蓋其義라하시니 其示人之意亦深切矣로다

시는 311편이니 3백이라고 말한 것은 큰 수를 든 것이다. 폐는 덮음과 같다. 사무사는 노송 경편의 말이다. 무릇 시경의 말이 선한 것은 사람의 선한 마음을 감발할 수 있고, 악한 것은 사람의 안일한 뜻을 징계할 수 있으니, 그 작용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정성의 바름을 얻게 함에 돌아갈 따름이다. 그러나 그 말이 은미하고 완곡하여 짐짓 혹 각각 한 가지 일로 인하여 드러내었지만 그 곧바로 전체를 가리킴을 구한다면 이와 같이 분명하고 또 극진한 것은 있지 않다. 그러므로 부자가 시경 3백 편 가운데 오직 이 한 마디 말이 그 뜻을 다 덮을 수 있다고 말하니, 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의미가 또한 깊고 절실하다.

 

○ 程子왈 思無邪者는 誠也니라 范氏曰 學者는 必務知要니 知要則能守約이요 守約則足以盡博矣라 經禮三百과 曲禮三千을 亦可以一言以蔽之하니 曰 毋不敬이니라

정자왈 사무사는 성이다. 범씨왈 학자는 반드시 요체를 앎을 힘쓰야 하니 요체를 안다면 능히 지키는 것이 간약하고 지킴이 간약하면 넓음을 다할 수 있다. 경례(큰 예) 3백과 곡례(사소한 예) 3천을 또한 한 마디 말로 가릴 수 있으니,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이다.

 

3. 子曰 道之以政하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恥니라

자왈 인도하기를 정사로써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형벌로써 한다면 면하지만 염치가 없다.

 

道는 猶引導니 謂先之也라 政은 謂法制禁令也라 齊는 所以一之也니 道之而不從者를 有刑以一之也라 免而無恥는 謂苟免刑罰而無所羞愧니 蓋雖不敢爲惡이나 而爲惡之心이 未嘗亡(무)也라

도는 인도와 같으니 앞장 섬을 이른다. 정은 법제와 금령이다. 제는 통일시키는 바이다. 인도하여 따르지 않는 사람을 형벌을 두어 통일시킨다. 면이무치는 구차히 형벌을 면하지만 부끄러워하는 바가 없으니, 대개 비록 악힌 짓을 하지는 않지만 악을 하려는 마음이 일찍이 없지 않다.

 

道之以德하고 制之以禮면 有恥且格이니라

인도하기를 덕으로써하고 제재하기를 예로써 한다면 염치가 있고 또 지극하게 된다.

 

禮는 謂制度品節也라 格은 至也니 言躬行以率之면 則民固有所觀感而興起矣요 而其淺深厚薄之不一者를 又有禮以一之면 則民恥於不善而又有以至於善也라 一說에 格은 正也니 書曰格其非心이라하니라

예는 제도 품벌을 이른다. 객은 이름이니, 말하자면 몸소 실행하여 인솔한다면 백성이 진실로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 흥기할 것이요, 그 천심 후박이 한결 같지 않는 사람을 또 예를 두어서 한결 같이 한다면 백성이 불선에 부끄러워하고 또 선에 이를 수 있다. 일설에 객은 바로잡음이니 서경에 그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는다 하였다.

 

○ 愚謂 政者는 爲治之具요 刑者는 輔治之法이요 德禮則所以出治之本이며 而德又禮之本也라 此其相爲終始하여 雖不可以偏廢나 然이나 政刑은 能使民遠罪而已요 德禮之效는 則有以使民日遷善而不自知라 故로 治民者는 不可徒恃其末이요 又當深探其本也니라

나는 생각건대, 정은 다스림을 하는 도구요 형은 다스림을 돕는 방법이요, 덕과 예는 다스림을 내는 바의 근본이며 떡은 또 예의 근본이다. 이것은 그 서로 종시가 되어 비록 어느 한족을(편중되게) 폐할 수 없으나 그러나 정형은 능히 백성으로 하여금 죄에서 멀게 할 수 있을 따름이요, 덕과 예의 효과는 백성으로 하여금 날마다 선으로 옮기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한갓 그 말(형정)을 믿어서는 않되고 또 마땅히 깊이 그 근본(덕례)를 탐구해야 한다.

 

4. 子曰 吾十有五而志干學하고

자왈 내 십에 또 오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古者에 十五而入大學이라 心之所之를 謂之志라 此所謂學은 卽大學之道也니 志乎此면 則念念在此而爲之不厭矣리라

옛날에 십오 세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마음이 가는 곳을 지라고 이른다. 이른 바 학은 곧 대학의 도리이니, 이 대학의 도리에 뜻을 둔다면 생각마다 여기에 있어서 하는데 염증을 내지 않을 것이다.

 

三十而立하고

삼십에 적립이 되고

 

有以自立이면 則守之固而無所事志矣리라

자립할 수 있다면 지킴이 견고하여 뜻을 두는 것을 일삼을 곳이 없을 것이다.

 

四十而不惑하고

사십에 의혹되지 아니하고

 

於事物之所當然에 皆無所疑면 則知之明而無所事守矣리라

사물이 마땅히 그러한 바에 모두 의심스러운 것이 없다면 앎이 밝아 지킴을 일삼을 바가 없을 것이다.

 

五十而知天命하고

오십에 천명을 알고

 

天命은 卽天道之流行而賦於物者니 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라 知此則知極其精而不惑을 又不足言矣리라

천명은 곧 천도가 유행하여 사물에 부여된 것이니 곧 사물이 마땅히 그러한 바의 연고이다. 이것을 안다면 앎이 그 정밀함을 지극히 하여 의혹되지 않음은 또 족히 말할 것이 못된다.

 

六十而耳順하고

육심에 귀가 순하고

 

聲入心通하여 無所違逆이니 知之之至하여 不思而得也라

소리가 들어옴에 마음으로 통하여 어기거나 거스름이 없으니 앎이 지극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절로 얻게 되는 경지이다.

 

七十而從心所欲하되 不踰矩호라

칠심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되 법도를 넘지 않았다.

 

從은 隨也라 矩는 法度之器니 所以爲方者也라 隨其心之所欲而自不過於法度니 安而行之하여 不勉而中也니라

종은 따름이다. 구는 법도의 기구이니 모서리를 만드는 바이다. 그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절로 법도에서 지나치지 않으니 편안히 하여 행하고,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적중함이다.

 

○ 程子曰 孔子는 生而知者也로되 言亦由學而至는 所以勉進後人也라 立은 能自立於斯道也요 不惑은 則無所疑矣요 知天命은 窮理盡性也요 耳順은 所聞皆通也요 從心所欲不踰矩는 則不勉而中矣니라 又曰孔子自言其進德之序如此者는 聖人未必然이요 但爲學者立法하여 使之盈科而後進하고 成章而後達耳니라 胡氏曰 聖人之敎亦多術이라 然이나 其要는 使人不失其本心而已라 欲得此心者는 惟志乎聖人所示之學하여 循其序而進焉하여 至於一疵不存하고 萬理明盡之後면 則其日用之間에 本心瑩然하여 隨所意欲호되 莫非至理니 蓋心卽體요 欲卽用이며 體卽道요 用卽義하여 聲爲律而身爲度矣리라 又曰 聖人言此하여 一以示學者當優遊涵泳이요 不可獵等而進이며 二以示學者當日就月將이요 不可半途而廢也니라 愚謂聖人은 生知安行하여 固無積累之漸이나 然이나 其心에 未嘗自謂已至此也라 是其日用之間에 必有獨覺其進而人不及知者라 故로 因其近似以自名하여 欲學者以是爲則而自勉이요 非心實自聖而姑爲是退託也라 後凡言謙辭之屬은 意皆放此니라

정자가 말하기를,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로되 또한 학문으로 말미암아 이르렀다고 말함은 후인을 나아가도록 권면하는 바이다. 입은 능히 사도에 자립함이요, 불혹은 의심하는 바가 없음이요, 지천명은 이치를 궁구하고 타고난 성품을 다함이요, 이순은 듣는 바가 모두 통함이요, 종심소욕불유구는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적중함이다. 또 말하기를, 공자가 스스로 그 덕에 나아가는 순서를 말함이 이와 같음은 성인이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되, 다만 학자를 위하여 법을 세워 하여금 구덩이를 채운 이후에 나아가며 문장을 이룬 이후에 이치에 통달하게 하려고 할 따름이다.

호씨가 말하기를 성은의 가르침이 또한 방법이 않으나, 그러나 그 요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심을 잃지 않게 할 따름이니, 이 마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성인이 제시한 바의 학문에 뜻을 두어 그 순서를 따라 나아가서 한 가지 병이 보존되지 않고 만 가지 이치기 밝기를 다한 이후에 이른다면 그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본심이 환하여 의욕하는 바를 따라서 지극한 이치가 아님이 없으니, 대개 마음은 체요 욕은 용이요, 체는 도요 용은 의니 소리가 법도가 되고 몸이 척도가 될 것이다. 또 말하기를, 성인이 이것을 말하여 첫째는 학자가 마땅히 넉넉히 노닐고 젖어 들어서 등급을 뛰어넘어 나아갈 수 없음을 보였고, 둘째는 학자가 마땅히 날마다 나아가고 달마다 나아가서 중도에 그만둘 수 없음을 보였다.

나는 이르건대, 성인이 자질로는 생이지지이고 실천함으로는 안이행지하시니 진실로 쌓아 점차적으로 함이 없으나, 그러나 그 마음에 일찍이 스스로 이미 여기에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반드시 홀로 그 나아감을 깨달았지만 남들이 미쳐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 근사함으로 인하여 스스로 명목을 지어서 학자로 하여금 이것으로 법칙을 삼아 스스로 힘쓰게 함이요, 마음으로 실재로 스스로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짐짓 이것으로 핑계 삼은 것은 아니다. 뒤에 무릇 겸사를 말한 등속은 뜻이 모두 이것을 본받은 것이다.

 

5. 孟懿子問孝한데 子曰 無違니라

맹의자가 효를 물었는데, 자왈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孟懿子는 魯大夫仲孫氏니 名何忌라 無違는 謂不背於理라

맹의자는 노나라 대부 중손씨이니, 명은 하기이다. 무위는 이치에 이긋남이 없음을 이른다.

 

樊遲御러니 子告之曰 孟孫이 問孝於我어늘 我對曰 無違라호라

번지가 수레를 몰았더니, 공자가 일러말하기를, 맹손이 나에게 효를 묻거늘 내가 대답하기를, 이긋남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樊遲는 孔子弟子니 名須라 御는 爲孔子御車也라 孟孫은 卽仲孫也라 夫子以懿子未達而不能問하니 恐其失指而以從親之令爲孝라 故로 語樊遲以發之시니라

번지는 공자 제자니 명은 수이다. 어는 공자를 위하여 수레를 몲이다. 맹손은 즉 중손이다. 부자가 맹의자가 아직 깨닫지 못했는데, 능히 묻지 아니하니, 그 가리키는 뜻을 잃고 어버이의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효라 삼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번지에게 말하여 드러내게 함이다.

 

樊遲曰 何謂也니잇고 子曰 生事之以禮하며 死葬之以禮하며 祭之以禮니라

번지가 말하기를, 무슨 말씀입니까? 자왈 살아서 섬기기를 예로 하며 죽어 장사지냄을 예로 하며 제사지내기를 예로 한다.

 

生事葬祭는 事親之始終具矣라 禮는 卽理之節文也라 人之事親을 自始至終에 一於禮而不苟면 其尊親也至矣라 是時에 三家僭禮라 故로 夫子以是警之라 然이나 語意渾然하며 又若不專爲三家發者하니 所以爲聖人之言也라

살아서 섬기고 장사지내며 제사지냄은 어버이를 섬기는 시종이 갖추어졌다. 예는 절도와 문체이다. 사람이 어버이 섬김을 처음부터 종에 이름에 예에 한결같이하여 구차하지 않다면 그 어버이를 높임이 지극하다. 이 당시에 삼가가 예를 참람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부자가 이것으로 경계하였으나, 그러나 말씀하신 뜻이 혼연하여 또 마치 오로지 삼가를 위하여 발명하지 않은 듯 하니, 성인의 말씀이 되는 바이다.

 

○ 胡氏曰 人之欲孝其親은 心雖無窮이나 而分則有限이니 得爲而不爲와 與不得爲而爲之는 勻於不孝라 所謂以禮者는 爲其所得爲者而已矣니라

호씨왈, 사람이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싶어함은 마음이 비록 다함이 없지만 분수는 한계가 있으니,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음과 할 수 없는데 함은 불효에 균등하니 이른 바 예로 한다는 것은 그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6. 孟武伯問孝한데 子曰 父母는 唯其疾之憂시니라

맹무백이 효를 물었는데, 자왈 부모는 오직 병이 들까 근심하시니라.

 

武伯은 懿子之子니 名체라 言父母愛子之心이 無所不至나 唯恐其有疾病하여 常以爲憂也라 人子體此而以父母之心爲心이면 則凡所以守其身者自不容於不謹矣니 豈不可以爲孝乎아 舊說에 人子能使父母로 不以其陷於不義爲憂하고 而獨以其疾爲憂라야 乃可爲孝라하니 亦通이니라

무백은 의자의 아들이니, 명은 체이다. 말하자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나, 오직 질병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항상 근심으로 삼는다. 자식이 이것을 본받아 부모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무릇 그 몸을 지키는 바의 것이 절로 삼가지 않음에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효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구설에 자식이 부모로 하여금 불의에 빠짐을 근심으로 삼지 않고 유독 그 질병으로 근심을 삼아야 효가 된다고 하니 또한 통한다.

 

7. 子遊問孝한데 子曰 今之孝者는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자유가 효를 물었는데, 자왈 지금의 효라는 것은 이것은 능히 봉양함을 이르니, 견마(짐승)에 이르러서도 모두 기름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子遊는 孔子弟子니 姓言이요 名偃이라 養은 謂飮食供奉也라 犬馬는 待人而食하니 亦若養然이라 言人畜犬馬에도 皆能有以養之하니 若能養其親而敬不至면 則與養犬馬者何異리오 甚言不敬之罪니 所以深警之也시니라

자유는 공자 제자니 성은 언이요 명은 언이다. 양은 음식으로 봉양함으로 이른다. 견마는 사람을 기다려 먹으니 또한 기르는 듯하다. 말하자면 사람이 짐승을 기름에도 모두 능히 기름이 있으니, 만약 능히 그 어버이를 봉양함에 공경이 지극하지 않으면 짐승을 기르는 것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겠는가? 심히 불경의 죄를 말하시니 깊이 경계한 바이다.

 

○ 胡氏曰 世俗事親에 能養足矣라하여 狎恩恃愛하여 而不知其漸流於不敬이면 則非小失也라 子遊는 聖問高弟니 未必至此로되 聖人直恐其愛踰於敬이라 故로 以是深警發之也시니라

호씨가 말하기를 세속에서 어버이를 섬김에 능히 봉양함이 족하다라고 하야 은혜를 친압하고 사랑을 믿어서 그 점점 불경에 이름을 알지 못한다면 작은 실수가 아니다. 자유는 성문의 높은 제자이라 반드시 여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지만 성인이 다만 그 사랑이 공경을 넘을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이것으로 깊이 경계하여 발명하였다.

 

8. 子夏問孝한대 子曰 色難이니 有事어든 弟子服其勞하고 有酒食어든 先生饌이 曾是以爲孝乎아

자하가 효를 물었는데, 자왈 안색을 가지기가 어렵나니, 일이 었거든 제자가 그 수고로움을 복행하고 주식이 있거든 선생이 먼저 먹게함이 일찍이 이것으로 효가 되겠는가?

 

色難은 謂事親之際에 惟色爲難也라 食는 飯也라 先生은 父兄也라 饌은 飯食之也라 曾은 猶嘗也라 蓋孝子之有深愛者는 必有和氣하고 有和氣者는 必有愉色하고 有愉色者는 必有婉容이라 故로 事親之際에 惟色爲難耳니 服勞奉養은 未足爲孝也라 舊說에 承順父母之色爲難이라하니 亦通이니라

색난은 어버이를 섬기는 즈음에 오직 낮빛이 어려움이 된다. 사는 밥이다. 선생은 부형이다. 찬은 마시고 먹음이다. 증은 상가 같다. 대개 효자가 깊이 사랑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화기가 있고 화기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온화한 낮빛이 있고, 온화한 낮빛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드러운 용모가 있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섬기는 즈음에 오직 낮빛이 어려움이 될 뿐이니, 복로하고 봉양함이 어려움이 된다라고 하니 또한 통한다.

 

○ 程子曰 告懿子는 告衆人者也요 告武伯者는 以其人多可憂之事요 子游는 能養而或失於敬이요 子夏는 能直義而或少溫潤之色이니 各因其材之高下와 與其所失而告之라 故로 不同也니라

정자가 말하기를 의자에게 고한 것은 중인에게 고한 것이요. 무백에게 고한 것은 그 사람이 근심을 끼칠만 한 일이 많고, 자유는 능히 봉양하고 혹 공경에서 잃었고, 자하는 능히 곧고 의롭지만 혹 온윤의 얼굴빛이 부족하니 각각 그 재주의 고하와 그 실수한 것으로 인하여 고해 주었다. 그러므로 같지 않다.

 

9. 子曰 吾與回言終日에 不違如愚러니 退而省其私한대 亦足以發하나니 回也不愚로다

자왈 내 안회와 더불어 말함을 종일함에 어기지 않음이 어리석은 듯하더니 물러나거든 그 사사로움을 살피되 또한 발하니. 회는 어리석지 않도다.

 

回는 孔子弟子니 姓顔이요 字子淵이라 不違者는 意不相背하여 有聽受而無問難也라 私는 謂燕居獨處요 非進見請問之時라 發은 謂發明所言之理라 愚聞之師호니 曰 顔子深潛純粹하여 其於聖人에 體段已具하니 其聞夫子之言에 黙識心融하여 觸處洞然하여 自有條理라 故로 終日言에 但見其不違如愚人而已러니 及退省其私하니 則見其日用動靜語黙之間에 皆足以發明夫子之道하여 坦然由之而無疑하니 然後知其不愚也시니라

회는 공자제자니 성안잉 자 자연이다. 불위라는 것은 뜻이 서로 어긋나지 않아 듣고 받음은 있고 묻고 논란(토론하다)하는 것은 없다. 사는 한가로이 거처하고 홀로 처함이니 나아가 뵙고 청문하는 때가 아니다. 발은 말한 바의 이치를 발명함이다. 나는 스승(이동, 자 원중, 호 연평)에게 듣건대, 안자는 심잠하고 순수하여 그 성인에 있어서 체단이 이미 갖추어졌으니 그 부자의 말을 들음에 묵묵히 알고 마음으로 융해되어 닿는 곳이 통인하여 절로 조리가 있었다. 그러므로 종일 말함에 다만 그 어기지 않음이 마치 어리석은 듯함을 볼 따름이었더니 물러남에 미쳐서 그 사사로움을 살피니 그 일용 동정 어묵의 사이에 모두 부자의 도를 발명하여 탄연히 말미암아 의심이 없으니, 연후에 그 어리석지 않음을 알았다.

 

10. 子曰 視其所以하며

자왈, 그 하는 바를 보며

 

以는 爲也라 爲善者爲君子요 爲惡者爲小人이라

이는 위이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군자가 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소인이 된다.

 

觀其所由하며

그 말미암는 바를 관찰하며

 

觀은 比視爲詳矣라 由는 從也라 事雖爲善이나 而意之所從來者有未善焉이면 則亦不得爲君子矣라 或曰 由는 行也니 謂所以行其所爲者也라

관은 시에 견주어 상세함이 된다. 유는 종이다. 일이 비록 선이 되지만 뜻이 쫓아 온 바가 선하지 않다면 또한 군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혹이 말하기를, 유는 행이니, 그 하는 바를 행하는 것을 이른다.

 

察其所安이면

그 편안한 바를 살피며

 

察은 則又加詳矣라 安은 所樂也니 所由雖善이나 而心之所樂者不在於是면 則亦僞耳니 豈能久而不變哉리오

찰은 또 더욱 자세하다. 안은 즐거워하는 바이니, 말미암는 바가 비록 선하지만 마음이 즐거워하는 바가 여기에 있지 않다면 또한 거짓이 될 따름이니, 어찌 능히 오래하여 변하지 않으리오.

人焉瘦哉리오 人焉瘦哉리오

사람이 어찌 숨기리오, 사람이 어찌 숨기리오.

 

焉은 何也요 瘦는 匿也니 重言以深明之라

언은 어찌이다. 수는 숨김이니 거듭 말하여 깊이 발명함이다.

 

○ 程子曰 在己者가 能知言窮理면 則能以此察人을 如聖人也니라

정자가 말하기를, 내 자신에게 있는 것이 능히 말을 알고 이치를 궁구한다면 능히 이것으로 사람을 살핌이 성인과 같을 것이다.

 

11. 子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자왈, 옛 것을 찾아 새로운 것을 안다면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溫은 尋繹也라 故者는 舊所聞이요 新者는 今所得이라 言學能時習舊聞而每有新得이면 則所學在我而其應不窮이라 故로 可以爲人師라 若夫記問之學은 則無得於心而所知有限이라 故로 學記에 譏其不足以爲人師라하니 正與此意로 互相發也라

온은 찾아서 연역함이다. 고라는 것은 옛적 들은 바이요, 신이라는 것은 지금 얻은 바이니, 말하지면 배우고 능히 때때로 옛적 들은 것을 익혀 매양 새로 얻음이 있다면 배운 바가 나에게 있고 그 응함이 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거니와, 만약 기억하고 묻는 학문과 같은 즉 마음에 얻음이 없어 아는 바의 것이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학기」에 남의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으로 기롱하였으니, 정히 이 뜻과 더불어 상호간에 발명한 것이다.

 

12. 子曰 君子는 不器니라

자왈, 군자는 어느 한 그릇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器者는 各適其用而不能相通이라 成德之士는 體無不具라 故로 用無不周하니 非特爲一才一藝而已니라

기는 각각 그 용도에 알맞아 서로 통할 수 없다. 덕을 이룬 선비는 체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쓰임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니 비단 한 재주 한 기예가 될 뿐만이 아니다.

 

 

13. 子貢問君子한대 子曰 先行其言이요 而後從之니라

자공이 군자에 대해서 물었는데, 자왈, 앞서서 그 말할 것을 행하고 이후에 말이 따른다.

 

周氏曰 先行其言者는 行之於未言之前이요 而後從之者는 言之於旣行之後라

주씨와르 선행기언자는 아직 말하기 전에 실천함이요, 이후종지라는 것은 이미 실천한 뒤에 말하는 것이다.

 

○ 范氏曰 子貢之患은 非言之艱이요 而行之艱이라 故로 告之以此하시니라

범씨와 자공의 근심은 말하는 것이 어려움이 아니라. 실천 하는 것이 어려움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고해주었다.

 

14. 子曰 君子는 周而不比하고 小人은 比而不周니라

자왈 군자는 두루하고 편당하지 않고 소인은 편당하고 두루하지 않는다.

 

周는 普遍也요 比는 偏黨也니 皆與人親厚之意로되 但周公而比私爾라

주는 보편이요, 비는 편당이니, 모두 남과 더불어 친후한 뜻이되, 다만 주는 공적이요 비는 사사로움일 뿐이다.

 

○ 君子小人所爲不同은 如陰陽晝夜하여 每每相反이라 然이나 究其所以分이면 則在公私之際毫釐之差耳라 故로 聖人이 於周比和同驕泰之屬에 常對擧而互言之하시니 欲學者察乎兩間而審其取舍之幾也시니라

군자 소인이 하는 바가 같지 않음은 음양 주야와 같아서 매매 상반된다. 그러나 그 나누어진 바를 따져보면 공사의 즈음 호리의 차이에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주비 화동 교태의 등속에 항상 대로 들어 서로 말하여 학자로 하여금 양단의 사이에서 살펴 그 취사의 기미를 살피게 하고자 함이다.

 

15. 子曰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

자왈, 배우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망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롭다.

 

不求諸心이라 故로 昏而無得이요 不習其事라 故로 危而不安이라

마음에 구하지 않기 때문에 어두워서 얻음이 없고 그 일을 익히지 않기 때문에 위태로워 편치 못하게 된다.

 

○ 程子曰 博學審問愼思明班篤行五者에 廢其一이면 非學也니라

정자왈, 막학 심문 신사 명변 독행 다섯 가지에 그 하나를 폐하면 학문이 아니다.

 

16. 子曰 攻乎異端이면 斯害也已니라

자왈, 이단을 전공하면 이것이 해이다.

 

范氏曰 攻은 專治也라 故로 治木石金玉之工曰攻이라 異端은 非聖人之道而別爲一端이니 如楊墨이 是也라 其率天下하여 至於無父無君하니 專治而欲精之면 爲害甚矣라

범씨왈, 공은 전적으로 다스림이다. 그러므로 목석 금옥을 다스림을 공이라고 한다. 이단은 성인의 도가 이니고 별도로 한 단서를 이루니, 양주와 묵적 같은 이가 이것이다. 그 천하를 거느림에 아버지가 없고 임금이 없는데에 이르렀으니 전적으로 다스려 정밀하게 하고자 한다면 해됨이 심할 것이다.

○ 程子曰 佛氏之言은 比之楊墨하면 尤爲近理하니 所以其害爲尤甚이라 學者는 當如淫聲美色以遠之니 不爾면 則駸駸 然入於其中矣리라

정자왈, 불씨의 말은 양주와 묵적에 견주면 더욱 이치에 가까우니 그 해되는 바가 더욱 심함이 된다. 학자는 마땅히 음란한 음악 아름다운 여색과 같이 하여 멀리 해야하니 그렇지 않으면 침침연히 그 속에 들어갈 것이다.

 

17. 子曰 由아 誨女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요 不知爲不知 是知也니라

자왈, 유야 너에게 아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줄 것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면 이것이 아는 것이다.

 

由는 孔子弟子니 姓仲이요 字子路라 子路好勇하니 蓋有强其所不知以爲知者라 故로 夫子告之曰 我敎女以知之之道乎인저 但所知者則以爲知요 所不知者則以爲不知니 如此則雖或不能盡知라도 而無自斯之蔽요 亦不害其爲知矣라 況由此而求之면 又有可知之理乎아

유는 공자 제자니 성은 중이요 자는 자로이다. 자로는 용기를 좋아하니, 대개 그 알지 못하는 바를 우겨서 안다고 한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부자가 고해주기를 “내 너에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다만 아는 것인 즉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인 즉 할지 못한다고 할지니, 이와 같다면 비록 혹 다 알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속이는 폐단이 없고, 또한 알게 됨에 방해가 되지 않는데, 하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구한다면 또 알만한 이치에 있어서랴?

 

18. 子張學干祿한대

자장이 봉록을 구함을 배우려 한데

 

子張은 孔子弟子니 姓孫이요 名師라 干은 求也요 祿은 仕者之奉(俸)야라

자장은 공자 제자니 성은 전손이요, 명은 사이다. 간은 구함이요, 록은 벼슬하는 사람의 봉급이다.

 

子曰 多聞闕疑요 愼言其餘則寡尤며 多見闕殆요 愼行其餘則寡悔니 言寡尤하며 行寡悔면 祿在其中矣니라

자왈, 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을 빠뜨리고 삼가 그 나머지를 말한다면 허물이 적으며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을 빠뜨리고 삼가 그 나머지를 행한다면 뉘우침이 적으니 말함에 허물이 적으며 행함에 뉘우침이 적다면 봉록은 그 가운데에 있을 것이다.

 

呂氏曰 疑者는 所未信이요 殆者는 所未安이라 程子曰 尤는 罪自外至者也요 悔는 理自內出者也니라 愚謂 多聞見者는 學之博이요 闕疑殆者는 擇之精이며 謹言行者는 守之約이라 凡言在其中者는 皆不求而自至之辭니 言此以救子張之失而進之也시니라

여씨왈, 의자는 아직 믿지 않는 것이요, 태라는 것은 아직 편안하지 않는 것이다. 정자가 말하기를, 우는 죄가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이요, 회는 이치가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나는 생각건대, 많이 듣고 본다는 것은 학의 넓음이요, 의심나고 위태함을 빠뜨림은 가림의 정밀함이며, 언행을 삼간다는 것은 지킴이 요약됨이다. 보편적으로 그 가운데 있다고 말한 것은 모두 구하지 않아도 절로 이른다는 말인, 이것을 말하여 자장의 실수를 구제하여 나아가게 함이다.

 

○ 程子曰 修天爵則人爵至하니 君子言行能謹은 得祿之道也니라 子張學干祿이라 故로 告之以此하여 使定其心而不爲利祿動하시니 若顔閔則無此問矣리라 或疑如此라도 亦有不得祿者하니 孔子蓋曰 耕也에 餒在其中이라하시니 惟理可爲者를 爲之而已矣니라

정자가 말하기를, 천작을 닦으면 인작(세속적 벼슬)이 이르니, 군자가 언행에 능히 삼감은 봉록을 얻는 방법이다. 자장이 봉록을 구함을 배우려 하였기 때문에 이것으로 고해주어 하여금 그 마음을 정하여 안정시켜 이익과 봉록 때문에 움직이지 않게 하시니 안연과 민자건은 이러한 물음이 없었을 것이다. 혹이 의심하기를 이와 같더라도 또한 봉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공자가 대개 말하기를, 밭을 갊에 굶주림이 그 가운데에 있다. 라고 하시니, 오직 이치에 할만한 것을 할 따름이다.

 

19. 哀公問曰 何爲則民服이니잇고 孔子對曰擧直錯諸枉이면 則民服하고 擧枉錯諸直이면 則民不服이니이다.

애공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함니까? 공자 대왈 곧은 사람을 등용하고 여러 굽은 이를 버려둔다면 백성이 복종하고 굽은 이를 등용하고 여러 곧은 사람을 버려둔다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哀公은 魯君이니 名蔣이라 凡君問에 皆稱孔子對曰者는 尊君也라 는 捨置也라 諸는 衆也라 程子曰 擧得義면 則人心服이니라

애공은 노나라 군주이니, 명은 장이다. 무릇 군자가 물음에 모두 ‘공자대왈’를 일컬은 것은 군주를 높임이다. 조는 버려둠이다. 저는 무리이다. 정자왈 등용하고 버려둠이 의를 얻는다면 인심이 복종한다.

○ 謝氏曰 好直而惡枉은 天下之至情也니 順之則服이요 逆之則去는 必然之理也라然이나 或無道以照之면 則以直爲枉하고 以枉爲直者多矣라 是以로君子는 大居敬而貴窮理也니라

사씨가 말하기를, 곧음을 좋아하고 굽음을 싫어함은 천하에 지극한 정이니, 순응한다면 복종하고 거역한다면 떠남은 반드시 그러한 이치이다. 그러나 혹 도로서 비춰 봄이 없다면 곧음으로 굽음을 삼고 굽은 것을 곧음으로 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 때문에 거경을 크게 여기고 궁리를 귀하게 여긴다.

 

20. 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하되 如之何잇고 子曰臨之以莊則敬하고 孝慈則忠하고 擧善而敎不能則勸이니라

계강자가 묻기를 백성으로 하여금 경과 충으로 권면하려 하되, 어떻습니까? 자왈 씩씩함으로 임하면 공경하고 효도하고 자애로우면 충성하고 선함(잘하다=能)을 들고 능하지 못함을 가르치면 권면한다.

 

季康子는 魯大夫季孫氏니 名肥라 莊은 謂容貌端嚴也라 臨民而莊이면 則民敬於己하고 孝於親,慈於衆이면 則民忠於己하고 善者擧之而不能者敎之면 則民有所勸而樂於爲善이라

계강자는 노나라 대부 계손씨이니, 명은 비이다. 장은 용모가 단정하고 엄숙함을 이른다. 백성에게 임하되 씩씩하면 백성이 자기에게 공경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무리에게 자애로우면 백성이 자기에게 충성하고 능한 사람을 들여쓰고 능하지 못한 사람을 가르치면 백성이 권면하는 바가 있어서 선을 함에 즐거워할 것이다.

 

○張敬夫曰 此皆在我所當爲요 非爲欲使民敬忠以勸而爲之也라 然이나 能如是면 則其應이 蓋有不期然而然者矣니라

장경부왈, 이것은 모두 나에게 있어서 마땅히 해야할 것이요, 백성으로 하여금 경과 충으로 권면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능히 이와 같다면 그 반응이 대개 그러함을 기약하지 않아도 그러한 것이 있다.

 

21. 或謂孔子曰 子는 奚不爲政이시잇고

혹이 공자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어찌 정사를 하지 않습니까?

 

定公初年에 孔子不任라 故로 或人疑其不爲政也라

정공 초년에 공자가 벼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혹자가 정사를 하지 않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子曰 書云孝乎인저 惟孝하며 友于兄第하여 施於有政이라하나 是亦爲政이니 奚其爲爲政이리오

자왈, 서경에 효라고 말하였다. 오직 효하며 형제에게 우애로워 정사에 베푼다고 하니, 이것이 또한 정사함이니 어찌 하여 그 정사함을 하리오.

 

書는 周書君陣篇이라 書云孝乎者는 言書之言孝如此也라 善兄第曰友라 書言 君陳이 能孝於親하고 友於兄第하며 又能推廣此心하여 以爲一家之政이라하니 孔子引之하여 言如此면 則是亦爲政矣니 何必居位라야 乃爲爲政乎아 蓋孔子之不任를 有難以語或人者라 故託此以告之하시니 要之至理亦不外是니라

서는 주서 군진편이다. 서운효오라는 것은 서에 효를 말한 것이 이와 같음을 말함이다. 형제에게 잘하는 것을 우라고 한다. 서에 말하기를, 군진이 능히 어버이에게 효하고 형제에게 우애하며 또 능히 이 마음을 미루어 넓혀 한 집안의 정사를 한다라 하니 공자가 인용하여 이와 같다면 이것은 또한 정사함이 되니, 어찌 반드시 지위에 거하여야 곧 정사함이 되겠는가? 대개 공자가 벼슬하지 않음을 혹인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에 의탁하여 고해주시니 요컨대 지극한 이치도 또한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2. 子曰 人而無信이면 不知其可也로라 大車無輗하고 小車無軏이면 其何以行之哉리오

자왈, 사람이고서 믿음이 없다면 그 가함을 알지 못하겠도다. 큰 수레에 예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이 없다면 그 무엇으로 움직이겠는가?

 

大車는 謂平地任載之車라 輗는 轅端撗木이니 縛扼以駕牛者라 小車는 謂田車,兵車,乘車라 軏은 轅端上曲이니 鉤衡以駕馬者라 車無此二者면 則不可以行이니 人而無信이면 亦猶是也라

대거는 평지에서 짐을 싣는 수레이다. 예는 끌채 끝에 가로로 댄 나무이니 멍애에 묶어서 소에 매는 것이다. 소거는 전거, 병거, 승거를 이른다. 월은 끌채 끝에 위로 굽은 것이니 형에 끼워 말에 멍애하는 것이다. 수레가 이 두 가지가 없다면 다닐 수 없으니 사람이고서 또한 믿음이 없음이 또한 이와 같다.

 

23. 子張問 十世可知也잇고

자장이 묻기를 10세를 알 수 있습니까?

 

陸氏曰 也는 一作乎라하니라 王者易姓受命이 爲一世라 子張問 自此以後十世之事를 可前知乎잇가

육씨왈, 야는 한 본에 乎로 되어있다. 왕자는 성을 바꾸고 천명을 받음이 1세가 된다. 자장이 묻기를 지금으로부터 이후 10세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까?

 

子曰 殷因於夏禮하니 所損益을 可知也며 周因於殷禮하니 所損益을 可知也니 其或繼周者면 雖百世라도 可知也니라

자왈,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에 기인하니 덞과 더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주나라는 은나라 예에서 기인하니 손익을 알 수 있으니, 그 혹 나라를 계승하는 사람이면 비록 백세라도 알 수 있다.

 

馬氏曰 所因은 謂三綱五常이요 所損益은 爲文質三統이라 愚按 三綱은 爲君爲臣綱이요 父爲子綱이요 夫爲妻綱이며 五常은 爲仁義禮智信이라 文質은 爲夏尙忠,商尙質,周尙文이요 三統은 謂夏正建寅하니 爲人統이요 商正建丑하니 爲地統이요 周正建子하니 爲天統이라 三綱五常은 禮之大體니 三代相繼하여 皆因之而不能變이요 其所損益은 不過文章制度小過不及之間이어늘 而其已然之迹을 今皆可見하니 則自今以往으로 或有繼周而王者면 雖百世之遠이라도 所因所革이 亦不過此라 豈但十世而已乎아 聖人所以知來者蓋如此시니 非若後世讖緯術數之學也니라

마씨왈, 기인한 것은 삼강오상이요, 손익한 것은 문질과 삼통이다. 내 살피건대, 삼강은 爲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妻綱이며, 五常은 仁 義 禮 智 信이다. 文質은 爲하나라는 충을 숭상하고 상나라는 질을 숭상하고 주나라는 문을 숭상함이요, 三統은 하나라 정월은 寅에 서니 인통이 되고, 상나라 정월을 축에 서니 지통이되고, 주나라 정월은 자에 서니 천통이 된다. 三綱五常은 예의 큰 체이니 삼대가 서로 계승하여 모두 기인하여 변혁시킬 수 없고, 그 손익은 문장 제도가 조금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사이에 불과하거늘 그 이미 그러한 자취를 지금 모두 볼 수 있으니 지금으로부터 이후로 혹 주나라를 계승하여 왕노릇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백세의 멂이라도 기인하고 변혁한 것이 또한 이것에 불과하니, 어찌 다만 10세일 뿐이겠는가? 성인이 올 것을 앎이 대개 이와 같으시니 후세 참위 술수의 학과는 같지 않다.

 

○ 胡氏曰 子張之問은 蓋欲知來어늘 而聖人이 言其旣往者以明之也라 夫自修身으로 以至於爲天下에 不可一日而無禮니 天敍天秩은 人所共由니 禮之本也라 商不能改乎夏하고 周不能改乎商이니 所謂天地之常經也요 若乃制度文爲는 或太過則當損하고 或不足則當益하여 益之損之를 與時宣之요 而所因者不懷하니 是古今之通義也라 因往推來면 雖百世之遠이라도 不過如此而已矣니라

호씨왈, 자장의 물음은 대기 올 것을 알고자 하였거늘 성인이 그 이미 간 것을 말하여 발명하셨다. 대저 수신으로부터 천하를 다스림에 이르기까지 하루라도 예가 없을 수 없으니, 천서 천질은 사람이 함께 말미암는 바이니, 예의 근본이다. 상나라는 능히 하나라에서 고치지 않고 주나라는 능히 상나라에서 고치지 않으니, 이른바 천지의 떳떳한 법이다. 제도 문장이나 조치가 너무 지나치면 마땅히 줄이고 부족하면 마땅히 더해주어야 하니, 익지 손지을 때와 더불어 합당하게 하여 기인한 바가 괴리되지 않으니, 이것은 고금의 통용된 의이다. 지난 것을 기인하여 올 것을 추리해보면 비록 백세의 멂이라도 이와 같은데 불과할 따름이다.

 

24. 子曰 非其鬼而祭之 謟也요

자왈, 그 마땅한 귀신이 아닌데 제사지냄은 아첨함이다.

 

非其鬼는 謂非其所當祭之鬼라 諂은 求媚也라

비기귀는 마땅히 제사지낼 바의 귀신이 아님을 이른다. 첨은 잘 보이기를 구함이다.

 

見義不爲 無勇也니라

의를 보가 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다.

 

知而不爲면 是無勇也라

알고서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용기가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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