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89

황성 2025. 8. 12. 22:59
728x90

61

 

 

편지 친구제자들과의 문답 書 知舊門人問答

 

 

 

임덕구 지에게 답함 1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4(소희 5, 갑인, 65)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중단이 없이 학문에 매진할 것을 권하고 있다.

 

편지로 학문에 나아가는 뜻을 말해주었는데, 매우 좋습니다. 여기에 종사하면 자연히 맛을 느끼게 되겠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하다가 중단하여 연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하고 계속하지 않는 것은 그 기틀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示喩進學之意, 甚善甚善. 從事於此, 自當有味, 但畏間斷不接續爾. 然續與不續, 其機亦在我而不在人也.

 

 

임덕구에게 답함 2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4(소희 5, 갑인, 65)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박문약례(博文約禮)의 공부방법으로 기초를 세워야 한다고 권유하고, 󰡔주역󰡕의 괘상(卦象)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으며, 자신의 󰡔대학󰡕주석이 미진했음을 고백하였다.

 

수렴(收斂)한다는 말씀에서 도()를 믿는 용감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문(博文)과 약례(約禮)가 상호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진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글을 읽는 방법은 또 전일해야 하니, 오래 되면 자연히 효과를 볼 것이지만 세월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빠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收斂之喩, 足見信道之勇. 然須博約相資, 方有進步處. 而讀書之法, 又只是要專一, 久自見功, 難以歲月期速效也.

 

󰡔주역󰡕에 관한 설은 대개 󰡔계몽(啓蒙)󰡕과 서로 차이나는 곳이 많은데, 다만 뒤에 몇몇 조항은 여러 설을 두루 관통하니 또한 효과가 있습니다. 다시 서서히 상고해 보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여러 설을 취할 수 없음을 이미 안다면 스스로 그 뜻을 깊이 탐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왕보사(王輔嗣)가 이른바 설령 다시 만나더라도 뜻을 취할 것이 없다는 이 한마디 말은 사리에 절실하게 들어맞습니다. 중간에서 또한 시험 삼아 몇 마디 논한 것들은 나중에 편지로 써서 부치겠습니다. 지난번 옥산(玉山) 노정에서 ()는 귀()가 되기 때문에 괘 속에 귀를 말한 곳은 모두 이()의 상이 있다. 예를 들면 이()괘의 영귀(靈龜)와 손()()괘의 십붕(十朋)의 귀는 그 괘에 비록 이()가 없더라도 6효를 통 털어 이()의 상이 있는 것과 같다. ()괘의 6효는 손()괘가 2효로부터 상효에 이르고, ()괘가 초효로부터 5효에 이른다는 서언장(徐彦章)의 설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탐구한 정교한 측면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귀의 뜻을 취하고 이()를 취하지 않고, ()()은 그 이익을 얻는 말은 많으나, 의미는 또한 다시 귀와 관련이 없습니다. 지금 이내 그 이익을 얻는 이유는 논할 것도 없고, 이익을 구하는 방법이라 여겨서, 반드시 영귀가 스스로 오는 것을 궁구한다면 또한 정신력을 낭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易說大槪多與啓蒙相出入, 但後數條旁通衆說, 亦有功, 俟更徐考奉報. 然旣知其無取, 自不必深究. 王輔嗣所謂縱或復値而義無所取, 此一言切中事理. 中間亦嘗有數語論之, 後便寫寄也. 向在玉山道間, 見徐彦章說離爲龜, 故卦中言龜處皆有離象. 如頤之靈龜, 損益十朋之龜, 以其卦雖無離, 而通體似離也. 頤六爻, 損自二至上, 益自初至五. 此其求之巧矣. 然頤猶取龜義而無取於離, 損益則但言其得益之多, 而義亦不復繫於龜矣. 今乃不論其所以得益之故, 以爲求益之方, 而必窮其龜之所自來, 亦可謂枉費心力矣.

 

󰡔대학󰡕은 돌아온 뒤에 정리할 겨를이 없었는데, 대개 논저 등의 일은 대부분 붕우들이 변론하면서 서로 힘써 연마하다 보면 설명이 세밀하게 되는 것인데, 지금 아무런 일이 없을 때에 스스로 글을 쓴 것 중에는 도리어 제대로 이치를 탐구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여가가 있을 때 시험 삼아 전에 논했던 것을 기록하여 인편을 통해 보여 주신다면 혹 정리하는데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번 옥산(玉山)의 학교에 있을 때 여러 사람들과 말했던 내용을 사마재(司馬宰)가 사람을 시켜서 적어 왔는데, 당시에는 격렬하게 토론할 사람이 없어서 말이 시원스럽지 못했습니다. 돌아와서 우연히 붕우 한 사람과 말을 하다가 그가 모르는 것으로 인하여 반복해서 일깨워 주자 도리어 말이 매우 상세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차례에 걸쳐 말한 것까지 기록하여 알려 드리니, 시험 삼아 취하여 한번 보시면 혹 사색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大學歸來不暇整理, 蓋此等多因朋友辨論間彼此切磨, 說得細密, 今無事時自作文字, 却有搜索不到處. 因暇試爲追記前日所論, 便中示及, 或便可用也. 昨在玉山學中與諸生說話, 司馬宰令人錄來, 當時無人劇論, 說得不痛快. 歸來偶與一朋友說, 因其未喩, 反復曉譬, 却說得詳盡. 因幷兩次所言錄以報之, 試取一觀, 或有助於思索也.

 

 

임덕구에게 답함 3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4(소희 5, 갑인, 65)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치 탐구는 일상생활 중에 글을 읽고 일을 응접하는 곳에서 매사를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라 하고, 유가불가노장의 학문에서 성()을 논의하는 관점을 비교하여 설명했으며, 인의예지와 원형이정, 춘하추동의 관계를 간략하게 서술했다.

 

전기(殿記)는 병으로 생각이 어지러워 드러내어 밝힐 수 없으니 부끄럽습니다. 사원(斯遠)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한두 군데 의심스런 곳은 이미 회답을 보냈습니다. 뜻에 맞지 않은 곳이 더 있을 것이니 다시 생각해보시고 곧장 새겨서는 안됩니다. 팽귀년(彭龜年)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하여 유념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분이 떠난 것은 매우 애석합니다. 지금 조정(朝廷)은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서로 도와 그다지 잘못된 일은 없지만, 근본에 대한 염려를 외부에서는 그 깊이를 알 길이 없다보니 사람을 근심스럽게 합니다.

 

殿記正以病思昏塞, 不能有所發明爲愧, 斯遠書來, 疑一兩處, 已報之矣. 恐更有未安, 且更商量, 未可便入石也. 彭書荷留意, 此公之去, 深爲可惜. 今外廷尙得諸人扶持, 末至甚有過事. 但本根之慮, 外間無由知其深淺, 令人憂歎耳.

 

말씀하신 일상생활의 공부는 저의 기대에 매우 위로가 됩니다. 다만, “한 번 힘을 기울이면 곧 일이 많아짐을 느낀다고 했는데 그 말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이 마음을 잡아 보존함과 놓아 잃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어서 본래 대단히 힘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또 힘을 쓰지 않아서도 안 되니, 이런 식으로 오래하다 보면 자연히 효과를 볼 것입니다. 만약 그대의 말씀대로라면 오래지 않아 틀림없이 별도로 지름길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하고 염려가 됩니다. 이치를 궁구하는 것도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일상생활 중에 글을 읽고 일을 응접하는 곳에서 매사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비록 큰 이익은 없는 것 같지만 또한 축적하여 오래한 뒤에는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푹 젖어 통하게 될 것이니, 빨리 하고자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역상(易象)에 대한 설명은 명확하지 못한 듯합니다. 논의해 주신 소과(小過)와 중부(中孚)는 선유(先儒)의 설명이 도리어 지나치지 않은 듯합니다. 제가 논한 것은 별지에다 적어 보냅니다. 그러나 그 대의는 우선은 그대로 두고 논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所喩日用功夫甚慰所望. 但云一著力便覺多事, 此恐末然. 此心操舍存亡只在瞬息間, 本不須大段著力, 然又不可不著力, 如此久之, 自然見效. 若如此論, 竊恐非晩定須別求捷徑矣. 窮理亦無它法, 只日間讀書應事處每事理會便是. 雖若無大頭段增益, 然亦只是積累久後, 不覺自浹洽貫通, 正欲速不得也. 易象說似未條暢, 所論小過中孚, 先儒之說却似未爲過也. 熹所論別紙錄去, 然其大意不過欲姑存而未論耳.

 

나중 편지에서 의심한 것은 그 후 분명하게 이해했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일찍이 한자(韓子: 한유)()이 되는 것은 다섯 가지이다고 한 말을 좋아했는데, 오늘날 성을 말하는 자들은 저 불가(佛家)와 노자(老子)의 색채를 섞어서 말하기 때문에 다르지 않을 수 없으나, 그래도 제자(諸子) 중에서는 가장 이치가 가깝습니다. 대개 우리 유가의 말과 같은 경우는 성의 본체가 다만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실제적인 것이지만, 노자와 불가의 말과 같은 경우는 먼저 공허한 성이 있고 나서야 곧 이 네 가지가 나온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또 성()은 하나의 공허한 물건이고, 그 내면에 네 가지를 포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도리를 안 적이 없고 다만 그들의 말을 익숙하게 보았기 때문에 그처럼 의심이 없을 수 없는 것이고, 또 네 가지가 성의 본체가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는 곧 실제 이 네 덩어리가 그 안에 쌓여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니, 이는 다 잘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의 본체가 이 네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그 네 가지도 어떤 모양이나 장소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혼연(渾然)한 하나의 이치 가운데 그 네 가지의 의사(意思)와 정상(情狀)이 마치 영역이 있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벽이나 가리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맹자도 다만 드러난 곳에서 말했을 뿐이니, ‘사단(四端)’이라고 하고, 그 정황으로 말하면 선하다고 할 수 있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 바로 드러난 곳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알아서 취하게 한 것입니다. 만약 본체 가운데에 원래 그것이 들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응용하는 곳에서 그것이 드러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본체는 지적할 만한 형상이 없기 때문에 다만 응용하는 곳에서 보아야 힘을 덜 수 있는 것입니다.

 

後書所疑, 不知後來看得曉然未耶? 熹嘗愛韓子說所以爲性者五, 而今之言性者皆雜佛老而言之, 所以不能不異, 在諸子中最爲近理. 蓋如吾儒之言, 則性之本體便只是仁智之實; 如老佛之言, 則先有箇虛空底性, 後方旋生此四者出來. 不然, 亦說性是一箇虛空底物, 裏面包得四者. 今人却爲不曾曉得自家道理, 只見得它說得熟, 故如此不能無疑. 又纔見說四者爲性之體, 便疑實有此四塊之物磊塊其間, 皆是錯看了也. 須知性之爲體不離此四者, 而四者又非有形象方所可撮可摩也. 但於渾然一理之中, 識得箇意思情狀似有界限, 而實亦非有牆壁遮瀾分別處也. 然此處極難言, 故孟子亦只於發處言之. 如言四端, 又言 乃若其情, 則可以爲善之類, 是於發處敎人識取. 不是本體中元來有此, 如何用處發得此物出來? 但本體無著莫處, 故只可於用處看, 便省力耳.

 

인용해준 정자의 말은 곧 창잠도(暢潛道)의 기록인데, 선배들이 그 사이에 간혹 선생의 말이 아닌 것이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지금도 보면 참으로 정밀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은 봄은 여름가을겨울을 포괄할 수 없다고 논했는데,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의 논의대로 라면 ()’자는 총괄적인 설명이므로 아래에다 다시 한 글자를 덧붙여야만 하니, ()()()과는 별도의 사덕(四德)이 됩니다. 이것이 어찌 이치이겠습니까? ‘예지(禮智)’ 두 글자는 당시에 느슨하게 말했을 뿐이어서 처음부터 긴요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사계절로만 본다면 곧 절로 알 수 있습니다. 󰡔중용󰡕에서 유작과 양시의 설명은 정밀하지 못했으니 깊이 탐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용󰡕에서는 고명(高明)에 대하여 말할 때 사물의 측면에서 설명하여 각각 중()을 얻어 평상을 유지하도록 했으니, 바로 위의(威儀) 3천 가지와 예의(禮儀) 3백 가지의 일이 어찌 작은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저 이러한 부류를 다시 익숙하게 음미해보면 저절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 이 몇 단락의 편지를 쓰는데도 엄청난 힘이 소비가 되어 제 뜻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다시 의심난 곳이 있으면 우편을 통해 몇 자 붙여 주십시오. 이러한 곳은 자세히 뜯어보면서 격렬하게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所引程子之言乃暢潛道本, 前輩疑其間或非先生語. 以今觀之, 誠是不精切也. 所論春不可以包夏, 亦未然. 若如所論, 則是 字是總說, 下面須更添一字, 與亨貞別爲四德矣, 豈理也耶? ‘禮智二字, 當時只是漫說, 初無緊要, 然亦不可不理會得. 今但以四時觀之, 卽自可見也. 中庸游楊說得不精切, 不必深求. 中庸對高明而言, 是就事物上說, 各要得中而平常, 正是三千三百底事, 安得不謂之小? 凡此類更熟味之, 自見意思也. 目盲, 作此數紙已極費力, 未能盡鄙意. 如更有疑, 遞中附數字來, 子細反復, 此處正好劇論也.

 

 

임덕구에게 답함 4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5(경원 원년, 을묘, 66)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어놓았으나 찾아와 공부하는 사람이 적어 답답하다는 심정을 밝혔다.

 

눈 어두워지는 것은 더욱 심해지고, 다른 질병 또한 점차 극렬해지는데, 사면(辭免)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당분간 두문불출은 말할 것이 못됩니다. 새 집은 이미 대략 완성되었으나, 찾아오는 학자가 적어 가르칠 만한 총명한 사람과 독실히 믿어서 노력하려고 하는 사람을 얻기가 어려우니, 우두커니 앉아서 매우 심란해 하고 있습니다. 그대의 가르치고 배우는 공부는 당시에도 실마리가 보였었는데, 현재는 어떤 책을 읽고 계십니까? 헤아릴 만한 것이 있거든 인편을 통해 한두 개 보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目盲益甚, 它疾亦浸劇, 辭免末報, 且爾杜門, 無足言也. 新齋已略就, 而學子至者終少, 難得穎悟可告語篤信肯用力之人, 兀坐殊憒憒耳. 賢者敎學之功當日有緖, 見讀何書? 有可商量者, 便中示及一二爲幸.

 

 

임덕구에게 답함 5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5(경원 원년, 을묘, 66)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귀신(鬼神)에 관한 설을 천착하여 해석할 필요는 없고, ()의 체단(體段)은 분명하게 변별해야 함을 강조했다.

 

새 집이 완성되기는 했지만 대나무와 나무들이 아직 무성하지 못하여 학자들이 머무는 데 불편함이 많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때마침 과거시험까지 겹쳐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또 병중이라 기력도 없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토론하지 못하니, 찾아 준 뜻을 저버리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의심난 뜻은 편지 두 장에 각각 써서 이미 알려 드렸습니다. 귀신(鬼神)에 관한 설은 성현의 여러 설에 이처럼 푹 잠겨 탐구하다보면 자연히 분명해 질 것이니, 천착하여 억지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을 지킨다고 한 것은 진실로 당신이 말한 대로이니, 그것이 가장 긴요하고 절실한 곳입니다. 큰 병을 앓고 난 뒤에 또 고통스럽게도 눈마저 어두워 글을 읽지 못하고 우두커니 종일토록 앉아 있는데, 그 부분에 깊은 맛이 있습니다. 한계(限界)라는 말도 다섯 가지가 성() 가운데에서 저마다 체단(體段)이 있음을 알아 뒤섞이지 않게 변별해야지, 감응하기 전에 분별이 없다가 사물에 감응한 뒤에야 분별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천(伊川) 선생이 공허하고 넓어 아무런 조짐도 없다고 말한 단락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덕수(德修) 왕장(王丈)의 타계는 매우 애석합니다. 비록 강학이 매우 정밀한 데는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순박하고 두텁고 성실하였습니다. 지금 이만한 사람을 얻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新齋雖就, 而竹木未成陰, 學者居之多不安. 然今歲適有科擧之累, 來者亦無多人. 又病中無氣力, 不能與人劇論, 甚覺負其來意也. 疑義兩紙各已奉報, 鬼神之說, 只且如此涵泳聖賢諸說, 久自分明, 不必穿鑿, 彊作見解也. 持敬之云, 誠如所喩, 此是最緊切處. 大病之餘, 又苦目昏, 讀書不得, 兀坐終日, 於此甚有味也. 界限之說, 亦是要見得五者之在性中各有體段, 要得分辨不雜, 不可說未感時都無分別, 感物後方有分別也. 觀程先生冲漠無朕一段可見矣. 德修王丈逝去甚可惜, 雖其所講末甚精到, 然樸厚誠實, 今亦難得此等人也.

 

 

임덕구에게 답함 6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5(경원 원년, 을묘, 66)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미 판각을 마친 󰡔중용장구󰡕를 더 수정하고 싶고, 미완성인 󰡔혹문󰡕은 내놓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왼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에 놓였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어 임덕구가 주로 󰡔논어󰡕󰡔맹자󰡕 속에서 몇 구절을 뽑아 질문한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답변을 해주고 있다.

 

당신이 말해준 의심스러운 점에 대해서는, 각각 그 뒤에 제 설명을 붙여놓았습니다. 요사이 지난 날 본원(本原)’에 대해 강론한 것에는 공부가 매우 부족했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간에 복주(福州)의 학관(學官)을 위해 하나의 설을 만들어 이 뜻을 밝히고, 글로 옮겨 우편으로 보내고자 했으나, 사원(斯遠)이 급하게 집으로 편지를 부치고자 하여, 능히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었기에 나중의 인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용장구󰡕는 이미 판각을 마쳤지만, 아직도 한두 곳을 수정하고 싶습니다. 󰡔혹문󰡕은 완성하지 못했으니, 또한 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차례대로 한두 달 손을 보면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개 날마다 응접하는 일에 시달려 공부를 전일하게 하지 못했는데, 지금 또 눈마저 어두워져 더욱 정력을 낭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장차 한쪽 눈만을 남겨 두고서 사소한 문자를 마무리 지어 후세에 남겨 주도록 하라는 것입니까? 그것 역시 하나의 일일 것입니다. 지금 왼쪽 눈은 이미 치료할 수 없게 되었고, 또 오른쪽 눈까지도 제법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所示疑義, 各附鄙說於其後. 近覺向來所論於本原上甚欠工夫, 間爲福州學官作一說發此意, 欲寫奉寄, 以斯遠亟欲附家報, 未能辦, 俟後便也. 中庸章句已刻成, 尙欲脩一兩處. 以或問未罷, 亦未欲出, 次第更一兩月可了. 大抵日困應接, 不得專一工夫. 今又目盲, 尤費力爾. 不知天意如何, 且留得一隻眼了些文字, 以遺後來, 亦是一事. 今左目已不可治, 而又頗侵右目矣.

 

질문: 이천(伊川)() 가운데는 단지 인()()()()만이 있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효제(孝悌)가 있겠는가?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것은 비록 사람의 양능(良能)이나, ()의 본체를 논하자면 즉 지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효제(孝悌)라는 것은 곧 인()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니, 이것이 이천이 ()은 사랑[]에 주안점이 있고, 사랑에는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고 말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伊川曰: ‘性中只有箇仁智而已, 曷嘗有孝悌來? 事親從兄, 雖人之良能, 論性之體, 則仁.’ 所謂孝悌乃仁之發見者, 未知是否伊川所以謂仁主於愛, 愛莫大於愛親?

 

답변: 이천이 본래 ()은 성()이요, 효제(孝悌)는 용()이다라고 말한 까닭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伊川先生固曰仁, 性也; 孝悌, 用也, 此可見矣.

 

질문: 공자의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에 대해, 이천(伊川)훌륭한 덕이 밝게 빛나서 사람들에게 접하여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인을 닮고자하는 사람은 그 덕성을 마땅히 어떻게 함양해야 하겠습니까? 경을 지키는 것[持敬]’을 먼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夫子溫良恭儉讓, 伊川以爲盛德光輝接見於人者也. 學聖人者, 其德性當如何涵養? 恐是持敬爲先否?

 

답변: ‘()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본원(本原)입니다. 그러나 또한 모름지기 일에 따라 성찰하여, 그와 같지 못한 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持敬固是本原, 然亦須隨事省察, 去其不如此者.

 

질문: ‘인불시기친(因不矢其親)’에 대해, 명도선생과 이천선생은 말하기를 신뢰와 공손을 인하여 친할만한 사람을 잃지 않으니, 예의(禮義)에 가깝다라 하고, 횡거선생은 비열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무심코 친후(親厚)의 마음을 베풀지 않는다라 하니, 어느 말을 따라야만 합니까?

 

因不矢其親’, 二程先生謂信恭因不失親, 近於義禮, 橫渠先生謂不失親於可賤之人, 當從何說?

 

답변: 횡거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다만 모든 장()의 글 뜻에 오히려 미세한 병통이 있습니다.

 

橫渠得之, 但全章文意却微有病.

 

질문: ‘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 한 장에 대해서는, 이천은 장차 배우는 자를 위하여 하나의 본보기를 세우니, 후세사람들을 권면하여 나아가게 하신 것이다라 하고, 횡거는 행하고 나타내고 익히고 살피는 것은 곧 모두 성인이 덕을 증진하는 순서이다라고 했습니다. 두 설이 같지 않은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집주󰡕를 읽어보니, “이것은 그 일상생활의 사이에서 필시 홀로 그 덕의 진전을 깨달았으나,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때문에 그 근사(近似)함을 인하여 스스로 이름한 것이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이른바 근사(近似)하다는 말을 충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吾十有五而志于學一章, 伊川以爲且爲學者立下一法, 所以勉進後人; 橫渠以爲行著習察, 則皆聖人進德次序, 二說不同, 未知孰是. 今讀集註 是其日用之間, 必有獨覺其進而人不及知者, 因其近似以自名’, 所謂近似之說, 未能盡曉.

 

답변: 이 세 가지 설은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차 자신의 분수의 측면에서 점검할 뿐입니다.

 

此三說未須理會, 只且就自己分上點檢.

 

질문: 부사이득(不思而得), 부면이중(不勉而中)’에 대해서, 󰡔중용󰡕은 모두 성()에 관한 일이어서 본래 절차의 구분이 없습니다. 󰡔논어집주󰡕에서 예순 살에 이순(耳順)’생각하지 않아도 깨달음을 얻는 것[不思而得]’으로 삼고, ‘일흔 살에 불유구(不踰矩)’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도에 맞는 것[不勉而中]’으로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이른바 불사(不思)’불면(不勉)’의 사이에는 10년 공부가 있는 것인데, 잘 모르지만 어떻습니까?

 

不思而得, 不勉而中’, 中庸皆以爲誠之事, 初無節次. 以耳順爲不思而得, 不踰矩爲不勉而中, 所謂不思不勉, 有十年工夫, 未知如何?

 

답변: 위와 같습니다.

 

同上.

 

질문: [종심소욕(從心所欲)] ()은 성인(聖人)의 작용처(作用處)가 아닙니까? 망령된 저의 생각으로는, 성인이 이른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른다라고 한 것은, 대개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기 시작하여 여기에 이르면 순전함이 곧 의리(義理)인 것이니, 마음의 하고자 하는 바에 곧 도체(道體)가 넓게 퍼져서 저절로 하늘의 법도를 넘지 않은 것입니다. 노자와 장자는 창광(猖狂)하고 망행(妄行)하여 대방(大方)을 밟으니, 입각한 곳의 의리가 모두 맞지 않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대방(大方)’이라는 것이 어찌 진정한 법도가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欲是聖人作用處否? 妄意聖人所謂從心所欲, 蓋自志學至此則純是義理, 心之所欲, 卽道體流行, 自不踰乎天則. 莊老猖狂妄行, 蹈乎大方, 立脚處義理皆差. 彼所謂大方, 豈眞法度也. 未知是否?

 

답변: ‘()’자는 분명하지만, ‘성인(聖人)의 작용처라는 것은 도리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경전을 해석한다면, 점점 사려가 혼미해질 것입니다. 창광(猖狂)망행(妄行)은 곧 본분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字分明, 聖人作用處却難曉. 如此解經, 轉見迷昧矣. 猖狂妄行, 便是不依本分了.

 

질문: 상채(上蔡: 사량좌)성인은 일찍이 생각하지 않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으며, 일찍이 방종함이 없었기 때문에 법도를 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인의 마음은 고요하여 정지된 물과 같고, 본체()와 작용()이 일찍이 서로 떨어진 적이 없으니, 가만히 생각건대 무사(無思)’수여방(收與放)’은 아마도 학자들의 본분상의 일 같습니다.

 

上蔡曰: ‘聖人未嘗無思, 故有所欲; 未嘗放, 故不踰矩.’ 聖人之心澹如止水, 體用未嘗相離, 竊意無思收與放恐是學者分上事.

 

답변: 상채의 말에는 병통이 없습니다.

 

上蔡語無病.

 

질문: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에 대해서, 이천이 말하기를 선을 밝혀 투철해진 것이다라 하고, 불혹이면 곧 저절로 진실함을 말한 것이다라 했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불혹은 이미 지성(至誠)’의 지위가 아닙니까? 횡거가 말한 불혹은 공용(功用)이라는 측면에서 본 것입니다. 두 설은 어떻습니까?

 

四十而不惑’, 伊川曰: ‘明善之徹’, 又曰: ‘言不惑則自誠.’ 敢問不惑已至誠之地位否? 若橫渠言不惑, 則於功用上見, 二說如何?

 

답변: 두 선생의 말은 서로 다름이 있지 않으니, 다시 음미하고 탐색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二先生之言未嘗有異, 更宜玩索.

 

질문: ‘유회여지지호(由誨女知之乎)’에 대해서는, 가만히 생각건대 자로는 도()를 진전시키는 것에는 용맹하나, 학문함에 깊이 침잠하여 세밀하게 살피는 공부가 모자랐습니다. 때문에 공자가 그를 가르쳐 인도함이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상채가 말하기를 생사(生死)의 설과 귀신(鬼神)의 모습은 학문하는 자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지만, 수천 년 후의 미래와 우주의 바깥에 대해서는 학문하는 자가 알 필요는 없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생사와 귀신의 소이연(所以然)은 신묘함을 궁구하여 변화를 아는 자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공자가 일찍이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능히 사람을 섬기지 못 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라는 말로 그를 깨우친 것은, 자로를 바로잡아 삶을 알고 사람을 섬기는 것에 종사하도록 한 것이니, 어찌 그것이 쉽게 알지 못하는 것을 고집하는 것이겠습니까? 실제에 힘써야 함을 깨우치려는 의도가 아닐까 합니다.

 

, 誨汝, 知之乎’, 竊意子路勇於進, 其於學問恐欠深潛密察之功, 故夫子誨之者如此. 上蔡謂死生之說, 鬼神之情狀, 爲學者當知; 千歲之遠, 六合之外, 爲學者所不必知. 死生鬼神之所以然, 非窮神知化者不足以與此. 夫子嘗告之以未知生, 未能事人, 正子路從事於功用之間, 豈强其所未易知者? 恐非誨其務實之意.

 

답변: 이와 같이 설명해서는 안됩니다. 상채(上蔡)의 설명은 또한 문의(文意)로써 논한 것이니, 이미 절로 옳지 못한 것입니다.

 

不必如此說. 上察之說, 且以文意論之, 已自不是也.

 

질문: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에 대해서는, 여러 유학자들이 모두 그 마음에 필시 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 하니, 품은 뜻은 좋지만 익숙하게 해야 할 바를 잃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군자의 덕으로써 실증한다면, 비록 교언영색이라도 허물이 없을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교언영색하는 자는 남을 기쁘게 하기에 힘쓰니 그 본심을 잃음이 심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 유학자들의 설과 같다면, 본심을 이간하여 둘로 나누어 겉으로 아첨하고 영합하는 자가 내 마음은 이와 같지 않다라고 말할까 염려되니, 옳겠습니까?

 

巧言今色鮮矣仁’, 諸儒皆以爲其心未必不仁, 志在於善而失其所習與. 若實之以君子之德, 雖巧今未爲過. 竊意巧令者務悅於人, 失其本心甚矣. 若如諸說, 恐離心迹於二而容悅於外者曰: ‘吾心不如是也’, 可乎?

 

답변: 여러 유학자들의 설명이 대개 “‘()’자는 의심스런 바가 있다하고, 󰡔예기󰡕의 사욕교(詞欲巧)󰡔시경󰡕의 영의영색(令儀令色)을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이다라 하니, 모두 문장의 말로써 문장의 뜻을 해치는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천(伊川) 선생은 단도직입적으로 설파하여, “()이 아님을 말했다. 교언영색이 인()이 아님을 안다면 인()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해묵은 오류를 깨뜨릴 만한 말입니다.

 

諸說蓋爲 字所惑, 又爲 詞欲巧令儀令色所牽, 皆以詞害意之失. 故伊川先生直截說破云 謂非仁也. 知巧言令色之非仁, 則知仁矣.’ 此足以破千載之謬矣.

 

질문: 이천이 말하기를 마음에는 천덕(天德)이 갖추어져 있다. 마음에 다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면 이것은 곧 천덕이 있는 곳에 능히 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무엇에 근거하여 성()을 알고 천()을 알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여러 선생의 의론을 살펴보면, 모두 진심(盡心) 이후에 지성(知性)과 지천(知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맹자정의󰡕)의 진심(盡心)편 제 1장에서 지성(知性) 이후에 능히 진심(盡心)이라 하니, 여타의 선생들과 의론이 같지 않습니다. 진심(盡心)지성(知性)은 배우는 자들이 첫 번 째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예들 들어 맹자는 사람들을 교육함에 모두 마음의 공용(功用)을 따르도록 했으니, 조사존망(操舍存亡)구방심(求放心)과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우선 지성(知性)으로부터 시작해 어느 곳에 종사하여 실제 공부에 힘써야합니까? 감히 가르침을 내려주시길 청합니다.

 

伊川曰: ‘心具天德, 心有不盡處, 便是天德處未能盡, 何綠知性知天?’ 觀諸先生議論, 皆謂盡心而後知性知天, 而先生盡心第一章以謂知性而後能盡心, 與諸先生議論不同. 盡心知性, 此是學者第一囗. 如孟子敎人, 皆從心上用功, 如操舍存亡求放心之類. 不知先自知性始, 當從何處實下工夫? 敢告指敎.

 

답변: 문장의 흐름으로 보면,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을 안다는 것은 사람 중에 그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자는 그로써 그 성()을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대개 진심(盡心)과 존심(存心)은 다른 것입니다. 존심(存心)은 즉 잡아 보존하고 놓친 마음을 찾는 일이니, 곧 배우는 자가 애당초 힘을 쏟아야 할 곳이며, 진심(盡心)은 즉 이치를 궁구함이 지극하여 확연하게 관통함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지성(知性)이라는 것은 곧 궁리하는 일을 말합니다. 궁리해야만 바야흐로 지성(知性)할 수 있고, ()을 다해야만 즉 그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以文勢觀之, ‘盡其心者, 知其性也’, 言人之所以能盡其心者, 以其知其性故也. 蓋盡心與存心不同, 存心卽操存求放之事, 是學者初用力處; 盡心則窮理之至, 廓然貫通之謂, 所謂知性卽窮理之事也. 須是窮理方能知性, 性之盡則能盡其心矣.

 

질문: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정직함으로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천지의 사이에 꽉 차게 된다는 구절에서, ‘()’자가 만약 절구라면 직()은 그대로 기()의 특성을 논한 것입니다. 만약 ()’자가 절구라면 직()은 곧 양기(養氣)가 됩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이 옳습니까? 양준도(楊遵道)의 기록에는 이천과 구산의 말을 일물(一物)로써 일물(一物)을 기르는 설이라고 기록한 혐의가 있는데, 이와 같다면 ()’자는 절구가 됩니다. 저는 평상시에 사람의 심기가 평온하면, 사사로운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의 본체가 지극히 크고 굳세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 사사로운 의도가 요동치게 되면 곧 시들게 됩니다. 이른바 정직하게 길러서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의리를 보전하고 사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字絶句, 仍論氣之體. 字絶句, 則直是養氣矣. 二者未知孰是? 如楊遵道錄伊川語與龜山語錄嫌將一物養一物之說, 爲絶句. 至常思之, 人心平氣定, 不爲私欲所誘, 氣之本體覺廣大不可屈. 一爲私意所撓, 則便有歉. 所謂直養而無害者, 是全義理 去私欲否?

 

답변: ‘정직함으로 기르고 해침이 없다함은 곧 위 글에서 말한 스스로 돌이켜 올바르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능히 의()를 모을 수 있으니, 즉 정직하지 않음이 없어 기()가 호연해 지는 것입니다.

 

以直養而無害, 卽上文 自反而縮之意. 人能集義, 則無不直而氣浩然矣.

 

질문: ‘배의여도(配義與道)’에 대해서는, 이천은 의리로써 이 기()를 양성하면 의와 도에 배합하게 된다라 하고, 이미 나면서 이 기()를 얻었으니 그것의 체()를 말하면 도()와 배합한 것이요, 그것의 용()을 말하면 의리에 맞지 않음이 없다라 하니, ‘배의여도(配義與道)’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으로부터 말한 것이거나 혹은 저절로 길러져 이미 완성된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귀산(龜山: 양시)()는 이름을 붙일 만한 소리[]가 없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래서 도와 의로써 그것에 짝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하니, 언뜻 보기에 기()()()는 각각 하나의 사물인 것 같으나, 짐짓 이것을 빌려서 저것을 밝힌 것일 뿐입니다. 화정(和靖)그 기()됨이 지극히 크고 굳세기 때문에 곧은 것이다. 그것의 체()를 이름하여 도()라 하고, 그것의 용()을 이름하여 의()라 한다. 배우는 자가 능히 그것을 안 연후에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라고 하니, 그렇다면 세 가지는 모두 하나의 일이지만, ()가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어 가지 설은 어떻습니까? 󰡔집주󰡕에서 합이유조(合而有助)”라는 말을 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알려주어 깨우쳐 주십시오.

 

配義與道’, 伊川謂 以義理養成此氣, 合義與道’. 又云 旣生得此氣, 語其體則與道合, 語其用則莫不是理義’. 配義與道, 自養氣者而言, 或自養而旣成者也. 龜山謂 氣無聲之可名, 故難言之也. 而以道義配之, 所以著名也.’ 一似氣義各爲一物, 姑借此以明彼爾. 尹和靖謂 其爲氣也至大至剛以直, 其體則名曰道, 其用則名曰義. 學者能識之, 然後能養之’. 則三者皆一事而氣爲之主. 兩說未知如何? 集註謂合而有助之詞, 亦未能盡曉, 倂告開發.

 

답변: 󰡔집주󰡕의 설명은 분명합니다. 재차 깊이 살펴보면 응당 양귀산이나 윤화정의 뜻을 억지로 따르지 않아도 됨을 알 것입니다.

 

集註說得分明, 更宜深考, 當見不敢曲從楊尹之意.

 

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

 

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위아래 글에는 ()’자는 없고, ‘()’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孟子上下文無, 只有, 程子是移將去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

 

질문: 유자(有子)는 효제(孝悌)를 인()을 행하는 근본으로 삼았는데, 맹자는 사친(事親)과 종형(從兄)을 구분하여 인()과 의()의 실제로 삼았습니다. ()는 경()을 위주로 합니까? 아니면 일의 마땅함을 위주로 합니까?

 

有子以孝悌爲仁之本, 孟子分事親從兄爲仁義之實. 義主敬, 或主於事之宜也?

 

답변: 일의 마땅함을 위주로 하나 경()은 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以宜爲主而敬在其中.

 

질문: “()라는 것은 이()를 근본으로 삼는다[故者以利爲本]”에서, ()는 본래 이와 같음을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이미 그러함의 고()를 말한 것입니까? 본래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라면 하늘로부터 성()을 품수받는 처음을 기준으로 본 것이요, 만일 이미 그러함의 고()라면 반드시 단서가 드러나기를 기다린 뒤에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천이 반드시 그 고()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단지 순리대로 해서 그것을 해치지 않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순리(順利)라는 것은 󰡔중용󰡕의 솔성지도(率性之道)인 것이니 인위가 그 사이에 끼어 들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의 시초는 순리(順利)를 위주로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니, 곧 성()의 근본은 순리(順利)인 것이요, 억지로 조작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성()의 근본에 나아가 말한 것일 뿐입니다. 󰡔맹자󰡕기류(杞柳)의 성에 따른다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음이 없다는 두 장을 살펴보면, ()은 본래 선하니, 이른바 불선(不善)이라는 것은 모두 그 근본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천의 이 두 설은 서로 참고종합하여 살펴본 후에야 온전해질 것 같습니다. 귀산은 고()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여겼는데, 이는 장자가 말한 거지여고(去智與故)의 고()와 같은 부류로 생각됩니다. 소황문(蘇黃門)도 또한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故者以利爲本’, ‘故者謂其本如是也, 或是已然之故也? 謂其本如是, 則自其禀受之初者觀之; 若已然之故, 則必待端緖著見而後可也. 伊川謂必求其故者, 只是欲順而不害之謂. 所謂順利者, 得非中庸率性之道而人爲不得參於其間耶? 又日 凡性之初, 未嘗不以順利爲主’, 則是性本順利, 不待矯揉成就也. 此只就性之本而言也. 至觀順杞柳之性與夫水無有不下兩章, 則性本善, 凡所謂不善, 皆拂其本也. 伊川二說, 恐參合看而後全也. 如龜山以爲氣質之性, 竊類莊子去智與故之言. 蘇黃門亦有此說, 不知如何?

 

답변: ()라는 것은 이미 그러한 자취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성() 가운데 인지가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알기 힘들지만, 측은수오공경시비의 마음에 이미 그러한 자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억지로 조작한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 맹자가 순리(順利)로써 근본을 삼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양귀산과 소철의 설은 모두 옳지 못한데, 소철의 과실이 더욱 심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설을 반드시 철저히 분석하여 이해한다면, 바야흐로 공부의 참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故者已然之迹也. 如性之有仁, 不可得而見, 而惻隱羞惡恭敬是非則有已然之迹矣. 然四者之發, 非有所矯揉而後成也, 非以利爲本耶? [蘇之說皆非是, 蘇之矢尤甚. 此類須涌與辨析, 方見工夫.]

 

질문: 맹자가 세 성인을 논하면서 이윤(伊尹)만 그 덕풍(德風)을 드날렸다고 말하지 않고, 또한 그 폐단이 마치 백이(伯夷)나 유하혜(柳下惠)와 같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 입니까? (이윤은) “내 어찌 밭이랑 가운데 처하여 이대로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만 하겠는가라고 말하며, 반드시 탕왕의 사신이 와서 자신을 초빙하기를 기다려 이내 번뜩 마음을 고쳐 일어나니, 나아가고 물러남이 성인의 시중(時中)에 가깝지 않습니까?

 

孟子論三聖, 獨伊尹不言聞其風者, 亦不言其流弊如夷惠者, 何也? 豈以其樂堯舜之道於畎畝之中, 必待湯往聘之, 乃幡然而起, 行止近於聖之時也?

 

답변: 이것도 또한 우연일 듯 싶습니다. 그대가 논한 것과 같은 점은 간혹 있을 듯합니다.

 

此恐亦偶然耳. 如所論者, 恐或亦有之也.

 

질문: ‘지성(智聖)’ 한 장에서 대해서 묻습니다. ‘집대성야자(集大成也者)’ 이하는 예전에 저와 동향 사람 진선생(陳先生)의 설을 보았습니다. 그는 맹자는 학자들에게 집대성의 관문을 가르쳤기 때문에 지()와 성(), ()와 종()의 일을 나누어 사람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그 앎에 치우침과 온전함이 있으면, 행동에 또한 치우침과 온전함이 있게 되니, 반드시 앎을 지극히 함으로부터 배움의 길에 들어서야 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건대 이 장의 앞에서는 성인의 시중(時中)에 대해 언급했고, 뒤에서는 지성(智聖)과 시종(始終)의 의미를 아울러 밝혔습니다. 오직 공자의 도가 온전할 뿐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 지성(智聖)의 공용(功用)으로 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의 세 성인은 처음에 가리운 바가 있어서 혹 앎에 부족함이 있거나, 아니면 앎에 편벽됨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횡거가 성인은 힘쓰지 않고도 도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고도 도에 이른다라 한 것은 다만 지()의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라는 것은 역시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智聖一章, 集大成也者以下, 舊見鄕人陳先生說孟子敎學者集大成門戶, 故分智聖始終之事以示人. 謂其知有偏全, 則行亦有偏全, 必自致知而入也. 竊觀此章前言聖人之時, 後方兼明智聖始終之義. 獨言孔子者, 恐爲智聖功用而言也. 三子者或不足於知, 或知有所偏也. 如橫渠謂聖者不勉而中, 不思而至, 似不特智之事也. 豈所謂智, 亦生而知之者否?

 

답변: 맹자의 이 말은 본래 오로지 공자에 대해 표현했으나, 또한 세 성인의 결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과 배우는 자의 공부 순서는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진군거처럼 배우는 자에게 집대성의 관문을 가르쳤다거나, 그대처럼 성인의 공용으로 말했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집대성(集大成)’은 곧 성현의 지위 가운데 최고봉이니, 어찌 그것을 관문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군거가 이른바 앎에 편벽됨과 온전함이 있으면 행동에 또한 편벽됨과 온전함이 있다라고 하니, 반드시 치지(致知)로부터 들어가야 곧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孟子此言固專爲孔子而發, 然亦可見三子欠闕處及學者功夫次第, 不必說敎學者以集大成門戶及聖人之功用而言也. 集大成乃聖賢地位極至處, 豈有門戶之可言? 然其所謂知有偏全則行亦有偏全, 必自致知處而人, 則得之矣.

 

질문: 맹자는 사람은 불선(不善)한 사람이 없으며,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으며, 정자는 선함이 또한 인성이며, 악함도 또한 불가불 인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위 문장의 기품(氣稟)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면, 마치 자월초(子越椒)가 태어날 때 세상의 운기로 우연히 그것을 소유하여 형기(形氣)를 품부함에 선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악을 보존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아래 문장의 수취하(水就下)’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면, 마치 사람으로 하여금 불선(不善)을 행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흐린 물과 사석(沙石)은 물의 본성이 아닙니다. ‘악 또한 성()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孟子曰,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 程氏謂善亦性也, 惡亦不可不謂之性也. 若指上文氣禀而言, 則如子越椒之生, 世偶有之, 不應禀氣賦形有善惡存焉. 若指下文水就下而言, 則若有可使爲不善之意. 然濁水沙石非水本然也. ‘惡亦不可不謂之性’, 此語未曉所指.

 

답변: 이 장()’자에 대한 설명은 매우 복잡한데, 어떤 곳은 본연의 성을 말했고, 또 어떤 곳은 기품의 성을 설명했습니다. ‘수지하(水之下)’로써 성()을 비유하는가 혹은 수지청(水之淸)’으로 성()을 비유하는가에 따라 또한 두 가지 설이 있을 수 있으니, 자세하게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此章字說得最雜, 有是說本性者, 有是說氣禀者. 其言水之下與水之淸, 亦是兩意, 須細分別耳.

 

질문: 생지위성(生之謂性) 한 장에 대해, 집주에서 지각하고 운동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지가 본성이다고 말했습니다. 일찍이 살펴보건대, 석씨(釋氏: 석가모니)는 단지 지각하고 운동하는 것을 곧 성()이라 한다고 말했는데, 지금 그 말이 중국으로 옮겨지면서 또한 영령(靈靈)하고 소소(昭昭)한 것을 성()이라 한다는 말이 있게 되었습니다. 전부터 여기에는 항상 의혹이 있었는데, 지금 성()과 기()를 나누어 말한다면 성()의 큰 근본은 비록 이미 분명하지만 다시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은 기()를 품부받고 형태가 생긴 후에 곧 지각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각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어디로부터 발단하는 것입니까? 또 사람의 생명이 다한 뒤에는 이른바 지각운동이라는 것은 형기(形氣)를 따라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의 이()라는 것은 천지와 고금에 두루 퍼져 틈이 없게 됩니다. 횡거의 이른바 “(성이라는 것은 만물의 일원이니) 내가 사사로이 얻은 것이 아니고, 형기가 모이면 물()을 이루고, 형기가 흩어지면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어떻습니까? 석씨는 각성(覺性)을 항상 보존하고 있으면,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와 같은 설은 진실로 하나의 물()이 조화의 외부에 존재해 있는 것입니다. 노자도 또한 생명이 다한 후에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심지어 성인의 상제(喪祭)에 대해서도 어둡고 황막함에서 구함이 이와 같이 지극한 것이라 하니, 과연 조화의 바깥에 하나의 물()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生之謂性一章, 集註以知覺運動者言也. , 性也. 嘗觀釋氏之說止以知覺運動者爲性, 今其徒之說亦有以是靈靈昭昭者爲非者. 前此常被其惑, 今析性與氣而言, 性之大本 雖已分曉, 更有疑處. 人賦氣成形之後, 便有知覺, 所有知覺者, 自何而發端? 又死之後, 所謂知覺運動者隨當與形氣俱亡, 性之理則與天地古今周流而無間. 橫渠所謂非有我之得私者, 而有形聚成物, 形潰反原之說, 如何? 釋氏以謂覺性常存, 不受沉墜, 如其說誠有一物在造化之外. 老氏亦謂死而不亡. 至於聖人之於喪祭, 求諸幽漠如此其至者, 果有物無物耶?

 

답변: 지각은 바로 기()의 허령(虛靈)한 부분이니, 형기(形器)의 찌꺼기와 상대 지어 말한 것입니다. 영혼이 떠나고 체백이 분해되면, 그대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횡거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설은 정자가 일찍이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지금 󰡔동견록(東見錄)󰡕 가운데에 이미 돌아온 기()로 다시 펼치는 기()로 삼을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러한 종류가 몇 조항 더 있으니 모두 횡거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설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상례와 제례는 그 자손들이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지극히 함으로써 그 선조를 위로하는 것이니, 의미가 또한 다릅니다.

 

知覺正是氣之虛靈處, 與形器査滓正作對也. 魂游魄降, 則亦隨以亡矣. 橫渠反原之說, 程子蓋嘗非之. 今東見錄中不可以旣反之氣復爲方伸之氣’, 此類有數條, 皆爲此論發也. 喪祭之禮, 是因其遺體之在此而致其愛敬以存之, 意思又別.

 

질문: “불선(不善)을 행하는 것으로 말하면 타고난 재질(才質)의 죄가 아니다에서, 맹자는 사람의 재질에 불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고, 이천은 ()은 하늘로부터 나왔고 재질은 기()로부터 나왔으니, ()가 맑으면 재()가 맑고, 기가 탁하면 재 또한 탁한 것이다. 재에 좋음과 나쁨이 있으나, ()에는 불선(不善)이 없다라고 말했으니, 그 말은 맹자와 상반되는 것 같습니다. 혹 사단(四端)이 드러난 곳을 재()라고 한 것입니까? 아니면 발휘하여 넓힐 수 있는 사람을 재()라고 여긴 것입니까?

 

若夫爲不善, 非才之罪也’, 孟子謂人之才無有不善, 伊川謂性出於天, 才出於氣, 氣淸則才淸, 氣濁則才濁, 才則有善不善, 性則無不善, 其說似與孟子相反. 或四端著見處是才, 或所以能充拓者爲才也?

 

답변: ()은 이미 본래 선()하니, 재질도 단지 선하다고 이를 수 있을 뿐이요, ()에 불선(不善)이 있기 때문에 재()에 불선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맹자는 기()를 논하지 않은 병통이 있습니다. 󰡔집주󰡕에 상세하게 언급해놨으니, 재차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性旣本善, 則才只可爲善. 爲氣有不善, 故才有不善耳. 然孟子不論氣之病, 集注言之詳矣, 請更詳之.

 

질문: ‘군자불위성명(君子不謂性命)’ 한 장에서, 위에서는 불위성(不謂性)’이라 하고, 아래에서는 유성(有性)’이라 하니, 상하에 성()을 말함이 같지 않습니다. 아마 위에서는 기질지성을 아래에서는 천지지성을 말한 것이 아닙니까? 횡거는 이른바 사람과 사물이 형태를 이룬 후에 기질지성이 있게 된다. 선을 돌이켜보면 천지지성(天地之性)이 있다. 그러므로 기질지성은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본래 이 뜻이 아닙니까?

 

君子不謂性命一章, 上言不謂性也, 下言有性焉, 上下言性不同. 恐上是氣質之性, 下是天地之性否? 橫渠所謂形而後有氣質之性, 善反之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君子有弗性者焉’, 正本此意否?

 

답변: ‘입이 맛에 길들여지는 것과 같은 것을 성()으로 삼은 것은, 오로지 기질(氣質)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 이()가 혈기에 예속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는 󰡔서경󰡕의 인심(人心)을 말한 것과 같습니다. 󰡔중용장구󰡕 서문 가운데 이미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고찰하기 바랍니다.

 

以口之於味之屬爲性, 非專指氣質, 蓋以理之屬於血氣者而言. 如書之言人心也. 中庸章句序中已詳之, 可考.

 

질문: ‘대인(大人)이면서 저절로 화()함을 성인(聖人)이라 이른다에 대해, 횡거는 대인이면서 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익숙하게 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역󰡕에서 말하는 의의(擬議)로써 그 변화를 이룬다는 것과 같습니다. 혹자는 ()는 자취가 있는 것이고, ()는 자취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니, 이것은 충실히 빛을 발하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여 볼만한 형체나 자취가 없게끔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불가(佛家)장애를 없애고 공()에 든다는 설과 서로 유사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大而化之之謂聖’, 橫渠謂大而化不可爲也, 在熟之而已矣. 此則與易之擬議以成其變化同. 或說大猶有迹, 化無迹, 謂充實光輝者, 使泯然無形迹之可見. 竊疑與釋氏銷礙入空之說相似, 不知如何?

 

답변: 맹자의 ()’자와 󰡔주역󰡕에서 말한 변화(變化)는 같지 않으니 뒤의 설명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佛家)장애를 없애고 공()에 든다는 것을 이른 것은 아니니, 재차 분별해 보면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孟子說字與易之變化不同, 後說得之. 然非銷礙入空之謂, 更分別之, 自可見矣.

 

질문: 횡거는 태허(太虛)로 말미암아 천()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이요, 기화(氣化: 음양의 변화)로 말미암아 도()라는 이름이 있는 것이다. ()와 기()를 합하여 성()이라 이름하는 것이요, ()과 지각(知覺)을 합하여 심()이라 이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횡거가 말한 성()은 아마 천지지성(天地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을 겸하여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이른바 심()은 인심과 도심을 함께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橫渠曰: ‘由太虛 有天之名, 由氣化 有道之名, 合虛與氣 有性之名, 合性與知覺 有心之名.’, 橫渠所謂性者, 恐兼天地之性氣質之性而言否? 所謂心者, 倂人心道心言否?

 

답변: ()는 형태가 없지 않으니 형태가 없다면 성()의 선함이 부여될 곳이 없습니다. 때문에 성()이라는 것은 모두 기질(氣質)을 인하여 말한 것이요, 다만 그 가운데 저절로 품부된 바의 이()가 있을 뿐입니다. 인심과 도심 또한 따로 떨어진 두 개의 사물이 아닙니다.

 

非氣無形, 無形則性善無所賦. 故凡言性者, 皆因氣質而言, 但其中自有所賦之理爾. 人心道心, 亦非有兩物也.

 

질문: 명도는 충신(忠信)은 덕을 진보시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애쓴다[終日乾乾]’는 것은 군자가 마땅히 종일토록 하늘을 마주 대하는 것이다. 대개 하늘의 실어줌은 소리도 냄새도 없는 것이니, 그 본체를 말하자면 역()이요, 그 작용을 말하자면 신()이요, 사람에게 명해진 것으로 말하면 성()인 것이다. ()을 따르는 것을 일러 도()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일러 교()라 한다. 맹자는 그 가운데 나아가 또 호연지기를 발휘하여 내놓았으니, 극진히 발휘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용󰡕에서는 귀신이 마치 그 위에 있는 듯하며, 마치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고 설한 것이다. 어쨌든 위대한 일이건만 단지 ()이라는 것은 가리울 수 없음이 그와 같구나!’라고만 말했으니, 위아래로 철저하게 통함이 이와 같을 뿐이다. 형체가 생기기 이전을 도()라 하고 형체가 생겨난 이후를 기()라 하는데, 반드시 이와 같이 말한다면 기()는 또한 도(), ()는 또한 기()가 된다. 다만 도()의 소재는 시간이나 공간에 매여 있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건대, 이 단락은 지극한 이치는 위아래로 다 통하여 본래 저절로 완전히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애당초 하늘과 사람은 현미무간(顯微無間)하다는 것을 논한 것과 같습니다. 성경(誠敬)이라는 것은 체()가 이러한 이치에 걸맞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성경(誠敬)하지 못하면 무물(無物)에 거의 가까우니, 어찌 활연관통하여 틈이 없게끔 하겠습니까? 이것은 시종일관 오로지 성경(誠敬)의 측면에서 힘을 쏟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忠信所以進德. 終日乾乾, 君子當終日對越在天也. 蓋上天之載無聲無臭, 其體則謂之易, 其用則謂之神, 其命于人則謂之性. 率性則謂之道, 修道則謂之敎. 孟子去其中又發揮出浩然之氣, 可謂盡矣. 故說神如在其上, 如在其左右. 大小大事, 而只曰誠之不可掩如此夫”, 徹上徹下, 不過如此. 形而上爲道, 形而下爲器, 須著如此說, 器亦道, 道亦器. 但得道在, 不係今與後, 己與人.’ 至竊謂此段論至理徹上徹下, 本自完具, 初無天人微顯之間. 誠敬者, 所以體當是理者也. 一不誠敬, 則幾於無物矣. 其能貫通而無間? 此終始專在誠敬上著力. 是否?

 

답변: 이것은 ()’자의 해석에 근거한 것이니, ‘자는 곧 ()’자인 것입니다. 결국 허다한 명칭은 단지 하나의 이치이지만 각기 분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비록 각각 구분이 있다 하더라도 또 도리어 하나의 진실무망한 도리라는 것을 미루어 말한 것입니다. ()은 진실한 도리를 이른 것이지, 사람이 당연히 성경(誠敬)해야지만 체()가 그 이치에 걸맞게 됨을 논한 것은 아닙니다.

 

此是因解, ‘字卽是, 遂推言許多名字只是一理, 而各有分別; 雖各有分別, 又却只是一箇實理. 誠者, 實理之謂也, 非論人當以誠敬體當是理也.

 

질문: 정자는 ()이라는 것은 천하의 위대한 근본이다. 천지의 사이에서 정정당당하고 상하를 곧게 관통하는 바른 이치이니, 이를 벗어남은 옳지 못한 것이다. 오직 공경으로 하여 잃지 않아야만 가장 잘 발휘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건대 이 단락은 중()의 본체가 상하를 곧게 관통하고 기울거나 치우친 바가 없다는 것을 논한 것 같습니다. 발현하여 절도에 맞음은 비록 조화롭다고 할 수 있으나, ()의 본체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출즉불시(出則不是)’에서 ()’은 발현하여 절도에 맞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까? ‘오직 공경하면서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발현하기 이전의 마음을 보전하여 함양하는 것이 아닙니까?

 

中者天下之大本, 天地之間亭亭當當, 直上直下之正理, 出則不是, 唯敬而無失最盡.’ 至竊謂此段論中之體直上直下, 無所偏倚. 發而中節雖謂之和, 而中之體固存. 所論出則不是者, 出謂發而不中節者否? 敬而無失, 持養於未發之前否?

 

질문: ‘출즉불시(出則不是)’는 대개 마음이 발동하면 곧 중()이라 이를 수 없음을 말했습니다. 또 예를 들어 기뻐하면서 절도에 맞게 하는 것은 비록 절도에 맞다할지라도 곧 기쁨에 치우친 것입니다. 다만 기뻐하는 가운데 지나침과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일러 조화롭다고 할뿐입니다.

 

出則不是, 蓋謂發卽便不可謂之中也. 且如喜而中節, 雖是中節, 便是倚於喜矣. 但在喜之中無過不及, 故謂之和耳.

 

 

임덕구에게 답함 7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진, 67)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임덕구가 ()은 인()을 구하는 요체라 하고, 마음에 사욕(私欲)이 없는 것이 곧 인()의 전체라고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좀더 함양하고 탐구하여 다시 인()과 지()의 참된 곳에서 공부하도록 권면하였다.

 

별지에서 경()이 인()을 구하는 요체라고 논한 것은 매우 좋습니다. 이른바 마음에 사욕(私欲)이 없는 것이 곧 인의 전체라고 한 것도 옳은 말이지만, 여기에는 곧 본래의 생의(生意)가 화락하고 활발한 기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안자(顔子)가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은 것은 바로 공부가 지극하게 되고 난 뒤에 자연히 즐거운 곳이 있어서 빈부(貧富)나 귀천(貴賤)과 전혀 상관되지 않았기 때문이니, 이로부터는 그 즐거움을 바꾸려해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어진 사람은 장수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낙천적인 것도 공부가 이 지점에 이르면 자연히 그러한 효험이 있는 것입니다. 보내 주신 편지의 내용에 큰 문제는 없지만 말뜻이 끝내 친절하거나 생동감이 없으니, 더 함양하고 탐구하여 다시 인()과 지()의 실제적인 부분에서 공부를 한다면, 오랜 뒤에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유실소문(酉室所聞)󰡕은 전체 글을 보지 못했으나 진장방(陳長方)이 기록한 것인 듯합니다. 여기에는 󰡔진택기선록(震澤記善錄)󰡕만 있는데 이는 곧 회()군에서 인쇄한 판본입니다. 이미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 의론들도 또한 의심스런 곳이 많습니다.

 

別紙所論敬爲求仁之要, 此論甚善. 所謂心無私欲卽是仁之全體, 亦是也. 但須識得此處便有本來生意融融洩洩氣象, 乃爲得之耳. 顔子不改其樂, 是它功夫到後自有樂處, 與貧富貴賤了不相關, 自是改它不得. 仁智壽築, 亦是功夫到此, 自然有此效驗. 來喩雖亦無病, 然語意終未親切活絡. 更宜涵養玩素, 更於仁智實處下工夫, 則久當自見矣. 酉室所聞末見全書, 恐是陳長方所記. 此只有震澤記善錄, 乃淮郡印本, 想已有之. 其間議論亦多可疑也.

 

 

임덕구에게 답함 8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진, 67)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임덕구에 교관(敎官)자리에 연연해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근처의 교관(敎官)은 결원이 생기려면 틀림없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할 것입니다. 이미 녹봉을 받아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또 백성을 다스리는 일도 아니고 다만 사람을 게으르고 구차하게 만들뿐이지 기량과 학업을 연마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니, 아마도 선부(選部)의 주의(注擬)에 참여토록 하여 돌아올 차례가 가까운 승좌(丞佐)같은 데를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사람들과 왕래를 끊고 지냅니다. 많은 옛 친구들이 손님을 사절하고 일을 줄이라고 권하기에 저도 한 번 그렇게 해보았는데, 억지로 하기는 어려운 것 같고 또 누구는 만나고 누구는 안 만나고 하는 것이 도리어 원망과 노여움을 살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허심탄회하게 대우하는 것만 못하니, 만약 반드시 고개[]를 지나야 한다면 그런 상황을 또한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近地敎官關次必遠, 旣非祿養之宜, 又不更治民, 亦使人怠惰苟簡, 非所以磨厲器業. 似不若參選, 擬一近闕丞佐之屬爲佳也. 熹屛居如昨, 朋舊多勸謝客省事者, 亦嘗試之, 似難勉强. 又揀別取舍, 却恐反生怨怒, 不若坦懷待之. 若合須過嶺, 此亦何可避也?

 

 

임덕구에게 답함 9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8(경원 4, 무오, 69)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당제(堂除)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려는 당시 사람들의 관행을 비판하고, 정좌(靜坐)와 응수(應酬)로 심신을 운용하는 올바른 공부방법을 제시했으며, 문인 오필대(吳必大)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다.

 

부임을 기다리는 한가한 때에 충분히 학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계획이 아닙니다. 요컨대 벼슬하는 것은 다만 선부(選部)의 주의(注擬)를 따라야 하는 것이니, 이것은 일상의 다반사처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당제(堂除)를 구하는 것을 관행으로 일삼으면서도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뜻 있는 선비들조차 그 사이에서 머리를 숙여 다른 사람에게 마음대로 부려지니, 이것은 후세에 경계가 될만한 일입니다. 일이 없을 때에 정좌(靜坐)하고, 일이 있을 때에 응수(應酬)하여,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자기의 몸과 마음을 운용하지 않는 것이 없게 하되, 다만 항상 자신을 분발시켜 마음이 일에 끌려서 함께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곧 공부이니, 사물이 왔을 때에 어찌 막연히 응하지 않는 것을 옳다 하겠습니까?

그대의 의의(疑義)에 대해서는 이미 대략 개인적인 의견을 써서 그 뒤에 설명해 놓았지만 온당치 못한 부분이 있을 듯하니, 다시 반복해서 검토하기를 바랍니다. 대체로 마음을 쓴 것이 정밀하지 못하여 씹기는 하였으나 잘게 부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보한경(輔漢卿)은 매우 얻기 힘든 사람인데, 서로 만나기도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정사(精舍)에는 지난가을부터 한 사람도 남지 않아 텅 비었으니, 또한 요행히 일이 줄었습니다. 지금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기는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아서 당장은 탁월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강서(江西)에 사는 오필대(吳必大)만은 몇 년 동안 함께 어울렸는데, 명민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학문을 깊이 사색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현(州縣)에 종사하면서 무슨 일이든지 백성들에게 그 은택을 미치게 하고서도, 자신을 지키는 것이 굳세고 곧아서 시류에 굽히지 않았으니, 얻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불행히 단명(短命)하여 죽었으니, 매우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待次閑中足得爲學, 未爲失計. 要之仕宦只合從選部注擬, 是家常茶飯. 今人干堂慣了, 不覺其非, 故有志之士亦不免俯首其間, 爲人所前却, 此可爲後來之戒也. 無事靜坐, 有事應酬, 隨時處無非自己身心運用. 但常自提撕, 不與俱往, 便是功夫. 事物之來, 豈以漠然不應爲是耶? 疑義已略用己意說釋其後, 恐有未安, 更望反復. 大批似用意未精, 齩嚼未破也. 漢卿甚不易得, 想亦難得相聚也. 齋中自去秋後空無一人, 亦幸省事. 今復頗有來者, 然亦不多, 目前未見卓然可望也. 唯江西吳必大伯豐者相從累年, 明敏過人, 儘能思索. 從事州縣, 隨事有以及民. 而自守勁正, 不爲時勢所屈, 甚不易得. 今乃不幸短命而死, 甚可傷悼耳.

 

 

임덕구에게 답함 10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9(경원 5, 기미, 70)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신의 신병이 악화되고 있음을 알리고, 무성(武成)편의 착간(錯簡)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한퇴지(韓退之)여태전서(與大顚書)에 대한 구양수와 소식의 의론은 어느 것이 합당한지를 물었다.

 

저는 병이 더욱 심해지다 보니, 기운도 떨어지고 다리의 힘도 약해져서 몸을 굽혔다가 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피해 살면서 아무런 일이 없을 때에는 그래도 글을 읽을 수는 있었는데, 병 때문에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두 명의 벗이 조만간 강론한다 하니, 조금 위로가 됩니다. 나이를 고려하여 관직을 그만두어야하는데, 지난번에 고을 사람들이 멋대로 논의하고 관리들이 지나치게 염려한 탓에 오래도록 올리지 못하다가, 대간(臺諫)이 탄핵하여 세상에 선포한 뒤에야 일이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처럼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매번 이렇게 요로(要路)에 있는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탄하다가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그대가 지은 이륙사기(二陸祠記)는 매우 좋으나, 그러한 제목을 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대강 이와 같이 말하고 넘어갈 뿐입니다. 막부(幕府) 가운데 아무런 일이 없어 글을 읽을 수 있다고 했는데, 요즈음에는 어떤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편지를 통해 대략 언급해주면 다행이겠습니다. 무성(武成)편의 착간(錯簡)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읽어야 하겠습니까? 한퇴지(韓退之)여태전서(與大顚書)에 대한 구양수와 소식의 의론은 어느 것이 합당합니까? 편지를 통해 언급해주면 좋겠습니다.

 

熹疾病益侵, 氣痞足弱, 不能屈伸. 屛居無事, 尙能讀書, 而以病故, 不能俯伏几案. 所幸猶有一二朋友早晩講論, 少足爲慰耳. 引年告老, 昨以鄕閭橫議, 官吏過憂, 久不得上, 至煩臺評播告, 後乃得之. 尸居餘氣, 何足爲世重輕? 而每煩當路注意如此, 旣以自歎, 又自笑也. 二陸祠記甚佳, 此題目本不好做, 想亦只得且如此說過耳. 幕中無事, 儘可讀書, 不知比來作何功夫? 因書幸略及之也. 武成錯簡, 尋常如何讀? 韓退之與大顚書, 蘇之論孰當? 因風幸及之.

 

 

임덕구에게 답함 11 答林德久

 

해제이 글은 1195(경원 원년, 을묘, 66)에 임덕구(林德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맹자󰡕진심지성(盡心知性)’의 구절을 정확히 인식해야만 불교의 심성론에 빠지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마음을 다하여 성()을 안다는 설은 옳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또한 의리(義理)가 어떠한지를 논하지 말고, 단지 문장의 흐름으로 자야(者也)’ 두 글자를 본다면 곧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래에 어떤 친구가 그 백성을 얻은 자는 그 마음을 얻는다[得其民者 得其心也]”는 구절을 끌어다가 그것을 증명하는 자가 있는데, 또한 저절로 이치가 있습니다. 만일 그대의 논의처럼 사사로운 마음이 떨어져나가 찌꺼기가 남아있지 않은 것을 진심(盡心)으로 여긴다면, 도리어 존심(存心) 두 글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울러 성()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오히려 밝지 못함이 있는 것이니, 어떻게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이곳에서 한 번 어긋나면 곧 석씨(釋氏)의 견해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이치는 매우 분명하니,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더구나 지()에는 점진적이라는 의미가 있고, ()에는 남음이 없다는 의미가 있으니, 그 의미와 형상의 범위에 마땅히 선후의 구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대가 태허(太虛)와 실리(實理)는 바로 형이상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고 말했는데, 이미 형이상이라고 한다면 본래 그 자체에 형태가 없는 것이니, 그렇다면 이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이것으로 생각해보면 저절로 분명해질 것입니다.

 

盡心知性之說恐末然. 今亦未論義理如何, 只看文勢者也二字便可見. 近有朋友引得其民者得其心也以證之, 亦自有理. 若如所論, 私意脫落, 無有査滓爲盡心, 卽不知却如何說存心兩字? 兼旣未知性, 卽是於理尙有未明, 如何便到得此田地耶? 此處一差. 便入釋氏見解矣. 此理甚明, 更宜思之. 者有漸之訶, ‘者無餘之義, 其意象規模自應有先後也. 太虛實理, 正是指形而上者而言. 旣曰形而上者, 則固自無形矣. 然謂之無理, 可乎? 以此思之, 亦自曉然也.

 

 

구양희손 겸지에게 답함 1 答歐陽希遜(謙之)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진, 67)에 구양희손(歐陽希遜)에게 답한 편지이다. 구양희손에게 학문방법을 제시하면서, 절대로 망상의 싹을 틔워 언어와 문자를 벗어나서 구해서는 안되며, 성현의 경전을 그림쇠와 곱자로 삼아 오래도록 익숙하게 탐구하도록 권유했다. 그리고 구양희손이 󰡔논어󰡕󰡔맹자󰡕 중 의심난 몇 가지 구절을 질문한 데 대해, 조목조목 답변해주고 있다.

 

보여 주신 의의(疑義)를 보니 옛날보다 훨씬 더 발전했더군요. 온당하지 못한 부분은 각각 주석을 내었으니, 부디 다시 생각해서 인편을 통해 말씀해 주십시오. 이른바 한갓 종이 위의 말만을 지켜 그림쇠를 본떠 원을 그리고, 곱자를 모방하여 네모를 만든다는 것은 초학자들의 공통적인 병폐입니다. 그러나 종이 위의 말도 지키지 못하여 비록 그림쇠와 곱자를 본뜨려고 해도 네모와 원을 이룰 수가 없는데, 그러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해 보았는데, 다만 삼가 그림쇠와 곱자의 법칙을 지키면서 아침저녁으로 모방하여 잠시도 그만 두지 않고 오래도록 쌓여 충분히 익숙해지면 모방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네모와 원을 이룰 것입니다. 절대로 망상의 싹을 틔워 언어와 문자를 벗어나서 구해서는 안 됩니다.   

 

所示疑義, 比舊甚進. 所未安各已疏出, 幸更思之, 因風喩及也. 所謂徒守紙上誤, 擬規畫圓, 模矩作方, 此初學之通病. 然尙有不能守紙上之語, 雖擬規矩而不能成方圓者, 而末必自知其非也. 以愚計之, 但且謹守規矩, 朝夕模之, 不暫廢輟, 積久純熟, 則不待模擬而自成方圓矣. 切不可輒萌妄念, 求之於言語文字之外也.

 

질문: 공자가 인()을 말한 것을 보면, 예를 들어 안자에게는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관건이 된다고 깨우쳤으니, 거의 다 드러내어 남김이 없는 듯합니다. 맹자가 인()을 논하는데 이르러서는 비록 인심(人心)을 가리켜 말했지만, 그 본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측은한 마음[惻隱之心]으로부터 미루어 넓혀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 요지는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에 크게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지시한 것이 어찌 정밀하고 확실하지 않겠습니까만, 성인이 인()을 말할 때 광대하고 혼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정밀하게 생각하고 힘써 행한 나머지에서 저절로 얻도록 한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생각건대 맹자는 때마침 전쟁과 살인이 만연한 시대를 당하여,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 맞는 계책을 만든 것이니, 병든 곳부터 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觀孔子言仁, 如告顔子以克己復禮所以爲仁之機, 殆若發露而無餘蘊. 至孟子論仁, 雖嘗指人心而言, 然其意使人自惻隱之心推之, 要其旨歸, 多主於愛之一辭. 雖所以指示於人者豈不精切而確實, 然不似聖人之言仁廣大渾全, 而使人自得於精思力行之餘也. 意者孟子適當夫好戰嗜殺人之時, 爲救焚拯溺之計, 不可不自夫受病之所而藥之歟.

 

 

답변: (󰡔이천역전󰡕 「건괘에서) 이천은 네 가지 덕 가운데 원()은 오상(五常)의 인()과 같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일이고, 전체적으로 말하면 네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같은 것은 한 쪽에 치우쳐서 말한 것이요, 극기복례(克己復禮)와 같은 것은 전체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의 일은 곧 네 가지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니, 역시 따로 떨어진 두 개의 사물은 아닙니다. 때문에 󰡔논어집주󰡕에서 ()이란 마음의 덕이요 사랑의 이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매우 음미할만한 것이니, 다시 생각해보면 맹자의 말이 공자의 주도면밀한 말만 못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맹자 또한 전체적으로 말한 경우가 있으니, “()은 사람의 마음이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요, 공자 또한 한 쪽에 치우쳐 부분적으로 말한 경우가 있으니, “사람을 사랑함이라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또한 맹자는 세상 사람들이 살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말했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옳지 못합니다. 공자는 비록 의()를 인()에 상대하여 말하지는 않았지만, 매번 지()를 가지고 인()에 짝지어 말했으니,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程子曰: ‘四德之元, 猶五常之仁, 偏言則一事, 專言則包四者.’ 惻隱之類, 偏言之也. 克己之類, 專言之也. 然卽此一事便包四者, 蓋亦非二物也. 故論語集注中云: ‘仁者, 心之德, 愛之理也.’ 此言極有味, 可更思之, 不可謂孟子之言不如孔子之周徧. 孟子亦有專言之者, ‘, 人心是也. 孔子亦有偏言之者, 愛人是也. 又謂孟子以世人好殺而言惻隱, 尤非也. 孔子雖不以義對仁, 然每以智對仁, 更宜思之.

 

질문: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 도()’에 대해 묻습니다. 군자가 이 세 가지 도()를 귀중히 여기는 까닭은 그것이 자신의 몸에서 드러나는 것이지 밖에서 구함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요, 힘쓰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서도 자연스레얻는 것이지 조작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변두(籩豆)의 일과 같은 기수(器數)의 지엽적인 것은 모두 내 몸밖의 사물이니, 어찌 등차를 매겨 조절하거나 가늠하며 안배하여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君子所貴乎道者三’, 君子之所以重乎此者, 爲其發乎吾身而非有待於外也, 爲其得於不勉不思而非出於造作而然也. 豈若籩豆之事, 器數之末, 皆身外之物, 可以品節劑量安排布置而爲之者乎?

 

답변: 증자의 뜻은 사람이 힘써야 할 곳이 이 세 곳이라는 것을 설명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큰 일이지만 저것은 작은 일이라는 것은, 이것이 급선무이고 저것은 나중 일이라는 것이지, 힘쓰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곳에 도달하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제기(祭器)를 다루는 일은 참으로 사소하고 지엽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소홀히 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역시 안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일을 맡은 사람[有司]에게 당부하여 그 일을 주관하게 해야지, 내가 담당하여 절실히 유의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그대가 말한 내 몸밖의 사물이하는 더욱 본문의 참 뜻이 아닙니다.

 

曾子之意只是說人之用力有此三處, 此大而彼小, 此急而彼緩爾, 亦未說到不勉不思處. 籩豆之事固是末節, 然亦非全然忽略而不以爲意. 但當付之有司, 使供其事, 而非吾之所當切切留意者耳. 所云身外之物以下云云者, 尤非本文之意也.

 

질문: 󰡔논어집주󰡕에서 증점은 기상이 침착하고 말뜻이 쇄락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증점의) 비파를 놓고 조용히 일어설 즈음을 상상하고, 읊조리며 돌아오겠다는 말을 깊이 음미해보니, 또한 조금이나마 그 대강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정자가 증자의 그러한 모습은 바로 요순의 기상이다라고 말하니, 생각건대 정자의 의도로써 그것을 궁구해 보면, 이른바 요순의 기상이라는 것은 지위로써 즐거움을 삼지 않는다는 것과 천하를 소유하여도 함께 더불어 소유하지는 않는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집주󰡕에서 또 말하기를 이것이 비록 요순의 사업이지만 증점은 진실로 넉넉히 해낼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말씀하신 사업이라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서 얻는 것을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사공(事功) 가운데서 얻는 것을 말한 것입니까? 맹자가 이른바 광자(狂者)’라는 것은 대개 평소에 그 행실을 살펴보면 행실이 말을 가리우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 것입니다. 행실이 말을 덮지 못한다는 것은, 말은 행실을 고려치 않고 행실은 말을 고려치 않아 행해진 바가 그 말해진 바를 가리울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증점의 행실이 말을 덮을 수 없다는 것은 어느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예기󰡕 「단궁편에 이르기를 계무자(季武子)가 죽자, 증점이 그 문에 기대어 노래하였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곳에서도 노래를 지어 불렀으니, 여기에서 그의 광견(狂狷)함을 엿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論語集註曰: ‘曾點氣象從容, 辭意灑落.’ 某竊想像其舍瑟之際, 玩味其詠歸之辭, 亦可以略識其大槪矣. 程子謂其便是堯舜氣象, 竊嘗以程子之意求之, 所謂堯舜氣象者, 得非若所謂不以位爲樂與夫有天下而不與之意乎? 集註又云: ‘是雖堯舜事業, 固優爲之.’ 不知所謂事業者, 就其得於己者而言? 就其得於事功者而言? 孟子之所謂狂者, 蓋謂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 所謂行不掩焉者, 若曰言不顧行, 行不顧言, 所行不能掩其所言也. 不知曾點行不掩焉者何處可見? 檀弓曰: ‘季武子死, 曾點倚其門而歌.’ 於此而作歌, 可以見其狂否?

 

답변: 증자의 기상은 본래 침착하고 쇄락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상이 무엇을 통하여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했는가를 알아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뜻을 이해했다면, 그 기상을 요순의 사업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의 일로써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자연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행실에 가리우지 못함이 있다는 것역시 언행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다만 행동이 겉으로 드러나야 할 바의 곳에 도달하지 못함을 말한 것입니다. ‘문에 기대어 노래했다는 것에서 또한 그의 광견(狂狷)한 점을 약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비파를 놓아두고 뜻을 말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공자가 증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한 그의 광견(狂狷)함은 해로운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지나치면 반드시 노자나 장자의 설로 흘러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曾點氣象固是從容灑落, 然須見得它因甚到得如此始得. 若見得此意, 自然見得它做得堯舜事業處, 不可以一事言也. 行有不掩, 亦非言行背馳之謂, 但行不到所見處耳. 倚門而歌, 亦略見其狂處. 只此舍瑟言志處, 固是聖人所與, 然亦不害其爲狂也. 過此須流入老莊去矣.

 

질문: 맹자는 나는 말을 안다. 나는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는 구절을 묻습니다. 집주에서는 호연(浩然)은 성대하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라는 것은 이른바 몸에 충만한 것이니, 본래 저절로 호연(浩然)이요, 잘못 길렀기 때문에 굶주리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가만히 ()가 몸에 가득하다는 것과 함께 아래쪽의 호연지기를 음미해보니, 두 곳의 기()라는 글자의 대의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핵심이 되는 긴밀히 살펴야할 곳에서는 약간 다름이 있는 듯합니다. 위쪽의 기()자는 오로지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위주로 말한 것 같고, 아래쪽의 기()자는 오로지 내면에서 발하는 것을 위주로 말한 것 같습니다.

 

孟子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集註云: ‘浩然, 盛大流行之貌. 氣卽所謂體之充者, 本自浩然, 失養故餒.’ 某竊味氣體之充與下面浩然之氣, 兩箇字大意似同, 而精微密察處略似有異. 前面字若專主形於外者而言, 後面氣字若專主發於內者而言.

 

답변: ()에는 두 가지 뜻이 없습니다. 다만 호연지기는 곧 그 본래 형상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몸에 충만하다는 것은 폭넓게 말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 몸을 벗어나 별도로 호연지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氣無二義, 但浩然之氣乃指其本來體段而言, 謂體之充者, 泛言之耳. 然亦非外此而別有浩然之氣也.

 

질문: “자신의 몸에 돌이켜보아 성실함은 앎을 지극히 한 효과요, ()를 힘써 행함은 행동에 힘써야할 일이다라는 구절에서, ()가 앞에 있고 행()이 뒤에 있습니다. 이 편 첫머리의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을 아는 것이니, 그 성()을 안다면 곧 하늘을 아는 것이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라는 구절과 문장의 흐름이 대략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反身而誠者知至之功, 强恕而行者力行之事’, 知之在前, 行之在後, 與篇首盡其心者知其性也, 知其性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文勢略同. 未審是否?

 

답변: 자신의 몸에 돌이켜보아 성실하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몸에 돌이켜 구해보면 실제로 이 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의(仁義)와 충효(忠孝), 응사(應事)와 접물(接物)과 같은 이치는 모두 실제로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힘쓰고 거짓으로 행하는 데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보아서 통하고 믿어서 다다르는 곳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자신을 미루어 사물에 미치니,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인()이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말한 강서이행(强恕而行)’이라는 것은 대개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곧 억지로 내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게 하는 것으로써 자기의 사사로운 장애를 제거하여 천리(天理)의 공정을 구하여 얻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反身而誠, 乃是反求諸身而實有是理. 如仁義忠孝, 應接事物之理皆眞有之, 而非出於勉强僞爲也. 此是見得透, 信得及處. 到此地位, 則推己及物, 不待勉强而仁在我矣. 下言强恕而行者, 蓋言未至於此, 則當强恕以去己私之蔽, 而求得夫天理之公也.

 

질문: 󰡔맹자󰡕 「진심21장에서 사체(四體)에 베풀어져 사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아 행해진다라 한 것에 대해, 집주에서는 사체(四體)는 비록 능히 말하지 않으나 그 이치는 자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아마 인의예지가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가리켜 말한 것 같습니다.

 

孟子 施於四體, 四體不言而喩’, 集註云: ‘言四體雖不能言, 而其理自可曉也.’ 似若指在人而言.

 

 

답변: 󰡔집주󰡕의 이 뜻은 요사이 살펴보니 온당치 못한 것 같습니다. 사체(四體)는 안배하지 않아도 자연히 예()에 들어맞는다고 말해야만 할 듯합니다.

 

集註此義近看得似未安, 恐只是說四體不待安排而自然中禮也.

 

질문: 순임금은 부모에게 아뢰지 않고 장가를 들었는데, 만일 부모에게 알렸더라면 사람사이의 큰 인륜을 폐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장가드는 것은 중히 여기나 부모에게 알리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꼴이니, ()를 가볍게 여기고 색()을 중히 여기는 것에 가까운 것이 아닙니까? 현자(賢者)가 군주의 영토에서 굶주릴 때에 (군주가 이 말을 듣고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구휼해준다면 (그것을)받을 수는 있으나 죽음을 면할 만큼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면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몸을 결백히 하여 인륜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꼴이니, ()를 가볍게 생각하고 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까?

 

舜不告而娶, 告則廢人之大倫, 則娶爲重而告爲輕, 不幾於禮輕而色重? 賢者饑餓於土地, 賙之則受, 免死而已, 則免死爲重, 潔身爲輕, 不幾於禮輕而食重?

 

답변: ()는 참으로 식색(食色)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에는 또한 대체(大體)와 소절(小節)의 다름이 있는데, 식색에 관계된 것은 또한 자연히 크고 작음, 늦춤과 급함의 같지 않음이 있습니다. 맹자가 말한 것이 상세하여 의심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禮固重於食色矣, 然禮亦有大體小節之殊, 而食色所係, 亦自有小大緩急之不同. 孟子言之詳矣, 無可疑也.

 

 

구양희손에게 답함 2 答歐陽希遜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진, 67)에 구양희손(歐陽希遜)에게 답한 편지이다. 시론(時論) 즉 위학(僞學)을 엄금하는 조정의 정책 때문에 자신을 수양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웠다. 그리고 󰡔논어󰡕․󰡔맹자󰡕․정자의 인론(仁論)과 성론(性論)에 대한 질문에 조목조목 답변해주고 있다.

 

보내주신 권자(卷子)는 모두 잘 이해했습니다. 시형(時亨)에게도 세 통의 편지를 보냈으니 서로 비교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원덕(元德)의 근황은 어떻습니까? 원첨(元瞻)은 벌써 돌아갔습니까? 우리가 학문하는 것은 자신을 수양하는 일인데, 어찌 시론(時論) 때문에 조금이라도 바꾸어서야 되겠습니까? 천만 번 노력하십시오.

 

所示卷子, 已悉疏其後矣. 時亨處亦有三紙, 可互見也. 元德爲况如何? 元膽已歸未也? 吾人爲學, 自爲己事, 豈以時論而少變? 千萬勉力.

 

질문: 제가 앞 편지에서 증점(曾點)의 기상은 침착하고 말뜻은 쇄락하여 요순의 사업도 넉넉히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질문했는데, 선생께서 비평하기를 증자의 기상은 본래 침착하고 쇄락했으나, 그 기상이 무엇을 통하여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했는가를 알아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뜻을 이해했다면, 그 기상이 요순의 사업이 될 수 있음을 저절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집주󰡕의 말을 상세히 음미해 보았습니다. 만일 그 말만 음미한다고 말한다면, 일상생활에는 천리가 오묘하게 유행하여 쓰고 버림, 행함과 감춤이 결코 나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증점은 타고난 자품이 높고 소견이 커서 일상생활에서 천리가 오묘하게 유행하지 않음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오직 그가 이러한 도리를 인식하여 가슴속에 어떤 찌꺼기도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른바 비록 요순의 사업이라도 넉넉히 해낼 수 있다는 말은 그의 말을 통해 일상생활을 예측하여 그가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알아낸 것입니다. 왜입니까? 요순 같은 성인은 단지 천리를 따를 뿐입니다. 그러나 증점은 비록 소견이 이와 같다 하더라도 도리어 정밀한 공부가 없습니다. 󰡔논어󰡕 한 책을 보면, 증점은 자신의 뜻을 말한 것 외에는 한 마디도 문답을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독실한 공부가 없음은 알 수 있습니다. 증점으로 하여금 이러한 견식을 가지고 연찬하는 공부를 더하게 하고 걸음걸이의 행실을 삼가게 했다면, 그가 요순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누가 막겠습니까? 우리 왕조에서 강절(康節: 소옹) 선생의 대체는 증점과 서로 유사합니다. 가르침을 주시길 빕니다.

 

謙之前此請問曾點氣象從容, 辭意灑落, 堯舜事業亦優爲之, 先生批敎云: ‘曾點氣象固是從容灑落, 然須見得它因甚得到如此始得. 若見得此意, 自然見得它做得堯舜事業處.’ 謙之因此熟玩集註之語, 若日但味其言, 則見其日用之間無非天理流行之妙, 而用舍行藏了無所與於我; 見得曾點只是天資高, 所見處大, 所以日用之間無非天理流行之妙. 惟其識得這道理破, 便無所係累於胸中. 所謂雖堯舜事業亦優爲之, 自其所言以逆諸其日用之間, 而知其能爾也. 何者? 堯舜之聖, 只是一箇循天理而已. 然曾點雖是見處如此, 却無精微縝密工夫. 觀論語一書, 點自言志之外, 無一語問答焉, 則其無篤實工夫可見矣. 使曾點以此見識, 加之以鑽仰之功, 謹於步趨之實, 則其至於堯舜地位也孰禦? 本朝康節先生大略與點相似, 伏乞指敎.

 

답변: 사람이 높은 천품을 지니게 되면 자연스레 천리가 참되게 흘러 운행하지만, 윤용의 오묘함은 반드시 모두 학문의 공효를 말미암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강절(康節)과 이정(二程) 선생도 학문을 말한다면 처음부터 알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말씀해준 내용은 모두 타당합니다. 대저 학자는 하학상달하는 차례를 따라야만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한결같이 먼저 증점의 견해를 구하려 한다면, 불교나 노자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人有夫資高, 自然見得此理眞實流行, 運用之妙者, 末必皆由學問之功. 如康節, 二程先生亦以爲學則初無不知也. 來喩皆已得之, 大抵學者當循下學上達之序, 庶幾不錯. 若一向先求曾點見解, 未有不人於佛老也.

 

질문: 제가 앞 편지에서 󰡔논어󰡕󰡔맹자󰡕의 인()이 다른 점을 질문했습니다. 선생께서 비평하여 말씀하기를 󰡔논어집주󰡕에서 ()이란 마음의 덕이요 사랑의 이치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매우 음미할만한 것이니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근래에 󰡔논어󰡕 가운데서 여러 제자들이 인()을 질문한 것에 답한 곳을 살펴보니,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 남을 평등하게 대하라고 일러주거나 먼저 어려운 일을 행하고 얻을 것은 나중에 취하라고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흔히 먼저 그 사람의 병통을 치료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인자(仁者)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해 빗장을 뽑고 자물쇠를 끌러주는 말로 일러줄 수 없으니, 또한 이를 위해 인을 실천할 토대를 마련하여 토대가 평평하고 확고한 뒤에 인을 말할 수 있습니다. 자공(子貢)의 물음에 답할 때에 곧장 공인(工人)이 그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연장을 예리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으니,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번지(樊遲)가 인을 묻자, “거처할 때 공경하고 일을 처리할 때 경건하며 사람과 함께 할 때는 진실해야 한다라고 일러주었는데, 호씨(胡氏)번지가 인을 물은 것이 세 번인데 이것이 맨 처음이고, 옹야편의 어려운 것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로한다는 것이 다음이고, 안연편의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 맨 나중일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성인의 뜻을 이해한 듯합니다. 이처럼 토대가 온당하지 않은데도 인을 말하여 힘을 써서 실행토록 한다 하더라도 과연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토대가 이미 바르면 비록 타일러 말해주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위를 향해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논어󰡕를 읽을 적에 성인이 인에 대한 질문에 답한 내용이 동일하지 않음을 보고서, 성인의 인에 대한 언급은 광대하고 보편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그 요점을 구하려 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맹자가 인을 말한 곳을 협소하게 여겨 마침내 맹자의 말은 공자의 광대하고 보편적인 것만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이나 인심따위의 말을 살펴보니 곧 인의 실마리를 실제로 지칭한 것이니, 학자들이 이를 찾아 체득할 수 있다면 실리(實理)에 근거하여 착수할 곳이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른바 마음의 덕이라는 것이 곧 인의 참된 실체임을 확실히 이해하게 됩니다. 대개 일마다 이 마음의 편안함을 얻어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곳이 없게 하면, 사랑은 곧 인의 실질이 되니 내 몸밖이 모두 나와 관련이 되어 조금이라도 구휼되지 않음이 없게 됩니다. 정자가 서명(西銘)을 인의 본체로 삼은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시길 빕니다.

 

謙之前此請問語孟仁不同處, 先生批敎曰: ‘集註中云仁者心之德, 愛之理也, 此言極有味, 可更思之.’ 近來却覺看得論語中答諸弟子問仁處, 如告之以主敬行恕, 告之以先難後獲之類, 往往不是先藥其人之病痛, 則是其人末到仁者地位, 未可以抽關啓鑰告之, 且爲它安下一箇爲仁底根脚, 根脚平正牢固, 然後却可語之以仁. 若答子貢之問, 直日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此可以觀矣. 樊遲問仁, 告之以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胡氏以爲樊遲問仁者三, 此最先, ‘先難次之, ‘愛人其最後乎, 似得聖人之意矣. 若是根脚不穗而語之以仁, 縱使能用力焉, 果能爲我有乎? 根脚旣正, 雖不告語之, 亦自然能尋求向上去也. 前此讀論語, 見聖人答問仁之語其說不一, 便將作聖人言仁廣大周偏底意思看了, 是以求其要領而不可得, 却把孟子言仁處看小了, 遂謂孟子之言不如孔子廣大周偏. 今此却看得孟子所言惻隱之心與夫人心等語乃是實指仁之端倪, 學者便可體認尋求, 便有靠實下手處. 於此益見得所謂心之德者, 乃是仁之眞體. 蓋事事要得此心之安, 不使有一毫之不足處. 而愛者乃是仁之實, 不以吾身之外皆無與於我而一毫不卹也. 程子以西銘爲仁之體, 其以此歟. 不知是否, 伏乞指敎.

 

답변: 이 단락에 대한 이해는 큰 흠이 있습니다. 번지(樊遲)에게 일러준 세 가지 말은 곧 안연(顔淵)중궁(仲弓)에게 일러준 것과 결코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정자는 이것은 상하를 모두 통하는 말이다고 했으니, 어찌 우선 토대를 안정되게 세우라고 말한 것이겠습니까? 이처럼 단지 토대를 안정되게 세울 뿐이라면, 곧 어떻게 해야 바야흐로 인을 실행할 곳에 착수하겠습니까? 대개 공자는 인을 실천하는 공부를 말했을 뿐이고, 맹자에 이르러 비로소 자의 의미를 풀이했습니다. [예컨대 인의 단서, 인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부류입니다.] 그러나 자는 또 두 가지 의미를 겸하니 한마디로 다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공자는 사람을 가르칠 적에 또한 두 가지 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극기는 곧 맹자의 인은 사람의 마음이다를 설명하고, 애인은 곧 맹자의 측은한 마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정자는 󰡔역전(易傳)󰡕에서 또한 전언(專言)과 편언(偏言)이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저의 훈석(訓釋)은 또한 맹자와 정자의 해석이니 좀더 상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此段看得大有病. 告樊遲三語, 便與告顔淵仲弓都無異, 故程子曰 此是徹上徹下語’, 安得謂姑爲之安立根脚乎? 若此只是安立根脚, 卽不知如何方是正下手爲仁處耶? 大率孔子只是說箇爲仁工夫, 至孟子方解仁字之義理. (如仁之端, ‘仁人心之類.) 然仁字又兼兩義, 非一言之可盡, 故孔子敎人亦有兩路, (‘克己卽孟子 , 人心之說, ‘愛人卽孟子 惻隱之說) 而程子易傳亦有專言偏言之說. 如熹訓釋, 又是孟子程子義疏, 可更詳之.

 

질문: 저는 지난번에 맹자와 정자가 재(: 재질)를 논한 곳을 질문하면서, 제 허망한 설명을 담아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은 선하지 않음이 없고 기()에는 맑고 흐림이 있는데, 사람 중에 어둡고 밝고 강하고 약한 사람이 있는 것은 기()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재질)는 성()에서 생기니, 본래 불선(不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품(氣稟)이 맑아 본성이 자연스레 운용되면, 재질은 본래 밝고 강한 것이요, 기품이 흐려 본성을 가리우게 된다면, 간혹 그 재질의 아름다움을 구속하여 어둡고 약함이 있는 것입니다. 기품이 어둡고 흐린 것은 이미 성()의 선함을 가리운 것이니, 곧 재질 또한 더불어 잃어버린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은 본래 재질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맹자는 그 재질을 능히 다하지 못하나 재질의 죄는 아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가 맑으면 그 재질을 능히 다 할 수 있고, 기가 흐릿하면 그 재질을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재질은 성()에서 생겨나오니, 사람에게 먼저 기()의 맑음과 흐림이 있은 이후에 재질에 비로소 다함과 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둡고 밝고 강하고 약함은 실로 재질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상이 전에 가르침을 구했던 말이다.]

그 때에 선생은 답을 주면서 옳지 않다고 할만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맹자󰡕 본문과 함께 󰡔집주󰡕의 설을 깊이 음미해보니, 또한 이전의 설명에 온당치 못한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맹자의 말은 이런 것 같습니다. 측은수오공경시비의 마음은 사람마다 모두 소유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그 본성의 선함을 볼 수 있다. 대저 사람은 이 본성을 받고 태어나니 반드시 그러한 형체를 갖추는 것이요, 형체가 이루어지면 재질이 본래 그 형체의 가운데 갖추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용도[]가 칼이라면 반드시 물건을 찌를 수 있을 것이요, 배라면 반드시 물위로 다닐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때문에 이미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마음을 지녔으면, 미루어 생각하고 구하여 그것으로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마음을 충만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사람의 할 수 있는 바를 다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하지도 구하지도 않고서 충만하게 해야 할 까닭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능히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으로서 마땅히 다해야하는 까닭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해야할 바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곧 품수 받은 기()가 흐리기 때문이요, 더불어 그 마음에 함닉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자가 배워서 아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곧 맹자의 구하면 얻는다는 말을 논한 것입니다. 정자가 자신을 해치고 자신을 버린다라고 말한 것은 곧 맹자의 그 재질을 다하지 못한다는 말을 논한 것입니다. 두 분의 말은 비록 다르나 같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가르침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제가 또 󰡔집주󰡕를 살펴보니 재질에는 본래 어둡고 밝고 강하고 약함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는데, 제 생각으로는 어둡고 밝은 것은 기()이고, 강하고 약함은 재()를 말한 듯합니다. ‘()’자 위에 혼명(昏明)’ 두 글자를 두면 어떻습니까? 가르침을 청합니다.

 

謙之前此請問孟子程子論才處, 曾妄爲之說曰: ‘性無不善而氣有淸濁, 人之有昏明强弱者, 氣使之然也. 才發於性, 固無有不善也. 氣禀之淸而本性常用, 則才固無不明且强也. 氣稟之濁而本性障蔽, 則或有以梏其才之美, 而使之昏且弱矣. 氣禀昏濁旣蔽其性之善, 則遂倂與其才而失之. 何者? 性固才之根本也. 此孟子所謂不能盡其才而非才之罪也. 故夫氣之淸則能盡其才, 氣之濁則不能盡其才. 然其才發於性, 自人氣之有淸濁, 而後才始有盡不盡者焉, 則夫昏明强弱其本固不係於才而繫於氣也.’(已上前時請問之語) 此時先生賜答, 不以爲不可. 然謙之近來玩味孟子本文與集註之說, 又覺前說殊未爲當. 孟子之言若曰, 惻隱羞惡恭敬是非之心人皆有之, 可見其性之善也. 夫人之受此性以生也, 則必具此形體也. 有此形體, 則其才能固具於此形體之中. 若是器爲刃也, 必能刺物也; 是器爲舟也, 必能行水也. 是故有此惻隱羞惡辭讓是非之心, 能思而求之, 以充惻隱羞惡辭讓是非之心, 是所謂盡其所能也. 彼其不思不求, 不知所以充之者, 非無是能也, 不知所以盡其所能也. 其所以不盡其所能者, 則禀是氣之濁與夫陷溺其心者也. 程子所謂學而知之, 卽孟子求則得之之論也. 程子所謂自暴自棄, 卽孟子不盡其才之論也. 二說雖異, 不害其爲同也. 不知是否, 伏乞指敎. 謙之又觀集註曰: ‘才固有昏明强弱之不同’, 竊疑昏明是氣, 强弱是才, 不知於字上下昏明字如何? 伏乞指敎.

 

답변: 기품에 차이가 있어 그 종류가 일정치 않은 것은 비단 청탁(淸濁) 두 글자일 뿐만은 아닙니다. 지금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하여 일마다 밝히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기()는 맑은 것입니다. 그러나 행하는 바에 혹 반드시 모두 이치에 들어맞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그 기()가 순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사람 중에 근후(謹厚)하고 충신(忠信)하여 일마다 공평하고 온당하게 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 기()는 순수한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바에 반드시 이치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이것은 곧 기()가 맑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를 미루어 구해본다면 재질이라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氣稟之殊, 其類不一, 非但淸濁二字而已. 今人有聰明通達事事曉了者, 其氣淸矣, 而所爲或未必皆中於理, 則是其氣之不淳也. 人有謹厚忠信事事平穩者, 其氣醇矣, 而所知未必能達於理, 則是其氣之不漬也. 推此類以求之, 才自見矣.

 

질문: 정자는 타고난 것을 성()이라 한다. ()은 곧 기(), 기는 곧 성이니, 타고난 것을 말한다고 말했고, 사람은 태어날 때 고요하다.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말하자마자 이미 성()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은 이러합니다. 명도(明道)가 말한 타고난 것이 성()이다는 말과 고자(告子)가 말한 타고난 것이 성()이다는 말은 다릅니다. 명도의 뜻은 사람이 태어난 다음에야 비로소 성()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그 이전은 천명이 유행하면서 의탁하는 곳이 아직 없기 때문에, 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또한 성()의 본원이기 때문에, 단지 성()이라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의 형상을 논하는 경우에는 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은 태어날 때 고요하다.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말하자마자 이미 성()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은 곧 기()이고 기는 곧 성이다는 것은, 반드시 이 기()가 있은 다음에 사람의 형체가 비로소 확립될 수 있고, 반드시 이 성()이 명해진 다음에 사람의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이 비로소 갖추어지며, 반드시 이 성()이 있은 다음에 이 기()가 있고, 이 기()가 있은 다음에 이 성()이 있어서 그 둘이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물이 태어나기 이전에 천명의 유행은 비록 머무를 곳이 없어 성()이라 말할 수 없지만, ()의 근본은 진실하고 혼연해서 조금의 간격이나 뒤섞임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물이 생겨난 후에 기질이 형성되나 비록 그 이치가 이미 사람에게 명해져야 비로소 성()이라 이를 수 있으며, ()의 본체가 비로소 기질과 서로 섞여야 그 단서를 찰식(察識)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정자가 ()이 곧 기()요 기가 곧 성이다라고 말한 것은 기()가 성()이요 성()이 기()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정자가 ()을 논할 때에 기()를 논하지 않으면 갖추어지지 않고, ()를 논할 때에 성()을 논하지 않으면 분명하지 못하니, 둘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程子曰: ‘生之謂性, 性卽氣, 氣卽性, 生之謂也.’ 又曰: ‘人生而靜, 已上不容說, 才說性時便已不是性也.’ 謙之竊意明道所言生之謂性與告子所言生之謂性不同, 明道之意若謂人生而後方始謂之性, 前此天命流行, 未有所寄寓, 只可謂之善, 不可謂之性. 然以無可得名, 又是性之本源, 只且謂之性. 若論其體段, 則不可謂之性. 此人生而靜以上不容說, 才說性時便已不是性也. 性卽氣, 氣卽性, 蓋必禀是氣然後人之形體始立, 必命之以是性然後人之良知良能始具, 必有是性而後有是氣, 必有是氣而後有是性, 二者蓋不能以相離也. 人物未生之時, 天命之流行雖其未有底止, 不可謂之性, 而性之本眞實渾然而無所間雜. 人物已生之後, 氣質之成形, 雖其理已命于人, 始得謂之性, 而性之本體始與氣質交雜, 而有待於察識其端倪矣. 程子所謂性卽氣, 氣卽性, 非謂氣便是性, 性便是氣, 蓋言其不相離也. 此程子所謂 論性不論氣不備, 論氣不論性不明, 二之則不是’, 蓋以此也. 不知是否? 伏乞指敎.

 

답변: 이 단락은 그럴 듯합니다.

 

此段近之.

 

질문: 정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기()를 품부 받으니 이()에 선악이 있다. 그러나 성() 가운데 원래부터 이 두 물건이 상대하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선한 경우도 있고 어릴 적부터 악한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기품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선은 본래 성()이다. 그러나 악도 또한 성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래 문장에서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으로 비유한 것은 원래부터 이 두 물건이 상대하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말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흘러서 다시 더러워지지 않는다고 하니, 어려서부터 악한 경우를 말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전에 선생께서 이미 말하기를 물이 맑다는 것은 곧 성선(性善)을 말하는 것이요, 곧 악이라 할 수 없으니 또한 불가불 성()이라 이른다고 했습니다. 또 말하기를 흘러서 바다에 이르러 끝내 더렵혀지지 않는다하고, “오래 흐르지 않았는데도 이미 탁하다하고, “멀리 흘러가서야 바야흐로 탁해진다고 하고, 맑고 흐림이 비록 같지는 않지만 흐리다고 해서 물이라 이르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처음으로 물이 흐를 때에는 흐림이 없다는 것은 나중에 비록 흐려질 수는 있으나, 그것은 물에 진흙이나 모래가 섞이거나 외부의 불순물이 가라앉은 것일 뿐이지, 원래 물 자체가 흐린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생각해보고 나서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맹자가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찌 악을 성()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정자의 말에 필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니, 가르침을 주십시오.

 

程子曰: ‘人生氣禀理有善惡, 然不是性中元有此兩物相對而生也. 有自幼而善, 有自幼而惡者, 是氣禀使然也. 善固性也, 然惡亦不可不謂之性也.’ 謙之竊考夫下文所引水流爲喩, 是所謂不是元有兩物相對而生也. 然旣謂之流而復有濁, 則非自幼而惡矣. 旣曰水之淸, 則性善之謂也, 則不可謂之惡, 亦不可不謂之性矣. 旣曰有流而至海, 終無所汚, 有流而未遠已有所濁, 有出而甚遠方有所濁, 又曰淸濁雖不同, 然不可謂濁者不爲水也. 謙之竊以謂旣是初流出時無濁者, 則後來雖有濁者, 或是泥沙溷之, 外物汨之, 不是元初水裏面帶得濁來, 到此方見也. 此則孟子所謂陷溺其心者也. 豈得以惡爲不可不謂之性哉? 程子之言必有深意, 伏乞指敎.

 

답변: 여기에서 말한 진흙과 모래, 외부의 불순물은 바로 기품(氣稟)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此所謂泥沙外物, 正指氣禀而言.

 

질문: 정자는 사람들이 성을 말한 것은 단지 계지자선을 말했을 뿐이니 맹자가 말한 성선이 이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근래에 선생께서 엄시형(嚴時亨)의 물음에 답하여 󰡔󰡕 「계사전에서 말한 도를 잇는 것이 선하다는 말을 생성되기 이전을 가리킨다 하고, 맹자가 말한 성선은 이미 생겨난 뒤를 가리킨다고 말한 구절을 보니, 정자의 설명과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가르침을 주시길 빕니다.

 

程子曰: ‘凡人說性, 只是說繼之者善也. 孟子言性善是也.’ 近觀先生答嚴時亨所問云: ‘易大傳言繼之者善, 是指未生之前; 孟子言性善, 是指已生之後’, 與程子之說似若有異. 伏乞指敎.

 

답변: 명도 선생의 말은 높고 멀고 크고 넓어서 본문의 바른 뜻에 얽매이지 않으니 이와 같은 곳은 많습니다. 만일 그 방향에 집착하여 논한다면 소통될 수 없는 곳이 이 구절뿐만 아닙니다. 반드시 성의 근원이 본래 선함을 알아야만 성이 발현되는 것도 선하지 않음이 없으니, 계사전과 맹자의 뜻은 애초부터 같지 않음이 없습니다.

 

明道先生之言高遠宏闊, 不拘本文正意, 如此處多. 若執其方而論, 則所不可通者不但此句而已. 須知性之原本善, 而其發亦無不善, 則大傳孟子之意初無不同矣.

 

질문: 󰡔논어󰡕 「향당편에서 유상(帷裳)이 아니면, 반드시 (치마의 옷 폭에 주름을 잡지 않고) 줄여서 꿰매셨다고 했는데, 󰡔집주󰡕에서 조복(朝服)과 예복(禮服)은 치마를 사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질문할 때에 이 한 구절을 빠뜨렸습니다. “정폭(正幅: 온 폭)을 휘장과 같이 해서 허리에 주름이 있고 옆에 줄여서 꿰매는 것이 없다. 그 나머지 심의(深衣) 같은 것은 허리폭이 아랫단의 반절쯤 되고 아랫단이 허리폭의 배가 되니 주름은 없고 줄여서 꿰맨 것이 있다고 말하셨는데, 이른바 주름이 있다는 것은 오늘날 치마의 제도처럼 허리 가까운 곳을 꿰매는 것과 같은 듯합니다. ‘허리폭이 아랫단의 반절쯤 된다는 것은 허리 가까운 곳은 좁고 절반은 아랫단과 맞춘 것을 말합니다. ‘아랫단이 허리폭의 배가 된다는 것은 아래로 향한 것이 넓어 윗단의 허리보다 배가 됨을 말합니다. 옆에 줄여서 꿰매는 제도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심의(深衣)의 제도는 치마의 아랫단을 마름질하여 만들되 허리 가까운 것은 줄여서 작게 만들어 절반 아래로 늘어뜨리는 법이니, 이로 인해 옆을 줄여서 꿰매는 듯합니다. 가르침을 주시길 빕니다.

 

鄕黨 非帷裳必殺之’, 集注云: 朝祭之服用裳’, 間時遺此一句. ‘正幅如帷, 要有襞積而旁無殺縫. 其餘如深衣, 要半下, 齊倍要, 則無襞積而有殺縫矣.’ 所謂有襞積, 恐是若今桾制, 近要有殺(入聲)是也. 要半下, 謂近要者狹, 半放下面齊也. 齊倍要, 謂向下者闊, 倍於上面要也. 不知旁無殺縫之制如何? 恐是深衣之制, 裳下面是裁布爲之, 近要者殺從其小, 以就半下之法, 所以旁有殺縫也. 伏乞指敎.

 

답변: 이는 󰡔집주󰡕를 읽을 때 첫 구절을 빠뜨렸기 때문에 그 아래에 모두 문리가 통하지 않게 됩니다. 어제 언뜻 살펴보니, 또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구절을 넣어 읽어보니, 저절로 이해가 분명해집니다. 유상(帷裳)은 오늘날의 치마와 같습니다. 주름은 곧 접든 부분입니다. 그 폭은 본래 온 단이니 어찌 허리 가까운 곳을 줄여서 꿰맨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此讀集註遺下首句, 故其下皆無文理. 昨乍看之, 亦自曉不得也. 今添此句讀之, 自合見得分明矣. 帷裳如今之裙是摺處耳, 其幅自全, 安得謂近要者有殺縫耶?

 

질문: 󰡔논어󰡕에서 군자는 두루 교유하되 편당을 만들지 않는다[周而不比]”고 말했습니다. ‘()’자는 옛날 음이 비()와 지()의 반절인데 󰡔집주󰡕에는 음이 없습니다. 고주와 󰡔집주󰡕 모두 편당을 만든다는 뜻으로 보았습니다. “의를 따를 뿐이다[義之與比]”에서 ()’자의 옛날 음은 비()와 지()의 반절인데 󰡔집주󰡕에서 음은 필()과 이()의 반절입니다. 󰡔맹자󰡕에서 전사한 자를 위해서 한번 설욕하기를 원한다하고, “또 죽은 자를 위해서 흙을 시신의 살갗에 가까이 닿지 않게 한다고 말했는데, 그 뜻과 음이 다 갖추어져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말을 모는 어자도 활을 쏘는 사수와 더불어 아부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집주󰡕도 또한 편당을 만든다는 뜻으로 보고 음은 필()과 이()의 반절이라 했습니다. ‘()’자를 편당을 만든다는 뜻으로 볼 경우에는 모두 필()과 이()의 반절이라고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차 지금의 제후들을 모조리 몰아서 죽이겠는가에 대해서 󰡔집주󰡕()는 연()하다는 뜻이고 음은 거성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거성이란 도리어 비()와 지()의 반절로 보는 듯한데 어떻습니까? 가르침을 주시길 빕니다.

 

論語 君子周而不比字舊音蠟志反, 集註無音. 古註集註皆爲偏黨之義. ‘義之與比’, 舊音耽志反, 集註音必二反. 孟子 願比死者一灑之且比化者, 無使土親膚’, 其義與音又俱備, 無可疑者. 御者且蓋與射者比’, 集註亦爲偏黨之義, 音必二反. 不知 字爲偏黨之義者皆當作必二反如何? 將比今之諸侯而誅之’, 集註曰: ‘比連也, 音去聲.’ 所謂去馨者, 想却是作眦志反否? 伏乞指敎.

 

답변: 이 글자는 가창조(賈昌朝)󰡔군경음변(羣經音辨)󰡕을 근거로 삼아 개정했다고 기억이 되는데, “지금의 제후들을 모조리 몰아서 라는 곳은 개정이 미진하니, 다시 교감할 날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다지 긴요하지 않고 지금 눈이 매우 어두우니, 이러한 곳은 처리할 겨를이 없을 듯합니다.

 

記得此字是用賈昌朝羣經音辨改定, ‘比今之諸侯一處改未盡耳, 更俟契勘. 然亦無甚緊要, 今目昏甚, 此等處恐不暇料理矣.

 

질문: 맹자는 나는 저런 소인과 함께 수레 타는 것을 익히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은 옛날 음이 관()이고, “()은 익힘[]이다고 주를 달았습니다. 󰡔집주󰡕에는 음이 없지만 또한 ()은 익힘[]이다고 말했으니, 굳이 음을 바꾸지 않아도 좋을 듯합니다. 이러한 문제로 선생을 번거롭게 해서는 안되겠지만, 향리의 후생들이 간혹 찾아와 질문하니, 감히 제 뜻대로 헤아려서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살펴주시기를 빕니다.

 

孟子曰: ‘我不貫與小人乘’, 貫舊音慣, 註曰: ‘, 習也.’ 集註無音, 亦日 , 習也’, 恐是不須音轉亦可. 此等不應以煩瀆尊聽, 鄕里後生或來質問, 不敢以私意揣量以告, 伏乞尊察.

 

답변: ()을 만일 관()으로 음을 달지 않는다면, 무슨 글자로 읽어야할지 모르겠군요. 만일 다른 음이 있다면 곧바로 보충할 것입니다. 만일 예전대로 ()’자일 뿐이라면 음을 달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검증할 겨를이 없으니, 다시 살펴보아 훗날 인편이 있으면 비평해 주십시오.

 

貫若不音慣, 不知讀作何字? 如有別音, 卽須補之. 若依舊只是貫字, 則自不須音也. 此不暇檢, 可更詳之, 後便批來.

 

 

구양희손에게 답함 3 答歐陽希遜

 

해제이 글은 1197(경원 3, 정사, 68)에 구양희손(歐陽希遜)에게 답한 편지이다. 󰡔중용󰡕연비어략(鳶飛魚躍)’󰡔맹자󰡕호연지기(浩然之氣)’를 연계시켜 논의한 정자(程子)의 주장을 해명하고, 󰡔중용󰡕에 보이는 귀신(鬼神)’의 의미를 몇 가지 근거를 들어 논증했으며, ‘()()()’의 올바른 뜻을 설명해주고 있다.

 

정선생(程先生)솔개는 날아오르고 물고기가 뛰는[鳶飛魚躍] 것은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논했는데, 원덕(元德)도 또한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곧 󰡔중용혹문󰡕 중에 있는 구설(舊說)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자세히 음미해보니, 비로소 정선생의 설명이 이해가 됩니다. 정선생의 말 중에 솔개는 날아오르고 물고기가 뛴다는 것은 자사(子思)가 사람들에게 매우 긴요하게 설명한 곳인데, 이는 사물 사이에서 이러한 이치를 들추어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도처에서 활기가 넘쳐 생동감 있는 모습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고,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라는 것은 맹자가 사람들에게 매우 긴요하게 설명한 곳인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분수 측면에서 대체로 분발케 하여 곧 그 드러난 이치가 활기가 넘쳐 생동감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으니, 단순히 문장의 의미가 서로 비슷하다고 하여 끌어다가 인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중용󰡕을 보고, 또 그 속에 나타난 자사의 뜻을 살펴보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정선생의 설명은 자사의 설에 의지한 것이나, 인용한 맹자의 말과 한 가지 의미임을 알 수 있으니, 글자나 어구를 서로 비교하고 억지로 끌어다 붙여서 하나의 설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은 부류들은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만 합니다.

 

所論程先生鳶飛魚躍, 必有事焉之語, 元德亦以爲疑, 此乃爲或問中舊說所誤. 今詳味之, 方見程先生說鳶飛魚躍是子思喫緊爲人處, 以其於事物中指出此理, 令人隨處見得活潑潑地 ; ‘必有事焉是孟子喫緊爲人處, 以其敎人就己分上略綽提撕, 便見此理活潑潑地也, 非以其文義相似而引以爲證也. 今看中庸, 且看子思之意, 見得分明, 卽將程先生所說影貼出, 便見所引孟子之說只是一意, 不可以其文字言語比類牽合而使爲一說也. 凡若此類, 更宜深思.

 

귀신(鬼神) 한 장을 논해주었는데, 전혀 자세하지 못한데다가 너무 많이 인용하여 더욱 산만하게 느껴지고 본래 경전의 올바른 뜻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경전의 문구를 익숙하게 살펴보고,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뒤에 󰡔장구󰡕를 참고하여 문장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한다면, 도리가 곧 드러날 것입니다. ‘사물에 체화(體化)되었다는 뜻은 󰡔장구󰡕󰡔혹문󰡕의 설명이 이처럼 분명하니 충분히 생각할 수 있건만, 이내 다시 범범하게 질문하니 본래 사려(思慮)해본 적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기󰡕 「제의(祭義)편에서 마치 지켜보고 듣는 자가 곁에 있는 것처럼 한다라 하고, 󰡔논어󰡕 「팔일편에서 ()을 제사지낼 적에는 신이 계신 듯이 했다라고 한 것은 모두 제사를 위주로 말했습니다. 이 장(󰡔중용󰡕 16)에서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재계하고 깨끗이 하며 의복을 성대히 하여 제사를 받들게 한 것은 귀신(鬼神)을 위주로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연히 주객이 나누어지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도리어 그와 같이 보았습니까? [체물(體物)과 사인(使人) 두 구절은 좀 더 깊이 체득해야만 합니다.] 또 그대는 마치 신()이 계신 듯이 하셨다 라고 했으니, 참으로 신이 (제사지내는 곳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라 고 말했는데, 이 말은 더욱 이치를 해치는 것입니다. 만약 그와 같이 말한다면 이는 거짓이 될 뿐이니, 또 어찌 ()의 가리울 수 없음이 이와 같다라고 말하겠습니까? 󰡔예기󰡕“(영험이) 밝게 드러나며, 쑥 향기가 위로 올라 사람의 마음을 처연하게 한다[昭明焄蒿悽愴]”는 구절에 대한 분석과 설명도 옳지 않습니다. 소명(昭明)은 광경(光景)을 나타내고, 훈호(焄蒿)는 기상(氣象)을 나타내며, 처창(悽愴)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을 두렵게 여기게 한다는 것이니, 예를 들어 󰡔한서󰡕 「교사지에서 말하는 바람이 숙연(肅然)해진다는 것과 같습니다. 재아(宰我)와 공자가 나눈 문답 한 장()에서 귀신에 대해 논한 것은 바로 󰡔중용󰡕과 서로 표리(表裏)가 됩니다. 지금 우선 󰡔중용󰡕에서 말하는 뜻을 분명하게 살펴보고, 도리어 이 장을 살펴본다면 곧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所論鬼神一章全不子細, 援引太多, 愈覺支離, 不見本經正意. 可且虛心將經文熟看, 甚不能曉處, 然後參以章句, 說敎文義分明, 道理便有去著. 體物之義, 兩處說得如此分明, 足可致思, 乃更泛然而問, 可見元不曾入思慮也. 祭統所說如有見聞, 論語所說祭神如在, 皆是主於祭者而言. 此章言使天下之人齊明盛服以承祭祀, 是主於鬼神而言, 自有賓主, 如何却如此看? (體物使人兩句, 更須深體.) 又來喩言如其神之在焉, 非眞有在者也’, 此言尤害理. 若如此說, 則是僞而已矣, 又豈所謂誠之不可掩乎? ‘昭明焄蒿悽愴’, 疏說非是. 昭明謂光景, 焄蒿謂氣象, 悽愴使人神思灑淅, 如漢書云風肅然者. 宰我答問一章, 所論鬼神正與中庸相表裏. 今且先看令中庸意思分明, 却看此章, 便見子細.

 

()()() 한 장은 비록 경전 문구의 올바른 뜻은 아니지만, 문장의 흐름이 서로 관련이 있으니, 글을 읽는 자들이 또한 반드시 인식해서 드러내려고 해야만 바야흐로 의리(義理)의 크고 작음과 정밀하고 조잡함을 종횡으로 거침없이 꿰뚫어 비거나 빠진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대가 논한 것을 살펴보면, 생각이 미진한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논어󰡕인자(仁者)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知者)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어찌 이 두 구절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까? 이와 같은 내용을 편지에다 쓴 이유에는 좀더 깊은 뜻이 들어있습니다. 지금 이처럼 대충 보고 지나치면서 경솔하게 질문을 한다면, 이는 결코 그대에게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一章, 雖非經文正意, 然文勢相聯, 讀者亦須識得去著, 方見義理大小精粗縱橫貫穿, 無空闕處. 今觀所論, 全未致思. 至如所引論語仁者安仁, 智者利仁’, 豈是不知有此兩句? 所以如此筆之於書, 決須更有深意. 今乃如此草草看過, 率然發問, 殊非所望於朋友也.

 

 

 

엄시형(세문)에게 답함答嚴時亨(世文)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신, 67)에 엄세문(嚴世文)에게 답하는 첫 번째 편지이다. 엄세문이 태극도설의 구절에서부터 이정 형제 및 󰡔논어󰡕에 대한 장식의 견해나 󰡔중용󰡕 등을 인용하며 성리학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질문한 것에 대답하고 있다.

 

 

오행이 생겨나면서 각각 하나의 성을 갖는다.”

五行之生, 各一其性.

 

기질이란 음양오행으로 이루어진 것이요, 성은 태극의 전체입니다. 다만 기질의 성을 논하자면 이 (태극의) 전체가 기질 가운데 떨어졌을 뿐, 따로 하나의 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氣質是陰陽五行所爲, 性卽太極之全體. 但論氣質之性, 則此全體墮在氣質之中耳, 非別有一性也.

 

명도(明道)사람이 태어나 고요한 상태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明道人生而靜, 以上不容說’.

 

사람이 태어나 고요한 상태는 미발(未發)의 때이고, ‘그 이상[以上]’은 곧 사람과 다른 사물이 생기지 않았을 때이므로 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이라고 말하자마자 곧 사람이 생겨난 이후이니, 이 이치가 형기(形氣) 가운데 떨어져 있어서 완전한 성의 본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본체는 또 여기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 사람은 이것을 마주하되 이것과 섞이지 않은 것을 알아야 할 뿐입니다. 역대전(易大傳)에서 잇는 것이 선()이다고 한 것은 바로 생겨나기 전을 가리킨 것이고, 맹자께서, “성은 선하다고 한 것은 바로 생겨난 이후를 말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겨난 뒤라고 하더라도 그 본체는 처음부터 서로 뒤섞이지 않습니다.

人生而靜是未發時, ‘以上卽是人物未生之時, 不可謂性, 才謂之性, 便是人生以後, 此理墮在形氣之中, 不全是性之本體矣. 然其本體又未嘗外此, 要人卽此而見得其不雜於此者耳. 易大傳言繼善, 是指未生之前, 孟子言性善, 是指已生之後. 雖曰已生, 然其本體初不相雜也.

 

정자(程子)는 충()을 천도로 서()를 인도로 여겼는데, 이것은 충이란 성인이 자기에게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하늘과 함께 운행하는 것이요, 서란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도라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까?

程子以忠爲天道, 恕爲人道, 莫是謂忠者聖人之在己, 與天同運, 而恕者所以待人之道否?

 

聖人處己待人亦無二理, 天人之別, 但以體用之殊耳.

성인은 스스로를 처신하거나 남을 상대하거나 두 가지 이치가 없으니, 하늘과 사람 사이의 구별이란 다만 체와 용의 차이일 뿐이다.

 

放於利而行多怨’, 南軒獨以爲己之怨人.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는 구절에 대해 남헌(南軒)만이 내가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南軒說固有此理, 只是此章語意只合如古註及程子, 不容一語可兼二意. 虛心平氣, 靜以察之, 當自見得. 不可以其近裏, 而遷聖人之本意以就之也.

남헌의 설명에도 나름의 이치가 있다. 다만 이 장의 뜻은 옛 주와 정자의 설명과 합치해야지, 말 한마디로 두 가지의 뜻을 겸할 수는 없다.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가라앉히고서 조용히 살펴보면 당연히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비근한 말이라고 해서 성인의 본뜻을 바꾸면서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禮無大小, 未嘗不重於食色, 不可謂食色有時而重於禮. 食色重處是亦禮之重.

예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으나, 식색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 이것은 식색이 때로 예보다 소중하다는 말이 아니다. 식색이 소중한 곳이 바로 예가 소중한 곳이다.

 

此章無它可疑, 熟讀本文, 自可見矣.

이 장에는 다른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본문을 충분히 읽으면 저절로 알 것이다.

 

發己自盡謂忠, 循物無違謂信’, 所謂發己, 莫是奮發自揚之意否? 循物無違, 未曉其義如何.

자기를 극진히 발휘하는 것을 충이라 하고, 외물을 따르되 어김이 없는 것을 신이라 한다고 하는데, ‘자기를 발휘한다는 것은 스스로 떨쳐 일어나 높이 오르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외물을 따르되 어김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發己自盡, 但謂凡出於己者必自竭盡, 而不使其有苟簡不盡之意耳, 非奮發之謂也. 循物無違, 謂言語之發循其物之眞實而無所背戾, 如大則言大, 小則言小, 言循於物而無所違耳.

자기를 극진히 발휘한다는 것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에 대해 반드시 있는 힘을 다하고, 구차하게 힘껏 노력하지 않으려는 뜻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일 뿐, ‘떨치고 일어난다는 말은 아니다. ‘외물을 따르되 어김이 없다는 것은 언어를 말할 때 외물의 진실한 내용을 따라서 어긋나거나 배치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크면 크다고 하고, 작으면 작다고 하는 것이 말이 외물에 따르면서 어김이 없는 것일 뿐이다.

 

必歸於, 必歸於儒.

묵가에서 도망치면 반드시 양주에로 귀착되고, 양주에게서 도망치면 반드시 유가에 귀착된다.

 

楊墨皆是邪說, 無大輕重. 墨氏之說之出於矯僞, 不近人情而難行, 孟子之言如此, 非以楊氏爲可取也. 孔墨竝稱, 退之之繆, 然亦未見得其與原道之作孰先孰後也.

양주묵적의 학설은 모두 사설이어서, 경중을 가릴 수 없다. 다만 묵씨의 학설은 속임수와 거짓에서 나왔기 때문에 인정에 가깝지도 않고 실천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맹자가 이렇게 말할 것이지 양씨(楊氏)에게서 취할만한 점이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니다. 공자와 묵자를 병칭한 것은 퇴지(退之: 한유)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 글과 원도(原道)의 저작 시기는 어느 것이 앞이고 어느 것이 뒤인지 모르겠다.

 

簡易(呂東萊禹貢一段)

간단하고 쉽다(여동래(呂東萊)우공(禹貢)을 풀이한 한 단락을 인용했다)

 

此說大槪得之. 然亦不必言先爲其難, 大抵只是許多道理須要理會得分明後, 方無窒礙, 不費力而自簡易耳. 如治亂繩, 若不解放得開, 豈能自成條理而不紛糾耶?

이 설명이 대개는 옳습니다. 그렇지만 꼭 먼저 그 힘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개 수많은 도리들이 분명하게 이해한 다음에야 막힘이 없어지고, 힘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간단하고 평이해질 뿐입니다. 얽혀진 새끼줄을 풀어야 하는데 먼저 새끼줄을 풀어 열어 놓지 않는다면 어떻게 조리를 갖추어 어지럽게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三重當從伊川之說

세 가지 중요한 것[三重]’에 대해서는 이천의 설명을 좇아야 한다.

 

伯者之事不得爲善, 此章正與上章相發明, 乃是相承爲文, 非隔章取義也.

패자들의 일은 선하다고 할 수 없다. 이 장은 바로 위 장과 (의미를) 발명해서 서로 이어지며 문장을 이루기 때문에 () 장을 사이에 두고 뜻을 취한 것이 아니다.

 

六言六蔽說

육언육폐에 대한 설명

 

此亦但疑其文有不同耳. 先立題目, 又令復坐而後言之, 亦似太鄭重也.

이 역시 그 문장에 차이가 있나 하는 점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먼저 제목을 내세우고 또 다시 앉게 한 다음에 말했으니, 또한 지나치게 정중한 것 같다.

 

 

엄시형에게 답함 答嚴時亨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신, 67)에 엄세문에게 답하는 두 번째 편지이다.

 

問目各已批出, 請更詳之. 禮書近方略成綱目, 但疏義雜書中功夫尙多, 不知餘年能了此事否. 當時若得時亨諸友在近相助, 當亦汗靑有期也. 中朋友數人亦知首尾, 亦苦不得相聚. 未有見日, 千萬自愛, 更於義理切身處著實進得一步, 則所以守此身者不待勉而固矣.

질문한 조목에 대해 각각 비평을 해놓았으니 다시 자세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예서(禮書)는 근래 대략 강목(綱目)은 완성했지만 소()와 의() 등 잡서(雜書)에 대한 공부가 아직도 많이 있으니, 살아있는 동안 이 일을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가서 만약 그대를 위시한 여러 붕우들이 가까이서 도와주기만 한다면 책을 완성할 기약이 있을 것입니다. () 지방의 친구 몇 사람들도 그 전모를 알기는 하지만 괴롭게도 모일 수가 없습니다. 만날 날이 없으니, 천만 번 자중자애(自重自愛)하여 다시 몸에 절실한 의리(義理)가 있는 곳에서 착실하게 한 걸음씩 밟아간다면 이 몸을 지키는 것은 애쓰지 않아도 튼튼해질 것입니다.

 

某昨來請問 五行之生也各一其性’, 傳云: ‘五行之生, 隨其氣質而所禀不同, 所謂各一其性也. 各一其性, 則渾然太極之全體無不各具於一物之中, 而性之無不在又可見矣.’ 各一其性, 周子之意固是指五行之氣質, 然水之潤下, 火之炎上, 木之曲直, 金之從革, 土之稼穡, 此但可以見其氣質之性所禀不同, 却如何便見得太極之全體無不各具於一物之中, 而性(字是指其義理之性.) 之無不在也? 莫是如上一節所謂五行異質而不能外乎陰陽, 陰陽異位而皆不能離乎太極, 卽此可見得否? 覺得此處傳文似猶欠一二轉語, 每讀至此, 未能釋然. 先生答云: ‘氣質是陰陽五行所爲, 性卽太極之全體. 但論氣質之性, 則此全體墮在氣質之中耳, 非別有一性也.’

某反復思之, 誠非別有一性, 然觀聖賢說性, 有是指義理而言者, 有是指氣禀而言者, 却不容無分別. 敬讀誨語, 謂氣質是陰陽五行所爲, 性卽太極之全體, 始悟周子所謂各一其性專是主理而言. 蓋五行之氣質不同, 人所共知也, 而太極之理無平不具, 人所未必知也. 周子喫緊示人處. 今所在板行傳文皆云 五行之生, 隨其氣質而所禀不同, 所謂各一其性也. (詳此文義, 這箇字當指氣而言.) 各一其性, 則渾然太極之全體無不各具於一物之中, 而性之無不在又可見矣’, (詳此文義, 這箇 字當是指理而言.) 一段之間, 上下文義頗相合, 恐讀者莫知所適從. 若但云 五行之生, 雖其氣質所禀不同, 而渾然太極之全體無不各具於一物之中, 所謂各一其性’, 如此則辭約而義明, 正是回敎所謂全體墮在氣質之中底意思. 伏乞指敎.

제가 지난번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행이 생겨 나면서 각각 하나의 성을 갖는다는 말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런데 (태극도설) []에서는 오행이 생겨나면서 그 기질에 따라 품부받는 것이 다는데, 이것이 각각 하나의 성을 가진다는 말이다. (오행이) 각각 하나의 성을 가진다면 혼연(渾然)한 태극의 전체는 각각 하나의 사물 가운데 구비되지 않음이 없게 되고, 성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알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각각 하나의 성을 가진다는 것에 대한 주자(周子)의 뜻은 본시 오행의 기질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솟구치며, 나무가 휘거나 곧고, 쇠붙이가 가죽에 따라 변하는 것, 흙에 농작물을 가꾸고 거두는 것에서 기질의 성이 품부받는 것이 다르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인데, 어떻게 태극의 전체가 하나의 사물 가운데 구비되지 않음이 없고, (자는 의리의 성을 가리킵니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예를 들자면 위의 한 절에서 말한 오행은 질이 다르지만 음양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음양은 지위가 다르지만 모두 태극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곳의 전문에 아마도 한 두 구절이 빠진 것처럼 여겨져 언제나 글을 읽다 여기에 이르면 깨끗하게 풀리질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기질은 음양 오행이 이루는 것이고, 성은 태극의 전체이다. 기질의 성만을 논한다면 이 전체가 기질 가운데 떨어져 있는 것일 뿐 따로 하나의 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는 반복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로 하나의 성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현들이 성을 설명하신 것을 보면 의리를 가리켜 말한 것이 있고, 기품을 가리켜 말한 것이 있으니, 오히려 분별이 없을 수 없습니다. 깨우쳐 주신 말씀에서 기질은 음양 오행이 이룬 것이요, 성은 태극의 전체라고 하신 대목을 읽고서 비로소 주자(周子)가 말한 각각 하나의 성을 갖는다는 것이 오로지 이치만을 위주로 말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오행의 기질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지만, 태극의 이치가 구비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주자(周子)는 간절하게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판본의 전문(傳文)에서는 모두 오행이 생겨 나면서 기질에 따라 품수가 다른데, 이것이 각각 하나의 성을 가진다는 말이다(이 문장의 뜻을 자세히 보면 이곳의 성()자는 기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행이) 각각 하나의 성을 가진다면 혼연(渾然)한 태극의 전체는 각각 하나의 사물 가운데 구비되지 않음이 없게 되고, 성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알 수 있게 된다(이 문장의 뜻을 자세히 보면 이곳의 성()자는 이치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문단 속에서 위 아래 문장의 뜻이 상당한 정도로 서로 일치합니다만, 읽는 사람이 어느 것을 좇아야 할 지 모를까 걱정스럽습니다. 만약 오행이 생겨 나면서 비록 기질의 품수가 다르기는 하지만 혼연한 태극의 전체는 하나의 사물 가운데 구비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 각각 하나의 성을 갖는다는 말이다고만 한다면 말도 간략하고 뜻도 분명합니다. 게다가 이것이 바로 선생님께서 회답하면서 (태극의) 전체가 기질 가운데 떨어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엎드려 가르침을 바랍니다.

 

陰陽五行之爲性, 各是一氣所禀, 而性則一也. 故自陰陽五行而言之, 則不能無偏, 而人禀其全, 所以得其秀而最靈也.

음양 오행이 (각각의) 성을 이루는 것이 각각 한 가지 기의 품부를 받은 것이지만, 성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음양 오행으로부터 말한다면 치우침이 없을 수 없지만, 사람은 그 온전한 기를 품부받기 때문에 (기 가운데)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신령한 것입니다.

 

某昨來請問明道先生人生而靜, 以上不容說, 才說性時便已不是性也. 凡人說性, 只是說繼之者善也, 孟子言性善是也.’ 夫人生而靜, 是喜怒哀樂未發之前, 此已上誠有不容說者. 然自孟子以來至於周程諸先生, 皆善言性者, 其大要指人物所得以生之理而言, 親切著明. 今謂其所說皆不是性, 可乎? 性理之說本自精微, 今謂才說性時便已不是性, 無乃使人致思於杳冥不可致詰之境乎? 明道此段文意首尾大要是推明人生氣稟理有善惡, 竊詳易繫言繼之者善, 正謂大化流行, 賦與萬物, 無有不善. 孟子言性善, 止是言義理之性, 人所均禀, 初無不善, 皆是極本窮源之論. 引此以明人生氣稟理有善惡, 似不相倅, 不知明道所見是如何. 先生答曰: ‘人生而靜是未發時, 已上卽是人物末生之時, 不可謂性. 才謂之性, 便是人生以後, 此理墮在形氣之中, 不全是性之本體矣. 然其本體又亦末嘗外此, 要人卽此而見得其不雜於此者耳. 易大傳言繼善, 卽是指未生之前; 孟子言性善, 是指已生之後. 雖日已生, 然其本體初不相雜也.’ ‘以上是人物未生之時, 是某思慮所末到. 伏讀批誨, 指示親切, 却覺得先生之說甚明, 明道之說益有可疑. 何者? 人物末生時, 乃是一陰一陽之謂道, 而天命之流行, 所謂繼之者善, 便是以上事, 何故言以上不容說? 方其人物未生, 固不可謂性, 及人物旣生, 須著謂之性. 雖則人生巳後, 此理墮在形氣中, 不全是性之本體, 然氣禀不能無善惡者, 性之流也; 義理之有善無惡者, 性之本體也. 然皆不可不謂之性, 要在學者隨所讀書自去體認取. 今謂才說性時便已不是性, 深恐啓人致思於杳冥不可致詰之境. 大傳言繼善, 是指未生之前, 則命之道也, 未可謂之性. 孟子言性, 是指已生之後, 易大傳所謂成之者性, 而非所謂繼之者善也. 明道却云 凡人說性只是說得繼之者善也, 孟子言性善是也’, 此尤不可曉. 近思錄一書, 皆是刪取諸先生精要之語, 以示後學人德之門戶, 而首卷又是示人以道體所在, 編人此段, 必不是閑慢處. 旣有所疑, 末容放下, 再此扣請, 乞恕再三之瀆.

저는 지난 번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명도선생(明道先生)사람이 태어나 고요할 때 이상은 말할 수 없다. 성을 말하자마자 이미 성이 아니다. 사람들이 성을 말하는 것은 단지 잇는 것이 선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니, 맹자가 성은 선하다고 한 것이 이런 사례이다고 말한 것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고요할 때라는 것은 희노애락이 밖으로 드러나기 이전이니, 이 이상은 정말이지 말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맹자 이래로 주자정자 등 여러 선생은 모두 성을 제대로 설명하신 분들입니다. 그들의 중요한 요지는 사람과 사물이 (그것을) 얻어서 태어난 이치를 가리켜 말한 것으로 내용이 친절하고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설명한 것이 모두 성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성과 이치에 대한 설명은 그 자체로 정미한 것인데 이제 성을 말하자말자 성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람들에게 흐리멍텅하니 더 이상 따져들 수 없는 경계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명도(明道)가 말한 이 문단의 의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태어나 기를 품부하면 이치에 선악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 밝힌 것입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주역󰡕 「계사전에서 잇는 것이 선이다고 말한 것은 바로 거대한 조화의 유행이 만물에 부여되어 선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맹자가 성은 선하다고 말한 것은 의리의 성은 사람들이 똑같이 품부받은 것이어서 처음부터 선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까지만 말한 것입니다. 모두 궁극의 본원을 따져들어간 의논입니다. 이것을 인용해서 사람이 태어나 기를 품부하면 이치에 선악이 있다는 의미를 밝히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서로 걸맞지 않은 듯 합니다. 명도의 견해는 과연 어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고요할 때는 미발의 때이고, ‘그 이상의 때[已上]’는 사람과 사물이 태어나기 이전의 때이니, 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성이라고 말하자마자 (이 때는 이미) 사람이 태어난 이후이니, 이 이치가 형기 가운데 떨어져 있어서 온전한 성의 본체일 수 없다. 그러나 그 본체는 또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요컨대 사람은 여기에 즉해서 이것과 뒤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뿐이다. 󰡔주역󰡕 대전에서 말하는 잇는 것이 선하다는 것은 이 태어나기 이전을 가리키고, 맹자가 말한 성은 선하다는 것은 이미 생긴 이후를 가리킨다. 비록 이미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그 본체는 처음부터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

이상[以上]’은 사람과 사물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이니, 여기에는 나의 사고가 미칠 수 없습니다. 회답을 읽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기는 했습니다만, 오히려 선생님의 설명은 아주 분명한데 명도의 설명은 더욱 의심스러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어째서입니까? 사람과 사물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바로 한 번 음이 되었다, 한 번 양이 되는 것이 도라고 말하는 때로, 천명이 유행하는 것이니 있는 것이 선하다는 말은 바로 이상에 해당하는 일인데, 어째서 이상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사람과 사물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본시 성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만 사람과 사물이 이미 생겼다면 반드시 성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비록 사람이 태어난 다음에 이 이치가 형기 가운데 떨어져 있어 온전한 성의 본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기품에 선악이 없을 수 없는 것은 성의 유행이요, 의리에 선만 있고 악이 없는 것은 성의 본체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 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학자는 독서하는 것을 따라 스스로 체인해 나가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성을 말하자 말자 바로 성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사람들에게 흐리멍텅하니 더 이상 따져들 수 없는 경계에 이르도록 할까 깊이 우려됩니다. 그리고 대전에서 잇는 것이 선이라고 말한 것은 생겨나기 이전을 가르키는 것이라면 천명의 도이니 성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맹자가 성을 말한 것은 이미 생겨난 다음을 가르키는 것으로 역대전에서 말한 이루는 것이 성이라고 한 것이지, ‘잇는 것이 선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도는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이 성을 말하는 것은 단지 잇는 것이 선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맹자가 성은 선하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더욱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近思錄󰡕이란 책은 모두 여러 선생들의 정밀하고 핵심적인 말을 가려 뽑아 후학들에게 덕에 들어가는 문호를 보이려는 것이고, 그 가운데 첫 권은 또 사람들에게 도체의 소재를 보이려는 것인데, 이 문단을 편집해 넣었으니 반드시 한가하게 지나칠 부분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미 의문이 생겨서 버려 둘 수 없어 다시 질문하는 것이니, 거듭 묻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此一段已詳於希遜卷中矣. 明道先生如此處多, 若以本文論之, 則皆不可曉矣. 要當忘言會意, 別作一格看可也.

이 한 문단에 대해서는 희손에게 보낸 글 속에서 상세하게 말했다. 명도선생에게는 본문만 가지고 논하면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곳이 많이 있다. 요컨대 말을 잊고 뜻을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에 입각해서 보아야 좋을 것이다.

 

子路曾皙冉有公西華侍坐一章, 夫子旣語之以居, 則曰 不吾知(6-3193). 如或知爾則何以哉? ’ 正是使之盡言, 一旦進用, 何以自見. 及三子自迷其才之所能堪, 志之所欲爲, 夫子皆不許之, 而獨與曾點. 看來三子所言皆是實事, 曾點雖答言志之問, 實未嘗言其志之所欲爲, 有似逍遙物外, 不屑當世之務者. 而聖人與此而不與彼, 何也? 集註以爲 曾點之言, 則見其日用之間無非天理流行之妙, 而用舍行藏了無與於我. 是雖堯舜之事業蓋所優爲, 其視三子規規於事爲之末, 不可同年而語矣.

 

자로(子路)증석(曾皙)염유(冉有)공서화(公西華)(공자를) 모시고 앉았다이 장에서 공자는 “(너희들이) 평소에는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혹시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어느 날 등용되면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것인지 다 말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자신들의 재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말했음에도 공자께서는 모두 인정하지 않으시고, 오직 증점에 대해서만 인정하셨습니다. 살펴보면 세 사람은 모두 사실을 말했는데 증점만은 비록 뜻을 말해보라는 질문에는 대답했지만 뜻대로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으니, 세상을 벗어난 곳에서 소요하며 당대의 시무에 대해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들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성인께서 이것만 인정하고서 저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논어집주󰡕에서는 증점의 말을 음미해보면 일상생활에서 천리가 오묘하게 유행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알 수 있고, 등용되거나 안 되거나, 세상에 쓰이거나 버려지거나 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비록 요순의 사업이라 할지라도 넉넉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니 세 사람이 작은 일에 대해 구속당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같은 차원에 두고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 말로 인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학문을 하는 것과 정치를 하는 것은 본래 같은 계통의 일입니다. 훗날 쓰이는 것은 오늘날 존양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은 오히려 둘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군대재정예악과 천하의 모든 일은 학자들이 당연히 이해해야 할 것이니 어느 것 하나도 이해가 짧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자기의 몸과 마음에 아무런 욕심이 없고, 언제나 정신이 맑고 기운이 안정되며, 스스로 맑고 밝은 함양의 지경에 이르러서, 뜻과 기운이 정신과 일치하도록 만들어야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정자가 말한 세상 만물이 자신을 뒤흔들도록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서고 난 다음에는 저절로 세상의 사물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한 말이 이런 뜻입니다. 부자(夫子)께서는 맹무백의 질문으로 인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는 천승의 나라에서 군정[]을 다스리게 할 만 하고”, “()는 천실(千室)의 읍과 백승(百乘)의 집안에 재()가 되게 할 만 하며”, “()은 예복을 입고 띠를 두르고서 조정에 서서 빈객을 맞아 대화를 나누게 할 만 하다.” 성인(聖人: 공자)께서 이미 그들의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아셨지만 유독 인()에 대해서만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란 본체에는 갖추지 않은 것이 없고, 작용 역시 갖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가지 재주와 한 가지 기예에만 그치겠습니까? 세 사람에게 이미 가진 능력에 안주하지 않게 하고, 부지런히 인을 추구하는 데에 힘써서, 좋아하고 즐기도록 만든다면 어느 겨를에 말단의 일을 곁눈질 하겠습니까? 다만 그들은 가슴 속에 이러한 능력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항시 스스로 드러낼 방법이 없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에 기필코 나라를 얻어 다스리려고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부자의 질문을 받고서 그 기미가 촉발되어 각각 자신들의 능력을 서술했던 것입니다. 자로는 경솔하게 대답하느라 다시 미루어 생각한다거나 겸손해하지도 못했고, 구와 적은 자로가 부자에게 비웃음을 산 것만을 보았기 때문에 말이 겸손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신들의 장점을 드러내는데 바쁜 나머지 공자의 문하에서 평소에 함께 강론하고 닦았던 내용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적용한 것이 완전히 협소한 일방에 떨어져 있는 격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존양하는 것이 훗날 쓰이게 될 것임을 모르면서, 학문을 하는 것과 다스리는 것이 둘로 끊어서 나누어 볼 수 없다는 것만을 알기 때문에 기상이 넓지 못하고 사업이 지극한 곳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某嘗因是而思之, 爲學與爲洽, 本來只是一統事, 它日之所用, 不外乎今日所存, 三子却分作兩截看了. 如洽軍旅治財賦治禮樂, 與凡天下之事, 皆是學者所當理會, 無一件是少得底. 然須先理曾要敎自家身心自得無欲, 常常神淸氣定, 涵養頁到淸明在躬, 志氣如神, 則天下無不可爲之事. 程子所謂不得以天下撓己, 己立後, 自能了當得天下事物者是矣. 夫子嘗因孟武伯之問而言 , 千乘之國可使治其賦也. , 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爲之宰. ,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 聖人固已深知其才所能辨, 而獨不許其仁. 夫仁者, 體無不具, 用無不該, 豈但止於一才一藝而已? 使三子不自安於其所已能, 孜孜於求仁之是務而好之樂之, 則何暇規規於事爲之末? 緣它有這箇能解橫在肚皮裏, 常恐無以自見, 故必欲得國而治之. 一旦夫子之問有以觸其機, 卽各述所能. 子路至於率爾而對, 更無推遜; 但見子路爲夫子所哂, 故其辭謙退, 必竟是急於見其所長. 聖門平日所與講切自身受用處, 全然掉在一偪, 不知今日所存便是後日所用, 見得它不容將爲學爲治分作兩截看了, 所以氣象不宏, 事業不能造到至極.

 

예를 들어 증점은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에서 바람을 쐬면서도 스스로 그 즐거움을 얻었으니 이것은 오히려 부자께서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고 하신 것이나, 안자가 누추한 시골에 살면서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도 그 즐거움을 변치 않았던 것과 품은 생각이 서로 비슷합니다. 정자는 부자께서 거친 밥과 마실 물을 즐거워 하신 것이 아니라 비록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도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셨다는 말이다. 안자도 시골에서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을 즐거워 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누추함 때문에 마음이 얽매여 그 즐기는 것을 바꾸지는 않았다는 말이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무에서 바람쐬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일신의 궁달과 이해가 마음을 얽매어 취향과 맛을 알 지 못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曾點風雲, 自得其樂, 却與夫子飯蔬食飮水樂在其中, 顔子簞瓢陋巷不改其樂襟懷相似. 程子謂夫子非樂蔬食飮水也, 雖蔬食飮水, 不能改其樂也. 顔子非樂簞瓢陋巷也, 不以貧窶累其心而改其所樂也. 要知浴風雫人人可爲, 而末必能得其樂者, 正以窮達利害得以累其心而不知其趣味耳.

 

본체를 손에 들고 작용은 빠뜨리며, 한 몸은 깨끗하게 하면서 윤리를 어지럽히는 일은 공자의 문하에 없었으니 이런 것으로 증점을 논란해서는 안 됩니다. 선비가 등용되지 않았을 때는 반드시 세상 어떤 것도 내 천리의 자연스러운 편안함과 바꾸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아야만이 본분에 어울리는 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점이 자신의 뜻을 말한 것은 바로 자신의 지위를 가려서 실천하려는 것이었고, 그 바깥에서 무언가를 원하지 않았으며 들어오는 것마다 자득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자는 즐기면서 그 머무는 곳을 얻었다고 여긴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오늘날 선비들은 간혹 하늘의 분수[天分]에 처음부터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천리 가운데서 노닐기도 하고, 크건 작건 매우 쾌활하게 지내다가도 거꾸로 궁벽한 곳에 머물고 은둔해서 사는 것은 스스로 즐기기에 부족한 것이라고 여기며, 애타게 관리가 되어 업적을 세우고자 하면서 이렇게 되고서야 뜻을 얻었다고 여기니, 어떻게 즐기면서 그 머무는 곳을 얻었다고 하겠습니까? 맹자는 땅을 넓히고 백성을 많게 하는 것도 군자가 바라는 것이지만 (군자가) 즐거워하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 천하의 한 가운데 서서 사해의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을 군자가 즐거워하지만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비록 크게 행해지더라도 더 보태지 못하며, 궁벽한 곳에 머물더라도 줄어들지 않으니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햇습니다. 맹자가 말하는 군자가 본성으로 삼는 것이란 바로 공자안자증점이 이처럼 즐긴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자께서) “늙은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친구들에게는 미덥게 해주고, 젊은이를 감싸준다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物各付物, 與天地同量 오직 안자가 즐긴 것만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부자께서는 사대(四代)의 예악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증점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에서 바람을 쐬었는데, 식자들이 요순을 증점은 본시 더욱 잘할 것이라고 여긴 것은 이 때문입니다.

夫擧體遺用, 潔身亂倫, 聖門無如此事, 全不可以此議曾點. 蓋士之未用, 須知擧天下之物不足以易吾天理自然之安, 方是本分學者. 曾點言志, 乃是索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無入而不自得者, 程子以爲樂而得其所也. 譬如今時士子, 或有不知夫分初無不足游泳乎夫理之中, 大小大快活, 反以窮居隱處爲未足以自樂, 切切然要做官, 建立事功, 方是得志, 豈可謂之樂而得其所也? 孟子廣土衆民, 君子欲之, 所樂不存焉. 中天下而立, 定四海之民, 君子樂之, (6-3195)性不存焉. 君子所性, 雖大行不加焉, 雖窮居不損焉, 分定故也.’ 孟子所謂君子所性, 孔子顔子曾點之所樂如此. 如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物各付物, 與天地同量, 顔子所樂如此. 故夫子以四代禮樂許之. 此浴風雲, 識者所以知堯舜事業曾點固優爲之也.

 

그러나 알아주고 못 알아주는 것은 남들에게 달렸고, 등용되고 못되는 것은 시대에 달렸습니다. 성현들은 이런 경우에 흐름에 따라 행하느라 웅덩이를 만나면 그쳤을 뿐입니다. 다만 아직 등용되지 않았을 때에는 오직 본성을 따르고 이치를 좇는 것만을 즐거움으로 여겼으니,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 그 자체로 한 가지 계통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산은 요순이 후대의 영원한 법도가 된 이유는 다만 본성을 따랐을 뿐이기 때문이다. 외면에서 계교를 썼다면 설령 공업을 충분히 세웠다 할지라도 다만 인욕의 사사로움일 뿐 성현이 하신 행위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격이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로가 괴외의 난리를 만났을 때 그는 (관록을) 먹었기 때문에 그 난리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위첩의 관록이 먹어서는 안 될 관록이라는 것을 알 지는 못햇습니다. 그리고 계씨는 주나라 공실보다 더 부유했는데도 구는 계씨를 위해 세금을 징수해서 더 많이 보태 주었으니, 훗날의 성취 역시 이러한 데에 그친 것은 바로 그가 평일에 본성을 따르고 이치를 좇는 것이 바로 공업을 세우는 근본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마다 자득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부자께서 인정하지 않으신 것은 이러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은 이러한데 위배되지는 않는지요? 고쳐서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然知與不知在人, 用與不用在時. 聖賢於此乘流則行, 遇坎則止, 但未用時, 只知率性循理之爲樂, 正以此自是一統底事故也. 龜山堯舜所以爲萬世法, 亦只是率性而已. 外邊用計用較, 假饒立功業, 只是人欲之私, 與聖賢作處天地懸隔. 子路蒯聵之難, 知食焉不避其難, 而不知衛輒之食不可食; 季氏富於周公, 也爲之聚歛而附益之, 後來所成就止於如此, 正爲它不知平日率性循理便是建功立事之本, 未到無入不自得處. 夫子之不與, 其有以知之矣. 所見如此, 不背馳否? 乞與訂正.

 

이 한 문단의 설명은 본말을 아주 잘 갖추고 있다. 학자는 뜻을 세우면서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한다. 그러나 그 노력을 기울이는 데는 오히려 순서가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희손에게 말했다.

此一段說得極有本末, 學者立志要當如此. 然其用力却有次第, 已爲希遜言之矣.

 

 

 

 

 

엄시형에게 답함 答嚴時亭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신, 67)에 엄세문에게 답하는 세 번째 편지이다.

 

타고난 것을 성이라 한다고 한 장에서 논한 사람과 사물의 본성 차이는 본래 기품(氣稟)이 같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따져 보면 도리어 기품이 같지 않은 것으로 인해서 부여받은 이치에도 차이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맹자(孟子)께서 개의 본성, 소의 본성, 사람의 본성이 같지 않다고 분별하면서도 개의 기소의 기사람의 기는 같지 않다고 말한 적이 없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이유에 대한 한 장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만일 논하신 대로라면 맹자의 말은 부당하고 고자가 흰 눈흰 깃흰 옥이 희다[]’는 점에서는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이 거꾸로 지당한 의론이 될 것입니다. () 선생께서 틈새의 햇빛을 논한 곳이 가장 친절합니다. 다시 자세하게 음미하여 같은 가운데 그 차이점을 알고, 다른 가운데 그 같은 점을 안 다음에 성현(聖賢)의 말씀을 반복해서 완전하게 이해한다면 전혀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한쪽으로만 기울어 각각 도리(道理)를 말한다면 서로 배치되어 죽는 날까지 사이가 벌어져 두 번 다시 서로 통할 때가 없을 것입니다.

生之謂性一章, 論人與物性之異, 固由氣稟之不同, 但究其所以然者, 却是因其氣禀之不同而所賦之理固亦有異. 所以孟子分別犬之性牛之性人之性有不同者, 而未嘗言犬之氣牛之氣人之氣不同也. ‘人之所以異於禽獸一章, 亦是如此. 若如所論, 孟子之言爲不當, 告子白雪白羽白玉之白更無差別反爲至論矣. 程先生有一處有隙中日光之論, 最爲親切. 更須詳味, 於同中識其所異, 異中見其所同, 然後聖賢之言通貫反覆, 都不相礙. 若只據一偏, 各說道理, 則互相逃閃, 終身間隔, 無復曾通之時矣.

 

버드나무의 본성은 본시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쳐서 베어내고, 끊어내어 마름질 하고, 주물러서 바로잡은 다음에야 (그릇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버드나무를 해친 다음에야 그릇을 만들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만일 버드나무는 그릇을 만들 수 있는데 녹나무는 그릇을 만들 수 없다면, 이것은 또 다른 두 번째 도리이니 버드나무의 경우와는 애초부터 서로 뒤섞을 수 없고, 끌어다 설명하는 것도 부당합니다. 이런 곳은 반드시 마음을 비우고 저 성현들이 설명한 문자의 의미와 가르키는 뜻을 살펴서 의리의 마땅함을 추구해야만이 학문을 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논하신 대로라면 한갓 어지러움만 일으킬 뿐이니, 사려와 언어를 낭비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치를 궁구하는 실제에도 해를 끼칠 것입니다.

杞柳之性固可以爲桮棬, 然須斫伐裁截矯揉而後可成. 孟子言戕賊杞柳而後可以爲桮棬也. 若杞柳可以爲桮棬而楩楠不可以爲桮棬, 又是第二重道理, 與此元不相入, 不當引以說也. 此等處須且虛心看它聖賢所說文義指意, 以求義理之所當, 乃爲善學. 若如所論, 徒爲紛擾, 不惟枉費思慮言語, 而反有害於窮理之實也.

 

원망이 많다는 설명에는 본시 이런 이치가 있습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이처럼 감싸 안고서 힘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말씀은 간단 평이하고 곧으니 꼭 이렇게 구불텅거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정선생의 설명에 의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多怨之說固有此理, 但恐如此包裹費力, 聖人之言簡易平直, 未必如此屈曲. 且依程先生說爲善.

 

五行太極便與生之謂性相似, 以爲同則同中有異, 以爲異則未嘗不同.

오행과 태극은 타고난 것이 본성이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같다고 여기면 같은 가운데 차이가 있고, 다르다고 여기면 또 같지 않은 점이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가까이 하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고, 귀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현자(賢者)를 높이는 것은 다 천하의 큰 도리입니다. 진실로 각각 높이는 바가 있어야 하겠지만 또한 이것 때문에 저것을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향당(鄕黨)에서는 비록 나이를 높이지만 작위(爵位)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손님과 주인 간에 술잔을 주고받는 예가 끝나기를 기다려 들어가고, 또 술동이 동쪽에 자리를 마련하여 따로 한 줄이 되게 하여서 사람들에게 압도(壓倒) 당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압도하지도 않으니, 그것이 곧 (󰡔의례(儀禮)󰡕 「향사례에서 말한) ‘()’입니다(‘()’으로도 씁니다). 그렇게 되면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고 귀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니, 진실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작위를 가진 사람보다 먼저 해서도 안 되고, 또한 작위가 있다는 것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압도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親親長長貴貴尊賢, 皆天下之大經, 固當各有所尙, 然亦不可以此而廢彼. 鄕黨雖上齒, 而有爵者則俟賓主獻酬禮畢然後入, 又席于尊東, 使自爲一列, 不爲衆人所壓, 亦不壓却它人, 卽所謂遵也.(遵亦作僎.) 如此則長長貴貴各不相妨, 固不以齒先於爵, 亦不以爵加於齒也.

 

祭五祀說見於月令註疏甚群, 可自考之.

다섯 가지 제사를 모신다는 주장은 월령에 자세히 보입니다. 소도 상당히 자세하니 스스로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월불(越紼)에 대한 설명은 주는 비록 간단하지만 소에서는 반드시 상세해야 합니다. 이런 곳은 스스로 검토하면서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상을 치루는 동안에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는 것은 이천횡거에게 각각 주장이 있습니다. 만일 오늘날 사람들의 집안에서 행하는 것으로 논하자면 예에 합치하지 않는 곳은 많으니 하나로 개괄해서 논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한위공의 법식을 쓴다면 시제가 있고 절사가 있습니다. 시제는 예가 번잡해서 상을 치루는 사람이 거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사는 예가 아주 간단하니 비록 검은 상복을 입고 일을 치룬다 한들 안 될 것이 없습니다.

越紼之說註雖簡, 疏必詳, 此等可自檢看. 居喪不祭, 伊川橫渠各有說. 若論今日人家所行, 則不合禮處自多, 難以一槪論. 若用韓魏公, 則有時祭, 有節祠. 時祭禮繁, 非居喪者所能行. 節祠則其禮甚簡, 雖以墨縗行事, 亦無不可也.

 

상례를 치룰 때 장례를 치루기 이전은 모두 ()’이라고 하는데 그 예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슬픔을 문식할 수 없고 이제 막 돌아가신 분을 갑자기 귀신을 모시는 예로 차마 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를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학가들은 또 전()은 상제(喪祭)이고 제()는 길제(吉祭)라고들 하는데 이것은 점점 길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뇌주(酹酒)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울창주를 땅에 뿌려 신이 내려오게 한다는 것으로, 오직 천자와 제후의 예법에만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그런 책이 없어서 깊이 고찰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주(祭酒)라는 주장입니다. 옛날에는 먹고 마실 때 반드시 제사를 지냈는데, 今以鬼神自不能祭. 故代之祭也. 오늘날 사라들이 비록 그 예제는 보존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잃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喪禮自葬以前皆謂之奠, 其禮甚簡, 蓋哀不能文, 而於新死者亦末忍遽以鬼神之禮事之也. 自虞以後, 方謂之祭, 故禮家又謂虞爲喪祭而虞爲吉祭, 蓋慚趣於吉(6-3198). 酹酒有兩說, 一用鬱鬯灌地以降神, 則唯天子諸侯之禮有之. 今其書亡, 不可深考. 一是祭酒, 蓋古者飮食必祭, 今以鬼神自不能祭. 故代之祭也. 今人雖存其禮而失其義, 不可不知.

 

예는 반드시 태일(太一)에 근본을 두어야 합니다. 고씨(高氏)의 주장은 아마도 틀린 것 같습니다.

禮必本於太一, 高氏說恐不然.

 

공주(贛州)에서 간행한 󰡔어해(語解)󰡕는 시랑(侍郞) 정순거(鄭舜擧: 이름은 여제(汝諸)입니다)가 지은 것입니다. 중간을 대충 살펴보았더니 또한 좋은 곳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인용하신 몇 조목은 오히려 온당치 않은 듯 합니다. 이제 그 가운데 한 두 가지만을 논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세 명의 어진 이[三仁]의 사적에 대해서는 󰡔좌전󰡕󰡔사기󰡕에 실린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논어󰡕에서는 다만 미자(微子)는 떠났다고만 했을 뿐 처음부터 面縛 啣璧했다는 주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자를 버리고서 좌씨(左氏)사천(史遷)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믿기 힘들거니와 또 어쩔 수 없이 왜곡해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미자가 떠났다는 것을 주()를 떠나 그의 봉국(封國)으로 갔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근거가 없습니다. 이 일은 인도(人道)의 큰 변고로서 성현들의 일처리가 비록 다르기는 했지만 그 마음만은 같았기 때문에 공자께서 일일이 거론하시면서 다함께 칭송한 것이요, 또 그들의 어짊[]을 모두 인정하셨습니다. 반드시 재차 완미해야지 가볍게 의논해서는 안 됩니다. ‘(공자에겐) 네 가지가 없었다[絶四]’는 주장은 더욱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다시 마음을 비우고 󰡔집주󰡕에서 인용하는 여러 선생들의 주장을 살펴보아야지 꼭 이렇게 신기한 것을 추구하느라 맥락을 잃을 필요는 없습니다.

贛州所刊語解, 乃是鄭舜擧侍郞者.(汝諧) 中間略看, 亦有好處. 但如所引數絛, 却似未安. 今且論其一二大者. 如三仁之事, 左傳史記所載互有不同, 論語只言微子去之, 初無面縛啣璧之說. 今乃捨孔子而從左氏史遷, 已自難信, 又不得已而曲爲之說, 以爲微子之去乃去而適其封國, 則尤爲無所據矣. 此乃人道之大變, 聖賢所處事雖不同, 而心則末嘗不同. 孔子歷擧而並稱之, 且皆許其仁焉. 更須玩索, 未可輕論也. 絶四之說尤爲無理, 且更虛心看集註中所引諸先生說, 不必如此求奇, 失却路脈也.

 

 

증광조(흥종)에게 답함 答曾光祖 (興宗)

 

이별한 뒤에 학문을 하는데 게으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뼈를 깍듯이 부지런히 노력할 것을 생각하지만 또 마침내 조장(助長)하는 문제를 만들지나 않을까 염려스럽고, 치지(致知)의 공도 단숨에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착수할 곳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강(大綱)은 우선 경()으로서 자신을 지키고 그 안에 나아가 강론(講論)하고 성찰(省察)한다면 곧 치지를 알 수 있어 1()을 알면 곧 1분의 공부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다 보면 저절로 그만 두고자 하나 그만 둘 수 없는 것을 알 수있게 될 것이니, 뼈를 깍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다만 눈앞에서는 제대로 지킨다고 하더라도 강학(講學)하는 것은 도리어 각고(刻苦)의 노력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니, 갑자기 조장(助長)하는 것을 근심해서는 안 됩니다.

知別後爲學不倦, 甚慰. 然所謂念欲刻苦加勤, 又恐遂成助長之患, 而致知之功亦非旦夕可冀, 則似未得箇下手處也. 大綱且得以敬自守, 而就其間講論省察, 便是致知. 知得一分, 便有一分功夫, 節飾進去, 自見欲罷不能, 不待刻苦加勵而後得也. 但目下持守講學, 却亦不得不刻苦加勵, 不須遽以助長爲憂也.

 

 

증광조에게 답함 答曾光祖

 

보여 주신 문목(問目)은 저의 마음에 매우 위로가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방치된 마음을 구하는 것이고 마침내 학문을 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니, 이미 이와 같이 향상(向上)할 수 있게 되면 다시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를 해야만 보존된 마음과 갖추고 있는 이치가 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느끼는 대로 곧 응하여 저절로 절도에 맞게 되어야 바로 유학자(儒學者)의 사업인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불교의 좌선(坐禪)이나 생각을 잡아 두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所示間目, 甚慰所懷. 此是求其放心, 乃爲學根本田地, 旣能如此, 向上須更做窮理功夫, 方見所存之心所具之理不是兩事, 隨感郞應, 自然中節, 方是儒者事業. 不然, 却亦與釋子坐襌攝念無異矣.

 

논하신 내외(內外)와 빈주(賓主)의 구별에 대해서는 뜻은 이해했지만, 말은 분명치 못합니다. 모름지기 안에 있는 날이 많은 것은 곧 주()가 되고, 안에 있는 날이 적은 것은 곧 객()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앞에서 논한 것처럼 공부를 오래 하면 저절로 진보(進步)가 있을 것입니다. 이미 그 요령(要領)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처럼 자신에게 절실한 공부에 생각을 다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신주의 격식[主式]은 이천선생(伊川先生)이 제정한 것이지 처음부터 조정에서 법제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래 관품의 제한이 없습니다. 만에 하나 세대를 이어가면서 벼슬을 못하는 경우라도 갑자기 바꾸기는 어려울 듯 하고, 다만 이 신주를 계승해 갈 뿐 다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벼슬하는 이가 있다면 스스로 만들어도 무방합니다). 패자(牌子) 역시 정해진 제도가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신주의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되 판합(判合)이나 함중(陷中)을 하지 않으면 괜찮을 듯 합니다. 이런 것은 모두 후현(後賢)들이 임시로 만든 제도인데다, 지금 다시 제 뜻으로 이렇게 짐작하는 것입니다. 고례에서는 고찰할 것이 없습니다. 󰡔대학혹문󰡕의 오류에 대해서는 의심한 내용이 아주 정당합니다. 저도 중간에 이미 고쳤습니다. 지금 두 본을 넣어 보냅니다.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연히 옛날 살던 곳에 돌아와 사창의 교미를 감독하느라 급하게 이렇게 쓰느라 다른 일을 언급할 틈이 없습니다. 멀리서 바랍니다. 천만번 학문에 힘쓰시고 자신을 아끼십시오. 다만, 앞에서 논한 것처럼 노력을 한다면 오래되면 자연히 진보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요령을 획득했다면 이처럼 자신에게 절실한 것을 깊이 사색하는 것을 그만두지 마십시오.

所論內外賓主之辨, 意亦得之, 但語猶未瑩. 須知在內之曰多卽是爲主, 在內之日少卽是爲客耳. 主式乃伊川先生所制, 初非朝廷立法, 固無官品之限. 萬一繼世無官, 亦難遽易, 但繼此不當作耳. (有官人自作主不妨.) 牌子亦無定制, 竊意亦須似主之大小高下, 但不爲判合陷中可也. 凡此皆是後賢義起之制, 今復以意斟酌如此, 若古禮, 則未有考也. 大學或問之誤所疑甚當, 中間已脩定矣. 今內去兩本, 幸收之. 偶歸故居, 盛視社倉交米, 草草作此, 不暇它及. 正遠, 千萬進學自愛, 只如前所論用功, 久之自當有進. 蓋已得其要領, 不易如此切己致思也.

 

 

증광조에게 답함 答曾光柤

 

해제이 글은 1194(소희 5, 갑인, 65)에 증흥종에게 답하는 세 번째 편지이다.

 

저의 여행길은 이미 건창(建昌)의 경계선을 지났는데, 늙으막에 외직(外職)으로 다시 나가는 것은 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매우 부끄럽고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보여 주신 학문하는 뜻은 매우 좋습니다. 이 일은 원래 끝이 없는 것인지라 공정(工程)을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있는 힘을 다해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지를 볼 뿐입니다.

行役巳涉建昌之境, 垂老復出, 非力所堪, 深以愧歎耳. 所示爲學之意甚善, 此事元無窮盡, 不可計功程, 但當鞠躬盡力, 看到甚地位耳.

 

 

증광조에게 답함 答曾光祖

 

 

해제이 글은 증흥종에게 답하는 네 번째 편지인데, 1194(소희 5, 갑인, 65)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초상과 제사의 예를 물으셨는데, ()() 두 선생이 논한 것이 그 자체로 같지 않습니다. 바른 예를 논하자면 당연히 횡거를 좇아야 하지만, 인정으로 논하자면 이천의 설명에도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적절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집안에 최근 상을 당한 경우라면 사철마다 지내는 정제(正祭)는 감히 거행하지 않아야 하지만, 풍속에 따른 절기에 제사를 올리는 경우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로 행해도 됩니다. 정제에는 삼헌과 수작이 포함되어 있어 상중에 거행할 만한 못됩니다. 그러나 풍속에 따른 절기의 경우에는 공통적으로 일헌(一獻)을 할 뿐, 축문도 읽지 않고, 제사 고기도 받지 않습니다(이와 같다면 먼 선조에 대해서는 다로 호칭을 의논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신주를 옮기는 것도 예경에서 설명하는 것이 같지 않으니, 또한 단서가 없는 제도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대상 하루 전날 옮겨야 할 신주에 제사를 올리고, (신주를 옮긴다고) 고한 다음에 옮기며, 그런 다음에야 그 다음날 궤연을 철거하고 새로운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것이 아마도 인정에 약간이나마 합치할 듯 합니다.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일은 아직도 먼 훗날의 일이니 천천히 논의해도 될 것입니다.

所詢喪祭之禮, 程張二先生所論自不同. 論正禮則當從橫渠, 論人情則伊川之說亦權宜之不能已者. 但家間頃年居喪, 於四時正祭則不敢擧, 而俗節薦享則以墨衰行之. 蓋正察三獻受胙, 非居喪所可行, 而俗節則唯普同一獻, 不讀祝, 不受胙也. (如此則於遠祖不必別議稱呼矣.) 遷主禮經所說不一, 亦無端的儀制. 竊意恐當以大祥前一日祭當遷之主, 告而遷之, 然後次日撤几筵, 奉新主人廟, 似亦稍合人情. 幸更詳之, 此事尙遠, 可徐議之也.

 

 

증광조에게 답함 答曾光祖

 

횡거는 “‘중니에겐 네 가지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사사로운 뜻[]’이란 생각이 있다[有思]는 뜻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자께서는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고 하셨고,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횡거의 말은 이들과 상반됩니다.

橫渠: ‘仲尼絶四, 意有思也.’ 夫子嘗言學而不思則罔, 又言君子有九思, 橫渠之言與此相反.

 

네 가지가 없었다는 것은 성인의 일로서 생각이나 (의도적인) 노력이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배우는 사람에게 생각이 없을 수 없겠지만 사사로운 뜻을 가져서는 안 될 뿐이다.

絶四是聖人事, 不思不勉者也. 學者則思不可無, 但不可有私意耳.

 

伊川易傳序: ‘至微者理也, 至著者象也. 體用一源, 顯微無間. 觀會通以行典禮, 則辭無所不備.’ 其曰象, 曰辭, 固皆理之所寓. 然其曰體用一源, 未知三者以何爲體? 以何爲用? 又所謂典禮者, 無非天叙秩之自然, 不知於會通處如何而觀? 中之辭, 何者備之?

이천은 󰡔역전󰡕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극히 은미한 것은 이치이고 지극히 드러난 것은 상이다. 본체와 작용은 근원이 같고 드러남과 은미함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회통을 보아 전례를 행하면 말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다.” 이천이 말한 상(), []은 모두 이치가 깃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본체와 작용이 근원이 같다고 하니 셋 가운데 어는 것이 본체가 되고 어느 것이 작용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그가 말한 전례란 자연스러운 하늘의 질서가 아닌 것이 없는데 회통하는 곳에서 무엇을 본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 속의 말 가운데 어느 것이 (그것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까?

 

上四句其說已見於太極圖解後統論中矣. 觀會通是就事上看理之所聚與其所當行處, 辭謂卦爻之辭.

위의 네 구절에 대한 설명은 이미 태극도설해의 후반부에서 통론하는 과정에 드러나 있다.회통을 본다는 것은 실제 일에서 이치가 모이는 곳과 당연히 행해야 할 것을 아는 것이고, []이란 괘사효사를 말합니다.

 

橫渠: ‘始學之要, 當知三月不違與日月至焉內外賓王之辨.’ 某謂實有諸己乃能爲仁, 雖仁有久近之不同, 然非有諸己不能也. 其所以三月日月者, 特主義理客氣消長分數之多寡耳, 非三月日月有內外賓主也.

횡거는 학문을 시작하는데 중요한 점은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과 하루나 한 달 정도 (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에서 안과 밖, 손님과 주인의 변별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진실로 자기에게 있어야 인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인에 멀고 가까운 차이는 있지만, 자기에게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석달이네, 하루네, 한 달이네라고 한 까닭은 의리와 객기의 소장과 분수의 많고 적음을 위주로 말했을 뿐, 석 달이나 하루 혹은 한 달에 안팎이나 손님과 주인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所謂實有諸己乃能爲仁, 不知實有是有何物? 爲仁是爲何事? 知得此意, 方可理會內外賓王之辨.

진실로 자기에게 있은 다음에 인을 실천 할 수 있다는 말에서 진실로 있다는 것이 무엇이고, ‘인을 실천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뜻을 알아야 만이 안과 밖, 손님과 주인의 변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明道: ‘目畏尖物, 此事不得放過, 便與克下. 室中率置尖物, 須以理勝它, 尖必不剌人也, 何畏之有? ’ 興宗未曉其說.

명도는 말했습니다. “눈은 뾰족한 물건을 겁낸다. 이 일은 놓치고 지나쳐서는 안 되고 곧바로 참여해서 극복해야 한다. 방 가운데 뾰족한 것을 매달아 두고 반드시 이치로 그것을 이겨나가면 뾰족함이 반드시 사람을 찌르지 못하는데 무슨 겁낼 것이 있겠는가.” [흥종]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人有目畏尖物者, 明道先生敎以室中率置尖物, 便見之熟而知尖之不剌人也, 則知畏者忘而不復畏矣.

사람들 가운데는 뾰족한 물건을 보기를 겁내는 사람이 있다. 명도선생은 방 가운데 뾰족함 것을 매달아 두게 하고, 익숙하게 보다보면 뾰족함이 사람을 찌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면 겁내는 사람이 잊어버리고 다시 겁내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之上九曰: ‘觀其生, 君子無答.’ 象曰: ‘觀其生, 志未平也.’

관괘[]의 상구(上九)에서는 그 삶을 관찰하니 군자는 탈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상사에서는 “‘그 삶을 관찰한다는 것은 뜻이 평안하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其生謂言行事爲之見於外者, 旣有所省, 便是未得安然無事.

그 삶이란 행실과 일이 밖으로 드러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반성이 있다면 이것은 편안하게 일이 없는 경지[安然無事]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증경건에게 답함 答曾景建

 

보내 주신 편지의 문사(文詞)는 환히 트였고 필력(筆力)은 강건하여 선대의 훌륭한 유법(遺法)이 있으니, 거듭 읽어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글을 읽어 도()를 구하는 뜻을 논한 것도 그 올바름을 잃지 않았습니다. 근세(近世)의 공허(空虛)하여 간편함이 없는 폐단이 생겼다고 비난하신 것도 다 그들의 요해(要害)를 맞춘 것으로 그것 역시 일반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문자를 쓰는 것은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니, 만약 그 고상하고 오묘한 것을 다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치에 얻은 것이 전혀 없다면 내 몸에 무슨 보탬이 되겠으며, 이 세상에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지난 날 선배들은 대개 그 타고난 자질이 남보다 특출하다 보니 우연히 그것을 잘했던 것이지 전적으로 그것만을 힘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대 집안의 사인공(舍人公)이 왕형공(王荊公)에게, “문자는 굳이 말을 만들어서 전인(前人)을 모방할 필요가 없으니, 맹자(孟子)와 한자(韓子)의 문장이 아무리 고상하여도 반드시 그와 같을 필요는 없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또 성현의 도통(道統)과 정전(正傳)으로 경전(經傳)에 보이는 것 중에 애당초 한 마디도 그것을 언급한 적이 없는데 이겠습니까

辱書, 文詞通暢, 筆力快健, 蔚然有先世遺法, 三復令人亹亹不倦. 所論讀書求道之意, 亦爲不失其正. 所詣近世空無簡便之弊, 又皆中其要害, 亦非常人見識所能到也. 然文字之設, 要以達吾之意而已. 政使極其高妙, 而於理無得焉, 則亦何所益於吾身而何所用於斯世? 鄕來前輩蓋其天資超異, 偶自能之, 未必專以是爲務也. 故公家舍人公爲王荊公: ‘文字不必造語及掌擬前人, 文雖高, 不必似之也.’ 况又華賢道統正傳見於經傳者, 初無一言之及此乎?

 

글을 읽는다는 것은 진실로 우리들이 그만 둘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고금의 성현께서 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보니, 또한 애당초 효제(孝悌)와 충신(忠信), 그리고 몸과 마음을 수렴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일상생활에 나아가 옛날의 가르침을 참고하여 반복하여 궁구해서 그 이치가 있는 곳을 찾아 우리 마음을 허명(虛明)하고 확 트이게 하여 털끝만큼도 다하지 않음이 없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뜻이 성실해지고 마음이 바르게 되며, 몸이 닦여졌고 그것을 미루어 남을 다스리는 등 무엇을 하든 그 올바름을 얻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만약 다만 범연(泛然)하게 널리 보고 개괄적으로 논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 학문 아닌 것이 없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도() 아닌 것이 없다고 한다면 아마도 귀착(歸着)할 곳이 없을 것이니, 받아들일 수도 없게 되어서 도리어 본심을 가리키고 단서(端緖)를 강론하는 자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제 생각은 이와 같으니, 부디 생각하시어 온당하지 못한 점이 있거든 다시 알려 주시면 매우 고맙겠습니다.

至於讀書, 則固吾事之不可已者. 然觀古今聖賢立言垂訓, 亦未始不以孝弟忠信收歛身心爲先務, 然後卽吾日用之間, 參以往訓之指, 反覆推窮, 以求其理之所在, 使吾方寸之間虛明洞徹, 無毫髮之不盡, 然後意誠心正身修而推以治人, 無往而不得其正者. 若但泛然博觀而槪論, 以爲如是而無非學, 如是而無非道, 則吾恐其無所歸宿, 不得受用, 而反爲彼之指本心講端緖者所笑矣. 鄙見如此, 幸試(6-3204)思之. 有所未安, 復以見告, 甚幸甚幸

 

錄示先大父司直公所記龜山先生, 前此所未見, 然以其它語推之, 知其誠出於龜山無疑也.

 

보여 주신 아름다운 시편(詩篇)은 구법(句法)이 고상하고 간결하여 또한 세상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다만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심하니, 말을 겸손하게 하는 도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천만 번 삼가기를 더욱 바라지 않습니다.

所示佳篇句法高簡, 亦非世俗所及. 然憤世太過, 恐非遜言之道. 千萬謹之, 尤所願望.

 

 

증경건에게 답함 答曾景建

 

인편을 통해 보내 오신 편지를 읽고, 예전에 도를 아는 사람을 두루 찾아다닌 것과 자신에게 돌이켜 구한데 대한 전말(顚末)을 알게 되었고, 또 주일(主一)과 이치를 궁구하여 귀결처(歸結處)를 얻었다는 점에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가을 날씨가 맑아서 실천공부가 더욱 훌륭해지고, 주일(主一)에 종사하는 것도 더욱 맛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일은 알기는 쉬워도 지키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주일(主一)의 공부는 진실로 늘 절실하게 분발하여 중단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고, 이치를 궁구하는 일은 또한 세심하게 번거로움을 견뎌내어 성현이 남기신 책을 가지고 처음부터 순서를 밝아서 평이하고 실제적이고 명백한 곳에 나아가 완미(玩味)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양을 탐하지 말고, 다만 자세하고 익숙하게 한다면 자연히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고원(高遠)한 데에 정신을 팔아 많이 읽어서 알고자 하면 또 지난 날 청담(淸談)을 그만 두고자 했지만 도리어 조급하고 혼란스럽게 되었던 것과 같은 데에서 헤어나질 못할 것입니다.

便中辱書, 備知向來徧參反求始末, 而又深以主一窮理得所歸宿爲喜也. 比日秋淸, 計所履益佳勝, 從事於斯, 亦當益有味矣. 然二事知之甚易而爲之實難, 爲之甚易而守之爲尤難. 主一之功固須常切提撕, 不令間斷; 窮理之事又在細心耐煩, 將聖賢遺書從頭循序就平實明白處玩味, 不須貪多, 但要詳熟, 自然見得意緖. 若騖於高遠, 涉獵領解, 則又不免如向來之淸話, 欲求休歇而反成躁亂也.

 

보여 주신 시군(柴君)에게 보내는 편지는 매우 잘되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또한 이단(異端)이 끼치는 폐단을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자신의 진로에 차질을 빚고 공부에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혹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실로 말할 것도 없지만 분개하면서 그들을 배척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여기는 자들조차도 밖으로는 배척을 탐하고 안으로 자신의 수양은 내버려 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 자신도 한갓 목소리만 높여 떠들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저들을 깨우칠 수 있겠습니까? 부디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자신에게서 진실로 자신에게 절실한 공부를 한다면 그런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것입니다.

示及與柴君書甚善, 不知渠以爲如何? 今人亦未說到此異端之蔽, 自是己分上差却入路, 缺却功夫. 其迷溺者固無足道, 其慨然以攘斥爲己任者, 又末免有外貧內虛之患, 亦徒爲譊譊而已. 若之何而能喩諸人哉? 幸更思之. 若於己分上眞實下得切己功夫, 則於此等亦有所不暇矣.

 

 

증경건에게 답함 答曾景建

 

보내주신 시와 의심스러운 대목들에는 그 사이에 상당한 곡절이 있습니다만 광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회신을 보내겠습니다. 제가 대간의 탄핵으로 관직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입었으니, 제게는 오히려 가벼운 처벌이라서 감격스럽고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연좌(連坐)된 사람이 도리어 중죄에 걸린 것은 사람을 부끄럽게 합니다. 지금 그가 떠나는 것으로 인하여 대강대강 써서 이렇게 부칩니다. 아마 그 도중에 자신의 행적을 정리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관심을 가져 주시면 매우 고맙겠습니다. 그 사람은 논리적이고 박식하여 종합적으로 아는 것이 많으니, 또한 물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所示詩文疑問, 其間頗有曲折, 廣兄歸奉報. 以臺評蒙恩鐫免, 尙爲輕典, 感幸深矣. 而所連及反催重坐, 令人愧愓. 今因其行, 草草附此. 恐其在塗有合料理事, 得爲垂念幸甚. 其人辨博, 多所該綜, 亦可款扣也.   

 

 

증경건에게 답함 答曾景建

 

전에 보내신 편지에서 채계통(蔡季通)이 떠날 때 몇 자 부쳤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논하신 주일(主一)의 공부는 매우 좋은 것이지만 글을 읽는 것은 모름지기 자신의 역량을 헤아려 조금씩 보고 충분하게 복습하되, 다만 문장의 뜻에 따라서 명백한 곳을 찾아야 자연히 맛이 있는 것이지, 있는 힘을 다 쓰고 힘들게 생각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선덕(先德)께서 초록한 구산(龜山)의 말은 다른 책을 살펴봐도 허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전에 기록한 잡설 몇 조목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이소원(李蕭遠)이 정한 것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삼성(三省)’의 일에 대해 질문한 두 조목은 제 생각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뒷 단락에서 말한 것은 괴상한 의론이라고 할 만 합니다. 지금 이미 그 잘못을 알았다면 곧장 버려두고 함께 변론할 필요가 없고, 또한 스스로 자신의 분수에 맞는 공부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前此辱書, 蔡季通, 曾附數字奉報矣. 所論主一之功甚善, 但讀書須更量力, 少看而熟復之, 只依文義, 尋箇明白處去, 自然有味, 不在極力苦思, 轉求轉遠也. 先德所抄龜山, 以它書考之不妄, 然却不及向來所記雜說數條, 必是又有李蕭遠所定也. 所問兩絛三省事, 鄙意正如此. 後段之云, 亦可謂怪論矣. 今旣知其繆, 便直置之, 不須與辨, 且自理會己分功夫可也.

 

과거를 보기 위한 학문은 그대에게는 여분(餘分)의 일입니다. 다만 그대의 집에 문장의 대종사(大宗師)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것을 배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좋지 못한 것을 배우십니까? 줄곧 그렇게만 한다면 의론이 정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장까지도 경()박하여 맛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아(爾雅)󰡕는 세심하게 볼 겨를은 없지만 이러한 부분에 또한 한가하게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됩니다.

科擧之學, 在賢者爲餘事, 但公家自有文章大宗師, 何故不學, 而學它人不好處? 一向如此, 不惟議論不正, 當倂與文章亦成澆薄, 無餘味矣. 爾雅未暇細看, 然此等亦末須閑費日力也.

 

 

증경건에게 답함 答曾景建

 

계통(季通)의 먼 길을 따뜻하게 돌보아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그 곳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가 논한 율력은 더욱 정치하고 깊습니다만 한스럽게도 당신과 함께 오래도록 있질 못해서 그의 온축을 다할 수 없었습니다. 세 편은 아주 뛰어난데 마지막 장은 더욱 기교가 훌륭해서 제가 감당치 못할 지경입니다. 󰡔이아󰡕는 결국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석친편은 아마도 결정해서 간행한 것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예에 관한 책도 이미 대충 정했졌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베껴쓸 사람이 없습니다. 또 황직경이 머무는 곳에서 있기는 한데, 듣기로 길보가 그곳에 있다고 하니 반드시 그 얼개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사이에 나중에 또 이어서 수정할 곳이 있고, 또 다시 석문」․「정의를 첨부하려고 해서 결국 손을 놓을 수는 없을 뿐입니다. 건곤과 성정에 간한 주장은 세 모퉁이가 반응하는 격이니 무슨 의심이 있겠습니까. 성정은 본시 하나의 물건인데 다만 동정의 (차이 때문에) 이름을 달리할 뿐입니다.

季通遠役, 深荷煖熱之意, 今想已到地頭矣. 其所論律歷尢精詣, 恨與賢者相聚不久, 未極其底蘊也. 三篇甚勝, 卒章尤工, 而僕不足以當之也. 爾雅竟末暇細考, 釋親篇恐非如所刊定也. 禮書已略定, 但惜無人錄得. 亦有在黃直卿處者, 吉父在彼, 必能傳其梗槪. 然此間後來又有續修處, 及更欲附以釋文正義, 卒未得便斷手耳. 乾坤性情之說, 以三隅反之, 何疑之有? 性情本是一物, 特以動靜而異其名耳.

 

증경건에게 답함 答曾景建

 

별지의 일곱 조목에서 첫 번째로 움직이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을 논했습니다. 그런데 움직임은 생각을 포괄할 수 있지만 생각은 움직임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의 말씀이 이와 같았던 것이지 앞섬과 뒤섬, 천박함과 심오함의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말을 하거나 노력을 기울일 때 마땅히 이렇게 할 뿐입니다. 두 번째로 증점이 뜻을 말한 것을 논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읍양하고 겸손해하며 커다란 조화의 기상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증점의) 본 뜻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또한 자신이 일상 생활에서 수용한 것을 말했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가 혹은 세상에 나가고 혹은 물러나는데 얽매임이 없음을 보고서 비록 요순의 사업일지라도 더욱 훌륭히 해낼 수 있으니 오로지 읍양하고 물러서는 것만을 가리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는 위군을 둘러싼 문답 한 구절을 논하였습니다. 두려워 피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역시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예가 응당 이와 같았을 뿐입니다. 이런 곳은 비슷한 것 같지만 같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작은 차이 속에 바로 공사의 차이가 있으니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네 번째는 여씨의 황홀에 대한 주장을 논했습니다. 큰 병폐야 없다지만 이렇게 회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니 또한 참아가며 올바른 뜻을 얻는다면 괜찮을 것입니다(위 장도 역시 그렇습니다). 다섯 번째 원양을 책망하는 세 구절의 말은 반드시 한 구절로 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단지 늙어서 죽지도 않는다는 말 같은 경우 성현에게도 본시 수명이란게 있는데, 어떻게 천지의 기틀을 훔쳤다고 해서 도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섯 번째 사숙에 대해서도 꼭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곱 번째 󰡔사기󰡕의 말이 이와 같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근거가 있을 터이니 마천(馬遷)이 스스로 고한 말은 아닙니다. 오늘날 관저편 세 장은 모두 관저의 난입니다. 그 앞에 반드시 산성하고 서두를 이끄는 종류의 것이 있어서, 소리만 있고 가사는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니 이 시는 마지막 장입니다. 만일 다만 세 번째 장만 난에 관련된 것이라면 역사가의 말이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일곱 조목에서 첫째 둘째의 의미는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만 특히 두 번째는 반드시 체인해야지 대충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그 아래 다섯 조목은 모두 급한 것도 아니고 견해도 틀렸습니다. 반드시 마음을 비우고 성현들이 말을 하고 사람을 가르치며 노력을 기울인 본뜻을 알아 차려야지 이렇게 쉽사리 말해서는 안 됩니다.

別紙七條, 第一論勿動勿思者, 動可以該思而思不可以該動, 故聖言如此, 非有先後淺深之序也. 但立語用功自是合如此耳. 第二論曾點言志, 以爲便欲進取揖遜泰和氣象, 殊非本意. 彼亦但自言其日間受用處, 而自它人觀之, 則見其或出或處, 無所不可, 堯舜事業亦優爲之, 非專指揖遜而言也. 第三論問答君一條, 以爲有所畏避, 亦非是, 此只是禮合如此耳. 此等處相似而不同, 只差亳釐, 便有公私之異, 不可不察也. 第四論呂氏恍愡之說, 未有大病, 不須如此迴避, 且認取正意可也. (上章亦然.) 第五, 原壞三語須作一句看, 若只老而不死, 則聖賢固有壽考者, 豈可以其竊天地之機而謂之賊耶? 第六, 射宿亦不必如此說. 第七, 史記之言如此, 必有所據, 馬遷自造之語也. 蓋今關雎三章皆是關雎之亂, 其前必有散聲序引之類, 有聲無詞, 而此其卒章也. 若止第三章是亂, 則史之言不如此矣. 此七條者, 其首二義更宜思之, 第二條尤須體認, 不可草草. 其下五條, 則皆非所急, 又看得差了. 且須虛心認取聖賢立言敎人用功之正意, 不可只如此容易立說也.

 

 

증경건에게 답함 答曾景建

 

󰡔참동계󰡕의 옛 본을 써서 보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미 채잭정에게 교감해서 새 본의 뒤에 부록으로 넣도록 했습니다. 다만 󰡔용호경(龍虎經)󰡕󰡔참동계󰡕를 본받기는 했지만 또한 본 뜻을 알지 못하고 멋대로 모방한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곤의 두 쓰임새가 육허를 두루 흐른다는 구절 등은 소탈하기만 하니 살펴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參同舊本深荷錄示, 已令薺伯靜點對, 附刻新本之後矣. 龍虎經却是取法參同, 亦有不曉其本語而妄爲模放處. 如論乾坤二用周流六虛處, 可見疏脫, 試考之可見也.

 

요즈음에는 어떤 글을 보고 계십니까? 혹 본 것이 있으면 인편을 통해서 적어 보여 주십시오. 만약 따스한 봄날을 이용해 감길보(甘吉甫)와 서로 약속을 하고 함께 와서 지난 번의 약속을 지키신다면 고마운 마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묘족(苗族)을 정벌한 것에 대한 학설이 매우 새롭기는 하지만 나머지 것들은 이것과 비견할 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겸해서 만일 이와 같다면 우임금[]은 스스로 회군을 했지, 백익(伯益)의 조언을 듣고 난 다음에 회군을 결정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고찰할 근거가 없으니, 우선 놓아두고서 의리(義理)의 실제적인 곳에서 함영(涵泳)하는 것만 못합니다.

近來不知所觀何書? 或有所見, 因風筆示. 若得乘此春暖, 吉父相約俱來, 以踐前約, 豈勝幸甚! 征苗之說甚新, 但恐其它無此比數. 兼若如此, 自當班師, 不待伯益贊之而後決矣. 此等無所考據, 不若姑置之而涵泳於義理之實之爲得也.

728x90

'고전원전자료 > 주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자91  (3) 2025.08.12
주자90  (3) 2025.08.12
주자88  (3) 2025.08.12
주자87  (3) 2025.08.12
주자86  (2) 202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