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87

황성 2025. 8. 1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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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친구제자들과의 문답) (知舊門人問答)

 

 

임정경에게 답함 答林正卿

 

해제이 글은 임학몽(林學蒙)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주역󰡕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계통(季通: 蔡元定)이 편지를 보내 정경(正卿: 林學蒙)이 아주 진보했다고 했습니다만 의견이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으니 이것은 바로 계통[]의 잘못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먼저 추구하지 않고 바깥에서 널리 구하고자 하기 때문에 내면(內面)에서 별다른 힘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학자의 재주와 식견(識見)의 높낮이를 살피지 않고 개괄적으로 다 알려고만 하기 때문에 남을 그르치고 또 마음도 바깥으로만 내달리는 것입니다. 그대는 마땅히 그 사람의 좋은 점은 알고서 치우친 점은 줄여가야 합니다. 듣자하니 그 사람은 유배지에서 도리어 유유자적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던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돌아올 시기를 묻지도 않고, 열흘마다 관아에 출석하는 일[旬呈]도 굳이 피하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진료용(陳了翁: 陳瓘)이 일찍이 간관(諫官)으로 있다가 귀양을 가게 되자 오히려 흰 베적삼을 입고 미투리를 매고 가서 열흘마다 출석 점검을 하러 나간 것과 같습니다. 조정에서 죄인을 유배보내는 것은 바로 이런 식으로 곤욕스럽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굳이 피하려고 하면 임금의 명을 받들지 않는 것이요, 임금의 명을 받들지 않는 것은 천명(天命)을 받들지 않는 것이니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季通書來, 亦謂正卿甚進, 不知乃有異論如此. 此正是渠病處, 蓋不先其在己, 而欲廣求於外, 所以向裏不甚得力. 又不察學考才識之高下, 而槪欲其無所不知, 所以誤得他人亦多馳驚於外. 吾人當識其好處而略其所偏也. 聞渠謫居却能自適, 亦甚不易. 歸期正不須問, 旬呈亦不必求免. 陳了翁曾作諌官, 及被謫, 猶著白布衫, 繫麻鞋, 赴旬呈. 朝廷行遣罪人, 正欲以此困辱之. 若必求免, 是不受君命也. 不受君命, 不受天命也, 而可乎?

 

 

󰡔󰡕을 논한 것은 대개는 옳습니다만 시사(時事)인위(人位) 등의 글자를 써서 설명한 것은 너무 때가 이릅니다. 지금 단지 괘와 효로만 이해하고, 이해가 투철해진 다음 추론해서 설명해야 할 곳에 이르러서야 평상시 일없이 지낼 때에 사건에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이차적인 일입니다. 예를 들자면 건괘의 초9는 단지 양기가 물속에 잠겨 감춰졌다는 형상이어서 드러내 써서는 안 된다는 점일 뿐입니다. 만일 세상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명예를 이루려하지 않으며, 숨어서 드러나지 않고, 행위하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 그 안에 앉아 있다고만 주장한다면 이것은 곧 의미를 고정시키고 하나에 매몰시키는 것이니, ‘깨끗하고 조용하며 정밀하고 미묘하다고 말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괘와 효의 본 뜻을 이해하면 이러한 때를 당해, 이런 지위에 머무므로, 이런 사람으로 보는 것도 장애가 없을 것잆이니다. 지난 해에 어떤 사람이 󰡔󰡕를 질문한 것으로 인해서 그대는 영기과(靈棋課)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의 모양이란 단지 이와 같을 뿐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뒤에 다른 사람이 어째서 그런 말을 하기에 모자란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이것은 논의의 제목을 착각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所論大槪得之, 但時事人位等字說得太早. 今只可且作卦爻看, 看得通透了, 到推說處, 方說得平居無事處時應事之法, 是第二節事也. 之初九, 只是陽氣潛藏之象, 未可發用之占耳. 若便著箇不易乎世, 不成乎名, 隱而未見, 行而未成底人坐在裏面, 便死殺了, 非所謂潔靜精微者. 若會得卦爻本意, 却不妨當此時居此位作此人也. 頃年嘗因人間, 應之曰: ‘公曾看靈棋課否? 之模樣, 便只是如此也.’ 後有人問: ‘豈以其不足告而云爾耶? ’ 此錯認了話頭也. 試思之.

 

 

임정경에게 답함 答林正卿

 

음양의 변화를 관찰하여 괘를 만들고, 강유를 발휘하여 효를 만듭니다.

觀變於陰陽而立卦, 發揮於剛柔而生爻.

 

기와 우를 나누는 것이 획이요, 획을 누적하면 곧 괘를 이룹니다. 괘 가운데 보이는 획은 바로 효입니다. 만일 말씀하신 대로라면 이것은 단지 증거를 인용해 문장을 짓는 것일 뿐이니, 모르겠습니다만 네 구절의 의미는 또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속어에 대추를 통채로 삼겨 맛을 모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인데, 어떻게 그 맛을 알겠습니까?

分奇偶便是畫, 積晝便成卦, 卦中看晝便是爻. 若如所說, 只是引證作文, 不知四句之義又如何說? 諺所謂鶻侖呑棗者是也, 何由知其味耶?

 

복희(伏義)는 괘를 그리면서 음양의 변화를 모방했고, 문왕주공은 요사효사를 만들어 천하의 의혹을 판단했으며, 공자는 단전상전을 만들어 사물의 당연한 이치를 미루어 밝혔습니다. 그러나 효와 획이 이미 갖추어져 나머지 세 가지가 이미 그 속에 완비되었으니 앞선 성인과 뒤따르는 성인이 서로 발명했을 뿐입니다.

伏義晝卦, 以寫陰陽之變化; 文王周公作繇爻辭, 以斷天下之疑; 孔子作彖, 以推明事物當然之理. 然爻畫旣具而三者已備乎其中, 前聖後聖互相發明耳.

 

이 설명이 근사하기는 하지만 미진합니다.

此說近之, 然亦未盡.

 

괘의 이름을 지은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두 가지 의미와 두 가지 상징을 겸해서 이름지은 것이 있고, 두 가지 의미만을 취해 이름붙인게 있으며, 두 가지 상징만을 취해 이름붙인 것이 있습니다. 두 가지 상징과 인정을 겸해서 이름붙인 것이 있고, 오로지 인정만을 취해서 이름붙인 것이 있으며, 두 가지 상징과 음양의 위치를 겸해서 이름붙인 것이 있고, 효의 획이 많고 적음을 따져 이름붙인 것이 있으며, 효의 획을 따지면서 두 가지 상징을 겸한 것이 있고, 변괘를 취한 것이 있으며, 효의 획의 형태와 두 가지 의미를 취한 것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所以名卦之例非一端, 有兼取二義二象者, 有專取二義者, 有專取二象者, 有兼取二象與人情者, 有專取人情者, 有兼取二象與陰陽之位者, 有取爻畫之多寡者, 有取爻晝兼二象者, 有取變卦者, 有取爻畫之形與二義者, 有不可曉者.

                 .

낱낱의 괘를 좇아가며 완미하고 찾아보면 각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처럼 안배하면서 많은 것을 추구하느라 천박해지고, 몸과 마음을 고생스럽게 하느라 일도 제대로 처리못해서는 안 됩니다.,

且逐卦玩索, 當見各有意味, 不須如此安排, 貪多涉淺, 勞心費力, 不濟得事.

 

가인(家人): 건은 굳세므로 집에다 베풀면 (집안이) 갈라지고, 태는 기쁨이므로 집에 베풀면 (집안이) 혼란해집니다. 곤은 고요함으로 집에 베풀면 집안이 없어지게 되고, 진은 움직임으로 집에 베풀면 어지러워집니다. 간은 취할만한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밝게 따르는 것이 집의 도입니다.

家人: , 剛也, 施於家則離; , 說也, 施於家則亂; , 靜也, 施於家則廢; , 動也, 施於家則擾. , 非所取義, 惟明而順家之道也.

 

천착이 좋지 않습니다.

穿鑿得不好.

 

혁괘는 규괘와 종류가 비슷합니다. 규괘는 위는 불, 아래는 연못으로 서로가 섞일 수 없는 형상입니다. 혁괘는 불이 연못 아래 있어서 변혁의 이치가 있습니다. 규괘는 중녀가 앞에 있고, 소녀가 뒤에 있어 서로 떨어진 의미가 있지만, 혁괘는 중녀로 소녀를 계승하기 때문에 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相類. 上火下澤, 則不相人, 此火在澤下, 有變革之理. 中女在前, 少女在後, 有相離之義, 而此以中女繼少女, 故曰革.

 

천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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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괘의 4효는 (소성괘인) 진에 속하는 양으로서 음의 주인입니다. 마치 한 나라의 대신이 천하의 위기를 평화로 전환시켜, 위의 임금은 할 일이 없고, 아래의 백성들은 즐거움을 누리기 때문에 예라고 하는 것입니다.

四以體之陽爲陰主, 如大臣轉天下之危爲安, 上無爲而下佚樂, 故曰豫.

 

이 곳에 대해서는 공자께서 분명하게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예라고 하셨으니, 이치가 매우 분명한데도 어째서 이것을 버리고 스스로 주장을 만들어낸는 것입니까? 큰 잘못은 단지 힘들여 안배하기만 하고 마음을 비우고 의미를 음미하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此等處孔子分明說順以動豫, 理甚分明, 安得舍之而自爲說耶? 大病只是著力安排, 不曾虛心玩味耳.

 

중부괘는 밖은 강하고 안은 부드러우니 지극한 정성으로 슬퍼하며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中孚外剛中柔, 至誠惻怛之人也.

 

얼굴은 위엄이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유들유들한 간사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이 대목은 잘못이 덜하다는 차이일 뿐 이런 종류의 설명은 모두 잘못입니다.

得無色厲內荏之姦耶? 大抵此一類都不是, 此特其小失耳.

 

복희의 역으로 보면 선천도를 볼 때 예를 들어 추위와 더위가 오고 가는 것, 음과 양이 번갈아가며 물러나는 것은, 마치 옮겨가며 배척하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또 그렇게 되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문왕과 주공의 역으로 보면 64괘의 이름은 18변 이후에 사적으로 기록한 것이고, 384효는 기우가 세 번 변하는 것의 사적인 기록이며, ‘잠긴 용[潛龍]’암말[牝馬]’ 등의 사물은 오늘날 괘의 이미지[卦影]와 같고, ‘쓰지 말라’ ‘갈 곳이 있어 이롭다등의 말은 오늘날 괘를 판단하는 문장과 같습니다. 공자의 역으로 보면 괘명은 때[]이고, []이며 물건[]입니다. 2345상은 위치입니다. 상은 또 처음과 끝이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96은 사람의 재능이요, 어떤 일에 처하고, 어떤 때에 머물며 어떤 물건을 쓰면서 그 재능과 지위가 적절하게 들어맞으면 길하고, 그렇지 않으면 흉합니다.

㑀羲觀之, 則看先天圖如寒暑往來, 陰陽代謝, 若有推排而又莫知其所以然者. 文王周公觀之, 則六十四卦之名乃十八變以後之私記, 三百八十四爻乃三變奇偶之私記, 潛龍牝馬等物如今之卦影, ‘勿用利有攸往等語如今斷卦之文. 孔子觀之, 則卦名者, 時也, 事也, 物也. , 上者位也, 而初上又或爲始末之義. 六者, 人之才也. 處某事, 居某時, 用某物, 其才位適其所當則吉, 不然則凶.

 

이 설명은 근사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줄 알면서도 앞 문단에서는 이리저리 천착했던 것은 어째서란 말입니까?

此說近之, 然乃知此, 而又不免爲前段之支蔓穿鑿, 何耶?

 

󰡔󰡕에는 괘상을 선택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괘명의 의미를 취해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있고, 두 가지 의미를 취하여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有取兩卦象以爲法者, 有取卦名之義而思所以處之者, 有取二義而思所以處之者.

 

이런 식으로 포획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亦不必如此蘢罩.

 

󰡔󰡕의 소()에서 연산귀장을 논하면서 한쪽에서는 복희황제의 책이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하상 시대의 책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 지 모르겠습니다.

疏論連仙歸藏, 一以爲伏羲黃帝之書, 一以爲夏商之書, 未知孰是?

 

고증할 것이 없으니 당연히 (설명이 비워진 채로) 그대로 두어야 한다.

無所考, 當闕之.

 

하 두 경을 논하면서 문왕이 나눈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믿을 수 있는지요?

論上下二經爲文王所分, 果可信否?

 

역시 논할 필요는 없습니다.

亦不必論.

 

64괘는 복희가 (8괘를) 중괘한 것이라고 논하셨는데 과연 그렇습습니까?

論六十四卦重於伏羲, 果否?

 

이것은 고증할 수 없습니다. 혹여 뇌사시정이 이미 중괘의 상을 취하고 있다면 아마도 복희가 이미 중괘한 것인 듯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열 세가지 괘에서 모두 개취(蓋取)’라고 말하고 있으니, 역시 의문사요, 이 괘를 보고서 이로 인해 이 물건을 만든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고증할 것도 없고 다만 설명이 여기에 이르면 그 이상의 내용은 당연히 비워진 채로 남겨둬야 합니다. 다만 이미 8괘가 있다면 64괘가 이미 그 속에 있으니, 이것을 몰라서는 안 될 뿐입니다.

此不可考. 或耒耜市井已取重卦之象, 則疑伏羲已重卦. 或者又謂此十三卦皆云 蓋取’, 則亦疑詞, 未必因見此卦而制此物也. 今無所考, 只說得到此, 以上當且闕之. 但旣有八卦, 則六十四卦已在其中, 此則不可不知耳.

 

 

임정경에게 답함 答林正卿

 

 

편지에서 역에 대해 의심하신 것은 규모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독서하는 법은 모름지기 처음부터 끝까지 구절에 따라 음미하여 윗 글자를 볼 때에는 마치 아랫 글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이 하며, 윗 구절을 볼 때에는 마치 뒷 구절이 있는 줄을 모르는 듯이 하여 본 것을 다 완전하게 이해한 뒤에 또 처음부터 이 단락을 보아 처음과 끝이 관통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단락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로 뒷 단락이 있는 줄을 몰라야 하니, 이렇게 점진적으로 나아가다 보면 거의 마음으로 이해하여 저절로 몸에 푹 배여 성현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생각이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자기에게서 몸과 마음의 의리(義理)가 날마다 완전히 무르익어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만 이렇게 바쁘게 한 번 훓어 보고는 곧 자기 생각대로 파고 들어가 경직된 주장을 늘어 놓는다면 경서(經書)의 뜻을 잘못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또한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만일 이쪽 면의 글을 읽으면서 다만 옆줄을 질러 읽어간다면 그렇게 해서 어떻게 문리(文理)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한 번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 그러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도 알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所示, 恐規模未是. 蓋讀書之法須是從頭至尾逐句玩味, 看上字時如不知有下字, 看上句時如不知有後句, 看得都通透了, 又却從頭看此一段, 今其首尾通貫. 然方其看此段時, 亦不知有後段也. 如此漸進, 庶幾心與理會, 自然浹洽, 非惟會得聖賢言語意脈不差, 且是自己分上身心義理日見純熟. 若只如此匆匆檢閱一過, 便可隨意穿鑿, 排布硬說, 則不唯錯會了經意, 於己分上亦有何干涉耶? 且如看此幅紙書, 都不行頭直下看至行尾, 便只作旁行橫讀將去, 成何文理? 可試以此思之, 其得失亦不難見也.

 

 

임정경에게 답함 答林正卿

 

해제이 글은 경원 4(무오, 1198, 69)에 임학몽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계통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주변의 동지들이 슬픔에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따르는 것이니 늦던지 빠르던지, 가깝던지 멀던지 비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듣기로는 임종의 순간까지도 오히려 정신이 아주 또렷했고 일처리나 당부를 남기면서도 조리가 있었다 하니 사람의 의지를 굳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보내주신 󰡔중용󰡕의 의심스러운 의미에 대해서 대충 여기서 조목별로 분석해서 회답을 보냅니다.

季通云亡, 凡在同志, 無不涌傷. 然人生要必有死, 遲速遠近, 亦何足較? 聞其臨行却甚了了, 區處付屬皆有條理, 亦足强人意也. 所示中庸疑義, 略此條析奉報.

 

대체로 붕우(朋友)들이 문자를 보는 데 있어 얄팍하고 성급하게 보는 병폐가 많이 있습니다. 얄팍하게 보면 그 글뜻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성급하다 보니 그 문리에 대해서도 찬찬하게 살펴 볼 겨를이 없습니다. 글 내용에는 종횡(縱橫)과 착종(錯綜)에 각각 그 뜻의 맥락이 있는 법인데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한쪽만을 보고는 곧 이것을 고집하여 다른 학설은 다 폐하고자 하니, 그 점이 바로 옛사람이 말한 덕을 지키는 것이 넓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는 데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니, 모름지기 이러한 문제를 간파하여 일에 따라 성찰(省察)해야 깊은 경지에 이르러 스스로 얻음이 있게 될 것입니다.

大率朋友看文字多有淺迫之病, 淺則於其文義多所不盡, 迫故於其文理亦或不暇周悉. 兼義理精微, 縱橫錯綜, 各有意脈. 今人多是見得一邊, 便欲就此執定, 盡癈他說, 此乃古人所謂執德不弘者, 非但讀書爲然也. 要須識破此病, 隨事省察, 庶幾可以深造而自得也.

 

 

조원가에게 답함 答曹元可

 

학문을 하겠다는 뜻을 통해 깊은 조예를 알 수 있으니 감탄과 우러르는 마음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듣기로는 학문을 하는 실상은 진실로 실천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헛되이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배우지 않은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천하고자 해도 이치에 밝지 못하면 실천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학󰡕의 가르침은 비록 성의정심을 근본으로 삼지만 반드시 격물치지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격물치지란 또한 사물의 이치를 남김없이 궁구해서 나의 지식이 정밀하고 절실해져 극치에 도달토록 하는 것일 뿐입니다.

示喩爲學之意, 仰見造詣之深, 不勝歎仰. 然嘗聞之, 爲學之實固在踐履, 苟徒知而不行, 誠與不學無異. 然欲行而未明於哩, 則所踐履者又未知其果何事也. 大學之道雖以誠意正心爲本, 而必以格物致知爲先. 所謂格物致知, 亦曰窮盡物理, 使吾之知識無不精切而至到耳.

 

무릇 세상의 사물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 정치한 온축은 이미 성현들의 책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여기에서부터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단하고 쉬이 알 수 있으며, 간약하고 쉬이 지킬 수 있는 것을 원한다면 󰡔대학󰡕․󰡔논어󰡕․󰡔중용󰡕․󰡔맹자󰡕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작년에 임장(臨潭)에서 네 고경을 판각하고 다시 이 사서를 판각해서 그 말들을 순서지웠고 또 대충 내 뜻을 술회해서 책의 뒤에 첨부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오늘날의 벗들에게 바래는 것이 이미 간절합니다. 돌아오면서 몇몇 권만 있었는데 모두 아는 사람들이 가져가버려 보내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은 거리가 멀지 않으니 스스로 구하려 하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얻는 것이 있거든 다시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夫天下之物莫不有理, 而其精蘊則已具於聖賢之書, 故必由是以求之. 然欲其簡而易知, 約而易守, 則莫若大學論語中庸孟子之篇也. 是以頃年嘗刻四古經於臨潭, 而復刻此四書以先後其說, 又略述鄙意以附書後. 區區於此所以望於當世之友朋者, 蓋已切矣. 歸來只有數本, 皆爲知識持去, 不得納呈. 然彼間相去不遠, 自可致之不難也. 謂之有得, 復以見敎, 千萬之望

 

 

이손경에게 답함 答李巽卿

 

말씀하신 학문에 나아가고 일에 대처하는 뜻은 성찰하고 조심스러워 하기를 진실로 이래야 하지만 두서가 너무 많다 보면 도리어 정신이 없게 됩니다. 다만 성현의 책을 가지고서 조금씩 과정을 세워서 충분히 읽고 심사숙고하여 반복적으로 음미하며 그렇게 가꾸면서 물을 준다면 자연히 대단한 진보가 있게 될 것이니, 굳이 그렇게 한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所喩進學處事之意, 省察警懼, 固當如此. 然頭緖太多, 却成粉擾. 但將聖賢之書小立程課, 熟讀深思, 反復玩味, 以此栽培澆灌, 自有長進處, 不必如此閑計度也.

 

 

정차경에게 답함 答程次卿

 

해제이 글은 정영기(程永奇)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마음을 보존한다는 주장은 진실로 학문을 하는 근본입니다. 또 편지 속에 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 이치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어디에서부터 살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일에 응한 뒤에야 그 일의 이치를 생각하고, 사물에 응접한 뒤에야 그 사물의 이치를 생각한다고 한다면 미리 생각하지 못해서 미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반면에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강구한다면 자신의 지위를 벗어난 생각하면서, 염려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병폐에 빠질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오랜 시간 힘을 쏟으면 분명히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설명이 있을 것입니다. 부디 제게도 밝게 일러 주셔서 함께 반복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示喩存心之說, 此固爲學之本. 然來喩又有所謂有是事必有是理者, 不知又何從而察之耶? 若如所謂, 當應事然後思是事之理, 當接物然後思是物之理, 則恐思之不豫而無所及. 若豫講之, 則又陷於所謂出位而思, 念慮紛擾之病. 竊意用力之久, 必有說以處此矣. 幸明告我, 得以反復之.

 

 

공유미에게 답함 答龔惟微

 

듣기로는 학문에 나가가며 게으르지 않겠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니 매우 다행힙니다. 다만 󰡔춘추󰡕에 대한 주장은 지난 날 뜻을 갖고 있기는 했습니다만 경문은 지나치게 간략한데 비해 여러 설명은 너무 번거롭고, 게다가 앞뒤로 모순되는 것이 한 둘이 아닌 것을 병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꼭 통하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우선 잠시 늦추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늙고 보니 결국은 다시 읽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보내신 편지에서 다른 곳은 모두 한 가지 주장을 붙잡고 근거삼을 수 있지만 유독 즉위(卽位)’에 대한 주장만은 의미를 통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것은 붙잡았다는 주장이 꼭 성인의 본 뜻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니, 비단 즉위에 대한 설명만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과거만을 위해서 공부하려는 계획이라면 우선 근사해서 이치를 해치지 않는 것을 선택해 쓰십시오. 만일 진실로 학문을 하려거든 쉽게 알 수 있는 다른 책을 보고 추구해서 거의 명백하고 오류가 없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聞進學不倦之意, 甚幸甚幸春秋之說向日亦嘗有意, 而病於經文之太略, 諸說之太煩, 且其前後抵牾非一, 是以不敢妄爲必通之計, 而姑少緩之. 然今老矣, 竟亦未敢再讀也. 來喩以爲他處皆可執其一說以爲據, 獨卽位之說爲難通, 愚恐其所執之說末必聖人之眞意, 而非獨卽位之說爲無據也. 若只欲爲場屋計, 則姑取其近似而不害理者用之. 若欲眞實爲學, 則不若卽他書之易知者而求之, 庶明白而不差也.

 

 

공백선에게 답함[答龔伯善]

 

보내 오신 편지에서 문호(門戶)의 일 때문에 마음을 두 군데에 쓰고 있다보니 도()에는 전혀 얻은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 점이 지금 선비들의 공통적인 근심이기는 하지만 궁()하고 달()하는 것은 운명에 달린 것이므로 노력하여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천명이 있다면 당연히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를 것이고, 없다면 구한들 또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오직 도의(道義)가 자신에게 있어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으므로 구하면 얻지 못하는 경우가 없거늘, 지금은 마침내 저것으로 이것을 바꾸니 그 이해 관계에 대한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원하건대 이렇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示喩以門戶之故, 不免兩用其心, 於道全末有得, 此今曰士子之通患. 但窮達有命, 非可力求. 若其有之, 當不待求而自至; 如其無之, 求亦奚益? 惟道義在我, 人皆有之而求無不得. 今乃以彼而易此, 其於利害之算可謂舛矣. 願以此而反思之, 庶乎其有決也.

 

 

왕숙경에게 답함 答汪叔耕

 

1023일 희()는 머리를 조아리고 고향의 벗 숙경(叔耕) 무재(茂材)에게 글을 보냅니다. 편지를 주시고 아울러 매우 풍부한 시문과 논설을 보내주셨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해 보고도 손에서 떼질 못햇으니 성실히 도를 향하고, 간절히 도를 수호한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장에 힘쓰는 이유도 또 이처럼 넓고 독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늙고 쇠약한데다 도에 대해 들은 것이라곤 없으니 제게 보여주신 뜻을 감당키에 충분치 못합니다. 그리고 어렸을 적에 조금이나마 붓을 들어 연마하기는 했지만 결국 작자의 울타리를 엿볼 수 없었습니다. 또 스스로도 제 신세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애초부터 깨달았기 때문에 마침내 뜻을 꺾고 버리고서 돌아보지 않은 지가 지금 수 십년이 되었습니다. 논하신 내용이 적절한지 그렇지 못한 지를 알고서 그 설명의 고하를 논할 수도 없습니다.

十月二十三日, 扣首啓叔耕茂材鄕友: 辱書, 幷示詩文論說甚富, 三復不置, 足以見鄕道之勤, 衛道之切, 而所以用力於詞章者, 又若是其博而篤也. 顧惟衰晩, 於道旣無所聞, 不足以堪見予之意; 而少日粗親筆硏, 終不能窺作者藩籬, 且自覺其初無補於身世, 遂用絶意, 棄去不爲, 今數十年矣, 又無以知所論之中失而上下其說也.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았는데 부지런히 도()를 향해 가고 간절하게 도를 수호하는 것이 이른바, 도를 구하여 그것을 자신에게 닦는 것이 근본이 된다는 것만 못하고, 문사(文詞)에 힘을 쏟는 것이 경서를 궁구하고 역사서를 보아서 의리를 찾아 사업에 시행하는 것이 실제가 되는 것만 못하다고 봅니다. 대개 사람에게 이 몸이 있게 되면 그 타고난 상도(常道)의 법칙은 애당초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로 향해 가는 것이 어찌 자신에게서 돌이켜 구하는 것만 하겠으며, 말로서 세상에 행세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어찌 자기에게 얻어 놓고서 그 쓰여지고 쓰여지지 않는 것은 한결같이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만 하겠습니까? 문사(文詞)라는 것은 하나의 작은 기술입니다. 가깝게는 자신을 다스리기에도 부족하고, 멀게는 남을 다스릴 수도 없거늘, 그것이 또한 인심(人心)의 존망(存亡)이나 세도(世道)의 융쇠(隆衰)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 이해를 비교해 가며 부지런히 되풀이 하면서 문장이 번거롭고 길어지는 데도 싫어하지 않는 것입니까? 족하(足下)가 한 번 생각하셔서 과연 그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도모할 수 있다면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이 진실로 자연히 차례가 있을 것이니, 오늘 이후로 계속해서 말해 주셨으면 합니다. 인편이 돌아가느라 우선 이렇게만 답을 합니다. 날이 추워지는데 어버이를 위해 자신을 돌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희는 두 번 절합니다.

然私竊計之, 鄕道之勤, 衛道之切, 不若求其所謂道者而修之於己之爲本; 用力於文詞, 不若窮經觀史以求義理而措諸事業之爲實也. 蓋人有是身, 則其秉彝之則初不在外, 與其鄕往於人, 孰若反求諸己? 與其以口舌馳說而欲其得行於世, 孰若得之於己而一聽其用舍於天耶? 至於文詞, 一小伎耳. 以言乎邇, 則不足以治己; 以言乎遠, 則無以治人. 是亦何所與於人心之存亡世道之隆替, 而校其利害, 勤懇反復, 至於連篇累牘而不厭耶? 足下志尙高遠, 才氣明決, 過人遠甚, 而所以學者未足以副其天資之美, 竊惜之. 又念其所以見予之厚而不忍忘也, 不敢不盡其愚. 足下試一思之, 果能舍其舊而新是圖, 則其操存探討之方固自有次第矣. 請繼今以言. 人還, 姑此爲報. 向寒, 千萬以時爲親自愛, 不宣. 再拜.

 

 

왕숙경에게 답함 答汪叔耕

 

희는 머리를 조아리고 글을 보냅니다. 이전에 인편이 돌아가느라 바삐 편지를 보내면서 직접 만나서 논하지 못하는 것을 깊이 한스럽게 여겼습니다. 인편이 와서 편지를 받고서야 새해에 지내시는 것이 좋다는 소식을 듣고 위안이 됩니다.

扣首啓: 前此人還, 奉書草草, 深以末得面論爲浪. 專人至止, 薦辱枉書, 獲聞新歲以來起居佳勝, 爲慰.

 

보내 온 편지에서 지난 날 학문하는 순서를 논한 것에서 높은 입지(立志)를 보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조리없이 나아가 그 순서를 따르지 않는 것은 마치 뱃속이 텅 비었을 적에 술과 음식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기름진 국에다 이리저리 자른 고기들, 떡과 회나 포등이 앞에 널려 있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좌우로 움켜쥐어 전부 입에 넣고 빠르게 씹으며 성급하게 삼키는 것과 같으니, 그것이 어찌 배가 터지도록 실컷 먹어 한 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조금도 그 맛을 안 적이 없으니 전에 먹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모를 것입니다.

來書所論向來爲學次第, 足以見立志之高矣. 然雜然進之 而不由其序 譬如以枵然之腹入酒食之肆 見其肥羹大胾, 餠餌膾脯雜然於前 遂欲左拏右攫, 盡納於口, 快嚼而亟呑之, 豈不撑腸拄腹而果然一飽哉? 然未嘗一知其味 則不知向之所食者果何物也.

今承來喩, 將欲捐其逐末玩華之習, 而加反本務實之功, 則善矣.

 

주자(周子)와 정자(程子)의 주고 받은 차례에 대해 논하셨는데, 여기에는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점이 있는 듯 합니다. 태극도(太極圖)를 일 대 일로 은밀하게 전수하는 삼매(三昧)처럼 여긴다면, 이것은 또 근세 학자들이 형체에는 눈을 돌린 채 그림자만 쫓고 망상(妄想)을 진짜라고 여기는 폐단입니다. 도란 눈앞에 있어서 처음부터 가리워진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聖人)께서 자신이 발견한 도체(道體)의 실상을 언어(言語)와 문자(文字)로 드러내어, 온 세상 사람들과 후세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 말씀은 간곡하게 되풀이했고, 분명하고 절실하게 표현하면서 오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까만 걱정하셨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일부러 미진(未盡)한 말을 해서 학자들의 이목(耳目)을 어지럽히게 만들고, 일 대 일로 은밀하게 주고 받은 다음에야 알 수 있도록 했겠습니까? 다만 학자들이 마음을 비우고 조용한 생각 속에서 여유있게 되풀이하면서 성인(聖人)이 말씀하신 뜻을 음미하지 않고, 멋대로 자기의 생각을 경솔하게 주장하다 보니, 그 맛은 모르고서 말한 것 이외에 따로 전하는 것이 있다고 여길까 걱정하셨을 뿐입니다.

然所論, 傳授次第, 恐亦有未易言者 而以太極圖爲有單傳密付之三昧, 則又近世學者背形逐影, 指妄爲眞之弊也. 夫道在目前, 初無隱蔽, 而衆人沉溺膠擾 不自知覺 是以聖人因其所見道體之實 發之言語文字之間 以開悟天下與來世 其言丁寧反復 明白切至 惟恐人之不解了也. 豈有故爲不盡之言以愚學者之耳目 必俟其單傳密付而後可以得之哉? 但患學者未嘗虛心靜慮 優柔反復 以味其立言之意 而妄以己意輕爲之說. 是以不知其味而妄意乎言外之別傳耳.

 

불기론(不欺論)에서 유가(儒家)와 불가(佛家)의 동이(同異)와 득실(得失)에 대해서 말했는데, 이 역시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유자의 학문을 구하는 방법을 논하면서 그 드나드는 호흡을 고르게 가다듬는다는 것으로 스스로 참구해 본다고 한 대목이나, ‘마음을 잊고 형체를 잊으니,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없는 맑은 거울과 화주(火珠 : 보석의 한 종류)와도 같은 고요한 달이 드러날 때마다 곧 변한다고 한 것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유자의 학문이 육경과 공자맹자 이래로 어디에 이런 주장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대는 어디에서 이런 것을 전수받아 실천하는 것입니까? 추구하는 것이 이렇게 잡다하니 구하면 구할 수록 얻지 못한다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거꾸로 정()을 주장하고 경()을 지켜 사물에 응접하는 것으로부터 유자의 학문을 추구하려고 한다고 말한들 죽을 때까지 구하더라도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사물에 응접하고 정을 주장하고 경을 지키는 것의 죄라고 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그만두지 않는다면 구하려 한들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미친 듯이 본성과 마음을 잃어버리는 우환이 생길까봐 걱정됩니다. 그대를 위하여 걱정스런 마음에 일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일단 이 문제는 놓아 두고 성현(聖賢)이 말씀하신 평이하고 명백한 곳에 나아가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평온하게 가져 충분히 음미하며 몸소 실행하십시오. 깊이 음미하면 이치가 절로 밝아질 것이고, 독실히 행하면 나아갈 힘이 절로 생길 것입니다. 오래도록 그 자세를 견지하고 부지런히 힘써 위로 통달한다면 도체(道體)의 정미한 묘리(妙理)와 성현의 친절한 전승(傳承)은 일 대 일로 은밀하게 주고 받지 않더라도 이미 마음속에 환히 밝아질 것입니다.

不欺論中所談儒佛同異得失 似亦未得其要 至論所以求儒者之學 而以平其出入之息自參之 又有忘心忘形 非寐非寤 虛白淸鏡 火珠靜月每現輒變之說 則有大不可曉者 不知儒者之學自六經孔孟以來何嘗有是說? 而吾子何所授受而服行之哉? 所以求之者如是之雜, 無怪乎愈求而愈不得也 而反自謂將從主靜持敬 應事接物以求之 則有沒世而不能達者 是豈應事接物主靜特敬之罪哉? 如此不已 不惟求之不得而已. 愚恐其必將有狂易喪心之患 竊爲吾子憂之 不敢不以告也 幸且置此 而卽聖賢之言平易明白之處 虛心平氣 熟玩而躬行之 玩之深則理自明 行之篤則力自進. 持之以久 亹亹而上達焉 則道體精微之妙 聖賢親切之傳 不待單傳密付而已了然心目之間矣.

 

기타 논하신 것도 모두 헤아려 보아야 할 것들이 있지만 다 말씀드릴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근본이 바르다면 이런 지엽적인 것들도 논란할 필요도 없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사론(史論)󰡕은 다른 글보다 낫습니다만 우선 조금 뒤로 미뤄놓고 근본을 앞세운다면 이르는 경지가 여기에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장구󰡕 한 본을 보내 드립니다. 옛 사람들이 학문을 했던 규모와 오늘날 노력의 순서가 모두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시고 늙은 서생이 늘상 하는 얘기라고 소흘히 여기지 않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其他所論, 亦儘有合商量處, 未暇悉陳. 然根本若正, 則此等枝葉亦不待辯而明矣. 史論却勝他書, 然姑少後之而先其本, 則其所至又當不止此也. 大學章句一本附往, 古人爲學規模及今日用力次第盡在此矣. 幸試詳之, 勿以爲老生常談而忽之也.

 

 

이원한에게 답함 答李元翰

 

원한(元翰)이 지난 날 말한 것이 모두 근사했습니다만, 지금 보내온 글을 보니 설명이 산만합니다. 지난 날 말한 것은 진실한 견해가 아니었기 때문에 붙잡는 것이 안정되지 못해서 다시 놓쳐버렸던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날 말했던 이 마음을 보존하면 즉 인이다는 구절은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서 말한 마음에 합치하는 것을 실천하고, 합치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은 또 의미상 설명한 것일 뿐이요, 인의 일[仁事]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보내신 글에서 먼저 이 마음을 보존하라는 한 구절은 다만 마음에 합치하면 실천하라고 운운한 것을 말한 것일 뿐 전연 착실치 못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元翰前日說得儘近似, 今看所示, 又說開了. 蓋前日所說尤非實見, 故把捉不定, 又會走作爾. 如前日云 存得此心卽便是仁’, 此句甚好. 但下面說 合於心者行之, 不合於心者勿爲’, 又說從義上去了, 不干仁事矣. 今所寫來者, 先存得此心一句, 便只說合於心爲之(云云), 却是全說不著也.

 

지금은 우선 󰡔맹자󰡕, “()은 사람의 마음이고, ()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고 한두 구절을 가지고 본다면 곧 인과 의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대개 인은 이 마음의 덕()이므로 이 마음을 보존하기만 하면 곧 인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말함에 있어서도 다만 사욕이 제거된 뒤에는 이 마음을 항상 보존해야 된다고만 말하고 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마음에 합치하는 것을 말하자 마자 의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라고 한 경계선을 침범해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의를 능히 행할 수 있는 이유는 인()의 용처(用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자가 모름지기 이 마음을 늘 보존해야 사리(事理)를 살필 수 있는 것이 있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마음속에 자연히 주재(主宰)가 없게 되어 또한 다시는 가부(可否)를 살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점이 공문(孔門)에서 학문하는 데에는 반드시 인을 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이유입니다. 대개 이것은 모든 이치의 근원이고 모든 일의 뿌리이니, 우선 먼저 인식하고 먼저 보존해서 길러야만 착수하여 발디딜 곳이 있게 될 것입니다. 나머지 논의에도 온당치 못한 것이 많습니다만 먼저 이 한 구절을 살펴보시면 오래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今且只以孟子, 人心也; , 人路也兩句看來, 便見仁義之別. 蓋仁是此心之德, 纔存得此心, 卽無不仁. 如說克己復禮, 亦只是要得私欲去後, 此心常存爾, 未說到行處也. 纔說合於心者(云云), 則便侵過 , 人路底界分矣. 然義之所以能行, 却是仁之用處, 故學者須是此心常存, 方能審度事理. 如其不然, 則方寸之間自無主宰, 亦不復能審度可杏而行所當行矣. 門之學所以必以求仁爲先, 蓋此萬理之原萬事之本, 且要先𧄹認得, 先存養得, 方有下手立脚處爾. 其他所論末穩者多, 但先看此一節, 久之自見得也.

 

 

 

진여숙에게 답함 答陳與叔(夢良)

 

제자직편의 음운

弟子職音韻

 

이것은 큰 의리가 매인 것도 아니요, 깊이 고찰할 겨를도 없습니다.

此非大義折蘗, 不暇深考.

 

몽량(夢良)의 생각으로는 제자직1장에서 先生施敎, 弟子是則이하의 내용이 아마도 배움이란 가르침을 확립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고, ‘志無虛邪이하는 또 배움의 노력이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자세히 말한 것입니다.

夢良竊意弟子職一章, 先生施敎, 弟子是則以下, 似言學莫先於立敎(云云), 志無虛邪以下, 又詳言其學之之功如此(云云)

 

이 설명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애초에 깊은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처럼 자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此說得之, 然亦本無奧義, 不必如此之詳也.

 

몽량(夢良)의 생각에는 제자직1장은 가르침과 배움의 방법을 논한 것입니다. 어버이를 공경하고 어른을 섬기고, 스승을 따라 학업을 닦고 청소하고 응대하며, 사람에게 나아가고 물러가는 요체가 모두 여기에 묶여 있습니다. 2장부터 마지막 12장까지는 분명하게 그 상세한 절목을 조목별로 갖추어 놓은 것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종사하는 모든 일을 다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弟子饌饋의 주에서 饋謂選具在食이라 한 것은 찬()을 음식을 갖춘다[具食]는 뜻으로 풀이했고, ()는 음식을 내온다[進食]는 뜻으로 풀이한 것입니다. 아마도 궤()는 갖추어 놓은 음식을 내어온다는 것 같으니, ()자를 선()자로 잘못쓴 것 같습니다. 제 해석이 어떨는지 모르겠습니다. 飯是爲卒이란 구절의 주에서 旣飯而食이라고 했으니, ()자의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5三飮二斗의 주에서 三飯必毁二斗左執虛豆라고 했는데 두()는 어떤 그릇이고, ‘()’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왼쪽으로 빈 제기를 잡는다고 한 것은 어디에 쓰려는 것입니까? 6拚前斂祭란 구절에서 ()’자는 어떻게 풀이합니까? 어떤 물건으로 제사드린 것을 거두어 들이는 것입니까? 어느 곳에 놓아둡니까? 8葉適己란 구절에서 엽()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葉是箕舌이란 구절은 바로 곡례에서 以箕自鄕이라고 말한 것이다.) 9措總之法의 주에서 總設燭之束이라 말한 종류의 것은 오늘날로는 어떤 것입니까? (이 문단 속의 작은 글자는 선생의 비답이다.)

夢良竊意弟子職一章論敎學之方, 其所以敬親事長從師受業與夫洒掃應對進退之要, 皆括乎是. 自二章至末十二章, 又分明條具其節目之詳, 由早至夜, 周旋從事, 蓋爲纖悉. 其四章 弟子饌饋: ‘饋謂選具在食’, 蓋饌乃訓具食, 饋訓進食, 恐饋者是進具在之食, 字誤作 , 未蕃如何. 飯是爲卒: ‘旣飯而食’, 義未能通. 五章 三飮二斗: ‘三飯必毁二斗左執虛豆, 斗是何器? 義如何? 左執虛豆欲何用? 六章 拚前斂祭’, ‘字何訓? 用何物搜歛所祭? 置之何地? 八章葉適己’, ‘義如何? ‘(葉是箕舌)’, (此句卽曲禮所謂 以箕自鄕者也). 九章措總之法注: ‘總設燭之束’, 類今時何物? (比段中小字先生批.)

 

이 몇몇 조목은 대부분 자세하지 않다. 다만 ()’󰡔주례󰡕再貳一貳라고 할 때의 이()이다. 반드시 먹던 것을 다 먹은 다음에 더 보태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執虛挾匕 부족한 것을 보고서 다시 주는 것이다. 다만 제기 속에 음식물이 있는데도 비었다[]

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故執虛挾匕, 視其不足者而貳之. 但豆中有物而謂之虛, 此不可曉爾.

 

󰡔대학󰡕밝은 덕을 밝힌다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모두 지극한 선에 머물려는 것이요, () 1장을 결론맺는 말도 스스로를 밝힌다고 말하는 것에 그쳤는데, 2장를 결론맺는 말에서는 그 극치를 쓰지 않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大學明明德新民, 皆欲止於至善, 而傳之一章結語止言自明, 而二章結語乃言無所不用其極.

 

2장은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것과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겸해서 밝혔기 때문에 두 가지를 통틀어 결론맺었다. 아래 장에서 다시 지극한 선에 머문다는 뜻을 바르게 풀이했으니 애초부터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二章兼明自新新民之事, 故通結之. 下章又自正解 止於至善之意, 初不相(5-3021)妨也.

 

호자(胡子: 호굉)󰡔지언󰡕에서 천하에 마음보다 큰 것이 없으니, 미루어 나가지 못하는 것이 걱정일 뿐이요. 본성보다 오랜 것이 없으니 따르지 못하는 것이 근심일 뿐이다. 명보다 완성된 것이 없으니 믿지 못하는 것이 근심일 뿐이다. 미루어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 안팎이 하나가 되지 못한다.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삶과 죽음, 낮과 밤이 통하지 못한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부유하거나 귀하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편안하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께서 예전에 연평선생이 󰡔정몽󰡕을 읽을 때의 말을 몽량에게 보여주셨는데, 이 이후에 오봉 호자의 책을 결국 감히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문단의 말은 이미 익숙하게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는 마음에 자와 자를 붙이고, 본성에 자와 자를 붙이며, 운명에 자와 자를 붙이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아마도 대()자는 천지와 몸을 같이한다는 뜻이고, ()자는 단지 항상 그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은 한 가지로 결정되어 바뀌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胡子知言: ‘天下莫大於心, 患在不能推之爾. 莫久於性, 患在不能順之爾. 莫成於命, 患在不能信之爾. 不能推, 故人物內外不能一也. 不能順, 故死生晝夜不能通也. 不能信, 故富貴貧賤不能安也.’ 先生嘗以延平先生正蒙書語示夢良, 此後五峰胡子書竟未敢看. 然此段語已嘗熟誦, 自見得說心著 , 性著 , 命著 字爲有理. 亦是與天地同體之意, ‘只是常而不變之意, ‘只是一定不易之意否?

 

이 문단은 좋지만 두 가지씩 뽑아 낸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此段好, 但點出兩處理會不得.

 

공자께서 시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다’” 이 구절에 대해 정자(程子)한나라 이래로 모든 유자들이 이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기에서 성인의 마음이 순수하고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순수하고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하늘의 덕[天德]이다. 하늘의 덕이 있어야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는데, 그 핵심은 근독(謹獨)에 달려있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 핵심이 근독에 달려있다는 것은 공부에 끊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 程子: ‘以來, 儒者皆不識此義, 此見聖人之心純亦不已也. 純亦不已, 乃天德也, 有天德便可語王道, 其要只在謹獨.’ 竊意其要在謹獨, 莫是工夫無間斷否?

 

시내의 흐름이 그치지 않는 것이 하늘의 운행[天運]이고, 순수하고 그치지 않는 것은 성인의 마음이다. 근독은 그치지 않는 이유가 되니 배우는 사람의 일이다.

川流不息, 天運也; 純亦不已. 聖人之心也. 謹獨所以爲不已, 學者之事也.

 

인이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비유를 취할 수 있으면 인의 방법이라고 이를만 하다.” 󰡔논어집주󰡕에서는 위 한 구절은 인의 본체를 설명하는 것이고, 아래 한 구절은 인의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자는 이 두 구절을 합쳐서 이처럼 인을 보게하려고 해야 인의 본체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夫仁者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集注以上一截說仁之體, 下一截說仁之術, 程子於此二截乃合而言曰: ‘欲令如是觀仁, 可以得仁之體.’

 

정자가 합쳐서 말한 것은 위 아래 구절이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두 구절로 나누어 보는 것만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자의 마음이 이와 같다는 것을 미루어 나간다면 인을 추구하는 방법도 반드시 이와 같을 것입니다.

程子合而言之, 上下句似不相應, 不若分作兩截看. 然惟其仁者之心如此, 故求仁之術必如此也.

 

 

진여숙에게 답함 答陳與叔

 

보내주신 의문에 대해 각각 비답을 붙여 보냅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또 의리의 측면에 마음을 두고서 제도 명물에 대해서는 조금 늦추더라도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所示疑義, 各已批鑿附回. 幸更思之, 且於義理上留心, 制度名物少緩, 亦不妨也.

 

 

 

방이지에게 답함 答方履之

 

해제이 글은 소희 원년(경술, 1190, 61)에 방대장(方大壯)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문을 닫고 글을 읽으며 과거(科擧)에 대한 생각을 저버렸다고 하니, 자신에 대한 계획이 이미 단호한데 다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멀리에서 높은 기풍(氣風)을 들으니 다만 감탄하는 마음만 더해집니다. 다만 이른바, 어려운 부분은 그대로 지나가고 다시 의심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렇게 하면 글 보는 것이 범연(泛然)하게 되어 득력(得力)하지 못합니다. 당장은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지만 뒷날 귀착(歸着)할 곳이 없어 처음부터 배운 적도 없는 자와 같이 멍청하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도리어 많은 일에 혼란이 빚어질 것입니다. 평소 붕우(朋友)들 사이에 자질이 좋으면서도 이 비슷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는 개인적으로 깊이 탄식하고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대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인편을 통해 편지를 보내고 아울러 이렇게 알려드립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杜門讀書, 謝去場屋, 自計已決, 夫復何言? 逖聞高風, 第劇歎尙. 但所謂難者過之, 不復致疑, 此則汎汎悠悠, 恐不得力. 目前雖似無事, 向後無歸宿處, 茫然如未始學者, 則恐不免却有多事之累也. 平生見朋奮間好資質而似此者多矣, 私心嘗竊深歎借之, 故不願賢者之爲之也. 因便寓書, 幷此奉曉, 幸試思之, 以爲如何也.

 

 

방약수에게 답함 答方若水()

 

해제이 글은 소희 원년(경술, 1190, 61)에 방임(答壬)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용암(龍巖)으로 갔던 길에 실상을 들었습니까? 죄없는 사람이 원한을 품고 죽지 않고, 죄지은 자가 형벌을 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조용히 물러나겠다는 말도 매우 좋습니다. 다만 지금은 사람을 물러나게 할 것이 아니라 본분(本分)에 따라 청렴과 수치를 알아서 감히 자신을 자랑하거나 스스로를 내세워 알아 주기를 구하고 나아가기를 구하지 않도록 할 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글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마음속에서 이 이치를 환하게 보아서, 구하지 않는 것은 본분이고 구하려고 하면 곧 죄나 허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하려는 자취를 두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구하는 마음을 싹틔워서도 안 되며, ‘구한다[]’는 글자도 말하지 말아야 할뿐만 아니라 구하지 않는다[不求]’는 글자조차 말하지 않아야 만이 참으로 자신을 지키고 남이 알아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龍巖之行, 若問得實, 使無罪者不以冤死而有罪者無所逃刑, 此非細事也. 靜退之說亦甚善, 但今亦未是敎人求退, 只是要得依本分, 議廉耻, 不敢自衒自驚, 以求知求進耳. 然亦須是讀書窮理, 使方寸之間洞見此理, 知得不求只是本分, 求著便是罪過, 不惟不可有求之之迹, 亦不可萌求之之心; 不惟不得說著求字, 亦不可說著不求字, 方是眞能自守, 不求人知也.

 

 

방자실에게 답함 答方子實(芹之)

 

해제이 글은 소희 원년(경술, 1190, 61)에 방영지(方泳之)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지난 번 지나 갈 때 다행히 한 번 만날 수 있었습니다. 헤어진 지 또 몇 달인데 그리는 마음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동생이 와서 편지를 받고서야 요즘 가을날이 차가워지는데 근황이 좋다는 소식을 알고서 위안이 됩니다. ()는 요즘 약간의 견책을 당하기는 했습니다만 말할 만한 것은 못 됩니다. 장태(長泰)에 계시는 형님과도 다행히 일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거리가 멀지 않아 때로 서로 만나기도 합니다. 발문의 말[跋語]이 자못 바르다고 할 수 없는데도 수고롭게 각을 하셨다니 부끄러운 마음만 더욱 깊을 뿐입니다.

昨者經由, 幸獲.一見. 別又數月, 豈勝馳情令叔來, 承書, 獲審比日秋冷, 德履佳勝, 爲慰. 比幸粗遣, 無足言. 長泰令兄幸得同事, 相去不遠, 亦時相見也. 跋語殊犯不韙, 更勤刻晝, 爲愧益深耳.

 

보내 오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경()을 위주로 한다는 학설과 같은 경우는 선현(先賢)의 생각으로서는 대개 학자들이 자신을 지킬 줄을 모르고 몸과 마음을 방만하게 함으로 의리를 보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잔정하고 엄숙한 습관부터 들여 방자하고 게으른데 이르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니, 그렇게 되면 마음이 안정되고 이치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는 바로 정자께서 말씀하신, “지켜서 안정시켜야 분주하게 달아나지 않는다고 한 뜻이니, 지켜서 안정시켜 분주하게 달아나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주일이고, 주일은 바로 경()입니다. 이것은 다만 이리저리 돌려가며 서로 해석한 것이지, 마음을 잡아주는 것 외에 별도로 주일이 있고, 주일의 밖에 별도로 경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示喩主敬之說, 先賢之意蓋以學者不知持守, 身心散漫, 無緣見得義理分明, 故欲其先且習爲端莊整肅, 不至放肆怠墮, 庶幾心定而理明耳. 程子無適訓之訓往而讀如字, 論語無適適 訓專訓主而讀如’, 其音義皆不同, 不當以此而明彼, 細考之可見. 程子之云, 只是持守得定, 不馳驚走作之意耳. 持守得定而不馳驚走作, 卽是主一, 主一卽是敬. 只是展轉相解, 非無適之外別有主一, 主一之外又別有敬也.

 

 

하거원에게 답함 答何巨元(進之)

 

[해제] 이 글은 하거원(何巨源)에게 답하는 글이다. 소옹의 인물지설(人物之說)을 논하고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책을 읽는 것도 참으로 즐길만한 일이겠습니다만, 학교에 들어가 있으면서 또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도 당신께서는 번거로운 응접을 꺼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물에 대한 주장을 보내주셨는데, 모르겠습니다만 강절의 뜻은 과연 어떠한지요? 또 보내신 편지처럼 음양으로 나누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천도는 복에서 건까지가 양이고, 구에서 곤까지가 음입니다. 음양의 주장하는 의미에 이미 선악의 구분이 있다면 인물의 품부에도 순잡의 변론이 없을 수 없습니다. ‘손이 찾고 발로 이른다는 말은 한 때 내놓은 잘못된 주장이니 깊이 논의할 것은 못됩니다. 당시에는 다만 구가 위에 있고 복이 아래에 있다는 이유 때문에 손과 발로 말했을 뿐입니다. 사단(四端)에 대한 주장은 체용(體用)으로 말한다면 체는 시작이 되고 용은 마지막이 됩니다. 발현하는 곳으로부터 말한다면 발현하는 처음이 시작이 되고, 발현의 끝이 마지막이 됩니다. 두 설명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익숙하게 완미하시면 아실 것입니다. 바삐 회답을 보냅니다. 다시 생각해보시고 온당치 못한 점이 있거든 다시 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杜門讀書, 固爲可樂, 而人居學校, 又可推以及人, 想賢者於此亦不憚應接之煩也. 示喩人物之說, 未知康節之意果如何. 但如來諭以陰陽分之, 似亦有理. 大抵先生圖爲陽, 爲陰. 陰陽所王旣有淑慝之分, 則人物所眞亦不能無純駮之辨也. 手探足躡, 出於一時之謬說, 無足深論. 當時但以在上而在下, 故以手足言之耳. 四端之說, 若以體用言之, 則體爲首而用爲末. 若自其發處而言, 則發之初爲首而發之終爲末. 二說亦不相妨, 熟玩之可見也. 匆匆奉報, 幸更思之, 有所未安, 復以見喩, 幸甚.

 

 

정성보에게 답함 答程成甫

 

제가 두 선생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긴 지 몇 년이 됩니다. 다행이 그 시를 외우고, 긁을 읽고 있음에도 그 자손과 알고 지내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됩니다. 지금 편지를 주시니 감격한 마음 헤아릴 길 없습니다. 또 세차와 행치를 자세히 서술해서 알려주시니 더욱 큰 현인의 후예가 중간에 유락해서 불우하게도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고, 심한 경우에는 자손이 끊어져 들을 수도 없다고 하니 탄식이 나옵니다. 오직 다행스럽게도 현자께서는 이런 지경에서도 능히 그 문호를 수호하면서 그 문학의 전수를 잃지 않았다고 하니 충분히 위안이 됩니다. 지금 군의 박사가 또 능히 굽혀 학교의 중책을 맡기려 하니 현자에게 소망하는 것이 어찌 선생의 복을 입고, 선생의 말을 외우며, 선생의 행실을 행함으로써 학자를 경동시켜 격려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타이 대하시는 은혜에 감히 그 주장을 펴서 제 뜻을 전합니다. 오직 당신께서는 유념해 주십시오.

服膺二先生之敎有年矣, 雖幸得誦其詩, 讀其書, 然猶以未得識其子孫爲恨. 玆乃辱書, 欣感無量. 且承叙述世次行治之詳, 使得聞之, 又嘆大賢之後中間(5-3026)留落不偶至於如此, 甚者遂至淪陷隔絶而無聞. 獨幸賢者於此乃能守其門戶而不失其問學之傳, 猶足以自慰也. 今郡博士又能屈致以爲學校之重, 其所以望於賢者, 豈不欲其服先生之服, 誦先生之言, 行先生之行, 以警動其學者而勉勵之哉? 荷意之勤, 敢申其說, 以致區區之意, 惟左右者念之.

 

 

두문경에게 답함 答竇文啣

 

보내 오신 편지에서 학문에 나아가는데 게을리 하지 않는 뜻을 알고 계신다고 하니 매우 좋습니다. 다만 스스로 의심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문득 곧 변론(辯論)만 하고 행하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 것은 아마도 깊은 못에 임하여 높다고 여겨 나아가기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같은 병폐가 있는 듯하니 또한 자신을 한정짓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저 사람들은 공허(空虛)한 말로 변론을 만들고 우리는 실제 본 것으로 의심을 하는 것이 서로 무방합니다. 진실로 저 사람들처럼 혐의쩍은 행동을 하여 탐구하는데 게을러서는 안 되고, 또한 일괄적으로 저 사람들이 다 공허한 말만 한다고 보아서 미리 그들이 전혀 실제로 본 것이 없다고 간주해서도 안 됩니다. 안자(顔子)가 능하면서도 능하지 못한 사람에게 묻고 학식이 많으면서도 적은 자에게 물었지만 어찌 감히 자신은 옳고 남은 그르다고 하며 진전(進展)이 없는 곳에 스스로 편안히 있은 적이 있었습니까? () 선생께서, “의심스럽지 않은 데에서 의심을 해야 큰 진보(進步)가 있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깊이 염두해 두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사서(四書)를 읽어 때때로 성찰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뜻은 매우 좋지만 어찌하여 아무런 의심도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처음부터 읽어 가면서 매 단락마다 생각하고 완미(玩味)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곳을 보지 못한 듯합니다. 만약 과연 이러하다면 우선 한 책을 보면서 단락마다 생각하고 반복적으로 음미하여 한 책이 끝나면 따로 한 책을 바꾸어 보는 것이 낫습니다. 󰡔근사록(近思錄)󰡕이 요즘의 학문의 규모와 병폐를 설명하는 것이 친절합니다. 겸해서 보시면 좋을 겁니다. 공근(公謹)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합니다. 만나게 되면 번거롭더라도 제 뜻을 전해 주십시오. 그는 여동래(呂東萊)를 좇아 󰡔춘추좌전󰡕을 읽었으니, 의당 인정과 사물의 세태에 대하여 곡절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처럼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덕장(德章)도 아마 그 관직을 편안하게 여기지 않아 자못 윗 사람과 아랫 사람을 탓하면서도 그 중간의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다루는뜻이 있는 것 같던데다 학문에 힘을 얻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것을 보게 되면 진실로 통렬하게 경계하고 반성해서 실제적인 공부를 해야만 합니다.

辱書, 知進學不倦之意, 甚善甚善. 但自以不能致疑, 便謂賢於辯論而不能行者, 似有臨深爲萵, 不求進益之病, 亦未免爲自畫也. 彼以空言生辯, 我以實見致疑, 自不相妨, 固不當以似彼爲嫌而倦於探討, 亦不當一槪視彼皆爲空言而逆料其全無實見也. 顔子以能問不能, 以多問寡, 曷嘗敢是己非人而自安於不進之地哉? 程先生說於不疑處有疑, 方是長進, 此不可不深念也. 知日誦四書, 時時省察, 此意甚善. 但不知何故都無所疑? 恐只是從頭讀過, 不曾逐段思索玩味, 所以不見疑處. 若果如此, 則不若且看一書, 逐段思索, 反復玩味, 俟其畢而別換一書之爲愈也. 近思錄說得近世學問規模病痛親切, 更能兼看亦佳也. 公謹未及附書, 相見煩致意. 渠從呂東萊左傳, 宜其於人情物態見得曲折. 今乃如此不解事, 何耶? 德章似亦不安其官, 頗有責上責下而中自恕之意, 皆是學間不得力處. 吾輩觀此, 眞當痛自警省, 實下工夫也.

 

 

두문경에게 답함 答竇文卿

 

학문은 하는 요체는 다만 착실하게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찬찬하게 체인(體認)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경솔하게 자신을 드러내어 외부 사람들의 변론을 야기시킴으로 해서 헛되이 응답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여 내면(內面)을 향한 공부가 갈라지는 일은 절실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爲學之要只在著實操存, 密切體認, 自己身心上理會, 切忌輕自表襮, 引惹外人辯論, 枉費酬應, 分却向蘗工夫.

 

 

두문경에게 답함 答竇文卿

 

보여 주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학문하는 어려움이 어찌 오늘날 우리들만 그러하겠습니까? 다만 날마다 자신을 지키고 성찰하는 공부를 더하면서 강론하고 토론하는 학업을 폐하지 말고 전적으로 옛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학문하던 것을 본보기로 삼고 오늘날 사람들이 남을 위해 학문하는 것을 깊이 경계한다면 평소의 뜻을 저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示喩問學之難, 豈獨今日? 吾黨但當日加持守省察之功, 而不廢講誦討論之業, 專以古人之爲己者爲師, 而深以今人之爲人者爲戒, 則庶乎其無負平生之志矣.

 

 

두문경에게 답함 答竇文卿

 

남편이 아내의 상을 당해 아직 장례를 지내지 않았든지 이미 장례를 지냈든지 간에 복()을 벗지 않았다면 그때는 제사를 지냅니까? 제사 지내서는 안 된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제사를 지낸다면 어떤 복을 입어야 합니까?

夫爲妻喪, 未葬或已葬而未除服, 當時祭否? 不當祭則已, 若祭則宜何服?

 

제사지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저의 집에서는 사계절의 정제(正祭)를 폐하고 오히려 절사(節祠)는 남겨 두었는데 다만 심의(深衣)와 양삼(凉衫)같은 것만 사용합니다. 이것은 또한 임시로 변통한 것[義起]인지 참고할 수 있는 올바른 예가 없습니다. 절사에 대해서는 한위공(韓魏公)제식(祭式)을 보십시오.

恐不當祭. 家則廢四時正祭而猶存節枸, 只用深衣凉衫之屬, 亦以義起, 無正禮可考也. 節祠見韓魏公祭式.

 

(상을 당해) 장사를 지내지 않으면 (다른) 제사를 지내지 않는 법이지만, 때로 이 금기를 어겨야 하는 경우를 당하면 제사를 지내야하는 것인지 어쩐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일 제사를 지낸다면 또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未葬不當祭, 時或遇先忌, 又不知當祭否? 若祭, 則又何服?

 

기제(忌祭)는 상제(喪祭)의 나머지이니, 제사를 지내더라도 혐의가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정침(正寢)에 이미 궤연(几筵)을 설치했으면 곧 제사지낼 곳이 없으니, 그런 경우에는 잠시 정지해도 될 것 같습니다.

忌者喪之餘, 祭似無嫌. 然正寢已設几筵, 卽無祭處, 恐亦可暫停也.

 

신주를 쓰면서 남자나 부인이나 관과 관련된 호칭이 없을 때는 어떻게 써야 합니까?

凡題主, 男子婦人無官稱者宜何書?

 

이천(伊川)주식(主式)에서 이미 자세히 말하고 있으니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伊川主式已詳言之, 可考也.

 

남편이 살아있는 경우 부인의 신주에는 어떻게 씁니까? 또 어떤 사람이 제사를 받드는 것입니까? 남편이 제사를 받듣다면 씨 신주라고 쓰고, 그 곁에 라고 씁니까? 남편이 부인의 제사를 지내면서 ‘(제사를) 받든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높이는 것이 아닙니까?

夫在, 妻之神主宜何書? 何人奉祀? 若用夫, 則題 嬪某氏神主’, 旁注夫某祀? 夫祭妻而云奉事, 莫太尊否?

 

곁의 주는 어른에 대해 쓰는 것이므로, 그 이하에 대해서는 쓸 필요가 없습니다.

旁注施於所尊, 以下則不必書也.

 

옛날에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자식이 어머니의 기제사를 지내거나, 남편이 부인의 기제사를 지내거나, 연제()상제()담제의 경우 모두 같았습니다. 오늘날의 제도에는 남편이 부인을 위해 상복을 입는 것은 옛과 같지만, 자식이 어머니를 위해 자최복 3년을 입는다면 남편이 부인을 위해 대상을 지내는 날은 바로 자식이 어머니를 위해 소상제를 지내는 것이 됩니다. 자식이 어머니를 위해 대상 및 담제를 지내는 데에 이르러서는 남편은 이미 상복이 없는데 그 제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마도 남편이 제주가 되어 남편 아무개가 자식 아무개를 위해 상제를 올린다[夫某爲子某薦其祥事]’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증자문편에서 종자가 개자를 위해 올리는 (제사의) 예와 같은데 어떨는지 모르겠습니다.

古者父在子爲母期, 夫爲妻期, 其練禫之祭皆同. 今制夫爲妻服與古同, 而子爲母齊衰三年, 則夫爲妻大祥之日, 乃子爲母小祥之祭矣. 至於子爲母大祥及禫, 夫已無服, 其祭當如何? 恐只是夫爲祭主, 其辭曰: ‘夫某爲子某薦其祥事’, 會子問宗子爲介子之禮, 不識可否?

 

오늘날의 예에 의하면 궤연은 반드시 3년이 된 다음에 치우니, 소상(小祥)대상(大祥) 역시 남편이 주재해야 합니다. 다만 소상 이후에 남편은 곧 상복을 벗으니 대상의 제사는 남편은 아마도 소복(예를 들어 조복이면 될 것입니다)을 입고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다만 축문을 고쳐서 자식을 위해 제사지낸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今禮几筵必三年而除, 則小祥大祥之祭皆夫主之. 但小祥之後, 夫卽釋服, 大祥之祭, 夫亦恐須素服(如弔服可也)以祭, 但改其祝詞, 亦不必言爲子而祭也.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우, 아버지는 이미 기년복을 벗었는데, 자식은 오히려 상복을 입게 됩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뵐 때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父在母沒, 父旣除期之喪, 子尙爲母服, 其見父之時當以何服?

 

이런 경우는 예경에 문장이 없습니다. 다만 문상편에 아버지가 계시면 지팡이를 짚지 않는다는 말은 있으니, 다시 의소를 검토해서 참고해 정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此於無文, 間喪有父在不杖之說, 可更檢疏議參訂之

 

자식을 낳은 생모가 돌아가면 신주에 어떤 호칭으로 써야 합니까? 제사는 어느 곳에서 모시고, 부묘는 어느 곳에 하게 됩니까?

子之所生母死, 不知題主當何稱? 祭於何所? 祔於何所?

 

오늘날 법제의 오복연월(五服年月)편 가운데 ()’자 아래의 주에, “자기를 나은 자를 말한다라고 했으니 다만 라고 하면 됩니다. 만약 적모(嫡母)가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면 망모(亡母)라고만 일컫고 비()라고 일컫지 않음으로서 구별하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이천(伊川) 선생은 사실(私室)에서 제사지낸다고 했습니다.)

今法五服年月篇中, ‘字下注云: ‘謂生己者’, 則但謂之母矣. 若避嫡母, 則止稱亡母而不稱批以別之可也.(伊川先生云祭於私室).

 

󰡔예기󰡕 「상복소기에서는 첩인 어머니는 대대로 지사지내지 않는다라고 했고, (정현은 주에서) “자식은 제사 지내지만 손자에서 그친다고 했습니다. 첩은 남편 할아버지의 첩[妾祖姑]에게 합사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대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훗날 자손 중에 첩인 어머니를 둔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합사할 남편 할아버지의 첩이 있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만 제사를 지내면서 몇 대에서 그쳐야 할까요?

禮記: “妾母不世祭.” “於子祭, 於孫止.” 又曰: ‘妾祔于妾祖姑.’ 旣不世祭, 至後日子孫有妾母, 又安有妾祖姑之可祔耶? 不知合祭幾世而止?

 

이 조목은 상세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예기󰡕를 읽을 때도 언제나 의심스러웠습니다. 더 찾아보고 고증하기를 기다려야겠습니다.

此條未詳, 舊讀亦每疑之, 俟更詢考也.

 

첩인 어머니를 대대로 제사지낸다면 그 손자가 훗날 남편 할아버지의 첩을 제사모실 때 어떻게 불러야 하고, 자기 자신은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妾母若世祭, 其孫異日祭妾祖母, 宜何稱? 自稱云何?

 

대대로 제사지내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제사지낸다면 조모(祖母)라고 일컫고 스스로는 손자라고 하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世祭與否未可知. 若祭, 則稻之爲祖母而自稱孫無疑矣

 

 

 

이공회에게 답함 答李公晦

 

보내신 편지의 몇몇 조목에서 소씨(蘇氏: 蘇軾)먼 생각[遠慮]’에 대한 주장은 단지 비유일 뿐이니 오로지 땅으로만 말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所喩數條, 蘇氏遠盧之說只是譬喩, 未必專以地言.

 

󰡔논어󰡕 「위령공편의 ()를 도모한다는 한 장()의 경우는 만약 옛 설명을 취한다면 두 가지의 말이 중복()되어 나오는 것이 됩니다. 아울러 녹()을 구하는 것을 배우려는 혐의가 있으니, 지금의 문장이 사리(事理)에 맞고 뜻이 정밀한 것만 못합니다. 양지지(楊至之)의 집안이 평범치 않은 소용돌이에 휘말렸는데 매우 염려됩니다. 그가 근래 강론한 것이 다 정밀하고 세밀하지만 지난 날 화가 났을 적에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았다가 이러한 일을 만들어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끼쳤으니,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듣기로는 그의 적들이 최근에 사람을 사방으로 보내 찾아다닌다고 하는데, 이곳까지 와서 찾아 캐묻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지혜가 미치지 못해 붙잡아다 관으로 보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요즘 장()()황보(皇甫)황상백(黃商伯) 네 사람을 탄핵 논죄하는 장은 누구의 손에서 나왔습니까? 세밀하게 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謀道一章, 若取舊說, 則二語爲復出矣. 兼又有以學求祿之嫌, 恐不若今文協而義精也. 知及仁守之說則是, 但此亦泛言, 如云知之非艱, 行之惟艱, 古之聖賢亦未嘗無此戒也. 恕之示義亦佳, 先儒訓詁頁是不草草也. 正思所言, 覽之今人感歎. 偶其鄕人有在此者, 當轉致其家也. 至之一族被擾非常, 極可念. 渠近日講論儘精細, 但前日忿不思難, 生此事端, 累及無辜, 爲可恨耳. 聞其敵近日遣人四出捕鰻, 至有來此登門尋覓者, 惜不及知, 不得收縛送官耳. 近日皇甫黃商伯四章各出何人之手? 幸密批示.

 

 

이공회에게 답함 答李公晦

 

묘명에 대해서는 이전에 이미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이런 걱정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자약(子約)이 세상을 떠난 것은 너무도 가슴아프고 슬픈 일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 마음 속에 슬픔을 간직한 채 여러 천객들을 돌래보낼 수 있을가요?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춘릉(舂陵)의 부탁은 화를 불러오기에 족할 뿐입니다. 또한 오히려 복지(復之: 丁克)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편지를 써서 그의 행동을 극력 말려야 할 뿐입니다. 요즘에 소자유임덕옹의 문자는 이미 보셨을 것입니다. 의춘의 꾸짖은 것은 지금껏 알 수 없으니 이것이 최근 일의 거울입니다.

墓銘前已爲令叔言之矣, 若無此慮, 豈敢辭也. 子約之亡, 深可痛悼. 不知諸公能因此事側然於中, 盡還諸遷客否? 如其不然, 舂陵之請適足爲禍, 亦尙未見復之, 當卽作書以力止其行耳. 近日蘇子曰任德翁文字當已見之, 宜春之詬, 至今未知, 此近事之鑒也

 

 

이공회에게 답함 答李公晦

 

말씀하신 네 가지는 예전에 그곳에 있을 때 다 들은 것이지만 이치를 밝히는 데에는 부족합니다. 이것은 동파(東坡)가 말한 불을 붙이지 않으면 끝내 밝게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에 대한 해설은 요즘에 국풍몇 권을 손보았으니, 예전의 판본은 내놓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所喩四說, 往歲在彼固皆聞之, 只是欠却明理, 其說如東坡所謂不以火點終不明耳. , 近修得國風數卷, 奮本且未須出, 甚善.

 

 

 

이처겸에게 답함 答李處謙

 

지난 번 멀리 찾아주셨을 때 한 번 뵙지 못한 것이 깊이 한스러웠습니다. 책에 마음을 두고 읽고 있다니 당신께서 품은 의지와 많은 재능을 알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昨辱遠訪, 深以不獲一見爲恨. 及得所留書而讀之, 益知賢者之有志, 慶閥之多才, 又重以爲喜也.

 

대개 학문을 하는데는 마음을 잡아 두는 것을 우선해야 하지만 치지(致知)와 역행(力行)도 어느 것 하나 폐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이미 하나의 장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성급하게 그것을 믿고서 저것을 경시(輕視)하여 교만하고 인색하며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는 사심을 길러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그 장점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애당초 확정지을 수 없는데 이겠습니까? 무릇 일상생활하는 가운데 이러한 병통을 알아서 제거하고자 한다면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능히 없앨 수 있는 치료제입니다. 다만 굳게 지켜서 늘 스스로 경계하고 자각해야지, 굳이 망령된 생각으로 추구하여 반드시 이 졸렬한 방법을 버리고서 기필코 기막힌 해법을 찾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大抵爲學當以存主爲先, 而致知力行亦不可以傀偏廢. 縱使己有一長, 未可遮遽恃以輕彼而長其驕吝克伐之私, 况其有無之實又初未可定乎? 凡日用間知此一病而欲去之, 則卽此欲去之心便是能去之藥. 但當堅守, 常自贅覺, 不必妄意推求, 必欲舍此拙法而必求妙解也.

 

 

유이지에게 답함 答劉履之

 

몸이 더욱 쇠약해졌습니다. 벗들과 반복해서 강론할 것을 생각하지만 외부의 일로 어수선하여 소원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지(履之) 같은 사람과는 또 거리가 멀어 조만간에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전적으로 당사자가 스스로 힘을 쓰는데 달려 있으니, 비록 날마다 사우(師友)들을 가까이 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공부하여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들어갈 곳이 있을 것입니다. 들어갈 곳을 얻게 되면 때에 따라 마음을 노닐어도 서로 방해되지 않을 것이니, 비록 과거(科擧)에 응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얽매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衰朽益甚, 思與朋友反復講論, 而外事紛擾, 不能如願. 履之, 又相去之遠, 不得早晩相見爲恨. 然此事全在當人自家著力, 蜼日親師友, 亦須自做功夫, 不今間斷, 方有入處. 得箇人處, 却隨時游心, 自不相妨. 雖應科擧, 亦自不爲科擧所累也.

 

 

양자순에게 답함 答楊子順 (履正)

 

보내 오신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옛사람의 학문이 비록 천하에 전해지지는 않았으나 도가 사람의 마음에 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세상의 학자들이 이미 대다수가 이록(利祿) 앞에서 허물어졌는데, 문사(文詞)를 아름답게 엮는 습관과 보고 들은 것을 주워 담는 공부가 또 밤낮으로 그 뒤에서 새어 들어가 다시는 도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비록 그 이름을 사모하여 힘써 행하고자 하지만 편안하게 여기는 것은 결국 저기에 있고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하기는 하여도 막막하여 마치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붙잡아 맬려고 하는 것처럼 얻지는 못하면 이런 것은 입과 귀로만 하는 습관적인 걸일 뿐이다라고 하면서, 나는 몸소 행하고 힘써 실천하는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이런 일을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학문이 비록 몸소 행하고 힘껏 실천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고 하지만, 학문을 강론하고 이치를 궁구하지 않고서는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남들이 인()이나 서(), 서명(西銘)이나 태극을 어지러이 떠들어대는 것을 싫어하면서 나는 하나라도 그런 생각을 통해 철저하게 살필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남들이 하수(河水)를 말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자신은 목말라 죽는 것을 달게 여기는 꼴이니 어찌 잘못되지 않겠습니까? 찾아와 주신다면 반드시 만나서 논의하겠습니다.

示喩具悉. 古人之學雖不傳於天下, 而道未嘗不在於人心. 但世之業儒者旣大爲利祿所決潰於其前, 而文詞組麗之習丶見聞掇拾之工又日夜有以滲泄之於其後, 使其心不復自知道之在是, 是以雖欲慕其名而勉爲之, 然其所安, 終在彼而不在此也. 及其求之而茫然如補風繫影之不可得, 則曰此亦口耳之習耳, 吾將求其躬行力踐之實而爲之. 殊不知學雖以躬行力踐爲極, 然未有不由講學窮理而後至. 今惡人言仁, 言恕, 西銘, 言太極者之紛紛, 而吾乃不能一出其思慮以致察焉, 是惡人說河而甘自渴死也, 豈不誤哉! 承許枉臨, 尙須面論.

 

 

양자순에게 답함 答楊子順

 

보내신 편지에서 논하신 학문 하는 큰 뜻은 이미 옳은 듯 합니다. 그대는 본래 스스로 도리를 말할 줄을 알아 그 말이 옛사람의 도리와 서로 비슷하여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실제적으로 체득한 것이 아니면 곧 여기에서 말한 것은 다 공허한 말로 일에는 도움이 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來書所論爲學大意似巳得之, 但賢者本自曾說, 說得相似却不爲難. 只恐體之未實, 卽此所說皆是空言, 不濟事耳.

 

또 뒤 편지의 󰡔맹자󰡕에 대한 주장으로 고찰해보면 앞 편지에서 말한 의리를 강론하고 밝히는 것이 함양하고 배식하는 밑바탕이라고 여긴다는 것은 아마도 정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도 오히려 정미하지 못하면 그 본령 공부 역시도 이와 비슷한 지경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맹자가 말한 반드시 일삼을 것이 있다는 말은 위 문장의 집의(集義)’를 이어서 말했습니다. 말의 맥락이 관통해서 ()’자의 의미도 내력도 없습니다. 다만 반복해서 읽는다면 곧 저절로 알 것이니 주석할 겨를도 없습니다. 명도의 말은 오히려 이 네 구절을 빌려다 ()’자의 측면에 옳겨놓고 말한 것으로, 이 장의 문장을 풀이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문의 뜻을 제대로 파악한 이천선생의 설명만 못합니다. 그렇지만 자가 곧 조장이라고 풀이한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어느 곳에서 지나치게 바로잡으면 마침내 조장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 것이 기억나는데 이 말이 도리어 근사합니다만 완전치는 못합니다. 만일 본문의 맥락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서 󰡔맹자집주󰡕를 자세히 고찰하면서 그 내용을 탐구하고 자세하게 체인한다면 맹자가 당시에 뜻을 세우고 문장은 만들면서 한 글자도 내력이 없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천착하고 견강부회하면서 심력을 헛되이 낭비해서 상호 연관이 없어지게 하지는 마십시오. 보내신 편지에서 말한 맹자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듯이 해설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학자들이 이 곳을 체인해서 끽긴하게 공부하기를 원해서였다고 하고, 학자는 몸을 닦고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하자마자 바로 조장이다. 고자석시의 학문이 모두 여기에 연루되었다고 하고 또 그 문장을 우활하게 왜곡하는 것을 싫어해서 주석을 따랐다고 했는데, 이들은 모두 옳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두 번째 대목은 더욱 잘못입니다. 다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又以後書孟子之說考之, 卽前書所謂講明義理以爲涵養培殪之地者, 似若未精. 此處尙且未精, 則其本預工夫恐未免亦類此也. 孟子所云必有事焉, 乃承上文集義而言, 語脈通貫, 卽無敬字意思來歷. 但反復讀之, 便自見得, 不假注釋矣. 明道之語, 却是借此四旬移在敬字上說, 非解此章文義, 不若伊川先生之說爲得本文之意. 然其解字卽是助長, 則亦末安. 記得一處說正之之甚, 遂至於助長, 此語却差近, 然猶有所末盡也. 若看得本文語脈分明, 而詳考集注, 以究其曲折, 子細識認, 見得孟子當時立意造語無一字無來歷, 不用穿鑿附會, 枉費心力而轉無交涉矣. 來書所云孟子不肯指認說, 欲學者體認此處喫緊工夫, 又云學者纔要修身正心, 便是助長, 告子釋氏之學皆坐此爾, 又云但嫌於迂曲其文, 以從汪釋, 此皆非是, 而第二條爲尤甚. 請更詳之也.

 

 

양자순에게 답함 答楊子順

 

논의하신 몇몇 조목은 모두 좋습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공부는 다만 이렇게 착실하게 노력하여 오래 되면 자연히 효과를 볼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한가한 말만 하면서 지나친다면 일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천하에 인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대략 그 효과로 말한 것이지 온 세상이 모두 나의 인을 알게 만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만일 능히 이와 같다면 비록 천하가 크더라도 다른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칭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는 진실로 나에게 급한 일이 아니지만 그 효과는 저절로 여기에 이르게 됩니다. 에를 들어 음식을 먹고 배부르고,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도 참으로 그런 이치입니다. ‘천하가 모두 내 인 속으로 돌아온다고 말한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설명이 장황합니다. ()()()()는 성의 네 가지 덕이요, 사단은 그 발현하는 곳이니 입니다. 맹자가 성을 논하면서 그 정으로 말하자면 선하다고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바로 그 발현하는 곳을 가리켜 본체에 이것이 있음을 밝힌 것일 뿐이지 곧장 사단을 가리켜 성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종경(鍾磬)에는 특현(特懸)이 있고 편현(扁懸)이 있습니다. 특현(特懸)은 그릇도 크고 소리도 커서 팔음(八音) 사이에서 잡다하게 연주하면 실과 대나무의 소리는 모두 가려져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만 곡조를 시작하거나 곡을 끝낼 때에만 그 본래 운율의 현을 때려서 시작과 끝의 절목이 되는 것입니다. 편현(扁懸)은 소리도 그릇도 모두 작습니다. 그래서 팔음의 사이에서 잡다하게 연주하더라도 다른 소리를 넘보지 않습니다. 오늘날 말하는 대악(大樂)’이란 그 제도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치로 미루어 보면 옛날에 뜻을 둔다면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할 뿐입니다.

혼과 기에 대한 설명은 근사합니다만 혼을 지()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 가운데 저절로 정밀하고 신령한 물건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혼일 뿐입니다. 이름을 바로잡는다[正名]는 한 가지 의리는 권도를 허락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상정으로 논하자면 결코 합치할 수 없습니다. 이를 제쳐두고 논하지 않고, 군신부자의 큰 윤리를 깊이 살핀다면 다른 곳에서 구하기를 기다릴 것 없이 경중과 취사의 사이에서 당연히 처신할 것을 알 것입니다.(이것은 고기를 먹으면서 말 간을 먹어 보았네 못먹어 보았네를 따지는 것과 같은 것으로 깊이 논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편지 안에 있는 말씀은 분노[悁忿] 외에도 시기하고 방비하는 생각까지 더하고 있어 매우 비루함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기질이 본래 고명하거나 넓지 못한 데다가 또 학문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힘을 얻은 곳이 없어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선 다른 것은 논하지 말고 다만 공자(孔子)께서,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겠다는 탄식을 하시면서 유독 자로(子路)만이 따라올 수 있다고 인정하자 자로가 듣고는 기뻐하였는데, 우선 이러한 곳에서 성현(聖賢)의 기상이 어떠한가를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분분하게 떠드는 것들이 마치 수많은 모기떼가 왱왱거리며 미친 듯이 날아 다니는 것과 같은데 어떻게 성현의 가슴속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러한 것들을 놓아 버리지 못한다면 다시 어떻게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곧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게 될 것입니다. 양지지(楊至之)는 거칠고 소략하여 그대처럼 세밀하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점은 도리어 떨쳐버린 듯하니,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所論數條皆善. 如克已復禮工夫只是如此, 著實用力, 久之自然見效. 若只如此做閑話說過, 則不濟事矣. 天下歸仁, 亦是略以其效言之, 非是便能使天下皆知吾之仁也. 但言若能如此, 則雖天下之大, 亦無異詞耳. 人稱不稱, 固非己之所急, 但其效自必至此. 如食而飽, 飮而醉, 亦固然之理也. 云天下皆歸吾仁之中, 却是太作意, 說得張皇了. 智是性之四德, 四端乃其發處, 乃所謂情也. 孟子論性, 而曰 乃若其情, 則可以爲善’, 正指其發處以明其本體之有是耳, 非直指四端爲性也. 鍾磬有特懸者, 有扁懸者. 其特懸者器大而聲宏, 雜奏於八音之間, 則絲竹之聲皆爲所掩而不可聽. 故但於起調畢曲之時擊其本律之懸, 以爲作止之節. 其扁懸者, 則聲器皆小, 故可以雜奏於八音之間而不相凌也. 不知今世所謂大樂者其制如何, 但以理推之, 意古者當如此耳. 魂氣之說近之, 但便謂魂爲知, 則又未可. 大抵氣中自有箇精靈痕物, 卽所謂魂耳. 正名一義, 乃可與權者之事. 今以常情論之, 決不能合. 不若且置勿論, 而於君臣父子大倫之正深致察焉, 則亦不待他求而其輕重取舍之間當自知所處矣.(此亦食肉之馬肝, 不須深論也.) 至於書中所說, 則狷忿之外, 加以猜防, 意思殊覺鄙陋. 此是氣質本不高明寬廣, 又爲學日淺, 未有得力處, 所以不免如此. 今且未論其他, 只夫子乘桴之歎, 獨許子路之能從, 子路闡之, 果以爲喜, 且看此等處, 聖賢氣象是如何? 世間許多紛紛擾擾, 如百千蚊蚊, 鼓發狂鬧, 何嘗人得他胸次耶? 若此等處放不下, 更說甚克己復禮? 直是無交捗也. 至之粗疏, 不如子順細密. 然此等處却似打得過, 正好相切磋也.

 

󰡔의례󰡕에 대해서는 이 곳에서 편집한 것이 대충 결정되었습니다만 인편이 바빠 자세히 알릴 겨를이 없습니다. 한스러운 것은 당신이 스스로 일어서는데 용감치 못해서 한 번 와서 함께 간행하고 정정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儀禮此間所編已略定, 便遽, 未暇詳報, 亦恨賢者未能勇於自發, 不能一來, 共加刊訂耳.

 

 

 

양자순에게 답함 答楊子順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 한다는 말은 이미 형기에 물들었고, 오성이 형이하라고 여긴다는 말은 모두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음양은 본시 형이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까닭은 이치요 형이상의 것이입니다. 다섯 가지 일은 본시 형이하의 것입니다. 그러나 오상의 성은 이치이고 형이상의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謂一陰一陽之謂道已涉形器, 五性爲形而下者, 恐皆未然. 陰陽固是形而下者, 然所以一陰一陽者, 乃理也, 形而上者也. 五事固是形而下者, 然五常之性則理也, 形而上者也. 試更思之, 卽可見矣.

 

 

양자순에게 답함 答楊子順

 

보내주신 의문은 만일 󰡕의 문장에 근거한다면 간기배(艮其背)’는 즉 그 장소에 그친다[止其所]’는 뜻입니다. 이천이 둘로 만들어 설명한 것은 아마도 경의 본 뜻이 아닐 듯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보지 않고자 한다는 것에 그친 것은 바로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는 뜻이니 학자에게 쓸모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所示疑義, 若據, 艮其背卽止其所之義, 伊川說作兩般, 恐非經之本指. 然其言止欲於無見, 乃非禮勿視勿聽之義, 於學者亦不爲無用. 更思之.

 

 

이보지에게 답함 答李寶之

 

해제이 글은 경원 3(정사, 1197, 68)에 이여규(李如圭)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의례경전통해󰡕의 체제를 논하고 있고 특히 제례제의부분을 주로 논하고 있다.

 

제례(祭禮)편은 대충 보았는데도 상당히 볼만했습니다. 다만 특생(特牲)편의 첫 조목은 앞편의 사례에 빗대어보면 당연히 제의(祭義)편에 들어가야 합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다시 자세히 고찰했다가 회답을 드리겠습니다. 오직 제법종묘(宗廟) 두 편을 여러 편의 뒤에 붙인 것은 제사의 강령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베껴서 여러 편의 앞에다 옮겨 두고 제례편의 첫구절이 되게 해야 겠습니다. 다만 과거에 만들었던 두 편은 지나치게 자질구레 한지라 지금은 제법한편으로만 통일시켜도 괜찮을 것입니다.(이와 같이 하면 왕제(王制)편의 한 문단과 󰡔주례󰡕의 귀시를 섬기는 항목 및 제법의 본문을 모두 실을 수 있을 터이니 반드시 나눌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제법에서 체제와 교제, ()로 모시고 종()으로 모신다고 한 것은 다시 󰡔국어를 살펴서 취사선택할 것이지, 정씨의 주[鄭注]를 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특생(特牲), 소뢰(少牢), 유사(有司), 제후흔묘(諸侯釁廟), 제후천묘(諸侯遷廟), 나헌(裸獻)(이름을 바꾸는 것이 매우 정당하지만, 앞 편의 사례들이 󰡔의례󰡕 본문에 의거해서 모두 아래로부터 위로 갔기 때문에, 그 순서가 이와 같아야 합니다) 그 다음은 제의내사(祭義內事)(이것은 보내온 편지와 같이 제의」․「제통편을 합쳐서 만들고, 앞뒤로 조상을 제사드리는 의의를 통틀어 말하기 때문에 또 내사(內事)’라는 두 글자를 덧붙여서 뒤 편과 구별한 것입니다) 중류(中霤), 교사(郊社), 제의외사(祭義外事)(이 편은 중류」․「교사두 편의 의의를 설명하는 것으로 사제(蜡祭) 등에 대한 설명을 여기에 덧붙입니다)이니, 이것이 제례편의 목차입니다. 그 나머지 대전(大傳)」․「외전(外傳)같은 과거에 이미 덧붙였던 것들도 포함시켜 함께 만들어도 괜찮을 겁니다. 다만 이 목차 가운데 제의(외 두 편) 중류」․「교사두 편은 아직 편집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체제교제 및 조로 모시고 종으로 모신다는 주장은 󰡔춘추공양전󰡕․󰡔춘추곡량전󰡕․󰡔국어󰡕․󰡔공자가어󰡕․󰡔춘추찬례(春秋纂例)󰡕 속에 있는 조씨(趙氏: 趙匡)의 설명횡거(橫渠)의 예설(禮說)을 통해 모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법」․「제의천묘편에 첨부한 기문[] 세 편은 지금 덧붙여 보내 드립니다. 이전의 주장에 비춰 다시 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중류」․「교사두 편도 함께 편집을 결정하고, 제의내사」․「제의외사두 편은 여러 편들의 뒤에 넣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제법내사편의 교의 제사는으로 시작하는 한 장은 제법외사편에 넣어야 합니다. 다른 것도 모두 이것을 따릅니다.

祭禮略看, 已甚可觀. 特牲第一條準前篇例, 合入祭義. 其他更俟詳考, 續奉報. 祭法宗廟兩篇附諸篇後, 不見祭祀綱領, 恐須依向寫去者移在諸篇之前, 祭禮之首. 但舊作兩篇太細碎, 今可只通作祭法一篇,(如此則王制一段, 周體事鬼神示之目及祭法本文皆可全載, 不必拆開矣. 祭法禘郊祖宗更考國語去取, 注恐不可用.) 特牲, 少牢, 有司, 諸侯釁廟, 諸侯遷廟, 裸獻, (易名甚當, 但前篇之例依儀禮本文皆自下而上, 故其序當如此.) 祭義內事, (此如來示, 祭義祭統爲之, 通言上下祭先之義, 故又加 內事二字, 以別後篇.) 中霤, 郊社, 祭義外事, (此爲中霤郊社兩篇之義, 其蜡祭等說亦附此.) 祭禮篇目也. 其他大傳外傳向已附去者, 可幷爲之. 只此目中祭義(內外二篇)中霤郊社二篇亦未編定, 幸幷留念也. 楴郊柤宗之說, 國語家語趙氏春秋纂例中說橫渠禮說皆當考也.

祭法祭義遷廟三篇今附還, 可照前說重定爲佳. 中霤郊社二篇可幷編定, 祭義外事兩篇幷處諸篇之後亦佳. 祭法郊之祭也一章當人外事篇, 他皆放此.

 

 

오중빈()에게 답함 答吳仲玭()

 

해제이 글은 오빈(仲玭)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경제문형󰡕에서는 이 편지의 주요 내용을 도를 추구하는 학자는 일상 생활에서 몸소 실천하는 실제적인 데에서 추구해야 한다[學者之求道 當求之於日用躬行之實]’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다.

 

희는 더딘 자질을 타고나 어려서부터 도를 드고 종신토록 추구했지만 소득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잘못 들으시고 더불어 말할만한 사람이라고 여겨 가르침이 자세하였으니 모두 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인 중방(仲方: 吳琮)이 판원(判院)으로 왔고, 또 다행히 자주 교유하면서 열어주고 깨우쳐 준 것이 비록 많지만 합치하지 않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희는 이미 잠깐 질병이 생겼고, 공사로도 어지러워 바삐 돌아오는 도중에 중방(仲方)도 매우 좋지 않아 결국 그 주장을 다하지 못한 것이 지금껏 한스럽습니다.

遲鈍之資, 總角聞道, 終躬求之, 未有得也. 賢者誤聽, 以爲可與言者, 誨諭詳悉, 皆非所敢當也. 而令弟仲方判院之來, 又幸敷得從容, 開警雖多, 然所未合者亦不少. 旣以乍到疾病, 公私紛冗, 而匆匆遽歸之際, 仲方亦不甚佳, 遂不得竟其說, 至今以爲恨也.

 

()의 체용(體用)이 비록 지극히 깊고 은미하지만 성현께서 말씀하신 것은 매우 명백하니, 학자가 진실로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생각하여 천천히 일상생활의 몸소 행하는 실제에서 구한다면 그 광대한 규모와 상세한 내용을 한가롭고 고요한 가운데에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얻어진 맛은 비록 싱겁지만 실제는 기름지고 그 뜻은 비록 얕지만 실제는 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하는 것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부자(程夫子)께서는, “학문은 치지(致知)보다 더 먼저해야 할 것은 없지만 능히 치지(致知)를 하는데에는 경()에 있지 않은 자는 없다고 하였고, 소강절(邵康節)이 장자후(章子厚: 章惇)에게 고하기를, “자네와 같은 재목이라면 나의 학문을 순식간에 다 알 수 있겠지만 산속에 들어가 10년 내지 20년 정도 함께 지내면서 속세에 대한 생각을 말끔히 없애어 가슴속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야 전수할 수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지금 보내 오신 편지를 읽어 보니 의리에 대해 실제 본 것도 없으면서 억지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서(經書)의 내용에 대한 말은 대부분 신기한 데에서 나오고, 뜻을 세운 것은 더러 편협하고 방탕한 데로 흐르기 때문에 말속에는 또 온후하거나 화평하며 물러설 줄 알고 독실히 하려는 뜻이 없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진실로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막론하고라도 이 몇 가지가 이미 의심스럽습니다. 이는 아마도 선현(先賢)이 도에 들어가는 방법을 지시함에 있어서 오히려 강론하지 않은 것이 있던가, 아니면 이미 강론했으나 노력이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를 비루하게 여기지 않으셨기에 감히 제 생각을 다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감히 통하지 않은 한 마디 말과 온당하지 않은 하나의 의리를 지적하여 고명한 그대의 귀를 더럽히지도 않으렵니다. 못난 저는 성질도 고약해서 글도되지 않는 말을 했습니다만 경솔하고 참람함을 용서하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蓋道之體用雖極淵微, 而聖賢言之則甚明白. 學者誠能虛心靜慮而徐以求之日用躬行之實, 則其規模之廣大, 曲折之詳細, 固當有以得之燕閑靜一之中, 其味雖淡而實腴, 其旨雖淺而實深矣. 然其所以求之者, 不難於求而難於養, 程夫子之言曰: ‘學莫先於致知, 然未有能致知而不在敬者.’ 邵康節之告章子厚: ‘以君之材, 於吾之學頃刻可盡. 但須相從林下一二十年, 使塵盧鎖散, 胸中豁豁無一事, 乃可相授.’ 正爲此也. 今觀來喩, 似於義理未有實見而强言之, 所以談經則多出於新奇, 立意則或流於偏宕, 而辭氣之間又覺其無溫厚和平歛退篤實之意. 是固未論其說之是非, 而此數端者已可疑矣. 豈於先賢指示入道之方猶有所末講耶? 抑已講之而用力有未至耶? 之愚, 無以及此. 然荷不鄙, 不敢不盡其愚, 而又不敢摘一辭之未達一義之未安以挽高明之聽也. 區區拙亘, 言不能文, 恕其僭率, 千萬之幸

 

 

 

오두남(인걸)에게 답함 答吳斗南(人傑)

 

해제이 글은 소희 원년(경술, 1190, 61) 봄에 장주지사로 부임하던 시기에 쓴 오인걸(吳人傑)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주로 오인걸의 저술인 󰡔고역󰡕󰡔양한간오보유󰡕에 관해 논하고 있다.

 

산골에 엎드려 오래도록 덕망을 들었고, 또 저술이 아주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언제나 하루바삐 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그 책을 다 읽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겼습니다. 이제 은혜로이 질문을 해주시고 더불어 󰡔고역(古易)󰡕․󰡔간오(刊誤)󰡕 두 책을 보내주시니 견촉하시는 뜻이 매우 성근하고 도타워 못난 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요즘 들어 봄날이 화창한데 자녀들도 잘 돌보시고 지내시기에도 다복하십니까? 두 편지를 세 번이나 되풀이해 읽고도 손에서 떼지 못했으니 지극히 정미하고 넓다 하겠습니다. 제 생각은 오히려 두드려 묻고 싶은 것이 있지만 이 다스리는 일의 여가에 쫓겨 다 펴지 못합니다. 별지에서 대충 한 두 가지만을 말했으니 다시 일러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책들도 보내주실 것을 허락해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만 홍범」․「시락 두 가지 논의는 더욱 빨리 보고싶습니다. 혹 그 사이 모두 다 힘쓰지 못했더라도 먼저 이것들을 얻을 수 있다면 매우 좋겠습니다.

竊伏山間, 久閠德義, 且知著述甚富, 每以未得亟見其人而盡讀其書爲恨. 玆辱惠問, 幷寄古易刊誤二書, 所以見屬之意甚勤且厚, 淺陋之所能堪也. 比日春和, 敬惟撫字有相, 尊履萬福.

二書三復, 不能去手, 可謂極精博矣. 鄙意尙有欲奉扣者, 迫此治行之宂, 未能盡布. 別紙略見一二, 幸復有以告之. 他書承許盡以見寄, 何幸如之洪範詩樂二論尢欲早得之. 或其餘未能悉辨, 且先得此, 幸甚幸甚

 

보내 오신 편지에서 또, “그 방치된 마음을 거둘 방법을 생각하지만 어디로부터 들어갈 지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걱정이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고명(高明)한 그대의 뜻은 또 옛사람이 자기 수양을 위주로 한 학문을 한 것에 마음을 두어 말로만 읊조리는 계획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오늘날 사람들이 닭이나 개는 찾을 줄 알면서 방치된 마음은 찾을 줄 모르는 것이 매우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 방치된 줄을 알아서 찾고자 하면 바로 찾을 줄 아는 그곳에 한 생각으로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니, 그것은 굳이 따로 들어갈 곳을 찾지 않더라도 마음의 체용(體用) 전체가 이미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경()을 지켜서 그 체()를 보존하고 이치를 궁구하여 그 용을 지극히 한다면 날마다 불어나 장차 그만 두고자 해도 그만 둘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현명하신 집사께서 여기에 생각을 더하셨으니, 그 넓은 견문과 상세하게 참고한 것이 또한 어느 것인들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바로 사물에 정신을 팔아 뜻을 잃는 것일 뿐입니다. 진실로 그대는 이렇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줄은 알지만 어리석은 나로서는 집사를 위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여하신 성근 마음에 감격해서 고루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으니 살펴 주시기만 바랍니다. 밤낮으로 남쪽으로 가느라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때로 스스로를 아끼셔서 소용에 부응하시기 바랍니다. 때때로 편지를 주셔서 궁벽한 저를 위안해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來書又謂方思所以收其放心, 而患於未有以自入, 此見高明之志又將有意於古人爲己之學, 不但爲言語誦說之計而巳. 區區不敏, 尤所敬歎. 蓋竊嘗謂今之人知求雞犬而不知求其放心, 固爲大惑. 然苟知其放而欲求之, 則卽此知求之處一念悚然, 是亦不待別求入處而此心體用之全已在是矣. 由是而持敬以存其體, 窮理以致其用, 則其日增月益, 自將有欲罷而不能者. 矧以執事之明而加意焉, 則其見聞之博, 參考之詳亦何適而非窮理之地哉? 如其不然, 則是直爲玩物喪志而已. 固知賢者不屑爲此, 之愚, 不得不爲執事者慮之也. 感見與之勤, 不敢隱其固陋, 伏惟察焉. 旦夕南去, 相望益遠, 惟幾以時自愛, 亟膺召用; 時時書來, 慰此窮寂, 千萬之望

 

 

 

별지 別紙

 

 

󰡔고역󰡕은 이미 모든 괘를 그리고, 단사를 붙였는데, 또 본괘를 다시 그리고 육효를 나누어 효사를 붙인다면 아마도 너무 중복인 듯 합니다. 또 괘를 뒤집는 방법[覆卦之法]은 어느 곳에 근거를 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근년에 시랑 임율이 이런 주장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또 논하신 내용과 조금 다른데 그 책은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스스로 선유들이 발명하지 못한 비전이라고 여기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과거에는 이런 주장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또 용구(用九)는 소양(소양)이요, 용육(用六)은 소음이라고 논하셨습니다. 이와 같다면 당연히 용칠(用七)용팔(用八)이라고 해야 할 것이니 어떻게 구육이 있겠습니까? 이런 주장은 󰡔역학계몽󰡕의 제 주장과 서로 정면으로 상반됩니다. 살피지 못했습니다만 지금은 어느 주장을 따르는 것으로 정해야 할까요? 글로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古易旣晝全卦, 繫以彖辭, 又再晝本卦, 分六爻而繫以爻辭, 似涉重複. 且覆卦之法, 不知何所考據? 近歲林粟侍郞乃有此說, 然其法又與所論小異, 不知曾見其書否? 渠亦自以爲先儒未發之秘, 則是古未嘗有是說也. 且如所論以用九爲少陽, 用六爲少陰, 如此則當爲用七用八矣, 何九六之有乎? 此與啓蒙陋說正相南北, 不審今當定從何說, 因筆幸見喩也.

 

여백공(呂伯恭: 呂祖謙)이 예전에 조씨(晁氏: 晁說之, 1059-1129)의 판본으로 인해 다시 󰡔고역(古易)󰡕 12편을 정했는데, 고증이 자못 상세했습니다. 그렇지만 순우준(淳于俊)의 주장에 근거해서 오늘날 왕필(王弼) 역을 정강성(鄭康成)의 역이라고 하는 바람에 예전부터 온당치 못한 점을 의심했습니다. 지금 보내신 것을 얻고 보니 정왕의 두 판본을 구별해서 귀결이 있는데, 아주 좋습니다. 다만, 따로 어떤 증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呂伯恭頃嘗因晁氏本更定古易十二篇, 考訂頗詳. 然據淳于俊之說, 便以今王弼鄭康成, 嘗疑其未安. 今得所示, 分別二本, 乃有歸著, 甚善甚善. 然不知別有何證據也.

 

문자가 있기 이전에도 이미 이 책은 있었다고 하셨는데, 이 이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 책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未有文字已有此書’, 謂有此理則可, 謂有此書則不可.

 

계사가 아마도 단사를 아울렀을 것이라는 주장도 옳습니다. 단사는 모든 괘의 아래에 있지만, 효사와 요사는 각각의 효의 아래에 나뉜채로 붙어있습니다. 그 경은 단지 잇달아 쓰기만 하고 함께 괘의 아래에 두었을 뿐 다시 괘를 긋지는 않았으니, 지금 정해진 판본과 같습니다.

繫辭恐幷彖辭亦是. 蓋彖繫於全卦之下, 而爻繇分繫於逐爻之下, 其經只是連書, 幷在卦下, 不再晝卦, 如今所定之本也.

 

단전은 단사를 풀이했고, 상전은 효사를 풀이했으며, 계사전은 괘와 효의 사를 통틀어 풀이했기 때문에 종합적인 이름을 붙여 계사전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계사전설괘전이라고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설괘전의 체제는 팔괘의 방위와 상징의 종류를 분별했기 때문에 설괘라고 이름지은 것입니다. 게사전두 편은 괘와 효의 의례와 사의를 풀이한 것이 많기 때문에 설괘라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彖傳釋彖辭, 象傳釋爻辭, 繫辭傳則通釋卦爻之辭, 故統名之曰繫辭傳, 恐不可改繫辭傳說卦. 說卦之體乃分別八卦方位與其象類, 故得以說卦名之. 繫辭傳兩篇釋卦爻之義例辭意爲多, 恐不得謂之說卦.

 

󰡔대전(大傳)󰡕에서 계사라고 한 것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살펴보면 그 둘은 위 문장에서 모두 괘와 효를 겸해서 말했으니 효사라고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하나는 오로지 효사만을 가르키므로 효사는 본시 계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789을 위해 말한 것입니다. 7896은 비록 각각의 효의 수이지만, 괘 전체가 78로 이루어졌으면 본괘의 괘사로 점쳐야 하고, 세 개의 효가 78로 이루어졌으면 (본괘와 지괘) 두 괘의 괘사로 점쳐야 하며, 괘 전체가 96으로 이루어졌으면 지괘의 괘사로 점쳐야 하니, 괘사는 본시 계사가 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大傳繫辭者四, 今攷其二, 上文皆兼卦爻而言, 恐不得專以爲爻辭. 其一雖專指爻辭, 則爻辭固繫辭之一也. 其一爲七六而言, 六雖是逐爻之數, 然全卦七八則當占本卦辭, 三爻七八則當占兩卦辭, 全卦九六則當占之卦辭, 卦辭固不害其爲繫辭也.

 

채묵(蔡墨)은 건괘가 곤으로 변한 것을 일러 무리지은 용을 보나 머리가 없다. 길하리라고 했으니, 괘를 뒤집는다는 주장도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蔡墨坤曰見群龍無首 吉’, 則覆卦之說有不可行者矣.

 

󰡔한서간오(漢書刊誤)󰡕는 본시 대부분 희()가 강론하지 못한 것이지만, 암암리에 합치하는 것도 많습니다. 다만 유씨(劉氏)가 구를 끊은 것 가운데 항우전由是始爲諸侯上將軍유림전出入不悖所聞者과 같은 종류가 아주 많은데 모두 󰡔사기󰡕와 일치하는 것들입니다. 그는 당연히 (이런 사실을) 겉으로 드러내서 (문장의 구독이 자신의) 억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어야 했습니다. 오직 위수 북쪽에 원묘를 만들었다[爲原廟渭北]’이란 한 조목은 지난 번 어떤 책을 보았더니 廟渭라는 글자 사이에 자가 있었으니 또한 증거가 분명합니다. 다만 지금은 이 구절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두루 󰡔사기󰡕․󰡔한서󰡕 등을 책을 뒤져보아도 모두 없습니다. 혹여 생각이 나신다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漢書刊誤固多所未講, 然其暗合者亦多. 劉氏所斷句, 項羽傳 由是始爲諸侯上將軍’, 儒林傳 出入不悖所聞者’, 此類甚多, 皆與史記, 恐當表而出之, 以見其非出臆斷. 爲原廟一條, 頃見一書, ‘之間有, 亦其明證. 但今不記此出處, 徧檢史記漢書之屬皆無之, 恐或記得, 幸批喩也.

 

유씨(劉氏)가 의심한 것은 그 자체로 오류인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혈지(溝洫志)의 제2조에 어초(於楚)’자가 있는데, 본문은 그 자체로 아래 구절에 속합니다. 아래 문장에 어체(於齊)’어촉(於蜀)’자가 있는데, 모두 한 구절의 처음입니다. 그런데 유씨는 잘못 읽고서 위 구절에 속한다고 여겨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서 거꾸로 본문이 잘못이라고 의심했는데 󰡔보유󰡕에서도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劉氏所疑, 亦自有舛誤處 如·第二條 , 本文自屬下句, 下文有, 皆是句首, 誤讀, 屬之上句, 乃不悟其非, 而反疑本文之誤, 補遺未之正也.

 

󰡔초사협운(楚詞協韻) 한 본을 보내 드립니다. 그 속에 잘못된 곳이 많으니 대략이라도 정정해서 다시 가르침을 주신다면 고치고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楚詞協韻一本納上, 其間尙多謬誤, 幸略爲訂之, 復以見喩, 尙可修改也.

 

 

答吳斗南오두남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소희 2(신해, 1191, 62)에 오인걸(吳人傑)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이다. 이 시기는 선생이 장주지사(1190. 4-1191. 4)로 재직하고 있던 때이다.

 

 

인편을 통해 당신의 편지를 받고 매우 감격했습니다. 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새해에도 모든 일 두루 이루시고 많은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곳에서 관리 생활을 한 지가 벌써 해를 넘겼는데, 갖은 병치레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사록관을 요청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경계법의 시행에 관해서는 요청이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너무 늦어서 손댈 수가 없습니다. 서너 달만 기다리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세상의 일은 어렵고 복잡하니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보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사람의 일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공의 꿈을 꾸지 못한다고 탄식한 공자의 말씀을 외울 때마다 서글퍼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관직이 교체되어 새로운 직책의 기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다행입니다. 요즘 어떤 분들과 서로 교류하십니까? 솥에 알갱이가 있으니 마땅히 갈 바를 신중히 해야 할 것이고, 나의 적이 병이 들었으니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便中奉告, 感慰亡量. 比已改歲, 竊惟履此泰亨, 倍膺多祉. 熹承攝於此, 忽已踰年, 疾病侵凌, 無一日好况. 請祠不遂, 經界之役得請後時, 不可擧手, 少須三五月, 卽復告歸矣. 世路艱棘, 不若歸臥田里, 以休餘年. 及人之事, 非復吾力(5-3044)之所及矣. 每誦先聖不夢周公之嘆, 未嘗不慨然也. 承受代改秩亦旣有期, 甚以爲慰. 不知諸公相知者爲誰? 鼎之有實, 宜謹所之, 我仇有疾, 乃無尤耳.

 

전에 보내주신 글은 아직도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의 학설에 믿을만한 근거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마땅히 자세하게 살펴서 선택하여야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보내주신 글을 한 번 보고나니, 독서량이 적어 논의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함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한두 군데 의심스러운 곳도 있습니다. 휴가가 끝나 일은 많고 인편은 곧 떠난다하니 하나하나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잠깐 사이에 한두 가지를 적어 별지로 보내니 하나하나 답하여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지난번 보았던 동한토강격(東漢討羌檄)의 날짜와 󰡔통감(通監)󰡕의 장력(長歷)이 다르고, 또 심존중(沈存中: 심괄 沈括)󰡔몽계필담(夢溪筆談)󰡕에 실려 있는 󰡔주부전(朱浮傳)󰡕이 인용하고 있는 천작(天作)이라는 시 역시 현재의 범엽(范曄)의 책 판본과 다르다는 문제는 지난번 편지에서 이미 질문하지 않았는지요? 이제 편지 끝부분에 있어, 함께 언급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이언평이 보았다는 조안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혹시 영가 지방의 조언소가 아닌지요? 그가 학문을 논한 큰 뜻은 매우 좋지만, 이치를 탐구하는 공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무턱대고 행할 뿐이니, 마침내 학문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여 오묘한 뜻을 깨달아 곧바로 성인의 경지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정 문하의 여러 선생들의 행적을 모으는 일은 지난해에도 하려고 했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소무 지방에서 간행된 󰡔연원록󰡕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편집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나가 이와 같이 유포시켰는데, 그 점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궁리공부 역시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요즈음 정() 선생의 말씀을 깊이 살펴보았는데, 문인 중에는 아마도 정통(正統)을 물려받은 자가 없는 듯 합니다. 이 일은 모름지기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로 아침에 밭 갈아 저녁에 수확하는 것처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한가한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역시 큰 병입니다. 그것은 바로 평소에 기억하고 토론하는 데에 마음을 길들였기 때문이니, 옛사람이 바깥 사물에 정신이 팔려 본심을 잃어버리는 것[玩物喪志]을 깊이 경계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앞으로는 우선 오직 근본이 되는 학문에 마음을 한결같이 다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뜻이 매우 좋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부분에 빠져 (옛 성현, 명도선생의 좋은 가르침을) 듣고 신뢰하고 따르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前寄諸書, 竟未得細考. 然疑諸儒之說有不足信據者, 要當審擇而遴取之, 乃無誤耳. 今此所寄却得一觀, 恨讀書少, 未能有以上下其論. 然亦有一二疑處. 假開多事, 便人行速, 未暇一一奉扣. 姑錄一二, 別紙奉呈, 幸一一批報. 頃見東漢討羌檄日辰與通監長歷不同, 又沈存中筆談所載朱浮傳引天作詩, 目今范書印本亦異, 不記前書曾奉問否? 今亦見紙尾, 幸倂喩及也. 李彦平所見趙顔子, 不知何人? 莫是永嘉趙彦昭否? 其所論學大意甚佳, 然恐於窮理功夫有所未至, 則亦只冥行, 終不能升堂睹奧, 直入聖賢之域也. 裒集程門諸公行事, 頃年亦嘗爲之而未就, 今邵武印本所謂淵源錄者是也. 當時編集未成, 而爲後生傳出, 致此流布, 心甚恨之. 不知曾見之否? 然此等功夫亦未須作. 比來深考程先生之言, 其門人恐未有承當得此衣鉢者. 此事儘須商量, 未易以朝耕而暮穫也. 心不耐間, 亦是大病. 此乃平時記憶討論慣却心路, 古人所以深戒玩物喪志, 政爲此也. 此後且當盡心一意根本之學, 此意甚善. 今人陷於所長, 決不能發此, 聽信身心也.

 

불교가 우리 유학과 비록 비슷한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른바 모습은 같지만 마음은 다르며 옳은 듯하면서 그르다고 한 것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도(明道) 선생께서 구절구절이 같고 일마다 합치되지만 같지는 않은 것고 한 말씀이 진실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해가 깊지 않았다면 어떻게 감히 이렇게 판단하겠습니까? 유학에서 도를 듣는다(聞道)’고 할 때의 듣는다()’는 것은 다만 보고 듣고 깊이 탐색하여 스스로 터득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는 군신(君臣)과 부자(父子)가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늘 행하는 당연한 이치이지, 불교에서 말하는 환히 크게 깨달으면 온 몸에서 땀이 흐른다고 한 것처럼 현묘하고 매우 기묘하여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다시 힘을 쏟을 곳을 따로 찾아서는 안 되니, 다만 경()을 지켜 이치를 궁구하면 됩니다. 참전의형(參前倚衡)에 대해서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늘 불교의 이론에 빠지는 것입니다. 옛 성인들은 이것을 말함에 있어, 다만 말은 반드시 충성스럽고 미덥게 하며, 행동은 반드시 돈독하고 공경하여 항상 잊지 않고 생각하며 어디에서나 늘 이 두 가지 일이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라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국그릇에서도 요 임금을 보고 벽에서도 요임금을 본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내 마음으로 내 마음을 돌이켜 보는 또 다른 한 물건을 만들어 몸 밖에 있게 한 것이겠습니까? 생각함도 없고 행위함도 없음은 심체(心體)의 본연(本然)이 아직 사물에 감응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니, 이러한 본령이 있다면 감응하여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할 수 있을 것이니, 아마도 당신이 말씀하신 것과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

선학(禪學)에서 진리를 깨달으면(悟入) 곧 모든 생각이 끊기고 천리가 다 드러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의 바름이 곧 천리이며, 유행하고 운용하는 것은 천리의 발현 아닌 것이 없는데, 어찌 생각이 끊기기를 기다린 이후에 천리가 드러나겠습니까? 천리란 대체 무엇입니까? 지가 어찌 천리가 아니겠습니까? 군신부자형제부부붕우가 어찌 천리가 아니겠습니까? 설령 부처가 천리를 보았다면, 왜 하필 이처럼 도리에 어그러지고 모든 것을 없애버려 그 본심을 혼미하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는 모두 근래에 사설(邪說)에 빠진 커다란 병통인데, 당신조차 이러한 세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佛學之與吾儒雖有略相似處, 然正所謂貌同心異, 似是而非者, 不可不審. (5-3045)道先生所謂句句同, 事事合, 然而不同者, 眞是有味. 非是見得親切, 如何敢如此判斷耶? 聖門所謂聞道, 聞只是見聞玩索而自得之之謂, 道只是君臣父子日用常行當然之理, 非有玄妙奇特不可測知, 如釋氏所云豁然大悟通身汗出之說也. 如今更不可別求用力處, 只是持敬以窮理而已. 參前倚衡, 今人多錯說了, 故每流於釋氏之說. 先聖言此, 只是說言必忠信, 行必篤敬, 念念不忘, 到處常若見此兩事不離心目之間耳. 如言見堯於羹, 見堯於牆, 豈是以我之心還見我心別爲一物而在身外耶? 無思無爲, 是心體本然未感於物時事, 有此本領, 則感而遂通天下之故矣, 恐亦非如所論之云云也. 所云禪學悟入乃是心思路絶, 天理盡見, 此尤不然. 心思之正, 便是天理, 流行運用, 無非天理之發見, 豈待心思路絶而後天理乃見耶? 且所謂天理, 復是何物? 智豈不是天理? 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豈不是天理? 若使釋氏果見天理, 則亦何必如此悖亂, 殄滅一切, 昏迷其本心而不自知耶? 凡此皆近世淪陷邪說之大病, 不謂明者亦未能免俗而有此言也.

 

자합에게 가는 사람이 글을 빨리 써달라고 재촉하기에 이렇게 대충대충 씁니다. 손에 통증이 도져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합니다. 어느 때 얼굴을 마주하고 가슴 속 이야기를 다할 수 있을까요? 비록 멀리 있지만, 몸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子合便人督書甚速, 草草布此. 手痛復作, 不能究所欲言. 何時面談, 倒此胸臆? 正遠, 唯千萬自愛爲禱.

 

 

 

答吳斗南 오두남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소희 2(신해, 1191, 62)에 오인걸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이다.

 

보내주신 󰡔묘의󰡕는 모두 󰡔춘추좌씨전󰡕주묘(周廟), 즉 주() 문왕을 모신 사당에서 곡례(哭禮)를 올렸다.”는 구절에 바탕을 두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배치하는 것이 어떤 경전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고조 아래로 모두를 녜묘(禰廟)에 위치시키는 것도 이미 알맞은 자리 배치가 아니며, 또 모두 서쪽을 상()으로 삼는 것은 곧 후한 시대 동당이실(同堂異室)의 제도로서 좌소우목(左昭右穆)의 구분조차 없으니 고대의 법도가 아닙니다. 만약 󰡔강도집례󰡕에 실려 있는 손육의 설명과 같다면 오히려 믿을만하니, 보내주신 편지의 구팔묘도(奮八廟圖)가 그것과 가깝습니다. 누가 확정한 것인지요? 그러나 그 그림은 또 사당이 모두 동향으로 북쪽을 소()로 하고 남쪽을 목()으로 삼고 있으니, 이는 실()에서 협제()를 모실 때의 자리이지 묘제(廟制)는 아닙니다. 주나라에는 제곡의 사당이 있고, 예법 관련 책에도 이러한 내용의 글이 없으며 󰡔좌전󰡕에도 이와 같은 이론이 없으니,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물며 희조는 오직 후직에 비견할 수 있을 뿐이며, 또 제곡과는 서로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은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은 저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도 감히 모두 신뢰할 수 없는데, 하물며 조정의 현명하신 신하들은 모두 예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니 아마도 감히 여기에 근거해서 바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所示廟議, 乃全用左氏 臨于周廟一條爲說, 然不知似此安排有何經據? 如古祖以下通爲禰廟, 已非所安, 又皆以西爲上, 乃後漢同堂異室之制, 無復左昭右穆之分, 非古法也. 若如江都集禮所載孫毓之說, 却似可信, 而所示舊八廟圖近之. 不知是誰所定? 但其圖又以廟皆東向, 而以北爲昭, 南爲穆, 乃是室中祫祭之位, 而非廟制耳. 周有帝嚳廟, 禮書竝無此文, 左傳亦無此說, 似難臆斷. 况僖祖只可比后稷, 又與帝嚳不相似. 如此牽合, 如憙之陋, 固不敢盡信, 况朝廷諸賢皆深於禮者, 恐亦未敢便依此改作也.

 

󰡔초목소(草木疏)󰡕는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난초()와 혜초()에 대한 설명은 자못 분명하지 못합니다. 옛사람들이 말한 택란(澤蘭)과 비슷하다는 것은 오늘날의 난초가 아닙니다. (택란은 이 지방에 있는데, 잎은 뾰족하고 줄기는 네모나며 마디는 자주색이니, 홍경선이 말하는 것과 같다. 만약 난초가 이와 비슷하다면 결코 오늘날의 난이 아니다). 유차장(劉次莊)으로부터 그 후대 사람들이 한 설명은 오늘날의 난초이지 옛날의 난초가 아닙니다. 이제 그들을 함께 인용하면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은 단지 휴원(畦畹)’ 두 글자만을 구별할 뿐 자세하게 구별하는 것을 결여한 것과 같습니다. 또 이른바 혜초(), 난초로 추정해 볼 때, 옛날의 혜초()는 진장기(陳藏器)와 같이 설명하여야 맞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황정견(山谷)이 설명하는 것은 오늘날의 혜초이지 역시 옛날의 혜초는 아닙니다. 이러한 곳은 마땅히 잘잘못을 가려내야 공부의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이 어물쩡 넘어가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소홀한 것입니다. 씀바귀()는 아마도 여뀌()와 같은 종류인 듯합니다. (󰡔시경󰡕 「주송」․「민여소자지십재삼편 주소에 보입니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제비꽃()과 병칭(並稱)하였습니다. 제비꽃()은 곧 바곳[烏頭]으로서, 그 맛이 처음에는 쓰고 나중에는 단 것이 아닙니다. 또 씀바귀의 독(荼毒)을 말씀하였는데, 대개 씀바귀()는 독성이 있어서 오늘날 사람들은 시내 개울에서 갓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는데, 씀바귀()는 그와 같은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도는 독성을 지닌 것으로서 고거(苦苣)가 될 수 없습니다. ‘냉이처럼 달다(如薺)’엿처럼 달다(如飴)’는 시인들이 주나라 땅의 기름짐과 버림받은 부인의 슬픔[周原之美舊室之悲]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주역󰡕귀신을 수레에 싣는 것이나 󰡔시경󰡕뿔 없는 양처럼 씀바귀()는 결코 달지 않습니다.

草木疏用力多矣, 然其說蘭蕙殊不分明. 蓋古人所說似澤蘭者, 非今之蘭, (澤蘭此中有之, 尖葉方莖紫節, 正如洪慶善說. 若蘭草似此, 則決非今之蘭矣). 自劉次莊以下所說, 乃今之蘭而非古之蘭也. 今並引之而無結斷, 却只辨得畦畹二字, 似欠子細. 又所謂蕙, 以蘭推之, 則古之蕙恐當如陳藏器說乃是. 若山谷說, 乃今之蕙而亦非古之蕙也. 此等處正當掊擊, 乃見功夫. 今皆如此放過, 似亦太草草矣. 荼恐是蓼(5-3047), (見詩疏載芟篇). 故詩人與菫並稱. 菫乃烏頭, 非先苦而後甘也. 又云荼毒, 蓋荼有毒, 今人用以藥溪取魚, 荼是其類, 則宜亦有毒而不得爲苦苣矣. ‘如薺如飴’, 乃詩人甚言周原之美, 舊室之悲, 如易之載鬼, 詩之童羖, 非荼實能甘也.

 

제가 독서량은 매우 적지만, 이들을 보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상당히 많으니 이 책 역시 자세한 설명이 드문 것 같습니다. 만약 학문하는 것에 대해 논한다면 고증은 이미 지엽적인 것인데, 더구나 이것은 또 고증 가운데에서도 지엽적인 것입니다. 굳이 여기에 뜻을 둘 필요가 없을 듯하니, 우선 몸과 마음을 수습하여 내면으로 향해 공부를 한다면 그대같이 현명한 이는 틀림없이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끝내 자신이 잘하는 부분에만 빠져 스스로 들이킬 줄 모른다면 어리석은 저는 당신을 위해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가는 사람 편에 편지를 보내면서 나도 모르게 속에 있는 말을 너무 많이 해버렸습니다. 허물하지 말아 주십시오. 허물하지 말아 주십시오. 멀리 떨어져서 만날 기약이 없으니, 바라옵건대 몸조심하십시오.

熹讀書最少, 然見此類, 不能無疑者尙多, 則恐此書亦更少子細也. 若論爲學, 則考證已是末流, 况此又考證之末流, 恐自此不須更留意, 却且收拾身心向裏做些工夫, 以左右之明, 其必有所至矣. 若遂困於所長而不知所以自反, 則熹之愚竊爲賢者惜之也. 因便奉報, 不覺傾倒, 勿過勿過. 南北相望, 未知見日, 千萬珍重, 以副願言.

 

 

 

答輔漢卿 () 보한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보광에게 쓴 첫 번째 답장 편지이다.

 

보내온 편지에서 제기한 의문들은 당신이 평소에 열심히 학문을 탐구하고 토론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지난번 보낸 답장에 착오가 있어서, 직경에게 자세한 사정을 써 보내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제가 지난번 󰡔중용장구󰡕에서 했던 설명을 지금 함께 기록하여 보내니, 지난번 설명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는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는 세속적 학자들과 도성(都城) 안에 있으면서도 문을 닫고 자신을 지키면서 여러 사람들이 맛보지 못했던 것을 맛보고 계시니, 비록 지난 날 금화(金華)의 동문(同門)이라도 당신에게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실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다만 전에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지금 또 거리가 멀어 얼굴을 마주하고 강론하여 저의 생각을 다 피력하지 못하는 점이 유감입니다. 더욱 노력하여 대업(大業)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示喩所疑, 足見探討不倦之意. 前時所報, 實有錯湊, 已令直卿子細報去矣. 熹向於中庸章句中嘗著其說, 今幷錄去, 可見前說之誤也. 漢卿身在都城俗學聲利場中, 而能閉門自守, 味衆人之所不味, 雖向來金華同門之士, 亦鮮有見其比者. 區區之心, 實相愛重. 但恨前日相見不款, 今又相去之遠, 無由面講, 以盡鄙意. 更幾勉力, 卒究大業.

 

 

 

答輔漢卿 보한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보한경에게 쓴 두 번째 답장 편지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양관(楊館)에서 만날 기약은 이미 놓쳐버렸으니, 나중에 다시 서로 모일 수 있는 곳이 있겠지요? 글을 읽는데 이미 맛을 알았으니 스스로 그만 두지 못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근래 옛날에 지은 여러 글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안에 이론이 명확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지금 이렇게 대략 손질을 더했으니 의리(義理)가 무궁하다는 것을 깊게 깨달았습니다.

近况如何? 旣失楊館之期, 後來別有相聚處否? 讀書旣有味, 想見自住不得. 近看舊作諸書, 其間有說未透處, 見此略加刊削, 深覺義理之無窮也.

 

 

 

答輔漢卿 보한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4(戊午, 1198, 69)에 쓴 세 번째 편지이다.

 

당신이 써서 보내주신 저의 어록 역시 자잘한 잘못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에서 이것들에 관해 상세하게 말한 겨를이 없고, 또 지난번 편지에서 말한 수정본 역시 복사하여 보내드릴 겨를이 없습니다. 요즘 어떤 책을 읽으십니까? 의문스러운 점이 있으면 질문해주십시오. 올해 들어 요즈음은 찾아오는 사람도 전혀 없고 상요(上饒) 지방의 어떤 사람의 초청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며 지낼 뿐입니다.

所記鄙語, 亦有小小差誤處, 便中未暇詳報, 幷所改書亦未暇寫寄. 不知近讀何書? 有疑示及. 此間今歲絶無人來, 只所招上饒某人早晩講論耳.

 

 

 

答輔漢卿 보한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2(丙辰, 1196, 67)에 쓴 네 번째 편지이다.

 

넓고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서도 독서를 그만두지 않으셨다니 매우 다행입니다. 저는 끝내 사물을 응접하는데 조금 대범해지기는 했기만 괴롭게도 병이 많아 문자에 힘을 쏟지 못하고 있고, 또 함께 강론할 만한 붕우도 없습니다. 간혹 한두 명은 있지만 둔한 사람은 도리를 보존하기 어렵고 똑똑한 사람은 또 번거로움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할 말이 있어도 당부할 곳이 없으니 그대와 서로 모여 즐거웠던 때가 매우 생각납니다. 여러 책들은 정돈하고 초록해줄만한 사람도 없었고, 고친 곳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기록한 제 말들을 모두 자세히 살피려면 아마도 얼굴을 맞대고 하지 않으면 다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들 소인배들이 도학을 공격하는 기세가 점차 강해지는데, 우리 도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대부분 입장이 확고하지 못하니, 천만 번 더 노력하여 기대에 부응하십시오. 시중행(柴中行)이 조사(漕司)에게 아뢴 고교(考校)의 말은 그 문장이 매우 장엄하던데, 그 내용을 들으셨습니까?

知徙居寬曠, 不廢讀書, 足以爲慰. 此間年來應接差簡, 然苦多病, 不能用力文字間, 又無朋友共講, 間有一二, 則其鈍者旣難揍泊, 敏者又不耐煩, 有話無分付處, 甚思賢者相聚之樂也. 諸書無人整頓抄寄, 然改處亦不多. 但所錄語儘有商量, 恐非面不能盡耳. 風力稍勁, 而此一等人多是立脚不住, 千萬更加勉力, 以副所期. 餘祝自愛而已. 柴中行聞報漕司考校之語其詞甚壯, 亦聞之否?

 

 

 

答輔漢卿 보한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5(己未, 1199, 70)에 쓴 다섯 번째 편지이다.

 

나이 70이 되면 벼슬을 그만 두는 것은 당연한 도리(예법)이나 또 죄를 지은 것 때문에 감히 스스로 아뢰는 글을 올리지 못하고 백방으로 간절하게 빌어 겨우 주군(州郡)에서 중서성(中書省)에 올리는 글 한 통을 얻었습니다. 이제 상녕 지방의 유재(游宰)에게 부탁하여, 저리(邸吏)에게 보냈고, 자세하게 복사하여 열 명의 제자들에게 이미 보냈고, 다시 번거롭게 당신에게도 똑같이 보냅니다. 이 일이 혹 화기(禍機)에 저촉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내버려 둔 일이라 일체 생각하지 않습니다. 터무니없는 말로 그 글을 막는 자가 있을 듯한데 부디 듣지 마십시오. 요즈음에는 어떤 글을 보고 어떤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또 상당한 진보(進步)가 있는지요? 지난 번 보내주신 책은 절반 정도 보았는데, 그 사이에 약간 정확하지 않은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사소하고 미비한 것들은 이미 보완을 하였으니, 나중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정사(精舍)에 몇몇 벗들이 모였는데 이경자(李敬子)와 호백량(胡伯量)이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강설(講說)하는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대가 이 즐거움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학 관련 책을 완성하지 못하였는데, 체한 증세 때문에 책상에 앉지도 못하니, 이 일을 완성하여 끝마치지 못할깨 걱정됩니다. 省榜非久當出, 不知一番朋友得失如何. 섭미도(葉味道)가 서관(書館)에 묵고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머물고 있습니까? 도성에 있는 사람들은 다 만나보았습니까?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절에 확고한 주관을 지닌 사람을 얻기란 매우 어려운데, 하물며 또 다시 향상(向上)하는 일이겠습니까?

年滿七十, 禮合休致, 又以罪戾, 不敢自上奏牘, 百端懇檮, 僅得州郡申省狀一紙. 今託常寧游宰附與邸吏投之, 已子細寫與十弟, 更煩賢者同爲分付. 此事或觸禍機不可知, 但已斷置, 一切不計較矣. 恐有浮議相阻止者, 幸勿聽也. 比來看何文字? 做何工夫? 亦頗有進處否? 向所寄來冊子, 方爲看得一半, 其間亦有不足記者. 其小未備者已頗爲補足矣, 後便方得寄去也. 精舍亦有朋友數人相聚, 李敬子胡伯量尙未去, 早晩頗有講說. 但每相與共恨賢者之不同此樂也. 只是禮書不能得成, 又以氣痞, 不可凭几, 恐此事又成不了底公案也. 省榜非久當出, 不知一番朋友得失如何. 味道聞禽書館, 今尙留否耶? 其在彼者頗皆相見否? 當此時節, 立得脚定者, 亦甚難得人, 况更向上事耶

 

 

答輔漢卿 보한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5(己未, 1199, 70)에 쓴 여섯 번째 편지이다.

 

시험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은 시절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건대 또한 편안하게 앉아서 밥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행한 일이니, 어찌 다른 바람이 있겠습니까? 가을바람 신선할 때 방문한다는 편지를 받으니 너무도 반갑습니다. 이 도리에 관한 공부는 본래 중단하는 때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눈앞에 강습할 사람이 없더라도 자신에게서 사색하고 체인하며 지키고 성찰하여 스스로 잠시도 헛되게 보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공부를 쌓아 나가다 보면 그 안에 분명히 크게 의심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크게 깨달음을 얻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서로 만나 그 내용을 보여 준다면 마치 봇물 터지 듯 술술 풀려 다시는 막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사치사표(謝致仕表)를 인편에 보내니, 여러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한두 가지씩 일을 처리하게 하십시오. 서로 만나게 되면 당신은 스스로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의심스럽거나 좀 깊이 생각해야 할 곳이 있다면 함께 분석해서 결정하기를 바랍니다. 박고도(博古圖)를 빌릴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니, 매우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크고 무거우니 어떻게 가져오시렵니까? 시험 삼아 다시 계획을 세워보십시오.

省闈不利, 亦是時節如此. 看此火色, 且得安坐喫飯, 已是幸事, 豈可別有冀望耶? 承許秋凉相訪, 甚幸. 此箇道理功夫本不可有間斷時節, 目下雖無人講貫, 自己分上思索體認持守省察自不可頃刻虛度. 如此積累功夫, 則其間必有所大疑, 亦必有所大悟. 一旦相聚, 覿面相呈, 如決江河, 更無凝滯矣. 今以謝致仕表附便去, 令十弟分付投下, 及更料理一二事. 渠相見必自說及, 恐有可疑, 合商量處, 亦望與之剖決也. 昨承許借博古圖, 甚欲見之. 但重滯, 如何得來? 可更試爲籌度也.

 

 

 

答輔漢卿 보한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5(己未, 1199, 70)에 쓴 일곱 번째 편지이다.

 

정사에 열 댓 명의 벗들이 모여 공부를 하였는데, 제법 흥취가 있었습니다. 병이는 쉽지 않은 먼 길을 왔는데, 글도 잘 보았습니다. 다만 그대가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精舍有朋友十數人, 講學頗有趣. 仲秉甚不易遠來, 看得文字亦好, 但恨漢卿不同此曾耳.

 

 

 

答陳思誠 (景思) 진사성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1(乙卯, 1195, 66)에 쓴 편지이다.

 

학문하는 뜻과 사우(師友)에게 들은 것을 가슴에 새겨 두고 잊지 않는다는 편지를 받으니, 매우 위로되고 매우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세에 이른바 정당하지 못한 학문이라 하여 배척받은 것입니다. 예전에는 비록 더러 좋아하는 이도 있었지만 지금은 또한 숨기고 도망치기에도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대의 집안의 문벌과 명성으로 장차 이 세상에 나아가 무언가 해보려고 하면서 마침내 거기에 뜻을 두셨으니, 어찌 그리도 기호가 유별나십니까?

대개 명실(名實), 의리(義利), 위기(爲己)와 위인(爲人)에 대한 구분은 정칙(正則)의 말이 맞습니다. 다만 그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진실로 힘을 쏟을 곳이 있어야 하고, 그 하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하여 일찍 경계하고 미리 멀리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징험의 실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헛된 명성을 가지고 도()를 향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스스로 세상 사람들이 하는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또한 군자가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늘 염려해주시는데, 이렇게 함부로 말씀드립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承諭爲學之意與其所聞於師友而服膺弗失者, 甚慰甚幸. 然此乃近世所謂詭僞之學而斥去之者, 向來雖或好之, 今亦隱諱遁逃之不暇. 以賢者之門地聲迹, 蓋將進爲於斯世者, 而乃有意於此, 何嗜好之異耶夫名實義利爲己爲人之判, 正則之言是也. 但其所爲者要當眞實有用力處, 所不爲者要當深自省察, 蚤戒而預遠之, 是乃所謂徵驗之實. 不然, 則提空名以鄕道, 而實無以自拔於流俗之所爲, 則亦君子之不取也. 荷意之勤, 率易布此, 不識以爲然否? 然勿以語人, 又千萬之懇也.

 

 

 

答陳衛道 () 진위도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1(乙卯, 1195, 66)에 쓴 첫 번째 편지이다.

 

불교의 소견을 우리 유학과 비교한다면, 저들이 본 바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만 외부에서 그림자를 본 것이지, 일찍이 내면의 진실한 도리를 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이 본 곳은 다 고명(高明)하고 세속을 탈피한 것이기는 하지만 응용을 함에 있어서는 일어났다가는 넘어지고 또 일어났다가는 엎어지는 격이어서 옳은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학은 이 마음과 이 이치가 원래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비록 털끝만큼의 작은 틈일지라도 어긋남이 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응용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게 되면 이는 곧 이해가 진실한 것이 아니니, 본 곳()과 행한 곳(실천)을 두 가지로 나누는 불교와는 같지 않습니다. 일찍이 귀산(龜山) 선생이 방거사(龐居士)신통묘용(神通妙用)도 물을 길어 나르고 땔나무를 하는 가운데 있다는 말을 인용하여 󰡔맹자󰡕천천히 걸어 어른보다 뒤에 간다고 한 뜻을 증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말이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불교의 설명대로라면 다만 땔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 나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신통묘용이며, 그것이 바로 보내오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일어나는 모든 곳으로서 그 안에는 더 이상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유학의 경우에는 모름지기 천천히 걸어 어른보다 뒤에 가야 옳은 것이고, 만약 빨리 걸어 어른보다 앞서서 간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 나아가 작은 부분까지 명확하게 분별하여서 우리의 일상생활에 천리가 유행하되 그 안에 시비(是非)와 흑백(黑白)은 각각 조리가 있어 옳은 것은 곧 이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고, 그른 것은 곧 이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가슴속이 환해지도록 하여 조금도 의심스럽거나 막히는 것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격물 치지를 하기만 하면 곧 성의(誠意) 정심(正心)을 하게 되어 천하와 국가도 다스림 수 있을 것이니, 그것들은 두 가지 일이 아닙니다.

疏示所見, 此固足以自樂, 賢於世之沈迷冒沒之流遠矣. 但猶有許多節次脈絡, 何耶? 然以釋氏所見較之吾儒, 彼不可謂無所見, 但却只是從外面見得箇影(5-3053), 不曾見得裏許眞實道理, 所以見處則儘高明脫灑, 而用處七顚人倒, 無有是處. 儒者則要得見此心此理元不相離, 雖毫釐絲忽間不容略有差舛, 才是用處; 有差便是見得不實, 非如釋氏見處行處打成兩截也. 嘗見龜山先生引龐居士說神通妙用連水般柴話來證孟子‘‘徐行後長, 竊意其語未免有病. 何也? 蓋如釋氏說, 則但能般柴運水卽是神通妙用, 此卽來喩所謂擧起處, 其中更無是非. 若儒考, 則須是徐行後長方是. 若疾行先長, 卽便不是. 所以格物致知, 便是要就此等處微細辨別, 令日用間見得夫理流行, 而其中是非黑白各有條理, 是者便是順得此理, 非者便是逆著此理, 胸中洞然, 無纖毫疑礙. 所以才能格物致知, 便能誠意正心, 而天下國家可得而理, 亦不是兩事也.

 

󰡔시경󰡕하늘이 여러 백성을 내시니, 사물이 있음에 법이 있다.” 하였으니, 이 백성을 낳을 때에 이미 그들에게 이 성()을 명한 것입니다. 성은 리일 뿐이니, 그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성이라 부르는 것이지, 따로 하나의 명령하여 성으로 삼을만한 무엇이 있어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이란 조정에서 관리를 임명하고 파견하는 것과 같고, ()이란 관리가 자신의 직업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천선생이 하늘이 부여한 것은 명이고, 사물이 받은 것은 성이다.”고 하였으니, 그 이치가 매우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옛 성현들은 성명(性命)을 설명할 때, 실사(實事)에서 설명했습니다. 예컨대 성을 다한다는 말은 곧 이 군신 부자와 삼강 오륜의 도를 다하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무엇이 있지 않습니다. 또 본성을 기른다는 말은 곧 이 도를 길러 해치지 않는 것입니다. 지극히 미세한 리와 지극히 현저한 일은 하나로 꿰어져 있어서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는 것이 빈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매우 의미 깊으니, 이 편지에서 다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틀은 볼 수 있으니,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당신을 향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러도 반복해서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天生烝民, 有物有則’, 只生此民時, 便已是命他以此性了. 性只是理, 以其在人所稟, 故謂之性, 非有塊然一物可命爲性而不生不滅也. 蓋嘗譬之, 命字如朝廷差除, 性字如官守職業. 故伊川先生言: ‘天所賦爲命, 物所受爲性’, 其理甚明. 故凡古聖賢說性命, 皆是就實事上說. 如言盡性, 便是盡得此君臣父子三綱五常之道而無餘; 言養性, 便是養得此道而不害. 至微之理, 至著之事, 一以貫之, 略無餘欠, 非虛語也. 此話甚長, 非幅紙可盡. 然其梗槪於此可見, 不審明者(5-3054)以爲如何? 因風示及, 有所未契, 尙容反復也.

 

 

 

答陳衛道 진위도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1(乙卯, 1195, 66)에 쓴 두 번째 편지이다.

 

보내주신 글은 삼가 잘 보았습니다. 다만 지금 유학자의 학문을 하고자 하면 그 방법은 바로 낮고 평탄한 곳(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착실하게 연구하고 실천하여 날마다 이르지 못한 곳을 찾는 데 있습니다. 이른바 즐거운 곳이라는 것은 우선 한쪽으로 제쳐 놓고 오래도록 연구하여 진실로 즐거운 곳에 이르게 되면 생각이 또 절로 달라질 것이니, 이렇게 사람을 동요시키거나 어지럽히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성명(性命)의 이치는 다만 일상생활 가운데의 자잘한 것에도 또한 그 이치가 들어 있지 않음이 없으니, 굳이 마음을 두어 생각할 것은 없고 다만 매사에 하나의 옳은 곳을 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이 이치의 실제입니다. 선가(禪家)에서 본 것이 다만 애매모호한 데에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示喩謹悉. 但今欲爲儒者之學, 却在著實向低平處講究踐履, 日求其所未至. 所謂樂處, 却好且拈向一邊, 久遠到得眞實樂處, 意又自別, 不似此動蕩, 攪聒人也. 性命之理, 只在日用間零碎去處亦無不是, 不必著意思想, 但每事尋得一箇是處, 卽是此理之實. 不比禪家見處, 只在儱侗恍惚之間也.

 

석씨가 본 것은 다만 육용(六用)이 행해지지 않을 수 있게 되면 본성(本性)은 저절로 드러난다는 것이다고 하셨는데, 그 점이 바로 잘못된 부분입니다. 육용이 어찌 성()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행해지지 않게 되어야 성이 드러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성이 육용의 밖에서 따로 하나의 사물로 존재한다는 것이 됩니다. 비유하자면 거울을 닦을 적에 때가 다 없어지면 밝음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 말은 단지 사욕(私欲)이 다 없어져 천리가 보존됨을 이르는 것이지 육용이 행해지지 않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응접하는 것은 순서를 뒤집어서 해도 무방하지만 충분히 몸에 밴 뒤에는 굳이 그렇게 할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앞 편지에서 이와 같이 말해서는 안 된다고 나무란 것은 바로 그들이 행하는 곳이 전도되고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삼강(三綱)을 다 없애서 부자(父子)와 군신(君臣) 관계가 없는 것과 같다는 한 구절에 대해서도 사람을 응접할 때에는 임시방편으로 우선 이렇게 하다가 장차 몸에 밴 뒤에는 도리어 삼강을 굳이 없앨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도리는 한 순간도 끊어진 적이 없으니, 그것을 한 순간에 무너지게 한다면 문득 그것을 메울 길이 없을 것입니다.

, “비록 삼강오상(三綱五常)은 없다 할지라도, 그들 나름대로 사제지간(師弟之間)과 위아래의 명분이 있다하셨는데, 그것은 천리의 자연적인 것이어서 그들이 아무리 없애고자 해도 결국은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속에 보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외부에서 임시로 끼워 맞춘 것이니, 그 진실(삼강오상)은 이미 다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유가의 학설은 모든 일을 진실하고 타당하게 하려는 것이지, 이단이 애매모호한 그림자를 가지고 와서 진실을 점거하려는 것처럼 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所云釋氏見處只是要得六用不行則本性自見, 只此便是差處. 六用豈不是性? 若待其不行然後性見, 則是性在六用之外則爲一物矣. 譬如磨鏡, 垢盡明見, 但謂私欲盡而夫理存耳, 非六用不行之謂也. 又云其接人處不妨顚倒作用, 而純熟之後却自不須如此. 前書所譏不謂如此’, 正謂其行處顚錯耳. 只如絶滅三綱, 無父子君臣一節, 還可言接人時權且如此, 將來熟後却不須絶滅否? 此箇道理無一息間斷, 這裏霎時間壞了, 便無補塡去處也. 又云雖無三綱五常, 又自有師弟子上下名分, 此是夫理自然, 他雖欲滅之, 而必竟絶滅不得. 然其所存者, 乃是外(5-3055)面假合得來, 而其眞實者却已絶滅. 故儒者之論, 每事須要眞實是當, 不似異端, 便將朧徊底影象來此罩占眞實地位也.

 

이렇게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은 일어나는 곳마다 모두 그러하니, 그 많은 것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으니, 글로 다 쓸 수도 없고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은 이미 저 불교의 선학(禪學)에 오랫동안 마음을 두어 거기에 이미 익숙해졌으니, 비록 말을 해서 우리 유학으로 돌아오라 하고 싶지만 결국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저 역시 옛날에 그러했던 적이 있었지만, 선학의 전체적인 틀이 옳지 않음을 깨닫고, 우선 임시로 일제히 놓아버리고 다만 유학의 글과 도리를 가지고서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어린아이처럼 읽어가니, 뒤에 점차 유학을 10% 내지 20% 이해하면 곧 점차 그쪽의 10% 내지 20%의 잘못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완전하게 이해한 뒤에는 곧 그들에게는 한 군데도 옳은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굳이 힘들여 배척하지 않아도 자연히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들의 장점을 가져다가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한다고 한 말은 곧 (불교의 선학을) 놓지도 못하고 간파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이제 사물과 응접하면서 그때그때 가르쳐 깨우치게 한다는 것 역시 단지 애매모호한 그림자를 잡는 것에 불과하니, 우리 유학이 바로 여기 현실 공부를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저의 견해는 이와 같은데, 도리어 잘못되지는 않았지요? 한번 생각해 주시고, 깨우쳐 주십시오.

此等差互處, 擧起便是, 不勝其多, 寫不能窮, 說不能盡. 今左右旣是於彼留心之久, 境界熟了, 雖說欲却歸此邊來, 終是脫離未得. 熹向來亦曾如此, 只是覺得大槪不是了, 且權時一齊放下了, 只將自家文字道理作小兒子初上學時樣讀, 後來漸見得一二分意思, 便漸見得他一二分錯處. 迤邐看透了後, 直見得他無一星子是處, 不用著力排擯, 自然不入心來矣. 今云取其長處而會歸於正, 便是放不下看不破也. 今所謂應事接物時時提撕者, 亦只是提撕得那儱侗底影象, 與自家這下功天末有干涉也. 鄙見如此, 幸試思之, 還說得病痛著否? 因來却見喩也.

 

󰡔중용󰡕을 수정하고 싶지만, 아직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보는 것 역시 이와 같이 대충 훑어보아 흐리멍텅하게 이해해서도 안 되며, 글 내면의 짜임새를 상세하게 보지 않아 조금이라도 어그러뜨려서도 안 됩니다. 모름직 한 권의 책을 볼 때에는 하루에 한 두 단락만을 보고 그것을 완전히 소화한 후에 조금씩 나아가야 합니다.

中庸欲修改, 未得功夫. 然看文字亦不可如此一輥念過, 便只領略得儱侗影象, 不見裏面間架詳密, 毫髮不可差處. 須是且看一書, 一日只看一兩段, 俟其通透浹洽, 然後可漸次而進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소희 5(甲寅, 1194, 65)에 쓴 첫 번째 답장 편지이다.

 

당신이 지난 번 편지에서 논한 것과 방숙의 설명이 다른 점은 그는 단지 지각을 본성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며, 이는 커다란 착오입니다. 편지의 뒷 단락에서 말한 본연의 성은 하나일 뿐이다는 말 역시 이것(지각)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뿐입니다. 근본이 뒤틀리면 당연히 합치될 수 없습니다. 지금 많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자가 본성과 지각 개념의 차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맹자가 여러 곳에서 설명하고 있는 성선의 개념을 막힘없이 이해하여야 태어난 그대로(본능)를 일러 본성이라 한다는 고자의 말이 틀린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용󰡕의 계구(戒懼)와 근독(謹獨)에 관한 당신의 논의는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본성에 대한 첫 장의 설명은 때로는 사람과 사물을 통론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직 사람을 대상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당연히 말의 의미에 따라 보아야지, 이와 같이 흐리멍덩 대충 보아서는 안 됩니다. 천명의 성은 사람이나 사물이나 똑같이 받은 것이지만, 성현의 말씀은 본래 수양을 위주로 한 것이니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리고 수양의 효과는 나에게 절실한 것이기 때문에 ’()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만일 상제가 백성들에게 충()을 내려주었고, 백성들은 천지의 충()을 받아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사람과 사물이 함께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는 맹자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이 호연지기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또 하찮은 사물 역시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지로써 말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찮은 사물들의 본성에서 그 인지를 볼 수 없기는 하지만, 그러나 무엇을 근거로 인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들 역시 생각이 아직 정밀하지 못합니다.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또 이른바 솔성(率性)’이란 사람과 사물의 본체에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이언지(而言之)’ 세 글자는 빼고 싶다 하셨는데, 이 역시 잘못입니다. 도는 이 본성이 유행하고 분별하는 곳에 있는 것이지, 사람이 본성을 따름으로써 이 도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좌의 천지불서(天地不恕)의 이론은 그 설명이 아직 온당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종류의 논의가 본래 반드시 의심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반복하여 생각하면 저절로 알 수 있으니, 이와 같이 잡다한 논란을 일으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前書所論方叔所說不同者, 只是渠以知覺爲性, 此是大病. 後段所謂本然之性一而已矣者, 亦只是認著此物而言耳. 本領旣差, 自是不能得合. 今亦不能枉費言語, 但要學者見得性與知覺字義不同, 則於孟子許多說性善處方無窒礙, 而告子‘‘生之謂性所以爲非者乃可見耳. 才卿所論中庸戒懼謹獨二事甚善, 但首章之說性, 或通人, 或專以人而言, 此亦當隨語意看, 不當如此滯泥也. 蓋天命之性雖人物所同禀, 然聖賢之言本以修爲爲主, 故且得言人. 而修爲之功在我爲切, 故又有以 爲言者. 如言上帝降衷于民, 民受天地之衷以生, 不可謂物不與有. 孟子言 我善養吾浩然之氣’, 不可謂他人無此浩然之氣也. 又謂微細之物亦皆有性, 不可以仁智而言. 微物之性固無以見其爲仁, 然亦何緣見得不是仁? 此類亦是察之未精, 當更思之. 又謂所謂率性, 只就人物當體而言, 却欲脚去 而言之三字, 此亦誤矣. 道只是性之流行分別處, 非是以人率性而爲此道也. 謝氏天地不恕之論, 所說亦未當. 凡此之類, 有本(5-3057)不須致疑者, 但且虛心反復, 當自見得, 不必如此橫生辯難, 枉費詞說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1(乙卯, 1195, 66)에 진재경에게 쓴 두 번째 답장편지이다.

 

자안(子顔)의 집안은 조용하여 저절로 즐거움이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감탄하게 합니다. 󰡔시경󰡕을 보는 것 역시 이와 같은 훌륭하니, 무릇 독서를 함에 마음을 비우고 고찰하고 검증함이 오래 쌓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니, 멋대로 자기 견해를 세워 주장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옥산(玉山)에서 말한 것은 이미 보았을 것입니다. 만약 분석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면, 그것(인의예지와 성정체용)을 한 덩어리로 간주하게 됩니다. 수약에게 답장한 편지에서 그 대강을 말했으니, 마음을 비우고 다시 반복하여 되새기면 더욱 정통하게 될 것입니다.

子顔一室蕭然, 有以自樂, 令人敬歎. 看詩且如此亦佳, 大凡讀書須且虛心參驗, 久富自見, 切忌便作見解主張也. 玉山所說, 當已見之. 若嫌離析, 卽却敎他捏做一團也. 所答守約書大槪得之, 更當虛心玩味, 當更純熟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1(乙卯, 1195, 66)에 진재경에게 쓴 세 번째 편지이다.

 

가을철 과거 볼 시기가 멀지 않았으니 조금 바쁘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의리로 보면, 거기에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내오신 편지에서, “대개 여유로운 기상은 부족하고 억세고 급한 마음이 있다고 하셨는데, 계속 그렇게 하게 되면 점차로 선종에 빠져들까 걱정스럽습니다. 절실하게 성찰해서 깨달아야지 언제까지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서자융(徐子融)은 글을 보는 것이 통쾌하고 직각적으로 깨달으니, 기쁩니다. 가끔씩 서로 만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정숙(余正叔)은 이곳에서 강설(講說)하지 않는 날이 없는데 지리하고 늘어지게 말하는 습관은 끝내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秋試不遠, 計不免小忙. 然以義理觀之, 此亦當有處也. 來書所喩大率少寬裕之氣, 有勁急之心, 如此不已, 恐轉入棒喝襌宗矣. 切宜省覺, 不可一向如此也. 子融看得文字痛快直截, 可喜. 想時相見. 正叔在此, 無日不講說, 終是葛藤不斷(5-3058).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1(乙卯, 1195, 66)에 진재경에게 쓴 네 번째 편지이다. 방숙과 자융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방숙(方叔)과 자융(子融)은 만나 보았습니까? 방숙(方叔)의 도리에 대한 이해는 매우 참되고 훌륭합니다. 그러나 자융은 지난 해 이 곳에서 강론을 하였는데, 대부분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충고를 하였지만, 그 뒤로 줄곧 소식(편지)이 없는데,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사람도 애써 노력할 것인데, 친구 사이에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금이라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 겉만 꾸미고 빨리 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곧 많은 문제들이 생깁니다. 배우는 사람은 이 점을 힘써 성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편지를 주고받을 기회가 있어 이러한 내 생각을 전해준다면 좋겠습니다.

方叔子融曾相見否? 方叔看得道理儘自穩實, 却是子融去歲在此講論, 多不合處. 中間蓋嘗苦口言之, 後來一向不得書, 不知能相信否. 似渠堅苦力量, 朋友間豈易得? 覺微有向外欲速意思, 便做出許多病痛. 學者於此, 豈可不痛加省察或因通書, 幸爲致意.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1(乙卯, 1195, 66)에 진재경에게 쓴 다섯 번째 편지이다. 마음과 이치를 보존하는 일과 격물치지의 공부가 별개의 공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보내오신 편지를 상세히 읽어 보고 일상생활의 공부에 이와 같이 정진했음을 알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만약 이 마음과 이 이치의 단서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행동에 저절로 어긋남이 없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구하지 않아도 얻을 것이고 잡지 않아도 보존될 것입니다. 격물 치지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미루어서 아직 모르는 것에 미치는 것이니, 이것은 근본이 동일한 것으로 원래 두 가지 공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詳來示, 知日用功夫精進如此, 尤以爲喜. 若知此心此理端的在我, 則參前倚衡, 自有不容捨者, 亦不待求而得, 不待操而存矣. 格物致知, 亦是因其所已知者推之以及其所未知, 只是一本, 元無兩樣工夫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1(乙卯, 1195, 66)에 진재경에게 쓴 여섯 번째 편지이다.

 

새로 지은 시가 참 좋습니다. 소강절의 심경은 쉽게 알 수 없으니, 다시 실생활에서 더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단지 지호자야(之乎者也)’와 같은 의미 없는 글자들(虛字)에서 그를 배우려 한다면, 아마도 어려울 듯합니다.

新詩甚佳. 康節胸懷未易窺測, 須更於實地加功. 若只就之乎者也上學他, 恐無交涉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3(丁巳, 1197, 68)에 진재경에게 쓴 일곱 번째 편지이다.

 

저는 여전히 보잘 것 없이 살고 있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쇠약해져 나 자신에게서 힘을 얻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공부도 많이 끊겼습니다.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시론(時論)이 이렇게 떠들썩하여 마침내 다들 오래 머물 계획을 못하니, 하늘의 뜻이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熹碌碌如昨, 但年老益衰, 己分上自未有得力處, 朋友功夫亦多間斷. 方以爲憂, 而忽此紛紛, 遂皆不敢爲久留計, 未知天意果何如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3(丁巳, 1197, 68)에 진재경에게 쓴 여덟 번째 편지이다.

 

부부(傅簿)가 부()에 갔는데, 언제쯤 돌아올 수 있는지요. 발령을 기다리는 사이에도 독서와 학문에 힘쓰는 것 역시 작은 일은 아닙니다. 나는 올해 발의 질병이 예년보다 매우 심해서 생각은 굴뚝같지만 책상 앞에 앉을 수조차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예서(禮書)를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또 앞으로 병세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보아야 할 것이니, 만일 당신이 예서 정돈하는 일을 맡을 수 있다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학(禮學)은 중대한 일이라서 강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의리를 분명하게 보아야 하고, 그리고 남은 힘이 있을 때 예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갓 정신을 피폐시킬 뿐 실질적 학문에는 보탬이 없을 것입니다.

傅簿赴部, 何時可歸? 待次之間, 且勉其讀書爲學, 亦非細事也. 憙今年足疾爲害甚於常年, 氣全滿, 凭几不得, 緣此禮書不得整頓. 且看向後病勢又如(5-3060), 若有可奉煩者, 卽奉寄也. 禮學是一大事, 不可不講. 然亦須看得義理分明, 有餘力時及之乃佳. 不然, 徒弊精神, 無補於學間之實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5(己未, 1199, 70)에 진재경에게 쓴 아홉 번째 편지이다.

 

󰡔의례󰡕에 단서가 있음을 아시니, 매우 좋습니다. 이 책은 비록 읽기가 어렵지만, 중복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만일 같은 종류끼리 소통된다면, 그 앞뒤와 피차를 참조하여 전개하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오래되면 자연스럽게 관통할 것입니다. 이 책의 편집에는 직경과 용지 형제가 분담하여 등사하고 있는데, 아직 보내오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요즘 비장비대증이 매우 심해 책상에 앉을 수조차 없습니다. 연말에 혹여 몇 사람이 오면, 정월 초의 몇 달 동안 노력하여 듣고 대조하면서 읽어야 혹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부형(傳兄)과 서로 모이면 무슨 글을 보십니까? 집안 일 때문에 전일(專一)하게 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조금씩 과정을 만들어 날마다 일정한 법칙을 둘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오래 하다 보면 저절로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에는 수북(水北)에 계실 것이니 그 곳과는 거리가 멀지 않아서 오히려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도움을 받게 되겠군요. 서자융(徐子融)이 날이 갈수록 유달리 고상해지니 매우 부럽습니다. 편지 한 통은 번거롭더라도 그에게 전해주십시오.

知看儀禮有緖, 甚善. 此書雖難讀, 然却多是重複, 倫類若通, 則其先後彼此展轉參照, 足以互相發明, 久之自通貫也. 此間所編, 直卿及用之兄弟分去謄寫, 尙未送來. 熹以苦氣痞殊甚, 不能俯伏几案. 歲晩諸人或來, 卽開正不免作數月功夫, 自聽對讀, 或可了也. 傳兄相聚, 看得甚文字? 想其家務, 不能專一, 不免小作課程而今其日有常度, 則積累久之, 自見功效矣. 明年只在水北, 卽亦相去不遠, 猶不廢切磋之益也. 子融日益孤高, 深可歎羨, 一書却煩達之.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6(庚申, 1200, 71)에 진재경에게 쓴 열 번째 편지이다.

 

정사(精舍)에는 친구들의 왕래가 일정하지 않지만, 조만간 강론하는 즐거움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든 몸으로 응접하는 것이 전에 비해 상당히 힘이 듭니다. 직경과 유용지가 이 곳에 있으니, 예서는 점차 정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작업인데, 멀리 떨어져 있어 당신과 같이 훌륭한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보내오신 󰡔의례(儀禮)󰡕의 의심스러운 부분에 대해서는 다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다만 시기를 보아 손이 가는 대로 기록하여 두면 뒷날 다른 곳을 읽다가 우연히 만나 혹 밝혀지는 것이 있으니 자연히 힘들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다만 이 의심나는 한 부분만을 고집하다 보면 도리어 놓아버리는 격이 되어 세월만 헛되이 보낼 뿐이지 성과를 거두지는 못합니다. 다른 책은 무얼 보십니까? 자융과 만나면 무엇을 강론하십니까? 글을 쓰다보니 그 사람까지 언급하였는데, 그에 관한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精舍朋友往來不常, 早晩頗有講問之樂. 但病軀應接比之日前頗費力耳. 禮書得直卿劉用之在此, 漸可整頓. 然亦多費功夫, 甚恨相去之遠, 不得賢者之助也. 所示儀禮所疑, 此等處難卒說. 但看時隨手箚記, 向後因讀他處邂逅或有發明, 自不費力. 今徒守此一處, 反成擔閣, 虛度光陰, 不濟事也. 其他更讀何書? 子融相聚, 有何講論? 因筆及之, 所願聞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경원 2(丙辰, 1196, 67)에 진재경에게 쓴 열한 번째 편지이다.

 

저는 여전히 늙고 병든데다가 환란까지 덮쳐, 올 여름에는 작은 손자 하나를 잃었고, 가을에는 또 둘째 며느리의 친척을 잃어 너무 슬픈 나머지 더욱 심하게 앓고 여위었습니다. 보내주신 글을 자세히 읽으니 당신 역시 좋지 못한 일이 있었음을 알겠지만 무슨 까닭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매우 슬픕니다. 보내 주신 편지에서 걱정거리에 정신을 빼앗겨 공부에 진척이 없다고 하셨는데 여기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부지런히 앞을 향해 전진하는 것뿐입니다.

熹衰病如昨, 加以患難, 今歲夏間復失一小孫, 秋來又有仲婦之戚, 悲傷之餘, 羸困益甚. 細讀來喩, 知亦有災患, 不知何故, 然亦深爲怛然也. 示喩憂懼所奪, 工夫不進, 此亦別無他巧, 但得勉力向前爾.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순희 15(戊申, 1188, 59)에 진재경에게 쓴 열두 번째 편지이다.

 

정숙이 나중에 따로 편지를 보내왔는데, 다시 의문 나는 부분이 있어 그 점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을 당신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으니, 이에 의거하여 일상적 공부를 하면 다시 의문이 생기거나 담론하느라 헛되이 낭비하거나 시간만 흘려보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正叔別後書來, 復有疑問, 已詳報之. 託其轉寄才卿, 可便依此作日用功夫, 不須更生疑慮, 空費談說, 過却光陰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순희 15(戊申, 1188, 59)에 진재경에게 쓴 열세 번째 편지이다.

 

그곳에는 자제들이 몇 사람이나 모여 있습니까? 말귀 알아먹을만한 사람은 있습니까? 이곳 역시 때때로 벗들이 다녀가지만, 몸과 마음이 한결 같고 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彼中相聚子弟幾人? 有可告語者否? 此亦時有朋友往來, 但難得身心純一功夫不間斷者耳.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순희 16(己酉, 1189, 60)에 진재경에게 쓴 열네 번째 편지이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성의(誠意)에 관한 이론은 예전의 편지에서 말씀하신 견해가 옳습니다. 지난번의 󰡔장구󰡕는 생각이 지나쳐 도리어 본래의 뜻을 잃어버렸으니, 지금 이미 그 점은 개정하였습니다. 여정숙(余正叔)과 서자융(徐子融)은 여러 날을 함께 지내면서 많은 강론을 하였습니다만, 당신만이 여기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습니다. 여러 책들은 두 사람이 모두 판본을 가지고 있으니 돌아가는 날 반드시 함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심나는 부분을 자세히 깨우쳐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소강절(康節)의 글은 두 사람이 이미 보았지만, 저 역시 그 학설을 다 궁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계몽(啓蒙)󰡕에 실린 것은 󰡔()󰡕에 대해 밝힌 것이고, 나머지는 따로 일가(一家)의 학문을 이루었습니다. 채계통(蔡季通)이 근래 그 대강을 엮어 내어 간행하고자 하니 곧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깊이 탐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所喩誠意之說, 只舊來所見爲是. 昨來章句却是思索過當, 反失本旨, 今已改之矣. 正叔子融相聚累日, 多得講論, 甚恨才卿獨不在此也. 諸書二兄處皆有(5-3063), 歸日必同觀, 有疑幸詳諭及. 康節文字二兄亦已見之, 熹亦不能盡究其說. 只啓蒙所載爲有發於易, 他則別成一家之學. 季通近編出梗槪, 欲刊行, 旦夕必見之. 然亦不必深究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순희 16(己酉, 1189, 60)에 진재경에게 쓴 열다섯 번째 편지이다.

 

제가 늘그막에 다행하게도 다시 외사(外祠)의 봉록을 얻어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무척 기쁩니다. 그러나 당신의 꿈만 사납게 만들었으니, 부끄러움이 없지 않습니다. 󰡔대학장구󰡕․󰡔혹문󰡕은 요즘 다시 수정했지만 요지는 다르지 않고 단지 조금 더 정밀하게 요약했습니다. 󰡔중용󰡕도 다시 바로잡고 싶은데, 옛날의 책이 너무 쓸데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진실로 싫어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마음을 개방하여 시원하게 트이도록 하여 막히는 바가 없게 하고자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도리어 억지로 배정할 수 없으며, 의도적으로 개방시키려고 하면 도리어 문제가 됩니다. 다만 일정한 법도를 지켜 오래 되면 충분히 무르익어서 저절로 후련하게 되어야 좋습니다. 자융이 설명한 낙의생향(樂意生香)’ 부분은 매우 명쾌합니다. 다만 다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갈까 걱정스럽습니다.

熹衰晩, 甚幸復安外祠之祿, 深以自慶. 但使賢者爲亂夢, 不無愧耳. 大學章句或問比復略修, 大旨不殊, 但稍加精約耳. 中庸亦更欲刪訂, 大抵舊書太冗也. 遇事固不當有所厭, 然謂欲放令此心疏豁, 無所執滯, 此却恐硬差排不得, 著意開放, 却成病痛. 但且守常程, 久之純熟, 自然疏豁乃佳耳. 子融說得樂意生香處甚痛快, 但恐又轉入舊腔裏也.

 

 

 

答陳才卿 진재경에게 답함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진재경에게 쓴 열여섯 번째 편지이다.

 

여정숙(余正叔)이 갑자기 그렇게 되어 사람의 가슴을 찢어지게 합니다. 인생살이는 뜬 구름과 같아서 아침에 저녁의 일도 장담할 수 없으니, 매우 두렵습니다. 진실로 용감하게 정진해야 헛되이 한 세상을 살다가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正叔遽至於此, 令人痛傷. 人生虛浮, 朝不保夕, 深可警意. 眞當勇猛精進, (5-3064)庶幾不虛作一世人也.

 

 

 

여정숙에게 답함 答余正叔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여정숙에게 쓴 첫 번째 편지이다.

 

보내주신 글은 잘 보았습니다. 전날 논했던 것은 바로 경()과 의() 공부는 어느 하나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의를 축적[集義]하는 데에만 힘을 쓰고 경을 주장[主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헛되고 교만하고 성급한 문제가 있으니, 이른바 의라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의가 아닐 것입니다. 거꾸로 경을 위주로 한다고 하면서도 일상생활에 일어나는 생각에 나아가 그 공()과 사()()와 이()의 소재를 분별하여 취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의 기미를 판단할 줄 모르는 것 역시 여러 가지 것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니, 이른바 경은 그들이 말하는 경이 아닐 것입니다. 이른바 의를 축적한다는 것은 바로 저쪽에 있는 물욕(物欲)의 사사로운 것을 간파하고 이쪽으로 와서 천리(天理)의 올바름을 알아 모든 사물과 모든 곳을 모두 이런 식으로 몸소 고찰하여 무슨 일을 하건 그것이 곧 천리인지 물욕인지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리가 날로 분명해질 것이니, 이른바 물욕의 유혹 또한 매몰차게 끊어버리지 않더라도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그 본령은 진실로 경()을 위주로 해야 합니다. 다만 다시 의를 축적하는 공부를 통해 이욕(利欲)에 가려진 마음을 없앤다면 경에 더욱 보탬이 될 것이니, 애써 의도하고 안배하지 않더라도 뒤섞이고 혼란스러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른바 상채(上蔡; 謝良佐)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없애는 것은 경을 실천[用敬]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고 한 것도 그 뜻이 이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示喩已悉. 前日所論, 正爲敬義工夫不可偏廢. 彼專務集義而不知主敬者, 固有虛驕急迫之病, 而所謂義者或非其義. 然專言主敬, 而不知就日用間念慮起處分別其公私義利之所在, 而決取舍之幾焉, 則恐亦未免於昏憒雜擾, 而所謂敬者有非其敬矣. 且所謂集義, 正是要得看破那邊物欲之私, 却來這下認得天理之正, 事事物物, 頭頭處處, 無不如此體察, 觸手便作兩片, 則天理日見分明, 所謂物欲之誘, 亦不待痛加遏絶而自然破矣. 若其本領, 則固當以敬爲主. 但更得集義之功以祛利欲之蔽, 則於敬益有助, 蓋有不待著意安排而無昏憒雜擾之病. 上蔡所謂 去却不合做底事, 則於用敬有功’, 恐其意亦謂此也.

 

그대는 본래 게으르고 의심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의 이 논의도 여전히 그런 잘못에 빠져 있는데, 당시 나의 논의 역시 매우 분명하지 못해 이와 같은 문제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이렇게 분석하였으니, 그대는 내 뜻이 경()을 버리고 의()를 담론하며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두 곳에 힘을 써서 서로 도움이 되게 하려는 것임을 알아주십시오. 그것은 바로 정자(程子)가 말한 ()과 의()를 함께 지키면서 곧바로 위로 올라가야 할 것이니, 천덕(天德)에 이르는 것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지금 다시 의문을 품거나 딴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만 이 말을 따라 오래도록 착실히 공부한다면 저절로 터득할 것입니다.

전에 지은 세 편의 시 가운데, 첫 번째 시의 공부의 과정을 계산한다는 구절은 큰 문제이고, 그 아래 역시 정확히 실제로 공부하고 힘써야 할 곳을 아직 알지 못한 것입니다. 뒤의 두 편의 시 역시 말을 실천한 효과를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니, 다만 부질없는 말이 되어 유학에서 매우 금기하는 것을 범하였습니다. 그것은 대개 평소에 탑을 쳐다보면서 탑 꼭대기의 상륜(相輪)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은 사고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반드시 용감하고 결단력 있게 착실히 공부하여 이러한 문제를 힘껏 바로 잡아야지, 예전처럼 대충 대충하면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正叔本有遲疑支蔓之病, 今此所論, 依舊墮在此中, 恐亦是當時鄙論不甚分明, 致得如此. 故今復如此剖析將去, 使正叔知得鄙意不是舍敬談義, 去本逐末, 正欲兩處用功, 交相爲助. 正如程子所謂 敬義夾持直上, 達天德自此者耳. (5-3065)亦不須更生疑慮, 別作商量, 但請依此實下功夫, 久遠純熟, 便自見得也.

前日三詩, 首篇 計功程字是大病根, 而其下亦未見的實用功得力之處. 後二篇亦未見踐言之效, 只成虛說, 尤犯聖門大禁. 大槪皆是平日對塔說相輪慣了意思, 致得如此. 須是勇猛決烈, 實下功夫, 力救此病, 不可似前泛泛悠悠, 虛度時日也.

 

 

여정숙에게 답함 答余正叔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여정숙에게 쓴 두 번째 편지이다.

 

보내 주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일상생활의 공부는 내 바람에 크게 부응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논했던 것은 전적으로 사념(思念)을 종식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한결같이 책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조금씩 개방하여 비우고 한가롭게 하여[放敎虛閑] 자기 자신에게 절실한 것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을 때야말로 더욱 근본이 있는 곳이니, 어둡고 게으르며 어수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또 그러한 때에 곧 자신을 지키고 마음을 길러 주재를 확립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상은 학자를 이끌어주는 하나의 경계하는 대책으로 동정(動靜)을 관통하는 것일 뿐입니다. 다만 일이 없을 때는 늘 이와 같이 지키고 기르며, 일이 있을 때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취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안을 곧게 하는 것과 밖을 바르게 하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지, 동정을 전혀 다른 두 개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채(上蔡: 謝良佐)의 설명이 이와 같은데, 매우 긴요하고 적절합니다. 그런 식으로 오래도록 경각하여 반드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부디 우선 일상생활과 󰡔논어󰡕에 힘을 써서 회통하는 곳이 있게 해야 할 것이니, 그러면 다른 책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示喩日用工夫, 甚副所望. 然前者所論, 未嘗欲專求息念, 但以爲不可一向專靠書冊, 故稍稍放敎虛閑, 務要親切自己. 然其無事之時, 尤是本根所在, 不可昏惰雜擾, 故又欲就此便加持養, 立個主宰. 其實只是一個提撕警策, 通貫動靜. 但是無事時只是一直如此持養, 有事處便有是非取舍, 所以有直內方外之別, 非以動靜眞爲判然二物也. 上蔡之說便是如此, 亦甚要切. 但如此警覺, 久遠須得力爾. 千萬且於日用間及論語中著力, 令有個會通處, 卽他書亦不難讀爾.

 

 

여정숙에게 답함 答余正叔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여정숙에게 쓴 세 번째 편지이다.

 

저는 벼슬길에 한 번 나갔지만 별다른 업적도 없었고, 이제 다행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또 다행스럽게도 사록관의 요청이 수용되어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푹 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옛날 책들을 읽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임금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마음[葵藿之心]이야 변함없지만, 시골에 묻혀 지내는 하찮은 신분인지라 내 한 몸만 돌보고 있는 형편입니다. 헤어진 후로 독서하고 이치를 탐구하는 데 진전이 있었습니까? 저는 집에 돌아온 후로 󰡔대학󰡕󰡔󰡕만 보았는데, 고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의리는 끝이 없는데 저의 몸과 마음은 한계가 있으니, 어찌해야 할까요? 죽을 때까지 모든 힘을 다해 연구할 뿐입니다.

熹一出無補, 幸已還家, 又幸奉祠遂請, 且得杜門休息. 間讀舊書, 雖葵藿之心不敢弭忘, 然疏遠之分亦不敢不自安也. 別後讀書觀理, 復增勝否? 熹歸家只看得大學與易, 修改頗多. 義理無窮, 心力有限, 奈何奈何? 唯需畢力鑽硏, 死而後已耳.

 

 

 

여대유에게 답함 答余方叔(大猷)

 

해제이 글은 소희 5(갑인, 1194, 65)에 여대유(余大猷)에게 쓴 편지이다.

 

보내주신 편지의 별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드렸으니, 그 문제를 다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어 다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강론을 하면서 정밀하게 살피는 것을 싫증내지 않아야 의리의 진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가라앉혀야 비로소 정밀하게 살필 수 있습니다. 만일 한 때의 얄팍한 견해를 자기주장으로 삼는다면, 진보가 없을 것입니다.

所喩別紙奉報, 幸更思之, 有所未安, 復以見告. 講論不厭精審, 方見義理之眞. 然亦須是虛心平氣, 方能精審. 若以一時粗淺之見便自主張, 卽無由有進處(5-3067).

 

질문 :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신은 원래 근본이 동일한 것으로 인이 통체(統體)가 된다. 그러므로 생기가 있는 것들은 이 다섯 가지를 자연스럽게 모두 갖추고 있고, 생기가 없는 것들은 다섯 가지 중에 하나도 갖추지 못했으니, 단지 본연의 성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생기가 없는(말라비틀어진) 사물(물건)이라도 본성()이 있고 기()가 있으며, 또 이들은 기질의 성으로 확장하여 구비하고, 그들로 하여금 본체와 함께 명확하게 살펴 구별하되 두루하지 않음이 없게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답변 : 하늘이 낸 사물 중에서, 사람과 짐승은 혈기와 지각이 있고, 초목은 혈기와 지각은 없지만 생기(生氣)는 있으며, 말라 죽은 것들은 이미 생기는 끊어졌지만 단지 형질(形質)과 냄새, 맛만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나누어진 것은 다르지만, 그 이치는 같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나뉨의 특수성[其分之殊]으로 말하면 여기에 들어 있는 이치가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가장 신령스러워 오상(五常)의 성품을 다 갖추었으나, 짐승은 혼탁하여 (온전하게) 갖추지 못했고, 초목과 말라 죽은 것들은 또 그 지각마저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물이 되는 이치는 갖추어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만약 말씀하신 것처럼 생기가 없으면 곧 이치도 없다고 한다면 천하에 성()이 없는 사물이 있게 되고, 이치는 이 천하에 채워지지 않아 빈 곳이 있다는 말인데, 될법한 소리입니까? 그 이론이 모두 맞지만, 경이란 단지 이러한 것들을 막고 없애어 리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의 의미가 적절하지 못합니다. 모름지기 경은 바로 이 마음이 스스로 주재하는 곳임을 알고, 여기에 더욱 힘을 쓴다면 곧 저절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大猷竊謂仁信元是一本, 而仁爲統體, 故天下之物有生氣, 則五者自然完具; 無生氣, 則五者一不存焉, 只是說及本然之性. 先生以爲枯槁之物亦皆有性有氣, 此又是以氣質之性廣而備之, 使之兼體洞照而無不徧耳.

天之生物, 有有血氣知覺者, 人獸是也; 有無血氣知覺而但有生氣者, 草木是也; 有生氣已絶而但有形質臭味者, 枯槁是也. 是雖其分之殊, 而其理則未嘗不同. 但以其分之殊, 則其理之在是者不能不異. 故人爲最靈而備有五常之性, 禽獸則昏而不能備, 草木枯槁, 則又幷與其知覺者而亡焉. 但其所以爲是物之理, 則未嘗不具耳. 若如所謂纔無生氣便無此理, 則是天下乃有無性之物, 而理之在天下乃有空闕不滿之處也, 而可乎? 他說皆得之, 但謂敬只是防去此等, 以復於理, 語意未切. 須知敬卽此心之自做主宰處, 更宜用力, 卽自見得也.

 

 

 

조사공에게 답함 答趙恭父()

 

해제이 글은 소희 1(경술, 1190, 61)에 조공보에게 쓴 첫 번째 편지이다.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당신의 학문하는 뜻을 알았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논하신 것을 살펴보니, 조목이 매우 상세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학자의 공통된 근심거리지만 직접 힘을 쓴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대개 경()을 주장하는 공부가 지극하지 않으면 중간에 단절됩니다. 다만 일상생활 중에서 늘 스스로 일깨워서 어둡고 게으름피우지 않으면 오래도록 커다란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惠書, 得聞爲學之志, 固已甚幸. 又觀所論條目甚詳, 皆學者通患, 顧非親曾(5-3068)用力, 不能知耳. 大抵只是主敬功夫不至, 致得間斷. 但日用間常自提撕, 勿令昏惰, 則久久自長進矣.

 

 

 

조사공에게 답함 答趙恭父

 

해제이 글은 경원 3(정사, 1197, 68)에 조공보에게 쓴 두 번째 편지이다.

 

말씀하신 여러 이론들에서 생각의 정밀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생각이 지나치게 높아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계속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경전을 이해할 수 없게 할뿐만 아니라 성현이라도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것이니, 설령 언어가 있더라도 모두 군더더기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빛을 본 듯하여 저도 모르게 희열을 느꼈다고 했는데, 이것 또한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우선 평이하고 실제적이며 명백한 곳에서 도리의 옳고 그름을 보아야 할 것이니, 오래 되면 저절로 밝아지고 평온해져서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의례󰡕에 관한 글은 좋습니다. 조치도(趙致道)가 이미 󰡔의례󰡕의 한 단원[]을 주석하였으니, 나중에 다른 여러 단원들을 주석할 때 이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덧붙인 것 가운데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당연히 주석을 달아야 합니다. 조치도가 돌아간다고 하니 사람을 매우 속상하게 합니다. 요즈음의 일들은 그 사람도 알 것이니, 더 이상 자질구레 말하지 않겠습니다. 학문에 대한 그의 인식이 잘못되지는 않았지만 근면하고 진실하게 축적한 공부가 없는 듯합니다. 모든 일을 서로 권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所示諸說, 備見用意之精. 然看得皆過高, 不平穩. 若一向如此說, 卽非唯令人解經不得, 雖聖賢亦無開口處, 凡有言語, 皆爲剩物矣. 又說日用間似見光景, 不覺喜悅, 此亦非好消息. 且宜就平實明白處看道理是非, 久之自然開明安穩, 無凝滯也. 儀禮文字却好, 致道一篇已入注疏, 他時諸篇皆當放此. 或所附之文有難曉者, 亦當附以注疏也. 致道告歸, 甚令人作惡. 此間事渠能言之, 更不縷縷. 渠認得門路却不錯, 但恐未有勤懇積纍工夫. 凡百更相勸勉爲佳耳.

 

 

 

조공보에게 답함 答趙恭父

 

해제이 글은 경원 3(정사, 1197, 68)에 조공보에게 쓴 세 번째 편지이다.

 

질문: (󰡔논어󰡕 「학이편의) 상사(喪事)를 삼가고 조상을 추모한다[愼終追遠]’는 구절에 대해, 유작(游酢)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상사)이란 사람이 소홀하기 쉬운 것인데 신중하게 처리하고, (: 제사)이란 사람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인데 추모하는 것은 두터움이 지극한 것이다.” 생각하건대, 유작의 뜻은 모든 일을 두루 가리켜 말한 것이지 단지 상례와 제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顙泚]’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니, 상사에 마땅히 삼가고 먼 조상을 추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모두 천리로서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처리에 있어서, 일상적인 감정에 젖어 시작은 삼가면서도 그 끝에 가서는 늘 소홀하며 가까운 것 때문에 먼 데 이르면 늘 잊어버리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답변: 성인의 말씀은 보통 사람을 위한 것이지 현명한 사람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두 마땅히 그러한 바의 이치이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만약 모두가 당신이 편지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면, 세상에 죽은 이를 배신하고 조상을 망각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어서, 요임금 순임금이 없더라도 백성들이 모두 성인의 덕에 감화될 것입니다. 또 증자도 이 두 구절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정자도 상례와 제례를 함께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愼終追遠, 游氏曰: ‘終者, 人之所易忽也, 而愼之; 遠者, 人之所易忘也, 而追之, 厚之至也.’ 竊意游氏意恐指凡事而言, 非專爲喪祭而發. 夫顙泚非爲人愴悽, 非謂其終之當謹, 遠之當追, 是皆天理人心不能自已. 非若凡事玩於常情, 故終謹於始, 而及其終也往往易以忽, 爲近及遠也往往易以忘.

聖人之言爲衆人發, 非專爲賢者發也, 故其所言皆理之所當然, 而人多不能然者. 若皆如來喩, 則世間更無偝死忘先之人, 不待堯舜而比屋常可封矣. 曾子亦不須說此兩句, 程子亦不當兼說喪祭也.

 

질문 : “부귀는 사람이 바라는 것이다는 단락은 하찮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 단락은 안연과 민자건 이상의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면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답변 : 글을 볼 때에는 마음을 비우고 글에 따라 균형 있게 보아야 합니다. 어찌 본래 말한 바가 작은데 크게 보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 단락이 가리키는 바를 다시 깊이 새겨보아야 실제로 노력해야 할 곳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富貴是人之所欲一章, 恐亦不可小看. 看此自非顔閔以上工夫至到者, 恐未易言.

看文字只虛心隨文平看, 豈有所說本小而須作大看之理? 此章之指更宜深玩, 方見實用力處.

 

질문: “원사가 공자의 가신이 되었다는 구절은 같은 종류끼리 모아 따로 한 장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답변: 이러한 종류는 대부분 분류가 한결같지 않습니다. 예컨대, 중궁(仲弓)자상(子桑)안연(顔淵)자로(子路)는 장을 따로 나누지 않았고, 자천(子賤)과 자공회야(回也)와 염구(冉求)는 도리어 나누었습니다. 이는 대개 한 때 교정을 잘못 본 것이지만 대의가 걸린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바꿀 수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모두 다 쪼개서 둘로 나누는 것이 더 좋습니다.

原思爲之宰, 疑亦以類相從而別爲一章, 未詳.

(5-3070)此類亦多分得不同, 如仲弓子桑顔淵子路不曾分, 子賤子貢回也冉求却分了. 蓋一時失於點對, 然非大義所繫, 不能易也. 要之不若皆析爲二乃佳.

 

질문: (󰡔논어󰡕 「옹야) “어질다, 안회(顔回)!”에 대해, 󰡔집주󰡕지금 감히 함부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래에서 자기의 사욕을 이겨내고 예로 돌아간다 ……고 한 말이 이미 학자를 위해 설파한 것인데, 불필요하게 이 말(‘지금 감히 함부로 설명할 수 없다’)을 덧붙인 것 같습니다.

답변: (󰡔논어󰡕에서 공자와 안자가) 즐거운 한 곳이 무엇이며, 즐거워 한 것이 어떤 일이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賢哉回也章集注云: ‘今不敢妄爲之說.’ 某竊疑下克己復禮之云, 已熬爲學者說破, 却似剩著此語.

不曾說樂處如何, 所樂何事也.

 

질문: “써주면 도()를 행하고 버리면 숨는다는 장에서, 제 생각으로는 오직 나와 너뿐이다[唯我與爾]”에서 ()’함께, 같다[]’라는 의미이고,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則誰與]”나는 함께 하지 않겠다[吾不與]”()’허여[]’의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합해 한 장으로 삼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집주󰡕에서는 부자(夫子)께서 삼군(三軍)을 출동하신다면 반드시 자기와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고, 자로는 스스로 만약 삼군을 출동하신다면, 나를 버리고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니, 기상이 너무 거칠고 사나움이 발견됩니다. 만약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도 서로 계발함에는 해로움이 없을 것입니다. 즉 글자의 뜻이 이미 분명해지고, 기상 또한 이와 같이 심하게 드러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답변: 장을 나누는 문제는 앞에서 이미 말하였습니다. 다만 자를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인 듯합니다. 자로의 물음이 거칠고 사나우며 그 기상이 이와 같은데, 두 개의 장으로 쪼갠다 하더라도 거칠고 사나움이 여전히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의 거칠고 사나움을 내가 어떻게 쫓아가 덮어줄 수 있겠습니까.

用之則行, 舍之則藏, 竊疑 唯我與爾是訓同, ‘則誰與吾不與是訓許, 故竊以爲恐難合作一章. 詳集注 意夫子行三軍, 必與己同, 子路自謂 若行三軍, 則舍我復誰同耶’, 但覺得氣象太粗暴. 若作兩章而不害其相蒙, 則字義旣明, 而氣象亦不覺至如此也.

分章已見前說, 字恐難作兩般說. 子路問得粗暴, 是其氣象如此, 雖作兩章, 然粗暴亦只在也. 况彼之粗暴, 吾又安能追而抑之耶?

 

질문: “내가 멈추고 내가 간다는 문장의 뜻을 생각해보건대, ‘[]’란 성인 자신인 것 같습니다.

답변: 이와 같이 해석하자면 구절의 글자 수가 부족하며, 성인은 이와 같이 억지로 기묘하게 꾸미거나 조작하여 말씀하지 않습니다.

吾止吾往也’, 竊意文義, , 聖人自吾也.

若如所解, 卽句內字數不足, 聖人之言不如是之造作奇巧也.

 

질문: “군자는 감색(紺色)과 붉은 빛으로 옷을 선두르지 않으셨다는 구절을 󰡔집주󰡕에서 군자는 공자를 이른다고 주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 문장에서 소씨(蘇氏: 소식)이것은 공자가 남긴 글로서 자질구레한 예절을 이것저것 기록한 것이니, 비단 공자의 일만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답변: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두어 학자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 것이지, 정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君子不以紺緅飾注云: ‘君子謂孔子’. 下文蘇氏曰: ‘此孔子遺書, (5-3071)雜記曲禮, 非特孔子事.’

此二義兼存, 以待學者之自擇, 未有一定之說.

 

질문: “안회는 도에 가까웠고 자주 끼니를 굶었다는 장에 대해, 󰡔집주󰡕그 도에 가까웠고 또 가난을 편안하게 여겼음을 말씀한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대개 도를 즐겼기 때문에 가난을 편안히 여긴 것이고, 가난을 편안히 여긴 것은 도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답변: 세상에는 타고난 자질이 뛰어난 가난을 편안히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도를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集注解 回也其庶乎, 屢空, 言其近道, 又能安貧也. 竊疑 字似作兩截, 蓋樂道故能安貧, 而安貧所以樂道也.

世間亦有質美而能安貧者, 皆以爲知道, 可乎? 更思之.

 

질문: “언론(言論)이 독실한 사람을 이에 친히 한다장에 대해, 󰡔집주󰡕는 이러저러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단지 말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주󰡕의 아래 문장에서 또 외모로 사람을 취해서는 안 됨을 말씀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답변: ‘색장(色莊)’이라 하면 곧 외모()라는 뜻을 겸하고 있습니다.

論篤是與章集注 (云云), 詳此文義, 恐只是說不可以言取人, 下文又言不可以貌取人, 何也?

色莊便是兼著貌字.

 

질문: 제의

답변: “부모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화기가 있다는 구절은 위 문장의 단지 경건한 얼굴 표정한 구절만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의 제사를 지내면서 몸을 구부리지 않고 상냥하지 않으며 신령이 이 제사를 기뻐하시도록 기원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등을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모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화기가 있다는 구절) 아래는 효자와 관련된 이러저러한 여러 가지 일을 기록하고 있으니, 반드시 제사를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편집한 사람이 그것과 서로 관련된 것들을 모아 (󰡔의례󰡕) 경문 아래에 덧붙인 것이니, 그러한 사례는 전편에 두루 있습니다. 제통편을 제의편 앞에 두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祭義

深愛和氣一節, 承上文 孝子之祭不詘不愉不欲等語而發, 非獨爲 敬齊之色一句也. 其下乃迤邐雜記孝事, 未必爲祭發也. 所編者但取其相關者附之經下, 其全篇且與泛存. 祭統先於祭義, 亦無害也.

 

질문: 삼가 󰡔예기󰡕 「향음주의를 살펴보니, 선유들은 이 편의 향음주의 의() …… 백성들 사이에서 공경하고 사양하는 아름다운 풍속이 진작되어 다투는 일이 없을 것이다는 향대부가 지방의 학교에서 손님과 술 마시는 예법을 기록한 것이고, “향음주의 예()…… 예의 대참(大參)이다는 당정(黨正)이 학교에서 술을 마시어 나이의 차례에 따른 자리를 바로잡는 것을 기록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 문장을 자세하게 살펴보니, 전자의 이론에 따르면 옛날의 학술에서, ()란 장차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었다. ……라고 했으니, 빈흥(賓興)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후자의 이론에 따라 예순 살 먹은 사람은 앉고, 쉰 살 먹은 사람은 서서 시중을 들면서 정사(政事)와 역사(役事)를 듣는다는 종류 역시 나이의 차례를 증명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의례󰡕에 기록된 향음(鄕飮)은 단지 향대부가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면서 그를 빈객의 예로써 대한다는 것뿐인데, 예를 설명하는 사람이 왜 당음(黨飮)의 의미를 취하고 기문(記文)에서도 그 의미로 해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현(鄭玄)의 주석에 따르면, “한나라에서는 10월에 이 음주(飮酒)를 행했는데, 대개 당정의 설을 취했다.” 그렇다면 향음주의 예로부터 아래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문장이 될 수 없는데, 세상의 학자들은 거기에서 어떻게 당정의 의미를 취하고 나아가 그것을 더욱 부연하여 설명하는 것입니까? 저는 견문이 짧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답변: 여기에는 다른 뜻은 없고, 다만 (󰡔예기󰡕) 짓고 기록한 사람이 그것을 함께 거론하고 있을 뿐입니다.

鄕飮酒義, 謹按: 此篇自鄕飮酒之義而下, 先儒以爲記鄕大夫飮賓于庠序之禮, 自鄕飮酒之禮而下, 先儒以爲記黨正飮酒于庠序, 以正齒序之位. 今詳考其文, 由前之說, 則有所謂 古之學術, 道者將以得身也’ (云云), 固足以見賓興之(5-3072). 由後之說, 則有所謂六十者坐, 五十者立侍以聽政役之類, 亦足以證序齒之事. 但某竊疑儀禮所載鄕飮, 只是鄕大夫興其賢能而以禮賓之, 不知說禮者何取於黨飮而記爲是義? 據鄭注云, 漢郡國以十月行此飮酒, 蓋取黨正之說. 然則自鄕飮酒之禮而下, 豈自成一章之文, 乃世儒述其所以有取於黨正之義而因以傅益之耶? 淺陋未得其說.

此無他義, 只是作記者幷擧之耳.

 

질문: 󰡔예기󰡕 「연의편은 첫머리에 서자관(庶子官)’ 구절을 싣고 있는데, 그 까닭을 잘 모르겠습니다. 글의 맥락으로 보자면, 아마도 제후 연례(諸侯燕禮)의 의()’를 편의 첫머리로 삼고, 서자관(庶子官) 구절은 편의 마지막에 두어야 글이 제대로 될 것 같습니다.

답변: 그렇게 해야 마땅합니다.

燕義首載庶子官一節, 未詳. 據文勢, 恐當以諸侯燕禮之義爲篇首, 而置庶子官一節於篇末, 乃成文耳.

當如此.

 

질문: 내칙편은 문장의 조리가 정밀하고 법도가 정밀 상세하여, 옛 성왕이 인륜을 두텁게 하고 훌륭하게 교화함이 완벽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중간에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몇 군데 있지 않나 의심스럽습니다. 예를 들면, “(가정의 식사에 있어서) 주식에는 기장메기장……대부는 세 개인데 역시 방안에 마련하며, ()는 흙으로 만든 점()으로 이것을 대용하지만 그 수효는 하나로써 역시 방안에 마련해야 한다는 구절은 위아래의 글과 서로 들어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찌 귀천과 등급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서 특별히 이것을 기록했겠습니까? 무릇 노인을 봉양하는 예에 있어서 ……검은 옷(玄衣)을 입고 노인을 봉양하였다까지는 아마도 왕제편의 문장이 다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옛 성왕의 만들어놓은 법제가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으로 인해서 어떻게 천하와 다른 사람의 노인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증자께서 말하기를 효자가 노부모를 봉양하는 데는 ……개와 말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그렇거늘, 하물며 사람의 일에 있어서랴까지는 비록 노인을 봉양한다는 위 문장을 이어서 말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미 천자가 재상에게 명령하여 백성들에게 예의 도덕을 가르치게 하였다고 말했으니, 이는 옛날 태평한 시대에 조정에서 내린 교화의 명령이니, 꼭 증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인용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이 부분이 쓰인 죽간(竹簡)에 잘못되거나 빠진 글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릇 노인을 봉양하는 예에 있어서, 오제(五帝)의 시대에는 그 덕행에 따를 뿐이었는데 ……모두 돈후한 덕을 기록한 사서(史書)가 있었다는 부분은 아마도 죽간에 뒤섞인 부분이 있었거나, 아니면 검은 옷을 입고 노인을 봉양했다는 위 문장의 아래에 두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순오(淳熬)” 쌀가루와 함께 넣어서 국죽을 만든다에 이르는 부분 역시 죽간이 뒤섞인 부분이 있거나, 아니면 위의 겨울에는 생선과 기러기 고기가 좋으므로 양기름을 사용해서 요리한다 꿩고기와 토끼고기의 탕이 있는데, 이 두 탕에는 나물을 넣어 조화시킨다는 문장 아래에 위치시켜야 마땅할 듯합니다. 이 밖의 몇 구절은 위아래로 문장의 맥락이 분명한데, 이 곳만 아직까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답변: ‘양로(養老)’ 구절은 옛날에도 의심스러웠던 부분으로, 삭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증자돈사(惇史)’의 두 구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음식을 설명하는 곳은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직 잘 모르겠으니,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십시오. (삭제한 부분들은 따로 모아서 유실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內則一篇文理密察, 法度精詳, 見古先聖王所以厚人倫美敎化者, 無所不用其全. 某疑中間似有難看處, 飯黍稷稻粱大夫於閣三, 士於坫一一節, 與上下文似不相蒙. 豈特載此, 因以著夫貴賤品節之差耶? 凡養老玄衣而養老一節, 疑王制文重出, 不然, 亦豈先王之成法, 因子事父母而達之天下以及人之老哉? 曾子曰孝子之養老也至於犬馬盡然, 而况於人乎一節, 雖承上章養老之文而云, 然此旣曰 后王命冢宰降德于衆兆(5-3073)’, 則是古昔盛時朝廷所下敎命, 恐不應引到曾子之言. 疑是他簡脫誤在此耳. 凡養老五帝憲皆有惇史一節, 疑錯簡, 恐或當在上文 玄衣而養老之下. 淳熬以與稻米爲酏一節, 亦疑錯簡, 恐或當屬上文 冬宜鮮羽, 膳嘗羶雉兎, 皆有芼之下. 自此外數節, 上下井井有條, 獨此未易曉暢.

養老一節, 舊亦疑之, 似當削去. (曾子惇史兩節亦然.) 但說飮食處未知如何, 更詳考之. (所削去者亦須別收, 勿使漏失.)

 

질문: 근래에 선생님을 모시고 있을 적에, 여정보가 󰡔예기󰡕분상(奔喪)」․「투호(投壺)두 편은 󰡔의례󰡕의 빠진 부분을 보충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최근에 󰡔예기석문󰡕에서 정씨(鄭氏: 鄭玄)의 편목주(篇目注)를 인용한 것을 보았는데, 오직 이 두 편만 실제 곡례(曲禮)의 정편(正篇)이다고 주석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모두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편이라고 부른 것은 선유들이 잡다하게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또 가공언의 󰡔의례소󰡕를 살펴보니 의례 역시 곡례를 이름하는 것이다 하고, 󰡔예기󰡕 「예기(禮器)주석에 곡례는 오늘날의 예를 말한다. 󰡔예기󰡕의 많은 편들이 없어졌는데, 본래의 편수는 들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정씨의 이른바 금례(今禮)’는 의례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라 했으니, 󰡔의례󰡕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내칙편을 혼례(昏禮)편의 뒤에 붙이고 전문을 쓴 것은 좋습니다만, 소의편을 상견례편 뒤에 붙인 것은 잘못인(온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곳의 몇 구절은 소의편에도 있어서 이미 본편에 편입하였고, 나머지는 잡다한 기록입니다. 아마도 서로 증명하기에는 부족하고 도리어 서로 혼란만 부추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경󰡕은 손상되고 누락되어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는 감히 맥없이 선생님을 귀찮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편집해야 할 내용의 글로 인해 걱정돼서 아뢰는 것입니다. 이치상으로 의심스러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머지도 감히 제멋대로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모두 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

답변: 소의편도 가져다 붙일 곳이 없습니다. 다만 편 첫머리의 말로 인해 상견례편에 덧붙였을 뿐입니다. 만약 여전히 의심스럽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마땅할까요? 비평하여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某比在侍側, 見余正甫云奔喪投壺兩篇可補儀禮之闕, 心甚喜之. 近見禮記釋文引鄭氏篇目注, 獨此二篇注云: ‘實曲禮之正篇也’, 餘皆否. 某竊詳謂之正篇, 則非先儒雜記之文. 又按儀禮疏云: ‘儀禮亦名曲禮’, 又禮器注云: ‘曲禮謂今禮也.’ 禮篇多亡, 本數未聞. 某謂鄭氏所謂今禮卽指儀禮而言, 然則可補儀禮之闕似無疑矣. 內則附昏禮後作傳文亦善, 少儀附相見禮, 則疑未安. 蓋其間數節見少儀, 已編入本編矣, 餘爲雜記, 恐不足以相證而徒足以相亂耳. 未知是否? 禮經殘缺, 可疑者不能一二數. 凡此非敢汎然煩瀆師聽, 但據眼前編集文字, 因致愚慮於其間. 理旣有疑, 問不容已, 自餘不惟不敢肆其狂斐, 卽亦(5-3074)未暇及, 悉告尊察.

少儀亦是無收附處, 且因篇首之言而附之耳. 若以爲疑, 不知却合如何區處? 幸批報也.

 

 

 

조공보에게 답함 答趙恭父

 

[해제] 이 글은 경원 3(丁巳, 1197, 68)에 조공보에게 쓴 네 번째 편지이다.

 

 

논하신 몇 조목은 모두 좋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힘써 노력하여야 그 의미를 알 것입니다. 빈말에 그친다면, 아무리 많은 말이라도 쓸모가 없습니다. 개정한 󰡔대학혹문󰡕은 처음과 끝이 함께 갖추어지고 근본과 말단이 구비되었습니다. 만약 그 절반 정도만 읽고서 주석한다면, 당연히 치우쳐 있다고 의심할 것입니다. 저는 전제직지(全提直指)’라는 네 글자가 불교 선종의 말에 가깝다고 의심했지만, 미처 바꾸지 못했습니다.

진정으로 알면서도 스스로를 속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는데, 그 말씀도 옳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스스로를 속인다는 말은 곧 아는 것이 투철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어제 늦게 쥐약을 먹고 중독되어 거의 죽을 뻔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비상(砒霜)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참으로 알지 못해서 생긴 일일 뿐이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그러나 또 대중을 따라 대략 아는 것 외에 별도로 또 다시 진실로 아는 것이 있어서 따로 도리를 만들어 탐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대강 알고 있는 곳에 나아가 착실하게 체험하여 저절로 믿을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니,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아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한 걸음 물러서고 남에게 한 번 고개 숙인다고 하신 말씀은 매우 좋습니다. 아마 치도(趙師夏)도 이 말을 들었을 것이니, 다시 서로 독려하도록 하십시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관직에 있지만 재주와 덕망을 감추고 조용히 있으면서 너무 앞서 나가지 말아야 이 세상에서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불행히도 남에게 알려지게 된다면 그것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所論數條皆善, 然當實用其力, 乃見意味, 徒爲空言, 雖多無益也. 大學或間所改首尾兼該, 本末具備, 若只讀一半截便下注脚, 宜其不能不有偏倚之疑也. 鄙意却嫌 全提直指四字近襌學語, 未暇改也. 又論亦有眞知而自欺者, 此亦末然. 只此自欺, 便是知得不曾透徹. 此間昨晩有嘗鼠藥而中毒者, 幾致委頓, 只此便是不曾眞知砒霜能殺人, 更何疑耶? 然又不是隨衆略知之外別有眞知, 更須(5-3075)別作道理尋求, 但只就此略知得處著實體驗, 須有自然信得及處, 便是眞知也. 所說退人一步, 低人一頭者, 此則甚善. 致道恐亦不可不聞此說, 可更相勉勵. 今已是不得已而從官, 唯有韜晦靜黙, 勿太近前, 爲可免於斯世耳. 一或不幸, 爲人所知, 便不是好消息也.

 

 

 

조공보에게 답함 答趙恭父

 

[해제] 이 글은 경원 3(丁巳, 1197, 68)에 조공보에게 쓴 다섯 번째 편지이다.

 

󰡔대학󰡕에 관한 논의가 반드시 이와 같은 의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들은 대개 비유로써 경전의 뜻을 대략 밝혀 새로운 것을 익히는 공부를 도우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막히고 정체된다면 도리어 지리멸렬하여 불교나 도가에서 책망하는 데에 빠질 것입니다. 요컨대 기오(淇澳)은 명덕이 백성을 새롭게 개혁할 수 있음을 말함으로써 명덕의 지극한 공덕을 밝히려는 것이었습니다. 열문(烈文)은 한 시대의 백성들이 잊지 못할 뿐만 아니라 후세의 백성들도 잊지 못함을 말함으로써 신민의 지극한 공덕을 밝히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의 흐름이 당연한데, 또 어찌 의심스러운 것이 없겠습니까? ‘친현락리(親賢樂利)’와 관련하여, 위의 네 글자는 후대의 사람이 말한 것이고, 아래의 네 글자는 전왕 자신[親賢]을 가리키기도 하고, 혹은 전왕의 은택[樂利]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모두 아주 상세하게 분석하여 의심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한 번 살펴보신다면 저절로 아실 것입니다.

所論大學, 則似不必如此致疑. 此等大槪諷詠, 略見經意, 以助知新之功耳. 如此拘滯, 却成支蔓, 而墮於異學之所訶矣. 要之淇澳言其明德而可以新民, 以見明德之極功; 烈文因言非獨一時民不能忘, 而後世之民亦不能忘, 以見新民之極功, 自是謂勢當然, 况又無可疑耶? 親賢樂利, 上四字皆自後人而言, 下四字或指前王之身, (親賢)或指前王之澤, (樂利)又皆毫分縷析, 無可疑者. 可試考之, 當自見得也.

 

 

 

조공보에게 답함 (5-3076)答趙恭父

 

[해제] 이 글은 경원 3(丁巳, 1197, 68)에 조공보에게 쓴 여섯 번째 편지이다.

 

도심이 비록 은미하다고 하지만, 인욕이 그를 어지럽히지 않으면 도심을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심이 나날이 무성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도심은 더욱 은미하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된 까닭은 바로 이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본성이 본성이 되는 까닭이라고 말한다면 말의 의미가 너무 중복됩니다.

군자의 시중(時中)’은벽하고 괴이한 것을 행함(索隱行怪)’의 두 장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장구󰡕를 반복해서 체득해야지, 이와 같이 주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 신하들을 체찰하고 백성들을 사랑한다[體群臣 子庶民]’에서 ()’자는 여동래의 설명과 다르지 않고, ‘()’자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동래의 설명이 대체적으로 좋기 때문에 없애고 싶지 않습니다.()’이란 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해서 그 뜻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친친(親親)’은 한 글자가 많은 듯하지만, 대의와 관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깊이 논하지 않습니다.

전지(前知)’에 대한 설명은 󰡔장구󰡕에서 이미 분명하게 했습니다.

대경(大經)을 경륜하며 대본(大本)을 세운다는 구절 역시 󰡔장구󰡕을 자세하게 보지 않은 듯합니다.

멂이 가까운 데로부터 시작함을 안다는 구절 역시 이와 같이 박절하게 하여 부실한 폐단을 낳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일어나는 지를 안다는 구절은 귀결처[결말, 간 곳, 행방, 나올 곳, 생길 곳, 의지할 곳]가 없으니, 모름지기 너그럽고 착실하게 보아야 좋습니다.

󰡔대학󰡕물격(物格)’에서부터 보아가면 이와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의미는 매우 작습니다. 다시 자세하게 살펴보십시오.

道心雖微, 然非人欲亂之, 則亦不至甚難見. 惟其人心日熾, 是以道心愈微也. 人之所以爲人, 以其有是性耳. 若云性之所以爲性, 則語意太重複矣. ‘君子之時中索隱行怪兩章未是, 可更將章句反覆體認, 不須便如此立說也.

體群臣, 子庶民’, ‘字與呂說不異, ‘字雖小不同, 然呂說大意自好, 不欲廢也. 勸者, 所以致吾親愛之心而慰悅其意也. ‘親親似多一字, 然非大義所繫, 不能深論也.

前知之說, 章句中說得巳自分明.

經綸大經, 立大本’, 似亦是看得章句未熟.

知遠之近’, 亦不必如此迫切, 却有不實之病. ‘知風之自一句尤無著落, 須看交寬平著實乃佳耳.

大學若從物格上看下去, 卽不可不如此之意甚少, 更詳之.

 

 

 

조영도에게 답함 (5-3077)答趙詠道

 

[해제] 이 글은 소희 3(임자, 1192, 63)에 조영도에게 쓴 편지이다.

 

저는 공부에 힘쓰지 않아 나이는 먹었어도 별 명성도 없는데, 이러한 저에게 당신께서 질문해주시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려서 다음과 같이 들었습니다. 천하에는 올바른 이치가 있는데, 그것은 오직 널리 배우고(博學), 자세하게 묻고(審問), 신중하게 사고하며(謹思), 분명하게 구별하는(明辨)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한쪽에 치우친 이론을 주장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서 여러 이치들의 옳고 그름을 살핀다면 저절로 올바른 이치를 깨달아 더 이상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만약 한 선생의 말을 들으면 아주 흡족해하고 기뻐하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족하여 이것과 바꿀만한 것은 천하에 없다고 한다면, 이는 천하의 올바른 이치를 얻는데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고루함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호자(胡子; 호굉胡宏)배움은 넓게 하려 하고 잡다하게 하려 하지 않으며, (지킴은) 간략하게 하려 하고 고루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매우 지극한 말입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불교나 도가의 이론은 보통 사람들도 그 잘못을 아는데, 어찌 저처럼 밝은 지혜를 지닌 사람(육상산)이 기꺼이 그 이론을 취해 쓰는 것입니까. 이는 자신은 능력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일을 따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이론입니다. 지금 유학에 나타난 것이 어떠한가를 논하지도 않고 근래의 이른바 불자(불교)의 말만을 읽으니, 그 본말의 소재를 알 것입니다. 이는 우스운 일이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담론하지 않고서는 그 깊은 내막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문을 처음 시작하면서, 그 학설의 옳고 그름을 탐구하여 거기로 가려는 것은 녹색(간색)으로 옷을 만들고 황색으로 속옷을 하는 것처럼 안과 밖을 뒤집어 옷을 만들까 걱정입니다. 예컨대 큰 강을 건너는데 까마득하여 나루터도 없다면, 마땅히 성현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야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동생인 치도는 이 곳에 있는데, 몇 달 동안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비록 온 힘을 다해 학문에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학문하는 방법에는 제법 논의하는 것 같으니, (치도가 돌아가는 길에 당신이 있는 곳을) 거쳐 가면서 반드시 이 곳의 자세한 사정을 알릴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지 않은 것은 물어서 알 수 있을 것이니, 다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熹求道不力, 衰晩無聞, 辱問之勤, 不知所以爲報. 然少嘗聞之, 天下有正理, 唯博學審問, 謹思明辨, 不先自主於一偏之說, 而虛心以察衆理之是非, 乃可以自得於一定之說而無疑. 若得一先人之言而媛媛姝姝, 自以爲足, 便謂天下之美無易於此, 則不唯不足以得天下之正理, 亦歸於陋而已矣. 胡子曰: ‘學欲博不欲雜, 欲約不欲陋’, 此天下之至言也, 願明者以是思之. 若曰佛老之說衆人亦知其非, 豈以彼之明智而肯取以爲用, 此殆侏儒觀優之論. 今固未論有見於吾道者之如何, 但讀近歲所謂佛者之言, 則知其源委之所在矣. 此事可笑, 非面見極談, 不能盡其底裏. 然爲學之初, 便欲窮其說之是非而去取之, 則又恐綠衣黃裏之轉而爲裳也. 如涉大水, 渺無津涯, 要當常以聖賢之言爲標準, 則不至於陷矣. 令弟致道在此相聚數月, 雖未能悉力銳進, 亦似頗議爲學之門戶, 經由必能具道此間曲折. 凡此所未及言者, 可間而知, 不暇盡布也.

 

 

조치도에게 답함 (5-3078)答趙致道(師夏)

 

[해제] 이 글은 소희 3(임자, 1192, 63)에 조치도에게 쓴 첫 번째 편지이다.

 

이기(理氣)가 치우쳤다고 의심하였는데, 그 본원(本原)을 논한다면 바로 이()가 있어야 기()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의 치우침과 온전함에 관해 논할 수는 없지만, 만약 부여받은 것을 논한다면 기가 있고 나서 이가 뒤따라 갖추어지기 때문에 기가 있으면 이도 있고, 기가 없으면 이도 없으며, 기가 많으면 이도 많고, 기가 적으면 이도 적으니, 또 어찌 치우쳤느냐 온전하냐를 논할 수 없겠습니까.

所疑理氣之偏, 若論本原, 則有理然後有氣, 故理不可以偏全論. 若論稟賦, 則有是氣而後理隨以具, 故有是氣則有是理, 無是氣則無是理, 是氣多則是理多, 是氣少卽是理少, 又豈不可以偏全論耶?

 

 

 

조치도에게 답함 答趙致道

 

[해제] 이 글은 소희 3(임자, 1192, 63)에 조치도에게 쓴 두 번째 편지이다.

 

주자(周子: 주돈이)가 말하기를, “()은 인위적으로 함이 없는 것이고 기()는 선악(善惡)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인심(人心)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을 때(未發)의 본체()를 밝히고 이미 움직였을 때(已發)의 단서를 가리킨 것입니다. 대개 학자들로 하여금 싹이 나오는 은미한 데에서 살펴 결정하여 선택할 바를 알아서 버리든지 취하든지 하여 본연의 체를 잃지 않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의심하면서 호자(胡子: 호굉)()는 같되 용()은 다르다고 한 것과 유사하다고 하기에, 마침내 제 생각을 가지고 헤아려 아래와 같이 그림을 그립니다.

 

악기(惡幾)

() ()선기(善幾) 이것은 주자(周子)의 뜻을 밝힌 것이다.

 

악기(惡幾)

() () 이것은 호()씨의 설을 증명한 것이다.

선기(善幾)

周子曰: ‘誠無爲, 幾善惡’, 此明人心未發之體, 而指其已發之端, 蓋欲學者致察於萌動之微, 知折決擇而去取之, 以不失乎本然之體而已. 或疑之, 以謂有類於胡子同體而異用之云者, 遂妄以意揣量, 爲圖如後:

此明       惡幾   此證      惡幾

周子    ⑥ 善幾   胡氏     ⑩

之意            之說      善幾

 

질문 : 선악이 비록 상대적이지만 마땅히 손님()과 주인으로 나누어야 하고, 천리와 인욕이 비록 나누어져 있지만 반드시 종자(宗子)와 얼자(孽子)를 살펴야 합니다. ()이 움직여 선으로 가는 것은 나무가 뿌리에서 줄기로 가고 줄기에서 가지 끝으로 가서 위 아래로 서로 통하는 것과 같으니, 그것은 도심이 나타나고 천리가 유행하는 것으로서 이는 마음의 본래의 주인이고 성()의 바른 종주(宗主)입니다. 더러 옆에서 열매 맺고 꽃이 피어 나무에 붙어사는 쓸 데 없는 것과 같은 것도 비록 성이 움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인심이 나타나고 사욕이 유행한 것으로 이른바 악입니다. 이는 마음이 고유한 것이 아니라 나그네이며, 성의 바른 종주가 아니라 서얼입니다.

만약 일찍 분별하지 못하고 정밀하게 가리지 못하면 나그네가 주인을 짓밟고 얼자가 종주를 대신하게 됩니다. 학자가 막 움직이는 기미에서, 그 발한 것의 방향을 잘 살펴야 합니다. 무릇 그것이 곧게 나오는 것은 천리가 되고 곁가지로 나오는 것은 인욕이 되며, 곧게 나오는 것은 선이 되고 곁가지로 나오는 것은 악이 되며, 곧게 나오는 것은 고유한 것이고 곁가지로 나오는 것은 횡생(橫生)한 것이며, 곧게 나오는 것은 근본이 있는 것이고 곁가지로 나오는 것은 본원이 없는 것이며, 곧게 나오는 것은 순리이고 곁가지로 나오는 것은 거스르는 것이며, 곧게 나오는 것은 올바른 것이고 곁가지로 나오는 것은 사악한 것이니, 똑바로 나온 것은 잘 인도하고 곁가지로 나온 것은 막아 끊어내어 지극하게 공력을 들인다면 이 마음이 드러나는 것은 자연히 한 길에서 나와 천명을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발한 상태에는 선은 있어도 악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정자(程子: 정명도)가 말한 이 성() 안에 원래 이 두 개가 상대하여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 또 선악을 말할 적에는 모두 선을 먼저 하고 악을 뒤로 한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만약 선악을 동서로 대립하게 하여 서로 마주 서게 한다면 이것은 천리와 인욕이 한 근원에서 나온 것으로 아직 움직이기 이전의 상태(未發)에 이미 이 두 가지를 갖추고 있게 됩니다. 이른바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고 한다고 한 말도 매우 비루합니다. 이것이 호씨(胡氏: 호굉)()는 같되 용()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답변 : 그 설명이 맞다. 다만 그림에는 문제가 있어서 대략 개정했으니,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라.

(5-3079)善惡雖相對, 當分賓主; 天理人欲雖分派, 必省宗孽. 自誠之動而之善, 則如木之自本而幹, 自幹而末, 上下相達者, 則道心之發見, 天理之流行, 此心之本主而誠之正宗也. 其或旁榮側秀, 若寄生疣贅者, 此雖亦誠之動, 則人心之發見而私欲之流行, 所謂惡也. 非心之固有, 蓋客寓也; 非誠之正宗, 蓋庶學也. 苟辨之不早, 擇之不精, 則客或乘主, 孽或代宗矣. 學者能於萌動幾微之間而察其所發之向背, 凡其宜出者爲天理, 旁出者爲人欲, 直出者爲善, 旁出者爲惡, 直出者固有, 旁出者橫生, 直出者有本, 旁出者無源, 直出者順, 旁出者逆, 直出者正, 旁出者邪, 而吾於直出者利導之, 旁出者遏絶之, 功力旣至, 則此心之發自然出於一途而保有夫命矣. 於此可以見未發之前有善無惡, 而程子所謂 不是性中元有此兩物相對而生’, 又曰 凡言善惡, 皆先善而後惡’, 蓋謂此也. 若以善惡爲束西相對, 彼此魚立, 則是天理人欲同出一源, 未發之前已具此兩端. 所謂天命之謂性, 亦甚汗雜矣. 此胡氏同體異用之意也.

此說得之, 而圖子有病, 已略改定, 更詳之.

 

질문 : 네 분(자로증석염유공서화)(각자 자신의) ()에 대해 말씀하신 한 조목을 묻습니다. 정자가 공자께서 증석을 허여하셨으니 이는 성인의 뜻과 같은 것이니, 바로 요순의 기상이다. 자로에게 나라를 예로써 다스리는 도리를 알게 한다면 바로 이러한 기상이 될 것이다 하였는데, 왜 그렇습니까? 대개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도리를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지력에 의존하고, 지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도리를 따르는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증점은 발육하고 유행하는 본체를 보았습니다. 천지 만물의 이치는 저절로 그러한 것이니, 내가 사사로운 지력으로 어지럽히지 않으면 천지는 질서에 따르고 만물은 각각의 자리를 얻으니, 이것이 요순의 사업입니다. 그런데 자로는 재기(才氣)가 지나쳐 스스로 비록 뒤집히고 무너지며 지탱할 수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할 수 있고 또 능히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자로는 참으로 이를 맡을 수 있었지만, (인위적인 사람의) 지력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의지가 격앙되고 기상이 용맹하고 날카로우니, 증점의 한가하고 화평함만 못합니다. 그러나 리()라 하지 않고 예라 한 것은 리라고 말하면 은미하고 형체가 없고, 예라고 말하면 실제적이고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란 리가 드러나 베풀어진 것으로 절문(節文)이 있는 것이니, 예라고 말하면 리는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에는 체용이 함께 갖추어져 있고 본말이 하나로 꿰어져 있는데도, 증점은 그 본체는 보면서도 작용에는 미치지 못하고 그 근본은 알면서도 그 말단에는 어긋나니, 행동이 말을 가리지 못하고 광()에 빠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답변 : 맞다.

四子言志一條, 程子曰: ‘夫子與點, 蓋與聖人之意同, 便是堯舜氣象. 使子路若達爲國以禮道理, 却便是這氣象也.’ 何也? 蓋爲國不循理道則必任智力,

(5-3080)不任智力則循理道, 不能出此二途也. 曾點有見乎發育流行之體, 而天地萬物之理, 所謂自然而然者, 但吾不以私智擾之, 則天地順序而萬物各得其所, 此堯舜事業也. 子路則以才氣之勝, 自以爲雖當顚沛敗壞不可支持之處, 而吾爲之, 亦能使之有成. 子路誠足以任此矣, 然不免有任智力之意, 故志意激昂而氣象勇銳, 不若曾點之閑暇和平也. 然不曰理而日禮者, 蓋言理則隱而無形, 言禮則實而有據. 禮者, 理之顯設而有節文者也, 言禮則理在其中矣. 故聖人之言體用兼該, 本末一貫, 若曾點, 則見其體而不及用, 識其本而違其末, 所以行有不掩而失於狂歟.

得之.

 

상채(上蔡: 사량좌)가 말하기를 불씨(佛氏)가 말하는 성()은 유학에서 말하는 마음과 같고, 석씨(釋氏)가 말하는 마음은 유학에서 말하는 정()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석씨는 작용하는 것을 성으로 보고 유가는 주재를 마음으로 보았으니 서로 유사합니다. 석씨는 외부 사물로 인해 생겨나는 것을 마음으로 보았고 유가는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을 정으로 보았으니 서로 비슷합니다. 중요한 것은 석씨가 이치를 알지 못하여 그 말이 한 등급 낮기 때문에 비록 청정적멸(淸淨寂滅)로 돌아가고자 하나 끝내 형이하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차원이 한 등급 낮긴 해도 근소하게나마 서로 비슷하니, 비슷한 것은 근소하고, 실질은 매우 다릅니다. 그 이유는 작용에 대해서는 진망(眞妄)을 나누지 않고 다 참이라 하고, 사물에 감응하는 것에 대해서는 진망을 나누지 않고 다 거짓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유가는 그 안에 참과 거짓이 나뉘어져 있다고 할 뿐입니다. 이 점이 매우 다른 것입니다.

답변 : 대체가 또한 옳다.

上蔡云: ‘佛氏之言性, 如儒者之言心. 釋氏之言心, 如儒者之論情.’ 蓋釋氏以作用者爲性, 而儒者以主宰爲心, 所以相似也. 釋氏以綛景而生者爲心, 儒者以感物而動者爲情, 所以相似也. 大要釋氏不識理, 故其言遞低一級, 故雖欲歸於淸淨寂滅而卒不能離乎形而下者也. 然雖遞低一級而僅相似, 卽其僅相似者實大不同. 何也? 其於作用則不分眞妄而皆以爲眞, 其於感物則不分眞妄而皆以爲妄, 儒者則於其中分眞妄云耳. 此其大不同也.

(5-3081)大槪亦是.

 

질문 :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고 예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꾸민 것이라 했는데, 그 잘못은 모두 한 가지에서 비롯합니다. 큰 요점은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알지 못하며, 또한 둘이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명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면 인욕으로 잘못 흘러간 것을 성으로 여기고, 천질(天秩)의 스스로 그러함을 알지 못하면 인위에서 나오는 것을 예로 여기니, 이른바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본성을 악으로 간주하니, 예문(禮文)의 아름다움은 성인이 이를 제정하여 사람의 본성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막으려는 것이라 하니, 예가 인위적인 것임이 분명합니다. 예를 인위로 간주하니, 사람이 예를 행하는 것은 모두 그 본성을 거스르니 바로잡아 나가야 하는 것이라 하니, 본성이 악함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서로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고자의 버드나무 논리는 성악의 의미이고, ()는 사람의 외부에 있다는 논리는 예는 인위(禮僞)라는 뜻입니다.

답변 : 역시 맞다.

荀子言性惡禮僞, 其失蓋出於一. 大要不知其所自來, 而二者亦互相資也. 其不識夫命之懿, 而以人欲橫流者爲性; 不知天秩之自然, 而以出於人爲者爲禮, 所謂不知所自來也. 至於以性爲惡, 則凡禮文之美, 是聖人制此以返人之性而防遏之, 則禮之僞明矣. 以禮爲僞, 則凡人之爲禮皆反其性, 矯揉以就之, 則性之惡明矣. 此所謂互相資也. 告子杞柳之論, 則性惡之意也. 義外之論, 則禮僞之意也.

亦得之.

 

 

 

조치도에게 답함 答趙致道

 

[해제] 이 글은 소희 3(임자, 1192, 63)에 조치도에게 쓴 세 번째 편지이다.

 

질문 : ‘인심도심(人心道心)’ 장은 그 위의 세 구절은 중용장구서의 설명을 따라 이해하면 의심나는 점이 없습니다. 이른바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에서 ()’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시중(時中)을 말하는 것이라면, 핵심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만약 미발의 중(未發之中)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른바 인심도심은 바로 이발(已發)로 인해 말하는 것이니, 미발의 때를 겸하는 것은 잡는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람은 천지의 중을 받는다는 구절에서 보고 싶은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 정자는 정밀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는 것은 지극하게 하는 것이다. 진실로 그 중을 잡는다는 것은 행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으면 이른바 진실로 그 중을 잡는다는 것은 바로 시중(時中)의 중()입니다. 정밀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는 것은 바로 핵심처이니, 이 구절은 그 효과를 말한 것입니다.

人心道心一章, 其上三句只循中庸章句叙說看, 未有所疑. 所謂 允執厥中’, 不知指何者而言? 若言時中, 恐於提綱挈領處未遽及此. 若言未發之中, 則所謂人心道心正是因已發而言, 兼未發之時亦難以言執. 今欲於人受天地之中上看, 未知可否?

(5-3082)程子曰: ‘惟精惟一, 所以至之. 允執厥中, 所以行之.’ 如此則所謂允執厥中, 正時中之中矣. 惟精惟一, 正是提綱挈領處, 此句乃言其效耳.

 

질문 : 정자는 벼슬살이는 사람의 뜻을 빼앗는다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부귀로 인해 마음이 변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막 벼슬살이할 때는 장애물이 있는 곳에서는 사리에 따라 처리한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세속을 좇아 행하는 영역으로 빠져 들기 때문에 처음에 마음을 세우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되니, 이것을 두고 뜻을 빼앗는다고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정자의 뜻이 과연 여기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사람이 벼슬하여 이러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 또 어떻게 구제해야 합니까? 감히 가르침을 청합니다.

답변 : ‘뜻을 빼앗는다고 한 것에 대해 논한 것이 옳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바로 잡고자 한다면 다만 일에 따라 성찰하여 그 경중(輕重)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기미의 사이에서 매우 정밀해야 한다.

程子言仕宦奪人志, 或言爲富貫所移也. 愚意以爲不特言此, 但才仕宦, 則於窒礙處有隨宜區處之意, 浸浸遂人於隨時徇俗之域, 與初間立心各別, 此所謂奪志也. 不知程子之意果出於此否? 又不知人未免仕宦而有此病, 又何以救之? 敢乞指誨.

所論奪志之說是也. 若欲救此, 但當隨事省察而審其輕重耳. 然幾微之間, 大須着精彩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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