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85

황성 2025. 8. 12.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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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친구제자들과의 문답 書 知舊門人問答

 

 

 

임일지 규에게 답함 1 答林一之揆

 

해제이 글은 1190(소희 원년, 경술, 61)에 임일지에게 답한 편지이다.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의심난 점을 질문해준 두 조목은 지극한 정성이 들어간 설명이니, 참으로 단계를 뛰어넘어 경솔하게 논의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임주와 장주에서 간행한 사서의 뒤에 쓰다[書臨漳所刊四子後]라는 글 중에서 이미 이러한 점을 간략히 언급했습니다. “()과 명()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맹자집주󰡕에 설명이 매우 명확하니 고증의 과실은 없는 듯합니다. 마땅히 마음을 공평히 하고 뜻을 너그럽게 하여 반복해서 탐구하고 음미하면 반드시 저절로 드러날 것입니다. 혹 친구들과 함께 이를 강론하게 되면 또한 반드시 그 설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疑問兩條, 至誠之說固難躐等遽論, 四子後序中已略言之矣. ‘不謂性命集注甚明, 恐未詳考之過. 宜且平心寬意, 反復玩味, 必當自見. 或與朋友講之, 亦必得其說也.

 

 

임일지에게 답함 2 答林一之

 

해제이 글은 1190(소희 원년, 경술, 61)에 임일지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임일지의 경전 해석에 번잡하고 견강부회하는 병폐가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의심난 뜻을 질문해주었는데 모두 이미 그 아래에다 제 소견을 덧붙여 보냈습니다. 예전에 그대를 보았을 때 언어와 의론이 번잡하거나 견강부회하는 병폐가 많았었는데, 지금 질문한 것도 또한 이와 같군요. 이는 큰 병통이니 반드시 통렬하게 쓸어버려야 합니다. 대체로 글을 볼 때는 단지 한 단락 안에서 보아야만 하고 결코 다른 것을 끌어다 인증하거나 두루 유추해서 뜻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글을 본다면 오랜 뒤에 저절로 뜻을 아는 것이 직절하게 될 것입니다.양기(養氣)1()은 도리어 글이 조리 있게 통하니, 이와 같이 된 까닭은 단지 이 장을 논할 때 다른 지루하고 너저분한 설명을 섞어 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 득실의 증험이 매우 분명하니,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所示疑義, 悉已附注鄙見於其下. 大抵向來見賢者言語論議頗多繁雜牽連之病, 今者所示亦復如此, 此是大病, 須痛掃除. 凡有文字, 只就一段內看, 並不須引證旁通. 如此看得, 久之自直截也. ‘養氣一章却條暢, 所以如此, 只爲此章不雜其它說支蔓耳. 此得矢之證甚明, 不待遠求也.

 

 

임일지에게 답함 3 答林一之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임일지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장재(張載)서명(西銘)에 나오는 몇 가지 구절을 설명하고, 아울러 󰡔맹자집주󰡕에 보이는 중국 고대의 공법(貢法)과 조법(助法)의 차이를 고증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두 가지 해설을 보내주니 헤어진 이후 학문에 매진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슬픈 일과 번잡한 업무로 정신이 맑지 못하여 세밀히 살펴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큰 뜻은 이미 대부분 이해한 듯합니다. 다만 서명(西銘)속의 신생(申生)과 백기(伯奇)에 관한 고사에 대해, 장자(張子: 장재)는 이러한 마음으로 하늘을 섬길 것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천명을 어기지 않았으니 저절로 헌공(獻公)과 길보(吉父)의 의혹은 없었습니다. 󰡔집주󰡕에 대한 의심도 또한 매우 정밀했지만, 하늘이 사물을 생성할 때 두 가지 명()을 용납지 않고 이 하나의 이치를 지닐 뿐입니다. 사물이 이를 얻을 때에 자체에 치우침과 올바름, 열림과 막힘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곧 그 기품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이치는 매우 명확한데 정자와 장자가 논한 것 역시 매우 상세하니, 좀더 고증해보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자(告子)의 실수는 곧 생의 본능을 성()으로 여긴 부당함에 있습니다. 바로 기()를 성()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 품수가 같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 또한 좀더 세밀히 검토해야만 합니다.

二解垂示, 足見別後進學之功. 悲冗亡憀, 未暇細考. 然其大指似已多得之矣. 西銘申生伯奇, 張子但要以此心而事天耳. 天命不忒, 自無獻公吉父之惑也. 集注所疑亦甚精密, 但天之生物不容有二命, 只是此一理耳. 物得之者, 自有偏正開塞之不同, 乃其氣禀使然. 此理甚明, 論之亦甚詳悉, 可更詳考, 當見其意. 告子之失, 乃是不合以生爲性. 正是便認氣爲性, 故其禀不能不同, 此亦當更細消詳也.

 

25()를 공법(貢法)으로 여긴다는 구절이 있는데, 인쇄본에는 이십(二十)’이란 글자가 더해진 듯합니다. 이는 목전의 일이니 이와 같은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실제로는 모두 십일(什一: 10분의 1)이라는 설에 대해서도 또한 공전(公田) 20무를 덜어서 여막으로 이용한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이는 선유의 구설과 같습니다. 다만 이는 100무에 철법(徹法)을 썼다는 점을 설명했을 뿐입니다. 70무에 조법(助法)을 쓴다고 했는데, 반드시 공전 70무에서 여막을 제하고 실제로 계산하면 또한 10분의 1이 될 수 있습니다. 주석 가운데 필시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한 구절은 이곳에 판본이 없어서 검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대개 모호하여 고법(古法)이 과연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니, 마땅히 대략 소통되는 큰 뜻만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일 그대의 편지 내용처럼 상나라 사람들은 7무로 조법을 삼았다고 한다면, 이 말도 역시 소략합니다. 대개 공법과 조법은 다릅니다. 공법은 곧바로 5무의 수입을 계산하여 스스로 관청에다 납부합니다. 조법은 공전 가운데서 8가구가 각각 7무씩을 도와 경작하는 것을 셈하면 단지 56무를 얻게 되고, 14무는 고법에 의존하여 나누면 1가구가 각각 1무 약간 보()를 얻어 여막을 만들게 되니, 바야흐로 8가구가 각각 공전 7무를 도와 경작하게 됩니다. 만일 내가 상나라 사람들은 9분의 1을 취하고 주나라 사람들은 10분의 1을 취했다고 말했다면, 이 또한 나의 본래 글은 아닐 것입니다. 상나라 사람들은 9분의 1을 취했는데 여정(廬井)을 제하면 10분의 1을 취하게 되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아 본래 분명합니다. 주나라 사람들은 향수(鄕遂)의 구혁(溝洫)에 공법을 써서 스스로 납부했으니 10분의 1을 취했다 해도 무방합니다. 오직 도비(都鄙)의 정전(井田)에만 조법을 썼으니 9분의 1이 됩니다. 그러나 앞의 설명처럼 그 여정을 제하면 또한 10분의 1을 취했다 해도 무방하니, 주나라 사람들은 오로지 9분의 1을 쓴 적이 없습니다. 장자(張子)가 남긴 법은 볼 수 없고, 이태백(李泰伯)󰡔평토서(平土書)󰡕 문집 속에 들어있는데, 역시 이곳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곳은 우선 천천히 보아도 해롭지 않습니다. 오직 의리의 큰 근원과 일상생활의 긴밀한 공부에 서두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二十五畝爲貢, 恐是印本多 二十. 此眼前事, 不應如此之誤. 至如實皆什一之說, 記得亦用廬舍折除公田二十畝, 如先儒之舊, 但此却只說得百畝而徹耳. 七十而助之法, 則須就公田七十畝中剋除廬舍而實計, 則亦可揍成什一. 注中必是不曾說此一節, 此間無本, 檢不得. 然此亦是大槪依約, 不見古法果如何, 且當取其大指之略通可也. 如來喩人以七畝爲助, 此語亦疏. 蓋貢助異法, 貢則直計其五畝之人, 自賦於官. 助法則須計公田之中, 人家各助七畝, 只得五十六畝, 其十四畝須依古法折除一家各得一畝若干步爲廬舍, 方成人家各助耕公田七畝也. 如謂人九分取一, 人十分取一, 恐亦非本文. 人九分取一, 除廬井則爲十分取一, 如前所云, 固自分明. 人則鄕遂溝洫用貢法而自賦, 自不妨十分取一. 唯都鄙井田用助法, 則爲九一. 然如前說去其廬井, 則亦不害爲十之一矣, 人未嘗專用九一也. 張子遺法不可見, 李泰伯平土書集中有之, 亦不在此. 然此等姑緩之亦無害, 正唯義理之大原與日用親切功夫不可不汲汲耳.

 

 

이요경 당자에게 답함 1 答李堯卿(唐咨)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이요경에게 답한 편지이다. 학문은 견강부회해서는 안 된다는 점, 진안경(陳安卿)의 도리를 이해하는 탁월한 안목, 염법(鹽法)의 과감한 시행, 귀신(鬼神)에 대한 입장 등을 밝히고 있다.

 

보내준 의의(疑義)에 대해서는 이미 빠짐없이 답해 보냈습니다. 다만 마땅히 현재 완성된 문장의 의미대로 반복해서 탐구하고 음미하면 저절로 깊은 뜻을 볼 수 있을 것이니, 굳이 이처럼 아무런 쓸모 없이 견강부회하여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안경(陳安卿)의 편지가 왔는데 도리(道理)를 보는 것이 매우 정밀하여 이곳에 있는 제생(諸生)들 중에도 그를 따를 자가 없습니다. 그의 혼례 시기가 멀지 않음을 알았으니, 바로 그대처럼 덕이 있는 가문의 경사입니다. 이 보잘것없는 남관(南官)도 또한 우리의 도를 위해 이 사람을 얻은 것이 기쁩니다.

등수(鄧守)가 부임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여러 가지 일들을 일신해야만 합니다. 염법(鹽法)을 이미 정승(鄭丞)과 조규(趙糾)에게 부탁하여 말해놓았으나 과감하게 시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보내준 귀신(鬼神)에 관한 설명은 매우 정밀했습니다. 좀더 탐색함으로서 모든 의리(義理)들을 모두 이처럼 이해하여 분별하고 막힘이 없게 한다면, 이치를 궁구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실제로 장구하게 보존되어 소멸되지 않는 기백(氣魄)은 없다고 말했는데, 또한 본래 장구하게 보존되지 않음이 없다는 것도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示及疑義, 已悉奉報. 但恐且當據見成文義反復玩味, 自見深趣, 不必如此附會立說, 無益於事也. 安卿書來, 看得道理儘密, 此間諸生亦未有及之者. 知昏期不遠, 正爲德門之慶. 區區南官, 亦喜爲吾道得此人也. 鄧守下車旣久, 諸事當一新. 鹽筴已囑鄭丞趙糾言之, 未知能勇爲否. 所示鬼神之說甚精, 更宜玩索, 使凡義理皆如此見得有分別而無滯礙, 則理其可窮矣. 但新云非實有長存不滅之氣魄者, 亦須知未始不長存耳.

 

이요경에게 답함 2 答李堯卿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이요경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는 이요경이 󰡔논어󰡕󰡔근사록(近思錄)󰡕 속에서 의심나는 구절을 질문한 데 대해, 주자가 조목조목 변론하야 답변한 내용이 들어있다.

 

질문: 󰡔논어집주󰡕에서 ()은 사랑의 이치이고 마음의 덕이다라고 썼는데, 제 생각으로 그 설명을 미루어 탐구해보고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늙은이를 편안히 해주고 친구에게는 미덥게 해주고 젊은이를 감싸주고자 한다는 것이 참으로 인()이요 또한 사랑이 아님이 없습니다. “친척을 친히 하고서 백성을 인하게 하고 백성을 인하게 하고서 사물을 사랑한다는 이 말도 인이요 또한 사랑이 아님이 없습니다. 편안히 해주고 미덥게 해주고 감싸주는 까닭은 곧 이치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이치는 근원의 측면에서 확연하여 바뀔 수 없는 것이요, 사랑은 그것이 작용으로 드러나는 것을 지칭하였기 때문에 사랑은 정()에 속하고 사랑은 곧 인의 한 가지 일이며, 이치는 성()에 속하고 이치는인의 도리가 크게 온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인이 아니고 사랑의 이치가 인입니다. 이치는 성품이요 사랑은 감정입니다. 성품은 본체요 감정은 작용입니다. 인의 도리는 성품에 뿌리를 두고 감정을 포괄하는데 마음은 곧 성품과 감정의 주재가 됩니다. 성품을 주재한다면 소이연의 이치는 마음에 갖춰지지 않음이 없고, 감정을 주재한다면 소당연의 사랑은 마음에서 발현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치는 여기에서 완전해지고 이로 말미암아 사랑은 저기에서 행해지니, 모두 마음이 이를 주재한다면 인은 어찌 마음의 덕이 아니겠습니까?

集注: ‘仁者, 愛之理, 心之德也.’ 妄意推求其說, 以謂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此固仁也, 而亦莫非愛也. 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此亦仁也, 而亦莫非愛也. 所以安之, 所以信之, 所以懷之, 此則理也, 非愛也. 理則根原來處確然不可易者也, 愛則指其見於用者言之, 故愛屬乎情, 愛乃仁之一事; 理屬乎性, 而理乃仁道之大全. 故愛不是仁, 而愛之理則仁也. 理者性也, 愛者情也. 性則體, 情則用. 仁之爲道, 本性而該情, 而心乃性情之主乎. 王乎性, 則所以然之理莫不具於心; 主乎情, 則所當然之愛莫不發於心. 由是而理完於此, 由是而愛行於彼, 皆心有以主之, 則仁豈非心之德歟?

 

답변: 사랑의 이치에 대한 설명은 근접해 있지만, 마음의 덕에 대해서는 다시 정자(程子)곡식의 씨앗의 비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십시오.

愛之理所說近之, 心之德更以程子穀種之譬思之.

 

질문: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린다는 장을 묻습니다. 󰡔논어집주󰡕에서는 이 다섯 가지가 서로 원인이 되어 각각 차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땅이 있고 백성이 있으면 일이 없지 않습니다. 그 일을 공경하면 마음은 오로지 여기에 있고, 공경하여 믿게 하는 뜻을 두면 백성은 곧 보고 느끼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공경하지 않으면 마음은 여기에 있지 않으며, 일은 거칠어져서 곧 두서가 없게 되어 전혀 성실한 뜻이 없게 되니 무엇으로써 백성들에게 믿음을 보이겠습니까? 이미 공경하여 믿게 했다면 주일(主一)의 공부가 이루어져 성실하지 않음이 없게 됩니다. 스스로 봉양하기를 반드시 박하게 하고 반드시 절약하여 법도를 따라야 합니다. 제도는 백성에게서 나오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이미 절약할 줄 알면 반드시 백성을 염두에 두어 사랑해야하는 까닭을 알게 됩니다. 그들을 사랑한다면 감히 다치게 하지 못하며 반드시 그들의 생활을 두텁게 해주고자 합니다. 그러나 때에 맞춰 경작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생활을 두텁게 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그 때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서로 원인을 잇는 뜻에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道千乘之國, 集註謂五者相承, 各有次序. 竊意有土有民, 無非事者. 敬其事則心專在是, 纔敬便有信底意思, 民便有觀感之心. 不敬則心不在焉, 事便鹵莽, 便無終始, 全無誠意, 何以示信於民哉? 旣敬而信, 則主一之功到而無不慇實者. 其自奉必薄, 必能節以制度矣. 制度無非出於民者, 旣知省節, 必是以民爲念, 而知所以愛之也. 愛之則不敢傷之, 必欲厚其生. 然非及時以耕, 則其生亦無自而厚, 故使之必不違其時矣. 不蕃於相承之意是否?

 

답변: 이러한 곳은 반드시 이와 같은 까닭을 잘 안 뒤에 이와 같이 행해야 하는 뜻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이와 같은 까닭을 잘 안 뒤에 이와 같이 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이해할 수 있으니, 반복해서 추론해보아야 곧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此等處須看有能如此後方能如此之意, 又看有能如此後又不可不如此之意, 反復推之, 乃見曲折.

 

질문: 신주(神主)와 시동(尸童)의 구별은 어떠합니까? 이미 신주를 설치하여 그곳에 제사하고, 또 시동을 맞이하여 오()에서 제사하니, 본래 하나의 신인데 오()를 높게 보고 신주를 낮게 보는 것은 왜입니까? 종묘의 제사에서는 시동을 설치하고 사람의 부류로 보라고 말합니다. 오사(五祀)에 시동을 두는 것은 그 뜻이 무엇인지요?

主與尸其別如何? 旣設主祭於其所, 又迎尸祭於其奧, 本是一神, 以奧爲尊, 以主爲卑, 何也? 宗廟之祭設尸, 謂以人類求之. 五祀有尸, 其義如何?

 

답변: ()를 높이고 신주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오사에 제사를 지낼 때 모두 그곳에 신주를 설치한다면 사계절에 따라 바꾸게 되고, 모두 오()에 시동을 맞이한다면 사계절이 모두 그러하여 높이는 데 일정한 곳이 있을 뿐입니다. 예학자의 설명에 근거해보면, 산천에 제사할 때도 시동을 둔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고증할 수 없습니다.

不是尊奧而卑主, 但祭五祀皆設主於其處, 則隨四時更易; 皆迎尸於奧, 則四時皆然而其尊有常處耳. 據禮家說, 祭山川亦有尸, 其詳不可考矣.

 

질문: 소악(韶樂)과 무악(武樂)을 논한 것은 대개 읍양과 정벌 두 조목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정자는 대전(大傳)을 겸하여 설명했고, 󰡔집주󰡕천성대로 했다[性之]”되찾았다[反之]”는 뜻을 겸하여 설명했습니다. 󰡔중용󰡕의 삼지(三知)와 삼행(三行)으로 보면, 그 공을 이루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이미 공을 이루는 것은 한 가지라고 말했으면서 음악에 나타난 것은 또한 같지 않은 내용이 있다고 하니 왜입니까? 태어나서 이것(달도)을 알고 편안히 이것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면 결국 이를 아우를 수 없으니, 비록 배워서 알고 이롭게 여겨 행하는 자가 바래서 도달하는 이치가 있다하더라도, 아마도 또한 수많은 도리를 다 이해할 수 있을 뿐이요, 자연스럽게 온전하게 이루어진 곳을 논하면 그 기상은 결국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 大槪不出揖讓征伐二條. 程子則兼大傳爲說, 集注兼性之反之爲說. 中庸三知三行觀之, 及其成功一也. 旣謂之成功則一, 而見於樂又有不同之實, 何也? 莫是生知安行終不可得而並, 雖日學知利行有可企及之埋, 恐亦只是全盡得許多道理, 諭其夫成渾然處, 其氣象終有間否?

 

답변: 대전(大傳)의 설명은 믿을 없을 뿐만이 아닙니다. 다만 두 성인의 사업과 기상을 보면 저절로 차등이 있습니다. 예컨대 천성대로 했다[性之]”되찾았다[反之]”는 것이 이룬 공은 한 가지이지만, 무왕(武王)의 지위는 결국 흔적이 남아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不惟大傳之說不足信, 但看兩聖人事業氣象, 自是有等差. 如性之反之, 成功雖一, 武王地位終是覺得有痕迹在.

 

질문: 번지가 지()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삼대(三代)의 시대에 민간에서 이른바 귀신은 사()의 계층에선 오사(五祀)와 그 선조가 있습니다. 이는 번지가 마땅히 제사해야할 것이니 후세에 이른바 음사(淫祠)는 아닌 듯합니다. 공경하되 멀리하라고 일러준 것은 오사(五祀)로만 경계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자로가 기도를 청한 것으로 보면, “너를 상하의 신명에게 기도했다고 말했는데, 정자는 자로가 옛사람의 제문으로 대답한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자로는 다만 이 제문의 말을 예로 들어서 이처럼 기도하는 이치가 있음을 말했을 뿐, 그 의도는 기도해야할 귀신을 가리켜 청을 넣는 데 있지 않는 것이 아닌지요?

樊遲問知, 告以敬鬼神而遠之. 三代之時, 民間所謂鬼神, 士則有五祀與其先祖. 樊遲之所當祭, 想無後世之所謂淫柯者. 告以敬而遠, 莫只以五祀爲戒也? 然以子路請檮觀之, 則曰 檮爾于上下神衹’, 程子子路以古人之誄對, 則是子駱但擧此誄詞, 謂其有此檮之理爾, 意不在指所檮之神以爲請否?

 

답변: 귀신은 진실로 음사(淫祀)를 이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음사하는 귀신이 이미 그 지위에 합당치 않은데도 제거할 수 없는 경우라면, 또한 마땅히 공경하되 멀리 해야 할 뿐입니다.

鬼神固不謂淫祀, 然淫祀之鬼神旣不當其位, 未能除去, 則亦當敬而遠之耳.

 

질문: 선생께서 진안경(陳安卿)에게 보낸 답장에서 먹는 것도 잊고 근심을 잊는다는 것은 일의 측면을 따라서 보면 한 번은 분발하고 한 번은 즐거워하여 순환하면서 교대로 이른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간략히 하나의 일을 빌려서 증명해 보겠습니다. “배우는 즐거움에 석 달이 되어도 고기 맛을 모른다고 했는데 이는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는다는 뜻입니다. 그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곧 즐거움이 여기에 이를 줄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는데, 이는 즐거워 근심을 잊는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일의 측면에서는 모두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한 번은 분발하고 한 번은 즐거워하여 순환하면서 교대로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것으로 몸을 마치지 않고 늙음이 장차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고 말했으니 대개 자신을 겸손히 하고 남을 권면한 것입니다. 이순(耳順)과 종심(從心)의 나이로 보면, 즐거워하는 것도 말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이른바 분발이겠습니까?

先生答安卿忘食忘憂, 是逐事上看, 一憤一樂, 循環代至. 今略借一事明之. 學樂至於三月不知肉味, 此發憤忘食底意. 及其得之深, 乃曰 不圖爲樂之至於斯’, 此樂以忘憂底意. 想其遂事上皆有此義, 故一憤一樂, 循環代至. 然亦不以此而終身, 其言不知老之將至, 蓋謙己勉人耳. 觀耳順從心之年, 樂且不可得而言, 况所謂憤耶?

 

답변: 이 설명은 좋지만 또한 너무 막혀있습니다. 반드시 그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만 하지, 이처럼 막혀서는 안 됩니다.

此說得之, 然亦太拘滯矣. 須看它立言意思如何, 不可似此泥著也.

 

질문: 명도 선생이 이르기를 많은 관료와 정무를 관장하고 백만 대군을 거느리는 것과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는 것은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만 가지 변화는 모두 사람에게 달려있으니 실제로는 한 가지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많은 정무를 관장하고 백만 대군을 거느리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과 초가집에 고매하게 누워 느긋하게 즐기는 것과는 그 이치가 한 가지여서 본래 크고 작은 구분이 없으니, 이른바 우()와 직()과 안회(顔回)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 가지 변화는 곧 사람의 만 가지 변화이니 내 마음에는 실로 한 가지 일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삼는 것은 대개 가는 곳마다 스스로 얻지 않음이 없으니, 부귀한 곳에 처해서는 부귀하게 행하고 빈천한 곳에 처해서는 빈천하게 행할 뿐입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明道先生云: ‘百官萬務金革百萬之衆飮水曲肱, 樂在其中. 萬變皆在人, 其實無一事.’ 某竊意宅百揆總元戎之任, 與高臥草廬, 悠然自樂者, 其理則一, 本無大小之分. 所謂顔回同道也. 萬變乃人之萬變, 在吾心實 無一事. 吾之所以爲心者, 蓋無人而不自得, 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而已. 不蕃是否?

 

답변: 내가 마음으로 삼는 것이 어찌 가는 곳마다 스스로 얻지 않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뜻으로 이해해야만 하지, 단지 한가롭게 말하다가 곧장 그만둬버려서는 안 됩니다.

吾之所以爲心者, 如何而能無人而不自得? 此須意會, 不可只作閑話說過便休也

 

질문: 태왕(太王)이 상()나라를 공격하려는 뜻이 있었으나 태백(太伯)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태왕은 왕위를 계력(季歷)에게 전하여 창(: 문왕)에게 미치고자 하니 태백은 왕위를 사양하고 떠났습니다. 상나라를 공격하는 일을 자신은 비록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뒷사람이 끝내 그렇게 해주리라 기필하기 어렵다고 여겨서, 만일 왕위를 사양하고 떠나지 않는다면 또한 형제가 나라를 다투게 되고 아버지의 명을 어길 뿐 아니라 이미 먼저 덕을 잃게 되니, 이 때문에 굳이 사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태왕은 이미 오랑캐 땅으로 피하려는 뜻을 품었는데, 무엇 때문에 또 상나라를 공격하려는 뜻을 수십 년 전에 싹 틔웠을까요? 그 이치와 천명으로 미루어보면, 상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되고 주나라는 대대로 덕을 닦아서 능히 천명의 돌봄과 부탁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은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바야흐로 빈() 땅을 떠날 적에 백성을 위해야 했으므로 그들을 창 끝과 화살촉(전쟁터)으로 내몰고자 하지 않았고, 왕위를 계력(季歷)에게 전하여 창()에게 미치고자 할 때에도 백성을 위해야 했기 때문에 반드시 그들을 물과 불 속에서 구제하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오랑캐 땅으로 피하는 것과 상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은 또한 때[]에 맞게 할 뿐이었습니다. 사건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한 가지이니, 모두 백성을 위하는 데는 이로운 바가 없었습니다.

太王有翦之志, 太伯不從. 太王欲傳位季歷以及昌, 太伯遜位而去. 莫是翦之事在我雖不從而難必於後人, 若不遜位而去, 則又兄弟爭國, 違父之命, 已先失德, 此所以固讓也? 太王旣有避狄之心, 何故又萌翦之志於數十年之前? 莫是以其理與夫命推之, 之必亡, 家怛世脩德, 知不能違天命之眷付耶? 方其去豳也, 爲民之故, 不欲驅之鋒鏑. 及其傳季歷以及, 亦爲民之故, 必欲救之水火之中. 故避狄翦, 亦時焉耳而已. 事雖不同, 其心則一, 均之爲民, 無所利也.

 

답변: 태백은 단지 이러한 일을 행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제 그 자세한 내용도 알지 못하니 이처럼 천착하여 견강부회해서는 안 됩니다.

太伯只是不欲爲此事耳, 今亦末見其曲折, 不須如此穿鑿附會也.

 

질문: “()에서 완성한다고 했는데, 옛사람은 참으로 6()8()을 배우고 종과 북, 관악기와 현악기를 익혀서 완성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사람은 다만 그 뜻을 빌려서 온화하고 순조로운 이치를 구하니, 예컨대 맹자가 음악의 실제는 이 두 가지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역시 완성에 이를 수 있습니까?

成於樂’, 是古人眞箇學其六律人音, 習其鍾皷管絃, 方底於成. 今人但借其意義以求和順之理, 孟子 樂之實, 樂斯二者’, 亦可以底於成否?

 

답변: 옛날 음악은 이미 없어져 다시 배울 수 없지만, 강학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 남겨진 의미를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재능을 이루어주기가 어렵다고 말한 것입니다.

古樂旣亡, 不可復學, 但議學踐履間可見其遺意耳. 故曰今之成材也難.

 

질문: “공자는 이()를 드물게 말했다고 하였는데, 정자는 ()를 따지면 의()를 해친다고 풀이했습니다. 의를 해치면 말하지 않는 것이 옳은데, 또 드물게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子罕言利, 程子謂計利則害義. 害義則勿道可矣, 又罕言, 何也?

 

답변: 자연스런 이()가 있으니, 예컨대 ()는 의()의 조화이다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다만 오로지 이()를 말하면 탐욕의 사사로움으로 흐를 뿐입니다.

有自然之利, 如云 利者義之和是也. 但專言之, 則流於貪欲之私耳.

 

질문: 공자의 인간 교육은 박문(博文)과 약례(約禮) 두 가지 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문인(門人)들 중에 이런 학문이 있음을 알지 못한 자가 없었으나, 오직 안자(顔子)만이 박문약례의 공부에 진보와 소득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높은 것은 부여잡을 수 있는 이치가 있고, 견고한 것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이치가 있고, 앞에 있거나 뒤에 있는 것은 뒤따라 그 표적을 살필 수 있는 이치가 있었습니다. 그 나머지가 겨우 어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과는 같지 않을 뿐입니다. 이것이 문인들이 바라거나 미칠 수 없었던 점입니다.

夫子敎人, 不出博文約禮二事. 在門人莫不知有此學, 顔子獨於博約之間有所進, 有所得, 故高者有可攀之理, 堅者有可人之理, 在前在後者有可從而審其的之理. 非若其它, 僅可以弗畔而已. 此門人之所以不可企及也.

 

답변: 이 설명은 좋습니다.

此說得之.

 

질문: ()에 오를 때 두 손으로 옷자락을 잡는다면, 이제 손으로 다른 것을 집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폐백이나 규()를 잡을 경우라면 당에 오를 때에 옷자락을 잡아서는 안 되니, 다만 옷자락을 잡는 경우에 이르지 않도록 예방해야 합니까?

升堂摳衣用兩手, 則手中無所執矣. 若有所贄及執圭, 則升堂有不必摳衣, 但防其不至攝齊否?

 

답변: ()를 잡고 오른다면 발걸음을 좁게 낮게 떼게 되므로 저절로 옷자락을 잡는 경우에 이르지 않습니다.

執圭而升, 則足縮縮如有循, 自不至攝齊矣.

 

질문: ()를 잡고 위로는 서로 읍할 때의 위치와 같게 하고 아래로는 물건을 줄 때의 위치와 같게 합니다. 따라서 이미 평형이라 할 수 있는데 또 위아래를 두니, 마음을 손과 가지런히 하여 예컨대 걷는 과정에서 그 손을 조금 위아래로 두되, 다만 높아도 읍하는 위치에 지나치지 않고 낮아도 물건을 주는 위치에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執圭上如揖, 下如授. 旣曰平衡, 而又有上下, 莫是心與手齊, 如步趨之間, 其手微有上下, 但高不至過揖, 下不至過授否?

 

답변: 좋습니다.

得之.

 

질문: 명의(明衣)의 제도를 묻습니다

明衣之制

 

답변: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생략하는 것이 옳습니다.

未詳, 當闕.

 

질문: 󰡔근사록󰡕 가운데 타고난 그대로를 성()이라 하니 성()은 곧 기()이다라는 한 문단을 묻습니다.

近思錄 生之謂性, 性卽氣一段.

 

답변: 이 문단은 잘 보아야 하니 좀더 자세히 음미해 보십시오.

此段看得好, 更詳味之.

 

이요경에게 답함 3 答李堯卿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이요경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요경이 󰡔논어󰡕의 예()에 관련된 조목을 질문한 것과 가정에서 지켜야할 일상 의례에 대해 질문한 내용을 조목조목 답변해주고 있다.

 

질문: 체설(禘說)에서 노나라 태묘에는 주공을 시조로 모시고 문왕을 배향했다고 한 조백순(趙伯循)의 말을 예로 들었는데, 조백순의 말은 뜻으로만 추론한 것이 아닙니까?

褅說趙伯循太廟以周公爲始祖, 文王爲配. 莫只是以意推之否?

 

답변: 󰡔춘추찬례(春秋纂例)󰡕 속에 인증이 매우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春秋纂例中引證甚詳.

 

질문: “일마다 물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每事問之義如何?

 

답변: 대개 평소에 강학할 때 그 명칭은 들었으나 그 기물을 알지 못하고 그 사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에 임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蓋平日講學, 但聞其名而未識其器物, 未見其事實, 故臨事不得不問耳.

 

질문: 비간(比干)의 충성은 바야흐로 인()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또한 한 가지 일의 측면에서 인()일 뿐입니다.

比干之忠方始謂之仁, 然亦只是一事之仁.

 

답변: 공자의 말을 상세히 음미해보면 비간은 한 가지 일의 측면에서 인()이 아닌 듯합니다.

詳味孔子之言, 比干恐不是一事之仁.

 

질문: 제사에는 작은 것과 큰 것이 있으니 천지에 지내는 제사, 산천에 지내는 제사, 사직에 지내는 제사가 있는가 하면 또 이른바 오사(五祀)의 제사와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도 있습니다. 그 크고 작음에 따라 각각 그 신()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천지 사이에는 단지 하나의 이치가 감응하여 통하는 것입니까? 조용히 그 설명을 생각해보니, 천지 사이는 그 이루어진 형상으로 보면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여 구별이 없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군왕이 이미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면 천지의 위대함은 군왕이 감당하기 때문에 군왕은 천지에 제사를 지냅니다. 이를 미루어보면 제후가 한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면 국경 안의 명산과 대천은 제후가 제사를 지냅니다. ()가 한 집안의 본보기가 되었다면 집안의 문호(門戶)와 중류(中霤) 따위는 사()가 제사를 지냅니다. 사직과 같은 경우는 오로지 백성을 위해 설치하는 것이니, 국토와 백성을 거느리고 있는 자는 각각 사직을 세워서 제사지내지 않음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조상이 있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 만 하니,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선조에 대한 제사를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일 크고 작은 제도를 논한다면 왕()()()()의 차등이 있기 때문에 그 제사의 차례도 분별이 없을 수 없습니다. 만일 제사를 지내는 이치를 논한다면, 이른바 위에 계신 듯이 하고” “좌우에 계신 듯이 하며” “성실함이 가리울 수 없는곳이니, 위로는 군왕이 천지에 지내는 제사로부터 아래로는 사서인이 오사와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에 이르기까지 감응하여 통하는 것은 한 가지 이치일 뿐입니다. 상채(上蔡: 사량좌)조고(祖考)의 정신이 곧 자신의 정신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미루어보면 천지의 정신은 곧 군왕의 정신이니 그 귀신의 덕과 감통의 이치에는 분별을 둘 수가 없습니다. 제 소견으로 이렇게 추론해 보았는데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祭有小大, 有天地之祭, 山川之祭, 社稷之祭, 又有所謂五祀之祭及先祖之祭. 不知隨其大小各有其神耶? 抑天地間只一理感通耶? 竊嘗思其說, 天地之間, 自其成形而觀之, 或小或大, 不能無別. 故王者旣爲天下之主, 則天地之大, 王者當之, 故王者祭夫地. 而推之諸侯, 爲一國之主, 則境內之名山大川諸侯祭之. 士爲一家之法, 則家之有門戶中霤之屬, 爲士者祭之. 若夫社稷, 則專爲民而穀, 凡有土有民者, 莫不各有所建社稷而祭之. 必有祖, 而柤在所祭, 自天子以至於庶人, 莫不有先祖之祭. 若論小大之制, 則因王公士庶而爲之等差, 其祭秩不能無分別也. 若論其所以致祭之理, 則所謂 如在其上’, ‘如在其左右’, ‘誠之不可揜, 則上而王者之於天地, 下而士庶之於五祀祖先, 其感通只一理耳. 上蔡祖考精神便是自家精神’, 卽此而推, 天地精神便是王者精神, 其鬼神之德, 感通之理, 不容有所分別也. 妄意推求, 不蕃是否?

 

답변: 대개 이와 같으나 좀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곳이 있으니 상세히 음미해 보십시오.

大槪如此, 然更有分別曲折處, 宜詳味之.

 

질문: 주는 혁명한 뒤에 무엇 때문에 정삭(正朔)을 개정했습니까? 하나라의 시()가 이미 올바른데 반드시 개정하려고 했으니, 은과 주나라는 아마도 차이를 좋아하여 서로 계승하는 뜻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여름가을겨울이 한 해를 이루니 이것이 시()의 질서가 올바른 것입니다. 반드시 이를 개정하고자 한다면 정사에 보탬이 없고 단지 천시(天時)를 어지럽히게 될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개정한 뜻은 무엇인지요?

三代革命, 何故要改正朔? 時旣正, 必欲改之, 無乃好異而未盡相承之義. 春夏秋冬, 以成一歲, 此時序之正. 必欲改之, 無益於事, 衹見亂天時耳. 其改之之義謂何?

 

답변: 정삭(正朔)을 개정하는 것은 백성의 눈과 귀를 새롭게 해주는 뜻이 있습니다. 옛사람은 대개 여기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는데 자월(子月)과 축월(丑月)에 또한 한 해의 머리로 삼을만하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改正朔, 所以新民之耳目. 古人蓋有深意, 而子丑之月亦有可爲歲首之義.

 

질문: 공자는 정공(定公) 시절에 삼도(三都)를 무너뜨리고 무기를 거두어들이고자 했습니다. 맹씨(孟氏)가 기꺼이 성()을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아 그곳을 포위하지 못했습니다. 성인의 일 처리는 본래 정밀하고 상세한데 어찌하여 성()은 기꺼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까? 또한 그곳을 포위할 수도 없었던 것은 왜입니까?

孔子定公時墮三都, 欲收其甲兵. 孟氏不肯墮, 圍之不克. 聖人擧事自是精蕃, 何故不肯從命? 及圍之又不克, 何也?

 

답변: 삼도(三都)는 무너뜨려야만 했는데 이때 또한 무너뜨릴 수 있는 형세가 있었기 때문에 시세에 편승한 것입니다. 맹씨도 역시 기꺼이 무너뜨리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수비하는 자들이 수긍하지 않고 맹씨를 깨우쳤을 뿐입니다.

三都當墮, 是時又有可墮之勢, 故因而乘之. 孟氏亦非不肯墮, 但其守者不肯, 因喚醒了孟氏.

 

질문: 저는 지난 날 작고한 형과 사는 곳이 달랐는데 󰡔예경(禮經)󰡕을 고증하지 못한 채 문득 세속을 따라 가선(家先)의 감실(龕室)을 만들었습니다. 제 생각으로 온공(溫公: 사마광) 󰡔서의(書儀)󰡕패자(牌子)를 세운다는 구절에 의거하여 고척(古尺)을 쓸 줄은 모르고 단지 오늘날 장인(匠人)의 척()을 써서 만드니, 너무 길고 컸습니다. 또 실제로 부방(趺方)에다 세우고 아버지의 것은 자주색 주머니를 사용하고 어머니의 것은 붉은색 주머니를 사용하였으며, 두 패자를 하나의 목갑(木匣)에다 보관하되 위로부터 아래로 덮어 부방까지 씌우도록 했습니다. 삼가 선생(주자)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변동할 수 없다고 하기에 삼가 다시 청을 드립니다. 집안에 설치한 신주(神主)는 이미 변동할 수 없어서 평소에 단지 시속 명절에만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예전에 제례(祭禮)를 작고한 형의 집에서 행하였기에 시제(時祭)와 예제(禰祭: 아버지 제사)에 제가 모두 직접 참여하여 일을 맡아보았습니다. 작고한 형이 세상을 떠난 후로는 조카가 제사를 모시게 되어 고조(高祖)를 조천(祧遷)하고 작고한 형을 제사하여 예()로 삼았습니다. 저의 집에 이미 가선(家先)이 있는데 위로는 고조의 제사를 빠뜨리고 아래로는 예제가 없으니, 마음에 실로 미안합니다. 그래서 시제(時祭)를 마치고 그 음식 일부분을 옮겨 저의 집에서 고조를 제사하되 제가 주관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제사하는 달이 되면 역시 사사로이 예제를 지내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 제례를 이미 적자(嫡子)의 집에서 행했다면, 저의 집에서는 시속 명절의 제사만 지내야할 듯합니다. 만약 이 두 제사를 지내면 또 지자(支子)가 제사를 두고 서자(庶子)가 아버지를 제사하는 것이 되니, 󰡔예경(禮經)󰡕과 합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某往年因與先兄異居, 不知考禮經. 輒從世俗, 立家先龕子. 妄意按溫公書儀立牌子, 不知用古尺, 只用匠者尺, 頗長大. 且實植於趺, 考用紫囊, 妣用緋囊, 考妣共用一木匣, 從上罩下至跌. 伏承台誨云: ‘而今不可動’, 謹輒再有懇請. 家中所設之主旣不可動, 尋常只講俗節之祭. 向來祭禮行於先兄之家, 時祭及禰祭, 某皆預陪祭執事之列. 自先兄去後, 舍姪承祭祀, 桃高祖而祀先兄爲禰. 某家中旣有家先, 上闕高柤之祭, 下無禰祭, 於心實不安. 欲於時祭畢, 移饌一分祭高租於某家, 某主之. 遇當祭禰之月, 亦欲私擧禰祭, 如何? 又恐祭禮旣行於嫡子之家, 在某只得講俗筋之祭. 若擧此二祭, 又成支子有祭, 庶子祭禰, 禮經不合.

 

답변: 이 일은 단지 󰡔예경(禮經)󰡕의 글을 삼가 준수해야 할 것이니, 대뜸 의()로 참작해서 새로운 예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시속의 명절이 슬픔과 공경의 정성을 펴기에 절로 충분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此事只合謹守, 未可遽以義起也. 况有俗節, 自足展哀敬之誠乎.

 

질문: 저의 집안은 고조 이전의 세 분의 묘소가 잡초 사이에 묻혀 있고, 고조의 묘소는 또 숙조(叔祖)가 좋지 않다고 여겨 그 아래로 이장하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막 옛 무덤을 열었을 때 그 속이 매우 따뜻하고 건조함을 보고 황급히 닫아 덮느라 묘소 앞에 벽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도, 선세(先世)로부터 모두 정돈하지 못했습니다. 세 묘소의 거리는 3-4리 내에 위치하고 또 밭머리에 있어, 제가 그 아래를 왕래할 적에 매우 편치 않습니다. 이제 다시 정돈하여 봄가을에 묘제의 의례를 간소하게 치르면서 조카에게 주관토록 하려고 합니다. 친진(親盡)한 묘소에 합제(合祭)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某家中自高祖而上三墓埋沒草間, 高租墓又被曾叔租以不利其房下欲改葬. 方發故孃, 見其中甚溫燥, 倉皇掩塞, 墓面磚石狼籍, 自先世皆不及整. 三墓相去三四里之內, 又在田頭, 某往來其下, 甚不遑安. 今欲重脩整, 春秋薄講墓祭之禮, 令舍姪主之. 不審於親盡之墓合祭否?

 

답변: 묘제(墓祭)는 명백한 조문이 없지만 비록 친분이 다한 조상을 제사할지라도 문제될 것이 없을 듯합니다.

墓祭無明文, 雖親盡而祭, 恐亦無害.

 

질문: 고조로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제삿날의 의복과 음식을 제례를 주관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여러 자손들은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백숙부모형제손자와 조카적자와 중자 및 재종과 삼종 이하는 제삿날에 또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自高祖至禰, 忌日之衣服飮食主祭者當如何? 衆子孫當何如? 伯叔父母兄弟孫姪嫡子衆子及再從三從已往, 忌日又當如何?

 

답변: 횡거(橫渠: 장재)가 정한 제삿날의 의복에는 여러 등급이 있으나 지금에는 곧바로 행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검푸르죽죽한 옷으로 바꿔 입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橫渠忌日衣服有數等, 令恐難遽行, 且主祭者易以黲素之服可也.

 

이요경에게 답함 4 答李堯卿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이요경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대학장구󰡕의 개정한 글자와 강고(康誥)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간략한 해명을 덧붙이고 있다.

 

앞 편지에서 󰡔대학󰡕의 글자를 개정한 곳에 대해 질문해 주었는데, 이미 방부(方簿)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정씨(鄭氏)의 자()는 굳이 삭제하지 않아도 해로울 것은 없습니다. ‘()’자는 본래 ()’의 의미를 겸할 수 있으니 자는 도리어 내면에서 다한다는 뜻인 듯합니다. 만일 자만 썼다면 반드시 이 뜻을 겸해서 보아야만 좋을 것입니다. 강고(康誥)의 작은 서문에서 이는 성왕이 강숙(康叔)을 봉한 글이다고 말했으나, 이제 그 말을 고증해보면 강숙을 일러 아우라 하고 스스로 과형(寡兄)이라 칭했으며, 또 대부분 문왕의 덕을 기술하고 무왕에 대한 언급이 한 글자도 없으니, 이는 무왕 시절의 글인데 서술한 사람이 실전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번 󰡔혹문(或問)󰡕 속에 이 한 문단을 실어둔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급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 결국 삭제해 버렸으니 지금 또한 굳이 보충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 한 구절을 그대로 두면 독자들이 반드시 스스로 의심하여 별도로 미루어 찾아볼 것입니다.

前書所喩大學改字處, 已報方簿. 鄭氏字不必去, 亦無害也. ‘字固可兼得, 字却是盡於內之意. 若只作, 須兼看得此意乃佳耳. 康誥小序以爲成王康誥之書, 今考其詞謂康誥爲弟而自稱寡兄, 又多述文王之德, 而無一字及武王, 計乃是武王時書, 而序者失之. 向來於或問中曾有止一段, 後覺其非急, 遂刪去之, 今亦不必添也. 但存此一句, 讀者須自疑著, 別去推尋也.

 

 

이요경에게 답함 5 答李堯卿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이요경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요경이 󰡔대학󰡕의 경문 해석과 서명(西銘)속의 한 구절을 질문한 데 대해 주자가 조목조목 논평을 가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질문: 󰡔혹문󰡕에서 해석한 것은 모두 경전의 문구에 기초하고 있는데, 유독 치지(致知)’만 격물(格物)의 앞에서 정자(程子)의 다섯 조목을 예로 들었습니다. 왜입니까? 격물치지 또한 명확하게 선후를 나누기 어렵기 때문에 󰡔혹문󰡕에서 이 장을 한 군데로 섞어서 말한 것이 아닙니까?

或問所釋皆因經文, 致知程子五條於格物之前, 何也? 莫是格物致知亦難截然分先後, 或間於此章一交說去否?

 

답변: 격물치지는 한 가지 일일 뿐이니 선후로 나누기 어렵습니다.

格物致知只是一事, 難分先後.

 

질문: ‘궁리(窮理)’에 대해서는 연평(延平: 이동) 선생의 설명을 인용했는데, 그 뜻을 미루어보면 또한 정자(程子)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규모의 위대함과 조리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한 바가 있다고 말하지만, 연평은 한 가지 일을 궁구하면 반드시 얼음이 녹듯 털이 빠지듯 환히 안 뒤에 다른 한 가지 일을 궁구해간 것이 아닌지요? 만일 우연히 이 한 가지 일에 얼음이 녹듯 환히 알 수 없다면 이는 결국 이 한 가지 일에 얽매이게 되니, 정자가 별도로 한 가지 일을 궁구할 때 그 쉬운 일을 먼저 하기도 하고 그 어려운 일을 먼저 하기도 한다고 말한 것보다 못합니다. 이 점이 곧 미치지 못하는 곳이겠지요?

窮理延平先生, 推其意亦不出於程子. 謂其規模之大條理之密有所不逮者, 莫是延平窮一事必待其融釋脫落然後別窮一事? 若偶於此一事尙未能遽爾融釋, 是終爲此一事所拘, 不若程子云且則窮一事, 或先其易, 或先其難, 此便是所不逮處否?

 

답변: 정자의 말은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궁구하되 투철하지 못하면 또 다른 한 가지 일을 궁구할 수도 없습니다. 정자는 아주 통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한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이 말에 집착하여 일을 쉽게 바꿈으로써 도리어 공부가 전일해지지 않게 된다면 옳지 않습니다.

程子之言誠善, 然窮一事未透, 又便別窮一事亦不得. 彼謂有甚不通者, 不得已而如此耳. 不可便執此說容易改換, 却致功夫不專一也.

 

질문: 이치를 궁구하는 학문은 64괘의 대상(大象)에 관통하고 있습니까?

窮理之學, 於六十四卦大象便是貫通處否?

 

답변: 관통은 반드시 통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처럼 말하면 도리어 얽매이게 됩니다.

貫通須是無所不通, 如此說却拘束了.

 

질문: 경전 문구에서는 먼저 명명덕어천하()부터 차례로 말해오다가 말이 공부하는 곳에 이르러서 비로소 치지재격물이라고 했습니다. 물격지지()부터 차례로 설명해가다가 말이 공부를 완성하는 종착점에 이르러서 천하평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반복해서 미루어 말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부에 나아가는 순서를 알면 힘쓰지 않을 수 없고, 또 공부를 완성하는 종착점을 알면 도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입니다. () 10장에서 오로지 공부에 나아가는 것으로 말했습니다. 대개 공부에 나아가는 순서를 학자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그러한 이유를 깊이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공부를 완성하는 징험이 저절로 끝을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이 점이 전문(傳文)으로 경전을 풀이하는 뜻입니다.

經文先從明明德於天下節次說來, 說至下工夫之處, 始謂致知在格物. 又從物格知至節次說去, 說至成功之終處, 謂天下平. 所以如此反覆推說者, 欲人知夫進功之序, 則不可不勉, 又知夫成功之終, 則不可不至. 於傳之十章, 則專以進功爲言. 蓋進功之序在學者當深知其然, 則成功之驗自可終耳. 此傳文釋經之意也.

 

답변: 이 설명은 좋습니다.

此說得之.

 

질문: “즐거운 뜻이 서로 관계하니 새가 말을 대꾸하고, 발산하는 향기가 끊이지 않으니 나무가 꽃과 사귀네라는 이 시어(詩語)는 호연지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서로 관계한다끊이지 않는다는 뜻에서 호연지기란 본래 저절로 연관됨을 볼 수 있고, 꽃과 사귄다말을 대꾸한다는 것은 곧 만족함과 굶주리지 않는다는 뜻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樂意相關禽對語, 生香不斷樹交花’, 此語形容得浩然之氣. 莫是那相關不斷底意可以見浩然者本自聯屬, 又交花誤藷便是無不慊與不餒底意否?

 

답변: 단지 큰 뜻은 이와 같지만, 이처럼 글자마다 나누어 쪼개기는 어렵습니다.

只是大意如此, 難似此逐字分析也.

 

질문: ()은 위아래를 관통하여 말한 것이요 성()은 그 궁극에 이른 것입니다. 맹자는 세 분의 청()()()에 대해 각각 성()으로 말했는데, 이 말은 위아래를 관통하여 말한 것과 관련됩니까?

仁則通上下言, 聖則造其極. 孟子於三子淸任各以聖言之, 此語涉於通上下否?

 

답변: 세 분의 청()()()은 바로 그 궁극처에 이른 것입니다.

三子淸任正是造其極處.

 

질문: “천지를 채운 것 그것이 내 몸이다라고 운운했는데, ‘채운다는 것은 해와 달이 오고가는 것, 추위와 더위가 교대하는 것, 그리고 별들이 운행하는 것, 산천이 풀리고 맺히는 것, 또 오행(五行)의 질료가 갖추어지는 것,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 모두 천지를 가득 채운 것입니다.

天地之塞吾其體云云, 塞者, 日月之往來, 寒暑之迭更, 與夫星辰之運行山川之融結, 又五行質之所具, 氣之所行, 無非塞乎天地者.

 

답변: ‘()’자의 뜻이 좋습니다.

字意得之.

 

 

진안경 순에게 답함 1 答陳安卿()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진안경에게 답한 편지이다. 진안경이 주로 󰡔논어󰡕와 예법에 관련된 20여 조목의 질문 편지를 보내온 데 대해서, 주자가 자신의 견해를 토대로 설명과 논평을 가하여 보낸 것이다. 특히 인()의 개념, 동정(動靜)의 문제, 미발과 이발의 내용이 눈길을 끈다.

 

질문: ‘()’자를 요즘에 살펴보았는데 제가 인식한 뜻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 수 없어서, 밝은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께 질문하고자 합니다. 대저 인()이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사람이 태어나면서 얻어서 자신의 마음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 체()는 천지에 통하여 만물을 일관하고, 그 이치[]는 사단을 포함하여 모든 선을 통합합니다. 대개 마음의 전체적인 덕을 하나로 통일시켜 성과 정의 주인이 되는 것이 곧 이른바 건곤의 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그의 이름과 개념을 말하자면 가득 차고 융합시키고 포함하고 기르며, 따뜻하고 순수하고 혼연하고 두터워서, 항상 낳고 낳으면서 죽이지 않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오직 자기의 사사로움이 덮어버리기 때문에 생성의 길이 끊어지고 천리(天理)는 막힙니다. 마침내 바보처럼 아픔과 가려움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버티기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람이 이 인을 체득한다는 것은 반드시 이 몸에서 사욕을 모두 씻어내고, 천지가 만물을 낳는 본체를 얻은 것을 확 터서 가리움이 없게 해야 합니다. 또 그 속에 진실하고 간절하고 무성한 만물의 봄 뜻[春意]이 항상 간직하되 안에서 밖까지, 큰 것에서 미세한 것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하여 온통 천리(天理)가 흐름으로서 어느 한 곳도 포괄하지 않은 곳이 없고, 어느 한 곳에도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며, 어느 한 순간도 관통하지 않음이 없는, 마치 일원(一元)의 기운이 유행하면서 잠시의 끊임이 없어야 곧 혼연한 전체를 감당하면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한 곳이라도 약간의 병통이 있고, 하나의 미세한 일에도 비추어보지 못한 것이 있으며, 한 순간이라도 끊임이 있게 되면, 이 뜻은 곧 사사로워집니다. 사사로운 뜻이 행하면 생성의 길은 사라지고, 이치는 곧 흘러 통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마비되어 사랑이 끊어진 곳이니 어찌 온전한 인()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사람의 몸은 전체에 혈기가 두루 흐르면, 이것이 바로 전혀 병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 손가락에 혈맥이 이르지 못하면 이것이 바로 마비되어 어질지 못한 곳입니다. 안자(顔子)는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는데, 석 달이 지단 다음에는 조금이나마 어긴 점이 있었더라도 즉시 깨닫고 융화시켜 전처럼 다시 그 어김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생각건대, 석 달 이내에서는 완전히 마음 속이 인에 안주하는 기상이었다가, 석 달 이후에는 곧 노력해서 들어맞은 것입니까?

仁字近看, 未審認得意是否, 請質諸明訓之下. 夫仁者, 天地生物之心, 而人生所得以爲心者. 其體則通天地而貫萬物, 其理則包四端而統萬善. 蓋專一心之全德而爲性情之主, 卽所謂乾坤之元者也. 故於此語其名義, 則以其冲融涵育溫粹渾厚, 常生生而不死, 因謂之仁. 人惟己私蔽之, 是以生道息而天理隔, 遂頑然不識痛癢而爲忍人. 人之所以體乎仁者, 必此身私欲淨盡, 廓然無以蔽其所得天地生物之體, 其中眞誠懇惻, 藹然萬物之春意常存, 徹表徹裏, 徹巨徹細, 徹終徹始, 渾是天理流行, 無一處不匝, 無一處不到, 無一息不貫, 如一元之氣流行無間斷, 乃可以當渾然之全體而無愧. 若一處稍有病痛, 一微細事照管不到, 一頃刻稍有間斷, 則此意便私. 私意行而生道息, 理便不流通, 便是頑麻絶愛處, 烏得渾全是仁? 如人之一身, 渾是血氣周流, 便是純無病人. 纔一指血脈不到, 便是頑麻不仁處. 顔子三月不違仁, 三月之後, 則微有少違, 然當下便覺融化, 依然復不見其違焉. 竊意三月之內渾是中心安仁底氣象, 三月之後便是勉而中否?

 

답변: 들어맞은 다음에는 노력할 필요가 없지만, 오래가면 또 어기는 경우를 벗어나지 못할 뿐입니다.

中後又不須勉, 但久則又不免於有違耳.

 

질문: ‘지학(志學)’은 유가의 도리에 대해 바야흐로 대강과 대체를 인식한 것이니, 그 마음이 줄곧 이를 향해 탐구하여 시청(視聽)침식(寢食)강론사색에 생각하고 생각함이 여기에 있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따라서 다시는 무질서하게 잡된 것을 개입시켜 이리저리 생각하고 천리와 인욕의 사이에서 머뭇거리다가 결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으니, 이것이 곧 격물치지하는 공부입니다. ‘()’은 대강과 대체를 이미 파악하여 확고하게 마음 속에 주인으로 삼되 견고하게 지니고 지켜서 외물에 흔들리거나 빼앗기는 바 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곧 성의정심수신하는 공부입니다. ‘불혹(不惑)’은 대강과 대체 속에서 또 매우 섬세하고 상세한 절목을 모두 명석하게 꿰뚫어보고 그 심오한 의미를 환하게 알아서 혹여 의심스런 이치가 하나도 없는 것이니, 이는 곧 사물의 이치가 이르는 곳입니다. ‘지천명(知天命)’은 또 그 정조(精粗)와 대소(大小)의 근원이 유래한 곳을 총괄하되 전체를 막힘 없이 분명하게 이해하여 만 가지 이치를 하나의 근본으로 모으는 것이니, 이는 곧 지식이 지극한 곳입니다. ‘이순(耳順)’은 내가 이치와 하나가 되어 안과 밖이 틈이 벌어지거나 거스르는 경우가 없어서 소리가 들어오자마자 마음으로 곧 통하니, 내가 저것을 들어야함을 기다리지 않고도 내 귀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지극한 이치요 정밀한 의리가 아님이 없으니, 이는 또 물격(物格)지지(知至)의 숙달된 곳입니다. ‘종심(從心)’은 마음의 본체가 온통 의리로 가득 차 마치 한 덩어리의 빛나고 윤기가 흐르는 좋은 구슬과 같고 수없이 단련하여 밝게 빛나는 순수한 금과 같아서 이에 이르면 나를 말미암지 않게 됩니다. 움직일 때마다 모두 마음이 가는 바를 따라서 갈만하면 곧장 가고, 멈출만하면 곧장 멈추고, 기쁘면 곧장 기뻐하고 화나면 곧장 화내고 측은한 마음이 들면 곧장 측은해 하고 부끄러우면 곧장 부끄러워해서, 조용히 큰길을 따라 가지 않음이 없되 항상 법도와 규칙에 들어맞아 결코 조금도 그 사이에 나를 두지 않습니다. 이는 또 의성(意誠)심정(心正)신수(身修)가 숙달된 곳입니다. 이와 같이 분별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志學是於斯道方識得太綱大體, 其心一直向乎此以求之, 視聽寢食講論思索無時不念念在此, 更不參差掐揷雜, 轉盧却顧, 遲回於天理人欲之間而不決, 此卽格物致知用工處也. ‘是於大綱大體已把得定, 確然有主於中, 持之堅, 守之固, 而不爲外物所遷奪, 此卽誠意正心修身用工處也. ‘不惑是於大綱大體中又極節目纖悉皆昭晰明徹, 灼然眞知其蘊而無一理之或疑矣, 此卽物格處也. ‘知天命是又總其精粗大小根原所自來處, 全體廓然洞明而會萬理於一本矣. 此卽知至處也. ‘耳順是我與理一, 徹表徹裏無間隔違逆, 聲纔人心便通, 不待吾有以聽於彼, 凡人吾聞者, 無非至理精義, 此又物格知至之熟處也. ‘從心則心體渾淪是義理, 如一團光潤良玉, 如百鍊明瑩精金, 至是則非由我矣. 凡有動皆隨心之所之, 行便行, 止便止, 喜便喜, 怒便怒, 側隱便側隱, 羞惡便蓋惡, 無不從容大道上行, 而莫非準繩規矩之至, 絶不容一毫有我於其間. 此又意誠心正身修之熟處也. 不審如此分別得否?

 

답변: ‘()’은 사물의 이치가 이르고 지식이 지극해지고 뜻이 진실하고 마음이 바르게 되는 효험이니, 공부하는 곳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불혹(不惑)’'지명(知命)은 뜻이 진실해지고 마음이 바르게 되어 지식이 날로 진보하여 끊임이 없는 징험입니다. ‘이순(耳順)’에 이르면 지식이 또 지극하고 정밀해집니다. 나머지는 그대의 설명이 좋습니다.

是物格知至而意誠心正之效, 不止是用工處. ‘不惑知命是意誠心正而斫知日進不已之驗, 以至 耳順’, 則所知又至極而精熟矣. 餘則來說得之.

 

질문: “공문자(孔文子)를 어찌하여 문()이라 시호하였습니까?”라는 장을 묻습니다. 그 아내 태숙(太叔)의 사건에 근거해보면, 또한 큰 절개에 관련된 곳에서 이치를 어그러뜨리고 의리를 손상시킴이 이와 같았으니 그 나머지는 다시 말할 것이 없습니다. 공자는 도리어 그의 선행을 없애지 않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점을 인정해주었습니다. 왜입니까?

孔文子何以謂之 ’ ? 據其妻太叔, 亦大節目處悖理傷義如此, 其他更不足道矣. 孔子却不沒其善而許以好學下問, 何也? 恐此句直就問謚處說, 當時人作此謚, 其本意所取者在此, 故特因其說而言之, 亦姑語其大槪而巳, 非美其有是善而許之否?

 

답변: 이 장은 본래 시호를 논하다가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칭송할만한 선행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성인은 또한 반드시 이를 취하니, 이는 천지와 같은 도량입니다.

此章固因論證而發, 然人有一善之可稱, 聖人亦必取之, 此天地之量也.

 

질문: 진문자(陳文子)가 말 10()을 버렸다는 장을 묻습니다. 󰡔논어집주󰡕에서 다른 나라로 떠났다가 경중(輕重)을 헤아릴 수 없어 결국 제()나라로 돌아왔다고 말했는데, ‘경중이란 글자는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아마도 중()은 다른 나라로 떠나서 방백과 연수(連帥)에게 청하여 최자(崔子)의 죄를 토벌할 수 없었던 점을 뜻하고, ()은 또 자신의 깨끗한 절개를 끝까지 지킬 수 없어서 이내 잊지 못하고 그 고향으로 되돌아 온 것을 말한 듯합니다.

陳文子棄馬十乘章, 集注: ‘去之它國, 不能審度輕重而卒反於.’ ‘輕重字何所指而言之? 恐重只是去他國不能請方伯連帥以討崔子之罪, 而輕又不能終守其自潔之節, 乃戀戀復反其故居云.

 

답변: 최자가 군주를 시해하자 진문자가 제나라를 떠난 것은 옳지만, 다른 나라에는 아직 이런 일이 없는데도 최자와 같다고 말하면서 떠났으니, 이른바 경중을 살피지 않았다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陳文子崔子弑君而去可也, 它邦未有是事, 乃以爲猶崔子而去之, 所謂不審輕重者此也.

 

질문: “두 번이면 가하다는 말은 계문자(季文子)의 신상에서 일을 행한 곳에 나아가 설명한 것입니다. 학자의 입장에서 이치나 의리를 탐색한다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깊어 가면 갈수록 더욱 정밀해지니, 어찌 숫자로 한계를 두겠습니까? 그리고 군자의 입장에서 사물의 이치가 이르러 지식이 지극해진 자는 만사에 투철하여 사물이 다가옴에 모두 일정한 법칙이 있어서 곧 조용히 대응하게 되니, 또한 어찌 임시로 그 생각을 다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이 말은 단지 계문자의 일에 관련된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일반적인 법칙으로 모두 마땅히 두 번이면 가하다고 한 것입니까? 지나친 생각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정자는 또 무엇 때문에 악한 짓을 한다는 한 쪽에 나아가 말한 것입니까?

再斯可矣’, 只是就季文子身上行事處說. 在學者窮索理義, 則思之思之而又思之, 愈深而愈精, 豈可以數限? 而君子物格知至者, 萬事透徹, 事物之來皆有定則, 則從容以應之, 亦豈待臨時方致其思? 不審此語只是文子? 抑衆人通法, 皆當以再爲可耶? 不容有越思耶? 程子又何故只就爲惡一邊說也?

 

답변: 사물의 이치가 이르러 지식이 지극해진 자는 비록 조용히 사물에 대응하나, 일에 임할 때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아직 여기에 이르지 못했다면 또 어찌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두 번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법칙이 됩니다. 대개 여기에 이르면 생각이 이미 익숙하여 일을 결단할 수 있으니, 이보다 지나치면 현혹됩니다.

物格知至者應物雖從容, 然臨事豈可不思? 况未至此, 又豈可不熟思耶? 故以再思爲衆人之通法. 蓋至此則思已熟而事可決, 過則惑矣.

 

질문: “벗과 함께 쓰다가 낡아 해지더라도 유감이 없다는 것에 대해 여쭙습니다. 어떤 사람이 실로 벗에게 유감을 두는 마음은 없지만, 일상 생활에서 꼭 사용해야만 하는 물건을 가난하여 재물이 없어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혹 낡아 해지면 그것을 쓰지 못하게 되니, 이 물건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마음에 잊어서 탄식하며 아까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유감이 없다는 뜻에 방해가 될는지요?

與朋友共敝之而無憾’, 有人實無憾朋友之心, 但於日間合用之物, 貧無財, 置之也艱, 故或敝則闕其用, 亦不能恝然忘情於是物而不爲之嘆惜. 不審此於無憾意有妨否?

 

답변: 비록 벗에게 유감을 두지는 않았어도 이미 낡아 해져서 못 쓰게 된 물건에 대해 미련을 두고 잊지 못하는 것은 역시 현명하고 통달한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雖無憾於朋友, 而畚畚不能忘情於已敝之物, 亦非賢達之心也.

 

질문: “그의 간략함도 괜찮다[]”에서 괜찮다는 것은 겨우 괜찮아서 미진함이 있는 말입니다. 위 구절에서 남면(南面: 군주의 지위에 앉음)하게 할만하다에 또한 할만하다[]’는 글자가 있는데, ()’자는 곧 실제로 허락하는 것이니, 아래의 ()’자와 뜻이 갖지 않습니다.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可也簡’, ‘, 僅可而有所未盡之諸. 上句 可使南面亦有 , 字乃盲許之, 與下 字意不同. 不審以何別之?

 

답변: ‘()’자는 단칭이니 아래 글에서 지칭한 것과 다릅니다.

字單稱, 與下文有所指者, 不同.

 

질문: “이를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고 한 말에서 이 ()’자는 안자의 즐거워하는 뜻과 차이가 있습니까?

不如樂之, 字與顔子之樂意思差異否?

 

답변: 그 대체를 비교해보면 또한 차이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이를 즐거워한다는 것에서 ()’자는 사물을 지칭하니, 이 도에서 얻음이 있어 그를 따라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두 가지를 즐거워한다는 낙()이나 이치를 따르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낙()과 같습니다. 예컨대 안자의 즐거움은 또한 비교적 깊습니다. 이는 얻은 것을 편안히 여겨 만물과 하나가 되어서 태연자약하게 막힌 곳이 없으니, 음미할만한 사물이 있어 즐거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較其大槪亦不爭多, 但此樂之者, ‘字是指物而言, 是有得乎此道, 從而樂之也. 樂斯二者’, ‘樂循理’. 顔子之樂又較深, 是安其所得後, 與萬物爲一, 泰然無所窒礙, 非有物可玩而樂之也.

 

질문: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는다[發憤忘食]”는 것은 처음에 힘을 써서 진리를 찾는 때이고, “즐거워 근심을 잊는다[樂以忘憂]”는 것은 후에 진리를 얻어 편안할 때이니, 이 두 가지는 선후가 본래 같지 않고 기상도 또한 서로 대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집주(集注)󰡕의 뜻을 살펴보면, 이 두 가지 모두 늙을 때까지 힘을 쓰는 것으로 본 듯하니, 그렇다면 어떠한 것이 이 두 가지의 변별점입니까? 아마도 학자의 입장에서는 이 점에 대해 선후를 분명히 변별해야 하지만, 성인은 태어나면서 알고 편안히 행하는 분으로 시종일관 온통 이와 같으니, 무엇을 나누어서 앞이라 하고 무엇을 나누어서 뒤라 하겠습니까? 다만 순서로 말한다면 우선 이렇게 분별되는 것이 아닌지요? 이 장의 세 구절을 음미해보면 본래 자기를 낮춰 남을 권면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또한 성인의 마음은 다른 것은 없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온통 의리(義理) 속에 들어있기에 서로 두루 흐르되 조금도 떨어짐이 없어 세상과 사물에 대한 생각이 모두 씻겨내려 간 듯 가슴에 맺혀있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發憤忘食, 是始者著力去求之時; 樂以忘憂, 是後來有得而安之時. 二者先後自不同, 而氣象亦自不相並. 集注, 是二者齊著力到老, 如何是二者之辯處? 恐在學者於此有先後之截, 而聖人生知安行, 徹始徹終渾是如此, 將郡箇截做先, 將那箇截倣後? 但以其序而言, 則且如是分別否? 抑嘗玩味此章三句, 固是謙己勉人如此, 然亦可見聖人之心則無它, 從生至死, 全渾淪在義理中, 相與周流不少離, 而身世事物之念皆灑然不凝於胸次也. 不審是否?

 

답변: “먹는 것도 잊는다[忘食]”근심을 잊는다[忘憂]”는 것은 일의 측면에서 말했습니다. 한 번은 분발하고 한 번은 즐거워하여 돌고 돌아 번갈아 내게로 찾아드는 것이지, 종신토록 이 한 번의 분발과 한 번의 즐거움만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의 측면에서 말했기 때문에 마침내 늙음이 장차 닥치는 줄도 모른다고 말하여 성인의 겸사(謙辭)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종신으로 말한다면 분발함은 그 기간이 짧고 즐거움은 그 기간이 길므로 아래 구절과 아울러 연결할 수 없으며, 또한 성인이 스스로 폄하한 뜻을 나타내지 못하게 됩니다. 보내 주신 편지의 말도 옳지 못하고 󰡔집주󰡕도 또한 미진합니다.

忘食忘憂, 是逐事上說. 一憤一樂, 循環代至, 非謂終身只此一憤一樂也. 逐事上說, 故可遂言不知老之將至, 而爲聖人之謙辭. 若作終身說, 則憤短樂長, 不可幷連下句, 而亦不見聖人自貶之意矣. 來喩未然, 集注亦未盡也.

 

질문: “공자는 상사가 있는 자의 곁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배부르게 먹은 적이 없었다공자는 이 날에 조곡(弔哭)을 하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구절을 묻습니다. 대개 가슴속이 화락한 뒤에 음식을 맛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데, 슬픈 일에 임하게 되어 이 마음이 거기에 감동되면 나의 슬픈 감정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음식을 삼키지 못하게 되니, 어찌 맛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은 슬픔이 지극한 것이니 죽은 자를 조문하다가 곡에 이르렀다면, 필시 그 정이 두터워 보통 조문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애처롭게 드러나는 감정이 한 번 곡하고 물러난 뒤에 갑자기 풀어져 노래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천리(天理)가 저절로 그러하여 참으로 본래 참을 수 없는 곳이니 사람이 억지로 할 바가 아닙니다. 성인(聖人)은 천리를 따라 움직이되 이에 순응하여 거스르지 않을 뿐입니다. 이를 성정(性情)의 올바름이라 하니, ()에 뿌리를 두고 화()를 달성하여 인()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일상생활 속에서 질정해본다면 이 일에는 다시 복잡한 내막이 있습니다. 예컨대 상()을 당한 사람 곁에 있을 때 주인[喪主]이 굳이 만류하여 음식을 대접하면, 사양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어른과 동행했을 때 어른이 머물러 음식을 먹으면 젊은이가 사양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해 사양하면 주인의 비례(非禮)를 드러내는 셈이 되고, 질병이 있다고 말해 사양하면 거짓임을 숨기기 어려우며, 힘써 사양하고 매몰차게 거부하면 또 인정을 거슬러 주변 없는 미더움에 가까울 터이니, 과연 어떻게 해야 합당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인(故人)과 정이 가벼워 곡()을 안 해도 될 사람의 경우에는 그 슬픔이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만에 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혹 사물에 감촉하여 웃고 즐기거나 혹 다른 곳의 연회나 장사(葬事)에 참석하여 음식을 먹고 즐기는 따위가 문제될 게 있는지 없는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씨의 이 장()에 대한 설()로 말하자면, 그 말단(末端)의 뜻은 아마도 고인과 정이 두터워 마땅히 곡()해야할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온당치 못한 것입니까?

子食於有喪者之側, 末嘗飽也.’ ‘子於是日哭, 則不歌.’ 蓋胸中和樂然後於食能甘美而飮飽, 臨乎哀戚之地, 此心爲之感動, 而吾之哀戚亦興, 然於食蓋不下咽矣, 豈能甘美而飮飽也? 哭者哀之至, 弔死而至於哭, 必其情之厚者, 非尋常行弔比也. 其思感傷悴中, 情之所形, 必不能頓然遽釋於一哭之退而便歌樂. 此二者皆天理自然而然, 眞憤自有所不忍處, 而非人所强爲者. 聖人但由夫理行, 順之而不逆耳. 是謂情性之正, 本中而達和, 而仁之所以流行者也. 然質之日用間, 則此事更有曲折. 如臨乎有喪考之側主人固留飮, 或辭之不得, 或與長者同行, 長者留則少者有不得而辭者. 辭以實, 則形主人之非禮; 辭以疾, 則僞難揜; 力辭而峻拒, 則又恐咈情而近於徑徑之信, 果不知如何爲當. 其有情輕不至於哭, 但以尋常行弔者, 恐亦不能終食之間不化, 或感物而笑樂, 或燕會於它所, 與夫送人之葬而與飮胙燕賓等類, 不蕃有妨無妨如何? 謝氏此章之說, 其末意恐施於情厚而當哭者則未穩否?

 

답변: 성인의 성정(性情)의 바름은 마땅히 슬픔을 곧 잊어버리지 못하는 곳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 사량좌)씨는 슬픔을 잊는 것을 바르다 여겼으니, 어찌 잊음을 익혀서 양생했던 여습(餘習)이 아니겠습니까? “(: 순 임금의 음악)를 듣고 고기 맛을 잊었다는 구절에 대한 설명도 또한 그러하니, 모두 지나친 듯합니다.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조문을 갔다가 술과 음식을 만났을 때는 반드시 힘써 사양해야 할 것이요, 어쩔 수 없이 머물지라도 또한 반드시 몇 차례 사양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지 취하고 배부르도록 마시고 먹어서는 안 됩니다.

聖人情性之正, 當於哀未遽忘處看. 謝氏乃以忘處爲正, 豈習忘養生之餘習耶? 忘味之說亦然, 恐皆過矣. 所喩行弔而遇酒食, 此須力辭, 必不得已而留, 亦須數辭先起, 不可醉飽.

 

질문: 정자는 행하거나 숨는 것은 만나는[] 것에 따라 편안히 대처하니 명()은 말할 것이 없다고 말했고, 명은 중인(中人)을 위해 설한 것이니 상지(上智)는 다시 명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었으니 환퇴(桓魋)가 나에게 어찌하겠는가?”라고 하고, 하늘이 아직 이 문()을 없애지 않았으니, () 땅의 사람들이 나에게 어찌하겠는가?”라 하고, 공백료(公伯寮)가 명을 어찌하겠는가?”라고 말하여, 모두 명으로 판단하여 편안히 여긴 말이니, 무슨 뜻입니까? ()과 우()에 대한 설명을 분석해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程子: ‘行藏安於所遇, 命不足道也.’ 又謂命爲中人設, 上智更不言命. 孔子: ‘天生德於豫, 桓魋其如豫何? ’ 又曰: ‘天之末喪斯文也, 人其如豫何? ’ 又曰: ‘公伯寮其如命何? ’ 皆斷以命而安之之辭, 何也? 命遇之說, 望爲剖示.

 

답변: 세 가지 말은 모두 반드시 해가 되지 않는 말이니, 어쩔 수 없이 명을 들어 스스로 편안히 여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三語皆必其不能爲筈之詞, 與不得已而聽命以自安者不同也.

 

질문: 백이(伯夷)는 어찌하여 아버지의 명이 있는 것만 알고 천륜이 있음을 몰랐으며, 숙제(叔齊)는 어찌하여 천륜이 있는 것만 알고 아버지의 명이 있음을 몰랐습니까? 아마도 백이의 입장에서는 그 형제가 자기에게 연계되어 있고 아버지 명은 공()에 연계되어 있으니, 이 둘을 헤아려본다면 아버지 명은 높고 형제는 낮은 것이 되며, 숙제의 입장에서는 그 부자가 자기에게 연계되어 있고 천륜이 공()에 연계되어 있으니, 이 둘을 헤아려 본다면 천륜이 무겁고 부자가 가벼운 것이 되는 것입니까?

伯夷何以只知有父命而不知有天倫, 叔齊何以只知有天倫而不知有父命? 恐是在伯夷則其兄弟係於己而父命係於公, 以二者權之, 則父命爲尊而兄弟爲卑; 叔齊則其父子繫於己而夫倫係於公以二者權之, 則夫倫爲重而父子爲輕否?

 

답변: 천하의 공의(公義)로 재단한다면 천륜은 무겁고 아버지의 명은 가벼우며, 사람의 자식된 분수로 말한다면 또 어느 쪽이 가볍고 무거운지 나눌 수 없습니다. 다만 각각 자신의 편안치 않은 곳을 알아서 한 걸음씩 물러났으니, 곧 백이와 숙제의 처신이 옳은 것입니다. (: 호안국)󰡔춘추󰡕의 뒤에서 근시례로 설명한 것이 좋습니다.

以天下之公義裁之, 則天倫重而父命輕. 以人子之分言之, 則又不可分輕重, 但各認取自家不利便處, 退後一步, 便是伯夷叔齊得之矣. 胡氏春秋後有謹始例說得好.

 

질문: 자로(子路)기도할 것을 청한 구절에 대해, 󰡔집주󰡕사상례(士喪禮)병이 위독하면 오사(五祀)의 신에게 기도한다는 풀이를 인용했고, 정자는 기도는 잘못을 뉘우치고 선에 옮겨가 신의 도움을 비는 것이다고 말했고, 범씨(范氏)도 역시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신하가 군주에 대해서 병이 들면 기도하는 것이 예법의 상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세속에서 병이 위독해지기만 하면 신에게 기도하지 않음이 없고 제사를 드리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곧 이치를 밝게 알지 못하여 음탕하고 괴이한 것에 홀려 죽고 사는 것이 명과 하늘에 달려있음을 모른 것입니다. 저 침체된 혼백이 어찌 장수할 수 있으며, 어찌 요절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고을의 용렬한 남자와 여자의 비루한 견해일 뿐입니다. 지금 자로가 이와 같은 일을 행하고 여러 학자들이 이처럼 설명하니, 또한 이런 이치가 있어서 혹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子路請, 集注士喪禮 疾病行檮五祀’, 程子: ‘禱者, 悔過遷善以祈神之祐也.’ 范氏亦曰: ‘子之於父, 臣之於君, 有疾而禱, 禮之常也.’ 然世俗纔疾病, 則靡神不禱, 摩杷不修, 此乃燭理不明而惑於淫怪, 不知死生有命在天, 彼況魂滯魄安能壽之而安能夭之? 是待鄕閭庸夫庸婦鄙陋之見耳. 子路如此擧而諸家如此說, 則亦有此理而或可爲之耶?

 

답변: 병이 위독해져 기도를 행하는 것은 신하나 자식이 군주와 부모에 대해 각각 마땅히 제사해야할 곳에서 기도하니, ()는 오사(五祀)에서 지냅니다. 자로가 기도하고자 한 것은 분명 음사(淫祀)는 아니지만 다만 마땅히 청해야 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공자가 그르다고 여기지 않고 기도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뜻만 말했습니다.

疾病行禱者, 臣子之於君父, 各禱於其斬當祭, 士則五祀是也. 子路所欲禱必非浮祀, 但不當請耳. 孔子不以爲非, 而但言不必禱之意.

 

질문: 성인이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을 일깨우는 마음은 그 몸이 죽음에 이르러도 잊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을 일깨우는 일이 시기가 적절하지 않을 때는 이 뜻도 역시 가슴에다 품고, 다만 근심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까? 만일 종신토록 항상 잊지 않는다면 성인의 가슴속에서 느긋하여 화락한 곳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만일 때때로 편안히 여겨 근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또한 성인이 백성들에게 대해 서로 긴밀하게 맺은 마음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과 화락한 마음이 함께 움직이면서 어그러지지 않는다면, 두 가지 기상은 또한 어떤 것입니까?

聖人憂世覺民之心, 終其身至死而不忘耶? 抑當憂世覺民非其時, 此意亦嘗在懷, 但不戚戚發露也? 若終其身常不忘, 則不見聖人胸中休休焉和樂處. 若時或恬然, 不戚戚發露, 則又不見聖人於斯人其心相關甚切處. 若憂世之心與和樂之心並行而不悖, 則二者氣象又爲何如?

 

답변: 천명을 알아 즐기는 성인의 마음은 항구불변하고,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은 감촉한 뒤에 드러날 뿐입니다.

聖人之心, 樂天知命者其常也, 憂世之心則有感而後見耳.

 

질문: 군자가 마땅히 노해야 할 것에 한창 노하고 있을 때, 홀연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 오면 어떻게 응해야 합니까? 노여움을 응하고 난 뒤에 기쁨을 응해야 합니까? 아니면 중간에 우선 노여움을 그치고서 기쁨을 응하고, 다 기뻐한 다음 다시 노여워할 일을 매듭을 지어야 합니까? 아니면 노여움과 기쁨 양쪽의 경중(輕重)을 저울질해야 합니까?

君子於其所當怒者, 正其盛怒之時, 忽有當喜事來, 則如何應? 將應怒了而後應喜耶? 抑中間且輟怒而應喜, 喜了又結斷所怒之事耶? 抑當權其輕重也?

 

답변: 기쁨과 노여움이 번갈아 오니 참으로 경중(輕重)이 있으나, 모두 자연스럽게 응하니 양쪽을 저울질할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함양한 바가 있으면 그 응대할 때의 정해진 완급이 경중의 적절함을 잃지 않을 뿐입니다.

喜怒迭至, 固有輕重. 然皆自然而應, 不暇權也. 但有所養, 則其所應之分數緩急不失輕重之宜耳.

 

질문: 선생께서 일찍이 말하기를 선한 사람에게 도를 맡길 수 없으니 견개(狷介)한 자는 굳센 지조로 지켜서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한다. 예컨대 증자와 맹자는 모두 굳셈에 지나쳤고, 문제(文帝)는 선한 사람으로 질서정연하게 스스로 지켰을 뿐이고, 무제(武帝)는 견개한 기상이 있어 큰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맹자를 원헌(原憲)에 견준다면 원헌은 견개하여 삼가 지키는 데는 넉넉하지만 도를 맡기기에는 부족하고, 맹자는 곧 걸머지고 일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자의 뜻에 대한 설명이 같지 않은데 왜입니까?

先生嘗說善人不足任道, 狷者剛介有守, 有骨肋, 做得事. 曾子孟子, 皆過於剛; 文帝是善人, 只循循自守; 武帝有狷底氣象, 足以大有爲. 又嘗說孟子原惠, 狷介謹守有餘, 然不足以任道, 孟子便擔當做得事. 其說字意不同, 何也?

 

답변: 광자(狂者)는 뜻이 높아 뭔가를 할 수 있고, 견자(狷者)는 뜻이 깨끗하여 하지 않는 바가 있으나 (행동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한나라 무제는 견자가 아닌데 아마도 그대가 자세히 듣지 못한 듯합니다. 무제는 광자에 가깝지만 또 순일하지 않으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狂者志高可以有爲. 狷者志潔, 有所不爲而可以有守. 漢武帝不是狷, 恐聽之不審也. 武帝近狂, 然又不純一, 不足言也.

 

질문: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재앙을 받습니다. 그 감응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은 것은 그 이치가 반드시 이러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같은 기운이 서로 감응함이 본래 이렇기 때문입니까?

爲善則福報, 爲惡則禍報, 其應一一不羞者, 是其理必如此, 抑氣類相感自如此耶?

 

답변: 선과 악은 각각 같은 기운이 서로 감촉하여 그 반응을 얻는 것이니, 곧 이치가 마땅히 이와 같습니다.

善惡各以氣類相感而得其應, 便是理合如此.

 

질문: 제가 접 때 도원(道院)에서 아직 발현하기 이전은 정()인데 정 가운데 동()의 뜻이 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선생께서 () 가운데 동()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의 이치가 있다고 답변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때에 세밀히 살펴보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은 본래 살아있는 사물[活物]이니, 아직 발현하기 전에는 정()하지만 또한 항상 깨어 있는 모습이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깨어있음은 곧 도리가 들어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대본(大本)이 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동()의 이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늘 깨어 있어서 그저 몽매하게 성찰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의 뜻이 있다고 해도 어찌 불가하겠습니까? 그런데 선생께서 도리어 ()’자를 꺼리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자가 곧 이미 발현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이 글자가 해롭지 않은데 제가 잘못 들어서입니까? 정밀하고 미세한 곳을 살펴볼 때 쉽게 어긋나는 듯하니, 다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向者道院中常問未發之前是靜, 而靜中有動意否, 先生答謂不是靜中有動意, 是有動之理. 彼時不及細審, 後來思之, 心本是箇活物, 未發之前雖是靜, 亦常惺在這裏. 惺便道理在, 便是大本處, 故謂之有動之理. 然旣是常惺, 不恁地暝然不省, 則謂之有動意, 亦豈不可耶? 而先生却嫌 , 何也? 字便是已發否 抑此字無害而聽之誤也? 凡看精微處恐易差, 更望示敎.

 

답변: ()하지 않으면서 능히 동하는 것은 이치[]이고, 동하지 않으면서 동하려 하는 것은 뜻[]입니다.

未動而能動者, 理也; 未動而欲動者, 意也.

 

질문: 사람의 심()은 신령한 물건이니, 예컨대 하루 중 사물을 응접하기 전에는 본래 고요히 발현하지 않지만 발현하지 않은 가운데에는 참으로 늘 이처럼 깨어 있지 몽매하게 성찰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밤중에 꿈을 꿀 때에는 또한 이 마음이 이미 움직인 것이니, 낮에 생각을 해 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꿈도 꾸지 않고 지각하지도 못한 채 그야말로 깊이 잘들 때가 있는데 이러한 때를 고요히 발현하지 않은 상태라고 부른다면, 곧 완전히 캄캄하고 몽매하여 만사를 알지도 못하고 살피지도 못하여 목석(木石)과 다를 바 없어 죽은 상태와 거리가 얼마 안 되니, 고요히 발현하지 않은 상태라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 마음의 본체는 어느 곳에 간직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신령하다는 것은 어느 곳에 붙어있는지요? 성인과 보통 사람이 이러한 때에 서로 다른 점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학자의 공부는 이러한 때에 또 무엇으로써 징험하는지요?

人心是箇靈底物, 如日間未應接之前, 固是寂然未發, 於未發中, 固常恁地惺, 不恁瞑然不省. 若夜間有夢之時, 亦是此心之已動, 猶晝之有思. 如其不夢未覺, 正當大寐之時, 此時謂之寂然未發, 則全沉沉暝暝, 萬事不知不省, 與木石蓋無異, 與死相去亦無幾, 不可謂寂然未發. 不知此時心體何斬安存? 所謂靈底何所寄寓? 聖人與常人於此時折以異者如何? 而學者工夫此時又以何爲驗也?

 

답변: 깨어 있음과 잠듦은 마음의 동정(動靜)이고, 생각이 있음과 생각이 없음은 또 동() 중의 동정이고, 꿈이 있음과 꿈이 없음은 또 정() 중의 동정입니다. 다만 깨어있음은 양()이고 잠듦은 음()이며, 깨어있음은 맑고 잠듦은 흐리며, 깨어있음은 주재가 있고 잠듦은 주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요히 감촉하여 소통하는 오묘한 이치는 반드시 깨어있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寤麻者, 心之動靜也. 有思無思者, 又動中之動靜也. 有夢無夢者, 又靜中之動靜也. 但寤陽而寐陰, 寤淸而寐濁, 寤有王而麻無主, 故寂然感通之妙必於寤而言之.

 

질문: 혼례에서 명복(命服)을 사용하는 것은 정자(程子)가 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제대로)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것으로 말하면, ()로 말함과 연관이 되는 듯합니다. 만일 그 뜻이 기쁨이 된다는 것에 있다면 결국 사람으로 하여금 간사한 자태를 갖게 하는 것이니, 예법에 과연 합당한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월에 친영(親迎)을 행하려고 하는데 관대(冠帶)만 사용코자 합니다. 어떻습니까?

昏禮命服, 程子常論之矣. 然以得爲悅言之, 恐涉於以利言也. 若其意在於爲悅, 則終是令有作容, 不審於襤果合如何? 正月欲行親迎, 欲只用冠帶, 如何?

 

답변: 혼례에 명복을 사용하는 것은 곧 고례(古禮)입니다. 예컨대 사()가 검은 수레를 타고 기러기를 쥐고 가는 것은 모두 대부의 예법입니다. 관대는 연복(燕服)일 뿐으로, 혼례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니, 고례의 올바름을 따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

昏禮命服, 乃是古禮. 如士乘墨車而執雁, 皆大夫之禮也. 冠帶只是燕服, 非所以重正昏禮, 不若從古之爲正.

 

 

진안경에게 답함 2 答陳安卿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진안경에게 답한 편지이다. 진안경이 사서(四書)와 송대 유현(儒賢)들의 어록을 토대로 경전 문구의 해석 문제, 이기 동정의 문제, 심성의 문제, 인심과 도심의 문제, 예설에 관한 내용 등 매우 다양한 문제를 질문한 데 대해 주자가 조목조목 설명과 비평을 가하고 있다.

 

질문: 제가 󰡔대학󰡕을 논하다가 오십유오(吾十有五)’ 장을 예로 들었는데, 선생께서 말하기를 “‘()’은 사물의 이치가 이르고 지식이 지극해지고 듯이 진실하고 마음이 바르게 되는 효험이니, 공부하는 곳에만 그치지 않는다. ‘불혹(不惑)’'지명(知命)은 뜻이 진실해지고 마음이 바르게 되어 지식이 날로 진보하여 끊임이 없는 징험이다. ‘이순(耳順)’에 이르면 지식이 또 지극하고 정밀해진다고 했습니다. 제가 홀로 의심해보니, 대저 ()’이란 단단하고 견고하여 옮기거나 빼앗을 수 없으니 본래 참되게 알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때에 곧 사물의 이치가 이미 이르고 지식이 이미 지극해진다고 말하면 너무 논리의 비약이 아니겠습니까? 또 사물의 이치는 정밀하고 미세하여 분별하기 어려워, 환하게 모두 만 가지 이치의 근원이 되는 곳에 의혹이 없는 경우에 이르지 않으면, 천명이 유행하는 전체를 명확히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니, 어찌 지식이 이미 지극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식이 날로 진보하여 끊임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눈앞에서 오히려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니, 또한 어찌 전적으로 지극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순(耳順)에 대해서도 지식이 또 지극하고 정밀해진다고 말했으니, 또한 어찌하여 말이 중복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집주󰡕의 이순에 관한 조목에서 바야흐로 지식이 지극함이다고 말했는데, 또한 무엇 때문입니까? 이 모든 것은 저의 옅은 견해로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 장의 취지는 성인의 분수에서 말한 것이니, 성인은 곧 본래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어서 의리에 본래 밝아, 아동으로부터 지식이 이미 지극하여 본래 의혹이 없고 천명의 전체에 본래 가리움이 없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또한 그 소이연을 살피고 증험하여 무리들을 따라 약간의 치지격물 공부를 합니다. 비록 이러한 공부를 하지만 무리와 더불어 초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학자가 학문하는 차례로 말하면 지학(志學)의 시절부터 바야흐로 하나하나 치지격물 공부를 하여 의리를 고찰합니다. 15년의 공부가 축적되어 확고하여 정립되는 시기에 이르는데, 이 또한 참으로 지식이 갖춰진 이후에 그렇게 할 수 있으니 곧장 사물이 이치가 이미 이르고 지식이 이미 지극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大學吾十有五, 來敎云: ‘立是物格知至而意誠心正之效, 不止是用功處. 不惑知命是意誠心正而所知日進不已之驗, 以至於耳順, 則所知又至極而精熟矣.’ 竊疑夫立者, 確然堅固, 不可移奪, 固非眞知不能. 然此時便謂物已格, 知已至, 恐莫失之太怏否? 又事物之理精微眇忽, 末至於妁然皆無疑惑萬理根原來處, 未洞見天命流行全體, 安得謂之知已至? 所知日進不已’, 則是面前猶有可進步, 又安得全謂之至? 而耳順又云 所知至極而精熟’, 又何言之重複也? 集汪於耳順條方云 知之至’, 又何也? 凡此皆淺見未喩. 抑此之旨在聖人分上言, 則聖人合下本是生知, 義理本是昭著, 自兒童知已至極, 本無疑惑, 天命全體本無敝隔. 當人大學, 則亦漫勘驗其所以然, 隨衆做些小致知格物工夫. 雖做此工夫, 而與衆超越云云. 若以學者爲學之序言, 則自其志學時方一一做致知格物工夫, 以考察夫義理. 積十五年之功, 至於確然有立時, 是亦眞有所知然後能然, 未可便謂物已格, 知已至.

 

답변: 이 뜻을 세밀히 생각해보면, 단지 학자의 일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말한 바는 스스로 이해함에 대략 서로 비슷한 곳이 있지만, 지금 그것을 엿보아 헤아려볼 수는 없습니다. 마치 증자(曾子)가 충()과 서() 두 글자를 빌려서 일관(一貫)의 오묘함을 설명한 것과 같으니, 이제 어찌 성인이 반드시 자기에게 베풀어서 원하지 않기를 기다린 이후에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증자가 빌린 것은 오히려 비견할만한 자취가 있으나, 이곳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학자가 마땅히 이를 스스로 고찰할 뿐입니다.

細思此意, 只得倣學者事看. 而聖人所說, 則是他自見得有略相似處, 今窺測它不得也. 正如曾子借忠恕兩字發明一貫之妙, 今豈可謂聖人必待施諸己而不願, 然後勿施於人也? 曾子所借猶有跡之可擬, 此則全不可知, 但學者當以此自考耳.

 

질문: 보내주신 편지에서 공문자(孔文子)와 관련된 장을 설명해주기를 이 장은 본래 시호를 논하다가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칭송할만한 선행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성인은 또한 반드시 이를 취하니, 이는 천지와 같은 도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성인이 공평한 마음으로 인물을 논한 것으로 말한다면, 칭송할만한 선행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비록 대악무도한 자라 하더라도 또한 반드시 그것을 취하니, 천지의 도량과 같아 포용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학자가 인물을 정밀하게 따져본 것으로 말하면, 성인이 취한 바의 선은 마땅히 실체로서 법을 삼고 그 불선한 것은 또한 마땅히 스스로 힘써야할 것으로 여깁니다.

來敎孔文子章云: ‘此章固因論謐而發, 然人有一善之可稱, 聖人亦必取之, 此夫地之量也.’ 謂自聖人平心泛論人物言之, 則凡有一善之可稻, 雖元惡大憝, 亦必取之, 如天地之量, 無所不容. 自學者精考人物言之, 則聖人所取之善當實體以爲法, 而其不善則亦當知所以自厲.

 

답변: 대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 과도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 도리어 장황하여 함축된 뜻이 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大槪是如此, 然不必說得太過, 却覺張皇, 無涵蓄意思.

 

질문: “두 번 생각하면 가하다에서 ()’자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한 번 생각한 것이고, 어떻게 해야 두 번 생각한 것입니까?

再思可矣’, ‘字末詳. 如何方是一番思, 如何方是再番思?

 

답변: 일이 면전에 닥쳤을 때 곧 판단하여 처치하면 이것이 한 번 생각한 것이요, 판단하여 처치할 것을 정하고 다시 살펴서 수정하면 이것이 두 번째 생각하는 것입니다.

事到面前, 便斷置了, 是一番思. 斷置定了更加審訂, 是第二番思.

 

질문: (공자는) “환퇴(桓魋)가 나에게 어찌하겠는가?”라 말하고, () 땅의 사람들이 나에게 어찌하겠는가?”라 말하고, 공백료(公伯寮)가 명을 어찌하겠는가?”라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선생께서 설명해주기를 세 가지 말은 모두 반드시 해가 되지 않는 말이니, 어쩔 수 없이 명()을 들어 스스로 편안히 여기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세 가지 말은 모두 반드시 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라는 것은 곧 성인이 천명을 알아 즐기는 곳입니다. 견해가 정해지고 의지가 확고하여 단호히 이치를 스스로 믿어 결코 의심하거나 되돌아 생각해보는 뜻이 없습니다. 비록 명이라고 말하나 실제로는 이치에 주재를 받고 있으니 결코 하늘과 사람의 변별을 볼 수 없습니다. 저처럼 부득이하게 명을 들어 스스로 편안히 여기는 것은 본래 의리가 마땅히 어떠한지를 돌아보지 않고, 다만 일의 형세가 어찌할 수 없는 경우를 들어 마침내 명()에 위탁하여 스스로 마음을 달래면서 실로 명을 스스로 믿지를 못하니, 성인의 이른바 명과는 절로 같지 않습니다. 정자가 명은 중인(中人)을 위해 설한 것이다고 말한 것이 곧 이와 같은 명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인의 분수에서 보면 이러한 명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이는 성인의 이른바 명이 보통 사람이 이른바 명과 일은 같지만 뜻이 다른 것입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성인이 이른바 명은 이치가 아님이 없습니다.)

桓魋其如予何’, ‘人其如豫何’, ‘公伯寮其如命何’, 來敎云: ‘三語皆必其不能爲害之辭, 與不得已而聽命以自安者不同.’ 竊謂三語皆是必其不能爲害之辭, 此便是聖人樂天知命處. 見定志確, 斷然以理自信, 絶無疑忌顧慮之意. 雖日命而贊在主於理, 渾不見有天人之辨. 彼不得已而聽命以自安者, 本不顧夫理義之當如何, 但以事勢無可奈何, 遂委之命以自遣, 而實未能自信乎命, 與聖人之所謂命者自不同. 程子所謂命爲中人設, 卽此等所謂命耳. 故在聖人分上, 則此等命不足道也. 是則聖人之所謂命與常人之所謂命者事同而情異焉. 不審是否? (聖人所謂命者莫非理.)

 

답변: 위의 두 말은 성인(공자)이 스스로 곳곳에서 증험한 것이 이미 그러하니, 그들이 결코 자기를 해칠 수 없음을 안 것입니다. 아래 하나의 말은 자복경백(子服景伯: 노나라 대부) 등을 위해 말한 것으로, 명이 있음을 알고 그 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다만 공백료가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았을 뿐입니다.

上二語是聖人自處處驗之已然, 而知其決不能害己也. 下一語是爲子服景伯等言, 知其有命而未知其命之如何, 但知公伯寮之無如此何耳.

 

질문: 보내주신 편지에서 백이와 숙제를 논하기를 천하의 공의(公義)로 재단한다면 천륜은 무겁고 아버지의 명은 가벼우며, 사람의 자식된 분수로 말한다면 또 어느 쪽이 가볍고 무거운지 나눌 수 없다. 다만 각각 자신의 편안치 않은 곳을 알아서 한 걸음씩 물러났으니, 곧 백이와 숙제의 처신이 옳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를 상세히 살펴보고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제후가 대를 잇고 봉토를 세습하여 선군(先君)을 이어서 작위를 차지하는 것은 안으로 반드시 계승한 바가 있고 위로 품부 받은 바가 있어 큰 인륜과 의리가 또한 서로 어그러지는 데 이르지 않으니, 결국 위세를 부탁하여 부족함이 없어야 그런 뒤에 국가에 정의를 세울 수 있습니다. 백이와 숙제는 천륜(天倫)으로 말하자면, 백이는 국가를 담당할 적자이니 법으로 보아 마땅히 옹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군의 명을 얻지 못했다면 안으로 계승한 바가 없으니 어찌 대를 이어 종묘를 지켜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부명(父命)으로 말하자면, 숙제는 참으로 명을 얻었으나 백이가 맏이고 숙제가 아우입니다. 숙제의 덕이 백이보다 우월하지도 않은데 그 아버지가 이내 적자를 버리고 작은 아들을 옹립하니, 이는 한 때 사랑에 빠진 사사로운 뜻으로 한 것이지 천하의 공의(公義)로 군주의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천륜을 어지럽히고 정의를 잃었으며 군주의 법으로 허여하지도 않았으니 어찌 천자에게 알려져 국가를 어루만질 수 있겠습니까? 이 모두 자기에게 장애가 되어 이로운 곳이 아닙니다. 이는 백이의 입장에서 감히 천륜을 끼고 자처하면서 부명의 존엄함을 억누르지 않고, 단지 강력히 사양하여 받지 않았고 결단코 감히 혹시라도 받지 않은 까닭입니다. 숙제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한 때의 명을 믿어 천륜의 소중함을 억누르지 않고 단지 굳이 사양하여 행하지 않았고 결단코 감히 혹시라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분수의 당연한 점에 근거하여 내 마음의 편안함함을 구하는 것입니다. 대개 이와 같지 않다면 마음에 끝내 편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백이는 선군에게 받지 못하고 선왕에게도 받지 못하여 아우에게 받았고, 숙제는 아버지의 그릇된 명을 이루어 왕법을 범했으니, 어찌 국가를 전수 받는 정의가 될 수 있겠습니까?

來敎論: ‘以天下之公義裁之, 則天倫重而父命輕. 以人子之分言之, 則又不可分輕重, 但各認取自家不便利處, 退後一步, 便是伯夷叔齊得之矣.’ 詳此, 竊謂諸侯繼世襲封, 所以爲先君之嗣而爵位, 內必有折承, 上必有所禀, 而大倫大義又不至於相悖, 端可以光付託而無歉, 然後於國爲正. 伯夷叔齊以夫倫言之, 伯夷主器之嫡, 在法固當立. 然不得先君之命, 則內無所承, 烏得以嗣守宗廟而有國也? 以父命言之, 叔齊固有命矣, 伯夷長也, 叔齊弟也, 叔齊之德不越於伯夷, 其父乃舍嫡立少, 是一時溺愛之私意, 非制命以天下之公義者也. 亂倫失正, 王法所不與, 何可以聞于天子而憮國也? 此皆在己有擬而不利便處. 此在伯夷, 所以不敢挾天倫自處, 以壓父命之尊, 只得力辭而不受, 而決然不敢以或受. 叔齊, 所以不敢恃父一時之命以壓天倫之重, 只得固讓而不爲, 而決然不敢以或爲. 此是據其分之所當然, 以求卽乎吾心之安. 蓋不如是, 則於心終不安. 伯夷, 是不受之先君, 不受之天王而受之於弟; 叔齊, 是成父之非命而干王法也, 豈得爲受國之正乎?

 

답변: 이 설명은 좋습니다. 다만 다시 인()을 구하여 인을 얻은 곳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此說得之, 但更看求仁得仁處.

 

질문: 자로가 기도하기를 청한 구절을 다시 묻습니다.

再問子路請禱.

 

답변: 대개 이와 같지만 추론이 너무 지루하고 번잡합니다. 예컨대 너를 상하의 신명에게 기도했다고 한 말은 단지 이 옛말을 인용하여 기도하는 이치가 있음을 밝힌 것이지, 황천과 후토에게 기도하려고 한 점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大槪是如此, 但推得太支蔓, 如云 禱爾于上下神衹’, 只是引此古語以明有禱之理, 非謂欲禱于皇天后土也.

 

질문: 󰡔집주󰡕성인은 일찍이 잘못이 없어 옮겨갈 만한 선이 없어서 평소의 행동이 진실로 이미 신명에 합치한다. 그러므로 나는 기도한 지가 오래이다라고 말한 것이다라는 구절을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대저 성인이 기도를 일삼을 것이 없다는 뜻을 논한 것으로 보면, 그 의미가 참으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한 구절은 이내 성인이 스스로 말한 것이니, 성인의 뜻이 어찌 나는 아직 잘못이 없어 옮겨갈 만한 선이 없어서 평소의 행동이 진실로 이미 신명에 합치한다고 말한 데 있겠습니까? 이 물음에 들어있는 약간의 복잡한 내막을 다시 어떻게 보아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又嘗疑集注: ‘聖人未嘗有過, 無善可遷, 其蓑行固已合於神明, 故曰之禱久矣.’ 夫自其論塾人所以無事於禱者, 其義固如此. 然此一句乃聖人自語也. 聖人之意豈有謂我未嘗有過, 無善可遷, 其素行固已合於神明哉? 不審此間少曲折, 更何如?

 

답변: 성인에겐 참으로 그 성()에 거하지 않는 시절이 있고, 또 단도직입적으로 담당하여 남을 밀어서 나아가게 하고 자기는 사양하는 바가 없는 시절도 있습니다. 예컨대 하늘이 나에게 덕을 내어주었다거나 이 문()을 없애지 않았다고 말하는 부류는 참으로 덮어버릴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聖人固有不居其聖時節, 又有直截擔當, 無所推讓時節. 天生德於予’, ‘末喪斯文之類, 蓋誠有不可揜者.

 

질문: 󰡔소학󰡕에는 유검루(庾黔婁)의 아버지가 병이 들자 저녁마다 북극성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이 대신 아프기를 청했다는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그런데 전체 글 중 이 아래 부분에서 다시 며칠만에 병이 나았다고 말했는데, 과연 이처럼 감응하는 이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과연 감응하는 이치가 있다면, 이는 부모와 자식은 하나의 기운으로 이 정성이 극치에 이르러 이미 썩어문드러진 기운이 다시 채워져 왕성해지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이는 마침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지 실제로는 기도와 관계되지 않으니, 참으로 요절할 사람이 바뀌어 장수하게 되고 재앙이 바뀌어 복이 되는 이치가 없는 것입니까? 자식들은 이에 대해 비록 감응하는 이치가 없음을 알지만 또한 도리어 그 예법을 실제로 행하니, 지행(知行)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듯합니다.

小學庾黔婁父病, 每夕稽頰北辰, 求以身代, 而全文此下更云數日而愈, 不審果有此應之之理否? 若果有應之之理, 則恐是父子一氣, 此精誠所極, 則彼旣暖之氣因復爲之充盛否? 抑此適遭其偶然, 而實非關於禱, 實無轉夭爲壽轉禍爲福之理? 人子於此雖知其無應之之理, 而又却實行其禮, 則恐心足不相似.

 

답변: 기도는 정례(正禮)이니 절로 보응(報應)이 있는 법입니다. 이러한 이치가 없는 줄 알지만 짐짓 해본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禱是正禮, 自合有應, 不可謂知其無是理而姑爲之.

 

질문: 보내주신 편지에서 깨어 있음과 잠듦은 마음의 동정(動靜)이고, 생각이 있음과 생각이 없음은 또 동() 중의 동정이고, 꿈이 있음과 꿈이 없음은 또 정() 중의 동정이다. 다만 깨어있음은 양()이고 잠듦은 음()이며, 깨어있음은 맑고 잠듦은 흐리며, 깨어있음은 주재가 있고 잠듦은 주재가 없다. 그러므로 고요히 감촉하여 소통하는 오묘한 이치는 반드시 깨어있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를 생각해보고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음양의 기운을 갖추니 정신은 양기에서 발하고 체백은 음기에 근원을 둡니다. 마음이란 음양에 붙어 그 기운을 타고 동정에 간극이 없으니, 곧 정신이 모이는 곳이요 체백의 주인이 됩니다. 낮에는 음기가 엎드려 숨어있어 양기가 작용하고 양기가 동()을 주재하기 때문에 정신이 움직이면 체백이 뒤따라 깨어있게 됩니다. 밤에는 양기가 엎드려 숨어있어 음기가 작용하고 음기가 정()을 주재하기 때문에 체백이 안정되면 정신이 숨어서 잠들게 됩니다. 정신이 움직이기 때문에 허령지각(虛靈知覺)의 본체는 환하게 드러나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의 양기가 되돌아온 뒤로 만물이 봄의 의지를 갖게 되니, 이는 마음의 적감(寂感)이 주재함이 있는 것입니다. 정신이 숨기 때문에 허령지각의 본체가 가라앉아 잠겨있어 고요하여 종적이 없습니다. 예컨대 순곤(純坤)의 달에 만물의 생성은 그 조짐을 엿볼 수 없으니, 이는 마음의 적감이 깨어있을 때의 오묘함과 같지 않아 잠들어 있어 주재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실제로 없어지지 않지만 헤아릴 수 없는 것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부르면 응답하고 놀라게 하면 깨어나니, 이 또한 주재 아님이 없고 오묘함이 아님이 없습니다. 따라서 대별해서 말하면 깨어있음은 양기이고 잠듦은 음기인데 마음이 동정을 작용케 하는 것입니다. 세분해서 말하면 깨어있을 때에 생각하는 것은 또한 동 가운데의 동으로 양의 양이 되고, 생각이 없는 것은 또한 동 가운데의 정으로 양의 음이 됩니다. 잠들었을 때에 꿈꾸는 것은 또한 정 가운데의 동으로 음의 영이 되고, 꿈이 없는 것은 또한 정 가운데의 정으로 음의 음이 됩니다. 또 교착해서 말하면 생각에 선과 악이 있는 것은 또한 동 가운데의 동이니 양은 밝고 음은 흐립니다. 생각이 없는데 선하게 감응하거나 망령되게 감응하는 것은 또한 동 가운데의 정이니 양은 밝고 음은 흐립니다. 꿈에 올바름과 사악함이 있는 것은 또한 정 가운데의 동이니 양은 밝고 음은 흐립니다. 꿈은 없는데 쉽게 깨어나거나 어렵게 깨어나는 것은 또한 정 가운데의 정이니 양은 밝고 음은 흐립니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것이 순환하고 교착하니 성인과 범인은 같지만, 양이 밝고 음이 흐리게 되는 것은 다릅니다. 성인은 동정에 한 결같이 청명하고 순수한 주재가 되지 않음이 없으나, 범인은 섞여서 가지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학문하는 힘이 여기에 달려있음은 또한 증험할 수 있습니다.

 

來敎云: ‘寤寐者, 心之動靜也. 有思無思者, 又動中之動靜也. 有夢無夢者, 又靜中之動靜也. 但寤陽而寐陰, 寤淸而寐濁, 寤有主而寐無主, 故寂然感通之妙必於寤而言之.’ 思此, 竊謂人生具有陰陽之氣, 神發於陽, 魄根於陰. 心也者, 則麗陰陽而乘其氣, 無間於動靜, 卽神之所會而爲魄之主也. 晝則陰伏藏而陽用事, 陽主動, 故神運魄隨而爲寤. 夜則陽伏藏而陰用事, 陰主靜, 故魄定神蟄而爲寐. 神之運, 故虛靈知覺之體燁然呈露, 有苗裔之可尋. 如一陽復後, 萬物之有春意焉, 此心之寂感所以爲有主. 神之蟄, 故虛靈知覺之體沈然潛隱, 悄無蹤跡. 如純坤之月, 萬物之生性不可窺其朕焉, 此心之寂感所以不若寤之妙, 而於寐也爲無主. 然其中實未嘗泯, 而有不可測者存. 呼之則應, 驚之則覺, 則是亦未嘗無主而未嘗不妙也. 故自其大分言之, 寤陽而寐陰, 而心之所以爲動靜也. 細而言之, 寤之有思者, 又動中之動而爲陽之陽也; 無思者, 又動中之靜而爲陽之陰也. 寐之有夢者, 又靜中之動而爲陰之陽也; 無夢者, 又靜中之靜而爲陰之陰也. 又錯而言之, 則思之有善與惡者, 又動中之動, 陽明陰濁也. 無思而善應與妄應者, 又動中之靜, 陽明陰濁也. 夢之有正與邪者, 又靜中之動, 陽明陰濁也. 無夢而易覺與難覺者, 又靜中之靜, 陽明陰濁也. 一動一靜, 循環交錯, 聖人與衆人則同, 而所以爲陽明陰濁則異. 聖人於動 靜無不一於淸明純粹之主, 而衆人則雜焉而不齊. 然則人之學力所係於此亦可以 驗矣.

 

답변: 좋습니다.

得之.

 

질문: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재여는 비록 안자(顔子)민자건(閔子騫)과 같은 부류는 아니지만, 성인의 문하에서는 또한 영재요 고제로서 모두 성인이 깊이 촉망했던 사람인데, 재여의 게으름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운운한 것입니다.

宰予晝寢’(云云). 雖非之倫, 而在聖門亦英才高弟, 皆聖人所深屬意者. 懈怠如此, (云云).

 

답변: 배우는 자는 본래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되니, 이미 전에 수많은 말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學者自是不可懈怠, 非有已前許多說話也.

 

질문: 또 앞 단락에서 이르기를 나의 직분은 이미 닦였고 나의 사업은 이미 끝마쳤도다. 나의 삶은 이미 풍족하니 내 장차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어라. 하였습니다.

又前段云 吾職分已修, 而吾事業已畢乎. 吾生已足, 而吾將俯仰無愧乎’ (云云).

 

답변: 의리는 무궁하니 만일 네 가지 일을 모두 끝마쳐 스스로 편안하게 여긴다면, 비록 낮잠을 자지 않을지라도 이미 게으름을 피운 것입니다. 이 단락은 너무 지루하고 산만하여 말투가 거의 장무구(張無垢)와 비슷합니다. 다시 추슬러서 친근하고 절실한 곳에 나아가 파악해보아야만 합니다. 이 일의 옳고 그름은 두 마디 말로 결정할 수 있으니, 어찌 이처럼 (장황하게) 설득하겠습니까?

義理無窮, 若自謂四事都了而可以自安, 則雖不晝寢而已爲懈怠矣. 此段大支蔓, 語氣頗似漲無垢. 更宜收歛, 就親切處看. 此事可否, 兩言而決耳, 何用如此說作耶?

 

질문: “인자(仁者)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한다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어려운 일을 먼저 한다는 것은 나를 이기는 것입니다. 이미 인자라고 했다면 어찌 자기의 사사로움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아마도 이 인자라는 글자는 어진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말의 맥락으로 보아 오히려 이른바 인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해야만 이내 인이라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한 듯합니다.

仁者先難而後獲’, 先難, 克己也. 旣日仁者, 則安得有己私? 恐此 仁者字非指仁人而言, 語脈猶曰: ‘所謂仁云者, 必先難後獲乃可謂之仁.’

 

답변: 어진 사람은 의리를 올바로 세우고 그 이익을 꾀하지 않으며, 도리를 밝히고 그 공을 셈하지 않으니, 말의 뜻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인자는 비록 사사로움이 없지만 어찌 감히 사사로움이 없다고 스스로 말하겠습니까? 보내온 편지가 여러 권인데 이와 같은 병통이 때때로 눈에 띱니다.

仁人者, 正其誼不謀其利, 明其道不計其功, 語意正如此. 仁者雖已無私, 然安敢自謂已無私乎? 來示數卷, 此一樣病痛時時有之.

 

질문: 자천(子賤)이 이룬 덕은 실로 성인의 문하에서 나왔으나, 공자는 (도리어) 노나라에 현자가 많았다고 돌렸습니다. 성인의 겸손과 후덕함을 이 일에서 볼 수 있는데, 소씨(蘇氏)의 해설은 미진한 듯합니다.

子賤之成德實出於聖門, 夫子歸於多賢者. 聖人謙厚, 於此事可見. 蘇氏說恐末盡.

 

답변: 그렇지 않습니다.

不然.

 

질문: 󰡔논어집주󰡕에서 일의 어려운 것을 먼저 하고 그 효과의 얻음을 뒤에 함은 인자의 마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자를 쓴 것은 왜입니까? 이곳은 이미 인자의 마음이라는 것입니까? 아니면 인을 구하여 그 마음이 마땅히 이와 같다는 것입니까? 이 한 글자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集注: ‘先其事之所難而後其效之所得, 仁者之心也.’ 此處下 字是如何? 豈此處便已是仁者之心耶? 抑求仁而其心當如是也? 曉此. 字未徹.

 

답변: 인자의 마음이 이와 같기 때문에 인을 구하는 자의 마음도 역시 이와 같아야만 합니다.

仁者之心如是, 故求仁者之心亦當如之.

 

질문: 또 여씨(呂氏)의 네 구절은 바로 이 장의 네 구절을 해설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기 어려운 바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는 한 구절은 또한 어려운 일을 먼저 한다는 뜻을 설명했을 뿐이고, 얻는 것을 뒤에 한다는 뜻은 절실하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呂氏四句, 正是解此章四句. 不憚所難爲一句, 似亦只說得先難意, 而後獲意思不切. 如何?

 

답변: 당시에 본래 여씨의 해설만을 인용하고자 했으나 나중에 이것에 미비함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별도로 말했던 것입니다. 또 그 말은 다른 해설에 미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뒤에다 두었을 뿐입니다.

當時本欲只用, 後見其有此未備, 故別下語. 又惜其語非它說所及, 故存之於後耳.

 

질문: 술이(述而)32장에서 이미 (공자는) “행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했는데, 2장에서는 배우고 싫어하지 않으며,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이것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라고 말했고, 󰡔집주󰡕에서도 모두 내가 갖출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혹자는 성인의 뜻이 이처럼 상반되어 호응하지 않는가 라고 의심하여, 2장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한 말로 여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라는 것은 단지 어찌 나에게만 있겠는가? 이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이 할 수 있다고 말해야만, 앞 문장의 뜻과 뒷 문장의 뜻이 서로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해설을 통해 논파하기를 성인의 말은 각각 입장을 따라 나온 것이니 서로 어긋나 뒤섞인 적이 없다. 당시에 공자를 성인 또는 인자라고 칭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공자가 이를 사양하여 감히 받아들이지 않고 물러나서 행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자처했다. 이는 겸양하는 뜻이니 높은 곳을 사양하고 낮은 곳으로 나아간 것이다. 사람들이 배우고 싫어하지 않으며,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일을 공자에게 되돌리자, 또 나는 일찍이 갖춘 적이 없다고 사양하니, 이때의 겸양하는 뜻은 유능함을 사양하여 무능함으로 나아간 것이다. 두 곳의 말은 비록 서로 답습하고 있지만 주장하는 뜻은 각자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述而第三十二章旣以 爲之不厭誨人不倦自許, 而第二章 學而不厭誨人不倦’, 集注又謂 皆我所不能有.’ 或者疑聖人之意不應如此相反, 欲以第二章亦爲自許之詞, 何有於我哉只謂其何但我有, 此衆人皆能如此, 庶前後意不相背. 爲說以破之曰: ‘聖人之言各隨所在而發, 末嘗參差揷雜. 當其有稱夫子以聖且仁者, 故夫子辭之而不敢當, 因退而就夫爲之不厭誨之不倦以自處. 此是爲謙之意, 是辭高而就卑也. 及人以學而不厭誨人不倦二事歸之夫子, 則又辭之以我所未嘗有, 此時爲謙之意, 是辭其有能以就無能也. 二處之言雖相襲, 而意之所主各自不同.’

 

답변: 인자와 성인의 자리에 거하지 않으니 이미 겸양한 것입니다. 배우고 싫어하지 않으며,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이 나에게 갖춰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또한 겸양하는 가운데의 겸양입니다. 부형과 공경을 섬긴다는 한 구절에 이르면 또한 겸양하고 겸양하는 가운데의 겸양입니다. 대개 성인은 의리가 무궁하여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곳이 있음을 볼뿐입니다. 따라서 그 말이 항상 아래에 있으나 더욱 그 높음을 보게 됩니다.

不居仁聖, 已爲謙矣. 以學不厭誨不倦爲無有, 又謙之謙也. 至於事父兄公卿一節, 則又謙謙之謙也. 蓋聖人只見義理無窮, 而自己有未到處, 是以其言每下而益見其高也.

 

질문: 󰡔논어혹문󰡕에서 환퇴와 광 땅 사람이 천명을 어기고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구절을 설명했습니다.

論語或問桓魋匡人不能違天害己處.

 

답변: 이 병통을 물은 곳은 또한 주침장(晝寢章)’과 서로 비슷합니다.

此間病處亦輿晝寢章相類.

 

질문: 또한 성인은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었으니 결코 해치는 이치가 없음을 이미 알았는데, 환란을 피하는 것도 반드시 주도면밀했으니, 왜입니까? 성인은 사람들이 결코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을 알았으니, 천리(天理)를 환히 알아서 의심함이 없어서 입니까? (이 몸은 천지를 위해 지극히 무거운 부탁을 받았다. )

又聖人旣知天生德於我, 決無可害之理矣, 而避患又必周詳謹密者, 何耶? 將聖人知人之決不加害者, 蓋灼知天理而無疑也? ( ‘此身爲天地附託至重云云.)

 

답변: 환란을 마땅히 피해야 하는 것은 이치가 본래 이와 같습니다. 보통 사람도 역시 그러하니, 반드시 성인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患之當避, 自是理合如此, 衆人亦然, 不必聖人爲然也.

 

질문: “군자는 평탄하여 여유가 있다고 말했는데, ‘탄탕(坦蕩)’ 두 글자는 서로 연접해 있으면서 모두 기상(氣象)의 측면에서 말하였으니, 단지 마음이 평탄하고 너그럽고 넓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는 이치의 측면에서 말했으니 천리(天理)를 따라 평탄한 뒤에 마음이 너그럽고 넓어진다는 것입니까?

君子坦蕩蕩’, ‘坦蕩二字只相連, 俱就氣象說, 只是胸懷平坦寬廣否? 字就理說, 由循理平坦, 然後胸懷寬廣也?

 

답변: 본래 연접해서 설명한 것이니 아래 문장의 대비되는 구절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只合連說, 看下文對句可見.

 

질문: “공자는 온화하면서도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고, 공손하면서도 편안하였다고 했는데, 󰡔집주󰡕에서는 성대한 덕의 모습은 중정하고 화평하여 음양의 덕이 합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그 말을 계기로 이를 분석하여 위의 세 구절을 양으로 아래의 세 구절을 음으로 삼으니 합당한 듯했습니다. 그런데 또 위의 세 구절을 음으로 아래 세 구절을 양으로 여겨도 절로 합당하니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인은 전체가 한 덩어리의 원기로 되어있어 지칭할만한 틈이 없습니다. 학자들이 억지로 이를 형용하여 그 설명이 저절로 삼재(三才)로 나뉘어진다고 말한다면, 따사로워 화락함을 느낄 수 있되 굽히거나 빼앗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고, 근엄하여 위엄이 두려워 할만하되 사물에 사납지 않는 것은 하늘의 도리이고, 공순하게 낮은 곳에 처하되 느긋하여 불안함이 없는 것은 땅의 도리입니다. 양이 음에 근거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은 양의 온화함이요 여()는 음의 엄숙함이요 위()는 양의 진동함이요 불맹(不猛)은 음의 유순함이요 공()은 양의 주재함이요 안()은 음의 안정됨입니다. 음이 양에 근거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은 음의 유순함이요 여()는 양의 강직함이요 위()는 음의 차가움이요 불맹(不猛)은 양의 느림이요 공()은 음의 엄숙함이요 안()은 양의 건실함입니다. 대개 전체가 혼연하여 가는 곳마다 중정하고 화평한 기운이 지극하지 않음이 없으니, 편향되게 지칭해서는 안 됩니다.

子溫而屬, 威而不猛, 恭而安’, 集注: ‘盛德之容中正和平, 陰陽合德.’ 竊嘗因其言而分之, 以上三截爲陽而下三截爲陰, 似乎有合. 然又以上三截爲陰而下三截爲陽, 亦自有合, 未知所決. 抑聖人渾是一元氣之會, 無間可得而指. 學者强爲之形容, 如且以其說自分三才而言, 則溫然有和之可挹而不可屈奪, 則人之道也; 儼然有威之可畏而不暴於物, 則天之道也; 恭順卑下而恬然無所不安, 則地之道也. 自陽根陰而言, 則溫者陽之和, 厲者陰之嚴, 威者陽之震, 不猛者陰之順, 恭者陽之主, 安者陰之定. 自陰根陽而言, 則溫者陰之柔, 厲者陽之剛, 威者陰之慘, 不猛者陽之舒, 恭者陰之肅, 安者陽之健. 蓋渾然無適而非中正和平之極, 不可得而偏指者也.

 

답변: 이 설명은 추론이 또한 좋습니다.

此說推得亦好.

 

질문: 태백(泰伯)의 일을 󰡔집주󰡕에서 운운(云云)했습니다. 당시에 상()나라 왕실이 쇠약하였지만 천명과 시세는 오히려 그렇지 않았다. 태왕(太王)이 이내 이 마음을 싹틔워 그 아래에서 노려보니 어찌 사악한 뜻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태백이 굳이 사양하여 아버지의 사악한 뜻을 이루도록 하고 또 스스로 자기 몸을 깨끗이 하여 바라지 않은 것(왕위)을 남에게 미루었건만, 후인은 어찌하여 지극한 덕이라 말합니까? 󰡔집주󰡕에서 이른바 어찌 지극히 공정한 마음이 없었겠는가?”라는 설명은 또 과연 어떻습니까?

泰伯之事, 集注(云云.) 當時室雖衰, 天命時勢猶未也. 太王乃萌是心, 睥睨於其下, 豈得不謂之邪志? 泰伯固讓, 爲成父之邪志, 且自潔其身, 而以所不欲者推之, 後人何以爲至德? 集注所謂豈無至公之說, 又果何如?

 

답변: ()나라를 공격한 일은 곧 󰡔시경󰡕에 나오는 말이고, 따르지 않은 일도 󰡔춘추좌전󰡕에 기록된 것이니, 당시에 반드시 근거한 바가 있습니다. 󰡔서경󰡕 속의 처음으로 왕자(王者)의 자취를 터 닦았다는 설명과 󰡔중용󰡕에서 무왕이 태왕왕계(王季)문왕의 일을 이었다는 말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성현이 일을 처리하는 변법(變法)이니 상법(常法)에 얽매여 처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태백이 사양한 일은 상법을 지켜 이 일을 잇고자 하지 않아서입니다. 그 마음은 바로 백이와 숙제의 마음이나 일의 난처함은 그보다 더 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버지의 사악한 뜻을 이루어준 것으로 책망하니 이는 잘못입니다.

, 不從亦是左氏所記, 當時必有所據. 中說 肇基王迹’, 武王太王王季文王之緖則可見矣. 此聖賢處事之變, 不可拘以常法處. 太伯之讓, 則是守常而不欲承當此事者也. 其心卽之心, 而事之難處則有甚焉. 尙以成父之邪志責之, 誤矣.

 

질문: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묻는다는 장()을 설명하면서 󰡔집주󰡕는 윤씨(尹氏: 윤순)무아(無我)의 경지에 가까운 자이다라는 해설을 채록했는데, ‘()’자는 단지 종사(從事)’ 한 구절에 나아가 이해해야만 합니까? 아니면 앞의 다섯 구절을 통 털어서 이해해야 합니까?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여도 따지지 않는다는 구절도 또한 따짐이 없을 수 없으니 여기에서 성인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以能間於不能, 集注尹氏 幾於無我’, ‘字只就 從事一句可見邪? 抑倂前五句皆可見邪? 犯而不校, 亦未能無校, 此可見非聖人事.

 

답변: 안자(顔子)는 바로 힘을 쏟느냐 힘을 쏟지 않느냐 하는 사이에 달려있으니, 비단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종사한다는 측면에서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그것에 대해 따짐이 없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顔子正在著力不著力之間, 非但此處可見, 又只就從事上看便分明, 不須更說無校之云也.

 

질문: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학문을 좋아한다는 말은 독실하게 행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때문에 두 글자를 나란히 말하여 이미 독실하고 또 믿는다고 한 것이 아니겠지요? 󰡔집주󰡕에서 ()은 두텁게 힘쓰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두텁게 힘쓴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단지 그 마음이 여기에 중함을 더하고 또 그것을 행하는 데 간절하다면, 이미 가볍게 믿거나 또 구차하게 믿는 것이 아니지요?

篤信好學猶篤行之云, 不是兩字並言, 旣篤而又信否? 集注: ‘, 厚而力也.’ 何謂厚而力? 只是其心加隆重於此, 而又懇切於爲之, 旣不輕信而又不苟信否?

 

답변: 독신(篤信)은 단지 믿음이 확고하여 다른 곳으로 달려가지 않는 것이니, 가볍게 믿거나 구차하게 믿는다는 듯이 없습니다. 가볍거나 구차하지 않는다 함은 도리어 학문을 좋아하는 측면에서 보게 됩니다.

篤信只是信得牢固, 不走作耳, 未有不輕信苟信之意. 不輕不苟却在好學上見.

 

질문: 태백16에서 소씨(蘇氏)이 덕이 있다, 이 덕이 없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른바 덕은 천명의 성()에 근원을 두는 것이 아닙니까?

泰伯第十六章, 蘇氏有是德無是德之說, 所謂德者, 是原於夫命之性否?

 

답변: ‘자는 단지 사람이 각각 가지고 있는 장점을 말한 것이니, 굳이 천명의 성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字只是說人各有長處, 不必便引到夫命之性處也.

 

질문: “무지하면서도 근후하지 못한다에서 ()’자는 무슨 뜻입니까? 혹 근원(謹愿)이라 말하면 방종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고, 혹 원각(愿慤)이라 말하면 박실하다는 뜻이 있으니, 두 설명은 각자 다릅니다.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17편의 향원(鄕原)’에서도 순자(荀子)의 원각(原慤)이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恫而不願’, ‘字何訓? 或謂謹願, 則有不放縱之意. 或謂願慇, 則有樸盲之意. 二說各不同, 不審其義果如何? 第十七篇 鄕原章亦引荀子願慤之說.

 

답변: 두 가지 설명은 그다지 다른 점은 없습니다. 시골 사람은 대단한 견식이 없어서 그들이 이른바 근후함이란 반드시 참된 근후가 아니니, 곧 비루하여 세속을 따르는 사람일 뿐입니다.

二說無甚不同, 鄕人無甚見識, 其所謂願未必眞願, 乃卑陋而隨俗之人耳.

 

질문: 󰡔집주󰡕에서 또 말하기를 ()은 무지한 모양이요 공공(倥倥)은 무능한 모양이다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동()은 같다는 뜻이니 사물에 똑같은 하나의 규율을 적용함으로써 눈감은 것처럼 식별하지 못해 옳은 것도 옳은 것이요 그른 것도 옳은 것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은 비었다는 뜻이니 비우고 또 비워 안팎이 모두 비어 조금의 내용도 없는 것입니다.

集注又曰: ‘, 無知; 倥倥, 無能.’ 竊意恫者, 同也, 於物同然一律, 瞑無識別, 是猶是也, 非猶是也. 倥者, 空也, 倥而又倥, 是表裏俱倥, 無寸長之實.

 

답변: 이 또한 구설을 계기로 해서 자의(字義)와 음운(音韻)으로 추론한 것이니 혹 그럴 듯합니다. 이러한 부류는 대체로만 보는 것이지 애써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此亦因舊說, 以字義音韻推之, 恐或然耳. 此類只合大槪看, 不須苦推究也.

 

질문: “밥은 정()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집주󰡕에서는 이것을 좋게 여김을 말한 것이지, 반드시 이렇게 하고자 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좋게 여긴다[]’는 말은 약간 온당하지 못합니다. ()이란 곧 가선(嘉善)의 뜻이니, 여기에서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은 싫어해서 멀리한다는 뜻일 뿐입니다. 대개 성인은 평소에 간결하고 담백함을 취합니다.

食不厭精, 膾不厭細’, 集注: ‘言以是爲善, 非謂必欲如是也.’ 竊謂善者微有未穩. 善者則有嘉善之意, 此不厭但不嫌遠而已, 蓋聖人平日簡淡.

 

답변: 아래 문장으로 추론해보면, 성인은 모든 일에 자상하여 본래 간결하고 담백한 뜻이 없습니다. 만일 그대의 설명대로라면 기록한 사람이 마땅히 회는 거친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밥은 현미를 싫어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이내 올바른 이치가 될 것이니, 도리어 이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以下文推之, 聖人凡事子細, 初無簡淡之意. 若如所說, 則記者當云 膾不厭粗, 食不厰糲乃爲正理, 不應反作如此說也.

 

질문: “간장을 얻지 못하면 먹지 않았다고 했는데, 󰡔집주󰡕에서는 구비하지 않음을 싫어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 ()’자는 너무 무거우니 마치 성인에게 어떤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不得其醬不食’, 集注: ‘惡其不備也.’ 竊疑 字太重, 似見聖人有意處.

 

답변: 구비되지 않음을 싫어한 것이지 맛이 좋지 않음을 싫어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맛을 탐하는 것을 잊고 구차하게 먹지 않았을 뿐입니다.

惡其不備, 非惡其味之不美, 但忘其貪味, 不苟食耳.

 

질문: 󰡔집주󰡕 가운데서 중니(仲尼)를 부자(夫子)로 바꾸어 부르지 않은 것은 왜입니까? 만일 󰡔중용󰡕 2장에서 변별한 것과 같이 여긴다면, 당시에는 (중니라고 불러도) 가할 듯합니다.

集注仲尼不易爲 夫子’, 何也? 若如中庸第二章所辨, 則恐在當時爲可耳.

 

답변: 일찍이 이처럼 이해한 적이 없고 또 이처럼 이해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중용혹문󰡕에서 근래에 이러한 이유로 󰡔중용󰡕은 자사(子思)의 저술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언급했을 뿐입니다.

不曾如此理會, 恐亦不須如此理會也. 中庸或問乃爲近年有以此疑中庸子思之作者, 故及之耳.

 

질문: ‘()’이라는 글자에 대한 설명은 대개 문리(文理)가 볼만하다는 뜻으로만 말했습니다. 생각건대 모든 의리(義理)는 경전에 실려있고 사물 사이에 간직되어 있어, 대저 위의(威儀)와 화채(華采)에 드러나 성대한 덕의 빛이 되고 예악과 제도에 드러나 사도(斯道: 유교의 도)를 현창하는데, 이를 끌어다가 문리의 볼만한 것이 모두 이것이다 라고 합니다.

之爲說, 大要只是有文理可觀之謂. 蓋凡義理之載於經籍而存乎事物之間, 與夫見於威儀華釆而爲盛德之輝光, 形於禮樂制度而爲斯道之顯, 及所引爲有文理之可觀者皆是(云云)

 

답변: “사물은 서로 섞여있으므로 문()이고 하니 앞에서 설명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아래쪽에서 여러 설을 분별했다면 그렇지 않은 듯 싶습니다. 예컨대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면, 어떻게 그것이 위의(威儀)와 화채(華采), 예악과 제도가 되지 않는다고 보겠습니까?

物相雜故日文, 如前所說是也. 如下面分別諸說, 則恐未然. 如曰 則以學文’, 何以見其不爲威儀華釆禮藥制度耶?

 

질문: 󰡔대학󰡕의 의문점에 대해 󰡔혹문󰡕사람과 사물이 태어남에 그 태어난 근거를 얻어서 한 몸의 주인으로 삼지 않음이 없다고 말했는데, 근래에 ()’자를 ()’자로 고쳤습니다. 제 생각으로 자는 뜻이 본래 중첩되지 않지만 글자가 조금 느슨한 듯하니, ‘자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大學或問人物之生, 莫不得其所以生者, 以爲一身之主’, 近改 字作 . 竊意 字意固不重疊, 而字似少開, 不苦只依 .

 

답변: 이전에 이 자를 고쳤던 것은 대개 아래 문장에서 오로지 사람의 명덕을 설명했기 때문에 자를 쓸 수 없었습니다. 만일 자를 쓴다면, 다시 사람과 사물이 다른 이유를 분별해야만 이내 완비될 것입니다. 근래에 이미 이처럼 개정했습니다.

向來改此 , 蓋爲下文專說人之明德, 故不可下 . 若作 , 卽須更分別人與物之所以異乃爲全備. 近已如此改之矣.

 

질문: 󰡔혹문󰡕에서 이미 그쳐야할 곳을 참으로 안다면 반드시 그쳐야 할 곳을 얻게 되니 이미 어떤 간격도 없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 약이(若已)’라는 글자는 말의 뜻이 명백하지 못한 듯하니 또한 어떤 간격도 없다라고 고치고자 합니다.

或問: ‘旣眞知所止, 則其必得所止, 若已無甚間隔.’ 竊疑 若已字辭旨恐未明白, 欲改作 亦非有甚間隔’.

 

답변: ‘()’이란 글자의 의미는 절로 분명하니, 참으로 간격이 없지는 못합니다.

字意自分明, 未是眞無間隔也.

 

질문: ‘격물(格物)’장에 대해 󰡔혹문󰡕에서는 그 정미하고 오묘한 까닭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곧 참으로 오래도록 힘을 기울여 마음으로 통하고 묵묵히 인식하는 가운데에 있다고 말했는데, 이 구절은 상세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格物或問: ‘其所以精微要妙, 不可測度者, 乃在其眞積力久 心通黙識之中.’ 此句曉之未詳.

 

답변: 이곳은 상세히 보아야 합니다. 당시에 썼던 말이 정밀하지 않아 이미 개정했습니다.

此處細看, 當時下語不精, 今已改定.

 

질문: 󰡔혹문󰡕에서 또 이른바 활연관통(豁然貫通)이란 견문이나 사려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이 구절은 상세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은 바야흐로 하나하나 사물의 이치를 궁구할 때에 오히려 힘써 공부하여 궁구할 수 있는 것이니, 이른바 활연관통하는 곳은 반드시 참으로 오래도록 힘을 기울여 조용히 함양하고 넉넉히 순숙(純熟)하여 기약하지 않아도 절로 도달하는 것이지 억지로 탐색하고 논의하여 이를 수 있는 곳이 아니겠지요? 아니면 이미 활연관통의 경지에 도달하면 곧 참다운 앎이 투철해지는 것입니까? (운운) 만일 여기에 오히려 힘을 기울여 사색한다면 곧 물이 흘러내리듯 자득하게 됩니다.

或問又曰: ‘所謂豁然貫通者, 又非見聞思慮之可及也.’ 此句曉之未詳. 不審此只是方其正一一格物時, 猶可勉勵用工夫以格之, 如所謂豁然貫通處, 必眞積之久, 從容涵泳, 優游純熟, 不期而自到, 非彊探力素可擬議以至耶? 抑是旣到豁然貫通地位, 便是眞知透徹?(云云.) 若於此而猶用力思秦, 便是沛然自得.

 

답변: 앞의 설명은 단지 문장의 의미로 추론해 볼 수 있을 뿐, 어찌 이처럼 의심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前說只以文義推可見, 何待如此致疑耶?

 

질문: 󰡔혹문󰡕에서 인용한 󰡔서경󰡕강충(降衷)’ 이하의 여덟 가지 말은 비록 모두 이치를 논증한 것이지만 그 서로의 차례는 또한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일찍이 이를 시험삼아 추론해보니, 강충(降衷)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말하고, 병이(秉彛)는 사람이 하늘에서 품수한 것으로 말했습니다. ()은 이치가 지극히 선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요, ()는 이치가 하나로 정해져 항상됨이 있는 것입니다. ()은 곧 선이 행하는 것이니 이 선이 있기 때문에 능히 항상됩니다. ()은 통합적인 말이요 이()는 지정한 말입니다. 이 두 구절은 그 대강을 들고 있는데 아래 문장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지의 중()’은 천지 사이에 실제 이치가 혼연히 크게 중()을 지켜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어 만방의 표준이 되고 만물이 태어남에 이를 근거로 삼지 않음이 없음을 통합해서 말했습니다. 이는 이른바 충()에 비교하면 또한 더욱 확연합니다. ‘천명의 성()’은 이 이치가 내려가 사람에게 있으면서 생명을 부여하는 전체가 됨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 곧 실제로 천리(天理)의 중()이므로 두 가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 가지라는 말은 하나는 하늘을 말하고 하나는 하늘에서 사람에게 부여됨을 말하니, 또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함을 함께 밝혀서 그 충()을 내려준 뜻을 상세히 하는 것입니다. ‘인의의 마음은 인의가 곧 천명의 성으로 그 실제 이치를 가리키는데, 마음은 이것을 포함하여 본체로 삼고 몸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이()와 비교하면 또한 더욱 실제적입니다. ‘본래 절로 갖추어진 중()’은 또 세분해서 말하면 이 이치가 사물 사이에 분산되면서 각각 일정한 당연의 법칙을 갖추어 지나침도 없고 미치지 않음도 없으니, 모두 하늘이 행하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실제는 또한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두 구절은 또한 성()에 나아가 말한 것으로 충()과 이()를 결합한 것입니다. 대개 만물은 비록 각각 과불급이 없는 당연의 이치를 갖고 있으나, 그 근원의 유래를 총괄하면 단지 하나의 대본(大本)으로 함께 하나의 이치가 됩니다. 이 이치는 사람과 사물이 함께 말미암는 것이고 천지 사이에 함께 공유하는 것이므로 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본체는 온통 나의 본성에 모여있으니 모든 사물들은 그 내면에 뿌리를 두지 않음이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아래에 다시 주자(周子: 주돈이)가 이른바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는 말로 천인사물체용동정내외시종을 포괄하여 일관되게 설명해야만, 여덟 가지 말 아래에서 그 의미가 더욱 원만하게 될 듯합니다. 그런데도 이를 취하지 않으니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或問折引 降衷以下人言, 雖皆折以證夫理, 而其相次莫亦有序否? 嘗試推之: 降衷自夫賦於人而言, 秉彝自人禀於夫而言. 衷者, 理之至善而無妄也, 彝則理之一定而有常也. 常卽善之所爲, 因有是善, 故能常. 衷者統言, 彝則指定言. 此二句方擧其大綱, 而下文則詳之. ‘天地之中’, 統言天地間實理渾然大中, 無所偏倚, 爲萬邦之極, 而萬物之生莫不以是爲樞紐也. 此比所謂衷則又加確矣. ‘天命之性’, 指是理降而在人, 爲賦生之全體, 而性則實卽夫天理之中, 而非有二者. 是二言者, 一言天, 一言自天而人, 又所以兼明夫天賦於人而詳其降哀之意也. ‘仁義之心’, 仁義乃卽天命之性指其實理, 而心則包具焉以爲體而王於身者也. 此比所謂彝則又加實矣. ‘天然自有之中’, 又細言是理之散於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一定之則, 無過無不及, 皆天之所爲而非人之力者. ‘而其盲又不外於其心’, 此二句又就性而言, 合衷彝而結之. 蓋萬物雖各有當然無過不及之理, 然總其根源之所自, 則只是一夫本而同爲一理也. 此理人物所共由, 天地間所公共, 所以謂之道. 而其體則統會於吾之性, 非泛然事物之間而不根於其內也. 竊疑此下更宜以周子所謂無極而太極以包天人事物體用動靜內外終始一貫爲說, 似於八言之下其意允爲圖也. 而不之取, 不審何也?

 

답변: 당시에는 고금(古今)으로 차례를 삼았을 뿐, 이러한 의도는 없었습니다. 주자(周子)의 말뜻은 조금 멀기 때문에 인용하여 논증할 수 없었으니, 도리어 주해하는 데 허비할까 두렵습니다.

當時只以古今爲次第, 未有此意. 周子語意差遠, 故不得引以爲證, 恐却費注解也.

 

질문: 연평(延平: 이동)의 격물(格物)에 대한 설명은 그 의도를 탐구해보면 또한 정자의 설명 속에서 이해됩니다. (운운) 또 일찍이 의심해보건대, 앞쪽에서 논란을 반복하되 오로지 정자의 설명을 주로 삼으니, 다시 더 보탤 수가 없었습니다. 이 단락에서 연평의 설을 인용했는데, 다른 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쉽게 언설로 다투지 못한다고 말하니, 그 말은 억양을 낮췄다 높였다 하면서 정자의 설을 그르게 여기고 이연평의 설을 옳게 여겨 별도로 일가(一家)를 세우려는 뜻이 있는 듯합니다.

延平格物之說, 原其意亦自程子說中得之(云云.) 又嘗疑前面反復論難, 專以說爲主, 蓋不可以復加矣. 至此段引延平, 則又曰有非他說所能及, 未易以口舌爭, 其辭似抑揚低昂, 有左別立一家之意.

 

답변: ‘그 설은 문인의 설을 가리키는데 말뜻이 절로 명확하니 무슨 의심이 있겠습니까?

它說是措門人說, 語意自明, 何疑之有?

 

질문: 전문(傳文)에서 말한 근독(謹獨)은 바로 성의(誠意) 공부를 하는 곳에서 설명한 것입니다. 󰡔혹문󰡕에서는 또 뜻이 이미 성실해진 이후에 나아가 설명했습니다. 뜻이 성실하다는 것은 이미 극진하지 않은 바가 없어 참으로 능히 상쾌하고 만족하여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굽어보아 부끄러움이 없으니, 이런 경지에 이르면 그 형세는 결코 절로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감히 그 근독하는 수고로움을 해이하게 만들지 않고 사려를 막고 성찰하여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 간극과 중단에 이르지 않도록 한다고 말하니, 왜입니까? 이 때 이른바 근독과 지난번에 이른바 근독은 크게 다른 듯합니다.

傳言謹獨, 正就誠意著工夫處說. 或問又就意已誠之後說. 夫意之誠者旣無所不盡, 眞能慊快充足, 仰不愧, 俯不作, 到此地位, 其勢決然自不能已矣. 而猶日不敢弛其謹獨之勞焉, 所以防慮省察, 使其日新又新而不至於間斷, 何也? 恐此時所謂謹獨與向時所謂謹獨者大不同.

 

답변: 두 설명은 다른 점을 보지 않고, 다만 알맞게 힘을 기울여 간극과 중단이 생겨서는 안됨을 말했을 뿐입니다.

兩說不見其不同, 但說到此恰好著力, 不可間斷耳.

 

질문: ‘혈구(絜矩)’에 대해 󰡔혹문󰡕각각 그 분수를 얻어 서로 침범하지 않으니 넓고 좁음, 길고 짧음이 한결같이 고르다고 말했는데, 이 네 구절을 상세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絜矩或問: ‘各得其分, 不相侵越, 廣狹長短, 平均如一.’ 此四句曉之未詳.

 

답변: “왼쪽에게서 싫었던 것은 곧 왼쪽 사람이 자기의 왼쪽 변을 침범하니 내가 싫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도 또한 이것으로 오른쪽 사람을 대하지 않고 그 사람의 우변의 왼쪽을 침범하지 않으니, 이렇게 해야 바야흐로 좌변 쪽이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또 오른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헤아려보면, 바야흐로 우변 쪽이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위아래, 앞뒤도 그렇지 않음이 없다면, 사방의 경계가 모두 고르게 되어 경계가 바야흐로 정돈되니 지나치게 넓거나 지나치게 좁은 병폐가 없게 됩니다.

所惡乎左, 便是左邊人侵了自家左邊界分, 而我惡之. 故我亦不以此待右邊人, 而不侵他右邊之左, 如此方得左邊界分分明. 又以所惡乎右者度之, 方得右邊界分分明. 上下前後, 亦莫不然, 則四至所向皆得均平, 而界分方整, 無偏廣偏狹之病矣.

 

질문: “새로워지는 백성을 진작하라!”는 말은 성왕(成王)이 강숙(康叔)을 봉할 때 했던 말인데, 󰡔혹문󰡕에서는 무왕이라 하니 왜입니까?

作新民成王康叔之語, 或問中日武王, 何也?

 

답변: 이는 󰡔서경󰡕 서문의 오류이니 오봉(五峰)선생이 이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한 단락을 두어 이를 변증했는데 나중에는 급한 일이 아니라고 하여 삭제했습니다. 다만 이것과 주고(酒誥)두 편을 보면 단지 문왕만 말하고 무왕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짐의 아우 소자(小子) ()!”라 하고, 네 과형(寡兄)이 힘썼다고 말했다면[무왕이 스스로 칭한 것이니 지금 사람이 열형(劣兄)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곧 알 수 있습니다.[“주공이 처음 터전을 잡아라는 한 구절은 착간이다.]

書序之誤, 五峰先生嘗言之. 舊有一段辨此, 後以非所急而去之. 但看此與酒誥兩篇只說文王而不及武王, 又曰 朕其弟小子封’, 又曰 乃寡兄勗’, (武王自稱, 猶今人云 劣兄’.) 則可見矣. (周公初基一節是錯簡.)

 

질문: 또 번잡하게 의심해보건대, 󰡔중용󰡕 「서문에서 사람들은 이 형체를 갖추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비록 상지(上智)라 할지라도 인심(人心)이 없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심은 단지 형기(形氣)의 측면에서 하늘이 이처럼 낳았음을 평이하게 설명한 것이지, 사람의 행위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위 문장에서 또 말하기를 혹 형기의 사()에서 나온다고 말하니, 도리어 ()’자를 쓴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는 혹 사람의 행위 중 사욕과 관련 지워 설명한 듯하니, “상지(上智)라 할지라도 인심(人心)이 없을 수 없다는 구절과 서로 합치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又雜疑中庸序: “人莫不有是形, 故雖上智不能無人心.’ 人心只是就形氣上平說天生如此, 未是就人爲上說. 然上文又曰: ‘或生於形氣之私’, 乃却下, 何也? 私恐或涉人爲私欲處說, 似與上智不能無人心句不相合. 不審如何?

 

답변: 예컨대 굶주리면 배불리 먹을 것을 생각하고 추우면 따뜻한 곳을 생각하는 따위는 모두 나의 혈기와 형체에서 생겨나 다른 사람이 관여함이 없습니다. 이른바 사()라는 것은 또한 곧 좋지 않다고는 못하지만 한결같이 이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如飢飽寒燠之類, 皆生於吾之血氣形體而它人無與焉. 所謂私也, 亦未便是不好, 但不可一向狥之耳.

 

질문: 정자(程子)사람이 부모가 없으면 생일에 곱절이나 비통한 법이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도 예전에 모친의 생일과 태석인(太碩人)의 생일에 축수(祝壽)한 시와 접 때 고쉬(高倅: 고씨 성을 가진 수령)를 축하한 시는 선생의 친필이 아닌 듯한데, 또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사람의 자식이 자기 입장에서 말하면 마땅한 바가 아니지만 부모를 위하거나 친구를 대할 경우에는 그 정()이 또 그만두지 못할 곳이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아마도 이렇게 하면 이는 사람의 자식이 예()로써 자신을 다스린 반면 비례(非禮)로써 그 어버이를 섬기고 비례로써 남을 대한 셈이니, 그 뜻이 어떠한지요?

程子: ‘人無父母, 生日當倍悲涌.’ 如先生舊時, 亦嘗有壽母生朝及太碩人生朝, 與向日賀高倅, 恐非先生筆, 不審又何也? 豈在人子自已言則非其所宜, 而爲父母待親朋, 則其情又有不容已處否? 然恐爲此則是人子以禮律身, 而以非禮事其親, 以非禮待於人也. 其義如何?

 

답변: 이러한 일은 나의 역량이 부족하여 그냥 놓쳐버린 곳입니다. 그러나 또한 부득이한 경우도 있으니, 그 정()이 각각 같지 않습니다.

此等事是力量不足放過了處, 然亦或有不得已者, 其情各不同也.

 

질문: 정자의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는 설명에 대해, 저는 이 두 ()’자는 인심과 도심으로 판별하는 것이 절로 명백할 뿐이다 고 생각했습니다. 대개 위의 자는 곧 도심이니 오로지 이의(理義)로 말한 것이요, 아래의 자는 곧 인심이니 형기(形氣)로 말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고 말했다면, 이는 도심이 일신의 주인이 되고 인심이 명령을 듣는 것입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程子以心使心之說, 竊謂此二 字只以人心道心判之自明白. 蓋上字卽是道心, 專以理義言之也. 字卽是人心, 而以形氣言之也. 以心使心, 則是道心爲一身之主, 而人心爲聽命也. 不審是否?

 

답변: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정() 선생의 뜻을 살펴보면, 스스로 주재가 됨을 말했을 뿐입니다.

亦是如此. 然觀程先生之意, 只是說自作主宰耳.

 

질문: 가난한 사람은 일을 거행할 때 재물이 몹시 많이 들 경우가 있으면 비용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처리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는 ()를 바르게 세우고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지 않는다는 뜻과 서로 저촉되지 않는지요?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자는 이 하나의 일을 행하면서 다시는 도리에 합당한지 여부를 돌아보지 않고, 단지 나에게 이로운지 아니면 나에게 불리한지를 따져서 이로움을 얻으면 행하고 불리하면 행하지 않을 뿐입니다. 만일 가난하지만 재물을 써야하는 자는 당장 언행이 서로 호응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데, 이로 인해 비용을 잘 헤아려 중간 정도로 처리하니, 그 뜻이 절로 다르지 않습니까?

貧者擧事, 有費財之浩瀚者, 不能不計度繁約而爲之裁處. 此與 正義不謀利意相妨否? 竊恐謀利者, 是作這一事更不看道理合當如何, 只論利便於己與不利便於己, 得利便則爲之, 不得則不爲. 若貧而費財者, 只是目下恐口足不相應, 因斟酌裁處而歸之中, 其意自不同否?

 

답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힘이 부족한 경우에 잘 헤아려 적절히 처리하는 것이 바로 의(),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데도 비용을 계산하여 인색하게 군다면 이는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것이어서 의()가 아닙니다.

當爲而力不及者, 量宜處乃是義也. 力可爲而計費吝惜, 則是謀利而非義矣.

 

질문: 󰡔중용󰡕의 상경(尙絅) 조목은 자기를 정립하고 마음이 밝아지는 모습을 말했는데, 어떻게 해야 자기를 정립하고 마음이 밝아지는 모습을 이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이 그 속에 있으니, 스스로 온화하기를 바랄 뿐,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中庸 尙絅條以爲己立心明之象, 不審如何以爲己立心明之象? 莫是有美在其中, 只要自溫好, 不用人知否?

 

답변: 이 설명은 좋습니다. 그러나 좀 더 상세히 음미해 보아야만 합니다.

此說得之, 然更宜詳味.

 

 

진안경에게 답함 3 答陳安卿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진안경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진안경이 󰡔논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과 이()와 성()과 심()과 같은 성리학의 미묘한 개념들을 질문해온 것에 대해, 다양한 논거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질문: 태백(泰伯)편에서 “(문왕은)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 둘을 소유하고 복종하여 상()나라를 섬겼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이에 기인하여 추론해 보았습니다. 만일 문왕이 무왕의 시절을 만났다면 혁명(革命)하는 일을 또한 행하였을까요? 무왕이 문왕의 입장에 놓였다면 복종하여 섬기는 예의를 또한 문왕처럼 행하였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이러한 곳은 모두 하늘에 달려있지 사람을 말미암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늘이 만일 행하고자 했다면 또한 문왕이 행하려고 하지 않았을 리 없고, 하늘이 만일 행하고자 하지 않았다면 또한 무왕이 반드시 행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인의 마음은 툭 트여 매우 공정하니, 마치 저울대가 평형을 잡고 있는 것처럼 피차간에 하나도 치우친 것이 없고, 오직 그러한 것이 다가오면 권도(權道)에 따라 반응할 뿐입니다. 본래 어찌 마음으로 안배하여 그 사이에서 뭔가를 바라고자 하겠습니까? 문왕과 무왕은 처지를 바꾸면 모두 그러하니,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본 장()의 핵심 의미는 아니지만 사건의 변화를 통하여 성인의 마음을 보고자 했을 뿐이다.] 장자(張子: 장재)하루라도 천명이 끊이지 않으면 군주가 되고, 당일에 천명이 끊어지면 한 남자가 된다. 천명이 끊어졌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사람의 정()을 볼뿐이다라고 말했는데, 한 남자의 마음이 이를 납득하지 못한다면 다시 천명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천하에 매우 공정해야할 명()이 어찌 한 남자에게만 치우칩니까? 여기에 이르면 성인이 권도를 쓰는 입장은 오직 기미를 정밀하게 아는 사람이라야 곧 결단할 수 있으니, 본래 상법(常法)으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泰伯: ‘三分天下有其二, 以服事.’ 嘗因是而推, 設使文王武王之時, 則革命之事亦爲之否乎? 武王文王之地, 則服事之禮亦如文王否乎? 竊恐此處皆繫乎天, 不由乎人. 使天果欲有爲, 則亦不容文王不欲爲; 天果末欲有爲, 則亦不容武王必欲爲. 聖人之心廓然大公, 如衡之平, 彼此一無所偏, 惟其來而順權以應之耳, 初何容心預安排指擬於其間? 文王武王易地則皆然, 不審是否? (此非本章正義, 但欲因其事義看聖人心耳.) 張子謂一日天命未絶則爲君, 當日天命絶則爲獨夫. 天命絶否, 視之人情而已. 不審一夫之心末解, 還得爲天命猶未絶否? 抑許大公天下之命, 豈傭在一夫上? 到此則聖人用權之地, 惟幾微義精者乃可以決之, 自不容以常法論也.

 

답변: 󰡔시경󰡕󰡔서경󰡕을 상고해 보면, 문왕과 무왕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문왕이 막연히 천하에 마음이 없어서 자신을 추스르는 자세로 끝내 신하로서의 절개를 지켰다면, 천하에 3분의 2도 분명 차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곳은 바로 공자가 이른바 함께 권도(權道)를 행할 수 없다는 경우이니, 고기를 먹을 때 말의 간()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맛을 모르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詳考, 之心可見. 若使文王漠然無心於天下, 歛然終守臣節, 卽三分之二亦不當有矣. 然此等處正夫子所謂未可與權者, 食肉不食馬肝, 未爲不知味也.

 

질문: “(공자의 도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고[],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다[]”고 한 말은 대개 오를만한 계단이 없고 들어갈만한 문이 없고 잡을만한 형상이 없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높고 견고하고 앞에 있고 뒤에 있는 실상도 또한 일상에서 행하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곧 일상생활 속에서의 일이지만 그 이치가 이처럼 높고 견고하고 현묘할 뿐입니다. ‘높다는 것은 이()와 의()의 근원에 통달한 곳이요, [예컨대 성()은 천도(天道)가 말미암는 것이다.] ‘견고하다는 것은 이()와 의()의 모임을 살펴보기 어려운 곳이요, [여러 단서가 섞여있고 뿌리가 엉켜있는 곳이다.] ‘앞에 있고 뒤에 있다는 것은 이()와 의()의 변화가 일정하지 않은 곳입니다. ‘우러러본다는 것은 쳐다보면서 그곳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모양이요, ‘뚫는다는 것은 뚫어서 소통하기를 구하는 뜻이요, ‘바라본다는 것은 보아도 바야흐로 미세하게 드러남이요, ‘홀연히라는 것은 보아도 또한 일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바로 공부에 분발하여 간절할 즈음에 수많은 의심이 다 모여들어 풀어버리고자 해도 아직 풀어버리지 못한 때입니다. 이른바 그만두고자 한다는 뜻은 또한 여기에서 싹튼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가 앞에 있으면서 도리어 차근차근히 잘 이끌어서 서두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그 순서를 가르친 것입니다. 이미 ()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었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그 지식을 넓히게 해서 하나의 이치라도 마음에서 환히 연구되도록 한 것이요, ()로서 나의 행동을 요약하게 해주었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그 극치를 이해하여 하나의 이치도 자기 몸에서 실천하지 않음이 없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 이르면 견고하고 높고 앞에 있고 뒤에 있다는 뜻은 요점이 또한 그 가운데서 벗어나지 않아, 올라 갈만한 계단이 있고 들어 갈만한 문이 있고 잡을만한 형상이 있게 됩니다. 따라서 날마다 더욱 맛이 있어 마음 속이 기쁘니, 비록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이에 또 우러러보고 뚫고 넓히고 요약하는 공부가 아직 정밀하지 못한 곳에 나아가 오히려 나의 힘으로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여 다시는 그러한 곳이 없게 한 뒤에 이전에 견고하고 높고 앞에 있고 뒤에 있던 것이 비로소 명료하게 모두 눈앞에 있어, 마치 도랑이 터져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매우 밝은 가운데 만상을 보니, 그 전체의 실상이 우뚝 그곳에 서있어 밝게 드러나 절실하고 명확하게 정해져서 조금도 의심으로 막히거나 빠뜨리는 곳이 없음을 참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한 걸음 나아가 실로 공자와 함께 우뚝 서 있는 곳을 서로 좇으려하면 말미암을 바가 없습니다. 대개 이에 앞서 오히려 힘을 쓸 수 있다면 이는 대인으로부터 화()로 향하고 생각하고 힘쓰는 단계에서 생각하거나 힘쓰지 않는 단계로 가는데, 두 가지 사이에 끼여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한 칸이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마땅히 이미 그렇게 된 것에 의거하여 조용히 함양하고 잊지 말고 조장하지 말며 날로 깊어지고 달로 익숙해짐에 이르면, 또한 장차 홀연히 기대하지 않아도 절로 도달하게 되니 오늘 미리 알 수 잇는 바가 아닙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高堅前後’, 大槪只是警其無階可升, 無門可入, 無象可執捉也. 然而考其高堅前後之實, 恐亦不外乎日用行事之近, 卽是日用間事, 但其理如是之高堅玄妙耳. ‘是理義原頭上達處, (如性, 天道所由也.) ‘是理義節會難考處, (如數端參錯, 盤樶錯節處.) ‘前後是理義變化不居處. ‘, 望而冀及之貌; ‘, 鑿而求通之意. ‘則視之方微見也, ‘則視之又未定也. 此正用工憤悶懇篤之際, 而萬疑畢湊, 欲融未融之時也. 所謂欲罷之意, 亦易萌於此矣. 而夫子在前, 却循循善誘, 不亟不徐而敎有其序. 旣愽我以文, 使我有以廓其知而無一理不洞硏諸心; 又約我以禮, 使我有以會其極而無一理不實踐諸己. 至此則堅高前後之旨趣要嚴亦不外乎其中, 而有可從升之級, 有可從人之門, 有可執守之象矣. 是以日益有味而中悅懌, 雖欲罷而自不能已. 於是又卽仰鑽博約之功所末精密而猶可以容吾力者一一極盡, 更無去處, 然後向之所以爲堅高前後者始瞭然盡在目前, 如渠決水通, 大明之中睹萬象, 眞見其全體之實卓爾眞立於其所, 昭著觀切, 端的確定而無纖毫疑礙遺遁之處矣. 然欲更進一步, 實與夫子相從於卓爾之地, 則無所由. 蓋前此猶可以用力, 此則自大而趨於化, 自思勉而之不思勉, 介乎二者之境, 所未達者一間, 非人力之所能爲矣. 但當據其所已然從容涵養, 勿忘勿助, 至於日深月熟, 則亦將忽不期而自到, 而非今曰之所預知也. 不蕃是否?

 

답변: ‘우뚝하다는 것은 곧 전일에 높고 견고하고 앞에 있고 뒤에 있던 것을 오늘 확정되어 우뚝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솟은 산처럼 높은 것이 이제 머리부터 바닥까지 모두 분명하여 우뚝이 모두 눈 가운데에 있어 빠뜨림이 없고, 골절이나 근육처럼 견고한 것이 이제 모두 풀려서 스스로 조리를 이루어 우뚝 마음 속에 정돈되어 문란하지 않고, 앞과 뒤를 포착하려해도 둘 다 잡지 못했던 것을 이제 앞에 있는 것은 우뚝 앞에 있는 모습으로 환히 보아 뒤로 옮겨 갈 수 없고, 뒤에 있는 것은 우뚝 뒤에 있는 모습으로 환히 보아 앞으로 옮겨갈 수 없습니다. 높고 견고하고 앞에 있고 뒤에 있는 것 외에 따로 이른바 우뚝한 것이 있지는 않습니다.

卓爾卽是前日高堅前後底, 今看得確定卓然爾. 如巍巍高底, 今從頭徹底皆分明, 卓然盡在目中, 無有遺遁; 節會堅底, 今皆融洋, 自成條理, 卓然森列於中, 不容黍亂; 前後捉摸兩不定者, 今則前者妁見其卓然在前, 不可移於後; 後者妁見其卓然在後, 不可移於前. 不是高堅前後之外別有所謂卓爾者也.

 

질문: 여러 학자들이 대부분 앞에 있다[]’지나침으로 여기고 뒤에 있다[]’미치지 못함으로 여기는데 이러한 뜻은 없는 듯합니다. 앞과 뒤는 단지 황홀하여 인식할 수 없는 곳이니, 장차 앞에 있는 것을 이것으로 여기는데 홀연히 또 뒤에 있어 앞에 있는 것이 또 이것이 아닌 듯하여 모두 포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보는 것이 분명해질 때는 모두가 때에 적합하여[時中]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습니다. 여러 학자들이 또 우뚝하다를 성인의 중()으로 여깁니다. 우뚝함은 도리어 중()이지만 또한 곧장 중()이라 말할 수 없는 듯하니, ‘자의 뜻을 이해함이 절실하지 않습니다.

諸家多以 爲過, ‘爲不及, 恐無此意. 前後只是恍惚不可認定處, 將以前者爲是耶, 忽又有在後者焉, 而前者又似未是, 皆捉摸不著. 若見得端的時, 皆是時中, 無過不及. 諸家又以 爲聖人之中, 卓却是中, 然亦恐未可便說中, 字意又看不切矣.

 

답변: 이 설명은 매우 훌륭합니다. 옛날에 이(: 이동) 선생이 이 장은 가장 공자가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끌어 문()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고 예()로써 나의 행동을 요약하게 해준 지극히 친밀하고 절실한 곳이다라고 설명한 내용을 들었는데 그 말이 맛이 있습니다. ‘전후(前後)’는 본래 오로지 ()’자만 가리킨 것이 아니지만 또 이러한 뜻이 있는 듯합니다.

此說甚善. 昔聞李先生說此章最是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至親切處, 其言有味. ‘前後固非專指中字, 然亦彷彿有些意思.

 

질문: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네라고 말했는데, 일찍이 이를 통해 추론해 보았습니다. ()는 한 순간이라도 정지된 적이 없으니, 하늘과 땅에 있으면 해가 지고 달이 뜨며 추위가 가고 더위가 오며 물이 흘러 쉼이 없고 사물이 태어나 무궁한 곳에 드러나 만고에 끊어짐이 없었습니다. 그 것이 사람에 있으면 본연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의 본체가 항상 끊임없이 생겨나 일생의 모든 일에도 한결같이 천리(天理)가 유행하여 조금도 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도의 전체를 들어서 말하면 천지의 만물과 인심의 만사를 합하여 모두 한 번이라도 쉬는 본체는 없습니다. 나누어서 말하면 심원하여 끊임이 없다 함은 하늘이 도와 함께 본체가 되는 것이요, 낳고 낳아 끊임이 없다 함은 마음이 도의 본체를 갖춘 것이요, 순일하여 끊임이 없다 함은 성인의 마음이 천도(天道)와 일체가 되는 것이요, 스스로 강건하여 쉼이 없다 함은 군자가 성인의 마음을 간직하여 하늘을 섬기는 것을 배워서 도를 체화하는 것입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양씨(楊氏)가 이 장에 대해 가지 않는다는 설을 두니, 또한 󰡔중용󰡕을 풀이하면서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을 말한 것과 같으니, 모두 이단에 떨어진 설명이다.]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嘗因是推之. 道無一息之停, 其在天地, 則見於日往月來, 寒往暑來, 水流而不息, 物生而不窮, 終萬古未嘗間斷. 其在人, 則本然虛靈知覺之體常生生不已, 而日用萬事亦無一非夫理流行而無少息. 故擧是道之全而言之, 合天地萬物人心萬事, 統是無一息之體. 分而言之, 則於穆不已者, 天之所以與道爲體也. 生生不已者, 心之所以具道之體也. 純亦不巳者, 聖人之心所以與夫道一體也. 自强不息者, 君子所以學聖人存心事天而體夫道也. 不審是否? (楊氏此章有不逝之說, 亦猶解中庸說死而不亡之意, 皆是雙異端處.).

 

답변: 이 설명도 역시 좋습니다. 다만 범씨(范氏)도와 함께 일체가 된다[與道爲體]”는 넉 자를 설명한 것이 매우 정밀하니, 대개 사물이 태어나고 물이 흐르는 것은 도의 본체가 아니라 곧 도와 함께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상고해 보십시오.

此亦得之. 范氏與道爲體四字甚精, 蓋物生水流, 非道之體, 乃與道爲體者也. 可更詳之.

 

질문: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없고,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는 있어도 함께 권도[]를 행할 수는 없다는 장에 대해서, 󰡔집주󰡕는 양씨(楊氏)도에 대한 믿음이 돈독한 뒤에야 함께 설 수 있다는 설명을 예로 들었습니다. 또 돈독히 믿는다 함은 학문을 좋아하기 이전의 일이니 이미 돈독하게 믿은 뒤에 학문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는 이미 배워서 도에 나아간 뒤에 도리어 돈독하게 믿는 것을 말하니 왜입니까? ‘()’이란 글자는 수미를 일관하고 있어 선후로 나눌 수 없습니다. 만일 돈독히 믿은 뒤에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라면 바야흐로 대체를 믿을 뿐이요, 이미 배운 뒤에 또 도를 믿기를 돈독히 하는 자라면 이는 참으로 알아서 믿는 것이니, 믿는다는 의미는 절로 같지 않습니다. 그 말에 각각 주장하는 바가 있는데 여기에서 인용한 ()’자는 또한 ()’자와 호응함이 긴절한 것입니까?

學道立權, 集注楊氏: ‘信道篤然後可與立.’ 且篤信是好學以前事, 旣篤信而後能好學也. 今此於旣學適道之後, 却言篤信, 何也? 字徹首徹尾, 不可分先後. 如篤信而後好學者, 方只信箇大槪; 旣學之後而又信道篤者, 是眞知而信之, 所信意味自不同. 其言各有主, 而此意所引 字又應 , 爲切否?

 

답변: ‘도를 돈독히 믿는다[信道篤]'는 석 자에는 참으로 다 좋다고 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信道篤三字誠有未盡善者.

 

질문: “고을 사람이 굿을 한다고 말했는데, 옛사람이 이런 의례를 행한 이유는 단지 돌림병이 곧 음양의 조화롭지 않은 기운으로 떠돌아다녀 형상을 붙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곧 천지의 정기(精氣)가 모인 것이므로 지극한 정성으로 위엄을 세워서 쫓아내면, 의지로 거느림이 충실해지고 정기가 씩씩해져서 절로 의심하거나 겁먹는 것이 없어 이겨낼 수 있는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옛사람의 이 의례에 대한 절목을 상고할 수는 없으나, 그 모습은 또한 후세에 세속에서 행했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鄕人儺, 古人所以爲此禮者, 只爲疫癘乃陰陽一帶不和之氣游焉, 非有形象附著. 人乃天地精氣所會, 故至誠作威嚴以驅之, 則志帥充實, 精氣彊壯, 自無疑忌怯懾而有可勝之理否. 但古人此禮節目不可考, 想模樣亦非後世俚俗之所爲者.

 

답변: 󰡔후한지(後漢志)󰡕 속에 이것이 들어있으나 또한 가까운 옛날에 남겨진 법으로 생각됩니다.

後漢志中有此, 想亦近古之遺法.

 

질문: 안자(顔子)종일 어기지 않았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 “말하는 것이 게으르지 않았다는 따위의 말을 들었습니다. 만일 지()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이 때는 바야흐로 타고난 자질이 명민하고 배우는 힘이 정밀하여 성인의 말을 모두 깊이 이해하여 묵묵히 알았을 뿐이요, 아직은 천하의 이치에 툭 트여 통하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으니, 오히려 전적으로 사물의 이치가 이미 이르고 지식이 이미 지극해져서 그 본심의 광명과 지각의 전체를 회복한 경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른바 우뚝 선경지에 이르러서야 이내 막힘 없이 관통하여 지식의 지극함이 성인의 나면서 안다는 의미와 서로 비슷해진 것입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顔子無所不說與終日不違聞一知十語之不惰等類, 若以知上言之, 則此時方只是天資明睿而學力精敏, 於聖人之言皆深曉噪識; 未是於天下之理廓然無所不通, 猶未得全謂之物已格知已至, 而復其本心光明知覺之全體處. 蓋是時猶有待於聖人之言故也. 至於所謂卓爾之地, 乃是廓然貫通而知之至極, 與聖人生知意味相似矣. 不審是否?

 

답변: 이처럼 볼 수 있을 듯합니다.

恐是如此.

 

질문: 향당(鄕黨)편의 과제(瓜祭)’를 육씨(陸氏)󰡔노론(魯論)󰡕에는 과()란 글자가 필()이란 글자로 되어있다고 말했는데, 계씨(季氏)한 편도 󰡔제론(齊論)󰡕이라면, 지금 이 책은 한나라 때의 󰡔노론󰡕의 편이 아니라 곧 후세에 서로 전해져온 것이니, 세 가지 󰡔논어󰡕는 모두 그 사이에 혼동이 있는 것입니까? [이는 비록 큰 의미가 걸린 것은 아니지만 또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鄕黨 瓜祭’, 陸氏魯論 ’, 季氏一篇又是齊論, 則今此書非魯論之篇, 乃後世相傳集, 皆有混其間否? (此雖非大義所簾亦當知之.)

 

답변: 하안(何晏)은 서문에서 󰡔노론(魯論)󰡕의 편과 장에 입각하여 󰡔제론(齊論)󰡕󰡔고론(古論)󰡕을 고증하여 주석을 붙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눌 수가 없는데 옛날에도 역시 이와 같음을 병폐로 여겼습니다.

何晏序云: ‘魯論篇章考之, 爲之注.’ 然今不可得而分矣, 舊亦嘗病其如此矣.

 

질문: “기뻐하고 논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정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이른다고 했습니다. 천도(天道)로 말하면 발하기 이전에는 성인과 어리석은 자가 함께 이 하나의 큰 근본을 지니고 있으니, 네 가지 일을 아직 갖추지 못했으나 네 가지의 이치를 균등하게 함축하고 있습니다. 발함에 이르러 보통 사람들이 자연스레 절도에 맞는 곳은 또한 완연히 형상으로 드러나니 또한 성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도(人道)로 말하면, 성인은 발하기 전에 온전히 깨어있고 이미 발하면 온전히 절도에 맞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발하기 전에는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나 잠자듯 살피지 못하고, 발하면 비록 절도에 맞는 때도 있지만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중용󰡕 이 절의 4()는 본문의 올바른 의미에 근거해보면, 단지 성정(性情)의 근본을 미루어서 모두 천도(天道)의 측면에서 말한 듯합니다. 위 문장의 두 절 같은 경우는 곧 사람의 공부하는 측면에서 중화(中和)의 본체를 간직한 것을 말하고, 아래 문장의 한 구절은 공부의 극점에서 또 중화의 작용을 지극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문󰡕 가운데서 말하기를 천지의 만물을 포함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천하의 큰 근본이라 하고, 고금의 인물이 함께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천하의 공통된 도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곳은 또한 나누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에 있지도 않습니다.

喜怒哀樂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自天道言, 未發之前, 聖與愚同此一大本, 未有是四者之事, 而均涵是四者之理. 及其發也, 衆人之所自然中節處, 亦宛然是本底形見, 亦與聖人底無異. 自人道言, 則聖人未發全醒定, 旣發則全中節. 衆人未發則本然底固在, 而瞑然不省, 其發則雖有中節時節, 而其不中者多矣. 中庸此節四句, 據本文正義, 恐只是推原性情之本, 統就天道言. 若上文兩節, 乃是就人工夫言折以存中和之體. 而下文一節, 則工夫之極, 又所以致中和之用也. 或問中曰: ‘以其天地萬物無所不該, 故日天下之大本. 以其古今人物之所共由, 故曰天下之達道.’ 則此處又不特是未分, 不在其中矣.

 

답변: 이미 큰 근본’, ‘공통된 도라고 말했다면 하나의 사물도 그 가운데에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旣云大本達道, 則無一物不在其中矣.

 

질문: ()에는 능연(能然)이 있고 필연(必然)이 있고 당연(當然)이 있고 자연(自然)이 있으니, 이 모두를 포괄해야 비로소 ()’자의 뜻이 완비되지 않겠습니까? 우선 그 한 두 가지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컨대 측은(惻隱)하는 것은 기()이고 능히 이렇게 측은하도록 하는 것은 이()이니, 대개 내면에 이 이()가 있은 뒤에야 외면으로 드러나 이 사()가 됩니다. 따라서 외면에서 능히 이 사()가 될 수 없다면 이는 그 내면에 이()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능연의 경지입니다.

또 예컨대 어린애가 우물에 들어갈 때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반드시 측은해 하게 마련이니, 대개 사람의 마음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지만 그 감응의 이()가 반드시 이와 같은지라 비록 참으려 해도 그 내면이 근심하여 절로 그만둘 수 없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마른 나무나 식은 재처럼 이()가 때로 종식하게 되니, 이것이 필연의 경지입니다.

또 예컨대 어린애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어야 합당하니, 사람은 사람과 동류(同類)라 서로 대하는 이()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지 이와 같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천리(天理)를 거슬러 인류가 아닐 것이니, 이것이 당연의 경지입니다. 당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마땅히 해야 할 실사(實事)의 차원에 나아가 그 대의(大義)가 이와 같음을 곧바로 말한 경우이니, 어린애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마땅히 측은해 하는 것과 아버지가 되어서는 마땅히 자애롭고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효도하는 것 등이 이것입니다. 또 하나는 범연히 사물 중에 나아가 또 그 시시비비(是是非非)와 해야할 곳, 해서는 안 될 곳을 세밀히 선택, 분별하는 것이니, 예컨대 보아야 할 바는 보고 보아서는 안 될 바는 보지 않으며 들어야 할 바는 듣고 들어서는 안 될 바는 듣지 않는 것은 그 바름을 얻어 이()가 되고, 보아야 할 바가 아닌데도 보고 보아야 할 바인데도 보지 않으며 들어야 할 바가 아닌데도 듣고 들어야 할 바인데도 듣지 않는 것은 이()가 아닙니다. 이것이 또한 당연의 경지입니다.

또 어린애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측은해 하는 소이(所以)로 말하자면 모두 천리(天理)의 참[]이 유행, 발현하여 자연히 그러한 것이요, 조금의 인위적인 것도 그 사이에 끼어 들지 못하니 이것이 자연의 경지입니다.

그밖에 또 이를테면 동정(動靜)하는 것은 기()이고 능히 동정하도록 하는 것은 이()입니다. ()하면 반드시 정()하고 정하면 반드시 다시 동하니, 반드시 동하고 반드시 정하는 것 또한 이()이고, 일이 닥쳐오면 당연히 동하고 일이 지나가면 당연히 정하는 것 또한 이()이며,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一動一靜] 소이가 또 천리의 자연(自然)이 아님이 없습니다.

또 예컨대 친친(親親)하고 인민(仁民)하고 애물(愛物)하는 것은 사()이고 능히 친친하고 인민하고 애물하도록 하는 것은 이()이니, 친척을 보면 반드시 친애하고, 백성을 보면 반드시 인애하고, 생물(生物)을 보면 반드시 사랑하는 것 또한 이()이고, 그 당연히 친애하고 당연히 인애하고 당연히 사랑하는 것 또한 이()이며, 그 친애하고 인해하고 사랑하는 소이가 또 천리의 자연(自然)이 아님이 없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니, 능연과 필연은 이()가 사()보다 앞에 있고, 당연은 바로 사()에 나아가 곧바로 그 이()를 말한 것이고, 자연은 사()와 이()를 관통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 바로 사()에 나아가 말한 것은 반드시 이()를 봄이 직절(直截)하고 친절(親切)하여 인도(人道)에 힘이 됩니다. 이런 까닭에 󰡔대학장구󰡕󰡔대학혹문󰡕의 논란하는 대목에서 오로지 당연하여 그만둘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말하였던 것이니, 역시 이 뜻입니다. 이 점을 익숙히 알면 그 나머지는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理有能然, 有必然, 有當然, 有自然處, 皆須兼之, 方於 字訓義爲備否. 且擧其一二. 如惻隱者, 氣也; 其所以能是惻隱者, 理也. 蓋在中有是理, 然後能形諸外, 爲是事. 外不能爲是事, 則是其中無是理矣. 此能然處也. 又如赤子之入井, 見之者必側隱. 蓋人心是箇活底, 然其感應之理必如是, 雖欲忍之, 而其中惕然, 自有所不能以已也. 不然, 則是槁木死灰, 理爲有時而息矣. 此必然處也. 又如赤子入井, 則合當爲之惻隱. 蓋人與人類, 其待之理當如此, 而不容以不如此也. 不然, 則是爲悖天理而非人類矣. 此當然處也. 當然亦有二, 一就合做底事上直言其大義如此, 如入井當惻隱, 與夫爲父當慈, 爲子當孝之類是也. 一泛就事中又細揀別其是是非非, 當做與不當做處. 如視其所當視而不視其所不當視, 聽其所當聽而不聽其所不當聽, 則得其正而爲理. 非所當視而視與當視而不視, 非所當聽而聽與當聽而不聽, 則爲非理矣. 此亦當然處也. 又如所以入井而惻隱者, 皆天理之眞流行發見, 自然而然, 非有一毫人爲預乎其間, 此自然處也. 其他又如動靜者, 氣也; 其所以能動靜者, 理也. 動則必靜, 靜必復動, 其必動必靜者, 亦理也. 事至則當動, 事過當靜者, 亦理也. 而其所以一動一靜, 又莫非夫理之自然矣. 又如親親仁民愛物者事, 其所以能親親仁民愛物者理. 見其親則必親, 見其民則必仁, 見其物則必愛者, 亦理也. 在親則當親, 在民則當仁, 在物則當愛, 其當親當仁當愛者, 亦理也. 而其所以親之仁之愛之, 又無非天理之自然矣. 凡事皆然, 能然必然者, 理在事先; 當然者, 正就事而直言其理; 自然, 則貫事理言之也. 四者皆不可不兼該, 而正就事言者, 必見理直截親切, 在人道爲有力. 所以大學章句或問論難處, 惟專以當然不容已者爲言, 亦此意熟則其餘自可類擧矣.

 

답변: 이 뜻이 매우 완비되었습니다. 󰡔대학󰡕에는 본래 소이연(所以然)’ 한 구절이 더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소당연(所當然)을 알고자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한 대목이었습니다. 만일 그만둘 수 없는 곳을 얻는다면 절로 묵묵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此意甚備. 大學本亦更有 所以然一句, 後來看得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得不容已處, 卽自可黙會矣.

 

질문: ()한 이후 사람으로써 그것을 체득하기 때문에 인()이 된다고 말했는데, 이공(李公)이 이전에 질문한 것은 대개 ()’이란 글자를 오로지 사람을 낳는다는 측면에서 말했습니다. 저는 ()’이란 글자를 이처럼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나, 이공(李公)선생(주자)의 설명에서 긴요한 점은 ()’이란 글자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니 그렇지 않습니다. 제 견해를 다 드러내어 절충해보고자 합니다. 제 생각으로 이 단락의 의미에서 ()’이란 글자가 단지 나의 이 몸을 지칭할 뿐이니, 󰡔중용󰡕에서 ()이란 인()이다라는 인()과 절로 같지 않아 중요하게 볼 필요는 없으나 긴요한 점은 도리어 ()’란 글자에 있습니다. 대개 인()이란 마음의 덕으로 성정(性情)을 주관하고 만사를 주재하니 본래 내 몸의 지극히 친밀하고 절실한 것입니다. ()은 단지 인()의 이치이니 오로지 공을 말하면 단지 허공에 매달린 이치일 뿐이니 자기에게서 절실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몸으로 체득한 뒤에 나와 이치가 합치되어 이를 인()이라 부릅니다. 또한 맹자가 이를 합하여 도()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공()은 과연 어떻게 체득하며, 어찌하여 인()이라 말합니까? 또한 자기의 사사로움을 다 극복할 뿐이니, 이 마음이 툭 트여 밝고 깨끗하여 안팎을 통하여 모두 천리의 공()이 낳고 낳아서 끊임이 없는 데에 이른다면,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뜻은 항상 보존됩니다. 따라서 고요하여 아직 발하기 전에는 늘 깨어있어 어둡지 않으니 마치 일원(一元)의 덕이 땅 속의 복()과 환히 융합하는 것과 같아 하나의 사()와 하나의 물()이 나의 생리 속에서 함양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감촉에 따라 움직일 때에 측은한 마음이 마치 봄의 양기가 땅 위의 예()에서 발달하는 것과 같아 하나의 사()도 이 이치가 관통하지 않음이 없고 하나의 물()도 이 생성 의지의 영향이 아님이 없습니다. 이는 체득한 공()이 인()을 행하고 서()에 능하고 애()에 능한 것이니, 비록 간혹 의신이 될지라도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公而以人體之故爲仁’, 李公前所問蓋以 字純就生人之類而言. 某謂 字不當如此說, 李公以爲先生說緊要在 字上. 今承批敎, 復未之然. 某請畢愚見而折衷焉. 竊謂此段之意, ‘字只是指吾此身而言, 中庸仁者, 人也自不同, 不必重看, 緊要却在 字上. 蓋仁者心之德, 主性情, 宰萬事, 本是吾身至親至切底物. 公只是仁之理, 專言公則只虛空說著理, 而不見其切於己, 故必以身體之, 然後我與理合而謂之仁. 亦猶孟子合而言之道也. 然公果如之何而體, 如之何而謂之仁? 亦不過克盡己私, 至於此心豁然, 瑩淨光潔, 徹表裏純是天理之公, 生生無間斷, 則天地生物之意常存. 故其寂而未發, 惺惺不昧, 如一元之德昭融於地中之復, 無一事一物不涵在吾生理之中. 其隨感而動也, 側然有隱, 如春陽難達於地上之豫, 無一事非此理之貫, 無一物非此生意之所被矣. 此體公之所以爲仁, 所以能恕, 所以能愛, 雖或爲義, 爲禮, 爲智, 爲信, 無所往而不通也. 不審是否?

 

답변: 이 설명은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불가에서 자기의 몸을 버려 호랑이의 밥이 되게 하는 것과 같으니, 비록 공()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인()은 아닙니다.

此說得之, 不然, 則如釋氏之捨身飼虎, 雖公而不仁矣.

 

질문: 선생이 이공(李公)에게 비평한 답장에서 비간(比干)은 한 가지 일의 인()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 비간은 한 가지 일의 인()에 그치지 않는다함은 이 한 가지 일에 인()이 드러나 있음을 설명했을 뿐입니다. 대개 이 큰 절목에 어둡지 않다면, ()의 벼리가 이미 들춰지면 그 나머지는 절로 줄지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가 인정해준 뜻을 살펴보면 대개 또한 중점이 이 곳에 있는데, 이를 주안점으로 삼아도 전체의 덕에 방해되는 바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한 가지 일에만 인()이 있고 기타에는 오히려 불인(不仁)한 곳이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니요, 또한 전체가 혼연하여 빠뜨림이 없어 이 한 가지 일로만 편향되게 지칭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 삼인(三仁)의 인()과 일사(一事)의 인()은 참으로 달라 본래 온전한 인()과도 절로 같지 않습니다. 선생은 이공에게 보낸 답장에서 또 내가 마음으로 삼는 것이 어찌 가는 곳마다 스스로 얻지 않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뜻으로 이해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반드시 그칠 데를 알아 정함이 있은 뒤에 가는 곳마다 스스로 얻지 않음이 없습니다.

先生批答李公有云: ‘比干不止是一事之仁.’ 竊謂比干不止是一事之仁, 只說此一事見其有仁耳. 蓋此大節目上不昏眛, 則是性綱已擧, 其餘自可類從. 然詳夫子所以許之之意, 蓋亦重在此處, 以是爲主, 而於全德無所妨故耳. 固非謂止此一事有仁, 而其他尙有不仁處; 亦非謂全體渾然無闕, 而不容止以此一事偏指之也. 故此三仁之仁與一事之仁固異, 而與合下來全仁者亦自不同. 先生答李公又云: ‘吾之所以爲心者如何而能無人而不自得, 須要理會.’ 竊謂須是知止有定, 然後無人而不自得也.

 

답변: 좋습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함양하는 공부가 있어야 합니다.

得之, 然亦須有涵養工夫也.

 

질문: ()씨가 󰡔맹자󰡕측은(惻隱)’을 설명하기를, “대개 실제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지 그저 비유만이 아니다. 그러해야만 천하가 모두 나의 몸이고 만물을 생장시키는 마음이 모두 나의 마음이어서 저 사람이 다치면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는 생각으로 미칠 바가 아니며 억지로 힘쓴다고 가능한 바가 아니다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모두 나의 몸’, ‘모두 나의 마음이라고 말한 것은 역시 하나의 이치[一理]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만 말한 것입니까?

呂氏孟子惻隱說云: ‘蓋實傷吾心, 非譬之也, 然後知天下皆吾體, 生物之心皆吾心, 彼傷則我傷, 非謀慮所及, 非勉强所能.’ 此所謂皆吾體皆吾心者, 亦只是以同一理言之否?

 

답변: ()만 같이 가질 뿐 아니라 기()도 같이 갖습니다.

非但同理, 亦同氣也.

 

질문: 심설(心說)에서 다음처럼 말했습니다. 하늘의 명은 심원하기 그지없는데 이를 만물을 낳는 주인으로 삼는 것이 하늘의 마음이다. 사람은 하늘의 명을 받아서 태어나 하늘이 나를 낳아준 근거를 온전히 얻어서 한 몸의 주인으로 삼아 혼연히 마음 속에 두니 허령지각(虛靈知覺)이 항상 밝고 밝아서 어둡지 않고 낳고 낳아서 끊임없는 것이 곧 이른바 사람의 마음이다. 그 본체는 곧 이른바 원정의 도()가 갖추어져 인지의 성()이 된다. 그 작용은 곧 이른바 춘동의 기()가 발현하여 측은수오사양시비의 정()이 된다. 그러므로 본체가 비록 마음 속에 갖춰지지만 그 본체가 되는 근거는 실로 천지와 함께 그 크기를 같이 하니, 만 가지 이치가 완비되지 않음이 없어 하나의 사물도 이 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 작용은 비록 마음 속에서 발현하지만 그 작용이 되는 근거는 실로 천지와 서로 유통하니, 만 가지 일이 관통하지 않음이 없어 하나의 이치도 일 속에서 행해지지 않음이 없다. 이 마음이 오묘한 이유는 동정(動靜)을 관통하고 현미(顯微)를 일관하고 표리(表裏)를 관철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틈이 없는 것이다.

心說: 維天之命, 於穆不已, 所以爲生物之王者, 天之心也. 人受夫命而生, 因全得夫夫之所以生我者以爲一身之主, 渾然在中, 虛靈知覺, 常昭昭而不昧, 生生而不可已, 是乃所謂人之心. 其體則卽所謂元貞之道, 具而爲仁智之性. 其用則卽所謂春冬之氣, 發而爲側隱蓋惡辭讓是非之情. 故體雖具於方寸之間, 而其所以爲體則實與夫地同其大, 萬理蓋無所不備, 而無一物出乎是埋之外. 用雖發乎方寸之間, 而其所以爲用則實與天地相流通, 萬事蓋無所不貫, 而無一理不行乎事之中. 此心之所以爲妙, 貫動靜一顯微徹表裏, 終始無間者也.

 

사람은 오직 음양오행의 불순함에 얽매이고 게다가 귀사지의 욕망에 묶이니, 이에 마음이 비로소 형기(形器)의 소소함에 질곡을 당해 툭 트이듯 크게 어우러져 무아(無我)의 상태가 될 수 없고, 그 영명함도 또한 몸에 주인이 되지 못한다. 이 마음을 온전히 체득하여 항상 한 몸의 주인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식을 지극히 하는 힘을 가하고 경()에 입각한 공부를 전일하게 하여 가슴속을 밝고 깨끗하게 만들어 기품과 물욕에서 초월해야만, 나의 본연의 체()로 천지와 더불어 크기를 같이하는 것이 모두 두루 밝아져서 하나의 이치도 밝혀지지 않음이 없고, 본연의 용()으로 천지와 더불어 유통하는 것이 모두 격절과 간단이 없어 한 순간도 생성하지 않음이 없다. 따라서 사물이 아직 감촉하지 못했을 때에는 이 마음이 맑게 깨어있어 마치 거울이 텅 빈 것처럼 저울이 평형을 이룬 것처럼 참으로 상제(上帝)를 대하여 만 가지 이치가 모두 그 가운데에 정해져있다. 사물의 감촉에 이르면 아름다움과 추함, 높음과 낮음의 반응이 모두 그곳에 기인하여 이 이치가 참으로 두루 관통하여 각각 적절한 곳에 머무르지 않음이 없다. 예컨대 ()의 도는 변화하는 것인데 그 변화 속에서 각각의 사물의 품성이 바르게 되어 절로 분수(分數)의 차이가 없고 또한 그와 더불어 함께 간 적도 없다.

入淮拘於陰陽五行所値之不純, 而又重以耳四支之欲爲之累, 於是此心始梏於形器之小, 不能廓然大同無我, 而其靈亦無以王於身矣. 人之所以欲全體此心而常爲一身之主者, 必致知之力到而王敬之功專, 使胸中光明瑩淨, 超然於氣稟物欲之上, 而吾本然之體所與天地同大者, 皆有以周偏昭晰而無一理之不明; 本然之用與天地流通者, 皆無所隔絶間斷而無一息之不生. 是以方其物之末感也, 則此心澄然惺惺, 如鑑之虛, 如衡之平, 蓋眞對越乎上帝而萬理皆有定於其中矣. 及夫物之旣感也, 則姸蚩高下之應皆因彼之自爾, 而是理固周流該貫, 莫不各止其所. 如乾道變化, 各正性命, 自無分數之差, 而亦未嘗與之俱往矣.

 

()하여 천지의 본체가 보존되어 근본은 하나이지만 만 가지로 달라지고, ()하여 천지의 작용이 두루 미쳐 만 가지로 다르지만 하나로 관통된다. 본체는 항상 작용을 포함하고 작용은 본체를 떠나지 않는다. 본체와 작용은 혼연하여 오로지 천리(天理)일 뿐이니, 날마다 동정(動靜)하는 사이에 드러난 뒤에 이전에 온전히 하늘에서 얻은 것이 나에게 있어 참으로 그 근본을 회복하여 하늘의 심원한 명령이 또한 그와 더불어 그침이 없게 된다. 이것이 사람이 마음을 보존한 바의 대략이다.

靜而天地之體存, 一本而萬殊; 動而天地之用達, 萬殊而一貫; 體常涵用, 用不離體, 體用渾淪, 純是天理, 日常呈露於動靜間, 夫然後向之所以全得於天者, 在我眞有以復其本, 而維天於穆之命亦輿之爲不已矣. 此人之所以存夫心之大略也.

 

왕승 자정(王丞子正: 왕자합)이해하는 데 매우 공을 들인 흔적이 있습니다. 다만 이른바 마음의 본체는 천지와 크기를 같이 하고 작용은 천지와 유통한다는 말은 반드시 징험한 곳이 있을 것이니, 다시 가르침을 주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를 계기로 다시 후편(後篇)을 썼습니다.

王丞子正: ‘看得儘有功, 但所謂心之體與天地同大而用與天地流通, 必有徵驗處, 更幸見敎.’ 因復有後篇.

 

이른바 본체는 천지와 그 크기를 같이 한다는 것은 이치로 말했을 뿐이다. 대개 천지 사이를 통틀어 보면 오직 하나의 실제로 그러한 이치가 있을 뿐이다. 이는 조화의 근원이 되어 고금의 인물이 함께 얻은 것이다. 다만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되니 이를 본체로 삼아 온전히 얻어서 나의 마음에 모아두니 이것이 곧 이른바 성()이다. 비록 나의 마음에 모여서 나의 성이 되지만 하늘과 더불어 본래 틈이 있은 적이 없다. 이 마음의 이른바 인()이 곧 하늘의 원()이요, 이 마음의 이른바 예()가 곧 하늘의 형()이요, 이 마음의 이른바 의()가 곧 하늘의 이(), 이 마음의 이른바 지()가 곧 하늘의 정()이니, 그 내용은 하나로 이루어져 끌어다가 비유할 것이 없다. 천도(天道)는 밖이 없으니 이 마음의 이치도 또한 밖이 없고, 천도는 한량이 없으니 이 마음의 이치도 또한 한량이 없다. 천도는 하나의 사물도 본체로 삼지 않음이 없고 만물은 하나도 하늘이 아님이 없으니, 이 마음의 이치도 또한 하나의 사물이 본체로 삼지 않음이 없고 만물은 하나도 나의 마음이 아님이 없다. [저것은 마음이 행하는 것이 아닌가? 저것은 도리가 마음에 갖춰진 것이 아닌가?] 천하에 어찌 성() 밖의 사물이 있어 내 마음이 이치 가운데에 통합되지 않겠는가? 다만 이치로 말하면 천지간에 공공(公共)한 것이어서 나에게만 절실함을 보이지는 않는다. 이를 내 마음의 본체라 한다면 곧 이치가 나에게 있어 모두 주재하여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마음이 지극히 영묘한 것은 대체로 이치가 이르는 곳에 그 생각이 따라붙어 이르지 않은 곳이 없으니, 큰 것은 끝없는 곳까지 통하지 않음이 없고, 작은 것은 차례가 없이 관통하지 않음이 없다. 이전으로는 상고까지 뒤로는 만고까지 관철하지 않음이 없고, 가까이는 반걸음에서 멀리는 만리까지 같지 않음이 없다. 비록 천지에 위치하여 만물을 기르더라도 역시 내 심체(心體)의 본연을 충만케 하여 밖에서 행하지 않는 데 불과하다. 이는 장자(張子)가 이른바 밖에 있는 마음은 하늘의 마음과 합치될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所謂體與天地同其大者, 以理言之耳. 蓋通夫地間, 惟一實然之理而已. 爲造化之樞紐, 古今人物之所同得. 但人爲物之靈, 極是體而全得之, 繩會於吾心, 卽所謂性. 雖會在吾之心, 爲我之性, 而與天固未嘗間, 此心之所謂仁卽天之元, 此心之所謂禮卽天之亨, 此心之所謂義卽天之利, 此心之所謂智卽夫之貞, 其實一致, 非引而譬之也. 天道無外, 此心之理亦無外; 天道無限量, 此心之理亦無限量; 天道無一物之不體, 而萬物無一之非天, 此心之理亦無一物之不體, 而萬物無一之非吾心. (那筒不是心倣? 那箇道理不具於心?) 天下豈有性外之物而不統於吾心是理之中也哉? 但以理言, 則爲夫地公共, 不見其切於己. 謂之吾心之體, 則卽理之在我有毓屬王宰而其端可尋也. 此心所以至靈至妙, 凡理之所至, 其思隨之, 無所不至, 大極於無際而無不通, 細人於無倫而無不貫, 前乎上古, 後乎萬古而無不徹, 近在跿步, 遠在萬里而無不同. 雖至於位天地育萬物, 亦不過充吾心體之本然而非外爲者. 張子所謂有外之心不足以合天心者也.

 

이른바 작용이 천지와 더불어 서로 유통한다는 것은 이 이치가 유행하는 것으로 말했을 뿐이다. 대개 이 이치가 천지 사이에서 유행하여 둥글게 돌면서 한 순간도 정지함이 없다. 만물과 만사는 작거나 크거나 정밀하거나 거칠거나 하나도 천리(天理)의 유행이 아님이 없다. 내 마음이 이 이치를 온전히 얻어 이 이치가 내 마음에 있으면서 또한 한 순간도 생성의 작용을 하지 않아 천지와 더불어 서로 유하지 않음이 없다. 사람이 오직 욕심을 깨끗이 하여 정을 두루 펼쳐서 그 유행하는 바를 격절시키지 않은 뒤에 항상 천지와 더불어 유통할 뿐이다. 또 측은(惻隱)과 같은 한 단락은 가까이로는 친척을 친근히 하는 사이에서 발현한다. 친척을 마땅히 친근히 해야 하는 것은 천명의 유행하는 것이 그러하다. 나는 다만 그와 더불어 유행하되 그 친근히 해야할 것을 이지러지지 않게 할 뿐이다. 한 번 혹 조금이라도 이지러짐이 있다면 천리는 친척을 친근히 하는 사이에서 격절되어 유행하지 않게 된다. 다음으로 백성을 어질게 대할 때에 이르러 늙은이를 마땅히 편안하게 해주고 젊은이를 마땅히 감싸주고 우물에 들어가는 자를 마땅히 두려워하는 것은 또한 모두 천명의 유행하는 것이 그러하다. 나는 다만 그와 더불어 유행하되 감싸안아 주고 편안하게 해주고 두려워하기를 잃지 않을 뿐이다. 한 번 혹 조금이라도 잃음이 있다면 천리는 곧 백성을 어질게 대할 즈음에 격절되어 유행하지 않게 된다. 또 멀리 사물을 사랑할 즈음에 미쳐 바야흐로 성장하는 것을 부러뜨리지 않고 태() 중에 있는 것을 죽이지 않고 어린 짐승을 죽이지 않는 이유는 또한 모두 천명의 유행하는 것이 그러하다. 나는 다만 그와 더불어 유행하되 성장하고 태 중에 있고 어린것을 해치지 않을 뿐이다. 한 번 혹 조금이라도 해를 끼침이 있으면, 천리는 곧 사물을 사랑할 즈음에 격절되어 유행하지 않게 된다. 대체로 일상생활 속에서 사단(四端)으로 감응하는 것도 그러하다. 다만 한 가지 일이라도 도달하지 않으면 천리는 곧 한 가지 일에서 격절되고, 한 시각이라도 관통하지 않으면 천리는 곧 한 시각 가운데서 격절된다. 그 천 갈래 만 갈래가 모두 저 천칙(天則)을 따라 저절로 그러한데, 마음이 여기에 두루 유행하고 관통하여 인욕의 사이에 없는 뒤에 원정이 천지 사이에 유행하여 동일한 작용이 된다. 이는 정자(程子)가 천지의 변화와 초목의 번성을 지칭하여 서()의 마음이 확충되어 가는 기상(氣象)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이유이다.

所謂用與天地相流通者, 以是理之流行言之耳. 蓋是理在天地間, 流行圓轉, 無一息之停. 凡萬物萬事, 小大精粗, 無一非天理流行. 吾心全得是理, 而是理之在吾心亦本無一息不生生而不與夫地相流行. 人惟欲淨情達, 不隔其所流行, 然後常與天地流通耳. 且如惻隱一端, 近而發於親覩之間. 覩之所以當親, 是天命流行者然也. 吾但與之流行, 而不虧其所親者耳. 一或少有虧焉, 則天理隔絶於親親之間而不流行矣. 次而及於仁民之際, 如老者之折以當安, 少者之所以當懷, 入井者之所以當怵惕, 亦皆天命流行者然也. 吾但與之流行, 而不失其所懷所安所怵惕者耳. 一或少有失焉, 則夫理便隔絶於仁民之際而不流行矣. 又遠而及於愛物之際, 如方長之所以不折, 胎之所以不殺, 殀之折以不夭, 亦皆天命流行者然也. 吾但與之流行, 而不筈其所長所胎所殀者耳. 一或少有害焉, 則天理便隔絶於愛物之際而不流行矣. 凡日用間, 四端所應皆然. 但一事不到, 則夫埋便隔絶於一事之下; 一刻不貫, 則天理便隔絶於一刻之中. 惟其千條萬緖皆隨彼天則之自爾而心爲之周流貫匝, 無人欲之間焉, 然後與元貞流行乎天地之間者同一用矣. 程子折以指天地變化草木蕃以形容恕心充擴得去之氣象也.

 

그러나 또한 반드시 천지와 크기를 같이 하는 본체를 둔 뒤에 이 천지에 유통하는 작용을 두고, 또한 반드시 천지에 유통하는 작용을 둔 뒤에 이 천지와 크기를 같이 하는 본체를 두니, 그 실상은 또한 두 가지로 분절된 일이 아니다.

然亦必有是天地同大之體, 然後有是天地流通之用; 亦必有是天地流通之用, 然後有是天地同大之體, 則其實又非兩截事也.

 

왕승(王丞: 왕자합)이 이 편의 뒷부분을 비평했는데 조금 이치에 가까웠습니다. 천명심은 다른 사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각각 구분되는 영역이 있음은 속일 수 없다. 이제 또 마음의 본체를 논하면서 곧 한결같이 성이나 천과 섞어서 설명한들 어찌 불가하겠는가? 만일 견해가 속티를 벗었다면 일언반구를 또한 저절로 볼 수 있다. 다시 마땅히 함양하여 고찰해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거듭 생각건대, 본체는 천지와 더불어 크기를 같이 하고 작용은 천지와 더불어 유통하니, 근원의 측면에서 논한다면 역시 이와 같을 듯합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이와 같다면 또한 너무 고원하게 되어 자신에게 절실하지 않는 폐단이 있게 됩니다. 단지 이 몸에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혼연히 가운데 있는 것이 본체가 되고, 감촉하여 반응하는 것이 작용이 된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더 절실할 것입니다. 또 성현이 설명은 평이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 두 편의 말뜻은 모두 지나치는 듯하니, 함께 바로잡아주기를 바랍니다.

王丞批此篇後截稍近, 又曰: ‘天命性心雖不可謂異物, 然各有界分, 不可誣也. 今且當論心體, 便一向與性與天交同說去, 何往而不可? 若見得脫灑, 一言半句亦自可見. 更宜涵養體察.’ 再思之, 體與天地同大, 用與天地流通, 自原頭處論, 竊恐亦是如此. 然一向如此, 則又涉於過高, 而有不切身之弊. 不若且只就此身曰用見定言 渾然在中者爲體, 感而應者爲用爲切實也. 又覺聖賢說話如平常, 然此二篇辭意恐皆過當, 倂望正之.

 

답변: 이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다시 느긋한 생각으로 함양하면 더욱 이치를 정밀히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줄곧 이와 같이 형체와 그림자가 없는 곳을 향해서 이치를 찾아서는 안 되니, 다시금 일상의 사물과 경서(經書)가 가리키는 뜻과 사전(史傳)의 득실(得失) 상에서 공부해 가면 곧 순수함과 거침, 안과 밖을 하나로 모아 꿰뚫어서 하나의 이치도 다 밝히지 못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此說甚善. 更寬著意思涵養, 則愈皃精密矣. 然又不可一向如此向無形影處追尋, 更宜於日用事物經書指意史傳得失上做工夫, 卽精粗表裏融會貫通, 而無一理之不盡矣.

진안경에게 답함 答陳安卿

 

 

해제이 글은 소희(紹熙) 2(신해, 1191, 62)에 진순(陳淳)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진순이 질문한 제사의 주재 문제에 관해 회답하고 있다.

 

왕승(王丞)의 거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주 좋습니다. 또 아침 저녁으로 학문을 강론하면서 이리저리 곱씹어보아야 할 것입이다. 지난 번에 보낸 여러 주장에 대해 오래 전에 비평을 써두었는데 보낼만한 인편이 없어서, 지금 함께 돌려보냅니다. 또 요경(堯卿: 李唐咨)에게 보내는 편지도 한 통 있으니 번거롭더라도 전달되도록 신경써 주기 바랍니다.

전에 제사를 주재하는 일을 물었는데 󰡔예기󰡕에 근거하면 당연히 맏손자[甲之長孫]가 주재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현재 집안의 어른이 주관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또 그 어른이 병에 걸렸다면 그 다음 어른이 주재하는 것도 해로울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맏손자가 어른이 되면 그 때 바꾸더라도 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승려가 되어 후손이 없는 사람도 본시 제사지내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종가의 제사[宗祭]에 대한 학설은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으니 나중에 회답을 보내겠습니다.

知在王丞, 甚善, 且得朝夕講學, 有商量也. 昨所寄諸說久已批報, 但無便可寄, 今幷附還. 堯卿一紙, 煩爲致意達之也. 前此所問主祭事, , 合以甲之長孫爲之乃是. 若其不能, 則以目今尊長攝行可也. 如又疾病, 則以次攝, 似亦無害. 異時甲之長孫長成, 却改正亦不妨也. 爲僧無後, 固當祭之, 無可疑. 但宗祭說未暇細考, 後更奉報.

 

 

진안경에게 답함 答陳安卿

 

 

해제이 글은 소희(紹熙) 2(신해, 1191, 62)에 진순(陳淳)에게 답한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이다. 󰡔대학혹문󰡕 󰡔맹자󰡕 및 묘제와 장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는 예전에 󰡔대학혹문󰡕그러나 참으로 그칠 곳을 알았다면 반드시 그칠 곳을 얻게 되는 것과 너무 간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若已無甚間隔]. 그 사이의 네 구절은 그렇게 되는 까닭에 이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을 유추해서 말한 것이다는 말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참으로 그칠 곳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칠 곳을 얻을 수 있고, 안정되고 고요하며, 평안하고 사려하게 되어 위 아래가 하나로 관통되고 이 모두가 함께 완성되어 그 사이에 조금의 간격도 없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인의 경지에 있는 사람의 일입니다. 위 문장에서 만일 이미 없다면[若已無]’이라고 말한 것은 참으로 그칠 곳을 안다’ ‘반드시 그칠 곳을 얻는다는 말의 뜻과 연결시키려는 것으로 정말이지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미 없다[]’고 말한 다음에 또 매우[]’라는 말로 이어 받은 것은 또한 사이가 조금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이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자와 ()’자가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약이무(若已無)’자는 비유(非有)’자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前日疑大學或問 然旣眞知所止, 則其必得所止, 若已無甚間隔, 其間四節, 蓋亦推言其所以然之故有此四者.’ 竊謂眞能知所止者, 必眞能得所止, 而定, 上下一以貫之, 當下便一齊都了, 中間實無纖毫間隔, 乃聖人地位事也. 上文 若已無云者, 其接 眞知所止, 必得所止之意誠爲快. 然旣曰 , 而又繼以, 則是亦有些間隔而不甚多之辭也, 字與字又不相應否? 然曰所以欲將若已無字換爲非有.

 

()’이란 말은 마치하다[]’는 뜻입니다. 비록 이와 같은 듯 하지만 그 사이에는 또 약간 정도를 넘어선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씩씩한 걸음으로 용감하게 나아가면 기세상 반드시 이르기는 하겠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데에는 조금이나마 점진적인 차례가 있어야 합니다.

之爲言, 雖似如此, 而其間亦有少過度處也. 健步勇往, 勢雖必至, 而亦須移步略有漸次也.

 

맹자가 말한 마음을 다 발휘한다[盡心]’는 말은 지금 이미 앎을 지극하게 한다[知至]’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을 안다[知天]’는 한 조목은 어디에 연결해서 소속시켜야 합니까? ‘본성을 안다[知性]’는 아래에 연결해서, 마음을 다 발휘하기 이전과 본성을 아는 것이 함께 하나로 뭉뚱그려진 일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마음을 다 발휘하는 것 아래에 연결해서 앎을 지극하게 한 다음에 정치하고 익숙하게 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까? 이 세 가지는 본시 끊듯이 앞뒤를 나눠서는 안 된다지만 그 사이에 나아가 자세하게 논한다면 어떻게 작은 구별조차 없다고 하겠습니까?

孟子所謂盡心, 今旣定作知至說, 則知天一條當何繫屬? 繫之知性之下, 而盡心之前與知性俱爲一袞事耶? 抑繫之盡心之下, 乃知至後又精熟底事耶? 夫三者固不容截然分先後, 然就其間細論之, 亦豈得謂全無少別?

 

본성을 안다면 곧 하늘을 압니다. 이 문장의 기세에 의거하면 단지 본성을 안다는 차원에서 설명해야 합니다.

知性則知天矣, 據此文勢, 只合在知性裏說.

 

일지(一之: 林易簡)가 지석(誌石)의 제도에 대해서 사()나 서인[]의 경우에는 어떻게 표제를 할 것인지 물어 왔습니다. 온공(溫公: 司馬光)은 당연히 성과 이름을 써야 한다고 하는데 온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부인과 합장한 경우에는 또 어떻게 표제를 써야합니까?

一之寄問誌石之制在士庶當如何題, 溫公謂當書姓名, 恐所未安. 夫婦合葬者, 所題之辭又當如何?

 

송 고진사(혹은 처사라고 하기도 한다) ○○군 부인 ○○씨의 묘라고 쓴다(아래에 대충 이름출신지나이자손 및 장사지낸 해와 달을 쓴다).

故進士(或云處士)某君夫人某氏之墓.(下略記名字鄕里年歲子孫及葬之年月.)

 

일지(一之)3월 중순에 장사지낼 날을 잡았는데, 장례를 치루면서 돌아가신 어머니[前妣]의 묘를 개장하고 선영에 합장을 하려 한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선친을 함께 하나의 봉토에 모시고, 계비(繼妣)는 몇 걸음의 작은 간격을 두고 따로 하나의 봉토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의논했는데 귀신을 모시는 데에는 오른쪽을 높이기 때문에 두 분 어머니는 모두 선영의 왼쪽에 모셨으면 한다고 하는데 옳은 일인지요? 그렇지만 정자(程子)장혈도(葬穴圖)에서 소()는 왼쪽에 모시고, ()은 오른쪽에 모셨으며, 묘제(廟制)에서도 소를 왼쪽에 목을 오른쪽으로 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입니까?

一之卜以三月半葬, 倂改葬前妣, 祔于先犖. 以前妣與其先丈合爲一封土, 而以繼妣少間數步, 又別爲一封土. 與朋友議, 以神道尊右, 而欲二妣皆列於先塋之左, 不審是否? 程子葬穴圖又以昭居左而穆居右, 而廟制亦左昭右穆, 此意何也?

 

일지의 조치가 올바릅니다. 소목은 세대의 수를 나누려는 것이지 높낮이를 나누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목이면 자식이 소가 되는 것이지 또 어떻게 높낮이로 논하겠습니까? 주나라 왕실의 묘제에 의하면 태왕(太王)문왕(文王)을 목으로 하고 왕계(王季)무왕(武王)을 소로 했는데 여기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一之所處得之. 昭穆但分世數, 不爲分尊卑. 如父爲穆則子爲昭, 又豈可以尊卑論乎? 室廟制, 太王文王爲穆, 王季武王爲昭, 此可考也.

 

명기(明器)를 쓰는 것은 군자가 어버이의 죽음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는 것입니까?

用明器亦君子不死其親之意, 自不容以廢之耶?

 

우리 집안에서는 예전부터 명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家不曾用.

 

 

진안경에게 답함 答陳安卿

 

 

해제이 글은 소희(紹熙) 2(신해, 1191, 62)에 진순(陳淳)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태극을 비롯한 성리학적 주제들에 관해 대답하고 있다.

 

 

태극이란 천지의 본성이요, 마음의 본체입니다. 이원(二元)이란 천지의 마음이요, 본성과 감정의 총화입니다. 음양의 성쇠는 천지의 감정이니, 즉 본성의 유행이요 마음의 작용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옳은지요?

太極者, 天地之性而心之體也. 二元者, 天地之心而性情之會也. 陰陽慘舒者天地之情, 卽性之流行而心之用也. 不審是否?

 

정자(程子: 程顥)그 본체는 역()이라 하고, 그 이치는 도라고 하고 그 작용은 신()이라고 말한다고 했으니, 다시 이 말을 참고해서 살펴 보십시오. 성지회(性之會)’라는 구절에서 ()’이란 한 글자가 빠졌다.

程子: ‘其體則謂之易, 其理則謂之道, 其用則謂之神.’ 更以此語參看.(‘性之會’, 此句內欠一.)

 

전에 심설(心說)을 보내드렸습니다. 나중에 첫머리에서 하늘의 마음[天心]’을 말한 것이 적당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지금은 오직 하늘의 명은 밝게 그치지 않으니, 만물을 낳는 주재가 되는 것이 하늘의 마음이다라고 고쳤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옳은지요?

前者納去心說, 後來覺得首語說天心不的當, 今改云: ‘維天之命, 於穆不已, 所以爲生物之主者, 天之心也.’ 不知是否?

 

고친 내용이 온전한 의미를 갖춘 듯 해서 아주 좋습니다.

改得謂意全備, 甚善.

 

선생님께서 저희 장인[妻父]에게 귀신에 대해 대답하신 말 가운데 “‘사실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는 기백은 없다고 했는데, 또 처음부터 오래가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하셨습니다. 요자회(廖子晦: 廖德明)가 이것을 보더니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천지 사이에 있는 보편적인 기의 본체[公共之氣體]로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마도 상채(上蔡: 謝良佐)가 말한 조상의 정신이 곧 나의 정신이라는 뜻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왕자합(王子合: 王遇)은 두 가지 설명이 같은 뜻이라고 하면서 만일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정신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데 어느 설명을 좇아야 할까요?

先生答妻父鬼神說云: ‘所謂非實有長存不滅之氣魄者, 又須知其未始不長存爾.’ 廖子晦見此, 謂長存不滅乃以天地間公共之氣體言之. 恐只是上蔡所謂 祖考精神卽自家精神之意耳. 王子合以爲二說只是一意, 若非公共底, 則安有是精神耶? 不審何從.

 

상채의 설명이 옳습니다.

上蔡說是.

 

혼백(魂魄)’ 두 글자는 예전에 선생님께서 발용하는 곳은 혼이요 안정된 곳은 백이다. 일을 기억하는 곳은 백인데, 어린 아이는 기억하는 성품이 없어서 안정시키고 중첩시키지 못하는 데 이는 모두 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선생님께서 답양문숙(答梁文叔)에서 코가 냄새를 알고 입이 맛을 아는 것은 백이다. 눈 귀 속의 따뜻한 기운은 혼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혼은 기운과 분리되지 않고, 백은 몸뚱이와 분리되지 않으며, 혼은 기라는 차원에서 하나의 활동하는 곳이요, 그 유행하는 것이 그치지 않고 발동해 일어나며 생성하려는 뜻을 갖추고 있는 것이요, 백은 몸뚱이라는 차원에서 하나의 쌓인 곳이요, 실제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응결되어 흩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魂魄二字, 向聞先生說發用處是魂, 定處是魄. 記事處是魄, 小兒無記性. 不定疊, 皆是魄不足. 又先生答梁文叔書謂鼻之知臭, 口之知味, 魄也. 耳目中之煖氣, 魂也. 竊以爲魂不離氣, 魄不離體, 魂則氣上一箇活處, 其所流行而不息, 發越而有生意者也; 魄則體上一箇積處, 其所眞實確定, 凝然而不散漫者也.

 

혼백에 대해서는 이와 같이 보아야겠지만 반드시 다시 가르고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말로 표현한 것에는 병폐가 없을 수 없으니, 오래되면 저절로 득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고생스럽게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왕승과의 논의는 지나치게 지리합니다. 왕승은 혼은 곧 기이고, 백은 곧 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혼은 기의 신령함이요, 백은 체의 신령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만 됩니다(불교에서 말하는 지풍 역시 같은 부류이다). 달이 햇빛을 받지 않는 곳이 바로 백입니다. 그러므로 16일 이후를 백을 낳는다[生魄]’고 하는 것입니다. 햇빛을 받아들이는 곳은 곧 양기가 밝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 이틀 사흘 이후를 밝음을 낳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해와 달은 음양의 기일 뿐 실제로 형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魂魄且如此看, 不須更支蔓.(言語間未能無病, 久之自見得失, 今不須苦求也.) 所與王丞論者, 則太支離矣. 王丞說魂卽是氣, 魄卽是體却不是, 須知魂是氣之神, 魄是體之神可也. (佛氏說地水火風亦相類.) 月之不受日光處, 其魄也. 故十六以後謂之生魄. 其受日光處則其陽氣之明也, 故初二三以後謂之生明. 蓋日月只是陰陽之氣, 非實有形質也.

 

명도선생(明道先生: 程顥)타고난 것을 성이라고 한다. 사람이 태어나 고요한 상태 이상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저는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은 천리가 부여되지 않은 때라고 알았습니다. 요즘 생각해보니 이 설명은 아마도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데 어째서 이런 말을 필요로 한단 말입니까? 의심스럽습니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이상(以上)’이란 말은 아마도 사물에 감응하기 이전부터 태어나는 시작까지만을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사람을 떼어놓고 하늘을 말한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태어나기 이전의 일을 말한 것도 아닌 듯 합니다.

明道先生: ‘生之謂性, 人生而靜, 以上不容說.’ 舊認作未生以前, 天理未有所降賦時. 近思此說恐幾太過. 人旣未有生, 則不得謂之性也明矣, 更何待如此言耶? 疑此所謂 以上云者, 似只說其從未感物以前至於所以生之始云耳, 恐非離人言天, 虛說未生以前事.

 

이 설명에 많은 힘을 썼습니다만 아마도 예전처럼 설명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此說費力, 恐只合仍舊. 更思之.

 

간난아이[赤子]가 외물에 감촉하는 데에는 저절로[天然] 발현하는 곳이 있고, 사람으로 인해 발현하는 곳이 있습니다. 옹알거리고 울어대며 놀라고 겁내는 것은 저절로 발현하는 것입니다. 젖빨고 구르고 돌아보며, 웃는 것은 사람 때문에 발현한 것입니다. 또 사람으로서 천부적인 것도 있고,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것도 있습니다. 양지양능 같은 것은 사람으로서 천부적인 것이요, 감정에 맞으면 기뻐하고, 감정에 거스리면 화내는 등 모든 기호적인 것은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것입니다.

赤子之感於物, 有天然發處, 有發以人處. 如啞鳴震悸, 則天然之發也. 如飮乳轉盻孩笑者, 則發以人處也. 又有人之天處, 有人之人處. 如良知良能, 人之天也. 順情則喜, 逆情則怒, 凡其嗜好, 則人之人處也.

 

감촉하게 되는 것은 모두 밖으로부터 생기는 것이고, 응하는 것은 모두 안으로부터 나옵니다.

所以感者, 皆從外生; 所以應者, 皆從中出.

 

고요함 속의 지각에 대해 이천(伊川)은 복()괘로 말했는데, 이는 바로 미발입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복괘찬(復卦贊)에서 생의가 새어나와 이처럼 완전한 아름다움을 갖추었다고 하고서 또 그 싹이 움터 나오고 측은함이 있다고 하셨으며. 또 저절로 생의가 있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언제나 생각해보면 무리지은 음()이 굳게 가리고 있는 속에 하나의 양이 싹트는 것은, 낳고 낳는 마음이 (괘의) 본래 자리에 나아가 이미 그 단서를 조금 싹튀운 것입니다. 다만 바깥으로 발현해서 나타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새어나오 듯이[闖然]’라는 말입니다. 사람에게서는 모든 일이 고요한 즈음에 그 속의 허령한 지각은 활동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이요, 낳고 낳는 마음이 살아있는 몸서 이미 약하게나마 그 단서를 노출시키되, 다만 바깥으로 움직여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싹이 움터나오는 것이 있다는 말로서 이천의 설명과도 차이가 없습니다. 측은함은 또 싹이 움튼 이후에나 있는 것이니 이미 발현한 곳이요, 충분히 발달한 다음에 측은(惻隱)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시간의 운행으로 말한다면 해()시가 끝나고 자()시가 시작하는 것이 복입니다. 달의 운행으로 말한다면 그믐이 끝나고 초하루로 바뀌는 것이 복입니다. 해의 운행으로 말하면 어둠이 극에 달해서 동쪽이 미약하게 밝아오는 것이 복이 됩니다. 사람에게 있는 것으로 말한다면 간난아이가 처음 태어난 것이 복입니다. 정신의 인식 작용[神識]으로 말한다면 정신이 처음 지각을 발동하는 것이 복입니다.

靜中之知覺, 伊川以復言之, 乃其未發者也. 然先生復卦贊: ‘生意闖然, 具此全美’, 又曰: ‘有茁其萌, 有惻其隱,’ 又自有生意, 何也? 常思之, 群陰固蔽之中, 一陽之萌, 生生之心就本位上已略萌出其端, 但未到發達出於外耳. 是所謂闖然者. 在人則爲萬事沈寂之際, 其中虛靈知覺, 有活物者存, 卽此便是仁者生生之心就生體已微露出其端矣, 但未到感動出於外耳. 是所謂有茁其萌者, 伊川說無異. 惻隱則又在茁萌已後, 乃已發見處, 達而爲惻隱也. 若以時運言, 則亥盡子初爲復. 以月運言, 則晦盡朔交爲復. 以日運言, 則黑極而微

露於東爲復. 在人言, 則赤子初生者復也. 以神識言, 則神初發知者復也.

 

()’자는 나중에 고치려고 했는데, 알맞은 글자가 없었을 뿐입니다. 싹을 튀우고 측은해 한다는 것은 오히려 처음 발현한 곳을 가르킵니다. ‘일운(日運)’ 이하는 말이 너무 더딘 듯 하니, 다시 연락을 주십시오.

字後來亦欲改之, 但未有穩字耳. 茁萌惻隱, 却是正指初發處. 日運以下有說得太遲處, 更消息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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