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83

황성 2025. 8. 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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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친구문인과의 문답) (知舊門人問答)

 

 

 

반겸지에게 답함 答潘謙之()

 

해제이 글은 순희 10(계묘, 1183, 54)에 반병에게 쓴 첫 번 째 글이다. 심성정(心性情)의 개념과 관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

 

보내온 편지에서 마음과 성을 분별했는데, 새로운 견해는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성은 단지 이치요, 정이란 성이 흘러나와 운용하는 곳이다. 마음의 지각이란 곧 이 이치를 갖추고서 이 정을 운행하는 것입니다.라는 면에서 말하자면 시비의 이치를 아는 소이가 곧 이니, 성입니다. 시비(是非)를 알아서 옳다 그르다고 하는 것은 정입니다. 이 이치를 갖추고 그것이 옳고 그름을 깨닫는 것은 마음입니다. 이곳의 분별은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하니, 정밀하게 살펴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과 공경, 마땅함과 구별, 기뻐하고 성냄,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모두 정입니다. 이전의 설명으로 추론해 본다면 내가 말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所喩心性分別, 不知後來見得如何? 性只是理, 情是流出運用處, 心之知覺, 卽所以具此理而行此情者也. 以智言之, 所以知是非之理則智也, 性也. 所以知是非而是非之者, 情也. 具此理而覺其爲是非者, 心也. 此處分別只在毫釐之間, 精以察之, 乃可見耳. 愛恭宜別, 喜怒哀樂, 皆情也. 以前說推之, 可以三隅及矣.

󰡔논어󰡕를 볼 때는 󰡔집주󰡕만 보고 거기에 침잠하면 저절로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의󰡕󰡔혹문󰡕은 반드시 모든 구절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경전과 역사서를 번갈아 읽어 이러한 뜻을 추론하고 확장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看論語只看集注, 涵泳自有味. 集義或問不必句句理會, 却看一經一史, 推廣此意尤佳.

 

 

반겸지에게 답함 答潘謙之

 

해제이 글은 순희 10(계묘, 1183, 54)에 반병에게 쓴 두 번째 글이다. 여기에서는 주로 정이의 정좌(靜坐)󰡔󰡕에 대해 논하고 있다.

 

보낸 편지의 질문한 항목 가운데, 예를 들어 이천도 때로 사람들에게 정좌를 가르쳤다고 했는데, 공자와 맹자 위로는 오히려 이런 설명이 없었다. 모름지기 위에서부터 추론해서 찾아본다면 정좌와 이치를 관찰하는 것은 둘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음을 알아야 적당할 것입니다.

所示問目, 如伊川亦有時敎人靜坐, 然孔孟以上却無此說. 要須從上推尋, 見得靜坐與觀理兩不相妨, 乃爲的當爾.

 

󰡔󰡕에 관한 설명은 대강 옳습니다. 그러나 일음(一陰)이 생긴 괘[姤卦]는 본래 일음이면서 다섯 양과 만난다는 뜻을 취한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이 말함이 또한 좋으나, 다만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능히 이 두 뜻을 겸하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췌괘(萃卦)의 세 구절은 점사(占辭)이고, 모은다[]는 뜻을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을 해설하는 제유(諸儒)의 커다란 병통이고, 성인께서 계사(繫辭)하여 길흉을 밝힌 뜻이 아닙니다. 복전(卜田)의 길함을 점친 것은 특별히 손괘(巽卦) 육사(六四)에서 말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알 수 있는 자가 있고, 알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마음을 비우고 완미하여 그 의심나는 것을 없애가야지 억지로 천착해서는 안 됩니다.

易說大槪得之, 但一陰生之卦, 本取一陰而遇五陽之義. 今如此說亦佳, 但更須子細看, 不知能兼此兩意否. 萃卦三句是占詞, 非發明萃聚之意也. 此是諸儒說易之大病, 非聖人係辭焉而明吉凶之意. 卜田之吉占, 特於巽之六四言之. 此等處有可解者, 有不可解者, 只得虛心玩味, 闕其所疑, 不可强穿鑿也.

 

성성(成性)’성지자성(成之者性)’이라 할 때, ‘()’()는 뜻은 같지만 용법은 다릅니다. ‘성성(成性)’은 이미 이루어진 성()이니, 마치 성설(成說)성법(成法)성덕(成德)성사(成事)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종류입니다. ‘성지자성(成之者性)’은 성취(成就)의 뜻이니, 마치 성기(成己)성물(成物)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종류입니다. ‘신지소위(神之所爲)’우신(祐神)’은 같고, ‘덕행을 신기롭게 한다[神德行]라 할 때의 ()’과는 조금 다르다. 법상(法象)과 변통(變通)은 이와 같이 설명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조금 억지로 견강부회한 병통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요사이 어떤 글을 보십니까. 의심이 있으면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成性成之者性’, ‘字義同而用異. ‘成性是已成之性, 如言成說成法成德成事之類; ‘成之者性是成就之意, 如言成己成物之類. ‘神之所爲祐神, 神德行小異. 法象變通, 如此說亦得, 但不免微有牽合之病耳. 近日別看甚文字? 有疑幸語及也.

 

 

반겸지에게 답함 答潘謙之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반병에게 쓴 세 번 째 글이다. 이글은 주로 󰡔맹자󰡕󰡔중용󰡕의 주요 구절에 대해 반병이 묻고 주희가 대답하는 문답의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맹자󰡕 첫머리의 몇 편은 제나라와 양나라의 군주와 더불어 나누는 말입니다. 대개 모두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일로서 다만 학자들이 능히 이용하지 못함을 근심할 따름입니다. ()와 리()는 상대적인데 나아가 따를 것을 정하고, 소를 바꾸는 마음을 확충하여 그 착한 실마리를 넓힌다면 가정에 처하여 신첩들이 모두 그 따뜻하고 배부른 것을 살피고 그 수고로움과 편안함을 고르게 하여 높히 여기고 천하게 여기는 치우침이 없을 것이니, 또한 백성과 함께 즐기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어디 간들 자신의 절실한 일이 아니겠는가?

孟子首數篇與齊梁君語, 大抵皆爲國治民之事, 特患學者不能用之耳. 卽義利之對而定所趨, 充易牛之心以廣其善端, 閨門之內, 妻子臣妾皆有以察其溫飽均其勞佚而無尊賤之僻焉, 亦與民同樂之意. 又何往而非切身之事哉?

 

󰡔맹자󰡕의 첫 부분을 논한 것은 만약 이와 같이 유추하고 돌이켜 구한다면 진실로 자기를 다스리는 절실한 공부에 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학자에게 갑자기 이와 같이 보라고 가르친다면, 문득 또 무거운 일을 첨가하는 것이니, 차라리 본문에 의거하여 보면서 구절마다 각각의 도리를 보는 것만 못하니, 오래가면 자연스럽게 관통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힘을 낭비하지 하지 말아야 합니다.

所論孟子書首, 若能如此推類反求, 固不害爲切己. 但初學者便敎如此看, 却又添了一重事. 不若且依本文看, 逐處各自見箇道理, 久久自然通貫, 不須如此費力也.

 

하늘을 즐긴다[樂天]’는 것과 하늘을 두려워한다[畏天]’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인자(仁者)로서 소국(小國)에 살게 되면 지자(智者)의 일을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고, 지자(智者)로 하여금 대국(大國)에 살게 하면 반드시 인자가 거행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러한가? 지자(智者)는 곡직(曲直)은 분별할 수 있지만 반드시 포용하고 인내하면서 그들과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것을 인자들처럼 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樂天’ ‘畏天不同. 以仁者而居小國, 固不免爲智者之事. 使智者而居大國, 則未必能爲仁者之擧. 何者? 智者分別曲直, 未必能容忍而不與之較, 如仁者之爲也.

 

맞습니다.

得之

 

()와 직()과 안자(顔子)는 시대도 같지 않고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남도 같지 않지만 의리는 마땅합니다.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은 시대는 같았지만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은 달랐으니, 한 사람이 옳았다면 다른 한 사람은 그를 것이고, 한 사람이 선했다면 다른 사람은 악했을 것인데, 맹자(孟子)는 어찌하여 모두다 성인(聖人)이라고 말했습니까?

顔子時不同而出處不同, 乃義之宜. 伯夷伊尹時同而出處異, 一是則一非, 一善則一惡. 孟子何以皆謂之聖人耶?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이 하는 행위를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 온당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謂伯夷伊尹所爲爲非恐未安.

 

허행(許行)의 말처럼 임금과 백성이 함께 밭을 갈려고 한다면 사람에게 귀천(貴賤)의 차별이 없을 것이고, 시장의 물건값을 에누리 없이 하고자 한다면 물품도 귀천의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정은 비록 다르다 해도 뜻은 같습니다. 맹자(孟子)는 제왕(齊王)이 소를 양()과 바꿈으로 인하여 그 차마 할 수 없는 마음을 발명해 주었고, 이지(夷之)가 그 어버이의 장례를 후하게 치름으로 인하여 그 겸애(兼愛)의 잘못을 경계하였으니 모두가 다 그 발현된 곳에 따라서 계도한 것입니다.

許行欲君民竝耕, 則於人無貴賤之別; 欲市價不貳, 則於物無貴賤之差. 事雖異而意則同. 孟子因齊王易牛以發其不忍之心, 因夷之厚葬其親以箴其兼愛之失, 皆因其發見處以啓之.

 

맞습니다

得之.

 

이천(伊川: 程頤)양지(養志: 뜻을 고상하게 함)를 하려면 경()으로 내심을 바르게 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하였으니, 이것은 그 희로애락의 정()이 발하지 아니한 미발(未發)의 단계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맹자(孟子)가 이른바 제 자신을 반성하여 올바르게 하며정직함으로 잘 기르고 해치지 않아야 하며이것은 내심의 의()를 모아서 생기는 것이라 한 것은 모두 다 사물을 가리켜 한 말로 희로애락의 정이 이미 발()한 이발(已發)의 단계에서 하는 말입니다. 맹자(孟子)가 고자(告子)와 한창 논쟁할 때 말이었으므로 오로지 그 편벽된 점을 구제하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伊川云: ‘養志莫如敬以直內’, 此是就未發上說. 孟子所謂 自反而縮’, ‘以直養而無害’, ‘集義所生’, 皆指事而言, 就已發上說. 孟子方辨告子, 故專救其偏.

 

맹자(孟子)가 양기(養氣)를 논한 것은 단지 희로애락이 이미 발한 이발(已發)의 단계에 합당한 말입니다. 그리고 정자(程子: 伊川)가 말한 양지(養志)는 아직 발하지 아니한 미발의 간계에서 말한 것입니다. 각기 그 일방의 뜻이 있으므로 자연히 안팎으로 서로 수양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맹자(孟子)가 고자(告子)가 의()를 외부에 있는 것으로 보는 실수를 구제하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孟子論養氣, 只合就已發處說. 程子說養志, 自是當就未發處說. 各是一義, 自不妨內外之交養, 不可說孟子爲救告子義外之失而姑爲此言也.

 

대인(大人)은 그 갓난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구절에 대한 집주(集注)의 뜻은 아마도 덕()이 비록 대인(大人)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애당초 적자(赤子)의 마음을 잃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 ()()’ ()로 살펴보면, 대인(大人)이 대인이 되는 까닭은 그 갓난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데 불과할 뿐인 듯합니다.

大人不失其赤子之心, 集注之意似以爲德雖至大人而初不失赤子之心也. 然以 字與 字觀之, 恐以爲大人所以爲大人者, 不過不失其赤子之心而已.

 

적자지심(赤子之心: 갓난아이의 마음)을 논한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 듯합니다. 만약에 대인(大人)이 단지 그 갓난아이의 마음만 지키고 있다면 깊은 이치를 궁구하고 사물을 대함에 모두다 방해로운 점만 있을 것이다.

論赤子之心恐未然. 若大人只是守箇赤子之心, 則於窮理應事皆有所妨矣.

 

전국시대 제()나라 왕자점(王子墊)은 말하기를, “선비는 아래로는 농사나 공업과 상업의 일도 하지 아니하고 위로는 경대부(卿大夫)의 직에 있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아마 그 일삼아 할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선비가 비록 직위를 얻어 도()를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그 뜻이 숭상하는 것은 인()과 의()가 있을 따름이라고 했습니다.

王子墊以人之爲士, 下旣不爲農工商之事, 上又末有卿夫夫之職, 故疑其若無所事者. 孟子言士雖未得位以行道, 而其志之所尙, 則有仁義焉.

 

뜻을 높이 가져야 한다는 말은 매우 좋습니다. () 자는 부모가 생존해 계실 때 그 뜻을 잘 살펴야 한다는 지() 자와 같은 것이니 대개 행하는 바에서 보지 못하고 마음에 두고 있는 데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尙志之說甚善. ‘字與 父在觀其志, 蓋未見於所行而方見於所存也.

 

대인(大人)을 설득할 때에는 그를 경시해 버린다고 했는데, 대체로 설득에 중심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만약 대인(大人)을 만나서 경시해 버린다고 말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說大人則藐之蓋主於說而言. 如曰 見大人則藐之’, 則失之矣.

 

맞습니다

得之.

 

"그만두어서는 안 될 데에서 그만두어 버린다"는 이 한 구절은 인()을 두고 하는 말이며, "()하게 할 데에서 박()하게 한다"는 이 한 구절은 의()를 두고 한 말입니다. 대체로 그만두어서는 안 될 데에서 그만두어 버리거나 마땅히 후하게 해야 할 데에서 박하게 하는 것이니, 곧 게으르고 자기만을 이롭게 하려 할 뿐, 힘써 행하고 의()를 돈독히 지키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혹 분발하여 용기 있게 나아갈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억지로 조장하는 잘못이 있고, 대체로 의기(意氣)가 한번 쇠해지면 사심(私心)과 사념(私念)이 둑이 무너지듯이 흘러나와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니 이 또한 그 잘못이 너무 지나친 것입니다.

於不可已而已一節以仁言, ‘於所厚者薄一節以義言. 夫不可已而已, 當厚而薄, 則怠惰自私而無力行篤義之心, 而失之不及矣. 或有發憤勇進者, 則又失之助長; 迨夫意氣一衰, 則私心邪念潰出而不可遏, 此又失之太過也.

 

()과 의()에 대한 설()은 옳지 않고, 나아가고 물러남을 예리하고 신속하게 결정한다는 이론도 정밀하지 못합니다. 대개 그 병통은 바로 의기(意氣)가 바야흐로 왕성했을 때에 이미 쇠퇴하는 추세가 있다는 데 있지, 의기(意氣)가 이미 쇠해진 이후를 기다린 뒤라야 그 잘못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仁義之說末是, 進銳退速之說亦末精切. 蓋其病正在意氣方盛之時已有易衰之勢, 不待意氣已衰之後然後見其失也.

 

진심장(盡心章)의 제1장에 유씨(游氏)는 지천(知天)이란 그 이치에 나아가는 것, 사천(事天)이란 그 일을 실천하는 것이라 하였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단명과 장수를 의심하지 않는다’[夭壽不貳]는 구절은 위의 두 구절을 이어 받아서 하는 말입니다. 위에서는 알아서 행하는 것이고 여기 와서는 곧 고수하고 변동하지 않는 것이니, 유씨(游氏)의 설은 아마 타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盡心第一章游氏以知天爲造其理, 事天爲履其事, 固善矣. 夭壽不貳一節, 又乃承上二節而言. 上乃知而行之, 此乃守而不變, 游氏之說恐未當.

 

단명과 장수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요수불이(夭壽不貳)도 역시 지천(知天)의 효과이나, 아래 구절의 유씨(游氏)의 말은 지나치게 가볍습니다.

夭壽不貳亦是知天之效, 但游氏說得下句太輕耳.

 

󰡔혹문(或問)󰡕에서 양씨(楊氏)가 왕씨(王氏)의 실언을 나무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의 생각은, (高明)과 중용(中庸)은 비록 두 가지의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자세히 분석해 보면, 또한 구별이 없지는 않습니다. 중용(中庸)이라 하는 것은 이치상 당연한 것이요, 고명(高明)이라 하는 것은 이치 상 그렇게 된 까닭입니다. 성인(聖人)은 몸가짐과 사물에 대함이 본래 두 가지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몸가짐을 알고 그 이치의 당연함을 다하는 것은 중용(中庸)을 행하는 바이고, 몸가짐을 알고 하는 바가 당연한 이치에 있음은 곧 고명(高明)입니다. 사물에 대응하고 그 이치의 당연함을 다한 것은 중용(中庸)을 행하는 바이며, 또 사물에 대응하는 당연한 이치를 아는 것이 곧 고명(高明)입니다. 왕씨(王氏)가 이것을 나누어서 두 가지로 생각한 것은 본래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양씨(楊氏)가 또 혼연(渾然)하게 구별 없이 본 것도 중용(中庸)과 고명(高明)이 그 이름을 얻게 된 실체를 자세히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 또 지()는 족히 치지에 이르지 못하고 명()은 족히 정성을 다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그 생각이 대개 지()를 고명(高明)이라고 하고 성()을 중용(中庸)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명() 자는 성() 자와는 종류가 같지 않고 도리어 위 구절의 이른바 지()라는 것과 한가지입니다. 어찌 ()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진다는 말에 견강부회하여 그르치겠습니까. 만약 그 의미대로 하자면, ()는 치지에 이르지 못하고 성()은 힘써 행하지 못한다고 바꾸어 말하고 싶습니다. 치지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고명(高明)을 깊고 미묘한 것으로 생각하며, 한 가지 일과 행위의 결말에 국한하지 않으면서도 고명(高明)이 중용(中庸)이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또 성()은 힘써 행하기에 부족함으로 중용(中庸)을 인력(人力)으로 힘쓰고 노력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천리(天理)의 자연이 아니라고 하니, 중용(中庸)이 곧 고명(高明)이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왕씨(王氏)의 병폐가 있는 곳입니다.

或間中以楊氏所譏王氏之失爲非是. 柄竊以高明之與中庸雖非二物, 然細分之, 亦不爲無別. 中庸者, 理之所當然也; 高明者, 理之所以然也. 聖人處己應物固無二道, 然處己而盡其理之當然者, 所以爲中庸也; 知處己所以當然之理, 則高明也. 應物而盡其理之當然者, 所以爲中庸也; 知應物所以當然之理, 則高明也. 王氏判而爲二固非矣, 而楊氏又渾然無所區別, 則亦不察中庸高明所以得名之實也. 其日智不足以致知, 明不足以盡誠者, 其意蓋以智爲高明, 誠爲中庸. 字與 字不類, 而反與上句所謂智者爲一律. 豈牽於 自明而誠之語而誤乎? 若如其意, 竊欲易曰: 知不足以致知, 誠不足以力行. 惟不足以致知, 故以高明爲淵深微妙, 而非局於一事爲之末, 而不知高明所以爲中庸. 惟誠不足以力行, 故以中庸爲出於人力之所勉强, 而非天理之自然, 而不知中庸斫以爲高明. 此則王氏受病之處.

 

고명은 설명의 핵심이 있는 곳으로 물욕에 물든 곳이 아니니, ()를 가리켜 한 말이 아닙니다.

高明是說中心所存, 不爲物欲之所累處, 非指理而言也.

 

첫장(首章) 명도(明道)의 네 번째 말에 사람의 성()을 말함에, 도를 계승하 것이 선()이다고 하니, 맹자(孟子)가 말한 성선(性善)이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마치 맹자가 한 말을 기품지성으로 간주하는 듯합니다. 만약 기품지성(氣稟之性)이라 한다면 본래 선()과 악()이 있어 오로지 선()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아래 문장에서 물이 흐르는 것에 비유한 말로 보면, 또 기품(氣稟)은 본래 선()한데 발()한 후에 선()과 악()이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가령 기품(氣稟)이 모두 다 선()하다면 발()한 바의 악()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首章明道第四說云: ‘凡人說性, 只是說繼之者善也, 孟子言人性善是也.’ 似以孟子所言爲氣禀之性. 若以爲氣禀之性, 則固有善惡矣, 不得專謂之善也. 以下文水流之喩觀之, 則又似以氣禀本善, 發而後有善惡也. 使氣稟皆善, 則所發之惡何自來哉?

 

맹자(孟子)가 하는 말은 기품(氣稟)의 성()이 아닙니다. 다만 성() 자체는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이라 말할 때에는 선()이라는 한 글자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천하(天下)의 성()을 말한 것은 고()일 뿐이라 한 것은 바로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孟子所言不是氣禀之性, 但是性自不容說, 纔說性時便只說箇善字. 所謂 天下之言性則故而已, 正謂此也.

 

장재(張載)의 얼음과 물이 얼고 녹는 비유는 또한 해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빛을 받고 조명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가지고 말을 하자면, 석씨(釋氏: 불교)가 이른바 일령진성(一靈眞性: 유일한 영혼만이 변개하지 않는 진여실상의 본체)이라는 말에 가까운 말입니다. 또 그 이른바 일찍이 없지 못하다고 한 것은, 아마도 그 둘 절구통 속에 실지로 한 물체도 갖추어져 있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곧 마음의 지각이요, ()의 실적(實跡)이 아닙니다.

橫渠冰水凝釋之喩似亦無害, 但以受光納照爲言, 則幾於釋氏所謂一靈眞性者矣. 其所謂未嘗無者, 豈以其靈照之中西, 實無一物之不具耶? 此則心之知覺, 而非性之實跡也.

 

이와 같이 말하면 잘못입니다.

旣如此說, 卽是有害矣.

 

() 임금은 통속적으로 알기 쉬운 말도 명백히 살펴보았다고 했는데, 그것은 지혜 있는 사람으로서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대개 지자(智者)의 과오는 항상 뜻이 높고 생각이 멀리 달리려고 하며 낮고 가까운 것을 싫어한 데 있는 것입니다.

舜察邇言, 所以無智者之過. 蓋智者之過常在於驚高遠而厭卑近也

 

() 임금의 지혜로움은 이 한 가지 일만은 아니니, 모름지기 전장(全章: 전편)을 가지고 본받아야 할 것이다.

舜之智不過, 非獨爲此一事, 須以全章體之.

 

() 임금은 악()을 숨겨 주고 선()을 들추어 주었다고 했는데, 남의 말을 듣는 방도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그 악()을 숨겨 주지 않으면, 남들이 장차 부끄러워하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세에 어진 이를 추천하여 나가게 하거나 불초(不肖)한 사람을 물러나게 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악()은 숨겨 주고 선()은 들추어 주는 것을 하나로 싸잡아 명예만 도둑질하려고 하는 것은 악()을 숨기고 선()을 들추어 주는 뜻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舜隱惡而揚善, 聽言之道當如此. 蓋不隱其惡, 則人將耻而不言矣. 後之當進賢退不肖之任者, 亦以隱惡揚善盜兼包幷容之名, 是不知隱惡揚善之義也.

 

()을 숨겨 주고 선()을 들추는 것은 어진 이를 나서게 하고 불초(不肖)한 사람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곧 도에 맞는 말을 받아들이고 선()을 선택한 사람을 위해 한 것입니다.

隱惡揚善不爲進賢退不肖言, 乃爲受言擇善者發也.

 

()하면서도 방탕한 데로 흐르지 않는다”3는 것은 불공(不恭)의 화가 아니며, “중립(中立)하되 치우치지 않음은 하나만을 고집하는 중이 아닙니다. 중화하면서도 흐르지 않고 치우치지 않음은 택한 것이 정밀한 것이요, ()를 몸에 갖추고 변함이 없는 사람은 지킴이 확고한 것입니다. 택한 것이 정밀하면 도()를 밝히기 어려움을 근심하지 않고, 지킴이 확고하면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근심하지 않습니다. 능히 여기에 힘쓰면 현자와 지자로서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장구(章句)󰡕에서 네 가지에는 각기 순서가 있다고 하셨는데,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방탕한 데로 흐르지 아니하기는 오히려 쉬우나 치우치지 아니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유하고도 교만하지 않는 것은 쉬우나 가난하면서도 원망이 없이 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和而不流則非不恭之和, 中而不倚則非執一之中. 中和而不流不倚者擇之精, 有道而不變者守之固. 擇之精則不患乎道之難明, 守之固則不患乎道之不行. 能勉乎此, 則無賢智之過矣. 章句中謂四者各有次序, 不知如何? 豈不流尙易而不倚爲難, 如富而無驕易, 貧而無怨難乎?

 

()하면서도 흐르지 않고 중립(中立)하되 치우치지 않음은 모름지기 강자(强字: 군자의 )에서 보아야 하니, 이와 같이 말하면 공부가 없을 것입니다.

和而不流, 中立而不倚, 須就 字上看, 如此說無功夫矣.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을 달통한 효도[達孝]라고 하는 까닭은, 제가 생각하건대, () 임금은 지나온 환경이 극히 불행했기 때문에 대효(大孝)라 하는 것입니다. 문왕(文王)이 근심 없이 지낸 것은 지나온 환경이 극히 행복한 것입니다. 지극히 행복함과 지극히 불행함은 다 정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의 효를 가리켜서 천하(天下)에 달통한 효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武王周公之所以爲達孝者, 柄竊以爲舜之大孝, 所遭之至不幸也. 文王之無憂, 所遭之至幸也. 至幸與至不幸, 皆不可以爲常. 武王周公之孝, 而天下通行之孝也.

 

아마 그러한 뜻이 아닐 것입니다.

恐無此意.

 

󰡔중용장구󰡕 20장에서 학지(學知: 배워서 앎)와 이행(利行: 이롭게 여겨 행함)은 인()에 해당되고, 곤지(困知: 애써 배워서 앎)와 면행(勉行: 힘써 행하는 것)은 용()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아마도 인()과 용()의 덕()을 다하지 못했던가 봅니다. 대체로 어진 사람은 인을 편안히 여기니 진실로 이해타산에 따른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와 인()과 용() 이 세 가지를 모두 다 달통한 덕(達德)이라고 하니, ()은 본래 위와 아래를 관통하여 말하는 것이니, 오로지 곤지(困知)와 면행(勉行)만으로 지목할 수 없습니다. 저의 생각으로 보면, 삼지(三知)다 삼행(三行)이다 하는 말은 그 달도(達道)이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그질은 다르지만 거기에 도달함에 있어서는 한가지임을 통론하여 말한 것입니다. ()와 인()과 용() 이 세 가지에 가까운 삼근(三近: 好學, 力德, 知耻)이라 하는 것은 아직 달덕(達德)에 이르지 못하고 이르기를 구하는 사람이 마땅히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삼지(三知: 好學, 力行, 知耻)와 삼행(三行: 安行, 利行, 勉行)을 지인용(知仁勇)으로 구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어떠합니까?

章句中以學知利行爲仁, 困知勉行爲勇, 竊恐未盡乎仁勇之德也. 夫仁者安仁, 固不容以利行爲言. 勇皆謂之達德, 則勇固通上下而言也, 不可專以困知勉行者目之. 以柄觀之, 三知三行云者, 所以總言達道達德之在人, 其氣質雖有不同, 而及其至之則一也. 三近云者, 言人未至乎達德而求至之者, 其用功當如是也. 似不必以三知三行分知, 如何?

 

이런 부분은 마음을 비우고 병행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는 곳으로 보아야 좋을 것입니다.

此等處且虛心看到竝行不悖處乃佳.

 

대신(大臣)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게 된다는 말에 대해, 󰡔장구(章句)󰡕는 전적으로 신임(信任)을 얻어서 소신(小臣)들이 멋대로 이간질할 수 없기 때문에 일에 임해 현혹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래 문장의 관속을 많이 두어 마음대로 부리게 한다는 뜻을 살펴보건대, 사역하지 않는 사역으로 작은 일에 사역하는 것이 곧 공경하는 것인 듯합니다. 사역하지 않는 사역으로 작은 일에 사역하기 때문에 그 정신이 한가하고 여유로워 대체(大體)에 어둡거나 현혹되지 않는 것입니다.

敬太臣則不眩’, 章句中以爲信任專而小臣不得以間之, 故臨事則不眩也. 柄竊觀下文官盛任使之意, 似以爲不使之役役於細事, 乃所以敬之也. 惟其不役役於細事, 故其精神暇逸, 不至昏眩而迷於大體也.

 

그렇지 않습니다.

不然.

 

󰡔중용󰡕 27장에 위대하도다. 성인(聖人)의 도()!”라고 했고, 또다시 우우(優優: 남음이 있고 넉넉함)히 크도다. 예의(禮儀)의 으뜸이라 한 것은 도()의 본체가 이와 같이 예의(禮儀)의 말단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二十七章旣言 大哉聖人之道, 而復以 優優大哉冠於禮儀之上者, 蓋言道體之大, 散於禮儀之末者如此.

 

그렇습니다.

得之

 

󰡔중용󰡕 24장의 성기(成己: 자기 완성)는 인()이요, 성물(成物: 세계 완성)은 지()이다라고 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논어󰡕에서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음을 지()라 하고,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않음을 인()”이라 하였으니, 이 부분과 서로 상반됩니다. 또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과 자기를 완성하는 것은 모두 비록 자신과 관계되는 일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학문으로 그 이치를 밝히고 한편으로는 내자신에게는 실체로서 이치이니, 한편으로는 지()이고 한편으로는 인()이라 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한 말입니다. 만약 그 성물(成物)이 곧 인()을 행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지()에다 귀결시키겠습니까?

二十四章 成已仁也, 成物智也’, 以柄觀之, 論語以學不厭爲智, 誨不倦爲仁, 又與此相反. 且學不厭與成己雖皆在己之事, 然一則學以明其理, 一則實體是理於吾身, 一知一仁, 猶可言也. 若夫成物, 乃仁之事, 何所與於知而歸之耶?

 

만약 지()가 없다면 어떻게 성물(成物)하겠습니까?

若非有智, 何以成物?

 

󰡔중용󰡕 28장에서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옛날의 도를 회복하려 하면, 이와 같은 자는 재앙이 그 몸에 미친다고 했습니다. 이는 공자가 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복고(復古)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춘추(春秋)의 시대에 태어나서 천자의 지위를 얻을 리도 없으니 한갓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서 옛 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가령 때와 지위를 얻는다면, 어찌 불가능한 것이겠습니까?

二十章 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裁及其身’, 夫子非使後人不得復古也, 但以爲生於春秋之世, 旣無得位之理, 徒欲以匹夫之微而復古之道則不可耳. 使得時得位, 何不可者?

 

옛 도를 회복한다고 하는 부분은 앞의 우천(愚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反古道連上文 愚賤.

 

대부분의 선배들이 공자가 사대(四代: , , , . 네 왕조 시대)의 제도를 증감하여 제자인 안자(顔子)에게 일러주었고, 주나라 제도를 따르겠다고 했으니, 그 말의 앞뒤가 서로 들어맞지 않은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용󰡕 28장에서 내가 주()나라 예()를 배웠는데 지금 이것을 쓰고 있으니 나는 주나라 예를 따르겠다라는 말의 의미로 보면, 공자가 주나라 예를 따르기로 한 것은 당시에 주나라의 예를 쓰고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따랐을 뿐이지, 마땅히 주나라의 모든 것을 다 따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면 그 평소의 뜻을 말했을 것입니다.

前輩多以夫子損益四代之制以告顔子, 而又日 吾從周’, 其說似相抵牾者. 然以二十八章 吾學周禮, 今用之, 吾從周之意觀之, 則夫子之從周, 特以當時所用而不得不從耳, 非以爲當盡從周. 若答爲邦之問, 乃其索志耳.

 

맞습니다

得之.

 

군자는 움직이면 세상은 천하의 도로 삼는 것이니, 행함에 세상은 그를 천하의 법으로 삼고, 말하면 세상은 그를 천하의 법칙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는 세상(世上), 법은 법도, ()은 준칙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은 분기(分岐) 가능성이 있으므로 법을 말했고, 아직 행사에 드러나지 않은 것을 말했기 때문에 그 말을 준칙으로 삼아 행하는 것입니다.

君子動而世爲天下道, 行而世爲天下法, 言而世爲天下則’, ‘猶言世上也, 法是法度, 則是準則. 有可跂之實故言法, 言未見於行事, 故以其言爲準而行之也.

 

맞습니다.

得之.

 

 

양지지에게 답함 答楊至之()

 

해제이 글은 소희 2(신해, 1191, 62)에 양지에게 쓴 글이다. 이 편지에서는 󰡔시경󰡕 서문을 시작으로 사서를 읽는 법, 󰡔󰡕에 대한 견해, 양지의 개인적 품성과 수양 및 주변 친구들의 정황 등을 두루 언급하고 있다.

 

󰡔시경󰡕의 서문을 보내오셨는데, 일찍이 󰡔시경󰡕을 익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와서 또 사자(四子: 孔子, 曾子, 子思, 孟子)가 말한 뒤에 씌어 있는 것을 그 순서에 따라서 마음을 쓰고 강구하여 그 문호에 들어가서 그 근본을 확립한 연후에 한 권의 경서를 숙독하고 자세히 이해하여 의문난 점이 있으면 곧 생각해 보고 통하지 않으면 곧 물어보아야 진전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대충대충 끝내버리면, 곧 억지 해설을 해 버리기 쉽습니다. 비록 그 해설이 맞다 할지라도, 또한 일을 이루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아직 교섭조차 전혀 없는데 될 수가 있겠습니까? 말씀하신 󰡔역전(易傳)󰡕은 아마도 식견이 천박한데 어떻게 󰡔󰡕의 대전(大全)을 남김없이 설명하고 해득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에 만나 이야기해 보니, 당신은 생각이 얕은 병통이 있던데, 그 원인을 밝히고 고치려는 노력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지(後之)가 영춘에 돌아온 뒤 다시 왔습니까? 자순(子順)과 자능(子能)의 공부는 어떠한지요? 그 곳의 벗들 중에서, 후지의 강론은 스승 삼을만 하고, 숙문(叔文)의 지수(持守)는 본받을 만합니다. 여러 벗들과 함께 자주 갈고 닦는다면 유익할 것입니다. 근래에 장주의 주비경(朱飛卿)이 이 곳에 왔는데, 병이 도져 자세하게 강론하지는 못했습니다. 진순(陳淳)이란 사람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매우 진보되었으니, 예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所喩詩序, 旣不曾習詩, 何綾便理會得? 只今且看四子音後所題, 依其次序, 用心講究, 人得門戶, 立得根本, 然後熟讀一經, 子細理曾, 有疑卽思, 不通方問, 庶有進處. 若只如此泛泛揭過, 便容易生說, 雖說得是, 亦不濟事. 況全未有交涉乎? 所說易傳, 恐亦方是見得皮膚, 如何便說得易之大全無餘蘊矣? 向嘗面說至之有膚淺之病, 不知曾究其所以然而加濬治之功否? 後之歸永春後, 曾復來否? 子順子能爲學復如何? 彼中朋友, 後之講諭可師, 叔文持守可法. 諸友若能頻與切磋, 必有益也. 漳洲朱飛卿近到此, 病作未得細講. 陳淳者書來甚進, 異日未可量也.

 

 

양지지에게 답함 答楊至之

 

해제이 글은 소희 2(신해, 1191, 62)에 양지에게 쓴 글이다. 이 편지는 주로 󰡔중용󰡕에 관해 논하고 있다.

 

솔성(率性)의 설()은 대강은 얻었지만 또한 정밀(精密)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率性之說大槪得之, 然亦有末精密處.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는 이론은 어느 곳에 속한 것인가? 또한 하늘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修道之敎當屬何處, 亦出乎天耳.

 

군자중용(君子中庸)’장에 두 개의 ()’라는 글자는 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독자가 깨닫지 못할까 두려워 다만 이 글자를 써서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한 것뿐입니다.

君子中庸章二 字不用亦可. 但恐讀者不覺, 故特下此字, 要得分明耳.


사람들은 모두 내가 지혜롭다고 말한다(人皆曰予知)’라는 하나의 이론은 옳고, ‘중용은 능히 할 수 없다(中庸不可能)’란 하나의 조목 또한 옳다. 그러나 세 가지는 지()()()에 나아가 말한 것이다. 대개 현자가 지나친 일은 다만 장점인 곳에 나아가 힘을 써서 나아갈 줄만 알고 중용을 가릴 줄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人皆曰予知一條說得是, ‘中庸不可能一條亦然. 然三者亦是就知勇上說來. 蓋賢者過之之事, 只知就其所長處著力做去, 而不知擇乎中庸耳.

중립하여 치우치지 않는다(中立不倚)’는 이론은 마땅히 󰡔혹문(或問)󰡕에서 발명하여야 합니다.

中立不倚之說, 當於或問中發之

은벽한 것을 찾고 괴벽한 것을 행한다(素隱行怪)’는 한 장의 글 뜻이 지극히 분명한데 어찌 간파하지 못하겠습니까? 성인의 말씀은 질실로 혼융(渾融)하지만, 그 가운데에 스스로 조리가 있어 조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는 오늘날 사람들의 애매모호[鶻圇儱侗]하고 분별이 없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素隱行怪一章文義極分明, 如何看不破? 聖人之言固渾融, 然其中自有條理, 毫髮不可差. 非如今人鶻圇儱侗, 無分別也.

 

그 지극함에 이르른다(及其至也)’는 구절은 이미 혹문(或問)에서 이와 같이 말하여 충분히 서로 발명하였습니다. 후씨(侯氏)의 이론은 전체 중에서 불능(不能)한 것만을 시비하고 있으니, 다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及其至也’, 或問中已如此說, 足以相發明. 侯氏之說如何是非全體中之不能者, 更請子細看.

 

‘(나는) 그 중에 한 가지도 능하지 못한다(未能一焉)’는 진실로 겸사(謙辭)입니다. 그러나 성인의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곳이 있음을 볼 수 있으니, 각각 하나의 의미로 보아도 서로 해롭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이 두 장은 바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일의(一意)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未能一焉固是謙辭, 然亦可見聖人之心有未滿處, 各見一義, 自不相妨也. 況此兩章正相連, 如何見得不是一意?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不見不聞)는 것은 바로 은밀한 곳을 가리킵니다. 앞 뒤의 장()에서 단지 비()를 들어 은()을 밝힌 것고하 같습니다.

不見不聞, 此正指隱處. 如前後章只擧費以明隱也.

 

달덕(達德)’은 순서가 매우 분명하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유원인(柔遠人)’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達德次第甚明, 不須疑著. ‘柔遠人亦然.

 

사물의 시작과 끝(物之終始)에 관한 논의는 󰡔혹문(或問)󰡕의 이론이 지극히 분명하니, 청컨데 다시 상세히 살피시고 다른 의론을 세우지 마십시오.

物之終始, 或問說得極分明, 請更詳之, 不須便立異議也.

 

상언자(上焉者)’는 천하에서 왕노릇하는 자는 그 위에 사람이 있음을 용납지 못하기 때문에 다만 시대로서 말한 것이니, 상문(上文)이 매우 분명합니다.

上焉者’, 王天下者其上不容有人, 故只得以時言之, 上文極分明矣.

 

(해와 달이) 교대하여 밝음(代明)에 관한 설명은 너무 자질구레해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代明之說細碎無理.

 

 

이수약(굉조)에게 답함 答李守約 (閎祖)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여기에서는 독서법과 정좌의 잘못된 인식에 관해 논하고 있다.

 

독서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뜻을 돈독하게 하고 마음을 비워 반복하여 상세하게 완미하여야 효과가 있습니다. 근래에 학자들은 대부분 경솔하게 천착하여 곧바로 정론(定論)으로 삼아버리거나, 혹은 전해들은 것을 곧바로 믿어 다시 깊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현의 글을 읽지만 성현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 외우고 말하는 것이 단지 자기의 식견에 의거하여 엮어 낼 따름입니다. 이와 같으니 어찌 크게 진보할 수 있겠습니까? 선배들이 모두 도가 있는 사람에게 친히 배웠지만 그 논의가 끝내 배치(背馳)되는 곳을 면하지 못한 것은 이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경공부(持敬工夫)에 관한 말씀은 반드시 이와 같이 한갓 스스로 어지러워져서 도리어 앉아서 잡념으로 치달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대강을 수렴(收斂)하여 방일(放逸)하지 말도록 하며 궁리(窮理)가 정밀해진 뒤에 자연히 생각이 함부로 움직이는데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경영하는 바가 바른 이치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니, 하필 오뚝하게 정좌(靜坐)한 뒤에라야 지경(持敬)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讀書之法無他, 唯是篤志虛心, 反復詳玩爲有功耳. 近見學者多是率然穿鑿, 便爲定論. 或卽信所傳聞, 不復稽考, 所以日誦聖賢之書而不識聖賢之意, 其所誦說, 只是據自家見識撰成耳. 如此豈復能有長進? 前輩蓋有親見有道, 而其所論終不免背馳處者, 想亦正坐此耳. 所說持敬工夫, 恐不必如此, 徒自紛擾, 反成坐馳. 但只大綱收歛, 勿令放逸, 到窮理精後, 自然思慮不至妄動, 几所營爲無非正理, 則亦何必兀然靜坐然後爲持敬哉?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공부를 하다가 의문나는 점이 있으면, 늘 기억해두고 마음속으로 곱씹으면 이치를 알게 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과정(課程)과 평소 공부에 대한 말씀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의문이 있으면 비록 마땅히 기억해 두었다가 질문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또한 어쩔 수 없이 때때로 제기(提起)하고 여유롭게 보다보면 혹 이치와 부합하기도 하니, 물은 뒤에 통하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所示課程及日用功夫甚善, 但有疑雖當識以俟問, 然亦不可不時時提起閑看, 儻或相値, 殊勝問而後通也.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논어󰡕의 내용과 주석에 관해 주로 논의하고 있으며, 주돈이의 󰡔태극도󰡕와 경재잠을 언급하고 있다.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 하니, 증자(曾子)는 용모(容貌)와 안색(顔色)과 사기(辭氣)를 말하였는데, 그 요점이 동()과 정()과 출()의 때에 있습니다.

克己復禮爲仁’, 曾子言容貌顔色辭氣, 而其要在動出之際.

 

대체로 맞습니다. 그러나 증자(曾子)가 말한 공부(功夫)는 동정출(動正出) 세 글자 앞에 있는데, 여기에서는 다만 그 효험처를 말했을 뿐입니다.

大抵得之. 但曾子之語功夫更在三字之前, 此特語其效驗處耳.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自古皆有死)’에 대해 󰡔집주󰡕에서는 믿음이 없으면 비록 살더라도 자립할 수 없으니 죽음이 편안함만 못하다라고 하니, 말에 밝지 못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自古皆有死’, 集注云: ‘無信則雖生無以自立, 不若死之爲安’, 恐語有未瑩.

 

()’ ()는 매우 깊은 의미가 있으니, 마땅히 이를 깊이 음미해 보십시오.

字極有味, 更宜玩之.

 

중궁(仲弓)이 계씨(季氏)의 가신이 되어, 정치에 관해서 물었다’, 정자(程子)성인(聖人)과 중궁(仲弓)의 마음씀에 크고 작음을 본다라고 말하니, 중궁(仲弓)이 작은 것에 가리우면 가()커니와, 만약 중궁(仲弓)이 반드시 현자를 등용하는 권한이 모두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하고, 만약 명예를 구하여 은혜를 파는 것이 있었다면 아마도 중궁(仲弓)의 어짐이 반드시 여기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仲弓爲季氏宰, 問政’, 程子曰: ‘便見聖人與仲弓用心之小大.’ 謂仲弓蔽於小則可, 若曰仲弓必欲擧賢之權皆出於己, 有若要譽而市恩者, 則恐仲弓之賢未必至是.

 

정자의 뜻은 중궁이 권리를 고집하고 은혜를 팔려는 뜻이 있어 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이르렀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사소한 것에 가리우면 그 해가 때에 따라 미치니, 이 또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극언하여 배우는 사람들이 사사로움에 마음을 쓰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程子之意固非謂仲弓有固權市恩之意而至於喪邦, 但一蔽於小, 則其害有時而至, 此亦不爲難矣. 故極言之, 以警學者用心之私也.

 

위나라 군주가 공자를 기다려 정치를 하려고 한다’(衛君待子而爲政). 이에 대해 호씨는 그 일의 본말을 갖추어 천왕에게 아뢰고 방백에게 청하여 공자 영을 명령하여 군주로 세웠다면 명분에 정당하였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자가 위나라에 갔지만 공자는 그 중책이 대대로 벼슬하는 신하도 아니오 친함이 군주의 친척인 공경도 아니니 위나라 군주가 자신을 편안히 하고 경청하지 않았을 듯 합니다.

衛君待子而爲政’, 胡氏所謂具其事之本末告諸天王, 請於方伯, 命公子郢而立之, 於名正矣. 然孔子之於衛, 重非世臣, 親非貴戚之卿, 則恐衛君之未能安己以聽之也.

 

호씨의 말은 바로 성인(聖人)의 대용(大用)의 전체(全體)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의 자세한 사정의 미묘함에 대해, 성인은 마땅함을 따라 그 때 그 때의 상황을 판단하지 따르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쫒겨난 괴외를 따르거나 첩의 개인적인 이해타산을 위하는 것도 괜찮지만, 위나라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자가 진상의 토벌을 요청하는 곳에서 제나라를 이기는 것은 공자의 여사(餘事)이다 하니, 여기에서 성인의 씀을 볼 수 있습니다.

胡氏之言乃聖人大用之全體, 但其間曲折之微, 聖人須更有隨宜裁處處, 不患其不從也. 若但令出從蒯聵, 爲輒之私計則可, 其如衛國何哉? 程子諭請討陳常處云: ‘所以勝齊者, 孔子之餘事’, 此可見聖人之用矣.

衛公子荊善居室言居室, 則似是處家之意.

 

위나라의 공자 형()은 집에 거처하기를 잘 하였습니다.

衛公子荊善居室

 

거실(居室)은 집에 거처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言居室, 則似是處家之意.

 

정공(定公)이 한 마디 말로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는 구절에 대해, 예전에는 언부가이약시(言不可以若是)’로 표점을 찍고 구절로 읽었습니다. 지금은 언부가이약시기기야(言不可以若是其幾也)’로 한 구절을 삼으니, 무슨 숨은 뜻이 있는 것입니까?

定公問一言可以興邦’, 舊點 言不可以若是爲句. 今以 言不可以若是其幾也作一句, 不識別有微意否?

 

󰡔집주󰡕와 같이 하면, ‘기기(其幾)’ 두 글자가 자연스럽게 상응할 듯합니다. ‘약시(若是)’로 끊으면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如集注說, 恐二字亦自相應. 若是絶句, 恐不訶也.

 

공자께서 남궁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夫子不答南宮适

 

비록 남궁괄이 묻지 않았더라도, 그 말이 취할만하였다면 전혀 대답하지 않으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사실은 (남궁괄이)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면서 공자를 높였기 때문에 공자께서 감당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造雖非問, 然其言可取, 則亦不應全然不答. 疑其實有貶當世而尊夫子之意, 夫子不欲承當, 故不答耳.

 

관중이 백씨의 병읍 땅을 빼앗았습니다.

管仲奪伯氏騈邑

 

소씨의 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억지로 그대로 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땅히 오씨의 설을 써야 합니다. 순자를 인용하여 증명할 수 있습니다.

亦嘗疑蘇說少異, 然牽於愛而存之. 此但當用吳氏說, 引荀子以證之可也.

 

지역을 피하고, 세상을 피하고, 색을 보고 피하고, 말을 어기면 피한다.

避地避世避色避言

 

부딪친 상황이 같지 않으니, 아직 색에 드러나지 않아도 이미 음성에서 나타납니다.

所遇不同, 固有未及徵於色而已發於聲者矣.

 

제가 지난 번에 강서에서 선비 한 사람을 만났는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돈이가 󰡔태극도󰡕에서 말한 고요함을 위주로 한 설명은 우리 유학자가 할 말이 아니니, 도가의 학설에서 나왔다.”

閎祖比會江西一士人, 謂太極圖主靜之說非吾儒之所宜言, 乃出於老氏之說.

 

강서지방의 선비의 말은 대체로 도에 대해 참된 인식을 하지 못하고 겉만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몸소 체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함부로 말하는 것입니다.

江西士人大抵皆對塔說相輪之論, 未嘗以身體之, 故敢如此無忌憚而易其言耳.

 

경재잠(敬齋箴)“(경을 떠나면) 잠깐 사이에 온갖 사욕이 생겨난다. 불길 없이도 뜨거워지고 얼음 없이도 차가워진다. 털끝만큼이라도 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하늘과 땅이 바뀌게 되니, 삼강(三綱)의 인간관계가 혼란하여지고 구법(九法)도 혼란을 가져와 무의미해진다.”

敬齋箴云: ‘須臾有間, 私欲萬端. 不火而熱, 不冰而寒. 毫釐有差, 天壞易處. 三綱旣淪, 九法亦斁.’

 

수유지간(須臾之間)’은 시간으로 말한 것이고, ‘호리지차(毫釐之差)’는 일로 말한 것으로, 모두 경()을 잃은 것을 말한 것일 뿐이니, 두 가지 일이 아닙니다.

須臾之間以時言, 毫釐之差以事言, 皆謂失其敬耳, 非兩事也.

 

10월은 아직 양기가 없다는 설명은 정자의 미진한 부분을 밝힌 것으로 매우 명백합니다.

十月末嘗無陽之說, 發明程子之所未盡, 至爲明白.

 

이 이치는 분명하니, 열자와 장자의 무리들도 이미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몰래 옮긴다[密移]’의 설이 있습니다.

此理分明, 莊之徒蓋已窺見之矣, 故有密移之說.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 세 수는 매우 좋으나, 학문은 몸을 닦고 이치를 궁구함을 급선무로 삼을 것이오 시에 능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승으로 섬기는 예()는 스스로 헤아려 보건데 벗들의 도움만큼 큰 것이 없으니,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보내주신 편지의 가르침은 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三詩甚善, 然爲學當以修身窮理爲急, 不患不能此也. 師禮自度未有以大爲朋友之益, 故不敢當. 來喩似未悉鄙懷也.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학문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 용맹정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학문하는 병통에 대하여 말했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이 간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모름지기 통렬하게 스스로 반성하여 용맹하게 분발해야 바야흐로 공부를 할 곳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처럼 유유하게 하면 아마 덕에 들어갈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示喩爲學之病, 此非他人所能與, 直須痛自循省, 勇猛奮發, 方有下工夫處. 若只如此悠悠, 恐無入德之期也.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춘추󰡕에 간략하게 언급하고, 󰡔집고후록(集古後錄)󰡕의 판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보내준 편지에 󰡔춘추󰡕가 읽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진실로 그러합니다. 대저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정()선생의 이른바 대의가 수십(數十)이니 해와 달과 같이 밝은(炳如日星)’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른바 마음에 숨어 있어 흡족하지 못한 것이 있을 터인데 하물며 그 정미한 뜻이랴! 이는 뒷날에 따로 생각해 보십시오. 󰡔집고후록(集古後錄)󰡕은 매우 유념해 보았지만, 전에 보았던 부조가 소장하고 있는 󰡔집고후록(集古後錄)󰡕에는 적백수(翟伯壽)의 설을 기재한 고대의 종과 솥에 관한 명첩[古鍾鼎帖銘]에 발문(跋文)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발문에) 혹은 한 글자를 나누어 두 세 글자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두 세 글자를 합하여 한 글자로 만들기도 했는데 매우 조리가 있었습니다. 뒤에 우연지를 만났는데, 그는 상주(常州)에 갈자평(葛子平)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이 이론을 미루어 󰡔상서(尙書)󰡕를 읽었는데 매우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늘 󰡔집고후록󰡕을 얻으려 합니다만, 당시에 이를 전록(傳錄)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지금의 󰡔집고후록󰡕 판본에는 그 발문(跋文)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번거롭겠지만 다시 한번 찾아 봐주시고, 행여 다른 판본이 있다면 (혹은 한 글자를 나누어 두 세 글자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두 세 글자를 합하여 한 글자로 만들기도 한) 이 부분만이라도 검토해 주십시오.

所喩春秋難讀, 固然. 大抵今所可見者, 但程先生所謂大義數十, 炳如日星, 然亦時有所謂隱之於心而未能愜當者, 況其精微之意乎? 此須異時別商量也. 集古後錄甚荷留念, 但向見傅漕處本中有一跋古鍾鼎帖銘載翟伯壽說, 或分一字作兩三字, 或合兩三字爲一字者, 甚有理. 後來見尤延之說常州有葛子平推此說以讀尙書甚有功, 以是常欲得之, 而悔當時不及傳錄. 今此本乃無之, 不知何故? 試煩更爲尋訪, 恐有別本, 只爲檢此一段來也.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장구󰡕󰡔혹문󰡕, 그리고 󰡔집략󰡕의 교정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눈이 더욱 침침해져 󰡔중용(中庸)󰡕(의 편집)을 끝내지 못했으니, 며칠 동안 병을 무릅쓰고 한번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형편상 모름지기 세 권을 지어야 할 것인데, 󰡔장구(章句)󰡕󰡔혹문(或問)󰡕은 조잡하나마 정리가 되었는데 다만 󰡔집략(集略)󰡕은 아직도 완전히 정리된 곳이 없습니다. 이제 아울러 보내니 번거롭겠지만 자세히 살펴 봐주십시오. (여러 학설 중에서 취하고 버린 것에 관한 변론인) ‘기변(記辯)’도 함께 보내고, 책머리에 범례(凡例)가 있으니, 여러 학설 중에서 취하고 버린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빼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보충할만한 것이 있거든 보충하도록 하십시오. 혹시 큰 제목을 작은 제목으로 바꾸어야 한다거나, 작은 제목을 큰제목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으면, 번거롭더라도 모두 바로잡으시고, 󰡔셋 중에서) 하나라도 빨리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장구󰡕󰡔혹문󰡕에는 깊이 생각해야 할 곳이 있을 것입니다.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熹目益盲, 而中庸未了, 數日來不免力疾整頓日過. 勢順作三書, 章句或問粗定, 但集略覺得尙有未全備處. 今倂附去, 煩子細爲看過. 記辨倂往, 冊頭有小例子, 可見去取之意. 但覺刪去太多, 恐有可更補者, 可爲補之. 或有大字合改作小字, 小字合改作大字者, 煩悉正之, 早遣一介示及爲佳. 章句或問中有可商量處, 幸喩及.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중용󰡕의 치중화에 대한 예전의 인식을 수정하고,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치중과 치화를 미발과 이발에 연결시키고, 이를 활 쏘는 것에 비유하여 논하고 있다.

 

󰡔중용󰡕은 매우 정밀하게 보셨고, 󰡔장구󰡕도 대개 이미 개정하였는데, 대부분 당신이 논한 것과 같았습니다. 다만 치중화(致中和)’ 부분은 예전의 견해는 모두 미진하니, 모름지기 안과 밖을 겸하여 말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치중(致中)’은 조금도 치우침이 없고 또 그것을 잘 지켜 잃지 않고자 하는 것이요, ‘치화(致和)’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고 또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렇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그 뜻을 다했다 할 것입니다. 대개 치중(致中)은 활쏘는 사람이 정곡을 맞추듯이 그 중()을 다하는 것과 같고, 치화(致和)는 활쏘는 사람이 각화(角花)를 맞추듯이 그 중을 다하는 것이고, 또한 발()한 바가 모두 중()에 맞고 끊김이 없는 것입니다. 근래에 이 뜻을 좀더 정밀하게 알았는데, 구설(舊說)은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집략󰡕의 사례는 마땅히 당신이 깨우쳐준 바와 같습니다. 󰡔혹문󰡕󰡔집략󰡕은 눈병 때문에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눈병이 좀 나으면 수정하여 보답하겠습니다.

中庸看得甚精, 章句大槪已改定, 多如斬諭. 但致中和處舊來看得皆末盡, 要須兼表裏而言. 如致中則欲其無少偏倚而又能守之不失, 致和則欲其無少差繆而又能無適不然, 乃爲盡其意耳. 蓋致中如射者之中紅心而極其中, 致和如射者之中角花而極其中, 又所發皆中, 無所間斷. 近來看得此意稍精, 舊說却不及此也. 集略例當如所喩. 或間集略目疾不能多看, 俟旋修得, 却奉報也.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제가 지난 날 고통을 받은 것은 단지 마음을 수고롭게 한 소치(所致)였습니다. 지난 번 이사하고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로 안팎으로 힘들고 소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약을 쓰지도 않았는데 병이 나았습니다. 마음이 편안하려면 몸이 수고롭다는 것이 바로 양생(養生)의 비결임을 알았습니다.

熹向來所苦只是勞心所致, 尋以般移應接, 內外勞擾, 遂不檠而愈. 乃知君逸臣勞, 直養生之要訣也.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경원 3(정사, 1197, 68)에 쓴 편지이다. 서모라는 명칭에 대해 고증한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서모(庶母)라는 명칭은 또한 바르지 못합니다. 서모(庶母)는 본래 아버지의 첩()으로 자식을 낳은 사람을 이르니, 선비는 시마복을 입고 대부는 복()이 없습니다. 만약 어머니[]의 명칭인 경우는 󰡔의례(儀禮)󰡕공자(公子)가 그 어머니를 위해 상복을 입는다[公子爲其母]”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 법령의 첫 조목[令甲]’에서 위 인용문 아래에도 분명히 ()’자를 주석하여 나를 낳아 준 사람을 이른다고 말한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아내나 첩을 불문하고 모두 어미라는 명칭을 얻습니다. 때문에 주석에는 적모(嫡母)라는 글이 있으며 또한 이로써 나를 낳아준 사람[生己者]이 로 어미가 됨을 밝힌 것이다. 관작과 증작을 봉()하는데 이르러서도 또한 다만 소생모(所生母)라고 말하지 서모라고 하지 않는다. 󰡔통전󰡕의 설()은 검증(檢證)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만 공자(公子)로써 어머니를 위하여 흰 관[練冠]과 삼베 옷[麻衣]을 입고 장사지내고 나서 벗는 것이 전례가 되었으니, 이는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중책[重責]을 이은 자로서 아마도 아비를 낳아준 할머니를 위해 승중(承重)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시 병이 조금 나음을 기다려서 계속 고증하여 회딥을 올리겠습니다. 몇 일간 어떤 사람이 거문고를 말하기에 고증해보니 자못 조리가 있다. 그러나 거문고를 잘 타지 못하면 그 소리를 알지 못하며 다만 문자로써 구해보면 아마도 꼭 옳지는 않을 것이니 또한 반드시 얼굴을 대하고 논할 일입니다.

所喩庶母之名亦未正. 庶母自謂父妾生子者, 士服綛麻而大夫無服. 若母, 則儀禮有 公子爲其母之文. 今令甲其下亦明有汪字曰: ‘謂生己者’, 則是不問父妻父妾而皆得母名矣. 故注中則有嫡母之文, 又以明此生己者之正爲母. 至如封叙封贈, 亦但謂之所生母而不謂之庶母. 通典之說未暇檢, 但以公子爲母練冠麻衣, 旣葬除之爲比, 則承宗廟社稷之重者, 恐不得爲父折生之祖母者持重矣. 更俟病間續攷奉報. 數日因人說琴, 謾爲考之, 頗有條理. 然不能琴, 不識其聲, 但以文字求之, 恐未必是, 亦須面論.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경원 3(정사, 1197, 68)에 쓴 편지이다.

 

상례(喪禮)에 대해 물으셨는데, 오래도록 병세가 절박하여 대답할 정신이 없었습니다. 또 말씀하신 바를 보니 모두 그 대체를 잃었는데, 제가 그 소절(小節)에 마땅한 구석을 따른다면 아마 스스로 그 바름을 잃고 예로써 사람을 허락한 죄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줄곧 미적거리며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유용지(劉用之)에게 부탁하여 조목대로 분석하여 별지(別紙)와 같이 구비했습니다. 잘 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평일에 현자가 학문을 향하는 뜻을 가지고 힘은 쓰지만 세속의 마음이 많이 있는 것을 면하지 못하여 범사(凡事)에 반드시 완곡하게 비호하고 앞뒤로 숨기려는 뜻이 생기는 것을 알고서 항상 생각이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여기에서 자신과 남에게 처신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이 없음이 다 드러납니다. 또한 일찍이 내적인 반성이 여기에 미쳤는지 모르겠습니다.

所問喪禮, 久以病勢侵迫, 無復心情可以及此. 又見所說皆已矢其大體, 而區區於其小節若隨宜區處, 則恐亦自失其正而陷於以禮許人之罪, 故一向因循, 不能奉報. 今又承專人以來, 不免以屬劉用之, 令其條析, 具如別紙. 又不知能行否也. 大率平日見得賢者鄕學之意雖力, 而終不免多有世俗之心, 凡事必生宛轉回護遮前掩後之意, 常不快意. 今乃悉見於此, 蓋其處己處人無不然者. 不知亦嘗內省及此否耶?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주로 대중(大中)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지난 번 편지와 마찬가지로 전체, 시중, 치중, 치화의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

 

왕자합(王子合)이 이곳에 들렀을 때에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 못했으니 매우 한스럽습니다. 이러한 일은 늦추거나 신속히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니, 만약 단절하여 내버려둔다면 나와는 상관 없게 될 것입니다. 상채(上蔡)가 이에 발명한 것이 매우 유력하니 참으로 실제에서 징험한 좋은 것입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질문하신 ()’에 대한 설명은 이미 큰 틀은 이해하셨습니다. 짐승들이 예의에 맞는 곳이 있는데, 이는 기품에서 온 것입니다. 마치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이로움을 좆고 해로움을 피하는 것과 같은 종류일 뿐입니다. 단지 혼우(昏愚)하기 때문에 위로는 지각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작위(作僞)하지 못합니다.

대중(大中)의 설은 지난 번에 논한 전부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도 단지 일 없을 때 본원을 함양하는 것이 곧 전체이고, 일에 따라 응접하여 각각 그 적의(適宜)한 곳을 얻는 것이 곧 시중(時中)이며, ()을 다하여 잃지 않는 곳을 기르는 것이 곧 치중(致中)이고, 때에 맞아 어긋나지 않는 곳에 미루어 도달하는 것이 곧 치화(致和)입니다. 학자가 바야흐로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사물의 중()을 다하면 곧바로 성인의 지위에 이르러 대중(大中)의 전체를 다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이 오상을 포함한다는 설에 관해서는 이미 영유에게 말했습니다. 대저 지금 벗들이 문의(文義)에 나아가 말하는 것 같은 것은, 수약(守約)과 같은 사람이 다 말했으나 단지 일찍이 몸에 돌이켜 참으로 알지 못했던 까닭으로 입각(立脚)할 땅이 없어서 단지 한가한 말이나 이루고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王子合過此, 說失解曲折, 甚以爲恨. 此等事遲速自有時節, 若斷置得下, 則自與我不相干矣. 上蔡於此發明甚有力, 正好於實地上驗之也. 前晝所問 字之說, 大槪已得之. 禽獸於義禮上有見得處, 亦自氣禀中來. 如飢食渴飮趨利避害之類而已. 只爲昏愚, 故上之不能覺知, 而下亦不能作僞. 來喩上文蓋已言之, 不知如何又却更疑著也. 大中之說, 不記向來所論首尾. 此亦只是無事之時涵養本原, 便是全體; 隨事應接各得其所, 便是時中; 養到極中而不失處, 便是致中; 推到時中而不差處, 便是致和. 不可說學者方能盡得一事一物之中, 直到聖人地位, 方能盡得大中之全體也. 仁包五常之說, 已與令裕言之. 大抵如今朋友就文義上說, 如守約, 儘說得去, 只恐未曾反身, 眞箇譏得, 故無田地可以立脚, 只成閑話, 不濟事耳.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전날 보내 온 편지에, ‘온 세상이 모두 당연하다고 했으니, 제가 어찌 감히 그렇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다만 화복(禍福)이 오는 데도 일정한 분수가 있어서 지력(智力)으로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부질없이 이처럼 바쁘게 하고자 아니합니다. 만약 때와 더불어 소식(消息)하면 참으로 병행하여 이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前日所喩, 擧世皆謂當然, 憙亦豈敢以爲不然? 但恐禍福之來亦有定分, 非智力所能免, 不欲枉作此匆匆耳. 若謂與時消息, 固並行而不悖也.

 

 

이수약에게 답함 答李守約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논어󰡕󰡔맹자󰡕의 집주에 이수약이 질문하고 주희가 답변하고 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공부에 대해서 논한 것은 매우 간결하니 마음 씀이 정밀하고 절실함을 알겠습니다. 다만 이 용력(用力)에 의거하여 다시 강학하는 공을 더하면 반드시 이르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전에 물으신 것은 뒤에서 답변하겠습니다. 역사에 관한 논의 역시 큰 틀이 매우 정확합니다.

所論克復工夫甚簡潔, 知用心之精切也. 但依此用力, 更加講學之功, 則必有所至矣. 前所寄者, 今答于後. 史論大槪亦甚正也.

제가 보건대, ‘인을 좋아하고 불인을 미워한다(好仁惡不仁)’은 사람의 타고난 자질에 이와 같은 편중이 있으니, 안연과 맹자의 사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안연이 불인을 미워한 일은 경전에서 거의 볼 수 없으니, 인을 좋아한 사람이라 할만 합니다. 반면 맹자는 불인한 자의 정상에 대해 모두 조금도 가차 없이 논변하였으니, 불인을 미워한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好仁惡不仁, 某竊觀之, 人之資稟固有偏重如此, 如顔孟之事亦可見矣. 顔子嫉惡不仁之事罕見於經, 可謂好仁者. 於孟子則辨數不仁者之情狀無一毫少貸, 可謂惡不仁者.

 

이 설명은 맞습니다.

此說得之.


인이 이른다[斯仁至矣]’고 한 ()’자는 내지(來至)’의 뜻과 같습니다.

斯仁至矣’, ‘來至之意.

옛날에 없다가 지금 갑자기 여기에 있는 것이니 마치 밖으로부터 이르는 것과 같습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와서 회복한다[來復]’는 것은 사실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昔者亡之, 今忽在此, 如自外而至耳. 如易言來復, 實非自外而來也.

군자가 귀중히 여기는 도가 세 가지 있다.(君子所貴乎道者三)’ 여기에서 바르게한다()’이라는 말은 힘써 노력함을 기다린다는 뜻이 있는 것과 같고, ‘용모를 움직이다(動容貎)’말과 소리를 낸다(出辭氣)는 문장의 자연스런 뜻과는 같지 않습니다.

君子所貴乎道者三’, ‘之爲言猶有待乎用力之意, 非如 動容貎出辭氣文意自然.

군자가 도를 귀중히 여기는 것은 이 세 가지 일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천시하는 것입니다. ‘()’()’은 전혀 힘쓰지 않는 것이고, ‘()’ 또한 매우 힘쓰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바르게 할 뿐 거짓으로 꾸미지 않으니 귀중하게 여기는 까닭입니다. 다시 󰡔집주󰡕를 자세히 보시고 경전의 글을 해석하시면 저절로 깊이 이해하실 겁니다.

言君子所貴於道者, 在此三事, 而籩豆之事則其所賤也. ‘非是全不用力, ‘亦非是大段用力. 惟正之而非僞飾, 所以爲可貴耳. 更詳集注以解經文, 自見曲折.

 

교린(驕吝)’장의 󰡔집주󰡕에서 ()는 자랑하는 것이고, ()은 인색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제의 생각으로는, 자기가 가진 것을 과장하는 것이 교()이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지 않는 것이 인()인 것 같습니다. 또 정자의 말을 인용하여 ()는 기운이 차 있는 것이요, ()은 기운이 부족한 것이라 하였는데, 스스로 여유가 있으면 기운이 가득 차있다고 여기고, 부족하면 기운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니, 󰡔집주󰡕의 설명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驕吝章集註曰: ‘, 矜誇; , 鄙吝.’ 某竊思之, 似謂誇其有於己, 驕也; 不以其有與人, 吝也. 然又載程子之言曰:‘驕氣盈, 吝氣歉.’夫自以爲有餘則氣盈, 自以爲不足則氣歉, 似於集註之說不同.

 

인색함이 있는 것이 바로 교만함이 믿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하면서 인색하지 않으면 그 교만을 보전할 수 없고 인색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그 인색함을 쓸 곳이 없습니다. 이는 빈 곳을 채우는 것은 반드시 가득 참에 부족하기 때문이고, 가득 참에 부족한 것은 반드시 빈 곳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吝之所有, 乃驕之所恃也, 故驕而不吝無以保其驕, 吝而不驕無所用其吝. 此盈於虛者所以必歉於實, 而歉於實者所以必盈於虛也.

 

집어장(集御章)󰡔집주󰡕에서 그렇다면 나는 마땅히 말 모는 일을 잡겠다라고 한 것은 공자께서 진짜로 말 모는 일을 할 것으로 여긴 것이고, 문단의 끝에 기록한 나는 장차 말 모는 일을 잡겠다는 윤씨의 말은 공자가 가설한 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윤씨의 설명이 위아래 문단의 의미와 맞는 것 같습니다.

執御章集註謂 然則吾當執御矣’, 則以爲夫子眞執御. 至於末後載尹氏之說曰 吾將執御矣’, 則以爲夫子之設詞. 某竊以後說於上下文意爲順.

 

당인들이 공자를 이와 같이 칭한 것은 공자가 일찍이 비천한 일을 한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따로 이름을 이룬 큰 것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일 뿐이다. 어째 일부러 스스로를 낮추는 말로 그들이 명칭하는 것의 실수를 드러내려는 것이겠는가? 이 둘의 기상의 크고 작음을 반드시 구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黨人之稱孔子如此, 不知孔子當以嘗執賤事告人而辭其無所成名之大耶, 當故爲自屈之詞以顯其所稻之失耶? 二者氣象之大小, 必有能辨之者.

 

팔아야지(沽之哉)’에서 ()’의 의미는, 보통의 경우로 보면, 의문사입니다. 󰡔집주󰡕에서는 곧바로 진실로 팔겠다라고 하여 의문사로 보지 않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沽之哉’, ‘之爲義, 以常例言之, 則爲疑辭. 集汪直曰: ‘固當賣之’, 而不以爲疑詞, 何也?

 

()’는 본래 감탄사인데, 간혹 의문사가 되는 것도 감탄하여 의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팔아야지(沽之哉)’하고 계속해서 값을 기다린다고 했으니 의문사가 될 수 없습니다.

本歎散, 其或爲疑辭者, 亦歎以疑之也. 此言 沽之哉’, 而繼以 待價’, 則不得爲疑辭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대하시다! 순임금과 우임금은 천하를 소유하시고도 그것을 관여치 않으셨으니.’” 이천은 순임금과 우임금은 천화를 소유하시고도 관여하여 구하지 않으셨다라고 했는데, 󰡔집주󰡕는 왜 이천의 설명을 취하지 않았지는요?

巍巍乎, 舜禹之有天下也, 而不與焉伊川曰: ‘舜禹之有天下也, 而不與求焉.’ 集注不取, 何也?

 

()’ ()()’ ()는 상응하니, 만약 관여하여 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는 마땅히 ()’으로 써야 할 것인데,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字與字相應, 若爲不與求, 當作, 恐不然也.

 

남을 해치지 않으며 남의 탐하지 않는다는 장에 대해 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시기하지 않기 때문에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으니, 이를 일러 해치지 않는다(不忮)라고 합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탐욕의 마음이 없으니, 이를 일러 탐하지 않는다(不求)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한 사람이 이 두 가지 병폐를 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부분에서 가난한 자가 부자와 사귈 적에 강한 자는 반드시 <부자를> 해치고, 약한 자는 반드시 탐한다는 여씨(呂氏)의 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뜻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데 본문에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不忮不求, 愚嘗思之, 不嫉人之有, 故無筈人之心, 此之謂不忮. 不耻己之無, 故無貪欲之心, 此之謂不求. 則是以一人而兼二病. 然末後載呂氏說曰: ‘貧與富交, 强者必忮, 弱者必求’, 似非此意, 而於本文不明. 如何?

 

남이 소유한 것을 질투하지 않으며 내가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여씨의 뜻입니다. 다른 무슨 의심이 있습니까? 다시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不嫉人之有, 不耻己之無, 正是呂氏意, 不知更有何疑? 更詳言之.

 

간장을 얻지 못하면 먹지 않는다 할 때 ()’은 자해(鮓醢)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는 마치 생선회를 먹는데 겨자장이 없고, 고라니의 날고기를 먹는데 젓국이 없으면 먹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것이 구비되지 않으면 혹 사람을 상하게 할 것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不得其醬不食’, ‘者當是鮓醢之物. 如魚膾不得芥醬, 糜腥不得醢醬則不食, 謂其不備或傷人也.

 

󰡔맹자󰡕의 구지어미장(口之於味章)에 말하기를 사람의 성명(性命)에는 이 두 가지 단서가 으니 입이 맛을 즐기는 것으로부터 사체(四體)가 편안함을 좋아하는 것에 이르기까지는 형기(形氣)의 성()으로서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다. 부자간의 인()으로부터 성인의 천도(天道)에 이르기까지는 도의(道義)의 성()으로서 바로 군자가 준수하는 성()이다. 이는 바로 순임금의 이른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니 특별히 정밀하게 분별해서 힘써 행해야 할 것입니다.

孟子 口之於味章言人之性命有此二端, 自口之嗜味以至四體之嗜安逸, 形氣之性, 君子有弗性焉. 自仁之於父子以至聖人之於夫道, 道義之性, 君子性之. 猶舜析謂人心道心之在人, 特要糟別而力行之耳.

 

참으로 잘 간파하였습니다.

看得儘好

 

 

이시가에게 답함 答李時可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중용장구󰡕󰡔혹문󰡕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중용󰡕자기완성만 하는 것이 아니다(非自成己而已也)’ 󰡔장구(章句)󰡕에서 찾아보니, “()은 비록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나 나에게 있는 것이 허위가 없으면 자연히 남에게 미치게 된다. 대저 인지(仁知)는 모두 성()의 덕이기 때문에 내외에 있어 두 가지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때에 따라 둠에 각각 그 합당함을 얻는 소이(所以)이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이 설과 같다면 이는 인()과 지()로 내외의 두 도()를 합하는 것이니, ()으로 내외의 도를 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에 장애가 있는 것 같습니다.

中庸 非自成己而已也, 求之章句曰: ‘誠雖所以自成, 然在我者無僞, 則自然及物矣. 蓋仁知皆性之德, 故在內外無二道, 所以時措之而各得其宜也.’ 審如是說, 則是以仁知爲合內外二道, 而非以誠爲合內外之道, 恐於字有疑礙.

 

오직 성()만이 인지(仁知)의 덕을 다하고 내외의 도를 합한다는 󰡔장구󰡕의 말은 명쾌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唯誠爲能盡仁知之德而合內外之道, 章句語有未瑩處耳.

 

󰡔중용󰡕보여주지 않아도 드러난다(不見而章)’는 장()󰡔장구(章句)󰡕에서 찾아보니, “보여주지 않아도 드러남은 땅과 짝하여 말한 것이고, 움직이지 않아도 변함은 하늘과 짝하여 말한 것이다고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또한 상하의 문맥을 보니, 먼저 박후(博厚)함을 말하고 다음에 고명(高明)함을 말했으며, 먼저 배지(配地)를 말하고 뒤에 배천(配天)을 말했으나, 이를 이어 천지산천(天地山川)을 논하고 또 하늘로써 먼저 말한 것은 대개 착종(錯綜)하여 말한 것이지 반드시 땅을 먼저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中庸不見而章求之章句則曰: ‘不見而章, 以配地言, 不動而變, 以配天言.’ 何也? 且觀上下文雖先言博厚, 次言高明, 先言配地, 後言配天, 然繼此而論天地山川, 則又以天爲稱者, 是蓋錯綜而言之耳, 不必以地爲先也.

 

이러한 곳은 모름지기 깊이 탐구할 것이 없고, 다만 이 글에 따라 찬탄하고 대략 보아가는 것이 괜찮을 것입니다.

此等處不須深求, 只是隨文贊嘆. 大略看過可也.

 

󰡔중용󰡕희노애락의 감정이 아직 움직이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 하고(喜怒哀樂未發謂之中)”에서 만물이 잘 생육된다(萬物育焉)”에 이르는 부분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중()이란 것은 성의 본체를 말한 것으로서 이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에 속합니다. ()라는 것은 도의 작용을 말한 것으로서 이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에 속합니다. 중화(中和)를 지극히 한다는 것은 가르침을 확충하는 것으로서 이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에 속합니다. 󰡔장구󰡕󰡔혹문(或問)󰡕을 읽어보니, 치중화(致中和)를 오로지 자신만의 일로 언급했으니 (이는) 아마도 추이급인(推而及人)이란 몇 구절이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中庸 喜怒哀樂未發謂之中萬物育焉.’ 竊謂中也者, 言性之體也, 此屬天命之謂性’. 和也者, 言道之用也, 此屬 率性之謂道’. 致中和者, 言敎之推也, 此屬 修道之謂敎’. 伏讀章句或問, 則致中和專言自己之事, 恐欠推以及人數句.

 

이미 천하의 대본(天下之大本)이요 천하의 달도(天下之達道)’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말하는 중화(中和)는 천지만물을 모두 섭리하는 것이니 구태여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확장해야 한다(推而及乎人)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旣曰天下之大本, 天下之達道, 則只是此箇中和便總攝了天地萬物, 不須說推以及乎人也.

 

전장(前章)에 관하여 이제 선생께서 자세하게 써보내 주신 가르침을 받고 생각해보니 대개 두 가지 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화(中和)의 지극함을 미루어 이루고 또한 때와 지위를 얻어 이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즉 백성을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되 우리 선지자(先知)가 저들 후지(後知)를 깨우치며, 선각자가 저들 후각(後覺)을 깨닫게 해서 중화(中和)의 교화(敎化)가 천하에 흠뻑 젖게 한 뒤에 중도(中道)의 감격(感格)한 바가 천지에 자리를 정하고 만물을 생육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물(事物)로써 말한 것입니다. 비록 지위를 얻어 시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대중(大中)의 극치(極致)를 완전하게 하는 것이니, 바로 천지가 제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이미 지화(至和)의 극치(極致)를 완전하게 하였으니 바로 만물이 써 생육하는 까닭입니다. 이는 리()로써 말한 것입니다.

前章今承先生曲賜指敎, 思之大槪有二說. 能推致中和之極, 而又得時得位以行之, 則道民以德, 齊民以禮, 以吾之先知覺彼之後知, 以吾之先覺覺彼之後覺, 使中和之化浹于天下, 然後中道之所感格, 夫地以位, 萬物以育. 此以事言者也. 雖不得位以行之, 而旣以全大中之極致, 卽天地之所以定位者也. 旣已全至和之極致, 卽萬物之所以育者也. 此以理言之也.

 

중화(中和)의 두 단락에 대해 논한 대의(大意)는 모두 옳습니다. 다만 앞 단락은 신민(新民)의 의사(意思)를 설명한 것이 너무 많으니, 화를 지극히 하는[致和] 부분은 오히려 이와 같이 말할 수 있겠지만, 중을 지극히 하는[致中] 것은 도리어 어떻게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이 고요히 움직이지 아니하고 순수하여 그침이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자기에게 어느 정도 본령(本領)이 있어야 화()를 지극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미루어 남에게 확장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느껴 변화하게 하고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논하면, 천지의 위치가 중을 지극하게 하는 것에 근본하고 만물의 생육이 화()를 지극하게 하는 데에 근본했으니, 각각 맥락이 있으면서도 은연중에 서로 관련되어 있으니 뒤섞어서는 안 됩니다.

所論中和兩段大意皆是. 但前段說得新民意思太多, 致和處猶可如此說, 若致中, 却如何得天下之人皆如吾之寂然不動而純亦不已耶? 只是自家有些小本領, 方致得和, 然後推以及人, 使人觀感而化, 而動天地感鬼神耳. 自其已成而論之, 則見天地之位本於致中, 萬物之育本於致和, 各有脈絡, 潛相灌輸而不可亂耳.

 

성은 사물의 끝과 시작이니 …….

誠者物之終始(云云).

 

무릇 한 사물이 있으면 그 이룸에 있어서 반드시 시작한 바가 있으며 그 무너짐에 있어서 반드시 종료된 바가 있습니다. 그 시작한 바는 실로 리()가 이르러서 유()를 지향하는 것이요, 그 종료된 바는 실로 리()가 다해서 무()를 향한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이치가 없다면 또한 이러한 사물도 없습니다. 이는 성()이 사물의 끝과 시작이 되는 까닭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으면 비록 한 바가 있더라도 모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시작하고서 성실()하지 않으면 일의 시작은 시작이 아니니, ()이 이른 다음에야 그 일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끝내면서 성()이 없으면 사물의 종료는 종료가 아니고 성()이 다한 때에 그 일은 이미 끝나는 것입니다. 만약 시작부터 종료까지 모두 성심(誠心)이 없다면 (이는) 철두철미하게 모두 허위가 되니, 또한 어찌 다시 사물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지난번에 설명했던 뜻입니다. 다만 󰡔장구󰡕󰡔혹문󰡕에는 설명이 모두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당신과 반복해서 묻고 분변하면서 비로소 설명이 되었습니다. 다음 두 곳은 모두 모름지기 다시 개정할 것들인데, 이들도 함께 당신에게 보낼 것입니다.

凡有一物, 則其成也必有所始, 其壞也必有所終. 而其所以始者, 實理之至而向於有也; 其所以終者, 實理之盡而向於無也. 若無是理, 則亦無是物矣. 此誠所以爲物之終始. 而人心不誠, 則雖有所爲, 皆如無有也. 蓋始而未誠, 則事之始非始, 而誠至之後其事方始; 終而不誠, 則事之終非終, 而誠盡之時其事已終. 若自始至終皆無誠心, 則徹頭徹尾皆爲虛僞, 又豈復有物之可言哉? 此卽向來所說之意, 但章句或問說得都不分明, 故讀者不能曉. 今得時可反復問辨, 方說得到. 次第兩處皆須更定, 此可幷以示守約也.

 

 

이시가에게 답함 答李時可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영윤자문의 인과 미자와 기자, 비간의 인을 비교하여 논함으로써 인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

 

당신이 말한 자문(子文)에 대한 일은 대개 맞습니다. 다만 오로지 애()로써만 말하는 것은 미진(未盡)한 것 같습니다. 일찍이 연평(延平)선생이 삼인사(三仁事)에 대하여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으면 인()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이 말로써 추론해보면, 자문은 본래 미인처(未仁處)가 있으니 그 사랑이 넓지 않음에 대하여 말함을 기다린 뒤에야 그 미인(未仁)함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삼인지심(三仁之心)은 다만 주왕(紂王)이 잘못을 고쳐 삶을 도모하게 하려는 것뿐이었습니다. 비간(比干)의 살신(殺身)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였으며, 기자 또한 우연히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이자 노복이 되려는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의 추세가 기왕 이렇게 되었기에 미자(微子)는 스스로 몸을 온전히 하여 선왕의 제사를 보존하였으니, 모두 이치상 그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령 먼저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억지로 간언할 마음이 있었다면, 또한 인인(仁人)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所喩子文事大槪得之. 但專以愛言, 似未盡耳. 嘗聞延平先生說三仁事云: ‘當理而無私心則仁矣.’ 今以此語推之, 則子文合下便有末仁處, 不待語其愛之不廣然後知其未仁也. 三仁之心, 只欲紂改過而圖存. 比干之毅身, 蓋非得已; 箕子亦偶未見殺耳, 非有意於爲奴也. 事勢旣爾, 微子自是只得全身以存先王之祀, 皆理不得不然者. 使其先有殺身强諌之心, 則亦不得爲仁矣.

 

 

이시가에게 답함 答李時可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의 의미를 논하고 있다.

 

말씀하신 집중(執中)에 대한 설에 대해서는 정()선생이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함(惟精惟一)은 지극하게 하는 것이요, 진실로 그 중을 잡음(允執厥中)은 그것을 행하는 것라고 하여, 이 중자(中字)가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過不及)이 없는 ()’으로서 애당초 미발(未發)()’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먼저 번에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에서 이러한 뜻을 밝혔는데, 이제 늦게나마 적어 보냅니다. 

示喩執中之說, 程先生云: ‘惟精惟一所以至之, 允執厥中所以行之.’ 明此字無過不及之 ’, 初非未發之 . 向於中庸章句序中曾發此義, 今謾錄去.

 

 

이시가에게 답함 答李時可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대학󰡕 1장의 靜情知止의 관계, 󰡔논어집주󰡕를 논하고 있다.

 

󰡔대학󰡕의 요점에 관한 논의는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정정(定靜)은 단지 지지(知止)의 효과일 뿐이니, 그것을 함양해서 정정(定靜)한다고 말하거나 또는 별도의 한 항목의 공부로 만들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인용하신 맹경자(孟敬子) 장의 󰡔집주󰡕 중에 유여(有餘)’라고 한 것은 아마도 유소(有素)’인 듯한데, 판본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러나 장경(莊敬)성실(誠實)함양(涵養) 또한 용모(容貌)를 움직이고 안색(顔色)을 바르게 하며 사기(詞氣)를 발한 외에 따로 일단의 공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를 힘써 지키고 유지하여 그 공부가 오래 쌓여 순수하게 익어야 이와 같은 효험이 있게 되고 힘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가 주나라의 예()를 지킨 것은 대개 그 당시 천하가 국토가 비슷하고 정치 상황 도 비슷해서 오히려 옛날의 예악(禮樂)과 문장(文章)을 지킬 수 있었을 뿐입니다. 삼강구법(三綱九法)이 없어진 일 같은 것은 당시 제후의 나라들이 대개 그러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나라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所論大學之要甚善, 但定靜只是知止之效, 不須言養之以定靜, 又別做一項工夫也. 所引孟敬子章集往中語 有餘云者, 恐是 有索’, 豈印本之誤耶? 然莊敬誠實涵養, 亦非動容貌正顔色出詞氣之外別有一段工夫, 只是就此持守著力, 至其積久純熟, 乃能有此效而不費力耳. 魯秉周禮, 蓋於是時地醜德齊之中, 猶能守得舊日禮樂文章耳. 若三綱九法之亡, 則當時諸侯之國蓋莫不然, 亦非獨魯之責也.

 

 

이시가에게 답함 答李時可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에 쓴 편지이다.

 

제가(諸家)의 학설은 현재 찾고 있습니다. 원우(元祐)의 설명(說命무일(無逸)편 강의 및 조이도(晁以道)갈자평(葛子平)정태지(程泰之)오인걸(吳仁傑) 등의 글을 먼저 보내니, 차례를 정정하는데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땅히 주소(注疏)를 선두로 삼고, 그 요점을 간추린 것은 이후에 시세(時世)에 따라 선후를 삼으면 될 것입니다. 서산(西山)이 간혹 경지(經旨)를 밝혀낸 곳이 있으니 마땅히 본문의 아래에 부칠 것이며, 그 통론은 바로 편말에 부쳐야 할 것입니다.

諸家說見今方尋檢, 元祐說命無逸講義及晁以道葛子平程泰之吳仁傑數書先附去, 可便參訂序次. 當以注疏爲先, 疏節其要者, 以後只以時世爲先後可也. 西山間有發明經旨處, 固當附本文之下, 其統論卽附篇末也. 記得其數條理會點句及正多方多士兩篇, 可倂攷之.

 

 

이시가에게 답함 答李時可

 

해제이 글은 경원 3(정사, 1197, 68)에 쓴 편지이다. 호안국이 지은 󰡔상서󰡕의 서문과 관련한 논의를 하고 있다.

 

보내준 요전(堯典)은 눈이 좋지 않아 보기가 매우 어려운데다 또 다른 일이 바빠서 검토해 볼 틈이 없었소. 이미 여러 벗에게 부쳐주어 보도록 하였으니, 그들이 다 보고나면 다시 탐구해 보겠소. 󰡔상서󰡕의 서문은 꼭 편의 첫머리에 놓을 필요는 없고, 다만 제가(諸家)의 해석과 서로 관련되는 곳이 있거든 마땅히 작은 글자로 써서 편목(篇目)의 아래에 부쳐야 할 것 같소. 아니면 한 자()를 낮추어 써서 수편(首篇)에 그 오류를 밝히 나타내는 것도 괜찮을 것이오. 다만 제가(諸家)가 원래 이런 설이 없으면 비워두었다가 책이 완성된 다음에 따로 정정(訂正)해야 할 것 같소. ()씨의 서의서(書義序) 중에 이것이 방설(雱說)이라고 명언(明言)하였으나 형공(荊公)의 주의(奏議)에는 도리어 이르되 하나하나 모두 신의 손을 거쳤다고 하였으니 지금으로서는 다만 서()로써 정론(正論)을 삼는 것이 좋을 것이오. 아직 알리지 못한 나머지는 아울러 다음 편지를 기다리겠소.

所寄堯典以目視頗艱, 又有他冗, 未暇討究. 已付諸朋友看, 俟其看了却商量也. 書序不須引冠篇首, 但諸家所解却有相接續處, 恐當作注字附于篇目之下. 或低一字作傳寫, 而於首篇明著其繆亦可. 但恐諸家元無此說, 卽且闕之, 以俟書成, 別加訂正也. 王氏書義序中明言是雱說, 然荊公奏義却云 一一皆經臣手今但以序爲正可也. 餘未報者, 倂俟後信.

 

 

이시가에게 답함 答李時可

 

해제이 글은 경원 3(정사, 1197, 68)에 쓴 편지이다.

 

말씀한 바에 의하여 진실로 효사(孝思)의 이에 대한 간절함이 능히 스스로 그만 둘 수 없음을 알겠소. 그러나 상황이 이와 같으니 다른 사람은 그만 두고라도 비록 그대의 형제일지라도 어찌 능히 그 삼족들에게 누설치 않을 것을 보장할 수 있겠소. 이는 훗날 얼굴을 마주하고 자세히 상량(商量)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오. 다만 늙고 노쇠하여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정하니, 이는 천명이라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오. 󰡔상서󰡕에 대한 설명은 이 곳의 예서(禮書)가 완료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날마다 다시 다른 일에 미칠 수 있는 여력이 없어 우공편(禹貢篇)만 대략 보았소. 기주(冀州)를 나누어 삼단으로 한 것은 자못 조리가 있고 보기가 쉬웠소. 제주(諸州)를 모두 다만 한 단으로 하게 되면 너무 넓고 멀어서 총잡(叢雜)해질 것 같으오. 아무래도 기주(冀州)의 예에 따라 모두 합하되, 각 구절마다 아래에 아무개가 ○○ 지방은 ○○ () ○○ (某縣)에 있다고 말했다고 협주(夾註)를 달아야 할 것 같소. 그 고금(古今)의 주현(州縣) 이름이 달라 중복되게 나타난 것은 또한 아울러 두어서 참고로 갖추어 놓아야 할 것이오. 단후(段後)에는 한 자를 낮추어 크게 右某州第幾節이라고 써서 권표시(圈標示)로 격단(隔斷)하되, 선유(先儒)가 변론한 통설이 있는 곳에는 바로 또한 큰 글씨로 그 아래에 부쳐야 할 것이오. 예컨대 逾于河過九江같은 곳에는 지금 취한 바의 정설(程說)에 다만 변별만 있고 해설이 없으니 이는 흠궐(欠闕)인 것 같다. 모름지기 다시 자세하게 보완해야 한다. 만약 오늘 스스로 의심스러운 바나 격단(隔斷)해야 할 바가 있거든 다시 한자를 낮추어 써야 할 것이오. 치량급기(治梁及岐) 같은 경우에는 조설(晁說)이 옳은 것 같고 그 나머지는 ……. 정태지가 가장 힘써 설명하였지만 역시 통하지 않소. 대개 양산은 동주(同州)에 있으니 하수에 가까우니, 오히려 하수의 물줄기가 이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오. 기산(岐山)의 경우에는 지금의 봉상부(鳳翔府)에 있으니 이는 경조부(京兆府)로부터 서쪽으로 오히려 600리나 되오. 지리도(地理圖)를 보면, 그 지세가 높고 또 먼 곳임을 알 수 있으니 하수(河水)가 어떻게 가히 미칠 수 있겠소. 이와 같은 것들은 모름지기 그 본설(本說)을 재록(載錄)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 독자가 훤히 알 것이오. 만일 이 두 항목이 없다면 각각 한 두 행을 빈칸으로 남겨두어 기다려야 할 것이니, 뒤에 혹시 보충하여 기입할 것이 있을 것이오. 그 도산처(導山處)에는 모름지기 4열로써 4단을 하고 도수처(導水處)는 일수(一水)1단으로 하오. 단후(段後)에는 또한 전례와 같이 하여 ()는 도산제기절(導山第幾節)’ 또는 우는 도수제기절(導水第幾節)’이라고 하며, 그 통론의 의단처(疑斷處)도 또한 이와 같이 하시오. 이와 같이 한다면 거의 보기가 쉬워질 것이오. 부쳐준 책자는 이제 도로 봉하여 돌려보내니 청컨데 이 양식에 따라 초본 한 권을 만들어 인편에 부쳐주기 바라오.

所喩固知孝思之切, 於此不能自已者. 然風色如此, 不論他人, 雖賢昆仲, 寧能保其不漏露於三族之間耶? 此須他日面見子細商量, 亦未爲晩. 但恐衰朽風燭不定, 則是天之命也, 亦無可奈何矣. 書說緣此間禮書末了, 日逐更無餘功可及他事, 只略看得禹貢. 如冀洲分爲三段, 頗有條理, 易照管. 而諸州皆只作一段, 則太闊遠而叢雜矣. 恐皆合依冀州例, 而逐句之下夾注 某人曰某地在某州某縣’. 其古今州顯名不同, 有複見者, 亦並存之, 以備參考. 段後低一字, 大書 右某州第幾節’, 以圈隔斷. 而先儒有辨論通說處, 卽亦大字附於其下. (逾于河’ ‘過九江’)等處, 今所取程說只有辨而無解, 大是欠闕, 須更子細補足. 若今日自有所疑, 有所斷, 則更低一字寫之. (治粱及岐恐晁說爲是, 其餘固草草. 程泰之最著力說, 然亦不通. 蓋梁山在同州近河, 猶可言河流波及. 若岐山則在今鳳翔府, 自京兆府西去猶有六七百里, 觀地理圖可見其地勢之高且遠, 河水何由可及耶? 此類須載其本說而斷以非是, 則讀者曉然矣.) 如無此兩項, 則各留一二行空紙以俟, 恐後有補人者. 其導山處, 須以四列爲四段, 導水則一水爲一段. 段後亦如前例云 右導山第幾節’, ‘右導水第幾節’. 其通論疑斷亦如之. 如此則庶幾易看矣. 所寄冊子今却封還, 請依此格目作一草卷, 便中寄及也.

 

 

 

유정부에게 답함 答劉定夫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학문하는 태도를 논하고 있다.

 

학문하는 뜻에 대해서 말한 것은 매우 좋으나, 다만 말이 너무 많습니다. 비루한 제 생각에 학자는 많은 광망(狂妄)한 몸과 마음을 쉬고 허다한 쓸데없는 말을 제거하여 착실하게 독서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글자 수나 줄 수를 모두 찾고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오래되면 저절로 깨우치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학문은 책에 있지 않다 하여 책을 읽는 데에 힘쓰지 않으며, 입과 귀를 전일하게 하지 않고 끝에 가서 장황하게 말하여 도무지 수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한바탕의 아주 소탈(疎脫)하고 공허(空虛)함일 뿐이니, 바로 미워해야 할 것입니다. 보내온 글을 자세하게 읽어 보았는데 오히려 이런 뜻이 있는 듯하니, 구구한 내가 듣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所喩爲學之意甚善, 然說話亦已太多. 鄙意且要得學者息却許多狂妄身心, 除却許多閑雜說話, 著實讀書. 初時儘且尋行數墨, 久之自有見處. 最怕人說學不在書, 不務佔畢, 不專口耳, 下稍說得張皇, 都無收拾, 只是一場大脫空, 直是可惡. 細讀來書, 似尙有此意思, 非區區所欲聞也.

 

 

유정부에게 답함 答劉定夫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보내온 편지의 사기(詞氣)가 지난 번 보다 더 경솔합니다. 또 자신의 본분에 의거하여 독서하고 행동하고, 이와 같은 엉터리 말을 좋은 것으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來書詞氣狂率, 又甚往時. 且宜依本分讀書做人, 未須如此胡說爲佳.

 

 

포현도()에게 답함 答包顯道()

 

말씀하신 한쪽으로 지극히 함[致曲]’은 이와 같이 말한다 해도 공부하는 데 있어 안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성은 다하는 것은 곧 자연스럽게 다하는 것이지 직처(直處)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쪽으로 지극히 함[致曲]이란 단지 측은한 곳에서 그 인()을 확충하고, 부끄러워하는 곳에서는 그 의()를 확충할 뿐인 것입니다. 비록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으나 이를 어찌 줄일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보내온 편지가 여전히 세미한 것을 소홀히 하고 고상하고 신묘한 데로 곧바로 달려간 뜻이 있습니다. 자연(子淵)이 편지를 보내와 현도(顯道)가 이설(異說)로 이미 스스로를 씻었다고 하기에, 나는 진실로 자연의 말을 의심했었습니다. 지금 이 편지로 징험하고 보니 바로 과연 의심한 것과 같음을 알겠습니다.

所諭 致曲’, 如此說於功夫無不可, 但盡性乃是自然盡得, 不可謂之直處用工耳. 致曲只是於惻隱處擴充其仁, 羞惡處擴充其義耳. 雖在一偏, 此却如何少得耶? 大率來喩依舊有忽略細微徑趨高妙之意. 子淵書來云: ‘縣道於異說已自洗濯’, 熹固疑之. 今以此驗之, 乃知果如所疑也.

 

 

포현도에게 답함 答包顯道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선학(禪學)에 빠진 잘못을 질타하고 있다.

 

이미 독서하는 것을 면하지 못했다면 일찍이 크게 힘을 들여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니 다시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지난 번 앞서 과거에 응시했던 과문(科文)을 보니 처음부터 꾸짖기를 마치 사람이 술에 취해 발광하여 길거리에 나가 사람을 구타하는 듯하여 구제하고 권장할 수가 없다고 마음으로 매우 의심하였습니다. 이제야 바로 그 병통이 있는 것을 알겠습니다.

旣未免讀書, 則不曾大段著力理會, 復是何說? 向見前擧程文, 從頭罵去, 如人醉酒發狂, 當街打人, 不可救勸, 心甚疑之. 今乃知其病之有在也.

 

 

포상도에게 답함 答包詳道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포현도와 포상도, 포상 형제의 학문을 평하고 있다.

 

그대는 자품이 독실하니 참으로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바이네. 전번 편지에 운운(云云)한 것은 구차하게 자네를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네. 다만 현도(顯道)에게 준 강론(講論)을 보니, 도리어 지난 해 서로 보지 못한 때의 소견과 같지 않은가 싶네. 대개 익숙한 곳은 잊기 어렵지만, 갑자기 들은 것은 갑작스레 들어가지 않아 다시 잃어버릴 따름이네.

󰡔대학󰡕에 대한 나의 설을 근래에 보니 아직도 온당하지 못한 곳이 있어서 매우 평정하지 못하네. 대략 고치고 수정했는데 봉정(奉呈)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네. 그러나 현자가 본다면, 더욱 반드시 믿지 않을 것이네. 대저 나의 소견 같은 것은 물러날수록 더욱 평이하고, 현자의 소견은 나아갈수록 더욱 험하니, 피차가 같지 않아 끝내 쉽게 합치되지 않을 것이네. 그대로 두고 각각 그 믿는 바를 믿어서 오래되면 어떠한가를 보는 것이 마땅할 따름이네. 현도(顯道)는 근본처(根本處)가 역시 종전(從前)의 소견인데 단지 이 가운데 약간 유학의 설을 더하였을 뿐이네. 민도(敏道)의 영제(令弟)와 같은 사람은 논의의 수준이 매우 높으니, 내가 더욱 감히 알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詳道資稟篤實, 誠所愛重. 前書云云, 非以苟相悅也. 但觀所與顯道講論, 竊恐却與去歲未相見時所見一般. 蓋熟處難忘, 所驟聞者未能遽入而復失之耳. 大學鄙說近看尙有未安處, 却是未甚平正. 方略竄定, 恨末得奉呈. 然使賢者見之, 愈未必信. 大抵如憙所見愈退而愈平, 賢者所見愈進而愈險, 彼此不同, 終未易合. 且當置之, 各信其所信者, 卽看久遠如何耳. 顯道根本處亦且是從前所見, 但添得此中些說話. 如敏道令弟, 則立論又甚高, 尤非憙之所敢知耳.

 

 

포상도에게 답함 答包詳道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학문의 방법과 태도를 논하고 있다. 下學해서 上達하는 것이 유학의 공부방법론이다.

 

학문하는 뜻에 대하여 보내 온 편지는 스스로 믿고 이와 같이 의심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이 오히려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고인이 학문한 것을 보면 단지 높은 곳에 오를 때에는 아래로부터 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실지를 밟아 점차 해결하고 벗겨서 인욕이 스스로 없어지고 천리가 자연히 밝아졌습니다. 이와 같이 억지 공부를 하여 반드시 활연(豁然)히 돈오(頓悟)한 뒤에 점차 수행하는 것은 없었던 같습니다. 증자(曾子)의 공부는 단지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물에 임하고 얕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한 것이 종신토록 한 일이고, 중간에 한 번 라고 한 것은 대개 기약하지 않은 기회에 우연히 터득한 것이지 별도로 일절(一節)의 공부가 있어서 여기에 이르렀던 것은 아닙니다. 증자 본심의 지향(志向)이 반드시 이를 얻은 뒤에 하학(下學)의 공부를 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시비를 논해야 하고 평험(平險)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옳으면 반드시 평정할 것이니 옳지 않은 까닭으로 험()이 있을 뿐입니다. 이를 설명하자면 매우 기니 한 폭의 편지에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示喩爲學之意, 自信不疑如此, 他人尙復何說? 然觀古人爲學只是升高自下, 步步踏實, 漸次解剝, 人欲自去, 天理自明, 無似此一般作捺紐捏底功夫, 必要豁然頓悟, 然後慚次脩行也. 曾子功夫, 只是戰兢臨履是終身事. 中間一唯, 蓋不期而會, 偶然得之, 非是別有一節功夫做得到此, 而曾子本心蘄向, 必欲得此, 然後施下學之功也. 所論當論是非, 不當論平險者甚善, 然是則必平正, 緣不是, 故有險耳. 此說甚長, 非幅紙可旣也.

포상도에게 답함 答包詳道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앞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독서와 궁리, 강학을 하지 않는 선학의 폐단을 비판하고 있다.

 

보내 주신 곡절(曲折)에서 족히 도를 전진시키는 노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만약 기질이 편벽(偏僻)되었는데 단지 이와 같이 힘을 쓴다는 말이라면, 근본에 가깝게 되는 것을 잃지 않고 홀로 그 몸을 선하게 함에 득력(得力)하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도리어 성문(聖門)의 학문이 단지 이와 같다고 하여 전혀 강학을 할 필요가 없고 독서 궁리는 장애가 된다는 말이라면 이런 도리는 없습니다.

안자(顔子)가 한 번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대해서 물었는데, 부자(夫子)께서 문득 사대(四代)의 예악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만약 평소에 모두 강학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깨달았겠습니까? 󰡔예기󰡕에 증자문(曾子問) 한 편이 있어서 예문(禮文)의 변화를 남김없이 다 밝혔으니, 어찌 흐리멍텅하게 아무 것도 강학하지 않았겠습니까? 동파(東坡)가 연화루명(連華漏銘)을 짓자, 위박(衛朴)이 자기가 눈이 없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보는 것을 폐하고자 한다고 기롱(譏弄)했는데, 보내 온 편지에서 말한 것도 또한 이와 비슷함이 없는지요?

示喩曲折, 足見進道之力. 然若謂氣質之偏, 只得如此用力, 則固不失爲近本而於獨善其身有得力處. 今却便謂聖門之學只是如此, 全然不須講學, 纔讀書窮理, 便爲障蔽, 則無是理矣. 顔子一問爲邦, 夫子便告以四代之禮樂. 若平時都不講學, 如何曉得? 禮記有曾子問篇, 於體文之變纖悉曲盡, 豈是塊然都不講學耶? 東坡作蓮華漏銘, 諸衛樸以己之無目而欲廢天下之視. 來喩之云, 無乃亦類此乎.

 

 

포민도에게 답함 答包敏道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앞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맹자의 마음 공부를 잘못 이해하고 선학에 빠진 폐단을 비판하고 있다.

 

보내 주신 편지는 이미 다 보았습니다. 놓아버린 마음을 구하는 것(求放心)이 진실로 제일 중요한 것이지만, 이른바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을 일정하게 하고 호연(浩然)히 홀로 보존하여, 여기에서 갓난아이의 마음을 완전히 회복시키고, 여기에 의의 근본을 세움을 밝힌 이후에 그 듣고 보지 못한 것을 구하여 듣고 본다면, 또한 거쳐야 할 단계를 뛰어넘고 순서가 뒤바뀌어 그 말을 쉽게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현이 사람에게 가르쳐 주신 모범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근래에 선학(禪學) 가운데 사이비한 것을 골라 이런 설로 전환해서 후생을 그르치고 있습니다. 후생이 그 이론이 고상하고 힘쓰기가 쉬운 까닭에 기뻐하고, 겸허하게 독서하여 성현이 제시한 문호(門戶)를 구하기를 기꺼워하지 않고, 입으로 (선학의) 이 설을 전파하며 스스로를 고상하게 표방하니, 도를 문란하게 하고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보내 온 편지를 세 번이나 반복하여 읽어 보니 이를 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인편에 보내오니,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우 경솔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示喩已悉. 求放心固是第一義, 然如所謂軌則一定而浩然獨存, 使赤子之心全復於此, 而明義之本先立於此, 然後求聞其所未聞, 求見其所末見, 則亦可謂凌躐倒置而易其言矣. 聖賢示人, 模範具在. 近世乃有竊取襌學之近似者, 轉爲此說, 以誤後生. 後生喜其爲說之高, 爲力之易, 便不肯下意讀書, 以求聖賢所示之門戶, 而口傳此說, 高自標致, 亂道誤人, 莫此爲甚. 三復來喩, 恐末免此. 因便布聞, 末知明者以爲如何? 第深僭率之愧而已.

 

 

포민도에게 답함 答包敏道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편지를 받아 보니, 거친 마음과 부화한 기운이 다 없어져 가고 한가하게 지내는 의미가 자못 얕지 않다 하니, 이와 같이 자신을 허여(許與)하면 다른 사람이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저는 다만 그 허물을 적게 하고자 하나 하지 못함을 깨달을 따름입니다.

承喩粗心浮氣剝落向盡, 閑居意味殊不淺, 自許如此, 他人復何所道? 區區但覺欲寡其過而未能耳.

 

 

포민도에게 답함 答包敏道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포민도에게 보내는 마지막 글이다. 끝내 도모할 수 없음을 알고,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있다.

 

보내 주신 편지는 다 보았습니다. 다만 도가 이미 같지 않는지라 서로 도모할 수 없으니, 다시 분분하게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지금 이후에 다만 친구로 서로 처신하여 문안 편지나 주고받으면 족하겠습니다. 구괘(九卦)를 이와 같이 설명하는 것은 지난번의 편지 내용과 서로 모순되는 것 같습니다. 한번 웃고 말겠습니다.(더 이상 논쟁할 가치도 없으니 一笑에 부칩니다.)

所喩已悉. 但道旣不同, 不相爲謀, 不必更紛紛. 今後但以故人相處, 問訊往來足矣. 九卦若如此說, 却似與前幅自相矛盾也. 一笑.

 

 

부순공()에게 답함 答符舜功 ()

 

일찍이 경() 한 글자가 바로 성학(聖學)의 시작과 끝을 일관하는 핵심이니, 아직 모르는 사람은 경이 아니면 알 수 없고, 이미 아는 사람은 경이 아니면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대체를 안 뒤에 경으로 지킨다고 한다면, 저 경()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마음이 전도되고 어지러워 겨를이 없을 것이니, 또 장차 어떻게 대체를 살펴서 알겠습니까?

嘗謂敬之一字乃聖學始終之要, 未知者非敬無以知, 已知者非敬無以守. 若日先知大體而後敬以守之, 則夫不敬之人其心顚倒繆亂之不暇, 亦將何以察夫大體而知之耶?

 

 

부복중()에게 답함 答符復仲 ()

 

해제이 글은 순희 10(계묘, 1183, 54)에 쓴 편지이다. 육자정의 문인이자 자신에 배움을 구하는 부복중에게 보내는 격려의 글이다.

 

도를 향하는 뜻이 매우 부지런하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 의()와 이()의 사이에 대해서 말한 것은 참으로 가리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생각건대 이()에 가깝다고 의심되는 것은 바로 버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향후에 보는 것이 친절해져서 도리어 옛 일을 돌아보면 단지 다 보지 못하고 다 버리지 못한 것이 있을 뿐, 지나침이 있었음을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육장(陸丈)이 답한 편지를 보니, 그 말이 명백하고 합당합니다. 또 이에 나아가 굳게 지키면 저절로 공효를 볼 것이니, 아무쪼록 많이 의심하고 많이 묻다가 도리어 더욱 미혹되지는 않아야 할 것입니다.  

聞向道之意甚勤, 向所喩義利之間, 誠有難擇者. 但意所疑以爲近利者, 卽便舍去可也. 向後見得親切, 却看舊事, 只有見末盡舍未盡者, 不解有過當也. 見陸丈回書, 其言明當. 且就此持守, 自見功效. 不須多疑多問, 却轉迷惑也.

 

 

부복중에게 답함 答符復仲

 

󰡔역전(易傳)󰡕을 읽었다고 하니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명백(明白)하고 정심(精深)하여, 읽기는 쉽지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름지기 󰡔논어󰡕󰡔맹자󰡕󰡔시경󰡕󰡔서경󰡕의 명백한 곳을 겸하여 말하여야 이에 맛이 있을 것입니다.

且讀易傳甚佳, 但此書明白而精深, 易讀而難曉, 須兼論孟及詩書明白處謂之, 乃有味耳.

 

 

부국단에게 답함 答符國瑞

 

해제이 글은 순희 10(계묘, 1183, 53)에 쓴 편지이다. 선학에 대한 경계와 함께, 부탁한 묘액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보내 주신 편지에서 학문하는 뜻을 갖추어 말하셨고, 또 숙부님의 말씀도 자세함을 볼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이미 이런 뜻을 가지고 있으면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신칙하는 곳에도 또한 마땅히 힘써야 하고, 문득 헛된 말을 제멋대로 하며 말단을 싫어하고 근본을 구해서는 안 되니, 혹시 경망스러운 데에 빠져 도리어 잃게 될까 두렵습니다. 묘액(墓額)을 써 달라고 하였는데, 우연히 견비통(肩臂痛)이 나서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인(仁人)과 효자(孝子)가 그 어버이를 드러내는 것이 꼭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辱書, 具道爲學之志, 又見令叔爲言曲折, 甚善. 旣有此志, 則窮理飭躬處且當勉力, 未可便肆虛談, 厭末求本, 恐或流於輕妄而反矢之也. 所需墓額, 偶苦臂痛, 不能寫. 然仁人孝子所以顯其親者, 正亦不在此也.

 

 

황기선에게 답함 答黃幾先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보내주신 편지는 잘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각각 그 뜻을 힘써서 자립하고 세한(歲寒)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하필 이렇게 끊임없이 번거롭게 집례(執禮)의 공경을 하는가! 늙고 병듦이 요새 극렬하고, 순공(舜功)이 사람을 보내 재촉하니, 이 점을 자세히 언급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또한 상세할 것도 없습니다.

示喩巳悉. 但旣曰各勉其志以自立而有待於歲寒, 則何必爲此縷縷而煩執禮之恭哉! 衰病比劇, 舜功遺人行速, 布此不及詳. 然亦無以詳爲矣.

 

 

진초종에게 답함 答陳超宗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육상산 문하의 공부방법론을 비판하고 있다.

 

보내 온 편지에 예전 나의 논의에 미진한 점이 있다고 한 것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학문을 하는 것에 비록 점차적인 단계가 있으나, 처음 뜻을 세우면 또한 모름지기 의리의 대개와 규모를 대략이나마 보아 자기의 마음 사이에 척연(惕然)히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고 분연히 용맹하게 결단하는 뜻이 있은 뒤에야 토론하고 완색하는 공부와 존양하고 성찰하는 힘을 더하여 터득함이 있기를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학문에 뜻을 둔다는 것과 분발하여 밥 먹는 것조차 잊는다는 것이 바로 이를 위한 것입니다. 만약 유유(悠悠)하고 범범(泛泛)할 뿐 시작하여 손 쓸 곳도 없는데, 그저 이와 같이 대충 해나가면 된다고 하면 이른바 장경(莊敬) 지양(持養)과 반드시 일삼을 것이 있다는 것도 또한 있는 듯 없는 듯하여 한갓 움켜잡는 데만 힘을 들이고 정밀 정확하고 친절히 지극함에 이르는 공효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육상산 문하)은 참으로 편파적이니, 지난날의 말은 바로 저들 무리의 병통입니다. 현자의 약을 자료로 하면 유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보건대, 반드시 저들의 설을 취하지 않고자 한다면, 성현이 말씀하신 사리를 자기의 마음에 나아가 한 곳에서 보고 얻음에 따라 지켜나가고 그것이 오래 축적되면 저절로 깨닫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示喩向來鄙論有未盡者, 甚善甚善. 但爲學離有階漸, 然合下立志, 亦須略見義理大槪規模, 於自己方寸間若有箇惕然愧懼奮然勇決之志, 然後可以加之討論玩索之功存養省察之力而期於有得. 夫子所謂志學, 所謂發憤, 政爲此也. 若但悠悠泛泛, 無箇發端下手處, 而便謂可以如此平做將去, 則恐所謂莊敬持養必有事焉者, 亦且若存若亡, 徒勞把捉, 而無精明的確親切至到之效也. 但如彼中誠是偏頗, 向日之言正爲渠輩之病, 却是賢者之藥恐可資以爲益耳. 以今觀之, 政不必爾, 但將聖賢之言事理別己心上作一處看, 隨得隨守, 則久之須自有開明處也.

 

 

진초종에게 답함 答陳超宗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공부, 남의 득실이나 따지는 공부는 경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보내 준 편지는 이미 보았습니다. 다만 이와 같이 안배하고 배치하는 것은 모두 병통입니다. 또 잘못된 글을 내세우고 안주하려는 것은 더욱 큰 병통입니다. 만약 진실하게 공부를 하는 사람은 단지 이 한 생각의 사이에 문득 착실히 발 딛고 있는 실제로부터 해 나갈 것이니, 어느 겨를에 이와 같이 비교하고 의논하며 꾸며서 점검하겠습니까? 아무쪼록 타인의 득실을 깊이 의논해서는 안 되니, 도리어 저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示喩已悉, 但如此安排布置, 都是病痛. 又如必欲繆札安立標榜, 尤是大病. 若是眞實做工夫底人, 只此一念之間, 便著實從脚根下做將去, 何暇如此擬議粧點邪? 不須深議他人得失, 政恐未免反爲彼所笑也.

 

 

진초종에게 답함 答陳超宗

 

해제이 글은 순희 14(정미, 1187, 58)에 쓴 편지이다.

 

보내 준 편지에서, “스스로 이미 옛날과 매우 구별되는 것을 깨달았으나 간간이 작은 실수가 있는 것을 면하지 못했다하니, 과연 이런 데 이르렀다면 바라던 나의 마음에 매우 위로가 됩니다. 다만 접 때 생각한 것과 근래에 편지에서 논한 바를 보니, 착실히 공부할 곳에 오히려 친절하지 않은 듯 합니다.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또 더욱 안으로 마음을 써서 이처럼 밖으로 향하여 꾸며서 점검하고 안배하는 마음을 모두 쓸어버리면 오래 지나서 혹 크게 진보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 말과 같이 오늘 공을 들여서 내일 효과를 본다면, 그것은 일찍이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딱 알 수 있을 것입니다.

示喩自覺已與舊時逈別, 但未免間有小失, 果能至此, 甚慰所望. 但向來商量及得近書所論, 似於著實下功處猶未親切, 不知如何便得到此? 恐可且更向裏用心, 將此等向外粧點安排底心一切掃去, 久久或有長進耳. 若如此說, 今日用功, 明日見效, 則其不曾下功斷可知矣.

 

 

안자견에게 답함 答顔子堅

 

해제이 글은 순희 10(계묘, 1183, 54)에 쓴 편지이다. 당시 안자견이 불교에 심취하여 머리를 깎고 중이 되려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이 편지를 써서 유학의 정신을 설명하는 동시에 중이 되려는 것을 재고하라고 청하고 있다.

 

79일 저는 머리를 조아리고 안군 그대에게 글을 아룁니다. 포현도(包顯道)가 이곳에 있을 때, 그대의 뛰어남을 자주 칭찬했는데 한 번 만나 보지 못한 것을 늘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편지를 받고 단아한 뜻을 두루 보았으니 또한 만나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고인의 학문이 책에 있지 않고반드시 이른바 통종회원(統宗會元)’에 있다고 한 점은 어리석은 나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성인이 사람을 가르칠 때에 박문약례(博文約禮)하고 학문사변(學問思辨)하고 이를 힘써 행하도록 했으니,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함과 경전의 구절을 외우는 것으로부터 의()를 정밀히 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고[精義入神] 만 가지 변화를 수작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 차례를 속일 수 없습니다. 만약 학문은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오로지 책만을 읽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 괜찮지만, 만약 책에 있지 않고 오직 통종회원(統宗會元)을 구함에만 있다고 하면 이는 망령된 생각으로 등급을 뛰어넘어 그릇된 학설과 잘못된 행위에 빠질 것이니, 성현이 전한 바른 길이 아닙니다.

보내 온 편지를 살펴보니, 사기(詞氣)의 사이에 경솔함과 오만함이 있어서 자못 근후(謹厚)하고 독실한 뜻은 없습니다. 생각건대, 그대는 하학(下學)의 공부에 일찍이 뜻을 더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 장남헌(張南軒)과 육상산(陸象山) 두 군자를 보았을 때, 그 분들이 가르쳐 준 것이 과연 무슨 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듣건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내 몸의 중요성과 하늘의 법칙과 하늘의 질서[天敘天秩]의 융성함을 생각하지 않고, 바야흐로 장차 관면(冠冕)을 헐고 찢어 오랑캐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니, 또 매우 맥이 풀립니다. 그대가 경부(敬夫: 장남헌)를 존경하면서, 거꾸로 이와 같은 것을 추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또한 이른바 통종회원을 숭상하여 그대로 하여금 여기에 이르게 했습니까? 현도(顯道)는 충고하여 저지하지 못했으니 이미 벗의 직분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절부(節夫)는 돕기까지 하였으니 군자가 사람을 사랑하는 뜻이 더더욱 아닙니다. 이미 사조첩(祠曹牒)을 받고 머리를 깎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급히 이 글을 써서 역마(驛馬)에 부쳐 알립니다. 바라건대 그대는 이제 다시 생각하여 혹시 뜻이 이미 결정되었더라도 또 다시 자정(子靜)과 더불어 도모하여 반드시 이론(異論)이 없는 뒤에 하여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도가 같지 않아 서로 도모하지 못할 것이니, 나는 그대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 바를 모르겠습니다. 가을 기운이 점점 차가워지니 몸조심 하십시오.

七月九日, 某頓首復書顔君足下: 包顯道在此, 數稱吾子之賢, 每恨未獲一見. 辱書, 備見雅志, 亦足以富晤言矣. 然所謂古人學問不在簡編, 必有所謂統之宗會之元者, 則僕之愚於此有未諭也. 聖人敎人博文約禮, 學問思辨而力行之, 自灑掃應對章句誦說以至於精義入神酬酢萬變, 其序不可誣也. 若曰學以躬行心得爲貴, 而不專於簡編則可, 若曰不在簡編而惟統宗會元之求, 則是妄意躐等, 以陷于邪說披行之流, 而非聖賢所傳之正矣. 抑觀來書詞氣之間輕揚傲誕, 殊無謹厚篤實之意, 意者吾子於下學之功有未嘗加之意者. 不知往年見張陸二君子, 其所以相告者果何事也? 又聞不念身體髮膚之重, 天叙天秩之隆, 方將毁冠裂冕以從夷狄之敎, 則又深爲惘然. 不意吾子知尊敬天而所趨者若是. 豈亦所謂統宗會元者之爲崇, 而使吾子至於此邪? 顯道不能諫止, 已失朋友之職. 節夫更有助緣, 尤非君子愛人之意也. 聞已得祠曹牒, 髡剃有期, 急作此附遞奉報. 願吾子於此更人思慮, 或意已決, 亦且更與子靜謀之, 必無異論而後爲之, 似亦未晩. 如曰不然, 則道不同不相爲謀, 僕不知所以爲子計矣. 秋氣向凉, 餘惟自愛.

 

 

웅몽조에게 답함 答熊夢兆

 

해제이 글은 순희 10(계묘, 1183, 54)에 쓴 편지이다. 웅몽조의 물음에 주희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편지이다. 그 내용은 심성정을 비롯한 유학의 핵심 개념들, 공부 방법, 사서의 구체적 내용에서 불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넓다.

 

천명(天命)을 성()이라 하고 몸에 꽉 찬 것을 기()라고 하며 감촉(感觸)을 정()이라 하고 추향(趨向)을 세움을 지()라고 하며 생각한 바 있음을 의()라고 하고 쫓아가는 바 있음을 욕()이라고 합니다.

天命謂性, 充體謂氣, 感觸謂情, 主宰謂心, 立趨向謂志, 有所思謂意, 有所逐謂欲

 

이 말은 혹은 옳고 혹은 옳지 않으니 모두 억측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컨대 급작스럽게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함영(涵泳)하고 완색(玩索)하기를 오래하면 마땅히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此語或中或否, 皆出臆度. 要之未可遽論, 且涵泳玩索, 久之當自有見.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학자는 타고난 자질이 평범하고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여 그로 하여금 중행(中行)을 배우게 하면 게으르고 폐이(廢弛)하여 길들인 습관을 따르기 때문에 모름지기 분발해서 호매(豪邁)한 기운으로 옛 습관에서 뛰쳐나온 뒤에야 중()을 구하는 것이다. (이는) 공자께서 중행(中行)[중도(中道)]의 선비를 얻어 더불 수 없다면 반드시 광자(狂者)나 견자(狷者)와 더불어 할 것이라 하신 까닭이다. 제 생각으로는, 배운 바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어 쭉 계속해서 치우쳐 갈 것이니, 아마도 먼저 광견(狂狷)한 후에 중행(中行)하는 이치는 없을 것입니다.

或云: ‘學者天資庸常, 舊習未去, 合令他學中, 則怠墮廢弛, 循常習故去. 須是奮發, 有豪遇之氣, 出得舊習了, 然後求中. 所以孔子道󰡔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竊謂所學少差, 便只管偏去, 恐無先狂後中之理.

 

어떤 사람의 설은 노력을 기울이는 곳에 잘못이 있을 뿐 아니라 중자(中字)의 설명 또한 잘못됐습니다. 후설이 맞습니다.

或人之說非惟用力處有病, 亦說壞了中字. 後說得之.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명도(明道)거처할 적에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할 적에 공경하며, 사람을 대할 적에 충성스럽게 해야 한다. 이것을 마친 것이 바로 위와 아래를 관통하는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철하어(徹下語)라 합니까? 거처할 적에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할 적에 공경하며, 사람을 대할 적에 충성스럽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형이하자(形而下者)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름지기 그 공()하는 까닭, ()하는 까닭, ()하는 까닭과 그 유래가 무엇인가로부터 써 이목구비와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런 것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이를 마치면 바로 정상(頂上)을 투과(透過)하여 가니, 바로 천명(天命)이요 천성(天性)이며, 순수(純粹)하게 천리(天理)입니다. 이것이 바로 형이상자(形而上者), 철상어(徹上語), 일체혼연(一體渾然)한 일이니 원래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를 마치면 다른 선종(禪宗)의 허다한 궤변(詭辯)과 설화(說話)를 모두 간파할 것입니다.

或云: 明道說 居處恭, 執事敬, 輿人忠, 了此便是徹上徹下語.’ 且道如 何是徹下語?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此是形而下者. 然於此須察其所以恭所以敬所以忠, 其來由如何, 以至耳動皆然, 了此便透頂上去, 便是天命, 天性, 純乎天理. 此是形而上者, 是徹上語, 是一體渾然底事, 元無兩般. 能了此, 則他禪宗許多詭怪說話皆見破.

 

만약 이와 같이 말한다면, 이는 스스로 이단(異端)에 빠져서 스스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그를 보고 설파할 것인가.

若如此說, 是乃自陷於異端而不自知, 又如何見得他破?

 

: 항상 지경(持敬)을 배워, 책을 읽으면 마음이 책에 있고 일을 하면 마음이 일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니 상당히 효력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단지 눈을 감고 정좌(靜坐)할 때에 사려(思慮)를 내 보내려 했지만 없애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는 눈을 감았을 때, 이미 망상(妄想)의 단서가 생긴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책에 있고 일을 하면 마음이 일에 있는 것은 단지 마음을 거두어 모으는 것일 뿐이지 경의 본체를 보지는 못한 것입니다.

常學持敬, 讀書心在書, 爲事心在事, 如此頗覺有力. 只是暝目靜坐時, 支遺思慮不去. 或云只暝目時, 已是生妄想之端. 讀書心在書, 爲事心在事, 只是收聚得心, 未見敬之體.

 

: 정좌하고 사려를 내 보내지 못한 것은 정좌할 때 일찍이 경()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은 단지 경일뿐이니, 다시 어떤 경의 본체를 찾겠습니까? 이처럼 지리(支離)하면 병통이 더욱 많아 다시는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단지 억지로 안배하고 근거도 없이 조작하게 될 것입니다.

靜坐而不能遺思慮, 便是靜坐時不曾敬. 敬則只是敬, 更尋甚敬之體? 似此支(5-2798), 病痛愈多, 更不曾得做功夫, 只了得安排杜撰也.

 

: 늘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일을 할 때마다 문득 사사로운 마음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이()를 보고자 하면 마땅히 함께 이겨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每有喜好適意底事, 便覺有自私之心. 若欲見理, 莫當便與克下?

 

: 이런 일은 도리를 보는 것이 분명하면 자연히 소멸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급박하게 하면 도리어 병통이 생길 것입니다.

此等事見得道理分明, 自然消磨了. 似此迫切, 却生病痛.

 

이천(伊川)은 상채(上蔡)에 대해, 다만 이 긍자(矜字)만 버리면 된다 했습니다. 상채(上蔡)는 재주가 뛰어나지만 병통(病痛)의 까닭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上蔡對伊川也, 只是去箇. 上蔡才高, 所以病痛盡在此.

 

이 말은 맞습니다.

此說是.

 

부모는 자식을 한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자식이 총명하기를 바라고 성공하기를 바라는데, 이를 성심(誠心)이라고 합니까?

父母之於子, 有無窮憐愛, 欲其聰明, 欲其成立, 此謂之誠心耶?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함은 바른 것입니다. 사랑이 무궁하여 반드시 그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사심(邪心)이다. 이는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문제이니 정당하게 살펴 결정해야 합니다.

父母愛其子, 正也. 愛之無窮, 而必欲其如何, 則邪矣. 此夫理人欲之間, 正當審決.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는 도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待人接物之道如何?

 

처심(處心)하고 지기(持己)하는 도리를 알게 되면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는 데에 저절로 준칙이 있을 것입니다.

知所以處心持己之道, 則所以接人待物自有凖則.

 

근일에 오로지 󰡔논어정의(論語精義)󰡕를 보고 있습니다. 이를 읽는데 어떤 방법이 있는지요?

近專看諭語精義, 不知讀之當有何法?

 

별로 방법이 없으며 다만 마음을 비워 숙독(熟讀)하여 살피고 가려야 한다.

別無方法, 但虛心熟讀而審擇之耳.

 

노인을 편안케 하고 젊은이를 감싸주는 덕행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절목(節目)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만 통합해서 말하니 학자들이 겸애(兼愛)로 흐를까 걱정됩니다.

安老懷少, 恐其間多有節目. 今只統而言之, 恐學者流爲兼愛去.

 

이는 대강의 규모일 뿐이지 아직 절목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此是大槪規模, 未說到節目處.

 

학자가 인()에 뜻을 두면, 비록 그 추향(趨向)은 이미 바르다 하더라도 심념(心念)이 꼭 순선(純善)하지는 못할 것이니 어찌 악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學者有志於仁, 雖其趨向已正, 而心念未必純善, 豈得言無惡也?

 

()에 뜻을 두면 비록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인()에 뜻을 두지 않기 때문에 악을 하는데 이르는 것이다. ’()라는 글자를 대충 보아서는 안 됩니다.

志於仁, 則雖有過差, 不謂之惡. 惟其不志於仁, 是以至於有惡. 字不可草草看.

 

부귀와 빈천(貧賤)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거처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이는 대현(大賢) 이하(以下)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대현(大賢) 이상(以上)의 경우에는 부귀빈천(富貴貧賤)에 처()하기를 오직 한결같을 것이니 다시 이와 같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성현의 말씀은 대부분 학자를 위하여 발언한 것입니다. 만일 성인과 같은 뛰어난 분들이라면 굳이 꼭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단 이 장()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富貴貧賤不以道得不去處之說, 此是爲大賢已下設. 若太賢以上, 則處富貴貧賤只如一, 更不消如此說. 聖賢之言多是爲學者發, 若是聖人分上, 固是不須說, 不但此章而已也.

 

성인은 힘쓰지 않고 사려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제 󰡔상서󰡕에는 전수하는 뜻을 실으면서 말하기를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고 하였는데, 아래의 ’()이라는 글자는 대단한 힘을 쓰라는 것 같은데 어떠한지요?

聖人不勉不思, 今書載傳授之旨云: ‘允執厥中’, 下一字似亦大段喫力, 如何?

 

성인은 원래 부사부면(不思不勉)하나, 만일 성인이 스스로 불사불면의 뜻을 둔다면 아무 생각을 못하게 되어 미치게 될 것이다. 경서엔 이와 같은 류()의 말이 하나 둘이 아니니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십시오.

聖人固不思不勉, 然使聖人自有不思不勉之意, 則罔念而作狂矣. 經言此類非一, 更細思之.

 

공자께서 말하기를 󰡔시경󰡕 관저(關雎)편에서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해치지 않는다하니, 이는 즐거움이 음란에 이르지 아니하며 슬픔이 정신을 상하게 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다는 것인데, 지금 󰡔시경󰡕의 서문에는 애락음상(哀樂淫傷)을 네 가지 일로 만들었으니 󰡔논어󰡕의 뜻을 착각한 것 같습니다. 이런 까닭에 대서(大序)는 공자가 지은 것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孔子言關雎樂而不淫, 哀而不傷, 是言樂不至於淫, 哀不至於傷. 今詩序將哀樂淫傷判作四事說, 似錯會論語意. 以此疑大序非孔子作.

 

이 주장은 맞다. 대서는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겠습니다.

此說得之, 大序未知果誰作也.

 

대아와 소아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정사(政事)와 도()를 언급하였기 때문에 대아라고 하며, 다만 정사(政事)를 말하였기 때문에 소아라고 한다고 말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와 같이 분별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大雅小雅, 或謂言政事及道, 故謂之大雅; 止言政事, 故謂之小雅. 竊恐不可如此分別.

 

이와 같이 분별함은 진실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지 분별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두 아()의 이름을 또한 어떻게 변별하겠습니까?

如此分別固非是, 然但讚不可分別, 則二雅之名又何以辨耶?

 

오백(五伯), 진목공(秦穆公)이 일찍이 중하의 동맹을 주도하여 그 수에 포함된 적이 없고, 진도공(晉悼公)이 일찍이 맹주(盟主)가 되어 초()나라를 물리치고 정()나라를 복종시켰는데, 왜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五伯, 秦穆未嘗主盟中夏, 乃與其數; 晉悼嘗爲盟主, 却楚服鄭, 何故不與?

 

이것들은 상고한 바가 없고, 또한 구설(舊說)에 의거한 것이다. 또 곤오(昆吾) 시위(豕韋) 대팽(大彭)의 설이 있으니, 또한 겸존(兼存)함이 가할 것입니다.

此等無所考, 且依舊說. 又有昆吾豕韋大彭之說, 亦兼存之可也.

 

불교의 잘못은 첫째, 사사로이 자신만 이롭게 하고 삶과 죽음을 싫어하니, 학문하는 대체가 이미 글렀고, 둘째, 인륜을 멸절(滅絶)함이요, 셋째, 곧바로 상달(上達)을 구하고 하학(下學)에 힘쓰지 않으며 편벽(偏僻)하여 갖추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 잘못이 진실로 이에 그치지 아니하나 그 대체는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竊謂釋氏之失, 一是自私自利, 厭死生, 爲學大體已非. 二是滅絶人倫, 三是徑求上達, 不務下學, 偏而不該. 其失固不止此, 然其大處無越是三者.

 

꼭 그렇게 주장할 일은 아닙니다.

未須如此立論.

석씨(釋氏)가 말한 윤회(輪回) 전화(轉化)의 설은 전수 받은 선장로(禪長老)가 어디에 가서 생애(生涯)를 의탁(依託)하였는지 그 형적(形迹)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두고 기()는 흩어지고 이 성령(性靈)은 불멸(不滅)한다고 합니다. 이천(伊川)이 이를 듣고 만일 이미 폐사(斃死)한 기()가 다시 새롭게 펼쳐지는 기()가 된다고 하면, 이는 조화와 더불어 자못 서로 비슷하지 않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아마도 성령(性靈)의 설과 서로 상관없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요?

釋氏言輪回轉化之說, 所傳禪長老去何處託生, 其迹甚著, 是謂氣散而此性靈不滅. 伊川聞之曰: ‘若謂旣斃之氣復爲方伸之氣, 與造化殊不相似.’ 似與性靈之說不相干. 如何?

 

이와 같은 곳은 궁리(窮理)를 정숙(精熟)히 하면 자연히 마땅히 알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이 억측하여 논의할 것이 못됩니다.

此等處窮理精熟, 自當見得, 未可如此臆度論也.

 

 

안인의 오생에게 답함 答安仁吳生

 

해제이 글은 소희 3(임자, 1192, 63)에 쓴 편지이다. 오생이 거듭 편지와 심부름꾼을 보내 가르침을 청함에 답변하는 편지이다. 아직은 오생이 지나치게 자부하여 성현의 학문과는 거리가 있음을 지적하고 일상생활에서의 공부부터 시작할 것을 권하고 있다.

 

지난 해 보내 준 편지는 인편이 없어 답장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또 특별히 사람을 보내 물으시니 매우 지극한 뜻에 감동했습니다. 또 지향(志向)이 고원한 것을 알았으니 매우 기쁩니다. 그러나 보내 주신 편지를 세 번이나 반복하여 읽어 보니, 대개 이미 스스로 얻은 것이 깊다고 여겨 자신하고 의심하지 아니했으니, 다시 견문도 없는 노졸(老拙)한 사람에게 무엇을 취하려고 이와 같이 애써 간절하게 합니까? 가르침을 받았다고 여긴다면 내가 일찍이 그대에게 청한 적이 없었고, 나에게 알려지기를 구한다고 여긴다면 내가 일찍이 그대에게 청한 적이 없었고, 나에게 알려지기를 구한다고 여긴다면 쉽고 간단한 이치를 터득하여 오래갈 수 있고 크게 할 수 있는 군자가 이와 같이 급급하지 않을 듯합니다.

또 나와 그대는 처음에 서로 알지 못했는데, 보내 온 사람에게 물어 그대의 나이가 매우 젊고 집에 존중할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편지와 시서(詩序) 등은 모두 높고 거만하여 마치 노련한 사람이 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주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물건을 주면서도 부형(父兄)의 명이라 칭하지 않은 것은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양지(良知) 양능(良能)에 비추어 보아도 비슷한 바가 없을 듯합니다. 그대가 스스로 이미 이 마음을 얻고 이 이()에 밝다고 하나, 나는 그대가 말하는 이른바 마음이란 과연 어떤 마음이며 그대가 말하는 이른바 이()는 과연 어떤 이()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저 안자(顔子)는 즐거움을 일찍이 스스로 말한 적이 없고, 증석(曾析)의 뜻도 부자(夫子)께서 두 번 세 번 재촉하여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 남에게 갑자기 알리는 것을 기꺼이 여긴 것이 아닙니다. 어찌 이와 같이 자기 스스로 고상하다 하고 칭찬하여 오직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두려워합니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대의 사우(師友) 연원의 유래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서로 일러 준 것이 성현이 이()를 궁구하여 몸을 닦는 실지를 얻는 것이 아니고, 한갓 헛된 말로 서로 그르쳐서 그대로 하여금 광망(狂妄)하고 방자한 데에 빠뜨려 스스로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게 했습니다.

보내 주신 편지지와 연묵(硯墨)은 받고 할 말이 없어 감히 봉함을 뜯지 못하고, 보내온 심부름꾼에게 다시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대가 성현이 󰡔소학(小學)󰡕을 가르친 데에 조금이나마 힘을 쓴다면, 그 나아감에 순서가 있어서 끝내는 이르지 못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去歲辱書, 無便可報. 今又承專人枉問, 極感至意. 且知志尙之高遠, 爲可喜也. 然三復來示, 蓋已自謂所得之深而自信不疑矣, 復何取於老拙之無聞而動懇若是耶? 以爲見敎, 則僕未嘗有請於吾子; 以爲求知於僕, 則易簡理得, 可久可大之君子, 似不應若是其汲汲也. 且僕於吾子初末相識, 問之來使則知吾子之齒甚少, 而家有嚴君之尊焉. 今書及詩序等, 乃皆嵬岸倨肆, 若老成人之爲者. 至於卒然以物饋其所不當饋之人, 而不稻其父兄之命, 則於愛親敬長之良知良能又若不相似也. 吾子自謂已得是心而明是理, 僕不知吾子之所謂心者果何心, 所謂理者果何理也? 夫顔子之樂末嘗自道, 曾晳之志, 非夫子扣之再三而不置, 亦未嘗肯遽以告人也. 豈若是其高自譽道而惟恐人之不我知也哉? 相望之遠, 不知吾子師友淵源之所自. 恐其所以相告者未得聖賢窮理脩身之實, 而徒以空言相誤, 使吾子陷於狂妄恣雎之域而不自知其非也. 所惠紙簡硯墨受之無說, 不敢發封, 復以授來使矣. 吾子其於聖賢小學之敎少加意焉, 則其進有序而終亦無所不至矣.

 

 

조연도(사옹)에게 답함 答趙然道 (師雍)

 

해제이 글은 소희 3(임자, 1192, 63)에 쓴 편지이다. 조연도가 벼슬을 그만 둔 것을 나무라고 육상산의 죽음에 슬픔을 표하고, 또 학문하는 태도에 관해 논하고 있다.

 

그대는 구하던 관직을 얻었고, 또 지금 벼슬하는 곳이 친정과 멀지 않아 왕래하며 봉양할 수 있을 것이니 군친(君親)의 의리가 박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아무런 까닭도 없이 마음이 바뀌어 스스로 하나의 관직 버리기를 눈물이나 침을 버리듯 한다 하니, 어찌 애당초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처럼 오만한 말을 합니까? 이는 비루하고 졸렬한 내가 이해하지 못할 바입니다.

형문(荊門)의 부고(訃告)를 듣고 슬펐습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나니 절로 마음 아프고, 평소 논의의 동이(同異)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보내 주신 편지에 또 애석하게도 더불어 논변하고 끝을 맺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니 이는 더욱 웃음이 나옵니다. 대개 노졸(老拙)한 나의 학문이 비록 매우 천근(淺近)하나 그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살피는 것이 매우 자세합니다. 불교나 노자 나부랭이를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면서 갑자기 스스로 터득했다고 하는 세상 사람을 볼 때, 대개 그 비루함을 비웃고 그 참람함을 기롱했습니다. 어찌 지금 늙어가면서 그 천금(千金)을 가지고 남의 모지라진 비[弊帚]를 바꾸고자 하겠습니까? 또 더욱이 현자가 이()를 밝히는 것이 매우 정밀하지 못한 듯하고 그 마음을 세우는 것이 매우 일정하지 않은 듯하나, 가만히 생각건대 마땅히 마음을 비우고 선을 가려 지당(至當)한 귀결(歸結)을 구하여 스스로 그 몸을 선하게 하는 것이니, 이 외의 것들은 겨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예기(豫期)할 바도 아닙니다. 지난번에 안인의 오생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경솔 거만하고 무례하여 몇 자 적어 답장을 했습니다. 이제 적어 보내니, 시험삼아 한 번 보시면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적어 보내신 󰡔맹자󰡕는 겨를이 없어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삼대자(三大字)는 마침 바빠서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학문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도리어 늙은이만 글 쓰느라 힘들게 할 뿐입니다.

足下求官得官, 今所從宦又去親庭不遠, 足以往來奉養, 君親之羲爲不薄矣. 今乃無故幡然自謂棄一官如棄沸唾, 何始慮之不審而乃爲此傲睨之詞耶? 此鄙拙之所未喩也. 荊門之訃, 聞之慘怛. 故奮凋落, 自爲可傷, 不計平日議論之同異也. 來喩又謂恨不及見其與熹論辨有所底止, 此尤可笑. 蓋老拙之學雖極淺近, 然其求之甚艱而察之甚審, 視世之道聽塗說於佛老之餘而遽自謂有得者, 蓋嘗笑其陋而譏其僭. 豈今垂老而肯以其千金易人之弊帚者哉? 又況賢者之燭理似未甚精, 其立心似未甚定, 竊意且當虛心擇善, 求至當之歸以自善其身, 自此之外, 蓋不惟有所不暇, 而亦非所當預也. 向有安仁吳生書來, 狂僭無禮, 嘗以數字答之. 今謾錄去, 試一觀之, 或不爲無補也. 所喩寫孟子, 字多不暇. 三大字適冗, 亦未及作. 然此亦何能有助於學, 而徒使老者勞於揮染耶?

 

강호조(중영)에게 답함 答康戶曹(仲穎)

 

저는 늙고 게을러서 집에 들어앉아 사람들과 접촉한 일이 드물었습니다. 지난해에 우연히 그대가 궁중에서 조대(條對)한 글을 보고 그 사기(詞氣)와 의론(議論)이 범상치 않음을 사랑하여 늘 서로 만나볼 인연이 없음을 한스러워 하였고, 그 점을 자주 사우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에 그대의 편지를 받아보고 이에 그대가 일찍이 이 뜻을 들었음을 알았고 또한 현자가 나를 하찮게 여기지 않음을 기뻐하였습니다.

자세하게 써 보내 준 편지에서 그대가 품고 있는 원대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내가 들은 성현의 학문은 그 마음이 보존하고 있는 것이 일상생활의 예사롭고 사소하고 비근한 데서 벗어나지 않고, 원대한 것도 다른 데에서 구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않으면 황홀하고 방랑(放浪)하여 귀결처가 없는 것과는 애당초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배워 위로 통달한다 하고, 학문하는 도는 다른 것이 없고 그 놓아버린 마음을 구할 따름이다라 하였습니다. 이는 성현의 종신 사업이었으며, 저도 젊어서부터 일찍이 뜻을 두었지만 지금 늙어 장차 죽으려함에 아직도 만에 하나도 방불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말이니 취할 것이 없다고 하지 말고, 시험삼아 한번 생각해 보면 다행이겠습니다. 다른 때 약속과 같이 즐겨 온다면 그 종유(從遊)할지의 여부는 내가 그대의 미간(眉間)을 바라보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憙衰懶杜門, 少與人接. 頃歲偶見足下省闈條對之文, 愛其詞氣議論之不凡, 每恨無因緣相見, 數爲士友言之. 玆辱惠書, 乃知此意嘗得徹聞, 而又喜賢者之不豫鄙也. 示喩縷縷, 足見所存之遠大矣. 然嘗以憙所聞聖賢之學, 則見其心之所存不離乎日用尋常之近小, 而其遠者大者自不待於他求, 初不若是其荒忽放浪而無所歸宿也. 故曰下學而上達, 又曰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此聖賢終身事業, 熹也少而嘗有志焉, 今老且死, 尙恨未能有以得其彷彿之萬分也. 足下不以愚言爲無取, 幸試思之. 異時肯來如約, 其從與否, 憙將望足下之眉睫而有以得之也.

 

 

소숙의에게 답함 答邵叔義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에 쓴 편지이다. 소숙의의 편지를 받고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보존하고 독서궁리하는 학문을 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멀리서 편지를 보내 주시니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길고 짧은 편지에서 안과 밖의 모든 생각을 모두 다 표현했으니 더욱 단아한 뜻이 고원함을 알겠습니다. 고후 교사가 백성을 기르는 공적은 이미 자세히 기록했는데, 당신이 편지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늙고 병치레가 많으며 눈은 어둡고 정신은 혼미하니 있는 일이나 서술하는 것 외에는 경전의 의미는 발명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고후가 교육하는 것과 그대가 학문하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역시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건대, 반드시 실제로 이 학문을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스스로 그 힘을 일상생활에 다하고, 마음을 보존하고 기()를 기르며, 독서하여 이()를 궁구하며, 그 정성을 쌓아 차례대로 점차 나아간 뒤에야 터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무릎을 탁치며 길이 탄식하면서 단계를 뛰어넘고 다리 꼬고 가만히 앉아서 마음만 치달려 이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遼辱惠書, 良荷厚意. 而長牋短幅, 表裏殫盡, 尤見雅志之高遠也. 高侯敎士養民之績已悉書之, 如來喩之云矣. 但衰晩多病, 目瞽神昏, 序事之外, 無能有所發明, 此爲愧耳. 至於高侯之所以敎與足下之所以學, 亦恨未得其詳. 然竊意必欲實爲此學, 亦當有以自致其力於日用之間, 存心養氣, 讀書窮理, 積其精誠, 循序漸進, 然後可得. 決非一旦慨然永歎而躐等坐馳之所能至也.

 

 

소숙의에게 답함 答邵叔義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소숙의의 관리생리 생활을 칭찬하면서 그에게서 받은 기문이 곧 완성됨을 알리고 있다. 아울러 자신의 󰡔대학집주󰡕를 언급하고 있다.

 

부임하신 이래로 직무에 마음을 쏟아 보통 관리들은 할 수 없는 훌륭한 조치를 하신다 하니 매우 좋고 훌륭한 일입니다. 사당의 기문을 부탁해 주시니, 저를 하찮게 여기지 않으심을 알겠습니다.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늙고 병든 데다가 심력(心力)도 쇠모(衰耗)하고 아울러 전후(前後)로 부탁을 받고도 아직 써주지 못한 글들이 자못 많아 감히 경솔하게 승낙하지 못했습니다. 또다시 생각해보니 제목이 매우 아름다워 문득 그 사이에 이름을 부쳐서 후인으로 하여금 현대부(賢大夫)의 용심(用心)의 소재를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다만 현재(現在) 한 두 문자를 다 마치지 못하였기에 며칠만 지나면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9월쯤 다시 심부름꾼을 이 곳으로 보내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혈구(絜矩)의 뜻은 젊은 날에 들은 바 있는데, 선우(先友) 범공(氾公)(이름은 如圭, 伯達)의 설이 이와 같습니다. 의리가 적절하고 증거의 인용이 분명하니 선유(先儒)의 설이 모두 여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제 인자(仁者: 그대)가 이를 나타내어 발표하였으니 어찌 학자만의 다행이겠습니까. 대개 이 지방 백성들과 뒷날 부임하는 자가 모두 그 혜택을 입을 것이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대학󰡕 구본의 설()은 천박하여 족히 볼 것이 못됩니다. 근년에 여러 번 정정(訂正)하여 간행하였는바 자못 성현들이 남긴 뜻을 얻은 것 같습니다. 바빠서 초록하여 가르침을 구할 겨를은 없고, 당신을 향한 그리움만 지극합니다.

竊聞下車以來究心磯業, 設施注措類非俗吏之所能者, 甚善甚盛. 委喩祠記, 深諸不鄙. 初以衰病之餘, 心力衰耗, 兼前後欠人文字頗多, 不敢率爾承賞. 又念題目甚佳, 却欲附名其間, 使後人知賢大夫用心之所在. 但見有一二文字末竟, 度須更數日萬得下筆. 九月間更令一介往山間取之爲幸. 絜矩之義, 乃少曰聞之先友范公名如圭, 字伯達, 其說如此. 義理切當, 援據分明, 先儒訓說皆末及也. 今得仁者表而出之, 豈惟學者之幸, 蓋今百里之人與異時臨莅所及無不蒙被其澤, 幸甚幸甚! 大學鄙說舊本紕陋不足觀, 近年屢加刊訂, 似頗得聖賢之遺意. 匆匆, 未暇抄錄求敎, 臨風不勝傾想之劇.

 

 

소숙의에게 답함 答邵叔義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일상생활에서의 공부에 대해 말씀하신 이와 같은 몇 마디는 참으로 요긴하고 절실합니다. 그러나 아무쪼록 참으로 실천하여야 유익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갓 벽에 붙여놓은 구호에 불과한 것이 되어 도리어 비웃음이나 살 것입니다.

所喩日用工夫, 如此數語誠是要切, 然亦須眞踐其實, 乃爲有益. 不然徒爲牆屋標榜, 反招譏訕也.

 

 

소숙의에게 답함 答邵叔義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육구연이 자신과 주희 사이의 태극을 논한 편지를 공개하자, 이에 대해 그간의 사정과 자신의 심정을 언급하고 있다.

 

자정(子靜)이 편지를 보내 왔는데 의리(義理)가 별로 없어서 늘 숨겨놓고 감히 사람들에게 널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와 같이 스스로 드러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사리가 매우 분명하니, 식자들은 당연히 알 것입니다. 당시에 만약 답장을 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보낸 편지를 그(자정)가 초록하여 보내왔는데 매우 득의양양하였습니다. 대개 그가 문자를 지어 많아지면 곧 사방으로 전파하고 오직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이것이 평소 태도인지라 또한 깊이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배운 것은 도리어 자기의 식견을 분명히 하고 지수(持守)를 정당히 하고자 함이니, 이런 기상과 행동으로써 경계를 삼는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태극󰡕 등 네 종류의 글을 늦게나마 초록하여 보내니, 혹시 의문스러운 점이 있으면 물어주십시오. 서승에게 인편이 있을 것입니다. 오대년은 심양에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子靜書來, 殊無義理, 每爲閉匿, 不敢廣以示人. 不謂渠乃自暴揚如此. 然此事理甚明, 識者自當知之. 當時若便不答, 却不得也. 所與左右書, 渠亦錄來, 想甚得意. 大率渠有文字, 多卽傳播四出, 唯恐人不知. 此其常態, 亦不足深怪. 吾人所學, 却且要自家識見分明, 持守正當, 深當以此等氣象擧止爲戒耳. 太極等書四種謾附呈, 恐有所疑, 却望疏示, 徐丞處想時有便也. 吳大年極荷留念, 想且留番陽也.

 

 

탕덕원에게 답함 答湯德遠

 

해제이 글은 순희 16(기유, 1189, 60)에 쓴 편지이다. 공부방법에 관해 논하고 있다. 친절 성실하게 순서에 따라 공부할 것을 권하고 있다.

 

위학(爲學)에 관한 당신의 뜻은 극히 고원하여 나의 생각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소론(所論)은 성현의 말씀 중에서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요? 그 공부하는 순서가 과연 어떻게 됩니까? 여기에는 반드시 친절하고 성실함이 있고, 순서에 따라 나아가면 우리 유학자의 학문이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불교와 노자의 사설(邪說)에 빠지게 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내가 감히 알 바 아닙니다.

示喩爲學之意, 極爲高遠, 非愚慮所及. 然末知所論於聖賢之言以何爲據? 其用力次第果如何? 此必有觀切慤實, 可以循序而進者, 乃爲吾儒之學. 如其不然, 恐末免陷於佛老之邪說, 非熹之所敢知也.

 

 

왕덕수에게 답함 答王德修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에 쓴 편지이다. 윤화정의 제자인 왕덕수에게 옛날의 감회와 학문적 동지애를 토로하고 있다.

 

제가 아이 때에 아버님께서 비서성(秘書省)에 벼슬했는데, 이때 화정(和靜) 선생은 소감(少監)이 되었습니다. 제가 일찍이 무리들 가운데서 그분의 도덕군자다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또 그 글을 얻어 베꼈습니다. 그러나 어리고 어리석어 그 무슨 말인지 몰랐었는데, 장성하고 나서 선생의 장자(長子)를 종유(從遊)하며 󰡔논어󰡕에 관한 설을 받고 하남(河南) 문인의 책을 두루 읽은 뒤에야 화정(和靖) 선생의 말을 알았고 비로소 조금 그 맛을 터득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친히 가르침을 받지 못했고 그 분의 뛰어난 제자, 곧 어르신네와 같은 분도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 조금 터득한 것이 과연 선생의 뜻인지 여부를 믿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숙(正叔)이 와서 이미 서로 허여하게 된 뜻이 매우 두터움을 들었고, 또 그를 통해 당신에게서 들은 것 한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하남(河南)의 선생께서 이른바 끝내 지키신 것이 있어서 진실로 이와 같이 전해지게 됨을 믿겠습니다. 매우 위안이 되고 다행스럽습니다.

두 설()은 지난해에 본 적이 있으나, 그 사이에 아직 다 깨닫지 못한 곳이 있는데 대면해서 물어 보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논어󰡕를 읽고 나서 지은 시는 세 번이나 반복하여 읽고 감탄했습니다. 오늘날 학자가 이욕(利慾)의 길에 빠지지 않으면 바로 불교의 지름길로 흘러가는 데, 이따금 이를 보고 우활(迂闊)하고 비근(卑近)하다고 여기니 또한 덕으로 들어가는 길을 헷갈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熹兒侍先君官中秘書, 是時和靜先生實爲少監, 熹嘗於衆中望見其道德之容, 又得其書而抄之. 然幼穉愚蒙, 不能識其爲何等語也. 旣長, 從先生長者游, 受論語之說, 遍讀河南門人之書, 然後知和靜先生之言, 始有以粗得其味. 然旣不得親受音旨, 而其高第弟子如老丈者又未得見, 以信其所粗得者果先生之意否也. 正叔之來, 旣獲聞所以相予之意甚厚, 又得其所聞於左右者一二. 信乎河南夫子所謂終有守者, 其傳固如此也. 甚慰甚幸二說頃歲蓋嘗見之, 其間尙有未盡曉處, 恨未得面叩耳. 讀論語詩, 三復感歎. 今日學者不沒於利欲之塗, 卽流於釋氏之徑, 往往視此爲迂闊卑近, 亦無怪其迷於人德之方也.

소진수()에게 답함 答蘇晉叟()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이 편지는 주로 󰡔맹자󰡕 고자 상의 우산장을 논하고 있다. 그리고 임률과의 논변과 사단의 과정을 언급하고 있다.

 

 

편지에서 말한 학문을 한다는 뜻은 이전에 비해서 더욱 진보하였습니다. ‘우산의 나무한 장은 비유가 참 좋습니다. 다만 자에 대해서는 아마도 분별이 너무 지나치니, 심과 성이 두 물건이 되어 각각의 장소에 있다고 여기는 병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의지심(仁義之心)’ 네 글자는 심성(心性)의 리()를 갖추었으니, 이 마음의 인의(仁義)는 곧 성()이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곡망(梏亡)하기를 반복한다는 것은 전도(顚倒)의 의미가 아니라 서로 호환하고 번갈아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의 맑은 기를 낮에 질곡하여 없애는 것과 같으니, 그 곡망(梏亡) 때문에 낮에 하는 행위가 더욱 잘못되니, 그 맑고 밝은 기를 더욱 많이 곡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야기(夜氣)가 그 인의(仁義)의 양심(良心)을 보존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구설(舊說)야기(夜氣)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옳지 않으니, 오직 정선생(程先生)이 말한 야기(夜氣)가 있는 곳은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이다라고 하니, 이 말이 가장 분명하니, 다시 상세히 살펴보십시오.) ‘이것이 어찌 사람의 실정(實情)이겠는가라고 하니, 이 구절의 해석 또한 매우 어둡고 바르지 않습니다.

보존하고 잃고 나가고 들어옴(存亡出入)이라는 한 구절은 바로 마음의 체용(體用)이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이 신묘하여, 안정(安靖)되고 순일(純一)할 뿐만 아니라 두루 변화에 유행함을 말한 것입니다. 학자가 아무쪼록 힘을 붙여 잘 살펴야 할 것이니 어찌 오로지 이미 놓아버린 것만을 말했겠습니까? 지금 오로지 안정되고 순일한 것만을 지목하여 양심(良心)이라 하면 그 체용에 두루하지 못하게 됩니다. 편지에서 논한 성정은 맞습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은 성정을 통섭한다[心統性情]’이라는 말을 참고하여 보시면 이 마음의 체용의 전체를 볼 것이니,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감응하여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 마음의 오묘함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저번에 삼구 지방을 지나다가 󰡔의상법요(儀象法要)󰡕를 얻었는데, 이제 보내주신 것을 받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책에 한두 글자 틀린 글자가 있고, 한두 군데 중요한 곳의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집에 보관하고 계신 이 책의 정본은 아직 괜찮은지요? 당신의 글로 인하여 지부(知府) 어르신[丈丈]이 다시 교정을 해주셨으니, 이제 보는 사람들이 다시는 의혹하지 않을 것 같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서명설(西銘說)󰡕은 더욱 가소롭습니다. 그가 올 봄에 부쳐왔는데, 이것이 또한 예전에 분분했던 일의 단서 중의 하나입니다. 뒷날에 또 천자와의 대면을 요청하고는 횡거를 심하게 비방했는데, 천자로부터 답을 듣지 못하고 물러났었습니다. 그 때 천자가 총명하지 않으셨다면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닥칠 뻔 했습니다.

示喩爲學之意, 比之前日加通暢矣. ‘牛山之木一章, 比類觀之甚善. 但論心與性字, 似分別得太重了, 有直以爲二物而各在一處之病. 要知仁義之心四字便具心性之理, 只此心之仁義, 卽是性之所爲也. 梏之反覆, 非顚倒之謂, 蓋有互換更迭之意. 如平旦之氣爲旦晝所爲所梏而亡之矣, 以其格亡, 是以旦晝之所爲謬妄愈甚, 而所以楕亡其淸明之氣者愈多. 此所以夜氣不足以存其仁義之良心也. (舊說夜氣不存非是, 唯程先生說夜氣之所存者, 良知也, 良能也’, 此語最分明, 更詳之.) ‘是豈人之情也哉’, 此句解得亦太迂曲. 存亡出入一節, 乃是正說心之體用其妙不測如此, 非獨能安靖純一, 亦能周流變化. 學者須是著力照管, 豈專爲其已放者而言耶? 今專指其安靖純一者爲良心, 則於其體用有不周矣. 書中所論性情者得之, 但亦須更以心統性情一句參看, 便見此心體用之全, 自寂然不動以至感而遂通天下之故, 無非此心之妙也.

儀象法要頃過三衢已得之矣, 今承寄示, 尤荷留念. 但其間亦誤一二字, 及有一二要切處却說得未相接. 不知此書家藏定本尙無恙否? 因書可禀知府丈丈再爲讎正, 庶幾觀者無復疑惑, 亦幸之甚也. 西銘說極可笑, 渠今春寄來, 前日粉紛, 此亦其一端. 後來又嘗請對, 詆橫渠尤力, 不答乃退. 向非天日淸明, 此亦足爲學者之禍也.

 

소진수에게 답함 答蘇晉叟 2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심통성정, 󰡔주역󰡕에 삽입된 그림, 미수정본 󰡔논어󰡕 󰡔맹자󰡕의 출판으로 인한 후회 등을 언급하고 있다.

 

보내 주신 편지는 이미 보았습니다. 다만 심통성정(心統性情)이란 한 마디는 다시 깊이 생각하여 같고 다름과 나누어지고 합해지는 부분에 전혀 의심이 없도록 한다면, ()를 궁구하고 몸을 닦음에 매우 유효할 것입니다. 󰡔주역󰡕의 도표는 저번에 그 의미를 대강 논했는데, 나중에 다시 조금 고쳤습니다. 개정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나중에 보내드리겠습니다. 󰡔논어󰡕 󰡔맹자󰡕의 해설은 건양 지방 사람들이 내게 알리지도 않고 간행해버려 회수하려 했는데, 이미 책을 팔아버려 그 책이 사방으로 나갔다고 하니, 물어보면 그 판본의 책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건양 사람이 출판해 버린 정강 판본은 아직 다 수정하지 않은 것이라 볼만할 것이 못됩니다. 근래 이 일로 소요를 겪고 보니, 책을 너무 빨리 내보낸 것이 후회됩니다.

示喩已悉, 心統性情一語, 更宜玩味, 令其同異分合之際判然不疑, 卽於窮理脩身到處得力耳. 易圖昨亦有書粗論其意, 後來有少改更, 脩版未畢, 它日當寄去. 孟解乃爲建陽衆人不相關白而輒刊行, 方此追毁, 然聞鬻書者已持其本四出矣, 問之當可得. 然乃是靜江本之未脩者, 亦不足觀也. 近爲此事撓, 甚悔傳出之太早也.

소진수에게 답함 答蘇晉叟 3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공부 방법에 대해, 경과 격물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보낸 편지의 대강은 모두 진리에 가깝지만, 다만 상당히 쓸모없이 자질구레하고, 인자(仁字)를 논함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사색해야 하고, 반드시 밖에서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장차 이 현재 설명한 것을 자세히 반복하면, 자연히 간략하고 쉬우면서도 조리가 있음을 볼 것입니다. 지경(持敬)과 격물 공부는 본래 서로 떨어질 수 없는데, 편지에서는 지나치게 분리시켜 말했습니다. 마땅히 다시 자세히 살펴 서로 분리되지 않는 곳을 이해하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所喩大槪皆近之, 但頗傷冗雜, 及論仁字未當. 更宜虛心玩味, 不必外求, 但將此見在所說者子細反復之, 自然見得簡約條暢也. 持敬格物功夫本不相離, 來喩亦太說開了. 更宜審之, 見得不相離處, 日用間方得力耳.

 

소진수에게 답함 答蘇晉叟 4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성정(性情)과 재()의 개념과 분별, 󰡔󰡕의 독법과 체용 등에 관한 소진수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하는 형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별지(別紙)의 물음에 하나하나 답하겠습니다. () 선생이 이르기를, “()이 바로 이()이다라 하니, 이 말이 비록 간략하지만 매우 친절하여 사람을 일깨우는 곳이 있으니, 다시 이 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독서는 마땅히 글을 따라 자세히 보고, 그 말뜻을 환하게 분석하고 관통한 뒤에 저절로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버려두고 갑작스럽게 별도로 논의를 세워 한갓 헛된 견해를 조장하고 실제에 이익이 없도록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別紙所示一一報去. 程先生云: ‘性卽理也’, 此言雖約, 而甚親切, 有喚省人處, 可更就此思之. 大抵讀書且當隨文熟看, 俟其詞旨曉析貫通, 然後自有發明. 未可遽捨本文, 別立議論, 徒長虛見, 無益於實也.

 

(소진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성 본체의 순정(純靜)함은 선악으로 이름 붙일만한 것도 없고 우지(愚知)로 구분할 수도 없습니다. ()과 재()는 실로 이 성()에 깃들어 있습니다. 무릇 사람이 품부받은 초기에는 성인이 아니더라도 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하게 행하니 교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타 기질은 종종 한 쪽에 치우치고 막히니, ()라는 것에는 고하(高下)와 청탁(淸濁)의 차이가 있게 됩니다. 사람이 그 치우친 바에 따라 그 정()을 맡겨버리면, 현명한 자는 단지 현명함에 멈춰버리고 현명하지 못한 자는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선악의 부류가 여기에서 갈라집니다. 이런 까닭에 배움을 그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자는 그 재질의 선()에 나아가 그 치우침을 억제합니다. 그렇게 하여 감정의 표현이 본성의 자연을 따르지 않은 것이 없고, 이를 오래도록 계속하면 성()의 온전함을 얻어 마침내 성인과 하나가 됩니다. 현명하지 못한 자는 그 재질의 불선(不善)에 나아가 그 치우침을 고치고, 그렇게 하여 비로소 감정의 표현을 통제하여 천리의 바름과 합치되기를 추구합니다. 나아가고 또 나아가 그치지 않으면 점점 그 상도(常道)를 실천하고, 상도(常道)가 오래되면 또한 순수하게 이 성()의 고유한 선과 합치되어 성인과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을 따르는 정()은 정()이 성()을 떠나지 않고, ()이 기질의 변화를 따르면 성()은 잘못된 습관을 따라 서로 멀어지게 됩니다. ()이 성()을 떠나지 않음은 성인의 경지로 귀결되지만, ()이 습()에 따라 멀어지면 끝내는 하우(下愚)가 될 것입니다. 󰡔중용󰡕에 말하기를, ‘그것을 앎에 있어서는 하나라 하고, 또 말하기를: ‘그 성공에 있어서는 하나라 했습니다. 성인과 하나됨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순정(純靜)과 명결(明潔)과 대동(大同)에서 시작됩니다. 성인과 하나됨을 이루는 공부는 박학(博學)과 독지(篤志)를 그치지 않은 힘입니다. 저는 성정(性情)과 재()를 이와 같이 구분하고자 합니다.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湊竊謂性體純靜, 無善惡之可名, 愚知之可分. 而情與才者, 則實寓於此性. 夫人禀賦之初, 自非聖人, 生知安行, 不俟矯揉, 其他氣質往往滯於一偏, 而才也者遂有高下淸濁之異. 人苟隨其所偏而任其情, 則賢者僅止於賢, 而不賢者無復可反, 善惡之流, 自此分矣. 則是學之不可以已, 故賢者卽其才之善而抑其偏, 則情之所發無非循性之自然, 久久不已, 得性之全, 則與聖人一矣. 不賢者卽其才之不善而矯其偏, 則情之所發始能裁制, 以求合乎夫理之正, 進進不已, 漸履其常, 常而久之, 則亦 純合乎此性固有之善, 而與聖人亦一矣. 故循性之情則情不離性, 情隨質遷則性因習遠. 情不離性, 聖域攸歸; 性因習遠, 終焉下愚. 中庸曰: ‘及其知之一也’, 又曰: ‘及其成功一也’. 至一之地, 其純靜明潔大同之始乎. 致一之功, 其博學篤志不已之力乎. 湊擬欲以是爲性情與才之辨, 乞賜批誨.

 

성정(性情)과 재()의 분변은 󰡔맹자󰡕와 정 선생의 여러 이론을 숙고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즉 지금 무엇이 성이고, 무엇이 정이며, 무엇이 재인가, 모름지기 지금 이 하나하나의 실제 소재가 있어야 바야흐로 공부할 곳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대충 논변하면, 조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개념도 대부분 잘못되어 공부할 곳 역시 애매해집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性情與才之辨, 當熟考孟子及程先生諸說而反之於身, 卽今何者是性, 何者是淸, 何者是才, 須今一一實有下落, 方有下功夫處. 如此泛論, 非惟條理不明, 名言多誤, 而用力處亦不親切. 更幸思之.

 

저는 역()의 체용(體用)을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천지(天地) 인물(人物)에는 편안하여 스스로 지극히 신뢰하고 순응하는 도리가 있고, 이 도리는 정정당당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하지도 않고 미치지 못하게 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역의 체()입니다. ()이면서, ()이면서, ()여서, 확연하게 하나같이 지당(至當)한 이치에 계합하니, 이것은 역()의 용()이다. 사람들은 왜 역의 체()에 어둡고, 역의 용()에 반()하는가? 무릇 사람은 정위(情僞)에 빠지고 사욕(私欲)에 어지러워, 그 몸을 돌아보아도 빈 배나 회오리바람기와와 같을 뿐만이 아니니, 오히려 역의 체()와 역의 용()이 어떤가를 어떻게 깨달아 알겠습니까? 반드시 경()을 위주로 하여 그 안을 곧게 하고, ()를 세워 그 밖을 방정하게 하여, 손익성쇠(損益盛衰)의 리()를 수시로 재제하여 그 마땅한 것에 나아가면, 자연히 일상적 생활 속에서 역()의 전체가 조금의 틈도 없고, ()의 대용(大用)이 치우치고 가리운 바가 없어, 체용이 혼융(混融)하고 오묘한 이치와 합치되어 천지의 운행을 한결같이 하고 귀신의 움직임을 알 수 있으니, 지극하고 극진하여 아무 것도 더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을 이와 같이 독해하고자 합니다.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湊竊謂易之體用, 天地人物安然自有至信至順底道理, 停停當當, 不以人而過, 不以人而不及, 此易之體也. 中也, 宜也, 時也, 犁然一契於至當之理, 此易之用也. 人何以晦是之體, 反是之用? 夫人汨之以情僞, 亂之以私欲, 回視其身, 不啻如虛舟飄瓦, 尙何覺知此體此用爲如何哉必也主敬以直其內, 立義以方其外, 損益盛衰之理, 隨時裁制, 以就其宜, 自然出人起居之際, 易之全體不隔毫釐, 而易之大用無或偏蔽, 體用混融, 妙理純契, 一天地之闢闔, 會鬼神之動靜, 至矣, 盡矣, 不可有加矣. 湊擬欲如是讚讀易, 乞賜批誨.

 

󰡔󰡕은 본래 점치는 책입니다. 그 괘를 그리고 계사(繫辭)하여 길흉을 분별한 것은 모두 자연의 이치입니다. 독자는 모름지기 정밀하게 읽고 생각해야지, 이와 같이 멋대로 상상하고 찬탄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단지 이와 같이 통설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면, 공자께서 왜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고 옻으로 쓴 글자가 없어지도록 열심히 󰡔󰡕을 읽었겠습니까.

易本卜筮之書, 而其晝卦繫辭分則吉凶, 皆有自然之理. 讀者須熟考之, 不可只如此想象贊歎. 若可只如此統說便了, 卽夫子何用絶韋編而滅漆簡耶?

 

학문은 생각에 근원하니, 생각하지 않으면 터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다시 생각해 보건대, 분에 넘치는 것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한 학자의 근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學原於思, 不思則不得. 然而湊竊復以謂覬得之之心, 又學者之患, 不審先生以爲然否? 更乞誨敎.

 

막 생각할 때는 저절로 분에 넘치는 것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나 얻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당연히 얻는 것이 있으니, 밥을 먹으면 반드시 배가 부른 것과 같습니다.

方其思時, 自是著覬得之心不得. 但思則自當有得, 如食乏必飽耳.

 

저는 학자는 수렴(收斂)하고 안정(安靜)하면 도와 가까워지고, 방일(放逸)하고 방탕하면 도와 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湊竊謂學者儘收歛, 儘安靜, 去道儘近; 儘放逸, 儘流蕩, 去道儘遠. 不知先生以爲如何?

 

이치()가 진실로 이와 같으니, 이와 같이 안배(安徘)할 필요가 없습니다. 후장(後章)도 이와 같습니다.

理固如此, 不須如此安徘. 後章倣此.

 

정 선생이 “‘이를 것을 알아 이에 이르는 것이 조리(條理)의 시작이고, 끝을 알아 끝에 이르는 것이 조리를 마침이다라고 하니, 그 뜻은 무엇입니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程先生云: ‘知至至之, 始條理也. 知終終之, 終條理也,’ 其義何如? 乞賜批誨.

 

 

배우는 초기에는 알아야 바야흐로 능히 행할 수 있습니다. 종국에 모름지기 실천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정 선생이 또 말하기를 이것을 알아 이에 이르는 것은 지()를 위주로 하는 것이고, 끝을 알아 이를 끝내는 것은 행()을 위주로 하는 것이다라고 하니, 이 말은 다시 깊이 생각해볼만 합니다.

學者之初, 須是知得到, 方能行得; 末後須是行得到, 方是究竟, 故程先生又云: ‘知至至之主知, 知終終之主行.’ 此語亦可更考玩也.

 

 

소진수에게 답함 答蘇晉叟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보내준 자경시(自警詩)는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자못 억지로 조작하고 조합하는 뜻이 있음을 느낍니다. 요컨대 모름지기 평소 분명하고 긴요한 곳에 나아가 마음을 보존하고 성찰하여 이 뜻이 저절로 생겨야 좋습니다.

示及自警詩, 甚善, 然頗覺有安排揍合之意. 要須只就日用分明要切處操存省察而此意油然自生, 乃佳耳.

 

 

소진수에게 답함 答蘇晉叟

 

해제이 글은 순희 15(무신, 1188, 59)에 쓴 편지이다.

 

보내 주신 글에서 마음을 침잠(沈潛)하는 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분명하고 평범한 곳에서 보아야 확실할 것입니다. 한결같이 이와 같다면 아마도 점점 선학(禪學)에 젖어 들어갈까 걱정됩니다.

所示文字足見潛心之力, 但却須更於分明平實處看, 乃見端的. 一向如此, 恐浸淫入襌學去矣.

 

 

소진수에게 답함 答蘇晉叟

 

해제이 글은 경원 3(정사, 1197, 68)에 쓴 편지이다. 소진수 선친의 묘문을 부탁받고 아직까지 글을 완성하지 못한 이러저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연로함으로 인해 기력이 약해지고, 특히 한 쪽 눈을 실명하고, 게다가 위학의 금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부탁하신 선묘(先墓)의 비문은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발에 병이 난 뒤에 비위(脾胃)조차 쇠약하여 음식을 먹지 못해 기력이 쇠약해져 몸조차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근래에 조금 나아졌지만 눈의 시력이 더욱 나빠져서 한 쪽 눈은 이미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응접하는 일로 바쁘고 요 며칠은 손님을 맞고 글을 옮겨 적느라 더욱 더 틈이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붓을 들지 못하여 쌓인 글 빚이 많았으니, 당신께서 부탁한 것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또 거기에다 우리를 위학(僞學)이라고 하여 개명한 시대에 죄를 얻어 성명과 종적(蹤跡)이 의논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날이 없으니, 어찌 문자나 지어 금석(金石)을 다듬고 있을 때이겠습니까? 보내 준 글은 삼가 잘 보관하고 있으니, 만일 사이에 죽지 않고 다행히 관대한 은혜를 입어 죄를 씻게 된다면 보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는 황암(黃岩) 지방에 친영(親迎)하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지난번에 주보(奏補)의 요행을 바랬다는 의심이 있어 감히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先墓之文, 每以爲念. 前此病足之後, 脾胃衰弱, 不能飮食, 精力疲怠, 不能支吾. 近方小康, 而目盲愈甚, 其一已不復見物矣. 加以應接紛紜, 日間見客寫書, 更無少暇, 以故久未能下筆. 積欠頗多, 非獨賢者所屬爲然也. 今又重以僞學得罪明時, 姓名踪跡無日不掛議者之口, 又豈作爲文字洽伐金石之時耶? 所示文字敬且收藏, 萬一未死之間, 幸蒙寬恩, 蕩滌瑕垢, 乃當有以報耳. 在親迎黃巖未歸, 正以向來奏補僥冒自疑, 未敢今赴試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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