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권
편지 친구․제자들과의 문답 書 知舊門人問答
동숙중 수에게 답함 1 答董叔重銖
【해제】이 글은 1184년(순희 11년, 갑진, 55세)에 문인(門人) 동숙중(董叔重)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양과 독서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동숙중의 자(字)를 바꾸는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보내준 편지에서 일상적인 공부에 관해 말해주었습니다.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슬러 확고히 지켜 가는 가운데 생각이 싹트는 곳에 나아가, 무엇이 천리(天理)이고 무엇이 인욕(人欲)인가를 살펴 이쪽을 취하고 저쪽을 버림으로써 경(敬)과 의(義)를 병행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독서도 이와 같으니, 먼저 스스로 큰 뜻을 이해하고 다시 여러 학설을 탐구하여 이를 하나하나 자신에 근거해서 체험해낸다면, 아마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字)를 바꾸고 싶다는 말에 대해서는 이전에 여러 차례 대답했습니다. 다만 내 생각은 학자들이 급하지도 않은 번거로운 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름[名]에 걸맞게 짓고자 한다면 숙중(叔重)으로 바꾸십시오. 이는 통서(通書)의 “그 중요함[重]이 이보다 더할 것이 없다”는 뜻을 따온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示喩日用功夫, 更於收拾持守之中, 就思慮萌處察其孰是天理, 孰是人欲, 取此舍彼, 以致敬義夾持之功爲佳. 讀書亦是如此, 先自看大指, 却究諸說, 一一就自己分上體當出來, 庶幾得力耳. 易字之說, 前累奉報, 鄙意但不欲學者切切於此不急之外務耳. 必欲與名相稱, 則以‘叔重’易之, 蓋取通書‘其重無加焉耳’之義. 如何如何?
동숙중에게 답함 2 答董叔重
【해제】이 글은 1186년(순희 13년, 병오, 57세)에 문인(門人) 동숙중(董叔重)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경(敬)으로 심신을 수양하는 것이 성학(聖學)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대가 마음의 보존과 상실에 관해 논한 내용은 옳습니다. 지난 날 정사[正思: 문인 정단몽(程端蒙)의 자(字)임]의 편지를 받았는데 설명이 끝내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정사에게 답장을 보내 “이 마음에 정직함이 있고 간사함이 없기 때문에 보존하면 정직하고 보존치 않으면 간사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다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대는 보내온 편지에서 “큰 근원을 깊이 체득하여 함양한다”고 말했는데, 또한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습니다. 오직 붙잡으면 저절로 보존되어 움직임과 고요함, 처음과 끝이 ‘경(敬)’ 한 글자를 벗어나지 않을 뿐입니다. 요즘 이락(伊洛)의 학자들이 이 글자를 뽑아내었음을 발견했는데, 이는 참으로 성학(聖學)의 진실하고 절실하며 핵심적이고 오묘한 공부입니다. 배우는 사람이 이곳에 실제로 공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所論心之存亡得之. 前日得正思書, 說得終未明了. 適答之云: ‘此心有正而無邪, 故存則正, 不存則邪.’ 不知渠看得復如何也. 但來喩所謂深體大原而涵養之, 則又不必如此. 正惟操則自存, 動靜始終, 不越敬之一字而已. 近方見得伊洛拈出此字, 眞是聖學眞的要妙功夫. 學者只於此處著實用功, 則不患不至聖賢之域矣.
동숙중에게 답함 3 答董叔重
【해제】이 글은 1187년(순희 14년, 정미, 58세)에 문인(門人) 동숙중(董叔重)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마음의 발현(發見)하는 실마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편지 가운데서 그대가 말한 ‘두 가지 뜻’은 요즘에 모두 개정했습니다. 대학은 덕수[德粹: 문인 등린(滕璘)의 자(字)임]에게 있고, 맹자는 벌써 필사했을 것입니다. 다만 그대가 [마음이 발현하는 곳을] 찾아 구하다가 급박한 병폐에 걸리지 않았나 의심하는 것은 아마도 마음씀이 너무 지나쳐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말한 ‘발현(發見)의 실마리’는 단지 평소에 반성해서 자각하고 가르쳐 이끌어주는 곳 바로 거기입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여기에 나아가 접속하여 앞을 향해 추구해감으로써 마음을 활짝 열도록 한 것일 뿐, 곧 발현의 실마리를 기다려서 인식하고 파악하는 공부를 찾아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개정한 것 또한 그 말이 분명하지 않고 혹은 중복된 곳도 있지만, 큰 뜻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書中所喩兩義, 比皆改定. 大學在德粹處, 孟子似已寫去矣. 但所疑搜尋急迫之病, 恐是用心太過使然. 所云發見之端, 只平日省覺提撕處便是. 只要人就此接續向下推究, 令其開闊, 卽不曾說等待尋討將來做功夫也. 今所改者, 亦其詞有未瑩, 或重複處耳. 大意只是如此也.
동숙중에게 답함 4 答董叔重
【해제】이 글은 1187년(순희 14년, 정미, 58세)에 문인(門人) 동숙중(董叔重)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함양(涵養)하는 공부를 동숙중에게 권유하고 있다.
보내온 편지에서 말한 몇 가지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더욱더 일상생활에서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함양(涵養)에 뜻을 두어야만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갓 헛된 말이 되어 이로움은 없고 해로움만 있게 됩니다.
所喩數說甚善, 更宜加意涵養於日用動靜之間爲佳. 不然徒爲空言, 無益而有害也.
동숙중에게 답함 5 答董叔重
【해제】이 글은 1187년(순희 14년, 정미, 58세)에 문인(門人) 동숙중(董叔重)에게 답한 편지이다. 동숙중이 논어․서경․예기․맹자 땅위의 경전에서 의심난 구절을 문목(問目) 형식을 빌어 질문한 데 대해, 주자가 짤막한 비평을 붙여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문: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한 장(章)에 대해,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 “본(本)은 뿌리와 같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고 근본이 확립되면 도(道)가 생긴다. 이는 군자가 모든 일을 행할 때 오로지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이미 확립되면 그 도는 저절로 생겨남을 말한 것이다. 예컨대 효제(孝悌)는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니 여기에 힘쓰지 않는다면 인도(仁道)는 생겨날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銖]가 망령되이 생각해보니 인(仁)은 본래 효제의 근본이요, 인이 있은 뒤에 효제가 있습니다. [이천(伊川)은 “인은 성(性)이요, 효제는 용(用)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가 생겨날 때 효제보다 먼저 생겨나는 것은 없습니다. 대개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듯 내면에서 피어나 지극히 순수하고 진실하여 허위라고는 없으며 저절로 그러하여 그만둘 수 없는 것은 어버이를 친애하고 형을 좇는 마음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천(伊川)은 말하기를 “인은 사랑을 위주로 하고, 사랑은 어버이를 친애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곧 인을 베푸는 것이요, 인이 곧 사랑의 이치입니다. 인은 사랑의 이치인데 사랑은 어버이를 친애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기 때문에 인도를 미루어 행하는 것은 효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근본입니다. 근본이 이미 확립되면 어버이를 친애하고 백성을 어질게 대하며, 백성을 어질게 대하고 사물을 사랑하게 됩니다. 넓고 크게 트인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이 인도의 위대함을 온전히 발휘하게 된다면, 모두가 이 근본이 이미 확립된 것으로부터 저절로 생겨나고 생겨나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이 확립되면 도는 저절로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생겨난다[生]’는 것은 생겨나고 생겨나 끝이 없다는 뜻이니, 이천이 “그 도가 충만하고 커진다”고 말함이 이것이요, 근본이 없이 점차 생겨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를 나무에 비유해볼 때 근본이 이미 확립되면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생겨나 그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그 근본이 없다면 가지와 잎이 어디에서 생겨나겠습니까? 또 정자(程子)는 “효제를 극진히 행하는 것이 곧 인이다”고 말했으니, ‘진(盡)’이란 글자에 성인의 인륜의 지극한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개 효제(孝悌)도 위아래를 통틀어 말했으니, 충서(忠恕)가 도가 된다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효제로 말미암아 인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되면 효제와 인은 두 가지 근본이 됩니다. 저의 망령된 의도로 이렇게 생각해보았으니, 하나하나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君子務本’一章, 集注云: ‘本猶根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言君子凡事專用力於根本, 根本旣立, 其道自生. 如孝弟則是行仁之本, 不務乎此, 則仁道無自而生也.’ 銖竊妄謂仁固孝弟之本, 有仁而後有孝弟, 伊川曰仁是性, 孝弟是用. 然仁道生也生莫先於孝弟. 蓋其油然內發, 至精實而無僞, 自然不可已者, 莫如愛親從兄之心. 故伊川曰, 仁主於愛, 愛莫大於愛親. 愛則仁之施, 仁則愛之理也. 仁者愛之理, 而愛莫大於愛親, 故推行仁道, 自孝弟始. 是乃行仁之根本也. 根本旣立, 則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至於廓然大公, 無所不愛, 而有以全盡其仁道之大, 則皆由此本旣立而自生生, 有不可遏者耳. 此所謂本立而道自生也. 生者, 生生不窮之意, 伊川所謂其道充大是也, 非無本而漸生之謂. 猶之木焉, 根本旣立, 則枝葉生茂而不可已. 苟無其本, 枝葉安自而生哉? 又程子曰, 盡得孝弟便是仁, 恐在 ‘盡’ 字上是聖人人倫之至之意. 蓋孝弟亦通上下而言, 猶忠恕之爲道也. 或人謂由孝弟可以至仁, 則孝弟與仁是二本矣. 妄意揣度如此, 乞賜逐一垂誨.
답: 대개 이런 뜻으로 함양하면 오랜 뒤에 저절로 득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뒤의 것도 모두 이런 뜻을 따릅니다.
大槪且用此意涵泳, 久之自見得失. 後皆放此.
문: 정자는 “물(物)을 따르면서 어김이 없는 것을 신(信)이라 이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물(物)이란 사물의 물(物)이다. 이 일이 있으면 일을 따라서 어기는 것이 없고, 이 일이 없으면 억지로 이유를 붙여 하지 않는다는 말이니, 이는 ‘성실히 하는 것을 신(信)이라 이른다’는 뜻과 서로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혹자는 “물(物)이란 이치[理]이다. 참으로 이 이치를 따라서 어기는 것이 없고 자신을 반성하여 성실하다는 뜻이니, 이는 대개 맹자의 ‘자기에게 있다[有諸己]’는 설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또 정자가 “물(物)을 극진히 발휘하는 것을 신(信)이라 이른다”고 말한 것도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어찌 “자기 마음을 극진히 발휘하는 것을 충(忠)이라 이른다”는 것이 자기를 처리하는 경우에 극진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고, “물(物)을 극진히 발휘하는 것을 신(信)이라 이른다”는 것이 사물에 베푸는 경우에 반드시 성실하게 한다는 것이겠습니까? 반드시 성실함으로 사물에 베푼다는 것도 또한 극진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표리(表裏)와 내외(內外)라고 말한 것은 대개 자기에게 보존된 것이 반드시 극진히 발휘만 된다면 사물에 베푸는 경우에도 반드시 성실하게 됩니다. 자기에게 스스로 극진히 행하는 것이 충(忠)이요, 이 충을 미루어서 행하는 것이 신(信)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증자(曾子)의 삼성(三省)도 반드시 각각 그 공력을 들였으니, 이것을 믿고 저것을 책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하나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程子曰: ‘循物無違謂信.’ 竊謂物者, 事物之物. 有是事則循是事而無所違, 無是事則不鑿空而爲之說, 此與 ‘以實之謂信’ 意相似. 或者謂物者, 理也. 實循是理而無所違, 有反身而誠之意, 蓋孟子‘有諸己’ 之說. 不知是否? 又程子所謂 ‘盡物之謂信’者, 銖所未喩. 豈盡己之謂忠者, 處於己者無不盡, 盡物之謂信者, 施於物者必以實歟? 則必以實施於物者亦無不盡矣. 其所謂表裏內外者, 蓋惟其存於己者必盡, 則其施於物也必實. 在己自盡之謂忠, 推是忠而行之之謂信. 雖然, 曾子之三省必亦各致其功, 未必恃此而責彼也. 乞賜逐一垂誨.
답: 혹자의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或者之說非是.
문: 정자는 “공정하게 사람으로서 주관하기 때문에 인(仁)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 말을 선생께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이 답하기를 “체(體)는 사물을 주관한다는 체(體)이니, 주역에서 ‘일을 주관한다[幹事]’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뜻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이 형체를 갖추면 곧 바로 이 성(性)이 있게 되고, 이 성이 있으면 이 이(理)가 있으니 태어나는 것과 함께 생겨나 완전하게 구비되어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단지 사사로움에 가리우기 때문에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만일 공정할 수 있으면 이 이(理)는 곧 저절로 두루 유행하고 충족되어서 외부에서 빌리지 않아도 된다. [이 이(理)는 곧 이른바 인(仁)이요 인이란 사랑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정자는 ‘인(仁)의 도리는 공(公) 한 글자만 말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천(伊川)은 또 사람들이 공정함[公]을 곧 인(仁)으로 볼까 우려했기 때문에 ‘공정함은 반드시 사람으로서 체득한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체(體)란 주관한다는 것과 같다.] 저는 당시에 비록 선생의 이런 뜻을 살펴 기록했으나, 기록에 오류가 있을까 우려됩니다.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程子曰: ‘公而以人體之故爲仁.’ 銖昔嘗問此語於先生, 先生曰, 體猶體物之體, 猶易所謂體物.其意若謂人之生具此形, 卽有此性, 有此性則有此理, 與生俱生, 完具無欠. 只爲蔽於私, 所以不行. 若能公, 則此理便自周流充足, 不假於外. 此理卽所謂仁也, 仁者愛之理. 故程子曰: ‘仁之道, 只消道一公字.’ 然伊川又恐人將公便喚作仁, 故曰 ‘公須以人體之.’ 體猶主也. 銖當時雖省記先生是此意, 恐記得差誤, 乞賜垂誨.
답: 이[此] 아래의 몇 가지 설명은 모두 내 뜻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함양하면서 실천해야지, 이처럼 말로만 해서 일에 보탬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此下數說大槪皆近之, 更宜涵泳而實履之, 不可只如此說過, 無益於事也.
문: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한다[賢賢易色]”는 한 장(章)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보니 상채(上蔡: 정자의 문인 사량좌의 호)가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이 잘생긴 얼굴을 좋아하듯이 한다면, 천하의 성실한 뜻은 이보다 더할 것이 없다. 덕을 좋아하기를 마치 잘생긴 얼굴을 좋아하듯이 한다면, 또한 지극히 덕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 말이 매우 정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곧 “장자소(張子韶)의 ‘학문은 인륜을 밝히려는 것이니 덕을 좋아하고 잘생긴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부부의 윤리가 바르게 된다’는 설명만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까지 미루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상채(上蔡)의 설명과 이천(伊川)의 “어진 이를 만나면 얼굴빛을 바꾸는 것은 더욱 공경하는 마음을 표하여 선을 좋아하면서 성실히 행한 것이다”는 설명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정밀합니까? 또 자하(子夏)의 뜻은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비록 남들은 배우지 못했다고 여기더라도 자하 본인은 반드시 이미 배웠다고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의 의미를 음미해보면 자하는 사람들이 배우기를 바라지 않은 적이 없지만 그 말에는 병폐가 없을 수 없습니다. 공자의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한다”는 말이 본말과 선후를 갖춘 것만 못합니다. 그래서 논어집주는 특히 오씨(吳氏)의 설명을 드러내었으니,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정밀합니다.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賢賢易色’一章, 竊謂上蔡所謂如惡惡臭․如好好色, 天下之誠意無以加此. 好德如好色, 亦可謂好德之至也, 此語似甚精. 而或者乃謂不若張子韶曰 ‘學所以明人倫也, 好德不好色, 則夫婦之倫正.’ 似恐不必推說至此. 然上蔡之說與伊川所謂見賢則變易顔色, 愈加恭敬, 好善而誠也, 二說孰精? 又子夏之意以謂人能如此, 則雖人以爲未嘗學, 子夏必以爲已學也. 玩其語意, 則子夏未嘗不欲人學, 然其語不無病, 不若夫子所謂 ‘行有餘力則可以學文’ 者爲有本末先後. 故集註特著吳氏之說, 所以垂訓者精矣. 乞賜垂誨.
답: 마땅히 사씨(謝氏: 상채)의 설명을 따라야 합니다.
當從謝氏說.
문: “공자는 온화․선량․공손․검소․겸양하여 이를 얻었다[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는 한 장(章)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보니 정자(程子)의 뜻이 참으로 명백합니다. 사씨(謝氏: 상채)는 “배우는 자들이 성인의 위엄 있는 거동 사이에서 관찰하면 또한 덕에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 매우 정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곧 “장자소(張子韶)의 ‘온화․선량․공손․검소․겸양은 참으로 배우지 않을 수 없으니 마땅히 성인의 도를 배워 자연히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만일 거짓으로 행위를 꾸미고 용모를 치장한다면 이 또한 성인의 문하에서 벌받을 일이다’는 설명만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공자의 덕과 용모가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덕이 융성하고 인(仁)이 숙성되어 자연스러운 광채가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배우는 자들이 성인을 배운다면 참으로 감정을 꾸미고 용모를 치장하면서 헛되이 밖으로 보여주기만 하고 내면을 기르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용모와 말투 사이도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곳이요, 지식을 이루고 행동에 힘쓰는 근원이 되는 곳입니다. 이제 이런 곳에서 존양(存養)하거나 함축하여 성인의 기상을 배우지 않는다면, 다시 어디에서 성인의 도를 배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배우는 자들의 안팎으로 서로 돕고 기르는 노력이 이런 곳에서 완숙해지면, 기상은 저절로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또 ‘검(儉)’은 절제(節制)한다는 뜻입니다. 절제에는 저절로 법도와 기준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온화․선량․겸양에는 조화롭고 평이한 기상이 있고, 공손․검소에는 근엄하고 조심하는 기상이 있습니다. 사씨의 “태연하기가 봄과 같고 근엄하기가 가을과 같다”는 말이 이런 것입니다. 모두 하나하나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一章, 竊謂程子之意固已明白, 謝氏曰: ‘學者觀於聖人威儀之間, 亦可以進德矣’, 此語似甚精. 而或者乃謂不若 張子韶曰 ‘溫良恭儉讓固不可以不學, 要當學聖人之道, 以求其自然發見者. 若乃矯僞其行, 粉飾其容, 此又聖門所誅也.’ 銖竊謂夫子德容至於如是, 固有德盛仁熟而其自然之光輝著見於外. 學者之學聖人, 固不當矯情飾貌, 徒見其外而不養其中也. 然容色辭氣之間, 亦學者所當用功之地而致知力行之原. 今不於此等處存養涵蓄, 學聖人氣象, 不知復於何者爲學聖人之道乎? 竊謂學者內外交相養之功, 正當熟玩此等, 氣象自別. 不知是否? 又儉, 節制也, 節制莫是自然有法度繩約之意否? 溫․良․讓有和易氣象, 恭․儉有儼恪氣象, 謝氏所謂‘泰然如春, 儼然如秋’是也. 倂乞逐一垂誨.
답: 만일 장씨(張氏)의 설명과 같다면 향당(鄕黨)편은 없애도 좋을 것입니다.
如張氏說, 則鄕黨篇可廢矣.
문: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는다”는 한 장(章)에 대해, 저는 어려서부터 선생과 정(程)선생이 이 한 문단을 반복해서 논의한 것을 보았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 생각으로는 정자(程子)의 “효자가 상을 치르면서 뜻을 보존하고 아버지의 도를 지킨다는 것은 반드시 일을 위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는 말이 매우 적당하다고 여깁니다. 시험삼아 제가 생각해서 얻은 것을 말씀드리고 가르침을 구하고자 합니다. ‘지(志)’란 지취(志趣)이니 그 마음이 내달려가려는 것이 이것입니다. ‘행(行)’이란 행실(行實)이니 그 뜻을 행하여 이루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자식이 행사(行事)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나 그 뜻의 취향을 알 수 있으므로 그 뜻을 본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자식은 그 뜻을 행할 수 있어서 그 행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기 때문에 그의 행실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년 동안 애통하고 사모하여 자식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마치 아버지가 살아 계셔 다시 뵙는 것처럼 하는데, 어찌 차마 자기의 뜻을 얻어 행하여 갑자기 고쳐서 자기의 뜻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이 마음을 보존할 수 있다면 고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을 때에 우리가 공론에 밀려 부득이 고친다 하더라도 효를 행하는 데 해로움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 마음이 스스로 원해서 자기의 뜻을 행하여 이전의 일에 자기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을 갑자기 고쳐서 자기의 뜻을 따를 수 있다고 여긴다면, 불효가 또한 크니 어찌 다시 고치는 것이 합당한지 합당치 않은지를 논의하겠습니까? 대개 효자의 마음 씀씀이는 친애함이 비록 살아 계시거나 돌아가신 사이에 있다하더라도, 그 마음은 한결같이 아버지가 계신 것처럼 하여 감히 스스로 멋대로 않습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도라는 것은 또한 마땅히 고쳐야할 것을 고치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은 흰 망아지가 틈새를 지나치는 것과 같은데, 이 마음을 오히려 보존할 수 없어 한결같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경솔하게 고친다면, 효자의 마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공자는 곧바로 효자의 마음을 가리켜 지극히 은미함을 미루어 보는 것이요 반드시 일을 위주로 해서 말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만일 밖으로 공론에 밀리고 안으로 고치려는 욕망을 품었으면서도 우선 은밀히 참아내며 끼워 맞추어 3년을 기다린 뒤에 고친다면, 경전의 문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의 뜻을 크게 그르친 것입니다. 저의 외람한 논의가 이와 같은데 조금 위배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三年無改於父之道’ 一章, 銖自幼年, 則見先生與程先生反復論此一段, 當時固莫能曉. 近來思之, 竊謂程子所謂孝子居喪志存守父在之道, 不必主事而言者, 頗爲的當. 請試言其所思而得之者以求敎. 志者, 志趣, 其心之所趣者是也. 行者, 行實, 行其志而有成也. 父在子不得專於行事, 而其志之趣向可知, 故觀其志. 父沒則子可以行其志矣, 其行實暴白, 故觀其行. 然三年之間, 疾痛哀慕, 其心方皇皇然, 望望然, 若父之存而庶幾於親之復見, 豈忍以爲可以得行己志而遽改以從己志哉? 存得此心, 則於事有不得不改者, 吾迫於公議, 不得已而改之, 亦無害其爲孝矣. 若夫其心自幸, 以爲於是可以行己之志, 而於前事不如己意者則遂遽改以從己之志, 則不孝亦大矣, 豈復論其改之當與不當哉? 蓋孝子處心, 親雖有存沒之間, 而其心一如父在, 不敢自專. 况謂之父道, 則亦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 三年之間, 如白駒過隙, 此心尙不能存, 而一不如志, 率然而改, 則孝子之心安在哉? 故夫子直指孝子之心, 推見至隱, 而言不必主事言也. 若乃外迫公議, 內懷欲改, 而方且隱忍遷就, 以俟三年而後改焉, 則但不失經文而已, 大非聖人之意矣. 妄論如此, 不知稍不畔否? 乞賜垂誨.
답: 이 설명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전의 학자들에게도 이미 이런 뜻이 있으니, 좀더 자세히 체인(體認)해야지 이처럼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此說得之. 然前輩已嘗有此意矣, 更須子細體認, 不可只如此說過.
문: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다”는 한 장(章)에 대해, 정자(程子)는 “사람이 안정되어 중후하면 학문이 견고해진다”고 말했는데, 범씨(范氏)와 유씨(游氏)가 그 설명을 정밀하게 미루어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 경전의 문구를 음미해보면 여씨(呂氏)의 “배우면 사물의 부류를 알아 통달하게 되므로 가리워 굳어지는 데 이르지 않는다”는 말만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개 이를 하나의 일로 설명해본다면 어찌하여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은 견고해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다”는 말에는 공경을 독실히 한다는 뜻이 들어있고, “학문은 견고해지지 않는다”는 말에는 지식을 이룬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학문은 본래 지(知)와 행(行)을 겸하여 말했으나, 공자가 여기에서 말한 것은 학문에는 또한 지(知)의 뜻만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충신(忠信)을 주장한다”는 구절에 대해, 저는 충신은 대개 성실(誠實)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이치로 말하면 성실이라 말하고, 사람이 행하는 것으로 말하면 충신이라 하니, 그 내용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이천(伊川)이 “충신은 사람으로 말했으니 요약해보면 실제의 이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만 못한 사람을 벗삼으려 하지 말라”는 구절에 대해, 정(程)선생이 상채(上蔡)에 말하기를 “나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면 사람을 둔하고 막히게 한다”고 했으니, 이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벗을 구할 때 참으로 이 마음이 없을 수 없고 또한 기필(期必)할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나보다 나은 사람을 구한 뒤에 벗삼으려 한다면 나보다 나은 사람도 나와 벗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성인의 마음씀은 결코 이와 같지 않습니다. 자하(子夏)가 그 문인에게 벗을 가려 사귀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사귈만한 사람과 함께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지나쳤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장(子張)은 오히려 옳지 않다고 말했으니, 나보다 못한 사람과 어울려 벗하지 않는다면 성인의 기상은 이와 같지는 않을 듯합니다. 양씨(楊氏)는 “나와 같은 자와 뜻을 합하여 한 곳에 어울릴 뿐이요 반드시 나보다 나아야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일찍이 “이와 같다면 그 폐단이 선(善)으로 책망하고 인(仁)으로 돕는 유익함이 없는 데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라고 물었더니, 선생께서는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끝내 온당치 못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대개 성인의 말뜻을 음미해보면 바로 사람들이 나보다 못한 자와 함께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말을 하여 경계한 것입니다. ‘무(無)’는 ‘무(毋)’와 통하니 금지하는 말입니다. 이씨[李氏: 이름은 욱(郁)]에게 들어보니 “사람마다 나보다 나은 자를 구하여 벗한다면 어리석고 노둔한 사람은 거의 벗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나보다 현명한 자와 함께 하는 경우가 항상 적고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자와 함께 하는 경우가 항상 많으니, 이것이 학문이 진보하지 않는 이유이다. 학문에 뜻을 두었다면 나만 못한 자를 마땅히 벗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 뜻이 올바른 이해에 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君子不重則不威’ 一章, 程子曰: ‘人安重則學堅固.’ 茫氏․游氏推明其說精矣, 然味其經文, 竊謂恐不若呂氏曰: ‘學則知類通達, 故不至於蔽固.’ 蓋若作一事說, 則曷不曰 ‘君子不重則不威而學不固’ 乎? 不重則不威, 有篤敬意; 學則不固, 有致知意. 學固兼知與行而言, 而夫子言之於此,則學又自有專說知意. ‘主忠信’, 竊謂忠信蓋誠實之意. 蓋自理而言, 則謂之誠實; 自人所行而言, 則謂之忠信, 其實一也. 故伊川曰忠信者, 以人言之, 要之則實理也. ‘無友不如己者’, 程先生以謂上蔡云 ‘與不勝己者友, 鈍滯了人’, 此語誠是. 然人之求友, 固不可無此心, 而亦不可必也. 必欲求勝己者而後友, 則勝己者亦不與我友矣. 聖人用心不如是. 子夏敎其門人以擇交之道曰 ‘可者與之,其不可者拒之’, 此未爲過也. 而子張猶以爲不可, 則不勝己者不與之友, 聖人氣象恐不如是. 楊氏所謂 ‘如己者, 合志同方而已, 不必勝己也’, 似以此言爲當. 銖嘗問之曰: ‘恐如此其弊或至於無責善輔仁之益.’ 先生曰: ‘道不同不相爲謀.’ 然銖思之, 終恐未安. 蓋味聖人語意, 正謂人好與不己若者處, 故爲此言以戒之. ‘無’ 與 ‘毋’ 通, 禁止之辭. 聞之李氏曰: ‘人皆求勝己者友, 則愚與魯幾於無友矣. 然世人知與賢己處者常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