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84

황성 2025. 8. 1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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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친구제자들과의 문답 書 知舊門人問答

 

 

 

조자흠 언숙에게 답함 1 答趙子欽(彦肅)

 

해제이 글은 1186(순희 13, 병오, 57)에 조자흠(趙子欽)에게 답한 편지이다. 유가의 학문은 고원하고 광박(廣博)한 곳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실제적인 곳에 힘을 쏟는 데 있음을 일깨우고, 󰡔주역󰡕의 원()()()()에 대해 문왕과 공자의 설명이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지난번에 부쳐준 글을 받아보았는데, 아마도 한때 생각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경솔하게 답장을 보낸 듯합니다. 오늘 그대의 편지를 살펴보니 곧 평소에 깊이 체득하고 실제로 깨달은 것이어서, 경솔하게 발언한 것을 몹시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깊이 체득하고 실제로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은 곧 이 정도에서 그쳐야 합니다. 그대의 처지로 보아 이 정도에서 공부를 그만둔다는 것은 더욱 마땅하지 않을 듯합니다. 󰡔이정유서(二程遺書)󰡕를 산정했으나 깔끔하지 못하고, 󰡔역전(易傳)󰡕을 탐구했으나 깨닫지 못하니, 이는 당시에 양()() 같은 여러 선배들도 오히려 감히 가볍게 말하지 못했는데, 오늘날 어찌 감히 이러쿵저러쿵 따지겠습니까? 다만 그대가 제시한 둔괘(屯卦)의 설명은 깊이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만일 이것으로 󰡔역전󰡕7푼의 마음을 채워 넣으려한다면 합당하지 않을 듯합니다.

昨承寄及文字, 意謂一時思索偶有所末至, 故率易報去. 今承示喩, 乃平日所深體而實見者, 甚悗輕發. 然所謂深體而實見者乃止如此, 在賢者似尤不宜如此便休也. 遺書之未精, 易傳之未至, 此在當曰諸先達猶末敢輕言之, 今日安敢議此耶? 只如所示卦之說, 深所未曉. 若欲以此揍補易傳七分之心, 恐合不著也.

 

대체로 요즈음 학자들에겐 으레 고원(高遠)한 것을 좋아하고 광박(廣博)하기에 힘쓰는 병폐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인의 말씀을 곧바로 실제적인 곳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고, 굳이 현묘(玄妙)하거나 심원(深遠)한 것을 말하면서 지루하게 수다를 부리니, 자기에게 무익할 뿐만 아니라 남들이 듣기에도 염증이 나게 합니다. 만약 도리가 단지 이와 같다면 이전의 현인들이 어찌 이와 같은 말을 알지 못했겠습니까? 어찌하여 도리어 이처럼 평이담백하고 간결단순할 뿐이어서, 결코 오늘날의 학자처럼 크게 놀랍고 조금 괴이한 일종의 들뜬 설명이 없는 것입니까? 대개 분명하게 살펴보고 난숙하게 생각하여 그저 이와 같이 말했을 뿐 달리 말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7푼쯤 말했을 뿐이다라고 한 것 또한 깊이 침잠하여 스스로 믿고 스스로 터득해 가는 공부는 배우는 자가 스스로 힘을 쏟는 데 달려있음을 말했을 뿐이니, 어찌 다시 외부의 재료를 따로 첨가하여 현주(玄酒)를 빚고 대갱(大羹)을 조리하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大率近日學者例有好高務廣之病, 將聖人言語不肯就當下著費處看, 須要說敎玄妙深遠, 添得支離蔓衍, 未論於己無益, 且是令人厭聽. 若道理只是如此, 前賢豈不會說? 何故却只如此平淡簡短, 都無一種似此大驚小怪庇浮說? 蓋是看得分明, 思得爛熟, 只有此話, 別無可說耳. 其曰只說得七分者, 亦言沈酣浸濆, 自信自得之功更在學者自著力耳, 豈是更要別添外料, 釀玄酒而和大羹也耶?

 

또한 원()()()() 넉 자로 말하면, 문왕의 본뜻은 건괘와 곤괘에 있는 것이 단지 다른 괘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형통하되 바름에 이롭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단전문언을 지음에 이르러 비로소 건괘와 곤괘에 있는 것을 사덕(四德)으로 삼고, 다른 괘들에 있는 것은 예전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는 두 성인의 뜻에 다른 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하나의 이치를 밝혔을 뿐입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마음을 비우고 뜻을 음미하여 각각 본문의 뜻에 따라 깊이 체득해야만 할 것입니다. 두 성인의 같지 않은 곳은 본래 서로 저촉되지 않는데, 대뜸 자기의 생각으로 함부로 주장을 세워 반드시 끌어다가 일치시키고자, 사사로운 뜻을 기르고 쓸데없는 말을 보태어 종일토록 헛된 말과 들뜬 논변 사이에만 치달릴 뿐, 존양하고 성찰하는 일상의 공부에는 도리어 손해만 입고 이익은 없게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且如 元亨利貞四字, 文王本意, 乾坤者只輿諸卦一般, 是大亨而利於正耳. 孔子彖慱文言, 始以乾坤爲四德, 而諸卦自如其舊. 二聖人之意非有不同, 蓋各是發明一理耳. 今學者且當虛心玩味, 各隨本文之意而體曾之, 其不同處自不相妨, 不可遽以己意橫作主張, 必欲挽而同之, 以長私意增衍說, 終日馳騖於虛詞浮辨之間, 而於存養省察日用之功反有所損而無所益也.

 

지난 해 편지를 받던 날, 마침 강서(江西) 출신 부자연(傅子淵)이 좌중에 있었습니다. 내가 그대의 설명을 기쁜 마음으로 듣고서 편지를 보여 주었더니, 부자연은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여겼으나 지금에 와서 보니 나의 보잘것없는 견해가 과연 부자연에게 부끄러운 바가 있었습니다. 원하건대 그대는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여 나로 하여금 끝내 부끄러운 바가 있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去歲承書之日, 適有江西傳子淵在坐, 蓋喜聞足下之說, 而以示之, 子淵不善也. 猶未以爲然. 然自今觀之, 則拙者之見果爲有愧於子淵. 願賢者深思而有以反之, 勿使爲終有愧也.

 

 

조자흠에게 답함 2 答趙子欽

 

해제이 글은 1186(순희 13, 병오, 57)에 조자흠(趙子欽)에게 답한 편지이다. 학문의 방법에 대해 짤막한 견해를 덧붙였다.

 

그대의 편지에서 '말은 어눌하게 하면서도 행동은 민첩하다'는 구절에 대한 설명은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편지에서 내가 논의한 것도 또한 전혀 강구(講究)하지 않고 오로지 역행(力行)하기에 힘쓰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성인의 말씀의 미묘한 뜻은 본래 정밀하고 간결하기 때문에 이처럼 지루하게 수다를 부려 탐구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멀어질까 두려울 뿐입니다.

示喩訥言敏行之意, 甚善. 然前書鄙論亦非謂都不講究而專務力行也, 正爲聖言微指本自精約, 不當如是支蔓以求之, 恐其愈多而愈遠耳.

 

 

조자흠에게 답함 3 答趙子欽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3, 기유, 60)에 조자흠(趙子欽)에게 답한 편지이다. 󰡔주역󰡕의 시초점(蓍草占)에서 50개 시책(蓍策) 1개를 비워 태극을 형상화하는 문제에 대해서 논란을 벌이고 있다.

 

그대의 편지에서 하나를 비운다[虛一]’는 구절에 대한 설명은 매우 좋았습니다. 이는 본래 성인(공자)이 말하지 않은 것인데 지금 하나의 구절을 덧붙여 놓았으니 이는 곧 군더더기 말이 됩니다. 그대의 편지에서 점치는 원리를 추론한 설명은 매우 합당했지만, 49개의 시초(蓍草)를 쥐어서 나누지 않는 것을 태극의 형상으로 여긴다면, 또한 온당하지 못할 듯합니다. 대개 태극은 형상이 갖추어지기 이전의 것이고, ()()()()는 형상이 갖추어진 이후의 것입니다. 만약 49개의 시초를 합하여 태극의 상()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면, 오도 또한 합하여 태극의 체()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대개 태극은 비록 음양 오행을 벗어나지 않지만, 그 본체는 또한 음양 오행과 섞이지 않는 것이니, 나는 주자(周子: 염계 주돈이)태극도(太極圖)통서(通書)의 서두에서 이미 이러한 뜻을 밝혔습니다. 만약 반드시 그 형상화한 것이 조금의 차이도 없게 되려면, 형체를 갖추기 이전과 이후[形而上下]를 결국 억지로 분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각각 가리키는 바를 따라서 말한다고 한다면, 쥐어서 나누지 않은 것으로 태극을 형상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쓰지 않는 하나의 시책(蓍策)으로 그것을 형상화한다고 함이 병폐가 없을 것입니다. 그대는 시험삼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떠할는지요?

示喩虛一之說, 甚善. 此本聖人所不言, 今著一句便成贅語. 來喩推說其理甚當, 但以四十九著握而未分爲太極之象, 則恐亦末穩當. 蓋太極, 形而上者也. 兩三四五, 形而下者也. 若四十九著可合而命之日太極之象, 則二三四五亦可合而命之曰太極之體矣. 蓋太極雖不外乎陰陽五行, 而其體亦有不離乎陰陽五行者. 周子之圖書之首固已發此意矣. 若必其所象毫髮之不差, 則形而上下終不容强於匹配. 若日各隨所指而言, 則與其以握而未分者象太極, 反不若以一策不用者象之之爲無病也. 明者試復思之, 如何?

 

 

조자흠에게 답함 4 答趙子欽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3, 기유, 60)에 조자흠(趙子欽)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고대 예악(禮樂)을 고증하는 일반적인 방법론을 말하고, 육상산의 심학(心學)이 드러낸 학문적인 모순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스스로 반성하여 미묘한 이치를 연구한다고 말해주니, 그대의 지극한 뜻에 깊이 느낀 바 있어 감히 노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여타의 논의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시악(詩樂)편의 음조를 일으키거나[起調] 곡조를 마무리하는[畢曲] 방법은 곧 예로부터 전해온 바가 이와 같아 음조에 바야흐로 귀결처가 있어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온공(溫公: 사마광)󰡔서의(書儀)󰡕에는 참으로 옛날 제도와 다 합치하는 못하는 곳이 있으나, 이를 함께 간직하면 저절로 득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의 말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곧장 삭제해버리고자 한다면 너무 경솔한 듯합니다. 또한 저들은 풍속을 숭상하여 고례(古禮)를 섞어 넣고, 나는 억측으로 고악(古樂)을 고친다면, 어찌 미래에서 현재를 보는 것이 현재에서 과거를 보는 것과 같지 않음을 알겠습니까? ()과 실()의 제도는 분명 이미 그 상세한 내용을 알았을 것이니 인편을 통하여 속히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바야흐로 몇 칸의 집을 지으려 하는데 이를 취하여 본보기로 삼고자 해서입니다.

自反硏幾之喩, 極感至意, 不敢不勉. 但他論有未能無疑者. 如詩樂起鏑畢曲之法, 乃自古所傳如此, 音調方有歸宿, 不可紊亂. 溫公書儀誠有未盡合古制處, 然兼而存之, 自可考見得失. 今以其一詞之不合便欲削去, 似亦草率. 且彼以俗尙而雜古禮, 吾以臆見而改古樂, 安知後之視今不猶今之視昔耶? 堂室制度必已得其詳實, 因便早幸示及. 方欲葺數椽之居, 或可取以爲法耳.

 

자정(子靜: 육상산)은 그 후 편지를 받아 보니 전보다 더욱 심해졌습니다. 대저 그 학문이 마음공부에서는 깨달은 곳이 없지 않지만, 곧 이를 믿고서 고금(古今)의 역사를 업신여기면서 다시는 이치를 탐구하는 세밀한 공부를 하지 않아 마침내 그 얻은 것마저도 함께 잃어버린 셈입니다. 인욕(人欲)이 멋대로 흐르는 데에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서 높고 큰 담론을 일삼아 천리(天理)가 모두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른바 마음공부라는 것 또한 어디 있습니까?

子靜後來得書, 愈甚於前. 大抵其學於心地工夫不爲無所見, 但便欲恃此陵跨古今, 更不下窮理細密功夫, 卒幷與其所得者而失之. 人欲橫流, 不自知覺, 而高談大論, 以爲天理盡在是也, 則其所謂心地工夫者又安在哉?

 

 

조자흠에게 답함 5 答趙子欽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3, 기유, 60)에 조자흠(趙子欽)에게 답한 편지이다. 주자가 집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제도를 질문하고, 질문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아울러 󰡔주역󰡕을 연구하면서 간이(簡易)의 뜻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예도(禮圖)는 상고할 겨를이 없었고 또한 평소에 이 편을 익숙하게 보지 못하여 갑자기 살펴볼 수도 없습니다. 만약 다시 관례와 혼례 두 도식을 얻어서 함께 고증할 수 있다면 곧 다행이겠습니다. ()의 지게와 들창이 앞(남쪽 벽)에 나란히 있으니, 어디쯤 지게를 만들고 어디쯤 들창을 만드는지 모르겠군요. 방은 실()의 동쪽에 있고 북쪽 벽을 없앴는데, 그 남쪽 지게에 문짝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방의 지게는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까? 동쪽 모서리에 가깝습니까? 서쪽 모서리에 가깝습니까?양쪽 계단은 동쪽과 서쪽 담의 중앙에 맞대어 올려야 합니까? 양쪽 기둥에 가깝게 올려야 합니까? 양쪽 벽에 가깝게 올려야 합니까? 반드시 먼저 이러한 지반과 구조를 정해야만 곧 오르고 내리고 들고 나는 것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울러 하나의 도식을 만들어 자세하게 보여주길 바랍니다.

󰡔주역󰡕에 관한 설명은 용의가 주도면밀하지만 나의 견해에 도리어 합당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이처럼 너무 꼼꼼하게 설명하고 너무 세밀하게 뜻을 취하다가 간혹 간이(簡易)의 뜻을 손상시키기도 하니, 좀더 상세하게 음미한 뒤에 별도로 알려드리겠습니다.

禮圖未暇詳考, 亦是秦看此篇不熟, 猝乍看未得. 若更得冠婚禮二圖, 容幷考之, 乃爲幸耳. 室戶之牖並列於前, 不知以幾分爲戶, 幾分爲牖? 房在室東而無北壁, 不知其南尸有扉否? (房之戶當中耶? 近東角耶? 近西魚耶?) 兩階當亘東西序之中而上耶? 近兩楹而上耶? 近兩壁而上耶? 須先定此地盤間架, 乃可議其升降出人. 幸亦幷作一圖, 子細見示也. 說用意甚精, 然鄙見却有未安處. 似是爲說太精, 取義太密, 或傷簡易之趣. 更俟詳玩, 別奉扣也.

 

 

조자흠에게 답함 6 答趙子欽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3, 기유, 60)에 조자흠(趙子欽)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학자들이 마음을 비우고 한 걸음 물러나 찬찬히 문구를 살펴보는 것이 성현의 경전을 대하는 태도임을 밝히고 있다.

 

나는 수 년 이래 몇 가지 묵은 책을 수정하고 있는데 그대를 만나 토론하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대저 내가 항상 걱정해온 문제는 근세의 학자들이 도리(道理)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탓에 마음을 비우고 한 걸음 물러나 찬찬히 성현의 말을 관찰하여 그 뜻을 찾지 못하고 곧장 자기의 생각을 그 가운데 억지로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쇄하게 천착하는 병폐를 면치 못하여 성현의 말을 그 자체로 있게 하지 못하고 항상 나의 설명에 부림을 받게 하다가, 심지어는 협박하고 속박하여 좌지우지하면서 간혹 그 형체마저 손상시키고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을 바에는 스스로 경전을 짓는 편이 나을 것이니, 어찌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여 옛사람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數年來有更定舊書數種, 欲得面論而不可得. 大抵愚意常患近世學者道理太多, 不能虛心退步, 徐觀聖賢之言以求其意, 而頁以己意强眞其中, 所以不免穿鑿破碎之弊, 使聖賢之言不得自在而常爲吾說之所使, 以至劫持縛束而左右之, 甚或傷其形體而不恤也. 如此則自我作經可矣, 何必曲躬俯首而讀古人之書哉? 不識明者以爲如何?

 

 

조자흠에게 답함 7 答趙子欽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3, 기유, 60)에 조자흠(趙子欽)에게 답한 편지이다. 󰡔주역󰡕과 상수학(象數學)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밝히고, 아울러 독서하는 태도와 학문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으며, 자신이 주해한 경전들을 부쳐주면서 한번 읽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예도(禮圖)는 매우 정밀하더군요. 다만 병든 내 몸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는데 정보(正甫)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시 수십일 동안 큰 병을 앓다가 오늘 급히 귀가해버려 결국 자세하게 검토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어제 찾아온 사위 황간(黃榦)이 당()과 서()의 제도를 고증했는데 그대가 보낸 온 것과 너무 차이가 났지만 또한 참고하여 절충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정보(正甫)가 분명 가지고 갔을 것이니 자세히 살펴보고 그가 올 때에 알려주면 다행이겠습니다.

그대의 󰡔주역󰡕에 대한 설명은 용의가 매우 주도면밀하더군요. 나도 역시 평소에 󰡔주역󰡕은 상수(象數)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상수의 학문도 반드시 대체와 강령을 알아야 점차 탐구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번쇄하게 나누고 억지로 부합시키려고만 한다면, 성인의 의도가 본래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공부하는 힘을 헛되이 쓰게 될 듯합니다.

禮圖甚精, 但病軀尙爾支離, 正甫到此未久, 亦大病數十日, 今又迫歸, 遂不得子細商訂. 但昨來黃婿考得堂序制度頗與來示不同, 亦未暇參考折中. 正甫計必持歸, 幸爲詳之, 因來喩及也. 說用意固甚精密, 愚意亦素謂學不可離却象數, 但象數之學亦須見得大槪總領, 方可漸次尋探. 今但如此瑣細附合, 恐聖人之意本未必爾而虛費功力也.

 

대저 독서란 반드시 이해할 수 없는 곳이 있음을 깨달아야 비로소 장족의 진보가 있는 법입니다. 다시 이해할 수 없는 곳에 나아가 의심스런 대목은 빼놓고 그 나머지를 반복해서 읽으면, 아마도 성인의 뜻을 얻고 사리(事理)의 참됨을 알게 되어 그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보(正甫)는 학문에 대한 의향과 평소의 몸가짐으로 보아 쉽게 얻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글을 볼 때에 역시 아직도 자기 견해를 강하게 내세우는 곳이 많으니, 이는 학자들의 공통된 병폐로 선배들도 간혹 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선대 성인(공자)너그러움으로써 머무른다고 말한 것과 자장(子張)덕을 잡음이 넓지 못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병폐를 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만나서 이야기할 길은 없고 편지로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없는데, 노쇠한 몸이 질병마저 들어 아마도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할 듯합니다. 혹 서둘러 이곳을 한번 찾아주어 나의 구구한 회포를 다 기울여 보일 수 있게 해줄는지요. 만에 하나라도 그대가 여기에서 취할 만한 것이 있게 된다면 이 또한 작은 인연이 아닐 것입니다.

大抵讀書須見得有曉不得處, 方是長進. 又更就此閼其所疑而反復其餘, 則庶幾得聖人之意, 識事理之眞, 而其不可曉者不足爲病矣. 正甫趨向持守甚不易得, 但看文字亦尙多强說處. 此學者之通患, 如前輩亦或未能免. 先聖所謂寬以居之, 子張所謂執德不弘, 正爲救此病耳. 不織明者以爲如何? 無由面話, 書札不得究所欲言. 而衰晩疾病, 恐不久在世間. 或能早爲命駕一來, 使區區懷抱得以傾倒, 而萬一痔有取焉, 亦非小因緣也.

 

이곳에 비록 몇몇 벗들이 있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흔히 뜻을 다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죽기라도 하면 이 일을 부탁할 곳이 없게 되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학󰡕․󰡔논어󰡕․󰡔맹자󰡕에 대한 해설을 각각 한 통씩 노파심으로 보냅니다. 이는 요사이 수정한 것이나 오히려 억지로 설명하느라 힘을 허비한 곳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번거롭지만 한번 살펴보고 날마다 만나 토론하여 반드시 이러한 병폐를 다 제거해야 비로소 성인의 본뜻을 보게 됩니다.

此間雖有士友數輩, 然與之語往往不能盡人意. 一旦溘然, 此事便無所寄, 不得不爲之盧耳. 大學說各一通謾往, 此近日所修定, 然尙覺得有硬說費力處. 煩爲一閱, 見日面論, 須盡去此等病, 方見聖人本意也.

 

 

첨자후에게 답함 1 答詹子厚

 

해제이 글은 1198(경원 4, 무오, 69)에 첨자후(詹子厚)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 글에서 주자는 복재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묘비명을 짓는 일에 성심을 다하고 싶지만 위학(僞學)의 당화 때문에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는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인편을 통해 편지를 보내주니 참으로 위로가 될만합니다. 다만 부쳐준 유()씨와 조()씨 두 분의 편지 및 복재(復齋)의 행실을 애도한 글을 서너 번 반복해 읽고 비통한 심정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 세상에 어찌 이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의 묘비명을 짓는 일에 참으로 나의 성심을 바치고 싶지만, 시론(時論)이 이와 같아 23년 이래로 감히 남을 위해 한 글자도 짓지 않았어도 오히려 허물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물며 지금 견책(譴責)이 한창 새로운 터에 어찌 감히 이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우레벽력과 같은 폐하의 위엄이 혹 가라앉을 그 때를 기다리되 내가 어쩌다 그때까지 죽지 않는다면, 마침내 감히 식언(食言)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만일 내가 아침 이슬처럼 훌쩍 목숨이 다하게 된다면, 제현(諸賢)들의 말이 절로 후세에 기록되기에 충분하여 또한 나를 기다리지 않아도 드러날 것입니다. 부디 은밀히 왕()씨와 유()씨 두 분에게 나의 말을 일러주어 이러한 뜻을 묵묵히 알도록 할 것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便中辱書, 良足爲慰. 但所寄二書及復齋行實莫詞, 三復悲歎, 不能自已. 鳴呼, 世登有斯人耶銘墓誠願效區區, 但時論如此, 兩三年來不敢爲人作一字而猶不免, 今譴貢方新, 豈敢干犯? 且當謹藏, 以俟雷霆之威有時或息, 偶未死, 則終不敎食此言耳. 萬一溢先朝露, 則諸賢之言自足紀於後世, 亦不待而顯. 幸密以告黙會此意, 勿以語人也.

 

 

첨자후에게 답함 2 答詹子厚

 

해제이 글은 1198(경원 4, 무오, 69)에 첨자후(詹子厚)에게 답한 편지이다. 위학의 금지령이 엄중한 시절에 조자흠의 󰡔역설(易說)󰡕을 간행하는 일은 위험스런 시도임을 주지시키고, 탈고되어 가는 자신의 예서(禮書)를 수정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죄를 지었으면서도 다행히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고 있어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조자흠(趙子欽)이 죽다니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전의 편지에서 알린 바 (조자흠의) 󰡔역설(易說)󰡕을 간행하는 일은 그만두었는지 모르겠군요. 아마 그의 글은 대부분 상수(象數)를 말한 것이어서 해롭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만, 그의 글에 이곳의 분위기가 들어있어 사람들에게 미움과 혐의를 사게 될 뿐입니다.

가중(可中)은 어디에 있습니까? 편지 속에서 이곳에 오고 싶다고 말했는데 길을 떠났는지 모르겠군요. 편지를 통해 이러한 뜻을 전해주면 좋겠고, 아울러 왕정보(王正父)의 소재를 탐문해 주십시오. 이곳에서는 예서(禮書)가 점차 탈고되어 가는데 만일 두 사람이 한 번 찾아와 수정해준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말할 수 없으니 (말이 새나가면) 재로 변하는 재앙을 부르게 될 듯합니다.

罪戾之餘, 幸亦粗遣, 不足云云. 子欽之逝, 念不能忘. 前書所報刊行說事, 不知尙及止否? 計其書多說象數, 似亦不妨. 但是有些這下氣息, 令人僧嫌耳. 可中安在? 書中說欲此來, 不知成行否? 因通書幸爲致意, 幷問汪正父所在也. 此間褞書漸可脫稿, 若得二公一來訂之尤佳. 然不可語人, 恐速煨燼之災也.

 

 

증태지 비에게 답함 答曾泰之()

 

해제이 글은 1177(순희 4, 정유, 48)에 증태지(曾泰之)에게 답한 편지이다. 경전공부를 할 때 문자나 언어의 해석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를 닦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초점을 맞춰 반복해서 탐구할 것을 일깨우고 있다.

 

편지로 향당(鄕黨)편 마지막 장()의 의심스런 뜻을 말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곳은 우선 제쳐두고, 도리어 명백하여 알기 쉽고 일상 생활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를 닦는 절실한 곳을 반복하여 탐구하고 깊이 스스로 성찰(省察)하되, 합치되지 않는 곳이 있으면 곧 통렬히 자신의 병폐를 고쳐 나가십시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위기(爲己)의 공부가 될 것이니, 문자와 언어의 측면에만 힘을 기울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곳의 선비들 중에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또한 이러한 뜻으로 일깨워 주십시오. 나는 󰡔논어집주󰡕에서 일찍이 호() 선생의 설명을 다 인용하지는 못했는데, 이로 인해 전달한 바에 오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저서는 문장의 의미를 해설하거나 훈고하여, 학자들이 널리 살펴보느라 힘을 허비하는 것을 면하게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탐구하고 성찰하는 공부는 도리어 사람에게 달려있지 문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所喩鄕黨卒章疑義, 此等處且當闕之, 却於分明易曉切於日用治心修己處反復玩味, 深自省察, 有不合處, 卽痛加矯革, 如此方是爲己功夫, 不可只於文字語言上著力也. 彼中士子有來學者, 亦可以此告之. 論語集注未嘗皆引胡先生, 所傳恐誤. 此書之作只是解說訓詁文義, 免得學者汎觀費力. 然所謂玩味察功夫, 却在當人, 不在文字也.

 

 

서재숙 경에게 답한 편지 1 答徐載叔()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6, 기유, 60)에 서재숙에게 답한 편지이다. 과거시험문제가 번거롭고 난해해지는 악습을 비판한 서재숙의 상소문을 칭송하고, 고문이나 시문이 모두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추구하는 병폐를 지적했으며, 육방옹(陸放翁)의 시를 호평하고 있다.

 

배를 타고 수도로 내려가 대궐로 가서 소장을 올리는 일을 했음을 알았습니다. 이 뜻은 참으로 장합니다. 보내준 상소의 초고는 말의 기운이 분방하고 일의 서술이 상세하여, 병중에 어두운 눈으로 대략 한 번 펼쳐보았음에도 내 뜻에 퍽 흡족했고 논의한 바도 오늘날의 병폐에 잘 들어맞았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經題)의 파쇄(破碎)는 요사이 더욱 심합니다. 예전에 강동(江東)에서 아직 사직의 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부임한 후 여러 고을이 신청(申請)한 것을 검토하여 한 편의 문자를 입수하고 그 중에서 성인의 말을 희롱하고 모독한 정도가 심한 자 한두 명을 탄핵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비록 그들은 분명 나의 처사를 따르지 않겠지만 또한 사람들 사이에 웃음거리가 되게 하여 조금이나마 어두운 풍속을 일깨울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임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 일 또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그대의 글을 읽어보니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듯합니다. 다만 이 일은 좀더 근본적인 방법이 있는데 이제 한갓 병폐를 말할 뿐 어떻게 약을 써야할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또 이는 정치의 요체에 한 가지 일일 뿐인데 문서(상소)의 방대함이 이미 이와 같으니, 아마도 정무를 처결하는 여가에 상세히 살펴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시 줄거리를 간추리고 아울러 시행할 항목을 한두 가지 개진해주면 좋겠습니다.

知放船下都, 爲排雲叫閽之擧, 此意甚壯. 示及稿草, 詞氣奔放而叙事詳密. 病中目昏, 略一披覽, 甚快鄙意. 所論亦切中今日之弊. 如經題破碎, 近日尤甚. 前日江東末得請時, 嘗欲到官後檢擧諸州所申, 人一文字, 劾其戲侮聖言之尤者一二人. 雖或末必聽從, 亦且今人傳笑, 少警昏俗. 旣不成行, 此事又且已. 今讀來示, 如癢得搔也. 但此事更有根本, 今徒然說得病痛, 不知如何下藥? 又此於治體僅爲一事, 而文書浩漾已如此, 恐萬機之暇, 亦不能詳覽也. 更略簡節之, 幷與施行之目一二陳之, 乃爲佳.

 

보내온 편지에서 학자에게 해로움은 시문(時文)보다 큰 것이 없다고 말하니, 이 또한 폐단을 구제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궁극을 따진다면 고문(古文)이나 시문이나 학자들로 하여금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좇게 한다는 점에서는 해로움이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러한 것(고문)은 마치 음란한 음악이나 아름다운 여색(女色)과도 같아 한 번이라도 그 맛을 알면 곧 사람으로 하여금 잊을 수 없게 만드니, 마땅히 통달한 사람[通人]의 병폐로 여겨야지 이것을 당연히 힘써야 할 바로 여겨 간절히 뜻을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所喩學者之筈莫大於時文, 此亦救弊之言. 然論其極, 則古文之與時文, 其使學者棄本逐末, 爲筈等爾. 但此等物如淫聲美色, 不敢一識其趣, 便使人不能忘. 政當以爲通人之蔽, 不當以是爲當務而切切留意也.

 

방옹(放翁)의 시는 읽으면 마음이 상쾌해지니, 근대에는 오직 이 사람만이 시인의 멋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편은 애초에 뜻을 덧붙이고 힘을 쓴 곳이 보이지 않는데도 말의 의미가 초연하여 절로 범상하지 않아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거듭 감탄하여 마지않게 합니다. 대개 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이를 헐뜯는 사람은 절로 병폐를 만들게 될 뿐입니다. 그가 근래에 이미 국도(國都)를 떠났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에 연루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이처럼 좋은 시를 짓지 않았어야 했는데, 이러한 시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좋은 벼슬을 못하게 한 듯합니다.

放翁之詩, 讀之爽然. 近代唯見此人爲有詩人風致. 如此篇者, 初不見其著意用力處, 而語意超然, 自是不凡, 令人三嘆不能自已. 蓋愛之者無罪而害之者自爲病耳. 近報又已去國, 不知所坐何事? 恐只是不合做此好諸, 罰令不得做好官也.

 

 

서재숙에게 답함 2 答徐載叔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6, 기유, 60)에 서재숙에게 답한 편지이다. 서재숙의 학문적인 논의가 고인의 위기지학(爲己之學)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을 보내 질문해주니 그대의 두터운 뜻을 잘 받았습니다. 다만 그대의 지엽적인 논의가 너무 번다하고 표방한 주장이 너무 많아 옛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학문하는 뜻과 서로 비슷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씨와 육()씨 두 분에게 예전에 이러한 문제를 여쭤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는 작은 병폐가 아닌데 그대로 행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장차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허물과 뉘우침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변증하여 설명하는 것이 비록 정밀하다 하더라도 보탬이 될 수는 없습니다.

專人示間, 尤荷厚意. 但觀所論枝葉太繁, 標榜太多, 似於古人爲己之意有不相似者. 未知二公曾以此奉箴否? 竊謂此非小病, 遂而不反, 尤悔之積將有不可勝言者. 辨說雖精, 無能補也.

 

 

섭정칙 적에게 답함 1 答葉正則()

 

해제이 글은 섭정칙에게 답한 편지인데 발송한 날짜를 알 수 없다. 주돈이(周敦頤) 이후의 학문은 성현의 마음과 다르다는 섭정칙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대의 편지에서 호모(毫毛)와 균석(鈞石)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 것은 바로 맹자가 말한 심척(尋尺)’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의는 근세에 많이 제기되었는데 그대가 또한 이러한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옛사람이 행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의 내용은 언어로서 설명한 곳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문자를 널리 고증하여 그 내용을 구하고 또 안정되지 못해 번잡한 마음으로 그것을 질정(質正)하려고 하나,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얻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이미 그 내용의 소재를 알지 못한다면 이른바 백여 년 이래로 강론 연구해 온 것을 과연 무엇을 가리켜 그것에 충당하겠으며, 어떻게 대뜸 성현의 마음과 맞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來書亳毛鈞石之喩, 是乃孟子所謂尋尺者. 此等議論近世蓋多有之, 不意明者亦出此也. 古人爲己之實, 無多言語. 今欲博考文字以求之, 而又質之於膠擾末定之胸次, 宜其愈求而愈不得也. 旣末知其實之所在, 則所謂百餘年來之所講貫者, 果指何事以充之, 而遽以爲未合於聖賢之中耶?

 

 

섭정칙에게 답함 2 答葉正則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섭정칙에게 답한 편지이다. 흠종고종 때의 간신 경남중(耿南仲)의 차자(箚子)를 역사 서적에 기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번에 인가에서 정강(靖康) 사건을 초록한 글을 보았는데 경황문(耿黃門)의 차자(箚子)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차자에서 역대 조종(祖宗)에서 치세를 이루기로는 희령(熙寧)원풍(元豐: 둘 다 신종의 연호)의 흥성함만 같지 않다는 몇 가지 조목을 논하면서 오로지 조종을 본보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뒤에 흠종의 비답의 말이 있었는데 어제 내린 모종의 사건에 대한 지휘는 생각에 실수가 있었으니 오히려 사부대신의 힘을 빌려 그 실수를 바로 잡고 이전의 명령은 다시 시행치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이를 기록해 두지 못했는데 후에 󰡔실록󰡕󰡔장편(長編)󰡕과 같은 책을 열람해보아도 모두 이러한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상고해 볼만한 곳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경남중(耿南仲)이 국사를 그르친 일은 참으로 한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차자는 곧 정공(定公)과 공자가 말한 일언(一言)’과 같으니, 역사 서적에 드러내 밝혀서 영원히 귀감으로 삼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向見人家抄錄靖康, 耿黃門箚子, 論租宗致洽不如之盛者數條, 不當專以祖宗爲法. 後有欽廟批語, 若曰: ‘昨降某事指揮矢於思慮, 尙賴師博大臣正救其失, 前命更不施行.’ 當時不曾錄得, 後閱實錄長編之屬, 皆無此事, 不知今尙有考處否? 之誤國, 固非一事. 然此一章乃定公孔子所謂一言者, 恐不可不著之史籍, 以爲永監也.

 

 

섭정칙에게 답함 3 答葉正則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섭정칙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온 편지에서 두 가지 설명이 온당하지 못함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대의 의도를 잘 알겠습니다. 다만 내 생각으로는 옛날에 들었던 것은 중()이고, 홀로 깨달은 것은 지나치고, 그대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미치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 상세한 내용은 비록 다 들어볼 수 없지만 대략 이 점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간파한다면 천리까지 같은 바람이 부는 격이니 몇 마디 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모든 의심은 해결됩니다.

所喩二說之未安, 具悉雅意. 則以爲舊聞者, 中也; 濁得者, 過也. 賢肴之所以未然者, 不及也. 其詳雖有未得盡聞者, 然大約當不出此. 於此看破, 則千里同風, 不待片言而群疑決矣.

 

 

섭정칙에게 답함 4 答葉正則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섭정칙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섭정칙을 위시한 영가학파가 성현의 도리의 규모와 공부의 차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학문 태도를 취하는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또 섭정칙이 불교 서적이 유교의 정치와 갈등을 빚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운 데 대해서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예전에 서로 만난 날이 매우 적었음에도 서로 인정해주는 뜻은 매우 깊었습니다. 중간에 우사(寓舍)에서 함께 앉아 시간을 보내면서 그대의 의중을 살펴보았더니, 마치 말하고자 했으나 끝내 머뭇거리다가 입 밖으로 꺼내지지 못한 듯했습니다. 전후로 서찰을 주고받으면서 비록 다시 조금 칼끝을 내보이긴 했으나, 또한 피차의 속마음을 다 기울여 실시(實是)의 귀결처를 찾지는 못하였습니다. 다만 유자들이 외워 전하는 그대의 저서와 답문을 보니 대체로 농조(籠罩)포장(包藏)하는 식의 말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대도 또한 마음으로 환히 알아 의심할 바 없지는 못할 듯합니다.

向來相見之日甚淺, 而荷相與之意甚深. 中間禽舍竝坐移畧, 觀左右之意, 若欲有所言者, 而竟囁儒不能出口. 前後書疏往來, 雖復少見鋒穎, 而亦未能彼此傾倒, 以求實是之歸. 但見士子傳誦所著書及答間書尺, 類多蘢罩包藏之語, 不唯他人所不解, 意者左右亦自未能陸然於心而無所疑也.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약해져 학문하기를 꺼려하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서로 답습해온 나머지 식견과 논의가 날로 더욱 비하되고 있습니다. 저들이야 이미 말할 것이 못되지만, 우리 쪽의 학자들조차도 모두 거칠고 구차스러워 도리의 규모와 공부의 차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면서, 대뜸 자기의 소견을 가지고 이리저리 생각을 주워 모아 어슷비슷한 말을 만들어내어 자신을 높이 세우고 고인(古人)을 내려다보곤 합니다. 그렇지만 그 실상을 살펴보면 전적으로 모호한 그림자나 메아리 같은 말이어서 감히 실제적인 곳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당사자들의 마음엔들 어찌 미심쩍은 곳이 없겠습니까? 단지 이미 이러한 성세(聲勢)를 만들어놓아 다시는 모르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기에, 마침내 줄곧 자기를 기만하고 억지로 버티면서 이렇게 모호한 상태로 밀어 부치고자 하니, 결국 무슨 사업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후세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주위에서 지켜보는 이들 중에도 분명 그 실상을 간파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마음인들 어찌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世衰道微, 以學爲諱, 上下相徇, 識見議論日益卑下. 彼旣不足言矣, 而吾黨之爲學者又皆草率苟簡, 未曾略識道理規模工夫次第, 便以己見摶量湊合, 撰出一般說話, 高自標置, 下視古人. 及考其實, 則全是合胡影響之言, 不敢分明道著實處. 竊料其心豈無所疑? 只是已作如此馨勢, 不可復謂有所不知, 遂不免一向自瞞, 强作撑柱, 且要如此鶴突將去, 究竟成就得何事業? 未論後世, 只今日旁觀, 便須有人識破. 未論他人, 只自家方寸, 如何得安穩耶?

 

보내 온 편지에서 형주(荊州)에 재직할 때 일이 없어서 불교 서적을 보고 그제야 세상 밖의 뛰어나고 기이한 설법임을 알았습니다. 이 설법은 본래 (유교의) 정치를 어지럽힐 수 없는데, 이것과 서로 엎치락뒤치락 쟁변(爭辨)하는 것은 또한 독자들이 깊이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매우 놀라운 것으로 그대가 이러한 말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중간에 군거(君擧)의 편지를 받았는데, 또한 (불의 차이점을󰡕 강구분변하는 것을 깊이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다른 뜻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견식이 절실하고 명확하여 조금의 차이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를 가지게 된 것일 뿐입니다. 그대와 만나 서로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 피차의 마음을 다 토로하여 하나의 옳은 곳을 찾게 될 것입니다. 함께 끝까지 이치를 강구하되 눈을 크게 떠서 살펴보고 입을 크게 벌려서 이야기하여 거취를 분명히 하고 정직하게 분석비판해야지, 이처럼 앞을 막고 뒤를 가리며 말할 듯 말하지 않아 삼일신부(三日新婦)’의 모양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너무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如來書所謂在荊州無事, 看得佛書, 乃知世外壞奇之說本不能與治道相亂, 所以參雜辨爭, 亦是讀者不深考爾. 此殊可駭, 不謂正則乃作如此語話也. 中間得君擧, 亦深以講究辨切爲不然. 此蓋無他, 只是自家不曾見得親切端的不容有毫釐之差處, 故作此見耳. 欲得會面, 相與劇談, 庶幾彼此盡情吐露, 尋一箇是處. 大家講究到底, 大開眼看覰, 大開口說詁, 分明去取, 直截剖判, 不須得如此遮前掩後, 似說不說, 做三日新婦子模樣, 不亦快哉

 

맹자는 비록 패도와 왕도를 행할 수 있을지라도 그 마음이 동요되지 않을 것이라 자처했는데, 그 근원을 따져보면 곧 피()()()()의 네 가지 병폐를 간파한데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 점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생활의 터전으로 삼는 것이 도리어 이 네 가지 병폐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견식을 가지고 고금(古今)을 판단하고 성현을 논의하고자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서로 천 리먼 곳을 바라만 보는 처지에 나의 죽을 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편지로 다시 한 마디 말하였으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남에게 보이지는 마십시오. 또 분란만 일으켜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있을까 두렵습니다.

孟子自許雖行覇王之事而不動其心, 究其根原, 乃只在識破被遁四種病處. 今之學者不唯不能識此, 而其所做家計棄窟乃反在此四種病中, 便欲將此見識判斷古今, 議論聖賢, 豈不誤哉相望千里, 死亡無日, 因書聊復一言, 不審明者以爲如何? 然勿示人, 恐又起鬧, 無益而有損也.

 

만일 도리를 이해함이 분명해지면 비록 일이 없다하더라도 결코 불교 서적을 읽을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연히 읽었다 하더라도 또한 반드시 도리를 어지럽히고 사람을 오도한 곳을 더욱 절실하게 이해하여 이런 말을 하는 데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시험삼아 이 한 단락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득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유지부(劉智夫)는 사는 곳이 여기와 거리가 채 100리가 못되는데도 무더위로 만날 수 없으니 동지(同志)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그는 자처(自處)함이 너무 높아 기꺼이 그러한 마음을 놓아버리고 실제적인 공부를 해나가지는 않을 듯합니다. 근래에 이 일을 매우 분명하게 이해했으니, 곧 증자(曾子)는 실로 노둔[]함으로써 도를 얻었으나 자공(子貢)처럼 총명하여 변론을 잘하고 학식이 넓은 사람은 끝내 유교의 도를 전수(傳受)하는 데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참으로 이유가 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若見得道理分明, 便無事殺決不暇讀佛書. 若偶讀之, 亦須便見得其亂道誤人處愈親切, 不至爲此言矣. 試以此一端思之, 可見得失. 劉智夫此間相去不百里, 暑中未得款會. 同志難得, 但恐自處巳太高了, 不肯放下就實做工夫耳. 年來見得此事極分明, 乃知曾子實以魯得之, 而聰明辨博如子貢, 終不得與聞於此道之傳, 眞有以也.

 

 

서거후 원덕에게 답함 答徐居厚(元德)

 

해제이 글은 1187(순희 14, 정미, 58)에 서거후에게 답한 편지이다. 서거후에게 병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에서 어떤 독서 방법을 활용해야 유익한지를 알려주고, 아울러 공자는 학문의 본령을 깨달은 뒤에 예제(禮制)와 관제(官制)를 폭넓게 탐구했음을 밝혀주고 있다.

 

큰 병이 이제 막 회복되어가니 모쪼록 잘 조섭해야지 조금이라도 외물과 과격하게 접촉하여 진기(眞氣)를 손상하고 동요시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독서를 중지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몇 달을 쉬는 편이 좀더 좋겠습니다. 장래 책을 볼 때도 너무 애쓰지 말고 마음 편하게 그저 눈을 스쳐간다는 느낌으로 보면 절로 맛이 있을 터이니, 굳이 힘을 크게 들여 내용을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의 마음과 정력을 손상시켜 기혈이 펴지지 못해 쉽게 질병이 생기도록 할 것입니다. 더구나 고인(古人)의 학문은 본래 정당하게 힘을 써할 곳이 있으니, 이 독서와 같은 것은 능력과 분수에 따라 학문의 규모를 넓히는 정도로 그치면 됩니다. 만일 오로지 이것만 믿는다면 또한 어떠한 학문을 이루겠습니까? 이전에 누차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바쁜 나머지 겨를이 없었으니, 지금 또한 병을 조섭하라는 뜻에서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大病新復, 正要將護, 不可少有激觸, 損動眞氣. 讀書度未能罷, 且歇得數月亦佳. 將來看時, 亦且適意遮眼, 自有意味, 正不必大段著力記當, 損人心力, 使人氣血不舒, 易生疾病. 况古人之學自有正當用力處, 此等止是隨力隨分開廣規模. 若專恃此, 亦成何等學問耶? 前此屢欲言之, 而匆匆不暇. 今亦不特爲養病發也.

 

지금 사람들은 공자가 예()를 묻고 관제(官制)를 묻는 등 배우지 않은 바가 없는 것만을 보고 대뜸 학문이란 이와 같을 뿐이다라고 말하니, 도리어 공자가 본래 어떤 위대한 본령을 갖추었기에 비로소 이런 것까지 공부하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만일 단지 자신의 이러한 소소한 견식을 가지고 아기 키우는 것을 배운 뒤에 시집을 간다면,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을 평온히 하고 기운을 화평하게 유지한다[平心和氣]는 그대의 말은 도리어 우리들의 학문의 근본이니, 또한 병을 조섭하기 위해서만 힘을 쏟아야할 것이 아닙니다.

今人但見孔子問禮問官, 無所不學, 便道學問只是如此. 却不知得他合下是甚次第大底本領, 方有功夫到此. 若只將自家此等小小見識而學養子而後嫁, 豈不悞哉至於平心和氣, 却是吾人學間根本, 亦不爲病然後當著力也.

 

 

조이상 숭헌에게 답함 答趙履常(崇憲)

 

해제이 글은 1187(순희 14, 정미, 58)에 조이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독서방법을 언급하고, 󰡔주역󰡕공부의 올바른 접근을 위해 󰡔역학계몽(易學啓蒙)󰡕을 저술했음을 밝히고 있다.

 

보내온 편지에서 글을 읽다보면 놓치거나 잊어먹는다고 말했는데, 이 또한 사우(士友) 간의 일반적인 병폐로 치료할만한 약이 없습니다. 적게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되 그 의미에 사무쳐야 점차 효과를 볼뿐입니다. 󰡔주역󰡕을 읽는다니 또한 좋은 일입니다. 다만 경서는 읽기 어려운데 이 경서는 더욱 어렵습니다. 대개 책을 펼치기 전에는 이미 상수(象數)의 대체적인 공부가 들어있고, 책을 펼친 이후에는 경문의 본뜻이 또 대부분 선유들에 의해 견강부회되었기 때문에 이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움츠러들게 할 뿐, 본래의 개물성무(開物成務)의 활법(活法)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로(廷老)가 전달한 나의 해설은 바로 이러한 병폐를 구하려고 쓴 것입니다. 다만 당시 바삐 베껴 쓰느라 거칠고 간략하여 글답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삼아 얼추 살펴보면 또한 학문방법의 개요를 조금이나마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다른 설명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감히 듣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示喩讀書遺忘, 此亦士友之通患, 無藥可醫. 只有少讀深思, 令其意味浹洽, 當稍見功耳. 亦佳, 但經書難讀, 而此經爲尤難. 蓋未開卷時, 已有一重象數大槪功夫, 開卷之後, 經文本意又多被先儒硬說殺了, 令人看得意思局促, 不見本來開物成務活法. 廷老所傳鄙說, 正爲欲救此弊. 但當時草草抄出, 疏略未成文字耳. 然試略考之, 亦粗見門尸梗槪. 若有他說, 則非吾之所敢聞也.

 

 

방빈왕 의에게 답함 1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88(순희 15, 무신, 59)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젊어서 방빈왕의 부친과 교유했던 사실을 회고하고, 학문하는 올바른 방법을 언급했으며, ()()()의 관계를 장횡거처럼 심통성정(心統性情)’으로 보아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나의 선친 때부터 참으로 작고한 시랑 어른[侍郞丈: 방빈왕의 부친]과 사이좋게 교유한 일이 있었고, 나도 젊은 시절에 주현(州縣)의 보잘것없는 관리로 시랑 어른의 막부(幕府)에서 모시고 일하면서 위로와 천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쇠약하고 피로한 몸을 지탱하지 못하여 만에 하나도 보답할 수 없었으니, 보살펴주신 후의를 생각할 때마다 부끄러워 한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궁벽한 곳에 숨어사는 터에 질병과 게으름까지 겹쳐 또한 문하(門下)에 안부를 한 번도 여쭙지 못하였으나, 아는 친구들에게 동정이 어떠한지를 묻고 줄곧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근래 도성에 들어갔다가 채 보름도 있지 못하고 총총히 떠나오는데, 그대가 사람을 시켜 길을 뒤쫓아 편지를 보내 두터운 뜻을 보여주니, 거듭 반복해 읽고 더욱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무더위에 그대의 건강이 다복함을 알고 또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伏自先人實與先侍郞丈有遊從之好, 蚤歲又得以州縣小吏趨走幕府之下, 唇慰薦焉. 衰悴無堪, ’ 不能有以報效萬一. 每念知顧之重, 未嘗不愧且歎也. 屛居衰僻, 病懶相仍, 又不能一通問訊門下, 然知舊間亦末嘗不詢扣動靜而鄕往不忘也. 屬者人都, 不能半月而匆匆以去. 乃唇專人追路, 惠以手書, 意寄勤厚, 三復增歎. 且審卽日極暑, 尊候萬福, 又以爲慰.

 

편지로 학문하는 뜻을 말해주었는데 적절하고 합당하여 순서를 잃지 않았습니다. 근래에 만나본 친구 중에서 강론과 학습이 여기에 미칠만한 사람이 없었으니 내 마음에 매우 위안이 됩니다. 다만 그대가 말한 세 조목으로 보면, 아마도 전일에 강론한 공부에 오히려 그 궁극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고, 오늘날 이른바 존양하는 공부에도 또한 전일에 강론한 것에서 벗어나 따로 언어를 쓰지 않는 하나의 공부 방법을 만든 듯합니다. 󰡔대학󰡕의 순서는 격물(格物)치지(致知)로부터 성의(誠意)정심(正心)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일이 아니고, 다만 그 안과 밖, 옅음과 깊음이 절로 차례가 있을 뿐이니, 오늘의 성의정심은 옳게 여기고 전날의 격물치지는 그르다고 뉘우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연평행장(延平行狀)󰡕중의 말은 바로 당시에 그의 공부하는 차례를 들어본 것입니다. 지금 성현의 말과 진덕수업(進德修業)의 실제로써 증험해 보면, 또한 한 때 학문해 들어간 곳이어서 다시 잘 헤아려보아야 할 듯합니다.

示喩爲學之意, 親切的當而不失其序. 近日所見朋友, 講習未有能及此者, 甚慰鄙意. 但以所謂三條觀之, 恐前日講貫之功猶有未究其極者, 而今日所謂操存涵春者又不免離却前日所講, 別作一段不言不語底功夫也. 大學之序, 自格物致知以至於誠意正心, 不是兩事, 但其內外殘深自有次第耳. 非以今日之誠意正心爲是, 卽悔前日之格物致知爲非也. 不識明者以爲如何? 延平行狀中語, 乃是當時所聞其用功之次第. 今以聖賢之言進修之實驗之, 恐亦自是其一時入處, 未免更有商量也.

 

정자가 마음은 이발(已發)을 가리킨다고 논한 것은 나중 편지에서 이는 참으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한때의 말이 약간의 차이를 보인 것이니, 반드시 나중의 설명처럼 해야 병폐가 없게 될 것입니다. 대개 성()은 본체가 되고 정()은 작용이 되는데 심()은 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횡거(橫渠) 선생이 심은 성과 정을 통괄한다고 말한 것처럼 해야만, 그 말이 정밀하게 됩니다. 충신(忠信)에 대한 설명은 대체적으로 매우 좋습니다. 다만 이치의 옳고 그름, 일의 합당함과 부당함은 시비와 수오의 단서로 논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충신이란 명칭은 반드시 이를 위해 만든 것은 아닙니다.

程子所論心指已發, 後書明言此固未當, 則是一時言語不免小差, 須如後說乃爲無病. 蓋性爲體, 情爲用, 而心則貫之. 必如橫渠先生所謂心統情性者, 其語爲精密也. 忠信之說, 大槪甚善. 但理之是非, 事之當否, 恐當於是非羞惡之端論之. 忠信之得名, 未必爲此設也.

 

길가 객사에서 허둥지둥 말하느라 그 의미를 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합당치 못한 점이 있을 듯한데 다시 편지를 보내주길 기다리겠습니다. 쓴 편지를 여자화(呂子和)에 맡겨서 무녀(婺女)에게 발송케 한다면, 그곳에는 때때로 여기로 오는 인편이 있을 것입니다. 대면하여 강론할 길이 없으니 어찌 서글픈 마음을 이기겠습니까! 오직 때에 맞게 몸을 잘 보위하여 먼 곳에 있는 저의 마음을 위로해주길 바랍니다. 간절히 기대합니다.

道旁客舍草草布此, 言不盡意. 恐有末安, 更俟垂喩. 有書只託呂子和發書至婺女, 彼中時有便也. 未由面講, 豈勝悵然! 唯冀以時珍衛, 用慰遠懷. 千萬之望!

 

 

방빈왕에게 답함 2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6, 기유, 60)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존심양성(存心養性)하는 공부는 동정(動靜)을 관통하여 이루어지고, ()이 곧 이()이므로 성 그 자체는 항상 중()을 유지하게 됨을 밝혔다.

 

별지에서 말해준 내용은 매우 좋았습니다. 저번께도 절동(浙東)지역의 사우들이 대부분 편향된 논의를 벌이고 있음을 보고 몹시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존양하는 공부는 또한 오로지 정좌할 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반드시 일상생활 속에서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어느 곳에서든 공부하지 않음이 없어야 중간에 끊임이 없게 될 것입니다.

()()()에 관한 설명도 벌써 이해하고 있더군요. 다만 성()이 곧 이()인데, 이제 모든 이치가 나오는 곳이라고 말한다면 또한 별도의 하나의 사물처럼 되어버립니다. 강절(康節) 선생이 성이란 도의 형체이다라고 말했으니, 이 말이 도리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또 그대는 고요할 때에 보존할 줄 모르면 성은 그 중()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지요. 성이 반드시 중에 들어맞는 것은 마치 물이 반드시 차갑고 불이 반드시 뜨거운 것과 같습니다. 다만 사람이 그 본성을 잃어버리고 기습(氣習)이 이를 혼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중에 맞지 않는 것이지, 본래 성이 그 중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別紙所喩甚善. 向亦見中士友多立一偏之論, 故爾過憂. 然存養之功亦不當專在靜坐時, 須於日用動靜之間無處不下功夫, 乃無間斷耳. 情之說亦已得之, 但性卽理也, 今以爲萬理之所自出, 又似別是一物. 康節先生: ‘性者道之形體’, 此語却似親切也. 又云: ‘靜而不知所存, 則性不得其中.’ 性之必中, 如水之必寒, 火之必熱, 但爲人失其性而氣習昏之, 故有不中, 而非性之不得其中也. 鄙意如此, 未知是否?

 

 

방빈왕에게 답함 3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0(소희 원년, 경술, 61)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방빈왕이 3조목으로 나누어 장문의 질문을 제기한 데 대해 주자가 답변한 내용이다. ()이란 도의 형체이다 라는 내용과 󰡔역전󰡕의 무망(無妄)에 관한 설명과 인()이란 글자에 대한 논의를 둘러싸고 질문과 답변이 전개되고 있다.

 

질문: “성이란 도의 형체이다라고 했는데, 선생의 가르침을 떠올려 생각해보고 우선 제 견해를 아뢰고자 합니다. 󰡔지언(知言)󰡕에서 ()은 천하의 사물을 존재하게 만든다고 말했으니, 대개 만물이 존재하는 까닭은 이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기화(氣化)가 장차 단절되어 생물도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음양의 뿌리와 기초요, 조화의 굴대와 매듭이다. ()이란 천하의 위대한 근본으로 도의 본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현들은 성을 논하면서 한마디도 이를 언급한 적이 없지만, 반드시 사람과 사물이 동정(動靜)을 품수한 것으로 말한 것은 대개 성은 사물을 떠나서 자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물을 떠나서 성을 논한다면 성은 그 명칭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니, “건과 곤이 허물어지면 역()을 볼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란 천지가 저절로 그러함을 말하고, ()이란 천지가 만물에게 부여하여 만물이 품수한 것을 말합니다. 비록 천지로부터 품수했지만 천지가 천지로 존재하는 근거와 처음부터 남거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과 천도는 두 가지 본체가 아니요, 나누어 말한다면 마땅히 그러할 뿐입니다. 도체는 작위가 없으나 인심은 움직임이 있어서 만사와 만물, 인륜과 물리의 감통(感通)변화(變化)하는 기틀을 갖추지 않음이 없고 인의예지가 사람의 표준으로 정립되는 것입니다. 이를 비유해보면 사람에게 몸이 있으면 머리발이 각각 직분을 갖고 서로 어지럽히지 않아 몸의 작용이 전일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은 곧 이()인데 강절(康節)의 말을 이 곳에다 덧붙인 것은 아마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의미가 정밀하면 할수록 말하기가 더욱 어려운데, 더구나 저처럼 견해가 얕은 사람은 그 깊은 뜻을 발휘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상세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性者道之形體, 因記先生誨而思之, 姑以所見布禀. 知言: ‘性立天下之有’, 蓋萬物之所以有者, 以是而已. 苟無是, 則氣化將斷絶, 生物有窮終矣. 故日陰陽之根柢, 造化之樞紐. 而中也者, 天下之大本而道之體也. 然前賢之論性, 未嘗一及於此. 而必以人物禀受動靜而言者, 蓋性不能捨物而自立. 捨物而論性, 則性蓋不可得而名, 乾坤毁則無以見易矣’. 道也者, 言天之自然也. 性也者, 言天之賦豫萬物, 萬物禀而受之者也. 雖禀而受之於天, 然與天之所以爲天者初無餘欠. 然則性與夫道非二體也, 語其分則當然耳. 道體無爲也, 人心則有動焉. 而萬事萬物人倫物理感通變化之機莫不備具, 而仁智所以立人極也. 譬之人有是身, 足各有攸磯而不相亂, 而身之用乃全. 性卽理也, 而繼之以康節之語, 妄意恐出於此. 未知是否? 義愈精則言愈難, 矧以淺陋, 恐不足以發其蘊. 乞賜詳誨.

 

답변: “()은 도()의 형체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격양집(擊壤集)󰡕의 서문에 있는 말입니다. 그 뜻은 대개 ()이란 사람이 하늘로부터 품수한 실질이고, 도란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다. 사물의 이치가 진실로 성에 갖추어져 있으나, 다만 도로써 말하자면 자취가 없이 충막하고 만물에 두루 흩어져 있어 그 실상을 볼 수가 없으며, 오직 성에서 그것을 찾아보아야 도의 실질이 애초에 이를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용󰡕에서 성을 따르는 것이 도이다라고 한 말도 이 점을 가지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 그대의 편지에서 본래 호씨(胡氏: 호굉) 󰡔지언󰡕의 뜻이다라고 한 말은 이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性者道之形體, 擊壤集序中諸. 其意蓋曰: 性者, 人所禀受之實; 道者, 事物當然之理也. 事物之理固具於性, 但以道言, 則冲漠散殊而莫見其實. 惟求之於性, 然後見其所以爲道之實初不外乎此也.中庸所謂率性之謂道, 亦以此而言耳. 來諭所云自是胡氏知言之意, 與此不相關也.

 

질문: 혹자가 말하기를, 󰡔역전(易傳)󰡕에서 비록 사특한 마음이 없다 하나 참으로 올바른 이치에 합치하지 않으면 모두 허망한 것이요 곧 사특한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늘 이 말을 의심하여 사특한 마음을 떠나면 곧 올바른 이치로 되돌아가니 이른바 사특한 마음을 막아 그 진실성을 보존한다는 것은 사특한 마음을 막는 것 외에 따로 보존할만한 진실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특한 마음을 막으면 진실성이 저절로 보존된다고 여겼습니다. 나중에야 비로소 견해가 정밀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는데, 원래 실제로 체득하지 못하고 단지 언어로만 탐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처럼 거칠었던 것입니다. 대저 장중하고 경건한 태도로 보존하고 길러서 이 마음이 이미 간직되면, 또한 사특한 마음이 없다고 말할만합니다. 그러나 앎이 아직 이르지 못하고 이치가 아직 궁구되지 못했다면, 사물을 응접할 즈음에 합당하게 처리할 수 없어서 어지러움을 면하지 못하고 경()도 행할 수 없게 됩니다. 비록 방종하여 앎이 없는 것과는 다르지만 참으로 올바른 이치와 합치되지 않는다면 또한 망령되이 사특한 마음을 부림을 면치 못합니다. 따라서 앎을 이루는[致知] 것이 󰡔대학󰡕의 첫머리가 되는가 봅니다.

그 힘쓰는 차례는 선생이 󰡔대학󰡕의 해설서를 지을 때 정자(程子)유씨(游氏)호씨(胡氏)의 말을 몇 조목 인용한 것이 이것입니다. 다만 장중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심성을 보존하고 기르는 것이 또한 그 근본이 될 뿐입니다. 근래에 학자들은 대부분 만 가지 이치가 마음에 갖춰져 있으니 마음을 알게 되면 천하의 일에 그 합당함을 얻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면서 앎을 이룬다는 설명을 가리켜 그르다고 여깁니다. 그 의도는 대개 이치를 사물에서 구하면 이는 사물 밖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앎이란 마음이 지각한 것이요 내가 본래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대개 태극은 포괄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천하에 마음 밖의 사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이 물욕에 빠지고 기습(氣習)에 어지럽혀졌기 때문에 그 지각이 비로소 가려져 밝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경()으로써 간직하고 사념으로써 소통시킨다는 것은 또한 그 가리움을 걷어서 본심의 지각을 회복함을 언급한 것입니다. 정자가 하나의 사물에 하나의 이치가 있으니 반드시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어찌 모두 밖에서 궁구하는 것이겠습니까? 사물에 있으면 이()가 되고, 사물에 대처하면 의()가 되지만, 대처할 때에 그 합당함을 궁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본래 나에게 갖춰져 있습니다. 정자는 생각을 이루어나가기를 마치 샘을 파듯이 해야 하니, 처음에는 흐릿한 물로 있으나 오랜 뒤에 점차 끌어당겨 움직이면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사람의 생각도 처음에는 모두 혼탁하다가 오랜 뒤에 저절로 명쾌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흐릿한 물과 명쾌함이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역시 그 가리움을 걷어서 본심의 밝음이 점차 드러난 때문입니다. 이 마음의 분량은 커서 운용도 끝이 없으니, 어찌 하나의 사물이 담을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하나의 일을 그 합당에 맞게 처리하지만 훗날 혹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역시 마음이 올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정자처럼 자각하고 깨달아 꿰뚫어봄으로서 천하 만물의 이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발휘하지 않은 곳이 없어야 의리가 정밀하고 운용이 오묘해져 비로소 마음을 다 발휘하여 본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혹자가 마음을 인식해야 한다[識心]고 설명한 것은 어찌 단숨에 뛰어넘어 곧바로 들어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或者曰, 易傳: ‘雖無邪心, 苟不合正理, 皆妄也, 乃邪心也.’ 舊常疑此語, 以爲離邪卽歸於正, 所謂閑邪存其誠, 非閑邪之外則有誠可存也, 但閑邪則誠自存矣. 後來方覺看得不精, 元不曾實體得, 只是將言語尋求, 所以草草如此. 夫莊敬持養, 此心旣存, 亦可謂之無邪心矣. 然知有未至, 理有未窮, 則於應事接物之際不能處其當, 則未免於紛擾而敬亦不得行焉. 雖與流放而不知者異, 然苟不合正理, 則亦未免爲妄與邪心也. 故致知所以爲大學之首與.

其用力之次第, 則先生所作大學傳所引程子游氏胡氏之言數條是也. 但莊敬持養, 又其本耳. 近來學者多說萬理具於心, 荀識得心, 則於天下之事無不得其當, 而指致知之說爲非. 其意大率謂求理於事物, 則是物外. 竊謂知者, 心之所覺, 吾之所固有. 蓋太極無所不該, 而天下末嘗有心外之物也. 惟其汨於物欲, 亂於氣習, 故其知乃始蔽而不明. 而敬以持之, 思以通之者, 亦曰開其蔽以復其本心之知耳. 程子凡一物有一理, 須是窮致其理, 豈皆窮之於外哉? 在物爲理, 處物爲義. 所以處之者欲窮其當, 則固在我矣. 程子: ‘致思如掘井, 初有渾水, 久後稍引動, 則淸者出來. 人思慮始皆涵濁, 久自明快矣.’ 所謂渾水與明快, 非自外來, 蓋亦開其蔽而本心之明漸見耳. 此心分量之大而運用之無窮, 豈一事一物之所能該? 一事適其當, 他日或未然, 則亦不得爲心正. 必也如程子所謂覺悟貫通, 於天下萬物之理無一亳之不盡, 則義精而用妙, 始可以言盡心知性矣. 不知或者識心之說豈一超直人者乎?

 

답변: 󰡔역전󰡕무망(無妄)’을 논한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비록 사특한 마음이 없다 하나 올바른 이치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실로 동정(動靜)을 포괄하여 말한 것입니다. 예컨대 홀로 편안히 거처할 때에 사물이 다가와 감촉하면 이치가 마땅히 응접하게 되지만, 이 마음이 완고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비록 사특한 마음이 없다 하나 이 움직이지 않은 곳도 곧 올바른 이치가 아닙니다. 또 예컨대 사물을 응접하는 곳에서 이치가 응당 저와 같은데 내가 응접하는 것이 이와 같다면, 비록 반드시 사사로운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올바른 이치에 합치하지 않습니다. 이미 올바른 이치에 합치하지 않는다면 사특하고 망령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근세에 마음을 인식하는 폐단을 논한 것은 그 오류를 잘 지적했습니다. 옛사람의 학문에서 존심(存心)을 귀하게 여긴 것은 장차 이를 미루어 천하의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의 이른바 마음에 대한 인식은 곧 이것만 믿고서 천하의 이치를 도외시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옛사람은 앎이 높아지면 질수록 예의를 더욱 낮추었는데, 지금 사람은 논의가 높아지면 질수록 망령되고 방자함이 더욱 심하니, 득실을 또한 알만합니다.

所論易傳無妄之說甚善, 但所謂雖無邪心而不合正理者, 實該動靜而言. 如燕居獨處之時, 物有來感, 理所當應, 而此心頑然, 固執不動, 則雖無邪心, 而只此不動處便非正理. 又如應事接物處理當如彼, 而吾所以應之者乃如此, 則雖末必出於有意之私, 然只此亦是不合正理. 旣有不合正理, 則非邪妄而何? 恐不可專以莊敬持養, 此心旣存爲無邪心, 而必以末免紛擾, 敬不得行然後爲有妄之邪心也. 所論近世識心之弊, 則深中其失. 古人之學所貴於存心者, 蓋將推此以窮天下之理. 今之所謂譏心者, 乃欲侍此而外天下之理. 是以古人知益崇而禮益卑, 今人則論益高而其狂妄恣雎也愈甚, 得失亦可見矣.

 

질문: 혹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도리를 세워서 인()과 의()라고 했으니 인의두 글자는 사람의 도리를 빠짐없이 포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일찍이 성현들이 마음을 말한 곳과 정자가 강론한 것에 입각하여 살펴본 적이 있는데 역시 여러 군데에 그러한 견해가 있었습니다. 요사이 정자의 글 중에 마음은 비유하면 곡식의 씨앗과 같으니 이것을 생겨나게 하는 본성이 곧 인()이요 양의 기운이 발현하는 곳이 바로 정()이다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이 말을 몸으로 체득하여 각성한 곳이 있은 후에 성현의 말과 정자의 설명에서 유추할 수 있을 듯합니다. 대저 인()이란 천리(天理)가 통합된 본체로 사람에게 간직된 것이니, 대개 마음의 덕이 통합되어 있다가 움직여 발생하는 단서입니다. 마음이 많은 이치를 갖추는 것은 마치 곡식의 씨앗이 생성 의지를 품고 있는 것과 같은데, 그 움직여 발생하는 단서가 곧 이른바 생성케 하는 본성[生之性]”입니다. 그러므로 측은해 하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며, “()은 선의 으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대저 곡식이 생겨나 싹을 틔우고 자라나 줄기가 빼어나고 이루어 결실을 맺는데, 뿌리가지잎과 모습색깔냄새맛이 각각 정해진 형체가 있어서 서로 섞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씨앗에 근원을 두고 생성의 본성을 갖추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를 비유해보면 온갖 사물의 이치와 부자의 친애와 군신의 의리로부터 신발과 같은 미물이나 잠깐 말하고 침묵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역시 모두 당연하여 바뀌지 않는 이치가 있는데, 마음에 근원을 두면서 움직여 발생하는 단서를 갖추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의미의 명칭이 정립되고 본체와 작용이 함께 갖춰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치는 하나이지만 나뉘면 달라지게 된다고 말하니, 대개 그 작용에 따라서 흩어지고 어지럽게 섞여서 변화가 끝이 없으나 대본(大本)과 일원(一原)은 처음부터 둘로 나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두 가지는 사람의 도리를 이미 다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몸이 있어서 곧 스스로 사사로운 마음으로 가리우게 됩니다. 마음이 이미 주재하지 않고 정()이 그것의 주재가 된다면, 발현함이 올바르지 않아 사람이 도리를 생성하는 것이 그치게 됩니다. 따라서 잠시라도 마음을 간직하지 않게 되면 군자에게도 어질지 못한 점이 있게 됩니다. 반드시 통합된 본체의 측면에서 그 발용이 한결같이 천리(天理)의 공정함에서 나와 인욕의 사사로움이 이를 어지럽히지 않은지를 살펴서, 사물마다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어서야 비로소 사람의 도리를 다하게 됩니다. 공자는 일찍이 사람들에게 인()을 허여한 적이 없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或者曰, ‘立人之道曰仁與義’, 仁義二字包括人道無遺. 然而仁難言也, 嘗卽聖賢言心處及程子講論及此者觀之, 亦隨有所見. 比因讀程子: ‘心譬如穀種, 生之性便是仁, 陽氣發處乃情也.’ 此語以身體之, 似有省處, 而後於聖賢之言與程子之說似可類推. 夫仁者, 天理之統體而存乎人者, 蓋心德之合而流動發生之端緖也. 心之具衆理, 猶穀種之包容生意, 而其流動發生之端, 卽所謂生之性. 故曰側隱之心仁之端, 而元者善之長也. 夫穀之生而苗, 長而秀, 成而實, 根條花葉, 形色臭味各有定體, 不可相錯, 然莫不根於種而具於生之性. 譬之萬事萬物之理, 父子之親, 君臣之義, 以至於屣履之微, 語黙之暫, 亦皆有爲當然不易之理, 莫不根於心而具於流動發生之端. 此義之名所以立而體用所以兼備也. 故曰理一而分殊, 蓋循其用則散殊雜擾, 變化無窮, 而大本一原初不貳也. 只此二者, 包括人道已盡. 然人之有是身, 卽有自私之蔽. 心旣不宰而情爲之主, 發不以正, 而人之生道息焉. 故斯須之間有不存, 則君子之不仁者有矣. 蓋須是於統體上看其發用一出於天理之公而無人欲之私以亂之, 事事物物莫不皆然, 始爲盡人之道. 夫子未嘗許人以仁者如此.

 

()이란 글자를 논한 내용은 대개 이치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발생유동(流動)하는 단서를 인()으로 여긴다면, 이는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나 정자가 말한 양기(陽氣)가 발하는 곳이 모두 정()을 가리켜 말한 셈이 되니, 인의 본체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물의 이치가 모두 유동하는 단서에 갖추어져 있은 뒤에야 의()란 명칭이 세워지는 까닭과 본체와 작용이 함께 구비되는 까닭을 볼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말 또한 의()를 밖에 있는 것으로 보는 병폐가 조금 있는 듯합니다. 대저 인() 이란 글자는 전칭하면 혼연하여 뭐라 이름 붙이기 어려우니, 반드시 인지 네 가지를 아울러 들추어 함께 보아야만 그 의미와 형상이 서로 대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어 보기가 쉬울 것입니다. 대개 사람의 본성은 모두 하늘에서 나오고 하늘의 기화(氣化)는 반드시 오행(五行)을 작용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인지의 본성은 곧 수토의 이치입니다. /, /, /, /지가 각각 주장하는 바가 있으나, 토만 위치가 없어 사행(四行)의 실질이 되기 때문에 신도 역시 위치가 없어도 사덕의 실질이 됩니다. 지는 모두 본성에 갖춰져 있어 그 형체가 혼연하여 볼 수가 없습니다. 사물에 감촉하여 움직인 뒤에야 측은수오사양시비의 작용을 보고 인의예지의 단서가 이에 형상을 드러내니 이를 정()이라 말합니다. 정자가 양기가 발하는 곳이라 말한 것은 이를 의미합니다. 다만 이 네 가지는 함께 한 곳에 있으나 인이 곧 만물을 생성하는 주체이므로 비록 네 가지 중에 하나로 있지만 네 가지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는 󰡔역전󰡕에서 치우쳐 말하면 한 가지 일이지만 싸잡아 말하면 네 가지를 포괄한다고 설명한 이유입니다. 참으로 인을 본성의 통체(統體)로 여길 뿐 아니라, 세 가지는 반드시 이미 발현된 뒤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저 인지는 성()이요, 측은수오사양시비는 정()입니다. 마음은 성과 정을 통괄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보면 구역이 나뉘어지나 그 동일성에 해로울 것이 없고, 맥락이 통하나 그 변별성에 해로울 것이 없으니, 아마도 그렇게 보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所論仁字大槪近之. 而以發生流動之端緖爲仁, 則是孟子所謂惻隱之心, 程子所謂陽氣發處, 皆指情而言之, 不得爲仁之體矣. 又所謂事物之理皆具於流動之端, 然後見義之名所以立而體用所以兼備, 此語亦似微有義外之病. 大抵仁字專言之則混然而難名, 必以仁智四者兼擧而竝觀, 則其意味情狀互相形比, 乃爲易見. 蓋人之性皆出於天, 而天之氣化必以五行爲用. 故仁信之性, 卽水土之理也. 木仁, 金義, 火禮, 水智, 各有所主. 獨土無位而爲四行之實, 故信亦無位而爲四德之實也. 智同具於性, 而其體渾然, 莫得而見. 至於感物而動, 然後見其惻隱羞惡辭遜是非之用, 而仁智之端於此形焉, 乃所謂情. 而程子以謂陽氣發處者, 此也. 但此四者同在一處之中, 而仁乃生物之主, 故雖居四者之一, 而四者不能外焉. 易傳所以有 偏言則一事, 專言則包四者之說. 固非獨以仁爲性之統體, 而謂三者必已發而後見也. 大批仁, 性也; 惻隱羞惡是非辭遜, 情也. 心則統乎性情者也. 以此觀之, 則區域分辨而不害其同, 脈絡貫通而不害其別, 庶乎其得之矣.

 

 

방빈왕에게 답함 4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0(소희 원년, 경술, 61)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앞 편지의 내용을 여러 학자들에게 보여주고 각자 의견대로 분석하도록 한 뒤 그 내용을 정리하여 인편을 통해 편지로 보냈으나 인편에게 문제가 생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사실을 밝히고, 아울러 앞 편지의 내용 중 몇 조목을 좀더 부연 설명해주고 있다.

 

앞 편지에서 말한 내용은 모두 매우 정밀하게 사색해야 하니 감히 경솔히 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여기 와 있는 학자들에게 두루 보여서 각각 자기 의사로 조목조목 분석하게 했습니다. 그것을 요사이 대략 쓸데없는 부분은 삭제하고 틀린 부분은 바로잡아서 무녀(婺女)의 인편을 통해 그대에게 부쳐드리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인편이 막 길을 떠나려던 참에 공교롭게도 병이 나서 편지를 맡아 처리할 수 없게 되었고, 사람을 시켜 그 편지를 찾아오게 하였으나 다시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창 심란하던 차에 후속 편지가 마침 이르니, 지난번에 적어 부친 편지 내용을 더듬어 생각해봐도 심기(心氣)가 쇠약하여 마치 아득한 곳에 떨어진 것처럼 다시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선 나의 소견을 간략히 별지에 적어보내니, 한번 살펴보고 온당치 못한 점이 있으면 다시 답해 주길 바랍니다.

前書所喩, 思索皆甚精密, 不敢草草奉報. 嘗偏以示諸來學者, 使各以意條析之. 近方略爲刊訂, 欲因婺女便人轉以寄呈. 而臨行適病, 不能料理簡書, 令人檢尋, 不復可得. 方以爲撓, 而後間適至, 欲追思錄寄, 而心氣衰弱, 如墮渺茫, 不復可得. 今姑據所見, 略具別紙, 幸一觀之. 有所未安, 却望報及.

 

()이란 도()의 형체이다란 것은 바로 󰡔격양집서󰡕에 있는 말이니, 그 뜻은 다만 도라고 말하면 사물에 흩어져 있어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없고, 마음에서 구한다면 그 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모두 정해진 본체가 있어서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말한 듯합니다. ()가 마음에 있는 것이 곧 이른바 성()입니다. 그러므로 소자(邵子: 소옹)가 아래 글에서 또 마음이란 성()의 성곽이다라고 말했으니, 이로써 고찰해보면 그대가 논한 바의 득실(得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性者道之形體, 擊壞集序中語. 其意若曰: 但謂之道, 則散在事物而無緖之可尋; 若求之於心, 則其理之在是者皆有定體而不可易耳. 理之在心, 卽所謂性. 邵子下文又曰: ‘心者, 性之郛郭也.’ 以此攷之, 所論之得失可見矣.

 

사람이 사물을 응접할 때 의욕(意欲)의 사사로움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리의 당연함을 보지 못하여 결국 부정한 곳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자(董子: 동중서)선한 마음으로 행하지만 그 의리를 모르기 때문에 빈말이 되어버려 감히 말이라 할 수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반드시 이 마음이 보존되어 있을 때만을 사심이 없다고 하고, ()이 행해지지 못한 뒤에 사심이 있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人之應事, 有不出於意欲之私, 而但以不見義理之當然, 遂陷於不正者多矣. 董子所謂以善爲之而不知其義, 是以被之空言而不敢辭者, 正爲此耳. 恐不必專以此心之存爲無邪心, 敬不得施然後爲有邪心也.

 

마음[]은 참으로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고요할 때 이를 보존하고 움직일 때 이를 살피면, 그 체()와 용()이 또한 환히 드러날 것입니다. 근세에 마음을 알아야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이와 다릅니다. 그들은 대개 고요할 때는 본래 지양(持養)하는 공부가 없고 고요할 때에는 또 체험(體驗)하는 실질이 없이, 단지 유행하여 발현하는 곳에서 순간적인 올바른 의사(意思)만을 인식하고, 대뜸 본심(本心)의 오묘함이 이와 같을 뿐이다고 여겨 이를 지나치게 높이 받들어 원래의 큰 일로 간주하니, 이는 단지 마음의 작용임을 모른 때문입니다. 이 일이 한 번 지나가면 이 작용도 곧 그치니, 어찌 이 순식간의 의사를 근거로 삼아 곧 천하의 모든 사물로 하여금 각각 그 정당함을 얻지 않음이 없도록 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그 학문을 하는 자들은 공부가 수준에 도달하면 간혹 약간의 효험을 보기도 하지만, 역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여 경망하거나 방자하거나 의리(義理)를 돌아보지 않는 폐단은 이미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 이는 참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말을 절대로 남에게 하지 마십시오. 한갓 언쟁의 실마리만 보태게 될 것입니다.

心固不可不識, 然靜而有以存之, 動而有以察之, 則其體用亦昭然矣. 近世之言識心者則異於是, 蓋其靜也初無持養之功, 其動也又無體驗之實, 但於流行發見之處認得頃刻間正當底意思, 便以爲本心之妙不過如是, 擎夯作弄, 做天來大事看, 不知此只是心之用耳. 此事一過, 此用便息. 豈有只據此頃刻間意思, 便能使天下事事物物無不各得其當之理耶? 所以爲其學者於其功夫到處亦或小有效驗, 然亦不離此處, 而其輕肆狂妄不顧義理之弊已有不可勝言者. 此眞不可以不戒. 然亦切勿以此語人, 徒增競辨之端也.

 

지는 본성이면서 본체요, 측은수오사양시비는 감정이면서 작용입니다. 본성과 감정을 통합하고 본체와 작용을 포괄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이제 유동하여 발생하는 실마리를 곧 생성의 본성이라 말하고, 또 모든 사물의 이치가 유동하여 발생하는 실마리에 갖춰져 있지 않음이 없어서 이 의()의 명칭이 정립되고 체용이 겸비되는 까닭이 된다고 말한다면 온당하지 못한 듯합니다. 대개 맹자가 말한 사단은 곧 정자가 말한 양기가 발하는 곳과 같으니, 이를 본성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의 명칭은 아직 발현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정립되고, 수오의 마음은 바로 그 발현의 실마리입니다.

, 性也, 體也; 側隱羞惡辭遜是非, 情也, 用也. 統性淸該體用者, 心也. 今日流動發生之端卽所謂生之性, 又日萬事之理莫不具於流動發生之端, 此義之名所以立而體用所以兼備, 似未安也. 孟子所謂四端, 程子所謂陽氣發處, 不當以是爲性. 而義之名則自其未發之時固已立矣, 羞惡之心, 則其發見之端也.

 

그대가 제시해준 여러 설명은 모두 상세하고 정밀하니, 공부가 깊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천하에 마음 밖의 사물은 없다는 한 조목을 논한 것은 더욱 좋았습니다. 내가 온당하지 못하다고 여긴 것은 이 몇 군데일 뿐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논변한 것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그 대략은 여기에 갖춰져 있습니다. 혹 온당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편지로 보여주길 바랍니다.

所示諸說皆詳密, 足見用功之深. 其論天下無心外之物一條尤善. 鄙意所未安者, 只此數處爾. 諸人所辨雖不可見, 然其大槪具於此矣. 或有未安, 却望疏示.

 

 

방빈왕에게 답함 5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장식(張栻)󰡔남헌집(南軒集)󰡕 정본이 유포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아울러 적자(赤子)의 마음에 대한 이천(伊川)과 여대림(呂大臨)의 왕복 편지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앞 편지에서 문의해준 몇 조목은 모두 정밀하고 합당했습니다. 경부(敬夫: 장식)아직 발현하지 못했을 때라고 운운한 것은 곧 그의 초년의 의견인데 나중에 그 잘못을 깨닫고 곧장 개정했습니다. 다만 구설(舊說)이 이미 전파되고 학자들이 또 이를 살펴보지도 않은 채 본떠서 판각하고 있으니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 시절에 별도로 편차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판본이 먼저 출판되고 이 정본이 나중에 출판되어 결국 다시는 팔리지 않으니 매우 한스럽습니다.

적자(赤子)의 마음에 대해서는 이천(伊川) 선생이 가장 나중에 보낸 편지에 매우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대개 인심은 미발(未發)의 시기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적자(赤子)만 그럴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자의 마음은 또한 이발(已發)의 시기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오로지 미발만을 지칭할 수는 없습니다. ()나라 첩()에 관한 사건은 󰡔유서(遺書)󰡕 속에도 두 구절이 있는데 󰡔호전(胡傳)󰡕과 서로 비슷합니다. [유질부(劉質夫)가 명도 선생의 말을 기록한 것이다.] 호안국(胡安國)은 대개 그 뜻을 추종하였으나 미세한 틈새에서 오류를 범한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이 일은 예전에 의심한 적이 있는데 요사이 또 붕우들과 설명 중에 있습니다. 보내온 편지를 보니 제 뜻과 잘 들어맞았습니다. 그대의 이치를 보는 것이 구차스럽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그 나머지는 의심할만한 것이 없습니다만, 만나서 강론할 수 없음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前書下詢數條, 類皆精當. 敬夫未發之云, 乃其初年議論, 後覺其誤, 卽已改之. 但舊說已傳, 學者又不之察, 便加模刻, 爲害不細. 往時常別爲編次, 正爲此耳. 然誤本先行, 此本後出, 遂不復售, 甚可恨也. 赤子之心, 伊川先生最後一書言之甚詳. 蓋人心莫不有未發之時, 不但赤子爲然. 而赤子之心亦莫不有已發之時, 不得專指爲未發也. 衛輒之事, 遺書中亦有兩句與胡傳相似. (劉質夫所錄明道先生.) 蓋祖其意而不悟其失之毫釐之間也. 此事舊嘗疑之, 近日亦方與朋友說及. 得來示, 適契鄙懷, 知閱理之不苟也. 其他無可疑者, 恨未得面講耳.

 

 

방빈왕에게 답함 6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대학󰡕을 공부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논어󰡕조문도(朝聞道)’ 구절의 참뜻을 설명하고 있다.

 

앞 편지에서 󰡔대학󰡕󰡔논어󰡕를 논한 것은 대체적으로 모두 좋습니다. 다만 󰡔대학󰡕의 차례는 또한 학문의 본말과 시종이 모두 자기의 일이 아님이 없지만, 반드시 실제로 한 등급을 나아가야 비로소 입각(立脚)할 곳이 있어 뒤 단락의 공부를 할 때 참으로 효험이 있다는 뜻이지, “앞 단락의 공부가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뒤 단락은 전혀 살펴보지 않은 채 그 자체대로 내버려둔다는 뜻은 아닙니다.

도를 들었다는 것은 비로소 사람이 되는 도리를 안 것이니, 이로부터 실제로 공부를 해나가면 다시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어찌 대뜸 전혀 더 할 일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 경지에 이르면 곧 보는 바가 어긋나지 않아 참으로 넓은 집에 거처할 수 있고 바른 자리에 설 수 있고 큰 도를 행할 수 있어서 위를 향해 자연히 진보하는 곳이 있을 뿐입니다.

前書所論大學論語大槪皆得之. 大學次序, 亦謂學之本末終始無非己事, 但須實進得一等, 方有立脚處, 做得後段功天, 眞有效驗爾. 非謂前段功夫末到, 卽都不照管後段而聽其自爾也. 聞道方是理曾得爲人底道理, 從此實下功夫, 更有多少事? 豈可便謂都無餘事? 但到此地, 卽所見不差, 眞有廣居可居, 正位可立, 大道可行, 向上自然有進步處耳.

 

 

방빈왕에게 답함 7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주자는 방빈왕이 보내준 󰡔주역󰡕과 관련된 서적이 정론을 벗어나 오류가 많음을 지적하고, 자신이 󰡔역학계몽󰡕을 저술한 이유와 󰡔주역󰡕을 해독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전일에 그대가 부쳐준 󰡔주역󰡕에 관한 글을 자세하게 살펴보지 못하여 이 번 편지에서 감히 세밀하게 언급하지 못합니다. 편지를 보낸 뒤에 고향으로 돌아와 틈틈이 그 두 책을 살펴보고 비로소 속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글에서 말한 사상(四象)과 선천도(先天圖)의 차례와 같은 것은 모두 강절(康節: 소옹)의 본지는 아니고 기타도 두찬(杜撰)이 많습니다. 예컨대 구전도(九轉圖)에서 위백양(魏伯陽)󰡔참동계(參同契)󰡕와 장평숙(張平叔)󰡔오진편(悟眞篇)󰡕을 인용한 것은 더욱 이치에 닿지 않고, 또한 스스로 󰡔참동계󰡕 중에서 말한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니, 수많은 공부를 했음에도 결코 일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애석히 여깁니다. 대체로 󰡔주역󰡕이라는 글은 가장 읽기 어려운데 지금 사람들은 이를 즐겨 말하니, 바로 이른바 귀신을 그리는 것입니다. 단지 이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모르니 자기의 직분 상에서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 중에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자에게는 또한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역학계몽(易學啓蒙)󰡕을 지은 것은 바로 사람들의 설명이 지리멸렬했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주역󰡕 속에서 말한 상수(象數)는 성인이 이미 말한 것이 이와 같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주역󰡕을 배우는 자들이 이 몇 가지 조목만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주역󰡕의 대체(大體)에 얼추 통하고 상수에도 모두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이 밖에 분분한 내용은 모두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이해한 바를 알려주니 시험삼아 추론하고 고찰해보면 절로 마땅히 알게 됩니다. 그 글의 제 2편에서 논한 태극(太極)양의(兩儀)사상(四象) 따위는 더욱 정밀하니, 참으로 그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면 성인이 괘()를 그을 때 조금도 생각하거나 계산하지 않았고 이른바 그리기 전에 󰡔󰡕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빈말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편지에서 그 책의 잘못을 논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여 또 논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저는 다만 노형이 혹 그 설명을 믿고 강론하여 탐구하다가 힘만 허비한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하여 오로지 이러한 내용을 덧붙여 답장을 올릴 뿐입니다.

前日看所寄說不子細, 書中未敢察察言之. 遣書後歸故居, 道間看得兩冊, 始見其底蘊. 如言四象及先天次序, 皆非康節本指, 其他亦多杜撰. 九轉圖魏伯陽參同契張平淑悟眞篇尤爲無理, 亦自不曉參同契中所說道理, 可惜用許多功夫, 都不濟事. 大抵之一書最不易讀, 而今人喜言之, 正所謂晝鬼神者. 殊不知只是瞞得不會底, 於自己分上成得何事? 而世人自有曉得者, 亦不可得而欺也. 向來作啓蒙, 正爲見人說得支離, 因竊以謂中所說象數, 聖人所已言者不過如此. 今學者但曉得此數條, 則於略通大體, 而象數亦皆有用. 此外紛紛, 皆不須理會矣. 聞已見之, 嘗試推攷, 自當見得. 其第二篇論太極兩儀四象之屬尤精, 誠得其說, 則知聖人畫卦不假纖毫思慮計度, 而所謂晝前有, 信非虛語也. 然此書所論彼書之矢幸勿語人, 又生競辨. 區區但恐老兄或信其說而講求之, 則枉費功夫, 故專附此奉報爾.

 

 

방빈왕에게 답함 8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주자는 󰡔주역󰡕이 육경 중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책임을 고백하고, 한 때 직접 이 책에 주석을 붙여 간이(簡易)함을 추구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심군(沈君)󰡔주역󰡕에 관한 글은 너무 방만하여 읽어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곳이니, 감히 뭐라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사이에 시초(蓍草)를 덜어갈 때에 오른손에 5를 남긴다는 설은 매우 신선하고 정돈되어 이치에 닿는 듯합니다. 다만 귀기(歸奇: 남은 것을 손가락에 끼운다]’라고 말할 수 없을 듯하니, 여전히 의심할만한 곳이 있습니다. 󰡔주역󰡕은 육경(六經) 중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책인데 뚫어놓은 구멍이 너무 깊고 견강부회가 너무 교묘하여 점차 본 뜻을 잃은 듯합니다. 따라서 이전에 그것에 해설을 붙여 간결하고 평이하게 소통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통되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아 착수할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단지 알지 못하는 것은 빼버렸으니 아마도 큰 오류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沈君書詞太汗漫, 讀之多所末解, 不敢遽下語. 其間揲著右手餘五之說甚漸而整, 似若有理. 但恐不可謂之歸奇, 尙有可疑耳. 於六經最爲難讀, 穿穴太深, 附會太巧, 恐轉失本指. 故頃嘗爲之說, 欲以簡易通之. 然斫未通處極多, 未有可下手處. 只得闕其所不知, 庶幾不至大差繆耳.

 

 

방빈왕에게 답함 9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방빈왕이 󰡔논어󰡕 전편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주자의 해명을 구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주자는 하나하나 비교적 짤막한 비평과 간결한 설명을 덧붙여 교시(敎示)하고 있다.

 

부쳐온 󰡔주역󰡕에 관한 해설은 이미 보내드렸습니다. 그대가 질문한 여러 의문점에서 얻은 바가 매우 많았으나, 그 중에 온당치 않은 것은 또한 각각 그 아래에 제 의견을 덧붙여 동봉하여 보내니 다시 상고해 보기 바랍니다. 앞 편지에서 󰡔주역󰡕 해설을 논한 것이 이미 상세하지만, 바빠서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많습니다. 대저 옛사람의 올바른 의도를 터득하지 못했으면서도 스스로 이론을 세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오늘날 독서하는 사람의 일반적인 병폐입니다.

所寄說却以上內. 諸疑義所得甚多, 其未安者, 亦各附己意於其下, 幷此封內, 幸更詳之. 前書所論說已詳, 然匆匆尙多末盡. 大抵多是末得古人正意而好自立說, 此今世讀書者之通病也.

 

질문: “그 하는 것을 본다[視其所以]”는 장()에 대해 묻습니다. 제 생각으로 소이(所以)’'하는 것[所爲]'입니다.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은 행위는 같지만 마음은 다르니, 하는 것이 비록 선하다고 하지만 그 의도의 발동이 이()를 위한 것인지, ()를 위한 것인지 모릅니다. 하는 것이 의에 합치된다면 발동하는 것도 의로써 하니 참으로 선한 것입니다. 또 마땅히 그가 평소에 간직하고 지킨 것이 과연 한결같이 올바름에서 나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에 이르면 또한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을 다한 것입니다. 범씨(范氏)가 이르기를 그 하는 것을 보면 마음씀씀이가 사악한지 올바른지를 알게 되고, 그 이유를 살펴보면 그 행하는 바의 귀결을 고찰하게 된다고 했는데, 거꾸로 말한 듯합니다.

視其所以一章, 所以’, 所爲也. 天理人欲同行異情, 所爲雖日善矣, 抑不知其意之所發爲利乎? 爲義乎? 所爲合於義, 所發亦以義, 則固善矣. 又當察其平日所存所守果一出於正乎? 至是則亦盡觀人之法矣. 范氏: ‘視其所以, 知其用心之邪正; 觀其所由, 考其所行之歸趣.’ 疑倒說了.

 

답변: “그 편안히 여김을 살펴본다는 것은 바로 그 말미암은 바가 편안한지 편안하지 않은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만일 선을 행하기를 마치 악취를 싫어하고 여색을 좋아는 것처럼 한다면, 거처가 편안한 것입니다. 범씨의 설명은 참으로 온당치 못합니다.

察其所安, 正是察其折由之安與不安. 若其爲善, 如惡惡臭, 如好好色, 則居之安矣. 范氏之說誠未當也.

 

질문: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두워 얻음이 없다는 장에 대해 묻습니다. 제 생각으로, ‘()’은 성현이 말하고 행한 것을 보고 본받는 것을 말하고, ‘()’는 그 이치의 근거를 연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갓 배우기만 하고 그 이치를 연구하지 않으면 어두워 얻음이 없습니다. ‘()’은 어두워 얻음이 없다는 뜻이니 그 배운 것도 역시 거친 흔적일 뿐입니다. 한갓 생각만 하고 실천하는 행동이 없다면 위태롭습니다. ‘()’는 위태로워 불안하다는 뜻이니 그 생각한 것도 역시 헛된 견해일 뿐입니다. 배우고 생각하면 앎이 더욱 정밀해지고, 생각하고 배우면 지킴이 더욱 견고해지니, 배움은 광대(廣大)함을 이루는 것이요 생각은 정미(精微)함을 다하는 것입니다.

學而不思則罔一章, 竊意 謂視聖賢所言所行而效之也, ‘謂硏窮其理之所以然也. 徒學而不窮其理則罔, 岡謂昏而無得, 則其所學者亦粗迹爾. 徒思而無踐行之實則殆, 殆謂危而不安, 則其所思者亦虛見爾. 學而思則 知益精, 思而學則守益固, 學所以致廣大, 思所以盡精微.

 

답변: 배움은 오로지 실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니, 예컨대 배워서 취하는 것은 바로 문견(聞見)의 유익함을 위해 말한 것입니다.

學不專於踐履, 如學以聚之, 正爲聞見之益而言.

 

질문: “아는 것을 안다고 한다는 장에 대해 묻습니다. 제 생각으로, 학자들이 의나 사물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니 이로써 남을 속이는 짓은 혹 가하겠지만 본래 마음의 영명함을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아는 것은 이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한다면, 비록 의리와 사물 사이에서 모르는 것이 있다할지라도 스스로 알면 매우 명료하여 가리움이 없게 되므로 이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진실한 마음으로 학문하고 사변하여 연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지식이 지극해지고 사물이 이치가 이르게 되며 마음이 바르게 되고 뜻이 성실해지는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공자가 이것으로 자로(子路)를 가르쳤으니 참으로 절실하고 중요합니다. 이 뜻은 말하기는 쉬운 듯하지만 학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관련된 곳이 매우 많으니, 마땅히 걸음걸음마다 이것으로 성찰한다면 자신에게 절실한 쓰임이 끝이 없게 될 것입니다.

知之爲知之一章, 謂學者之於義理於事物, 以不知爲知, 用是欺人或可矣, 本心之靈庸可欺乎? 但知者以爲已知, 不知者以爲不知, 則雖於義理事物之間有不知者, 而自知則甚明而無蔽矣. 故日是知也. 以此眞實之心學問思辨, 硏究不舍, 則知至物格心正意誠之事可馴致也. 夫子以是誨子路, 眞切要哉. 此意言之若易, 而於學者曰用間關涉處甚多, 要當步步以是省察, 則切身之用蓋無窮也.

 

답변: 이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此說甚善.

 

질문: “덕은 외롭지 않다는 장을 묻습니다. 생각해보니, 정자(程子)는 스스로 두 가지 설명을 남겼습니다. 각각 부류끼리 모이고 사물과 함께 어우러지며 선을 행하는 자는 같은 부류끼리 응하여 동지가 먼 지방에서 찾아온다고 말했으니, 이것이 하나의 설명입니다. 하나의 덕이 정립되어 백 가지 선이 이를 좇아 지극한 덕이 성대해진 뒤에 저절로 막힘이 없어 주변의 사물은 무엇이든 학문의 자원이 되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이것이 또 하나의 설명입니다. 남헌(南軒: 장식)이 이르기를 선한 말이 모이고 어진 벗이 찾아오며 천하 사람과 더불어 인()으로 돌아가니 이 또한 외롭지 않을 뿐이다고 했는데, 이는 정자의 두 가지 설명을 겸한 것입니다.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德不孤一章, 程子自有二說: 曰各以類聚, 曰與物同, 曰爲善者以類應, 有朋自遠方來, 此一說也. 曰一德立而百善從之, 至德盛後, 自無窒礙, 左右逢其原. 此又一說也. 南軒善言之集, 良朋之來, 與夫天下歸仁, 是亦不孤而已”. 則是兼用程子二說. 不知如何?

 

답변: “덕은 외롭지 않다는 구절은 󰡔주역󰡕에서 말한 것과 󰡔논어󰡕에서 말한 것이 같지 않습니다. 덕이 성대해져 무엇이든 학문의 자원이 되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주역󰡕의 설명입니다. 선은 같은 부류끼리 호응한다는 것은 󰡔논어󰡕의 설명입니다. 각각 가야할 곳을 가리키고 있으니 겸하여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德不孤, 中所說與論語不同. 德盛逢原者, 之說也. 善以類應者, 論語之說也. 各指所之, 不可兼用.

 

질문: “칠조개(漆雕開)가 대답하기를, 저는 벼슬하는 것에 아직 자신할 수 없습니다라는 장에 대해 묻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천리(天理)는 정밀하고 미세하며 깊고 오묘하여 끝이 없으니, 오직 지식이 지극하고 사물의 이치가 이른 뒤에야 다할 수 있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으면 마음의 본체는 두루 흘러 막힘이 없을 수 없으니, 사물 사이에서 감응하여 반드시 합당하게 함을 스스로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란 이치의 전체가 실제로 나에게 있어 다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합니다. 칠조개의 소견이 매우 커서 작은 것에 안주하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스스로 살피기를 매우 정밀히 하여 스스로 기만하는 것을 용납지 않았으니, 그의 뜻을 세우는 광대함과 도에 나아가는 용기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공자가 기뻐한 것입니다.

漆雕開吾斯之未能債一章, 謂夫理精微, 深妙無窮, 惟知至物格者然後能盡之. 苟有一毫末盡, 則心體未能周流而無滯也, 其於事物之間, 能自保其應之而必當乎? 信者, 理之全體實有諸己而無不盡之謂. 漆雕開所見甚大而不肯安於小, 自察甚精而不容以自欺, 則其立志之宏而進道之勇何可量哉此夫子所以悅之.

 

답변: 이 한 장의 말뜻은 혼잡스러워 병폐가 많으니, 다시 탐구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此一章語意駁雜多病, 更加玩索爲佳.

 

질문: “남이 옛날에 저지른 잘못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장에서 옛날에 저지른 잘못이란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때문에 원망하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말에서 원망한다는 것은 남이 자기를 원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남을 원망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소씨(蘇氏)의 설명은 가리키는 의미가 모두 명백하니 또한 근거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자는 옛날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아 결국 이 장이 뜻한 바를 알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不念舊惡一章, 不知舊惡爲何事? ‘怨是用希’, 不知怨是人怨己, 或己怨人? 蘇氏, 則指意皆明, 又不知可以爲據否? 程子不明說舊惡, 竟未知此章之所指歸也.

 

답변: ‘옛날에 저지른 잘못은 다른 사람이 과거에 범한 잘못이니 관()이 올바르지 않은 것과 같은 부류입니다. 과거는 비록 이미 하염없이 흘러가 버렸으나 오늘 관을 바르게 쓰고 다가오면 그 잘못을 고친 점을 취하고 과거의 잘못을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舊惡是他人前日之過, 如其冠不正之類. 前日雖已望望然去之, 然今日正冠而來, 則取其改過而不念前日之過矣.

 

질문: “부자께서 위()나라 군주를 도우실까?”라는 장을 묻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장의 본뜻은 위나라 군주는 부자 간에 나라를 다투었고 백이와 숙제는 형제 간에 왕위를 양보했으니, 비슷한 부류끼리 말해보면 첩()의 죄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양씨(楊氏)의 변론이 가장 상세한데 다만 첩()의 죄는 나라를 차지하고 아버지를 막은 데 있으니 부자의 의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숙제(叔齊)는 비록 아버지의 명이 있었지만 곧 천륜을 중시하여 도망가 버렸으니, 숙제를 첩()에 견주어보면 첩의 죄는 어찌 천지간에 용납되겠습니까? 굳이 영()을 끌어다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염유(冉有)의 물음은 영()을 위해 말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 후설(後說)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첩()은 곧 선군(先君)의 명을 받은 자라고 말한 것에 대해,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살펴보니 영공(靈公)이 일찍이 공자(公子) ()을 세우고자 했는데 첩() 때문에 영()이 사양하여 부인(夫人: 영공의 부인)이 첩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따로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괴외(蒯聵)가 아버지와 다투었기 때문에 첩이 곧 마땅히 왕위를 피하고 나라 사람들은 종실의 현명한 사람을 간택하여 세우니 이것이 지당한 일이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첩이 도피한 것은 영공이 이미 훙거하고 부인이 옹립하려고 했던 시기에 해당한 듯하니, 이와 같다면 백이숙제의 기풍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夫子爲一章, 謂本意只是君以父子爭國, 夷薺以兄弟讓位, 類而言之, 之罪著矣. 楊氏辨論最爲詳盡, 之罪則在據國拒父, 無父子之義. 叔齊雖有父命, 乃以天倫爲重而逃去之, 則以叔齊, 之罪何所容於天地間乎? 似不必引以爲說. 冉有之問, 其不爲發也明矣. 其後說爲勝. 然所謂乃先君之命者, 左氏, 靈公嘗欲立公子, 讓之, 夫人立之, 不知此言別有所據否? 如所謂蒯聵以父爭, 便合避位, 國人擇宗室之賢者立之, 斯爲至當. 然猶疑之逃避當在靈公旣薨而夫人欲立之時, 如此則庶乎叔齊

之風焉. 不知是否?

 

답변: 이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此說甚善.

 

질문: “나는 그대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는 장을 묻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성인의 동정(動靜)과 어묵(語黙)이 가르침이 아닌 것이 없으니, 오직 성인이 된 뒤에야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대개 성인은 전체가 이 이치이니 사물마다 체득하지 않음이 없고 때때로 그렇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그대들에게 말하니 또한 그 실상을 말했을 뿐입니다. 만일 사씨(謝氏)나 양씨(楊氏)의 설명과 같다면 이는 내가 그대들과 함께 이 이치를 공유하는 것이니, 우러러 하늘을 관찰하고 굽어 땅을 살펴보는 것과 백성들이 날마다 사용하는 것이 이 이치의 유행이 아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물을 들추되 그 법칙을 빠뜨리니 장차 물을 긷고 땔나무를 옮기거나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이는 뜻이 있을 듯합니다.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吾無隱乎爾一章, 謂聖人之作止語黙無非敎也, 唯聖人然後能之. 蓋聖人全體是此理, 無物不體, 無時不然也. 故以此語二三子, 亦道其實爾. 若如謝氏楊氏之說, 則是我與二三子共此理, 其仰觀俯察與夫百姓日用者莫非此理之流行, 則恐擧物而遺其則, 將有連水般柴揚眉瞬目之意矣. 不知如何?

 

답변: 또한 좋습니다.

亦善.

 

질문: “자로(子路)가 귀신 섬김을 물었다는 장에 대해 질문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기()의 모임과 흩어짐이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있고 저승과 이승이 있기 때문에 사람과 귀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이()는 모임과 흩어짐, 저승과 이승의 차이가 없습니다. 학자들이 이 이치를 다하기를 구하는 것은 옳습니다. 사람을 섬기는 이치를 다하면 귀신의 이치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삶의 근거를 안다면 죽음의 이치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드러나 보이는 것에 나아가 그 지식을 이루고 그 행위를 실천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황홀하여 아득한 곳에서 구하게 되니, 끝내 알지 못할 뿐입니다.

子路問事鬼神’. , 謂由聚散故有生死, 由幽明放有人鬼. 而所謂理, 則無有聚散幽明之異也. 學者求盡乎理可也, 盡乎事人之理, 則鬼神之理不外是; 知其所以生, 則死之理可見. 亦卽其著見者而致其知實其行而已. 不然, 將求諸恍愡茫昧之域, 終亦不知焉耳矣.

 

답변: 또한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섬기는 도리는 다하기가 쉽지 않으니, 삶의 근거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亦善. 然事人之道未易盡, 所以生者亦末易知也.

 

질문: “성인의 자취를 밟지 않는다는 장을 묻습니다. 정자(程子)길을 따르고 바퀴자국을 지킨다고 말했는데, ‘바퀴자국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자(張子)이루어 놓은 법[成法]’을 말했는데 무엇이 이루어 놓은 법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지칭하는 하는 내용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不踐迹一章, 程子謂循塗守轍, 不知塗轍爲何也? 張子所譚成法, 不知何者爲成法? 未有以見其所指之實也.

 

답변: “길을 따르고 바퀴자국을 지킨다는 함은 그림쇠와 곱자를 따른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循塗守轍, 猶言循規踏矩云爾.

 

질문: “중궁(仲弓)어떻게 어진 이와 유능한 이를 알아 등용합니까라고 물었다는 장을 묻습니다. 정자는 사람들은 각각 그 친척을 친히 해야 한다. 그런 뒤에는 친척만을 친히 하지는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곧 중궁과 성인의 마음씀에 크고 작음을 볼 수 있다. 이 뜻을 미루어 나간다면 한 마음이 나라를 부흥시킬 수도 있고, 한 마음이 나라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 다만 공정함과 사사로움의 사이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복해서 생각해보아도 그 설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략 그 개요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仲弓問焉知賢才而擧之一章, 程子: ‘人各親其親, 然後不獨親其親.’ 又云便見仲弓聖人用心之大小. 推此義則一心可以興邦, 一心可以喪邦, 只在公私之間而已.’ 反覆思之, 未得其說. 乞略示梗槪.

 

답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가 아는 자를 등용한다면 천하의 일은 거행되지 않음이 없으니, 천하의 어진 인재를 알리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라를 부흥시키고 나라를 잃게 한다는 것은 대개 궁극적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자신이 안 뒤에 등용하면 인재를 빠뜨림이 많게 되니, 이로 말미암아 나라를 잃게 만들지 않음이 없습니다.

人各擧其所知, 則天下之事無不擧矣, 不患無以知天下之賢才也. 興邦喪邦, 蓋極言之. 然必自知而後擧之, 則遺才多矣, 未必不由此而喪邦也.

 

질문: 자공(子貢)에게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꿰뚫은 것이다[一貫]”라고 말해준 장을 묻습니다. 제 생각으로 오륜과 백 가지 행실, 인륜과 물리는 어지럽게 섞여있어 명칭을 붙일 수 없으니, 이를 만 가지로 달라 동일하지 않다고 말할만합니다. 그러나 일체(一體)는 만유(萬有)에 포섭되고 만수(萬殊)는 일원(一原)에 귀결되니, 그 근본을 따라 살펴보면 본래 하나입니다. 그 작용을 따라 징험해보면 그 근본이 사물의 사이에 행해지고 있으니 이를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꿰뚫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인은 나면서부터 아는 자이니 본래 많이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학자들은 많이 배우지 않게 되면 본래 그 온전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격물과 궁리로 그 넓음을 이루고, 주경과 역행으로 간결함을 되돌려서, 오랫동안 공부를 축적하여 툭 터지듯 관통하게 되면, 과거에 많이 배워서 이해한 것이 비로소 하나의 근본이지 둘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자공은 지식을 이루는 공부가 이미 지극하여 사물의 사이에서 천리(天理)가 있는 곳을 환히 알아 의심하지 않았으나, 다만 하나로 꿰뚫는다는 오묘한 이치를 미처 알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공자는 그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묻고 그 의심하는 것을 통해 일깨워 주었기 때문에 능히 말을 듣고 깨달아 마음에 거스름이 없었습니다. 공자가 증자 외에 유독 자공에게만 일깨워준 것을 본다면, 단계를 뛰어넘어 가르침을 베풀지 않음을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유학자들이 많이 배우는 것을 병폐로 여기는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子貢一貫之理, 讀五常百行人倫物理紛繪雜揉, 不可名狀, 是可謂有萬而不同者矣. 然一體該攝乎萬有, 而萬殊歸乎一原, 循其本而觀之, 則固一矣. 卽其用而驗之, 則是其本行乎事物之間, 斯所謂一以貫之者也. 聖人生知, 固不待多學而識; 學者非由多學, 則固無以識其全也. 故必格物窮理以致其博, 主敬力行以反諸約, 及夫積累旣久, 豁然貫通, 則向之多學而得之者, 始有以知其一本而無二矣. 子貢致知之功巳至, 其於事物之間, 妁然知夫理之所在而不疑, 特未究夫一之爲妙爾. 夫子當其可而問之, 發其疑而告之, 故能聞言而悟, 不逆於心. 觀夫子於曾子之外獨以告子貢, 則其不躐等而施者抑可見矣. 諸儒以多學爲病者, 不知其意如何?

 

답변: 이 설명도 좋습니다.

此說亦善.

 

 

방빈왕에게 답함 10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당시 도학(道學)이 분열된 모습을 개탄하고 있다.

 

한가한 가운데 함께 강학(講學)할 벗을 적잖이 얻었는지요? 근래에 도학이 분열하여 사람들이 저마다 스승이 되니, 참으로 호공(胡公: 호안국)이 이른바 사람들이 각각 한 가지 견해를 말하여 중생을 기만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세가 바야흐로 제멋대로 흘러 넘쳐 힘으로 막을 수 없으니 개탄스럽습니다.

閑中頗得講學之友否? 比來道衍分裂, 人自爲師, 胡公所謂人人各說一般見解誑嚇衆生者. 勢方橫流, 力不能遏, 可歎

 

 

방빈왕에게 답함 11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5(경원 원년, 을묘, 66)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한가한 가운데 탐구하고 사색하는 공부를 폐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편지를 통해서 때때로 경계를 해주니 무척 다행스럽습니다. 이곳에도 한두 명의 학자가 있으나 총명한 자질을 갖춘 사람을 얻기가 매우 어렵고 또 기꺼이 번거로움을 참고 공부에 힘을 쓰는 자가 실처럼 끊어지지 않고 있으니 매우 염려가 됩니다. 근래에 눈이 더욱 심하게 어두워지고 여타 질병도 많아 너무 마음이 심란하여 좋은 상황이 없습니다. 다시 그대를 만나서 들은 바를 깊이 강론하고자 하나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어찌합니까! 어찌합니까! 요사이 이미 사관(祠官)에 임명되었으나 사직서를 아직 알리지 못해 아직도 이처럼 근심하고 두려워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뜻을 이루지 못하면 다시 반드시 힘써 주청할 것입니다. 절동 지역에 배로 실어온 곡식이 적잖이 있어 백성들의 식생활을 구제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요사이 돌아가는 형편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외정(外廷)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부지하기 쉽지 않음이 또한 이와 같은데, 정보지(鄭補之) 같은 이들은 그래도 가망이 있습니다. 향상(向上) 한 가지는 먼 외지에 있는 터라 들을 수 없습니다. 벼슬에서 물러난 사람으로서 비록 감히 다시 입을 열 수는 없지만 그러나 초야에 묻힌 사람으로서의 근심은 잊을 수 없습니다.

 

閑中想不廢玩索, 因書時有以見警, 幸甚聿甚此亦有一二學者, 然極難得穎悟之質, 又肯耐煩用力者不絶如線, 甚可盧也. 年來目盲愈甚, 它病亦多, 殊憒憒無好况. 思復見賢者, 深講所聞而不可得, 奈何奈何比雖已拜柯官之命, 然辭職未報, 尙此憂懼. 萬一未遂, 更須力請耳. 中聞頗有船粟可濟民食, 不知比來氣象復如何? 外廷諸人不易扶持得且如此, 鄭補之輩尙可望也. 向上一節, 則遠方不得而聞矣. 閑退之人雖不敢復發, 然畉畝之憂不能忘也.

 

 

방빈왕에게 답함 12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진, 67)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당시 학자들의 공부하는 방법과 태도를 비판하고, 아울러 인재를 얻기 어려운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또 화적(和糴)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상평미(常平米)를 확보하여 구황에 나서야함을 역설하고 있다.

 

투병 중에 도리어 궤위(詭僞)한 구문(舊聞)이 점차 간결하고 정밀해져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님을 깨닫고 있으나, 그대와 더불어 강론해볼 수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주군(周君)과 고군(高君)은 아직 알지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근래 느낀 바로는 붕우들이 그 견식이 어떠한가는 말할 것도 없고 공부하는 것조차 강과(腔窠)에 들지 못한 까닭에 그저 아득할 뿐 종일토록 진보하는 곳이 없으니, 비단 학문을 막 시작한 신입생들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양승(楊丞)의 문자는 여러 해 병으로 겨를을 내지 못했는데, 올해에는 또 문자를 짓는 일을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오늘날의 의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 사람을 머무르게 하고 초고를 작성하여 줘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병을 심하게 앓을 때에 부쳐온 행장(行狀)을 분실해버렸기에 도리어 머뭇거리면서 따로 등사하여 부쳐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일에 익숙하고 직무에 근면했음을 알고 나니, 사람의 뜻을 매우 위로해줍니다. 이전에 한 두 군()을 시험할 때에 다시는 부릴만한 사람이 없어 비로소 인재를 얻기 어려움을 알았습니다. 만일 유념하여 거두어 쓰지 않는다면 급한 일이 생길 때 참으로 믿을만한 곳이 없게 됩니다. 상평미(常平米)의 재고가 텅 비어서 홍수나 한발에 대비할 것이 없으니 이는 참으로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단지 화적(和糴)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낙토(樂土)가 또한 흉년이 되었으니, 이 또한 뭔가 해볼만한 때가 없습니다. 막부(幕府)의 의론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는지 모르겠습니다.

病中却於誨僞舊聞看得轉覺簡約精明, 非昔時比, 恨不得相與講之也. 二君恨未之識. 近覺朋友末說見得如何, 且是做工夫未人腔寞, 所以茫茫然, 終日無進步處, 非但新學小生爲然也. 楊丞文字累年以病不暇, 今年又禁作文字, 然念其事與今日議論無干涉, 欲留其人, 草成遣還. 而去年病亟時去失所寄行狀, 不免却今且回, 令別寫附來也. 知其練事勤職, 甚慰人意. 頃一再試郡, 更無人可使, 始知人才難得. 若不加意收拾, 緩急眞無可侍也. 常平之積, 所在空虛, 無以爲水皇之備, 此誠可慮. 然去年只緣和糴, 故樂土亦爲凶歲, 此又末有可爲之時也. 不知幕府之議何以處此耶?

 

 

방빈왕에게 답함 13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언제 보냈는지 정확한 연대를 고증할 수는 없으나 만년에 희망을 걸만한 인재를 얻을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병든 몸이 다행히 조금 편안해졌으나 또한 아직은 가볍고 건실하지는 못합니다. 한층 늙어만 가는데 덕성과 학문은 진보가 없고, 붕우들 사이에서도 역시 높이 희망을 걸어서 영구히 (우리 유학을) 부탁할만한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몹시 두렵습니다.

病軀雖幸小康, 然亦未能輕健. 老境益侵而德學不進, 朋友間亦未見卓然可望, 以爲永久之託者, 甚可懼也.

 

 

방빈왕에게 답함 14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진, 67)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주자의 학문이 위학(僞學)으로 낙인찍혀 탄압 받는 상황이 자칫 분서갱유로 비화할까 걱정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간절한 사직의 요청이 수락되었으니 군주의 은혜를 깊이 입었습니다. 다만 외로운 나의 종적을 너무 보존할 수 없으니, 우선은 나의 사사로운 의리에 조금이나마 편안하여 천지간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할 뿐이요, 그 나머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옛 책들을 읽어보니 평이하고 담백하며 착실한 가운데 의미가 더욱 심장함을 깨닫겠습니다. 또한 한 두 명의 벗이 점차 학문의 길을 알아가니, 한가한 가운데 조금이나마 자위(自慰)할 만합니다. 다만 시론(時論)이 사람을 핍박해 혀를 차게 만드니, 한 몸의 이해(利害)는 말할 것이 못 되고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재앙이 마침내 우리 무리에게 미칠까 참으로 걱정입니다.

懇辭遂請, 深荷上恩. 第孤迹殊未可保, 且得私義少安, 俯仰無愧, 它則不暇計爾. 舊書讀之, 覺得平淡著實中意味愈長. 亦有一二朋友漸知路徑, 閑中少足自慰也. 但時論咄咄逼人, 一身利害不足言, 政恐坑焚之禍遂及吾黨耳.

 

 

방빈왕에게 답함 15 答方賓王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진, 67)에 방빈왕에게 답한 편지이다. 주로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의 방법과 목적을 설명해주고 있다.

 

덕문(德聞)의 지식에 진보한 곳이 있다니 매우 좋습니다. 이 또한 그대가 절차탁마한 힘이겠지만 시론(時論)이 이미 이와 같으니 퇴보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남중(周南仲)이 보내 온 편지를 보니 매우 지성스럽긴 하지만, 안배하여 헤아려보는 생각이 많고 곧장 앞으로 뛰어나가는 기상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만일 줄곧 이와 같이 머뭇머뭇 지체한다면, 학문의 세계로 들어가는 곳을 얻지 못할 듯합니다.

편지로 말해준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는 참으로 틈새나 끊어짐이 있기 쉽습니다. 그러나 틈새나 끊어짐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 곧 그 자체가 연속되는 곳이니, 단지 늘 스스로 떨쳐 일어나 조금씩 공부를 쌓아가기를 오래 지속하면 자연히 접속되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것입니다. 강학(講學) 공부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물의 크고 작음과 이치의 얕고 깊음을 막론하고 다만 무엇이건 눈앞에 이르는 즉시 철저히 이해하기를 오래 지속하면 자연히 이치가 마음에 푹 젖어들어 관통될 것입니다.

德聞知有進處, 甚善. 此亦賢者切磋之力, 但不知時論旣爾, 能不退轉否耳. 周南仲書來甚勤, 然覺得安排凖擬之意多, 而無驀亘向前之氣. 若一向如此遲回擔閣, 恐難得人頭處也. 所喩涵養本原之功誠易間斷, 然纔覺得間斷, 便是相續處. 只要常自提撕, 分寸積累將去, 久之自然接續, 打成一片耳. 論學功夫亦是如此, 莫論事之大小, 理之淺深, 但到目前卽與理會到底, 久之自然浹洽貫通也.

 

 

진사덕 정에게 답함 1 答陳師德()

 

해제이 글은 진사덕에게 답한 편지인데, 언제 보냈는지 알 수 없다. 여기에서 주자는 정자의 경()과 치지(致知)의 공부방법으로 학문의 방향을 잡아 정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리석고 못난 내가 일찍이 학문에 발을 들여놓기 하였으나 세월이 흘러 이렇게 늙도록 아무런 소득이 없으니, 처음 먹었던 마음을 고요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늘 스스로 부끄러워 탄식할 뿐입니다. 그런데 과분한 하문(下問)을 받았으니, 무엇으로 그 주신 후의에 보답해야 할는지요? 일찍이 정부자(程夫子)함양(涵養)에는 반드시 경()을 써야 하고, 학문의 진보는 지식을 이루는 데 달려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 두 마디 말은 실로 학자의 입신(立身)진보(進步)의 요체로서 이 두 공부는 서로 발현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자가 사람들에게 지경(持敬)을 가르친 내용은 의관과 용모를 정제하는 것을 먼저 했을 뿐이며, 이른바 치지(致知)도 경서와 역사를 읽고 사물을 응접하는 사이에 이치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에 불과할 뿐이니, 모두가 근세의 거칠고 괴이하여 사람의 실정에 가깝지 않은 이론과는 같지 않습니다. 그대가 깊이 생각해 온 지 오래이니 여기에 대해 필시 이미 깊이 터득한 바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바라건대 노력하여 혹시라도 태만함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또한 무엇 하러 다른 데서 구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독서하는 방법은 반드시 순서에 따라 일상의 과정을 두고 전일한 마음으로 해이하지 않으며, 구두(句讀)와 문의(文義)의 사이에서 조용히 음미하고 조존(操存)천리(踐履)의 실제에서 체험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한 뒤에 마음이 고요하고 이치가 밝혀져 점차 의미를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이리저리 널리 찾고 뒤져서 날마다 다섯 수레의 책을 읽을지라도 또한 학문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정자(程子)는 또 학문을 잘 하는 이는 말을 구하기를 반드시 가까운 것에서부터 하니, 가까운 것에 소홀히 하는 자는 말을 아는 이가 아니다라고 말했으니 이 말이 깊은 맛이 있습니다. 오직 멀리서 구하느라 고생만 하고 소득이 없는 자라야 그 의미를 알 것이니, 또한 그대도 알기 바랍니다.

愚不肖, 早嘗涉學, 歲月逝矣, 老大無聞. 靜循初心, 每自愧歎. 過承下問, 其何以稻厚意之辱? 然嘗聞之程夫子之言曰: ‘涵養須是敬, 進學則在致知.’ 此二言者, 實學者立身進步之要, 而二者之功蓋未嘗不交相發也. 然夫子敎人持敬, 不過以整衣冠齊容貌爲先; 而所謂致知者, 又不過讀書史應事物之間求其理之所在而已. 皆非如近世荒誕怪譎不近人情之說也. 左右玩意之久, 於此蓋必已深有得矣. 更願勉旃而無或怠焉, 則亦何事於他求哉. 抑讀書之法要當循序而有常, 致一而不懈, 從容乎句讀文義之間, 而體驗乎操存踐履之實, 然後心靜理明, 漸見意味. 不然, 則雖廣求博取, 日誦五車, 亦奚益於學哉? 程子又曰: ‘善學者求言必自近, 易於近者非知言者也. 此言殊有味, 惟困於遠求而無得者知之, 亦願左右者之識之也.

 

 

진사덕에게 답함 2 答陳師德

 

해제이 글은 진사덕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격물(格物)과 지경(持敬)하는 평이하고 명백한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됨을 말해주고 있다.

 

편지로 격물(格物)과 지경(持敬)의 방법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를 향하여 잊지 않는 그대의 뜻을 충분히 볼 수 있었으니 매우 좋고 매우 좋습니다. 지경(持敬)은 바로 이로부터 공부해 들어가야 하지만, 격물(格物)에 대해서는 이천부자(伊川夫子)가 이른바 경전을 궁구하고 사물을 응접하거나 위로 고인(古人)을 논하는 따위가 힘을 쓸 곳이 아님이 없으니, 만일 이 평이하고 명백한 공부를 버리고 굳이 모습도 없고 자취도 없는 경계를 뒤지고 찾는다면, 아마도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병폐에 빠져 장차 반드시 정신이 피폐하고 힘이 소진되어 일신(日新)으로 나아가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그대는 몸이 약하고 병이 많다고 들었으니, 더욱 사려(思慮)를 잘 보양(保養)하여 지나치게 애쓰지 말도록 해서 덕기(德器)를 성취하여 사우(士友)들의 바램을 위로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示喩格物持敬之方, 足見鄕道不忘之意, 甚善甚善持敬正當自此而入, 至於格物, 伊川夫子所謂窮經應事, 尙論古人之屬, 無非用力之地. 若舍此平易顯明之功, 而必搜索窺伺於無形無迹之境, 竊恐陷於思而不學之病, 將必神疲力殆而非所以進於日新矣. 况聞左右體羸多病, ’ 尤當完養思慮, 毋令過苦, 成就德器, 以慰士友之望.

 

 

오신에게 답함 答吳申

 

해제이 글은 1181(순희 8, 신축, 52)에 오신에게 답한 편지이다. 역대 성현들의 종사(從祀)의 위차(位次) 문제를 언급한 내용이다.

 

보내온 편지에서 말한 종사(從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곧 접 때에 저리(邸吏)를 시켜 국자감에서 이처럼 그려오도록 했습니다. 이어 광문(廣文: 벼슬 이름) 양원범(楊元範)에 질문했습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국자감에 머물러 있었는데 또한 실제로 그러하다고 말하기에 마침내 원본에 의거하여 그려보았습니다. 요사이 도성에 이르러 알만한 사람에게 널리 물었는데 역시 모두 그렇다고 말했으니, 결코 오류는 없을 것입니다.

所喩從祀曲折, 乃向者令邸吏於監學晝到如此. 因問楊廣文元範, 渠住學久, 亦云實然, 遂依本晝之. 近到都下遍問知識, 亦皆云爾, 決不誤也.

 

 

이주한에게 답함 1 答李周翰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6, 기유, 60)에 이주한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주한에게 시비와 득실을 정밀히 살피고 밝게 변별하기를 요구한 내용이다.

 

저는 여러 해를 숨어 지내느라 때때로 안부와 동정(動靜)를 묻지는 못하였으나, 그대를 흠모하는 마음은 스스로 이길 수 없었습니다. 올해는 마침 나이가 만 예순이 되었는데 노쇠하고 병이 들어 지리멸렬하여 다시는 먼 곳을 다닐 뜻이 없으니, 아마도 기견지원(旣見之願)을 다시 이룰 수 없을 듯합니다. 이 즈음에 보내 온 편지를 받고 나서 세 번 반복해 읽고 감탄하였습니다. 편지로 말한 내용이 곡진하고 게다가 겸허한 덕을 내보이니, 예전에 경솔히 망론(妄論)하였던 것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시비와 득실에 대해 정밀히 관찰하고 명료히 분변(分辨)해야만 할 것이니, 혹 안으로는 실제로 구습(舊習)에 안주하면서 겉으로는 이러한 말을 한다면, 제가 그대에게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만나서 담론할 길이 없으니 편지를 쓰면서 크게 탄식합니다.

跧伏累年, 不獲以時候間作止, 區區鄕往, 蓋不自勝. 今歲適滿六十, 而衰病支離, 無復四方之志, 恐不復得遂旣見之願矣. 玆辱惠書, 三復感歎. 來喩諄復, 益見謙光, 又愧向來妄論之率爾也. 然是非得失之間, 正當精察而明辨. 或者內實安於舊膂而陽爲是言, 則非之愚所望於高明也. 無由面論, 臨書浩歎!

 

 

이주한에게 답함 2 答李周翰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6, 기유, 60)에 이주한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주한이 지은 원설(原說)이 겉으로는 공자를 존중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석가와 노자를 주장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더 논의를 거치자는 말을 하고 있다.

 

보내온 편지의 세세한 내용들이 본말을 갖추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다만 원설(原說)에 대한 변론은 세월이 점차 오래되어 다시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중에 유독 어렴풋한 기억은 겉으로는 공자를 존중하면서도 속으로는 석가와 노자를 주장하는 뜻이 매우 많았다는 점입니다. 이제 온전히 죄를 자복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니 또한 당시에 파악한 것이 자세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른바 결국에는 천지에 위치하여 만물을 기르고 인륜을 두텁게 하니 곧 오도(吾道: 유학)의 정론이다라는 말은 또한 그 위 문장을 아직 보지 못하여 그대의 미묘한 의도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몰라 대뜸 제 소견을 개진할 수 없습니다. 인편을 통해 다시 가르침을 주신다면 비록 제 자신에게 뽑을만한 빗장이 없고 열어 젖힐만한 열쇠는 없으나 또한 감히 가슴속을 드러내어 정정해주길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示喩縷縷, 備見本末. 但原說之辨, 歲月浸久, 不復記憶. 獨髣髴其間頗有陽尊孔子而陰王之意耳. 今乃承有未全伏罪之言, 又恐當時看得不子細也. 所謂終焉位天地育萬物厚人倫者, 乃吾道之正, 亦未見其上文, 不知盛意之微果何所寄, 未容遽陳鄙見. 便中幸復有以敎之, 則雖自顧無關可抽, 無鑰可啓, 然亦不敢不披露胸臆, 以求訂證也.

 

 

주비경에게 답함 答朱飛卿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주비경에게 답한 편지이다. 주비경이 7조목에 걸쳐 학문하는 방법과 수양하는 태도를 질문한 데 대해 주자가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비평을 덧붙인 것이다..

 

질문: 저는 선생이 내린 지경(持敬)의 가르침을 받들어 스스로 병통을 구하고 있으나 기력이 쇠약하여 게으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컨대 머리의 용모를 바르게 하고 손의 용모를 공손하게 하고자 하지만 때때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로 해서 곧 지경(持敬)이 순수하지 않고 사사로운 의도가 이미 행해집니다. 이치를 궁구해보지만 그 당연(當然)의 법칙을 알지 못하니, 이제 마침내 하나하나 예()대로 행하고자 하면 힘이 피곤하여 실제로 행할 수 없습니다. 다만 (경을) 마음에 간직하되 사체(四體)는 조금 느슨히 두어도 끝내 경()을 행하는 데 얻음이 있고 해로움이 없게 될 수 있는지요?

某承先生誨以持敬, 某自求病痛, 是氣衰不能勝其怠惰. 如頭容欲直, 手容欲恭, 則時或不能. 卽此便是持敬不純, 私意已行矣. 窮理不知其當然, 今遂欲一一如禮, 則力困, 實做不得.

 

답변: 마음이 항상 경()하지 않음이 없으면 사체가 자연히 수렴될 것이니, 굳이 의식적으로 안배하지 않더라도 사체가 또한 절로 태연하고 편안하게 됩니다. 의식적으로 안배하면 공부를 오래 지속하기 어려워 병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心無不敬, 則四體自然收歛, 不待著意安排而四體亦自舒適矣. 著意安排, 則難久而生病矣.

 

질문: 제가 근래에 이치를 궁구하고자 하였으나 사물이 번잡하게 끓다보니 아직 쇄락(灑落: 잡념과 사욕이 떨어져 나간 순결한 상태)한 곳이 있지 못합니다. 요사이 부귀는 과연 구할 수 없는 것이고 빈천은 과연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을 따름입니다.

某比欲窮理, 而事物紛紜, 未能有灑落處. 近惟見得富貴果不可求, 貧賤果不可逃耳.

 

답변: 이는 명()의 측면에서 이해한 것이니 반드시 다시 의()의 측면에서 마땅히 구해야 할 것과 구해서는 안 될 것, 마땅히 피해야할 것과 피해서는 안 될 것을 이해하되, 다시 자기 분수의 측면에서 구하고 피하는 마음이 이것이 욕심인지 어떤지, 그리고 그 득상(得喪)영욕(榮辱)과 자기 의리의 득실(得失)이해(利害) 중에 어느 쪽이 가볍고 무거운가를 이해한다면, 분명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此是就命上理會, 須更就義上看當求與不當求, 當避與不當避, 更看自家分上所以求之避之之心是欲如何, 且其得喪榮辱與自家義理之得失利害孰爲輕重, 則當有以處此矣.

 

질문: 선생께서 󰡔시전(詩傳)󰡕을 주고 또 가르쳐주기를 반드시 익숙하게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익숙하게 읽기를 한 두 차례 반복했지만 아직 감응이 발산되지 않습니다. 제 생각으로, 옛 사람은 사람들에게 소리와 노래를 겸하여 가르쳐서 점점 인도해주었기 때문에 가장 평범하고 쉬웠습니다. 또 정풍(鄭風)이나 위풍(衛風)과 같은 여러 시들은 모두 음란한 소리인데, 소학의 공부가 미쳐 성취되지 못한 채 대뜸 음란한 소리를 가르치면, 그들에게 경계해야할 것을 알게 할 수 없고 그들의 심지(心志)를 손상시키게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그 소리가 슬픔사랑원망분노를 띠고 있어 자연히 사람들에게 두려워하고 싫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어린 문인들이라 할지라도 또한 경계함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저는 아우나 조카들에게 󰡔시전󰡕을 배우게 하면서 아직도 이 점을 의심하고 있어 감히 문장의 의미를 밝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先生授以詩傳, 且敎誨之曰: ‘須是熟讀.’ 某嘗熟讀一二遍, 末有感發. 竊謂古人敎人兼以聲歌之, 漸漸引廸, 故最平易. 又疑之諸詩皆淫聲, 小學之功未成, 而遽敎以淫聲, 恐未能使之知戒, 而適以蕩其心志否? 抑其聲哀思怨怒, 自能今人畏惡, 故雖小子門人亦知戒乎? 某欲今弟姪輩學, 尙疑此, 未敢曉以文義.

 

답변: 󰡔시전󰡕은 또한 각 편마다 두루 읽어야 비로소 훈고(訓詁)에 두루 통할 수 있으니, 어찌 읽지 않고 자연히 훈고에 다 통할 수 있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많이 읽고 오래도록 음미해야 비로소 점차 감응이 발산할 수 있으니, 어찌 한두 차례 읽고 곧장 감응이 발산하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옛날에 󰡔시경󰡕을 배운 사람들은 참으로 소리나 음의 도움을 기다려야 했으나, 지금은 이미 없어져 버렸으니 어찌할 수 없고 단지 익숙하게 읽어서 조용히 감상하여 맛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만일 정풍과 위풍을 본보기로 삼을 수 없다고 의심한다면, 또한 학자들에게 굳이 깊이 있게 탐구하지 말도록 하되, 도리를 정당하게 설명한 곳에 대하여 자세하게 상고하고 반복해서 음미하게 하면 분명 공부에 헛된 힘을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且逐篇旋讀, 方能旋通訓詁, 豈有不讀而自能盡通訓詁之理乎? 讀之多, 玩之久, 方能慚有感發, 豈有讀一二遍而便有感發之理乎? 古之學者固有待於聲音之助, 然今已亡之, 無可奈何, 只得熟讀而從容諷味之耳. 若疑不可爲法, 卽且今學者不必深究, 而於正當說道理處子細消詳, 反復玩味, 應不枉費工夫也.

 

질문: 사람은 항상 청명과 혼탁의 차이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본래 기품(氣稟)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기품에 따라 조금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은 모두 몸의 기관입니다. 하늘에서 부여받은 기질이 그 입눈을 어둡거나 밝게, 맑거나 흐리게 하지 않는데 유독 그 마음만 어둡거나 밝게, 맑거나 흐리게 하는 것은 왜입니까? 만일 마음과 이치는 본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면 오직 기질에 구속을 당해 스스로 밝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이유하혜이윤은 기질에 구속을 받지 않은 사람인데도 사물에 처하는 의리는 곧 공자의 시중(時中)만 같지 않았습니다. 맹자는 세 분을 논평하면서 대개 그 지혜가 공자와 같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 지()이니, 어찌 세 분은 측은수오사양하는 마음을 능히 확충했으면서도 유독 시비하는 마음만 확충할 수 없었을까요?

人常有淸明昏濁之殊, 此固是氣稟. 然心不能不隨氣稟而少異. 夫口, 皆官也. 不知天賦之氣質不昏明淸濁其口, 而獨昏明淸濁其心, 何也? 若曰心理本不異, 惟爲氣質所拘而不能自明, 伊尹非拘於氣質者, 處物之義乃不若夫子之時. 孟子論三子, 蓋謂其智不若夫子. 夫是非之心智也, 豈三子能充其惻隱羞惡辭遜之心, 而獨於其是非之心不能充之乎?

 

답변: 눈 따위에도 또한 어둡고 밝고 맑고 흐린 차이는 있습니다. 예컨대 역아(易牙)사광(師曠)이루(離婁)의 무리들은 그 중에서 가장 맑은 것입니다. 마음도 또한 이와 같은 뿐입니다. 백이와 유하혜의 무리들은 곧 기질의 구속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맹자는 도()가 동일하지 않으며 배우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目等亦有昏明淸濁之異, 易牙師曠離婁之徒, 是其最淸者也. 心亦猶是而已. 之徒便是末免於氣質之拘者, 所以孟子以爲不同道而不願學也.

 

질문: 맹자의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본성을 안다는 구절을 묻습니다.

孟子 盡其心者, 知其性也.’

 

답변: 마음을 다한다는 설을 당시에는 이와 같이 보았기 때문에 의성(意誠)’에 관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단지 지지(知至)’에 관한 일이어서 다시 구설(舊說)을 찾아 상고해야만 했습니다. 아래 문장도 평이하게 볼 뿐, 굳이 소이(所以)’ 두 글자를 관건으로 삼지 않아도 됩니다.

盡心之說, 當時見得如此, 故以爲意誠之事. 後來思之, 似只是知至之事, 當更尋奮說攷之. 下文且只平看, 不必以所以二字爲關鍵也.

 

질문: “형색을 실천한다[踐形]”는 구절을 개정하여 설명한 것에 대해 묻습니다.

改踐形說

 

답변: 사람들이 모두 이 형체를 지니면 곧 이 이치가 있습니다. 따라서 형색은 천성(天性)이다라고 말했으니 본성이 곧 이치[性卽理]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인(衆人)들은 이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그 형체의 이치를 온전히 할 수 없기 때문에 형체를 지닌 것은 사람이지만 마음은 실로 금수이니 그 형색을 실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인은 그 형체의 이치를 온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형색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천(伊川) 선생이 이른바 사람의 형체를 충만케 한다[充人之形]”()’자가 매우 분명합니다.

人皆有是形, 便有是理. 故日形色, 夫性也, 性卽理之謂也. 然衆人有是形而不能全其形之理, 故有形雖人而心實禽獸, 是不足以踐其形矣. 惟聖人能全其形之理, 故可以踐其形也. 伊川先生所謂充人之形, ‘字極分明矣.

 

질문: ‘성의(誠意)’장을 개정하여 설명한 것에 대해 묻습니다.

改誠意章說

 

답변: ‘성의한 장에 대해 그대는 󰡔장구󰡕 가운데의 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듯합니다. 사람의 뜻이 발동하여 마음에 드러난 것은 본래 모두 선에 합치된다고 분명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치를 보는 것이 밝지 않기 때문에 불선(不善)이 여기에 섞이게 되어 그 선을 행하려는 뜻이 실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지식이 이미 지극해지면 불선의 섞임이 없어 실제로 그 선을 행할 수 있다는 뜻이니, 또한 병폐가 없습니다. 또 선악이 가운데에 채워져 있는 것은 모두 밖으로 드러납니다. 다만 악을 행하려는 내용이 들어있다면 선을 행하려는 것은 성실하지 않게 됩니다. 선을 행하려는 내용이 들어있다면 악을 행하는 잡념이 없어 뜻이 반드시 성실해집니다. 선에 순일(純一)하여 실제 아님이 없는 것은 곧 이 뜻이니 일찍이 차이가 난 적이 없습니다.

誠意一章, 來喩似未曉章句中意. 當云人意之發形於心者, 本合皆善, 惟見理不明, 故有不善離之, 而不能實其爲善之意. 今知已至, 則無不善之雜, 而能實其爲善之意, 則又無病矣. 又善惡之實於中者皆形於外, 但有爲惡之實, 則其爲善也不誠矣. 有爲善之實, 則無爲惡之雜而意必誠矣. 純一於善而無不實者, 卽是此

, 未嘗異也.

 

 

정자상에게 답함 1 答鄭子上(可學)

 

해제이 글은 1186(순희 13, 병오, 57)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정이(程頤)󰡔역전(易傳)󰡕에서 󰡔주역󰡕을 이해하는 핵심방법을 설명했는데, 주자는 이를 상수(象數)와 의리(義理)의 관계로 다시 해석하고 있다.

 

이전에 보내주신 편지는 돌아와서 받아보았습니다. 논의한 내용이 매우 상세하더군요. 여기에 있는 친구 중에서 이처럼 사색할 수 있는 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번 편지 속에서 설명한 󰡔주역󰡕󰡔중용󰡕에 대한 것도 또한 매우 자세하더군요. 지금 한꺼번에 답장을 보내고, 별지(別紙)를 갖춰놓았습니다. 재차 숙고하고 음미해보면, 저절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씨(程氏: 정이)󰡔역전(易傳)󰡕은 이미 매우 상세합니다. 지금 󰡔역학계몽󰡕에서 덧붙인 것은 단지 지난번 복서(卜筮)에 대한 한 구절뿐입니다. 널리 추론하여 곡진하게 따져보는 태도와 같은 것이라면, 저 책(󰡔역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선생이 󰡔주역󰡕을 설명하면서 그 이치를 얻으면 곧 상수(象數)가 그 가운데 있다라고 말한 것이 진실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리어 반드시 먼저 상수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비로소 이치에 대한 설명이 크게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사실에 실증(實證: 상수)이 없다면 허리(虛理: 의리)는 쉽게 어긋날 것입니다. 세모나 혹은 따뜻한 봄날에 한 번 찾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이곳에서는 강론할 사람조차 얻기 힘드니, 늘 그대를 그리는 마음이 간절할 뿐입니다.

前此所惠書, 歸來乃得之. 所論詳悉, 此間朋友難得如此會思索者. 今書所說中庸亦甚子細, 今幷答去, 具在別紙. 更熟玩之, 自見曲折也. 程氏易傳已甚詳細, 啓蒙所附益者, 只是向來筮一節耳. 若推廣旁通, 則離不得彼書也. 程先生得其理, 則象數在其中, 固是如此. 然泝流以觀, 却須先見象數的當下落, 方說得理不走作, 不然事無實證, 則虛理易差也. 不知歲暮或春暖能一來否? 此間難得人講論, 每深懷想耳.

 

 

정자상에게 답함 2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맹자󰡕에 나오는 구방심(求放心) 한 구절이 학문하는 요체임을 언급하고 있다.

 

편지로 논의한 내용은 대체로 좋았습니다. 우연히 일 때문에 인근 마을에 가느라 그대의 편지를 가지고 오지 않아 하나하나 답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또한 한두 가지 마땅히 헤아려 봐야할 곳이 있었는데, 조석간에 별도의 인편이 준비되어 바로 편지를 부쳐 보냅니다. 󰡔맹자󰡕구방심(求放心)’ 한 조목을 늘 허둥지둥 보아 넘겼는데, 지금 살펴보니 참으로 학문하는 요체가 갖추어져 있으니, 유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所諭大槪多得之. 偶以事出近村, 不曾帶得書來, 不及一 一奉報. 其間亦有一. 二合商量處, 旦夕當別有便, 却附書也. 孟子求放心一條, 尋常亦草草看了. 以今觀之, 眞是學問之要, 不可不留意也.

 

 

정자상에게 답함 3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근본 마음이 올바로 정립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편지 내용 중에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에 대한 설명은 예전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정밀해졌습니다. 다만 항상 이와 같이 마음을 비우고 정밀히 살펴본다면 자연스럽게 예전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 점차 장족의 진보가 있을 것입니다. 매우 좋은 일입니다!

지금 설명한 것 중에서 예컨대 반드시 도심이 갖춰진 이후에 인심에 쓸 수 있다고 말한 이하의 몇 가지의 말은 또한 명확하지 않습니다. “지키는 것이 안정되어야 비로소 치지(致知)하고 궁리할 수 있다고 한 말은 매우 타당합니다. 맹자가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고, 흩어져 달아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고 말했으니, 어찌 이 일 밖에 다시 다른 일이 없다는 것이겠습니까? 단지 이 근본(마음)이 서지 않으면 곧 공부에 착수할 곳이 없으며, 이 근본이 서면 곧 자연히 길을 찾아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될 뿐입니다. 󰡔주역󰡕 가운데 점사(占辭)에서 형상을 취하는 것은 또한 유래가 있으니, 가설로 비유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설괘전으로 구해보면, 통하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빼버린 것이니, 대개 선유(先儒)의 이론을 따랐을 뿐입니다.

󰡔논어󰡕에 대한 설명은 이미 주()가 질문 조목 속에 있으니, 좀더 생각해보고 인편이 있으면 다시 의견을 보내주기 바랍니다. 두 아들이 함께 금화(金華)로 갔으니, 혹 서로 만나면 간절히 타일러주기 바랍니다.

所喩人心道心之說, 比舊益精密矣. 但常如此虛心精察, 自然見得奮說是非, 漸次長進矣. 甚善甚善今說如云 必有道心然後可以用於人心以下數語, 亦未瑩也. 所謂守得定方可以致知窮理, 此說甚當. 孟子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 豈是此事之外更無他事? 只是此本不立, 卽無可下手處; 此本旣立, 卽自然尋得路逕, 進進不已耳. 中占辭其取象亦有來歷, 不是假說譬喩. 但今以說卦求之, 多所不通, 故不得已而闕之, 或且從先儒之說耳. 論語說已注在卷中, 幸更詳之, 有便復以見喩也. 二子同往金華, 或相見, 幸有以規切之.

 

 

정자상에게 답함 4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의 문제를 설명하고 󰡔통서(通書)󰡕󰡔서명(西銘)󰡕에 대한 입장을 언급하고 있다.

 

도심(道心)에 관한 이론은 매우 좋습니다. 인심(人心)은 본래 제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도심이 주재하기만 하면, 곧 인심이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없어 역시 모든 것이 도심이 하는 바가 아님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는 굳건히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잠깐이라도 틈새가 있으면 곧 인욕(人欲)이 날뛰게 됩니다. 󰡔통서(通書)󰡕 따위를 왜 일찍 부쳐주지 않았을까요? 이제야 한 권을 보냅니다. 의심한 바 부록(附錄)에 여러 조목에서도 또한 대략 맥락이 서로 연결되는 곳만 볼 수 있을 뿐이니, 그 사이에서 깊이 의문점을 논의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다만 제36장 주()중에 ()’자는 마땅히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명(西銘)󰡕 끝장의 두 구절은 해석이 자못 온당치 못하니, 시험삼아 다시 생각해봄이 어떻겠습니까? 이전의 여러 글들은 근래에 정돈하여 더욱 정밀해졌건만, 근처에서는 기꺼이 학문에 마음을 쓰는 학자들을 얻기 어려울 뿐입니다. 이 도()의 전수가 실낱처럼 끊어지지 않고 있으니, 매우 근심스럽고 한탄할 만합니다. 오직 바라건대, 더욱 학문에 힘써 저의 소망에 부응해주십시오.

道心之說甚善. 人心自是不容去除, 但要道心爲主, 卽人心自不能奪而亦莫非道心之所爲矣. 然此處極難照管, 須臾間斷, 卽人欲便行矣. 通書等何故不曾寄去? 今往一本. 所疑附錄數條, 亦略要見脈絡相連處耳, 不足深致疑於其間也. 但第三十六章注中 字當作 . 西銘卒章兩句所釋頗未安, 試更思之, 如何? 向來諸書近來整頓愈精密矣, 只是近處難得學者肯用心耳. 此道之傳不絶如賤線, 甚可憂歎. 唯糞益加勉屬, 以副所望.

 

 

정자상에게 답함 5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0(소희 원년, 경술, 61)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공리(功利)에 빠져 진심을 잃어 가는 절강(浙江)학파를 개탄하고 있다.

 

이곳에 도리어 몇 명의 사우(士友)들이 모였으나, 함께 학문할 만한 사람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절강(浙江)에 속한 학자들은 공리(功利)에 젖어들어 참된 마음을 못쓰게 만들고 있으니, 더욱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매우 개탄스럽고 또 두렵습니다.

此却有數士友相聚, 然極難得可共學者. 人爲功利浸漬壞了腹心, 尤難說話. 甚可歎, 又可懼也.

 

 

정자상에게 답함 6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6, 기유, 60)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대학󰡕의 독법(讀法)과 접근방식, 당시 문제가 되었던 부제(賦題), 황로(黃老)의 정치를 답습하는 폐단 등을 지적하고 있다.

 

편지 내용에서 󰡔대학(大學)󰡕에 관한 의문점들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전날의 이론에는 자못 순서가 뒤바뀐 것이 있음을 느낍니다. 때문에 독자들이 거기에 골몰하느라 긴요하고 절실하게 공부에 힘써야 함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경전 문구는 단지 큰 틀 속에서 추론해낼 뿐이요, 실제로 이러한 점차적인 단계를 거친 이후에 격물(格物)에 이르게 됨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후학들이 옛 말을 조금 삭제하는 것은 뜻이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보망장(補亡章)에서는 정자의 말을 다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간략하게 설파한 것이지, 또한 심각한 의도는 없었습니다. 대저 󰡔대학󰡕을 볼 때는 반드시 먼저 정신을 바짝 차려서 큰 틀을 깨달아 취한 다음, 다시 돌아와 실제로 공부에 착수할 곳을 찾아서 긴절하게 공부해야 할 것이요, 그저 이 노정(路程)의 절차만을 지키면서 곧 그것을 공부의 정점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所諭大學之疑甚善, 但覺前日之論頗涉倒置, 故讀者汨沒, 不知緊切用功. 子細看來, 經文只是就大體規模上推說將來耳, 非謂實經此漸次等級, 然後及於格物也. 故後來頗削舊語, 意以此耳. 補亡不能盡用程子之言, 略說破, 亦無深意也. 大扺看大學須先緊著精神領略取大體規模, 却便回來尋箇實下手處, 著緊用功, 不可只守著此箇行程節次, 便認作到頭處.

 

시제(詩題)를 내는 설에 대해, 만약 시인의 본래 의도를 논한다면 담로(湛露)’라 운운한 것은 단지 하구(下句)를 흥발(興發)시키는 말일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해설하는 사람이 이것을 미루어 뜻을 취한다면, 오늘의 논의가 생길 법하나 또한 의리(義理)에는 해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슬이 햇볕 때문에 사라진다[露以陽晞]’는 말은 제후가 왕명을 받아서 일에 착수한다는 것과 같지, ‘햇볕이 따가워지면 이슬이 마른다말이 왕도가 흥성하면 제후가 쇠퇴한다는 것과 같음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賦題之說, 若論詩人本意, 湛露云云, 只是興發下句之詞, 未有他意. 而說者推以取義, 則似有今日之論, 亦不害於義理. 露以陽晞’, 猶諸侯禀王命以從事, 非謂陽盛而露晞, 如王道盛而諸侯衰滅也.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태()와 심()을 없애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황제노자의 뜻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가의 말에도 또한 자못 이와 흡사한 것이 있으니, 단지 이러한 말을 쓰는 이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만일 준칙이 정당하여 바꿀 수 없는 곳을 본 뒤에 그 깊고 옅음을 따를 뿐 모든 것이 갖춰지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유자가 ()’()’을 없앤 것입니다. 만일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몹시 전도되어 있는데도 나는 우선 ()’()’을 없앴다고 한다면, 이는 편벽음란사악회피하는 말이요, 모범으로 삼을만한 말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성현이 비슷하면서도 실상이 아닌 것을 미워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나의 바꿀 수 없는 권도(權度: 저울과 자, 곧 변치 않는 법도)를 내버려두고, 저 한유(漢儒)와 황로(黃老)의 여파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治道去泰甚, 誠出於之意, 吾言亦頗有近似者, 但在用者如何. 若看得凖則定當不可易處, 然後隨其深淺而不求備焉, 此則儒者之去泰甚也. 若一切漫漶, 十分放倒, 而曰吾姑去泰甚焉, 則是詖淫邪遁之訶, 而非所以爲訓矣. 聖賢惡似而非, 正爲此也. 尙安得捨吾不可易之權度, 而徇彼之餘哉? 不知子上以爲如何?

 

조추(趙推)의 편지에서 의리(義理)를 담론했던 자들이 대부분 낙방했다고 말했는데, 그 사이에 이러한 뜻을 능히 언급했던 자가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것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다투어 논변하다 소리 높여 미워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별지를 통해 이미 그 아래쪽에 주석해 놓았으니, 마지막 장을 깊이 유념해준다면 다행이겠습니다.

趙推書云談義理者多被擯黜, 不知其間有能及此意者否. 然此勿以示人, 恐又生競辨, 譊譊可憎也. 別紙已注其下, 卒章幸深留意也.

 

 

정자상에게 답함 7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6(경원 2, 병진, 67)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회(子晦)에게 보낼 편지를 번거롭더라도 전해주십시오. 혹시 서로 볼일이 있을 때, 향리의 공적인 이해(利害)를 알려준다 해도 혐의는 없을 것입니다. 군평(君平)과 관련된 설은 저의 의견 또한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남괴(南蒯)의 일은 󰡔국어(國語)󰡕 가운데 기록이 더욱 상세하니, 검토하여 볼만합니다.

子晦書煩致之. 或相見間, 鄕里公共利害告之無嫌也. 君平之說, 鄙見正如此. 南蒯國語中所記尤詳, 可檢看也.

 

 

정자상에게 답함 8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2(소희 3, 임자, 63)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유가에서 귀()와 신()은 유명(幽明)이 일치한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 아울러 홍범(洪範)편의 내용을 묻고 있다.

 

편지로 질문한 ()’()’ 두 가지 일에 대해서 옛사람은 진실한 마음으로 이곳에서 곧바로 유명(幽明)이 일치함을 보고서, “마치 (귀신이) 상하와 좌우에 있는 것 같다라 하니,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짐짓 이러한 말을 만들어 가르침을 베풀었던 것은 아닙니다. 후세에 설교(設敎)’ 두 글자에 대한 설명은 크게 사실을 해친 것입니다. 예컨대 온공(溫公: 사마광)의 학문은 비록 한결같이 ()’에 근본 하였으나, 그가 석씨(釋氏: 불교)를 배격할 때에는 또한 나는 명교(名敎)를 부지하고자 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단지 도리에 대한 이해가 투철하지 못한 것이니, 남을 속일뿐만 아니라 아울러 자신까지 속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학󰡕의 차례가 반드시 격물(格物)’에서 비롯하여 치지(致知)’에 이르는 까닭이 됩니다.

평강은 정직이다[平康正直]”에 대한 그대의 설명은 좋습니다. 다만 강으로 다스리는 것[剛克]과 유로 다스리는 것[柔克]을 스스로 다스린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저들을 이겨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지요? 이 위의 네 구절은 반드시 귀착점이 있음을 알아야 이내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來書所問鬼神二事, 古人誠實, 於此處直是見得幽明一致, 如在其上下左右, 非心知其不然而姑爲是言以設敎也. 後世說 設敎二字甚害事, 溫公之學問雖一本於誠, 而其排釋氏亦曰 吾欲扶敎. 此只是看道理不透, 非獨欺人, 而幷以自欺. 大學之序所以必始於格物以致其知也. 平康正直, 則來喩得之矣. 但不知剛克柔克, 謂自克耶? 抑謂勝彼耶? 此上四句須看得有歸著, 乃無窒礙耳.

 

 

정자상에게 답함 9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2(소희 3, 임자, 63)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주자는 자신이 주석한 저술에 오류가 있어 정리해야 하지만 지병으로 피곤해서 서두르지 못하고 있는 서글픈 상황을 전하고 있다.

 

편지 내용 중 󰡔논어󰡕에 대한 몇 조목에 별도로 탐구하고 사색한 공부의 흔적이 충분히 보입니다. 뜻하지 않게 투병 중이어서 생각이 혼란한 까닭에 자세히 살펴볼 겨를은 없으나, 감히 허둥지둥 답장을 보낼 순 없었습니다. 이곳에 또한 붕우 몇 명이 왕래하면서 강학을 하고 있지만, 지병으로 피곤함이 심하여 무기력하게 응수하고 있으니, 멀리서 배우러온 뜻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저서나 옛 저서에 아직도 마땅히 정리해야할 곳이 있지만 두서가 일치하지 않고, 또한 지병 으로 피곤하기 때문에 다시 예전과 같이 서둘러 과정을 진행시킬 수 없습니다. 언제 다시 만나 뵐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하고 싶은 말은 끝이 없건만 편지를 쓰자니 서글픈 마음만 들뿐입니다.

所示論語數條, 備見別來玩索功夫. 偶以病中意思昏憒, 未暇細觀, 不敢草草奉報. 此間亦有朋友數人往來講學, 但久病倦甚, 無力應酣, 無以副其遠來之意. 新舊諸書尙有合整頓處, 頭緖不一, 亦以病倦, 不復能如舊日趲得課程. 未知何時復得會面? 所欲言者無窮, 臨書徒悵然也.

 

 

정자상에게 답함 10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정자상이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면서 갖은 의문점을 조목조목 질문한 데 대하여 주자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논평을 덧붙인 것이다.

 

질문: 이 마음의 영명(靈明)함이 곧 도심(道心)입니다. 도심이 보존되어 이 마음이 허령(虛靈)하다면, 알지 못하는 바가 없을 것이니, 어찌 다만 이 몇 가지 것을 아는 데에 그치겠습니까?

此心之靈卽道心也. 道心苟存而此心虛, 則無所不知, 而豈特知此數者而止耶?

 

답변: 이 마음의 영명함이 이치에서 지각되는 것이 도심(道心)이요, 욕심에서 지각되는 것은 인심(人心)입니다. 지난번 채계통(蔡季通)에게 보낸 답장 가운데 말들이 도리어 명확하지 못한 곳이 있으니, 근거하여 하나의 이론으로 삼기에는 부족합니다.

此心之靈, 其覺於理者, 道心也; 其覺於欲者, 人心也. 昨答季通書語却未瑩, 不足據以爲說.

 

질문: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치지(致知)’에서 순차적으로 나아가게 한다면, 이른바 도덕과 제례(齊禮) 따위도 모두 거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使學者於致知上循序而進, 則凡所謂道德齊禮之類皆擧之矣.

 

답변: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는 곧 이러한 실사(實事) 공부의 측면에서 궁구하는 것이니, 곧 현재 직분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내버려두고서 범연히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그 모조리 궁구하기를 기다린 뒤에 뜻이 저절로 성실해지고, 마음이 절로 바르게 되고, 몸이 절로 닦여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格物致知乃是就此等實事功夫上窮究, 非謂舍置卽今職分之所當爲而泛然以窮事物之理, 待其窮盡, 而後意自誠心自正身自修也.

 

질문: 뜻이 성실하지 못하면 그 마음을 어지럽히고, 외물에 이끌려 다니다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됩니다. 뜻을 성실히 할 수 있다면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요, 뜻은 비록 성실하지 못할 수 있으나, 마음은 진실로 기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意不誠則撓亂其心, 牽連引動, 無所不至. 能誠意則心自正, 意雖不誠, 心固不可欺.

 

답변: 이러한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다만 이미 마음을 속일 수 없다고 말했다면, 무슨 연유로 도리어 어지러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청컨대 다시 상세히 살펴보십시오.

此說甚善. 但不知旣謂心不可欺, 何故却可撓動? 請更詳之.

 

질문: ()의 단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없는데, 또 말하기를 오히려 언제 드러나기를 기다리는가?”라 하고, 단지 거하는 처소에서 공손히 하는 것과 일을 맡았을 때 지경(持敬)하는 것에 힘을 쏟는다면, 곧 천리(天理)가 항상 보존되는 것이니, 어느 때라고 드러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善端無時而不呈露於外, 又云尙何待於發見哉?’ 又云只於居處恭執事敬上用力, 卽天理常存, 何時而不發見?’

 

답변: 이미 선()의 단서가 드러나지 않을 때가 없음을 알고 있다면, 마땅히 공부에 착수할 곳이 있지 않을 때가 없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평상시에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기에, 반드시 그 드러나는 때를 기다린 뒤에 공부를 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대의 논의처럼 단지 공경(恭敬)의 측면에서만 공부에 힘쓴다면, 또한 존양(存養)하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이것으로 격물(格物)하는 공부를 삼는다면, 이는 바로 정()선생이 말한 바 만일 경()공부만 하고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를 알지 못하면 도리어 도무지 일삼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일을 만났을 때 그 당연한 이치를 아는 것이 곧 발현(發見)이요, 이것에 나아가 미루어 궁구하여 그 극치에 도달하는 것이 곧 격물(格物)인 것입니다. 다만 이처럼 공부에 힘쓰면, 이른바 망령되이 지칭하여 공허함으로 흐르는 것소견이 없어 구차히 스스로 그쳐버리는 병폐는 또한 우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旣知善端無時而不呈露, 則當知無時不有下功夫處. 不可謂常時都不發見, 必待其有時發見而後可加功也. 若如所論, 只於恭敬上用功夫, 則又只是存養之事. 若便以此爲格物功夫, 則是程先生所謂若但敬而不知窮理, 却是都無事者矣. 須知遇事而知其當然, 卽是發見. 就此推究以造其極, 卽是格物. 但且如此用功, 則所謂妄有所指而流於空虛, 未有所見而苟且自止之病亦不必慮矣.

 

질문: “지식이 지극해진 뒤에 뜻이 성실해진다는 한 단락을 묻습니다.

知至意誠一段

 

답변: 논의한 내용이 좋습니다. 이전 이론에 병폐가 있었는데, 근래에 이미 상당부분 개정을 했습니다. 그 나머지 개정할 곳도 많은데, 다 기록하여 부쳐드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來喩得之. 舊說有病, 近已頗改定矣. 其他改處亦多, 恨未能錄寄也.

 

질문: 󰡔역전(易傳)󰡕을 논합니다.

易傳

 

답변: 󰡔주역󰡕이라는 책은 본래 복서(卜筮)를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의리(義理)가 정밀하고, 광대히 다 갖추어져 있어서 하나의 방식으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대개 이러한 이치가 있으면 곧 이러한 형상이 있고, 이러한 형상이 있으면 곧 이러한 숫자가 있으니, 각각 묻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감응, 소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큰 강을 건넘이 이롭다[利涉大川]”는 말은 강을 건넌다는 의미도 있고 험난한 곳을 건넌다는 의미가 있으니, 미리 정하여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본래 가리키는 것은 단지 강을 건넌다는 것이니, 이러한 예들을 미루어 널리 구해본다면 각각 그 일에 순응할 것입니다.

之爲書, 本爲筮而作, 然其義理精微, 廣大悉備, 不可以一法論. 蓋有此理卽有此象, 有此象卽有此數, 各隨問者意所感通. 利涉大川’, 或是渡江, 或是涉險, 不可預爲定說. 但其本指只是渡江, 而推類旁通, 則各隨其事.

 

질문: 󰡔중용󰡕을 논합니다.

中庸

 

답변: 이 책은 종전에 어떤 사람에 의해 수준 높은 글로 설명되었으나, 좀더 자세하게 글 뜻을 추론하여 상고해본 적은 없습니다. 만일 자세하게 읽고 깊이 음미한다면, 그 조리와 맥락을 환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 이처럼 나누려고 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후에 하나로 합하고자 했으나 끝내 통합하지는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란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에서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 삼가는 것이다에 이르기까지를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없다면, 어째서 시고군자(是故君子)’고군자(故君子)’ 두 곳이 중복해서 쓰였겠습니까? 하물며 불가수유리(不可須臾離)’막현호은(莫見乎隱) 막현호미(莫顯乎微)’ 그리고 계근공구어부도불문(戒謹恐懼於不睹不聞)’근기독(謹其獨)’은 분명히 두 가지 일이니, 일상생활에서 징험해보면, 이치가 또한 매우 분명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 사람들은 마음을 쓰는데 조잡천박하고 공부를 착수하는데 친근절실하지 못한 까닭에 그것이 같지 않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군자의 도가 네 가지인데, 나는 그 중에 한 가지도 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비록 성인의 자책하는 말이지만, 반드시 남을 책망할 즈음에 자기의 몸에서 돌이켜 구하고, 도의 전체에서 드러내어 자세하고 정미한 내용에 능히 다하지 못하는 곳이 없지 않으니, 마치 순임금이 하늘을 향해 우신 것과 같은 부류입니다. 다만 그렇게 죄를 짊어지고 사특함에 유인을 당해서도, 더욱 학문에 힘써 감히 스스로 용서하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이로써 옛사람의 문자를 보면 관건(關鍵)이 매우 긴밀하니, 단지 대충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의호중용(依乎中庸)’박학심문(博學審問)’ 두 단락은 또한 억지로 나누어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포정(庖丁)의 눈 속에는 본래 (해부되지 않은) 온전한 소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다시 상세히 살펴보십시오.

此書從前被人說得高了, 更不曾子細推考文意. 若細讀而深味之, 其條理脈絡曉然可見. 非是固欲如此剖析, 自是幷合不聚. 道也者不可須臾離也故君子愼其獨也’, 若不分作兩段, 是故君子云云故君子云云此兩處豈不重複? 况不可須臾離與莫見乎隱莫顯乎微, 戒謹恐懼於不睹不聞與謹其獨分明是兩事, 驗之日用之間, 理亦甚明. 只是今人用心粗淺, 下工不親切, 故不見其不同耳. ‘君子之道四, 未能一焉’, 雖是聖人自責之詞, 然必其於責人之際反求諸己, 而見其於道之全體, 曲折細微容有不能無不盡處, 之號泣于旻天之類, 但當於此負罪引慝, 益加勉勵而不敢自恕焉耳. 以此見得古人文字關鍵深密, 直是不草草. 依乎中庸博學審問兩段, 亦非强爲分別. 庖丁眼中, 自是不容有全牛. 請更詳之.

 

 

정자상에게 답함 11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전 편지에서 주자가 인심과 도심에 대해 설명해준 데 대하여 정자상이 다시 문제를 제기한 내용이 들어있고, 새롭게 정자상이 󰡔맹자󰡕에 대해 질문한 내용을 주자가 검토하여 답변한 것이다.

 

질문: “이 마음의 영명함이 이치에서 지각되는 것이 도심(道心)이요, 욕심에서 지각되는 것은 인심(人心)이다라고 답해주었는데, 저는 이 말을 듣고 깨우침이 매우 많습니다. 다만 선생께서는 또 지난번 채계통(蔡季通)에게 보낸 답장에서 말이 명확하지 못해 근거하여 하나의 이론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중용󰡕 서문의 인심(人心)은 형기(形氣)에서 나오고, 도심(道心)은 성명(性命)에 근본 한다는 말을 찾아보았는데, 채계통에게 보낸 답장이 이내 이러한 뜻을 發明했던 것입니다. 지금 그와 같이 말한다면, 도리어 오로지 성명(性命)에만 근본 하여 설명하고 형기(形氣)에 대한 언급은 없게 됩니다. 제가 가만히 의심해보니, 지난번에 들은 바 이 마음의 영명함한 단락에 대해 제 소견에 오류가 있어 선생께서 그 우매함을 깨우쳐 주려고 했기 때문에 곧장 본원이 되는 곳을 지시하여 마음이 멋대로 달리지 않게 한 것이지, 형기에 관계없이 모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리석은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치에서 지각되면 오로지 성명(性命)에 근본 하여 도심(道心)이 되고, 욕심에서 지각되면 형기(形氣)에 관련되어 인심(人心)이 됩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어떠합니까?

此心之靈, 其覺於理者, 道心也; 其覺於欲者, 人心也’. 可學蒙喩此語, 極有開發. 但先生又云:‘向答季通書語未瑩, 不足據以爲說.’ 可學竊尋中庸序:‘人心出於形氣, 道心本於性命’, 而答季通書乃所以發明此意. 今如所說, 却是一本性命說而不及形氣. 可學竊疑向所聞此心之靈一段所見差謬, 先生欲覺其愚迷, 故直於本原處指示, 使不走作, 非謂形氣無預而皆出於心. 愚意以爲覺於理則一本於性命而爲道心, 覺於欲則涉於形氣而爲人心. 如此所見如何?

 

답변: 󰡔중용󰡕 서문은 후에 또한 개정하였는데 별지에 기록하여 보내겠습니다. 편지 내용은 또한 대체로 좋습니다.

中庸序後亦改定, 別紙錄去. 來喩大槪亦已得之矣.

 

질문: “고자(告子)가 성()을 물은 곳에 대해 질문합니다. 주해에서 말하기를 대개 혈기(血氣), 지식(知識)을 가리켜 성()이라 여긴 것이다라 하고, 아래에서 또 후세에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작용(作用)이 곧 성()’이라는 설에 가깝다라 하고, 고자는 사람이 먹을 것을 달게 여기고 여색을 기꺼워하는 것은 성()의 자연스러움이다라고 했으니, 대개 윗 장의 지각운동(知覺運動)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라 했습니다. 저는 식색(食色)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본래 성()이 아니지만 천칙(天則)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라면, 식색(食色)은 본래 천리(天理)의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告子問性云云, 解云:‘蓋指血氣知識爲性.’ 下又云:‘近於後世佛家所謂作用是性之說’, 又云:‘告子謂人之甘食悅色, 性之自然, 蓋猶上章知覺運動之意也.’ 可學謂甘食悅色固非性, 而全其天則, 則食色固天理之自然.

 

답변: 이 설명도 옳습니다. 다만 고자는 도리어 이른바 천칙(天則)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단지 그 식색(食色)좋아하고 즐기는 능력을 보고서 곧 성()이라 일렀을 뿐입니다.

此說亦是. 告子却不知有所謂天則, 但見其能甘食悅色卽謂之性耳.

 

질문: 고자가 먼저 말하기를 ()란 나무로 만든 그릇[桮棬]과 같다하고, 아래에서 사람의 본성으로 인의(仁義)를 행한다라고 했는데, 그 의도는 대개 인의가 본성에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아래 문장에서 또 인()을 가리켜 내면에 있다고 합니다. 고자는 본래 인의가 모두 외면에 있다고 여겼는데, 맹자의 설명을 듣고서 약간 과오를 인정하여 내면에 있다고 했으나, 아직도 그 사랑[]의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한 듯합니다. 때문에 오히려 의()가 외면에 있다고 고집한 것입니다. 고자가 사랑의 소이연이 인()에서 말미암는 것을 알았다면, 또한 의()가 인()에서 떨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은 내면에 있고 의()는 외면에 있다는 설을 고자는 어째서 식색이 성이다[食色性也]”의 아래에다 붙여놓았을까요?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고자는 식색(食色)을 가리켜 성()이라 했으니, 마음으로부터 말미암아 나온 것이라 여겼고, 때문에 또한 대략 사랑[]을 가리켜 마음에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告子先云義猶杯棬, 而下云以人性爲仁義, 其意蓋謂仁義出於本性. 但下文又指仁爲在內. 告子本皆以仁義爲外, 旣得孟子, 略認責以爲內, 而尙未知其所以愛, 故猶執義爲外. 告子知所以愛之由乎仁, 則亦知義之不離乎仁矣. 仁內義外之說, 不知告子何以附於食色性也之下. 可學竊疑告子指食色爲性, 以爲由心出, 故亦略指愛以爲在心.

 

답변: 저도 처음에는 또한 이처럼 보았으나, 마침 세밀하게 미루어보니 또한 인()을 본성의 소유로 여기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다만 의()와 비교해서 다소 내면에 있을 뿐입니다.

初意亦只如此看, 適細推之, 似亦不以仁爲性之所有, 但比義差在內耳.

 

질문: 진심(盡心)과 지성(知性)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저는 선생의 답장 설명을 읽을 때마다 글과 뜻 사이를 결코 대충 보아 넘기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 방법)로써 할, 야기(夜氣)를 족히 보존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곧 인정하지 않는다에서 족이(足以)’ 두 글자를 선생이 끄집어내어 한 단락의 의미를 모두 온전하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를 통해 책을 볼 때마다 글과 뜻 사이에서 한 글자라도 감히 쉽게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대개 옛사람의 문장형식과 내용 사이에는 모두 그 뜻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한 단락에 대해 비록 선생의 말이 가리키는 의미가 명백할지라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가르침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盡心知性云云, 可學每讀先生書解, 於文義之間最不草草. 君子深造之以道, 夜氣不足以存, 他人便不認之.’ 足以兩字先生拈出, 而一段之意皆全. 可學因此每觀書, 於文義之間一字不敢放過. 蓋古人文字高下曲折之間, 皆其意所寓. 於此一段, 雖先生之說指意明白, 而竊有疑焉. 伏乞批示.

 

답변: 이치를 논한다면 마음은 거칠고 본성과 하늘은 오묘하며, 공부를 논한다면 극진히 하는 것이 중요하고 아는 것은 가벼운 것입니다. 때문에 이른바 그 마음을 극진히 한다는 것은, 곧 본성을 알고 하늘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단지 한 때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다만 표리(表裏)와 허실(虛實)의 관계를 가지고 반복해서 상호 밝힌 것이니, 공부에 점진적인 차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 가지는 애초에 분별이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을 보존하고, 그 본성을 기르는 것은 곧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이 역시 본래 하나의 사물임을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군자가 깊이 나아갈 때에 청명한 야기를 보존해야한다[深造夜氣]”는 말은 살펴보면 매우 자세합니다. 이 책은 근래에 건양(建陽) 사람들이 매우 널리 판매하였다는데, 이러한 의미를 살펴본 사람들이 몇 사람이나 될지 모르겠으나 또한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論其理, 心爲粗而性天爲妙. 論其功夫, 盡爲重而知爲輕. 故云所謂盡其心者, 卽是知性而知天者也. 三者只是一時事, 但以表裏虛實反復相明, 非有功夫漸次也. 三者初無分別, 故又曰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 亦言其本一物. 所謂深造夜氣看得甚子細, 此書近爲建陽人販賣甚廣, 不知有幾人看得此意出來, 亦可歎耳.

 

 

정자상에게 답함 12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2(소희 3, 임자, 63)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정자상이 󰡔논어󰡕에서 의심나는 몇 조목을 뽑아 질문한 데 대해 주자가 답변한 것이다.

 

질문: 유자(有子)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경스럽고도라고 말했는데, 단지 보통사람이 그와 같다면 즉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다는 것을 말한 것이나, 그 말이 매우 경솔합니다. 아래 문장에 효제(孝悌)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라는 말은 곧 신중합니다. 대개 세간에 자칭 최고로 효제(孝悌)를 잘 행하는 사람이 있는데 인()을 알지 못한다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한 단락은 마땅히 ()’자나 ()’자 위에서 공부를 착수해야 합니다.

有子其爲人也孝悌’, 只是言尋常人如此, 則好犯上者鮮矣, 其言頗輕. 下文孝悌其爲仁之本’, 言卽重. 蓋世間自有一等孝悌人而不知仁, 正是由而不知耳. 然則此一段當於字上著工夫.

 

답변: 위 두 구절은 도()에 근본과 말단이 있고 근본에 힘쓰는 것이 공부임을 설명한 것이니, 마땅히 ()’자나 ()’자 위에서 공부를 착수해야 합니다.

上兩句是說道有本末, 務本是工夫, 當於字上著工夫.

 

질문: “학문에 뜻을 둔다는 한 단락에 대해, 이천(伊川) 선생은 성인이 반드시 그러한 것이 아니요, 또 다만 배우는 자를 위해서 본보기를 세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의 주석 가운데서도 이 설명을 취하였고, 성인은 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하여 점진적으로 쌓아나가는 것은 없다. 그러나 굳건하여 그만두지 않는 마음은 일찍이 자족한 적이 없으니, 그렇다면 그 궁극에 도달하는 오묘함은 반드시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는 것이 있으므로 그 말이 이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확연히 알지는 못하지만 장차 이천선생의 말을 따르고 싶은데, 어떠합니까? 앎이 지극하지 못하면서 억지로 구하다가 한갓 남의 마음을 헤아려 상상하는 병폐가 생겨 확실하게 자득하는 성과가 없을까 두렵습니다.

志學一段, 伊川先生謂聖人未必然, 亦只是爲學者立法. 先生注中亦取此說, 又云:‘聖人生知安行, 非有進爲之漸. 然其乾乾不已之心未嘗自足, 則其極至之妙必有日新而又新者. 故其言如此.’ 愚鄙未曉, 且欲從伊川, 如何? 恐識未至而彊求之, 徒有揣摩料想之病, 而無確實自得之功.

 

답변: 성현의 학문은 일반인의 마음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는 모양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같지 않은 경지가 있을 뿐입니다.

聖賢之學非常情所能測, 依約如此, 須有與他人不同處耳.

 

질문: “공자가 순임금의 음악을 평하여 지극히 아름답다고 했다는 한 단락에 대해, 선유(先儒)가 모두 정벌하는 일을 끌어들여 무왕의 음악을 설명하고, “그 음악 소리는 절로 가리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주석에서 그 실제에 같지 않음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 또한 그 음악소리를 가리킨 것입니까? 아니면 그 음악소리가 비록 모두 아름답긴 하지만 그 뜻의 근원을 미루어보면 절로 같지 않음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까?

子謂盡美一段, 先儒皆引征伐以說武王, 謂其樂聲自不能掩. 今注云其實有不同’, 亦是指其聲耶? 或謂其聲雖皆美, 推原其義則自有不同也?

 

답변: ‘아름답다는 것은 그 공()이요, ‘선하다는 것은 공이 세워진 까닭이니, 곧 사양하거나 정벌한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美者其功, 善者功之所以立, 揖遜征伐是也.

 

질문: “우리 도()는 한 가지 이치가 만 가지 일을 꿰뚫고 있다는 한 장에 대해, 이전 주석에서는 이는 모두 학자에게 가차(假借)하여 말한 것이니, 성인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성실하고 쉼이 없어 만물이 각각 제 자리를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충서(忠恕)’는 두 글자는 본래 학자의 본분상의 일이니, ‘()’라든지 ()’를 삭제한 적이 없다.] 지금 주석에서는 위에 있는 한 구절을 삭제하고 비록 지극히 성실하고 쉼이 없어 만물이 각각 제 자리를 얻는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임을 분명하게 가리키지는 않았습니다.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吾道一以貫之一章, 前注云:‘此皆借學者而言, 在聖人則至誠無息而萬物各得其所是也.’(‘忠恕二字本是學者分上事, 不曾刪去忠也, 恕也’). 今注去上一句, 雖云至誠無息, 萬物各得其所, 不明指其爲忠也, 未適如何.

 

답변: “도체(道體)가 둘이 아니니 성인이다” [지금은 고쳐서 성인의 마음은 혼연히 하나의 이치이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주석은 후에 개정했는데 해석이 매우 분명합니다.

道體無二而聖人’,(今改作聖人之心渾然一理而’) 此注是後來改本, 解釋極明白矣.

 

 

정자상에게 답함 13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2(소희 3, 임자, 63)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정자상이 󰡔논어󰡕 「공야장편으로부터 태백편에 이르기까지 의심나는 조목을 몇 개 뽑아 질문한 데 대해, 주자가 답변한 것이다.

 

질문: 혹자가 이천(伊川) 선생에게 묻기를 영윤(令尹)인 자문(子文)의 충성과 진문자(陳文子)의 청렴이 성인에게 그렇게 하도록 했으니, ()이 아닙니까?”라고 했는데, 선생은 그렇지 않다. 성인의 하는 일은 또한 청렴과 충성일 뿐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선생이 해설하기를 마음의 덕은 전체이니 하나의 사행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다만 두 사람의 청렴과 충성이 성인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은 본래 청렴과 충성일 뿐이니, 또한 () 가운데의 청렴과 충성은 두 사람과 다르지 않겠습니까? 공자는 두 사람의 청렴과 충성은 인정하나 인()하지 못하다 했지만, 저는 두 사람이 이미 인()하지 못하다면, 청렴과 충성도 또한 지극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뒤집어서 보면 어떠합니까?

或謂伊川先生:‘令尹子文之忠陳文子之淸, 使聖人爲之, 是仁否?’ 先生曰:‘不然. 聖人爲之, 亦只是淸忠.’ 先生解云:‘心德全體, 非事爲一節可論.’ 但二子之淸忠使聖人爲之固只是淸忠, 莫亦是仁中之淸忠, 與二子異? 孔子謂二子之淸忠而未仁, 可學謂二人旣未仁, 則淸忠亦未至. 似此反觀之, 如何?

 

답변: 이 설명은 좋습니다.

此說得之.

 

질문: “안회는 3개월 동안 인()을 떠나지 않았다에 대해, 윤씨가 이르기를 “3개월이란 오래됨을 말한다. 만약 성인이라면 혼연하여 틈새가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윤씨의 뜻은 대개 인()을 떠나지 않음과 인()을 편안히 행함은 다르니, 반드시 성인의 안인(安仁)처럼 해야 틈새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단지 안자처럼 인을 떠나지 않는 것이라면, 비록 틈새가 없고자 하나 불가능한 것이니, 인을 떠나지 않음이 이미 지극하나 다만 틈새가 있을 뿐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윤씨의 뜻이 과연 이와 같은 것이었을까요?

也三月不違仁’, 尹氏:‘三月, 言其久. 若聖人則渾然無間矣.’ 可學尹氏之意, 蓋以不違仁與安仁異, 必則聖人之安仁, 則無間斷. 若只如顔子之不違, 則雖欲無間斷不可, 非謂不違仁已至極, 特有間斷耳. 又不知尹氏之意果是如此否?

 

답변: 이 설명도 또한 좋습니다.

此說亦得之.

 

질문: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었다는 한 장에 대해서, 상채(上蔡: 사량좌)(환퇴)로 하여금 나를 해치게 하는 것도 또한 하늘이다라 말하고, 귀산(龜山: 양시)도 또한 그렇다고 하니, 여러 학자들이 대부분 그것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해설하기를 반드시 하늘의 뜻을 어기고 자기를 해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라 하니, 저는 쇠퇴하고 혼란한 세상에 기운이 어긋나 선인(善人)에겐 복이 악인(惡人)에겐 재앙이 미친다는 말도 간혹 잘못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리(天理)로 말하자면 우뚝 변함 없이 존재하면서 이처럼 덕이 성대하니 반드시 감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천은 성인은 궁극적으로 천리(天理)로 판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天生德於予一章, 上察:‘使其能害己, 亦天也.’ 龜山亦然, 諸家多從之. 先生解云:‘言必不能違天害己.’ 可學謂衰亂之世氣運差謬, 福善禍淫容或有失. 若天理則卓然常在, 如許盛德, 必不應殺得. 伊川, 聖人極能斷致以理.

 

답변: 이천의 말은 바로 공자의 뜻이요, 사씨와 양씨는 추론해 낸 나머지 말이니, 또한 이를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伊川說是夫子正意, 推說餘意, 亦不可不知也.

 

질문: 태백과 주나라 문왕의 지극한 덕을 묻습니다.

泰伯之至德

 

답변: 이 두 단락은 또한 너그러운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문왕이 천하의 3분의 2를 소유하고서도) 은나라를 섬긴 것과 (문왕의 아들 무왕이) () 임금을 정벌한 것은 사건이 비록 같지 않지만, 그 때에 따라서 하늘에 순응한 것은 동일할 뿐입니다.

此兩段且寬著意思看. 事雖不同, 然其隨時順天則一而已.

 정자상에게 답함 14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태극의 동정(動靜) 문제, ()과 인()의 명칭 문제, ()과 성()의 관계, 유가와 불가의 차이, ()의 수양방법, 이기(理氣)와 인사(人事)의 관계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

 

질문: 󰡔태극도(太極圖)󰡕에서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는 대개 기(: 형기)는 없지만 이(: 이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형태가 없으므로 뚜렷이 항상 존재하고, ()는 형상이 있기 때문에 열리고 닫히고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태극도󰡕에서 또 이르기를,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멈추게 되는데, 멈출 때 음이 생겨난다라고 했습니다. 태극이란 이()인데 이()가 어떻게 동정(動靜)하는 것입니까? 형상이 있으면 동정이 있는데, 태극은 형상이 없으니, 동정을 가지고 이야기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남헌(南軒: 장식)태극은 능히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는데, 그 의도를 알 수 없습니다.

太極圖:‘無極而太極.’ 可學竊謂無者, 蓋無氣而有理. 然理無形, 故卓然而常存; 氣有象, 故闢闔歛散而不一. 圖又曰:‘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不知太極, 理也, 理如何動靜? 有形則有動靜, 太極無形, 恐不可以動靜言. 南軒云太極不能無動靜, 未達其意.

 

답변: ()에 동정이 있기 때문에 기()에 동정이 있는 것이니, 만일 이()에 동정이 없다면 기()가 무엇에 근거하여 동정이 있겠습니까? 우선 눈앞의 것을 가지고 논해 보면, ()은 곧 동()이요 의()는 곧 정()이니, 이것들이 또 어찌 기()와 관계가 있겠습니까? 다른 설명은 대부분 좋습니다. 다만 이곳은 좀더 자세히 보아야 할 뿐입니다.

理有動靜, 故氣有動靜, 若理無動靜 則氣何自而有動靜乎? 且以目前論之, 仁便是動, 義便是靜, 此又何關於氣乎? 他說已多得之, 但此處更須子細耳.

 

질문: ()과 인()의 명칭이 다른 이유는 성()은 그 혼연히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말한 것이지만, ()은 곧 이미 유출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염계(濂溪: 주돈이) 선생의 󰡔태극도󰡕에서 성()은 태극이 되지만, 󰡔통서󰡕에서 성()은 무위(無爲)를 가리킵니다. 󰡔태극도󰡕에서 양이 움직이는 것은 인()에 속하지만, 󰡔주역󰡕에서는 원()이 인()에 속합니다. ()선생도 또 생성의 이치가 곧 인()이다라고 말했으니, 이를 미루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誠與仁之名所以異者, 誠自其渾然不動言之, 而仁則已流出矣. 故在濂溪圖誠爲太極, 通書謂誠無爲. 於圖陽動屬仁, 元屬仁. 程先生亦謂生之理便是仁, 推此可見.

 

답변: ()으로 말한다면, ‘()’자는 또한 아직 유출되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그 생성하고 움직이게 하는 이치가 네 가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니, 실제로는 ()’자와 가리키는 바가 같지 않은 것입니다. 반드시 다시 분명하게 변별해보아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自性言之, 仁字亦未流出, 但是其生動之理包得四者, 其實與誠字所指不同. 須更辨得分明始得.

 

질문: 임안(臨安)과 장주(漳州)에 있을 때에 인()과 공()을 여쭈었는데, 선생께서 ()은 내면에 있고, ()은 외부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이론은 정씨(程氏)의 이론과 더불어 실로 세유(世儒)들이 공()을 가지고 인()이라고 여기는 잘못을 변증한 것입니다. 다만 제가 가만히 생각건대, ()은 근본이고 공()은 말단이니, 반드시 인()한 이후에 능히 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씨의 이론은 곧 공()한 이후에 능히 인()한다고 하니, ()하지 못하다면 무엇으로써 능히 공()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臨漳問仁, 先生曰:‘仁在內, 公在外.’ 此論與程氏所論固證得世儒以公爲仁之誤, 可學竊謂仁是本, 公是末, 必仁然後能公. 程氏之說, 則是公然後能仁, 不知未仁何以能公?

 

답변: ()은 본래 갖추고 있는 이치요, ()은 자신을 이기는 공부가 극치에 이른 경지이기 때문에 오직 공()한 이후에 능히 인()할 수 있다는 이치가 매우 분명한 것입니다. 그가 ()한 이후 사람으로써 그것을 체득한다라고 말했다면, 자기의 사사로움을 다 극복한 이후에 단지 자기의 신상에 나아가 보면 곧 인()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仁是本有之理, 公是克己功夫極至處, 故惟公然後能仁, 理甚分明. 其曰公而以人體之, 則是克盡己私之後, 只就自身上看, 便見得仁也.

 

질문: 󰡔대학󰡕에서 지극한 선()에 그침에 있다고 말했는데, () 선생은 이른바 ()는 정미하여 이름을 붙일 수 없어 우선 지선(至善)으로써 지목했다라고 했습니다. 󰡔주역󰡕 「문언전에서 ()은 선() 중의 으뜸이다라고 말했는데, 정선생은 ()은 선()의 근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곧 이것은 선이 발출한 곳에서 설한 것이니, 󰡔대학󰡕과 두 가지 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맹자󰡕에서 성선(性善)을 정()으로부터 설명한 것을 보면 또한 발출을 통하여 그 선()을 드러낸 것인데, 그 본래 선()이라는 것은 진실로 환히 빛나서 가리울 수 없는 것입니다. 정선생의 이른바 우선 지선(至善)으로써 지목했다는 말은 곧 그 정미함을 자세히 형용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정미함이 선()이 되지 않아 이를 빌려서 이름 붙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근세의 많은 유자들이 성()을 논할 때에 흔히 이러한 설을 고집하여 ()은 선()으로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말하면서 반드시 그것을 모호하여 분명치 않은 곳에다 위치시키고자 합니다. 곧 그 외면을 대충 보고 내면을 정밀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설명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大學:‘在止於至善.’ 程先生所謂理之精微, 不可得而名, 姑以至善目之. 文言:‘元者, 善之長也.’ 程先生仁者善之本’, 乃是自發出說, 大學非有二善. 孟子說性善自情觀之, 亦是因發以見其善, 而其本善者固昭然而不可掩也. 程先生所謂姑以至善目之者, 乃所以極形容其精微耳. 非謂精微之不爲善, 而借此以名之也. 近世諸儒論性往往執此說, 謂性不可以善名, 而必欲置之於渾淪茫昧之地, 乃是粗見其外而不精見於內, 故其說差.

 

답변: 이러한 설명은 좋습니다.

此說得之.

 

질문: ()은 하늘이 사람과 사물에게 부여하는 것이요, ()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물이 하늘로부터 품수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과 명()은 각기 다른 것이니, ()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하늘이 그 이치로써 사람과 사물에게 명령하는 것을 일러 명()이라 하고, 사람과 사물이 하늘에게 이러한 이치를 품수받음을 일러 성()이라 하는 것입니다. ()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늘이 이 기()를 가지고 사람과 사물에게 명령하는 것을 또한 일러 명()이라 하고, 사람과 사물이 하늘로부터 이러한 기()를 품수받음을 또한 일러 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命者, 天之所以賦予乎人物也. 性者, 人物之所以禀受乎天也. 然性命各有二, 自其理而言之, 則天以是理命乎人物謂之命, 而人物受是理於天謂之性. 自其氣而言之, 則天以是氣命乎人物亦謂之命, 而人物受是氣於天亦謂之性.

 

답변: ()는 성명(性命)이라 할 수 없으나, 다만 성명(性命)이 이로 인하여 정립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천지의 성()을 논하면 오로지 이()만 가리켜 말하고, 기질(氣質)의 성()을 논하면 이()와 기()를 섞어서 말하는 것이니 기()를 성명(性命)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氣不可謂之性命, 但性命因此而立耳. 故論天地之性則專指理言, 論氣質之性則以理與氣雜而言之, 非以氣爲性命也.

 

질문: 사람의 생명에 장수와 요절이 있으니 기(), 어질고 어리석음 역시 기()입니다. 장수와 요절이 기()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생명을 받음은 균일하지만 안자와 도척처럼 같지 않음이 있는 것이며, 어짊과 어리석음이 기()로부터 나오는 때문에 균등하게 선한 성()을 품수받았건만 요()임금과 걸()임금 같이 혹 다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건대 천지의 사이엔 단지 하나의 기()가 있을 뿐이니, 장수와 요절이 되는 까닭도 이 하나의 기()에 있고, 어짊과 어리석음이 되는 연유도 또한 이 하나의 기()에 있습니다. 지금 도척은 지극히 우매하지만 오래 살고 안자는 매우 현명한데도 요절하는 것을 보건대, 이와 같다면 곧 장수와 요절의 기()와 어짊과 어리석음의 기()는 아마 다른 것 같습니다. 명도(明道)가 정소공(程邵公)의 묘에 기록하기를 그간 만나보는 것이 힘들었으니, 그 수명이 혹 길지 못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내 아들이 그 기()의 정일(精一)함을 얻어 목숨에 국한이 있었던 것인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에는 맑음과 흐림이 있고 길고 짧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맑은 사람은 실로 어진 이가 되지만, 비록 맑다할지라도 짧은 까닭에 목숨이 또한 단명한 것입니다. 기가 흐릿하면 실로 우매한 자가 되나, 비록 탁하다할지라도 길기 때문에 그 수명이 장수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모르겠습니다.

人生有壽夭, 氣也, 賢愚亦氣也. 壽夭出於氣, 故均受生而有顔子盜跖之不同. 賢愚出於氣, 故均性善而有之或異. 然竊疑天地間只是一氣, 所以爲壽夭者此氣也, 所以爲賢愚者亦此氣也. 今觀盜跖極愚而壽, 顔子極賢而夭, 如是則壽夭之氣與賢愚之氣容或有異矣. 明道程邵公墓云:‘以其間遇之難, 則其數或不能長亦宜矣. 吾兒其得氣之精一而數之局者歟.’ 詳味此說, 氣有淸濁, 有短長. 其淸者固所以爲賢, 然雖淸而短, 故於數亦短. 其濁者固所以爲愚, 然雖濁而長, 故其數亦長. 不知果然否?

 

답변: 이러한 설명이 좋습니다. 귀함과 천함, 가난함과 부유함 또한 이와 같습니다. 다만 삼대(三代: ) 이상에서는 기수(氣數)가 순수하고 농후했기 때문에 기()가 맑은 사람은 반드시 후덕하고 반드시 장수하니, 성현은 모두 귀하고 장수하고 부유했습니다. 그 아래는 이와 반대입니다.

此說得之. 貴賤貧富亦是如此, 三代以上氣數醇濃, 故氣之淸者必厚必長, 而聖賢皆貴且壽且富, 以下反是.

 

질문: 유가와 불가의 차이를 묻습니다.

之異

 

답변: 유가와 불가의 차이는 바로 우리는 마음[]과 이치[]를 하나로 보는 반면 저들은 마음과 이치를 둘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세에 일종의 학문은 비록 마음과 이치가 하나라고는 말하지만, 기품(氣稟)과 물욕(物欲)의 사사로움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발설하는 것이 또한 이치에 맞지 않아 도리어 불가와 동일한 병폐가 있게 되니,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之異, 正爲吾以心與理爲一, 而彼以心與理爲二耳. 近世一種學問, 雖說心與理一, 而不察乎氣禀物欲之私, 故其發亦不合理, 却與釋氏同病, 又不可不察.

 

질문: 화정(和靖: 윤순)은 정제엄숙(整齊嚴肅)으로 경()을 논하였으나 오로지 내면을 위주로 하였고, 상채(上蔡: 사량좌)는 오로지 외면의 실사(實事) 상에서 공부하였기 때문에 ()은 상성성법(常惺惺法)의 일종이다고 하였습니다.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사씨와 윤씨의 두 설은 내면과 외면으로 나누기 어려우니, 모두 자기의 마음 공부입니다. 실사(實事) 상에서 어찌 정제하고 엄숙하지 않을 수 있으며, 고요히 있는 곳에서 어찌 정신이 항상 맑게 깨어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

 

질문: “군자는 친척에게 친근하게 하고서 백성을 인()으로 대하고, 백성을 인()으로 대하고 나서 사물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사랑은 오직 균등해야 합니다. 지금 천하의 사물을 보면 두 가지 등급이 있으니, 지각(知覺)이 있는 사물이 있는데 금수의 종류가 그것이요, 지각이 없는 사물이 있는데 초목과 같은 종류가 그것입니다.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고, 새끼사슴이나 (봄에 낳은) 새알을 취하지 않고, ()속에 있는 것을 죽이지 않고, 젊고 장성한 것을 단명케 하지 않았으니, 성인은 지각이 있는 사물에 대해 그 사랑함이 이와 같았습니다. 마치 불가에서 말하는 모든 생물은 모두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로지 살해해서는 안 된다는 계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와 같은 사랑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찰에서 수목을 벨 때면 곧 태연하기만 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더하지 않으니, 어찌 사랑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하건대, ‘이치는 하나이지만 나뉘어 만물에 분유되어 있기[理一而分殊]’때문에 성인은 각기 그 분수를 미루어 친()이라 하고 민()이라 하고 물()이라 한 것입니다. 그 분수가 다르기 때문에 친친(親親)인민(仁民)애물(愛物)도 또한 다른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스스로 이치는 하나라고 말하지만 나뉘어 다르다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불가에서는 결코 이치가 하나임을 알지 못하고서 다만 이 말을 빌려 사용한 것입니다.] 다만 혈기(血氣)를 가리켜 말했기 때문에 친()()()을 혼합하여 하나로 여겼고, 그 나머지 살피지 못한 것(초목)은 도리어 상해한 것입니다. 이는 다만 그 차이에 근거하여 말한 것입니다. 우리 유가는 사물에 대해서, 지각이 있는 사물과 지각이 없는 사물에 또한 작은 차이가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개 사물은 비록 사람과 다른 기()이지만, 지각이 있는 사물은 곧 혈기(血氣)의 소생이기에, 지각이 없는 사물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여기에 대해 반드시 또한 차등을 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제나라 선왕이 소를 측은히 여긴 사건은 초목에 대한 시행과는 또한 같지 않을 듯합니다.

君子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然謂之愛物, 則愛之惟均. 今觀天下之物有二等, 有有知之物, 禽獸之類是也; 有無知之物, 草木之類是也. 如數罟不入洿池, 不麛不卵, 不殺胎, 不殀夭, 聖人於有知之物其愛之如此. 斧斤以時人山林, 木不中伐不鬻於市, 聖人於無知之物亦愛之如此. 如佛之說, 謂衆生皆有佛性, 故專持不殺之戒, 似若愛矣. 高宮大室, 斬刈林木, 則恬不加恤, 愛安在哉? 竊謂理一而分殊, 故聖人各自其分推之, 曰親, 曰民, 曰物. 其分各異, 故親親仁民愛物亦異. 佛氏自謂理一而不知分殊, (佛氏未必知理一, 但借此言). 但指血氣言之, 故混親民物爲一, 而其他不及察者, 反賊害之. 此但據其異言之. 若吾儒於物, 竊恐於有知無知亦不無小異. 蓋物雖與人異氣, 而有知之物乃是血氣所生, 與無知之物異. 恐聖人於此須亦有差等. 王愛牛之事, 施於草木恐又不同.

 

답변: 이러한 설명은 좋습니다.

此說得之.

 

질문: 천지의 사이에는 이()와 기()가 있는데, ()는 항상 변함이 없고 기()는 항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중용󰡕대덕(大德)은 반드시 그 이름을 얻으며, 반드시 그 지위를 얻으며, 반드시 그 수명을 얻는다라 하니, 이치가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지위를 얻지 못하고, 안자는 일찍 요절했으며, 가난한 선비가 늙어서 죽어도 실로 이름을 남기지 못함이 있는 것은 어찌 기()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군자는 그 상도(常道)를 말하고 상도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이()가 앞서고 기()는 나중인데, 지금 이()가 이미 기()를 이길 수 없다면, 선하면 복을 얻고 음란하면 화를 입는다는 설을 징험하지 못함이 태반이니, 어떻게 천지의 항상된 법도가 되겠습니까? 생각건대 기()는 비록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또한 시대에 따라서 다른 것입니다. 요임금순임금우임금은 성인으로 윗자리에 있으면서 천하를 공평하게 다스렸고, 온화함으로 화합을 이끌어내니, ()가 또한 순정하여 이()를 따른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로 말하자면 형벌과 살육이 참혹하게 행해지니, ()가 또한 그 시대를 따라 변화하여 이()가 오히려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가 또한 인사(人事)와 관련된 곳이 아니겠습니까?

天地之間有理有氣, 理常不移而氣不常定. 中庸:‘大德必得其名, 必得其位, 必得其壽.’ 理固當如此. 孔子無位, 顔子夭死, 蓬蓽之士固有老死而名不著者, 豈非氣使之然耶? 故君子道其常而不道其非常. 然竊疑理先而氣後, 今理旣不足以勝氣, 則凡福善禍淫之說不驗常多, 何以爲天地之常經? 意謂氣雖不同, 然亦隨世而異. 以聖人在上, 天下平治, 以和召和, 則氣亦醇正而隨於理. 春秋戰國之時, 刑殺慘酷, 則氣亦隨之而變, 而理反不能勝. 此處亦當關於人事否?

 

답변: 이는 앞 단락의 성명(性命)을 논한 곳에서 이미 언급했습니다. 비록 (인사에 대한) 느낌은 동일하지 않지만, 또한 원기(元氣)가 희박할 뿐입니다.

此於前段論性命處已言之, 雖是所感不同, 亦是元氣薄耳.

 

 

정자상에게 답함 15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1(소희 2, 신해, 62)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정자상이 앞 편지에서 언급한 내용 중 명확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재차 질문한 데 대해, 주자가 다시 보충 설명을 해준 내용이 들어있다.

 

 

질문: ()과 인()은 천하의 이치로서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은 본체이니, 지가 모두 그 가운데 내재해 있습니다. ()은 작용이니, 지와 함께 성() 중에 있는 하나의 이치가 됩니다. ()이 생동의 이치가 되어 의지를 포함한다면, 또 이를 합하여 하나의 온전한 이치라 여기니, 또 단지 성()을 미루어 넓힌 것일 뿐입니다.

’, 天下之理一而已. 然誠, 體也, 智皆在其中. , 用也, 與禮智皆爲誠中之一理. 仁爲生動之理, 包含義, 則又合爲一全理, 又只是誠之推耳.

 

답변: 이치는 하나입니다. 그 실제로 있기 때문에 성()이라 하고, 그 본체로써 말하면 인지의 실체가 있는 것이며, 그 작용으로 말하자면 곧 측은수오공경시비의 실용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상(五常)과 백행(百行)이 성()이 아니라 함은 틀린 것입니다. 대개 그 실제가 없다면 또 어찌 그 이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理一也, 以其實有, 故謂之誠; 以其體言, 則有仁智之實; 以其用言, 則有惻隱羞惡恭敬是非之實. 故曰五常百行非誠, 非也. 蓋無其實矣, 又安得有是名?

 

질문: 성명(性命)은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처럼 혼연(渾然)하여 모두 다 선하다면,()는 그대로 기()이고 이()는 그대로 이()이어서 양자가 서로 관계하지 않으니, 기질(氣質)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아래로는 비록 천리(天理)가 이지러지지는 않았으나 도리어 기()에 매이게 되어, ()가 맑으면 이()가 분명하고 기가 탁하면 이가 흐릿하니 이 둘은 항상 혼합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는 이()가 기()에 비해 나아감과 물어남이 있음을 말한 것이지, 기질(氣質)을 또한 성명(性命)이라 여긴 것은 아닙니다.

性命’, 若生而知之者渾然盡善, 則氣自氣, 理自理, 兩不相關, 不必說氣質. 自生知而下, 雖是天理無虧, 然却繫於氣. 氣淸而理明, 氣濁則理晦, 二者常合, 故指爲氣質之性. 言此理視氣以爲進退, 非以氣質亦爲性命也.

 

답변: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기()가 지극히 청명하고 이()에 가리움이 없습니다. 배워서 아는 사람 아래로는 곧 기()의 맑고 흐림에 많고 적음이 있어서 이()의 온전함과 결핍이 여기에 매어있을 뿐입니다.

生而知者, 氣極淸而理無蔽也. 學知以下, 則氣之淸濁有多寡而理之全缺繫焉耳.

 

질문: 유가와 불가에 대해 지난번에 답한 것을 이어서 말합니다.

前承所答云

 

답변: 우리는 심()과 이()가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저들은 심()과 이()가 둘이라고 생각하니, 또한 진실로 이와 같이 하고자 아니하나, 이내 그 소견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마음은 공허하여 이치가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마음이 비록 공허할지라도 만물이 다 갖추어져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비록 마음과 이치가 하나라고 말하긴 하지만, 기품(氣稟)과 물욕(物欲)의 사사로움을 살피지 않으면, 또한 견해가 진실하지 못하므로 이러한 병폐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학󰡕에서 격물(格物)을 귀중히 여긴 까닭입니다.

吾以心與理爲一, 彼以心與理爲二, 亦非固欲如此, 乃是其所見處不同. 彼見得心空而無理, 此見得心雖空而萬物咸備也. 雖說心與理一, 而不察乎氣稟物欲之私, 亦是見得不眞, 故有此病. 大學所以貴格物也.

 

질문: ()에 대한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이리 저리 생각하여, 이내 동정(動靜)의 다름만 있지 안팎의 구별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두 사람도 각기 하나의 경지에 나아가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得批敎, 反覆思繹, 乃知只有動靜之異而無內外之別. 又云二人亦各就一處言之.

 

답변: ()자 공부는 곧 성인 문하의 가장 핵심적인 방법으로 철두철미(徹頭徹尾)한 것이니, 잠깐이라도 멈춤이나 끊어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강론하는 곳에는 줄곧 자세하고 엄밀하지만, 도리어 이곳에는 공부가 부족하여 그다지 정밀하거나 밝지 못해 자기 분수에서 힘을 얻은 곳이 없는 듯합니다. 반드시 다시 이곳에 자세히 힘을 쏟아서 근본을 견고히 하면 좋겠습니다.

敬字工夫乃聖門第一義, 徹頭徹尾, 不可頃刻間斷. 子上於講論處儘詳密, 却恐此處功夫未到, 所以不甚精明, 於己分無得力處. 須更於此子細著力, 以固根本爲佳.

 

 

정자상에게 답함 16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7(경원 3, 정사, 68)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위학(僞學)을 금하는 사건으로 강학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한가롭게 책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근래에는 어떤 공부를 합니까? 오는 인편에 말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이곳은 여름에는 정사(精舍)에 몇 명의 붕우가 있다가 내가 시끄러운 곳을 피해 산으로 들어간 이후, 마침내 모두 흩어져 가버렸습니다. 지금은 그 처소가 빈지 오래되었습니다. 대개 화색(火色)이 이와 같으니, 저들 스스로 감히 이곳으로 오지 못할 것이고, 나 또한 감히 저들이 오기를 바라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한가한 가운데 옛 책들을 한 번 보고서 온당치 못한 곳이 있으면 붓이 가는 대로 다시 고쳤습니다. 사는 곳이 서로 멀어 그대와 만나 토론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近修何業? 因來幸語及也. 此間夏間精舍有數朋友, 避地人山, 遂皆散去. 今則其室久虛, 蓋火色如此, 想彼自不敢來, 此亦不敢願其來也. 閑中看得舊書一過, 有所末安, 隨筆更定. 恨相去遠, 不得相與討論也.

 

 

정자상에게 답함 17 答鄭子上

 

해제이 글은 1198(경원 4, 무오, 69)에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이다. 위학(僞學)을 금하는 사건으로 상심해있는 주자의 말년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투병 중에 경전을 읽기보다는 굴원(屈原)󰡔초사(楚辭)󰡕을 읽으면서 감상에 젖어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투병중이라 감히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경서(經書)를 보지 못하고, 한가롭게 󰡔초사(楚詞)󰡕를 펼쳐보니, 또한 정리해야할 곳이 매우 많았습니다. 다만 시휘(時諱)를 범할까 두려워, 감히 종이에 쓰지는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생각건대, 옛사람은 다소간의 마음과 생각을 들이면서 그러한 글을 지었는데, 단지 한 사람의 손을 건너자 곧 이해하는 사람이 없으니, 매우 탄식할 만합니다. 편찬하고 있는 󰡔좌씨(左氏)󰡕의 문자는 어떻게 되갑니까? 만약 등사할 사람이 있다면, 곧 베끼게 하여 몇 단락이라도 보내주면 또한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병중에 감히 문을 나서지 못한 지가 이미 여러 달인데, 정사(精舍)도 또한 풀이 무성하게 뒤덮여 있습니다.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 더불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던 차에, 우연히 인편을 통해 이 편지를 부치고 바람을 마주하고 그리워합니다.

病中不敢勞心看經書, 閑取楚詞遮眼, 亦便有無限合整理處. 但恐犯忌, 不敢形紙墨耳. 因思古人是費多少心思做下此文字, 只隔一手, 便無人理會得, 深可歎息也. 所編左氏文字如何? 若有人寫, 旋寫得數段來, 亦幸甚也. 病中不敢出門已累月, 精舍亦鞠爲茂草. 塊坐無晤語, 偶便附此, 臨風依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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