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편지(왕상서․장식․여조겸․유자징과의 문답) 書汪張呂劉問答
장경부에게 답하며 중용설을 논함
【해제】1173년(宋 孝宗 乾道9년, 癸巳) 주희 44세 때의 편지이다.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는 구절의 주에서 정자의 설을 인용하였는데, 대개 앞에서 글의 의미를 분명하게 말했지만, 사람들이 다만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고 넘어갈까 두려워하여, 이 말을 인용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기에 涵泳을 더하게 하였습니다. 또 지엽적인 것이 너무 성하면 사람은 다시 근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망령된 생각으로 천착하여 따로 병통을 만듦으로, 다 인용하지는 않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만 이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따로 다른 곳으로 내달리게 하지는 않았으니, 장차 훈고를 할 때는 다만 본문상에 나아가 생각을 다하면 자연히 잘못되고 망령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훈고를) 자세하게 하느냐 간략하게 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생각 또한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지금 다 없애려고 하여 또 사사로운 걱정으로 지나치게 헤아리고, 지나치게 경계하면 비록 잘못되고 망령된 한 쪽의 병통은 구한다 해도 도리어 정자께서 가리키는 요점과 요긴하고 절실한 곳은 없어져서 더욱 불편할 것입니다.
‘미리 알 수 있다’는 의미는 경문에는 본래 상서로운 조짐과 禍의 조짐은 시초점과 거북점에 나타나고 四體에 동한다고 말하였는데, 해석한 글 중에서는 옥을 잡아 높고 낮게 하는 일로 四體의 설을 밝혔으니, 이른바 미리 안다는 것은 조짐이 싹트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대개 일의 기미가 여기에 이르면 이미 저절로 밝게 드러나지만 모름지기 誠明으로 환하게 비추어 보아야 이에 능히 살필 수 있습니다. 異端의 괴이하고 허망한 설과는 본래부터 같다고 꺼릴 것이 없습니다. 程子께서 말씀하신 用과 不用은 이단이 스스로 미리 안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듯 합니다. 정자께서 “알지 못하는 근심만 못하다”고 하신 것은, 대개 알지 못하는 자는 본래 말하기에 부족하고, 아는 자는 또 事理의 기미를 살필 수 없으며, 특히 어둡고 은밀한 가운데서 엿본 것으로 망령된 생각으로 추측하여 알기 때문에 아는 것은 도리어 알지 못하는 근심만 못한 것입니다. 불가의 말을 인용하여 한갓 조금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은 이미 즐겨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 것은, 모두 그 말이 말하기에 부족하면 깊이 끊을 것을 심하게 말한 것이지, 불용자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편지에서 드러내 밝힌 것은 실로 이단은 반드시 작용하고 나서 알고, 작용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고 여겨서 오직 지극히 성실하면 이는 가릴 수 없으므로 작용하지 않아도 저절로 아는 것이 이른바 천도라는 것이니, 이 의미가 자세합니다. 그러나 작용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실로 정자께서 말씀하신 것에서 나온 혐의가 있는데, 정자의 말은 처음에는 이것을 말하지 않고 끌어다가 말하여 도리어 사람을 미혹하게 한 듯합니다. 또 이것으로 至誠과 異端이 다르다는 것을 논한 것이 또 주 중에서 일을 가리켜 논한 것만 못하다는 것이 명백하고 또 명백합니다.
자르고(切)․갈고(磋)․쪼고(琢) 간다(磨)는 것은 다만 오늘날 공인들이 그릇을 제작하는 차례를 살펴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자른다(切)는 것은 칼이나 톱으로 뼈나 뿔을 잘라 형질을 만드는 것이고, 간다(磋)는 것은 혹은 풀무질하고, 혹은 씻어서 고르게 바로잡는 것입니다. 쫀다(琢)는 것은 망치로 때리거나 끌로 뚫어서 옥과 돌을 새겨 형질을 만드는 것이고, 간다(磨)는 것은 모래로 갈아서 고르게 바로잡는 것입니다. 대개 뼈나 뿔은 부드럽고 질겨 쪼고 갈 수 없고, 옥과 돌은 단단하고 굳어서 자르고 갈 수 없으므로 각각 그 마땅한 것을 따라 다스리는 것입니다. 또 그 공부의 차제가 거친 것으로부터 세밀한 것으로 들어가는 것도 이와 같으니, 비록 고금에 관습을 따라 혹 다른 것이 있어도 물에 정해진 이치가 있으니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주 구설이 비록 이것과 다르지만 그러나 그 자르고 갈아서 뼈와 뿔을 다스리고, 쪼고 갈아서 옥과 돌을 다스리는 것은 또한 일찍이 어지럽혀지지 않았으니, 다만 네 가지로 나누어서 각각 하나의 일이 되게 하여 서로 유래하지 않게 한 것은 타당하지 않을 뿐입니다. 어찌 또한 전해준 바에 작은 실수이겠습니까? 보내주신 편지에서는 네 가지를 모두 옥과 돌을 다스리는 일로 보아, 자르는(切) 것은 옥돌을 자르는 것이고, 쪼는(琢) 것은 그 모양을 쪼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대학 傳文의 내용과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옥돌을 자르고, 그 모양을 쪼면, 반드시 분주하게 갈 필요가 없으니 갈아서 이미 고르게 되었는데 다시 때리고 뚫으면 매끄럽고 깨끗한 위에 오히려 흠을 만들 것이니, 갈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옛사람은 능히 사물을 만들 줄을 아니, 응당 이렇게 어둡고 서툴게 중복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개 옛 사람은 시를 인용하여 종종 대의를 취하였으니 처음부터 글의 의미를 심하게 구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은 다만 서로 말미암는 뜻만 취하고 그 사물을 세세하게 나누지 않았습니다. 만약 세세하게 나누면 자르고(切) 쪼는(琢) 것은 道學이고, 가는(磋) 것과 가는(磨) 것은 스스로 수양하는 것이니, 논어의 자르고(切) 쪼는(琢) 것으로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것에 비유하고, 가는(磋) 것과 가는(磨) 것으로 즐기고 예를 좋아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 매우 타당합니다. 지금 이미 같지 않은데 또한 반드시 억지로 말할 필요가 없으니 다만 그 큰 뜻을 알면 됩니다. 하물며 경전 가운데 이러한 것이 하나가 아닌데, 관대한 뜻으로 여유있게 음미하지 않는다면, 모든 글자가 서로 막아서 또한 통할 수 있을 때가 없습니다.
答敬夫論中庸說
鳶飛魚躍 注中引程子說 蓋前面說得文義已極分明 恐人只如此容易領略便過 故引此語 使讀者於此更加涵泳 又恐枝葉太盛 則人不復知有本根 妄意穿穴 別生病痛 故引而不盡 使讀者但知此意而別無走作 則只得將訓詁就本文上致思 自然不起狂妄意思 當時於此詳略之間 其慮之亦審矣 今欲盡去 又似私憂過計 懲羹吹虀 雖救得狂妄一邊病痛 反沒却程子指示眼目要切處 尤不便也
前知之義 經文自說禎祥妖孽蓍龜四體 解中又引執玉高卑之事以明四體之說 則其所謂前知者 乃以朕兆之萌知之 蓋事幾至此 已自昭晰 但須是誠明照徹 乃能察之 其與異端怪誕之說 自不嫌於同矣 程子所說用與不用 似因異端自謂前知而言 其曰‘不如不知之愈’者 蓋言其不知者本不足道 其知者又非能察於事理之幾微 特以偵伺於幽隱之中 妄意推測而知 故其知之反不如不知之愈 因引釋子之言 以見其徒稍有識者已不肯爲 皆所以甚言其不足道而深絶之 非以不用者爲可取也 今來喩發明固以爲異端必用而後知 不用則不知 惟至誠則理不可揜 故不用而自知 是乃所謂天道者 此義精矣 然不用之云 實生於程子所言之嫌 而程子之言初不謂此 引以爲說 恐反惑人 且以此而論至誠異端之不同 又不若注中指事而言 尤明白而直截也
切磋琢磨 但以今日工人制器次第考之 便可見 切者以刀或鋸裁截骨角 使成形質 磋則或鑢或盪 使之平治也 琢者以椎擊鑿鐫刻玉石 使成形質 磨則礱以沙石 使之平治也 蓋骨角柔韌 不容琢磨 玉石堅硬不通切磋 故各隨其宜以攻治之 而其功夫次第從粗入細又如此 雖古今沿習或有不同 然物有定理 恐亦無以相遠也 故古注舊說雖與此異 然其以切磋爲治骨角琢磨爲治玉石亦未嘗亂 但不當分四者各爲一事而不相因耳 豈亦有所傳授而小失之與 來喩欲以四者皆爲治玉石之事 而謂切爲切其璞 琢爲琢其形 此於傳文協矣 然切其璞而琢其形 則不必遽磋 磋之旣平 而復加椎鑿 則滑凈之上却生瘢痕 與未磋何異 竊恐古人知能創物 不應如此之迂拙重複也 蓋古人引詩 往往略取大意 初不甚拘文義 故於此兩句但取其相因之意 而不細分其物 若細分之 則以切琢爲道學 磋磨爲自修 如論語之以切琢比無諂無驕 磋磨比樂與好禮 乃爲穩帖 今旣不同 亦不必彊爲之說 但識其大意可也 況經傳中此等非一 若不寬著意思緩緩消詳 則字字相梗 亦無時而可通矣
장경부에게 답함 答張敬夫
【해제】주자서신편년고증(p.147)에 의하면 이 글은 남송 효종 순희 4년(정유; 1177, 48세)의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근래에 『濂溪書堂記』를 지었는데 보셨는지요?”라고 하였다. 이는 『江州重建濂溪先生書堂記』(문집 권78)를 가리키는 것으로, 記文에서 정유년에 썼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이 편지 역시 순희 정유년에 쓴 것이 틀림없다. 이 서신은 장식이 주자에게 보낸 『답주원회』제9서(『남헌집』권23, p.874)와 제10서(p.876)에 대한 답신이다. 편지 내용은 주로 당시 그들과 교유하거나 문하에 있던 학자들에 대한 평가, 당시 학자들의 병폐에 대한 비판과 반성, 그리고 『근사록』의 보충 등에 집중되어 있다.
여러 가지 가르침 하나하나 모두 잘 받았습니다. 근래 동지들 중에 인재가 없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많은 일을 겪다보니 이 도를 지키는 일이 외로운 것임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소연할 곳이 없어 항상 우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만, 당신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문득 마음은 열리고 눈은 밝아집니다. 자징은 마씨와 범씨의 출처를 인용하였는데, 그(자징)가 단정히 앉아 세운 뜻은 강하지 않고 보고 들은 것은 박잡하여 가슴 속에 이런 난잡스러운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의 일을 이루었을 때마다 이를 빌어 자기 편리한대로 하다가 드디어 그것에 근거하여 정론으로 여기므로 완급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요즘 들어 배우려고 하는 사람을 이끄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더욱 느끼고 있습니다. 박식하지 않으면 고루하여 증명할 수 없고, 박식하면 이렇게 박잡하게 될까 근심이 됩니다. 게다가 재질은 높고 낮은 차이가 있으니 일률적인 예를 들어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 충분하지도 넉넉하지 못하고 또 사리의 요해처를 깊이 알지도 못하니 어찌 이러한 책임을 쉽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 주군을 알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학자는 더 광범위하게 경전과 역사서를 읽어야 근거할 수 있는 기반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의리의 첩경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어려운 점입니다.
건강부 지부인 유공으로부터 연이어 편지를 받았는데 그의 도량은 옛날과 같습니다. 전에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근심하고 애쓰며 불쌍히 여기는 것이 비록 홀아비와 과부 그리고 고아와 늙어 자식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다한 점은 있지만, 그러나 국가의 근본을 다지고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계책은 없으며, 공훈과 명예는 비록 아이들과 부리는 사람들의 입에 퍼져 있지만 그러나 어진 사대부들의 마음을 깨우치게 한 것은 없다”고 두어 마디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정곡을 찌른 것 같은데 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말할 뿐이고 그 이상은 더 말하기 어렵습니다. 평소 우스개 소리로 불교에는 이른바 큰 뜻을 갖고 있는 중생이 있는데 지금 세상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사사로운 것만 챙기고 자신에게 편한 것만 생각하여 조금 얻은 것이 있으면 여려 가지로 병폐가 되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의 앉은 자리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석자중의 말은 이전 편지에서 이미 언급했는데, 말하는 것이 비록 예리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근래 여러 사람이 모두 그 문하에서 나왔습니다. 교전과 잡호의 설명은 실로 간절하고 지극한 논의로써 아침저녁으로 마땅히 스스로 점검해야할 것입니다. 유성지로부터 오랫동안 편지를 받지 못했는데 그러한 자질을 갖고 있지만 갈고 닦는 공부는 부족합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힘이 되지 못하니 유감입니다.
십 여 년 전부터 진당필의 사람됨을 들었는데, 그와 면식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아쉽게 멀리 떨어진 지방에 묻혀 있습니다. 헤아려 보니 그의 나이도 이제 오 육십 아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경이 대답한 말을 들으니 능력은 구차하지 않은데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러한 인재와 온화하고 선량하며 박식하고 점잖은 선비들은 세간에서 무시하는 것을 근심하지 않으니, 아직 그들을 만나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앞에서 말한 큰 뜻을 가진 중생은 그들의 뛰어난 점을 총괄하여 사용하지 못합니다.
보내준 서적과 석각에 감사드립니다. 근래 염계서당기를 지었는데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한 권 보내 드립니다. 천명의 의미를 밝힌 점 조략하나마 공로가 있습니다만, 이른바 명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지 못하여 한 단계 아래의 의미가 빠진 것이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이 또한 이치를 완색하는 것이 익숙치 않기 때문이니 임시로 수습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결코 작은 병폐가 아니니 두렵습니다. 학기의 판각을 완성하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두 석에 지나지 않으니 그렇게 큰 것은 아니죠? 『근사록』에 보충할 과거시험 공부에 관한 문장 세 단락과 횡거 어록 한 단락을 함께 보냅니다. 그 곳(정강부)의 옛날 관속들이 바로잡아 출간하면 다행이겠습니다. 혹 또 몇 자 얻거든 덧붙여야 할 뜻을 말씀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복건과 절강의 인쇄본은 이미 널리 퍼져 있으니 보는 사람이 그것(근사록)이 서로 다르다고 의심할까 두렵습니다. 더불어 당신이 이 책의 의미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니 배우는 사람들에게 더욱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중용장구』는 구본과 같을 뿐인데 이미 경계한 바와 같습니다. 근래 다시 보니 여러 곳에서 확실한 것을 보았습니다. 일전의 공부는 고원한 것을 좋아하는 병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더욱 잘 느끼게 되었습니다. 『통감강목』은 근래 한대에서 진대까지를 다시 수정하였는데 그 조목과 예를 몇 가지 들어 오늘 몇 쪽 적어 보냅니다. 근년에 들어 몸은 쇠잔하고 눈은 어두워 등불 아래에서도 작은 글자는 전혀 볼 수 없으니 되도록 빨리 수찬하여 완성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에 정력을 뺏기니 베껴 쓸 힘도 없어 어느 때나 탈고하여 가르침을 구할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諸諭一一具悉. 比來同志雖不爲無人, 然更事旣多, 殊覺此道之孤, 無可告語, 居常鬱鬱. 但每奉敎喩, 輒爲心開目明耳. 子澄所引馬范出處, 渠輩正坐立志不彊而聞見駁雜, 胸中似此等草木太多, 每得一事可借以自便, 卽遂據之以爲定論, 所以緩急不得力耳. 近來尤覺接引學者大是難事, 蓋不博則孤陋而無徵, 欲其博則又有此等駁雜之患. 況其才質又有高下, 皆非可以一格而例告之. 自非在我者充足有餘, 而又深識幾會, 亦何易當此責耶?
周君恨未之識, 大率學者須更令廣讀經史, 乃有可據之地. 然又非先識得一箇義理蹊徑, 則亦不能讀, 正惟此處爲難耳.
建康連得書, 規模只如舊日. 前日與之書有兩語云.. “憂勞惻怛雖盡於鰥寡孤獨之情, 而未有以爲本根長久之計. 功勳名譽雖播於兒童走卒之口, 而未有以喩乎賢士大夫之心.” 此語頗似著題, 未知渠以爲如何. 然亦只說得到此, 過此尤難言也. 尋常戲謂佛氏有所謂大心衆生者, 今世絶未之見. 凡今之人營私自便․得少爲足種種病痛, 正坐心不大耳.
子重語前書已及之, 所言雖未快, 然比來衆人已皆出其下矣. 交戰雜好之說, 誠爲切至之論, 吾輩所當朝夕自點檢也. 誠之久不得書, 如彼才質, 誠欠追琢之功. 恨相去遠, 無所效力也. 陳唐弼者, 舊十餘年前聞其爲人, 每恨未之識. 此等人亦可惜沉埋遠郡, 計其年當不下五六十矣. 吳儆者聞對語亦能不苟, 不易不易. 此等人材與溫良博雅之士, 世間不患無之, 所恨未見. 前所謂大心衆生者, 莫能總其所長而用之耳.
寄示書籍石刻, 感感. 近作濂溪書堂記, 曾見之否? 謾內一本. 發明天命之意, 粗爲有功, 但恨未及所謂不謂命者, 闕却下一截意思耳. 此亦是玩理不熟, 故臨時收拾不上. 如此非小病, 可懼也. 學記刻就, 幸早寄及. 只作兩石, 不太大否? 近思擧業三段及橫渠語一段幷錄呈, 幸付彼中舊官屬正之. 或更得數字, 說破增添之意尤佳. 蓋閩․浙本流行已廣, 恐見者疑其不同. 兼又可見長者留意此書之意, 尤學者之幸也. 中庸章句只如舊本, 已如所戒矣. 近更看得數處穩實, 尤覺日前功夫未免好高之弊也. 通鑑綱目近再修至漢․晉間, 條例稍擧, 今亦謾錄數項上呈. 但近年衰悴目昏, 燈下全看小字不得, 甚欲及早修纂成書. 而多事分奪, 無力謄寫, 未知何時可得脫稿求敎耳.
장경부에게 답함 答張敬夫
【해제】주자서신편년고증(p.40)에 의하면 이 편지는 남송 효종 건도 3년(정해; 1167, 38세)의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밤 기운(夜氣)은 천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바로 기를 회복하는 곳이니 실로 그 원인을 구한다면 또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고 했다. 「답하숙경」제8서에서 “흠부는 다시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것으로 야기를 비유할 수는 없다고 지극히 논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할 때 야기는 바로 회복하는 곳이므로 실로 천지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여기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즉 장남헌에게 회답한 이 편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두 편지는 같은 시기에 쓴 것이 분명하며, 모두 정해년 봄에 쓴 것이다. 1166년 주희는 장식과의 서신 교류를 통해 중화구설을 확립하였다. 이 편지는 중화구설의 핵심 문제인 미발과 이발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치중화”라는 명제 속에서 유기적으로 관계 지을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이에 대한 사색과 연구를 통해 주자가 얻어낸 결론은 이천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체용일원 현미무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정몽의 일부 내용에 대한 남헌의 회의와 토론, 그리고 천지지심과 야기에 대한 논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몇 가지 자세한 가르침을 받고 처음에는 모두 의심하였지만 조금 지나 생각해 보니 어떤 것은 의심스럽고 또 어떤 것은 믿을 수 있었지만 서로 통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 깊이 생각해 보니 분명하게 알지 못한 곳이 있었기 때문에 닿는 곳마다 막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록 어떤 곳은 연구하고 사색하여 억지로 통하였지만 끝내 완전히 통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이유를 알고 이렇게 바로 갖추어 적어 옳은지 아닌지를 묻습니다.
대체로 일전에 당신에게 보인 여러 편지에서 말한 것은 두리 뭉실하게 “대본과 달도”의 그림자만을 본 것인데 이것을 옳다고 고집하고 오히려 “중화를 이룬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전혀 사유와 논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누차 인을 구하는 일이 급선무가 되어야 한다는 당신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저 스스로는 발을 딛고 공부할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근원을 직각적으로 인식하고 깊은 연못을 기울여 바다에 붓는 기상을 본 것일 뿐인데, 요즈음에는 천지의 큰 변화에 쫓겨 마치 커다란 파도와 거대한 물결 속에 있는 것처럼 잠깐이라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의 소견이 줄곧 이와 같았기 때문에 사태에 응하고 사물을 접촉하는 곳에서 진분격려와 용감 과감함이 전보다 두 배나 증가하였지만 너그럽고 여유로움과 온화하고 점잖은 기상은 터럭만큼도 없게 되었습니다. 비록 스스로 병폐라고 여기고 있지만 그러나 그 근원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넓고 커다란 우주의 대 조화 속에서 스스로 편안히 지내는 집 한 채를 갖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내가 몸을 편안히 하고 명을 바로 세우며 지각을 주재하는 곳이고, 그래서 큰 근본을 세우고 달도를 행하는 중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본체와 작용은 같은 것에서 근원하고 드러남과 은미함은 아무런 간격이 없다고 한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전의 방왕방래설은 손발이 어지러워 몸 둘 곳이 없는 것입니다. 도는 가까이 있지만 그것을 구하는 방법은 멀리 있었으니 이제 이곳에 이르러 보니 또한 우습습니다.
『정몽』의 의심스런 곳은 제가 볼 때도 역시 같은 병폐가 있습니다. 본성을 안정시키는 것은 외재하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 것이고, 지극한 고요함을 논한 것은 앎과 지각을 외재하는 감각으로 생각한 것이고, 성인은 질문이 있고 난 후에야 앎이 있다고 말한 것은 모두 같은 병폐입니다. “다시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논의에 대하여 저는 천지는 만물을 생성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삼는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기는 열고 닫는 작용이 있고 사물은 차고 비는 변화가 있지만, 그러나 천지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털 끝 만큼의 간격과 중단도 없습니다. 따라서 양이 밖에서 극성하면 다시 안에서 생기니 성인은 바로 여기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복하는 것은 기이고 반복하는 원인은 스스로 오는 것입니다. 천지의 마음이 끊임없이 낳고 낳는 작용이 아니라면 양은 극성하여 한번 끊기면 다시는 계속되지 않을 것이니 어찌 다시 안에서 생겨나 열고 닫히는 무궁한 작용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말씀하신 움직임의 단서이며 일양이 움직이는 원인이지 일양이 이미 움직인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은 아닙니다. 밤기운은 천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바로 기를 회복하는 곳이니 실로 그 원인을 구한다면 또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誨諭曲折數條, 始皆不能無疑, 旣而思之, 則或疑或信而不能相通. 近深思之, 乃知只是一處不透, 所以觸處窒礙. 雖或考索彊通, 終是不該貫. 偶却見得所以然者, 輒具陳之, 以卜是否.
大抵日前所見累書所陣者, 只是儱侗地見得箇‘大本達道’底影象, 便執認以爲是了, 却於‘致中和’一句全不曾入思議, 所以累蒙敎告以求仁之爲急, 而自覺殊無立脚下功夫處. 蓋只見得箇直截根源傾湫倒海底氣象, 日間但覺爲大化所驅, 如在洪濤巨浪之中, 不容少頃停泊, 蓋其所見一向如是, 以故應事接物處但覺粗厲勇果增倍於前, 而寬裕雍容之氣略無毫髮. 雖竊病之, 而不知其所自來也. 而今而後, 乃知浩浩大化之中, 一家自有一箇安宅, 正是自家安身立命, 主宰知覺處, 所以立大本, 行達道之樞要. 所謂體用一源, 顯微無間者, 乃在於此. 而前此方往方來之說, 正是手忙足亂, 無著身處. 道邇求遠, 乃至於是, 亦可笑矣.
正蒙可疑處, 以熹觀之, 亦只是一病. 如定性則欲其不累於外物, 論至靜則以識知爲客感, 語聖人則以爲因問而後有知, 是皆一病而已. ‘復見天地心’之說, 熹則以爲天地以生物爲心者也, 雖氣有闔闢, 物有盈虛, 而天地之心則亘古亘今未始有毫釐之間斷也. 故陽極於外而復生於內, 聖人以爲於此可以見天地之心焉. 蓋其復者氣也, 其所以復者, 則有自來矣. 向非天地之心生生不息, 則陽之極也一絶而不復續矣, 尙何以復生於內而爲闔闢之無窮乎? 此則所論動之端者, 乃一陽之所以動, 非徒指夫一陽之已動者而爲言也. 夜氣固未可謂之天地心, 然正是氣之(3-1373)復處, 苟求其故, 則亦可以見天地之心矣.
장경부에게 답함 答張敬夫
【해제】주자서신편년고증에 의하면 이 글은 건도 2년(병술; 1166, 37세) 가을의 편지이다. 병술년에 주자는 중화구설을 확립했는데, 그 내용은 ‘심은 이발이고 성은 미발이다’는 호굉의 언명과 장남헌의 인도로부터 크게 영향 받은 것이다.
앞 글에서 말씀 드렸듯이 고요하며 아직 발동하지 않은 뜻과 양심의 발현의 단서는 제 생각에 과거의 편파적이고 막힌 견해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러나 그 사이에 말의 병폐가 많아 아직 정밀하지 않습니다. 근일 편지를 보내고 난 후 여러 날 동안 깊이 생각해 보니 그 본 모습이 더욱 정밀하고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성현의 책과 근세 여러 훌륭한 선생들이 남긴 말씀을 갖다 놓고 읽으며 증험해 보니 맞아 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평상시에 의심하며 아직 분명하게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이제는 모두 억지로 안배하지 않아도 가끔 제 스스로 시원스럽게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자신하며 천하의 이치는 과연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앎을 완성하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며 경에 처하고 의에 정밀한 공부는 이제부터 펼칠 곳이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현의 방책이 어찌 나를 속이겠습니까!
천하를 관통하는 것은 단지 하나의 천기활물일 뿐인데, 그것이 흘러 운행하며 발용하여 끊임없이 포용하고 생성할 뿐입니다. 이미 발동한 것에 근거하여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을 말하면 이미 발동한 것은 인심이고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은 모두 성으로 어떤 사물이라도 이것을 갖추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어찌 따로 하나의 사물이 한 때에 얽매이고 한 곳에 한정된 것을 이름 하겠습니까? 즉 날마다 사용하는 사이에 혼연한 정체는 마치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천도의 운행도 무궁할 뿐입니다. 이것은 체용, 정조, 동정, 본말이 분명하여 터럭 하나의 간격마저도 없으니, 솔개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르며 닿는 곳마다 환히 밝을 것입니다.
보존한다는 것은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고 배양한다는 것은 이 마음을 배양하는 것일 뿐이니,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고서야 바르게 함이 없으며, 마음은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다소 안배하였지만 안치할 곳이 없었습니다. 물이 흘러 배를 띄우면 묶어 놓은 줄을 풀고 노를 바르게 하여 물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처럼 오직 뜻이 가는 바대로 할 뿐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찌 쉽지 않겠습니까! “조금도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명도 선생의 말씀이 실로 쓸데없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정의 문하 중에서 먼저 깨달은 사람으로 오직 상채 사공만이 견해가 투철하여 막힌 곳이 없었고 나머지는 비록 제가 감히 망녕스럽게 지목하여 의논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말을 음미하면 또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근래 범백숭이 소무에서 찾아 왔길래 서로 이 점을 매우 자세하게 강론하면서 또한 예전에 체득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전에는 여기에 마음을 쓰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비록 선각자의 발명과 지시가 간절하지만 그러나 사의는 물거품 속에 매몰되어 그 실마리를 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노형께서 빗장을 벗기고 열쇠를 열어 바로 그 사사로움을 열어 주고 매우 부지런히 가르침을 주면서 어리석다고 버리시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것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인지요! 필설로는 감사를 다 표현 할 수 없습니다. 고명하신 선생께서 보시기에 어떠한지요.
맹자에 관한 여러 가지 주장은 처음에는 서로 맞지 않는 곳이 있어서 한두 가지 적어 보내 가르침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제 다시 보니 갑자기 의심했던 것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은 선악으로 이름 할 수 없다”는 주장만큼은 제가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선이란 악이 없는 것을 말하는데, 좋아하거나 싫어함이 있다는 것은 단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일 뿐이니 어찌 애초부터 불선함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선이라고 이름 한다고 해서 어찌 옳지 못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는 것을 성이라고 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이치라고 하는 것이 선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성 밖에 이치가 따로 있는 것이니 두 가지로 나누어진 것이라는 의심이 듭니다. 『지언』은 이 점에 있어서 비록 말한 바가 있지만 그러나 맹자의 말씀은 본래 스스로 혼연하기 때문에 다시 나누고 찢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언』에서도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그러나 또 “순수한 천지의 마음은 도의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선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선이라고 이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점을 잃지 않는다면 어디를 가든 선이 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선악으로 이름 할 수 없다”는 것은 기껏해야 일종의 전어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제가 여러 번 의심하며 그만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前書所禀寂然未發之旨, 良心發見之端, 自以爲有小異於疇昔偏滯之見, 但其間語病尙多, 未爲精切. 比遣書後, 累日潛玩, 其於實體似益精明. 因復取凡聖賢之書, 以及近世諸老先生之遺語, 讀而驗之, 則又無一不合. 蓋平日所疑而未白者, 今皆不待安排, 往往自見灑落處. 始竊自信, 以爲天下之理其果在是, 而致知格物․居敬精義之功, 自是其有所施之矣. 聖賢方策, 豈欺我哉!
蓋通天下只是一箇天機活物, 流行發用, 無間容息. 據其已發者而指其未發者, 則已發者人心, 而凡未發者皆其性也, 亦無一物而不備矣. 夫豈別有一物拘於一時․限於一處而名之哉? 卽夫日用之間, 渾然全體, 如川流之不息, 天運之不窮耳. 此所以體用․精粗․動靜․本末洞然無一毫之間, 而鳶飛魚躍, 觸處朗然也.. 存者存此而已, 養者養此而已,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勿助長”也. 從前是做多少安排, 沒頓著處. 今覺得如水到船浮, 解維正柁而沿洄上下, 惟意所適矣. 豈不易哉! 始信明道所謂“未嘗致纖毫之力”者, 眞不浪語. 而此一段事, 程門先達惟上蔡謝公所見透徹, 無隔礙處, 自餘雖不敢妄有指議, 然味其言亦可見矣. 近范伯崇來自邵武, 相與講此甚詳, 亦嘆以爲得未曾有而悟前此用心之左. 且以爲雖先覺發明指示不爲不切, 而私意汨漂, 不見頭緖. 向非老兄抽關啓鍵, 直發其私, 誨諭諄諄, 不以愚昧而捨置之, 何以得此? 其何感幸如之! 區區筆舌蓋不足以爲謝也, 但未知自高明觀之復以爲如何爾.
孟子諸說始者猶有齟齬處, 欲一二條陳以請. 今復觀之, 恍然不知所以爲疑矣. 但‘性不可以善惡名’, 此一義熹終疑之. 蓋善者無惡之名, 夫其所以有好有惡者, 特以好善而惡惡耳, 初安有不善哉? 然則名之以善, 又何不可之有? 今推有好有惡者爲性, 而以好惡以理者爲善, 則是性外有理而疑於二矣. 知言於此雖嘗著語, 然恐孟子之言本自渾然, 不須更分裂破也. 知言雖云爾, 然亦曰‘粹然天地之心, 道義完具’, 此不謂之善, 何以名之哉? 能勿喪此, 則無所適不爲善矣. 以此觀之, 不可以善惡名, 大似多却此一轉語. 此愚之所以反覆致疑而不敢已也.
장경부에게 묻다 問張敬夫
【해제】주자서신편년고증에 의하면 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세)의 편지이다. 이 편지는 『문집』권32의 제6서, 제7서, 제8서 그리고 제9서와 함께 유사한 내용을 토론하고 있다. 이 편지는 특히 심의 본질과 그 기능, 심의 주재와 정의 움직임 그리고 양자간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마음은 모든 이치를 갖추고 있으면서 변화에 감통하여 낳고 낳는 작용이 무궁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변화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물을 열어주고 일을 완성하며 천하를 총괄하는 것입니다. 원융하고 신기하며 방정하고 명철한 지혜는 변화를 이루는 것이니 두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그 작용은 신묘하지 않습니다. 작용이 신묘하지 않으면 마음에 가린 바가 있게 되어 두루 밝게 비추지 못합니다. 마음을 씻는다는 것은 바로 가림이 없이 밝게 빛나게 하는 것일 뿐이지 더 보태는 것은 아닙니다. 적연한 가운데에 모든 이치는 반드시 갖추어져 있어도 이름 할 수 있는 징조는 없는데 그것을 은밀하다고 말합니다. 반드시 깜짝 놀라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이것이 바로 마음의 주재이고 감정의 움직임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心具衆理, 變化感通, 生生不窮, 故謂之易. 此其所以能開物成務而冒天下也. 圓神․方知變易, 二者闕一, 則用不妙. 用不妙, 則心有所蔽而明不遍照. 洗心正謂其無蔽而光明耳, 非有所加益也. 寂然之中, 衆理必具而無朕可名(一), 其密之謂歟? 必有怵惕惻隱之心, 此心之宰而情之動也. 如此立語如何?
(一)必: 正訛改作‘畢’.
장경부에게 묻다 問張敬夫
【해제】편년고증에 의하면 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세)의 편지이다. 앞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역시 심과 정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주자는 중화신설을 거치면서 심통성정론을 확립하는데 심통성정론의 핵심적 의미는 심과 성과 정의 영역과 그 관계를 유기적이고도 합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지각적 능력과 선을 향한 수양의 이론적 근거를 정초하려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인식 위에 그는 정에 대한 심의 통제력을 중시하였는데 이런 생각이 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저는 사물에 감응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정이다고 생각합니다. 정은 성에서 근본하며 심에게 주재됩니다. 심은 정을 주재하는데 그대로 움직이면 법도에 맞아 떨어지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인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심이 주재하지 않고 정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인욕으로 흘러 항상 그 올바름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리와 인욕의 판별과 중절과 부중절의 구분은 단지 심이 주재하느냐 아니면 주재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므로 정이 그것을 병 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이미 분명합니다. 비록 중절했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 역시 정입니다. 하지만 중절하는 것은 마음일 뿐입니다. 지금 어린 아이가 우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을 문득 보는 것은 마음의 감응입니다. 깜짝 놀라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인의 단서인데 정의 움직임을 바로 인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직 사물에 감응하지 않았을 때 마음은 비록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러나 싹 터 나왔을 때는 움직이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구한다면 아마도 공부할 곳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의심하는 것이 이와 같은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熹謂感於物者心也, 其動者情也. 情根乎性而宰乎心, 心爲之宰, 則其動也無不中節矣, 何人欲之有? 惟心不宰而情自動, 是以流於人欲而每不得其正也. 然則天理人欲之判, 中節不中節之分, 特在乎心之宰與不宰, 而非情能病之亦已明矣.. 蓋雖曰中節, 然是亦情也, 但其所以中節者乃心爾. 今夫乍見孺子入井, 此心之感也. 必有怵惕惻隱之心, 此情之動也. 內交要譽, 惡其聲者, 心不宰而情之失其正也. 怵惕惻隱乃仁之端, 又可以其情之動而遽謂之人欲乎? 大抵未感物時, 心雖爲未發, 然苗裔發見, 却未嘗不在動處. 必舍是而別求, 却恐無下功處也. 所疑如此, 未審尊意如何?
장경부에게 물음 問張敬夫
【해제】편년고증에 의하면 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세)의 편지이다. 이 서신의 말미에 있는 주에서 장식은 이렇게 회답했다. “근래 저의 생각은 보내 주신 편지와 매우 같습니다. 요점은 존망출입 중에 은미한 본체를 아는데 있습니다.” 주자는 다음 서신 즉 「問張敬夫」제8서(『문집』권32, p.1377)에서 “존망출입 하는 것은 실로 인심입니다. 매우 은미한 본체는 더하여 붙인 적도 없습니다”고 했으니 남헌의 학설에 회답하여 이 서신을 쓴 것이다. 또 이 편지에서 “『유서』에서 인심은 사욕이고 도심은 천리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사욕이라는 두 글자는 너무 과하다고 의심하였는데”라고 했다. 또 「問張敬夫」제9서(『문집』권32, p.1377)에서 “인심과 사욕의 설명”이라고 했는데, 토론한 것은 모두 「問張敬夫」제7서(『문집』권32, p.1376)를 이어 받은 것이다. 때문에 「問張敬夫」제7서, 제8서, 제9서는 서로 이어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 해 주자는 장식 오익 여조검 등과 심의 문제를 토론하고 「觀心說」(문집권67, p.3540)을 지었다.(속경남, 연보장편,p.519.)
『유서』에서 인심은 사욕이고 도심은 천리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사욕”이라는 두 글자는 너무 과하다고 의심하였는데 근래 생각해보니 그 뜻을 알겠습니다. 심이란 하나입니다. 천리를 구비하여 곳에 따라 발현해 나오는 것으로부터 말하면 그것은 도심이고, 구하는 것이 있어서 도모하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는 것으로부터 말하면 인심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하기 위해 도모하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불선한 것은 아닙니다. 사욕이라고 하는 것은 터럭 하나라도 천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발출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바로 사욕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일 삼는 것이 있고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고 잊지도 않으며 조장하지 않는 것”을 얻으려면 이러한 계교가 없어야 하며, 전체는 천리의 유행으로 인심에 나아가 도심을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또 “연비어약”으로 밝힌 것입니다. 선각자가 후인을 위한 것이 간절하고 지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다시 가르침을 내려주기 바랍니다. (장식이) 회답하기를 “근래 저의 생각은 보내 주신 편지와 매우 같습니다. 요점은 존망출입 중에 은미한 본체를 아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도심은 애당초 어찌 밖에 있겠습니까?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인심일 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아야 알 수 있으니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요?
遺書有言, 人心私欲, 道心天理. 熹疑‘私欲’二字太重, 近思得之, 乃識其意. 蓋心一也, 自其天理備具․隨處發見而言, 則謂之道心., 自其有所營爲謀慮而言, 則謂之人心. 夫營爲謀慮, 非皆不善也, 便謂之私欲者, 蓋只一豪髮不從天理上自然發出, 便是私欲. 所以要得“必有事焉而勿正勿忘勿助長”, 只要沒這些計較, 全體是天理流行, 卽人心而識道心也. 故又以“鳶魚飛躍”明之. 先覺之爲後人也, 可謂切至矣. 此語如何? 更乞裁喩. 答云 “栻近思, 却與來喩頗同. 要當於存亡出入中識得惟微之體, 識得則道心初豈外是? 不識只爲人心也. 然順實見方得, 不識如何?”
장경부에게 묻는 편지 問張敬夫
【해제】편년고증에 의하면 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세)의 편지이다. 이 편지는위의 편지를 이어 받아 심의 존망출입을 논하고 있다. 존망출입 하는 것은 인심이다는 논단과 인심과 도심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모두 주목할 점이다.
존망출입 하는 것은 실로 인심입니다. 매우 은미한 본체는 더하여 붙인 적도 없고, 비록 버리고 잃어버린다 해도 조금이라도 덜어진 적이 없습니다. 비록 시도 때도 없이 들고 난다고 말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우뚝 솟아 있기에 덮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 점을 알아낸다면 도심의 은미함은 애당초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알지 못하면 인심이다 할 것입니다. 인심은 실로 도심과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다른 두 가지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또 두 곳에서 구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熹謂存亡出入固人心也, 而惟․微之本體, 亦未嘗加益 : 雖舍而亡, 然未嘗少損. 雖曰出入無時, 未嘗不卓然乎日用之間而不可掩也. 若於此識得, 則道心之微初不外此, 不識則人心而已矣. 蓋人心固異道心, 又不可作兩物看, 不可於兩處求也. 不審尊意以謂然否?
장경부에게 답함 答張敬夫
【해제】편년고증에 의하면 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세)의 편지이다. 이상의 두 편지와 함께 심에 관한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장남헌의 지적에 다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더 나아가 인심과 사욕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함으로써 도심과 인심의 의미 관계를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심과 사욕에 관한 설명은 보내주신 편지에서 고친 글자가 매우 좋습니다. 제가 한 말의 잘못은 역시 말씀하신대로 본원에 대한 이해가 아직 명료하지 않은 병폐이지 한 구절 한 뜻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예전에 “필유사”라는 말을 인용하여 제멋대로 논의했던 것 역시 적당한 것은 아니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순과 우가 주고받을 때 인심과 사욕을 말한 것은 일반인들이 말하는 사욕과는 다릅니다. 얽매인 뜻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래는 도심의 발동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끝내 인심의 영역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른바 “인욕이 발동하면 망녕됨이 있을 것이다. 안자에게 완벽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점 일 것이다”고 한 것이 그렇습니다. 이미 망념됨이 있다면 사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모두 이러한 뜻이 없고 자연스럽게 중도를 따라야 비로소 순수한 도심입니다. “필유사언”이란 이런 이치를 보고 존양 공부를 하는 곳으로 이른바 순수한 도심이라는 것과는 아무래도 간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본원을 잘 살폈다면 이제부터 정일한 공부를 더하여 순수한 곳에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그 중간에는 차례가 있을 것입니다. “유정유일”도 인심을 떠날 수는 없으니 단지 이렇게 사욕을 모두 극복한다면 완전히 천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끝내 도달할 수 있는 이치는 없을 것입니다.
人心私欲之說, 如來敎所改字極善. 本語之失, 亦是所謂本原未明了之病, 非一句一義見不到也. 但愚意猶疑向來妄論引‘必有事’之語亦未的當, 蓋舜禹授受之際, 所以謂人心私欲者, 非若衆人所謂私欲者也, 但微有一毫把捉底意思. 則雖云本是道心之發, 然終未離人心之境. 所謂“動以人, 則有妄, 顔子之有不善, 正在此間”者是也. 旣曰有妄, 則非私欲而何? 須是都無此意思, 自然從容中道, 才方純是道心也. ‘必有事焉’, 却是見得此理而存養下功處, 與所謂純是道心者蓋有間矣. 然旣察本原, 則自此可加精一之功而進夫純耳, 中間儘有次第也. ‘惟精惟一’亦未離夫人心, 特須如此克盡私欲, 全復天理. 儻不由此, 則終無可至之理耳.
장경부의 문목에 답함 答張敬夫問目
【해제】편년고증에 의하면 이 글은 건도 6년(경인; 1170, 41세)의 편지이다. 첫 단락에서 “마음을 다하여 본성을 안다”(盡心知性)는 문제를 토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문집권67(p.3535)의 「盡心說」과 같은 것으로 기축년(1169년)의 중화신설에 대한 인식 이후에 쓴 것이다. 또 이 서신에서 “마음 속 가득 측은한 마음이다”는 문단의 내용은 문집권43(p.2035)의 「답임택지」제12서와 완전히 같다. 임택지에게 보낸 서신은 건도 경인년에 쓴 것이므로 이 편지도 건도 6년에서 7년 사이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맹자는 “그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그 본성을 안다. 그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안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본체는 광활하여 애당초 한계가 없지만 형기의 사사로움에 속박됨으로써 이에 가려져 다하지 못함이 있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하고 천리를 궁구하여 일단 탈연한 경지에 이른다면 사사로운 뜻을 벗어 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광활한 본체는 터럭 한 올의 가림도 없을 것이고 천하의 이치는 멀고 가까움 정밀하고 조악함이 모두 확충한 바를 따라 막힘없이 통할 것입니다. 본성이 본성이고 하늘이 하늘인 까닭은 아마 이것을 떠나지 않고 일관하기 때문이니 차례와 순서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천하는 인으로 돌아간다”고 하신 것은 바로 이 뜻입니다.
“그 마음을 보존하고 그 본성을 길러 하늘을 섬긴다”는 것은 마음과 본성 모두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므로 제대로 존양하지 못하여 곡망하게 된다면 이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심이란 성을 주재하는 것이니 경으로 잘 보존한다면 성은 존양할 수 있고 해로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군자가 하늘을 받들고 따르는 까닭입니다. 그 마음을 다하여 그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안자와 염백우 조차도 이 말의 뜻을 일삼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학자는 그 마음 다하기를 구할 때에도 이것으로부터 들어가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이란 학문의 시작과 끝이며, 이른바 “위아래를 철저하게 관철”하는 도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깊고 낮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요절과 장수는 두 가지가 아니다. 수신하며 기다리는 것이 바로 명을 세우는 것이다”에서 “일찍 죽는다”(妖)는 夭와 같은 뜻입니다. 요절과 장수의 차이가 있는 것은 기를 품수 받을 때 다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슬픔으로 그 마음을 둘로 나누지 말고 오직 수신하여 기다린다면 하늘의 바른 명은 나로부터 수립될 것이니 기품의 길고 짧은 것은 논할 바가 아닙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사사로운 지혜가 싹트지 않고 모든 이치를 관통하여, 거두어 들여도 갖추지 않은 것이 없고 확장하여도 통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학문이 여기에 이르면 성은 덕이 되어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되니 하늘이 하늘이 되는 것은 이것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보존한다는 것은 이것을 보존하는 것이고, 기른다는 것은 이것을 기르는 것이며, 일삼는다는 것은 이것을 일삼을 뿐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그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 수신하여 그 올바름을 기다린다면 기품의 치우침에 구속되지 않고 하늘의 올바른 명도 나로부터 수립될 것입니다.
고자는 “말뜻을 얻지 못하면 마음에서 그 뜻을 구하지 말라. 마음에서 그 뜻을 얻지 못하면 기에서 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맹자가 고자의 말을 인용하여 공손추에게 일러주며 고자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이 이와 같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자의 뜻은 이해하지 못한 말은 마땅히 말에서 그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이지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는 안 되며,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마땅히 마음에서 구해야하는 것이지 다시 기에서 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천성이 강하고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힘껏 쇠고집을 부려 한 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학문이 비록 바르지 못하더라도 맹자보다 먼저 부동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을 논한 여러 장절을 보면 이치에 어긋나고 말이 막히면 여러 번 그 주장을 바꾸어 이기려고 하다가 끝내 사리에 맞게 뒤엎을 수 없으면 자세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말이 잘못되었을 때 마음에서 반성하여 지극히 옳은 귀결점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에서 얻지 못하여도 마음에서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험한 것입니다.
“마음에서 얻지 못하면 기에서 구하지 말라는 것은 옳지만, 말에서 얻지 못하였으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고 맹자는 고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의 옳고 그름이 이와 같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마음이 올바르지 못한 것 모두가 반드시 기가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에서 구하지 말라는 것은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잘못된 말은 모두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런데도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고 하면 이것은 옳지 못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천선생이 말씀하기를 “사람이란 반드시 인의의 마음이 있고 난 후에야 인의의 기가 맑게 밖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마음에서 얻지 못하면 기에서 구하지 말라는 것은 옳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씀하기를 “고자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마도 의가 내심에 있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다”고 하였는데 모두 이런 뜻입니다. 하지만 아래 문장을 보면, 기도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니 기에서 구하지 말하는 주장이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음이 기를 움직이게 하는 때는 많고 기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때는 적으니 맹자는 그가 이 점에서 옳았던 것만을 취한 것입니다. “옳다”라고 말한 것은 그럴 수 있다는 말일 뿐이지 완전히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말에 관해 말하면, 그것은 비록 입에서 나오지만 사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안으로 가리고 빠지고 떨어지고 곤궁한 병이 있으면 밖으로는 비뚤어진 말 지나친 말 사악한 말 회피하는 말의 잘못이 있게 됩니다. 말에서 얻지 못하고 항상 마음에서 구한다면 이치를 살피는 것이 날로 더욱 정밀할 것입니다. 맹자가 말을 아는 것과 호연지기를 키우는 것이 부동심의 근본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이런 도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자가 반대한 것은 그는 단지 말이란 밖으로 나오는 것임을 보았을 뿐이지 그것이 안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지 못하였으니 의를 외부의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치를 해친 것이 이렇게 깊습니다. 따라서 맹자는 단연코 옳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고자의 부동심이 맹자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어찌 끝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가슴속 가득 측은지심이다”는 사람의 몸에 이러한 이치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가장 친절합니다. 만약 이 점을 안다면 만물은 모두 나와 한 몸이고, 다시는 안팎의 구별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 점을 알지 못한다면 오히려 몸 밖으로 나가더라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니 끝이 없고 서로 관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경정이 말하기를 “나는 천지 만물이 모두 나의 본성임을 알고 다시는 내 몸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천 선생은 “다른 사람이 배 불리 먹으면 그대는 배고프지 않던가?”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병폐를 잘 설파한 것입니다. 『지언』에서도 “불교에서는 허공과 속세가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하고, 부모가 낳아 준 몸은 공경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역시 이러한 병폐를 말한 것입니다.
“중니가 어찌 배웠겠는가”에 대한 예전의 설명은 너무 고원한데 문장의 뜻을 자세히 음미하면 문왕과 무왕의 도는 단지 선왕의 예악형정과 교화문장을 가리킨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문왕과 무왕을 말했고 또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 것입니다. 만약 도체라는 측면에서 논한다면 이와 같은 주장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그 의미를 탐구할 때 이 구절은 모두 눈감고 지나갔습니다. 비록 이광조가 완곡한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끝내는 기력을 다해버리고 결국에는 사방이 평탄한 곳에 내려놓는 것만 못하게 되었으니, 의미 심장합니다. 하지만 성인은 배우지 않음이 없고 스승으로 여기지 않음이 없으면서도 일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본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단지 요즘 세상의 박잡한 학문일 뿐이니 공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공의 대답은 비록 겸손한 말투가 있지만 그러나 높이 받드는 뜻은 역시 숨길 수 없습니다.
“적감”에 대한 설명은 매우 훌륭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부터 말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는 말도 한쪽만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爲)자 아래에는 붙이지 못합니다. 이제 “중과 화가 있기 때문에 적감할 수 있다. 적감할 수 있기에 중화를 이룬다”고 고치고 싶은데 어떨지요?
“주역이란 왜 이렇게 하는가”에서부터 “천하의 의혹을 끊는다”에 이르기까지 이 말은 주역에서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시초 점의 덕”은에서부터 “죽이지 않는 것이다”까지는 성인이 주역을 지은 근본을 말한 것입니다. 시초는 움직이고 괘는 정지해 있는데 효는 끊임없이 변화하니 아직 그리기 전에도 이 이치는 이미 성인의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물을 감응하지 못했을 때는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며 징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나와 사물에 감응하게 되면 천하를 근심하며 이른바 원신방지라는 것이 각각 공용의 결과에 나타납니다. “총명예지 신무불살”은 그 체용의 묘함을 말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늘의 도에 밝다”로부터 “백성을 인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에 이르기까지 는 『역』을 지은 일을 말한 것입니다.
“성인은 이것으로 재계하고 신명함으로 그 덕을 밝힌다”는 역을 사용하는 일을 말한 것입니다. 재계란 공경하는 것입니다. 성인은 한 때 한 가지 일이라도 공경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단지 점치는 일을 두고 말한 것으로 지극한 정성스러움을 더 잘 볼 수 있으며, 마치 공자가 신중하게 했던 것은 재계 전쟁 그리고 질병이다의 뜻과 같습니다. 맑고 순일한 것을 ‘재’라고 하고, 숙연하고 조심하는 것을 ‘계’라고 합니다. 이 말을 잘 곱씹어 보면 그 덕을 신명하게 한다는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건곤은 주역의 정온(精蘊)이로구나”부터 “건곤은 아마 거의 멈추어 버릴 것이다”까지는 역도의 통체로부터 말한 것으로 건은 양 곤은 음으로 움직이고 고요할 때 마다 깊은 의미가 됩니다. 건곤이 처음 이루어져 상하로 배열되는 것으로부터 보면 역의 도는 건곤의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건곤이 무너지면 역의 도를 볼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역을 볼 수 없다면 건은 건 그 자체이고, 곤은 곤 그 자체이기 때문에 “역을 볼 수 없으면 건곤은 아마 거의 멈추고 말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
“학이”는 이 편의 이름을 말한 것입니다. 편의 머리 두 글자를 취하여 구별한 것으로 애당초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학”의 뜻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이란 글자 뜻으로 말하면 자신이 아직 모르고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할 수 있게 깨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사리로 말하자면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이르게 구하는 것은 모두 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농사짓고 활 쏘고 말 타는 일처럼 사소한 것 역시 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에 맞추어서 이름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이것만을 의미한다면 이른바 학자라는 사람은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처음 선비가 된 사람은 배워서 성인의 일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이천선생은 “유자의 학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천선생의 뜻은 오늘날의 학문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사장학과 훈고학 그리고 유자의 학문이다. 도에 통달하고 싶으면 유자의 학을 버리고는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윤시강이 말한 학자란 배움으로써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배워 성인에 이르는 것 역시 사람이 되는 도리를 다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모두 간절하고 긴요한 말씀입니다. 부자께서 뜻을 둔 것과 안자가 배운 것 그리고 자사와 맹자가 전한 것은 모두 학문일 뿐입니다. 그들의 정순함이 모두 이 책에 있으며 이 편이 밝힌 것 또한 학문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학자는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곡한 날에는 노래하지 않는다”는 하루 중 곡하고 노래하기도 한다면 이것은 예절 법도를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범씨가 말하기를 “슬픔과 즐거움은 무상할 수 없다. 무상하면 마음을 기를 수 없다”고 했는데, 곡과 노래를 같은 날 하지 않는 것은 타인을 생각해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을 기르는 것입니다. 윤씨가 말하기를 “여기에서 성인의 충후한 마음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든 음악이 여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순이 만든 음악이 자신의 신세를 잊게 할 만큼 이렇게 아름다운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말한 것입니다.
“조심하기만 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으면”에서 “위축된다”(葸)는 사(絲)와 리(里)의 반절로 읽고 뜻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교는 급하다는 뜻입니다.
“주무실 때는 시체처럼 몸을 꼿꼿이 하지 않았다”에 대하여 범씨는 태만한 기운이 몸에 펼쳐질까 싫어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손사막은 “잠잘 때는 평평하게 하고자 하고 깨면 편안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공자의 “주무실 때는 몸을 꼿꼿이 하지 않았다”를 인용하여 증명하였습니다.
“군자는 검은색과 진홍색으로 옷고름과 소매 둘레를 꾸미지 않는다”고 했는데, 감(紺)은 검은색 입니다. 『설문해자』에서 “진한 푸른 버드나무 색에 붉은 빛이 도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추(緅)는 진홍색입니다. 꾸민다(飾)는 것은 옷고름과 소매 둘레를 말한다. 재계하고 입는 옷은 진홍색이고, 삼년상을 입을 때 기년이 다가와 소상(연제)이 지나면 진홍색으로 꾸민 옷을 입습니다. 홍색과 자색은 정색이 아닙니다. 청, 적, 황, 백, 흑은 오방의 정색입니다. 녹, 홍, 벽, 자, 유색은 오방의 간색입니다. 목의 청색은 토의 황색을 이기니 청색과 황색을 합하면 녹색이 되어 동방의 간색이 됩니다. 금의 백색은 목의 청색을 이기니 청색과 백색을 합하면 벽색이 되어 서방의 간색이 됩니다. 화의 적색은 금의 백색을 이기니 적색과 백색을 합하여 홍색이 되어 남방의 간색이 됩니다. 수의 흑색은 화의 적색을 이기니 적색과 흑색을 합하여 자색이 되어 북방의 간색이 됩니다. 토의 황색은 수의 흑색을 이기니 황색과 흑색을 합하여 유색이 되어 중앙의 간색이 됩니다.
“하고자 할 수 있는 것을 선이라고 한다”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으로, 생각하거나 힘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득 어린 아이가 우물로 기어드는 것을 본다면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소인은 한가롭게 거처할 때 거리낌 없이 불선한 일을 하다가 군자를 보고 난 후에는 슬며시 그 불선함을 숨기고 선함을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문득 보고”와 “슬며시”라는 글자를 잘 살펴보면 하고자 할 수 있는 것을 선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선의 으뜸이고 어떤 도리 보다 앞서는 즉 모든 행위의 기틀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고자 할 수 있는 것을 선이라고 한다는 기미입니다. 성인은 여기에 신묘하여 천부적인 것으로 여기고, 현인은 여기에 밝아 공경하며 선인은 이것을 따라도 알지 못하고 소인은 이것을 버리고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기미는 요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걸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만물의 시원이 되고 만물을 끝맺는 신묘함을 갖습니다.
“희노애락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고 하는데 즉 성이다. 발동하여 모두 법도에 들어맞는 것을 화라고 하는데 바로 정이다”고 합니다. 자사가 이 말을 한 것은 학자들이 여기에서 심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심이란 정과 성의 덕을 묘합한 것입니다.
『역』의 “억지로 생각해낸 것도 없고 억지로 한 것도 없는 적연부동함”은 충이고 경이며 대본을 세우는 것입니다. “음양이 교감하여 드디어 천하의 만사에 통하는 것”은 서이고 의이며 달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정”, “정”, “안” 이 세 글자는 비록 분절의 순서가 있지만 사실은 “멈출 줄 알고”난 후에야 쉽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편안한 후에 사려할 수 있으며, 사려한 후에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이 나아가기 가장 어려운 곳으로 대부분은 편안한 곳에 이르면 안주해 버립니다. “편안한 후에 사려할 수 있다”는 안자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얻음”(得)의 지위와 거리가 비록 매우 가깝지만 그러나 나아가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활시위를 가득 잡아 당겼을 때 분수 이상은 더 이상 당기기 어렵습니다.
“순 임금은 비근한 말을 잘 살폈다”에서 “비근한 말”(邇言)이란 천근한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른바 평상시의 말과 같은 뜻입니다. 평상시의 말은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지만 순 임금은 잘 살폈으니 도의 본 모습은 정밀함과 조악함의 차별이 없으니 그것을 통찰하지 못하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맹자는 “밭 갈며 농사짓고 그릇 굽고 고기 잡는 일부터 임금이 되는 일까지 사람들에게 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말씀하셨고, 또 “좋은 말 한마디 듣고 선행을 하나 보면 마치 강물이 터져 흐르듯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비근한 말을 잘 살피는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이천 선생이 말씀하기를 “도에 깊이 나아간 후에는 비록 보통 사람의 말을 듣고 천근한 일을 하더라도 의리가 아닌 것이 없다”고 했는데 이와 같은 것입니다.
맹자는 분명하면 움직였으나 아직 변하지 못한 것이고, 안자는 움직이면 곧 변했지만 아직 화하지 않은 것입니다.
천지가 있고 난 후에 이 기는 항상 운행하며, 이 몸이 있고 난 후에 이 마음은 항상 발동합니다. 항상 운행하는 그 속에서 태극을 보려면 항상 발동한 그 속에서 본성을 보아야 합니다. 항상 운행하는 것을 떠나 따로 태극을 구하고 항상 발동하는 것을 떠나 따로 본성을 구한다면 아마 불교와 도교의 황당함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孟子曰: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性則知天矣.’ 心體廓然, 初無限量, 惟其梏於形器之私(一), 是以有所蔽而不盡. 人能克己之私, 以窮天理, 至於一旦脫然, 私意剝落, 則廓然之體無復一毫之蔽, 而天下之理遠近精粗, 隨所擴充, 無不通達. 性之所以爲性, 天之所以爲天, 蓋不離此而一以貫之, 無次序之可言矣. 孔子謂‘天下歸仁’者, 正此意也.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心性皆天之所以與我者, 不能存養而梏亡之, 則非所以事天也 夫心主乎性者也, 敬以存之, 則性得其養而無所害矣. 此君子之所以奉順乎天, 蓋能盡其心而終之之事, 顔․冉所以請事斯語之意也. 然學者將以求盡其心, 亦未有不由此而入者. 故敬者學之終始, 所謂‘徹上徹下’之道, 但其意味淺深有不同爾.
‘殀壽不貳, 脩身以俟之, 所以立命也.’ 云‘殀’, 與‘夭’同. 夫夭壽之不齊, 蓋氣之所禀有不同者. 不以悅戚二其心, 而惟脩身以俟之, 則天之正命自我而立, 而氣禀之短長非所論矣. 愚謂‘盡心’者, 私智不萌, 萬里洞貫, 歛之而無所不具, 擴之而無所不通之謂也. 學至於此, 則知性之爲德, 無所不該, 而天之爲天者, 不外是矣. 存者存此而已, 養者養此而已, 事者事此而已. 生死不異其心, 而修身以俟其正, 則不拘乎氣禀之偏, 而天之正命自我立矣.
告子曰 : ‘不得於言, 勿求於心. 不得於心, 勿求於氣. ’孟子引告子之言以告丑, 明告子所以不動其心術如此. 告子之意, 以爲言語之失當直求之於言, 而不足以動吾之心․, 念慮之失當直求之於心, 而不必更求之於氣. 蓋其天資剛勁, 有過人者, 力能堅忍固執, 以守其一偏之見, 所以學雖不正, 而能先孟子以不動心也. 觀其論性數章, 理屈詞窮, 則屢變其說以取勝, 終不能從容反覆, 審思明辨, 因其所言之失而反之於心, 以求至當之歸. 此其不得於言而不求諸心之驗也歟(二.
‘不得於心, 勿求於氣可, 不得於言, 勿求於心不可. ’孟子旣引告子之言而論其得失如此. 夫心之不正, 未必皆氣使之, 故勿求於氣, 未爲甚失(三. 至言之不當, 未有不出於心者, 而曰勿求於心, 則有所不可矣. 伊川先生曰: ‘人必有仁義之心, 然後有仁義之氣晬然達於外. 所以不得於心, 勿求於氣可也. ’又曰: ‘告子不得於言, 勿求於心, 蓋不知義在內也. ’皆此意也. 然以下文觀之, 氣亦能反動其心, 則勿求於氣之說未爲盡善. 但心動氣之時多, 氣動心之時少, 故孟子取其彼善於此而已. 凡曰‘可’者, 皆僅可而未盡之詞也. 至於言, 則雖發乎口而實出於心, 內有蔽․陷․離․窮之病, 則外有詖․淫․邪․遁之失. 不得於言而每求諸心, 則其察理日益精矣. 孟子所以知言養氣以爲不動心之本者, 用此道也. 而告子反之, 是徒見言之發於外, 而不知其出於中, 亦義外之意也. 其害理深矣, 故孟子斷然以爲不可. 於此可見告子之不動心所以異於孟子, 而亦豈能終不動者哉?
“滿腔子是惻隱之心”, 此是就人身上指出此理充塞處, 最爲親切. 若於此見得, 卽萬物一體, 更無內外之別. 若見不得, 却去腔子外尋不見, 卽莽莽蕩蕩, 無交涉矣. 陳經正云.. “我見天地萬物皆我之性, 不復知我身之所爲我矣.” 伊川先(3-1381)生曰: “它人食飽, 公無餒乎?” 正是說破此病. 知言亦云.. “釋氏以虛空沙界爲己身(四, 而不敬其父母所生之身”, 亦是說此病也.
‘仲尼焉學’, 舊說得太高, 詳味文意, 文武之道只指先王之禮樂刑政․敎化文章而已, 故特言文武, 而又以未墜於地言之. 若論道體, 則不容如此立言矣. 但向來貪箇意思, 將此一句都瞞過了. 李光祖雖欲曲爲之說, 然終費氣力, 似不若四平放下, 意味深長也. 但聖人所以能無不學無不師而一以貫之, 便有一箇生而知之底本領. 不然, 則便只是近世博雜之學, 而非所以爲孔子. 故子貢之對雖有遜詞, 然其推尊之意, 亦不得而隱矣.
‘寂感’之說甚佳, 然愚意都是要從根本上說來, 言其有此, 故能如此, 亦似不可偏廢. 但‘爲’字下不著耳. 今欲易之云 : ‘有中有和, 所以能寂感. 而惟寂惟感, 所以爲中和也. ’如何?
‘夫易何爲者也’止‘以斷天下之疑’, 此言易之書其用如此.
‘是故蓍之德’止‘不殺者夫’, 此言聖人所以作易之本也. 蓍動卦靜而爻之變易無窮, 未畫之前, 此理已具於聖人之心矣. 然物之未感, 則寂然不動而無朕兆之可名 : 及其出而應物, 則憂以天下, 而所謂圓神方智者, 各見於功用之實矣. ‘聰(3-1382)明睿智, 神武不殺’, 言其體用之妙也.
‘是故明於天之道’止‘以前民用’, 此言作易之事也.
‘聖人以此齋戒, 以神明其德夫’, 此言用易之事也. 齋戒, 敬也. 聖人無一時一事而不敬, 此特因卜筮而言, 尤見其精誠之至. 如孔子所愼齋戰疾之意也. 湛然純一之謂齋, 肅然警惕之謂戒, 玩此則知所以神明其德之意也.
‘乾坤其易之蘊耶’止‘乾坤或幾乎息矣’, 自易道統體而言, 則乾陽坤陰, 一動一靜, 乃其蘊也. 自乾坤成列而觀之, 則易之爲道, 又不在乾坤之外. 惟不在外, 故曰‘乾坤毁則無以見易.’ 然易不可見, 則乾自乾, 坤自坤, 故又曰‘易不可見, 則乾坤或幾乎息矣. ’
‘學而’, 說此篇名也, 取篇首兩字爲別, 初無意義. 但‘學’之爲義, 則讀此書者不可以不先講也. 夫學也者, 以字義言之, 則己之未知未能, 而曉夫知之能之之謂也. 以事理言之, 則凡未至而求至者, 皆謂之學. 雖稼圃射御之微, 亦曰學, 配其事而名之也. 而此獨專之, 則所謂學者, 果何學也? 蓋始乎爲士者所以學, 而至乎聖人之事. 伊川先生所謂‘儒者之學’是也. 蓋伊川先生之意曰, 今之學者有三, 詞章之學也, 訓詁之學也, 儒者之學也. 欲通道, 則舍儒者之學不可. 尹侍講(3-1383) 所謂學者, 所以學爲人也. 學而至於聖人, 亦不過盡爲人之道而已. 此皆切要之言也. 夫子之所志, 顔子之所學, 子思․孟子之所傳, 皆是學也. 其精純盡在此書而此篇所明又學之本, 故學者不可以不盡心焉.
‘哭則不歌’, 一日之中或哭或歌, 是褻於禮容. 范曰: ‘哀樂不可以無常, 無常非所以養心也. ’哭與歌不同日, 不惟恤人, 亦所以自養也. 尹曰: ‘于此見聖人忠厚之心也. ’
‘不圖爲樂之至於斯’, 言不意舜之爲樂至於如此之美, 使其恍然忘其身世也.
‘愼而無禮’葸, 絲里反, 畏懼之貌. 絞, 急也.
‘寢不尸’, 范以爲嫌惰慢之氣設於身體. 孫思邈言: ‘睡欲踧, 覺則舒’, 引夫子‘寢不尸’爲證.
‘君子不以紺緅飾’, 紺, 玄色. 說文云 : ‘深靑楊赤色也. ’緅, 絳色. 飾者, 緣領也. 齋服用絳, 三年之喪, 旣期而練, 其服以緅爲飾. 紅․紫非正色. 靑․赤․黃․白․黑, 五方之正色也. 綠․紅․碧․紫․騮, 五方之間色也. 蓋以木之靑克土之黃, 合靑․黃而成綠, 爲東方之間色. 以金之白克木之靑, 合靑․白而成碧, 爲西方之間色. 以火之赤克金之白, 合赤․白而成紅, 爲南方之間色. 以水之(3-1384)黑克火之赤, 合赤․黑而成紫, 爲北方之間色. 以土之黃克水之黑, 合黃․黑而成騮, 爲中央之間色.
‘可欲之謂善’, 天機也, 非思勉之所及也. ‘今人乍見孺子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而著其善.’ 玩‘乍見’字, ‘厭然’字, 則知可欲之謂善其衆善之首․萬理之先而百爲之幾也歟. 可欲之謂善, 幾也. 聖人妙此而天也, 賢人明此而敬也, 善人由此而不知也, 小人舍此而不由也. 雖然, 此幾不爲堯存, 不爲桀亡, 其始萬物, 終萬物之妙也歟.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性也. 發而皆中節謂之和, 情也. ’子思之爲此言, 欲學者於此識得心也. 心也者, 其妙情性之德者歟.
易‘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忠也, 敬也, 立大本也. ‘感而遂通天下之故’, 恕也, 義也, 行達道也.
‘定’․‘靜’․‘安’三字雖分節次, 其實‘知止’後皆容易進,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此最是難進處, 多是至安處住了. ‘安而後能慮’, 非顔子不能之. 去‘得’字地位雖甚近, 然只是難進. 挽弓到臨滿時, 分外難開.
‘舜好察邇言’, 邇言, 淺近之言也, 猶所謂尋常言語也. 尋常言語, 人之所忽(3-1385)而舜好察之, 非洞見道體無精粗差別不能然也. 孟子曰 : ‘自耕稼陶漁以至爲帝, 無非取諸人者. ’又曰 : ‘聞一善言, 見一善行, 若決江河, 沛然莫之能禦. ’此皆好察邇言之實也. 伊川先生曰: ‘造道深後, 雖聞常人語言, 至淺近事, 莫非義理是如此. ’
孟子明則動矣, 未變也 : 顔子動則變矣, 未化也.
有天地後, 此氣常運 : 有此身後, 此心常發. 要於常運中見太極, 常發中見本性. 離常運者而求太極, 離常發者而求本性, 恐未免釋老之荒唐也.
(一)器 : 正訛改作‘氣’.
(二)不求: 原作‘勿求’, 據宋閩․浙本改.
(三)甚: 原作‘盡’, 據宋閩․浙本改.
(四)以: 原作‘和’, 據宋閩․浙本改.
장경부에게 답함 答張敬夫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서신을 건도 6년(경인; 1170, 41세)에 배열하였다. 하지만 이 편지가 언제 쓰여진 것인지에 대하여 정확한 연대를 고증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 다음 편지는 1172년 작으로 보이기에 1170년에서 1171년 사이의 편지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편지의 형식은 앞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문목에 대한 답 글이다.
도는 곧 근본이다에 대하여.
“도는 곧 근본이다”는 문맥의 의미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 아닌 것은 없고, 도체 속에 또 본래 요약 근본처가 있으니 도를 떠나 따로 근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친한 이를 친하게 대하는 것이 인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의이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근본이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천하에 통하면 이것은 근본이 이미 서서 도가 생겨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도는 근본과 함께 있는 것인데 어찌 항상 떨어져서 서로 다른 두 가지 것이 되겠습니까? 이와 같은 것을 모르면 병폐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실로 인에 뜻을 둔다에 대하여.
모든 행동이 나의 인에서 나오므로 굽어보고 우러러 보아도 부끄러운 일이 없다면 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안자와 증자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 인에 뜻을 둔 사람은 이렇게 할 수 있으면서도 천박한 부분에서 심도 있는 부분으로 순서대로 실천하는 것은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인에 뜻을 둔 사람은 바야흐로 처음 배울 때 어진 사람에게 뜻을 두고 일상의 생활에서 생각마다 하지 못할 곳이 있는지 없는지를 정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만약 있다면 바로 깊이 징계하고 통절하게 개선하며 또 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고구하여 오랫동안 힘쓰면 아마 하루아침에 확연하게 인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비록 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또 어찌 하지 못할 것이 없겠습니까? 단지 이런 방법을 따라 존양하며 매우 순수하고 익숙한 경지에 이르면 안자와 증자 이상의 지위에 도달하여 이와 같은 기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을 담당해 낼 수 있을까요? 방법은 단지 마음을 진실하게 하고 자신을 공경하며 천리의 유행은 간단없이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인에 뜻을 두었다고 말해놓고 이렇게 담당해냈다고 한다면 어찌 다시 진보할 곳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기상이 좋지 못하면 성현의 의미는 없습니다. 장자소가 『효경』 머리에서 “곧바로 그 길을 지향하며 급히 채찍질하며 빨리 좇아간다” 와 같은 말은 도대체 무슨 기상입니까? 이 장에서 “악”(惡)자는 입성일 뿐이고 여러 선생들께서 이미 자상하게 말씀한 것인데 어찌 소홀히 해서 그렇게 읽지 않았을까요? 지당한 이치는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만약 앞 사람들을 답습하지 않고 반드시 자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라야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사사로운 생각일 뿐입니다.
귀가 듣는 것을 제멋대로 한다는 오묘한 도가 아님이 없다.
“귀가 듣는 것을 제멋대로 한다”는 열자의 말인데 성인의 뜻과는 서로 맞지 않습니다. 성인께서는 단지 귀가 순해진다고 말했을 뿐인데, 대개 여기에 이르면 모두 혼연한 하나의 도리일 뿐이니 듣고 보는 사이에 지극한 이치 아닌 것이 없고(원주: 지극한 이치라고 한 것은 묘한 도와 같지 않습니다) 자연히 다른 것은 보지 못합니다. 비록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어도 모두 이치를 따라 얼음처럼 녹으니 애당초 귀가 제멋대로 할 뜻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성인의 학문과 이단의 학문이 서로 다른 점을 볼 뿐입니다. 그 구분은 이렇게 작은 터럭 사이에 있을 뿐입니다.
사시와 함께하는 사람은 공을 빨리 이루려고 하는 일이 없으니 때문에 큰일을 맡을 수는 있지만 작은 지식을 요구하는 일에는 맞지 않습니다. 군자는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의 일에 유능한지 않은지로 군자의 깊은 뜻을 다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작은 지식을 요구하는 일에는 맞지 않습니다. 천하의 중대한 일을 맡아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큰일을 맡을 수 있습니다. 소인은 한 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그릇이 되어 부릴 수 있지만 큰일을 맡을 수는 없습니다.
백성들은 물과 불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데 인에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물과 불은 밟으면 죽지만 인은 생기를 완전히 보전하고 있고 밟고 죽었다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 단락의 문장의 의미는 모두 옳지만 단지 이 한 구절에 병폐가 있으니 이렇게 과도하게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 인, 용은 성인의 전체라고 하면 옳고, 성인이 얻거나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스스로 말씀한 것입니다.
도의 본체는 무궁하기 때문에 성인은 도에 넉넉함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을 면려하여 진보케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스스로 말씀한 것은 아마도 도와 하나가 된다는 뜻인 것 같은데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위 아래로 달통한다”는 모든 일에 통달처가 있지만, 오직 군자만이 고명한 도리에 적중할 수 있고 소인은 더러운 도리에 적중합니다.
여씨가 말하기를 군자는 날마다 밝고 높은 것으로 나아가고, 소인은 날마다 더럽고 낮은 것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자식 된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식으로서 반드시 효도하고 신하로서 반드시 충성하는 일은 바꿀 수 없습니다.
나선생께서 “천하에 옳지 못한 부모는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옳습니다.
사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데 그에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 스스로 압니다.
이 말은 너무 간략하여 “그”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으니 이 또한 고원한 것을 좋아하는 폐단입니다.
힘껏 서(恕)를 행한다면 일에 임했을 때 오히려 사리심에 빼앗기게 됩니다. 억지로 하지 않으면 서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만물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진실하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다”는 이치가 밝고 욕심이 끝난 것입니다. “힘껏 서를 행한다면 인을 구하는 일에 있어서 이것 보다 더 가까운 길은 없다”는 힘껏 서를 행하는 것입니다.
염치가 없으면 소인은 교묘하고 사특한 마음이 기승을 부립니다. 애당초 염치가 있는 줄도 모르기 때문에 염치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교묘하고 사특한 기교를 부리면 허물과 잘못을 꾸미게 되니 결국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염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의 쓰임은 조화를 귀하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예의 발용처는 조화를 귀하게 여기는데, 예의 조화란 차가운 물과 뜨거운 불처럼 두 가지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에 맞춰 실행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후세에 마땅하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른바 “백성들은 소박하여 날마다 배불리 먹고 마시면 만족하네. 뭇 백성들과 백관들은 두루 당신의 은덕에 감화되네.”는 선왕의 도가 이것을 아름다운 일로 여기고 크고 작은일 모두 이것으로부터 나온다면 실행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천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 추악한 것입니다. 조화롭게 할 줄만 알고라고 운운한 것은 말단을 좇아 근본을 잊은 것이기 때문에 역시 실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자의 말은 성인의 말씀과 전혀 맞아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서로 비슷한 점은 있더라도 역시 작은 차이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이렇게 근본적으로 서로 같지도 않은 것에서랴i? 이러한 설명은 마치 과당한 것 같지만, “예”와 “화”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것으로 서로 의지하며 쓰임이 됩니다. 범씨의 설명은 매우 훌륭하고, 이천과 화정은 “크고 작은 일 모두 그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구절을 윗 구절을 이어 설명하니 더욱 분명한 것 같은데, 좀더 자세히 맛보아야 합니다.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아무래도 마음 쓰는 것이 점점 잘못되어 그 올바름을 잃게 됩니다.
“말보다 먼저 실행한다”고 할 때 한편으로 실행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가 알고 있는 바를 실행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말 보다 먼저 실행하는 것은 바로 살아 있는 군자인데, 어진 말을 실행하면 인이 자연스럽게 따르고 의로운 말을 실행하면 의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니 형체와 소리로부터 그림자와 메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도리는 본래 이와 같은 것이지 기다리고 난 후에 그런 것은 아니니 그것을 실행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입니다.
이 장은 범조우와 사량좌 두 분의 설명이 좋으니 과도하게 구해서는 안됩니다. 올바른 의미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예를 보면 그의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한 것은 자공 스스로 자신은 한 나라의 예제를 보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면 덕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원주: 예와 악의 올바른 뜻은 꼭 백세의 왕일 필요도 없고 또 꼭 부자일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일반적인 것을 논한 것입니다.) 백세 이후에 백세의 왕과 비교해 보아도 모두 나의 견해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제 소견에 백성들이 생긴 이래로 공자와 같은 분은 없었습니다. 재아, 자공, 유약은 그 때 비록 공자를 형용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공자는 백세를 초월한 분임을 알았지만, 공자가 백세를 초월한 까닭에 대해서는 끝내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설명은 매우 좋지만 그러나 자공이 감히 이렇게 자신을 평가했는지 그 여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마도 이치에 해가 될 것 같으니 더 토론해 봅시다.
한편으로 자공은 부자의 예를 보고 부자가 정치하는 까닭을 알았으며, 부자의 음악을 듣고 부자가 덕을 행하는 까닭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만일 부자께서 나라와 일가의 일을 얻은 것을 알았다면 이 또한 자공은 보고 들었을 것입니다.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는 우리 부자의 규범이자 표준인 것입니다.
“군자는 다투는 일이 없지만 활쏘기만큼은 반드시 다툰다”는 말은 활쏘기를 할 때는 반드시 다툼이 있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투는 이유는 응대하고 읍하며 겸손하는 사이에 다툼이 있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뭇사람과 달리 힘을 겨룰 때 사양하는 것을 숭상하기 때문입니다.
이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유사한 일을 확대하여 극단적인 의미까지 이른 것이다”에서 말하는 “의”란 시의 적절한 조치인데 그것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유사한 일을 극단적인 의미까지 확대한다면 도를 따르지 않고 얻은 것은 바로 도적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러한 의미가 이렇게 극단적인 곳까지 확대된다면 온 세상을 통틀어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현의 권기 응용과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는 것을 모르면 역시 결백한 사람과 교제하는 것을 의로움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예컨대 상은 날마다 일삼아 순을 죽이려고 했지만 서로 만났을 때 상이 기뻐하면 역시 기뻐하였으니 의로움이 여기에 도달하면 어찌 다할 때가 있으리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는 자는 도둑이다. 유사한 일을 극단적인 의미까지 확대한 것이다”는 말에 대하여 나는 예전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도둑질하지 않는 나의 마음을 확충하여 지극한 의리까지 도달한다면 자연히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반드시 이것을 타인에게만 요구하겠는가? 제후가 백성들에게 취한 것은 실로 말할 것조차도 없다”
道卽本也
道卽本也, 却恐文意未安. 蓋莫非道也, 而道體中又自有要約根本處, 非離道而別有本也. 如云親親仁也, 敬長義也, 此所謂本也無它, 達之天下也, 則是本旣立而道生矣. 此則是道之與本, 豈常離而爲二哉? 不知如此更有病否?
苟志於仁
夫擧措自吾仁中出, 而俯仰無所愧怍, 更無打不過處, 此惟仁者能之, 顔․曾其猶病諸. 今以志於仁者便能如此, 亦不察乎淺深之序矣. 愚竊以爲志於仁者, 方是初學有志於仁之人, 正當於日用之間念念精察有無打不過處. 若有, 卽深懲而痛改之, 又從而究夫所以打不過者何自而來, 用力之久, 庶乎一旦廓然而有以知仁矣. 雖曰知之, 然亦豈能便無打不過處? 直是從此存養, 十分純熟, 到顔․曾以上地位, 方是入此氣象. 然亦豈敢自如此擔當? 只是誠心恭己而天理流行自無間斷爾. 今說才志於仁, 便自如此擔當了, 豈復更有進步處耶? 又且氣象不好, 亦無聖(3-1387)賢意味. 正如張子韶孝經首云: “直指其路, 急策而疾趨之”, 此何等氣象耶? 蓋此章‘惡’字只是入聲, 諸先生言之已詳, 豈忽之而未嘗讀耶? 理之至當, 不容有二, 若以必自己出而不蹈前人爲高, 則是私意而已矣.
橫耳所聞, 無非妙道.
‘橫耳所聞’, 乃列子之語, 與聖人之意相入不得. 聖人只言耳順者, 蓋爲至此渾是道理, 聞見之間無非至理, 謂之至理, 便與妙道不同. 自然不見其它. 雖有逆耳之言, 亦皆隨理冰釋, 而初無橫耳之意也. 只此便見聖人之學․異端之學不同處. 其辨如此, 只毫髮之間也.
與四時俱者無近功, 所以可大受而不可小知也, 謂它只如此.
一事之能否, 不足以盡君子之蘊, 故不可小知. 任天下之重而不懼, 故可大受. 小人一才之長, 亦可器而使, 但不可以任大事爾.
民非水火不生活, 於仁亦然, 尤不可無者也. 然水火猶見蹈之而死, 仁則全保生氣, 未見蹈之而死者.
此段文義皆是, 只此一句有病, 不必如此過求.
知․仁․勇, 聖人全體皆是, 非聖人所得與焉, 故曰夫子自道也.
(3-1388)道體無窮, 故聖人未嘗見道之有餘也. 然亦有勉進學者之意焉. 自道恐是與道爲一之意, 不知是否?
上達下達, 凡百事上皆有達處, 惟君子就中得箇高明底道理, 小人就中得箇汙下底道理.
呂謂君子日進乎高明, 小人日究乎汙下.
天下之爲父子者, 定爲子必孝, 爲臣必忠, 不可易也.
羅先生云: ‘只爲天下無不是底父母’, 此說得之.
四體不言而喩, 無人說與它, 它自曉得.
語太簡, 不知‘它’指何人, 此亦好高之弊.
强恕而行, 臨事時却爲私利之心奪. 不强則無以主恕(一.
“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 此是理明欲盡者. “强恕而行, 求仁莫近焉”, 此是强恕而行者.
無所用耻, 小人機變之心勝, 初不知有耻, 故用不著它.
爲機變之巧, 則文過飾非, 何所不至? 無所用耻也.
“禮之用和爲貴”, 禮之發用處以和爲貴, 是禮之和猶水之寒․火之熱, 非(3-1389)有二也. 當時行之, 百姓安之, 後世宜之 莫不見其爲美也. 所謂 “民之質矣, 日用飮食, 群黎百姓, 徧爲爾德. ’先王之道若以此爲美而小大由之, 則有所不行. 蓋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矣. 知和之云云, 又逐末而忘本, 故亦不可行也.
大凡老子之言與聖人之言全相入不得也. 雖有相似處, 亦須有毫釐之差, 况此本不相似耶? 此說似亦過當, ‘禮’與‘和’是兩物, 相須而爲用. 范說極好, 伊川․和靜以‘小大由之’一句連上句說, 似更分明, 可更詳味. 若如此說, 恐用心漸差, 失其正矣.
‘先行其言’, 一云行者不是汎而行, 乃行其所知之行也. 但先行其言, 便是箇活底君子, 行仁言則仁自然從之, 行義言則義自然從之, 由形聲之於影響也. 道理自是如此, 非有待而然也, 惟恐其不行耳.
此章范․謝二公說好, 不須過求, 恐失正理.
“見其禮而知其政”, 子貢自說己見禮便知政, 聞樂便知德. 禮樂正意不必是百世之王, 亦不必是夫子, 只是汎論. 由百世之後, 等校百世之王, 皆莫能逃吾所見. 吾所見自生民以來未有如孔子者. 宰我․子貢․有若到那時雖要形容孔子, 但各以(3-1390)其所自, 見得孔子超出百世, 而孔子所以超出百世, 終不能形容也. 此說甚好, 但不知子貢敢如此自許否? 恐亦害理也, 更商量看.
一云是子貢見夫子之禮而知夫子之所以爲政, 聞夫子之樂而知夫子之所以爲德也. 如知夫子之得邦家之事也, 亦是子貢聞見所到也. ‘莫之能違’, 則吾夫子是箇規矩準繩也.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謂必於射, 則不免有爭焉. 及求其所以爭者, 則乃在乎周旋揖遜之間, 故其爭也, 君子異乎衆人, 所以角力尙客氣也.
此說甚好.
‘充類至義之盡也’, 謂之‘義’, 則時措之宜, 無有盡也. 若要充類而至, 如不由其道而得者便把爲盜賊之類, 是義到此而盡, 擧世無可與者. 殊不知聖賢權機應用, 無可無不可者, 亦與其潔之義. 如象日以殺舜爲事, 及見之, 象喜亦喜, 義到此有何盡時?
不必如此說. ‘夫謂非其有而取之者, 盜也. 充類至義之盡也’, 熹舊嘗爲說曰: ‘充吾不穿窬之心而至於義之盡, 則可自謂如此, 豈可緊以此責人哉? 諸侯之於民, 所取固不足道云. ’
(一)主: 正訛改作‘行’.
장흠부에게 답하며 인설을 논함 答張欽夫論仁說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건도 8년(임진; 1172, 43세)에 배열하였다. 이 편지의 첫 머리에서 “천지는 만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는 말은 아마도 타당하지 않습니다”라는 장식의 말을 인용했는데, “천지는 만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는 주자 「인설」(『문집』권67)의 첫 구절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주자의 『인설』을 토론한 글이다. 『별집』권6의 「答林擇之」제10서에서 “「우계학기」와 「극재기」를 근래 다시 개정했고, 지난해의 「인설」을 개정했다”고 하였다. 「답임택지」제10서는 계사년(1173)에 쓴 것이기 때문에 「인설」은 임진년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천지는 만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는 말은 아마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이 말에는 아마 병폐가 없습니다. 천지간에 있는 갖가지 사물과 수많은 형체를 가진 것은 각각 일 삼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은 위에 확연하게 있고 땅은 아래에 편안하게 있으면서 하는 일 없이 단지 만물 생성하는 것을 일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역』에서는 “천지의 위대한 덕은 생성하는 것이다”고 했고, 정자께서도 “하늘은 단지 생성하는 것을 도로 삼는다”고 하면서 “다시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구절을 논하고 또 움직임의 단초라고 말했으니 그 이치 또한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른바 “생성하는 것으로 도를 삼는다”는 것은 역시 생성하는 것 그 자체를 도로 삼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릇 이와 같은 것들은 응당 올바른 의미를 생각해야지 문자로 말뜻을 해쳐서는 안될 것이니 변론과 힐문이 번쇄하지 않아도 토론하는 것의 근본적 의미는 알 수 있습니다.
불인지심은 네 가지 것을 포괄할 수 있습니까?
제 생각에 맹자가 사단을 논할 때 수장에서 “어린 아이가 우물에 기어들어 간다”까지는 모두 불인지심의 일단을 발명한 것이고 애초애 의 예 지의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래 문장에서 “이 네 가지 마음이 없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불인지심은 사단을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은 사덕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것의 작용도 이와 같습니다. 이전의 설명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단지 체와 용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만약 불인지심이 사단을 포괄할 수 없다면 이것은 잘못입니다. 이제 이미 바로잡았습니다.
인을 독자적으로 말하면 그 본모습에는 불선함이 없습니다. 의 예 지에 대하여 말하면 그것이 발현하면 불인한 마음이 됩니다. 대저 천지의 마음은 순수하여 지극히 선하고 인간이 그것을 얻었기 때문에 인이라고 합니다. 인의 도는 어떤 사물이라도 체득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은 매우 보편적입니다.
제가 이 말을 음미해보니 인자(字)에 대한 설명이 착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 예 지와 차마 못하는 마음을 함께 발현한 것으로 보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고요하며 네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인 의 예 지라고 하는 것으로 모두 마음에 근원하고 있으며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이며 이른바 “리이고 성의 덕입니다.” 그것이 발현하면 인은 측은으로 의는 수오로 예는 공경으로 지는 시비가 되어 각각 그 체단을 따라 근본을 보여주니 이른바 “정이란 성이 발동한 것입니다.” 이것 모두가 인성이 선한 근거입니다. 하지만 인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사람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뭇 선의 으뜸이 되어 이 네 가지의 강목에 배열되지만 네 가지 것이 이것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역전』에서 “독자적으로 말하면 네 가지 것을 포괄한다”는 것도 바로 만물을 낳는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으로 이 네 가지를 포괄하는 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또 한 가지 일을 주관하는 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한 가지 일에 나아가서 네 가지를 포괄하는 것이 인의 묘함이 되는 이유입니다. 지금 궁극적으로는 “인”자를 설명하면서 여기에 근본하지 않고 대강 “지선”한 것이라고 지목하면 이것은 단지 인이 선한 것이라는 것만 알고 그것이 선의 으뜸이라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또 이미 발현한 곳에 “애”자를 놓으면 이미 발동한 것은 애가 된다는 것은 알면서도 아직 발동하지 않은 애는 인이 된다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인지심과 의 예 지를 모두 발현한 것이라고 하면 이것은 인이 성이라는 것만 알고 의 례 지 역시 성이다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또 인의 도는 (만물에게) 체현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만물을 낳는 천지의 마음에서 근본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것은 인을 체현하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은 알지만 인이 체현되지 않음이 없는 이유는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타당치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살펴보시고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정자가 꾸짖었던 것은 바로 애로 인을 이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정자는 “인은 성이고 애는 정이다. 어찌 애를 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정을 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할 뿐이지, 인이라는 성이 애라는 정에서 발현해 나온 것이 아니다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며, 애라는 정이 인이라는 성에서 근본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전에 애의 발현으로 애의 이치에 대하여 말한 것은 바로 성과 정의 다른 부분을 분별한 것으로 그 의미가 가장 정밀합니다. 그런데 보내 온 편지에서는 매번 애로 인을 이름한 것을 병폐로 보고 있습니다. 그 아래 문장에서는 또 “만약 오로지 애만으로 인을 명명한다면 이것은 그 작용을 가리키고 그 본체는 빠트린 것이며 정을 말하고 성은 소략히 한 것이니 그것을 상세하게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애의 이치란 본체인 성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또한 성정과 체용은 각각 주장한 바가 있으면서도 서로 떨어지지 않는 묘함을 보고 말한 것이니 이른바 본체를 버리고 성을 소략히 한것이다는 비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십시오.
원의 뜻은 오로지 생성의 의미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 말을 자세히 보니 큰 병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청컨대 천지를 살펴보고 『주역』의 단전과 문언전 그리고 정자의 역전을 반복해서 탐구하면 당연히 그 뜻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말을 반드시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선의 으뜸이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리의 근원으로 작은 잘못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저의 생각에 고명하신 당신이 이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지 문장의 운용이 완선하지 못해서였을 것입니다.
맹자는 비록 어진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시고 그것을 이어 친한 이를 친하게 하고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는 일을 급선무로 삼았으니 그 차등을 밝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인은 단지 애를 주장할 뿐입니다. 만약 차등을 말한다면 그것은 의의 일입니다. 인과 의가 비록 서로 분리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 작용은 각각 주관하는 것이 있어서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만약 한결같이 인이 모두 포괄한다면 의와 예 그리고 지는 모두 사용할 곳이 없으니 옳다고 하겠습니까?(원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네 글자는 지금 또 바로 잡았습니다.)
‘天地以生物爲心’, 此語恐未安.
熹竊謂此語恐未有病. 蓋天地之間, 品物萬形, 各有所事, 惟天確然於上, 地隤然於下, 一無所爲, 只以生物爲事. 故易曰: ‘天地之大德曰生’, 而程子亦曰 : ‘天只是以生爲道. ‘其論‘復見天地之心’, 又以動之端言之, 其理亦已明矣. 然所謂‘以生爲道’者, 亦非謂將生來做道也. 凡若此類, 恐當且認正意而不以文害詞焉, 則辨詰不煩而所論之本指得矣.
不忍之心可以包四者乎?
熹謂孟子論四端, 自首章至‘孺子入井’, 皆只是發明不忍之心一端而已, 初無義․禮․智之心也. 至其下文, 乃云‘無四者之心非人也’, 此可見不忍之心足以包夫四端矣. 蓋仁包四德, 故其用亦如此. 前說之失, 但不曾分得體用, 若謂不(3-1392)忍之心不足以包四端, 則非也. 今已改正.
仁專言則其體無不善而已, 對義․禮․智而言, 其發見則爲不忍之心也. 大抵天地之心粹然至善, 而人得之, 故謂之仁. 仁之爲道, 無一物之不體, 故其愛無所不周焉.
熹詳味此言, 恐說‘仁’字不著. 而以義․禮․智與不忍之心均爲發見, 恐亦未安. 蓋人生而靜, 四德具焉, 曰仁, 曰義, 曰禮, 曰智, 皆根於心而未發, 所謂‘理也, 性之德也’. 及其發見, 則仁者惻隱, 義者羞惡, 禮者恭敬, 智者是非, 各因其體以見其本(一, 所謂‘情也, 性之發也’. 是皆人性之所以爲善者也. 但仁乃天地生物之心而在人者, 故特爲衆善之長, 雖列於四者之目, 而四者不能外焉. 易傳所謂‘專言之則包四者’, 亦是正指生物之心而言, 非別有包四者之仁, 而又別有主一事之仁也. 惟是卽此一事便包四者, 此則仁之所以爲妙也. 今欲極言‘仁’字, 而不本於此, 乃槪以‘至善’目之, 則是但知仁之爲善, 而不知其爲善之長也. 却於已發見處方下‘愛’字, 則是但知已發之爲愛, 而不知未發之愛之爲仁也. 又以不忍之心與義․禮․智均爲發見, 則是但知仁之爲性, 而不知義․禮․智之亦爲性也. 又謂仁之爲道無所不體, 而不本諸天地生物之心, 則是但知仁之無所(3-1393)不體, 而不知仁之所以無所不體也. 凡此皆愚意所未安, 更乞詳之, 復以見敎.
程子之所訶, 正謂以愛名仁者.
熹按程子曰 : ‘仁, 性也 : 愛, 情也, 豈可便以愛爲仁?’ 此正謂不可認情爲性耳, 非謂仁之性不發於愛之情(二, 而愛之情不本於仁之性也. 熹前說以愛之發對愛之理而言, 正分別性․情之異處, 其意最爲精密. 而來諭每以愛名仁見病, 下章又云: ‘若專以愛命仁, 乃是指其用而遺其體, 言其情而略其性, 則其察之亦不審矣. 蓋所謂愛之理者, 是乃指其體性而言, 且見性情․體用各有所主而不相離之妙, 與所謂遺體而略性者, 正相南北. 請更詳之.
元之爲義, 不專主於生.
熹竊詳此語, 恐有大病. 請觀諸天地而以易彖․文言․程傳反復求之, 當見其意. 若必以此言爲是, 則宜其不知所以爲善之長之說矣. 此乃義理根源, 不容有毫釐之差. 竊意高明非不知此, 特命辭之未善爾.
孟子雖言仁者無所不愛, 而繼之以急親賢之爲務, 其差等未嘗不明.
熹按仁但主愛, 若其等差, 乃義之事. 仁․義雖不相離, 然其用則各有主而不可亂也. 若以一仁包之, 則義與禮․智皆無所用矣, 而可乎哉? ‘無所不愛’四字, 今(3-1394)亦改去.
(一)體: 記疑疑當作‘端’.
(二)於: 正訛改作‘爲’.
또 인설을 논함 又論仁說
【해제】편년고증에서는 건도 8년(임진; 1172, 43세)에 배열하였다. 앞 서신과 마찬가지로 「인설」을 토론하고 있다. 이 서신의 첫 머리에서 “지난 날 「인설」의 병폐에 대한 가르침은 제 생각에 타당치 못한 점이 있는 것 같아 곧바로 이미 조목을 갖추어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르침의 글을 받고 이미 모두 이해했지만 그러나 대개는 내가 논의했던 것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논의해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조목을 갖추어 가르침을 청했다는 것은 앞서신 즉 「答張欽夫論仁說」을 가리키는데, 아마도 장식은 이 편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시 편지 보내왔기 때문에 주자는 다시 앞의 주장을 설명하겠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이 편지는 「答張欽夫論仁說」을 이어 받은 것이다.
지난 날 「인설」의 병폐에 대한 가르침은 제 생각에 타당치 못한 점이 있는 것 같아 곧바로 이미 조목을 갖추어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르침의 글을 받고 이미 모두 이해했지만 그러나 대개는 내가 논의했던 것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논의해 보겠습니다. 살펴보건대 정자가 인을 말할 때 본말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이제 그 대요를 개괄해 보면 몇 마디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개 인이라고 하는 것은 타고난 본성이고, 애는 정이며 효제는 용입니다. 공은 인을 체현한 것으로 “자신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학자들은 앞의 세 마디 말에서 인의 명칭과 의미를 알 수 있으며, 뒤의 한 마디 말에서 힘써야할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본말이 가리키는 의미가 있는 곳을 깊이 고찰하지도 않고 단지 성과 정의 차이를 분별한 것만을 보고 애와 인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공은 인에 가깝다는 것을 보고 곧바로 인의 본체를 가리켜 가장 심절한 것이라고 하면 이것은 인은 성의 덕이고 애의 근본이며 본성에 인이 있기 때문에 정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원주: 의 예 지 역시 성의 덕입니다. 의는 미워함의 근본이고, 예는 겸손함의 근본이며, 지는 앎의 근본입니다. 성에는 의가 있기 때문에 정은 미워할 수 있고, 성에는 예가 있기 때문에 정은 겸손할 수 있으며, 성에는 지가 있기 때문에 정은 알 수 있으니 또한 이와 같을 뿐입니다.) 그러나 혹은 내가 갖고 있는 사사로움에 가려져 그 체용의 묘함을 다할 수 없습니다. 단지 자신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고 넓고 크게 공정한 연후에 이 본체가 온통 완전하면 그 작용은 밝게 드러나 동정과 본말의 혈맥이 관통하게 됩니다. 정자의 말씀과 뜻은 이와 같은 것이지 사랑이 인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며( 원주: 이 설명은 앞의 편지에서 이미 상세하게 말했으므로 이제는 두 마디 말로 결단 짓겠습니다. 저의 주장은 성은 발현하여 정이 되고 정은 성에서 근원함으로 성 없는 정과 정 없는 성은 각자 한 가지 사물로써 서로 관섭하지 않는 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주장의 옳고 그름은 여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공”이라는 글자가 곧바로 인의 본체를 가리킨다는 것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원주: 자세히 살펴보니 보내신 편지에서 말한 “천하에 공정하여 사물과 나의 사사로움이 없으면, 그 사랑은 광대하지 않음이 없다”고 했는데 이 구절의 어떤 곳이 바로 인의 본체를 가리킨 것인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사랑은 광대하지 않음이 없다를 인의 본체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정을 성으로 간주하는 잘못에 빠진 것인데 고명하신 당신의 견해가 분명 이런 곳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천하에 공정하여 사물과 나의 사사로움이 없는 것으로 인의 본체를 삼는다면 아마도 이른바 공이라는 것은 막연하여 아무런 정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허공과 목석같은 것은 비록 같은 몸을 가진 사물이지만 오히려 서로 사랑할 수 없는데 하물며 광대하지 않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두 구절에는 애당초 인의 본체를 설명하고 있는 글자는 한자도 없습니다. 인은 본유하고 있는 본성이고 사물을 낳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오직 공정함으로 그것을 체현할 수 있을 뿐이지 공정함을 원인으로 한 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공정하고 사람이 체현하고 있기 때문에 인이 라고 합니다. 이 말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오히려 “인”(人)자 안에 “어짐”(仁)이라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한대 이래로 사랑(愛)으로 어짐(仁)을 설명하는 폐단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과 정의 구별점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드디어 정을 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잘못을 바로잡고 싶은데 오히려 “인”자를 범연하게 만들어 귀숙할 곳이 없고, 성과 정은 드디어 서로 상관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오히려 바른 곳을 지나쳤으니 이 역시 굽은 것입니다. 그 폐단이 장차 학자들이 종일토록 인을 이야기해도 그 명의를 알지 못하게 할 것이고 또한 천지지심과 성정의 덕에 어둡게 하였습니다. 제 생각에 정자의 뜻이 꼭 이와 같은 것은 아니므로 감히 자세하게 진술하였습니다.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昨承開諭仁說之病, 似於鄙意未安, 卽已條具請敎矣. 再領書誨, 亦已具曉, 然大抵不出熹所論也. 請復因而申之. 謹按程子言仁, 本末甚備, 今撮其大要, 不過數言. 蓋曰仁者, 生之性也, 而愛其情也, 孝悌其用也. 公者所以體仁, 猶言“克己復禮爲仁”也. 學者於前三言者可以識仁之名義, 於後一言者可以知其用力之方矣. 今不深考其本末指意之所在, 但見其分別性․情之異, 便謂愛之與仁了無干涉 : 見其以公爲近仁, 便謂直指仁體最爲深切, 殊不知仁乃性之德而愛之本, 因其性之有仁, 是以其情能愛 義․禮․智亦性之德也. 義惡之本, 禮遜之本, 智知之本, 因性有義故情能惡, 因性有禮故情能遜, 因性有智故情能知, 亦若此爾.
但或蔽於有我之私, 則不能盡其體用之妙. 惟克己復禮, 廓然大公, 然後此體渾全, 此用昭著, 動靜本末血脈貫通爾. 程子之言意蓋如此, 非謂愛之與仁了無干涉也, 此說前書言之已詳, 今請復以兩言決之. 如熹之說, 則性發爲情, 情根於性, 未有無性之情, 無情之性, 各爲一物而不相管攝. 二說得失, 此亦可見. 非謂‘公’之一字便是直指仁體也. 細觀來喩所謂‘公天下而無物我之私, 則其愛無不溥矣’ 不知此兩句甚處是直指仁體處? 若以愛無不溥爲仁之體, 則陷於以情爲性之失, 高明之見必不至此. 若以公天下而無物我之私便爲仁體, 則恐所謂公者漠然無情, 但如虛空木石, 雖其同體之物尙不能有以相愛, 况能無所不溥乎? 然則此兩句中初未嘗有一字說著仁體. 須知仁是本有之性, 生物之心, 惟公爲能體之, 非因公而後有也. 故曰公而以人體之故爲仁. 細看此語, 却是‘人’字裏面帶得‘仁’字過來. 由漢以來, 以愛言仁之弊, 正爲不察性․情之辨, 而遂以情爲性爾. 今欲矯其弊, 反使‘仁’字汎然無所歸宿, 而性․情遂至於不相管, 可謂矯枉過直, 是亦枉而已矣. 其弊將使學者終日言仁而實未嘗識其名義, 且又幷與天地之心, 性情之德而昧焉. 竊謂程子之意必不如此, 是以敢詳陳之. 伏惟采察.
또 인설을 논함 又論仁說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건도 8년(임진; 1172, 43세)에 배열하였다. 이 서신은 「인설」을 논의하고 있는데 앞머리에서 “별지에서 보여 준 세 조목을 다시 읽어보니 제 생각에 고명하신 당신은 비록 이미 구설의 잘못을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그러나 여기에서 논한 것은 조금 소홀히 하는 사이에 잘못이 있는데 아마도 깊이 살피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인설」을 반복 논의하면서 남헌은 자신의 처음 주장을 수정한 것이 있었다. 주자는 임진년에 쓴 「답호광중」제5서(문집권42, p.1952.)에서 “인에 관한 설명은 전에 흠부에게 두통의 서신을 받았는데, 매우 엄밀하게 힐문하고 있습니다. 이미 모두 회답해 보냈는데 근래 회신에서 이제는 더 이상 의문이 없다고 합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바로 “근래 회신에서 이제 더 이상 의문이 없다”고 한 것에 대한 답신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앞의 두 편지를 이어 받은 것으로 모두 임진년에 쓴 것이다.
별지에서 보여 준 세 조목을 다시 읽어보니 제 생각에 고명하신 당신은 비록 이미 구설의 잘못을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그러나 여기에서 논한 것은 조금 소홀히 하는 사이에 잘못이 있는데 깊이 살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삼가 다시 설명하겠으니 경청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광중은 맹자의 “먼저 알고 먼저 깨닫는다”를 인용하여 “마음에는 지각이 있다”는 상채의 학설을 설명하는데 그것은 이미 이치에 맞지 않고, “이것을 알고 이것을 느낀다”는 것 역시 무엇을 가리켜 한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말의 요지는 대본이 이미 어긋났으니 옳음을 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보내 주신 글을 보니 단지 이것을 인이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것을 알고 이것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인을 알고 인을 느끼는 것입니다. 인은 본래 내 마음의 덕인데 장차 누가 그것을 알게 하고 느끼게 해 주겠습니까? 만약 맹자의 본문에 근거한다면 정자의 해석은 이미 자세합니다. “이것을 알고 이 일을 알며, (원주: 이 일을 알면 마땅히 이와 같다) 이것을 느끼고 이 이치를 느낀다”(원주: 이 일이 마땅히 이와 같은 이치의 근거를 안다)의 뜻은 이미 분명하니 더 현묘함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 뜻은 상채의 뜻과 애당초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상채가 말한 지각이란 바로 추위와 따뜻함 배부름과 배고픔 따위를 아는 것일 뿐입니다. 감통하고 조화의 공을 돕는 것 역시 이러한 지각일 뿐이지 다른 것은 없습니다. 단지 사용하는 것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지의 발용처일 뿐이니 오직 어진 사람만이 겸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어진 사람은 마음에 지각이 있다고 한다면 옳지만 마음에 지각이 있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옳지 못합니다. 어진 사람은 마음에 지각이 있다는 것은 인으로 네 가지의 작용을 포괄하여 말한 것인데, 인자는 부끄러워하고 사양할 줄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만약 마음에 지각이 있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면 인이 그 이름을 얻은 것은 애초부터 이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 이름을 얻은 연고를 궁구하지도 않고 그것이 겸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 바로 인의 본체라고 한다면 이것은 바로 인자는 반드시 용기 있고 덕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언변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데, 어떻게 용기 있는 것을 인이라고 하고 언변 있는 것을 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백봉은 반드시 지각하는 것이 인이다고 하고 싶어 하는데 존형께서는 그것을 이미 그르다고 해놓고 지각의 천심을 논하는데 이르러서는 또 그의 학설이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제가 감히 알지 못할 일입니다. 백봉은 또 상채의 뜻은 본래의 정신이 있으니 그 정신을 얻으면 천지의 작용도 모두 나의 작용이라고 했는데 이 주장은 매우 고원하고 매우 묘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 명의를 알지 못하고 또 실제로 공부해야 할 곳을 논하지도 않고 갑자기 그 정신을 말하려고 하니 이것은 세운 뜻이 더욱 높고 하는 말이 더욱 묘하지만 자신을 되돌아보았을 때 근본하고 근거할 수 있는 곳이 더욱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천지의 작용은 곧 나의 작용이다는 말도 아마 전해 듣고 상상한 것이 이와 같을 뿐이지 실제로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저의 어리석은 견해는 이와 같은데 고명하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熹再讀別紙所示三條, 竊意高明雖已灼知舊說之非, 而此所論者差之毫忽之間, 或亦未必深察也. 謹復論之, 伏幸裁聽. 廣仲引孟子‘先知先覺’以明上蔡‘心有知覺’之說, 已自不倫, 其謂‘知此覺此’, 亦未知指何爲說. 要之大本旣差, 勿論可也. 今觀所示, 乃直以此爲仁, 則是以‘知此覺此’爲知仁覺仁也. 仁本吾心之德, 又將誰使知之而覺之耶? 若據孟子本文, 則程子釋之已詳矣. 曰‘知是知此事, 知此事當如此也. 覺是覺此理’, 知此事之所以當如此之理也. 意已分明, 不必更求玄妙. 且其意與上蔡之意亦初無干涉也. 上蔡所謂知覺, 正謂知寒暖飽饑之類爾. 推而至於酬酢佑神, 亦只是此知覺, 無別物也, 但所用有小大爾. 然此亦只是智之發用處, 但惟仁者爲能兼之, 故謂仁者心有知覺則可, 謂心有知覺謂之仁則不可. 蓋仁者心有知覺, 乃以仁包四者之用而言, 猶云仁者知所羞惡辭讓云爾. 若曰心有知覺謂之仁, 則仁之所以得名初不爲此也. 今不究其所以得名之故, 乃指其所兼者便爲仁體, 正如言仁者必有勇, 有德者必有言, 豈可遂以勇爲仁, 言爲德(3-1397)哉? 今伯逢必欲以覺爲仁, 尊兄旣非之矣, 至於論知覺之淺深, 又未免證成其說則非熹之所敢知也. 至於伯逢又謂上蔡之意自有精神, 得其精神則天地之用皆我之用矣, 此說甚高甚妙. 然旣未嘗識其名義, 又不論其實下功處, 而欲驟語其精神, 此所以立意愈高, 爲說愈妙, 而反之於身愈無根本可據之地也. 所謂天地之用卽我之用, 殆亦其傳聞想像如此爾, 實未嘗到此地位也. 愚見如此, 不識高明以爲如何?
또 인설을 논함 又論仁說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건도 9년(계사; 1173, 44세)에 배열하였다. 주자의 「인설」은 건도 8년에 지은 것이고, 이에 대한 토론은 앞의 세통의 서신에 보인다. 이 서신에서 논의하고 있는 “천지 만물과 일체가 된다”, “인은 사랑의 이치이다”는 모두 앞의 세통의 서신을 이어 주자의 「인설」을 토론한 것이다. 하지만 이 편지에서 “제가 전에 올린 인설과 같은 것은 그 사이에 아직 이런 뜻이 남아 있기에 그것을 고치려고 했지만 틈이 없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렇게 본다면 이 서신은 처음 「인설」을 지었을 때 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건도 9년쯤으로 본다.
보내신 편지에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천지 만물과 일체가 되는 까닭은 천지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낳고 낳는 덕으로 인간과 사물이 함께 하는 것이고 이른바 사랑의 이치입니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 몇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무래도 타당치 못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은 단지 사랑의 이치일 뿐이고 사람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혹 공정하지 못하면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에 오히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있게 됩니다. 공정하기만 하면 천지 만물을 모두 한 몸으로 보며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의 이치와 같은 것은 자연스럽게 본유하고 있는 이치이므로 천지 만물과 한 몸이 되고 난 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전에 올린 인설과 같은 것은 그 사이에 아직 이런 뜻이 남아 있기에 그것을 고치려고 했지만 틈이 없었습니다. 보내 주신 편지에서 「극재」보다 못하다고 한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오히려 살피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저는 우선 “공”자와 “인”자를 각각 한자씩 분명하게 보고, 그런 뒤에 중간에서 이 두자의 비슷한 곳을 본다면 이것보다 더 친철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만약 이 두 글자의 의미를 서로 섞어 말한다면 이것은 정자가 꾸짖었던 것처럼 공이 바로 인이라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 작은 차이를 자세하게 살펴야 합니다. 또 “인”자를 보면 마땅히 의 예 지자를 함께 본 후에 그들의 한계가 분명하고 본 것도 진실합니다. 이제 저 세 가지를 버리고 “인”자만 따로 논하기 때문에 말은 많아도 틀리기 쉽습니다. 또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오고 안과 밖은 일치한다는 것이 인의 묘함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타당치 않습니다. 의는 부끄러워하고 예는 공경하고 지는 시비를 가리는 것이 있는데 모두 안과 밖을 일치하고 있으므로 유독 인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고명하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來敎云: “夫其所以與天地萬物一體者, 以夫天地之心之所有, 是乃生生之蘊, 人與物所公共, 所謂愛之理也.” 熹詳此數句, 似頗未安. 蓋仁只是愛之理, 人皆有之, 然人或不公, 則於其所當愛者反有所不愛 : 惟公, 則視天地萬物皆爲一體而無所不愛矣. 若愛之理, 則是自然本有之理, 不必爲天地萬物同體而後有也. 熹向所呈似仁說, 其間不免尙有此意, 方欲改之而未暇. 來敎以爲不如克齋之云是也, 然於此却有所未察. 竊謂莫若將‘公’字與‘仁’字且各作一字看得分明, 然後却看中間兩字相近處之爲親切也. 若遽混而言之, 乃是程子所以訶以公便爲仁之失. 此毫釐間, 正當子細也. 又看‘仁’字, 當幷‘義’․‘禮’․‘智’字看, 然後界限分明, 見得端的. 今舍彼三者而獨論‘仁’字, 所以多說而易差也. 又謂體用一源, 內外一致爲仁之妙, 此亦未安. 蓋義之有羞惡, 禮之有恭敬, 智之有是非, 皆內外一致, 非獨仁爲然也. 不審高明以爲如何?
장흠부의 ‘인’에 대한 의문에 답함 答欽夫仁疑問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건도 7년(신묘; 1171, 42세)에 배열하였다. 이 서신은 남헌의 수사언인록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집』권31의 「답장경부」제6서(p.1312), 제7서(p.1315), 제8서(p.1316) 모두 이 편지와 마찬가지로 남헌의 수사언인록을 두고 토론한 편지이기 때문에 동일한 시기에 쓴 것으로 본다. 남헌의 수사언인록은 현전하지 않지만 그 서문은 남헌집에 전하고 있다.
“어질기는 하지만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장에 대하여.
설명하시기를 “어질면 때가 된 후에 말한다”고 하셨는데, 의심컨대 이 구절은 단지 “의”자만을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인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장에 대하여.
설명하시기를 “인의 의미는 쉽게 다할 수 없기에 이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만약 다할 수 있다면 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인의 도는 무궁하니 이렇게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몇 구절에는 아무래도 병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광대함을 지극히 하고자 했지만 귀숙할 곳이 없다면 이것은 인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의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모르겠다. 어찌 인일 수 있겠느냐?”라는 장에 대하여.
이 장에 대한 설명은 단지 “지”에 대해서만 설명한 것 같습니다.
“우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장에 대하여.
이 장에 대한 설명은 단지 “지”에 대해서만 말한 것 같습니다.
“자신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한다”는 장에 대하여.
설명하시기를 “마음속에서 나와 밖을 제어한다”고 했는데, 『이정문집』을 살펴보니 여기에 오자 두자가 있습니다. 마땅히 “밖에 응해야 한다”라고 해야 합니다. 또 “이 도는 과연 사고와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학문의 요체는 몸소 행하는데 있다는 뜻을 밝히고자 한 것인데 그러나 말이 분명치 못하여 도리어 지극히 현묘하게 되어 사람들이 깨닫고 이해할 수 없게 되었으니 장차 헛된 생각을 바라는 병폐를 열었습니다. 전에 보니 오재로는 이 장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세 학자들은 이 두 마디 말을 미묘하고 깊은 뜻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고 성인도 전하지 못한 묘한 의도가 있으니 반드시 깊이 사색하고 묵묵히 나아간 후에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록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이지만 그러나 또한 우리 무리들이 현묘한 것을 담론하기 좋아하는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이 말의 잘못은 아무래도 다시 여기에 떨어졌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난 뒤에야 백성들은 어질게 될 것이다”의 장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이 모두 나의 인을 따르게 한다”고 했는데, 이와 같다면 인은 자기 한 사람의 사사로운 것이지 사람들이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번지가 인을 물었다”는 장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거처할 때 공손하며, 일을 집행할 때 경건하게 하며, 남을 대할 때 진심으로 하면 인이 여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또 “일에 오랫동안 종사하려면 공부에 간단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일에 오랫동안 종사하려면 공부에 간단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먼저 말한 후에 인은 그 속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앞뒤가 뒤바뀐 것 같습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다”는 장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당연한 것은 자연히 막을 수 없다”고 했고, 또 “사실 용기가 있다하더라도 꼭 법도에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의”자 만을 말한 것 같습니다.
“소인이면서도 어진 자는 있지 않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둔하여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모두 불인한 것이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지각으로 인을 이해한 병폐입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인을 완성한다”는 장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과연 이것은 어째서인가? 도리가 모여 있고 나의 본성을 온전히 할 뿐이다”고 했습니다. 나의 본성을 온전히 한 후에 자신을 희생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또 “나의 본성을 온전히 한다”는 말로 인을 말하는 것도 옳지 않은 듯 합니다.
“지혜가 미치고 인을 지킨다”는 장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약 사랑(愛)을 인이라고 한다면 인이 사랑인 까닭이 분명하지 않다”고 했는데 이 말은 미진한 것 같습니다.
“재아가 상례에 대하여 물었다”는 장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어질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잘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아는 이 말을 듣고 나왔을 때 분명히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근거하면 마치 살펴 알고 두려움이 이는 것을 인이라고 생각한 것 같으니 앞에서 둔해서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뜻을 말한 것 같습니다.
“은 나라에는 세 명의 어진 이가 있다”는 장에 대하여.
설명하시기를 “세 사람 모두 도를 다한 곳에 처하고 있으며 모두 성명의 정을 온전히 하여 자신을 완성한 사람이기 때문에 인이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또 “세 분이 마땅하게 여기는 곳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단지 “의”자만을 말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명의 정을 온전히 한 것을 인이라고 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토론한 것입니다.
“널리 배우고 의지를 독실하게 한다”는 장에 대하여.
명도 선생은 “학자는 생각하여 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사려하고 억측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명도의 말씀과 상반되고, 또 현묘하게 설명한 병폐가 있습니다. 앞에서 논의했던 “그가 어진지 모르겠다”, “자신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한다”는 바로 이것과 서로 같은 것입니다. 사려와 언어 그리고 궁행은 각각 하나의 일이지만 모두 없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려면 몸소 실천해야 하는데 도리는 완전히 사고할 수 있는 것도 완전히 설명해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또 궁행의 의미를 말씀하지 않고 단지 언어로 그리고 사려로 얻어 낼 수 없다고만 한다면 이것은 서로 이끌고 선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상의 것에 대하여 자세히 고찰해 보시고 다시 가르침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 유자징이 전에 이 곳을 지나가면서 고안에서 간행한 태극설이 지금 인쇄되어 출간된 것을 보았다고 말했는데 근래 또 연평에서 본 사람도 있으니 존형께서 그 책을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타당치 못한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걷어 들여 고정을 기다린 후에 출간해야할 것입니다. 인을 말한 책자도 아마 발간을 멈추고 더 토론해야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仁而不佞’章
(3-1399)說云: ‘仁則時然後言’, 疑此句只說得‘義’字. ‘不知其仁也’ 章
說云: ‘仁之義未易可盡, 不可以如是斷. 若有盡, 則非所以爲仁矣. ’又曰 : ‘仁道無窮, 不可以是斷. ’此數句恐有病. 蓋欲極其廣大而無所歸宿, 似非知仁者之言也.
‘未知焉得仁’章
此章之說, 似只說得‘智’字.
‘井有仁焉’章
此章之說, 似亦只說得‘智’字.
‘克己復禮爲仁’章
說云: ‘由乎中, 制乎外. ’按程集此誤兩字, 當云: ‘而應乎外. ’又云: ‘斯道也, 果思慮言語之可盡乎? ’詳此句意, 是欲發明學要躬行之意, 然言之不明, 反若極其玄妙, 務欲使人曉解不得, 將啓望空揣摸之病矣. 向見吳才老說此章云: ‘近世學者以此二語爲微妙隱奧, 聖人有不傳之妙, 必深思黙造而後得之.’ 此雖一偏之論, 然亦吾黨好談玄妙有以啓之也. 此言之失, 恐復墮此, 不可不察.
(3-1400)‘必世而後仁’章
說云 : ‘使民皆由吾仁’, 如此則仁乃一己之私, 而非人所同得矣.
‘樊遲問仁’章
說云: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則仁其在是矣. ’又云: ‘要須從事之久, 功夫不可間斷. ’恐須先說從事之久, 功夫不可間斷, 然後仁在其中. 如此所言, 却似顚倒也. ․
‘仁者必有勇’章
說云: ‘於其所當然者, 自不可禦. ’又云: ‘固有勇而未必中節也者, 故不必有仁. ’此似只說得‘義’字.
‘未有小人而仁者也’章
說云: ‘惟其冥然莫覺, 皆爲不仁而已矣. ’此又以覺爲仁之病.
‘殺身成仁’章
說云: ‘是果何故哉? 亦曰理之所會, 全吾性而已.’欲全吾性而後殺身, 便是有爲而爲之. 且以‘全性’兩字言仁, 似亦未是.
‘知及仁守’章
(3-1401)說云: ‘如以愛爲仁, 而不明仁之所以愛’, 此語蓋未盡
‘宰我問喪’章
說云: ‘以爲不仁者, 蓋以其不之察也. 宰我聞斯言而出, 其必有以悚動於中矣.’ 據此似以察知悚動爲仁, 又似前說冥然莫覺之意.
‘殷有三仁’章
說云: ‘三人皆處之盡道, 皆全其性命之情, 以成其身, 故謂之仁.’ 又云: ‘可以見三子之所宜處矣. ’ 此似只說得‘義’字. 又以全其性命之情爲仁, 前已論之.
‘博學而篤志’章
明道云: ‘學者要思得之.’ 說云: ‘蓋不可以思慮臆度也.’ 按此語與明道正相反, 又有談說玄妙之病. 前所論‘不知其仁’․‘克己復禮’處, 與此正相類. 大抵思慮․言語․躬行各是一事, 皆不可廢. 但欲實到, 須躬行, 非是道理全不可思量, 不可講說也. 然今又不說要在躬行之意, 而但言不可以言語思慮得, 則是相率而入於禪者之門矣.
以上更望詳考之, 復以見敎. 又劉子澄前日過此, 說高安所刊太極說見今印(3-1402)造, 近亦有在延平見之者, 不知尊兄以其書爲如何? 如有未安, 恐須且收藏之, 以俟考訂而後出之也. 言仁之書, 恐亦當且住, 卽俟更討論, 如何?
장흠부의 인설에 답함 答欽夫仁說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건도 9년(계사; 1173, 44세)에 배열하였다. 표제는 「장흠부의 인설에 답함 」이라고 했고, 서두에서 “「인설」은 명백하고 합당하니 저의 천루한 견해가 미칠 바가 아닙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장식이 지은 「인설」을 논의한 것이지 주자가 지은 「인설」을 논의한 것은 아니다. 「답여백공」제23서(『문집』권33,p.1430.)에서 “근일 흠부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가 「인설」을 보내와서 요즘 답해 주었다”고 하였다. 「답여백공」제23서는 계사년 가을에 보낸 서신이므로, 장식의 「인설」은 계사년 여름이나 가을에 지은 것이고, 주자의 이 서신은 계사년 가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인설」은 명백하고 합당하니 저의 천박한 견해가 미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은 언급하면서 정을 말하지 않았고, 심은 성과 정을 관통한다는 뜻을 말하지 않았으니 단지 성으로 심을 상대하여 말한 것 같습니다. 만약 단지 성으로 심을 상대하기만 한다면 바로 아래 문장에서 인용한 『맹자』의 “인은 사람의 마음이다”는 윗 문장의 여러 가지 설명과 서로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바라건대 다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했다면 광활한 듯 크게 공정하며 천지 만물과 함께 혈맥이 관통하니 사랑의 이치(愛之理)는 안에서 얻고 그 작용은 밖으로 드러나 천지간의 어떤 사물이라도 나의 인이 아님이 없다. 이것 역시 이치의 근본이 나의 본성에 갖추어진 것이지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원주: 이 몇 구절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미 극복했다면 광활한 듯 크게 공정하여 넓고 넓은 사방으로 통하여도 인의 본체는 가리워진 것이 없습니다. 천리가 가리워진 것이 없으면 천지 만물의 혈맥이 관통하여 인의 작용은 보편적이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사랑의 이치란 내 본성이 소유한 것으로 단지 광활한 듯 크게 공정한 후에 있는 것일 뿐이지, 광활한 듯 크게 공정한 것을 따른 후에야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혈맥이 관통한 후에 통달하는 것이지 혈맥이 관통한 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몇 구절에 작은 잘못과 혼란스런 부분이 있으니 바라건대 다시 자세히 고찰해 보십시오. 사랑의 이치는 바로 인이므로 만약 천지만물이 없다면 이러한 이치도 무너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인의 본체를 알 수 있으며 그런 뒤에 천지만물의 혈맥이 관통하고 그 작용은 보편적이지 않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치는 본래 매우 요약적인 것인데 지금 천지만물을 끼워 넣어 설명하니 오히려 어리둥절합니다. 부자께서 자공이 질문한 박시제중에 대답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다시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설명을 봐도 역시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양을 회복한 곳이 바로 천지의 마음을 완전히 자족한 것으로 외부의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또 염계가 말한 “내 뜻과 같다”는 것을 만약 지금처럼 말한다면 “같다”는 두 글자만을 말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내 뜻”은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또 말씀하시기를 “천하의 어떤 사물도 어질지 않음이 없다고 본다”고 했는데 이것도 의심이 듭니다. 천하의 어떤 사물도 나의 인 속에 있지 않음이 없다고 본다면 옳지만, 모든 사물은 다 나의 인이라고 한다면 옳지 않습니다. 사물은 그 자체로 사물이고, 인은 그 자체로 마음이니 어떻게 사물을 마음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또 말씀하시기를 “이것도 이치의 근본이 나의 본성에 갖추어진 것이니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는데, 이 말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인이란 공정하기를 기다린 후에 있는 것은 아니다는 뜻을 발명하고자 한 것 같은데 말의 맥락을 잃었습니다. 요컨대 “천하에 어떤 사물도 어질지 않은 것은 없다고 본다”와 이 구절은 모두 군더더기 같으니 바라건대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겠습니까?
仁說明白簡當, 非淺陋所及. 但言性而不及情, 又不言心貫性․情之意, 似只以性對心. 若只以性對心, 卽下文所引孟子‘仁, 人心也’與上文許多說話似若相戾. 更乞詳之.
又曰 : ‘己私旣克, 則廓然大公, 與天地萬物血脈貫通, 愛之理得於內, 而其用形於外, 天地之間無一物之非吾仁矣. 此亦其理之本具於吾性者, 而非彊爲之也.’ 此數句亦未安. 蓋己私旣克, 則廓然大公, 皇皇四達, 而仁之體無所蔽矣. 天理無蔽, 則天地萬物血脈貫通, 而仁之用無不周矣. 然則所謂愛之理者, 乃吾本性之所有, 特以廓然大公而後在, 非因廓然大公而後有也 : 以血脈貫通而後達, 非以血脈貫通而後存也. 今此數句有少差紊, 更乞詳之. 愛之之理便是仁, 若無天地萬物, 此理亦有虧欠. 於此識得仁體, 然後天地萬物血脈貫通而用無不周者, 可得而(3-1403)言矣. 蓋此理本甚約, 今便將天地萬物夾雜說, 却鶻突了. 夫子答子貢博施濟衆之問, 正如此也. 更以‘復見天地之心’之說觀之亦可見. 蓋一陽復處, 便是天地之心完全自足, 非有待於外也. 又如濂溪所云‘與自家意思一般’者, 若如今說, 便只說得‘一般’兩字, 而所謂‘自家意思’者, 却如何見得耶?
又云: ‘視天下無一物之非仁’, 此亦可疑. 蓋謂視天下無一物不在吾仁中則可, 謂物皆吾仁則不可. 蓋物自是物, 仁自是心, 如何視物爲心耶?
又云: ‘此亦其理之本具於吾性者, 而非彊爲之也.’ 詳此蓋欲發明仁不待公而後有之意, 而語脈中失之. 要之‘視天下無一物非仁’與此句似皆剩語, 幷乞詳之, 如何?
장흠부에게 답함 答張欽夫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건도 5년(기축; 1169, 40세)에 배열하였다. 이 편지는 심은 이미 발동한 것이라는 중화구설을 잘못이라고 말한다. 「중화구설서」(문집권75,p.3949)에서 주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축년에 처음 신설을 깨닫고 난 후 “바로 흠부와 당시 이 문제를 함께 토론했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 알렸지만 오직 흠부만이 답장을 보내와 깊은 동감을 표시했다.” 이 편지의 첫 머리에서 “여러 학설은 모두 인가를 받았다”고 한 것은 바로 장흠부가 회신을 보내 동감을 표시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편지는 기축년 봄 여름 사이에 쓴 것이다. 건도 5년은 주자의 사상 역정에서 매우 중요한 해에 해당한다. 이 해 그는 중화신설을 확립하고 「이발미발설」(문집권67,p.3526)과「與湖南諸公論中和第一書」(『문집』권64,p.3383)을 지음으로써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서신의 특징은 심을 중심에 놓고 성정, 중화, 체용, 적감, 동정을 설명하는데 있으며 또 선함양 후찰식을 주장하고 靜을 근본적인 위치에 둠으로써 연평과 남헌의 학설과 일정한 선을 긋고 주자 자신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학설은 모두 인가를 받았고 미발의 뜻은 또 그것의 핵심인데 이미 서로 이론이 없으니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구설을 살펴보니 오히려 어떤 강령도 없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때문에 다시 몸소 살펴보고 나서야 이러한 이치는 모름지기 심을 위주로 하여 논의해야 성정의 덕과 중화의 묘함이 모두 조리 있고 어지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몸은 지각의 운용에서 마음이 하는 것 아닌 것이 없으니 심이란 실로 몸을 주재하며 그것이 움직이든 정지해 있든 간에 그리고 말하고 있든 침묵하고 있든 간에 어떤 간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음)이 고요할 때는 사물이 아직 이르지 않았고 사려가 아직 싹트지 않아서 본성이 모두 혼연하고 도의는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이것이 이른바 중이고 바로 마음의 본체이며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마음)이 움직일 때에는 사물이 서로 이르고 사려가 싹트게 되며 칠정이 번갈아 가며 작용하여 각각 주장하는 바가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화이고 바로 마음의 작용이며 서로 느껴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란) 본성이 고요하여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정이 움직여도 반드시 법도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마음이 고요하면서도 감응하여 서로 통하고 두루 흘러 관철하면서도 체용이 애당초 서로 떨어지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마음이 있어도 혹 어질지 않으면 이 마음의 묘함을 잡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비록 어질고자하지만 혹 공경하지 않으면 인을 구하는 공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대저 마음은 한 몸을 주재하면서 동정과 어묵의 사이가 없으니 때문에 군자는 경에도 역시 동정과 어묵에 힘을 쓰지 않음이 없습니다. 아직 발동하기 이전에 경을 가지면 실로 이미 존양의 실질을 주장하게 되고, 이미 발동한 즈음에 경을 가지면 또 항상 성찰하는 사이에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존양할 때 사려는 아직 싹트지 않고 지각은 어둡지 않으니 이것은 고요함 속의 움직임으로 복괘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것입니다. 성찰할 때에 이르러 사물은 어지럽게 일어나도 법도에 어긋나지는 않으니 이것은 움직임 속의 고요함으로 간괘에서 “그 몸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요함 속에서의 움직임을 주장함이 있으니 이 때문에 고요해도 느끼지 않음이 없고, 움직임 속에서의 고요함을 살핌이 있기 때문에 느껴도 항상 고요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고요해도 항상 느끼고 느껴도 항상 고요하니 이것이 바로 마음이 두루두루 흘러 관철해도 한 순간도 어질지 않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중화를 이루면 천지는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화육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을 뿐입니다. 몸을 주재하면서도 동정과 어묵의 사이가 없는 것은 마음이니, 인은 마음의 도이며, 경은 마음의 정조입니다. 이렇게 위 아래로 철저하게 통하는 도는 성학의 본통이니 이 점을 분명하게 알면 성정의 덕과 중화의 묘함은 한 마디 말로 다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나의 학설은 사실 여기에 미치지 못했고 보내주신 편지가 곡절하여 비록 발명한 점이 많았지만 그러나 강령을 들어주고 꼬집어 주는 점에서는 역시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학자는 모름지기 먼저 단서의 발동을 살펴 안 후에 존양의 공부를 할 수 있다”와 같은 말씀에 대하여 저는 의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대저 발동하는 곳은 당연히 찰식해야 하지만 그러나 아직 발동하지 않은 때가 있을 때 이 곳에서는 존양해야 하는 것이지 어찌 반드시 발동하기를 기다린 후에 찰식하고 찰식한 후에 존양해야 하겠습니까? 게다가 처음부터 일찍이 존양하지 않고 바로 사태를 따라 찰식 하려고하면 끝이 없어서 손 쓸 곳이 없게 될까 두렵고, 작은 잘못이 천리나 어긋나게 되는 오류를 장차 이루 다 헤아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자가 매양 맹자의 재주는 높지만 학문은 의거할 것이 없으니 사람들은 모름지기 안자의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까닭입니다.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려면 가까운 곳부터 힘을 써야한다는 것이니 그의 은미한 뜻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물 뿌리고 쓸며 응대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과 같은 것도 존양의 일입니다. 학자들은 이런 부분을 먼저하고 그 후에 찰식해야 하는가 아니면 먼저 찰식하고 그 후에 존양해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이렇게 본다면 힘을 쓰는 선후관계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보낸 편지에서 또 말씀하기를 “움직임 속에 고요함을 포함하는 것이 이른바 천지의 마음을 다시 본다는 것이다”고 했는데 역시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전에 복(復)을 고요함 속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괘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천선생의 뜻도 역시 이와 같은 것 같습니다. 보내신 편지에서는 또 “고요함을 말하면 허무에 빠진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실로 깊이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글자가 불자들의 논의와 같은 것이라면 이는 실로 근심할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천리로 본다면 움직이는 것은 고요함이 없을 수 없으니 마치 고요한 것은 움직임이 없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고요한 것은 존양이 없을 수 없는 것은 움직이는 것은 찰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단지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이 서로 그것의 뿌리가 되니 경과 의로 붙들어 잡고 간단함을 용납하지 않는 뜻이라면 비로 “고요함”이라는 글자를 놓더라도 원래 죽은 것이 아니니 지극히 고요한 것 속에 움직임의 단서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것입니다. 선왕들은 동지나 하지에 문을 걸어 잠근 것은 이런 때에는 편안하고 고요함으로 이것을 존양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지 사물을 멀리하고 끊어버리며 눈을 감고 정좌하여 고요함으로 치우치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사물과 접촉하지 않았을 때 바로 경을 갖고 그 속에서 주재한다면 사물이 이르더라도 선한 단서는 밝게 드러나고 그래서 살피는 것은 더욱 정명할 뿐입니다. 이천선생이 말씀하신 “오히려 이미 발동할 즈음에 살핀다”는 바로 아직 발동하지 않았을 때는 단지 존양만 있고, 이미 발동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볼만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자(염계)가 말한 주정은 바로 중정인의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정으로 중을 상대하면 중은 중이 되고, 의로 인을 짝하면 인은 근본이 될 뿐입니다. 이 네 가지 외에 따로 주정이라는 일단의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내신 편지에서는 또 제가 정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마침내 경을 근본으로 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사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경”자 공부는 동정을 관통하면서 반드시 정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저는 예전부터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 만약 드디어 “경”으로 바꾼다면 비록 완전한 것 같지만 그러나 오히려 경을 베푸는 것에 선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역시 정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보내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무릇 움직이는 것은 고요함이 있는 것을 나타내고 고요한 것은 움직임이 근본하고 있는 것을 포함하여 동정이 서로 필요하고 체용이 떨어지지 않으니 그 후에야 낭비하고 새는 것이 없게 됨을 살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몇 구절은 탁월하여 의미와 말이 함께 갖춰져 있으니 삼가 그것을 적어 좌우명으로 삼아 나고 들 때마다 보고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윗 두 구절의 순서는 그렇게 타당한 것 같지 않고 내 생각에는 위치를 바꾸어도 행할 수 있는 사실이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諸說例蒙印可, 而未發之旨又其樞要, 旣無異論, 何慰如之. 然比觀舊說, 却覺無甚綱領, 因復體察得見此理須以心爲主而論之, 則性情之德, 中和之妙皆有條而不紊矣. 然人之一身, 知覺運用莫非心之所爲, 則心者固所以主於身, 而無動靜語黙之間者也. 然方其靜也, 事物未至, 思慮未萌, 而一性渾然, 道義全具, 其所謂中, 是乃心之所以爲體而寂然不動者也. 及其動也, 事物交至, 思慮萌焉, 則七情迭用, 各有攸主, 其所謂和, 是乃心之所以爲用, 感而遂通者也. 然性之靜也而不能不動, 情之動也而必有節焉, 是則心之所以寂然感通, 周流貫徹而體用未始相離者也. 然人有是心而或不仁, 則無以著此心之妙. 人雖欲仁而或不敬, 則無以致求仁之功. 蓋心主乎一身而無動靜語黙之間, 是以君子之於敬, 亦無動靜語黙而不用其力焉. 未發之前是敬也, 固已主乎存養之實 : 已發之際是敬也, 又常行於省察之間. 方其存也, 思慮未萌而知覺不昧, 是則靜中之動, 復之所以“見天地之心”也. 及其察也, 事物紛糾而品節不差, 是則動中之靜, 艮之所以“不獲其身, 不見其人”也. 有以主乎靜中之動, 是以寂而未嘗不感 : 有以察乎動中之靜, 是以感而未常不寂. 寂而常感, 感而常寂, 此心之所以周流貫徹而無一息之不仁也. 然則君子之所以致中和而天地位, 萬物育者, 在此而已. 蓋主於身而無動靜語黙之間者, 心也, 仁則心之道, 而敬則心之貞也. 此徹上徹下之道, 聖學之本統, 明乎此則性情之德․中和之妙可一言而盡矣.
熹向來之說固未及此, 而來喩曲折, 雖多所發明, 然於提綱振領處, 似亦有未(3-1405)盡. 又如所謂“學者先須察識端倪之發, 然後可加存養之功”, 則熹於此不能無疑. 蓋發處固當察識, 但人自有未發時, 此處便合存養, 豈可必待發而後察, 察而後存耶? 且從初不曾存養, 便欲隨事察識, 竊恐浩浩茫茫, 無下手處, 而豪釐之差, 千里之繆將有不可勝言者. 此程子所以每言孟子才高, 學之無可依據, 人須是學顔子之學, 則入聖人爲近有用力處, 其微意亦可見矣. 且如灑掃應對進退, 此存養之事也. 不知學者將先於此而後察之耶? 抑將先察識而後存養也? 以此觀之, 則用力之先後判然可覩矣.
來敎又謂“動中涵靜, 所謂復見天地之心”, 亦所未喩. 熹前以復爲靜中之動者, 蓋觀卦象便自可見. 而伊川先生之意, 似亦如此. 來敎又謂 “言靜則溺於虛無”, 此固所當深慮. 然此二字如佛者之論, 則誠有此患. 若以天理觀之, 則動之不能無靜, 猶靜之不能無動也. 靜之不能無養, 猶動之不可不察也. 但見得一動一靜互爲其根, 敬義夾持, 不容間斷之意, 則雖下‘靜’字, 元非死物, 至靜之中, 蓋有動之端焉. 是乃所以見天地之心者. 而先王之所以至日閉關, 蓋當此之時, 則安靜以養乎此爾, 固非遠事絶物, 閉目兀坐而偏於靜之謂. 但未接物時, 便有敬以主乎其中, 則事至物來, 善端昭著, 而所以察之者益精明爾. 伊川先生所謂“却於已發之際觀之”者, 正謂未發則只有存養, 而已發則方有可觀也. 周子之言主靜, 乃就中正仁義而言. 以正對中, 則中爲重 : 以義配仁, 則仁爲本爾. 非四者之外別有主靜一段事也. 來敎又謂熹言以靜爲本, 不若遂言以敬爲本, 此固然也. 然‘敬’字工夫通貫動靜, 而必以靜爲本, 故熹向來輒有是語. 今若遂易爲‘敬’, 雖若完全, 然却不見敬之所施有先有後, 則亦未得爲諦當也. 至如來敎所謂“要須察夫動以見靜之所存, 靜以涵動之所本, 動靜相須, 體用不離, 而後爲無滲漏也”, 此數句卓然, 意語俱到, 謹以書之座右, 出入觀省. 然上兩句次序似未甚安, 意謂易而置之, 乃有可行之實. 不審尊意以爲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