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63

황성 2025. 8. 1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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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왕상서장식여조겸유자징과의 문답) 書汪張呂劉問答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남송 효종 융흥 원년(계미: 1163, 34)에 배열하였다. 이 편지에서 나는 이미 잘 살펴보았다 ”, “하루 이틀 사이에 등대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 순희 8(1181) 여조겸이 죽기 전까지 주자가 입궐하여 상주문을 올린 것은 계미년 겨울 한 차례 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요즘 겨울 날씨가 춥다고 한 것을 보면 이 편지는 계미년 겨울 입궐했을 때에 쓴 편지임에 틀림없다. 이 해 시월 십구일 주자는 남송의 도읍인 臨安에 도착하여 효종의 알현과 상주를 앞두고 있었다. 속경남의 연보장편에 따르면 이 해 1019일 주자는 임안에 도착한 후, 1024일에는 효종을 인견하고, 116일에 등대하여 수공전에서 상주문을 올렸다.(p.306 참조) 이 편지는 여조겸에게 보낸 최초의 서신으로 이로부터 주자와 여조겸 간의 학술적 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삼산에서 헤어지고 몇 년 동안 소원했습니다. 외진 산골에 묻혀 있느라 다시 당신에게 안부를 물을 수 없었습니다. 북쪽에서 오는 친구들마다 당신의 훌륭한 덕성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우러르는 마음에 충분한 위안이 됩니다. 요즘 겨울 날씨가 차갑습니다. 모시는 부모님은 별 탈 없으시고 당신의 건강은 좋으십니까? 내 자신의 학문조차도 자신할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한 채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여기에 왔으니 학식 있는 분들에게 비루하다고 버림 받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짧은 교유를 잊지 않으시고 과분한 호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어제 한원길 어르신[韓丈]께서 가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읽어보니 일러주신 가르침이 심히 은근하던데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맡아 해내지 못할까 염려하며 세 번이나 부끄러움에 땀이 흐르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미 잘 살펴보았고 하루 이틀 사이에 등대할텐데 알현하기로 약속한 뜻을 저버릴까 두렵습니다. 마음으로는 한번 만나 얼굴을 맞대고 속마음을 논하고 싶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아마 여기에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것 같기에 이렇게 제멋대로 적어 성의에 감사하고 더불어 저의 속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당신이 덕에 나아가고 자신을 아끼기를 기원합니다.

 

 

三山之別, 闊焉累年, 跧伏窮山, 不復得通左右之間. 而親友自北來者, 無人不能道盛德, 足以慰瞻仰也. 比日冬寒, 伏惟侍奉吉慶, 尊候萬福. 熹不自知其學之未能自信, 冒昧此來, 宜爲有識者鄙棄. 而老兄不忘一日之雅, 念之過厚. 昨日韓丈出示家信, 見及枉誨甚勤, 不知所以得此. 顧無以堪之, 三復愧汗, 無所容措. 區區已審察, 一兩日當得對, 恐末能無負所以見期之意. 而心欲一見, 面論肺腑, 不知如何可得. 自度恐非能久於此者, 故專裁此, 以謝盛意, 幷致下懷. 餘惟(3-1408)進德自愛爲禱.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남송 효종 건도 5(기축: 1169, 40)에 배열하였다. 이 편지에서 역전6책은 오늘 편지를 유구주께 보내 당신께 보내주시라고 부탁 했습니다고 했다. 동래별집을 보면 주자에게 보내는 첫 번째 답신에서 여조겸은 이렇게 말했다. “이천역전을 판각하려고 하는데 근래 당신의 서재에 소장하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은 판본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 빈지(賓之) 어른(劉夙. 당시 衢州 지부를 맡고 있었음)의 처소에 사람을 보내 빌려주기를 청했습니다.” 이로부터 주자의 이 편지는 여백공이 역전을 빌려주기를 요청한 일에 회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여백공에게 보낸 서신에서 마침 덕청에 가서 부인을 맞아 들였다고 했는데, 동래연보에 의하면 건도 55월에 덕청에 가서 영동을 유람하면서 대연의 자서를 지어 주었다. 20일에는 한씨를 부인으로 맞아 들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주자의 이 편지는 기축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주자는 이 편지에서 더위가 점점 기승을 부린다고 했기 때문에 기축년 여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에 돌아가는 사람 편에 편지를 올렸는데 도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더위가 점점 기승을 부리는데 섭생에 살핌이 있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역전6책은 오늘 편지를 보내 유구주께 부탁하여 당신께 보내도록 했습니다. 이 책은 지금 여러 곳에 판본이 있지만 모두 그리 정밀하지 못합니다. 이 판본은 교정이 조금 더 정밀합니다. 말 한마디 더해서 서사를 일깨우고 이 책에 근거하여 자세하게 등사하게 했고 여러 번에 걸쳐 교정하여 좋은 판본이 되었습니다. 몇 가지 자세한 곡절은 별지에 적어 보냅니다. 혹 노형께서 한번 읽어보신다면 더 좋겠습니다. 앞의 편지에서 말씀드린 어록을 만약 그들이 얻고자 한다면 이 곳에 와서 가져가게 하면 더욱 다행이겠습니다. 근래에 도학이 쇠태하면서 거짓을 팔고 참된 것을 거짓으로 꾸미는 학설이 제멋대로 행해지고 있지만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무주에서 판각된 무구의 일신이라는 책을 봤는데 더욱 허망하여 근거가 없으니 매우 괴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도 분명하지 못하고 구제할 수 있는 힘도 없으니 저는 두려워할 뿐입니다. 노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쓰다보니 다행히 말이 여기까지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덧붙여 보내 주신 편지를 아직까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아직 가르침을 받지 못했지만 때를 따라 도를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해지기 바랍니다.

 

前日因還人上狀, 不審達否? 暑氣浸劇, 伏惟道養有相, 尊候萬福. 易傳六冊, 今作書託劉衢州達左右. 此書今數處有本, 但皆不甚精. 此本讎正稍精矣, 須更得一言喩書肆, 令子細依此謄寫, 勘覆數四爲佳. 曲折數條, 別紙具之. 或老兄能自爲一讀, 尢善也. 前書所禀語錄, 渠若欲之, 今夾取尢幸. 近世道學衰息, 售僞假眞之說肆行而莫之禁. 比見婺中所刻無垢日新之書, 尢誕幻無根, 甚可怪也. 己事未明, 無力可救, 但竊恐懼而已. 不知老兄以爲如何? 因書幸語及. 前此附便所予書, 至今未拜領也. 未卽承敎, 萬望以時爲道加重.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편지는 정확한 작성 연대를 고증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집에서 주자가 여백공에게 보낸 서신의 편집이 가장 잘 정리되어 있고, 백여 통에 이르는 서신 모두가 연도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 앞 편지와 이 편지는 기축년(1169) 여름에 작성한 것으로 보고, 이 다음 네 통의 편지는 그 이듬해 즉 경인년 봄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日至의 설을 참고하면 이 편지는 기축년에 작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건도 5(기축: 1169, 40)에 배열하였다.

 

낭중장께서는 하지에 문후 편안하신지요. 저는 근래 또 낭중장께서 보내신 편지를 받고 바로 답장을 올렸습니다. 오늘 처형에게 보낼 편지 한통이 있기에 번거롭게 덧붙여 보냅니다. 답장을 하시려면 단지 조대의 역참인 건양에 부탁해야 가능합니다. 우사 한원길 어른을 만나보았는데 하시는 말씀이 매우 정성스러우니 다행입니다. 전에 은혜로운 가르침을 받았는데 답장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조경이 간각한 윤씨 논어는 매우 정밀한데 제 생각에는 발어에 의심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조수께서는 일찍이 그 말을 빼야 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윤공의 말씀은 본래 군주께 올리는 말씀인데 지금 발문에서는 단지 사람을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니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 이천이 역설에 70여 학자의 학설을 냈다고 했는데 이천이 과연 이렇게 두루두루 사람을 가르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다보니 말꼬리를 잡게 되었는데 용서해 주십시오. 근엄한 가르침을 공손히 듣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으로 오는 사람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도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 간에 기질의 편박이 없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또 통렬한 가르침으로 경고하지 않음이 없으니 친구간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문하에 요즘 이름 있는 문사를 많이 얻었다고 들었는데 의론이 괴벽하다고 사방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학자들의 심술에 크게 해가 되고 있으니 근심과 한탄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일찍이 그들의 사특함과 거짓을 떨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가르침을 듣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고 싶어 오늘 문득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 곡절은 얼굴을 맞대지 않고는 다할 수 없습니다.

 

郞中丈伏惟安問日至, 熹近亦領賜書, 卽已附便拜答. 今有妻兄一書, 煩爲附(3-1409)的便. 有報章, 只託漕臺遞下建陽可也. 右司韓丈因見, 爲道區區, 幸幸. 昨承惠敎, 便遽不及拜狀. 趙卿所刻尹論甚精, 鄙意却於跋語有疑, 不知趙守曾扣其說否? 蓋尹公本是告君之言, 今跋但以誨人爲說, 恐不類耳. 又云伊川出易說七十餘家, 不知伊川敎人果如此周遽否? 語次試爲如之爲幸. 謹嚴之誨, 敬聞命矣. 但以是心至者, 無拒而不受之理. 極知其間氣質不無偏駁, 然亦未嘗不痛箴警之, 庶幾不負友朋之責. 却聞門下多得文士之有時名者, 其議論乖僻, 流聞四方, 大爲學者心術之害, 使人憂欺不自已. 不知亦嘗擿其邪僞否? 久欲奉聞, 復忘記, 今輒布之. 然其曲折, 非面莫能究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편년고증󰡕에서는 이 편지를 효종 건도 6(경인: 1170, 41)에 배열하였다. “편지에서 우리의 도는 상대할 만한 것이 없으니 세속과 승부를 겨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동래별집󰡕 7與朱侍講2서에서 우리의 도는 본래 상대할 것이 없으니 세속과 승부를 겨뤄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또 그 편지의 앞머리에서 제가 맡은 일은 그럭저럭 편안하고 학궁에는 문서와 업무의 번거로움이 없습니다. 또 장장(흠부)도 이 곳에 있습니다고 했고, “작년 가을부터 열흘마다 한번씩 수업을 합니다라고 했다. 󰡔동래연보󰡕를 살펴보면, 백공은 기축년 8월에 엄주 주학 교수로 부임했다.( 같은 해 장식은 엄주 지주를 제수받았다.) 따라서 이 편지에서 말하는 학궁과 수업은 주학의 학사를 가리킨다. 백공이 주자에게 회답한 서신에서 이미 작년 가을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 편지는 경인년에 쓴 것이고, 주자의 이 편지는 그 서신에 대한 회답이므로 역시 경인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주자는 이 서신에서 새로운 관직의 제수가 이미 내려졌으니 윗사람에게 설명하고 아랫사람들을 훈교하여 선생의 말씀이 끝내 폐기되지 않게 하는 것이야 말로 지금 우리 백공의 책무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 고을에서만 시행되지는 않고 보다 널리 시행될 것입니다.” 󰡔동래연보󰡕에 근거하면, 경인년 5월 태학박사를 제수 받았다. 주자가 말한 새로 제수 받은 것이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주자는 이 편지를 쓸 때 백공은 새로 제수 받고 아직 내려가지 않았을 때이므로 경인년 봄과 여름 사이에 쓴 것이다.

 

 

학문에 나아가고자 하는 뜻이 매우 두터우시니, 당신에게 몹시도 바라던 것입니다. 지나치게 겸양하시면서 저에게 위촉한 것은 못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아뢰어서 당신의 두터운 뜻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과거 몇 년 동안 정자의 글을 읽으면서도 요지를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근자에 󰡔중용󰡕 첫 장의 의미를 탐구하다가 덕성의 함양은 반드시 경을 통해야 하고, 학문의 진보는 철저한 인식에 달려있다[涵養須用敬, 進學則在致知]”는 두 마디 말이 비록 간략하지만, 실제 덕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이 두 문장의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마음을 씻고서 이 말을 따르고자 했으나 아직 소득은 없습니다만 감히 남이라 할 수 없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 당신처럼 명석한 분이 이 문장을 존중하고 실천하면서 이단의 황망하고 덧없는 이야기에 이끌리거나 미혹당하지 않고, 세속의 천하고 소홀한 의론에 얽매이지도 않으면서,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학문과 식견이 높고 밝아져 크게 빛나는 것은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편지에서 의문을 제기한 것은 은혜가 매우 두텁습니다. 제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지에서 가르침을 구하겠습니다만 대략적인 내용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병폐는 도체는 혼연하여 구비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은 대충 알면서도 정밀함과 조악함, 근본과 말단, 주인과 손님, 안과 밖에 조금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당신의 말은 언제나 합치를 추구하고 분리를 싫어하며, 비록 문장이 치밀하고 아주 작은 점까지 분석하더라도 애초부터 본체의 혼연함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과거에 왕장께서 장자소(張子韶)가 말한 명도의 지극한 성은 안과 밖이 없다는 구절에서 지성이란 두 글자에 병폐가 있으니, ‘()’이란 한 글자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이론을 인용한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의 한 가지 사이비 이론은 모두 이런 의견입니다. 오직 걱정되는 것은 말하는 것이 엉터리도 아니니 참으로 남을 거만하게 만들면서 자신도 오만하게 만들고, 남을 오도하면서 자신도 오도시키는 것입니다. 사대부가 학문에 뜻이 없으면 안일하여 지각하지도 못하고, 학문에 뜻이 있으면 반드시 여기에 빠지니 이것이 제가 깊이 우려하고 탄식하면서 자신의 경박하고 약함을 헤아리지도 않고 극력 배척하는 이유입니다. 비록 이 때문에 오늘날의 세상에서 죄를 얻게 된다 하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주 가운데 글자를 고친 것에 대해서 두 가지 설명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교정의 원칙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가, 나중에 왕장의 말 때문에 다시 이름을 바로잡아 미혹을 깨트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격분해서 더욱 성내었다고 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맹자가 평상시에 양주와 묵적을 이야기할 때처럼 평범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공도자가 한 번 변론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비로소 극단적인 말로 금수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들의 미혹이 이미 깊다면 제가 변론하는 것에도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짐승을 잡는 데에도 스스로 준칙이 있으니 또한 그렇게 하기를 기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됩니다. 맹자가 금수라고 말한 것은 곧 그 분수 안에 있는 것이지 격분 때문에 더욱 성낸 것은 아닙니다.

편지에서 우리의 도는 상대할 만한 것이 없으니 세속과 승부를 겨뤄서는 안 된다고 한 말은 좋다면 좋은 말이지만 저는 온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는 실로 상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드러나지 않은 많은 이단 사설을 하나하나 뽑아버린 후에야 바야흐로 정명하고 순수하여 상대할 것이 없는 도를 분명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진흙과 물을 합하고서 곧 단지 상대할 것이 없다는 말을 써서 포섭하려 한다면 이 상대할 것이 없다는 것 속에는 도리어 많은 숨겨진 병폐가 있을 것입니다. 맹자는 양주와 묵적의 도가 불식되지 않으면 공자의 도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역경󰡕에서도 군자와 소인의 사이에서 승부를 헤아림이 진실로 자세하니, 어찌 상대할 것이 없는도를 몰라서이겠습니까? ‘상대할 것이 없는도의 가운데 이 있으면 이 있고, 이 있으면 이 있으며, 양이 줄어들면 음은 자라고, 君子가 나아가면 小人은 물러납니다. 이런 순환은 끝이 없지만 애초부터 도는 상대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제가 지난번에 이미 두 가지 학문의 지나간 승부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오늘날 나아가려 하는 방향의 옳고 그름을 살피려는 것이다고 말씀드렸으니, 이 뜻이 더욱 분명합니다.

소강절이 지은 漁樵對問에서 하늘과 땅은 본래 서로에게 의지하며, 형체에는 한계가 있지만 기에는 한계가 없다고 했으니 조리가 지극합니다.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이런 이론이 있었기 때문에 이천이 그렇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분명하게 하려면 (‘어초문대) 이 문단을 (󰡔연원록󰡕 伊川然之란 구절의) 아래에 주석으로 표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과거를 위한 교육이 무익하다는 것은 정말로 깨우쳐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학자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에게 (도학을) 일러준다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 먼저 욕망으로 끌어당기고, 나중에 사람들에게 불지를 일러준다는 것과 같으니, 여덟 자를 굽혀 한자를 펴는 것 보다 더 심하지 않습니까. 저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일입니다. 이천의 학제를 반드시 세세한 부분까지 그 자취를 따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군의 학교에서 사사로이 시험을 치고 순위를 비교해서 음식물을 내리는 것은 더욱 번잡한 듯 하니 당연히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관직의 제수가 이미 내려졌으니 윗사람에게 설명하고 아랫사람들을 훈교하여 선생의 말씀이 끝내 폐기되지 않게 하는 것이야 말로 지금 우리 백공의 책무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 고을에서만 시행되지는 않고 보다 널리 시행될 것입니다.

 

竊承進學之意甚篤, 深所望於左右. 至於見屬過勤, 則非區區淺陋所堪. 然不敢不竭所聞, 以塞厚意. 熹舊謂程子之書有年矣, 而不得其要. 比因講究中庸首章之指, 乃知所謂涵養須用敬, 進學則在致知, 兩言雖約, 其實人德之門無踰於此. 方竊洗心以事斯語, 而未有得也, 不敢自外, 輒以爲獻. 以左右之明, 尊而(3-1410)行之, 不爲異端荒虛浮誕之談所遷惑, 不爲世俗卑近苟簡之論所拘牽, 加以歲月, 久而不舍, 竊意其將高明光大, 不可量矣.

承喩所疑, 爲賜甚厚. 所未安者, 別紙求敎. 然其大槪, 則有可一言擧者. 其病在乎略知道體之渾然無所不具, 而不知渾然無所不具之中, 精粗本末賓主內外蓋有不可以豪髮差者, 是以其言常喜合而惡離, 却不知雖文理密察, 縷析豪分而初不害乎其本體之渾然也. 往年見汪丈擧張子韶語明道至誠無內外之句, 以爲至誠二字有病, 不若只下箇. 大抵近世一種似是而非之說, 皆是此箇意見, 惟恐說得不鶻突, 眞是謾人自謾, 誤人自誤. 士大夫無意於學, 則恬不知覺 : 有志於學, 則必人於此, 此熹之所以深憂永嘆, 不量輕弱而極力以排之. 雖以得罪於當世, 而不敢辭也.

注中改字, 兩說皆有之. 蓋其初正是失於契勘凡例, 後來却因汪丈之說, 更欲正名, 以破其惑耳. 然謂之因激增怒則不可. 且如孟子平時論楊墨, 亦平平耳. 及公都子一爲好辯之間, 則遂極言之, 以至於禽獸. 蓋彼之惑旣愈深, 則此之辯當愈力. 其禽縱低昂, 自有準則, 蓋亦不期然而然. 然禽獸之云, 乃其分內, 非因激而增之也.

(3-1411)來敎又謂吾道無對 不當與世俗較勝負此說美則美矣 而亦非鄙意之所安也. 夫道固無對者也, 然其中却著不得許多異端邪說, 直須一一剔撥出後, 方曉然見得箇精明純粹底無對之道. 若和泥合水, 便只著箇無對包了, 竊恐此無對中却多藏得病痛也. 孟子言楊墨之道不熄, 孔子之道不著, 而大易於君子小人之際, 其較量勝負, 允爲詳密, 豈其未知無對之道邪? 蓋無對之中, 有陰則有陽, 有善則有惡, 陽消則陰長, 君子進則小人退, 循環無窮, 而初不害其爲無對也. 況熹前說已自云, ‘非欲較兩家已往之勝負, 乃欲審學者今日趣向之邪正’, 此意尤分明也.

康節所著漁樵對問, 天地自相依附, 形有涯而氣無涯”, 極有條理. 當時想是如此說, 故伊川然之. 今欲分明, 卽更注此段於其下, 如何?

科擧之敎無益, 誠如所喩. 然謂欲以此致學者而告語之, 是乃釋氏所謂先以欲勾牽, 後令人佛智, 無乃枉尋直尺之甚, 尤非淺陋之所敢聞也. 伊川學制固不必一二以循其跡, 然郡學以私試分數較計鋪啜, 尤爲猥屑, 似亦當罷之.

若新除已下, 則上說下敎, 使先生之說不遂終藤於時, 乃吾伯恭之責, 又不特施於一州而已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동래별집󰡕 7 與朱侍講3서에 대한 답장으로 건도 6(경인: 1170, 41) 여름에 쓴 것이다. 與朱侍講3서에서 여조겸은 소씨는 우리 도에 있어서 양주 묵적이 아니라 당륵과 경차에 해당합니다고 했다. 저는 며칠 전에 다시 교관을 제수 받았습니다고 했기 때문에 與朱侍講3서는 경인년 5월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자는 이 답신에서 보내주신 편지에서 소씨는 우리 도에 양주와 묵적이 될 수는 없고 당륵과 경차의 부류에 해당할 뿐이다고 했습니다라고 했는데 바로 여조겸의 이 서신에 대한 답신이며 따라서 경인년 여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보내주신 가르침이 곡절하니 당신께 바라는 점이 많습니다. 되돌아보니 그간 서로 일치하지 못한 곳이 있어서 지극한 토론을 통해 지극히 당연한 귀결점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피아를 구분하고 승부를 겨루는 혐의를 받은 것은 제가 비록 매우 변변치 못하지만 어찌 다시 이렇게 당신을 의심하겠습니까? 수양하고 수렴하여 마음속에 접어두라는 가르침은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부득이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쇠미하고 도리는 미미해져 사특하고 공정치 못한 학설이 계속 일어납니다. 기타 분분한 것은 논하지 않더라도 백공처럼 현명한 사람도 역시 익숙한 견문에 습관이 되어 편안히 여기고 사람들이 경전을 속이고 성인을 속이며 이단의 학설이 제멋대로 횡행하는 것을 보고도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저와 같은 사람이 또 어찌 독선 하는데 마음을 편안히 여기고 극단적인 언설과 뒤엎는 언론으로 일세의 어둠을 깨우지 않겠습니까? 만일 세상에 그 책임을 맡은 사람이 있다면 저 또한 무엇이 괴로워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겠습니까? 설사 안자의 때라 하더라도 위로 공자가 없었다면 도를 밝히고 세상을 구하려는 저 사람들도 반드시 도가 있으니 결코 퇴연히 누추한 골목 안에 편안히 앉아 홀로 그 자신만을 선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맹자는 우, , 안자는 장소를 바꾸어도 모두 그렇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직 맹자만이 이러한 도리를 보았고 양자운과 같은 무리는 안자를 단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스스로를 지키는 훌륭한 사람으로만 본 것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더욱 심합니다. 그들이 논한 안자란 거의 부처와 노자의 공허함과 적멸함에 가깝습니다. 학자는 실로 안자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자신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며, 성냄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함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수고로움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은 급작스럽고 넘어지는 사이에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마땅하게 조치하는 것을 살펴 체용을 함께 거론함으로써 한쪽만 폐지하는 것이 없어야 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작용이 보편적이지 않으면 이른바 본체라는 것은 흙덩어리처럼 죽은 것에 불과할 뿐이니 어찌 참으로 본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천 선생은 18세 때 글을 올려 안자가 무후와 다른 까닭을 논한 것과 상채가 소와 무가 다른 점을 논한 것을 보면 성현의 마음은 사사로운 뜻이 없고 단지 천명을 두려워하고 천리를 따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는 근래 내수외양의 학설을 논하는 사람들과도 서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나 스스로 다스리는 것은 비록 혹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러나 어찌 이것으로 도적을 토벌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보내주신 편지에서 소씨는 우리 도에 양주와 묵적이 될 수는 없고 당륵과 경차의 부류에 해당할 뿐이다고 했습니다. 전에 왕장[왕응진]께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치를 가장 잘 못 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장과 도리는 과연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것일까요? 만약 도리와 별도로 사물이 있다면 문장을 짓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망언해도 도리에는 아무런 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리와 사물은 별개의 것이 아니므로 하나라도 도리에 부합하지 않는 말을 한다면 도리에 해가되지만 그 해는 완급과 심천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굴원, 송옥, 당륵, 경차의 문장은 저도 예전에 한때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들의 말은 비록 화려하지만 그러나 실질은 슬픔과 방광이라는 두 가지 극단일 뿐입니다. 매일 이러한 글을 외우며 그것과 함께 변화해 간다면 어찌 마음에 큰 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보지 않습니다. 이제 당신의 말 때문에 그가 한때 형초의 사이에서 지은 것 역시 꼭 맹자의 귀에서 들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사방에 유전하게 한다면 학자들은 집안에서 전하고 사람들은 외워 지금 소씨의 학설처럼 되면 맹자를 연구하는 사람이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소씨의 학문은 위로는 성명을 말하고 아래로는 정리를 기술하니 그가 하는 말은 굴원, 송옥, 당륵, 경차와는 다릅니다. 학자들이 애초에 그의 문장을 좋아하는 것은 하루아침의 작은 이익 때문이겠지만, 그것이 오래되면 점점 골수까지 빠져들어 다시는 스스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재를 무너뜨리고 풍속을 파괴하는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백공은 그것을 분별하려고 하면서 어찌 아직 그 점은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를 폄하하여 당륵과 경차의 반열에 두는 것은 겉으로는 배제하려고 하면서 속으로는 칭찬하는 것일 뿐입니다. 전에 보니 정헌공은 가전에서 소씨를 단지 공허하고 변변찮은 말을 떠드는 사람으로 지목하셨는데, 사인장께서 지은 동몽훈에서는 시문은 반드시 소씨와 황씨를 법으로 삼아야 한다고 극구 칭찬하시니, 일찍이 남몰래 탄식하며 정헌공과 형양 같은 분은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며 사인장의 은미한 뜻을 아직 잘 모르는 것이 있음을 유감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노형께서 오늘 논의하신 것은 다른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가학을 두고 말한 것인데 역시 가까운 것에 가려 먼 것에 위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다시 잘 생각하여 지극히 당연한 귀결점을 구하여 자신을 잘못되게 하고 다시 다른 사람까지 잘못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앞 편지에서 사공[사량좌]의 학설을 물으셨는데 때마침 그 부분에 병폐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옛날의 성현과 정씨가 하학처를 논하는 곳까지 의관을 바르게 하고 용모를 엄숙하게 하는 일을 우선시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한 후에 마음을 보존하여 사벽한 곳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에서 사특한 것을 막고 진실함을 보존한다고 한 말은 정씨가 말한 밖에서 제제함으로써 그 속에 있는 것을 기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의장과 기수의 말엽에 빠져 있으면 안됩니다. 만약 바르게 하고 조심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의 근본이라면 이것은 단지 불교의 소견으로 헛되이 제멋대로 가슴 속에 그러한 까닭을 둘 뿐이고, 사실 참된 공부처는 없는 것입니다. 유자의 학문은 바로 이와 같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示喩曲折, 深所望於左右. 顧其間有未契處, 不得不極論, 以求至當之歸. 至於立彼我較勝負之嫌, 則熹雖甚陋, 豈復以此疑於左右者哉? 持養斂藏之誨, 敢不服膺. 然有所不得已者, 世衰道微, 邪詖交作, 其他紛紛者固所不論, 而賢如吾伯恭者, 亦尙安於習熟見聞之地, 見人之詭經誣聖, 肆爲異說, 而不甚以爲非, 則如熹者, 誠亦何心安於獨善, 而不爲極言覈論, 以曉一世之昏昏也?

使世有任其責者, 熹亦何苦而譊譊若是耶? 設使顔子之時上無孔子, 則彼其所以明道而救世者, 亦必有道, 決不退然安坐陋巷之中以獨善其身而已. 故孟子言禹顔子易地則皆然. 惟孟子見此道理, 如楊子雲之徒, 蓋未免將顔子只做箇塊然自守底好人看. 若近世, 則又甚焉. 其所論顔子者, 幾於釋老之空寂矣. 熹竊謂學者固當學顔子者, 如克己復禮, 不遷怒貳過, 不伐善施勞之類, 造次顚沛, 所不可忘. 但亦須審時措之宜, 使體用兼擧, 無所偏廢, 乃爲盡善. 若用有所不周, 則所謂體者, 乃是塊然死物而已, 豈眞所謂體哉? 觀伊川先生十八歲時上書所論顔子武侯所以(3-1413)不同, 與上蔡論韶武異處, 便見聖賢之心無些私意, 只是畏天命循天理而已. 此義與近世論內修外攘之說者亦相貫: 夫吾之所以自治者, 雖或有所未足, 然豈可以是而遂廢其討賊之心哉?

示喩蘇氏於吾道不能爲楊墨, 乃唐景之流耳, 向見汪丈亦有此說. 熹竊以爲此最不察夫理者. 夫文與道, 果同耶? 異耶? 若道外有物, 則爲文者可以肆意妄言而無害於道. 惟夫道外無物, 則言而一有不合於道者, 則於道爲有害, 但其害有緩急深淺耳. 景之文, 熹舊亦嘗好之矣. 旣而思之, 其言雖侈, 然其實不過悲愁放曠二端而已. 日誦此言, 與之俱化, 豈不大爲心害? 於是屛絶, 不敢復觀.

今因左右之言, 又竊意其一時作於荊楚之間, 亦未必聞於孟子之耳也. 若使流傳四方, 學者家傳而人誦之, 如今蘇氏之說, 則爲孟子者亦豈得而已哉? 况今蘇氏之學上談性命, 下述政理, 其所言者, 非特屈景而已. 學者始則以其文而悅之, 以苟一朝之利, 及其旣久, 則漸涵入骨髓, 不復能自解免. 其壞人材敗風俗, 蓋不少矣. 伯恭尙欲左右之, 豈其未之思邪? 其貶而置之唐景之列, 殆欲陽擠而陰予之耳. 向見正獻公家傳語及蘇氏, 直以浮薄談目之, 而舍人丈所著童蒙訓, 則極論詩文必以蘇黃爲法, 嘗竊歎息, 以爲若正獻滎陽, 可謂能惡(3-1414)人者, 而獨恨於舍人丈之微旨有所未喩也. 然則老兄今日之論, 未論其它, 至於家學, 亦可謂蔽於近而違於遠矣. 更願思之, 以求至當之歸, 不可自誤而復誤人也.

前書奉問謝公之說, 正疑其不能無病. 詳考從上聖賢以及程氏之說論下學處, 莫不以正衣冠肅容貌爲先. 蓋必如此, 然後心得所存而不流於邪僻. 易所謂閑邪存其誠’, 程氏所謂制之於外, 所以養其中, 此也. 但不可一向溺於儀章器數之末耳. 若言所以正所以謹者, 乃禮之本, 便只是釋氏所見, 徒然橫却箇所以然者在胸中, 其實却無端的下功夫處. 儒者之學, 正不如此. 更惟詳之.

 

 (): 原作’, 據正訛引唐荊川本改.

 (): 宋浙本作’.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주자는 이 서신에서 “‘엄밀함을 비밀이라고 할 때의 , ‘살핀다를 관찰한다고 할 때의 로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했다면 본래의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고 했다. 󰡔동래별집󰡕 7 與朱侍講6서에서 여조겸은 지난번 문장의 맥락을 엄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말은 보내 주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애초부터 비밀의 밀과 관찰의 찰로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고 했다. 즉 여조겸의 與朱侍講6서는 주자의 이 서신에 대한 답신이다. 與朱侍講6서에서 장장(장경부)과 담을 마주한 이웃으로 밤낮으로 방문하여 강론합니다고 했다. 동래연보에 의하면, 백공은 경인년 5월에 태학박사를 제수 받았고, 같은 해 12월에 국사원편수관 실록원검토관을 겸직하였는데, 이 편지에서 맡은 일이 날로 증가한다는 말은 바로 이 일을 가리킨다. 또 경인년에 장식 역시 엄주에서 중앙으로 불려 들어가 백공과 같은 골목에 살았는데, “장장과 담을 마주한 이웃이다는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백공의 편지와 주자의 이 편지는 모두 건도 6(경인: 1170, 41) 겨울에 쓴 것이다.

 

 

학교에 관한 정책은 명목만 있고 실제 내용은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빠트리고 풍속을 망치게 할 뿐이니 아에 없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일찍이 바로잡은 적이 있었지만 대강대강 일 하고 제멋대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알만합니다. 그러나 교육을 바로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는 근본에 뜻을 두어야 도움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만약 시험과 같은 말류와 소소한 득실만을 보충한다면 깊이 있는 비교를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전에 여러 학생들에게 준 좌씨를 논설한 서적을 보니 매우 상세하고 박식하더군요. 그러나 단어를 구사하고 뜻을 표현하는 것에 자못 상처가 교묘합니다. 후생이 전습할 때는 더욱 경박하여 심술의 해가될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빨리 바로잡을 생각을 하신다면 학자들에게 다행이겠습니다. 앞의 편지에서 인용한 문장의 맥락을 엄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말은 처음부터 자세하게 본 것이 아닙니다. 요즘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엄밀함을 비밀이라고 할 때의 , “살핀다를 관찰한다고 할 때의 로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했다면 본래의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란 세밀하다고 할 때의 이고 이란 분명하게 살핀다고 할 때의 이니 바로 지극히 작은 것 사이에도 하나하나 분별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문장의 맥락을 엄밀하게 살피면 분별할 수 있다는 말은 단지 한 가지 일에 대한 것일 뿐이지 서로 상반되어 서로를 이루는 설명은 아닙니다. 만약 도리상 분별할 점이 있다면 그 자체로 분명하여 덮거나 뒤집을 수 없으니 어찌 꼭 형체를 숨기고 자취를 숨겨 구한 후에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현의 마음은 바르고 크며 밝고 분명하여 사방에 환하게 비추기 때문에 봄이면 만물을 낳고 가을이면 죽일 수 있으며 지나가면 교화되고 신비함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알면서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학자는 이러한 기상을 알고 구해야 거의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세속의 일상적인 감정처럼 지루하고 교묘하게 굽어 있어 쉴 새 없이 앞을 보고 뒤 돌아 본다면 어찌 이러한 기상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고명하신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學校之政, 名存實亡, 徒以陷溺人心, 敗壞風俗, 不若無之爲愈. 聞嘗有所釐正, 而苟且放縱者多不悅其事, 亦可想而知矣. 然當留意於立敎厲俗之本, 乃爲有(3-1415). 若課試末流, 小小得失之間, 則亦不足深較也. 向見所與諸生論說左氏之書,極爲詳博. 然遺詞命意, 亦頗傷巧矣. 恐後生傳習, 益以澆漓, 重爲心術之害. 願亟思所以反之, 則學者之幸也. 前書所引文理密察’, 初看得不子細. 近詳考之, 似以爲祕密之’, ‘爲觀察之’. 若果如此, 則似非本指也. 乃細密之’, ‘乃著察之’, 正謂豪釐之間一一有分則耳. 故曰文理密察, 足以有別’, 只是一事, 非相反以相成之說也. 若道理合有分別, 便自顯然, 不可掩覆, 何必潛形匿迹以求之, 然後爲得邪? 大抵聖賢之心正大光明, 洞然四達, 故能春生秋殺, 過化存神, 而莫知爲之者. 學者須識得此氣象而求之, 庶無差失. 若如世俗常情, 支離巧曲, 瞻前顧後之不暇, 則又安能有此等氣象邪? 不審高明以爲如何?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동래별집󰡕 7 與朱侍講6서에서 여조겸은 보내 준 편지에서 지인용을 논했는데라고 했는데 바로 이 편지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편지도 위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건도 6(경인: 1170, 41)에 쓴 것이다.

 

맹자께서 두 사람의 용기를 말씀한 곳에 대한 당신의 설명은 문장의 의미가 온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자는 ”[]자 같은데 이 두 사람의 용기를 말할 때 누가 더 뛰어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맹시사는 요점을 잘 지킨 것일 뿐입니다. 누가 더 용기 있는지를 논한 것이 아니라 단지 누가 더 요점을 잘 지키고 있는가를 논한 것일 뿐이고 또 문장의 일반적인 흐름이지 두 사람 각자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면서 완곡하게 회피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증자 자하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역시 어찌 그들의 덕이 비슷하겠습니까? 단지 기를 지키고 용기를 기르는 분량과 천심에 비슷한 점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 역시 맹자가 피한 것은 아닙니다. 대저 백공은 천성이 온후하기 때문에 논의도 공평하고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완곡한 뜻이 많지만, 저는 성질이 폭한하기 때문에 토론할 때마다 분발하고 앞으로 치고 들어가는 기운이 있습니다. 제가 천리로 헤아려 보면 우리 두 사람은 아무래도 모두 중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의 행동이 자신을 혼란에 빠트리고 남을 상하게 하기에 족하다면 더욱 미워할 만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백공께서도 아무래도 한 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지당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좋은 말씀으로 권하고 바로잡아 주신 도움에 보답하지 못하고 감히 어리석은 생각을 올리지만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때에 맞춰 도착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흠부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근래의 여러 가지 일의 곡절을 갖추어 말하니 근심과 번민이 조금 풀립니다. 당신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출입할 때 병이 없을 것이고, 벗이 와도 해가 없을 것이다는 말로 대략 인사를 드리는 것이 더욱 당연하고 생각해 보니 이미 정해진 법도가 되었습니다. 다시 바라건대 모든 일을 거듭 삼가 만사를 완전하게 도모하십시오. 인재를 완전하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단점을 경계하면 장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면 단점을 섞으니 이것을 자세히 착안하는 힘이 있으면 후회하는 일을 없을 것입니다.

 

 所論孟子論二子之勇處, 文意似未然. 字只似, 言此二人之勇, 未知其孰勝, 但孟施舍所守得其要耳. 蓋不論其勇之孰勝, 但論其守之孰約, (3-1416)亦文勢之常, 非以爲二子各有所似而委曲回互也. 且二子之似曾子子夏, 亦豈以其德爲似之哉? 直以其守氣養勇之分量淺深爲有所似耳. 此亦非孟子之所避也. 大抵伯恭天資溫厚, 故其論平恕委曲之意多 : 而熹之質失之暴悍. 故凡所論皆有奮發直前之氣. 竊以天理揆之, 二者恐皆非中道. 但熹之發, 足以自撓而傷物, 尤爲可惡. 而伯恭似亦不可專以所偏爲至當也. 無以報箴誨之益, 敢效其愚, 不審然否? 因來及之, 幸甚幸甚.

欽夫書來, 具道近事曲折, 少釋憂懣. 想贊助之力爲多. ‘出入無疾, 朋來無咎’, 大率致意此誤, 尤切當然, 想已有成規. 更願凡百毖重, 以圖萬全. 最是人材難全, 懲其所短則遺其所長, 取其所長則雜其所短, 此須大段子細著眼力, 乃可無悔吝耳.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동래별집󰡕 7 與朱侍講6서에서 여조겸은 맹자가 말씀하기를 나는 이것이 두려워 선대 성인의 도를 익숙하게 익힌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을 익숙하게 익힌다고 설명한 것은 그 의미가 매우 깊습니다고 했다. 주자는 이 편지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선대 성인의 도를 지킨다는 말에 대하여 저는 사특함을 막는다고 할 때의 막는다는 뜻과 같아야 위아래 문장의 의미와 서로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하게 익힌다라고 해도 그 의미는 좋지만 그러나 아무래도 맹자의 본의는 아닙니다.” 즉 여조겸의 與朱侍講6서에 대한 답신임을 알 수 있다. 또 여조겸의 편지에서 맡은 일이 날로 늘어간다고 한 것은 경인년 12월 백공이 국사원편수로 들어간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서신은 경인년 연말에 쓴 것이며, 주자의 이 답신은 그 다음해인 건도 7(신묘: 1171, 42) 봄에 쓴 것이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선대 성인의 도를 지킨다는 것에 대하여 저는 사특함을 막는다라고 할 때의 막는다는 뜻과 같아야 위아래 문장의 의미와 서로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하게 익힌다라고 해도 그 의미는 좋지만 그러나 맹자의 본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면 선대 성인의 도를 익숙하게 익힌 사람이 어찌 시비를 분별하고 같고 다른 점을 반복하는 것을 치지격물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열심히 해야 하는 일을 배제하고 염장 지양의 공부가 없다고 해서 감히 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익숙하게 익힌 것은 끝내 작은 차이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안자와 같은 사람이 이와 같지 않았던 것은 모두 이러한 흔적이 없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이 일은 본래 의심할 것이 없지만 단지 사람들은 기질의 치우침이 있고 감정을 따라 의를 세우기 때문에 많은 장애를 보이게 됩니다. 만약 그 마음을 크게 갖고 천하의 지극히 공정한 도리로 본다면 이렇게 빙빙 돌리고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지 인 용의 의미에 대한 당신의 설명은 매우 정밀합니다. 하지만 귀산의 설명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원칙적인 측면에서 말하면 도달한 바는 비록 서로 다르지만 그러나 모두 빠트릴 수는 없으니 당신의 설명과 같은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도달한 바의 경지로 말하자면 어진 사람은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로우며 용기 있는 사람은 강하면서도 각각 주장하는 바가 있는데 귀산의 설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설명 방식은 그 요점은 모두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니, 날줄과 세줄로 보자면 그 뜻은 비로소 충분합니다. 어떻습니까?

동정과 음양에 관한 설명은 끝내 분명하지 않은데 어째서일까요? 어찌 전에 올린 답장이 요점을 얻지 못함으로써 당신의 의심을 샀기 때문이 아닐까요? 요즘 다시 읽어 보니 병폐가 있다는 것을 알고 따로 저의 설명을 올리고자 합니다. 이제 보내 준 편지에서 인용한 것을 미루어 밝히면 아마 더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고요하다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사물에 감응하게 되면 어찌 끝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을 가리켜 중이라고 하고 전체를 가리켜 인이라고 한다면 모두 고요한 것을 떠나지 못하고 말한 것입니다. 사물의 마땅함에 처하는데 이르는 것을 의라고하고 처하여 그 지위를 얻는 것을 올바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두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순간을 말한 것입니다. 이렇다면 어찌 음양 체용과 동정 빈주의 구분이 있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정자는 인은 본체고 의는 작용이다. 의는 작용임을 알고도 밖으로 하지 않는 사람과는 도를 말할 수 있다. 지금 대부분의 의논자는 그것을 밖으로 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혼연히 섞어서 구별하지 않으니 인의의 설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다고 했으니 이 뜻이 매우 분명합니다. 그리고 체와 용이라고 이름한 것은 단지 그것을 서로 대응하면서도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제 정을 중정인의의 본체로 보고 또 중정인의는 정의 작용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또한 모순되고 불안한게 심하지 않습니까? 생각건대 오로지 지각으로 인을 이름하면 의심컨대 그것은 정을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로 말미암아 더욱 궁구하고 살펴야 할 것인데 이른바 인이란 지각의 의미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所喩閑先聖之道’, 竊謂只當如閑邪’, 方與上下文意貫通. 若作閑習’, 意思固佳, 然恐非孟子意也. 政使必如是說, 則閑習先聖之道者, 豈不辨(3-1417)析是非, 反復同異, 以爲致知格物之事? 若便以爲務爲攘斥, 無斂藏持養之功而不敢爲, 則恐其所閑習者終不免乎豪釐之差也. 若顔子則自不須如此, 所以都無此痕迹耳. 此事本無可疑, 但人自以其氣質之偏, 緣情立義, 故見得許多窒礙. 若大其心, 以天下至公之理觀之, 自不須如此回互費力也.

所論智勇之意, 則甚精密. 然龜山之說亦不可廢. 蓋以其理言之, 則所至雖不同, 而皆不可闕, 如左右之說是也. 若以其所至之地言之, 則仁者安之, 知者利之, 勇者强焉, 又自各有所主, 如龜山之說矣. 然此兩說者, 要之皆不可廢, 經緯以觀, 其意始足. 如何?

動靜陰陽之說, 竟未了然, 何耶? 豈非向來奉答者未得其要, 有以致賢者之疑乎? 比再觀之, 方以爲病, 欲別爲說以奉報. 今以來喩所引者推明之, 似却更分明也. 夫謂人生而靜是也, 然其感於物者, 則亦豈能終不動乎? 今指其未發而謂之中, 指其全體而謂之仁, 則皆未離乎靜者而言之. 至於處物之宜謂之義, 處得其位謂之正, 則皆以感物而動之際爲言矣. 是則安得不有陰陽體用動靜賓主之分乎? 故程子曰: ‘仁體, 義用也. 知義之爲用而不外焉者, 可以語道矣. 世之論義者多外之, 不爾則混然而無別, 非知仁義之說者也. ’此意極分明矣. 且體用之所以(3-1418), 政以其對待而不相離也. 今以靜爲中正仁義之體, 而又謂中正仁義非靜之用, 不亦矛盾机椀之甚乎? 意者專以知覺名仁者, 似疑其不得爲靜. 恐當因此更加究察, 所謂仁者, 似不專爲知覺之義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건도 7(신묘: 1171, 42) 여름에 쓴 것이다. 󰡔서신편년󰡕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편지에서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도 안부를 묻지도 못하면서 마음속에 우러르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원리의 편지를 보고 난 후 당신 부인께서 홀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고 했다. 흠부가 사직했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빈지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고 한다. 󰡔동래여보󰡕에 의하며 건도 7년 신묘,513일 한씨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6월에는 휴가를 청해 무주로 돌아갔다.이 해에 좨주 예공(예국기), 태사 유공숙, 첨사 왕공 등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따라서 이 편지는 신묘년 여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장식이 사직했고 예국기가 세상을 떠난 것도 모두 이 해 여름의 일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도 안부를 묻지도 못하면서 마음속에 우러르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원리의 편지를 보고 난 후 당신의 부인께서 홀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부부의 의는 중요하니 상심하고 슬퍼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바는 감정을 잘 조절하고 예로 일을 처리하여 군주와 부모께 그리고 당신의 덕업이 천만리 먼 곳까지 미칠 수 있도록 자중하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흠부가 사직했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서로 강론하는 이로움을 잃어 이제 좋은 상황이 없어졌습니다. 길이 멀어 그의 설명을 청해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도를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할 수 없군요! 마침 이렇게 대강 적어 위로를 드리고 따로 예의를 갖춘 글을 드리지 못하니 잘 살펴 양해해 주십시오. 더 자세히 말씀하지 않겠습니다.

국기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오늘 빈지도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선한 사람들이 낙엽 지듯 떨어지니 매우 우려됩니다. 지언의의를 다시 적어 봉정하고 싶었는데 마침 장사로 가는 인편이 있기에 흠부가 있는 곳에 부치면서 그에게 돌려 전해 주라고 부탁했습니다. 만약 도착하거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 주지 마십시오. 남을 비난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중단되기 쉽고 의리는 탐구하기 어렵습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으니 매우 근심스럽고 두려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久不聞問, 方切懷仰, 得元履書, 乃知賢閣安人奄忽喪逝, 驚愕良深. 伏惟伉儷義重, 傷悼難堪. 區區所願約情就禮, 爲君親德業千萬自重, 幸甚. 欽夫去國, 聞之駭然. 想駿失講論之益, 無佳况也. 道遠, 不敢請其說. 然吾道之難行, 亦可知矣. 奈何奈何因便草此奉慰, 不敢別具狀疏, 諒蒙識察, 不次.

國器云亡, 極可傷. 今日又聞賓之亦逝去, 善類凋殘, 甚可慮也. 知言疑義再寫, 欲奉呈, 又偶有長沙便, 且寄欽夫處, 屬渠轉寄. 若到, 千萬勿示人, 但痛爲指摘爲幸. 功夫易間斷, 義理難推尋, 而歲月如流, 甚可憂懼. 奈何奈何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건도 7(신묘: 1171, 42) 겨울에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오늘 외숙의 장례 때문에 우계에 갔는데 魏應仲이 장지에 와서 대략 당신의 동정을 들었습니다. 그가 떠나는 편에 편지를 보내기 때문에 경황이 없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하지도 못합니다고 했다. 속경남은 연보장편1171년 조에서 “11, 외숙 祝嶠의 상 때문에 우계로 내려가 縣宰인 석돈과 만나 학문을 논하고, 韋齋와 현학 觀大閣을 방문했다”(p.452.)고 하였다.

 

 

전날 함께 보낸 편지는 지금쯤 도착했는지요? 요즘 한 겨울인데 날씨는 따뜻합니다. 바라건대 덕에 나아가는 일에 살핌이 있고 부친께도 만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상을 벗고도 죽지 않아 사무치는 그리움은 끝이 없으니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단지 세속의 일에 파묻혀 옛날의 학문은 모두 황폐해지고 사라져 생각은 종용하려고 하지만 경익에 힘입은 것이 적어 얻을 수 없습니다. 흠부에게는 계속해서 편지를 받지 못했는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깊고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역시 큽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요! 오늘 외숙의 장례 때문에 우계에 갔는데 위응중이 장지에 와서 대략 당신의 동정을 들었습니다. 그가 떠나는 편에 편지를 보내기 때문에 경황이 없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하지도 못합니다. 한해도 기울어 가니 도학에 자중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침 때때로 편지를 보내 연약 무능함을 경책하시는 일을 귀찮게 여기지 않으시니 바라는 바가 큽니다. 앞의 편지에서 조대한 글을 보내주시겠다고 허락하셨는데 빨리 얻을 수 있으면 다행이겠습니다.

 

前日因便附書, 今旣達否? 比日冬深, 氣候暄燠, 伏惟進德有相, 尊候萬福. 熹去喪不死, 痛慕亡窮, 它無可言者. 但塵務汨沒, 舊學蕪廢, 思得從容, 少資警益而不可得. 欽夫又一向不得書, 懷想旣深, 憂懼亦甚. 奈何今以舅氏之葬, 當走尤溪, 魏應仲來墓次, 得以略聞動靜. 因其行附訊, 匆匆, 不及究所欲言者. 歲晩, 願言爲道學自重. 因便來時枉書, 有以警策疲懦者不憚煩, 深所願望. 前書許寄條對之文, 亦幸早得之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건도 7(신묘: 1171, 42) 겨울에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근일 원리의 아들을 통해 편지를 보냈으니 분명 도착했을 것입니다고 한 것은 바로 앞의 편지를 이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편지는 유약과 유병 형제를 여조겸에게 추천하여 그의 문하에서 수학할 수 있도록 부탁한 것이다.

 

 

근일 원리의 아들을 통해 편지를 보냈으니 분명 도착했을 것입니다. 요즘은 겨울이 따뜻한데 덕업에 성찰이 있고 부친께서도 만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건양 사람인 유씨 형제(원주: 유약과 유병)를 함께 추천하여 보냅니다. 그들의 부친께서도 역시 면거를 통해 예부에서 실시하는 회시에 참여했는데 모두 당신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저는 새로 거처를 옮겨 그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데, 이년동안 서로 왕래하면서 매우 친해졌습니다. 그들은 배우기를 좋아하며 가르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떠나기에 다시 이 편지를 보내 먼저 받아주시기를 부탁하니 그들과 함께 학문에 나아간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나머지 일은 이미 앞 편지에 적었기에 여기에서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살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近因元履之子附狀, 必達. 比日冬溫, 伏惟德業有相, 尊侯萬福. 建人劉氏兄(3-1420)弟爚炯同預薦送, 乃翁亦以免擧試禮部, 皆欲見於門下. 熹新阡與其居密邇, 兩年相從甚熟, 知其嗜學可敎. 因其行復附此爲先容, 幸與之進. 餘己具前書, 此不縷縷, 幸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건도 8(임진: 1172, 43) 초에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지난 겨울 외숙의 상을 당해 다시 우계에 갔다가 세모가 다가와서야 돌아 왔습니다고 했다. 따라서 이 편지는 앞 편지와 시간적으로 멀지 않다. 󰡔동래별집󰡕 7 與朱侍講11서에서 여조겸은 맹자는 먼저 소를 보고 제왕의 양심을 계발했다.어떤 사람은 그것이 오히려 우활하다고 의심하지만 나는 서로의 주장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주자는 이 서신에서 맹자가 소를 아끼고 백성의 재산을 불리는 일을 논한 것은아마도 저 사람이 나의 주장이 우활하다고 거슬리고 의심했기 때문에 잠시 아무 일 없는 이치를 토론하여 시험 삼아 말씀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하였다. 즉 주자의 이 편지는 여조겸의 與朱侍講11서에 대한 답신이다. 여조겸이 주자에게 보낸 제11서를 살펴보면 첫 머리에서 저는 다시 돌아와 직무에 종사한지 이미 한 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짝을 잃고 따르는 사람은 없으니 상황이 매우 삭막합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한씨 부인의 장례 치른 후 백공이 복귀한 일을 가리킨다. 󰡔동래연보󰡕를 살펴보면, 한씨 부인의 장례 치른 후 백공은 신묘년 8, 9월 사이에 복직했는데 이 편지를 쓸 때는 복직한지 이미 한 달이 지났으니 겨울임에 틀림없다. 주자는 회답한 서신(답여백공12)에서 새 해는 이미 지났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제12서는 임진년 초에 쓴 것이다. 답여백공10, 11서에는 모두 겨울철의 문안 인사가 있으니 그렇다면 답여백공10, 11서는 모두 그 전해인 신묘년 겨울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침 편지를 주시니 감사하고 위안이 됩니다. 편지를 받은 후 이미 새 해가 되었으니 새 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상을 벗고도 죽지 않았으니 말할 것이 없습니다. 지난 해 겨울 외숙의 상을 당해 다시 우계에 갔다가 세모가 다가와서야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세속의 번잡한 일상에 쫓겨 좋은 사색을 할 수 없으니 옛날의 학문은 더욱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전에 보내주신 편지에서 해 주신 여러 가지 말씀은 다행스럽게도 반복적이고통렬한 가르침으로 약이 되고 있으니 제가 바라는 바 입니다. 자신의 논지를 확립하여 타인보다 더 높기를 다툰다는 의심은 없습니다. 그러나 옳고 마땅함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치도를 논하는 일에도 순서가 있지만 그러나 본체와 작용은 뚜렷이 각각 하나의 일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이렇게 말하고 내일 저렇게 말하는 이치는 없습니다. 맹자가 소를 아끼고 백성의 재산을 불리는 일을 논한 것은 근본과 말엽이 비록 다르지만 그러나 서서 담론하는 사이에 그 설명을 다했습니다. 성현의 말씀은 기회를 따라 사물에 대응하므로 애당초 이치와 사태 정밀함과 조악함의 구별이 없습니다. 군주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본래 정신의 힘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지, 저 사람이 나의 주장을 우활하게 여길 것이라고 미리 의심하여 잠시 아무 문제가 없는 이치를 토론함으로써 시험 삼아 말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반드시 이와 같다면 바로 세속에서 이해의 사사로움을 계산하는 것이니 어느 곳에 또 다시 성현의 기상이 있겠습니까? 저의 견해는 이와 같으니 가부를 더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저의 논리가 매양 당신과 다른 까닭은 앞뒤로 많은 까닭이 있지만 그 귀결점을 요약하면 작은 차이일 뿐이므로 서로 강론하며 의견을 교환하면 같아질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느낀 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내 생각에 이 말을 아직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은데 이 사람이 서서 기다리니 자세하게 설명할 여유가 없습니다. 편지를 마주하고 끝없이 골몰히 생각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나 더욱 덕업에 나아가 스스로를 아끼고 중히 여기기를 바랄뿐입니다.

 

 便中辱書, 感慰. 信後已經新歲, 伏惟君子履端, 多納福祐. 熹免喪不死, 無足言者. 去冬以舅氏之喪再走尤溪, 逼歲方歸. 而目前俗冗事狀殊迫猝, 無佳思, 舊學益荒蕪矣. 向所附呈諸說, 幸反覆痛箴藥之, 區區猶有望也. 立論相高, 吾人固無此疑, 然只要得是當, 亦良不易耳. 論治固有序, 然體用亦非判然各爲一事, 無今日言此而明日言彼之理. 如孟子論愛牛制産, 本末雖殊, 然亦罄其說於立談之間. 大抵聖賢之言隨機應物, 初無理事精粗之別. 其所以格君心者, 自其精神力量有感動人處, 非爲恐彼逆疑吾說之迂, 而姑論無事之理以嘗試之也. 若必如此, 則便是世俗較計利害之私, 何處更有聖賢氣象耶? 愚見如此, 更惟精思而可否之. 區區之論所以每不同於左右者, 前後雖多, 要其歸宿, 只此毫釐之間, 議而通(3-1421)之 將必有日矣. 奏篇伏讀, 感發良多. 愚意尙恐其詞有未達者, 此人立俟, 未暇詳叩. 臨書傾想無已, 正遠, 惟益進德業, 自愛重, 是所願望.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8(임진: 1172, 43)에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저는 천주와 복주 사이에서 낭중장의 가르침을 얻었고”, “어찌 불행하게도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부고를 듣고 슬픔에 목이 메어 마음에 품어둘 수 없었습니다고 했는데, 낭중장은 백공의 부친을 가리킨다. 󰡔동래연보󰡕에서 건도 8년 임진, ……24일에 부친상을 당했다고 했다. 즉 백공이 부친상을 당한 것은 임진년 봄이다. 이 편지에서 요즘 한 여름에라고 했으니 이편지는 임진년 여름에 쓴 것이다.

 

정성스런 위문의 뜻은 앞 편지에서 표시했습니다. 요즘 한 여름에 비는 오래 내리니 순전한 효심에 감격한 것으로 생각하며 몸을 잘 유지하기 바랍니다. 저는 천주와 복주 사이에서 낭중장을 모시며 가르침을 얻었고 (저의 선친과 낭중장은) 친구의 인연을 맺은 연고를 입어 나를 매우 아껴주셨습니다. 근년 이래로는 비록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신은 가끔 서로 이어졌고 장려해주시고 조심하고 삼가도록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 감격스러움을 마음에 새기고 있으니 어느 날인들 감히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후일 궤장을 고요한 바닷가에 올리고 남은 가르침을 마치기를 기대했는데 어찌 불행하게도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부고를 듣고 슬픔에 목이 메어 마음속에 품어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깊고 궁벽한 산 속에 살고 있고 무녀로 달려갈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지금까지 편지를 보내 이 마음을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상을 당한 이래로 자고 일어나는 상태에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며 먹을 것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양해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효성이 지극하니 어찌 이것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문이 기대고 있고 벗들이 바라고 있으니 가벼이 여기지 말고 제발 슬픔을 눌러 참아 멀리서 근심하는 이를 위로해 주십시오. 인물은 묘연하니 엎드려 쓰는 편지에 눈물만 떨어집니다.

 

 

 慰問之誠, 謹具前幅. 比日中夏久雨, 伏惟純孝感格, 體力支勝. 熹自泉福間得侍郞中丈敎誨, 蒙以契舊之故, 愛予甚厚. 比年以來, 闊別雖久, 而書疏相繼, 獎厲警飭, 皆盛德之言. 感激銘佩, 何日敢忘 區區尙冀異時得奉几杖於寂寞之濱, 以畢餘誨, 豈謂不淑, 遽至於此 聞訃悲咽, 不能爲懷. 而山居深僻, 無婺女之便, 以故至今不能致一書以道此懷, 且候左右哀疚以來興寢之狀, 往來於心, 如食物之不下也. 不審能亮之否? 左右孝誠切至, 何以堪此? 然門戶之寄, 朋友之望, 實不爲輕, 千萬節抑, 以慰遠懷. 人物眇然, 伏紙增涕.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8(임진: 1172, 43)에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좋은 장지를 잡고 언제 장례를 치르기로 정하셨는지요? 무녀로 운구해 가는지요? 저는 매우 빈궁해서 작은 부의조차 보내지 못했고, 또 먼 곳에 있어서 영전에 엎드려 곡하지도 못했습니다고 했는데 바로 앞 편지에서 백공이 부친의 상을 입은 일을 이어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시 임진년에 쓴 것이다.

 

좋은 장지를 잡고 언제 장례를 치르기로 정하셨는지요? 무녀로 운구해 가는지요? 저는 매우 빈궁해서 작은 부의조차 보내지 못했고, 또 먼 곳에 있어서 영전에 엎드려 곡하지도 못하니 가슴 아프고 슬픈 마음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어찌 할까요! 이 편지는 조수가 한 장의 편지를 돌려 보여주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여기에 온 것입니다. 이제 한장께 부탁하여 보내니 어느 때나 도착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때를 지나면 또 다시 소식이 뜸하여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을 곳도 없습니다. 내가 전에 조정의 소환을 고사한 것은 (당신이) 일단 가까운 현으로 오게 되면 한번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거듭 생각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또 매우 빈궁하여 집을 나설 양식을 준비할 수도 없으니 다시 중도에 그만두었습니다. 이미 여러 공들에게 정성을 다해 애원했으니 혹 회답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지요. 말하고 싶은 것은 끝이 없습니다. 이 편지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襄奉卜吉, 定在何時? 只就婺女否? 熹貧窶之甚, 不能致一奠之禮, 又以地遠, 不得伏哭柩前, 楚愴之懷, 無以自見. 奈何此書因趙守轉示韓丈書, 始得宛轉附此, 却託韓丈致之, 不知達在何時. 過此又復悠悠, 無通問處矣. 熹向以召命不置, 欲自載一至近縣, 庶幾得以一見. 尋念無益, 且亦貧甚, 無辦裏糧處, 遂復中輟. 已瀝懇哀祈諸公, 儻得報聞, 何幸如之. 所欲言者無窮, 此書亦未敢旁及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8(임진: 1172, 43)에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근일 숙모의 상을 당했습니다고 했는데, 주자 숙모의 상은 임진년의 일이었다. 󰡔문집󰡕22辭免召命狀四(P.851)를 참고할 것. 또 이 서신에서 요즘 서리가 내리고 춥습니다고 했기 때문에 임진년 겨울에 쓴 것이 분명하다.

 

편지를 받들어 읽으면서 슬픔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살펴보니 장지에서 돌아와 우제를 지낸지도 오래되었는데 또 장송하지도 못했으니 한스럽게 생각할 뿐입니다. 요즘 서리가 내리고 추운데 (여읜 선친을) 슬퍼하고 사모하는 마음에 살핌이 있고 기거와 행동은 지탱하십시오. 저는 예전처럼 곤궁한데 근래에는 숙모의 상까지 당하여 근심스럽고 마음 아픈 것 외에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옛날 배운 것은 비록 폐지할 수 없지만 그러나 장구와 송설의 사이에서는 역시 안온처를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서로 함께 어울려 왕래하며 강론하고 평론하고 싶은 것을 서신으로는 보낼 수 없습니다. 보여 주신 편지에서 이전의 학문이 공허한 잘못을 갖고 있음을 깊이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매우 다행입니다. 근래에는 반드시 더 자세하고 엄밀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흠부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역시 백공께서 여기에 더 힘쓰게 하고 싶어 합니다. 별지에서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가르침을 구하고 있으니 하나하나 가르침을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요즘 독서를 하면서 이러한 유형의 문제가 매우 많은데 조금 번다하여 자세히 기록할 수는 없으니 후일 편리한 때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제례는 이미 대략 책이 완성되었는데 일이 년 기다리며 그 간 엄밀하게 살피지 못했던 것을 완전하게 할 생각입니다. 오늘 또 이렇게 기년복 상을 입게 되었으니 추세는 모름지기 졸곡 후에 권도에 맞게 예를 표시하며 그 실질을 살펴 닦고 이어 받들어 보내 바로 잡기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김에 이것도 붙여 보내니 다시 한장께 보내 주십시오.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부디 때에 따라 슬픔을 절제하고 부모께서 남겨주신 몸을 스스로 아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便中伏奉手疏, 伏讀感愴不能已. 且審反虞之久, 又恨不得從執紼者之後也. 卽日霜寒, 伏惟哀慕有相, 孝履支福. 熹窮陋如音, 比復道叔母之喪, 憂悴之外, 無可言者. 舊學雖不敢廢, 然章句誦說之間, 亦未見一安穩處. 所欲相與講評反覆(3-1423), 非書札所能寄也. 示喩深知前此汗漫之非, 幸甚. 比來講究必已加詳密矣 累得欽夫書, 亦深欲伯恭更於此用力也. 別紙數事求敎, 辜一一批誨. 比日讀書, 此類甚多, 少冗, 不能詳錄, 當俟後便耳. 祭禮略已成書, 欲俟之一兩年, 徐於其間察所未至. 今又遭此期喪, 勢須卒哭後乃可權宜行禮, 考其賓而修之, 續奉寄求訂正也. 因便附此, 復因韓丈致之. 未由承晤, 千萬以時節哀, 爲遺體自愛. 幸甚幸甚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편지에서 새 봄 이후로 기거와 행동을 지탱하고 있다니 큰 위안을 느낍니다라고 한 것은 백공이 거상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언행두 책은 역시 당시에 허둥지둥 만든 것이어서 그 간에 아직도 많은 오류가 있고 편차에도 법도가 없으며 애당초 문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회를 보아 읽어 보시고 바로 잡아 주시면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고 했다. 주자의 󰡔팔조명신언행록󰡕은 임진년에 지었다. 주자가 백공이 부친을 잃었다는 부고를 들은 것은 임진년 여름의 일이다. 이 편지에서 새 봄이라는 말과 문집의 순서를 따라 미루어보면 계사년 봄에 쓴 것이 마땅하다.

 

 

사람을 보내 전해주신 편지를 받았습니다. 새 봄 이후로 기거와 행동을 지탱하고 있다니 큰 위안을 느낍니다. (편지에서) 정성스럽게 가르쳐주셨고, 경계하고 격려하는 내용도 자못 많습니다. 벗들과 떨어져 사는 해로움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처음의 선한 마음가짐이 애초부터 밝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성찰과 점검을 잃어버리고 일에 따라 골몰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보내 온 심부름꾼은 책을 사러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우연히 그 곳에 가는 인편이 있어서 이 편지를 갖고 가게하려고 이렇게 부치다 보니 다른 것은 말할 겨를이 없어서 먼저 후의에 작은 감사를 드립니다. 언행두 책 역시 당시에 허둥지둥 만든 것이어서 그 간에 아직도 많은 오류가 있고 편차에도 법도가 없으며 애당초 문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회를 보아 읽어 보시고 바로 잡아 주시면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심부름꾼이 돌아온 날 따로 여쭤보십시오. 급하게 대강 적어 보냅니다.

 

專使奉敎, 承新春以來孝履支福, 感慰深矣. 敎告諄複, 警策殊多, 離群索居, 其害至此, 良可警懼. 蓋初心之善未始不明, 但失照管, 卽隨事汨沒, 不自覺耳. 來介市書未還, 偶有便人, 亦欲令持此書以往, 因復附此, 未暇它及, 先此少謝厚意. 言行二書, 亦當時草草爲之, 其間自知尙多謬設, 編次亦無法, 初不成文字. 因看得爲訂正示及爲幸. 餘俟盛價還日, 別得奉問. 便遽草草.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근래 서신을 올리고 살펴보니 이미 상제가 되었군요라고 했는데, 이것은 소상을 가리킨 다. 백공의 부친은 임진년 봄 2월에 작고했기 때문에 이 편지는 계사년 봄에 쓴 것이다. 또 편지에서 설호주에게 어제 또 편지를 받았는데 서로 함께하는 뜻이 매우 은근합니다.의리의 학에 대해서는 분명 깊은 연구가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언제인들 이단으로 흐르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薛浪語集󰡕23 又與朱編修書에서 오늘 이 새 봄날에”(卽日新春)라고 했는데 주자가 이 서신을 받은 것은 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래별집󰡕7 與朱侍講19서에서 설사룡이 이 길을 거쳐 돌아가면서 보름동안 머물렀습니다.의리는 깊이 탐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 역시 일찍이 공격해보았는데 애당초 이런 말을 한적 없다고 합니다”(薛士龍歸涂道此,留半月.義理不必深窮之說,亦嘗扣之,云初無是言也)는 주자의 이 편지에 대한 답신이다. 그러므로 여씨의 서신은 계사년 봄이나 여름에 쓴 것이고, 주자의 이 편지는 계사년 봄에 쓴 것이 틀림없다.

 

근래 서신을 올리고 살펴보니 이미 소상이 되었군요. 추모하는 마음 한없겠지만 몸과 얼굴 건강하기 바랍니다. 차를 사러 온 사람에게 보내신 편지는 아직 받지 못했는데 이미 바로 댁으로 갔을 것입니다. 학도들을 사절하여 돌려보내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을 수양하는 것은 좋은 방책인데 조예가 날로 깊어 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침을 받을 기약이 없다는 것을 한스럽게 여길 뿐입니다. 하지만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베껴 쓴 (당신의) 문장이 매우 많이 유전하고 있는데 그 폐단을 고찰해 보면 의론할 만한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아무래도 문장을 내는 일을 줄이고 참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예운에서 오제의 세대는 대도가 실행되었다고 하고, 삼대 이하는 소강의 세대라고 한 것도 대략 이러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분명히 내력이 있는데도 전하는 사람들이 덧붙여 올바른 뜻을 잃었습니다. 정자가 요순의 사업을 논할 때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고 삼왕의 일은 대현만이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아마 이러한 뜻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에서 너무 심하게 갈라놓고 거의 이제와 삼왕은 두 가지 다른 도인 것처럼 한 것은 잘못이 있습니다. 호공이 너무 깊이 인용하였는데 실로 깊이 살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견해는 이와 같은데 고명하신 당신의 생각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하는 김에 의문을 덧붙이다보니 소략합니다.

댁내 모두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산중에 사는 제가 보낸 것이 있으니 작은 것이라 생각하여 물리치지 마십시오.

설호주에게 어제 또 편지를 받았는데 서로 함께하려는 뜻이 매우 은근합니다. 듣건대 그의 학문은 쓸모가 있다고 하던데 한번도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이 심히 한스럽습니다. 하지만 고원한 것을 좋아하는 병폐가 있는 듯합니다. 의리의 학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데 그렇다면 언젠가는 이단으로 흐르지 않겠습니까? 그의 진급도 매우 갑작스런 것이어서 이해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편지를 통해 그가 돌연 진급한 연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다시 글을 올립니다.

밀암의 주지인 종목 스님은 근래 이미 입적하셨고 그의 제자인 법주 스님이 임시로 암자를 맡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암자는 원래 우승의 별장으로 지은 것인데 만약 법주 스님에게 맡겨 지키게 하려면 병첩을 하나 부쳐 주기를 청합니다. 혹 따로 맡아 관리하게 할 사람이 있다면 파견하여 보내는게 더욱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암자는 전답에서 들어오는 소득도 적고 겸노의 시절을 회복할 것도 아니라면 법주 스님께 맡겨 관리하는 것도 편리할 것입니다.

 

伏奉近告, 竊審已經祥祭, 追慕無窮, 尊體神相多福. 買茶人書尙未領, 當是已徑之府中矣. 謝遣學徒, 杜門自治, 深爲得策, 所造詣想日深矣. 恨未有承敎之期, 爲悵恨耳. 但爲擧子輩抄錄文字流傳太多, 稽其所敝, 似亦有可議者. 自此恐亦當少訒其出也. 如何如何? 禮運以五帝之世爲大道之行, 三代以下爲小康之世, 亦略有些意思. 此必粗有來歷, 而傳者附益, 失其正意耳. 如程子論堯舜事業非聖人不能, 三王之事大賢可爲也, 恐亦微有此意. 但記中分裂太甚, 幾以二帝三王爲有二道, 此則有病耳. 胡公援引太深, 誠似未察也. 鄙見如此, 高明復以爲如何?

因便附問, 草草.

眷集伏惟均慶, 山中有委勿外. 熹拜問.

薛湖州昨日又得書, 其相與之意甚勤. 聞其學有用, 甚恨不得一見之. 然似亦有好高之病, 至謂義理之學不必深窮, 如此則幾何而不流於異端也耶? 其進爲甚驟, 亦所未曉. 因書幸見告以其所自. 熹又拜.

(3-1425)密菴主僧從穆近已死, 其徒法舟見權管幹. 此菴元只作右丞莊屋, 如可且令看守, 卽求一榜幷帖付之. 恐或別有可令住者, 遣來尤佳. 但此菴所入亦薄, 非復謙老之時矣, 只令法舟守之亦便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편지에서 봄에 원리는 불행히도 병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는데, 주자가 지은 󰡔國祿魏公墓志銘󰡕(󰡔문집󰡕91)에 의하면 위염지는 계사년 봄에 세상을 떠났다. 이 편지에서 요즘 날씨가 습하고 덮다고 한 말이 있으므로 계사년 여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이 편지에서 아들을 백공에게 보내 배우게 하려는 것을 처음으로 말하고 있다.

 

여러 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내 주셨는데 살펴보니 이미 연제입니다. 슬프고 사모하는 마음 처음 같겠지만 요즘 날씨가 습하고 더우니 행동과 기거 잘 지탱하시면 지극한 위로가 되겠습니다. 저는 어제 이미 편지를 써서 자식을 보내 당신께 부치려고 했는데 연이어 내리는 비 때문에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장마 비가 그친 후 어떻게 할지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자식은 매우 나태하여 집에서 독서할 때는 아에 가르치는 대로 하지 않으니 그곳에 도착하거든 어버이가 가르치는 것처럼 하셔서 혹 앞으로 나아가게 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여전히 집에 있을 때처럼 하거든 바로 제게 편지를 보내 알려 주시면 바로 집으로 불러들여 오랫동안 누가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흠부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자에 대한 설명은 이미 아무 의심이 없다고 합니다. “애의 이치는 움직임의 단서요 생성의 도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라고 한 말씀은 아직 그렇게 친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은 애의 이치이다라고 할 때 이치란 글자는 중요한데 움직임의 단서라고 할 때 단서란 글자는 오히려 가볍습니다. 이런 의미를 헤아려 보면 작용을 과하게 침탈한 혐의는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유박사의 묘지를 아직 받지 못했는데 빨리 적어 보내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연원록을 지으려고 하는데 주돈이 이정 이후 여러 군자들의 행실과 문장을 모두 싣고 싶은데 유박사의 묘지와 영가 사람들의 사적의 시말이 아직 없어서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당신이) 설사룡에게 편지를 보내 그가 묘지명과 사적들을 찾아 저에게 보여주도록 부탁해 주십시오. 사룡과 서로 정성스럽게 토론했던 것 중에서 큰 것은 다행이 한두 가지 이해하게 되었는데 서로 만나 볼 인연이 없는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는 다시 궐석을 기다리고 있는지요? 그에게 소명이 바뀐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전에 호주에서 차를 구입하러 온 사람이 돌아갈 때 (설사룡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설사룡에게) 편지를 보내거든 번거롭지만 물어봐 주시고 더불어 안부도 꼭 전해주십시오. 밀암의 편액은 이미 보냈고, 스님의 편지도 있으니 오늘 이 편지와 함께 보내 드립니다. 택지가 이곳에 와서 매우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는데 편지가 있으므로 올립니다. 봄에 원리는 불행히도 병에서 일어나지 못하였으니 매우 가슴 아픕니다. 가까운 곳에 장지를 마련하고 아침저녁으로 가서 장례를 꾸리고 있습니다. 물응을 받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하는 김에 드리는 편지라서 소략합니다. 나머지는 이미 아들을 보내면서 드린 편지에 있습니다.

 

便中累辱手書, 伏審已經練祭, 哀慕如新, 卽日溽暑, 孝履支福, 感慰之至. 熹昨已作書, 欲遣兒子詣席下, 會連雨未果行, 俟梅斷看如何也. 但此見懶惰之甚, 在家讀書絶不成倫理, 到彼冀親警誨, 或肯向前. 萬一只如在家時, 卽乞飛書一報, 當呼之使歸, 不令久奉累也. ‘字之說, 欽夫得書云已無疑矣. 所諭愛之理猶曰動之端生之道云爾, 似頗未親. 仁者愛之理’, 字重 : ‘動之端’, ‘字却輕. 試更以此意秤停之, 卽無侵過用處之嫌矣. 如何?

劉博士墓誌不曾收得, 早錄寄幸甚. 欲作淵源錄一書, 盡載周程以來諸君子行實文字, 正苦未有此及永嘉諸人事跡首末. 因書士龍, 告爲託其搜訪見寄也. 士龍相款所論大者幸喩及一二, 亦甚恨無因緣得相見. 葉更待闕耶? 其改命必有以也.

(3-1426)前時湖州買荼人回, 曾附書, 不知收得否? 因書煩扣之, 幷爲致千萬意也. 菴牓已付之, 其僧有狀, 今附此便去. 擇之來此相聚甚樂, 有書納上. 元履春間不幸不起疾, 甚可傷. 近方爲卜得地, 旦夕往與謀葬也. 承問及之. 因便拜狀, 草草, 餘已具所道兒子書矣.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설사룡께서 이미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놀랍고 탄식할 뿐입니다고 했다. 󰡔동래집󰡕 「설상주묘지명에 의하면, 설계선(사룡)은 계사년에 작고했다. 󰡔동래집󰡕에서 백공이 주자에게 회답한 24번째 서신에서도 설사룡은 7월 하순에 병으로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으니, 설사룡은 계사년 가을에 작고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서신은 계사년에 쓴 것이다.

 

반수가 보낸 편지에서 당신의 근황을 들었는데 깊은 위로의 마음을 느낍니다. 평상시와 달리 늦더위가 매우 심한데 예기를 읽는 나머지 시간에는 행동과 기거 잘 지탱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빈궁하면서도 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조정의 소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근래 당첩을 받았는데 독촉이 더욱 엄준하니 상황이 한번은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삼구와 무주 사이에 이르러서 해직을 기다릴 생각입니다. 그 때 혹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자징은 이삼 일간 이곳을 다녀갔는데 여러 상황을 모두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행차를 통해 이 편지를 부치니 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바라건대 나머지 일은 때에 따라 보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집안 모두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보내는 물건이 있으니 작다고 물리치지 마십시오. 제 아들이 기거하고 먹일 계획이 아직 온당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찌 연말에 사람들을 번거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처소를 준비해서 손님과 주인 사이에 서로 오래하면서도 싫증내지 않을 곳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숙도에게 편지를 보내 이점을 깊이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노형의 생각대로 처리하면 좋겠습니다. 숙도가 편지를 보내주었는데 그의 논설을 보니 기질이 양후하여 쉽게 얻을 수 있는 인재는 아닙니다. 설사룡께서 이미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놀랍고 탄식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알지 못했던 것이 못내 한스럽습니다.

 

潘守附致所予書, 得聞近况, 感慰之深. 信後暑毒異常, 伏惟讀禮之餘, 孝履支福. 熹窮居碌碌, 無可言. 召命竟未能免, 近被堂帖, 督趣遒峻, 勢須一行, 至衢婺恭俟罷遣. 或得承晤, 何幸如之子澄過此兩三日, 諸况具能言之. 因其行附此, 不復縷縷. 餘惟以時保衛, 區區至懇.

眷集伏惟鈞安, 此間有骫勿外. 兒子寓食之計, 似終未穩, 豈可終歲擾人耶? 幸更爲處之, 使賓王之間可久處而不厭, 乃佳耳. 與叔度書不欲深言此, 但老兄以(3-1427)意裁之, 則善矣. 叔度惠書, 觀其論說氣質良厚. 不易得也. 聞薛士龍物故, 可駭可歎. 且恨竟不識斯人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앞 편지에서 조정의 소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근래 당첩을 받았는데 독촉이 더욱 엄준하니 상황이 한번은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삼구와 무주 사이에 이르러서 해직을 기다릴 생각입니다. 그 때 혹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라고 했다. 이 편지의 첫머리에서 지난번 엄한 소명을 받고 할 수 없이 조정에 나갈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곳을 경유하면서 꼭 한번 당신을 만나볼 생각입니다고 했는데 이것은 앞 편지를 이어 받은 것이다. 얼마 있다가 갑자기 품급을 고쳐 봉사의 명이 내렸다고 했다. 주자는 계사년 봄 3월에 소명을 고사하고 봉사를 요청하여, 5월에는 좌선교량주관태주숭도관으로 고쳐졌다.(연보를 볼 것) 이 편지에서 품급을 고쳐 봉사의 직책이 내렸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앞의 편지를 이어 받은 것으로 역시 계사년에 쓴 것이다.

 

지난번 엄한 소명을 받고 할 수 없이 조정에 나갈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곳을 경유하면서 꼭 한번 당신을 만나볼 생각이었습니다. 자징이 떠날 때 대강 안부를 전하면서 이미 이 일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갑자기 품급을 고쳐 봉사의 명을 내리니 드디어 물러나 숨어 사는 나의 바램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칭찬과 총애가 너무 두터우니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힘껏 간절하게 사절했는데 조정의 여러 대신들이 잘 양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재삼 사절해도 요청한 것과 다르다면 장차 이것을 어떻게 할까요? 가르침을 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아들을 오래전부터 보내려고 했는데 이 일로 마음이 어지러워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는데 스승의 자리 옆에 잘 붙잡아 두시기 바랍니다. 이 아이는 매우 게을러서 학문은 모르고 또 분수를 따라 과거시험에 각고의 노력도 하지 못합니다. 이제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당신에게 누를 끼치게 되었으니 통렬히 편책을 가하여 조금이라도 스스로 분려하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을 가려 교유하고 출입을 삼가는 일에서도 당신의 뜻을 따라 경계하고 살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가르칠 수 없게 된다면 빨리 저에게 편지를 보내 알려주시거나 혹은 짐을 싸서 되돌려 보내시더라도 전혀 그 형적을 혐의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자취가 이와 같으니 또 만날 날은 갖지 못했고 바람을 마주하여 경황이 없습니다. 때에 따라 슬픔을 절제하시고 도를 실천하며 스스로 아끼시기를 바랍니다.

 

昨以召旨之嚴, 不免爲造朝計, 意經由必獲一見. 子澄之行, 草草附問, 已嘗及其故矣. 旣而忽有改秩奉祠之命, 知獲遂退藏之願. 然褒寵過厚, 又有所不敢當者. 力爲懇解, 未知諸公頗見亮否. 萬一再三不如所請, 其將何以爲計? 有以見敎, 幸甚. 兒子久欲遣去, 以此擾擾, 未得行, 謹令扣師席. 此兒絶懶惰, 旣不知學, 又不能隨分刻苦作擧子文. 今不遠千里以累高明, 切望痛加鞭勒, 俾硝知自厲. 至於擇交游謹出入, 尤望垂意警察. 如其不可敎, 亦幾早以見報, 或便遣還爲荷, 千萬勿以形迹爲嫌也. 賤迹如此, 又未有承晤之日, 臨風悅然. 惟以時節哀, 爲道自愛.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19서에서 제 아들이 기거하고 먹일 계획이 아직 온당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했고, 20서에서 오래전부터 아들을 보내려고 했는데 이 일로 마음이 어지러워 아직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이 서신에서는 근래 비릉의 주교수에게 여러 편의 논어를 얻어서 아들에게 가지고 가서 한번 읽어 보게 했습니다라고 했다. 바로 앞의 여러 편지를 이어 받은 것으로 계사년에 쓴 것이다.

 

앞의 서신에서 설명한 인애의 주장은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학자들이 지향해가고 함영과 완색의 공부를 하게 할 수 있을지, 또 쉽게 대략의 요점만을 얻으려는 폐단이 없게 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습니다. 마침 보내주신 편지가 와서 매우 다행입니다. 유박사의 묘지명을 얻었으니 다행입니다. 이미 이 곳에 있는 이러한 유형의 글을 아침저녁으로 적어 보냅니다. 이것에 근거하여 그것이 없는 것을 탐방하면 후일 책 한권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학자들에게도 다행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래 비릉의 주교수에게 여러 편의 논어를 얻었는데 아들에게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고 이정 문하의 여러 군자들과 비교해서 누가 높고 누가 낮은지 생각해 보시고 한 말씀 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장사에서는 이삼 개 월 동안 편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소무에 맹자설이 있다고 하는데 의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고 그 판본을 얻거든 자세히 상고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자는 아주 일찍부터 유전했고 그 해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번 사람들이 베껴 쓴 절목 한 두 조목을 보았는데 이미 의심할 만한 곳이 있으니 전체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수사언인과 같은 것은 사실 여러 곳이 합치하지 않았는데 그 때 당시부터 판본이 돌아다니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우리 언제 수개월 동안 서로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함께 그 책을 내놓고 하나하나 의론하고 정정하여 지극히 마땅한 길로 돌아가도록 할까요? 몇 가지 조목이 더 있는데 그것은 별지에 따로 적었습니다. 빨리 가르침을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前書所諭仁愛之說, 甚善甚善. 但不知如何立言, 可使學者有所向望而施涵泳玩索之功, 又無容易領略之弊耶? 因來喩及, 幸甚幸甚. 劉博士誌文得之, 幸甚. 此類文字此間所已有者, 旦夕錄呈. 切告據此以訪其所無, 異時成得一書, 亦學者之幸也. 近得毗陵周敎授數篇論語, 令兒子帶去. 試一讀之, 以爲與程門諸君子孰高執下也, 以一言語及爲幸. 長沙此三兩月不得書, 邵武有孟子說, 不知所疑云何. 預以見告, 俟得本考之也. 然此等文字流傳太早, 爲害不細. 昨見人抄得節目一兩絛, 已頗有可疑處, 不知全書復如何. 若洙泗言仁, 則固多未合, 當時亦不當便令盡版行也. 吾人安得數月相携於深山無人之境, 共出其書, 一商訂之, 以求至當之歸乎? 更有數條, 又具別紙, 幸早垂敎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21서에서 아들에게 주교수의 논어해를 가져가게 했다고 하였다. 동래집의 주자에게 보내는 제23서에서는 주교수의 어해를 보니 평실한 공부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고, 아드님이 이곳에 온지 보름이 지났다고 한 것은 주자가 여백공에게 보내는 제21서에 대한 답신이다. 주자는 이 서신에서 주교수의 어해는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고 했는데 바로 백공에게 회답한 서신이다. 또 이 편지에서 요즘 맑은 가을인데라고 했기 때문에 계사년 가을에 쓴 것이 틀림없다.

 

편지를 써서 보내려고 했는데 (사람이) 아직 떠나지 않은 상황에서 마침 심부름꾼이 돌아와 편지를 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제가 들으니 요즘은 맑은 가을이라 상중의 기거와 행동을 잘 지탱하고 있다니 매우 위안이 됩니다. 저는 봉사의 벼슬마저도 아에 고사했는데 응낙을 얻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너무 과하게 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는데 아끼고 염려해 주신 은덕을 입었습니다.(원주: 이것은 높아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앉아서 예명을 받으니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힘껏 고사하며 (나를) 버리시기를 바랬습니다. 만약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또 따로 서로 상의하겠습니다.(원주 : 애초에는 힘껏 고사할 생각이었고 혹 죄를 얻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흠부로부터 편지를 얻었는데 말과 뜻을 보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바라건대 살피고 생각해서 다시 가르침을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때에 따라 빈 자리만이라도 받아들이라는 경계의 말씀은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흠부가 편지를 보내 이와 유사한 한두 가지 일을 경계하였는데 되돌아보니 치우침과 폐단이 이미 심하여 바로잡고 고치는 일이 매우 어렵게 되었으니 끝내 친구들이 바라는 바에 부합할지 모르겠습니다. 올 해는 복잡한 일이 많은데 아마 애초에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솔하게 정돈하려다 보니 이러한 근심이 있는 것입니다. 근래 미리 다음 해를 위해 준비했다면 자연히 이런 경우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교수의 어해는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윤공의 것처럼 독실한데 근엄함은 뛰어 넘었지만 순수하고 숙련된 점에서는 아직 미치지 못합니다. 당신은 이런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자식은 무지하니 자주 편책을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집에 있을 때 백방으로 타이르고 가르쳤지만 그 게으름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제 엄한 스승과 어려워하는 벗을 얻었으니 먼저 이러한 병폐를 떨쳐 버리면 아마 사람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숙도와 숙창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들의 편지와 돌아온 심부름꾼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내 아들을) 돌봐주는 일을 맡아 매우 잘 해주고 있다는데 더욱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마침 성에 들어가려고 하니 떠나기에 앞서 매우 바빠 이렇게 적어 보냅니다. 나머지는 후일 편리할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바삐 마무리 지으며.

 

方作書欲附便, 未行而兵子還, 辱書至感. 又得竊聞比日秋淸, 孝履支福, 至慰至慰. 熹賤跡且爾辭免, 未報爲撓. 不爲已甚之戒, 甚荷愛念. 此非所以爲高. 但坐邀禮命, 有所未安. 今且得力辭, 冀蒙相捨. 若其不獲, 又別相度耳. 若初意, 則直欲力辭, 雖使得罪, 亦無所避也. 欽夫得書, 觀其語意, 亦似不以爲可受也. 更望審思, 復以見敎, 幸甚幸甚. 時位之戒, 敢不敬承. 欽夫移書見戒一二事亦類此, 顧恐偏蔽已甚, 矯革爲難, 未知終能副朋友所期否耳. 今歲紛紛, 蓋爲初不爲備, 率然整頓, 故有此患. 近已預爲嗣歲之備, 亦自不至此也.

周敎授語解誠如所喩, 愚意其篤實似尹公, 謹嚴過之而純熟或不及也. 高明以此語爲如何?

小兒無知仰累鞭策, 感愧深矣. 在家百計提督, 但無奈其瀨何. 今得嚴師畏友, 先與擊去此病, 庶或可望其及人也. 又得叔度叔昌書, 兒子書中及回兵口說, 荷其照屬之意良厚, 益深愧作. 偶欲入城, 臨行冗甚, 作此附便, 餘俟後便(3-1430). 匆匆.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21서에서 아들에게 주씨의 󰡔어해󰡕를 가져가도록 했다고 했는데 이때서야 아들을 절중으로 보내 여백공을 따라 공부하게 한 것이다. 22서에서 주씨의 󰡔어해󰡕를 논한 것은 그의 아들이 절중에 도착한 것이다. 이 편지에서 제 자식을 받아 주어서 매우 감사합니다라고 한 것은 앞의 여러 편지를 이어 받은 것이다. 요즘 가을 하늘은 높고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편지는 계사년 가을에 쓴 것이다.

 

사람이 돌아올 때 답장을 받았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요즘 가을 하늘은 높은데 상중에 기거와 행동은 잘 지탱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는 일이 없으니 말할 것이 없습니다. 고사할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가르침으로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당신의 가르침대로 한다면 비록 장래의 근심을 미리 피할 수 있지만 지금의 의리에 부합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시고 서신으로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 자식을 받아 주어서 매우 감사합니다. 과정에 적응하고 정해진 규칙에 맞춰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간절한 부탁을 기꺼이 생각하시고 거리낌 없이 편책을 내려 주시면 더욱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더 이상 가르칠 수 없으면 바로 편지를 보내 말씀해 주시고 바로 제게 돌려보내면 더욱 다행이겠습니다. 간행한 󰡔횡거집󰡕은 매우 훌륭한데 어떤 판본을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촉중본이라면 빠진 글이 많습니다. 부쳐 온 것을 보고 보충할 부분이 있으면 별집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설문󰡕은 여기에도 좋은 판본이 없는데 하는김에 이미 유자화에게 편지를 보내 말해 놓았습니다. 흠부에게 근래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해󰡕 여러 단락을 보내 왔는데 서로 합치하지 않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비교했을 때 수렴하고 성실한 부분이 이미 많아졌습니다. 인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을 적어 보냅니다. 그는 따로 󰡔인설󰡕을 보내 왔는데 근래 답신을 보냈는데 역시 함께 적어 보냅니다. 타당치 못한 부분이 있으면 가르침을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더불어 문후를 드립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 슬픔을 절제하시고 자신을 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人還, 承答字, 感慰之淡. 比日秋高, 伏惟孝履支福. 熹碌碌無足言者. 誨諭辭受之義, 此亦方以爲撓. 若如來敎, 雖可逆避將來之患, 顧恐於今日義理未安耳. 幸更爲思之, 因書見告爲望, 懇懇. 兒子旣蒙容受, 感佩非常. 不知能應程課入規矩否? 凡百更望矜念愚懇, 痛賜鞭策, 爲幸之甚. 卽不可敎, 亦告早以垂喩, 卽遣還, 尤幸也. 橫渠集刊行甚善, 但不知用何處本? 若蜀中本, 卽所少文字尙多. 挨寄來看, 或當補, 卽作別集也. 說文此亦無好本, 因便已作書與劉子和言之矣. 欽夫近得書, 寄語解數段, 亦頗有未合處. 然比之向來, 收敏慤實則已多矣. 言仁諸說錄呈, 渠別寄仁說來, 比亦答之, 幷錄去. 有未安處, 幸指誨也. 因便致問, 正遠, 節哀自重爲請.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23서 말미에서 인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을 적어 보냅니다고 했고, 이 편지의 앞머리에서는 인설은 근래 다시 개정했는데라고 했는데, 함께 인의 의미에 대하여 토론한 것으로 제23서를 이어 받은 것이다. 따라서 계사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지은 것이다.

 

인설은 근래 다시 개정했습니다. 옛것에 비해 조금 더 분명하고 세밀한데 이미 다시 적어 (당신께) 보냈습니다. 이 설은 사실 너무 천박하고 함축하고 있는 의미도 적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러한 명의(개념)를 옛 사람들은 소학에서 배울 때부터 가르쳐 이미 분명하고 올바르며 분명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어서 후세처럼 천박하고 고루하며 현묘하고 공허하여 위 아래로 헛된 일을 하는 폐단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의 학자들 역시 이와 같은 이름과 이와 같은 도리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착실하게 실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성인 문하의 학자들이 모두 인을 구하는 일에 힘썼던 것은 대략 이미 그 명의를 알고 사실을 구하며 그런 지위에 나아간 것입니다. 만약 요즘 사람들처럼 망연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급급하게 구해도 평생토록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니 어찌 다시 즐겨 말하며 힘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하는 이야기는 고인과 비교했을 때 실로 천루한 것이지만 그러나 부득이해서 한 것입니다. 사실은 단지 이천의 인() () () ()의 주장을 조술한 것일 뿐이지만 명의를 조금 나누고 경계를 구분하여 맥락은 조리 있게 하여 학자들이 심신을 헛되이 쓰고 제멋대로 추측하여 동쪽을 서족이라 부르는 것을 면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진실로 공경 존양, 극기복례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주장은 제아무리 정밀하다고 하더라도 역시 저것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바로 학자가 희망하는 표준이 되어도 애당초 학자들이 공부하는 발걸음을 침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명하신 당신이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떠신지요? 아마도 깊이 의심할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공부와 남에게 일러주는 방법에는 사실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왕씨가 평론한 고명함과 중용의 폐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그 곡절을 다시 궁구하여 대략 저들의 주장을 깨트리면 좋겠습니다.

 

仁說近再改定, 比舊稍分明詳密, 已復錄呈矣. 此說固太淺, 少含蓄, 然竊意此等名義古人之敎自其小學之時已有白直分明訓說, 而未有後世許多淺陋玄空上下走作之弊, 故其學者亦曉然知得如此名字但是如此道理, 不可不著實踐履. 所以聖門學者皆以求仁爲務, 蓋皆已略曉其名義而求實造其地位也. 若似今人茫然理會不得, 則其所汲汲以求者, 乃其平生所不識之物, 復何所向望愛說而知所以用其力邪? 故今日之言比之古人誠爲淺露, 然有所不得已者. 其實亦只是祖述伊川仁情之說, 但剔得名義稍分界分, 脈絡有條理, 免得學者枉費心神, 胡亂揣摸, 喚東作西爾. 若不實下恭敬存養克己復禮之功, 則此說雖精, 亦與彼有何干涉耶? 故却謂此說正所以爲學者向望之標準, 而初未嘗侵過學者用功地步. 明者試一思之, 以爲如何? 似不必深以爲疑也. 自己功夫與語人之法固不同, 然如此說, 却似有王氏所論高明中庸之弊也. 須更究其曲折, 略與彼說破乃佳.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주자는 기축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친 조정의 소환에 응하지 않았는데, 집정자는 그가 도를 지키며 조용히 물러나 있는 것을 칭찬하며 계사년 5월에는 좌선교랑으로 고쳐 숭도관을 주관하게 했다. 주자는 물러나기를 요구하다 오히려 더 높은 관직을 받게 되자 의리에 타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다시 사양하고 받지 않았는데, 여백공은 너무 심하게 사양한다고 생각하였고 장경부는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여백공에게 보내는 제22서와 제23서에서는 모두 사양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논했고, 이 편지에서도 다시 이어 말하고 있으니 앞의 여러 편지를 이어 받은 것이다. 요즘 겨울 날씨가 춥습니다고 했으니 계사년 겨울에 쓴 편지이다.

 

어제 편지를 적어 편지를 전하는 사람 편에 부치려고 했는데 오늘 문득 편지를 받았습니다. 요즘 겨울 날씨가 추운데 상중의 행동과 기거를 잘 지탱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감사하고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별지에서 주신 자세한 가르침을 두세 번 거듭 읽으면서 경계하는 마음이 매우 지극하니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경력은 만족스럽고 진실로 갈고 닦았다는 말씀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자세히 갖추어 가르침을 구했으니 더 자세한 논의를 기다리겠습니다.

관직을 사양하는 글을 심윤의 전인에게 보냈는데 칠팔 월 간에 이곳을 떠났으니 내 생각에 이미 도착했을 것입니다. 근래 타인에게 부탁하여 묘당에 간청하는 말씀을 올리고 내가 요청한 것에 대한 회답을 듣고자했습니다. 회답을 받았는데 아직 나의 문장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니 실로 의심이 됩니다. 자징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그 사람(심윤의 전인)이 다시 어디를 지나 편지를 가져간다 하더라도 헤아려 보니 지금쯤은 분명히 도착했을 것입니다. 당시에 만약 그가 이렇게 돌아갈 줄 알았다면 관부의 우편을 통해 보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런 부침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호부에서 건녕부로 봉록이 발급되어 나오고 또 이미 결재를 내렸는데 이것은 제가 올렸던 장신에 대하여 내려 준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받지도 않았는데 이 문장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르겠고 또 이것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 일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있군요. 듣자하니 한장께서 저를 추천하는 글을 내셨다는데 전에는 이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낭패한 일을 당하고 한장께서 내민 도움을 얻고 대부분의 구함을 받아야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인데 이것이 서로 염려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편지를 쓰고 싶지 않고 그분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형께서 번거롭지만 편지를 한통 적어 제가 (관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뜻이 거짓으로 꾸민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묘당으로부터 사면하는 글을 받아내 제가 바라는 바를 따라 다시 원래의 관직을 내려주어 악묘를 관리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사태를 해결하는 일이 됩니다.

전에 편지를 쓰면서 이것을 언급하는 것을 잊었는데 마침 물어보시기에 다시 이것을 걱정하고 있는데 아무쪼록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소강절은 아마도 원칙에 어긋난듯하니 (그의 처신은) 벼슬을 받거나 사양하는 올바른 기준이 아닐 것입니다. 정이천이 서경국자감[서감]의 벼슬을 다시 받은 것은 단지 원래의 관직을 회복하고 예전의 직책에 나아갔을 뿐입니다. 또 태연하게 관직을 떠났으니 지금 제 일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 두 사람의 처신을) 제 경우에 가져다 본받을 수도 없으려니와, 장흠부도 편지를 보내서 말하기를 어찌 뒷날의 근심을 미리 계산하고서 앞서서 스스로 지키는 의리에만 빠져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으니 이 말이 또한 자로 끊어낸 듯이 간단명료합니다. 그러나 흠부는 제가 어떻게 하면 사면하려는 청을 허락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니, 만일 단지 이처럼 버티기만 하는 것은 신하된 자의 온당한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저의 이런 뜻을 한장께 전달해서 하루속히 맺힌 것을 풀어주신다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 지난 밤에는 이 편지를 쓰느라 다른 일은 손대지도 못했습니다.

 

昨日作書, 欲附便行, 今日忽得手示(), 獲聞比日冬寒, 孝履支福, 旣以感慰 : 又得別紙誨諭之詳, 伏讀再三, 警發甚至, 其爲欣荷, 又不自勝. 但所謂飽經歷眞切磨者, 不敢當耳. 區區已復詳具求敎, 顒俟益論也. 辭免文字附沈尹專人, 自七人月間去此, 意其已到. 近託人致懇廟堂, 求聽所請, 得報乃云文字未至, 良以爲疑. 得子澄書, 乃其人更過何處取書, 計今必已至矣. 當時若知其迂回如此, 只發遞去, 自無浮沈也. 然部中行下建寧, 又云已給批書, 此須作熹狀申部出給. 熹旣不受, 不知此文字是如何行遣? 都不可曉, 亦不知此物今在何處. 杜門無事, 乃有此撓. 聞是韓丈拈出, 前此亦末知. 今旣如此狼狽, 却須得韓丈出手, 大家收救, 莫令到無收拾處, 乃荷相念. 然又不欲作書, 彼亦未必以爲誠. 然不知可煩老兄因書一言所以不敢受之意非出矯僞, 得自廟堂上辭免文字, 特依所乞, 再授元官, 差監嶽廟, 便是一箇出場也. 前日作書忘記及此, 因問之及, 復此 忉忉, 千萬垂念也.

(3-1433)康節恐是打乖法門, 非辭受之正. 伊川再受西監, 止是敍復元官, 適莅舊職, 又可逡巡解去, 卽與今日事體全不相似, 皆末敢援以自比. 欽夫書來, 亦云豈可逆料後患而先汨所守之義, 此語亦甚直截. 然渠却不曾爲思量如何解免得脫, 若只如此厮啀, 恐非臣子所敢安也. 千萬便爲盡以此意達之韓丈, 得早爲解紛, 幸甚幸甚. 夜作此書, 不能它及.

 

 (): 原作’, 據宋閩浙本改.

 () ‘康節恐是以下又見續集卷五答呂東萊.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 󰡔편년고증󰡕에 따르면 이 편지는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이다. 󰡔동래집󰡕을 살펴보면 백공이 주자에게 보낸 제24서에서 무주 지방의 사인 육구령 자수는 효도와 우애에 독실하고 형제 모두 입신해 있는데 옛날 배운 것이 조금 치우쳐 있습니다. 근래 이곳을 지나가다 며칠 동안 서로 만났습니다라고 했다. 주자는 이 편지에서 답장을 보내며 육자수의 이름은 들은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알지 못한게 한스럽습니다. 자징은 그의 의론이 무구를 높인다고 말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고 했다. 󰡔동래연보󰡕에 의하면 육자수가 절강에 가서 여백공을 방문한 것은 계사년 시월이었다. 이 편지에서 시간은 어느덧 흘러 이제 동지에 가까워졌다고 했으니 계사년 겨울인 11월에 쓴 것이다.

 

이렇게 편지를 내려 가르침을 주시니 깊이 감사드리고 위안이 됩니다. 제가 편지를 드린 후 시간은 어느덧 흘러 이제 동지에 가까이 왔는데 시절을 따라 느끼며 추모하는 마음 어찌 마음에 품고 있으리오! 몸과 마음을 잘 지탱하시고 기거에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번 숙모의 장례를 지내려고 정화에 갔는데 왔다 갔다 하는데 한달 남짓 걸렸습니다. 오늘 마침 집에 돌아와 보니 몰락한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고 다른 것은 더 말할 것조차 없습니다. 떠날 때 집에서 편지를 보내 상의한 바가 있었는데 이미 철회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편지를 얻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제 아들은 당신의 가르침에 매우 감사하고 있는데 근래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게을러서 부지런하지 않고 자신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으니 이것이 큰 근심거린데 반드시 변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글을 짓는 것은 조금 법도에 맞게 짓는데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는 세모에 잠깐 집에 돌아오게 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왔다 가는데 헛고생만 할 것 같으니 그곳에서 설을 지내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미 이렇게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입고 있으니 부형의 곁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반씨의 집에 오랫동안 섞여 지내고 있으니 스스로 불편할 뿐입니다. 자징이 편지를 보내오면서 별도의 서신을 함께 보냈습니다. 육자수의 이름은 들은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알지 못한게 한스럽습니다. 자징은 그의 의론이 무구를 높인다고 말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학자들이 하는 공부가 실질적이지 않은 병폐가 실로 보내주신 가르침과 같습니다. 학문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한 가지 작은 일이라도 실제로 이해해야 자연히 도리가 점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근래 건양에서 출간된 작은 책자를 보니 책 이름은 정기라고 하는데 당신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던데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유전하면 아마 후생들을 오도할 수 있고 독서는 더욱 편단이 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문장을 배울 때는 아무래도 문장 전편에서 절목의 관건이 되는 것을 고찰해야 합니다. 또 여러 대가의 표준과 법도가 서로 다르니 좌우에서 모아들이면 문장의 흐름이 반대로 어긋나서 완전하고 순수할 수 없게 될 뿐입니다. 붓이 가다보니 언급하게 되었는데 본래는 깊이 논할 것이 못됩니다. 이렇게 대략 글을 올립니다.

 

便中辱書敎, 感慰之深. 信後匆匆, 已迫長至, 伏惟感時追慕, 何以爲懷神相孝履, 起處萬福. 熹昨以叔母之葬走政和, 往返月餘. 今適反舍, 汨投無好况, 它無足言者. 臨行寓書有所答扣, 想已聞徹. 得早報及爲幸. 兒子極感敎誨,  知近復如何? 正唯懶情, 不肯勤謹檢飾, 此爲大患, 計必有以變化之. 爲文趙能入(3-1434)律否? 初欲歲下令略歸, 今思之, 恐徒勞往返, 不若且令留彼度歲. 旣蒙矜念如此, 當不異父兄之側矣. 但久溷潘宅, 不自安耳. 子澄一書, 告爲附便. 陸子壽聞其名甚久, 恨未識之. 子澄云其議論頗宗無垢, 不知今竟如何也. 學者用工不實之弊, 誠如來誨. 不但學問, 今凡一小事, 才實理會, 便自然見道理漸漸出來也. 近見建陽印一小冊, 名精騎, 云出於賢者之手, 不知是否? 此書流傳, 恐誤後生輩, 讀書愈不成片段也. 雖是學文, 恐亦當就全篇中考其節目關鍵. 又諸家之格轍不同, 左右采獲, 文勢反戾, 亦恐不能完粹耳. 因筆及之, 本不足深論也. 因便禀此, 草草.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좌선교랑 주관태주숭도관을 제수받은 신분으로 건도 9(계사, 1173, 44) 11월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동시에 󰡔동래별집󰡕 8에 실린 여조겸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기도 하다. 전반부는 자신의 근황과 여조겸에게 맡긴 큰 아들의 학업을 묻는 일상적인 내용이다. 후반부에서 주자는 여조겸으로부터 육구령이 방문해서 며칠을 같이 지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학문적 입장에 대한 자신의 첫인상을 언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종의 작문 교재로 추정되는 󰡔정기(精騎)󰡕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인편을 통해 편지로 가르침을 받고보니 마음 깊이 위안이 됩니다. 편지를 받고서 바빴는데, 어느새 동지가 다가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속에 품고만 있겠습니까? 신령이 보살피는 효성스런 당신은 생활하시는 데도 만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저는 지난 번에 숙모의 장례를 치르러 정화(政和)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 한 달여가 걸렸습니다. 이제 바로 집으로 돌아와 골몰하여도 형편은 좋아지지 않으니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출발할 때에 편지를 써 부쳐 당신께 자문하여 가르침을 구하고자 하였는데, 이미 들어서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른 시일에 답장을 받아볼 수 있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제 아들을 가르쳐서 깨우쳐 준 것을 깊이 감사드리며 근래에는 다시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제 아들이) 게으르기만 하여 기꺼이 부지런히 힘써 자신을 단속하고 삼가려 하지 않는 것이 큰 걱정이 되니, 생각건대 반드시 변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글은 조금씩 지을 수 있는지요? 애초에는 올해 말에 집에 돌아오게 하려고 했으나 이제 생각해보니, 오가면서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거기서 머물며 올해를 넘기게 하는 것만 못할 것 같습니다. 이미 이와 같이 아끼고 생각해주시니 마땅히 부모 형제의 곁에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반씨네 집안을 번거롭게 하여 스스로 편안치 못할 따름입니다. 유자징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도 인편에 보내도록 일러 주십시오. 육자수(陸子壽)는 그 명성을 들은지 매우 오래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유자징에 의하면 그의 의론은 상당 부분 무구(無垢: 張九成)를 종지로 삼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학자들의 노력이 성실하지 못한[用工不實]’ 폐단은 진실로 보내준 편지와 같습니다. 학문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작은 일도 다만 실제로 이해하여야 곧 자연스럽게 도리가 점차 드러나게 됩니다. 최근에 건양에서 인쇄한 󰡔정기󰡕라고 이름붙은 작은 책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편찬한 책이라고도 하는데 잘모르겠습니다. 맞는지요 틀린지요? 이 책이 유행하여 전해지면 아마도 후배들을 그릇되게 하여 책을 읽을면 읽을수록 체단(體段)을 이룰 수 없게 할 것입니다. 비록 이것이 글을 짓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또한 당연히 전편 가운데서 관건이 되는 절목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사람들의 기준도 다른데 여러 군데서 가려서 모았기 때문에 문세(文勢)가 상반되고 어그러져서 완전하고 순수하다[完粹]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붓을 든 김에 언급하기는 했습니다만 본래 깊이 논의할 것은 못됩니다. 인편에 글을 올리느라 대충 씁니다.

便中辱書敎, 感慰之深. 信後匆匆, 已迫長至, 伏惟感時追慕, 何以爲懷 神相孝履, 起處萬福. 熹昨以叔母之葬走政和, 往返月餘. 今適反舍, 汨沒無好况, 它無足言者. 臨行寓書, 有所咨扣, 想已聞徹. 得早報及爲幸. 兒子極感敎誨, 不知近復如何? 正唯懶惰, 不肯勤謹檢筋, 此爲大患, 計必有以變化之. 爲文稍能入律否? 初欲歲下令略歸, 今思之, 恐徒勞往返, 不若且令留彼度歲. 旣蒙矜念如此, 當不異父兄之側矣. 但久溷潘宅, 不自安耳. 子澄一書, 告爲附便. 陸子壽聞其名甚久, 恨未識之. 子澄云其議論頗宗無垢, 不知今竟如何也. 學者用工不實之弊, 誠如來誨. 不但學問, 今凡一小事, 才實理會, 便自然見道理漸漸出來也. 近見建陽印一小冊, 名精騎, 云出於賢者之手, 不知是否? 此書流傳, 恐誤後生輩, 讀書愈不成片段也. 雖是學文, 恐亦當就全篇中考其節目關鍵. 又諸家之格轍不同, 左右采獲, 文勢反戾, 亦恐不能完粹耳. 因筆及之, 本不足深論也. 因便禀此, 草草.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건도 9(계사, 1173, 44) 12월 연말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의 사면, 큰아들의 교육, 󰡔수사언인록󰡕, 󰡔이락연원록󰡕, 작은 판본으로 판각한 󰡔정씨역전󰡕 등 다수 서적의 편찬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인편으로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주시니 감사하고 위안이 되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고 보니 변하는 계절을 따라 그리운 마음만 더합니다. 신령이 보살피는 효성스러운 당신께서도 지내시는 데 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는 녹녹한 품새가 예나 다름 없어서 말씀 드릴만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간절하게 사면시켜 달라고 청한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또 당첩(堂帖)을 받았더니 근년에 내려보낸 지휘를 검토해서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을 만든 뜻을 살펴보면, 관과 직사[官職]가 있는 이들을 위해 만든 것으로, 이처럼 분에 넘치는 은혜를 회피하고, 편하디 편한 사록관을 사양하는 경우와는 애초부터 서로 관계가 없습니다. 다시 이러한 뜻을 풀어 해설하고서 따로 장()을 써서 회신했습니다. 또 한장(韓丈)의 편지를 받았는데, 돈독하게 권면하는 것이 매우 지극했습니다. 오히려 애초에 이 한 방면의 의리가 조금 중요하는 것만을 알았지만, 용감하게 좇지 못했으니, 만에 하나 의심을 당하거나 노여움을 사게 된다고 하더라도 또한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장께서는 이미 반드시 개부(開府)하셨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 임안(臨安)의 인편이 돌아간다길래 이미 편지를 부치고 감사드렸습니다. 이 인편이 급하고, 또 한 해의 마지막 날[除日]인지라 여러 가지 일로 바빠 다시 쓸 겨를이 없습니다.

便中連辱手敎, 感慰亡喩. 卽此歲除, 伏惟感時追慕, 神相純孝, 起居支福. 熹碌碌如昨, 無所可言. 但懇辭旣不得請, 又被堂帖檢坐近降行下. 然觀立法之意, 乃爲有官職之事者設, 與此避過恩辭逸祿者初不相關. 已復注釋此意, 別作狀回申矣. 亦得韓丈書, 敦勉甚至. 却爲合下見得此一邊義理稍重, 未能勇從. 萬一果掇疑怒, 亦無所避之也. 韓丈必已開府, 前日臨安人回, 已附書致謝. 此便遽, 又當除日百冗, 不暇再作也.

 

제 자식을 가르치고 독려하여 주신 것이 대단히 지극하여 모든 가족들이 감격하여 말을 다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녀석이 쓴 대의(大義)가 격식에 들어맞지 못해서 이미 이 공부에만 전심전력하라고 시켰다는데 매우 좋습니다. 그 녀석의 기질을 살펴보면 아마도 과거를 위한 학문[擧子學] 정도나 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지금 이렇게 장려를 받고 이끄는 은혜를 입고보니 위쪽으로 다시 진보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반드시 그 녀석 스스로 수긍하기를 기다려야지 다른 사람이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兒子蒙敎督甚至, 擧家感激不可言. 但所作大義似未入律, 聞亦已令專治此業, 甚善. 觀其氣質, 似亦只做得擧子學. 初尙恐其不成, 今旣蒙獎誘, 不知上面更能進步否. 此亦必待其自肯, 非他人所能彊也.

 

자징(子澄)의 처신이 차분하다니 아주 기쁩니다. 지난 번에 듣기로는 주자충(周子充: 周必大)이 지군(知郡)을 사양해서 청대로 되었다는데 지금 또 이것을 보게 되니 더욱 관직을 사양하거나 받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시절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어떻게 저들은 능히 저렇게 할 수 있는데 저라고 그렇게 못하겠습니까? 보내신 편지에서 친절하게 노력하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진실로 당연히 힘써야 할 것입니다. 생각건대 서로 만나면 반드시 깊이 강론하게 될 것입니다. 범백숭(范伯崇)이 돌아오는 길에 만나기를 청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이미 도착했습니까? 󰡔연원록󰡕의 순서를 잡아주시겠다고 허락하신 것도 아주 좋습니다. 두 곳의 문자는 다시 모을 수 있도록 한 마디 일러주십시오. 󰡔제례(祭禮)󰡕는 이미 써서 왕장(汪丈: 汪應辰)이 계신 곳에 보내, 부쳐달라고 맡겼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도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순서를 바꿔야 할 곳이 있는데, 하루빨리 따로 기록해서 보내드리고 정정해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子澄去就從容, 甚可喜. 昨聞周子充辭郡得請, 今又睹此, 益知辭受由人而不在於時. 豈彼能之而我不能哉? 若來喩所云親切用工處, 誠亦更當致力. 想相見必熟講之矣. 范伯崇云歸途亦欲請見, 今皆已到未耶? 淵源錄許爲序引, 甚善. 兩處文字告更趣之. 祭禮已寫納汪丈處, 託以轉寄, 不知何爲至今未到? 然其間有節次修改處, 俟旦夕別錄呈求訂正也.

 

극기(克己)의 공에 대해 논한 내용은 학자들이 빈 말로 심원한 것이나 추측하는 병폐를 정확하게 맞췄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논의는 또 큰 벼리[大綱]는 요컨대 인()의 명의(名義)와 기미(氣味)를 얻어서 실제에 적용하라는 것이었을 뿐, 처음부터 여기에만 힘을 쓰고 극기의 노력을 버려도 된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극기의 노력이 강습(講習)이란 자리를 차지해서도 안 됩니다. 중간에 한 편지에서 옛 사람의 소학(小學)을 논하면서 이미 이와 같은 해석 한 문단을 자세히 두었으니, 다시 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극기에 대한 가르침은 더욱 공경히 받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所論克己之功, 切中學者空言遙度之病. 然向來所論, 且是大綱要識得仁之名義氣味, 令有下落耳, 初不謂只用力於此, 便可廢置克己之功. 然亦不可便將克己功夫占過講習地位也. 中間有一書論古人小學, 已有如此訓釋一段甚詳, 幸更考之. 然克己之誨, 則尤不敢不敬承也.

 

흠부(欽夫)에게서 요즘 편지를 받았는데 따로 󰡔언인록(言仁錄)󰡕을 보내왔습니다. 고친 내용이 이전의 판본보다는 다소 좋아졌습니다. 인설(仁說)도 그 사이에 (저와 함께) 주고받았던 논의로 개정했습니다. 듣기로는 동산과 못을 넓혀서 뛰어난 경치를 잘 꾸몄다면서 편지를 보내 초대했는데, 이렇게 행적이 자유롭지 못한 처지를 만났고, 또 향리에서 기근으로 쉽게 여장을 꾸릴 수 없어 가볍게 승낙하지는 못했습니다. 왕교수(王敎授)가 왔는데 마침 희()는 성에 들어가느라 만나질 못했습니다. 우리 형[老兄]께서 이처럼 칭찬하고 허여하셨는데 서로 안면을 익히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습니다.

欽夫近得書, 別寄言仁錄來, 修改得稍勝前本. 仁說亦用中間反覆之意改定(3-1436). 聞其園池增闢, 盡得江山之勝, 書來相招. 屬此蹤跡未自由, 又鄕里饑儉, 未敢輕諾之也. 王敎授來, 値熹入城, 不得相見. 以老兄所稱許如此, 甚恨未及識之耳.

 

작은 판본의 󰡔역전(易傳)󰡕에는 오자가 많아서 이미 자식 녀석에게 온전히 해서 올리도록 했습니다. 큰 판본의 교정은 정밀합니다만 그럼에도 궐락과 오류가 있습니다. (책을 교정하는 것이) 먼지를 쓸어내는 것과 같다[掃塵之喩]는 비유는 참으로 옳습니다. 제 아이에게 깨우쳐 주시고 고치도록 한다면 좋겠습니다. 듣기로는 또 󰡔춘추호전(春秋胡傳)󰡕을 판각했다고 하는데 다시 깨우쳐 정밀하게 교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반드시 두 사람이 서로 대조하게 해야 제대로 살필 수 있을 뿐입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외우고 한 사람은 들으면서, 이렇게 한 번 보고 지나가면 또 다시 역할을 바꿔서 그렇게 합니다. 󰡔횡거집(橫渠集)󰡕은 이미 끝났습니까? 끝나지 않았습니까? 판본을 얻으면 빨리 보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곳의 정집(程集) 같은 경우에는 아마도 작은 판본을 지어 유포시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관에 있어서 결국 넓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논의에서 󰡔설문(說文)󰡕을 간행하고 싶다고 했는데 한장(韓丈)께서도 뜻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시험삼아 그 말을 물어보시고 그 분의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우연히 인편이 있어 이 글을 보냅니다. 연말[除日]인지라 여러 가지 일로 바쁜 바람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부디 슬픔을 절제하시고 스스로를 아끼셔서 우리의 도를 진작시켜주기를 축원합니다. 바빠서 이만 줄입니다.

小本易傳尙多誤字, 已令兒子具禀. 大本校讎不爲不精, 尙亦有闕誤. 掃塵之喩信然, 能喩使改之爲幸. 聞又刻春秋胡傳, 更喩使精校爲佳. 大抵須兩人互讎乃審耳. 兩人一誦一聽, 看如此一過, 又易置之. 橫渠集已畢未耶? 得本早以見寄, 幸甚. 如此間程集, 似亦可作小本流布. 蓋版在官中, 終是不能廣也. 向議欲刊說文, 不知韓丈有意否? 試扣其說, 因贊成之爲佳. 偶便附此, 除日百冗, 不能旣所欲言. 惟千萬節哀自愛, 以振吾道爲祝. 匆匆不宣.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원년(갑오, 1174, 45) 정월 연초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무주에서 󰡔정의󰡕를 간행하려는 것을 막아달라고 여조겸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이 당시 주자는 비록 문관의 품계가 오르고 주관태주숭덕궁에 제수되었지만, 아직 사관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녹봉도 받지 못한 채 곤궁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본문에서 이 일이 자못 웃기는 일인 줄은 깨닫고 있습니다만 가난 때문에 끼니나마 도모하고자 여기에 이르고 말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주자는 책을 간행하는 일을 병행했는데, 이 일에 대해 대부분의 전기자료들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편지는 당시 주자 실생활의 잘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해가 바뀌었습니다. 흐르는 시간을 따라 그리워하는 마음만 감당할 수 없이 커갑니다. 신령이 보살피는 효성스러운 당신은 몸 건강하시길 빕니다. ()는 이곳에서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기 전에 성 안에다 인편을 찾아 보내달라고 편지 한 통을 부쳤는데 받아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글 말미에 말씀하신 무() 땅 사람이 다시 󰡔정의(精義)󰡕를 출간한다는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것은 요즘에 전해들은 소식이 조금 정확합니다. 말하기를 이 사람은 의조(義烏) 사람이라고 합니다. 말하는 사람들은 책을 옮기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또 전례가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만, 또 생각해보면 이 비용이 적잖게 많이 들었고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지금 조금이라도 유통을 시키려는데 갑자기 이런 근심을 만나게 되었으니, ()에게만 불편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歲律更新, 伏惟感時追慕, 何以堪之神相孝思, 體力支勝. 熹此粗如昨. 歲前附一書於城中尋便, 不知達否? 紙尾所扣婺人番開精義事, 不知如何? 此近傳聞稍的, 云是義烏人, 說者以爲移書禁止, 亦有故事. 鄙意甚不欲爲之, 又以爲此費用稍廣, 出於衆力, 今粗流行, 而遽有此患, 非獨熹不便也.

 

시험삼아 번거롭더라도 빨리 그 까닭을 물어서 그만두라고 한 마디 해주시면 그 사람도 반드시 말을 들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또 장을 하나 써서 번거롭게 봉투에 넣어 심장(沈丈)이 계시는 곳에 보내되, 되도록이면 빨리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비용이 많지 않았을 때에 그치게 하면 피차 간에 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 심장(沈丈)에게 편지를 쓰려 합니다만 또 지난 번의 사면이 허락을 받지 못했으니, 자주 도하(都下)에 편지를 올려 교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번거롭더라도 당신의 편지 속에서 이런 뜻을 말씀드려 주십시오. 이 일이 자못 웃기는 일인 줄은 깨닫고 있습니다만 가난 때문에 끼니나마 도모하고자 여기에 이르고 말았으니, 생각해보면 혜량하실만 하실 것입니다. 도는 멀고 깊습니다. 부디 슬픔을 절제하고 자중하십시오 나머지는 이미 앞 편지에 썼습니다. 인편이 바빠 대충 씁니다.

試煩早爲問故, 以一言止之, 渠必相聽. 如其不然, 卽有一狀, 煩封至沈丈處, 唯速爲佳. 蓋及其費用未多之時止之, 則彼此無所傷耳. 熹亦欲作沈丈書, 又以頃辭免未獲, 不欲數通都下書, 只煩書中爲道此意. 此擧殊覺可笑, 然爲貧謀食, 不免至此, 意亦可諒也. 正遠, 萬萬節哀自重, 餘已具前書矣. 便遽草草.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 정월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전히 주관숭도관을 사면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승상을 그만두고 지건령부에 제수된 양극가를 만난지 얼마 안 되어 양극가가 세상을 떠나 조문한 일과 함께 장식의 초청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를 설명하고 있다.

 

自經新歲, 未及上問, 竊惟孝思有相, 起處支福. 祥禫計亦不遠. 追慕想難爲懷也. 熹屛居如昨, 向來辭免, 堂中竟用檢會近降海行指揮行下, 不免再具狀懇辭矣.

새해가 되었는데도 문안을 올리지 못했습니다만 효성스러운 당신을 신령들이 돌볼터이니 지내시기에도 좋으리라 여깁니다. 헤아려보면 상제와 담제[祥禫]도 멀지 않았습니다. 추모하고 재앙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가지십시오. ()는 옛날처럼 묻혀 지내고 있습니다. 과거에 사면한 일은 중서성에서 검토하고서 결국 가까운 시일 안에 해행(海行)의 지휘를 내려보낼 것이니, 다시 장을 써서 간절하게 사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公至此相見之後, 始知前此請之由衷, 亦爲言於諸公. 今玆之請, 其必遂矣. 此外無致力處, 姑復任之, 但惕息俟罪而已. 去冬了叔母葬事, 又人事出入, 迫藏方小定. 開正復擾擾, 才得旬日休息, 又以梁公遭憂, 不免入城弔之, 計又須(3-1438)旬日往返. 加以親舊間死喪弔送, 奔走不暇, 鄕民又已嗸嗸告饑, 此皆不免勞心費力, 殊覺胸次塵埃. 學業固無由進益, 至於尤悔之積, 亦有不暇點檢者. 每一念之, 如此紛紛, 竟亦何益 欲舍此以求講論規誨之助而不可得, 則亦悵然而已.

양공(梁公: 梁克家)께서 이곳에 와서 저를 만난 이후에 제가 이전에 했던 청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임을 알았으니 또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번의 사직하는 청은 반드시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이 외에는 힘쓰는 것이 없으니 잠시 다시 맏더라도 두려워하며 죄를 기다릴 뿐입니다. 작년 겨울에 숙모의 장례가 끝났고 인간사의 여러가지 일들도 비로소 약간 안정되었습니다. 정월이 되면서 다시 바빠지는 바람에 겨우 열흘간의 휴식을 얻었는데 양공이 상을 당했다니 성에 들어가 조문하려면 또 열흘은 왕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친구들 사이에 상을 치루고 조문하느라 바빠서 겨를이 없습니다. 시골의 주민들 역시 걱정하면서 기근을 알려옵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들이라 자못 가슴에 먼지가 낀 듯이 느껴집니다. 학업에는 한결같이 보탬이 되지도 못하고, 후회가 쌓이는데도 역시 점검할 겨를이 없습니다. 매양 한 가지라도 생각할 양이면 이와 같이 어지러우니 결국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벼슬을 그만두고 강론과 가르침을 구하고자 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또한 슬퍼할 뿐입니다.

 

欽夫得書, 相招爲湘中之遊, 以此未能行. 然它亦有使人不欲前者. 至於老兄相去不遠, 亦無從相見, 胸中所欲言者無窮. 偶有便行, 臨出不及拜書, 道中作此寄家中, 令付之. 匆匆, 不及究所懷之一二. 若免喪之後, 不免復爲祿仕, 能求一官南來否乎? 引領馳情, 尙冀節哀自愛. 不宣.

흠부(欽夫)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를 초청해서 상()에서 노닐자고 하는데 이 일로 인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못하도록 만듭니다. 우리 형[老兄]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데도 서로 만나볼 수가 없으니 가슴 속 말하고 싶은 것만 끝이 없습니다. 우연히 가는 인편이 있었지만 밖에 나가느라 편지를 올리지 못하고, 도중에 이것을 써서 집안에 보내면서 부쳐달라고 했습니다. 경황이 없어 품은 생각의 한 둘조차 제대로 논구하지 못합니다. 상복을 벗은 다음에는 다시 관원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관직을 구해서 남쪽으로 오실 수 있을까요? 그리운 마음만 내달립니다. 바라건대 슬픔을 절제하고 스스로를 아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원년(갑오, 1174, 45) 3월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버지를 여읜지 만 2년을 넘긴 여조겸을 위로하고, 여전히 사면을 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다. 여조겸이 보내온 󰡔횡거집󰡕의 보충을 충고하고, 강학과 극기에 대한 여조겸의 견해를 보충하고 있으며, 오재로의 󰡔논어󰡕 해석에 대한 여조겸의 견해를 묻고 있고, 몇 종류의 서적을 구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인편이 돌아와 가르침을 받들고 보니 깊히 감격스럽고 위안이 됩니다. 요즘 봄날이 화창합니다. 효성스러운 당신은 다복하시겠지요. 이미 상제(祥祭)는 지났다지만 추모하는 마음이야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고개를 돌려 선왕들의 제도를 탐구하시라는 것이 제가 당신께 바라는 것이다. ()는 다시 사양했는데도 회답을 받지 못해 걱정하면서 명을 기다립니다만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으시는 말씀을 받들고 보니 감격스럽습니다. ()() 지방의 문자에 대해서는 빨리 유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보내 주신 횡거(橫渠)의 문집은 여기에서 필사본이 하나 있는데, 보내주신 판본[]보다 몇 편이 더 많습니다. 우연히 친구가 빌려 가서 돌려보내면 보내 드리겠습니다. 별집을 만들어 이 책의 누락을 보충하면 될 것입니다.

便還奉敎, 感慰之深. 卽日春和, 伏惟孝履支福. 已經祥祭, 追慕何窮! 然俯就先王之制, 誠有望於賢者. 熹再辭未報, 惕息俟命, 未知所以爲計也. 承問, 感感. 衢溫文字幸早留意. 寄及橫渠文集, 此有一寫本, 比此增多數篇. 偶爲朋友借去, 俟取得寄呈, 可作別集, 以補此書之闕也.

 

강학(講學)과 극기(克己)의 공부에서 많은 것을 덜어서 모자란 것에 더해야[裒多益募]’ 좋을 것이다는 가르침은 정말로 지극한 의론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일은 각각 하나의 공부입니다. 학자들이 여기에서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음이 없은 다음에야 지식과 실천이 함께 나아가서,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우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편지대로라면 곧 인()만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중용󰡕에서 말하기를 배우고[] 묻고[], 사색해서[] 판단한[] 이후에 계속해서 실천에 힘쓰라[力行]고 했으며, 정자(程子)도 함양(涵養)과 진학(進學)을 역시 둘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이것으로 저것을 포섭한다거나, 한쪽에 치우쳐 한쪽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강론과 학습이 점점 밝아지면 통렬하게 극기공부를 해서 실천함으로서, 의미가 반드시 그렇다[必然]는 것을 참으로 알게 해야지, 다만 이와 같이 말만 하고 지나쳐서는 안된다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그 말에 병폐가 없어질 것입니다. 지난번 경부(敬夫)에게 답하면서 인설(仁說)을 말하는 도중에 한 두 문단에서 이런 병폐에 대해 말했습니다.

所喩講學克己之功, 裒多益寡, 政得恰好, 此誠至論. 然此二事各是一件功夫, 學者於此須是無所不用其極, 然後足目俱到, 無偏倚之患. 若如來喩, 便有好仁不好學之蔽矣. 且中庸言學問思辯而後繼以力行, 程子於涵養進學亦兩言之, 皆未嘗以此包彼而有所偏廢也. 若曰講習漸明, 便當痛下克己功夫以踐其實, 使有以眞知其意味之必然, 不可只如此說過, 則其言爲無病矣. 昨答敬夫言仁說中, 有一二段已說破此病.

 

최근 오재로(吳才老)󰡔논어설(論語說)󰡕에서 자하(子夏)나는 반드시 그가 배웠다고 말하겠다란 한 장과 자로(子路)어찌 반드시 글을 읽은 (다음에야 학문을 하는 것이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은 그 폐단이 모두 배움을 그만두도록 하는 데에 이른다. “실천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글을 배워야 한다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 질정한다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만 하다는 등등의 성인께서 하신 말씀만 못하다고 논한 것을 보았습니다. 자못 (오재로의) 말에 맛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네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인편을 통해 이것을 부치느라 품은 생각을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나머지는 오직 남은 슬픔을 억제하고 부디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近看吳才老論語說論子夏吾必謂之學矣一章與何必讀書之云, 其弊皆至於廢學, 不若‘·則以學文就有道而正焉可謂好學之類, 乃爲聖人之言也, 頗覺其言之有味. 不審高明以爲何如? 因便附此, 不盡所懷. 餘惟節抑餘哀, 千萬保重.

 

당신은 고루 편안하신지요. 자약(子約)에게서 따로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희 집 아이[兒子]는 오래도록 가르침과 보살핌을 받고 있어서 온 집안이 부끄럽고 감사드리는 마음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다시 바라지만 끝까지 은혜를 내리시어 그 아이의 자질의 높낮이에 따라 성취하는 것이 있도록 해주시면 아주 좋겠습니다. 본시 크게 기대하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징(子澄)백숭(伯崇)이 그곳에 도착해서 어떤 내용을 강론했습니까? 백숭은 또 강서(江西)로 돌아갔다는 데 향리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숙도(叔度)가 보낸 설사룡(薛士龍)의 행장은 읽어보니 개탄을 멈추지 못하게 합니다. 그가 지은 여러 저술을 읽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그의 집안에 조문하려는 글을 써 두었습니다. 번거롭더라도 보내주십시오. 󰡔중용설󰡕․󰡔대학설󰡕․󰡔논어설󰡕 󰡔음부(陰符)󰡕․󰡔악기(握奇)󰡕․󰡔설시(揲蓍)󰡕․󰡔본정서(本政敍)󰡕 등 일곱 종류의 글은 보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부탁도 외면하지 말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眷集伏惟均休. 子約別奉書矣. 兒子久累敎拊, 擧家愧荷, 不可勝言. 更願終賜, 使隨其資之高下有所成就, 幸甚, 固不敢大望之也. 子澄伯崇到彼, 所講何事? 伯崇且還江西, 尙未到里中也. 叔度寄得薛士龍行狀, 讀之人慨歎不已. 不知所著諸書嘗見之否? 今有書吊其家, 煩爲致之. 欲求中庸大學論語說及陰符握奇揲蓍本政敍凡七書, 不審能爲致之否? 此委却望不外.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원년(갑오, 1174, 45) 3월 말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 달 말에서 이 번달 초까지 두 번 인편에게 맡겨 장을 올렸는데 받아 보셨는지요? ()에서 전달해 준 최근의 편지를 받고서 요즘 늦 봄에 만복이 깃드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깊이 위안이 됩니다.

저는 물러나 사는 것이 예나 다름없습니다. 근자에 성묘를 하러 집을 나서서 노산(蘆山)을 올랐습니다. 외딴 봉우리의 정상 근처에 있는 작은 초당에서 열흘을 머물렀습니다. 눈을 들면 구름 덮인 산이 수백리에 걸쳐서 세간의 때와 구속을 씻기에 충분해서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간절한 사면의 청은 회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만일 (성부에서) 사면장을 (황제에게) 올리지 않은 것이라면 회답을 받지 않는 것이 차라리 더 났습니다. 이제 다행히 이와 같이 되었으니 또한 이렇게 편안함이나 훔치고 있을 따름입니다. 온 마음을 기울여 의지를 굳건히 하는[專心致志] 노력에 대해 깨우쳐 주신 것은 어둡고 게으른 사람을 경계하고 계발시키니 매우 다행입니다. 다만 수년 동안 점점 일감이 많아져 비록 서책을 읽는 공부조차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없으니 이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벗을 사귀는 일도 역시 사람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기운과 습성이 이미 치우치고 힘도 의지도 굳세지 못해 제 자신을 위로하지도 못합니다. 당신[門牆]의 주변에는 어찌 이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람과 교제하며 인도하는 방법[誘接之道]은 비록 각각 다르겠지만 요컨대 평이하고 명백한 곳에서 점점 공부를 더해서 때때로 경계하거나 책망하면서 스스로 깨닫기[自得]를 기다리는 것이니, 이것이 올바른 방법일 뿐입니다.

前月末及此月初兩附便拜狀, 不知達否? 府中轉致近敎, 獲聞比日春晩, 尊候萬福, 感慰深矣.

熹屛居如昨, 近出展墓, 遂登蘆. 小菴在孤峰絶頂之側, 少留旬日. 擧目雲山盡數百里, 足以稍滌塵滯, 它無足言也. 懇辭未報, 若不將上, 則不若不報之爲愈. 今幸如此, 且爾偸安耳. 示喩專心致志之功, 警發昏惰, 爲幸甚矣. 但年來浸益多事, 雖書策功夫, 亦不能得相接績, 此爲可懼. 至於朋友, 亦正自難得人. 大抵氣習已偏而志力不彊, 殊未有以慰人意者. 門牆之下, 渠亦有其人乎 誘接之道雖各不同, 要是且令於平易明白處漸加功夫, 時加警策而俟其自得, 此爲正法耳.

 

제자직(弟子職)여계(女戒) 두 글에 온공(溫公)󰡔가의(家儀)󰡕를 이어서 우계(尤溪)에서 판각을 하려다 못했는데, 조사(漕司)가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지금 이미 책을 완성해서 각각 한 질을 보내드립니다. 처음에는 친구와 옛 지인들에게 두루 보내려고 했는데, 지금 책이 이미 다 떨어지고 남아있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 만일 서점에 분부해서 베끼고 판각해서 널리 전파될 수 있게 한다면 또한 세상을 교화하는 데 많은 보탬이 될 것입니다. 혹은 다시 몇 마디 말을 얻어 책의 말미에 표제를 할 수 있게되면 더욱 좋겠습니다. 󰡔외서(外書)․󰡔연원록(淵源)󰡕 두 책은 자못 단서가 있습니까? 빨리 유의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집 아이가 가르침을 받는 것은 온 집안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그 아이가 경서의 의리에 대해 서툴고 거친 것에 대해 많이 걱정했는데, 지금은 대충이나마 조리가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새 차 30()를 뒤늦게 당신께 보냅니다. 인편에 이 글을 보내느라 대충 쓰면서 이만 줄입니다.

弟子職女戒二書, 以溫公家儀系之, 尤溪欲刻未及, 而漕司取去. 今已成書, 納去各一本. 初欲遍寄朋舊, 今本已盡, 所存只此矣. 如可付書肆摹刻, 以廣其傳, 亦深有補於世敎. 或更得數語題其後, 尤幸也. 外書淵源二書頗有緖否? 幸早留意. 兒子荷敎誨, 擧家感刻. 昨深慮其經義疏闊, 今得略有條理, 甚聿甚幸. 新茶三十夸, 謾到左右. 因便附此, 草草不宣.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원년(갑오, 1174, 45) 봄과 여름 사이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조겸은 이 해 정월에 학생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3월에는 명초산 부친의 묘소 곁에 들어가 학문에 진력했다. 이 편지의 본문에 의하면 주숙을 함께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주자는 여조겸과 중용집해서에서 이고()를 언급한 내용과 남검주우계헌학기에서 석돈을 평가한 것, 그리고 󰡔중용장구󰡕 19장의 편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번 이미 편지를 썼는데 인편이 차질을 빚어 보내지 못한 와중에 인편을 통해 또 보내신 편지를 받고 보니 헤아릴 수 없이 감격스럽고 위안이 됩니다. 듣기로는 책을 가지고 산수가 뛰어난 곳으로 들어갔다고 하니, 생각컨데, 강학하는 틈틈이 날마다 좋은 흥취가 있을 것입니다. 저의 어린 자식[小兒]도 함께 동행했다고 하니 생각해주시는 뜻이 애틋하고 두텁습니다. 마음속에 아로새긴 감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감히 잊겠습니까!

昨已具前幅, 而便信差池, 便中又辱况書, 慰感亡量. 聞携書入山水勝處, 想講學之餘, 日有佳趣. 小兒亦得從行, 荷意愛厚矣, 感刻何敢忘也.

 

오재로가 경서를 풀이한 뜻에 대해 논한 것은 그의 병폐를 정확하게 맞췄습니다. 그러나 오늘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펴보니, 도리어 그 자체로 저절로 좋은 말입니다. 학기의 깊이 스스로 얻는 경지에 나아가야 한다[深造自得]’는 말은 애초에 또한 그 잘못을 깨달아 고치려고 했었지만 이미 돌에 새기는 바람에 고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신령해서 단지 스스로 온당치 못한 곳에 대해서는 곧 점검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습지(李習之: 李翶)는 당나라 사람으로 󰡔중용󰡕이 지극한 내용을 담은 책이란 것을 알았을 뿐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논한 것도 실제로는 불교와 도가의 학설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서문에서 발명했을 뿐입니다. 그의 장점을 빼먹지도 않았고 칭찬과 비난이란 두 측면에서도 뜻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도 언급하기에 부족해서 생략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애공이 정사를 묻다[哀公問政]’는 이하의 몇 장은 본래 같은 때에 문답한 말이었는데, 자사(子思)가 덜어내고 그 요점만을 간추려 전수할 뜻만 발명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거에 󰡔가어(家語)󰡕를 읽지 못해 몇 장의 의미가 서로 연속된다고 의심하고서도 증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어󰡕를 읽고서야 제 의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을 뿐입니다.하늘은 이 밝디밝은 것들이 많이 모인 것이다[天斯昭昭之多]’ 이하의 네 조목의 비유는 아마도 하늘과 땅을 쌓이고 쌓여 거대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문장의 의미가 자못 장애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마땅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청하고 싶은 것도 아주 많은데 글을 쓰면서 경황 중에 잊고 말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마주하고 의논할 날이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所論吳才老說經之意, 切中其病. 然在今日平心觀之, 却自是好語也. 學記深造自得之語, 初亦覺其過, 欲改之, 則已刻石不及矣. 以此知人心至靈, 只自家不穩處, 便須有人點檢也. 李習之在唐人特然知中庸之爲至, 亦不可多得. 然其所論實本佛老之說, 故特於序文發之. 蓋不遺其善, 而抑揚之間, 亦不爲無意, 似不可謂不足而略之也. ‘哀公問政以下數章, 本同時答問之言, 而子思刪取其要, 以發明傳授之意, 鄙意正謂如此. 舊來未讀家語, 嘗疑數章文意相屬, 而未有以證之. 及讀家語, 乃知所疑不繆耳. ‘天斯昭昭之多以下四條譬諭, 似以天地爲積而至於大(3-1442), 文意頗覺有礙. 不知當如何說? 幸見敎. 他所欲請者甚衆, 臨書匆匆忘之. 顧未有面論之日, 玆爲恨恨耳.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원년(갑오, 1174, 45) 봄과 여름 사이, 구체적으로 4월경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순희 원년 4월에 자신이 새롭게 편정한 󰡔대학󰡕󰡔중용󰡕의 새 판본을 건양(建陽)에서 판각하고, 그것을 여조겸에게 보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 해 9월에 주자는 이 새로운 형태의 󰡔대학󰡕󰡔중용󰡕󰡔대학장구󰡕․󰡔중용장구󰡕로 완성한다.

 

 

자약(子約)이 보낸 편지는 이미 회답을 보냈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우물쭈물 주저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정성스럽지 못하고 공경하지 못한 근본으로 도로 나아가는 도중에 이보다 더 큰 병폐는 없으니 반드시 통렬하게 치료해야 합니다. ()의 편지 중에 이미 극진히 말했으니 조용한 즈음에 (당신께서도) 반드시 타일러 주셔야 할 것입니다. 오회숙(吳晦叔: 吳翌) 그의 모친상에 달려 왔는데, 오늘 만났더니 흠부(欽夫)의 병상을 말해주었습니다. 또 흠부의 편지를 받았는데 지금은 이미 평상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회숙(晦叔)도 잦은 병으로 초췌합니다. 사람은 각각 치우침이 있으니 철저하게 간파하고서[見徹] 모두 극복하지 않고서는 치우침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지당한 의론입니다. 마음에 간직하고[佩服] 잊지 않겠습니다.

子約惠書, 已奉報矣, 不知何故如此猶豫前却? 此不誠不敬之本, 於進道中正是莫大之病, 須痛加治療. 熹書中已極言之, 想從容之際, 亦必有以警之也. 吳晦叔來奔其母之喪, 今日方見之, 能道欽夫病狀. 亦得欽夫書, 今已復常矣. 晦叔亦多病癯瘁也. 人各有偏, 非見徹克盡, 所不能免, 此誠至論, 佩服不敢忘也.

 

견문도 적고 지혜도 없는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 뜻이 매우 도타우니 감사합니다. 훗날 조금이나마 거취를 알게 되면 어떻게 보답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래도록 숙도 형제를 번거롭게 만든 것은 매우 편치 않습니다. 또 듣기로는 절동 지방에서는 끼니를 때우기 힘들다는데 아마도 이후로는 도로로 여행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사람을 전인으로 보내면 돌려보낼 수는 있을지 걱정됩니다. 그렇다면 바로 한장(韓丈)에게 사람을 빌려 돌려보내십시오. 혹 조금이라도 머물수 있게 되는 것도 오직 장자의 명에 달렸을 것입니다. 돌아와서는 오히려 글을 읽은 곳이 없습니다. 희는 편지에서 이미 한장에게 자세하게 아뢰었습니다. 떠나거나 머무는 기간의 늦고 빠름은 오히려 그 분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대학󰡕․󰡔중용󰡕의 묵각본 각 두 종과 작은 물고기 15마리를 편지에 딸려 보냅니다.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부탁도 외면하지 마십시오. ()는 두 번 절하고 올립니다.

小見無知, 荷敎誨之意甚厚. 異時稍識去就, 不知何以爲報也. 但久擾叔度兄弟, 甚不自安. 又聞浙東艱食, 恐向後道路難行, 今專此人去, 恐可遣歸, 卽從韓丈借人送歸. 或尙可少留, 卽亦唯長者之命, 歸來却無讀書處也. 熹書中已詳禀韓丈矣, 其去住遲速, 却在裁度也. 大學中庸墨刻各二本, 子魚五十尾, 幷以伴書, 幸留. 它委勿外. 熹再拜上問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 봄과 여름 사이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시 작문의 폐단을 지적하고, 우천현학의 새로운 기문을 읽고 잘못을 지적해달라고 청하고 있다.

 

 

()는 참람하게 문안을 여쭙니다. 당신[台眷]께서는 위아래 모두 편하신지요. 어진 벗인 자약(子約)에게서는 아직 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강론한 것은 반드시 정론이 있을 것입니다. 편지를 보내시면서 가르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집 아이가 오래도록 가르침과 훈도를 받고 있는데, 봄부터 편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배움은 또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번에 고문을 선록하라는 뜻을 청하도록 했는데, 말한 적이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이 요즘의 글과 함께 모두 이미 간행했다는데, 제 생각에는 자못 편치 않습니다. 요 몇 년간 문장들이 간사하고 교묘한 폐단이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마땅히 혼후(渾厚)하고 소박함으로 바로잡아야지 이런 것을 숭상하고 장려해서 잔물결을 부추켜 큰 물결이 되도록 도와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천(尤川)의 새로운 학기 두 가지를 판각했고, 아이에게 가지고 가서 가르침을 구하게 했으니, 한 번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기문의 잘못은 부디 지적해 주십시오.

熹僭易拜問, 台眷伏惟上下均安. 子約賢友不及奉狀, 前書所講, 必有定論. 因來幸示及. 兒子久累誨督, 春來不得書, 不知爲學復如何? 向令請問選錄古文之意, 不知曾語之否? 此間與時文皆已刊行, 於鄙意殊未安也. 近年文字姦巧之弊熟矣, 正當以渾厚樸素矯之, 不當崇長此等, 推波以助瀾也. 明者以爲如何? 尤川新學二刻, 令兒子持納求敎, 幸爲一觀. 記文之謬, 千萬指示也.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원년(갑오, 1174, 45) 623일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인편을 통해 잇달아 세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감격스럽고 위안이 되는 마음 헤아릴 길 없습니다 요즘 무더위가 기승입니다. 예제는 끝났다지만 사모하는 마음이야 어찌 그치겠습니까! 신령이 보살피는 당신은 건강히 잘지내십니까. ()는 예전처럼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고 있습니다. 사면은 뜻대로 되지 않아서 오늘 이미 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도타이 권장해 주시니 부끄러움 맘만 깊습니다. 며칠 전 왕조(王漕: 王佐)의 편지를 받았더니 역시 성의를 갖추어 말했습니다. 적은 녹봉[三釜]을 기뻐하는 것은 영원히 초심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이렇게 슬퍼하는 데 갑자기 또 한 표형(表兄)의 상을 당했습니다. 내일 응당 다시 가봐야 할 것인데, 빨리 이 사람을 보내 어린 아이를 불러 집으로 돌려 보내고, 대충 이 글을 쓰느라 다른 것에 미칠 겨를이 없습니다. 이 아이는 오래도록 교육을 받았으니 온 집안이 당신의 덕에 감사드리는 마음 끝이 없습니다. 지금 시험 기한이 닥쳤으니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때 다시 보내 학업을 마치도록 해서 끝내 당신께는 누를 끼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한 장(韓丈)에게 편지를 보내 사람을 빌려달라고 했고, 다시 한 마디 말로 빌려주도록 고해주시고,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삼구(三衢)에 가신 적이 있다는데, 왕장(汪丈)께서도 반드시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어떤 일을 논하셨습니까? 편지하면서 일러 주십시오. ()가 사면하려던 일은 이미 결정이 되었으니 가을 겨울 사이에 일이 없으면 어쩌면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르침을 받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감히 미리 약속할 수 없을 뿐입니다. 때로 덕에 나아가고 자중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는 머리를 숙여 두 번 절하고 장을 올립니다. 듣기로는 희옥산(懷玉)의 경치가 아주 뛰어나다는데 그곳에서 모일 수 있다면 거리가 공평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便中連三辱書, 感慰無量. 卽日庚伏酷暑, 伏惟禮制有終, 永慕何已! 神相尊候, 動止萬福. 熹杜門如昨, 辯免不遂, 今日已拜命矣. 屢煩淳勸, 愧荷之深. 前日得王漕書, 亦具道盛意也. 三釜之樂, 永負初心. 方此感愴, 忽又聞一表兄之(3-1444), 明日當復奔赴, 亟遣此人喚小兒還家, 草草布此, 未暇它及. 此兒久荷敎育, 擧家感德無窮. 今迫試期, 幸聽其歸. 異時復遣卒業, 終以累高明也. 已有書懇韓丈借人, 更告借以一言, 得早還家爲幸. 承從人嘗至三衢, 汪丈必甚款, 所論何事? 因書及之. 熹辭免已決, 秋冬間無事, 或可出入. 甚思承敎, 但未敢預期耳. 正唯以時進德自重爲禱, 不宣. 熹頓首再拜上狀. 聞懷玉山水甚勝, 若會於彼, 道里均矣, 如何?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 가을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이가 돌아와 보내신 편지를 받고보니 정말이지 고맙고 깊이 위안이 됩니다. 가을 날씨가 점점 서늘해지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건강하시겠지요. 저는 지난 번 일 때문에 한 번 성 안에 들어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뿐 다른 형편은 전과 같아서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兒子歸, 承手書之貺, 感慰良深. 秋氣漸凉, 伏惟尊候萬福. 熹昨以事一至城中, 還家諸况如昨, 蓋無足言者.

 

회옥산을 오르자는 약속은 내년으로 미뤄지더라도 별 문제 없습니다. 다만 아이의 말로는 당신의 마차가 회계(會稽)에서 천태(天台)안탕(雁蕩)으로 가려고 한다는데, 이 유람을 미루어 두었다가 내년 봄을 기다렸다 함께 갈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반드시 회옥산을 오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여기에서 속히 무녀로 가서 함께 가면 될 것입니다.

아이가 돌아왔는데 과업이 전보다 나아졌을 뿐 아니라, 품성과 행동[情性作爲]도 예전에 비해 조금 달라진 듯 합니다. 이것은 진실로 당신께서 친히 가르치고 훈도한 효과이니, 온 집안이 감격해서 무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애석한 것은 그의 기질이 본래 평범해서, (군자가 담당할) 큰 일[大受]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이) 고명정대(高明正大)한 수준[升堂之列]에 이르기를 바라기에도 부족하다는 점일 뿐입니다. 돌아오는 날에도 행장을 마련해 주셨다니 더욱 감사합니다. 다만 돌아와서는 계속해서 속된 일에 골몰할 뿐 돌려보내면서 당신이 훈계했던 순서대로 공부하지도 않습니다. 과거[場屋]의 득실은 애초부터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또한 다시 맡겨 둘 따름입니다.

덜어내고 수렴하라[損減收斂]는 깨우침은 진실로 절실하고 정당하니, 좌우에 써두고서 잊지 않겠습니다.

懷玉之約遲以明年, 無所不可. 但兒子說車馬自會稽遂如天台雁蕩, 不審亦可留此勝槪, 以俟來春相與俱行否 若爾, 則不必登懷玉, 只自此徑走婺女, 相就而行也.

兒子歸來, 不惟課業勝前, 至於情性作爲, 亦比往時小異, 信乎親炙薰陶之效, 擧家感德, 不可名言. 但惜乎其氣質本凡, 又無意於大受, 不足以希升堂之列(3-1445). 還日又蒙借人津遣, 尤以懼荷. 但歸來袞袞, 俗務汨沒, 不得如臨行所戒次第, 場屋得失, 初非所期, 亦復任之耳.

損減收斂之喩, 眞實切當, 謹銘坐右, 不敢忘也.

 

왕장(汪丈)은 덕에 나아가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니 후학(後學)으로서 매우 다행입니다. 다만 그 분이 󰡔석림연어(石林燕語)󰡕를 변론하면서 자못 의장과 기수[儀章器數]에 대해 뜻을 두신 것 같은데, 이것은 증자(曾子)가 말한 담당관이 있다[則有司存]’는 경우인데, 어떻게 남은 힘으로 이런 일에 뜻을 둔단 말입니까? 오직 여기에만 뜻을 둔다면 이 역시 못난 제가 알 바가 아닐 것입니다. 장사(長沙)에서 자주 편지를 받았지만 거리가 멀어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이 사람[此公]은 툭 트이고 쾌활해서[疏快] 편지에서는 말을 다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으로 걱정하는 내용이 은미한 언사를 통해 드러납니다. 회숙(晦叔)이 돌아가 제 속내를 들려주도록 부탁했습니다. 생각건대 그도 즐겨 들을 것입니다. 다만 일이란 날마다 생기는 법이니 반드시 종류별로 유추해서 통하여야 일러주는 사람도 힘이 들지 않고 듣는 사람에게도 깊이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중용장구(中庸章句) 한 질을 보내 드립니다.(이 책은 초본(草本)이니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자세히 풀이한 책이 있기는 하지만 글자가 많아 겨를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뒤에 인편을 기다렸다 보내드리겠습니다. 온당치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조목별로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대학장구󰡕도 함께 보냅니다. 이것도 자세히 풀이한 글이 있는데 나중 인편에 보내겠습니다. ‘이것을 일러 앎이 지극하다고 한다[此謂知之至也]는 한 구절은 다섯 번째 장의 누락된 문장 중에서 남아있는 죽간의 구절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시 자세히 묻고 경문의 아래에 붙여두었지만, 오히려 설명할 것은 없읍니다. 󰡔연원록(淵源)󰡕․󰡔외서(外書)󰡕는 모두 깨우쳐주신 대로 입니다. 다만 반드시 지금 당장 찾고 캐물은 것에 그치지 않아야만이 책을 완성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汪丈進德不倦, 後學幸甚. 但其所辨石林燕語頗留意於儀章器數之間, 此曾子所謂則有司存, 豈其餘力之及此耶? 專意於此, 則亦非區區所敢知者矣. 長沙頻得書, 地遠, 難得相見. 此公疏快, 書中不敢盡言, 心之所憂, 亦微詞以見. 晦叔歸, 因託寄懷, 想其亦藥聞之. 但事有日生者, 須推類以通之, 則告者不費而聞者有深益耳. 中庸章句一本上納, 此是草本, 幸勿示人. 更有詳說一書, 字多未暇, 餘俟後便寄去. 有未安者, 一一條示爲幸. 大學章句幷往, 亦有詳說, 後便寄也. ‘此謂知之至也一句, 爲五章闕文之餘簡無疑. 更告詳之, 系於經文之下, 却無說也. 淵源外書皆如所喩, 但亦須目下不住尋訪, 乃有成書之日耳.

 

별지에서 논한 것에 대해서는 다시 참고하고 정정해서 회답을 받들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숙도의 이 인편은 이미 머루른지 며칠이 되어 갑니다. 오래도록 머무르려 하지 않을 것이니 또 이 글을 주어 돌려보내겠습니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 못해 생각하는 마음만 끝이 없습니다. 부다 우리의 도를 위해 스스로를 아끼십시오.

別紙所論, 更俟參訂奉報. 叔度此人已留數日, 不欲久稽之, 且附此書遣還也. 未卽承敎, 馳想亡窮. 惟千萬爲道自愛.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 1014일에 쓴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치통감강목󰡕의 체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지난 번 숙도(叔度)의 인편이 돌아간 다음 줄곧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만 어찌 우러르는 마음을 이기겠습니까? 요즘 겨울이 따뜻합니다. 신령이 보우하시니 당신께서는 건강하시겠지요. ()는 예전처럼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느라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난 번 보내드렸던 󰡔중용󰡕․󰡔대학󰡕 등의 책은 어떻습니까?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 인편을 통해 조목별로 온당치 못한 것에 대해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조금이나마 겨를이 나서 󰡔통감(通鑑)󰡕 몇 권을 정돈했더니 상당히 볼만 합니다. 보내드리고 싶은데 (이 책 이외에) 다른 책이 없어서 내년 봄에 가지고 가서 시정해 주시라고 구하기를 기다려야겠습니다. 듣자하니 우리 형[老兄]도 이런 공부를 하셨다고 하는데 규모와 순서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얻어 함께 의논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서 조례와 체제조차 스스로 마땅한 것을 만들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사마온공의 옛 체제에 의하면 연호(年號)는 모두 뒤에 개정한 것을 올바른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아주 온당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건안(建安) 25년 초라고 한다면, 한나라가 아직 망하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위() 황초(黃初) 원년이라고 한다면, 한나라의 지위를 너무 빨리 빼앗아 위나라에게 너무 급하게 넘겨버리는 것이니, 󰡔춘추󰡕에서 진()나라를 보존한 뜻에 크게 어긋나 모범으로 삼을 수 없을 듯 합니다. 이런 종류의 한 두 가지 조목에 대해 이전의 현자들은 과연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아주 많은데 이 인편이 또 바빠서 다른 한 두 가지도 궁구하지 못합니다. 초봄에 온()()로 가는 행장을 꾸리면 가르침을 받을 날도 머지 않을 것입니다. 추워지려고 합니다. 우리의 도를 위해 스스로를 아끼시길 빕니다. 이만 줄입니다. 1014일 희()는 머리를 숙이고 두 번 절하고 장을 올립니다.

昨自叔度人還之後, 一向不得奉問, 豈勝向仰比日冬溫, 伏惟味道有相, 尊候萬福. 熹杜門如昔, 無足言者. 昨附去中庸大學等書如何? 未相見間, 便中得條示所未安者, 幸幸. 近稍得暇, 整頓得通鑑數卷, 頗可顴. 欲寄, 未有別本, 俟來春持去求是正也. 聞老兄亦爲此功夫, 不知規摹次第如何? 此間頗苦難得人商量, 正唯條例體式亦自難得合宜也. 如溫公舊例, 年號皆以後改者爲正, 此殊未安. 如漢建安二十五年之初, 漢尙未亡, 今便作魏黃初元年, 奪漢太速, 與魏太遽, 大非春秋存陳之意, 恐不可以爲法. 此類尙一二條, 不知前賢之意果如何爾. 所欲言者甚衆, 此便又遽, 不及究一二. 春初卽治溫台之行, 承敎且不遠矣. 向寒, 伏冀爲道自愛, 不宣. 十月十四日, 熹頓首再拜上狀.

 

()가 참람되게도 다시 절하고 문안을 여쭙습니다. 당신께는 두루 평안하시지요. 어진 벗인 자약(子約)에게서는 편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절하고 문안을 묻도록 부탁했습니다. 큰 애는 본래 즉시 당신께 보내려고 했는데, 또 한 번 움직이는데도 힘이 들어 내년 봄에야 손을 붙잡고 갈 것 같습지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숙도(叔度)가 있는 곳에 가기도 힘들어 어느 곳에 두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물었던 한 두 가지 일에 대해서는 인편을 통해 빨리 알려주신다면 하려는 일에 대비할 수 있겠습니다. 가난한 집안이라 일을 주관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드시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이 글은 초시에 장원을 한 건양(建陽) 범택민(范澤民)에게 맡겼습니다. 그가 성에 나아가면 인편으로서 뵙기를 청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노성(老成)하고, 효성과 우애가 정성스러워 벗들 중에 얻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난에 고통을 받느라 이 여행도 몹시 힘이 들것입니다. 혹시라고 손 쓸 곳이 있거든 신경써 주시기를 허락한다면 아주 좋겠습니다. 이 부탁은 물리치지 말아주십시오. () 참람하고 경솔하게 절하고 말씀드립니다.

한장(韓丈)의 정사도 안정되었을 터이니[政成] 생각건대 여유있게 만날 날이 많을 것입니다. 인편이 급하다고 해서 대충 글로 쓰지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대충 언급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는 절하고 간청합니다.

熹儧易再拜上問, 眷集伏惟均慶. 子約賢友不及拜晝, 兒輩附拜問禮. 大兒本卽遣去席下, 又一動亦費力, 來春當自携行. 但恐又難去叔度處, 不知當置何許也. 前書所扣一二事, 因便告早及之, 欲爲之備. 貧家辦事爲難, 須及早料理也. 此書附建陽范澤民解元, 渠去赴省, 云欲便道請見. 其人老成, 孝友誠慤, 朋輩間所難得. 然苦貧, 此行甚費力. 或有可接手處, 得與垂念, 辜甚幸甚. 此委不外. 熹僭易拜問.

韓丈政成, 想多暇日相見. 便遽, 不敢草草爲書, 語次告略及之, 幸甚幸甚. 熹拜懇.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원년(갑오, 1174, 45) 겨울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자에 편지를 건양의 수재인 범택민에게 맡겼는데, 계산해보면 이미 받으셨을 것입니다. 인편이 이르러 편지를 받았습니다. 요즘 겨울 날씨가 찬데 당신께서는 건강하시다니 깊이 위안이 됩니다. 공최(功衰)의 슬픔을 변치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십시오.

학질은 줄곧 평온하게 회복된 지 오래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을 걸어잠그고 학문을 추구하신다니 조예가 날로 깊어질 것입니다. “응취수렴이 학문의 커다란 제목이란 말씀은 바꿀 수 없는 정론이니 공부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조장의 잘못을 살피는 것이 응취수렴하는 사이에 시의적절하게 쥐락펴락하는 것일 뿐이다는 말은 오히려 충분치 못합니다. 공평하게 논하자면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종사하라[有事]미리 기대하지 말라[勿正]마음에서 잊지 말라[勿忘]억지로 조장하지 말라[勿助]는 것은 각각 네 가지 일이니 어느 하나에 치우쳐 살피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만일 한쪽으로 치우쳐 논하자면 ()’자에 이미 마음씀씀이가 너무 지나치다는 병폐가 있는데, ‘()’자로 그 뒤를 따르게 한다면 아마도 더욱 이해를 어지럽게 만들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반드시 다시 살펴보아야겠지만 혹여 말을 만드는 잘못이 있을까 걱정될 뿐입니다.

近以書附建陽范澤民秀才, 計已次第聞達. 人至, 伏奉手誨, 竊審比日冬寒, 尊候萬福, 感慰之劇. 功衰之戚, 不易爲懷, 店疾想一向平復久矣. 杜門進學, 所造想日深. 所謂凝聚收歛是大題目, 此不易之論, 乃功夫根本. 至謂察助長之失, 乃其間節宣之宜耳, 此語却恐未盡. 蓋平論之, 有事勿正勿忘勿助自是四事, 不應偏察其一. 若偏論之, 者已是用意太過之病, 若又以隨之, 竊恐轉見紛擾. 此須更審之, 恐或立辭之病耳.

 

󰡔중용󰡕에 대한 해석에 본시 오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 바라건대 자세하고 살피시고 바로잡아 내년 봄에 만났을 때 물어보면서 제 소회를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숙도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전파시키고 싶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아낄 것도 아니요, 하물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면 안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다만 미완성의 글이 이로 인해 유포된다면 다른 사람을 오도하게 되는 것이 걱정일 뿐입니다. 이미 편지로 서로 만나서 따지고 손 보기를 기다렸다가, 그 다음에서야 전파할 만 하다고 생각되면 그 때 전파해도 또한 늦지 않을 것입니다.

中庸解固不能無謬誤, 更望細加考訂, 來春面叩, 以盡鄙懷也. 叔度云欲傳(3-1448)錄, 此非所愛者. 况在同志, 何所不可? 但恐未成之書, 若緣此流布, 不能不誤人耳. 已書懇其且俟相見商榷之後, 度可傳則傳之, 亦未爲晩也.

 

며느리를 맞이하는 예는 삼가 훈계하신 대로입니다. 내년 봄에 그곳에 가게되면 먼저 이 예를 끝마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숙도의 편지에 의하면 그 딸이 나이가 13세라고 하니, 이것은 처음에 들었던 것과 다릅니다. 이 아이는 장성했으니 제 생각에는 속히 부인을 맞아들여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온공의 의례에 의하면 내년이 되어야 비로소 혼인이 가능한 나이가 됩니다. 이것도 그곳에 도착해서 직접 의논해야겠습니다. 내일 둘째를 위해 며느리를 맞아들이려 합니다. 밤이 되어가는 데도 잡다한 일로 바빠 대충 써서 답을 하는데 눈이 어두워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가르침을 받을 날이 멀지 않으니 미리 스스로 다행이라 여깁니다.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라도 다시 바라건대 때로 진중하십시오.

聘禮謹如所戒, 來春到彼, 便可先畢此禮. 但叔度書云, 其令女方年十三歲, 此則與始者所聞不同. 此兒長大, 鄙意欲早爲授室. 如溫公之儀, 則來歲已可爲婚. 此幷候到彼面議. 來日欲爲次子納婦, 入夜百冗, 草草修報, 目昏不成字. 承敎不遠, 預以自幸. 未間, 更冀以時珍重.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2(을미, 1175, 46) 연말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년고증󰡕에 의하면 이 편지는 시기적으로 뒤따르는 두 통의 편지 다음에 놓여야 한다. 세 번째 편지와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겨울부터 다섯 번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드나들면서 일도 많았고, 다시 괴로운 일은 닥치고 편한 일은 적어서 모두 회답을 못했으니 부끄러운 마음을 어찌 이기겠습니까?

지난번에 어린 동생[幼弟]의 상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공최[功衰]의 참극을 당하셨으니, 비통함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장사[襄事]를 치루는 것도 또한 정신[神觀]을 수고롭게 할 것이니, 저의 마음은 더욱 치달립니다. 요즘 한 해가 저무려고 하는데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박박하게 조금 편안할 뿐이어서 말할 것도 못됩니다. 다만 초겨울에 하숙경(何叔京: 何鎬)이 소무 지방의 친구 몇 사람과 한천정사를 방문해서 함께 열흘을 머물다 돌아가서는 병이 들었습니다. 11월 말경에 부음을 알리는[告訣] 편지가 도착해서 놀라 즉시 성으로 달려가 보니 세상을 떠난 지[不起] 며칠이 지났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하공과 같은 사람은 얻기 어려우니 더욱 사람을 마음을 아프고 애통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가 병중에도 정신이 아주 또렷하고[了了] 사사로운 일은 말하지 않았으며, 자제들을 가르친 말은 모두 기록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제게 보낸 편지들과 아울러 여러 친구들에게 致意한 것들을 이제 기록해서 한 통 보내 드립니다. 그가 당세를 근심하는 뜻을 헤아려 보건데 당신에게 소망하는 바가 없지 않으니, 또한 슬픕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는 정월 초[開正]가 되면 마땅히 가서, 장례를 처리해야겠습니다. 근자에 심하게 쇠약하고 피로해서 바삐 나다니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부득불 한 번은 가야할 것 같습니다.

自冬來五被誨示, 出人多故, 復苦少便, 都不得奉報, 豈勝愧仰 昨聞幼弟之喪, 復遭功衰之慘, 伏惟悲痛何以堪處 而營治襄事, 亦不能不勞神觀, 區區尤劇馳情. 比日歲窮, 伏惟尊候萬福. 熹碌碌粗安, 無足言. 但叔京自冬初與邵武朋友三兩人來寒泉, 相處旬日, 旣歸卽病. 十一月末間, 手書來告訣, 得之驚駭, 卽走省, 至則已不起數日矣. 朋友間如此公者不易得. 極可傷痛. 然其病中極了了, 語不及私, 所以敎子弟者, 語皆可記. 所與熹書幷令致意諸朋友, 今錄去一通. 度其意於當世之慮不無望於伯恭, 當亦爲愴然也. 然不必以示它人爲幸. 熹開正當往, 爲料理葬. 比來甚覺衰憊, 不堪奔走, 然不得不爲一行也.

 

아이를 거두어 들여 가르쳐 주시니 아껴주시는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시 바라지만 통렬하게 채찍질해 주신다면 정말이지 다행이겠습니다. 지난 번에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병폐가 의심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당신께서는 이미 앞서 그 아이의 허물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요즘에 훈도하는 즈음에 앞뒤의 순서는 또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오거든 만나서 일러주시면 좋겠습니다.

兒子蒙收敎, 極感矜念. 更望痛加鞭策, 千萬幸甚. 昨所獻疑本末倒置之病, 明者已先悟其失. 不知近來所以開導之際, 其先後次第復如何? 因來見告爲幸.

 

기중(機仲: 袁樞)확지(擴之: 林允中)가 왔지만 모두 만나지 못했습니다. 확지가 이곳을 지나던 날 희는 소무에 가서 미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 형께서 만나 가르친 한 두가지 일이 있었다는 글을 남겼는데 들어보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습니다. 중간에 대략 󰡔유서󰡕는 산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보내신 편지와 서로 걸맞지 않은 듯 한데 과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초가 되면 반드시 다시 이곳으로 올 터이니 응당 자세히 물어봐야겠습니다. 인편을 통해서도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현재의 관사에 몸을 의탁했는데 정말이지 편치 않은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노형께서도 일찍이 그에게 경고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역시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자세하게 헤아려 살펴보고 가서 가르침을 청하도록 시키겠습니다.

機仲擴之來, 皆未相見. 擴之過此日, 熹往邵武未歸, 但留書云老兄有所見敎一二事, 甚恨未得聞也. 其間略說遺書不須刪定, 與來書似不相照, 不知果如何. 然渠開正須復來此, 當細扣之, 便中亦望批喩也. 渠託於縣宰之館, 誠似未便, 聞老兄亦嘗警告之. 幷俟其來, 細與商榷, 令去請敎也.

 

󰡔상서󰡕를 수정한 설명은 매우 좋습니다. 아울러 이정의 글과 󰡔시외전󰡕 등도 순서대로 보내주시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앞 편지에서 󰡔본정서󰡕․󰡔속첨도자󰡕․󰡔논사록󰡕 등을 구해주시라고 부탁했는데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계림(桂林)에서 󰡔본정서󰡕를 보내온 뒤에 다시 한 두 종류의 문자가 있어서 이미 따로 우리 형[老兄]이 계신 곳에도 보내주록 부탁했습니다. 혹여 아울러 보충해서 채우시면 일가의 책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흠부가 편지를 보내 왔는데 정사를 하는 뜻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순임금의 사당에 비문을 지으라고 제게 시켰는데 제목이 작지 않아 억지로 완성을 했습니다만 가르침을 구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지금 기록해서 보내드릴 겨를이 없으니 훗날 보여드리겠습니다. 듣기로 다시 요임금의 묘를 수리하려고 한다는데 이것은 그 기세상 반드시 우리 형에게 글을 부탁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修定書說甚善, 得幷程書詩外傳等節次見寄, 甚幸. 前書託求本政書, 續添圖子論事錄等, 望留意. 近桂林寄本政書後, 更有一二種文字, 已屬其別寄老兄處, 或可幷補足, 成一家之書也. 欽夫書來及其爲政之意甚美. 令作修舜廟碑文, 題目不小, 勉彊成之, 不及求敎爲恨. 今亦未暇錄呈, 它時當見之耳. 聞更欲修堯廟, 此其勢必當屬筆於老兄也.

 

()는 최근 󰡔󰡕을 읽고 맛을 깨달았습니다. 󰡔여씨향약(呂氏鄕約)󰡕․󰡔향의(鄕儀)󰡕를 수정하려고, 또 관혼상제의 의례를 간략하게 하며, ‘書過行罰같은 종류는 없애버려서 가난하거 부자건 간에 공통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괴로운 일이 많고 드나들면서 그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거리가 멀어 질정할 방도가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다만 하루속이 초고와 결정되면 마땅히 보내드리고, 가부를 기다린 연후에 수정을 하겠습니다. 두려운 것은 스스로 수정에 힘이 없고, 다른 사람을 인솔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감하게 시행하면서 피차간에 서로 경책한다면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계통(季通)이 지난 번 절 땅을 나서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다시 계획한 모양인데 또한 미정입니다. 하루바삐 서로 만나게 되면 응당 융성한 뜻에 이를 것입니다. 응중(應仲)의 편지에도 회답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향리 사람 가운데 길을 떠난다고 고하는 자가 있어 대충 써서 이글을 맡기느라 소회를 다 궁구하지 못합니다. 원컨대 우리의 도를 위해 자중하심으로서 다가오는 좋은 일[大來之亨]에 대비하십시오. 저는 지극히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 머리를 숙이고 두 번 절합니다.

 

熹近讀易, 覺有味. 又欲修呂氏鄕約鄕儀, 及約冠昏喪祭之儀, 削去書過行罰之類, 爲貧富可通行者. 苦多出入, 不能就. 又恨地遠, 無由質正. 然旦夕草定, 亦當寄呈, 俟可否然後改行也. 所懼自修不力, 無以率人, 然果能行之, 彼此交警, 亦不爲無助耳. 季通昨欲出浙, 竟不能行. 今復欲謀之, 亦未定. 旦夕相見, 當致盛意. 應仲書亦未有報也. 今日歲除, 鄕人有告行者, 草草附此, 未究所懷. 願言爲道自重, 以對大來之亨, 區區至望, 不宣. 熹頓首再拜.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2(을미, 1175, 46) 8월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한천정사를 다녀가시면서 두 달 동안 함께 있을 수 있었는데, 깊이 타이르고 가르쳐주셔서 느끼고 계발한 것이 많았습니다. 헤어지고 불현듯 두 달이 지났는데도 우러르는 마음[向仰]은 조금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인편을 통해 서신을 받았습니다. 이미 여장을 풀었다고 하니 기쁘고 위로가 됩니다. 편지를 받은 이후로 가을날은 이미 청량해지는데 건강은 별고 없으십니까. 저는 집으로 돌아 온 지 며칠만에 처음 노산의 봉우리를 올랐습니다. 맑고 탁트인 경관이 사람사는 세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맑은 경치가 지나가자 오래 머물기가 곤란했습니다. 노산에 도착해서 채계통과 온태[丹丘]로 가는 여행을 의논했는데, 갑자기 편지를 받고보니 망연합니다. 오히려 지난 번에 정사에 오셨을 때 더 머무르도록 만류하지 못하고, 혹 다시 아호산에서 뒤쫓아가 회옥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며칠을 머물지 못했던 것이 후회됩니다.

昨承枉過. 得兩月之款, 警誨之深, 感發多矣. 別去匆匆兩月, 向仰不少忘. 便中奉告, 承已稅駕, 欣慰之劇. 信後秋氣已淸, 伏惟尊候萬福. 熹還家數日, 始登蘆山之頂, 淸曠非復人境. 但過淸難久居耳. 至彼, 與季通方議丹丘之行, (3-1451)忽得來敎, 爲之惘然. 却悔前日不且挽留, 或更自鵝湖追逐入懷玉深山, 坐數日也.

 

損約收斂은 정말로 제가 마땅히 일삼아야 할 것입니다. 전에는 바깥일[外事]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응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편지의 가르침을 받고보니 열에 네다섯은 덜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내면을 향해[向裏] 점진적으로 정돈하고 다스린다면[整治] 거의 허물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마음의 은미하지만 절실한 곳[密切處]은 바깥일을 쉽게 사절하는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강목󰡕의 초고는 대략 갖추었습니다. 필사와 교정이 좋은 것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느라 몇 개월을 쉬고 있습니다. 이후로 약간의 과정만 더한다면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부터의 병페는 책이 부담이 되어서가 아니라[非書累人], 욕심과 조급함이 안에서부터 발동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제 마땅히 여기까지 진척되었고, 책의 체제도 만들어졌으니 조금은 차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損約收斂, 此正區區所當從事. 日前外事有不得已而應者, 自承警誨, 什損四五矣. 自此向裏漸漸整治, 庶幾寡過. 但恐密切處, 不似外事易謝絶也. 綱目草稿略具, 俟寫校淨本畢, 卽且休歇數月. 向後但小作功程, 卽亦不至勞心也. 向來之病, 非書累人, 乃貪躁內發而然. 今當就此與作節度, 庶幾小瘳耳.

 

왕장(汪丈)의 문자는 이미 써서 보냈습니다. 한장(韓丈)에게서 요즘 편지를 받았는데, ‘청의(淸議)’라는 두 글자가 어떤 글에서 나왔는지를 물었습니다. 자못 기록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기억으로는 유원성(劉元城)의 말입니다. 이 편지로 인해서 고해주시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당장(唐裝)에 대한 설명은 이 역시 대부분 잘못된 번잡한 관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작은 것을 구하려고 不知其於大者之過也 인편에 아뢰느라 품은 생각을 궁구하지 못합니다. 부디 우리의 도를 위해 자중하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는 머리를 숙이고 두 번 절하고 장을 올립니다.

汪丈文字, 已寫寄之矣. 韓丈近得書, 淸議二字所出何書, 殊不省記, 但憶劉元城語耳. 因書告見敎. 唐奘之說, 此亦多知其誤紊官制, 此欲救其小而不知其於大者之過也. 專人奉問, 未究所懷, 惟千萬爲道自重, 不宣. 熹頓首再拜上狀.

 

별지에서 깨우친 것은 개발한 것이 정말 많습니다 태백(太伯)백이[]숙제[]의 일은 제 견해도 이와 같습니다. 다시 조금 더 반복해보시고 가르침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別紙誨示, 開發良多. 太伯齊事, 鄙見偶亦如此也. 復有少反復, 更望垂誨.

 

이미 편지를 쓰고서, 또 부에서 부쳐온 79일자 당신의 편지를 받아 더욱 깊이 위안이 됩니다. 다만 이전의 두 통의 편지라고 하신 것 가운데 하나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에게 맡겼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찾아 물어보면 될 것입니다. 며칠 이래로 메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언제나 들을 때마나 (당신의) 높은 기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는 또 아룁니다.

已作書, 又得府中寄來七月九日所惠書, 爲慰尤深. 但所謂前兩惠書者, 其一未到, 不知附何人? 可究問也. 數日來蟬聲益淸, 每聽之, 未嘗不懷高風也. 熹又覆.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2(을미, 1175, 46) 814일에 쓴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사록󰡕의 편제를 논의하면서 여조겸에게 제근사록을 써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그리고 󰡔정씨유서󰡕의 절록본에 붙일 제목을 󰡔정자미언󰡕으로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 번 전인이 돌아가는 편에 부에 편지 한 통을 보냈습니다. 요즘 가을 날씨가 서늘해 지는데 당신께서는 건강하신지요. 󰡔근사록󰡕은 최근 베껴서 책자를 만들게 했는데, 볼 만 합니다. 다만 예전에 지나치게 고원한 내용이라는 꺼림칙했던 부분은 몇 단락을 뺐습니다(예를 들자면 태극과 명도가 성을 논한 것 등등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안자론을 첫 장으로 삼을 경우 오히려 오로지 도체(道體)만을 논한 것도 아니니 마땅히 제2권에 넣어야 합니다(‘제이단으로 쓴다). 또 어버이를 섬기고 집안에서 생활하는 일도 제 9권에만 두는 것은 지나치게 완만한 것 같습니다. 지금 따로 한 권을 만들어 출처를 논한 곳 앞에 두었더니, 순서가 잡혔습니다. 권에서 몇 단락을 빼거나 더했고, 애초의 편집본[初卷]을 보내 드립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제오륜(第五倫)의 일은 󰡔곤범󰡕 속에도 실려있지 않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만 예전에 강론한 적이 있었던가요? 취사선택하신 뜻이 어떤지 아지 못하겠으나, 오시게 되면 고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이 세상에 유포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우리 형[老兄]의 몇마디 글을 얻어서 목록의 뒤에 덧붙인 다음에야 정녕스러운 뜻에 이른 것이 아름다울 것이니, 부디 아끼지 마십시오.

昨專人反, 附府中一書, 想比日秋凉, 伏惟尊候萬福. 近思錄近令抄作冊子, 亦自可觀. 但向時嫌其太高, 去却數段, 如太極及明道輪性之類者. 今看得似不可無. 如以顔子論爲首章, 却非專論道體, 自合入第二卷. 作第二段. 又事觀居家事直在第九卷, 亦似太緩. 今欲別作一卷, 令在出處之前, 乃得其序. 卷中添却數段, 草卷附呈, 不知於尊意如何? 第五倫事閫範中亦不載, 不記曾講及否? 不知去取之意如何, 因來告諭及也. 此書若欲行之, 須更得老兄數字, 繫於目錄之後, 致丁寧之意爲佳, 千萬勿吝也.

 

󰡔유서(遺書)󰡕의 절록본은 이미 베껴 썼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삭제하고 뺀 것에 대해 반드시 초지(草紙)를 써서 베끼고 매 단락 마다 약간이나마 삭제한 뜻을 주로 다는 것이 대충대충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만일 만일 이렇게 남모르는 곳에서 삭제하기만 한다면 세월이 오래되면 도리어 사람들을 미혹시킬 것입니다. 󰡔논어󰡕를 기록한 사람들이 이미 이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대에까지 󰡔가어(家語)󰡕를 존속시켜 오늘날에 이르도록 병폐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번 의논할 때 󰡔정자격언(程子格言)󰡕으로 제목을 삼자고 했는데, 다만 󰡔정자미언(程子微言)󰡕이라고만 하는 것만 못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비록 시씨(時氏)가 편집한 책이 이미 이 제목을 쓰고 있지만, 나중에 서문을 써서 설명한다면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 판단해 보십시오. 또 번거롭더라도 왕장(汪丈)이 계신 곳에 가서 여화숙(呂和叔)의 문집을 빌려 서명해(西銘解)가 있는 지의 여부를 검토해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 가지 일은 유의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지난 번 허락하신 글을 써서 보내시겠다는 것과 앞 편지에서 청한 것도, 혹 가는 사람을 이미 돌려 보냈는데도 다 보내지 못한 것은 계속해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논어󰡕󰡔맹자󰡕를 설명한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또 보시고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숙도(叔度)숙창(叔昌) 두 형에게는 장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보게 되거든 번거롭더라도 제 뜻을 일러 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는 머리를 숙이고 두 번 절합니다. 814.

遺書節本已寫出, 愚意所刪去者亦須用草紙抄出, 逐段略注刪去之意, 方見不草草處. 若只暗地刪却, 久遠却惑人也. 記論語者, 只爲不曾如此, 留下家語, 至今作病痛也. 往時商量, 欲以程子格言爲名, 不如只作微言, 如何? 雖有時氏所編已用此名, 然將來自作序說破不妨也, 更裁之. 又欲煩就汪丈處借呂和叔集, 檢看有西銘解否, 有望錄示也. 此三事切望留念. 又向時所許錄寄文字, 及前書所請, 或去人已遣歸, 所寄未盡, 望續附來爲幸. 更說有何人語孟說, 亦望見寄也. 叔度叔昌二兄未及拜狀, 因見煩致區區, 不宣. 熹頓首再拜, 八月十四日.

 

所云府中一書無之, 誤記也.

말씀 드린 부의 편지 한 통[府中一書]’은 없으니, 기억이 잘못되었습니다.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3(병신, 1176, 47) 겨울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로 추정된다.

 

 

인편에 편지를 받고 진심으로 위안이 되어 당신을 우러릅니다. 요즈음 겨울인데도 날씨가 따뜻하여 평상시와 다르니 당신께도 만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저는 예전처럼 궁벽합니다. 주변의 여러분들이 억지로 벼슬에 나갈 필요는 없다고 하시니 저의 거취에 관한 계획도 대단히 편합니다. 거듭 깨우쳐주신 가르침을 통해 어진 이가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을 깊이 알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사면하는 청을 처음 올렸을 때에도 오히려 좌지우지 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이것은 아마도 따로 제어하는 것[制之者]이 있는 듯 하니 사람의 힘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 건업(建業)에서 장정수(定叟)의 소식을 아주 상세하게 전해 들었는데, 이 또한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병이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니, 요점은 스스로 처신하여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장의 편지를 받고 더욱 당신의 거취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 공들이 임금의 마음을 바루는 어려운 일을 앞세워 어진 사람이 나아갈 길을 열어주지도 않고, 사소하게 선류들을 끌어 쓰는 말류에나 힘을 쏟고 있으니, 그 참소하는 말에 신빙성이나 더하기에 족할 뿐 일을 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최근에 한 두 가지 일은 또한 기뻐할만 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을 임용할 때 두 마음을 품지 말고 간사한 사람을 물리칠 때 의심하지 말라[勿貳勿疑]’는 옛 선인들의 깊은 경계의 말은 마침 제 마음을 오싹하게 합니다.

便中承書, 良慰瞻仰. 比日冬溫異常, 伏惟尊候萬福. 熹窮陋如昨, 諸公許不彊致, 其計甚便. 所喩諄複, 深見仁者憂世之心. 然初辭甫上, 便有前却, 此似有制之者, 非人力所能計較也. 近得建業轉致定叟報甚詳, 此亦不可便謂無妄之疾, 要是自處有不至耳. 得韓丈書, 甚以老兄爲念. 然諸公不先其難者, 以開進賢之路, 而區區用力於末流, 適足以信其讒口, 於事竟何補耶? 近事一二, 似亦可喜. 然勿貳勿疑, 古人之深戒, 適足爲寒心耳.

 

󰡔시경󰡕을 끝까지 다 읽으셨다니 발명한 것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조용하게 물어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저의 󰡔시집전󰡕은 당시에는 또한 대단히 상세하게 갖추어져 있었지만 후에 뜻을 정하여 (삭제하고) 남은 것은 다만 이것 뿐입니다. 그러나 고주를 끌어다 쓰려고 해도 뜻에 차지 않은 곳이 대단히 많습니다. 요사이 수정하려고 했습니다만 또 끌어다 원용할 만한 옛날의 주석이 없어 괴로우니, 이 일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누만 끼칠 뿐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신께서 가르침을 주고자 한 것은 어떤 일입니까? 빨리 듣고 싶지만 다 논할 수 없을까 염려되니 우선 큰 것 몇 조목만 보여주셔도 경계하기에 충분할 겁니다.

承讀詩終篇, 想多所發明, 恨未得從容以請. 熹所集解, 當時亦甚詳備, 後以意定, 所餘才此耳. 然爲舊說牽制, 不滿意處極多. 比欲修正, 又苦別無稽援, 此事終累人也. 不審所欲見敎者何事? 亟欲聞之, 恐不能悉論, 姑得大者數條見示, 亦足以有警也.

 

논어설은 짬을 내어 또한 빨리 삭제하고 바로 잡아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회계(曾稽)에 가는 일은 날짜가 많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주례󰡕󰡔의례󰡕를 보았는데 자못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정신력과 체력이 떨어져 보고나면 다시 정신이 멍해지니 또한 시간만 허비하는 공부만 같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친하게 공경한다[相人偶]’는 구절은 다른 한 두 곳에서도 나오지만, 모두 주() 가운데 나오는 말이여서, 󰡔예기󰡕의 주에서 다시 이 주를 인용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따로 기존의 문장이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혹여 당시 사람들의 말도 이와 같았던 것일까요? 󰡔근사록󰡕을 판각한 것은 대단히 좋았고, 그간의 곡절도 이미 숙도에게 알렸습니다. 보내온 편지에 혼사에 관한 의론이 있었는데, 이 일은 특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볍게 처리할 수 없는 것인지라 문의할 만한 곳이 있으면 따로 답신을 드리겠습니다. 확지(擴之: 林允中)는 아직 만나지 못했고 택지도 온다고 하였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채계통이 어머니 상을 당하였는데 가난이 너무 심하여 가엾습니다. 동씨(董氏: 董逌)의 시()는 건양에서 출판한 판본이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책을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속에서 고증한 것이 대단히 방대하지만, 다만 고증의 출처를 알아내지 못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편안치 못하게 할 뿐입니다. 최근에 󰡔대학󰡕을 읽었는데 사람이 친애하는 것에 치우친다[人之其所親愛而辟焉]’는 구절에서 은 당연히 으로 읽어야 만이 위 장과 동체(同體)가 되고, 아래 문장에 대해서도 아주 순조로와질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고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는데 어떠십니까?

論語說得暇亦望早爲裁訂示及. 曾稽之行, 計亦不多日也. 近看周儀二禮, 頗有意思. 但心力短, 過眼卽復惘然, 又似枉費工夫耳. ‘相人偶更有一二處, 但皆注中語, 不應禮記注中又自引此注文. 不知別有成文, 或當時人語如此耶? 近思刻板甚善, 曲折已報叔度矣. 垂喩昏議, 此極不忘. 但熹未敢輕易, 已具以來誨諭諸往來者, 有可問處, 別馳報也. 擴之不曾相見, 擇之欲來, 亦未見到, 不知何故. 季通有母之喪, 貧迫甚可念也. 董氏詩建陽有版本, 旦夕託人尋訪納去. 其間考證極博, 但不見所出, 使人未敢安耳. 近讀大學, 人之其所親愛而辟焉’, 只合讀爲, 則與上章同體, 而於下文甚順. 幸試思之見報, 如何?

 

계림에서 최근에 편지를 받았는데 일로의 재무를 처리하는데는 대단히 조리가 있습니다. 다만 주병의 훈련과 감독이 이미 차례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어떤 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지난번의 강론이 지나치게 고원한 폐단이 있었다는 것도 깊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최근 다시 한 번 무이(武夷)에 가서 거의 한 달여를 머무르면서 깊이 궁구하고 널리 찾아보고서야 과거에는 애초부터 노닌 적이 없었음을 알았습니다. 옛 제명은 닳아졌고 자취를 위아래로 살펴보아도 숙경(叔京)은 결국 세상을 떠났으니 거듭 가슴이 아프고 탄식만 나올 뿐입니다. ()은 오래도록 가르침과 훈도를 받고 있으니 감사드리는 마음은 가슴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또 조금 진보되었다고 허락하셨다니 더욱 감사드리는 마음 더욱 간절합니다. 괴로움을 헤쳐나가고 담백한 음식이나 먹는[功苦食淡] 습관을 통해 스스로 진보한 것을 알아차리기를 바랬는데, 아마도 이런 날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분명하게 호오를 보여주시고 통렬하게 법도를 더하신다면 다행이 또 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천리나 떨어져 있어 가르침을 받을 날이 없으니 바람결에 슬픈 마음만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우리의 도를 위해 자중하셔서 이 기원과 간청에 부응하시기를 빕니다.

桂林近得書, 區處一路財計, 甚有條理. 但云州兵閱習已成次第, 不知如何也. 亦甚覺向來講論過高之弊矣. 近復一到武夷, 留近旬月, 窮探遍歷, 乃知昔之未始遊也. 摩挲舊題, 俯仰陳迹, 而叔京遂爲古人, 重以傷嘆耳. 塾子久累誨督, 感刻已深. 又承許其稍進, 尤切銘篆. 苦淡之習, 欲其自知進步, 恐無此日. 更得明示好惡而痛加撙節, 則爲幸又不可言矣. 相望千里, 未有承敎之日, 臨風不勝黯然. 願言爲道自重, 副此禱懇.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43

 

 

해제이 글은 순희 3(병신, 1176, 47) 정월 초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묘비를 비석에 새기지 않았다면 오히려 내용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한 벌을 써서 보내드리니, 지적하고 깨우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은 이 편지로 인해서 계림에 빨리 연락을 보내 새기는 일을 늦추도록 해야겠습니다. 하숙경의 가족이 묘비명을 부탁했는데 이렇게 초안을 정했으니 또한 가르침을 구합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완성된 것이 아니니 삭제하고 고쳐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원선(元善: 詹體仁)이 할머니의 상을 당해서 급하게 관직을 해임해 달라는 글을 올리고 돌아갔으나 주군에서 법령을 이유로 허락하지 않아서 현재로서는 나아가거나 물러나는데 그근거가 없는 형편입니다. 며칠 전에 와서는 제게 사록관이나 혹은 심의(尋醫)를 청하려고 한다길래 심의가 더 좋겠다고 해주었습니다. 원선(元善)이 어려서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하려는 것이지만 또한 지나치게 경솔합니다. 원선이 며칠 전에 제가 쓴 도를 어지럽히는 시 몇 편을 가지고 갔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요사이 듣기로는 자약에게 베껴 주려고 했었는데 자약이 이미 베껴서 갖고있노라고 했다고 합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보지 못하게 감추어서 사방으로 나가지 않게 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廟碑恐未刻間尙可改, 錄呈一本, 幸指喩. 或因書徑報桂林, 令緩刻也. 叔京家屬爲埋銘, 方草定如此, 亦以求敎. 此全未成, 尤望斤削, 然亦不必示人也. 元善遭祖母之喪, 遽投解官文字而歸, 州郡以法不許, 目今進退無據. 前日來問, 欲請祠或尋醫, 勸其不若尋醫. 蓋渠以自幼鞠於祖母, 故欲如此, 然亦太輕率矣. 渠前日寫得亂道詩數篇去, 囑其勿示人. 近聞乃嘗呈似子約, 云已寫得. 切告掩藏, 勿令四出爲幸.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3(병신, 1176, 47) 정월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초에 편지를 써서 인편에 부쳤으니 이미 도착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서 소계(小溪)를 거쳐 열흘 여 만에 마침내 부사(富沙)에 와서 한장(韓丈)을 뵙고, 대충 당신의 근황을 듣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요즘 절기에 맞춰 봄비가 내립니다. 당신께도 만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왕장(汪丈)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당신께서도 저처럼 가슴아파하고 탄식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차마 믿을 수 없었는데 성 안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분은 진실로 오늘날 선한 선비[善類]들의 으뜸[宗主]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니 애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곧장 달려가 곡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근전(近甸)으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빨리 무원(婺源)으로 돌아가면 혹 편한 길이 있어서 한 번 그 집을 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정과 의리상 이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으니 남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正初以書附便人, 想已達. 自此過小溪旬日, 遂來富沙見韓丈, 略聞近况爲慰. 比日春雨應候, 伏惟尊候萬福. 汪丈遽至於此, 想同此傷嘆. 此始聞之, 猶未敢信, 到城中始知果然. 此公實爲今日善類之宗主, 一旦隕沒, 何痛如之! 卽欲奔往哭之, 又不敢輒至近甸, 然旦夕歸婺源, 或當便道一過其家. 情義所在, 有不得而避者. 然亦不敢見人, 幸勿語人也.

 

확지가 가는 편에 이 편지를 부치게 되어 급박하여 다른 것은 언급할 겨를이 없습니다. 숙이 의지할수 있는 스승을 맞이하게 되어 더욱 다행스럽니다. 통렬하게 채찍질을 가하여 주시기 절실하게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저는 머리를 숙여 다시 절을 올리며 글을 올립니다.

당신께서는 모두 좋으시겠지요, 자약에게는 따로 장을 하지 못합니다.

因擴之行附此, 草草, 不暇它及. 塾獲依師席, 幸甚. 凡百望痛加鞭勒. 餘惟以道自重爲禱, 不宣. 正月晦日, 熹頓首再拜上狀.

眷集均慶, 子約不及別狀.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3(병신, 1176, 47) 봄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요즘 한장(韓丈)으로 인해 장을 보냈는데 생각해보면 이리저리 떠돌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돌아와 편지를 받고서 요즘 봄날이 화창한데 당신께서는 만복이 깃드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편지에서 만날 장소를 약속하신 것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저의 이번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재촉당한 것이라 반드시 한 번은 구주에 가야 하지만 여러 군현을 잡다하게 거쳐가기를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곧장 포성으로 길을 잡아 간 것입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성 안의 절[城寺]에 들어가고, 새벽이 되면 곧장 나와서, 상산과 개화에서 무원을 지나면서도 오히려 사람들에게 알려져 후회할 일이 생길까 우려했습니다. 이제 편지를 받고 보니 야외에서의 만남[野次之款]’을 바란다고 하시니 이는 정말로 제가 깊이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다만 깊고 궁벽한 장소를 구해서 2,3일 동안 물러나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금화에서 구주로 들어가지 않고, 상산으로 가는 지름길로 오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석암사(石巖寺)는 어디 있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만일 구주무주 사이의 관도 곁에 있다면 편하지가 않습니다. 작년에 아호사에서의 모임은 지금 생각하면 이미 좋은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자세하게 헤아려 보십시오. 또 희()가 가겠다는 약속도 아직 미정입니다. 대략 다음 달 중순 정도면 지나가거나 머물 수 있을 것 같은데 월말이면 모두 구주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미리 약속하지는 못하겠고 포성(浦城)에 도착한 다음에 인편으로 회답을 한 통 보내겠습니다. 인편을 돌려보내시면서 장소를 결정한 곳을 일러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을 급히 보내느라 대충 써서 올립니다. 나머지는 오직 우리의 도를 위해 자중하시라는 것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는 고개를 숙이고 두 번 절하고 장을 올립니다.

近因韓丈得附狀, 計不至浮湛. 人至奉告, 欣審卽日春和, 尊候萬福. 承喩以期會之所, 甚幸. 但區區此行, 迫不得已, 須一至衢, 正以不欲多歷郡縣, 故取道浦城以往. 只擬夜入城寺, 遲明卽出, 却自常山開化過婺源, 猶恐爲人所知, 招致悔咎. 今承誨諭欲爲野次之款, 此固所深願. 但須得一深僻去處, 跧伏兩三日乃佳. 自金華不入衢, 徑趣常山道間尤妙. 石巖寺不知在何處 若在衢婺間官道之旁, 卽未爲穩便. 蓋去歲鵝湖之集, 在今思之, 已非善地矣. 更熟籌度之.

 

앞 편지에서 한장(韓丈)에게 말해달라고 간청한 것에 대해서는 유념해달라고 일러주십시오. 전에 스스로 힘써 말했으니, 아마도 이미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 잊어버리고 어지럽게 될까봐 걱정되어 깊이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뿐입니다.

前書所懇爲韓丈言者, 告留念. 前日自言之已力, 似已蒙領略. 然恐或忘之, 脫致紛紜, 不得不深防耳. 千萬.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3(병신, 1176, 47) 봄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약속한 여행이 며칠 남지 않았다거나 요즘 봄날 이 화창하다는 구절에 근거하면 이 편지는 병신년 봄 2월말이나 3월 초에 쓴 것이다.

 

 

요즘 한장이 사람을 보낸 것으로 인해 인해 장을 올렸으니, 헤아려보면 이보다 앞서 도착했을 것입니다. 요즘 봄날이 화창한데 당신께서는 건강하시겠지요. 약속한 여행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오늘부터는 손가락을 꼽으며 수레 소리를 기다립니다. 여행을 재촉해서 이 학수고대하는 사람을 사람을 위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숙도(叔度) 형은 지난 번 조금 안정이 깨졌다고 했는데, 지금은 이미 안정이 되었습니까? 다른 여러 친구들은 누가 함께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인편이 문 앞을 지나가 대충 써서 글을 보냅니다. 나머지는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近因韓丈遣人拜狀, 計先此達矣. 比日春和, 伏惟尊候萬福. 行期想只數日間, 自此屈指以望車音. 幸疾其驅, 慰此傾跂也. 叔度兄昨小違和, 今已安否? (3-1458)知諸朋友執能同來? 因便信過門, 草草附問, 餘惟面言.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순희 3(병신, 1176, 47) 봄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임안으로 출발한 한원길을 만날 예정이고, 성묘를 위해 무원으로 채 출발하지 못한 상황이라거나, 왕응진의 초상에 치제하지 못한 것으로 미루어 2월 경의 편지로 추정된다. 본문에서 유청지가 이미 입대했는지를 묻고 있는데 이 역시 이 편지가 2월에 쓴 것이라는 추정의 근거가 된다. 󰡔주역󰡕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주자의 견해가 일목요연하게 묘사되고 있다.

 

 

인편을 통해 두 차례 편지를 받고 깊이 감사드리고 또 위안을 느꼈습니다. 오늘은 비가 오고 춥습니다. 당신께서는 건강하시겠지요. ()는 정초에 다시 소무(邵武)에 갔다가, 부사(富沙)로 발길을 돌렸고 숭안(崇安)으로 올라가 40일이 지나서야 돌아왔습니다. 무원(婺源)으로 가려고 했는데, 미처 도착하기 전에 한장이 소명을 받고 (임안으로) 돌아가면서, 길을 나서 읍에서 진숙(晉叔)에게 기별을 해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또 한 번 산을 나서지 않을 수 없는데 지친 몸을 버틸 수도 없습니다. 삼구(三衢)에도 한 번 들러 왕장(汪丈)의 초상에 곡하고 싶은데 감히 앞으로 갈 수 없으니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빨리 길에 오르되 천천히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한 지를 생각해 볼 뿐입니다. 숙창(叔昌)이 지은 전문(奠文)을 보내 왔는데, 왕장의 사람됨을 곡진하게 말하고 있어서 읽는 사람의 눈물을 떨구게 합니다. 하형(何兄)의 지문(誌文)에 있는 말의 병폐는 정말로 깨우쳐 주신 대로입니다. 실은 이에 앞서 의심이 들어 이미 고쳤습니다. 기타 다시 개정할 것도 오히려 많은 데 경황이 없어 기록해 보내드릴 겨를이 없습니다. 초본(草本)은 거두어 없애라고 일렀습니다. 자징(子澄)은 이미 입대했습니까? 그가 황제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 자세히 생각해 두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입을 열고 말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생각을 다 말하면서도 시의의 올바름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힘들 뿐입니다. 형수의 장례도 이미 끝나셨을 것입니다. 이후로 다른 일이 없으면 차근차근 여러 서적을 정돈해서 후세에 물려주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또 속히 손대시기를 바랍니다. ()가 정리하려는 글들은 두서가 상당히 많은데도 시간과 힘이 모자랍니다. 지금 또 멀리 떠나게 되니 단 하루도 마음에서 생각이 떠나는 날이 없습니다.

便中兩辱誨示, 感慰之深. 卽日雨寒, 伏惟尊候萬福. 熹正初復至邵武, 還走富沙, 上崇安, 四旬而後歸. 將爲婺源之行, 未及而韓丈召還, 道出邑中, 寄聲晉叔, 必欲相見. 不免又出山一巡, 疲曳不可支矣. 極欲一到三衢, 哭汪丈之喪, 而未敢前, 未知所以爲決. 旦夕上道, 却徐思其宜耳. 叔昌寄示所作奠文, 曲盡其爲人之梗槪, 讀之令人隕涕也. 何兄誌文語病誠如所喩, 前此固已疑而改之矣. 它所更定尙多, 匆匆未暇錄呈, 草本告收毁之也. 子澄已對未? 所欲言者, 想已子細商較. 大抵今日發口, 欲其盡己而不失時義之中, 此爲難耳. 尊嫂葬事想已畢, 自此無事, 以次整頓諸書, 以惠後學, 甚善. 然亦願早下手也. 熹所欲整理文字頭緖頗多, 而日力不足. 今又方有遠役, 念念未始一日去心也.

 

󰡔󰡕을 읽는 방법은 제 생각으로는 괘효(卦爻)의 말은 본래 점치는 사람을 위해 길흉을 판단하고, 이로 인해 훈계하는 말입니다. 단전상전문언전을 지은 것은 처음에 그 길흉을 판단하고 훈계하려는 뜻으로 인해 그 의리를 미루어 설명하고 밝히려는 것이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다만 공자께서 의리를 설명하신 것만을 보고서 다시 문왕주공의 본 뜻을 미루어 탐구하지 않고서, 이로 인해 점치는 것을 비루하게 보고 말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을 말하려는 자는 마침내 일상생활의 실용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모두 다 견강부회하면서 한 가지 일만을 위주로 편파적으로 말하면서, 포함해관(包含該貫)곡창방통(曲暢旁通)하는 오묘함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이와 같다면 성인께서는 당시에 스스로 따로 한 책을 만들어 의리를 분명하게 말해서 후세에 일러주었지, 어째서 괘상에 가탁해서 이렇게 심오하고 어려우며, 은미하고 애매한 말을 쓰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의 괘, 하나의 효를 읽으려는 자는 곧 점쳐서 얻은 것을 빈 빔 마음으로 그 말과 의미가 가리키는 것을 탐구해서 길흉과 가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상이 이미 그렇게 된 것을 살펴보고, 그 이치의 그렇게 된 까닭을 추구하며, 그 다음에 일에 미루어 보면 위로는 왕공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수신과 치국에 모두 유용성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구한다면 아마도 세 분 성인께서 남기신 뜻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경(上經)을 읽어 보았더니, 그 속에 분명치 못한 곳이 많아서, 억지로 의미를 소통시킬 수 없었습니다. 의미가 통하는 곳은 본래 아주 평이하고 천근한 것이 있는데, 오늘날의 전()의 주에서는 오해를 해서 고원하고 심오하며 미묘하게 설명하려고 합니다(예를 들자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롭다[利用祭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롭다[利用享祀]’는 단지 제사를 점쳤더니 길하더라는 말이요, ‘사냥에서 세 마리 여우를 잡는다[田獲三孤]’, ‘사냥가서 세 가지 노획품을 얻는다[田獲三品]’는 단지 농토를 점쳤더너 길했다는 말이요, ‘공이 천자에게 제사를 드린다[公用享于天子]’는 단지 조근(朝覲)하는 것을 점쳤더니 길하더라는 말이요, ‘임금을 세우는 것이 이롭다[利建侯]는 단지 군주를 세우는 것을 점쳤더니 길하더라는 말이요, ‘의지하여 나라를 옮기는 것이 이롭다[利用爲依遷國]’은 단지 국도를 옮기는 것을 점쳤더니 길하더라는 말이요, ‘정벌하는 것이 이롭다[利用侵伐]’은 정벌할 것을 점쳤더니 길하더라는 말이라는 등등입니다. 다만 일에다 미루어 보면 간혹 이와 같이 말하는 자들이 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은 종류의 것들은 한 둘이 아니어서 또한 개인적으로 그들의 주장을 알고서 친구들과 바로잡으려지만 아직 손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시게 되면 가부를 한 마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讀易之法, 竊疑卦爻之詞本爲卜筮者斷吉凶, 而因以訓戒. 至彖文言之作, 始因其吉凶訓戒之意而推說其義理以明之. 後人但見孔子所說義理, 而不復推(3-1459)本文王周公之本意, 因鄙卜筮爲不足言 : 而其所以言易者, 遂遠於日用之實, 皆牽合委曲, 偏主一事而言, 無復包含該貫曲暢旁通之妙. 若但如此, 則聖人當時自可別作一書, 明言義理, 以詔後世, 何用假託卦象, 爲此艱深隱晦之辭乎? 故今欲凡讀一卦一爻, 便如占筮所得, 虛心以求其詞義之所指, 以爲吉凶可否之決. 然後考其象之所已然者, 求其理之所以然者, 然後推之於事, 使上自王公, 下至民庶, 所以修身治國皆有可用. 私竊以爲如此求之, 似得三聖之遺意. 然方讀得上經, 其間方多有未曉處, 不敢彊通也. 其可通處, 極有本甚乎易淺近, 而今傳詳悟爲高深微妙之說者. 利用察祀’, ‘利用享祀, ’只是卜祭則吉 : ‘田獲三孤’, ‘田獲三品只是卜田則吉 : ‘公用享于天子, ’只是卜朝覲則吉 : ‘利建侯’, 只是卜立君則吉 : ‘利用爲依遷國’, 只是卜遷國則吉 : ‘利用侵伐’, 只是卜侵伐則吉之類. 但推之於事, 或有如此說者耳. 凡此之類不一, 亦欲私識其說, 與朋友訂之, 而未能就也. 不審尊意以爲如何? 因來幸以一言可否之.

 

예서도 많은 일 때문에 시달리느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이 완성되면 탈고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보내 시정을 구하겠습니다.

禮書亦苦多事, 未能就緖. 書成, 當不俟脫稿, 首以寄呈, 求是正也.

 

편지에서 학자들에게 경전과 사서를 겸하여 보게 한다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이 사이에 찾아오는 학자들도 적으니, 또한 이 말에 의거해서 그들을 응대하겠습니다. 다만 궤뚫고 재빨리 이해하는 자질이 부족해서 단지 경전 하나 혹은 󰡔논어󰡕․󰡔맹자󰡕를 보고 나면 남은 힘이라곤 없습니다. 당신이 초록한 일신에 절실한 내용들은 인편을 통해 몇 문단 보내주신다면 아주 좋겠습니다. 그러나 역시 대부분 경서 가운데 나아가 유의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사서(史書)는 들쭉날쭉하면서 열기가 있는데[鬧熱], 경서(經書)는 차고 담박하기만 하니[冷淡], 후학들의 마음가짐과 의지가 확고하지 못해 사서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 드뭅니다. 이것은 또 마땅히 예방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示喩令學者兼看經史, 甚善甚善. 此間來學者少, 亦欲放此接之. 但少通敏之姿, 只看得一經或論孟, 已無餘力矣. 所抄切己處, 便中得數段見寄幸甚. 然恐亦當令多就經中留意爲佳. 蓋史書鬧熱, 經書冷淡, 後生心志未定, 少有不偏向外去者, 此亦當(3-1460)預防也. 如何

 

계통(季通)의 여행 계획은 오래도록 실행되지 못하고 있고, 최근 다시 형님의 상을 당했다고 하니, 빨리 함께 무원(婺源)을 지난 다음에 절() 땅으로 들어가야 겠습니다. 확지(擴之)는 이미 떠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곳에 도착한 지 오래일 것입니다. 어지로운 읍에 도착해서, 여행을 앞두고 이 글을 쓰느라 문자로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자약(子約) 형에게는 따로 장을 하지 못합니다만 제 생각은 이 글과 다르지 않습니다. ()을 거두어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 온 집안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걱정은 그 녀석이 게을러 갑자기 고치기가 힘들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바라건대 통렬하게 채찍질해주시면 정말이지 좋겠습니다. 나머지는 우리의 도를 위해 자중하시라는 것입니다.

季通行計久未能辦, 近復有同母兄之喪, 旦夕或同過婺源, 然後入浙. 擴之已去, 今想到彼久矣. 到邑中擾擾, 臨行作此, 書不盡懷. 子約兄不及別狀, 意蓋不殊此. 塾蒙收敎, 擧家知感. 恐其懶惰未能頓革, 更望痛加鞭策, 千萬幸甚. 餘惟爲道自重.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3(병신, 1176, 47) 4월 중순 경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시 주자는 삼구에서 여조겸을 만나고 412일 다시 무원에 들러 조상들의 묘에 성묘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지난번 멀리 방문했을 때 다행히 몇 일 동안 만날 수 있어서, 깨우치고 논하면서, 계발시키고 경책한 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헤어지고서 홀연히 5,6일이 지났습니다. 비록 도중에 있지만 우러르는 마음은 잊지 못하겠습니다. 며칠 전엔 서늘하더니 점점 더워집니다. 건강은 좋으십니까! 저는 12일에 일찍 무원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인사(人事)가 여러 가지 복잡해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1,2일이 지나고서야 두루 산간의 묘소들을 돌아보고 돌아왔는데 오래도록 머무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도중에 채계통과 함께 강론했는데, 이로 인하여 제가 예전에는 함양(涵養) 공부가 드물었으면서 강설(講說)은 대부분 억지로 찾아가며 반드시 집어넣으려 했고[彊探必取], 유행을 따라 말단을 좇은[尋流逐末] 폐단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종류별로 미루어 구해보면 많은 병폐가 한 둘이 아니지만 그 근원은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황홀하니 자신을 잃어버린 채로[恍然自失] 갑자기 나아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이것을 보존하면서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장래에 기대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여러사람들이 말하는 돈오(頓悟)의 기미는 아닙니다. 과거에 들었던 여러 가지 가르침들 가운데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은 오늘날 자세히 생각해보니 입술이 합치듯 의심이 없습니다. 지난날의 병통은 모두 기질이 조급하고 망령되이 치우쳐 함양(涵養)을 통해 극복하고 다스리지 못하고서 자기 뜻대로 앞으로 나아가려는[任意直前] 폐단이었을 뿐입니다. 오늘 이후로 고친 후에 다른 날 서로 만나게 되면 노형께서 진퇴 여부를 징험하셔서 경계하고 채찍질 해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昨承遠訪, 幸數日款, 誨論開警良多. 別忽五六日, 雖在道途, 不忘向仰. 乍晴漸熱, 伏惟尊候萬福. 熹十二日早達婺源, 乍到, 一番人事冗變, 所不能免. 更一兩日, 遍走山間墳墓歸, 亦不能久留也.

道間與季通講論, 因悟向來涵養功夫全少, 而講說又多彊探必取尋流逐末之弊, 推類以求, 衆病非一, 而其源皆在此. 恍然自失, 似有頓進之功. 若保此不懈, 庶有望於將來. 然非如近日諸賢所謂頓悟之機也. 向來所聞誨諭諸說之未契者, 今曰細思, 脗合無疑. 大抵前日之病皆是氣質躁妄之偏不曾涵養克治, 任意直前之弊耳. 自今改之, 異時相見, 幸老兄驗其進否而警策之也.

 

󰡔근사록(近思錄)󰡕을 여행 도중에 읽었는데, 아직도 탈자나 오류가 많습니다. 이미 개정해서 숙도(叔度)가 있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횡거(橫渠)의 여러 가지 말은 빨리 보충해서 정하라고 일러주시고, 즉시 간행한다면 좋겠습니다. 이 수정본을 이미 보내버려서 친구들이 빌려달라고 하는데도 빌려줄 것이 없습니다. 다만 날마다 간행본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부디 빨리 신경을 써 주시면 매우 좋겠습니다. 󰡔정의(精義)󰡕에 보충할 만한 곳들은 또 보충해서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보충한 단락의 글자를 쓰고, ()에서 몇 째 단 아래에 넣었다[入某段下]라고 표기하면 되겠습니다). 󰡔정의󰡕는 혹여 경망(景望: 鄭伯熊)에게 맡겨서 간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 편지 속에서 이미 말해 두었습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조공(趙公)이 재상으로 있던 시절에 오랑캐 사신이 대궐에 이른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생각건대 이미 알아 보셨을 것입니다. 이 인편을 돌려보내면서 비판을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날 석문(石門)의 묘를 지나가면서 참배했는데, 사람의 마음을 구슬프게 만들었습니다. 인편에 장을 올리느라 대충 썼습니다. 도는 깊고 심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도를 위해 자중하시기를 기원합니다.

近思錄道中讀之, 尙多脫悞, 已改正送叔度處. 橫渠諸說告早補定, 卽刊爲佳. 此本旣往, 無以應朋友之求假, 但日望印本之出耳. 千萬早留意, 幸甚. 精義可補處, 亦望補足見寄. 只寫所補段字, 注云: ‘入某段下. ’精義或以屬景望刊行, 如何? 熹書中已言之矣. 昨所問趙公時曾有虜使到闕事, 想已得之. 此人回, 幸批示. 前日過拜石門墓下, 甚使人悽愴也. 因便拜狀, 草草. 正遠, 惟爲道自重爲禱.

여백공에게 답함 答呂伯恭

 

 

해제이 글은 순희 3(병신, 1176, 47) 9월에 여조겸에게 보낸 편지이다.

 

 

86일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진정으로 깊이 타이르고 경계해 주셨습니다. 편지가 오고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가을의 서리도 차가워져습니다. 당신은 또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령들이 덕업을 보우하실 터이니 지내시는데 다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달에 소무(昭武)에 가서 단명전학사[端明]인 황장(黃丈: 黃中)을 뵙고 열흘여 만에 돌아왔습니다. 다행이 그럭저럭 날을 보내느라 (특별히) 말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황장은 단정하고 도타우신데다 노년에도 쇠락하지 않으셨으며, 의론은 궤이하다거나 급격하지도 않았으며, 뜻과 생각은 간절해서 제 자신으로서는 미치기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뵈었더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으로 하여금 심복하게 하고, 더욱 스스로 일개 천장부임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奉八月六日手敎, 開警良深. 信來踰月, 秋霖爲冷, 不審尊候復何如? 伏惟德業有相, 起處多福. 熹前月至昭武, 見端明黃丈, 旬日而歸. 幸粗遣日, 無足言者. 黃丈端莊渾厚, 老而不衰, 議論不爲詭激, 而指意懇切, 亦自難及. 見之使人不覺心服, 益自愧其淺之爲丈夫也.

 

보내주신 편지에서 벼슬을 받거나 사양하는 일을 설명하신 것은 매우 자세하였습니다. 한결같이 충성과 의리의 마음에서 나왔으니 세속의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는 사사로운 마음으로는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더니 사람의 마음과 기운을 평온하게 만들었습니다. 너무 늦게 가르침을 받게 되어 한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중간에 또 망령된 뜻을 이렇게 내어 놓았고, 사면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명을 받게 되었으니, 일에 임하고 보니 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마침내 다시 장을 올려 간절하게 사면하면서 아주 완곡하게 설명했습니다. 지난 번에 편지로 한장에게 감사드리면서 이런 뜻을 언급했고 아울러 묘당에 간청해달라고 했으니 이미 다 말했을 것입니다. 보내신 편지에서 마땅히 넓혀서는 안 된다[不當廣]’고 하신 것도 모두 이미 진달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저의 광망함을 알고 있으니, 반드시 서로 생각해 줄 것입니다. 만에 하나 그렇게 안 된다면 희()로서도 오늘날 숨어있을 수 만은 없어서 몽매함을 무릎쓰고 한 번 나가는 것도 애석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처신이 보내신 편지에서 말한 것과 같을 수 없게 되어, 도리어 파문만 일으켜 제 몸에나 세상에나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일 뿐입니다. 예전에 백숭(伯崇)의 편지를 받았는데 주자정(周子正: 周必中)에게서 들은 말을 해주었는데, 나가거나 멈추거나 또 아마도 따로 제어되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조정의) 여러분들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월말에 다시 장을 이미 보내버렸고, 한달여 사이에 반드시 결론이 있을 것이니 또한 공손히 명을 기다릴 뿐 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伏承誨諭辭受之說甚詳, 蓋一出於忠誠義理之心, 非世俗欣厭利害之私所能及. 三復玩味, 使人心平氣和, 恨其聞之晩也. 然中間亦嘗妄意出此, 及被不許之命, 則臨事又覺有忸怩處, 遂復以狀懇辭, 而甚婉其說. 但昨以書謝韓丈及此幷懇廟堂, 則已頗盡其詞. 蓋來敎所謂不當廣者, 悉已陳之矣. 諸公悉其狂妄, 必相垂念. 萬一不然, 則熹亦不爲有隱於今日, 冒昧一行, 蓋非所惜. 但恐所處亦不能如來敎之所謂者, 則反有所激, 以爲身世之害, 未可知耳. 昨日得伯崇書, 道其所聞於周子正者, 則行止又似別有所制, 非復諸公所能斟酌矣. 然月末再狀已行, 度旬月間必有決語, 亦恭以俟命而已, 復何說哉?

 

유학과 불교의 변정은 진실로 가르쳐주신 대로입니다. 정말로 극론해서 명백하게 구별해야 할 곳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다면 이것은 곧 몰래 북돋아 도우려는 뜻이니 사람들의 의심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아지 못하는 자들은 마침내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니 작은 병폐가 아닙니다. 간절히 바라건데 오늘 이후로는 이런 점에 유의하십시오. 어찌 물러나면서 도를 떠맡은 책임을 남에게 의탁하고서 그들의 쇠퇴함을 다행이라하며 은미한 부분을 지키는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儒釋之辨, 誠如所喩. 蓋正所當極論明辨處, 若小有依違, 便是陰有黨助之意, 使人不能不致疑. 而不知者遂以迷於向背, 非小病也. 自今切望留意於此, 豈可退託以廢任道之實, 幸其衰熄而忽防微之戒哉

 

󰡔근사록󰡕의 몇 단락은 이미 보충해서 각 편의 말미에 넣었습니다. 지금 보내 드립니다. 온당치 않은 곳이 있거든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6권을 옮기는 것은 괜찮겠습니까? 또한 빨리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상례(喪禮)에 관한 두 조목도 가르침을 받으면 매우 좋겠습니다. 혹 다시 살펴야 할 곳이 잇으면 인편을 통해 비답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연히 인편이 있어 밤에 이 글을 써서 맡기느라 하고싶은 말은 하지 못합니다. 臨風惘惘. 자약(子約) 형에게는 따로 장을 보내지 못합니다. 요즘에는 어떤 책을 읽는지 얼마나 나아갔는지 말한 만한 것이 있으면 들려 주십시오.

近思數段, 已補入逐篇之末, 今以上呈. 恐有未安, 却望見敎. 所欲移入第六卷者, 可否? 亦望早垂喩也. 喪禮兩條承疏示, 幸甚. 或更有所考按, 因便更望批報也. 偶有便人, 夜作此附之, 未及究所欲言, 臨風惘惘. 子約兄未及別狀, 近謂何書? 所進何如? 有可見語者, 願聞之.

 

숙도(叔度)가 근사록을 판각하고 싶다고 했는데, 어제 여소(汝昭: 祝懷)의 편지가 와서 復中輟이라고 한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이 빨리 가야하기 때문에 편지를 쓰지는 못합니다. 이 일은 번거롭더라도 의론하고 정정해야만 손해가 없이 유익할 것입니다. 뵙지 못하는 사이라도 우리의 도를 위해 자중하기를 기원합니다.

叔度向欲刻近思板, 昨汝昭書來, 云復中輟, 何也? 此人行速, 亦未及作書. 此事試煩商訂, 恐亦有益而無損也. 未承敎中, 正惟以道自重爲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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