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권
편지(왕․장․여․류와의 문답)書 汪張呂劉問答
장경부에게 보냄(與張敬夫)(4월 1일)
【해제】 이 글은 건도 6년(庚寅, 1170년, 41세)에 장식에게 보낸 11번째 편지이다. 춘추의 역법에 관해 논하고 있다.
춘추의 역법을 서경으로 고증해보면, 대체로 서경은 달을 쓰면서도 모두 사시(四時)를 드러내지 않았으니, 고대의 역사에서 사건을 기록하는 사례가 이러했던 것 같습니다. 공자는 춘추를 지은 뒤에 천시(天時)를 왕의 정월(正月)에 더하여 위로 천시(天時)를 받들고, 아래로 임금의 역법을 바르게 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또 정월 달에 춘(春)을 덧붙였으니 하나라의 역법을 행하는 뜻이 또한 그 가운데 있습니다. 이천선생과 유질부의 뜻도 이와 같은 듯합니다. 그러나 춘추라는 책명의 두 글자는 노나라 역사의 옛 이름이니, 또 통하지 않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회숙(晦叔)과 함께 이를 바로잡아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與張敬夫(四月一日)
春秋正朔事 比以書考之 凡書月皆不著時 疑古史記事例只如此 至孔子作春秋 然後以天時加王月以明上奉天時 下正王朔之義 而加春於建子之月 則行夏時之意 亦在其中 觀伊川先生劉質夫之意似是如此 但春秋兩字 乃魯史之舊名 又似有所未通 幸更與晦叔訂之 以見敎也
장경부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건도 6년(경인, 1170년, 41세)에 장식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장남헌의 엄주(嚴州)의 정사(政事)를 논하면서 “이는 우리 도의 행복이니, 어찌 단지 한 군(郡)의 행복일 뿐이겠습니까. 상주(上奏)하여 정전(丁錢)을 그치게 한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장식을 위해 지은 신도비(神道碑)에서 말하기를, “새로 엄주지사가 되어 임지에 도착하여 백성들의 고충을 묻고, 먼저 정염견전(丁鹽絹錢)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하여 주청(奏請)하였고 절반으로 면제받았다”고 하였다. 또 속자치통감에 따르면, 건도 5년(1169년) 12월 “장식이 새로 엄주를 제수받음에 들어가서 만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장식은 5년(1169년) 말이나 6년(1170년) 초에 이미 임지에 도착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건도 6년 여름 6월에 부름을 받고 이부(吏部) 원외랑(員外郞)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당연히 건도 6년(1170년) 봄과 여름 사이일 것이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정사를 간결하게 처리하고 한가한 날에는 강습하는 즐거움이 있어 영재들은 마음으로 감화(感化)하고 많은 선비들이 따른다 하니, 이것은 우리 도(유학)의 행복이지 어찌 한 군(郡)만의 행복이겠습니까? 정전(丁錢)을 파할 것을 상주한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애초에 결국 면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겨우 한 해를 면제받는 것은 비록 도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특별히 장기적인 도움은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세금[庸]을 부과하는 것은 근고(近古)의 법입니다. 대개 임금의 땅[王土]에서 나는 곡식을 먹고, 임금의 백성이 되어 또한 해가 다 가도록 편안히 앉아 한 푼도 바치지 않는 이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거두어들임이 너무 지나쳐 바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 다시 상주하고자 하신다면 백정(白丁)과 하호(下戶)들로 하여금 매 해 한 사람에 100-200전을 납부하게 하고, 4 등급 이상은 매 등급마다 차례로 100-200전씩을 더하여 1등급에 이르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대략 지금의 세금 양과 같을 것이고, 또한 백성을 괴롭히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는 대농은 경비가 지나치게 들지 않을 것이고, 아래로는 빈민을 위하여 장기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조정에서는 오늘날의 역량으로도 쉽게 따라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의 뜻은 어떠합니까? 절강 지방의 여러 군 가운데 정구세(丁口稅)를 온전히 납부하지 않는 자가 있는 듯한데, 거두는데 기술이 없으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세금이 고르지 않으면 모두가 편안하지 않으니 조정에서는 마땅히 이 들어온 세금의 총수량을 통해 깊이 생각하여 손실을 줄여 세금을 공평하게 하면, 이것이 최선입니다.
존형께서 전에 올리신 상소에는 세금을 불균등하게 매긴 전례를 원용할 수 없다는 말이 있으니 저의 마음 역시 편안하지 않습니다. 세금을 거두는 신하는 실로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다스리는 자는 도를 밝히고 의리를 바르게 하여 위로는 근본을 바르게 하고, 모든 벼슬아치는 아래에서 우러러 따르고 호응하면, 이러한 사람들의 자질이 모두 다르다고 하더라도 또한 쓸 수 없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로 하여금 비용을 절약하여 백성을 넉넉하게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뜻을 알게 하여 삼가 그 직책을 지키게 하면, 자연히 백성을 병들게 하는 데에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정책을) 의논하는 자들은 그 근본을 바르게 하지 않고 오직 말단만을 다스리면서, 세금을 거두는 자의 단점을 배척하고 스스로는 좋은 책략도 없이 눈앞의 급한 일만을 구제하려 합니다. 이 때문에 힘쓰는 것은 많은데 드러나는 공은 적어서, 마침내 국사(國事)에 보탬도 되지 못하고 쓸데없이 어지럽게만 합니다.
백공이 점차 오래된 의심을 풀어간다니 친구로서 다행입니다. 다만 그가 도학에 노력하여 세월이 가면 오래된 병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여기에 이종간(李伯間, 이름은 宗思)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예전에 불교를 배운 적이 있는데, 스스로 터득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수년 동안 논변하여도 조금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근래에 내방하여 다시 이전에 하던 말을 하기에, 제가 그에게 “천명을 성이라 하는데 그대는 이 구절을 공(空)하여 하나의 법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모든 이치가 다 갖추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공하다면 불가가 이기는 것이고, 과연 실(實)하다면 유학이 옳은 것이니, 이것은 또한 두 말 할 필요 없이 결정되는 것입니다”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실(實)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전의 견해에 연연하여 전에 말한 공(空)으로 강학하여 그것을 실증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또 그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실리(實理)인데 공이라고 여겼으니 전날의 견해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진실로 실리를 궁구하고자 하면서 또한 어찌 전날의 이미 잘못된 공견(空見)을 가지고 이러한 말을 하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드디어 구습(舊習)을 깨끗이 버리고 여기(유학)에 종사합니다. 이 사람의 기질이 매우 훌륭하여 안으로는 수양과 경계를 행하고 관직을 지키는 것도 구차하지 않으니, 그가 잘못을 뉘우칠 수 있다면 우리 유학이 특별히 힘입을 바가 있을 것입니다. 이에 앞서 복주(福州)의 한 친구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바로 이 일을 논했는데 편지를 마치자마자 백문(伯間)이 왔습니다. 하루 이틀도 안되어 그 말이 과연 증험되었으니 또한 이상하게 여길 만 하여 이제 말씀드립니다. 두 사람은 백공이 모두 아는데, 심경(深卿)이라는 자는 예전에 백공을 따라 유학(遊學)하여 그 가학(家學)을 지키는 것이 매우 굳건하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온전히 유학에 힘쓰지는 않는다고 들었으니, 아마 갑자기 뽑아 없애버리기가 어려운 듯 합니다.
答張敬夫
竊承政成事簡 暇日復有講習之樂 英材心化 多士風靡 此爲吾道之幸 豈特一郡之福哉! 奏罷丁錢 此擧甚美 初謂遂獲蠲除 不知僅免一歲 雖亦不爲無補 特非久遠利耳 然熹竊謂有身則有庸 此近古之法 蓋食王土 爲王民 亦無終歲安坐 不輸一錢之理 但不當取之太過 使至於不能供耳 今欲再奏 不若請令白丁下戶每歲人納一二百錢 四等而上 每等遞增一二百 使至于極等 則略如今日之數 似亦不爲厲民 而上可以不失大農經費之入 下可以爲貧民久遠之利 於朝廷今日事力亦易聽從而可以必濟 不審尊意以爲如何 似聞浙中諸郡有全不輸算賦者 有取之無藝 至于不可堪者 凡此不均 皆爲未便 朝廷自合因此總會所入之大數 斟酌裁損而均平之 乃爲盡善
至如尊兄前奏有不容援例之語 亦非愚心之所安也 聚歛之臣 誠可憎疾 爲國家者明道正義以端本於上 而百官有司景從響附於下 則此輩之材 寸長尺短亦無所不可用 但使之知吾節用裕民之意而謹其職守 則自不至於病民矣 今議者不正其本而唯末之齊 斥彼之短而自無長策以濟目前之急 此所以用力多而見功寡 卒無補於國事而虛爲此紛紛也
伯恭漸釋舊疑 朋友之幸 但得渠於此有用力處 則歲月之間 舊病不患不除矣 此有李伯間者 名宗思 舊嘗學佛 自以爲有所見 論辨累年 不肯少屈 近嘗來訪 復理前語 熹因問之 天命之謂性 公以此句爲空無一法耶 爲萬理畢具耶 若空則浮屠勝 果實則儒者是 此亦不待兩言而決矣 渠雖以爲實 而猶戀著前見 則請因前所謂空者而講學以實之 熹又告之曰 此實理也 而以爲空 則前日之見悞矣 今欲眞窮實理 亦何藉於前日已悞之空見而爲此二三耶 渠遂脫然肯捐舊習而從事於此 此人氣質甚美 內行修飭 守官亦不苟 得其回頭 吾道殊有賴也 前此答福州一朋友書正論此事 書才畢而伯間至 不一二日 其言果驗 亦可怪也 今以上呈 二人伯恭皆識之 深卿者舊從伯恭遊 聞其家學守之甚固 但聞全不肯向此學用功 正恐難猝拔也
장경부에게 답하는 편지
【해제】 이 글은 건도 6년(경인, 1170년, 41세)에 장식에게 보낸 열세 번째 편지이다.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품을 논하면서 사용한 ‘쇄락’이라는 말, 통서의 발문과 태극해 그리고 소씨의 기록과 이정집의 서문과 목록 등에 관해 논하고 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황공의 쇄락(灑落)이라는 말을 일깨워 주었는데, 오래 전에 이 선생이 이를 칭송하면서 쉽게 이러한 경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 그 말을 지언(知言)이라고 여기면 말이 진실로 너무 무겁지만 고친 말은 또 너무 가벼운 듯 합니다. 다만 ‘식자(識者)들이 또한 여기에서 취할 것이 있으므로 자세히 열거한다’고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른바 쇄락이라는 말은 단지 행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맑고 밝으며 고원(高遠)한 뜻을 형용하는 말이니 만약 한 올의 사사로운 욕심이라도 있다면 어찌 이러한 기상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렇게 본다면 도가 있는 사람은 가슴의 안과 밖이 저절로 드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그 말의 귀착점을 논해 보면 말로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어서 어떠한지가 저절로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증점(曾點)이 공자의 물음에 타던 비파를 내려놓고 대답한 경지와 같으니 어찌 또한 일찍이 어느 곳에 낙착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통서의 발문은 매우 정밀하지만 내 생각엔 너무 분수에 넘치는 듯하니 다시 추스르고 물러나 질박하고 간략한 곳으로 나아감이 좋을 듯합니다. 태극해는 뒤에 고친 곳이 많지 않아 별지로 부쳐 드리니 마땅치 않은 곳이 있으면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무극과 이기, 오행을 섞어서 말할 수가 없다고 하여 ‘무극지진(無極之眞)’을 윗 구절에 붙여 속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의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무극지진은 스스로 하나의 사물이 되어 이기․오행과 서로 합치될 수가 없고, 또 이기와 오행이 응결하여 만물을 화생하는 것도 또 태극과 관련이 없게 됩니다. 어찌 심하게 리(理)를 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무극지진(無極之眞)’을 윗 구절에 붙이는 것은 자연히 문리(文理)에도 맞지 않으니 자세하게 음미해 보시면 마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갖추고 있다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일사일물(一事一物)이 각각 스스로 이 리를 구족하고 있으니 이 ‘일(一)’자를 드러내야 모자람이나 남음이 없다는 것을 바야흐로 알 수 있으니 또한 무방할 듯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택지(擇之) 또한 이 글의 초안을 보내와서 대강 한번 훑어보았는데 제 생각과 같습니다. 후에 다시 자세하게 점검하지 않아서 그 병통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 병통이 (저와) 똑같아서 그 병통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백공이 저를 어리석게 여기지 않으시고 하문하니, 감히 제 생각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옳지 않은 것이 있을 것이니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전에 함부로 말하여 오히려 붕우들을 잘못되게 한 것이 많다 점을 깨달았는데 매우 두렵습니다. 이 강론으로부터 자세하게 하여 한 글자도 쉽게 지나치지 않아서 지당한 데로 귀착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별지에서 논한 소(邵)씨의 기록은 이제 단지 외서에만 넣고 행장(行狀)에 넣지 않았습니다. 소인은 같이 일할 수 없다고 의심하시는 것은 참으로 그러합니다만, 요임금이 사흉(四兇)을 베지 않고, 이윤(伊尹)이 걸(桀)에게 다섯 번 나아가고, 공자가 계손(季孫)씨에게 간 것은 오직 성인만이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니, 명도는 혹 거기에 가까운 듯합니다. 정사를 하는데 있어서 상하가 서로 지지하였고, 신법(新法)을 논하는데 형공(荊公)이 노하지 않았으며, 같은 반열에 있는 다른 뜻을 가진 사람들 또한 그 어짐을 칭송한 것을 보면, 이러한 일은 보통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이른바 원풍(元豊) 대신들이 만나서 함께 일 했다는 것은 대개 실제로 가(可)함을 보고 말한 것이지 잘못 전해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량이 이에 미치지 않는데 그것을 배우려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정집(二程集)의 서문과 목록 중의 말을 고친 것은 매우 타당합니다. 그러나 본래의 말은 제가 전번에 이른바 “선생의 학문의 큰 요체는 알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춘추의 서문에서 이른바 “대의가 수십 가지라 하더라도 해와 별과 같이 빛나니 쉽게 드러난다”고 한 것에 비유되는 것이니 춘추의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면 고치지 않아도 해가 없을 듯 합니다. 만약 반드시 고치고자 한다면 고친 새로운 말 또한 아주 명쾌하고 포괄적이지 않으면 대개 찢어지고 기운 것 같이 결국 완전하게 되지 못할 것이니 좋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答張敬夫
示喩黃公灑落之語 舊見李先生稱之 以爲不易窺測到此 今以爲知言 語誠太重 但所改語又似太輕 只云識者亦有取焉 故備列之 如何 所謂灑落 只是形容一箇不疑所行 淸明高遠之意 若有一豪私吝心 則何處更有此等氣象邪 只如此看 有道者胸懷表裏亦自可見 若更討落著 則非言語所及 在人自見得如何 如曾點舍瑟之對 亦何嘗說破落著在甚處邪
通書跋語甚精 然愚意猶恐其太侈 更能歛退以就質約爲佳 太極解後來所改不多 別紙上呈 未當處更乞指敎 但所喩無極二五不可混說 而無極之眞 合屬上句 此則未能無疑 蓋若如此 則無極之眞自爲一物 不與二五相合 而二五之凝 化生萬物 又無與乎太極也 如此豈不害理之甚 兼無極之眞 屬之上句 自不成文理 請熟味之 當見得也 各具一太極 來喩固善 然一事一物上各自具足此理 著箇一字 方見得無欠剩處 似亦不妨 不審尊意以爲如何 擇之亦寄得此書草來 大槪領略一過 與鄙意同 後不曾子細點檢 不知其病如何 或是病痛一般 不自覺其病耳
伯恭不鄙下問 不敢不盡愚 但恐未是 更賴指摘 近日覺得向來胡說多悞却朋友 大以爲懼 自此講論 大須子細 一字不可容易放過 庶得至當之歸也
別紙所諭邵氏所記 今只入外書 不入行狀 所疑小人不可共事固然 然堯不誅四兇 伊尹五就桀 孔子行乎季孫 惟聖人有此作用 而明道或庶幾焉 觀其所在爲政而上下響應 論新法而荊公不怒 同列異意者亦稱其賢 此等事類非常人所及 所謂元豐大臣當與共事 蓋實見其可而有是言 非傳聞之誤也 然力量未至此而欲學之 則誤矣 序目中語所更定者甚穩 然本語熹向所謂先生之學大要則可知已者 正如春秋序所謂‘大義數十 炳如日星 乃易見也之比 非薄春秋之詞也 不改似亦無害 若必欲改 則新語亦未甚活落 大抵割裂補綴 終非完物 自是不能佳耳
장경부에게 보냄
【해제】 이 글은 건도 6년(경인, 1170년, 41세)에 장식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서, “백공이 소씨 부자에게 출입한다”, “지난번에 편지를 써서 그 점을 모두 논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주자가 여백공게 답한 다섯 번째 편지에서 소씨를 논하고 있는데, 그 편지는 경인년(1170)에 쓴 것이다. 또 이 편지에서 “여백공과는 때때로 만나며 지내겠지요.”라고 말하고 있고, 여동래연보에, “건도 6년(1170년) 5월 7일에 태학박사를 제수받았고, 윤5월에 임안(臨安)으로 갔다. …… 공(公)이 부름을 받았을 때, 장남헌도 엄릉에서 부름을 받고 돌아와 랑겸강관(郞兼講官)이 되었고, 공(公)과 함께 같은 마을에 거처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장식은 신묘년(1171년)에 도읍을 떠났으니, 이 편지는 경인년과 신묘년 사이에 썼을 것이지만 경인년(1170년)에 더 가까울 것 같다.
백공과는 항상 서로 만나리라고 생각합니다. 편지를 쓰고자 하여도 틈이 없으니 청컨대 저의 생각을 전해 주십시오. 저번에 그에게서 편지 두통을 받았는데, 일전에는 다만 넓고 잡박한 것에 공을 들이고, 오히려 요긴한 곳에는 일찍이 자세히 연구하지 않아 병통이 매우 많은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또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대개 넓고 잡박한 것은 일을 심하게 해치는데, 곤범(閫範)을 지은 것과 같은 것은 뜻이 매우 좋습니다만 그러나 독서가 단지 이와 같다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뛰어난 선배들이 외물에 정신이 팔려 본심을 잃어버리는[玩物喪志] 폐해를 심하게 경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뿐입니다. 범순부(范醇夫)는 일생 이러한 공부를 하였으니 생각하건대 성현의 말씀을 보는 것이 모두 다만 바쁜 가운데 급하게 간과하고 한번 구절을 베끼고 곧 일을 끝내고 원래 자세하게 탐색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정 선생을 따라 오래도록 배웠음에도 그 소견이 전혀 자세하고 분명하지 않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또 오랫동안 과거시험을 위한 문자공부를 하였고, 소씨 부자의 문장 짓는 방법[波瀾]에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교 외에 또 새로운 기교를 추구하여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하여 끝내는 한결같이 소씨의 학문을 잘못이라고 하지 않고, 온갖 힘을 다하여 옹호하며, 겉으로는 배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도우니,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불만스럽게 합니다. 저번에 비록 편지로 그것을 극론하였지만 또한 과연 그렇게 여기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근래에 맹자를 읽었는데, 맹자가 논변하기를 좋아한다는 공도자의 물음에 대해 답하는 부분에 이르러 세 번을 반복하고서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다만 천리가 매우 분명함을 알 수 있으면 곧 자연히 이렇게 되어 그만둘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견해가 여기에 미치지 않으면 또 어떻게 억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현이 천토(天討)를 받들어 행하는 데에는 바꿀 수 없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주와 묵적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가 성인의 무리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춘추가 난신적자를 치는 뜻과 한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읽고도 또한 깨닫지 못했는데 근래에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與張敬夫
伯恭想時時相見 欲作書不暇 告爲致意 向得渠兩書 似日前只向博雜處用功 却於要約處不曾子細硏究 病痛頗多 不知近日復如何 大抵博雜極害事 如閫範之作 指意極佳 然讀書只如此 亦有何意味耶 先達所以深懲玩物喪志之弊者 正爲是耳 范醇夫一生作此等功夫 想見將聖賢之言都只忙中草草看過 抄節一番 便是事了 元不曾子細玩味 所以從二先生許久 見處全不精明 是豈不可戒也耶
渠又爲留意科擧文字之久 出入蘇氏父子波瀾 新巧之外更求新巧 壞了心路 遂一向不以蘇學爲非 左遮右攔 陽擠陰助 此尤使人不滿意 向雖以書極論之 亦未知果以爲然否
近讀孟子 至答公都子好辨一章 三復之餘 廢書太息 只爲見得天理忒㬠分明 便自然如此住不得 若見不到此 又如何强得也 然聖賢奉行天討 却自有箇不易之理 故曰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 此便與春秋討亂臣賊子之意一般. 舊來讀過亦不覺 近乃識之耳 不審老兄以爲如何
장경부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건도 7년(신묘, 1171년, 42세)에 장식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첫머리에서 말하기를, “공자와 맹자가 仁을 말한 곳을 부류에 따라 모아서 무릇 인의 이론을 탐구해보니, 程子가 사람을 위하는 뜻이 매우 절실하다 할만합니다.” 이는 장남헌이 洙泗言仁錄을 편찬한 일을 가리킨 것이니, 편지 끝부분에서 “今此錄” 운운한 것도 그 증거이다. 수사언인록은 그가 신묘년 여름 서울을 떠나 長沙로 돌아와 편찬한 것이니, 이 편지는 신묘년(1171)에 쓴 것이다.
건양 지방의 선비 한 두 사람이 임안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당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또 함께 나눈 문답 수십 단락을 기록하여 왔다”고 하는데, 그 기록에 매우 의심스러운 곳이 있습니다. 비록 그 기록이 혹 본래의 뜻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반드시 그럴만한 내력이 있을 것입니다. 또 평범한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지도 않고 대답하고, 그 대답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른 엉뚱한 질문을 하여도 모두 하나 하나 응답을 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에게도 무익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대화(담론)의 방법[語黙之節]에도 맞지 않습니다. 또 질문을 받고 급하게 대답하는 것은 마치 그 질문자와 앞을 다투고 이기기를 겨루는 것과 같으니, 그 사이에 어찌 억지로 끌어대고 엉성한 곳이 없겠습니까. 오류가 전해지면 피해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모두 옳다 하더라도 (소인의 학문처럼) 단지 입이나 귀에만 보탬이 될 뿐이니, 정자의 “사람들을 더욱 경솔하고 천박하게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를 염려한 것입니다. 위원리가 일찍이 당신의 문하에 학생이 날로 늘어나는 것을 의심하여 중도관의 직책을 맡고 있는 관리들이 마땅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저는 오히려 이를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다면, 가르치는 사람이 굽혀 나아가기를 너무 지나쳐서 그 학문의 핵심을 살피지 못해 장차 후회와 원망을 면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 폐해는 끝이 없어 한 때의 해로움으로만 끝나지도 않을 것이니, 도의 흥망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현명한 당신께서 이 점 깊이 생각하여 주십시오.
答張敬夫
建陽一二士人歸自臨安 云嘗獲奉敎 亦錄得數十段答問來 其間極有可疑處 雖所錄或失本意 亦必有些來歷也 又有泛然之問 略不曾經思索 答之未竟而遽已更端者 亦皆一一酬酢 此非惟於彼無益 而在我者亦不中語黙之節矣 又隨問遽答 若與之爭先較捷者 此其間豈無牽彊草略處 流傳謬誤 爲害不細 就令皆是 亦徒爲口耳之資 程子所謂轉使人薄者 蓋慮此耳 元履嘗疑學徒日衆 非中都官守所宜 熹却不慮此 但恐來學者皆只是如此 而爲敎者俯就太過 略不審其所自 則悔吝譏彈 將有所不免矣 況其流弊無窮 不止爲一時之害 道之興喪 實將繫焉 願明者之熟慮之也
장경부에게 답함
【해제】이 글은 건도 7년(신묘, 1171년, 42세)에 장식에게 보낸 열여섯 번째 편지이다. 편지의 첫머리에서 말하기를, “공자와 맹자가 인(仁)을 말한 곳을 종류에 따라 모아서 무릇 인의 이론을 탐구해보니, 정자(程子)가 사람을 위하는 뜻이 매우 절실하다고 할만합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장남헌이 수사언인록(洙泗言仁錄)을 편찬한 일을 가리킨 것이니, 편지 끝부분에서 “금차록(今此錄)” 운운한 것도 그 증거이다. 수사언인록은 그가 신묘년 여름 수도를 떠나 장사(長沙)로 돌아와 편찬한 것이니, 이 편지는 신묘년(1171년)에 쓴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인을 말씀하신 것을 분류하고 모아서 인을 탐구하라”는 정자의 말씀은 다른 사람을 위하신 뜻이 매우 절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이와 같이 힘을 쓴다면 빨리 하려 하고 지름길을 좋아하는 마음을 조장하고 귀로 들은 것을 입으로 말하는 폐단을 늘게 함을 면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또한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 이선생(二先生) 이전에는 학자들은 인(仁)이라는 글자가 있는 줄을 전혀 알지 못하고 무릇 성현이 인을 말한 것을 다만 애(愛) 자로 보았을 뿐입니다. 이선생 이래로 학자들은 비로소 인이라는 글자를 이해할 줄 알아서 감히 그것을 단지 애(愛) 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도 또 폐단이 생기는 것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대개 오로지 인을 말하는 데만 힘쓰고 마음을 보존하고 함영하는 공부는 소홀히 함을 면하지 못하였으므로 여유 있고 넉넉하게 음미하고 극기복례(克己復禮)하는 실질은 없으니, 단지 그 폐단은 어리석을 뿐만이 아니고, 또 한결같이 애(愛)에서 분리되어 허공에서 추측하고 찾아 이미 진실로 아는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설명이 흐리멍덩하고 괴이하여 온갖 병폐를 일으키니, 오히려 전혀 인(仁)이라는 글자가 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단지 애(愛)자로 보는 것이 더 나음만 같지 못합니다.
저는 일찍이 말하기를 “만약 진실로 인을 구하고자 한다면 힘써 행하는 것만큼 쉬운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배움으로써 그것을 밝히지 않으면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어두운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폐단은 어리석음입니다. 만약 주경(主敬)과 치지(致知)가 서로 도움이 된다면 저절로 이러한 폐단은 없어질 것입니다. 만약 또 인의 명칭과 의미를 알려고 한다면 또 애(愛)자를 미루어서 추구하는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인이 애(愛)의 소이(所以)이지만 애의 소이가 인을 다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면, 인의 명칭과 의미와 뜻이 분명하게 눈앞에 있을 것이니, 애초에 분명하지 않은 유무(有無)의 사이에서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이 비록 오늘날의 고원하고 오묘한 설에 비하여 조금 평이하지만 논어 중에서는 이미 이와 같이 절박하게 주해(註解)하여 설파하지 않았습니다. 맹자에 이르러 바야흐로 그 사이에 설파한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대부분 애로써 말하였으니(측은지심惻隱之心과 같은 종류) 근래의 학자들이 괴이하고 흐리멍덩하게 한껏 고원(高遠)함을 추구하는 말과는 매우 다릅니다.
지금 이 기록은 논어의 말을 해석한 것인데, 첫 장에서는 ‘인을 알 수 있다’고 하고, 다음 장에서는 ‘인의 뜻을 알 수 있다’고 하고, 그 다음에 또 인의 뜻을 밝힌 까닭을 말한 것이 많은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것은 성현의 말씀하신 본래의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또 첫 장에서 비록 이선생(二先生)의 말씀을 열거하였으나 그 해석은 실제로 상채의 뜻을 쓴 것인데, 바로 이천의 말 가운데 어떤 사람이 ‘효제(孝弟)로부터 인에 이를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선생이 아니라고 한 것이니 마땅히 다시 상세히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살펴보건대 유서에서 어떤 사람이 “중(中)의 도가 희노애락이 발하지 않은 중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라고 물으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희노애락이 발하지 않았다는 것은 마음 가운데 있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니, 다만 하나의 중(中) 자라도 사용하는 곳이 같지 않다”, “중(中)은 성(性)의 체단(體段)을 형용한 것이다”, “중의 뜻은 지나치고 미치지 못함으로부터 명칭을 정한 것이다.”, “치우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한다. 도는 중(中)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중으로 도를 형용한다”, “여숙(與叔)이 ‘치우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한다’고 말한 것은 매우 좋으나 말이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분명하지 않은지를 물으니 말씀하시기를 “의지할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중(中)의 도(道)와 마음 가운데에 있다는 의미와는 다르다는 말인데 어떻게 분별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성을 형용한다’고 하시고, 또 ‘도를 형용한다’고 하셨는데 무엇이 같고 다릅니까? 이른바 ‘지나치고 미치지 못함으로부터 중이라 이름했다’는 것과 ‘치우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한다’는 것과, ‘의지할 데가 없는 중’은 이른바 '중의 도’와 ‘마음 가운데 있다는 의미’와는 또 어떻게 다르고 같습니까? 모두 분명하게 의심이 없을 수 없으니 감히 그것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명도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미루어 사물에까지 미치는 것을 恕라고 한다”고 하신 것은 도에서 떨어짐이 멀지 않은 것인데, 일관(一貫)의 충서(忠恕)는 도에서 떨어짐이 멀지 않은 것과는 다릅니다. 대개 일이관지(一以貫之)는 즉 자연히 사물에 미쳐서 미루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천선생의 경해(經解)는 ‘일이관지(一以貫之)’에서 오히려 “자기를 미루는 것을 서(恕)라고 한다”고 하셨으니 명도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또 건도변화(乾道變化)․각정성명(各正性命)의 설에서도 서로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해석 중에서 또 맹자의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본성을 안다”는 한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어찌 마음을 다하는 것으로 자기를 다한다는 뜻을 해석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글의 뜻이 충분하지 못하고 또 보통 말하는 ‘마음을 다한다’는 뜻과도 저절로 맞지 않습니다. 한 판본에는 아래에 “성을 알면 천을 아니, 천을 알면 도는 하나로 꿰뚫어진다.”는 두 구절이 있는데, 만약 정말로 이 두 구절이 있다면 마음을 다하는 것으로 자기를 다하는 것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을 아는 것으로 일관(一貫)을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천을 아는 것 또한 바야흐로 일관의 이치를 진정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니, 성인의 일관의 실체와는 또 깊고 얕은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반복하여 연구해 보아도 그 말을 알 수가 없으니, 그것을 생각해 보시고 다시 가르쳐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증자께서 맹경자(孟敬子)에게 고하는 말씀은 다만 명도(明道)와 화정(和靖)이 완전하게 말했고, 문장의 뜻도 순조롭습니다만 다른 말은 모두 의심스럽습니다. 지난 번에 끌어다 합하여 억지로 하나의 설로 만든 것은 참으로 옳지 않고, 후에 또 경해의 설로 아래 구절을 가리켜 힘쓸 곳이라고 한 것도 또한 옳지 않습니다. 그대의 뜻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答張敬夫
類聚孔孟言仁處 以求夫仁之說 程子爲人之意 可謂深切 然專一如此用功 却恐不免長欲速好徑之心 滋入耳出口之弊 亦不可不察也 大抵二先生之前 學者全不知有仁字 凡聖賢說仁處 不過只作愛字看了 自二先生以來 學者始知理會仁字 不敢只作愛說 然其流復不免有弊者 蓋專務說仁 而於操存涵泳之功不免有所忽略 故無復優柔厭飫之味 克己復禮之實 不但其蔽也愚而已 而又一向離了愛字 懸空揣摸 旣無眞實見處 故其爲說恍惚驚怪 弊病百端 殆反不若全不知有仁字而只作愛字看却之爲愈也 熹竊嘗謂若實欲求仁 固莫若力行之近 但不學以明之 則有擿埴冥行之患 故其蔽愚 若主敬致知交相爲助 則自無此蔽矣 若且欲曉得仁之名義 則又不若且將愛字推求 若見得仁之所以愛而愛之所以不能盡仁 則仁之名義意思瞭然在目矣 初不必求之於恍惚有無之間也 此雖比之今日高妙之說稍爲平易 然論語中已不肯如此迫切注解說破 至孟子 方間有說破處 然亦多是以愛爲言 如惻隱之類 殊不類近世學者驚怪恍惚窮高極遠之言也
今此錄所以釋論語之言 而首章曰仁其可知 次章曰仁之義可得而求 其後又多所以明仁之義云者 愚竊恐其非聖賢發言之本意也 又如首章雖列二先生之說 而所解實用上蔡之意 正伊川說中問者所謂由孝弟可以至仁而先生非之者 恐當更詳究之也
按遺書或問中之道莫與喜怒哀樂未發謂之中同否 先生曰 喜怒哀樂之未發是言在中之義 只是一箇中字 用處不同 又曰 中所以狀性之體段 又曰 中之爲義自過不及而立名 又曰 不偏之謂中 道無不中 故以中形道 又曰 與叔謂不倚之謂中 甚善 而語由未瑩 或問何故未瑩 曰 無倚着處. 熹按 此言中之道與在中之義不同 不知如何分別 旣狀性曰狀性 又曰形道 同異如何 所謂自過不及而得名之中 所謂不偏之中 所謂無倚着處之中 與所謂中之道在中之義復何異同 皆未能曉然無疑 敢請其說
明道先生說 推己及物之謂恕 乃違道不遠之事 而一貫之忠恕自與違道不遠異 蓋一以貫之 則自然及物 無待乎推矣 伊川先生經解於一以貫之處却云 推己之謂恕 似與明道不同 而於乾道變化各正性命之說似亦相戾 不知何謂 解中又引孟子盡其心者知其性也一句 豈以盡心釋盡己之義耶 如此則文意未足 且與尋常所說盡心之意亦自不合 一本下文更有兩句云 知性則知天矣 知天則道一以貫也 若果有此兩句 則似不以盡心釋盡己 却是以知天說一貫 然知天亦方是眞知得一貫之理 與聖人一貫之實又似更有淺深也 反復推尋 未得其說 幸思之 復以見敎
曾子告孟敬子語只明道和靖說得渾全 文意亦順 其它說皆可疑 向來牽合 强爲一說 固未是 後來又以經解之說指下句爲工用處 亦未然也 不審尊意以爲如何
장경부에게 답함
【해제】이 글은 건도 7년(신묘, 1171년, 42세)에 장식에게 보낸 열일곱 번째 편지이다. 논어의 ‘사람의 과오를 보고 인한가를 알 수 있다’는 설과 주돈이 태극도설의 ‘중정인의’에 관해 논변하고 있다.
대개 사람의 과오를 보고 인한가를 알 수 있다는 설은 다만 윤씨의 설과 같이 정자(程子)의 뜻을 드러내 밝히고자 하였으니 그 의미는 매우 좋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보내주신 편지와 같은 것은 이곳에 나아가서 억지로 인체(仁體)를 엿보려고 하는 것과 같고, 또 하나의 구절을 두 개의 설로 나누었으니 매우 안정되지 않은 듯 합니다. 또 태극의 중정인의(中正仁義)의 설에서 네 가지가 모두 동정이 있다고 하면, 주자(周子)가 여기에서 열거한 네 가지 조목은 군더더기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 네 글자의 의미를 자세히 생각해 보면, 스스로 동정이 있음은 그 도리상 매우 분명합니다. 대개 이 네 글자는 곧 원(元)․형(亨)․리(利)․정(貞) 네 글자이니(仁은 元이고, 中은 亨이며, 義는 利, 正은 貞입니다.) 원․형․이․정이 한번 통하고 한번 돌아오는데, 어찌 동정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요즈음에 이 이치를 깊이 살펴보았는데 한번 말하고 침묵하는 것과 한번 기거(起居)하는 것이 태극의 오묘함이 아닌 것이 없으니, 바로 분별을 기피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이 생(生)하는 소이라는 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인의 작용은 이 아래와 같이 말해도 해로움은 없을 듯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答張敬夫
大抵觀過知仁之說 欲只如尹說 發明程子之意 意味自覺深長 如來喩者 猶是要就此處彊窺仁體 又一句岐爲二說 似未甚安帖也 又太極中正仁義之說 若謂四者皆有動靜 則周子於此更列四者之目爲剩語矣 但熟玩四字指意 自有動靜 其於道理極是分明 蓋此四字便是元亨利貞四字 仁元中亨義利正貞 元亨利貞一通一復 豈得爲無動靜乎 近日深玩此理 覺得一語嘿一起居 無非太極之妙 正不須以分別爲嫌也 仁所以生之語固未瑩 然語仁之用如此下語似亦無害 不審高明以爲如何
장경부에게 답함
【해제】이 글은 건도 7년(신묘, 1171년, 42세)에 장식에게 보낸 열여덟 번째 편지이다. 수사언인록의 서문에 언급한 인의 개념을 논하고 있다.
수사언인록(洙泗言仁錄)의 서문에서 “힘을 다하여 인을 행하고자 하여도 무엇이 선인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 몇 구절은 온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인을 행하는 것은 참으로 마땅히 선을 밝혀야 하지만, 인(仁)의 주된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공자께서 늘 인(仁)과 지(智)를 상대하여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근년에 모두들 인이라는 글자와 지(智)라는 글자를 분별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영윤자문(令尹子文)과 진문자(陳文子)의 일에도 어긋남이 있고 기상이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으니, 성인이 말씀하신 뜻과 전혀 같지 않습니다. 이 서문의 뜻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니 아마도 이러한 병통을 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答張敬夫
細看言仁序云‘雖欲竭力以爲仁 而善之不明 其弊有不可勝言者 此數句似未安 爲仁固是須當明善 然仁字主意不如此 所以孔子每以仁智對言之也 近年說得仁字與智字都無分別 故於令尹子文陳文子事說得差殊 氣象淺迫 全與聖人語意不相似 觀此序文意思首尾 恐亦未免此病 更惟思之 如何
장경부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건도 8년(임진, 1172년, 43세)에 장식에게 보낸 열아홉 번째 편지이다. 신묘년에 장경부에게 답한 16번째 편지에서 ‘빨리 하고자 하여 지름길을 좋아하는 마음만 키움을 면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18번째 편지에서 언인서(言仁書)를 논하고, 이 편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仁을 말한 곳을 분류하여 모음에 또한 병폐가 있을 듯하다는 것은 바로 오늘날의 학문하는 자들이 번거로움을 싫어하고 간략함만 좋아하며, 먼길을 피하고 지름길만 추구하며, 얻을 것만 꾀하고 빠른 것만 좋아하는 마음을 더욱 조장할까 두렵습니다.”, “다시 後序를 지어 대략 이러한 뜻을 담아 훗날의 배우는 이들을 경계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들은 곧 16․18번째 편지를 이은 것이다.
중(中)에 관한 당신의 해석은 매우 좋고, 성(性)의 형용과 도(道)의 형용이 같지 않음을 논한 부분은 더욱 정밀하여 저를 깨우쳐 준 바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정자가 ‘하나의 중(中)이라는 글자일 뿐이지만 쓰임은 다르다’고 한 이 말을 다시 깊이 음미해야 할 듯합니다. 대개 이른바 ‘단지 하나의 중자’라는 것은 중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언제나 같기 때문에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으며,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쓰임이 다르다’는 것은 이른바 ‘마음 가운데 있다는 의미[在中之義]’도 있고, ‘중의 도[中之道]’도 있다는 것입니다. ‘정(情)이 미발의 상태에 있다는 의미[在中之義]’는 희노애락이 아직 발동하지 않아 완전하게 중(中)에 있고 올곧아서 조금도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으며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것을 중(中)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性)의 본체를 형용하는 까닭입니다. 또 ‘중(中)의 원리[中之道]’가 있다고 한 것은 사물과의 관계(접촉)에서 저절로 있게 되는 흡족하고 좋은 도리이니, 치우치거나 기울지 아니함과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러 중이라 말하는 것은 도의 실질을 형용한 까닭입니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당신이 보내온 편지에서 논한 ‘성과 도의 형용이 같지 않다’고 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재중의 중과 중의 도의) 중이라는 글자는 한가지의 (같은) 도리이니, 이로써 성의 본체를 형용하면 미발(未發)의 중이 되고, 이로써 도를 형용하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재중(在中)의 중’을 오히려 ‘내면에 있는 도리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재중의 중을 미발의 중으로 해석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의견은 이와 같은데,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충서의 이론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정명도는 사람의 분수라는 측면에서 그 수준의 차이를 분별하여 말했고, 정이천은 이치라는 측면에서 상하를 꿰뚫어 말한 것입니다. 만약 사람의 분수라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충서가) ‘도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은 즉 현인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일입니다. ‘하나로써 꿰뚫는다’는 것은 성인은 이미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치라는 측면에서 (깊고 얕음을 가리지 않고) 평이하게 말하면 충은 오직 자기의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는 것이요, 서는 단지 남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것(자신을 다른 사람과 사물의 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온 능력을 다 발휘하는 까닭과 남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까닭은, 명도가 말한 것처럼, 성인과 현인이 같지 않습니다. 성인은 비록 미루어 헤아림을 기다릴 필요가 없지만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사물에 이르기 때문에, 충과 비교(상대)하여 말하자면, 이 역시 미루어 헤아리는 것입니다. 대체로 명도의 말은 발명함이 지극하여 꿰뚫어 통하였으며 자유롭고 순수하고 걸림이 없어서[灑落] 사람을 잘 계발시켜 줍니다. 이천의 말은 사물과 관계하는 곳에서 이치를 밝혀 바탕이 진실하고 정밀함이 심오하여 씹으면 씹을수록 더욱 맛이 우러납니다. 그러므로 명도의 말은 언뜻 보아도 좋고 오래 보면 더욱 좋아서, 현인이나 어리석은 이나 모두 유익함을 얻습니다. 이천의 말은 언뜻 보면 좋지 않아 보이지만 오래 보면 바야흐로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깊이 사색한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재를 길러 성취시킴과 사도(師道)를 존엄하게 함을 자임한 다른 이유입니다. (명도는 천재로 태어나 인위적이지 않았고, 이천은 공부를 통해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 하늘의 법칙을 얻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늘을 아는 것을 인용한 것은 아마 확충해 나아가는 뜻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한시대의 여러 유학자들이 글의 뜻을 해석한 것이 비록 완전히 타당하지는 않지만 합당한 부분도 많습니다. 이제 다양한 입장에서 그것을 논하면, (진․한 유학을) 평가할 때에 그 말은 얻었지만 그 뜻은 얻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공정한 듯합니다. 만약 여기에서 한결같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평가한다면 생각이 너무 편협하고 논의가 편파적으로 되어 도리어 그들의 마음을 승복시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지언(知言)을 논하면서 석씨(釋氏)가 인(仁)하고자 한다는 것을 부당하게 여긴 병통과 같습니다. 대개 의론하는데 큰 기상을 갖고자 한다면 그 가운데 스스로 정밀하여 빠져나갈 곳이 없어야 비로소 넉넉한 풍미가 있는 것입니다. 역전 서문 중에서 진․한 이래 유학자들의 폐단을 말하고 사람들에게 왕필과 호안정, 왕개보의 역과 같은 것을 보도록 한 것 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이 (논맹정의) 서문의 아래글에서 반복하여 뜻을 전하여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으니 비근한 데 안주한다는 혐의는 마땅치 않습니다. 또 ‘그 말은 비록 비근하지만 그 의미를 찾아보면 끝이 없고 뜻은 비록 심원하지만 잡아보면 요점이 있다’는 것이니, 이 말은 자못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애(愛)로 인(仁)을 논하는 것은 높은 곳을 올라갈 때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으니, 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추구할 수 있으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요즘음의 설과 같다면 도는 가까운데 먼 데서 구하는 것이니 끝내 접점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전날에 망령스런 말을 하고도 스스로 그 편벽됨을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제가 지난번 편지에서) 仁을 말한 곳을 종류별로 모으는 것에도 병폐가 있을 듯하다고 말씀드린 것은 바로 오늘날의 학문하는 자들이 번거로움을 싫어하고 간략함만 좋아하며, 먼 길을 피하고 지름길만 추구하기 때문이었고, 또 이와 같은 풍조가 이미 성행하여, 바야흐로 학자들은 나날이 위태롭고 천박함만 쫓고 있는데, 만약 또 다시 이런(수사언인록과 같은) 것을 만들어서 오늘날의 학자들을 인도한다면, 얻을 것만 꾀하고 빨리 하려는 마음만을 더욱 부채질해서, 그 마음이 더욱 촉박하고 혼란스러워져 도리어 불인(不仁)에 빠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류한 여러 학설 가운데 이미 하학상달(下學上達: 아래에서부터 배워 위에 도달함)의 방법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음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진실로 깊이 사색하고 힘써 행한다면 어찌 이런 폐단이 있겠습니까. 이제 당신의 편지를 받고서 비로소 저의 예전의 이론이 잘못됐음을 깨달았으니, (수사언인록을 읽고서 교정해 달라는) 당신의 부탁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모든 사람이 이처럼 성실하게 공부할 수 없다면, 역시 (앞에서 말씀드린) 저의 지나친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대략 이러한 뜻을 담아 다시 후서(後序)를 지어서 훗날의 배우는 이들을 경계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 오고간 논의들을 모두 모아 부록으로 싣는다면 유익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答張敬夫
中字之說甚善 而所論狀性形道之不同 尤爲精密 開發多矣 然愚意竊恐程子所云只一箇中字 但用不同 此語更可玩味 夫所謂只一箇中字者 中字之義未嘗不同 亦曰不偏不倚 無過不及而已矣 然用不同者 則有所謂在中之義者 有所謂中之道者是也 蓋所謂在中之義者 言喜怒哀樂之未發 渾然在中 亭亭當當 未有箇偏倚過不及處 其謂之中者 蓋所以狀性之體段也 有所謂中之道者 乃卽事卽物自有箇恰好底道理 不偏不倚 無過不及 其謂之中者 則所以形道之實也 只此亦便可見來敎所謂狀性形道之不同者
但又見得中字只是一般道理 以此狀性之體段 則爲未發之中 以此形道 則爲無過不及之中耳 且所謂在中之義 猶曰在裏面底道理云爾 非以在中之中字解未發之中字也 愚見如此 不審高明以爲如何
忠恕之說 竊意明道是就人分上分別淺深而言 伊川是就理上該貫上下而言 若就人分上說 則違道不遠者 賢人推之之事也 一以貫之者 聖人之不待推也 若就理上平說 則忠只是盡己 怒只是推己 但其所以盡所以推 則聖賢之分不同 如明道之說耳 聖人雖不待推 然由己及物 對忠而言 是亦推之也 大抵明道之言發明極致 通透灑落 善開發人 伊川之言卽事明理 質慤精深 尤耐咀嚼 然明道之言一見便好 久看愈好 所以賢愚皆獲其益 伊川之言乍見未好 久看方好 故非久於玩索者不能識其味 此其自任所以有成人材尊師道之不同 明道渾然天成 不犯人力 伊川功夫造極 可奪天巧 所引盡心知夫 恐是充擴得去之意 不知是否
秦漢諸儒解釋文義雖未盡當 然所得亦多 今且就分數多處論之 則以爲得其言而不得其意 與奪之際 似已平允 若更於此一向刻核過當 却恐意思迫窄而議論偏頗 反不足以服彼之心 如向來所論知言不當言釋氏欲仁之病矣 大率議論要得氣象寬宏 而其中自有精密透漏不得處 方有餘味 如易傳序中說秦漢以來儒者之弊 及令人看王弼胡安定王介甫易之類 亦可見矣 況此序下文反復致意 不一而足 不應猶有安於卑近之嫌也 又所謂言雖近而索之無窮 指雖遠而操之有要 自謂此言頗有含蓄 不審高明以爲如何
以愛論仁 猶升高自下 尙可因此附近推求 庶其得之 若如近日之說 則道近求遠 一向沒交涉矣 此區區所以妄爲前日之論 而不自知其偏也 至謂類聚言仁 亦恐有病者 正爲近日學者厭煩就簡 避迂求捷 此風已盛 方且日趨於險薄 若又更爲此以導之 恐益長其計獲欲速之心 方寸愈見促迫紛擾 而反陷於不仁耳 然却不思所類諸說 其中下學上達之方 蓋已無所不具 苟能深玩而力行之 則又安有此弊 今蒙來喩 始悟前說之非 敢不承命 然猶恐不能人人皆肯如此慤實用功 則亦未免尙有過計之憂 不知可以更作一後序 略采此意以警後之學者否 不然 或只盡載此諸往返議論以附其後 亦庶乎其有益耳 不審尊意以爲如何
張敬夫에게 답함(壬辰년 겨울)
【해제】 이 글은 건도 8년(임진, 1172년, 43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무 번째 편지이다. 지난 번 편지에 이어 중(中)에 관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으며, 아울러 성정(性情)과 주돈이의 태극도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저의 생각은 회숙(晦叔)에게 답하는 편지와 같습니다. 이미 그 설을 다시 추론하고 밝혀 회숙에게 가르침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보내준 편지에서 ‘아는 일(知底事)’이라고 한 것은 의혹이 없지 않아 그것을 같이 논하였습니다. 이제 그것을 기록하여 올리니 다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재중지의(在中之義)에 관한 이론은 보내주신 편지에서 ‘성과 도는 일찍이 서로 떨어진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 의미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대개 마음 안에 있다’고 하였는데, 글의 뜻이 간략하여 저는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다시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또 ‘이미 발한 후에 중(中)이 어찌 일찍이 (마음) 속에 있지 않은 적이 있는가?’라고 하셨는데 이는 문장의 뜻이 아닌 듯합니다.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는 중에 있다는 것은 이미 발했을 때는 밖에 있다는 것과 상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발하여 절도에 맞음은 곧 이 재중의 리가 발동하여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른바 ‘사(事)와 물(物)에 나아가면 거기에 합당한 도리가 있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라도 절도에 맞지 않으면, 설령 재중의 리가 천명의 떳떳함이라 하더라도, 이 때를 당해서는 이리 저리 흩어지고 서로 끌어들여서 그것이 있음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돌이킬 수 있으면 또한 여기에 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정자께서 ‘도로 말하면 중절하지 않은 때가 없고, 일로 말하면 때때로 중절한다’고 하신 까닭이고, 또 ‘안목이 있는 이는 이미 발동하였을 때에도 그것을 본다’고 하는 까닭입니다. 만약 이미 발한 후에도 중이 (마음) 속에만 있다고 한다면, 발하지 않은 중이 스스로 하나의 물이 되어서 이미 발한 것과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이미 발한 때에는 항상 이 물을 끼고 스스로 따른다고 전에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의미는 다시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할 곳입니다. 대개 이 마음이란 확연(廓然)하니, 애초에 어찌 안과 바깥의 한계가 있겠습니까? 단지 발하지 않은 것[未發]과 이미 발한 것[已發]으로 나누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맹자에서 ‘잡음과 놓아버림[操舍]․보존함과 잃어버림[存亡]․나가고 들어옴[出入]’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울러 그것도 상세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물에 비유하는 것(心譬之水)은 지언(知言)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정(性情)에 동정(動靜)이 있고, 선악(善惡)에 이미 순역(順逆)이 있다’는 말은 자연의 이치이지 의도적으로 안배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선하지 않음이 없다’는 이 한마디는 실로 성정의 이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정의 명의(名義)를 논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명의(名義)를 논한다면 지금 말한 것과 같은 것도 이치를 해침이 없고, 힘을 소비하는 것도 아니니, 다시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주렴계가 태극도에서 상징을 만들어 성인의 뜻을 모두 표현하고 깊이 감춰진 것을 파헤쳐 밝힌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몸소 전수해준 뜻을 살펴보면, 오직 정자(程子)만이 그것을 전수받을 수 있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자가 그것을 감춰두고 남에게 보이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인 듯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뜻에서 마음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듣자마자 함부로 말하여(근래에 이미 이러한 폐단이 많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반드시 심한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이천선생이) 장굉중에게 답한 편지를 보니, “비록 역전을 출판하지는 않았지만, (제자들에게 역의) 학문을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고, 다만 그것을 전수할만한 사람이 없음을 근심할 뿐”이라 한 것과 또 동견록에서 “장횡거의 청허일대(淸虛一大)의 이론은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내달리게 하니 단지 경(敬)을 말하는 것만 못하다”고 한 것을 보면, 그 숨은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서명에서는 사람을 미루어 하늘을 알 수 있는 것은 곧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밝힌 것이니 학자들에게 더욱 절실합니다. 이것이 하늘에 대해서는 상세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간략한 것은 아니니,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시 서와 예를 지키는 것을 항상 말씀하셨지만 역에 대해서는 드물게 언급하셨으니, 그 뜻 또한 이와 같을 뿐입니다. 한유는 “요임금과 순임금은 백성을 크게 이롭게 하셨고, 우임금은 백성을 깊이 걱정하셨다”고 하였는데, 바로 주자(周子)와 정자(程子)를 말하는 것인가 봅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은미한 뜻’이라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答張敬夫(壬辰冬)
答晦叔書鄙意正如此 已復推明其說 以求敎於晦叔矣 但於來示所謂知底事者 亦未能無疑 已幷論之 今錄以上呈 更乞垂敎
在中之義之說 來諭說得性道未嘗相離 此意極善 但所謂此時蓋在乎中者 文意簡略 熹所未曉 更乞詳諭 又謂已發之後 中何嘗不在裏面 此恐亦非文意 蓋旣言未發時在中 則是對已發時在外矣 但發而中節 卽此在中之理發形於外 如所謂卽事卽物 無不有箇恰好底道理是也 一不中節 則在中之理雖曰天命之秉彝 而當此之時 亦且漂蕩淪胥而不知其所存矣 但能反之 則又未嘗不在於此 此程子所以謂以道言之 則無時而不中 以事言之則有時而中也 所以又謂善觀者却於已發之際觀之也 若謂已發之後 中又只在裏面 則又似向來所說以未發之中自爲一物 與已發者不相涉入 而已發之際 常挾此物以自隨也 然此義又有更要子細處 夫此心廓然 初豈有中外之限 但以未發已發分之 則須如此 亦若操舍存亡出入之云耳 幷乞詳之
心譬之水 是因知言有此言而發 然性情旣有動靜 善惡旣有順逆 則此言乃自然之理 非用意差排也 人無有不善 此一言固足以具性情之理 然非所以論性情之名義也 若論名義 則如今來所說亦無害理 不費力 更惟詳之
太極圖立象盡意 剖析幽微 周子蓋不得已而作也 觀其手授之意 蓋以爲唯程子爲能受之 程子之祕而不示 疑亦未有能受之者爾 夫旣未能黙識於言意之表 則道聽塗說 其弊必有甚焉 近年已覺頗有此弊矣 觀其答張閎中書云 書雖未出 學未嘗不傳 第患無受之者 及東見錄中論橫渠淸虛一大之說 使人向別處走 不若且只道敬 則其微意亦可見矣 若西銘 則推人以知天 卽近以明遠 於學者之用爲尤切 非若此書詳於天而略於人 有不可以驟而語者也 孔子雅言詩書執禮 而於易則鮮及焉 其意亦猶此耳 韓子曰 堯舜之利民也大 禹之慮民也深 其周子程子之謂乎 熹向所謂微意者如此 不識高明以爲如何
장경부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건도 8년(임진, 1172년, 43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물한 번째 편지이다. 편지의 첫머리에서 “가어를 인용한 것은 단지 중용장구를 증명할 뿐”이라 하고 있다. 남헌문집의 주자에게 답하는 13번째 편지에서 “가어를 인용한 중용의 증명은 가어에서는 아무 것도 취할만한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라 하고 있고, 주자는 이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 “‘克齋記’(원작에는 銘으로 쓰여 있는데, 記자의 잘못이다.)讀之無可疑者, 但以欠數句說克己下工處”, 이는 당연히 주자가 지은 ‘극재기’를 가리킨 것이다. ‘극재기’(문집 권77. 주희집 7책, p.4034.)는 주자 스스로가 임진년(1172)에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임진년에 쓴 것이다.
공자가어를 인용한 것은 단지 중용장구를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요컨대 ‘애공이 정사를 묻는 것(哀公問政)’에서 ‘선을 택하여 굳게 잡는다(擇善固執)’는 구절까지가 같은 시기의 말임을 보여주려 했을 뿐입니다. 그 취지나 의리에도 애초에 해될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이 심하게 배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개 책을 볼 때는 마땅히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가라앉혀 찬찬히 그 의리가 있는 곳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취할 만한 것이 있으면 비록 세속의 평범한 사람의 말이라도 버리지 말고, 만약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비록 혹 성현의 말이라고 전해지더라도 반드시 더욱 자세히 살피고 가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히 의미가 바르고 조화롭고 도리가 명백해지며, 실제적인 기반에 서게 되고 행동은 근거를 갖게 되어,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를 속이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비근하다고 여겨 충분히 유의하지 않고 명도선생만을 본받고자 하면, 아마도 역량과 식견이 (명도 선생과 같은)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그 분수에 넘침이 매우 심할 것입니다. 이 또한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공자가어로 증거를 삼지 않으면, 그 장구의 구분은 다시 어떻게 정하겠습니까? 공자가어는 참으로 잡박한 것들이 있지만, 그 사이에 어찌 한마디도 얻을 것이 없겠습니까? 한결같이 이렇게 이론을 세우면 마침내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이 고원한 것만 좋아하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폐단이 있을까 매우 걱정되니, 상세하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기타 첫 장과 비은(費隱)을 논한 곳은 뒤에 대략 보내주신 편지와 같이 수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비은(費隱) 두 글자는 전혀 나누어 말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은 또 전에 백공이 체용일원(體用一源)을 논한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答張敬夫
所引家語 只是證明中庸章句 要見自哀公問政至擇善固執處只是一時之語耳 於義理指歸初無所害 似不必如此力加排斥也 大率觀書但當虛心平氣以徐觀義理之所在 如其可取 雖世俗庸人之言有所不廢 如有可疑 雖或傳以爲聖賢之言 亦須更加審擇 自然意味平和 道理明白 脚踏實地 動有據依 無籠罩自欺之患 若以此爲卑近 不足留意 便欲以明道先生爲法 竊恐力量見識不到它地位 其爲泛濫殆有甚焉 此亦不可不深慮也 且不知此章旣不以家語爲證 其章句之分當復如何爲定耶 家語固有駁雜處 然其間亦豈無一言之得耶 一槪如此立論 深恐終啓學者好高自大之弊 願明者熟察之 其他如首章及論費隱處 後來略已修改 如來喩之意 然若必謂兩字全然不可分說 則又是向來伯恭之論體用一源矣 如何如何
張敬夫의 語解에 답함
【해제】 이 글은 건도 9년(계사, 1173년, 44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물두 번째 편지이다. 주자가 呂伯恭에게 답한 23번째 편지를 보면 “흠부가 근래에 책을 얻어 어해 여러 단락을 붙였는데, 합당하지 않은 곳이 매우 많다.”고 한 구절이 있다. 이 편지가 건도9년(癸巳)에 쓰여진 것이므로 장경부에게 보내는 이 편지도 마땅히 같은 해에 쓰여진 것이다.
어해(語解)에서 “학자의 공부는 참으로 끊임이 없어야 하며, 또 때때로 그 단서를 찾아서 함영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아마도 도치된 것 같습니다. 만약 이미 공부에 끊임이 없다면 다시 때때로 익힘(時習)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때로 익힌다는 것은 끊임없이 차츰차츰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 부분에서, ‘말을 교묘하게 하고자 하는 것(辭欲巧)’ 이하부터는 조금 복잡한 내용이 있습니다. 근래에 진명중(陳明仲)과 이것에 대해 토론하였는데, 그 내용을 별지에 갖추어 적어 놓았습니다.
‘세 번 자신을 돌아본다(三省)는 것은 증자가 인을 행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은 아마도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대개 성인 문하의 학자들은 인을 행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반드시 이 일만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은 아니니 생각이 오히려 편협한 듯합니다. 학자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하는 사람이니 인욕을 다하고 천리가 온전한 경지에 이르면 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나는 이것을 다 없애 인을 하고자 한다’고 하는 말이 먼저 있다면 이것은 곧 내가 바라는 것을 옛사람이 먼저 행한 것입니다.(지난 번에 지언의의에서 이러한 생각을 논했습니다.) ‘전해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라는 것은 아마 단지 전해 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야 문리가 순조로울 것 같고, 또 먼저 효제를 하고 뒤에 글을 배운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천승의 나라를 다스린다(道千乘之國)’는 구절의 ‘도(道)’자의 의미는 타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벗이 나와 같지 못하다(友不如己)’라는 말은 아마도 단지 나보다 낫지 못하다는 것 같습니다. 호시랑(胡侍郞)이 이러한 의미를 잘 말했습니다.
‘삼간다(愼)’는 것은 ‘단지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추모한다(追)’는 것은 ‘단지 잊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라 했는데, 반드시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상채(上蔡)가 이렇게 말하기를 매우 좋아했는데 병통이 있는 듯합니다. ‘두텁다(厚)’는 것은 덕이 모이고, 악이 그로 말미암아 사라지는 것이라는 이 구절도 역시 온당치 못합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는 그 뜻을 본다’는 이 장은 모두 온당치 못한 것 같습니다.
믿음이 의(義)에 가까우면 말을 반드시 실천할 수 있으며,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말미암아 그 친한 사람을 잃지 않으면 또한 숭상할 만합니다. 이 장에 대한 저의 구설(舊說)도 이와 같으니, 글의 뜻이 분명하고 순조로운 듯합니다. 윗 글의 효제근신(孝弟謹信)하며 어진 사람을 친히 한다는 것과, 아래 글의 도탑게 하고, 일에 민첩하고 말을 삼가며 도가 있는 이에게 나아가서 질정한다는 구절도 또한 서로 같은 종류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즐거워함과 예를 좋아함은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바로 아름다운 구슬이 옥돌과 함께 있는 것과 같다’는 구절은 다음에 나오는 ‘반드시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은 연후에야 즐거워함과 예를 좋아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구절과 서로 맞지 않는 듯합니다. 대개 구슬과 돌은 정해진 형상이 있어 변할 수 없고,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는 근본이 다르고 귀착하는 곳도 다르니, 이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 제가 일찍이 여기에서 시를 인용한 것은 바로 공자께서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여겨, 반드시 즐거워함과 예를 좋아하는 것에 이른 후에야 그만두었다는 것을 논하였으니, 뼈와 뿔을 다듬는 사람은 이미 간 것을 다시 갈고, 구슬과 돌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쫀 것을 다시 가는 것과 같으니, 대개 바탕을 떠나지 않고 다듬어서 더욱 정밀하게 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는 구절을 천리를 모두 밝힌다고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듯하니, 바로 벗을 사귀고 사람을 쓰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대개 이러한 해석이 비록 구설과 비교하여 너무 평이하다고 하지만, 예전에 고원(高遠)한 것을 말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낮추고자 하는 뜻이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평온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면 더욱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章은 곧 이와 같습니다.)
答張敬夫語解
語解云 學者工夫固無間斷 又當時時紬繹其端緖而涵泳之 此語恐倒置 若工夫已無間斷 則不必更言時習 時習者 乃所以爲無間斷之漸也
巧言令色一段 自辭欲巧以下少曲折 近與陳明仲論此 說具別紙
三省者 曾子之爲仁 恐不必如此說 蓋聖門學者莫非爲仁 不必專指此事而言 意思却似淺狹了 大抵學者爲其所不得不爲者 至於人欲盡而天理全 則仁在是矣 若先有箇云我欲以此去爲仁 便是先獲也 昨於知言疑義中嘗論此意矣 傳不習乎 疑只當爲傳而不習之意 則文理順 亦是先孝弟而後學文之類
道千乘之國 道字意恐未安
友不如己 恐只是不勝己 胡侍郞說得此意思好
愼非獨不忽 追非獨不忘 恐不必如此說 上蔡多好如此 似有病也 厚者德之所聚而惡之所由消靡 此句亦未安
父在觀其志一章似皆未安
信近於義 則言必可復矣 恭近於禮 則可遠耻辱矣 因是二者而不失其所親 則亦可尙也已 熹舊說此章只如此 似於文意明順 與上文孝弟謹信而親仁 下文篤敏愼而就正意亦相類 不審尊意以爲如何
樂與好禮 視無諂無驕 正猶美玉之與碔砆 此句與後面‘必也無諂無驕然後樂與好禮 可得而進焉’者似相戾 蓋玉石有定形而不可變 唯王霸之異本殊歸者 乃得以此爲譬耳 熹又嘗論此所引詩正謂孔子以無諂無驕爲未足 必至於樂與好禮而後已 有似乎治骨角者旣切之而復磋之 治玉石者旣琢之而復磨之 蓋不離是質而治之益精之意也 如何如何
患不知人 恐未合說到明盡天理處 正爲取友用人而言耳 大率此解雖比舊說已爲平穩 尙時有貪說高遠 恐怕低了之意 更乞平心放下 意味當更深長也 首章便如此矣
장경부가 중용장구를 논한 것에 대하여 답함
【해제】 이 글은 건도 9년(계사, 1173년, 44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물세 번째 편지이다. 중용장구에 대한 장식의 지적에 언급하고 또 다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성의 자연스러움을 따른다’라는 이 말은 참으로 매우 명쾌한 듯합니다. 그러나 윗 글에서 성을 말한 것이 이미 상세한데, 아래 글에서 또 인의예지의 절목을 거론하였으니 이 구절은 해가 없을 듯합니다. 혹시 꼭 고쳐야 한다면 ‘성의 자연스러움을 따라 소유한다(率夫性之自然以所有)’라고 고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나 고치지 않는 것이 혼연하여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등의 글자에 대해 이와 같이 쪼개는 것은 지리한 듯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경문(經文)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것과 이른바 은미(隱微), 이른바 독(獨)이라는 세 단락이 모두 분별이 없어 오히려 중복되고 쓸데없이 길기만 한 듯합니다. 저와 같이 해야 ‘보이지 않는 데서 삼가고’ ‘들리지 않는 데서 두려워한다’는 대강으로 윗 글의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라는 의미를 맺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숨은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미미한 것 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가운데서 선악의 기미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자는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입니다. 대개 그 문장의 어세(語勢)에 표리와 빈주의 차이가 있으니 대략 분별해야만 의미가 분명해지고 중복되는 것이 없습니다.
‘때에 따라서 중(中)을 행한다(隨時爲中)’는 구절의 ‘위(爲)’ 자는 ‘처(處)’자로 바꿨는데 어떻습니까?
‘도가 밝혀지지 않고,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보내주신 편지와 제 의견의 큰 뜻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말에 상세하고 간략함, 고원하고 비근함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반드시 아는 것은 아니다(不必知)’ ‘반드시 행하는 것은 아니다(不必行)’ ‘마땅히 알아야 할 것(所當知)’ ‘마땅히 행해야 할 것(所當行)’ 등의 말은 바로 ‘중(中)’ 자의 의미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행할 것이 없다고 여긴다’ ‘반드시 알 것이 없다고 여긴다’ ‘행할 것을 알지 못한다’ ‘알기를 구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은 또 중요한 관건이니 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논의는 자잘하고 편협한 기상이 있어 그대의 고명하고 간이하며 넓은 생각과는 같아질 수 없음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같아지기를 바라지 않고, 바르게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갑자기 편안해 하던 것을 버릴 수도 없습니다. 만일 앞으로 여기에서 조금의 진보라도 있으면 이 병통은 마땅히 스스로 없어질 것입니다. 대개 근년에 편찬한 책들이 대부분 이와 같아서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간이한 말로 소통하고자 하였으나 또 산만하게 되어 수습할 곳이 없는데, 무엇을 잘라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答張敬夫論中庸章句
率夫性之自然 此語誠似太快 然上文說性已詳 下文又擧仁義禮智以爲之目 則此句似亦無害 或必當改 則改爲所有字 如何 然恐不若不改之渾然也
不睹不聞等字 如此剖析誠似支離 然不如此 則經文所謂不睹不聞 所謂隱微 所謂獨 三段都無分別 却似重複冗長 須似熹說 方見得戒愼不睹 恐懼不聞是大綱 說結上文可離非道之意 莫見乎隱 莫顯乎微 是就此不睹不聞之中提起善惡之幾而言 故君子愼其獨 蓋其文勢有表裏賓主之異 須略分別 意思方覺分明 無重複處耳
隨時爲中 爲改作處如何
道之不明不行 來喩與鄙意大指不異 但語有詳略遠近不同耳 然熹所謂不必知 不必行 所當知 所當行等句 正是要形容‘中’字意思 所謂以爲不足行 以爲不必知 不知所以行 不求所以知等句 又是緊切關紐處 恐不可闕 但鄙論自覺有箇瑣碎促狹氣象 不能如來敎之高明簡暢爲可恨 然私竊以謂不期於同而期於是而已 故又未能遽舍所安 萬一將來就此或有尺寸之進 此病當自去耳 大抵近年所修諸書多類此 以此未滿意 欲爲疏通簡易之說 又恐散漫無收拾處 不知所以裁之也
장경부에게 답함
【해제】 이 글은 건도 9년(계사, 1173년, 44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물네 번째 편지이다. 앞의 편지에 이어서 중용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중용의 근독(謹獨) 부분은 (그 의미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도 단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근래에 단지 마지막의 한 구절을 “이른바 독(獨)이라는 것은 두 가지를 합하여 말하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 보임이요, 들리지 않는 들림이다”라고 고치려고 하는데, 이것을 구설(舊說)과 비교하여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만 결국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저를 위해 당신의 의견을 몇 마디 말씀해 주십시오.
“경으로 마음을 주재하면(경을 마음이 주인으로 삼으면) 안과 밖이 차분해져서 잊지도 않게 되고 조장하지도 않게 되어 마음이 저절로 보존됩니다.” 경으로 마음을 주재해야 함을 알지도 못하고서 마음을 보존하고자 하면, 하나의 마음으로 (또 다른) 하나의 마음을 붙잡는 것이니, 밖으로 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안으로는 마음이 이미 복잡하게 뒤엉켜 그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 마음을) 잡아 머무르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 자체가 이미 큰 병통일 뿐인데 하물며 (이 마음을) 반드시 진정으로 잡아서 머무르게 할 수 없다면 어떠하겠습니까? 바로 여기에서 유학과 불교가 나누어집니다. 불교처럼 “항상 이 마음의 광체가 빛나는 경지를 본다”고 말하는 것은 곧 두 개의 마음[主宰]이 있는 것입니다. 빛나는 것이 진정한 마음입니까, 아니면 보는 것이 진정한 마음입니까? 보내주신 편지의 분석이 비록 매우 정미하지만, 도리어 이러한 의미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합니다. 어리석은 저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이 나에게 있겠는가?” 라는 구절의 고주에 이르기를 “이를 나에게 행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만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공자 스스로가 “이 세 가지 일에 나와 같이 능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공자의 뜻은 사람들을 권면하여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천선생도 이와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묵묵히 기억하고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사람들에게 배움을 권면하기를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라고 하여 부자의 뜻을 드러내었습니다. 또 윤화정(尹和靖)은 “누가 공자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말로 학자를 권면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여 이천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대개 이 두 항목의 일곱 가지 일은 사람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을 비근한 것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것으로 자처하여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호학만 못할 것이다”라는 구절과 같은 뜻은 말이 비록 조금 우쭐거리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매우 스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여씨의 설은 어구 중에 첨가한 글자가 매우 많아 본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는 두 구절의 뜻 또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근래에 보니, 이와 같은 부분이 매우 많은 듯하니, 제가 예전에 했던 말들은 모두 근거도 없이 적당히 둘러댄 것들이었습니다.
答張敬夫
中庸謹獨處誠覺未甚顯煥 然著盡氣力 只說得如此 近欲只改末後一句云 所謂獨者 合二者而言之 不睹之睹 不聞之聞也 比舊似已稍勝 然終亦未爲分明也 更乞以尊意爲下數語 如何
以敬爲主 則內外肅然 不忘不助而心自存 不知以敬爲主而欲存心 則不免將一箇心把捉一箇心 外面未有一事時 裏面已是三頭兩緖 不勝其擾擾矣 就使實能把捉得住 只此已是大病 況未必眞能把捉得住乎 儒釋之異 亦只於此便分了 如云常見此心光爍爍地 便是有兩箇主宰了 不知光者是眞心乎 見者是眞心乎 來諭剖析雖極精微 却似未及此意 愚慮及此 不審是否 如何
何有於我哉 古注云 人無是行於我 獨我有之 按此語是孔子自言‘此三事何人能有如我者哉 孔子之意 蓋欲勉人以學也 伊川先生似亦是如此說 黙識而無厭倦 何有於我哉 勉人學當如是也 所以發明夫子之意 而尹和靖云 孰能如孔子者哉 是以勉學者云耳 又所以發明伊川之意 蓋此兩項七事 乃人之當然而示之以近者 故聖人以此自居而不以爲嫌 如云 不如丘之好學’之意 語雖若少揚 而意實已深自抑矣 呂氏之說 句中添字太多 恐非本意 如‘吾有知乎哉 無知也 兩句文義亦自難說 近看似此等處極多 日前都草草懸空說過了也
장경부가 논한 중용장구에 다시 답함
【해제】 이 글은 건도 9년(계사, 1173년, 44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물다섯 번째 편지이다. 앞의 편지에 이어서 중용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 양단을 잡는다”에 대한 저의 설명은 정자의 뜻을 미루어 밝힌 것으로 지나친 기교의 병폐가 없습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것은 실로 선유들이 언급하지 않은 것이니 오히려 지나친 기교가 있는 듯합니다. 아울러 여기에서 중(中)을 논했는데 갑자기 이것을 언급할 것도 아니고 또 갑자기 차례를 건너뛰어서 (中 자의 지위를) 제일의 위치로 말한 것 같습니다.
“강하고 꿋꿋하다”라는 구절의 ‘교’는 강한 모양이니, 고주(古注)에서 말하기를 “이미 그것을 얻은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여․양의 설이 오히려 평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은벽한 것을 찾는다(素隱)”는 구절은 다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단서가 부부에서 비롯된다(造端乎夫婦)”에 대한 설은 참으로 좋습니다만 구절 가운데 빠진 글자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아울러 ‘조단(造端)’ 두 글자는 실제로 공부해 가다는 뜻이니 이와 같이 건성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편안히 여기는 것이 곧 도다”라는 구절 위에 “성을 따르는 것이 도다” 운운한 구절이 있으므로 그 아래에서 이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사람을 헷갈리게 할 것 같으면 마땅히 밝혀주어야 합니다.
유자의 언행은 남거나 부족한 일이 있는지를 서로 돌아본다고 한 것은 맞지 않는 듯합니다. 이 몇 구절을 각각이 하나의 일인데 섞어서 하나로 만들면 안 됩니다. 자세하게 마음을 써서 완미하시면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용장구의 실수는 참으로 깨우쳐주신 것과 같으니 여기 붕우들도 이러한 의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사께서 지으신 것이고 처음과 끝의 차례가 또 모두 분명하니, 중간에 이 몇 장이 나와서 글 전체가 차서가 없어지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구구하게 이와 같이 미루어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 반드시 대략 이러한 뜻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모두 다 이와 같이 하지는 않더라도 각각의 문단을 각각 자기 식대로 이론을 세워 서로 아무 상관없이 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다시 자세히 고찰해 보시고 만약 그래도 온당치 않으면 의심되는 말을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대개 장구를 털어버리고 현묘함을 말하는 것이 심성에 습관이 되어 이렇게 세세한 구별이 갑자기 보이면 스스로 번거로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再答敬夫論中庸章句
執其兩端 熹說是推明程子之意 未有過巧之病 如來諭云云 固先儒所未及 然却似過巧 兼此方論中 未應遽及此 又似隔驀說過了一位也
强哉矯 矯 强貌 古注云爾 似已得之 呂楊之說却恐不平穩也
素隱 俟更思之
造端乎夫婦 如此說固好 但恐句中欠字太多 兼造端’兩字是實下功夫之意 不應如此泛濫也 此類當兩存之
人心之所安者 卽道也 上文有率性之謂道云云 故其下可以如此說 若恐人錯會 當更曉破耳
游子之言行相顧爲有餘不足之事 恐未安 此數句各是一事 不可混而爲一也 細意玩之 自可見矣 此亦當兩存之
章句之失 誠如尊喩 此間朋友亦有疑其如此者 但鄙意疑此書旣是子思所著 首尾次序又皆分明 不應中間出此數章 全無次序 所以區區推考如此 竊意其中必須略有此意 正使不盡如此 亦勝如信彩逐段各自立說 不相管屬也 更望細考 若果未安 當爲疑詞以見之 大率擺落章句 談說玄妙慣了心性 乍見如此瑣細區別 自是不奈煩耳
장경부에게 보냄(6월 28일)
【해제】 이 글은 건도 9년(계사, 1173년, 44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물여섯 번째 편지이다. 백이 백제가 나라를 사양하고 무왕에게 간언한 일과 함께 시중(時中) 개념을 논하고 있다.
백이와 숙제가 나라를 사양하고 도망한 일과 무왕에게 정벌에 대해 간하고 굶주린 일, 이 두 가지 일이 서로 관련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미 나라를 사양했으니 그 뒤에 다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시에 스스로 반드시 주나라에 귀의하지 않고, 또한 목야(牧野)에서 무왕이 주왕을 토벌하는 일을 기다리지 않고, 또 간하여 따르지 않은 후에야 떠났어야 합니다. 또 만약 전날에 이미 그와 같았다면 오늘 다시 이와 같을 수는 없으니, 이 일과 시중의 뜻과는 또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것이 제 생각에는 모두 마땅치 않으니 가르침을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與張敬夫(六月二十八日)
夷齊讓國而逃 諫伐而餓 此二事還相關否 或謂先已讓國 則後來自是不合更食周粟 若爾 則當時自不必歸周 亦不待見牧野之事 又諫不從而後去也 且若前日已曾如彼 卽今日更不得如此 此與時中之義不知又如何 凡此鄙意皆所未安 幸乞垂敎
장경부에게 답함 (3월 14일)
【해제】 이 글은 순희 2년(을미, 1175년, 46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물일곱 번째 편지이다. 앞부분에서는 당 왕조를 복위한 공로로 왕에 봉해진 다섯 사람, 즉 오왕(五王)의 일을 논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앞 편지에 이어 논어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저는 지난번에 오왕의 일에 대하여 깨우쳐주시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조(唐祚)를 회복시키고 중종을 세우지 않았으면 무조를 제거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이후의 환란 역시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진실로 지당한 의론입니다. 그러나 중종이 비록 어리석지만 당시 유폐된 것은 다만 한마디의 실수 때문이며 죄상이 분명하지 않고 사람들의 신망도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때의 충성스럽고 어진 마음과 그가 병사들을 모아 북벌한 일, 그리고 후에 여러 사람들이 이다조를 두고 한 말 등으로 볼 때, 함부로 인심을 잃은 폭군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역으로 아직 드러나지 않은 화를 찾아 하루아침에 그를 버리고 다시 종실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도리어 이해(利害)를 헤아리는 사사로움에 빠지는 것이니, 이는 인심을 쫒고 천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며, 일 또한 반드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은 이러합니다만 이외에 또 달리 좋은 계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유주(維州)의 일 또한 일찍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당(唐)과 우(牛), 이(李) 모두 그것을 잃었습니다. 대저 춘추의 의리를 알지 못하고 경솔하게 오랑캐와 동맹을 맺고 급기야 그 조약을 범하고 노주(魯州)를 포위하여 공격하고, 또 그 죄를 성토하지도 못하고 그 조공을 끊지도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 믿음을 잃고 동맹을 배반한 죄를 드러내고자 하면서 그 배반한 신하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의리에 옳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반환한 것은 옳지만 실달모(悉怛謨)를 묶어서 보내어 마음대로 그 잔혹을 부리도록 한 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만약 이해를 논한다면, 승유는 실로 큰 소리를 하여 문종을 두렵게 한 것은 치당(致堂)이 논한 것과 같았으나 토번의 병사들이 끝내 유주로 인하여 당의 근심이 될 수 없었으니, 덕유의 계책이 행해지지 않은 것 또한 깊은 한이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이 일에 대하여 정론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니 아울러 가르침을 보여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우승유는 논의는 바르지만 마음은 사사로웠고, 이덕유는 속임수를 꾀했지만 마음은 정직했습니다.)
“어찌 나에게 있겠는가?”라는 말을 뒤에 다시 생각해보니 윤자(尹子)의 설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자처하지 않는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인의 말씀은 이러한 것이 매우 많으니, 지나치게 자신을 숙여 남을 추종한다고 의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찌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겠는가?”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근래에 또한 일찍이 말하였는데 바로 회숙의 뜻과 같습니다. 뒤에 또다시 의심스러웠는데 당신이 깨우쳐 주신 것과 같습니다. 이제 꼼꼼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글의 뜻이 순조롭고 법령 전장이 엄격하여 말류의 폐단을 열어주지 않는 회숙의 설을 따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答張敬夫三月十四日
熹昨承誨諭五王之事 以爲但復唐祚而不立中宗 則武曌可誅 後患亦絶 此誠至論 但中宗雖不肖 而當時幽廢 特以一言之失 罪狀未著 人望未絶 觀一時忠賢之心 與其募兵北討之事 及後來諸公說李多祚之語 則是亦未遽爲獨夫也 乃欲逆探未形之禍 一旦舍之而更立宗室 恐反爲計校利害之私 非所以順人心乘天理而事亦未必可成也 愚慮如此 然而此外又未見別有長策 不知高明以爲如何 若維州事 則亦嘗思之矣 唐與牛李 蓋皆失之也 夫不知春秋之義而輕與戎盟 及其犯約 攻圍魯州 又不能聲罪致討 絶其朝貢 至此乃欲效其失信叛盟之罪而受其叛臣 則其義有所不可矣 然還其地可也 縛送悉怛謀 使肆其殘酷 則亦過矣 若論利害 則僧孺固爲大言以恐文宗 如致堂之所論 而吐蕃卒不能因維州以爲唐患 則德裕之計不行 亦未足爲深恨也 計高明於此必有定論 幸幷以見敎 牛論正而心則私 李計譎而心則正 何有於我哉 後來思尹子說誠未安 竊意只是不居之詞 聖人之言此類甚多 不以俯就爲嫌也 惡知其非有也 頃時亦嘗爲說 正如晦叔之意 後來又以爲疑 乃如尊兄所諭 今細思之 却不若從晦叔之說 文意俱順 法戒亦嚴 不啓末流之弊也 如何如何
장경부에게 답함(12월)
【해제】 이 글은 순희 2년(을미, 1175년, 46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물여덟 번째 편지이다. 이 해 여름, 여백공이 민(閔)지방의 주자를 방문하였고, 두 사람은 함께 아호(鵝湖)로 가서 육자자수(陸子壽)․육자정(陸子靜)과 모임을 갖고 학문을 토론하였다. 이 편지는 아호에서 모인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당연히 을미년에 쓴 것이다. 또 이 편지의 원주(原注)는 12월로 되어 있는데, 아마 착오가 있는 듯하다.
저는 궁핍하게 사는 것이 여전하니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스승과 벗들의 도움이 멀리 있어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니 실로 경계하고 반성할 곳이 없는 것은 아닌데 끝내는 옆에서 애써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구습에 빠져서 찾은 것을 다시 잃어버립니다. 근일에 한결같이 밖으로 내달았는데, 마음은 그것을 기뻐하여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었던 것을 모두 술을 끊는 사례를 기준으로 하여 경계하고 끊었는데, 마치 각성하는 일과 같습니다. 이것이 선배들이 말한 ‘하류의 선비는 늦게 도를 듣고, 옹졸하게 스스로를 닦는 데만 의지한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끊임 없이 확충해 나가고 이전의 잘못을 보충한다면 언젠가 성취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 중용의 신독(愼獨)과 대학의 성의(誠意)․무자기(毋自欺) 부분을 읽었는데 항상 구하는 것이 지나쳐 말이 번거롭고 뒤섞여 있었습니다. 요즘에야 그 잘못을 깨달았는데, 이것은 바로 가장 절실하고 가장 가까운 것이고 가장 분명한 것이니, 이것을 버리고 아득한 곳에서 공허함을 말하는 것은 또한 잘못입니다. 이제 저는 이러한 뜻으로 스스로를 통렬하게 검속하고 단속하여 삼가는 자세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오직 태만하여 그와 같은 자세를 잃을까 걱정입니다.
문자에서까지도 이전부터 병통이 적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대개 평소에는 경을 해석하는데 장구를 지키는 것을 제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글의 뜻을 추론하고 연역하여 스스로 하나의 문자를 만들었으니, 이것은 집 아래 집을 짓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한 일을 반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의미가 희박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석(註釋)과 경문(經文) 두 항목을 공부하는 것으로 만들어 점점 지루하게 하여 본래의 의미는 전혀 알 수 없게 합니다. 이것으로, 한유들이 경전을 잘 설명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훈고를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이 훈고로 경문을 완색하게 하여, 훈고와 경문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다만 하나로 보게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진실로 의미심장합니다. 중용장구와 대학장구는 이에 따라 대략 한번 고쳤으니 다시 기록하여 보내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또 합하고 없애야 할 곳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논어 또한 이와 같이 초본을 정했는데 탈고할 틈이 없습니다. 맹자도 하려고 하는데 시간과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근래에 또 역을 보았는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성인이 역을 지으신 까닭은 본래 사람들로 하여금 점을 쳐서 행위의 가부를 결정하고, 그로 인하여 사람이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엄평군(嚴君平)이 “아들된 사람에게는 효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신하된 사람에게는 충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한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괘사와 효사는 단지 상(象)에 유래를 두는데 여기에 공연히 진설하여 가르침을 구하여 결정을 기다리는 자는 거기에 있는 말로 의심되는 일을 결단하니, 마치 신명(神明)을 가탁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반드시 이 리(理)가 있은 후에 이 말이 있지만, 리는 바르지 않음이 없으므로 알려주고 경계하는 정성스런 말은 모두 바름에 의거한 것입니다. 천하의 움직임은 한결같기 때문에 하는 일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의미로 역을 읽으면 괘(卦)와 효(爻), 십익(十翼)의 의미를 막힘없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과 글자의 뜻에 때로는 막힘이 있으니, 또 순수하게 의리로 말하는 것은 억지로 뜻을 통하게 하고 그 막힌 것을 깨닫지 못함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지금 또 편 첫머리의 두 괘를 기록하여 보내드립니다. 이 설을 언뜻 들으면 반드시 그렇다고 여겨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을 두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말고, 때때로 마음을 비우고 조금씩 살펴보아, 오래 그렇게 하면 그것이 망령되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급하여 참지 못하는 병에 대해서는 참으로 스스로도 그러함을 알고 깊이 괴로워하면서도 아직 고치지 못했습니다. 만약 백공과 조석으로 서로 교유할 수 있으면 마땅히 급한 성질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는 지역이 멀어 자주 볼 수 없으니 한스러울 뿐입니다. 여기의 붕우들은 진전에 도움이 되는 이가 아주 적고, 택지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여 병통이 날로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근래에 백공과 서로 만나 오늘날의 학자들이 크게 전수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적음을 깊이 탄식하였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자수 형제의 기상은 매우 좋은데 그 병통은 강학을 다 폐해버리고 오로지 실천에만 힘을 쓰는 것입니다. 또 도리어 실천 속에서만 사람에게 분발하여 성찰하고 본심을 깨달을 것을 요구하니 이것은 큰 병통입니다. 잘 잡아 간직하고 삼가고 진실하며 안과 밖이 일치하는 점은 보통 사람들보다 훌륭합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너무 지나치게 믿고 규모가 좁으며 다른 사람의 선함을 취하려 하지 않으니, 장차 이단으로 흘러갈 것인데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향약의 책은 마침 집에 소장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또 유행시키려고 하지만 실상은 아마도 행하기 어려울 것임은 일러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이 그것을 보고 선배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풍속을 가르친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양할 세목을 알게 된다면 또한 조금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答張敬夫(十二月)
熹窮居如昨 無足言者 但遠去師友之益 兀兀度日 讀書反己 固不無警省處 終是旁無疆輔 因循汩沒 尋復失之 近日一種向外走作 心悅之而不能自已者 皆準止酒例戒而絶之 似覺省事 此前輩所謂下士晩聞道 聊以拙自修者 若充擴不已 補復前非 庶其有日 舊讀中庸愼獨 大學誠意毋自欺處 常苦求之太過 措詞煩猥 近日乃覺其非 此正是最切近處 最分明處 乃舍之而談空於冥漠之間 其亦悞矣 方竊以此意通自檢勒 懍然度日 惟恐有怠而失之也
至於文字之間 亦覺向來病痛不少 蓋平日解經最爲守章句者 然亦多是推衍文義 自做一片文字 非惟屋下架屋 說得意味淡薄 且是使人看者將注與經作兩項功夫做了 下稍看得支離 至於本旨 全不相照 以此方知漢儒可謂善說經者 不過只說訓詁 使人以此訓詁玩索經文 訓詁經文不相離異 只做一道看了 直是意味深長也 中庸大學章句緣此略修一過 再錄上呈 然覺其間更有合刪處 論語亦如此草定一本 未暇脫稿 孟子則方欲爲之而日力未及也
近又讀易 見一意思 聖人作易 本是使人卜筮以決所行之可否 而因之以敎人爲善 如嚴君平所謂與人子言依於孝 與人臣言依於忠者 故卦爻之辭 只是因依象類 虛設於此 以待扣而決者 使以所値之辭決所疑之事 似若仮之神明 而亦必有是理而後有是辭 但理無不正 故其丁寧告戒之詞皆依於正 天下之動 所以正夫一而不繆於所之也 以此意讀之 似覺卦爻十翼指意通暢 但文意字義猶時有窒礙 蓋亦合純作義理說者 所以彊通而不覺其礙者也 今亦錄首篇二卦拜呈 此說乍聞之必未以爲然 然且置之 勿以示人 時時虛心略賜省閱 久之或信其不妄耳
傷急不容耐之病 固亦自知其然 深以爲苦而未能革 若得伯恭朝夕相處 當得減損 但地遠 不能數見爲恨耳 此間朋友絶少進益者 擇之久不相見 覺得病痛日深 頃與伯恭相聚 亦深歎今日學者可大受者殊少也 奈何奈何 子壽兄弟氣象甚好 其病却是盡廢講學而專務踐履 却於踐履之中要人提撕省察 悟得本心 此爲病之大者 要其操持謹質 表裏不二 實有以過人者 惜乎其自信太過 規模窄狹 不復取人之善 將流於異學而不自知耳
鄕約之書 偶家有藏本 且欲流行 其實恐亦難行 如所喩也 然使讀者見之 因前輩所以敎人善俗者而知自修之目 亦庶乎其小補耳
장경부 집대성설에 답함
【해제】 이 글은 순희 3년(병신, 1176년, 47세)에 장식에게 보낸 스물아홉 번째 편지이다. 여기에서는 맹자 만장 하의 공자를 ‘집대성’이라 칭하는 의미에 관해 논변하고 있다.
공자를 집대성이라 이르니, 集은 합한다는 것이니 모든 이치를 합하여 몸에 크게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집은 음악을 합한 것이고, 성은 음악이 한번 변한 것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음악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집대성이라는 것은 ‘금(金)으로 소리를 퍼뜨리고, 옥(玉)으로 거두는 것[金聲而玉振]’을 말합니다. 금(金)으로 소리를 퍼뜨린다는 것은 조리(條理)를 시작함이요, 옥(玉)으로 거둔다는 것은 조리(條理)를 끝냄이니, 조리(條理)를 시작하는 것은 지(智)의 일이요, 조리(條理)를 끝내는 것은 성(聖)의 일이다. 이것은 음악으로 밝힌 것입니다. 금성의 변화는 무궁하고, 옥의 소리는 처음과 끝이 한결같습니다. 거둔다는 것은 거두어서 곡조를 맺는 것이니 지금 음악에 박자[拍]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릇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처음에 금속 악기를 연주하고, 뒤에는 옥으로 거두니, 성인이 여러 이치를 합하여 자신의 몸에 갖추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조리라는 것은 모든 이치의 맥락입니다. 처음에 그러함을 궁구하여 미세한 것까지 자세하게 분석하는 것이 지(智)이고, 마침에 자신의 몸에 갖추어 혼연히 일관하는 것은 성(聖)입니다. 이 두 가지는 공자만이 온전히 하였고, (伯夷와 伊尹, 柳下惠) 세 사람은 시작에 다하지 못하였고, 마침에 갖추지 못했습니다. 한(漢)의 아관(兒貫)은 봉선(封禪)을 논하여 “조리를 총괄한다”고 하였는데 금성옥진의 의미도 이와 같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고대 음악가의 말일 것입니다. 知는 기교에 비교되고 聖은 힘에 비교됩니다. 백보 바깥에서 활을 쏘는 것과 같으니, 그 이르는 것은 그 사람의 힘이지만 그 적중하는 것은 그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시 활 쏘는 것으로 (知와 聖을) 밝힌 것입니다. 활을 쏘아서 적중하는 것은 기교이고, 과녁에까지 이를 수 있는 까닭은 힘입니다. 적중하는 것이 비록 (과녁에) 이른 후이지만 적중하는 기술은 활을 쏘기 이전에 있는 것입니다. 공자는 기교와 힘이 다 온전하시니 이르고 또 적중하지만 (伯夷와 伊尹, 柳下惠) 세 사람은 힘은 있으나 기교가 없어서 각각 그 이름에 이르고도 적중하지 못한 것입니다. 안자와 같은 사람은 기교는 적중하기에 충분했지만 특히 힘이 충분하지 못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집대성에 관한 설명은 매우 상세하게 드러내 밝혔습니다. 이 설의 대체적인 뜻은 이와 같을 뿐인데 지금 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로 말의 기상과 미세한 변화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들이 쓸데없이 남아돌고 번거로워서 여유로운 맛이 없습니다. ‘금옥(金玉)’ 두 글자는 바로 비유가 매우 친절하여 공력이 있는[뛰어난, 훌륭한] 곳인데, 지금은 오히려 말이 미치지 못하고 다만 ‘시종(始終)’이라는 글자로만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맹자의 이 한 절의 비유는 모두 군더더기가 됩니다. 예전에 학자가 (남헌이) 임안(臨安)에 있을 때에 이 한 구절을 말했다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간이하고 타당한 듯합니다만 다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예전이 해석한 것을 또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었는데 득실을 참고할 만한 것은 못됩니다. 그러나 기록한 것이 너무 많은 듯하여 지금은 전과 같이 간략하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밀하고 간략하지 않아 사람들이 완미할 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시 다른 의미와 말을 덧붙인다면 더욱 지리해질 것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答張敬夫集大成說
孔子之謂集大成 集 合也 言合衆理而大備於身也 或曰集謂合樂 成謂樂之一變 此卽以樂譬之也 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 金聲也者 始條理也 玉振之也者 終條理也 始條理者 智之事也 終條理者 聖之事也 此以樂明之也 金聲之變無窮 玉聲首尾如一 振之者 振而節之 猶今樂之有拍也 凡作樂者 始以金奏而後以玉振之 猶聖人之合衆理而備於身也 條理 衆理之脈絡也 始窮其然而縷析毫分者 智也 終備於身而渾然一貫者 聖也 二者惟孔子全之 三子則始不盡而終不備也 漢兒寬論封禪亦云‘兼總條貫’ 金聲而玉振之意亦如此 疑此古樂家語也 知譬則巧也 聖譬則力也 猶射於百步之外也 其至爾力也 其中非爾力也 此復以射明之也 射之所以中者 巧也 其所以至者 力也 中雖在至之後 然其必中之巧 則在未發之前也 孔子巧力兼全 至而且中 三子力而不巧 各至其至而不能中也 若顔子 則巧足以中 特力未充而死耳
承示及集大成說 發明詳備 此說大意不過如此 今所欲論者 正在言語氣象微細曲折之間 然則來說似頗傷冗 費脚手 無餘味矣 金玉二字 正是譬喩親切有功處 今却不曾說及 只做‘始終’字看了 如此則孟子此一節譬喩全是剩語矣 舊見學者所傳在臨安時說此一段 却似簡當 然亦不能盡記 熹舊所解又偶爲人借去 不及參考得失 然記得亦似太多 今略說如前 竊謂似此已是不精約 使人無可玩味了 若更著外來意思言語 卽愈支離矣 不審高明以爲如何
장경부에게 답하며 孟子說의 의심스러운 곳을 논함
【해제】 이 글은 순희 3년(병신, 1176년, 47세)에 장식에게 보낸 서른 번째 편지이다. 맹자 고자편의 성을 논한 몇 章
맹자 고자편의 성을 논한 몇 장(章)
이 해석의 내용을 살펴보니 장구 해석이 아니고 기상이 너무 높습니다. 그러나 글의 의미를 간략히 말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으로 입론하였고, 별도로 다른 글자를 써서 억지로 끌어다 붙여 맥락도 없고 연결도 되지 않습니다. 깨닫지 못한 자는 점점 더 헷갈리게 되고, 대충 깨달은 자는 줄곧 지루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성을 논한 몇 장은 그 병통이 특히 심합니다. 본문은 몇 마디에 불과한데 해석한 글은 그 몇 배를 넘습니다. 본문은 단지 성이라고 말했는데 해석한 것 중에는 태극이라고 말하니, 무릇 이러한 것들이 학자로 하여금 경전을 탐구할 틈이 없게 하고 먼저 우리의 설에서 지치게 하니, 선현들이 경전을 담론하는 대체가 아닙니다. 또 역전이 이미 너무 상세하다고 하지만, 먼저 글자의 뜻을 해석하고, 다음으로 글의 의미를 해석하고 난 다음에 근본을 추론하여 찾아내어 말해야 합니다. 그 얕고 깊음과 멀고 가까움, 상세하고 세밀함이 차례가 있으니, 이 (맹자 고자 편의) 분주하고 번잡한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대개 경전을 해석하는 것은 단지 간략하게 글의 뜻과 사물의 이름을 해석하면 됩니다. 그리하여 학자들이 스스로 찾게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야기가 족히 보존될 수 없다(夜氣不足以存) 해석하기를 “야기가 자라나는 바에 기미가 있는가? 어떻게 보존하는가?‘
이 구절의 뜻을 살펴보면 야기가 보존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존망(存亡)이라는 말은 모두 마음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니, 위아래의 문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의의 마음’ 이라고 하고, 또 ‘양심을 놓친다’ 고도 하고, 또 ‘잡으면 있고, 버리면 없어지는 것은 오직 마음을 말하는 것인가보다’ 라고도 하는데 바로 ‘있고 없음(存亡)’ 두 글자가 있어 의미가 더욱 명백하다. 대개 사람은 모두 이 양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놓치니, 낮과 밤에 자라나고 새벽녘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다른 사람과 가깝다는 것에 이른다는 것은 곧 그 야기가 보존된 양심입니다. 낮에 하는 것이 질곡하여 없어지는 것에 이르면 이 마음은 또 볼 수가 없습니다. 만약 질곡하여 없애는 것을 반복하여 그치지 않으면 비록 낮과 밤에 자라난 것이 있어도 또한 지극히 미세하고 적어서 그 인의의 양심을 보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 야기(夜氣)에 존망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기(氣)로 말하면 이 장의 뜻은 처음과 끝이 연결되지 않고, 특히 관통하는 핵심 의미가 없습니다. 정자께서 또 “야기가 보존한 것은 양지(良知) 양능(良能)이다”라고 한 의미가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맹자를 보면서 이러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다만 대충대충 보고 지나쳤습니다.
대체 소체(大體 小體)
이 장의 해석은 의미는 분명하지 않으면서 설명은 지나치게 산만합니다.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설명이 산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 “귀와 눈의 기능은 생각하지 못하면 사물에 가려지고,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살펴보면 이 두 구절은 소체를 따라서는 안 되고, 마땅히 대체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분별하고 있습니다. 맹자해에 이르기를 “대체를 따르는 것은 마음이 관장하고, 소체를 따르는 것이 귀와 눈이 관장한다(從其大體 心之官也 從其小體 耳目之官也)”고 하였는데 여기서 ‘從其’라는 네 글자는 없애야 합니다. 아래 글에서 비로소 그것을 결말지어 말하기를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지만 마땅히 그 큰 것을 먼저 세우면 작은 것은 빼앗을 수 없을 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장의 ‘먼저 그 큰 것을 세운다’는 한 구절은 바야흐로 힘을 써야 할 곳을 말하는 것이고, 이 구절 내에서 ‘세운다(立)’는 글자는 더욱 긴요하고 절실합니다. 지금의 해석을 보면 모두 ‘세운다(立)’는 글자는 드러내지 않고 다만 ‘생각한다(思)’는 것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세우지 않고 한갓 생각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또 군자는 리(理)를 따르고 소인은 욕망을 따른다는 설이 있고, 또 생각이 넓지 않으면 계통이 없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모든 사물은 다 그렇게 된 까닭이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비록 마음이 그 주관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움직여 이치를 따른 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맹자의 본의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설이 비록 어지럽게 많지만 더욱 지리합니다. 칠팔년 전에 서길경이 焦某선생에게 학문을 하는 요체를 물으니 초선생이 ‘먼저 그 큰 것을 세우라’고 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때에 저는 이 장이 정말로 이 해석과 같이 지루하다면 그것을 듣고 망연하여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것을 생각해보고 초공의 학문이 궁행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돌이켜 참되다.(反身而誠) 해석하기를 “몸을 돌이켜 성(誠)에 이르면 마음과 리(理)가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 해석하는 말을 살펴보면 뜻은 매우 고명하지만 다만 찬탄하는 말일뿐이어서 경전에는 드러내 밝히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자신에게는 체험의 공도 없습니다. 저는 마땅히 장자(張子)의 설명과 같이 “행함이 마음에 흡족하지 아니함이 없다”고 해석해야 귀착하는 곳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즐거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는 것은 “우러러보아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부끄러움이 없다”는 의미이니 더욱 절실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허황된 말만 한다면 불교와 다름이 없게 됩니다.
지나가는 곳은 교화되고, 있는 것은 신묘스럽게 된다.(所過者化 所存者神) 해석 중에서 정자와 장자의 말을 인용하여 합하여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이 정자와 장자의 말은 본래 같지 않으니 합하여 하나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자가 말하기를 “거쳐 지나가는 곳이 교화된다고 하는 것은 몸이 거쳐가는 곳이고, 있는 것이 신묘스럽게 된다는 것은 거주하는 곳이 곧 신묘스럽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무릇 거쳐 지나가는 곳은 사람들이 모두 교화되지만 마음이 거주하는 곳은 곧 격려하고 호응한다는 의미가 있으니 성인이 오래 머물지 않아도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거쳐 지난다(經歷)’는 말과 ‘곧(便)’이라는 글자가 그 의미를 더욱 잘 드러낸다. 또 ‘편안하게 와서 움직이면 교화된다(綏來動化)’는 구절 및 역전의 혁괘(革卦)가 인용한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맹자의 위아래 글의 의미를 볼 때, 마땅히 정자(程子)를 따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장자(張子)의 설이 비록 정미하지만 아마도 본문의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군자는 명(命)이라고 하지 않는다.(君子不謂命也)
이 한 장의 앞 한 구절은 글의 의미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는 하고자 하지 않아도 발동하는 것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뒤의 한 구절은 예나 지금의 말하는 사람들이 정해진 의론이 없지만 지금 이 해석을 읽어보면 ‘지(智)가 현자에게 있어서’와 ‘성인에게 있어서 천도’의 두 구절은 매우 공력이 있지만 위 세 구절은 온당치 못한 것 같습니다. 대개 자연에서 나온 것은 다만 성이라고 해도 되지만 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에 진부량이 이것에 대해 지은 것을 보았는데 의미가 바로 이와 같았으니, 바야흐로 그것이 남헌의 맹자해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는 의심을 했습니다. 어찌 일찍이 이것을 그에게 알려주었습니까? 저는 이 세 구절은 다만 정자가 ‘부여받은 것에 두텁고 엷은 것이 있다’고 해야 마땅하며, 또 그래야 아래 두 구절과도 뜻이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성인과 현인은 부여받은 것이 두텁지만 군자는 스스로 부여받은 것이 엷어서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 구절 또한 오직 부여받은 것이 엷다고 여겨서 한 말입니다.
하고자 하는 것을 善이라 하고, 몸에 있는 것을 信이라 한다.(可欲之謂善 有諸己之謂信)
해석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저의 구설(舊說) 또한 그러합니다. 지금 그것을 보면 아마 지나치게 고원하여 본의가 아닐 것 같습니다. 대개 이 여섯 가지 등급은 여섯 등급의 사람일 뿐입니다.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은, 즉 선이라는 것은 그 리(理)를 가리키는 것이지 그 사람을 지목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니, 뒤의 다섯 등급과 글의 뜻이 다릅니다. 또 구설에 ‘신(信)’을 ‘자신(自信)’의 뜻이라고 말했는데, 지금 살펴보니 이 여섯 등급이 모두 사람이 지목하여 이름붙인 말이니, ‘자신(自信)’의 ‘신(信)’이 될 수 없습니다. 근래에 보니 이 두 구절의 의미가 점점 온당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개 선이란 것은 사람이 같이 하고자 하는 것이고, 악이란 것은 사람이 같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람됨은 하고자 하는 것이 있고 싫어할 만한 것이 없으면 善人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타고난 자질의 선일뿐으로 선의 선됨을 알지 못하면 지키는 것이 굳지 못하여 잃을 때가 있습니다. 다만 그 선이 되는 까닭을 알아서 그것을 굳게 지킨 후에야 실로 자신에게 간직하여 잃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신인(信人)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자가 말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을 선이라 하는 것은 인에 뜻을 두어 악함이 없는 것이다. 마음에 참되고 착한 것을 信이라 한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信자에 대한 설은 시비가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뒤에 따로 설명이 있습니다.
지난 번 편지에서 말씀하신 맹자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는 모두 좋습니다. 그러나 ‘조리(條理)’라는 글자는 아마 꼭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이 두 글자는 허다한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조리를 시작함(始條理)’ ‘조리를 끝냄(終條理)’은 ‘지(智)에 관한 일’ ‘성(聖)에 관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리’라는 글자는 깊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금옥(金玉)’ 두 글자는 오히려 ‘시종(始終)’이라는 글자에서 그 내력을 설명해야 좋습니다. 역에 관한 설명은 참으로 마땅하지 않음을 알지만 또한 일찍이 아뢰었으니, 잠시 놓아두고 천천히 살펴보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대저 평소에는 익숙하게 말했는데, 갑자기 이러한 말을 들으니 스스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자세하게 완미하여 오래되면 마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작의적으로 주장하고 찾아나간다면 곧 구설에 가려버릴 것입니다. 근래에는 역을 마무리할 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례와 의례는 한번 보았고 주소도 완성되긴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노력이 부족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일찍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문(記文) 몇 편을 지어 일에 따라 드러내 밝힌 것이 상당히 있었지만 결국에는 복사해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문(碑文)을 보낸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가르침을 구하는 글을 부쳐 드리겠습니다. 마음이 평온하지 못한데 항상 연마만 하면 결국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 사이에 일찍이 이치를 구함은 너무 많고 함영의 공부는 적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이 바쁘고 성찰할 틈이 없어, 드디어 새로운 공부를 다 그만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익힌 것을 읽고 함양의 힘을 더하여 결국 다시 골몰하였는데 다 마칠 수는 없었습니다. 대저 기질이 동요하면 수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근래 두 예를 읽는 것 또한 일 없는 가운데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주(蘄州)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 설은 단지 다른 사람이 불교를 배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불교에 빠지는 것도 싫어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생각해보니, 그 사이에 크게 용납한 것이 있어서 드디어 수백 마디의 말을 하여 그것을 밝혔으니, 백간(伯諫)이 돌아와 그것을 보기를 기다릴 뿐이고, 그 글을 넓히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근년에 사대부들이 점점 학문에 뜻을 두고 있지만 또 괴이하고 허망한 설도 다투어 일어나며, 그 뜻을 높이 세우지 않고, 이치를 보는 것도 철저하지 못한 자가 모두 얻은 것이 되니 심히 우려할만합니다. 그간에 일찍이 불자(佛者)와 함께 말하고, 그 말을 기록한 것 역시 여러 편이 되니 다음에 함께 부쳐 드리겠습니다.
어제 저녁에 대학 구설을 읽다가 “사람이 친애하는 것에 편벽되다”고 하는 곳을 보니, 고주(古注)에 따라 ‘비(譬)’ 자로 읽으면 아마 아래 글의 의미가 이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근거로 벽(辟)자는 단지 마땅히 ‘벽(僻)’으로 읽어야 하는데, 이것은 대개 보통 사람들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사로움에 항상 치우친 것이 있어 그 바름을 잃으므로 좋아하고 싫어함의 공변됨을 살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집안에 행해지면 또 정애(情愛)의 사이에 빠져서, 또한 대부분 그 도리를 잃고 가지런하게 할 수 없게 하는 까닭이 됩니다. 이렇게 읽으면 문리가 매우 순조롭고 또 윗 장의 문투와도 서로 비슷합니다. 또 이 편에는 다섯 개의 벽(辟) 자가 있는데 마지막 장에 있는 “편벽되면 천하를 죽이게 될 것이다”란 구절의 벽(辟) 자 역시 벽(僻(으로 읽으면 서로를 밝혀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외경’이라는 두 글자는 처음에는 오히려 그것을 의심했으나 자세히 보면 단지 사람이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이니, 계자(季子)가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것으로 비유하여 말한 것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설이 자꾸 생겨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찾아서 얻은 것이 아니고 우연히 읽다가 생각이 여기에 미친 것입니다. 근년에 고요한 가운데서 글의 뜻이 이 것과 비슷한 것이 매우 많음을 알았지만 감히 한결같이 찾고 구하지는 않았고, 수용하여 힘써야 할 곳에 대해서는 아직 확립된 견해가 없습니다.
答敬夫孟子說疑義
告子篇論性數章
按此解之體 不爲章解句釋 氣象高遠 然全不略說文義 便以己意立論 又或別用外字體貼 而無脈絡連綴 使不曉考展轉迷惑 粗曉者一向支離 如此數章論性 其病尤甚 蓋本文不過數語 而所解者文過數倍 本文只謂之性 而解中謂之太極 凡此之類 將使學者不暇求經 而先坐困於吾說 非先賢談經之體也 且如易傳已爲太詳 然必先釋字義 次釋文義 然後推本而索言之 其淺深近遠 詳密有序 不如是之匆遽而繁雜也 大抵解經但可略釋文義名物 而使學者自求之 乃爲有益耳
夜氣不足以存解云 夜氣之所息能有幾 安可得而存乎
按此句之義 非謂夜氣之不存也 凡言存亡者 皆指心而言耳 觀上下文可見 云仁義之心 又云放其良心 又云操則存 舍則亡 惟心之謂與 正有存亡二字 意尤明白 蓋人皆有是良心而放之矣 至於日夜之所息而平旦之好惡與人相近者 則其夜氣所存之良心也 及其旦晝之所爲有梏亡之 則此心又不可見 若梏亡反覆而不已 則雖有日夜之所息者 亦至微薄而不足以存其仁義之良心矣 非謂夜氣有存亡也 若以氣言 則此章文意首尾衡決 殊無血脈意味矣 程子亦曰 夜氣之所存者 良知良能也 意蓋如此 然舊看孟子未曉此意 亦只草草看過也
大體小體
此章之解意未明而說太漫 蓋唯其意之未明 是以其說不得而不漫也 按本文耳目之官不思而蔽於物 心之官則思 此兩節方是分別小體之不可從而大體之當從之意 解云 從其大體 心之官也 從其小體 耳目之官也 只此便多却從其四字矣 下文始結之云 此二者皆天之所以與我者 但當先立乎其大者 則小者不能奪耳 此章內先立乎其大者一句方是說用力處 而此句內立字尤爲要切 據今所解 全不曾提掇著立字 而只以思爲主 心不立而徒思 吾未見其可也 於是又有君子徇理 小人徇欲之說 又有思非汎而無統之說 又有事事物物皆有所以然之說 雖有心得其宰之云 然乃在於動而從理之後 此由不明孟子之本意 是以其說雖漫而愈支離也 七八年前 見徐吉卿說曾問焦某先生爲學之要 焦云 先立乎其大者 是時熹說此章正如此解之支離 聞之惘然 不解其語 今而思之 乃知焦公之學 於躬行上有得力處
反身而誠 解云 反身而至於誠 則心與理一云云
按此解語意極高 然只是贊詠之語 施之於經 則無發明之助 施之於己 則無體驗之功 竊恐當如張子之說 以行無不慊於心解之 乃有落著 兼樂莫大焉 便是仰不愧 俯不怍之意 尤慤實有味也 若只懸空說過 便與禪家無以異矣
所過者化 所存者神 解中引程子張子之說 合而爲一
按此程子張子之說自不同 不可合爲一說 程子云 所過者化 是身所經歷處 所存者神 所存主處便神 是言凡所經過處人皆化之 而心所存主處 便有鼓舞風動之意 不待其居之久而後見其效也 經歷及便字尤見其意 又引綏來動和及易傳革卦所引用 亦可見也 今以孟子上下文意求之 恐當從程子爲是 張子說雖精微 然恐非本文之意也
君子不謂命也
此一章前一節文意分明 然其指意似亦止爲不得其欲者而發 後一節古今說者未有定論 今讀此解 說智之於賢者聖人之於天道兩句極爲有功 但上三句却似未穩 蓋但云出於自然 則只似言性 而非所以語命矣 頃見陳傅良作此論 意正如此 方以爲疑 不知其出於此 豈嘗以是告之耶 熹竊謂此三句只合依程子說爲稟有厚薄 亦與下兩句相通 蓋聖與賢則其稟之厚 而君子所自以爲稟之薄而不及者也 然則此一節亦專爲稟之薄而發
可欲之謂善 有諸己之謂信
竊詳所解 熹舊說亦然 自今觀之 恐過高而非本意也 蓋此六位爲六等人爾 今爲是說 則所謂善者 乃指其理而非目其人之言矣 與後五位文意不同 又舊說信爲自信之意 今按此六位皆它人指而名之之辭 然則亦不得爲自信之信矣 近看此兩句意思似稍穩當 蓋善者人之所同欲 惡者人之所同惡 人之爲人 有可欲而無可惡 則可謂之善人矣 然此特天資之善耳 不知善之爲善 則守之不固 有時而失之 惟知其所以爲善而固守之 然後能實有諸己而不失 乃可謂之信人也 張子曰 可欲之謂善 志仁則無惡也 誠善於心之謂信 正是此意 不審高明以爲如何 此說信字未是 後別有說
前書所示孟子數義皆善 但條理字恐不必如此說 蓋此兩字不能該得許多意思也 始條理終條理 猶曰智之事聖之事云爾 條理字不須深說 但金玉二字却須就始終字上說得有來歷乃佳耳 易之說固知未合 亦嘗拜稟 姑置之 以俟徐考矣 大抵平日說得習熟 乍聞此說 自是信不及 但虛心而微玩之 久當釋然耳 若稍作意主張求索 便爲舊說所蔽矣 此書近亦未暇卒業 却看得周禮儀禮一過 注疏見成 却覺不甚費力也 亦嘗爲人作得數篇記文 隨事頗有發明 卒未有人寫得 俟送碑人回 附呈求敎也 心氣未和 每加鐫治 竟不能悛 中間嘗覺求理太多而涵泳之功少 故日常匆迫而不暇於省察 遂欲盡罷生面功夫 且讀舊所習熟者而加涵養之力 竟復汩沒 又不能遂 大抵氣質動擾處多難收歛也 且如近讀二禮 亦是無事生事也
蘄州文字亦嘗見之 初意其說止是不喜人闢佛而惡人之溺於佛者 旣而考之 其間大有包藏 遂爲出數百言以曉之 只欲俟伯諫歸而示之 未欲廣其書也 近年士子稍稍知向學 而怪妄之說亦復起 其立志不高 見理不徹者 皆爲所引取 甚可慮也 間嘗與佛者語 記其說 亦成數篇 後便幷附呈次
昨夕因看大學舊說 見人之所親愛而辟焉處 依古注讀作譬字 恐於下文意思不屬 據此辟字只合讀作僻字 蓋此言常人於其好惡之私常有所偏而失其正 故無以察乎好惡之公 而施於家者又溺於情愛之間 亦所以多失其道理而不能整齊也 如此讀之 文理極順 又與上章文勢正相似 且此篇惟有此五辟字 卒章有辟則爲天下僇 辟字亦讀爲僻 足以相明 但畏敬兩字初尙疑之 細看只爲人所懾憚 如見季子位高金多之比云爾 此說尤生 不知尊意以爲如何 然此非索而獲之 偶讀而意思及此耳 近年靜中看得文義似此處極多 但不敢一向尋求 而於受用得力處則亦未有意思耳
장경부에게 보내며 계사년 논어설을 논함
【해제】1177년(宋 孝宗 淳熙4년, 丁酉) 주희 48세 때의 편지이다. 이 해에 四書集注와 四書或問이 완성되었다.
배우고 또 익힌다.(學而時習之)
정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때때로 다시 실마리를 찾아낸다”고 본문에는 ‘생각하고 풀어낸다(思繹)’이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 인용한 것에서는 ‘생각한다(思)’는 글자를 ‘실마리를 찾다(紬)’는 글자로 바꾸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배우는 사람은 의리에 있어서 때때로 단서를 찾고 그것을 함영해야 한다. ‘배우고 또 익힌다’는 이 구절은 논어의 첫 번째 구절이다. 구절 중에 다섯 글자는 虛하고 실하고, 가볍고 무거운 차이가 있지만 글자마다 모두 의미가 있으니 한 글자라도 없애면 안 된다. 읽는 사람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되고, 말하는 사람은 또 간략하게 해서는 안 된다. ‘배운다’는 것은 본받는 것이니,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아는 사람을 본받아서 알기를 구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을 본받아 할 수 있기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而’ 는 위 구절을 받아 아래로 이어주는 말이다. ‘時’ 라는 것은 그렇지 않은 때가 없는 것이다. ‘習’ 이라는 것은 거듭 익히는 것이다. ‘之’ 라는 것은 알게 된 이치․할 수 있게 된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이미 배웠으면 또 때때로 알게 된 이치와 할 수 있게 된 일을 익혀야 한다. 대개 사람으로 배우지 않으면 마땅히 알아야 할 이치를 알 수 없고, 마땅히 할 수 있어야 할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배우되 익히지 않으면 비록 그 이치를 알고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한 매끄럽지 못하여 스스로 안심할 수 없게 된다. 익히되 때때로 하지 않으면 비록 익힌다고 하더라도 그 공부에 간격이 있어, 한결같지 않으니 끝내 익힌 공이 이루어질 수 없다. 성인이 비록 간략하게 말씀하셨지만 그 많은 의미는 깊고 엄밀하여 이와 같이 끝이 없다. 무릇 해석하는 자는 비록 반드시 이렇게 자세하게 분석하지 않는다 해도 모름지기 많은 뜻을 포함할 수 있어야 비로소 완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해석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學而’ 두 글자에 대해서 아주 소략하여 다만 의리를 찾아낸다는 말로 時習 의 의미를 해석하였습니다. 대저 사람이 배울 줄을 모르면 어찌 의리의 소재를 알아 실마리를 찾겠습니까? 또 반드시 “의리의 단서를 찾아내어 그것을 함영한다”고 말하면, 또 누에고치에 실마리가 있는 것처럼 의리 가운데 따로 다른 것의 단서가 있어, 실마리를 찾아내고, 또 그것을 따라 함영해야 하는 것처럼 되어버립니다. 말의 뜻이 번거로워서 쓸데없이 배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혀, 이것을 집었다가 저것을 놓게 되니, 장차 ‘揠苗助長’의 근심이 있게 될 것이니 사람들에게 入德의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쁘다(說)’는 것은 저절로 마음이 개운한 것이다. 정자께서 다만 마음에 통하는 것이 기븐 것(說)이라고 하셨는데, 비록 말이 바로 ‘說’ 자를 해석한 것은 아니지만 ‘說’자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이제 이미 정자의 말씀을 기술하고 또 이 구절을 더하는 것은 중복되는 것 같습니다. 또 ‘개운하다(慊)’는 것은 일을 행함이 이치에 맞아 중심이 만족한다는 의미이니 그것을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 같습니다.
효와 공손함은 仁을 행하는 근본이다.(孝弟也者 爲仁之本與)
孝弟로부터 시작하여 仁을 행하는 道는 생겨나는 것이 끝이 없다. 유자의 생각을 살펴보면, 정자의 설은 바로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며,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 인을 행하는 도가 아님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것은 근본이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은 말단입니다. 근본이 선 후에 말단이 따라 나오므로 효제가 서야 인을 행하는 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금 이 해석은 말의 뜻은 고원하지만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그 사랑이 비록 차등이 있지만 그 마음은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장의 ‘仁’ 자는 바로 사랑의 이치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일 뿐이니, 역전에서 말하는 “한쪽만을 말하면 하나의 일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자는 여기에서 다만 효공손함을 집안에서 행하고 난 후에야 仁과 사랑이 사물에까지 미친다고 하셨으니 착실하게 일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그 말이 비록 가깝지만 가리키는 것은 멉니다. 이제 마음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는 것으로 형용하셨는데, 포함하는 것은 넓기는 하지만 아마도 본 뜻이 아닌 듯하니 특별히 의미를 깨닫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한다.(巧言令色)
대저 군자의 修身은 언어와 용모에서 삼가서 마땅히 자신에게 있어야 할 실질적인 것을 체득하는 것이 仁을 구하는 요체이다. 이 의미는 매우 좋습니다만 모름지기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이 말이 바야흐로 가리키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발단되는 것이 없이 갑자기 말을 하면 경전에 해당되는 것이 없어 오히려 그 본의를 어지럽히게 됩니다. 만약 역전 가운데 경전 외의 뜻을 드러내 밝히려고 한다면 또한 반드시 문답을 하여 그것을 제기해야 합니다. 마땅히 이렇게 해야 바야흐로 節次와 내력이 있고, 또 위 글에서 경전을 해석한 바른 뜻과 서로 통하게 됩니다.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을 반복하는 사이에 의리가 더욱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이 충실하지 않다.(爲人謀而不忠)
자신에 처하는 것이 끝까지 하지 않은 것이다. ‘처하다(處)’ 자가 마땅치 않습니다.
천승의 나라를 이끌다.(道千乘之國)
자신에게 진실되게 하고, 밖으로는 백성을 부리는데 때에 맞추어서 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해당하는 것이 없으니 아마도 필요없는 글자인 것 같다.
자신만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毋友不如己者)
다만 자기와 같은 사람을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나은 자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다만 자기만 못한 자를 친구로 삼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반드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벗으로 삼으라는 뜻을 나타내었다. 지금 ‘자기와 같다(如己)’ ‘자기보다 낫다(勝己)’는 것으로 두 등급으로 나누면 잘못된 것이다. 그 말과 뜻이 또 성인의 말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 같다. 해석 중에 이러한 것들이 매우 많으니 작은 병통이 아닌 것같다.
상례를 정성껏 하며 제사를 정성껏 지낸다.(愼終追遠)
‘愼’이라는 것은 다만 잊지 않는다는 것만이 아니라 참됨과 믿음으로 마쳐주는 것이다. ‘追’라는 것은 다만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아니라 오래도록 신실하게 한다는 것이다. ‘愼’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하고, ‘追’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만약 예전에 이러한 말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 말을 가져다가 그것을 대신했을 것입니다. 만약 애초에 이 말이 없었다면 이 두 구절도 마땅한 것이 아닙니다. 또 아래 글에서 두 구절로 해석한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무릇 일이 이와 같으면 덕을 기르는 것이 두터워지는 까닭이 된다. ‘상례를 정성껏 하며, 제사를 정성껏 지낸다(愼終追遠)’는 것은 본래 천리의 당연함이고, 인심이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으면 그 덕이 저절로 두터워지고, 백성이 감화됩니다. 지금 ‘기른다(養)’는 글자를 쓴 것은 이것을 하는 까닭인데 이것으로 덕을 기르고자 하면 그 뜻은 다만 신종추원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텁다는 것은 덕이 모이는 것이니, 악이 이로 말미암아 없어지는 것이다. 이 말은 경전에 해당되는 것이 없고,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계시면 그 뜻을 본다.(父在觀其志)
뜻(志)이라는 것은 하고자 하지만 행할 수 없는 것이니, 효자가 깊은 사랑에 이르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이 장은 예전에 두 가지 설이 있었는데, 하나는 아들 된 사람은 아버지가 계시면 그 아버지의 뜻을 보고 그것을 따를 수 있어야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의 행을 보고 그것을 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 또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으면 효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들이 어진가 그렇지 않은가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그 아버지가 계신 때에는 그 행하는 일의 득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만 그 뜻이 삿된가 바른가를 본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신이 집안을 계승라고 서업을 잇는 책임을 맡게 되니 마땅히 그 행하는 일의 득실을 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 뜻과 행동이 모두 이치에 합당하면 3년 동안은 또 아버지의 도를 바꾸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설은 같지 않은데, 저는 항상 마땅히 앞의 설을 따라야 하고 그래야 어조가 순조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뒤의 설과 같다면 위 글에 뜻과 행위의 옳고 그름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마지막 구절에서 “효자라고 할 수 있다”는 말로 결론지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이 해석을 살펴보면 대개는 뒤의 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계시다고 뜻이 행해질 수 없다는 것으로 그 깊은 사랑을 볼 수 있다는 것은 先儒들의 舊說의 뜻의 아닙니다. 경전의 글에는 다만 하나의 ‘志’ 자만 있는데 이는 삿됨과 바름, 얻음과 잃음을 다 통괄하는 것인데, 어떻게 다만 뜻은 그것을 하고자 하지만 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으며, 또 어찌 그 깊은 사랑에 이르렀다는 뜻을 볼 수 있습니까? 삼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뜻이 애통하여 그것에 의문을 가질 틈이 없다는 것이다. 또 삼년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그 항상됨을 말하는 것이니 바꿀 수 있어도 아직 바꾸지 않는 것이다. 이 구절의 말은 尹씨가 말하는 “효자의 마음은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만이 가장 정성스럽고 절실합니다. 그러나 游씨가 말하는 “마땅히 고쳐야 하는 것이 있어도 아직 고칠 수 없는 것이다”라는 것은 사리를 짐작하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이 해석에서 말한 “뜻이 애통하여 그것에 의문을 가질 틈이 없다‘는 것은 대개 謝씨의 설인데, 그 의미가 매우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마 말하는 것이 너무 고원하여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일의 是非와 可否는 날마다 눈앞에 접하는 것이 용납하지 않고 묻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군자가 喪에 처하여 애통함과 슬픔이 비록 심하더라도 보는 것이 분명하지 않고, 듣는 것이 똑똑하지 않고, 행하는 것이 바르지 않은 것은 애통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군자가 병통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또한 마땅히 이와같이 미혹하고 어리석어서는 안됩니다. 이른바 ”바꿀 수 있어도 아직 바꿀 수 없다“는 것은 游씨의 설에서 나온 것입니다만 또 그 본래의 뜻을 잃었습니다. 대개 그(유씨)가 말하는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이치에 가까워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뜻이 하고자 하는 것을 혹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두 가지의 사이에서 그 의미의 두텁고 엷음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이 경전에서 말하는 것은 또한 아버지라고 해도 모두 어질 수는 없고, 모두 어리석을 수도 없으므로 상하에 통하는 말이니, 중인으로 표준을 삼은 것일 뿐입니다. 지금 해석에서 ”삼년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그 항상됨을 말하는 것이다“는 말도 옳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것 항상됨을 말하는 것이라면 아버지가 행하는 것을 자식이 마땅히 종신토록 지켜야 한다는 것이니, 어찌 다만 삼년동안만을 바꾸지 않는 것을 효라고 했겠습니까?
믿음이 의에 가깝다.(信近於義)
공손함(恭)이란 것은 모습이 공손함을 말한다. 또 말했다. 공손함이 실제보다 지나치면 치욕을 초래하는 까닭이 된다. 공손함이 禮에 가깝지 않으면 절도가 없고 지나치게 비굴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모양이 공손한 것인데 실제보다 지나치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 모습이 공손하지만 실제보다 지나쳐도 치욕을 가져오는 까닭은 아닙니다. 말을 실천할 수가 없으면 행할 수가 없으니, 장차 그 믿음을 잃는데 이를 것이다. 혹 그 실천할 수 없는 말을 지키고자 한다면 이치를 거슬러서 도리어 믿음을 해칠 것이다. 이 몇 구절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으니, 아마 말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를 다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본의는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이 있고자 하면서 의를 헤아리지 않는 자는, 그것을 실천하면 義에 해가 되고, 실천하지 않으면 믿음에 해가 되어, 진퇴 사이에서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것이 의에 가까운지 헤아려본 후에 말을 해야 하니, 그래야 그 말한 것이 후에 실천할 수 없는 걱정이 없게 됩니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렇게 말해야 바야흐로 분명해 질 것입니다.
도가 있는 곳에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바르게 한다.(就有道而正焉)
세상을 달리하여 구하라는 글이다. 본문에는 이러한 의미가 없으니 아마도 잘못된 설인 듯하다. 혹 꼭 그렇게 말하고자 한다면 따로 한 구절을 만들어서 묻는 것으로 시작해야 옳다.
가난하되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한다.(貧而樂 富而好禮)
좋은 도에 나아가 날로 새로워지는 공부가 있으면 그 의미가 다함이 없다. 이 말은 실속이 없습니다.
시 삼백 편(詩三百)
그 말이 모두 측은하고 슬프게 여기는 공변된 마음에서 나왔고, 다른 것이 있지 않다. ‘측은하고 슬프다’는 말과 ‘공변된 마음’이라는 글자는 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은 다른 것이 있을까 의심하여 그것을 해석하는 말이지만 또한 범범합니다. 시는 人情에서 나왔으니 다른 것이 있다는 혐의는 없는 듯합니다. 만약 의심이 있다면 또한 어떤 일인지를 지적해야지 다만 ‘다른 것이 있다’는 두 글자로 개괄해서는 안됩니다.
어김이 없다(無違)
살아 계시면 예로써 섬기고, 공경으로 봉양하며,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지내되 오로지 참되고 믿음 있게 해야 한다. 예로써 제사 지내며, 공경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 공경만을 말하면 사랑이 부족하고, 참됨만을 말하면 文飾이 부족합니다. ‘忠’자는 분명하지 않은 것이 있으나, 공경과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아마 제사의 예를 다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듯 합니다. 대개 성인은 말이 지극히 간략하지만 포함하는 것은 지극히 넓으니, 조목조목 들어서 자세하게 설명하여도 아마 다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인데, 하물며 한마디 말로 그것을 다하려고 하십니까?
십 세 후를 알 수 있다.(十世可知)
秦氏 嬴이 선왕의 도를 폐하고부터는 하나같이 사사로운 뜻에서 나온 행위였으나, 왕자가 일어나서 계승할 때는 손익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따르고(因) 바꾸는(革) 마땅함을 다 할 뿐이다. 이 한 구절의 의미는 매우 치우치고 기상이 편협하여, 성인의 公平正大하고 事理를 따르는 뜻이 없습니다. 또 이렇게 말하면 성인의 말씀은 고금의 변화를 다하기에 부족하니, 이른바 ‘백세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이미 증험되지 못하였습니다. 일찍이 이 구절의 뜻을 궁구했는데, 오직 古注의 馬씨만이 그것을 얻었습니다. 何晏이 비록 그 설을 취했지만 다시 자신의 생각으로 어지럽혀 후에 여러 사람들이 대대로 그 말을 익혀서 오류가 이리저리 옮겨 다녀 잘못이 더욱 더 깊어졌습니다. 근세에 이르러서 吳才老와 胡致堂이 비로소 그 설을 얻었으니 가장 정밀하고 타당합니다. 오씨의 설은 續解와 考異 두 책이 있는데, 고이 가운데 이 장에 관한 설은 더욱 상세하니,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혹 취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대개 이 두사람의 설은 다른 것도 옳은 곳이 많으니 그것이 뒤에 나왔다고 해서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 귀신이 아닌데 제사지내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다.(非其鬼而祭之 諂也)
그 귀신이 없으면 한갓 아첨하는 것일 뿐이다. 성인의 뜻은 그 귀신이 아닌데 제사지내는 것이 아첨이라는 것을 허물하는 것이지, 그 귀신이 없는데 제사지내는 것이 쓸데없는 아첨이라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아첨은 본래 악덕이니 어찌 그 귀신이 있고 없고를 논하겠으며, 쓸데없고 있고를 논하겠는가?
韶樂과 武樂
성인의 마음은 애초에 두 마음이 없으니, 겸손함(으로 천하를 얻은 것)과 정벌(로 천하를 얻은 것)을 때에 맞추어 할 따름이다. 이 이치는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름답고 선하다(美善) 두 글자를 해석하는데서 이 말을 했으니, 순임금과 무왕의 마음은 모두 극진히 아름답지만, 무왕의 일은 선함을 다하지 않은 것이 있으므로 ’아름답다(美)는 글자는 도리어 중하고, ‘선하다(善)’는 글자는 도리어 가벼워서 순서가 없는 듯합니다. 대개 아름답다는 것은 소리의 모양이 성한 것이니, 그 지극한 다스림의 공으로 말한 것이다. 선하다는 것은 지극한 아름다움의 실질이니, 그 덕과 일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덕으로 말하면 성대로 하고, 성을 거스르는 것이 비록 다름이 있다고 해도 공을 이루는 것은 한가지다. 일로 말하면 겸손하고 정벌하는 것이 비록 다름이 있다고 해도 각각 그 옳은 것은 마땅히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마음은 일찍이 같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어진 사람이라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싫어할 수 있다.(仁者能好人能惡人)
어진 사람이라야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 이 말씀은 거꾸로 된 것 같으니 마땅히 마르게 해야 합니다.
밥 먹는 동안이라도 인을 어기지 않는다.(無終食之間爲仁)
밥 먹는 동안이라고 인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있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이렇게 하는 것이 主一의 공부이다. 이 두 구절이 가리키는 뜻이 분명하지 않고 말의 맥락이 일관되지 않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重複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했습니다만 그것을 생각해보니 아나 위의 구절은 덕을 이루는 일이고, 아래 구절은 공부를 하는 절목인 듯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마땅히 아래 구절은 ‘그 마음을 보존하는 이유이다.’라고 고쳐야 윗 구절과 서로 호응이 되고, 그것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성인의 본의는 아닌 듯 합니다.
주로 쫒는 것도 없고, 즐기지 않는 것도 없다.(無敵無莫)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단은 주로 쫒는 것도 없고 즐기지 않는 것도 없으나 의를 쫒을 줄을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대저 이단이 의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주로 쫒는 것과 즐기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단은 주로 쫒는 것도 있고, 즐기지 않는 것도 있는 것은 대개 정자의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주로 쪼는 것과 즐기지 않는 것이 없으면서 의를 알지 못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은 사씨의 설입니다. 말이 비록 다르지만 각각 가리키는 것이 있으니 갑자기 이것으로 저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선후를 논한다면 바로 처음에 주로 하는 것도 없고 즐기기 않는 것도 없어서 의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으므로, 그 사사로운 뜻으로 가부를 주장하는 것이니, 도리어 주로 쫒는 것과 즐기지 않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미 주로 쫒는 것과 즐기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의가 있는 곳을 찾지 않고 끝내 한쪽으로 치우진 설에 빠지게 됩니다.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라.(求爲可知)
만약 자신이 알아줄만한 실질이 있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장차 그것을 알아줄 것이니 또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것이 어찌 군자의 마음이겠는가? 이 말씀은 적당치 않습니다. 만약 “이른바 알아줄만한 사람이 되기를 힘쓴다는 것은 또한 그 마땅한 것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지, 눈에 띄는 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소문이 들리기를 힘쓴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 옳습니다.
一以貫之
도는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니, 숨김과 드러남, 안과 밖, 근본과 말단의 지극함을 갖추고 있다. 만약 숨김과 드러남, 안과 밖, 근본과 말단의 지극함이 없다면 이른바 일관이라는 것이 또한 어찌 행해지겠는가? 이 의미는 매우 좋습니다만 그 말은 辯論反覆에서 나온 나머지인 듯 합니다. 지금 단서가 없이 제기하면 타당함이 없이 도리어 번잡해집니다. 만약 “성인의 마음은 천하사물의 이치를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니, 비록 안과 밖, 근본과 말단, 숨김과 드러남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찍이 一以貫之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말이 순조롭고 조리가 있을 것입니다.
말은 어눌하게 하고자 한다.(欲訥於言)
말하는데 어눌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천명이고, 행위에 민첩하고자 하는 것은 천직을 섬기는 것이다. 말과 행위는 본래 당연히 이와같아야하니 천명을 두려워하고 천직을 섬겨 그러하다는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지금 이 말과 같다면 말과 행위를 작게 여기고 반드시 천을 크다고 칭하는 것입니다. 또 말과 행위의 구분도 온당하지 않으니 행위에 민첩하고자 하는 것은 천명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까?
낮잠을 자다.(晝寢)
앎이 자세하다. ‘抑’자는 잘못된 것 같다.
臧文仲
세상이 바야흐로 작은 총명함을 가지고 지혜롭다고 한다. 작은 능력이라는 것은 장문중을 말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季文子
그 생각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다. 이 말씀은 좋지 않습니다.
안연과 계로가 모시었다.(顔淵季路侍)
내가 마땅히 할 것을 할 뿐이니 공로를 어찌 과장하겠는가? ‘공로를 과장한다(施勞)’는 것은 구설에는 모두 ‘施’자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勿施於人)’고 할 때의 施 자로 보았고, ‘勞’자는 힘든 일로 보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면 말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미루어 살펴보면, ‘施’자를 과장의 의미로 보아야 하고, ‘勞’자는 功勞의 勞 자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의미는 통할 수 있다고 하지만 ‘施’자가 이렇게 쓰이는 경우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말하면 다시 제세히 고증하여 명백하게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公理를 보존하는 것이다. 이말 또한 좋지 않습니다.
바탕이 문채보다 나으면 야하다.(質勝文則野)
잘못하여 관청의 문서나 꾸미는 관리가 되기 보나는 차라리 야한 사람의 야가 됨이 나은가? 이 것은 양씨의 “문서를 꾸미는 관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야한 것이 낫다”는 의미를 쓴 것입니다. 그러나 저 양씨 또한 반드시 어쩔 수 없이 치우치고 이기는 것이 있어야 한다면 차라리 이것이 낫다고 한 것일 뿐입니다. 지금 논어해에서 먼저 이것을 말하고 또 바로잡아서 中을 취하게 한다고 했으니, 이미 ‘차라리 야한 사람의 야가 됨이 낳다’고 해놓고서 또 어찌하여 반드시 ‘힘써 수양하여 그 문을 진보시켜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문리가 뒤섞이고, 앞 뒤가 모순되어 읽는 사람들이 힘써 공부할 방법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을 바로잡아서 중을 취하게 한다는 말 뒤로 옳기는 것이 마땅한 듯하니, 그렇게 하면 말이 순서가 있어 어그러짐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는 곧다.(人之生也直)
바르지 않으면 그 성을 어리석게 하니, 어두운데서 행하는 것일 뿐이다. 이 말은 좋을 듯 합니다만 위의 直 자를 이어서 상대시켜 말하려면 마땅히 欺罔의 罔이라야 합니다.
中人以下
그 이상을 자주 말하지 않는 것 역시 가르치는 것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촐하게 여겨 가르치지 않는 것 또한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대개 조촐히 여겨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이미 그만두고 다시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깨우쳐 주는 것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또한 가르치는 것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또한(亦)’이라는 것은 바른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만약 공자의 “중인 이하는 높은 도리를 논할만하지 않다(中人以下未可語上)”와 같은 것은, 성과 천도와 같은 지극히 높은 도리를 자주 말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치에 나아가서 자신에게 절실한 실질적인 일을 말하는 것도 역시 가르치는 방법이 이와 같은 것이니, 조촐하게 여겨 가르치지 않는 것이 전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을 그만둠으로써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 또한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신 것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그 인품의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성과 천도와 같은 지극히 높은 도리를 다 말해준 후에야 비로소 가르쳤다고 할 수 있다는 말 같습니다. 재질이 그렇지 않으면 곧 그만두고 가르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치를 심하게 해치는 것이니 성문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법이 아닙니다. 또 이 한 구절은 위 글의 뜻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아래 글의 의미도 엽등하게 하니 기상이 좋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 이상을 자주 말하지 않는 것은 점차 나아가는 것이니 배우는 사람이 절실하게 묻고 비근하게 생각하여 스스로 얻게 하는 것이다”라고 고치시면 위 글과 아래 글의 의미가 이어져서 기상이 병통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제가 편찬한 集注에 이 글을 써 넣었습니다.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敬鬼神而遠之)
멀리하고 공경하지 않는 것은 업신여기는 것일 뿐이다. ‘업신여기다(誣)’는 글자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知者는 動하고, 仁者는 고요하다.(知仁動靜)
지의 체는 동이지만 정이 그 가운데 있고, 인의 체는 정이지만 동이 그 가운데 있다. 이 말씀을 매우 정밀하여, 대개 周子께서 남기신 太極의 의미와 같으니, 이것도 집주의 여러 설의 뒤에 써 넣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것을 읽어보니 너무 급박한 병통이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대략 이유를 붙여서 별도로 한 절을 만들어 그 의미를 드러내 밝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저 이 해석의 병통은 너무 급박하여 조화로운 여유가 없다는 것일 뿐입니다.
孔子께서 南子를 보시니...(子見南子)
衛國을 지나가면 반드시 왕비를 보아야 한다. 공자께서는 위나라에 가장 오래 머물었으므로, 다만 위나라를 지나갔다고만은 말할 수 없습니다. 또 왕비를 보는 것은 당연한 예이니 위나라만이 이러한 것은 아닙니다. 부자께서 위나라의 정사를 들었으니 반드시 스스로를 임금의 신하로 여기셨다. 이 이치는 실로 그렇습니다만 그 사이에 약간의 곡절이 있을 듯 합니다. 다만 이렇게 말하면 또한 거칠고 급작스러워서 두려워할 만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博施濟衆)
이것으로 인을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인의 도는 이렇게 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다만 타당하지 않다고만 말하고, 그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성인의 뜻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먼저 인을 말하고, 다음에 인의 방법으로 결론지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다른 사람을 이르게 하는 것은 仁이고, 자신을 미루어서 남을 이해하는 것은 恕이니, 본래 이 두 가지 일은 하나에 근본을 두고 먼저 말하고 뒤에 결론짓는 것은 아닙니다.
述而不作
성인의 자처함은 이와같이 平易하다. ‘平易’라는 두 글자의 뜻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노팽과 공자는 같은 것을 섬겼으나 情性과 功用은 달랐다. 공자께서는 요순보다 어지시니 노팽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다 알아 스스로 이렇게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물러나 처하지 않고, 도리어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 견주시니, 또 그 말씀의 기운이 매우 겸양하시고, 또 성실함에서 드러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이것이 지극한 성덕이 되는 까닭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자는 마땅히 그 깊고 은미한 뜻을 드러내어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반복하여 깊이 완미하게 하고, 성인의 기상을 알게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헛되고 교만하고 오만하며 거짓된 것을 없애는데 힘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제 다만 ‘평이’ 두 글자로 말을 막아 버리면 끝내는 이 말을 소홀히 하게 되어, 성인은 앞에서 모을 굽혀 조심하고 겸양하여 피하는데, 우리는 뒤에서 옷소매를 걷어 올려 팔짱을 끼는 방자한 모습으로 있게 됩니다. 또 어찌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인이 진실로 겸양함에 처하셨는가 하고 의심하지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이 해석은 말 이외의 뜻을 드러내는데 많이 힘쓰다가 도리어 본문의 의미를 어그러뜨리는 것을 알지 못하였으니, 병통이 작지 않습니다.
묵묵히 알다.(黙而識之)
묵묵히 아는 것은 말의 의미가 미칠 수가 없으니 대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가운데서 삼연한 것이다. 또 세상의 묵묵히 안다고 말하는 자는 상상하고 헤아려서 놀랍고 괴이하고 황홀하여 성문의 실학이 실천하는데서 귀하고, 은미한 가운데서 진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묵묵히 아는 것은 다만 논변을 하여 사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 侯子가 摠老를 논변하는 설과 같을 뿐입니다. 대개 이것은 성인의 겸사이니 갑자기 이렇게 심원한 곳에까지 말할 것은 아닙니다. 또 이 말은 비록 실천에서부터 말하지만 그 말의 기세는 놀랍고 괴이하고 황홀하다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한가히 거하심에...(子之燕居)
성인의 목소리와 용색이 나타내는 것은 그림자가 따라 움직이는 것과 같다. 목소리와 용색은 형상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같은 것입니다. 형상에 그림자는 비록 서로 따른다고 하지만 그러나 오히려 두 가지 것입니다. 이것으로 저것을 비유하면 세밀하게 하고자 하여도 오히려 우활하게 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용색이 나타내는 것도 역시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어찌 성인만이 그러하겠습니까?
도에 뜻을 두며...(志於道)
예라는 것은 나의 덕성을 기르는 것일 뿐이다. 위 네 구절에 대한 해석은 매우 불친절하지만, 이 구절은 더욱 병통이 있습니다. 대개 예라는 것이 비록 말단의 절목이지만 또한 사리의 당연함이니, 각각 자연의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藝에서 노닌다”는 것은 다만 일을 따르고 사물에 응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니, 각각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이치에 어긋나지 않으면 실로 나의 덕성이 길러질 수 있지만 처음부터 덕성을 기르고자 기약한 것은 아닙니다. 이 해석에서 말하는 것은 달갑지 않은 비근한 의미에 근원을 두고 있으므로 예에서 노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이러한 말로 스스로 넓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張子의 말을 살펴보면 “예라는 것은 날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곧 藝는 마땅히 있어야하는 것이지, 반드시 그 덕성을 기를고 난 다음에 노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른 고기 한 묶음 이상을 가지고 온 자는...(自行束脩以上)
말의 기운과 용색의 사이에서 무엇이든 깨우쳐주지 않음이 없는 것은 실로 지난날의 잘못을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깨우치다(誨)’는 글자의 뜻은 아마 말의 기운과 용색의 사이에 미치지 않는 듯하고, 또 지난날의 잘못을 남겨 두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도 없는 듯합니다. 대개 “나는 숨기는 것이 없다”는 것은 몇몇 제자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한 말이고, “지난날의 잘못을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은 문인들이 공자께서 互鄕의 童子를 만난 것을 의심하므로 말씀하신 것으로, 모두 평소에 항상 하는 말이 아니니, 여기에서 이유도 없이 언급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禮로 오는 자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반드시 스스로 말의 기운과 용색에서 얻기를 기다리고, 또 지난날의 잘못을 남겨두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성인에 物來順應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 한 장 가운데서 두 절의 의미를 말해버리면 기가 궁색하고 의미가 짧다는 것을 더 깨달을 것입니다.
분발하지 않으면 그를 가르쳐주지 않고, 깨달은 이치를 말로 표현하고자 애쓰지 않으면 그를 발하게 해 주지 않는다.(憤悱)
분발하는 것은 말의 가운데 보이고, 말로 표현하고자 애쓰지만 하지 못하는 것은 안색에 나타난다. 이 두 글자는 先儒의 설과 정반대되니 다른 근거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시기를...(子謂顔淵)
그 쓰는 것이 어찌 행하는데 뜻을 두겠는가? 그 버리는 것이 어찌 그것을 감추는 데에 뜻을 두겠는가? 성인은 실로 기필하는 뜻이 없으니, 그리하여 또한 사사로운 뜻으로 기필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때를 구하고 물에 미치는 뜻을 황황하여 버리지 않으면 어찌 그것을 행하는 데에 뜻을 두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버리면 간직하는 데에 이르면 그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버리면 오히려 간직하는데 뜻을 두지 않는다고 말하면 또한 지나칩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 공자와 안연의 마음은 막연히 물에 응하는데 뜻이 없어서, 밀고 난 후에 행하고, 끌어당긴 후에 가는 것이 불교와 도가가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인이 이단과 다른 것은 바로 여기에 있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자는 여기에서 말씀하시기를 “쓰고 버리는 것이 나에게 있는데 행하고 간직하는 것이 어찌 등용되는 데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그 말의 중정하고 은밀함을 상세히 살펴 교만하고 격하며 지나치게 높은 말을 하지 않았으니, 말의 뜻이 뛰어나서, 스스로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니, 그 유래한 바가 멉니다. 정자께서는 또 “즐거이 행하고, 근심스럽게 떠나면 근심과 즐거움이 모두 도이니, 나의 사사로움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이 이것과 비슷하니 또한 완미해볼 만합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행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子行三軍誰與)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고, 술책을 쓰기를 좋아하여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고인이 천하의 사업을 이루고서 잃지 않은 까닭이니, 이렇게 하면 어찌 삼군만을 행할 수 있겠는가?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고, 술책을 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본리 삼군을 행하기 위하여 발하는 것이므로 삼군을 행하는 데서 보면 더욱 정밀합니다. 대개 성인의 말씀은 비록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에 임하고, 물에 임함에 극히 작은 것에서도 또 저절로 쉽게 할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만약 이 해석과 같이 말한다면 정자께서 ‘종일건건하고 차츰차츰 미루어 올라가야 한다’고 꾸짖으신 병통이 있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것은. . .(子所雅言)
성과 천도와 같은 것 역시 이것을 도외시하고 어찌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실로 그렇지만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자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子不語)
어지러운 것을 말하면 뜻을 손상시킨다. ‘뜻을 손상시킨다(損志)’ 두 글자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주살을 쏘되 잠자는 새는 쏘지 않으셨다.(弋不射宿)
차마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않으셨다. ‘위험한 곳에 가다(乘危)’ 두 글자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사치하면 겸손하지 않다.(奢則不孫)
성인의 이 말씀은 열심히 배우지 않는 자는 검약해야할 뿐이라는 것이다. 성인이 사치함의 폐해를 매우 싫어하여 차라리 검약으로 잃는 것을 취하겠다는 것이니, 그 열심히 배우는 사람이 검약하는 것은 그 의미가 절실합니다.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은 성인보다 높은 것을 구하려고 하여, 그 말의 병통과, 마음의 병통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溫公이 揚子가 玄을 지었다고 말한 것은, 본래는 易을 밝히는 것이지, 감히 따로 하나의 책을 지어서 역과 겨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금 이 책을 읽어보면 비록 이름은 논어라고 말한 것이지만 그 실체를 살펴보면 거의 논어와 겨루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 이것이 매우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曾子가 병이 들었는데, 제자를 불러. . . (曾子有疾 召門弟子)
형체는 또 상할 수가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천성은 상할 수가 있는가? 이 또한 지나치게 고원한 말이니, 증자의 본 뜻이 아닙니다. 또 마땅히 본문의 뜻을 드러내 밝혀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형체를 상하지 않게 보존하여 마음을 다하는 것이 증자께서 정작 하고자 하는 뜻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또 천성도 어찌 상할 수 있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孟敬子가 문병을 하다(孟敬子問之)
죽으려고 할 때 말이 선한 것은 사람의 성이 그러한 것이다. 이 말씀은 너무 간략하여 거의 알 수가 없으니 마땅히 더 상세하게 해야 할 듯합니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예로 움직이는 것이다. 안색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바르게 하여 거짓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말에 어떤 것이 있는 것이다. 몸을 움직임에는 거칠고 거만함을 멀리 할 수 있고, 안색을 바르게 함에는 참되고 믿음을 가까이 하고, 말을 함에는 비루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뜻을 멀리해야 한다. 이 말은 대개 사씨에게서 나왔는데 글의 뜻을 구하면 타당하지 않은 것이 있으나, 의리로 보면 더욱 병통이 있습니다. 이 글의 의미는 다만 군자가 道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이 세 가지가 있으니, 몸을 움직임에는 반드시 예에 맞아야 하고, 안색을 바르게 함에는 겉으로만 엄숙함을 꾸며서는 안되며, 말을 함에는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대개 반드시 평소에 엄숙하고 공경하며 성실하고, 함양에 바탕이 있어야 비로소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몸을 움직임에는 사납고 거만함을 멀리할 수 없고, 안색을 바르게 함에는 믿음을 가까이 할 수 없고, 말을 함에는 비루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말을 멀리 할 수 없습니다. 文勢가 이와 같아야 아주 순조롭고 편합니다. 또 공부를 함에는 평일에 두텁게 쌓아나가야 그 효험이 여기에서 드러나고, 의미를 더욱 깊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명도와 윤씨의 말은 대개 이와 같은데, 오직 사씨의 말은 움직임(動)과 바르게 함(正)과 말을 함(出)을 아래 단계의 공부로 삼아 이 해석을 근본으로 합니다. 경전에서는 다만 ‘움직임(動)’이라고만 했으니, 그것이 예로써 하는지 아니지는 알 수 없고, 다만 ‘바르게 한다(正)’고만 했으니, 그것이 거짓된지 아닌지는 나타나지 않으며, 다만 ‘말을 한다(出)’고만 했으니, 그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역시 증험할 수 없습니다. 대개 부자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라는 것은 몸을 움직임에 실로 예가 아닌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만 ‘움직임(動)’만을 말했는데 난폭하고 거만함을 어찌 갑자기 멀리할 수 있습니까? 또 “안색으로는 인을 취하되 행동은 어긋난다”고 하신 것은 안색을 바르게 함에 실로 참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만 ‘바르게 한다(正)’는 것만을 말했으니, 어찌 믿음을 어찌 갑자기 가까이 할 수 있습니까? 또 “말을 하는 것이 선하지 않다”고 하신 것은 말을 하는 것이 참으로 선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만 ‘말을 한다(出)’고만 했는데 비루하고, 이치에 어긋남을 어찌 갑자기 멀리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문세로 살펴보면 모두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그 힘을 쓰는 것이 지극히 천박한데 효험을 바라는 것은 지나치게 깊으니 경솔하고 淺迫한 병통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성현의 본 뜻이 아닙니다.
넓고 굳세다.(弘毅)
넓은 것은 확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구절은 좋지 않은 듯합니다.
백성은 따르게 할 수는 있다.(民可使由之)
자득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백성들이 따르게 한다는 말일 뿐 안게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넓은 공덕을 백성들이 이름붙이지 못하는 구나.(蕩蕩乎民無能名焉)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이 그 쓰임이 세밀하다. 다만 광대함이 이름붙이기 어렵다는 것일 뿐이지 반드시 그 쓰임이 세밀함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우는 내가 허물할 수 없구나.(禹吾無間然矣)
모든 것이 그 性을 이루는 까닭일 뿐이다. 우가 행하는 것은 모두 이치의 당연한 것이니 실로 성에서 근본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 또한 그 마땅한 것을 한 것일 뿐이지 자신의 성을 이룬 후에야 그것을 한 것은 아닙니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끊었다.(子絶四)
끊어서 다시 싹트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顔子가 같은 잘못을 두 번 하지 않은 일이지 공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 이 ‘끊는다(絶)’는 글자는 ‘없앤다(無)’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끊는다(絶)’고 하고 ‘없앤다(無)’고 하지 않은 것은 그 없애는 것이 심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안연이 탄식하며 말하기를...(顔淵喟然歎曰)
예로써 나를 제약한다는 것은 은미한 가운데 지극한 이치에 머물게 한다는 말이다. 후씨가 말하기를 “文으로 넓힌다는 것은 致知格物함이고, 禮로 제약한다는 것은 克己復禮하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그 말이 가장 줗습니다. 이 해석은 말은 심오하지만 오히려 의미는 없습니다. 반드시 ‘같다(如)’고 한 것은 비로소 그 단서를 본 것을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 구절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덕을 좋아하기를...(未見好德)
보통 사람들은 그 性을 일로 삼는다. 이 말은 온당치 않습니다. 대개 性은 사람이 일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보통사람들은 다만 그 性을 기를 수 없어 일로 흐를 뿐이니, 性은 일찍이 일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말을 하면 게으르지 않은 자는...(語之而不惰)
게으르지 않다는 것은 그 말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자의 말씀은 안자가 날마다 쓰는 가운데에서 환하게 드러내 밝히시어, 이것을 게으르지 않다고 하신 것이다. ‘게으르다(惰)’는 글자는 태만하고 게으르다는 의미입니다. 해석한 것과 같이 떨어진다(墜墮)는 의미라면 글자를 본래 ‘墮’ 자로 하거나 아니면 ‘墮’와 통하게 하지, ‘惰’로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 말씀이 禪家에서 말하는 惰의 의미를 취하였으니, 제 생각은 이것이 더욱 온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헤어진 무명 옷과 도포를 입고...(衣敝縕袍)
남의 부귀를 시기하지 않고, 탐하지 않는 것 이외에도 반드시 일삼을 것이 있다. 이 말은 알 수 없습니다.
같이 배울 수 있다.(可與共學)
혹자는 勸을 가리켜 經에 반하여 도에 합하고 세상을 경계하여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였다. 세속에서 말하는 勸이라는 것은 세속을 따르고 잘못된 것에 습관이 되어 구차하게 얻는 것을 편하게 여기는 것이 공양전의 祭仲이 임금을 廢한 것과 같은 것일 뿐이니, 바로 세상을 경계하여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체의 꽃이여...(唐棣之華)
唐棣의 시는 周公이 관중과 채숙을 벤 일을 말한다. 논어에서는 시경 召南의 <唐棣>와 小雅의 <常棣>이고, 棠이란 것은 없습니다. 또 소아의 ‘常’ 자는 또 ‘당(唐)’이라는 음이 없습니다. 爾雅에서는 또 “당체는 棣이고, 상체는 栘이다”라고 되어 있으니 唐棣와 常棣는 본래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인용하신 것은 小雅의 <常棣>가 아닙니다. 또 지금 小雅 <常棣>의 시는 장구가 연속되어 이렇게 하나의 장이 별도로 있을 수는 없으니 아마 시경에 실려있지 않는 古詩일 것입니다. 논어에서는 아래에 따로 한 장을 두었는데, 위 글과 연결되지 않으니, 이것은 范씨와 蘇씨가 이미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만 현인을 생각하는 시로 여기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혹 이것이 공자께서 산정하신 소아의 시 중에 한 장이라고도 하는데, 이 또한 알 수 없습니다. 또 글의 의미로 참참고해 보면 지금 시경 중의 몇 장에 있어야 합니까?
밥이 상하여 맛이 변한 것...(食饐而餲)
성인은 하고자 하는 것이 있지 않으니, 어찌 조금이라고 여기에 더하겠는가? 이 구절은 알 수 없습니다.
삼일이 지나면 먹지 않으셨다.(出三日 不食之矣)
혹 삼일이 지났으면 먹지 않는 것이 낳다. 경문을 살펴보면 이 구절은 위 글의 제사지낸 고기는 삼일을 넘기지 않으셨다는 뜻을 해석하여, 삼일 중에 반드시 다 먹은 까닭을 말한 것이니, 남기는 것이 있지 않게 하고, 만약 삼일이 지났으면 사람들이 장치 먹지 않을 것이니 버리는 것을 싫어하신 것이지 구신의 혜택을 공경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불가하면 그친다.(不可則止)
바른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따르는 것을 그치는 것이다. 경문의 뜻을 살펴보면 불가하면 그친다는 것은 다만 맞지 않으면 떠난다는 것일뿐입니다. 뒤 편에서 붕우를 논하면서 “불가하면 그친다”고 한 것과 글의 뜻이 같습니다. 지금 이 말을 하신 것은 천착하는데 힘을 써서 문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타당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두 구절의 글이 같으니 가리키는 의미가 이렇게 갑자기 달라져서는 안됩니다.
점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點 爾何如)
“증자는 여기에 즐거움이 있지 않다”에서 “그러므로 행함에 가리는 것이 없다”까지. 이 말은 매우 고원하지만 반복하여 완미하면 과장되고 분수에 넘쳐서 정성스럽고 성실하며 연원이 깊은 맛이 적습니다. 또 그 사이에 글의 뜻의 처음과 끝이 서로 어긋나는 곳이 매우 많습니다. 또 이른바 “증자는 여기에 즐거움이 있지 않다는 것은 대개 그 즐거움을 얻지 않음이 없다는 뜻을 나타낼 뿐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한 구절만은 본래 이중의 병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증자는 여기에 즐거움이 있지 않다”는 것은 명도선생이 “한 광주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簞瓢陋巷)로는 즐거워할 만한 것이 있지 않다”는 말에 근본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 연연과 증자의 즐거움이 비록 같다고 하더라도 말한 까닭은 다르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 簞瓢陋巷은 사실은 즐길만한 일이 아닌데, 안자가 불행하게도 그러한 일을 당했는데도, 사람을 근심하게 하고 그 즐거움을 바꾸게 할 수 않았을 뿐입니다. 그 즐거운 것은 실로 簞瓢陋巷의 밖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안자의 즐거움을 구하고자 하여 그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죽어도 얻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명도의 말씀이 공력이 있다고 여기는 까닭입니다. 대개 曾晳이 한 말의 뜻과 같은 것이 마음이 원하는 것이고 즐길만한 일입니다. 대개 그 보는 것이 분명하고 걸리는 것이 없으며, 조용히 화락하며 만물과 더불어 각각 그 마땅한 것을 얻고자 하는 뜻이라면, 말의 기운에서 和氣가 드러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명도의 “성인의 뜻과 같이 하는 것이 곧 堯舜의 기상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이 증석의 마음의 기상을 구하고자 하면서, 이것을 버리고 그것을 구하면 또한 죽어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저 두 사람의 즐거움이 같더라도 그 말한 까닭이 이렇게 다름이 있으니, 지금 저 뜻으로 이 말을 한다면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또 부자의 질문은 네 사람이 뜻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네 사람의 대답은 모두 평소에 뜻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 증석의 말만이 특히 그 즐거움을 얻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증석만이 부자의 질문에 그 평소에 뜻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또 임시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몇 구절을 엮어내서 타당함이 없는 큰 말을 하여, 즐기지 않는 것이 없는 높은 경지를 과장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선가에서 방망이를 두드리고, 불자를 세우며, 동쪽을 가리키면서 서쪽을 그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것은 성인에게 죄를 얻지 않은 것이 다행이니, 또 어찌 탄식하여 그와 함께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 아래에 이르면 명목은 증석의 뜻을 미루어 말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다 물리치고 자시의 견해를 바로 말한 것이니, 제 생각에는, 자신을 지나치게 중하게 여기고, 성현은 너무 가볍게 보아, 말하는 것이 지나치게 높아서 끝내는 실질이 없는 것으로 떨어진 듯 합니다. 또 이른바 “그 즐거움을 얻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실로 사람으로 말한 것인데, 또 그 아래 글에서는 “천리 자연은 잊을 수도 조장할 수도 없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않을 수도 없으며, 의지하거나 드러낼 수도 없는 것이다”라고 그것을 해석라고 있으니,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이치로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으로 말한 것입니까? 이치로 말한 것이라면 위 글의 ‘그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한 것과 상응하지 않는 듯하고, 사람으로 말한 것이라면 증석이 마음이 괴롭고 위태로우며 두렵고 궁색하며, 치우치고 동요함이 또한 이미 심한 것이니, 또 어찌 그 즐거움을 얻어서 천리의 스스로 그러함이 되겠습니까? 그것이 “敍․秩․命․討는 하늘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고, 요순이 無爲함으로 다스릴 수 있는 까닭이다”라고 한다면 증석의 말에서 구하는 것이 특히 이 자세한 상황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 이것은 이미 성인의 일이라고 허여한 것인데, 또 성문에서 실제로 배우는 존양의 경지로 삼는다면 이것은 바야흐로 배우는 사람의 일이 되어버립니다. 만약 잠시 배우는 사람의 일로 볼 뿐이라고 말한다면 또 행함에 가리지 않는 것이 있게 되니 이것은 또 아울러 이른바 ‘길러놓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빼앗는다’는(1356 P) 것입니다. 무릇 이 몇 구절이 특히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것은 모두 제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장의 뜻을 생각해보면 명도선생만 드러내 밝힌 것만이 타당하고, 상채의 설과 같은 것은 관련된 것도 없는 의미를 쓸데없이 끌어 들였으니, 그 대답할 때의 만물을 기르는 마음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列子가 바람을 타는 일의 비유를 인용한데 이르면 그것은 노장의 견해보다 잡박하여 성현의 기상에 가깝지 않음이 더욱 분명합니다. 무릇 이 설 가운데 의심할만한 것은 모두 이 설에 근원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대가 다시 유의하시면 반드시 橫渠선생의 “舊見을 씻어 버려 새로운 뜻을 불러 온다”는 것과 같아져서 거의 성현의 본심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어 가운데 큰 절목은 이와 같은 것이 몇 장에 지나지 않으니 간단하게 말할 수가 없어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克己復禮
“이 말은 처음 배울 때부터 德을 이루기까지 모두 마땅히 따라야 할 일이다”에서부터 “이길 소견이 없다” 까지. 이 한 절의 의미는 이전부터 克己를 뒤의 일로 본 것으로 인하여 이러한 반복된 논의가 있는 듯 합니다. 지금 이와 같이 말한 것이 단서가 없으니 아마도 묻고 답하는 말로 제기해야 할 듯합니다.
그대가 바른 것으로 이끌면...(子率以正)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법을 밝히고 형벌로 경계하여 보여주는 것 역시 가르치는 방법이다. 이치가 참으로 그러합니다만 여기에서 응당 갑자기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본문의 바른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역에서는 “벌을 밝히고, 법을 경계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 글을 거꾸로 한 것이니 다른 뜻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몸을 곧게 하는...(直躬)
“세상에 이름을 자랑하고 그 실질을 궁구하지 않는 자”에서부터 “이와 같지 않는 것이 얼마인가?”까지. 이것은 가리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 수 없으니 글의 뜻이 특히 분명하지 않습니다.
명을 하면...(爲命)
“비록 그렇지만”부터 “ 말 이외의 뜻이다”까지. 아마 성인은 이러한 뜻이 없을 것이나, 지금 스스로 미루어 말하여 오히려 거리낌이 없을 뿐입니다.
이 사람이...(人也)
사람의 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고주에는 “시경에서 말하는 伊人과 같다”고 했으니 이 말이 타당합니다. 莊子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물이 상하게 할 수 없다”라고 한 것 역시 이것과 같습니다. 만약 사람의 도가 있다고 하면, 극언하면 너무 중하여 관중도 감당할 수 없고, 얕게 말하면 너무 가벼워서 또 관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孟公綽
趙나라와 魏나라의 家老는 당시에는 집안 일을 다스리는 자라고 불려졌다. 이 구절은 알 수 없으니 아마도 전하는 판본에 오자가 있는 듯합니다.
바름과 속임(正譎)
정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 해석은 아마도 致堂의 설을 써야할 것이니, 전에 伯恭을 만났는데 그의 설 또한 이와 같습니다.
옛날 배우는 사람은 자신을 위했는데...(古之學者爲己)
물을 이루어주는 것은 다만 자신을 이루고 그것을 미루어나가는 것일 뿐이다. 이것을 살펴보면,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물을 이루어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천은 “다른 사람에게서 구한다”는 것으로 해석했으니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배워서 먼저 물을 이루어주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그로 인하여 순서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자신을 사사로이 하지 않는 것은 아마 당시 배우는 사람들도 미칠 바가 아닐 것입니다. 呂與叔의 중용 서문 중에서도 역시 이와 같은 잘못 해석하였습니다.
남이 나를 속일까 미리 생각하지 않고...(不逆詐)
孔安國 주의 글의 의미가 순조롭다. 공안국의 주를 살펴보면 글의 의미가 극히 순조롭지 않습니다. ‘抑’이라는 것은 말을 돌이키는 말이니, “구한 것입니까? 아니면 주어진 것입니까?”라고 한 것이나, “옹색한 小人이나 또한 다음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 모두 대략 윗글을 돌이키는 의미입니다.
微生畝
包 注에 ‘固’ 자를 비루하다고 풀었는데, 이 해석이 옳다. 역시 타당하지 않은 듯 합니다.
喪에 거하여(諒陰)
대군은 칙령을 내려 五典으로 천하를 다스렸는데 삼년상을 폐하였다. 경문에는 이러한 의미가 없으니, (服喪의 기간을 짧게 한) 短喪은 이로부터 후세의 잘못입니다. 만약 드러내 밝히고자 한다면, 마땅히 따로 입론하여 미루어서 이르러야 하고 이렇게만 말할 수는 없으니, 이것은 내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敬으로 몸을 닦는다.(修己以敬)
경은 얕고 깊음이 있으니, 경의 도를 다하면 몸을 닦는 도 또한 다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모두 그 가운데 있다. 이 뜻은 매우 좋습니다만 ‘경은 얕고 깊음이 있다’는 한 구절은 이 글의 위 글과 아래 글에서 모두 해당하는 것이 없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몸을 닦는 것이 경의 얕음이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경의 깊음이라고 의심하게 합니다. 이제 다만 이 (敬有深淺이라는) 네 글자와 아래 글의 ‘역’자를 없애버리면 의미가 두루 통하여 저절로 병통이 없어질 것입니다.
原壤이...
“어려서는 공손하고”에서부터 “그 폐해가 말미암은 것을 본다”까지. 아마 성인은 이러한 뜻이 없었을 것이나 지금 마땅히 그것을 미루어 나가도 될 뿐입니다.
나는 一以貫之니라.(予一以貫之)
이른바 예로 나를 제약한다는 것인가? 이 말은 이미 ‘안연이 탄식하여...(顔淵喟然)’장에 이미 나왔습니다. 이는 또한 子貢 초년의 일이다.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마땅히 했다고 했으니, 子貢은 이때에 이미 夫子의 뜻에 묵묵히 契合해야 합니다. 뒤에 부자께서 나라를 얻어 다스리는 것에 대해서 한 말이 어찌 이것을 말미암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또 어찌 그것이 초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이미 고증할 근거가 없고, 논의에 단서가 없는 것이며, 또 처음부터 경의 본 뜻이 아니었으니, 말하지 않아도 해가 없습니다.
子張이 行을 물으니...(子張問行)
사람이 비록 알지 못하더라도 자신에게 있는 것은 일찍이 행하지 않음이 없다. 부자의 말씀은 떳떳한 도리를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비록 알지 못하더라도’라는 것은 별도의 일이니 갑자기 이러한 것을 말하여 부자의 뜻을 어지럽혀서는 안됩니다. 뒤에 따로 자신의 생각을 미루어 말하는 것은 가합니다. 이치가 눈앞에 있고, 멍애에 기대어 있다는 것은 충성스러움과 미더움(忠信), 도타움과 공경(篤敬)의 이치를 보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은 반드시 충성스럽고 믿음직하게 해야하며, 행동은 반드시 도탑고 공경스럽게 해야한다는 것이니, 모든 생각에 잊지 않으면 마음과 눈에 형상을 드러낼 뿐입니다. 만약 언행의 실질을 요구하지 않고 한갓 이치를 보존하여 버리지 않는다고만 말하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습니까?
물러나 숨는다.(卷而懷之)
물러나서 숨는다는 의미가 있으니, 潛龍의 들어가고 나감에는 미치지 않는다. 반드시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志士仁人仁은 사람이 생하는 까닭이니 진실로 생하는 까닭이 이지러지면 그 생함이 또한 어찌되겠는가? 지사와 인인은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치지 않는 것은, 마음 가운데 본래 제거할 수 없는 마음이 있어서, 차마 이것을 취하여 저것을 해칠 수 없으니, 그 생하는 까닭이 이지러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 후에 자신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인을 이룬다는 것은 그 양심이 편안해하는 것을 따를 뿐이니 그 생하는 까닭을 온전히 한 후에야 그것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해석 중에 항상 하나의 생각이 있으니, 仁義 忠孝를 내 마음이 그만 둘 수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천명을 두려워하고 천직을 삼가는 것으로 여겨, 그 생하는 까닭을 온전히 한 후에야 그것을 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본심 이외에 별도로 한 생각이 있어 이것의 이해와 경중을 헤아려 본 다음에야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된 捨生取義를 할 수 있으려면 헤아리고 견주어보는 사사로움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절실하게 스스로 그것을 다하는 뜻이 없습니다. 대개 생하는 까닭을 온전하게 한다는 등의 말은 스스로 그 사람이 방관자로서 말하는 것으로,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옳다고 여기는 것이니, 만약 이러한 마음으로 善을 한다면 이미 적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물며 스스로 그것을 말하니 어찌 가소롭지 않겠습니까? 呂覽에 直躬이라는 자가 아버지의 증인이 되어 시종 명예를 취한 일이 실려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러한 종류일 뿐입니다.
鄭나라의 소리를 내치며, 편녕한 사람을 멀리한다.(放鄭聲 遠佞人)
성인은 반드시 이것을 경계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에서 경계를 세우니 이것이 성인의 도이다. 이것은 성인이 법을 세워 세상에 드리우는 것을 말하는데, 반드시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그러나 禹는 丹朱로써 舜을 경계하였고, 순은 “나에게 과실이 있으면 네가 바로잡아 달라”는 말로 그 신하에게 간언하기를 권장하였으니 성인은 반드시 이것을 경계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무엇이 해롭습니까? 이것은 대개 성인을 따르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모든 사람이 주장함을 힘써, 기상이 오히려 가볍고 천하며 궁색하고 좁아서 관대하고 넓으며 두터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 말로 종신토록 행할...(一言終身行之)
恕를 행하면 忠은 보존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온당치 못하니 “진실로 恕를 행할 수 있으면 충은 본래 그 가운데 있다”고 해야 마땅합니다.
누구를 헐뜯고 누구를 칭찬하겠는가?(誰毁誰譽)
헐뜯는다는 것은 그 잘못을 지적하고, 칭찬한다는 것은 그 훌륭함은 고양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미진합니다. 제 생각에는 헐뜯는다는 것은 이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하여 그것을 심하게 꾸짖는 것입니다. 칭찬한다는 것은 이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좋게 여겨 자주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선악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누구를 헐뜯고 누구를 칭찬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칭찬할 뜻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성인의 마음은 仁하고, 恕하며, 公平하여 실로 헐뜯거나 칭찬함이 없으니 그러한 뜻만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칭찬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시험함이 있으니, 그 실체가 있음으로 인하여 그것을 칭찬하는 것이다. 이 도한 미진합니다. 시험한다는 것은 증험한다는 것과 같으니, 성인이 혹 칭찬하는 것이 있을 때는, 비록 그 사람이 여기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일찍이 그것을 증험하여 그것이 장차 여기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대개 성인은 善을 좋아하는 것은 빠르고, 악을 미워하는 것은 느리니, 그 빠름에는 또한 구차함이 없습니다. 또 말하기를 “헐뜯고 칭찬할만한 것은 저기에 있다”고 하고, 또 “헐뜯을 것이 있다고 하지 않는 것은, 성인은 다른 사람과 善을 함께하는 것을 즐기니, 반드시 시험한 후에야 칭찬함이 있는 것은 헐뜯는 데서도 또한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만약 그렇다면 성인은 실로 항상 헐뜯을 것이 있지만, 여기에서 그 칭찬하는 것은 드러내고 그 헐뜯는 것은 숨겨서 충후하다는 명예를 취하는 것이니 그것이 옳습니까? 헐뜯는 것은 破壞하는 것이니, 기물이 손상되지 않았는데 일부러 그것을 파괴하는 것과 같으니 성인이 어찌 이런 것이 있겠습니까?
예악 정벌이 천자에게서 나온다.(禮樂征伐自天子出)
天子 또한 어찌 감히 자신이 오로지 할 수 있겠으며, 사사로운 뜻을 그 가운데 더할 수 있겠는가? 또한 天理를 받들 뿐이다. 이러한 뜻은 “原壤이 걸터앉아서...”와 “子張이 行을 물으니...” 장에 보입니다.
세 가지 허물(三愆)
말을 하면 그 옳은 것을 말해야 하는 것은, 소양을 기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성인의 미 말씀은 다만 사람이 때에 맞게 말하는 것을 경계하여 망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이러한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말이 그것에 미치더라도 당연히 말해야 할 이치를 말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이 말은 매우 괴이하니, 기를 소양이 있다는 것을 끌어다가 말한 것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스스로 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는 것입니다.
生而知之
그 이르는 곳은 같다고 해도 그 기상과 규모는 끝내 같지 않은 것이 있다. 이 한 구절은 없애버려야 마땅하니, 이것이 없어도 經의 뜻을 해석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伯魚에게 말씀하시기를...(子謂伯魚)
爲라는 것은 몸소 그 實을 행하는 것이다. 여러 선생이 대부분 이렇게 말하는 것을 살펴보면 의미는 매우 친절하지만 글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爲라는 것은 다만 외우고 읽으며 강론하고 익히는 것이고, ‘담을 대면하고 선다’는 것은 다만 소견이 없는 것입니다. 서경에서 “배우지 않으면 담을 대면하고 서는 것과 같다”고 한 것 역시 몸소 행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얻기를 근심한다.(患得之)
얻을 것을 걱정하는 것은 이익을 꾀하고 스스로의 편리함을 따르는 마음이다. 이 구절의 해석은 글의 뜻이 분명하지 않고 말의 뜻도 친절하지 않습니다.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다.(君子有惡)
“자공의 질문이 있어...”부터 “또한 알 수 있다”까지. 夫子의 물음은 사람을 미워하는 의심이 보이지 않고, 子貢의 대답도 몸을 검속하는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三仁
모두가 어질다고 칭하는 것은 그 성을 잃지 않은 것으로써 그렇게 부를 뿐이다. 이 말의 仁자는 친절하지 않는 듯합니다.
대그릇을 진 장인을 만나...(荷蓧)
지팡이를 꽂고 김을 매었으니 또한 다급하지 않은 것이다. 子路를 머물러 묵게 하였으니 그 사람됨이 대체로 여유가 있다. 또 가서 피했다고 했으니 기량이 좁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본래 서로 모순이 있습니다.
친척을 버리지 않는다.(不施其親)
尹씨의 설을 인용하였다. 윤씨의 설은 참으로 좋지만 ‘施’자가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謝씨와 같은 경우는 비록 “그 친척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인용하여 해석했지만 오히려 施를 ‘은혜를 베풀고 은혜를 갚는다’고 할 때의 施로 풀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설파하는 것은 명백해야 합니다. 陸德明은 釋文에서 본래 ‘弛’자로 썼는데, 그 음은 詩와 紙의 半切이니, 唐초에는 본래 ‘施’ 자를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呂與叔 또한 ‘弛’라고 읽지만 釋文을 인용하지 않았는데 반드시 그것은 여기에서 본 것이 아니라 우연히 합치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음을 따라 읽어야 합니다.
선비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命을 버린다.(士見危致命)
楊씨가 라고 말하기를 ..... 반드시 이렇게 분별할 필요는 없는 듯합니다.
君子는 배워서 그 道를 지극히 한다. (君子學而致其道)
지극히 한다(致)는 것은 그 지극함을 다하는 것이다. “지극히 한다(致)는 것은 그 지극한 바를 다하는 것이다”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말하면 힘을 써서 그것을 지극히 하지 않은 것은 몸에 간직할 수 없다. 도는 참으로 몸에 간직하고자 하지만 그러나 이 경의 뜻은 다만 그 이른 바를 지극히 함을 말할 것일 뿐이지 몸에 간직한 것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몸에 있다고 하면 ‘致’는 마땅히 ‘도전한다(致師)’고 할 때의 致라고 풀어야 하니 蘇씨의 설과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大德小德
小德은 節目이다. 이 장의 말씀은 매우 좋습니다만 記에서 말하는 “그 절목은 뒤로 한다”는 것으로 보면 이 두 글자는 매우 마땅치 않은 듯합니다.
子夏의 門人과 小子
“군자의 도는 어느 것이 앞서야 마땅하니 전할 수 있고...”에서 “그 순서를 따라 힘을 쓸 뿐이다”까지. 본문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로 군자의 도는 본말이 일치하니 어찌 우선으로 삼아서 그것을 전할 수 있습니까? 어찌 뒤라고 하여 가르침에 게으르겠습니까? 다만 배우는 사람의 지위가 같지 않음은 초목의 대소가 본래 구별이 있는 것과 같으므로 그 가르치는 것이 다르지 않을 수 없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비록 대소의 구분이 없더라도 生意가 모두 족하고, 본말이 비록 다르더라도 도는 있지 않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찌 속이겠는가?”라는 것은 소씨가 분명히 하였고, “처음과 끝이 한결같다”는 것은 윤씨가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 장의 글의 뜻은 이와 같을 뿐입니다. 그러나 근년이래 여러 선생이 본말이 일치하는 이치를 드러내 밝혔지만 그 글의 뜻을 깊이 풀어내지 못하여 그 主旨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정자의 책을 살펴보면 명도는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먼저라 하여 전하고, 뒤라 하여 게으른 것은 군자가 사람을 가르침에 순서가 있는 것이니, 먼저 가깝고 작은 것을 전하고, 뒤에 멀고 큰 것을 가르치는 것이지 먼저 가깝고 작은 것은 전하고, 뒤에 멀고 큰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이 해석이 가장 적합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완만하고 기이함이 없어 읽는 사람이 그것을 소홀히 하고 살피지 않을 뿐입니다.
孟莊子
맹장자가 바꾸지 않은 까닭은 그 일을 뜻하는 것이 비록 다 좋지는 않더라고 또한 이치에 어긋나고 일을 해칠 정도로 심한 데에 이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莊子는 獻子의 아들인데, 헌자는 현명한 대부이고, 그 신하도 반드시 현명하였으니 그 정사가 반드시 훌륭하였습니다. 장자의 현명함은 아버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능히 그것을 지켜 종신토록 바꾸지 않았으므로 부자께서는 그것을 어렵게 여기시고, 대개 훌륭하다고 한 것입니다. 이 臨川 鄧仗元亞의 설은 여러 사람이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仲尼는 어디서 배웠는가?(仲尼焉學)
만물이 천지의 사이에 가득 차 있어 문왕․무왕의 도가 아닌 것이 없으니 애초에 있고 없고, 늘고 줄고 하는 것이 없었다. 근년에 말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뜻을 많이 쓰는데. 처음에는 신기하고 기뻐할 만 하였지만, 이미 “만물이 천지의 사이에 가득 차있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도가 되는 것이지, 문왕과 무왕이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애초에 있고 없고, 늘고 줄고 하는 것이 없었다”고 하였으니,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 것은 해당되는 것이 없습니다. 또 만약 그렇다면 천지의 사이에 눈으로 볼 수 있고, 마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니, 또 어찌 반드시 현명한 자는 그 큰 것을 알고, 현명하지 않은 자는 그 작은 것을 알아 하나하나 배운 다음에야 알 수 있겠습니까? 글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니, 문왕과 무왕의 도라는 것은 다만 周 왕실의 制度와 典章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공자 시기에도 역시 남아 있는 것이 있었으므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대저 근세의 학자들은 불고와 노장의 말을 듣기를 좋아하여 항상 우리 유가의 말을 몰아내고 그것을 취하므로 그 폐단이 여기에 이른 것입니다. 읽는 사람은 평상심으로 물러나 句讀와 글의 의미 사이에서 반복하여 살펴보면 그 잃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 계시면 영광스럽고, 돌아가시면 슬퍼할 것이니...(生榮死哀)
살아 계시면 영광스럽고, 돌아가시면 슬퍼할 것이니 그 마땅한 것을 얻지 않음이 없다. 해석한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천하의 사람이 살아 있으면 영광스럽고, 죽으면 슬퍼할 것이니 그 마땅한 것을 얻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는 듯한데 이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말과 같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공은 부자께서 나라를 얻어 다스릴 때 그 효과가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范씨의 “살아계시면 천하가 노래하여 기리고, 돌아가시면 부모를 잃은 듯이 슬퍼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도량형을 바르게 하다.(謹權量)
이 또한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이다. 이 편은 빠진 문장이 많으니, 마땅히 그 본래 글이 나온 것을 살펴 해석해야 합니다. 통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빼는 것이 옳습니다. “도량형을 바르게 한다”는 것 이라는 모두 武王의 일이니, 마땅히 “주나라 무왕이 크게 상주는 일이 있었는데...”부터 “공평하면 기뻐한다”까지가 한 장입니다. 대개 없어진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세대를 잇고, 숨은 백성을 등용하는 것은 모두 마땅한 때를 당하여 그 일을 하는 것이고, 백성이 중하게 여기는 것은 먹는 것과 상례와 제례라는 것은 武成이 말하는 “백성에게 소중한 것은 다섯 가지 가르침과 오직 먹는 것과 상례와 제사지내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장경부에게 보내는 계사논어설을 논하는 편지 與張敬夫論癸巳論語說
學而時習之
程子曰 時復紬繹 本文作思繹 今此所引改思爲紬 不知何說 學者之於義理 當時紬繹其端緖而涵泳之也 學而時習之 此是論語第一句 句中五字 雖有虛實輕重之不同 然字字皆有意味 無一字無下落 讀者不可以不詳 而說者尤不可以有所略也 學之爲言效也 以己有所未知 而效夫知者以求其知! 以己有所未能 而效夫能者以求其能之謂也 而者 承上起下之辭也 時者 無時而不然也 習者 重複溫習也 之者 指其所知之理所能之事而言也 言人旣學矣 而又時時溫習其所知之理所能之事也 蓋人而不學則無以知其所當知之理 無以能其所當爲之事 學而不習 則雖知其理能其事 然亦生澀危殆而不能以自安 習而不時 則雖曰習之 而其功夫間斷 一暴十寒 終不足以成其習之之功矣 聖言雖約 而其指意曲折探密而無窮蓋如此 凡爲解者 雖不必如此瑣細剖析 然亦須包含得許多意思 方爲完備 今詳所解 於學而兩字全然闊略 而但言紬繹義理 以解時習之意 夫人不知學 其將何以知義理之所在而紬繹之乎 且必曰紬繹義理之端緖而涵泳之 又似義理之中別有一物爲之端緖 若繭之有絲 旣紬繹出來 又從而涵泳之也 語意煩擾 徒使學者胸中擾擾 拈一放一 將有揠苗助長之患 非所以示人入德之方也 說者 油然內慊也 程子但言浹洽於中則說 雖不正解說字 而說字之意已分明 今旣述程語 而又增此句 似涉重複 且慊者 行事合理而中心滿足之意施之於此 似亦未安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自孝弟而始 爲仁之道 生而不窮 按有子之意 程子之說 正謂事親從兄 愛人利物 莫非爲仁之道 但事親從兄者本也 愛人利物者末也 本立然後末有所從出 故孝弟立而爲仁之道生也 今此所解 語意雖高而不親切 其愛雖有差等 而其心無不溥矣 此章仁字正指愛之理而言耳 易傳所謂偏言則一事者是也 故程子於此 但言孝弟行於家而後仁愛及於物 乃著實指事而言 其言雖近 而指則遠也 今以心無不溥形容 所包雖廣 然恐非本旨 殊覺意味之浮淺也
巧言令色
若夫君子之修身 謹於言語容貌之間 乃所以體當在己之實事 是求仁之要也 此意甚善 但恐須先設疑問以發之 此語方有所指 今無所發端而遽言之 則於經無所當 而反亂其本意矣 如易傳中發明經外之意 亦必設爲問答以起之 蓋須如此 方有節次來歷 且不與上文解經正意相雜 而其抑揚反覆之間 尤見得義理分明耳
爲人謀而不忠
處於己者不盡也 處字未安
道千乘之國
信於己也 己字未安 自使民以時之外 此句無所當 恐是羨字
毋友不如己者
不但取其如己者 又當友其勝己者 經但言毋友不如己者 以見友必勝己之意 今乃以如己勝己分爲二等 則失之矣 而其立言造意 又似欲高出於聖言之上者 解中此類甚多 恐非小病也
愼終追遠
愼 非獨不忘之謂 誠信以終之也 追 非獨不忽之謂 久而篤之也 以愼爲不忘 追爲不忽 若舊有此說 則當引其說而破之 若初無此說 則此兩句亦無所當矣 且下文兩句所解亦未的當 凡事如是 所以養德者厚矣 愼終追遠 自是天理之所當然 人心之所不能已者 人能如此 則其德自厚而民化之矣 今下一養字 則是所以爲此者 乃是欲以養德 而其意 不專於愼終追遠矣 厚者德之聚 而惡之所由以消靡也 此語於經無當 於理未安
父在觀其志
志欲爲之而有不得行 則孝子之所以致其深愛者可知 此章舊有兩說 一說以爲爲人子者父在則能觀其父之志而承順之 父沒則能觀其父之行而繼述之 又能三年無改於父之道 則可謂孝矣 一說則以爲欲觀人子之賢否者 父在之時 未見其行事之得失 則但觀其志之邪正 父沒之後 身任承家嗣事之責 則當觀其行事之得失 若其志與行皆合於理 而三年之間又能無改於父之道 則可謂孝矣 此兩說不同 愚意每謂當從前說 文勢爲順 若如後說 則上文未見志行之是非 不應末句便以可謂孝矣結之也 今詳此解蓋用後說 然謂父在而志不得行可以見其深愛 則又非先儒舊說之意矣 經文但有一志字 乃是通邪正得失而言 如何便見得獨爲志欲爲之而不得行 又何以見夫致其深愛之意耶 三年無改於父之道 志哀而不暇它之問也 又曰 三年無改者 言其常也 可以改而可以未改者也 此句之說 惟尹氏所謂孝子之心有所不忍者最爲慤實 而游氏所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 斟酌事理尤得其當 此解所云志哀而不暇它之問者 蓋出謝氏之說 其意非不甚美 然恐立說過高 而無可行之實也 蓋事之是非可否日接於耳目 有不容不問者 君子居喪 哀戚雖甚 然視不明 聽不聰 行不正 不知哀者 君子病之 則亦不應如是之迷昧也 所謂可以改而可以未改者 則出於游氏之說 然又失其本指 蓋彼曰在所當改 則迫於理而不得不然之辭也 今曰可以改 則意所欲而冀其或可之辭也 二者之間 其意味之厚薄相去遠矣 又此經所言 亦爲人之父不能皆賢 不能皆不肖 故通上下而言 以中人爲法耳 今解又云三年無改者 言其常也 似亦非是 若言其常 則父之所行 子當終身守之可也 豈但以三年無改爲孝哉
信近於義
恭謂貌恭 又曰 恭而過於實 適所以招耻辱 恭不近禮謂之無節而過卑則可 謂之貌恭而過實則失之矣 且貌恭而過實 亦非所以取耻辱也 言而不可復則不可行 將至於失其信矣 或欲守其不可復之言 則逆於理而反害於信矣 此數句似不分明 恐未盡所欲言之曲折也 竊原本意蓋曰欲其言之信於人 而不度於義者 復之則害於義 不復則害於信 進退之間蓋無適而可也 故君子欲其言之信於人也 必度其近於義而後出焉 則凡其所言者 後無不可復之患矣 恐須如此說破 方分明也
就有道而正焉
異世而求之書 本文未有此意 恐不須過說 或必欲言之 則別爲一節而設問以起之可也
貧而樂 富而好禮
進於善道 有日新之功 其意味蓋無窮矣 此語不實
詩三百
其言皆出於惻怛之公心 非有它也 側怛與公心字不相屬 非有它也 乃嫌於有它而解之之辭 然亦泛矣 詩發於人情 似無有它之嫌 若有所嫌 亦須指言何事 不可但以有它二字槪之也
無違
生事之以禮 以敬養也 死葬之以禮 必誠必信也 祭之以禮 致敬而忠也 專言敬則愛不足 專言誠信則文不足 忠字尤所未曉 然致敬而忠 恐亦未足以盡祭禮 大率聖人此言至約而所包極廣 條擧悉數 猶恐不盡 况欲率然以一言該之乎
十世可知
若夫自嬴秦氏廢先王之道 而一出於私意之所爲 有王者作 其於繼承之際 非損益之可言 直盡因革之宜而已 此一節立意甚偏而氣象徧迫 無聖人公平正大隨事順理之意 且如此說 則是聖人之言不足以盡古今之變 其所謂百世可知者 未及再世而已不驗矣 嘗究此章之指 惟古注馬氏得之 何晏雖取其說 而復亂以己意 以故後來諸家祖習其言 展轉謬誤 失之愈遠 至近世 吳才老胡致堂始得其說 最爲精當 吳說有續解考異二書 而考異中此章之說爲尤詳 願試一觀 或有取焉 大抵此二家說其它好處亦多 不可以其後出而忽之也
非其鬼而祭之 諂也
無其鬼神 是徒爲諂而已 聖人之意 罪其祭非其鬼之爲諂 而不幾其祭無其鬼之徒爲諂也 諂自惡德 豈論其有鬼無鬼徒與不徒也哉
韶武
聖人之心初無二致 揖遜征伐 時焉而已 此理固然 但此處解美善兩字而爲此說 似以舜武心皆盡美 而武王之事有未盡善 則美字反重而善字反輕 爲不倫耳 蓋美者聲容之盛 以其致治之功而言也 善者致美之實 以其德與事而言也 然以德而言 則性之反之雖有不同 而成功則一 以事而言 則揖遜征伐雖有不同 而各當其可 則聖人之心 亦未嘗不同也
仁者能好人惡人
仁者爲能克己 此語似倒 恐當正之
無終食之間違仁
無終食之間違仁 是心無時而不存也 造次顚沛必於是 主一之功也 此二句指意不明 語脈不貫 初竊疑其重複 旣而思之 恐以上句爲成德之事 下句爲用功之目 若果如此 則當改下句云 所以存其心也乃與上文相應 庶讀者之易曉 然恐終非聖人之本意也
無適無莫
或曰 異端無適無莫而不知義之與比 失之矣 夫異端之所以不知義者 正以其有適有莫也 異端有適有莫 蓋出於程子之言 然譏其無適莫而不知義 亦謝氏之說 言雖不同 而各有所指 未可遽以此而非彼也 若論先後 則正以其初無適莫而不知義 故徇其私意以爲可否 而反爲有適有莫 旣有適莫 故遂不復求義之所在 而卒陷於一偏之說也
求爲可知
若曰使己有可知之實 則人將知之 是亦患莫己知而已 豈君子之心哉 此說過當 若曰所謂求爲可知者 亦曰爲其所當爲而已 非謂務皎皎之行以求聞於人也則可矣
一以貫之
道無不該也 有隱顯內外本末之致焉 若無隱顯內外本末之致 則所謂一貫者 亦何所施哉 此意甚善 然其辭則似生於辨論反覆之餘者 今發之無端 則無所當而反爲煩雜 若曰聖人之心於天下事物之理無所不該 雖有內外本末隱顯之殊 而未嘗不一以貫之也 則言順而理得矣
欲訥於言
言欲訥者畏天命 行欲敏者恭天職 言行自當如此 不必爲畏天命恭天職而然 今若此言 則是以言行爲小 而必稱天以大之也 且言行之分亦未穩當 行之欲敏 獨非畏天命耶
晝寢
知抑精矣 抑字恐誤
臧文仲
世方以小慧爲知 小慧似非所以言臧文仲
季文子
非誠其思 此語夫善
顔淵季路侍
爲吾之所當爲而已 則其於勞也奚施 施勞 舊說皆以施爲勿施於人之施 勞者 勞辱之事 今如此說 語不分明 子細推尋 似亦以施爲夸張之意 勞爲功勞之勞 其意雖亦可通 但不知施字有如此用者否耳 必如此說 更須子細考證 說令明白乃佳
存乎公理 此句亦未善
質勝文則野
失而爲府史之史 寧若爲野人之野乎 此用楊氏與其史也 寧野之意 然彼亦以爲必不得已而有所偏勝 則寧若此耳 今解乃先言此 而又言矯揉就中之說 則旣曰寧爲野人之野矣 又何必更說修勉而進其文乎 文理錯雜 前後矛盾 使讀者不知所以用力之方 恐當移此於矯揉就中之後 則庶乎言有序而不悖也
人之生也直
罔則昧其性 是冥行而已矣 此說似好 然承上文直字相對而言 則當爲欺罔之罔
中人以下
不驟而語之以上 是亦所以敎之也 孟子言不屑之敎誨 是亦敎誨之 蓋爲不屑之敎誨 已是絶之而不復敎誨 然其所以警之者 亦不爲不至故曰是亦敎誨之而已矣 所謂亦者 非其正意之辭也 若孔子所言中人以下未可語上 而不驟語之以性與天道之極致 但就其地位 告之以切己著實之事 乃是敎之道正合如此 非若不屑之敎誨 全不告語 而但棄絶以警之也 今曰是亦敎誨之也 則似敎人者不問其人品之高下 必盡告以性與天道之極致 然後始可謂之敎誨 才不如此 便與絶而不敎者無異 此極害理 非聖門敎人之法也 且著此一句 非惟有害上文之意 覺得下文意思亦成躐等 氣象不佳 試思之 若但改云 不驟而語之以上 是乃所以漸而進之 使其切問近思而自得之也 則上下文意接續貫通 而氣象無病矣 此所撰集注已依此文寫入矣
敬鬼神而遠之
遠而不敬 是誣而已 誣字未安
知仁動靜
知之體動而靜在其中 仁之體靜而動在其中 此義甚精 蓋周子太極之遺意 亦己寫入集注諸說之後矣 但在此處讀之 覺得有急迫之病 略加曲折 別作一節意思發明乃佳 大抵此解之病在於太急迫而少和緩耳
子見南子
過衛國 必見寡小君 孔子居衛最久 不可但言過衛 見小君者 禮之當然 非特衛國如此也 夫子聽衛國之政 必自衛君之身始 此理固然 然其間似少曲折 只如此說 則亦粗暴而可畏矣 試更思之 若何
博施濟衆
不當以此言仁也 仁之道不當如此求也 但言不當 而不言其所以不當之故 不足以發聖人之意 先言仁者 而後以仁之方結之 立人達人 仁也 能近取譬 恕也 自是兩事 非本一事而先言後結也
述而不作
聖人所以自居者 平易如此 平易二字說不著 老彭孔子事同 而情性功用則異 孔子賢於堯舜 非老彭之所及 人皆知之 自不須說 但其謙退不居而反自比焉 且其辭氣極於遜讓 而又出於誠實如此 此其所以爲盛德之至也 爲之說者 正當於此發其深微之意 使學者反復潛玩識得聖人氣象 而因以消其虛驕傲誕之習 乃爲有力 今但以平易二字等閑說過 而於卒章忽爲此論 是乃聖人鞠躬遜避於前 而吾黨爲之攘袂扼腕於後也 且無乃使夫學者疑夫聖人之不以誠居謙也乎哉 大率此解多務發明言外之意 而不知其反戾於本文之指 爲病亦不細也
黙而識之
黙識非言意之所可及 蓋森然於不睹不聞之中也 又云 世之言黙識者 類皆想像億度 驚怪恍惚 不知聖門實學貴於踐履 隱微之際 無非眞實 黙識只是不假論辨而曉此事理 如侯子辨摠老之說是已 蓋此乃聖人之謙詞 未遽說到如此深遠處也 且此說雖自踐履言之 然其詞氣 則與所謂驚怪恍惚者亦無以相遠矣
子之燕居
聖人聲氣容色之所形 如影之隨行 聲氣容色不離於形 同是一物 影之於形 雖曰相隨 然却是二物 以此况彼 欲密而反疏矣 且衆人聲氣容色之所形 亦其有於中而見於外者 豈獨聖人爲然哉
志於道
藝者所以養吾德性而已 上四句解釋不甚親切 而此句尤有病 蓋藝雖末節 然亦事理之當然 莫不各有自然之則焉 曰游於藝者 特欲其隨事應物 各不悖於理而已 不悖於理 則吾之德性固得其養 然初非期於爲是以養之也 此解之云 亦原於不屑卑近之意 故耻於游藝而爲此說以自廣耳 又按張子曰 藝者 曰爲之分義也 詳味此句 便見得藝是合有之物 非必爲其可以養德性而後游之也
自行束脩以上
辭氣容色之間 何莫非誨也 固不保其往爾 誨字之意 恐未說到辭氣容色之間 亦未有不保其往之意也 蓋吾無隱乎爾 乃爲二三子以爲有隱而發 不保其往 乃爲門人疑於互鄕童子而發 皆非平日之常言 不應於此無故而及之也 若以禮來者不以一言告之 而必俟其自得於辭氣容色之間 又先萌不保其往之意 則非聖人物來順應之心矣 此一章之中而說過兩節意思 尤覺氣迫而味短也
憤悱
憤則見於辭氣 悱則見於顔色 此兩字與先儒說正相反 不知別有據否
子謂顔淵
其用也豈有意於行之 其舍也豈有意於藏之 聖人固無意必 然亦謂無私意期必之心耳 若其救時及物之意皇皇不舍 豈可謂無意於行之哉 至於舍之而藏 則雖非其所欲 謂舍之而猶無意於藏 則亦過矣 若果如此 則是孔顔之心漠然無意於應物 推而後行 曳而後往 如佛老之爲也 聖人與異端不同處正在於此 不可不察也 程子於此但言用舍無與於己 行藏安於所遇者也 詳味其言中正微密 不爲矯激過高之說 而語意卓然 自不可及 其所由來者遠矣 程子又云 樂行憂違 憂與樂皆道也 非己之私也 與此相似 亦可玩味
子行三軍則誰與
臨事而懼 好謀而成 古之人所以成天下之事而不失也 豈獨可行三軍而已哉 臨事而懼 好謀而成 本爲行三軍而發 故就行三軍上觀之 尤見精密 蓋聖人之言雖曰無所不通 而卽事卽物 毫釐之間 又自有不可易處 若如此解之云 是乃程子所訶終日乾乾 節節推去之病矣
子所雅言
性與天道 亦豈外是而它得哉 固是如此 然未須說
子不語
語亂則損志 損志二字未安
弋不射宿
不忍乘危 乘危二字未安
奢則不孫
聖人斯言 非勉學者爲儉而已 聖人深惡奢之爲害 而寧取夫儉之失焉 則其所以勉學者之爲儉 其意切矣 今爲此說 是又欲求高於聖人 而不知其言之過心之病也 溫公謂楊子作玄 本以明易 非敢別作一書以與易競 今讀此書 雖名爲說論語者 然考其實則幾欲與論語競矣 鄙意於此深所未安 不識高明以爲如何
曾子有疾 召門弟子
形體且不可傷 則其天性可得而傷乎 此亦過高之說 非曾子之本意也 且當著明本文之意 使學者深慮 保其形體之不傷而盡心焉 是則曾子所爲丁寧之意也 且天性亦豈有可傷之理乎
孟敬子問之
將死而言善 人之性則然 此語太略 幾不可曉 恐當加詳焉 動容貌者 動以禮也 正顔色者 正而不妄也 出詞氣者 言有物也 動容貌則暴慢之事可遠 正顔色則以實而近信 出詞氣則鄙倍之意可遠 此說蓋出於謝氏 以文意求之 旣所未安 以義理觀之 則尤有病 蓋此文意但謂君子之所貴乎道者 有此三事 動容貌而必中禮也 正顔色而非色莊也 出詞氣而能合理也 蓋必平日莊敬誠實 涵養有素 方能如此 若其不然 則動容貌而不能遠暴慢矣 正顔色而不能近信矣 出詞氣而不能遠鄙倍矣 文勢如此 極爲順便 又其用功在於平日積累深厚 而其效驗乃見於此 意味尤覺深長 明道尹氏說蓋如此 惟謝氏之說以動正出爲下功處 而此解宗之 夫經但云動 則其以禮與否未可知 但云正 則其妄與不妄未可見 但云出 則其有物無物亦未有以驗也 蓋夫子嘗言非禮勿動 則動容固有非禮者矣 今但曰動 則暴慢如何而遽可遠乎 又曰色取仁而行違 則正色固有不實者矣 今但曰正 則信如何而遽可近乎 又曰出其言不善 則出言固有不善者矣 今但曰出 則鄙倍如何而遽可遠乎 此以文義考之 皆所未合 且其用力至淺而責效過深 正恐未免於浮躁淺迫之病 非聖賢之本指也
弘毅
弘由充擴而成 此句似說不著
民可使由之
使自得之 此亦但謂使之由之耳 非謂使之知也
蕩蕩乎民無能名焉
無所不該而其用則密 只廣大便難名 不必言其用之密也
禹吾無間然矣
皆所以成其性耳 禹之所行 皆理之所當然 固是本出於性 然禹亦爲其所當爲而已 非以其能成吾性而後爲之也
子絶四
絶而不復萌 此顔子不貳過之事 非所以語孔子 蓋此絶字猶曰無耳 然必言絶而不言無者 見其無之甚也
顔淵喟然歎曰
約我以禮 謂使之宅至理於隱微之際 候氏曰 博文 致知格物也 約禮 克己復禮也 其說最善 此解說得幽深 却無意味也 必曰如者 言其始見之端的者然也 此句亦不可曉
未見好德
衆人物其性 此語未安 蓋性非人所能物 衆人但不能養其性而流於物耳 性則未嘗物也
語之而不惰
不惰 謂不惰其言也 夫子之言昭然發見於顔子日用之中 此之謂不惰
惰字乃怠惰之義 如所解 乃墜墮之義 字自作墮 或有通作墮者 不作惰也 且其爲說 又取禪家語墮之意 鄙意於此尤所未安也
衣敝縕袍
不忮不求之外 必有事焉 此語不可曉
可與共學
或者指權爲反經合道驚世難能之事 世俗所謂權者 乃隨俗習 非偸安苟得 如公羊祭仲廢君之類耳 正不謂驚世難能之事也
唐棣之華
唐棣之詩 周公誅管蔡之事 論語及詩召南作唐棣 小雅作常棣 無作棠者 而小雅常字亦無唐音 爾雅又云 唐棣 棣 常棣 移 則唐棣常棣自是兩物 而夫子所引 非小雅之常棣矣 且今小雅常棣之詩章句聯屬 不應別有一章如此蓋逸詩爾 論語此下別爲一章 不連上文 范氏蘇氏已如此說 但以爲思賢之詩 則未必然耳 或說此爲孔子所刪小雅詩中之一章 亦無所考 且以文意參之 今詩之中當爲第幾章耶
食饐而餲
聖人所欲不存 豈有一毫加於此哉 此句不可曉
出三日 不食之矣
或出三日 則寧不食焉 按經文 此句乃解上文祭肉不出三日之意 言所以三日之中食之必盡而不使有餘者 蓋以若出三日 則人將不食而厭棄之 非所以敬神惠也
不可則止
有不合於正理 則從而止之 按經文意 不可則止 但謂不合則去耳 後篇論朋友處 不可則止文意正同 今爲此說 穿鑿費力 而不成文理 竊所未安 且兩句文同 不應指意頓異如此也
點 爾何如
曾子非有樂乎此也至故行有不揜焉也 此論甚高 然反復玩之 則夸張侈大之辭勝 而慤實淵深之味少 且其間文意首尾自相背戾處極多 且如所謂曾子非有樂乎此也 蓋以見夫無不得其樂之意耳 只此一句 便自有兩重病痛 夫謂曾子非有樂乎此 此本於明道先生簞瓢陋巷非有可樂之說也 然顔曾之樂雖同 而所從言之則異 不可不察也 蓋簞瓢陋巷實非可樂之事 顔子不幸遭之 而能不以人之所憂改其樂耳 若其所樂 則固在夫簞瓢陋巷之外也 故學者欲求顔子之樂 而卽其事以求之 則有沒世而不可得者 此明道之說所以爲有功也 若夫曾晳言志 乃其中心之所願而可樂之事也 蓋其見道分明 無所係累 從容和樂 欲與萬物各得其所之意 莫不靄然見於詞氣之間 明道所謂與聖人之志同 便是堯舜氣象者 正指此而言之也 學者欲求曾晳之胸懷氣象 而舍此以求之則亦有沒世而不可得者矣 夫二子之樂雖同 而所從言則其異有如此者 今乃以彼之意爲此之說 豈不誤哉 且 夫子之問 欲知四子之所志也 四子之對 皆以其平日所志而言也 今於曾晳之言獨謂其特以見夫無所不得其樂之意 則是曾晳於夫子之問獨不言其平日之所志 而臨時信口撰成數句無當之大言 以夸其無所不樂之高也 如此則與禪家拈槌竪拂指東畫西者何以異 其不得罪於聖人幸矣 又何喟然見與之可望乎 至於此下雖名爲推說曾晳之意者 然盡黜其言而直伸己見 則愚恐其自信太重 視聖賢太輕 立說太高 而卒歸於無實也 且所謂無不得其樂者 固以人而言之矣 而其下文乃以天理自然 不可忘助 不可過不及 不可倚著者釋之 則未知其以理而言耶 抑以人言之耶 以理而言 則與上文得其所樂之云似不相應 以人而言 則曾晳之心艱危恐迫 傾側動搖 亦已甚矣 又何以得其所樂而爲天理之自然耶 其以爲叙秩命討 天則所存 堯舜所以無爲而治者 則求諸曾晳之言 殊未見此曲折 且此旣許之以聖人之事矣 又以爲聖門實學存養之地 則是方以爲學者之事也 若曰姑以爲學者之事而已 而又以爲行有所不揜焉 則是又幷所謂有養者而奪之也 凡此數節 殊不相應 皆熹之所不能曉者 竊惟此章之旨惟明道先生發明的當 若上蔡之說 徒贊其無所系著之意 而不明其對時育物之心 至引列子御風之事爲比 則其雜於老莊之見 而不近聖賢氣象尤顯然矣 凡此說中諸可疑處 恐皆原於此說 竊謂高明更當留意 必如橫渠先生所謂濯去舊見 以來新意者 庶有以得聖賢之本心耳 論語中大節目似此者不過數章 不可草草如此說過也
克己復禮
斯言自始學至成德 皆當從事至無所見夫克矣 此一節意思似亦因向來以克己爲後段事 故有此反復之論 今但如此發之無端 恐亦須設問答以起之
子帥以正
其有不率者 則明法敕罰以示之 亦所以敎也 理固如此 但此處未應遽如此說奪却本文正意耳 易曰 明罰敕法 此倒其文 不知別有意否
直躬
世之徇名而不究其實者至幾何其不若是哉 此不知所指言者謂何等事 文意殊不明也
爲命
雖然至言外之意也 恐聖人未有此意 但作今自推說 却不妨耳
人也
以其有人之道也 古注云 猶詩所謂伊人 此說當矣 莊子曰 之人也物莫之傷 亦與此同 若曰有人之道 極言之則太重 管仲不能當 淺言之則太輕 又非所以語管仲也
孟公綽
趙魏老在當時號爲家事治者 此句不可曉 恐傳本有誤字
正譎
程子曰云云 此解恐當用致堂說 向見伯恭說亦如此
古之學者爲己
所以成物 特成己之推而已 按此爲人 非成物之謂 伊川以求知於人解之 意可見矣 若學而先以成物爲心 固失其序 然猶非私於己者 恐亦非當時學者所及也 呂與叔中庸序中亦如此錯解了
不逆詐
孔注文義爲順 按孔注文義極不順 惟楊氏說得之 抑者 反語之詞 如云求之與 抑與之與 硜硜然小人哉 抑亦可以爲次矣 皆略反上文之意也
微生畝
包注訓固爲陋 此解是 恐亦未安
諒陰
大君敕五典以治天下 而廢三年之達喪 經文未有此意 短喪自是後世之失 若欲發明 當別立論而推以及之 不可只如此說 無來歷也
修己以敬
敬有淺深 敬之道盡 則修己之道亦盡 而安人安百姓皆在其中 此意甚善 但敬有淺深 一句 在此於上下文幷無所當 反使人疑修己是敬之淺者 安百姓是敬之深者 今但削去此四字及下文一亦字 則意義通暢 自無病矣
原壤
幼而孫弟至見其弊之所自也 恐聖人無此意 今以爲當如是推之則可耳
予一以貫之
所謂約我以禮者歟 此說已見顔淵喟然章 此亦子貢初年事 旣曰當其可 則子貢是時應已黙契夫子之意矣 後來所言夫子之得邦家者 安知不由此而得之 何以知其爲初年事耶 此等旣無考據 而論又未端的 且初非經之本意 不言亦無害也
子張問行
人雖不見知 而在己者未嘗不行 夫子之言 言其常理耳 人雖不知 別是一段事 未應遽說 以亂夫子之意 向後別以己意推言 則可耳 參前倚衡 使之存乎忠信篤敬之理也 此謂言必欲其忠信 行必欲其篤敬 念念不忘而有以形於心目之間耳 若不責之於言行之實 而徒曰存其理而不舍 亦何益哉
卷而懷之
猶有卷而懷之之意 未及潛龍之隱見 恐不須如此說
志士仁人
仁者人之所以生也 苟虧其所以生者 則其生也亦何爲哉 志士仁人所以不求生以害仁者 乃其心中自有打不過處 不忍就彼以害此耳 非爲恐虧其所以生者而後殺身以成仁也 所謂成仁者 亦但以遂其良心之所安而已 非欲全其所以生而後爲之也 此解中常有一種意思 不以仁義忠孝爲吾心之不能已者 而以爲畏天命謹天職 欲全其所以生者而後爲之 則是本心之外 別有一念 計及此等利害重輕而後爲之也 誠使眞能舍生取義 亦出於計較之私 而無慤實自盡之意矣 大率全所以生等說 自它人旁觀者言之 以爲我能如此則可 若挾是心以爲善 則已不妥帖 况自言之 豈不益可笑乎 呂覽所載直躬證父一事而載取名事 正類此耳
放鄭聲 遠佞人
非聖人必待戒乎此也 於此設戒 是乃聖人之道也 此是聖人立法垂世之言 似不必如此說 然禹以丹朱戒舜 舜以予違汝弼責其臣 便說聖人必戒乎此 亦何害乎 此蓋尊聖人之心太過 故凡百費力主張 不知氣象却似輕淺迫狹 無寬博渾厚意味也
一言終身行之
行恕則忠可得而存矣 此句未安 當云誠能行恕 則忠固在其中矣
誰毁誰譽
毁者指其過 譽者揚其美 此說未盡 愚謂毁者 惡未至此而深詆之也 譽者 善未至此而驟稱之也 非但語其已然之善惡而已 誰毁誰譽 謂吾於人無毁譽之意也 聖人之心仁恕公平 實無毁譽 非但無其意而已 有所譽必有所試 因其有是實而稱之 此亦未盡 試猶驗也 聖人或時有所譽者 雖其人善未至此 然必嘗有以驗之 而知其將至是矣 蓋聖人善善之速 惡惡之緩 而於其速也亦無所苟焉 又曰 可毁可譽在彼 又曰 不云有所毁 聖人樂與人爲善也 必有所試而後譽 則其於毁亦可知矣 若如此說 則是聖人固常有毁 但於此著其有譽而匿其有毁 以取忠厚之名也 而可乎 毁 破壞也 如器物之未敗而故破壞之 聖人豈有是乎
禮樂征伐自天子出
天子亦豈敢以爲己所可專 而加私意於其間哉 亦曰奉天理而已 意見原壤夷俟子張問行章
三愆
言而當其可 非養之有素不能也 聖人此言只是戒人言語以時 不可妄發 未說到此地位也 言及之而不言當言之理 不發也 此語甚怪 蓋爲養之有素所牽而發耳 然若如此 則是自見不到 有隱於人矣
生而知之
其至雖一 而其氣象規模終有不同者 此一節當刪去 於解經之意亦未有所闕也
子謂伯魚
爲者躬行其實也 按諸先生多如此說 意極親切 但尋文義 恐不然耳 爲只是誦讀講貫 牆面只是無所見 書所謂不學牆面 亦未說到不躬行則行不得處也
患得之
所爲患得者 計利自便之心也 此句解得文義不分明 而語意亦不親切
君子有惡
以子貢之有問至抑可知矣 夫子之問 未見惡人之疑 子貢之對 亦未見檢身之意
三仁
皆稱爲仁 以其不失其性而已 此說仁字恐不親切
荷篠
植杖而芸 亦不迫矣 止子路宿 則其爲人蓋有餘裕 又曰行以避焉 隘可知也 此語自相矛盾
不施其親
引尹氏說 尹氏固佳 然不知施字作如何解 若如謝氏 雖亦引無失其親爲解 然却訓施爲施報之施 則誤矣 此等處須說破 令明白也 陸德明釋文本作弛字 音詩紙反 是唐初本猶不作施字也 呂與叔亦讀爲弛 而不引釋文 未必其考於此 蓋偶合耳 今當從此音讀
士見危致命
楊氏曰云云 似不必如此分別
君子學以致其道
致者 極其致也 恐當云 致者 極其所至也 自未合者言之 非用力以致之 則不能有諸躬 道固欲其有諸躬 然此經意但謂極其所至耳 不爲有諸躬者發也 若曰有諸躬 則當訓致爲致師之致 如蘇氏之說矣 然本文意不如此
大德小德
小德 節目也 此章說甚佳 但以記所謂後其節目者觀之 則此二字似未甚當
子夏之門人小子
君子之道 孰爲當先而可傳至循其序而用力耳 詳本文之意 正謂君子之道本末一致 豈有以爲先而傳之 豈有以爲後而倦敎者 但學者地位高下不同 如草木之大小 自有區別 故其爲敎不得不殊耳 初無大小雖分 而生意皆足 本末雖殊 而道無不存之意也 焉可誣也 蘇氏得之 有始有卒尹氏得之 此章文義如此而已 但近年以來 爲諸先生發明本末一致之理 而不甚解其文義 固失其指歸 然考之程書 明道嘗言 先傳後倦 君子敎人有序 先傳以近者小者 而後敎以遠者大者 非是先傳以近小 而後不敎以遠大也 此解最爲得之 然以其言緩而無奇 故讀者忽之而不深考耳
孟莊子
孟莊子所以不改 意其事雖未盡善 而亦不至於悖理害事之甚與 莊子乃獻子之子 獻子賢大夫 其臣必賢 其政必善 莊子之賢不及其父 而能守之 終身不改 故夫子以爲難 蓋善之也 此臨川鄧丈元亞說 諸家所不及也
仲尼焉學
萬物盈於天地之間 莫非文武之道 初無存亡增損 近年說者多用此意 初若新奇可喜 然旣曰萬物盈於天地之間 則其爲道也 非文武所能專矣 旣曰初無存亡增損 則未墜於地之云 又無所當矣 且若如此 則天地之間可以目擊而心會 又何待於賢者識其大 不賢者識其小 一一學之 然後得耶 竊詳文意所謂文武之道 但謂周家之制度典章爾 孔子之時 猶有存者 故云未墜也 大抵近世學者喜聞佛老之言 常遷吾說以就之 故其弊至此 讀者平心退步 反復於句讀文義之間 則有以知其失矣
生榮死哀
生榮死哀 無不得其所者也 所解不明 似謂天下之人其生皆榮 其死皆哀 無不得其所者 不知是否 若如此說 則不然矣 子貢言夫子得邦家時其效如此 范氏所謂生則天下歌誦 死則如喪考妣者是也
謹權量
此亦帝王爲治之要 此篇多闕文 當各考其本文所出而解之 有不可通者 闕之可也 謹權量 以下 皆武王事 當自周有大賚以下至公則悅爲一章 蓋興滅國繼絶世擧逸民 當時皆有其事 而所重民食喪祭 卽武成所謂重民五敎 惟食喪祭者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