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상에게 보내는 편지 4월 24일 與留丞相書四月二十四日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년 (소희 2년,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유승상에게 보낸 앞서의 편지처럼 정책이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 편지이다. 그는 이글에서 경계법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과다전을 포함한 조세제도를 균등히 시행하고 포상 제도를 공평히 해서 민생이 안정되어 그러한 기틀에서 나라의 국정이 편안을 기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붕당에 관한 의견도 개진하였다.
제가 가만히 생각하건대 맹하의 더위가 더욱 심해져서 엎드려 생각건대 승상국공께서 기거가 고르고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제가 멀리 떨어진 성을 지키면서 날로 멍에를 짊어지고 무덤을 지켜서 어제 자식을 곡하여 슬프고 상심이 되어 사사로운 계획이 편안하지 않아 위엄을 무릅썼으니 깊이 두렵습니다. 앞의 사람이 돌아와서 손수 쓰신 교지를 받들어 보존하고 어루만지심이 매우 심하시니 오래도록 풍토병이 있는 시골에 머무는 것을 가엽게 여기는 뜻이 있었습니다. 엎드려 읽다가 전전 반측해서 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작년에 걸린 병이 곧 숙질로 발동했으니 풍토병에 물든 것이 아니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조 첨사가 무슨 연고로 품부를 갖추어 번거롭게 생각을 다하는지? 하물며 이 고을이 일이 간략하고 풍속이 순후해서 금년이래로 관리와 백성이 대략 서로 편안하고 또한 경계가 이미 지휘를 얻었으니 만약 가정의 사사로운 연고가 아니라면 제가 의리상 마땅히 떠날 수 없을 뿐만이 아니고 또한 이곳을 버리고 멀리 피하는 편안함으로 번거롭게 위태로움에 나가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행히 지금 봉사의 요청이 명령을 이룸을 들으니 이것은 대개 승상께서 애처로운 간청을 살펴서 도야가 여기에 미친 것이니 천만 다행입니다. 비록 논찬에 화려한 자본이 마땅히 얻을 것은 아니나 또한 장차 이것을 제거하고 다만 명령을 받음을 기다려 한 쪽 면을 당겨 말해서 전 로에서 들은 것에 따라 보고하고자 합니다. 헤아려 한 사람을 선발하여 삼일이 되지 않았는데 마침 여기에 이르렀으니 다만 지금 군중에 두 일이 있어서 장계를 갖추어 주달함을 모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첫째는 어제 바라던 과다전을 견면하고 혁파해 달라는 것은 이미 시행이 내려와 조사들이 서로 헤아렸습니다. 지금 군중에 스스로 말뚝을 갖출 만한 것을 헤아려 다만 바라건대 지휘를 내려 관리들에게 약속해서 이것을 쫒아 이름 해서 흡사 전 과를 흔들리게 하여 감히 다시 번거로이 견면을 응당 부합되게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바라던 제거하고 감면해서 액수가 없게 해 달라는 일 항 오천민은 바라건대 특별히 유사에게 조서를 내려 문 득 시행하게 하신다면 거의 한 군의 오랜 이익이 될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장포 고지현 충의 충언과 곧은 절개가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폄하하여 죽었으니 바라건대 폐하의 은혜로 특별히 밝게 설욕해서 그 집안을 포상하고 기록해 주십시오. 두 일을 모두 바라건대 승상께서 유의하여 개진해서 요청한 것을 따르게 해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비록 마땅히 이것을 버렸으나 오직 군상이 파견하여 이곳에 오게 한 뜻이 흡사 우연이 아니고 만 분의 하나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여기에서 가슴 속에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쇄쇄해서 또한 합당함을 따라서 개혁해야 하지만 그 일이 주군에 달려 있고 조정에 달려 있지 아니하니 감히 균청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熹竊以孟夏漸熱, 伏惟丞相國公鉤候起居萬福. 熹還守偏城, 日荷臨庇, 昨以 哭子悲傷, 私計不便, 干冒威嚴, 已孫震悚. 而前此人還, 蒙賜手敎, 存憮甚至, 且有憐其久處瘴鄕之意. 伏讀反側, 不知所爲. 熹去歲之病, 乃是宿疾發動, 卽非 染輝, 不知趙帥何故乃爾具禀, 致頌軫念? 況此邦事簡俗淳, 今歲以來, 吏民亦粗 相安, 又經界已得指揮, 若非家有私故, 則熹非唯義不當去, 亦不願舍此僻遠之 安, 而就繁會之危也. 幸今巳聞奉穢之請旣有成命, 此蓋丞相察其哀懇而陶鑽及 此, 千萬幸甚. 雖論譏華資所不當得, 然亦且得去此, 只俟受命, 一面控辭, 而於 前路聽從欲之報也. 計差去人不三敷日會當至此, 但今郡中却有二事, 不免具狀申奏.
其一爲昨來所乞纖免罷科茶錢, 已蒙行下漕司相度. 今計郡中自可椿辨只乞降旨約束宮吏, 不得沿此爲名, 似前科擾, 不敢更煩纖免癒副. 而所乞除減無額一項五千繩者, 卽乞特詔有司便與施行, 庶爲一郡久遠之利. 其一爲障隨摘椥應燈忠言宜節, 不幸貶死, 欲望聖恩特與昭雪, 褒錄其家. 二事皆乞丞相留意閑陳, 得從所請, 千萬幸甚. 雖當去此, 而惟君相所以遣之此來之意似非偶然, 欲圖以報萬分者, 是以於此有所不能忘陵. 其他瑣細, 亦有合因革者, 然其事在州郡而不在朝廷, 又不敢以煩鉤聽也.
다른 것은 경계와 같은 일에 이르러 만약 승상께서 서로 힘써 주장하지 않으시면 뜬 의논이 요동쳐서 혁파하는데 오래 걸릴 것입니다. 이것을 또한 거듭 깨우쳐 주심을 입어서 더욱 절실히 감탄스럽습니다. 이 일은 가난한 백성들은 하고자하는 바이지만 부자들은 원치 않으니 이치와 형세가 매우 분명해서 흡사 깨우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리 짓는 말들이 서로 요동쳐서 만 가지 단서로 수군거리니 어리석은 자들이 미혹될 뿐만이 아니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들도 혹여 모면하지 못하니 이것이 괴이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사람들이 부자들이 오히려 적으니 그들이 힘써 의론을 막더라도 앞의 설명에 관여될 수 있는 사람들이 또한 매우 많지 않습니다. 제가 근심하는 것은 유독 온릉 지방이 부자가 이미 많아서 그 사이에 어찌 문과 담장 아래를 출입해서 은혜를 돌아보아 받드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반드시 장차 말을 교묘하게 해서 사이를 타고 틈을 엿보아 사사로운 이익을 건지려 할 것입니다. 가만히 바라건대 고명께서 자세히 살피셔서 이 나라의 쌓음이 장차 이루는데 실패하지 않게 한다면 천 정이 차례대로 이익을 얻어서 삼주의 지경 안에 궁하고 고생스러워도 고할 데 없는 백성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골육의 은혜를 입었다고 감사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其他至如經界一事, 若非丞相力賜主張, 則浮議動搖, 其罷久矣. 姦者蒙垂諭諄悉, 尢切感敷. 此事貧民所欲而富者不願, 理勢甚明, 似不雜曉. 而群言胥動, 蹲沓萬端, 則不唯愚者惑之, 而賢且智者亦或不免, 此可怪也. 然此邦之人富者尙少, 其力能沮議而得關說於前者亦不甚多. 熹之所愛, 獨恐溫陵富室旣多, 其間豈無出人門牆之下, 承眄陜之恩者? 必將巧爲詞說, 乘間伺隙, 以濟其私. 網願高明蕃加察焉, 使此邦之續不敗於將成, 則泉․汀以次悉蒙其利, 而三州之境窮苦無告之民, 無不感戴生死肉骨之恩矣.
지난 번 진헌이 관리에게 맡기고 여기에 와서 헤아려서 명령에 따라 전야를 둘러보고 정에서 가격이 시행되는 것을 듣고 놀라고 기뻐하여 서로 수레에 내려 절하고 이 법이 어느 때에 우리 주에 미쳤는가를 물으니 여기에서 그 사람의 진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설을 지어 패퇴시키고 스스로의 이익을 도모하니 어질다고 않겠습니까! 지난 번 합하의 사람 임종신이 또한 승상의 고을 사람이니 일찍이 주달하고 응대해서 논의가 이 일에 미쳤습니다. 그의 말이 분격하고 통절해서 대개 지목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지금 천의 가난한 백성들이 사를 원해서 사람마다 외우고 말해서 공변된 의논과 양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 막는 이들이 설령 이 곳을 벗어나지 않으나 자손들이 결단코 먹을 것을 구걸하지 않아서 유독 하필이면 지나치게 염려해서 그 자신에게 허물을 입히겠습니까? 이것을 탄식할 따름 입니다.오직 승상께서 깊이 생각하셔서 돌이키신다면 이것은 또한 문하를 위한 계책이 되고 삼주의 가난한 백성을 위한 계책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깨우침을 입어 깊이 사대부들의 붕당을 염려하시니 이것은 예나 지금에 통하는 병통이고 진실로 위에 있는 사람이 병통으로 여겨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일찍이 들으니 붕당의 재앙이 사대부들에게 그쳐서 옛날에 붕당을 싫어해서 제거하고자 하는 자들이 왕왕 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이르렀습니다. 대개 어진지 불초한지 자신을 다하는지 사특한 지를 살피지 않고 오직 당을 제거하는데 힘쓰면 저 소인 중에 스스로를 도모함이 공교로운 사람들이 반드시 장차 스스로 그 자취를 덮어 군자가 공변된 마음과 곧은 도리를 믿고서 상호 돌아보지 않고 왕왕 도리어 서로 구제할 바라 해서 붕당으로 지목할 것입니다. 한 당을 이은 성스러운 지난 일들이 지금 멀지 않았습니다. 제가 비록 지극히 어리석지만 엎드려 승상께서 보내신 글을 읽으니 승상의 폐하를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에서 한 말 한 글자도 지성측달에서 벗어나지 않음이 없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천하의 현인군자들이 서로 따라서 군자의 덕풍에 붙기를 바라는 것이고 붕당으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승상께서 혹여 깊이 헤아려 천하의 현부충사를 가려 임무를 맡기지 않고 이 때문에 위에서 폐하께 보고하는 자들이 그들로 하여금 판연히 군자와 소인의 분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아래에서 진퇴여탈을 시행하는 자들이 아직 천하의 마음을 복종시켜 천하의 여망을 위로하지 못하고서 음탕하고 간사하고 아첨하고 해치는 이들이 항상 도리어 침범하여 업신여겨 범하는 형세가 있게 되었습니다. 승상께서 또한 이 몸이 군자의 도당에 빠져 저들에게 오래도록 비분강개함을 쌓게 하여 재앙이 깊어질까 염려하시고 또한 고의적으로 혼미하고 어지럽고 혼란하고 섞여진 형태를 만들어서 고르게 부드럽게 해서 도리어 기운은 호방하고 뜻은 강건해서 곁에 사람이 없는 듯해서 감히 녹을 구하는 장에 방자히 선을 속이는 말을 해서 조정에 또한 묻지 않았습니다. 문을 걸고 스스로를 지켜서 홀로 서서 벗이 없는 것이 이것이 한 개인의 행실입니다. 연이어 어질고 능력 있는 이들을 받아들여 간사하고 험한 이들을 퇴출시켜 천하의 사람들이 천하를 구제하려는 일과 부합되게 하려는 것은 재상의 직분입니다. 어찌 반드시 당이 없는 것으로 옳다 하고 당이 있는 것으로 그르다 하겠습니까? 승상께서 오늘 처리한 바가 당에 치우치지 않았다면 당이 없는 것이고 소인의 도리가 날로 자라고 군자의 도리가 날로 사라져서 천하를 염려함이 장차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승상께서 어찌 그 책임을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리석은 염려를 이기지 못하니 바라건대 승상께서는 먼저 현부충사를 분별해서 임무를 맡기셨다고 하시니 그들이 과연 어질고 충성스럽습니까? 드러나게 나오게 하니 오직 그 당이 많지 않아서 함께 천하의 일을 도모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그들은 과연 간사하고 사특합니까? 드러나게 내치시니 오직 그들이 다 떠나지 않아 우리가 어진 이를 쓰는 공로를 해칠까 두렵습니다. 군자들이 편당지음을 근심해서 자신이 편당지음을 꺼리지 않을 뿐만이 아니고 자신이 편당지음을 꺼리지 않아 이것이 장차 폐하를 끌어당겨 편당 지으면서도 꺼리지 않아서는 아니 됩니다. 이와 같다면 천하의 일이 거의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해 두 명의 간관을 내치고 지난해에 한명의 어사를 내치고 근자에 들으니 또 한명의 간관을 내쳐서 위아래가 사귀지 않아 천하가 장차 나라가 없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승상께서 이것을 염려하지 않으시고 사대부들의 붕당지음만을 염려하시니 잘못된 것입니다.
昨來陳憲委官來此商度, 因今行視田野, 汀之行賈闇之驚喜, 相率拜其車下, 間此法何時可及吾州, 此可以見夫人之眞情矣. 而必爲說以敗之而圃自利, 亦不仁也哉!往時有閤門舍人林宗臣者, 亦丞相之邑子, 嘗因奏對, 論及此事. 其言憤激痛切, 蓋有所指. 今泉之貧民願土, 人人能誦道之, 公議良心, 不可演投. 彼沮之者設不出此, 子孫決不乞食, 獨何必過爲之慮而蒙此詬於其身耶? 是可欺已. 惟丞相燦念, 有以反之, 此又自爲門下之計, 而非獨爲三州貧民計也. 慕又蒙垂諭, 孫以士大夫之朋黨爲患, 此古今之通病, 誠上之人所當疾也. 然熹嘗網謂朋黨之禍止於縉紳, 而古之惡朋黨而欲去之者, 往往至於亡人之國. 蓋不察其賢否忠邪, 而惟黨之務去, 則彼小人之巧於自謀者, 必將有以自蓋其迹 : 而君子構其公心直道, 無所回互, 往往反爲所擠, 而自以爲黨. 漢․唐․紹聖之已事, 今未遠也. 熹雖至愚, 伏謂丞相所賜之書, 知丞相愛君愛國之心, 無ラ己一字不出於至誠側但. 此天下之賢人君子所以相率而願附於下風也, 而末能不以朋黨爲慮. 熹恐丞相或未深以天下之賢否忠邪爲己任, 是以上之所以告于君者, 未能使之判然不疑於君子小人之分 : 下之所以行於進退豫奪者, 未能有以服天下之心, 慰天下之望, 而陰邪謂賊, 常若反有侵凌干犯之勢. 丞相又慮此身自隨於君子之黨, 而使彼之瞽憾久而爲禍深也, 又稍故爲迷亂昏錯之態以調柔之, 反使之氣豪意健, 旁若無人, 敢於干祿之章, 肆爲誣善之語, 而朝廷亦不之間也. 夫杜門自守, 孤立無朋者, 此一介之行也. 延納賢能, 黜退姦險, 合天下之人以濟天下之事者, 宰相之職也. 奚必以無黨者爲是而有黨者爲非哉? 夫以丞相今日之所處, 無黨則無黨矣, 而使小人之道日長, 君子之道日消, 天下之盧將有不可勝言者, 則丞相安得競其責哉? 熹不勝愚者之盧, 願丞相先以分別賢否忠邪爲己任, 其果賢且忠耶, 則顯然進之, 惟恐其黨之不衆而無與共圖天下之事也 : 其果姦且邪耶, 則顯然點之, 惟恐其去之不盡而有以害吾用賢之功也. 不惟不疾君子之爲黨, 而不憚以身爲之黨 : 惟
不憚以身爲之黨, 是又將引其君以爲黨而不憚也. 如此, 則天下之事其庶幾. 前年逐二諌官, 去年逐一御史, 近聞又逐一諫官矣, 上下不交, 而天下將至於無邦. 丞相不此之慮, 而慮士大夫之爲黨, 其亦課矣.
제가 비록 지식을 장려하는 일을 맡았으나 아직 문하에 들어가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돌아보건대 말씀을 내는 부지런함을 입어서 흡사 취할 만한 것이 없지 않은 것 같으니 이 때문에 문득 가슴을 비워 조금 은혜로운 돌아봄에 보답하여 스스로 미치고 망령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위엄 있는 존엄함을 무릅써서 숙이고 엎드려 두려워 떱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관용으로 재단해 주십시오. 우러러 황합을 바라봄에 말마 암아 종종걸음 쳐 절하지 못하고 감히 위로 국가의 숭고하고 중대함을 보전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아래의 실정으로 천만번 간절히 비는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가만히 보니 소흥 초년에 조 충간공이 재상이 되어 한 시절 인재를 수용한 것이 성대함을 뒤에 미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를 세밀히 살펴보니 또한 어떻게 사람의 뜻에 불만인 것이 없었겠습니까? 다만 많고 적음의 형세로 이 사람은 강하고 저 사람은 약하다고 하는 까닭에 비록 조금 섞였으나 정치를 해치지는 않아서 당시에 ‘소원우’라는 호칭이 있었습니다. 지금 가만히 살펴보니 승상의 마음이 조공의 마음이지만 한 시절 인재의 어진지 아첨하는지의 형세를 논의해보면 이것은 적고 저것은 많으며 이것은 약하고 저것은 강하니 이것은 구구히 깊이 근심해서 문득 현부충사를 분별하는 설로써 문하에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균등히 살펴주신다면 저로써는 황공할 뿐입니다.
제가 깨우침을 입어 진헌 조수의 곡절을 삼가 알았습니다. 진헌이 여기에 지극히 유의해서 저의 전 차자에 이미 갖추어 품부하였습니다. 지난번에 절개를 옮기는 것을 보고 바야흐로 근심하였으나 균청의 생각이 이미 여기에 미치지 않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조수가 옛날 맡은 바를 마음과 힘으로 앞을 향해서 진실로 존위의 명령과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마디의 말을 얻어 힘쓰게 되었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근자에 관리를 파견하여 하향의 경계를 나누어 장차 두루 부로들을 깨우쳐 헤아리려는 바의 뜻은 나란히 법에 따라 주었으니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간략히 바꾸고 쉽게 행해서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지금 제가 가는 것을 보고 자못 근심으로 여기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승상께서 주장하는 힘이 애초부터 저의 한 낱낱의 전철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바라건대 뜻을 더하여 생각을 드리우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황공합니다.
熹雖荷知獎, 而未遂掃門之願, 顧蒙出語之勤, 似不爲無可取者, 是以輒胸臆, 少答恩顧, 不自知其狂且妄也. 干冒威尊, 俯伏震懼. 伏惟寬容, 有以之. 膽望黃閤, 無由趨拜, 1敢糞上爲國家倍保崇重. 熹不勝下情千萬懇檮之至. 熹籍見紹興初年, 趙忠簡公爲相, 一時收用人材之盛, 後來莫及. 然細考其 間, 亦豈無不滿人意者? 但其多募之勢, 此彊彼弱, 故雖少離而不能害洽, 當時 有‘小元祐’之號. 今者羅觀丞相之心卽趙公之心, 然論一時人材賢佞之勢, 則 此少而彼多, 此弱而彼彊, 此則魑區所以不能不深憂, 而飄以分別賢否忠邪之說 爲黙於門下也. 伏乞鉤照, 熹皇恐又覆.
嘉又蒙垂諭陳憲․超守曲折, 謹悉. 陳惑於此極留意, 熹前劉已具蕊. 昨 見移節, 方薩愛之, 不謂鉤念已及此也, 聿甚. 趙守舊識之, 有心力肯向前, 誠 如尊命. 然更得ラ己勉之, 幸甚. 近因遣官下鄕分界, 且遞愉父老以所爲方量之 意, 幷以算法授之, 人見其簡易易行, 無不悅喜. 今見嘉去, 頗以爲愛, 而不知 丞相王張之力, 初不爲熹一介作輟也. 更乞加意垂念, 千萬至幸. 熹皇恐又覆.
유승상에게 보내는 편지(7월 10일) 與留丞相書七月十日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년 (소희 2년,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거듭해서 사면을 요청한 편지이다. 그는 이글에서 유승상에게 그전처럼 사면을 요청하면서 그동안의 정책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무액전의 문제와 붕당의 일에 관하여 구체적인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러한 일들이 원만히 처리되어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만 민생의 안정을 기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제가 가만히 생각하니 맹추인데도 오히려 더워서 승상 국공께서 기거에 편안해서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저의 구구한 천한 자취가 사월이십육일에 군사를 파직함으로부터 삼일이 지나서 드디어 임장을 출발했습니다. 오월이십사일에 드디어 건양에 다다라 드디어 우거하면서 장례를 마쳤습니다. 다만 비통한 나머지에 다시 살 뜻이 없습니다. 우러러 큰 무덤을 만들어 짝하려 하지만 아직 죽지 못했을 뿐입니다. 칠월사일에 비로소 차자를 받고서 나란히 손수 쓴 교지를 내리셔서 우러러 균등한 사랑으로 생각을 드리우는 두터움을 입었습니다. 다만 요청한 위에서 내린 은명을 되돌린 것은 아직 윤허를 받들지 못했습니다. 폐하의 은혜가 융숭하고 위령이 이미 시행되었으니 지우들이 모두 다시 무릅써 구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반복해서 생각해보았으나 마침내 받을만한 바의 설을 얻지 못해서 다시 건양에서 사람을 빌려 장계를 가지고 펴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정성이 다 없어진 나머지에 감히 거듭 숭덕을 더럽히지 못하겠습니다. 살펴봐 주시어 자세히 개진해서 위로는 성스러운 조정의 여탈의 공변됨을 삼가하고 아래로 필부들의 사양하고 받는 도리를 온전히 해주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경계의 이병을 깨우치심을 입었으니 온양 사대부들의 오히려 공론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만 장 사람들이 조정에 벼슬하는 사람들인 권문세도가들에게 부지런히 다니면서 날로 방자히 흔들고 막아서 망령되이 의심할 뿐이었습니다. 수일 전에 진헌이 부를 살피며 경유하다가 또한 들은 바가 있어서 깊이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였습니다. 고쳐 보낸 요청이 거의 반드시 이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조에 처음 이름에 서로 보고 맨 먼저 물음이 여기에 미쳐서 조정에서 혹 진헌의 요청을 따라서 곧 대략 곡절을 알리고자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뒤에 의견이 분분하다고 들은 뒤에 다시 어떻습니까? 이것은 한가한 저가 간여할 바가 아니지만 다만 아래 깨우침이 미침으로 인해서 감히 들은 바를 펼칠 뿐입니다. 무액전의 일은 곡절히 생각하심을 입었으니 더욱 깊이 감읍합니다. 판조에서 이제 마땅히 이미 정해진 논의가 있으니 다만 출납의 인색함이 유사들의 보통의 모습이니 모름지기 우러러 묘당에 힘써 주장해야만 비로소 바라는 바가 어그러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고고현의 일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어떻게 시행이 되었습니까? 이 일은 남방 사람들이 들어서 알지 못하는 이가 없거늘 하물며 승상은 더욱 밝게 보아서 양문정공이 저번에 거듭 씻어주었으니 진실로 저의 말을 기다려서 믿을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리 앞에 곡진히 개진해서 특별히 밝게 쓸어 주시면 이미 지나간 원통함을 펴줄 뿐만이 아니고 구천의 한을 펴서 이제로부터 이왕으로 충언이 날로 승상께 들리고 아름다움을 본받고 곧게 사양하는 마음이 또한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근자에 듣는 것과 같이 조사들이 충신의 설을 해서 폐하의 마음에 해당되어 친히 발탁되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을 먼 곳에서 전하여 들으니 믿을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일 살펴주신다면 소인의 지나친 계책의 근심이 나라를 일으키는 말이 될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또한 들으니 그 사람들이 일찍이 문장을 출입해서 깊이 알아 돌아봐 주심에 욕을 끼쳤으니 이때를 당해서 이러한 논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언과 지인의 훈계가 제가 생각하기에 승상께서 다시 유의해서 널리 곧고 진실한 어진 이를 구해서 동합에 두어서 더불어 천하의 일을 도모하시면 대인의 마음을 바로잡는 효과를 얼마 안 되어 볼 수 있어서 공훈의 무성함을 비단 전후 여러 공을 뛰어 넘을 뿐이겠습니까? 제갈무후의 가르침에 모든 나라에 충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만 부지런히 우리 궁궐을 공격하면 일이 이루어져서 적들을 죽여서 공이 우뚝해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고 태조 황제가 항상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당태종이 마음을 비우고 간관을 구해서 모든 말을 포용하여 받아들인 것은 진실로 인주로써 어려운 일이지만 어찌 만약 스스로 그르다고 아니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얻지 못하여 간함이 낫다고 하겠는가! 지극하다 말씀이여! 크다 말씀이여! 저는 가만히 바라건대 무후의 말로써 승상을 위해 드리고 또 바라건대 승상께서 태조의 성스런 가르침으로 날로 폐하의 앞을 열어 주십시오.
붕당의 논의에 이르러 전에 기록하여 편 것이 아직 다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번거롭게 뾰족한 비유를 이루어 부지런히 욕보이는데 이르렀습니다. 세 번 부끄럽고 두려워 말하는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장과 채의 재앙이 진실로 존명과 같지만 다만 충성스럽고 어진이 들이 분주히 퍼트려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근원을 미루면 대개 스스로에게 달려 있습니다. 구년 사이에 유명을 출척해서 근본을 공고히 했으니 그 효과가 정강 건염의 사이에 나타나서 백성들이 지금까지 의지하고 있고 또한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원풍과 소흥이 문득 서로 전습되었으니 후일의 재앙이 어찌 다만 이와 같을 뿐이겠습니까? 전배들이 논의한 가우 원풍에 겸하여 거두어 들여서 나란히 다른 취미의 사람들에게 쓰이므로 당시 붕당의 재앙이 조정에 이르지 않은 것은 대대로 많이 명언으로 여깁니다. 제가 일찍이 생각하건대 이것은 곧 부득이한 논의이니 두루 소인들을 쓰고 군자들을 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이와 같이 함이 나음만 같지 못합니다. 군자를 전임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소인도 다 버릴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만세의 법이 될 만합니다. 만약 당시에 한 부의 무리들을 다 기용하고 나란히 왕 제의 무리들을 내쳤으면 끝내 경력의 큰 법에 나아가 희령의 쭉정이 정치를 개혁한 바의 것이 어찌 아름다움을 다하고 선을 다한 것이 아니겠는가! 뒤에 보는 자들이 그 말을 얻었지만 그 마음을 얻지 못해서 물러나 하는 바의 부득이함을 지킬 줄은 알고 나아가 아름다움을 다하고 선을 다하는 계책을 알지 못하니 이 때문에 국론이 날로 낮아져서 천하의 형세가 마침내 위미해져서 떨쳐지지 아니하니 이것이 슬픈 일입니다. 원우와 같은 지경에 이르면 그 실수가 한갓 자기와 다른 자들이 군자를 그르다고 하는 것만을 알고 자기와 같은 자들이 아직 반드시 소인을 그르다고 하지 않는 줄을 알지 못하니 이 때문에 마음속에 근심이 생겨 마침내 구적의 형세를 이루어 또한 유독 장 채가 재앙이 될 뿐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원우의 실수는 곧 분별이 자세하지 아니한 데에 달려있는데 승상께서 너무 심하다고 여기시니 제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언 지인이 성스러운 명확한 가르침이 있으니 구구히 전에 이미 본받았으니 깊이 바라건대 승상께서 생각을 더하여 주십시오.
熹竊以孟秋猶熱, 伏惟丞相國公鉤候起居禽福. 熹區區賤迹, 自四月二六日解罷郡事, 越三日, 遂發臨澄. 五月二十四曰, 遂抵建陽, 因遂寄寓, 以畢喪葬. 但悲惱之蜍, 無復生意. 仰賴巨庇, 偶未卽死耳.
七月四曰, 始被省劉, 幷領手敎之賜, 仰荷鉤慈垂念之厚. 但所請上還賊恩命, 未奉飾允. 上恩隆重, 威冬已行, 知友皆謂不當復有干冒. 而反覆以思, 竟未得其所以可受之說, 不免復從建寧借人, 持狀申省. 愚慮悃款馨矚亡餘, 不敢重晩崇聽. 得賜省覽, 詳悉閑陳, 上謹塾朝豫奪之公, 下全匹夫諸受之義, 則熹不勝千萬幸甚.
又蒙垂喩經界利病, 乃是溫陵士夫猶有公論. 始者但見潭人有仕於朝者奔走權門, 日肆搖沮, 而妄疑之耳. 敷曰前, 陳憲按部經由, 亦有所聞, 深不自安. 改送之請, 殆必爲此. 然周漕始至, 相見首間及此, 云恐朝廷或從陳憲之請, 卽欲略知曲折, 未知後來旣間浮議紛繪之後, 又復如何. 此非閑人所敢干預, -第因下喩之及, 敢布所聞耳.
無額錢事曲蒙垂念, 允深感載. 版曹今當已有定論, 但恐出內之吝, 有司常態, 須仰廟堂力賜主張, 始可不乖所望也.
高古縣事不蕃已作如何施行? 此事南方之人無不聞知, 况如丞相尢是目睹而
粱文靖公向來亦嘗爲之申雪, 固不待鄙言而後倍. 但得樶前委曲敷陳, 特與灑, 則不唯頁旣往之冤, 申泉壤之恨, 而自今以往, 忠言日閠於丞相, 救美遜頁之心亦不爲無所助矣. 如闃比日朝士有以不願爲忠臣之銳當上心被貌擢者, 遠方傳聞, 不知信否. 如蕃有之, 則小人過計之菱, 恐其不得爲興邦之言也. 又闥其人亦嘗出人戶N 援犀知巖 富是其時未有此論. 如又不然, 則知言知人之訓, 妄意丞相更當留意, 博求亘諒之賢, 疊之東閤, 與圖天下之事, 則大人格心之效不日可見, 而動業之茂, 不但躑於前後敷公矣. 諸葛武侯之敎有曰: ‘諸有忠慮於國者, 但勤攻吾之闕, 則事可成, 賊可死, 功可翹足而待矣. ’太祖星帝嘗語侍臣: ‘唐太宗虛心求諌, 容受盡言, 固人主之難事, 然曷若自不爲非, 使人無得而諌之爲愈乎? ’至哉言乎!大哉言乎!愚竊頌以武侯之言爲丞相獻, 又願丞相以太祖聖訓日救迪於上前也.
至如朋黨之論, 則前記所陳有未究者, 致煩錢喩, 至於勤縛. 三復愧悚不知所言. 章․蔡之禍, 誠如尊命, 但忠賢奔播至於如此, 推本其原, 蓋自有在. 而九年之間, 麟幽陟明, 培固根本, 其效見於靖康․建炎之際者, 民到于今賴之, 又自有不可誣者. 若其無此, 而元豐․㈱哩便相傳襲, 則後日之禍, 豈但若此而已哉? 前輩有論嘉祐․元豐兼收竝用異趣之人, 故當時朋黨之禍不至於朝廷者, 世多以爲名言. 熹嘗謂此乃不得已之論, 以爲與其傭用小人而盡棄君子, 不若如是之猶爲愈耳. 非以爲君子不可專任, 小人不可盡去, 而此擧眞可爲萬世法也. 若使當時盡用韓․富之徒而幷紬王․蔡之屬, 則其所以卒就腰臍之宏規, 盡革撫摩之秕政者, 豈不盡美而盡善乎? 後之屬者得其言而不得其心, 知退守其所爲不得已之論, 而不知進求其盡美盡善之策, 是以國論日卑, 而天下之勢卒至於委酵而不振, 此可悲也. 至如元祐, 則其矢在於徒知異己者之非君子, 而不知同己者之未必非小人, 是以患生於腹心之間, 卒以助成仇敵之勢, 亦非獨章․蔡之能爲己禍也. 然則元祐之失, 乃在於分別之末精, 而丞相以爲太甚, 熹慈有所末喩也. 是以知言知人, 聖有明譏, 區區已救於前矣, 深願丞相之加之意也.
또한 들으니 천하의 일의 형세가 사라지고 자라고 손님과 주인이 같지 않아서 주역으로 말하면 바야흐로 회복되어 자람에 일양이 아래의 주인이 되는데도 오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만나서 사라지게 되면 다섯용이 요염하게 위에서 바로잡아도 한 음이 파리한 돼지가 껑충 뛰는 믿음을 감당하기에 부족하니 매우 두려워할 만한 것입니다. 승상께서 지금의 형세를 보시기에 무엇을 주인으로 삼아 자라겠습니까? 무엇을 손으로 삼아 사라지겠습니까? 누가 능히 사람을 제압하고 누가 사람에게 제압당하겠습니까? 여기에서 급급히 천하의 어진 이를 구하여 스스로를 돕게 해서 하여금 다시 나오게 하고 번갈아 들어가게 하여 날로 안위치란의 밝은 경계를 개진해서 폐하의 마음을 열어서 음란하고 사특함을 배척해서 하여금 형세를 주장하여 조금 기울어져 그 무리에 빠지지 않게 하니 오히려 뒤에 일에 미치지 못해서 정미롭지 못하여 실수가 있음을 면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또한 어떻게 갑자기 미리 분별이 너무 심해서 다른 날에 근심이 될까를 근심하겠습니까?
제가 종종 걸음 쳐 절하지 못하였는데 욕을 끼침이 매우 심함을 알아서 또한 이제 분수가 늙은 것을 달갑게 여겨 다시 세상에 대한 생각이 없었으므로 스스로 혐의하지 않고 무릅써 여기에 미쳤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광망한 것을 용서하시고 어리석은 충성을 취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더위를 당해 눈이 침침해져서 글자를 지음이 삼가지 못해서 나란히 정성스럽게 용서를 구합니다. 스스로 오직 바라는 것은 상체 양궁의 정성으로 굽어 사방의 여망을 위로해서 거듭 욕보인 것을 열정의 호위로 덮어서 오래고 성대한 업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抑又間之, 天下事勢有消長賓王之不同, 以易而言, 方其復而長也, 一陽爲主於下, 而五陰莫之能遏. 及其遇而消也, 五龍夭矯於上, 而不足以當一陰羸豕躅躅之孚, 甚可畏也. 丞相觀於今日之勢, 孰爲主而方長乎? 孰爲客而方消乎? 執能制人而執爲制於人者乎? 於是焉而汲扱乎以求天下之賢以自助, 使之更進迭人, 日陳安危治亂之明戒, 以開上心, 椛抑陰邪, 無使王勢小傾而陷人其黨, 尙恐後時而無及於事, 不精而未免有失, 亦何遮至預憂其分別太甚而爲異日之患乎? 熹未獲趨拜, 而辱知至燦, 且今分甘投老, 無復世念, 故不自嫌而嘗昧及此. 伏惟赦其狂妄而取其愚忠, 千萬幸甚. 當暑目昏, 作字不謹, 幷丐原恕. 自餘唯糞上體兩宮之畚, 俯慰四方之望, 加國重茵列鼎之衛, 以究久大之業, 千萬幸甚.
유승상에게 보내는 편지(시월사일)與留丞相書十月四曰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년 (소희 2년,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사면을 요청한 편지이다. 그는 이글에서 유승상에게 이제까지 얘기했던 모든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유지 존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다시 요목조목 사안마다의 구체적인 부분을 언급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초겨울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승상국공의 기거에 편안하시고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 날 사람이 돌아와서 엎드려 차자를 받들어 보니 깨우쳐 성은으로 포상하셔서 끝내 사면의 교지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균등한 사랑을 입어 손수 쓴 교지를 하사하셨으니 열고 깨우쳐 주심이 더욱 지극하고 간절합니다. 엎드려 재삼 읽어 내려감에 우러러 군상께서 곡진히 정성을 들여 가엽게 여기는 뜻이 이와 같이 두터움을 알겠으니 삼가 이미 재개하고 떨어내어 공경히 곡명에 절해서 표를 받들어 감사했습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승상국공께서 지우가 깊어서 진실로 세속에서 상례로 바랄 것이 아니지만 또한 폐할 수 없습니다. 비루한 말과 졸렬한 장계가 조금 보답을 도모할 실상을 보였습니다. 혹시 밝게 살펴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고고현의 일이 특별히 주장을 입어서 어진 성군의 샘처럼 적셔주시는 은택을 입어서 온 천하가 충성스런 기운이 탱천해서 하루아침에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 승상께서 충직을 포현하고 간유한 이들을 억 누르는 바의 뜻을 오늘에 베풀 수 있을 뿐만이 아니고 두루 시행되는 사이에 권면되는 것이 많습니다. 용계 또한 거두어 불러들이는 은혜를 입어서 처음 바람이 대개 여기에 미치지 않았으니 다만 간절히 황공합니다. 무액전의 일은 근자에 들으니 이미 시행되었으나 읍중에 오히려 알려지지 않아서 감히 감사함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 돈이 비록 주의 액수이지만 종래 아래 모든 고을에 던져져서 장포가 많습니다. 이 고을이 근자에 쇠잔하여 폐하여짐이 이미 심해서 제가 저번에 조치를 취해서 주군에서 저절로 가슴으로 인정하여 과다전 수 천민을 혁파하였습니다. 지금 만약 다시 이것을 모면해 주신다면 이 고을이 거의 정돈되어 모아지는 여망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만일 지금 시행하여 조사를 지정해서 곧 장래 다시 승상께서 힘써 주장해서 처음과 끝을 은혜롭게 해서 이 고을의 피곤한 백성들로 하여금 이치에 맞지 않는 과벌의 고통을 모면해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혹 이미 굽어 청한 것을 따르게 해서 모두 견면해서 제거해 주신다면 제가 지난 번 주달한 가슴으로 혁파한 과다전의 일이 비록 시행되지 못하더라도 또한 바라건대 시행해서 본주에 준수하게 해서 거듭 하현에 던질 수 없게 하여야 합니다. 이에 간절히 깨닫고 살펴서 제현으로 하여금 이것으로 명분을 삼아 망령되이 과벌을 시행하지 못하게 하여야 하니 이것은 또한 영구한 이익입니다. 이 돈이 묶여 있는 위로 공여해야 하는 수를 감히 면하기를 요구하지 못해서 본래 스스로 반드시 주장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전 날에 요청했던 바는 진실로 하였기 때문일 따름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살펴주십시오. 저는 단 하루도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는 데도 승상께서 알아주고 장려하고 우대하고 다르게 하심이 다른 사람의 뒤에 있지 않은 것은 돌아보건대 이제 정신이 다해서 근력이 피곤해저서 다시 보답을 펼 기약이 없습니다. 구구히 바라건대 승상께서 깊이 주역의 음양소장과 비태왕래의 변화를 살펴서 삼가 군자 소인의 분수를 살펴서 공평하게 나오게 하고 물리쳐서 조정한 설이 그릇된 바가 되지 말아서 충직한 말이 날로 들리고 성스런 덕이 날로 새로워져서 천하의 사람들이 진실로 부귀와 수명과 강령의 복을 누리고 조정의 윗사람들이 진실로 고르고 평평한 덕풍을 볼 수 있다면 쇠약하고 병든 몸이 늙어 구렁에서 죽더라도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충사의 분수에 살핌이 밝지 못하고 소장의 경계가 믿음이 독실하지 못해서 일신의 이해의 사사로움이 그 사이에 섞이게 하면 지금 소위 평균을 잡았다고 말하는 것이 깊이 소인을 돕는 형세가 되어서 군자의 병통이 되니 장차 저들의 당이 날로 성대해지고 이들의 형세가 날로 고립되어서 천하의 일을 장차 도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승상께서 비록 몸을 받들어 물러나 더 나은 일을 자세히 하고 맑은 때를 즐기고자 하더라도 후대의 어진 사관들의 책임을 사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덕에 감읍하는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여 문득 다시 무릅써 말하였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미치고 망령됨을 용서하시고 천 번 생각하여 하나를 얻는 것을 캐신다면 또한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엎드려 문과 담장을 바라도 말미암아 배알할 수 없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때로써 나라를 다스림에 천만 번 스스로를 무겁게 하십시오. 저는 지극히 간절히 비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網以孟冬漸寒, 伏惟丞相圍公鉤候起居萬福. 熹昨者人還, 伏奉省劉, 以聖恩褒借, 不許終散之旨. 又蒙鉤慈加賜手敎, 所以開曉尢極懇至. 伏讀再三, 仰體吾君吾相委曲畚憐之意如此其厚一謹已齋被紙拜告命, 奉表稱謝矣. 恭惟丞相國公知遇之燦, 固不以世俗常體見望, 然亦有不敢藤者. 鄙語卒章, 少見所以圖報之實. 懈蒙照察, 千萬幸甚.
高古賺事特蒙王張, 得被仁聖漏泉之澤, 九原忠憤, 一旦獲伸, 丞相所褒額忠直, 濱抑姦隷之意, 不但施之今日, 周行之間, 所勸多矣. 龍溪亦蒙收召之恩, 始墾蓋不及此, 第切煌恐. 無額錢事, 近閠已蒙施行, 邑中尙未見報, 末敢致謝. 此錢雖是州額, 從來據下諸邑, 潭捕爲多. 此縣比年殘藤已甚, 熹向來措疊, 州郡自爲抱認罷科茶錢敷千緡. 今若得更免此, 則此邑庶幾有可整葺之望. 萬一今來方是行下漕司指定, 卽將來更望丞相力賜王張, 始終其惠, 使此邑疲民免於非理科罰之苦, 千萬之幸. 或已俯從所乞, 盡賜纖除, 則嘉昨奏抱認罷科茶錢事雖無施行, 亦乞行下本州遵守, . 不得再抛下縣. 仍切覺察, 勿今諸顯以此爲名, 妄行科罰, 此又永久之利也. 此錢自僚上供之敷, 不敢求免, 本自不必具奏. 所以有前日之請, 良以此耳, 伏乞鉤察.
蔦末嘗有一日灑掃之勞於門下, 而丞相所以知獎優異不在衆人之後, 顧積神耗屬, 筋力疲憊, 無復可期以伸報效. 區區願丞相深觀大易陰陽消長․否泰往來之愛, 趨察君子小人之分而公進退之, 壤爲調停之說所叢, 使忠言日聞, 聖德日新, 而天下之人眞享富詩康寧之福, 朝廷之上眞見平平蕩蕩之風, 則衰病之軀老死丘壑, 無所憾矣. 如於忠邪之分察之有未明, 消長之戒信之有未篤, 而又以一身利害之私參錯乎其間, 則今所謂持平者, 是乃所以燦助小人之勢, 以爲君子之病, 將見彼黨日盛, 此勢日孤, 天下之事將有不可爲者. 丞相雖欲奉身而退, 窮勝事而樂淸時, 亦不得辭後世良史之責矣. 憶不勝感德之至, 輒復冒昧言之. 伏惟恕其狂妄而釆其千慮之一得鳶, 則又幸之大考. 擔望門將, 無由伏羯, 伏乞以時爲國干萬自
유승상에게 보내는 편지(10월 12일) 與留丞相書十月十二日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년 (소희 2년,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유승상에게 사면이 받아들여진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편지이다. 그는 이글에서 군자와 소인의 분기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군자와 소인이 걸맞지 않은 기용이 되었을 때의 폐해에 대하여도 지극히 경계하였다. 따라서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이러한 군자와 소인을 가려 뽑아 걸맞게 기용할 것을 역설하였다.
저의 구구하고 천한 간청은 이미 지난 편지에 갖추었는데, 반드시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를 입어 마침내 물러날 수 있도록 하셨으니 감히 거듭 편지를 드려 승상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지난번의 치사로 인하여 문득 저의 소회를 다 말씀드렸으니, 광망하고 참람하며 경솔하여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낸 후에 조사의 사신을 받아보니, 그 말이 일에 가까웠습니다. 공손히 들으니 승상께서 충성으로 감격해서 하늘의 뜻이 회답하고 포개진 음의 맨 밑에 다시 양이 회복하는 점점함이 있으니 가만히 그 말이 본받을 것이 업는 것이 다행입니다. 이미 또한 반복적으로 생각해보니 오늘의 일이 넉넉한 기쁨이 되지 못하고 전일의 논의가 오히려 생각할 만한 것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대개 예로부터 군자와 소인이 섞여 살며 나란해서 이것이 그르고 저것이 낫고 저것에 나아가면 이것이 나으니 둘 다 서로 의심해서 끝내 결정하지 못할 것이 있는 것은 이것은 반드시 그러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조정이 군자라고 하지만 다만 한 둘의 소인이 모든 집사들의 사이에 섞여서 틈을 타서 기회를 엿보게 되면 이미 충분히 근심이 되거늘 하물며 시종의 반열에 머무는 경우이겠습니까! 하물며 승상을 돕는 임무에 머물면서 몰래 사당을 심어서 요긴한 자리를 가득 채우는 경우이겠습니까! 대개 두셋의 대신들이 인주와 더불어 현부를 분별해서 인재를 진퇴시켜서 천하의 일을 도모하니 스스로 동심일덕해서 공손히 협력하고 조화롭게 채워서 피차간 평탄하게 해서 한결같이 국가를 생각해서 그 사이에 털 끝 하나도 자기의 사사로움이 없더라도 능히 구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소인이 참여하게 되면 내가 어질다고 나오게 하려는 자가 저들은 자기를 해친다고 물리치려할 것이고 내가 어질지 않다고 물리치려는 자를 저들은 자기를 돕는다고 친하게 지내려고 할 것입니다. 또한 가부와 이동을 힘써 다투어 갖춰지기를 기다리지 않은 뒤에 결정될 것입니다. 다만 서로 더불어 나아가 대면하는 사이에 조금 숙이고 우러르고 나아가고 물리치는 형태가 되어 이미 충분히 나의 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먼저 염려해서 가벼이 다른 계획을 해서 나를 해치는 기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오히려 균등히 대적하는 떳떳한 형세로 말했을 뿐입니다. 하물며 지금 친소와 친구의 정은 본래 같지 않고 충사와 손역의 정취는 또한 각각 매인 것이 있으니 저들이 먼저 필승의 지경에 웅거해서 군당을 끼고 요충지를 막아서 일거 수 일 투족을 모두 충분히 나를 해쳐서 아래로 근습하고 방술하는 데 이르러 혹 서간을 끼고서 내외를 간통시켜서 그들의 형세를 도와서 나는 올올히 외로이 살고 혈혈단신으로 서서 절대로 왕개미 작은 개미의 구원도 없어서 더불어 근본의 지경에 힘을 써서 폐하의 마음을 깨치고 언로를 맑게 하여야 합니다. 공도의 도움이 된다고 바라는 것을 한 걸음 사이에 머물러 천리의 밖을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들이 주인이 되고 내가 손이 되며 저들이 칼이 되고 내가 고기가 되니 이것은 진실로 위기의 증거입니다. 또한 때때로 저들이 미워하는 사람을 취해서 도울 수 없는 곳에 두어서 한갓 의심을 보태어 일에 도움이 없습니다. 저는 비록 두루 천하의 어진 군자를 일으켜 내외에 두더라도 저들 또한 소리와 기운을 움직일 필요가 없고 다만 몰래 붙잡아 은밀히 형세를 엿보아 흡사 자기를 해칠 것 같으면 문득 한번 눈짓하면 무리들이 짖음이 사방에서 일어나서 오려는 사람들에게 혹 문에 미치지 못하게 하고 이른 자들도 자리에 앉을 수 없게 하여 이미 낭패창황해서 달아나 사방으로 벗어나니 오히려 어느 때에 나라의 일을 도모하겠습니까?
오늘의 일이 승상께서 다만 한 사람을 제거하면 반열에 다시 소인이 없고 대강에 다시 이론이 없겠습니까. 어찌 정상서와 왕저작 손사업이 떠나는데도 만류하지 않고 원온주를 제수하였는데도 침범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누가 하는 것입니까? 제가 살펴보건대 다만 마음을 잡음이 더욱 위태롭고 근심을 우려함이 더욱 깊어서 빌미가 더욱 심해질 뿐입니다. 논어에 말하기를 물을 다스림에 근원으로부터 하지 않으면 말류가 더욱더 넓어진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남을 쏠 때 먼저 말을 쏘고 새를 해침에 대장 새로부터 해야 한다 하였으니 대개 이것을 고려한 것이다. 작년에 유복서가 처음 제소되어 크게 논의하여 조야를 진동시켰는데 동조하는 이들이 서로 경사스럽다고 하였거늘 제가 유독 깊이 근심하였습니다. 금일의 형세가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승상께서 시험 삼아 깊이 헤아려서 빨리 사대부 중에 지식과 생각과 기절이 있는 자를 구하여 서로 도모해서 먼저 폐하의 마음을 확 뚫어서 통렬히 충사의 있는 바를 살펴보고서 복심으로부터 이목지괄의 지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털끝만한 사악한 기운도 그 사이에 머무르지 못하게 한 뒤에 천하의 어진 이들이 차례로 기용되면 천하의 일이 차례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금부터 이왕으로 승상의 근심이 전보다 심해질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가 가만히 위태롭게 여겨서 감히 기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알아주심이 두터움을 욕되게 해서 어리석음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고명께서 살펴주십시오. 또한 천하의 일이 진실로 빨리 이루고자 하다가 실패를 이룬 것이 많지만 기미를 봄이 빠르지 않아 오히려 머무를 때를 기뻐함은 지혜로운 자가 매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형세가 진실로 매우 위태롭지만 틈을 타서 빨리 공격함은 바로 이때에 달려 있어서 기회를 던짐은 사이에 그침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승상께서 깊이 헤아려 빨리 도모하시면 좋다는 유들의 다행일 뿐이 아니고 진실로 종묘생령들의 다행입니다. 저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熹區區賤懇, 已具前幅, 必蒙矜念, 俾遂退間, 不敢重出, 以煩公聽. 惟是昨 因致謝, 輒蟹鄙懷, 狂妄儧率, 不勝皇恐. 然自遣人之後, 卽得朝士私書, 語及近事. 恭聞丞相忠誠感格, 天意爲回, 重陰之底, 復有陽復之漸, 乃竊自幸其言之不効. 旣又反覆以思, 則恐今日之事末足爲喜, 而前日之論猶有可思者也.
蓋自古君子小人雜居竝用, 非此勝彼, 卽彼勝此, 無有兩相疑而終不決者, 此必然之理也. 故雖擧朝皆君子, 而但有一二小人雜於百執事之間, 投隙抵巇, 已足爲患, 況居侍從之列乎? 況居丞弼之任而潛植私黨, 布滿要津乎? 蓋二三大臣者, 人主之所與分別賢否, 進退人材, 以圖天下之事, 自非同心一德, 協恭和衷, 彼此坦然, 一以國家爲念而無一豪有己之私間於其間, 無以克濟. 若以小人參之, 則我之所賢而欲進之者, 彼以爲害己而欲退之, 我之所否而欲退之者, 彼以爲助己而欲親之. 且其可否異同, 不待勉爭力辨而後決. 但於相與進對之間, 小爲俯仰前却之態, 而已足以敗吾事矣. 是豈可不先以爲慮, 而輕爲他計, 以發其害我之機哉?
此猶姑以鉤敵之常勢言之耳. 况今親疎浙奮之情本自不停, 忠邪遜逆之趣又各有在り彼巳先擔必勝之地而浹群黨以塞要衛, 凡一擧手, 一愍足, 皆足以爲吾之害, 下至近習纖人, 亦或爲之狹持簡蹟, 關通內外, 以助其勢 : 而吾乃兀然孤居, 孑然特立, 絶無蠅蜉蠟子之援, 可與用力於根本之地, 以覺上心而淸言路. 其可望以爲公道之助者, 不能留之願步之間, 而欲求之千里之外. 彼方爲王而我方爲客, 彼方爲刀而我方爲肉, 此固天下之危機敗證. 而又時取彼折甚惡之人, 疊之不能爲助之處, 徒益其疑而無補於事. 愚恐雖能遍起天下之賢人君子疊之內外, 彼亦不必動其聲氣, 但陰拱而微伺其勢似能害己, 則便一胸目而群吠四起, 使來者或未及門, 至者或末暖席, 而已狼狽倉皇, 奔送四出矣, 尙何國事之可圖哉!
今日之事, 丞相以爲但去一人, 班列便無小人, 臺閣便無異論乎? 胡不觀鄭
尙書․王著作․孫司業之遂去而不留, 袁溫州之已除而中浸, 此皆誰實爲之哉? 以愚觀之, 但見其操心益危, 慮患益燦, 而爲崇益甚耳. 語曰: ‘洽水不自其原, 末流彌增其廣. ’又日. . ‘射人先射馬, 禽賊當禽王. ’蓋慮此也. 去年劉副端初除抗論, 震動朝野, 善類相慶, 而熹獨深憂之. 今日之勢, 何以異此? 伏願丞相試熟計之, 而亟陰求學士大夫之有識慮氣節者相與謀之, 先使上心廓然, 洞見忠邪之所在, 而自腹心以至耳目唯舌之地, 皆不容有臺髮邪氣留於其間, 然後天下之賢可以次而用, 天下之事可以序而爲也. 如其不然, 則自今以往, 丞相之憂乃有甚於前日. 是以寮網危之, 而未敢以爲喜也.
辱知之厚, 不敢不盡愚, 惟高明察之. 抑天下之事固多以欲速而致敗, 見幾不蚤, 猶豫留時, 亦智者所甚催也. 今曰在我之勢固爲甚危, 然乘隙疾攻, 正在此時, 技機之會, 間不容息. 惟丞相深計而亟圖之, 則不唯善類之幸, 實宗社生難之幸. 嘉死罪死罪.
유승상에게 보내는 차자 與留丞相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년 (소희 2년,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사면이 받아들여졌다가 얼마 안 되어 다시 차자가 내린 것을 제고해 달라고 요청한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이긴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호소를 하였다. 곧 아들의 장례를 손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소망하였다.
저는 가만히 생각하니 맹동에 기후가 차가운데 모관께서 기거가 고르고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난번 성은을 입어서 직분의 품질이 옮겨져서 간절한 말이 허락을 받지 못해서 다시 총애와 포상을 입었고 또한 가만히 사관의 녹을 먹으며 편리하게 사사로운 계획을 해서 옛 일에서 마치려 하였더니 조정이 그릇된 은혜로 저에게 이미 두터이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전에 주달한 기록이 대개 그 설명을 요약해서 진술해서 감사의 정성을 폈으니 속으로 생각건대 반드시 가엽게 살펴주심을 입었습니다. 생각도 안 했는데 오늘 차자를 받고서 다시 장차 사령할 바가 있게 되었습니다. 명령을 듣고 놀라고 황공하여 나아가고 물러남에 근거를 잃었습니다. 집안의 걱정과 어려움의 사사로움에 이르러 쇠잔한 몸이 쇠잔하고 썩어져서 그러므로 반복해서 미루어 비교해 보니 또한 모두 이직 편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이미 장계를 갖추어 차자로 품부해서 한 두 조목으로 진술해서 조정의 들음을 무릅썼습니다. 돌아보건대 아직 말을 다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 다시 이 사사로운 것으로 집사에게 내려 보냈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모관이 특별히 가엽게 여기셔서 조금 여유로운 휴가를 내리셔서 직접 매장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아 주는 슬픔을 막아주시고 정신을 휴양시켜서 쇠퇴한 몸으로 다함에 나아가는 경지에 머무르게 하셔서 다시 남은 날로 옛날에 들은 것을 토론하고 풀게 해서 성스런 주군 폐하의 포상에 부합되게 해서 밝은 시절 풍속의 교화의 아름다움을 돕게 하시면 모관의 은혜의 덕이 또한 장차 존몰에 입혀져서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위엄 있는 존엄함을 무릅써서 두려워 놀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또한 근방으로 제수해서 감히 다시 여러 폭으로 우러르고 부지런히 듣고 보지 말아서 나란히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우러르고 바라볼 뿐 다시 종종 걸음 쳐 절하는 날이 없어서 아래의 실정이 높이고 우러러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감히 바라건대 위로 양 궁의 숭중함을 보존해서 길이 성주를 보필해서 영원히 백성을 편안히 해 주십시오. 저는 구구히 간절히 바라는 지극함을 맡길 데가 없습니다.
島網以孟冬冰寒, 伏惟某官鉤候起居萬福. 熹昨蒙聖恩, 超遷職秩, 懇諸不獲, 更被寵褒, 又得頰食柯官之祿, 以便私計而卒其舊業, 公朝讒恩, 於熹已爲厚矣. 故熹前日奏記, 蓋嘗略陳其說, 以伸謝悃, 意謂必蒙矜察. 不意今者又被省劉, 乃復將有所使今. 間命驚隍, 進退失擔. 至以家門思難之私, 賤軀殘朽之故, 反復推較, 則又皆有所未安者, 已具申狀稟劉, 一二倏陳, 以干公朝之聽. 顧猶有 未敢盡其言者, 而復以此私于下執事. 伏惟某官特賜矜憐, 少垂寬假, 使得臾視埋 葬, 以塞老牛醐犢之悲, 休養神明, 以駐衰頰就盡之最, 更以餘曰討繹奮聞, 以副 聖王華黍之褒, 而助明時風化之美, 則某官之恩之德, 又將被于存沒而無窮矣. 干 冒威尊, 不勝戰妁. 又以近方拜敗, 不敢復以累幅仰動聽覽, 幷翼垂察. 唯是贍望門牆, 無復趨拜之日․下情尊仰, 不勝擧擧. 敢乞上爲兩宮倍保崇重, 長輔聖主, 永康兆民. 熹區區無任祈懇激切之至.
조수에게 보내는 편지 與趙帥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년 (소희 2년,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사면이 받아들여지기를 요청한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의 사면이 받아들여져서 미관말직으로나마 여생을 마칠 수 있기를 소원하였고 더불어 이제까지의 시행했던 정책들이 자신의 소신대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저는 마침 도로 보좌하는데 배수되어 황망히 옮겨 새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태후의 기거에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보낸 문자가 마침 검사함을 얻어서 삼가 안으로 올렸습니다. 다시 작은 품부가 있어서 마침 잊어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사면한 문자는 헤아려 보니 이제 이미 도착한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태후의 깃발이 이른 날에 만약 이미 요청을 얻었다면 다른 바람이 없고 만일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바라건대 특별히 한 말씀을 해서 이 사사로운 계책이 편리하지 아니한 실상에 미쳐서 일찍 저의 소원을 따라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경계에 관한 일은 장래에 본래 설파하고자해서 어제 저녁교서를 부지런히 보니 다만 이 일은 저들이 알 수 없는 것이니 또한 다행히 자세히 말해주신다면 제가 비록 말하지 않으나 의리 상 베풀 수 있습니다. 대개 이 일은 가난한 백성들은 편리하다고 하고 병겸하고 빼앗는 무리들은 불편하다고 여기니 그 이치가 매우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당시 신료들이 요청해서 조정에서 제사들에게 시행하게 하였는데 제사들이 제군에 시행해서 천정의 말이 비록 이동이 있으나 제사들이 이치 없는 것을 살펴서 다행히 저의 말로 옳다고 해서 반복해서 어려운 점을 논의해서 대개 천백 말이 조정에 들리게 한다면 그 생각이 이미 자세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 비록 이 한 사람이 하소연이 있으나 조정이 또한 그 허와 실을 합쳐 알아서 제사들에게 수결해서 거듭 조사하신다면 교서로 꾀어 자급하여 속인 죄를 반드시 장차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제사 중에 반드시 풍지를 관망해서 스스로 나오고 물리치려 할 것이니 이러한 훼방이 오히려 분수가 있어서 오로지 조정에 달려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 시행한 것이 총총함이 이와 같으니 이것은 조정에서 신료들의 말을 믿지 않고 또한 저의 말을 믿지 않고 또한 제사들의 말을 믿지 않아서 두루 이 사람의 설명과 교서로 꾀어 자급하는 자의 설명을 듣게 될 것입니다.
승상께서 서로 알아주심이 매우 깊어서 천거하고 끌고 안부를 물음이 두터워 제가 비록 지혜가 이것을 감당하기에 부족하지만 평상시 미치고 망령되어 경도되어 감히 다른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지극합니다. 그러므로 전날의 사면을 감히 결연히 계책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이경의 편지에 다시 다른 때에 군을 빌었던 요청을 드러내었으니 이 뜻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일로 살펴보면 승상께서 대우했던 것이 장주 진사 오우규와 모든 교유자급한 자들 아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비록 부끄러움이 없으나 감히 이것을 무릅쓰고 나아가겠습니까? 제가 크게 졸렬하고 쩔뚝거리는데도 한번 출사하여 당중우를 만났고 거듭 출사하여 오우규를 만났으니 어찌 천운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이 진실로 그렇게 하였으니 어찌 감히 사람을 허물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오히려 승상께서 서로 알아보는 뜻에 감읍하여 이로써 천하의 선비를 대우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시랑께서 한번 외워 주신다면 천만 번 바라는 것입니다.
熹適間道左拜違, 不勝惘惘移刻. 伏惟台候動止萬福. 所需文字適方檢得, 謹以內呈. 復有少禀, 乃適間所忘記者. 熹辭免文字, 度今已到久矣. 台旆到闕日, 若已得請, 則無他禱 : 萬一未遂, 則望特爲一言, 及此私計未便之實, 使早得從鄙願, 千萬之幸.
經界一事, 將來本欲說破, 以昨夕見敎之勤, 且復隱忍. 但此事不可不使彼知之, 亦幸爲詳言之, 則熹雖不言, 而義亦伸矣. 蓋此一事貧民以爲利, 而幷兼豪奪之徒以爲不便, 其理甚明. 故當時臣僚建請, 而朝廷行下諸司, 諸司行下諸郡, 泉․汀之言雖有異同, 而諸司察其無理, 幸以熹言爲是, 反復論難, 蓋千百言, 以聞於朝, 則其慮之已不爲不審矣. 今雖有此一人之訴, 朝廷亦合審其虛實, 押下諸司, 再令審覈, 則其敎誘資給誣罔之罪, 必將可得. 如其不然, 諸司中必有觀望風旨, 自爲前却者, 此謗猶有所分, 不專在於朝廷也. 今所施行乃匆匆如此, 是朝廷不以臣僚之言爲可信, 又不以熹之言爲可信, 又不以諸司之言爲可從, 而偏聽此人之說, 與其敎誘資給者之說也.
丞相相知甚深, 薦引存問不爲不厚, 熹雖知不足以堪此, 然平時狂妄, 所以傾倒不敢自他者, 亦不爲不至. 故前日之辭免, 不敢決然爲不出之計, 而於馬貳卿書復露異時乞郡之請, 此意亦可見矣. 今以此事觀之, 乃知丞相所以見遇者, 乃在漳州進士吳禹圭及諸敎誘資給者之下. 今雖無恥, 其敢冒此而進哉?
熹伉拙奇蹇, 一出而遭唐仲友, 再出而道林黃中, 今又遭此吳禹圭矣, 豈非天哉! 天實爲之, 豈敢尤人? 然復云云如此者, 猶感丞相相知之意, 而懼其以此待天下之士也. 幸侍郞一爲誦之, 千萬至望.
유승상에게 보내는 차자 與留丞相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년 (소희 2년,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기존의 사면을 요청한 범주의 글이다. 그는 여기에서 유승상에게 자신의 더 이상 차자에 응할 수 없는 죄인이라며 적극적으로 사면을 요구하였다.
제가 가만히 생각하니 늦겨울 지극히 추운데 승상 국공이 기거에 편안하고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난 날 망령되게 조금 편지로 숭고한 들음을 무릅써서 참람하였으니 두려워 죄와 허물을 취할까 두려우니 여러 번 교서를 받아서 곧은 편지를 더하였으니 그 뜻에 위로하고 보답함이 매우 두텁습니다. 간절히 은혜로운 제수를 피함에 이르러 사사로운 계책에 편리해서 또한 가엽게 여김을 입어서 곡진히 깨우쳐 주셨습니다. 마시랑과 황시부와 여사령이 또한 모두 편지로 균등한 뜻이 매우 깊음을 말해서 구구한 아래의 실정에 감격의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이미 성대한 교지를 우러르고 감히 다시 가정의 일로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경계의 망령된 의논이 마침내 번거로이 혁파하였으니 저의 죄상을 감히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하겠습니다. 조정이 관대해서 비록 중한 죄를 주지 않았으나 또한 어찌 다시 총애와 발탁을 더하여 상벌의 법을 어지럽히겠습니까? 제가 비록 무상해서 염치를 알지 못하지만 또한 어찌 마침 이러한 때를 당해서 다시 사령을 맡김을 탐해서 거취의 방향을 어지럽히겠습니까? 성의 장계와 공의 차자가 별도로 갖추어 들음을 더럽혔으니 엎드려 생각건대 다행히 살펴주십시오. 조 시랑이 전날 이곳을 경유해서 또한 일찍이 직접 품부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오늘 받은 날이 오래되어 사방에 빌려 사람을 얻어 자주 이것을 품신하고 진술했으니 다른 데 미칠 겨를이 없었습니다. 우러러 문과 담장을 바라볼 뿐 따라 나아가 뵙지 못하였으니 감히 바라건대 위로 국가를 위해서 천만 번 스스로를 중히 여기시면 저는 간절한 바람의 지극함을 맡길 데가 없습니다.
熹竊以季冬極寒, 伏惟丞相國公鈞候起居萬福. 熹昨者妄以小夫竿犢干冒崇聽, 方懼儧瀆, 以取罪咎, 乃蒙賜敎累番, 加以眞翰, 所以慰答其意者甚厚. 至於懇避恩除, 以便私計, 亦蒙矜憐, 委曲鐫喩. 而馬侍郞․黃寺簿․呂司令又皆以書具道鈞意甚悉, 區區下情, 不勝感激之至. 謹已仰體盛旨, 不敢復以家事爲言. 但經界妄議竟煩寢罷, 則熹之罪戾有不敢自赦者. 朝廷寬大, 雖不忍寘之重辟, 亦豈宜更加寵擢, 以紊賞刑之典? 而熹雖無狀, 不議廉耻, 然亦豈宜適當此時, 復叨任使, 以乖去就之方哉? 省狀公箚別具浼聞, 伏惟鈞慈幸賜財察. 趙侍郞前日經此, 亦嘗託其面稟. 今以被受日久, 方借得人, 亟此申陳, 不暇他及. 瞻望門牆, 無從進謁, 敢乞上爲國家千萬自重, 熹不任祈懇激切之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