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56

황성 2025. 8. 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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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 時事出處

 

 

 

 

주승상에게 보내는 편지(무신년 814) 與周丞相書(戊申八月十四日)

 

해제이 글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주승상의 은명에 감사하는 편지이다. 주자의 편지 중에 주승상과 내왕한 것이 매우 많은데 아마 당대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것 같다. 특히 임율의 탄핵의 문제가 붉어졌을 때 주승상이 보여준 지지에 대하여 거듭 감사하였고 직급을 올려준 것이 다시없는 영광임을 인식하였다. 하지만 별도의 직급을 승급시키는 것은 본인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하고 숭복관의 소임을 가지고 말년을 보내고 싶다며 협조를 요청하였다.

 

제가 지난번에 인편으로 올린 편지는 이미 받아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제 먼저 보낸 인편이 도착해서 승상의 편지를 받아보았습니다. 감사드리는 마음이 지극해서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진직소의 은혜와 봉사직에 대한 청이 허락된 것에 이르러서는 이들 역시 승상의 보살핌에서 나온 것인지라 더욱 함직 합니다. 그런데도 승상께서는 또 부족하게 여기시는 태도를, 깊이 지난번에 임율 과의 시비를 가리는데 힘쓰지 못한 것을 자신의 부족한 병이라고 여기시니 이것은 곧 대 군자가 자기를 책망하는 주도면밀함을 우러러 볼 수 있으니 또 그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熹前日專人奏記, 伏想尋當登徹. 昨日先所道人還, 拜領鈞翰之賜, 感慰之極, 不可具言. 至於進職疏恩, 奉祠得請, 又出陶鑄, 尤以銜戢. 然而丞相方且欿然 深以前日不能力辨是非爲病, 此則仰見大君子責己之周, 又不自勝其愧仰也.

 

숭복관의 직은 삼가 이미 명을 받들었습니다. 이름을 휘하라는 가르침은 지적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것은 예절에 비춰보아도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어찌 다시 승상을 번거롭게 하겠습니까? 오직 직급을 승급시키라는 은명은 편안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대개 바야흐로 피구하여 자열했는데 그는 쫓겨나고 저는 승진한다면 안으로 마음속에서 헤아려 보아도 오히려 상구효의 반대의 혐의를 면하지 못할듯합니다.

 

崇福謹已拜命矣. 嫌名之輸, 曲荷記存. 此於禮律無疑, 豈敢更煩公聽? 惟是進職之恩, 則有所未安者. 蓋方以避仇自列, 而彼黜己升, 內揆於心, 尙覺未免上九擊帶之嫌.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모두를 다 알아주기를 용납하겠습니까? 또 근자의 조정제도가 이러한 종류의 천직과 제수가 비록 덕으로 발탁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반드시 의탁해서 호칭을 삼는 것이 있을 것인데 이제 이것은 무엇이라 부르겠습니까? 또 온릉으로 임율이 가는 것도 정상이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았고, 이것이 반드시 불만일 터이니, 오히려 뒷말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 사람됨이 또한 일찍이 한 때의 명망이 있었는데, 오늘날 쫓겨나니 원근의 사람들이 반드시 그를 위하여 불평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날에 자뢰할 입을 얻는다면 이것은 저 혼자만의 해로움일 뿐 아니라 생각건대 승상도 또한 근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況於他人, 豈容尸曉? 且於近制, 此等遷除雖非德選, 亦必有所託以爲號. 今此何名也哉? 又况溫陵之行, 情狀未白, 此必怏怏, 尙有餘言. 且其爲人亦嘗頗有時譽, 今日之去, 遠近必有爲之不平者. 異時得以藉口, 則非獨爲熹之害, 竊恐丞相亦不得不以爲慮也.

 

대저 근자에 세속에 익숙해져서 모든 일이 크게 공정하고 지극히 바른 도리가 밝게 드러나 시행되지 못해서 매번 구구히 사사롭고 작은 은혜의 즈음에 왜곡하려 합니다. 본래 사람마다 기뻐해서 말류적인 폐단이 항상 도리어 좌우를 구속하는데 이르러서 갑절의 재물의 비용이 들어도 마침내 또한 천하의 공론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감히 말하지 않더라도 승상께서 밝게 알고 계신 것이니 또한 저의 말을 기다릴 것이 없습니다. 제가 오늘 공장을 두어 성에 보고하고 나란히 차자로 두루 여러 공들에게 간청을 해서 말이 모두 가슴속에서 나오니 곧 예의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절실히 바라건대 불쌍히 살펴서 일찍 개진해 주셔서 드디어 비루한 생각을 이룰 수 있다면 크게 내려주심을 짊어지게 됩니다. 어제 품계를 높여주는 것을 사양했으니 생각해보면 이미 균등한 염려해주심을 입었습니다. 만약 올리지 않아 나란히 더불어 올려 주신다면 다행스러움을 이루다 말 할 수 없습니다.

 

大抵近年習俗, 凡事不欲以大公至正之道顯然行之, 而每區區委曲於私思小惠之際. 本欲人人而悅之, 而其末流之弊, 常反至於左右拘牽, 倍費財處, 而卒又無以慰天下之公諭. 此則熹之所不敢言, 而丞相之明其自知之, 亦不待熹之言矣. 熹今有公狀申省, 幷以劉子遍懇群公, 語悉由衷, 卽非備禮. 切望矜察, 早賜開陳, 得遂鄙懷, 乃荷大賜. 昨辭遷秩, 想亦已蒙鉤念. 若猶未上, 得幷輿將上, 不勝幸甚.

 

조진숙에게 보내는 편지 與曹晉叔書

 

해제이글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조진숙에게 자신의 입장을 받아들여 사면의 요청이 수용되길 바라는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현실에 우활한 자신의 사면이 받아들여져서 성에서 차자가 내릴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제가 사면한 문자가 닦여지기를 마쳐서 다시 하루 이틀 만에 비로소 사람을 파견했으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요청한 것이 마침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나 한차례 주소를 올림에 지극히 품고 있었던 것을 말하였으니 이것이 혹시 행동거지의 결정이 될 따름입니다. 산간에 있어 비록 밖의 일을 들을 수 없고 다만 전달에 편지를 받고서 모든 사람들의 선비를 추천함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근례에 가로질러 의논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뒷날에 어떻습니까? 대개 그 사이에 한두 개의 병 뿌리가 있으니 만약 제거하지 못하면 선한 무리들을 세울 수 없을 뿐만이 아니고 종묘사직의 복이 되지 않습니다. 가르침을 받듦이 오래지 않아 목마르게 바람이 한 량 없습니다. 돌아보건대 성에 들어갈 이치가 없어서 앉아서 막히고 소활함을 이루었으니 어찌 할까요!

 

熹辭免文字修寫方畢, 更一二日, 始得遣人, 末知所請竟如何. 然亦作一奏疏, 極道所懷. 此儻可爲行止之決耳. 山間殊不聞外事, 只前月得都下書, 聞以諸薦士之故, 近列有橫議者. 不知後來竟如何? 其間有一二病根, 若不能去除, 惟善類立不得, 亦非廟杜之福也. 不承敎之久, 渴仰無量. 顧無可入城之理, 坐成阻闊, 奈何奈何

 

진동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陳同父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순희 15, 정미) 그의 나이 59세에 앞서의 조진숙에게 보낸 편지처럼 자신이 사면에 협조해 달라고 진동보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입장이 수용되어 말년을 자연과 더불어 마무리 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제가 파견한 사람이 헤아려 보건대 달 반 전후로 도성에 이를 것이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세전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다만 오활하고 막힌 견해가 편지 중에 이미 설명을 다해서 스스로 보기에도 지나쳐서 또한 시행하기 어려움을 알겠으니 차례 데로 8-90%가 장차 깨지고 그치게 될 것입니다. 만일 헤아린 것과 같지 않다면 또한 별도로 서로 헤아려서 지금에 예정할 수 없을 따름이다. 교지에 이른 것이 마음으로 염려하고 다만 비루한 뜻이 여기에 이르러서 두루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물며 본래 이 사이의 학문이 다시 오칠일이 지나면 문득 육십 세의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 어떻겠습니까! 근방을 조치해서 파종하여 몇 이랑의 국화를 얻었으니 만약 한 다리로 문을 벗어나면 문득 다시 이 물건을 먹을 수 없으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노형에게 받들어 고하고 또한 서로 던지고 거두지 못해서 머물며 한가히 산속에서 뿌리를 캐서 사람과 더불어 간섭하지 않아서 마침내 도리어 잔서를 말아 쥐고서 마을의 빼어나고 재주 있는 자들과 더불어 찾아 여러 번 시행하였으니 이것이 한 일입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얼마간의 성현 호걸들이 사업을 경윤해도 지을 수 없고 다만 임의대로 죽음에 이르더라도 어디에 한스러워 하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이러한 썩은 유생들이 어찌 넉넉히 경중을 따지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세상에 공자 맹자 관중 제갈공명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까? 보내어 호기 있는 선비들에게 비웃음을 당할까 두렵다고 깨우치시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디에서 호걸 있는 선비들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습니까? 노형은 지나치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熹所遣人度月半前後到都城, 不知歲前便得歸否. 但迂滯之見, 書中已說盡, 自看一過, 亦覺難行, 次第人九分是且罷休矣. 萬一不如所料, 又須別相度, 今亦未可預定耳. 來敎折云, 心亦慮之, 但鄙意到此, 轉覺瀨怯. 况本來只是間界學問, 更過五七日, 便是六十歲人. 近方措疊, 種得幾畦杞菊, 若一脚出門, 便不能得此物喫, 不是小事. 奉告老兄且莫相潑嚴, 留取閑漢在山裏咬菜根, 輿人無相干涉, 了却幾卷殘書, 輿村秀才子尋行敷墨, 亦是一事. 古往今來, 多少聖賢豪傑鰮經綸事業不得做, 只恁勝死了底何限? 顧此腐儒, 又何足爲輕重況今世孔寫自不乏人也耶? 來愉恐爲豪士所笑’, 不知何處更有豪土笑得? 老兄勿過慮也.

 

진동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陳同父書

 

해제이글은 순희 15(정미, 1188, 59)에 앞서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사면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편지이다. 지난번의 사면의 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시 제수 된 것을 부당하고 적당하지 않다고 겸손히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자기의 뜻에 부합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제가 간절히 부르시는 명을 사면하였으나 윤허를 입지 못하고 도리어 제수되어 등용되었으니 초월하고 기이해서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안으로 살펴 감당할 수 없으니 어떻게 이것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미 사면의 주를 올렸고 이제 이십 일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보고를 듣지 못했습니다. 오그라들어 스스로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편지를 보내어 경계하고 깨우쳐서 특수한 사랑과 염려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도량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몽매함을 무릅써 곧바로 나아가면 또한 단지 장구의 설명을 외워서 문장에 응대하여 대비하는 것일 따름이니 어떻게 문득 큰일을 담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단지 이것은 난장이의 무릅씀이니 또한 감히 받들어 담당할 수 없으니 노형의 말씀이 너무 이른 계책이 아닙니까? 그러나 세간의 일은 생각함에 문드러지고 익숙하게 아니할 수 없으니 다만 지을 때에 설명할 때와 같지 않아서 남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공자님께서 어찌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정성스럽지 않으시며 맹자가 어찌 거칠게 주먹질하고 크게 차지 않겠습니까? 도저히 손으로 드러낼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이러한 기량도 없으면서 스스로 일 개의 몸을 얽어매서 오히려 장차 내리지 않아서 종전에 감히 용이하게 내지 못한 것이 대개 스스로 매우 자세함을 알겠습니다. 세간의 한 치도 서로 알지 못하는데 공론이 사람에게 닿아 또한 알지 못하는 이가 없습니다. 다만 이것은 우리 당 중에서 서로 앎이 오래 되고 서로 사랑함이 너무 깊은 자가 있으니 좋아하되 그 미운 점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릇되게 서로 빌려주어 대략 알고 부끄러움을 겸해서 또한 나이가 많고 절차를 미루어서 드디어 실상이 없는 이름을 이루어 위로 군부의 들음을 그르쳤으니 이것은 분에 넘친 자리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매번 한 밤 중에 생각함에 송구스럽고 부끄러워서 위아래의 여망에 보답할 수 없으니 일찍이 땀이 나서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노형의 재기로 요약하여 알아서 과감히 무리들을 끊고 또한 흐르는 풍속과 함께하지 아니하니 진실로 이것은 헛된 명성이니 장차 억지로 난장이에게 천 근의 무거움으로 인해서 엎어지고 넘어져 낭패됨을 근심하지 않아 사람을 알아보는 명철함을 그르칩니다. 사면한 사람의 행차가 늦어져서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회답이 있을 것입니다. 흡사 들으니 뒤에 조정의 의논이 또한 새롭게 바뀌어 따르던 관원들이 이미 말로써 죄를 얻어 떠난 자들이 있으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일이 마침내 어떻습니까? 일을 아뢴 것이 비록 고상한 논의는 아니지만 내리고 내치는 이치가 없을 까 두렵습니다. 만일 과연 전하는 것과 같다면 외로운 종적이 다시는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왕은 크게 굳게 막는 것에 관여되어 오히려 재앙을 면하지 못할까 두렵거늘 하물며 감히 폐하의 문에 들어가길 바라겠습니까? 저들이 도성에서 떠난 지 멀지 않아서 생각건대 이미 오늘의 점괘를 보았을 것입니다. 만일 거듭 사양해도 얻지 못해서 곧 행장을 꾸리고 양식을 싸는 것을 면하지 못하면 살려다가 죽음으로 돌아가는 계책이 됩니다.

난계를 방문하는 것을 허락 받았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다만 이야기할 곳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지난번에 자약이 이곳에 도착하여 서로 지킨 지 삼일에 마침내 하나도 품은 것을 토설하지 못하였습니다. 혹여 먼저 손으로 쓴 여러 줄을 얻었고 대략 대의를 논의해서 서로 보고 듣지 못하게 해서 미리 실마리를 풀어서 곡절을 요청해서 거의 총총한 말을 다하지 못하고 다만 크게 추측만을 이루었습니다.

 

熹懇辭召命, 不蒙開允, 反得除用, 超異非常. 內省無堪, 何以勝此已上免奏, 今二十餘日矣, 尙未聞可報, 呶踏不自勝. 來書警誨, 殊荷愛念. 然使熹不自料度, 嘗昧宣前, 亦只是誦說章句, 以應文備敷而已, 如何便檐當許大事? 況只此僥冒, 亦未敢承當, 老兄之言, 無乃太早計乎. 然世間事思之非不爛熟, 只恐做時不似說時, 人心不似我心. 孔子豈不是至公至誠? 孟子豈不是粗擧大賜? 到底無著手處. 況今無此伎備, 自家勾當一箇身心, 尙且奈何不下, 所以從前不敢容易出來, 蓋其自知甚審. 而世間一秤不相譏有公論底人, 亦莫不知之. 只是吾黨中有相知曰久相愛過燦者, 好而不知其惡, 叢相假借, 以爲粗識廉恥, 而又年紀老大, 節次推排, 遂有無實之名, 以至上饒君父之聽, 有此叨觸. 每中夜以思, 悚擢慚作, 無以少答上下之望, 未嘗不發汗沾衣也. 不意以老兄之材氣織略, 過絶流輩, 而亦下同流俗, 信此虛馨, 將欲彊樵僥以千鉤之重, 而不愛其覆趺狼狽, 以鼓知人之明也.

  諸免人行已久, 旦夕必有回報. 似聞後來廟論又有新番, 從官已有以言獲罪而去者, 未知事竟如何. 封事雖無高論, 然恐無降出之理. 萬一果如所傳, 則孤攤兀是不復可出. 自今以往, 牢關固拒, 尙恐不免於禍, 況敢望人帝王之門乎? 彼去都城不遠, 想已見得近日爻象矣. 萬一再解不得, 卽不免束袋裹糧, 爲生行死歸之計.

承許見訪於蘭溪, 甚幸, 但恐無說話處. 向來子約到彼, 相守三日, 竟亦不能 一吐所懷. 或先得手筆敷行, 略論大意, 使末相見間, 預得紬繹而面請其曲折, 庶幾猶勝息恩說話不盡, 只成閑追逐也.

 

주승상에게 보내는 편지 與周丞相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순희 15, 정미) 그의 나이 59세에 다른 주승상에게 보낸 편지에서처럼 자신의 입장을 수용해 달라는 편지이다. 이 당시에 주자에게 거듭되는 제수에도 불구하고 사면의 주를 올리고 미관말직으로 여생을 보전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자신의 그러한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제가 사이에 곁으로 밝게 복응한 조서의 책자에서 들으니 나아가 폐하의 몸을 보전해서 체모가 더욱 융성해서 안팎이 서로 경사스럽게 여깁니다. 제가 이미 반가의 말단을 따름을 얻지 못하고 또한 때에 주달하여 기록함을 얻지 못하여 조금 내리신 생각을 보고 우러러 대문과 담장을 바라보니 한갓 두려움이 더할 따름입니다. 이보다 압서 경솔하게 간청해서 엎드려 총애로 내리신 교지와 답서를 받았고 가르치고 깨우치심이 정령스러워 돌아보아 생각을 더하여 더욱 깊이 감격하였습니다. 오직 여기에 요청한 것이 아직 시행되지 않아서 근심하고 두려움이 깊어서 몸 둘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구구하고 비루한 뜻을 정에 이미 다 폈으나 이미 아직 조정을 움직이지 못했으니 또한 다시 설명을 펴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장계를 갖추어 오직 범참정이 직분에 나아간 비근한 예로써 요청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승상께서 시험 삼아 한번 보아주시면 조정의 주고 빼앗음과 저의 사양하고 받는 것이 마땅하고 아니고 얻고 잃고 함이 모두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조정이 여기에 본래 애증의 사사로움이 없고 다만 만나고 잃고 참여하여 비추면 또한 크게 빼트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유독 저로 하여금 몰래 근거가 아닌데도 다행히 토론이 미치지 않으면 치욕이 큽니다. 제가 비록 내세울 정황은 없으나 가만히 깊이 부끄럽게 여깁니다. 만일 이 요청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가 어찌 용납될 수 있겠습니까? 대개 민망스럽게 묵묵히 무릅써 받아들이기 보다는 차라리 죄와 허물로 귀양 가고 배척됨으로 영화롭고 빛난다고 여기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나 저의 본심이 또한 어찌 크게 감격하겠습니까? 장계 속에 이미 곡절을 갖추어 말하였으니 나란히 바라건대 깊이 살펴서 힘써 개진하셔서 거의 폐하께서 어리석음을 밝게 비추셔서 빨리 요청을 이루어 주신다면 저의 다행일 뿐만이 아니고 승상의 분수 위에 또한 한 단서를 더하여 일을 마치지 못함이니 또한 도움이 없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 편지의 경솔한 말이 채취할 것이 없습니다. 짐을 넘어 개납해서 부끄럽고 두려움이 매우 깊습니다. 돌아보건대 지금 스스로 도모함이 졸렬해서 나아가고 물러남이 근거를 잃어서 또한 다시 조정을 위한 계책을 할 수 없습니다. 원시랑이 돌아오는 길에 길에서 한번 보았으니 말이 자못 정성스럽지 못했습니다. 병에 대해 들음에 미쳐서 가서 보고 싶었으나 천한 몸뚱이가 쇠퇴하고 궁핍함이 더욱 심해서 아직 스스로 힘 쓸 수 없어서 생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받들어 물음에 미쳐서 따라서 문득 폅니다. 병에 걸린 나머지 인생이 다시 여망을 실천할 수 없어서 엎드려 생각건대 천하의 귀중함으로 천만자애하시면 저는 지극한 소원을 이루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熹間者側間光贋諮冊, 進保帝臾, 體貌益隆, 中外交慶. 熹旣不獲追隨班賀之末, 又不獲以時奏記, 少見下懷, 膽望門牆, 徒增悚暢.

前此率易申懇, 伏蒙寵賜敎答, 誨愉丁寧, 畚念有加, 允燦感激. 惟是所請未蒙施行, 愛懼之燦, 莫知所措. 區區鄙志前已具陳, 旣未能有以上動朝聽, 則亦不敢復申其說. 今者具狀, 獨以范參政進職近例爲請. 伏惟丞相試一驚焉, 則朝廷之豫奪與熹之鯖受, 其當否得失皆曉然矣. 然朝廷於此本無愛憎之私, 但爲偶失參照, 則亦未爲大闕. 獨使熹竊非其暉而幸討論之不及, 則其辱大矣. 熹雖無狀, 藏深恥之. 萬一此請不遂, 熹豈容但已? 蓋輿其閔黙冒受, 寧以罪戾爾斥爲有榮耀也. 然熹之本心, 亦豈樂爲是亢激者? 狀中已備言其曲折矣, 幷乞燦察而力陳之, 庶幾聖王有以洞照其愚而亟遂其請, 則不惟熹之幸, 而免使丞相分上又添此一段不了事, 則亦不爲無補也.

 前書率爾之言, 無足釆取. 過荷鬨納, 愧悚良深. 顧今自謀之拙, 進退矢擴, 亦不復能爲門館計矣.

  袁侍郞歸來, 道間一見, 語殊未款. 比間其病, 欲往視之, 而賤軀衰乏兀甚, 未能自力, 念之不能忘也. 承問之及, 因輒布之. 疾病餘生, 無從復望履寫, 伏惟深爲天下之重千萬自愛, 熹不勝至願.

 

이성보에게 보내는 편지(기유년 52) 與李誠父書(己酉五月二日)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이성보에게 발탁에 준하여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우선 능력이 모자란 자신을 잊지 않고 발탁해준데 대하여 감사를 표하고 오랑캐의 침범이 요란한 이러한 시기에 나라에 현인군자가 필요할 때라고 전제하고 자신이 발탁이 시기에 맞춰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오래도록 절하여 장계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들으니 영광스럽게도 친히 발탁해 주심을 입어서 나아가 여섯 번 살피는 바람에 머물러서 깊이 위로가 됩니다. 근자에 맑고 조화로우니 엎드려 바라건대 행동거지가 편안하고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선생이 도를 안고 시험하지 않았으나 그 마음이 당세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인 제자들이 이미 조금이라도 그 뜻을 받들기에 부족하고 가정의 어진 자식이 넉넉히 그 업을 이었습니다. 학자의 바람이 대개 보통 사람에게 견줄 것이 아니니 하물며 새로이 폐하께서 밝게 이으려는 초기에 개연히 다스림에 뜻을 두었는데 밖으로는 오랑캐들이 기대어 능멸해서 나라의 위엄이 떨쳐지지 않고 안으로는 음란하고 사특한 이들이 벗을 지어 결탁해서 국론이 정해지지 않으니 이것이 또한 현인군자가 충성을 바치고 힘을 펴서 죽백의 명예로운 절개를 드리울 때입니다. 존형의 평소 뜻을 세우고 몸을 가짐이 진실로 정한 의논이 있으나 구구히 다시 한 뜻으로 나라를 다스리길 바라서 평상시 선을 두터이 하려는 사사로움으로 되돌아가서 깊이 천하의 공론이 있는 바를 살펴서 생각을 자세하게 하여 결연히 시행해서 음기가 위에서 녹고 양기가 아래에 자라나서 정사가 다스려 지고 나라의 형세가 높고 편안해지면 또한 노성한 선생이 평상시에 후인들에게 바라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의탁함이 깊어서 보통 사람들의 말을 건네어 제수하고 쓰는 즐거움을 돕지 못하여 미치고 망령되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존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공이 논의한 일이 다 공론에 합치되어서 매우 사람의 뜻을 힘쓰게 합니다. 다만 두 번째 작은 간쟁이 제거된 것이 매우 애석할만해서 그 말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제공들이 바른 사람들을 배척해서 곧 존형의 책망을 막으니 이것은 서로 가볍게 여김이 심한 것이니 형이 반드시 설허가 될 수 없을 따름입니다. 이러한 작은 은혜를 품고서 큰 치욕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니 깊이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久不拜狀, 姦聞榮被親擢, 進居六察之聯, 深以爲慰. 比日淸和, 伏惟台候動止萬福.

先生抱道不試, 然其心未嘗忘當世也. 門人弟子旣不足以少承厥志, 而家有賢 , 足繼其業. 學者之望, 蓋非常人之比. 况新夫子繼照之初, 慨然有志於治,  外則夷虜憑陵, 國威不振, 內則陰邪朋結, 國論末定, 此亦賢人君子效忠宣力,  名竹帛之秋也. 尊兄平曰立志持身固有定論, 然區區更願一意爲國, 無徇常日往還 厚善之私, 深察天下公議之所在, 精盧而決行之, 使陰消於上而陽長於下, 政事脩 理而國勢尊安, 不亦老先生平日之所望於後人者乎? 熹託契深厚, 不敢效常人進隷 , 以贊除用之喜, 狂妄及此, 不蕃尊兄以爲如何?

胡公論事皆合公論, 甚彊人意. 但二小諌之去殊可惜, 乃不能遂其言, 何耶?

諸公徘逐正人, 乃以尊兄塞責, 此相輕之甚, 謂兄必不能爲薛許耳. 不可懷此小恩 而忘大辱, 幸探念之.

 

 

장원선에게 보내는 편지 與張元善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거듭 사면하는 것에 대하여 그 일을 주관하는 장원선에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평생 동안에 관직을 사양한 이유는 단지 두 가지 때문이니, 하나는 제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사로운 계획에 불편하다는 것일 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니 자신의 결백을 소상히 살펴달라고 주장하였다.

 

사면을 청한 문자에 대해 유념해 주신 것은 감사드립니다.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저의 행적이 오래도록 당신에게는 누가 되었으니 진실로 부끄럽습니다. 이제 다시 이 인편을 보내니, 곧 조사께서 보낸 사람입니다. 상서성으로 보내는 공차는 이미 전령에게 주어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단지 이로 인해서 당신이 그에게 물어보시는 것이 번거롭게 되었습니다. 초고를 보내드리오니, 구구한 저의 뜻은 단지 이와 같을 뿐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께서 말하신 입절항론과 같은 것은 더욱 사실이 아닐뿐더러, 도리어 소인배들의 의심과 시기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평생 동안에 관직을 사양한 이유는 단지 두 가지 때문이니, 하나는 제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사로운 계획에 불편하다는 것일 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하신 여유차망과 같은 것은 오히려 이번 일의 성격(事體)과는 다를 것입니다.

 

辭免文字極荷留念, 危疑之迹, 久爲賢者之累, 允以慚悚. 今復遣此人, 乃漕司借來. 省狀公箚已與錢今自投矣, 只煩因見扣之. . 狀稿錄呈, 區區卑意只是如此, 更無他說. 如云立節抗論, 却非事實, 而反以益其疑忌. 蓋平生辭官只是兩事, 一則分不當得, 二則私計不便而已, 非有他也. 所云如有差妄, 却與此事體不同.

 

만일 본 등의 차견이 제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받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명과 위가 뛰어넘고 또한 제 능력으로 힘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부득이하게 사양하는 것일 뿐입니다.

 

若是本等差遣力所能堪, 豈有不受之理? 名位超蠟, 或非力所辨, 則亦不得不辭耳. 淸源之說, 尤非所敢聞者. 中固不見容, 外亦非所堪, 衰晩如此, 精力昏耗, 一事做不得, 只得一日安靜卽是一曰之福, 此外無所求也.

 

청원의 말씀은 더욱이 감히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직에서는 진실로 용납되지 못하고 외직도 역시 감당할 수 없어서, 늙고 쇠약함이 이와 같으니, 정력이 어지럽고 고갈되어, 한 가지 일조차 해낼 수 없습니다. 단지 하루가 편하고 조용하면 곧 하루의 복일뿐이니 이 밖에 다른 구하는 것은 없습니다.

 

對班果在何日? 不知欲論何事? 來書所云非甚利害不暇謀人者, 何見事之遲耶? 觀二諌之去, 江夏之升, 此乃不犯手勢而斡旋運轉無不如其意者. 自古小人所以敗亂國家, 豈皆凶惡猛勢, 有可畏之威而後能之? 但有患失之心, 便自無所不至, 先擊言之精且切矣.

 

경연은 언제나 있을 것이며, 어떤 일을 논하려고 하십니까? 보내 주신 편지에서 심한 이해가 아니면 군자를 해치려고 꾀를 부릴 겨를이 없을 것이란 말씀은 어찌 그리도 일을 파악하시는 것이 늦으십니까!

두 간관이 쫓겨나고 강하가 승진했으니 이 일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알선하고 조종하는 것이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소인이 나라와 국가를 망치는 이유가 어찌 소인배들 모두가 흉악하고 사나운 기세로 두려워할 만한 위엄을 갖춘 이후에 그렇게 했겠습니까? 다만 무언 가를 잃을까 하는 근심 때문에 끝닿는 곳 없이 흉계를 꾸미는 것이니 옛 성인의 말씀이 자세하고 절실합니다.

 

南臺西掖, 乃爲差彊人意者. 然不淸其原而窒其流, 恐徒費力而無補也. 況南牀擊去新諌, 此已明與之忤.

남대와 서액은 곧 사람들의 의기를 북돋아주는 직책입니다. 그러나 근원을 맑게 하지도 못하면서(군주를 바르게 인도하지도 못하면서) (공론의) 흐름을 막아버리니, 한낮 애쓰기만 할 뿐 보탬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하물며 남상이 새로운 간관을 물리쳤으니 이것은 이미 저 소인배들과 더불어 뜻이 어긋난 것이 분명합니다.

 

渠旣不得志, 必須更尋一枚如此等比置之本處, 不知又將何以爲計? 此事不遠, 計只在旦夕矣, 可因見痛針箚之. 此公雖未相識, 然見其文字, 知其純厚, 不會罵人. 須力從臾之, 以速爲上, 稍遲一日, 卽壤一日事矣.

 

저들이 이미 뜻을 얻지 못했으니, 반드시 다시 이와 같은 무리 가운데 한사람을 골라서 본래 의도했던 간관의 자리에 두려 할 것이니, 남상께서는 또 어떻게 할 계획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일은 미구에 닥칠 것이니, 생각해보면 단지 조석의 시간이 있을 뿐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남상을 보시고 통렬하게 충고하십시오. 이 분은 비록 서로 아는 처지가 아니지만 그 분의 문장을 살펴보니 순후하셔서 사람을 견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힘써 권하셔서 속히 물리치는 것을 상책으로 삼으십시오. 하루가 늦는다면 곧 하루의 일이 무너질 것입니다.

 

二諌之去, 必須有曲折, 幸子細報及. 天下事只有箇做, 有箇不做, 無如此依違僥倖之理. 彼之隱忍回互, 蓋曰將以有爲也, 而所就者亦止如此, 與奮發直前者相去亦復幾何? 向使奮發直前, 果去禍根, 却未必不做得事也. 境外之事, 則諉曰無後段, 不知如此拱手安坐, 幾時是有後段時? 此事苦痛, 更是無告訴處. 不知祖宗之靈何負於此輩, 而忍至此也

 

두 간관이 쫓겨난 것은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입니다. 자세한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천하의 일이란 단지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이와 같이 우물쭈물하다가 요행히 이루어지는 이치는 없습니다. 저들이 은인하면서 회호하면서 말하기를 장차 도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고 했는데, 나아간 바가 또한 이와 같은 데 불과할 뿐이니, 분발해서 곧장 나아가는 자와의 거리가 또한 다시 얼마나 됩니까? 만일 분발직전해서 과감하게 화근을 물리쳤더라면 오히려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국경 밖의 일에 대해서는 변명하기를 후단이 없을 것이다고 하시는데, 모르겠습니다만 이와 같이 팔짱을 끼고 편히 앉아만 있다면 어느 때가 후단이 있는 때이겠습니까? 이 일의 고통은 다시 호소할 곳이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조종의 영혼들이 어찌 이러한 무리들을 참고 견디시면서 여기까지 이르렀단 말입니까!

 

 誠父遷後相見否? 聞渠曾與之鄰居, 相與甚厚, 須有以警覺之. 縱不能回戈奮擊, 且得不爲所使以害善良, 亦幸事也. 蕭果卿初除御史, 虞丞相意也. 人或賀之, 蕭喟然曰. ‘彼見吾憒憒, 謂我不能言, 而以是處我也. 其輕我甚矣不數日首論其黨, 遂幷攻之, 論者服其勇云.

 

성부가 옮긴 이후로 만나보셨습니까? 소문에는 그가 간신배와 이웃해서 살면서 서로 교유함이 매우 깊다고 하니 반드시 꾸짖어서 깨우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창을 돌려 그를 공격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또한 간신배에 의해서 부림을 당해 선량한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면 또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소과경이 처음 어사를 임명받은 것은 우승상의 뜻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혹여 소과경을 축하하기도 했는데 그는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그가 나를 흠모한 사람이라고 평가해서 내가 능히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사 직에 나를 발탁한 모양인데, 너무 심하게 나를 경시했다!”고 하고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제일 먼저 우승상의 무리들을 공격하면서, 마침내 우승상까지 공격하니 논하는 자들이 그의 용기에 감복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經總制錢若只如此減得不多, 全不濟事. 熹去年有一箚子, 曾降出否? 諸公之意非不欲速行, 只是怕諸路倏上, 乞減太多, 難可否耳. 若未定論, 且守前說爲佳.

 

경제전과 총제전은 단지 이처럼 감액한 것이 적으니 온전히 일을 구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한 통의 차자를 올렸는데 이미 회신이 내려왔는지요? 당로의 여러분들의 뜻이 속히 행하기를 원하지만, 아마도 단지 여러 지방의 공문서에서 감액하기를 원하는 것이 지나치게 많아서 가부를 정하기 어려운 것일 뿐입니다. 만일 정론이 아직 없다면 또 지난번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過了此番, 又無時可理會也. 紹興和買, 熹向有一說, 欲減總額零數, 十四萬中減其四萬. 而後以田畝餘財諸船物力貫頭均敷, 庶幾重者得輕, 而元無者所增亦不至重. 後來不曾上得. 鄭書赴鎭時, 曾寫與之, 不知渠後來如何區處也.

 

이번이 지나가면 또 다시 이회할 때가 없을 것입니다. 소흥의 화매에 대해서는 제가 이전에 한 가지 의견이 있었습니다. 총액 가운데 나머지 수를 감해주시고(14만 중에서 4만을 감하는 것) 또 나중에 농토와 나머지 재물의 제반 물력도 돈으로 바꿔서 균등하게 부과한다면, 아마 부담이 많은 자들은 경감될 것이고, 원래 이러한 부담이 없던 자들도 더해진 것이 그렇게 무겁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정상서가 진에 나아갈 때에 일찍이 필사해서 그에게 주었는데 그가 나중에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廣西鈔鹽 只是州縣苦之, 必不至大爲民害. 今復官賣, 却須有害民處, 以本路觀之可見矣. 詳觀所論, 大率見得人情事幾末甚分明. 此乃平日意思不甚沉靜, 故心地不虛不明, 而爲事物所亂. 要當深察此病而釀反之, 古人所謂安而後能慮, 定而後能應, 正爲此也. 若只如此泛泛度日, 卽恐枉得道氣之名而不享其利, 徒有損而無益也. 千萬留念.

 

광서의 초염은 단지 주현이 고통스러워할 뿐 반드시 크게 백성들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 다시 관에서 판매하게 한다면 도리어 반드시 백성들에게 해로운 점이 잇을 것이니, 본 로의 경우에서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논하신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부분 인정과 사기를 보는 것이 심히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곧 평상시의 의사가 깊이 심정하지 못해서 심지가 허령하지도 밝지도 못해서 사물에 의해서 어지럽혀지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 병을 깊이 살피셔서 속히 되돌리신다면 고인이 말한 편안한 이후에 능히 사려할 수 있고, 정해진 이후에 능히 일과 사물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만일 다만 이와 같이 평범한 태도로 날을 보낸다면 잘못 도기의 이름을 얻되 그 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한낮 손해만 있을 뿐 이익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유념해주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이성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李誠父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자신이 군신가의 의리에 대한 관점을 이성보에게 피력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올바른 군신간의 의리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생각이 바로잡혀야하며 그러한 바탕에서 출발해야 옳은 군신간의 의리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부본에서 보여주신 내용은 저를 남이라 여기지 않으시니 더욱 감사드립니다. 세 번 다시 되돌렸으니 엎드려 생각건대 잠깐 선생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아서 논의하는 것이 이 일이 아님이 없었으니 지난 일을 감격스럽게 생각하여 슬픈 탄식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또한 저에게 가학으로 전해지는 것이 있어서 드디어 세상에 쓰임이 되었으니 구원에 대한 생각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副本垂示, 極感不外之意. 三復以還, 伏念頃侍先生敎誨, 所論無非此事, 感念疇昔, 不勝悲欺. 又喜家學有傳, 遂爲世用, 有以慰九原之思也.

 

첫 장에서 논한 내용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원칙으로 오늘날에도 더욱 간절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실제와 거리가 먼 늘 하는 이야기요 사악한 기풍을 지닌 도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드뭅니다. 존형이 이미 단서를 드러냈으니 이것은 반드시 저들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폐하께 보고하는 바의 도리가 바꿀 수 없으니 또한 어찌 저들을 돌아볼 수 있겠습니까? 다만 마땅히 이 한마디 말을 지켜 평생 의논의 근본으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다른 날에 일을 논의함에 매번 이 화두를 끄집어내서 심한 일을 논의하지 아니하고 모두 이 화두를 따라 미루어 끄집어내니 모든 병의 근본이 감춰지고 숨겨질 곳이 없어져서 폐하께 자신을 돌아봐 일을 바로잡는 기미이니 또한 요약해서 쉽게 잡은 것입니다. 만약 이 화두를 잡고 별도의 한 일로 삼아 당대의 폐단이 또한 저절로 각각 한 일이 되면 안팎의 자세하고 거친 것이 서로 이어지지 못해서 진실로 현실과 멀다는 의논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이 말을 잊지 말아서 매번 반드시 끄집어내어서 항상 접속시켜서 조금이라도 간단함이 없으면 오래도록 스스로 본받게 될 것입니다.

한 일을 회복해서 지금 일의 힘이 진실로 망동하기 어려운 것이나 이 뜻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에 선생이 항상 오늘을 설명함에 다만 당장 함께 하늘을 일 수 없다는 네 글자의 첩자를 머리 위에 편액해서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제일 첫 번째 의리입니다. 지금 노형이 논의하는 것을 보니 또한 이 뜻을 얻었습니다. 다만 마땅히 이것에 따라 문득 안으로 닦는 뜻을 진술해서 조금 절실히 오늘날 잔치하고 안일하며 방탕하고 거꾸러진 폐단을 지적하니 곧 힘이 있을 따름입니다.

나누어 직분의 일을 살피는데 이르러 헤아려 보건대 묵묵히 처리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큰 요점이 자세히 살피는데 달려 있으니 치우친 말을 따르는 것으로 선이라 여기지 말아서 선인을 보호해서 흠하고 질투하는 뜻을 가리니 또한 잊을 수 없을 따름입니다. 큰 근본은 남을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먼저 반드시 자기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니 하물며 임금을 바로잡고자 하면서 스스로 바르지 않은 누됨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높고 명철히 처리해서 반드시 자기의 근본을 바로잡는데 달려있습니다. 이미 하문을 받들고서 다하지 않을 수 없었을 따름입니다.

 

首章所論, 乃古今不易之常道, 而在今日尢爲要切. 然自世俗觀之, 不以爲迂闊之常談道學之邪氣者鮮矣. 尊兄旣發其端, 此必已爲彼等所惡. 然吾所以告君之道, 無以易此, 則亦何願於彼? 但當守此, 以爲平生議論之本. 他日論事, 每每拈出此箇話頭, 不論甚事, 都從此話上推出去, 則百病之根無所臧匿, 而於人主所以反躬正事之幾, 亦約而易操矣. 若把此話別爲一事, 而當世之弊又自各爲一事, 則內外精粗不相聯屬, 而眞不免乎迂闊之機矣. 切望勿忘此言, 每見必須拈出, 常今接續, 無少間斷, 則久久自見效矣.

 恢復一事, 以今事力固難妄動, 然此意則不可忘. 頃見先生亦常常說今日但當將不共戴夭四字貼在額頭上, 不知有其他, 是第一義. 今觀老兄所論, 亦得此意. 但當因此便陳內修政事之意, 而稍指切今曰宴安放倒之弊, 乃爲有力耳.  至於分察磯事, 計亦黙有所處. 此則大要在於詳審, 勿徇傭詞爲善, 而覆護善人, 俺其疵疾之意, 亦不可忘耳. 又其大本則欲正人者必先正己, 況欲正君, 而可自有不正之累耶? 此在高明處之, 必已蓑定. 旣承下問, 不容不盡耳.

 

왕겸중에게 답하는 차자 答王謙仲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왕겸중의 공평한 치세를 허여한 편지이다. 그러나 때라는 것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법이니 이 때문에 옛 성현들도 황황하고 급급한 태도로 앉아서 새벽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오직 명공께서는 의음의 뜻을 잊지 마시고 과단성 있는 태도로 분발하셔서 놓쳐서는 안 될 기회를 이용하신다면 종사의 아름다움이요 생령의 다행일 것이라며 앞으로의 부분을 얼마간 격려하였다.

 

말씀하신 것은 말할 수 없이 다행한 일입니다. 또 저를 비루하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 방문해 주시니, 여기에서 당신의 도량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작위와 덕업이 융성하시지만, 스스로를 부족한 듯이 여겨, 이처럼 스스로를 현명하지도 지혜롭지도 않다고 하시니 감격하고 감격합니다. 돌아보건대 어리석은 저는 본래 지식도 없거니와 게다가 질병으로 학문을 그만둔지라 의견이 더욱 세상의 실정에 어두우니 장차 어떻게 아름다운 명을 우러러 받들겠습니까? 오직 평생 동안 들은 것이라고는 명공께서 절개와 풍렬이 늠름해서 오늘날의 선비들과 같지 않으시니, 군주를 높이고 백성들 비호하는 방략도 평소에 축적하신 것일 것입니다. 오늘날 그 위를 얻어서 나라 안에 베푼다면 식견 있는 자들이 머리를 들고 눈을 부비며 은혜가 나라 안에 흐르기를 소망한 지 또한 며칠이 되었습니다. 저는 홀로 명공께서 부드러운 태도로 박절하게 정사를 시행하지 않는 것은 장차 기다리는 때가 있어서 도모하시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때라는 것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법이니 이 때문에 옛 성현들도 황황하고 급급한 태도로 앉아서 새벽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오직 명공께서는 의음의 뜻을 잊지 마시고 과단성 있는 태도로 분발하셔서 놓쳐서는 안 될 기회를 이용하신다면 종사의 아름다움이요 생령의 다행일 것입니다.

 

云云不勝千萬幸甚. 又蒙不鄙, 俯垂前逮, 此見高明之度, 雖以爵位德業之隆, 而自視飮然, 不自賢智至於如此, 甚感甚感. 顧嘉至愚, 本無知識, 加以疾病藤學, 意見愈益闊疎, 其將何以仰承嘉命? 惟是平生所聞明公之節槪風烈, 凜然其非今世之士, 其尊主庇民之略, 蓋蓑所蓄積也. 今日得其位而施之於海內, 有識仰首拭目以望膏澤之流亦有日矣. 熹獨瀦意明公之優游不迫, 蓋將有所待而爲之也. 雖然, 時難得而易失, 古之聖賢蓋有皇皇汲汲而坐以待旦者. 唯明公不忘蟻音之志而果斷奮發, 以乘其不可失之機, 則宗社之休, 生羅之幸也.

 

유승상에게 보내는 차자 與留丞相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유승상의 배려에 감사하는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에게 등급을 뛰어 넘어 영전이 이른 것이 오히려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분수에 맞지 않은 발탁을 접으시고 미관말직으로 여생을 마치게 도와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어제 짧은 차자를 갖추어 간절히 은혜로운 명령을 사양해서 바야흐로 등급을 뛰어 넘어 나아가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죄를 취하였으나 생각지도 못하였는데 균등한 자애로움을 입지 못하고 도리어 손수 쓴 교지를 받아서 절하고 읽어 내려감에 두려운 감정이 더욱 깊었습니다. 또한 준엄한 깨우침을 정령스럽게 입고 포상과 융성함이 두터워서 우러러 지극한 뜻을 알겠으니 더욱 간절하고 떨리고 두렵습니다. 진실로 마땅히 그날로 절하고 편한 관직을 부지런히 업을 닦아서 깊이 우러러 폐하와 승상께서 지우해서 사령하는 뜻을 구하려 하였습니다. 질병의 나머지에 혼모함이 너무 심해서 가만히 스스로 헤아려서 한 도를 맡기시는 중요함을 감당하지 못해서 다시 공문서를 갖추어 거듭 조정에 올리는 것을 면하지 못해서 별도로 사사로이 집사에게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승상께서 나라의 공변됨으로 자세히 살펴보아서 특별히 가엽게 여기셔서 곡진히 펴 진술해서 사록을 주어서 마침내 아전들의 의논을 피하게 하셔서 남은 여생을 마치게 하신다면 저로서는 매우 다행스런 일입니다. 혹여 조정에서 저의 병의 실체를 알지 못해서 그릇되게 사령을 감당하게 하여 차마 몸을 마치도록 한산한데 두지 못하게 한다면 모의하는 관원이 완성할 수 있어서 혹여 스스로 본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의에 맞는 차례가 너무 심해서 감히 스스로 요청하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상공께서 시험 삼아 헤아려 주십시오. 다만 제가 비록 나갔지만 끝내 오랠 수 없을 것이니 가까우면 반년이고 멀면 몇 해이니 결단코 다시 빌고 간청해서 다시 구구한 처리에 수고할 것이니 이제 사록을 내림이 편리함만 같지 못합니다. 또한 일찍이 도로에서 들으니 곁으로 상공께서 대개 일찍이 좌우의 간사한 이들을 백방으로 드러내어 원외로 배척해서 폐하의 덕을 돌보고 조정의 기강을 떨치려한다 하니 매우 안팎의 소망에 위로가 됩니다. 제가 비록 어리석고 나약하나 또한 다행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상공께서 장래에 이런 기회를 타서 크게 밝음을 세워서 종묘사직의 영구하고 무궁한 계책으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엎드려 들음에 몇 달 동안 듣지 못했습니다. 양이 자람에 나아갈 수 없고 음이 녹음에 소멸할 수 없으니 이것이 가장 안위치란의 기틀이니 옛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했던 것 입니다. 저의 어리석음으로 본의 아니게 상공께 염려를 끼쳤으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고명하신 승상께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셔서 뒤를 잘 보전하시렵니까. 자취가 멀어 밭 사이에 있을 때에는 말미암아 황합을 뵐 수 없어서 머리를 들어 한 마디를 해서 큰 염려를 도와서 목을 끌어 동쪽을 바라보니 걱정스럽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위로는 국가를 다스리고 굽어 백성의 여망이 되니 천만번이라도 자중자애해서 제가 간청하여 빌어 진실하고 절실한 지극함을 이루다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직접 편지할 수 없으나 직접 쓴 교지를 받아 억지로 편지를 썼으니 소략함이 너무 심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균등한 자애로움으로 어여삐 여겨 용서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저는 황공하게도 글을 올립니다.

 

嘉昨具短箚, 懇諸恩命, 方催進越, 自取罪戾, 不謂乃蒙鉤慈還賜手敎, 拜領伏謂, 感悚益深. 又蒙鑽喩丁寧, 褒輿隆厚, 仰認至意, 尢切凌兢. 誠宜郞日拜命, 便道之官, 服勤磯業, 深求所以仰稱吾君吾相知遇使今之意. 而疾病之餘, 昏耗已甚, 網自揆度, 決無以堪一道委寄之重, 不免復具公蹟, 再干朝聽, 而別以此私于下執事. 伏惟丞相國公詳加省覽, 特賜矜憐, 曲爲敷陳, 仍甼伺祿, 使得卒逃吏善, 以遂餘生, 則熹不勝幸甚幸甚. 或恐朝廷未知熹之實病, 饒謂尙堪使今, 不忍終身疊之閑散, 則謀議之官若蒙陶鑰, 或可自效. 然以禮秩太優, 不敢有請. 伏惟相公試詳度之. 但寮雖出, 終不能久, 近則半年, 遠則周藏, 決須再有祈懇, 復勞區處, 不若及今便與柄祿之爲便耳.

  抑嘗聽於道路, 側聞乃者相公蓋嘗白發左右之姦, 斥之遠外, 所以輔君振朝綱者, 甚慰中外之望. 嘉雖愚儒, 亦不勝其喜幸. 竊意相公必將乘此機會大有建明, 以爲宗社永久無窮之計. 而伏聽累月, 未有閠也. 夫陽長而不遂進, 陰消而不遂減, 此最安危治亂之機, 而昔人所深畏. 以島之愚, 猶網爲相公慮之, 不識高明何以處此而善其後也. 遠跡田間, 無由伏讓黃閤之下, 仰首二言, 以贊大慮, 引預東望, 不勝倦倦. 伏惟上爲國家, 俯爲人望千萬自重, 踴不勝懇檮眞切之至.   

(小貼子)熹目力昏耗, 不能細書揩字, 墨色濃淡行道欹斜, 殊不成體.  不能親書, 以所被敎出於手墨, 勉彊作此, 率略殊甚. 伏乞鉤慈矜恕, 幸幸甚

 

유승상에게 주는 차자 (기유년 시월 이십일일)與留丞相箚子己酉十月二十一日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유승상이 자신에 대한 배려에 감사하는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죄를 얻었으나 죄를 묻기는커녕 오히려 강동의 임무를 맡긴 것은 무한히 감사해야할 일이지만 눈병이 고질이 되어 제대로 된 업무처리를 할 수 없는 입장임을 밝히고 철훼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저는 생각건대 중동의 엄한으로 오직 승상국공께서 건강하시고 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난 번 쇠퇴하고 병들어서 거듭 은혜로운 명령을 사양해서 참람하고 더럽힌 것이 두려워서 스스로 빨리 죄를 얻었으나 승상의 가엽게 여기고 불쌍히 여김을 입고서 곡진히 펴고 아뢰어 주시어 고쳐 부절을 주시어 사사로움을 편리하게 하시니 진실로 매우 다행입니다. 이렇게 차례를 옮긴 것이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닌데도 생성하는 힘을 배로 들여서 우러러 공평한 청치에 누를 끼쳤으니 이것이 제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가령 조금 억지로 힘씀을 감당할 수 있다면 어찌 다시 감히 사양하고 피해서 부름에 더욱 어그러짐을 취해서 스스로 밝은 때를 버리겠습니까? 진실로 눈병으로 고생하는 것이 점점 더 심해져서 임장이 비록 일을 이름 하기 간략하지만 일 군 천리가 백성을 만으로 헤아리니 송사와 재물을 헤아림이 메인 것이 가볍지 않습니다. 만약 일 신을 아낌으로 거만히 살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면 어찌 스스로 편안히 여기겠습니까? 만약 일일이 친히 임해서 가만히 스스로 헤아리면 결단코 감당치 못할 것이 있습니다. 전날에 강동의 행차를 힘써 사양한 것은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제가 말한 것이 연구하여 그 실상을 알지 못하면서 혹 다른 설로 섞었으니 이 때문에 승상께서 비록 가엽게 여겼으나 오히려 깊이 반드시 그러함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힘을 다해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오직 봉사 일관이 있으니 한 되 한 말의 봉록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또한 다시 생각건대 군상의 은혜가 융성하고 두터움이 여기에 이르러서 제가 반드시 한가히 물러나기를 구하였는데도 고집스레 되돌리지 않으면 혹자의 논의가 반드시 또한 제수의 조서가 박함이 부끄러워 폐하를 거만히 한 무례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것이니 이 때문에 지금 조정의 들음을 몽매함을 무릅쓰고 감히 오로지 사록으로써 요청하지 못하니 대개 두려운 무료한 계획에서 나와서 탐하고 무릅써 구차히 요구했다는 기롱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승상께서 시험 삼아 살펴주셔서 한마디 말을 내려서 병의 실체를 밝혀서 다시 사관의 록을 주셔서 신명을 기르고 아름답게 하셔서 먼 참소를 피하신다면 거의 죽지 않은 사이에 승상의 폐하를 바로잡고 나라를 평정하는 효험을 보아서 여러 사특한 이들을 물리쳐 많은 어진 이들을 불러 모우고 간사한 말들을 사라지게하고 공론을 드러내 행하게 하여 나라의 형세가 위에서 존숭되고 민심이 아래에서 기쁘게 될 것이니 제가 비록 전야 가운데 있더라도 또한 마음을 편안히 하고 뜻을 펴서 눈을 밝히고 입을 열어 태평한 백성으로 만들것입니다. 가슴으로 근심하고 두려워서 어깨가 숨을 막아서 그 몸을 이민의 위에 붙여서 굽히고 펴고 고달프고 즐거운 것이 많이 같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승상께서 또한 제가 앞서 의심한 바로 염려하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은 도모하는 무리의 요청이 바라건대 뜻을 드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심한 부득이한 계책이니 만일 가까운 지역에서 혹여 차례를 볼 수 없다면 반드시 보태어 지어서 사람들의 말을 이룰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사관을 주시어 옛날대로 한다면 비록 죄를 얻더라도 또한 쉽게 사양하겠습니다.

제가 일찍이 하루도 문하에서 물 뿌리고 쓰는 수고로움을 들인 적이 없거늘 승상께서 알아주심이 깊고 생각하심이 충실한 것이 이와 같음에 이르렀으니 그러므로 제가 어리석음을 다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승상께서 선택하여 처리하시면 천만 다행입니다. 문에 절하지 못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양궁을 보호하고 높이고 중히 여겨서 영원히 공도를 부지해서 복된 삶을 누리십시오. 저는 지극한 소원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蔦竊以仲冬嚴寒, 伏惟丞相國公鉤候起居萬福. 熹頃以衰疾, 再辭恩命, 方擢儧瀆, 自速罪戾, 乃蒙丞相矜憐, 曲爲敷奏, 改甼符竹, 以便其私, 固已甚幸. 至於那移闕次, 不一而止, 倍費生成之力, 仰累公平之政, 此又熹之所大懼也. 若使稍堪勉彊, 豈復更敢解避, 以招允取鬧而自乘於明時? 實以所苦目疾浸以增加, 臨潭雖名事簡, 然一郡千里, 生齒萬敷, 獄訟財計, 不輕. 若以愛身之故, 漫不加省而委之他人, 登得自安? 若欲一 一競臨, 則竊自揆度, 決有所不能堪者. 前日所以力祥江東之行, 良以此故. 糲意爲熹言者亦末究知其實, 而或離以他說, 是以丞相離已憐之, 而猶未深信其必然也.

  以熹今日精力之所堪, 惟有奉柯一官, 可網升斗之祿. 又復惟念君相之恩隆厚至此, 而熹必求閑退, 固執不回, 則或者之論必又有以爲蓋薄詔除, 而加以倣上無體之罪者, 是以今者嘗眛朝聽, 不敢專以枸祿爲請, 蓋已出休迫無聊之計, 而陷於貪冒苟求之譏矣. 伏惟丞相試加察焉, 賜之, 明其實病, 而復與之柯官之祿, 使得休養神明, 避遠讒謗, 庶幾未死之間, 及見丞相格君定國之效, 使群邪屛伏而衆賢彙進, 姦言熄減而公論顯行, 國勢尊崇於上, 民心悅豫於下, 則熹雖在田野之中, 亦得以安心肆意, 明目開口, 爲太平之民. 其與懷抱憂畏, 側屑屛息, 以寄其身於吏民之上者, 屈伸苦樂, 萬萬不佯矣. 若丞相亦以熹前所疑有不得不慮者, 則謀曹之請願垂意鳶. 然此已爲甚不得已之計, 萬一近地或無見次, 則又不必謄那增創, 以致人言. 但與枸官乃其舊物, 縱便得罪, 亦易競也.

熹未嘗有一日灑掃之勞於門下, 而丞相知之之深, 念之之悉至於如此, 故熹不敢不盡其愚. 伏惟丞相擇而處之, 千萬幸甚. 未由趨拜門館, 伏乞上爲兩宮倍保崇重, 永扶公道, 以福含生. 熹不勝至願.   

 

황인경에게 보내는 편지 與黃仁卿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황인경의 배려에 감사하는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에게 주현을 맡을 기회가 주어진 것은 무한히 감사할 일이지만 자신은 주현을 담당할 재주가 없다고 겸허히 표현하였다. 다만 사록을 주관하면서 말년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의리를 행함이 닦여지지 않아서 교유에 신의를 얻지 못해서 드디어 중상을 입히는 재앙으로 위로 선현에게 미치게 하였습니다. 만약 신성께서 거울처럼 알지 못하면 해로움이 장차 불초한 저에게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을 짊어졌으니 스스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마침내 임장의 행차를 사면하지 못하고 쌓인 폐단을 보고 깨달았으니 이것은 진실로 당연합니다. 제멋대로 거두어 백성을 어지럽혀서 해로움이 이 보다 큰 것이 없으니 관직에 이른 뒤에 차례대로 토론해서 개혁할 것이니 지금 이 뜻을 셀 수 없습니다. 만약 검과 복을 지나면 저들과 직접 의논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혹 사현을 벗어나서 또한 마땅히 보고해서 받들고 줄여서 한결같이 서로 회의할 것입니다. 주현의 일의 실체에 본래 생소하고 또한 많이 때에 맞게 나오지 않아서 의사가 소략하고 용졸하니 이미 받들어 담당하고서 문득 진실로 간략함을 얻지 못해서 매우 자세히 헤아리고자 합니다. 청컨대 사록의 일이 또한 흡사 반드시 이와 같지 않아서 분수를 따라 벼슬해서 득실의 근심을 일으키는 마음이 없으니 어찌 처리한들 편안한 지경이 아니겠습니까? 정사는 이와 같지 않습니다. 만약 학문을 함을 논의하면 관리로 있으면서 어떻게 학문을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스스로 공을 쓰는데 날을 아끼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땅을 팔아 자식을 천거하는 설이 매우 좋으니 이 사이에 주거회 유회백이 모두 이러한 의논이 있었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뜻에 이와 같다고 여긴다면 다만 한 일을 지어서 거두고 흩어버리는 것만 못하니 이미 자식을 천거할 수 있다면 겸하여 구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장래에 밭의 세금이 또한 호민을 연좌시키는 흠이 있으니 재촉하고 독려함에 힘을 씁니다. 이것은 건양에 이미 드러난 폐단이니 모름지기 다시 자세히 헤아리겠습니다. 대져 일에는 온전한 이득이 없고 또한 온전한 해로움이 없으니 다만 많은 것을 헤아려서 할 뿐입니다. 다만 하루라도 주려서 문득 이 쌀을 생각하면 토의할 곳이 없습니다.

 

熹行義不修, 無以取信交遊, 遂使中傷之禍上及先賢. 若非神聖臺知, 則其流害將不止於不肖而已. 負此悚暢, 無以自容.

  熹竟不免臨潭之行, 示喩積弊, 此固當然. 其橫歛擾民, 爲害有大於此者, 到官之後, 須次第討論更革之, 今未敢洩此意. 若過劍, 得左右在彼面議爲幸. 或出沙螺, 亦當先附報, 奉約一出相會也. 於州懸事體本自生疎, 又多時不出, 意思疎懶, 旣承當了檐子, 便又荀簡不得, 甚欲子細商量也.

  請枸事亦似不必如此, 隨分仕宦, 不起患得失之心, 何處不是安地? 政不須如此. 若論爲學, 則在官何嘗不可爲學? 直患自不愛日用功耳.

  買田擧子之說甚善, 此間周居晦劉晦伯皆有此議. 但愚意以爲如此則只做得一事, 不如歛散, 旣可擧子, 兼可救荒. 又將來田租亦爲象民坐缺, 催督費力. 此建陽已見之弊, 須更子細商量. 大拂事無全利, 亦無全害, 但算其多者爲之耳. 只恐一曰蠟荒, 却思此米, 無討處也.

 

조수에게 답하면서 거자창의 일을 논함(경술) 答趙帥論擧子倉事(庚戌)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조첨사에게 거자창의 경우에 맞는 운영을 바라며 보낸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조첨사에게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구휼미를 시기에 맞게 지급해서 구휼의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상평창의 운영을 설립목적에 부합되게 운영하여 소작인들이 만약을 대비한 실질적인 구제책이 될 수 있도록 해서 민생의 안정을 기하라고 주장하였다.

 

(아이를 낳고 그) 다음 달 초 10일에 쌀을 청하거든 쌀값을 돈으로 환산해서 지불하지 마십시오.

 

次月初十日請米不得折支價錢

 

애초에 맺었던 약속은 달마다 3차에 걸쳐서 쌀을 지급해서, 자식을 낳은 집들이 열흘을 넘기지 않고 접제할 수 있도록 하는 극히 편리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쌀을 지급하는 직책을 오직 한 사람이 맡아서 지급하기 때문에 혹 인재를 얻지 못하면, 사사로운 욕심을 좇아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가(지미관의 사가)에서 수확한 경화와 범곡을 견실한 곡식인양 좋지 않은 곡식을 견실한 곡식으로 간주해서 아기를 낳은 집에 지급하는 짓을 거듭 행하는 자도 있었으며, 또 지급할 관미에서 본가의 사채를 반환 차의에 의하면 자식을 낳은 집이 창곡에 빚이 있을 경우, 지급할 쌀의 양에서 빚을 빼고 지급하거나, 혹은 빚이 지급할 양보다 많으면 빚을 면제하는 대신 곡식을 지급하지 않는 것 차보에 의하면 자식을 낳은 집에서 지미관에게 빚이 있어서, 지미관의 자신의 사채를 관미에서 반환받고 나머지를 지급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짓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폐단은 불일이족이니 단지 쌀값을 돈으로 환산해서 지급하는 경우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어쩔 수 없이 고쳐서 3개월에 한 번 지급하는 법으로 고쳤습니다. 비록 기일이 조금 멀어졌지만 도리어 각각의 면의 부적향관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으니 커다란 작폐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향리의 사람들이 비록 쌀을 얻는 것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도리어 걸견을 요조하는 환이 없으니 자못 그들을 편안케 할 것입니다.

 

元立約束逐月三次支米, 使生子之家不過一旬便得接濟, 極爲利便. 但支米官獨員自支, 或不得人, 則徇私作過, 無所不有. 至有將私家所收輕禾汎穀重行估折者, 亦有將所支官米準還本家私債者. 似此之弊, 不一而足, 不但折支價錢而已. 故中間甚不得已, 而改爲三月一支之法, 雖期日稍遠, 然却得關曾諸都附籍鄕官同在一處, 不容大段作弊. 鄕人雖是得米稍遲, 却無邀阻乞覓之患, 亦頗安之.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지급하려 하신다면 진실로 중간의 제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만일 제부의 적관을 모으지 않는다면 홀로 지급하는 폐단은 다시 예전과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적관을 모두 모으려고 하신다면 한 달에 한 번 오는 것을 조금 먼 곳의 적관이면 싫어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미관도 그들이 오지 않음을 이롭게 여겨, 결코 신거를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차의에 의하면 지미관이 불참한 부적관들을 불러 모으지 않는 것, 문목에 의하면 지미관이 불참한 부적관을 사창에 통보해서 벌을 받게 하지 않는 것, 이렇게 늘 해오던 대로 모범을 보이면 향관들은 반드시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지미관이 홀로 관미를 지급하는 폐단은 전과 같을 것입니다.

반복해서 생각해보아도 단지 한 가지 방법만이 있을 뿐이니, 비록 능히 구폐를 모두 혁파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또 행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게시한 사목의 다음 달 초 10일에 쌀 1석을 청하라라는 본문의 아래에 지난번의 모였던 부적 향관은 각각 본적 전래를 참험해서 지급하라고 주를 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후항에서 별도의 법을 세워 쌀을 지급함으로써 향관들의 개인적인 사정을 구휼한다면(3항을 볼 것), 향관들이 반드시 올 수 있도록 책임지울 수 있고, 다시금 지미관이 홀로 지급하는 폐단을 초래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비록 관방을 많이 설치해서 세세하게 작은 은혜를 베풀더라도 한낮 문장으로만 갖추어질 뿐 끝내 손실만 있을 뿐 이익은 없을 것입니다.  

 

今欲一月一支, 誠爲中制. 然若不關集諸附籍官, 則獨支之弊復如前日. 若欲盡行關集, 則一月一來, 其稍遠者不無厭倦. 支米官又利其不來, 決不便行申擧, 因循視傚, 必致無肯來者, 而獨支之弊又如故矣. 反復思之, 只有一說, 雖或未能盡革舊弊, 然亦勝於不行. 欲乞更於所示事目本文次月初十日請米一石之下注云: ‘仍舊關集諸附籍鄕官, 各將本籍前來參驗, 方得支給. ’注止此. 仍於後項立法支米, 以恤其私, 見第三項. 則或可以責其必來, 而免致復有獨支之弊. 如其不然, 雖欲多設關防, 曲行小惠, 徒爲文具, 終有損而無益也.  

 

소작인들의 가구가 흠집 낸 쌀을 줄여서 묶을 수 없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근본은 오로지 우러러 모든 농장의 소작인들이 보낸 조세와 모든 군의 가구들이 돌려 보낸 이자 쌀입니다. 지금 소작인들이 호활한 선비보다 많고 벼슬아치 자제들이 힘써 공사를 끌어안고서 왕왕 지연시켜 들이지 않아 내년 여름 가을에 미쳐서도 감히 재촉할 수 없습니다. 쌀을 요청한 가구들 사이에 세력을 형상화한 가문이 있어서 이름을 속여 청해서 한 집안이 백십 석에 이릅니다. 향관이 명확히 그런 줄 알면서도 인정에 끌려서 준엄히 막을 수 없고 또한 권세를 사모하여 교분을 맺어 아첨을 구하는 계획으로 삼고 또한 권세를 끼고 나무람을 두려워하여 짐짓 화를 피하고 구차히 모면하는 계획으로 삼습니다. 겨울에 돌려 들이는 때에 미쳐서 또한 모두 공연히 지연시켜도 향관들이 어찌할 수 없고 향관들이 또한 두려워 떨어서 즐겨 재촉할 뜻을 머물러 두지 못해서 한 해를 뛰어 넘어도 종내 보내 들이지 않습니다. 마사 상평사창이 일찍이 새로 등과한 사람들이 이름을 속여 일백여석을 빌려가거늘 다음 해에 사면을 만나 드디어 헤아려 상평사를 맡은 관리가 곧바로 견방을 시행합니다. 이것에 인연하여 지방 풍속이 본받아서 오로지 꺼리지 않아서 이 관청의 물건을 보기를 문득 자기 물건처럼 해서 세월이 오래 됨에 그 폐단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만약 일찍 살피지 않으시면 장차 흠이 많아져서 사람들이 관리들에게 와서 결단코 감독하여 들이게 해서 소작인들이 곧 사람을 불러 소작세를 내리게 하면 몇 년 뒤에 근본이 뽑혀서 향관들이 한갓 빈 창고를 지킬 뿐이고 자식을 기르는 집안에서 다시는 쌀을 얻을 희망이 없어질 것입니다.

 

佃戶人戶欠米未有約束

擧子根本, 全仰諸莊佃戶送納租課, 諸都人戶回納息米. 今佃戶多是豪猾士人仕宦子弟, 力能把持公私, 往往拖延不納, 至有及來年夏秋而無敢催督之者. 請米人戶間有形勢之家, 詭名冒請, 一家至有百十石. 鄕官明知其然, 而牽於人情, 不能峻拒 :亦有慕其權勢而因以爲納交求媚之計者, 亦有畏其把持嘲誚而姑爲避禍苟免之計者. 及至冬月回納之時, 又皆公然拖欠, 鄕官無如之何, 縣官亦復畏憚, 不肯留意催促, 遂有經隔年藏, 終不送納者. 麻沙常平社倉曾被一新登第人詭名借去一百餘石, 次年適値大赦, 遂計會倉司人吏直行蠲放. 緣此鄕俗視傚, 全無忌憚, 視此官米, 便同己物, 歲久月深, 其弊愈甚. 若不早加覺察, 將欠多人追赴使司, 勘斷監納, 佃戶卽今召人剗佃, 則數年之後, 根本蹶拔, 鄕官徒守空倉, 擧子之家無復得米之望矣.

 

모든 현에서 조치하여 관청에 내린 조서에 매달 쌀 다섯 말을 지급하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다면 조치한 관청이 흡사 마땅히 매달 지급액이 있을 듯 보입니다. 제 일 항에 편 이해를 겸해서 바라건대 나란히 이 조목을 법으로 세웠으면 합니다. 제현에 조치해서 관청에서 매달 자급할 약간의 돈과 같습니다(절미 약간이다). 축관 아래에 조치해서 손수 한 명을 써서 매월 쌀 다섯 말을 지급해서 지급하는 쌀은 향관의 문서에 붙여서 축월마다 매 사람에게 약간의 쌀을 지급해서 차 탕 음식 아이 종이 왔다 갔다 하는 비용에 충당하십시오. (이 수는 감히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겠고 바라건대 자세히 되돌려서 조금 넉넉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諸縣措置官下書手月支米五斗  

如此則措置官似亦當有月給. 兼第一項所陳利害, 欲乞幷就此條立法. 若云諸縣措置官月支供給錢若干, 折米若干. 逐官下置書手一名, 月支米五斗, 支米附籍鄕官逐月每人支米若干, 以充茶湯飮食童僕往來之費. 此數未敢擬定, 更乞詳酌, 稍優爲善.

 

진헌에게 보내는 차자 與陳憲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주군에 나가 직접 목도한 군량미의 상황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군량미가 실제로 굶주리는 군인들에게 돌아가지 못한 것은 지휘체계의 허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회고하고 직접 주군에서 관장하게 하여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여 제대로 된 군량미의 운영이 될 수 있도록 하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어리석어 꽉 막혀서 우러러 화락하게 들어주심을 바라서 지난번 장포 황의가 군량미를 들이지 않은 것으로 경영하여 사사로이 직분을 닫아서 목책을 지키는 병사들이 굶주리고 낭패 보는데 이르렀으니 일이 근심스러워 장계를 갖추어 맡은 바 관리들에게 보고함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법대로 모두 시행함을 입지 못했습니다. 유독 짊어진 관리가 뜻을 두어서 관리를 선발하여 전래되는 것을 미루어 살펴서 관리들이 풍모를 들으면 두려워 떨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오늘에 홀연 조사하게 하여 본인들의 실정에 폐단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으니 진실로 너무 놀랐습니다. 계속 관청에 보고하게 해서 또한 이미 화락한 교지를 받들었으니 지난번에 일으키고 드러냄을 시행했습니다. 제가 가만히 의심될 뿐만이 아니고 일군의 사민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어서 대신으로 하여금 조치하게 함이 응당 이와 같지 않습니다. 제가 비록 이미 회신을 갖추었으나 갖춘 말이 본인의 말이 명백해서 다시 실정의 폐단을 기다리지 아니한 뒤에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주에 이보다 앞서 장계를 펴서 애초부터 별도의 다른 죄가 있다고 하지 않았으니 바라건대 이미 시행한 사리를 비추어 시행해 주십시오.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화락하게 살피셨으니 여부가 어떻습니까? 그러나 양일이래로 가만히 생각하니 이 일은 본래 구구히 감히 사사로이 용납될 것이 아니고 정히 주군에서 관리를 선발하지 않아서 군량미를 흠집 내는데 이르러 일의 형세가 급박해져서 만약 징계하여 다스리지 못하면 매우 관리들이 익숙히 주군의 일의 실체를 약하게 보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향후 번갈아 모방하게 하여 품부함에 두려움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만일 하루아침에 조금 완급이 있으면 일을 장차 이루다 염려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형세 상 부득이 해서 모름지기 살피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모든 관리가 위에 있어서 갑자기 갖추어 주달하고자 아니합니다. 이미 대신으로 하여금 특별히 연구하고 다스리게 해서 가만히 화락한 뜻을 헤아려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생각지도 않게 하루아침에 느려지게 해서 여기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제형낭중은 맑은 이름과 바른 도리로 세상에 소문이 있으니 반드시 즐겨 사사로이 청탁해서 공법을 폐하지 않을 것이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지난번 이미 장계를 갖추어 맡은 바 관리들을 살펴서 바라건대 이러한 위로를 피하려 하였습니다. 또한 큰 사랑과 시우가 지나치게 두터움을 생각해서 응당 갑자기 망령되게 드러내려 하지 않아서 드디어 끌고 물리쳤습니다. 구구히 쇠하고 병들어 비록 이미 떠나기를 구했으나 한 군의 방비는 마땅히 제가 장차 떠나간다고 폐하여지는 것이 아니니 이것이 오히려 그만두지 못하여 한 마디 하였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고상하고 명철하심으로 조금 가엽게 살핌을 내리셔서 과감히 악을 제거하여 인순 고식적으로 전철을 따르는 계획으로 기강을 무너뜨려서 명예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저의 다행이 아니고 이 나라의 다행이니 합하의 영광입니다. 지난해에 일찍이 심양에서 보낸 장계를 읽어보니 비록 솥뚜껑을 사양하지 못 하겠다는 말에 이르러 일찍이 가만히 장엄하게 하여 이것이 진실로 금세의 고인이라 여겨서 강대하고 정직한 기운을 굽힐 수 없음이 이와 같으니 또한 뜻이 반드시 법 밖의 귀를 거스르는 말을 용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감히 어리석음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엎드려 생각건대 살펴 주십시오.

 

熹輒有愚悃, 仰干臺聽: 昨以潭補黃尉不納軍糧, 營私藤職, 致寨兵饑餓狼狽, 事有可愛, 不免具狀申省部諸司, 例皆不蒙行下. 獨荷使臺留意, 差官前來推勘, 官吏聞風, 無不震悚. 今者忽被使檄, 乃間本人有無情弊, 固已愕然. 續得勘官醱報, 又云已奉合旨, 住行起發. 不惟熹竊疑之, 一郡士民無不驚怪, 以爲使臺擧揩不應如此. 熹雖已具回申, 具言本人罪狀明白, 不待更有情弊, 然後按, 故本州前此申狀, 初不謂其別有他罪, 乞照已行事理施行. 不審已蒙合察輿否如何也. 然兩曰以來, 竊伏思之, 此事本非區區敢容私意, 正爲州郡差使不行, 以至缺闕軍糧, 事勢危迫, 若不懲拾, 燦恐官吏習見州郡事體削弱, 不能使人, 向後迭相倣效, 無所禀畏. 萬一 一旦稍有緩急, 事將有不可勝慮者. 所以勢不得已, 須至按劾. 然猶以諸司在上, 不欲遽爾具奏. 旣見使臺特加究洽, 竊料合意必有所處. 而不意一旦自爲縱弛, 以至於此也. 伏惟提刑郞中以淸名直道有闇於時, 必不肯容請託之私, 以廢公法, 不知此何意也. 熹昨已具狀申省部諸司, 乞避此尉. 又念合慈顧遇過厚, 不應速爾妄發, 遂且引却. 區區衰病, 雖已求去, 然一郡之防, 則有不當以熹之將去而遂藤者, 是猶不能已而己之. 伏惟高明少賜矜察, 果於去惡而無爲因循中輟之計, 以壞紀綱, 以損名譽, 則非熹之幸, 乃此邦之幸, 乃閤下之光也. 頃年嘗謂榔陽去都之章, 至有雖鼎鍵有折不解之語, 嘗竊壯之, 以爲此眞今世之古人, 其剛大正頁之氣不可屈撓乃如此, 而亦意其必能有以容夫度外逆耳之言也. 是以不敢不盡其愚, 伏惟幸察.

 

유승상에게 보내는 차자 與留丞相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9(순희 16, 기유) 그의 나이 60세에 유승상에게 조세제도의 개혁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킬 것을 주장한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일정한 기준이 없이 부과되는 과다전을 혁파하고 액수를 따질 수 없는 초제전의 액수를 감해서 백성들이 정당한 세금이외에 별도의 세금을 부담하는 폐단을 혁파해서 일선 주군의 민생이 안정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제가 진실로 간청할 것이 있어서 우러러 균청을 더럽혔으니 저의 쇠락하고 병든 나머지 인생이 벼슬살이를 감당하지 못하거늘 이에 그릇된 은혜로 지킴을 입어서 힘써 남쪽으로 와서 속으로 만약 다행히 다른 병이 없다면 세월을 무릅쓸 수 있으나 직분의 일에 어리석음을 다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앞서의 기준에 따라 널리 견방하는 지휘를 내려서 바라건대 위로 제공함을 모면해 주고 과다전을 혁파하고 액수를 따질 수 없는 초제전의 액수를 감해서 지극히 공손히 성지를 받들어 서로 경계의 이병을 헤아리면 모두 일 군의 영구한 이해가 될 것입니다. 경계에서 더욱 이해가 큰 것은 교체 비율을 피하지 않고 뜻을 다하고 말을 다해서 조금도 전에 물리친 것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머리와 꼬리의 양 단서의 뜻입니다. 물러나 강구하니 거세와 본말이 다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규모를 조치하고 기획함이 대개 이미 8-90%가 이루어졌습니다. 저의 뜻은 다른 것이 없어서 대대로 본주의 전세가 고르지 않은 것으로 가만히 관물을 빼어 만 가지 계책을 움직여 공사전토가 모두 호족들과 대 성씨들이 이름을 속이고 무릅써 점유해서 세민들의 산업은 사라지고 조세는 남아 혹여 다시 표시된 조세를 받아서 곤란하고 낭패해서 소종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주현이 이미 보통을 경영하는 사람을 잃으면 드디어 많이들 팔로 그어서 응당 취하지 말아야할 물건을 취해서 한해의 계산을 넉넉히 합니다. 제현의 벌칙과 주군에서 소금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 이것입니다. 상하가 법대로 아니해서 서로 바로잡을 수 없어서 백성들을 궁벽하게 하여 해로움을 받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차마 듣지 못하게 합니다. 제가 관청에 이르러 대개 반복 토론해서 폐단을 구원해서 가만히 군의 계산을 충실히 하고자 해서 수입에 지출이 없게 해서 만약 경계를 바루지 않으면 진실로 손으로 조치할 땅이 없음을 알겠습니다. 이보다 전에 주달한 것은 가을 겨울 사이에 미치게 하고자 함이니 일찍 시행해 주십시오. 가만히 묘당에서 시행할 뜻이 있음에 판조가 또한 다른 의논이 없고 또한 승상께서 써서 내려주신 가르침을 입었으니 반드시 행할만합니다. 제가 구구히 기뻐해서 가만히 생각건대 장민이 이로부터 도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제가 구구히 힘든 얼굴로 병을 부지할 수 있으니 또한 헛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마음이 수고롭고 일이 졸렬해서 세정이 고르지 않아 앞선 구월중에 주의 경계가 지진이 발생하였으나 스스로 탄핵하여 보고하지 못하였고 구질이 발동해서 두루 양 다리에 퍼지고 오른쪽 팔에 미치니 아파 신음하며 차마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가득 흩어서 잔치하는 날에 이르러 모두 조금도 신하로써 아름다움을 돌리고 위로 보고하는 정성이 없었습니다. 지금 비록 조금이라도 스스로 끌고 부축할 수 있으나 청사를 나감에 비판을 받고서 병중에 약을 복용하니 이것이 적은 이익을 발산하는 약제이고 정신과 혈기가 쇠퇴하여 거의 다해져서 다시 힘으로 다시 나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다과전을 혁파하라고 요청한 것은 액수가 없는 경총의 붙이이니 모두 오래도록 윤허를 입지 못했습니다. 경계는 들으니 양으로 둘이 될 수 있고 음으로 채워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 이미 근동이 되어 다시 수십 일이니 곧 새 봄입니다. 설령 문득 시행하더라도 일자가 갖추어 모일 수 없습니다. 느슨해지고 정성스럽지 못한 관리를 탄핵하는데 이르러 제사가 또한 주장하지 않아서 혹여 이미 시행된 것을 취해 감독하여 까닭 없이 끄집어내어 혁파할까 두렵습니다. 이와 같다면 저로 하여금 어떻게 얼굴을 돌려 관리와 백성들에게 임하겠습니까? 저의 성품이 급해서 굽고 우러를 수 없어서 전날 텅 빈 산에 문을 닫고서 달갑게 궁벽하고 굶주림을 참아서 감히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한 바는 정히 이것일 따름입니다. 금년 유월 십일일에 쇠퇴한 병이 더욱 심해저서 다닐 때에 장차 나무를 취해서 마음을 변화시키고 풍속을 따라서 요행으로 봉급과 녹미를 계산한 것이 또한 부끄러움이 심하다고 아니하겠습니까? 분한 마음에 무료해서 스스로 누를 수 없어서 이미 주달할 편지를 갖추고 천위를 범하였으니 바라건대 법대로 파직하여 내쳐 주십시오. 나란히 이렇게 충성된 마음으로 집사에게 내려 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를 조금 가엽고 불쌍히 여겨 곡진히 도야해서 혹 다시 봉사를 얻게 해서 엄학으로 돌아가 죽게 한다면 천만 다행스러우니 제가 감히 바랄 것이 아닙니다. 숭덕을 무릅쓰고 엎드려 명을 기다리니 제가 두려워 떠는 지극함을 맡길 데가 없습니다.

 

熹輒有誠懇, 仰瀆鉤聽. . 熹衰病餘生, 不堪從富, 姦蒙羨恩假守, 黽勉南來, 興留丞相箚子 熹輒有誠懇, 仰瀆鉤聽. . 熹衰病餘生, 不堪從富, 姦蒙羨恩假守, 黽勉南, 意謂若幸無他疾痛, 可以嘗昧歲月, 然於職事亦不敢不盡其愚. 前此依準通纖減指揮, 乞免上供, 罷科茶錢及減無額經總制錢之額, 以至恭奉聖旨, 相度經界利病, 皆是一郡永久利害. 而經界尢利害之大者, 所以不避儧率, 極意盡言, 不敢少有顧望前却首鼠兩端之意. 退而講究, 巨細本末不敢不盡, 規臺揩晝蓋已什人九成矣. 鄙意無他, 蓋以本州田稅不均, 隱漏官物動以萬計, 公私田土皆爲豪宗大姓競名冒占, 而細民産去稅存, 或更受俵寄之租, 困苦狼狽, 無所從出. 州照旣失經常之人, 則遂多方擘晝, 取其所不應取之財, 以足歲計. 如諸孫之科罰, 州郡之責鹽是也. 上下不法, 莫能相正, 窮民受害, 有使人不忍聞者. 熹自到官, 蓋嘗反復討論, 欲救其弊, 而億實郡計, 人不支出, 乃知若不經界, 實無措手之地. 所以前此申奏, 欲得及此秋冬之交, 早賜行下. 縛闇廟堂有意施行, 版曹亦無異論, 亦蒙丞相賜書喩意, 譖必可行. 熹區區自喜, 竊謂潭民自此可脫塗炭之苦, 而熹區區彊顔扶病, 亦不虛爲此來矣.

不幸心勞事拙, 賦政不平, 前九月中, 州境屢有地震之異, 末及自劾以, 而奮疾發動, 遞傳兩足, 連及右臂, 痛楚呻吟, 不可堪忍. 以至滿散錫宴之曰, 皆不得少伸臣子歸美報上之誠. 今雖少能自力扶曳, 出騷執捉批判, 而病中服樂, 多是疎利發散之劑, 精神氣血衰揭殆盡, 無復筋力可以支吾. 又况所請罷科茶錢無額經總之屬, 皆久不蒙鬨允. 經界閠亦有陽爲兩可而陰實力沮之者. 只今已近冬至, 更五十日, 卽是新春, 設使便蒙施行, 亦無日子可以辨集. 至於按劾弛慢不虔之吏, 諸司又不王張, 甚或已行取勘而無故自引罷者. 如此使熹寧復更有顔面可臨吏民? 鄙性狷急, 不能俯仰, 前曰所以杜門空山, 甘忍窮餓, 而不敢有意於仕宦, 正以此耳. 今年六十有一, 衰病侵凌, 行將就木, 乃欲愛心從俗, 以爲僥倖俸錢祿米之計, 不亦可羞之甚乎憤懣無聊, 不能自抑, 已具奏蹟, 干犯夫威, 乞從罷離, 而幷以此私布腹心于下執事. 伏惟某官少賜矜憐, 曲加陶鑄, 或使復得奉搏, 曝死巖壑, 則又千萬之幸, 而非熹之所敢望也. 抵腎崇巖, 俯伏挨命, 熹不任恐懼震栗之至.

 

조수에게 보내는 편지(신해 2) 與趙帥書辛亥二月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소희 2,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조참사에게 주군의 문란한 징병을 개혁할 것을 주장한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시절이 어수선함을 전제하고 생각지도 못하는 일에 대비하여 모병의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여 민생의 안정을 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할 것을 주장하였다.

 

우뢰치고 눈 내리는 변고를 진실로 두려워할만하니 차가운 비가 달을 이으니 음이 성하고 양이 미미하니 하늘은 비록 말을 하지 않으나 뜻을 지극히 드러내니 이것이 또한 깊이 우려할 만 한 것이다. 다만 말을 구하는 길이 넓지 않아 알지 못하겠습니다. 과연 절실하고 지극한 논의가 성심을 감개시키고 깨우쳐서 하늘의 뜻을 풀 수 있겠습니까? 시랑의 몸이 비록 밖에 있으나 종속의 친함으로 모시는 신하의 중대함이라 해서 평상시 폐하를 아끼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오늘날 정치를 따르는 사람과 더불어 같은 날로 논의할 수 없으니 이러한 기회를 만남에 흡사 묵묵히 스스로 중인과 같음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양봉인에게 고해서 마땅히 다시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구구히 바라건대 가만히 들어서 묶여 있는 근심을 풀고 싶습니다. 따라서 은밀히 깨우쳐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근자에 들으니 교지로 모든 주의 군대를 불러 모아서 강의 해군 수졸을 모집해서 두 일이 나란히 행해지니 흡사 갖추고 모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장차 오늘날 주군 군대의 완급을 무엇을 믿고 힘입어야 합니까? 바로 마땅히 별도의 조치를 두어서 점점 제거해서 모든 강 가 제군들의 자제를 거두어 본 군으로 삼아서 때때로 연습시켜서 문득 제주의 양식을 나누어서 살펴 보내고 운반해서 완급을 대비해서 세시로 교대해서 본 군으로 돌리면 그 일의 형세가 자연히 감히 떨어지지 않고 주의 병사 중에 아직 시들지 않은 자들을 또한 격려하고 증진시켜 장구한 계획으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이것을 염려하지 않고 도리어 주군으로 하여금 넓이 조자를 시행하게 해서 만약 지키는 장수가 그 사람을 얻지 못하면 마침내 팔아넘기는 간사함을 돕는데 충분해서 옷과 양식이 텅 비게 되어 거듭 백성의 힘을 상하게 하니 또한 아직 논의할 것이 못됩니다. 부르는 명이 이르면 자제들이 평소 익힌 기술을 버리고 부랑무능한 사람을 따르니 더욱 계획이 되지 못합니다. 들으니 군중에서 향래에 사용함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일찍이 주달하여 혁파해서 수년 사이에 주군이 조금 수고로운 비용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오늘날에 무슨 급절한 것이 있어서 홀연 이미 버린 거짓된 계책을 취하여 다시 시행하십니까? 지난 번 남강에 있을 때에 융흥에서 드러낸 바의 배가 온전히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나란히 분할하여 일을 관장하는 자들과 더불어 모두 다시 돌아가지 않아서 마을에 문서를 옮겨서 찾고 체포함이 매우 급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설사 군중에 이르더라도 또한 어찌 노를 감당하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하니 이 두 가지 일은 첨사가 계실 때에 힘을 합쳐 신청해서 다시 글로써 제공들을 깨우쳤으니 반드시 부득이 해서 장차 모집함을 혁파해서 조금 금군의 본 등과 대등 제두의 힘을 교체하여 증가시켜 반드시 입격하게 해서 바야흐로 수자를 허락하셔야 합니다. 축년에 주달한 장첩 본 명 아래를 따라서 각기 두력을 머무르게 해서 점유된 이름을 부르기를 헤아리지 않고서 하여금 첨사에게 다다라 살피게 하면 오히려 거의 혹 사용할 만 할 것입니다. 이 사이에 자제들이 모집에 응한 자들이 많을 것이니 한계에 따라 반드시 다음으로 높고 강한 두력을 거두어들이면 오는 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이미 시험해본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雷雪之變, 誠可憂擢, 而寒雨連月, 陰盛陽微, 夫雖不靑, 意樋彰著, 此亦可深慮者. 但求言之路未廣, 不知果有切至之論可以感寤聖心, 解謝夫意者否? 待郞身雖在外, 然以寨屬之親, 侍臣之重, 而平日愛君憂國之心, 與今之從政者不可同日而議, 適此幾會, 似亦不容黙黙以自同於衆人也. 不蕃囊封人告, 當復以何爲先? 區區願竊聞之, 以寬鰲緯之憂. 因來密愉, 千萬幸甚.

近閠有旨招塡諸州禁軍, 寄募沿江成卒, 兩事竝行, 似難辨集. 且今日都禁軍緩急何足恃賴? 正當別作措疊, 以漸消除, 而悉收江上諸軍子弟剌塡本軍, 以時練膂, 却今分下諸州就糧, 以省醜運防緩急, 歲時更代, 却還本軍, 則其事藝自然不敢退墮, 而州兵之未消者, 亦得以激屬增進, 乃爲長久之計. 今不慮此, 反今州郡泛行招刺, 若守將不得其人, 則適足以資其賣驚之姦而空耗衣糧, 重傷民力, 又未論也. 至於寄招之今, 則棄子弟素膂之技, 而取浮狼無能之人, 允爲非計. 似聞軍中向來以不堪用, 嘗奏罷之, 敷年之間, 州郡得以少息勞費. 不知今日有何急切, 而忽取此已棄之鏐策而復行也? 往在南康日, 見隆興所發之人全船遁去, 幷與部轄掌事者皆不復還, 移文鄰郡, 搜捕甚急. 此等之人, 設使到得軍中, 亦豈復堪倚仗也? 竊謂此二事者, 在帥司亦合申請, 更以書曉諸公, 必不得已, 且罷寄招而稍遞增禁軍本等及大等第斗力, 必使及格, 方訐收刺. 仍於逐年奏帳本名之下, 各注斗力, 不測點名抽喚, 今赴帥司按拍, 則猶庶幾其或可用也. 此間子弟投募者衆, 因限以必及次高彊斗力乃收, 而來者亦不少, 此亦已試之鹼也.

 

조수에게 보내는 편지 (신해 223) 與超帥書辛亥三月二十三日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소희 2,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조첨사에게 선호를 모집하는 폐단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각각의 선호들에게 당번을 정하여 점검하고 바로 본업을 회복하여 일부러 지연시켜 선호들이 점검을 꺼리지 않고 원활한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제가 가만히 원강 지휘를 보니 장차 해선을 만들어 세 번 모아서 살펴 모집하였습니다. 뒤의 절차가 교지에 있어서 당번 선호로 하여금 다만 본 주 경내에 있으면서 편리에 따라 어업을 할 수 있게 하였으니 이것은 조정에서 그윽하고 먼 곳을 밝혀서 힘써 따라서 너그럽게 하고 구휼하는 뜻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삼월 팔일에 지휘를 내려서 본주에서 팔월 팔일에 처음 받아 보았으니 선호를 모집함이 이미 오래 되어 업을 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관리들이 게을러 살피지 않아 방자히 요행으로 찾아서 곧바로 명령을 하는데 이르러 오히려 장차 구류시킵니다. 마침 제가 관청에 이른 초기에 궁구하게 간사한 폐단을 다스려서 바야흐로 흩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선호들이 두려워 떨어서 즐겨 기한에 맞춰 해안에 이르러 점검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관리로 하여금 특별히 하사하여 밝게 펴서 지휘를 내려서 지금 이후로 당번 선으로 하여금 추격하여 모아 해안에 이르게 하여 그날로 관리를 선발하여 점검해서 즉시 두루 흩어서 본 주 경계 내의 어업을 수신들에게 맡겨서 오로지 생각하게 해서 구류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향후 해마다 나누어 나란히 이것에 따라 시행하게 해서 다시 별도의 지휘를 기다리지 않고 진실로 편의를 따르게 해야 합니다. 혹여 이와 같이 시행하고자 않으면 곧 바라건대 축년 초겨울에 먼저 시행해서 성호로 하여금 주에 이르러 점검함을 알게 하고 다시 방산한다면 자연스럽게 명을 듣는 것을 즐거워해서 일을 그르치는데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熹竊見元降指揮, 將海船作三番拘集, 聽候募發. 後來節次有旨, 許今當番船尸只在本州界內逐便潑業, 此見朝廷燭見幽遠, 務從寬恤之意. 然去年三月人日方降指揮, 本州四月人日方始被受, 則船尸拘集已久, 不無廢業. 官吏恬不省察, 怒行邀黍, 直至命下, 尙且拘留. 適熹到官之初, 究治姦弊, 方得放散. 以此之故, 船尸畏憚, 不肯如期到岸, 聽候點檢. 欲望使司特賜申明, 乞降指揮, 今後當番船隻追集到岸, 日下差官點視, 卽時逐旋放散, 今於本州界內漁業, 委自守臣專切桂意, 不得拘留. 向後年分, 竝依此施行, 更不候別降指揮, 賓爲利便. 恐或未欲如此施行, 卽且乞逐年初冬便與預先行下, 使船尸知得到州點視, 便得放散. 自然樂於聽命, 不致護事.

 

진조에게 답하는 편지 答陳漕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소희 2,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진조에게 관원의 선발에 대한 의견을 묻는 편지이다. 그는 주군의 규모에 맞게 관원을 선발하여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근자에 하여금 돌려보내서 이미 경계가 갖춰짐에 바라건대 장차 농사 틈을 살펴서 시행하는 이해를 품부하게 하니 엎드려 생각건대 이미 큰 돌보심을 입었습니다. 아직 회신을 받지 못하여 다만 두렵습니다. 이제 문서에 따라서 다시 관리를 선발하십시오. 제가 이보다 앞서 외주 한 두 관원이 비기를 기다려 근자에 들으니 조정의 논의가 크게 그렇지 않다고 여기니 이것 또한 작은 일이 아니고 굳이 다투고자 함이 아니라 형세 상 별도로 시행해서 외주 한 두 관원을 더해서 일을 모을 수 있습니다. 대개 이 사현과 용계현의 관원이 모두 맡길만하니 모름지기 사람을 선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용암은 산이 많고 밭이 적으며 다만 유위와 영가 사인들이 일찍이 왕악부를 따라 놀면서 다만 경계의 이병이 한 현에 해당됨을 알았습니다. 다시 도와서 한 사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장태현은 땅이 작고 협소하니 다시 한 사람이 필요하고 다만 장포는 땅이 넓고 거칠어 더욱 구역마다의 소비가 듭니다. 읍재들이 늙고 속여서 다 부림을 감당하지 못하여 다만 한 위로 일을 깨우치게 할 수 있으나 또한 순포관입니다. 이미 쓰임에 따라 용암부로 첩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모름지기 두 사람 세 사람이 있어야만 넉넉히 쓸 수 있습니다. 주군 중에 일을 깨우쳐 관리로 선발된 자가 없으니 다시 시행해서 별도의 신청을 갖추어야 합니다. 다만 이미 시행되지 못해서 곧 조금 엿보아서 자세히 선발해서 거의 그 사람을 얻어야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생각이 어떻습니까? 이미 공장을 갖추어 거듭 진술해서 회신을 기다리니 곧 마땅히 품부에 따르겠습니다.

 

近因使還, 已具經界乞候將來農隙施行利害申禀, 伏想已塵臺臺. 未奉回降, 但增悚暢. 今準使牒, 便今差官. 熹前此準擬外州一二待闕官, 近聞朝論大以爲不然, 此亦小事, 不欲固爭, 勢須別行踏逐外州一二官員相添, 乃可集事. 蓋此四聽, 龍溪縣官皆可委仗, 不須差人. 龍巖山多田少, 只一劉尉, 永嘉士人, 嘗從王亞夫游, 頗知經界利病, 足當一縣. 或更助以一人亦得. 長泰聽小地狹, 或更須一人. 但潭涌地廣而荒, 尢費踵處. 而宰丞簿或老或鯵, 皆不堪使, 只有一尉曉事, 然亦是巡捕官. 已擬用. 龍巖簿貼之. 然更須得兩人或三人, 乃足用. 州官中亦未見能曉事有可差者, 容更踏逐, 別得具申. 但旣末卽施行, 卽且小候, 詳細差撥, 庶得其人, 乃爲有補. 不蕃臺意以爲如何? 已具公狀申迷, 拱俟回降, 卽當遵禀.

 

유승상에게 보내는 차자 與留丞相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소희 2,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유승상에게 경계법을 신중히 처리하라고 요청한 편지이다. 그는 여기에서 경계를 분명히 하여 토지를 겸병하여 또 다른 반사 이익을 얻는 자들이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민생안정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경계 법은 이미 조사의 격서를 받았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승상께서 이일에 극히 수고롭게 경영하시고 계획하셔서 시행하게 되었다고 하니, 천리의 가난한 백성들이 감격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명을 들은 때가 이미 정초라 농사일이 바야흐로 시작하려는 참이어서 손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조사에게 신품해서 101일에 농지를 측량토록 청했습니다. 그 가운데 마땅히 미리 조치해야 할 사건 등은 현재 시행할 것을 강구하는데 그치지 말고, 더욱 정밀히 살피게 해서 기한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시행한다면 반드시 일을 그르치는데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 일의 시행은 비록 세민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부자와 권세가로서 권세를 믿고 (토지를) 겸병한 자들은 자기를 해칠까 해서 미워하면서, 음모와 간계를 만들어 동요시키려고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8, 9월 사이에 일의 형세는 또 어떻습니까? 원컨대 승상께서는 깊이 그 실정을 살피셔서 천하의 지극히 공정한 이치로서 재단하셔서 결국 이 지방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내려 입 사이를 달리는 계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면 저와 같은 이들은 오히려 분주하게 진흙 구덩이 속을 뛰어다닌다 하더라도 위로는 국가를 위해서 균등하게 적자들을 사랑하고, 요행으로 이룸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비록 천한 몸으로 스스로 나를 갈래짓더라도 또한 마땅히 별도로 미미한 죄로 스스로를 탄핵하여 돌아가 감히 승상께서 도야하시는 안에서 놀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본 군에서 일찍이 내린 차자를 받지 못해서 감히 갖추어 펴지 못하였습니다. 조사의 상태를 조사하여 삼가 기록하여 보고한 한 통은 균청을 무릅써 더럽히고 참람하였으니 황공합니다. 돈과 물건을 견감해 달라고 한 절지이하의 조사는 마땅히 한 면의 조목을 갖추어 저 관리들에게 품부했으니 처분을 기다립니다. 다시 바라건대 묘당에서 힘써 주장해서 유사들의 출납의 인색함을 빼앗지 않으면 저의 다행이 아니고 이 나라의 다행이고 이 나라의 다행이 아니라 백성들의 다행입니다. 국가에서 이 사람들을 애석히 여겨 원기를 보호하듯이 하여 차마 털 끝 하나도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조서로 명령하여 나눈 것이 주현을 경계하고 신칙해서 일찍이 벌을 엄중히 금하는 것으로 말을 삼지 않음이 없습니다. 주현에서 취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이것은 보이는 곳에서는 금지한다고 하면서 안 보이는 곳에서는 실제로 방종하고 또한 따라 몰아서 반드시 여기를 벗어나게 합니다. 성주가 대궐에 있으면서 승상께서 균형을 떳떳하게 잡고 있으니 어찌 차마 이것으로 백성을 속이겠습니까?

제가 전 서를 뛰어 넘어 무릅써 듣는 바에 나아갑니다. 중간에 엎드려 손수 쓴 교지를 받들고 열어 받아들이고 깨우치심이 두루 지극하고 세 번 다시 되돌리니 제가 서로 모일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들은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마침내 공론이 이기고 간사한 설이 사라졌다고 듣지 못하였으니 승상께서 하신 말과 같습니다. 돌아보건대 마땅히 이겨야 하는데도 도리어 사라지고 마땅히 사라져야 하는데도 도리어 이기는 것이 존재합니다. 주현의 거친 관원들이 마땅히 이것을 논의하지 않는데도 오직 승상께서 깊이 도모하시니 천하에 매우 다행스런 일입니다. 천하에 매우 다행스런 일입니다. 제가 우러러 화락하게 운영하길 바라서 의지하여 우러름을 이기지 못하겠으니 감히 바라건대 위로 양 궁에 더욱 정식의 호위를 더하시면 천만번이라도 지극히 간청합니다.

 

經界已被漕檄, 竊聞此事丞相極勞經晝, 乃得施行, 千里貧民無不知感. 但恨聞命之日, 已是正初, 農事方興, 不容措手, 已申漕司, 乞候十月一日下手打量矣. 其合預行措置事件, 則目今不住施行講究, 令益精審, 以俟及期而行, 必不致有誤事. 但此事之行, 雖細民之所願欲, 而豪家右族倚勢幷兼者惡其害己, 莫不陰謀詭計, 思有以動搖. 未知此八九月之間, 事體又復如何. 更願丞相深察其情, 而以天下至公之理裁之, 有以終惠此邦之人, 而不墮於騰口間說之計, 則如熹等輩, 尙得以奔走塵筌泥塗之中, 上爲國家均愛赤子, 而微幸於有成. 如其不然, 則雖賤軀自可支吾, 亦當別以微罪自劾而騷, 不敢遊丞相陶鉤之內矣.   

 

熹以本郡不曾被受省劉, 不敢具申. 其回報漕司狀檢謹錄一通, 冒晩鉤聽, 儧率皇恐. 纖減錢物, 竊知已下漕司, 亦當一面絛具, 申票彼司, 聽候處分. 更望廟堂力賜王張, 使不奪於有司出納之吝, 則非熹之幸, 乃此邦之幸, 非此邦之幸, 乃此民之幸也. 國家愛惜斯人, 如護元氣, 不忍以毫髮擾之. 韶今所頒, 戒飮州縣,  未嘗不以嚴禁科罰爲言. 而其折以取之州照者乃如此, 是則陽爲禁止而陰賓縱之,  又從而驅之, 使必出於此. 聖王在御, 丞相秉鉤, 豈忍爲是以欺其民哉? 熹前書晉越, 冒進所間. 中間伏奉手敎, 開納誨諭周至, 三復以還, 喜懼交 . 然遂聽累月, 竟末閠公論之勝, 邪說之消, 如丞相之言者. 顧其當勝而反消,  當消而反勝者, 則有之矣. 州縣粗官, 不當議此, 惟丞相深圖之, 則天下幸甚,  下幸甚熹膽望臺躔, 不勝依仰, 敢乞上爲兩官益加鼎食之衛, 千萬至懇.

 

유승상에게 보내는 차자 與留丞相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91(소희 2, 신해) 그의 나이 62세에 유승상에게 사면을 요청한 글이다. 그는 여기에서 유승상에게 그동안 경계를 분명히 하여 민생의 안정을 도모해야한다고 역설하여 다행히 허락을 얻어 시행하던 차에 장남의 부고로 더 이상 처리할 수 없게 되었음을 사과하고 후임자에게 대행할 수 있도록 해서 이 일이 완성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그릇되게 선택을 받아 여러 번 해방을 대비하였고 또 조서의 지휘를 입어 특별히 본 주 경계를 미루어 시행하라는 허락을 받아서 피곤한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려서 다행히 노둔함을 다 할 수 있어서 우러러 사령에 부합되려 하였더니 불행하게도 갑자기 장남의 부고를 듣고서 비통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정신 사려가 장차 힘쓸 수 없는 것이 있어서 이미 공적인 차자를 갖추어 품부했으니 바라건대 궁관을 도야하게 파견하여 일찍 돌아가서 상장을 경영하여 갖추게 해서 외로운 과부를 수습하게 하여 주십시오. 간절히 바라건대 애처롭고 가엽게 여겨 일찍 주달해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저에게 어리석은 간청이 있으니 본주의 판관인 엽기가 만기를 백일 채웠으니 조목에 의하여 임무를 떠나게 하여 그의 가난하고 병든 것을 고려하여 이미 옥사의 간청을 펼 수 있게 하려고 하였더니 시행하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이런 재앙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식언하고자 아니하여 나란히 차자를 두어 경솔하게 들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균등한 사랑으로 차마 한 물건도 본분을 잃지 않게 해서 나란히 생각을 드리워 주신다면 엽기의 다행일 뿐만이 아니라 저의 다행입니다. 한 마디도 혼미하고 요란하여 말에 차례가 없으니 종이에 엎드려 황공하여 죄를 기다리는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熹課蒙選擇, 備數海邦, 又被詔旨, 特許本州推行經界, 以惠疲町, 幸得以 馨竭驚頓, 仰副使今, 而不幸遮聞長男之訃, 悲痛不堪. 自度精神思慮將有不可得 而黽勉者, 已具公箚申票, 乞賜陶鑄官觀差遣, 使得蚤嚴, 營辨喪葬, 牧拾孤姿. 切望哀憐, 早賜敷奏, 干萬幸甚.

熹又有愚懇: 本州判官葉機假滿百日, 依條離任, 念其貧病, 已許爲嶽同之懇, 未及而遮遭此禍. 然不欲食言, 幷有箚子率易投納. 伏惟鉤慈不忍一物之失其所, 幷賜垂念, 則不惟葉機之聿, 亦熹之幸也. 方寸迷亂, 言無倫次, 伏紙勝皇恐俟罪之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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