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수에게 보내는 편지 與詹帥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4년 (순희 11년, 갑진) 그의 나이 55세에 조첨사에게 경전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지난번의 편지에서처럼 경전에 대한 풀이를 신중히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제가 전날에 보내드린 편지에 아울러 이미 문자를 교정하고 출발함에 미쳐 대략 점검하였으니 제생이 나누어 교정한 것이 상호간 성글고 빽빽함이 있어서 친히 보는 것과 같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또한 모아서 닦고 고친 곳이 매우 많아서 거듭 온 사신을 머무르게 해서 먹을 것을 도와주고 하여금 며칠 더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어제야 비로소 마쳤지만 다만 논어는 고친 곳이 너무 많아서 알지 못하겠습니다. 오히려 감수가 되었는지 아닌지? 거듭 간행함을 면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구본에 끼워 넣은 주에 의지해서 실체가 더욱 마땅함만 같지 못합니다. 지난번 그대가 도를 곧게 하는 조경우의 설을 보고 선유들이 경전을 해석함이 이러한 실체를 가진 것은 또한 경전을 존경하는 뜻입니다. 만약 거듭 간행하지 않는다면 의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고친다면 바라건대 오로지 갖추어 자세히 깨우친 사람에게 친히 성대히 다다르게 하여 글자 수에 따라 보상해 주어 처리함에 공연히 방해가 없게 해서 많은 두 항을 면하지 못한 곳이 끼워 넣은 주의 상태와 같아서 다시 이본으로 곧바로 장인에게 붙일 수 없으니 공인의 힘을 꺼려서 종이에 걸어서 합하여 고친 곳이 일찍이 고쳐서 오래고 먼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또한 세세한 생각이 오늘날 보는 것이 거칠게나마 소략함을 면했다고 여기니 다시 여러 날을 거듭 보면 결단코 고칠 것이 있습니다. 만약 때에 따라 판을 고처서 판을 간행함에 이루다 고칠 수 없는 것이 있어서 또한 때가 없을 따름이니 장래에 어찌 다시 항상 여기에 뜻을 둘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이 책을 간행함에 학자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매우 적고 해가 됨이 많아서 저로 하여금 개연히 항상 불만스런 뜻이 있게 해서 해로움이 논어의 예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을 그칠 수 없어서 거듭 이것을 갖추어 품부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기쁜 마음으로 밝혀 주십시오.
熹前日拜書幷已校過文字, 臨欲發遣而略加點檢, 則諸生分校, 互有疎密, 不免親爲看過. 其間又有合修改處甚多, 不免再留來使, 助其口食, 令更俟三五日. 昨日始得了畢, 但論語所改已多, 不知尙堪修否? 恐不免重刊, 卽不若依舊本夾注, 於體尢宜. 向見子直道晁景迂之說云, 先儒解經只作此體, 是亦尊經之意. 若不再刊, 不必議也. 若但脩改, 亦乞專委通曉詳細之人親自盛臨, 償那字數, 處空闕不妨, 多處不免分作兩行, 如夾注狀, 不可便以此本直付匠者, 恐其憚於工力, 揭去紙帖, 致有合改處曾改得, 久遠爲害也. 然又細思, 此亦且是今曰所見, 以爲粗免疎脫, 更過數日再看, 決須更有改易. 若隨時修版, 印版有不勝修者, 且亦無時而已, 將來又豈復常有留意於此者? 則是此書之行, 爲學者之利殊少而爲害多, 使熹介然常有不滿之意, 其害又不止於論列行遣而已也. 懷不能已, 再此具稟, 伏乞台照.
장정수에게 보내는 편지 與張定叟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7년 (순희 14년, 정미) 그의 나이 58세에 궁벽한 정주에서 백성들의 척박한 삶과 관리들의 무분별한 수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더 이상 이러한 일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에 정주의 정치를 바로잡아서 백성들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제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정주는 민 땅에서도 가장 궁벽한 곳으로, 종래에 감사의 순력이 여기까지 이르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현의 관리들이 기탄없이 세금을 부과하고 착취하자, 백성들은 생존도 영위할 수 없어서 전토를 버리고 도망하여 떠돌고 있습니다. 좋은 토지는 부호들이 침점하고, 척박한 땅은 관리들이 친척이나 이웃에게 나누어주어, 세금과 부역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소민들은 낭패하여 도망하는 숫자가 날로 늘고 도적의 숫자도 날로 증가하여, 3~4년에 한 번씩 농민 반란이 일어나, 생명을 살상하고 재물을 파괴하는 일을 일일이 다 셀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비록 폐하의 땅이지만 실제로 일찍이 혜택을 입지 못하였으니 거의 중국 밖의 미주의 군과 더불어 다름이 없으니 매우 가슴 아픕니다. 근자에 호부 왕랑중이 거듭 경계를 시행하여 교지가 시행 될 수 있게 해 달라는 말을 따라서 천리의 세민들이 북치고 춤추며 서로 경사스럽게 여겨서 이미 도망가서 장주 조주 매주의 경내에 있는 자들이 또한 다 서로 거느려 돌아와서 장계를 던져 본업을 회복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이 한 일은 호족의 가문이나 큰 성씨들이 편리하다고 여기지 않고 현리 향사가 편리하다고 여기지 않고 관원 중에 보고 안 것이 없어 대충하기를 즐기는 자들이 편리하다고 여기지 않아서 왕왕 깨트려 버립니다. 유언비어를 만들어 위아래를 미혹시킵니다. 유독 빈민 하호들이 이일을 행하고자해서 주리고 목마름을 같이하지만 원통하고 고달픈 심정을 위로 통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전임 감사들이 망령되게 거듭 미혹시켜 명령이 이르는 것을 막아서 옛날에 북치고 춤추는 자들로 하여금 오늘날 변화를 탄식하게 하고 옛날에 장계를 던지고 본업에 복귀한 자들에게 오늘날 서로 더불어 낭패하여 떠나가게 합니다. 실정을 아는 선비들이 매우 가슴아파하고 아쉬워하는데 자리에 있는 자들만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다행히 원강 지휘가 이룰 수 있는 취지의 문장이니 지금 이미 기일에 미쳐서 정주의 한해 농사가 크게 무르익어서 수신들이 도리를 배우고 사람을 사랑해서 풍속을 이끌 힘이 있어서 붙여 갖출 수 있는데 지금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하지 않는다면 향후에 이러한 기회를 얻기 어려울 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원강 지휘를 점검해서 자세히 앞선 항목의 이해를 진술해서 거듭 취지를 명확하게 해야 하거늘 다만 본 로의 감사와 본주의 아전들에게 이러한 농사 틈에 다다르게 하여 빨리 미루어 행하게 하여 거의 영원히 한 방면이 오래고 먼 이익이 될 수 있게 하기를 바랍니다.
契勘汀州在閩郡最爲窮僻, 從來監司巡歷多不曾到. 州縣官吏無所忌憚, 科敷刻剝, 民不聊生, 以致逃移, 抛荒田土, 其良田則爲富家侵耕冒占, 其潛土則官司攤配親鄰. 是致稅役不均, 小民愈見狼狽, 逃亡日衆, 盜賊日多, 每三四年一次發作, 殺傷性命, 破費財物, 不可勝計. 雖爲王土, 實未嘗得少霑惠澤, 殆與化外羈縻州軍無異, 甚可痛也. 近因戶部王郞中申請乞行經界, 得旨施行, 千里細民鼓舞相慶, 其已逃亡在漳․潮․梅州界內者, 亦皆相率而歸, 投狀復業. 然此一事豪家大姓不以爲便, 縣吏鄕司不以爲便, 官員之無見識․樂荀簡者不以爲便, 往往皆能. 造爲浮語, 扇惑上下. 獨有貧民下戶欲行此事, 有同饑渴, 而其寃苦之情無路上通. 是致前任監司妄有申迷, 沮格成命, 使昔之鼓舞者今變而爲咨嗟, 昔之投狀歸業者今復相與狼狽而去. 有識之士深痛惜之, 而在位者未之知也. 所幸元降指揮猶有秋成取旨之文, 今旣及期, 而汀州歲實大稔, 且其守臣學道愛人, 有風力, 可以倚辨, 失今不爲, 竊恐向後難得似此幾會. 欲望檢擧元降指揮, 詳陳前項利害, 申迷取旨, 只委本路監司及本州守倅趁此農隙, 疾速推行, 庶幾永爲一方久遠之利.
조사 왕제현에게 보내는 편지 與王漕書(齊賢)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6년 (순희 13년, 병오) 그의 나이 57세에 민생을 염려해서 조사인 왕제현에게 부친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민생을 염려하였다. 특히 그는 민생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는 소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전반적인 불합리한 세금제도를 정비하여 실질적인 백성들의 삶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제가 엎드려 생각건대 욕되게도 가르침을 받아서 나란히 그 날로 살폈습니다. 가을볕이 더욱 교만해서 대부가 맑고 겨를 이 있으니 태후의 만복을 이루다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전에 엎드려 질문을 받고 경솔하게 갖추어 보고했습니다. 이윽고 생각하니 논의한 것이 주현의 재부를 경영하는 원류의 기술이니 만약 오늘날 황폐함을 구원하고 백성을 구휼하는 일로 말하면 아직 요긴하고 긴절한 일이 되지 않습니다. 생각이 자세하지 못하고 드러냄이 마땅하지 않으니 스스로 부끄러워서 또한 생각건대 고명함으로 오활함을 봄이 한번 웃는데 지나지 않을 뿐이니 그러므로 인순 고식적으로 아직 여가 편지로 스스로 풀지 못하겠습니다. 거듭 온전히 가르침을 입었으나 설명을 다했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일은 이미 오늘날의 급한 것이 아니고 그 조목이 외람되게 많아서 제가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체는 유사로 하여금 염법을 시행하는 속을 보고자 하는 데 불과해서 시행할 수 없는 심한 곳을 가려야 하니 정화 윤계 정주 모든 읍의 경우와 같습니다. 조금 그 법을 변화시켜서 세인의 수를 덜어서 관청에서 그 일을 담당하면 백성들은 병으로 여기지 않고 주현은 다리를 세울 수 있고 조사는 세수의 실상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 등급으로 현도를 깨트리고 패퇴시키면 가만히 생각건대 헛된 흠이 있는 수에 불과해서 실제로 얻을 수 있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곧 유사로 하여금 익숙히 살피고 토론해서 모두 온전하게 한 뒤에 드러냄에 달려있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오늘날 황폐함을 구원하고 백성을 구원하는 시급한 문제는 부내의 재앙을 받는 도시를 보는데 불과해서 하여금 실제로 검방하게 하면 복건성 아래 네 고을의 수재와 한발은 당시 검방함이 있었습니다. 위의 네 고을은 민간에서 온전히 이 조법의 은혜로운 뜻을 알지 못하고 단지 밭을 쪼개어 거둘 수 없음을 아니 살인과 방화일 따름입니다. 지금 이것을 살펴보면 또한 난리를 지으려는 마음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통용되는 것을 덜어서 근자에 주현들이 다른 일이 없는데도 백성들을 요란하게 해서 오로지 예전의 세금을 재촉해서 이미 납부했건 아니건 관계없이 일체 매는 것을 금하고 매질을 결정해서 명령으로 꾸짖고 엄중히 납부하게 하니 이것이 큰 해로움이 됩니다. 금년 여름과 가을 의 세금의 한계를 너그럽게 해서 각각 한 달을 늦춰서 조목을 갖추어 조정에 말해서 곧바로 행할 만한 것을 한 면으로 시행한 뒤에 조심스럽게 주현에서 봉행됨이 부지런하고 개으르고 이득과 손실을 살펴서 벌주고 상주어서 근심하고 탄식하며 도망하는 백성들이 오히려 다시 호적을 원하는 바가 있는데도 차마 미친 듯 어그러지고 요란한 마음을 풀지 못하게 해서 목숨을 보전하게 하고 가족을 보호하고 마을을 세우게 하니 이것이 곧 오늘날 황폐함을 구원하고 백성을 구휼하는 시급한 일입니다. 이것 외에는 황폐하고 덜어진 것이 더욱 심한 고을을 보고서 그들에게 벼를 얻게 하고 세금은 내지 않게 하니 넉넉한 곳은 팔아 융통하는 것을 허락해서 조금 부자 백성에게 가격을 고르게 하여 내게 하니 백성들에게 널리 크고 작은 보리 무와 채소들을 심게 해서 서로 접속시켜서 가난이 심한 자들은 다시 서로 보전하게 해서 별도로 불러 세호를 보전해 주어 관청의 본전을 빌려주어 거두어 완성한 뒤에 납부 한 원전은 한 도움이 됩니다. 이것을 재상이 심한 곳에 시행해도 생각건대 매우 많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 일이 비록 상평사에 속하지만 혹 상평사에 돈이 없고 조사에 돈이 있다면 빌려서 사는 것은 또한 관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견해가 이와 같으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짐짓 우러르고 낮추는 사이에 부지런히 해서 엎드려 바라건대 옳은 것을 자르고 선택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산간의 가뭄이 날로 심해서 한 사람이 말하기를 한 달이 넘도록 빌어도 조금도 효과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무리를 따라 산에 올라 신께 빌고 두루 한 촌락을 바라보니 태반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이곳에 산지 40여년에 일찍이 오늘날과 같은 가뭄이 없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근심하고 두렵게 해서 거의 몸 둘 바를 모르게 합니다. 어찌 할까요 어찌 할까요! 하여금 다시 갖추어 품부를 기다리니 팔에 병이 들어 오히려 많은 글자를 쓸 수 없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기쁘게 살펴 주십시오.
熹伏辱賜敎, 幷審卽日秋陽尙驕, 臺府淸暇, 台候萬福, 不勝感感. 熹前伏蒙垂問, 率爾具報. 旣而思之, 其所論者乃經理州縣財賦源流之術, 若以今日救荒恤民之事言之, 則未爲要切之務也. 慮之不精, 發之不當, 方以自隗, 亦意高明見其迂闊, 不過付之一笑而已, 以故因循, 未暇以書自解. 不謂乃蒙專人再枉謙誨, 俾盡其說.
此事旣非今日之急, 而其絛目猥多, 亦有非熹之所能盡知者. 然其大要, 不過欲得使司於見行鹽法之中, 擇其不可行之甚處, 如政和․允溪․汀州諸邑之類. 小變其法而損其歲人之數, 使官享其利而民不以爲病, 州縣可以立脚, 而漕司不矢歲輸之實而已. 今ー等破敗縣道, 竊料不過虛有欠數, 實無可得之錢. 然此事乃在使司審熟討論百全而後可發, 非一旦猝然之所可言也. 若夫今日救荒恤民之急, 則不過視部內被災之都, 使之實檢放, 福建惟下四州水旱時有檢放. 若上四州, 則民間全不知有此條法恩意, 但知田無斫收, 則殺人放火耳. 今示之以此, 亦所以息其作亂之心. 捐通租, 近日州縣無他事可以擾民, 唯有催理舊稅, 不間已納未納, 一切禁繫決撻, 責令重納, 此爲大害. 寬今年夏秋二稅省限, 各展一月, 具以絛目言之於朝, 而其可直行者一面行下, 然後謹察州縣奉行之勤惰得矢而誅賞之, 使愁嘆亡柳之民猶復有所願籍, 而不忍肆其猖狂悖亂之心, 以全其首領, 保其家族, 靖其鄕閭, 此則今日救荒恤民之急務也.
此外則視荒損尢甚之鄕, 使之禾米得人而不得出 : 有餘之處則許其通融糴販, 稍勒富民平價出糶 : 勒民廣種大小喬麥․蔔芋․蔬菜之屬, 以相接續 : 其貧甚者, 使更互相保, 而別召稅戶保之, 借以官本, 收成之後, 紙納元錢, 亦一助也. 此等爲災傷甚處乃行之, 想亦不至甚多也. 又此事雖屬常平司, 然或彼司無錢而漕司有錢, 則借而爲之, 亦不爲侵官也. 鄙見如此, 未知當否? 姑以仰塞下間之勤, 伏望裁擇其可, 幸甚幸甚.
山間之旱日甚一曰, 祈檮經月, 略不見効. 連日隨衆登山祈神, 周視一村, 太半焦赤. 居此四十餘年, 未嘗有今日之旱, 令人憂懼, 殆無措身之所. 禁何禁何!使還具禀, 臂病, 猶未能多作字, 伏乞台察.
주승상에게 보내는 편지 與周丞相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년 (순희 15년, 무신) 그의 나이 59세에 주승상에게 자기에게 내린 인사를 철훼해 달라고 피력한 편지이다. 주자는 늘 새로운 인사에 대하여 거듭 사양하는 모습을 보이고 미관말직에서 마지막 남은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기조의 부탁을 하였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범주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최덕수의 시를 인용하여 대장부가 출처관을 분명히 해서 인생의 오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저는 망령되고 소활해서 세상에 쓰일 수 없었거늘 어느 날 승상께서 이와 같음을 알고 특별히 제수하여 기용해서 저에게 우러러 열성조의 명을 받은 나라에서 향을 사르게 하셨으니 감격한 나머지 가만히 스스로 다행이라 생각하였는데 채 반년이 되지 않아 갑자기 그릇된 은혜를 입었습니다. 원사부를 경유해서 나온 교지의 별지를 보니 담겨있는 뜻이 매우 깊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저의 분수에는 맞지 않습니다. 근자에 가만히 들으니 강서지방을 대리하는 사람이 말로써 보고를 마쳤다고 하니 교지의 뜻을 제가 몸소 듣고 파견되어 명을 들음이 덜고 뛰어넘을 것이니 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윽고 바로 승상께서 개진한 바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래서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가만히 승상께서 전날에 하사가 마쳐지지 않았는데 헛되이 이렇게 분분하게 하신 것이 아쉽습니다.
제가 쇠퇴하고 병들어서 칠년이 되었는데 지난겨울 한 둘의 음탕하고 위태하고 사악한 증거로 이미 파직 되었지만 제 마음속의 근심이 겨우 조금 굳어져서 만방에서 공격해도 대략 움직일 뜻이 없습니다. 만약 스스로를 헤아리지 않고 몽매함을 무릅쓰고 가볍게 나아가면 가만히 스스로를 무너뜨릴 뿐만이 아니라 혹여 도리어 승상께 염려하는 근심을 끼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문득 차자를 두어 다시 앞서의 간청을 폅니다. 바라건대 승상께서 처음과 끝을 가엽게 여기시어 조금 갈고리 굽고 도자기 구울 힘을 빌려주시어 다시 홍경수조의 부역을 제공해 주신다면 저의 삶이 영화로운 이름에 의탁해서 죽어 묘지의 길에 제영을 하더라도 다시 남은 한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옛날 최덕수가 지은 관어의 시를 읽어보니 대장부 오십년에 모름지기 행하고 머무를 때를 알겠다는 구절이 일찍이 도리어 다시 탄식해서 가슴 속을 흥기시키고 움직이게 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오늘에 진실로 이러한 지경을 밝고서 더욱 그 말이 맛이 있는 줄 알았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황합을 바라보고 종종거리며 절하여 낮추지 못하고 하고자 했던 말을 다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위로 국가를 다스리며 더욱 보배로움을 높여 빨리 원제를 구해서 사방에서 바라보는 여망을 위로해 주십시오. 저는 간절히 빌고 바라는 여망의 지극함을 이기지 못해서 삼가 받들어 직접 써서 엎드려 고르게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熹狂妄闊疎, 無用於世, 一昨丞相知其如此, 特加除用, 使得仰奉列聖眞游香火於受命之邦, 感慨之餘, 方竊自幸, 而未及半歲, 遽被誤恩. 懇辭報聞, 未敢再告, 而袁史部經由, 出示所被賜敎別紙, 所以存間之意甚厚. 然於愚分終不自安. 近者忽聞江西代者以人言報罷, 有旨趣熹躬聽臨遣, 聞命隕越, 不知所爲. 旣而方知正以丞相開陳之故, 是以有此. 熹竊恨丞相前日之賜不終, 而虛爲此紛紛也.
熹之衰病, 首尾七年, 去冬一二陰邪危惡之證雖已罷去, 然腹心之患甫益堅牢, 攻擊萬方, 略無動意. 若不自揆, 冒眛輕進, 竊恐不惟自取顚踣, 亦或反貽丞相軫念之憂, 故今輒有箚子, 復申前懇. 欲望丞相始終哀憐, 少假鉤陶之力, 使得復供鴻慶守桃之役, 則生託榮名, 死題墓道, 無復有遺恨.
熹舊讀崔德符觀魚作詩, 有‘丈夫五十年, 要須識行藏’之句, 未嘗不反復詠歎而有動於懷. 不謂今曰眞踐斯境, 而益知其言之有味也. 贍望黃閤, 無由趨拜下風, 以盡其所欲言. 伏惟上爲國家益隆寶衛, 亟臍元宰, 以慰四海具膽之望. 熹不勝祈懇願望之至, 謹奉手記, 伏祈鈞察.
조진숙에게 보내는 편지 與曹晋叔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년 (순희 15년, 무신) 그의 나이 59세에 새로운 인사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일신상의 일을 이야기 하였다. 예컨대 그는 말년에 건강이 좋지 않아서 제대로 된 업무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자신의 입장을 살펴달라고 하였다. 특히 셋째 딸이 유명을 달리한 슬픔을 인사에 반영해 달라고 조진숙에게 부탁하였다.
자주 욕되게도 은혜를 입었으나 아직 하나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춘경이 와서 교지를 받들어서 자주 서늘한 비가 내려서 존후께 만복이 깃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저의 행동이 귀신의 뜻을 저버려서 재앙이 애들에게 미쳐서 셋째 딸아이가 전 달 말에는 이미 편안한듯하더니 병의 형세가 홀연 변해서 이 달 12일에 이르러 드디어 구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통하고 괴로운 지극함이 거의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더욱이 쇠퇴하고 병든 끝에 기혈이 고르지 않아 슬프고 고통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날로 쇠퇴해짐이 느껴지니 다시 세상에 오래 머무를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강우의 제수가 폐하의 뜻에서 나와서 당로의 관리들이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니 반드시 복이 되지 못해서 눈앞의 편리한 녹을 구하려할까 두렵습니다. 또한 모름지기 봄이 이르면 감히 말로 요청할 것이니 이미 스스로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곤 하물며 요청하지 아니한 사이에 갑자기 한번 드러내었으니 또한 반드시 감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쇠퇴하고 노쇠한 근심과 어려움이 한번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다시 영화로운 바람이 있겠습니까? 다만 신명이 버리지 않아서 어두운 곳에 빛을 내려서 힘써 간사한 뜻을 막아서 포상과 허락을 더하신다면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을 것이고 한갓 절실히 감개할 따름이겠습니까?
累辱惠間, 未能一 一奉報. 春卿來, 又奉近敎, 獲審比日雨凉, 尊候萬福, 感幸探矣. 熹行負幽明, 禍及幼稚, 第三女子前月末間已似向安, 疾勢忽變, 至此十二日, 遂不可救. 痛苦之極, 殆無以堪. 加以衰病之餘, 氣血凋耗, 不勝悲惱, 日覺旭悴, 恐亦不復能久於世矣. 江右之除, 出自上意, 當路不悅者衆, 此恐未必爲福. 而目下便矢祠祿, 又須來春闕到, 方敢請祠, 巳自不勝其撓. 况未請之間, 駭機一發, 又未必敢更謂祠. 衰老患難一至於此, 豈復更有榮望? 但神明不遺, 下燭幽隱, 力沮邪議, 褒許有加, 此恩無路可報, 徒切感慨而已.
우연지에게 답하는 편지(무신년 4월) 答尢延之書(戊申四月)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년 (순희 15년, 정미) 그의 나이 59세에 우연지에게 자신의 입장을 살펴주기를 요청한 글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입장에서 최소한 군신간의 의리를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왕산에 머문 지 이미 반 개월이 지났는데 날로 회신을 바라고 엄숙히 말씀해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지금 파견된 사람이 빈손으로 와서 교지 주에 깨우쳐 주시는 것이 제가 병통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구구한 뜻이 정히 온절한 사이에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원통해 하는 것은 지난겨울에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정사로 믿을 수 있게 하니 내가 어찌 이것을 하려고 굽히겠습니까? 노쇠하고 크게 졸렬해서 다시 이 세상에 남은 생각이 없어서 돌아보건대 군신간의 대의로써 잊을 수 없어서 처음 무릅써 나아가서 한번 품은 바를 토해서 어려움을 알면 물러나고 근심스러우면 어기니 이제 또한 그만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제현들이 도와서 폐하를 밝혀 어진 이를 나오게 하고 간사한 이를 물리쳐 크게 공정한 길을 열어서 종사로 하여금 높이고 편안히 하고 생령들을 덮어 준다면 제가 하사를 받음이 두텁습니다. 또한 하필이면 유혹해서 하고자 않는 바로써 억지로 감당하지 못할 바이겠습니까? 거듭 사람을 파견해서 문자로 가장 선한 것으로 두었으니 다시 바라건대 생각을 드리워서 다시 일찍 돌아올 수 있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나머지는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熹留玉山已半月, 曰望回信, 冀得言嚴. 今折遣人乃空手來, 而折賜敎中見愉者, 又非熹之所病也. 區區之意, 正爲褞節之間有不能彊顔者耳. 如其所謂寃轉者, 去冬已聞之, 此豈可信? 政使可信, 吾亦豈可爲此而屈哉? 老大抗拙, 無復餘念於此世, 顧以君臣大義未能忘懷, 初欲冒進, 一吐所懷, 知難而退, 憂則違之, 今亦已矣. 唯願諸賢協贊明主進賢退姦, 大開公正之路, 使宗社尊安, 生靈有庇, 則熹之受賜厚矣. 亦何必誘之以其所不欲, 而彊之以其所不堪也哉? 再遣此人, 文字在元善處, 更望垂念, 便得早歸, 千萬之幸. 餘不暇及.
강동 우제거에게 보내는 차자 與江東尤提擧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년 (순희 15년, 정미) 그의 나이 59세에 강동 우제거에게 민생을 안정시켜 달라고 주장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현재 천정부지로 오른 쌀값을 안정시켜 더 이상 백성들이 이러한 어려운 틈을 이용하여 부조리한 짓을 일삼는 무리들에게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이 사이에 쌀을 훔치는 자들이 다섯 무리가 있으니 그 중 하나는 이미 돌려받았고 나머지는 오히려 말단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네 곳의 쌀값이 모두 높아서 원래 헤아린 수에 미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제현 하호의 인구 수 만과 건창 네 고을에서 신청했으니 헤아려 보니 한 달에 이미 쌀 사천 석에 해당되고 나머지는 비록 재촉하나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고을을 헤아려 보니 오히려 이것 보다 일곱 배에 해당되니 그렇다면 한 달에 이미 삼만 여석을 사용합니다. 지금 상평창에 쌓여 있는 것과 본 군의 남은 것을 헤아려 보니 겨우 두 달을 지급할 수 있으니 상호들을 권유해서 얻은 것으로 한 달을 지급할 수 있으니 곧 돌아오는 봄까지 계속할 수 없습니다. 적도전을 거듭 거두어들이고자 한다면 모든 곳의 쌀을 향후에 반드시 더욱 얻기가 어려울 것이요. 또한 기준할 만한 것이 없으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유사로 하여금 심양의 쌀을 장차 들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만약 오만여석을 얻으면 곧 남는 것이 한 달여는 되니 많은 고을에 도움이 되어서 혹여 보리를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창에는 소호가 더욱 많으니 미곡을 사용함이 여기에 그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만약 이 수에 미치지 못한다면 더욱 낭패일 것입니다. 바라건대 속히 한번 공첩을 봐서 정해진 미곡의 수를 펼 것이니 이것은 한 방면 사람들이 운반하는 수에 해당되어 거의 선량들을 편안히 위로해주고 더욱 간사한 도적들을 누를 것이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此間羅米者五輩, 其一已還, 餘尙未有端倪. 然四近米價皆高, 恐不及元料之數. 而諸縣下戶口數萬, 建昌四鄕申到, 計一月已當米四千石, 餘雖見催未到, 然以鄕計之, 尙當七倍於此, 則一月巳用三萬餘石. 今計常平之積及本軍所餘, 僅可給兩月, 勸諭上戶折得, 可給一月, 卽開春便無以繼. 欲以糶到錢再糴, 則諸處米向後必愈難得, 又恐未可指準, 不知使司番陽之米將來可撥幾何? 若得五萬餘石, 卽所欠尙有月餘, 多方郡儹, 或可接得大麥. 都昌小戶尢多, 恐用米穀不止此. 若不及此數, 卽尢狼狽矣. 欲乞早示一公牒, 撥定米數, 此當一面羞人般運, 庶以慰安善良, 彈壓姦盜, 非細事也.
주승상에게 보내는 차자 與周丞相箚子(六月)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년 (순희 15년, 정미) 그의 나이 59세에 주승상이 자신에게 온정을 베푼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피력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그간의 돌아봄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더 이상 자기가 올린 공장의 범주를 뛰어 넘는 도움을 철훼하여 쓸데없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 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구구히 이곳에 왔을 때에 모든 것이 승상의 미루고 당겨주는 힘에서 나왔음을 알겠습니다. 지난날 차례대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그 연고를 또한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마침 다행히 모임이 있어서 드디어 한번 폐하를 얻어 보고서 품고 있었던 한두 가지를 토로했습니다. 망령된 뜻이 이로부터 혹시 오히려 좌우에 어리석은 정성을 바칠 수 있겠다고 여겼으니 일이 곧 평생 동안 생각하던 것이 미치지 못한 것에서 나와서 마침내 폐하와 재상들을 번거롭게 하고 죄주고 보호함을 왜곡시킨 뒤에 따라 떠났습니다. 승상께서 손을 굽혀 교지로 물어 주시니 이 뜻이 또한 더욱 두텁습니다. 기구하게도 더운 행차가 이미 구주의 지경에 미쳐서 앞으로 강서를 바라보니 여러 집을 건너지 않겠으니 깊이 이 행차를 생각함에 마땅히 전 날 주대할 때와 같은데도 다시 파견됨을 입었으니 명을 받고 길에 나감에 다시 사양할 바가 없습니다. 이제 이미 분주히 김매고서 앉아있는 바의 죄가 신하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몽매함을 무릅쓰고 행하여 진실로 깊이 근심하고 두려워해서 삼가 공장으로 성에 신청하고 문득 집으로 돌아가 죄를 기다리며 별도의 차목을 두어서 두루 공부에 이르게 해서 다시 이것으로 사사로이 집사에게 바칩니다. 세 가지 중에 공장의 말이 더욱 상세해서 넉넉히 본말을 볼 수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균등한 자애로움으로 취하여 주달하고 품부하여 일찍 내보내시어 사신의 명을 고친다면 거의 오히려 앞서의 죄를 거듭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제가 다행스러움을 이기지 못함이 이에 심합니다. 아니면 저의 쓸모없는 천한 지혜로 할 수 없어 오래지 않아 일찍이 승상의 문 아래에 조그마한 척촌의 공도 바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드디어 자취를 산림에 던져서 다시 나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아 바라는 것은 승상께 또한 한 폭의 종이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깊이 천하의 귀중함으로 자임해서 천하의 선비들을 이끌고 도모해서 하여금 속으로부터 밖의 가까운 데로부터 멀리와 하나라도 바른데서 나오지 아니하고 망령되이 사사로운 뜻으로 그 사이를 간사하게 함이 없다면 폐하께서는 바르게 되고 나라는 평정될 것입니다. 만약 아첨하고 가르침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자리를 공고히 하는 기술로 여기고 크게 질투하는 것으로 당을 보호하는 계책으로 삼는다면 진실로 전인들이 스스로를 패퇴시켰던 것이고 승상께서 평소에 그르다고 하는 것이니 어리석은 저의 말을 기다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개으른 정성으로 오히려 바라건대 깊이 스스로를 경계해서 다시 그러한 전철을 따르는데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위엄 있는 높은 곳을 범하여 무릅썼으니 아울러 깊이 두렵습니다.
熹區區此來, 網知皆出丞相推挽之力. 向之所以次且而不敢進者, 其故亦可知已. 適有幸會, 遂得一皃聖主, 呻吐所懷之一二. 妄意自此儻猶有以效其愚於左右, 而事乃有出於生平意料之所不及者, 卒煩君相委曲謫護, 然後得以逡巡而去. 丞相又枉手敎以存問之, 此意亦益厚矣. 崎嘔暑行, 已及衢州之境, 前望江西, 不越數舍, 深念此行若當前曰奏對之時便蒙臨遣, 則受命引道, 無所復辭. 今旣紛耘, 而所坐之罪有非臣子折能堪者, 冒昧而行, 實深憂懼, 謹以公狀申省, 因輒還家俟罪, 別有箚目偏詣公府, 而復以此私於下執事. 三者之中, 狀詞尢詳, 足見本末. 伏望鈞慈取以奏禀, 早賜譴黜而改命使臣, 則庶幾猶可以不重其前罪. 熹不勝幸甚聿甚!抑以熹之無庸, 賤知不爲不久, 而未嘗少效其尺寸於門下, 今遂投迹山林, 不容復出, 而所願於丞相又有非幅紙所能盡者. 伏惟深以天下之重自任, 而引天下之士以圖之, 使由中及外, 自近而瀕, 無一不出於正而亡有私意奸其間者, 則君正而國定矣. 若夫阿穎順指以爲固位之術, 牢籠媢嫉以爲桓黨之計, 則固前人之所以自敗, 而丞相平日所非矣, 無所待於愚言. 然熹之倦惓, 猶願深以自警, 無至於復隨其轍也. 干冒威尊, 幷深恐懼.
유참정에게 보내는 차자 與留參政箚子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년 (순희 15년, 무신) 그의 나이 59세에 그간에 유참정이 자신에게 배려한 부분을 고마워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과 그다지 큰 관련이 없는 자신의 입장을 돌아보고 베풀어준 일을 감사하였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의 직접적인 배려로 자신의 후임자를 빨리 선발하여 업무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부탁하였다.
제가 이제까지 하루도 참정의 문하에서 분주하지 않았는데 정치에 참여하여 지우를 얻고 장려되고 빌려 준 것이 중인보다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몇 년 지나 품계를 바꾸는 은혜를 입어 정치에 참여하여 실제로 서명을 관장해서 포상하고 수여하신 말이 이미 실상과 다르고 고하고 경계하신 것이 또한 늦은 절기 말로의 어려움을 보전할 수 없을까를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이 사랑함이 깊어서 지극하다고 말하는 까닭입니다. 제가 비록 지극히 어리석으나 또한 패옥처럼 복종해야함을 알겠습니다. 돌아보건대 군신간의 의리를 끝내 폐할 수 없어서 이로부터 이래로 비록 소원하고 멀리 있더라도 폐하의 지우가 더욱 깊고 더욱 두터워서 드디어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하고 망령되지만 진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그러나 매번 일어나고 문득 엎어져서 낭패함을 지탱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이래로 한번 나아가고 물러난 것이 비록 병에 의지해서 나아간 여망의 맑은 빛을 얻지 못하였으나 유독 한 번도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노쇠한 병이 다시 일어나서 드디어 번거로운 변명으로 준순히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들으니 나아가 풀어놓는 사이에 정치에 참여하여 오히려 조금 뜻을 더하고자 하니 진실로 스스로도 어떻게 이러한 위대한 군자의 문하에서 얻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구구히 남쪽으로 돌아가서 이미 마을에 다다랐습니다. 가만히 엎드려 오직 교지로 지휘한 것을 생각하니 신하로써 사면 받지 못할 죄를 저질러서 이에 내침을 당했으니 다시 무슨 면목으로 천리의 백성을 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문득 장계를 갖추어 성에 보고하고 죄를 기다리며 나란히 차목을 갖추어 보고 드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정사를 베푼 나머지에 조금이라도 생각을 드리워서 제가 문득 죄를 얻게 되면 강서를 오래도록 관직을 비워둘 수 없으니 뒤의 허물과 남은 책임을 너그럽게 하는 것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거의 상유를 거둬들여 마침내 전일에 정녕코 저를 권면하시던 뜻과 부합되게 한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제가 더위를 당해 병든 조목을 글로 다 지을 수 없으니 바치는 처음에 더욱 초안이 소홀해서 나란히 균등한 자애로움으로 특별히 가엽게 여기고 용서해 주십시오.
熹未嘗有一日奔走之勞於門下, 而參政所以知遇獎借, 不後於衆人. 越自頃年, 叨被改秩之恩, 參政實掌書命, 褒與之詞, 已浮其實, 而所以告戒之者, 又若憂其不能保夫晩節末路之難. 此其所以愛之之深, 可謂至矣. 熹雖至愚, 亦知佩服. 顧以君臣之義不可終廢, 自此以來, 雖在疎遠, 而聖王之知益深益厚, 遂不自量, 妄意陳力. 然每起輒仆, 狼狽不支. 今者之來, 一前一却, 雖獲扶病進望淸光, 然獨未及一見參政, 而衰病復作, 遂以煩言逡巡引去. 切聞進呈之際, 參政猶欲少加意焉, 誠不自知其何以得此於大君子之門也. 區區南歸, 已迫所部. 竊伏惟念來章所指, 在臣子爲不赦之罪, 被此以出, 復何面目以見吏民? 今輒具狀申省待罪, 幷具箚目禀聞. 伏惟機政之餘, 少賜垂念, 使熹便卽得罪, 而江西不久闕官, 則所以寬其後咎餘責者莫大於此. 庶幾收之桑楡, 有以卒副前曰丁寧眷予之意, 幸甚. 熹當暑病目, 作字不成, 貢間之初, 遽爾草率, 幷望鈞慈特賜矜恕.
주승상에게 보내는 편지(7월 12일) 與周丞相書(七月十二日)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년 (순희 15년, 무신) 그의 나이 59세에 민생의 어려움을 정책에 반영해 달라고 주승상에게 부탁한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백성들이 겪는 호환에 대하여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하여 일신상의 일을 고려하여 사관의 직책을 가지고 일생을 마무리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여러 가지 구구한 사안에 대하여 대인의 도량으로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저는 죄지은 이후로 머리를 감싸 안고 쥐구멍으로 숨어드는 형상으로 무더위 속에 장도에 올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구․신․건령의 경계를 지나는데, 들려오는 소문에 사나운 호랑이들이 백주에 떼를 지어 다닙니다. 길가에 거주하는 백성들 상당수가 그들에게 잡아 먹혀서, 곡하는 소리가 서로에게 들릴 정도이며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스스로를 박명한 처지라고만 하면서 우연히 호랑이와 마주치지 않고 농가에 도달하는 것을 오히려 요행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熹負罪以來, 奉頭鼠竄, 修塗酷暑, 不可禁當. 連日行衢․信․建寧之境, 又聞猛虎白晝群行, 道旁居民多爲所食, 哭泣相聞, 無所赴訴. 自惟命薄, 尤竊憂懼, 却幸偶不相値, 得以善達田舍.
인편이 돌아와서 성에서 내려 보낸 차자를 보았습니다. 우러러 천자의 정령스러운 뜻을 살펴보고 이미 깊이 감격했는데, 또 승상께서 편지를 보내서 깨우치시려는 수고로움이 지극하니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당연히 명을 좇아 당일로 길을 떠나야할 것이지만 구차한 제 생각으로는 끝내 스스로 편안치 못한 점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정이 관대하고, 사체를 애석하게 여기며, 경중을 헤아려 반드시 별도로 처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면 저는 다만 문을 닫고 은거하면서 조정의 의론이 결정되기를 기다릴 것이지, 이렇게 의심스러움을 무릅쓰고 준비를 갖추어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용납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후환이 어떨 것인가를 막론하고 다만 이와 같이 행동하는 것은 곧 이미 저의 평소의 소신이 아닙니다. 또 지난번에 물러난 것이 7년째이니 오늘에 이르러 한 번 나아갈 수 는 있겠지만, 오히려 다시 머물면서 사양하기를 4, 50일을 지낸 연후에 감히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니 저의 생각은 오로지 저들을 두려워해서가 아닙니다. 승상께서는 이런 점에 대해서 반드시 살핀 것이 있을 것인데 오늘의 일은 또 어째서 이와는 다르단 말입니까?
人還, 恭被省箚, 仰味聖語丁寧之意, 已深感激. 而丞相賜書開愉勤至, 又增悚作. 理合拜命, 卽日戒塗, 而區區之私終有未能自安者. 竊計朝廷寬大, 愛惜事體, 量度重輕 , 必未能別爲處分, 則熹之孤蹤, 只合杜門屛迹, 以俟議論之定, 未容冒此疑似, 出備使令. 未論後患如何, 但只如此行止, 便已非熹夙心. 且如向來退避七年, 及今乃能一出, 猶復宿留淹回四五十日, 然後敢進, 熹之意非專爲畏彼也. 丞相於此, 其必有以察之矣. 今日之事, 亦何以異此耶?
또 오래도록 왕명을 바라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안치 못합니다. 그러나 속으로 두려운 것은 폐하께서 지난날에 훈계하신 말씀이 지극히 온화하고 도타운데도 제가 어둡고 완고함으로 말미암아 조서를 받들지 않아서 갑자기 폐하의 노여움을 사는 것입니다. 또 듣기에 강서지방에 지난달에 이미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업무의 직책이 텅 비었고 과거에 폐한 것인데 (제가) 일을 일으키는 데까지 이른다면 저의 죄는 모두 피할 곳이 없으니 비단 지난날 근거 없는 (임율의 탄핵의) 말에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사사로운 생각을 논하자면 저는 지난해 8월부터 이미 사관의 봉급을 받지 못하고 이제 1년여가 되어갑니다. 빈곤과 질병의 형상이야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강서의 영접하러 나온 병사는 이미 돌려보냈고, 다만 이 인편은 사사로이 고용한 사람인지라 돌려보냅니다만 형세 상 또한 다시 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승상께서는 자세히 살피시고 유념하시어 속히 제가 청한 대로 해주셔서 이 분분한 소동을 면하도록 해주신다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행이겠습니다.
又且久稽王命, 心不遑安. 竊恐聖上以謂前日訓詞已極溫厚, 而熹冥頑, 不肯奉詔, 忽震雷霆之怒. 又聞江西前月亦已闕雨, 不知今復如何. 萬一職事曠廢, 或至生事, 則熹之罪皆不可逃, 非但前日口語之無根而巳也. 若論私計, 則熹自去歲人月已失祠祿, 今適期年, 貧病之態, 不言可知. 江西迓兵又已遣去, 只此疾足, 乃是私雇, 使之往還, 勢亦不容至再矣. 切望丞相曲賜留念, 早如所請, 免致紛紜, 不勝幸甚.
또 별도로 한 일이 있는데, 더욱 이해관계에 얽혀 있습니다. 승상께서 강직하고 사나운 포졸처럼 원기중의 성품이 강직하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여기에서 높고 밝게 일을 헤아리는 자세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강남에서 일찍이 경유해서 강직한 보졸의 횡포를 엷게 다스릴 수 없어서 그 흔적이 단서가 있으니 원기 중에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성품의 폐단이 급해서 스스로 헤아리기에도 원기 중 아래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군민의 사이에 일이 곡직이 있어서 돌리고 굽힘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일은 장차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전에 감히 이것을 당겨 스스로 말하지 못한 것은 정치가 다시 지난 해 피탈우의 혐의와 같을까를 두려워 서로 동을 막아 양 길에 소요가 발생하여 한 해를 마치도록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얻을 수 없어서 다시 펴니 다만 승상께서 강우에 행차할 수 없음을 알게 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且又別有一事, 尤係利害: 昨聞去歲朝堂之議, 欲使今袁少卿自處易贛, 而丞相以爲贛卒悍而袁性剛, 不可不慮, 此見高明計事之審. 然則熹於南康嘗因莫守經由薄治贛卒之橫, 其釁有端, 又非袁之比矣. 弊性狷急, 自度亦似不在袁下. 萬一軍民之間事有曲直, 不容回枉, 則事將有不可知者. 前此所以不敢援此自言者, 政恐復如頃年避奪牛之嫌, 而自西徂東, 騷動兩路, 竟歲不寧也. 今不獲已, 柳復陳之, 但欲丞相知江右之不可行耳.
저는 이미 공장으로 성에 아뢰고 차자를 갖춰 두루 여러 공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또한 일을 봉한 한 통이 곧 전일에 이미 폐하의 자애로움으로 큰 허락을 입었으니 이제 나아가도 얻을 수 없어 또한 장계 안의 첩설을 바라건대 개진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 사이가 온전히 감히 전 일의 굽고 폄에 미치지 못합니다. 전 서가 미친 듯 경솔한데도 곡진히 입혀 주고 겸하여 받아들이시니 전전 반측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구구한 정이 또한 더하여 말할 바가 있어서 자주 버려짐에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매번 사사로이 천하의 일을 헤아려보니 아직까지 일찍이 승상께서 이 세월의 기회를 아까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문득 사사로운 간청을 두어 경솔하게 구하여 더럽혔습니다. 어제 왕산을 지나며 그곳의 읍재인 정모를 만나보니 곧 열 두세 살 적에 서로 더불어 동문수학한 사이이니 이별 후에 함락되어 포로가 되어 사이가 떠서 끊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다시 보니 멍하게 세속에서 이른바 전후신과 같으니 크게 한숨지으며 눈물 콧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온화하고 삼감이 남음이 있으나 재주를 갖춤은 부족하니 이것은 현이 꺾이고 패퇴한 날이 오래되어 그 형세를 반드시 지탱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문자로 승상께 던져 바라건대 바른 사례로 되돌려서 털끝만 한 차이가 더해져 갑자기 혹여 첨막의 붙이로 바뀌니 그것을 가지고 제가 직접 보고 드립니다. 어제는 총총해서 다른데 미칠 겨를이 없습니다. 이것 또한 장태승에게 의탁해서 품부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균등한 배려를 입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 뒤로 편지를 얻지 못했으니 생각건대 그 일의 형세가 다만 급박합니다. 혹시 애처롭고 불쌍히 여겨서 일찍 질그릇과 주물을 하사해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또한 소무 황태성이 길이 보존하여 말하기를 향래에 은혜를 입고 말을 받들어서 스스로 진술하는 문장이 없어서 이미 일찍이 승상께 간청하여 품부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균등한 뜻에 어떻습니까? 저에게 의탁하여 사이를 타서 말을 하니 감히 그 뜻을 도달시키지 않을 수 없어서 나란히 바라건대 밝게 드리워 주십시오. 아직까지 스스로 벗어날 수 없어서 곧 좌우에게 말하였으니 진실로 가소롭게 느껴집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큰 도량을 포용해 주십시오.
熹已有公狀申省, 及具箚子偏扣諸公之門矣. 又有封事一通, 乃前日已蒙聖慈閑允, 今恐投進不得, 亦於狀內貼說, 乞賜開陳. 然其間全不敢及前事曲亘也. 前書狂易, 曲蒙謙受, 不勝反側. 區區亦尙欲有所言, 以亟遺人不暇. 然每私計天下之事, 則未嘗不爲丞相惜此歲月幾會也.
熹輒有私懇, 率易干瀆. . 昨過玉山, 見其邑宰鄭謨乃十二三歲時相與同學, 別後聞其陷虜隔絶. 及此再見, 恍然如世俗所謂前後身者, 爲之太息流涕久之. 然其人溫謹有餘而材具不足, 此縣嶊敗日久, 其勢必不能支. 曾有文字干投丞相, 乞以歸正思例, 改差一釐務添倅或簽幕之屬, 仍屬熹爲面禀. 昨來悤悤, 不暇它及. 此亦嘗託張太丞禀知, 不審已蒙鈞念否? 熹後來不得其書, 想其事勢只有急迫. 儻蒙哀憐, 早賜陶鑄, 千萬之幸. 又邵武黃太盛永存亦云向來蒙恩奉祠, 無自陳之文, 已嘗懇禀丞相, 不知鈞意如何? 屬熹乘間言之, 不敢不達其意, 幷乞垂照. 未能自脫, 乃欲爲左右言, 良覺可笑. 伏惟宏度有以容之. ’
유조사에게 답하는 편지 答劉漕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년 (순희 15년, 무신) 그의 나이 59세에 유조사가 그동안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하는 편지이다. 여기에서 그는 그간의 배려에 감사하고 미관말직으로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평생 용졸해서 남을 치료하지 못해서 분수를 헤아려 스스로 편안히 여겨 다른 소망이 없었습니다. 공조에서 지나치게 윤허하시고 발탁하여 씀이 마땅함을 지나쳐서 바야흐로 일어났다가 문득 쓰러져서 위로 폐하의 신묘한 지혜에 누를 끼친 것이 두 번 째 입니다. 아직까지 폐하께서 명철하심으로 그윽하고 후미진 곳을 밝혀 주시니 위로하고 어루만진 것이 소신이 마땅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쇠퇴한 몸을 억지로 부축해서 일어나 받들어 밝게 물으니 스스로 헤아리기에도 외롭고 위태해서 오히려 모름지기 사람을 물리쳐 말로를 온전히 해서 빠르고 넓게 서로 공격해서 스스로 힘씀을 용납하지 못하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러러 큰 깨우침을 번거롭게 해서 반복해서 익숙히 찾아서 의리에 따라 비분강개하니 말의 뜻이 범상하지 않아서 세 번 다시 논리를 세워 감히 옷깃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앞선 요청이 이미 시행이 되어 헤아려 보건대 하루 이틀에 마땅히 나아가고 그치는 명령입니다. 혹시 물러나 머무를 수 있다면 큰 다행이겠습니다. 구구한 이 뜻이 진실로 또한 깊고 밝음을 입었으면 합니다.
熹平生戇拙, 無以瘉人, 揣分自安, 非有他望. 公朝過聽, 拔用過宜, 方起輒仆, 上累聖神之知, 於此再矣. 尙賴皇明洞照幽隱, 所以慰藉撫循, 有非小臣所當得者. 極欲彊扶衰朽, 起奉明諮, 而自度孤危, 尙須辟人以全末路, 而疾灰交攻, 有不容自力者. 以是仰煩閑諭, 反復熟悉, 引義慷慨, 詞旨不凡, 三復竦然, 敢不斂衽. 然前請已行, 度一二日當有進止之命. 儻遂退藏, 是爲大幸. 區區此意, 諒亦蒙深照也.
어떤 사람에게 답하는 편지 答或人書
【해제】이글은 주자가 1188년 (순희 15년, 무신) 그의 나이 59세에 늘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글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탄핵 속에서 지금 풀려난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소신을 밝혔다.
제가 시절의 마땅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스스로 곤욕을 취하여 일찍이 스스로를 탄핵하는데 미쳤으니 다행히 폐하의 밝은 지혜로 거듭 깨우쳐 나아가 행하게 하시니 제가 마땅히 얻을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죄와 허물을 돌아봐 아직 다 씻어내지 못하였으니 감히 나아가 인도하지 못할 따름입니다. 말로 요청하는 위에 형세가 반드시 얻을 수 있습니다.
熹不度時宜, 自取困辱, 比嘗自劾, 幸上照知, 申諭趣行, 有非小臣所當得者. 但顱罪垢未盡滌除, 未敢卽引道耳. 祠請之上, 勢必可得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