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48

황성 2025. 8. 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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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성에 보고하는 장 申省狀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환장각대제의 명을 일신상의 연고를 들어 거듭 상서성에서 논의 처결하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삼가 상서성에서 내려왔던 차자 한 통을 살펴보니 제가 환장각대제의 직명을 사면한 것에 대하여 성지를 받들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지금 각기병이 발작하고 수족이 구속하고 핍박하여 절하고 일어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은혜에 감사하지도 못하고 건령부 건양현에 보내어 맡겼으며 병이 나아 편안한 날을 기다렸다가 수령을 청하도록 별도로 다음에 갖추어 아뢰겠습니다. 삼가 먼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삼가 살펴 주시기를 빕니다.

 

右熹伏準尙書省降到箚子一道, 以熹辭免煥章閣待制職名, 奉聖旨不允. 綠熹目今脚氣發作, 手足拘攣, 不堪拜起, 謝恩不得, 已送建寧府建陽縣寄收, 候痊安日請領, 別具申奏次. 謹先具狀申尙書省, 伏乞照曾.

 

건령부에 아뢰어 벼슬을 그만 둘 수 있게 보고하길 비는 장 申建寧府乞保明致仕狀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건령부에서 현재 맡고 있는 비각수찬의 소임을 그만 둘 수 있게 보고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오래 묵은 각기병이 근래에 자주 발병하여 날로 거듭 심해지니 제 몸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맡고 있는 본관의 벼슬을 그만두기를 빌면서 삼가 주장을 갖추어 건령부에 아뢰니 삼가 살펴 주시어 조목에 의거하여 시행하십시오. 삼가 아룁니다.

 

右熹舊患脚氣, 近數發動, 日加困重, 不可支吾. 欲乞守本官致仕, 謹具狀申建寧府, 伏乞照會, 依條施行. 謹狀.

 

대제의 직명을 거둬들이는 것과 맡고 있는 본관의 벼슬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비는 장계4 乞追還待制職名及守本官致仕奏狀四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대제의 직명과 현재의 소임까지 거둬들여 궁관의 소임을 내어주어 여생을 마칠 수 있게 해 달라고 장계를 올렸다.

 

저는 일전에 주장을 갖추어 아뢰어 대제의 직명을 거두어들이기를 빌었습니다. 328일에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삼가 성지를 받들어 차대의 직은 제수한 것이 오래되었으며, 묘제를 논하는 것과 더불어 애초에 상관이 없으니 내렸던 지휘에 의거하여 허락하지 않으시고 다시 아뢰어 청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각기병의 고통을 당해서 절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은혜에 감사하고 공손히 받을 수 없어서 마침내 받았던 상서성 차자를 임시로 건양현 창고에 보내어 맡겼으며 이에 상서성에 보고하여 살피도록 했습니다. 뒤에 뜻하지 않게도 병세가 위독하고 스스로 생각하건대 벼슬에 나아가기 어려워서 관례에 따라 마땅히 벼슬을 그만두길 빌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 서관이라 감히 오로지 주달을 갖추지 못하고서 마침내 본관에 보고하고 조목에 의거하여 아뢰었습니다. 지금 다시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삼가 성지를 받들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은혜 입은 것이 거듭되니 두려움을 이루다 표현하기 어려우며 분수를 생각해 보고 마음으로 헤아려 보아도 단지 맡은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오직 보잘 것 없는 저는 본래 시골 출신으로 입대의 시간이 짧으니 스스로 생각하건대 조금도 보답하지 못해서 옛날 직책을 가지고서 사관을 받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간절히 피했으니 지나치게 이름을 팔아 일부러 어긋난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지금 질병이 더욱 심하여 비록 곧 죽지는 않을지라도 정신과 몸이 쇠락하여 뒤의 효과를 기약하지 못하는데도 다시 폐하의 총애와 영애를 훔치니 의리상 더욱 머무르기 어렵습니다. 겸하여 살펴보건대 근래에 종신 가운데 중서사인으로부터 변방의 요충지로 나아가 맡는 것이 있었으나 오히려 스스로 비각수찬을 가지는 것을 그만두었으며, 하물며 저는 잘못하였는데도 바야흐로 이러한 한직을 만났으니 직명을 얻는 것은 지나치게 넉넉하고 후하여 이것으로써 저것을 비교하면 진실로 편안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감히 자주 모독하는 죄를 피하지 않고서 다시 절박한 정성을 아뢰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의 밝으심으로 여실히 살펴 폐하께서 헤아리고 아울러 허용하여 저의 어리석은 마음을 깊이 살피시고 근래의 사례를 헤아려서 특별히 예지를 내려 바랐던 것을 이루게 한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일전에 벼슬을 그만두기를 아뢰었던 것은 실제로 병세가 위급했기 때문에 바야흐로 감히 어리석음을 무릅썼습니다. 지금 비록 구차하게 남은 목숨을 이어서 끝내 다른 날 사령을 감당하지 못할지라도 감히 다시 외람되게 녹을 받아서 많은 잘못을 초래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긍휼히 여기시고 아울러 허락을 주시어 사관 직에 나아가게 한다면 거의 남은 생을 편안하게 할 것입니다. 저는 하늘에 빌고 폐하를 우러러 엎드려 명을 기다리는 지극함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기록하여 아뢰며 삼가 칙지를 기다립니다.

 

右臣昨具狀奏, 乞賜追還待制職名. 三月二十八曰, 準尙書省箚子, 伏奉聖旨, 次對之職, 除授已久, 與廟議初不相關, 依已降指揮不允, 不得再有陳請. 臣以見患脚氣, 有妨拜跪, 不得謝恩祗受, 遂將所被省箚權送建陽縣庫寄收, 仍申尙書省照會去訖. 後來不意病勢危篤, 自知難戀聖朝, 依例合乞致仕. 又念見係庶官, 不敢專具奏牘, 遂申本貫, 依絛陳乞. 今來復準省箚, 恭奉聖旨, 未賜開允. 戴恩重疊, 恐懼難勝, 揣分捫心, 但知感激. 唯是區區本以鄕來入侍日淺, 自知未有毫髮報稱, 不當仍帶舊職, 出領祠官, 所以懇避再三, 卽非過爲沽激. 況今疾病沈痼, 雖未卽死, 精華已竭, 後效無期, 更竊寵榮, 義益難處. 兼覩近日從臣有自西掖出守大藩者, 猶自止帶修撰, 况臣罪戾, 方此投閑, 而所得職名過爲優厚, 以此較彼, 誠有未安. 是敢不避煩瀆之誅, 復陳迫切之悃. 欲望皇明委照, 聖度幷容, 深察愚衷, 參稽近比, 特降睿旨, 俾遂所祈, 則臣不勝千萬大幸. 所有昨來陳乞致仕, 實綠病勢危迫, 方敢冒昧. 今雖苟延殘息, 終是不堪異日使令, 不敢更叨廩祿, 以速滿盈之咎. 亦望矜憐, 幷賜兪允, 使就窮約, 庶保餘年. 臣無任祈天望聖俯伏俟命之至. 謹錄奏聞, 伏候敕旨.

 

(첩황) 저는 지금 삼가 이부에서 내려온 고명을 받았는데 마감해서 관을 옮긴 것은 제가 곧 은혜에 감사하고 공손히 받았으니 저의 어리석은 마음에 감히 말을 꾸며서 망령되게 피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폐하께서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貼黃)臣今者伏蒙吏部降到告命, 磨勘轉官, 臣卽已謝恩袛受, 可見愚衷非敢飾詞, 妄爲遜避. 伏乞聖照.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 申省狀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대제의 직명과 현재의 소임을 거두고 궁관으로 파견해 달라고 장계를 올리고 상서성에서 논의 처결하도록주장하였다.

 

저는 자주 주장을 갖추어 아뢰어서 가지고 있던 직명을 파면하고, 건령부에서 관직을 그만두는 것을 보고해 주시길 아뢰었습니다. 지금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각각 성지를 받들어 허락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사적인 의리로 편안하지 않아서 스스로 사면장을 올리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앞에서 청했던 것을 아뢰고 별도로 주장을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만약 내려 주심을 입었을 때 바라건대 조정에서 특별히 위로 아뢰어 주시고 굽어 청했던 것을 좇아 주시어 조속히 시행해 주신다면 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고 삼가 균지를 기다립니다.

 

右熹累具申奏, 乞罷所帶職名, 及於建寧府陳乞保明致仕. 今準尙書省箚子, 各奉聖旨, 未賜開允. 熹以私義難安, 不能自已, 不免復申前請, 別具奏陳. 如蒙降出, 欲望朝廷特賜將上, 俯從所請, 早賜施行, 不勝幸甚. 謹具狀申尙書省, 伏候鈞旨.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에 먼저 장계를 올리고 상서성에 주장하고 재집에게 차자를 보내 사정을 아뢰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문득 곧바로 간절한 청이 있어 우러러 균청을 간범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전에 궐에서 시강한 날이 짧아서 조금도 도움이 못되었는데도 사관 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시 옛 관직을 가지는 것이 부당해서 자주 거두어 주시길 아뢰었으나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근래에 다시 질병이 위독하여 벼슬을 그만두기를 아뢰었지만 성은을 입어 청했던 것을 좇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제가 앞뒤로 빌었던 것은 모두 성심에서 나온 것이지 감히 무리를 속이고 말을 꾸며서 지나치게 어긋난 행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폐하를 감격시키지 못하여 심히 스스로 편안하지 않았으니 다시 피를 토로하는 정성으로 다시 천청을 번거롭게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사이에 진술했던 곡절은 사례를 비교해서 끌어들여 지극히 상세함을 다하였습니다. 만약 회답을 주시려거든 바라건대 조정에서 정성을 깊이 살피시어 힘써 개진해 주시고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는 저로 하여금 조속히 물러나 숨어 살게 하여 잘못이 있는 성명과 어리석은 식견으로 자주 폐하를 번거롭게 하여 오래도록 떳떳한 법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의 말을 불러 일으켜서 거듭 견책을 당하는 것을 면하게 한다면 저는 천만 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정이 급박하여 말에 조리가 없으나 삼가 생각하건대 아울러 살펴 주십시오.

 

熹輒有危懇, 仰干鈞聽: 熹昨以入侍日淺, 無補豪分, 旣領祠官, 不當復帶舊職, 累奏乞行追奪, 未蒙開允. 近者復以疾病危篤, 陳乞致仕, 又蒙聖恩, 未從所請. 伏念熹前後所乞, 皆出誠心, 非敢詭衆飾辭, 過爲矯激. 未能感格, 深不自安, 不免再露血誠, 復干天聽. 其間陳叙曲折, 援引比例, 極爲詳盡. 若蒙降出, 欲望朝廷深察情悃, 力賜開陳, 使孤危之迹早遂退藏, 免以罪戾姓名愚昧識見數干旒扆, 久紊彝章, 招致人言, 重煩譴斥, 則熹不勝千萬大幸. 情迫意切, 言語無倫, 伏惟鈞慈幷賜容照.

 

대제의 직명을 거두어들이고 아울러 영부찬릉의 일을 망령되게 논의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음을 스스로 탄핵하여 아뢰는 장 5 乞追還待制職名幷自劾不合妄議永阜攢陵事秦狀五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영부찬릉의 일을 망령되이 논의한 것을 스스로 탄핵하고 이렇게 분명한 과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제의 직명을 수행할 수 없다고 장계를 올렸다.

 

저는 일전에 자주 주장을 갖추어 아뢰어 대제의 직명을 가지는 것을 면해 주시길 빌었으며 질병 때문에 다시 벼슬을 그만두기를 빌었습니다. 삼가 폐하께서 특별히 다음과 같이 예지를 내려 주셨습니다. “관직과 정사를 사양하는 것은 짐이 어진 이를 우대하는 뜻이 아니니 다시 아뢰어 청함을 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폐하를 우러러 명을 받고 삼가 성은에 감사하였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건대 어리석고 천한 저는 외람되게 권지를 입었는데 힘을 펼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문득 한가로이 물러나기를 구했습니다. 다시 총애와 은혜를 입어 깨우쳐 주심을 펴고 사사로움을 크게 하여 어진 이를 우대하는 명목을 빌려 주시니 저는 다시 지극히 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제가 어떻게 커다란 포상에 걸맞을 수 있겠습니까? 감격함이 깊어 비유하여 말할 것이 없습니다. 벼슬을 그만두기를 빌었던 것은 삼가 공손하게 폐하의 훈사를 받았기 때문에 감히 다시 폐하의 총명함을 어지럽힐 수 없어서입니다. 직명을 사면했던 것에 대해서는 우러러 폐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감히 다시 피하는 것을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삼가 스스로 생각하건대 작년에 외람됨을 무릅쓰고 주관의 행렬에 끼어들어 일찍이 영부찬궁에 대해 모여서 논의하고 망령된 뜻으로 갑자기 좁은 소견을 아룀으로 인하여 바라건대 다소 먼 날로 관대하게 하여 산릉으로 옮긴다면 위령이 편안하게 안치되어 폐하께 행운을 인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뒤에 비록 의론을 그만두어 시행하는 것이 없더라도 사적인 마음에 있어서 어찌 스스로 어리석음을 용납하겠습니까? 지금 삼가 진주원의 관보를 살펴보니 이전에 이것을 의논하였던 대소의 신하들은 모두 엄중히 처벌되고 차례대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망령되게 면전에서 아뢰었으니 자취는 더욱 가릴 수 없고, 죄는 더욱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다만 거두어들인 공문서는 일찍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법망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도 꾸짖음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마침내 은닉하여 말하지 않고 다시 영애와 총애를 무릅쓴다면 가만히 생각하건대 공손히 받은 뒤에 공론에서 허용하지 않아 하루아침이 못 되어 곧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미천한 제가 나아가고 물러나는 의리는 비록 말하지 못하겠지만 폐하와 조정이 벌을 주고 상을 주는 중도에 애석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연고 때문에 반복해서 생각해 보아도 다시 근심과 의심이 생기니 감히 공손히 받을 수 없습니다. 문득 처벌을 무릅쓰고 스스로 탄핵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의 명철하심으로 분발하여 위엄 있는 결단을 내리시고 사패에게 주시어 나라의 형벌을 엄하게 한다면 번잡한 말로 거듭 폐하를 힘들게 하는 것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하늘에 바라고 죄를 기다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운 지극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기록하여 아뢰고 삼가 칙지를 기다립니다.

 

右臣昨累具奏, 乞免帶待制職名, 仍以病衰, 再乞致仕. 伏蒙聖慈特降睿旨 辭職謝事, 非朕優賢之意, 不得再有陳請. 臣卽已望闕拜命, 恭謝聖恩訖. 自惟愚賤, 誤被睿知, 陳力無堪, 輒求閑退. 更蒙寵渥, 申諭隆私, 假以優賢之名, 却其再至之請. 顧臣何者, 可稱袞褒? 感激之深, 無言以諭. 所乞致仕, 謹已恭禀聖訓, 未敢再溷宸聰. 所辭職名, 亦已仰體睿慈, 不敢再祈避免. 然伏自念去歲叨冒, 獲廁周行, 曾因集議永阜殯宮, 妄意輒陳管見, 欲乞少寬遠日, 改卜神臯, 庶妥威靈, 以延運祚. 後雖罷議, 無所施行, 然在私心, 豈容自昧? 今者伏覩進奏院報, 前日小大之臣曾議此者, 皆已坐罪, 次第降黜. 而臣狂妄, 又嘗面奏, 其跡允不可揜, 其罪允不可赦. 但以所入文字不曾付外, 是致漏網, 未抵譴訶. 若遂隱匿不言, 更冒榮寵, 竊慮袛受之後, 公論不容, 未及終朝, 便煩褫奪. 顧微臣進退之義雖不足言, 而聖朝刑賞之中則爲可惜. 以此之故, 反復思惟, 復致憂疑, 未敢拜受. 輒冒斧鉞, 自劾以聞. 伏望聖明奮發威斷, 付之司敗, 以肅邦刑, 庶免煩言, 重勞淵聽. 臣無任祈天俟罪踧踖屛營之至. 謹錄奏聞, 伏候敕旨.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 申省狀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에 앞서 올린 장계에 따라 상서성에서 논의 처결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일전에 주장을 갖추어 아뢰어 대제의 직명을 사면해 주시기를 빌었으며 병들고 쇠약해졌기 때문에 다시 벼슬을 그만두기를 빌었습니다. 지금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관직과 정사를 사양하는 것은 짐이 어진 이를 우대하는 뜻이 아니니 다시 아뢰어 청함을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성지를 받들었습니다. 저는 폐하를 우러러 은혜에 감사하고 삼가 폐하의 훈사를 받았으니 감히 다시 벼슬을 그만두기를 빌어 조정을 번거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앞에 있었던 직명은 우러러 폐하의 은혜임을 알기에 본래 감히 다시 사면장을 갖출 수 없는데, 도리어 작년에 영부찬궁에 대한 논의를 모으라는 일 때문에 대개 일찍이 망령되게 좁은 소견으로 아뢰어 발인하는 기간을 다소 늦추고 신이 편안한 땅을 별도로 택하길 빌었습니다. 근래에 가만히 살펴보건대 일전에 이것을 논의하였던 신료들은 모두 처벌을 받았고 차례대로 견책을 당하였지만 저는 잘하는 것이라고는 없는데도 유독 다행히 면했으니 보잘 것 없고 어리석은 저는 실재로 스스로 편안하지 않습니다. 만약 성은을 공손히 받아 다시 근 열이 더해진다면 가만히 생각하건대 오래지 않아 번잡한 말이 이르러 조정을 미혹하게 하고, 벌을 주고 상을 주는 것이 문란하게 될 것이니 어리석고 천한 저는 죄를 얻음이 더욱 깊을 것입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스스로 탄핵하며 삼가 엄한 처벌을 기다립니다. 만약 회답을 주시려거든 빌건대 폐하께 취지를 아뢰어 주시어 특별히 처분하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며 삼가 지휘를 기다립니다.

 

右熹昨具申奏, 乞免帶待制職名, 仍以病衰, 再乞致仕. 今來伏準尙書省箚子, 奉聖旨 辭職謝事, 非朕優賢之意, 不得再有陳請. 熹已望闕謝恩, 恭禀聖訓, 未敢再乞致仕, 以煩朝聽. 所有職名, 仰體聖恩, 本亦不敢更具辭免, 却綠去年集議永阜殯宮, 蓋嘗妄陳管見, 欲乞少緩發引之期, 別擇寧神之地. 今者竊見前日臣僚有曾論此者, 皆已坐罪, 次第行遣, 而熹無狀, 乃獨幸免, 區區愚慮, 實不自安. 若使袛受聖恩, 復忝近列, 竊料非久卽致煩言, 迷誤朝廷, 紊亂刑賞, 愚賤之迹, 獲罪愈深. 謹已具奏自劾, 恭俟嚴誅. 如蒙降出, 乞賜將上取旨, 特賜處分, 則熹不勝千萬幸甚. 謹具狀申尙書省, 伏候鈞旨.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에 장계를 올리고 상서성에 보고한 뒤에 재집에게 차자를 보내 사정을 아뢰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문득 간절한 청이 있어서 우러러 공청을 간범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전에 자주 직명을 사면할 것을 아뢰었으며, 다시 벼슬을 그만두기를 아뢰어 주도록 보고하였는데 근래에 상서성 차비로 내려왔던 예지를 살펴보니 어진 이를 우대하는 뜻을 보이시어 다시 이르는 청을 막으시니 은혜로운 지휘가 크고 두터우며, 관직을 주신 것이 전례를 넘어섭니다. 제가 비록 지극히 어리석지만 어찌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늙어서 벼슬을 그만두는 글은 감히 거듭 아뢰지 못하고, 직을 제수한 은혜에 배수할 것을 헤아렸습니다. 다만 근래에 찬능에 대하여 일찍이 망령된 논의가 있었는데 지금 앞뒤로 함께 이러한 설을 말했던 사람들은 모두 죄를 받고 견책을 당했으나 저는 유독 법망을 벗어나 다시 총애와 영애를 무릅쓰니 가만히 생각하건대 공론에서 마침내 용납해 주지 않아서 다른 날 결단코 면함을 바라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배명의 뒤에 번잡한 말이 이르게 된다면 폐하와 조정으로 하여금 벌을 주고 상을 주는 중도를 잃어버리게 할 뿐만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제가 또한 나아가고 물러나는 의리에 어긋나니 굽어보고 우러러 보아도 몸 둘 바를 모르겠으며, 스스로 용납할 여지가 없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스스로 탄핵하고 조정에 보고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여실히 가련한 생각을 더하시어 개진해 주시고 전례에 비추어 시행하신다면 거의 여론에 맞을 것입니다. 저는 천만 다행이고 간절히 바라는 지극함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熹輒有愚悃, 仰干公聽: 熹昨者累奏辭免職名, 再奏陳乞致仕, 近準省箚批降睿旨, 示以優賢之意, 杜其再至之請, 恩指隆厚, 假借超踰. 熹雖至愚, 豈不知感? 告老之牘, 未敢重陳, 除職之恩, 亦擬拜受. 但以頃於攢陵嘗有妄議, 今見前後同爲此說者, 皆已坐罪行遣, 而熹獨漏網, 更冒寵榮, 竊料公論終不見容, 異日決難幸免. 萬一拜命之後, 卽致煩言, 則不唯使聖朝失刑賞之中, 而區區賤迹亦乖進退之義, 俯仰踧踖, 無地自容. 謹已具奏自劾, 及申朝廷去訖. 欲望某官曲加憐念, 特賜開陳, 照例施行, 庶愜輿議. 熹不勝千萬祈懇之至.

 

대제의 직명을 거두어주시기를 아뢰는 장 6 乞追還待制職名奏狀六

 

해제이 글은 경원 1(을묘, 1195, 66)대제의 직명과 현재의 소임을 모두 거둬들이고 스스로 탄핵한 점을 받아들여 시골 궁관으로 파견하여 여생을 마칠 수 있게 해 달라고 장계를 올렸다.

 

저는 일전에 주장을 갖추어 산릉에 대하여 함부로 논의한 것을 스스로 탄핵하면서 가지고 있던 과거의 직책을 사면해 달라고 아뢰었습니다. 지금 삼가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성지를 받들었습니다.“주희가 스스로 탄핵한 것은 죄를 기다릴 만한 것이 없으며, 나머지 사항은 내렸던 지휘에 의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주 천위를 모독하여 오래도록 엄한 견책을 기다렸는데 다시 관대하게 용서해 주심을 입으니 감격해서 눈물이 흐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제가 작년에 외람되게 성은을 입었을 때부터 근 열에 발탁하여 두고서 폐하를 모시고 경연을 하게 하시니 어리석으며 식견이 좁고 품계가 낮으며 사람들의 신임조차 없어서 4, 5 차례 간절히 사양했지만 명을 받지 못하고 마침내 감히 강연하는 직책을 사양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가지고 있는 직명은 크게 뛰어넘는 것이니 지금 만약 함부로 받는다면 앞으로 혹 파면이 있어 도리어 반드시 거두어들일 것이고 어지러움을 초래할 것이기에 마침내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저로 하여금 원 관 구직 설서로 고쳐서 충당해 주십시오. 아뢰었던 것은 지극히 상세하게 갖추었습니다. 갑자기 폐하의 편지를 받으니 고집스레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과 마음으로 맹세하건대 가지고 있는 직명은 단지 갑자기 받아 임시로 가지고 입궐하여 시강을 쫓는 품계가 되었으니 다른 날 만약 강관을 파면한다면 이 직책은 결단코 마땅히 거두어들여서 거의 지금 힘써 사양할 수 없는 죄를 다소 대신해야 합니다. 그 뒤에 아니나 다를까 늙고 병들어 두렵고 고통스러워 들어가 강론할 수 없었는데 여실히 불쌍히 여겨 주시고 거듭 친필을 내리시어 저를 궁관에 제수하셨습니다. 배명하였는데 은혜로운 뜻을 입어 직에 나아가 군을 맡으라고 하시니 저는 감당할 수 없어서 삼가 앞에서 사적으로 맹세한 말과 같이 사면장을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비록 다행히 뒤의 명은 철회되었지만 오히려 옛날 관직 환장각대제는 거둬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이 뒤로부터 무릇 네 번 주장을 갖추어 힘써 앞의 간절한 청을 폈지만 모두 허락을 입지 못했습니다. 대개 저의 본의는 다만 강관을 파면하였으니 감히 다시 시종의 직명을 가지지 않는 것일 뿐이지만 그 사이에 세 차례 장계로 아뢴 것은 다른 일로 인하여 앞의 말을 잊어버렸으니 이것이 자주 폐하의 총명함을 모독하고 일찍이 족히 하늘의 뜻을 조금도 되돌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비로소 앞날의 잘못을 깨달아 감히 다시 다른 말을 두지 않고 문득 죽음을 무릅쓰니 다시 이렇게 은혜를 바랍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폐하의 명철하심으로 저의 정성을 살펴 주시고 특별히 예지를 내려 제가 작년에 상서성에 보고한 것과 뒤에 한두 차례 사면을 아뢰었던 장계를 살피시어 조속히 시행하고 저로 하여금 본관으로써 거듭 향화를 받들게 하여 시골에 숨어서 남은 해를 마치게 한다면 저는 천만 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폐하의 위엄을 모독하였으니 하늘에 바라고 명을 기다리는 절실함과 두려움의 지극함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칙지를 기다립니다.

 

臣昨具奏, 自劾擅議山陵, 陳乞免帶舊職. 今者伏準尙書省箚子, 恭奉聖旨 朱熹自劾, 無罪可待, 餘依已降指揮者. 頻瀆天威, 久須嚴譴, 復蒙寬宥, 感極涕雰. 伏念臣自去歲誤蒙聖恩, 擢寘近列, 使侍講筵, 卽以迂疏寡陋資淺望輕懇辭四五 而不獲命, 遂已不敢復辭講職. 只慮所帶職名大爲超蠟, 今若冒受, 則將來或有罷免, 却須回納, 又致紛紜, 遂具狀申省, 乞賜敷奏, 令臣且以元官舊職改充說書. 其所陳說, 極爲詳備. 尋以宸翰下臨, 不容固避. 然而口與心誓, 所有職名只是暫受權帶, 以爲入從之階, 異時若罷講官, 此職決當回納, 庶以少贖今日不能力辭之罪. 其後果以老病怯寒, 不能立講, 曲蒙矜憫, 重賜親筆, 除臣宮觀. 旣已拜命, 又被恩旨, 進職與都, 則臣不敢當, 而亟如向來私誓之言, 具奏辭免. 雖幸追寢後命, 而猶未鍵舊職. 自是之後, 凡四具奏, 力申前懇, 率皆不蒙開允. 蓋臣本意止爲已罷講官, 不敢復帶侍從職名, 而於其間三次奏狀, 乃因它事, 忘其前語, 此其所以屢瀆聖聰 而曾不足以少回天意者也. 於今始覺前日之謬, 不敢再有他說, 輒冒萬死, 復此祈恩. 伏惟聖明洞鑒誠悃, 特降睿旨, 照臣去年申省及後來第一第二次辭免奏狀, 早賜施行, 使臣得以本官仍奉香火, 屛伏田畝, 以終餘年, 則臣不勝千萬大幸. 干冒宸嚴, 無任祈天俟命激切屛營之至. 伏候敕旨.

 

(첩황) 제가 이공회가 말했던 것을 듣건대제가 작년에 처음 제수되었을 때 주장과 자주색 의복을 하사받는 총애를 입어 은혜를 만났으며 외람되게 봉증과 음보의 은혜를 받았으며, 그 뒤에 이부에서 마감을 취합하는 것을 받들어 하나의 관직을 옮겼으니 모두 시종의 은수를 받은 실상이 됩니다. 지금 직명에 대해서 이에 회피하고자 한다면 거짓을 짓는 협의가 없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 말을 은미해 보니 극히 이치가 있어 실제로 그 때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여기에 이르러 어리석으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감히 문득 거두어 주시길 바라지 않으니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 아울러 처분을 내려 주시고 토론하여 바르게 고쳐 주신다면 저는 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貼黃)臣聞或者謂臣去歲初除之日, 已受疏封錫服之寵, 該遇饗恩, 又叨封贈蔭補之澤, 其後又承吏部取會磨勘, 得轉一官, 皆爲已受侍從恩數之實. 今於職名乃欲回避, 不無作僞之嫌. 臣味其言, 極爲有理, 實於彼時思慮不及, 致此冒昧, 追悔無由. 今又不敢輒乞回納, 伏望聖慈幷賜處分, 討論改正, 臣不勝幸甚.

 

지나치게 이미 받았던 종관의 은수를 바르게 고쳐주시길 비는 장계 乞改正已受過從官恩數狀

 

해제이 글은 경원 2(병진, 1196, 67)대제의 직명이 철회되고 예전대로 비각수찬의 소임을 수행하게 되었지만 현재 지나친 종관의 은수를 바르게 고쳐 달라고 장계를 올렸다.

 

저는 일전에 주장을 갖추어 아뢰어 대제의 직명을 면해주시길 빌었는데 성은을 입어 특별히 윤허를 내리시어 예전대로 비각수찬과 제거남경홍경궁으로 충당되었습니다. 이 달 6일에 폐하를 우러러 공손히 받고 폐하께 아뢰어 감사하였습니다. 가만히 연유해 보건대 원래의 주장 안에 첩황에서 말한 것이 있는데 일전에 소봉 사복의 은총과 봉증 음보의 은택을 입었고 마감전관을 조사하여 등용한 것은 모두 받았던 종관의 은수가 되니 빌건대 처분을 내려 주시고 토론하여 바르게 고쳐 주십시오. 지금 회답을 주지 않으시니 저의 사적인 의리에 있어서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바입니다. 그러나 감히 자주 봉장을 갖추어 위로 천청을 모독하지 못하겠으며 단지 빌건대 조정에서 다시 불쌍히 여겨 주시어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담당부서에 거듭 조칙을 내려 제가 아뢰었던 다섯 항목의 사리를 조례에 따라 조사하고 각각 하나씩 토론해서 모두 바르게 고쳐 주시어 어리석은 직분을 편안하게 하고 떳떳한 법을 문란하게 하는 것을 면하게 한다면 저는 커다란 바람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고 삼가 균지를 기다립니다.

 

右熹昨具狀奏, 乞免待制職名, 已蒙聖恩特賜開允, 仍舊充秘閣修撰提擧南京鴻慶宮. 已於今月六日望闕袛受及奉表稱謝訖. 竊緣元奏內有貼黃稱, 於昨來已冒疏封錫服之寵, 封贈蔭補之澤, 及用檢擧磨勘轉官, 皆爲已受從官恩數, 乞賜處分, 討論改正. 今來未奉進止, 在熹私義, 自所未安. 然又不敢頻具封章, 上瀆天聽, 只乞朝廷更賜矜憐, 特爲敷奏, 申勑攸司, 將熹所陳五項事理檢照條例, 逐一討論, 悉行改正, 庶安愚分, 免紊彝章, 則熹不勝大願. 謹具狀申尙書省, 伏候鈞旨.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경원 2(병진, 1196, 67)에 재집에게 보낸 차자이다. 앞의 장계대로 지나친 은수가 바로 잡히도록 아뢰어 달라고 재집에게 당부하고 있다.

 

 

저는 다시 간절한 청이 있어 감히 공청을 모독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전에 가까이에서 모시는 직책을 사면했던 것은 성은을 입어 특별히 청했던 것을 좇아 주셨으니 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원래 주장의 첩황 내에서 아뢰었던 소봉, 석복, 마감, 봉증, 음보의 다섯 가지 항목은 아울러 바르게 고쳐 주시기를 빌었지만 아직 시행을 입지 못했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에 심히 스스로 편안하지 않습니다. 지금 별도로 편지를 갖추어 아뢰지 못하고 문득 공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바라건대 폐하께 지휘를 얻어서 특별히 처분을 내리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熹復有誠懇, 敢瀆公聽 熹昨來辭免近職, 已荷聖恩特從所請, 不勝幸甚. 但元奏貼黃內所陳疏封錫服磨勘封贈蔭補五項, 欲乞幷行改正, 未蒙施行. 在熹愚計, 深不自安. 今來不敢別具奏牘, 輒具公狀申尙書省, 欲乞將上取旨, 特降處分, 則熹不勝千萬幸甚.

 

건령부에 아뢰어서 벼슬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비는 장계. 申建寧府乞保明致仕狀

해제이 글은 경원 4(무오, 1198, 69)나이 들어 시골에 돌아가 여생을 마칠 수 있도록 건령부에 아뢰어 달라고 장계를 올렸다.

 

 

저는 나이가 70세나 되어 병들고 몸이 쇠약해졌는데도 오히려 비각수찬을 더해 주시니 의리상 마땅히 녹을 거둬들여야 합니다. 삼가 현재 외직으로 좌천되었기 때문에 감히 봉장을 바치지 못하고 조목에 의거하여 기록을 갖추어서 아뢰길 비니 저로 하여금 맡고 있는 본관의 벼슬을 그만두게 하신다면 거의 시골에서 편안함을 얻어 남은 생을 다할 것입니다. 삼가 대지를 기다립니다.

 

熹年滿七十, 疾病衰殘, 尙忝階官, 義當納祿. 伏緣見係謫籍, 不敢冒貢封章, 乞依條備錄申奏, 令熹守本官致仕, 庶得偸安田里, 以盡餘年. 伏候臺旨.

 

재집에게 주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경원 4(무오, 1198, 69)앞서의 장계대로 재집에게 차자를 보내 아뢰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문득 사적인 간절한 청이 있어서 우러러 공청을 넘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삼가 올해 나이가 70이 되어 병들고 몸이 쇠약해졌는데도 오히려 계관을 더럽히니 의리상 마땅히 녹을 거둬들여야 합니다. 현재 외직으로 좌천되었기 때문에 감히 일찍이 봉장을 바치지 못하고 마침내 본관 건령부를 경유해서 주장을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본부는 저의 잘못 때문에 감히 조목에 의거하여 아뢰지 못해서 기록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였습니다. 바라건대 불쌍히 생각하시어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저로 하여금 맡고 있는 본관의 벼슬을 그만두게 해서 거의 고향에서 편안히 쉬면서 여생을 다하게 한다면 저는 천만 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위엄을 모독하였으니 삼가 대단히 두렵습니다.

 

熹輒有私懇, 仰干公聽: 熹伏爲今歲年滿七十, 疾病衰殘, 尙忝階官, 義當納祿. 又以見係謫籍, 不敢嘗貢封章, 遂經本貫建寧俯具狀陳乞. 本府以熹罪戾, 不敢依絛保奏, 已爲備錄申尙書省去訖. 欲望鈞慈矜念, 特與敷奏, 令熹守本官致仕, 庶偸安故里, 待盡餘年, 則熹不勝千萬幸甚. 冒瀆威嚴, 伏深戰栗.

 

치사를 바라는 장 乞致仕狀

해제이 글은 경원 5(기미, 1199, 70)나이를 감안하여 현재 맡고 있는 소임을 거둬들여 여생을 편안히 마치도록 비는장계를 올렸다.

 

 

저는 일전에 나이가 70이 되어 질병으로 쇠약해졌는데도 오히려 계관을 더해 주시니 의리상 녹을 거둬들이는 것이 마땅하며, 현재 외직으로 좌천되었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봉장을 바치지 못하고 마침내 본관의 건령부를 경유하여 장계를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본부는 저의 잘못 때문에 감히 조목에 의거하여 아뢰지 못해서 기록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였습니다. 근래에 갑자기 살펴보건대 신료들은 70세인 사대부들이 물러남을 알지 못하는 폐단을 논의하여 열거하였는데 성지를 얻어 널리 알리어 시행했습니다. 삼가 스스로 생각하건대 비록 다행히 일전에 청이 있었지만 지금 여러 달 동안 회답을 듣지 못했으니 가만히 염려하건대 본부에서 아뢰었던 것이 도중에 혹 유실되었다면 저의 조그만 정성이 위로 도달할 수 없게 되고, 장차 성제를 어그러뜨리고 명교를 간범하는 죄를 얻을 것이니 반복해서 생각해도 두려움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으며,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뛰어넘어 하소연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조정에서 불쌍히 여기시어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제가 빌었던 것에 의거하여 맡고 있는 본관의 벼슬을 그만두게 하고 거의 천한 저의 종적을 편안히 하여 남은 해를 다하게 하고 외롭고 어리석은 저를 다시 번거롭게 관리들이 논의하는 것을 면하게 한다면 저는 천만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고 삼가 균지를 기다립니다.

 

右熹昨爲年滿七十, 疾病衰殘, 尙忝階官, 義當納祿, 又以見係謫籍, 不敢冒貢封章, 遂經本貫健寧腑具狀陳乞. 本府以熹罪戾, 不敢依條保奏, 已爲備錄申尙書省去訖. 近者忽覩臣僚論列士大夫老不知退之弊, 已得聖旨, 播告施行. 因伏自念雖幸日前已嘗有請, 然今累月, 未聞可報, 竊慮本府所申在路或有遺失, 致熹寸誠不能上達, 且將重得違戾聖制干犯名敎之罪, 反復思惟, 不勝恐懼, 不免冒昧驀越披訴. 慾望朝廷矜憐, 特賜敷奏, 依熹所乞, 令守本官致仕, 庶安賤迹, 以盡餘年, 免以孤愚再煩吏議, 則熹不勝千萬聿甚. 謹具狀申尙書省, 伏候鈞旨.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경원 5(기미, 1199, 70)에 앞선 치사의 장계를 재집에게 차자를 보내 사정을 아뢰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문득 사적인 간절한 청이 있어서 우러러 공청(公聽)을 넘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전에 나이가 70이 되어 질병의 쇠약해졌는데도 오히려 계관을 더하시니 의리상 녹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마땅하며 또 현재 외직으로 좌천되었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봉장을 올릴 수 없어서 마침내 본관의 건령부를 경유하여 장계를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본부는 저의 잘못 때문에 감히 조목에 의거하여 아뢰지 못해서 기록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였습니다. 지금 날이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처분을 받들지 못했습니다. 신료들의 건의를 듣건대 벼슬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조례에 정해진 기한을 엄격하게 하였는데 성지를 받고 널리 아뢰어 시행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원래의 장계가 머무르고 유실되어 저로 하여금 거듭 성제를 어그러뜨리고 명교를 간범하는 죄를 얻게 한다면 걱정과 두려움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여 다시 공장을 갖추어 마침내 조정에 아뢰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긍휼히 생각하시어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저로 하여금 맡고 있는 본관의 벼슬을 그만두게 하여 거의 고향에서 편안함을 얻어 남은 삶을 다하고 외로운 종적인 제가 다시 번거롭게 관리들이 의론하는 것을 면하게 하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임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의 위엄을 모독하였으니 삼가 깊이 두려워 떨립니다.

 

熹輒有私懇, 仰干公聽 熹昨爲年滿七十, 疾病衰殘, 尙忝階官, 義當納祿, 又以見係謫籍, 不敢冒貢封章, 遂經本貫建寧府具狀陳乞. 本府以熹罪戾, 不敢依條保奏, 已爲備錄申尙書省去訖. 今來日久, 未奉進止. 又聞臣僚建議, 申嚴致仕條限, 已得聖旨, 播告施行. 竊慮元狀稽留遺墜, 使熹重得違戾聖制干犯名敎之罪, 不勝憂懼, 不免再具公狀, 徑申朝廷. 欲望鈞慈矜念, 特與敷奏, 令熹守本官致仕, 庶得偸安故里, 待盡餘年, 免以孤蹤再煩吏議, 則熹不勝千萬幸甚. 冒瀆威嚴, 伏深戰粟.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경원 5(기미, 1199, 70)에 재집에게 보낸 차자이다. 나이 70에 치사한다는 󰡔예기󰡕의 문장을 인용하여 더 이상 관직에 머무를 수 없음을 아뢰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저는 문득 간절한 청이 있어서 다시 숭청(崇聽)을 넘보게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고 죄상과 외로운 종적인 제가 비로소 태어난 해는 연호가 건염이고 해는 경술 년이며 과거에 응시하여 벼슬길에 들어갔으니 출신이 분명합니다. 관직을 미루어 옮겨서 지금에 이르러 마침 나이가 70세이니 󰡔예경󰡕을 살펴보고서 마땅히 벼슬을 그만두기를 빌었습니다. 뒤돌아 생각하건대 명분이 외직으로 좌천되어 있으니 깊이 생각하여도 스스로 아뢰는 것이 합당하지 않으며, 가만히 조례를 살펴보건대 이에 원래 해침이 없음을 알고서 마침내 작년 겨울에 주군에 미리 간청하여 공장으로 아뢰어 금년 정월에 휴가를 마친 날 기록을 갖추어 아뢰길 빌었습니다. 그러나 여리에서는 멋대로 논의하고 관리들은 지나치게 의심하면서 모두 생각하길 죄 지은 사람들은 치사할 것이 없는데 부당하게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스스로 편안함을 구하고 시간을 지연하여 머무르는 것이라고 하니 조목에 의하여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2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상서성에 장계 한 통을 아뢸 수 있었고 집안이 가난하였기 때문에 사람을 보낼 힘이 없어 3월 초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기발하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보를 살펴보니 대신들이 장소에 벼슬을 쉬는 옛 법이 엄격하게 있음을 알고서 지휘를 얻어 널리 포고하여 시행했습니다. 바야흐로 다행히 청했던 것은 앞에서 간절히 아뢰었으며, 사적으로 기록한 나이와 관에서 기록한 나이는 원래 증감이 없지만 사모하며 명을 기다린 것이 지금 50일인데 도리어 바야흐로 이 장계를 3월 말에 탐문해보니 오히려 아직 보고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도중에 시간을 지체하여 어그러뜨려 혹 이것이 별도로 숨겨짐이 있어 미천한 저의 정성이 도중에 위로 도달하지 못한다면 원래 범했던 간사하고 악한 큰 죄 외에 장차 다시 성제를 어그러뜨리고 명교를 간범하는 잘못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늙은 와중에 어찌 꺾임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장계를 갖추어 조정에 곧바로 아뢰고 공차를 갖추어 보고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번잡한 말단의 일은 들어주실 방도가 없을 것 같아 감히 다시 자세하게 아룁니다. 위엄을 간범하게 되었으니 삼가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熹輒有危懇, 再干崇聽 熹草野微命, 罪戾孤蹤, 始生之年, 號紀建炎, 歲在庚戌, 應擧人仕, 脚色分明. 推移至今, 適滿七十足歲, 考之禮經, 合乞致仕. 顧念名在謫籍, 深慮不合自陳, 因竊詢考條貫, 乃知元無妨礙, 遂於去冬預懇州郡投納公狀, 乞作今年正月開假之日, 備錄申奏. 而閭里橫議, 官吏過疑, 咸謂負罪之人無事可致, 不當冒眛自求優逸, 遷延稽故, 不爲依條保奏. 至二月半間, 方得申尙書省狀一紙, 又以私家貧乏, 無力遣人, 至三月初方得附發前去. 尋覩邸報, 知有臺臣章疏申嚴休致舊法, 已得指揮, 播告施行. 方幸所請前已控陳, 私歲官年, 元無增減, 然而引頸俟命, 今已五旬, 却方探問得此狀三月末間尙未申到. 竊慮在路稽違, 或是別有沈匿, 致使微誠無路上達, 則於元犯姦惡大罪之外, 且將更取違戾聖制干犯名敎之誅. 枯朽之餘, 豈堪摧拉? 謹已具狀徑申覩廷, 及具公箚申禀去訖. 恐此瑣末, 無由上徹鈞聽, 故敢復此縷縷敷陳. 冒犯威嚴, 伏祈鑒照.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경원 5(기미, 1199, 70)에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이다. 치사의 명에 대하여 감사하고 태평성대의 세월이 이어지길 간절히 소원하였다.

 

 

삼가 한여름에 날씨가 점점 더워집니다. 조정은 존엄하고, 정사는 한가하고 즐거우며, 사람과 신이 서로 의지하니 지내시는데 건강하십니까? 죄 많고 외로운 저의 종적은 이름이 위학의 적에 올랐는데 당신의 크나큰 도움으로 평안함을 누리게 되었으니, 보잘 것 없는 제 마음인들 어찌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벼슬을 그만두는 기한에 따르면 벼슬을 그만두는 것이 마땅하며, 특별히 개진해 주심을 입어 윤허를 주시어 위로 폐하의 명철하심으로 늙은이를 우대하고 옛 사람을 생각하고, 때를 씻어 주고 옥에 티를 숨겨주는 아름다운 뜻을 밝히고, 아래로 노쇠하고 버려진 사람들로 하여금 물러나 쉬는 호령을 주시어 관리가 될 수 없게 하는 문서를 제거하고 출신하여 폐하를 섬기고 한평생 수고하는 평소의 마음을 다소 위로하신다면 그것은 크게 주신 것이 되고 넓게 권려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저 한사람 때문에 시행한 것이 아닙니다. 재집의 편지를 더해 주심에 이르러서는 편지를 칙서로 알리고, 다시 여실히 보전하는 뜻을 깨우쳐 주시니 우러러 보건대 홍균대화의 가운데 능히 작은 행실이라도 부지런히 힘쓰는 염려가 지극히 깊고 멀지만 제가 유독 다행히 이러한 주심을 입을 수 있어서 편하고 길한 것을 볼 수 있었으니 감격하는 사사로움은 말로 능히 깨우칠 수 없는 것이 있어서 예는 공계를 닦아 갖추는 것이 마땅하니 간략하게 만에 하나라도 펼 것입니다. 그러나 성제에 위엄이 있어서 감히 간하여 문란하게 할 수 없으니 삼가 짧은 차자를 갖추어 다소 정성을 보였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특별히 살펴 주십시오. 황합을 바라볼 수 있지만 달려 나아가 절함을 기약하지 못하니 절실히 바라건대 때의 마땅함에 순응하고 백성의 바람을 좇아 더욱 존귀함을 보전해서 태평성대의 기초를 영원히 하시길 빕니다. 저의 마음은 바라보고 힘쓰는 기원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熹竊以孟夏漸熱, 伏惟某官廊廟尊嚴, 政幾暇豫, 神人依賴, 鈞候起居萬福. 熹罪戾孤蹤, 名在謫籍, 化鈞無外, 得以偸安, 區區鄙懷, 豈不知感玆綠年及, 禮合告休, 又蒙某官特爲開陳, 卽賜兪允, 所以上昭聖明優老念舊洗垢匿瑕之美意, 下使衰朽捐棄之人得託退休之號, 除廢錮之籍而少慰其出身事主一世勤苦之夙心, 則其爲賜也大矣, 其爲勸也廣矣. 然猶非爲熹一人設也. 至於加賜鈞翰, 封示敕書, 且復垂諭所以委曲保全之意, 則又仰見洪鈞大化之中, 克勤小物之慮至深至遠, 而熹獨幸得被此賜之爲安且吉也. 感激之私, 言有不能喩者, 禮當修具公啓, 略布萬一. 而聖制有嚴, 不敢干紊, 謹具短箚, 少見下誠. 伏惟鈞慈特垂照察. 黃閤在望, 趨拜無期, 切乞順時之宜, 從民之望, 益保崇重, 以永太平之基. 熹下情不勝瞻望拳拳之祝.

우리말 주자대전 24

 

 

편지(시사와 출처) (時事出處)

 

 

 

종호부(鍾戶部)에게 보내는 경총제전의 부족분을 논한 편지 與鍾戶部論虧欠經總制錢書

 

해제호부랑관인 종세명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경총제전을 논하고 있다.

 

21일 모관 모위 주희는 삼가 동쪽을 향해 두 번 절하고서, 시랑우사(侍郞右司)에게 글을 보냅니다. 저는 옛날 궁궐에서 당신[執事]을 뵙고서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중간에 당신께서 민부를 다스리려 오셨을 때, 제가 당시에 초야에 있으면서 드나들었던 관계로 비록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또한 장소경(章少卿) 어르신에게 보낸 편지로, 몇 글자의 기록을 당신께 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시 감히 아뢰지도 못했고, 과연 전달되어서 읽어보셨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습니다. 요즘 동안(同安)에서 문서와 흙먼지 속에 엎드려 있는 와중에 집사께서 다시 천자를 위해 파촉 땅 만리 밖으로 나가셔서, 관에 누적되어 부담이 되고 있는 민전을 없애준 것이 수백만을 헤아린다고 들었습니다. 정해진 기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오자 천자께서 가상하게 여기시고 (당신께서) 의론하고 주청한 것을 사방에 반포하시고 당신을 발탁하셔서 상서성의 낭관으로 삼고 624사를 다스리게 하였으니, 총애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또 당신께서는 군주와 백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의론에 능통하시다는 이유로 당신으로 하여금 호조를 겸직해서 재용을 고르게 절약하고, 백성을 편안케하는 것을 직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벼슬을 제수한 명목이 유포되자 사방의 뜻있는 자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당신께서는 반드시 촉 땅에서 베풀었던 것을 이 백성들에게도 은혜롭게 베풀어서, 부족한 재정을 느슨하게 (경감시켜) 줌으로써 천자의 인후하고 청정한 정사에 보탬이 되리라고 여겼습니다. 지금 당신이 실무를 맡은 지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사방에서 들리는 것이 없으니 제가 잘나지는 못했지만, 속에 품은 생각이 있어 감히 당신께 청합니다.

二月一日, 具位朱熹謹東向再拜, 致書侍郞右司執事: 昨得見執事於省戶下, 忽忽五年矣. 中間執事來使閩部, 是時方退伏田里, 俯仰出入之故, 雖不得瞻望履舃之餘光, 亦嘗以章少卿所致書, 輒爲數字之記以通於左右. 是後乃不復敢有所關白, 不自知其果能達視聽否也. 比來同安, 跧伏簿書塵土中, 乃聞執事復爲天子出使巴蜀萬里之外, 弛去逋負緡錢之在官者以數百巨萬計. 弭節來還, 天子嘉之, 下所議奏於四方, 擢執事置尙書省爲郞, 以計六曹二十四司之治, 可謂寵(2-1007)且榮矣. 又以執事通於君民兩足之義, 俾執事攝貳於版曹, 務以均節財用便安元元爲職. 除目流聞, 四方幽隱無不悅喜, 以爲執事必能以所嘗施於者惠綬此民, 寬其財力之所不足, 以助天子仁厚淸靜之政也. 今執事之涖事數月矣. 四方之聽未有所聞也, 不佞, 竊有所懷, 敢以請於下執事.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천자께서 백성들이 가난해서 자신들의 직분을 감당치 못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시고 자주 관대한 조서를 내려서, 백성들의 상업세인두세 및 부역을 회피하려는 대납금 등을 없애주시고, 또 조칙을 내려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면서 자투리를 모아 일정액을 만드는 짓을 하지 못하게 했고, 또 조칙을 내려 당신을 촉땅에 파견해서 체납 세금의 부담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없애도록 했습니다. 어리석은 제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모두 백성들이 납부하고 관에서 거두어야 하는 것으로서, 명목도 있고 적절한 한도도 있는 세금들인데 오히려 모두를 탕감해주시면서 다시 계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또 어부의 금전을 내어 유사들을 상주셨으니 이것은 천자가 깊이 백성을 사랑하셔서 이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항차 백성들이 응당 납부할 것도 아니고, 관에서 거두어야 할 것도 아니면서 한도도 없고 명목도 없는 누락된 경총제전과 같은 것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저는 이 때문에 위로 한 마디 진언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천자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이와 같으니, 아침에 올린 주장을 저녁이면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경 이하의 조정 관료들은 일처리에 망설이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다 발휘해서 천자의 총명하심을 보좌하고 은혜를 넓히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날 호부를 맡았던 자들은 또 날인과 내용을 달리하는 공문을 만들어 우편으로 급하게 내려 보내 제형사를 책망하고, 제형사는 주군에 시달하며, 주군은 현에서 조달하느라 돌아가면서 계속되는 시행의 독촉이 별똥별보다도 급합니다.

聞之, 天子憫憐斯民之貧困, 未得其職, 故數下寬大詔書, 弛民市征口算與逃賦役者之布, 又詔稅民毋會其踦贏以就成數, 又詔遣執事使, 弛其逋負, 如前所陳者. 愚竊以爲此皆民所當輸, 官所當得, 制之有藝而取之有名者, 而猶一切蠲除, 不復顧計, 又出御府金錢以償有司, 是天子愛民之深而不以利爲利也明矣. 而况於民所不當輸, 官所不當得, 制之無藝而取之無名, 若所謂虧少經總制錢者乎? 以謂有能開口一言於上, 以天子之愛民如此, 所宜朝奏而暮行也. 而公卿以下共事媕阿, 莫肯自竭盡以助聰明廣恩惠, 前日之爲戶部者, 又爲之變符檄急郵傳, 切責提刑司, 提刑司下之州, 州取辦於縣, 轉以相承, 急於星火.

 

명을 받들어 행하는 통판과 같은 관리는 자신의 포상만 탐하느라 뜻밖의 독촉을 해대면서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이 돈은 이미 정식 세금의 일상적인 수입도 아닌데 백성들에게는 체납되어 부담이 되고, 관리들이 몰려와 도적질해가는 것이 되었으며, 한 해에 우연히 많은 걷힌 액수를 정액으로 제정해서, 책임지우고 포상합니다 (또 자투리를 모아 정식 액수를 만들고 이것을 모두 경총제전에 포함을 시키는 경우에는 올해의 하세와 추세가 방면되었기 때문에 금년도의 부족분이 반드시 많아지리라는 것 역시 알아야만 합니다.) 호부에서부터 네 단계를 거쳐 현에 이르는 것이 마치 천 길이나 되는 비탈길을 굴러 내려오는 것처럼 해서 바닥에 이르러서는 그 세력이 다하고 마는 것과 같으니 현에서 어떻게 (경총제전을) 모으겠습니까? 교묘하게 과목을 만들어 백성들에게서 모으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의론하는 자들은 반드시 조정에서 관리들에게 보발(補發)토록 독책하는 것이지 백성들에게서 징수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이것은 종을 훔쳐가면서 자신의 귀를 가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가리운 바가 있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것만을 의지해서 이론을 만들어내어 조정을 가득메우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날 주현에서 이것을 명목으로 그 백성들에게서 경총제전을 모으는 곳이 무려 열에 일곱 여덟 곳이나 됩니다. 요행이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은 곳이 있으면 주에서 날마다 혹은 달마다 부절을 가진 사람을 보내와 벼슬아치를 붙잡아 가고, 매달아 치죄하고 붙잡고서 때림으로써 기필코 그 효과를 보려고 합니다. 현의 서리들이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날마다 서로 모여 그 관의 우두머리에게 과목을 만들어 일을 처리하라고 꼬드기고 불행히 그것을 시행하게 되면 관에서 하나를 얻으면 서리들은 둘 셋을 얻습니다. 이렇게 간사하게 일한다면 무슨 명목인들 없겠습니까? 이것은 의론하는 자들이 말하는 관리들을 독촉한다는 것이 바로 그 바탕이 되는 것이며, 거듭 천자가 아끼는 백성들을 곤궁에 빠트리는 것입니다. 무릇 공공의 명목으로 백성들을 침탈하면서도 또 양양하게 스스로 말하기를 이것은 조정이 얻고자 하는 것이지 우리 관서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가 어떤 것인지를 어찌 알겠습니까? 백성들은 또 무리를 이루어 원멍하면서 말하기를 조정이 우리를 가엾이 여기지를 않을 뿐이다라고 합니다. ! 이것이 어찌 백성들이 응당 납부하고 관에서 응당 얻어야 하는 것이란 말입니까? 한도도 없고 명목도 없는 것일 뿐입니다.

奉行之官, 通判事, 利於賞典, 意外督趣, 無所不至. 此錢旣非經賦常入, 爲民所逋負, 官吏所侵盜, 而以一歲偶多之數制爲定額, 責使償之, (又如合零就整, 全是經總制錢, 今年二稅放免, 今年虧欠必多, 亦不可不知也.) 自戶部四折而至於縣, 如轉圜於千仞之(2-1008), 至其址而其勢窮矣, 縣將何取之? 不過巧爲科目以取之於民耳. 而議者必且以爲朝廷督責官吏補發, 非有與於民也, 此又與盜鍾掩耳之見無異. 蓋其心非有所蔽而不知, 籍此爲說, 以詮叢朝聽耳. 計今天下州縣以此爲號而率取其民者, 無慮什之七八, 幸其猶有未至於此, 則州日月使人持符來逮吏, 繫治撻擊, 以必得爲效. 縣吏不勝其苦, 日夜相與撼其長官以科率事, 不幸行之, 則官得其一, 吏已得其二三, 並綠爲姦, 何所不有? 是則議者所謂督責官吏者, 乃所以深爲之地而重困天子所甚愛之民也. 夫吏依公以侵民, 又陽自解曰: 此朝廷所欲得, 非我曹過也. 夫愚民安知其所以然者何哉? 亦相聚而怨曰: 朝廷不卹我等耳. 鳴呼此豈民之所當輸, 官之所當得者耶? 其制之無藝, 取之無名甚矣.

 

천자께서 백성을 이처럼 아끼시는데 저 (백성들이) 납부하고 (관에서) 얻어야 하는 것으로 한도도 있고 명목도 있는 것들은 오히려 모두 내버리면서도 아까운 줄을 모르는데 하물며 이런 것이겠습니까? 오직 (내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말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 말을 듣고 따라주실 것인데도 유독 말을 아끼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은 정사를 담당한 신하들이 천자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진실로 능히 깊이 살피시고 속히 말씀하시어서 부족한 경총제전이란 것을 하루아침에 없애 주신다면 주현의 서리들은 말할 근거가 없어지고, 과목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모은다는 의론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굳고 분명하게 약속하시고, 형벌을 가차 없이 적용해서, 감히 과솔로 백성들을 병들게 하는 자들은 백성들에게 스스로 상서성 어사대에 신고하게 만들어 만든다면 과거에 이런 짓을 저질렀던 자들도 용서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위로는 조정의 인후하고 청정한 기풍을 넓히고 아래로는 사방의 백성들의 소망에 부응해서 서남쪽 변방 바깥의 파종(巴賨)공작(邛筰)의 백성들에게만 은혜를 내려주시지 않는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夫以天子之愛民如此, 彼所當輸當得, 有藝而有名者猶一切出捐而無所吝, 况如此者? 惟其未之知耳, 有言焉, 其無不聽且從矣. 而獨愛其言者, 何哉? 是執政任事之臣負天子也. 執事誠能深察而亟言之, 使所謂虧欠經總制錢者一日而罷去, 則州縣之吏無以籍其口, 而科率之議寢矣. 然後堅明約束, 痛加繩治, 敢以科率病民者, 使民得自言尙書省御史臺, 則昔之嘗爲是者, 其罪亦無所容矣. 於以上廣仁厚淸靜之風, 下副四方幽隱之望, 無使西南徼外巴賨邛筰之民夷獨受賜也, (2-1009)豈不休哉豈不休哉

 

저의 종적이 소원하지만 당신께서는 부친과의 교우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한 두 번 뵙고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지금 당신께서 마침 이런 자리에 계셔서 말할만 하기 때문에 진실로 저의 어리석음과 천함을 잊고서 성덕의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 감히 글을 올립니다. 오직 당신께서는 유의해 주십시오. 봄날이 따뜻해져 갑니다. 삼가 도타움과 사랑을 더하셔서 참으로 배수 받기를 기다리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疎遠之跡, 於執事有先君子之好, 而亦嘗得一再見, 辱敎誨焉. 今也執事適在此位, 爲可言者, 誠不自知其愚且賤, 思有以補盛德之萬分, 故敢獻書以聞, 惟執事之留意焉. 方春向溫, 伏惟益厚愛以俟眞拜, 不宣.

 

 

이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與李敎授書

해제주자는 소흥 23(계유: 1153, 24) 5월에 동안현 주부로 임명되어 7월에 임지에 도착하는데, 그의 직책은 현학의 일을 함께 겸직하는 것이었다. 그가 부임하고 얼마 후에 이남(李楠)이저(李樗) 형제의 동생인 이교수가 군학의 교수로 부임해 왔다. 당시에 이교수가 군학의 섬학전을 현에서 조달하고, 현학의 학생들에게는 섬학전을 지급하지 말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주자는 군학이나 현학의 구별없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균등하게 섬학전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래의 [여진재서]이미 학교의 일을 사양했다[已謝學事]”는 기록이 나온다. 주자는 동안현 주부의 임기가 만료된 것이 소흥 26(병자: 1156, 27)이었고, 그 이후로 천주와 동안을 오가며 후임자를 기다리다가 소흥 27(정축: 1157, 28) 10월에 만 4년의 기한이 넘어서 관직을 그만두고 숭안으로 돌아갔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이 두 편지는 이미 주부의 임기가 만료된 병자년에서 정축년 사이에 쓰인 것이다.

 

 

조정이 학관을 일으켜 세워 천하의 선비를 기르면서 주의 선비들은 주에서 배우게 하고 현의 선비들은 현에서 배우게 했던 것은 우러러 위를 섬기고 굽어보아 아래를 기르는 가운데 사적인 편의를 도모하려는 것이지 구별하고 차별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의 운영에 필요한) 재물을 조달해 쓰는 방법, 이른 바 섬학전이란 주현을 통틀어 함께 썼습니다. 지금 당신께서는 제학사(提學司)와 의논하며 말하기를 주에서 학업을 닦는 자는 현관에게서 식량을 얻게 하되 현에서 학업을 닦는 자에게는 주지 말자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조정이 학교를 세워 선비를 기르는 뜻과 재물을 조달해 쓰는 방법이 이렇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잠시 이를 버려두고 개인적으로 말해보겠습니다. 조정이 당신이 사람들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 당신으로 하여금 천주의 선비들을 가르치게 했지만, 애초부터 당신께서 모두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가르치게 했으나 모두 가르치지 못한다고 해서 또한 상관없이 버려두는 것만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당신은 의론하면서 말하기를 현에 그 비용을 떠맡기자고 합니다. 당신은 현에서 어떻게 그 비용을 모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에서는 백성들에게서 모으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 이 백성들의 생활은 곤궁하고, 관리들은 근심하면서 노력함에도 하루조차 공급할 겨를이 없는데, 거기다 다시 이것으로 책임을 지운다면 이것은 가르칠 방법도 없을 뿐 아니라 곧장 저버리겠다는 뜻이 아주 분명합니다. 당신께도 보탬이 되지 않을 터인데 당신은 어찌 이리도 고생스럽게 반드시 시행하려고 해서 이 현의 사람들을 버리려 하십니까? 만일 현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주만 못하다고 한다면 뭇 현에 대해서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제가 관장하고 있는 학교는 송설과 시과에 관한 크고 작은 조목들이 제 스스로도 당신의 문하에 비해 크게 부끄럽지 않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과 생도 사이에 서로 접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속으로 생각해 보면 비록 당신이라 한들 힘써 노력해도 능하지 못한 점조차 있습니다.

竊惟朝廷興建學官, 以養天下之士, 使州之士以學於州, 縣之士以學於縣, 以便其仰事俯育之私, 而非以別異之也. 然其制財用之法, 所謂贍學錢者, 蓋州縣通得用之. 今執事之議於提學司: 業於州者得食於縣官, 而業於縣者無與焉. 觀之, 朝廷立學養士之意與夫制財用之法, 似皆不如此. 今且置此, 而以私言之. 蓋朝廷以執事宜爲人師, 故以執事敎之人爲士者, 執事固不得而盡敎之. 雖使敎, 不能盡, 亦不愈於坐而棄之乎? 今執事之議曰: 使縣之任其費, 執事以爲縣將(2-1010)焉取之? 縣之取之於民者悉矣. 今滋民力困竭, 官吏愁勞, 日不暇給, 而責之以此, 是其不能有以敎而將直棄之明甚. 於執事不爲有補, 執事何苦而必行之, 以棄此縣之人也?如曰縣學所以敎者不能如州, 則者縣者所不能知, 折領學, 其誦說課試大小條科, 自以爲亦無甚愧於執事之門. 而其師生相接之動, 則竊自隱度, 以爲雖執事, 力或有所未能也.

 

생각건대 마땅히 전용할 곳이 있을 것인데 거꾸로 사례에 비추어 깎아버리고는 스스로 노력을 다하지 못하도록 만드니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저는 이미 공장에 갖추어 보고하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당신께 아룁니다. 삼가 조정에서 학교를 세워 선비를 기르는 뜻을 생각하시고, 재정을 운용하는 방법을 고찰하시며, 백성들의 고통과 폐단을 깊이 유념하셔서 제가 관장하는 곳을 깊이 살피셔서 다른 주현과 다른 점이 있으면 줄 수 없는 것 가운데서 뽑아 (섬학전을) 주신다면 당신의 뜻이 또 있는 것이, 오로지 자신이 이기는 것[己勝]만을 추구하려는 데 있지 않음을 알 것이요, 학업에 능한 자를 권면하기에도 충분하고, 능하지 못한 자들은 더욱 애써야 할 줄을 알 것입니다. 또 하물며 사리와 법도에 비추어 (섬학전을) 줄만한 자들이야 더 말하겠습니까? 위엄을 넘보게 되어 황공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謂宜得在假借之域, 反以例削之, 使不得自盡, 此何說哉? 已具公狀申禀, 而以此私於左右. 伏惟思究朝廷立學養土之意, 而攷其制財用之法, 痛念吏民之艱弊, 而深察之所領, 於州縣有異焉, 不可與之中捐而與之, 亦所以視高明之意有在, 而不專於己勝, 足以勸其能者, 而不能者知所厲焉, 又况理法有可與者乎? 干冒威嚴, 不勝皇恐.

 

진재에게 답하는 편지 答陳宰書

해제이 글은 소흥 23(계유: 1153, 24)에 진씨 성을 가진 재()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위의 이교수에게 보내는 편지(與李敎授書)에서 주자가 섬학전을 주학이나 현학의 구별없이 균등하게 지급하자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이교수가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나무라는 편지를 보내오자, 진씨 성을 가진 재()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이교수와의 중재를 부탁하고 있다.

 

어제 저녁 앉아서 광문공[廣文公]의 편지를 꺼내 읽어 보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보지 못했을 터이니 한 두 가지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군(李君) 형제의 현명함은 민 땅에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어릴 적에 여러 노선생들이 그들의 행적을 말하는 것을 듣고서 마음 속으로 깊이 흠모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오면서 먼저 삼산현(三山縣)을 지나다가 형인 우중(迂仲: 李樗)이 순수하고 온화하며, 자만심이나 호승심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이군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도 형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에 부임한 지 오래지 않아 그가 이 지역의 교수로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서, 제가 관장하는 현학의 일과 관계 깊은 일에 크게 도움을 얻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가 불가를 판단할 일이 있으면 언제나 편지로 그의 뜻과 가르침을 청했는데, 뜻밖에도 이처럼 성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변론할 일곱 가지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군의 편지에서 제가 어린 나이에 예리한 기운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일을 논의하려는 사람은 사리의 타당함과 부당함이나 정직과 왜곡 등으로 논해야지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연장자라는 이유로 그의 논의를 우대한다면 이것은 남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이 이치에는 밝다고 하더라도 끝내 자신의 논의를 펼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그에 의하면 어째서 감사나 군수의 이전 논의를 제시하지 않는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군이 잘하는 것이지 제가 감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감사와 군수의 위세을 믿고 위아래에 거들먹거리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군이 잘하는 것으로 저로서는 감히 할 수 없습니다. 이군은 또 자신은 애초부터 남을 이기려는 마음이 없으면 단지 자신의 수레를 밀어 앞으로 향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군이 수레를 모는 것은 이상하기도 합니다. 어째서 군현의 학교가 본래 한 수레라는 점을 생각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비유하자면 군은 수레의 덮개요 현은 형과 액입니다. 형액을 뒤로 하고 덮개만 씌워 수레를 몰면서 나는 앞으로 가고자 할 뿐이라고 하는 것은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그는 말하기를 돈을 4등분해야 군현의 학교가 두루 비용을 얻을 수 있는데, 이미 제가 절반을 갖고 있으니, 그 절반을 군학으로 돌려주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요? 현이 절반을 쓰지 못한다면 이것은 또 주에서도 절반을 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양식을 빌라는 말은 바로 지난 번에 말한 스스로 돈과 양식을 갖추라는 이유입니다. 어째서 스스로 돈과 양식을 갖출 수 있는데, 군학은 군학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까? 이로 말한다면 앞에서 이군이 스스로 남을 이기려는 마음이 없다고 한 것은 저로서는 믿을 수 없습니다. 또 그에 의하면 군학은 천주의 학교요 동안학은 동안현의 학교이니, 제각각 그 안에서 힘을 쓸 뿐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옳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번 소장에서 말한 것은 제가 스스로를 잘났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 속으로 따져보고 궁리한 한 두 가지 내용을 이군이 가련히 보아주기를 구한 것 뿐입니다. 한 주의 교관이란 위로는 승상이 발탁해서 임용한 것이고, 아래로는 큰 부와 군의 자사와 대등한 예를 행하는 데[分庭抗禮], 저는 이조에서 임용한 한 사람의 낮은 관리일 뿐인데, 어떻게 감히 이겨보려는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지금 이군이 말하는 것은 바로 제 개인적인 생각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 그는 제가 소양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능히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저의 병폐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것입니다. 다만 제가 논쟁하는 내용은 공적인 일이기 때문에 조금의 개인적인 의견도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관장(官長)께서 충분히 아시는 것이요, 그가 저를 훈계한 것에 대해 저는 감히 생각도 못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미 학교의 업무를 사양했습니다. 다만 이 항목의 관전은 끝내 잃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동안 한 현의 장기적인 이해에 관한 것이지 제가 가지고서 제 사적인 용도에 쓰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변함없니 유지시켜 이 현의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게 해주시고, 제가 진달한 내용을 이군에게 납득시켜 지나치게 화내지는 말게 해주십시오. 이군의 편지와 제가 지난번에 쓴 차자를 함께 보내 드립니다. 그 역시도 당신께서 보시는 것을 용납할 것입니다.

 

昨夕坐間, 蒙出示廣文公, 未見察, 聊陳其一二. 李君兄弟之賢, 聞於. 少時見諸老先生道語其故, 心甚慕之. 及來此, 道過三山, 乃識其兄迂仲, 卽之粹然而溫, 無諸矜爭之色. 時未識李君, 以謂其猶兄也. 至官未久, 聞其(2-1011)分敎是邦, 心甚喜, 以爲所領縣學事有相關者, 當大得其力助, 故事有可不可, 未嘗不因書文以喩意指, 而不意其怒至此也.

所辨七事如左: 李君書以爲有少年銳氣, 嘗謂論事者當以事理之長短曲直, 而不當以其年之先後. 若直以年長者爲勝, 則是生後於人者, 理雖長而終不可以自伸也. 又謂奚不於監司郡守前論列, 李君之所能而誠不敢也. 所以然者, 直不欲以監司郡守之勢脅持上下耳. 李君之所能, 誠不敢也. 李君又自謂本無欲勝人之心, 止是推車欲前. 異哉李君之欲前其車也, 獨不思夫郡縣之學本一車耶? 譬則郡其軫蓋而縣其衡軛, 後其衡軛, 而獨以蓋軫者驅馳之, 曰吾欲前此耳, 所不曉也.

又謂四分錢乃郡縣學通得用, 旣留其二, 而歸其二於郡學矣, 尙何言? 使縣不得用其二分, 是猶州不得用其二分也. 假糧於道, 是乃前所謂自備錢糧者, 奚獨縣學則可, 而郡學則不可乎? 推此言之, 李君所自謂無勝人之心者, 不信也. 又謂郡學, 泉州學也 : 同安, 同安縣學也, 各盡力於其中耳. 此又不然. 前疏所陳云云者, 非以自高, 乃所以極論究心一二而求見哀於李君. 登有一州之敎官, 上爲丞相所自擇用, 下與大府部剌史分庭抗禮, 銓曹所擬一縣小吏, 而敢有勝之之心乎?

李君所云, 無乃與之私指謬也. 又謂不能(2-1012)有所養, 而於此未能自克, 此則中其病. 所爭, 乃公家事, 無亳髮私意於其間. 此固官長之所深知, 其戒敢不思也.

已謝學事, 但此色官錢終不可失. 蓋此乃同安一縣久遠利害, 吾人所得用以徇一旦之私. 伏惟持之不變, 以幸此縣之人, 而以所陳者曉李君無深怒也. 李君書與前所爲箚幷封納呈, 他尙容面究.

황추밀사에게 보내는 편지(신사년 겨울) 與黃樞密書(辛已冬)

 

 

해제이 글은 소흥 31(신사: 1161, 32) 겨울에 동지추밀원사인 황조순(黃祖舜)에게 보낸 편지이다. 금나라 군대가 완안량(完顔亮)의 피살을 계기로 후퇴하자, 금의 남침 교훈을 잊지 말고 조정이 주화론을 배격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오랑캐의 우두머리가 죽자 오랑캐들이 물러갔으며, 회북 지역의 유민들이 우리 군대에 모두 항복해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천명이 종묘사직의 생령들을 돌아보시고 중원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온전하게 (돌려) 주시려는 것이니, 이보다 더한 경사가 없다는 것은 모든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속으로 유독 근심과 걱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감히 하집사(下執事)에게 아뢰고자 합니다.

무오년의 강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여년이 되었습니다. 조정에는 기강이 없고 군비는 해이해지고 무너졌으며, 국세는 쇠약해지고, 안팎으로 텅 비었습니다. 근년 이래로 하늘이 천자의 마음을 깨우치고 조금이나마 바로잡고 다스려 비로소 조리를 점점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적된 폐단이 너무 뿌리 깊어 마음과 덕을 같이하는 신하를 얻고, 평소에 나라 안에서 촉망받는 사람을 보좌역에 앉히고, 현자를 발탁하고 간신들을 물리쳐, 막힌 것을 고치고 헤어진 것을 보충해서, 요컨대 전심전력으로 오랫동안 계속해서 그 형세가 마치 모든 것이 한꺼번에 크게 변하는 것처럼 만들지 못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지난 날 사세를 헤아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친히 정벌하겠다는 조칙을 내린 것은 경솔하게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치는 곧도 말은 순해서 거의 성취가 있을 듯 했고, 한 마음으로 일을 추진해서 기틀을 다져 나아갈 뿐 물러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가고 달이 지나는 데도 나아간다는 기약은 듣지 못했고, 국정을 맡은 자들에게도 구충민(寇忠愍: 寇準)과 같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고, 금군을 지휘하는 자도 고열무(高烈武: 高瓊)과 같은 청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어, 여러 장수들은 게을러졌고, 6군은 해체되었으며, 오랑캐의 기마병은 제 멋대로 출몰하며 양회 지역을 깊이 들어왔지만 병력은 작은데 적은 더욱 강했고, 사세는 급한데 양식은 이미 떨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전쟁 상황이 두 달이 채 되기 전에 모병과 과차(科借)의 재앙이 이미 백성들에게 미쳤습니다. 하늘이 황실을 도우사 적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셨더라면 금과의 승부는 결과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일은 여러 사람들이 조정에서 도모한 결과라거나, 여러 장수들이 야전에서 싸워서 얻은 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마땅히 군신이 서로 경계하고, 삼가고 엄숙한 태도로 조정의 권한을 다잡고 더욱 정사를 닦아 상천이 돌아보시는 천명에 응답해야지 인근 오랑캐 국가의 환난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헤아려보고는 (우리의) 행운에 불과한 것을 좋은 일이라고 여기고 갑자기 스스로 편안히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게다가 오늘날 중원의 땅은 수 만리나 되니, 오랑캐들이 경황없이 달아나는 와정에 조정이 좌시하고 (중원을) 취하지 않는 것은 계책이 아니요, 취하려고 해도 공업의 단서는 드넓고 수고와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이 시기는 바로 안위와 득실이 엇갈리는 시기로서, 조금의 차이가 완전히 동떨어진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중원의 사람들로 수비하고, 중원의 양식으로 군량을 공급해서 동남 지방의 형편이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야 근본이 견고하고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반드시 (남송으로) 돌아와 새 삶을 살려는 소망을 크게 위로하고 함께 구제하려는 마음을 굳게 맺으면 서북 지방의 실정을 더욱 견고하게 하게, 그런 다음에 국경의 요새들을 믿을 만하고 짜임새 있게 구축됩니다. 반드시 오랑캐 들이 훗날 자신들의 힘을 완전히 회복한 다음에라도 우리 노룡(盧龍)의 요새를 엿볼 수 없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조정이 능묘에 배알하고 옛 수도를 돌려받는 일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 조정의 고급 관료들과 시종의 반열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이 일에 힘쓸 수 있겠습니까? 유독 예전의 현명한 이로서 굴기하였으되 등용되지 못한 한 두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이들을 출사하게 하면 오늘날 군대를 주관하는 자들보다 더욱 중요하고, 정사를 맡기면 오늘날의 집정관[秉鈞之士]보다 현명할 터인데 오직 두려운 것은 조정에서 끝내 그들을 등용하지 않는다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시기를 놓치고 속히 계획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오랑캐들의 군사들과 군마는 정예강병으로 애초부터 어떤 손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그들이 잃은 것이라고는 완안량(完顔亮)이라는 한 사람에 불과할 뿐입니다. 만일 한 달여 사이에 다시 그 모든 오랑캐 무리들이 군주를 잃었다는 수치심을 명분으로 끼고 와서 우리들에게 원한을 갚으려 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조정의 의론은 또 어떤 계획으로 그들을 제어하시렵니까? 백성들을 가렴주구하면 백성들의 형편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지고, 병사들을 모집해도 병사들은 취약하고 쓸모가 없습니다. 장차 중원을 점거하고서 저들과 싸우려면 형세가 불충분하고, 중원을 버리고 회수 사수만을 지키려 한다면 중원을 회복할 기약이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논의하는 자들은 어떻게 처신하려는 것입니까? 정말이지 처신이 치밀하지 못하면서도 잠시 하늘이 내리는 행운이 또 오기를 기다리자고 한다면 이것은 저로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사적인 우려와 지나친 생각을 밤낮없이 품고서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병으로 쇠약해진 나머지 기운은 짧고 말은 볼품이 없어, 이해의 실상을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략적인 핵심은 이와 멀지 않을 것입니다. 각하(閣下)께서 도학과 식천으로 조정에 서 계시고, 여러분들 가운데 가장 인망이 두텁기 때문에 제가 감히 이런 말을 아룁니다. 위엄과 존엄함을 넘보게 되어 황공스러운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광망한 저의 죄는 오직 당신께서 판단해 주십시오.

竊聞虜酋隕命, 種人遁走, 淮北遺民悉降我師, 此蓋天命眷顧宗廟社稷之靈, 廓淸中原, 以全畀付, 莫大之慶, 海內同之. 之愚盧, 獨不勝私憂過計, 敢以布于下執事.

蓋自戊午講和以至于今, 二十餘年, 朝政不綱, 兵備弛廢, 國勢衰弱, 內外空虛. 近歲以來, 天啓聖心, 稍加振理, 始復漸有條緖. 然宿弊已深, 非得同心同德之臣, 素爲海內所屬望者爲之輔佐, 進賢退姦, 修滯補弊, 要之以盡而持之以久, 使其勢翕然而大變, 則未可以有爲也.

(2-1013)前日不量事勢, 亟下親征之詔, 則旣矢之易矣. 然理直言順, 庶幾有成, 事同發機, 有進無退. 而曠日引月, 不聞進發之期, 任國政者, 不聞有寇忠愍之謀, 典宿衛者, 不聞有高烈武之請, 使諸將惰心, 六軍解體, 虜騎橫突, 深人兩淮, 兵少而敵益彊, 事急而糧已匱. 於是戒嚴未及兩月, 而募兵科借之禍已及民矣. 向非天佑皇家, 降罰于彼, 則勝負之決, 蓋未可知. 今日之事, 其不可謂諸公謀於廟堂之效群帥攻城野戰之功亦已明矣. 愚謂正宜君臣相戒, 兢愼 祗肅, 改圖柄任, 益脩政理, 以答揚上天眷顧之命, 不宜坐虞鄰國之難, 以幸爲利, 而遽自以爲安也.

抑今中原之地幅員萬里, 虜人奔走震駭之餘, 力未能爭, 朝廷坐視而不取則非計, 取之則功緖廣而勞費多, 此正安危得失之機, 差之毫釐, 繆以千里, 不可以不審也.

竊以爲必能因其人以守, 因其糧以食, 使東南之力不困, 然後根本固而不搖 : 必有以大慰其來蘇之望而深結其同濟之心, 使西北之情益堅, 然後藩籬密而可恃 : 必使虜人他日痛定力全之後, 不能復窺吾盧龍之塞, 然後朝謁陵廟還反舊京之事乃可言也.

不知今日朝廷之上, 侍從之列誰爲能辨此者? 獨舊人之賢, 起而未用者一二公, 使之出則重於今日視師之人, 授之政, 則賢於今日秉鈞之士, 獨恐朝廷終不聽(2-1014), 則無如之何耳. 失今不早爲計, 虜人士馬精彊, 固夫有損, 今玆所失, 完顔亮一夫耳. 萬一旬月之間, 復悉其衆, 挾其喪君之恥以來, 脩怨于我, 不知朝廷之議復以何計禦之? 斂民則民樵悴而不堪, 募兵則兵脆弱而無用, 將據中原而與之爭, 則形勢未習 : 將棄中原而守, 則恢復無期, 不知議者何以處此? 苟處之未審, 而曰姑又以待天幸之來, 則非愚之所敢知者. 是以私憂過計, 夙夜拳拳而不能已也.

顧衰病之餘, 氣短辭拙, 不能言利害之實. 然其大要不遠是矣. 閣下以道學履踐致身廟堂, 在諸公間最有人望, 敢以此言進. 觸冒威尊, 皇恐無地. 狂妄之罪, 惟左右者裁之.

진조사(계약)에게 답하는 염법을 논한 편지(계미년) 答陳漕論鹽法書(季若 癸未)

해제이 글은 융흥 원년(계미, 1163, 34)에 복건로(福建路) 전운판관(轉運判官)인 진계약(陳季若)에게 보낸 염법(鹽法)을 논한 편지이다. 염법의 개정을 시도하는 조사에게 현지의 실정과 관매법(官賣法)과 초인법(鈔引法)의 장단을 논하고 있다. 특히 해창(海倉)의 폐지를 역설하고 있다.

 

제가 지난번에 염법(鹽法)의 이해에 관한 가르침을 받고서 며칠 동안 생각해 보았는데 오늘날 이보다 더 시의에 적절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향리의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그들의 말에 차이가 없지 않아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숭안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과거에 비해 비용이 줄어들었다고 모두들 편리하게 여겼습니다. 건양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산출이 천금이나 되는 인호가 오늘날 소금을 살려면 돈으로 환산해서 1,000전에 불과하지만 신법에 따르게 되면 운송비가 예전보다 50%나 더 든다고 합니다. 또 반드시 돈을 내어서 인염(引鹽)을 사서 먹어야 하는데, 인염이 건계(建溪)의 상류까지 도달하는 비용을 오늘날의 값과 비교해 보면 또한 지나치게 낮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즉 이해관계를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두 읍의 수는 별지에 적어두었으니 실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읍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법의 핵심적인 내용은 실제로 편리한 것 같습니다. 강약에 따라 균등하게 부과해서 이미 아래 빈민들을 여유롭게 했고, 역에 응하는 백성도 늘어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갖가지 폐단도 일어날 곳이 없어질 것이니 본시 가볍게 고쳐서는 안 됩니다. 다만 반드시 여러 사람의 생각을 널리 훑어본 다음에 다방면으로 조치해서 운송비의 액수가 과거에 비해 조금 가벼워지고, 소금을 사는 가격이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경감됨다면 공사 양면으로 편리하고 법도 오래도록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관호와 호종들이 과거에는 요행이 면했지만 지금은 관례에 따라 (가격을) 통보하는 것은, 온갖 논의가 분분하고 반드시 꼬투리를 삼고 일어나 비록 좋은 법과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시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昨承垂示鹽法利害, 累日究觀, 竊以爲適今之宜, 莫便於此. 及詢諸鄕人, 則其說不無同異, 不敢不以聞. 蓋間之崇安之人, 則比其舊費略有所省, 無不以爲便者. 間之建陽之人, 則云千金之産, 今日買鹽, 所折不過千錢, 而新法輸錢半倍(2-1015)其舊, 又須出錢買引鹽食之, 計引鹽至建溪上流, 比之今價, 亦不能甚賤, 則其爲利爲害未可知也. 兩邑之數, 具之別紙, 可見其實. 又不知他邑如何爾. 竊謂法之大體, 實已利便. 蓋彊弱均敷, 巳寬下貧, 應役之民便省陪費. 又凡種種弊倖, 皆無所自而作, 固不可以輕變. 但更須博盡衆謀, 多方措置, 使輸錢之數比舊稍輕, 買鹽之價比舊頓減, 卽公私兩便, 法可久行. 若其不然, 則官戶豪宗昔幸免而今例輸者, 橫議紛紛, 必有所綠而起, 雖有良法美意, 不可行矣.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의 값[引價]이 비싼 이유는 인액(引額)의 수량에 구애받기 때문입니다. 본전(本錢)이 많아야 하는 이유도 지급하는 수량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금이 귀한 이유입니다. ()을 판 수량이 적은 이유는 운송하는 수량에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해상 운송에 돈이 필요한 이유도 배로 운송하는 비용을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생산과 수송에 드는 돈을 계산해보면 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입니다. 두 가지 이익을 취하고 두 가지 해로움을 물리치는 것은 해창(海倉)에서 소금을 사서 납부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참으로 해창과 아래 네 주의 여러 현에서 (소금을) 사서 납부하는 것을 혁파하고, 상인[客人]들이 인()을 청할 수 있게 해서, 남으로는 장주천주로부터 북으로는 장계에 이르기까지 각각 편리한 길을 따라 재빠르게 정호에게 가서 소금을 사서 판매하도록 한다면 인의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요, (필요한) 돈도 줄어들고 소금도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의 수량은 늘어나고, 바다를 오가는 선박도 없앨 수 있으며, 수송에 필요한 비용 또한 줄어들 것입니다.

竊嘗思之, 引價之所以貴, 以引額之數拘之也. 本錢之所以多, 以所支之數取之也. 此鹽之所以貴也. 賣引之額所以狹, 以所運之數拘之也. 海船之錢所以取, 以般運之費計之也. 此計産輸錢之所以重也. 欲致二利, 去二害, 在乎罷海倉之買納而已矣. 誠能罷海倉及下四州諸縣之買納, 而使客人請引, 南自, 北至長溪, 各從便路, 徑就埕戶買鹽興販, 則引價可減, 本錢可輕而鹽賤矣. 引額可增, 海船可罷, 而計産所輸亦薄矣.

 

해창이 염법을 좀먹는 근원임은 사대(使臺)께서도 상세히 아실 것입니다. 아래 네 주의 여려 현에서 소금을 사서 납부하는 폐단 역시 해창과 다르지 않고, 장주(漳州)에서 마땅히 지급해야 할 산지의 소금을 몰래 내다 파는 것도 더욱 백성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도 사대께서 익히 아실 것입니다. 설령 오늘날 의논하는 염법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없애버림으로써 누적된 폐단을 덜어주어야 하는 것이거늘, 하물며 관염(官鹽)의 값을 올리고, 사염(私鹽)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 모두 여기에 달려 있는데, 어떻게 혁파해서 그것을 새롭게 개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夫海倉爲鹽法蠹害之根本, 使臺知之詳矣. 下四州諸縣買納之弊不異乎海倉, 漳州以盜賣合支産鹽, 重爲民害, 使臺知之亦詳矣. 使其無害於今日所議之法, 猶將廢置以蠲積弊, 况所以增官鹽之價而厚私鹽之利者, 皆在乎此, 豈可以不罷而(2-1016)改圖其新乎?

 

인을 판 수량은 위 네 주에서 매년 운송하는 1,000만근을 평균으로 하고, 해창에서 매년 사 모으는 것도 이 수량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끊기고 단절되며, 운송이 정체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의 가격이 23문에 이르렀어도 인이 드문 것을 걱정하고, 인을 판 돈이 23만에 도달해도 그 액수가 적은 것을 걱정하는 것은 모두 여기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가 삼가 생각하건데, 1,000만근은 관에서 운송하는 기준이 되는 수량입니다. 만일 정호에게서 생산된 것을 강운선에 싣고, 운송 도중에 줄어들고 네 군에 흩어놓아서 남김없이 먹일 수 있는 양이라면 한 해에 또 어찌 수백만 근에 불과하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정호들이 녹이고 민간에서 실제로 먹는 수량입니다. 그런데 지난날에는 방치해 두고서 사적으로 판매하는 자산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창에서 도둑질하면서 침탈한 돈이요, 정체시키면서 빼앗아 먹는 바람에 정호들이 관에 수송하기를 원치 않도록 만들고, 차라리 사적으로 싼 값에 팔아서 눈앞의 급한 불을 끄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만일 해창을 혁파하고 이 수백만 근의 수량을 거두어 함께 인의 수량에 포함시킨다면 인의 가격은 근 당 몇 전을 줄일 수 있고, 인을 판 돈의 큰 액수도 옛날보다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예를 들어 1,500만근으로 인을 늘이고, 한 근당 20문에 판다면, 또한 30만관을 얻게 됩니다. 생각건대 이 정도 액수에만 그치지 않을 듯하니 다시 헤아려보시기 바랍니다.) 또 정호들에게 팔만한 사염을 남겨 두지 않고 관염도 더욱 풍족하게 만들 수 있는데 무엇을 꺼려해서 오래도록 이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까?

夫賣引之額, 以上四州逐年運到一千萬斤者爲率, 而海倉每歲所取亦止此數, 尙有乏絶不繼, 停留綱運之時, 故引價至於二十三文而患其貴, 引錢止得二十三萬而患其少, 皆此之由也. 竊謂夫一千萬斤者, 官運之正數也. 若夫出於埕戶, 搭於綱船, 漏於步擔而散於四郡之間, 食之無餘者, 一歲又何啻數百萬斤? 此乃埕戶所煎民間所食之實數. 而前日棄之, 以爲私販之資者, 正以海倉侵盜本錢, 稽留割剝, 使埕戶不願輸官, 而寧私爲賤鬻, 以救目前之急故也. 今若罷去海倉而收此數百萬斤者倂人引額, 則引價每斤可減數錢, 而所以收引錢大數反增於舊矣.(謂如增作一千五百萬斤引, 而一斤止賣二十文, 亦得三十萬貫. 恐不止此數, 更乞籌之.) 又使埕尸更無私鹽可賣而官鹽益快, 何憚而久不爲此?

 

상인들에게 매 근 당 12문의 소금의 본래 값에 해당하는 돈을 납부하게 하는 것은 그 돈을 정호들에게 돌려줘 다시 소금을 생산하게 만드는 종잣돈으로 쓰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관에서 거두어서 관에서 공급하는 것은 상인들에게는 지나치게 낭비하는 것이요, 정호들에게는 실제 이득이 없는 것입니다. 정호와 상인들이 스스로 교역을 하는데 관에서 이것을 봉함하고 표시를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바다에 인접한 현()마다 영승(令丞)이나 부위(簿尉)에게 이 일을 전담시킵니다.) 이렇게 하면 상인들은 45문을 낭비하지 않고도 소금 한 근을 얻을 수 있고, 매 근당 얼마씩의 돈을 줄일 수 있어서, 배삵을 마련하고 오고 가는 자본으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정호들은 소금 한 근을 팔면서 실제로 45문을 얻게 되어 관사(官司)에게 청하는 것과 비교하면 명목상으로는 12문이지만 관리의 아전의 손아귀를 거치면서 (실제로는) 열에 한 둘 밖에 얻지 못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夫所以使客人納鹽本錢每斤十二文者, 將以給埕尸爲循環本也. 今官收而官給之, 在客人則爲枉費, 在埕戶則無實利, 曷若使埕戶客人自爲貿易而官封之,(沿海逐縣專委令丞或簿尉). 則客人不費四五文可得鹽一斤, 每斤所省數錢, 足以具舟樟資往來 : 埕戶售鹽一斤, 實得四五文, 比之請於官司, 名爲十二文, 而經過官吏攬子之手, 什不得其一二者, 大相遠矣.

 

주현들에게 운반용 배 삵[海船錢] 5만여 관을 비축하게 한 이유는 본래 조사가 스스로 해창에서 회안(懷安)으로 운반해서 상인들을 기다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해창을 없애고 상인들이 편한 길을 따라 재빨리 사다 판매하게 한다면 이 돈은 이미 경감된 것입니다. 이 몇 가지를 시행해서 인의 가격을 줄이고, 본전(本錢) 역시 줄일 수 있다면 관염은 저절로 풍부해지고 사적인 판매는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인의 수량이 늘어날 수 있고 운반용 배 삵도 없앨 수 있다면 이 두 항목에서 늘어나고 사라진 수량으로 수송을 위해 계산한 수량을 줄이는 것 역시 열에 네 다섯 정도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2-1017)所以使州縣椿海船錢五萬餘貫者, 本爲漕司自海倉運至懷安, 以待客販也. 若罷海倉, 而使客人徑從便路興販, 則此錢固已在所蠲矣. 行此數者, 使引價可減, 本錢可省, 則官鹽自賤而私販自戢 : 引額可增, 海船錢可罷, 則此兩項所增所罷之數, 以減計産所輸之數, 亦不啻什四五矣.

 

아래 네 주의 인호들은 재빨리 정호들에게 가서 소금을 사게 하되, 인법(引法)에 구애받지 않도록 하되, 다만 법을 만들어 위 네 주에다 판매하는 일만은 막는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이 외의 일은 희()의 견문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의론하는 자들은 사사(使司)들이 왕시랑(王侍郞)부터 3, 4년간 상공(上供)을 대신해서 납부한 수량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금을 늘리면 오히려 줄일만한 수량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줄일 수 있다면 바라건대 다시 어느 정도 줄여주시고 세 항목에 대한 법을 마련하면서 고르게 얼마 정도의 돈을 줄일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더욱 좋을 것입니다. 민 땅의 백성들이 서로 칭송하면서 염법이 우리 백성들에게 이롭게 된 것은 진공(陳公)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면서 자손에 이르도록 잊지 않는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은 이와 같습니다만 맞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습니다. 수고롭게도 아랫사람에게 물어주셨는데 감히 헛되이 할 수 없어서 이미 백성들의 말음 모아서 아뢰었고, 또 제 생각을 다 말씀드려 만분의 일이나마 채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광망한 죄는 고명(高明)하신 당신께서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下四州人戶則使徑就埕戶買鹽, 不限引法, 但立法以防其興販透人上四州界可也. 此外非聞見思慮所及. 但議者見使司自王侍郞以來, 三四年間代納上供, 其數不少, 或謂增鹽尙有可減之數. 更望計度, 如其可減, 則願更減分數, 於三項立法之中, 均退幾錢, 允爲久還之利. 使中之人相與稱曰: 鹽法之利於吾民, 陳公, 子孫不忘, 豈不休哉鄙見如此, 未知當否? 以下間之勤, 不敢虛療. 旣採民言, 又渴愚慮, 以稱塞萬分. 狂妄之罪, 尙冀高明矜而恕之. 幸甚幸甚

유평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劉平甫書

해제이 글은 융흥 원년(계미, 1163, 34) 9월 중순 혹은 하순 경에 유자휘(劉子翬)의 아들인 유평(劉玶)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미 두 사신을 화의를 논의하기 위해 보냈는데 오랑캐들이 아주 도타이 대우해서, 어떤 사람들이 오랑캐들의 형세가 실제로 쇠약해졌으니 이제 우리의 군대를 조금 느슨하게 해도 되겠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화의를 위해) 보낸 사람은 귀정인(歸正人)입니다. (: 楊存中)이 이미 어영(御營)에서 파직되었는데, 주원지(周元持: 周操)의 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원지는 이미 남탑[南榻: 御使]으로 돌아갔습니다. 산 중에서 이미 소식을 들었습니까? 백숭(伯崇: 范念德) 형에게는 따로 글을 올리지 못합니다. 생각건대 또한 병산(屛山)에 있겠지요. 요즘 어떤 책을 읽습니까? 강론하고 절차탁마하는데 보탬이 되는 것이 다만 문자 사이에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채(上蔡)의 첩() 가운데 유학은 선()과 다르다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여행 중에 보고 외웠는데 상당히 사람을 일깨우는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시험삼아 더불어 탐구해 보신다면 만나는 날 의논할 수 있을 겁니다.

진강백(陳康伯)에게 보낸 편지를 늦게나마 필사해 보냅니다. 대형(大兄)께만 한 번 읽으시도록 보이고는 보관하지 말고 불태우십시오. 이 말을 한 것에 대해 그가 헛되이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제가 만일 소명을 받게 된다면 반드시 이 편지보다 더 심한 말을 하게 될 것이니, 또한 장차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이러한 기상을 보건대 문을 닫고 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지만, 하책으로라도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원리(元履: 魏掞之)는 가난하다는 것은 별다른 지장이 없다고 했습니다만, 스스로 도를 실천하기를 자임하고서 빈곤함으로 다른 사람을 대한다면, 이것은 바로 오재로(吳材老)가 옛 음악[古音]을 논한 격이니 한 번 웃을 일입니다.

聞已遣兩使議和, 虜人待遇甚厚, 或疑虜勢實衰, 故欲且緩我師耳. 所遣乃歸正人也, 已罷御營, 周元特之言也. 已還南榻矣. 山中已聞否? 伯崇(2-1018)不及別上狀, 想且留屛山. 比日讀何書? 講論切磋之益, 想不但文字間也. 上蔡帖中儒異於禪一節, 道間省記, 頗覺有警. 試相與究之, 見日面論也.

書謾寫去, 只可呈大兄一讀, 而焚之勿留也. 此言之發, 其不能受也固宜, 然萬一成行, 則所言必有甚於此者, 又將何以堪之郞? 觀此氣象, 不若杜門之爲愈, 下計終當出此耳. 元履, 若爲貧, 卽不妨. 己以行道自任, 而以爲貧處人, 此正吳材老之論古音也, 可以一笑.

 

 

연평 이선생에게 보내는 편지 與延平李先生書

 

해제이 글은 융흥 원년(계미, 1163, 34) 926일에 스승인 이동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주자는 계미년 10월에 임안에 도착해서 6일에 입궐하는데, 이 편지는 임안으로 가는 도중에 선생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1015일 이동은 세상을 떠났다.

 

제가 선생님의 곁을 떠난 지 어느덧 한 달 남짓 되었습니다. 지난번 건녕(建寧)으로 보낸 두 통의 편지는 이미 받아 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18일에 어머님의 슬하를 떠나 도로에서 머물다가 24일에 연산(鉛山)에 도착하여 아드님이신 육십형(六十兄)형의 관사에 머물렀는데 여행 중에 다행히 큰 변고는 없었습니다.

오늘 대군(戴君)이 와서 진맥을 했는데, 이치에 닿는 말을 하면서 약과 처방을 해주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다른 병은 없는데, 다만 약한 기운을 타고나서 땀을 많이 흘리고 심장엔 피가 적으며, 기운이 오르내리질 못해 위아래의 몸뚱이가 각기 다른 사람 같다고 합니다. 다른 내용 역시 속된 의사들이 미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번에 건양에 있을 때 대호의 한 친척의 말만이 이와 비슷했을 뿐입니다. (병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알아차리는 것을 보니 진실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서)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拜違侍右, 倏忽月餘, 頃嘗附兩書於建寧, 竊計已獲關聽矣. 十八日離膝下, 道路留滯, 二十四日到鉛山, 館於六十兄官舍. 路中幸無大病.

今日戴君來診脈, 其言極有理, 許示藥方矣. 云無他病, 只是禀受氣弱, 失汗多, 心血少, 氣不升降, 上下各爲一人. 其他曲折, 皆非俗醫所及. 頃在建陽, 惟見大湖一親戚語近(2-1019)此耳. 至於心意隱微, 亦頗得之, 信乎其不可揜也.

 

제가 지난번에 가르침을 받은 두 가지 이론 가운데 한 가지는 순서대로 이론을 정립했으나, 오직 의리(義利)에 관한 이론만은 견해가 분명하지 못하고 이론이 명쾌하지 못합니다. 시사(時事)를 널리 논의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만에 하나 황제폐하를 만나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리(義利)에 관한 이론은 유자(儒者)의 제일의 뜻(第一義)이니, 평소에 어찌 이것을 공부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말을 취사선택하여 시사를 판단하려고 하는데, 멍하니 어떻게 이론을 세워야할지 모르는 것은 이 몸이 의리가 불분명한 곳에 있으면서도 살피지 못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심히 두려운 것입니다. 날씨는 아직 춥지 않지만 바라건대 몸 건강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926일 올립니다.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向蒙指喩二說, 其一已敍次成文, 惟義利之說見得未分明, 說得不快. 今且以泛論時事者代之, 大略如中前書中之意. 到闕萬一得對畢, 卽錄呈也. 但義利之說乃儒者第一義, 平時豈不講論及此? 今欲措辭斷事, 而茫然不知所以爲說, 無乃此身自坐在裏許而不之察乎? 此深可懼者. 此間亦未有便, 姑留此幅書, 以侯附行. 若蒙賜敎, 只以附建寧陳丈處可也. 天氣未寒, 更乞爲道保重, 以慰瞻仰. 九月二十六日拜狀, 不備.

 

 

 

위원리에게 보내는 편지 與巍元履書

해제이 글은 융흥 원년(계미, 1163, 34) 11월 중순 경에 위섬지(魏掞之)에게 보낸 편지이다. 금과의 강화를 논의하기 위해 1113일 왕지망(王之望)을 통문사(通問使)로 용대연(龍大淵)을 부사(副使)로 삼아 금나라에 파견하는 한편, 14일에는 시종과 대간들에게는 명을 내려 의견을 모으게 했다.이 편지 가운데 강화를 맺자는 정책이 이미 결정되었다는 말이 있고, ‘이틀 동안 시종과 대간들이 중서당에 모였다는 것을 보면 이 편지는 16일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저는 6일에 임금을 뵈웠습니다. 처음에 사물에 이르러 이치를 탐구하는[格物致知] ()’에 대해 강의하니 임금의 얼굴빛이 환하고 좋아하시더니, 두 번째 복수(復讐)의 의미에 대한 것과 세 번째 언로가 막히어 아첨이 들끓는다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난 후에는 임금의 아무런 언지도 듣지 못했습니다.

六日登對, 初讀第一奏, 論致知格物之道, 天顔溫粹, 酬酢如響. 次讀第二奏, 論復讐之義, 第三奏論言路壅塞, 佞幸鴟張, 則不復聞聖語矣.

 

부본은 이미 평보(平甫)에게 보냈습니다. 베껴서 보내도록 부탁했으니, 이미 갖고 계실 겁니다. 12일에 이 관직을 제수한다는 어지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소망하지 않았던 것인지라 매우 좋습니다만 궁궐이 너무 멀어서 아마도 곁에서 모실 수 없을 것 같아 이미 사록관을 청하는 차자를 써서 사직을 청하던 날 함께 보냈습니다. 이어서 능장(凌丈)에게 재촉하도록 부탁드렸으니 반드시 사록관을 얻게 될 겁니다.

副本已送平甫, 託寫呈, 當已有之矣. 十二日有旨除此官, 非始望所及, 幸幸甚甚. 然闕尙遠, 恐不能待, 已具請祠之箚, 辭日投之. 更屬凌丈催促, 必可得也.

 

강화를 맺자는 정책이 이미 결정되어 유언비어가 횡행하여 잔꾀로는 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전날 주규(周葵)를 만나 이것을 질책하니,이것은 모두 당신의 공연한 걱정이고 목전의 사태를 위한 임시방편의 계책일 뿐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국가 억만년의 대업을 참정(參政)께서는 목전의 사태를 위한 계책이라고 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대개의 의론이 이와 같습니다. 한무구(韓無咎: 元吉)이덕원(李德遠: )조차도 다시 수초부(遂初賦)를 찾지 않습니다. 관료들 가운데서는 오직 왕가수(王嘉叟: 王秬)를 비롯한 몇몇 사람만이 정론(正論)을 주장했지만 모두들 한직에 있는지라 헛되이 주장할 뿐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시종과 대간들이 중서당(中書堂)에 들렀고, 참정부추밀부를 찾았다는데 논의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데 만나지를 못했고, 그가 머무는 곳도 모릅니다. 언로는 오직 소파(小坡)의 의논만이 아주 올바릅니다만, 그의 말이 용감하지 못해서 다수의 여론을 이기지 못할까 걱정일 뿐입니다. 왕지망(王之望)용대연(龍大淵)은 이미 정부의 사신으로 파견되었다니,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찰로는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공보(共父)가 외직으로 나가게 된 것은 중비(中批)로 명한 것인데, 조정 안팎의 사람들도 무엇에 연좌된 것인지를 모릅니다. 본래 선생님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려 했으나, 취해서 쓸 수가 없습니다. 편지를 보내게 되면 제 사정을 언급해 주십시오. 또 평보(平甫)에게 그 차자의 부본을 베껴서 보내도록 했습니다.

和議已決, 邪說橫流, 非一葦可杭. 前日見周葵, 面質責之, 乃云此皆處土大(2-1020), 今姑爲目前計耳. 語之曰: “國家億萬斯年之業, 參政乃爲目前之計耶大率議論皆此類. 韓無咎李德遠皆不復尋遂初賦.” 庶寮唯王嘉叟諸人尙待正論, 然皆在閒處, 空復爾爲. 兩日從官過堂詣府第, 不知所論云何. 欲少贊之, 輒不値, 未知渠所處也. 言路惟小坡論甚正, 但恐其發不勇, 不能勝衆楚爾. 王之望龍大淵已差使副, 不知尙能挽回否. 諸非筆札可盡.

共父之出, 中批所命, 朝野不知所坐. 本欲作先生一書, 酪矣不能, 因書及之. 亦令平甫寫其箚副稿寄呈矣.

위원리에게 보내는 편지 與魏元履書

요사이 하나의 의론이 정직한 사람의 입에서 나왔으면서도 흐리멍텅[含胡骨突]해서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憒憒] 합니다. 이와 같은 기상(氣象)과 비젼[規模]으로 어떻게 국사를 맡겠습니까[抵當]? (올바른 사람들이 이 지경이니) 왕지망(王之望)과 윤색(尹穡)의 무리들을 어찌 다시 거론하겠습니까?

近時一種議論出於正人之口, 而含糊鶻突, 聽之使人憒憒. 似此氣象規模, 如何抵當得? 王之望, 尹穡輩更何足掛齒牙間也.

 

 

진시랑에게 보내는 편지與陳侍郞書

 

지난번 보내신 편지를 받고 보니 너무 도타이 위로하시는 말씀에 감격에 겨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분수에 넘게 사관직을 청했음에도 당신께서 두 번 세 번 힘써 주셔서 결국 원하던 대로 되었습니다. 보내주신 당첩(堂帖)도 잘 받았습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진실로 잊을 수 없습니다만 어찌 보답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 타고난 천성이 투박하고 어리석어 겨우 지조나 지킬[自守] 뿐이었습니다. 중간에 했던 말 한마디 때문에 어긋나고 낭패를 당해서 거의 이 시대에는 활동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 시골로 물러나 무덤에 들어갈 날이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합하(閤下)의 힘으로 봉록을 받아 부모를 모실 수 있게 되었으니 사적으로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이 조차도) 오히려 제 분수에 넘친다는 혐의가 있음에도 합하께서 이끌어 주시려는 초심은 또한 여기에만 멈추지 않으시려 하시니 이것을 어찌 희가 감히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昨者伏蒙還賜手書, 慰藉甚厚, 拜領感激, 不知所言. 而奉祠冒眛之請, 又蒙合慈引重再三, 卒以得其所欲. 所示堂帖, 謹以袛受, 仰荷恩眷, 允不敢忘, 而不知所以報也. 賦性撲愚, 惟知自守, 間一發口, 枘鑿頓乖. 度終未能有以自振於當世, 退守丘園, 坐待搆壑而已. 今以閤下之力得竊廩假, 以供水菽之養, 其爲私幸, 亦已大矣. 顧於義分猶有僥冒之嫌, 而閤下推挽之初心猶以爲不止於此, 此則豈所敢聞哉

 

또 오늘날의 시사를 말씀하시면서 분개에 차 서로 어긋났으니, 어렵구나[戛戛乎其難哉]’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또한 직책을 맡은 이래로 여러 차례 (시사를) 아뢰기도 하셨으니 진퇴의 의리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야 비록 그 상세한 내용을 모른다지만 현인 군자가 조정에 있으면서 하루도 천하를 근심하지 않는 날이 없고, 단 하루도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 직책을 헛되이 하지 않으시는 것이 이와 같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못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우며, 친분도 두텁지 않은 제가 이런 것까지 말하는 뜻이 어찌 한갓된 것이겠습니까? ()는 참으로 명을 받들기에 부족합니다. 그러나 삼가 개인적으로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서 제 못남을 잊고서 시험삼아 한 마디 드리고자 하오니 집사(執事)께서도 들어 주십시오.

又蒙垂喩今日之事, 慨然有戛戛乎其難哉之嘆. 且承任職以來屢有建白, 去處之義自處甚明. 也雖末獲與聞其詳, 然有以見賢人君子立乎人之本朝, 未嘗一日而忘天下之憂, 亦不肯以一日居其位而曠其職蓋如此. 然猶不鄙迂愚疎賤之人而語之及此, 其意豈徒然哉誠不足以奉承敎令, 然竊不自勝其慕用之私, 是以忘其不佞而試效一言焉, 執事者其亦聽之.

 

제가 일찍이 생각건대 천하의 일은 본말(本末)이 있으니, 그 근본을 바르게 하는 사람은 비록 만약 멀고 느슨한 것 같으나 실제로는 힘쓰기 쉽고, 그 말단을 구하는 자는 비록 절실하고 지극한 것 같으나 실제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일을 잘 논하는 자는 반드시 본말의 소재를 밝혀 먼저 근본을 바르게 하니, 근본이 바르면 그 말단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근심할 바가 아닙니다. 또 현재 천하의 일로 논의하면, 위로는 하늘의 마음이 기쁘지 않아 기근은 거듭되고, 아래로는 백성의 힘이 이미 고갈되었는데도 세금이 급하여 도적이 사방으로 일어남에 백성이 동요합니다. 낱낱의 경우마다 그 폐단을 찾아서 회복하는 방법을 구한다면 어찌 이루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큰 근심의 근원을 말한다면 진실로 (따로) 소재가 있습니다.

熹嘗謂天下之事有本有末, 正其本者, 雖若迂緩而實易爲力 :救其末者, 雖若(2-1022)切至而實難爲功. 是以昔之善論事者, 必深明夫本末之所在而先正其本, 本正則未之不治非所憂矣. 且以今日天下之事論之, 上則天心未豫而饑饉薦臻, 下則民力已殫而賦斂方急, 盜賊四起, 人心動搖. 將一二以究其弊, 而求所以爲圖回之衒, 則豈可以勝言哉? 然語其大患之本, 則固有在矣.

 

강화(講和)의 계책이 결정되어 윤리가 무너지고 온갖 일이 잘못되고, 독단(獨斷)의 이론이 나오매 임금의 뜻이 위에서 교만해지고, 국시(國是)의 이론이 행하여 공론이 아래에서 막히니, 이 세 가지는 큰 근심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이론을 말하는 자들도 군주의 마음 씀씀이의 허점을 틈타지 않고서는 또한 군주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내가 전날의 편지에서 다른 일에 미칠 겨를이 없이, “깊이 임금 마음의 그릇 된 것을 바르게 하라는 것으로 당신에게 기대한 이유입니다. 이 세 가지 이론을 깨뜨리지 않으면 천하의 일을 가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이 세 가지 이론을 또 어떻게 깨뜨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쌓인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다시 상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蓋講和之計決而三綱頹萬事隳, 獨斷之言進而主意驕於上, 國是之說行而公論鬱於下, 此三者, 其大患之本也. 然爲是說者, 苟不乘乎人主心衍之蔽, 則亦無自而人. 所以於前日之書不暇及他, 而深以夫格君心之非者有望於明公. 蓋是三說者不破, 則天下之事無可爲之理, 而君心不正, 則是三說者又豈有可破之理哉? 不審閤下前日之論, 其亦嘗及是乎?抑又有大於此者, 而山野之所弗聞弗知者乎?閤下誠得本而論之, 則天下之事一擧而歸之於正, 殆無難者, 而吾之去就亦易以決矣. 竊不自勝其憤懣之積, 請復得而詳言之.

 

무릇 국가를 회복시키는 큰 책략을 방해하는 것은 강화의 이론이고, 변방 수비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것도 강화의 이론입니다. 안으로는 백성의 충성된 마음을 어기는 것이고, 밖으로는 우리나라의 소생의 희망을 좌절시키는 것도 강화의 이론입니다. 눈앞에 닥친 시급한 근심을 구차하게 회피하느라 미래의 짐독(鴆毒)과 같은 안일함을 양성하는 것도 또한 강화의 이론입니다. 피해는 이루다 말할 수 없으며, 강화의 설이 잘못됐다고 의논하는 자의 이론도 상세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대대로 조종의 원수는 후손이 반드시 복수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정말로 복수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우선 스스로 힘을 길러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복수할 날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엔 나아가되 공격할 수 없고 물러나서 지킬 수 도 없어, 조공[卑辭厚禮]하여 원수인 오랑캐에게 화친을 구걸하여 다행히 성사되면 군신이 서로 경사로 여겨 떠들썩하게 온 나라에 포고령을 내려 말하기를 지난날 자잘한 일[薄物細故]은 이미 버려버렸다라고 하여, 기뻐하면서 다시는 조금이라도[豪分] 분통을 참으며 원통함을 머금고 부득이한 말을 하여 나라의 안전을 보전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슬픕니다. 어떤 일이 조종의 능묘를 침탈한 원수보다 크길래, 이를 차마 자질구레한 일[薄物細故]로 여겨 잊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군신간의 의()와 부자간의 은의는 하늘의 이치와 백성의 성품의 중요한 것이니, 국가를 경영하는 자는 민심(民心)을 결속시키고 정사(政事)를 바로 잡는[紀綱] 것이 근본요체입니다. 이제 (국가경영의) 단초를 열고[造端] 표준을 세우는 것[建極]이 이와 같고, 정책을 발하고 법령을 베푸는 것이 이와 같으면서도, 인심이 나에게 결속되어 떠나지 않고, 모든 일의 시종(始終)이 조리(條理)가 있어 문란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는 또한 지자(知者)를 기다릴 것도 없이 몸이 떨리며(凜然) 두렵습니다(寒心). 이런 이론을 말하는 무리는 공론(公論)이 일어남[沸騰]을 두려워하고 임금의 마음이 혹 깨닫는[] 것을 두려워해서 서로 독단(獨斷)의 이론을 만들어서 경훈(經訓)을 견강부회(傳會)하고 글로 간사한 말을 만들어, 임금이 하고자 한 독재(獨裁)에 깊이 호응하지만, 속으로는 자기의 사사로움을 의탁하니, 그 이론의 근본을 보면, 비록 강화(講和)라는 한 마디에서 연유하지만, 그 재앙()은 강화(講和)란 한 가지 일에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임금을 심하게 그르쳐서 오만하게도 스스로가 성인(聖人)처럼 여기게 하여, 위로 하늘의 경고[譴告]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래로는 공론(公論)의 시비(是非)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군주의) 우레[雷霆]같은 위엄과 만균(萬鈞)같은 무거움을 옆에 끼고 백성의 위에 방자하게 군림하는데도, 감히 제지할[] 수 없게 된 것은 반드시 이러한 독단(獨斷)의 이론 때문입니다. 슬픕니다. 이것도 또한 불인(不仁)한 것이 허수아비를 만든[作俑] 것 보다 더욱 심합니다. 당신 같은 인인(仁人)과 군자(君子)가 어찌 그렇게 되는 것을 좌시(坐視)하면서 편안히 한 말씀이라도 해서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이 일은 이미 그렇다고 하더라도, 열흘 사이에 또 국시(國是)의 이론을 주장해서 독단(獨斷)의 이론에 호응하는 자가 있어서, 하늘과 사람을 기만하고[欺天罔人], 음험하고 사특한(險慝) 계책을 품고 있는 것이(包藏)함이 더더욱 심하거늘, 임금이 이미 그들의 주장을 옳다고 여기시고, 조정의 여러 대신들 또한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들어 보지 못했으니, 제가 이것을 힐난해 보겠습니다. 이른바 국시(國是)라는 것이 어찌 천리를 따르고 인심을 화합하여 온 천하가 모두 옳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온 천하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라면(國是), 비록 조그만 땅이나 한명의 백성을 다스릴 권한이 없다고 하더라도 천하가 잘못이라고 여길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지금의 천하의 이로운 권세를 지닌 사람이겠습니까? 오직 천하의 사람들이 옳다고 한 것에 화합하지 않고,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옳게 여기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상을 내걸어 회유하고 엄한 형벌로 독책한 연후에야 겨우 사대부(士大夫)들이 불평하는 입을 억지로 막을 수 있겠지만, 천하의 진정한 시비는 끝내 속일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화의(和議)와 같은 일이 과연 천리(天理)에 따르고 인심(人心)에 화합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진실로 천리(天理)를 따르고 인심(人心)에 화합한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여길 것이니, 다른 이론(異論)들이 어디에서 생겨나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치 않고 편견(偏見)을 주장하여 그 사이에 사심(私心)을 꿰어 넣고 억지로 국시(國是)라 이름 짓고, 임금의 위엄을 빌려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공론(公論)과 다투려 한다면, 저는 옛사람들이 이른 바 덕은 한결 같아야 한다[德惟一]”고 한 것이 이와 같이 않을 듯하니, 오히려 불행하게도 자사(子思)모두 자기가 성인이라고 하니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알겠는가라고 했던 지경에 가까울까 두렵습니다.

夫沮國家恢復之大計者, 講和之說也. 壞邊陲捕禦之常規者, 講和之說也. 內咈吾民忠義之心, 而外絶故國來蘇之望者, 講和之說也. 苟逭目前宵旰之憂, 而養成異日宴安之毒者, 亦講和之說也. 此其爲禍, 固已不可勝言, 而議者言之固已詳矣. 之所言, 則又有大於此者. 蓋以祖宗之讎, 萬世臣子之所必報而不忘者. (2-1022)苟曰力未足以報, 則姑爲自守之計, 而蓄憾積怨以有待焉, 猶之可也. 今也進不能攻, 退不能守, 顧爲卑辭厚體以乞憐於仇讎之戎狄, 幸而得之, 則又君臣相慶, 而肆然以令於天下曰: 凡前日之薄物細故, 吾旣捐之矣, 欣欣焉無復豪分忍痛, 含冤迫不得已之言, 以存天下之防者. 鴫呼孰有大於祖宗陵廟之讎者? 而忍以薄物細故捐之哉夫君臣之義, 父子之恩, 天理民彝之大, 有國有家者所以維繫民心, 紀綱政事, 本根之要也. 今所以造端建極者如此, 所以發號施令者如此, 而欲人心固結於我而不離, 庶事始終有條而不紊, 此亦不待知者而凜然以寒心矣.

而爲此說者之徒懼夫公論之沸騰而上心之或悟也, 則又相與作爲獨斷之說, 傅會經訓, 文致姦言, 以深中人主之所欲, 而陰以自託其私焉. 本其爲說, 雖原於講和之一言, 然其爲禍則又不止於講和之一事而已, 是蓋將重悞吾君, 使之傲然自聖, 上不畏皇天之譴告, 下不畏公論之是非, 挾其雷霆之威萬鈞之重以肆於民上, 而莫之敢攖者, 必此之由也. 鳴呼其亦不仁也哉甚於作俑者矣. 仁人君子其可以坐視其然, 而恬然不爲之一言以正之乎?

此則旣然矣, 而旬日之間, 又有造爲國是之說以應之者, 其欺天罔人, 包藏險慝, 抑又甚焉. 主上旣可其奏, 而羣公亦不聞有以爲不然者, 請有以詰之. 夫所(2-1024)謂國是者, 豈不謂夫順天理合人心而天下之所同是者耶? 誠天下之所同是也, 則雖無尺土一民之柄, 而天下莫得以爲非, 况有天下之利勢者哉? 惟其不合乎天下之所同是而彊欲天下之是之也, 故必懸賞以誘之, 嚴刑以督之, 然後僅足以劫制士夫不齊之口, 而天下之眞是非則有終不可誣者矣. 不識今日之所爲若和議之比, 果順乎天理否耶? 合乎人心否耶? 誠順天理合人心, 則固天下之所同是也, 異論何自而生乎? 若猶未也, 而欲主其偏見, 濟其私心, 彊爲之名, 號曰國是, 假人主之威以戰天下萬口一辭之公論, 吾恐古人所謂德惟一者似不如是, 子思所稱具曰予聖, 誰知鳥之雌雄, 不幸而近之矣.   

 

옛날 송()의 신종(神宗)의 희녕(熙寧)의 초년에 왕안석(王安石)의 무리가 이 국시(國是)의 이론을 주장했고, 뒤에 장돈(章惇)과 채경(蔡京)의 무리가 또 이것을 이어서 말했습니다. 전후 약 50여년 사이에 사대부(士大夫) 나아가서 조정(朝廷)에서 논의하고 물러나서는 집에서 말하는 것이 한 마디라도 국시(國是)의 이론에 합치하지 않으면 국가의 붕당이며, 국가를 모함하는[邦朋邦誣] 것이라고 지목하여 사흉(四凶)의 죄를 적용했습니다. 대개 근세에 국시(國是)를 주장하는 엄격함이 범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 지금보다 심한 경우가 없으되 끝내 공론(公論)이 행해지지 않아서 큰 재앙을 초래해서 후대에 끼친 악독한 영향(餘毒餘烈)이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아 그렇겠습니까? 오직 옳다고 여기는 것이 천하의 참으로 옳은 것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고수했기 때문에 상하(上下)가 서로 따르느라고 직언(直言)이 들리지 않아 결국은 위망(危亡)한 지경에 이르러도 깨닫지 못합니다. ()에 이르기를, “처음의 조금의 차이가 나중엔 천리의 차이가 난다라고 하니, 하물며 차이가 비단 호리(豪釐)만이 아닌 경우이겠습니까? ! 참으로 두려울 뿐입니다. 어째서 또 이 것으로 우리 임금을 심히 그르쳐서 혼란과 멸망으로 가는 궤적[轍跡]을 찾아서 몸소 치달아 따라가게 하십니까?

昔在熙寧之初, 王安石之徒嘗爲此論矣, 其後章惇蔡京之徒又從而紹述之, 前後五十餘年之間, 士大夫出而議於朝, 退而語乎家, 一言之不合乎此, 則指以爲邦朋邦誣, 而以四凶之罪隨之. 蓋近世主張國是之嚴, 凜乎其不可犯, 未有過於斯時者. 而卒以公論不行, 馴致大禍, 其遺毒餘烈至今末已. 夫豈國是之不定而然哉? 惟其所是者非天下之眞是, 而守之太過, 是以上下相徇, 直言不聞, 卒以至於危亡而不悟也. 傳曰: ‘差之亳釐, 繆以千里’, 况所差非特毫釐哉鳴呼, 其可畏也已奈何其又欲以是重誤吾君, 使之尋亂亡之轍跡而躬駕以隨之也?

 

! 이 강화(講和) 독단(獨斷) 국시(國是) 이 세 가지 이론이 오늘날 커다란 우환의 근본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이론을 논파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임금의 마음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 있을 뿐입니다. 명공께서 조정에 계시지 않으신다면 그만이겠지만 하루라도 그 지위에 계신다면 천하의 책임 추궁이 사방에서 몰아칠 것입니다. 말류(末流)에 빠져드는 데도 구제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 보다는, 서둘러[汲汲] 대인(大人)의 일에 힘써서 성기성물(成己成物)의 공적을 일거양득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2-1025)鳴呼此三說者, 其爲今日大患之本明矣. 然求所以破其說者, 則又不在乎他, 特在乎格君心之非而已. 明公不在朝廷則已, 一日立乎其位, 則天下之責四面而至. 與其顚沛於末流而未知所濟, 孰若汲汲焉以勉於大人之事, 而成己成物之功一擧而兩得之也?

 

저는 두문불출하고 뜻을 구하느라 다시 감히 천하의 일을 논하지 않은지 오래됐습니다. 합하(閤下)의 말에 느낀 바가 있어 스스로 그만 두지 못하고 다시 이와 같이 말하니, 고명(高明)께서 어떻게 여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상서(尙書) 왕공(王公: 應辰)은 직에 나간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여러 사악한 무리들이 앞 다투어 날뛰고 정론(正論)이 사라지는 즈음에 두 분께서 함께 조정에 계시니 천하 사람들이 도도한 물길 한 가운데 우뚝 버티고 있는 지주(底柱)처럼 기대하면서 믿는 바가 있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때()를 얻기란 어렵고 잃기는 쉬우며, 일이란 어그러지기는 쉬워도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원하건대 두 분이 지혜를 합하고 힘을 합하여 빨리 임금을 깨우쳐서 천하의 일을 도모하십시오. 이것은 다만 저의 바람일 뿐만 아니라 실로 천하의 모든 백성의 바램입니다.

杜門求志, 不敢復論天下之事久矣. 於閤下之言竊有感焉, 不能自已, 而復發其狂言如此, 不審高明以爲如何也. 尙書計就職已久. 方群邪競逐, 正論消亡之際, 而二公在朝, 天下望之, 屹然若中流之底柱, 有所恃而不恐. 雖然, 時難得而易失, 事易毁而難成. 更願合謀同力, 早悟上心, 以圖天下之事. 此非獨之願, 實海內生靈之願也.

왕수에게 보내며 둔전의 일을 논함 與汪帥論屯田事

 

해제이 글은 당시 촉() 땅의 수신(帥臣)이었던 왕응진(汪應辰)에게 보내는 둔전(屯田)을 논한 편지이다. 첸라이는 왕응진이 촉 땅의 수신으로 재임했던 기간이 건도 원년부터 건도 4년까지라는 점을 들어 이 편지 역시 그 기간 동안에 쓰여진 것으로 단정함과 동시에 을유년(1165) 혹은 병술년(1166) 사이에 쓴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숭안(崇安)에 통판(通判) 범기(范芑)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번 정자정(鄭資政)을 따라 촉() 땅에 주둔했을 때, 당시 한중(漢中) 지방의 둔전(屯田)의 이로움을 논하면서 변방의 군을 튼실하게 하고, 백성의 힘을 여유롭게 만들며, 한 해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는데, 아주 조리가 있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막부의 문서가 오늘날에도 오히려 보존되어 있습니까? 만일 완전치 못하더라도 당시의 관리 가운데 반드시 물어볼 만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오늘날 화의가 좋다고들 하지만 어떻게 오래도록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만에 하나 보장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 있는 것이 또한 어떻게 편이 앉아서 보장하는 계책만을 지킨다는 것이겠습니까? 사람을 모으는 근본은 재용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도첩(度牒)을 팔고, 백성들에게 재물을 짐지우고 그들의 머리를 깎아대느라 재물을 낳고 모으는 근원을 끊어버리며, 관직의 고신을 팔아 벼슬길이나 엿보는 무리배들이 잡다하게 와글거려 우리 백성들의 병폐가 되는 것 보다는 천시(天時)에 따르고 지리적 이점을 살려서, 배불리 먹고 편히 앉아있는 병사들의 힘을 빌려 앉은 채로 부강해지는 실효를 거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물며 이전 사람들이 이미 시험해 본 징험들이 머지않으니, 널리 묻고 신속하게 행하는 데 달려있을 뿐입니다. 농사짓는데 노력한다면 한 해를 제대로 경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때가 있으니 하루를 늦춘다면 한 해의 일을 놓치게 됩니다. 이제 밝으신 합하(閤下)께서, 이처럼 주변의 일이 조금 풀리고, 한 해의 수입을 크게 마련할 수 있는 시기를 틈타신다면 군대와 백성들이 모두 여력이 있으니 (둔전의)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여러 관리들이 모두 실정에 통달해 있으니, 한중(漢中)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함께 곡진하게 살피고 의논하면서 일 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도모하지 않는다면 아마 훗날이라도 이처럼 해볼 만 한 기회를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崇安范芑通判者, 頃從鄭資政, 能言當時漢中屯田之利, 所以實邊郡紓民力省歲費者, 甚有條理. 不知其幕府文書猶有存於今日者否? 就使不完, 當日官吏必尙有可訪者. 今之所謂和好, 豈可長保? 萬一可保, 而在我者亦豈當但爲安坐以守所保之計乎? 聚人之本, 財用爲急. 與其賣度牒, 責財於民而髠其首, 以絶生聚之源, 賣官告, 使人仕之流猥濫訛雜, 以爲吾民之病, 孰若因天時分地利, 借力於飽食安坐之兵, 而坐收富彊之實效乎? 況前人已試之驗末遠, 在博訪而亟行之爾. 稼穡之功, 經歲乃成. 然當可爲之時, 緩之一日, 則失一歲之事. 今以閤下之明, 乘此邊事少休歲收大稔之際, 兵民皆有餘力, 可以就事. 況諸司又皆通情, 則事之在漢中, 亦可委曲蕃議而共爲之. 失今不爲, 恐後難復値此可爲之會矣.

 

()는 멀고 외진 곳에 있느라 이익과 해로움의 상세한 것을 깊이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전해들은 말과 서책에 기록된 것을 참조해보면 이것은 오늘날의 변방에서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군율을 펼치고, 사졸은 훈련시키고 기계를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그 다음 일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일이 터지기에 앞서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在遠僻, 不能深得利病之詳. 然得於傳聞, 參以簡冊所記載, 竊以爲此最當今邊防之急務. 而申軍律練士卒備器械抑又次之, 皆不可不先事預謀以爲之(2-1027). 不審合意以爲如何?

 

 

조진숙에게 보내는 편지 與曹晉叔書

 

해제이 글은 건도 3(1167, 정해, 38) 9월에 장식(張栻)을 만나러 담주(潭州)에 도착해서 조진숙(曹晉叔)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는 이 달 8일에 장사(長沙)에 도착했는데, 지금 보름이 지났습니다. 경부(敬夫)가 나를 깊이 아껴주었고 함께 듣지 못했던 것들을 토론하고 밝히느라 날마다 학문이 늘어가는 것이 정말이지 다행스럽고 다행스럽습니다. 경부의 학문은 더욱 고명하고 견해가 탁월하며, 의론이 보통 사람들보다 남다릅니다. 최근에 그의 󰡔논어󰡕에 대한 주장을 읽었는데,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상쾌해져서 참으로 탄복할 만 했습니다. 악록(嶽麓)의 학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그 사이에는 또한 기질이 순수하고 뜻과 지향이 확실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만 방향을 아지 못해 종종 헛말에 의탁하면서 실제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충고하는 책임을 경부는 사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장사의 사군(使君)은 호걸처럼 시원하고 준걸처럼 빼어나서, 오늘날의 뛰어난 선비[奇士]인데, 남다른 것을 세우기를 좋아해서 도덕에 들어서려 하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 번 근황을 묻는 것이 아마도 깊이 존형(尊兄)을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曾得近書否? 공보(共父)과 궁궐에 도착한 이후에 일을 진언한 것이 여러 차례입니다. 그 말이 모두 비분강개하고 예리하며 올바른지라 근세에는 없었던 것들입니다. 천자께서 총명하셔서 그 말을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다만 설거주(薛居州) 한 사람만이 걱정됩니다. 만일 셋이나 다섯 정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국사(國事)를 지탱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될 일입니까? 푸른 하늘만 쳐다볼 뿐입니다.

此月八日抵長沙, 今半月矣. 敬夫愛予甚篤, 相與講明其所未聞, 日有問學之益, 至幸至幸. 敬夫學問愈高, 所見卓然, 議論出人意表. 近讀其, 不覺胸中洒然, 誠可嘆服. 嶽麓學者漸多, 其間亦有氣質醇粹, 志趣確實者, 只是未知向方, 往往騁罕言而遠實理. 告語之責, 敬夫不可辭也. 長沙使君豪爽俊邁, 今之奇士, 但喜於立異, 不肯人於道德, 可惜. 屢詢近況, 似深念尊兄者, 曾得近書否? 共父到闕之後, 言事者數矣, 其言又皆慷慨勁正, 近世之所未有, 聖王聰明, 無不容納. 然所憂者一薛居州, 若得三五人贊助之, 國事或可扶持也. 此豈人力所能參哉, 看上蒼如何耳.

 

 

위원리에게 보내는 편지 與魏元履書

해제이 글은 건도 4(1168, 무자, 39)에 위원리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를 받고 보니 지극한 뜻을 모두 담았습니다만 큰 개요는 방세와 늠궁이란 두 가지 일일 뿐입니다. 방세는 가을 겨울 사이의 일이니 또한 여러 사람들과 상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늠궁 또한 주와 현 사이에서 행해야 할 일이니, 꼭 조정에 아뢸 필요는 없습니다. 조정이 사사건건 이처럼 지휘를 내린다면 아마도 체면이 아닐 것입니다. 어제 이미 예()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지금 써서 보내드립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가부가 어떻습니까?

被敎, 備悉至意, 大槪只放稅廩窮兩事爾. 放稅是秋冬間事, 且與諸公商量未晩. 廩窮亦是州縣間合行事, 似不必聞之朝廷. 朝廷每事如此降指揮, 恐不是體面. 昨日已作, 今錄呈, 不知且如此可杏?

 

5등의 산호는 산출이 5백문 이하인데 그 사이에 드물게 이를 넘어선 사람도 있습니다. 만일 물산이 모두 수해를 입었다면 본시 모두 방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피해가 사소하다면 어떻게 똑같이 방면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110문 이하의 산호들에 대해서는 이처럼 분별할 필요없이 모두 방면하더라도 지장이 없을 뿐입니다.

第五等是五百文以下, 其間極有得過之人. 若物業全被水傷, 固不可不全放 : 若但傷些小, 如何一例放得? 但百十錢以下産戶, 卽不能如此分別, 與全放不妨爾.               

 

서부(西府)에는 아침저녁으로 글을 보내는데, ()도 또한 글을 써야 합니다. 또 노형이 말한 것과 제 뜻을 함께 일러주면서 선택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다만 한 두 현이 재해를 당한지라 아마도 감사나 주군에 어울리는 일인 듯합니다. 만일 집정이 간절히 향리만을 위해 사태를 알고자 한다면 아마도 편파적인 것이고, 도리도 이와 같지는 않을 듯합니다. 예조(芮漕)의 편지로 서로 이렇게 자문하면서, 정성스럽게 일러준다면 어찌 행하지 않겠습니까? 서임(徐任)도 바야흐로 이 일에 뜻을 두고 있으니, 모두 상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열흘하고도 며칠을 더 상의한다면 반드시 정해진 의론을 얻을 겁니다. 조정은 천리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 회답과 대응이 어찌 늦지 않겠습니까? 다만 상의하는 것이 반드시 시의에 적절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시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일러주지 못할 이치는 없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혹여 들어주지 않더라도 그 허물은 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자신이 말한 것도 정당치 않고, 사람들도 신뢰하지 않으며, 시행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이것은 자기 스스로가 옳지 않은 것이니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만 허물을 지울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우임금후직안자는 일의 성격이 다르니, 우리들은 이미 제 자리를 벗어나 분수를 넘본 것입니다. 주나 부, 감사에게 고해야 하는 것은 주나 부, 감사에게 고하고, 조정에 고해야 하는 것은 조정에 고하되, 진심을 다해 정성스럽게 고하고서 시행과 시행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맡겨 둔다면 오히려 큰 잘못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한결같이 이렇게만 하는 것은 오히려 도리가 아닌 듯합니다. 이 일이 한 번 시작되어 조정이 사방의 백성을 돌보는 체통을 잃게 하고, 주군과 감사가 그 직분을 잃고, 우리들이 그 분수를 잃게 된다면, 비록 천 명의 사람을 살린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습니까? 사리의 마땅함을 다시 헤아려 힘껏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마땅히 조정에서 부응할 만한 것이 있으면 그들이 스스로 밝게 아뢰도록 하고, (우리는) 간략하게 그들이 청한 내용을 보조한다면 거의 괜찮을 듯도 싶습니다.

西府書旦夕遣去, 亦當作書, 且以老兄所說與鄙意告之, 惟其所擇. 但一兩縣災傷, 似只是監司州郡事. 若執政者切切然只專爲鄕里理會事, 似屬偏頗, 道理亦不如此. 芮漕之書相咨問如此, 若以誠告, 豈有不行? 徐任亦方留意此事, 儘得商量. 若商量到十數日間, 亦須有定議矣. 朝廷在千里外, 其爲報應, 豈不緩耶? 但商量事須酌中合宜, 敎人行得, 卽無不可告之理. 其或不人, 咎乃在彼. 若自家所說過當, 敎人信不及, 行不得, 則是自家未是, 安得專咎他人耶? (2-1029)顔子事體不同, 吾人已是出位犯分了. 若合告州府監司者告州府盛司, 合告朝廷者告朝廷, 盡誠以告之, 而行與不行付之於彼, 猶未爲大失. 今一向如此, 却似未是道理. 蓋此事一發, 使朝廷失慮四方之體, 州郡盛司失其職, 吾輩失其守, 雖括千人, 不可爲也. 如何如何? 不若更度事理之所宜, 力告諸公, 有合朝廷應副者, 今自申明, 而約以助其請, 則庶幾或可爾.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드리는 편지에 대해서는 이미 정해진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이천(伊川)의 문집 가운데서 謝韓康公啓를 보았는데, 이 글은 강관을 제수 받은 후에야 비로소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오헌(吳憲)에게서 이미 편지를 받았으니 회답을 않는 것도 곤란합니다. 또 그 편지에 회답하면서 인하여 그의 뜻에 감사를 표한다면 아마도 괜찮을 듯합니다. 다만 여러 사람들 가운데 편지가 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 뿐입니다. 장래에 수신에게 감사하는 말을 할 때는 자신의 뜻을 서술하고, 천거해 준데 감사드리는데 불과할 뿐입니다. 횡거(橫渠)에게 천거해 준 사람에게 감사드리는 몇 편의 글이 있는데 매우 좋습니다. 꼭 아첨하는 듯한 말을 하고, 꼭 어수선한 문장을 지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만 천거하는 글 가운데 이 사람의 성명이 있는 것은 또한 인생사의 불행한 일입니다. 이것이 옛 사람들이 작위를 받는 것을 어려워한 이유입니다.

謝諸公書必已有定論, 頃見伊川集中謝韓康公啓, 乃是除誨官後方謝之. 吳憲旣得書, 却難不答, 且答其書, 因謝其意, 似無不可. 但諸公無書來者, 則未須爾. 將來謝帥之辭, 不過自敍己意, 謝其薦揚而已, 橫渠有數篇謝人薦擧書, 甚佳. 何必作佞語, 亦何必作惷辭? 但薦書中有此人姓名, 亦是人生不幸事, 此古人所以難受爵位也.

 

양원에 대한 짧은 비답은 이와 같은데도 결국 떠나고 만 것은 어째서입니까? ()가 오늘날의 시사를 살펴보니 단지 사대부들이 진심어린 내면의 말을 다하려 하지 않으려는 것일 뿐이니 오로지 군주만을 탓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유자후(柳子厚)나라의 녹을 먹으면서도 외경함이 두텁지 않고 자리가 높지 못한 것만 투덜대며, 아무 말 없이 물러난다고만 아뢰면서도 입으로는 내 말이 먹혀들지 않는다고만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養源小批如此, 而遂竟去, 何耶? 看得今日之事, 只是士大夫不肯索性盡底裏說話, 不可專咎人主. 柳子厚. . ‘食君之祿畏不厚兮, 憚得位之不昌. 退自服以黙黙兮, 日吾言之不行. ’今人多是此般見識也.

 

왕장(汪丈)619일 구강(九江)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6월말이면 옥산(玉山)에 도착할 텐데 그곳에서 사록관을 청한 회답을 기다리겠다고 해서, 이미 편지를 써서 빨리 경사로 돌아가도록 재촉했습니다. 한 번 청하는 것[一請]은 오히려 예의상 하는 말일 수 있으니, 만일 거듭 청한다면[再請] 그 때는 할 말이 없습니다. ()가 보낸 편지에서는 만일 거듭 청한다면 갑자기 평소의 품은 뜻을 이룰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치란과 국운의 흥망이 여기에서부터 나뉘게 될 것이니 어찌 공()만이 종신토록 한탄할 뿐이겠습니까? 온 세상의 후세 사람들도 모두 그 책임을 공에게 돌릴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매우 많지만 인편을 빨리 보내야 하는 바람에 이만 줄입니다.

汪丈六月十九日九江書云, 六月末可到玉山, 於彼俟請祠之報, 已作書速其行矣. 一請猶是禮數, 若又再請, 則無謂矣. 與書云: ‘有如再請, 忽遂雅懷, (2-1030)而治亂消長由此遂分, 豈惟公終身恨之, 天下後世亦且有所歸責矣.’不知渠又以爲如何. 所欲言甚衆, 亟遣人, 草草.

 

 

위원리에게 보내는 편지 與魏元履書

향리에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큰 풍년이 들었다니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백성들은 부채도 평년의 배가 될 것이니 근자에 수확이야 이미 끝났겠지만, 생각건대 또한 남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받은 조추(趙推)의 편지에서는 조사가 이미 희()의 차자를 기록해서 부()로 내려 보냈다고 하는데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왕수(王守)조조(趙漕)와는 모두 글을 주고받지 못했는데, 그들은 이 일에 참여하려는 의욕이 없는 듯합니다.

里中大稔, 數年所無, 幸事. 然小民價負亦倍常年, 比收斂已, 想亦無餘矣. 昨得趙推書云, 漕司已備錄箚子行下府中, 末知後來如何. 王守趙漕都未通書, 蓋亦懶與此事矣.

 

공보는 지난 달 20일 즈음에 왕기가 밀지를 받고 삼성과 추밀원을 경유하지 않고 진주성을 축성하는 일을 맡게 된 일을 논했습니다. 그러나 크게 천자의 뜻에 거슬려 단명전학사[端殿]로서 궁관을 맡으라는 어지를 받았는데, 다음날 또 융흥부 지사[知隆興]를 맡으라는 어지를 내렸습니다.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떠나려 했는데, 오히려 조정에 들어와 아뢰라는 명이 내려왔습니다. 은혜에 감사드린 것이 8일이 지났는데 또 조정에 들어와 아뢰라는 명령은 초4일에 있었으니 아마도 천자께서 지난번의 조치가 잘못된 것을 후회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보의 편지에서 진장(陳丈)이 힘껏 이 일을 간쟁했다고 하니 진장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두 분이 조정에 계시면서 비록 큰일을 해내지는 못했다지만 선류(善類)들이 믿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지금 각각 사직하고 떠나게 된다면 또한 걱정입니다. 편지에서는 존형(尊兄)에게 전하라는 말도 있었는데, ‘일의 형세가 예전과 다르니 진장마저도 떠난다면 이 일은 당연히 스스로 (진퇴의 도리를) 살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共父前月二十間因論王琪專被密旨築眞州, 不經由三省密院, 大忤上旨, 批與端殿宮觀, 次日又批與知隆興. 乞放謝, 却令朝辭 : 乞以念八日, 又令初四日, 却似悔前擧之失. 共父書云, 陳丈力爭此事, 恐亦不能久. 兩公在朝雖做大事不得, 然善類不無所恃. 今各辭去, 亦可慮也. 書中令致意尊兄, 云事體與昔不同, 陳丈若去, 則此事當自審處.

 

평보(平父)가 급하게 보낸 인편이 운제(雲際)에 이르렀는데, 선채로 글을 기다리느라 바삐 이 회답을 씁니다. 논의를 모은 글을 보내드립니다만, 흠부(欽夫)의 다른 글을 검토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보기만 하고 그 뜻을 탐구하지 않는 것은 존형의 오랜 병폐입니다. 어째서 이런 병폐를 없애지 못하는 것입니까? 예노(芮老)와의 편지에서 서로 충고한 내용은 제 병폐를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서로 아껴주시는 뜻을 감히 잊을 수 없습니다.

(2-1031)平父亟遺人至雲際, 人立俟書, 草此爲報. 集議文字上內, 欽夫他文未暇檢. 然多取而不究其旨, 此乃尊兄舊病, 何爲未能去耶? 芮老書中相告戒, 切中拙病, 荷其相愛之意, 不敢忘也.

진승상의 영전을 축하드리는 편지(무자년 겨울) 賀陳丞相書(戊子冬)

해제이 글은 116939세 때 진중경의 영전을 축하하기 위하여 작성된 것이다. 진준경이 10월 우복야(右僕射)를 제수받았는데 본문 중에 '벌써 한달 여가 지났다'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11월 경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편지는 재상에 오른 지 한달 여가 지났지만 과거의 정치에 비해 개선된 것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다소 비판조의 어조로 작성되었다. 주자는 과거 고위 관리들이 지녔던 덕목을 조목조목 거론하는 한편, 이들의 치정을 충분히 검토하여 일의 사리와 본말을 판단하라고 충고한다.

 

 

고위관리로 임명되어 정권을 잡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가에서 당신과 같은 인재를 들여 쓰는 것에 대해 누구인들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공께서는 커다란 충성과 굳센 절개로 일찍부터 천하의 기대를 한 몸에 지고, 지정사(知政事) 시절부터 국가의 중요한 일을 보좌하셨으니 무릇 의론하시는 일마다 국가의 안위와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당신 자신의 거취를 놓고 쟁론하신 경우도 있었는데 비록 곧바로 공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천자가 공을 신뢰하는 것이 더욱 돈독해 지고, 천하의 사람들이 공에게 거는 기대는 더욱 깊어 져서, 오히려 두려워하면서 오직 공께서 하루아침에 관직을 그만두고 조정에 머무르지 않게 될까 근심했습니다. 공께서 상하에서 신망을 얻은 것이 어찌 다만 이 뿐이겠습니까? 이제 영전하여 천자를 보좌하는 재상이 되셨는데 온 나라에서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다같이 말하기를 진공이 과거에 말한 것이 천하 백성들의 의견이다고 합니다. 간쟁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거의 관직에서 물러날 뻔했는데 지금은 도리어 재상이 되셨으니 이것은 천자께서 공의 말을 기꺼이 여기면서 끝까지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공은 반드시 이것을 천자의 앞에서 다짐받고서 벼슬을 받을지 사양할지를 결정하십시오. 또 천하의 일에 크고 급한 것도 이보다 특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께서 과연 기꺼이 그 지위에 오를 수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반드시 순서대로 그 까닭을 폐하께 설명드려서 그저 잠자코 벼슬이나 받지는 않을 것이며, 당당하게 처신할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비록 지극히 어리석을지라도 만약 고위관리가 된다면 군주와 주고받을 정책 방향 정도는 염두해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밑에서 듣건대 공이 재상의 지위에 오른 것이 한달 남짓 되었는데 정책이 시행되고 인재를 가려 쓰는 것이 확연하게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 할 것이 없습니다. 이는 공께서 온 나라에서 공에게 거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관직에 나간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공께서는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셨지만 가만히 생각하건대 부끄럽고 한탄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공께서는 장차 어떻게 앞으로의 정치를 펼치시렵니까? 어리석은 생각을 조금이나마 말씀드리겠습니다. 공께서 취사선택 하십시오.

恭聞制書延拜, 秉國, 凡在陶鎔, 孰不欣賴? 伏惟明公以大忠壯節早負天下之望, 知政事贊襄密勿, 凡所論執, 皆繫安危. 至其甚者, 輒以身之去就爭之, 雖未卽從, 而天子之信公也益篤, 天下之望公也益深, 懍懍然惟懼其一旦必去而不可留也. 夫明公所以得此於上下者, 豈徒然哉今也進而位乎天子之宰, 中外之望莫不欣然, 咸日陳公前日之言, 天下之言也. 爭之不得, 危於去, 而今乃爲相, 則是夫子有味乎陳公之言而將卒從之也. 陳公其必以是要說上前, 而決辭受之幾矣. 且天下之事, 其大且急者又不特此, 陳公果不得謝而立乎其位, 必且次第爲上言之, 爲上行之, 其不黙然而受, 兀然而居也明矣. 雖至愚, 亦有是說. 然今也聽於下風亦旣餘月, 政令之出, 黜陟之施, 未有卓然大異於前日, 則是明公蓋未嘗以中外之望於公者自任, 而苟焉以就其位矣. 受知之深, 竊所愧歎, 未知明公且將何以善其後也. 請得少效其愚, 而明公擇焉.

 

대개 듣건대 옛날 군자가 대신의 지위에 있을 때 천하의 일에 대해서 미혹됨이 없이 다 알고 있었고, 맡은 바 일에 여유가 있으면 그 때에 가장 시급한 일을 씩씩하게 처리했습니다. 잘 모르는 사안이 있거나 힘이 부족하면, 묻고 강구하여 지식을 쌓고, 도와줄 이를 끌어들이는 것을 마치 불을 끄거나 죽은 사람을 추모하듯이(다급하고 정성스럽게) 조금이라도 늦추지 않았습니다. 위로 함께 인의에 대해서 논의하기에 부족하다고 해서 임금을 어리석게 여기지 않고, 아래로 교화에 부흥하는데 부족하다고 해서 백성들을 비천하게 여기지 않고, 관료들 사이에서는 함께 업적을 이루기에 부족하다고 해서 사대부들을 천박하게 여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 그 지위에 처한다면 해당 일의 공적인 일을 처리했으며, 어떤 날 공적인 일이 없다면 그 날은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일을 도모하지 않았습니다. 애정이 있으면서 기꺼이 실천하지 않는 것은 사적인 것이요, 두려움이 있으면서 감행하지 않는 것 또한 사적인 것입니다. 우뚝하니 가운데 서서 조금이라도 사적인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오직 그 직분에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무릇 이와 같았기 때문에 뜻이 도를 행하는데 충분했고 도가 때에 맞추어 백성을 구제하는데 충분하게 되어 대신의 책무에 부끄러움이 없었던 것입니다. 공이 앞으로 선정을 도모하시는 것이 여기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근사하기라도 한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다시 이것을 개진한다면 어리석은 저로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라건대 빨리 그것을 도모한다면 천하 사람들의 바램을 위로할 수 있게 되어 과거에 공의 영전을 기뻐했던 사람들이 다시 오늘날과 같이 근심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蓋聞古之君子居大臣之位者, 其於天下之事知之不惑, 任之有餘, 則汲汲乎及其時而勇爲之. 知有所未明, 力有所不足, 則咨訪講求以進其知, 扳援汲引以求其助如救火追亡, 尤不敢以少緩. 上不敢愚其君, 以爲不足與言仁義 : 下不敢鄙其民, 以爲不足以興敎化 : 中不敢薄其士大夫, 以爲不足共成事功. 一日立乎其位, 則一日業乎其官 : 一日不得乎其官, 則不敢一日立乎其位. 有所愛而不肯爲者, 私也 : 有所畏而不敢爲者, 亦私也. 屹然中立, 無一毫私情之累, 而惟知爲其職之所當爲者, 夫如是, 是以志足以行道, 道足以濟時, 而於大臣之責可以無愧. 不蕃明公圖所以善其後者, 其有合於此乎? 其有近於此乎? 無乃復有進於此者, 之愚不足以知之乎? 願亟圖之, 庶乎猶足以終慰天下之望, 毋使前日之欣然者, 更爲今日之悒然也.

 

()는 청할 것이 있습니다. ()는 일찍이 명공의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대신이었던 사람들은 법도에 순응하여 공도만 주장하며, 아는 것을 다 말하여 임금을 덕으로써 밝게 하며, 신상필벌을 공정하게 행하여 어진 이는 들여쓰고 불초한 이는 물러나게 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었다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아주 곤란하지. 풍속이 파괴되고 관리는 썩어 터졌으며, 오랑캐가 코밑까지 치고 들어오는데도 변방의 경비는 확립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과거의 대신들처럼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는 어리석지만 공의 말씀에 깊이 의심되는 것이 있습니다. 대개 공이 쉽게 여기는 것은 모두 옛날 사람이 어렵게 여기는 것이요, 공이 어렵게 여기는 것은 옛날 사람이 쉽게 여기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생각해 보아도 공이 말씀하신 저의를 이해하지 못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 감히 영전을 축하하는 인편을 핑계로 이와 같은 청을 하게 되었사오니, 삼가 바라건대 공이 마음속에 돌이켜 보시어 사리의 경중과 본말을 헤아려 주십시오.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의 소재를 잘 파악하시어 공의 마음을 쓰신다면 모든 일이 무난하게 될 것입니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도끼자루를 베고 도끼자루를 벰이여 그 표준이 멀리 있지 않도다고 했습니다. 바라건대 명공께서 유념하신다면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又有請焉: 嘗辱明公賜之書矣, 其言有曰: ‘前輩爲大臣, 不過持循法度, 主張公道, 知無不言, 復君以德, 公行賞罰, 進賢退不肖而已. 今日事有至難, 風俗敗壞, 官吏苟且, 彊敵在前, 邊備未立, 如之何其可爲也?’ 愚不肖, 深有所疑. 蓋凡明公之所易者, 皆古人之所難 : 而明公所難者, 乃古人之所易也. 反復思慮, 不得其說, 將以質之左右而未暇也. 今者敢因修慶而冒以爲請, 伏惟明公試反諸心, 而以事理之輕重本末權之. 誠知夫眞難易之所在而有以用其心焉, 則亦無難之不易矣. : ‘伐柯伐柯, 其則不遠.’ 願明公留意, 則天下幸甚

 

 

위원리에게 답하는 편지 答魏元履書

 

해제송나라와 불공대천의 원수인 금나라 오랑캐에 대해 대의명분상 강경책을 써야함을 강조하는 글이다. 주자는 오랑캐에 대한 정책방향을 정도를 좇아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한 이후에 천명이 좌우하는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또한 글의 후반부에서 거론되는 진 나라와 초나라의 경우를 비교하여 제기되는 임율의 견해는 작금의 송나라가 처한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말이라고 논박한다. 1168(건도 3) 38세 이후로 주자가 관직을 계속 사양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금나라와의 화친책을 반대하는 주자의 주장이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내주신 두정남(杜征南: 杜預)의 글은 아주 정밀한 의론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안은 이와 다른 듯합니다. 대개 (당시 진 나라는) 강대하고 군사력이 월등한 나라였기 때문에 전략과 전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우리나라가 약소한 형편에 스스로를 지키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의리와 사세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비록 정남의 기막힌 전략이 없다손 치더라도 천하의 형편이 마땅히 그만둘 수 있는 것입니까? 제 생각에 맹자가 성공의 여부는 천명에 달려 있다고 한 것, 동자(董子: 동중서)도를 밝히고 의를 바르게 한다고 한 것, 무후(武候: 제갈량)몸과 맘을 다 바쳐 나라 일에 이바지하고 죽은 다음에야 그칠 것이니 일의 성패와 이해득실은 미리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고 말한 것이 바로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만약 정남의 말을 정설로 삼는다면 앞에서 예를 든 내용들은 아마도 뒷전으로 밀릴 것입니다. 일전의 답장에서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는데 보내온 편지를 보고 또 그 사안을 말하려다 보니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노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所喩杜征南, 此固切論. 然今日之事, 恐異於此. 蓋彼以彊大兼人之國, 故其計謀規畫不得不然. 今以弱小自守, 而義當有爲, 乃其義理事勢不得不爾. 今日雖無征南之明略, 而天下之事當得但已耶? 愚謂孟子所謂成功則天, 董子所謂明道正義, 武侯所謂鞠躬盡力, 死而後巳, 成敗利鈍非所逆料者, 正是今日用處. 若以征南之言爲正, 竊恐落第二義也. 前日答書, 思慮偶不及此, 見來書又言之, 聊發其愚, 不知老兄以爲如何也.

 

요사이 임황중(林黃中: 林栗)이 궁저(宮邸)에 있으면서 󰡔사기󰡕의 진나라가 초라를 정벌할 때 왕전(王翦)과 이신(李信)이 병사의 많고 적음을 놓고 논쟁하던 곳을 읽고 변설한 글을 보았는데 우연찮게도 요즘의 사안과 비슷합니다. 거기에서 말하기를 이제 몇 만의 병사로 중원을 제압하려고 한다면 어찌 사려를 자세하게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을 가지고 오늘날의 사안을 거론한다면 진실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진 나라는 여섯 나라를 정벌했는데 그 중에 초나라가 가장 진나라와 원한이 없는 나라였기 때문에 초나라가 패망하게 되자 그 나라의 백성들이 슬프게 생각하고 삼호의 노래[三戶之謠]를 부른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당시 진나라 사람들의 침략과 초나라 사람들의 방비의 형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편과 앞서 든 예 와는 완전히 상반되니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황중의 의견과 노형의 입장은 다소 비슷하니 태만한 생각들입니다. 무릇 의론을 할 때는 무엇보다도 근본이 정당한 것인지 살피는 것이 요구됩니다. 그 이후에야 기강이나 조목이 근본에 의거해서 확립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논어에 대한 변설과 아이들을 위한 󰡔당감󰡕이라는 글을 읽고서 범태사(范太史: 范祖禹)의 학문을 살펴 볼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의 속내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관련된 의론이 있으니, 짬을 내어 수 차례 숙독해 본다면 틀림없이 옛 사람들이 사세의 경중과 완급의 방도를 논하던 것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매번 읽을 때마다 깊은 감명을 받아 일찍이 책을 덮으면서 탄복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頃見林黃中說在宮邸史記, 王翦李信爭兵多少, 偶及近事, 因云: ‘今乃欲以數萬之卒橫行中原, 何其慮事之不詳.’ 因爲言此事正不爾, 滅六國, 最無罪, 故楚旣亡, 而其國人悲思, 三戶之謠. 則當時人之攻, 人之守, 勢可知矣. 今日之事與此正相反, 奈何以爲比乎? 此與所論亦稍相似, 因謾及之. 大袛議論先要根本正當, 然後紀綱條目有所依而立. 近看論語及爲兒輩說唐鑑, 因得究觀范汰史之學, 不知此人胸中如何? 其議論乃爾. 暇日試熟觀數過, 當見古人論事輕重緩急之方矣. 每讀至曾心處, 未嘗不廢卷而歎也.

진승상에게 보내는 편지(기축년) 與陳丞相書己丑

 

 

해제1169년에 쓰여진 편지이다. 󰡔주자대전󰡕 27진승상의 영전을 축하하는 편지에서 진승상에게 사뭇 비판적인 언사를 보낸 것에 대해 사과하는 한편 감남악묘라는 사관직을 제수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의 서신이다.

 

()는 아룁니다. 한여름 무더위에 복야평장추사(僕射平章樞使) 상공(相公)께서는 안녕하신지요? ()가 일전에 영전을 축하드리는 편지를 올리면서 어리석은 걱정거리로 공을 모독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망령된 짓이라 꾸지람을 들어야 마땅하지만 도리어 손수 편지를 보내어 저를 어루만지고 수용하는 예의가 두터우심을 입었습니다. 편지를 공손히 여러 차례 읽어보니 명공께서는 지위가 높을수록 마음은 낮추시고, 덕이 융성해질수록 예는 더욱 공손하시어 과연 소인[小人]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태사(台司)께서는 예절(禮絶)인지라 제가 또 계를 올려서 감사드리지 못합니다. 다만 황합(黃閤)의 아래로 귀의하려는 제 마음만은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 中夏毒熱, 恭惟僕射平章樞使相公鈞候起居萬福. 昨奉咫尺之書, 修致慶問, 因以愚慮上瀆高明, 妄庸, 宜得譴斥之罪, 乃蒙鈞慈還賜手敎, 憮存開納, 禮意勤厚. 伏讀三歎, 有以見明公位愈高而心愈下, 德彌盛而禮彌恭, 果非小人之腹所能料也. 台司禮絶, 不敢復致啓謝, 惟是區區歸心黃閤之下, 未始一日而忘.

 

갑자기 당첩(堂帖)을 받았더니, 직무를 받들 것을 기약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봉함한 채로 역참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만 통상적인 법도에 비추어 볼 때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관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길래 이 직책을 담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 참으로 송구스럽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가 사리분별에 서툴고 어리석어서 공직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공께서도 평소에 아시는 것입니다. 지난 번 사관직으로부터 외람되이 관직을 제수 받았습니다만, 명은 받은 처음부터 근심스러워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돌아보건대 현행 관례상 낮은 관직에 대해서는 사면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사관직을 구해 얼마간의 식량이라도 기약하여 죽이라도 쑤어서 어버이를 봉양하고자 하여도 사관직으로 복귀하는 것은 더욱 요원하며 오히려 국가의 봉록이나 축내려 한다는 혐의나 받지 않을까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한 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임기가 이미 만료되었고 조정에서 또 특별히 문서를 내려서 불러들이시니 제가 추밀원편수관은 수락하지 않으면서 사관직을 구하는 것이 아주 못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따로 차자 한 통을 써서 제가 원하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명공께서 가엽게 여겨서 요행히 귀 기울이시어 제가 세상일을 가볍게 처리하여 어버이에게 근심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신다면 명공께서 희()를 두터이 배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혹여 공께서 빨리 허락해 주지 않으신다면 희() 다시 부탁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忽又奉承堂帖, 戒以袛事之期, 囊封疾置, 似亦非常制所當得者. 自顧何人, 可以當此? 允竊恐懼, 不能自安. 之狂獧撲愚, 不堪世用, 明公知之蓋有素矣. 頃自祠官叨被除目, 聞命之初, 卽惕然有不敢當之意. 顧以近制不應辭避之科, 因欲復求祠官, 幾得斗升之祿, 以共水菽之養, 則又以待次尙遠, 懼有貪躁之嫌, 是以因仍寢嘿, 以至于今. 幸官期已及, 而廟堂又特爲下書以招徠之, 之不獲已而有求, 似亦不爲甚無謂者. 巳別具箚子一通, 道其所欲. 伏惟明公哀憐而幸聽之, 不使輕犯世故, 以貽親憂, 則明公之賜於厚矣. 或恐未卽遽蒙矜許, 請得復罄其說.

 

()는 어리석어 내세울만한 것이 없지만 옛 성현들의 학문에 힘쓰고 천하의 의리를 검토해온 터라 아주 몽매한 정도는 아닙니다. 어찌 밖으로 군신간의 의리가 있으며 안으로 부모 자식 간의 정이 있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평생 동안 명공과 같은 분이 인정해 주면서 이렇게 후하게 대우해 주시니, 어찌 형편이 나은 시기에 조금이나마 폐하와 공께 보답하기를 원치 않고 그저 우물쭈물 물러나서 한가하게 동강(東岡)의 언덕이나 지키려는 것이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아주 부득이한 사정이 있습니다. 명공께서는 이를 살피시고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사관에서 나오는 녹을 받아서 어버이를 봉양하고, 한가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살면서 뜻하는 바를 더욱 추구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성품을 도야하는 데 있어 중화의 덕에 흠뻑 젖어들 수 있게 하며, 하늘의 신령에 의뢰하여 성급하고 어리석은 제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나중에 공께서 끝내 저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제 능력에 합당한 등용의 은택[熏沐]을 내리셔서 제 능력대로 쓰시고자 한다면 명령과 가르침을 받들어 감히 사양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雖愚不肖, 無所短長, 然區區用力於古人之學, 閱天下之義理, 亦庶幾不爲懵然者. 豈不知外有君臣之義, 內有母子之情? 而平生知己如明公者, 待之又不爲不厚, 豈不願及明時, 效尺寸以報君親, 酬知遇, 而直逡巡退縮, 以求守此東岡之陂? 此其中必有甚不得已. 惟明公幸察焉, 而聽其所欲, 使得竊祠官之祿以養其親, 而自放於荒閒寂寞之境, 以益求其所志, 庶乎動心忍性, 涵泳中和, 賴天之靈, 得遂愛化其狂獧樸愚之質. 則異時明公未忍終棄, 猶欲熏沐器使, 其或可以奉令承敎而不敢辭也.

 

명공께서는 마땅히 스스로 교화의 근원을 맑게 하시고 오래된 폐단을 혁파할 방도를 도모하시어, 폐하의 강건함이 너무 지나치지 않게 보좌하여 임금의 도가 아래로 미치게 하시고, 충성스런 간언을 적극 권면하여 신하의 도가 위로 수용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천지가 서로 사귀어 편안해 지고 상하의 뜻이 같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천하의 선비로써 비록 욕심없이 전원에 머물러 살면서 요순의 도나 즐기고자하는 자일지라도 장차 공을 위하여 조정으로 나올 것인데 하물며 희() 같은 사람이야 어찌 거론할 필요조차 있겠습니까? 엎드려 생각건대 명공께서 힘쓰신다면 천하에 다행스런 일일 것입니다. 공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백성들이 모두 우러르며 위안을 삼을 것입니다. 이렇듯 희()의 바램은 간절합니다. 정성껏 글을 작성하여 올리오니 살펴 주십시오.

明公亦宜自謀所以淸化原革流弊者, 使乾剛不亢而君道下濟, 忠讜競勸而臣道上行, 天地交泰, 上下志同, 而天下之士雖有囂囂然處畎畝而樂堯舜, 猶將爲明公出, 况如熹者, 又豈足道也哉伏惟明公勉焉, 則天下幸甚. 自餘加護鼎食, 以慰具瞻. 熹不勝懇禱拳拳之至. 謹奉手啓以聞, 伏惟照察.

왕상서에게 보내는 편지(기축년) 與汪尙書書己丑

 

해제왕상서는 왕응진으로 자가 성석(聖錫)이며 옥산(玉山) 사람이다. 기축년 40세 때 작성된 편지이다. 여기서 주자는 왕상서가 소식(蘇軾) 계열의 학문을 따르는 자를 등용한 것을 비판하였다. 이런 행태는 왕상서의 학문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틈을 내서 공자, 자사, 맹자, 정자의 학문에 매진할 것을 권고한다.

 

 

요새 과거시험이 끝난 이래로 날로 인재가 등용되기를 바랐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지체되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라의 식견 있는 선비들이 명공의 일 처리가 늦다고 걱정하지만 어리석은 희()는 유독 명공께서 일 처리를 늦게 하시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대게 시험관이 인재를 취사선택하는 것으로 보자면 아마도 명공께서 천하의 의리에 대해 좀 더 검토하시려고 이렇게 시간적인 여유를 두는 것 같아 기쁩니다.

自頃拆號, 日望登庸, 尙此滯留, 不省所謂. 海內有識之士, 蓋莫不爲明公遲之, 之愚, 獨有爲明公喜者. 蓋以省闈取舍觀之, 則疑明公於天下之義理尙有當講求者, 而喜其猶及此閒暇之時也.

 

도학이 쇠퇴한지가 오래되었는데 선비라는 자들은 천박하고 겉치레나 하는 것만 추종하고, 사기치고 나쁜 짓만 일삼습니다. 소신있는 식자들이 이 같은 행태를 근심하여 세태를 변화시켜 옛 도를 회복하기 위해 한결같이 경술과 덕행으로써 인도하려고 하지만 옛 도가 회복되기도 전에 구태의연한 작태들이 벌써 그 사이에서 횡행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원래 멋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고 법도와 기준에 따르는 것을 꺼려합니다. 이런 틈새를 비집고 경술과 덕행에 치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힘껏 공격하면서 옛 도를 다시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고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장으로 인재를 취하는 방법이 고착화되었습니다. 풍속이 이미 천박해 졌으며, 인재를 가려 뽑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세태를 좇아 천박해진 것이 날로 심해지고 해가 더할수록 악화되어, 정말이지 옛 도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속으로(하체는) 한기가 드는데 겉으로는(상체는) 열이 펄펄 끓는 경우에 열을 식혀주는 처방을 하면 오히려 열만 더 오르게 됩니다. 돌팔이 의사가 한기를 다스릴 방도는 구하지 않고 환자의 증세는 겉으로(상체에) 나타나는 고열이라고 생각하여 망령되게 열을 떨어뜨리는 처방을 하게 되면 병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 소동파가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한 요지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가 동주(東州)의 두 선생은 교만하고 내실이 없어서 정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헐뜯은 것에서 보면 이치에 어긋나고 교화를 헤치는 것이 오히려 앞서 거론한 것보다 심합니다. 그런데 과거시험에서 소동파의 문장을 도용한 두 사람을 공께서 모두 발탁하여 다른 수험생보다 높은 점수를 주셨습니다. 이는 명공께서 소동파의 견해가 그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 처리는 공의 마음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정사를 망치는 것이고 정사를 집행한다고는 하지만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공께서 천하를 위해 정치를 펼치기도 전에 천하의 선비들은 이미 공의 내심을 알아차리고 앞다투어 소동파의 책이나 외우고 손쉬운 길만 구하려 듭니다. 귀가 솔깃하고 관심이 쏠려서 선비들의 양심이 그 학설에 빠져들어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어 마침내 천박하고 겉치레나 하는 것을 진실로 추종할 것이고, 과거의 몸소 실천하는 군자를 헐뜯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물며 이들이 어느 날 조정의 고위관리가 되어 재상의 역할이라도 수행하게 된다면 그 해악이 또 얼마나 되겠습니까? 명공께서 일전에 장강(張綱)게 시호를 내린 것을 바로잡을 때 왕씨(王氏)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에 대해 식자들이 동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재를 등용하는 일을 이따위로 하시니 죽은 자에게도 지각이 있다면 장강에게 비웃음을 사지 않겠습니까. 공께서 일찍이 후회하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自道學不明之久, 爲土者狃於愉薄浮華之習, 詐欺巧僞之姦作焉. 上之人知厭之矣, 然欲遂變而復於古, 一以經行迪之, 則古道未勝, 舊習之姦已紛然出於其間而不可制. 世之人本樂縱恣而憚繩檢, 於是乘其隙而力攻之, 以爲古道不可復行, 因以遂其自恣苟簡之計. 俗固已薄, 爲法者又從而薄之, 日甚一日, 藏深一歲, 而古道眞若不可行矣. 譬之病人, 下寒而客熱熾於上, 治其寒則熱復大作. 俗工不求所以治寒之術, 遂以爲眞熱而妄以寒藥下之, 其不殺人也者幾希. 蘇氏貢擧之議正如此, 至其詆東州二先生爲矯誕無實, 不可施諸政事之間, 則其悖理傷化, 抑又甚焉. 而省闈盜用此文者兩人, 明公皆擢而寘之衆人之上, 是明公之意蓋不以其說爲非也. 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明公未爲政於天下, 而天下之士已知明公之心, 爭誦其書, 以求速化, 耳濡目染, 以陷溺其良心而不自知, 遂以偸薄浮華爲眞足尙, 而敢肆詆欺於昔之躬行君子者不爲非也. 況於一旦坐廟堂之上, 而以宰相行之, 其害又當如何哉? 明公前者駮正張綱之謚, 深詆王氏之失, 識者韙之. 而今日之取舍乃如此, 死者有知, 得無所笑? 不蕃明公亦嘗悔之否乎?

 

()는 어리석고 무지합니다만 욕되게도 공께서 권면하시고 도타운 후의를 보내주셨습니다. 일전에 소동파의 학문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지금 대략 효험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의 임명이 지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시간 여유를 두어서 미처 검토하지 못한 것을 강구하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만약 공께서 제 충정어린 의도를 살피시고 분수에 어긋나는 죄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신다면 성현들이 전한 정도를 깊이 고찰하되 공자, 자사, 맹자, 정자의 책이 아니라면 가까이 하지 마시고, 밤낮으로 살펴보시어 그 의미를 궁구하고, 자신에 비추어 체득하시어 천지의 소재가 어디인지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바로잡게 되면 그것을 미루어 군주의 마음을 바로잡으시고, 또 더 나아가 평소생활이나 정사를 처리할 때를 당해서는 천하 백성의 마음을 바로잡으신다면 명공의 공적과 명성, 덕과 사업은 삼대 시절 제왕을 보좌하던 재상보다도 융성할 것입니다. 근세에 명망 있는 재상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비전도 말하기에 부족한 데 하물며 소씨(蘇氏)의 쓸모없고 임기응변에나 능한 술책은 또한 그들보다 더욱 못할 것입니다.

愚無知, 辱知獎甚厚, 往者亦嘗關說及此, 而今略驗矣. 故獨不敢以延拜之遲爲恨, 而以猶得及此暇時, 講所未至爲深喜. 明公若察其願忠之意, 而寬其忘分之誅, 則願深考聖賢所傳之正, 孔子子思之書不列於前, 晨夜覽觀, 窮其指趣而反諸身, 以求天理之所在. 旣以自正其心, 而推之以正君心, 又推而見於言語政事之間, 以正天下之心, 則明公之功名德業, 且將與三代王佐比隆, 而近世所謂名相者, 其規模蓋不足道, 蘇氏浮靡機變之術, 又其每下者哉

 

제가 기한을 지켜 공직에 나오라는 문서를 받았습니다만 원래부터 그 직에는 나아갈 마음이 없었는데 지금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승상께 편지를 올려 사관직을 청해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혹여 제가 추밀원편수관의 직에 나아가지 않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쉬이 사록관을 얻을 수 없게 된다면, 제가 청한 것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말씀 거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 참정(參政) 양공(粱公: 克家)과는 애초부터 교류가 없던 터라 감히 편지를 써서 부탁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제가 게으르다고 의심할까 두려워 차자 한 통을 올리오니 전달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저의 바람이 전달된다면 거듭 다행이겠습니다. 제가 다시 시사적인 내용을 논의할 수 없습니다만 일일이 논의하지 않아도 명백한 일들이오니 공께서 힘써 주십시오.

忽被堂帖, 戒以官期, 本不欲行, 今乃得遂初心. 有書懇丞相, 求祠祿以供水寂之奉. 恐或怒其不來, 未易遽得, 卽乞從容一言之賜, 早遂所求, 幸甚幸甚參政粱公之門, 初無灑掃之舊, 不敢以書請. 又恐疑於簡己, 有箚子一通, 乞轉致之, 且及此意, 則又幸甚. 不敢復論時事, 蓋亦有不待論而白者, 明公尙勉之哉.

 

 

 

왕상서에게 답하는 편지(611) 答汪尙書書六月十一日

 

 

해제기축년 주자 40세 때에 쓴 왕상서에게 답신으로 보내는 편지이다. 주자는 왕상서와 진준경의 천거로 취밀원편수관에 천거되지만 애초에 등궐하여 관료직을 수행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왕상서에게 거듭 사의를 전하는 내용이다. 특히 고위관료가 지녀야할 태도에 대해서 간언한 것이 전혀 현실 정치에 반영되지 않자 출사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굳힌다. 게다가 이 해에 노모의 병세가 심해진 것도 간절히 사록관을 청하게 된 원인이다.

 

(徐倅)를 통해 512일에 내려보낸 교첩을 받아보았습니다. 요즘 장마비가 한창인데 상서께서는 안녕하시다니 무척 다행입니다. 저를 권면해 주시고 더욱 챙겨주시니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래에 수계를 정성껏 올리고 아울러 숭안을 경유하여 상서성에 차자를 보내 사록관을 간청했는데 이미 검토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徐倅轉致五月二十七日所賜敎帖, 恭審比日暑雨潤溽, 台候起居萬福, 感慰之深. 伏蒙勸行, 尤荷眷念. 近拜手啓, 幷申省狀, 崇安附遞, 懇請祠祿, 不蕃已得徹合聽否?

 

저는 천하고 쓸모 없으며 학문도 내세울 게 없습니다. 어리석음이 날로 심해져서 세상일과는 배치되기 때문에 스스로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일전에 공께서 조정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듣고 틀림없이 장차 위로는 임금의 마음을 바로 잡고 아래로는 타락한 풍속을 일으켜 세우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서 풍교가 아래로 미치는 것을 보좌하려는 뜻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감히 저의 안위만 생각하는 계획을 밀어부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형편을 살펴보면 공께서 상서의 직분을 수행한지가 몇 개월이 되었는데도 제의 평소 희망이 두루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제 처지에 어찌 다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걸고 평소의 바램을 해소해 주기를 바래면서 그 사람을 따르겠습니까? 이 때문에 관직에 나아가지 못할 사정이 심하여 앞전 편지에서 사록관을 청한 것입니다. 이는 비단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공께서도 이러한 의도를 살피시어 새로운 정책을 도모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최근 직에 나오라는 칙령을 받았기 때문에 감히 제 고집만 피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어이 공께서 저를 궁에 들이시려면 제 말을 수용해 주셔야함은 물론이고 실제로 정책에 반영하셔야만 제가 관직에 나가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요, 관직에 나가지 않더라도 아쉬움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제 간언이 수용되지도 않고 형편이 마땅하지도 않는데 외롭게 국가의 봉록이나 축내는 자리를 한번 차지하게 되면, 우선은 후안무치하다는 창피함이 있을 것이요 나중에는 조정이 혼란스러워지는 화가 있을 것이니 비록 제가 어리석다고는 하나 어찌 이와 같은 것을 기꺼이 여기면서 기어이 추진하려 하시고 공께서는 또한 어떤 것을 저에게서 취하시려고 기어이 저를 관직에 두려 하십니까?

孤賤無庸, 學不加進, 而戇愚日甚, 與世背馳, 自度不湛當世之用久矣. 往者猶意明公來歸, 必將有以上正君心, 下起頹俗, 庶幾或可效其尺寸, 以佐下風, 是以未敢決然遂爲自屛之計. 而今也明公之歸亦旣累月矣, 似又未有以大慰區區平昔之望, 也尙復何望於他人, 而可輒渝素守, 以從彼之昏昏哉? 所以深不獲已, 而有前書之. 非獨自爲, 亦欲明公識察此意而圖其新. 今承誨飭之勤, 敢不深體至意. 愚竊謂明公必欲引內其身, 不若聽用其言, 言行矣, 則其身之出也可以無所愧, 其不出也可以無所恨. 若言不用, 道不合, 顧踽踽然冒利祿而一來, 前有厚顔之愧, 後有駭機之禍, 雖至愚, 獨何樂乎此而必爲之, 而明公亦何取乎而必致之也?

 

공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도성에 이른 다음부터 혹여 편치 않은 점이 있다면 취사선택은 그대 소관이라네라고 하셨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위원리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서도 공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이는 공께서 깊이 저를 아끼시는 처사이기는 하지만 저를 위한 배려로 보자면 미진한 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의 가부가 무릇 복잡한 요소들가 뒤섞여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잠시 나중 일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현재 제가 관직에 오를 수 없는 것은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이 뻔하기 때문인데, 오히려 어찌 관직에 오른 뒤에 불편함이 생기는 것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군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따져본 다음에 관직에 나섰지 먼저 관직에 나간 다음에 할 일을 헤아리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초야에 묻혀 지내고 있어서 제 자신을 주장할 수 없는데 하물며 도성의 번화가에 있는 당대의 대인 군자를 감당하게 되었을때 본심을 잃고 승상의 뒤꽁무니나 찾아 해매서야 되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이 실수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따라서 저는 공의 제안에 깊은 의심이 없을 수 없어서 앞전 편지에 사록관을 구했던 것이고 이 기회에 다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사록관을 허락 받는다면 크나큰 기쁨일 것입니다. 만약 끝내 제 청이 수락되지 않는다면 제가 어찌 감히 앉아서 조정의 명령을 어겨 한번 가지도 않을 수 있겠습니까?

抑明公之敎: ‘旣到之後, 若有未安, 在我.’ 兩得元履, 亦以公言見告如此. 此則明公愛之深, 而所以爲謀者反未盡也. 夫事之可否, 方雜乎冥冥之中而未知所決, 則姑爲之以觀其後可也. 今此身之不可仕, 仕路之不見容已昭然矣, 尙何待於旣至然後有所未安? 古之君子量而後入, 不入而後量. 今身在山林, 尙恐不能自主, 市朝膠擾之域, 當世之大人君子, 至是而失其本心者踵相尋也. , 又可保其不失耶? 深有所不能無疑於明公之計, 前書之懇, 敢因是而復有請焉. 如蒙矜許, 固爲大幸 : 若其不遂, 豈敢坐違朝命而不一行?

 

다만 제 모친이 요새 이런저런 병치레에 시달리기 때문에 관직에 올라 정사를 살필 형편이 아니고 자식된 도리로 모친을 멀리 떠나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저 이 사안이 곤란한 사정입니다. 상경하여 직에 나오라는 칙령을 받고 곧바로 직에 나아가면 여러 가지 일에 구속되고, 거기에 응하지 않으면 무거운 죄 값을 치르게 됩니다. 직에 부임한 다음에 사록관으로 체직할 수 있다면야 별 탈이 없겠지만 아예 사록관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면 평소 제 소신을 어기는 행위가 됩니다. 이런 사정은 모두 심사 숙고 했지만 제가 일을 그르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공께서 제 사정을 참작하여 일 처리를 하면서 어떤 일을 도모하신다면 반드시 조처하실 것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저는 기어이 사록관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낙후된 지역이라 가르칠 만한 사람이 없는 지방의 교관이나, 행정업무가 그리 많지 않는 곳의 현령같은 지위 정도여서 제 졸렬함을 감추고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빈 자리가 없을까 두렵습니다. 빈궁함이 이미 심해서 만약 몇 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니, 사록관을 시켜주시는 것이 제일 좋은 듯 싶습니다. 다시 서쉬가 보내온 인편을 통해 편지를 올립니다. 제 속내를 감히 다 말씀드리오니 공께서 잘 살펴주십니오. 직접 만나뵐 날을 기약할 수 없지만 덕을 도야하고 공무를 처리하심에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부디 자중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만 줄이며 삼가 아룁니다.

老人年來多病, 旣不敢勞動登途, 又不敢遠去膝下, 只此一事, 便自難處. 籍令單行, 至彼就職, 則便被拘縻, 不就則重遭指目. 就職之後遞去, 則又似無說, 不去則自違素心. 凡此曲折, 皆已思之爛熟, 其勢必至顚沛, 無可疑者. 伏惟明公以其所以見愛之心施之於此而爲之謀, 則必有有所處矣. 亦非必欲祠祿, 若荒僻無士人處敎官, 少公事處縣令之屬, 似亦可以藏拙養親, 但恐無見闕耳. 窮空已甚, 若有數月之闕, 卽不可待, 又不若且作祠官之爲便也. 復因徐倅便人拜啓, 區區底蘊, 敢盡布之, 伏惟明公察焉. 進見未期, 伏乞進德修業, 爲主眷人望千萬自重, 不宣. 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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