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하게 인호들이 도망 다니도록 한 것에 대해 스스로 탄핵하는 장 1 自劾不合致人戶逃移狀一
【해제】이 글은 순희 6년 (기해, 1179, 50세)에 “남강군지사의 임무 수행 중 가을에 발생한 소속 고을들의 가뭄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백성들을 유리걸식하게 하고 조정에도 피해를 입혔다고 스스로를 탄핵하여 파면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저는 지난번에 성은을 입어 남강군 지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간절히 사양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해 어리석음을 무릎 쓰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관리의 책무를 이기지 못하고, 질병이 번갈아 일어나 거의 스스로 지탱하지 못할 정도라 차자를 써서 궁관으로 파견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윤허를 기다린 지 몇 달 동안 주장대로 시행함을 입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진실로 몽매하고 어려서부터 건강하지 못했습니다만 노둔한 재주를 다하는데 힘써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돌아보건대 시골 아전의 도모를 막지 못하여 거듭 군을 시들게 하고 재물을 궁핍하게 하여 백성들을 가난하게 하여 지난해 상공한 것을 운반하고 창고를 열어 지금 대략 절반에 미쳤는데 관리들이 서로 이어 다만 힘을 다해 재촉하여 공급하고 거의 책임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소속 현들이 금년 가을 가뭄을 당한 곳에 검속할 시기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지나치게 엄정히 독려하여 드디어 인호들이 유리걸식하고 원망하여 분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관리를 파견하여 위로하였으나 오히려 안정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가만히 자신을 생각해보니 평생 장구와 썩은 유학의 학문만을 일삼아 비록 세상에 쓰이지 못하였으나 구구한 뜻은 아직까지 백성을 사랑하고 물건을 이롭게 함으로써 공로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위로는 사령을 어기고 아래로는 배운 바를 저버려 이것이 쌓여 부끄럽고 두려우며 질병이 더해져 진실로 떳떳하게 봉록을 먹지 못하겠습니다. 바라건대 고른 사랑으로 특별히 은혜를 내리시어 일찍 파면하여 원근의 수령들이 부지런히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길러주지 못하는 경계로 삼으십시오. 저도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을 살펴 더욱 배운 바가 지극하지 못한 것을 탐구하여 거의 확실히 갖춰 저의 허물을 속죄할 수 있다면 큰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장계를 갖춰 상서성에 펴고 엎드려 고른 조치를 기다립니다.
右熹昨蒙聖恩, 昇以郡紱, 懇辭不獲, 冒眛而來. 到官未幾, 不勝吏責, 疾病交作, 殆不自支, 卽具箚子申乞改羞宮觀羞遣. 側聽累月, 未蒙敷奏施行. 熹誠愚眛, 夙夜靡寧. 亦欲勉悉疲駑, 以酬恩遇, 顧以山野, 不閑吏道, 重以凋郡財匱民貧, 去年上供綱運起發至今粗及其半, 官吏相承, 但知竭力催科, 以給公上, 庶逃罪責, 不意屬縣今秋有旱傷處, 不惟失於檢放, 加以程督過嚴, 遂致人戶流移, 怨謗蜂起. 雖已遣官慰喩, 尙恐未能安帖. 熹竊自惟平生章句腐儒之學雖不適於世用, 然區區之志, 亦未嘗不以愛人利物爲功. 今乃以是上負使令, 下負所學, 積此慚懼, 疾病侵加, 誠無心顔可食俸祿. 欲望鈞慈特與敷奏, 早賜罷免, 以爲遠近牧守不勤撫字之戒. 而熹亦得以杜門省身, 益求其學之所未至, 庶幾後効, 以贖前愆, 不勝幸甚!謹具狀申尙書省, 伏候鈞旨.
부당하게 인호들이 도망 다니도록 한 것에 대해 스스로 탄핵하는 장 2 自劾不合致人戶逃移狀二
【해제】이 글은 순희 6년 (기해, 1179, 50세)에 “소속 고을들의 올 가을 가뭄을 재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백성들에게 세금을 독촉하여 민심이 이반하게 되어 조정에 누를 끼친 것을 스스로 탄핵”하는 두 번째 장계이다.
위의 내용은 일전에 본 군의 관내에 올 가을 가뭄으로 황폐한 곳이 있는 것을 살펴보니 조속히 검방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급하게 과거의 빠진 세금을 재촉하니 마침내 인호들이 원망하게 되어 서로 이끌고 도망 다니게 되어서 10월에 주장을 갖추어 스스로 탄핵할 것을 상서성에 아뢰어 파면하시기를 빌고 주현의 경계로 삼게 했습니다. 두렵게 명을 기다린 지가 지금 두 달이 되었는데도 처분을 받들지 못했습니다. 근심과 두려움이 날로 쌓이고 질병이 더해가니 관직의 일이 더욱 나빠졌습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바라건대 앞 장계를 살펴 주시고 조속히 폐하께 아뢰어 시행해주십시오. 삼가 아룁니다.
右熹昨緣本軍管內今秋有荒旱處, 不知及早檢放, 而催理舊缺過於嚴急, 遂致人戶愁怨, 相率逃移, 已於十月內具狀自劾, 申尙書省, 乞賜罷黜, 以爲州縣之戒. 惕息俟命, 至今兩月, 未奉處分. 憂懼日積, 疾病有加, 職事之間, 益以荒廢. 謹具狀申尙書省, 乞賜檢會前狀, 早賜敷奏施行. 謹狀.
궁관을 비는 차자 乞宮觀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7년 (경자, 1180, 51세)에 “남강군 지사로 장우의 남은 임기를 채우고 다시 궁관으로 파견해 주시어 자신을 보존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장계이다.
제게 갑자기 간절한 청이 있어서 위로 폐하께 아룁니다.“저는 일전에 성은을 입어 권발견남강군사로 파견되어 작년 3월 30일 임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자주 질병이 있어서 사록을 빌었지만 아직 폐하께 아뢰어 시행을 입지 못했습니다. 지금 재임 기간이 열 달을 채웠습니다. 한 번 평가를 해야 할 만큼 오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질병으로 인하여 더욱 노쇠해지고 심력이 시들고 줄어들고, 게다가 각기병과 가래가 자주 생기니 직책을 힘쓰기가 힘듭니다. 바라건대 조정은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궁관파견을 한차례 더 주시어 문을 잠그고 음식을 끊을 수 있게 하여 질병을 쉬면서 보살피게 한다면 다음 날 몸이 나빠지는데 이르지 않을 것이니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熹輒有誠懇, 上瀆鈞聽 熹昨蒙聖恩, 差權發遣南康軍事, 已於去年三月三十日到任. 累以疾病陳乞祠祿, 未蒙敷奏施行. 今來在任已滿十月, 非久當書一考, 實緣衰病愈侵, 心力凋耗, 加以脚氣痰飮發作無時, 難以勉强在職. 欲望朝廷特賜敷奏, 改授祠廟羞遣一次, 使得杜門竊食 休養殘廢, 庶幾不至卽日賴殯, 不勝幸甚!
궁관을 비는 장 乞宮觀狀
【해제】이 글은 순희 7년 (경자, 1180, 51세)에 “거듭 남강군지사를 파면하여 궁관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제가 일전에 칙지를 살펴보니 앞에 남강군지사로 파견되어 자주 병환으로 사면하였는데 윤허를 입지 못했으며, 마침내 작년 3월 30일에 아픈 몸을 이끌고 관에 나아가 직무를 교대하였습니다. 지금 임지에서 해를 넘겨 질병으로 지탱하기 어려워 관리의 책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절차대로 장계를 갖추어 궁관으로 파견을 빌었는데 아직 지휘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근래 3월 6일에 일의 정도를 보니 천식이 크게 일어나 머리와 눈이 어지러워서 거의 쓰러짐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여러 날 정신이 더욱 혼미해지니 낭패가 여실하여 지탱할 수 없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바라건대 상부에서 조사하여 저에게 거듭 궁관으로 파견시켜 주시길 비니 조속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특별히 청했던 것에 의거하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칙지를 기다립니다.
右熹昨準救, 差前件差遣, 累以病患辭免, 不蒙開允, 遂於去年三月三十曰扶病到宮, 交割職事. 今來在任已是輸年, 疾病支離, 不堪吏責. 中間節次具狀陳乞官觀差遣, 亦未凖回降措揮. 近於三月六曰視事之際, 風痰大作, 頭目旋暈, 幾至僵踏. 今已累曰, 精神愈見昏慣, 委是狼狽, 不可支持. 謹具狀申尙書省, 欲乞鈞慈檢會熹累乞宮觀文字, 早賜敷奏, 特依所請, 不勝幸甚!伏候鈞旨.
재상에게 보내는 차자 與政府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7년 (경자, 1180, 51세)에 “거듭 남강군지사의 임무를 파면해 주시고 다시 궁관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저는 이전에 노쇠하여 지탱할 수 없어서 문득 차자를 갖추어 궁관파견으로 조치해 주시길 빌었습니다. 보고 드린 것이 한달이 되었는데도 아직 처분을 입지 못했습니다. 근래 3월 6일 일의 때를 보니 천식이 크게 일어나 머리와 눈이 어지러워 거의 쓰러질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여러 날 정신이 더욱 혼미하고 어지러워 낭패가 여실하지만 힘써 억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니 바라건대 상부에서는 조속히 폐하께 보고하고 특별히 청했던 것에 따라 저로 하여금 마침내 몸을 쉬게 하여 보살펴 굶주린 저를 보호한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상부의 위엄을 넘보게 되어 엎드려 삼가 죄를 기다립니다.
熹昨以衰病支離, 輒具箚目, 陳乞陶鑄宮觀差遣. 側聽輸月, 未蒙處分. 近於三月六日視事之際, 風痰大作, 頭自旋暈, 幾欲僵仆. 今已累日, 精神愈見昏慢, 委是狼狽, 不堪勉彊. 已具狀申尙書省, 欲望鉤慈早賜敷奏, 特從所諸, 使寮得遂休眷, 以保餓齡, 不勝幸甚!干冒威嚴, 俯伏俟罪.
궁관을 비는 차자 乞宮觀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7년 (경자, 1180, 51세)에 “남강군지사의 임무를 거두시고 궁관으로 다시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후임자를 속히 파견하여 백성의 가뭄피해에 대한 대책이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장계하였다.
저는 갑자기 긴급한 간청이 있어 간범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옛날부터 심기의 질병이 있는데 근래에 기우제를 지내 재앙을 대비함으로 인하여 근심과 걱정이 다시 발동하여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이 평소보다 심합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마땅히 이러한 가뭄피해는 군의 일을 널리 황폐하게 하니 이로움과 해로움 되는 것이 다른 때에 견줄 것이 못됩니다. 바라건대 상부에서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저에게 궁관파견을 내리시어 조금이나마 몸을 쉬게 하여 보살피게 한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본 군에 있는 황정은 일전에 대략 순서를 세워 조치하였으니 다시 바라건대 교대관인 석돈을 빨리 오도록 재촉하여 계속해서 구제한다면 모든 굶주린 백성들이 천만 다행일 것입니다.
熹輒有危迫之懇, 干冒鈞聽: 熹舊有心氣之疾, 近因禱雨備災, 憂懼怵迫, 復爾發動, 怔忪炎燥, 甚於常時. 竊慮當此旱荒曠廢郡事, 其爲利害, 又非它時之比. 欲望鈞慈特賜敷奏, 與熹宮廟差遣, 令得少遂休養, 不勝幸甚!所有本軍荒政, 昨已措置略有次第, 更望催促替人石(敦+山)疾速前來, 接續賑救, 則千里饑民不勝幸甚.
직비각을 사양하는 장 1 辭免直秘閣狀一
【해제】이 글은 순희 8년 (신축, 1181, 52세)에 “남강군 인근 고을의 가뭄을 해소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권하여 곡식을 내게 하고 정부에서 포상하여 운문의 관리를 임명하도록 조치한 것이 실효를 거둬 이후의 재난에 대비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도록 공신력을 유지해 달라”는 장계이다.
7월 18일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7월 17일 삼성이 함께 성지를 받들어 저를 일전에 남강군에 임명된 날 황정을 개선하여 백성이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기 위해 직비각에 제수하셨습니다. 저는 명을 받고서 은혜를 받음에 감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엎드려 생각해 보건대 저는 일전에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그릇되게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덕으로 베풀고, 먼 백성을 은혜롭게 하지 못했고, 형정에 중도를 잃고 재앙을 불러 이르게 하여 백성의 삶에 힘쓰지 않고 죄를 의거하고 형을 논의하니 어찌 허물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조잡하게 조치하여 대단한 낭패에 이르지 않았을지라도 직책을 지키는 상도가 어찌 과실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세금을 견감하고 돈과 쌀을 내려 상공해야할 전물로 빌려 주고, 쌀을 사서 팔아 진제하는 것을 허락한 것은 모두 폐하와 천지가 베풀어준 비상한 은혜이니 관리는 여기에서 어찌 적은 힘만 탓 하겠습니까 부자들을 권유하여 창고를 열어 쌀을 사서 진제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폐하께서 관리의 벼슬을 친밀하지 않고서 백성의 생명을 구하고 포상의 규정에 따라 내려, 농후함이 극에 이르러 부유한 백성이 감격하고 본받아 비로소 창고에 여러 해 쌓아 놓았던 것을 능히 다하여 응당 공상이 하루아침에 기다리는 것은 관리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제한 인호는 처음에 폐하의 죄에 이르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 푼도 취하지 못하겠으며, 살 4-5천 석을 주어야 바야흐로 한 관에서 얻으니 사가로부터 말하면 그 수 또한 많습니다. 이것은 곧 상을 내리는 것에 있어 느슨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니, 일시에 관리에게 죄가 있고 공이 있는지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저는 다행히 크고 너그러워 곡진히 관용을 베푸는 것을 더하여 제수하여 등용함을 입었는데, 지극히 외람될 정도입니다. 지금 성은을 입어 다시 위의 제수하는 명이 있으니 제가 앞에서 아뢰어 남강군을 진제한 인호 장세정 등의 4명은 원래 내려진 상의 규정에 의해 문무의 관리 품계를 주는 것이 마땅하니 유사가 미문을 돌아보고 그 일을 막아야 하는데 지금에 이르러도 보답하여 상을 내리는 지휘를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폐하의 은혜를 넘었고, 마땅히 죄를 지은 것에 포상하여 유사들이 신임을 잃었고 도리어 마땅히 상을 내려야 할 것에 인색합니다. 제가 비록 지극히 어리석지만 이에 편안하지 않습니다. 상서성 차자로 내려진 것은 감히 공손히 받을 수 없어서 건령부에 보내 군자 고에 맡겼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바라건대 조정에서는 정성스럽게 잘 살펴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철회해 주십시오. 금년 윤 3월경에 조사한 남강군 주장과 제가 받들었던 주장은 아뢰었던 사리를 자세히 살펴 주시고 혹시라도 잇달아 관사가 과연 진실로 어려움에 초래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포상하도록 보고하지 않은 것은 장세형 등이 아울러 폐하께 아뢰었으니 제가 빌었던 것에 의거하여 여러 관청의 보고서를 기다리지 마시고 특별히 먼저 법식 등에 의거하여 상을 내려 주시고 곧바로 관직을 내려 본 군으로 하여금 지금 당관을 내려 주시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저의 사의가 스스로 편안함을 얻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래로 주군의 장리들이 법에 의하여 관직에 따라 힘써 화평에 이르고 다행히 백성이 재앙에 이르지 않아 저절로 저의 이로움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네 사람이 일찍이 성은을 입어 방해하여 뇌물을 요구하는 소요를 면하게 되고 부모형제가 끝없이 입은 은혜에 감사하고 받들 뿐만 아니라 만일에 불행히 사방에 다시 홍수나 가뭄으로 기근의 재앙이 있게 되면 기타 부유한 백성으로 하여금 격려할 것을 알려 쉽게 권유하게 되고 가난한 사람이 의지하는 바가 있게 되어 다시 유랑하지 않게 될 것이니 그 이익은 하나를 바름으로 그치지 않을 뿐입니다. 망령되고 참람하게 조정을 넘보게 되어 은혜를 빌며 죄를 기다리니 간절하고 두려운 지극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아뢰어 주십시오.
右熹準七月十八日尙書省箚子, 七月十七日, 三省同奉聖旨, 以熹昨任南康軍日, 修擧荒政, 民無流殍, 可除直秘閣者. 熹聞命震驚, 受恩感激, 有不知所以言者. 然竊伏念熹昨以非才, 誤蒙任使, 不能布宣德意, 以惠遠民, 乃以刑政失中, 招致殃咎, 赤地千里, 民不聊生, 據罪論刑, 豈容辜免!政使粗能指晝, 不致大段狼狽, 亦是職守之常, 何足補塞愆負? 而况蠲閣租稅, 撥賜錢米, 許借上供錢物, 糴米賑糶, 皆是聖主天地脫施非常之恩, 官吏於此, 豈有絲毫之力? 至於勸諭富民發廩糶濟, 亦是聖朝不愛官爵, 以救民命․頒下賞格, 極於醲厚, 以故富民觀感視傚, 始肯竭其囷倉累歲之積, 以應公上一旦之須, 亦非官吏之力所能及也. 然其賑濟人戶, 初無致皇之罪, 今又不取一錢, 而捐米四五千石, 方得一官, 自私家言之, 其數亦已多矣. 此則在所當賞而不可緩者, 非一時官吏有罪無功之可比也. 今熹幸際隆寬, 曲加容貸, 更蒙除用, 已極叨踰. 今者又被聖恩, 復有上件除命, 而熹前所奏南康軍賑濟人戶張世亭等四名, 合依元降賞格補授文武官資者, 有司顧以微文沮却其事, 至今未見報行推賞指揮. 是乃聖主過恩, 旣賞於其所當罪, 而有司失信, 反吝於其所當賞. 熹雖至愚, 於此竊有所不安者. 所有降到省箚, 不敢袛受, 已送建寧府寄納軍資庫. 謹具狀申尙書省, 欲望朝廷洞照誠悃, 特爲敷奏, 許賜收回. 仍檢會今年閏三月內南康軍奏及熹獨銜奏狀, 詳酌所陳事理, 如是節次官司果是固爲邀阻, 至今不爲保明推賞, 卽將張世亭等倂爲敷奏, 依熹所乞, 不候諸司保明, 特與先次依格等第推賞, 直降付身, 令本軍日下當官給賜. 是則不惟熹之私義得以自安, 亦庶幾自今以來, 州郡長吏奉法遵職, 務格和平, 不至幸民之災, 自圖身利. 不惟此四人者早蒙聖恩, 免有邀阻乞寬之擾, 父子兄弟感戴無窮, 而萬一不幸四方復有水旱饑饉之災, 亦使其他富民知所激勵, 易爲勸誘, 貧者有所侍賴, 不復流移, 其利非止一端而已也. 狂妄僭率, 干冒朝聽, 祈恩俟罪, 不任懇切恐擢之至. 謹狀.
(소첩자) 세호 장세정이 5천 석을 진제하였으니 법식에 의거하여 승절랑을 내려 주시길 빕니다. 세호 류사여는 4천 석을 진제하였으니 법식에 의거하여 승신랑을 내려 주시길 빕니다. 진사 장방헌은 5천 석을 진제하였으니 법식에 의거하여 적공랑을 내려 주시길 빕니다. 대보태학생 황증은 5천 석을 진제하였으니 적공랑을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小帖子)稅戶張世亭賑濟五千石, 依格乞補承節郞. 稅戶劉師輿賑濟四千石, 依格乞補承信郞. 進士張邦獻賑濟五千石, 依格乞補迪功郞. 待補太學生黃․澄賑濟五千石, 依格乞補廸功郞.
위의 내용은 앞과 같이 내용을 갖추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 옛날에 맡은 것에 별도로 얽매임이 없이 단지 이 하나의 일을 끝마쳤으면 합니다. 처음 조정의 상격은 반드시 허문이 아니라고 이르지만 뜻하지 않게도 지금 이것으로써 백성을 잡는 죄에 빠졌으니 매일 그것을 생각하면 마치 바늘로 찌르는 짐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돌아보니 시골에 살아 감히 진청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다행히 은혜로운 명을 사면함으로 인하여 한 마디의 말의 효과를 얻었습니다. 이것을 넘는다면 분수를 지킴에 구차함이 있고 또 스스로 도달할 수 없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상부에서 유념하여 내려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혹 이와 같이 네 사람이 모두 은혜로운 상을 받았다면 일찍이 보답을 바라지 않고 제가 깊은 산 속에서 살고 부실한 죄를 탐문할 수 있도록 불쌍히 베풀길 빌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운 명을 사면하고자 한 것은 이 일의 실체와 더불어 스스로 서로 함께 할 수 없으니 바라건대 힘써 개진하여 주시고 청한 것을 기약하신다면 후하고 다행일 것입니다. 삼가 상부에서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右具如前. 伏念熹罷官還家, 舊任別無綰繫, 只此一事未了. 初謂朝廷賞格必非虛文, 不謂今乃以此自陷於罔民之罪, 每一思之, 如負芒刺. 顧以居閑, 不敢陳請. 今者幸因辭免恩命, 得效一言. 過此則分守有拘, 又將無以自達. 切望鈞慈早賜垂念, 千萬幸甚. 如是四人近日皆已得霑恩賞, 不曾報行, 卽熹屛居深山, 探問不實之罪, 亦乞矜貸. 而其所乞辭免恩命, 與此事體自不相須, 更望力賜開陳, 期於得請, 乃爲厚幸. 伏乞鈞照.
직비각을 사양하는 장 2 辭免直秘閣狀二
【해제】 이 글은 순희 8년 (신축, 1181, 52세)에 직비각을 제수 받고 쓴 두 번째 사면장이다 그리고 그는 “가뭄피해를 극복하는데 공로가 있는 네 사람을 법에 따라 포상하여 국가의 공신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저는 9월 4일, 8월 17일 진시에 상서성에서 도착한 고명 한 통을 받고, 제가 지난 번 받았던 상서성 차자와 대조해 보았더니, 성지를 받들어 제가 이전에 남강군에 부임해 있으면서 황정을 닦고 백성들이 떠돌고 굶주리지 않게 하였으므로 직비각을 제수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과거에 재임하면서 형정이 어그러졌고 한해를 불러왔으며, 죄만 있을 뿐 공적은 없었기 때문에 감히 명을 받들 지 못했습니다. 이와 함께 제가 재임하면서 순희 7년 9월 23일 폐하의 포상령을 받들고서 세호 장세형 유사여, 진사 장방헌, 대보국학생 황징 등 네 명에게 쌀을 내어 백성을 진제하라고 권유해서, 모두 19,000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곧바로 상주문을 만들어 폐하께 보고했고, 여러 상부 기관에도 알려 보고를 올려 포상을 시행하면서 문관 혹은 무관을 제수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지금 반년이 지났습니다. 근심스러운 것은 제가 교체된 이후에 여러 기관에서 보고를 올리지 않아 위의 네 사람이 조정의 포상을 받지 못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계를 만들어 상서성에 보고하면서 폐하께 아뢰어 제게 주어진 외람된 은명은 거두어 주시고, 장세형 등 네 명에 대해서는 여러 기관의 보고를 기다릴 것 없이 조속히 애당초 내렸던 포상령에 의거해서 특별히 은사를 허락해서, 부신을 내려 보내 본 군으로 하여금 즉시 관에서 배부할 수 있도록 빌었습니다. 만든 장계는 내려왔던 상서성 차자에 이어서 건령부 군자 고로 보냈습니다. 지금 위항의 고명을 받았습니다만 저는 앞항에 있는 제가 보고한 두 종류의 안건에 대해 회답하는 지휘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받들 수가 없습니다. 함께 건령부에 보낸 외에 삼가 다시 장계를 만들어 상서성에 보고합니다. 바라건대 앞 장계를 살펴보시고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저의 사면을 허락해 주십시오. 장세형 유사여 장방헌 황징 등 네 명도 하루빨리 포상령에 의거하여 상을 내려 주신다면 저는 다행함을 이루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삼가 올립니다.
右熹九月初四日準八月十七日辰時尙書省遞到告命一道, 照對熹昨準尙書省箚子, 奉聖旨, 以熹前任南康軍日, 修擧荒政, 民無流殍, 可除直秘閣. 熹竊伏惟念昨來在任, 政刑乖錯, 招致旱災, 有罪無功, 不敢袛受. 兼在任日遵奉淳熈七年九月二十三日敕旨賞格, 勸諭到稅戶張世亨․劉師輿․進士張邦獻․待補國學生黃澄四名出米賑濟, 共計一萬九千石, 已行支散, 卽具奏聞及申諸司, 乞與保明推賞, 補授文武官資. 今來已是半年, 竊慮熹旣得替之後, 諸司未曾保明, 致得本人未蒙朝廷推賞, 已具狀申尙書省, 乞賜敷奏, 收還誤恩, 仍將張世亨等四名不候諸司保明, 早依原降賞格特與推恩, 給降付身, 令本軍日下當官給付, 及具狀繳連所降省箚, 寄留建寧府軍資庫訖. 今來又準上項告命, 熹爲有前項所申兩節事理未準回降指揮, 不敢袛受, 已幷申建寧府寄留外, 謹再具狀申尙書省, 伏乞檢會前狀, 特與敷奏, 許熹辭免. 仍將張世亭․劉師輿․張邦獻․黃澄四名早賜依格推賞, 則熹不勝幸甚. 謹狀.
직비각을 사양하는 장 3 辭免直秘閣狀三
【해제】이 글은 순희 8년 (신축, 1181, 52세)에 “남강군지사로 있을 때 구황에 공이 많은 네 사람을 법대로 포상하여 국가의 공신력을 회복하여 앞으로의 재난에 대비하는 방법으로 삼고 절동제거사의 임무를 수행 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장계이다.
제가 9월 5일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제가 앞 장계에서 새로 제수한 직비각 은명의 일을 재고해 달라고 빈 일을 기록하고서, 성지를 받들어 사면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성은을 우러러 받들고서 감격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공손히 받들지 못하겠지만 삼가 폐하를 우러러 감사하였습니다. 단지 저의 장계 내에서 말했던 바, 저는 비록 지극히 어리석지만 이에 능히 스스로 편안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바로 남강군에 보고해서 권유했던 세호 장세형이 진제미 5천석을 헌조하였으니 상격에 의하여 승절랑을 마땅히 내려야하며, 진사 장방형은 진제미 5천석을 헌조하였으니 상격에 의하여 적공랑을 마땅히 내려야하며, 대보국학생 황증은 진제미 5천석을 헌조 하였으니 상격에 의하여 적공랑을 마땅히 내려야하며, 세호 유사여는 진제미 4천석을 진조하였으니 상격에 의하여 승신랑 일절을 마땅히 내려야하는데 아직 호부에서 상격에 의거하여 상을 내리지 않았으니 바라건대 폐하께 아뢰어 시행하여 주십시오. 지금 살폈던 상서성 차자 안에는 도리어 이러한 사리를 제거했으니, 저는 가만히 생각하건대 보잘 것 없고 우매하고 절박한 저의 정성을 폐하께서 아직 살펴주지 않으셨고, 마땅히 상을 미루어 주어야 할 사람은 예전처럼 아직 성은을 입지 못 하였으니 저는 의리상 공손히 받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지금 여러 로에 홍수와 한해가 넓게 퍼져 공가에 쌓아두었던 것은 나누어 주어 남아 있는 것이 얼마 없으니 전적으로 부유한 백성들에게 진제미를 헌납하도록 의뢰해야 합니다. 만약 조정에서 이와 같이 상격을 내리지 않는다면 누가 응모하여 나라를 돕고 백성을 구하겠습니까? 아울러 저는 근래에 제거절동상평공사로 옮겨 제수 되어 이러한 흉년을 당해 오로지 구황을 직무로 여겼는데 만약 이 상격에 의해 상을 내려 주시길 빌었던 것이 시행을 입지 못한다면 남강에서 옛날에 다스렸던 신의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절동의 백성들을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니 장차 반드시 일이 잘못되어 위로 폐하께 밤낮으로 근심을 끼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만 번 죽을 지라도 족히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조정은 자세히 살펴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제가 앞 장계에서 아뢰었던 것을 살펴 남강군에서 아뢰었던 세호 장세형 류사여 왕증 장방영을 각각 원래 내렸던 상격으로 살펴 주시고 조속히 문무 관직을 내려 주신다면 위의 은혜로운 명은 저에게 직접 더할 필요는 없으며, 폐하의 중요한 정치는 위에서 닦여지고 가깝고 먼 곳에서 보고 들어 아래에서 격려하고 권유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다시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엎드려 지휘를 기다립니다.
右熹準九月五日尙書省箚子, 備坐熹前狀所乞寢罷新除直秘閣思命事, 奉聖旨不許辭免者. 熹仰戴聖恩, 不勝感激. 雖未敢卽日袛受, 謹已望闕稱謝訖. 但熹狀內所稱熹雖至愚, 於此有不能自安者, 正爲南康軍保明, 勸諭到稅戶張世亭獻米五千石賑濟, 依格合補承節郞 進士張邦獻獻米五干石賑濟, 依格合補迪功郞 待補國學生黃澄獻米五千石賑濟, 依格合補迪功郞 稅戶劉師輿獻米四千石賑濟, 依格合補承信郞一節, 未蒙戶部依格放行恩賞, 乞賜敷奏施行. 今來所準省箚內, 却刪去此項事理, 熹竊恐區區愚眛迫切之誠, 未得仰關天聽, 其合推賞人依舊未得霑被聖恩, 則熹於義亦難袛受. 又况目今諸路水旱廣闊, 公家所積已經發散, 所餘無幾, 全賴富民獻米賑恤. 若見朝廷施行如此, 誰肯應募, 助國救民? 兼熹見蒙改除提擧浙東常平公事, 當此凶歲, 專以救荒爲職, 若此折乞依格推賞不蒙施行, 不惟失信於南康舊治, 亦無面目可見浙東之民, 將來必致悞事, 上賂仁塾宵吁之憂. 熹雖萬死, 不足塞責. 欲望朝廷詳酌, 特賜敷奏, 詳熹前狀所陳, 將南康軍所奏稅戶張世亭․劉師輿․黃澄․張邦獻各與照應元格, 早賜補授文武官資, 則上件恩命不必加於熹身, 而聖朝綜核之政脩於上, 遠近觀聽有所激勸於下矣. 謹再具狀申尙書省, 伏候指揮.
절동제거사에 제수되어 시사를 알려달라고 비는 장계 除浙東提擧乞奏事狀
【해제】이 글은 순희 8년 (신축, 1181, 52세)에 절동제거에 제수되었다. “조정에서 폐하께 구환의 시급함을 아뢰어 주시고 가능하다면 친견의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상서성에 올리는 장계이다.
제가 9월 22일 상서성 차자를 살펴 성지를 받들어보니 앞의 차견을 고쳐 제수하셨습니다. 저는 병으로 쇠약한 와중에 심력이 시들고 줄어들어, 눈이 혼미하고 귀가 안 들려 번거로움을 감당할 수 없어서 간절한 뜻을 헤아려 갖추어 조정을 간범하여 아뢰니 바라건대 폐하께 아뢰어 사면을 허락하도록 하십시오. 그런데 길에서 소문을 들으니 본 로는 지금 재상이 매우 심해서 백성들은 끼니를 잇기가 어렵다하니 만약 다시 시간을 끌어 조치를 잃어버림이 있다면 가만히 생각하건대 훗날 백성들이 더욱 낭패를 당하여 거듭 폐하께 밤낮으로 걱정을 끼칠 것 같아서 삼가 당일에 폐하를 우러러 은혜에 감사하고 공손히 받았습니다. 마땅히 행재소에 나아가 일을 아뢸 것이 있는데 아직 지휘를 받들지 못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폐하의 곁을 떠난 지 19년 동안 진실로 신하된 자로써의 정성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으니 바라건대 한번이라도 폐하를 뵙기를 바랍니다. 하물며 지금 구황은 마땅히 사건을 아뢰어 시행해야 할 것이 하나가 아니며, 제가 일전에 맡았던 남강군은 마땅히 보고 드릴 사건이 있어서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니 바라건대 상부에서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시행하여 주십시오. 삼가 아룁니다.
右熹今月二十二日準尙書省箚子, 奉聖旨, 改除前件差遣. 熹以衰病之餘, 心力凋耗, 目昏耳重, 不堪繁劇, 擬具情懇, 干告廟堂, 乞與敷奏, 聽容辭免. 而聞之道路, 本路今年災傷至重, 民已艱食, 若更遷延, 有失措置, 竊恐向後饑民愈見狼狽, 重蛤聖主宵盰之憂, 謹已於當日望闕謝恩樅受訖. 所有合赴行在奏事, 未奉指渾. 伏念熹自違陛戟, 十有九年, 誠不勝臣子惓惓, 願得一瞻天日之光. 况今救荒, 合行奏禀事件非一, 又熹前任南康, 亦有合奏聞事, 謹具狀申尙書省, 欲望鈞慈待賜敷奏施行. 謹狀.
직을 올려준 것을 사면하는 장 1 辭免進職奏狀 一
【해제】이 글은 순희 9년 (임인, 1182, 53세)에 감강군지사로 있을 때에 “가뭄피해를 잘 수습하였다하여 직급을 높이는 것에 대하여 왕중우의 탄핵사건이 계류 중 임을 들어 철회해 달라”고 장계를 올렸다.
신은 9월 4일 처주 수창현에 이르러 상서성 차자를 받들었습니다. 차자에서는 성지를 받들어 순희 8년 가뭄 피해를 당한 지역의 감사와 수신들이 진제하느라 수고해서, 제 직을 두 등급 올리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명을 받고서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 삼가 즉시 폐하를 우러러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예전에 고루하고 우매한데도 외람되게 관리로 파견되어 폐하를 우러러 뵙게 되었습니다. 그 때 폐하께서 마음아파하시면서 하늘을 두려워하며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정성을 갖고 있고, 폐하의 간곡한 말씀도 슬퍼하며 애달피 여겨 진실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물러나 결점이 많은 천한 제가 이와 같은 대우를 만나게 되었으니 진실로 밤낮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우러러 폐하의 대우에 대해 만분의 일이라도 걸맞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질병의 와중에 정력도 적어지고 헛되이 큰 농군들이 모아둔 수십 만민의 곡식을 소비하면서도, 일도의 굶주리고 떠돌아다니는 백성을 온전히 살리지도 못해서 한두 번 스스로 탄핵하고 공손히 엄격한 처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용서하시고 벌주지도 않았으며, 관대한 은전을 더하셨으니, 분에 넘친 은혜와 지나친 총애를 입었는데도 폐하의 은총으로 몇 단계나 직급이 뛰어넘는다면 이것은 권선징악을 보이는 것도 아니요, 인재를 아끼시는 것도 아니며, 관리를 부리는 병권을 삼가는 것도 아닐까 두렵습니다. 하물며 저는 예전에 태주 지사 당중우를 탄핵했는데 도리어 당중우의 논박을 당해, 현재 이 일이 절서제형사에게 송부되어 제형사가 관리를 보내 사실 관계를 살피는 중입니다. 근래에 비록 폐하의 판단을 입어 당중우가 새로 임명된 강서제형에서 파면되었지만 사실 관계를 조사하라는 지휘는 아직 결론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죄인의 옷차림으로 집 섶에 앉아 처벌을 기다리는 중이니, 어찌 갑자기 폐하의 은혜와 영화를 훔쳐 상벌의 법식을 문란케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습니까? 앞의 은명은 제가 진실로 공손히 받들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특별히 사면해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臣九月四日到處州遂昌縣, 準尙書省箚子, 奉聖旨, 淳熈八年旱傷去處, 監司守臣賑濟有勞, 令臣進職二等者. 聞命震驚, 不知所措. 謹已卽時望闕謝恩訖. 伏念臣昨以孤愚, 誤叨臨遣, 仰瞻玉色, 旣閔然有畏天恤民之誠, 而聖訓丁寧, 又無非側怛焦勞之實. 退惟疵賤, 遭遇如此, 誠不敢愛其夙夜之勤, 冀以仰稱萬一. 而疾病之餘, 精力淺短, 徒費大農數十萬緡之積, 而無以全活一道饑饉流殍之民, 蓋嘗一再自劾, 恭俟嚴科. 陛下赦而不誅, 已爲寬典, 至於過恩假寵, 躐等疏榮, 則懼非所以示勸懲․惜名器而謹馭臣之柄也. 况臣昨以按劾知台州唐仲友, 反被論訴, 見蒙送浙西提刑司, 差官體究. 近日雖蒙聖斷, 已罷本人新任, 所有體究指揮, 尙未結絶. 臣方當囚服藉藁, 以俟斧誅, 豈宜遽竊恩榮, 以紊賞刑之典? 所有前件恩命, 臣實不敢袛受. 欲望聖慈特許辭免, 臣不勝幸甚!
강서제형을 사면하는 주장 辭免江西提刑奏狀
【해제】이 글은 순희 9년 (임인, 1182, 53세)에 절동제거의 신분으로 그가 당중우를 탄핵한 결과, 이제 금방 태주지사에서 강서제형으로 자리를 옮겼던 당중우는 바로 파면되었다 그의 파면으로 강서제형이 궐석이 되자 조정에서는 주자를 그 자리에 임명하려 했고 그는 이에 사면장을 올렸다.
제가 9월 13일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8월 18일에 삼성이 함께 받든 성지에 저를 강남서로 제점형옥공사에 제수하시어 현재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도록 하셨습니다. 작년 겨울에 일을 아뢰었는데 고신을 받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조속히 가서 부임하라고 하니 저는 명을 듣고 감격하여 당일 구주 완산현의 경계에 나아가 편안히 머물면서 폐하를 우러러 은혜에 감사하고 전에 임명되었던 직무를 그만두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하늘로부터 본디 어리석음을 품부 받아 세상과 더불어 쉽게 합하지 못하고, 젊었을 때부터 숨어 사는 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비록 폐하께서 자주 지방관으로 등용하여 주심을 입었지만 결국에 감히 함부로 관직에 나갈 수 없어 문을 닫고 숨어 살면서 경전을 연구하였습니다. 하늘의 영명한 은혜를 입어 우연히 피리 구멍으로 보고서 망령된 뜻으로 인하여 토론하고 산술하여 일가의 설을 이루어 후세의 학자를 기다리기를 바랐습니다. 중간에 잘못 성은을 입었는데 특별히 옮겨주어 훈계하는 말과 포상에 힘쓰는 것은 대개 또한 이것으로써 기약했습니다. 그 후 다시 관직을 받는 문서를 받아 군의 관리로 보충하였으나 제가 고수하는 것이 견고하지 못해서 능히 힘써 말하지 못하고 2년 동안 밤중에 베개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앉아 크게 한숨을 쉬니 일찍이 사적으로 가엽고 슬퍼 처음 가졌던 마음을 후회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다시 미루어 간택하는 것을 더하여 서울 부근 지역을 맡겼으며, 무릇 아뢰어 진달했던 것은 대부분 개납을 입어 돈을 내려 주시고 세금을 견감하였으니 청하여 따르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오직 고루하고 어리석은데도 이와 같은 것을 만나니 번연히 어리석고 둔함을 생각함에 입은 것이 걸맞지 않습니다. 오직 간사함을 따라 백성을 해치고 명을 버리고 관직을 버려 다른 때에 다시 폐하를 볼 면목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관직이 높고 세력이 큰 사람을 함부로 함에 이르러서 원망하고 싫어함을 갖게 할 것이니 비록 반드시 그러함을 알겠지만 헤아릴 겨를이 없습니다. 헤아린 것과 같다면 만 가지의 단서를 막아 어지럽힐 것이며 유독 폐하의 성명을 입어 홀로 충성하는 것을 살펴 주시고 여실히 보호한다면 오직 죽음을 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직에 나아가고 옮기는 것을 명목으로 삼아 나아갈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구구하고 우활하고 어리석으며 빈천하여 어찌 폐하께 이러한 사람을 얻을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감격하여 눈물이 턱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받았던 은명은 진실로 부당하게 사면함이 있어 밝게 도와주심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저의 어리석음으로도 진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대개 심목이 모두 혼미하고 관리의 책무를 감당할 수 없어서 올해 여름에 글을 폐하께 올려 죄를 기다렸으나 이직 처분을 입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해와 황충이 연이여 일어나 삼가 공손히 어필과 계유를 받드는 것이 절실한데, 우러러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걱정하고 고생하는 것이 특히 심하니 이 때문에 두려워하고 숨어 쉬면서 감히 다시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은혜를 입어 천한 관직을 파면하시니 바로 초야의 어리석은 저에게 해골을 내려 주시길 빌어 평소의 마음에 이르렀는데 관을 제수한 것은 당중우가 빠진 것을 메우는 것과 연관되니 밭을 가로질러 간다고 남의 소를 빼앗는 격임을 비록 삼척동자라도 모두 그것이 불가함을 알 것인데 하물며 신이 어리석더라도 의리를 조금이나마 안다면 어찌 감히 스스로 편안하겠습니까? 혹시 폐하께서 특별히 사면을 내려 주시고 혹 악묘차관을 주시어 저로 하여금 옛날의 밭이랑을 갈게 하고 마침내 옛 성현의 말에 뜻하여 안으로 피곤한 정신을 쉬게 하고, 밖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원망을 벗어나게 한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앞에 있는 상서성 차자 내에 제수한 은명은 제가 결단코 감히 받을 수 없어서 구주 상산현에 보내어 보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본 로의 경계를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 명을 기다렸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조속히 지휘를 내려주십시오. 삼가 기록하여 아뢰며 엎드려 칙지를 기다립니다.
右臣九月十二日準尙書省箚子, 八月十八日, 三省同奉聖旨, 除臣江南西路提點刑獄公事, 塡見闕. 去冬已經奏事, 不候受告, 疾速前去之任者. 臣聞命感激, 已於當曰就衢州常山縣界首安泊處望闕謝恩, 解罷前任職事訖. 伏念臣天賦樸愚, 與世寡合, 爰自早歲, 卽甘退藏. 雖蒙聖朝累加牧用, 竟亦不敢冒昧就職, 杜門屛處, 玩思遺經. 賴天之靈, 偶窺管穴, 因竊妄意討論刪述, 冀成一家之言, 以待後之學者. 中間誤蒙聖恩, 特改京秩, 訓詞褒勵, 蓋亦以是期之. 其後更被除書, 起補郡吏, 而臣所守不固, 不能力辭, 二年之間, 中夜撫枕, 起坐太息, 未嘗不私自憐悼而悔其初心也. 旣而復忝推擇, 備使近畿, 凡所奏陳, 多蒙開納, 賜錢蠲稅, 無請不從. 自惟孤愚, 遭遇如此, 則又幡然思竭駑頓, 以稱所蒙. 唯懼縱姦賊民, 棄命廢職, 異時無復面顔以見陛下. 至於觸忤權貴, 掇取怨嫌, 則雖必知其然, 而有所不暇計也. 旣而果如所料, 沮撓萬端, 又獨蒙陛下聖明, 察其孤忠, 委曲覆護, 非唯不加誅殛, 又使得以進職遷官爲名而去. 臣竊不自知區區之迂愚疵賤, 何以得此於陛下? 顧念感激, 涕下交頤. 所有恩命, 誠不當更有辭避, 以孤睿獎. 然臣之愚, 實有所不獲已者, 蓋以心目俱昏, 不堪吏責, 今夏已嘗抗章俟罪, 未奉進止. 而旱蝗繼作, 恭奉御筆戒喩丁寧, 仰惟聖心憂勞特甚, ․是以煌懼屛息, 未敢復言. 今旣蒙恩許解賤職, 正是草野愚臣乞賜骸骨, 以遂夙心之時, 而所除官又係塡唐仲友闕, 蹊田奪牛之誚, 雖三尺童子, 亦皆知其不可, 况臣雖愚, 粗識義理, 何敢自安? 儻蒙聖慈持賜罷免, 或與嶽廟差遣, 使臣得以歸耕故壟, 畢志舊聞, 內休已憊之精神, 外避當途之猜怨, 則臣不勝千萬幸甚!所有前件省箚內除授恩命, 臣決不敢袛受, 已送衢州常山縣寄收. 仍一面出本路界, 還家俟命. 欲望聖慈早賜指揮. 謹錄奏聞, 伏候敕旨.
강동제형을 사면하는 주장 1 辭免江東提刑秦狀一
【해제】이 글은 순희 9년 (임인, 1182, 53세)에 상서성 차자를 받고서 쓴 주장이다. 주자는 9월에 「辭免江西提刑奏狀」을 올려 강서제형의 사면을 청했다. 조정에서는 사면을 허락하는 대신 강동제형사인 양총과 강서제형사인 주자가 서로 보직을 바꾸라는 명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강서제형에서 강동제형으로 옮아가게 된 주자는 이 주장을 올렸다.
저는 10월 9일 상서성 차자를 받았습니다. 차자에서는 제가 강서제형사를 제수한 은명을 사면하려 청한 것에 근거를 두고 성지를 받들어 저로 하여금 강동제형사 양총(梁總)과 그 임직을 서로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즉시 대궐을 우러러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구구한 저의 속내를 앞 주장에 갖추었는데 폐하께서는 명을 바꾸어 곡진히 저의 사사로운 바람을 이루어 주셨고, 당중우의 관직을 빼앗는다는 혐의를 벗겨주심으로써 저의 지조도 온전케 해주셨으니, 미천한 신하에게는 참으로 아주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제가 앞에서 주달한 것은 은혜를 입어 한직으로 보내짐으로써 병을 보양하고 책을 저술하며, 몸을 보전하고 해로움을 멀리하려는 계획을 원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아직 폐하의 살피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저의 사적인 계획에도 불편한 점이 많아서 감히 죽을죄를 무릎 쓰고 다시 폐하의 위엄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제가 앞에서 아뢰었던 것을 자세히 살피시어 불쌍히 여기시고 외람된 은명을 철회하시고 사록관으로 바꾸어 주심으로써 저의 한결같은 바람을 이뤄 주시고, 죄와 허물을 벗게 해주신다면 미천한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겠습니다. 이 때문에 상서성 차자 안에 있던 폐하의 지휘는 제가 감히 받을 수 없어서 건령부 숭안현에 보내어 보관하게 했습니다. 폐하의 은혜가 크고 두터운데 은혜를 갚을 방도가 없어 조정을 우러르기만 하는지라 저는 신하된 자로써 지극한 연모와 간절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右臣十月九日準尙書省箚子, 據臣辭■新除江西提刑恩命, 奉聖旨, 令臣與江東提刑梁總兩易其任. 臣已卽時望闕謝恩訖. 伏念臣區區誠懇, 已具前奏, 旣蒙改命, 曲遂其私, 使得免於攘奪之嫌, 以全素守, 其在微臣, 固已甚幸. 但臣前所奏陳, 願得蒙恩投置閑散, 以爲養病著書․全身遠害之計, 則尙有未蒙聖察者. 於臣私計, 未便猶多, 敢昧萬死, 再有塵瀆. 欲望聖慈詳臣前奏, 曲賜哀憐, 追寢誤恩, 改畀祠祿, 使其得遂夙心, 免罹非禍, 則於微臣又爲莫大之幸. 所有省箚內聖旨措揮, 臣不敢袛受, 已送建寧府崇安縣寄收訖. 聖恩隆厚, 報效無階, 瞻望軒墀, 臣無任犬馬戀慕激切之至!
(첩황) 저의 고향 휘주 무원현은 강동에 속하고, 현재 분묘와 종족 및 다소의 전답이 있으니 마땅히 연고지에서의 벼슬을 회피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또 양총이 임소에 이른 지 한 달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이유 없이 바꾼다면 새로운 관리를 맞이하고 옛 관리를 보내느라 아전과 백성들을 번잡하고 시끄럽게 할 뿐 아니라, 자주 내린 지휘를 가로막는 격이 되어 관리를 등용하는 조정의 신중함도 잃게 될 것입니다. 삼가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貼黃) 臣祖鄕徽州婺源縣, 正隷江東, 見有墳墓宗族及些小田産, 合該回避. 又梁總到官今方月餘, 一旦忽然無故改易, 不惟迎新送故, 煩擾吏民, 亦礙累降指揮, 有失朝廷擧措之重. 伏乞聖照.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 申省狀
【해제】이 글은 순희 9년 (임인, 1182, 53세)에 상서성 차자를 받고서 쓴 것이다. 위 「辭免江東提刑秦狀一」은 황제에게 올리는 것이었고, 이것은 동일한 내용을 황제에게 아뢰어 달라고 상서성에 올리는 장계이다.
저는 10월 9일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았습니다. 상서성에서는 제가 새로 제수 받은 강서제형사를 사면해 달라는 청에 근거해 성지를 받들어 저로 하여금 강동제형사 양총과 임무를 서로 바꾸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앞 주장에서 빌었던 내용이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해서 이 명을 감히 공손히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다시 주장을 갖추어 사면를 주달한 이외에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아룁니다. 바라건대 폐하께 아뢰어 그만두게 하시고 혹 악묘로 파견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右熹十月九日準尙書省箚子, 據熹辭免新除江西提刑恩命, 奉聖旨令熹與江東提刑粱總兩易其任. 熹以前奏所乞未蒙開允, 不敢袛受, 已再具奏辭免外, 謹具狀申尙書省, 欲乞敷奏寢罷, 或與嶽廟羞遣, 不勝幸甚!
강동제형을 사면하는 주장 2 辭免江東提刑奏狀二
【해제】이 글은 순희 9년 (임인, 1182, 53세)에 쓴 황제에게 올리는 주장이다. 「辭免江東提刑秦狀一」에서 그는 강동제형을 사양하면서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관료들이 연고지에서 벼슬하는 것을 금하는 ‘회피’의 법에 근거를 두었다. 자신의 고향이 속한 강동로의 제형직이기 때문에 맡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대해 11월 7일 상서성 차자는 강동제형의 사면을 불허하고, 회피의 법을 그에게 적용하지 않겠다는 회답을 보내왔다. 그는 상서성의 회답을 받고 “다시 강동제형을 사양”하는 두 번째 주장을 올렸다.
저는 11월 7일 상서성 차자를 받았습니다. 차자에서는 제가 강동제형사를 사면하고 연고지를 회피하려 한다고 주달한 일에 근거해서 성지를 받들어 사면은 허락하지 않으셨고, 회피의 법도 적용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신은 초야에 살면서 미천하며 자주 번거롭게 폐하의 위엄을 모독하였고, 도리어 폐하의 말만 수고롭게 했는데도 거듭 정령한 명을 주시니 감격해서 눈물이 내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즉시 대궐을 우러러 멀리서 감사했습니다. 거듭 생각하건대 저는 일전에 관리로 뽑혀 망령되이 직책에 뜻을 두었으나 지식이 얕고 짧아서 아뢴 조목이 소활하고, 위로 조정을 그르쳐 관리의 발탁과 배치가 잘못되게 하였으니, 스스로도 죄가 큰 줄을 알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제수한다는 은명을 받고도 속마음을 토로해서 사면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진술한 내용은 모두 저의 진심에서 나온 것으로 말이나 꾸미고 형식이나 갖추어 보고 듣기에 좋으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곡절 가운데는 미처 다 말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우러러 생각하건대 하늘의 해와 같은 폐하의 지혜는 비추지 못하는 곳이 없으시니 진실로 제가 일일이 다 떠들지 않더라도 저의 두려워하는 정성을 다 알아주실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파견하시려는 관직은 관리들을 감찰 탄핵하는 직책이니, 만약 다시 공법을 받들어 준수한다면 아마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조정의 사체를 거듭 해치는 데에 이를까 우려되고, 만약 시세를 관찰해서 사사로움을 좇는다면 아래로는 저의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저버리고, 위로는 폐하께서 대우해 주시고 관직을 맡겨주신 뜻을 저버릴까 두렵습니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둘 다 어렵고 스스로 처신할 곳조차 없기 때문에 감히 두 번 세 번 거듭 모독하는 것을 잊고서 위로 폐하의 위엄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가엾게 여겨 조속히 윤허를 내려 주시고 특별히 악묘로 한 차례 파견하셔서 저로 하여금 정신을 쉬게 하고, 옛 학업을 끝마치고, 원한을 피해서 여생을 보존토록 해 주십시오. 혹여 제가 구덩이 속에 묻히기 전에 폐하께서 거듭 기강을 진작하고, 치화를 새롭게 일신하는 것을 보게 되고, 명철하신 폐하께서 저의 충성을 잊지 않으시고 따로 먼 외지에 관리들을 부리는데 곤란을 겪으신다면 신이 비록 쇠약하고 졸렬할 지라도 보잘 것 없는 재주라도 다 바쳐 폐하께서 명한 것을 다시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계획은 물러나 숨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처리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폐하의 위엄을 간범했으니 신은 두려움에 떨면서 명을 기다리는 지극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右臣十一月七日準尙書省箚子, 據臣奏辭免江東提刑及回避田産事, 奉聖旨不許辭免, 田産特免回避者. 臣草野賤微, 屢有煩瀆, 顧勞天語, 重賜丁寧, 感極沸零, 不知所措. 已卽時望闕遙謝訖. 重念臣昨被使令, 妄意職業, 智識淺短, 條奏闊疏, 上誤公朝, 失於擧措, 自知罪大, 不敢自赦, 是以再蒙恩除, 不免瀝懇辭避. 凡所陳述, 皆出鄙誠, 非敢飾辭備禮, 以爲觀聽之美而已. 唯是曲折之間, 猶有不敢盡其辭者. 然竊仰惟陛下天日之明, 無幽不燭, 固不待臣之喋喋然後有以悉其危懼怵迫之情也. 又况今來所除差遺, 仍是按察官司, 若復奉公守法, 則恐如前所爲, 或至重傷朝廷事體 若但觀勢徇私, 又恐下負夙心, 上孤陛下眷知任使之意. 進退惟谷, 無地自處, 是敢忘其再三之瀆, 上干鈇鉞之威. 欲望矜憐, 早賜開允, 特與嶽廟差遺一次, 使臣得以休養精神, 卒其舊業, 退避仇怨, 保此餘生. 或者未塡溝壑間, 得見陛下重振綱維, 一新治化, 而達聰明目, 未忘孤忠, 別有遠外重難驅使, 則臣雖衰拙, 尙庶幾效其尺寸, 將惟陛下所以命之, 不敢復有辭矣. 若爲今日之計, 則退藏之外, 無可爲者. 伏惟陛下衰憐財幸. 干冒宸嚴, 臣無任戰栗俟命之至.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 申省狀
【해제】이 글은 순희 9년 (임인, 1182, 53세)에 쓴 상서성에 올리는 장계이다. <辭免江東提刑奏狀二>를 황제에게 올리면서 같은 내용을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계이다.
제가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강동제형사의 은명을 사면한 것과 조향전산을 회피하는 일에 근거해서 성지를 받들어 사면은 허락하지 않고 전산은 특별히 회피의 법을 면제한다는 내용의 차자를 제게 보내셨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는 광망하고 거칠고 졸렬하여 아무런 공적도 없다는 것을 시험해 보았으니 감히 다시 관리를 탄핵하고 천거하는 직책을 맡을 수 없어서, 두 번 주장을 갖추어 사면하였습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 아뢰어 시행하여 주십시오.
右熹準尙書省箚子, 據熹辭免江東提刑恩命, 及回避柤鄕田産事, 奉聖旨不許辭免, 田産特免回避, 箚付熹者. 伏綠狂妄疏拙, 已試罔功, 不敢復當剌擧之磯職 已再具奏狀辭免. 謹具狀申尙書省, 伏乞敷奏施行.
직에 나아가는 것을 사양하는 장 2 辭免進職奏狀二
【해제】이 글은 순희 9년 (임인, 1182, 53세)에 고명을 받고 쓴 폐하께 올리는 주장이다. “그는 당중우의 탄핵 건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재고하시길” 요청하였다.
저는 11월 7일 직휘유각을 제수하신다는 내용의 고명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전에 직책에 있으면서 받았던 상서성 차자는 앞의 은명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주장을 갖추어 태주지사 당중우가 뇌물을 받아먹고 법을 어긴 것에 대해 탄핵했다가 도리어 당중우에게 논소를 당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받을 수 없다고 아뢰었습니다. 지금 삼가 내려온 지휘를 살펴보니 당중우는 새로운 직책을 그만두었지만 당중우가 저를 논박한 것에 대해 다시 관리를 파견하여 자세히 살피지 않았고, 소흥부에서도 관회를 위조했던 장휘 등을 불러 공초를 받아내었지만 듣기로는 조정의 지휘를 받고 모두 석방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리를 자세히 살펴보건대 아마도 제가 탄핵했던 내용이 공정치도 진실하지도 못해서 따로 죄명을 얻는 것이 마땅할 것 같은데 아직 조정에서는 처분하지도 않으셨으니, 직무에 작은 노고가 있었다고 해서 갑자기 기타 죄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은혜로운 상을 주시는 것은 곤란할 듯 합니다. 내려왔던 고명은 신이 감히 받을 수 없어 건령부 숭안현에 보내어 보관하게 했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깊이 살피어 특별히 파면하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右臣十一月七日準降到告命一道, 授臣直徽猷閣者. 臣昨在任日, 被省箚, 備坐前件恩命, 已嘗具奏, 稱爲按劾台州唐仲友贓濫不法, 反被論訴, 未蒙結絶, 不敢袛受. 今者伏覩已降指揮, 仲友已罷新任, 更不差官體究, 其紹興府見勘已招僞造官會人蔣暉等, 亦聞已得朝旨盡行釋放訖. 詳此事理, 竊恐臣所按劾不公不實, 別有合得罪名, 未蒙朝廷行遣, 難以却因職事微勞, 遽與其他無罪之人例霑恩賞. 其所降到告命, 臣不敢袛受, 已送建寧府崇安縣寄收訖. 欲望聖慈深察, 特賜追寢施行, 則臣不勝幸甚.
강동제형을 사양하는 주장 3 辭免江東提刑奏狀三
【해제】이 글은 순희 9년 (임인, 1182, 53세)에 그가 제형사로 있을 때에 “요로에 있는 탐관오리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사적인 원한 맺음이 많아졌는데 또 다시 다른 원수맺음을 하지 않도록 제형사의 직무를 재고하시고 도주악묘로 여생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신은 12월 4일 상서성 차자를 받았는데, 제가 직휘유각과 강동제형사를 사면한다는 청에 근거해서 성지를 받들어 둘 다 사면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빨리 관직에 나아가 부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일전에 요로를 담당하고 있는 자들과 원한을 맺어 종적은 외롭고 위태로워 자주 봉장을 올려 내려진 명령을 거두어 달라고 빌었는데, 정의가 절박해서 모독을 무릎 쓰고 두 번 세 번이나 아뢰게 되었습니다. 오래되지 않아서 깊이 자신을 돌이켜 보고서야 비로소 크게 겁이 나서 바야흐로 처벌되기만을 기다리며 날을 헤아리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도 폐하께서 하늘같은 도량으로 포용해 주시고 넓디넓은 성은으로 신의 청을 윤허하지 않았지만 질책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저는 명을 듣고서 감격하여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폐하의 정령한 칙지는 여러 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비록 사적인 뜻에 편안치 않는 점이 있는 줄 알았지만 감히 저의 감정을 억누르고 포장해 주신 것을 받들지 않을 수 없어서 당일로 궁궐을 바라보며 직휘유각을 제수하신다는 은명을 받고 제가 가지고 있는 강동제형사의 직책에 대해서 위명이 내려온 것에 쫓겨 그 날로 배명하고 즉시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극히 어리석어 거듭거듭 생각해 보아도 너무 두렵기는 하지만 도저히 그만 둘 수 없는 것이 있어 죽음을 무릎 쓰고 마음속의 생각을 토로해서 다시 천위를 저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머뭇거리며 방황하느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제가 탄핵한 탐관오리는 족당과 무리가 바둑돌이 펼쳐진 것처럼 별들이 흩어진 것처럼 많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요직을 담당하고 있어서 일이 발각된 이래로 크게는 위에서 통제하고 알선하고, 작게는 아래에서 분주히 뛰어다니며 경영해서 폐하의 명철하심을 가리고 천둥과 같은 위엄을 해치는 것은 저로서는 감히 논하지 조차 못하겠습니다.
만약 그들이 저를 해치고 나머지조차 남겨두려 하지 않는다면 멀리 선생과 벗들이 연원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다시 이유 없이 그들에 의해서 멋대로 배척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폐하의 성명이 내막을 꿰뚫어 보고 힘써 주장하시지 않는다면 불초한 저의 몸은 결국 참살을 당할 뿐만 아니라 흑백을 뒤섞고 조정을 오도하는 것 역시 다 말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더욱 도타와지면 이 무리들이 저를 질시하는 것 역시 더욱 깊어질 것이니, 지금 신에게 오늘날의 계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직에 나아가서 다소 우환과 해로움을 늦추는 것뿐입니다.
만약 다시 은혜로운 영화를 탐하고 사모해서 한 도의 제형사의 책무를 떠맡는다면 그것은 원한을 부르고 화를 불러 반드시 전 보다 더욱 심하게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존해 주려고 할지라도 미치지 못할 것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기에서 너무 두려워 두 번 세 번 헤아려 보아도 다른 날 붙잡혀서 핍박을 당해 원수의 손에 목숨이 떨어지기 보다는 지금 두세 번 사면하여 폐하의 앞에서 죄를 받는 것이 낫습니다.
하물며 폐하는 지극히 어질고 명철하셔서 저를 가련하게 여겨 두텁게 대우해 주시고 이처럼 보살펴 주셨으니, 참으로 여러 차례 사면한다는 것을 이유로 제게 죄를 더해서 저버리려 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감히 마음을 굳히고 머리를 들어 하늘에 호소하며 이렇게 한 번 모두 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리신 제형사로 파견한다는 명은 바라건대 폐하께서 간절한 청을 깊이 살피시어 특별히 악묘로 한차례 옮겨 파견해 주셔서 신이 마침내 지난날 죽은 목숨을 되살리고 썩은 뼈에 새살을 붙여 주신 것과 같은 폐하의 은혜를 입게 하시고 훗날 비방과 중상을 당하는 화를 면하게 하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제가 앞에서 아뢰었던 이른바 책을 저술한다는 것은 제 자신이 여러 경전을 가르치고 설명했던 것 외에 자치통감을 망령되게 고쳐 몇 년 전에 초고를 대충 완성했는데, 한 번 벼슬에 나가서는 결국 벼슬길을 전전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매번 그것을 생각해도 항상 천고의 한이 될까 두렵습니다. 지금 만약 외직의 수고를 조금 덜어 주시고 다시 작은 녹봉이나마 주셔서 시간을 내어 마침내 이 책을 완성해서 시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신이 폐하의 커다란 은혜에 보답하는 것도 공문서나 폐하와의 만남에 달려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이 광망하게도 직에 나아간다면 죽을지라도 남은 죄가 있을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폐하께서 천지부모처럼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기록하여 아뢰고 엎드려 칙지를 기다립니다.
右臣十二月十四日準尙書省箚子, 據臣辭免直徽猷閣及江東提刑恩命, 奉聖旨並不許辭免, 令疾速起發前去之任者. 臣昨以怨仇當路, 蹤跡孤危, 屢貢封章, 乞回成命, 情迫意切, 忘其再三. 旣而深自省循, 始知震懼, 方且計日以俟誅夷, 不謂陛下天度含容, 聖恩溥博, 雖未開允, 亦免譴訶. 臣聞命感激, 涕泗交頤. 恭惟聖謂丁寧, 不可數得, 雖知私義有所未安, 然不敢不抑鄙情以承睿獎, 卽於賞日遙墾闕庭拜受直徽猷閣恩命訖. 所有江東提刑職事, 迫威命之已行, 亦擬卽日拜受, 畫時起發. 而臣至愚, 反復思慮, 復有所甚懼而不能已者, 不免昧死瀝血, 再觸天威. 膽顧徬徨, 不知所措. 伏念臣所劾臟吏黨與衆多, 棋布星羅, 並當要路, 自其事覺以來, 大者宰制斡旋於上, 小者馳騖經營於下, 其所以蔽日月之明而損雷霆之威者, 臣不敢論. 若其加害於臣, 不遺餘力, 則遠而至於師友淵源之所自, 亦復無故橫肆觝排. 向非陛下聖明, 洞見底蘊, 力賜主張, 則不惟不肖之身久爲魚肉, 而其變亂白黑․註誤聖朝, 又有不可勝言者. 然陛下之憐臣愈厚, 則此輩之疾臣愈深, 是以爲臣今日之計, 惟有乞身就閑, 或可少紓患害. 若更貧戀恩榮, 冒當一道刺擧之責, 則其速怨召禍, 必有甚於前日者. 陛下雖欲始終保全, 亦恐有所不能及矣. 故臣於此深竊恐懼, 再三籌度, 以爲與其他日拘攣戚促而失身於仇人之手, 不若今日再三辭避而得罪於陛下之前. 又况陛下至仁至明, 且旣憐臣之厚而保全之如此, 固未必肯以此加臣之罪而必棄之也. 是敢決意仰首呼天而一罄其說如此. 所有前件差遣, 欲望聖慈深察危懇, 特賜改差嶽廟一次, 使臣得以卒被前日生死肉骨之恩, 免遭異時睚眦中傷之禍, 臣不勝幸甚. 若臣前奏所謂著書者, 則臣自集諸經訓說之外, 於資治通鑑亦嘗妄有論次, 數年之前, 草稿略具, 一行作吏, 遂至因循. 每一念之, 常恐永爲千古之恨. 今若少寬原隰之勞, 更竊斗升之祿, 假以歲月, 卒成此書, 使於世務略有絲毫之補, 則臣之所以仰報大恩者, 固不必在於簿書期會之間也. 臣狂妄進越, 死有餘罪. 伏惟陛下天地父母矜而赦之, 臣不勝幸甚!謹錄奏聞, 伏候敕旨.
(첩황) 신은 외람되이 성은을 입어 관직을 명하려 하시지만, 신이 부패한 관리를 탄핵한 일로 조정의 높은 관리들에게 거슬려 한 몸이 외롭고 위급한 처지라 스스로를 돌볼 수도 없는데, 어떻게 교활한 자를 억누르고 선량한 백성을 어루만질 수 있겠습니까? 무릇 이처럼 애처롭게 울부짖는 것은 자신만을 아껴서가 아니요 진실로 조정의 한 관직에 주어진 업무와 권위를 위한 것이고, 한 지역의 백성들의 운명을 위한 계책입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폐하께서 깊이 살펴 주십시오.
신은 예전에 자치통감을 읽었는데 주나라 말기에 제후들이 왕이란 호칭을 참칭했는데도 그 호칭을 바로잡지 않았고, 한나라의 승상인 제갈량이 군사를 지휘하여 적을 토벌했는데도, 거꾸로‘도적이 쳐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는 등 이런 서술들이 한 둘이 아니어서 자못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또 사건의 시작과 끝, 상세함과 간략함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평범한 문장으로 기록해서, 목록이 있어도 검사하고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제 망령된 뜻으로 그 사실에 나아가 별도로 하나의 책을 만들었는데 세(歲)를 표기하면서 년(年)을 제일 앞에 쓰고, 그 뒤에 큰 줄기를 드러내었으며, 요점은 큰 글씨로 쓰고, 자세한 말은 작은 글씨로 주를 달았습니다. 시비와 득실을 평가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옛 사서의 저술 방법을 써서 대충이나마 역사적 교훈을 서술하고 자치통감강목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한직에 나아가게 하신다면 마땅히 첫 편의 초본을 베껴서 먼저 상전에 올리겠습니다. 삼가 폐하의 재가를 소원합니다.
(貼黃) 臣誤蒙聖恩, 俾將使指, 而臣方以按劾臟吏, 干忤相臣, 一身孤危, 不能自保, 其何以控制姦猾, 循撫柔良? 凡此哀鳴, 非特自愛, 實爲陛下一司事權․一道民命之計. 切望聖慈深賜鑒察.
臣舊讀資洽通鑑, 竊見其間周末諸侯儧稱王號而不正其名, 漢丞相亮出師討賊, 而反書人寇, 此類非一, 殊不可曉. 又凡事之首尾詳略, 一用平文書寫, 雖有目錄, 亦難檢尋. 因竊妄意就其事賓別爲一書, 表歲以首年, 而因年以著統, 大書以提要, 而小註以備言. 至其是非得失之際, 則又輒用古史書法, 略示訓戒, 名曰資治通鑞綱目. 如蒙聖慈許就閑秩, 卽當繕寫首篇草本, 先次進呈. 恭俟臨決.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 申省狀
【해제】이 글은 순희 9년 (임인, 1182, 53세)에 “강동제형사의 임무를 철회하시길 폐하께 주청해 달라”고 상서성에 올린 장계이다.
저는 12월 14일 상서성 차자를 받았습니다. 제가 직휘유각과 강동제형사를 사면한 것에 의거해서 성지를 받들어 둘 다 사면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조속히 나아가 부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우러러 생각하건대 은혜로운 뜻이 조밀하고 중첩되어 감히 고사할 수 없어서 당일로 직휘유각의 은명을 받았습니다. 강동제형으로 파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낭묘의 대신에 대해 회피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어서 별도로 주장을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만일 내려 주심을 입어 바라건대 폐하께 아뢰어 조속히 시행하여 주신다면 저는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올리고 지휘를 기다립니다. 삼가 올립니다.
右熹準十二月十四曰尙書省箚子, 據熹辭免直徽猷閣及江東提刑恩命事, 奉聖旨並不許辭■, 令疾速起發前去之任. 熹仰惟恩旨稠疊, 不敢固辭, 已於當日拜受直徽猷閣恩命訖. 所有江東提刑差遣, 緣熹於廊廟大臣有合回避事理, 已別具狀奏聞. 如蒙降出, 乞賜敷奏, 早與施行, 熹不勝幸甚. 謹具狀申尙書省, 伏候鈞旨. 謹狀.
궁관을 비는 차자 乞宮觀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12년 (을사, 1185, 56세)에 “절동의 임무를 마쳤으니 궁관으로 자리를 옮겨 달라”고 올린 장계이다.
저는 삼가 몇 년 전에 절동의 관직에서 파직되었는데, 성은을 입어 사록관에 임명되어 현재 임기가 만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은 가난하고 연루된 일도 무거워 녹봉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다시 한 번 사관 직에 임명시켜 주십시오. 삼가 지휘를 기다립니다.
熹伏自頃歲罷官浙東, 聖恩畀以祠祿, 至今考滿, 家貧累重, 未能忘祿, 欲望特賜敷奏, 更與再任一次. 伏候指渾.
건령부에 방감 봉급을 개정해달라고 보고하는 장 申建寧府改正幫勘俸給狀
【해제】이 글은 순희 12년 (을사, 1185, 56세)에 건령부에 보고하는 장계이다. “실직 이외에 다른 관직을 겸직했다는 이유로 실직의 봉급에 사록관의 봉급을 더해서 지급하려는 것을 사양”하는 장계이다. 주자는 1183년 2월부터 1185년 2월까지 주관태주숭도관으로 재임했다.
저는 작년 2월에 상서성 첩지를 받았습니다. 위의 직책으로 파견하셨으니, 사부에 비서로 아뢰고 봉급을 청하되, 양료원에 직사인의 예에 따라 방감을 요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번 비록 성은을 입어 강서 강동의 제형에 제수되었지만, 즉시 사면했고, 고신을 받지도 않고 임지로 나아갔기 때문에 직사인의 예에 의해 첨지전을 감청하는 것은 어려울 듯 합니다. 순서대로 장을 갖춰 사부에 아뢰어 개정해 달라고 빌었는데,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 사적인 의리에도 받기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지금 다시 장을 갖춰 건령부 관아에 보고 드립니다. 바라건대 지휘를 내려 조례에 의거하여 시행해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右熹昨於去年二月內準尙書省牒, 差充上件差遣, 當申使府批書, 勘請俸給, 蒙糧料院依職司人例幫勘. 緣熹昨來雖蒙聖恩除授江西․江東提刑, 當卽辭免, 並不曾受告赴任, 難以依職司人例勘請添支. 已卽節次具狀申使府, 乞行改正, 末蒙施行. 在熹私義, 實難冒受. 今再具狀申建寧府使衙, 伏乞指渾, 依條施行. 謹狀.
강서제형을 사양하는 장 1 辭免江西提刑狀一
【해제】이 글은 순희 14년 (정미, 1187, 58세)에 “강서제형의 제수를 재고하시고 궁관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주관남경홍경관으로 현지를 담당할 때 7월 28일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삼성이 함께 성지를 받들어 저를 강서제점형옥으로 제수하시어 마대동이 임기가 만료되어 빠진 것을 교체하도록 하셨습니다. 고원한 저는 그릇되게 성은을 입어 감격이 깊으니 어찌 감히 사양하고 물러날 수 있겠습니까? 실재로 연이은 재앙과 우환을 만났으며 오래된 병으로 쇠약하기 때문에 이것은 관에 나아가는 기간이 몇 개월에 불과할 것이며, 가만히 생각하건대 앞으로 번거로움을 감당할 수 없어서 마침내 모름지기 별도로 간절히 바라는 뜻이 있으니 받았던 것을 다시 사면하는 것은 더욱 큰 죄가 되기 때문에 받은 은명은 여실히 감히 공손히 받을 수 없습니다. 상서성 차자는 숭안현에 보내어 맡긴 외에 바라건대 조정에 특별히 아뢰어 내렸던 명을 철회하여 저로 하여금 옛날대로 사록을 주신다면 저의 직분에 편안할 것입니다.
右熹見任主管南京鴻慶官, 七月二十八日, 準尙書省箚子, 三省同奉聖旨, 朱熹除江西提點刑獄, 替馬大同成資闕者. 孤遠之迹, 誤蒙聖恩, 感激之深, 豈敢辭避? 實以連年災患, 久病摧頹, 此去赴官之期, 又已不過數月, 竊慮將來不堪繁劇, 終須別有祈懇, 已受復辭, 爲罪愈大, 所有恩命委實不敢袛受. 其省箚已送崇安縣寄收外, 欲望朝廷特爲敷奏, 追寢成命, 令熹依舊奉祠, 以安愚分.
강서제형을 사양하는 차자 1 辭免江西提刑箚子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강서제형의 명령을 받고 철회해 주시고 이전처럼 유지해 주셔서 여생을 편안히 마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제가 근래에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성지를 받들어 행재소에 들러 일을 아뢰고 임지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명을 듣고서 깜짝 놀라 품부 받은 명에 의하여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실재로 몇 년 동안 쌓인 책임이 근심되고 두려우며, 정신은 흐릿하며, 귀가 들리지 않고 눈이 혼미하며, 체력은 지탱할 수 없으며,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쇠약해졌으며 그런 나머지 질병의 고통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평소와 다르니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명을 입은 처음에 이러한 간절한 정성을 호소하여 윤허를 입지 못했지만 감히 곧바로 번거롭게 모독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앞의 은혜로운 뜻을 입은 것은 제가 가만히 유념하건대 감당할 수 없음을 시험한 바가 있는데도 다시 거두어 등용하니 천지부모와 같은 은혜가 지극히 크고 두터우며 특별히 예지를 내려 일을 아뢰고 행하게 하여 저로 하여금 폐하의 은총을 입게 하니 제가 생각하건대 어디에 이러한 만남이 있겠습니까? 만약 조금이나마 스스로 힘써 한번이라도 폐하를 찾아뵙게 된다면 8년 동안의 신하된 자로써의 연모하는 정성을 다소 위로하고 면전에서 거듭 은명을 받은 감격의 뜻을 아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절하고 응대하는 사이에 모름지기 다시 폐하께서 불쌍히 여기고 살펴 주시어 헛되이 말을 써서 함부로 명령을 지체하게 하는 죽을죄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실재로 저는 쇠약해져 몸을 부축하고 나아가기 힘들며, 폐하의 큰 뜻을 져버려 스스로 밝은 때를 버리고 조정에 바랄 것이 없으니 눈물이 내려 가슴을 적십니다. 문득 죽을죄를 무릅쓰고 다시 저의 정을 다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조정에 특별히 아뢰어 주시어 앞에 내렸던 지휘를 철회하시고 저로 하여금 예전대로 사록을 주시어 여생을 마칠 수 있게 해주십시오.
右熹近凖尙書省箚子, 奉聖旨, 令奏事訖之任者. 熹聞命震驚, 卽欲依禀起發前去. 實以累年以來積負憂畏, 精神恍惚, 耳重目昏, 筋骨支離, 腰痛足弱, 其餘病苦發歇不常, 蓋有言所不能盡者. 所以昨來被命之初, 卽以此誠控告, 未蒙兪允, 不敢遽有煩瀆. 今來又被前件恩旨, 熹竊惟念已試無堪, 再蒙收用, 天地父母之恩已極隆厚, 而又特降睿旨, 使得奏事而行, 以爲使臣光華之寵, 自惟何者, 有此遭逢? 若使稍能自力, 一造闕庭, 不惟得以少慰八年犬馬慕懲之誠, 面陳重疊受恩感激之意, 而拜起應對之間, 亦須便蒙聖主哀憐照察, 不至虛有詞費, 以干留令之誅. 顧實衰殘, 不堪扶曳, 仰孤隆旨, 自棄明時, 望絶雲天, 涕下霑臆. 輒冒萬死, 復馨愚衷. 欲望朝廷特賜敷奏, 寢罷前降指揮, 令熹依奮奉祠, 以終餘息.
강서제형을 사양하는 차자 2 辭免江西提刑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강서제형의 명을 수행하려 나서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고 주장하는 두 번째 장계이다.
제가 이전에 늙고 병이 들어 일찍이 차자의 목록을 갖추어 궁관으로 파견되기를 빌었습니다. 이어서 성지를 살펴보니 지금 내렸던 지휘에 의거하여 빨리 행재소에 나아가 일을 아뢰고 임지에 가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명을 듣고서 깜짝 놀라 감히 다시 사면할 수 없어서 무신 년 3월 18일에 출발하여 나아갔습니다. 로에서 질병의 발작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에 지체되었으나 지금 다행히 신주에 도착하였습니다. 심히 억지로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병세가 침릉이 더해지고,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굽어보고 내려보며 엎드려 절하고 꿇어앉는 것도 극히 힘이 많이 듭니다. 불러주는 위엄을 돌이켜 보건대 감히 곧바로 되돌아감을 생각할 수 없어서 오로지 장계를 갖추어 보고했으나 계속해서 전 로에서 기다리는 것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궁관으로 파견해 주시고 저로 하여금 조속히 집으로 돌아가 몸을 보양하게 하시어 일을 하는데 낭패에 이르지 않게 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熹昨綠衰病, 嘗具箚目, 陳乞宮觀差遣. 績準聖旨, 今依已降指揮, 疾速赴行在奏事訖之任. 熹聞命震驚, 不敢復有辭避, 已於三月十八日起離前來. 綠路疾病發作不常, 所至濡滯, 今幸已到信州. 深欲勉彊前進, 而病勢侵加, 腰脚疼痛, 俯仰拜跪, 極爲費力. 顧以趣召之巖, 未敢輒爲歸計, 不免專具申禀, 迤邐前路聽候. 欲望矜憐, 特賜敷奏, 改差官觀差遺, 令熹早得還家將理, 不至狼狽道路, 不勝幸甚!
강서제형을 사양하는 차자 3 辭免江西提刑箚子三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강서제형의 명을 받고 임지에 나아가면서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계이다.
제가 일전에 입은 은명을 살펴보건대 행재소로 나아가 일을 아뢰도록 했으나 실재로 노쇠하고 병들어서 일찍이 차자의 목록을 갖추어 궁관으로 파견되기를 빌었습니다. 연이어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성지를 받들어 내렸던 지휘에 의거하여 빨리 행재소로 나아가 일을 아뢰고 임지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명을 듣고서 깜짝 놀라 감히 다시 사면할 수 없어서 3월 18일에 떠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로에서 질병의 발작이 평소와 다르기 때문에 지체되어 3월 30일에야 신주에 도착했습니다. 심히 억지로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병세가 침릉이 더해지고,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내려보고 굽어보며 엎드려 절하고 꿇어앉는 것도 유독 어려움을 느낍니다. 재촉하여 불러주는 위엄을 돌이켜 보건대 감히 곧바로 되돌아감을 생각할 수 없어서 4월 초 1일에 다시 차자를 갖추어 보고하고 계속해서 전 로에서 기다렸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궁관으로 파견하시어 저로 하여금 조속히 집으로 돌아가 몸을 보양하게 하신다면 일을 하는데 낭패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윽고 몸을 부축하고 앞으로 나아가 초 4일 옥산현에 이르러 명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10여 일인데 앞으로 나아갔던 곳에서 되돌아가라는 것을 입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파견되어 갔던 사람이 도중에 병환이 들어 저는 보잘 것 없는 정성이 보고 되지 않았는데 이르러 일을 그르치는 것이 더욱 오래되고 죄가 더욱 심할 것이니 삼가 다시 인편으로 별도로 주장을 갖추어 보고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상부에서 자세히 살피어 조속히 폐하께 아뢰어 시행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照對熹昨蒙聖恩, 令赴行在奏事, 實緣衰病, 嘗具箚目, 陳乞官觀差遺. 續準尙書省箚子, 備奉聖旨, 令依已降指揮, 疾速赴行在奏事訖之任. 熹聞命震驚, 不敢復有辭避, 已於三月十八日起離前來. 緣路疾病發作不常, 所至濡滯, 於當月三十日到信州. 深欲勉彊前進, 而病勢侵加, 腰脚疼痛, 俯仰拜跪, 殊覺艱難. 顧以趣召之嚴, 未敢輒爲歸計, 已於四月初一日再具箚子申稟, 迤邐前路聽候. 乞賜敷奏, 改差宮觀差遣, 令熹早得還家將理, 不至狼狽道路. 尋卽扶曳前來, 以初四日到玉山縣等候. 今已十有餘日, 未見前回. 竊慮所差去人在路病患, 致熹愚誠未徹, 稽違益久, 罪戾愈深, 謹復專人別具申禀. 伏望鈞慈詳酌, 早賜敷奏施行, 不勝幸甚!
궁관직을 비는 차자 乞宮觀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다른 임무를 별도로 부여하지 마시고 궁관으로 파견해 주셔서 병든 몸을 추수 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쇠약하고 늙어서 관직에서 물러나 집에 있는지 오래 되었는데도 이에 부름을 입었으니 마침내 다시 작은 위엄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폐하께 병부낭관에 등용함을 입어 은총에 감사하여 우러러 받들었는데 무엇으로써 폐하의 은혜를 보답하겠습니까! 삼가 저는 예전에 족질이 있었는데 길을 가다가 우연히 장마를 만나 습기에 감염되어 마침내 다시 발병하였습니다. 근래에 도성에 들어왔으니 병세가 적어진 사이에 조금이나마 몸을 부축하고 폐하를 한번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발을 끄는 피로는 마침내 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게 하여 침상에 엎드려 울부짖으며, 두 정강이가 쪼개질 것 같기 때문에 상서성 차자를 받은 것이 며칠이 지나도록 부에 나아가 직책을 맡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주장을 갖추어 아뢰어 조정에 몸조리 하도록 휴가를 주시길 빌었으나 가만히 생각하건대 병이 나을 날이 있을 것 같지 않으니, 내리신 명을 지체시켜 의리상 편치 못할 듯 합니다. 바라건대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어 한차례 외지에 있는 궁관에 제수해서 파견해 주십시오.
熹衰遲之迹, 退閑旣久, 玆蒙召對, 遂獲再瞻咫尺之威. 又蒙聖慈擢登郞省, 感戴恩寵, 何以論報!伏緣熹奮有足疾, 沿路偶値陰雨, 感冒濕氣, 遂復發動. 比入都城, 疾勢稍間, 粗能扶持一登殿陛. 而勞曳遂增沉綿, 伏枕呼號, 兩脛如割, 是以被受省箚累日, 未能赴部供職. 雖已具申, 乞給朝假將理, 竊慮未有痊愈之日, 稽留成命, 義有未安. 欲望特賜敷奏, 改授一在外宮觀差遺.
강서제형을 사양하는 장 辭免江西提刑狀二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올린 사면장이다. “그는 병부낭관의 명을 받고 임무 수행 중 탄핵되어 강서제형으로 나가는 저간의 사정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예전처럼 병든 몸을 추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의 쇠약한 여생은 병치레나 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폐하께서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거두어 쓰시면서 입궐해서 시사를 아뢰고 임지로 가도록 하셨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외로운 저를 어찌 위에서는 진념해 주시고 불쌍히 여겨 기억해주시는 것입니까? 은우에 감격하고 보답할 방도조차 없으니 진실로 명을 듣자마자 길을 나서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 해 동안의 우환과 다단한 질병으로 인해 주장을 갖추어 아뢰어 사록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청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감히 집에 머물면서 고사하지 못하고, 억지로 병든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섰습니다. 신주에 도착하였으나 각기병이 발병하여 두 차례 사람을 보내어 다시 앞에서 청했던 것을 아뢰고 삼가 엎드려 명을 기다렸습니다. 40여일이 지나 다행히 몸이 조금 편해졌는데 여정을 재촉하는 명이 있어서 마침내 아픈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계신 도성에 들어왔을 때부터 오른쪽 발이 다시 아팠지만 중간에 다행히 조금 나아서 비로소 능히 폐하를 우러러 보며 면전에서 저의 속내를 아뢰었는데, 모두 개납해 주셨으니, 저의 뜻과 소원에 다시 어떤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면하여 아뢸 때에 왼쪽 다리가 아팠는데 계속해서 참알하게 되어 더욱 움직이기 힘듭니다. 다음 날이 되자 특별히 성은을 입어 제게 병부낭관을 제수하셨으나 고통이 심하여 뒹굴고 호소하며 땅을 밟을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날로 소명을 받고 직무를 수행할 수 없어서 조정에 주장을 갖추어 보고하고 몸조리를 위한 휴가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날 늦게 갑자기 관리가 직인을 들고 와서 제게 업무를 인수인계토록 했습니다. 저는 직무를 수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직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공장과 차자를 갖추어 보고하였는데 본부에서는 아울러 회답이 없었고, 본부에서 관리를 시켜 명한 지휘는 반드시 직인을 넘겨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차자를 갖추어 간절한 정성을 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어서 결국 관리에게 제가 거처하는 곳에서 함께 직인을 감시 감독하게 하고 병치레 와중에 작은 여가가 생기면 그를 불러서 엄절하게 살피라고 하고는,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가 본 부에 나아가 직무를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무릇 이 일의 전모는 여러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도장을 관리하는 관리도 모두 보고 들었으니 거만하게 벼슬을 탐내려는 마음은 저에게 추호도 없었습니다.
熹衰悴餘生, 養痾待盡, 聖上不忍棄捐, 復加收用, 且令奏事而去. 自惟孤遠, 何以上軫記憐? 感激恩遇, 未知報塞, 固當聞命卽日引道. 實緣頻年憂患, 疾病多端, 不免具狀陳乞詞祿. 旣不得請, 卽不敢家居固辭, 而力疾就道. 行次信州, 脚氣果作, 兩次遣人復申前請, 俯伏俟命. 凡歷四旬, 幸而調治稍安, 且有促行之命, 卽遂扶曳前進. 然自入國門, 右足復痛, 中間幸得小愈, 始克進望淸光, 面陳愚悃, 悉荷開納. 於熹志願, 豈復有它? 而奏對之時, 左足已痛, 繼以參謁, 勞動有加. 及至次日, 特蒙聖恩, 除熹兵部郞官, 則痛楚已甚, 宛轉號呼, 不能履地矣. 熹以未能卽日拜命供職, 卽具申朝廷, 給假將理. 是晩忽有吏人抱印前來, 令熹交割. 熹以未曾供職, 不敢收領. 嘗具公狀箚子回申, 本部並無回報, 但令吏人指揮必要交印. 熹又具箚子陳懇, 亦不收受. 熹不得已, 遂令吏人在安下處同共看守, 呻吟少暇, 卽令呼喚嚴切照管, 擬俟病愈, 赴部供職. 凡此本末, 衆所共知, 守印吏人亦皆見聞, 未嘗敢有毫髮偃蹇邀求之意.
그런데 다음 날 병부시랑이 탄핵하는 주장을 올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감히 스스로 변론할 수 없어서 즉시 주장을 갖추어 사록관과 혐의가 있는 직책을 회피할 것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폐하께서 곡진하게 보호해 주시면서 예전대로 강서제형의 직책을 수행토록 해주셨고, 멋대로 행동한 몇 년의 세월에 대해 마감을 해 주시어 저의 어리석은 분수에 우대와 행복이 깊으니 마땅히 바삐 위로 나아가 보답을 도모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은 논박하는 자들이 저를 간사하고 망령되며, 지나치게 벼슬을 탐한다고 하면서 난리를 저지르는 자들의 수괴라고 지목하고, 게다가 폐하를 섬기면서 무례한 죄를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원근으로 전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식을 듣자 놀랍고 두려워서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도성을 떠난 지 멀지 않았고, 분쟁을 일으키게 될까 꺼려해서 감히 갑자기 청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느릿하게 서쪽으로 길을 떠나 점점 임지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가만히 스스로 생각하건대 신하가 된 자로서 이러한 명목을 갖게 되었으니 죄는 죽어야 마땅한데 어찌 다시 폐하의 이목과 같은 외대의 직책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가령 성은이 관대하게 처분하신다 하더라도 저는 무슨 면목으로 하급관리와 백성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아울러 제가 앓고 있는 족질은 날로 곤궁함이 더해 가는데도 쉬지도 못해서, 잠깐씩 그치기는 하지만 한결같이 병이 낫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강서제형사의 관아에는 오래도록 정관이 궐석으로 있는데 만약 다시 시간은 지연시킨다면 이것은 제가 노쇠하고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한 로의 정사를 오래도록 폐하고, 조정의 명을 지체시키는 것이니 죄가 더욱 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한편 집으로 돌아가 죄를 기다리는 것 외에 바라건대 조정에서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죄상을 살펴 주시고, 실제로 논박하는 자들의 말과 같다면 저를 엄히 관직에서 쫓아 주셔서 집에 틀어박혀 자신의 허물을 생각하면서 여생을 마치게 하신다면 저는 간절히 기원하는 지극함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지휘를 기다립니다.
而次日傳聞長貳巳有劾章, 熹不敢自辯, 卽時具狀請祠回避. 復蒙聖慈曲賜全護, 使得仍舊持節江西, 幷與放行累年磨勘. 在熹愚分, 優幸已深, 卽合奔走赴上, 以圖報稱. 而繼聞論者謂熹姦妄, 過有邀求, 目爲亂人之首, 加以事君無禮之罪, 對衆宣言, 遠近傳播. 聞之駭懼, 益不自勝. 但以去國未遠, 嫌於紛競, 不敢遽然有請. 今迤邐西行, 浸迫所部, 竊自思念, 爲人臣子而有此名, 罪當誅戮, 豈可復任外臺耳目之寄? 政使聖恩寬貸, 在熹亦何面目可見吏民? 兼熹所患足疾, 日困奔馳, 不得休息, 乍止乍休, 未能一向痊平, 而江西憲司久闕正官, 若更遷延日月, 則是以熹衰病嫌疑之故, 久廢一路之事, 稽留朝命, 爲罪愈深. 熹除已一面還家待罪, 欲望朝廷特賜敷奏, 詳熹罪狀. 實如論者之言, 卽乞重行黜責, 使得杜門念咎, 畢此餘生, 熹不勝幸願祈懇之至!伏候指渾.
(소첩자)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청하는 것은 행적이 어긋나고 교만해서, 논박하는 자들의 말과 같게 되어 거꾸로 커다란 낭패를 속히 불러올까 걱정된다고 합니다. 저는 가만히 스스로 생각하건대 전에 폐하를 만나 차자로 아뢰면서 형옥의 이해관계를 두 가지로 논의했습니다. 하나는 경총제전은 세액을 정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강서 여러 주에 과벌전의 폐단을 논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가 어찌 망령되게 조정의 내직이나 탐하면서 외사를 싫어하고 경시하겠습니까? 다만 지금 저는 스스로 번잡한 말을 하게 되었고, 외대의 직책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이렇게 간절히 아뢰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위에 계시니 반드시 살펴 주실 것입니다. 바라건대 아울러 폐하께 아뢰어 시행해 주십시오.
(小貼子)或謂熹之此請, 跡涉違慢, 恐實論者之言, 反速大戾. 熹竊自念前日奏對箚子, 兩論刑獄利害, 一論經總制錢不當立額, 一論江西諸州科罰之弊, 熹之區區, 豈是妄有邀求, 厭薄外使? 但以今者自致煩言, 不堪耳目之寄, 須至陳懇. 天日在上, 必蒙監照, 欲乞倂賜敷奏施行.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거듭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고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자신을 추수 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에게 간절한 청이 있어 재집의 위엄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개 외로운 사람으로 오래도록 성은을 입었습니다. 이에 곡진히 기억하고 불쌍히 여겨 주셔서 한직에 있는 저를 발탁하여 일도의 상형의 직을 맡겨 주셨습니다. 입궐해서 직책과 연관된 일을 아뢰게 하시고는 면전에서 포상해 주시고 병부랑에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실재로 평소에 족질이 있어 길에서 자주 발병하였는데 도성에 들어옴으로부터 오른쪽 발이 처음에 아팠으나 중간에 조금 나아서 겨우 몸을 부축하고 입궐할 수 있어서 움직이거나 서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왼쪽 발에 다시 통증이 느껴져 제 몸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궁문을 떠났는데 다시 배알을 행하니 큰 고통에 이르렀습니다. 근래에 상서성 차자를 받았는데 붉은 종기가 생겨 땅을 밟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날로 관직을 받을 수 없어서 일찍이 상서성에 보고하여 휴가를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해 들으니 장이는 봉장을 막아두고 제가 간사하고 요망하다고 탄핵하고 사람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게다가 무례한 죄로 폐하를 섬긴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비록 폐하와 조정은 넓고 여실히 가리고 덮어 주고 사적으로 간청할 수 있게 하여 다시 옛날 관직을 주어서 평소대로 할 수 있었을지라도 저를 탄핵하는 글이 이리저리 요란하게 전하니 죄상이 현저합니다. 가만히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만약 설사 말한 것과 같다면 저의 죄는 죽음을 당함이 마땅한데 어찌 다시 외람되게 외대의 보좌를 맡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공장을 두어 상서성에 아뢰어 죄를 기다리니 바라건대 상부에서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어 거듭 책임을 물으시고 문을 닫고 은거하면서 깊이 스스로를 반성하게 한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熹輒有危悃, 冒干鈞聽: 熹一介孤遠, 久荷聖知, 玆者曲被記憐, 擢自冗散, 付以一道祥刑之寄 又使得以職事秦對, 面賜褒諭, 留寘省曹. 在熹何人, 可以報稱? 實以素有足疾, 在道屢作, 自入國門, 右足先痛, 中間小愈, 僅能扶持入對, 行立稍久, 卽覺左足復痛, 不能支吾. 旣出宮門, 復行參謁, 卽遂大痛. 比及被受省箚, 則已赤腫拘攣, 不能履地矣. 以此不得卽日供職, 亦嘗申省請假, 卽非有它. 而傳聞長貳遽有封章, 劾其姦妄, 指爲亂人之首, 加以事君無禮之罪. 雖聖朝廣大, 曲加掩覆, 使之得以私請, 復畀舊官, 從容而去, 然彈文喧播, 罪戾著聞. 竊自揣量, 若使果如所言, 則熹罪當誅戮, 豈可復叨外臺耳目之寄? 今有公狀申省待罪, 伏望鈞慈特賜敷奏, 重行黜責, 使得杜門屛跡, 深自循省, 不勝萬幸.
강서제형을 사양하는 장 3 辭免江西提刑狀三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강서제형의 명을 철회하시고 원래대로 궁관으로 파견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일전에 병부시랑 임율이 탄핵하는 장계를 갖추어 자주 제가 폐하께 대들고 명을 어기는 것과 무례한 죄로 속임을 짓는다는 것이 거의 백언에 가깝다고 말한다는 소문을 들으니 놀라고 두려워함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으며, 마침내 감히 새로운 직책에 앞으로 나갈 수 없어서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고 삼가 엄격한 꾸지람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6월 26일에 “주희가 병든 몸을 이끌고 입대하여 아뢴 차자는 모두 새로운 직책의 직사를 논했는데 짐은 그의 정성을 믿으니 다시 청한 것에 따라서 내렸던 지휘에 의거하여 빨리 나아가라”는 성지를 받들었습니다. 제가 받고서 삼가 읽어보니 감격함이 지극하여 눈물이 흐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폐하의 명철하심은 은둔하여 숨어사는 저를 살펴 주시는데 무릇 많은 신하들의 정성은 곡직을 속이니 대개 저의 사정을 숨기지 못하겠습니다. 폐하께서 넓게 덮어 주심에 이르러서는 미천함을 상관하지 않으시고서 너그럽게 포용하는 것이 지극하고, 시비를 가리는 것이 상세하며, 어루만져 깨우쳐 주는 것이 온화하고, 포상을 빌어서 총애하니 소원한 제가 마땅히 얻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진실로 공손히 폐하의 덕의를 받드는 것이 마땅하여 배명하고 곧바로 행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돌아오는 길에 열이 나서 갈림 길을 헤아리는데 족질이 자주 발병하여 여실히 기발하여 앞으로 나아가 맡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임율이 지금 직에 있어 여분이 다스려지지 않았으니 만일 강서의 일을 임율이 다스려 살핀다면 반드시 거듭 처벌함을 만남에 이를 것입니다. 외롭고 멀리 떠나 있는 저는 진실로 편안하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조정에서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원래 내렸던 지휘를 파면해 주십시오. 혹 폐하께서 가난하고 병든 것을 가엽게 여길까 걱정이 되니 바라건대 여실히 개진하여 특별히 궁관의 파견을 한 차례 주시어 집에 있으면서 허물을 생각하며 남은 생을 마치게 한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어 삼가 상부의 칙지를 기다립니다.
右熹昨爲兵部侍郞林栗抗章劾數其要君拒命․作僞無禮之罪, 幾數百言, 得之傳聞, 不勝駭懼, 遂不敢前赴新任, 而具狀申省, 伏候嚴譴. 今準尙書省箚子, 六月二十六日奉聖旨, ‘朱熹力疾入對, 奏箚皆論新任職事, 朕諒其誠, 復從所請, 可依已降指揮, 疾速之任. ’熹拜受伏讀, 感極涕零. 伏惟天日之明, 洞燭幽隱, 凡群下之誠僞曲直, 蓋無所匿其情者. 以至皇慈廣覆, 不間微賤, 優容之至, 辨白之詳, 撫喩之溫, 褒借之寵, 則又有非疏遠小臣所當得者. 誠宜祗承德意, 拜命卽行. 而熹歸途踏熱度嶺, 足疾又頗發動, 委是不任起發前去. 又況林粟見今在職, 餘憤未平, 萬一事有統臨, 必至重遭按治. 孤遠之迹, 誠不自安. 欲望朝廷哀憐, 特賜敷奏, 寢罷元降指揮. 或恐聖慈閔其貧病, 卽乞委曲開陳, 特與宮廟差遣一次, 使得杜門念咎, 畢此餘生, 千萬幸甚!謹具狀申尙書省, 伏候鈞旨.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재집에게 관직을 수행하는 동안의 사정과 일신상의 문제를 정확히 보고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저는 문득 사적인 간청이 있어 우러러 제집에게 아룁니다. 저는 일전에 질병이 낫지 않고 비방함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공손히 새로운 직책에 나아가지 못하고 문득 공장으로 상서성에 아뢰어 죄를 기다렸으며 차자를 갖추어 저의 속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근래에 삼가 상서성 차자를 받들어보니 우러러 폐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고, 폐하께서 깊이 살펴 주시니 사리를 분별함이 밝고 훈계하여 깨우쳐 주심이 정령함을 알았습니다. 세 번 다시 되돌아오니 감히 감격하는 눈물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실재로 족질의 고통이 길을 다니다가 심해져서 자못 더욱 심해짐이 있으며, 임시랑이 상서성에서 직책을 맡고 있으니 오히려 반드시 회피하시고, 별도로 문장을 갖추어 폐하께 아뢰어 시행하시라는 것 외에 감히 다시 이것을 갖추니 당신에게 어리석음을 무릎 쓰고 모독하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상부에서 긍휼히 생각하시고 조속히 개진하여 옳고 그름을 지적하는 것의 헤아림을 관대하게 하시고 사관지기의 바람을 갚게 하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일 것입니다.
熹輒有私懇, 仰干公聽 熹昨以疾病未愈, 誣詆未明, 不敢袛赴新任, 輒以公狀申省待罪, 及具箚子控瀝鄙懷. 近者伏奉省箚, 仰聆玉音, 乃知聖明已垂深照, 辨理昭晰, 訓喩丁寧. 三復以還, 不勝感涕. 實以所苦足疾在路踏熱, 頗有增加, 而林侍郞列職中臺, 尙須回避, 除已別具申省文狀, 陳乞敷奏施行外, 敢復具此, 冒昧崇聽. 欲望鈞慈矜念, 早賜開陳, 俾寬彈射之虞, 獲酬香火之願, 熹不勝幸甚!
마감해서 관을 옮겨준 것을 사양하는 장 辭免磨勘轉官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좌선교랑의 품계를 마감하고 조봉랑으로 옮겼고, 직보문각을 제수하고 주관서경숭산숭복궁에 임명했다. 조봉랑은 문관 37급 가운데 22급으로 선교랑에 비해 4급이 높은 품계이다. 주희는 원래 좌적공랑이었다가, 건도 9년(1173년, 44세)에 문관 37급 가운데 26급인 좌선교랑이 되었고, 15년만인 1188년이 되어서야 품계가 네 등급을 뛰어 오른 것이다. 이에 그는 “마감을 통해 명을 철회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이번 달 2일에 상서성 이부에서 내려 보낸 고명 한 통을 받았습니다. (현재의) 제 관품을 마감시키고 조봉랑으로 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저는 과거에 무능해서 산야에 엎드려 있었는데, 폐하께서 외람되이 들으시고 특별히 경관으로 바꿔 주셨으니, 어리석은 제게는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고과를 평가하는 일이 있었을 때, 마감에 해당되었지만, 제가 관을 바꾼 이후에 쭉 사관 직에만 있었기 때문에 평가할 만한 공로라고는 없었습니다. 중간에 비록 남강군지사를 한 번 맡았고, 절동제거상평다염공사를 몇 개월 맡았고, 각별한 성은을 입어 특별히 첨직을 제수하시기도 하셨기 때문에 감히 망령되게 진달해서 마감해 달라고 해서 벼슬을 탐한다는 죄를 불러일으켜 포장하고 발탁해 주신 은혜를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뜻 밖에도 크게 탄핵을 당했는데도 거꾸로 성지를 입어 과거의 관직으로 파견해 주시고 특별히 유사에게 조칙을 내려 마감토록 하심으로써 행실에 은총을 베풀어 위와 같은 은명이 있게 되었습니다. 은총을 우러르면 비록 깊이 감격스럽지만 제 사적인 분수를 굽어 살피면 어찌 감히 평소의 마음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겸해서 최근에 장계를 상서성에 올려서 병부시랑 임율을 회피하게 해달라고 하면서 궁관으로 파견해 주시길 빌었는데, 내려온 은명을 저는 진실로 까닭 없이 받을 수 없습니다. 건령부에 보내 보관토록 한 이외에 삼가 장계를 상서성에 올립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 아뢰어 내려온 고명을 돌이켜 주셔서 제 분수를 편하게 해주십시오. 엎드려 지휘를 기다립니다.
右熹今月二日準尙書吏部降到告命一道, 磨勘轉朝奉郞者. 伏念熹昨以無能, 跧伏林野, 聖慈過聽, 特改京官, 在熹之愚, 已出望外. 後來雖有考第, 合該磨勘, 綠熹改官之後, 一向奉祠, 卽無勞效可考. 中間雖曾實歷知南康軍一任, 及提擧浙東常平數月, 又已各蒙聖恩, 特除貼職, 所以不敢妄有陳乞, 自速貪冒之罪, 以負褒擢之恩. 今來不謂方被重劾, 反蒙聖知, 仍舊差遣, 特詔有司給還磨勘, 以寵其行, 致有上件恩命. 仰戴天慈, 雖深感激, 俯循私分, 敢負夙心? 兼以近方具狀申省, 回避兵部侍郞林粟, 仍乞宮觀差遣, 所有恩命, 熹實不敢無故袛受. 除巳送建寧府寄收外, 謹具狀申尙書省, 伏乞敷奏, 收回所降告命, 以安愚分, 伏候鈞旨.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재집에게 마감전관의 고명을 철회하실 수 있도록 폐하께 아뢰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문득 간절한 청이 있어 재집에게 아룁니다. 저는 일전에 종적이 외롭고 위태로워 간절히 사록을 구하였지만 폐하의 처분을 받들지 못해서 두려웠는데 갑자기 상서성 이부에서 파발로 보내온 마감전관 고명일도를 받았습니다. 저는 실재로 스스로 일전에 직책을 옮긴 이래로 자주 사관 직에 임명되어서 고과를 평가할만한 공적이 없으며, 중간에 두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고 각각 직휘유각, 직비각을 제수 받았기 때문에 앞뒤로 감히 마감을 아뢰지 못했으니 진실로 일부러 어긋난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지금 바야흐로 심하게 탄핵을 입었는데도 여실히 관대한 은혜를 받았으며, 중론을 헤아려서 다행스럽게 면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히 까닭 없이 폐하께서 밝은 자를 올려주는 법의 마땅함을 모독하고, 위로 조정에서 실정을 따지는 정사에 누가 되겠습니까?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뢴 것 외에 바라건대 상부에서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빨리 앞의 명을 파면하신다면 저는 천만 큰 다행이겠습니다.
熹輒有愚悃, 仰干鈞聽 熹昨以蹤跡孤危, 懇求祠祿, 未奉進止, 方竊凌兢, 忽蒙尙書吏部遞到磨勘轉官告命一道. 熹實以自昨改秩以來, 累任祠官, 無績可考 中間兩被任使, 又已各蒙除授職名, 所以前後不敢陳乞磨勘, 卽非固爲矯激. 又况今來方被重劾, 曲荷寬恩, 揆之師言, 已爲幸免, 豈敢無故冒當聖世陟明之典, 上累公朝責實之政? 除已具狀申尙書省, 欲望鈞慈特賜敷奏, 追寢前命, 則熹不勝千萬大幸!
직보문각을 사양하는 장 辭免直寶文閣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직보문각의 명령을 거두시고 구관을 유지시켜 달라”고 장계하였다.
제가 일전에 망령되고 용렬한 사람인데도 계속해서 외람되게 제수하시어 등용하였으며, 폐하의 말씀을 어기고 병으로 물러났는데도 여실히 은혜를 받았으니 제 자신을 살펴 사사로움을 돌이켜보면 감격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내려왔던 궁관의 파견은 제가 즉시 폐하를 우러러 은혜에 감사하며 공손히 받았습니다. 오직 직보문각에 나아가라는 은명은 은혜와 장려가 크고 깊지만 스스로 작고 미천함을 돌이켜 보면 직무를 담당하여 책임을 다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울러 근래의 제도를 살펴보니 내각의 청렴한 관리에게 공훈이 없으면 가볍게 천거하여 제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세울 만한 공적이 없고 행동이 말을 가리지 못해서 임률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 욕됨을 당함에 이르렀습니다. 폐하의 사려를 근심시켜 다시 조정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였으니 죄가 충분한데 어디에 공이 있겠습니까? 면전에서 함부로 받는다면 의리상 실제로 편안하기 어렵습니다. 바라건대 조정에서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내렸던 명을 거두어 주시고, 저로 하여금 구관으로써 사록을 훔쳐 먹게 한다면 영광과 행운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지휘를 기다립니다.
熹昨以妄庸, 薦叨除用, 辟言引疾, 曲荷俯從, 省己顧私, 不任感激. 所有宮觀差遣, 熹已卽時望闕謝恩袛受訖. 惟是進職恩命, 眷獎隆深, 自顧么微, 莫堪稱塞. 兼覩近制, 內閣淸班非有勳庸, 不輕遷授. 而熹無狀, 行不掩言, 無以取信交遊, 以至自貽詬辱. 旣勤聖慮, 復紊朝綱, 罪則已多, 功於何有? 靦顔冒受, 義實難安. 欲望朝廷特賜敷奏, 追寢成命, 令熹且以舊官竊食祠館, 不勝榮幸. 伏候指揮.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전례 없는 특전이 내려진 것에 대하여 철회하실 수 있도록 재집에게 아뢰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저는 간절한 청이 있어 우러러 재집의 위엄을 더럽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전에 폐하의 말씀을 어기고 병으로 물러났는데도 여실히 불쌍히 여기고 가여워 하시어 봉사의 청이 이루어졌으니 천만 다행입니다. 단지 폐하께서 직책과 품계를 전례 없이 더해 주시니 굽어 저의 분수에 따르고 우러러 근래의 제도를 살펴봄에 모두 편안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상서성에 주장을 갖추어 사면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상부에서 간절한 저의 정성을 깊이 살피시어 조속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고 특별히 시행하여 주신다면 저는 더욱 스스로 지극한 다행스러움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熹輒有愚懇, 仰塵鈞聽: 熹昨者辟言引疾, 曲荷矜憐, 已遂奉祠之請, 不勝幸甚. 但蒙聖恩橫加職秩, 俯循愚分, 仰稽近制, 皆有所未安者, 謹已具狀申省辭免. 欲望鈞慈深察誠悃, 早賜敷奏, 特與施行, 則熹尤不自勝千萬幸願之至!
소명을 사양하는 장 辭免召命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행재소로 나오라는 명을 철회하시고 그 전대로 삶을 보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장계하였다.
저는 9월 26일 상서성 차자를 받았습니다. 성지를 받들어보니 저를 행재소로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명을 듣고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저는 금년 6월에 입대하는 은혜를 입었는데, 광망하고 취할 것이 없다는 탄핵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비록 폐하께서 시종 살펴 주셨고, 관을 옮기고 직을 나아가도록 하셔서 곡진히 은총을 보이셨지만, 스스로 헤아려 보아도 망용하니 은혜를 감당할 수 없어서 우러르나 굽어보나 발 디딜 곳을 몰라 깊이 부끄러웠습니다. 홀로 생각건대 이러한 외람된 은혜는 모두 제가 한가롭게 물러나려는 뜻을 허락하시려는 것이었으니, 일부러 훔치듯이 소명을 받아도 혐의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폐하께서는 차마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부르시는 소명을 내리시고는 조정으로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보잘 것 없는 신하의 마음으로 어찌 이러한 다행스러운 기회를 틈타 다시 폐하를 뵙고 전일에 다하지 못했던 충성을 다하길 원하지 않았겠습니까? 돌이켜보건대‘나아가기를 어려워하고 물러서기를 쉬이 하는 선비에 대한 포장을 훔쳐 갑자기 다시 벼슬살이에 나서려는 계책으로 삼으려 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꺼리가 될 것입니다. 이는 벼슬에 급급하게 오 간다는 꾸짖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천거하는 막중함이 자주 천하의 식자들에 의해 엿보이게 되는 마땅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두려워 감히 이를 무릎 쓰고 나아가지 못하겠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 아뢰어 이전의 지휘를 거두어 주시고, 가엽게 여겨 은혜로 길러주는 두터운 은혜를 입어 위로 훈사와 포권의 융성한 지휘를 그르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삼가 지휘를 기다립니다.
右熹準九月二十六日尙書省箚子, 奉聖旨, 朱熹召赴行在. 熹聞命震駭, 不知所爲. 伏念熹今年六月已蒙賜對, 狂妄無取, 被劾而歸. 雖蒙聖明始終臨照, 遷官進職, 曲示寵光, 自揣妄庸, 莫勝負荷, 俯仰跼蹐, 慙懼已深. 獨念凡此誤恩, 皆爲許其閑退, 故竊冒受, 不以爲嫌. 不謂皇慈未忍捐棄, 復加收召, 俾造闕庭. 區區臣子之心, 豈不深願乘此幸會, 再見君父, 庶以畢其前日末盡之餘忠? 顧以方竊難進易退之褒, 遽爾復爲彈冠結綬之計, 則其爲世觀笑, 不但往來屑屑之譏, 又況朝廷擧措之重, 亦有不宜數爲天下有識所窺者. 熹誠恐懼, 不敢冒進. 乞賜敷奏, 收還前件指揮, 使得卒被矜憐惠養之厚恩, 不至上誤訓辭褒勸之隆指. 伏候指揮.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재집에게 자신에게 내린 명을 거둘 수 있도록 보고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저는 문득 간절한 청이 있어서 감히 재집을 모독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전에 사록을 빌어 아픈 몸을 쉬게 하고 길러 주시기를 바랐는데 여실히 긍휼히 좇아 주심을 받았습니다. 바야흐로 이러한 배명으로 갑자기 아울러 당첩을 받았으며, 성은을 입어 부름을 받았습니다. 명을 듣고서 깜짝 놀라 스스로 용납할 바가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올 여름에 일찍이 진대하였는데 이윽고 탄핵을 입고서 두려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반년 간에 자주 성은을 모독하였으니 만약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서 다시 이렇게 달려 나간다면 이것은 조칙을 내린 포상이 모두 헛된 말이 될 것이니, 용단의 책망이 두렵습니다. 하물며 뜻은 넓지만 재주가 소략하고, 모나고 박명하니 만약 다시 꾸짖고 욕됨을 만난다면 더욱 선비의 기개를 상하게 될 뿐만 아니라 거듭 조정의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여 사면하니 바라건대 상부에서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마침내 파면하신다면 실재로 두텁고 다행일 것입니다.
熹輒有愚悃, 敢冒公朝之聽. . 熹昨丐祠祿, 休養哀殘, 曲荷矜從. 方此拜命, 忽爾幷被堂帖, 又蒙聖恩收召. 聞命震暢, 無所自容. 顧以今夏已嘗進對, 尋被彈劾, 惶懅而歸. 半年之間, 屢叨榮寵, 若不自揆, 復此奔趨, 是使諮褒悉爲虛語, 龍斷之詣, 熹竊懼焉. 又况意廣才疏, 頭方命薄, 儻復更遭詆辱, 不椎愈傷士氣, 亦恐重爲朝廷之差. 已具狀申省辭免, 欲乞鈞慈特賜敷奏, 得遂追寢, 盲爲厚幸.
소명을 사면하는 주장 辭免召命奏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행재소로 나오라는 명을 거두시고 예전대로 지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거듭 장계를 올렸다.
저는 문득 간절한 청이 있어 위로 폐하의 위엄을 모독하였습니다. 저는 삼가 금년 6월 이후로 은혜를 입어 폐하를 만나 뵘에 계속해서 외람되게 제수되어 총애가 자주 거듭되어서 마침내 사록을 주시어 물러나 숨는 것을 이루었습니다. 감격함이 바야흐로 깊어 부끄럽고 두려움이 심합니다. 일찍이 한 달을 넘지 않았는데 다시 소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자주 포상을 입어 감히 다시 높은 지위로 영전하는 것을 희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바라건대 파면해 주십시오. 그러나 폐하의 지나친 은혜로 윤허하지 않으시고서 조칙을 내려 빨리 행재소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저는 명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앞 장계에서 아뢰었던 것은 극진히 설명을 다했는데도 아직 폐하께서 살펴 주심을 입지 못했으니 감히 자주 번거롭게 하지 못하겠습니다. 가만히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일전에 진대할 때에 발작한 병이 급박하여 입으로 아뢰는 말에 다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일찍이 면전에서 아뢰고 봉사를 갖추어 아뢰기를 빌었습니다. 지금 날이 오래됨에 이르렀는데도 아직 보내어 나아가지 못했으니 혹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시 소명하는 위엄을 번거롭게 할까 두렵습니다. 안으로 일의 그르침을 살펴보니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삼가 주소 한 통을 지어 갖추어 법식에 의거 봉함하여 이 장계와 함께 올립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 조금이라도 살펴 주신다면 저는 비록 몸이 조정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더불어 면전에서 명확하게 아뢰는 것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다행히 이에 살피시어 그것이 시행할 만하면 망령된 말을 채택하시고 진퇴의 법도를 온전히 할 것이니, 저는 다행일 것입니다. 사용할 수 없다면 폐하께서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 여실히 용서함을 더하고 단지 원래 내렸던 지휘를 파면하신다면 저는 다행일 것입니다. 초야의 미천한 제가 폐하의 위엄을 넘보게 되어 지극한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칙지를 기다립니다.
右臣輒有愚懇, 上瀆天威: 臣伏自今年六月蒙恩賜對, 繼叨除授, 寵數重疊, 卒舁祠祿, 以遂退藏. 感激方深, 漸懼亦劇. 曾未踰月, 又蒙收召. 臣以屢蒙褒嘉, 不敢復希榮進, 具狀申省, 乞賜寢罷. 而陛下過恩, 未卽開允, 仍詔疾速趨赴行在. 臣聞命震恐, 不知所爲. 顧念前狀所陳已極詳盡, 未蒙聖照, 不敢頻煩. 竊自惟念昨者進對, 迫於疾作, 口陳之說有所未盡, 卽嘗面奏, 乞具封事以聞. 至今日久, 未得投進, 恐或以此之故, 再煩趣召之嚴. 內省稽違, 不勝恐懼. 今謹撰成奏疏一通, 凖式實封, 隨狀投進. 伏望聖慈少賜觀覽, 則臣雖不獲身到闕庭, 亦與面對指陳無異. 陛不幸試察焉, 如其可行, 則釆其狂妄之言而全其進退之節, 臣之幸也. 如不可用, 亦乞聖明哀憐其愚, 曲加裁赦, 只與寢罷元降指揮, 亦臣之幸也. 草野賤微, 干犯斧鉞, 下情無任危擢戰栗之至. 謹錄奏聞, 伏候敕旨.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 申省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상서성에서 폐하께 보고하여 행재소로 오라는 명을 철회할 수 있도록 아뢰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지난번에 장계를 써서 아뢰면서 폐하께 저를 행재소로 오라고 한 지휘를 멈춰달라고 빌었습니다. 이제 상서성 차자를 받고 보니 성지를 받들어 사면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빨리 행재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명을 듣고 놀라 어쩔 줄 몰랐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아서,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오로지 명하면 이를 따라야 하는 것이 예로부터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하물며 저는 극히 어리석은데도 명철한 군주를 만나, 차마 끝내 버려두지 않으시니, 사적인 의리에도 온당치 않아 사면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도, 허락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다시 말하게 되어 상정으로 헤아려 보아도 실제로 신하의 예절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어리석은 진심은 앞 장에서 서술한 것이 상세하니, 지금 다시 시끄럽게 떠들어 번거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금년 6월에 입대했을 때 마침 병이 발작하는데 쫓겨 말로 진달한 내용을 다 하지 못해, 폐하를 뵈면서 봉사로 아뢸 것을 청했습니다. 지금까지 시간이 오래되었는데도 올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혹여 이런 연고로 다시 엄한 소명을 받게 되는 번거로움을 초래할까 걱정됩니다. 안으로 자신의 어긋남을 돌이켜 보면 두려움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봉사를 써서 법도에 의거해서 봉합하고 사람에게 가지고서 대궐에 나아가 올리도록 했습니다. 만일 광망한 제 말을 폐하께서 살펴 주신다면 제가 직접 대궐에 가지 않더라도 마주하고 말하는 것과 차이가 없을 것이니, 반드시 폐하께서 사면을 허락하심으로써 저의 진퇴의 절개를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장계로 폐하께 아뢰는 이외에 삼가 장으로 상서성에 아룁니다. 삼가 바라건대 다시 폐하께 아뢰어 원래 내린 지휘를 멈춰 주십시오. 지휘를 기다립니다.
右熹昨嘗具狀申, 乞敷奏浸罷召赴行在指揮. 今準尙書省箚子, 奉聖旨不許辭免, 疾速赴行在者. 熹聞命震恐, 不能自勝. 伏念臣之事君, 猶子事父, 東西南北, 唯命之從, 此古今不易之理也. 矧熹至愚, 遭遇明聖, 不忍終棄, 曲賜甄收, 私義未安, 不免辭避, 未蒙開允, 猶復有言, 揆以常情, 實乖臣子之禮. 然熹之愚悃, 前狀敷述已極詳明, 今更不敢喋喋以煩公聽. 惟是今年六月蒙恩賜對, 時以迫於疾作, 口陳之說不獲究盡, 卽嘗面奏, 乞具封事以聞. 至今日久, 未得投進. 恐或以此之故, 再煩收召之嚴. 內省稽違, 不勝恐懼. 謹已繕寫, 準式實封, 遣人齎擎, 詣闕通進. 若使狂妄之言得塵聖覽, 卽熹雖不獲身到闕庭, 亦與面對口陳無異. 必蒙聖慈許其辭免, 以全進退之節. 除已具狀奏聞外, 謹具狀申尙書省. 伏乞更賜敷奏, 寢罷元降指揮. 伏候鈞旨.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재집에게 폐하께서 자신에게 내린 명을 철회할 수 있도록 전후 사정을 아뢰어 달라”고 주장하였다.
제가 지난번에 장계 차자를 올려 간절히 소명을 사양했는데, 지금 은혜로운 칙지를 받고 보니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의 작은 정성은 지난 편지에 썼으니 거듭 진달해서 당신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삼가 주소 한 통을 써서 법도에 의거 봉함을 하고 장계와 함께 올립니다. 별도로 장계를 써서 대충 제 진심을 표현해서 묘당에 올리면서 폐하께 아뢰어 주기를 빌었습니다. 바라건대 살펴보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어 제가 청한 대로 이루어 주셔서 오래도록 폐하의 명을 어겨 신하된 자의 공경함에 어긋나는데 이르지 않도록 해주신다면 저는 큰 다행이겠습니다. 재집의 위엄을 넘보게 되어 죄송스러움이 더합니다.
熹昨具狀箚, 懇辭召命, 玆被恩旨, 未賜允兪. 熹之微誠已具前牘, 不敢重陳, 以煩公聽. 今謹撰到奏疏一通, 準式實封, 具狀繳進. 及別具狀, 略述鄙誠, 恭扣廟堂, 乞賜敷奏. 欲望鈞慈照察, 早垂矜念, 使得遂其所請, 不至久稽宸命, 以乖臣子之恭, 則熹不勝幸甚. 干冒威尊, 伏增震悚.
등문검원에 올리는 장 申登聞檢院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행재소의 등문 검원에게 폐하께 사인하지 못한 봉사의 기회를 이루어 달라”고 장계를 올렸다.
저는 금년 6월 입대했으나 우연히 발이 아팠고, 게다가 입으로 아뢴 내용도 다 말씀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폐하를 만나 아뢰면서 봉사를 써서 아뢰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은을 입고서 감히 주소 한 통을 써서 법도에 의거해서 봉함하고 사람을 보내 봉사를 가지고 대궐에 가서 올리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제 진심을 토로해서 간절하게 은명을 사양했습니다. 삼가 장계를 행재소의 등문 검원에 올리니 바라건대 법에 따라 시행해 주십시오. 삼가 올립니다.
右熹昨於今年六月蒙恩賜對, 偶以足疾發作, 更有口陳事理未得殫盡, 嘗卽面奏, 乞許續具封事以聞. 至今日久, 未獲技進. 玆者又蒙聖恩, 輒敢撰到奏疏一通, 準式實封, 遣人齎擊, 詣闕投進. 幷述愚誠, 懇辭恩命. 謹具狀申行在登聞檢院, 欲望依法施行. 謹狀.
숭정전설서를 사양하는 주장 辭免崇政殿說書奏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폐하께서 은전을 더하여 내린 서태일궁을 주관하고 숭정전설서의 명을 철회하시고 그 전대로 외직을 얻어 연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장계를 올렸다.
저는 지난번 행재소로 오라는 소명을 받고 간절히 사양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해 감히 주장을 써서 다시 제 심정을 아룁니다. 천하고 못난 제가 경솔하게 폐하의 위엄을 범하고서 이처럼 어쩔 줄 모르며 엄한 꾸지람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달 30일에 갑자기 성차를 받았더니 성지를 받들어 저를 서태일궁을 주관하고 숭정전설서를 겸직하게 했으니 빨리 나아가 직책을 수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은 명을 듣고 놀랍고 두려워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 지 조차 몰랐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본래 올해에 들어 여러 차례 외람된 은총과 포장을 입었으니 소명을 받고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근심스러운 것은 지체시킨 날이 오래되어 폐하의 명을 공손히 받들어야 하는 신하의 직분을 어그러뜨리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폐하께 호소하며 제 사정을 진달해서 허락을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폐하의 위엄을 넘보고 봉장을 올리게 되었으나 폐하께서 혹여 천하고 망령된 제 말을 살펴 주신다면 아마도 반드시 물러나려는 소망을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융성한 성은이 내려 하늘같은 도량으로 모두 포용하시고 비록 허락하지는 않으셨지만, 처벌도 관대하게 하시니 감격스러움이야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특별히 제수하신다는 명을 내리셔서 경연에 참석토록 하셨습니다. 생각건대 이 직책은 여러 차례 참된 유자를 임명했고, 실제로 성인의 가르침을 천명해서 제왕의 학문을 열어 주는 직책이니 직책과 지위가 제왕과 친밀하고, 맡은 임무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신이 어떤 사람인데 감히 이런 직에 선발된단 말입니까! 하물며 물러나기를 기원했는데, 도리어 승진을 하게 되니 모매하다는 혐의를 스스로 풀기가 힘듭니다. 저의 사적인 의리에도 온당치 않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 굽어 저의 진심을 살피시고 특별히 애초에 내린 지휘를 그쳐 주시고, 신으로 하여금 외직의 사관 직을 받들며 평소의 절조를 온전히 하도록 해주신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폐하의 위엄을 넘보니 신은 지극한 황공함과 죽을죄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삼가 기록해서 아뢰고 엎드려 칙지를 기다립니다.
右臣昨蒙收召, 懇辭未獲, 輒敢具奏, 再申愚悃. 自惟冗賤, 輕犯天威, 方此踧踖, 以俟嚴譴, 今月三十日, 忽準省箚, 奉聖旨, 差臣主管西太一宮, 兼崇政殿說書, 疾速前來供職. 臣聞命震恐, 無地自容. 伏念臣本以今歲以來屢叨恩獎, 不敢袛赴召命, 又慮稽違日久, 有乖承命之恭, 以故不免籲天陳誠, 冀蒙開允. 至於輒干斧鉞, 冒進封章, 亦幸聖明察其淺妄, 庶幾必遂退藏之願. 不謂聖恩隆厚, 天度幷包, 雖悶兪音, 亦寬刑典, 其爲感激, 已不勝言. 而又特降除書, 俾侍經幄. 竊惟此職屢得眞儒, 實闡聖猷以開帝學, 職親地密, 任遇非輕. 顧臣何人, 敢與玆選? 又况方祈閑退, 反得超陞, 冒昧之嫌, 亦難自解. 在臣私義, 允所未安. 伏望聖慈俯察誠款, 持賜寢罷元降指揮, 令臣仍奉外祠, 以全素守, 不勝幸甚. 干冒宸嚴, 臣無任恐懼隕越之至. 謹錄奏聞, 伏候敕旨.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 申省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 (무신, 1188, 59세)에 주자는 늘 폐하의 명을 철회해 달라는 주장을 폐하께 올리고, 이어서 상서성과 재집에게 차자를 올렸는데 이것은 상서성에 올린 것이다.
제가 일전에 소명을 간절히 사양했지만 윤허를 입지 못해서 문득 주장을 갖추어 아뢰고, 상서성에 보고하여 폐하께 아뢰어 주시길 빌었습니다. 이 달 30일에 갑자기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성지를 받들어 저를 주관서태일궁겸 숭정관설서으로 파견하여 빨리 앞으로 나아가 직을 맡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바야흐로 스스로 물러나기를 빌었지만 도리어 남다른 은혜를 입었으니 명을 듣고서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주장을 갖추어 아뢰고 파면해 주시길 빌었던 것 외에 다시 조정에서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주시길 비니 조속히 지휘를 내리시어 어리석은 분수를 편안하게 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니 삼가 지휘를 기다립니다.
右熹昨以懇辭召命, 未蒙開允, 輒具奏聞, 及申尙書省, 乞賜敷奏. 今月三十日, 忽凖尙書省箚子, 奉聖旨, 差熹主管西太一宮, 兼崇政殿說書, 疾速前來供職者. 熹方祈自屛, 反被殊恩, 聞命震驚, 莫知所措. 已再具狀奏聞, 乞賜寢罷外, 更乞朝廷特賜敷奏, 早降指渾, 以安愚分, 熹不勝幸甚. 謹具狀申尙書省, 伏候鈞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