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44

황성 2025. 8. 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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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묘에 대해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계 祧廟申省狀

해제이 글은 소희 원년(1190, 경술, 61) 1010일에 입대해서 조묘의 일에 대해 아뢴 장계이다.

 

 

위의 내용은 제가 초 10일에 성은을 입어 폐하를 뵙고, 그 앞에서 조묘의 일에 대해 아뢴 장계입니다. 이 장계를 아뢰자 폐하께서는 희조(僖祖)는 마땅히 조묘로 옮기지 않아야 한다. 고종(高宗)께서 즉위할 때도, 수황(壽皇)께서 즉위할 때도, 태상(太上)께서 즉위할 때도 옮기지 않았는데, 지금 어찌 옮길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살피건대 폐하께서는 이미 정해진 의론이 있으셨고, 지금 이미 날이 많이 흘렀는데, 어째서 조정에서는 제가 아뢴 내용을 살피시고 성지를 받아 시행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니, 바라옵건대 검토한 내용이 장차 올라가거든 속히 지휘를 내려 보내 주십시오. 엎드려 처분을 기다립니다.

右熹初十日蒙恩宣引, 面奏祧廟事狀, 蒙聖慈宣諭若曰: “僖祖自不當祧, 高宗卽位時不曾祧, 壽皇卽位時亦不曾祧, 太上卽位時又不曾祧, 今日豈可容易?” 竊見聖明已有定議. 今已多日, 未委因何不蒙朝廷審奏, 取旨施行. 謹具狀申尙書省, 乞賜檢會將上, 早降指揮. 伏候鈞旨.

 

 

다시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계 再申省狀

 

해제이 글은 소희원년(1190, 경술, 61) 10월에 조묘의 일을 재차 아뢴 장계이다.

 

 

위의 내용은 제가 이전에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한 것으로, 희조의 묘실을 조묘로 옮기는 것이 부당함을 의론한 것입니다. 아울러 차자를 갖추어 아뢰고, 상세히 의론하여 시행해 주실 것을 빌었습니다. 폐하를 뵙고서 가르침을 받들었는데, 희조는 조묘에 모시는 것이 합당치 않다. 고종 때도, 수황 때도, 태상 때도 일찍이 조묘로 옮기지 않았는데, 지금 어찌 조묘로 옮길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상주한 차자를 내려 보내 주셨는데, 지금까지 날짜가 오래 지났는데도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종묘의 일을 망령되게 의론한 죄가 있어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조정에서는 형벌을 관장하는 관리[理官]에게 맡겨 법에 의거하여 시행해 주십시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니, 엎드려 처분을 기다립니다.

右熹昨具狀申尙書省, 議不當祧遷僖祖廟室, 及具箚子奏聞, 乞行詳議. 面奉聖訓, 僖祖自不合祧, 高宗時未嘗祧, 壽皇時末嘗祧, 太上時亦未嘗祧, 今豈可祧? 續蒙降出所奏箚子, 今來日久, 未見施行. 熹不勝隍恐, 所有妄議宗廟之罪, 欲望朝廷付之理官, 依法施行. 謹具狀申尙書省, 伏候鈞旨.

 

[소첩자] 제가 법에 의거하여 죄를 기다리겠다고 청한 것은 혹 조정에서 이와 같이 시행하고자 하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이니 처분을 바랍니다. 청컨대 의론하는 여러 관리들과 함께 도당에 나아가 아울러 필찰을 주고 저와 조정에서 논변하게 해 주십시오. 만약 제가 정말로 망언을 한 것이라면 조정의 처분을 달게 받겠습니다.

[小貼子]熹所請依法坐罪, 或恐朝廷未欲如此施行, 卽乞鈞旨, 請與議衆官同赴都堂, 並給筆札, 與熹廷辯. 如熹委是妄言, 甘伏朝典.

 

 

사관에서 헤아려 정부에 올린 차자 史館擬上政府箚子

해제이 글은 소희 원년(1190, 경술, 61) 1011일에 올린 장계이다. 주자는 이 글에서 태자의 일을 의론한 누인량과 장계 등의 공적을 기리고, 아울러 악비도 그러한 공이 있음을 아뢰었으며, 널리 자료를 모아 이러한 공이 있는 사람을 찾아 현창하기를 아뢰고 있다.

 

 

저희들이 듣건대, 고종황제께서 소흥에 머무르셨을 때, 관리 누인량(婁寅亮)이 글을 올려, 폐하의 후사가 없으니 종실의 자제 가운데 선발해서 궁궐에서 폐하를 모시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이 당시에 고종의 나이는 30이 채 안 되었는데도 그 말을 한 번 듣고는 흔쾌히 받아들이시고, 곧바로 누인량을 감찰어사로 삼으셨습니다. 그 후에 재상 조정(趙鼎)장준(張浚) 등이 마침내 대의를 건의했고, 지존수황성제가 이로 말미암아 자선당(資善堂)에 들어가셨으며, 건국공(建國公)에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태자라고 부르지 않았고, 여전히 적자에 필적하는 근심이 있었기 때문에 의론하는 사람들이 걱정했습니다. 또 몇 년 후에 장도의 상소가 있었는데, 그 집안에서 서술한 행장에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범여규(范如圭)󰡔소릉저의(昭陵儲議)󰡕를 편집해서 올리고, 또 고종에게 공도로써 판단하시되 이리저리 결정을 바꾸거나 의심하지 말라고 청하니, 그 말이 더욱 절실했기 때문에, 하루는 고종께서 마침내 재상 진강백(陳康伯)에게 천자를 옹립하라고 명을 내려, 수황을 황자(皇子)로 삼고 건왕(建王)으로 봉하셨으며, 마침내 태자궁에서 천자의 지위에 오르셨습니다. 그 일은 일력에 보이는데, 본말이 자세히 완비되어 있습니다. 저희들이 가만히 생각건대, 요 같은 아버지가 순 같은 자식에게 제위를 선양하는 아름다움은 이전 시대에서도 드물었을 뿐 아니라 고금에도 드문 일입니다. 비록 천명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사람의 계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 두 사람의 충성스럽고 현명한 신하들이 큰 소리로 군주를 깨우친 공로는 또한 기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듣기로는 세상을 떠난 장군 악비(岳飛)도 일찍이 청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세상을 떠난 전중시어사 장계(張戒)가 개인적으로 그 일을 기록해 놓았으며, 다른 신료 또한 일찍이 건의를 한 사람들이 있지만 문자로 상고할 수 없을 뿐입니다. 바라건대 조정에서 의견 개진할 것을 특별히 명하시고, 널리 자료를 찾아 모아, 조금이라도 기리고 현창하여, 덕을 숭상하고 공적에 보답하는 조정의 뜻을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熹等竊聞高宗皇帝駐蹕紹興, 有小官婁寅亮上書, 以皇嗣未生, 乞選宗室子人侍禁中. 是時高宗年未三十, 一聞其言, 欣然開納, 卽以寅亮爲監察御史. 其後宰相趙鼎張浚等遂建大議, 至尊壽皇聖帝由此人資善堂, 封建國公. 然猶未正皇嗣之名, 仍有配嫡之慮, 議者憂之. 又後數年, 乃有張燾之疏, 見於其家所述行狀. 最後因范如圭進其所集昭陵儲議, 且請高宗斷以公道, 毋貳毋疑, 其言尢切, 一日高宗遂詔宰相陳康伯定策, 以壽皇爲皇子, 進封建王, 遂自儲宮正位宸極. 其事見於日曆, 本末詳備. 熹等竊惟堯父舜豫傳受之美, 遠邁前世, 冠絶古今. 雖由天命, 非出人謀, 然而一二忠賢抗言悟主, 其功亦不可以不錄. 又聞故將岳飛亦嘗有請, 故殿中侍御史張戒私記其事, 而它臣僚亦有嘗獻言者, 但無文字可以稽考. 欲望朝廷特賜開陳, 廣行搜訪, 稍加褒顯, 以見聖朝崇德報功之意.

 

누인량장도(張燾)조정의 문자를 초록한 것은 현재 실록원에 있고, 범여규의 아들 범념덕(范念德)은 평강부 장주현의 지사이며, 장계의 집안은 건창군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두 곳에 명을 내려 (자료를) 모으도록 하십시오. 장계는 또 소흥 년간의 명신으로 주의문집잡기 등의 저술이 수십 권 됩니다. 아울러 바라건대 건창군에 지휘를 내려 초록해서 올려 보내게 하고, (그것들을) 실록원에 내려 보내 참조해서 (사서를) 편찬토록 하십시오.

婁寅亮張燾趙鼎文字抄錄見到, 其范如圭有子念德見知平江府長洲縣, 張戒家在建昌軍居住, 欲乞行下兩處取索. 其張戒亦係紹興名臣, 有奏議文集雜記等書凡數十卷, 幷乞指揮建昌軍抄錄申送, 付下實錄院參照修纂.

우리말 주자대전 22

사면 辭免

 

소명을 사면하는 장 辭免召命狀

해제이 글은 소흥 29(기묘, 1159, 30)926일자 상서성 차자를 받고서 올린 장계이다. 소흥 27(1157) 1028세의 주자는 최초의 관직인 동안현 주부를 그만두고 숭안으로 돌아왔다. 다음 해 11월 그는 조정에 사관(祠官)을 청했고, 12월 담주남악묘 감에 임명되어 소흥 32(1162) 5월까지 35개월 동안 이 사관직에 있었고, 다시 같은 해 6월부터 융흥 원년 12월까지 17개월 동안 연임했다. 주자에게 행재소인 임안으로 오라는 명이 내린 것은 1159813일이었다. 주자는 자신의 사관으로서의 임기가 끝날 때를 기다렸다가 임안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하고 있다. 󰡔관보󰡕에 의하면 이 당시 주자를 천거한 사람은 집정(執政) 진준경(陳俊卿)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오류이다. 당시 주자를 천거했던 사람은 참지정사 진강백(陳康伯)이었다.

 

 

저는 926일 상서성 차자에 준해보니, 813일 삼성이 함께 성지를 받들어 행재소로 오라고 소명했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는 타고난 자질이 우둔하고, 학술이 세상 물정에 어둡고 엉성하여, 전혀 잘난 것이라곤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어버이를 위해 벼슬을 구해서 사관 직을 얻었고, 두승이나마 영위하고 있으니 감히 다른 바람을 갖겠습니까? 요즘 삼가 조정에서 많은 선비를 천거 등용하는 기회를 만나서 분에 넘치게도 소명하는 명단에 포함되었으니, 비록 걸맞지 않는 줄은 알지만 어떻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홀로 생각하건대 평소부터 심기의 질병이 있었는데, 요즘 자주 발동해서 응대하고 사려하는 것이 옛날과 같은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성은과 영예를 탐해서 명을 듣고 달려간다면 아마도 일 처리는 뒤엎어지고 스스로 죄를 짓게 되어 위에서 명을 내려 불러들인 뜻에도 부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서탁여광문한원길 등의 예에 의거하여 저로 하여금 악묘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재소로 나아가게 해주신다면 거의 평안함과 보양함을 얻을 것이며, 혹은 어리석은 생각이나마 모두 힘써 다음에 명을 내리는 것에 대비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저로서는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고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시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올립니다.

 

右熹九月二十六日準尙書省箚子, 八月十三日, 三省同奉聖旨, 召赴行在者. 伏念熹性資朽鈍, 學術迂疏, 絶無所長, 可以自見. 爲親干祿, 得備祠官, 斗升是營, 敢有他望? 今者伏遇公朝薦延多士, 濫塵收召之目, 雖知非稱, 豈敢有辭? 獨念素有心氣之疾, 近數發動, 應對思慮, 未復故常. 若使貪冒恩榮, 聞命奔走, 竊恐臨事顚錯, 自取罪戾, 無以上副招徠之意. 欲乞且依徐度呂廣問韓元吉例, 令熹候嶽廟滿日前赴行在, 庶幾得遂恬養, 猶或可以勉悉愚慮, 備使令於異日, 熹不勝幸甚謹具狀申尙書省, 伏望特賜敷奏施行. 謹狀.

소명을 사면하는 장 辭免召命狀

해제이 글은 소흥 1(계미, 1163, 34)에 상서성에 올린 장계이다. 융흥 원년은 효종의 즉위년으로 주자는 이미 1년 전인 1162(소흥 32) 8월에 소명을 받고 임안에 가서 <임오봉사>를 올렸었고, 1163년에는 11월에는 다시 임안에서 <계미년수공주차>를 올렸다. 그리고 12월에는 감담주남악묘의 임기가 만료되어 무학박사를 제수 받았지만 이를 사양했다. 이 장계는 <임오봉사><계미년수공주차> 사이에 쓴 것으로 <임오봉사>를 올린 지 겨우 4-5개월 정도 지나지 않아서 올린 것이다. 그 때문인지 주자는 자신의 자질과 학술이 조정의 소명을 받아들이기에는 불충분함을 토로하고 있다.

 

 

저는 412일 상서성 차자에서 운운한 내용에 준해서 당일로 폐하를 우러러 공손히 명을 받아드렸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의 타고난 자질은 포악하고 어리석고, 학술에 내실이 없고 엉성해서, 내실을 스스로 반복해서 살펴보니 우러러 조정에서 불러들이는 선출에 부응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소하게 드러나지 않는 사정을 고하지 않는다면 외람 되게 성은을 면하길 비는 것이 되니 어리석음을 무릎 쓴 혐의가 논의되는 것을 벗어나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모관 모관께서 특별히 내리도록 상부에 보고하여 원래 내렸던 지휘를 철회하신다면 저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저의 처지를 다소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삼가 살펴주십시오.

 

右熹四月十二日準尙書省箚子云云, 熹已於當日望闕袛受訖. 伏念熹性資樸鄙, 學術空疏, 內自省循, 無以仰副朝廷招徠之選. 若不瀝情控告, 祈免誤恩, 卽恐冒昧之嫌難逃物論. 伏望某官某官特賜敷奏, 追寢元降指揮, 使熹得以少安愚分. 謹具狀申尙書省, 謹狀.

 

관직에 나가라는 재촉에 회답하는 장계 1 回申催促供職狀一

해제이 글은 乾道 5(기축, 1169,40)에 관직을 맡으라는 재촉에 회답하는 장계이다.

 

 

위의 내용은 제가 상서성 차자를 준해보니 상서성에서 추밀원편수관인 시원지의 임기가 만료되어 전직하게 된 것 때문에 별도로 주고받은 것을 살펴보았는데 저로 하여금 조속히 전에 내려왔던 공직을 맡아달라고 해서 날짜를 갖추어 올려 상서성에 보고했습니다. 저는 근래에 습진이 심하여 족질에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관직을 맡아 달라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삼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살펴주십시오.

 

右熹準尙書省箚子, 勘會樞密院編修官施元之因磨勘改官, 別行注授, 令熹疾速前來供職, 仍具巳起發月日申尙書省. 緣熹近感濕氣, 見患足疾, 未任起發前去供職. 謹具狀申尙書省, 伏乞照會. 謹狀.

 

악묘를 비는 차자 乞嶽廟箚子

 

해제이 글은 소흥 28(무인, 1158, 29)에 감담주남악묘의 임기가 차지 않았는데도 추밀원편수관의 칙령이 내리자 명을 거두고 도주악묘로 파견해 주길 비는 차자이다.

 

저는 예전에 감담주남악묘의 임기가 차지 않았는데도 칙령에 의거하여 추밀원편수관으로 충원되었습니다. 근래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제게 빨리 이전 직책을 수행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저는 근래에 습진이 심하여 족질에 고통을 당하고 있어서 길을 나설 수 없으며,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어서 관직으로써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급하여 예전에 사직 관을 다시 갖추고자 하였으나 돌이켜 감히 청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관리의 임기가 임박해 있는데 더욱 지연되어 제가 죄를 뒤집어쓸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상부에서 특별히 사직 관으로 한 번 파견해 주시기 바랍니다. 폐하의 위엄을 넘보게 되어 두려운 마음을 이루 다 감당 할 수 없습니다.

 

熹昨監潭州南嶽廟未滿, 凖敕差充樞密院編修官. 近準尙書省箚子, 令熹疾速前來供職. 竊緣熹近感濕氣, 見苦足疾, 未任就道, 而家貧親老, 急於祿養, 久欲復備祠官, 顧未敢請. 今旣迫以官期, 深恐稽延, 自取罪戾. 欲望鈞慈特與陶鑄嶽廟差遣一次. 干冒威嚴, 不勝恐懼之至.

 

직책을 수행하라는 재촉에 회답하는 장 2 回申催促供職狀二

 

해제이 글은 소흥 28(무인, 1158, 29)에 연이어 이미 내려진 직책을 수행하라는 명령에 대하여 전의 장계에 따라 도주악묘로 파견해 달라고 회답하는 장계이다.

 

위의 내용은 제가 이전의 상서성 차자에 준해보니 저로 하여금 빨리 전에 내려왔던 관직을 맡아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작년 5월 중에 두 차례의 상서성 차자를 준해보니 전에 내려왔던 관직을 맡아달라는 재촉에 대하여 연유를 갖추어 답장해서 사직 관으로 한 번 파견되길 빌었으나 아직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요즘 앞에 내렸던 지휘를 준해 보았는데 저는 실제로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늙어서, 부모를 봉양하느라 관직에 나아갈 수 없으니 감히 지휘에 응하여 전에 내려왔던 관직을 맡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앞의 장계를 조사하여 조속히 도주악묘로 파견해 주십시오. 삼가 조사하여 시행해 주십시오.

 

右熹昨準尙書省箚子, 令熹疾速發來供職者. 照對熹昨於五月內兩次準尙書省箚子, 催促前來供職, 已具因依回申, 乞盛嶽廟一次, 未蒙施行. 今來又準前件指揮, 緣熹委是家貧親老, 迎侍不前, 不敢依應指揮, 前去供職. 欲望檢會前狀, 早賜陶鑄嶽廟差遣. 伏乞照會施行.

 

소명을 사면하는 장 1辯免召命狀一

해제이 글은 건도 8(임진, 1172, 43)에 행재소인 임안으로 오라는 명을 거두고 어머니의 담제를 겨우 마친 몸과 마음을 추스릴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는 장이다.

 

 

제가 정월 17일 건령부에서 보내온 건도 71226일 상서성 차자를 읽어 보았습니다. 차자에서는 저로 하여금 내렸던 지휘를 따라 빨리 임안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애초에 군자 고로 보냈던 상서성 차자 2통을 다시 보내온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통에는 건도 61226일 삼성이 함께 성지를 받들어 저에게 임안으로 오라고 소명한 지휘를 포함하고 있어서 저는 1210일 본가에서 대궐을 바라보며 은혜에 감사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의 재주는 남에게 미치지 못하고, 학문은 진보한 것도 없어서 자주 소명하시고 발탁하는 은혜를 입고서도 폐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었습니다. 요즘 어머니의 상례를 끝마치지 못했는데 다시 외람되게 소명을 받게 되었고, 겨우 담제(禫祭)를 마치게 되었는데 조정에서 또 길을 나서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지극히 어리석지만 우러러 은혜를 입었으니 어찌 감격하고 분발해서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제 자신의 못남은 스스로 깊이 살피고 있는 것이요, 과거에 작은 녹봉이라도 바랐던 것 역시 한낮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해서였을 뿐입니다. 지금은 어머니의 초상을 치르느라 황폐함이 더욱 심해졌으니, 진실로 헛되이 성은을 모독하고, 어버이를 녹으로 봉양할 수 없는 슬픔을 더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환이 파고들고, 심지는 쇠약해져 요즘엔 넓적다리 안쪽에 다시 악종이 생겨서 다행히 나았다고는 하지만, 기력은 더욱 소모되었습니다. 설사 의리상 사양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근력은 직무에 힘쓰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오직 행적이 게으르고 태만해서 마음이 절로 편치 못해 감히 작은 정성이나마 다하여 커다란 도움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참정복야평장상공께서는 제 속내를 살펴 주시고 불쌍하게 여기시어 조정에서 정사를 논하는 사이에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서 조속히 원래 내렸던 지휘를 그치게 해서 거의 미관말직에 있는 제가 어리석은 분수나마 편안함을 얻게 하시고, 지엄한 폐하의 명령을 지체시켜 처벌받는 일을 모면케 해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룁니다. 삼가 올립니다.

 

右熹正月十七日準建寧府遞到乾道七年十二月二十六日尙書省箚子, 令熹遵依已降指揮, 疾速起發赴行在. 續準本府再送到元寄納軍資庫尙書省箚子二道, 內一道備坐乾道六年十二月二十六日三省同奉聖旨, 召熹赴行在指揮, 熹已於二月十日就本家望闕謝恩訖. 伏念熹才不逮人, 學無所就, 累蒙召擢, 訖無補報. 近者喪制未終, 復叨收召之命, 甫及除禫, 朝旨又趣其行. 熹雖至愚, 仰戴恩遇, 豈不感激奮勵, 庶以圖報萬分? 實以凡庸, 自知甚審, 頃希微祿, 徒以爲親. 今則禍罰之餘, 荒蕪益甚, 誠不忍虛冒榮寵, 以增不洎之悲. 加以憂患侵凌, 心志凋弱, 近於髀裏復發癰腫, 雖幸破潰, 耗損愈多. 正使義無可辭, 筋力亦難勉强. 惟是跡涉違慢, 心不自安, 敢微誠, 仰干洪造. 伏望參政僕射平章相公洞鑒悃愊, 曲賜矜憐, 都兪之間, 特賜敷奏, 早與寢罷元降指揮, 庶使微賤小官獲安愚分, 免以稽留威命, 抵冒刑誅, 則熹不勝幸甚謹具狀申尙書省, 謹狀.

 

소명을 사면하는 장 2 辭免召命狀二

해제이 글은 건도 8(임진, 1172, 43)에 임안으로 오라는 명을 거두고 어머니 담제 뒤 끝의 허약한 몸과 마음을 추수 릴 수 있게 해 달라는 두 번째 장계이다.

 

 

임진년 53일 건령부에서 보내온 상서성 차자 한 통을 살펴보았습니다. 차자에서는 413일에 삼성에서 함께 성지를 받들어 임계(林枅)와 주희에게 내렸던 지휘에 의거하여 빨리 임안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일로 폐하를 우러러 감사하고 공손히 명을 받았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예전에 성은을 입어 부름을 받았고, 이어서 조정에서 길을 독촉하는 지휘를 받았습니다만, 스스로 어리석고 비루하며, 애초부터 잘난 점이라곤 없으니, 우러러 조정에서 천거 등용하는 뜻에 걸맞지 않습니다. 다시 생각해보건대 과거에도 어버이를 위하여 망령되이 녹을 구하는데 뜻을 두었으나, 오히려 스스로 무능함을 살필 수 있어서 감히 과분하게 관직에 나갈 것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어머니를 잃고 외로운 몸이 되어 겨우 상을 마쳤는데 갑자기 이 때에 벼슬에 나오라고 하시니 사적인 정으로도 차마 할 수 없거니와, 의리로서도 편안키 어렵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상을 당한 뒤끝이 아직 남아있고, 혈기가 쇠약해지고 질병이 몸을 괴롭혀 애써 나아가기가 힘들어서 간절히 사양하는 주장을 갖추어 폐하께 보고 드려 파면해 주시길 빌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이 장계가 도중에 오고가면서 아직 조정에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서 다시 이전과 같은 폐하의 지휘가 있게 되었으니, 은혜가 두텁고 명이 위엄이 있어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뜻은 앞에서 갖추어 진달했으니 기세는 급하고 사정은 애처로워 반드시 살펴 주셔야 합니다. 다시 바라건대 참정승상과 승상께서 특별히 조사하도록 하여 조속히 개진해서 원래 내렸던 지휘를 철회시켜서 어리석고 천한 제 처지를 편안케 해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右熹五月三日準建寧府遞到尙書省箚子一道, 四月十三日, 三省同奉聖旨, 林枅朱熹依已降指揮, 疾速起發赴行在. 熹已於當日望闕謝恩袛受訖. 伏念熹昨蒙聖恩收召, 續被朝旨趣行, 自知愚陋, 初乏寸長, 無以仰稱公朝薦延之意. 復念往者爲親, 妄意干祿, 然猶自審無能, 不敢過希榮進. 矧今孤露, 僅及免喪, 遽於此時起趨名宦, 情旣不忍, 義亦難安. 加以禍罰餘生, 氣血凋瘁, 疾病攻撓, 勉强不前, 卽巳具狀懇辭, 乞賜敷奏寢罷去訖. 竊慮其狀在路迂回, 未徹朝聽, 是致今來再有前件聖旨指揮, 恩厚命巖, 跼蹐無措. 然匹夫之志, 前已具陳, 勢迫情哀, 必蒙鑒察. 更望參政丞相丞相特與檢會, 早賜開陳, 收回元降指揮, 以安愚賤之分, 則熹不勝幸甚

 

소명을 사면하는 장 3 辭免召命狀三

해제이 글은 건도 8(임진, 1172, 43)에 임안으로 오라는 명을 거두어 달라고 청하는 세 번째 장계이다.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았습니다. 413일 삼성에서 함께 성지를 받들었더니임계와 저에게 내린 지휘에 의거하여 빨리 임안으로 오게 하라 하시고 저에게 차자를 보내서 속히 출발하라고 하셨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미천하고 뛰어남이 없는데 자주 불러주시니 성은의 감사함에 어쩔 줄 모르겠으며 폐하의 어루만져 주심에 크게 놀랐습니다. 실제로 녹으로 봉양할 부모가 없으니 차마 벼슬을 따르지 못하겠으며, 게다가 질병이 더해지니 힘써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2월과 5월 중에 두 차례 주장을 갖추어 폐하께 아뢰어 가는 것을 면해 주시길 진술해서 빌었습니다. 비록 저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고 포부가 낮으며, 문사와 의리가 비천하고 졸렬하여 우러러 조정의 명을 따르기에 부족합니다. 하지만 간과 쓸개를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일에 모두 근거가 있으니 감히 한마디 망언으로 폐하께 부득부득 대들고 윗사람을 속이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참정승상과 승상께서 다시 살피셔서 다소 유념해 주시고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파면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룁니다. 삼가 장계를 올립니다.

 

右熹準尙書省箚子, 檢會四月十三日, 三省同奉聖旨, 林枅朱熹依已降指揮, 疾速起發赴行在, 箚付熹, 令疾速起發者. 伏念熹微賤無堪, 頻煩趣召, 拜恩踧踖, 震懼摩皇. 實以祿弗逮親, 不忍從宦, 加以疾病, 牽勉莫前, 已於二月五月內兩次具狀陳乞敷奏寢罷去訖. 雖人微趣下, 詞義鄙拙, 不足以仰勤朝聽, 然披瀝肝膽, 事皆有據, 不敢一言之妄, 以取要君罔上之誅. 伏望參政丞相丞相更賜檢會, 少留聽覽, 特與敷奏, 寢罷施行, 則熹不勝幸甚謹具狀申尙書省, 謹狀.

 

소명을 사면하는 장 4 辭免召命狀四

해제이 글은 건도 8(임진, 1172, 43)에 쓴 임안으로 오라는 명을 숙모의 상을 마친 이후에 따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계이다.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았습니다. 차자에서는 폐하께 아뢰어 소명했던 지휘를 파면해 주길 빌었던 장계에 근거하여 저에게 공문을 내렸던 지휘에 의거해서 빨리 출발하라고 하셨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부름을 받아 전후 세 개의 장계를 통해서 사리를 지극히 상세하게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폐하께 아뢰어 시행하는 것을 입지 못했으니 지금 감히 별도로 빌어 요청할 것이 없습니다. 우연히 근래에 숙모의 상을 만났는데 별도로 힘쓸 자제가 없어 상장의 일은 당연히 몸소 받들어야 되니, 헤아려 보건대 봄이 되어야 바야흐로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조정에서 불쌍히 여겨 특별히 너그럽게 여유를 주어서 제가 숙모의 장사가 마친 날을 기다리도록 하여 별도의 지휘를 내리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삼가 살펴주십시오. 삼가 주장을 갖추어 보고합니다.

 

右熹準尙書省箚子, 據熹狀, 乞敷奏寢罷趣召指揮, 箚付熹遵依已降指揮, 疾速起發前來者. 伏念熹自蒙收召, 前後三狀, 陳迷事理已極詳明. 旣未蒙敷奏施行, 今亦未敢別有祈請. 偶以近遭叔母之喪, 別無得力子弟, 喪葬之役, 須當躬親營奉, 度至來春方得了辨. 欲望朝廷矜憐, 特賜寬假, 許熹候叔母葬事了日, 別聽指揮, 不勝幸甚謹具狀申尙書省, 伏乞照會. 謹狀.

 

소명을 사면하는 장 5 辭免召命狀五

해제이 글은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임안으로 오라는 명에 대하여 건강상의 여러 가지 이유와 숙모의 상을 마쳐야 한다는 이유로 철회해 줄 것을 바라는 장계이다.

 

 

326일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았습니다. 차자에서는 저로 하여금 내렸던 지휘에 의거하여 빨리 임안으로 오라하고, 출발할 날짜를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이전에 성은을 입어 외람되게 소명을 받았는데, 스스로 용렬하고 어리석음을 살펴보니 보잘 것이 없으며, 아울러 사적인 뜻에 편안하지 않음이 있고, 또 다시 질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바쁜 업무 수행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일찍이 절차대로 간절한 바람을 주장으로 갖추어 아뢰어 파면해 주시길 빌었습니다. 뜻하지 않게도 어리석은 정성이 폐하께 도달하지 못하여 번거롭게 조정에서 두 번 세 번 재촉하게 하여 더욱 엄격해집니다. 제가 스스로 미천함을 살펴보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감히 다시 진술하지 못하고 단지 숙모의 장사를 마치는 날을 기다려 별도로 지휘를 받들길 빌었습니다. 지금 위로 조정의 뜻에 준해 보니 생각하건대 저는 집이 가난하고 힘이 없어 장사지낼 땅을 선택하는 것이 반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 절차를 두지 못했습니다. 만약 갑자기 이것을 버리고 관직에 나간다면 더욱 낭패를 볼까 두렵습니다. 게다가 많은 어려움으로 일찍 노쇠해지고 옛날 질병이 다시 생겼으며, 근래에는 오랜 비로 인하여 습진과 한기가 다리를 아프게 하니 걷는 것이 어렵습니다. 비록 신을 기다리지 않고 빨리 달려가고자 하지만 형세 상 직책에 힘쓰기는 힘들 것입니다. 가만히 조정의 명을 오래도록 헤아려보니 죄를 진 것이 더욱 심하며, 밤낮으로 걱정하고 두려워 편안히 거처할 겨를이 없습니다. 삼가 다시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바라건대 참정승상께서 특별히 상부에 보고하여 원래 내렸던 지휘를 철회시키신다면 저를 편안하게 할 것이며, 사적인 일을 편리하게 해주신다면 실재로 큰 다행이겠습니다. 혹시라도 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조정이 내린 명을 가볍게 고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별도의 조치를 내려 저에게 한 차례 감악묘에 파견하여 집에서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만일 다음에 조금이라도 건강이 회복되어 혹 사령의 말단 직책이라도 맡을 수 있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右熹準三月二十六日尙書省箚子, 令熹遵依已降指揮, 疾速起發赴行在, 仍具已起發月日申尙書省者. 伏念熹昨蒙聖思猥加收召, 自省庸愚, 無所可用, 兼以私義有所不安, 且復疾病支離, 不堪奔走, 已嘗節次具狀瀝懇, 乞賜敷奏罷免去訖. 不謂愚誠未能上達, 致煩朝旨再三催促, 愈益嚴峻. 熹自揣微賤, 不勝恐懼, 遂不敢再有陳迷. 只乞候叔母葬事畢日, 別聽指揮. 今來又準上項朝旨, 再念熹貧家獨力, 卜地營葬已及半年, 未有次第. 若遽舍之而出, 竊恐愈見狠狽. 重以多難早衰, 舊疾間作, 近因久雨, 感濕傷冷, 復苦脚弱, 步履艱難, 雖不俟屨而疾趨, 其勢亦有不可得而勉彊者. 竊恐久稽朝命, 負罪益深, 夙夜憂危, 不遑啓處. 謹復具狀申尙書省, 欲望參政丞相特賜敷奏, 收回元降指揮, 以安愚分, 且便私計, 實爲厚幸. 或恐不欲以一介犬馬之私輕改朝廷已行之命, 卽乞別賜陶鑄, 差熹監嶽廟一次, 使得杜門善病. 萬一異時稍復彊健, 尙或可備使令之末. 熹不勝幸甚

 

바뀐 품계와 궁관을 사면하는 장 1辭免改官宮觀狀一

해제이 글은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으로, 태주 숭도관 주관을 명한 것을 철회하고 도주악묘로 계속 머물 수 있게 해 달라고 비는 첫 번째 장계이다.

 

 

위의 내용은 제가 건령부에서 보내왔던 529일 상서성 차자 한 통을 준해보니 528일에 성지를 받들어 제가 안빈낙도하고, 청렴하고 관직에 나아가려 하지 않아 칭찬할 만하다고 하여 특별히 선교랑으로 옮겨 태주숭도관을 주관하면서 임무를 편할 대로 처리하라 하셨습니다. 저는 명령을 받고서 크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저는 지극히 어리석고 불초한데도 불구하고 이전에 성은을 입어 소명을 받은 것이 두 세 번이나 되었지만, 잇달아 우환을 격은 나머지 질병으로 쇠약해져서 조정에 한 번도 나가지 못했으니 명을 따르지 않고 태만한 죄에 대한 처벌을 가만히 엎드려 기다리는데, 뜻하지 않게도 폐하의 은혜가 지극히 크고 두터워서 죄를 용서하시고 묻지 않았으며, 폐하의 은덕이 과분하여 포상과 칭찬에 잘못이 있고 저에게 내려준 벼슬의 영화로움이 폐하의 은총으로 넘쳤습니다. 특별히 선교랑 품계로 옮겨서 숭도관을 주관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모두 조정이 평소에 어진 이를 나아가게 하고, 공에 상을 주는 것과 늙은이를 우대하고 열심히 하는 이를 보답하는 방법입니다. 어리석고 미천한 저에게 해가 다하도록 편안히 있게 해주시더니 하루아침에 까닭 없이 나아가게 하니 제가 비록 지극히 어리석지만 어찌 성은에 감격하고 죽기로 보답할 줄 모르겠으며, 감히 다시 사양하고 받고, 취하고 버리는 것을 논의하겠습니까? 실제로 병이 심하여 무능하고 물러나기를 구하나 나아가게 되어 저 스스로 헤아려보니 편안하지 않음이 있으며, 그리고 상도 공에 마땅함이 없고 이름도 실에 맞지 않으니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이것으로써 혹 위로 조정의 중요한 정치에 누를 끼친다면 저의 죄 장차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조정에서 부르는데 머물러 있는 까닭이니 백 번 천 번 생각해도 끝내 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앞에 있는 상서성 차자를 감히 공손히 받을 수 없어서 삼가 건령부 군자 고에 맡겨두었습니다. 감히 다시 간곡하게 피력하고 상세하게 진술하여 우러러 커다란 조치를 바라니 참정승상께서 특별히 상부에 보고해 주시고 원래의 지휘를 철회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혹여 옛날 품계대로 처리하여 별도로 악묘에 파견하도록 빌었던 것을 허락하신다면 저를 편안하게 하여 실제로 다행이겠습니다.

 

右熹準建寧府送到五月二十九日尙書省箚子一道, 五月二十八日, 奉聖旨, 朱熹安貧守道, 廉退可嘉, 特與改合入官, 主管台州崇道觀, 任便居住者. 熹聞命震驚, 罔知所措. 伏念熹至愚不肖, 昨蒙聖恩收召, 至于再三, 屬以憂患之餘, 疾病衰廢, 不能扶曳一造闕庭, 逋慢之誅, 方竊俯伏以俟, 不謂天地父母之恩至隆極厚, 旣赦其罪, 不卽誅滅, 而又過於臨照, 誤有褒嘉, 一字之榮, 踰於華袞. 至於特改京官, 卽畀祠祿, 又皆朝廷平日所以進賢賞功優老報勤之典. 乃使愚賤小臣終年安坐, 一日無故而驟得之, 熹雖至愚, 豈不知感激聖恩, 誓死圖報? 何敢復議辭受取舍於其間? 實以多病無能, 求退得進, 揆之私義, 旣有未安, 而賞不當功, 名不孚實, 竊慮以此或致上累聖朝綜核之政, 則熹之罪又將有不可勝誅者. 此熹之所以柾營前却, 千慮百思而終不得以不辭者也. 所有前件省箚不敢袛受, 謹已寄納建寧府軍資庫訖. 敢復瀝懇披陳, 仰干洪造, 欲望參政丞相特賜敷奏, 收還元降指揮. 或許仍理舊資, 卽乞別與嶽廟差遣, 以安愚分, 實爲幸甚謹具狀申尙書省, 謹狀.

 

궁관으로 관을 옮긴 것을 사면하는 장 2 辭免改官宮觀狀二

해제이 글은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것으로, 태주 숭도관 주관을 명한 것을 철회하고 도주악묘로 계속 머물 수 있게 해 달라고 비는 두 번째 장계이다.

 

 

제가 지난번에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았습니다. 차자에서는 성지를 받들어 특별히 제 품계를 고쳐 올려주시고 태주 숭도관 주관에 임명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사로운 뜻으로 편안하지 않아 감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였고, 아울러 살펴보았던 상서성 차자도 건령부에 올려 군자 고에 넣어 두도록 했습니다. 지금 또 고명 한 축을 살펴보니 우러러 특별한 은혜를 입게 되어 삼가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저의 간절한 바람은 앞 장계에 다 갖추었으니 감히 다시 진술할 수 없습니다. 위의 고명을 함께 건령부에 보내서 보관하게 한 이외에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룁니다. 바라건대 앞 장계를 검토해서 폐하께 아뢰어 시행해주십시오. 삼가 장계를 올립니다.

 

右熹昨準尙書省削子, 奉聖旨, 特與改合入官, 主管台州崇道觀. 熹以私義未安, 未敢袛受, 已具狀申尙書省, 及將所準省箚申建寧府寄納軍資庫訖. 今來又準告命一軸, 仰戴異恩, 俯伏震懼. 然熹愚懇已具前狀, 不敢再有陳述. 除已將上件告命幷送建寧府寄納訖, 謹具狀申尙書省, 乞賜檢會前狀, 敷奏施行. 謹狀.

 

품계를 바꾸고 궁관으로 옮긴 것을 사면하는 장 3 辭免改官宮觀狀三

해제이 글은 건도 9(계사, 1173, 44)에 쓴 장계로. 계속해서 태주 숭도관 주관을 명하는 조정을 명을 거두어 달라는 세 번째 장계이다.

 

 

제가 1124일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았습니다. 품계를 올리고 태주 숭도관 주관에 임명한 은명을 사양하고, 옛날 품계를 그대로 두고 따로 악묘에 파견해 달라고 청한 저의 장계에 근거하고, 건도 21218일 칙절문을 검토해 보니 폐하께서는 신료들이 은명을 사면하는 경우에는 각각 정해진 제도가 있는데 근래 사면이 마땅치 않은 경우에도 또한 장계를 갖추어 개진하니 실제로 직무에 방해되므로 이부로 하여금 엄격히 시행하는 명을 내리게 하고, 저에게는 공문을 내렸던 지휘에 의거 시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이전에 근심걱정으로 몸이 나빠지고 질병이 점점 심해져서 위엄 있는 부름을 삼가 쫓을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사면장을 갖추었습니다. 이내 폐하께서 관대하게 용서하고 죄를 묻지 않고 그릇되게 특별한 포상을 더하여 은혜가 예상치 않음을 입었고, 일이 보통의 경우를 넘어섰으니 특별한 폐하의 은총이 사방으로 퍼집니다. 하물며 제가 몸소 커다란 사사로운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쇠약하고 게으르고 본분을 덮어버려 지행을 닦을 수 없어 포상할 만한 덕이 없고, 녹을 줄만한 공이 없으니 우러러 폐하께서 특별히 내려 주시는 대우에 걸맞지 않고, 국가가 유능한 인재를 권장하려는 뜻에 부끄러움이 있기 때문에 몽매함을 무릅쓰고 다시 간절히 사면을 청했던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 저의 진실이 감동시키지 못해서 이에 앞의 지휘를 조사해서 시행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째서 미혹된 방책을 견고하게 잡고서 가볍게 법도를 범하겠습니까? 그러나 가만히 원래 내렸던 지휘를 상고해 보건대 단지 직책을 옮기는 것을 사면하여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을 그치게 하려는 것이니 마땅히 금지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은혜롭게 제수 받은 관직은 애초에 실질적인 일이 없었으니 앞의 지휘의 뜻이 일의 체와 더불어 다르니 감히 다시 정성을 다하여 커다란 조치가 내리길 바랍니다. 바라건대 저의 정성이 폐하께 이르면 거의 미천한 제가 다행히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태만한 죄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며, 저의 직무는 특히 직분과 관 열의 밖에서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허황된 것을 막고, 탐하여 다투는 것을 억제하는 것은 폐하께서 부지런히 힘쓰고 실재에 부합하는 정치에 반드시 보탬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저의 간청은 단지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우러러 바라는 마음의 절실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삼가 바라건대 참정승상께서 정밀하고 진실 됨을 조사하여 폐하께 조속히 개진하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니 살펴주십시오

 

右熹準十一月二十四日尙書省箚子, 據熹狀, 辭免改合人官, 主管台州崇道觀恩命, 乞許仍理舊資, 別與嶽廟差遣事, 檢會到乾道二年十二月十人日 敕節文, 臣僚辭免恩命, 各有定制, 比來不合辭免, 亦具申陳, 委是妨廢職事, 令吏部申嚴行下, 箚熹依已降指揮施行者. 伏念熹昨以憂哀摧毁, 疾病侵凌, 不獲恭趨嚴召, 所以累具辭免. 乃蒙聖慈寬赦不誅, 誤加褒異, 恩生望外, 事踰例表, 非常之寵, 風動四方. 况熹身被隆私, 豈不知感? 實以衰惰廢棄, 志行不修, 無德可褒, 無功可錄, 無以仰稱聖主特達之知, 有愧國家勸勵賢能之意, 以故冒昧復有懇辭. 不意愚誠不能感動, 乃蒙檢會前件指揮施行. 在熹豈敢固執迷方, 輕冒憲綱? 然竊詳考元降指揮, 止爲辭免推遷, 妨廢職事, 合行禁約. 若熹所被恩除, 初無職業, 卽與前件立法之意事體不同, 敢復披誠, 再干洪造. 所翼愚悃得徹聖聰, 庶幾微賤小臣幸終免於逋慢之誅, 而區區匹夫之守獨得伸於分列之外. 又况屛絶浮虛, 抑止貪競, 其於聖朝厲精責實之政, 亦未必全無所補. 熹之所請, 亦非止以自爲而已. 下情無任膽望祈扣之切, 伏望參政丞相洞鑒精悃, 早賜開陳, 則熹不勝幸甚謹具申尙書省, 謹狀.

 

품계를 바꾸고 궁관으로 옮긴 것을 사면하는 장 4 辭免改官宮觀狀四

해제이 글은 순희 1(갑오, 1174, 45)에 해를 바꿔가며 계속 내려오는 태주 숭도관 주관을 맡으라는 명령을 철회하고 도주악묘의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마지막 장계이다.

 

 

저는 건령부에 보내온 317일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았습니다. 건령부에서 제가 장계로 보고한 것에 의거하여 이전에 특별히 선교랑으로 품계를 옮긴 것과 태주 숭도관을 주관하라는 은명의 일을 폐하께 아뢰어 재고해 달라고 청한 것에 근거하고, 아울러 건도 9년 윤달 정월 2일 관리들이 합당치 않게 은명을 사면하는 것을 불허한다는 지휘를 검토해서, 316일 삼성이 함께 성지를 받들어 제게 차자를 보내 살펴보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명령을 받고서 크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저는 이전에 성은을 입어 잘못 발탁됨이 있으니 감사하는 간절한 마음은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산간에 숨어 살면서 명성이 알려진 선비도 아니고, 능력과 자질이 다른 사람에 미치지도 못하며, 가난과 질병으로 물러나는 것이 스스로의 정해진 분수라고 여겨, 진실로 조정에서 포상하고 권면하시는 뜻에 조금도 걸맞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자주 금령을 접할 때마다 정성을 다했습니다. 뜻하지 않게도 폐하께서 사면을 허락하지 않으시니 두려운 마음이 더욱 편안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몽매함을 무릎 쓰고 다시 개진하게 된다면 광망하고 어리석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곡진하게 폐하께 아뢰어 특별히 관대하게 용서해 주시고 분에 넘친 은명을 철회시켜 주십시오. 혹 옛날 품계대로 두시고, 따로 악묘에 파견해 주신다면 저는 이익에 미혹되어 구차하게 벼슬이나 탐한다는 꾸지람을 벗을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도 경솔하게 관리를 쓴다는 실책을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니 저로써도 천만 다행입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룁니다. 삼가 주장을 올립니다.

 

右熹準建寧府送到三月十七日尙書省箚子, 據建寧府據熹狀申, 乞敷奏寢罷昨來特改宣敎郞主管台州崇道觀恩命事, 幷檢會乾道九年閏正月二日不許臣僚辭免恩命指渾, 三月十六日, 三省同奉聖旨, 箚下朱熹照會者. 熹聞命震驚, 罔知所措. 竊念熹昨蒙聖恩誤有褒擢, 感戴激切, 不知所言. 徒以自知本非巖穴知名之士, 行能材術又不逮人, 貧病退藏, 自其常分, 實無毫髮可以仰稱聖朝褒勸之意, 所以屢觸科禁, 冒罄悃誠. 不謂聖慈尙閟兪音, 恐懼顚越, 愈不自安. 不免冒眛再有陳迷, 狂妄昏愚, 罪在不赦. 伏望鈞慈委曲敷奏, 特加寬宥, 追寢羨恩. 或令仍守舊資, 別與嶽廟差遣, 則不惟小臣獲免昧利苟得之譏, 在聖朝亦無輕用名器之失, 熹不勝幸甚謹具狀申尙書省, 謹狀.

 

건령부에 보고하는 장 1 申建寧府狀一

해제이 글은 순희 1(갑오, 1174, 45)경관으로 옮기라는 명에 대하여 반평생 동안의 삶의 모습을 진술하고 철회되기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도주악묘의 소임을 계속해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천 번째 장계이다.

 

 

위의 내용은 제가 삼가 건령부에서 숭안현승 왕문림에게 전담시켜 원래 저에게 맡겼던 고명일도와 상서성일도 인지일축을 보내온 것을 입었는데 제가 거처하는 곳에 이르러 저로 하여금 공손히 받도록 했습니다. 살펴보건대 제가 근래에 상서성 차자 한 통을 준해보니 상건의 은명을 사면해 달라는 저의 장계에 의거해서 근래에 사면을 허락하지 않는 지휘를 내렸는데 저에게 맡겨 살피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가만히 살펴보건대 위의 지휘에 대한 본의는 대개 안 밖으로 직무와 관리를 망령되게 사면하여 직무에 방해가 되니 제가 지금 바라는 일의 실체와 더불어 같지 않습니다. 근거한 상서성 차자에 대해서는 주장을 갖추어 건령부에 보고하고 군자 고에 맡겼으며, 상서성에 보고하여 관리로 나아가는 것을 폐하께 아뢰어 재고해 주시길 빌었습니다. 근래에 건령부에서 고명문자를 보내온 것이 있는데 여실히 공손히 받기가 어렵습니다. 거듭 생각하건대 저는 일개의 미천한 사람이며, 본래 조금도 잘하는 것이라곤 없으니 성은을 만나더라도 외람되게 장려하여 선발해 줌에 누를 끼치기 때문에 매양 관직에 나가지 않는 것은 대개 각각 까닭이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상서성에 보고했던 장계 가운데 감히 상세하게 진술하지 못해서 어리석은 정성이 스스로 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다시 한두 가지로 진술하니 바라건대 제가 진술한 내용을 갖추어 조정에 보고해 주신다면 거의 작은 정성이 혹 긍휼히 살펴 주심을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본래 제생들과 함께 과거에 응시해서 녹을 구하기 위해 소흥 17년에 문해를 청해서 예부에서 시험을 보아 진사시에 합격자로 호명되어서 외람되게 말단의 자격에 들어갔습니다. 뒤에 전시에 합격해서 천주 동안현 주부로 임명되었습니다. 임지에 도착한 4년에 기한이 다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뜻하지 않게도 부모님께서 늙으셨고 집이 가난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없으니 마침내 악묘에 파견해 주시길 빌었습니다. 다시 임명되어 임기가 만료되지 않았는데 그릇되게 불러서 무학박사에 제수하셨습니다. 녹으로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급하여 다시 악묘에 한 번 파견해 주시길 빌었습니다. 임기가 만료되지 않는 사이에 칙령에 준하여 추밀원 편수관으로 차출되었으나 갑자기 부모의 상을 당하여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잇달아 소명을 입었지만 근심이 끝나지 않아 배명할 수 없었습니다. 근래에 상을 겨우 면했는데 다시 점검하여 독촉한다면 우환을 만난 나머지 심지가 꺾어지고 혈기가 손상되고, 질병이 생겨 다시 감히 벼슬길을 쫓을 수 없습니다. 고생스런 반평생에 처음과 끝이 이와 같으니 우둔한 제가 감히 스스로 편안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지금 그릇되게 포상을 입어 특별히 경관으로 옮겨서 사록을 주시니 폐하의 총애는 자주 넉넉함을 넘고 안으로 용렬하고 허함을 살펴보니 실제로 재능이 없이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니 아마도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벼슬한 이래 27년에 일 없이 한가하게 보낸 날이 열에 7, 8은 됩니다. 뜻과 절개로 말한다면 무리를 쫓아 과거에 응해서 관직을 추구하면서 전후로 한직만을 구한 것은 모두 녹에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학행으로 말하면 몸소 행함에 힘이 없고 허물을 줄일 수 없으며, 우러르고 굽어보아도 부끄러우니 안으로 반성할 것이 많습니다. 이것은 모두 세상보다 뛰어난 마음과 속세를 끊는 행실이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진실로 부귀에 교만하여 벼슬과 녹을 가볍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안빈낙도의 명목을 훔치고, 늙은이를 봉양하고 어진 이를 우대하는 예를 모독하게 되니 저의 어리석고 몽매함으로도 오히려 걸맞지 않음을 스스로 알 수 있는데 하물며 공론에 두면 사람들이 이것을 무엇이라고 이르겠습니까? 만약 다시 폐하의 은혜를 탐하고 사모하며 물러나지 못하고 강건한 얼굴로 수치심을 참으며 부끄러운 얼굴로 그것을 받는다면 이것은 반드시 사방에서 웃음거리가 되어 후세에 기롱을 끼칠 것이니 저에게 있어서 비록 도가 부족하여 실제로 폐하를 이지러지고 욕되게 할까 두려우니 제가 죽음을 무릎 쓰고 말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고명과 차자와 인지에 있는 것은 제가 감히 공손히 받지 못하고 삼가 즉시 면전에서 숭안현승 왕문림에게 되돌려 주고 공문을 갖추어 답장을 하니 청하건대 건령부에 보내어 예전대로 군자 고에 보내어 맡겼던 것 외에 지금 삼가 저의 간절함을 진술하여 갖춥니다. 바라건대 상부에서 유념하여 특별히 갖추어서 조정에 보고해 주시길 빌며, 폐하께 아뢰어 제가 원래 맡겨두었던 고명과 차자와 인지를 회수한다면 저로 하여금 조정의 명에 대하여 오래도록 어김에 이르지 않아 죄를 짓는 것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혹 부모님 상을 마치기 전에 처음의 품계와 옛날의 직급대로 돌려주고 한 번 악묘로 옮겨 파견해 주어 저에게 편안함을 더해 주신다면 여생을 다하여 더욱 두텁고 다행일 것입니다. 이렇게 해주신다면 저의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지극함을 이루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건령부 관아에 보고하니 삼가 살펴서 조정에 갖추어 보고하고 시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삼가 살펴주십시오.

 

右熹伏蒙使府專委崇安縣丞王文林賫送到熹元寄納告命一道, 尙書省箚子一道, 印紙一軸, 到熹所居, 令熹柢受者. 照對熹近準尙書省箚子一道, 據熹狀辭免上件恩命, 檢會近降不訐辭免指揮, 付熹照會. 熹竊詳上項指揮本意蓋慮內外戱任臣僚妄爲辭免, 妨廢職事, 卽與熹今來所乞事體不同. 已將所準省箚具狀申使府寄納軍資庫, 及申尙書省, 乞賜敷奏寢罷去訖. 所有今來使府送到告命文字, 委貧難以袛受. 重念熹一介微賤, 本無寸長, 際遇聖明, 累叨獎拔, 所以每形遜避, 蓋亦各有端由. 昨來申省狀中, 不敢縷細陳述, 是致愚悃夫能自通. 今敢述其一二, 乞賜備申, 庶幾微誠或蒙矜察. 竊綠熹本以諸生應擧干祿, 於紹興十七年請到文解, 得試禮部, 叨預奏名, 濫綴末第. 後來參部銓試, 注授泉州同安縣主簿. 到任四年, 省罷歸鄕. 偶以親老食貧, 不能待次, 遂乞嶽廟差遣. 再任未滿, 誤蒙召對, 除武學博士. 又以急於祿養, 復乞嶽廟一次. 又未滿間, 準勑差充樞密院編修官, 尋以丁憂, 不及供職. 績蒙收召, 又以憂制未終, 不獲拜命. 比及免喪, 再蒙檢擧催促, 則憂患之餘, 心志摧謝, 血氣耗傷, 疾病交攻, 不復堪從仕矣. 艱苦半生, 首末如此, 迂愚之分, 敢不自安? 今乃叢蒙褒嘉 特改京秩, 舁以祠祿, 寵數過優, 內省庸虛, 實爲非據. 蓋語其勞最, 則人仕以來二十七年, 閑居之日十居七八. 語其志節, 則隨羣逐隊, 應擧覓官, 前後求閑, 皆緣急祿. 語其學行, 則躬行不力, 未能寡過, 俯仰愧怍, 內訟方深. 此皆非有高世之心絶俗之行, 豈眞能驕富貴而經爵祿者? 而使之竊安貧守道之名, 冒蕃老優賢之禮, 以熹愚昧, 尙有以自知不稱, 况公論有在, 人謂斯何? 若復貪戀恩榮, 不知引避, 彊顔忍耻, 靦面受之, 此必傳笑四方, 貽譏後世. 在熹雖不足道, 實懼玷辱聖朝, 此區區所以冒犯鈇鉞而不得不盡其辭者也. 所有告箚印紙, 熹旣不敢袛受, 謹巳卽時當面納還崇安縣丞王文林. 仍具公文回報, 請爲申送使府, 依舊送庫寄納外, 今謹具述愚懇. 欲乞鈞慈矜念, 特與備申朝廷, 乞賜敷奏, 收回元降告箚印紙, 庶使小臣不致久違朝命, 免獲罪戾. 或蒙還以丁憂已前初品舊階, 改羞嶽廟一次, 俾安愚分, 以盡餘年, 尢爲厚幸. 熹不勝祈懇激切之至. 謹具狀申建寧府使衙, 伏乞照曾, 備申施行. 謹狀.

 

건령부에 보고하는 장 2 申建寧府狀二

해제이 글은 순희 1(갑오, 1174, 45)거듭해서 경관으로 나오라는 명령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하는 장계이다.

 

 

위의 내용은 제가 건령부 첩지를 살펴보니 건양현에 파견한 주부가 보내왔던 상서성 차자 일도와 아울러 제가 원래 맡겨두었던 고명 일도, 상서성 차자 이도, 인지일축을 저로 하여금 공손히 받도록 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제가 일전에 사면한 것은 실제로 개인적인 의리로 봐도 편안치 못해서 감히 조정의 포상과 총애에 대한 은혜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저의 어리석은 정성을 다 기우려 우러러 조정에 요구하였으며 부서에서 갖추어 보고를 올리도록 했습니다. 지금 비록 위에서 내려온 지휘가 있는데도 계속해서 제가 진달한 것은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해서이며 의리상으로 구차하게 사면을 청한 것을 그만두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다시 진술하는데 이르렀습니다. 지금 상서성에 보고해야할 장계가 하나 있으니 바라건대 사부에서 파발을 올려 상서성으로 보내주십시오. 고명 일도와 상서성 삼도와 인지일축을 건양의 주부가 받아서 되돌려 보내려 하지 않아 지금 특별히 가솔을 파견하여 건령부에 보내어 가게 하니 예전에 군자 고에 맡겼던 것에 의거하시길 바랍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건령부 관아에 보고하니 삼가 살펴주십시오.

 

右熹準使府牒, 差建陽縣王簿送到尙書省箚子一道, 幷熹元寄納告命一道, 省箚二道, 印紙一軸, 令熹袛受者. 竊緣熹昨來辭免, 實以私義未安, 不敢冒受朝廷褒寵之恩, 所以控竭愚誠, 仰干朝聽, 亦蒙使府備申去訖. 今來雖有上件回降指揮. 綠熹所陳未奉兪允, 義難苟止, 須至再有陳述. 今有狀一封申尙書省, 欲乞使府發遞前去. 所有告命一道省箚三道印紙一軸, 其建陽主簿不肯交領前回, 今專遣家人賫詣使府, 乞依舊寄納軍資庫. 謹具狀申建寧府使衙, 謹狀.

 

궁관으로 옮긴 것을 감사하는 주장 謝改宮觀奏狀

해제이 글은 순희 1(갑오, 1174, 45)여러 번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명에 대하여 우선 감사하였다 그러나 걸맞지 않은 명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저는 지난번에 상서성 차자에 근거해서 성지를 받들었습니다. 제가 안빈낙도하며, 청렴하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아 칭찬할 만하다고 하여 특별히 선교랑으로 옮기고 태주 숭도관을 주관하도록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내려온 고명일도를 살펴보니 저에게 앞의 관직을 주셨습니다. 저는 명령을 받고서 크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전후 세 차례의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해서 폐하께 아뢰어 재고를 허락하도록 빌었습니다. 거듭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근래에 내렸던 여러 관직에 대한 사면을 허락하지 않은 지휘를 조사하고 군자 고에서 성지를 받들어 차자를 저에게 보내어 살피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삼가 폐하의 뜻을 체득하여 감히 굳건히 사양하지 못하고 갑오 623에 폐하를 우러러 은혜에 감사하며 공손하게 받았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일개의 미천한 사람이며, 다른 사람과 같은 재능이라고는 없는데도 일전에 성은을 입어 부름을 받았지만 실제로 우환으로 침릉해서 혈기가 쇠약해져 수레를 끌어 저를 부축키 어려울 정도로 질병이 심하여 길을 나서기가 두려우니 신하된 자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겠습니다. 바야흐로 가만히 엎드려 처벌을 기다리는데 이에 폐하께서 잘못되게 포상과 은총을 주심을 입어서 관을 옮기고 녹봉을 품부 받으니 전혀 근래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황공하게 사양하고 물러나 법을 함부로 저촉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는데도 폐하께서 내린 명이 간곡하고 절실하여 저에게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포상하고 권려하는 뜻과 관대하게 용서하는 은혜는 모두 어리석은 제가 직무를 담당하여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돌이켜 보건대 감히 다시 사면하여 물러나지 않는다면 폐하의 지위를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명을 공손히 하고 은혜에 감동하며 몸과 마음으로 서로 맹세하는 것은 오직 마땅히 몸소 훈계한 말씀을 간직하는 것이니 더욱 견고하게 잡고서 폐하의 지극히 크고 두터운 은혜를 어기지 않기를 구하였습니다. 굳건히 잡는 것을 버리고서 말한다면 비록 물에 빠져 죽고 머리가 깨지며 아홉 번 죽어 사양치 않더라도 족히 폐하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하늘을 우러르고 성은을 우러러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의 지극함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삼가 주장을 갖추어 아뢰니 살펴주십시오.

 

右臣熹昨準尙書省箚子, 奉聖旨, 以臣安貧守道, 廉退可嘉, 特改左宣敎郞主管台州崇道觀. 續凖降到告命一道, 授臣前件官. 臣聞命震驚, 罔知所措, 前後三次具狀申尙書省, 乞與敷奏寢罷. 尋準尙書省箚子, 檢會近降不許庶官辭免指揮, 奉聖旨箚與臣照會者. 仰體德意, 不敢固辭, 已於六月二十三日望闕謝恩袛受訖. 伏念臣一介微賤, 無所能似, 昨蒙聖恩收召, 實以憂患侵凌, 血氣凋瘁, 不獲輿曳殘疾, 顚越道塗, 以盡臣子之恭. 方竊屛伏, 以俟誅夷, 乃蒙聖慈誤形褒寵, 改官賦祿, 絶無近比. 及其皇恐辭避, 冒觸科禁, 則又申命丁寧, 不以卽罪. 恭惟褒勸之意, 寬赦之恩, 皆非臣愚所能稱塞. 顧不敢再有辭遜, 以瀆天威. 袛命感恩, 心口相誓, 惟當躬佩訓詞, 益堅持守, 以求無負天地父母至隆極厚之恩. 舍此而言, 則雖湛身碎首, 九隕而不辭, 亦不足以論報矣. 臣無任膽天望聖受恩感激之至. 謹具狀奏聞, 謹奏.

 

상서성에 보고하는 장 申省狀

해제이 글은 순희 1(갑오, 1174, 45)에 상서성에 올리는 장계인데 여러 번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던 태주 숭도관을 주관하라는 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수용하였음을 보고하였다.

 

 

위의 내용은 제가 이전에 상서성 차자에 준하여 성지를 받들어 보니 제가 안빈낙도하며, 청렴하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아 칭찬할 만하다고 하여 특별히 선교랑으로 옮기고 태주 숭도관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내려온 고명일도를 살펴보니 저에게 앞의 관직을 주셨습니다. 저는 명령을 받고서 크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후 세 차례 장계를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해서 폐하께 아뢰어 재고하시길 빌었습니다. 거듭 상서성 차자를 살펴보니 근래에 내렸던 성지를 조사해서 군자 고에서 다시 저에게 공문을 내려 살피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우러러 폐하의 뜻을 체득하여 감히 굳건히 사양하지 못하고 임오 623일에 폐하를 우러러 공손하게 받았습니다. 주장을 갖추어 감사한 것 외에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니 엎드려 바라건대 조사하고 살펴 주십시오.

 

右熹昨凖尙書省箚子, 奉聖旨, 以熹安貧守道, 廉退可嘉, 特改左宣敎郞主管台州崇道觀. 績準降到告命一道, 授熹前件官. 聞命震驚, 罔知所措. 前後三次具狀申尙書省, 乞賜敷奏寢罷. 尋準尙書省箚子, 檢會近降聖旨, 再箚付熹照會者. 熹仰體德意, 不敢固辭, 已於六月二十三曰望闕袛受訖. 除已具奏稱謝外, 謹具狀申省, 伏乞照會. 謹狀.

 

건령부에 보고하는 장 申建寧府狀

해제이 글은 순희 1(갑오, 1174, 45)태주 숭도관을 주관하라는 명에 대하여 여러 차례 재고를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수용하였음을 건령부에 보고하였다.

 

 

저는 최근에 특별한 은혜를 내린다 고명을 받았습니다. 지금 감사드리는 주장을 써서 보냈으니 건령부에서 파발 편에 보고해 주시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저는 미천하고 조례에 막혀 폐하께 곧장 아뢸 수가 없어서 삼가 주장을 갖추어 건령부 관아에 보고합니다. 바라건대 살펴보시고 바로 시행해 주시기를 빕니다.

 

右熹玆者袛受告命, 係出特恩, 今有奏狀稱謝, 合於使府附遞申發. 竊慮小臣微賤, 限於條制, 無由得徹冕旒之聽, 謹具狀申建寧府使衙, 欲乞照會, 繳奏施行.

 

비서랑을 사면하는 장 1 辭免秘書郞狀一

해제이 글은 순희 3(병신, 1176, 47)그간의 수많은 폐하의 은덕으로 출사하여 안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하여 감사하고 금번 비서랑 제수를 재고해 달라고 장계를 올렸다.

 

 

저는 621일 비서랑을 제수한다는 상서성 차자와 고명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저는 내용을 듣고서 크게 놀라 어쩔 줄 몰랐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자나 깨나 뛰어난 인재를 찾으시고, 공업을 일으키려 계획하시면서 아주 조그마한 능력이 있는 사람까지도 거두어 쓰지 않는 이가 없었고, 은둔하여 숨어사는 사람조차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못난 제게도 이러한 기회가 오게 되었습니다. 크고 두터운 은덕을 받들기조차 어려운데 어찌 감히 말을 꾸미고 사양하면서 뽑아 쓰시려는 뜻을 저버리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가만히 생각하건대 국가에서 도서의 관청비서성을 만들어 설치한 까닭은 우수한 인재를 모으기 위해서이니, 담당할 관리를 선발하는 데는 정해진 법도가 있어서 애초부터 가벼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서랑은 폐하의 명을 받들어 지키는 것을 직무로 삼았으니 비록 서적의 교정과 관리를 담당하는 직책과는 다르지만, 예로부터 계속되어온 관례는 원숙하고 덕망을 갖춘 선비를 임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처럼 평범하고 비루한 사람이 어찌 능히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폐하의 총애와 명예를 함부로 탐하느라 이런 것조차 스스로 헤아리지 못한다면 이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폐하의 인재를 식별하는 안목에도 흠이 되는 일입니다. 하물며 요즘에 여러 차례 병이 많고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간절하게 소명을 사양했으니 폐하께서도 제 속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제가 폐하를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과 다소나마 촌로의 한결같은 정성을 가지고 있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늙어서 쓸모가 없고 거듭 관직 때문에 수고스럽다는 것을 애달프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포상을 내리시고 온전한 생활을 영위토록 은혜를 베푸시려는 뜻을 비록 어리석고 천한 제가 마땅히 얻지 못하겠지만 천지와 부모가 곡진하게 낳아 주고 길러 주는 것과 같은 은혜는 끝내 사양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해를 넘기면서까지 간절히 사양하다가 마침내 명을 받들게 된 까닭이었고, 다시 이 뜻을 갖추어 주장을 붙여 감사함을 진달하였으니, 제가 은혜에 감사하고 스스로 맹세한 정성은 뚜렷하여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일전에 상을 주시고 은혜롭게 보살펴 주신 은혜에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마침내 연이어서 끝없이 발탁해 주신 은총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이것은 옛 사람이 말한 언덕에 올라가 좌우를 살피고서 시장의 이익을 독차지하는 꼴입니다. 사대부들의 맑은 의론이 용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못난 제게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어쩔 줄 몰라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상부에서는 깊이 살피시어 특별히 폐하께 아뢰고 빨리 원래 내렸던 지휘를 재고해 주시어 저로 하여금 어리석은 처지를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한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제가 상서성 차자와 고명을 건령부에 보고해서 군자 고에 보내 보관해 달라고 한 것 이외에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고 엎드려 지휘를 기다립니다. 삼가 장계를 올립니다.

 

右熹凖六月二十一日尙書省箚子幷告命一道, 授熹秘書郞者. 熹聞命震驚, 罔知所措. 竊以聖主寤寐俊傑, 圖起事功, 片善寸長, 靡不收用, 巖穴幽隱, 亦弗棄遺, 遂使妄庸, 有此遭遇. 恩德隆重, 捧戴難勝, 豈敢飾詞遜避, 以孤獎拔之意? 然熹竊惟國家開建圖書之府, 所以儲蓄秀異之才, 選試有程, 未始輕授. 郞以奉守爲職, 雖異典校之官, 然自昔相承, 或用以處老成耆德之士. 如熹凡陋, 豈所克堪? 今若貪冒寵榮, 不自量度, 此必坐取嘲笑, 以累聖主知人之明. 又况頃年屢以多病不才, 懇辭召命, 已蒙聖慈洞照肺腑. 蓋旣憐其愛君憂國粗有畎畝夙夜之誠, 而又知其衰朽無庸, 重閔勞以官職之事, 故凡所以假借褒嘉惠養全活之意, 雖非愚賤之所當得, 然天地父母委曲生成之恩, 則有不可以終辭者. 此熹所以懇辭踰年而卒拜明命, 且復具以此意附奏陳謝, 其所以感恩自誓之誠, 蓋有皦然而不可欺者. 今乃欲因聖主前日所以假借惠養之資, 而遂寅緣以冒進擢無涯之寵, 則是古人所謂登龍斷而左右望 以罔市利者. 不惟士夫淸議有所不貸, 而熹之不肖, 亦竊羞之. 是以恐懼回皇, 不敢袛受. 伏惟鈞慈憐察, 特爲敷奏, 早賜寢罷元降指揮, 使熹愚分稍安, 不勝幸甚熹除已將省箚告命申建寧府送軍資庫寄納外, 謹具狀申尙書省, 伏候指揮. 謹狀.

 

비서랑을 사면하는 장 2 辭免秘書郞狀二

해제이 글은 순희 3(병신, 1176, 47)거듭 이미 내린 비서랑의 교지를 철회하고 이미 수행하고 있는 궁관의 직무를 지속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장계하였다.

 

 

83일 상서성 차자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제가 비서성 비서랑을 새로이 제수 받은 은명을 사양하려한다는 것에 대해 83일 삼성은 함께 성지를 받들어 사면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재야의 미천한 선비이고 장구나 일삼는 못난 학자여서 전에 제수하신 소명을 받고서 스스로 걸맞지 않는 줄을 알았던 까닭에 사양하려 했던 것입니다. 바야흐로 꾸짖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찌 폐하께서 곡진한 지휘를 내리실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저는 명을 받고서 크게 놀라 곧 받드는 것이 마땅하니 어찌 감히 고집스럽게 사양해서 거듭 폐하를 수고롭게 하겠습니까? 삼가 근래에 성덕이 날로 새로워서 바른 말을 수용하고 광간하고 바르기만 한 사람들조차 상을 주시며, 비록 죽은 사람이라도 저버리지 아니하시니 천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감동을 불러일으켜 더욱 서로 권려하면서 모두 충성을 다하길 원했습니다. 저의 어리석음이 비록 여기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찌 폐하의 광휘의 끝에 의지하여 조금이라도 본받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차마 제가 스스로 밝은 때를 포기하고 은둔해서 늙어 죽으며 어리석게 초목과 함께 썩어버리겠습니까? 그러나 실재로 내실이 없고 어리석으며, 본래 대각의 자질이 아니니 감히 문득 비서랑의 관직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 관직에 나아가 녹을 받았지만 집에 와서 할 일 없이 있는 은총을 받았으니 다시 조정에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천 번 생각하고 백 번 생각하고 계속 고민하였습니다. 비록 은혜에 감사하고 지난날이 애석하지만 제가 정성을 다하지 못해서 우러르고 굽어 부끄러우니 마침내 말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감히 거듭 속사정을 다 드러내고 다시 형벌을 무릅쓰는 것이니 반드시 위로 충만한 보살핌을 내려 주시고 아래로는 평소의 제 소망을 이뤄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참정께서 특별히 개진하여 조속히 파면시켜 주시고 혹 옛날의 품계대로 궁관을 한차례 더 파견해 주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내려왔던 상서성 차자 안에 성지의 지휘가 있는데 감히 배명하여 받을 수 없으니 건령부 군자 고에 맡긴 것 외에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니 폐하께 아뢰어 시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삼가 주장을 살펴주십시오.

 

右熹準八月三曰尙書省箚子, 以熹辭免新授秘書省秘書郞恩命, 八月三日, 三省同奉聖旨, 不許辭免者. 伏念熹草茅賤士, 章句腐儒, 昨被詔除, 自知不稱, 輒形控避. 方俟譴詞, 豈意天慈曲垂恩旨. 聞命震恐, 卽合奉承, 敢以固辭, 重勤淵聽? 伏況邇者聖德日新, 容受讜言, 旌賞狂直, 雖在亡沒, 亦不棄捐. 海內聞風, 感動興起, 以至更相勸勵, 咸願竭忠. 如熹之愚, 雖不及此, 亦豈不願依附末光, 效其尺寸? 何忍自棄明時, 老死巖谷, 泯泯沒沒, 徒與草木俱腐? 實以空疏頑鄙, 本非臺閣之姿, 不敢輒塵華貫 : 進官頒祿, 已冒閑退之寵, 難以復造朝班, 所以千慮百思, 徊徨瞻顧, 雖感恩惜日, 不勝畎畝之誠, 而仰愧俯怍, 卒不得不盡其詞也. 是敢重瀝肺肝, 再嬰斧鑕, 必冀上回冲鑒, 下遂夙心. 伏望參政特爲開陳, 早賜寢罷, 或仍舊與宮廟差遣一次, 則熹不勝大幸. 其降到省箚內有聖旨指揮, 不敢拜受, 已寄納建寧府軍資庫外, 謹具狀申尙書省, 乞賜敷奏施行. 謹狀.

 

남강군 지사를 사면하는 장 辭免知南康軍狀

해제이 글은 순희 5(무술, 1178, 49)장우를 대신하는 남강군지사의 명을 받고 그간의 사정을 들어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궁관의 소임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장계하였다.

 

 

이 달 17일에 상서성 차자를 받았습니다. 성지를 받들어 보니 남강군지사로 파견해서 장우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게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상서성 첩지를 받았는데, 칙령을 받들어 마땅히 권발견남강군사 겸 관내권농사로 파견하고, 여전히 차비를 허락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명을 받고서 깜짝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거칠고 경솔한 저의 품행은 벼슬살이를 감당할 수 없고, 초야의 병든 몸은 날로 지리멸렬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폐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특별히 개관을 허락하셨고, 계속해서 사록관을 주어서 한가로이 물러나려는 소망을 이루어 주신 것은 어리석은 제게는 분에 넘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앞의 은명이 있었고, 뜻밖의 은명이 내렸으니, 천지의 인이 단 하나의 사물도 버려두지 않는 것을,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스스로 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저의 감격스러움은 진실로 이루다 말할 수 없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주군을 떠맡는 일은 연관된 것이 가볍지 않으니, 진실로 적당한 인재가 아니라면 천리나 되는 고장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조정은 신중하게 살피고 가려 뽑아서 백성의 삶을 떠맡길 뿐만 아니라, 엄격하게 조례를 확립해서 인재를 배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용렬하고 망령되고 가볍고 천한 무리들이 연줄을 따라 공도 없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하들이 간청하고, 조칙의 뜻이 간절하여 깊고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저는 평소에도 못난 사람이란 말을 들었고, 처음 관직을 한 번 맡았다가 그만 둔 이래로 지금까지 거의 20여년이 되어갑니다. 그 동안 산간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인간사의 일을 접해 본 적도 드물어서, 백성의 형편과 관리의 직분에 대해서는 어리석게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개관한 이래로 채 4이 되지 않았으며 비록 명목상으로는 현령의 품계를 갖추었지만, 자주 사관에 임명되었을 뿐 애초부터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해볼 만한 직책이 없었기 때문에 묵묵히 드러누워 게으르게 지내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저를 초야에서 억지로 일으켜 군의 행정을 대신 떠맡게 하시니 자질이 천하고 사람들의 신임조차 가벼워 자주 내리시는 지휘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폐하의 교화를 이어받아 실행하여 삼가 폐하의 중요한 정치와 백성을 사랑하고 부양하는 뜻에 걸맞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이것이 제가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천한 제가 궁벽한 곳에 숨어 사는 것을 조정에서 기억해 내고서 이처럼 도탑게 은혜로운 지휘를 내렸는데, 다시 구차하게 안일함을 도모하면서 고집스럽게 사양하고 회피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신하로서의 충성을 다하지 않으려는 것이니 불공스러운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본래 무능해서 전리에 물러난 것인데, 조정에서 잘못 들으시고 외람되게도 포장을 내려 주셨으며, 염퇴를 명목으로 은총을 내리셨고, 높고 견고한 조행을 핑계로 권면하셨으니, 훈계의 말씀이 귓가에 있는 듯해서 폐하의 보살피심을 어길 수 없습니다. 제가 비록 지극히 어리석어 여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만약 마땅히 마음에 새겨서 스스로 다짐하고 시종 변하지 않는다면 거의 삼가 만분의 일이라도 은혜를 갚고, 아래로는 저의 본분을 온전히 할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힘쓰지 않고서 바쁘게 명을 따르는 것을 직분으로 삼고자 한다면 의리상 마땅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허약한 체질로 병이 많고 빨리 늙어서 나이가 들고부터는 정력이 갑자기 감퇴해서 설사 벼슬길에 있을지라도 반드시 힘을 헤아려 관직을 사양해야 할 것이니, 오히려 오늘에서야 비로소 억지로 스스로를 꾸며서 벼슬길에 나아가려 한다면 어찌 식자들의 커다란 비웃음거리가 되어, 거듭 이전의 소명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저는 관직이 낮고 사람이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감히 갑자기 사면한다고 청할 수 없어서 은혜로운 명을 공손히 받았고 이어서 한직을 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남강군지사로 파견하는 것은 현직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니, 헤아려 보면 두어 달 사이에 다시 조정에 번거로운 청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보다는 마땅히 곧장 제 사정을 토로해서 긍휼히 살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조정을 번거롭게 하는 죄를 면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도착한 차자와 칙첩을 감히 공손히 받을 수 없어서 건령부에 보내 군자 고에 넣어 두게 한 외에 삼가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합니다. 바라건대 참정승상소보께서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지금 내려온 지휘를 취소해 주시고 예전 궁관 직에 파견해 주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삼가 장계를 올립니다.

 

今月十七日, 準尙書省箚子, 奉聖旨, 差知南康軍, 塡張杅闕. 又準尙書省牒, 奉敕, 宜差權發遣南康軍事兼管內勸農事, 仍借緋者. 聞命震驚, 若無所措. 伏念熹疏繆之姿, 不堪從宦, 病臥林野, 日益支離. 昨蒙聖慈矜憐, 特與改官, 仍畀祠祿, 以遂閑退之願, 於熹愚分, 已爲過優. 今者忽有前件恩命, 又出意望之外, 足見天地之仁, 不遺一物, 寸長尺短, 皆欲使其有以自見. 在熹感激誠不自勝, 然竊惟念州都之寄, 所係不輕, 苟非其人, 千里受弊. 所以朝廷不惟蕃擇以寄民命, 而又嚴立資格, 以敍人材. 蓋不欲使庸妄輕淺之流得以因緣冒處, 爲民不利. 前後臣寮建請, 諮旨丁寧, 亦可謂深切而著明矣. 如熹之愚, 素號庸劣, 又自初官一任解罷, 今已二十餘年, 杜門空山, 罕接人事, 民情吏職, 懵不通曉. 改官以來, 未滿四考, 雖名知縣資敍, 而備數祠官, 初無職事可以自試, 黙黙寢臥, 習成婾惰. 一旦使之彊起田間, 攝承郡事, 不惟資淺望輕, 有礙累降指揮, 亦懼無以承流宣化, 仰稱聖天子綜核名實愛養元元之意. 此熹之所以恐懼踧踖而不得不辭者也. 或者以爲熹之賤微屛處窮僻, 而朝廷記憶, 恩指隆厚至於如此, 若復苟圖安佚, 固爲遜避, 則將無以自竭犬馬報效之勞, 而陷於不恭之罪. 熹竊以爲不然. 蓋熹本以無能退處田里, 聖朝過聽, 誤加獎借, 寵以廉退之名, 勵以堅高之操, 訓詞在耳, 天鑒弗違. 熹雖至愚, 不能及此, 猶當刻心自誓, 終始不愉, 庶幾可以仰報萬分, 下全素守. 今不務此, 而欲以奔走承命爲恭, 則亦非義之所安矣. 又況蒲柳之質, 多病早衰, 年歲以來, 精力頓減, 政使方在仕塗, 亦須量力引退, 願乃甫於今日彊自修飾, 起趨名宦, 豈不大爲有識所笑, 重貽前詔之羞哉? 初以官卑人微, 不敢輒具諸免, 且欲袛拜恩命, 續伸投閑之請. 竊綠所南康軍係塡見闕, 度亦不過兩月, 卽便復紊朝聽, 誠不若直情控訴, 冀蒙矜察, 庶免煩瀆之罪. 所有遮到箚子敕牒不敢袛受, 除已申送建寧府軍資庫寄納外, 謹具狀申尙書省. 欲乞參政丞相少保特爲敷奏, 寢罷今來所降指揮, 令熹依舊宮觀差遣, 則熹不勝幸甚謹狀.

 

궁관을 비는 차자 乞宮觀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5(무술, 1178, 49)남강군지사의 명을 거두시고 궁관의 소임을 지속하게 해 달라고 장계하였다.

 

 

제가 이전에 성은을 입어 권발견남강군사에 파견되었으나 개인적인 의리에도 온당치 못해서 감히 삼가 받지 못하고 사면해 달라는 주장을 올렸습니다. 계속해서 성지를 받들어보니 사면을 허락하지 않고서 빨리 부임지로 떠나라고 하셨으며, 임기가 만료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주장으로 시사를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명을 받고서 크게 놀라 1023일 궁궐을 우러르며 은혜에 감사하면서 공손하게 명을 받았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폐하의 은혜는 지극히 크고 두터우나 저는 일개 비천한 사람이니 받드는 것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고루하고 우매한데도 오래도록 함육해 주시니 비록 저는 거칠고 졸렬하여 스스로 숨어 사는 것을 달갑게 여긴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신하의 명부에 올리고 군주에게 예를 바친 의리와 도를 배우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잊어버릴 수 없었으니 어찌 밝은 때에 미쳐서 관대한 조칙을 받들고 전심을 기우려 직책을 영위하여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기르길 원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올 가을 이래로 질병이 더욱 심해지고 정신이 더욱 손상되었는데도 관의 일을 힘써 쫓으니 빨리 쇠하여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더욱 본 군은 관리로 파견할 사람이 없는지 오래 되었으니 만약 제가 다시 시간을 끌게 되면 가만히 생각하건대 관리들이 해이해지고 인연하여 부절을 끊어 별도로 잘못된 일에 이르게 될 것이니 제가 명을 어기고 공손하지 않는 죄를 면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바라건대 상부에서 긍휼한 생각을 삼가 내리시어 특별히 궁관으로 한차례 더 파견해 주신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熹昨蒙聖恩, 差權發遣南康軍事, 屬以私義未安, 不敢袛受, 卽已具狀辭免. 續奉聖旨不許辭免, 令疾速前去之任, 候任滿日前來奏事. 熹聞命震慴, 已於十月二十三日望闕謝恩袛受敕命訖. 仰惟天地之恩至隆極厚, 一介疵賤, 捧戴難勝. 矧以孤愚久被涵育, 雖緣疏拙, 自甘退藏, 至於策名委質之義, 學道愛人之心, 則實有所不能忘者. 豈不願及明時, 奉承竟詔, 悉心營職, 爲國養民? 實以今秋以來, 疾病益侵, 精神益耗, 勉從吏役, 懼速顚臍. 加以本軍闕人已久, 若以熹故更復遷延, 竊恐官曹解弛, 簿書綠絶, 別致誤事, 則熹違命不恭之罪, 益難幸免. 欲望鈞慈俯賜矜念, 特與陶鑄宮廟羞遣一次, 則熹不勝幸甚.

 

궁관을 비는 차자 乞宮觀狀

해제이 글은 순희 6(기해, 1179, 50)또 한번 남강군지사로의 파견을 거두시고 궁관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장계하고 있다.

 

 

위의 내용은 제가 이전에 질병으로 쇠약해져 관리의 직무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일찍이 정월 20일에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뢰어서 궁관의 파견을 빌었습니다. 그러나 명을 받은 것이 오래되어 감히 편안히 거쳐할 수 없어서 정월 25일에 병든 몸을 부축하고 지리멸렬함을 이겨내며 지내왔습니다. 24일에 신주 연산현의 관할 아래에 이르러 투숙하면서 지휘를 기다렸습니다. 10일이 지났지만 아직 처분을 받들지 못했습니다. 제가 삼가 스스로 여기에 이른 이래로 쇠약한 몸은 더욱 약해지고 파리해졌으며, 비록 고통스럽고 위급한 지경은 아니지만 정신과 기력이 날로 없어지고, 행하고 멈춤에 힘이 없으며, 말하기에 기력이 부족하고, 사려하고 응접함에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옆에 사람들은 비록 곧바로 알지 못할지라도 저 자신은 깊이 살펴 알고 있습니다. 만약 다시 억지로 부축하여 끌고서 앞으로 나아간다면 길에서 반드시 쓰러짐에 이를 뿐만 아니라, 비록 다행히 관직에 나아가더라도 제 몸을 지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바라건대 상부에서는 엎드려 노쇠한 저를 불쌍히 여겨 앞 장계를 살피시고 아울러 개진함을 주시어 특별히 궁관차견을 한차례 옮겨서 파견해 주시고, 땅강아지나 개미의 미미한 목숨과 같은 저로 하여금 천명을 따를 수 있도록 하여 길 위에서 낭패에 이르지 않게 한다면 저는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저는 지금 연산현에서 지휘를 기다리면서 주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보고하고 폐하께 아뢰어 시행해 주시길 빕니다.

 

右熹昨以疾病衰耗, 不堪吏役, 曾於正月二十日具狀申尙書省, 陳乞宮廟差遣. 然以被命已久, 不敢寧居 卽於當月二十五日扶病起離前來. 二月四日至信州鉛山縣管下歇泊, 聽候指揮. 已經旬日, 未奉處分. 而熹伏自到此以來, 衰病之軀愈覺羸悴, 雖無痛楚危急形證, 而精神氣力日見漏枯, 行坐無力, 語言少氣, 思慮應接矢後忘前. 旁人雖末據覺, 而熹之自知甚審. 若更勉彊扶曳前去, 不淮在路必至顚踣, 雖幸到官, 亦難於支吾. 欲望鉤慈俯憐衰朽. 檢會前狀, 幷賜開陳, 特與改差宮廟差遺一次, 使螻燈微命得遂天年, 不至狼狽於道路, 則熹不勝幸甚熹見今且在鉛山縣聽候指揮, 謹具狀申尙書省, 乞賜敷奏施行.

 

재집에게 보내는 차자 與宰執箚子

해제이 글은 순희 6(기해, 1179, 50)남강군지사 파견의 명을 철회하고 궁관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재집에게 도와 달라고 하였다.

 

 

저에게 갑자기 간절한 청이 있어 상부의 위엄을 더럽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노쇠한 병으로 몸을 지탱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관리의 책무를 감당할 수 없어서 자주 주장을 갖추어 아뢰어 궁관으로 파견하도록 조치하시길 빌었습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조정의 명을 바라고 있노라니 의리상 편안할 겨를이 없어 병든 몸을 부축하고 집을 떠나 신주의 관할 아래 와서 처분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10일이 되었는데도 아직 확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쇠한 병으로 날이 갈수록 더욱 침릉이 더해가고 정신이 혼미하고, 기력이 피폐해졌으니, 만약 다시 억지로 수레에 의지하여 몸을 부축하고 관직에 나아간다면 반드시 쓰러지게 되어 세상에 비웃음꺼리가 될 것입니다. 저는 미천해서 깊이 구휼해 주시는 것을 받을 자격이 못되나 가만히 생각하건대 혹 폐하께서 불쌍함을 돌아보고서 수용하는 본의에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부득이하게 다시 공장을 갖추어 어리석음을 무릎 쓰고 청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승상께서 다행스럽게 살펴서 이에 구휼을 더해 특별히 개진하여 주시고, 바랐던 것에 따라 일찍이 시골로 돌아가게 하여 피곤한 몸을 쉬게 하고 의사를 찾아가 약을 먹게 하여 여생을 마치게 한다면 제가 재집의 덕에 감격하고 마음속에 기억하는 것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감히 주제 넘는 것을 모르고 갑자기 차자를 갖추어 아뢰니 삼가 바라건대 상부에서 살펴 주십시오.

 

熹輒有危懇, 冒瀆鈞嚴 熹昨以衰病支離, 不堪吏責, 累具申陳, 乞賜陶鑄宮廟差遣. 然以久稽戟命, 義不遑安, 卽已扶病離家, 前來信州管下聽候處分. 今已旬日, 未奉進止. 而熹衰病日益侵加, 精神昏耗, 氣力綿惙, 若復勉彊輿曳之官, 必取顚踣,爲世嗤笑. 在熹賤微, 不足深恤, 竊恐或非聖朝所以眷憐收用之本意也. 今不獲已, 復具公狀, 冒昧有請. 伏淮丞相幸垂察而加憐焉, 特賜開陳, 從其所欲, 俾之早得歸伏田里, 休息疲瘁, 訪間醫藥, 以終餘年, . 則熹之感恩戴德銘鏤肺肝, 何有窮已敢忘進越, 輒具箚子申聞, 伏乞鈞察.

 

부당하게 차자를 사용하여 상주한 일에 대해 스스로 탄핵하는 장 自劾不合用箚子奏事狀

해제이 글은 순희 6(기해, 1179, 50)에 쓴 자기 자신을 탄핵하는 주장이다. 상서성과 중서성의 관리 이상만이 주()와 장()을 병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격을 뛰어넘어 본 군의 세금을 경감해 달라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스스로를 탄핵하고 있다.

 

 

제가 삼가 도진주원의 첩지를 살펴보니 신료들이 차자로신들이 가만히 옛 제도를 살펴보니장주(章奏)’는 무릇 내외의 관리로서 폐하를 뵙는 경우에차자를 허용하였고, 나머지 경우에는 상서성과 중서성의 관리 이상에게만 차자를 허용하였으며, 그 이하는 주()와 장()을 병용하라고 했습니다. 청하건대 유사들에게 엄히 명을 내려 수사 조사 군수들이 군대를 주관하다가 전쟁의 조짐이 있는 사태를 당면하게 되는 경우에만 차자를 허용하고, 그 외에 함부로 직분을 넘고, 법식에 맞지 않은 것이 있다면 관할하는 곳으로 돌려보내게 해야합니다고 아뢴 일에 대해 삼성은 주장대로 시행하라는 성지를 받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제가 시골에 살아서 소략하니 일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금년 622일에 이르러서 본 군의 세금을 견감해 달라는 사실을 빌기 위해 일찍이 차자를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비록 위의 지휘가 있기 이전이지만 실제로 옛 제도를 어겼으니 저는 명을 듣고 크게 놀라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나아가 상주문을 갖추어 스스로 탄핵하려다가 다시 망령되게 법제를 간범하게 될까 두려워 장()을 갖추어 상서성에 아룁니다. 바라건대 폐하께 아뢰어 빨리 파면하시어 소원한 제가 폐하를 기만하고 불공하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삼가 아룁니다.

 

右熹伏覩都進奏院牒, 臣寮箚子奏: “臣竊見舊制, 章奏凡內外官登對者, 許用箚子, 其餘則前宰執兩省官以上許用箚子, 以下並用奏狀. 乞申嚴有司, 應帥漕郡守主兵官, 如事涉兵機, 許用箚子, 餘僣越犯分, 有不如式, 則令所屬退還等事, 三省同奉聖旨依奏者. 伏念熹山野生疏, 不識事體, 近於今年六月二十二日, 因本軍陳乞蠲滅稅錢事, 曾具箚子奏聞. 雖在上項指揮之前, 實亦有違舊制, 聞命震恐, 不知所爲. 卽欲具奏自劾, 又恐復以狂妄, 重干典憲, 謹具狀申尙書省, 欲望敷奏, 亟行罷黜, 以爲疏遠小臣慢上不恭之戒. 謹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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