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30

황성 2025. 8. 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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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에 대한 옥안 속에 첨부한 첩자 阿馬奏案內小貼子

 

 

[해제] 이 글은 마씨 성을 가진 여인이 남편을 살해하려 한 사건에 대해, 감형을 고려하지 말고 법대로 의법조치 할 것을 주장하는 첩자이다.

 

신 등이 조사해 보니 아마(阿馬)는 이미 다른 사람과 정을 통하고, 남편을 죽이기로 은밀히 모의하여, 주변에 증거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본래는 옥안을 갖추어 아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제형사의 첩지에 준거하여 (옥안을) 갖추어 아뢰게 되었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당사자가 삼강을 무너뜨린 범죄는 정상이 참혹해서 듣고 나니 비통한 마음에 코끝이 시립니다. 생각건대 담당관이 통상적인 예에 따라 죄를 낮춰주려는 것 같습니다만, 풍교를 해쳤을 뿐만 아니라 사안의 중요도가 가볍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통찰하사, 특별히 정해진 법도에 의거하여 어리석은 자들을 경계하고 나라의 법을 바르게 하시기를 신 등은 크게 원합니다.

臣熹等契勘阿馬旣與外人通情, 密謀殺夫, 自是不容旁有知證, 本不敢具案聞奏. 今準提刑司牒, 須至具奏. 謹按本人所犯隳絶三綱, 情狀慘酷, 聞之猶可酸鼻. 竊慮有司因循常格, 擬從減等之坐, 有害風敎, 事體不輕, 欲望聖明洞察, 特依常法, 以警昏愚, 以正邦法, 臣等不任大願.

 

 

소흥부 도감 가우지가 굶주린 백성들을 조사해서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뢰는 장계 奏紹興府都監賈祐之不抄箚饑民狀

 

 

해제주자는 순희 8(신축, 1181, 52) 3월에 제거강남서로상평차염공사에 제수되었고, 9월에 제거양절동로상평차염공사로 바뀌었다. 이 글은 같은 해 12월 제거양절동로상평차염공사로 있으면서 소흥부 도감 가우지가 굶주린 백성들에 대한 조사와 보고를 소홀히 한 것을 지적하고, 그것을 엄하게 조치하여 관리의 경계로 삼을 것을 청한 장계이다.

 

살펴보건대, 소흥부 관할의 여러 현들이 금년에 재해로 피해를 입어, 굶주린 백성들이 떠돌아다니고 끼니를 거르는 자가 아주 많았는데, 삼가 폐하의 명을 받고서 밤낮으로 마음을 다해 받들어 시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본 부에 속한 산음현과 회계현의 백성들이 끊임없이 길을 막고서 조사해 보고한 것들이 미진하고 누락이 있어 부실하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신은 곧바로 조치하여 일을 전담할 기구를 설치하였으며, 방금 기보와 향사를 소집하고, 본 부의 당직관에게 맡겨 향관에게 공손히 청하여, 조사된 것과 조사되지 않은 것을 구별해 실상을 상세히 살피라고 거듭 지시했습니다. 성안의 오상에서 끼니를 거르는 백성과 다른 곳을 떠돌다 부로 들어온 사람들은 본 부가 비록 상관에게 맡겨 문에서 조사해 보고토록 했지만, 방문해 보니 대부분 상전에게만 의거한 것일 뿐, 기록된 사람들 대부분이 부실하고 미진해서 성안의 백성들 또한 앞에 와서 하소연하였습니다.

照對紹興府諸縣今歲災傷, 饑民流移闕食甚衆, 恭禀聖訓, 寅夕究心奉行. 緣本府山陰曾稽縣人戶不住遮道告訴抄箚不盡, 漏落不實, 臣卽已措置, 專設一局, 見今呼集耆保鄕司, 專委本府當職官敦請鄕官, 重行隔別審實. 其在城五廂闕食細民及流移到府之人, 本府雖委逐廂官沿門抄箚, 訪聞多是止憑廂典, 合干人多有不實不盡, 亦行前來陳訴.

 

또 신은 이미 상관들에게 실상을 상세히 살펴 조사 보고토록 시달했으며, 다른 곳에서 부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은 신이 또한 본 부에 명을 하달해서 현령 및 좌이들에게 여관의 숙박비를 많이 받지 말고 아울러 나루터에서는 (대가를 요구하며) 정체시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병들고 굶주리거나 버려진 아이들을 빠짐없이 거두어 넓고 편한 사원에 안치시켰으며, 상평창의 관전을 전용해서 땔감이나 짚을 수매하고 의복류를 공급토록 했습니다. 그리고 약과 의사를 모아 먹이고 치료했으며, 세 양의 등급으로 멀건 죽과 된 죽을 끓여 차례대로 구조하였습니다. 이어서 승려와 도사들에게 부탁해 간호하고 보살피도록 했으며, 제가 시행한 내용을 모두 알려 주었습니다.

臣又已送下廂官審實抄箚, 所有他處流移到府, 臣亦已行下本府, 與縣令佐約束停房店舍不得多收賃資, 幷津渡邀滯, 仍遍行收拾病患饑困及遺棄小兒, 就寬闊寺院安著, 支撥常平官錢, 收買柴薪藁薦, 給衣襖之類, 修合藥餌醫治, 煮造三兩等稀稠粥, 次第救助, 仍委請慈悲僧道主管看養, 所行非不告戒.

 

신이 이달 19일 마림 등이 올린 장계에 의거하면 승현의 사람들이 본 부의 제1상으로 옮겨와 거주하고 있었는데 끼니를 거르고 굶주렸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마백사 한 명이 목숨을 부지하고 신이 다스리는 곳으로 왔는데, 이미 굶주린 지가 오래되어 완전히 탈진해 있었고,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죽을 듯이 엎어졌습니다. 신이 즉시 의사로 하여금 약을 써 구해 주도록 하였는데, 잠시 후에 소생해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臣今月十九日據馬林等投狀稱是嵊縣人事, 移在本府第一廂居住, 闕食饑餓. 內有馬百四一名, 扶到臣治所, 已是饑餓日久, 十分羸困, 纔到不久, 卽便倒死. 臣卽令醫人用藥灌救, 移時方得甦醒.

 

마침내 본 상의 상관이자 무익랑이며 소흥부 병마도감인 가우지를 불러서 굶주린 사람들을 조사 기록해 본 군에 보고하지 않은 까닭을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날 본 부의 첩지도 받았고, 신이 보낸 진장을 받았으면서도, 조사 기록도 하지 않았고 보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으며, 계속 자리에 두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이 이미 앞서 가우지를 소흥부에서 본 부의 지사로 내보낸다는 첩지를 보낸 외에, 폐하께서 특별히 조서를 내리시어 엄히 내치시고 책임을 물음으로써, 관리들이 구휼의 임무를 받들어 행하면서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경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遂行呼到本廂官武翼郞紹興府兵馬都監賈祐之, 取問元不抄箚供報因依, 本官應對不行. 及先來承受本府牒, 委及承臣送下陳狀, 幷無抄箚事因報應. 本官委是不職, 難以存留在任. 臣除已先將賈祐之牒紹興府對移本府指使差遣外, 欲望聖慈特降睿旨, 重賜黜責, 以爲宮吏奉行賑濟不虔之戒.

 

관회를 전용하고, 도첩을 내려주고, 재해를 진휼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고 청하는 장계 乞借撥官曾給降度牒及推賞獻助人狀

 

 

신이 지난번에 관리로 파견되어 절동제거의 자리를 맡게 되었고, 또 폐하의 은혜를 입어 전회 30만관을 받아서, 절동로의 백성들에게 진제용으로 공급했습니다. 스스로 이르기를 이처럼 융성한 성은을 입었으니, 그 형세상 반드시 이 도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삼가 이곳으로 온 이래로 날마다 소흥부의 회계와 산음 두 현의 백성들이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보고에 누락된 것이 많다고 하소연해서, 마침내 여러 현들에게 모두 샅샅이 조사해서 누락된 사람을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우선 두 현에서 올린 보고를 과거의 것과 비교해 보니 256,192명이나 증가되었습니다. 그 나머지 현들의 보고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그 현의 규모와 지리의 대소를 계산해 보면 호구는 반드시 이보다 몇 배는 될 것입니다. 애당초 여러 현들의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보고는 자세하지도 않았고, 또 날짜가 지난 지 이미 오래되어, 이전에는 조금이나마 자급할 수 있었던 자들도 지금은 모두 끼니를 거르고 있으니, 굶주린 백성들의 수는 날로 증가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수를 본 부에서 과거에 얻었던 전미를 여러 현에 균등하게 배정해준 수와 대조해서 살펴보니 빠진 수와 항목이 더욱 많습니다.

臣昨被臨遣, 備使浙東, 又蒙聖慈賜以錢會三十萬貫, 以給一路賑糶賑濟. 自謂遭値聖恩隆厚, 至於如此, 其勢必可以救活此道之人. 伏自入境以來, 日據紹興府會稽山陰兩縣人戶投訴抄箚漏落, 遂將諸縣悉行根括. 先據兩縣申到比舊計增二十五萬六千一百九十二口, 其餘諸縣尙未申到, 計其縣分地里之大小, 戶口決當數倍於此. 蓋緣當來諸縣抄箚不甚子細, 而又涉日旣久, 向之粗能自給者今皆闕食, 所以饑民之數日有增加. 因以此數考按本府昨來均定所得錢米撥下諸縣之數, 其爲欠闕數目尙多.

 

마침내 지난번에 하사받은 회자 등의 돈 가운데서, 여러 주에서 이미 써버려 지금은 없다고 보고한 5만관과, 또 여러 주에 지급하기 위해 준비해 둔 5만관을 제외하고, 각 현의 규모와 이미 얻은 전미의 많고 적음을 계산해서, 순서에 따라 고르게 공급했습니다. 계산해 보니 이미 지불한 것이 18만여 관인데, 회계와 산음 두 현이 9만여 관을 차지하고 보니, 그 나머지 여러 현들이 다시 누락된 사람들의 수를 보고해 오면 그것에 근거해 별도로 고르게 공급할 수 있는 돈이라고는 모두 1만여 관에 불과해 겨우 쌀 3, 4천석을 살 수 있을 뿐입니다.

遂將昨來所蒙給降會子等錢, 除五萬貫諸州申到已無見在, 更留五萬準備諸州取撥外, 卽計逐縣大小及已得錢米多寡, 等第均給. 計已支費十八萬餘貫, 而會稽山陰兩縣自占九萬餘貫, 其餘凖擬諸縣申到再箚人數別行均給者, 共不過一萬餘貫, 計可得米三四千石而已.

 

일의 형세가 급박해 염사전 안에서 9만여 관을 급히 전용하고, 소흥부에 첩지를 내려 쌀을 사들이라고 해도 겨우 2만여 석을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두 현에서 다시 보고하여 첨가된 인원수로 계산해 보면, 22,3천석의 쌀이 형세상 어찌 여러 현의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나누어질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두 현이 얻은 것도 한 집안에 하루 1, 2되에 불과하며, 한 사람에게는 하루 한두 홉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은 모두 헐떡이는 숨통을 겨우 구차하게 늘일 수 있을 뿐,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다시 한 달이 지난다면 먹을 것이 없는 자가 필히 굶어죽을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나마 먹을 수 있는 사람들 역시 야위고 피곤해서 스스로 생명을 보존하지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구휼을 위해 쌀을 내다파는 것 역시 315일에 이르게 되면 끝나서 이미 식량을 공급할 수 없게 될 텐데 보리가 익는 것은 오히려 4월입니다. 보리가 익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잠시 제쳐놓고 논하지 않더라도, 진휼이 끝나고 보리가 익기까지는 아직 반 달 정도가 남았는데 그들을 구휼할 방도가 없습니다.

事勢危迫, 不免逐急於鹽司錢內借撥九萬餘貫, 牒紹與府措置運糴, 然亦僅可得米二萬餘石而已. 以兩縣再箚所添計之, 則此二萬二三千石之米, 其勢豈足以均及諸縣之人 然而兩縣所得, 一家不過日得一二升, 一口不過日得一二合而已. 此皆僅足以苟延喘息, 而不足以救其死命. 竊料更加旬月, 未論不得食者必致殍死, 而此得食之人亦有羸困不能以自存者矣. 又况當來計料糶濟止到三月十五日便行住罷, 已不能給, 而麥熟猶在四月. 麥之熟否姑置未論, 止計住罷至麥熟, 猶有半月餘日, 無以接濟.

 

소흥 한 군의 기아 때문에 신은 부임하기 전에 이미 쌀 14만석과 돈 9만관을 하사받았습니다. 지금 신이 청해서 또 이처럼 두터운 성은을 입었는데도, 신의 지혜와 술책이 모자라 변통하지 못했고, 그 시행한 것은 단지 이와 같을 뿐입니다. 가만히 현재의 상태를 살펴보면, 구휼한 명목만 있고 구휼한 실제는 없으며, 훗날의 결과를 기다려보면, 이미 다스린 지 수개월이 지남에도 10여 일 동안 버려지는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폐하께서 국가를 운영하며 모아둔 10만여 관을 쓰기만 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는 폐하의 마음에 걸맞지도 못했습니다. 진실로 신이 공적을 이루지 못한 것은 죽음으로도 그 책임을 충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夫以紹興一郡之饑, 自臣未到, 已蒙撥賜米十四萬石, 錢九萬貫. 至臣有請, 又蒙聖恩如此其厚, 而臣智術淺短, 不能變通, 其所施爲, 止於如此, 竊恐考之於今, 則徒有賑救之名而無賑救之實, 要之於後, 則旣已養之數月之久, 而不棄之旬日之間, 徒費陛下軍國之儲數十大萬, 而不足以稱陛下救民水火之心, 固臣之無狀, 死不償責.

 

쌀의 양은 줄이고 상은 더해주라는 것에 대해서도 비록 이미 교지를 얻어 두루 행하고는 있지만, 작년에 쌀을 내어 구휼을 도운 사람들에 대해서 아직도 포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도첩과 쌀을 교환하는 것도 비록 이미 교지를 얻어 아래로 시달했지만, 쌀의 수량이 너무 많아서, 도첩이 한 도에서는 전 1500에 해당한다고 하니, 이 때문에 지금에 이르도록 응모하는 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폐하께서 백성을 근심하고 가련히 여기며, 널리 베풀어 뭇사람을 구하려는 끝없는 마음이 혹 유사들의 구차하고 인색한 의론에 저애되어 아래에서 다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근심됩니다.

至於減米增賞, 雖已得旨通行, 而去年獻助之人至今未蒙推賞. 度牒換米, 雖已得旨給降, 而米數太多, 度牒一道計當錢千五百緡, 以此至今皆未聞有應募者. 則此竊恐陛下憂勞惻怛博施濟衆廣大無窮之心, 或格於有司拘攣纖嗇之議而不得以下究也.

 

신은 이미 수신인 왕희려와 같은 장계로 아뢰어, 폐하께서 가련히 여겨서 다시 회자 30만관을 전용해 주시고, 지금 사들인 쌀 5,6만석을 융통해서 백성들에게 구휼용으로 내다팔게 조치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여기에서 그 이유를 자세히 갖추어 아뢰고자 합니다. 작년에 본 로에서 포상해야 한다고 아뢴 사람들은 유사에게 특별히 조칙을 내려 곧장 포상해 주시고, 고명을 내려 본 주로 넘겨서 수신으로 하여금 관아로 불러 공경히 받게 하시고, 다시 관사로 하여금 보고토록 해서 한갓 문서로만 그치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臣已與帥臣王希呂同狀奏聞, 欲望聖慈更賜憐憫, 再行借撥會子三十萬貫, 及今糴米五六萬石, 通融接續, 措畫糶濟, 而復於此詳具其所以然者以聞. 其去年本路所奏合推賞人, 則乞特詔有司直與推賞, 給降告命, 付之本州, 令守臣喚上當廳祗受, 不須更令官司保明, 徒爲文具.

 

도첩 역시 값을 반으로 줄여 150석 정도로 낮춰주십시오. 그리고 300본 정도를 다시 내려 보내서 소흥부에 맡겨 신과 왕희려가 함께 주관토록 해 주십시오. 쌀과 도첩을 교환할 때 도첩에 그 이름을 바로 써준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기꺼이 따를 것이며, 응모하는 자도 많을 것입니다. 무릇 이 세 가지 일이 시행된다면 이 도의 굶주린 백성들은 집마다 각각 하루에 한두 되의 쌀을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며, 한 사람당 하루에 각각 쌀 두세 홉을 더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매 현마다 누락된 인호와 떠돌다 생업에 복귀한 사람들을 계속 보고하더라도 또한 점차 수습할 수 있을 것이며, 굶어죽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백성을 근심하고 가련히 여기며, 널리 베풀어 뭇사람을 구하려는 끝없는 폐하의 마음을 이미 다 헤아리고, 초야의 어리석은 신 또한 폐하의 위광에 의지해서 굶주리는 백성의 생명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신의 계책은 이미 바닥이 나 결국 제 임무를 저버리게 될 것입니다. 삼가 부임한 다음부터 밤낮으로 고민하여 정신이 다 고갈되었고, 사지는 약해져서 때때로 마비되곤 합니다. 생각건대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지하에서 백만이나 되는 굶주린 귀신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제 죄를 용서하시고 신의 파면을 허락하셔서, 이런 원한 가득한 책임에서 벗어나 고향에 뼈를 묻을 수 있게 해 주신다면 또한 천만다행이겠습니다. 가슴을 찢어 피를 토하며 폐하의 위엄을 범하였으니 두렵고 떨리는 것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其度牒亦乞裁減半價, 只作百五十石. 仍再給降三百本, 付紹興府, 令臣與王希呂同共掌管. 交到米斛, 卽與書塡, 則人必樂從, 應募者衆. 凡此三者, 儻蒙施行, 庶幾此都饑民逐家一日各添得米一二升, 逐口一日各添得米二三合, 而逐縣續有箚到漏落戶口及流移歸業之人, 亦得以漸次收拾, 不至饑死. 旣有以卒究陛下憂勞惻怛博施濟衆廣大無窮之心, 而草野愚臣亦得以憑藉威靈, 不負饑民之命, 千萬幸甚如其不然, 則臣計已窮, 終必仰孤任使. 伏自到任以來, 朝夕憂懼, 精神耗竭, 四肢緩弱, 時復麻痺, 竊恐一旦溘然, 無以見百萬餒鬼於地下. 欲望聖慈赦其罪戾, 許臣罷免, 使得脫此寃債, 歸骨故山, 亦千萬幸甚. 披心瀝血, 干冒宸嚴, 臣無任恐懼戰栗之至.

 

 

구황에 마땅한 일에 관해 아뢰는 장계 奏救荒事宜狀

 

신은 폐하의 성은을 입고 절동제거에 임명되어 폐하의 뜻을 받들어 구휼을 행하였으며, 임소에 도착해서는 밤낮으로 고심하여 폐하의 애타는 뜻에 부합하는 방도를 찾고자 했습니다. 살펴보건대 절동의 여러 주들은 모두 흉년이 들었으며, 태주와 명주도 수확이 가장 좋다고는 하지만 약간의 손실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소흥부의 기근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수준입니다. 신이 (소흥부의 기근을) 눈으로 직접 본 바로는 지난 해 남강의 흉년은 오히려 풍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진제와 구휼이 이미 목전의 급선무이니, 일의 형편을 마땅히 먼저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臣蒙恩將命浙東, 奉行救恤, 到官日夕考究, 求所以上副焦勞之意. 竊見浙東諸州例皆荒歉, 明號爲最熟, 亦不能無少損. 而紹興府之饑荒, 昔所未有. 臣以目所睹, 回思去歲南康之歉, 猶謂之樂歲可也. 賑救旣在所急, 事體宜先奏聞.

 

지금 소흥의 여덟 읍 가운데 여요상우는 곡식이 조금 익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신창산음회계의 손실은 모두 7080% 정도이고, 승현은 한해를 입은 것이 90%에 이르며, 소산제기는 수해와 한해가 잇달아 수확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今紹興八邑, 餘姚上虞號爲稍熟, 然亦不及半收. 新昌山陰會稽所損皆七八分, 嵊縣旱及九分, 蕭山諸曁水旱相仍, 幾全無收.

 

현재 진휼을 조금 늦추어도 괜찮을 여요상우를 제외하고, 또 소산 등의 6현을 논해보면 대략 그 수확이 예년의 1/10에 불과합니다. 앞서서 조정에서 내려준 쌀 147,000석과 돈 90,000관 및 본 사의 전관이 조정에 품신하고 구주무주에서 융통해서 전용한 의창전 38,0705100, 명주의 의창미 5,000석의 수목이 적지 않고, 주군에서도 밤낮으로 진제에 힘써 관리 가운데 조금이라고 사태를 알아차린 자들은 모두 바삐 뛰어다니느라 겨를이 없으며, 비록 남의 집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사대부라 할지라도 감히 편안히 있지를 못하니, 이 일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고는 말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굶주림을 구휼했다는 실적은 없고, 민정은 시끄러우며, 날이 갈수록 상황은 심해져서, 하호만이 끼니를 거르는 것이 아니라, 사자와 환족, 3등의 인호들 가운데도 스스로 걸인의 대열에 끼고자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들의 몰골을 살펴보면 정말이지 버려둘 수 없습니다.

今除餘姚上虞稍似可緩外, 且論蕭山等六縣, 約其所收, 不過十一. 先次朝廷撥米一十四萬七千石, 錢九萬貫, 幷本司前官申朝廷, 於衢婺州通融, 撥到義倉錢三萬八千七十五貫一百文, 明州義倉米五千石, 數目非不多 : 州郡日夕惟賑濟是務, 官吏稍解事者, 皆奔走不暇, 雖寄居士大夫, 亦不敢寧處, 不可謂不留意, 然終未有能救饑莩之實, 民情嗷嗷, 日甚一日, 不獨下戶乏食, 而士子宦族第三等人戶有自陳願預乞丐之列者. 驗其形骸, 誠非得已.

 

아울러 가을부터는 농토와 집을 팔고, 뽕나무를 베어내며, 처자식과 소를 내다 파는 등 이것 저것 다하면서도 값의 고하는 따지지 않고 팔 수만 있다면 다행으로 여깁니다. 전당포엘 가도 전당포 주인에겐 돈이 없고, 빛을 내려 해도 상호에겐 능력이 없으며, 공인들은 기술을 쓸 곳이 없고, 장사꾼들은 물건을 펼쳐놓아도 팔리지가 않습니다. 물고기들은 이미 오래전에 씨가 말랐고, 초근목피도 다 파헤쳐 사라졌으며, 백만의 백성들이 굶주림으로 말라비틀어지고, 아침에는 저녁을 기약하지 못합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옷으로 몸조차 가리지 못하고, 얼굴에는 사람의 기색이라고는 없으며,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아이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면서 뒹굴며, 여기저기 무리를 이루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괴롭고 마음 편치 않게 만들어 차마 정면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이미 죽은 자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兼自秋來, 賣田拆屋, 斫伐桑柘, 鬻妻子貨耕牛, 無所不至, 不較價之甚賤, 而以得售爲幸. 典質則庫戶無錢, 擧貸則上戶無力, 藝業者技無所用, 營運者貸無所售, 魚蝦螺蚌久已竭澤, 野菜草根取掘又盡, 百萬生齒饑困支離, 朝不謀夕. 其尤甚者, 衣不蓋形, 面無人色, 扶老携幼, 號呼宛轉, 所在成群, 見之使人酸辛怵惕, 不忍正視. 其死亡者蓋亦不少.

 

신이 그 까닭을 깊이 살펴보니, 바로 소흥부는 땅이 협소하고 인구는 조밀해서, 생산이 인구를 충당하기에 부족하여, 곡식이 제대로 익은 해에도 옆 군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으니, 절서 지방에 미곡이 많은 것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또 화매전이 지나치게 많아 거부들이 없고, 수해와 한해를 잇달아 당하여 잠맥도 잃어버렸으며, 조금이나마 쌓아두었던 곡식도 이미 초봄에 진제용으로 내다팔아서 남은 것이라곤 없습니다. 상호들이 먼저 이미 곡식이 떨어졌기 때문에 세민들은 쳐다볼 곳도 없습니다. 낭패스럽고 급박한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臣深究其所以然, 正緣紹興地狹人稠, 所産不足充用, 稔歲亦資鄰郡, 非若浙西米斛之多. 又以和買偏重, 無巨富之家, 連遭水旱, 兼失蠶麥, 些小積穀, 春首勤糶, 無有存者, 上戶先已匱乏, 是以細民無所仰給, 狼狽急迫, 至於如此.

 

대개 흉년으로 수확 못한 곡식이 50% 이하이면 이럭저럭 조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50%의 곡식으로 전체 인구를 먹이면서, 지주들에게 권해서 곡식을 조금 내어놓게 하면 여전히 목숨은 부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텅 빈 군과 잃어버린 곡식이 90% 정도이기 때문에 10%의 곡식으로 열배나 되는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호구가 너무 많고, 모자란 것이 광대해서, 백성을 옮기거나 곡식을 옮겨 보조할 수도 없습니다.

大抵荒歉自五分以下猶可措置, 蓋以五分之粟絡十分之人, 稍行勸分, 便可苟活. 今以空虛之郡而荒及九分, 則一分之粟旣不能給十倍之人, 而戶口甚多, 所闕浩瀚, 亦有非移民移粟所能補助者.

 

신이 직접 보고 생각한 것, 그리고 사대부 및 부로들과 상의한 내용은 이와 같습니다. 개간된 농토와 거두어들일 세금의 수를 다시 요약해서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요상우를 제외하고, 현재의 농토로 세입을 계산해 보면, 6현의 농토는 200만무 정도인데, 매 무당 쌀 2석이 납니다. 따라서 일년의 세수는 400만 정도입니다. 또 현재 다시 조사된 산음 회계 두 현의 인구수로 6현의 인구수를 대략 계산해 보면, 산음회계의 호구 수는 제기승현의 절반 정도이고, 신창소산과는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많은 데를 덜어 적은 데에 보태면, 두 현이 6현의 1/4을 차지합니다. 지금 산음회계의 4, 5등의 굶주리는 호수를 계산하면 34만구 정도이고, 조금은 자급할 수 있는 4등호와 상3등호를 거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6현의 빈민 통계는 약 130만구 정도이니, 상호와 합치더라도 140만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풍년의 소출이 400만석의 쌀이니, 상공할 것과 주에서 쓸 것을 제외하고, 140만의 백성을 먹이려면, 하루에 2승의 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른바 풍년에도 여유분이 없다는 말은 믿을만하고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臣所目見心思, 兼詢訪士夫父老者旣如此, 復約墾田收租之數以證之. 除餘姚上虞外, 今將田畝計其歲入, 六縣爲田度二百萬畝每畝出米二石, 計歲收四百餘萬. 又將今再抄箚山陰會稽縣口數以約六縣之數, 則山陰會稽丁口半於諸曁嵊縣, 而比新昌蕭山相去不遠, 絶長補短, 兩縣當六縣四分之一. 今抄箚山陰會稽四等五等貧乏之戶計三十四萬口, 四等之稍自給及上三等者不預焉, 則統計六縣之貧民, 約須一百三十萬口, 倂上戶當不下百四十萬. 計稔歲所歛四百萬石米, 除上供及州用外, 養百四十萬之生齒, 日計猶不能及二升之數, 則所謂樂歲無餘者, 旣信而有證矣.

 

6현이 경감된 퍼센트를 계산해 보면, 올해 민간의 수확은 예년의 1/10에 불과하니, 수확하지 못한 쌀이 약 260만석 정도이고, 거둔 곡식은 40만 석에 불과합니다. 부족한 수목이 이처럼 크니 이른바 도울 방책이 없다는 것 역시 믿을만하고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又約六縣所蠲放分數以計, 今歲民間所收不過十分之一, 則所不收之米約計二百六十萬石, 而所收止四十萬石. 闕乏數目如此浩瀚, 則所謂補助無策者, 又信而有證矣.

 

현재 소흥부가 앞서 얻은 돈 128,075100문과 신이 얻은 30만관에서, 여러 주가 이미 없다고 보고한 5만관과 또 여러 주에 나눠주기 위해 보류한 5만관을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쌀은 82,000여 석에 불과합니다. 전항의 쌀 14만석을 통틀어 계산해 보아도 전답의 수확량 가운데 부족한 부분의 1/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현재 조치한 것에서, 소산현이 겨우 반 달여 동안 공급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5현의 호구수로 계산해 보면, 하루에 얻을 수 있는 양은 진실로 1, 2승에 불과합니다. 만일 인구수로 계산한다면 하루에 얻을 수 있는 양 또한 1, 2합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것으로는 그들로 하여금 폐하께서 근심하고 구휼하시며, 차마 좌시하지 못한다는 뜻 정도를 알게 하기에 충분할 뿐입니다. 만일 이런 것을 가지고 곧 죽어갈 생명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진실로 기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130만 빈민들이 모두 관사만을 쳐다보게 하고, 한 사람마다 1승씩 공급하려 한다면, 보리가 익기 이전 90여 일 동안 벼 100만석이 필요할 것이니, 그 또한 조정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今將紹興府先所得錢一十二萬八千七十五貫一百文, 幷臣所得三十萬貫, 除五萬貫諸州申到已無見在, 又掯留五萬貫均給諸州外, 不過共折米八萬二千餘石, 幷前項米一十四萬石總而計之, 不及其田租所闕十分之一. 今來措置, 除蕭山僅能口給半月外, 其餘五縣以戶計之, 日之所得, 固已不過一二升. 若以口計之, 則日之所得又不過一二合. 是僅足以使之皆知聖主憂勞憫恤不忍坐視之意而已. 若謂如此而便足以救其必死之命, 則固難指準. 然遂欲以百三十萬之貧民盡仰官司, 口以升計, 麥秋之前九十餘日, 當爲粟百萬石, 則亦非朝廷今日事力之所及也.

 

그러나 신이 생각하건대, 유사의 힘은 진실로 한도가 있고, 천지의 부모처럼 만백성을 덮고 길러주려는 폐하의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유한한 힘으로 말하자면, 구호의 절절함과 내려주신 돈과 곡식의 많음은 진실로 오늘날보다 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폐하의 끝없는 마음으로 논한다면, 어찌 이 나라가 얻은 수십만의 곡식으로 반드시 수십만의 생명을 구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차마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면서 눈앞에서 굶어 쓰러지는 것을 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은 감히 제가 보고 듣고 살펴본 실제 상황의 본말이 이와 같음을 차례로 아뢰고, 별도로 시행해야 할 일의 목록을 갖추어 천자께 아뢰는 것이니, 폐하께서 불쌍히 여겨 처리해 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뜻은 급하고 인정은 절실해서 말에 두서가 없으니, 신은 죄스럽고 황공한 마음을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然臣竊謂有司之力誠有限量, 而聖主天地父母覆載生育之心則無終窮. 以有限之力言之, 則救護之切, 撥賜之多, 誠若不可以有加於今日. 然以陛下無窮之心論之, 則豈不欲使此邦更得數十萬石之粟, 以必救數十萬人之命? 其忍直以無可奈何處之, 而熟視其饑餓顚仆於前乎? 故臣輒敢歷敍其所見聞考驗之實本末如此, 而別具施行事目以干聖聽, 惟陛下哀憐財幸. 意迫情切, 言無倫次, 臣無任皇恐俟罪之至.

 

 

소흥부 지사 밀극근이 관미를 훔친 것에 대해 아뢰는 장계 奏紹興府指使密克勤偸盜官米狀

 

소흥부 산하 여러 현들의 작년 가뭄 피해를 조사해 보니, 굶주리거나 떠도는 백성들이 지금껏 끼니를 거르고 있습니다. 일전에 폐하의 성은을 입어 미곡을 내서 구휼을 하였으며, 소흥부에서는 지사보의랑 밀극근을 평강부에 파견하여 쌀 13,000석을 청해서 상우신창승현에 진제하라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照對紹興府諸縣去歲旱傷, 饑困及流移之民見今闕食, 昨蒙聖恩, 撥下米穀賑濟, 紹興府遂差指使保義郞密克勤往平江府請取米一萬三千石, 分下上虞新昌嵊縣交卸賑濟.

 

이번 달 7일에 신이 속현들을 방문하다 승현에 이르러 점검해 보았는데, 승현 주부적공랑 섭재의 보고에 의하면, “본 현(승현)에서 삼계진으로 사람을 보내 밀극근이 청한 진제미 1만석을 받았는데, 그들을 따라 본 부의 통판승의랑 오진에게 용기(곡두)를 가지고 가서 양을 재보게 하니, 매 곡 당 15합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밀극근이) 되질하는 사람(두자) 섭길 등을 직접 데리고 와 자기 멋대로 사사로운 용기()를 써서 평미레질을 했는데, 쌀의 양(승합)을 줄이려는 데 의도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쌀에 쌀겨와 진흙을 뒤섞고, 도리어 자신이 본 부의 지사라는 것을 내세워 사람들을 억눌러서, 쌀을 싣는 뱃사공들의 작폐를 비호하고자 했습니다. 이 때문에 감히 쌀을 주고받지 못하였으니 조치를 취해 달라고 했습니다.

今月初七日, 臣巡歷到嵊縣點檢, 據嵊縣主簿迪功郞葉梓申, 承本縣差往三界鎭交量密克勤請到賑濟米一萬石, 依應躬親將本府通判承議郞吳津較量斛斗交量, 每斛比少米一升五合. 又令親隨斗子葉吉等徑自用斛行槪, 意在虧減升合. 兼其米盡用糠泥拌和, 却乃倚恃本府指使, 對衆抑捺, 意欲庇護船梢合干人作弊. 緣此未敢交量, 乞施行.

 

또한 본 현의 토호인 황언 등이 줄지어 호소한 장계에 의거하면, “밀극근이 쌀을 주관하였는데, (민호들이) 통보를 받고 앞에 와서 쌀을 받아 옮길 때, 아울러 못된 짓에 빠져 쌀겨와 진흙을 뒤섞었으며, 또 그들이 사용하는 용기가 진제를 담당하는 관의 용기와 달라, 나중에 쌀 부족한 것이 누적되어 두루 미치는 것이 곤란합니다라고 했습니다.

及據本縣土豪黃彦等列狀陳訴, 密克勤押到米, 蒙告示前去般擔, 幷係濕惡, 夾雜糠泥, 及每斗不應本場斛斗, 去後折欠負累不便.

 

신이 진제미로 도착한 쌀을 구하여 그 상태를 살펴보니, 쌀에 쌀겨와 흙이 많이 뒤섞여 있고, 되질하는 사람인 강승을 불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기로 양을 재어보니, 매 석 당 9승이 모자랐습니다. 또 그 내용물 중에 한 말을 체로 치고 까불었더니, 그 안에 진흙과 쌀 부스러기가 12합이 있었고, 아울러 쌀겨 12합이 있었습니다. 밀극근이 주관한 13천석 가운데 부족분과 불순물을 섞은 수를 통틀어 계산해 보면 쌀 4,160석이 됩니다. 신이 삼가 생각건대, 폐하의 자애로움이 하늘을 뒤덮고, 굶주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어, 쌀을 하사해 주시니, 덕의가 더할 나위 없이 깊고 두텁습니다. 그런데 신이 보기에 승현 일대의 굶주린 백성들은 여이고 수척하여 길가에서 나뒹굴며, 울부짖는 소리는 차마 들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한 사람들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밀극근이 감히 관의 쌀을 이처럼 도적질하고 해악을 끼쳐서,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두루 실질적인 혜택을 입을 수 없게 한 것은 인정에 비춰보아도 심중하고 사리에도 해가 되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첩지를 보내 본 부의 통판인 승의랑 오진에게 시급히 승현의 표준용기로 양을 헤아려 본 현의 진제를 시행하도록 하고, 이어 밀극근을 구류하여 조치를 기다리게 하였으며, 또한 소흥부에 첩지를 보내 감옥에 안치하고 기소장과 죄의 실상에 따라 법대로 조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외에 바라건대, 폐하께서 먼저 밀극근에게 중하게 조치를 취하여, 소흥부에 안치하라는 명령을 조속히 내리시고, 도둑질한 쌀을 추징하여 관으로 보내 납입하게 하시면, 거의 진제에 부응하게 될 것입니다.

臣尋取到米樣看視, 其米多係糠土拌和, 遂喚到斗子康勝, 對衆用斛量計, 每石少欠九升. 於內量出一斗篩簸, 內有泥土碎米一升二合, 幷糠一升一合. 通約所押一萬三千石內折欠拌和之數, 計米四千一百六十石. 臣竊惟陛下聖慈天覆, 矜憫饑民, 給賜米斛, 德意至爲深厚. 然以臣所見, 嵊縣一帶饑餓之民 羸困瘦瘠, 宛轉道路, 呼號之聲不可忍聞. 其不免於死亡者, 已不勝計. 其密克勤乃敢輒將官米如此偸盜作踐, 使饑餓之民不得霑被實惠, 情理重害, 不可容恕. 除已牒本府通判承議郞吳津逐急用嵊縣斛斗交量, 發下本縣賑濟, 仍拘管密克勤, 聽候施行, 及牒紹興府送獄根勘, 取見著實, 依法施行外, 欲望聖慈先將本人重作施行, 仍令紹興府疾速根勘, 監追所盜米斛送納入官, 庶副賑濟.

 

 

관할 지역을 돌고서 마땅히 아뢰고, 청해야 할 일들을 아뢰는 장계 奏巡歷合奏聞陳乞事件狀

 

 

신이 정월 4일에 소흥부를 출발하여, 잇달아 관할 지역을 돌아보았는데, 마땅히 아뢰고 청해야 할 일들이 있사오니, 지금 아래의 항목을 갖추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臣自正月四日起離紹興府, 迤邐巡歷, 有合奏聞陳乞事件, 今具下項.

 

바라건대 폐하께서 신이 앞서 올린 두 건의 주장과 지금 아뢰는 것의 내용을 검토하시어, 다시 한 번 관회 3십만 관을 내려주시고, 과거에 쌀을 내어 민호를 구제하는 데 힘이 되었던 자들에게 조속히 상을 주시고, 도첩의 가격을 되는 대로 줄여주시면, 여유자금이 조금 넉넉하게 되어, 관리들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에 다시 손쓸 겨를이 있을 것입니다. 저수지의 둑을 손보는 것 또한 한 현의 신년 농사에 큰 이해 관계가 있습니다. 아울러 제가 청한 대로 조속히 조치를 취해 주신다면 크게 다행이겠습니다.

欲望聖慈檢會臣前兩狀所奏及今所陳事理, 再賜官會三十萬貫, 速行舊歲之賞, 痛減度牒之價, 庶幾儲備稍豐, 官吏更敢放手救活饑民. 其作捺湖埂, 亦係一縣新年農事利害之大者. 幷乞特依所乞, 早賜給降, 不勝幸甚

 

1. 제가 6일에 삼계진에 도달했는데, 굶주려 기력이 쇠잔해진 사람이 자못 많았고, 이미 사망한 사람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7일에 승현에 이르고, 8일에는 승현에 속한 마을인 청화 부락과 효절 부락에 당도하였는데, 기력이 쇠잔해진 사람과 사망한 사람을 더욱 많이 목격하였으며, 굶주리고 여윈 것이 더욱 심했습니다. 그곳에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두가 8, 9월 이래로 지금까지 끼니를 굶고 있다고 하며, 그 동안 사망한 사람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고, 길거리에서 굶어죽는 사람을 서로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니 너무나도 불쌍합니다. 신이 삼가 이미 두 번씩이나 금전을 지원받아 그 중에서 5천관을 소흥부 통판인 오진에게 보내서, 지금 승현신창현삼계진 일대의 병들고 고통받는 백성들을 수습하고 구휼하였는데, 얼마간 안정을 얻게 되어 모조리 죽고 쇠잔해지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산이 적고, 백성들을 온전히 구제할만한 비용으로는 부족하니, 폐하께서는 조속히 돈을 더 내려주시어 구제해 주실 것을 바라옵니다.

臣初六日到三界鎭, 見有餓損人口頗多, 其死亡者亦已不少. 七日至嵊縣, 八日至本縣淸化孝節鄕, 所見尤多, 饑羸尤甚. 據其稱說, 皆自八九月來闕食至今, 其死亡者不可勝數, 道殣相望, 深可憐憫. 臣謹已再於昨蒙給賜錢內取撥五千貫 付紹興府通判吳津, 今收拾賑給嵊縣新昌及三界鎭一帶病困之人, 庶幾稍獲安存, 未至一向死損. 但恐錢少, 不足支用, 伏乞睿照, 早賜接濟.

 

1. 신은 9일에 제기의 경계에 들어섰는데, 그곳의 동남 방향 일대는 산악지형이고, 병들고 기력이 쇠잔한 사람의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작년에 거두어 들이는 것이 보잘 것 없어서 이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좌향관의 말을 들어보면, 현의 북쪽은 호수와 저수가 많은 지대이고, 소산에 연접해 있는데, 병들고 굶어죽는 자가 많아서 그 수가 승현보다 적지 않다고 합니다. 신이 재차 돈 5천관을 내고, 소흥부 통판인 유오에게 보내, 제기소산 일대의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수습하게 했습니다. 또 진조미를 내도록 권유한 상호들이 아직 내어놓지 않은 쌀의 양을 자세히 조사해 보니 오히려 4천여 석 정도가 있어, 이미 통판인 유오와 본 현의 관리에게 첩지를 보내 장으로 갈 것을 재촉하고, 백성들에게 더욱 보태도록 했습니다. 또 매 가구마다 형제가 없는 장정을 제외하고 다시 한 사람 당 얼마간의 쌀을 사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인호들이 하소연한 것이 있었는데, 관전을 빌려주고 빨리 저수지 둑을 개보수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신이 일찍이 수신인 왕희려와 함께 장계를 올려 쌀을 내려주시라고 청했는데, 아직 응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 철을 놓치고 이모작 보리의 침수 피해를 입게 되면,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일 둘 다 망칠 것이 염려되어, 이미 내려 주신 돈 가운데서 급히 3천관을 전용하여 저수지 둑을 수리했습니다. 모두 세 건의 돈과 쌀은 비록 이미 지출했지만, 오히려 액수가 적어 비용을 대는 데 부족할까 염려됩니다. 엎드려 빌건대 굽어 살피시고, 조속히 돈과 쌀을 하사하시어 백성을 구제하시기 바랍니다.

臣初九日入諸曁界, 所有縣之東南一帶山鄕, 所見病損人數絶少. 問之鄕人, 云是去年稍得收成去處. 却見令佐鄕官稱說縣北湖鄕一帶接連蕭山, 病死人多, 不減嵊縣. 臣亦再撥給賜錢五千貫, 付紹興府通判劉俣, 令收拾諸曁蕭山病困之人. 及根刷到勸諭上戶賑糶米未曾出糶之數尙有四千餘石, 已牒通判劉俣及本縣催促赴場, 增添人戶. 每戶除單丁外, 更與一口收糴. 及有人戶陳訴, 乞借官錢, 及早修捺湖埂. 緣臣曾與帥臣王希呂連狀奏乞給降米斛, 未蒙應副. 今恐失時, 浸損二麥, 兼廢農工, 已逐急於給賜錢內借撥三千貫應副. 所有三項錢米雖已支撥, 尙恐數少, 未足支用. 伏乞睿照, 早賜拯濟

 

1. 신이 13일에 무주의 경계에 들어섰는데,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이어서 계속 아뢰겠습니다. 대저 무주의 재해는 소흥부에 비해서 약간 가볍기 때문에 해당 주현에서 취한 조치 또한 차츰 윤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굽어 살피소서.

臣十三日入婺州界, 以後事體, 績具奏聞. 大抵婺州災傷比之紹興府分數頗輕, 州縣措置亦似稍有倫理, 伏乞睿照.

 

 

상호 주희적이 진조에 불복한 것에 대해 아뢰는 장계 奏上戶朱熙績不伏賑糶狀

 

신이 속현들을 방문하다 무주의 경계에 도달했을 때, 길거리의 굶주린 백성은 많이 적었습니다. 본 주에서는 원래 내려준 미곡을 사용하고, 또한 상호에게 미곡을 내도록 권유하여, 시장을 열고 그것을 팔아 구휼하였으며, 날마다 죽을 쒀 성시와 향촌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공급해서 역시 구황의 가닥이 이미 많이 잡혔습니다. 신은 무주에 들어온 이래로 매번 쌀을 사고파는 시장을 지날 때마다 반드시 직접 살펴 그 문서들을 검열하고 도량형을 점검해서 조금이라도 속이는 폐단이 있거든 즉각 징계했습니다.

臣巡歷到婺州界, 一路饑民頗少. 本州見將元撥賜米及勸諭到上戶米斛置場糶濟, 逐日煮粥, 以給城市鄕村艱食之人, 亦已頗有倫緖. 臣自入境以來, 每過米場, 必親臨視, 閱其文曆, 校其升斗, 小有欺弊, 卽行懲戒.

 

14일에는 지명이 십리패로 불리는 금화현 효순향의 12도에 도달했는데, 거기에는 주이십일이라는 쌀 시장이 있었으나, 이 시장에는 쌀 파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인호인 유구 등이 줄이어 슬피 하소연한 장계에 의거하면, “본 향에서 생산된 쌀은 부호인 주현위에게 다 팔았는데, 작년에 흉년이 들었을 때, 본 현의 역두에는 본 도의 주이십일 쌀 시장에서 주현위의 쌀을 사서 구휼을 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구 등이 매일 가보았는데, 쌀이 도착하지 않아, 한 마을의 백성이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현위는 상부에서 관리가 내려온 것을 보고는, 갑자기 길거리마다 방을 붙이고, 쌀을 내다팔고 죽을 나눠준다고 사칭했다고 합니다.

至十四日, 到金華縣孝順鄕第十二都地名十里牌, 有朱二十一米場, 本場卽無人在彼糶米. 據貧乏人戶兪九等列狀哀訴, 本鄕田産盡賣與豪戶朱縣尉, 去年荒旱, 本縣給曆, 令就本都朱二十一米場糴朱縣尉米養濟 且九等每日往來, 幷不曾般米到來, 致一村人民饑餓. 其朱縣尉爲見行司到來, 却於沿路散榜, 詐稱糶米施粥.

 

또한 김이 등이 하소연 한 것에 의거하면, “주현위는 비록 14도에서 쌀을 내다 팔았지만, 주이십일 시장과는 거리가 20여 리나 됩니다. 주현위는 자기 수하인 허호를 시켜서 사사로운 용기를 쓰게 하고, 물먹은 쌀싸라기잡곡을 섞었으며, 관에서 공급한 인호의 역두를 멋대로 고쳐서, 7승은 5승으로 줄이고, 5승은 4승으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역두를 거둬들이곤 잘 돌려주지 않았으며, 온갖 방법으로 눌러막아 하소연할 데가 없다고 합니다.

及據金二等陳訴, 朱縣尉雖在十四都糶米, 卽與朱二十一場隔遠二十餘里. 本人令幹人許浩用使私升及濕潤粞碎糙米, 及將人戶官給曆頭擅自批鑿, 每七升減作五升, 五升減作四升, 又有收下曆頭不肯付還, 百端抑遏, 無處告訴.

 

또한 인호인 주양, 주자지 등이 하소연한 장계들을 의거하면, “주현위가 저당 잡은 땅을 사들일 때 해마다 화리를 거둬들이고도, 그 토지에 해당하는 세금을 잘 나눠 내지 않고, 모두 땅을 팔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에게 대신 세금을 납부하게 했다고 합니다. 신이 관리에게 명하여 주현위를 잠시 불러서 물어보려 했는데, 그는 세도가 당당한 것만 믿고서 앞에 나오기를 거부했습니다. 마침내 금화현의 현위에게 맡겨 붙잡아 오라고 했는데, 현위인 적공랑 육휼의 보고에 의하면, 마땅히 주현위를 쫓아가 잡아들이려고 했지만, 그놈의 세도가 지극히 높아서 사는 집이 300여 간이나 되고, 세도가 당당한 것만 믿고서, 집에 꼭꼭 틀어박혀 앞에 나오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하인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었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합니다. 신이 또한 이미 본 주에 그를 잡아들이라고 명을 내렸지만 역시 잡아들이지 못했습니다.

又據人戶周楊朱子智等衆狀告訴, 朱縣尉典買産業, 累年白收花利, 不肯批割物力, 皆系出産之家抱空代爲送納. 臣尋令人暫喚朱縣尉取問, 本人倚恃豪强, 不伏前來. 遂委金華縣尉追發, 據縣尉迪功郞陸遹適申, 依應追喚朱縣尉, 系極等上戶, 居屋三百餘間, 倚恃豪勢, 藏隱在家, 不伏前來 竊緣本人家僕叢衆, 全無忌憚. 臣又已行下本州追發, 亦復不到.

 

제가 수직랑 벼슬에 있는 주현위 곧 주희적을 살펴보니, 그는 애초에 재물을 바쳐서 관직을 얻었는데, 전답과 재산은 한 군을 뒤덮고, 권세 있고 권력 있는 자들과 결탁하여, 주현을 능멸하고, 방자하여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본 현은 과거에 제 12도에 쌀을 내어 팔만한 상호가 없었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주희적에게 나눠줘서 제 12도 주이십일가에 장을 열어 쌀을 팔도록 했는데, 주희적이 감히 현의 정책을 기만하고 능멸하여 쌀을 내어 파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제가 속현들을 방문하다 그곳에 도착하자, 또 거짓 방을 붙여 14도에서 쌀을 내어 판다고 했는데, 어떤 시장에서도 인호들이 쌀을 사서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집에서 쌀을 내어 팔 때도 양을 줄이고 장부를 뜯어고치는 등 못된 짓 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나눠 준다는 것 또한 거짓으로 붙인 글이니, 하루 한두 말의 쌀에다 물을 잔뜩 넣고 죽을 끓여서, 그것을 얻어먹으러 오는 사람이 도리어 잘못되어서 낭패를 보고 돌아갔습니다. 무릇 그가 한 짓은 간교하고 아주 해로운 일입니다. 또한 관청에서 그를 소환해도, 감히 공공연하게 거부하고서 3일이 지나도록 앞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다 이와 같다면 흉년에 구제하는 정치가 무엇을 말미암아 힘쓸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특별히 조치를 취하셔서, 주희적을 중벌로 물리쳐 견책하시고, 시골에서 세도나 떨치면서 교활하게 이웃 백성을 구휼하지 않는 것의 경계로 삼으소서.

臣照得朱縣尉係修職郞朱熙績, 元因進納補受官資, 田畝物力雄於一郡, 結託權貴, 凌蔑州縣, 豪橫縱恣, 靡所不爲. 本縣昨爲第十二都無上戶米斛可糶, 就近分撥本人在第十二都朱二十一家置場糶米, 其朱熙績輒敢欺凌縣道, 不伏發米前去. 洎至臣巡歷到彼, 又乃詐出文榜, 稱就十四都出糶, 致得一場糴米人戶無從得食. 其在家所糶, 又皆減剋尌升斗, 虛批曆頭, 奸弊非一. 所稱散粥, 亦是虛文, 日以一二斗米, 多用水漿, 煮成粥飮, 來就食者反爲所誤, 狼狽而歸. 凡其所爲, 無非奸狡切害之事. 及至官司呼喚, 又敢公然抵拒, 首尾三日, 不肯前來. 若使人皆如此, 荒政何由可辦 欲望聖慈特降睿旨, 將朱熈績重賜黜責, 以爲豪右好猾不恤鄕鄰之戒.

구주와 무주를 돌아보고 구황에 대한 일을 아뢰는 장계 奏巡歷婺衢救荒事件狀

 

신은 지난번에 소흥부의 승현과 제기현을 둘러보고서 이미 일의 목차를 갖추어 아뢴 적이 있습니다. 이어서 정월 11일에 무주 포강현의 경계에 들어가서, 의도금화무의현을 거치고, 난계현의 경계를 지나, 구주용유서안상산개화강산현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마땅히 아뢸 일들이 있어서 삼가 아래의 항목을 갖추었습니다.

臣昨按視紹興府嵊縣諸曁縣, 已具事目奏聞訖. 續於正月十一日入婺州浦江縣界, 歷義鳥金華武義縣, 由蘭溪縣界入衢州龍遊西安常山開化江山縣. 今有合奏聞事, 謹具下項:

 

1. 무주의 여러 읍 가운데 난계현은 물난리와 가뭄이 잇달아, 재해를 입은 것이 가장 심합니다. 금화가 그 다음인데, 금화 지역 안에 있는 마해백사 일대는 더욱 심합니다. 기타 지역들이 그 다음인데, 오직 영강 한 현은 피해가 조금 가볍습니다. 대충 통계를 내어보아도, 소흥부의 여러 읍에 비교해서 일의 상태가 자못 다릅니다. 그러나 여러 현들의 조치에 잘못이 없을 수 없으니, 신이 보기에 무의현의 방곽에는 이미 굶주린 백성들이 있습니다. 난계와 금화의 산간 고을을 방문해 보면 떠돌고 굶주리는 사람이 이미 많습니다. 다행히 현재 수신신 전전이 자못 마음을 다해 일을 처리하려 하고, 통판 한 사람에게 일을 전담시켜 오고가며 검찰하게 하였으며, 향관 다섯 명에게 청해서 밤낮으로 올바른 계책을 의논하게 하니, 크게 모자라거나 낭패를 당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신이 걱정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돈과 쌀이 비용을 대기에 부족한 것이니, 이미 과거에 성은을 입어 하사받은 돈 가운데 태주처주의 의창미 돈 5만관을 전용해서, 본 주에서 쌀을 사다 진제용으로 내어팔았으면 합니다. 엎드려 빌건대 굽어 살피소서.

婺州諸邑, 蘭溪水旱相仍, 被災最甚. 金華次之, 而境內馬海白沙一帶爲尢甚. 其他又次之, 惟永康一縣爲稍輕. 大槪通計, 比之紹興府諸邑事體殊不侔. 然諸縣措置不無乖謬, 以臣所見, 武義坊郭已有饑民. 而訪聞蘭溪金華山谷之間, 流殍已衆. 幸今守臣錢佃頗能究心料理, 專委通判一員往來檢察, 請到鄕官五員, 日夕商議計當, 不至大段闕敗. 臣尙恐其所有錢米不足支用, 已於昨蒙聖恩所賜錢內取撥台州處州義倉米錢五萬貫, 應副本州糴米糶濟. 伏乞睿照.

 

1. 구주의 상산과 개화는 물난리와 가뭄이 가장 심하고, 강산이 그 다음이며, 서안과 용유가 또 그다음입니다. 그 실제를 통계 내어 보면 무주만 못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시 주도에서 검방에 인색했기 때문에 상산과 개화는 재해의 피해가 극히 심했고, 상산에 방출된 것은 단지 16리에 나머지가 조금 있는 정도였고, 개화는 또 11호에 그쳤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서류로는 단지 재해가 가볍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고, 두 읍의 백성들이 속으로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듣기로는 전해에 죽은 사람이 이미 많은데, 지금 보게 되면 굶주리는 백성들이 무주의 여러 읍보다 더욱 심합니다. 서안은 두 읍보다 가볍기는 하지만, 듣건대 지계 일원은 여태 유칠유팔이 죄를 지어 가는 곳이고, 백성들은 이미 극히 곤궁하고 야위었으며, 게다가 수졸들이 모두 이미 교체할 기간에 임박해 있으니, 서리와 백성들 모두 해이해져서, 다시 가닥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신은 속으로 근심하면서, 이미 본 주에 시달해서, 조정에서 전용을 허락한 의창미 5만석 가운데서 1만석은 진제용으로만 사용하고, 조관 두 사람과 향관 세 사람에게 전담시켜 현마다 나누어 조치토록 하여, 굶주려 고통 받는 백성들을 수습하고, 형편을 살펴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굽어 살피소서.

衢州常山開化水旱最甚, 江山次之, 西安龍遊又次之. 通計其實, (2-663)不減婺州. 但緣當時州都吝於檢放, 常山開化係災傷極重去處, 而常山所放僅及一分六釐有奇, 開化又止一釐一毫而已. 故文案之間, 但覺災傷輕可, 而兩邑之民陰受其害, 不可勝言. 聞得歲前死亡已多, 今之所見, 羸餓之民亦有甚於婺州諸邑者. 西安雖輕於兩邑, 而聞芝溪一源向來兪七兪八作過去處, 人民已極困悴, 加之守倅皆已逼替, 吏民解弛, 無復條貫. 臣竊憂之, 已輒行下本州, 所得朝廷許撥義倉米五萬石內, 將一萬石專充賑濟, 專委曹官兩員鄕官三員分縣措置, 收拾饑餓羸困之人, 貌驗支給. 伏乞睿照.

 

1. 무주의 여러 읍들 가운데 재해의 피해가 조금 무거운데도 돌아보지 못한 곳들이 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모두 일일이 점검해서 따로 주장을 갖추어 아뢰겠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살피소서.

婺州諸邑有災傷稍重而巡歷未到處, 回程當一一點檢, 別具奏聞. 伏乞睿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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