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
주장 奏狀
성자현의 세전을 경감시켜 달라는 두 번째 장계(첫번 째 장은 누락)乞蠲減星子縣稅錢 第二狀(第一狀闕)
【해제】주자는 순희 5년(무술, 1178, 49세) 8월에 남강군 지사[知南康軍]로 파견되었고, 네 번을 사양하다 이듬해 3월 임지에 도착했다. 이 글은 순희 6년(기해, 1179, 50세) 6월 22일 남강군 지사로 있으면서 효종에게 속현인 성자현의 세금을 경감시켜 달라고 청한 두 번째 장계이다. 첫 번째 장계는 같은 해 6월 7일에서 18일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전되었다. 이 장계는 그것에 이은 두 번째 장계이다.
신은 성은을 잘못 입어 변방 구석에서 죄를 기다리며, 스스로 헤아려 보아도 용렬하고 어리석어 폐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임지에 도착한 다음부터 밤낮으로 걱정하고 노력하면서 위로는 폐하의 은혜를 베풀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충을 구제함으로써 우러러 관리로 부리시는 폐하의 뜻에 만에 하나라도 부응하려고 했습니다. 본 군의 여러 현들을 가만히 살펴보건대, 대개가 황량하고 논밭에는 잡초만 무성하며, 인가의 연기는 드문데, 성자현 한 곳은 더욱 심합니다. 이로 인해 그 까닭을 살펴보았는데, 이전의 병란으로 떠돌아다니다가 백성들이 이제 막 생업에 돌아오고 있는데, 관리들이 점점 부세의 액수를 증가시키고, 또 화매견과 절백전의 명목과 액수가 커서, 백성들이 힘을 다해 운반해 바치려다 바치지 못하게 되면, 다시 유망하는 처지로 되돌아가서 다시 고향을 돌이켜 그리워하는 생각이 없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남아 있는 사람들도 모두 구차하게 편안함을 추구할 뿐 자손들을 위한 항구적인 계획을 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작은 홍수나 가뭄이 닥치면 다시 다른 곳을 돌아보고 떠나 버립니다. 그 기상을 살펴보면 썩은 풀이나 떠도는 풀숲처럼 뿌리나 근본도 없고 수심에 젖어 탄식하며 근심만 하고 있는 것이 정말 가련합니다. 이 때문에 작년 6월에 이 현의 세전에 얽힌 이해 관계를 조목별로 갖추어 아뢰면서 경감시켜 달라고 빌었습니다. 삼가 성은을 입아 그날로 명이 내려와 호부에서 본 로의 조사에게 시달하고, 조사는 관리에게 맡겨 실상을 조사한 후 다시 호부에 보고해서 성지를 받아 시행했습니다. 온 동리가 파리하게 여위어 가면서 밤낮으로 은택이 아래로 흐르기를 우러른 것은 기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호부는 작년에 신하들이 청한 것을 다시 조사에게 명해서, 다른 것으로 보충하라고 책망하였습니다. 관리와 백성들이 서로 돌아보며 낙담하면서 실의에 빠졌고, 어리석은 신도 황당해서 어떤 계책을 세워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臣誤蒙聖恩, 竢罪偏壘, 自度庸愚, 無以補報. 到任以來, 夙夜憂勞, 惟思所以上布聖恩, 下求民瘼, 仰副使令之萬一者. 竊見本軍諸縣大抵荒凉, 田野榛蕪, 人煙稀少, 而惺子一縣爲尢甚. 因竊究其所以, 乃知日前兵亂流移, 民方復業, 而官吏節次增起稅額, 及和買折帛數目浩翰, 人戶盡力供輸, 有所不給, 則復轉從流亡, 無復顧戀鄕井之意. 其幸存者, 亦皆苟且倫安, 不爲子孫長久之慮. 一旦小有水旱, 則復顧而之他. 觀其氣象, 如腐草浮苴, 無有根蔕, 愁歎亡聊, 深可憐憫. 是以去年六月, 曾以此縣稅錢利害條具聞奏, 乞賜蠲減. 伏蒙聖恩, 卽日降出, 而尸部下之本路漕司, 漕司委官究實, 復以申部, 取旨施行. 百里疲羸, 日夕仰望聖澤之下流, 不啻飢渴, 而戶部乃以去歲議臣之請, 復下漕司, 責以對補. 吏民相顧, 悼心失圖, 臣愚惶惑, 亦不知所以爲計.
그러나 삼가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넉넉한 인자하심과 근면검소함으로 자신은 삼가고 백성을 아끼시니, 사방의 원근에서 질병을 고하면 불쌍히 여기시고 생각하지 않음이 없으셔서 곧바로 복제를 내리십니다. 신은 감히 이전의 사례를 널리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최근의 경우로 보면 정주에서 바치는 백금이 한 해에 수천량인데, 하루아침에 과감하게 명을 내려 모두를 면제하시면서도 끝내 어려운 기색이 없으셨습니다. 이것이 어찌 다시 그 취하여 보상하는 것이 있는지를 책망한 다음에 주는 것이겠습니까? 애처로이 여기시는 안스러움이 진실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번에 신하들은 천지가 만물을 포함하고서 생명을 베풀어 주는 큰 덕을 헤아리지 못하고 갑자기 다른 것으로 보충하라고 주장해 사방 원근의 백성들이 은혜를 소망하고 행운을 바라는 마음을 가로막았습니다. 신은 비록 어리석지만 이것이 결코 폐하의 본 마음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주군에 진실로 남은 재물이 있다면 스스로 마땅히 변통하도록 조치해서 백성들의 형편이 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감히 이런 번잡한 말단의 일로 폐하의 들으심을 수고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관에서나 민간에서나 식량과 물자가 바닥이 나서 서로 구제할 수 없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이렇게 청합니다.
然竊伏惟念陛下寬仁勤儉, 恭己愛民, 四方遠近凡以病告, 無不惻然興念, 卽賜復除. 臣不敢廣引前事, 且如近者汀州所貢白金歲數千兩, 一旦沛然出令, 擧以丐之, 了無難色. 此豈復責其有所取償而後予之哉? 慘怛之愛, 發於誠心而不可已也. 而往者議臣不足以窺測天地含容施生之大德, 輒爲對補之說, 以逆沮遠近祈恩望幸之心. 臣雖至愚, 有以知其決非陛下之本心也. 且州郡誠有餘財, 自當措置兌那, 以紓民力, 豈復敢以此等瑣末上勞天聽? 正爲公私匱乏, 不能相救, 是以冒昧有此陳請.
이제 다른 것으로 보충하라는 주장으로 한정해 본다면 그 설을 따르지 않으면 먼 현의 궁핍한 백성들은 영원히 소생의 기약이 없고, 반드시 그 설을 좇으려고 하면 형세상 나올 곳이 없으니 일부러 살을 깎아 종기에 보태는 것처럼 사람과 하늘을 속이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로움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도리어 피해를 끼칠 것이며, 폐하께서 백성을 아끼시는 본 마음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신도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때문에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아룁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특별히 뜻을 내리셔서 이전의 주장을 검토하고 정주의 사례에 의거해서 곧장 경감을 시행하라고 명을 내려 주십시오. 덜어 줄 것을 따져보면 상공할 액수에 지장을 주지 않는 이외에 견주 1,050여 필, 전 2,900여 관에 불과하니, 정주의 액수와 비교해 보면 아주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 백성들에게 조금 관대하게 해 줌으로써 생업에 편안토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하늘에 기도하는 간절한 바램과 두려워하며 명을 기다리는 지극함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今乃限以對補之說, 不附其說則遠縣窮民永無蘇息之期, 必從其說則勢無從出, 不過剜肉補瘡, 以欺天罔人. 不惟無益, 而或反以爲害 : 不惟仰失陛下愛民之本心, 而臣之愚亦有所不忍爲也. 是以敢冒萬死, 復以奏聞. 欲望聖慈特降睿旨, 檢會前奏, 依汀州例, 直賜蠲放施行. 計其所捐除不礙上供數外, 不過紬絹一千五十餘匹, 錢二千九百餘貫, 比之汀州之數未爲甚費, 而可以少寬斯人, 使得安其生業. 臣不任祈天瀝懇․皇恐俟命之至
남강군의 가뭄 피해에 관해 아뢰는 장계 奏南康軍旱傷狀
【해제】 이 글은 주자가 남강군 지사로 있으면서 순희 7년(경자, 1180, 51세) 7월에 쓴 장계이다. 여기서 주자는, 모든 고을의 조생종 벼들이 대부분 한해를 입었음을 보고하고, 관원을 파견해 상세히 조사케 하여 대책을 세워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본 군과 여기에 소속된 성자․도창․건창현 등을 자세히 조사해 보니, 유월 이래로 하늘이 크게 가물고 비가 적게 내려 벼들이 말라붙었습니다. 본 군에서는 어필로 내리신 처분을 공손히 따라서, 도축을 금지하고 정성들여 기도하였으며, 그리고 각 현마다 정성을 다해 기도하라고 시달하였습니다. 그런 뒤 지금 성자․도창․건창현의 보고에 의하면, 지시에 따라 사찰․도관․신사 및 모든 깊은 구렁에 두루 제단을 세우고, 물을 바라는 제사를 지내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였으나, 비 내릴 조짐은 없으며, 현재 모든 고을의 조생종 벼들이 대부분 한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세호인 진덕상 등이 하소연한 장계에 의거하면, 논에 파종된 벼가 물 대는 시기를 놓쳐 조생종 벼 대부분이 말라붙었고, 베어서 거둬들일 수 없으니, 관리에게 맡겨 조사해 주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본 군에서는 지금 순희령에 따라 모든 공전과 사전이 가뭄으로 입은 피해를 조사하고, 가을의 전답은 7월에 현에 가서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 달에 마쳤습니다. 본 군이 이미 조목에 의거하여 시행한 것을 제외하고 이렇게 아룁니다.
照會本軍幷管屬星子․都昌․建昌縣自六月以來, 天色亢陽, 缺少雨澤, 田禾乾枯. 本軍恭依御筆處分, 嚴禁屠宰, 精意祈禳, 及行下逐縣精加祈禱. 去後今據星子․都昌․建昌縣申, 依應遍詣寺觀․神祠及諸潭洞建壇, 祭祀請水, 精加祈禱, 雨澤幷無感應, 今來諸鄕早禾多有乾損. 及備據稅戶陳德祥等狀披訴, 所布田禾緣雨水失時, 早禾多有乾槁, 不通收刈, 申乞委官檢視. 本軍今檢準淳熙令, 諸官私田災傷, 秋田以七月聽經縣陳訴, 至月終止. 本軍除已依條施行外, 須至奏聞.
조세를 방면해 주고, 돈과 쌀을 배분해서 군량과 진제용으로 충당해 달라는 장계乞放免租稅及撥錢米充軍糧賑濟狀
【해제】이 글은 주자가 순희 7년(경자, 1180, 51세) 7월에 남강군 지사로 있으면서 올린 장계이다. 여기서 주자는 백성들에게 조세를 감면해 주고, 전운․상평 양사로 하여금 돈과 쌀을 내게 하여, 군량을 공급하고 진제에 대비토록 한다면, 한 고을의 군민들이 거의 크게 낭패를 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해결책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본 군은 지금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아, 조전들이 가뭄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법식에 의거해서 주장을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본 군을 자세히 살펴보면 땅은 황폐하고 농토는 척박한데도 세금은 무겁고 백성들은 가난합니다.
臣伏睹本軍今爲久缺雨澤, 早田旱損, 已依準令式具狀奏聞訖. 照對本軍地荒田瘠, 稅重民貧.
지난 건도 7년에 큰 가뭄을 만났을 때, 삼가 성은을 입어, 그 해의 여름과 가을에 낼 두 세금 돈과 쌀, 비단 총 86,320 관․석․필을 면제해 주셨고, 또 본 로의 감사에게 응당 군량미 4천 석을 공급하라는 조서를 내리셨으며, 군량미 사들일 돈 9천여 관을 내려 주셨고, 아울러 본 군에서 아직까지 거둬들이지 않은 쌀 11,700여 석과 본 군에서 빌린 유향․도첩전 1만여 관을 감면해 주셨으며, 군량미를 매입하여 관병에게 지급하고, 진제미 5만 석을 내려 주셨으며, 또한 두 해 동안 내지 못한 상공․절백․월장 등 돈 93,416관․석․필․양을 유예해 주셨습니다. 그런 뒤에 남겨진 백성들은 다시 살아 날 수 있어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昨於乾道七年曾遭大旱, 伏蒙聖恩, 放免本年夏秋二稅錢米․紬絹共八萬六千三百二十貫石匹, 及詔本路監司應副軍糧米四千石, 撥到糴軍糧米錢九千餘貫, 幷撥本軍未起米一萬一千七百餘石․本軍借兌過乳香度牒錢一萬餘貫, 湊糴軍糧, 支遣官兵, 及撥到賑濟米五萬石, 又拖欠兩年上供․折帛․月樁等錢共九萬三千四百一十六貫石匹兩, 然後遺民復得存活, 以至今日.
오늘날 불행히도 다시 한발의 재난을 당하고, 또 폐하께서 친히 어필을 내리셔서 수신들에게 정성을 다해 기도하라는 조서를 심히 내리셨지만, 저는 봉직을 하면서 한 일도 없고, 유명을 감격시키지도 못해, 두 달 동안 기도하였으나 도무지 응험의 효과가 없었습니다. 현재 조생종 밭은 열에 칠 팔이 손해를 입었고, 만생종 밭 또한 아직 알 수는 없으나, 약간의 수확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그 수는 조생종 밭의 일이십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피해 지역을 방문하였을 때 그 지역 노인들이 말하기를, 건도 칠년의 한발이 비록 이와 같은 지경에까지 미치지는 않았으나, 당시는 몇 해 동안의 풍년이 든 뒤였기 때문에, 부유한 집들은 축척된 곡식이 남아 있었고, 인정도 아직까지 놀라고 근심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조정에서 이익을 나눠 주고 세금을 적게 거두었으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넉넉했음에도, 백성들은 오히려 유리걸식하고 굶주려 죽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며, 마을이 쓸쓸해져서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직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물며 지금 민간에 축적된 것들이 예전에 미치지 못하고, 인정이 이미 매우 인색하고 두려워하는데 어떻겠습니까. 지금 군량미 지급이 모자라고, 관장하고 있는 상평창의 곡식을 헤아려 보면, 또한 장래의 진제 비용으로는 모자랄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만일 앞서 아뢴 것들을 간절하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유리걸식하고 굶주려 죽는 재난과 뜻밖의 다른 근심이 지난번보다 심할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빨리 교지를 내리셔서, 형편에 따라 조세를 감면해 주는 것을 허락해 주시고, 그 외에 다시 전운․상평 양사로 하여금 돈과 쌀을 많이 내도록 해, 군량미를 지급하고 진제에 대비한다면, 한 고을의 군민들이 큰 낭패에 거의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폐하의 위엄을 범하였으니, 신은 두려워 떨며 죄를 기다리는 지극함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今玆不幸, 復罹枯旱之災, 又蒙陛下親降御筆, 深詔守臣精加祈禱, 而臣奉職無狀, 無以感格幽明, 祈禱兩月, 殊無應效. 今則早田什損七八, 晩田亦未可知, 正得薄收, 其數亦不能當早田之一二. 訪聞耆老云, 乾道七年之旱雖不止於如此, 然當時承屢豐之後, 富家猶有蓄積, 人情未至驚憂. 又以朝廷散利薄征, 賑給之厚, 而人民猶不免於流移殍死, 閭井蕭條, 至今未復. 况今民間蓄積不及往時, 人情已甚愛懼, 目下軍糧便闕支遣, 計料見管常平斛斗, 亦恐將來不足賑濟支用. 若不瀝懇先事奏聞, 竊恐將(2-626)來流殍之禍及他意外之憂又有甚於前日. 欲望聖慈早降睿旨, 許依分數放免稅租外, 更令轉運․常平兩司多撥錢米, 應副軍糧, 準備賑濟, 則一郡軍民庶幾不致大段狼狽. 冒犯天威, 臣無任恐懼待罪之至.
남강군의 가뭄 피해에 대해 다시 아뢰는 장계 再奏南康軍旱傷狀
【해제】이 글은 주자가 남강군 지사로 있으면서 순희 7년(경자, 1180, 51세)에 올린 장계로서, 앞의 「남강군의 가뭄 피해를 아뢰는 장계」에 이어 다시 올린 것이다. 이다. 여기서도 주자는 모든 고을의 조생종 벼들이 대부분 가뭄의 피해를 입었음을 보고하고, 관원을 파견해 상세히 조사케 하여 대책을 세워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본 군에 소속된 성자․도창․건창 등 3개현의 주관 아래에 있는 모든 마을들을 조사해 보니, 봄․여름 이래로 비가 드물어, 진지하게 기도하였는데, 5월 중순에 이미 감응을 얻고, 차차로 충분히 적셔 주어, 마침내 위아래에 있는 밭 모두가 이미 파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6월 상순 이래로 또 비가 적어서, 관내의 영험한 내력이 있는 고적․사찰․도관․신사와 못이 있어 물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곳에 두루 제단을 설치하여, 법책에 따라 용에게 제사를 지내고, 초제 지낼 자리를 설치하였으며, 도살을 금지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였지만, 이후로는 아직 감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관할 지역의 민호들은 저수지에 저장된 물을 이용해서, 비록 수차와 배두레박으로 벼에 물댈 수 있었지만, 가문 날이 오래되고 또 천기가 새나갔기 때문에, 백성들의 밭이 대부분 말라붙고, 베어서 거둬들일 수 없었으니, 가뭄 피해에 대한 백성들의 진정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照對本軍管屬星子․都昌․建昌三縣管下諸鄕自春夏以來, 雨澤少愆, 尋行祈禱, 於五月中旬已獲感應, 稍稍霑足, 遂至高下之田皆已布種. 至六月上旬以來, 又闕雨澤, 及遍詣管屬靈跡․寺觀․神祠․諸處淵潭取水, 建置壇場, 依法冊祭龍及修設醮筵, 禁止屠宰, 精加祈禱, 自後未獲感應. 其管下民戶陂塘所積水利, 雖車戽注蔭禾稻, 緣乾亢日久, 兼又風色滲漏, 是致民田多有乾槁, 不通收刈, 見不住據人戶投陳旱傷不絶.
본 군에서는 어필로 내리신 처분을 공손히 따라서, 도축을 금지하고 정성들여 기도하였으며, 그리고 각 현마다 정성을 다해 기도하라고 시달하였습니다. 그런 뒤 성자․도창․건창현의 보고에 의하면, 지시에 따라 사찰․도관․신사 및 모든 깊은 구렁에 두루 제단을 세우고, 물을 바라는 제사를 지내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였으나, 비 내릴 조짐은 없으며, 현재 모든 고을의 조생종 벼들이 대부분 한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세호인 진덕상 등이 하소연한 장계에 의거하면, 논에 파종된 벼가 물 대는 시기를 놓쳐 조생종 벼 대부분이 말라붙었고, 베어서 거둬들일 수 없으니, 관리에게 맡겨 조사해 주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본 군에서는 지금 순희령에 따라 모든 공전과 사전이 가뭄으로 입은 피해를 조사하고, 가을의 전답은 7월에 현에 가서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 달에 마쳤습니다. 기록을 갖추어 아룁니다.
本軍恭依御筆處分, 嚴禁屠宰, 精意祈禳, 及行下逐縣精加祈禱. 去後據星子․都昌․建昌縣申, 依應遍詣寺觀․神祠及諸潭洞建壇, 祭祀請水, 精加祈禱, 雨澤幷無感應, 今來諸鄕早禾多有乾損. 及備據稅戶陳德祥等狀披訴, 所有田禾緣雨水失時, 早禾多有乾槁, 不通收刈, 申乞委官檢視. 本軍檢準淳熙令, 諸官私田災傷, 秋田以七月聽經縣陳訴, 至月終止, 具錄奏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