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을 핑계삼지 말고 날마다 진강하기를 비는 차자 乞不以假故逐日進講箚子
【해제】이 글은 소희 5년(갑인, 1194, 65세) 10월 16일 환장각대제 겸시강 겸실록원동수찬의 신분으로 즉위한 지 3개월여 된 영종에게 올린 차자이다. 당시 환장각대제 겸시강이었던 주자는 10월 14일 경연에서 대학을 강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이미 쉬는 날에도 경연에 참석하라고 직접 청했었다. 같은 날 겸실록원동수찬으로 파견한다는 명을 받았으며, 16일에는 이 차자를 올렸다. 본문 가운데 “일찍이 천자를 뵙고 아뢰기를 휴가날이라도 별다른 일이 없으면 경연에 나아가 강론하다는 것이 마땅하다고 아뢰었더니 천자께서 가납해 주셨습니다. 지금 이미 이틀이 되었는데 아직 시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한 내용은 바로 이 일을 가리킨다.
제가 요즘의 제도를 보니 언제나 홀수날이 되면 아침 저녁으로 경연에 나아가 강론을 했습니다. 강론하는 날이 되었는데 간혹 휴가와 겹치거나 다른 일을 만나게 되면 임시로 강론을 취소했습니다. 또 옛 일을 살펴보니 심한 무더위나 추위가 닥치면 이로 인해 달 별로 계획된 강론을 취소했습니다. 제가 듣기로 폐하께서는 타고난 성품이 학문을 좋아해서 밤낮으로 힘쓰신다고 하니 깊은 궁궐에 계신다고 한들 시간을 헛되이 보내거나 안일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제가 외람되게도 발탁되어 경학에 밝다는 이유로 시강이 되었으니, 날마다 강학하면서 말을 올려 폐하의 뜻을 보필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지금 몇 달이 다 되가도록 제 직분과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릴없이 녹만 축낸다는 꾸짖음을 듣게 되어 진실로 스스로 편치 못합니다. 그래서 이전에 폐하를 뵙고 아뢰기를 휴가날이라도 별다른 일이 없으면 경연에 나아가 강론하다는 것이 마땅하다고 아뢰었고, 폐하께서는 제 말을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지금 이미 이틀이 지났는는데 아직 시행이 되지 않고 있으니, 지난 번에 제가 진달한 내용에 아마도 제대로 다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따로 주장을 썼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특별히 예지를 내리셔서 오늘 이후로는 초하루와 보름의 순휴(旬休)일 및 수강궁에 문안을 여쭙는 날을 제외하고는 혹한과 혹서, 홀수날과 짝수날, 날과 달 등 갖가지 휴가 사정을 핑계대지 마시고, 아울러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경연에 참가해 강론을 하십시오. 그 속에 조정에서 조회하는 날이 있으면, 바라건대 황제의 몸이 오래도록 앉아 있으면 다소나마 힘들까 걱정됩니다. 그런 날에는 임시로 그 날의 아침에 하는 강론을 1회 취소하시면 거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실천하며, 노닐거나 쉬는 모든 순간마다 전학(典學)의 때가 아님이 없을 것이니, 성덕은 날로 드높아지고 천하는 무척 다행일 것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臣伏見近制, 每遇隻日蚤晩進講. 及至當日或値假故, 卽行權罷. 又按故事, 將來大寒大暑, 亦繫罷講月分. 恭聞陛下天性好學, 晨夕孜孜, 雖處深宮, 必不暇逸. 但臣誤蒙選擇, 以經入侍, 固當日有獻納, 以輔聖志. 今乃淹旬累月, 不得修其職業, 素餐之刺, 實不自安. 故嘗面奏, 假日無事, 正宜進講, 已蒙聖慈俯賜嘉納. 今已兩日, 未見施行, 因省昨來所陳, 似亦未至詳悉. 今別具奏, 欲乞聖明特降睿旨, 今後除朔望旬休及過宮日外, 不以寒暑雙隻月日諸色假故, 幷令逐日蚤晩進講. 內有朝殿日分, 伏恐聖躬久坐, 不無少勞, 却乞權住當日蚤講一次, 庶幾藏脩遊息, 無非典學之時, 聖德日躋, 天下幸甚!取進止.
관원을 보내 봉사를 자세히 살피라고 청하는 차자 乞差官看詳封事箚子
【해제】이 글은 소희 5년(갑인, 1194, 65세) 10월 16일 환장각대제 겸시강 겸실록원동수찬의 신분으로 즉위한 지 3개월여 된 영종에게 올린 차자이다. 당시 환장각대제 겸시강이었던 주자는 10월 14일 경연에서 대학을 강의했고, 같은 날 겸실록원동수찬으로 파견한다는 명을 받았으며, 16일에는 「걸불이가고축일진강차자」와 이 차자를 올렸다. 14일 경연에서 이미 영종에게 신하들의 올곧은 조언을 자세히 살펴 좋은 것만 골라 순서대로 시행하라고 청했고 영종이 이 청을 받아들인다고 했음에도 청한 내용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이틀 만에 다시 「차자」를 통해 같은 내용을 청하고 있다. 다음 날 주자의 문관 등급은 조산랑(朝散郞)에서 조청랑(朝請郞)으로 승진했다.
제가 지난 번에 뵙고 아뢰었을 때 ‘우뢰와 비가 남다르니 조정의 잘못을 진달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성지를 받들어서 우러서 폐하께서 하늘을 경외하고 자신을 성찰하시려는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히 소명을 받들 수 없었던 것은 가만히 보건대 폐하께서 등극하신 초기에 이미 분명하게 소명을 내리시고 와서 말을 올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하나도 시행된 것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시 말을 구하는 것은 거의 빈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바라건대 예지를 후성(後省)의 담당관들에게 숙직을 하면서 자세히 살피게 하고, 그 가운데 좋은 것을 선택해서 조목별로 올려 천자의 재가를 받아 순서대로 시행하게 하십시오. 이미 천자께서 개납해주시고 두 번 세 번 옥음으로 선유하시기를 이와 같이 한다면 말을 구하는 소명은 말로 갖출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하셔서 저는 감격과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미 이틀이 되었는데 지휘를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아뢴 다른 일이 많았고, 또 내려보낼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늦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 감히 다시 주장으로 써서 아룁니다. 바라건대 천자께서는 속히 처분을 내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듣는 자들은 권면하는 줄을 알 것이요, 곧은 말이 날마다 들려와 천자를 개오시키고 정덕을 더욱 닦게 할 것입니다. 하늘에 호응하는 실질이 이보다 큰 것이 없을 것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10월 17일 성지를 받들어 보니 심유개와 유광조를 파견해서 10일 이내에 자세히 살피고 아뢰도록 했다)
臣前日面奏, 恭奉詔旨, 以雷雨之異, 許陳闕失, 仰見陛下畏天省己之意. 然臣未敢奉詔者, 竊見陛下登極之初, 已下明詔, 來獻言者甚衆, 未聞一有施行. 今復求言, 殆成虛語. 欲乞睿旨令後省官鎖宿看詳, 擇其善者, 條上取旨, 以次施行. 已蒙聖慈開納, 再三玉音宣諭, 如此則求言之詔不爲文具, 臣不勝感激欣幸. 而今已兩日, 未見指揮, 竊慮當時所奏他事猥多, 又無文字可以降出, 是致遲緩. 今敢再具奏聞, 欲望聖明早賜處分, 庶幾閠者知勸, 直言日聞, 開悟聖聰, 益修政德. 應天之實, 莫大於此. 取進止. 十月十七日奉聖旨, 差沈有開․劉光祖限十日看詳聞奏.
황제의 생일에 축하를 받지 말라고 청하는 차자 乞瑞慶節不受賀箚子
【해제】이 글은 소희 5년(갑인, 1194, 65세) 10월 18일 조청랑(朝請郞)․환장각대제 겸시강 ․겸실록원동수찬의 신분으로 즉위한 지 3개월여 된 영종에게 올린 차자이다. 당시 환장각대제 겸시강이었던 주자는 10월 14일 경연에서 대학을 강의했고, 같은 날 겸실록원동수찬으로 파견한다는 명을 받았으며, 16일에는 「걸불이가고축일진강차자」와 「乞差官看詳封事箚子」를 올렸다. 17일 문관 등급이 조청랑(朝請郞)으로 올라갔고, 다음 날 저녁 경연에서 대학을 강의하고, 이 「차자」를 올렸다. 효종의 장례를 채 치루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영종의 생일이기 때문에 돌아간 선황을 추모한다는 의미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를 취소하고, 신하들의 축하표도 받지 말 것이며, 이후로도 3년 동안 경사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이와 마찬가지로 시행해 달라고 청하고 있다. 송사에 의하면 바로 다음 날 영종은 축하표를 거절한다는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서경절입니다. 하루 전에 재집이 문무백관을 이끌고 행궁의 편전에서 절하고 축하를 드려서 저도 이미 공손히 나아가 그 반열에 섰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건대 수황의 재궁(梓宮)이 빈소에 있고, 폐하의 추모도 이제 마악 시작되었는데, 이런 때에 축하례를 행하니, 저는 경술로 폐하를 모시는 시강의 신분으로 경연에 참석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결례와 잘못을 보게 되어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아뢸려고 마음 먹은 지는 오래였지만, 또 소원함을 생각하여 감히 분수를 넘친 짓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 갑자기 성지를 받들고 보니 특별히 어지를 내려 오늘 저녁 경연[晩講]에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러러 천자께서 마음을 비우고 선을 추구하면서, 오직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시며, 대우하시는 은총이 또 상품과 남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깊이 감격해서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고 삼가 이 주장을 은밀히 아룁니다. 바라건대 천자께서는 속히 전지를 내리셔서 서경절의 축하례를 임시로 중지하시고, 신료들의 축하표도 받지 마십시오. 3년 이내에 축하할 일들이 있어도 모두 이 예에 의거하신다면 위로는 효치를 넓히고 성덕을 더욱 융성히 하며, 풍시가 사표에 미치고 법이 만세에 드리울 것이니, 이는 저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소원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臣伏睹今日瑞慶節 前一日宰執率文武百寮詣行宮便殿拜表稱賀, 臣已前來祗赴立班. 然竊惟念壽皇梓宮在殯, 陛下追慕方新, 乃以此時講行賀禮, 臣當以經術入侍帷幄, 睹此缺失, 心實未安. 久欲奏聞, 又念疏遠, 不敢僭越. 昨晩忽奉睿旨, 特令宣引, 今日晩講. 仰見聖心虛懷求善, 唯恐不及, 待遇之恩, 復異常品. 感激之深, 不能自已, 謹此密奏, 欲望聖慈速賜傳旨, 便令權免, 其表亦不收接. 三年之內, 凡有合稱賀事幷依此例, 庶幾上廣孝治, 益隆聖德, 風示四表, 垂法萬世, 臣不勝夫願. 取進止.
[첨부] 제가 지금 아뢰는 것은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나 무리지은 신하들이 밖에서 반열을 지어 축하하는 것을, 황제가 참고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폐하의 덕이 융성함을 드러내 보일 것이요, 후세의 법도가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데 밝게 살피십시오.
(貼黃) 臣今所奏雖已遲晩, 然羣臣班賀於外而聖主抑而不受, 益見聖德之盛, 可爲後世法程. 伏乞睿照.
경연에서 홀로 남아 네 가지 일에 관해 아뢴 차자 經筵留身面陳四事箚子
【해제】이 글은 소희 5년(갑인, 1194, 65세) 10월 23일 조청랑(朝請郞)․환장각대제 겸시강 ․겸실록원동수찬의 신분으로 경연에 참석했다가, 홀로 남아 네 가지 일을 아뢴 것을 정리한 「차자」이다. 네 가지 일은 첫째 태자 시절의 거처인 동궁을 증개축하는 일, 둘째 수황에 대한 문안을 여쭙는 정성(定省)의 예를 성실히 수행할 것, 셋째 조정을 기강을 더욱 엄하게 할 것, 넷째 효종의 산릉을 결정하는 것이다. 경원당금에 의하면 주자가 이 차자를 올리게 된 것은
저는 세상 물정에 어둡고 어리석으며 늙고 천한데다 남보다 뛰어난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저를 소명으로 부르시어 가까운 시종의 반열에 두시고, 권송(勸誦)의 관(官)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이 어찌 저[小臣]에게 사적인 은혜를 내리시려는 것이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제가 어설프게라도 학문을 강론했고 조금이나마 생각이 있을 것이니,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말없이 있지만은 않을 것이요, 가끔은 폐하께서 천하를 다스리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저는 대궐에 이르러 세 번이나 폐하께 나아가 입대했는데, 광망한 제 말을 폐하께서는 마침 받아들이셔서 강론하는 날을 늘이라, 봉사를 자세히 살피라, 생신을 축하하는 표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 등은 모두 시행되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마음 속 진심을 다 토로했고, 의리를 다해서 충성을 기원했으니 폐하께서 거두어 관리로 임용하신 뜻을 저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가만히 생각하건데 조정의 내직을 맡고 있고[服在內朝], 실제로도 조용하게 간언하고 의논하는[從容諷議] 직책을 맡고있기 때문에 비록 조언을 구하는 조칙을 받았지만, 또한 감히 외직에 근무하는 신하들처럼 글로 써서 제 생각을 말씀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일찍이 뵙고 아뢰었던 한 두 가지 일은 폐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시행할만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날 동안 가만히 하늘의 뜻을 살펴보니 우레와 천둥에 뒤이어 장마가 계속되고, 침울한 날씨가 풀리지 않으며, 밤이 낮처럼 밝고 낮은 밤처럼 어두우니 이것은 반드시 정치적인 조치들이 사람들의 바램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음사한 기가 양덕을 간범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일전에 말씀드린 것들 가운데 중요한 내용들은 아직까지도 폐하께서 살펴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평범하니 무리지은 사람들을 따라 문장의 뜻이나 풀이하고, 때때로 한 두 가지의 별볼일 없는 일을 아룀으로써 이유있는 사태에 대응하려 한다면 폐하께서 저를 불러서 등용하신 뜻도 아닐뿐더러 저 역시 폐하의 뜻을 잘 받들어 모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보잘 것 없는 생각이나마 갖고 있으니 모두 아뢰겠습니다.
臣迂愚衰賤, 無以逾人, 仰荷聖明召從遠外, 置之近侍之列, 處以勸誦之官, 此豈私於小臣者哉, 意者必以其粗嘗講學, 稍有思慮, 不肯隨衆黙黙, 或有以仰補聖治萬分之一也. 而臣伏自到闕, 三獲進對, 狂妄之言, 時蒙來納, 如增添講日․看詳封事․不受賀表之屬, 皆得施行. 臣竊不自知, 以爲庶幾可以披瀝肝膽, 畢義願忠, 而無負於陛下所以收錄使令之意. 又竊惟念服在內朝, 實以從容諷議爲職, 故雖被求言之詔, 亦不敢輒同外臣, 撰述文字, 以致宣洩 : 但嘗面奏一二, 意望陛下自以爲聖意施行. 而累日以來, 竊觀天意, 雷霆之後, 繼以陰雨, 沈鬱不解, 夜明晝昏, 此必政事設施大有未厭人望, 以致陰邪敢干陽德者. 而臣前日所嘗言之大者, 尙亦未蒙省察. 若但碌碌隨群, 解釋文義, 時時陳說一二細微, 以應故事, 則不唯非陛下所以召用愚臣之意, 亦豈愚臣所以服事陛下之志哉? 今有微誠, 須至傾揭.
제가 말하려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폐하 자신을 떠받들어야 하는 모든 경우에 깊이 참고 (자신을) 낮추는데 힘쓰시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궁궐에서 지내는 경우나, 머무는 곳에서 입고 쓰는 것에 이르기까지, 또 태자시절의 옛 사저에서부터 정사를 볼 때의 예절과 법도,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을 얼마나 두는가 하는 데까지 갑자기 황제라는 존귀한 지위에 어울리는 모든 것을 누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어버이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도 있을 것이요,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려는 바램도 속히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말을 폐하께서 반드시 받아들이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 소식을 듣자니, 폐하께서는 예전에 사시던 동궁을 3,4백칸으로 수리하라는 교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의 의론은 모두 폐하께서 빨리 동궁을 증축해서 거처를 옮기고 출입을 통제하는 것을 편한게 생각한다고들 합니다. 이것은 참아내고 낮추는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지나치게 증가하는 것이입니다. 저는 아지 못하겠거니와 이것은 과연 폐하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까? 대신의 의론에서 나온 것입니까? 백성들의 바램에서 나온 것입니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주변의 측근들이 이런 말을 들고 일어나 폐하를 오도하면서 자신들의 간사한 흉계를 이루려는 것입니까?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상제가 진노해서 재앙이 속출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히 자신을 닦고 반성해야 하는 때에 (폐하께서) 부당하게도 이런 큰 공사를 일으켜 (상제가) 꾸짖고 책망하는 뜻을 어기려는 것이 두렵습니다. 또 기내의 백성들조차 굶주리고 떠돌다 죽음을 눈앞에 둔 위태로운 즈음에 갑자기 조정에서 이런 큰 토목 공사를 일으켜 궁실을 짓는다는 것을 보게 되면 다만 자신을 편케하고 스스로를 예우하려는 데에만 힘쓰고 백성을 측은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고 여겨 혹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 다른 변고를 일으킬까 걱정 됩니다. 태상황제[광종]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해 나아가 뵐 기약도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수황[효종]이 빈궁에 계시고 장지조차 결정되지 않아서 궤연의 봉양 역시 조금이라도 소흘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 역시 걱정이 됩니다. 태황태후와 황태후 모두 나이가 많이 드신 존엄한 분들입니다. 이 분들조차 의지할 곳 없이 근심과 괴로움 중에 있으니,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여쭙는데 빈틈이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방 사람들이 단지 폐하께서 궁실을 크게 지으면서, 속히 완성하고는 하루 아침에 날 듯이 버리고 떠나 자신에게 편안한 곳으로 가려는 것만을 보게 된다면 모든 땅의 모든 백성들 가운데는 또 반드시 팔짱을 끼고 불평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전의 교훈이 멀지 않으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일단 존귀한 어버이의 곁을 떠나 경솔하게 부차적인 궁실로 가게 되어 깊은 궁궐의 이어지는 건물들, 크고 작은 동산과 연못, 누대들 및 이목의 즐거움이 잡다하게 눈앞으로 다가오면, 저는 또 폐하의 마음이 이러한 어지럽고 화려한 영화의 유혹과 꼬드김을 감당하기 쉽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비록 날마자 유사들과 친하고 경훈을 강구해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진덕수업하고자 하여도 거기에 미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또 제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臣之所言, 其最大者, 則勸陛下凡百自奉深務抑損, 自宮闈之私, 居處服用, (2-560)且如潛邸之舊, 以至外庭禮數, 僕御恩澤, 亦未可遽然全享萬乘之尊, 庶幾有以感格親心, 早遂晨昏定省之願, 以爲陛下必垂開納. 而數日來, 乃聞有旨修葺舊日東宮, 爲屋三數百間, 外議皆謂陛下意欲速成, 早遂移蹕, 以爲便安之計. 不惟未能抑損, 乃是過有增加, 臣不知此果出於陛下之心, 大臣之議, 軍民之願耶? 抑亦左右近習倡爲此說以誤陛下, 而欲因以遂其姦心也? 臣恐不惟上帝震怒, 災異數出, 正當恐懼脩省之時, 不當興此大役, 以咈譴告警動之意 : 亦恐畿甸百姓饑餓流離, 阽於死亡之際, 忽見朝廷正用此時大興士木, 修造宮室, 但以適己自奉爲事, 而無矜惻憫憐之心, 或能怨望忿切, 以生他變. 不唯無以感格太上皇帝之心, 以致未有進見之期, 亦恐壽皇在殯, 因山未卜, 几筵之奉, 不容少弛 : 太皇太后․皇太后皆以尊老之年, 煢然在憂苦之中, 晨昏之養, 尤不可闕. 而四方之人但見陛下亟欲大治宮室, 速得成就, 一旦翩然委而去之, 以就安便, 六軍萬民之心, 必又將有扼腕而不平者矣. 前監未遠, 甚可懼也. 至於一離尊親之側, 輕去倚廬之次, 深宮永巷, 園囿池臺, 耳目之娛雜然而進, 臣又竊恐陛下之心未易當此紛華盛麗之熒惑感移. 雖欲日親儒士, 講求經訓, 以正厥事而進德修業, 亦將有所不暇矣, 此又臣之所大懼也.
(광종이 계시는) 수강궁에 문안을 여쭙는 예에 대해서는 제가 일찍이 말씀드렸지만, 그 뜻이 미진했습니다. 지금 듣기로는 근일에 한 두 번 궁을 다녀왔지만 뵙지도 못했고 또 속히 근심하시면서 제가 아뢰었던 것처럼 조칙을 내려 스스로를 책망하고 자주 계속 왕래하지도 않으셨다고 합니다. 도리어 문안을 게을리하면서 시간만 끄시면서도 폐하께서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왔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돌아가신다면, 태상황제께서는 이 소식을 들으시고 반드시 ‘이것은 쓸데없이 예만 갖추려고 온 것이지 진정으로 나를 꼭 만나겠다는 뜻은 없는 것이다’라고 여기실 것이니,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거절하면서 폐하를 만나려고 하지 않으시려는 것도 본시 당연한 일입니다. 또 듣기로는 태상황후께서는 태상황제의 뜻을 거스리는 것을 두려워해서, ‘태상’이란 칭호조차 듣지 않으시려 하시고, 또 ‘내선’이란 말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 또한 걱정이 지나친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한결같이 이렇게만 하면서 유연하게 방법을 찾지 않으시고, 태상황제로 하여금 폐하께서 어쩔수 없이 즉위하신 이유가 다만 위로는 종사를 편케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다독이며, 일시적므로 자신의 수고를 대신하려는 것이지, 갑자기 지존으로 대접받고자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한다면, 아비와 자식 사이에 위에서는 원망하고 화내며, 아래에서는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어느 때에나 그치겠습니까? 아비와 자식 간의 천륜은 삼강이 걸린 것입니다. 폐하의 마음 깊은 곳에도 편치 못할 뿐 아니라, 사방에서 보고 듣는 사람들도 자못 좋지 않은 일이라고 여길 것이니, 오래도록 도모하지 않는다면 장차 이런 명목을 빌려다 비방하면서 사변을 일으키려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또 제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561)至於壽康定省之禮, 則臣嘗言之矣, 而其意有未盡也. 今聞邇日一再過宮, 亦未得見, 而不亟爲之慮, 如臣所謂下詔自責, 頻日繼往者, 顧乃逶迤舒緩, 無異尋常之時, 泛然而往, 泛然而歸, 太上皇帝聞之, 必以爲此徒備禮而來, 實無必求見我之意, 其深閉固拒而不肯見, 固亦宜矣. 又聞太上皇后懼忤太上皇帝之意, 不欲其聞太上之稱, 又不欲其聞內禪之說, 此又慮之過者. 殊不知若但一向如此而不爲宛轉方便, 使太上皇帝灼知陛下所以不得已而卽位者, 但欲上安宗社, 下慰軍民, 姑以代己之勞, 而非敢遽享至尊之奉, 則父子之間, 上怨怒而下憂懼, 將何時而已乎? 父子天倫, 三綱所繫, 不惟陛下之心深所未安, 而四方觀聽殊爲不美. 久而不圓, 亦將有借其名以造謗生事者, 此又臣之所大懼也.
조정의 기강은 더욱 엄격해야 합니다. 위로는 인주(人主)로부터 아래로는 모든 관리[百執事]에 이르기까지 각각 직분과 맡은 일이 있어서 서로 침범할 수 없습니다. 군주는 제명(制命)을 직으로 하지만, 반드시 대신들과 의논하고, 급사들과 참작하되, 그들과 익숙하게 의론해서 공의의 소재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와정에 게시하고 명령을 밝게 내어 공평하게 시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조정은 존엄하고 명령은 자세해서, 비록 부당함이 있더라도 천하 또한 모두 그 잘못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왔는지를 알게 되고, 인주도 홀로 그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게 됩니다. 의논하려는 신하들도 자신의 뜻을 다해 말을 다하면서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고금의 불변하는 이치요 조종의 가법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즉위하신 지 열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집을 나아왔다 물러가게 했고, 대간을 옮기셨으며 심지어는 나오자마자 갑자기 물러서기까지 했는데, 이 모든 것이 폐하의 독단에서 나왔고, 대신들은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고, 급사들은 의논하지도 못했습니다. 가령 진실로 폐하의 독단에서 나왔고 일이 모두 이치에 합당하다 하더라도 정치의 정체는 아니어서 훗날의 폐단을 열어놓을 것인데, 하물며 안팎에서 전해오는 소식마다 의혹이 없는 것이 없고, 모두들 말하기를 ‘천자의 주변에서 누군가 그 권세를 훔친 것 같다’고 하고 그 행하는 것도 또 모두 공의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하는 지경이겠습니까? 이 폐단을 혁파하지 않는다면 저는 명목상으로는 폐하의 독단이라고 하지만, 중요한 권위는 아래로 옮겨가는 것을 면치 못하고, 다스림을 추구하지만 거꾸로 난리를 초래하는 결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융흥 이래로 이미 이러한 잘못이 있었는데 저는 과거에 두 세 번 깊이 수황을 위해 논한 적이 있었으니, 오직 오늘날만을 위해 근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황의 천성이 총명함에 힘입었음에도 누적된 관습이 풍조를 이루어 훗날에까지 후환을 끼쳤으니, 그 피해는 이미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진원(陳源)․원좌(袁佐)와 같은 부류들은 모두 폐하께서 친히 보았던 자들입니다. 어째서 또 그 종적을 답습해서 밟으려고 하십니까? 또 폐하께서 스스로를 보시기에 총명하고 강단함이 무엇과 수황과 비교될 것이며, 거듭하는 수양과 통달함은 또 어느 것이 수황과 비교되겠습니까? 수황조차도 예전에 그들을 통제하지 못했는데, 폐하께서 뒷날 통제하려고 하시니 저는 그 우환이 더욱 깊어져 전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것이 또 제가 크게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至於朝廷紀綱, 尤所當嚴, 上自人主, 以下至於百執事, 各有職業, 不可相侵. 蓋君雖以制命爲職, 然必謀之大臣, 參之給舍, 使之熟議, 以求公議之所在, 然後揚于王庭, 明出命令而公行之. 是以朝廷尊嚴, 命令詳審, 雖有不當, 天下亦皆曉然知其謬之出於某人, 而人主不至獨任其責. 臣下欲議之者, 亦得以極意盡言而無所憚. 此古今之常理, 亦祖宗之家法也. 今者陛下卽位未能旬月, 而進退宰執, 移易臺諫, 甚者方驟進而忽退之, 皆出於陛下之濁斷, 而大臣不與謀, 給舍不(2-562)及議. 正使實出於陛下之獨斷而其事悉當於理, 亦非爲治之體, 以啓將來之弊, 况中外傳聞, 無不疑惑, 皆謂左右或竊其柄, 而其所行又末能盡允於公議乎? 此弊不革, 臣恐名爲獨斷而主威不免於下移, 欲以求治而反不免於致亂. 蓋自隆興以來, 已有此失, 臣嘗再三深爲壽皇論之, 非獨今日之憂也. 尙賴壽皇聖性聰明, 更練世事, 故於此輩雖以驅使之故稍有假借, 實亦陰有以制之, 未至全墮其計. 然積習成風, 貽患於後, 其害已有不可勝言者. 如陳源․袁佐之流, 皆陛下所親見也, 奈何又欲襲其跡而蹈之乎? 且陛下自視聰明剛斷, 孰與壽皇? 更練通達, 孰與壽皇? 壽皇尙不能制之於前, 而陛下乃欲制之於後, 臣恐其爲患之益深, 非但前日而已. 此又臣之所大懼也.
수황의 장지[찬宮]를 결정하는 일도 대사들의 억지주장과 그릇된 망언에만 치우치고, 교결현혹의 계책에 떨어져 다시 술수가들에게 널리 물어 좋은 땅을 구하지 않으시고, 다만 영우릉․영사릉 등 여러 능지 주변에 옮겨다 놓기만 바라면서 구차하게 마땅함을 다하려만 합니다. 이미 돌아가신 수황의 몸과 영혼이 안녕치 못할까 하는 우려가 있고, 또 종사를 위한 혈식구원의 계획도 못됩니다. 재집, 시종으로부터 군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잘못을 알면서도 감히 힘써 간쟁하지를 않습니다. 수황은 공업이 성대하고 빛나 영원토록 잊지 않아야 하는데도 이렇게 대충대충 장례를 치루신다면 이것이 어떻게 하늘과 사람의 마음을 크게 거슬림으로써 이변을 자주 불러오고 또 영원토록 후환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또 제가 크게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至於●宮之卜, 偏聽臺史膠固謬妄之言, 墮其交結眩惑之計, 而不復廣詢術人, 以求吉地, 但欲於祐思諸陵之傍儧那遷就, 苟且了當, 旣不爲壽皇體魄安寧之慮, 又不爲宗社血食久遠之圖, 則自宰執侍從以至軍民, 皆知其非而不敢力爭. 夫以壽皇之豊功盛烈, 百世不忘, 而新以葬之如此其草草也, 此豈不又大咈天人之心, 以致變異之頻仍而貽患於無窮乎? 此又臣之所大懼也.
이 네 가지 걱정은 모두 작은 일들이 아닙니다. 저는 원컨대 폐하께서 어리석은 제 말을 깊이 살피시고 마음에 돌이키셔서, 밝은 조칙을 대신들에게 내려 먼저 동궁을 증축한다는 명령을 취소하십시오. 그 역사를 위한 비용과 노동력을 자복궁․중화궁으로 돌려, 침전 10~20간을 지어 거칠더라도 거처할 만 하게 만드십시오. 또 궁문의 밖에서 받들어 모시는 숙위군들의 숙소 수십칸을 지어 곁에서 모시면서 뙤약볕을 쬐는 고충이 없게 하십시오. 이렇게 한다면 위로는 태상황제의 마음을 감동시켜, 수강궁에 들어가 문안을 여쭐 기약을 앞당길 것입니다. 또 수황의 빈소에 궤연의 예를 받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며, 태황태후와 황태후 두 분에게도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여쭙는 예를 극진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아래로는 많은 아랫사람들이 홈쳐보고 현혹시키는 간사함을 막아내고, 이 백성들이 굶주리며 떠도는 고난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일입니다.
凡此四懼, 皆非小故. 臣願陛下深察愚言而反之於心, 明詔大臣首罷修葺東宮(2-563)之役, 而以其工料回就慈福․重華之間, 草創寢殿一二十間, 使粗可居, 又於宮門之外草創供奉宿衛之廬數十間, 勿使其有偪仄暴露之苦. 如是則上有以感格太上皇帝之心, 而速南內進見之期, 又有以致壽皇几筵之奉, 而盡兩宮晨昏之禮 : 下有以塞群下窺觀眩惑之姦, 而慰斯民饑餓流離之歎. 此一事也.
태상황제의 궁을 찾아 문안을 여쭈시려는 일에 대해서 저는 폐하께서 스스로를 책망하는 조칙을 내리시고, 수레와 호위를 줄이시고, 수강궁에 들어간 다음에는 잠시 당나라 숙종이 자포로 옷을 갈아입고 말 앞에서 고삐를 쥐었던 것처럼 옷을 갈아 입으십시오. 미리 가깝고 존귀한 항렬의 현자들에게 조칙을 내려 앞서서 들어가게 하고, 먼저 태상황후를 뵈옵고 제가 진달한 은근한 방편의 주장을 아뢰십시오. 그런 다음에 따라서 들어가 태상황제를 뵙고 곧장 눈물을 흘리며 땅에 엎드려 (당태종이) 무릎을 꿇고 젖을 빨았던 것처럼 하시면서 죄를 뒤집어 쓰고 허물을 당기는 정성을 펴십시오. 그리고 태상황후와 종척 귀신들이 옆에서 둘러싸고 옹호하면서 다시 비유 해석하는 말을 올리면 태상황제가 비록 성난 감정이 있더라도 또한 순식간에 구름이 사라지고 안개가 걷히듯이 기쁜 마음에 젖어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일입니다.
若夫過宮之計, 則臣又願陛下下詔自責, 減省輿衛, 入宮之後, 暫變服色, 如唐肅宗之改服紫袍, 執控馬前者. 預詔近屬尊行之賢, 使之先入, 首白太上皇后以臣前所陳宛轉方便之說. 然後隨之而入, 望見太上皇帝, 卽當流涕伏地, 袍膝吮乳, 以伸負罪引慝之誠. 而太上皇后․宗戚貴臣左右環擁, 更進譬諭解釋之詞, 則太上皇帝雖有忿怒之情, 亦且霍然雲消霧散而懽意浹洽矣. 此二事也.
조정의 기강에 대해서 저는 폐하께서 조칙을 내려 주변의 측근들이 조정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조정이 존엄하게 되면 기강이 진작되고 국가는 태산처럼 안정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부귀 장구를 놓치지 않는 계책이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가운데는 공훈이 있으면서도 그들이 얻은 포상 가운데는 중론에 들어맞지 않은 것도 있으니, 또 대신들에게 조칙을 내려 그 일을 공론으로 의론하게 하고, 명령과 법전을 고찰하게 해서, 그들의 노고에 두터이 보상하십시오. 호령의 펴지고 안펴지는 것과 인재가 나오고 물러가는 것은 한결같이 두 세명의 대신들에게 맡겨서 그들이 반복해서 비교 검토해서 자신의 생각만을 따르지 말고 공론을 참작해서, 천자에게 아뢰고 시행하게 하십시오. 비답과 교지가 선포되면 반드시 주장으로 아뢸 필요없이 다만, 상서성에서 시행하라고 명을 내리기 이전에 먼저 후성(後省)에 보내서 살피게 하고 부당한 경우가 있으면 그날로 교박(繳駁)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만일 이렇게 하고도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대신과 교박한 관원에게 늦더라도 입조하라는 조칙을 내려 면전에서 의론하고 서로 따지게 해서 좋은 것을 택해서 천자께서 직접 결정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가까운 측근들이 조정의 권세에 간여하지 못할 것이요, 대신도 자신의 사적인 견해로만 결정하지 못할 것이요, 폐하께서도 더욱 천하의 일에 밝고 익숙하게 될 것요, 득실의 계산에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에 세 번째 일입니다.
若夫朝廷之紀綱, 則臣又願陛下深詔左右勿預朝政, 但使朝廷尊嚴, 紀綱振肅而國家有泰山之安, 則此等自然不失富貫長久之計. 其實有勳庸而所得褒賞未愜衆論者, 亦詔大臣公議其事, 積考令典, 厚報其勞. 而凡號令之弛張, 人才之進退, 則一委之二三大臣, 使之反復較量, 勿徇己見, 酌取公論, 奏而行之. 批旨宣行, 不須奏覆, 但未令尙書省施行, 先送後省審覆, 有不當者, 限以當日便行繳駁. 如更有疑, 則詔大臣與繳駁之官當晩入朝, 面議於前, 互相論難, 擇其善者稱制臨(2-564)決. 則不惟近習不得干預朝權, 大臣不得專任己私, 而陛下亦得以益明習天下之事, 而無所疑於得失之算矣. 此三事也.
산릉을 결정하는 일은 제가 지난 번에 일찍이 의장을 올린 일이 있고, 요즘에 또 동열의 관리들과 연명으로 주장을 썼습니다. 지금 다시 폐하의 귀를 번거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천자께서 대신들에게 선유하시기를 저희들이 앞뒤로 논의한 것을 자세히 살펴 서서 말을 나누는 사이에 그 가부를 결정하게 하십시오. 이에 앞서 7월의 기한을 넉넉히 하시고, 그 다음으로 대사의 설을 쫓아내시며, 따로 초야의 선비를 구하여 새로운 산릉을 조성하게 하시어 수황의 유체가 안에서 편안하게 되고 종사의 생령들도 모두 밖에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에 네 번째 일입니다.
若夫山陵之卜, 則臣前日嘗以議狀進呈, 近日又與同列連名具奏. 今更不敢頻煩聖聽, 亦望特宣大臣, 使詳臣等前後所論而決其可否於立談之間. 先寬七月之期, 次黜臺史之說, 別求草澤, 以營新宮, 使壽皇之遺體得安於內, 則宗社生靈皆蒙福於外矣. 此四事也.
이 네가지 일은 모두 오늘날 가장 급선무입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정신을 기울여 반복해서 생각하시고, 결단을 내려 시행해서 하늘의 변화에 답하고 인심을 위무하십시오. 위로는 성왕이 사람을 등용하고 간언을 구하는 진실을 빛내시고 아래로는 작은 신하들이 군주를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을 펴게 하신다면 저로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다행이겠습니다.
凡此四事, 皆今日最急之務, 切乞留神, 反覆思慮, 斷而行之, 以答天變, 以慰人心, 上以彰聖王用人求諌之實, 下以伸小臣愛君憂國之忠, 則臣不勝千萬大幸!
또 가만히 생각건대 저는 늙고 병든 와중에 차가운 방에서 홀로 밤을 지내며 밤새도록 잠을 못이루고 만 갈래 걱정만 하곤 합니다. 그러나 폐하를 뵙고 말을 아뢸 때에는 대부분 다 잊어버리고 언어와 정신은 또 스스로 통달치도 못합니다. 이런 까달에 지난 날 한 두 번 뵙고 주장을 올릴 때 아뢰었던 여러 일들은 폐하의 깊은 살핌을 받지 못햇씁니다. 지금 경연관으로 입시하게 되어 감히 다시 분에 넘치는 것도 무릎쓰고 글로 썼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홀로 자세히 살피시고 그 알맞은 것을 선택하십시오. 외로운 저의 발자취는 스스로를 보존할 수 없으니 오늘 이후로는 오래도록 폐하의 근처에서 모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과 죄를 기다리는 황공함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바라건대 마음 속에 간직해 두십시오)
又竊念臣老病之餘, 寒齋獨宿, 終夜不寐, 憂慮萬端 : 而進對之時, 率多遺忘, 言語精神又不能以自達. 是以前日一再面奏, 所陳數事, 有未蒙深察者. 今因人侍, 敢復嘗昧, 輒形紙墨, 伏惟聖明獨賜詳覽而擇其中. 至於孤危之蹤, 不敢自保, 竊恐自今以往, 不獲久侍淸閑之燕矣. 臣無任膽戀懇切皇恐俟罪之至. 取進止. 乞留中.
[‘축하표를 받지 말라’는 구절 아래의 첩황] 저는 또 어제의 축하표에 대해서는 비록 물리쳤지만 지휘는 내리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이후로도 마땅히 축하할 일이 있으면 3년 이내의 일은 모두 임시로 그만두게 하시고, 그 절서의 변천에 대해서 모두 마땅히 이름을 쓰고 봉위하는 경우에도 아울러 천자께서 먼저 처분을 내리시면 일을 만나 예를 잃는 결과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지를 기다립니다.
(不受賀表下貼黃)臣又聞前日賀表雖蒙退出, 而未降指揮. 今後合稱賀事, 三年之內幷與權免, 其節序變遷, 幷合進名奉慰, 幷乞聖明先賜處分, 庶幾遇事免致失體. 伏候聖旨.
[‘가만히 하늘의 뜻을 본다’는 구절 아래의 황첩] 저는 또 이렇게 들었습니다. 이전에 뇌성과 비가 뿌릴 때 여러 차례 지진이 있었는데, 이번 17일 한 밤을 전후해서 지진이 더욱 심했다고 합니다. 8월 중순에 촉땅에서 큰 지진이 있어서 담장과 집들이 종종 무너졌다고 합니다. 저는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본 사람들이 상당히 많으니 전해진 말이 매우 정확합니다. 폐하의 정치가 막 일신되려는데 재이가 그치지 않습니다. 하늘의 경계가 매우 분명하니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竊觀天意下貼黃)臣又聞前此雷雨之時, 累曾地震, 此十七日半夜前後, 其震尤甚. 八月半間, 蜀中大震, 牆屋往往傾摧. 臣雖不曾親見, 然見者頗多, 傳聞甚的. 聖政方新而變異不止, 天戒甚明, 必有所爲. 幷乞睿照.
[‘이것이 세 번째 일입니다’는 구절 아래의 황첩] 저는 또 인주는 총명함의 실상에 힘써야지 총명이란 이름을 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을 신임하고 날마도 더불어 일을 계획하면서 반복해서 변론함으로써 지당한 귀결을 추구하는 것이 총명의 실상입니다. 주변 사람의 말만 치우치게 듣고 그들의 말을 가볍게 믿으며 매사에 자신의 속에서만 처분을 이끌어 내는 것이 총명이란 이름입니다. 그 실상에 힘쓰는 것은 지금은 비록 밝지 못하지만 오래면 반드시 통하고 깨우치게 됩니다. 그 이름에 힘쓰는 것은 간혹 바깥으로 일시적으로는 보고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지만, 마음 속이 진실로 밝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되면 오래 될 수록 어두워집니다. 이 두 가지 사이의 차이는 아주 작지만 그 득실은 큰 차이를 빚게 됩니다. 바라건대 살펴주십시오.
(此三事也下貼黃) 臣又嘗謂人主當務聰明之實, 而不可求聰明之名. 信任大臣, 日與圖事, 反覆辯論, 以求至當之歸, 此聰明之盲也. 備聽左右, 輕信其言, 每事從中批出處分, 此聰明之名也. 務其實者, 今雖未明, 久必通悟. 務其名者, 或外間一時可以竦動觀聽, 然中實末明, 愈久而愈暗矣. 二者之間, 所差毫釐, 而其得失則有太相遠者. 伏乞睿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