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주차 4 延和奏箚 四
【해제】이 글은 순희 8년(신축: 1181, 52세) 절동제거(浙東提擧)의 신분으로 11월에 효종에게 올린 「연화주차(延和奏箚)」 일곱 통 가운데 네 번째 글이다.
제가 최근 구황책을 강구하면서 또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비록 오늘날 시급하게 구제해야 할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훗날의 장구한 이익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아래와 같이 따로 내용을 갖추어 아룁니다.
臣比因講求荒政, 復有二事, 雖非今日拯救之急, 而實異時久遠之利, 不敢不言. 今謹別具進呈下項:
신이 지난 번 남강군을 맡고 있을 때 마침 가뭄을 만나 실태를 검사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일이 하호(下戶)들을 동요하게 만들까 아주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침 어떤 선비가 제게 “바라건대 5두 이하의 묘미를 납부해야 하는 인호들에 대해서는 실태 조사도 면제하고 모두 방면해주십시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즉시 시행했는데,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했습니다. 본로의 제거상평인 우무(尤袤)가 마침내 이 법을 다른 여러 군에 시행해서 널리 이익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신주를 경유하면서 옥산현의 한 검사관이 이처럼 조치하면서, 위 세 등급의 인호들은 피해의 정도에 따라 감면하고 그밖에 아래 두 등급의 인호에 대해서는 모두 감면했습니다. 감면한 것을 통틀어 계산하면 한 현에서 모두 50% 정도에 불과합니다. 길가에 사는 백성들에게 물었더니 이보다 합당하고 공평한 것은 없다고 했으니 이것이 가장 좋은 법인데도 율령에 분명한 규정이 없습니다. 또 금년의 실태 조사가 이미 끝났는데, 시행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천자께서 자세히 참작해서 특별히 유사에게 조서를 내려 법령으로 등재하도록 하여 지금부터는 홍수와 가뭄이 대략 30%이상의 피해를 보면 다섯 번째 등급의 인호는 모두 실태 조사를 해서 장부에 기재하는 것을 면해주고, 이에 앞서 모든 인호에게 조세를 방면해 주십시오. 만일 피해가 50% 이상이면 네 번째 등급의 인호도 여기에 의거해서 시행해 주십시오.
一․ 臣昨任南康軍日, 適値旱傷, 深慮檢放搔擾下戶. 偶有士人陳說, 乞將五斗以下苗米人戶免檢全放, 當時卽與施行, 人以爲便. 本路提擧常平尤袤遂以其法行之諸郡, 其利甚博. 近日經由信州, 則聞玉山一縣亦得檢官如此措置, 除上三等戶隨分減放外, 下二等戶盡行蠲免, 通計一縣所放, 亦不過共成五分. 問之道旁居民, 莫不稱其平允. 此最爲法之善者, 而律令未有明文. 又今年檢踏已畢, 行之不及, 欲乞聖慈詳酌, 特詔有司定著爲令, 自今水旱約及三分以上, 第五等戶幷免檢踏具帳, 先與全戶蠲放. 如及五分以上, 卽幷第四等戶依此施行.
해당 주현에서 파견된 관리가 실태 조사의 시기를 놓쳐 한해를 입은 전답에 조사할 근거마저 남겨져 있지 않게 되면 역시 법을 만들어 처벌하십시오. 피해를 본 전답은 지형의 높낮이와 물길의 원근을 따지고, 주변 토지의 피해 정도를 비교해서 감면한다면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길이 편하고 이익이 될 것입니다.
其州縣差官後時, 致得旱損田苗不存根査, 亦乞立法坐罪. 其所損田卽與相度地形高低․水源近遠, 比幷鄰至分數檢放, 庶幾貧民永遠利便. 苗米
신이 살고 있는 건령부 숭안현 개휘향(開耀鄕)에는 사창이 한 곳 있습니다. 지난 건도 4년에 향리의 백성들이 끼니를 걱정할 때 본 부에서 상평미 600석을 공급해서 저와 본 향에 살고 있는 조봉랑 유여우(劉如愚)에게 함께 진휼용으로 임대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겨울이 되어 회수된 애초의 쌀은 다음해 여름에 본 부에서 다시 영을 내려 예전처럼 인호들에게 임대하게 했고, 겨울에 다시 거둬들였습니다. 저희들이 본 부에 조치한 내용을 보고한 것은 매 석당 이자로 2두를 거두고, 이 이후로는 매년마다 여기에 의거해서 임대하고 거둬들인다는 것이었습니다. 혹 조금 흉년을 만나게 디면 그 이자의 절반을 감면하고, 큰 기근이 들면 모든 이자를 면제했습니다. 지금까지 14년이 되었는데 이자로 거둔 쌀만으로도 창고 세 칸을 지어 저장할 정도여서 애초에 방출한 600석은 이미 본 부에 환납시켰습니다. 현재 관리하는 수량 3,100석은 모두 몇 년 동안 인호들이 납부한 이자쌀입니다. 이미 본 부에 회계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앞으로는 예전의 예에 의거해서 쌀을 풀면서 다시 이자를 거두지 않고 단지 매 석마다 감가상각분의 쌀 세 되만을 징수하도록 보고를 올렸습니다. 이 일은 제가 본 향에 거주하는 향관과 선비 몇 사람과 함께 관할하면서 쌀을 풀 때가 되면 본 부에 현의 관리 한 사람을 파견해서 출납을 감시하도록 보고를 올렸습니다. 이런 까닭에 4, 50리 정도 되는 한 향이 비록 흉년을 만나더라도 사람들이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법은 넓게 확대해서 다른 지역에서 시행할 수도 있는 것인데, 성문화된 법령이 없고 인정상 억지로 시행하기도 힘듭니다. 제 생각으로는 천자께서 의역(義役)의 체제에 의거해서 여로 로의 주와 군에 명을 내려 인호들을 유도하고, 여기에 의거해서 사창을 설치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주현에서 상평창의 미곡을 공급해서 본 향의 출등(出等) 인호에게 책임을 맡겨 쌀을 풀고 거두는 일을 주관하게 하십시오. 또 매 석마다 이자 두 말을 거두되 본 향에 거처하는 사람이나 혹은 기거하는 관원, 사인 중에서 행실과 리가 올바른 사람을 파견해서 본 현의 관리와 함께 출납을 감독하게 하십시오. 거두어들인 이자쌀이 애초의 방출미의 10배에 이르게 디면 애초의 방출미는 관에서 거둬들이고, 이자쌀만 가지고 풀고 거두게 하시고, 매 석당 감가상각분에 해당하는 세 되만 거두게 하십시오. 부자들 가운데 진심으로 사창의 종자쌀을 내놓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편의대로 하도록 하고, 이자쌀이 적정 수량에 이르면 또한 종자쌀을 되돌려 주십시오. 만일 남다른 그 고장만의 풍속이 있다면 역시 시의적절하게 규약을 세워 관에 보고하고 준수하게 하시면 진실로 오래도록 이로울 것입니다. 사창을 설치하기를 원치 않는 지역에 대해서는 관사에서도 억지로 강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시끄러운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비록 목적의 급한 상황을 구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공사의 저축을 튼튼하게 하고, 장기적인 것을 미리 준비하는 계획입니다. 올해처럼 흉년이 든 해에 시행을 한다면 반드시 따르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건령부의 사창에서 현재 시행하는 일의 조목을 삼가 한 통의 차자로 갖추어 올립니다. 천자께서 자세히 살펴 시행해주시기를 바랍니다.
一․臣所居建寧府崇按縣開耀鄕有社倉一所, 係昨乾道四年鄕民艱食, 本府給到常平米六百石, 委臣與本鄕土居朝奉郞劉如愚同共賑貸. 至冬收到元米, 次年夏間, 本府復令依舊貸與人戶, 冬間納還. 臣等申府措置, 每石量收息米二斗, 自後逐年依此斂散. 或遇小歉, 卽蠲其息之半, 大饑卽盡蠲之. 至今十有四年, 其支息米造成倉敖三間收貯, 已將元米六百石納還本府. 其見管三千一百石, 幷是累年人戶納到息米, 已申本府照會, 將來依前斂散, 更不收息, 每石只收耗米三升. 係臣與本鄕土居官及士人數人同共掌管, 遇斂散時, 卽申府差縣官一員監視出納. 以此之故, 一鄕四五十里之間, 雖遇凶年, 人不闕食. 竊謂其法可以推廣, 行之他處, 而法令無文, 人情難彊. 妄意欲乞聖慈特依義役體例, 行下諸路州軍, 曉諭人戶, 有願依此置立社倉者, 州縣量支常平米斛, 責與本鄕 出等人戶, 主執斂散, 每石收息二斗, 仍差本鄕土居或寄居官員士人有行義者與本縣官同共出納. 收到息米十倍本米之數, 卽送原米還官, 却將息米斂散, 每石只收耗米三升. 其有富家情願出米作本者, 亦從其便, 息米及數, 亦與撥還. 如有鄕土風俗不同者, 更許隨宜立約, 申官遵守, 實爲久遠之利. 其不願置立去處, 官司不得抑勒, 則亦不至搔擾. 此在今日言之, 雖無所濟於目前之急, 然實公私儲蓄, 豫備久遠之計. 及今歉歲施行, 人必願從者衆. 其建寧府社倉見行事目, 謹錄一通進呈. 伏望聖慈詳察, 特賜施行.
이상과 같이 내용을 갖추었습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右謹具如前, 取進止.
연화주차 5 延和奏箚 五
【해제】이 글은 순희 8년(신축: 1181, 52세) 절동제거(浙東提擧)의 신분으로 11월에 효종에게 올린 「연화주차(延和奏箚)」 일곱 통 가운데 다섯 번째 글이다. 소흥부에 부과된 화매견의 지나친 징수를 비판하면서 화매견에 대한 시정 조치를 강구해서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제가 살펴보니 절동로에 부과된 화매견의 수량이 지나치게 많은데 소흥부 한 곳이 그 절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례에 의하면 물력(物力)이 38관 500 이상인 인호들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었습니다. 인호들이 수납에 괴로워하다 대부분 궤호(詭戶)를 세우고 물력을 숨기면서 화매견의 징수를 피하려고 하느라, 현재 화매견을 납부하는 인호들에게 부과된 양이 더욱 무겁고, 그 가운데는 또 화매견을 부과하는 토지의 수량에 미치는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도 관리들이 면제를 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어 폐단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전현직의 신료들이 신청하기도 하고, 아울러 천자께 시행하라는 허락을 받기도 했지만 한 때에 담당관리들이 천자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여러 가지 주장에 이끌려다니느라 아직까지 정론이 없습니다. 제가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자세한 곡절을 알 수 없어 감히 청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듣기로 한 군의 백성들이 이것을 병폐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외람되이 관리로 부름을 받은 몸이라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라건대 천자께서 특별히 지휘를 내려 제가 임지에 도착하면 본 로의 수신 및 감사와 함께 헤아려서 내년 2월을 기한으로 정론을 결정해 주장으로 보고해서 지휘를 받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내년 여름부터 시작해서, 과거의 적폐를 혁파한다면 굶주림으로 시달리는 백성들이 생업을 편케하고, 자자손손 인자하신 천자의 기름진 은택을 누리게 될 것이니 말할 수 없는 다행일 것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臣竊見浙東路和買絹萬數浩瀚, 而紹興府獨當其半. 舊例, 自物力三十八貫五百以上人戶均敷. 人戶苦於輸納, 多立詭戶, 隱寄物力, 以避均敷, 是致見納人戶所敷愈重, 其間又有不該敷納田地之數, 官司不爲除豁, 其弊非一. 前後臣僚申請, 幷蒙聖慈施行, 而一時有司不能奉承德意, 牽於衆說, 未有定論. 臣以得之傳聞, 未知其間微細曲折, 不敢輒有陳請. 然聞一郡之人無不以此爲病, 猥蒙任使, 不敢坐視. 欲望聖慈特降指揮, 許臣到官與本路帥臣監司同共相度, 限來年二月內要見定論, 申奏取旨. 從來年夏料爲始, 革去舊弊, 庶幾饑饉餘民得安生業, 世世子孫沐浴仁聖之膏澤, 不勝幸甚!取進止.
연화주차 6 延和奏箚 六
【해제】이 글은 순희 8년(신축: 1181, 52세) 절동제거(浙東提擧)의 신분으로 11월에 효종에게 올린 「연화주차(延和奏箚)」 일곱 통 가운데 여섯 번째 글이다. 성자현의 지나친 세금 부담을 지적하면서, 서단보가 시행했던 조치의 공과를 비판하고, 조정이 공식적으로 성자현의 세금 부담을 경감시켜 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특히, 세금의 경감을 다른 물건으로 대신하라는 일부 조정 관료들의 이른바 ‘대보설’를 극력 비판하고 있다.
저는 지난번에 성은을 입어 남강의 작은 성루를 돌보게 되었지만, 재주도 없고 못나서 폐하의 은혜에 만분지 일도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임지에 도착한 초기에는 곧장 본 군의 성자현의 세전이 지나치게 무거워 백성들이 삶을 영위하기 힘들다는 내용으로 주장을 올리고서, 세금의 경감을 빌었는데, 모두 계산해 보아도 비판이 1050여필, 돈이 2900여 관에 불과했습니다. 천자께서 저의 청을 받아들이시고 즉시 시행해 주실을 것을 빌었는데, 담당관이 폐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논의하는 신하들의 다른 물건으로 대신 납부하라[對補]는 주장을 끌어다 저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제가 금년에 교체되기 전에 또 주장을 써서 폐하의 은혜를 받게되기를 기대햇는데, 지금까지 몇 달이 다되도록 처분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담당관들이 아직또 이전의 주장을 고집하는 것이라면 어리석은 제게도 그만 둘 수 없는 점이 있어 이전의 주장 가운데 가장 명백한 내용 두 조목을 다시 폐하를 위해 진달하겠습니다.
臣昨蒙聖恩, 待罪南康小壘, 自惟短拙, 無以補報萬分. 到任之初, 卽以本軍星子縣稅錢偏重, 民不聊生條具奏聞, 乞賜蠲減, 總計不過納絹一千五十餘匹, 錢二千九百餘貫. 伏蒙聖慈開納, 卽賜施行, 而有司不能仰體德意, 輒引議臣對補之說以拒其請. 臣於今年得替之前, 又嘗具奏, 冀卒蒙恩, 而逮今累月, 未奉進止. 竊意有司尙守前說, 然臣之愚亦有不能自已者, 謹以前奏之內最明白者二條, 復爲陛下陳之.
본 현에서 관할하는 여산 일대는 높다란 바위와 가파른 절벽, 큰 돌과 무성한 수풀이 대부분입니다. 그 사이에 비록 작은 전답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자갈투성이의 척박한 데다가 기후마저 차가워 수입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계법을 담당한 관리들이 매긴 세금의 명목과 액수가 지나치게 많아, 납부하기가 힘듭니다. 이런 까닭에 소흥 년간에 수신이었던 서단보가 사원과 관련한 청으로 인해서 140여관을 경감했습니다. 세금을 경감한 것이야 진실로 옮은 일이었습니다만 애초부터 조정에 청해서 조정의 명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세금을 감했기 때문에 국가의 경상 재졍에 부족이 있을까 걱정스러워 망령되게도 경계법 이전의 부정확한 장부를 끌어다가 인호의 하전을 중등으로 올리고, 중전을 상등으로 올렸으며, 또 곧장 하등에서 상등으로 올라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장부를 살피고 전답을 검사해서 멋대로 세금을 가중시켜, 돈 140여관을 계산해서 몰래 감면한 여산의 세액을 보충했습니다. 그 사이에 언제나 살펴보러 오는 조신이 있었고, 인호들이 하소연해서, 조사가 방을 내걸고 고치겠다고 약속했지만, 본 군에서 다시 받들어 시행한 적은 없습니다. 그 뒤에 또 인호들이 호부를 경유해서 하소연했음에도 바로잡히지 못했습니다. 저는 국가가 백성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힘쓰며 그들의 처지를 가슴아파한다면 정상적인 부세 이외에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거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의 작은 신하여 인정에 이끌려 망령스럽게 명목을 만들어서 감히 140관의 세금을 까닭엀이 사람들에게 부가했으니, 비록 산에서 거두는 세금은 감면시킨 것은 조금이나마 마땅함을 얻은 처사였다고 하지만 전답의 세금을 증가시킨 것은 지나치게 어긋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번 주달할 때 서단보가 감면한 산세에 대해 분명하게 지휘를 내려, 특별히 감면을 허락해 주시고, 증가시킨 전세는 바로잡아 주실 것을 청하면서 과거의 등색에 의거해서 균등하게 징수해서, 사리에 당연하고 조금의 의심도 없게 하더라도 감면된 액수가 너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뜻하지 않게도 유사가 일의 대체적인 성격을 살피지 못하고 작은 비용만을 아끼느라 대보에 대한 주장으로 가로막으려 하니, 이것은 절더러 서단보가 했던 것처럼 하게 만든 다음에야 그만두라는 격입니다. 하나의 이익을 가져오지도 못한채 또 다른 하나의 피해를 먼저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저로서도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비록 관직을 떠났지만 이 현의 지친 백성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죽을 죄를 무릎쓰고 다시 폐하께 아룁니다. 폐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담당관에게 분명한 조서를 내려 이 두 가지 조목을 먼저 감면하고 개정해 주십시오. 그 나머지 항목에 대해서는 제가 감히 시행해 달라고 빌 수는 없지만 모두 감면해 주신기만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또 바라건대 본로의 감사 한 사람에게 자세하게 헤아려보도록 책임을 맡겨 그의 보고를 기다린 다음에 따로 지휘를 내려주십시오. 순희 6년 10월 19일 논의하던 신하들이 주장한 대보설 같은 것은 그 말이 인색하고 비루하며, 시각이 좁은 것으로 일의 본질적인 성격을 건드리지 못해서, 폐하께서 자신을 이기고 백성을 사랑하시며․간언에 귀기울시고 폐단을 혁파하려는 아름다운 뜻에 따를 방도가 없습니다. 정주와 현언을 온 나라에 반포하는 것은 덕의를 펴고 어질다는 명성을 세상에 넓게 퍼뜨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명철하신 천자께서 아울러 소급해서 금지한다는 명을 내려서 오늘 이후로는 안팎과 사방에서 경감을 청하는 자들이 있거든 그 허실을 탐구해서 한결같이 법에 따라 판단하신다면 저들은 요행을 통해 구차하게 면해보려는 계획을 감히 제 멋대로 하지 못할 것이니 또 어째서 거스리고 방해하면서 원근에서 은택과 복을 바라는 마음을 다치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또 옛 사람의 말에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께는 누구와 더불어 부족할 것이며, 백성이 부족하다면 임금께서는 누구와 함게 풍요를 누리시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천지처럼 넓고 큰 마음으로 성현께서 친절하게 훈계한 것입니다. 저는 폐하께서 여기에 대해 깊이 유념하신다면 저 못나고 천박한 말은 저절로 멀고 깊은 곳으로 잠겨 사라져 버리고 감히 다시 폐하의 앞에 진달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제넘거 망언을 하느라 본분이 아닌 일을 넘어서게 되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겠습니다. 가려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按本縣所管廬山一帶, 多是高巖峭壁, 穹石茂林, 其間雖有些小田段, 類皆磽瘠寒冷, 所入不多. 而經界官吏起紐稅錢數目浩瀚, 難以輸納, 以故紹興年中守臣徐端輔者因寺院之請, 減去一百四十餘貫. 減之誠是也, 然初不請命於朝而輒私減之, 旣又慮夫經稅之或虧也, 則妄引經界以前不明文帳, 將人戶下田升作中等, 中田升作上等, 亦有徑自下等而升上等者, 按籍履畝而橫加其稅, 計錢一百四十餘貫, 以陰補所免廬山稅錢之數. 中間常有漕臣按臨, 人戶陳訴, 漕司爲之張榜約束改正, 而本軍不復奉行. 其後又有人戶曾經尸部陳訴, 而亦不能正也. 臣竊惟國家子愛黎元, 憂勤懇惻, 常賦之外, 一毫不忍有所多取. 而下土小臣率情妄作, 乃敢以一百四十餘貫之稅無故而妄加於人, 雖其除之於山, 粗若得宜, 而增之於田, 則悖謬甚矣. 故臣前奏, 欲乞將端輔所減山稅明降指揮, 特與蠲減, 而其所增田稅却與改正, 依舊等色均稅. 其爲事理曉然無可疑者, 而所蠲之數亦不甚多. 不謂有司不顧大體而惜小費, 乃欲限以對補之說, 則是使臣又爲端輔之所爲而後已爾. 未興一利而先起一害, 臣雖至愚, 有所不忍爲也. 今雖已去官守, 然於此縣疲瘵之民有未能忘者, 故敢不避斧鉞之誅, 復以上聞. 欲望聖慈矜閔, 明詔有司, 將此兩條先次減免改正. 其餘項目, 臣亦未敢便乞施行, 悉祈蠲免. 且乞專委本路監司一員子細相度, 俟其奏報, 則賜指揮. 至於淳熙六年十月十九日議臣對補之說, 其言吝細鄙狹, 不達大體, 無以將順陛下克己愛民․聽言革弊之美意. 而程奏顯言, 頒布海內, 非所以宣德意而廣仁聲於天下也. 欲望聖明幷賜追寢, 自今以來, 四方內外或有以蠲除爲請者, 究其虛實而一以法義裁之, 則彼固不得以肆其僥倖苟免之計, 亦何必逆爲之限, 以傷遠近祈恩望幸之心哉? 抑古人亦有言曰: ‘百姓足, 君孰與不足? 百姓不足, 君孰與足? ’ 此乾坤廣大之心, 聖賢親切之訓. 臣願陛下於此深留聖意, 則彼妄庸淺俗之言自將深藏遠屛, 不敢以陳於陛下之前矣. 臣進越妄言, 犯非其分, 不勝恐懼戰慄之至. 取進止.
연화주차 7 延和奏箚 七
【해제】이 글은 순희 8년(신축: 1181, 52세) 절동제거(浙東提擧)의 신분으로 11월에 효종에게 올린 「연화주차(延和奏箚)」 일곱 통 가운데 일곱 번째 글이다. 백록동서원의 편액과 석경 및 서적을 내려주라는 청을 하고 있다.
저는 지난 번 남강군 지사를 맡고 있었을 때 장을 써서 백록동서원의 편액을 내려주시길 빌었습니다. 또 태상황제께서 어필로 쓴 석경 및 9경 주소의 판본을 함께 백록동에 내려보내 달라고 빌었는데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정 안팎으로 시끄럽게 전파되어 사람들이 서로 조롱하고 비웃으며 괴상한 일이라들 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두려워 감히 제 주장을 다 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록동서원은 사실 당나라의 은거한 선비였던 이발이 머물던 곳입니다. 당시의 학자들도 많은 사람들이 이발과 교류하면서 마침내 학사를 세웟습니다. 5대 시절이 되자 이선도가 백록동주가 되어 토지를 주고 양식으로 학생들을 돌보게 되어서는 모여든 사람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마침내 우리나라 초기에 이르러서까지 오히려 수백명을 헤아릴 정도였습니다. 태평흥국 년간에 9경을 내리고 동주를 임명한다는 조서를 내렸다는 사실이 국조회요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함평 5년에는 칙령으로 중수할 것을 명해서, 공자와 제자들의 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진순유(陳舜兪)의 기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편지들도 모두 보존되어 있어서 증거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臣昨任南康軍日, 嘗具狀奏乞賜白鹿洞書院敕額, 及乞以太上皇帝御書石經幷版本九經注疏給賜本洞, 今亦未蒙施行, 而朝野喧傳, 相與機笑, 以爲怪事. 臣誠恐懼, 不敢不盡其說. 謹按, 本洞書院實唐隱士李渤所居, 當時學者多從之遊, 遂立黌舍. 至五代時, 李氏爲建官師, 給田贍養, 徒衆甚盛. 追至國初, 猶數十百人. 太平興國中, 嘗蒙詔賜九經而官其洞主, 見於會要. 而咸平五年, 有勅重修, 仍塑宣聖及弟子像, 又見於陳舜兪所記. 簡牘具存, 可覆視也.
백록동이 융성하게 된 것은 그 유래를 살펴보면 비록 천선한 것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태종황제와 진종황제께서 돌아다보시고 이처럼 융숭하게 포상하셨으니, 천자의 생각은 낮은 관리의 천박한 견해로 헤아릴 수 없는 멀고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너진 것을 다시 들어 세우지도 않고, 그 건물은 있지만 사액조차 없으며, 생도는 있는데 내려보내주신 책이라곤 없습니다. 세상의 풍속은 가볍게 여기고 廢壞無日 이것이 제가 크게 두려워하면 편치 못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담당관이 저의 청에 의심이 없을 수 없는 이유가 반드시 저를 조롱하며 비웃는 자들의 말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주현에 이미 학교가 있으니 다시 번거롭게 낭비할 필요가 없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저는 다시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선왕의 예의를 가르치는 기관과 이단의 귀신의 가르침을 교육하는 기관은 어느 것이 올바르고 어느 것이 사악한 것입니까? 삼강 오상의 가르침과 애비도 임금도 몰라보는 주장은 어느 것이 이롭고 어느 것이 해롭습니까? 지금 도교과 불교의 궁관은 온 세상에 가득해서, 큰 군에서는 천여개를 넘고 작은 읍에서도 수십개 이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관에서나 개인들이나 모두 더 만들고 수효를 늘려 그 기세가 멈추지를 않습니다. 한교의 경우에는 한 군과 현에 겨우 하나 정도가 있을 뿐, 큰 군에 붙어있는 작은 현에는 간혹 없는 경우조차 있습니다. 그 성쇠와 다과의 형상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올바름과 사악함, 이익과 해로움은 이미 분명합니다. 지금 담당관이 저것을 바로잡지도 못하면서 거꾸로 제가 이렇게 청한 것을 의심하니 저로서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다행히도 폐하를 뵙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감히 다시 청을 드립니다. 바라건대 천자께서 저의 이 장을 내려보내 특별히 청한 대로 좇아주시고, 이미 선대의 황제들의 뜻을 이어받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이끌어 주십시오. 또 丕闡大猷로 차근차근 밝게 사악한 것을 억누르고 올바른 것을 흥기시키는 밝게 보여주신다면 진실로 먼 후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위해 다행일 것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夫以此洞之興, 原其所自雖若淺鮮, 無足言者, 而太宗皇帝․眞宗皇帝眷顧褒崇至於如此, 則聖意所存, 至深至遠, 必有非下吏淺聞所能窺測者. 今乃廢而不擧, 使其有屋廬而無敕額, 有生徒而無賜書, 流俗所輕, 廢壞無日, 此臣所以大懼而不能安也. 然竊意有司所以不能無疑於臣之請, 固未必皆如譏笑者之言, 殆必以爲州縣已有學校, 不必更爲煩費耳. 如其果然, 則臣請有以質之. 夫先王禮義之官與異端鬼敎之居, 孰正孰邪? 三綱五常之敎與無君無父之說, 孰利執害? 今老佛之宮偏滿天下, 大郡至踰千計, 小邑亦或不下數十, 而公私增益, 其勢未已. 至於學校, 則一郡一縣僅一置焉, 而附郭之縣或不復有. 其盛衰多寡之相絶至於如此, 則於邪正利害之際亦已明矣. 今有司非徒不能有所正於彼, 而反疑臣之請於此, 臣不能識其何說也. 今幸蒙恩賜對, 故敢復以爲請. 伏望聖慈下臣此章, 特從其請, 旣以紹承先志, 啓迪群心, 又以丕闡大猷, 昭示抑邪與正之漸, 實天下萬世之幸. 取進止.
우리말 주자대전 14권
주차 奏箚
무신년 연화전의 주차 1 戊申延和奏箚一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무신, 1188, 59세) 6월 7일 연화전에서 효종을 직접 만나 올린 다섯 통의 주차―「무신연화주차」― 가운데 첫 번째 글이다. 1181년 3월 27일 주자는 지남강을 그만두고 숭안현으로 돌아왔는데, 당시에 이미 새로운 벼슬인 제거강남서로상평다염공사를 제수받았으나 아직 취임하지 않은 때였다. 곧이어 남강군의 구황에 공이 있다는 이유로 제거절동상평다염공사로 관직이 바뀌었는데, 그 해 12월이 되어서야 주자는 절동제거의 직책에 나아갔다. 절동제거로 있으면서 당중우에 대한 탄핵 사건을 계기로 강서제형을 제수받았지만, 이를 사양하고 1182년 9개월여의 절동제거를 그만두고 숭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후 5년여를 집에서 지낸 다음 무신년(1188)이 되자 주자는 6월 7일에 입궐해서 「무신연화주차」 다섯 통을 올렸고, 이어서 병부랑관을 제수받지만 사양하고 8월에 숭안으로 돌아왔다. 「주차」를 올릴 당시 주자는 강서제형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주차」는 주로 ‘옥송’의 문제를 논하면서, 교화와 형벌을 겸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옛날 순임금[帝舜]께서는 백성들이 친애하지 않고, 다섯 가지 인륜 관계가 순조롭지 않다는 이유로 설(契)을 사도(司徒)의 관에 임명해서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란 다섯 가지 인륜을 가르쳤습니다. 또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까 걱정해서 고요(皐陶)를 사(士)에 임명해 형법을 분명히 함으로써 다섯 가지 가르침을 보좌하고, 형벌받는 사람이 없기를 기약했습니다.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은 천리와 백성의 본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요 치도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정치는 가르쳐서 밝히고, 형벌로써 보충해서 시행하는 것에는 앞뒤, 완급의 차이가 있지만, 간곡하고 절실한 뜻은 언제나 여기에 있었습니다. 삼대의 임금들이 제정한 제도에 대해서는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형벌과 관련된 송사를 들을 때는 반드시 부자간의 친애함에 근원을 두고, 군신 간의 의리에 입각해서 저울질하고, 반드시 이렇게 한 다음에 죄의 가볍고 무거움을 논의할 수 있고, 형벌의 깊고 얕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구가 그의 총명함과 충성, 백성에 대한 사랑을 극진히 발휘할 때 비로소 (형법은) 어긋나지 않게 베풀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선왕들이 벌주거나 죽이거나 다 의리에 맞아서 비록 간혹 백성의 몸과 생명을 해치고 죽이는 일이 있더라도, 한 사람을 벌주면 온 세상 사람들이 멋대로 악한 짓을 하려고 마음 먹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올곧은 사람이 보좌하는 것 처럼, 마치 처음부터 그런 (선한) 본성이 있었던 것처럼 되었던 까닭입니다. 후세에 형벌을 논하는 자들은 (선왕의 형벌이) 이런 마음가짐에서 나온 줄을 모르고 신불해(申不害)나 상앙(商鞅) 등의 각박한 법에 빠졌으니, 이미 의론할 가치도 없습니다. 나아가 비루한 유자들의 일시적인 의론 및 이단의 인과응보설, 세속의 아전[俗吏]들이 문서에 얽매여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하는 계책들은 또 한결같이 경솔하게 형벌을 가하는 것만을 능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벌이 가벼워질 수록 백성들의 풍속은 도타워 질 수 없고 종종 패역하고 난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길러주는 역효과를 가져와서 옥송이 더욱 빈번해지니, 이것은 선왕들이 남긴 법을 강론하지 않은 잘못입니다.
臣聞昔者帝舜以百姓不親, 五品不遜, 而使契爲司徒之官, 敎以人倫,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 又盧其敎之或不從也, 則命皐陶作士明刑, 以弼五敎, 而期于無刑焉. 蓋三綱五常, 天理民彝之大節, 而治道之本根也. 故聖人之治, 爲之敎以明之, 爲之刑以弼之, 雖其所施或先或後, 或緩或急, 而其丁寧深切之意, 未嘗不在乎此也. 乃若三代王者之制, 則亦有之曰, 凡聽五刑之訟, 必原父子之親․立君臣之義以權之, 蓋必如此, 然後輕重之序可得而(2-533)論, 淺深之量可得而測, 而所以悉其聰明․致其忠愛者, 亦始得其所施而不悖. 此先王之義刑義殺, 所以雖或傷民之饑膚, 殘民之軀命, 然刑一人而天下之人聳然不敢肆意於爲惡, 則是乃所以正直輔翼而若其有常之性也. 後世之論刑者不知出此, 其陷於申商之刻薄者, 旣無足論矣, 至於鄙儒姑息之論, 異端報應之說, 俗吏便文自營之計, 則又一以輕刑爲事. 然刑愈輕而愈不足以厚民之俗, 往往反以長其悖逆作亂之心, 而使獄訟之愈繁, 則不講乎先王之法之過也.
제가 엎드려 보건대 요즘 들어 혹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혹은 친족의 자식뻘되는 사람들이 아버지뻘 되는 사람을 살해하고, 혹은 토지를 붙여먹는 사람이 땅주인을 살해해도, 담당자들이 형벌을 의논하면서 결국 너그럽게 귀양이나 보내는 법을 따르고 맙니다. 사람을 죽인 자가 죽지 않고, 사람을 해치는 자가 처벌받지 않는 것은 비록 이제삼왕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해서는 세상을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부자유친, 군신유의와 같은 삼강의 소중함이 일반인에 비할 것이 아닌 것임에야 더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이런 일 때문에 마침내 폐하에게 법을 적용하면서 과감하게 사람을 죽이라고 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와 같이 인륜과 풍화의 근본에 연관된 일의 경우에도 담당자들이 경술과 의리로 재단하지 않고, 속세의 유자들의 비루한 의론과 이단의 사설, 서리들의 사적인 계책이 그 사이에서 횡행한다면 천리와 백성의 떳떳한 본성이 어찌 다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순임금이 형벌이 없기를 바랬던 것도 어느 날에나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엎드려 원하건대 폐하께서는 안팎의 정사를 맡은 자들 가운데 옥사를 책임진 관리들에게 조서를 내려 반드시 먼저 존귀함과 비천함, 위와 아래를 논하고, 장유와 친소의 구분을 논한 다음에 일의 전말에 관한 말을 듣도록 하십시오.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범한 자와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를 능멸한 경우에는 비록 사람이 곧더라도 고려하지 말고, 곧지 않은 자는 일반인에 비해 죄를 가중 처벌하십시오. 그 사이에 불행하게도 사람을 죽이거나 해친 자는 비록 고려할만한 점이 있고 가련하게 여길만 해서, 따로 말을 올려 죄를 의논하게 된 경우에도 정상참작해서 처벌을 가볍게 하는[擬貸] 사례를 적용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또 유신(儒臣)들에게 조서를 내러 널리 경전과 사서 및 고금의 현철들이 교화와 형벌에 대한 논한 것을 모아서 정치하고 핵심적인 말만 가려뽑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옛 것을 배우고 관직에 들어온[學古入官] 선비들과 법을 집행하며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들을 가르쳐, 모두 옛 선왕이 법전을 반포하고 가르침을 베풀며, 형벌을 바로잡고 죄를 밝힌 큰 단서를 대충이나마 알게 해서, 감히 몰래 고식(姑息)․과보(果報)․편문(便文)의 계책을 일삼지 못하게 한다면 세상을 교화할 수 있고, 폐하께서 죽이는 것을 미워하고 살리기를 좋아하며, 형벌이 없기를 기약하려는 본 뜻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臣伏見近年以來, 或以妻殺夫, 或以族子殺族父, 或以地客殺地主, 而有司議刑, 卒從流宥之法. 夫殺人者不死, 傷人者不刑, 雖二帝三王不能以此爲治於天下, 而况於其繫於父子之親․君臣之義, 三綱之重, 又非凡人之比者乎? 然臣非敢以此之故遂勸陛下深於用法而果於殺人也, 但竊以爲諸若此類涉於人倫風化之本者, 有司不以經術義理裁之, 而世儒之鄙論․異端之邪說․俗吏之私計得以行乎其間, 則天理民彝幾何不至於泯滅, 而舜之所謂無刑者又何日而可期哉? 故臣伏願陛下深詔中外司政典獄之官, 凡有獄訟, 必先論其尊卑上下․長幼親疏之分, 而後聽其曲直之辭. 凡以下犯上․以卑凌尊者, 雖直不右, 其不直者罪加凡人之坐. 其有不幸至於殺傷者, 雖有疑慮可憫, 而至於奏讞, 亦不許輒用擬貸之例. 又詔儒臣博(2-534)釆經史以及古今賢哲議論及於敎化刑罰之意者, 刪其精要之語, 聚爲一書, 以敎學古入官之士與凡執法治民之官, 皆使略知古先聖王所以勅典敷敎․制刑明辟之大端, 而不敢陰爲姑息果報便文之計, 則庶幾有以助成世敎而仰稱陛下好生惡殺․期於無刑之本意. 取進止.
연화주차 2 延和奏箚二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무신, 1188, 59세) 6월 7일에 연화전에서 효종을 직접 만나 올린 「무신연화주차」 가운데 두 번째 글이다. 옥관의 선발에 신중을 기할 것을 말하고 있다.
저는 옥사란 백성들의 생명이 걸린 것이요, 군자가 온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날 천하의 옥사에서 사형이 결정된 자들은 현에서 주로 보고하고, 주에서는 제형사[使者]에게 보고를 올립니다.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또 주에서는 조정으로 보고를 올리고, 조정에서는 자사(刺寺)에게 내려보내며, 자사는 의론해서 조정에 의견을 개진한 다음에 처벌합니다. 소홀함을 대비하고 지키는 것이 주도면밀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헌대(憲臺)에서 자세히 증거를 검토하는 것이나 자사가 의론하는 것은 주현에서 이미 완성된 옥사의 보고서를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보고서가 조금 완비되고, 사건의 실상이 다소라도 원만하기만 하면 시비가 거꾸로 뒤집히거나, 삶과 죽음이 왔다갔다 하더라도 제대로 살펴볼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모든 옥사의 근원을 깨끗이 하려면 주현에서 옥사를 담당하는 관리를 신중하게 선발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오늘날 현의 옥사는 영(令)에게 맡겨져 있고, 그를 선발하는 제도도 정밀하지만 언제나 제대로 된 사람을 얻지도 못하는 까닭에 폐단을 쉽사리 혁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臣聞獄者, 民命之所繫, 而君子之所盡心也. 今天下之獄, 死刑當決者皆自縣而達之州, 自州而達之使者, 其有疑者, 又自州而上之朝廷, 自朝廷而下之棘寺, 棘寺藏議而後 致辟焉. 其維持防閑, 可謂周且審矣. 然而憲臺之所詳覆, 棘寺之所讞議者, 不過受成於州縣之具獄, 使其文案粗備, 情節稍圓, 則雖顚倒是非, 出入生死, 蓋不得而察也. 是故欲淸庶獄之源者, 莫若遴選州縣治獄之官. 今縣之獄委於令, 其選固已精矣, 而未必皆得人, 其弊未易革也.
주의 옥사[主獄] 같은 경우는 오늘날의 이조의 관리임명법[銓格]에 의하면 선인(選人)이 임기가 만료되면 추천인[擧主]이 있는 경우에만 (옥사가) 번잡하고 복잡한 (지역의) 영록(令錄)으로 낙점하니, 그 사려가 이미 상세합니다. 그러나 사리(司理)를 낙점하려는 경우에는 이런 제도를 쓰지 않습니다. 요즘의 제도에 의하면 오직 관에 물품을 내고 관직을 받으려는 나이든 사람의 경우에만, 그를 심사해서 낙점하는 과정[注擬]을 생략합니다. 이외에는 통상적인 규정에 따라 관직을 올려줘서 비록 어리석고 병든 사람일지라도 모두 사리의 직책을 얻습니다. 심지어는 성부의 서사(胥史) 같은 유외(流外)의 신분으로 관직에 보충된 사람들도 모두 사리직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처럼 추천되어 관직이 올라간 사람들조차도 반드시 재능있고 공정한 사람을 모두 얻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고 병든 자들과 칭찬할 만한 선행도 없는 자들 및 서리로서 관직에 들어온 자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리석고 병든 사람은 구차하고 보잘것없는 녹봉을 받아 스스로를 돌돌줄만 알 뿐 옥사가 아전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도 게을리하면서 다시 살피지도 않습니다. 서리로서 관에 들어간 자는 또 과거의 인습에 젖어 서리들과 무리를 이루어 돈을 받고 팔며 농단하면서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군의 크고 작은 옥사는 종종 균형을 잃는 경우가 많고 원망과 비방, 탄식과 한숨이 조화로운 기운을 해쳐서 위로 성스런 천자의 정사에 이보다 더 심하게 누를 끼치는 것이 없습니다.
若州獄, 則今銓格凡選人任滿, 有擧主關陞者, 方注繁難令錄, 其慮蓋已詳矣. 然注司理者乃不用此令, 而近制唯進納癃老之人, 然後不得注擬, 此外則常調關陞, 雖昏繆疾病之人, 皆得而爲(2-535)之. 甚至於流外補官若省部胥史, 亦得而爲之. 彼以薦擧關陞者, 固未必盡得才能公正之人, 然比之昏繆疾病․無善可稱與夫胥史之入官者, 則有間矣. 蓋昏繆疾病之人苟且微祿, 唯知自營, 其於獄事蒙成吏手, 漫不加省, 而胥史之入官者又或狃於故習, 與吏爲徒, 販鬻走弄, 無所不至. 故州郡小大之獄往往多失其平, 怨讟咨嗟, 感傷和氣, 上爲聖政之累, 莫此爲甚.
어리석은 저는 폐하께서 분명한 조칙을 이조에 내려 선발의 격식을 다시 정하시고, 주군의 두 옥관은 오로지 임기가 만료되고, 거주가 관직을 올리라고 추천한 사람 중에서만 후보를 추천하십시오. 간혹 자격이 부족하면 그 다음으로는 임기가 만료되고 전시에서 2등 합격 이상의 사람을 임명하십시오. 그 통상적인 규정에 따라 승진한 사람 및 성부의 서사들은 모두 심사해서 낙점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재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 거주에 의해 천거되지 않은 사람은 수쉬(守倅)에게 평가하게 하십시오. 예를 들어 어리석고 병든 사람에게 맡겨져 있으면 주장으로 보고하게 하고, 특별이 사록관을 허락하십시오. 자격이 미달인 사람들은 (임기라 만료되어) 관직을 그만두는 날을 기다렸다가 또 수쉬가 평가한 것을 좇아서 위로 올리는 것을 허락하십시오. 만일 수쉬가 사사로움을 좇느라 실정을 놓친다면 감사에게 탄핵하는 주장을 올리게 해 파면하십시오. 현재 성부의 서사로서 (옥관에 임명되어 전임관이 체직되기를) 기다리고 자는 또 부에서 따로 주는 관직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옥사를 담당하는 관리를 선발하는 것이 조금은 깨끗해질 것이요, 각각 임직을 주관하게 되어 위로 폐하께서 공경하며 구휼하려는 뜻에 부응하게 될 것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臣愚欲望陛下明詔銓曹, 更定選格, 凡州郡兩獄官專注任滿․有擧主關陞人, 或應格不足, 則次任任滿․銓試中第二等以上人, 其常調關陞及省部胥史幷不得注擬. 見在任者, 非擧主關陞人, 卽令守倅銓量, 如委昏繆疾病, 卽保明聞奏, 特與祠祿. 其未到人, 候赴上日, 亦從守倅銓量, 方許放上. 若守倅徇私失實, 卽許監司劾奏罷免. 所有省部胥史, 雖已注官待次, 幷令赴部別與擬授. 庶幾治獄之官其選少淸, 各知任職, 仰副陛下欽恤之意. 取進止.
제가 살펴보니 현의 옥사는 단지 지현의 단 한 사람만이 문초를 합니다. 그 한 사람을 제대로 얻지 못하면 내용이 뒤바뀌고 실상이 변조되어 못하는 짓이 없게 됩니다. 지금 인사 규정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은 개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천자께서 자세히 참작해서 분명한 지휘를 내리고 현승에게 함께 심문하게 하시고, 현승이 없는 곳에서는 주부에게 시키십시오. 큰 죄인이 옥에 도착하게 되면 이틀을 기한으로 입문관을 갖추어 먼저 본주 및 제형사(提刑司)에게 보고해서 조회하도록 하시면 과거의 폐단을 조금을 혁파할 수 있을 것이니, 세상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貼黃) 臣契勘縣獄止是知縣獨員推鞫, 一或不得其人, 則拆換款詞, 變亂情節, 無所不至. 今旣未能盡變銓法, 則亦不容無少更革. 欲望睿慈詳酌, 明降指揮, 今縣丞同行推訊, 無丞處卽用主簿. 仍遇大囚到獄, 卽限兩月內具入門款, 先次飛申本州及提刑司照會, 庶幾粗革舊弊, 天下幸甚!
연화주차 3 (2-536)延和奏箚 三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무신, 1188, 59세) 6월 7일 연화전에서 효종을 직접 만나 올린 「무신연화주차」 가운데 세 번째 글이다. 송대의 대표적인 잡세인 경총제전의 피해를 논하고 있다.
제가이 가만히 살펴보건데, 뭇 노의 제형사들이 주현들에게 경총제전(經總制錢)을 재촉하는 일을 주관하는 것은 이전 왕조에서는 없었던 일이며, 송나라의 조종들이 성대했던 시절에도 없었습니다. 다만, 선화 말년에 생긴 것으로 갑자리 병력을 동원하느라 임시방편으로 조처한 것입니다. 당시에 (경제전)을 건의한 신하는 스스로 공적이 있노라고 하겠지만, 그의 형은 소식을 듣고서 가묘에서 통곡하면서 허수아비를 만든 화가 자손에게 미칠 것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남쪽으로 천도한 이후로 비록 그 폐단을 알았지만 국가를 운용하는 비용이 더욱 번잡해져서 마침내는 그만두지를 못하고 다시 (액수를) 증가시켰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대농들의 일상적인 세금이 되어버렸음에도 유사들은 다시 감히 경감하라는 의논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처음에는 또한 단지 출납의 많고적은 실수를 헤아려서 그에 따라 징수했기 때문에 비록 일이 체를 어기기는 했지만 큰 해가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소흥 년간에 경계법을 시행하면서부터 민간에서 기한을 넘긴 계약들을 모두 관아의 날인을 받으라고 하는 바람에 1,2년 사이에 이 세액의 액수가 다른 해의 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경계법과 관련된 사업이 끝나자 다시 일상적인 세액을 회복해서, 과거와 같은 많은 액수를 거두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한 때의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이 문득 비교의 이론을 세워 조정의 공론을 그릇되게 하고, 세수입으로서의 경총제전의 액수를 경계법이 시행되던 해의 수입을 기준으로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에 혹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을 알고 조금이라고 변화시키려고 해도, 오히려 반드시 그로 하여금 일년 세수의 가장 많은 액수를 좇게합니다. 심지어 한도가 없는 경우에는 비록 재해 피해를 당한 부분에 대해 사태 조사를 통해 방면되거나, 임시 유예 조치를 받아 묘미와 세전을 들일 곳이 없는 데도, 이 경총제전은 호부의 총소에서 오히려 방면을 허락하려 하지 않았고, 위아래에서 서로 내려보고, 돌아가며 서로 핍박해서 낮은 서리들은 손과 발을 어디에 둘지를 못하니, 그 형세는 반드시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어내서 백성들에게 수탈해서 요행이 추궁을 면하려고 하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사찰하는 관리가 비록 그런 줄은 알지만 이미 세액을 채우는 것이 이롭기 때문에 또한 어떤 힐책을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돌아다 보아서 오히려 그 액수를 맞추기 어려우면 결국 새로운 세금으로 과거의 세금을 덮고, 뒤의 것을 앞의 것으로 바꿔놓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미납액은 날로 쌓여가 큰 군에서 다 채우지 못한 량이 10여 만민에 이르고, 작은 군 또한 1, 2만민 이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관리들의 조절은 날로 엄하고 혹독해지는데, 그 일의 본원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주현에서 마음 졸이며 재촉당하는 일이 어느 날에나 줄어들고, 이 백성들의 탄식과 근심이 과연 어느 날에나 그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臣竊見諸路提刑司所管拘催州縣經總制錢, 蓋前代之所無, 而祖宗盛時亦未之有, 特起於宣和末年, 倉卒用兵, 權宜措晝. 當時建議之臣方且自以爲功, 而其兄聞之, 乃爲哭於先廟, 以爲作俑之禍且及子孫. 渡江以後, 雖知其弊, 然費出愈繁, 遂不能罷, 復有增加. 以至于今, 乃爲大農之經賦, 有司不復敢有蠲除之議. 然其始者, 亦但計其出納多寡之實數而隨以取之, 則事雖失體而未有甚害. 及紹興中推行經界之法, 民間違限契約悉出投印, 故一二年間, 此錢之額倍於常歲. 逮其畢事, 則便復常數而無復前日之羨矣. 而一時乃有憸佞●克之人, 輒爲比較之說以誤朝聽, 使凡歲入經總制錢悉以經界之年爲額. 其後雖或知其非義而小變之, 然猶必使趁及一年所收最多之數. 至其甚無藝者, 則雖或災傷年分檢放倚閣, 苗米稅錢已無所入, 而所謂經總制錢者, 版曹總所猶不肯與之蠲濁除, 上下相臨, 轉相逼迫, 下吏無所措其手足, 則其勢必至於巧爲名色, 取之於民, 以求幸免. 司察之官雖知其然, 然旣利其歲額之盈, 則亦不容有所何問. 顧猶不足以及數, 則遂不過將(2-537)新蓋舊, 轉後爲前. 歲月愈深, 逋負日積, 大郡所欠缺十數萬緡, 小都亦不下一二萬數. 官吏操切日益嚴峻, 而莫有知其事之本原者. 臣愚不知州縣之煎熬局促果何日而少, 斯民之歎息愁怨果何時而少息也.
폐하께서는 도타운 덕과 깊은 어짊으로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시고, 백성들의 질병을 가슴아파 하셔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모르는 것이 없으시며, 백성의 아프고 가려운 곳을 긁고 문질러 주시되 아무리 먼 곳이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시니, 돌이켜보건데 우연히 이 법의 폐단에 대해서만 듣지 못하고 계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리석음을 무릎쓰고 아뢔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자애로운 폐하께서 일의 본말을 깊이 비춰보시고 특별히 담당관에게 조서를 내려 먼저 재해 피해를 당한 곳에 조사를 해서 경감, 혹은 징수 연기시킨 묘세의 수량 가운데서 거두어 들일 경총제전은 모두 피해 정도에 따라 면제하시고, 그 다음에 따로 대신들에게 조서를 내려 깊이 재정을 절약하고 백성을 넉넉히 하는 방책을 강구하도록 하십시오. 경총제전의 액수를 확립한 것이 마땅한 지 마땅하지 않은 지를 토론해서 이해를 비교해서 그만두거나 시행하셔서 천하를 행복하게 하시는 것이 저의 큰 소원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陛下厚德深仁, 愛民如子, 疾痛痾癢, 無細不知, 抑搔按摩, 無遠不及, 顧偶未聞此法之弊而已. 故臣輒敢冒昧以聞, 伏望聖慈深照本末, 特詔有司先將災傷年分檢放倚閣苗稅數內所收經總制額盡依分數豁除, 然後別詔大臣深圖所以節用裕民之術, 討論經總制錢合與不合立額比較之利病而罷行之, 以幸天下, 臣不勝大願. 取進止.
연화주차 4 延和奏箚 四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무신, 1188, 59세) 6월 7일에 연화전에서 효종에게 올린 「무신연화주차」 가운데 네 번째 글이다. 과벌전의 폐단을 시정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제가 살펴보니 강서로 여러 주에는 예전부터 과벌(科罰)의 폐단이 있었습니다. 과벌전을 징수한 이유는 한 해의 세입은 정해져 있는데 지출에는 한정이 없어서 교묘한 방식으로 백성들에게서 징수해서 지출에 대비하려는 때문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일이 있어 성문을 들어서면 불문곡직하고 멋대로 과벌전을 징수해서 한도 끝도 없었기 때문에 민간의 피해를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주현의 감사가 된 사람이 이 모두를 법에 의해 엄단하려 하면 곧바로 재정이 갑자기 부족해졌기 때문에, 주현에서 다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좋은 관리가 있더라도 이처럼 과벌하는 폐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일체를 불문에 붙이면 법이 무너져 시행되지 않고, 백성들의 원망은 하소연할 곳 조차 사라지게 되며, 탐욕스런 관리들은 이것을 빙자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게 되어 피해가 더욱 심하게 됩니다. 이전에 조사가 상당한 돈을 내려보내 주현의 부족한 재정을 보충함으로써 과벌을 금지한 연후에야 먼 백성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식을 듣자하니 그 사이에는 또 으레히 그런 것처럼 과거의 작태를 따르는 곳이 있어 모든 곳에서 과벌의 폐단이 혁파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바라건대 자애로운 폐하께서는 특별히 지휘를 내려 본 노의 수신 및 여러 관리들에게 널리 사태의 바람직한 처리 방법을 묻고 함께 조치를 강구해서 조목별로 주장으로 아뢰어 폐하의 재가를 기다리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관의 재정은 부족하지 않고, 백성들의 부세에도 일정한 기준이 있어 우러러 폐하의 밤낮없는 근심을 덜 것이요, 재해를 일으키는 기운을 잠재울 수 있게 되어 본 노로서도 아주 다행일 것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臣竊見江西路諸州舊有科罰之弊, 蓋因歲入有限而費出無常, 是以不免巧取於(2-538)民, 以備支發. 凡是百姓有事入門, 不問曲直, 恣意誅求, 無有藝極, 民間受弊不可勝言. 爲監司州縣者欲一切繩之以法, 則財計頓闕, 州縣不可復爲, 雖有良吏, 亦無以免. 若一切恣之不問, 則法廢不行, 民怨無告, 而貪虐之吏更復幷緣以濟其私, 爲害愈甚. 前此漕司蓋嘗頗捐羨錢, 以補州縣歲計之闕而禁其科罰, 然後遠民得以粗安. 然聞其間亦有循習舊態, 未能盡革去處. 欲望聖慈特降睿旨, 令本路帥臣諸司博訪事宜, 共行措畫, 逐一條奏, 以俟聖裁. 庶幾官用不乏, 民賦有經, 仰寬宵肝之憂, 潛消災沴之氣, 一路幸甚. 取進止.
연화주차 5 延和奏劉 五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무신, 1188, 59세) 6월 7일에 연화전에서 효종을 직접 만나 올린 「무신연화주차」 가운데 다섯 번째 글이다.
저는 폐하께서는 천하를 크게 도모할 자질을 타고나 큰 웅지를 품고 제위에 오르신 때부터 비분강개해 하시며 삼가고 검소하며, 수고로이 힘쓰시면서 안으로는 정사를 닦고, 밖으로는 이적을 물리치는데 힘쓰셨으며, (오랑캐에게 침탈당한 조상의) 능묘를 다시 정돈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다시 회복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시고 이렇게 27년을 보낸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정의 정사는) 예전의 타성에 젖은 채로 허송세월만 보내느라 위로는 폐하의 뜻에 화답하는 작은 공적도 없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소망에 부응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폐하께서는 한 밤중에 생각에 잠겨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유를 찾아 본 적이 있습니까? 책임을 맡은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신명한 폐하께서 임명한 사람들이 어떻게 모두 다 제대로 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그 동기[所由]가 올바른 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인자하고 성스러운 폐하께서 어떻게 모두 다 올바른 동기에서 출발하지 않았다고 하겠습니까? 비전[規模]이 확고하지 않아서라고 여기신다면 폐하의 비전이 확정된 것은 벌써 예전의 일이고, 의지와 기운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여기신다면 폐하의 의지와 기운도 이미 확립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된 것은 어째서입니까? 저는 정말로 천하고 어리석지만 마음 속으로 이 일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 때문에 예전부터 거듭 생각해보았더니, 이것은 바로 폐하께서 깊은 구중궁궐에 계시느라 밝게 텅 빈채로 외물에 응대하는 마음에 천리(天理)가 순수하지 못하고, 인욕이 모두 제거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리가 순수하지 못하면 선을 실천하면서 언제나 그 역량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인욕을 다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악을 물리치면서 언제나 그 근원을 없애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면서 그 양을 다 채우지 못하고 악을 물리치면서 근원을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한 생각이 기울면 공정함과 사사로움, 시비와 득실의 기미가 무리지어 나뉘고 마주 선 채로 마음 속에서 서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臣竊惟陛下以大有爲之資, 奮大有爲之志, 卽位之初, 慷慨發憤, 恭儉勤勞, 務以內修政事․外攘夷狄, 汛掃陵廟․恢復土疆爲己任, 如是者二十有七年于玆矣. 而因循荏苒, 日失歲亡, 了無尺寸之效可以仰酬聖志, 下慰人望. 不審陛下亦嘗中夜以思而求其所以然之說耶? 以爲所任者非其人, 則陛下之神明, 豈可謂所任盡非其人? 以爲所由者非其道, 則陛下之仁聖, 豈可謂所由盡非其道? 以爲規模不(2-539)定, 則陛下之規模嘗定矣. 以爲志氣不立, 則陛下之志氣嘗立矣. 然且若是, 何耶? 臣誠愚賤, 竊爲陛下惑之, 故嘗反覆而思之, 無乃燕閑蠖濩之中, 虛明應物之地, 所謂天理者有未純, 所謂人欲者有未盡而然歟? 天理有未純, 是以爲善常不能充其量 : 人欲有未盡, 是以除惡常不能去其根. 爲善而不能充其量, 除惡而不能去其根, 是以雖以一念之頃, 而公私邪正․是非得失之幾未嘗不朋分角立而交戰於其中.
이 때문에 조정의 대신들이 많은데도, 사적으로 총애하고 아첨하는 측근들이 오히려 폐하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자나깨나 호탕하고 뛰어난 자들이 바로잡고 있는데도, 비굴하고 무능한 모리배들이 오히려 오래도록 조정의 권한을 훔치고 있습니다. 온 나라의 공정한 의론을 즐겨 들으시면서도 때로는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온 나라의 참소하는 주장과 잘못된 행실을 싫어하시면서도 간혹 잘못된 말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능묘를 침탈당한 원한과 수치를 갚으려 하시면서도 겁내면서 구차하게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계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백성들의 재산과 형편을 아끼고 길러주려고 하시면서도 탄식하고 원망하는 말을 듣게 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등용한 사람이 모두 못난 사람인 것은 아니지만 또 제대로 된 사람을 모두 다 등용하지도 못하시는 것입니다. 동기가 비록 모두 올바른 도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역시 모두 올바른 도와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비전은 일찍부터 다소나마 결정이 되었지만, 결국 확고하게 결정되지도 못했습니다. 의지와 기운도 조금은 확립되었다지만 마찬가지로 확고하게 세워지지도 못했습니다. 세월을 헛되이 보내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이상적인 정치가 시행되지 못해서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도모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스스로의 태도를 지키기에도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폐하를 위해 애석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폐하께서도 이것을 한스러워 하시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故所以體貌大臣者非不厚, 而便嬖側媚之私顧得以深被腹心之寄 : 所以寤寐豪英者非不切, 而柔邪庸繆之輩顧得以久竊廊廟之權 : 非不樂聞天下之公議正論, 而亦有時而不容 : 非不欲堲天下之讒說殄行, 而亦未免於誤聽 : 非不欲報復陵廟之讎耻, 而或不免於畏怯苟安之計 : 非不欲愛養生靈之財力, 而或未免於歎息愁怨之聲. 凡若此類, 不一而足, 是以所用雖不至盡非其人, 而亦不能盡得其人 : 所由雖不至盡非其道, 而亦不能盡合其道 : 規模蓋嘗小定, 而卒至於不定 : 志氣蓋嘗小立, 而卒至於不立. 虛度歲月, 以至於今, 非獨不足以致治, 而或反足以召亂 : 非獨不可以謀人, 而實不足以自守 : 非獨天下之人爲陛下惜之, 臣知陛下之心亦不能不以此爲恨也.
그 사이에 하늘이 폐하의 마음을 열어젖혀 날로 성덕을 새롭게 하고 뛰어난 결단을 분발시키고, 기강을 정돈했던 것은 폐하께서 순수한 천리에 뜻을 두고, 인욕을 물리치는 데 뜻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몇 가지 일로 살펴보면 아직도 천리와 인욕이 폐하의 마음 속에서 서로 싸우는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걱정됩니다. 문자를 베껴 밖으로 누설한 죄를 힐책하시자, 총애하고 아첨하는 부류들이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쫓겨난 자가 멀지 않아 다시 돌아왔고, 조정에 남아 있던 자들은 다시 벼슬이 올라가고 세력은 무성해졌으니, 폐하께서 이런 자들을 가까이하시고 총애하시려는 뜻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몇 년동안 고관대작의 자리에 눌러앉아 권세를 도적질한 간신배를 파직시키자 비굴하고 무능한 무리들도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대신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이 앞선 무리들의 행적을 답습하면서 요행이나 바라는데도 꾸짖지 않으시고, 간언하며 책망해야 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은 담아 둔 채 입을 닫고 있는데도 묻지 않으시니, 폐하께서 이 무리들을 신임하고 의지하시는 뜻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간쟁하는 관리들을 늘리시고, 사악한 아첨꾼을 멀리 쫓아내시니 간관의 말을 겸하여 받아들이시려는 아름다운 뜻은 참으로 이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간언할 단서는 끝이 없는데 간혹 한 걸음 더 나아가 더욱 절실한 내용을 간언하게 되면 모르겠습니다. 폐하께서는 과연 받아들이시고 그 말대로 하시겠습니까? 무고하고 왜곡된 말을 변별해서 밝히시고, 외로운 강직한 사람을 위무하시니 어둠을 밝히시는 명철함은 진실로 이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만들어내는 이가 책망을 당하지 않고, 간혹 다른 말을 지어내면서 더욱 교묘하게 한다면 모르겟습니다. 페하께서는 정말로 그를 멀리 내쫓고 멀리 할 수 있습니까?
間者天啓聖心, 日新盛德, 奮發英斷, 整頓綱維, 蓋有意乎天理之純而人欲之(2-540)盡矣. 然臣竊以其事觀之, 則猶恐其未免乎交戰之患也. 蓋詰傳寫漏洩文字之罪, 則便嬖側媚之流知所懼矣. 然而去者未遠而復還, 存者更進而愈盛, 則知陛下親寵此曹之意未衰也. 罷累年竊位盜權之姦, 則柔邪庸繆之黨知所懼矣. 然而希次補者襲其迹以僥倖而不訶, 當言責者懷其私以緘黙而不問, 則知陛下委任此輩之意猶在也. 增置諫員, 斥遠邪佞, 則兼聽之美固有以異乎前日矣. 然可諫之端無窮, 則其或繼進而愈切, 未知陛下果能納而用之杏也. 辨明誣枉, 慰撫孤直, 則燭幽之明固有以異乎前日矣. 然造言之人無責, 則其或捷出而益巧, 未知陛下果能遠而絶之否也.
거만한 관리들을 사퇴시키고 포부를 가진 자들을 포장하는 것은 마땅히 구차하게 안일이나 좇으려는 뜻을 격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수를 배치하는 권한이 주변의 내시들에게서 나오고, 군정은 무너져 병졸들은 근심에 차 원망하니 천하의 변란에 대처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창고를 열고 조세를 경감하며, 세금의 과중한 부과를 엄하게 금지하는 것은 마땅히 피폐한 백성의 살림을 넉넉히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사를 제대로 뽑지 않고, 수령이 욕심많고 잔인하면 정사는 복잡하고 부세과 무거워 백성들이 직분을 잃는다면(元元失職)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이 여러 가지를 보고 논하자면 이것이 말하자면 천리가 비록 조금은 뛰어난 듯하지만 인욕은 끝내 모두 물리치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폐하의 신성인명(神聖仁明)으로 오래도록 정사를 펼치시면서, 간절히 도모하고 다스리시니 마땅히 편안히 높이 팔짱을 끼고 공업의 성공과 정치의 안정을 오래도록 편히 누리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사방을 둘러보아도 마음은 아득하고, 음양은 서로 다투면서 승부가 나질 않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다시 어느 날이 되어야 조금이나마 천자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겠습니까?
謝却傲使, 嘉獎壯圖, 宜若可以勵苟安之志矣. 而置將之權旁出奄寺, 軍政敗壞, 士卒愁怨, 則恐未有以待天下之變. 振廩蠲租, 重禁科擾, 宜若可以寬疲民之力矣. 而監司不擇, 守令貪殘, 政煩賦重, 元元失職, 則恐夫有以固有邦之本. 卽是數者而論之, 則是所謂天理者雖若小勝, 而所謂人欲者終未盡除也. 夫以陛下之神聖仁明, 涖政之久, 圖治之切, 宜其晏然高拱, 以享功成治定之安久矣. 而歲月逾邁, 四顧茫然, 陰陽方爭, 勝負未決, 不知將復何日何時而可以粗見聖治之成也耶!
길에서 듣기로는 요즘 사대부들이 나서서 유세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근본을 찾지 않고, 헛되이 말단만을 가르키며, 어려움을 앞세우지 않고 일시적으로 쉬운 데에만 나아가려고 하며, 세상의 작은 일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폐하의 몸에 근본을 두지 않고, 營營 사위(이해)의 말류로만 내달릴 뿐입니다. 저는 그들이 다스림이 나오는 근본을 단정히 하고 외물에 응하는 근원을 맑게 해서, 폐하의 크고 올바른 위대한 계획을 도와서, 천하의 일이 모두 폐하의 뜻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도록 만들기에는 부족할까 걱정됩니다. 옛날 순․우․공자․안자 등은 일찍이 이것을 병폐로 여겨 강론했습니다.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경계하면서는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정일해서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어서 말하기를 “상고할 수 없는 말은 듣지 말고, 물어보지 않은 계책은 쓰지 말라. … 너의 지위를 삼가 공경히 백성이 원하는 것을 닦아라. 사해가 곤궁하면 천록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안연에게 이르면서 “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할 수 있으면 천하는 인으로 돌아온다. 인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말미아는 것이니 남에게서 말미암을 것인가”라고 하시고, 또 그 뜻을 펴서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미 사대의 예악을 덜거나 보태라고 일러주고서, 또 거듭 말하기를 “放鄭聲, 遠佞人. 鄭馨淫, 佞人殆.”라고 했습니다. 아! 이것은 모든 성인들이 서로 주고받은 심법의 요체입니다. 천리의 완전함을 지극히 하고 인욕의 다함을 살피게 되는 소이이니 본말과 거세를 겸해서 들었다고 할만 합니다. 양한 시대 이후로 다스림을 원한 군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능히 여기에 뜻을 두지 못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비록 간혹 세상을 따라 공명에 나아가기도 했지만 곂국에는 제왕의 융성함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간혹은 못난 군주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 해서 이 도에 힘쓰리라 마음먹기도 했지만 또 노자와 부처[浮屠]의 이론에 가리는 것을 벗어나지 못했고 고요할 때에는 한낮 허무 적멸을 즐거워할 뿐 ‘진실한 이치의 근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움직일 때에는 한낮 인연에 호응해서 구속받지 않는 것을 통달했다고 여길 뿐 ‘선악의 기미’가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안팎이 어긋나 서로가 쓰임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정사에 해를 끼쳤습니다. 모든 성인이 서로 주고받은 심법의 요체는 이렇게 해서 다시 강구되지 못한 것입니다.
聞之道路, 比來士大夫之進說者多矣, 然不探其本而徒指其末, 不先其難而姑(2-541)就其易, 毛擧天下之細故, 而不本於陛下之身, 營營馳騁乎事爲利害之末流. 臣恐其未足以端出治之本, 淸應物之源, 以贊陛下正大宏遠之圖, 而使天下之事悉如聖志之所欲也. 昔者舜․禹․孔․顔之間, 蓋嘗病此而講之矣. 舜之戒禹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而必繼之曰: ‘無稽之言勿聽, 弗詢之謀勿庸, 謹乃有位, 敬脩其可願, 四海因窮, 夫祿永終.’ 孔子之告顔淵, 旣曰‘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而又申之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非禮勿動’ : 旣告之以損益四代之禮樂, 而又申之曰: ‘放鄭聲, 遠佞人. 鄭馨淫, 佞人殆.’ 鳴呼! 此千聖相傳心法之要, 其所以極夫天理之全而察乎人欲之盡者, 可謂兼其本末巨細而擧之矣. 兩漢以來, 非無願治之主, 而莫克有志於此, 是以雖或隨世以就功名, 而終不得以與乎帝王之盛. 其或耻爲庸主, 而思用力於此道, 則又不免蔽於老子浮屠之說, 靜則徒以虛無寂滅爲樂, 而不知有所謂實理之原 : 動則徒以應緣無礙爲達, 而不知有所謂善惡之機. 是以日用之間, 內外乖離, 不相爲用, 而反以害於政事. 蓋所謂千聖相傳心法之要者, 於是不復講矣.
어리석고 못난 저는 폐하께서 오늘날의 정사를 보시고 그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그렇게 된 연유를 구하시려거든 순․우․공자․안연이 주고받은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한 마음이 싹틀 때 이것이 천리인가? 인욕인가?를 삼가고 살피셔서 과연 천리라면 공경하며 넓히시되 조금이라고 막히는 일이 없게 하시고, 과연 인욕이라면 공경하며 극복하시되 조금이라도 엉겨붙지 않도록 하십시오. 언어와 동작, 사람을 쓰고 일에 처신하는 데에 까지 미루어 나아가 언제나 이로써 판단하시고, 올바른 것을 알아 행하시되, 행하시면서 늘 힘이 부족한 것만을 걱정하시고 힘이 지나친 것을 근심하지는 마십시오. 잘못인 줄을 알아 물리치시면서는 물리치면서 오직 과감하지 못할까 걱정하시되 지나치게 과감할까를 근심하지는 마십시오. 현명함을 알고서 등용하시되 직책을 맡기시면서는 전권을 주지 못할까만을 걱정할 것이요, 그들을 모으시면서는 많이 모으지 못할까만을 근심하실 것이지, 그들이 파당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못남을 알아 물리치시되 물리치면서는 오직 빨리 물리치지 못함을 걱정하시고, 쫓아내면서는 오직 모두 쫓아내지 못함을 걱정하실 것이지, 편파적일까를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면 천자의 마음을 洞然하고 안팎이 融徹해서 조금의 사욕도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고, 천하의 일은 오직 폐하께서 하기를 원하시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臣愚不肖, 竊願陛下卽今日之治效泝而上之, 以求其所以然之故, 而於舜․(2-542)禹․孔․顔所授受者少留意焉. 自今以往, 一念之萌, 則必謹而察之, 此爲天理耶? 爲人欲耶? 果天理也, 則敬以擴之而不使其少有壅閼 : 果人欲也, 則敬以克之而不使其少有凝滯. 推而至於言語動作之間, 用人處事之際, 無不以是裁之. 知其爲是而行之, 則行之惟恐其不力, 而不當憂其力之過也 : 知其爲非而去之, 則去之惟恐其不果, 而不當憂其果之甚也 : 知其爲賢而用之, 則任之惟恐其不專, 聚之惟恐其不衆, 而不當憂其爲黨也 : 知其爲不肖而退之, 則退之惟恐其不速, 去之惟恐其不盡, 而不當憂其有偏也. 如此則聖心洞然, 中外融徹, 無一毫之私欲得以介乎其間, 而天下之事將惟陛下之所欲爲, 無不如志矣.
시경에서는 “풍수(豊水)에도 기(芑)풀이 있으니 무왕(武王)이 어찌 이곳에서 일하지 않으시리오 후손(後孫)에게 계책을 남겨 주사 공경하는 아들을 편안하게 하시니 무왕(武王)이 훌륭한 군주(君主)이시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지금 조종과 빛나고 융성하며 위대한 사업이 폐하에게 맡겨져 있고, 장차 이것을 영원히 물려주시려면 사해의 안에서 폐하에게 바래는 것은 비단 몇 세대만 유지되는 인(仁)만이 아닙니다. 상서에서는 “약이 어지럽지 않으면 그 병은 낮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폐하께서는 성지를 깊이 유의하사 통렬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힘써 실천하셔서 만세 이후에도 오히려 훗날의 천자들에게 법도가 되게 하신다면 종사의 신령들이 영원히 의탁하고 만방의 어진 백성들이 영원이 돌아와 귀의할 것이니 천하는 무척이나 다행일 것입니다. 천하는 무척이나 다행일 것입니다.
詩曰: ‘豐水有芑, 武王豈不仕? 貽厥孫謀, 以燕翼子, 武王烝哉.’ 矧今祖宗光明盛大之業付在陛下, 將以傳之無窮, 四海之內, 所望於陛下者不但數世之仁而已. 書曰: ‘若藥不暝眩, 厥疾不廖.’ 惟陛下深留聖志, 痛自刻勵而力行之, 使萬世之後猶可以爲後聖法程, 則宗社神靈永有依託, 萬方黎獻永有歸往, 天下幸甚! 天下幸甚!
고루한 신은 견문도 좁고 학문도 나아진 점이 없어 이전에도 두 번이나 입대하는 은혜를 입고서도 아뢴 큰 뜻이 이 글과 대개 같습니다. 글은 명백하지 못하고 뜻은 불분명하니 위로 천자의 마음을 깨우치기에도 부족합니다. 폐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차마 끝내 버리지 않으셔서 다시 폐하를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그 안을 두루 둘러 보아도 다른 것이 없어서 문득 제가 배웠던 내용을 풀어서 다시 이렇게 올립니다. 僭妄狂率한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지만 바라건대 폐하께서 용서해 주십시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臣孤陋寡聞, 學無所就, 前此兩蒙賜對, 所言大意與此略同. 辭不別白, 旨不分明, 曾不足以上悟聖心, 而陛下哀憐, 不忍終棄, 使得復望淸光. 環視其中, 無(2-543)他所有, 輒繹舊聞, 復以此進. 僭妄狂率, 罪當萬死, 伏惟陛下財赦. 取進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