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주자서

주자17

황성 2025. 8. 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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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에 천자에게 올리려고 쓴 봉사 乙卯擬上封事

 

 

우리말 주자대전 13

주차 奏箚

 

 

계미년 수공전의 주차 1 癸未垂拱奏箚 一

 

 

해제이 글은 효종 즉위년인 융흥 원년(계미, 1163, 34) 116일 수공전에 입대해서 올린 주차이다. 융흥 원년은 효종이 소흥 32년에 고종에게서 제위를 물려받고 연호를 개정한 첫 해였고, 의욕에 넘치던 젊은 효종의 대금 정책이 1년 사이에 주전론에서 화의론으로 급격한 변화를 보인 해였다. 동시에 이 해 11월은 금과의 화의가 한창 진행되던 중이었다. 이런 시국에 주자는 세 통의 주차를 올리면서 제일 먼저 정심, 성의, 격물, 치지의 학문을 논하고 도교와 불교 등 이단의 학문을 반대하고 있다.

 

저는 대학의 가르침은 천자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몸을 닦는 것[修身]을 근본으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집안을 고르게 다스리고, 나라가 다스리며,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도 모두 이로부터 비롯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몸은 한낮 닦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근본을 깊이 찾아보면 사물을 탐구[格物]해서 그 지식을 철저히 하는 것[致知]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사물을 탐구한다는 것은 이치를 궁구한다[窮理]는 말입니다. 하나의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사물의) 이치도 있습니다. 이치는 형체가 없어서 알 기 어려운데 반해 물건은 자취가 있어서 쉽사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물에서부터 탐구해 나아가 이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음속에 분명하게 되면 일에 응대할 때에도 저절로 조금의 잘못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뜻이 정성스러워지고[意誠], 마음이 바르게 되며[心正] 몸이 닦이는 것[身修]에서부터 집안을 고르게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것을 응용해서 조치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학의 가르침입니다.

옛날 위대한 성인들은 나면서부터 지혜를 갖추었음에도 여기에서 배우지 않는 이는 없었습니다. 요와 순이 서로 주고받은 오직 정일(精一)해야 만이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을 수 있다는 것도 이것입니다. 이 때 이후로 역대의 성인들이 서로 그 가르침을 주고받으면서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공자에 이르러 (황제의) 지위를 얻지는 못했지만, 책에 써서 후세에 천하 국가를 경영하는 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문인과 제자들이 또 서로 더불어 전하고 기술하면서 미루어 밝힌 것도 또한 자세하다고 할 것입니다. 진나라 한나라 이래로 이 학문은 강론이 끊겼고, 유학자들은 사장과 기송을 자랑거리로 삼으며, 하는 일이 날로 비근한 곳에 빠져들었습니다, 뜻한 것이 여기에 그치지 않은 경우에도 돌이켜 노자와 석씨의 문하에서 구하는데 불과했습니다. 안팎으로 보는 것이 달라지고 본말이 귀착처를 달리해서 도술이 희미해졌습니다. 유구한 세월이 1,000년이 지나는 와중에 비록 밝은 군주와 뛰어난 신하가 그 사이에 한 번쯤은 있었겠지만, 끝내 삼대의 융성함을 회복할 수는 없었던 것은 대학의 도를 알지 못한데서 연유한 때문입니다.

오직 황제폐하께서는 성스런 덕이 순수하고 성하시어, 이에 사가에 계시던 시절부터 제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하신 덕이 천하 사람들에게 미더웠고, 화려한 꾸밈이나 단장은 단 하나도 그 마음속에 파고들지 못했으니, 이것은 그 몸이 닦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왕이 되어 천하에 임하신 것이 지금까지 1년여가 되었는데, 국가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평안해졌다는 효과가 들려오질 않아서 신은 저으기 의심스럽습니다. 생각건대 지난 날 강론하는 신하가 경연의 법도에 얽매여 폐하에게 말한 것이 사장과 기송의 습속에 불과했고, 폐하께서 여기에서 나아가려고 추구하신 것도 노자 석씨의 책에서 취하려는데 불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생이지지(生而知之)지혜를 타고난 본성과 세상보다 뛰어난 행실을 가지고서도 일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하의 이치에 대해 대부분 살피지 못했습니다. 또 이치에 임하여 일처리에 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천하의 일들에 대부분 환히 꿰뚫어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거행하는 일들마다 의심스러워 머뭇거리고, 신하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사이에 가리우고 속임을 당하는 것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다스림과 평안함의 효과가 드러나지 않은 것도 대학의 도를 강론하지 않고, 천근하고 허무한 것에 마음을 빠뜨린 결과입니다. 신은 어리석고 천자를 간범하였으니,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원컨대 폐하께서는 한가한 즈음에 참된 유학자로서 이 도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널리 물어 밝히시고, 경전에서 살피시며, 사서에서 징험을 구해, 마음에 이해해서 당세의 많은 헤아릴 수 없는 변화에 대처하신다면 오늘날의 책무 가운데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종식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신하의 충성 여부와 계획과 사려의 득실에 이르기까지 등불에 비추고 여러번 계산해볼 필요도 없이 가부가 흑백이 갈리듯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뜻은 정성스럽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은 바르지 않을 수 없으니, 수신과 제가, 치국과 평천하에도 어찌 두 가지 길이 있겠습니까?

제가 스승에게서 들은 이런 내용들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우활하고 낡아서 일용에 절실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근본을 바르게 하면 만사가 이치대로 풀리지만, 처음의 조그만 차이가 결국 천리나 되는 큰 차이를 가져오니천하의 일 중에 이보다 급한 것이 없습니다. 삼가 바랍니다. 폐하께서 하늘의 해처럼 비추시고, 몸을 굽혀 제 생각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보잘 것 없는 제게도 다행일 뿐만 아니라 실로 천하 만세의 다행일 것입니다. 가려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臣聞大學之道,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脩身爲本, 而家之所以齊, 國之所以治, 天下之所以平, 莫不由是出焉. 然身不可以徒脩也, 深探其本, 則在乎格物以致其知而已. 夫格物者, 窮理之謂也. 蓋有是物必有是理, 然理無形而難知, 物有迹而易賭, 故因是物以求之, 使是理瞭然心目之間而無毫髮之差, 則應乎事者自無毫髮之繆. 是以意誠心正而身脩, 至於家之齊國之治天下之平, 擧而措之. 此所謂大學之道. 雖古之大聖人, 生而知之, 亦未有不學乎此者. 堯舜相(2-506), 所謂惟精惟一, 允執厥中, 此也. 自是以來, 累聖相傳, 以有天下. 至於孔子, 不得其位而筆之於書, 以示後世之爲天下國家者. 其門人弟子又相與傳述而推明之, 其亦可謂詳矣. 而自秦漢以來, 此學絶講, 儒者以詞章記誦爲功, 而事業日淪於卑近. 亦有意其不止於此, 則又不過轉而求之老子釋氏之門, 內外異觀, 本末殊歸, 道術隱晦. 悠悠千載, 雖明君良臣間或一値, 而卒無以復於三代之盛, 由不知此故也.

恭惟皇帝陛下聖德純茂, 爰自初潛以至爲帝, 仁孝恭儉之德信於天下, 紛華盛麗一無所入於其心, 此其身可謂脩矣. 而臨御天下, 期年於此, 平治之效, 未有所聞, 臣竊疑之. 意者前日勤講之臣限於程式, 所以聞於陛下者不過詞章記誦之習, 而陛下求所以進乎此, 又不過取之老子釋氏之書, 是以雖有生知之性高世之行, 而未嘗隨事以觀理, 故天下之理多所未察 : 末嘗卽理以應事, 故天下之事多所未明. 是以擧措之間, 動涉疑貳, 聽納之際, 未免蔽欺. 平治之效所以未著, 由不講乎大學之道而溺心於淺近虛無之過也. 臣戇愚抵冒, 罪當萬死. 然願陛下淸間之燕, 博訪眞儒知此道者講而明之, 考之於經, 驗之於史, 而會之於心, 以應當世無窮之變, 則今日之務所當爲者不得不爲, 所不當爲者不得不止. 以至於臣下之忠(2-507), 計慮之得失, 不待燭照數計而可否黑白判然矣. 若是則意不得不誠, 心不得不正, 於以脩身齊家平治天下, 亦豈有二道哉.

臣之所聞於師者如此, 自常人觀之, 疑若迂闊陳腐而不切於用. 然臣竊以爲正其本, 萬事理, 差之亳釐, 繆以千里”, 天下之事, 無急於此. 伏惟陛下擴天日之照, 俯賜開納, 則非獨微臣之幸, 實天下萬世之幸. 取進止.

 

 

수공전의 주차 2 垂拱奏箚 二

 

 

해제이 글은 융흥 원년(계미, 1163, 34) 116일 수공전에 입대해서 올린 두 번째 주차이다. 이 해 54일 남송의 조정은 주전파인 장준(張浚)의 건의를 받아들여 금나라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첫 번째 전투에서 영벽(靈壁)홍현(虹縣)숙주(宿州) 등을 탈환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524일 송나라 북벌군은 부리(符離)에서 금나라 군에게 심각한 패배를 당하고 만다. 이 실패로 인해 주전론자였던 장준마저 일시적이나마 금나라와의 강화를 제안하지 않을 수 없었고, 7월에는 대표적인 주화파였던 탕사퇴(湯思退)가 상서우복야에 임명되어 금과의 강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이후 남송의 조정은 주전론과 주화파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하다가 이듬해 10월 금나라의 공격을 받고 12월이 되어서야 금나라와 강화를 맺었다. 주자가 수공전에 입대하던 116311월은 왕지망을 통문사로 용대연을 부사로 삼고, 이 두 사람을 금나라에 파견해서 강화를 논의하려던 시기였다. 당시 조정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주화론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었고 겨우 호전(胡銓) 한 사람 정도만이 주전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자는 이 글을 통해 주화론을 반대하면서 이적을 물리치고 조종의 원한을 갚을 것을 극력 주장하고 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국가를 위한 계획으로는 크게 전쟁[]수비[]화의[]란 세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에는 이로움이 있으면 반드시 해로움이 있고, 얻으면 반드시 잃는 법입니다. 이런 까닭에 세 가지 속에는 또 각기 서로 다른 측면들이 있습니다. 전쟁은 진실로 나아가 취하고자 하는 기세도 있지만 동시에 가벼이 군사를 움직이는 잘못이 있습니다. 수비는 본시 스스로를 다스리는 술책이지만 또한 오래도록 유지하기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화친의 책략은 가장 낮은 것입니다. 그러나 화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또 자기를 굽혀 백성을 아끼고, 힘을 길러 적의 약점을 살피며, 적을 혼동시켜 군사력을 느슨하게 만들기 때문에 잘못된 계책이 아니라고 합니다. 많은 일을 당한 이래로 이 세 가지 주장의 여섯 가지 서로 다른 측면들이 어둠 속에서 서로 옳네 그르네 공박하고, 되네 안되네 싸워대느라, 말하는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사사로움을 수식하고, 듣는 사람은 그 어지러움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비록 폐하께서 총명하다고 하시더라도 그 사이에 뜻이 미혹됨이 없었다고 단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된 이유가 의리의 근본에서 절충하지 않았고, 이해 관계의 말류에 마음을 쏟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망령되게도 임금의 학문은 먼저 이치를 밝혀야 하고, 이 이치가 밝혀지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반드시 안하는 것이, 모두 하늘의 이치를 따르지 아니함이 없고, 사사로운 뜻[]이나 기필하는 마음[]이나, 고집[]이나 이기심[]을 내세우려는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다시 실상을 지목해서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臣竊觀今日之論國計者, 大槪有三: 曰戰, 曰守, 曰和而已.

然天下之事利必有害, 得必有失, 是以三者之中, 又各有兩端焉. 蓋戰誠進取之勢, 而亦有輕擧之失 : 守固自治之術, 而亦有持久之難. 至於和之策, 則下矣. 主其計者亦以爲屈己愛民, 蓄力觀釁, 疑敵緩師, 未爲失計. 多事以來, 三說六端者是非相攻可否相奪於冥冥之中, 談者各飾其私而聽者不勝其眩, 雖以陛下之明, 蓋未能斷然無惑志於其間也. 臣竊以爲此其所以然者, 由不折衷於義理之根本, 而馳騖於利害之末流故也. 故臣嘗竊妄謂人主之學當以明理爲先, 是理旣明, 則凡所當爲而必爲, (2-508)所不當爲而必止者, 莫非循天之理, 而非有意必固我之私也. 臣請復指其實而明之.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사람은 그 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늘의 도는 음양을 벗어나지 않고, 땅의 도는 강유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만일 이렇다면 인과 의를 버리고서는 사람의 도를 확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보다 큰 것이 없고, 의는 군주와 신하 사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일러 삼강의 핵심이요 오상의 근본이라고 하며 인륜과 천리의 지극함도 천지의 사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과 어버이를 해친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말도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는 가운데 군신과 부자의 천성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지극한 원통함과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한결같은 감정에서 발현하는 것이지 한 사람의 사사로움에서만 나온 것이 아닙니다. 북쪽 오랑캐들이 우리나라에 저지른 일은 바로 능묘를 훼손한 뿌리 깊은 원한이니, 말하기에도 너무 고통스럽고 신하된 자로서 차마 듣기조차 힘들 지경이니 그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태상황제께서는 이 원한을 갚지 못한 것을 염려하시면서 천자의 지위를 즐겁다고 여기지 않으셨고, 마침내 어느 날 폐하에게 이 일을 부탁하신 것도 총명하고 용감한 폐하께서 이 뜻을 반드시 이루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해야 할 일은 전쟁이 아니면 복수할 수 없고, 수비하지 않으면 제압하여 이길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하늘의 이치인 것이지, 사적으로 원한 맺힌 사람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蓋臣聞之, 天高地下, 人位乎中. 天之道不出乎陰陽, 地之道不出乎柔剛. 是則舍仁與義, 亦無以立人之道矣. 然而仁莫大於父子, 義莫大於君臣, 是謂三綱之要, 五常之本, 人倫天理之至, 無所逃於天地之間. 其曰君父之讎不與共戴天者, 乃天之所覆, 地之所載, 凡有君臣父子之性者, 發於至痛不能自已之同情, 而非專出於一己之私也. 恭惟國家之與北虜, 乃陵廟之深讎, 言之痛切, 有非臣子所忍聞者, 其不可與共戴天明矣. 太上皇帝念此讎之未報, 雖享天位, 不以爲樂, 一旦擧而付之陛下者, 以陛下聰明智勇, 爲必能成此志也. 然則今日所當爲者, 非戰無以復讎, 非守無以制勝, 是皆天理之自然, 非人欲之私忿也.

 

폐하께서도 이미 어떻게 해야 할 것이란 뜻은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중간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못된 의론을 주창해서 폐하를 미혹시키고는, 조정의 신하에게 국서를 들려 오랑캐 장수에게 회답의 글을 보내서 강화를 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속으로 한스러운 것은 폐하께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멈추도록 하지 못하시고 거듭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또 제가 모를 것은 폐하는 의론하는 자들의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로 강화를 맺으려고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임시방편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라면 이미 시작은 되었으니 반드시 그 결말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강화를 청하였으니 저들도 반드시 응답할 것입니다. 구차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구차하게 이렇게라도 하는 것은 무엇을 추구하려는 것입니까? 일에도 보탬이 없고, 한낮 이치만 어길 뿐이니 저는 폐하께서 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진심으로 강화의 성공을 바라는 것이라면 강화를 주장하는 자들이 말하는 자기를 굽혀 백성을 아끼고 힘을 저축하여 틈을 엿보며 적을 혼동시켜 군대의 동원을 늦추는 것이 잘못된 계책이 아니다는 것에 대해 저는 할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몸뚱이로 천지의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극히 미약하지만 천지와 함께 서서 셋이 될 수 있는 것은 인의라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음양의 기운, 강유의 체와 만물의 일원으로부터 함께 비롯된 것이 조금의 간극도 없습니다. 옛 성인의 천지에 참여해서 화육을 돕는다는 것이 어찌 다른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이치를 따르면서 거스름이 없게 할 뿐입니다. 지금 원한을 풀어버리고 강화한다는 것은 자기를 굽히는 것이 아니라 이치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야 굽힐 수 있다지만 이치마져 거스를 수 있단 말입니까? 이치를 거스르는 재앙은 장차 삼강과 구법(九法)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자식이면서 아버지가 있는 줄을 모르고, 신하로서 군주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하여, 인심이 어긋나고 틀어지며 천지는 꽉 막혀, 이적은 더욱 강성해지고 금수는 더욱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남북의 백성을 모두 들어서 내치는 일입니다. 어떻게 아낀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임금과 어버이를 아끼지도 않으면서 남북의 백성을 두루 아낀다고 한다면 경중 완급의 순서가 어그러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陛下亦旣有意於必爲矣, 間者不知何人輒復唱爲邪議, 以熒惑聖聽, 至遣朝臣持書以復虜帥, 而爲講和之計. 臣竊恨陛下於所不當爲者不能必止而重失此擧也. 且不知陛下不得已於議者之言而姑爲此邪, 抑眞欲和議之成而爲此邪? 以爲姑爲此也, 旣爲其始, 必慮其終. 我旣請之, 彼必報之, 不可以苟爲也. 且苟而爲此, 欲以何求也哉? 無補於事, 徒害於理, 臣有以知陛下之不爲也. 以爲眞欲和議之成(2-509), 則議者所謂屈己愛民, 蓄力觀釁, 疑敵緩師, 未爲失計者, 臣請有以議之. 夫人以藐然之身位乎天地之間, 至微也而能與天地幷立而爲三者, 以其有仁義之性, 而與夫陰陽之氣剛柔之體同出乎萬物之一原而無間. 古之聖人所以參天地而贊化育, 豈有他哉, 亦順此理而無所逆焉耳. 今釋怨而講和, 非屈己也, 乃逆理也. 己可屈也, 理可逆乎? 逆理之禍, 將使三綱淪, 九法斁, 子焉而不知有父, 臣焉而不知有君, 人心僻違天地閉塞, 夷狄愈盛而禽獸愈繁. 是乃擧南北之民而棄之, 豈愛之之謂哉? 且不曰愛其君父而曰兼愛南北之民, 其於輕重之倫緩急之序, 亦可謂舛矣.

 

공자께서 정사를 하시면서 명분을 바로잡는 것[正名]을 앞세우셨습니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일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백성들은 손과 발을 둘 곳도 없게 됩니다. 지금 복수의 명분을 내던져버리고 강화와 우호로 틈을 엿보고 군대의 동원을 늦추는 계책으로 삼는다면 상하의 마음이 달라지고 안팎으로 긴장이 풀려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게 되면 적에 대응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임금과 신하, 상하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닦았던 자치의 정사도 따라서 해이해져 다시 진작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설령 오랑캐들에게 언젠가 놓쳐서는 안 될 좋은 기회가 있다고 할지라도 정작 두려운 것은 우리들이 근심해야 할 일이 좋아할 일보다 더욱 심할까 하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맹세와 평소의 명분에 대해 저들은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군대가 직접 싸우기 이전부터 우리의 사기는 이미 산산조각이 나있을 것입니다.

夫子爲政, 以正名爲先, 蓋名不正則言不順事不成而民無所措其手足. 今乃欲舍復讎之名而以講好爲觀釁緩師之計, 蓋不惟使上下離心, 中外解體, 緩急之間, 無以應敵, 而吾之君臣上下所爲夙興夜寐以脩自治之政者, 亦將因循 隨隳弛而不復振矣. 正使虜人異日果有可乘而不可失之釁, 竊恐吾之可憂乃甚於所可喜, 信誓之重名分之素, 彼皆得以歸曲于我, 蓋不待兩兵相加而吾氣已索然矣.

 

또 선화(宣和)정강(靖康) 이후로 강화의 효과를 또한 개관해 보면, 오랑캐의 진위와 우리의 득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소인배들은 즐겨 이런 주장을 합니다. 오직 군자인 연후에 의리가 반드시 행해야 할 것이라는 점과 반드시 믿을 만 하다는 것을 압니다. 이해득실이 이미 그의 마음속에 끼어 있지 않고, 그의 학문이 또 사물의 변화에 대응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기운이 용맹하고 계획이 분명해서 두려움이 없습니다. 불행히 일이 실패하더라도 생사를 도외시하고 나아갑니다. 그러나 소인의 마음은 완전히 거꾸로 입니다. 그들이 오로지 강화만을 주장하는 것은 단지 그들의 사사로운 욕망에 편리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이 잘못 듣는다면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且自宣和靖康以來, 講和之效亦可槪見, 虜之情僞, 吾之得失, 蓋不待明者而後知. 而小人所以好爲是說者, 蓋惟君子, 然後知義理之所必當爲與義理之必可(2-510), 利害得失旣無所入於其心, 而其學又足以應事物之變, 是以氣勇謀明, 無所懾憚, 不幸蹉跌, 死生以之. 小人之心一切反是, 其所以專爲講和之說者, 特以便其私耳. 而謀國者過而聽焉, 豈不悞哉?

 

 

지금 금나라에 갔던 사신이 곧 돌아와 조정의 대의가 결정 나려고 합니다. 이 시기는 또한 잘못을 구제하고 실패를 보완할 시기입니다. 저는 폐하께서 이익과 재해가 함께 이른다는 말은 잠시 제쳐두시고 궁리를 급선무로 삼아, 인의의 도와 삼강의 근본에 대해 약간 더 마음을 기울려 체험되거나 증험된 것을 확충시켜 도덕규범을 확립시키고 일을 맡은 신하에게 조서를 내려 속히 강화의 의론을 깨트리시고, 크게 출척의 도리를 밝혀 천하에 내보여, 복수와 설욕의 본뜻이 조금도 쇠퇴하지 않았음을 알리도록 하십시오.

使者將還, 大議將決, 此亦救過補敗之時也. 臣願陛下姑置利害交至之說而以窮理爲先, 於仁義之道三綱之本少加意焉, 體驗擴充, 以建人極, 深詔任事之臣, 亟罷講和之議, 大明黜陟, 以示天下, 使知復離雪耻之本意末嘗少衰.

 

비록 오랑캐들의 뜻이 순종적이어서 협박하고 요구하는 것이 없더라도, 이것이 바로 깊숙이 숨긴 것이 있는 것이니 진실로 의심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정녕 의리를 끌어다 거절함으로써 그들의 음모를 무력화시킨 다음에 강()()의 군대를 안팎으로 합치고, 전쟁과 수비의 계책을 합쳐서 하나로 만들어, 수비가 굳건해지도록 해서 전쟁을 벌이고, 전쟁에 이기고서 수비해서 정도와 권도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원환처럼 끝없이 이어가면서 오랜 기간동안 유지해서 반드시 중원을 회복하고 반드시 오랑캐를 멸망시키기를 기약한 이후에 그만두어야 합니다. 비록 그 성공 여부와 이해관계에 대해 미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우리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이미 여한이 없다면 굴욕을 감내하고 구차히 보존하려는 계책보다는 훨씬 더 나을 것입니다. 저는 폐하께서 이러한 것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이런 것으로 의지를 확립해서, 인의의 도가 위에서 밝아지고 충효의 풍속이 아래에서 완성되기를 기원합니다. 인도가 이미 확립되면 천지의 온화한 기운도 저절로 온통 흔쾌히 합치될 것이고, 이적과 금수들도 그 독을 오래도록 뿜어대지는 못할 것이니 이렇게 한다면 어떤 일인들 이루지 못할 것이며, 어떤 공인들 세우지 못하겠습니까? 신은 벼슬도 없는 재야의 미천한 몸으로 시사의 마땅함을 알지도 못하면서 배운 것만 가지고 망령되이 큰 계책을 논했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택하시기 바랍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雖使虜意效順, 無所邀索, 乃是深有包藏, 尤足疑畏. 正宜引義拒絶, 以伐其謀, 然後表裏江淮, 合戰守之計以爲一, 使守固而有以戰, 戰勝而有以守, 奇正相生, 如環之無端, 持以歲月, 以必復中原必滅胡虜爲期而後已. 雖其成敗利鈍不可逆睹, 而吾於君臣父子之間旣已無憾, 則其賢於屈辱而苟存固已遠矣. 臣願陛下以此處心, 以此立志, 則仁義之道明於上而忠孝之俗成於下. 人道旣得, 天地之和氣自當忻合無間, 而夷狄禽獸亦將不得久肆其毒, 則何事之不可成, 何功之不可立哉? 臣草茅微賤, 不識事宜, 獨以所學妄論大計, 惟陛下擇焉. 取進止.

 

 

수공전의 주차 3 (2-511)垂拱奏箚 三

 

 

해제이 글은 융흥 원년(계미, 1163, 34) 116일 수공전에 입대해서 올린 세 번째 주차이다. 효종에게 정사의 도를 닦기를 권하면서 동시에 일부 측근을 총애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은 순임금에게 헤아림이 없을 때에 경계하시어 법도를 잃지 마시고 편안함에 놀지 마시고 즐거움에 지나치지 마시며, 어진 자에게 맡기되 두 마음을 품지 마시고 사악한 자를 제거하되 의심하지 마소서라고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게을리 하지 않고 황폐하지 않으면 사방의 오랑캐들도 와서 왕()으로 받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도 천보(天保)’편 이상의 시로 나라 안을 다스렸고, ‘채미(采薇)’편 이하의 시로 나라 밖을 다스려, 근심에서 시작해서 일락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그 뒤에 점점 미약해져 소아(小雅)는 모두 사라지고 사방의 오랑캐는 번갈아 침입해서 중국은 땅을 뺏기고 쇠약해졌습니다. 선왕(宣王)이 이를 계승해서 몸소 행실을 닦고 현명한 이를 임용하고 능력 있는 이를 부렸으며, 안으로는 정사를 닦고 밖으로는 이적을 물리쳐 주나라의 도가 찬연하게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펴본 다음에 옛 성왕들이 이적을 제어한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그 근본은 강한 위세에 있지 않고 덕업에 있으며, 그 준비는 변경을 대비하는 데에 있지 않고 조정을 제대로 갖추는 것에 있으며, 그 도구는 병사와 군량에 있지 않고 기강에 있다는 것이 결단코 분명했습니다.

臣聞益之戒舜: “儆戒無虞, 罔失法度. 罔遊于逸, 罔淫于樂. 任賢勿貳, 去邪勿疑.” 而終之曰: “無怠無荒, 四夷來王.” 周之文, 亦以天保以上治內, 采薇以下治外, 始於憂勤, 終於逸樂. 其後中微, 小雅盡廢, 四夷交侵, 中國衰削. 宣王承之, 側身脩行, 任賢使能, 內修政事, 外攘夷狄, 而周道粲然復興. 臣嘗以是觀之, 然後知古先聖王所以制御夷狄之道, 其本不在乎威彊, 而在乎德業 : 其任不在乎邊境, 而在乎朝廷 : 其具不在乎兵食, 而在乎紀綱, 蓋決然矣.

 

폐하께서는 힘든 운세를 직접 맞아서 우리 송나라를 어떻게 중흥시킬 것인가를 생각하시고 계시니 이미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의 큰 단서를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 오랑캐들은 자신들의 위세를 믿고 우리를 업신여기며, 갖추어진 계략도 측량할 수 없는데, 안팎에서 논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국가의 위엄이 진흥되지 못하고, 변방의 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창고는 채 채워지지도 않았고, 병사들은 훈련되지 않았으니,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생긴다면 어떤 계책을 써야 한단 말인가라고 말합니다.

恭惟陛下躬履艱難之運, 而思所以成中興之功者, 旣知當爲與所當止之大端矣. 然而戎虜憑陵, 包藏不測, 中外之議, 咸謂國威未振, 邊備未飭, 倉廩未充, 士卒未練, 一旦緩急, 何以爲計?

 

저는 홀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걱정꺼리는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걱정해야 할 것은 이보다 더 큰데도 논의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제가 보건데 오늘날 간쟁의 길은 여전히 막혀있고 일부 측근의 세력은 확장되고 있습니다. 아무런 공적이 없어도 손쉽게 관작과 상을 받고, 지은 죄가 있어도 처벌되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형편은 이미 도탄에 빠졌는데도 국가의 재정은 절제할 줄을 모릅니다. 이런 네 가지 면으로 보자면 덕업이 닦였다고 말할 수 없고, 조정이 올바르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기강도 확립되었다고 할 수 없으니, 옛 성왕들이 근본을 절충하고 이적을 제어할 수 있었던 도가 하나도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깊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이 이런 내용을 폐하에게 아뢴 적이 있습니까?

臣獨以爲今日之憂非此之謂, 所可憂者, 乃大於此, 而恨議者末及之也. 臣竊觀今日諫靜之塗尙壅, 佞幸之勢方張, 爵賞易致而威罰不行, 民力已殫而國用未節. 以是四者觀之, 則德業未可謂修, 朝廷未可謂正, 紀綱未可謂立, 凡古先聖王所以彊本折衝威制夷狄之道, 皆未可謂(2-512). 是則臣之所深憂也. 不識議者亦嘗以是聞於陛下之聽否乎?

 

저는 폐하께서 두 번 세 번 󰡔시경󰡕󰡔상서󰡕의 말을 반복해서 읽으시고 폐하께서 시행하신 일들의 득실을 살피셔서 덕업을 닦고 조정을 바루며 기강을 확립할 방도를 추구하시기를 원합니다. 반드시 간쟁하는 말을 받아들이시고, 사특한 아첨꾼을 멀리 내어 쫓으시며, 요행이 통하는 문을 막아버리고, 나라의 근본을 굳고 편하게 하는 네 가지를 급선무로 삼아, 근본을 다스리고 말류를 다스리지 않으며, 실제를 다스리고 명목만을 다스리지 않아 백성들이 마음으로 복종하고 이적들은 외경할 줄을 알게 된다면, 형세는 저절로 강해지고 중원의 회복도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거칠고 어리석은 사람인지라 폐하의 위엄에 눌려 감히 제가 배운 것을 다 말하여 오래도록 폐하의 시간을 붙잡아 둘 수 없어서 대략 그 단서들만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하께서 마음을 기울이시고 처리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가려서 선택하십시오.

臣願陛下三復詩書之言, 以監所行之得失, 而求所以修德業正朝廷立紀綱者. 必以開納諫諍黜遠邪佞杜塞倖門安固邦本四者爲急先之務, 治其本而毋治其末, 治其實而勿治其名, 庶幾人心厭服, 夷狄知畏, 則形勢自彊而恢復可冀矣. 臣疏遠賤愚, 震慴天威, 未敢罄竭所聞, 久稽聖聽, 而粗擧其端如此, 伏惟陛下留神財幸. 取進止.

 

 

 

신축년 연화전의 주차 1 辛丑延和奏箚 一

 

 

해제이 글은 순희 8(신축, 1181, 52) 제거양절동로상평다염공사(提擧兩浙東路常平茶鹽公事: 약칭 절동제거’)의 신분으로 11월에 효종에게 올린 연화주차(延和奏箚)일곱 통 가운데 첫 번째 글이다. 이 해 윤327일 주자는 남강군 지사에서 제거강남서로상평다염공사(提擧江南西路常平茶鹽公事: 약칭 강서제거’)로 관직이 바뀌었다. 명을 받은 그날 주자는 남강을 떠나 419일 숭안현으로 돌아왔으나 강서제거의 직책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922일 절동제거로 관직이 바뀌었고, 주자는 12월이 되어서야 임지에 부임해서 실제로 절동제거의 직책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절동제거를 제수받으면서 주자는 조정에 임안에 가서 천자에게 시사를 아뢸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고, 1028일에 이를 허락한다는 상서성 차자를 받았다. 그리고 112일 숭안을 출발해서 26일 임안에 들러 연화주차일곱 통을 올렸다.

 

 

()이 삼가 생각하건대, 황제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늘을 경외하고 백성을 구휼하시며, 진실한 공경심과 관대한 어짐으로 하늘과 백성을 감동시켰으니, 하늘도 당연히 흠향하시고, 백성이며 만물이 풍족하고 편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20년 동안 수해와 한해, 도적이 들끓어 대충이나마 편안했던 시절이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천체의 운행마저 어긋나 식자들이 한심하게 여기고 기근이 해를 이어 백성들은 대부분 떠돌다 굶어죽는 형편입니다. 폐하께서 자리를 기울이며 탄식하시면서 현자를 등용하고 간사한 자를 물리치시며, 조정의 신하들에게 각각 명을 내려 창고를 열고 곡식을 내어 놓아,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심을 위무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지 않으신 것이 없었습니다. 또한 마땅히 조금이라도 재앙을 되돌려지고 화평이 이루어졌어야 할 터인데 도중에 겨울이 지나치게 따뜻하고 천둥과 번개가 격렬하게 쳐서, 한 해를 넘기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려는 계획에 오히려 근심이 있었습니다.

 

臣竊惟皇帝陛下臨御以來, 夙興夜寐, 畏天恤民, 誠敬寬仁, 格于上下, 宜其天心克享, 民物阜安, 而二十年之間, 水旱盜賊, 略無寧歲. 邇者垂象羞忒, 識者寒心. 饑饉連年, 民多流殍. 陛下側席興嘆, 進賢退姦, 分命朝臣, 振廩出粟, 凡所以奉承天意慰悅人心者, 無所不至. 又宜若可以少回災沴, 召致和平矣. 而間者冬氣太溫, 雷電震激, 嗣歲之計, 尙有可憂.

 

저는 참으로 어리석어 그렇게 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일을 미루어 깊이 탐구해 보았습니다. 생각건대 덕을 숭상함이 하늘에 미치지 못한 것이 있었을 것이며 직분을 넓히는 것이 땅에 미치지 못한 것이 있었을 것이며, 큰 정사에 거행치 않은 것이 있고, 작은 정사에는 메인 것이 없지 않았을 것이며, 관계가 소원한 사람이 부당한 형벌을 받고 가까운 사람은 요행으로 면한 적이 있었을 것이며, 군자가 혹 등용되지 않고 소인이 혹 쫓겨나지 않은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대신이 혹 자신의 직분을 잃고 천한 사람이 혹 대신의 자리를 훔치고서 거기에 앉아 있었던지, 곧고 바른 말은 거의 들리지 않고 아첨하는 말만 많았던지, 덕과 의리의 기풍이 드러나지 않고 더럽고 천한 자들이 초빙 되었던지,? 뇌물이 위에 뿌려지고 은택은 아래에 미치지 못했던지, 남은 자세하게 질책하면서 자신을 반성하는 데는 미진한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반드시 이런 몇 가지가 있은 다음에야 재앙을 불러오고 이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명철하신 폐하께 어떻게 이런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늘의 뜻은 기뻐하지 않고 나라의 근본은 동요하고 있으며 폐하의 근심이 비록 깊지만 가뭄은 다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따로 할 말이 있습니다.

臣誠愚昧, 有不識其所以然者. 嘗竊推迹前事以深求之, 意者德之崇者有未至於天欺? 業之廣者有未及於地歟? 政之大者有未擧而其小者無所繫欺? 刑之遠者或不當而其近者或幸免歟? 君子或有未用而小人或有未去歟? 大臣或失其職而賤者或竊其柄歟? 直諒之言罕聞而諂諛者衆歟? 德義之風未著而汙賤者騁歟? 貨賂或上流而恩澤不下究? 責人或已詳而反躬有未至歟? 夫必有是數者, 然後足以召災而致異. 今以陛下之明聖, 則豈有是哉? 然而天心末豫, 邦本動搖, 宸慮雖深, 旱氣未究, 是則必有說矣.

 

저는 스스로 헤아릴 수 없지만 감히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드립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듣고 판단하시려는 즈음에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조용하게 한 다음 시험삼아 앞의 몇몇 조항으로 스스로의 몸에 돌이켜보시고 일에서 징험해서 깊이 스스로 반성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연못처럼 고요한 가운데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비추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득실의 단서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떤 것이 없으며,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고칠 것인지 모두 그 실상을 숨길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서도 부족하다고 여기시면 원컨대 페하께서 속마음을 말로 표현해서 안팎에 포고하여, 자신에게 허물을 돌이켜서 스스로 새롭기를 도모하십시오. 그리고 안으로는 신하들로부터 밖으로는 무지렁이 백성에 이르기까지 천자의 마음을 깨우쳐주고 잘못된 정사를 지목하여 진언하는 자가 있으면 신분의 고하 거리의 원근을 불문하고 그들 모두의 말이 천자에게 들릴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가까운 신하 가운데 명석하고 사리판단에 능통하면서 정직한 사람 두어 명을 가려 뽑아 그들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올곧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몇몇을 이끌고 궁궐문에 숙직시켜 사방에서 올라오는 말이 있으면 모두 그들이 살펴보게 하고, 그 가운데 충성을 다하여 숨김이 없는 자의 말을 선발하여 날마다 폐하에게 아뢰게 한다면 하늘과 사람 사이에서 하늘이 이상 기후로 꾸짖고 알리는 연유들이장차 찬연하게 폐하의 눈앞에 모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처리해야 할 모든 것을 정리하여 조칙으로 친히 처결하고 하나하나 차례를 매겨 순서대로 시행하십시오. 이렇게 해서 어느 날 갑자기 구름이 흩어지고 안개가 걷혀 요임금 같은 세상과 순임금 같은 세월이 환히 밝아진다면 상제와 귀신들이 노여움과 위엄을 거둬들이고 모든 백성들은 휴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은 멀리 외로운 처지로 지나친 은혜를 입어 보답하려 하여도 방법이 없어 폐하께 죄를 범하는 것이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처벌을 관대하게 해 주시고 정신을 기울여 행여 판단해 주신다면 신()은 떨며 처벌을 기다리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할 r서입니다.

臣竊不自量, 敢冒萬死, 伏願陛下聽斷之餘, 虛心靜慮, 試以前數條者反之於身, 驗之於事而深自省焉, 淵黙之中, 無微不照, 而凡此得失之端, 孰有孰無, 孰存孰改, 皆無所遁其情矣. 若猶以爲未也, 則願濬發德音, 布告中外, 反躬引咎, 以圖自新. 內自臣工, 外及甿庶, 有能開寤聖心指陳闕政者, 無間疏賤, 使咸得以自通. 然後羞擇近臣之通明正直者一二人, 使各引其所知有識敢言之土三數人寓直殿門, 凡四方之言有來上者, 悉令省閱, 擧其盡忠不隱者, 日以聞于聰聽, 則夫天人之際, 譴告所繇, 將有粲然畢陳於前者. 然後兼總條貫, 稱制臨決, 畫爲科品, 以次施行. 使一日之間雲消霧散, 堯天舜日廓然淸明, 則上帝鬼神收還威怒, 羣黎百姓無不蒙休矣. 臣以孤遠受恩過深, 圖報無階, 抵冒至此, 惟陛下寬其斧鑕, 留神財幸. 臣無任震慴俟罪之至.

 

[첩황] 제가 멀리 이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가까이는 폐하의 조정을 살펴보건대, 기상 이변으로 인해 조언을 구한 일에 모두 귀감이 될 고사가 있었습니다. 만일 지성으로 따라 행하고 진실로 그 말을 채용하셔서 지난날의 폐단을 혁파하신다면 하늘에 응답하는 실질에 도움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별자리의 운행이 이상을 보이다 주춤 물러섰지만, 굶주린 백성들은 지금도 떠돌고 있고, 겨울 천둥 등은 내년을 근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천자께서 스스로 판단하셔서 조속히 시행하도록 하십시오.

(貼黃) 臣遠稽前史, 近考聖朝, 以災異求言, 具有故事. 若以至誠行之而實釆用其說, 以革前日之弊, 則於應天之實, 所補不細. 星文雖已退舍, 然餓民目今流散, 冬雷憂在嗣歲, 伏乞斷自聖志, 早賜施行.

 

신은 품성이 거칠고 졸렬하여 글자며 획들이 단정하지 못한데다 질병으로 쇠약하고 눈마저 어두워져 글씨를 써나가기 더욱 힘듭니다. 그러나 지금 진달하는 내용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마땅치 않아 손수 써서 베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삼가지 못한 죄는 바라건대 용서해 주십시오.

臣禀性疏拙, 字晝不精, 衰病目昏, 尤艱寫染. 今以所陳不宜宣洩, 不免親筆書寫. 不謹之罪, 伏乞財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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