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유년에 천자에게 올리려고 쓴 봉사 己酉擬上封事
【해제】이 글은 순희 16년(기유, 1189, 60세)에 광종(光宗)에게 올리려고 썼으나, 결국 올리지 않은 봉사이다. 이 해 2월 2일 효종은 셋째 아들인 광종에게 황제의 지위를 물려주었다. 주자는 이 글을 통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광종에게 모두 열 가지에 걸친 정치적 조언을 하고 있다. 그 제목은 첫째 강학으로 정심할 것, 둘째 수신으로 제가할 것, 셋째 편폐를 멀리하고 충직을 가까이 할 것, 넷째 사사로운 은총을 억제하시고 공도를 두둔할 것, 다섯째 의리를 밝혀 귀신과 관련된 일을 끊을 것, 여섯째 스승을 택해서 황자들을 보우할 것, 일곱째 관리의 선발과 임용을 정밀하게 해서 체통을 밝힐 것, 여덟째 기강을 진작해서 풍속을 격려할 것, 아홉째, 재용을 절약해서 국가의 근본을 견고히 할 것, 열 번째 정사를 닦아 이적을 물리칠 것 등이다. 그러나 이 글의 본문은 아홉 가지 항목에 대해서만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 마지막 항목에 대한 서술은 담고 있지 않다.
모관 모위 신 주희는 감히 손 모아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룁니다.
具位臣朱熹敢拜手稽首言曰:
제가 살펴보건대, 황제폐하께서는 밝고 지혜로운 자질과, 효성스럽고 우애로우며, 온화하고 공손하신 덕성과 관대하고 어질며, 널리 사랑하시는 도량과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신비한 위엄을 갖고 계십니다. 태자궁에서 덕을 기른지 20년 만에 자애로운 상황으로부터 천명을 받아 몸소 천자의 자리를 담당하시게 되어, 용이 날고 호랑이가 변하듯이 하늘의 운행을 담당하시게 되었습니다. 덮어주고 실어주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혈기를 가지고 있는 족속들은 목을 빼고 발꿈치를 들고서 덕을 바라고 풍교를 들으려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신은 마침 이런 시대를 맞아 처음에 소명을 받고 또 욕되게도 입대하는 은혜를 입고 가까이서 천자를 뵈어, 깊은 감사와 다행스러움을 느낍니다. 어찌 저의 어리석은 충정의 한 둘이라도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臣竊惟皇帝陛下有聰明睿智之資, 有孝友溫恭之德, 有寬仁博愛之度, 有神武不殺之威. 養德春宮, 垂二十年, 一旦受命慈皇, 親傳大寶, 龍飛虎變, 御極當天. 凡在覆載之間, 稍有血氣之屬, 莫不延頸擧踵, 觀德聽風. 而臣適逢斯時, 首蒙趣召, 且辱賜對, 得近日月之光, 感幸之深, 其敢無說, 以效愚忠之一二?
신이 듣건데 옛 성왕들은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을 다 발휘해서 도를 완비하고 덕이 온전하여, 베푸는 바가 비록 의리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더라도 오히려 조금도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평소에 조존성찰(操存省察)하고 징분질욕(懲忿窒欲), 개관천선하려는 노력의 소치가 진실로 한 마음의 간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자신이 시행하는 일에 대변혁이 있으면 또 반드시 이로써 그 마음에서 크게 경계하고 움직였던 것은 처음을 삼가고 거듭 자신을 새롭게 하려는 때문이었습니다.
蓋臣聞古之聖賢窮理盡性, 備道全德, 其所施爲雖無不中於義理, 然猶未嘗少有自足之心. 是其平居所以操存省察而致其懲忿窒欲․遷善改過之功者, 固無一念之間斷. 及其身之所履有大變革, 則又必因是而有以大警動於其心焉, 所以謹初始而重自新也.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이제 왕께서 그 덕을 이으려 하신다면 (모든 것은) 즉위하는 초기에 달려 있습니다.[今王嗣厥德 罔不在初]”라고 했고, 또 말하기를 “이제 사왕(嗣王)이 새로 천명을 받으시려면 덕을 새롭게 하셔야 합니다[今嗣王新服厥命, 惟新厥德]”라고 했으며, 소공이 성왕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자식을 낳음에 처음 낳을 때에 달려 있어 스스로 밝은 명(命)을 받지 않음이 없음과 같으니, 이제 하늘이 우리에게 밝음을 명(命)할 것인가? 길흉(吉凶)을 명(命)할 것인가? 역년(歷年)을 명(命)할 것인가? 이것을 아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음 정사(政事)함에 달려 있습니다……왕(王)께서는 빨리 덕(德)을 공경하소서[若生子, 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今天其命哲․命吉凶․命歷年, 知今我初服, 肆惟王其疾敬德]”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깊이 이것으로 군주에게 바란 것이니 그 뜻이 이미 절실합니다. 이제 폐하는 태자로부터 천자가 되셨고, 무군감국(撫軍監國)의 위치에서 정사를 듣고 판단하는 일을 전단하는 자리에 오셨으니, 신분의 변화가 어느 것이 이보다 더 크단 말입니까?
伊尹之告太甲曰: “今王嗣厥德, 罔不在初.” 又曰: “今嗣王新服厥命, 惟新厥德.” 召公之戒成王曰: “若生子, 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今天其命哲․命吉凶․命歷年, 知今我初服, 肆惟王其疾敬德.” 蓋深以是而望於其君, 其意亦已切矣. 今者陛下自儲貳而履至尊, 由監撫而專聽斷, 其爲身之變革, 孰有大於此者?
때문에 그 마음을 경계하면서 움직이고 처음을 삼가고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일에서 생각컨데 이미 그 지극함을 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오히려 두려운 점이 있습니다. 진실로 걱정되는 것은 만에 하나 경계하면서 움직이고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조목에 혹 하나라도 빠진 것이 있다면 재앙의 맹아가 장차 은미한 사이에서 싹트고, 의외의 곳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소원하고 천함을 잊고서 망령되게도 평소에 개인적인 근심과 지나친 생각이 미친 것들을 깊이 폐하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즉 강학으로 정심하고, 수신으로 제가하고, 편폐를 멀리하고 충직을 가까이하며, 사사로운 은총을 억제하시고 공도를 두둔하시며, 의리를 밝혀 귀신과 관련된 일을 끊으시고, 스승을 택해서 황자들을 보우하시고, 관리의 선발과 임용을 정밀하게 해서 체통을 밝히시고, 기강을 진작해서 풍속을 격려하시고, 재용을 절약해서 국가의 근본을 견고히 하시고, 정사를 닦아 이적을 물리치시는, 이 열 가지는 모두가 폐하께서 당연히 경계하면서 움직이시고 스스로 새롭게 하는데 하나라도 빠트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은 견마지로를 다해 애군우국하려는 정성을 이기지 못해서 감히 해당 일에 대한 말씀들을 죽음을 무릎쓰고 올립니다. 삼가 그 일의 조목을 아래와 같이 아룁니다.
則凡所以警動其心而謹始自新者, 計已無所不用其極矣. 而臣之愚猶竊有懼焉者, 誠恐萬分有一所以警動自新之目或未悉擧, 則釁孽之萌將有作於眇綿之間, 出於防慮之外者. 是以輒忘疏賤, 而妄以平日私憂過計之所及者深爲陛下籌之. 則若講學以正心, 若脩身以齊家, 若遠便嬖以近忠直, 若抑私恩以抗公道, 若明義理以絶神姦, 若擇師傅以輔皇儲, 若精選任以明體統, 若振綱紀以厲風俗, 若節財用以固邦本, 若脩政事以攘夷狄, 凡是十者, 皆陛下所當警動自新而不可一有闕焉者也. 臣不勝犬馬愛君憂國之誠, 輒敢事爲之說而昧死以獻. 謹條其事如左:
첫째, 학문을 강론해서 마음을 바르게 하는 일입니다. 신은 듣건대, 천하의 일에는 그 근본이 한 사람에게 있고, 한 사람의 몸은 그 주재가 마음 하나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군주의 마음이 한 번 바르게 되면 천하의 일은 바르지 않는 것이 없게 되고, 군주의 마음이 한 번 사특하게 되면 천하의 일은 사특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외형이 단정하면 그림자도 곧고, 근원이 탁하면 말류가 더러운 것처럼 그 이치는 그렇게 필연적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 천하에 그 덕을 밝히려 했던 지혜로운 왕[哲王]들은 한결같이 마음을 바로잡는 것을 근본으로 삼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마음의 선함[本心之善]은 그 체가 지극히 미미한데 이익과 욕망이 헤아릴 수 없이 공격해 들어옵니다. 청컨대 시험삼아 말해 보겠습니다. 하루 중에 소리 색깔 냄새와 맛 나는 것들이 제멋대로 일어나고, 화려한 건축의 장식물과 경제적인 이득이 잡다하게 눈앞에 벌려져서, 날마다 새롭게 변하고 달마다 성해지면, 그 사이에서 마음의 본체가 거의 사라지고 선의 단서는 드러나는 때는 거의 없거나 겨우 남아있을 뿐입니다.
진실로 강학하는 노력으로 그 마음을 열어 밝히지도 못하고, 옳음과 그름, 정과 사의 소재에 미혹되며, 또 반드시 이치가 나에게 있어서 잠깐이라도 떨어질 수 없음을 믿지 못한다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올바름을 얻고 사적인 이익과 욕망을 이겨서 사물의 끝없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학문[學]’에는 또한 정과 사의 구별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성현들의 말을 음미해서 의리의 당연함을 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살펴서 득실의 기미를 징험하며, 반드시 자신의 몸에 돌이켜 실천하는 것이 학문의 올바름[正]입니다. 널리 암기하고 읆조리며 심오하고 박식함으로 서로 드높이며, 책이나 지으면서 화려함과 기교를 서로 뽐내면서, 자신의 몸에 돌이켜도 가치가 없고 일에다 적용해 보아도 부당하기만 한 것은 학문의 치우침[邪]입니다. 학문이 올바르면서 마음이 바르지 않은 사람은 드물고, 학문이 치우치면서 마음이 치우치지 않는 사람 또한 드뭅니다. 그러므로 강학이 비록 마음을 바로잡는 요체라고 하지만 학문의 올바름과 치우침은 행실의 득실에 매여 있으니 이와 같이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易)에서는 “그 근본을 바로잡으면 모든 일이 이치대로 된다. 조그만 차이가 결국 천리나 어긋난다”고 했습니다. 천자께서 유의하신다면 세상은 무척 다행일 것입니다.
其一, 所謂講學以正心者. 臣聞天下之事其本在於一人, 而一人之身其主在於一心. 故人主之心一正, 則天下之事無有不正 : 人主之心一邪, 則天下之事無有不邪. 如表端而影直, 源濁而流汙, 其理有必然者. 是以古先哲王欲明其德於天下者, 莫不壹以正心爲本. 然本心之善, 其體至微, 而利欲之攻不勝其衆, 嘗試驗之. 一日之間, 聲色臭味游衍馳驅, 土木之華․貨利之殖雜進於前, 日新月盛, 其間心體湛然, 善端呈露之時, 蓋絶無而僅有也. 苟非講學之功有以開明其心, 而不迷於是非邪正之所在, 又必信其理之在我而不可以須臾離焉, 則亦何以得此心之正, 勝利欲之私, 而應事物無窮之變乎? 然所謂學, 則又有邪正之別焉. 味聖賢之言以求義理之當, 察古今之變以驗得失之幾, 而必反之身以踐其實者, 學之正也. 陟獵記誦而以難博相高, 割裂裝綴而以華摩相勝, 反之身則無買, 措之事則無當者, 學之邪也. 學之正而心有不正者鮮矣, 學之邪而心有不邪者亦鮮矣. 故講學雖所以爲正心之要, 而學之邪正, 其繫於所行之得失而不可不審者又如此. 易曰: “正其本, 萬事理. 差之毫釐, 繆以千里.” 惟聖明之留意焉, 則天下幸甚!
둘째, 수신으로 제가하는 일입니다. 신은 천하의 근본은 나라[國]에 달려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안[家]에 달려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군주의 집안이 가지런하게 되면 천하는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고, 군주의 집안이 가지런하지 않으면 천하는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삼대가 융성했던 때에 성군과 현군으로 그 정사를 닦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제가에 근본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남자가 밖에서 바르게 위치하고, 여자가 안에서 바르게 위치해서 부부의 구별이 엄격한 것이 집안이 가지런하여진 것입니다. 처가 위에서 남편과 일체를 이루고, 첩이 아래서 이어 받들어 적서의 구분이 정해진 것이 집안이 가지런해진 것이며, 덕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음악과 여색을 경계하며, 엄숙하고 공손한 이를 가까이하고, 기교나 부리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집안이 가지런해진 것이며, 집안의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고, 바깥의 말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며, 뇌물이 이르지 않고, 청탁 알선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 집안이 가지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규방 안에서는 은혜가 언제나 의리를 가리기 때문에 비록 영웅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더라도 언제나 주색 에 곤경을 당하고, 애정에 빠져 스스로 이겨내지 못합니다. 진실로 마음을 바로잡고 몸을 닦아 예의에 근거해서 행동함으로서 나의 덕에 복종하고, 나의 위엄을 겁내게 하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내전을 바르게 하고, 청탁을 막으며, 인척을 단속해서 화란의 싹을 예방하겠습니까? 상서에서 말하기를 “암닭이 울면 집안이 궁색해진다”고 했고, 광형(匡衡: 자는 稚圭)은 상소문에서 “복이 흥하는 것은 집안에 근본하지 않음이 없고, 도가 쇠약해지는 것은 문지방 안에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없다[福之興 莫不本乎室家 道之衰 莫不始乎梱內]”고 했습니다. 오직 천자께서 유의하신다면 세상은 아주 다행일 것입니다.
其二, 所謂脩身以齊家者. 臣聞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故人主之家齊則天下無不治, 人主之家不齊則未有能治其天下者也. 是以三代之盛, 聖賢之君能脩其政者莫不本於齊家. 蓋男正位乎外, 女正位乎內而夫婦之別嚴者, 家之齊(2-492)也 : 妻齊體於上, 妾接承於下而嫡庶之分定者, 家之齊也 : 采有德․戒聲色․近嚴敬․遠技能者, 家之齊也 : 內言不出, 外言不入, 苞苴不達, 請謁不行者, 家之齊也. 然閨門之內, 恩常掩義, 是以雖以英雄之才, 尙有困於酒色․溺於情愛而不能自克者. 苟非正心脩身, 動由禮義, 使之有以服吾之德而畏吾之威, 則亦何以正其宮壺, 杜其請託, 檢其姻戚而防禍亂之萌哉? 書曰 “牝雞之晨, 惟家之索’. 傳曰: “福之興, 莫不本乎室家 : 道之衰, 莫不始乎梱內.” 惟聖明之留意焉, 則天下幸甚!
세 번째는 아첨하는 소인배를 멀리하고 충직한 군자를 가까이 하는 일입니다. 신은 ‘쑥이 삼밭에서 자라면 붙잡아주지 않아도 곧고,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물들이지 않아도 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의(賈誼)는 “제나라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제나라 말을 잘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늘 올바른 사람과 있으면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고, 초나라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초나라 말을 잘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늘 올바르지 못한 사람과 어울려 살면 올바르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옛 성현으로 스스로를 닦아 남을 다스리려고 했던 사람들은 반드시 아첨하는 소인배를 멀리하고 충직한 군자를 가까이 했습니다. 군자와 소인은 얼음과 숯이 서로 용납하지 않고, 향기와 악취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소인이 나아가면 군자는 반드시 물러서고, 군자와 친하면 소인은 반드시 멀어집니다. 이제껏 군자와 소인을 함께 거두어 길렀을 때 서로가 해를 끼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살펴서 취사를 결정한다면 견문의 이득과 훈도의 보탬이 되어 사벽의 방비를 신중히 하는 일과 의리를 편안히 여기는 습성이 저절로 그만둘 수 없을 것이요, 인재의 등용과 형벌과 상등 밖에 시행하는 것들에서도 반드시 치우치거나 기우는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라도 살피지 못하게 되면 청탁이 망령되게 횡행하고, 권위가 농단되어 나의 정사를 해칠 것입니다. 그것에 의하여 아첨으로 인도하고 나쁜 냄새로 물들여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함께 동화되어가게 한다면 나의 본심과 올바른 성품을 이루 말할 수 없이 해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무리들은 그 종류가 한결같지 않습니다. 본래 하류에서 나와 예의를 알지 못하고 조금이나마 문묵에 능통한 자들도 유자의 의관을 입고서 외람되이 과거에 합격하지만 실제로는 전연 행동을 검속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커다란 도적이요, 인주에게는 커다란 해충입니다. 진실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아서 분명하게 그 정황이 싫어하는 악취 같은 줄을 안다면 또한 어떻게 그들을 멀리하고 충직한 군자를 가까이 오게 해서 덕업의 완성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제갈량은 “현명한 신하들과 친하고, 소인을 멀리한 것이 선대의 한나라가 융성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소인과 친하고, 현명한 신하들을 멀리한 것이 후대의 한나라가 무너진 이유입니다. 선제(先帝)께서 생존해 계실 때 신과 함께 이 일을 논할 때면 언제나 환제[桓]와 영제[靈]의 시대를 통한스럽게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 송나라의 큰 유학자인 정이는 원우 년간에 언제나 조정에 간언하기를 ‘인주가 하루라도 현명한 사대부를 가까이 하는 때가 많고 환관과 궁첩을 가까이하는 때가 적다면 기질을 함양하고 덕성을 도야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이들은 모두 간절하고 지극한 말입니다. 그러나 촉의 후주(後主)는 제갈량의 말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황호(黃皓)․진기(陳祇)로 인해 그 나라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원우 연간의 대신들도 정이의 설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소성(紹聖) ․원부(元符)의 재앙을 당해서 지금에 이르러서도 말할 때마다 오히려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일이 멀지 않으니 폐하께서 유의하신다면 천하는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其三, 所謂遠便嬖以近忠直者. 臣聞蓬生麻中, 不扶而直 : 白沙在泥, 不染而黑. 故賈誼之言曰: ‘習與正人居之, 不能無正, 猶生長於齊之地, 不能不齊言也. 習與不正人居之, 不能無不正, 猶生長於楚之地, 不能不楚言也.’ 是以古之聖賢欲脩身以治人者, 必遠便嬖以近忠直, 蓋君子小人如冰炭之不相容, 薰蕕之不相入. 小人進則君子必退, 君子親則小人必疏, 未有可以兼收幷蓄而不相害者也. 能審乎此以定取舍, 則其見聞之益․薰陶之助, 所以謹邪僻之防․安義理之習者自不能已, 而其擧措刑賞所以施於外者必無偏陂之失. 一有不審, 則不惟其妄行請託․竊弄威權有以害吾之政事, 而其導諛薰染, 使人不自知覺而與之(2-493)俱化, 則其害吾之本心正性又有不可勝言者. 然而此輩其類不同, 蓋有本出下流, 不知禮義而稍通文墨者, 亦有服儒衣冠, 叨竊科第, 而實全無行檢者. 是皆國家之大賊, 人主之大●(虫+或). 苟非心正身脩, 有以灼見其情狀如臭惡之可惡, 則亦何以遠之而來忠直之士․望德業之成乎? 諸葛亮有言, ‘親賢臣․遠小人, 此先漢所以興隆也. 親小人․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先帝在時, 每與臣論此事, 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 本朝大儒程頤在元祐間常進言於朝, 以爲人主當使一日之中親賢士大夫之時多, 親宦官宮妾之時少, 則可以涵養氣質, 薰陶德性, 此皆切至之言也. 然後主不能用亮之言, 故卒以黃皓․陳祇而亡其國. 元祐大臣亦不能白用頤說, 故紹聖․元符之禍至今言之猶可哀痛. 前事不遠, 惟聖明之留意焉, 則天下幸甚!
네 번째는 사사로운 은총을 억제하고 공도를 높이는 일입니다. 신은 듣건대 하늘은 사사로이 덮어주지 않고, 땅도 사사로이 실어주지 않으며, 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춰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세 가지 사사로움이 없음[無私]을 받들어 세상을 위해 애쓴다면 두루 포용하고 널리 사랑하는 것[兼臨博愛]이 툭 트이고 크게 공평해서[廓然大公] 세상 사람들이 마음으로 기뻐하며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 사이에서 다시 신진(新進)과 구신(舊臣)으로 나누고, 친하고 소원함을 나눈다면 편당을 나누는 감정과 편협한 도량이 반드시 사람들을 불평스럽게 만들어 불복하려는 마음을 갖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좋아하고 미워하며, 취하고 버림도 반드시 의리에 들어맞지 않게 되어 정도가 지나치면 도모하는 일을 가로막고 나라를 망치며, 덕을 방해하고 정치를 어지럽히게 되어 그 피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其四, 所謂抑私恩以抗公道者. 臣聞天無私覆, 地無私載, 日月無私照, 故王者奉三無私以勞於天下, 則兼臨博愛, 廓然大公, 而天下之人莫不心悅而誠服. 儻於其間復以新舊而爲親疏, 則其偏黨之情․褊狹之度固已使人憪然有不服之心, 而其好惡取舍又必不能中於義理, 而甚則至於沮謀敗國, 妨德亂政, 而其害有不可勝言者.
주변의 시역(厮役)들에게 마음 내키는 데로 관직과 상을 주고, 궁부(宮府)의 관리들을 으레 표창하고 관직을 옮겨주면서 본시 이전의 사례가 어떠했는지 시시비비를 묻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이전에 관례가 있었는지의 여부조차 묻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시 과거의 잘못된 일로써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물며 오늘날 일찍부터 간사한 마음을 품고 미리 스스로 결탁하려는 자들이 있는 마당에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또한 하늘이 만들어 준 공적을 탐내어 자신의 힘이라 여기면서, 위로 천자의 덕에 누를 끼치는 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들을 질투하고 아래 사람의 말을 막고 군상의 귀와 눈을 가리면서 천자의 정사에 해를 끼치는 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사사로운 감정을 깊이 억제해서, 통렬하게 맊고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공도를 밝히고 뭇 사람의 마음을 복종시켜 누적된 폐단을 혁신하고 후환을 방비할 수 있겠습니까? 당 태종(太宗)이 방상수(龐相壽)를 책망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옛날 왕이었을 때는 왕부[府] 한 곳에서만 주인일 뿐이었다. 지금은 천자가 되어 온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온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는 왕부 한 곳에 편파적인 은택을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일 너를 다시 중책에 복위시킨다면 반드시 선한 자들이 마음을 쓰지 않게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고 한 것이 바로 이를 위해서입니다. 게다가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마땅히 멀리 내다보는 근심꺼리[遠慮]를 갖고 있어야 하니 한나라 고조가 정공을 죽이고, 우리 태조께서 왕보(王溥)를 내치신 것이 바로 깊은 사려와 영웅적인 결단으로 모두 뒷날의 왕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것입니다. 천자께서 유의하신다면 천하는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蓋左右厮役橫加官賞, 宮府寮屬例得褒遷, 固不問前例之是(2-494)非, 而或者又不問其有無, 此固舊事之失而不可以不正. 况今又有蚤懷姦心․預自憑結者, 又將貪天之功以爲己力, 而不顧其仰累於聖德 : 妬賢嫉能, 禦下蔽上, 而不憂其有害於聖政也. 苟不有以深抑私情, 痛加屛絶, 則何以明公道而服衆心, 革宿弊而防後患乎? 唐太宗之責龐相壽曰: ‘我昔爲王, 爲一府作主. 今爲天子, 爲四海作主. 爲四海作主, 不可偏與一府恩澤. 若復令爾重位, 必使爲善者皆不用心.’ 正爲此也. 又况有國家者, 當存遠慮, 若漢高祖之戮丁公, 我太祖之薄王溥, 此其深識雄斷, 皆可以爲後聖法. 惟聖明之留意焉, 則天下幸甚!
다섯 번째는 의리를 밝혀 귀신과 관련된 일을 끊는 일입니다. 신은 듣건대 “하늘은 뚜렷하게 드러난 도(道)가 있어 그 예(例)가 밝다. 선행을 하면 온갖 상서(祥瑞)를 내리고 불선(不善)을 하면 온갖 재앙(災殃)을 내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화복은 모두가 스스로 취하는 것이니 선을 행하지 않고도 기도와 아첨으로 복을 누리는 자는 없고, 악을 행하지 않고도 올바름을 지켜 화를 얻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제왕으로 태어나 천명을 받아 교묘․사직․신인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진실로 덕을 닦아 정사를 펴고, 백성들은 평안하게 구제한다면 재앙이 물러가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으며, 복록이 오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일 이와 반대라면 하늘에 죄를 지어 사람이 원망하고 신이 노여워한다면 비록 악귀를 피하고 바른 사람이 오기를 원한다 해도 또한 보탬이 없을 것입니다. 또 선왕이 예를 제정한 것에 천자에서 서인에 이르기까지 조상에 보답하고 어버이를 흠향하는 일에 모두 일정한 전례가 있고, 희생과 제기, 날짜까지 모두 일정한 법도가 있어서, 밝게는 예악이 있고 그윽한 곳에는 귀신이 있어서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여 애초부터 간격이 없습니다. 진실로 예에 실리지 않는 것은 신도 흠향하지 않습니다. 제사드릴 귀신이 아닌데도 제사 드리는 것은 음사(淫祀)입니다. 음사에 복이 없다는 것은 경전에도 분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부러 이런 문장을 설정해서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치로서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간혹 황홀(恍惚)한 즈음에 마치 그림자와 메아리가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있는 것은 마음에 주재가 없어서입니다. 망령되게 걱정하고 의심하느라 마침내 무축과 요망한 자들이 그 틈을 타고 파고들어와 간사한 속임수를 부리는 것입니다. 광망하게 사람을 홀리는 술수가 행해지면 그 재앙이란 또 장차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됩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로 난리와 패망을 초래한 것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교훈도 먼 데 있지 않습니다. 진실로 학문에 정신을 기울여 성명의 이치를 밝혀서 이 마음에 통연(洞然)히 의혹이 사라져 있어야 할 것은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게 하지 못한다면 또 어디에 근거를 두고서 예를 붙잡고 법을 지켜 요망함의 근원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선왕의 정치에서 잘못된 도리를 붙잡아 정치를 어지럽히고, 귀신에 가탁해서 대중에게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자들은 모두 죽이고 용서하지 않았으니, 그 생각이 깊습니다. 그러나 옛 글에서는 “천지의 성에 밝은 사람은 귀신으로 미혹할 수 없고, 만물의 실정에 밝은 사람은 그 유가 아닌 것으로 속일 수 없다”고 했으니, 그 망령됨은 또한 간파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유의하신다면 천하는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其五, 所謂明義理以絶神姦者. 臣聞天有顯道, 厥類惟彰. 作善者降之百祥, 作不善者降之百殃. 是以人之禍福, 皆其自取, 末有不爲善而以諂禱得福者也, 末有不爲惡而以守正得禍者也. 而况帝王之生, 實受天命, 以爲郊廟社稜神人之主, 苟能脩德行政, 康濟兆民, 則災害之去, 何待於禳, 福祿之來, 何待於禱? 如其反此, 則獲罪於天, 人怨神怒, 雖欲辟惡鬼以來貞人, 亦無所益. 又况先王制禮, 自天子以至於庶人, 報本享親, 皆有常典, 牲器時日, 皆有常度, 明有禮樂, 幽有鬼神, 一理貫通, 初無間隔. 苟禮之所不載, 卽神之所不享. (2-495)是以祭非其鬼, 卽爲淫祀. 淫祀無福, 經有明文, 非固設此以禁之, 乃其理之自然, 不可得而易也. 其或恍惚之間, 如有影響, 乃是心無所主, 妄有憂疑, 遂爲巫祝妖人乘間投隙, .以逞其姦欺. 誑惑之術旣行, 則其爲禍又將無所不至. 古今以此坐致亂亡者, 何可勝數? 其監蓋亦非遠. 苟非致精學問, 以明性命之理. 使此心洞然, 無所疑惑, 當有卽有, 當無卽無, 則亦何據以秉禮執法而絶妖妄之原乎? 先王之政, 執左道以亂政, 假鬼神以疑衆者, 皆必誅而不以聽, 其慮深矣. 然傳有之 : ‘明於天地之性者, 不可惑以神怪 : 明於萬物之情者, 不可罔以非類’則其爲妄, 蓋亦不甚難察. 惟聖明之留意焉, 則天下幸甚!
여섯 번째는 스승을 택해서 황자들을 보우하는 일입니다. 신은 듣건대 가의(賈誼)는 「보부전」을 지었는데, 그 속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하의 명은 태자에게 매였다. 태자의 선함은 일찍 시작한 교육과 측근의 선발에 달렸다. 교육을 제대로 받고 측근이 올바르면 태자가 바르게 되고, 태자가 바르면 천하는 안정된다.” 이 말은 천하의 지극한 말로서 영원토록 변할 수 없는 정론입니다. 가르치고 인도하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면 반드시 효와 인 예의를 근본으로 삼고, 상세한 조목은 용모와 말투, 의복과 일상생활 용품의 미세한 데에 이르기까지 작디작은 모든 영역에 모두 법도가 있습니다. 하나라도 잘못이 있으면 사관(史官)이 역사에 기록해 올리고, 음식 담당 관리가 반찬의 수를 줄였습니다. 또 반드시 진선의 깃발과 비방하는 나무, 간쟁하는 북을 두었습니다. 장님에게 사서를 읊조리게 하고 공인(工人)은 잠과 간을 암송하며, 사인은 백성들의 말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반드시 교화가 심성과 함께 이루어져 도에 부합하는 것이 타고난 성정처럼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고서도 오히려 감히 게으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측근을 선발하는 방법에는 삼공(三公)과 같은 존귀한 사람이 있었고, 삼소(三少)와 같은 친한 사람이 있으며, 도(道)․충(充)․필(弼)․승(承)이 있습니다. 위로는 반드시 주공(周公)․태공(太公)․소공(召公)․사일(史佚)과 같은 류의 사람을 얻어야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고, 아래로는 반드시 효도와 우애를 갖추고, 널리 알고, 도술을 갖춘 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간사한 한 사람이 그 사이에 섞이게 되면 반드시 쫓아서 물리쳐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태자가 아침저녁으로 더불어 거처하고 출입하는 데에 전후좌우가 모두 바른 사람들이어서 하나의 악행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삼대의 군왕들이 도를 갖춘 자들의 우두머리로서 수백 년이 지나도록 천하를 잃지 않은 이유입니다. 가의의 시대에도 본래 이미 이 법이 갖추어지지 못함을 병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효소(孝昭)의 조칙을 살펴보니 오히려 가의의 말을 외우면서 선왕의 뜻을 잊지 않으려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근세로 내려와서는 제왕이 자식을 가르치는 법이 더욱 소략해졌습니다. 가르치는 것이라고는 기송과 서찰의 기술에 불과하며, 인효예의의 습관을 열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용모와 사기(詞氣)․의복과 일상생활 용품에 이르러서는 사치의 극을 달려도 제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료와 해당 관속들이 인원수대로 갖추었지만 보부의 엄격함은 없고, 강독이 예법대로 완비되었지만 잠규의 보탬은 없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더불어 출입하고 거처하며, 사이가 없이 친치 지내는 사람들은 총애하는 환관이거나, 청소나 하며 추종하는 무리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제왕의 치세에 응당 후대에 부촉해서 전해야 하는 통치권에는 위로는 종묘와 사직의 중함과 아래로는 사해 백성들의 생명이 있으며, 앞으로는 조종들이 국가를 창건한 간난신고가 있고, 뒤로는 자손들이 장구하게 유지해나갈 계획이 매여져 있습니다. 보양하는 준비들이 이처럼 소략하니, 이것은 집안에 있는 명월주와 야광벽을 큰길 가나 도적이 들끓는 곳에 버려두는 격입니다.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시경에서는 말하기를 ‘풍수(豊水)에도 기(芑)풀이 있으니 무왕(武王)이 어찌 이곳에서 일하지 않으시리오 후손(後孫)에게 계책을 남겨 주사 공경하는 아들을 편안하게 하신다’라 했습니다. 천자께서 유의해주신다면 천하는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其六, 所謂擇師傅以輔皇儲者. 臣聞賈誼作保傅傳, 其言有曰: ‘天下之命繫於太子, 太子之善在於早諭敎與選左右. 敎得而左右正, 則太子正, 太子正而天下定矣.’ 此天下之至言, 萬世不可易之定論也. 至論所以敎諭之方, 則必以孝仁禮義爲本, 而其條目之詳, 則至於容貌詞氣之微, 衣服器用之細, 纖悉曲折, 皆有法度. 一有過失, 則史書之策, 宰撤其膳, 而又必有進善之旌․誹謗之木․敢諫之鼓, 瞽詩史書, 工誦箴諫, 士傳民語, 必使至於化與心成, 中道若性, 而猶不敢怠焉. 其選左右之法, 則有三公之尊, 有三少之親, 有道有充, 有(2-496)弼有丞. 上之必得周公․太公․召公․史佚之流, 乃勝其任, 下之猶必取於孝弟博聞有道術者. 不幸一有邪人厠乎其間, 則必逐而去之. 是以太子朝夕所與居處 出入, 左右前後, 無非正人, 而未嘗見一惡行. 此三代之君所以有道之長, 至於累數百年而不失其天下也. 當誼之時, 固已病於此法之不備. 然考孝昭之詔, 則猶知誦習誼之所言而有以不忘乎先王之意. 降而及於近世, 則帝王所以敎子之法益疏略矣. 蓋其所以敎者不過記誦書札之工, 而未嘗開以仁孝禮義之習. 至於容貌詞氣․衣服器用, 則雖極於邪侈而未嘗有以裁之也. 寮屬具員而無保傅之嚴, 講讀備禮而無箴規之益, 至於朝夕所與出入居處而親密無間者, 則不過宦官近習埽除趨走之流而已. 夫以帝王之世, 當傳付之統, 上有宗廟社稷之重, 下有四海烝民之生, 前有祖宗垂創之艱, 後有子孫長久之計, 而所以輔養之具疏略如此, 是猶家有明月之珠․夜光之璧而委之衢路之側․盜賊之衝也, 豈不危哉? 詩曰: ‘豐水有芑, 武王豈不仕? 貽厥孫謀, 以燕翼子.’ 惟聖明之留意焉, 則天下幸甚!
일곱 번째는 관리의 선발과 임용을 정밀하게 해서 체통을 밝히는 일입니다. 저는 군주는 재상을 물색하는 것을 직분으로 삼고, 재상은 군주를 바로잡는 것을 직분으로 삼는다고 들었습니다. 군주와 재상이 각각 직분을 얻은 다음에 체통이 바로잡히고 조정이 존엄하며, 세상의 정사가 반드시 한 곳에서 나와야 정사가 여러 곳에서 나오는[多門] 폐단이 없게 됩니다. 진실로 재상을 물색해야 하는 군주가 자기에게 알맞은 것만을 추구할 뿐 자기를 바르게 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좋아할 만한 것만 취하고 외경할 만한 것은 취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군주가 그 직분을 잃은 것입니다. 마땅히 군주를 바로잡아야 할 사람이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교체하려는 것을 일로 삼지 않고, 군주의 뜻과 일치시켜 그 의견이나 받드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세상을 경영하고 사물을 주관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고, 자신의 몸이 조정에 받아들여지고 군주의 총애나 두터이 하는 것에만 마음을 쓴다면 이것은 재상이 그 직분을 잃은 것입니다. 군주와 재상이 번갈아가며 그 직을 잃기 때문에 체통이 바르지 않고, 기강은 서지 않으며, 주변의 총애 받는 측근들이 모두 권위를 훔쳐 농단하며 관직과 옥사를 사고팝니다. 이렇게 해서 정치의 본령은 날로 문란해지고 국가의 형세는 날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비상한 재앙이 어두운 곳에 잠복하고 있어도 위에서는 편안하다고 하고 아래에서는 즐거워하기만 하면서 또한 걱정할 줄을 모릅니다. 이것은 그 소이연을 살펴서 돌이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등용한 사람들을 쓸어내고 앞으로 쓸 사람들을 살피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인재를 선발하면서 능히 자기를 바루고 외경할 만한 사람으로 한다면 반드시 자중하는 선비를 얻을 수 있을 것이요 내가 그를 임용하는 까닭도 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임용하는 것이 이미 중하면 그 사람도 옳은 것을 말씀드리고 그른 것을 교체하려는 뜻을 극진히 발휘할 것이요, 세상을 경영하고 사물을 주관하려는 마음을 실천할 것입니다. 또 세상의 과감하게 직언하는 선비들을 공정하게 뽑아서 대간과 급사의 직책을 맡기고 그 의론에 참여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복심과 이목이 언제나 현명한 사대부들에게 맡겨져 있고, 무리지은 소인배들에게 맡겨져 있지 않게 해야 하며, 공적과 잘못을 가려 승진시키고 벌주는 권한이 언제나 낭묘에 있고 개인의 문에서 나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고서도 군주의 권위가 서지 않고 국가의 기세가 강성해지지 않으며 기강이 서지 않고, 형정이 맑아지지 않으며, 백성들의 힘이 여유로워지지 않고, 군정이 닦이지 않는다는 것은 저는 믿지 않습니다.. 상서에서는 “임금의 덕을 이루고 보상을 경외했다”고 했으며, “군주와 영합하려는 신하는 충성스럽지 않다[和臣不忠]”는 말도 있습니다. 또 당나라 태종은 총명하고 영특해서, 한 몸에 장군과 재상의 재능을 함께 갖추었다고 일컬어지곤 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천하의 일을 재상을 거쳐서, 깊이 살펴 편안해 한 다음에야 시행했습니다. 그것은 이치와 형세의 당연함으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폐하께서 유의하신다면 세상은 다행일 것입니다.
其七, 所謂精選任以明體統者. 臣聞人主以論相爲職, 宰相以正君爲職, 二者各得其職, 然後體統正而朝廷尊, 天下之政必出於一, 而無多門之弊. 苟當論(2-497)相者求其適己而不求其正己, 取其可愛而不取其可畏, 則人主失其職矣. 當正君者不以獻可替否爲事, 而以趨和承意爲能, 不以經世宰物爲心, 而以容身固寵爲術, 則宰相失其職矣. 二者交失其職, 是以體統不正, 綱紀不立, 而左右近習皆得以竊弄威權, 賣官鬻獄, 使政體日亂, 國勢日卑. 雖有非常之禍伏於冥冥之中, 而上恬下嬉, 亦莫知以爲慮者. 是可不察其所以然者而反之, 以汰其所已用而審其所將用者乎? 選之以其能正己而可畏, 則必有以得自重之士, 而吾所以任之不得不重. 任之旣重, 則彼得以盡其獻可替否之志而行其經世宰物之心. 而又公選天下直諒敢言之士, 使爲臺諫給舍, 以參其議論, 使吾腹心耳目之寄常在於賢士大夫而不在於羣小, 陟罰臧否之柄常在於廊廟而不出於私門, 如此而王威不立, 國勢不彊, 綱維不擧, 刑政不淸, 民力不裕, 軍政不脩者, 臣不信也. 書曰: ‘成王畏相.’ 語曰: ‘和臣不忠.’ 且以唐太宗之聰明英特, 號爲身兼將相, 然猶必使天下之事關由宰相, 審熟便安, 然後施行. 蓋謂理勢之當然, 有不可得而易者. 惟聖明之留意焉, 則天下幸甚!
여덟 번째는 기강을 진작시켜서 풍속을 격려하는 일입니다. 저는 세상은 넓고 백성은 많은데, 사람들은 각각 저마다의 뜻을 가지고서 그 사적인 것을 행하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잘 다스려 내는 자라야 이에 모든 것을 거두어 잡아 가지런히 하도록 하여 각각 그 이치를 좇게 하고 감히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못하게 하려면 먼저 위에서 기강을 유지하고, 그 다음에 아래에서 풍속으로 유도해나가야 합니다. 기강이란 무엇일까요? 현명함과 그렇지 못함을 변별해서 상하의 구분을 정하고, 공과 죄를 캐물어 상벌을 공평하게 시행하는 것입니다. 풍속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에게 선이 바랄만 하다는 것을 알게 해서 반드시 선을 행하게 하고, 불선이 부끄러워할 만한 것임을 알게 해서 반드시 물리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강을 진작하려면 재집이 붙잡고서 놓치지 않고, 대간인 보좌해 살펴서 사적인 것이 없게 하고, 군주가 또 크게 공평하고 지극히 올바른 마음으로 위에서 자신을 공손히 하여 백성에게 임하여야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현자가 반드시 벼슬에 오르고 못난 자는 반드시 벼슬에서 물러나며 공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고 죄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형별을 받게 되어 모든 일의 통치권에 결점이 없게 됩니다. 기강이 이미 진작되면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각자가 즐겨 분발하게 되고 다시 악을 물리치고 선을 따르라는 것으로 권면하면 출척과 형벌을 하나하나 그 몸에 더하지 않더라도 예의염치의 풍속이 이미 크게 변하게 됩니다. 오직 지극히 공정한 도리가 위에서 행하지 않기 때문에 재집 대간에 적당한 사람을 얻을 수 없고, 출척과 형별이 대부분 사적인 뜻에서 나오게 되어 세상의 풍속이 마침내 스러지는 데에 이르러 명절과 행검이 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아첨과 굽신거리는 태도 및 바삐 뛰어다니며 연줄이나 맺는 것을 급무라고 여기게 됩니다. 단정한 말과 얼굴을 가진 어떤 사람이 그 사이에 있게 되면 반드시 그가 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할 때까지 무리지어 꾸짖고 배척합니다. 이것은 그 형세가 마치 장차 무너지려는 건물에 화려하게 단청을 해서 비록 겉모습으로는 그 변화를 알 수 없지만 재목의 속은 이미 좀이 쓸고, 썩어 문드러져 다시 건물을 지탱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진실로 천자의 의지로 스스로 결단해서, 그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크게 경계시키고 단속시켜 크고 작은 신하들에게 각각 그들의 직을 수행하게 해서 출척을 밝히고, 형상을 믿음직하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무너진 강기를 진작시키고 이미 땅에 떨어진 풍속을 다듬어 세울 수 있겠습니까? 관자(管子)에서는 말했습니다. “예․의․염․치를 일러 사유(四維)라고 한다. 사유가 넓혀지지 않으면 나라는 멸망한다.” 가의(賈誼)는 한나라 문제를 위해 이 구절을 외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령 관자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만 관자를 예로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라 한다면 이 어찌 한심치 않겠습니까!” 두 사람의 말은 명백하고 절실해서 헛 말이 아닙니다. 오직 천자께서 유의하신다면 천하는 다행일 것입니다.
其八, 所謂振綱紀以厲風俗者. 臣聞四海之廣, 兆民至衆, 人各有意, 欲行其私. 而善爲治者, 乃能總攝而整齊之, 使之各循其理而莫敢不如吾志之所欲(2-498)者, 則以先有綱紀以持之於上, 而後有風俗以驅之於下也. 何謂綱紀? 辨賢否以定上下之分, 核功罪以公賞罰之施也. 何謂風俗? 使人皆知善之可慕而必爲, 皆知不善之可羞而必去也. 然綱紀之所以振, 則以宰執秉持而不敢失, 臺諫補察而無所私, 人主又以其大公至正之心恭己於上而照臨之. 是以賢者必上, 不肖者必下, 有功者必賞, 有罪者必刑, 而萬事之統無所缺也. 綱紀旣振, 則天下之人自將各自矜奮, 更相勸勉以去惡而從善, 蓋不待黜陟刑賞一一加於其身, 而禮義之風․廉耻之俗已丕變矣. 惟至公之道不行於上, 是以宰執臺諫有不得人, 黜陟刑賞多出私意, 而天下之俗遂至於靡然不知名節行檢之可貴, 而唯阿諛軟熟․奔競交結之爲務. 一有端言正色於其間, 則羣譏衆排, 必使無所容於斯世而後已. 此其形勢, 如將傾之屋, 輪奐丹雘, 雖未覺其有變於外, 而材木之心已皆 蠹朽腐爛而不可復支持矣. 苟非斷自聖志, 灑濯其心而有以大警敕之, 使小大之臣各擧其職, 以明黜陟, 以信刑賞, 則何以振已頹之綱紀而厲已壞之風俗乎? 管子曰: ‘禮義廉耻, 是謂四維. 四維不張, 國乃滅亡.’ 賈誼嘗爲漢文誦之, 而曰: ‘使管子而愚人也則可, 使管子而少知治體, 是豈可不爲寒心也哉?’ 二子之言明白深切, 非虛語者. 惟聖明之留意焉, 則天下幸甚!
아홉 번째는 재용을 절약해서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이전 성인들이 치국에 대해 말한 것에 ‘재용을 아껴 사람을 사랑하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나라의 재용은 모두 백성에게서 나옵니다. 재용을 절약하지 않아 운용에 틈이 생기면 반드시 백성들에게 부세를 멋대로 매기고 가혹하게 징수하게 됩니다. 비록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백성들은 그 은택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백성을 사랑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재용의 절약을 앞세우는 것이니 이것은 바뀔 수 없는 이치입니다. 우리 송나라가 오계(五季) 시대의 피폐함을 이어 나라를 세우다 보니 조종들께서 창업하신 초기에 시간이 충분치 못해서 주요 제도[經制]를 제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서 거둬들이는 것이 이전 시대에 비해서 이미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게다가 희령․원풍 연간에 법제를 바꿔 크게 증가한 것이 있었는데, 건염 이래로 땅은 빼앗기고 병졸들은 많아져 시의에 따라 임시로 증가한 부세가 더욱 몇 배에 달합니다. 상공하고 수송하는 세월이 이미 오래되다 보니 백성들의 형편이 이미 바닥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여러 노(路)에서 상공하는 것들 대부분이 내탕고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호부의 경상 비용이 부족한 결과를 가져왔고, 마침내는 조종의 파분법(破分法)을 폐지해서, 상공하는 세액은 반드시 정한 몫을 다 채운 다음에야 징수가 끝났습니다. 기한은 촉박하고 세목에 대한 책망은 엄준해서 감사와 주현들이 서로 독촉하면서 오직 자신만 책임에서 벗어나기를 힘쓰는 마당에, 어느 겨를에 백성의 실상을 살필 수 있겠습니까? 매질을 당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사람으로서 차마 듣지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주현의 세입은 대부분 상공용으로 보내버리고 또 정해진 액수 이외에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어 내어서 계속해서 각박하게 채근질하니 이것이 백성들의 힘이 크게 궁핍해진 이유입니다. 여기에까지 이른 이유를 헤아려 보면 비록 대부분이 군대에 충당된다고 하지만 그러나 안으로는 경사로부터 밖으로는 군읍에 이르기까지, 위로는 궁궐로부터 아래로는 아전들에 이르기까지, 명목없이 낭비되는 것들이 또한 어찌 줄일만한 것이 없겠습니까? 가만히 생각건대 만일 내탕고에 들이는 것을 호조로 되돌리고, 여러 로에 파분법을 다시 실시한 다음에 안팎의 낭비되는 것들 가운데 줄일만한 것들을 대략 헤아려서 모두 없애고 중지시킨다면 또한 어찌 조금이라도 구제할 수 없겠습니까? 그리고 또 장수를 뽑고, 군적을 조사하고, 놀고 먹는 것을 없애고, 둔전을 넓히는 일들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하여 크게 분류하고 나눈다면 군대에 공급하는 헤아릴 수 없는 비용도 거의 줄일 수 있을 것이요, 백성들의 힘도 여기에서 여유로움을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체가 지극히 크고 강목이 복잡하기 때문에 거의 말 한마디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또 폐하를 위해 모두 말씀드릴 겨를이 없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그 근본이 위에서 말한 여덟 가지라는 것을 유의하신 다음에 도모하신다면 세상은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2-499)其九, 所謂節財用以固邦本者. 臣聞先聖之言治國, 而有節用愛人之說. 蓋國家財用皆出於民, 如有不節而用度有闕, 則橫賦暴斂, 必將有及於民者. 雖有愛人之心, 而民不被其澤矣. 是以將愛人者必先節用, 此不易之理也. 國家承五季之弊, 祖宗創業之初, 日不暇給, 未及大爲經制, 故其所以取於民者, 比之前代已爲過厚. 重以熈豐變法, 頗有增加, 而建炎以來, 地削兵多, 權宜科須又復數倍, 供輸日久, 民力已殫. 而間者諸路上供多入內帑, 是致戶部經費不足, 遂廢祖宗破分之法, 而上供歲額必取十分登足而後已. 期限迫促, 科責嚴峻, 監司州縣更相督迫, 唯務自寬己責, 何暇更察民情? 捶撻號呼, 有使人不忍聞者. 而州縣歲入多作上供起發, 則又於額外巧作名色, 寅緣刻剝, 此民力之所以大窮也. 計其所以至此, 雖云多是贍軍, 然內自京師, 外達郡邑, 上自宮禁, 下至胥徒, 無名浮費, 亦豈無可省者? 竊計若能還內帑之入於版曹, 復破分之法於諸路, 然後大計中外冗費之可省者, 悉從廢罷, 則亦豈不能少有所濟? 而又擇將帥․核軍籍․汰浮食․廣屯田, 因時制宜, 大爲分別, 則供軍不貲之費庶幾亦可減節, 而民力之寬於是始可議矣. 此其事體至大, 而綱目叢細, 類非一言之可盡. 今亦未暇盡爲陛下言之, 惟聖明留意其本如上八者而後圖之, 則天下幸(2-500)甚!
갑인년에 천자에게 올리려고 쓴 봉사 甲寅擬上封事
【해제】이 글은 소희 5년(갑인, 1194, 65세)에 쓴 광종에게 올리려고 쓴 봉사이다. 광종과 효종의 불화를 논의하고 있는데 이 해에 광종의 둘째 아들인 영종이 즉위하면서 올리는 것을 포기한 봉사이다. 광종에게 선황인 효종과의 불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조산랑(朝散郞)․비각수찬(秘閣修撰)․권발견 담주군주사 겸 관내권농영전사․주관형호남로안무공사․마보군도총관(馬步軍都總管)․차자(借紫)
5월 26일 신 주희는 삼가 죽음을 무릎쓰고 백 번 절하고서 황제폐하께 상소를 올립니다. 제가 요즘에 듣기로 폐하의 궁(宮)을 찾아뵙는 한 가지 일에 대해 많은 논의와 간쟁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여러 차례 지휘를 내렸다가 이내 다시 그만두게 했다고 합니다. 보고들은 사람들은 놀라고 당혹해하며, 전해들은 사람들은 해괴하고 이상해하고 있습니다. 신이야 외톨이로 멀리 초야에 묻혀 있어 조정의 하잘 것 없는 논의조차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감히 망녕되게 입을 열어 폐하의 귀를 더럽힐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 이런 은혜를 입고 보니 일어나 변방 지역의 책임을 떠맡아야 합니다. 이에 조용히 제 직분을 생각해보니 위로 국체(國體)와 관련되었습니다. 만일 조정이 바르고, 기강은 확립되었으며, 군주의 덕은 닦이고, 인심은 기뻐한다면 영토를 지키는 신하들이 비록 극히 노둔하더라도 오히려 위엄어린 명령에 의지해서 힘써 스스로 노력하여 임명해주신 뜻에 걸맞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근본이 동요하고 복심이 병들어 무너지고, 대세가 뒤엎어져 다시 어떻게 할 수 없다면 안팎의 신하들이 비록 기이한 재주와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손 써볼 도리가 없습니다. 하물며 세상 물정에 먼 저와 같은 자가 비록 자신을 해쳐가면서 나라에 보답코자 하여도 또한 그 힘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고 폐하를 위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五月二十六日, 朝散郞․秘閣修撰․權發遣潭州軍州事兼管內勸農營田事․主管荊湖南路安撫司公事․馬步軍都總管․借紫臣朱熹謹昧死百拜, 上疏皇帝陛下: 臣近者竊聞陛下過宮一事, 多有論諫, 未蒙採納, 屢降指揮, 尋復寢罷. 觀聽惶惑, 傳聞駭異. 如臣孤賤疏遠, 竊伏草茅, 不聞外廷末議, 初不敢妄有開說, 塵瀆聖聰. 特以今此蒙恩, 起當藩屛之任, 靜思所職, 上關國體. 若朝廷正․綱紀立․主德修․人心悅, 則守土之臣雖極駑鈍, 尙可憑籍威靈, 勉自驅策, 以稱任使. 儻根本動搖, 腹心蠱壞, 大勢傾壓, 無復可爲, 則中外之臣雖有奇才遠略, 亦無所(2-501)施. 况如迂愚, 雖欲捐軀報國, 亦何所用其力哉? 是以不能自已, 有不容不爲陛下言者.
그러나 제가 읽은 것이라고는 효경․논어․맹자와 육경에 불과하고, 제가 배운 것이라고는 요․순․주공․공자의 가르침에 불과합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삼대와 양한 이래 의 치세와 난세, 나라를 얻고 잃은 까닭들이며, 강명하는 것이라고는 인의예지와 천리와 인욕의 구별에 불과하며, 제가 존중하고 지키려는 것은 또 국가의 법조문에 불과합니다. 그 귀취를 고찰해 보면 신하된 자는 충성을 자식된 자는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일 뿐입니다. 이제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말했고, 폐하께서도 익숙하게 들으셨습니다. 이것을 버리고 말한다면 예부터 천하의 국가가 이것을 도외시하고 다스려진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감히 이전의 말을 넓게 인용하고, 예절을 갖추어 상소함으로써 (천자에게) 과감하게 말했다는 명예를 낚시질하고 허물은 폐하에게 돌리려는 짓은 하지 못합니다. 다만 아버지와 아들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이라는 말로 폐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아뢰겠습니다.
然臣所謂者, 不過孝經․語․孟․六經之書, 所學者不過堯․舜․周․孔之道, 所知者不過三代兩漢以來治亂得失之故, 所講明者不過仁義禮樂․天理人欲之辨, 所遵守者又不過國家之條法, 考其歸趣, 無非欲爲臣者忠, 爲子者孝而已. 今者取此以爲言, 則在廷之臣言之悉矣, 陛下聽之亦熟矣. 捨此以爲言, 則自古天下國家未有可以外此而爲治者. 臣今亦不敢廣引前言, 備禮上疏, 以釣敢言之名而歸過於陛下, 請獨以父子天性之說, 爲陛下流涕而陳之.
저는 사람이 이 몸을 갖게 된 것은 형체는 어머니에게서 받지만 그 시작은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사납고 포악한 아비라도 자식을 보면 애틋하게 여기고, 포대기에 싸인 아기일지라도 아버지를 보면 웃는 것은 과연 어째서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부자의 도리가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이어서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자 사이에 간혹 그 도를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이 어찌 아버지가 되어서 천성이 자애로움에 부족함이 있어서이겠으며, 자식이 되어서 천성이 효도에 부족한 점이 있어서이겠습니까? 인심은 본래 밝고 천리는 처음부터 갖추어져 있습니다. 다만 물욕에 의해 어두워지고, 이해에 의해 가리기 때문에 작게는 은혜와 의리를 해쳐서 열어젖히지 못하고, 크게는 천륜을 어지럽히면서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누구는 술마시기를 좋아하고, 누구는 재물을 좋아하며 누구는 성색을 좋아하고 누구는 편안함을 좋아하는데 이와같은 것은 모두 물욕입니다. 맑고 깨끗한 바탕을 물욕이 어둡게 만들면 어버지는 혹 자애로움을 잊고 자식은 혹 효도하는 것을 잊습니다. 그런 다음에 참람되고 사특한 것을 만들어 내는 자들이 의심스러운 것을 가리켜 진실이라고 하고, 머리카락만한 것을 가리켜 언덕이며 산이라고 합니다. 그 아버지에게 참소하여 (그 아버지가) 자식에게 베푸는 것에 작은 잘못이 없을 수 없게 하며, 그 자식에게 참소하여 (그 자식이) 그 아버지에게 베푸는 것에 점점 그 정상을 잃게 만듭니다. 그런 다음에 교묘하게 이해관계에 관한 주장으로 겁을 줍니다. 이와 같이 하면 반드시 이익을 얻고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롭게 된다고 합니다. 이익과 해로움이 이미 그 마음을 가리면 이 마음은 날로 더욱 시기하고 의심이 생겨나, 오늘 시기하고 의심하며 내일 또 시기하고 위심해서 시기와 의심이 그치지 않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식이 한 번 발을 떼면 아버지에게 죄를 얻고 아버지가 한 번 말을 하면 자식에게 원망을 듣게 됩니다. 부자의 정이 무너지고 화란이 일어납니다. 시험삼아 한가한 때나 혹은 한 밤중이나 혹은 책을 볼 때거나 혹은 조용하게 앉아있는 때에 물욕의 사사로움을 물리치고, 이해의 가리움을 모두 버리고서 이 마음의 본연을 조용히 관찰하면 부자의 사이는 진실로 자애와 효도가 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臣聞人之所以有此身者, 受形於母而資始於父. 雖有强暴之人, 見子則憐 : 至於繈褓之兒, 見父則笑, 果何爲而然哉? 初無所爲而然, 此父子之道, 所以爲天性而不可解也. 然父子之間, 或有不盡其道者, 是豈爲父而天性有不足於慈, 亦豈爲子而天性有不足於孝者哉? 人心本明, 天理素具, 但爲物欲所昏, 利害所蔽, 故小則傷恩害義而不可開, 大則滅天亂倫而不可救. 假如或好飮酒, 或好貨財, 或好聲色, 或好便安, 如此之類, 皆物欲也. 淸明之地, 物欲昏之, 則父或忘其爲慈, 子或忘其爲孝, 然後造爲讒慝者指疑似以爲眞實, 指毫髮以爲丘山, 譖之於其父, 則(2-502)使施之於其子者不無少過 : 譖之於其子, 則使施之於其父者寖失其常. 然後巧爲利害之說以劫之, 蓋謂如此則必受其利, 不如此則必蹈其害. 利害旣有以嚴其心, 此心日益猜疑, 今日猜疑, 明日猜疑, 猜疑不已, 子一擧足而得罪於其父, 父一出言而取怨於其子, 父子之情壞而禍亂作矣. 試於暇時, 或於中夜, 或於觀書之際, 或於靜坐之頃, 捐去物欲之私, 盡袪利害之蔽, 黙觀此心之本然, 則父子之間固未嘗不慈且孝也.
제가 가만히 보건대 폐하께서는 타고난 자질이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처음부터 정사가 맑고 분명해서 인재를 등용하고 물리치는 것이 공론에 합치하였으며, 훌륭한 말씀들을 세상 사람들이 외울 정도였습니다. 어째서 유독 하늘로부터 타고난 지친(至親)에 대해서만 거꾸로 박하게 대하시는 것입니까? 하물며 물건을 갖추어 봉양하는 데에는 크게 빠트리는 것이 없고, 정사를 하면서는 크게 고치고 혁파하는 것이 없는데, 궁을 찾아뵙고 밤낮으로 문안을 여쭙는 것이 본래 어려운 행실이 아닌데도 주저하며 질질끄시고, 걸핏하면 한 철이나 한 달을 넘기시는 것은 또한 유독 어째서입니까? 일이란 아주 작은 데서 일어나고 정이란 소원한 데서 막히는 것입니다. 간극이 장차 싹트려 할 때 군신들이 속히 구제하지 못하고, 그 형적이 이미 드러나고서도 또 폐하의 어버이를 섬기는 본심을 살피지 못하고, 또 폐하 부자의 정을 화해시키지도 못하면서, 종종 언어가 졸렬하고 직선적이며, 인용하는 말들이 너무 지나쳐 그 마음이야 비록 폐하에 대한 충성이라지만 폐하를 족히 감동시켜 깨우치게 하지 못하고 헛되이 폐하를 화나게만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요즘에 궁을 찾아뵈려다 다시 그만 둔 것은 폐하께서 반드시 “내 몸이 만승의 주인인데 한 가지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독단의 권세를 굽혀 군신들의 의론에 핍박당하려 하지 않으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폐하 부자의 정이 여기에 이르게 된 까닭은 제가 가만히 생각건대 폐하께서 즉위하신 초창기에 곧 간사한 자들이 사설을 만들어내어서 폐하의 부자를 이간질한 때문입니다. 만일 먹고 마시는 것에 잘못이 하나만 있으면 수황께서는 폐하께서 혹 정사에 나태할까 걱정하고, 말 한 마디 동작 하나의 허물이 있으면 수황께서는 폐하가 혹 병이 났을까 우려하시는 이것은 모두 폐하를 사랑하시는 지극한 간절함입니다. 그러므로 말로 표현하시면서도 스스로 꺼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 뜻은 오직 폐하께서 잘못을 고치고 선으로 옮겨가며, 마음을 바로잡고 몸을 닦아 천지를 받들고 조종을 계승해서 송나라가 영원토록 끝없는 영예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일 뿐이지, 어찌 우물을 파고 창고에 올라가 지붕을 이게 만드는 것과 같은 분노와 원한이 그 사이에 끼어있겠습니까? 그러나 간사한 자들이 이로 인하여 위험한 말을 만들어내고 간첩들이 왕래하면서 폐하를 오도시켜서 폐하께서도 언제나 의구심을 품고 있게 할 뿐만 아니라 폐하의 궁중에도 모두 중화궁을 꺼리게 만들어 감히 가까이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날마다 달마다 멀어지고 간극은 더욱 커져 천하 사람들이 다만 수황께서 천하를 자애롭게 덮어주시면서 폐하에 대해서는 더욱 독실한데, 폐하께서 수황을 섬기시는 것은 효성스럽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예를 잃었다는 소식만을 듣게 되니, 또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뭇 소인배들의 간사함 때문입니까? 아니면 바로 폐하의 잘못입니까? 길거리와 뒷골목의 의론과, 우연히 이리저리 하는 말들이 신하된 자로서 감히 들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이런 것만이 아닙니다. 어느 날 하늘이 진노하고 필부들이 말을 퍼뜨려 초야가 참란하여져 장차 의리를 내걸고 일어나게 되고, 이적들이 밖에서 모욕하고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킨다면 이런 때를 당해서 군대의 마음을 능히 폐하께 따르도록 할 수 있겠으며, 만백성의 마음을 굳게 단결시켜 해이해지지 않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참람한 짓을 저지른 사특한 자의 몸뚱이를 칼로 저며 먹는다 하더라도 국가의 패망에 값할 수 있겠습니까? 저와 같은 어리석은 자가 비록 수만 명이 목숨을 버려가며 폐하를 위해 죽고자 하여도 사직의 존망에 보탬이 되겠습니까? 또 듣기로는 수황의 건강이 조금 좋지 않다고 합니다. 비록 반드시 이 일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훗날 세상 사람들이 어찌 마음이 막힌 듯이 답답해서 여기에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臣竊觀陛下天資仁孝, 初政淸明, 進退人才, 動合公論, 一言之善, 天下誦之, 豈獨於天性至親反用其薄? 况備物之養, 無大虧闕, 政事之間, 無大更革, 過官定省, 本非難行, 猶豫遲回, 動踰時月, 亦獨何也? 無乃事起於纖微, 情阻於疏闊, 方間隙之將萌, 羣臣不能救之於早, 及形迹旣著, 又不能察陛下事親之本心, 且無以和陛下父子之情, 往往語言拙直, 援引過當, 其心雖忠於陛下, 而不足以感悟陛下之聽, 徒以激怒陛下? 故近日臨欲過宮而復輟者, 陛下未必不曰: ‘身爲萬乘之主, 乃不得一事自由乎? ’ 故不肯屈獨斷之權, 爲羣論所迫耳. 而陛下父子之情所以至此者, 臣竊料陛下卽位之初, 便有姦人造爲邪說, 離間陛下之父子. 如一飮宴之失, 壽皇慮陛下或怠於爲政 : 一言動之愆, 壽皇憂陛下或至於成疾, 此皆愛(2-503)陛下之至切, 故或形於言而不自以爲嫌. 其意惟欲陛下遷善改過, 正心脩身, 以奉天地, 以承祖宗, 爲有宋萬年無疆之休而已, 曷嘗有纖芥忿恨, 如浚井塗廩之意哉? 而姦人因之, 造爲危語, 往來間諜, 以誤聖聽, 不唯使陛下之身常懷疑懼, 而使陛下之官中亦皆嚴憚重華而不敢親近. 日遠月疏, 間隙愈大, 天下之人但見壽皇慈覆天下, 而於陛下爲尤篤, 陛下所以事壽皇者, 乃不以孝聞, 而以失禮聞, 又不知其爲羣小之姦而直以爲陛下之失, 街談巷議, 偶語族談, 至有臣子所不敢聽者. 臣恐不惟如此, 一旦上帝震怒, 匹夫流言, 草野僭亂, 將仗義而起 : 夷狄外侮, 興問罪之師, 當是時, 六軍之情能使之親附乎? 萬姓之心能使之固結而不解乎? 讒邪之人雖復臠而食之, 其能有及於國家之敗乎? 如臣之愚, 雖百千輩咸欲粉身赤族, 爲陛下死, 其能有補於社稷之存亡乎? 又聞壽皇聖躬比者小愆和豫, 雖未必因此, 而天下後世寧不曰意念鬱鬱而至此乎?
무릇 일이란 작은 데에서 잘못해서 마침내 후회막급의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신하된 자로서 차마 하지 못할 말이지만 군주를 섬기는 충성스러움에서 감히 숨기지 않았습니다. 옛날 한나라 문제(文帝)가 동생인 회남왕의 죄를 물어 변방으로 옮겨 살게 하면서, 조금 생각을 잘못하는 바람에 척포두속(尺布斗粟)의 노래가 떠돌자 이를 평생토록 병폐로 여겼습니다. 무릇 형으로서 동생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비록 현명한 인주라도 감히 스스로 그 허물을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거대한 천하를 가지고서도 그 아버지를 용납지 못하는 경우이겠습니까? 오늘날을 위한 계획은 먼저 대신을 중화궁에 보내어 사죄하고, 그 다음에 조칙을 밝게 내어 조정 신료들에게 고유하되, 지난날 의심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은 참사혹란한 자들 때문이었다고 하고, 이런 간사한 자들을 죽여 천하에 사죄하고 나머지 잔당을 물리쳐 처음의 맑고 분명함으로 되돌리십시오. 그 날로 가마를 타고 중화궁에 들러 문안을 여쭙고 곁에서 모시고 음식을 함께 들면서 부자의 즐거움을 극진히 하십시오. 이렇게 하시면 천하는 노래하고 춤출 것이요, 사방의 오랑캐들은 존경하며 우러를 것이요, 미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위태로움을 반전시켜 편안함이 되는 것은 다만 폐하께서 손을 뒤집는 사이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지금 간절히 폐하를 아끼시는 분은 중궁이요 가저(嘉邸: 嘉王 즉 미래의 광종)이며, 지극히 폐하께 충성스러운 자는 두 세 명의 대신입니다. 원컨대 신의 장계를 내어 놓고 그들과 함께 참증하시면 반드시 제가 군부에 대해 연연해 하는 마음을 알 것이요, 그 말이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실제로는 종사를 위한 지극한 계획임을 알 것입니다. 먼 군을 맡고 있는 한계 때문에 폐하를 뵈려는 청을 드릴 방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충성과 울분에 격동되어 스스로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죽음을 무릎쓰고 소를 올리며, 통곡하고 눈물 흘리면서 극언했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그 터무니없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천자의 권위를 침범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신 주희는 죽기를 각오하고 백 번 절합니다.
夫事固有失於毫釐之間而遂至於不勝悔者, 臣子之所不忍言, 而忠於事君者亦不敢隱也. 昔漢文帝從淮南王, 少失思慮, 而尺布斗粟之謠終身病之. 夫以兄而不能容其弟, 雖賢王不敢自恕其過也, 况以天下之大而不能容其父乎? 爲今之計, 先遣大臣謝罪於重華, 次發明詔告諭在廷, 言前日之所以不能無疑者, 以讒邪惑亂之(2-504)故, 誅此姦人, 以謝天下, 屛斥餘黨, 還始初之淸明. 卽日駕過重華, 問安侍膳, 以盡父子之歡. 如此則天下歌舞, 四夷尊仰, 書之信史, 以爲美談. 反危而安, 特在陛下反覆手之間耳. 今愛陛下之切者, 中宮也, 嘉邸也. 忠陛下之至者, 二三大臣也. 願出臣章與之參訂, 必有以知臣之惓惓於君父, 而其言雖陋, 實宗社之至計也. 限守遠郡, 無由請對, 而忠憤所激, 不能自已. 是以冒死拜疏, 痛哭流涕而極言之, 唯陛下赦其狂瞽. 臣詈犯天威, 無任震懼殞越之至. 臣熹昧死百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