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조칙에 응하는 봉사 庚子應詔封事
【해제】이 글은 순희 7년(경자, 1180, 51세) 남강군 지사[知南康軍]의 신분으로 효종에게 올린 봉사이다. 순희 무술(1178)년 8월 주자는 당시 우승상이었던 사호의 천거와 참지정사 조웅의 노력에 힘입어 남강군 지사로 파견되었고, 이듬해 3월 임지에 도착했다. 1180년 3월 9일에 “감사와 군수들은 백성들의 이해득실에 관련된 것을 숨김없이 보고하라”는 조칙이 있었고 주자는 4월 21일 이 글을 올렸다. 그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남강군의 경우를 예로 들어 백성을 구휼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로서 세금의 경감과 군대를 제대로 운용할 것을 말하고 있다. 후반부는 증적․감변․왕변 등 일부 측근들이 국권을 농단하고, 이들에게 영합하는 조정의 일부 관료들 때문에 치도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천자의 마음가짐이 흔들린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천자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아 기강을 확립함으로써 치도를 회복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선교랑(宣敎郞)․권발견남강군사 겸 관내권농사․본 군 관내 모든 역참[鋪] 및 체각(遞角)의 제할(提轄)․차비(借緋)
4월 21일 신 주희는 경건하게, 궁궐을 향해 두 번 절하고 죽음을 무릎쓰고 황제폐하께 글을 올립니다.
四月二十ー曰, 宣敎郞․權發遣南康軍事兼管內勸農事․提轄本軍界分諸鋪遞角․借緋臣朱熹謹齏沐奉疏, 東向再拜, 味死獻于皇帝陛下 :
신은 3월 9일 폐하께서 신하들이 주청한 내용을 수용하여 ‘감사와 군수는 백성의 모든 이해득실에 관련된 일을 숨김없이 보고하라’는 명을 내리신 것을 보았습니다. 평범한 서생인 신은 성은을 입어 외진 한 지역을 다스리고 있습니다만 천자께서 거리를 따지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기 위한 조언을 구하시니 어찌 최선을 다해 부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조정에 건의하는 사람은 국가를 위한 큰 원칙은 생각하지 않고 자잘한 일이나 들먹이는 것을 충성인양 여기고, 건의를 듣는 사람도 국가를 위한 좋은 계획은 살피지 못하면서 감춰진 일이나 들추는 것을 총명하다고 여깁니다. 그 결과 건의는 많지만 실제로 국가에 보탬이 되지 않고, 수많은 건의를 듣지만 실제로 쓸 만한 건의는 다 포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은 예전부터 이런 것을 병폐로 여겼습니다. 신은 말주변이 없지만 폐하의 명을 받들기 위해 천박한 생각과 사소한 내용만을 아뢰지는 않겠습니다. 폐하께서 (제가 아뢴 말 가운데) 중요한 원칙을 수용하여 시행해 주신다면 국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臣伏睹三月九日陛下可議臣之奏, 申敕盛司郡守條具民間利病, 悉以上聞, 無有所隱. 臣以布衣諸生蒙被聖恩, 待罪偏壘, 乃獲遭値仁聖求言願治․不間疏遠如此, 其敢不悉心竭慮, 以塞詔旨? 然臣嘗病獻言者不惟天下國家之大體, 而毛擧細故以爲忠 : 聽言者不察天下國家之至計, 而抉擿隱伏以爲明, 是以獻言雖多而實無所益於人之國, 聽言雖廣(2-451)而實無以盡天下之美. 臣誠不佞․然不敢專以淺意小言仰奉明詔. 惟陛下幸於其大者垂聽而審行之, 則天下幸甚!
국가의 중요한 임무는 백성을 돌보는 것이고, 실제로 백성을 돌보려면 세금을 줄여야 하고, 실제로 세금을 줄이려면 군대를 제대로 다스려야 합니다. 군대를 다스리고 세금을 줄이는 것이 백성을 돌보는 근본이라면 그것은 폐하께서 마음가짐을 바로잡아 기강을 세우는 데에 달려있습니다. 동중서(董‘마음을 바로잡아 조정을 바로잡고 조정을 바로잡아 모든 관리를 바로잡으며, 관리를 바로잡아 백성을 바로잡고 백성을 바로잡아 국가를 바로잡는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臣嘗謂天下國家之大務莫大於恤民, 而恤民之實在省賦, 省賦之實在治軍. 若夫治軍省賦以爲恤民之本, 則又在夫人君正其心術以立紀綱而已矣. 董子所謂正心以正朝廷, 正朝廷以正百官, 正百官以正萬民, 正萬民以正四方, 蓋謂此也.
국가가 백성을 잘 돌봐야 한다는 것은 남다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총명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백성들의 초췌하고 궁핍한 실상과 그들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을 아시고 싶다면, 제가 다스리고 있는 남강군의 경우를 통해 규명하고, 그런 다음 차례대로 어떤 정책을 시행해야할 지 말씀드리겠습니다.
夫民之不可不恤, 不待智者而後能知, 亦不待明者然後能言也. 然欲知其憔悴困窮之實, 與其所以致此之由, 則臣請以所領之郡推之, 然後以次而及其所以施置之方焉.
신이 삼가 살피건대, 남강군은 토지가 척박하여 식물이 잘 자라지 않고 수원도 말라붙어 곧잘 가뭄이 들며 인구는 드물고 농산물의 소출도 보잘 것이 없어서 이미 궁핍한 지역[貧國]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금은 지나치게 부과되어 다른 지방에 비해 보면 두배에서 심지어 다섯 배나 됩니다. 백성들이 죽을힘을 다해 농사일에 매달려도 거둬들이는 수확 가지고는 세금을 납부하기에도 모자라고, 반드시 별도의 방법을 강구해야만 관청에 바칠 세금을 겨우 채울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굳센 의지도 없고 생업도 불안정해서, 힘껏 농사일에 매달리는 것이 자손을 위한 장기적인 계책이라고도 여기지 않습니다. 요행히 풍년을 만나면 헐값으로나마 곡식을 내다 팔아 눈앞의 편안함을 구차하게 누리지만, 홍수나 가뭄이라도 들라치면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이를 이끌고 사방으로 유랑하며, 자신의 농경지와 살림집을 스쳐 지나가는 여관처럼 여깁니다. 이 때문에 교외로 나가 사방을 둘러보면 황폐한 밭이랑과 폐허가 된 집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臣謹按, 南康爲郡, 土地瘠薄, 生物不暢, 水源乾淺, 易得枯凅, 人民稀少, 穀賤農傷, 固已爲貧國矣. 而其賦稅偏重, 比之他處或相倍蓰. 民間雖復盡力耕種, 所收之利或不足以了納稅賦, 須至別作營求, 乃可陪貼輸官. 是以人無固志, 生無定業, 不肯盡力農桑, 以爲子孫久遠之計. 幸遇豐年, 則賤糶禾穀, 以荀目前之安 : 一有水旱, 則扶老携幼, 流移四出, 視其田廬, 無異逆旅之舍. 蓋出郊而四望, 則荒疇敗屋, 在處有之.
이런 형편 때문에 신은 임지에 도착한 초기에 주장을 갖추어 성자현(星子縣)의 세액을 특별히 덜어 달라고 했습니다. 또 제점갱야사(提點坑冶司)에게 보고를 올려, 주장으로 (조정에) 아뢰어서 여름 세금 가운데 목탄을 돈으로 환산한 것[木炭價錢]을 원래 액수에서 얼마간 줄여달라고 했습니다. 목탄전(木炭錢)에 대해서는 이미 성은을 입어 청한 대로 허락 받았으며, 세금의 경감에 관한 일은 조사(漕司)와 함께 서로 의논해서 이제 막 호조로 올렸습니다. 만일 다시 성은을 입어서 제가 청한 대로 해주신다면 남강군의 초췌하고 궁핍한 백성들이 다시 삶의 희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생각해 보니 남강군과 인접지역인 강주․요주 등에도 남강군처럼 농지가 척박한 군현(郡縣)이 한 두 군데가 아니고, 이렇게 한 해의 부세가 무거운 것도 한 두 가지 항목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크게 경영하시거나 깊이 구휼하려 하지 않고, 때에 따라 찔끔찔끔 경감하려 하신다면, 이것은 마치 물 한 잔으로 수레에 가득 실린 섶에 난 불을 끄려는 격이니, 두루 구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이 더욱 심해져도 끝내 구제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원기(元氣)가 날로 닳아 없어지고, 근본(根本)이 날로 손상되어가는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수 천 리에 이르는 지역에 수해나 한해와 같은 불행이 닥치면, 문제점이 사방에서 튀어 나와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폐하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백성들이 초췌하고 궁핍해지면 반드시 구휼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故臣自到任之初, 卽嘗具奏, 乞且將星子一縣稅錢特賜蠲減. 又嘗具申提點坑冶司, 乞爲敷奏, 將夏稅所折木炭價錢量減分數. 其木炭(2-452)錢已蒙聖慈曲賜開允, 獨減稅事漕司相度, 方上版曹. 若得更蒙聖恩, 特依所請, 則一方憔悴困窮之民, 自此庶幾復有更生之望矣. 然以臣計之, 郡之接境江․饒等州, 土田瘠薄類此者, 非一郡一縣而已也, 稅賦重大如此者, 非一料一色而已也. 若不大爲經理, 深加隱洫, 雖復時於其間少有縱舍, 如以杯水救一車薪之火, 恐亦未能大有所濟, 而剝膚椎髓之禍, 必且愈深愈酷而不可救. 元氣曰耗, 根本日傷, 一旦不幸而有方數千里之水旱, 則其橫潰四出, 將有不可如何者. 未知陛下何以處此? 此臣之所謂民之憔悴困窮而不可不恤者然也.
제가 말한 세금을 줄이고 군을 제대로 다스리는 것에 대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농지가 있으면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제도입니다. 오늘날 민간에서 특히 과중한 세금을 괴롭게 여기는 것은 바로 두 세금의 징수 때문입니다. 조정에서 군에 공급한다는 이유로 세금을 모조리 거둬들이기 때문에 주현에는 남아있는 것이라곤 없습니다. 두 세금의 수입을 모두 군에 공급할 때에도, 납부량에 정해진 양이 있고 시간적으로도 기한이 있는데, 여기에 덧붙여 수․륙 양면에 걸친 운반 비용[水脚轉輸之費]까지 납부하라고 하면서 주현에서는 얼마간의 기간을 늦춰 준다거나 수량을 감면해 주는 일이 없습니다. 주현에서 관리에게 지급하고 군병을 기를만한 잉여분도 없는데, 게다가 조정에서 떠맡긴 전직 군인[離軍]과 중원으로부터의 귀향인[歸正人]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지출 비용은 날로 늘어가는데 조달할 데는 없으니 두 세금 이외에 따로 구실을 만들어서 백성들에게서 교묘히 징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정해진 세금 이외에) 감가상각용의 예비분을 거둘 때에는 일곱 말, 여덟 말에서 한 배, 두 배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한도가 없습니다. 관물을 앞당겨 징수하는[豫借官物] 경우에도 1~2년 분에서 3~4년 분까지를 미리 징수하고도 멈추지를 않습니다. 이 외에 또 월장전(月樁錢)․이용전(移用錢) 등 갖가지 명목과 액수들이 있고, 유향의 강매․무기의 할당 판매․군병의 모집․군수품[鐵甲之屬]의 제조 비용 등은 호조의 총령소[總所]에서 조사에 이르기까지 위아래에서 서로 번갈아 가면서 재촉해서 오늘은 아전들이 징수를 재촉하고, 내일은 새로운 징수 명목을 지사[知]와 통판[通]이 조사합니다. 관리들은 그 액수를 만들어 낼 곳이 없어서 모두 백성에게서 착취할 뿐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예전의 부족분을 채우지도, 현재의 비용을 지출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비록 어느 날 이런 실정이 발각되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죄가 미쳐도 돌아볼 겨를이 없는데 어떻게 백성들을 구휼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이런 사정을 미루어 보면 오늘날 백성은 가난한데 세금은 무거운 까닭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군대에 드는 무기와 군량을 정확히 계산해서 쓸데없는 부분을 버리지 않으면 백성의 살림살이는 결코 여유로워 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원의 동남쪽으로 쫓겨 왔고, 잃어버린 국토를 회복하려는 힘이 결집되지도 않았습니다. 병사를 길러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은 언제나 힘이 부족한 것을 걱정하기 때문에 병사를 갑자기 줄일 수는 없습니다. 장리(將吏)를 선발하고 병적을 조사하면 군수 물자를 절약할 수 있고, 둔전을 넓게 개간하면 군비의 비축이 알차게 되고, 민병을 훈련시키면 변방의 수호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진실로 이 세 가지를 잘 실천하고 또 시기적절하게 내탕전[禁錢]을 내어서 비용으로 쓸 수 있게 해준다면 백성들이 형편이 나아질 것입니다.
而臣所謂省賦理軍者, 請復爲陛下言之. 夫有田則有租, 爲日久矣. 而今日民間特以稅垂爲苦者, 正緣二稅之人, 朝廷盡取以供軍, 而州縣無復贏餘也. 夫二稅之人盡以供軍, 則其物有常數, 其時有常限, 而又有貼納水脚轉輸之費, 州縣皆不容有所寬緩而減免也. 州縣旣無贏餘以給官吏․養軍兵, 而朝廷發下離軍歸正等人又無紀極, 支費日增, 無所取辨, 則不免創於二稅之外, 別作名色, 巧取於民. 且如納米收耗, 則自七斗八斗以至於一倍再倍而未止也. 豫借官物, 則自一年二年以至三年四年而未止也. 此外又有月樁移用諸雜名額, 抛賣乳香․科買軍器․寄招軍兵․打造鐵甲之屬, 自版曹總所以至漕司, 上下相承, 遞相促迫, 今日追究人吏, 明日取勘知通, 官吏無所從出, 不過一切取之於民耳. 蓋不如是, 無以補舊欠․支目前, 雖明知其一旦發覺, 違法抵罪, 而不及顧也. 夫以罪及其身而不暇恤, 尙何暇於民之恤乎? 以此觀之, 則今日民貧賦重, 其所從來亦可知矣. 若不討理軍實而去其浮冗, 則民力決不可寬.
然國家蹙處東南, 恢復之勳未集, 所以養兵而固圉者, 常患其力之不足, 則兵又未可以遽減. 竊意惟有選將吏․覈兵籍可以節軍貲, 開廣屯田可以實軍儲, 練習民兵可以益邊備. 誠能行此三者, 而又時出禁錢以續經用, 民力庶幾其可寬也.
오늘날 장수로 선발된 자들은 배경만 번지르한 어리석은 자들이며, 시역(厮役)과 같은 어중이떠중이 들인데 그저 촐랑대며 접대하는 것이나 잘하고, 뇌물로 결탁하는 짓이나 일삼습니다. 사람들의 신망이 본래 가벼워 병사들이 기꺼이 복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장수로 선발되어 나갈 때 드는 비용이 상당한 거금이기 때문에 군에 도착하는 날부터 오직 백성들을 들볶아 재물을 착취하고, 군수품을 사고 파는 일이나 도모하면서 온갖 것을 다 긁어모아 개인적인 채무를 해결합니다. 채무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꿍꿍이를 품고서 더욱 멋대로 가렴주구를 일삼습니다. 위로는 권력을 가진 높은 관원을 떠받들며 승진과 발탁을 구하고, 아래로는 처첩이나 거느리면서 개인적인 쾌락을 즐기는데, 이 모든 것은 다 백성을 수탈해서 손에 넣은 것입니다. 군인을 모집하고, 훈련하고 다독이는 등 군대 내의 시급한 일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습니다. 군사들은 착취에 시달리고, 사역으로 괴로워합니다. 게다가 유능한 사람은 우대받지 못하고 무능한 자가 거꾸로 총애를 받게 되어, 원망과 노여움이 쌓여도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평상시에도 모두가 완강한 거부감을 품고 있는데, 어느 날 급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이들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남강군의 젊은이들 가운데 평소에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병법을 외우고 통달한 이들도 모두 본 군에 가서 모병에 응하려 하지 않는데, 조정은 거꾸로 주군에 책임을 지우고 모병하는데 필요한 돈과 물자를 낭비하여, 재주없고 생소하며 쓸모없는 사람을 끌어다 군사로 보충하고 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사례는 선후 순서가 뒤죽박죽 된 것입니다. 장수란 자들의 사욕이 채워지고 꿍꿍이나 도모하는 것들이 효험을 발휘하게 되면, 여장을 꾸려서 다른 주현으로 옮겨갈 길을 찾으며 다른 군에 쌓인 재물을 자기의 재물인양 여기게 됩니다. 따라서 근세 이래로 군을 관장하는 신하들이 교체되는 주기가 한 해에 두 번이나 바뀌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무엇이 군대에 이롭고 해로운지 알아차릴 방법이 없고, 쓸모없는 병사들이 헛되이 군량을 축내는 것이 많아질 뿐입니다. 이런 관리가 훔치고 낭비한 것과 이전 관리를 보내고 새로운 관리를 맞이하면서 들어간 갖가지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군량의 운송을 책임지는 자들도 모두 뒷 배경[幽陰]에 의지하여 뇌물을 주고받으면서 동남 지역 수 십 주 백성들의 피땀어린 소출을 감독하고 독촉하면서, 명목상으로는 군대에 공급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수레에 싣고서 권문세가의 저택을 들락날락하는 사례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둔전(屯田)과 민병(民兵) 두 가지 일의 경우에는 특히 허황한 소인배들의 관직이나 도둑질하는 배경으로나 쓰일 뿐, 둔전과 민병의 고유한 목적에 해당하는 작으나마 가시적인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폐단을 세상사람 중에 뉘라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직책을 맡은 신하들이 대략이나마 폐하께 한 마디도 고하지 않고, 오직 주현으로 빨리 달려가 세금을 독촉하면서 백성을 못살게 구는 데에만 힘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폐하를 속이면서 날마다 이렇게 하면 국가는 부유할 수 있고, 이렇게 하면 군대는 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도 그들의 주장 가운데 즐거워할만한 말만 듣고 그 실상을 파헤치지 않고, 종종 그릇되게 포상과 은총을 더해서 권세[事權]를 주시기까지 합니다. 이런 까닭에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무리들이 모두 높은 관직과 후한 봉록을 받으면서 사리사욕을 배부르게 채우고 기세등등해졌지만, 백성들은 날마다 괴로움이 가중되면서도 다시 안심하고 의지할 곳이라곤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야의 학식 있는 선비들은 서로 의론하고 탄식하면서, 머지않아 커다란 재앙과 우환이 반드시 생길 터인데 오직 폐하만이 알 지 못할 뿐이라고 말들 하고 있는 것입니다.
今將帥之選率皆膏粱駿子, 厮役凡流, 徒以趨走應對爲能, 苞直結託爲事, 物望素輕, 旣不爲軍士所服, 而其所以得此差遣, 所費已是不貲. 以故到軍之日, 惟務裒斂刻剝, 經營賈販, 百種搜羅, 以償債負. 償債旣足, 則又別生希望, 愈肆誅求. 蓋上所以奉權貴而求陞擢, 下所以飾子女而快己私, 皆於此乎取之. 至於招收簡閱, 訓習撫摩, 凡軍中之急務, 往往皆不暇及. 軍士旣已困於刻剝, 苦於役使, 而其有能者又不見優異, 無能者或反見親寵, 怨怒鬱積, 無所伸訴, 平時旣皆悍然有不服之心, 一旦緩急, 何由可恃? 至於軍中子弟亦有素習弓馬․諳曉戰陣者, 例皆不肯就本軍投募, 而朝廷反爲之分責州郡, 枉費錢物, 拖搜短小生疏無用(2-454)之人, ․以補軍額. 凡此數端, 本末巨細, 無不乖錯. 而所謂將帥者私欲飽滿, 鑽硏有效, 則又可以束奘問塗而望他軍之積以爲己資矣. 故近歲以來, 管軍臣僚遷代之速, 至有一歲而再易者. 是則不惟軍中利病無由究知, 冗兵浮食日益猥衆, 而此人之所盜竊破費與夫送故迎新, 百色支用, 已不知其幾何矣. 至於總餽輸之任者, 亦皆負倚幽陰, 交通賄賂, 其所程督驅催東南數十州之脂膏骨髓, 名爲供軍, 而輦載以輸於權倖之門者, 不可以數計. 若乃屯田․民兵二事, 又特爲誕謾小人竊取宮職之資, 而未聞其有絲毫尺寸可見之效. 凡此數弊, 天下之人孰不知之? 而任事之臣略不敢一言以告陛下, 惟務迫趣州縣, 使之急征橫賦, 戕伐邦本. 而其所以欺陛下者, 則日如是而國可富, 如是而兵可彊. 陛下亦聞其說之可喜, 而未究其實, 往往誤加獎寵, 畀以事權. 是以比年以來, 此輩類皆高官厚祿, 志滿氣得, 而生民日益困苦, 無復聊賴. 草茅有識之士相與私議竊歎, 以爲莫大之禍․必至之憂近在朝夕, 顧獨陛下未之知耳.
현 시점의 방책이 군대에 드는 병기와 식량을 따져서 백성들의 형편을 편안케 해주려는 것이라면, 반드시 과거에 했던 정책을 모두 뒤집은 다음에야 바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장수를 임명하고, 권세를 위임하는 것인 한결같이 조정의 공적인 의론에서 나온다면 사사로운 뇌물과 청탁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충성스럽고 용감하며 침착하고 굳세며, 군대와 진법을 실제로 경험하여, 과거에 공훈이 있었던 사람을 힘껏 찾는다면 재주 없는 이들에게 가볍게 (벼슬이) 내려지는 폐단을 혁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적인 뇌물과 청탁이 없어지면 (백성을) 착취하는 풍조도 혁파할 수 있을 것이요, 제대로 된 인재를 얻으면 군사들이 존경하면서 분발할 것입니다. 병사들을 시기적절하게 훈련시키고 허수의 군적으로 음식이나 축내는 자들은 발붙이지 못하게 하십시오. 인재를 얻어 책임을 오래 맡기면 장졸[上下]간에 서로 신뢰가 생겨 급한 일에 믿고 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잦은 교체로 인해) 예전 관리를 전별하고 새로운 관리를 맞이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군의 태졸(汰卒)과 북쪽에서 귀순한 사람들[北來歸正], 정원 외 관리[添差]와 임기 만료자[任滿] 등은 모두 둔전에 귀속시켜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짓게 하면서 점점 그들에게 공급할 액수를 줄여 가십시오. 재능과 용기, 능력과 기예가 있는 사람은 그들의 등급을 헤아려 농토를 많이 주고, 십오(什伍)의 지휘관으로 삼아 병사들에게 말타기․활쏘기․육박전․창검술․대열을 정렬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십시오. 여러 주에서 군사를 불러 모으라는 명령을 그만두게 하고, 여러 군의 장정들 가운데 날랜 자들을 불러 모아 따로 농토를 주고 군적[尺籍]에 올리게 하십시오. 그러나 현재 시행하는 둔전․민병법과 서로 조화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충실하며, 병사와 농사일을 두루 아는 사람을 뽑아서 그 일을 담당하게 하시되,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시고 오래도록 그 임무에 종사하면서 자잘한 이익을 탐하지 않게 하고, 조급하게 공을 세우는데 급급해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가 실제로 여러 둔전들의 놀고먹는 병사의 수를 점점 줄여가고, 주군에서 군대에 공급하는 액수를 줄이기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고과 평점에 최고 점수를 주고 품계를 올려주고 계속 일을 맡기셔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10여 년을 시행하신다면 저절로 효과가 드러날 것입니다. 만일 효과가 곧바로 드러날 수 없는 때라도 조속히 주현의 백성들의 급한 형편을 여유롭게 만들려면, 회계와 운송을 맡은 신하들에게 엄격한 조칙을 내리시고 현재 저장하고 있는 돈과 곡식, 비단 중에서 매년 20~30만민을 떼어 내서 주군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특별히 중앙으로 올려 보낼 관물 30~50%를 면제시켜주고 대신 납부하게 하십시오. 이후에 군적이 상세하게 완비되어 둔전이 완성되고, 민병이 훈련되면 위항에서 떼어 내놓은 돈은 점진적으로 줄어들어도 주군에서 면제된 액수는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주현의 형편이 한층 나아진 다음에는 관리들의 수탈을 금지하고 넉넉하게 백성을 구휼하도록 채근하며 한 해의 세금을 때맞춰 거두게 되면, 감가상각분의 징수[加耗]와 때 이른 징수[豫借], 불법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폐단을 없앨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토지의 비옥함과 척박함․세금의 경중을 비교해서 균형을 맞춰 감면해 주신다면 곤궁한 백성들은 생업을 보장받을 것이요, 다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방치된 농경지에 점차 사람들이 (돌아와) 개간하고 파종할 것이요, 조정으로 올려 보내는 세금도 저절로 충분하게 될 것입니다. 점차 여분도 늘어나 재촉하고 닦달하지 않아도 진정으로 국가는 부유해지고 군대는 강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세금을 줄이고 군대를 다스리는 방법들입니다.
爲今之計, 欲討軍實以紓民力, 則必盡反前之所爲, 然後乃可冀也. 蓋授將印․委利權, 一出於朝廷之公議, 則可以絶苞苴請託之私. 務求忠勇沉毅․實經行陣․曾立勞效之人, 則可以革輕授非才之弊. 無苞苴請託之私, 則刻剝之風可(2-455)革 : 將得其人, 則軍士畏愛奮厲. 蒐閱以時, 而名冗食者不得容於其間. 得人而久其任, 則上下相安, 緩急可恃, 而又可以省送迎之費. 軍之汰卒, 與凡北來歸正, 添差任滿之人, 皆可歸之屯田, 使之與民雜耕而漸損其請給. 其有材勇事藝之人, 則計其品秩而多與之田, 因以爲什伍之長, 使敎其人習於馳射擊剌行伍之法. 罷去諸州招軍之令, 而募諸軍子弟之驍勇者, 別授以田, 使隷尺籍. 大抵令與見行屯田․民兵之法相爲表裏, 擇老成忠實․通曉兵農之務者使領其事, 付以重權, 久其事任, 毋貪小利, 毋急近功, 俟其果能漸省列屯坐食之兵, 稍損州郡供軍之數, 然後議其課最, 增秩而因任之. 如此十數年間, 自然漸見功效. 若其功效未能遽見之間, 而欲亟圖所以舒州縣民間目前之急者, 則願深詔主計將輸之臣, 且於見今樁積金穀綿絹數內, 每歲量撥三二十萬, 視州郡之貧乏者, 特與免起上供官物三五分而代其輸. 向後軍籍旣覈, 屯田旣成, 民兵旣練, 則上項量撥之數可以漸減, 而州郡免起之數可以漸增. 州縣事力旣益寬舒, 然後可以禁其苛斂, 責以寬恤, 歲課而時稽之, 不惟去其加耗預借非法科敷之弊, 又視其土之肥瘠․稅之輕重而均減之, 庶幾窮困之民得保生業, 無復流移漂蕩之意. 所在曠土, 亦當漸次有人開墾布種, 而公上之賦亦當自然登足, 次第增羨, 不俟程督迫促而國眞可富, 兵眞可彊矣. 此臣之所讀省賦治軍之說然也.
근본은 마음가짐을 바로잡아 기강을 확립하는 데에 달려있다는 것은 저의 직분상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의 근본과 원류가 여기에 달려 있으니, 말하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제가 지난 융흥 원년에 외람되이 소대(召對)의 은전을 입었을 때 그 대강을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죽음을 무릎쓰고 폐하를 위해 그 내용을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강(綱)이란 그물의 버팀줄이고 기(紀)란 실의 실마리와 같습니다. 그물에 버팀 줄이 없으면 제대로 펼칠 수 없고, 실에 실마리가 없으면 제대로 정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집에는 집안의 기강이 있고, 한 나라에는 나라의 기강이 있습니다. 향(鄕)이 현(縣)에 통솔되고, 현은 주(州)에 통솔되며, 주(州)는 여러 로[諸路]에 통솔되고, 여러 로는 대성(臺省)에 통솔되며, 대성은 재상(宰相)에게 통솔되고, 재상은 다른 여러 직책을 겸하여 통솔하면서 천자와 함께 가부를 의논해서 정령을 내리는데 바로 이것이 천하의 기강입니다. 그러나 기강이란 저절로 확립될 수 없고 반드시 군주의 마음가짐이 공평 정대하고, 사사로이 편당을 만들거나 이랬다저랬다하지 않은 다음에야 이에 근거해서 확립될 수 있습니다. 군주의 마음은 스스로 바로잡을 수 없고 반드시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하며, 의리의 귀결처를 밝히고, 개인적이고 사특한 통로를 막아버린 다음에야 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옛 성왕들이 사부(師傳)의 관을 세우고, 빈우(賓友)의 지위를 설치하며, 간쟁(諫諍)의 직을 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들이 앞뒤에서 국정을 자문케 하고, 좌우에서 보좌하게 한 것은 오직 군주의 마음이 한 순간이라도 올바름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입니다. 그렇게 한 까닭을 따져보면 진실로 천하의 근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요, 하나라도 바르지 못하면 천하의 모든 일이 올바르게 될 수 없기 때문에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至於所謂其本在於正心術以立紀綱者, 則非臣職之所當及. 然天下萬事之根本源流有在於是, 雖欲避而不言, 有不可得者. 且臣頃於隆興初元誤蒙召對, 蓋已略陳其梗槪矣. 今請昧死復爲陛下畢其說焉. 夫所謂綱者, 猶繩之有綱也 : 所謂紀者, 猶絲之有紀也. 繩無綱則不能以自張, 絲無紀則不能以自理. 故一家則有一家之綱紀, 一國則有一國之綱紀. 若乃鄕總於縣, 縣總於州, 州總於諸路, 諸路總於臺省, 臺省總於宰相, 而宰相兼統衆職, 以與天子相可否而出政今, 此則天下之綱紀也. 然而綱紀不能以自立, 必人主之心術公平正大, 無偏黨反側之私, 然後綱紀有所繫而立. 君心不能以自正, 必親賢臣․遠小人, 講明義理之歸, 閉塞私邪之路, 然後乃可得而正也. 古先聖王所以立師傳之官, 設賓友之位, 置諫諍之職, 凡以先後縱臾, 左右維持, 惟恐此心頃刻之間或失其正而已. 原其所以然者, 誠以天下之本在是, 一有不正, 則天下萬事將無一物得其正者, 故不得而不謹也.
현재 국가의 큰일에 대해서는 앞에서 아뢴 말들에서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폐하께서 백성을 구휼하려 들면 백성들의 형편은 날로 쪼들리고, 재정에 힘쓰려 들면 재정은 날로 바닥나고, 군대를 제대로 다스리려 들면 군정(軍政)은 날로 문란해지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국토를 되찾고자 하지만 북쪽을 향해서 중원의 한 자[尺] 한 치[寸]의 땅조차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치욕을 씻어내고자 하지만 선우(單于)의 목을 매달거나 월지의 두개골로 소변통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재상과 대성, 사부와 빈우 및 간쟁하는 신하들이 모두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폐하께서 친밀하게 지내고 함께 국정을 의논하는 사람은 한 두 명의 가까운 신하에 불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한 두 명의 소인배들은 위로는 폐하의 심지를 흐리게 하여, 폐하께서 선왕들의 위대한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고 공리(功利)나 따지는 하찮은 이론이나 좋아하도록 만들며, 젊은 선비들의 곧은 말은 불쾌하게 여기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자들의 기만적인 태도를 편안히 여기도록 만듭니다. 또 아래로는 잇속이나 탐하고, 염치도 모르는 선비들을 모아들여서 문반․무반이 때로 나뉘어 그들 문하에 몰려듭니다. 마음에 드는 자들은 몰래 끌어주고 당겨주며 발탁해서 좋은 벼슬을 주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은 남몰래 욕하고 헐뜯으면서 공공연하게 배척합니다. 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뇌물은 폐하의 재물을 훔친 것이요, 이들이 장수와 벼슬아치를 임명하는 것은 폐하의 권력을 훔친 것입니다. 심지어 폐하께서 재상․사보․빈우․간쟁하는 신하라고 부르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집안을 드나들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습니다. 요행히 (그들의 힘을 빌지 않고) 스스로 조정에 발탁된 관리들도 악착스럽게 자신을 지키기에 불과할 뿐 그들을 배척하는 말 한 마디 못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공론을 중시하는 사람이 대략 그 무리들 가운데 한 둘을 내쫓을 수는 있지만 곪아터진 상처를 깊게 도려낼 수는 없고, 결국 분명한 말로 그 무리들의 핵심 세력을 뿌리뽑지 못합니다. 세력과 위세가 이미 확고해서 조정 안팎이 휩쓸리듯 그들을 추종합니다. 폐하의 명령과 인사 조치 등이 조정을 통해 나오지 못하고 이 한 두 사람의 손아귀에서 나오는데, 명목상으로는 폐하께서 홀로 결정하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 한 두 명이 몰래 권력을 쥐어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너뜨린 것은 폐하의 기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폐하께서 기강을 확립할 수 있는 근거까지도 함께 무너뜨립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의 충신과 현명한 선비들은 마음 속 깊이 근심하고 탄식하면서 사는 것조차 기꺼이 여기지 않게 되고, 이익이나 탐하고 염치도 없으며, 못된 짓만 일삼는 무리들은 사방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어나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백성들은 어떻게 돌볼 수 있으며, 재정은 어떻게 다스릴 수 있으며, 군정은 무엇에 근거하여 정돈될 것이며, 국토[土宇]는 무엇에 근거하여 되찾을 수 있을 것이며, 종묘의 원수는 언제 갚을 수 있겠습니까?
今天下之事如前所陳, 亦可見矣. 陛下欲恤民, 則民生日蹙 : 欲理財, 則財用日匱 : 欲治軍, 則軍政日紊 : 欲恢復土宇, 則未能北向以取中原尺寸之土 : 欲報雪讎耻, 則末能係單于之頸而飮月氏之頭也. 此其故何哉? 宰相․臺省․師傳․賓友․諫諍之臣皆失其職, 而陛下所與親密, 所與謀議者, 不過一二近習之臣也. 此一二小人者, 上則蠱惑陛下之心志, 使陛下不信先王之大道而悅於功利之卑說, 不樂莊士之讜言而安於私暬之鄙態, 下則招集天下士大夫之耆利無耻者, 文武彙分, 各人其門, 所喜則陰爲引援, 擢寘淸顯, 所惡則密行訾毁, 公肆擠排. 交通貨賂, 則所盜者皆陛下之財 : 命卿置將, 則所竊者皆陛下之柄. 雖陛下所謂宰相․師保․賓友․諫諍之臣, 或反出人其門牆, 承望其風旨. 其幸能自立者, 亦不過齪齪自守, 而末嘗敢一言己以斥之. 其甚畏公論者, 乃略能驚逐其徒黨之一二, 旣不能深有所傷, 而終亦不敢明言, 以搗其囊槖巢窟之所在. 勢成威立, 中外賤然向之, 使陛下之號今黜陟不復出於朝廷而出於此一二人之門, 名爲陛下之獨斷, 而實此一二人者陰執其柄. 蓋其所壞, 非獨壞陛下之綱紀而已, 乃幷與陛下所以立綱紀者而壞之. 使天下之忠臣賢士深憂永歎, 不樂其生, 而貪利無耻․敢於爲惡之人四面紛然攘袂而起, 以求逞其所欲. 然則民又安可得而恤, 財又安可得而理, 軍政何自而脩, 土宇何自而復? 而宗廟之讎耻, 又何時而可雪耶?
신은 진실로 어리석지만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겠습니다. 지난번 입대했을 때 변변치 못한 소견을 다 아뢰었음에도 폐하께서는 용서하시고 벌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후 18년 동안 두 번이나 소명을 내리셨고, 다섯 번이나 벼슬을 제수하셨습니다. 신이 비록 꽉 막혔고 어리석지만 자신이 세상에 쓸모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고, 질병과 우환에 끌려 폐하의 은명을 감사히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신을 깊이 알아주시고 어여삐 여기셨습니다. 다만 신이 나약하고 겁이 많아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백성들이 이처럼 괴로운 지경에 이른 것을 익히 보고서도 한 목숨을 버릴 각오로 폐하께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폐하가 신을 저버리지 않았는데 오히려 신이 폐하를 저버리는 짓입니다. 지금 다행스럽게도 천자께서 언로를 열어 널리 조언을 구한다고 하셨는데, 제 관직 역시 마침 폐하께 말씀드릴 만한 위치에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말 한마디 올리지 않는다면 신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감히 말씀드렸습니다. 폐하께서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마음을 기울여 살펴주시며, 분발하시어 용기있게 결단을 내리시고, 폐하의 마음가짐[宸心]을 바로 잡고, 주변의 사악한 무리들을 멀리 내쳐서 기강을 확립함으로써 사해의 곤궁한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주신다면 신은 커다란 행복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천자의 위엄을 넘보게 되어 문책을 각오하고 폐하를 우러러 떨리는 마음으로 명령을 기다립니다. 신 주희는 죽을 각오로 두 번 절하고 삼가 올립니다.
臣誠至愚, 不勝憤懣, 因伏惟念自頃進對, 得竭狂瞽, 陛下不惟赦而不誅, 其後十八年間, 兩蒙收召, 五被除擢. 騅臣愚暗, 自知無用於世, 又爲疾病憂患之所牽留, 有不得紙拜恩命者, 然陛下之知臣不爲不深, 憐臣不爲不厚. 顧臣乃獨畏懦藏縮, 熟視天下之綱紀廢亂, 生靈困苦至於如此, 而不能捐生出死, 一爲陛下言之, 是陛下不負臣而臣負陛下也. 今者幸値聖明開廣言路, 而臣官守適在可言之數, 於此而又不言, 則臣之罪雖萬死不足以自贖. 是以敢冒言之, 伏惟陛下曲加容貸, 留神省察, 奮發剛斷, 一正宸心, 斥遠佞邪, 建立綱紀, 以幸四海困窮之民, 則臣不勝大幸!干冒斧鉞, 臣無任膽天望聖․戰慄俟命之至. 臣熹昧死再拜謹言.
첩황(貼黃)
남강군 관내에서는 작년 가을 만생종을 경작하는 농경지에 가뭄 피해가 있었고, 겨울에는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은 신이 이미 주장으로 아뢰었습니다. 그 후에 또 한참동안 비가 오지 않아 논갈이하는 소들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지금 비가 오기는 했지만 이미 때가 늦어 소들이 줄지어서 죽어나가니 형세가 아주 걱정됩니다. 바라건대 살펴주십시오.
제가 지난번에 입대해서 폐하를 뵈었을 때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정심(正心)과 성의(誠意)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폐하의 학문이 치도의 근본에 이처럼 깊이 통달하셨는데 나라가 어찌 잘 다스려지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폐하께서 성의․정심에 대한 설명을 듣기 싫어하시고, 궁궐에 들어가 폐하께 진언하려는 신하들도 그런 말은 하지 말자고 서로 충고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는 폐하께서 결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말이 유포되면 위로는 폐하의 덕에 누가 되고 아래로는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킬까 걱정됩니다. 폐하께서 다시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貼黃)本軍管內去秋晩田旱損, 去冬地震有聲, 臣已各具奏聞去訖. 是後一向闕雨, 耕牛疫死. 今雖得雨, 恐已後時, 而牛死不止, 勢甚可慮. 伏乞睿照.
臣昨蒙賜對, 面奉玉音, 治天下當以正心誠意爲本, 常竊仰歎聖學高明, 深達治本如此, 天下安得不治? 比年以來, 乃聞道路之言妄謂陛下惡聞正心誠意之說, 臣下當進對者, 至相告戒, 以爲語忌. 臣雖有以決知其不然, 然竊深慮此語流傳, 上累聖德, 下惑羣聽, 伏望睿明更賜財幸.
주달하는 소와 함께 올리는 장 繳進奏疏狀
【해제】이 글은 순희 7년(경자, 1180, 51세) 남강군 지사[知南康軍]의 신분으로 효종에게 올린 「경자응조봉사」와 함께 올린 소장이다. 원래 주달하는 글이 따로 있고 거기에 함께 첨부한 장에 대해 ‘繳…狀’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애초에 올렸던 글의 내용이 비밀을 요하는 예민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장을 통해 그 사연을 간략하게 밝혔다.
모관 모위 신 주희는 아룁니다. 신이 삼가 진주원(進奏院)의 관보를 살펴보니, 3월 9일 신료들이 진주하기를 감사와 군수들을 신칙해서 민간의 이해를 조목으로 갖추어 모두 위로 보고하되, 숨기는 것이 없게 하라 한 것에 대해 천자께서 진주한 대로 의거하라는 어지를 받들었다고 했습니다. 신은 재능은 없지만 외람되이 한 군을 떠맡게 되어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관 내 민간의 이해에 마땅히 보고드릴 사건이 있습니다. 원컨대 그 사이에 일이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것이라 곧장 토로하지 못할 것이 있어서 삼가 죽을죄를 무릎쓰고 소장 한 통을 갖추어 법식에 의거 봉함해서 이 장과 함께 올립니다.
具位臣朱熹: 右臣伏睹進奏院報, 三月九日, 臣寮奏乞申敕監司郡守條具民間利病, 悉以上聞, 無有所隱, 奉聖旨依奏者. 臣以非材, 誤叨郡寄, 竊見管內民間利病有合奏聞事件. 願其間有事干機密, 不直宣露者, 謹昧萬死, 具疏壹通, 準式實封, 隨狀投進.
(첩황) 바라건대 천자의 앞에서 개봉해주신다면 어리석은 천 가지 생각 가운데 하나라도 폐하께서 조언을 구해 치세를 염원하시는 뜻에 부응하게 될 것입니다. 천자의 위엄을 범하게 되어 저는 몸둘 바를 모르고 벌주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을 어쩔 수 없습니다. 삼가 기록해서 아뢰고 엎드려 지휘를 기다립니다.
(貼黃) 乞至御前開拆, 庶幾千慮之得有以仰副陛下求言願治之意. 干冒天威, 臣無任跼蹐俟罪之至. 謹錄奏聞, 伏候敕旨.
무신봉사 戊申封事 (2-460)
【해제】이 글은 순희 15년(무신, 1188, 59세) 11월에 올린 봉사이다. 1181년 3월 27일 주자는 남강군 지사를 그만두고 숭안현으로 돌아왔는데, 당시에 이미 새로운 벼슬인 제거강남서로상평다염공사를 제수받았으나 아직 취임하지 않은 때였다. 곧이어 남강군의 구황에 공이 있다는 이유로 제거절동상평다염공사로 관직이 바뀌었는데, 그 해 12월이 되어서야 주자는 절동제거의 직책에 나아갔다. 절동제거로 있으면서 당중우에 대한 탄핵 사건을 계기로 강서제형을 제수받았지만, 이를 사양하고 1182년 9개월여의 절동제거를 그만두고 숭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후 5년여를 집에서 지낸 다음 무신년(1188)이 되자 주자는 6월 입궐해서 무신주차 다섯 통을 올렸고, 이어서 병부랑관을 제수받았지만 사양하고 8월에 숭안으로 돌아왔다, 다시 10월에 조칙을 받고 이 봉사를 올린 것이다. 이 다음해 11월 주자는 장주 지사를 제수받게 된다. 이 봉사의 주 내용은 태자를 보필하는 것[輔翼太子]․대신을 선임하는 것[選任大臣]․기강을 진작시키는 것[振擧綱維]․풍속을 교화시키는 것[變化風俗]․백성들의 역량을 기르는 것[愛養民力]․군정을 밝게 다스리는 것[脩明軍政]이라는 여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조봉랑(朝奉郞)․직보문각(直寶文閣)․서경 숭산 숭복궁 주관[主管西京嵩山崇福宮]
11월 1일 신 주희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상소문을 갖추어, 죽음을 무릎쓰고 두 번 절하고서 황제 폐하께 바칩니다. 신은 용렬한 자질을 가졌음에도 성상께서 알아주시고 대우해주신 것이 지금까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최근 2년 이래로 줄줄이 내려진 은혜가 예전과 또 달라 동년배를 돌아보아도 비교할 사람이 없을 지경입니다. 감격스러운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망스러운 신의 말이 금기시하는 내용을 건드렸음에도, 받아들이시고 죄를 삼지 않으셨으나, 엎드려 기다린 지 몇 개월이 되었지만 대충 시행되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신은 진실로 스스로 알 수 없어서 폐하의 비상한 은혜를 감당해볼 방도를 찾아보았으나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두려워하면서 오래도록 편치 못했습니다. 뜻밖에도 폐하께서 또 소명으로 불러 만나려 하시니 어리석은 신은 여기에서 폐하의 뜻을 엿보려 해보았지만 더욱 과연 어떠한 생각이신지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계책을 들으려는 생각에서라면 말은 이미 다 진달했는데 쓰이지 못하고 있고, 은혜를 더 내리려는 생각에서라면 은총이 이미 두터워 더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 없어서 신은 배회하며 우물쭈물 사양하고 피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오히려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신은 또 거듭 생각했습니다. 지난 날 입대해서 진달할 때에 말씀드리려던 것이 병에 쫓겨 오히려 다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봉사로 올리겠다고 청하고서는 오래도록 감히 올리지 못했으니 아마도 폐하께서 우연히 그것을 기억하시고서 끝내 들으시려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신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군부(君父)의 명이 거듭 내려왔는데도 신하된 자로서 집안에만 꼼짝없이 누워 있다는 것은 신에게는 진실로 편안치 못합니다. 마음 속 깊이 생각하는 것은 오직 나아가 폐하를 뵌 이후에 제가 말한 내용이 결국 쓰이지도 못했는데 또 다시 한낮 외람된 은총이나 훔치는 짓을 이전처럼 한다면 신의 진퇴가 아주 처신하기 곤란하게 되어 결국에는 죄를 얻게 될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이전에 청했던 것에 따라 전헤 말하고자 했던 것을 모두 말하여 올립니다. 생각건대 비록 제가 폐하 앞에 직접 가게 되더라도 말하는 내용은 이런 것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천자께서는 살펴보시고 만일 그 말이 옳다고 하시어 차근차근 시행하신다면 신의 바램은 천만번 만족해서, 물러나 동굴 속에서 죽더라도 아무런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폐하께서 반드시 제가 오기를 원하신다면 신도 또한 폐하를 한 번 뵙기를 구한 다음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에 불과할 뿐일 것입니다. 신의 말에서 취할 만한 것이 없다면 이것은 신이 배운 것이 누추해서 다른 것이라곤 없으니 설사 감히 나아간다 한들 폐하께서는 또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차라리 저의 간절한 청을 따라 돌아가 쉬도록 허락하셔서 군주와 신하 둘 다 온전케 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게다가 페하의 조정에서 시종의 열에 드는 자들이 유언비어를 만들어 선량한 사람을 해치고, 횡행하는 의론을 창도해서 상하를 위협하는 등 교묘한 모략과 은밀한 계책들이 또 지난날 깊은 생각 없이 망발했던 것보다 더 심합니다. 폐하께서는 신으로 하여금 그 예봉을 가벼이 범해서 다시 이미 엎어진 궤적을 밟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十一月一日, 朝奉郞․直寶文閣․主管西京嵩山崇福宮臣朱熹謹齋沐具疏, 昧死再拜, 獻于皇帝陛下: 臣猥以庸陋, 蒙被聖知, 有年於此矣. 而兩歲以來, 受恩稠疊, 有加於前, 顧視輩流, 無與爲比, 其爲感激之深, 固有言所不能諭者. 然竊惟念狂妄之言, 抵觸忌諱, 雖蒙聽納, 不以爲罪, 而伏俟數月, 未見其有略施行者. 臣誠不自知, 求所以堪陛下非常之恩者, 而未知所出也, 以是慚懼, 久不自安. 不意陛下又欲召而見之, 臣愚於此仰窺聖意, 尤不識其果何謂也. 以爲欲聽其計策, 則言已陳而不可用 : 以爲欲加之恩意, 則寵旣厚而無以加. 二者之間, 未有所當, 此臣之所以徘徊前却, 懇扣辭避而不能已也. 然而陛下猶未之許, 則臣又重思之, 前日進對之時, 口陳之說迫於疾作而猶有未盡焉者, 蓋嘗請以封事上聞, 而久未敢進, 豈非陛下偶垂記憶而欲卒聞之乎? 抑其別有以乎? 臣不得而知也. 然君父之命至于再下, 而爲臣子者堅臥於家, 則臣於此實有所未安者. 其所深慮, 獨恐進見之後, 所言終不可用, 而又徒竊誤寵, 如前之爲, 則臣之辭受將有所甚難處而終得罪者. 是以輒因前請而悉其所言以獻, 以爲雖使得至陛下之前, 所言不過如此. 伏惟聖慈幸賜觀省, 若以其言爲是而次第行之, 則臣之志願千萬滿足, 退伏巖穴, 死無所憾. 萬一聖意必欲其來, 則臣亦不過求一望見淸光而後懇請以歸而已. 若見其言果無可取, 則是臣所學之陋, 他無所有, 政使冒進, 陛下亦將何所用之? 不若因其懇請而許其歸休, 猶足以兩有所全也. 又况陛下之庭, 侍從之列方有造爲飛語以中害善良, 唱爲橫議以脅持上下, 其巧謀陰計, 又有甚於前日之不思而妄發者. 陛下無爲使臣輕犯其鋒而復蹈已覆之轍也.
신이 오늘날 천하의 형세를 살펴보니, 마치 인체에 중병이 들어 안으로는 심장과 복부로부터 시작하여 밖으로는 사지에까지 퍼져, 터럭 하나에 이르도록 병이 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비록 기거하고 음식을 먹는 데는 큰 지장이 없지만, 그 증세가 위급하고 긴박하여 의사가 쳐다보자마자 (치료할 것을 포기한 채) 도망갈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병은 반드시 편작이나 화타와 같은 명의를 만나 신단(神丹)과 묘제(妙劑)로 내장과 위를 세척하여 그 병근을 제고하고 난 후에야 다행이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蓋臣竊觀今日天下之勢, 如人之有重病, 內自心腹, 外達四肢, 蓋無一毛一髮不受病者. 雖於起居飮食未至有妨, 然其危迫之證, 深於醫者固已望之而走矣. 是必得如廬扁․華佗之輩, 投以神丹妙劑, 爲之湔腸滌胃, 以去病根, 然後可以幸於安全.
그렇지 않다면 병은 날마다 더욱 깊어지는데 병든 사람은 깨닫지도 못하니 한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의사의 늘상 쓰는 약으로는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이 지난번의 주차에서 “먹은 약이 눈을 어질어질하게 만들지 못하면 질병이 낳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 뜻은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그 말에는 미진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일이란 말해야 할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순서상 언급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신이 이를 말할 겨를이 없어서입니다. 이 때문에 오직 천하의 커다란 근본과 오늘날의 급선무만을 폐하를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
如其不然, 則病日益深而病者不覺, 其可寒心, 殆非俗醫常藥之所能及也. 故臣前日之奏, 輒引“藥不暝眩, 厥疾不疹”之語, 意蓋爲此而其言有未盡也. 然天下之事, 所當言者不勝其衆, 顧其序有未及者, 臣不暇言. 且獨以天下之大本與今日之急務深爲陛下言之.
무릇 천하의 큰 근본은 폐하의 마음입니다. 오늘날의 급한 일은 태자를 보필하고, 대신을 가려 뽑고, 기강을 진작하고, 풍속을 변화시키고 백성들의 힘을 아껴 기르고, 군정(軍政)을 밝게 닦는 여섯 가지입니다. 신은 죽을 죄를 무릎쓰고 모두 아뢰오니 폐하께서는 유념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蓋天下之大本者, 陛下之心也. 今日之急務, 則輔翼太子․選任大臣․振擧綱(2-462)維․變化風俗․愛養民力․脩明軍政六者是也. 臣請昧死而悉陳之, 惟陛下之留聽焉.
제가 폐하의 마음을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천하의 일들은 천변만화하여 그 실마리가 무궁하지만, 하나라도 임금의 마음에 근본을 두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마음이 바르다면 천하의 일들이 하나라도 바름에서 나오지 아니함이 없게 되고,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천하의 일들도 모두 바름에서 나올 수가 없게 됩니다. 상으로 권장하고, 형벌로 위엄을 세우는 것도 각각 마음이 쏠리는 데로 따를 뿐만 아니라 형세상 어찌할 수도 없습니다. 더욱 심한 것은 그런 것들을 보고 느끼는 사이에 교화는 신(神)처럼 빠르게 퍼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군주가 작은 몸으로 깊은 궁궐 속에 머물고 있어서 그 마음의 올바름과 사특함을 엿볼 수 없을 것 같지만 그것이 바깥으로 징험처럼 드러나는 것은 언제나 열 눈이 쳐다보고, 열 손이 가리키는 것과 같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순임금이 ‘정(精)하게 하고 한 결같이 하라[惟精惟一]’는 가르침을 둔 이유이고, 공자가 ‘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하라[克己復禮]’고 말한 이유이니, 이 모두는 나의 이 마음을 바로잡아 천하 만사의 근본을 삼으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르면 보고 듣는 것이 총명해지고 행동거지가 예에 들어맞아 몸이 바르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행동에 과불급이 없게 되어 그 중(中)을 붙잡을 수 있게 되니 비록 커다란 천하라 할지라도 한 사람도 나의 어짐[仁]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신이 삼가 상서를 살펴보니, 순임금이 우에게 고하기를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精)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했습니다. 이 마음의 허령함과 지각은 하나일 뿐인데도 인심과 도심의 구별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혹은 형기(形氣)의 사사로움[私]에서 나오고, 혹은 성명(性命)의 올바른 것에서 근원하여, 지각(知覺)하는 것이 똑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혹은 위태로워 편안치 못하고, 혹은 정미(精微)하여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이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뛰어난 사람[上智]이라도 인심이 없지 않고, 또한 성(性)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못난 사람[下愚]이라도 도심이 없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가 마음[方寸] 속에 섞여 있으니 다스릴 바를 알지 못하면, 위태로운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해져서 천리(天理)의 공평함이 끝내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정(精)은 두 가지의 사이를 살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요, 일(一)은 본심(本心)의 올바름을 지켜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니, 여기에 종사하면서 조금도 쉬지 말고,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한 몸의 주장이 되게 하여, 인심이 언제나 명령을 듣게 하면, 위태로운 것은 편안하게 되고, 은미한 것은 드러나게 되어, 움직임과 고요함, 말하고 행하는 것이 저절로 과(過)․불급(不及)의 잘못이 없게 될 것입니다.
또 논어를 살펴보건대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는 공자께서는 “자기의 사욕을 이기고 예에 돌아가는 것이 인(仁)을 온전케 하는 것이니, 하루 동안이라도 사욕을 이기고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天下)가 인(仁)을 허여 할 것이다. 인(仁)을 행하는 것은 자기 몸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남에게 달려있는 것이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인(仁)이란 본심의 온전한 덕이요, 자기[己]란 일신의 사욕이며, 예(禮)는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입니다. 마음의 온전한 덕은 천리(天理)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몸이 있으면 또한 인욕의 사사로움에 해를 입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仁)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사욕(私慾)을 이이고 예로 돌아가면 일마다 모두 천리(天理)에 합치될 것이고 본심(本心)의 덕(德)이 다시 내 몸에서 온전해 질 것입니다. 마음의 덕이 이미 온전하면 천하가 크다고 하지만 어느 한 사람도 나의 인을 허여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도리는 본시 나에게 있는 것이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극복해서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면 사욕은 모두 맑아지고 천리는 유행하여 인은 이루 다 쓸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순임금과 공자의 말인데 신이 망령되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이와 같이 논했습니다. 삼가 천자께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臣之輒以陛下之心爲天下之大本者, 何也? 天下之事千變萬化, 其端無窮, 而無一不本於人主之心者, 此自然之理也. 故人主之心正則天下之事無一不出於正, 人主之心不正則天下之事無一得由於正. 蓋不惟其賞之所勸․刑之所威各隨所向, 勢有不能已者, 而其觀感之間, 風動神速, 又有甚焉. 是以人主以眇然之身, 居深宮之中, 其心之邪正, 若不可得而窺者, 而其符驗之著於外者, 常若十目所視․十手所指而不可掩. 此大舜所以有惟精惟一之戒, 孔子所以有克己復禮之云, 皆所以正吾此心而爲天下萬事之本也. 此心旣正, 則視明聽聰, 周旋中禮而身無不正. 是以所行無過不及而能執其中, 雖以天下之大, 而無一人不歸吾之仁者. 臣謹按尙書, 舜告禹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夫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而以爲有人心道心之別者, 何哉? 蓋以其或生於形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而所以爲知覺者不同, 是以或危殆而不安, 或精微而難見耳. 然人莫不有是形, 故雖上智不能無人心 : 亦莫不有是性, 故雖下愚不能無道心. 二者雜于方寸之間而不知所以治之, 則危者愈危, 微者愈微, 而天理之公卒無以勝乎人欲之私矣. 精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 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從事於斯, 無少間斷, 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而人心每聽命焉, 則危者安․微者(2-463)著, 而動靜云爲自無過不及之差矣. 又按論語,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 夫仁者, 本心之全德也. 己者, 一身之私欲也. 禮者, 天理之節文也. 蓋人心之全德莫非天理之所爲, 然旣有是身, 則亦不能無人欲之私以害焉. 故爲仁者必有以勝其私欲而復於禮, 則事皆天理而本心之德復全於我也. 心德旣全, 則雖以天下之大, 而無一人不歸吾之仁者. 然其機則固在我而不在人也. 日日克之, 不以爲難, 則私欲淨盡, 天理流行而仁不可勝用矣. 此大舜․孔子之言, 而臣輒妄論其所以用力之方如此, 伏乞聖照.
그러나 사특함과 바름의 징험이 바깥에 드러나는 것은 집안사람들보다 앞설 것이 없고, 그 다음에 주변으로 파급되며, 그런 다음에 조정에 알려지고, 천하에 미치게 됩니다. 궁궐 안이 단정하고 장중하며 가지런하고 엄숙하여, 후비가 관저(關雎)의 덕이 있고, 후궁이 한껏 치장이나 하려드는 데 대한 기롱이 없이 물고기를 꿴 것처럼 질서 정연하여 한 사람도 감히 은혜와 사사로움을 믿고 법도를 어지럽히지 않고, 뇌물을 받고 청탁과 알선을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집안이 올바른 것입니다. 조정에서 물러난 다음 조용히 휴식을 취할 때에 귀척과 근신 및 휴복(携僕)과 엄윤(奄尹)이 곁에서 모시면서 각각의 직분을 공손히 수행하되, 위로는 미워함이 없는 엄숙함[不惡之嚴]을 꺼리고, 아래로는 대분(戴盆)의 경계[戴盆之戒]를 삼가해서, 한 사람도 감히 궁중과 조정을 오가며 위엄과 복록에 대한 권세를 훔치고, 권세가에 아부하며 총애를 팔아서 조정의 정사를 문란하게 만들지 못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변이 올바른 것입니다. 안으로 궁중에서 밖으로 조정에 이르기까지, 둘 사이가 환하게 조금도 사적인 사사로움이 없는 다음이라야, 호령을 내리면 듣는 사람들이 의심이 없고, 현자를 등용하고 간신배를 물리쳤을 적에 사람들이 모두 복종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야 기강이 진작되어 침탈당할 근심이 없게 되고, 정사가 닦여져 사적으로 아부하는 잘못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조정의 모든 관리와 천자의 군대[六軍]와 모든 백성들이 올바르지 않을 수 없고 정치의 도가 다 펼쳐진 것입니다.
然邪正之驗著於外者, 莫先於家人而次及於左右, 然後有以達於朝廷而及於天下焉. 若宮闈之內端莊齊肅. 后妃有關雎之德, 後宮無盛色之譏, 貫魚順序, 而無一人敢恃恩私以亂典常, 納賄賂而行請謁, 此則家之正也. 退朝之後, 從容燕息, 貴戚近臣․携僕奄尹陪侍左右, 各恭其職, 而上憚不惡之嚴, 下謹戴盆之戒, 無一人敢通內外․竊威福, 招權市寵, 以紊朝政, 此則左右之正也. 內自禁省, 外徹朝廷, 二者之間洞然無有毫髮私邪之間, 然後發號施令, 群聽不疑, 進賢退姦, 衆志咸服, 紀綱得以振而無侵撓之患, 政事得以脩而無阿私之失, 此所以朝廷百官․六軍萬民無敢不出於正而治道畢也.
마음이 조금이라도 바르지 못하면 이 몇몇 가지는 본시 바르게 될 수 없습니다. 이 몇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바르지 못하면서 ‘마음이 바르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옛 성왕들은 전전긍긍하면서 이 마음을 붙잡고 지켰습니다. 비록 어지러이 물결치듯 흔들리는 와중에서나, 어둡고 홀로된 곳에서 마음이 멋대로 뛰노는 지경이 되어서도 정치하게, 한결같이, 극복하고, 회복하기를 신명을 대하듯이, 깊은 못이나 계곡에 임한 듯이 하면서 감히 잠깐 동안도 태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은미한 사이에 간혹 잘못이 있는데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사보(師保)의 관직을 세워 스스로 열고 밝혔고, 간쟁하는 자리를 만들어 스스로 바로잡았으며, 음식, 술과 음료, 의복과 잠시 머무는 처소, 기용과 재물, 환관과 궁첩의 정사에 대해서도 어느 것 하나 총재가 관장하지 않는 것이 없게 하고, 앞뒤로나 좌우로나, 한 번 움직이거나 한 번 조용하거나 어느 것 하나 유사의 법에 의해 제재되게 하며, 아주 작은 간극이나, 짧은 순간이라도 머리카락 한 올 같은 사사로운 뜻조차도 숨어있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천자의 자리에 처하여 구중궁궐 깊은 곳에 머무르고 있지만, 언제나 종묘의 한 가운데 조정의 위에 서있는 듯이 두려워하고 경계하려는 때문입니다. 이것이 선왕의 정치가 안에서 밖으로 퍼져나가고, 은미한 것에서부터 드러나는 것에 이르기까지 정치하고 순수하며, 티없이 깨끗하게 조금의 잘못이 없어, 그 남기신 풍화와 공업이 오히려 후세의 모범이 되는 이유입니다.(제가 가만히 주례 「천관․총재」 한 편을 보니 주공께서 성왕을 보좌 인도하시면서 후세에 법도를 드리우신 마음 씀씀이가 가장 깊고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삼대의 임금들이 마음을 바루고 뜻을 정성스럽게 한 학문을 알려고 한다면 여기에서 살펴보면 그 실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천자께서 일어 보십시오.)
心一不正, 則是數者固無從而得其正. 是數者一有不正, 而曰心正, 則亦安有是理哉? 是以古先聖王兢兢業業, 持守此心, 雖在紛(2-464)華波動之中, 幽獨得肆之地, 而所以精之一之, 克之復之, 如對神明, 如臨淵谷, 未嘗敢有須臾之怠. 然猶恐其隱微之間或有差失而不自知也, 是以建師保之官以自開明, 列諫諍之職以自規正, 而凡其飮食酒漿․衣服次舍․器用財賄與夫宦官自妾之政, 無一不領於冢宰之官, 使其左右前後, 一動一靜, 無不制以有司之法, 而無纖芥之隙․瞬息之頃得以隱其毫髮之私. 蓋雖以一人之尊, 深居九重之邃, 而懍然常若立乎宗廟之中, 朝廷之上, 此先王之治所以由內及外, 自微至著, 精粹純白, 無少瑕翳, 而其遺風餘烈猶可以爲後世法程也. 臣竊見周禮天官冢宰一篇, 乃周公輔導成王, 垂法後世, 用意最深切處. 欲知三代人主正心誠意之學, 於此考之, 可見其實. 伏乞聖照.
폐하께서 시험삼아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정치하게, 한결같이, 극복하고, 회복하며 그 마음을 붙잡아 지키려는 것이 과연 일찍이 이와 같은 공효가 있었는가? 몸을 닦고 집안을 정돈하며 그 주변을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 과연 일찍이 이와 같은 효험이 있었는가?’ 궁성의 일은 금지된 것이라 저는 본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 모습은 보지 못하더라도 그 그림자를 보고, 그 안을 보지 못하고 그 밖의 일로 점쳐보면 작위와 포상이 지나치고, 뇌물이 흘러넘친다고 거리에 떠도는 말들은 이미 오래되어 다 적을 수도 없습니다. 저는 이로써 살펴보건대 폐하께서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 아마도 옛 성왕들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陛下試以是而思之, 吾之所以精一克復而持守其心者, 果嘗有如此之功乎? 所以脩身齊家而正其左右者, 果嘗有如此之效乎? 宮省事禁, 臣固有不得而知者. 然不見其形而視其影, 不睹其內而占其外, 則爵賞之濫, 貸賂之流, 閭巷竊言, 久已不勝其籍籍矣. 臣竊以是窺之, 則陛下之所以脩之家者, 恐其未有以及古之聖王也.
주변의 사적인 측근들에게 은총과 대우가 도를 지나쳐, 과거에 용대연(龍大淵)․증적(曾覿)․장열(張說)․왕변(王抃)의 무리들이 세력이 불타듯이 강성해져 한 시대를 진동시켰지만, 지금은 이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유독 지난 날 제가 폐하 앞에서 아뢴 내용에 대해 폐하께서는 곡진하게 깨우쳐 주셨지만, 어리석은 저는 끝내 이 무리들은 문이나 지키고 명이나 전달하며, 빗질이나 하는 역할로나 부리는 것이 마땅하지, 우두머리네 수장이네 하는 이름을 빌려다 안으로 간사함과 아첨을 왕성하게 만들고, 간사하고 교묘한 짓을 해서 윗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밖으로는 문호를 세우고 권세를 끼고서 폐하의 정치에 누를 끼치게 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至於左右便嬖之私, 恩遇過當, 往者淵․覿․說․抃之徒, 勢焰熏灼, 傾動一時, 今已無可言矣. 獨有前日臣所面奏者, 雖蒙聖慈委曲開譬, 然臣之愚終竊以爲(2-465)此輩但當使之守門傳命, 供掃除之役, 不當假借崇長, 使得逞邪媚․作淫巧於內, 以蕩上心, 立門庭․招權勢於外, 以累聖政.
그리고 그들이 재주가 있네 없네, 죄가 있네 없네 하는 것을 그 자체로 논할 것이 못됩니다. 하물며 가진 재주라는 것도 간사한 짓을 하기에나 적합할 뿐이요, 죄를 지어 다시 등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에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또 예를 들어 과거에 상례를 주관하고, 궤연을 봉양하게 했다는 명령은 원근의 식자들이 전해 듣고 속으로 웃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일들이 정사에 쓰이고, 야사에 기록되며, 이적(夷狄)들에게 전파되고 후세에까지 전해진다면 훗날 폐하를 어떤 군주라고 여기겠습니까? 설사 예전에 제게 깨우쳐 주신 것 같은 곡절이 있다고 해도 폐하께서는 또 어떻게 집안에 둔 하나의 입[一喙]으로 (다른) 사람들이 환히 알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而其有才無才, 有罪無罪, 自不當論. 况其有才適所以爲姦, 有罪而不可復用乎? 且如向來主管喪事․欽奉几筵之命, 遠近傳聞, 無不竊笑. 臣不知國史書之, 野史記之, 播于夷狄, 傳於後世, 且以陛下爲何如主也. 縱有曲折, 如前日所以諭臣者, 陛下亦安能家置一喙而人曉之耶?
내시[刑餘]와 소인배[小醜]들은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천자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천자의 덕을 허물어뜨리는 이런 극심한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데도 공경대신이란 자들은 팔짱이나 끼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면서 그 잘못을 구제하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는 오직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도성에 도착해서야 이 무리들 가운데 정사에 쓰이는 자들이 유독 이 자[此人: 감승]만이 아니고, 시종과 같은 신하들이 이미 그들의 문하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제가 보건대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신하들 가운데 조금이라도 식견을 가진 자들은 이 일을 가지고 말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모두 폐하께서 들어주지 않으셨고 심지어는 죄를 주시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요즘에 들어와 다시 이 일을 말하는 자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뿌리가 깊고 견고해서 흔들 수가 없고, 말해보았자 보탬은 없고 한낮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기만 해서 다른 일에 대한 말까지 쓰이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이 일은 제쳐두고 우선 그 다음 일을 논할 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처음 잘못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처음보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겨 다투어 말하기까지 하지만, 오래도록 잘못을 저지르면 사람들이 익히 보고 들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일이라고 여겨 말할 것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진실로 근년에 겨울에 우뢰가 치고 가을에 눈이 내리는 일이 때때로 있었지만 사람들이 마침내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떻게 늘 변치 않는 이치라고 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저만이 시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다시 언급을 회피하고, 말하지 말라고 했던 이 사람의 일을 논하는 것입니다. 비록 다행히 벌을 받거나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또한 제 말이 시행되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폐하께서 소원한 사람의 말을 듣고, 평일에 깊이 아끼던 측근을 내쫓는다는 것은 진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의 이해는 이미 앞에서 진달해 드렸고 제가 깊이 걱정하는 것은 또 이 일에 대한 처신이 훗날의 모범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깊이 종사와 자손 만대를 위해서 참아내시고 행하신다면 천하는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刑餘小醜, 不比人類, 顧乃熒惑聖心, 虧損聖德, 以至此極, 而公卿大臣拱手熟視, 無一言以救其失. 臣之痛心. 始者惟在於此. 比至都城, 則又知此曹之用事者非獨此人, 而侍從之臣蓋已有出其門者. 臣伏見陛下卽位以來, 臣下稍有知識, 無不以此事爲言者. 旣皆不蒙聽納, 甚者至或抵罪, 故自近年以來, 無復有言此者. 蓋知其根株牢固, 不可動搖, 言之無益, 徒取乖牾, 以致所言他事亦不見用, 故置此事於度外, 而姑論其次耳. 不唯如此, 亦以過失之萌, 人所創見, 故以爲異而爭言之. 及其旣久, 則習熟見聞, 以爲常事而不足言. 正如近年冬雷秋雪時時有之, 人遂不以爲異. 然此豈可常之理哉? 惟臣愚暗, 不識時宜, 故今日猶復論此人所諱言而厭道之事. 雖幸未蒙誅斥, 而亦未見有所施行也. 臣竊思之, 必使陛下聽疏遠之言而逐其平日深所愛幸之人, 誠有所難能者. 然此事利害旣陳於前, 而臣所深憂, 又恐其不可爲後聖法也. 伏惟陛下深爲宗社子孫萬世之慮, 忍而行之, 天下幸甚!
뇌물이 오가는 길은 또 사대부나 장수들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과거에 뵙고 아뢰었을 때 폐하께서는 제게 진실로 깊이 살펴서 통렬하게 고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러난 다음에야 비로소 폐하께서 황궁 금위대의 수장을 이미 바꾸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본시 폐하께서 깊이 그 폐단을 살피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를 밝혀 바로잡지 못했고, 거꾸로 자품을 높여주고, 중요한 요충지[巨鎭]을 맡기는 은총을 내렸다고 하니 이것은 바로 그들을 편케 만들어준 것입니다. 이 무리들은 아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꺼리겠습니까? 하물며 조정 안팎의 장수로서 이런 짓을 하지 않는 자들은 손에 셀만큼도 없는데, 폐하께서도 그들의 무리를 조사해서 모두 물리치지도 않으셨습니다.(제가 길에서 듣기로는 왕변이 축출된 이후로 많은 장군들을 임명하고 파견하는 것이 대부분 이 자의 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왕변과 이 자는 오로지 많은 장군들을 위해 내시들과 교통하고,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았으며, 그들의 마음을 알아내 군중(軍中)에다 알리고, 등급을 매기고 천거를 논하면서 폐하를 기만했으니 진실로 장수들의 거간꾼[牙儈]입니다. 지금 비록 제거했다고는 하나 그 죄를 바로잡지는 못했습니다. 또 듣기로는 지난 번 악(鄂) 지방 장수가 백성들을 가혹하게 수탈한 일도 또한 이 자가 안팎으로 구제해서 마침내 죄인이 그물을 벗어나게 되었고, (거꾸로 그의 잘못을) 말했던 사람이 죄를 저지른 것이 되는 바람에 안팎에서 지금까지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뒤에는 또 이름을 감추고 방을 내걸어 죄지은 장수의 악행을 폭로한 사람도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견책을 하는 것이 지나치게 편파적일뿐 아니라, 폐하의 정사에도 누가 되기에 충분하니, 이 일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여러 장군들의 죄상을 말하려는 자들이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소인이 중요한 군대를 장악하고, 혹은 가까이에서 궁궐을 지키거나, 또 혹은 천리나 떨어진 강호의 밖에 있는데, 안팎에서 한 사람도 그들의 간사함을 말하지 않으니, 이것은 국가를 위한 계획에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이전 시대의 융성함이 또한 멀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조금이라도 유의해 주십시오.)
至其納財之塗, 則又不於士大夫而專於將帥, 臣於前日亦嘗輒以面奏, 而陛下(2-466)諭臣以爲誠當深察而痛懲之矣. 退而始聞陛下比於環列之尹, 已嘗有所易置, 乃知陛下固已深察其弊而無所待於人言. 然猶未能明正其罪, 而反寵以崇資巨鎭, 使卽便安. 此曹無知, 何所忌憚? 况中外將帥, 其不爲此者無幾, 陛下亦未能推其類而悉去之也. 臣竊聞之道路, 自王抃旣逐之後, 諸將差除多出此人之手. 蓋抃與此人專爲諸將交通內侍, 納賂買官, 得其指意, 風喩軍中, 等第論薦, 以欺陛下, 實將帥之牙儈也. 今雖去之, 而未正其罪. 又聞向者鄂帥剋剝之事, 亦是此人內外營救, 遂致罪人漏網, 言者被罪, 中外至今爲之不平. 旣而又有匿名揭榜, 暴其通惡者, 亦被決配. 此不惟行遣太偏, 足爲聖政之累, 而自此之後, 遂無復有人敢言諸將之罪者. 以小人握重兵, 或在周廬肘腋之間, 或在江湖千里之外, 而中外無一人敢白其姦, 此於國計, 深恐未便. 前代之盛, 蓋亦非遠. 伏乞陛下少留聖慮.
폐하께서 백성들의 고혈을 다 짜내어서 군대의 비용으로 충당하려는 것은 본디 부득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군사가 된 자들은 도리어 단 한 번도 따뜻하게 배 부른 적이 없고 심한 경우에는 잡초를 베어다 신을 만들어 신고, 더러운 흙더미에서 곡식을 주워가며 아침 저녁을 나고 있습니다. 더욱 심한 경우에는 처나 딸자식을 화장시켜[塗澤] 창기를 만들어 웃음을 팔게 하면서[倚市門] 먹을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원망하고 욕하며, 거스리며 이치에 어긋나기가 차마 듣지 못할 지경입니다. 만에 하나 급한 일이 생기면 모르겠습니다만 폐하께서는 어디에 의지하시렵니까? 이것은 모두 장수라는 자들이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어 내어, 사람의 숫자를 세어 세금을 거두며[頭會箕斂], 남몰래 군사의 양식과 천자의 은사품을 탈취하여 자신의 재물을 늘리고, (폐하의) 측근들에게 뇌물을 주어 벼슬이 올라가기를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차간에 서로 충분히 만족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때로 적은 양을 (군대에 공급하고) 남은 것이라고 하면서 남몰래 폐하의 사적인 비용으로 바치고서는 원망하고 성내는 사졸들이 비난을 폐하에게 떠넘깁니다. 행여 폐하께서 그들이 바치는 것을 한 번이라도 받게 되면 훗날 비록 그들의 죄상을 알더라도 다시 심문할 수조차 없게 됩니다. 궁궐을 드나드는 심복같은 신하들이 밖으로 장수들과 교통하며, 함께 폐하를 기만하고 속이는 것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조금이나마 폐하를 아끼고 받들려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폐하는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총애하고 친애하시며 이 자들을 나의 사적인 신하들[我之私人]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재상도 (관료를) 통제하고 배치하는 과정의 득실에 대해 의논하지 못하게 하고, 급사중과 간관들도 (벼슬을) 제수하는 과정의 시시비비를 논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폐하께서 그 주변을 바로잡는 것이 옛 성왕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陛下竭生靈之膏血以奉軍旅之費, 本非得已, 而爲軍士者, 顧乃未嘗得一溫飽, 甚者採薪纖屨․掇拾糞壤以度朝夕, 其又甚者, 至使妻女盛塗澤․倚市門以求食也. 怨詈謗讟, 悖逆絶理, 至有不可聞者. 一有緩急, 不知陛下何所倚仗? 是皆爲將帥者巧爲名色, 頭會箕斂, 陰奪取其糧賜以自封殖, 而行貨賄於近習, 以圖進用. 彼此旣厭足矣, 然後時以薄少號爲羨餘, 陰奉燕私之費, 以嫁士卒怨怒之毒於陛下. 且幸陛下一受其獻, 則後日雖知其罪, 而不得復有所問也. 出入禁闥腹心之臣, 外交將帥, 共爲欺蔽, 以至於此, 豈有一毫愛戴陛下(2-466)之心哉!而陛下不悟, 反寵暱之, 以是爲我之私人, 至使宰相不得議其制置之得失, 給諫不得諭其除授之是非. 以此而觀, 則陛下所以正其左右, 未能及古之聖王又明矣.
또 ‘사적이다[私]’는 것은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 이름입니까? 자기의 분수상 홀로 가지고 있는 것에만 의거할 뿐 그 밖의 것과는 교통할 수 없는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부로부터 말한다면 한 집안이 사적인 곳이 되어, 동리[鄕]와는 서로 교통할 수 없으며, 동리 사람이란 측면에서 말한다면 한 동리가 사적인 곳이 되어 그 나라[國]와는 서로 교통할 수 없으며, 제후로부터 말한다면 한 나라가 사적인 공간이 되고 천하와는 교통할 수 없습니다. 천자의 경우에는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는 모든 것이 천자의 본분에 속하는 것으로 교통하지 못할 바깥이라고는 없습니다. 또 어떻게 ‘사적’이라고 할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그 한 마음의 사특함을 이기지 못해서 사적인 마음[私心]을 두게 되고, 그 집안 사람과 측근들을 바로잡지 못한 때문에 사적인 사람[私人]을 두게 된 것입니다. 사사로운 마음으로 사사로운 사람을 등용하게 되면 사적인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안으로는 경상 수입이 축나고 밖으로는 잉여 명목의 헌납이 발생해서 사적인 재산[私財]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위로는 황천(皇天)의 아들로서, 하늘이 뒤덮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떠맡으셨으니, 거기에 사적이거나 공정치 못한 것이 없게 해야 합니다. 폐하께 주어진 것이 적지 않은데도 그 큰 것을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찢고 나누어 협소하게 만들고 계십니다. 천하 모든 일의 폐단이 여기로 말미암아 나오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제가 듣기로는 태조황제께서 대내의 건물을 다시 지으신 후 몸소 정전에 납시어 첩첩이 쌓인 문을 열게 하시고 시종한 신하들을 돌아보고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곧고 반듯하게 열린 모든 문들은) 나의 마음이다. 조금이라고 삿되거나 왜곡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태조황제께서는 비록 문자나 언어를 익히는 학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의 광명정대함이 요순의 마음과 부절이 합치듯이 일치하시고,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를 개국하시고 영원히 모범을 드리우시게 된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멀리 이전의 성인들을 살피시고 가까이는 태조황제의 훈계를 법도로 삼으신다면 폐하의 한 마음이 능히 올바르게 되고, 원근이 모두 올바른 데로 귀결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랍니다. 살펴주십시오.)
且私之得名, 何爲也哉? 據已分之所獨有, 而不得以通乎其外之稱也. 故自匹夫而言, 則以一家爲私而不得以通乎其鄕 : 自鄕人而言, 則以一鄕爲私而不得以通乎其國 : 自諸侯而言, 則以一國爲私而不得以通乎天下. 至於天子, 則際天之所覆, 極地之所載, 莫非己分之所有而無外之不通矣, 又何以私爲哉? 今以不能勝其一念之邪而至於有私心, 以不能正其家人近習之故而至於有私人, 以私心用私人, 則不能無私費, 於是內損經費之人, 外納羨餘之獻, 而至於有私財. 陛下上爲皇天之所子, 全付所覆, 使其無有私而不公之處, 其所以與我者亦不細矣. 乃不能充其大而自爲割裂以狹小之, 使天下萬事之弊莫不由此而出, 是豈不可惜也哉! 臣竊聞太祖皇帝改營大內旣成, 躬御正殿, 洞開重門, 顧謂侍臣曰: “此如我心, 少有邪曲, 人皆見之.” 臣竊謂太祖星帝不爲文字言語之學, 而其方寸之地正大光明, 直與堯舜之心如合符節, 此其所以肇造區夏而垂裕無疆也. 伏惟陛下遠稽前聖而近以皇祖之訓爲法, 則一心克正而遠近莫敢不一於正矣. 伏乞聖照.
시세의 이해로 말한다면 천하의 세력이란 합치면 강해지고 나누면 약해집니다. 그러므로 제갈량(諸葛亮)은 그의 임금에게 고하기를 “궁중(營中)과 부중(府中)은 함께 일체이니 선악의 득실을 상주거나 죄줄 때 다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간사한 짓을 해서 법을 범하거나, 충성하고 선한 행위를 한 자들이 있으면 당연히 담당관[有司]에게 맡겨서 그들의 상벌을 논하여 폐하의 공평하고 밝은 다스림이 환히 밝아지도록 해야지 치우치고 사사로워 안팎의 법도가 달라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때에 소열제(昭烈帝) 부자는 보잘 것 없는 촉(蜀)나라로 천하의 9/10을 상대하면서 중원을 취하여 한나라 왕실을 부흥시키려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제갈량처럼 충성과 지모를 가진 사람이 내어놓은 깊은 계략도 그 술책은 이와 같은 것에 불과했으니, 한 시대에 힘써야 할 일의 핵심을 잘 알고 선왕의 법도와도 합치되었다고 말할 만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촉나라는 작은데 다시 그 가운데서 마치 두 나라가 있는 것처럼 공사로 피차가 나뉘어 두 나라처럼 된다면 이것은 양주와 익주의 절반으로 오나라나 위나라의 전부를 도모하려는 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소인을 가까이 하고 군자를 외면하며, 법령을 폐지하고 간신배를 보호하여 소인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매일 밖의 군자들을 손상시키고, 공적으로 확립된 것이 언제나 그 사사로움을 이기기에 충분치 못하면 (고사의) 두 나라끼리 또 서로를 공격하게 되고 언제나 가까이 하는 사사로운 자들이 이기게 되고, 외면당하는 공정한 자들은 늘 지게 됩니다. 밖으로는 인접한 적의 위협이 있고, 안으로는 음사의 도적이 있어서 밤낮으로 서로 협공하며 쉬지 않는다면 국가는 또한 이미 위태로운 지경이라고 할 것입니다.
若以時勢之利害言之, 則天下之勢合則彊, 分則弱. 故諸葛亮之告其君曰: (2-468)“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若有作姦犯科及爲忠善者, 宜付有司論其刑賞, 以昭陛下平明之理,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當是之時, 昭烈父子以區區之蜀抗衡天下十分之九, 規取中原, 以興漢室. 以亮忠智, 爲之深謀, 而其策不過如此, 可謂深知時務之要而暗合乎先王之法矣. 夫以蜀之小, 而於其中又以公私自分彼此如兩國, 然則是將以梁益之半圖吳魏之全. 又且內小人而外君子, 廢法令而保姦回, 使內之所出者日有以賊乎外, 公之所立者常不足以勝乎私, 則是此兩國者又自相攻, 而其內之私者常勝, 外之公者常負也. 外有鄰敵之虞, 內有陰邪之寇, 日夜夾攻而不置, 爲國家者, 亦已危矣.
의리로 말하면 저와 같고, 이해 관계로 말하면 또 이와 같아서 오늘날의 사태가 만일 속히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저는 폐하의 마음이 비록 현자를 구하느라 노력하더라도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방해를 받게 되면 현인은 반드시 등용되지 않고, 등용되는 자들은 모두 무능력하고 간사하기만 한 자들일까 걱정됩니다. 또 정사를 확립하는데 힘쓰려 하시더라도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막히는 것이 있으면 좋은 정치는 반드시 확립되지 않고 시행되는 것은 모두 아부와 구차한 정사가 될까 두렵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며 재앙의 근본이 양성되고, 후손을 위한 안정된 계책은 원대하지 못하고, 보좌하는 재상의 직분은 닦이지 않아, 기강이 위에서 무너지고, 풍속이 아래에서 무너지면 백성들은 근심하고 군사들은 원망하여, 국가의 힘은 날로 약해질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 못한 재앙이 생긴다면 신은 한심한 마음만 듭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페하께서는 어떻게 그 뒤처리를 제대로 하시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말하는 천하의 큰 근본이 폐하의 한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급하게 바로잡으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제가 지난 번 폐하를 뵙고 아뢴 차자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지금 이후로는 한 마음이 싹틀 때 이것이 천리인가? 인욕인가를 삼가고 살피셔서 과연 천리라면 공경하며 넓히시되 조금이라도 막히는 일이 없게 하시고, 과연 인욕이라면 공경하며 극복하시되 조금이라도 남아있지 않도록 하십시오. 언어와 동작, 사람을 쓰고 일에 처신하는 데에 까지도 이 생각을 미루어서 언제나 이로써 판단하셔야 할 것이니, 옳은 것인줄 알 고 행하시게 되면 행하시면서는 늘 힘이 부족할 것만을 걱정하시고 힘이 지나친 것을 근심하지는 마십시오. 잘못인 줄을 알고 물리치시게 되면 물리치면서는 오직 과감하지 못할까를 걱정하시고 지나치게 과감한 것인가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현명함을 알고서 등용하시면서는 직책을 맡기시면서 전권을 주지 못할까만을 걱정할 것이요, 그들을 모으시면서 많이 모으지 못할까만을 근심하실 것이지, 그들이 파당을 만들지 않을까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못난 줄을 알아 물리치시면서는 물리치면서 오직 빨리 물리치지 못할까를 걱정하시고, 쫓아내면서는 오직 모두 쫓아내지 못할까만을 걱정하실 것이지, 편파적일까를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면 천자의 마음을 깨끗하게 비고 안팎이 환하게 융합해서 조금의 사욕도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고, 천하의 일은 오직 폐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날이 오래되어 원본이 없어졌을 것 같아 다시 갖추어 아룁니다. 바라건대 살펴주십시오)
夫以義理言之旣如彼, 以利害言之又如此, 則今日之事如不蚤正, 臣恐陛下之心雖勞於求賢, 而一有所妨乎此, 則賢人必不得用, 而所用者皆庸繆憸巧之人 : 雖動於立政, 而一有所礙乎此, 則善政必不得立, 而所行者皆阿私苟且之政. 日往月來, 養成禍本, 而貽燕之謀未遠, 輔相之職不脩, 紀綱壞於上, 風俗壞於下, 民愁兵怨, 國勢日卑, 一旦猝有不虞, 臣竊寒心, 不知陛下何以善其後也? 然則臣之所謂天下大本惟在陛下之一心者, 可不汲汲皇皇而求有以正之哉? 臣昨來面奏箚子內一節云: “伏願陛下自今以往, 一念之萌, 則必謹而察之, 此爲天理耶? 爲人欲耶? 果天理也, 則敬以擴之, 而不(2-469)使其少有壅闕 : 果人欲也, 則敬以克之, 而不使其少有凝滯. 推而至於言語動作之間, 用人處事之際, 無不以是裁之, 知其爲是而行之, 則行之惟恐其不力, 而不當憂其力之過也. 知其爲非而去之, 則去之惟恐其不果, 而不當憂其果之甚也. 知其爲賢而用之, 則任之惟恐其不專, 聚之惟恐其不衆, 而不當憂其爲黨也. 知其爲不肖而退之, 則退之惟恐其不速, 去之惟恐其不盡, 而不當憂其有偏也. 如此則聖心洞然, 中外融徹, 無一毫之私欲得以介乎其間. 而天下之事將惟陛下之所爲, 無不如志矣.” 今恐日久, 元本不存, 再此具奏, 伏乞聖照.
태자를 인도하는 것에 대한 말에 이르러 제가 지난 날 말씀드린 “몇 세대의 인”이란 말에서 이미 약간의 단서만을 말씀드리고 감히 다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태자는 천하의 근본이니 인도하고 보좌하는 것 역시 삼가지 않을 수 없음은 「보부전(保傅傳)」에서 자세히 말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성학(聖學)이 높고 밝으시며 고금을 환히 꿰뚫으시니 당연히 제 말을 듣지 않으시고서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일찍이 폐하께서 동궁을 보살피시는 것이 어째서 이리도 소략하게 대하시는 지를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을 통해서 보자면 어찌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소략하다보니 이로 인해 이렇게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염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십붕(王十朋)․진량한(陳良翰) 이후로 동궁을 보좌하는 관리의 선발이 말은 비록 인재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 직책에 어울리는 사람은 이미 드뭅니다. 게다가 때때로 사특하고 말주변이나 능하며, 적은 재주에 경박한 자들과 재주도 없는 못난 자 및 쓸 데 없는 무리배들이 간혹 그 사이에 잡다하게 끼어들었습니다. 강독(講讀)이란 것도 듣기로는 임시나마 규정에 맞추어 사람을 채웠다고 하지만, 태자를 권면하고 경계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조용히 아침저녁으로 곁에서 모시고 함께 어울리는 자들도 시신[使臣]과 환관 몇 몇에 불과할 뿐입니다. 황태자(皇太子)의 슬기로운 성품이 조숙하시고 이치에 대한 탐구도 오래도록 익숙해졌으니 비록 보좌와 인도를 할 필요조차 없는 듯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보존하기 어렵고 기질과 습성은 더럽혀지기 쉽기 때문에 올바름을 익히면 올바르게 되고, 사악함을 익히면 사악하게 됩니다. 이것이 옛 성왕들이 세자(世子)를 가르치면서 반드시 단정하고 정직하며, 도술을 널리 공부한 선비를 선발하여 함께 머무르게 하고, 또 그들에게 사특한 사람을 물리치게 해서, 세자가 악행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언제나 은미한 곳에서 미리 조심시켜 잘못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 바로잡지 않으려는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삼대의 제도를 고증할 길이 없으니 우선 당나라의 육전(六典)으로 논해 보겠습니다. 동궁을 위한 관직에는 사부(師傅)와 빈객(賓客)이 보좌하고 인도하는 직을 맡고 있고, 첨사부(詹事府)․두 춘방(春坊)은 실제로 천자의 삼성(三省)과 비교됩니다. 그러므로 첨사(詹事)와 서자(庶子)로 거느리게 하니 선발에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사부와 빈객은 이미 설치하지 않았고 첨사와 서자도 유명무실하며, 좌우의 춘방도 결국 시신(使臣)에게 관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처럼 심하게 가볍고 무람하게 보는 것입니까? 태자를 세워놓고 사부와 빈객을 두지 않는다면 스승을 높이고 벗과 친하며, 덕을 높이고 의리를 기꺼이 여기는 마음은 생길 수 없고, 오로지 춘방의 시신들만이 좌우에서 시종들게 하면 장난기며 태만함이며, 버릇없음이며 요사스런 자들이 가까이 뒤섞이는 폐해를 방지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이미 작은 일이 아닙니다. 나아가 황손(皇孫)께서는 덕행과 성품이 뚜렷이 확정되지 않았고, 견문도 아직 넓지 않아 또한 황태자와 비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양(保養)에 관해서 갖추어야 할 것들을 더욱 엄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관속은 더욱 갖추어지지 못했고, 전담토록 책임을 지우지도 않으니 어찌 일을 떠맡은 자에게 또 생각지 못함이 있어서이겠습니까?
至於輔翼太子之說, 則臣前日所謂數世之仁者, 蓋已微發其端, 而未敢索言之也. 夫太子, 天下之本, 其輔翼之不可不謹, 見於保傅傳者詳矣. 陛下聖學高明, 洞貫今古, 宜不待臣言而喩. 然臣嘗竊怪陛下所以調護東宮者, 何其疏略之甚也? 由前所論而觀之, 豈非所以自治者猶未免於疏略, 因是亦以是爲當然而不之慮耶? 夫自王十朋․陳良翰之後, 宮寮之選, 號爲得人, 而能稱其職者, 蓋已鮮矣. 而又時使邪佞儇薄․闒冗庸妄之輩或得參錯於其間, 所謂講讀, 聞亦姑以應文備數, 而未聞其有箴規之效. 至於從容朝夕, 陪侍游燕者, 又不過使臣宦者數輩而已. 皇太子睿性夙成, 閱理久熟, 雖若無待於輔導, 然人心難保, 氣習易汙, 習於正則正, 習於邪則邪. 此古之聖王敎世子者, 所以必選端方正直․道術博聞之士與之居處, 而又便使之逐去邪人, 不使見惡行, 蓋常謹之於微, 不待其有過而後規也. 今三代之(2-470)制雖不可考, 且以唐之六典論之. 東宮之官, 師傅․賓客旣職輔導, 而詹事府․兩春坊實擬天子之三省, 故以詹事庶子領之, 其選甚重. 今則師傅․賓客旣不復置, 而詹事庶子有名無實, 其左右春坊遂直以使臣掌之, 何其輕且褻之甚耶! 夫立太子而不置師傅․賓客, 則無以發其隆師親友․尊德樂義之心. 獨使春坊使臣得侍左右, 則無以防其戱慢媟狎․奇衺離進之害. 此已非細事矣. 至於皇孫德性末定, 聞見未廣, 又非皇太子之比, 則其保養之具尤不可以不嚴. 而今日之官屬尤不備, 責任尤不專, 豈任事者亦有所未之思耶?
생각건대 마땅히 대신들에게 간곡히 조칙을 내려 이전의 전장 제도를 토론하게 하여, 동궁에게는 이미 관직을 마련해 둔 것을 제외하고, 따로 사부․빈객의 관직을 설치해서 밤낮으로 그들과 함께 노닐며 함께 생활하게 하십시오. 춘방의 시신들을 내어 쫓으시고 첨사와 서자의 직책을 각각 회복시켜 주십시오. 동궁 안의 일은 말 한 마디를 들이거나, 명령 하나를 내는 것을 반드시 이들을 통한 다음에 서로 소통되게 하십시오. 또 간관(諫官)과 비교할 수 있는 찬선대부(贊善大夫)를 설치해서 잘못을 꾸짖게 하십시오. 왕부(王府)에 대해서는 마땅히 육전 가운데 친왕의 제도를 조금 본떠서 부우(傅友)․자의(咨議)를 설치해서 훈도하는 일을 맡게 하고, 장사(長史)와 사마(司馬)를 설치해서는 다른 여러 직책을 총괄하게 하십시오. 나이 많고 덕 있는 사람만을 선발하고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은 섞여지지 않게 하십시오. 모두 정원으로만 채우고 겸직시키지 말아서 자신들의 직책을 밝혀 공효의 책임을 지운다면 관속은 대략 갖추어진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또 때때로 부르셔서, 폐하를 모시고 노닐도록 하고 조용조용히 깨우쳐 주십시오. 옛 성왕들이 마음을 바로잡고, 몸을 닦으며, 천하를 다스렸던 요체 외에 폐하께서 시행하시면서 효과를 거둔 것과 힘써 본받고자 했으나 하지 못했던 것, 후회하고는 있지만 거기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과 함께 모두 나열해서 일러준다면 태자[聖子]와 황손[神孫] 모두가 폐하께서 마음으로 전하시려는 핵심을 알게 되고, 종사의 평안과 계통을 따라 내려온 왕업의 견고함이 영원토록 끝없이 드리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급선무 가운데 하나입니다.(제가 삼가 살펴보니 요즘에 폐하께서 황태자에게 뭇 정사에 참여해 결재하게 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장차 황태자에게 시시때때로 국가 정사의 득실을 알게하시려는 폐하의 깊은 심려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태자에게 일처리를 익히게 하는 것 보다는 덕을 닦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황태자께서 춘궁에더 덕을 기른 지 거의 20여년이 되었으니 천하의 일에 대해서는 따로 익히지 않더라도 익숙하실 것입니다. 오직 걱정되는 것은 마음을 바로잡고 덕을 닦는 학문이 지극하지 못해서 물욕의 사특함에 얽매인다면 비록 정사를 익혔다고 하여도 간혹 스스로 취사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될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보좌와 양육이 지극하지 못한 것은 다른 것이 있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폐하께서 다시금 여기에 유의해 주시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바라건대 살펴 주십시오.)
謂宜深詔大臣, 討論前代典故, 東宮除今已置官外, 別置師傅․賓客之官, 使與朝夕遊處. 罷去舂坊使臣, 而使詹事庶子各復其職. 宮中之事, 一言之人, 一令之出, 必由於此而後通焉. 又置贊善大夫, 擬諫官以箴闕失. 王府則宜稍放六典親王之制, 置傅友․咨議以司訓導, 置長史․司馬以總衆職, 妙選耆德, 不雜他材, 皆置正員, 不爲兼職, 明其職掌, 以責功效, 則其官屬已略備矣. 陛下又當以時召之, 使侍燕遊, 從容啓迪. 凡古先聖王正心脩身․平治天下之要, 陛下之所服行而已有效, 與其勉慕而未能及, 愧悔而未能免者, 傾倒羅列, 悉以告之, 則聖子神孫皆將有以得乎陛下心傳之妙, 而宗社之安․統業之固可以垂於永久而無窮矣. (2-471)此今日急務之一也. 臣伏見比者聖詔令皇太子參決庶務, 此見聖慮之深, 將使皇太子以時習知國家政事之得失也. 然臣之愚見, 則以爲使之習事, 不若勉其脩德. 况今皇太子育德春宮幾二十年, 其於天下之事, 蓋不待習而無不熟矣. 獨恐正心脩德之學未至, 而於物欲之私未免有所係累, 則雖習於其事, 而或不能自決於取舍之間. 故臣竊論輔養之未至者, 非有他也, 但欲陛下更留聖意於此而已. 伏乞聖照.
대신을 가려 뽑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제가 앞에서 ‘현자를 구하려 애쓰지만 현자들이 등용되지 못한다’고 말한 대목에서 이미 그 단서를 말씀드렸습니다. 반드시 강명․공정한 인물을 얻은 후에야 천하의 일들을 맡길 수 있음을 총명하신 폐하께서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나 항상 이러한 인물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지위나 탐내는 천박한 인간들을 용납하게 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다만 한 생각 한 생각 사이에 아직 사사롭고 사특한 마음을 물리치지 못하여,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총애하는 측근들을 모두 법도대로 뽑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강명정대한 인물을 등용하여 대신이나 재상을 삼는다면 그 때문에 내 일에 방해되고 내 사람들을 해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지 못할까 두려워해서입니다. 이 때문에 인선을 할 때에, 항상 강명정대한 사람을 먼저 물리쳐 도외시한 다음에, 보통 때는 감히 직언도 못하고 정색도 못하는 나약하고 남의 의중이나 헤아려 비위나 맞추려는 자들을 선출하면서도 또 그 중에서도 지극히 평범하고 비루하여 절대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된 연후에야 천거하여 벼슬자리를 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임명장이 나오기도 전에 인물들은 미리 정해져 있고, 성명이 공표되기도 전에 이미 안팎의 사람들은 임명될 자가 결코 천하의 일류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폐하의 영명하고 강단(剛斷)한 자질이 세상에 다시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보좌하기 위해 선택한 자들은 급암(汲黯)․위징(魏徵)같은 사람과 비교할만한 자들이 없고, 언제나 그 반대로 진회(秦檜)의 만년에 집정(執政)이나 대간을 맡았던 자들과 같은 사람만을 등용하고 계십니다. 저들은 신하된 자로서 국가의 권력을 훔치고서는 충성스런 말이 군주를 깨우쳐 자신들의 간사한 짓이 들통 날까 두려워합니다. 때문에 오직 이런 무리만을 등용시켜서 현자들이 등용되는 길을 막고, 군주의 마음을 가리려 하는 것은 그 형세상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엄히 제왕의 자리에 앉아 위엄으로 벌을 내리고 복록으로 상을 내리시는 것을 마음대로 행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터에 또 무엇을 이들 무리에 힘입을 것이 있어 그들과 천하의 정사를 함께하여 자신의 총명함을 스스로 가리고, 기강을 스스로 무너뜨려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 피해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까?
至於選任大臣之說, 則臣前所謂勞於求賢而賢人不得用者, 蓋已發其端矣. 夫以陛下之聰明, 豈不知天下之事必得剛明公正之人而後可任也哉? 其所以常不得如此之人, 而反容鄙夫之竊位者, 非有他也, 直以一念之間未能撤其私邪之蔽, 而燕私之好․便嬖之流不能盡由於法度, 若用剛明公正之人以爲輔相, 則恐其有以妨吾之事, 害吾之人而不得肆, 是以選掄之際, 常先排擯此等, 寘之度外, 而後取凡疲懦軟熟․平日不敢直言正色之人而揣摩之, 又於其中得其至庸極陋, 決可保其不至於有所妨者, 然後擧而加之於位, 是以除書未出而其物色先定, 姓名未顯而中外已逆知其決非天下之第一流矣. 故以陛下之英明剛斷, 略不世出, 而所取以自輔者, 未嘗有如汲黯․魏徵之比, 顧常反得如秦檜晩年之執政․臺諫者而用之. 彼以人臣竊國柄, 而畏忠言之悟主, 以發其姦也, 故專取此流以塞賢路․蔽主心, 乃其勢之不得已者. 陛下尊居宸極, 威福自己, 亦何賴於此輩而乃與之共天下之政, 以自蔽(2-472)其聰明, 自壞其綱紀, 而使天下受其弊哉?
폐하께서 등용하는 것이 이와 같기 때문에 선발이 정밀하지 못하고, 선발이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책임지우는 것이 막중할 수 없습니다. 책임지우는 것이 막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들이 자임하는 것 역시 가볍습니다. 지극히 용렬한 재주로 지극히 가벼운 임무를 책임지우면 비록 이름은 대신(大臣)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폐하의 뜻이나 앞서서 받들고[供給唯諾] 문서나 받들어 행하면서 자신의 자리와 지위를 잃지 않으려 하기를 마치 이졸들처럼 행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자들이 천자의 덕을 보좌하고 조정을 닦아서 기강을 진작시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혜로운 이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반드시 불가능한 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래로 한 등급이 더 내려가면 오직 간사한 사기나 일삼고 패거리나 만들며 뇌물이나 받아먹으면서 폐하의 조정을 어지럽히려는 자들뿐입니다. 더욱 심한 자들은 1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진상이 드러나 쫓겨납니다. 그러나 그 뒤에 늘어서서 쫓겨난 자의 자리에 앉기를 바라는 자들도 이런 종류의 인간에 불과합니다. 대간이나 시종으로 삼은 자들에 대한 선발이 이미 이와 같은데 그 뒤에 또 더욱 녹녹한 자들을 가려서 등용했으니, 폐하께서 늘 천하의 뛰어난 인재를 얻어 그에게 관직을 맡기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夫其所以取之者如此, 故其選之不得而精. 選之不精, 故任之不得而重. 任之不重, 則彼之所以自任者亦輕. 夫以至庸之材, 當至輕之任, 則雖名爲大臣, 而其實不過供給唯諾, 奉行文書, 以求不失其窠坐資級, 如吏卒之爲而已. 求其有以輔聖德․脩朝政而振紀綱, 不待智者而知其必不能也. 下此一等, 則惟有作姦欺․植黨與․納貨賂, 以濁亂陛下之朝廷耳. 其尤甚者, 乃至十有餘年而後敗露以去. 然其列布於後, 以希次補者, 又已不過此等人矣. 蓋自其爲臺諫․爲侍從而其選已如此, 其後又擇其尤碌碌者而登用之, 則亦無怪乎陛下常不得天下之賢材而屬任之也.
그러나 그들을 등용했던 초기에 또한 “우선 내 사사로운 것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고 하셨으니, 어찌 그것이 이처럼 천하의 공정함에 해를 끼칠 줄을 알았겠습니까? 폐하께서 시험삼아 이 마음에 돌이켜서 구해보신다면 거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좋아할 만한 점이 있는가를 찾지 마시고 두려워할 만한 점이 있는가를 찾으시며, 그들이 내 뜻에 들어맞는 것이 있는가를 추구하지 마시고 나의 덕을 보좌할 만한 것이 있는가를 추구하시고, 그들이 자임하는 것이 막중해 함이 없다는 것을 걱정하지 마시고 언제나 내가 저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막중하지 못했는가를 걱정하시며, 개인적인 안락과 측근을 위한 한 때의 계획을 세우지 마시고 종사와 백성을 위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십시오. 폐하께서 진정으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선발하시고 이러한 생각으로 책임을 지우면서도 ‘내가 적당한 사람을 얻지 못했다’고 말하신다면 신은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급선무 가운데 두 번째입니다.
然方用之之初, 亦曰姑欲其無所害於吾之私而已. 夫豈知其所以害夫天下之公者, 乃至於此哉? 陛下試反是心以求之, 則庶幾乎得之矣. 蓋不求其可喜而求其可畏, 不求其能適吾意而求其能輔吾德, 不憂其自任之不重而常恐吾所以任之者之未重, 不爲燕私近習一時之計而爲宗社生靈萬世無窮之計, 陛下誠以此取之, 以此任之, 而猶曰不得其人, 則臣不信也. 此今日急務之二也.
기강을 진작하고 풍속을 변화시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정치를 확립하려 애쓰는데도 좋은 정치가 끝내 확립되지 않는다”는 말에서 이미 그 단서를 열어두었습니다. 폐하의 마음이 걱정하고 애쓰면서 다스려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어찌 기강을 진작하고 풍속을 교화하고자 않으시겠습니까! 다만 한 마음 한 마음 사이에 사사로운 생각이 가리는 것을 없애지 못해서입니다. 때문에 위로 조정에는 충신과 간신이 뒤섞여 있고, 형벌과 포상이 나뉘지 않으며, 대부들 사이에는 뜻과 지향이 낮고 더러우며, 염치는 무너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만 오히려 사리의 당연함이라고 여기고 다시 바로잡아 개혁하기에 진작하여 힘쓰려는 것이 없습니다. 마음 속에서 분명해진 뒤에 외면을 가지런하게 할 수 있고, 자기에게 과실이 없는 다음에야 남을 비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궁궐과 삼성 사이, 깊고 은밀한 궁궐에 천하의 공정치 못한 도와 바르지 못한 사람이 도리어 굴을 파고 그 사이에 웅거해 있으니, 폐하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모두 공정치 못하고 바르지 못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 훈습되고, 거기에 녹아내려서 폐하께서 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만들고, 악을 질시하는 의지가 깊지 못하게 만드니, 그 폐해는 이미 말로 다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들의 간사한 짓과 범범 행위에 미쳐서는 폐하께서 또 깊이 사적인 애정을 끊어내시고 외정의 의론에 맡겨서 해당하는 법으로 논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강이 꺾이고 무너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외정(外廷)에 맡기신다고 한 것조차도 역시 외정에서는 이로 인하여 깊이 조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至於振肅紀綱․變化風俗之說, 則臣前所謂勤於立政而善政卒不得立者, 亦已(2-473)發其端矣. 夫以陛下之心憂勤願治, 不爲不至, 豈不欲夫綱維之振․風俗之美哉? 但以一念之間未能去其私邪之蔽, 是以朝廷之上忠邪雜進, 刑賞不分, 士夫之間志趣卑汙, 廉耻廢壞, 顧猶以爲事理之當然, 而不思有以振厲矯革之也. 蓋明於內然後有以齊乎外, 無諸己而後可以非諸人. 今宮省之間, 禁密之地, 而天下不公之道․不正之人顧乃得以窟穴盤據於其間, 而陛下目見耳聞, 無非不公不正之事, 則其所以熏蒸鎖鑠, 使陛下好善之心不著, 疾惡之意不深, 其害已有不可勝言者矣. 及其作姦犯法, 則陛下又未能深割私愛而付諸外廷之議, 論以有司之法, 是以紀綱不能無所撓敗, 而所以施諸外者, 亦因是而不欲深究切之.
우선 예를 들자면, 몇 년 전에 방백(方伯)과 연수(連帥)가 불법적인 뇌물을 받았다고 보고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문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군의 지사를 제수한다는 명이 있었습니다. 대간이 불가하다고 말하고서야 결국 사록[祠祿]을 내려주었으나, 그것조차도 당사자가 스스로의 사록을 청한 경우처럼 처리하셨습니다.[理爲自陳] (이 자는) 심지어 과실을 저지른 자를 숨겨주면서, 체포해서 옥에 넘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명목상으로는 관직의 강등이라지만 실제로는 그 일을 유야무야 처리한 것입니다. 이것은 재상이 고향 사람을 비호하여 폐하를 속인 것입니다. 저는 폐하께서 완전히 그의 속임수를 깨닫지 못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반드시 인정에는 각기 사사로운 영역이 있게 마련이니, 내가 나의 사사로움을 달성하고 싶듯이 저도 역시 저의 사사로움을 달성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군신 사이에 낯을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정리가 오래되다 보면 그 형세상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용납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또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일에 크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강을 무너뜨려 안팎으로 사태가 알려져 입으로는 말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잘못이라 여기는 시골의 의론이 모두 조정을 경멸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간사한 서리들은 모두 고무되어 서로 환호하면서 다시는 폐하의 법령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모르신다면 이는 또한 작은 일이 아닙니다.
且如頃年方伯連帥嘗以有贓汙不法聞者矣, 鞠治未竟而已有與郡之命. 及臺臣有言, 則遂與之祠祿而理爲自陳. 至於其所藏匿作過之人, 則又不復逮捕付獄, 名爲降官, 而實以解散其事. 此雖宰相曲庇鄕黨以欺陛下, 然臣竊意陛下非全然不悟其欺者, 意必以爲人情各有所私, 我旣欲遂我之私, 則彼亦欲遂彼之私, 君臣之間, 顔情稔熟, 則其勢不得不少容之. 且以爲雖或如此, 亦未至甚害於事, 而不知其敗壞綱紀, 使中外聞之, 腹非巷議, 皆有輕侮朝廷之心, 姦贓之吏, 則皆鼓舞相賀, 不復畏陛下之法令, 則亦非細故也.
또 조정의 신하들이 배향의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한 일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시비곡절이 당연히 내재해 있는 데에도, 논쟁의 당사자인 두 사람을 모두 따져 묻지도 않고 함께 외직으로 물리쳐 버렸습니다. 감사들이 사적 감정을 품구 군수를 모함하면 그 내용을 묻지 않고 둘 다 모두 파면시켜버리고, 감사가 술에 취해 군수를 능멸하면 또 내용을 묻지 않고 두 사람 모두에게 사관(祠官)을 줍니다. 그런데 재상이 당파를 만들고 사적인 것을 도모하며 맡은 임무를 저버리면 곡진하게 보전해서 떠나가게 해주고, 대간들이 그 사적인 은례를 마음속에 품고서 남몰래 팔짱만 끼고 말하지 않는 데에도, 폐하 역시 책임을 묻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처음에 낮은 관리로 시작해서 대간으로 발탁된 3, 4년 동안 부화뇌동하면서 남의 뜻에 영합하려 할 뿐[趨和承意] 한 가지 일도 건백(建白)한 일이 없는데에도 해마다 새로운 관직이 제수되고, 자리를 옮겨서 최고의 자리에 이릅니다. 어느 날 한 두 무신의 죄악을 언급하면 바로 군수로 쫓아내면서 직명(職名)조차 주지 않습니다.
종신(從臣)이 가까이는 동기(東畿)를 맡아 다스리고 멀리는 서촉(西蜀)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한 번 유언비어를 당하면 낱낱이 조사해서 숨겨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조사해서 보고한 내용이 조정에 보고되면,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는데도 말한 자[言之者]는 편안하게 한 마디 꾸지람도 듣지 않습니다. 산릉을 담당한 여러 벼슬아치들이 또 (산릉과 관계된) 빈 벼슬자리를 팔고, 서리와 백성들을 괴롭히고 번거롭게 했다는 어사의 말이 있었음에도 또한 내보내지 않고, 혹은 거꾸로 자품을 뛰어넘어 천거되기 까지 했습니다. 어사가 또 기내(畿內)의 조사에 대해 언급하면 명목상으로는 어사를 경의 반열로 올려주지만 실제로는 어사의 권한을 빼앗아버리고, 어사가 언급한 자는 비록 형량을 헤아려 내쫓거나 강등시키지만 연이어 벼슬을 올려 등용하고 있습니다.(제가 살펴보니 근년에 오직 폐하께서 측근들을 주관하는 한 가지 일에서만 신상필벌에 조금의 가차도 없으셨고, 나머지 모든 일에 대해서는 대부분 용납하시기만 힘쓰시고 옳고 그름과, 곧고 굽은 것에 대해서 둘 다 묻지를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듣기로는 폐하의 뜻은 이처럼 처리해야 균형과 공평[均平]을 얻는 일이고 이것이 진실로 요순처럼 마음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대해 의문이 있습니다. 만일 근본을 미루어 추측하는 일이라면 제가 본래 앞서 이미 망령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만 ‘공평[平]’이란 한 글자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저는 주역 (겸(謙)괘의) 「상전」에서 ‘사물을 저울질해서 공평하게 베푼다[稱物平施]’는 말에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고대에 공평함을 원했던 사람은 반드시 그 사물의 크기와 높이를 저울질해서 그 베푸는 것의 많고 적음과, 두텁고 박하게 함을 정한 다음에야 공평함이 얻어졌습니다. 만일 옳고 그름, 곧고 굽은 것을 따지지 않고 똑같이 대하신다면 선한 사람은 언제나 뜻을 펴지 못하고, 악한 자는 도리어 요행수로 처벌을 면하게 되니, 이것을 공평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것이 바로 크게 공평치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순과 같은 치세에도 이미 팔원(八元)․팔개(八凱)를 들어 쓰고, 공공(共工)․환두(驩兜)를 내쫓았습니다. 이것은 또 주역 (대유(大有)괘의) 「상전」에서 말하는 ‘악(惡)을 막고 선(善)을 선양하며 하늘의 아름다운 명령을 따른다.[遏惡揚善 順天休命]’는 것이기도 합니다. 선(善)이란 천리의 본연이요, 악이란 인욕의 사특하고 망령한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하늘의 도는 선행에 복을 주고 악행에 화를 주고서도, 또 상벌의 권한을 사목에게 주어서, 사목으로 하여금 하늘이 내리는 화복이 미치지 못한 곳을 보조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군주가 된 자는 어찌 신중하게 그 병권을 잡고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봉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깊이 유의해 주십시오.) 시종의 반열 가운데는 현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더욱 섞여 있습니다. 개중에는 한 해가 다가도록 입을 닫고서 천자를 돕는 말 한 마디 못하는 자는 오히려 무리를 지어 패거리를 이루고 잇달아 빈자리를 꿰찹니다. 그 가운데서도 더욱 심한 자들은 제가 앞에서 진달한 것과 같은 유언비어를 만들고, 제멋대로의 이론을 세우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재상은 그들의 흉폭함을 겁내서 거꾸로 공의를 굽히고 그들을 따르고, 대간도 폐하에게 보고해서 그들을 죄줄 것을 청하지 않습니다.(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옛 성왕들은 철인(哲人)을 구해서, 후사를 돕도록 했습니다. 오늘날은 바로 널리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구해서 반열에 두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 자들의 지향과 절조는 신중치 못해서, 자신의 몸이 해를 입을까 두려워해서 몰래 참소하고 은닉하며, 공공연하게 상대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여 그 간사한 모의를 이루고, 국가를 위한 계책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은밀히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폐하께서는 이런 기강을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몸에 돌이켜서 속히 진작시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474)又如廷臣爭議配享, 其間邪正曲直, 固有所在, 則兩無所問而幷去之. 監司挾私以誣郡守, 則不問其曲直而兩皆罷免. 監司使酒以凌郡守, 亦不問其曲直而兩皆與祠. 宰相植黨營私, 孤負任使, 則曲加保全, 而使之去. 臺諫懷其私恩, 陰拱不言, 而陛下亦不之問也. 其有初自小官擢爲臺諫, 三四年間, 趨和承意, 不能建明一事, 則年除歲遷, 至極其選. 一日論及一二武臣罪惡, 則便斥爲郡守, 而不與職名. 從臣近典東畿, 遠帥西蜀, 一遭飛語, 則體究具析, 無所不至. 及究析來上, 而所聞不實, 則言之者晏然, 一無所訶. 山陵諸使 鬻賣辟闕, 煩擾吏民, 御史有言, 亦無行遣, 而或反得超遷. 御史言及畿漕, 則名補卿列而實奪之權. 其所言者, 則雖量加絀削, 而繼以進用. 臣伏見近年惟有主張近習-事, 賞信罰必, 無所假借, 自餘百事多務含容, 曲直是非, 兩無所問. 似聞聖意以謂如此處置, 方得均平, 此誠堯舜之用心也. 然臣於此竊有疑焉. 若推其本, 則臣固已妄論於前. 只據‘平’之一字而言, 則臣於易象‘稱物平施’之言竊有感也. 蓋古之欲爲平者, 必稱其物之大小高下而爲其施之多寡厚薄, 然後乃得其平. 若不問其是非曲直而待之如一, 則是善者常不得伸而惡者反幸而免, 以此爲平, 是乃所以爲大不平也. 故雖堯舜之治, 旣擧元凱, 必放共兜. 此又易象所謂‘遏惡揚善, 順天休命’者也. 蓋善者天理之本然, 惡者人欲之邪妄. 是以天之爲道, 旣福善而禍淫, 又以賞罰之權寄之司牧, 使之有以補助其禍福之所不及. 然則爲人君者, 可不謹執其柄而務有以奉承之哉? 伏(2-475)惟陛下深留聖意. 從班之中, 賢否尤雜, 至有終歲緘黙, 不聞一言以裨聖聽者, 顧亦隨羣逐隊, 排連儹補. 其桀黠者乃敢造飛語․立橫議如臣前所陳者, 而宰相畏其凶焰, 反撓公議而從之, 臺諫亦不敢以聞於陛下而請其罪. 臣聞古先聖王敷求哲人, 俾輔後嗣, 然則今日正是博求賢能, 置之列位之時. 而此人趣操不謹, 懼爲身害, 乃敢陰爲讒慝, 公肆劫持, 遂其姦謀, 不爲國計. 欲望聖慈密賜宣問. 陛下視此綱紀爲如何? 可不反求諸身而亟有以振肅之耶?
위에서 기강이 진작되지 않기 때문에 풍속은 아래에서 무너져갑니다. 이미 근심이 된 지가 오래입니다. 그 중에서도 절강성 지방이 가장 심합니다. 대부분 부드럽고 좋은 자태나, 의지하고 아부하는 말에 익숙해져 시비를 분별하지 않고 곡직을 변별하지 않는 것을 좋은 계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면서는 본시 조금도 윗사람의 뜻을 어기려 하지 않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면서는 조금도 인정에 거슬리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이 뜻하는 것에 대해서는 천 갈래 만 갈래나 되는 갖가지 방법으로 경영하고 헤아려서 반드시 뜻한 대로 얻은 다음에야 그만둡니다. 심지어는 금붙이[金珠]를 아침저녁 밥상에 오르는 포나 젓갈[脯醢]처럼 수없이 뇌물로 뿌리고, 뇌물을 약속하는 문서를 늘상 주고받는 시문(詩文)처럼 보내기도 합니다. 재상이 받을 것 같으면 재상에게 보내고, 가까운 측근이 통할 것 같으면 측근과 통합니다. 오직 자신이 추구하는 것만 얻으려 할 뿐 다시 염치라고는 없습니다. 아비가 자식에게 알려주고, 형은 동생에게 권하는 것이 한결 같이 이런 방법을 쓰라는 것이요, 다시 충의와 명절이 귀하다는 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 풍속이 이미 형성된 후에는 비록 현인과 군자라도 그런 주장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굳세고 정직하며, 도리를 지키고 따르는 선비가 그 사이에서 나오기라도 하면 무리를 지어 꾸짖고 비난하면서 도학(道學)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지목하면서 교격(矯激)하다는 죄를 더하고는 위로는 천자를 오도하고 아래로는 세상의 풍조를 고무시킵니다. 위로는 조정에서 아래로는 향리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이 두 글자로 세상의 현인과 군자들을 얽어매고 구금해서, 마치 숭정․선화 연간에 ‘원우학술(元祐學術)이라고 불렀던 것의 재판이 된 듯합니다. 물리치고 욕하고 꾸짖어서 반드시 그 몸을 둘 곳조차 없게 한 다음에 그칩니다. 아아! 이것이 어찌 치세의 일이겠습니까? 차마 다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綱紀不振於上, 是以風俗頹弊於下, 蓋其爲患之日久矣, 而浙中爲允甚. 大率習爲軟美之態․依阿之言而以不分是非․不辨曲直爲得計, 下之事上, 固不敢少忤其意, 上之御下, 亦不敢稍咈其情. 惟其私意之所在, 則千塗萬轍, 經營計較, 必得而後已. 甚者以金珠爲脯醢, 以契券爲詩文, 宰相可啗則啗宰相, 近習可通則通近習, 惟得之求, 無復廉耻. 父詔其子, 兄勉其弟, 一用此術, 而不復知有忠義名節之可貴. 其俗已成之後, 則雖賢人君子亦不免習於其說, 一有剛毅正直․守道循理之士出乎其間, 則羣譏衆排, 指爲道學之人而加以矯激之罪, 上惑聖聰, 下鼓流俗. 蓋自朝廷之上以及閭里之間, 十數年來, 以此二字禁錮天下之賢人君子, 復如崇․宣之間所謂元祐學術者, 排擯詆辱, 必使無所容措其身而後已. 鳴呼, 此豈治(2-476)世之事而尙復忍言之哉!
또 심한 경우에는 감히 뭇 사람들에게 외워 말하기를 폐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천하에는 다행히도 변고가 없으니 비록 절의를 위해 죽는 선비가 있다한들 또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한 번 전파되자 식자들의 큰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만 저는 이것이 반드시 폐하의 말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절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비는 별다른 일이 없는 평상시에는 참으로 쓸 곳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옛 군주들이 반드시 급하게 이런 사람을 찾았던 것은 이런 사람이 환난을 만나 생사를 도외시한다면 평온한 세상에서는 작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환난을 만나서 충절을 다 발휘할 수 있다면 평상시에는 반드시 시비를 따지지 않고 남을 좇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이 없는 평시에 이런 사람을 얻어서 등용하면 위에서는 인군의 마음이 바로잡히고, 아래에서는 풍속이 아름다워져, 간사한 싹이 끊기고, 재앙의 근본이 없어져 저절로 절의를 위해 죽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반드시 훗날 변고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미리 이런 사람을 길러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평소에 스스로 무사태평한 것만을 믿고서 곧 이런 인재는 반드시 쓸 곳이 없다고 하고, 오로지 한 무리의 도리도 없고, 학식도 없으며, 작록이나 중하게 여기고, 명의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을 선택하고서, 교격한 짓을 힘쓰지 않는다고 해서 존중하고 총애한다면, 이 때문에 기강은 날로 무너지고 풍속은 날로 구차해져 비상한 재앙이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하루아침에 뜻밖의 곳에서 발생하면 평상시 등용해 쓰던 자들은 두 손을 얌전히 모은 채로 적에게 항복해 버리고 단 한 사람도 환난을 같이할 사람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된 다음에야 지난 날 버림을 받고 유랑하던 사람이 비로소 다시 불행하게도 충절과 의리의 절개를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又其甚者, 乃敢誦言於衆, 以爲陛下嘗謂今日天下幸無變故, 雖有伏節死義之士, 亦何所用. 此言一播, 大爲識者之憂, 而臣有以知其必非陛下之言也. 夫伏節死義之士, 當平居無事之時, 誠若無所用者. 然古之人君所以必汲汲以求之者, 蓋以如此之人臨患難而能外死生, 則其在平世必能輕爵祿 : 臨患難而能盡忠節, 則其在平世必能不詭隨. 平日無事之時得而用之, 則君心正於上, 風俗美於下, 足以逆折姦萌, 潛消禍本, 自然不至眞有伏節死義之事, 非謂必知後日當有變故而預蓄此人以擬之也. 惟其平日自恃安寧, 便謂此等人材必無所用, 而專取一種無道理․無學識․重爵祿․輕名義之人, 以爲不務矯激而尊寵之, 是以綱紀日壞, 風俗日偸, 非常之禍伏於冥冥之中, 而一旦發於意慮之所不及, 平日所用之人交臂降叛而無一人可同患難, 然後前日擯棄留落之人始復不幸而著其忠義之節.
천보의 난[天寶之亂]을 예로 들어 살펴본다면, 장군과 재상, 지위높은 인척들과 가까이 총애했던 신하들은 모두 이미 적의 군영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군대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가 결국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일가친족들까지 죽임을 당하면서도 후회하지 않았던, 장순(張巡)․허원(許遠)․안고경(顔杲卿) 같은 이들은 모두가 먼 지방의 작은 읍에 살던 자들로 군주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가령 명황(明皇: 당 현종)이 일찍이 장순 등을 얻어서 등용했다고 한다면 어찌 난리의 조짐이 싹트기 전에 그것을 없애지 못했겠습니까! 장순 등이 명황에게 일찍이 등용되었더라면 또 어떻게 참으로 절의를 위해 죽는 일이 있기나 했겠습니까. ‘은나라가 교훈으로 삼을 역사적 거울은 하나라 시대의 정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의논하는 사람들이 깊이 혹자의 말을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비록 저는 폐하께서 높고 밝은 성학(聖學)과 깊고 먼 식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결코 이러한 의론이 일어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으실 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소인배들이 성현의 가르침에 가탁해서 자신들의 간사함을 감추고, 그 피해가 천하의 중신과 의사들의 기개를 깊이 저해하는 데에까지 이르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려 식자들의 걱정을 지나친 걱정이라고 여길 수가 없게 됩니다. 폐하께서는 이 풍속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몸에서 되돌려 구하여 속히 변혁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것이 오늘날 급선무 가운데 세 번째와 네 번째입니다.
以天寶之亂觀之, 其將相貴戚近幸之臣皆已頓顙賊庭, 而起兵討賊, 卒至於殺身湛族而不悔, 如巡․遠․杲卿之流, 則遠方下邑, 人主不識其面目之人也. 使明皇早得巡等而用之, 豈不能銷患於未萌? 巡等早見用於明皇, 又何至眞爲伏節死義之擧哉? 商鑒不遠, 在夏后之世, 此議者所以深憂於或者之言也. 雖以臣知陛下聖學高明, 識慮深遠, 決(2-477)然不至有此議論, 然每念小人敢託聖訓以蓋其姦, 而其爲害至於足以深沮天下忠臣義士之氣, 則亦未嘗不痛心疾首, 而不敢以識者之慮爲過計之憂也. 陛下視此風俗爲如何? 可不反求諸身而亟有以變革之耶? 此今日急務之三․四也.
백성의 힘을 아껴 양성하고, 군정을 닦아 밝힌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백성들의 힘이 넉넉하지 못한 것은 극복하지 못한 사심에서 생겨나서 재상과 대간이 직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군정이 닦이지 않은 것은 극복하지 못한 사심에서 나오나 가까운 측근들이 장수의 직함을 도모하는 데에 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 몇 가지 주장은 제가 이미 앞에서 극진하게 진달했습니다. 지금은 백성들의 힘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에서 출발해서 미루어 말씀드리겠습니다.
至於愛養民力․修明軍政之說, 則民力之未裕, 生於私心之未克, 而宰相臺諫失職也. 軍政之未修, 生於私心之未克, 而近習得以謀帥也. 是數說者, 臣皆已極陳於前矣. 今請卽民力之未裕而推言之.
제가 듣기로는 우윤문(虞允文)이 재상이 되어 호조의 한 해 세입의 명목 가운데 반드시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취해서, 1년 회계의 나머지 수라고 호칭하고 내탕고에 넣었습니다. 그것들 가운데 명목만 있고 실질은 없으며, 몇 년 동안 누적된 부족분과 헛되이 장부에만 기재되었을 뿐 독촉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호조에 귀속시켰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내탕고에 비축한 것은 장차 훗날 군대를 동원하거나, 뜻밖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요, 호조가 오늘날의 경비로서 이미 세입의 액수를 잃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진실로 달콤하고 또 좋습니다. 그러나 이후로 20여 년 동안 내탕고로 해마다 들어간 것이 얼마인지 알 수 없는데, 게다가 사적인 저축이라고 여겨 일개 사인에게 감독하게 하고서는, 재상은 관례와 공물로서 내탕고의 재물이 드나드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호조는 장부와 기록을 가지고서도 재물들이 제대로 있는지 없는 지를 조사하지 못합니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나면서 줄어들고 없어지며 또 개인적인 안락의 비용으로 충당되는 것이 또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찌 태조황제께서 내고(內庫)의 돈으로 오랑캐의 머리와 바꾸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기나 했겠습니까? 헛되이 호조의 경비는 날로 부족하게 만들고, 독책은 날로 엄해져서 심지어는 조종 이래의 좋은 법제였던 파분법(破分法)을 폐지하게 만들고 반드시 100% 전체를 채우는 것으로 기준을 삼기까지 했습니다. 다 채우지 못하면 또 감사와 군수를 전최(殿最)의 등급으로 비교하는 법을 만들어 유혹하고 위협해서, 다시 정교와 조치의 득실을 들으려 하지 않고, 하나같이 백성에게 각박하게 굴면서 위를 잘 봉양하는 자만을 현명하다고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안팎에서 이런 풍조를 받들어 경쟁하듯이 가렴주구하면서 감사는 주군에 명을 내리고, 주군은 속읍에 명을 내리면서 백성들의 형편은 마음에 두지도 않고 오직 부세를 독촉하는 데에만 힘썼으니 이것이 바로 백성들의 힘이 더욱 곤궁해지는 근원이니, 정해진 세금 외에 명목 없는 부세들 예를 들어 화매․절백․과벌(科罰)․월장전 등은 논할 것조차 없습니다.(제가 살펴보니 조종들의 옛 법에 의하면 주현에서 관물을 재촉하되, 이미 90% 이상을 거두면 ‘파분(破分)’이라고 해서, 여러 기관에서 곧장 독촉을 중지하고, 호조 역시 버려둔 채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현들은 그 나머지를 얻어 관청의 잡다한 용도에 보탤 수 있었고, 가난한 백성들도 약간의 부족분에 대해서는 시간을 끌어 경감 조치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조정으로부터 내려진 은혜가 향리에까지 미쳐 가 군주와 백성이 모두 만족스럽고, 공사 양 면에 걸쳐 편리했습니다. 이것은 정녕 폐기할 수 없는 아름다운 법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번 증회(曾懷)가 조정에 등용되면서 비로소 이 법을 없애버렸습니다. 주현의 오래된 누락분을 모두 털어내서 은익하고 누락한 것이라고 하면서 모두 징수를 독촉했습니다. 이로부터 민간에서 세금으로 내는 것은 아주 작은 우수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채워 넣을 것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증회는 이렇게 처리했다는 이유로 벼슬이 승진되어 마침내 재상이 되었지만, 백성들은 피해를 받고 원망과 고통은 날로 심해졌습니다. 재물을 얻고 백성을 읽는 것도 오히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하물며 오늘날 정사가 복잡하고 세금이 무거워, 백성들이 마침내 흩어져서 재물마저도 얻을 수 있는 이치가 없는 경우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속히 이런 병폐를 치유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피해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대학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소인에게 국가의 정사를 담당하게 하면 재앙이 함께 이르러서, 비록 선한 사람이 있더라도 어찌할 수 없다’는 구절을 보게 되면, 그 말이 정녕코 애통하고 절실해서 가슴이 서늘해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조금이나마 뜻을 두시고 빨리 덕 있는 조치를 내리시어 천하의 행운이 되게 하십시오.)
臣聞虞允文之爲相也, 盡取版曹歲入窠名之必可指擬者, 號爲歲終羨餘之數而輸之內帑 : 顧以其有名無實, 積累掛欠, 空載簿籍, 不可催理者撥還版曹. 其爲說曰, 內帑之積將以備他日用兵進取不時之須, 而版曹目今經費已自不失歲入之數. 聽其言誠甘且美矣, 然自是以來, 二十餘年, 內帑藏入不知幾何, 而認爲私貯, 典以私人, 宰相不得以式貢均節其出入, 版曹不得以簿書勾考其在亡, 其日鎖月耗, 以奉燕私之費者, 蓋不知其幾何矣. 而曷嘗聞其能用此錢以易胡人之首, 如太祖皇帝之言哉? 徒使版曹經費闕乏日甚, 督趣日峻, 以至廢去祖宗以來破分良法, 而必以十分登足爲限. 以爲未足, 則又造爲比較監司郡守殿最之法以誘脅之, 不復問其政敎設施之得失, 而一以其能剝民奉上者爲賢. 於是中外承風, 競爲苛急, 監司明(2-478)諭州郡, 郡守明諭屬邑, 不必留心民事, 惟務催督財賦, 此民力之所以重困之本, 而稅外無名之賦, 如和買․折帛․科罰․月樁之屬, 尙未論也. 臣伏見祖宗舊法, 凡州縣催理官物, 已及九分以上, 謂之破分, 諸司卽行住催, 版曹亦置不問. 由是州縣得其嬴餘以相補助, 貧民些少拖欠, 亦得遷延, 以待蠲放. 恩自朝廷, 惠及閭里, 君民兩足, 公私俱便. 此誠不刊之令典也. 昨自曾懷用事, 始除此法, 盡刷州縣舊欠, 以爲隱漏, 悉行拘催. 於是民間稅物毫分銖兩, 盡要登足. 曾懷以此進身, 遂取宰相, 而生靈受害, 寃痛日深. 得財失民, 猶爲不可, 况今政煩賦重, 民卒流亡, 所謂財者, 又將無有可得之理. 若不蚤救, 必爲深害. 臣每讀大學卒章, 見其所論小人之使爲國家, 災害幷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者, 其言丁寧痛切, 未嘗不爲寒心. 惟陛下少留聖意, 亟發德音, 以幸天下.
그 다음은 폐하께서 등용한 재상이 안팎의 큰 관리를 잘 가리지 못하고 오직 사적인 인정의 두텁고 박함을 따라 선발하고 있고, 폐하께서 등용하신 대간들은 공정하게 조사하거나 탄핵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 생각에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에 만족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감사와 군수가 대부분 적임자를 얻지 못했고, 현명한 자들은 간혹 거꾸로 직분을 잘 수행하거나 대간들에게 거슬린 일로 인해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감사는 지나치게 많으나 일의 권한이 한 곳으로 귀착되지 않고, 이조의 인사법이 비록 상세하지만 현령에 적절한 인재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또 그 법에는 좋지 않은 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근본이 올바르다면 이런 것들을 처리하기에 힘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근본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간혹 이런 일을 하더라도 저는 이로움은 없이 거꾸로 해로움만 있을까 두렵습니다.
其次則陛下所用之宰相, 不能擇中外大吏, 而惟狥私情之厚薄 : 所用之臺諫, 不能公行糾劾, 而惟快己意之愛僧. 是以監司郡守多不得人, 而其賢者或反以擧職業․忤臺諫而遭斥逐也. 至於監司太多而事權不歸於一, 銓法雖密而縣令未嘗擇人, 則又其法之有未善者. 然其本正, 則此等不難區處 : 其本未正, 則雖或擧此, 臣恐未見其益而反有害也.
또 일찍이 군정이 닦이지 않은 것에 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요즘에 여러 장수들이 진급하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휘하의 병사들을 수탈해서 자신의 재물을 불린 다음에 이것으로 폐하와 사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는 자들과 친분을 맺어 자신의 이름이 폐하께서 귀하게 여기는 장군에게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귀하게 여기는 장군이 그 이름을 알게 되면 곧장 군중에 보내서 군졸 5명 단위와 10명 단위로부터 차례차례 신분을 보증하고 재능과 무덕이 장수를 감당할 만 하다고 칭찬케 한 다음에 주독(奏牘)을 갖추어 폐하의 앞에서 아룁니다. 그러면 폐하께서는 다만 그 등급과 추천에서 앞선 순서 및 서류에 구비된 것만을 보시고서 진심으로 공정하게 천거해서 얻게 된 인재라고 여기지 어찌 자리 값을 따져 돈을 보내는 것이 이미 당나라 말기의 빛쟁이 장군[債帥] 같은 줄을 아시겠습니까? 이 한 가지 일은 귀가 있는 사람마다 모두 들었고, 입이 있는 사람마다 말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행하는 통로가 으슥하고, 종적이 비밀스럽기 때문에 그들이 교통하는 실상을 찾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비록 말한다 하더라도 폐하께서는 끝내 믿지 않으십니다. 장수란 삼군의 명령을 담당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장수를 뽑아 배치하는 방법이 이처럼 어긋났으니 저 지혜와 용기, 재능과 방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찌 환관과 궁첩의 문에 마음을 억누르고 고개를 조아리려 하겠습니까? 폐하께서 얻어 장수로 삼은 자들은 모두 쓸모없는 필부[庸夫]요 졸개 같은 자[走卒]들이어서 본시 병법과 군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직 가렴주구하는 일만을 앞세우고, 친분이나 맺는 것을 도모할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런 줄을 모르시고 오히려 군정을 닦아서 밝히고, 사졸들을 격려해서 국세를 강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시니 어찌 잘못되지 않았단 말입니까?
又嘗卽夫軍政之不修而推之, 則臣聞日者諸將之求進也, 必先掊剋士卒以殖私財, 然後以此自結於陛下之私人, 而祈以姓名達於陛下之貴將. 貴將得其姓名, 卽(2-479)以付之軍中, 使自什伍以上, 節次保明, 稱其材武堪任將帥, 然後具爲奏牘而言之陛下之前. 陛下但見其等級推先, 案牘具備, 則誠以爲公薦而可得人矣, 而豈知其諧價輸錢, 已若晩唐之債帥哉? 只此一事, 有耳者無不聞, 有口者無不道. 然以其門戶幽深, 蹤跡詭秘, 故無路得以窺其交通之實狀, 是以雖或言之, 而陛下終不信也. 夫將者, 三軍之司命, 而其選置之方乖剌如此, 則彼智勇材略之人, 其孰肯抑心下首於宦官宮妾之門? 而陛下之所得以爲將帥者, 皆庸夫走卒, 固不知兵謀師律之爲何事, 而惟剋剝之是先, 交結之是圖矣. 陛下不知其然, 而猶望其修明軍政, 激勸士卒, 以彊國勢, 豈不悞哉!
그러나 장수에 적임자를 얻지 못하면 병사들만 그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가 가장 심한 경우를 유추해 보면 백성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칩니다. 장수에 적임자를 얻으면 병적[尺籍]이 엄격해져서 저축이 늘어나고, 둔전은 확립되어 양식을 운송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오늘날 장수가 된 자들이 저 지경이니 진실로 그들이 즐겨 군의 장비며 군량을 따져보고 저축을 풍부하게 하는 일들을 바랄 수조차 없습니다. 둔전의 경우에는 저 자신들만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더욱 (둔전법의 시행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조정에서 따로 관리[使]를 임명해서 다스리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인들이 경작하는 둔전[兵屯]의 무리는 장수가 선발해 보내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또 장수를 병둔의 업무에 참여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듣기로는 장수들이 군인들을 차지하고서 둔전의 경작을 원하는 자들을 모아서 보내려 하지 않고 경작도 못하는 자들을 억지로 가게해서, 그들이 둔전에 도착하면 나뒹굴면서 농사일을 돌보지 않고 도리어 민전에 해를 끼친다고 합니다. 관리[使]는 문관[文吏]이라서 이들을 통제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폐하께서 간절하게 원하시는데도 오래도록 완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둔전이 확립되지 않아 양식을 수송하는 비용이 많아지면, 여러 주의 묘미(苗米)를 모두 징발하더라도 주병의 양식으로 공급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모(加耗)․곡면(斛面)과 같은 폐단이 어지럽게 일어나 백성들은 더욱 곤궁하게 될 것입니다. 또 화매(和買)․절백(折帛)․과벌(科罰)․월장(月樁) 같은 것들은 종종 또 군대의 비용을 제공한다는 명목 때문에 없애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둔전이 확립되어 여러 노(路)에 의지하는 것이 줄어들게 된다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 금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니, 이것은 바로 장수를 제대로 선발하지 못해서 그 피해가 백성에까지 미친 것입니다.
然將帥之不得人, 非獨士卒之受其弊也. 推其爲害之極, 則又有以及乎民者. 蓋將帥得人, 則尺籍嚴而儲蓄羨, 屯田立而漕運省. 今爲將帥者如此, 則固無望其肯核軍實而豐儲蓄矣. 至於屯田, 則彼自營者尤所不願, 故朝廷不免爲之別置使者以典治之. 而兵屯之衆資其潑遣, 則又不免使參其務. 然聞其占護軍人, 不肯募其願耕者以行, 而彊其不能者以往, 至屯則偃蹇不耕, 而反爲民田之害. 使者文吏, 其力蓋有所不能制者, 是以陛下欲爲之切而久不得成也. 屯田不立, 漕運煩費, 諸州苗米至或盡數起發而無以供州兵之食, 則加耗斛面之弊紛紛而起, 而民益困矣. (2-480)又凡和買․折帛․科罰․月樁之類, 往往亦爲供軍之故而不可除. 若屯田立而所資於諸路者減, 則此屬庶乎其皆可禁矣. 今乃不然, 則是置將之不善而害足以及民也.
이 몇 가지는 뿌리가 아주 깊고 곁가지가 넓고 많아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근본을 탐구해 보면 또한 폐하께서 자신을 반성하는 데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폐하의 마음이 정말로 올바르다면 반드시 내탕고의 재화를 내어다 호조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호조의 재물이 심하게 부족하지 않게 되면 반드시 파분법을 회복시키고 전최 제도를 없애 주현을 넉넉하게 할 수 있습니다. 폐하의 마음이 정말로 올바르다면 반드시 재상을 잘 선택해서 목수를 선발할 수 있을 것이요, 대간을 선택해서 심문하고 탄핵하는 일[刺擧]을 공정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폐하의 마음이 정말로 올바르다면 반드시 환관과 장수들이 교통하는 것을 엄히 금지하고, 장수를 선발하는 일을 재상에게 소속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재상에 진정으로 적임자를 얻게 되면 반드시 폐하를 위해 장수를 가려 뽑아 사기를 진작시키고, 군의 장비며 군량을 따져보고, 둔전을 넓혀 조운(漕運)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위로는 조정으로부터 아래로는 주나 현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다스리고 군대를 담당하는 관원에 모두 적임자를 얻은 다음에 재상에게 밝게 조칙을 내려 감사의 숫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게 하여 선발을 정밀하게 하고, 책임을 무겁게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이부(吏部)에 조칙을 내려 다스리기 어렵고 쉬운 현에 차등을 두어 항상 간절하게 천하의 관리 가운데 현을 담당할 만한 자가 누구인지를 찾아 캐묻고, 천거의 유무에 구애받지 말고, 자격의 높고 낮음에도 제한을 두지 말며, 그들의 이름을 서류에 기록해 두고 차례로 다스리기가 가장 어려운 현에 보충하십시오. 실제로 치적이 있으면 우대해서 벼슬을 올려주고, 맡은 일을 이기지 못하면 쫓아내어 물리치십시오. 주나 현에서 명목도 없고 이치에도 닿지 않는 상공이나 교묘하게 멋대로 부과하는 세정 가운데 지나치게 심해서 물리쳐야 할 것들이 점진적으로 제거되면서 백성들의 형편은 넉넉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凡此數者, 根株深固, 枝條廣闊, 若不可以朝變而夕除者. 然究其本, 則亦在夫陛下之反諸身耳. 聖心誠無不正, 則必能出私帑以歸版曹矣. 版曹不至甚闕, 必能復破分之法, 除殿最之科, 以寬州縣矣. 聖心誠無不正, 則必能擇宰相以選牧守矣, 擇臺諫以公剌擧矣. 聖心誠無不正, 則必能嚴宦官兵將交通之禁, 而以選將屬宰相矣. 宰相誠得其人, 則必能爲陛下擇將帥以作士氣, 討軍實․廣屯田以省漕運矣. 上自朝廷, 下達州縣, 治民典軍之官旣皆得人, 然後明詔宰相議省監司之員而精其選․重其責. 又詔銓曹, 使以縣之劇易分爲等差, 而常切詢訪天下之官吏能爲縣者, 不拘薦擧之有無, 不限資格之高下, 而籍其姓名, 使以次補最劇之縣. 果有治績, 則優而進之, 不勝其任, 則絀而退之. 凡州縣之間無名非理之供, 橫斂巧取之政, 其泰甚而可去者可以漸去, 而民力庶乎其可寬矣.
둔전의 이익에 대해서는 제 어리석은 견해로는 대장들에게 군사를 모집하고, (둔전을 담당할) 문관에게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으게 해서 각자 스스로 둔전을 만들게 하고,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토지를 주고, 부세를 독촉하고, 상벌을 내리는 정령은 각각 본사가 스스로 하는 데로 따르십시오. 군중에는 본시 부릴만한 장교가 있으니 따로 관리를 둘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문관의 경우에는 관리 3, 5인과 심부름시킬 사람 10~20인을 두어 사령에 대비하도록 허락하십시오. 또 병농의 시무에 능통하고 군대와 백성의 실정을 겸한 종관 한 사람을 뽑아서 둔전사(屯田使)를 삼아 양사(兩司)의 정사를 총괄해서 다스리게 하여, 조정에 주청하는 것을 통괄하게 하고, 조정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재촉하십시오. 또 세시에는 관내를 돌아다니며 근무하는 실상을 살펴서 상벌을 시행하게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두 둔전이 한마음으로 경쟁하면서 각각 자신들의 일에 힘쓰게 되어, 둔전의 농사도 이룰 수 있고, 양식의 운반도 힘을 덜 수 있어, 모든 노(路)의 명목 없고 이치에 어긋난 상공과 교묘하게 멋대로 징수하는 세정으로 과거에 그만 두지 못하거나 아직 채 다 없애지 못한 것들을 오늘날 모두 금지할 수 있어 백성들의 형편이 더욱 여유로워 질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급선무 가운데 대여섯 가지 일입니다.(제가 계획한 둔전의 일은 또 장래에 제대로 된 장수를 얻은 다음에야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장수들이 오늘날과 같은 인물에 불과하다면 아마도 조사가 이미 성취한 공적머저 무너뜨려 장수와 병둔의 실상에 보탬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바라건대 이 수해의 뒤끝에 나아가 널리 흩어진 무리를 불러 모으고 아울려 민둔(民屯)의 계획을 시행하여 효과가 드러나기를 기다리도록 지휘를 내려주시길 빕니다. 계속해서 조신(漕臣)에게 조칙을 내려 다시 백성의 이해에 관련된 일 가운데 다 살피지 못한 것을 간절하게 찾고 캐물어서 조목별로 보고하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사안에 따라 헤아려서 때에 맞춰 조치하신다면 이미 이루어진 단서가 흔들리고, 가벼이 무너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천자께서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至於屯田之利, 則以臣愚見, 當使大將募軍士, 使者招游民, 各自爲屯, 不相牽制. 其給授課督․賞罰政令各從本司, 自爲區處. 軍中自有將校可使, 不須別置(2-481)官吏. 使者則聽其辟置官屬三五人, 指使一二十人, 以備使令. 又擇從官通知兵農之務․兼得軍民之情者一員爲屯田使, 總治兩司之政, 而通其奏請, 趣其應副. 又以歲時按行, 察其勤墮之實, 以行誅賞. 如此則兩屯心競, 各務其功, 田事可成, 漕運可省, 而諸路無名非理之供․橫斂巧取之政, 前日有所不獲已而未可盡去者, 今亦可以悉禁, 民力庶乎其益裕矣. 此今日急務之五․六也. 屯田一事, 如臣之策, 亦是將來將帥得人之後, 方可施行. 若將帥止如今日, 却恐徒壞漕司已成之功, 無補將帥兵屯之實. 且乞指揮趁此水災之後, 廣招流冗, 幷行民屯之策, 以俟見效. 仍詔漕臣更切詢訪利病之未盡考, 條具以聞. 然後隨事商量, 及時措置, 庶幾已成之緖不至動搖, 輕有廢壞. 伏乞聖照.
이 여섯 가지 일은 모두 늦출 수 없는 것인데 그 근본은 페하의 한 마음[一心]에 달려 있습니다. 폐하의 마음이 바르면 여섯 가지 일은 모두 바르게 되고, 단 하나라도 인심(人心)과 사욕(私欲)이 그 사이에 끼게 되면 비록 정력을 쏟아부어가며 애써 여섯 가지 일을 바로잡으려 하더라도 한갓 겉치레나 될 뿐, 천하의 일은 더욱 어찌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큰 근본’이라 하고 또 급선무 가운데 가장 급한 것이어서 더욱 더 늦출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폐하께서 깊이 유의하시고 재빨리 도모하셔서 큰 근본이 참으로 바루어지고 급선무가 참으로 정연해졌는 데에도 다스리는 효험이 나아지지 않고, 국가의 형세가 강성해지지 않으며, 중원이 회복되지 않고, 원수인 오랑캐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저는 도끼에 맞아 죽게 해달라고 청함으로써 폐하께 사죄드리겠습니다. 설령 폐하께서 저를 용서하신다 하더라도 저로서는 감히 받들지 않겠습니다.
凡此六事, 皆不可緩, 而其本在於陛下之一心. 一心正則六事無不正, 一有人心私欲以介乎其間, 則雖欲憊精勞力, 以求正夫六事者, 亦將徒爲文具, 而天下之事愈至於不可爲矣. 故所謂天下之大本者, 又急務之最急而尤不可以少緩者. 惟陛下深留聖意而亟圖之, 使大本誠正, 急務誠脩而治效不進, 國勢不彊, 中原不復, 仇虜不滅, 則臣請伏鈇鉞之誅以謝陛下, 陛下雖欲赦之, 臣亦不敢承也.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오늘날 사대부들의 의론이 저와 다른 점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실상을 궁구해보면 모두 사이비 의론들입니다. 그저 그럭저럭 일없이 지나가기만을 즐거워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폐하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는데 천하에는 다행히 별다른 일이 없습니다.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 혈기는 쇠약하지 않을 수 없고, 천하에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의당 다시 못난 사람에 의해 어지럽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분발하고 애쓰면서 천하를 도모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조들의 쌓인 원한을 쓸어내지 않을 수 없고, 중원의 옛 땅은 되찾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임무로 여긴다면 폐하께서는 주위의 권유와 격려를 기다릴 것 없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니, 이것을 버리고 도모하지 않는다면 비록 큰일을 도모하자고 재촉하고 격려해도 아무런 희망하는 기준이 없어 끝내 힘을 찾지 못하고 말 뿐인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은 모두 이치에 닿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 모두를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럭저럭 지나가기만을 즐거워하는 자는 성인의 혈기도 세월이 가면 쇠약해 진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성인의 지기(志氣)는 세월이 흘러도 쇠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 천하에 일이 있으면 구차하게 편안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천하에 일이 없을 때도 조금이라도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천하는 ‘별다른 변고’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지경인데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然又竊聞之, 今日士夫之論, 其與臣不同者非一. 及究其實, 則皆所謂似是而非者也. 蓋其樂因循之無事者, 則曰陛下之年寖高, 而天下亦幸無事. 年寖高則血(2-482)氣不能不衰, 天下無事則不宜更爲庸人所擾. 其欲奮厲而有爲者, 則又曰祖宗之積憤不可以不攄, 中原之故彊不可以不復. 以此爲務, 則聖心不待勸勉而自彊 : 舍此不圖, 則雖欲策厲以有爲而無所向望以爲標準, 亦卒歸於委靡而已. 凡此二說, 亦皆有理, 而臣輒皆以爲非者, 蓋樂因循者知聖人之血氣有時而衰, 而不知聖人之志氣無時而衰也. 知天下有事之不可以苟安, 而不知天下無事之尤不可以少怠也. 况今日之天下又未得爲無事乎?
또 위나라[衛] 무공(武公)의 경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의 나이는 95세였음에도 오히려 온 나라에 칙령을 내려 경계하면서 법이 되는 간언을 구했으며, 억제하고 경계하는 시를 지어 스스로를 경계했고, 사람에게 아침저녁으로 외우게 하면서 자신의 옆을 떠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그 나이가 많지 않다고 할 것이며 그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어찌 나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쇠약해졌다고 하겠습니까? 하물며 폐하는 무공의 나이에 비해 2/3도 채 못되셨지만, 책임이 무겁고 지위가 높기로는 또 무공보다 열 배 천만 배는 더합니다. 제가 비록 못났지만 또 어떻게 감히 폐하를 무공의 아래에 두고서 곧장 무공처럼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천하의 일은 힘들고 많다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요 안일함이 짐독처럼 두렵다는 것을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공업이 이루어지고 정치가 안정되어 할 만한 한 가지 일조차 없더라도 오히려 밤낮없이 전전긍긍하며 편안한 데에 머무르면서도 위태로움을 걱정하여 조금이라도 태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오늘날 천하는 비록 눈앞의 급한 일은 없다지만 백성은 가난하고 재정은 궁핍하며, 군대는 나태하고 장수들은 교만해서, 밖으로는 사나운 오랑캐가 있고 안으로는 한탄하는 군대와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 외에 말하기 힘든 걱정거리가 눈과 귀가 미치지 못하는 곳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숨어 있어 가깝게는 건물 한쪽 귀퉁이에 있기도 하고, 멀리는 수 천리나 되는 바깥에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건물 한쪽 귀퉁이에 환란이 숨어 있다는 주장은 이미 앞에서 진달했습니다. 이 구절은 다시금 폐하께서 조금이라도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지나간 일을 좇아 헤아려 보아도 이미 볼만한 효과가 없고, 뒤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아도 지킬만한 규범조차 없습니다.(제가 가만히 보니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자질구레한 일 한 가지를 맡기려고 하면서도 반드시 먼저 계획을 세워, 가장 좋게 만듭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일을 맡은 사람도 지키고 따라야 할 것이 있어 내가 일을 맡긴 뜻을 잃지 않게 했습니다. 하물며 천하를 소유한 군주가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을 남에게 맡기려 하면서 먼저 지킬 만한 가장 좋은 계획을 만들어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이 일에 대해 다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천자께서 조금만 생각을 기울이신다면 이런 때를 당한 것은 진실로 덕업을 일신하고 기강을 정돈할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저의 광망하고 경솔한 죄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재량해서 용서해 주십시오.) 어떻게 아무런 일이 없다고 말하면서 마침내 태평하게 지내실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且以衛武公言之. 其年九十有五矣, 猶箴儆於國, 以求規諫, 而作抑戒之詩以自警, 使人朝夕誦之, 不離於其側. 此其年豈不甚高? 而其戒謹恐懼之心, 豈以是而少衰乎? 况陛下視武公之年三分未及其二, 而責任之重, 地位之高, 又有十百千萬於武公者. 臣雖不肖, 又安敢先處陛下於武公之下而直謂其不能乎? 且天下之事非艱難多事之可憂, 而宴安酖毒之可畏. 政使功成治定, 無一事之可爲, 尙當朝兢夕惕, 居安慮危而不可以少怠. 况今天下雖若未有目前之急, 然民貧財匱, 兵惰將驕, 外有彊暴之夷虜, 內有愁怨之軍民, 其他難言之患, 隱於耳目之所不加, 思慮之所不接者, 近在堂奧之間而遠在數千里之外, 何可勝數? 堂奧之說, 已陳於前, 此句更乞陛下少留聖慮. 追計其前, 旣未有可見之效, 却顧於後, 又未有可守之規, 臣竊見尋常之人, 將欲屬人以一至微至細之事, 猶必先爲規模, 使其盡(2-483)善, 然後所屬之人有所持循, 而不失吾之所以屬之之意. 况有天下者, 將以天下至大之事屬之於人, 而不先爲盡善可守之規以授之乎? 然臣於此事不敢盡言, 若蒙聖明少加聖慮, 則當此之時, 誠亦一新德業, 重整綱維, 不可失之機會也. 臣狂妄儹率, 罪當萬死, 伏惟陛下裁赦. 亦安得遽謂無事而遂以逸豫處之乎?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자들은 또 영토의 회복을 잊어서는 안 되고, 국력의 쇠락이 오래가서는 안 된다는 것만을 알 뿐 세상에 둘도 없는 큰 공은 쉽게 세울 수 있지만 지극히 은미한 본심은 보존하기가 어렵고, 중원 땅의 오랑캐는 쉽게 쫓아낼 수 있지만 내 한 몸의 사사로운 생각은 없애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어려운 일을 먼저 해낼 수 있다면 쉬운 일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힘쓸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먼저 하지 않고 헛되이 쉬운 일에 대해서만 요행을 바란다면 밤낮으로 이야기하면서 입에서 그치는 날이 없더라도 쓸데없는 헛말이 되어 일시적으로 뜻만 통쾌하게 할 따름입니다. 또 중원의 회복이 글러진 것은 이미 융흥 초년이었습니다. 갑자기 군대를 철수시키고 강화를 논의해서 마침내는 안락함[宴安]․짐독(酖毒)의 폐해가 일취월장하고, 와신상담의 의지는 날이 갈수록 사라지게 한 것은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몇 년 이래로 기강이 해이해지고 재앙의 싹이 움터 (중원의) 동남쪽 한 구석의 나랏일에 오히려 걱정을 이길 수 없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영토의 회복을 도모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감히 시류에 영합해서 허황한 말[大言]로 폐하를 속이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는 것은 폐하께서 우리가 처한 동남쪽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시어, 마음을 바로잡고 자신을 이겨서 조정을 바로잡고 정사를 닦으시면, 거의 진실한 공효가 저절로 이루어지고, 따로 우환이 일어나 원대한 계획[遠圖]이 방해받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역에 뛰어난 사람은 역을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진실로 영토의 회복에 뜻을 두는 것이 ‘칼을 어루만지고 손바닥을 치는’ 데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其思奮厲者, 又徒知恢復之不可忘, 頹墮之不可久, 然不知不世之大功易立而至微之本心難保, 中原之戎虜易逐而一己之私意難除也. 誠能先其所難, 則其易者將不言而自辦. 不先其難而徒欲僥倖於其易, 則雖朝夕談之, 不絶於囗, 是亦徒爲虛言, 以快一時之意而已. 又况此事之失, 已在隆興之初, 不合遽然罷兵講和, 遂使宴安酖毒之害日滋日長, 而坐薪嘗膽之志日遠日忘. 是以數年以來, 綱維解弛, 釁孽萌生, 區區東南, 事猶有不勝慮者, 何恢復之可圖乎? 故臣不敢隨例迎合, 苟爲大言以欺陛下. 而所望者, 則惟欲陛下先以東南之未治爲憂, 而正心克己, 以正朝廷․脩政事, 庶幾眞實功效可以馴致, 而不至於別生患害, 以妨遠圖. 蓋所謂善易者不言易, 而眞有志於恢復者, 果不在於撫劍抵掌之間也.
논하는 자들은 또 폐하께서 노자와 불교의 학문에 조예가 깊어 본심(本心)을 알고 본성을 보는 오묘함을 얻어 옛 성왕들의 도와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일치한다고 여깁니다. 이 때문에 세상 유자들이 늘상 사문화된 법제나 들먹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당세의 시무에 대해서는 차라리 관중과 상앙의 일체 공리나 추구하는 주장을 오히려 취할만한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싫어하는 비루하고 잡박한 것을 가지고 앞에서 진달하고 있으니, 또한 그 말이 많을수록 더욱 합치하지 않음을 알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들 역시 사이비 의론이요, 융성한 덕을 날로 새로워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노자와 부처의 주장에는 본시 성현의 가르침인양 착각하게 만드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서로 다른 점은 우리는 본성[性]과 천명[命]을 진실하다고 여기는데 저들은 본성과 천명을 공허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에는 온갖 아치가 빽빽하게 그 가운데 찬연하여 사람의 도리와 사물의 법칙이 어느 것 하나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감응하여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한다’는 것도 반드시 그 일에 순응하고, 반드시 그 법도를 따았을 적에 한 가지 일도 어긋나는 경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공이라고 하는 것은 한낮 적멸을 즐거움으로 여길 뿐 진실한 이치의 근원을 모르고 있으며, 외물에 응하고 형태화 된 것만을 알 뿐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의 구별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의 학설로부터 수양해 나아가면 본체와 작용의 근원이 하나이고, 드러난 것과 감추어진 것 사이에 간격이 없게 되어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으며, 가정을 정돈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이치에 벗어난 일이 단 하나도 없게 됩니다.
論者又或以爲陛下深於老佛之學而得其識心見性之妙, 於古先聖王之道蓋有不約而自合者, 是以不悅於世儒之常談死法, 而於當世之務, 則寧以管․商一切功利之說爲可取. 今乃以其所厭飫鄙薄者陳於其前, 亦見其言愈多而愈不合也. 臣以爲(2-484)此亦似是而非之論, 非所以進盛德於日新也. 彼老子浮屠之說, 固有疑於聖賢者矣, 然其實不同者, 則此以性命爲眞實而彼以性命爲空虛也. 此以爲實, 故所謂寂然不動者, 萬理粲然於其中, 而民彝物則, 無一之不具. 所謂感而遂通天下之故, 則必順其事, 必循其法, 而無一事之或差. 彼以爲空, 則徒知寂滅爲樂, 而不知其爲實理之原 : 徒知應物見形, 而不知其有眞妄之別也. 是以自吾之說而脩之, 則體用一原, 顯微無間, 而治心脩身․齊家治國, 無一事之非理.
저들의 학설에 연유하면 근본과 말단이 멋대로 나뉘고, 안과 밖이 단절되어 비록 낭철영통(朗澈靈通)․허정명묘(虛靜明妙)한 것이 있더라도 이치를 없애고 인륜을 어지럽히는 죄와 운용을 전도시키는 잘못을 구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학문을 했던 자들은 처음에는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지만 그 마지막을 살펴보면 피음사둔(詖淫邪遁)의 견해가 하는 일마다 정사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정호(程顥)는 일찍이 물리치면서 말하기를 “스스로는 신묘함을 궁구하여 천지의 조화를 안다고 하지만 개물성무(開物成務)하기에는 부족하고, 말은 골고루 통하지만 실제로는 윤리에서 벗어나며, 극히 미미한 것까지도 깊이 있게 궁구하지만 요순의 도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세상의 학문하는 자들이 본디 천루하고 꽉 막힌 자가 아니면 반드시 여기에 빠져있다. 올바른 길이 황폐해지고, 성인의 문이 막혔다고 하는 것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들을 물리친 다음에야 함께 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아! 이것은 참으로 이치에 닿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폐하에게 이 말을 한 자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삭발한 머리와 미치광이의 멋대로 하는 주장을 듣게 해서, 이것이 정말로 성인의 가르침과 합치하는 점이 있다고 여겨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다스리고,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따로따로 세 가지 학술로 생각하도록 해서, 유자의 학문을 가장 낮은 것이라고 여기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폐하께서 이 마음을 정사에 베풀어 해를 끼칠까 두렵고, 이런 학설을 지금부터 세상에 유포시킬까 안타깝습니다. 만일 혹 제 말을 옳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폐하의 자질이 뛰어나고 학문을 한 지도 오래인데 마음을 바로잡고 몸을 닦아 천하에까지 미친 것이 그 효과가 과연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사정이 이런데도 어찌 그렇게 된 까닭을 살피시고 속히 되돌리려 하지 않으십니까?(제가 듣기로는 인종(仁宗) 때에 정호가 그의 동생인 정이(程頤)와 함께 주돈이(周敦頤)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참으로 공자․맹자 이래로 단절되었던 계통을 얻었습니다. 같은 시기를 살았던 소옹(邵雍)․장재(張載) 또한 서로 박문약례(博文約禮)를 함께 하면서 마침내 어렴풋했던 성인의 가르침[聖道]을 다시 밝아지게 했으니 그의 공적은 매우 큽니다. 속된 유자들과 천한 학자들이 그의 온축을 엿볼 수도 없습니다. 간사한 자들과 비루한 자들은 또 정호가 ‘거처하면서는 반드시 정성스럽고 공경할 것이며, 행동은 예의에서 말미암아야 한다’고 한 말이 자신들의 일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여겨서 여럿이 무리를 지어 원망하고 질시해서 도학(道學)이라고 지목하고는 헐뜯고 비방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 앞에서 이미 간략하게 논한 적이 있습니다. 무지한 세속이 도학을 좋지 않은 것[不美]으로 여기게 되면, 반드시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도(無道)하고, 모두 배우지도 않아서 모든 것이 자신이 하는 짓과 같아진 다음에야 그 뜻에 흡족할 뿐입니다. 사설이 횡행하여 인심이 크게 치우치면서 꺼리는 것이 없음이 여기에 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은 정말로 민마보(閔馬父)가 깊이 걱정했던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지금 주돈이 등이 저술한 책이 책부(冊府)에 상당히 보관되어 있으니 폐하께서 시험삼아 가져다 보시면 성학(聖學)이 높고 밝아져 반드시 말없는 중에 서로 일치되어 행동과 일에 드러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에 대해 한마디 표장하는 말을 해주신다면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는 효과를 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도 역시 여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랍니다. 폐하께서는 깊이 유념해 주십시오.)
由彼之說, 則其本末橫分, 中外斷絶, 雖有所謂朗徹靈通․虛靜明妙者, 而無所救於滅理亂倫之罪․顚倒連用之失也. 故自古爲其學者, 其初無不似有可喜, 考其終, 則詖淫邪遁之見鮮有不作而害於政事者. 是以程顥常闢之曰: ‘自謂窮神知化, 而不足以開物成務. 言爲無不周偏, 而實外於倫理, 窮深極微, 而不可以入堯舜之道. 天下之學, 自非淺陋固滯, 則必入於此, 是謂正路之榛蕪, 聖門之蔽塞, 闢之而後可輿入道.’ 嗚呼! 此眞可謂理到之言. 惜乎其未有以聞於陛下者, 使陛下過聽髡徒誑妄之說, 而以爲眞有合於聖人之道, 至分治心․治身․治人以爲三術, 而以儒者之學爲最下, 則臣竊爲陛下憂此心之害於政事, 而惜此說之布於來今也. 如或未以臣言爲然, 則聖質不爲不高, 學之不爲不久, 而所以正心脩身以及天下者, 其效果安在也? (2-485)是豈可不思其所以然者而亟反之哉? 臣聞仁宗時有程顥者, 與其弟頤同受學於周敦頤, 實得孔孟以來不傳之緖. 同時又有邵雍․張載, 相與博約, 遂使聖道闇而復明, 其功甚大. 俗儒淺學旣不足以窺其縕奧, 姦人鄙夫又以其言居必誠敬, 動由禮義, 有害於己之所爲, 以故相與怨疾, 指爲道學而加詆則訕焉. 臣已略論於前矣. 夫世俗無知, 旣以道學爲不美, 則是必欲擧世之人俱無道, 俱不學, 悉如己之所爲而後適於其意耳. 邪說肆行, 人心頗僻, 無所忌憚, 乃至於此, 此正閔馬父之所深憂也. 今敦頤等所著之書頗藏冊府, 陛下試取而觀之, 聖學高明, 必將有黙相契合而見諸行事者. 若遂於此賜一言以表章之, 則正心之效不惟自得, 而所以正人心亦在是矣. 伏惟陛下深留聖意.
관중과 상앙[管商]의 공리(功利)에 대한 주장은 또한 비루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 취하신 이유는 이미 유학자들의 가르침이란 늘상 사문화된 법제나 논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요, 천하의 급무가 목전에 닥쳐오면 저 불교의 학문으로 대응하기도 힘들다고 여기기 때문에 저들의 말에서 흥미를 느껴 부국강병을 도모하는 데 재빠른 효과가 있을까 소망하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실행한 지가 지금까지 몇 년이나 되었으나 나라는 날로 가난해지고 군대는 날로 약해지며 ‘재빠른 효과’라는 것 또한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성현들이 전한 재물을 축적하는 방법과 재물을 다스리는 의리, 문왕과 무왕의 노여워함과 도덕의 위엄은 본시 부국강병의 커다란 계책들인데, 도리어 강론하는 자조차 없으니 어찌 그릇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의논하는 자들은 한낮 노자와 부처의 고상함, 관중과 상앙의 편리함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성현들이 전한 선을 밝히고 몸을 정성스럽게 하며, 가정을 정돈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신기한 점도 없고 좋아할만한 학설도 아니라고 여기고는 마침내 (성현들의 가르침이란) 늘상 사문화된 법제나 말하는 것에 불과하니 배울만한 점이라곤 없다고 여깁니다. 그들이 어떻게 유학자들이 늘상 말하는 내용 가운데 스스로 오묘한 도리가 있고, 사문화된 법제 가운데 스스로 살아 숨 쉬는 법제[活法]가 있어서, 본시부터 노자와 부처, 관중과 상앙의 비루함으로는 그 만분의 일조차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저의 말을 살피시고, 네 가지 학설의 같고 다른 점을 규명하셔서 분명하게 분별하신다면 제가 말하는 것이 제가 지어낸 학설이 아니라, 옛 성현들의 학설이요, 성현들이 만들어낸 학설이 아니라 하늘의 벼리와 땅의 의리가 저절로 그러한 이치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비록 요임금․순임금․우임금․탕왕․문왕․무왕․주공․공자 같은 성인과 안자․증자․자사․맹자와 같은 현인이라 하더라도 이를 어길 수 없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즉 제 말과 의논하는 자들의 학설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하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인지 머지않아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若夫管․商功利之說, 則又陋矣. 陛下所以取之者, 則以旣斥儒者之道爲常談死法, 而天下之務日至於前, 彼浮屠之學又不足以應之, 是以有味乎彼之言, 而冀其富國彊兵或有近效耳. 然自行其說, 至今幾年? 而國日益貧, 兵日益弱, 所謂近效者, 亦未之見. 而聖賢所傳生財之道․理財之義․文武之怒․道德之威, 則固所以爲富彊之大, 而反未有講之者也, 豈不誤哉! 今議者徒見老․佛之高, 管․商之便, 而聖賢所傳明善誠身․齊家治國平天下者初無新奇可喜之說, 遂以爲常談死法而不足學. 夫豈知其常談之中自有妙理, 死法之中自有活法, 固非老佛管商之陋所能彷彿其萬分也哉? 伏惟陛下察臣之言, 以究四說之同異而明辨之, 則知臣之所言(2-486)非臣所爲之說, 乃古先聖賢之說, 非聖賢所爲之說, 乃天經地義自然之理. 雖以堯․舜․禹․湯․文․武․周․孔之聖, 顔․曾․伋․軻之賢, 而有所不能違也. 則於臣之言與夫論者之說, 其爲取舍從違, 不終日而決矣.
또 저는 여기에서 속으로 느끼는 것이 있어 스스로 슬퍼집니다. 제가 폐하를 섬긴 것이 지금 27년이 되었으나, 그 사이에 폐하를 뵌 횟수는 세 번에 불과했습니다. 융흥 원년에 처음 뵐 때는 가까이 총애하는 신하들에 대해 말씀드렸고, 신축년에 두 번째로 뵈었을 때도 또 이것을 논했으며, 금년에 세 번째 뵈면서 드리는 말씀도 이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먼 곳의 외진 전야에 사는 사람입니다. 어찌 이들 무리에게 쌓인 원한과 깊은 분노가 있어서 이들을 공격함으로써 제 자신의 사적인 쾌락을 추구하려는 것이겠습니까? 여러 차례 나아가 말하면서 뜻이 합치하지 않는데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제 생각이 홀로 나라를 위한 계책인 것이지 감히 스스로 자신의 몸을 위한 계책이 아니라고 여기는 까닭이니, 저의 어리석음이야 가히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세월이 더욱 빠르게 지나는 것이 냇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서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저의 청춘도 백발이 이미 닥쳐 황혼녘이 되었고, 우러러 용안을 뵈어도 또한 예전과 다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루하고 정체된 저는 본시 특별한 충언이나 기특한 꾀로 폐하께 도움을 드리지도 못하고, 폐하께서 날로 새로워지는 융성한 덕조차도 저로 하여금 눈 녹듯이 지난날의 근심을 잊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이러니 제가 어찌 깊이 느끼고 거듭 스스로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몸은 시골에 있지만 마음은 궁궐에 치달아가고 군주를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간절함을 이기지 못하여 감히 죽기를 각오하고 제 속마음을 모두 토로하면서 시골 농부가 미나리를 바치는 정성을 본따 말씀드리며, 또 못난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저의 보잘것없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존엄한 천자를 범하고서, 아울러 이렇게 진달합니다. 저의 타고난 성품은 못나고 곧기만 해서 세상과 함께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에 저는 어린 나이부터 벼슬길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결같이 사록관으로 녹봉이나 축낸 것이 앞뒤로 아홉 번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출사의 의리를 모르겠습니까? 또 남을 구제해 보고자 하는 아무런 마음도 없었겠습니까? 차라리 물러나 몸을 숨겨 화를 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간에 다소 조정의 명을 받았지만, 그 결과는 스스로 화를 불러오는 일을 재촉했을 뿐이어서 7년 동안 몸을 둘 곳도 없었습니다. 지금 한 번 조정에 나서게 되어 또 이처럼 어지럽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천자의 영명하심에 힘입어 처음부터 끝가지 몸을 보전하게 되었고, 녹과 질을 더해주어 굶주림과 추위를 벗어나게 하셨으며, 임관의 자격[官資]까지 올려주어 자식들이 음직(蔭職)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셨으니, 이것은 모두 제 평생의 생각과 바램 속에서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늘 땅과 같은 은혜는 다만 두텁다고만 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소장을 아뢰는 것은 단지 폐하께서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시는 것에 감격한 때문이며, 제멋대로인 말을 받아주시기 때문에 평소에 나라를 걱정하는 제 온 정성을 다 말씀드려 지난날 충성하기를 소망했던 뜻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위로는 폐하께 보탬이 되고 아래로는 제가 배운 것을 저버리지 않는 것일 뿐, 감히 초심을 바꾸어 다시 높은 벼슬에나 나아가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천자께서 자세히 읽으시고, 본말을 따라 순서대로 시행하셔서 제 말이 우뚝하니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게 하신다면 저는 본마음과 다르게 재앙을 만나 본래 생각해 왔던 지극한 도를 더럽혔다는 비판을 기다릴 것 없이 그 영화와 우대가 이미 여러 신료들의 뒤에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릇되고 망령되어 시행할 것이 없다고 여기시면 한쪽에 내던져두고 버려두는 것이 또한 마땅한 처분일 것입니다. 비록 제게 은사를 내리시려 하더라도 이 또한 부끄러움만을 증대시킬 따름이니 결코 제가 감당할 것이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제가 논한 내용이 간절함을 보시고 사령의 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해할까 두려워 다시 아룁니다. 살펴 주십시오) 폐하께서 불쌍히 여겨 용서하시고 그 가운데서 택하신다면 어리석은 저의 다행일 뿐 아니라 진실로 종사와 생령들의 다행일 것입니다.(제가 논한 내용은 비록 한 때의 폐단이지만 그 규모와 계획은 모두가 정치의 핵심이니 영원토록 후세에 전해도 좋은 것들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성인들은 비록 시대는 달랐지만 그 도는 언제나 같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말이 오늘날에만 기대할 뿐 아니라 또 장차 미래에 대해서도 소망을 갖는 이유입니다. 못나고 천한 사람인지라 말을 감히 다할 수는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저의 어리석은 충심을 불쌍히 여기시고 만 번 죽을죄를 용서해주시고, 혹 황태자께서 국정에 참여해 결정을 내릴 때에 특별히 내려보여주시면 정말로 다행이겠습니다) 신 주희는 정말이지 황공한 마음에 죽기를 각오하고 두 번 절하고서 삼가 말씀드립니다.
抑臣於此又竊有感而自悲焉, 蓋臣之得事陛下, 於今二十有七年矣. 而於其間得見陛下, 數不過三. 自其始見於隆興之初, 固嘗輒以近習爲言矣. 辛丑再見, 又嘗論之. 今歲三見, 而其所言又不過此. 臣遐方下土田野之人, 豈有積怨深怒於此曹, 而固欲攻之, 以快己私也哉? 其所以至於屢進不合而不敢悔者, 區區之意獨爲國家之計而不敢自爲身謀, 其愚亦可見矣. 然自頃以來, 歲月逾邁, 如川之流, 一往而不復反. 不惟臣之蒼顔白髮已迫遲暮, 而竊仰天顔, 亦覺非昔時矣. 臣之鄙滯, 固不能別有忠言奇謀以裨聖聽, 而陛下日新之盛德, 亦未能有以使臣釋然而忘其夙昔之憂也. 則臣於此安得不深有感而重自悲乎? 身伏衡茅, 心馳魏闕, 竊不勝其愛君憂國之誠, 敢冒萬死, 刳瀝肺肝, 以效野人食芹炙背之獻, 且以自乞其不肖之身焉. 臣區區私計, 輒冒威顔, 幷此陳述. 臣賦性拙直, 不能隨世俯仰, 故自早年卽自揣度決是不堪從宦. 所以一向竊食祠祿, 前後九任, 豈不知有致身之義? 亦非恬無濟物之心, 寧爲退藏, 蓋以避禍. 中間稍蒙任使, 果然自速顚隮, 七年之間, 措身無所. 今者一出, 又致紛紜. 幸賴聖明保全終始, 增其祿秩, 使(2-487)足以免於饑寒, 進其官資, 使足以延於嗣息, 此皆已非臣平生意望所及. 天地之恩, 不啻厚矣. 今者奏疏, 止爲感激陛下虛心屈己, 容受狂言, 故竭平日憂國之誠, 以畢前日願忠之意. 所冀上有補於聖明, 下無負於所學而已, 非敢變其初心, 而復有進爲之望也. 若蒙聖慈詳賜觀覽, 循其本末, 次第施行, 使臣之言卓然實有可見之效, 則臣不待違心犯患, 以汗周行, 而其榮遇已不在諸臣之後矣. 如其繆妄, 無可施行, 則投閑置散, 乃分之宜, 雖欲借之恩私, 適足增其慚懼, 決非臣之所敢當也. 竊恐陛下見其所論懇切, 誤謂尙堪使令, 故復其奏, 伏乞聖察. 伏惟陛下哀憐財赦而擇其中, 則非獨愚臣之幸, 實宗社生靈之幸. 臣之所論, 雖爲一時之弊, 然其規畫實皆治體之要, 可以傳之久遠而無窮. 蓋前聖後聖, 其時雖異, 而其爲道未嘗不同. 此臣之言所以非徒有望於今日, 而又將有望於後來也. 疏遠賤微, 言不敢盡. 伏惟聖慈憐臣愚忠, 赦其萬死, 或因皇太子參決之際, 特賜宣示, 千萬幸甚. 臣熹誠惶誠恐, 昧死再拜, 謹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