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封事)
소흥(紹興) 32년 임오년(1162) 여름 6월 19일(丙子)에 효종 황제가 즉위해서 올곧은 말[直言]을 구하는 조칙을 내렸다. 가을 8월에 주자는 이 조칙에 응하여 봉사를 올렸다. 연보에 보인다.
時紹興三十二年壬午夏六月丙子, 孝宗皇帝卽位, 詔求直言. 秋八月公應詔上封事, 見文公年譜.
임오년 조칙에 응하여 올린 봉사[壬午應詔封事]
【해제】이 글은 소흥 32년(임오, 1162, 주자 33세) 등급[階]은 좌적공랑(左迪功郞) 직책[職]은 담주 남악묘 감[監潭州南嶽廟]의 신분으로 효종에게 올린 봉사이다. 1162년 6월 11일 남송의 고종은 태조의 7세손인 효종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효종은 즉위하자마자 같은 달 19일 황제와 조정의 잘못, 국가와 백성의 이해와 관련된 모든 사항에 대해 널리 정치적 조언을 구하는 조칙을 내렸는데 이 봉사는 거기에 응하여 쓴 것이다. 주자는 7월에 이 봉사의 초고를 완성해서 이동(李侗)의 수정을 거친 후에 8월에 임안으로 가서 천자에게 올렸다. 봉사의 내용은 이제 막 즉위한 황제와 조정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는 것으로, 연보에서는 이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제왕의 학문을 강론할 것, 둘째 내치와 외양의 계획을 확정할 것, 셋째 정치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데 힘쓸 것 등이다. 이것은 강학(講學), 정계(定計), 임현(任賢)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강학은 도․불로 대표되는 이단의 사설을 배격하고 대학에서 서술된 순서에 따라 유가적인 교양을 학습하는 것, 정계는 금나라와의 강화를 배척하고 남송의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내치와 외교에 힘쓸 것, 임현은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한 기초로서 현명한 인재의 등용 및 이를 통한 정치의 안정을 의미한다.
좌적공랑(左迪功郞)․담주 남악묘 감[監潭州南嶽廟]
8월 7일 신(臣) 주희(朱熹)는 삼가 죽기를 각오하고 두 번 절하고[昧死再拜] 황제폐하[皇帝闕下]께 글을 올립니다.
신이 생각해보니 태상황제(太上皇帝: 高宗)께서 우리나라[區夏]를 다시 세우시고, 천명을 받고 중흥하시어 근심하시고 삼가시는 태도로 어언 36년을 보냈습니다. 나이도 많지 않으시고, 국내에 다른 일도 없는 데에도 천하 국가를 깊이 생각하는 지극한 계책에서 하루아침에 광대한 천하와 존귀한 천자의 지위를 버리기로, 스스로 마음속에서 결단하고서 태자[聖子: 孝宗]에게 천자의 지위를 넘기셨습니다.
황제폐하께서는 공손한 태도로 (태상황제)의 가르침을 받들어 많은 기대에 호응해서 천자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應期御歷]. 처음으로 제위에 오르시고서[爰初踐阼] 얼마 되지 않았으나 정사를 베풀고 조치하는 중에 이 백성들의 바람을 크게 다독일 수 있는 것들이 날로 새로워지며 허송하는 날이 없고 그 규모도 진실로 넓고 원대했던 까닭에서 입니다.[規摹固已宏遠]. 그러나 오히려 겸손하게 물러나 성스러운 지혜를 갖추었다고 자처하지 않으시고, 무엇보다 먼저 밝은 조칙을 내려 직언(直言)을 구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제왕의 높은 품격을 가지고 정치의 급선무를 알고 있음을 충분히 볼 수 있으니 나라를 위해 큰 다행입니다.
저는 재야의 선비인지라[草茅] 마음속으로 ‘세상은 넓으니 인재도 많을 것이요, 충성스런 말과 훌륭한 계획들, 수준 높고 폭넓은 의론들이 날마다 폐하의 앞에 쌓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의들조차 폐하의 눈 길 한 번 받기에 충분치 못하고, (그 논의를 내놓은 사람들은) 오히려 채택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하물며 나같이 우매한 사람이 품고 있던 자잘한 생각을 말한다 한들 어찌 (황제에게)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될 것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생각해보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직언을 구하는 것은 여러 성천자(聖天子)들께서 이어온 전통으로 이미 관례화 된 것입니다. 아지 못하겠으나 오늘날 폐하의 뜻은 우선 관례를 갖추려는 것일 뿐입니까? 아니면 진실로 많은 말을 널리 모아서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저는 참으로 어리석어 폐하의 생각이 어디에서 나온 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군주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에 하찮은 신의 정성 속에서 우러나와 스스로 그만 둘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을 무릎쓰고 말씀드립니다. 폐하께서는 유념해서 들어주십시오.
제가 조서를 읽어보니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허물이 있거나, 조정에 잘못이 있거나 이 백성들의 안녕과 국가의 이해와 관련된 것 모두에 대해 안팎의 모든 사람들이 곧은 말로 극간하는 것을 허락한다.” 제가 생각해보니 폐하께서는 잠룡(潛龍)의 덕으로 궁궐에서 거의 30년을 보냈는데, 음란한 음악이나 여색을 가까이 않으시고, 재물이나 이익을 추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단 하나의 물건도 사사로이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 없었고, 안팎으로는 단 한 가지 일의 잘못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새벽녘[昧爽]에 일어나 조회할 적에는, 엄숙하고 공손하셨으며 삼가고 두려워하여[嚴恭寅畏] 어질고 효성스러운 덕이 위아래에 미더웠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폐하에 대한 우러름과 바람이 크게 모아졌고 태상황제의 자애로운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여 (황제의 자리를) 부탁받기에 이르렀으니, 갑자기 천하를 소유하게 되신 것은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폐하 스스로[聖躬]에게 잘못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즉위하신지 오래지 않았는데도 국가의 원로들을 이끌어 등용하시고[延登故老], 정직한 신하를 불러 쓰셨습니다. 요행(僥倖)들을 억눌러 조정의 기강을 바로 잡으셨고, 원한을 씻어 사기를 진작하셨으며, 황제에게 바치는 공물[貢奉]을 내탕(內帑)에 들이지 않으셨습니다. 공손하고 검소한 덕은 날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천하 사람들이 바라지만 행하지 못했고, 근심하지만 내치지 못했던 것을 차례대로 없애고 시행하면서 거의 여한을 남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조정의 잘못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의 아픔과 안락, 천하의 이해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민땅 모퉁이[閩陬]에서 거처한지 10여년이라 행적이 사방에 미치지 못하고, 견문이 미치는 한 두 가지도, 속으로 스스로 헤아려보아도 모두가 오늘 폐하께 마땅히 아뢰어야 할 것들이 아니니 감히 자질구레한 일을 들어 폐하의 귀를 더럽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속으로만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고서 끝내 폐하를 위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제가 편안히 여길 일이 아닙니다.
八月七日, 左迪功郞․監潭州南嶽廟臣朱熹謹昧死再拜, 上書于皇帝闕下:
臣恭惟太上皇帝再造區夏, 受命中興, 憂勤恭儉, 三十六年, 春秋未高, 方內無事, 乃深惟天下國家之至計, 一旦而擧四海之廣․天位之尊, 斷自宸衷, 傳之聖子. 皇帝陛下恭承慈訓, 應期御歷, 爰初踐阼, 曾未幾何, 而設施注措之間, 所以大慰斯民之望者, 新而又新, 曾靡虛日, 其規摹固已宏遠矣. 然猶且兼冲退託, 不以聖智(2-438)自居, 首下明詔, 以求直言. 此尤足以見帝王之高致, 知爲治之先務也, 天下幸甚!
臣竊伏草茅, 深自惟念天下之大, 不爲無人, 忠言嘉謨․崇論谹議計已日陳於陛下之前, 尙恐不足仰望淸光, 無以少備採擇, 况臣之愚, 雖欲效其區區, 豈能有補於萬分之一哉? 又惟卽位求言, 累聖相承, 以爲故事, 則末知今日陛下之意姑以備故事而已耶? 抑眞欲博盡羣言, 以冀萬一之助也, 臣誠愚昧, 不知所出, 然愛君尊主, 出於犬馬之誠, 有不能自已者, 故昧死言之, 惟陛下留聽.
臣伏讀詔書, 有曰“朕躬有過失, 朝政有闕遺, 斯民有戚休, 四海有利病, 幷許中外士庶直言極諫”者. 臣竊以陛下潛德宮府, 幾三十年, 不邇聲色, 不殖貨利, 無一物之嗜好形於宴私, 無一事之過矢聞於中外, 昧爽而朝, 嚴恭寅畏, 仁孝之德, 孚于上下. 所以大繫羣生之仰望, 濬發太上之深慈, 以至於膺受付託, 奄有萬方者, 其必有以致之矣. 然則聖躬之過失, 臣未之聞也.
今者臨御未幾而延登故老, 召用直臣, 抑僥倖以正朝綱, 以雪寃憤作士氣, 貢奉之私不輸於內帑, 恭儉之德日聞於四方, 凡天下之人所欲而未行, 所患而末去者, 以次罷行, 幾無遺恨. 然則朝政之闕遺, 臣亦末之聞也. 至於斯民之戚休, 四海之利病, 則有之矣. 然臣屛伏閩陬, 十有餘年, 足迹未嘗及乎四方, 其見閭所及之一二, 內自隱度, 皆非今日(2-439)所宜道於陛下之前者, 不敢毛擧, 以溷聖聽. 至若陰拱噤黙, 終不爲陛下一言, 則又非臣之所敢安也.
신은 이렇게 들었습니다. 주나라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훈계하기를 “자식을 낳음에 처음 낳을 때에 달려 있으니, 스스로가 밝은 명(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고 했고, 맹자의 말에도 또한 “비록 지혜가 있을지라도 형세를 타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바야흐로 지금 천명이 사방으로 돌봐줌이 마악 새롭고, 인심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도 한창 절실하니, 이 또한 폐하께서 근본을 단정하게 하시고 시작을 바로잡아 스스로 밝은 명령[哲命]을 만들어 낼 때이며, 시기의 적절성을 의지하고 이치에 순응하여 형세를 타고 일을 도모할 기회입니다. 또한 폐하께서 성스러운 덕이 융성하신 것을 세상 사람들이 전하고 외우며 말해 온 것이 지금까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황제의 자리[辰極]에 바르게 자리잡으신 것을 만물이 우러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비상한 일과 비상한 공적을 폐하에게 바라고 있으며, 다만 (폐하께서) 선왕들의 문물과 법제만을 지키는 좋은 군주가 되는 것에 그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상들의 영토를 회복하지 못했고, 종묘의 원한과 치욕을 갚지 못했으며, 오랑캐의 간악함은 평범치가 않고 백성들의 고난은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폐하께서 급하게 도모하시면서 온 백성의 소망에 부응하려면 마땅히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오늘날의 사태는 폐하께서 놓쳐서는 안 될 때일 뿐 아니라, 또 국가의 성쇠와 치란의 기미, 종사의 안위와 영욕의 조짐이 또한 모두 여기에서 결정이 됩니다. 폐하께서는 우리 송의 군주이시고 지금은 폐하의 시대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소망에 부응하지 않으신다면 조상들이 남긴 후예들과 백성들이 다시 마음 둘 곳이 없게 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어리석어 죽을 죄를 짓고 있습니다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비록 폐하 스스로에게는 잘못이 없지만, 제왕학[帝王之學]을 상세히 강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조정에는 비록 잘못된 정사가 없다지만 내수 외양[修攘]의 계책을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천하의 이해와 백성들의 아픔과 안락에 관한 것들을 낱낱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본원적인 것들에는 뜻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왕학에 대한 조예가 밝지 않으면 허물과 잘못이 싹트고, 내수외양의 계획이 확정되어 있지 않으면 잘못된 정사가 클 것이며, 근본이 단정하지 않으면 끄트머리의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신은 폐하를 위하여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臣聞召公之戒成王曰: “若生子, 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孟子之言亦曰: “雖有智慧, 不如乘勢.” 方今天命之眷顧方新, 人心之蘄向方切, 此亦陛下端本正始․自館哲命之時, 因時順理․乘勢有爲之會也. 又况陛下聖德隆盛, 天下之人傳誦道說, 有年于姦. 今者正位宸極, 萬物咸睹, 其心蓋皆以非常之事․非常之功望於陛下, 不但爲守文之良主而已也. 然而祖宗之境土未復, 宗廟之讎耻未除, 戎虜之姦譎不常, 生民之困悴已極. 方此之時, 陛下所以扱汲有爲, 以副生靈之望者, 當如何哉!然則今日之事, 非獨陛下不可失之時, 抑國家盛衰治亂之機, 廟社安危榮辱之兆, 亦皆決乎此矣. 蓋陛下者, 我宋之盛主, 而今日者, 陛下之盛時. 於此而不副其望焉, 則祖宗之遺黎裔冑不復有所婦心矣, 可不懼哉!可不擢哉!
臣愚死罪, 竊以爲聖躬雖未有過失, 而帝王之學不可以不熟講也. 朝政雖未有闕遺, 而脩攘之計不可以不早定也. 利害休戚雖不可徧以疏擧, 然本原之地不可以不加意也. 蓋學不講則過失萌矣, 計不定則闕遺大矣, 本不端則末流之弊不可勝言(2-440)矣. 臣請得爲陛下詳言之.
저는 요․순․우가 임금 자리를 서로 물려주면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오직 정(精)하고, 오직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中)을 붙잡으라”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요․순․우는 모두 위대한 성인인지라 나면서부터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에 당연히 배움에 뜻을 둘 일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정(精)하라’․‘한결같으라[一]’․‘붙잡으로[執]’고 말한 것은 나면서부터 지혜를 갖추었다 할지라도 또한 배움에 의지해서 그 지혜를 이루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폐하의 덕이 순수하고 풍성한 것은 옛 성인들과 부절을 합친 듯 하나, 나면서부터의 지혜를 갖추신 분인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길에서 오가는 말을 듣건대, 폐하께서 춘궁(春宮)에서 덕을 닦으시던 처음에 (진시황처럼) 기준을 정해두고 책을 읽기는 하였으되, 그 책들이란 겨우 문장이나 외우고 감정을 토로하는데 불과한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또 근년 이래로 폐하께서 홀로 추구하시는 것이 대도(大道)의 요체를 추구하고, 동시에 노자와 불교의 서적에 자못 마음을 두고 계신다고들 합니다. 멀리에서 들은 소문이라 과연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로 이런 것이라면 하늘이 내려준 성스럽고 신령한 자질을 이어받아서, 요순의 치세를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화려한 문장을 외우는 것은 연원을 탐구해서 치도로 나아가는 방법이 아니며. 허무․적멸은 본말을 관통해서 위대한 표준[大中]을 세우는 방도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과거의 뛰어난 황제와 명철한 왕들의 학문은 반드시 격물치지의 공부를 가지고 궁극적으로 천하사물의 변화에 대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눈앞을 스치는 사물들이 갖는 의리를 극히 작은 부분까지도 모두 비추어 보아 마음 속에 명료하게 만들고, 티끌만한 숨겨짐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절로 뜻이 정성스러워 지고 마음이 바르게 되어 세상의 모든 일에 대응하는 것이 마치 하나․둘을 헤아리고 흑백을 분별하는 것처럼 되게 하였습니다. 만일 배우지 않거나, 혹은 배우더라도 이 점을 위주로 하지 않는다면 내외와 본말이 뒤집히고 어긋나 총명하고 예지로운 자질과 효성․우애, 공손함과 검소한 덕을 가졌다 하더라도 지혜는 선을 밝혀내지 못하고, 식견은 이치를 궁구하지 못하여 끝내 천하의 치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배웠느냐 배우지 않았느냐, 배운 것이 바르냐 바르지 않느냐 하는 것은 군주의 마음에 달린 일이지만, 천하 국가가 다스려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천하에 드러나는 것은 이처럼 큰 것입니다. 그 상관관계가 어떻게 보잘 것 없다 하겠습니까? 주역에서 “조그만 차이가 결국 천리나 어긋난다[差之毫釐, 繆以千里]”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臣聞之, 堯․舜․禹之相授也, 其言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夫堯․舜․禹, 皆大聖人也, 生而知之, 宜無事於學矣. 而猶曰精, 猶曰一, 猶曰執者, 明雖生而知之, 亦資學以成之也. 陛下聖德純茂, 同符古聖, 生而知之, 臣所不得而窺也. 然竊聞之道路, 陛下毓德之初, 觀御簡策衡石之程, 不過調誦文語․吟咏情性而已. 比年以來, 聖心獨詣, 欲求大道之要, 又頗留意於老子․釋氏之書. 疏遠傳聞, 未知信否. 然私獨以爲若果如此, 則非所以奉承天錫神聖之資而躋之堯舜之盛者也. 蓋記誦華藻, 非所以探淵源而出治道 : 虛無寂減, 非所以貫本末而立大中. 是以古者聖帝明王之學, 必將格物致知以極天事物之變, 使事物之過乎前者, 義理所存, 纖微畢照, 瞭然乎心目之間, 不容毫髮之隱, 則自然意誠心正, 而所以應天下之務者, 若數一二․辨黑白矣. 苟惟不學, 與學焉而不主乎此, 則內外本末賴倒繆戾, 雖有聰明睿智之資, 孝友恭儉之德, 而智不足以明善, 識不足以窮理, 終亦無補乎天下之治亂矣. 然則人君之學與不學, 所學之正與不正, 在乎方寸之間, 而天下國家之治不治, 見乎彼者如此其大, 所繫豈淺淺哉! 易所謂差之毫釐, 繆以千里, 此類之謂也.
치지․격물이란 요․순이 말한 ‘정일(精一)’이요, 마음을 바루고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은 요․순이 말한 ‘집중(執中)’입니다. 옛부터 성인들이 말과 마음으로 전해준 내용들이 일과 행실에 드러나는 것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공자에 이르러 전해 오던 것을 집대성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나아가 걸맞는 지위를 얻어 천하에 베풀지를 못했기 때문에, 물러나 육경을 저술함으로써 후세의 천하국가를 다스리려는 자들에게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근본과 말단․처음과 끝․앞 뒤의 순서를 더욱 분명하고 상세하게 말한 것은 오늘날 대씨(戴氏)의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대학편(大學篇)이 바로 그것입니다. 승의랑(承議郞) 정호(程顥)와 그의 동생 숭정전 설서(崇政殿說書) 정이(程頤)는 근세의 큰 유학자로서 실제로 공자와 맹자 이래 단절된 학문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이 편을 공씨(孔氏)가 남긴 글로서 학자들이 마땅히 먼저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으니 정말로 지극한 말입니다.
어리석은 신은 엎드려 바랍니다. 폐하께서는 과거에 익히신 쓸데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문장을 버리시고, 사이비 사설을 배척하십시오. 잠시 폐하께서는 이 경에 유의하여, 경의 지취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참된 학자를 찾아서 곁에다 두어 묻고 질문하는 데 대비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연구하고 확충하며, 지극히 정하고 지극히 한결같은 경지에 힘써 천하 국가가 다스려지는 이유가 여기[此]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본체와 작용이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고, 드러난 것과 감추어진 것이 간격이 없음을 알아서, 홀로 요․순․우․탕․주․문․무․주공․공자가 전수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에 육경의 문장을 고구하고, 과거 역대 왕조의 발자취를 거울삼아 마음에서 깨달은 것으로 현재의 수많은 변화에 대응하셔야 할 것입니다. 폐하의 성스럽고 밝은 자질로 근원을 탐구하고 그 뜻을 보좌하게 하는 것이 이처럼 갖추어진다면 그 경지가 도달하는 곳을 어찌 어리석은 신이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은 도를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진달하는 것은 단지 스승과 친구들에게서 들은 대강의 단서들일 뿐입니다. 폐하께서 여기에서 말미암아 학문을 강론하여 스스로 체득하신다면[自得] 반드시 신의 말이 미칠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경지가 있을 것입니다. 오직 폐하께서 깊이 유의하시면서 소흘히 하지 않으신다면 천하는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蓋致知格物者, 堯舜所謂精一也. 正心誠意者, 堯舜所謂執中也. 自古聖人口授心傳而見於行事者, 惟此而巳. 至於孔子集厥大成, 然進而不得其位以施之天下, 故退而筆之以爲六經, 以示後世之爲天下國家者. 於其間語其本末終始先後之序, 尢詳且明者, 則今見於戴氏之記, 所謂大學篇者是也. 故承議郞程顥與其弟崇政殿說書頤近世大儒, 實得孔孟以來不傳之學, 皆以爲此篇乃孔氏遺書, 學者所當先務, 誠至論也.
臣愚伏願陛下捐去舊習, 無用浮華之文, 攘斥似是而非邪詖之說, 少留聖意於此遺經, 延訪眞儒深明厥旨者置諸左右, 以備顧問, 硏究充擴, 務於至精至一之地而知天下國家之所以治者不出乎此, 然後知體用之一原, 顯微之無間, 而獨得乎堯․舜․禹․湯․文․武․周公․孔子之所傳矣. 於是考之以六經之文, 監之以歷代之跡, 會之於心, 以應當世無窮之變, 以陛下之明聖而所以浚其源․輔其志者如此其備, 則其所至, 豈臣愚昧所能量哉!
然臣非知道者, 凡此所陳, 特其所聞於師友之梗槪端緖而已. 陛下由是講學而自得之, 則必有非臣之言所能及者. 惟陛下深留聖意毋忽, 則天下幸甚!
신은 또 천하 국가를 다스리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일정한 불변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날의 계획이란 정사를 닦고 이적을 물리치는 것에 불과해서, 은밀하다거나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현재 확정되지 못한 것은 강화를 주장하는 설들이 의심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금나라 오랑캐가 저희들에게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들이라면 강화가 불가능하다는 의리는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어떤 자들은 오히려 이러한 주장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의 생각은 반드시 이러할 것입니다. “오늘날 근본이 견고하지도 못하고, 형세도 이뤄지지 않았다. 나아가려해도 중원을 회복할 책략이 없고, 물러나려 하여도 (금과의) 싸움에 대비할 방법이 없다. 허례(虛禮)로 얽어매고, 금나라에서 조빙한 것에 따라 사신을 보내 보답하면서 국토를 돌려줄 것을 부탁하고, 약한 모습을 보여서 그들로 하여금 교만하고 나태하게 만들어 갑자기 우리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우리들은 그 사이에 조용히 세력을 키워 큰 일에 대비해야 한다. 만일 하늘이 우리에게 재앙을 주신 것을 후회하고 혹 저들의 마음을 유도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커다란 소원은 단 한 명의 병사를 죽이지 않고 앉은 채로 달성할 수 있다. 무엇이 꺼림칙해서 강화를 하지 않는단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리상 해서는 안 되는 줄을 알면서도 어떤 일을 하는 것은 반드시 이익은 있지만 폐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로는 ‘강화’란 백해무익한 것인데 어찌 힘들여 꼭 강화를 하려는 것입니까? 복수를 하고 적을 토벌하며,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어 선을 행한다는 말들은 경전에 쓰여 있는 것이 단순히 상세할 정도만이 아닙니다. 총명하신 폐하께서 옛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본시 신의 한 두 마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잠시 그 이해에 관해서 진달하니 청컨대 폐하께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臣又聞之, 爲天下國家者, 必有一定不易之計, 而今日之計不過乎脩政事․攘夷狄而已矣, 非隱奧而難知也. 然其計所以不時定者, 以講和之說疑之也. 夫金虜(2-442)於我有不共戴天之讎, 則其不可和也義理明矣. 而或者猶爲是說者, 其意必曰: 今本根未固, 形勢末成, 進未有可以恢復中原之策, 退未有可以備禦衝突之方, 不若縻以虛禮, 因其來聘, 遣使報之, 請復土疆, 示之以弱, 使之優游驕怠, 未遽謀我, 而我得以其間從容興補而大爲之備. 萬一天意悔禍, 或誘其衷, 則我之所大欲者, 將不用一士之命而可以坐得, 何憚而不爲哉? 臣竊以爲知義理之不可爲矣, 而猶爲之者, 必以有利而無害故也. 而以臣策之, 所謂講和者, 有百害無一利, 何苦而必爲之? 夫復讎討賊․自彊爲善之說見於經者, 不啻詳矣. 陛下聰明稽古, 固不待臣一二言之, 請姑陳其利害而陛下擇焉.
그들이 말하는 “근본이 견고하지 못하고 형세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나아가도 공격할 수 없고, 물러서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어째서 그런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강화를 맺자는 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을 깨트리지 못하면 천하의 일은 단 한 가지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이치가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나아가 생사를 한 번 결단하려는 계획이 없고, 물러서면서 시간만 끌다 보면 적의 공격이 그칠 것이라고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정이 비록 애써 나아가 큰일을 도모하는데[進爲] 힘쓰고자 하여도 그 기운은 본시 이미 먼지처럼 흩어지고 저해되어 호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굳세게 지키지도 못하고 용맹하게 떨쳐 일어나지도 못하는 것은 본래 마음먹은 뜻이 그런 것이 아니라 형세가 기운을 분산시키고, 기(氣)가 의지를 침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강화하자는 주장을 깨트리지 않으면 폐하께서 힘쓰시려는 뜻은 반드시 약해지고, 대신들이 떠맡은 책무도 반드시 가벼워 질 것이며, 장군과 사졸들이 공업을 쌓는 것도 느릿느릿해지고, 궁인과 온갖 서리들의 (윗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것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위에서 하려는 일을 따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즉 근본은 결국 어느 때나 되어서야 견고해 질 것이며, 형세는 결국 어느 때나 되어서야 이루어 질 것이며, 중원을 회복하는 것은 또 어느 때나 도모할 수 있을 것이며, 나라를 지키는 것은 또 어느 때에나 믿을 만해지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夫議者所謂本根未固, 形勢未成, 進不能攻, 退不能守, 何爲而然哉? 正以有講和之說故也. 此說不罷, 則天下之事無一可成之理. 何哉? 進無生死一決之計, 而退有遷延可已之資, 則人之情雖欲勉彊自力於進爲, 而其氣固已渙然離沮而莫之應矣. 其守之也必不堅, 其發之也必不勇, 此非其志之本然, 氣爲勢所分, 志爲氣所奪故也. 故今日講和之說不罷, 則陛下之勵志必溺, 大臣之任責必輕, 將士之赴功必緩, 宮人百吏之奉承必不能悉其心力, 以聽上之所欲爲. 然則本根終欲何時而固, 形勢終欲何時而成, 恢復又何時而可圖, 守備又何時而可恃哉? 其不可冀明(2-443)矣.
‘헛된 예절로 오랑캐를 얽어매자’고 말하지만 저들은 비록 인의는 부족할지라도 흉하고 교활한 것은 남아 넘칠 지경이니, 정말로 우리를 침략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자질구레한 헛된 예절 때문에 교만해 지겠으며, 진실로 우리를 겸병하려는 형세를 갖고 있다면 또 어찌 자질구레한 헛된 예절 때문에 그만두겠습니까?
또 ‘약함을 보인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복심을 드러내고 정실을 노출해서 본연의 약함을 보이는 것이지, 강한데도 약함을 보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속내를 엿보게 하고, 우리들이 계책이 없음을 알도록 해서 더욱 거리낌이 없게 할뿐입니다. 설령 그들이 쳐들어오지 않더라도 우리들이 이것을 믿고서 스스로 편안히 여긴다면, 세력이 분산되고 기운은 상실되는 것이 날로 더욱 심하여 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것들은 비록 다시 10년을 허비하더라도 또 장차 어떤 계획이 이루어 질 수 있겠습니까? 적을 교만하게 만들자는 말은 곧 적을 일깨워주고 우리 자신을 교만에 빠트리는 것이요, 도둑질을 늦추자는 말은 곧 적의 형세를 길러주고 스스로를 게으름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오랑캐를 위한 계책이라면 훌륭하거니와 우리 신하된 자가 응당 말할 것은 아닙니다.
또 저 도적들이 중원을 차지하고서 해마다 금폐를 취하고, 전성기의 세력을 누리면서 강화와 불화의 권한을 조절하여, 조금 약해지면 우리에게 강화를 요구하는 데에도, 우리는 감히 꼼짝도 못하고, 힘이 충분하면 대거 침입해서 또 우리들은 버틸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조용히 강화를 조절하고 있으나 그들이 조정하는 술수는 언제나 강화의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로우면 쳐들어오고, 불리하며 움추러들어 진퇴가 모두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머리를 쳐들고서 저들을 우러러 강화와 불화의 명을 듣고 있고, 국가를 도모하는 자들은 오직 오랑캐들의 환심을 잃을까 걱정하면서 장기적인 계책을 만들지도 않으니, 나아가서는 중원을 회복할 기회를 잃고, 물러서서는 충신과 의로운 선비들의 의사의 마음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급급하게 강화를 바라면서도 생각과 뜻은 언제나 강화에 빠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진퇴가 모두 마땅함을 잃고 있습니다. 선화(宣和)․정강(靖康) 이래로 30~40년 동안 오랑캐들이 오로지 이 계책을 잡고서 우리들의 마음 속에 들어 앉아 있으니, 책략을 결정해서 제압하고 이기며, 종횡으로 나아갔다 물러나는 것이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술책 가운데 빠져서 깨닫지도 못하고 있으니, 나라는 위태로워지고 군대를 잃는 것이 똑같은 형태처럼 빚어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겪은 일에 대해 사람들은 조정이 그들의 술책을 이제는 알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상령을 푼 지 오래지 않아 오랑캐의 사신이 다시 이르렀습니다. 저들이 어찌 우리를 꺼려서 갑자기 이렇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또 이전의 계책으로 우리에게서 뜻한 바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오히려 깨닫지 못하고, 사신이 왔다 하여 보빙사(報聘使)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보빙사가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해주(海州)의 포위는 이미 긴박해 졌습니다. 그들의 속셈을 어떻게 쉽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의론하는 자들은 오히려 이미 시험해서 실패한 옛 계책을 가지고 감당하려 하니 그 또한 생각이 깊지 못한 것입니다.
若曰以虛禮縻之, 則彼雖仁義不足而凶狡有餘, 誠有謀我之心, 則豈爲區區之虛禮而驕? 誠有兼我之勢, 則亦豈爲區區之虛禮而輟哉? 若曰示之以弱, 則是披腹心․露情實而示之以本然之弱, 非强而示之弱之謂也. 適所以使之窺見我之底蘊, 知我之無謀而益無忌憚耳. 縱其不來, 我恃此以自安, 勢分氣奪, 日復一日, 如前所云者, 雖復曠日十年, 亦將何計之可成哉? 則是所以驕敵者, 乃所以啓敵而自驕 : 所以緩寇者, 乃所以養寇而自緩. 爲虜計則善矣, 而非吾臣子所宜言也.
且彼盜有中原, 歲取金幣, 據全盛之勢以制和與不和之權, 少懦則以和要我而我不敢動, 力足則大擧探人而我不及支. 蓋彼以從容制和而其操術常行乎和之外, 是以利伸杏蟠而進退皆得. 而我方且仰首於人, 以聽和與不和之命, 謀國者惟恐失虜人之驩, 而不爲久遠之計, 進則矢中原事機之會, 退則沮忠臣義士之心. 蓋我以汲汲欲和而志慮常陷乎和之中, 是以跂前疐後而進退皆失. 自宣和․靖康以來, 首尾三四十年, 虜人專持此計, 中吾腹心, 決策制勝, 縱橫前却, 無不如其意者. 而我墮其術中, 曾不省悟, 危國亡師, 如出一轍. 去歲之事, 人謂朝廷其知之矣, 而(2-444)解嚴未幾, 虜使復至. 彼何憚於我而遽爲若是? 是又欲以前策得志於我. 而我猶不悟也, 受而報之, 信節未還而海州之圍已急矣. 此其包藏反覆, 豈易可測? 而議者猶欲以已試敗事之餘謀當之, 其亦不思也哉!
게다가 영토의 회복을 청해서 만에 하나 얻게 되는 경우를 바라자는 것도 더욱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영토는 우리들의 옛 땅입니다. 비록 빼앗기는 불행을 당하기는 했지만, 어찌 저 원수같은 오랑캐들이 우리들에게 줄까 말까하는 결정권을 쥐고 흔들도록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가진 덕의 힘이 어떤지를 살필 뿐입니다. 우리가 회복할 방도가 있다면 저들은 땅을 유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우리에게 돌려줄 것입니다. 우리들이 회복할 방도가 없다면 저들이 어찌 우리들의 힘으로 회복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주려 하겠습니까? 또 저들이 땅을 유지할 수 있고, 우리가 회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약하고 저들이 강하다는 것은 비교하지 않아도 분명합니다. 설사 그들이 우리에게 준다고 한들 우리들이 어떻게 버티면서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至於請復土彊而冀其萬一之得, 此又不思之大者. 夫土疆, 我之舊也, 雖不幸淪沒, 而豈可使彼仇讎之虜得以制其予奪之權哉? 顧吾之德之力如何耳. 我有以取之, 則彼將不能有而自歸于我 : 我無以取之, 則彼安肯擧吾力之所不能取者而與我哉? 且彼能有之而我不能取, 則我弱彼强, 不較明矣. 縱其與我, 我亦豈能據而有之?
저들이 큰 은혜를 베풀었고, 우리들이 큰 비용을 허비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 견고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난 날 연주[燕]와 운주[雲], 3경(三京)의 일이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한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가령 만에 하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계획에서 나와서, 저들이 정말로 우리를 속이지 않고 보답을 바라지도 않으며, 우리들 역시 스스로를 지키기에 충분하고 훗날까지 다른 걱정꺼리도 없는 것이라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대송(大宋)이 스스로의 힘으로 조상들의 땅과 사당을 되찾지도 못하고, 오랑캐 원수들에게 빌어서 국가를 영위하려고 하는 것은 못난 신이 생각하기에 폐하조차도 수치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과거에 사신을 보내 조빙에 화답한 것은 이 일을 청하려는 것이었음에도 이미 실패했습니다. 폐하께서 제위를 계승하시자 온 세상 사람들이 (중원의 회복이) 거의 멀지 않았다고들 했지만, 조칙을 내려 보내 여러 장수들에게 군대를 진격시키지 말라고 했고, 사신을 파견하면서 제위를 계승한 사실을 알리고 우호적인 예를 갖추시려고 하셔서, 마치 화의가 꼭 성립되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국토를 회복하기만을 기다리는 뜻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원근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소망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신은 그것들이 어떤 주장들인지 알지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폐하의 주변에 있는 자들의 치밀하지 못한 계책이 한탄스럽습니다.
彼有大恩, 我有大費, 而所得者未必堅也. 向者燕․雲․三京之事可以監矣. 是豈可不爲之寒心也哉? 假使萬有一而出於必不然之計, 彼誠不我欺而不責其報, 我必能自保而永無他虞, 則固善矣. 然以堂堂大宋, 不能自力以復祖宗之土宇, 顧乃乞丐於仇讎之戎狄以爲國家, 臣雖不肖, 竊爲陛下羞之. 夫前日之遣使報聘, 以是爲請, 旣失之矣. 及陛下嗣位, 天下之望曰庶幾乎, 而赦書下者, 方且禁切諸將毋得進兵, 申遣使介, 告諭纂承之意, 繼脩和好之禮, 亦若有意於和議之必成而坐待土彊之自復者. 遠近傳聞, 頓失所望. 臣愚不能識其何說, 而竊歎左右者用計之不詳也.
옛말에 “의심스러운 일에는 공적이 없고, 의심스러운 행동에는 명예가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오랑캐들이 우호적으로 나오면서도 군대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응 방법은 언제나 두 가지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정해진 계획조차 없으니, 어찌 ‘의심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으로 호령하려 들면 보고 듣는 사람들의 의혹을 일으키게 만들어 마음이 뿔뿔이 흩어지고, 기운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공격하지 않았는데 이미 후퇴하고, 싸우기도 전에 이미 진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국토를 회복하려는 공을 세우려 한다면 또한 이미 어렵다 할 것입니다.
古語有之, 疑事無功, 疑行無名. 今虜以好來而兵不戢, 我所以應之者常不免出於兩塗而無一定之計, 豈非所謂疑事也哉? 以此號令, 使觀聽熒惑, 離心解體, 是乃未攻而已却, 末戰而已敗也. 欲以此成恢復之功, 亦已難矣.
그러나 일의 잘못이 방금 있었던 일이라서 쉬이 정책을 바꿀 수 있으며, 지나간 일은 다 말할 수 없지만, 다가오는 미래의 일은 오히려 좇아갈 수 있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대신들에게 자문하시고 뭇 계획을 휘잡아서 국토를 잃은 이유를 살피고, 응하는 술책을 구하시되 의리의 공정함으로 단안을 내리시고, 이해의 실상을 참고하셔서, 화친하려는 의론을 물리치시고, 앞서 보낸 사신을 사람을 보내 되돌리셔야 할 것입니다. 아직 회수를 건너지 않았다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후로는 관문을 닫고 약정을 맺지 않으면서 현자와 능력있는 자를 임용해서 부리시고, 기강을 세우고 풍속을 진작시키며, 우리의 내치를 닦고 밖에 있는 이적을 물리치십시오. 질질끌며 중지시키는 것들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어떤 것도 믿지 마시고, 한 순간이라도 스스로 편안하려는 생각도 갖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장상과 군민들, 원근 안팎의 사람들이 모두 폐하의 뜻이 반드시 복수하고 영토를 되찾으려는 데에 있지, 허송세월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밝게 알아, 곧 서로 격려하며 일과 공적을 도모할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면 의지는 정해지고, 기운은 가득차며, 국가는 부유하고 군대는 강성할 것이니 이때에 우리의 힘이 강한지 약한지를 비교하고, 저들의 약점이 얕은 지 깊은 지를 관찰해서 천천히 일어나 도모한다면 중원의 옛 땅을 우리들이 차지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것은 불과 몇년만 늦추면 도리도 당당하고 형세도 완전해지며, 명분도 바르고 실상도 이로워져 강화나 땅을 청하고 구차하게 요행을 바라 반드시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계획과는 같이 논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오직 폐하께서 깊이 유념하시고 소홀이 여기지 않으신다면 천하는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然失之未遠, 易以改圖, 往者不可諫, 而來者猶可追也. 願陛下疇咨大臣, 總攬羣策, 鑒失之之由, 求應之之術, 斷以義理之公, 參以利害之實, 罷黜和議, 追還使人, 苟未渡淮, 猶將可及. 自是以往, 閉關絶約, 任賢使能, 立紀綱, 厲風俗, 使吾脩政事․攘夷狄之外. 了然無一亳可恃以爲遷延中已之資, 而不敢懷頃刻自安之意, 然後將相軍民․遠近中外無不曉然知陛下之志必於復讎啓土而無玩歲愒日之心, 更相激厲, 以圖事功. 數年之外, 志定氣飽, 國富兵强, 於是視吾力之强弱, 觀彼釁之殘深, 徐起而圖之, 中原故地不爲吾有, 而將焉往? 此不過少遲數年之久, 而理得勢全, 名正實利, 其與講和請地․苟且僥倖必不可成之虛計, 不可同年而語也明矣. 惟陛下深留聖意毋忽, 則天下幸甚!
나라 전체의 이해득실에 대해서 저는 이 백성들의 휴척과 연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백성의 휴척은 신은 또 수령의 현명함의 여부에 연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수령의 강령이요, 조정은 감사의 근본입니다. 이 백성들이 모두 제자리를 얻기 원하신다면, 그 근본이 되는 곳은 역시 조정에 있을 뿐입니다.
至於四海之利病, 臣則以爲繫於斯民之戚休 : 斯民之戚休, 臣則以爲繫乎守令之賢否. 然而監司者, 守令之綱也 : 朝廷者, 監司之本也. 欲斯民之皆得其所, 本原之地, 亦在乎朝廷而已.
폐하께서는 오늘날의 감사(監司) 가운데 불법적인 뇌물 사건이 낭자하고 멋대로 학정을 베풀어 백성을 병들게 하는 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재집(宰執)과 대간(臺諫)의 친구 및 빈객들이 아닙니까? 그들 가운데 이미 세력을 잃은 자들에 대해서는 폐하께서 이미 그들의 사사롭게 얽힌 모양을 살피시고 내치셨습니다. 아직도 자리에 있는 자들 중에 그런 자들이 어찌 없겠습니까? 다만 폐하께서 스스로 알지 못하고 계실 뿐입니다. 그런 즉 어떤 일의 이익은 백성들의 복이며, 어떤 일의 병폐는 백성들의 재앙인지 폐하께서 비록 알려고 하지만 또한 누가 그 뜻을 받들어 백성들에게 베풀 것입니까? 신은 오직 조정을 바르게 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는다면 그 근심은 오래지 않아 저절로 혁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도 이 일에 생각이 있으신 듯 합니다. 지난 날에 불렀던 몇몇 군자들은 모두 천하 사람들이 말하는 충신이요 현사들입니다. 때문에 조정을 바루는 도구들이 어찌 이들보다 더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재능의 뛰어남이 각기 다르니 맡기는 임무도 또한 달라야 할 것입니다. 원컨데 폐하께서는 그 중 뛰어난 자는 군주를 보좌하며 모든 일을 다스리게 하여 하늘의 일을 밝히게 하십시오. : 그 가운데 좀 못한 자는 관원으로 두시고 직책을 맡겨 여러 일들을 일으키게 하십시오. 바깥의 일[外事]에 능한 자들은 군대와 사방을 지키는[典戎幹方] 책임을 맡기시고, 치도의 본령[治體]에 밝은 자들은 빠진 것을 점검하고 잘못을 비판하는[拾遺補過] 관직에 충당하도록 하십시오. 또 그들로 하여금 아는 자들을 각각 천거하게 해서 여러 자리에 포진시켜 함게 천하의 일을 도모하게 하십시오.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현자이면 비록 멀더라도 빠뜨리지 마시고, 친한 사람일지라도 부적격한 사람이면 비록 가깝더라도 반드시 버리십시오. 벼슬에 먼저 들어온 사람의 의견만을 옹호해서 한쪽 말만 듣고[偏廳], 특정인에게만 일을 맡긴다[獨任]는 비난을 불러일으키지 마십시오. 사적인 은혜를 도타이 해서 ‘도량이 좁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라’는 훈계를 범하지 마십시오. 나아가던지 물러나던지, 버리던지 택하던지 오직 공론의 소재를 돌아보시면 조정은 바르게 되고 내외 원근이 올바르게 귀결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陛下以爲今日之監司姦贓狼籍, 肆虐以病民者誰? 則非宰執臺諫之親舊賓客乎? 其旣失勢者, 陛下旣按見其交私之狀而斥去之矣, 尙在勢者, 豈無其人? 願陛下無自而知之耳. 然則某事之利爲民之休, 某事之病爲民之戚, 陛下雖欲聞之, 亦誰與奉承而致諸民哉? 臣以爲惟以正朝廷爲先務, 則其患可不日而自革. 而陛下似亦有意乎此矣. 蓋前日所號召數君子者, 皆天下所謂忠臣賢士也. 所以正朝廷之具, 豈有大於此者哉! 然其才之所長者不同, 則任之所宜者亦異. 願陛下於其大者使之贊元經體, 以亮天工 : 於其細者使之居官任職, 以熙庶績. 能外事者使任典戎幹方之責, 明治體者使備拾遺補過之官. 又使之各擧所知, 布之列位, 以共圖天下之事, 使疏而賢者雖遠不遺, 覩而否者雖邇必棄. 毋主先入, 以致偏聽獨任之譏 : 毋篤私恩, 以犯示人不廣之戒. 進退取舍, 惟公論之所在是稽, 則朝廷正而內外遠近莫敢不一於正矣.
감사를 적임자를 얻은 다음에 여러 군의 득실을 알 수 있고, 군수를 적임자를 얻은 다음에 소속 현이 다스려지느냐 못하느냐를 살필 수 있습니다. 그 임무를 신중하게 맡기고서 그 성공을 책임지우고, 그 선한 것을 들어주고 악한 것을 징계하셔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신다면 일마다 말하는 이익이라거나, 백성들이 말하는 복이란 것도 거행되지 않는 것이 없고, 일마다 말하는 병폐, 백성들이 말하는 재앙이란 것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 또 어찌 천자의 속마음을 끓이겠습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고 절실한 마음에서 오늘 한 조칙을 내려보내고, 내일 한 가지 일을 실행하시려 한다면,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면서 다만 그들의 어지러움만을 더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요, 그들의 이익을 일으킨다면서 더욱 그들의 해로움만 무겁게 하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어지럽고 자질구레한 것들이 이미 군주의 길에 마땅한 것이 아니요, (명령을) 선포하고 봉행하는 것이 한갖 보고 듣기에나 좋을 뿐이라면, 또한 어떤 보탬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지금은 가뭄과 메뚜기가 곳곳에서 일어나, 백성들의 식량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부역을 줄여주고, 진휼에 들어가는 곡식을 비축하며, 곡식의 유통을 계획하고 도적을 없애려는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 더욱 수령을 적임자를 얻었느냐에 달려 있으나, 그 본원의 바탕은 더욱 소재가 있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깊이 유념하시고 소홀히 여기지 않으신다면 천하는 아주 다행일 것입니다.
監司得其人, 而後列郡之得失可得而知. 郡守得其人, 而後屬縣之治否可得而察. 重其任以責其成, 擧其善而懲其惡, 夫如是, 則事之所謂利, 民之所謂休, 將無所不擧 : 事之所謂病, 民之所謂戚, 將無所不除, 又何足以勞聖慮哉? 苟惟不然, 而切切然今日降一詔, 明日行一事, 欲以惠民而適增其擾者有之, 欲以興利而益重其害者有之, 紛紜叢脞, 旣非君道所宜, 宣布奉行, 徒爲觀聽之美而已, 則亦何補之有? 况今旱蝗四起, 民食將乏, 圖所以寬賦役․備賑贍․業流通․鎖盜賊之計, 尤在於守今之得其人, 而其本原之地, 則又有在. 願陛下深留聖意毋忽, 則天下幸甚!
천하의 일은 오늘날에 이르러 병폐가 없는 것이 없어서 이루다 아뢸 수조차 없습니다만 진언하는 사람이 많은 즉 어떤 내용은 이미 대충 다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적인 방법[要道]과 앞서 힘써야 할 일[先務]로서 늦추어서 안 될 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강학은 이치를 밝히는 것으로 앞에서 인도하는 것이오, 계획의 결정[定計]은 기운을 양성하는 것으로 뒤에서 독려하는 것이며, 현자를 임용하는 것은 정치를 닦는 것으로 그 가운데서 씨줄과 날줄이 되는 것입니다. 천하의 일은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정치를 처음 시작하시는 기회를 틈타 근본을 단정히 하고, 시작을 올바르게 하고, 스스로 운명을 밝게 만들어 낼 때이시며 시대에 따라 이치에 순응하여, 형세를 타고 일을 도모할 기회에 서 있습니다. 이 세 말에 대해 깊이 살피고 받아들이시며, 결단성 있게 힘써 실천하셔서 천하를 행복케 한다면 이루다 말씀드릴 수 없다고 한 일들과 의론하는 자들의 말에서 드러난 의리의 공정함에 합치하고, 이해의 계책에 절실한 일들이 자연히 순서대로 진행되며 각기 제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비록 세상이 다스려지기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을 이루려는 방법을 얻지 못하고, 비록 다스림을 이룰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행하려 할 때 순서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공경하고 검소하며 수고롭게 일하다가 걱정과 고생이 너무 심해져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생기고 그 효과도 보지 못하게 디면 결국 타성에 젖어 따라가면서 성취하는 것은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천하의 사람들이 목을 빼고 발꿈치를 들고서 폐하의 초심(初心)에 대해 바라는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때에 이르면 비록 후회한다고 한들 신은 오히려 수고로움과 근심은 배나 더 들지만 성취와 효과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될까 두렵습니다.
蓋天下之事至於今日, 無一不弊而不可以勝陳. 以獻言者之衆, 則或已能略盡之矣. 然求其所謂要道先務而不可緩者, 此三事是也. 夫講學所以明理而導之於前, 定計所以蕃氣而督之於後, 任賢所以脩政而經緯乎其中, 天下之事無出乎此者矣. 伏惟陛下因此初政, 端本正始․自貽哲命之時, 因時順理․乘勢有爲之會, 於此三言深加察納, 果斷力行, 以幸天下, 則夫所謂不可勝陳之事, 凡見於議者之言, 而合乎義理之公, 切於利害之計者, 自然循次及之, 各得其所. 若其不然, 雖有求治之心而致之不得其方, 雖有致洽之方而爲之不得其序, 一旦恭儉勞苦, 憂勤過甚, 有所不堪而不見其效, 則亦終於因循怠惰而無所成矣, 豈天下之人所以延頸擧踵而望陛下之初心哉!至於是時, 雖欲悔之, 臣恐其倍勞聖慮而成效不可期也.
게다가 가뭄과 메뚜기의 재해가 수 천리를 휘감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초기에 청명하시고 행실의 허물이 없는데도[行誼未過] 요얼의 경계함이 분명함이 이처럼 심하니, 여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늘[天心]이 폐하를 도타이 인애하셔서, 정치의 잘못과 행동의 실수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경계하는 뜻을 내려 보내 천자의 마음을 구제하시고, 천자의 융성한 덕과 커다란 아름다움이 시종일관 순수하고 완전해져서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 할 수 없도록[無可非間]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상(商)의 중종과 주(周)의 선왕(宣王)이 재이로 인하여 덕을 닦아서 중흥을 이루신 것과 같습니다. 마땅히 이 세 가지 방법에 대해 누차에 걸쳐 반성하시고 속히 도모하셔서 민심에 따르고 하늘의 뜻에 응답하신다면, 밝고 성스러운 폐하께서는 반드시 여기에 대처할 방법이 있게 될 것입니다.
又况旱蝗之災環數千里, 陛下始初淸明, 行誼未過, 而夭戒赫然, 若此其甚, 其必有說矣. 臣愚竊以爲此乃天心仁愛陛下之厚, 不待政過行失而先致其警戒之意以救聖心, 使盛德太美始終純全, 無可非間, 如商中宗․周宣王因災異而脩德, 以致中興也. 是宜於此三術屢省而亟圖之, 以順民心, 以答天意. 以陛下之聖明, 必將有以處此.
저의 어리석은 생각에 한 가지 근심스러운 것은 말하는 자들이 그렇게 된 까닭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서, 그 사이에 고치지 않을 수 없는 것들마저도 혹여 태상황제의 뜻이 아니라고 여기고는, 폐하께서 그것을 고침으로써 어버이의 뜻을 어기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은 이런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가 태상황제의 사심 없는 지극히 공정한 마음은 덕이 천지와 합치해서 30여년[三紀]을 제위에 계셨습니다. 그 사이 온갖 곤란을 겪으시면서 사람을 등용해 정사를 처리하되 모두 때에 따라 이치에 순응했고, 사태의 변화에 대응하시면서 한 가지 정해진 주장에 얽매인 적이 없었습니다. 앞과 뒤, 처음과 끝이 다른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이 변화하되 서로 상반되면서도 한 해의 공업을 이루는 것과 같았습니다. 마음에는 신묘함을 담고 지나는 곳마다 교화가 이루어져 티끌만한 사사로운 뜻도 그 사이에 개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태상황제께서 초연한 태도로 멀리 물러서면서 제황의 지위를 어려움 없이 훌훌 털어버린 것은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본디 천자의 지위를 폐하에게 전한 뜻이, 어찌 폐하께서 반드시 황제학을 이어 밝혀서 요순의 자취를 이어 계승하리라는 것 때문이 아니었겠으며, 어찌 폐하께서 반드시 복수하고 국토를 회복해서 조종을 빛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어찌 폐하께서 현자를 등용하고 정사를 닦아서 은혜를 백성들에게 미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진실로 이와 같다면 신이 진술한 것들은 곧 태상황제께서 원대한 계획을 남겨 자손을 편케 하시려는[詒謀燕翼] 마음[聖心]을 크게 받드는 것이며, 폐하의 어버이를 존중하고 그 뜻을 계승하려는 효심[聖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드리려는 것입니다. 의론하는 자들은 다만 한 때의 우연한 형적 한 두 가지를 지켜 따르려고 하면서 이것이 태상황제의 본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형체를 가진 사물의 조잡함으로 천지의 신령한 변화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또 옛날 (제위를) 선양했던 훌륭한 모습은 요순(堯舜)처럼 성대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순(舜)이 요(堯)가 선양한 것을 받들었던 28년 사이에 예법과 음악, 형벌과 정령을 고치고 손 본 것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큰 것으로는 순이 16명의 정승을 등용했는데, 모두 요임금이 등용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사흉(四凶)을 물리쳤는데, 모두 요임금이 물리치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은 의심스러워하지 않았고 요임금도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천하 사람들도 잘못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서(虞書)」에 실려 있는 것으로 공자(孔子)가 기록해서 위대한 법전[大典]으로 삼아 만세에 표준으로 드리웠습니다. 하물며 신이 진술하는 것은 태상황제가 정한 법들을 전부 다 어지럽게 고치려는 것이 아니며, 천히 여긴 것을 귀하게 만들고 귀한 것을 천하게 만듦으로서 모든 것을 다시 조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따르거나 바꾸고 덜어내거나 더하는 데에는 다만 의리가 어떠한가를 볼 뿐이니 또 어째서 불가할 것이며 폐하에게 무슨 혐의스러울 것이 있단 말입니까? 원컨대 속히 도모하셔서 천하를 행복하게 하시고 신의 계책에 대해 의심을 두지 마십시오.
愚臣所慮, 獨患議者不深惟其所以然之故, 以爲其間不免有所更張, 或非太上皇帝之意者, 陛下所不宜爲, 以咈親志. 臣竊以爲誤矣. 恭惟太上皇帝至公無心, 合德天地, 臨御三紀, 艱難百爲, 其用人造事, 皆因時循理, 以應事變, 末嘗膠於一定之說. 先後始末之不同, 如春秋冬夏之變, 相反以成歲功, 存神過化, 而無有毫髮私意凝滯於其間. 其所以能超然遠引, 屐脫萬乘而不以爲難者, 由是而已. 本其傳位陛下之志, 豈不以陛下必能緝熙帝學, 以繼跡堯禹乎? 豈不以陛下必能復讎啓土, 以增光祖宗乎? 豈不以陛下必能任賢脩政, 以惠康小民乎? 誠如是也, 則臣之所陳, 乃所以大奉太上詒謀燕翼之聖心, 而助成陛下尊親承志之聖孝也. 議者顧欲守一時偶然之跡, 一二以循之, 以是爲太上皇帝之本心, 則是以事物有形之粗而語天地變化之神也, 豈不誤哉! 且古者禪授之懿, 莫如堯舜之盛, 而舜承堯襌, 二十有八年之間, 其於禮樂刑政, 更張多矣. 其大者, 擧十六相, 皆堯之所末擧 : 去四凶, 皆堯之所未去. 然而舜不以爲嫌, 堯不以爲罪, 天下之人不以爲非, 載在虞書, 孔子錄之以爲大典, 垂萬世法. 而况臣之所陳, 非欲盡取太上皇帝約束紛更之也, 非貴其所賤, 賤其所貴而悉更置之也, 因革損益, 顧義理如何爾, 亦何不可? 而陛下何嫌之有哉? 願早圖之, 以幸天下, 毋疑於臣之計也.
싸울 것인가 아니면 지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미와 천하를 제어하는 형세에 관한 것은 신이 배우지 못한 것이라 망녕되게 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보면 상류의 장군들이 평소부터 물망이 가벼웠고 승진과 강등이 마땅함을 잃었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일입니다. 하류의 병영도 곧장 회수(淮水) 지역을 포기했고, 험란한 장강에서 오랑캐와 대치하고 있으니 이런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똑같이 우려하는 것이요, 어리석으나 지혜로우나 똑같이 의심하는 것이며, 비루하고 어두운 신조차도 마음속으로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물며 지금 가을이 이미 깊고 오랑캐의 실정은 측량키 어렵습니다. 들려오는 소식도 흉흉합니다. 모두들 이르기를 혹시 다시 작년처럼 침공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비록 허실을 알 수 없지만 이 두 가지는 진실로 강하냐 약하냐, 안전하냐 위험하냐의 형세가 매여 있는 것입니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거나, 고개를 숙였다 들어 올리는 짧은 시간에 이 일의 시급함을 깨우쳐 드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원컨데 폐하께서는 아울러 유의하신다면 저의 커다란 소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若夫戰守之機, 形制之勢, 則臣未之學, 不敢妄有所陳. 然竊聞之, 上流督帥物望素輕, 黜陟失宜, 效於已試 : 下流戎兵直棄淮甸, 長江之險, 與虜共之. 斯乃古今之所共憂, 愚智之所同惑. 臣雖鄙闇, 亦竊疑之. 况今秋氣已高, 虜情叵測, 傳聞忷忷, 咸謂或當復有去歲之擧. 雖虛實未可知, 然是二者實彊弱安危形勢所繫, 呼噏俯仰之間, 未足以喩其急也. 願陛下幷留聖意, 臣不勝大願!
저는 어리석고 못배웠음에도 작년에 몽매함을 무릅쓰고 과거를 치러 태상황제께서 합격자의 끄트머리에 넣어 주셔서 외람되게도 관록을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시고 과분하게도 소명을 내리셨는데 마침 질병으로 인하여 시골에 머무른 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혈기가 더욱 쇠약하고 정신은 손상되어 산야에 묻혀 지내느라 커다란 은혜에 보답할 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습니다. 감히 밝으신 조칙으로 인하여 어리석은 충심을 다 토로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글을 올립니다. 세상 물정에 어둡고 사리분별조차 못하는 저는 폐하께서 꺼리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지체 높은 폐하의 측근들을 거스르고 욕보이면서 일의 근본을 (멋대로) 재단하였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오직 폐하께서 불쌍히 여겨 용서하시고 (제 말 가운데) 사리에 맞는 것만을 선택해 주십시오. 천자의 위엄을 넘보게 되어 신은 떨리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며 엎드려 죄를 기다립니다. 신 주희는 죽기를 각오하고 두 번 절합니다.
臣凡愚不學, 頃歲冒味羣試有司, 太上皇帝賜之末第, 獲叨官祿. 旣又誤聽人言, 猥加收召, 適以疾病留落不前. 今則血氣益衰, 精神益耗, 屛居山田, 未知所以仰報大恩之日. 敢因明詔, 罄竭愚衷, 昧死獻書以聞. 迂疏狂妄, 不識忌諱, 忤犯貴近, 切劘事機, 罪當萬死. 惟陛下哀憐財赦而擇其中. 干冒天威, 臣無任震懼兢煌․俯伏待罪之至. 臣熹昧死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