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은사를 찾다
招隱操
淮南小山作招隱, 極道山中窮苦之狀, 以風切遁世之士, 使無遐心, 其旨深矣. 其後左太冲․陸士衡相繼有作, 雖極淸麗, 顧乃自爲隱遁之辭, 遂與本題不合. 故王康琚作詩二反之. 雖正左․陸之誤, 而所述乃老氏之言, 又非小山本意也. 十月十六夜, 許進之挾琴過予書堂, 夜久月明, 風露凄冷, 揮絃度曲, 聲深悲壯. 旣乃更爲招隱之操, 而曰穀城老人嘗欲爲予依永作辭而未就也. 予感其言, 因爲推本小山遺意, 戱作一闋, 又爲一闋以反之, 口授進之, 倂請穀城․七者及諸名勝相與共賦之, 以備山中異時故事云
회남소산은 「은사를 부르다」를 지어 산 속에서의 곤궁하고 고생스런 생활상을 극진히 말함으로써 세상을 피해 숨어사는 선비들을 풍유하고 크게 질책하여 먼 마음이 없도록 하였는데 그 뜻이 깊다. 그 후에 좌사와 육기가 서로 이어 지었는데 지극히 맑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돌아보니 스스로 은둔한 말이라 하였으니 결국 본래의 제목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그래서 왕강거가 시를 지어 그 두 시의 뜻을 반박하였다. 비록 좌사와 육기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고는 하나 말한 것이 바로 노자의 말이니 또한 회남소산 본래의 뜻이 아니다. 10월 16일 밤에 허굉이 거문고를 끼고 내 서당을 들렀는데, 밤이 오래 되고 달은 밝은데다 바람과 이슬이 쓸쓸하고 차가웠으며, 현을 퉁겨 곡조에 맞추는데 그 소리가 매우 비장하였다. 이미 「초은」의 곡조를 고쳐 지었으나 “곡성노인이 일찍이 나에게 곡조에 맞는 가사를 지어주시려 하였으나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내 그 말에 느낀 바가 있어 회남소산이 남긴 뜻을 미루어 장난 삼아 한 악장을 짓고 또 한 악장을 지어 그 뜻을 반박하고는 허굉에게 입으로 전해주고 아울러 곡성노인과 칠자옹 및 여러 명사들을 청하여 그것을 함께 읊조리어 산 속에서의 훗날의 이야기로 갖추어 놓았다.
南山之幽 남산 그윽하고,
桂樹之稠 계수나무 빽빽한데,
枝相樛 가지 서로 얽혀 있네.
高拂千崖素秋 높이 천길 낭떠러지에서 흰 가을 떨치며,
下臨深谷之寒流 아래로 깊은 골짝의 차가운 흐름 내려다보네.
王孫何處 왕손은 어느 곳에서,
攀援久淹留 잡아당기며 오래도록 머무르는가?
聞說山中 듣건대 산 속에는,
虎豹晝嘷 호랑이와 표범 낮에도 운다 하네.
聞說山中 듣건대 산 속에는,
熊羆夜咆 큰곰 작은 곰 밤에도 울부짖는다 하네.
叢薄深林鹿呦呦 수풀 우거진 깊은 숲에서는 사슴 슬피 우네.
獼猴與君居 원숭이 그대와 함께 살고,
山鬼伴君遊 산 귀신 그대와 짝지어 노네.
君獨胡爲自聊 그대는 유독 어떻게 혼자 의지하는가?
歲云暮矣將焉求 해 저무니 장차 어떻게 구하려는가?
思君不見 그대 그리나 보이지 않으니,
我心徒離憂 내 마음 공연히 울적해지네.
又招隱 위는 은사를 부르다
南山之中 남산 가운데,
桂樹秋風 계수나무에 가을바람 부는데,
雲冥濛 구름 어두침침하고,
下有寒栖老翁 아래에 가난하게 사는 늙은이,
木食澗飮迷春冬 나무 먹고 샘물 마시며 봄 겨울 분간 못하네.
此間此樂 이 사이에 있는 이 즐거움,
優游渺何窮 한가로이 아득함 어찌 끝이 나리오!
我愛陽林 내 남쪽 숲 사랑하는데,
春葩晝紅 봄꽃 낮에 붉다네.
我愛陰崖 내 북쪽 낭떠러지 사랑하는데,
寒泉夜淙 차가운 샘 밤에 졸졸 흐른다네.
竹栢含烟悄靑葱 대나무와 잣나무 안개 머금고 고요히 푸르네.
徐行發淸商 천천히 가니 높은 상조 나고,
安坐撫枯桐 편안히 앉아 마른 오동나무 어루만지네.
不問簞瓢屢空 밥그릇과 바가지 자주 빔 묻지 않고,
但抱明月甘長終 다만 밝은 달 품고서 오래도록 삶 달게 여기네.
人間雖樂 인간 세상 즐겁다하나,
此心與誰同 이 마음 누구와 함께 하리!
右反招隱 위는 은사를 찾음을 되돌림
3. 멀리 나가 놈
遠遊篇
擧坐且停酒 온 자리에 계신 분들 잠시 술잔 멈추시고,
聽我歌遠遊 저의 멀리 나가 논 여행노래 들어보시길.
遠遊何所至 멀리 놀아 다다른 곳 어디인가?
咫尺視九州 지척의 눈앞에 구주가 보이네.
九州何茫茫 구주 어찌나 망망한지,
環海以爲畺 빙 둘러 싼 바다로 경계삼네.
上有孤鳳翔 위로는 외로운 봉황새 날고,
下有神駒驤 아래로는 신묘한 말 내닫네.
孰能不憚遠 누군들 먼길을 꺼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만,
爲我游其方 나에게 그곳에서 놀게하네.
爲子奉尊酒 그대에게 바리 술 올리고,
擊鋏歌慨慷 긴칼 두드리며 강개한 노래 부르네.
送子臨大路 그대 큰 길로 나아감에 전송하는데,
寒日爲無光 차가운 해는 빛을 잃었다네.
悲風來遠壑 슬픈 바람 먼 골짜기서 불어오니,
執手空徊徨 손잡고 부질없이 배회하네.
問子何所之 묻노니 그대 어디로 가는가?
行矣戒關梁 가거들랑 관문과 교량을 조심하게나.
世路百險艱 살아가는 길 수없이 험난하니,
出門始憂傷 문 나섰다 하면 시름으로 마음 아프다네.
東征憂暘谷 동쪽으로 가자니 해돋는 곳 걱정되고,
西遊畏羊腸 서쪽으로 가자니 양장의 길 두렵네.
南轅犯癘毒 남쪽으로 수레 향하니 전염병 독 침범하고,
北駕風裂裳 북쪽으로 달리니 바람이 옷을 찢네.
願子馳堅車 원컨대 그대 튼튼한 수레로 달리길,
躐險摧其剛 험한 곳도 넘어버리면 그 굳셈 꺾인다네.
峨峨旣不支 우뚝한 산도 이미 버티지 못하였는데,
瑣瑣誰能當 하찮은 언덕 누구를 감당할 것인가?
朝登南極道 아침에는 남극길을 오르고,
暮宿臨太行 저녁때는 태항산에서 묵네.
睥睨卽萬里 눈 흘겨 곁눈질하니 곧 만리요,
超忽凌八荒 단숨에 훌쩍 팔방의 아득한 곳 뛰어 넘네.
無爲蹩躠者 하는 일 없이 절룩거리는 사람,
終日守空堂 종일토록 텅빈 집만 지키네.
[여설(餘說)]
남송(南宋)의 진문울(陳文蔚)은 「주희안이 장공에 놀러 감에 송별하다(送周希顔游章貢)」(『克齋集』 권15)에서 이 시의 지의(旨意)를 분석하여 이렇게 읊었다. “옛날에 돌아가신 선생님 생각해 보니, 강개하게 먼 곳을 노닌 노래 하셨네. 단숨에 훌쩍 팔방의 아득한 곳 뛰어 넘어, 지척간에 구주를 보셨네. 동쪽의 양곡으로 가시고자, 옷을 부상나무 가에 걸어두셨네. 서로는 양장의 길도 두려워 않으시고, 그 끌채로 꺾어버리셨네. 남쪽으로 향하여 멀리 살펴보시고, 곧장 온 월땅의 모퉁이 가리키시네. 북쪽으로는 어디로 가시는가? 또한 그윽한 연나라 다하고자 하시네. 땅에 떨어져 구부려 뜻 잃어시어, 한창 때 보답하지 않음이 없네. 비루한 장부 배우고자 하여, 언덕 하나 가져다 잘라서 지키네.(憶昔吾先師, 慷慨歌遠遊. 超忽凌八荒, 咫尺視九州. 東將征暘谷, 挂衣扶桑頭. 西不畏羊腸, 而以摧其輈. 南轅有遐眺, 直指百粵陬. 北駕何所之? 亦欲窮燕幽. 墮地弧失志, 壯歲無不酬. 肯學鄙丈夫, 拘剪守一丘)”
송 황진(黃震)의 『황씨일초(黃氏日抄)』(권34)에서는 “「원유편」의 요지는 ‘원컨대 그대 튼튼한 수레로 달리길’이라 읊은 구절에 있다.(遠遊篇指要在願子馳堅車之句)”라 하였다.
왕백(王柏)은 「주자시선발(朱子詩選跋)」(『魯齋集』 권13)에서 말했다. “지금 「원유편」을 살펴보건대, 이미 그 규모의 큼과 뜻을 세움이 굳음이 보이니 이미 그 학문의 터전을 크게 넓혀 놓았다. …… 「원유」와 「사진(寫眞)」 이 두 시는 선생의 학문을 하는 시작과 끝을 쓴 것이다.(今觀遠遊一篇, 已見其規廡之大, 立志之堅, 旣有以開擴其問學之基矣……遠遊寫眞二詩, 此先生爲學之始終也)”
411. 옛 시체를 본따서 지음, 여덟 수 擬古八首
4
離離原上樹 언덕 위의 나무 축축 늘어져 있고,
戢戢澗中蒲 시내의 부들은 빽빽하게 모여 있네.
娟娟東家子 아리따운 동쪽 이웃의 여인,
鬱鬱方幽居 답답하게 바야흐로 그윽히 거처하네.
濯濯明月姿 밝은 달 같은 자태 말쑥하고,
靡靡朝華敷 아침 꽃은 어여쁘게 펼쳐져 있네.
昔爲春蘭芳 지난날은 봄 난초 향기롭더니,
今爲秋蘼蕪 지금은 가을 궁궁이만 무성하네.
寸心未銷歇 한 치 마음 사그러지지 않고,
託體思同車 몸 맡겨 함께 수레 타는 것 생각하네.
5
綺閣百餘尺 비단 같은 누각 백여 자나 솟아 있고,
朝霞冠其端 아침 놀이 그 끝에 서려 있네.
飛櫩麗遠漢 날듯한 처마는 멀리 은하수까지 걸리어 있고,
曲楹何盤桓 굽은 기둥은 얼마나 어마어마하던지.
淸謠發徽音 맑은 노래에 거문고 소리나고,
一唱再三歎 한 번 노래하니 두 번 세 번 감탄하네.
借問誰爲此 묻노니 누가 이렇게 하였는가?
佳人本邯鄲 미인은 본래 한단에 있다네.
微響激流風 가는 소리 흐르는 바람에 부딪치고,
浮雲慘將寒 뜬 구름 차가워지려는 것 마음 아프네.
爲言何所悲 하는 말 어찌 그리 슬픈가?
遊子在河關 나그네는 하관 땅에 있네.
不恨久離闊 오래도록 떨어져 있는 것은 한스러워하지 않으나,
但憂芳歲闌 다만 근심스러운 것은 꽃 해 저문 것이라네.
願爲淸宵夢 원컨대 맑은 밤에 꿈꾸어,
燕昵窮餘歡 친하게 가까이하여 충분한 기쁨 다하고자 하네.
6
上山採薇蕨 산에 올라 고비며 고사리를 캐자니,
側徑多幽蘭 좁은 길에 그윽한 난초 많기도 하네.
采之不盈握 한 줌도 되지 않는 것 따서,
欲寄道里艱 부치려 하니 도리상 어렵네.
沈憂念故人 깊은 시름에 옛 친구 생각나는데,
長夜何漫漫 기나긴 밤은 어찌나 까마득한지.
芳馨坐銷歇 아름다운 향기 갑자기 사그러지니,
徘徊以悲嘆 서성이며 비탄에 잠기네.
7
佳人朗秋夜 가인 가을 밤에 환한데,
蟋蟀鳴空堂 귀뚜라미 빈 집에서 우네.
大火西北流 대화성은 서북쪽으로 흐르고,
河漢未渠央 은하수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네.
野草不復滋 들판의 풀 다시는 뻗지 못하고,
白露結爲霜 맑은 이슬 맺히어 서리 되네.
梁燕起高飛 들보의 제비 높이 날아 오르고,
雲鴈亦南翔 구름속의 기러기 또한 남으로 나네.
念我同心子 내 마음 함께한 이 생각하나,
音形阻一方 목소리와 형체 한쪽으로 막혀 있네.
不念執手歡 손 잡았던 좋았던 때 생각 않으시고,
隔我如參商 나를 참성(參星)과 상성(商星)처럼 떼어 놓네.
寓龍不爲澤 용의 모양 깃들여도 흡족한 비 내리지 않고,
畵餠難充腸 그림의 떡으로는 배 채우기 어렵다네.
金石徒自堅 쇠나 돌은 헛되이 절로 굳어지고,
虛名眞可傷 헛된 명성은 실로 상처 입을 만하리.
8
鬱鬱澗底樹 시내 바닥의 나무는 빽빽한데,
揚英秋草前 가을 풀 앞에 꽃잎 날리네.
與君結歡愛 그대와 기뻐하고 사랑함 맺어,
自比金石堅 스스로 쇠와 돌의 굳음에 견주네.
金石終不渝 쇠와 돌은 끝내 변하지 않고,
懽愛終不疎 기뻐하고 사랑함은 끝내 성글어지지 않네.
一夕遠離別 하루 저녁에 멀리 떨어져 헤어져,
悠悠在中途 길 가운데 있으니 아득하기만 하네.
相思未云變 서로 그리워함 변치 않았다고 하나,
音容定何如 음성이며 얼굴은 정녕코 어찌 되었나.
傷彼三春蕖 불쌍하도다 저 봄 석달의 연꽃,
灼灼層華敷 활짝 겹겹이 꽃 펼쳐졌네.
盛時不可留 한창 때는 머무르게할 수 없고,
恐逐嚴霜枯 쫓고자해도 된서리 맞아 시들까 걱정되네.
夫君來何晩 부군께서 어찌나 늦게 오시는지,
賤妾長離居 천첩은 오래도록 떨어져 사네.
9
高樓一何高 높은 누대 한 번 얼마나 높은지,
俯瞰窮山河 내려다보니 산과 강이 다 보이네.
秋風一夕至 가을 바람 하루 저녁에 이르니,
憔悴已復多 초췌함 이미 다시 많아졌네.
寒暑遞推遷 추위와 더위 번갈아 미루어 옮겨가니,
歲月如頹波 세월 스러지는 물결과 같네.
離騷感遲暮 〈이소〉편에서는 늙어감 느꼈고,
惜誓閔蹉跎 〈석서〉편에서는 발을 삐끗함 걱정하였다네.
放意極驩虞 뜻 호방하니 매우 즐거운데,
咄此可奈何 쯧쯧, 이를 어이할꼬!
邯鄲多名姬 한단에는 이름난 여자 많은데,
素艶凌朝華 흰 자태가 아침꽃을 능가하네.
妖歌掩齊右 아름다운 노래는 제나라 서쪽을 가리고,
緩舞傾陽阿 느슨한 춤은 양아를 기울게하네.
俳徊起梁塵 떠돌면서 들보의 먼지를 날리고,
綷縩紛衣羅 바스락바스락 비단옷 소리 섞이네.
麗服秉奇芬 고운 옷에 기이한 향기까지 겸하여,
顧我長咨嗟 나를 돌아보며 길게 탄식하네.
願生喬木陰 높은 나무에 그늘 생기기 바라나,
寅緣若絲蘿 빌붙는 것 토사와 여라와 같네.
10
夫君滄海至 부군께서 푸른 바다에 이르러,
贈我一篋珠 나에게 구슬 한 상자 주네.
誰言君行近 누가 그대 가까이 간다 하는가?
南北萬里餘 남북으로 만여 리나 된다네.
結作同心花 마음 함께하는 꽃으로 맺어,
綴在紅羅襦 붉은 비단 속옷에 꿰매어 두리.
雙垂合歡帶 기쁨 함께하는 띠 양쪽으로 드리우고,
麗服眷微軀 고운 옷은 미천한 몸 되돌아보네.
爲君一起舞 그대 위해 함께 일어나 춤추려는데,
君情定何如 그대 마음은 정녕 어떠한지?
11
衆星何歷歷 뭇별들 어찌나 또렷한지,
嚴宵麗中天 추운 밤하늘 가운데 곱기도하네.
殷憂在之子 깊은 근심 이 사람에게 있으니,
起步荒庭前 황폐한 뜰 앞으로 걸음 떼네.
出門今幾時 문 나선지 지금 때 얼마인가?
書札何由宣 편지 어떻게 펼칠 수 있을까?
沈吟不能釋 낮게 읊조림 풀이할 수 없으니,
愁結當誰憐 근심 맺히면 마땅히 누가 불쌍히 여기리.
臨風一長嘆 바람 맞으며 한 번 길게 탄식하니,
淚落如奔泉 눈물 달리는 샘처럼 떨어지네.
[여설]
『주자의 말씀을 분류함(朱子語類)』 권140 「문장을 논함․하․시(論文․下․詩)」에서 “도연명의 시는 자연스러운 데서 나와 평담하다. 후인들은 그의 평담함을 배웠지만 거리가 서로 멀다. 어떤 뒤에 난 사람이 남들이 시를 잘 짓는 것을 보면 그 날카로운 뜻을 배우고자 할 것이다. 마침내 도연명 시의 평측과 용자를 가지고 일일이 그에 의거하여 지을 것이다. 이렇게 1개월 뒤면 스스로 지을 줄 알게되어 다른 교본(敎本)은 필요가 없을 것이며, 바야흐로 시를 짓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淵明詩平淡出於自然. 後人學他平淡, 便相去遠矣. 某後生見人做得詩好, 銳意要學. 遂將淵明詩平側用字, 一一依他做. 到一月後便解自做, 不要他本子, 方得作詩之法)”라 하였다.
1213. 사소경의 약농장에서 짓다, 두 수 이 시에서 권말까지는 선생이 손수 편집하고, 『목재정고』라 하였다
〈題謝少卿藥園二首〉 自此詩至卷終, 先生手編, 謂之牧齋淨藁
12
謝公種藥地 사공께서 약을 심으신 땅,
窈窕靑山阿 아름다운 청산의 기슭이라네.
靑山固不群 청산 본디부터 무리 이루지 않고,
花藥亦婆娑 작약(芍藥) 또한 너울거리네.
一掇召冲氣 한 번 따면 조화된 기운 부를 수 있고,
三掇散沈痾 세 번을 따면 고질병도 흩어버린다네.
先生澹無事 선생 조용히 아무 일 없이,
端居味天和 편안히 지내며 하늘의 화기 맛본다네.
老木百年姿 늙은 나무는 백년의 자태로,
對立方嵯峨 마주보고 바야흐로 까마득히 서 있네.
持此供日夕 이것 가지고 날 저물 때 갖추니,
不樂復如何 즐겁지 않고 또 어찌하랴!
13
小儒忝師訓 작은 선비가 스승의 가르침 더럽혀,
迷謬失其方 잘못되어 그 처방 잃어버렸네.
一爲狂酲病 한 번 독한 병에 걸리어,
望道空茫茫 길 바라보니 부질없이 아득하기만 하네.
頗聞東山園 자못 들었네, 동쪽 산의 동산에는,
芝朮緣高岡 지출 언덕 높이 자라서,
瘖聾百不治 벙어리와 귀머거리는 고치지 못하지만,
效在一探囊 약효는 바로 주머니 뒤지는데 있다네.
再拜藥園翁 다시 한 번 약 농장의 노인에게 절하네,
何以起膏肓 불치의 병 어떻게 낫게 하는지.
14. 소무를 지나던 도중에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신미년에 썼다
邵武道中 同前詩起辛未
風色戒寒候 경치 차가운 절후를 경계하고,
歲事已逶遲 한해의 일도 이미 저물어가네.
勞生尙行役 수고로운 인생 아직도 떠돌아다녀야 하니,
遊子能不悲 나그네 슬프지 않을 수 없으리.
林壑無餘秀 숲 골짜기 빼어남 다 없어지고,
野草不復滋 들판의 풀은 더 이상 자라지 않네.
禾黍經秋成 곡식들 가을 지나며 여물어,
收斂已空畦 다 거두어들이니 밭두둑 이미 텅 비었네.
田翁喜歲豊 농부들은 해 풍년듦 기뻐하고,
婦子亦嘻嘻 부녀자들 또한 희희낙락하네.
而我獨何成 그러나 나는 홀로 무엇을 이루었나?
悠悠長路岐 머나먼 갈림길 아득하기만 하네.
凌霧卽曉裝 안개 피어오르니 곧바로 새벽부터 옷 차려 입고,
落日命晩炊 해 저무니 저녁밥 지어라 하네.
不惜容鬢凋 애석하지 않네, 얼굴과 귀밑머리 시들고,
鎭日長空飢 날마다 오래 굶주려 배 텅 비어도.
征鴻在雲天 먼길 가는 기러기는 구름뜬 하늘에 있고,
浮萍在靑池 부평초는 파란 연못에 있네.
微蹤政如此 미묘한 자취 꼭 이와 같으니,
三嘆復何爲 여러번 탄식하나 또 어찌 할 것인가?
15. 벗인 황자형이 대학에 가려고 함에 시로 만류하다
友人黃子衡欲之上庠, 以詩留行
若士有奇操 이 사람 남다른 운치 지녀,
久厭山林卑 오래도록 산림에 몸 낮추기 싫어하네.
奮衣千里道 옷깃 떨치며 천리길에 올라,
已與親友辭 이미 친한 벗들과 하직하였네.
子行何悠悠 그대 걸음 어찌 그리 유유한가?
世路方如玆 세상의 도리 바야흐로 이와 같다네.
歸來亦何日 돌아오는 날은 또한 언제인가?
車馬光陸離 그때는 수레며 말도 찬란히 빛나리.
幽蘭生前林 그윽한 난초 앞 숲에 돋았거늘,
擢置白玉墀 옮겨와 흰 옥 지대에 심고자 하네.
不以芳意遠 아름다운 뜻 멀리 퍼져나감 원치 않아,
結根終不移 뿌리를 박고서는 끝내 옮기지 못하네.
願子崇明德 바라건대 그대 밝은 덕을 높이게나,
潛躍貴因時 숨고 나옴 때에 맞춤 귀히 여기네.
悲風靜夜聽 슬픈 바람 고요한 밤에 들리니,
喬木歲寒姿 우뚝 선 나무는 해 차가워진 후에도 자태 뽐내네.
何以廻軒駕 어이하면 수레 돌리어,
千載相與期 천년을 더불어 함께함을 기약할꼬?
16. 받들어 외종형인 구자야의 『음주』 구절에 수답하다 奉酬丘子野表兄飮酒之句
微褐不充體 하찮은 갈포옷 예에 충분치 않고,
寒夜懷重衾 차가운 밤에 겹이불 품고 있네.
古來窮廬士 예로부터 가난한 곳에 사는 선비,
歲暮多苦心 해 밑에 괴로운 마음 많았다네.
苦心亦何爲 마음 괴로운 것 또한 무엇 때문인가?
世路多崎嶔 세상에서 살아가는 길 높고 험준함 많아서라네.
不藉盃中物 술잔 속의 술에 의지하지 않으면,
離憂坐自侵 이별의 근심 갑자기 스스로 업습해 오네.
擧杯當勿辭 술잔 들었으면 아무 말 말아야지,
何爲復沉吟 어찌하여 또 낮게 읊조리는가?
醺酣遺所拘 얼큰하게 취하여 얽매인 바 내버리니,
神慮契遐襟 마음은 광활한 흉회와 맞아떨어지네.
荒湎思前戒 술에 깊이 빠져 앞의 경계 생각하고,
歡謠發淸音 기쁜 노래는 맑은 소리 내네.
雅唱一何高 우아한 노래 어찌나 격조 높던지,
仰酬非所任 우러러 수답하나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네.
申章聊敍報 거듭 글지어 애오라지 보답의 뜻 펴고,
洪量亦余欽 크신 도량 또한 내 흠모하네.
1729. 외종형인 구자야의 교외에 있는 동산을 다섯 수로 읊음
丘子野表兄郊園五詠
17
欲識淵明家 도연명의 집 알려고 한다면,
離離疎柳下 성긴 버들 축축 늘어진 아래라네.
中有白雲人 그 가운데 흰 구름 같은 사람 있는데,
良非遯世者 실로 세상을 피한 사람 아니라네.
柳 버드나무
18
結楥遂芳植 울타리 엮어서 향기로운 나무 엮는 일 끝내고,
覆墻擁深翠 담장 덮으니 짙은 비취색 안게 되었네.
還當具春酒 또한 응당 봄술 갖춰졌으니,
與客花下醉 손님 더불어 꽃 아래서 취하리라.
荼蘼 도미
19
移自溪上園 시내 가 동산에서 옮겨와,
種此墻陰路 이곳 담 그늘에다 심었네.
墻陰少人行 담 그늘 거의 사람 다니지 않으니,
來歲障幽戶 내년에는 그윽한 지게문 막겠네.
竹 대나무
20
芭蕉植秋檻 파초 가을 울타리에 심는다고,
勿云憔悴姿 자태 초췌하다 말하지 말라.
與君障夏日 그대 위해 여름 해 막아줄 것이니,
羽扇寧復持 깃털 부채 어찌 다시 지니겠는가?
芭蕉 파초
21
花柳遶宅茂 꽃과 버드나무 집 무성하게 두르고 있으니,
先生在郊居 선생은 교외에 거처하고 있다네.
下帷良已苦 장막 내리고 실로 이미 애쓰시며,
時作帶經耡 이따금씩 경서 지니시고 호미질 하신다네.
蔬圃 채마밭
22. 옛 뜻을 써서 짓다 古意
兎絲附樸樕 토사 작은 나무에 빌붙어 있고,
佳木生高岡 아름다운 나무는 높은 언덕에서 나네.
弱蔓失所依 약한 덩굴 기댈 곳 잃었는데,
佳木徒蒼蒼 아름다운 나무만 공연히 푸릇푸릇하다네.
兩美不同根 두 아름다움 뿌리 같지 않으니,
高下永相望 높고 낮게 영원히 서로 바라보네.
相望無窮期 서로 바라봄 끝날 기약 없으니,
相思諒徒爲 서로 생각함 실로 헛된 짓이라네.
同車在夢想 같은 수레 꿈속 생각에 있으니,
忽覺淚霑衣 별안간 눈물 옷 적심 알겠네.
不恨歲月遒 세월 다함은 한스럽지 않으나,
但惜芳華姿 다만 안타깝기는 아름다운 자태라네.
嚴霜萎百草 된서리 온갖 풀 시들게 하니,
坐恐及玆時 이때에 미칠까 갑자기 걱정되네.
盛年無再至 한창 때 다시 오지 않으니,
已矣不復疑 관두어라, 더는 의심말고.
23. 유순(劉珣)이 자양으로 예순 넷째 어르신을 뵈러 갔다가 마침내 행재소로 가서 부의 업무를 보고드리다
送劉旬甫之池陽省覲六十四丈遂如行在所上計〉
雨雪成歲暮 눈 내리니 한해도 저물어가는데,
之子遠徂征 이 사람 멀리 험한 길 떠나네.
酌酒起相送 술 따루며 일어나 떠나보내는데,
慨我別離情 내 이별의 정 슬퍼한다네.
池陽實大藩 지양은 실로 중요한 곳이니,
佐車屈時英 보좌하는 수레 당시의 영명함에 구부리네.
子行一請覲 그대 가시 한번 뵙기 청하더니,
上計趨吳京 업무 보고하러 오나라 서울로 달음질치네.
良玉懷貞操 좋은 옥은 곧은 정조 품고 있으며,
芳蘭含遠馨 향기로운 난초는 멀리 가는 향기 머금고 있네.
臨岐一珍重 갈림길 다다르면 부디 진중하시게나,
卽此萬里程 이 만리의 여정에 나서니.
2425. 새벽에 일어나 비를 마주하다, 두 수 晨起對雨二首
24
凄冽歲云晏 슬프고 썰렁하게 한 해 저물어가니,
雨雪集晨朝 눈 내려 새벽과 아침에 쌓이네.
高眠適方起 베개 높이 하고 편안히 자다가 마침 막 일어나,
四望但蕭條 사방 바라보니 다만 쓸쓸하기만 하네.
遠氛白漫漫 먼 기운 뿌옇게 뭉게뭉게 일더니,
風至林靄消 바람 이르러 숲속의 구름 기운 없어지네.
流潦冒荒塗 흐르는 빗물 거친 길 덮고,
淸川亦迢迢 맑은 시내 또한 아득하네.
遐瞻思莫窮 멀리 바라보니 생각 끝이 없고,
端居心自超 한가로이 지내자니 마음 절로 뛰어넘네.
覽物思無託 사물 둘러보니 생각 의탁할 곳 없고,
卽事且逍遙 일 따라 잠시 자유로이 노닐어보네.
25
晨起候前障 새벽에 일어나 앞산을 바라보니,
白煙眇林端 흰 운무 숲 끝에 가득하네.
雨意方未已 비의 뜻 바야흐로 끝나지 않았으니,
后土何時乾 후토 어느 때나 마를 것인가?
倚竹聽蕭瑟 대나무에 기대어 솨솨하는 소리 듣고,
俯澗聞驚湍 시내 굽어보니 놀란 여울 소리 들리네.
景物豈不佳 경물이야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만,
所嗟歲已闌 안타까운 것은 해 이미 저무는 것이라네.
守道無物役 도 지킴에 사물에 부림 당하지 않고,
安時且盤桓 때 편안하여 잠시 서성거려 보네.
翳然陶玆理 그윽하고 그윽하게 이 이치 도야하니,
貧悴非所歎 가난하고 초췌함 탄식하지 않네.
26. 섣달 殘랍
殘臘生春序 섣달에는 봄 풍경 생겨나는데,
愁霖逼歲昏 오랜 비에 세밑 어둑하네.
小紅敷艶萼 작은 꽃 예쁜 꽃받침 활짝 펼치고,
衆綠被陳根 뭇 초록빛은 묵은 풀 덮었네.
陰壑泉方注 응달진 골짜기에 샘물 바야흐로 듣고,
原田水欲渾 들판의 밭에서는 물 흐르려 하네.
農家向東作 농가에서 봄농사 지으려 하니,
百事集柴門 모든 일 사립문에 모여드네.
27. 객관에서 빗소리를 듣다 임신년(1152) 客舍聽雨 壬申
沈沈蒼山郭 푸른 산 외곽 침침해졌는데,
暮景含餘淸 저녁 풍경 남은 맑음 머금고 있네.
春靄起林際 봄 구름 숲 끝에서 일더니,
滿空寒雨生 온 하늘에 차가운 비 시작되네.
投裝卽虛館 행장 내던지고 빈 객관으로 드니,
簷響通夕鳴 처마 소리 저녁 내내 울리네.
遙想山齋夜 아득한 생각에 잠긴 산의 서재에서 보내는 밤,
蕭蕭木葉聲 우수수 낙엽 소리 들리네.
2829. 무이산의 관묘당에 묵다, 두 수 宿武夷觀妙堂二首
28
陰靄除已盡 어두운 구름 완전히 다 없어지고,
山深夜還冷 깊은 산 밤 되니 또한 추워지네.
獨臥一齋空 홀로 텅빈 방에 누워,
不眠思耿耿 심사 편안치 않아 잠 못 이룬다네.
閑來生道心 한가하여 도심 일어나니,
妄遣慕眞境 허망된 것 버리고 선인의 거처 그리워하네.
稽首仰高靈 머리 조아려 절하고 천상의 신령 우러러 보며,
塵緣誓當屛 속세의 인연 버릴 것을 맹세하네.
29
淸晨叩高殿 맑은 새벽에 높다란 전당 두드리고,
緩步遶虛廊 텅빈 낭하 돌며 천천히 걷네.
齋心啓眞秘 마음 재계하니 참된 비결 열리고,
焚香散十方 향불 피우니 온 데로 퍼지네.
出門戀仙境 문밖 나서면 선경을 사모하며,
仰首雲峰蒼 머리들어 쳐다보니 구름 봉우리에 어둑하네.
躊躇野水際 들판을 흐르는 물가에서 머뭇거리다,
頓將塵慮忘 문득 속세의 근심걱정 잊네.
30. 춘사일에 여러 사람이 서쪽 언덕에 모이다 社日諸人集西岡
郊原曖芳物 성밖의 들판 향기로운 초목 흐릿하고,
細雨靑春時 가랑비 봄철에 내리네.
前岡遐敞地 앞 언덕에 탁 트인 땅 아득한데,
登覽情無遺 올라 둘러보니 정 남김 없네.
農畝懷歲功 농경지는 한 해의 공 품고 있고,
壺漿祝神釐 항아리 술 신이 내려준 복 축하하네.
我慙里居氓 내 마을에 사는 백성으로 부끄러우니,
十載勞驅馳 십 년을 부지런히 내닫기만 했네.
今朝幸休閑 오늘 아침 다행히 한가로이 쉬며,
追逐聊嘻嘻 남의 뒤 쫓으며 잠시나마 껄껄 웃으며 이야기하네.
笑語歡成舊 우스개 소리 옛날처럼 즐거운데,
盡醉靡歸期 모두 취하였으나 돌아갈 기약 없네.
31. 오랫 동안 비가 와서 서재에 머물면서 불경을 외다
久雨齋居誦經
端居獨無事 평상시 홀로 지내다 일 없으면,
聊披釋氏書 문득 불서를 펼쳐보며 즐긴다네.
蹔釋塵累牽 잠시 세속에의 얽매임 풀어놓고,
超然與道俱 초연히 도와 더불어 하나가 되네.
門掩竹林幽 대문 닫으니 대숲은 그윽하고,
禽鳴山雨餘 새 울음소리만이 산에 비온 뒤 남아 있네.
了此無爲法 이러한 무위의 법도 깨달으니,
身心同晏如 몸과 마음 함께 편안해지네.
32. 새 대나무 新竹
春雷殷岩際 봄 우레 바위 가에 우르릉 울리더니,
幽草齊發生 그윽한 풀 한꺼번에 돋아나네.
我種南窗竹 내 남쪽 창 앞에 대나무 심으니,
戢戢已抽萌 쭉쭉 이미 싹 뽑아내네.
坐獲幽林賞 그윽한 숲의 감상 얻게되니.
端居無俗情 평상시에 속세의 정 없다네.
3334. 빗속에 위원리에게 보이고 아울러 황수를 그리워하다. 두 수 雨中示魏惇夫兼懷黃子厚二首
33
讀書春日晏 책 읽자니 봄날 저물어 가는데,
雨至滿郊園 비 온 성밖의 동산에 이르네.
一灑幽叢竹 한번 그윽한 대나무 숲에 뿌리니,
藹藹淸陰繁 빽빽하게 맑은 그늘 짙어지네.
齋居無還往 한가로이 지내자니 왕래할 일 없어,
鎭日空掩門 온종일 헛되이 문만 닫고 있네.
欲將沖靜趣 허심탄회하고 고요한 정취 가지고자 하여,
與子俱忘言 그대 더불어 함께 말 잊었네.
34
暄風變春餘 따뜻한 바람 늦봄 변화시키고,
卉木日蔥蒨 풀과 나무 날로 파릇파릇해지네.
林間一雨來 숲 사이에 한바탕 비 내리니,
滿庭寒草徧 온 뜰에 마른 풀 널려 있네.
寂寞謝明儔 쓸쓸하게 밝은 무리 사절하고,
晤語懷雋彦 마주 이야기하며 호걸 같은 선비 그리워하네.
良無一水遙 실로 아득히 흘러가는 물줄기 하나도 없어,
阻闊何由見 널리 막히어 있으니 어찌 만날 수 있을까?
35. 밤에 소쩍새 소리를 듣다 夜聞子規
幽林欲雨氣含凄 그윽한 숲에 비 내리려 하니
공기 차가움 머금고,
春晩端居園徑迷 봄 늦도록 홀로 지내자니
동산의 오솔길 헷갈리네.
獨向高齋展衾臥 홀로 높은 서재에서
이불 펴고 누워 있자니,
南山夜夜子規啼 남산에 밤이면 밤마다
두견새 운다네.
36. 문을 닫아걸다 杜門
杜門守貞操 문 닫아걸고서 곧은 마음 지키며,
養素安沖漠 본마음 기르니 편안하고 고요하네.
寂寂閟林園 쓸쓸하게 숲과 동산 닫혀 있고,
心空境無作 이 마음 텅 비어 경계에 작위가 없네.
細雨被新筠 가랑비 새로 나온 대 푹 적시고,
微風動幽籜 산들바람은 그윽한 죽순을 움직이네.
聊成五字句 문득 오언 시구를 짓는데,
吟罷山花落 다 읊고 나니 산의 꽃이 떨어지네.
浩然與誰期 호연함 누구와 더불어 기약할까?
放情遺所託 거리낌 없는 마음 정신이 기탁하는 곳에 남기를.
37. 산사에 묵으며 매미 소리를 듣다 宿山寺聞蟬作
林葉經夏暗 숲속의 잎 여름 거치며 짙어지더니,
蟬聲今夕聞 매미 소리 오늘 저녁에 듣네.
已驚爲客意 이미 나그네 된 뜻에 놀랐는데,
更値夕陽曛 게다가 저녁빛까지 어둑해졌다네.
38. 새벽에 운제사의 누각에 오르다 晨登雲際閣
晨起踏僧閣 새벽에 일어나 사원누각 올라,
徙倚望平郊 이리저리 거닐면서 평원 바라보네.
攢巒夏雲曉 첩첩 산봉우리 여름구름 밝아오고,
蒼茫林影交 아득하니 짙푸른 숲 그림자 얽혀 있네.
暫釋川途念 잠시 길 떠날 생각 풀어놓고,
憩此煙雲巢 여기 안개와 구름 낀 보금자리에서 쉬리라.
聊欲托僧宇 애오라지 승방에 의탁하려면,
歲晏結蓬茅 세밑에는 쑥대집 엮어야지.
39. 못가에서 함께 노는 사람들에게 보이다 池上示同遊者
藕葉蓋波面 연꽃잎 물의 표면 덮고 있지만,
池花猶未紅 못의 꽃 아직도 붉지 않다네.
聊承曉露餘 애오라지 새벽 이슬 남아 있는 틈을 타,
散步詠凉風 산보하면서 서늘한 바람 읊조리네.
香氣已飄忽 향기로운 기운 이미 잠깐만에 흩어져 버렸으니,
客懷誰與同 나그네 회포 누구와 더불어 함께 할까?
唯應同遊者 오로지 함께 노니는 자와 함께 응하여,
芳意更匆匆 아름다운 뜻 더욱 깊고 총망하여지네.
40. 황당령을 지나다 過黃塘嶺
屈曲危塍轉 구불구불 아찔한 두둑 돌아나가고,
沉陰山氣昏 음침한 산의 기운 어둑해지네.
蟬聲高樹暗 매미 우는 높은 나무 어둡고,
石瀨淺流喧 돌 여울 얕은 흐름 시끄럽네.
已過黃塘嶺 이미 황당령 지나,
欲覓桃花源 도화원 찾고자 하네.
無爲此留滯 할 일없이 여기서 오래 지체하지 말고,
驅馬踰山樊 말 몰아 산기슭 넘어야지.
41. 백망사에서 묵다 宿白芒畬
早發招賢里 새벽 같이 초현리를 떠나,
夜宿白芒畬 밤에 백망사에서 묵네.
川暝前山雨 내 어둡고 앞의 산에는 비 내리는데.
風驚澗樹花 바람 놀라고 시냇가 나무에는 꽃 피었네.
途陸綿異縣 길과 땅은 낯선 고을과 이어져 있는데,
曛黑泊田家 날 저물어 캄캄해지자 농가에서 묵네.
逢人聊問路 사람들 만나 넌지시 길 물어보자,
猶恨去程賖 갈 길 더딘 것 오히려 한스럽네.
4243. 시냇물에서 발을 씻다, 두 수 濯足澗水二首
42
濯足澗邊石 발 시냇가의 돌에서 씻으니,
山空水流喧 산은 비었는데 물 흐름 요란하네.
行旅非吾事 나그네 길 나의 일 아니니,
寄此一忘言 이것에 부쳐 한번 말을 잊노라.
43
澗邊濯足時 시냇가에서 발 씻을 때,
脩途倦煩燠 긴 여정에 무더위로 지쳤다네.
振策欲尋源 채찍 떨치며 근원 찾고자 하나,
山空無往躅 산은 비어 있고 들어간 발자취 없네.
44. 계구에서 배를 사서 순창에 이르러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보이다
自溪口買舟至順昌示同行者
時燠倦長途 계절 무더워 먼 길에 지쳐,
買舟至西郭 배를 사서 서쪽 외곽에 이르렀네.
烟波方渺然 안개 물결 바야흐로 아득한데,
坐此溪上閣 이곳 시냇가 누각에 앉아 있네.
子留且歡宴 그대들 머물면서 즐거운 연회라도 열게나,
我去成蕭索 나는 떠나 쓸쓸하게 되리니.
同行不同調 함께 가는 이 운치 같지 못하니,
此意誰與託 이 뜻 누구에게 기탁할까?
45. 운당포에서 묵다 宿篔簹鋪
庭陰雙樹合 정원의 그늘에 한 쌍 나무 합쳐져 있고,
窓夕孤蟬吟 창가에는 저녁에 외로이 매미 우네.
盤礴解煩鬱 두 다리 뻗고 앉아 무더위와 우울함 씻어버리니,
超搖生道心 도심이 훌쩍 뛰어 일어나네.
46. 도수갱에서 짓다 倒水坑作
窮幽鮮外慕 그윽한 곳 찾았으나 바깥에서 사모하던 것 적고,
殖志在丘園 뜻 심은 곳 언덕과 동산에 있다네.
卽此竟無得 이곳까지 다다랐으나 끝내 얻은 것 없어,
空恨歲時遷 공연히 세월 옮겨감만 한탄하네.
川陸綿半載 수로와 육로 반년이나 이어졌는데,
煩燠當歸緣 무더위에 마땅히 돌아가야 할 때라네.
憩此蒼山曲 이곳 푸른 산굽이에서 쉬면서,
洗心聞澗泉 마음 씻으며 시내의 샘 소리 듣네.
4748. 여름날, 두 수 夏日二首
47
夏景已逾半 여름 날 이미 반이나 지나,
林陰方澹然 나무 그늘 바야흐로 조용하네.
鳴蟬咽餘響 우는 매미 남은 소리 오열하고,
池荷競華鮮 연못의 연꽃들 꽃 신선함 다투네.
抱痾守窮廬 고질병 안고 초라한 오두막집 지키며,
釋志趣幽禪 마음 풀고 그윽한 선으로 나아가네.
卽此窮日夕 날 다하여 저물도록 이것 가까이 하리니,
寧爲外務牽 어찌 바깥세상 일에 얽매이겠는가?
48
雲臻川谷暝 구름 모이니 시내의 계곡 어두워지고,
雨來林景淸 비 오니 숲속 경치 맑아지네.
齋舍無餘事 서재에는 남은 일 없어,
凉風散煩纓 서늘한 바람에 번거로운 갓끈 풀어놓네.
望山懷釋侶 산 바라보며 스님 생각 품고,
盥手閱仙經 손 씻고서 신선의 경전 펼쳐 본다.
誰懷出塵意 누가 속세로 떠날 뜻 품을까?
來此俱無營 이곳에 와서 함께 세속의 일일랑 영위하지 마세.
49. 비를 대하다 對雨
虛堂一遊矚 빈 집 한번 돌아다니며 구경하자니,
驟雨滿空至 소낙비 온 하늘에서 내리네.
的皪散方塘 반짝하며 모난 연못으로 흩어지고,
冥濛結雲氣 침침하게 구름 기운 맺히네.
勢逐風威亂 기세 바람 쫓아 위세 어지러이 부리더니,
望窮山景翳 끝까지 바라니 산 경치 가리네.
烟靄集林端 안개와 놀 숲 끝에 모이니,
蒼茫欲無際 푸르스럼하게 끝이 없을 것 같네.
凉風襲輕裾 서늘한 바람 가벼운 옷자락에 스미니,
炎氛起秋思 더운 기운 가운데 가을 생각 일어나네.
對此景凄凄 이것 마주하니 경치 쓸쓸하여,
還增沖澹意 맑고 깨끗한 뜻 더해지네.
50. 서재에서 지내며 경쇠 소리를 듣다 齋居聞磬
幽林滴露稀 그윽한 숲에 이슬 드문드문 듣고,
華月流空爽 희고 깨끗한 달은 상쾌하게 하늘로 흐르네.
獨士守寒栖 외로운 선비 차갑게 깃들며 지키고,
高齋絶群想 높은 서재에는 여러 가지 생각 끊겼네.
此時隣磬發 때마침 이웃에서 경쇠 소리 울리니,
聲合前山響 소리 합쳐져 앞의 산에서 울리네.
起對玉書文 일어나 옥 같은 책의 글 마주하니,
誰知道機長 누가 알리오, 도의 심기 긴 것을.
51. 또 거문고 소리를 듣고 짓다 又聞琴作
瑤琴淸露後 구슬장식 거문고 맑은 이슬 내린 뒤에,
寥亮發窓間 소리 명쾌하게 창 사이로 나오네.
韻逐回風遠 운치 회오리바람 쫓아 멀리까지 퍼지고,
情隨玄夜闌 정은 캄캄한 밤 따라 한가로워지네.
端居獨無寐 평상시 홀로 잠 못 이루고,
林扉空掩關 숲속 사립문은 헛되이 굳게 닫혀 있네.
起望星河落 일어서서 은하수 떨어지는 것 바라보니,
哀絃方罷彈 애절한 현 바야흐로 연주 마쳤다네.
5257. 도가의 서적을 읽고 짓다, 여섯 수 讀道書作六首
52
巖居秉貞操 암혈에 거처하며 곧은 절조 붙들고,
所慕在玄虛 그리워하는 것은 묘하고 허무한 데 있네.
淸夜眠齋宇 맑은 밤 서재 방에서 자며,
終朝觀道書 아침 내내 도가의 책을 보네.
形忘氣自冲 형체 잊어버리니 기운 절로 화합되고,
性達理不餘 성 통달하니 이 남은 것 없네.
於道雖未庶 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으나,
已超名跡拘 이미 명예와 업적의 구속에서는 벗어났다네.
至樂在襟懷 지극한 즐거움 가슴 속에 있으니,
山水非所娛 산수는 즐길 것이 못된다네.
寄語狂馳子 미친 듯 달리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치노니,
營營竟焉如 이리저리 왔다갔다 끝내 어디로 갈까?
53
失志墮塵網 뜻 잃고 속세에 떨어져,
浩思屬滄洲 그윽하게 창주를 생각하네.
靈芝不可得 영지 얻을 수 없는데,
歲月逐江流 세월은 점차 강처럼 흘러가네.
碧草晩未凋 벽초 늦도록 시들지 않는데,
悲風颯已秋 슬픈 바람 쓸쓸하니 벌써 가을이라네.
仰首鸞鶴期 고개 들고 난새와 학 기다리나,
白雲但悠悠 흰 구름 다만 유유히 흘러간다네.
54
白露墜秋節 흰 이슬 떨어지는 가을 절기에,
碧陰生夕凉 짙푸른 그늘에서 저녁의 서늘함 생기네.
起步廣庭內 일어나 넓은 뜰 거닐다가,
仰見天蒼蒼 창창한 하늘 우러러 보네.
東華綠髮翁 동화의 머리 검은 늙은이,
授我不死方 나에게 죽지 않는 처방 일러주네.
願言勤脩學 바라건대 학문 닦는데 힘써,
接景三玄鄕 세 현향 따랐으면.
55
四山起秋雲 사방 산에서 가을 구름 일어나고,
白日照長道 밝은 해는 길게 뻗은 길을 비추네.
西風何蕭索 서풍 어찌나 쓸쓸한지,
極目但烟草 눈길 닿는 끝에 다만 안개 덮인 풀들 뿐.
不學飛仙術 날으는 선인술 배우지 않으면,
日日成醜老 나날이 추하게 늙어 간다네.
空瞻王子喬 헛되이 왕자교 우러러보니,
吹笙碧天杪 푸른 하늘 끝에서 생황 분다네.
56
鬱羅聳空上 울라소대 하늘 높이 솟아 있고,
靑冥風露凄 푸른 하늘 바람과 이슬 처량하네.
聊乘白玉鸞 짐짓 백옥으로 꾸민 난수레 타고,
上與九霄期 위로 구천과 함께 할 것 기약하네.
激烈玉簫聲 옥퉁소 소리 우렁차게 울리는데,
夭矯餐霞姿 훨훨 아름다운 놀 마시네.
一面流星盻 한번 유성과 마주 보니,
千載空相思 천년 그리워함 부질없다네.
57
王喬吹笙去 왕자교 생황 불며 떠나고,
列子御風還 열자는 바람 타고 돌아오네.
至人絶華念 지인은 부화한 생각 잘라 버리고,
出入有無間 있음과 없음 사이 들락날락하네.
千載但聞名 천년 동안 이름만 들을 뿐,
不見冰玉顔 얼음과 옥 같은 얼굴 보이지 않네.
長嘯空宇碧 짙푸른 하늘 보며 길게 휘파람 부는데,
何許蓬萊山 봉래산은 어디쯤 있을까?
58. 가을비 秋雨
一雨散林表 한 차례 비 숲 가에 흩어지니,
淸陰生廣庭 맑은 그늘 너른 뜰에 생기네.
喜玆新秋夜 이에 새 가을밤 기뻐하여,
起向高齋行 일어나 높은 서재로 가네.
煩歊獲暫祛 푹푹 찌는 더위 잠시나마 떨어낼 수 있어,
凉氛集華纓 서늘한 기운 화려한 갓끈에 모이네.
沈沈遠林氣 먼 숲 기운 빽빽하고 깊으며,
愜此端居情 이 일상적인 마음 상쾌하네.
節物坐如此 계절에 따른 경물 때마침 이와 같으니,
撫世襟方盈 세상 어루만지며 흉금 바야흐로 꽉차네.
歸當息華念 돌아가면 마땅히 부화한 마음 삭이리니,
超遙悟無生 아득하게 생멸 없음 깨닫네.
5960. 가을 저녁 황수를 그리워하다 秋夕懷子厚
59
雨歇林氣爽 비 그치니 숲 기운 상쾌하고,
月華湛遙暉 달빛은 말갛게 아득히 빛나네.
齋居翫物變 한가로이 거처하며 만물의 변화 감상하는데,
廓落滄洲期 창주의 기약 한없이 크네.
焚香散碧虛 향 태우니 짙푸른 하늘로 흩어지고,
撫節陳淸詩 박자 맞추며 맑은 시 늘어놓네.
抗志屬雲端 높은 뜻은 구름 저 끝에 있는데,
非君諒誰知 그대 아니면 실로 누가 알겠는가?
60
凉氣沉齋宇 서늘한 기운 온 집에 내려앉는데,
夕陰未渠央 저녁 그늘 아직 다 드리우지 않았네.
寒栖屬遙夜 가난하게 거처하자니 밤 아득한데,
長簟卷單床 긴 대자리 홑 침상에서 마네.
浮雲蔽中天 뜬 구름 하늘 한복판을 가리우고,
愁霖隔秋窗 근심스런 장마비는 가을 창 밖으로 쏟아지네.
思君一晤對 그대와 한번 만나봄 생각하니,
耿耿何能忘 뒤숭숭하니 어찌 잊을 수 있으리?
61. 병중에 여러 벗들에게 드림 病中呈諸友
窮居値秋晦 가난하게 살면서 가을밤 맞아,
抱疾獨齋居 병 안고 홀로 일없이 거처하네.
行稀草生徑 나다님 드무니 풀 오솔길에 나고,
一雨復旬餘 한 차례 비 열흘여 만에 다시 내리네.
交親各所營 사귀는 친구들 각기 하는 일 있어,
曠若音塵疎 드문드문 소식 드물다네.
始悟端居樂 비로소 한가로이 거처하는 즐거움 깨달아,
復理北窓書 다시 북쪽 창가에서 책 정리하네.
獨誦興已闌 홀로 책 읽는 흥 이미 다하여,
起坐方躊躇 일어나 앉아 바야흐로 머뭇거리네.
綠樹滿空庭 푸른 나무 빈 뜰에 가득하고,
策策凉飇初 쏴쏴 서늘한 바람 막 이네.
良時不復停 좋은 시절 더 이상 멈추지 않고,
煩吝未云祛 번거로운 회한 떨치지 못했다네.
還思對君子 다시 군자들 볼 것 생각나,
日夕佇軒車 날 저물자 높은 수레 기다리네.
62. 내 위에서 달을 구경하고 돌아가면서 함께 간 사람들에게 보이다
川上見月歸示同行者
川上偶携手 내 위에서 우연히 손 잡고 있는데,
皓月起林端 새하얀 달 숲 가에서 떠오르네.
一舒臨流望 한번 퍼져서 냇가에 다다라 바라보니,
玄露已先漙 맑은 이슬 이미 푹 젖네.
歸掩荒園扉 돌아와 거친 동산 사립문 닫아거니,
更怯裳衣單 옷 홑피임 더욱 겁나네.
淸夜可晤言 맑은 밤 말 나눌 만하나,
獨處誰爲歡 혼자 있는 곳 누가 즐거워하리.
63. 달밤에 마음을 적음 月夜述懷
皓月出林表 밝은 달 숲 밖으로 떠올라,
照此秋牀單 여기 가을의 외로운 침상 비추네.
幽人起晤歎 은자 자다가 일어나 탄식하는데,
桂香發窓間 계수나무 향기 창 사이에서 나네.
高梧滴露鳴 높다란 오동나무에 이슬 듣는 소리 울리고,
散髮天風寒 머리 흩어지니 하늘의 바람 차구나.
抗志絶塵氛 높은 뜻 속세의 기운 끊었거늘,
何不棲空山 어찌하여 빈 산에 깃들지 않는가?
64. 겨울비가 멎지 않다 冬雨不止
忽忽時序改 갑자기 계절의 차서 바뀌어,
白日藏光輝 대낮에 밝은 빛 감추었네.
重陰潤九野 겹 구름 비 구주의 들 윤택하게 하고,
小雨紛微微 가는 비 어지러이 부슬부슬 내리네.
蒼山寒氣深 푸른 산에는 차가운 기운 깊고,
高林霜葉稀 높은 산에는 서리맞은 잎 드무네.
田家秋成意 농가에서는 가을 되어 뜻 이루었는데,
落落乖所期 나는 쓸쓸히 기대 어그러졌네.
曠望獨興懷 널리 바라보니 홀로 감회 일으키나,
戚戚愁寒飢 걱정스레 추위와 배고픔 근심하네.
事至當復遣 일 이르면 마땅히 다시 보내야 하리니,
且掩荒園扉 잠시 거친 동산의 사립문 가리네.
65. 앙스님에게 드리다
贈仰上人
澗谷秋雲曉 시내 골짜기에는 새벽에 가을 구름 이는데,
飄颻無定姿 이리저리 날리는 것 일정한 모습 없네.
氛氳升遠樹 왕성한 기운 먼 나무에서 피어 오르더니,
凌亂起寒颸 어지러이 찬바람 일으키네.
雨罷成孤鶴 비 그치니 외로운 학 되고,
天高逐散絲 하늘 높아지더니 흩어진 실오리 쫓아내네.
上人歸別嶺 스님 돌아가심에 재마루에서 이별하는데,
心迹但如斯 마음의 자취 다만 이와 같기를.
66. 있는 대로 우연히 읊다
卽事偶賦
白煙竟日起 흰 운무 하루 종일 일어나고,
雨晦蒼山深 비 어둑하게 내리니 푸른 산 깊네.
老菊不復姸 늙은 국화 더는 아름답지 않고,
丹楓滿高林 붉은 단풍 높은 숲에 가득하네.
抱病寢齋房 병 안고 서재방에서 자니,
窓戶結愁陰 창문과 지게문에 근심스런 그물 맺히네.
起望一舒情 일어나 바라보며 한번 마음 펴보고,
遐眺豁煩襟 멀리 바라보니 번다한 마음 탁 트이네.
人生亦已勞 사람 사는 것 또한 고달픈데다가,
世路方崎嶔 세상살이 바야흐로 험난하기만 하네.
且詠招隱作 잠시 은사를 부르는 작품 읊조리며,
無爲名跡侵 명예나 공적에 침탈 당하지 않네.
67. 집을 지어 향을 사르며 수련하는 곳을 만들고 보허사를 본떠 짓다
作室爲焚修之所擬步虛辭
歸命仰璇極 귀명동에서 북두칠성과 북극성 우러르니,
寥陽太帝居 요양전에는 태제 살고 있다네.
翛翛列羽幢 훨훨 펄럭이는 깃털 깃발 늘어서 있고,
八景騰飛輿 여덟 색 경치는 하늘 나르는 수레라네.
願傾無極光 원컨대 끝없는 빛 기울이어,
回駕俯塵區 수레 돌리어 티끌세상 굽어보고 싶네.
受我焚香禮 내게 향불 사르는 예 주어,
同彼浮黎都 저 부려도 함께 하고 싶네.
68. 함청정사의 청훈당에 지어 부치다
寄題咸淸精舍淸曛堂
山川佳麗地 산과 내 아름다운 땅에,
結宇娛朝昏 집 지어 아침과 저녁 즐기네.
朝昏有奇變 아침 저녁으로 기이한 변화 있어,
超忽難具論 널리 다 논하기 어렵네.
千嵐蔽夕陰 천 개의 남기 저녁 그림자에 가리우고,
百嶂明晨暾 백 개의 산봉우리 새벽빛에 밝아오네.
穹林擢遙景 높은 숲은 먼 빛 뽑아내고,
回澗盪秋氛 구비진 시내는 가을 기운 씻어내네.
覽極慙未周 끝까지 둘러보나 두루 미치지 못함 부끄럽고,
窮深遂忘喧 깊은 곳 다하니 마침내 시끄러움 잊는다네.
欲將身世遺 몸과 세상 보내려 하는데,
況託玄虛門 하물며 현원하고 허무한 문에 기탁함이겠는가?
境空承化往 경계 비어 변화에 편승코자 하는데,
理妙觸目存 이치 묘하여 눈에 닿는대로 남아 있네.
珍重忘言子 진중하시게나, 말 잊은 사람이여
高唱絶塵紛 높이 노래하여 속세의 어지러움 끊어 버리게나.
6970. 겨울날, 두 수
冬日二首
69
蕭索時序晩 쓸쓸하게 계절의 차서 저물어,
已復度高秋 이미 다시 높은 가을 지났네.
回澗白波起 구비치는 시내에서는 흰 물결 일고,
通川絳樹稠 트인 내에는 붉은 나무 빽빽하네.
晨風散淸霜 송골매는 맑은 이슬 흩고,
嘉稻卷平疇 향기로운 벼 평평한 이랑에서 거두네.
獨懷志士感 홀로 뜻있는 선비의 맘 품으니,
歲事幸將休 한 해의 일 다행히 쉬려하네.
70
淸霜染澗樹 맑은 서리 시내의 나무 물들이고,
蕭索向嚴冬 쓸쓸하게 한 겨울로 향해가네.
密雨有時集 빽빽한 비 이따금 모여드는데,
寒雲無定容 차가운 구름은 일정한 모습 없네.
波明橫瀨出 물결 빛 밝게 여울로 비껴 나오고,
風急遠林空 바람 빨라지니 먼 숲 비었네.
一極窓間眺 한번 창 사이로 끝까지 바라보니,
高旻矗亂峰 높은 하늘에 어지러운 봉우리 우뚝 솟았네.
71. 봄날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다 계유년(1153)
春日卽事癸酉
郊園卉木麗 들의 동산에 풀과 나무 아름답고,
林塘煙水淸 숲의 못에 안개 낀 물 맑네.
閑棲衆累遠 한가로이 깃드니 뭇 걱정 멀어지고,
覽物共關情 사물 둘러보니 함께 마음에 미치네.
憩樹鳥啼幽 나무에 앉아 쉬는 새는 그윽하게 우지짖고,
綠原草舒榮 푸른 들의 풀은 꽃 펼쳐놓았네.
悟悅心自遣 깨닫고 기뻐하니 마음 절로 보내는데,
誰云非達生 누가 삶에 통달함 아니라 하는가?
72. 경서를 외다
誦經
坐厭塵累積 세속의 속박 쌓여감 싫어하여,
脫躧味幽玄 신발 벗듯 팽개쳐버리고 그윽한 오묘함 음미하네.
靜披笈中素 조용히 상자 속의 책 꺼내 펼치고,
流味東華篇 동화편 흐르듯 음미해보네.
朝昏一俯仰 아침 저녁 고개 한번 숙이고 쳐들 듯,
歲月如奔川 세월은 달리는 냇물 같다네.
世紛未云遣 세상 번잡함 아직 내던졌다 말 못하니,
仗此息諸緣 여기에 의지해 모든 인연 끊어야겠네.
73. 봄날 마음 속을 말하다
春日言懷
春至草木變 봄 이르니 풀과 나무 변하였는데,
郊園猶掩扉 교외의 동산 아직도 사립문 닫혀 있네.
玆晨與心會 오늘 새벽 마음 더불어 만나,
覽物徧芳菲 사물 둘러보니 두루 향기롭네.
桃萼破淺紅 복숭아 꽃받침은 옅은 붉은 빛 찢어지고,
時禽悅朝暉 제철의 새는 아침 햇살 기뻐하네.
泉谷暖方融 샘 골짝 따뜻하니 비로소 화락하고,
原田水初肥 들판의 밭 물 막 불었네.
東作興庶甿 봄농사 시작되니 농부들 많고,
歲功始在玆 한 해의 일 비로소 여기에 있네.
端居適自慰 한가로이 지내며 마침 스스로 위로하는데,
世事復有期 세속의 일 다시 기다림 있다네.
終然心所尙 끝내 마음이 숭상하는 곳은,
農畝當還歸 고향 들판이니 당연히 돌아가리라.
74. 저녁 산보
晩步
東原鬱已秀 동쪽 언덕 울창하게 이미 빼어나고,
嘉樹藹初綠 아름다운 나무 우거져 막 푸른 빛 띠었네.
衆卉發春陽 뭇 초목들 봄 볕 발하고,
前山加遐矚 앞산은 더 멀리 바라보이네.
端居日康倦 한가로이 지내자니 날로 건강해져서,
涉澗步墟曲 시내 건너 마을 산보하네.
景幽恣所尋 경치 그윽한 곳 마음껏 찾아보니,
悟悅何由足 깨닫고 기뻐함 어찌 만족할 수 있겠는가?
鳥鳴華薄深 새 울고 화초 우거진 곳 깊숙한데,
泉響亂流續 샘 소리 어지러운 흐름 이어지네.
握手一同忻 손 잡고 모두 함께 기쁜데,
吾生詎幽獨 내 삶 어찌하여 한적하고 외로운가?
75. 벗을 그리워하다
懷友
山夕烟景亂 산 저녁 되니 안개낀 경치 어지럽고,
林空鳥啼幽 숲 비니 새 울음소리 그윽하네.
懷人隔春江 사람 그리워함 봄 강 사이에 두고,
夢想積離憂 꿈에 생각하니 이별의 슬픔 쌓이네.
覽物懷悄悄 사물 둘러보니 그리움에 울적하여,
臨觴但悠悠 술잔 마주하니 다만 유유하기만 하네.
徘徊東西步 서성이며 이리저리 발걸음 옮기는데,
悟歎復何求 탄식하며 다시 무엇을 구하는가?
7677. 산관에서 해당화를 살펴보고 짓다, 두 수
山館觀海堂作二首
75
景暄林氣深 빛 따뜻하니 숲의 기운 깊고,
雨罷寒塘淥 비 그치니 차가운 연못 물 맑네.
置酒此佳辰 술 차려놓은 이 아름다운 날,
尋幽慕前躅 그윽한 곳 찾아 앞선 자취 그리워하네.
芳樹麗煙華 향기로운 나무에 안개낀 꽃 아름답고,
紫緜散淸馥 자줏빛 솜 맑은 향기 흩어지네.
當由懷別恨 이별의 한 품으니,
寂寞向空谷 쓸쓸함 빈 골짜기 향하네.
77
春草池塘綠 봄 풀 못둑에서 푸르른데,
忽驚花嶼紅 꽃 섬 붉어 갑자기 놀라네.
亂英深淺色 어지러운 꽃부리 깊고 얕은 색 띠고,
芳氣有無中 향기로운 기운 있는 듯 없는 듯.
置酒賓朋集 술 차려놓고 손과 벗 모아,
披襟賞咏同 흉금 헤치고 감상하고 읊조리며 함께하네.
若非摹寫得 베껴 그려서 얻을 수 없다면,
應逐綵雲空 하늘의 색 구름 쫓으리.
78. 그림에 부쳐
題畵
靑鸞凌風翔 푸른 난새 바람을 뚫고 나르며,
飛仙窈窕姿 나르는 신선은 자태 아름답네.
高挹謝塵境 높이 읍하고 속세의 경계 떠나니,
妙顔粲瓊㽔 예쁜 얼굴 옥으로 만든 꽃 빛나네.
登霞抗玉音 멀리 오르니 옥 소리 높고,
結霧吹參差 안개 맺히니 퉁소 부네.
神鈞儛空洞 신선의 음악에 맞추어 공동에서 춤추고,
玄露湛霄暉 맑은 이슬에는 하늘의 빛 잠기어 있네.
山中玉斧家 산 속에 있는 옥부의 집,
胡不一來嬉 어찌 한번 와서 기뻐하지 않는가?
貴凡路一分 귀함 무릇 길 한번 갈리면,
冥運千年期 하늘의 운명 천년 기약하네.
79. 무이에 들러 짓다
過武夷作
弄舟緣碧澗 배 저으며 짙푸른 시내 따라 가다가,
棲集靈峯阿 영봉의 언덕에서 머물러 쉬네.
夏木紛已成 여름 나무 빽빽하게 이미 이루어 졌고,
流泉注驚波 흐르는 샘물 쏟아지니 물결 놀라네.
雲闕啓蒼茫 구름 궁궐은 푸르스럼하게 열리어 있고,
高城鬱嵯峨 높은 성문 울쑥불쑥 울창하네.
眷言羽衣子 깃털 옷 입은 신선 돌아보니,
俛仰日婆娑 숙였다 쳐들었다 날로 너울너울 춤추네.
不學飛仙術 나르는 신선술 배우지 않아,
纍纍丘冢多 언덕에 무덤만 총총히 많다네.
8081. 동안현의 관사에서 밤에 짓다. 두 수
同安官舍夜作二首
80
官署夜方寂 관아의 밤 바야흐로 쓸쓸한데,
幽林生月初 그윽한 숲 사이로 달 막 떠오르네.
閑居秋意遠 한가로이 지내니 가을 정취 멀어지고,
花香寒露濡 꽃 향기 찬 이슬에 젖네.
故國異時節 고향 다른 시절에,
欲歸懷簡書 돌아가 경계의 명령 싶네.
聊從西軒臥 애오라지 서쪽 관사에 누우니,
塵思一蕭疎 속세의 생각 한차례 깨끗해지네.
81
窓戶納凉氣 창문으로 서늘한 기운 들어오고,
吏休散朱墨 관리들 쉬니 공문서 내던진다네.
無事一翛然 일 없이 한번 거리낌 없어지니,
形神罷拘役 몸과 마음 얽매인 부림에서 벗어나네.
暫愒豈非閑 잠시 쉼 어찌 한가하지 않으리,
無論心與跡 마음과 자취 논하지 않으리.
8288. 산중의 옛 친구들에게 부치다, 7수
寄山中舊知七首
82
結茅雲壑外 구름 덮인 골짜기 밖에 띠집 엮으니,
石澗流淸泉 산의 도랑에는 맑은 샘물 흐르네.
澗底采菖蒲 시내 바닥에서 창포 뜯으니,
顔色永芳鮮 얼굴 색 언제나 아름답고 생생하네.
超世慕肥遯 세속 초월하여 풍요로운 은둔함 사모하여,
鍊形學飛僊 몸 단련하여 나르는 신선 배우리.
未諧物外期 아직 세상 밖 기약과 어울리지는 않으나,
已絶區中緣 인간세상의 속된 인연 이미 끊었다네.
83
客子歸來晩 나그네 돌아옴 늦어,
江湖欲授衣 강호에 옷 보내려 하네.
路岐終寂寞 길 어긋나니 끝내 쓸쓸하고,
老大足傷悲 나이 먹으니 슬퍼할 만하네.
慷慨平生志 평소의 뜻 슬퍼하고 한탄하니,
冥茫造物機 조물주의 천기 어둡고 흐릿하네.
淸秋鵰鶚上 맑은 가을에 물수리 날아오르는데,
萬里看橫飛 만리 질러 나름 보네.
84
晨興香火罷 새벽에 일어나 향불 피우는 일 끝내고서,
入室披仙經 방에 들어가 신선의 경전 펼치네.
玄黙豈非尙 오묘하게 일없음 어찌 숭상 않으리오?
素餐空自驚 하는 일 없이 먹음 헛되이 스스로 경계하네.
起與塵事俱 일어나 속세의 일 더불어 함께 하니,
是非忽我營 옳고 그름 별안간 내 영위하네.
此道難坐進 이 도 앉아서 바치기 어려우니,
要須悟無生 모름지기 삶 없음 깨달아야 하리.
85
故園今夜半 옛 동산 오늘밤도 반이나 지났는데,
林影澹逾淸 숲 그림자 조용하니 더욱 맑네.
曳杖南溪路 남쪽 냇가 길 지팡이 끌고서,
君應獨自行 그대 홀로 자유롭게 다니리.
潺湲流水思 졸졸 흐르는 물 생각하고,
蕭索早秋聲 쏴쏴 초가을 소리 들리네.
盡向琴中寫 모두 거문고 향하여 편지 쓰니,
焉知離恨情 어찌 이별의 한스런 마음 알리오?
86
采藥侵晨入亂峯 약 캐러 아침 일찍
어지러운 산봉우리로 들어가니,
宿雲無處認行蹤 밤새 낀 구름에
간 자취 알 곳 없네.
歸來應念塵中客 돌아오면 마땅히
속세의 나그네 생각하리니,
寄與玄芝手自封 검은 영지 부치면서
손수 봉하겠지.
87
凄凉梧葉變 쓸쓸하게 오동나무 잎 변하고,
芬馥桂花秋 계수나무 꽃 향기로우니 가을이라네.
日夕湖皐勝 해 지니 호수 가 언덕 빼어나고,
哦詩憶舊遊 시 읊조리며 옛 놀던 곳 생각하네.
88
秋至池閣靜 가을 이르니 연못의 누각 조용하고,
天高林薄疎 하늘 높으니 빽빽하던 숲 성그네.
西園有佳處 서쪽 동산에 아름다운 곳 있는데,
那得與君俱 어떻게 그대와 함께 할 수 있으리.
89. 마음 속을 말함
述懷
夙尙本林壑 일찍부터 숭상함 숲과 골짜기에 바탕 두어,
灌園無寸資 동산에 물 대며 조금의 자력도 없었다네.
始懷經濟策 비로소 세상 경영하고 백성 구제할 계책 품었으나,
復愧軒裳姿 다시 수레와 관복 입은 관원들에게 부끄러웠다네.
效官刀筆間 하급관리 벼슬 받고 관사에서,
朱墨手所持 공문서나 손에 쥐고 있다네.
謂言殫蹇劣 우둔한 재질 다 기울인다 할뿐,
詎敢論居卑 어찌 감히 낮은데 처함 논하리.
任小才亦短 맡은 일 작고 재주 역시 짧으니,
抱念一無施 생각 품었으나 베푼 일 하나 없네.
幸蒙大夫賢 다행히 대부의 어지신 덕 입게되어,
加惠寬箠笞 은혜 베푸시어 채찍질 너그러이 하시네.
撫己實已優 내 몸 어루만져보니 실로 결단력 없어,
於道豈所期 도에 있기 어찌 바라리.
終當反初服 끝내는 벼슬 전 입었던 옷 다시 입고,
高揖與世辭 높이 두 손 들어 절하고 세상과 작별하리라.
90. 석전제를 앞두고 재계하며 지내다
釋奠齋居
理事未逾月 공사 처리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簿書終日親 문서장부 종일토록 가까이 하네.
簡編不及顧 책이라곤 돌아볼 겨를도 없어,
几閣積埃塵 시렁 위에는 먼지만 쌓이네.
今辰屬齋居 오늘 하루 재계하며 지낼 날이니,
煩跼一舒伸 바쁜 일로 휘어진 몸 한번 쭉 편다네.
瞻眺庭宇肅 뜰 쳐다보니 엄숙해지는데,
仰首但秋旻 고개 들어보니 다만 가을하늘 뿐이라네.
茂樹禽囀幽 우거진 나무에 새들 그윽하게 지저귀니,
忽如西澗濱 별안간 서쪽 시내의 물가 같다네.
聊參物外趣 애오라지 사물 바깥의 흥취에 뜻 두었는데,
豈與俗子羣 어찌 속물들과 함께 하리.
9195. 시험장에서 여러 수를 짓다, 다섯 수
試院雜詩五
91
齋宇夜沉寂 관청 밤 되니 적적하고 고요한데,
凄凉群物秋 쓸쓸하게 뭇 사물들 맞는구나.
臥聽簷瀉盡 누워서 처마의 물 다 흐름 듣자니,
心屬故園幽 마음은 옛 동산의 그윽한 곳에 있다네.
了事知何日 일 끝남 아는 것 어느 날이리요,
分曹喜勝流 무리 나누니 빼어난 무리 기쁘네.
笑談眞暫爾 웃고 이야기함 실로 잠깐일 따름이나,
不敢恨淹留 감히 오래 머무름 한스러워 않네.
92
寒燈耿欲滅 차가운 등불 빛내다가 꺼지려하면서,
照此一窓幽 이 방의 창문 어둑하게 비추네.
坐聽秋簷響 가을 처마 낙숫물 소리 가만히 듣자니,
淋浪殊未休 똑똑 완전히 그치지 않는다네.
[여설]
송나라의 나대경(羅大經)은 『학림옥로(鶴林玉露)』(甲篇卷六)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희는) 일찍이 이 시를 외어 학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외로운 등불 차가운 불꽃 내면서 빛나고, 이 방의 창문 어둑하게 비추네. 누워서 처마 앞의 빗소리 듣자니, 졸졸하면서 완전히 그치지 않네.’ 그리고 말하기를 ‘이는 비록 눈 앞의 정경을 말한 것이나 마음의 근원이 맑은 자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다.’라 하였다. 이로써 보건대 공에 지은 것을 또한 대략 볼 수 있다.(嘗誦其詩學者云, 孤燈耿寒燄, 照此一窓幽. 臥聽簷前雨. 浪浪殊未休. 曰, 此雖眼前語, 然非心源澄淸者不能道. 觀此, 則公之所作又可槪見矣)” 『학림옥로』에서 인용한 주희의 시가 지금 전하는 판본과는 글자가 많이 다름이 눈에 띈다.
93
窮秋一雨至 늦가을에 한 차례 비 내리는데,
暫止復蕭蕭 잠깐 그쳤다가는 다시 쏴쏴 내리네.
曲沼寒流滿 구비진 연못에는 차가운 물줄기 가득하고,
空庭凉葉飄 빈 뜰에는 차가운 나뭇잎 나부끼네.
聞鍾懷故宇 종소리 들리니 옛 집 그립고,
覽物屬今朝 사물 둘러보니 오늘 아침이라네.
一詠歸來賦 한번 〈귀거래사〉 읊으니,
頓將形跡超 잠시나마 형적 초월한다네.
94
長廊一遊步 긴 행랑 한번 유유자적하게 걸어보니,
愛此方塘淨 이 모난 연못 깨끗함 사랑스럽네.
急雨散遙空 소낙비 아득한 공중으로 흩어지고,
圓文滿幽鏡 둥근 무늬 그윽한 거울에 가득하네.
階空綠苔長 섬돌 비어 있으니 푸른 이끼 길게 자라고,
院僻寒飇勁 시험장 구석지니 차가운 회오리바람 세차네.
長소不逢人 길게 휘파람 부나 사람 만나지 못하니,
超搖得眞性 아득히 참된 본성 얻는다네.
95
藝苑門禁肅 문예의 동산에 문 지킴 엄숙하니,
長廊似僧居 긴 행랑 중 사는 곳 같네.
偶來一散步 어쩌다 와서 한번 산보하니,
暫與塵網疎 잠시나마 세속의 그물과 소원해졌다네.
文字謝時輩 문자는 때의 무리들 떠났는데,
銓衡賴群儒 전형은 여러 선비 힘입네.
伊予獨何者 나만 홀로 어떤 사람인가?
偪仄心煩紆 군색함 닥쳐오니 마음 번민에 얽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