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몽구

王珣短簿

황성 2009. 5. 15. 11:06

王珣短簿

晉王珣字元琳 丞相導之孫. 弱冠與謝玄爲溫掾. 溫嘗謂之曰 謝掾年四十必擁旄杖節. 王掾當作黑頭公. 皆未易才也. 孝武時 爲僕射領吏部. 帝雅好典籍 以才學文章見昵. 夢人以大筆如椽與之. 旣覺語人曰 此當有大手筆事. 俄而帝崩. 哀冊諡議皆珣所草. 玄字幼度. 少穎悟 爲叔父安所器中. 安嘗戒約子姪 因曰 子弟亦何預人事. 而正欲使其佳. 諸人莫有言者. 玄答曰 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庭堦耳. 安悅. 時苻堅入寇. 朝廷求文武良將可以鎭禦北方. 安乃以玄應擧. 累進冠軍將軍 爲前鋒都督 與從弟輔國將軍琰決戰肥水南. 堅衆奔潰 弃甲宵遁. 聞風聲鶴唳 皆以爲王師已至. 進號前將軍.

진(晉)나라 왕순(王珣) 자는 원림(元琳) 승상 왕도(왕導)의 손자이다. 약관의 나이에 사현(謝玄)과 환온의 관리가 되었다. 환온이 일찍이 말하기를, “사현은 나이 마흔에 반드시 지휘기와 지휘봉을 잡은 장수가 될 것이요, 또 왕순도 반드시 흑두공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얻기 쉽지 않은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오” 하였다. 효무제 때 복야령리부(僕射領吏部)가 되었다. 황제는 평소 전적(典籍)을 좋아하여 재능과 학문 문장으로 친함을 표시하였다. 꿈속에 어떤 사람이 큰 붓을 주었는데 석가래 같았다. 이미 잠이 깨고서는 타인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마땅히 대수필(大手筆)1)의 일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갑자기 황제가 죽었다. 애책(哀冊)과 시의(諡議)를 모두 왕순이 초고를 만들었다.

현(玄)의 자는 유도(幼度)이니 어려서 영특하여 안(安)에게 그릇으로 여겨졌다. 안이 일찍이 자식과 조카를 경계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자제은 또한 어쩌 인사를 미리 알 수 있겠는가? 정히 그 잘되게 하고자 한다.” 하니, 다른 사람은 말하지 않았고, 현이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지란(芝蘭)과 옥수(玉樹) 같으니, 떨 섬돌에서 살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하니, 안이 기뻐하였다. 당시에 부견(苻堅)에 도적이 침입하니, 조정에서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장수를 구하면 북방을 수비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였다. 안이 마침내 현을 천거하였다. 여러 번 관군과 장군으로 진급하여 전봉도독(前鋒都督)이 되었다. 종제 보국장군(輔國將軍) 염(琰)과 비수(決戰肥水)의 남쪽에서 결전하니 부견의 군사들이 달아나고 무너졌다. 병장기를 끌고 밤을 틈타 달아났는데,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 왕의 군사들이 이미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진급하여 전장군(前將軍)이 되었다.


1) [大手筆】1.指朝廷詔令文書等重要文章. 后亦指傑出的文辭、書畫. 《晉書·王珣傳》:“珣夢人以大筆如椽與之, 既覺, 語人云:‘此當有大手筆事.’俄而帝崩, 哀冊諡議, 皆珣所草.”《陳書·徐陵傳》:“世祖、高宗之世, 國家有大手筆, 皆陵草之.” 淸宣鼎《夜雨秋燈錄·迦陵配》:“<李太守>閒步殿上, 觀西天像, 突見墨荷, 驚爲八大再來人, 問誰之大手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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