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몽구

伏波標柱

황성 2009. 5. 18. 10:06

伏波標柱

後漢馬援字文淵 扶風茂陵人. 少有大志 嘗謂賓客曰 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 建武中歷虎賁中郞將 數被進見. 爲人明鬚髮 眉目如畵 閑於進對. 又善兵策. 帝嘗言 伏波論兵 與我意合. 有謀未嘗不用. 後交阯女子徵側等反 蠻夷皆應之. 拜援爲伏波將軍 擊破之 封新息侯. 援乃擊牛釃酒 勞饗軍士. 將樓船戰士 進擊餘黨 嶠南悉平. 後復請擊武陵五溪蠻夷. 時年六十二. 帝愍其老. 援曰 臣尙能被甲上馬. 帝令試之. 援據鞍顧眄 以示可用. 帝笑曰 矍鑠哉是翁也. 遂遣征之. 進營壺頭. 會暑甚中病卒. 廣州記曰 援到交阯 立銅柱爲漢之極界.

후한(後漢) 마원(馬援)의 자는 문연(文淵)이니, 부풍무릉(扶風茂陵) 사람이다. 젊어서 큰 뜻을 품었다. 일찍이 빈객에게 말하기를, “대장부의 뜻은 곤궁하면 마땅히 더욱 견고해야 하고, 늙으면 마땅히 더욱 씩씩해야 한다.” 하였다. 건무(建武) 연간에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이 되어 자주 나아가 왕을 뵐 수 있었다. 사람의 생김새는 밝은 수염과 머리에 눈썹과 눈은 그림 같았으며, 나아가고 응대함에 한가로웠다. 또 병책(兵策)을 잘하니, 황제가 일찍이 말하기를, “복파(伏波)가 병법에 대해 논의 하는 것은 나의 뜻에 부합한다.” 하였다. 좋은 지략이 있으면 일찍이 사용되지 않음이 없었다. 

뒤에 교지의 여자 징측(徵側) 등이 배반하니, 남쪽 오랑캐들이 모두 호응하였다. 마원을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하여 적을 물리치게 하였다. 신식후(新息侯)에 봉해졌다. 마원이 곧 소를 잡고 술을 빛어 군사들을 위로하여 음식을 먹이고 누선과 전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남은 잔당을 소탕하니 교남이 모두 평정되었다.

뒤에 다시 무릉(武陵) 오계(五溪)의 오랑캐를 치기를 청하였다. 당시의 나이가 62세였는데, 황제가 그의 늙음을 걱정하니, 마원이 말하기를, “저는 오히려 능히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탈 수 있습니다.” 하였다. 황제가 시험해보게 하였다. 마원이 말안장에 올라 돌아보며 한 눈을 감아 사용할 만함을 보이니, 황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건장하도다. 이 늙은이여.” 하였다. 마침내 가서 정벌하게 하였다. 호두(壺頭)에 진을 치고 진격하였는데, 마침 더위가 심하여 도중에 병으로 죽었다.

??광주기(廣州記)??에 말하기를, “마원이 교지에 이르러 구리 기둥을 세워 한나라의 남방 경계로 삼았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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