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몽구

孔明臥龍

황성 2009. 5. 6. 13:27

 孔明臥龍

蜀志 諸葛亮字孔明 琅邪陽都人. 躬耕隴畝 好爲梁父吟 每自比管仲‧樂毅. 時人莫之許. 惟崔州平‧徐庶與亮友善 謂爲信然. 時先主屯新野 徐庶見之謂曰 諸葛孔明臥龍也. 將軍豈願見之乎. 此人可就見 不可屈致. 宜枉駕顧之. 先主遂詣亮 凡三往乃見. 因屛人與計事善之. 於是情好日密. 關羽‧張飛等不悅. 先主曰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勿復言. 及稱尊號 以亮爲丞相. 漢晉春秋曰 亮家南陽鄧縣襄陽城西 號曰隆中.


?촉지(蜀志)?에 제갈량의 자는 공명(孔明)이니 낭야(琅邪) 양도(陽都) 사람이다. 몸소 농묘(隴畝)를 경작하고 양보음(梁父吟)을 좋아하였다. 매번 자신을 관중(管仲)‧악의(樂毅). 에 비교하였지만 당시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았지만, 다만 최주평(崔州平)‧서서(徐庶)가 제갈량과 사이가 좋아 믿어주었다. 당시 선주(先主) 屯신야(新野)에 주둔하였는데, 서서가 보고서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인데, 장군께서는 어찌 보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 사람은 나아가서 볼 수 있지만 그의 뜻을 굽혀 이르게 할 수는 없으니, 마땅히 왕림하여 찾아보소서.” 하였다. 선주가 마침내 제갈량에게 나아가기를 무릇 3번 한 뒤에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 이어서 사람을 물리치고 더불어 일을 계획하여 좋게 여겼다. 이에 정이 좋아 날로 친밀하였지만 관우(關羽)‧장비(張飛) 등은 좋아하지 않으니, 선주가 말히기를, “내게 공명이 있는 것은 고기가 물에 있는 것과 같으니, 바라건대 다시 이 말을 거론하지 말라.”고 하였다. 존호(尊號)를 일컬음에 미쳐서 제갈량을 승상(丞相)으로 삼았다. 한진(漢晉) 춘추(春秋)에 말하기를, 제갈량의 집이 남양(南陽) 등현(鄧縣) 양양성(襄陽城) 서쪽에 있어 융중(隆中)이락 말하였다.

'기타 > 몽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楊震關西  (0) 2009.05.07
呂望非熊  (0) 2009.05.07
裴楷淸通  (0) 2009.05.06
王戎簡要  (0) 2009.05.05
雷煥送劒  (0) 2009.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