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震關西(18)
後漢楊震字伯起 弘農華陰人. 少好學明經 博覽無不窮究. 諸儒爲之語曰 關西孔子楊伯起. 常客居於湖 不答州郡禮命數十年 衆謂之晩暮. 而志愈篤. 後有鸛雀 銜三鱣魚 飛集講堂前. 都講取魚進曰 蛇鱣者卿大夫服之象也. 數三者法三台也. 先生自此升矣. 年五十乃始州郡 安帝時爲太尉.
후한(後漢) 양진(楊震)의 자는 백기(伯起)니, 홍농(弘農) 화음(華陰) 사람이다. 젊어서 학문을 좋아하여 경전에 밝아 널리 열람하여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여러 유학자들이 말하기를, “관서 공자 양백기”라고 하였다. 항상 객으로 호(湖) 땅에 살면서 주군(州郡)에서 예우로 명령함에 응답하지 않는 것이 수십 년 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만모(晩暮, 너무 늦었다)고 말하였지만 그의 뜻은 더욱 독실하였다. 뒤에 관작(鸛雀)이 세 마리의 전어(鱣魚)를 물고 날아 강당 앞에 모이니, 도강(都講)1)이 고기를 취하여 바치면서 말하기를, “사전(蛇鱣)2)이라는 것은 경대부 복장을 형상한 것이다. 숫자가 3이라는 것은 삼태(三台)를 본받은 것이니, 선생이 이로부터 승진할 것입니다.” 하였다. 나이 50세에 주군에서 벼슬을 시작하여 안제(安帝) 때 태위(太尉)가 되었다.
1) [都講】1.古代學舍中協助博士講經的儒生. 選擇高材者充之. 《後漢書·丁鴻傳》:“鴻年十三, 從桓榮受歐陽《尙書》, 三年而明章句, 善論難, 爲都講.”《新唐書·叛臣傳·陳少遊》:“幼習老子、莊周書, 爲崇玄生, 諸儒推爲都講.” 淸吳偉業《題西泠閨詠》之一:“絳紗弟子稱都講, 碧玉才人本內家.”參閱余嘉錫《論學雜著·都講》.
2) [蛇鱣】蛇和黃鱔. 《後漢書·楊震傳》:“蛇鱣者, 卿大夫服之象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