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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금루기

황성 2011. 4. 18. 11:00

운금루기(雲錦樓記)

이제현(李齊賢)

 

山川登臨之勝이 不必皆在僻遠之方하니 王者之所都와 萬衆之所會에 固未嘗無山川也라 爭名者於朝하고 爭利者於市하니 雖使衡廬湖湘이 列于跬步俯仰之內하야 將邂逅라도 而莫之知有也라 何者오 逐鹿而不見山하고 攫金而不見人하며 察秋毫而不見轝薪은 心有所專而目不暇他及也라 其好事而有力者 踰關津하고 卜田里하야 規規於丘壑之遊하야 自以爲高나 康樂之開道는 小民之所驚이요 許汜之問舍는 豪士之所諱니 又不若不爲之爲高也라

오르고 바라볼만한 절경의 산천이 꼭 모두 외지고 먼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도읍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도 항상 산천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명예를 좇는 자는 조정에, 이익을 다투는 자는 저자에 묻혀있기 때문에 비록 형산(衡山), 여산(廬山), 동정호(洞庭湖), 소상강(蕭湘江)이 한걸음 앞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 널려 있어 눈만 뜨면 보이더라도 그런 것이 있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사슴을 좇느라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탐하느라 사람을 보지 못하며, 가는 터럭은 보면서 섶을 실은 큰 수레는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에 빠져 다른 것은 미처 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일벌이기 좋아하면서 재력이 있는 자들은 관문을 나가고 나루를 지나 전원에 터를 잡고는 산천 유람에 빠져 살면서 스스로 고매한 척하지만, 강락(康樂)이 나무를 베어 길을 내자 백성들이 놀랐고 허사(許汜)가 집터를 묻자 호걸이 멀리했으니, 차라리 고매한 척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하겠다.

 

京城之南에 有池하니 可方百畝라 環而居者 閭閻煙火之舍가 鱗錯而櫛比하고 負戴騎步하야 道其傍而往來者 絡繹而後先하니 豈知有幽奇閑廣之境이 迺在其間耶아 後至元丁丑夏 荷花盛開에 玄福君權侯 見而愛之하야 直池之東에 購地起樓라 倍尋以爲崇하고 參丈以爲袤하니 不礎而楹取不朽하고 不瓦而茨取不漏라 桷不斲호대 不豐而不撓하고 堊不雘호대 不華而不陋하니 大約如是而一池之荷를 盡包而有之라 於是에 請其大人吉昌公과 與兄弟姻婭하야 觴于其上하야 怡怡愉愉하니 竟日忘歸라 子有能大書者하야 使之書雲錦二字하야 揭爲樓名하니라

개경의 남쪽에 못이 하나 있는데 그 너비가 백 묘(畝)쯤 된다. 못을 빙 둘러 여염집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짐을 이거나 지고 말을 타거나 걸으면서 그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를 무니, 바로 그 안에 고요하고 탁 트인 곳이 있을 줄을 어떻게 알겠는가. 후지원(後至元) 정축년(1337, 충숙왕6) 여름, 연꽃이 한창 피었을 적에 현복군 권후(玄福君權侯)가 이곳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서 곧장 못 동쪽에 땅을 사서 누각을 세웠다. 높이는 두 길, 너비는 30자쯤 되게 하였는데, 주춧돌은 세우지 않았지만 기둥은 썩지 않게 하였고 기와는 올리지 않았지만 이엉으로 만든 지붕은 새지 않게 하였다. 서까래는 깎지 않았으나 굵지도 휘지도 않았고, 흙만 바르고 단청은 하지 않았으나 너무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았다. 누각의 모습이 대략 이러한데 거기에 못 전체의 연꽃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다. 이에 자신의 아버지 길창공(吉昌公)과 형제, 사돈, 동서들을 초청하여 누각 위에서 술을 마시며 유쾌하게 놀았는데 해가 지도록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때 자식 중에 큰 글씨를 잘 쓰는 자가 있어 운금(雲錦) 두 글자를 쓰게 하여 매달고는 누각의 이름으로 삼았다.

余試往觀之호니 紅香綠影이 浩無畔岸하고 狼藉風露이 搖曳煙波니 可謂名不虛得者矣라 不寧惟是라 龍山諸峯이 攢靑抹綠하야 輻輳簷下하야 晦明朝夕에 每各異狀이요 而嚮之閭閻煙火之舍는 其面勢曲折을 可坐而數하고 負戴騎步之往來者는 馳者 休者 顧者 招者 遇朋儔而立語者 値尊長而趨拜者 亦皆莫能遁形하니 而望之可樂也라 在彼則徒見有池하고 不知有樓하니 又安知樓之有人信乎아 登臨之勝이 不必在僻遠이나 而朝市之心目이 邂逅而莫之知有也라 抑亦天作地藏하야 不輕示於人耶아

내가 한번 가서 보았는데, 향기 나는 붉은 꽃과 푸른 잎 그림자가 못에 가득하고 짙은 물안개가 수면 위에 걸쳐있으니, 운금이란 이름이 괜히 붙여진 것이 아니라고 할 만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푸름을 바르고 칠한 용산(龍山)의 여러 봉우리들이 처마 밑으로 몰려들어 어두운 저녁과 밝은 아침에 늘 각기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건너편 여염집은 그 자세한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있다. 짐을 이고 지고 말을 타고 걸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빨리 달려가는 사람이나 쉬는 사람, 돌아보는 사람이나 부르는 사람, 친구를 만나 서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나 어른을 만나 종종 걸어 절하는 사람 모두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니 이들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다. 저들은 못이 있는 것만 보고 누각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니 또 어떻게 누각 안에 사람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오르고 바라볼만한 좋은 경치가 꼭 외지고 먼 곳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정과 저자에 팔려있는 마음과 눈으로는 그것들을 만나도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아니면 하늘이 만들고 땅이 품어서 사람에게 쉽게 보여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侯는 腰萬戶之符하고 席外戚之勢하며 齒不及古人強仕之年하니 宜於富貴利祿에 寢酣而夢醉어늘 乃能樂乎仁智之所樂하야 不見驚于民하고 不見諱于士하야 而奄有幽奇閑廣之境於市朝心目之所不及하야 樂其親以及於賓하고 樂其身以及於人하니 是可尙也已라 益齋居士某는 記하노라

권후(權候)는 만호후(萬戶侯)의 병부(兵符)를 허리에 차고 외척의 권세를 누리는데다가 나이는 아직 40세도 되지 않았으니, 부귀와 이익에 빠져 취해있기 쉬운 처지이다. 그런데 도리어 인자(仁者)와 지자(智者)가 좋아하는 산과 물을 좋아하여 백성들을 놀라게 하거나 선비와 소원해지지도 않고서, 조정과 저자에 팔려있는 마음과 눈이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 고요하고 탁 트인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친척을 즐겁게 하여 손님까지 즐겁게 하고, 자신이 즐거워하여 남까지 즐겁게 하니 참으로 가상한 일이다. 익재거사(益齋居士) 아무개는 기문을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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