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서발/기서발

회암절요발

황성 2009. 6. 11. 16:44

 

星州印晦菴書節要跋


嘗讀朱門講學往復之書 或見於諸書者 率皆言近而指遠 辭約而理明 每以未見全集爲恨 旣得大全集 讀之則如地負海涵 靡不備具 而蠡測末學 徒起亡羊之歎 及見吳思菴所選則 只採菁華 反遺實學 而似未免經約之病 所謂擧一而廢百也 獨有王魯齋選 是書求訂於北山何先生則固宜精密而宋潛溪猶嘆其不得見 況於吾東晩進乎 退溪李先生滉 喜得全書 敬信如神明 潛心積久 深會領要 已爲夫子平日靜思力踐之功 後學入頭下手之地 尤在於書疏 非它文比 乃手抄其最關於學問而切於日用者 約繁就簡略加訂解 凡所取才三之一而其平生出處言動之節 與夫師友講明警責旨旨 該括無餘 誠進修之直訣而斯文之寶典也 俊良竊惟紫陽夫子 挺亞聖之資 集諸儒之長 道德高厚 敎化無窮 自一話一言 莫非妙道精義之蘊 而其發揮經傳 尤竭心思 直啓關鍵 開示萬世 然而緖言散出 註義簡賾 得其門而入 蓋亦難矣 如語類諸書 雖皆雅言而記者 非一手 亦未必盡得師傳之意也 至於書札則皆夫子手箚而勉進血誠 無間於人己 要以格致脩爲變化 氣質爲功 故其發端以示人者 或抑或揚一進一退 因材而施敎 對證而下藥 片言隻句 皆極乎天理之精妙 毫分縷析 正中乎心術之隱微 能使及門之士 竦然而悟 躍如而趨 所以賢愚皆獲其益而雖百世之下 感激餘誨 如拜嚴師而 承面命 嗚呼 至哉 誠能虛心精慮 從事於斯 眞知實踐 心與理 熟則 泝伊洛 而達洙泗 此爲路頭而四書諸經迎刃自解矣 將見是書之行 與近思錄 同爲四書之喈梯而 其規模之大 心法之嚴 則又有四先生所未發者矣 然而退溪公 猶以取舍之僭踰嫌居於指目 俊良輒不自揆深懼 巾衍一本 易致漫滅 借活字於臨臯書院 又得洪使相曇 助錢一半僅得卒事 一邑之力 恨未廣也 如有同好者 表出是集 或繡榟或印字 俾之家傳人誦而有得於主敬窮理之宗旨 則理餘韻而續絶緖 爲後來之豪傑 豈無其人乎 若夫其味之可悅其義之無窮 則善讀者 當自得之而行有餘力 取本集而博觀 亦可見其盛德大業 不出乎此書範圍之外矣

嘉靖辛酉五月甲辰箕盛黃俊良謹跋


 내 일찍이 주자 문하에서 강학하면서 왕복한 편지를 읽었더니, 혹 여러 편지에서 나타난 것은 대체로 모두 말이 가까우면서 뜻이 심원하고 말이 간략하면서도 이치는 명확하여 매양 전집을 보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였다. 이미 전집을 구하여 읽으니, 마치 지부해함(地負海涵)1) 같아 모두 자세히 갖추어져 있으니, 여측(蠡測)2)한 말학(末學)이 한갓 망양지탄(亡羊之歎)3)을 일으켰다. 오 사암(吳思菴)4)이 선집한 것을 보니, 다만 정화(菁華)5)를 캤지만 도리어 실학을 잃어버려 마치 경략(經約)6)의 병통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이른 바 “하나를 들고 백 가지를 버린다.”는 것이다. 유독 왕 노재(王魯齋)7)가 선집한 것이 있는데, 이 책은 북산(北山) 하 선생(何先生)에게 교정 받은 것이니, 진실로 마땅히 정밀하였을 것이지만, 송 잠계(宋潛溪)8)가 오히려 그것을 보지 못함을 탄식하였는데, 하물며 우리나라 후학에 있어서랴? 퇴계(退溪) 이 선생(李先生) 황(滉)이 그 전서를 구한 것을 기뻐하여 공경하고 신봉하기를 마치 신명과 같이 하였고, 오래 고심하여 깊이 요체를 알았다. 이윽고 생각하기를, 부자가 평소에 생각을 정밀하게 하고 힘써 실천한 공로가 되니, 후학들이 입두(入頭)9)하여 손을 내리는 곳은 더욱 서소(書疏)에 있어 다른 문장이 견줄 것이 아니라고 하여 마침내 직접 그 가장 학문에 관계되고 일상생활에 긴절한 것을 뽑아 번거로운 것을 요약하여 간략함에 나아가 교정하고 풀이 하니, 무릇 취하여 마름질한 것은 삼분의 일이었는데, 그 평소 출처 언동의 지절과 사우간에 강명하고 경책(警責)한 뜻이 두루 갖추어져 남음이 없으니, 참으로 나아가 닦는 비결이요 사문의 보배로운 법전이다.

 내가 가만히 생각하건대, 자양(紫陽) 주부자는 아성의 자질을 받고 여러 유학자의 장점을 모아 도덕이 높고 두터우며 교화가 끝이 없다. 본디 한 마디 말과 글귀가 모두 오묘한 도와 정밀한 의리의 온축됨이요, 그 경전에 발휘한 것은 더욱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곧바로 관건(關鍵)을 열어 만세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서언(緖言)이 산출함에 주의(註義)가 간색(簡賾)하여 그 문을 얻어서 들어가기가 또한 어렵다. 어류(語類)와 같은 여러 책은 비록 평상시의 말을 기록한 것이지만 한 사람의 솜씨가 아니어서 반드시 스승이 전한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서찰에 이르러서는 모두 부자가 손수 차록(箚錄)하여 힘써 진작시키고 혈성(血誠)10)을  다한 것이// 타인과 자신에 간격이 없으니, 요컨대 격치수위하여 변화기질로써 공으로 삼았으므로 그 단서를 드러내어 남에게 보인 것이 혹은 억제하고 혹은 드러내어 한 번 진보하게 하고 한 번 물러나게 함에 재주에 따라 가르쳤고, 대증(對證)하여 처방을 내리니, 한 마디 말과 한 구절이 모두 천리의 정묘함에 지극하고, 호분누석(毫分縷析)11)함은 마음의 은미함에 정확하게 적중하여 능히 문하에 미친 선비로 하여금 송연히 깨닫고 약연히 따르게 한다. 이 때문에 어질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두 그 유익함을 얻어 비록 백 대의 아래일지라도 남은 가르침에 감격함이 마치 근엄한 스승에게 절하고 면전에서 가르침을 받는 듯하니, 아. 지극하도다! 진실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고요하게 하여 여기에 종사하여 참으로 실천함을 앎에 마음이 이치와 익숙하다면, 이락(伊洛)12)을 거슬러 올라가서 수사(洙泗)13)도달할 때 이 책이 길머리가 되어서 사서와 여러 경전이 대나무가 칼을 만나서 갈라지듯 스스로 풀릴 것이다. 장차 이 책이 유행은 근사록(近思錄)과 함께 사서를 공부하는 개제(喈梯//)가 되고 그 규모의 광대함과 심법의 엄정함은 또 네 선생이 아직 발명하지 않는 바가 있음을 볼 것이다. 그런데도 퇴계가 오히려 취사의 참유(僭踰)14)로 지목(指目)15)에 거처함을 싫어하였다. 내가 문득 주제도 모르고 상자속에 있는 한 본이 쉽사리 만멸될 것을 깊이 두려워하여 임고서원(臨臯書院)에서 활자를 빌리고, 또 홍 사상(洪使相) 담(曇)이 전 일반(一半)을 도와줌에 힘입어 겨우 일을 마칠 수 있었으니, 한 고을의 힘이 넓지 못함을 한스러워하였다. 만일 함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이 책을 표출하여 혹은 수재(繡榟)하고 혹은 인자(印字)하여 집안에서 전하여 사람이 암송하여 경을 주장하고 이치를 연구하는 종지(宗旨)를 얻음이 있을 것 같으면 남은 운을 다스리고 끊어진 전통을 이어니, 후대 호걸 중에 어찌 알맞은 사람이 없겠는가? 그 의미의 기뻐할 만한 것과 그 의리의 무궁함 같은 것은 잘 읽는 사람은 마땅히 스스로 터득할 것이고, 실천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본집(本集)[주자서]을 가져다 널리 봄에 또한 성대한 덕과 큰 일이 이 책[주서절요]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가정(嘉靖) 신유(辛酉) 5월 갑진(甲辰)에 기성(箕盛) 황준량(黃俊良)16) 삼가 발문을 쓰노라.


 


附退溪李先生答李仲久書


晦菴書節要 蒙示病處 甚荷不外 此書 當初不期與四方共之 只爲老境精力短乏 須此節約之功 以自便於省覽耳 中間被黃仲擧苦要印看 不能堅執初意 然亦止爲兩家子弟謀之 不意仲擧之破人宿戒 以至傳入都中 思之汗慄 噬臍無及 奈何奈何 其所指兩病處 不審其爲某書某條 幸於後便 槩擧示及 庶可以商量改圖也 然來喩云義理之精深 事爲之酬酌 切於吾身與吾心者 所當先取而其間或有不緊而見收云云 此固然矣 然而必欲盡如此說 恐未免又墜於一偏之病也 夫義理固有精深處 其獨無粗淺處乎 事爲固有緊酬酌 其無有閑酬酌乎 是數者 其關於吾身與五心者 固切而當先矣 若在人與在物者 其可以不切 而可遺之乎 吾儒之學 與異端不同 正在此處 惟孔門諸子 識得此意故論語所記有精深處 有粗淺處 有緊酬酌處 有閑酬酌處 有切於吾身心者 有在人在物而似不切於身心者 試略數之 如冉子之請粟 康子之饋藥 伯玉使人 原壤夷俟 封人請見 孺悲欲見 互鄕見 師冕見 若此之類 謂之非精深亦可也 謂之閒酬酌可也 雖謂之不切於身心 似亦可也 然何莫非道之一端也 苟極其至而言之 則所謂精深者 緊切者 皆不外此 故或問於龜山 曰論語二十篇 何者爲要切 龜山曰皆要切 正爲此耳 然則是書所取如來喩所當先者 固已不勝其多矣 其或彼此往復之際 亦有道寒暄敍情素 玩山遊水 傷時悶俗等 閑酬酌 似不切之語 間取而兼存之 使玩而味之者 如親見先生於燕閒優逸之際 親聆音旨於謦欬談笑之餘 則其得有道者氣像於風範神采之間者 未必不更深於專務精深 不屑不緊者之德 孤而無得也 非獨此耳 滉讀此書以來 乃知師友之義 如此其至重 惟其義重故情深 情深 故有許多相周旋款敘之言 若以爲非論義理不切身心 而盡去之 則何以見古人師友之道 若是其重且大乎 嘗得南時甫書 擧節要中答呂伯恭書 數日來 蟬聲益淸 每聽之 未嘗不懷高風也 一段云 若此歇後語 取之何用 滉答說 今不能記得 其大意 若曰作歇後看則歇後 作非歇後看則非歇後云云 大抵人之所見不同 所好亦異 滉平日極愛此等處 每夏月綠樹交蔭 蟬聲滿耳 心未嘗不懷仰兩先生之風 亦如庭草一閑物 每見之 輒思濂溪一般意思也 今自世俗不好此學者言之 固無怪 其知好者 亦不能皆同如此 然則韓文公所謂始參差而異序 卒爛漫而同歸者 實亦非易事也 滉所以爲此語者 非自是己言 而欲諸君之同於已 乃自發己病 而求藥石以自治耳 惟高明諒察而鐫誨之 幸甚幸甚 嘉靖癸亥二月望滉拜


 회암서 절요(節要)는 문제점이 있는 곳을 보여 주시니, 매우 외면하지 않음에 감사드립니다. 이 책을 애당초 사방의 사우와 함께 보는 것을 계획하지 않고, 다만 늙음에 정력이 부족하여 이 절요의 공을 기다려 스스로 보는 데에 편안하려고 할 따름이었습니다. 중간에 중중거(黃仲擧)가 인쇄하여 보기를 사정하길래 능히 처음 마음을 굳게 지킬 수 없었다. 그러나 또한 다만 두 집안의 자제를 위해 계획하였더니, 뜻 밖에도 중거가 남의 오른 경계를 깨뜨려 도성에 전해 유포됨에 이르렀으니, 생각함에 땀이 나고 두려워하여 몸 둘 곳을 알지 못하겠으니, 어찌할까요. 지적해 준 두 문제점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누구의 편지이며 어느 조목이 되는 지를, 바라건대, 후편에 대강 들어서 보여주신다면 아마 헤아려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내주신 편지에 말하길, “의리의 정심함과 일의 수작은 내 몸과 마음에 간절한 것은 마땅히 먼저 취해야 하지만 그 사이에 혹 긴절하지 않은데 수록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것은 진실로 그러하지만, 그런데도 반드시 모두 이 말과 같고자 한다면 아마 또 한 쪽으로 떨어지는 문제를 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의리는 진실로 정심한 곳이 있거니와 어찌 유독 거칠고 얕은 곳이 없겠는가? 일은 진실로 긴요하게 수작하는 곳이 있거니와 어찌 한가롭게 수작하는 곳이 없겠는가? 이 몇 가지 것은 그 내 몸과 마음에 관계되는 것이니, 진실로 간절하여 마땅히 우선해야 할 것이지만, 만약 타인과 사물에 있는 것을 간절하지 않다고 하여 빠트릴 수 있겠는가? 우리 유학은 이단과 다른 것은 정히 이곳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공자 문하의 제자들이 이 뜻을 알았기 때문에 논어에 기록한 것은 정심한 곳이 있고, 추천(粗淺)한 곳이 있으며, 긴요하게 수작한 곳이 있고, 한가롭게 수작한 곳이 있으며, 내 몸에 간절한 것이 있고, 타인과 사물에 있어서 내 몸과 마음에 간절하지 않는 듯한 것이 있다. 시험삼아 대략 헤아려 본다면, 염자의 청속(請粟)17), 강자의 궤약(饋藥)18), 백옥(伯玉)의 사인(使人)19), 원양(原壤)의 이사(夷俟)20), 봉인(封人)의 청현(請見)21), 유비(孺悲)의 욕현(欲見)22), 호향현(互鄕見)23) 사면현(師冕見)24) 같은 것인데, 이와 같은 종류는 정심함이 아니라고 말하더라도 또한 가능하고, 한가로운 수작이라고 말해도 가능하다. 비록 몸과 마음에 간절하지 않다고 말해도 또한 가능한 듯하다. 그러나 어찌 도의 한 단서가 아님이 없겠는가? 진실로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 말한다면 이른 바 정심함과 긴절한 것이 모두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귀산(龜山)에게 묻기를, “논어 20편 가운데, 어떤 것이 긴절합니까?” 하니, 귀산이 대답하기를, “모두 긴절한 것이니, 정히 이것이 될 따름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취한 것 가운데 보내 주신 편지에 마땅히 우선해야 할 것 같은 것은 진실로 너무 그 많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혹시 피차간 왕복하는 즈음에 또한 한훤(寒暄)을 말하고 정소(情素)를 펴고, 산수를 노닐고, 시속을 아파하는 것이 있음은 아마 간절하지 않는 말인 듯 하지만 간간히 취하여 함께 보존하여 완미하게 한 것은 마치 직접 선생을 연한(燕閒) 우일(優逸)하는 사이에 보고, 직접 음지(音旨)를 경해(謦欬) 담소(談笑)의 나머지에서 듣는 듯 하니, 도가 있는 사람의 기상을 풍범과 신채의 사이에서 얻는 사람은 반드시 다시 정심함에 전적으로 힘쓰지 않음이 없고  긴절하지 않는 사람의 덕이 외롭고 얻음이 없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다 이 뿐만이 아니라 /// 모가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바로 사우의 의리가 이와 같이 지극하고 무거움을 알았다. 생각건대, 그 의리가 무겁기 때문에 정이 깊고 정이 길기 때문에 허다하게 서로 주선하고 정을 편 말이 있으니, 만일 의리를 논한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에 간절하지 않다고 하여 모두 버릴 것 같으면 무엇으로 고인 사우의 도리가 이와 같이 그 무겁고 또 광대함을 알 수 있겠는가?

 언젠가 남 시보(南時甫)의 편지를 받았는데, 절요 가운데 답여백공서(答呂伯恭書)에 ‘몇 칠 사이 매미 소리가 더욱 맑아 매양 들음에 일찍이 그대의 풍모를 생각하지 않음이 없었다.’는 한 단락을 인용하여 이와 같은 헐후(歇後)한 말을 취하여 어디에 쓰겠는가? 하였다. 내가 답장한 말을 지금 능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의 뜻은 다음과 같다. “헐후로 생각하여 본다면 헐후하고, 헐후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본다면 헐후가 아니다.” 하였다.

 대저 사람의 견해가 같지 않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다. 나는 평소 이러한 말을 매우 아껴 매양 여름이 되어 푸른 나무에 그늘이 교차하여 매미 소리가 귀에 가득하면 마음으로 일찍이 두 선생의 풍도를 사모하여 우러러 보지 않음이 없었고, 또한 마당 가운데 풀 한 포기를 매양 봄에 문득 염계(濂溪)의 일반의사(一般意思)를 생각하였다. 지금 세속에서 학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실로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 알고 좋아하는 사람도 능히 모두 좋아함이 이와 같지 않으니, 그렇다면 한문공이 이른 바 ‘처음에는 어지럽게 순서를 다르게 하다가 나중에는 찬란하게 함께 돌아간다.’는 것이 실재로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스스로 나의 말이 옳다고 여겨 제군이 나와 함께 하고자 함이 아니라. 바로 스스로 나의 잘못을 발명하여 약을 구하여 스스로 다스리고자 할 따름이다. 생각건대, 그대는 진실로 살펴 준엄하게 가르쳐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가정(嘉靖) 계해(癸亥) 2월 15일에 이황은 절합니다. 













1) [地負海涵】謂大地負載萬物, 海洋容納百川. 形容包羅萬象, 含蘊豊富. 語本唐韓愈《南陽樊紹述墓志銘》:“其富若生蓄, 萬物必具, 海含地負, 放恣橫從, 無所統紀.” 淸江藩《漢學師承記·朱笥河先生》:“先生之學, 可謂地負海涵, 淵渟嶽峙矣.”

2) [蠡測】“以蠡測海”的略語. 比喩以淺陋之見揣度事物. 語出《漢書·東方朔傳》:“以筦闚天, 以蠡測海.” 唐李商隱《詠懷寄秘閣舊僚》:“典籍將蠡測, 文章若管窺.” 淸昭槤《嘯亭雜錄·太宗伐明》:“明人罔知深謀, 如姚希孟輩, 反謂本朝夙無大志, 眞蠡測之見也.” 柯靈《香雪海·眞實、想象和虛構》:“可是對曆史動向的蠡測, 他却表現出嚴重的色盲症.”

3) [望洋而嘆】亦作“望洋而歎”. 比喩看見他人偉大而慨歎自己渺小或處理一件事而慨歎力量不足. 語本《莊子·秋水》:秋水漲時河兩岸間不辨牛馬. 河伯以天下之美爲盡在此. 乃順流下至北海, 更是一片汪洋. 於是河伯“望洋向若而歎曰:‘野語有之, 曰:聞道百以爲莫己若者, 我之謂也.’” 明唐順之《與陳後岡參議書》:“俟他日有持《後岡先生集》示我者, 我當望洋而嘆, 或尾後作一二句跋語是則可耳.” 淸秦篤輝《平書·文藝下》:“予視楊用脩、顧亭林、閻百詩、毛西河、朱竹垞五先生之淵博, 望洋而歎.” 田北湖《論文章源流》:“解詁不明, 數典弗暇, 太古之籍, 一隙難窺, 如寳不明, 望洋而歎, 良足菲薄, 蓋有由來.”亦省作“望洋”. 元吳萊《次定海侯濤山》詩:“寄言漆園叟, 此去眞望洋.” 明趙明鑣《答周五溪書》:“纍纍千餘言, 恐後學不得其旨, 徒深望洋, 奈何?”

4) 오사암(吳思菴) : 명나라(1372~1457) 때 학자인 오눌(吳訥). 자는 민덕(敏德), 호는 사암(思菴), 시호는 문각(文恪). 저서로는 《소학》의 주석서인 《소학집해(小學集解)》가 있다.

5) [菁華】精華. 사물의 아름답고 순수한 부분. 《尙書大傳》卷一下:“菁華已竭, 褰裳去之.”《晉書·文苑傳序》:“《翰林》總其菁華, 《典論》詳其藻絢.”《舊唐書·李賢傳》:“先王策府, 備討菁華.”聞一多《死水·“你指著太陽起誓”》:“別人得的才是你的菁華--不壞的千春.”

6) 경약(經約) : 경약(徑約)과 같다. 박문(博文)하고 약례(約禮)해야 하는 것인데, 박문은 거치지 않고 바로 약례에만 치중하는 것

7) 노재(魯齋) : 왕백(王柏, 1197~1274)의 호이다. 자는 회지(會之) 또는 백회(伯會), 시호는 문헌(文憲)이며, 금화(金華) 사람이다. 조부 왕사유(王師愈)는 양시(楊時)의 제자이고, 부친 왕한(王瀚)은 여조겸(呂祖謙)에게 수학하였으며, 자신은 하기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벗 왕개지(汪開之)와 함께 주자가 주해한 사서에 대해 정밀히 연구하였으며, 저서에 《독역기(讀易記)》, 《독서기(讀書記)》 등이 있다.

8) 잠계(潛溪) : 명나라 포강(浦江) 사람인 송렴(宋濂)을 가리킨다. 그의 자는 경렴(景濂)이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동명산(東明山)에 은거하면서 10여 년간 저술에 몰두하였으며, 한림학사가 되어 《원사(元史)》를 편찬하였으며, 명나라 시대의 예악(禮樂)을 제정하였다. 《송학사전집(宋學士全集)》, 《포양인물기(浦陽人物記)》 등을 저술하였다.

9) [入頭】1.猶入門. 宋朱熹《答胡季隨》:“《易傳》平淡縝密, 極好看, 然亦極難看. 大抵講學須先有一入頭處, 方好下工夫.” 明高攀龍《高子遺書·說類》:“此是言其讀書入頭處.”2.謂入圈套. 淸李漁《凰求鳳·墮計》:“我費了許多氣力, 才說得入頭, 他如今許便許了.” 淸艾衲居士《豆棚閑話》第五則:“無人去處, 如何有此一物? 莫非山魈木客, 假扮前來, 哄我入頭, 打算我的性命?”

10) [血誠】猶赤誠. 謂極其眞誠的心意. 《宋書·謝晦傳》:“去年送女遣兒, 闔家俱下, 血誠如此, 未知所愧.” 唐白居易《爲宰相讓官表》:“此所以重陳手疏, 再瀝血誠, 乞迴此官, 別授能者.”《醒世恒言·李汧公窮邸遇俠客》:“房德又躬身道:‘禮物雖微, 出自房某一點血誠, 幸勿峻拒!’”《說嶽全傳》第六一回:“報國忘軀矢血誠, 誰敎萬里壞長城?”

11) [毫分縷析】細致詳盡的剖析. 《云谷雜記》附宋張嗣古《特荐狀》:“凡本府委送剖決民訟, 毫分縷析, 多得其情.” 明宋濂《故務光先生張公墓碣銘》:“至論其學術, 則一以考亭、朱子爲宗, 毫分縷析, 洞見其肯.”

12) 이락(伊洛) :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강학하던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으로서 정주학(程朱學)의 연원(淵源)을 가리킨다.

13) 수사(洙泗) :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이다. 공자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14) [僭踰】僭越. 宋邵伯溫《聞見前錄》卷六:“恐勞宵旰之憂, 寧避僭踰之罪.” 明宋濂《<剡源集>序》:“公既不可作, 子幸無讓, 於是忘其僭踰而爲序之如此.”《淸史稿·慶僖親王永璘傳》:“嗣後王、貝勒、貝子當依《會典》, 服物寧失之不及, 不可僭踰, 庶及永保令名.”

15) [指目】1.手指而目視之. 語本《禮記·大學》:“曾子曰:‘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后以“指目”謂衆所注視或從所指責. 《史記·陳涉世家》:“旦日, 卒中往往語, 皆指目陳勝.”《新唐書·王承元傳》:“年十六, 勸承宗亟引兵共討李師道, 承宗少之, 不用. 然軍中往往指目之.”《新唐書·奸臣傳下·盧杞》:“士議譁沸, 皆指目杞, 帝始寤, 貶爲新州司馬.” 宋司馬光《辭接續支俸劄子》:“而使臣違先事之義, 重素餐之罪, 四海指目, 何以自安?” 淸陸以湉《冷廬雜識·鄭峚陽》:“公卿之賢者儀部眷一妾, 其夫人不能容, 儀部遂挾妾以出, 流轉僧寺, 頗爲人指目.”2.引申爲矚目. 蔡元培《五十年來中國之哲學》:“中國哲學, 可以指目的, 止有三時期.”

16) 황준량(黃俊良) : 호는 금계(錦溪), 자는 중거(仲擧)이다. 지평(持平)과 성주 목사(星州牧使)를 지냈다.

17) 논어, 옹야, 제3장 子華使(시)於齊러니 冉子爲其母請粟한대 子曰 與之釜하라 請益한대 曰與之庾하라하여시늘 冉子與之粟五秉한대

18) 논어, 향당, 제11장, 問人於他邦하실새 再拜而送之러시다 拜送使者하여 如親見之는 敬也니라 康子饋藥이어늘 拜而受之曰 兵未達이라 不敢嘗이라하시다

19) 논어 , 헌문 , 제26장 蘧伯玉이 使人於孔子어늘 蘧伯玉은 衛大夫니 名瑗이라 孔子居衛에 嘗主於其家러시니 旣而反魯라 故로 伯玉使人來也라  孔子與之坐而問焉曰 夫子何爲오 對曰 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니이다 使者出이어늘 子曰 使乎使乎여

20) 논어, 헌문, 제46장 原壤이 夷俟러니 子曰 幼而不孫弟하며 長而無述焉이요 老而不死가 是爲賊이라하시고 以杖叩其脛하시다

21) 논어, 팔일 , 제24장 儀封人이 請見(현)曰 君子之至於斯也에 吾未嘗不得見也로라 從者見之한대 出曰 二三子는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久矣라 天將以夫子爲木鐸이시리라

22) 논어, 양화, 제20장 孺悲欲見孔子어늘 孔子辭以疾하시고 將命者 出戶어늘 取瑟而歌하사 使之聞之하시다

23) 논어, 술이, 제28장 互鄕은 難與言이러니 童子見(현)커늘 門人惑한대 互鄕은 鄕名이니 其人이 習於不善하여 難與言善이라 惑者는 疑夫子不當見之也라

24) 논어, 위령공, 제41장 師冕見할새 及階어늘 子曰 階也라하시고 及席이어늘 子曰 席也라하시고 皆坐어늘 子告之曰 某在斯, 某在斯라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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