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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와기

황성 2011. 4. 18. 10:59

잠와기(潛窩記) - 장유(張維)

 

 

 

始昌期甫 以潛窩屬記也할새 窩故未之有也러니 今年에 昌期甫 以疾로 謝事歸하여 而窩亦成이라 使謂余曰 潛窩始爲吾有니 子其可終無一言乎아 余曰 諾타하다

처음에 창기(昌期甫)가 잠와기를 부탁했을 때 잠와는 아직 지어지지 않았는데, 올해 창기보가 병 때문에 관직을 사양하고 돌아오면서 잠와도 지어졌다. 사람을 보내 나에게 말하기를,

“잠와를 내가 이제 가지게 되었으니, 그대가 끝내 한마디 말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하여 내가

“알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夫潛之說은 始見於易之乾初與洪範之三德하니 蓋易은 以時言이요 而範은 以才言也라 才之不及於高明者를 謂之沈潛하고 而時乎不可以見且躍焉이면 於義에 當潛이니 學焉而不量其才면 則無成이요 動焉而違其時者는 凶하니 此聖人垂戒之旨也라 今昌期甫之取諸潛者는 無乃與是異乎아

‘잠(潛)’이란 말은 ≪주역(周易)≫ <건괘(乾卦)> 초구(初九)와 ≪서경(書經)≫ <홍범(洪範)>의 삼덕(三德)에 처음 보이는데, 《주역》은 시기를 가지고 말하고 <홍범>은 재능을 가지고 말하였다. 재능이 뛰어나지 못한 자를 ‘깊이 잠겼다[沈潛]’라 하고 앞장서 행동할 수 없는 시기일 경우엔 의리상 숨죽어 있어야 한다. 배울 때에 자기 재능에 알맞게 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하고 행동할 때에 그 시기에 맞지 않게 하는 자는 흉하게 되니, 이것이 성인이 경계한 뜻이다. 그러니 지금 창기보가 ‘잠(潛)’에서 취한 뜻은 이것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昌期甫는 早以魁科로 進하여 高才直氣로 重於薦紳하고 其當官任職하여 一切以治辦으로 聞하니 則昌期甫之才는 有過焉이언정 而無不及也라 中歲蹇連은 係乎時矣요 中興之後에 際遭聖明하여 數年中에 驟躋宰秩하니 處臺閣則臺閣重이요 任藩臬則藩臬治라 日者에 又以勁言讜議로 爲明主所嘉奬하여 擢長諫垣하고 旋貳夏卿하니 今雖移疾就閑이나 其遇時嚮用이 方未艾也라 若是而以潛自居는 其於名實에 何오 意者昌期甫之雅志 自有所在요 而非斯之謂乎인저

창기보는 일찍 장원급제로 벼슬에 나아가 뛰어난 재능과 강직한 기개로 조정 사대부들에게 중시되고 관직을 맡아서는 모두 잘 처리한다고 알려졌으니, 그렇다면 창기보의 재능은 뛰어날지언정, 부족함은 없는 것이다. 중년에 힘들었던 일은 시기가 그러해서였고, 중흥(인조반정) 뒤에는 좋은 때를 만나 몇 년 만에 곧 재상의 반열에 오르니, 대각에 머물면 대각에 무게가 실리고 지방관을 맡으면 담당한 지역이 잘 다스려졌다. 얼마 전에 또 강직한 말로 임금에게 칭찬을 받아 특별히 대사간으로 발탁되고 이내 병조참판이 되니, 지금 비록 병을 핑계로 한가롭게 지내지만 때가 되면 중용될 일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와 같은데도 ‘잠(潛)’으로 자처함은 그 이름과 실상에 어떠한가? 내 생각에 창기보가 평소 남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앞에서 말한 《주역》과 <홍범>의 뜻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듯하다.

 

夫昭昭는 生於冥冥하고 感通은 本乎寂然하니 隱者는 顯之根이요 而靜者는 動之君也라 尺蠖이 不屈則無以求伸이요 龍蛇 不蟄則無以存身이라 故로 君子之爲道也에 用心於內하여 寧闇然而晦언정 不的然而暴나 及其至也하여는 修之屋漏者 可以達乎四海하고 斂之方寸者 可以準乎天地하니 潛之用이 若是其著也라 昌期甫는 儻亦有志於是乎아 揚子雲有言曰 潛天而天이요 潛地而地라하고 又曰 仲尼는 潛於文王하고 顏淵은 潛於仲尼라하니 古之論潛者 於斯備矣라 若節信之著論은 陋且膚矣라 余不欲爲昌期甫道也라

밝음은 어둠에서 생기고 감동하여 통하는 것은 고요함에 근본하니, 은미함은 드러남의 시작이고 정적인 것은 동적인 것의 지휘관이다. 자벌레가 몸을 굽히지 않으면 펼 수 없고 용과 뱀이 겨울잠을 자지 않으면 몸을 보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가 도를 행할 때에는 내면수양에 힘써서 잘 알려지거나 드러나지 않지만, 그 지극한 데에 이르러서는 남모르는 곳에서 수양한 것이 천하에 다 통할 수 있고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천지에 표준이 될 수 있으니, ‘잠(潛)’의 효용이 이렇게 나타난다. 창기보도 어쩌면 여기에 뜻을 둔 것일까? 양자운(揚子雲)이 말하기를 ‘하늘에 잠겨서 하늘이 되고 땅에 잠겨서 땅이 되었다.’라 하고 또 ‘중니는 문왕에 잠기고 안연은 중니에 잠겼다.’라 하였으니, 옛날에 ‘잠(潛)’을 논한 것이 여기에 다 갖추어져 있다. 절신(節信)의 《잠부론(潛夫論)》은 볼품없고 천박하니, 내가 창기보를 위하여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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