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몽구

岳湛連璧

황성 2009. 6. 3. 15:16

岳湛連璧(46)

晉潘岳字安仁 滎陽中牟人. 少以才穎見稱. 鄕邑號爲奇童 謂終賈之儔也. 夏侯湛字孝若 譙國譙人也. 幼有盛才. 文章宏富 善構新詞. 美容觀 與潘岳友善. 每行止同輿接茵. 京都謂之連璧. 岳美姿儀 辭藻絶麗. 少時常挾彈出洛陽道. 婦人遇之者 皆連手縈繞 投只以果 滿車而歸. 擧秀才 名冠世. 爲衆所疾 棲遲十年 出爲河陽令. 負其才 鬱鬱不得志. 後至黃門侍郞. 湛擧賢良 對策中第 終散騎常侍.

진(晉)나랄 반악(潘岳)은 자가 안인(安仁)이니 영양(滎陽) 중모(中牟) 사람이다. 어렸을 때 재주 있고 영특함으로 칭찬을 받았으니, 향읍에서 기동(奇童)이라고 부르며 종가(終賈)1)의 짝이라고 하였다. 하후담(夏侯湛)의 자는 효약(孝若)이니 초국(譙國) 초(譙) 땅 사람이다. 어릴 때 왕성한 재주가 있었으며 문장은 크고 풍부하였다. 특히 새로운 말을 잘 조합하였다. 용모와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반악과 잘 어울렸다. 매양 가고 머무름에 수레를 함께 타고 자리도 함께 앉으니, 경도(京都)에서 연벽(連璧)2)이라고 불렀다. 반악은 아름다운 자태와 위의가 있었으며, 문장이 매우 아름다웠다. 젊었을 때 항상 활을 끼고 낙양의 길을 다니면 부녀자들 가운데 만나는 사람이 모두 손을 잡고 둘러 과일을 던지니 수레에 가득하면 돌아왔다. 수제로 천거되어 세상에 이름을 알리니 여러 사람들이 미워하였다. 서지(棲遲) 10년에 하양령(河陽令)이 되었다. 그 재주를 자부하였지만 뜻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서 침울하였다. 뒤에 황문시랑(黃門侍郞)에 이르렀다. 하후담은 현량과에 응시하였는데, 대책은 중간 등수로 합격하였다. 산기상시(散騎常侍)로 마쳤다.


1) [終賈】漢終軍和賈誼的幷稱. 兩人皆早成, 后因以指年少有才的人. 《後漢書·胡廣傳》:“終賈揚聲, 亦在弱冠.”《晉書·潘嶽傳》:“嶽少以才穎見稱, 鄕邑號爲奇童, 謂終賈之儔也.” 宋司馬光《自嘲》詩:“英名愧終賈, 高節謝巢由.” 淸錢謙益《<琅嬛類纂>序》:“少司成朱滄起先生, 以終賈之年, 蜚聲史館.”

2) [連璧】1.幷列的美玉. 《莊子·列御寇》:“吾以天地爲棺槨, 以日月爲連璧.”《後漢書·輿服志上》:“大行載車, 其飾如金根車, 加施連璧交絡四角.” 唐武元衡《德宗皇帝挽歌詞》之一:“日月光連璧, 煙塵屛大風.”2.喩幷美的人或事物. 南朝宋劉義慶《世說新語·容止》:“潘安仁、夏侯湛幷有美容, 喜同行, 時人謂之連璧.” 唐柳宗元《答劉連州邦字》詩:“連璧本難雙, 分符刺小邦.” 宋蘇軾《遊桓山得澤字》詩:“臨流吹洞簫, 水月照連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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