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몽구

梁習治最

황성 2009. 5. 26. 18:09

梁習治最(38)

魏志 梁習字子虞 陳郡柘人. 以別部司馬 領幷州刺史. 承高幹荒亂之餘 胡狄在界張雄跋扈. 吏民亡叛入其部落 兵家擁衆作爲寇害 更相扇動 往往棊跱. 習到官 誘喩招納 皆禮召其豪右 稍相薦擧 使詣幕府. 邊境肅淸 百姓布野. 勤勸農桑 令行禁止. 貢達名士 咸顯於世. 太祖嘉之 賜爵關內侯. 更拜爲眞. 長老稱詠以爲自所聞識刺史 未有及習者. 文帝時 復爲刺史. 政治常爲天下最. 舊本習作集誤.

위지(魏志) 양습(梁習)은 자가 자우(子虞)니 진군(陳郡) 자(柘) 땅 사람이다. 별부사마(別部司馬)로 병주자사(幷州刺史)를 통솔하였다. 고간(高幹)이 세상을 어지럽게 한 나머지를 계승하였다.

오랑캐가 경계에 있으면서 웅장함을 자랑하며 포악한 짓을 하니, 관리와 백성들이 배반하고 달아나 그 부락에 들어가고, 병사들은 무리를 막고 도적질을 하여 서로 선동하였고, 이따금 몰려다녔다.

양습이 관아에 이르러 회유하고 초대함에 모두 예로 그 호우(豪右)1)을 부르니 점점 서로 천거하여 막부에 이르게 하였다. 변방이 엄숙하고 깨끗해지니 백성들이 들에 늘려 있었다. 농업을 권면하였으며, 명령이 행해짐에 법령이 사라졌다. 명사를 추천하여 이르게 하였는데, 모두 세상에 드러나니 태조가 기뻐하여 작관내후(爵關內侯)를 하사하였다. 다시 실제 관직에 제수하였다. 장로들이 칭찬하며 노래하기를 스스로 듣고 안 자사 가운데 양습에 미치는 사람은 있지 않았다.

문제 때에 다시 자사가 되니, 정치는 항상 천하에서 으뜸이었다.

구본에는 습(習)을 집(集)이라고 하니 오자이다.


1) [豪右】封建社會的富豪家族、世家大戶. 《後漢書·明帝紀》:“濱渠下田, 賦與貧人, 無令豪右得固其利.” 李賢注:“豪右, 大家也.” 唐劉禹錫《訊甿》:“其佐嘗宰京邑也, 能誅鉏豪右.”《明史·毛吉傳》:“痛抑豪右, 民大悅.”姚雪垠《李自成》第二卷第十八章:“各縣縉紳豪右, 上結朝廷, 下結官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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