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몽구

士衡患多

황성 2009. 5. 21. 19:21

士衡患多

晉陸機字士衡 吳郡人 大司馬抗之子. 身長七尺 其聲如鐘. 少有異才 文章冠世. 與弟雲俱入洛 造太常張華. 華素重其名 如舊相識. 曰 伐吳之役 利獲二俊. 又詣侍中王濟. 濟指羊酪謂曰 吳中何以敵此. 答云 千里蓴羹 未下鹽豉. 時人稱名對. 機天才秀逸 辭藻宏麗. 華嘗謂之曰 人之爲文 常恨才少. 而子更患其多. 弟雲嘗與書曰 君苗見兄文輒欲燒其筆硯. 華薦之諸公. 累遷中書郞. 後成都王穎起兵 討長沙王乂 假機後將軍河北大都督. 機以羈旅入宦 頓居群士之右. 皆有怨心 譖之於穎. 穎怒使人收機. 機歎曰 華亭鶴唳豈可復聞乎. 遂遇害. 初機有駿犬. 名黃耳. 旣羈寓京師 久無家問. 笑語犬曰 我家絶無書. 汝能齎書取消息否. 犬搖尾作聲. 機乃爲書以竹筒盛之 繫其頸. 犬尋路南走 遂至家 得報還洛. 後以爲常.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자는 사형(士衡)이니, 오군(吳郡) 사람으로 대사마(大司馬) 육항의 아들이다. 키는 7척이고 음성은 종소리와 같았다. 젊어서 특별한 재주가 있었으며, 문장은 천하에서 으뜸이었다. 아우 육운(육雲)과 낙양에 들어가 태상(太常) 장화(張華)에게 나아갔다. 장화가 평소 그의 이름을 무겁게 여겨 예부터 서로 앞면이 있는 듯하여 말하기를,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이익은 두 사람을 얻은 것이다.” 하였다. 또 시중 왕제(王濟)를 찾아뵈니, 왕제가 양의 젖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오나라 땅에는 무엇이 이것과 필적할 수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천리호 순채 국이니, 아직 조미료를 넣지 않습니다.”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명답이라고 말했다. 육기는 하늘에서 타고난 재주로 뛰어났으며 문체가 굉려(宏麗)하였다.

장화가 일찍이 말하기를, “남이 문장을 지음에는 항상 재주가 부족함을 근심하지만 그대는 다시 그 많을 것을 근심하네.” 하였다. 아우 육운이 일찍이 편지를 보냈는데, “군묘(君苗)가 형의 문장을 보고 문득 그 붓과 벼루를 태우고자 하였다.” 고 하였다. 장화가 여러 공들에게 천거하여 여러 번 중서낭(中書郞)에 천거되었다. 뒤에 성도 왕영(王穎)이 병사를 일으켜 장사왕(長沙王) 예(乂)를 토벌하였다. 육기에 후장군(後將軍) 하북대도독(河北大都督)으로 대리 임명하였다. 육기가 타향 사람으로 벼슬을 받아 갑자기 여러 선비들 위에 있게 되니, 모두들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 왕영에게 참소하니, 왕영이 노여워하여 사람을 시켜 육기를 잡아 가두게 하니, 육기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화정(華亭)의 학 울음소리를 어찌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마침내 해를 입었다. 

초에 기에게는 훌륭한 개가 있었는데, 이름이 황이(黃耳)였다. 이미 경사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오래도록 집안에서 소식이 없었다. 웃으면서 개에게 말하기를, “우리 집에서 전혀 소식이 없으니 네가 편지를 가지고 가서 소식을 가져올 수 있는가?” 하니, 개가 꼬리를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다. 기가 곧 편지를 써 대나무 통에 담아 그 개의 목에다가 매니, 개가 남쪽 길을 찾아 가서 마침내 집에 도착하여 답장을 받아서 낙양으로 돌아왔다. 뒤에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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