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몽구

武仲不休

황성 2009. 5. 21. 19:20

武仲不休

後漢傅毅字武仲 扶風茂陵人. 少博學. 肅宗博召文學之士 以毅爲蘭臺令史. 拜郞中 與班固‧賈逵共典校書. 毅追美明帝功德最盛 而廟頌未立. 乃依淸廟 作顯宗頌十篇奏之. 由是文雅顯於朝廷. 魏文帝典論曰 文人相輕 自古而然. 傅毅之於班固 伯仲之閒耳. 而固小之 與弟超書曰 武仲以能屬文 爲蘭臺令史 下筆不能自休.


후한 전의(傅毅)의 자는 무중(武仲)이니 부풍(扶風) 무릉(茂陵) 사람이다. 젊어서 박학다식하였다.

숙종(肅宗)이 널리 문학에 재능이 있는 선비를 불렀는데, 전의를 난대령사(蘭臺令史)로 삼고 낭중(郞中)에 배수하였다. 반고(班固)‧가규(賈逵)와 함께 교서(校書)를 맡았다. 전의는 명제(明帝)의 공덕을 높여 찬미함에 가장 성대하였지만 묘송(廟頌)1)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마침내 청묘(淸廟)2)에 의거하여 현종송(顯宗頌) 10편을 지어서 왕에게 아뢰었다. 이 때문에 문아(文雅)가 조정에 드러났다.

위나라 문제 전론(典論)에 이르기를, “문인이 서로 경시함은 예부터 그러하니, 전의가 반고에 대해서 백중(伯仲) 사이일 따름이지만 반고가 가소롭게 여겼다.” 하였다.

여제초서(與弟超書)에 말하기를, “무중은 속문(屬文)에 능하여 난대령사가 되어 붓을 내림에 능히 스스로 쉴 수 없었다.” 하였다.


1) [廟頌】贊頌天子功德的宗廟樂歌. 《後漢書·傅毅傳》:“毅追美孝明皇帝功德最盛, 而廟頌未立, 乃依《淸廟》作《顯宗頌》十篇奏之.”

2) [淸廟】1.《詩·周頌》篇名. 《詩·周頌·淸廟序》:“《淸廟》, 祀文王也.”2.指古帝王祭祀祖先的樂章. 《禮記·樂記》:“《淸廟》之瑟, 朱弦而疏越, 壹倡而三歎.” 鄭玄注:“淸廟謂作樂歌;《淸廟》也.”《尙書大傳》卷二:“古者帝王升歌《淸廟》之樂.” 鄭玄注:“《淸廟》, 樂章名.”《後漢書·逸民傳·法眞》:“臣願聖朝就加袞職, 必能唱《淸廟》之歌, 致來儀之鳳矣.”3.即太廟. 古代帝王的宗廟. 《詩·周頌·淸廟》:“於穆淸廟, 肅雝顯相.”《左傳·桓公二年》:“是以淸廟茅屋……昭具儉也.”《文選·司馬相如<上林賦>》:“登明堂, 坐淸廟.” 郭璞注:“淸廟, 太廟也.” 淸孫致彌《詠史次王玠右先生韻》:“但聽臨春歌《玉樹》, 不聞淸廟奏朱弦.” 章炳麟《訄書·訂文》:“淸廟之所奏, 同律之所被, 箸於賦頌者, 四千名而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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