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몽구

田橫感歌

황성 2009. 5. 20. 18:03

田橫感歌

前漢田橫狄人 故齊王田氏之族. 秦末自立爲齊王. 漢將灌嬰敗橫軍 遂平齊地. 橫懼誅 與其徒居海島中. 高帝召之. 迺與其客二人乘傳詣洛陽. 謝死者曰 橫始與漢王俱南面稱孤. 今王爲天子 而橫爲亡虜 其愧已甚. 遂自剄 令客奉其頭奏之. 高帝爲之流涕 以王禮葬之 拜其二客爲都尉. 旣葬. 二客穿其冢旁 皆自剄. 其餘五百人在海中. 聞橫死 亦皆自殺. 李周翰曰 橫自殺. 從者不敢哭 而不勝哀. 故爲悲歌以寄情. 後廣之爲薤露蒿里歌 以送終. 至李延年 分爲二等 薤露送王公貴人 蒿里送士大夫庶人. 挽柩者歌之. 因呼爲挽歌.
전한(前漢) 전횡(田橫)은 오랑캐이니, 옛 제나라 왕 전신의 친족이다. 진나라 말엽에 스스로 왕위에 올라 제왕이 되었다. 한나라 장수 관영(灌嬰)이 전횡의 군사를 물리쳐 마침내 제나라 땅을 평정하였다. 전횡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그 무리와 바다 섬 가운데 살았다. 고제가 부르니, 이에 그 식객 두 명과 수레를 타고 낙양(洛陽)에 이르러 사자(死者)에게 사례하여 말하기를, “전횡이 한나라 왕과 함께 남면(南面)하여 왕이라고 말하였더니, 지금 왕은 천자가 되고 전횡은 포로가 되었으니 그 부끄러움이 너무 심하다.” 하고서는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고서는 식객에게 그 머리를 가지고 가서 아뢰게 하였다. 고제(高帝)가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서는 왕의 예를 장사지내게 하고, 그 두 식객을 제수하여 도위(都尉)로 삼았다. 이미 장사지내고 두 식객이 전횡의 무덤 곁에 구멍을 파고서는 모두 자살하였다. 그 나머지 섬에 있는 5백명도 전횡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자살하였다.

이주한(李周翰)이 말하기를, “전횡이 자살함에 추종자들이 감히 곡소리를 내지 않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비가(悲歌)를 만들이 심정을 붙였다.” 하였다.

뒤에 퍼져서 해로호리가(薤露蒿里歌)가 되어 죽은 사람을 전송하였다. 이연년(李延年)이 나누어 두 등급으로 나누니 해로(薤露)는 왕공과 귀인을 전송하였고, 호리(蒿里)는 사대부 서인을 전송하였다. 상여를 끄는 사람이 노래하였기 때문에 만가(挽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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