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논어

헌문 14

황성 2012. 11. 29. 19:23

▣ 제1장(第一章)


 憲問恥한대 子曰 邦有道에 穀하며 邦無道에 穀이 恥也니라


  원헌(原憲)이 수치스러운 일을 물으니,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에 녹(祿)만 먹으며,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에 녹(祿)만 먹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다.”


憲은 原思名이라 穀은 祿也라 邦有道에 不能有爲하고 邦無道에 不能獨善하고 而但知食祿은 皆可恥也라 憲之죺介로 其於邦無道穀之可恥엔 固知之矣로되 至於邦有道穀之可恥하여는 則未必知也라 故로 夫子因其問而幷言之하여 以廣其志하여 使知所以自勉而進於有爲也시니라


  헌(憲)은 원사(原思)의 이름이다. 곡(穀)은 녹(祿)이다.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에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하고,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에 홀로 선(善)하게 하지 못하면서, 다만 녹(祿)을 먹을 줄만 아는 것은 모두 수치스러울 만한 일이다. 원헌(原憲)의 견개(죺介)G:〔志操〕는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에 녹(祿)을 먹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진실로 알고 있었으나,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에 녹(祿)만 먹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그의 질문을 인하여 이것까지 아울러 말씀하여, 그의 뜻을 넓혀서 스스로 힘쓸 바를 알게 하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데 나아가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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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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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第二章)


 克伐怨欲을 不行焉이면 可以爲仁矣잇가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며, 원망하고 탐욕 함을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此亦原憲以其所能而問也라 克은 好勝이요 伐은 自矜이요 怨은 忿恨이요 欲은 貪欲이라


  이 또한 원헌(原憲)이 자신의 능한 것을 가지고 질문한 것이다. 극(克)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며, 벌(伐)은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며, 원(怨)은 분하게 여기고 원망하는 것이며, 욕(欲)은 탐욕이다.


 子曰 可以爲難矣어니와 仁則吾不知也로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렵다고 할 수는 있으나, 인(仁)인지는 내 알지 못하겠다.”


有是四者而能制之하여 使不得行이면 可謂難矣라 仁則天理渾然하여 自無四者之累하니 不行은 不足以言之也라

○ 程子曰 人而無克伐怨欲은 惟仁者能之요 有之而能制其情하여 使不行은 斯亦難能也나 謂之仁則未也라 此聖人開示之深이니 惜乎라 憲之不能再問也여 或曰 四者不行은 固不得爲仁矣라 然이나 亦豈非所謂克己之事, 求仁之方乎아 曰 克去己私하여 以復乎禮면 則私欲不留而天理之本然者得矣어니와 若但制而不行이면 則是未有拔去病根之意하여 而容其潛藏隱伏於胸中也니 豈克己求仁之謂哉아 學者察於二者之間이면 則其所以求仁之功이 益親切而無滲漏矣리라


  이 네 가지가 마음속에 있는데도 능히 제어하여 행해지지 못하게 한다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인(仁)은 천리(天理)가 완전하여 저절로 네 가지의 누(累)가 없으니, 행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굳이 말할 것이 못된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으로서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고, 원망하고 탐욕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오직 인자(仁者)만이 능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마음속에 있는데도 그 정(情)을 제어하여 행해지지 못하게 한다면 이 또한 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인(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는 성인(聖人)이 열어 보여주기를 깊이 하신 것인데, 애석하게도 은헌(原憲)이 다시 묻지 못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네 가지가 행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진실로 인(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어찌 이른바 극기(克己)하는 일과 인(仁)을 구하는 방법이란 것이 아니겠는가?’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겨 버려서 예(禮)로 돌아간다면 사욕(私慾)이 남아있지 않아서 천리(天理)의 본연(本然)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단지 제어하여 행해지지 못하게 할뿐이라면, 이는 병의 뿌리를 뽑아버리려는 뜻이 있지 아니하여 가슴속에 잠복시키는 것을 용납하는 행위이니, 어찌 극기(克己)와 구인(求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학자(學者)들이 이 두 가지 사이를 살펴본다면 그 인(仁)을 구하는 공부가 더욱 가깝고 절실하여 빠짐이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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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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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第三章)


 子曰 士而懷居면 不足以爲士矣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선비로서 편안하기를 생각하면 선비라 할 수 없다.”


居는 謂意所便安處也라


  거(居)는 마음에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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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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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第四章)


 子曰 邦有道엔 危言危行하고 邦無道엔 危行言孫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에는 말을 높게 하고 행실을 높게 하며,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에는 행실은 높게 하되 말은 공손하게 하여야 한다.”


危는 高峻也요 孫은 卑順也라 尹氏曰 君子之持身은 不可變也어니와 至於言하여는 則有時而不敢盡하여 以避禍也라 然則爲國者使士言孫이 豈不殆哉아


  위(危)는 높은 것이요, 손(孫)은 낮추고 순한 것이다.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의 몸가짐은 변할 수 없거니와 말에 이르러서는 때로는 감히 다하지 못하여 화(禍)를 피하여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선비로 하여금 말을 공손하게 하는 것이 어찌 위태롭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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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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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第五章)


 子曰 有德者는 必有言이어니와 有言者는 不必有德이니라 仁者는 必有勇이어니와 勇者는 不必有仁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덕(德)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을 하거니와, 훌륭한 말을 하는 자는 반드시 덕(德)이 있지는 못하다. 인자(仁者)는 반드시 용기가 있거니와, 용기가 있는 자는 반드시 인(仁)이 있지는 못하다.”


有德者는 和順積中하여 英華發外요 能言者는 或便佞口給而已라 仁者는 心無私累하여 見義必爲요 勇者는 或血氣之强而已니라

○ 尹氏曰 有德者는 必有言이어니와 徒能言者는 未必有德也요 仁者는 志必勇이어니와 徒能勇者는 未必有仁也니라


  덕(德)이 있는 자는 화순(和順)이 심중(心中)에 쌓여서 아름다운 영화(榮華)가 밖으로 나타나거니와, 말을 잘하는 자는 간혹 입으로 말만 잘할 뿐일 수 있다. 인자(仁者)는 마음에 시루(私累)가 없어서 의(義)를 보면 반드시 행하거니와, 용기가 있는 자는 간혹 혈기(血氣)의 강함뿐일 수 있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덕(德)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을 하지만, 한갓 말만 잘하는 자는 반드시 덕(德)이 있지는 못하며, 인자(仁者)는 뜻이 반드시 용감하지만, 한갓 용맹스럽기만 한 자는 반드시 인(仁)이 있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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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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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장(第六章)


 南宮适이 問於孔子曰 羿는 善射하고 ★는 ★舟하되 俱不得其死어늘 然이나 禹稷은 躬稼而有天下하시니이다 夫子不答이러시니 南宮适이 出이어늘 子曰 君子哉라 若人이여 尙德哉라 若人이여


  남궁괄(南宮适)이 공자(孔子)께 묻기를 “예(羿)는 활을 잘 쏘았고, 오(★)는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지만, 모두 제대로 죽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왕(禹王)과 직(稷)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天下)를 소유하셨습니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 남궁괄(南宮适)이 밖으로 나가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로구나, 이 사람이여! 덕(德)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


南宮适은 卽南容也라 羿는 有窮之君이니 善射하여 滅夏后相而簒其位러니 其臣寒★이 又殺羿而代之하니라 ★는 春秋傳作★하니 ★之子也라 力能陸地行舟러니 後爲夏后少康所誅라 禹平水土하고 曁稷播種하여 身親稼穡之事러니 禹受舜禪而有天下하고 稷之後에 至周武王하여 亦有天下하니라 适之意는 蓋以羿★比當世之有權力者하고 而以禹稷比孔子也라 故로 孔子不答이라 然이나 适之言如此하니 可謂君子之人而有尙德之心矣니 不可以不與라 故로 俟其出而贊美之하시니라


  남궁괄(南宮适)은 곧 남용(南容)이다. 오(★)는 유궁(有窮)의 임금이니, 활을 잘 쏘았다. 하후(夏后) 상(相)을 멸망하고 왕위(王位)를 찬탈(簒奪)하였었는데, 그 신하 한착(寒★)이 또 오(★)를 죽이고 대신하였다. 예(羿)는 《춘추전(春秋傳)》에 요(★)로 되어 있는데, 한착(寒★)의 아들인데, 힘이 세어 능히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으나, 뒤에 하후(夏后) 소강(小康)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우왕(禹王)은 수토(水土)를 다스리고 직(稷)과 함께 씨앗을 뿌려 몸소 농사짓는 일을 하였는데, 우왕(禹王)은 순제(舜帝)의 선위(禪位)를 받아 천하(天下)를 소유하였고, 직(稷)의 후손도 주(周)나라 무왕(武王)에 이르러 또한 천하(天下)를 소유하였다. 남궁괄(南宮适)의 뜻은 예(羿)와 오(★)를 당시의 권력가에게 비유하고, 우왕(禹王)과 직(稷)을 공자(孔子)에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나 남궁괄(南宮适)의 말이 이와 같으니, 군자(君子)다운 사람이어서 덕(德)을 숭상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 만하니, 이것을 허여(許與)[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가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려 찬미(贊美)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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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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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장(第七章)


 子曰 君子而不仁者는 有矣夫어니와 未有小人而仁者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로서 인(仁)하지 못한 자는 있어도 소인(小人)으로서 인(仁)한 자는 있지 않다.”


謝氏曰 君子志於仁矣나 然이나 毫忽之間에 心不在焉이면 則未免爲不仁也니라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인(仁)에 뜻을 둔다. 그러나 잠깐 사이라도 마음이 인(仁)에 있지 않으면 불인(不仁)을 면치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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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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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장(第八章)


 子曰 愛之인댄 能勿勞乎아 忠焉인댄 能勿誨乎아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사랑한다면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성한다면 깨우쳐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蘇氏曰 愛而勿勞는 禽犢之愛也요 忠而勿誨는 婦寺之忠也라 愛而知勞之면 則其爲愛也深矣요 忠而知誨之면 則其爲忠也大矣니라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사랑하기만 하고 수고롭게 하지 않는 것은 짐승들의 사랑이요, 충성하기만 하고 깨우쳐 주지 않는 것은 부인(婦人)과 내시(內寺)들의 충성이니, 사랑하면서도 수고롭게 할 줄 안다면 그 사랑함이 깊은 것이요, 충성하면서도 깨우쳐줄 줄 안다면 그 충성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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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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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장(第九章)


 子曰 爲命에 裨諶草創之하고 世叔討論之하고 行人子羽修飾之하고 東里子産潤色之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정(鄭)나라에서는> 사명(辭命)[외교문서]을 만들 때에 비침(裨諶)이 초고를 만들고, 세숙(世叔)이 토론하고, 행인(行人)인 자우(子羽)가 수식(修飾)을 하고 동리(東里)의 자산(子産)이 윤색(潤色)을 하였다.”


裨諶以下四人은 皆鄭大夫라 草는 略也요 創은 造也니 謂造爲草藁也라 世叔은 游吉也니 春秋傳에 作子大叔이라 討는 尋究也요 論은 講議也라 行人은 掌使之官이요 子羽는 公孫揮也라 修飾은 謂增損之라 東里는 地名이니 子産所居也라 潤色은 謂加以文采也라 鄭國之爲辭命에 心更此四賢之手而成하니 詳審精密하여 各盡所長이라 是以로 應對諸侯에 鮮有敗事라 孔子言此는 蓋善之也시니라


  비침(裨諶)이하 네 사람은 모두 정(鄭)나라 대부(大夫)이다. 초(草)는 대략이요, 창(創)은 처음 만드는 것이니, 처음으로 초고(草稿)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세숙(世叔)은 유길(游吉)인데, 《춘추전(春秋傳)》에는 자태숙(子大叔)으로 되어있다. 토(討)는 연구하는 것이요, 논(論)은 강론하는 것이다. 행인(行人)은 사신(使臣)의 임무를 맡은 벼슬이고 자우(子羽)는 공손휘(公孫揮)이다. 수식(修飾)은 보충하고 삭제하는 것이다. 동리(東里)는 자산(子産)이 거주하던 곳이다. 윤색(潤色)은 문채를 더하는 것을 말한다.

  정(鄭)나라에서는 사명(辭命)을 만들 때에 반드시 이 네 현자(賢者)의 손을 거쳐 이루어져서 자세하고 정밀하여 각기 소장(所長)을 다하였다. 이러므로 제후(諸侯)들과 응대할 때에 실패하는 일이 적었다. 공자(孔子)께서 이것을 말씀한 것은 그것을 좋게 여기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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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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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장(第十章)


 或問子産한대 子曰 惠人也니라


  혹자가 자산(子産)의 인품을 물으니,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


子産之政이 不專於寬이나 然이나 其心則一以愛人爲主라 故로 孔子以爲惠人이라하시니 蓋擧其重而言也라


  자산(子産)의 정사는 오로지 관혜(寬惠)하지만은 않았으나, 그의 마음은 한결같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신 것이니, 그의 중한 것을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問子西한대 曰 彼哉彼哉여


  자서(子西)의 인품을 물으니, 대답하셨다. “저 그 사람이여! 저 그 사람이여!”


子西는 楚公子申이니 能遜楚國하고 立昭王하여 而改紀其政하니 亦賢大夫也라 然이나 不能革其僭王之號하고 昭王欲用孔子에 又沮止之하며 其後에 卒召白公하여 以致禍亂하니 則其爲人可知矣라 彼哉者는 外之之詞//주:외지지사라


  자서(子西)는 초(楚)나라 공자(公子)인 신(申)이니, 초(楚)나라를 사양하고 소왕(昭王)을 세워서 정치를 개혁하고 기강을 세웠으니, 역시 어진 대부(大夫)이다. 그러나 왕(王)을 참칭(僭稱)하는 칭호를 고치지 못하였고, 또 소왕(昭王)이 공자(孔子)를 등용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였으며, 그후 마침내 백공(白公)을 불러들여 화란(禍亂)을 초래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 피재(彼哉)란 그를 외면하는 말씀이다.


 問管仲한대 曰 人也奪伯氏騈邑三百하여늘 飯疏食하되 沒齒無怨言하니라


  관중(管仲)의 인품을 물으니, 대답하셨다. “이 사람은 백씨(伯氏)의 병읍(騈邑) 삼백호(三百戶)를 빼앗았는데, 백씨(伯氏)는 거친 밥을 먹으며 평생을 마치면서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人也는 猶言此人也라 伯氏는 齊大夫라 騈邑은 地名이라 齒는 年也라 蓋桓公奪伯氏之邑하여 以與管仲하니 伯氏自知己罪而心服管仲之功이라 故로 窮約以終身하되 而無怨言이라 荀卿所謂與之書社三百而富人莫之敢拒者가 卽此事也라

○ 或問 管仲子産孰優오하니 曰 管仲之德은 不勝其才요 子産之才는 不勝其德이라 然이나 於聖人之學엔 則槪乎其未有聞也니라


  인야(人也)는 이 사람이란 말과 같다. 백씨(伯氏)는 제(齊)나라의 대부(大夫)이다. 병읍(騈邑)은 지명(地名)이며 치(齒)는 나이이다. 환공(桓公)이 백씨(伯氏)의 병읍(騈邑)을 빼앗아 관중(管仲)에게 주었는데, 백씨(伯氏)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알고 관중(管仲)의 공(功)에 심복 하였으므로 곤궁하게 몸을 마치면서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으니, 순경(荀卿)이 이른바 “그에게 서사(書社) 삼백호(三百戶)를 주는데도, 부자들이 감히 막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 혹자가 “관중(管仲)과 자산(子産)은 누가 더 나은가?” 하고 묻자, 내가 말하였다. “관중(管仲)의 덕(德)은 그 재주를 이기지 못하였고, 자산(子産)의 재주는 그 덕(德)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인(聖人)의 학문(學問)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들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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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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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장(第十一章)


 子曰 貧而無怨은 難하고 富而無驕는 易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가난하면서 원망이 없기는 어렵고, 부자이면서 교만이 없기는 쉽다.”


處貧難하고 處富易는 人之常情이라 然이나 人當勉其難이요 而不可忽其易也니라


  가난에 처하기는 어렵고 부(富)에 처하기는 쉬우니, 이는 사람들의 떳떳한 정(情)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땅히 그 어려운 것을 힘써야 하며, 그 쉬운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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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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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장(第十二章)


 子曰 孟公綽이 爲趙魏老則優어니와 不可以爲★薛大夫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맹공작(孟公綽)은 조씨(趙氏)와 위씨(魏氏)의 가로(家老)가 되는 것은 충분하지만 등(滕)나라와 설(薛)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어서는 안 된다.”


公綽은 魯大夫라 趙魏는 晉卿之家라 老는 家臣之長이라 大家는 勢重而無諸侯之事하고 家老는 望尊而無官守之責이라 優는 有餘也라 ★薛은 二國名이라 大夫는 任國政者라 ★薛은 國小政繁하고 大夫는 位高責重하니 然則公綽은 蓋廉靜寡欲而短於才者也라

○ 楊氏曰 知之弗豫하여 枉其才而用之면 則爲棄人矣니 此君子所以患不知人也라 言此則孔子之用人을 可知矣니라


  공작(公綽)은 노(魯)나라 대부(大夫)이다. 조씨(趙氏)와 위씨(魏氏)는 진(晉)나라 경(卿)의 집안이다. 노(老)는 가신(家臣)의 우두머리이다. 대가(大家)는 세력은 중하나 제후(諸侯)의 일이 없고, 가로(家老)는 명망이 높지만 관직을 맡은 책임이 없다. 우(優)는 유여(有餘)한 것이다. 등(滕)과 설(薛)은 두 나라의 이름이다. 대부(大夫)는 국정(國政)을 맡은 자이다. 등(滕)과 설(薛)은 나라가 작으나 정사가 번거로우며, 대부(大夫)는 지위가 높고 책임이 중하다. 그렇다면 공작(公綽)은 아마도 청렴하고 욕심이 적으나, 재능이 부족한 자인 듯하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사람의 재능을> 미리 알지 못하여 그 재능을 잘못 사용하면 인재를 버리는 것이 된다. 이는 군자(君子)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말씀하였으니, 공자(孔子)의 사람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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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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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장(第十三章)


 子路問成人한대 子曰 若臧武仲之知와 公綽之不欲과 卞莊子之勇과 冉求之藝에 文之以禮樂이면 亦可以爲成人矣니라


  자로(子路)가 완성된 사람G:〔成人〕을 물으니,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만일 장무중(臧武仲)의 지혜와 공작(公綽)의 탐욕하지 않음과 변장자(卞莊子)의 용기와 염구(冉求)의 재예(才藝)에 예악(禮樂)으로 문채(文采)를 내면 이 역시 성인(成人)이 될 수 있을 것이다.”


成人은 猶言全人이라 武仲은 魯大夫니 名紇이라 莊子는 魯卞邑大夫라 言兼此四子之長이면 則知足以窮理하고 廉足以養心하고 勇足以力行하고 藝足以泛應이요 而又節之以禮하고 和之以樂하여 使德成於內而文見(현)乎外면 則材全德備하여 渾然不見一善成名之迹이요 中正和樂하여 粹然無復偏倚駁雜之蔽하여 而其爲人也亦成矣라 然이나 亦之爲言은 非其至者니 蓋就子路之所可及而語之也라 若論其至인댄 則非聖人之盡人道면 不足以語此니라


  성인(成人)은 전인(全人)이라는 말과 같다. 장무중(臧武仲)은 노(魯)나라 대부(大夫)이니, 이름은 흘(紇)이다. 변장자(卞莊子)는 노(魯)나라 변읍(卞邑)의 대부(大夫)이다. 이 네 사람의 장점을 겸하면 지혜는 이치를 연구할 수 있고 청렴은 마음을 수양할 수 있고 용기는 힘써 행할 수 있고 재예(才藝)는 두루 응용할 수 있으며 또 예(禮)로써 절제하고 악(樂)로써 화(和)하여 덕(德)이 안에 이루어지고 문(文)이 밖에 나타나게 한다면, 재주가 완전하고 덕(德)이 갖추어져서 혼연(渾然)[완전]하여 한 가지 선(善)으로 이름을 이룬 자취를 볼 수 없으며, 중정(中正)하고 화락(和樂)해서 순수하여 다시는 편벽 되고 잡박(雜駁)한 가리움이 없어져 그 사람됨이 또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역(亦)]라는 말은 지극한 것이 아니니, 아마도 자로(子路)가 미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말씀하신 듯하다. 만일 그 지극한 것을 논한다면 인도(人道)를 다한 성인(聖人)이 아니면 성인(成人)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曰 今之成人者는 何必然이리오 見利思義하며 見危授命하며 久要에 不忘平生之言이면 亦可以爲成人矣니라


  다시 말씀하셨다. “지금의 성인(成人)은 어찌 굳이 그러할 것이 있겠는가. 이(利)를 보고 의(義)를 생각하며,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오래된 언약에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이 또한 성인(成人)이 될 수 있을 것이다.”


復加曰字者는 旣答而復言也라 授命은 言不愛其生하여 持以與人也라 久要는 舊約也요 平生은 平日也라 有是忠信之實이면 則雖其才知禮樂이 有所未備나 亦可以爲成人之次也니라

○ 程子曰 知之明, 信之篤, 行之果는 天下之達德//주:천하지달덕也니 若孔子所謂成人은 亦不出此三者라 武仲은 知也요 公綽은 仁也요 卞莊子는 勇也요 冉求는 藝也니 須是合此四人之能하고 文之以禮樂이면 亦可以爲成人矣라 然而論其大成이면 則不止於此라 若今之成人은 有忠信而不及於禮樂하니 則又其次者也니라 又曰 臧武仲之知는 非正也니 若文之以禮樂이면 則無不正矣리라 又曰 語成人之名인댄 非聖人이면 孰能之리오 孟子曰 唯聖人然後可以踐形이라하시니 如此라야 方可以稱成人之名이니라 胡氏曰 今之成人以下는 乃子路之言이니 蓋不復聞斯行之之勇이요 而有終身誦之之固矣라하니 未詳是否라


  다시 왈자(曰字)를 더한 것은 이미 대답하고 다시 말씀하신 것이다. 수명(授命)은 그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목숨을 갖다가 남에게 줌을 말한다. 구요(舊要)는 오래된 약속이다. 평생(平生)은 평소이다. 이러한 충신(忠信)의 실상이 있으면 비록 그 재지(才智)와 예악(禮樂)이 미비된 바가 있더라도 또한 성인(成人)의 다음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지혜가 밝고 신의(信義)가 독실하고 행하기를 과감하게 하는 것은 천하(天下)의 달덕(達德)이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한 성인(成人)도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장무중(臧武仲)은 지(智)이고, 공작(公綽)은 인(仁)이고, 변장자(卞莊子)는 용(勇)이고, 염구(冉求)는 재예(才藝)이니, 모름지기 이 네 사람의 장점을 합하고서 예악(禮樂)으로써 문채(文采)를 내면 또한 성인(成人)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성(大成)을 논한다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의 성인(成人)으로 말하면 충신(忠信)이 있으나 예악(禮樂)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또한 그 다음인 자이다.”

  또 말씀하였다. “장무중(臧武仲)의 지혜는 바른 것이 아니니, 만일 예악(禮樂)으로써 문채(文采)를 낸다면 바르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성인(成人)의 명칭을 말한다면, 성인(聖人)이 아니면 누가 능히 할 수 있겠는가?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오직 성인(聖人)이라야 본래의 천성(天性)을 따라서 행한다G:〔踐形〕.’하셨으니, 이와 같이 하여야 성인(成人)이란 이름에 걸맞을 수 있는 것이다.”

  호씨(胡氏)가 말하기를 “오늘의 성인(成人) 이하의 글은 바로 자로(子路)의 말이다. 다시는 ‘들으면 즉시 행하는 용기’가 없어져서 ‘종신토록 외우는 고루함’이 있게 되었다.” 하였는데, 이 말이 옳은 지는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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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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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장(第十四章)


 子問公叔文子於公明賈曰 信乎夫子不言不笑不取乎아


  공자(孔子)께서 공숙문자(公叔文子)의 인품을 공명가(公明賈)에게 물으셨다. “참으로 부자(夫子)께서는 말씀하지 않고 웃지 않고 취하지 않으시는가?”


公叔文子는 衛大夫公孫枝也라 公明은 姓이오 賈는 名이니 亦衛人이라 文子爲人을 其詳不可知나 然이나 必廉靜之士라 故로 當時에 以三者稱之라


  공숙문자(公叔文子)는 위(衛)나라 대부(大夫) 공손지(公孫枝)이다. 공명(公明)은 성(姓)이고 가(賈)는 이름이니, 역시 위(衛)나라 사람이다. 문자(文子)의 사람됨은 상세한 것을 알 수 없으나 반드시 청렴한 선비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에 이 세 가지로서 칭찬했던 것이다.


 公明賈對曰 以告者過也로소이다 夫子時然後言이라 人不厭其言하며 樂然後笑라 人不厭其笑하며 義然後取라 人不厭其取하나니이다 子曰 其然가 豈其然乎리오


  공명가(公明賈)가 대답하였다. “말씀하는 자가 지나쳤습니다. 부자(夫子)는 때에 맞은 뒤에야 말씀하므로 사람들이 그의 말을 싫어하지 않으며, 즐거운 뒤에야 웃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웃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의(義)에 맞은 뒤에야 취하므로 사람들이 그의 취함을 싫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할까?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厭者는 苦其多而惡之之辭라 事適其可면 則人不厭而不覺其有是矣라 是以로 稱之或過하여 而以爲不言不笑不取也라 然이나 此言也는 非禮義充溢於中하여 得時措之宜者면 不能이니 文子雖賢이나 疑未及此라 但君子與人爲善//주:여인위선이요 不欲正言其非也라 故로 曰 其然가 豈其然乎리오하시니 蓋疑之也라


  염(厭)은 많은 것을 괴로워하여 싫어하는 말이다. 일이 그 가(可)함에 맞으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아 이러한 사실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이러므로 칭찬함이 혹 지나쳐서 ‘말하지 않고, 웃지 않고, 취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예의(禮義)가 마음속에 충만하여 때에 알맞게 조처함을 얻은 자가 아니면 능할 수 없는 것이다. 공숙문자(公叔文子)가 비록 어질었으나 여기에는 미치지 못할 듯하다. 다만 군자(君子)는 남의 선(善)을 허여해 주고, 그 아님을 바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러할까? 어찌 그러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의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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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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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장(第十五章)


 子曰 臧武仲이 以防으로 求爲後於魯하니 雖曰不要君이나 吾不信也하노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장무중(臧武仲)이 방읍(防邑)을 가지고 노(魯)나라에게 후계자를 세워줄 것을 요구하였으니, 비록 임금을 협박하지 않았다고 말하나, 나는 믿지 않는다.”


防은 地名이니 武仲所封邑也라 要는 有挾而求也라 武仲이 得罪奔★러니 自★如防하여 使請立後而避邑하여 以示若不得請이면 則將據邑以叛하니 是要君也라

○ 范氏曰 要君者는 無上이니 罪之大者也라 武仲之邑을 受之於君하니 得罪出奔이면 則立後在君이니 非己所得專也어늘 而據邑以請하니 由其好知而不好學也니라 楊氏曰 武仲이 卑辭請後하니 其跡은 非要君者나 而意實要之니라 夫子之言은 亦春秋誅意之法//주:춘추주의지법也시니라


  방(防)은 지명(地名)이니, 장무중(臧武仲)이 봉해진 고을이다. 요(要)는 믿는 것이 있으면서 요구하는 것이다. 장무중(臧武仲)이 죄를 얻어 주(★)나라로 달아났다가 주(★)나라에서 방읍(防邑)으로 가서 사람으로 하여금 후계자를 세워주면 방읍(防邑)에서 떠나겠다고 요청하게 하여, 만일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장차 방읍(防邑)을 점거하여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뜻을 보였으니, 이것은 임금을 협박한 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임금을 협박하는 것은 무군(無君)[임금을 무시]의 행위이니, 큰 죄이다. 장무중(臧武仲)의 봉읍(封邑)은 임금에게 받은 것이니, 죄를 얻고 밖으로 달아났으면 후계자를 세우는 일은 임금에게 달려있는 것이요,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방읍(防邑)에 웅거하여 요청하였으니, 이는 지혜를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장무중(臧武仲)이 말을 겸손히 하여 후계자를 세워줄 것을 청하였으니, 그 자취는 임금을 협박한 것이 아니나, 그의 뜻은 실로 협박한 것이다. 부자(夫子)의 말씀은 이 또한 《춘추(春秋)》에 뜻을 주벌(誅罰)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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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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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장(第十六章)


 子曰 晉文公은 譎而不正하고 齊桓公은 正而不譎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진문공(晉文公)은 속이고 바르지 않으며, 제환공(齊桓公)은 바르고 속이지 않았다.”


晉文公은 名重耳요 齊桓公은 名小白이라 譎은 詭也라 二公은 皆諸侯盟主니 攘夷狄以尊周室者也라 雖其以力假仁하여 心皆不正이나 然이나 桓公伐楚에 仗義執言하여 不由詭道하니 猶爲彼善於此요 文公則伐衛以致楚하고 而陰謀以取勝하니 其譎甚矣라 二君他事亦多類此라 故로 夫子言此하여 以發其隱이시니라


  진문공(晉文公)의 이름은 중이(重耳)이고, 제환공(齊桓公)의 이름은 소백(小白)이다. 휼(譎)은 속이는 것이다. 이들 두 공(公)은 모두 제후(諸侯)의 맹주(盟主)로서 이적(夷狄)을 물리치고 주(周)나라 왕실(王室)을 높인 자들이다. 비록 힘으로써 인(仁)을 빌려 마음이 모두 바르지 못하였으나, 환공(桓公)은 초(楚)나라를 칠 때에 대의(大義)를 내세워 말하였고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그래도 저것[환공]이 이것[문공]보다 나은 것이 된다. 문공(文公)은 위(衛)나라를 쳐서 초(楚)나라를 싸움으로 끌어들이고 음모(陰謀)로써 승리를 취하였으니, 그 속임이 매우 심하다. 두 임금의 다른 일도 이와 같은 것이 많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이를 말씀하여 그 숨은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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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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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장(第十七章)


 子路曰 桓公殺公子糾어늘 召忽은 死之하고 管仲은 不死하니 曰 未仁乎인저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환공(桓公)이 공자규(公子糾)를 죽이자, 소홀(召忽)은 죽었고, 관중(管仲)은 죽지 않았으니, 관중(管仲)은 인(仁)하지 못할 것입니다.”


按春秋傳에 齊襄公無道한대 鮑叔牙奉公子小白奔죥하고 及無知弑襄公에 管夷吾召忽이 奉公子糾奔魯러니 魯人納之未克하여 而小白入하니 是爲桓公이라 使魯殺子糾而請管召하니 召忽은 死之하고 管仲은 請囚러니 鮑叔牙言於桓公하여 以爲相이라 子路疑管仲忘君事讐하니 忍心害理하여 不得爲仁也라


 《춘추전(春秋傳)》을 상고해보면, 제(齊)나라 양공(襄公)이 무도(無道)하자, 포숙아(鮑叔牙)는 공자(公子) 소백(小白)을 받들고 거(죥)나라로 망명하였으며, 무지(無知)가 양공(襄公)을 시해하자, 관이오(管夷吾)[관중(管仲)]와 소홀(召忽)은 공자(公子) 규(糾)를 받들고 노(魯)나라로 망명하였었다. 노(魯)나라 사람들이 공자규(公子糾)를 제(齊)나라로 들여보냈으나 싸움에 이기지 못하고 소백(小白)이 들어가니, 이가 바로 환공(桓公)이다. 환공(桓公)이 노(魯)나라로 하여금 자규(子糾)를 죽이게 하고 관중(管仲)과 소홀(召忽)을 보내줄 것을 청하자, 소홀(召忽)은 죽고 관중(管仲)은 함거(檻車)에 갇히기를 자청하였는데, 포숙아(鮑叔牙)가 환공(桓公)에게 말하여 정승을 삼게 하였다. 자로(子路)는 관중(管仲)이 군주(君主)를 잊고 원수를 섬겼으니, 마음을 차마[잔인]하고 천리(天理)를 해쳐 인(仁)이 될 수 없다고 의심한 것이다.


 子曰 桓公九合諸侯하되 不以兵車는 管仲之力也니 如其仁, 如其仁이리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환공(桓公)이 제후(諸侯)들을 규합하되, 병거(兵車)[무력(武力)]를 쓰지 않은 것은 관중(管仲)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


九는 春秋傳作糾하니 督也니 古字通用이라 不以兵車는 言不假威力也라 如其仁은 言誰如其仁者니 又再言以深許之라 蓋管仲雖未得爲仁人이나 而其利澤及人이면 則有仁之功矣라


  구(九)는 《춘추전(春秋傳)》에 규(糾)로 되어 있으니, 감독한다는 뜻이다. 고자(古字)에 통용(通用)되었다. 병거(兵車)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위엄과 힘을 빌리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여기인(如其仁)은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라는 말이다. 또 두 번 말씀하여 깊이 허여 하셨으니, 관중(管仲)이 비록 인인(仁人)이 될 수는 없으나, 그 혜택이 사람들에게 미쳤으면 인(仁)의 공(功)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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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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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장(第十八章)


 子貢曰 管仲은 非仁者與인저 桓公殺公子糾어늘 不能死요 又相之온여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관중(管仲)은 인자(仁者)가 아닐 것입니다. 환공(桓公)이 공자(公子) 규(糾)를 죽였는데, 죽지 못하고 또 환공(桓公)을 도와주었으니…….”


子貢意不死猶可어니와 相之則已甚矣라


  자공(子貢)은 관중(管仲)이 죽지 않은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환공(桓公)을 도운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子曰 管仲이 相桓公覇諸侯하여 一匡天下하니 民到于今에 受其賜하나니 微管仲이면 吾其被髮左衽矣리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을 도와 제후(諸侯)의 패자가 되어 한 번 천하(天下)를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관중(管仲)이 없었다면 나[우리]는 그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覇는 與伯同이니 長也라 匡은 正也라 尊周室, 攘夷狄은 皆所以正天下也라 微는 無也라 衽은 衣衿也니 被髮左衽은 夷狄之俗也라


  패(覇)는 패(伯)와 같으니 우두머리이다, 광(匡)은 바로잡는 것이니, 주(周)나라 왕실(王室)을 높이고 이적(夷狄)을 물리침은 모두 천하(天下)를 바로잡는 것이다. 미(微)는 없는 것이다. 임(衽)은, 상의(上衣)의 옷깃이니,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 것은 이적(夷狄)의 풍속이다.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하여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리오


  어찌 필부(匹夫)·필부(匹婦)들이 조그마한 신의(信義)를 위하여 스스로 도랑에서 목매달아 죽어 남이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과 같이 하겠는가.”


諒은 小信也라 經은 縊也라 莫之知는 人不知也라 後漢書引此文에 莫字上에 有人字라

○ 程子曰 桓公은 兄也요 子糾는 弟也니 仲私於所事하여 輔之以爭國은 非義也니 桓公殺之雖過나 而糾之死實當이라 仲始與之同謀하니 遂與之同死可也요 知輔之爭爲不義하고 將自免以圖後功도 亦可也라 故로 聖人不責其死而稱其功이라 若使桓弟而糾兄하여 管仲所輔者正이어늘 桓奪其國而殺之면 則管仲之與桓 不可同世之讐也라 若計其後功而與其事桓이면 聖人之言이 無乃害義之甚하여 啓萬世反覆不忠之亂乎아 如唐之王珪魏徵은 不死建成之難而從太宗하니 可謂害於義矣라 後雖有功이나 何足贖哉리오 愚謂 管仲은 有功而無罪라 故로 聖人獨稱其功이요 王魏는 先有罪而後有功하니 則不以相掩이 可也니라


  양(諒)은 작은 신의(信義)이다. 경(經)은 목매는 것이다. 막지지(莫之知)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에 이 글을 인용하였는데, 막자(莫字) 위에 인자(人字)가 있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환공(桓公)은 형이고 자규(子糾)[공자규(公子糾)]는 아우였다. 관중(管仲)은 자신이 섬기던 자에게 사사로이 하여 그를 도와 나라를 다툰 것은 의(義)가 아니다. 환공(桓公)이 자규(子糾)를 죽인 것은 비록 지나쳤으나 자규(子糾)의 죽음은 실로 마땅하였다. 관중(管仲)은 처음에 자규(子糾)와 더불어 함께 모의하였으니, 함께 죽는 것도 괜찮았고, 동생을 도와 나라를 다툰 것이 의(義)가 아님을 알고, 스스로 죽음을 면하여 후일(後日)의 공(功)을 도모함도 또한 괜찮은 일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그의 죽지 않음을 나무라지 않고 그의 공(功)을 칭찬하신 것이다. 만일 환공(桓公)이 아우이고 자규(子糾)가 형이어서 관중(管仲)이 도운 것이 정당하였는데, 환공(桓公)이 그 나라를 빼앗고 죽였다면, 관중(管仲)과 환공(桓公)은 한 세상에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이다. 만일 공자(孔子)께서 그 후일(後日)의 공(功)을 계산하여 환공(桓公)을 섬긴 일을 허여 하였다면, 성인(聖人)의 말씀은 매우 의(義)를 해쳐 만세(萬世)의 반복불충(反覆不忠)하는 난(亂)을 열어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당(唐)나라의 왕규(王珪)와 위징(魏徵)은 건성(建成)의 난리에 죽지 않고, 태종(太宗)을 따랐으니, 의(義)를 해쳤다고 할 수 있다. 뒤에 비록 공(功)이 있었으나 어찌 속죄할 수 있겠는가?”

  나는 생각건대, 관중(管仲)은 공(功)이 있고 죄(罪)가 없으므로, 성인(聖人)이 그 공(功)만을 칭찬한 것이며, 왕규(王珪)와 위징(魏徵)은 먼저 죄(罪)가 있고 뒤에 공(功)이 있었으니, 공(功)을 가지고 죄(罪)를 덮어주지 않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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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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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장(第十九章)


 公叔文子之臣大夫僎이 與文子同升諸公이러니


  공숙문자(公叔文子)의 가신(家臣)인 대부(大夫) 선(僎)이 문자(文子)와 함께 공조(公朝)에 올랐다.


臣은 家臣이요 公은 公朝니 謂薦之與己同進하여 爲公朝之臣也라


  신(臣)은 가신(家臣)이요 공(公)은 공조(公朝)이니, 문자(文子)가 선(僎)을 천거하여 자기와 함께 나아가 공조(公朝)의 신하가 됨을 말한다.


 子聞之하시고 曰 可以爲文矣로다


  공자(孔子)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시호를 문(文)이라고 할 만하다.”


文者는 順理而成章之謂니 諡法에 亦有所謂錫民爵位曰文者라

○ 洪氏曰 家臣之賤而引之하여 使與己並이 有三善焉하니 知人이 一也요 忘己가 二也요 事君이 三也니라


  문(文)이란 이치를 따라 문장(文章)을 이룬 것을 말한다. 시법(諡法)에 또한 백성에게 작위(爵位)를 내려준 것을 문(文)이라고 한 것이 있다.

  ○ 홍씨(洪氏)가 말하였다. “가신(家臣)의 천한 신분을 이끌어 자기와 함께 한 것이 세 가지 선(善)이 있으니, 사람을 알아본 것이 첫째이고, 자신의 귀함을 잊은 것이 둘째이고, 임금을 섬긴 것이 셋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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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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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장(第二十章)


 子言衛靈公之無道也러시니 康子曰 夫如是로되 奚而不喪이니잇고


  공자(孔子)께서 위령공(衛靈公)의 무도(無道)함을 말씀하시니, 강자(康子)가 말하였다. “이와 같은데도 어찌하여 지위를 잃지 아니합니까?”


喪은 失位也라


  상(喪)은 지위를 잃는 것이다.


 孔子曰 仲叔圉는 治賓客하고 祝퀯는 治宗廟하고 王孫賈는 治軍旅하니 夫如是하니 奚其喪이리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중숙어(仲叔圉)는 빈객G:〔外交〕을 다스리고 축타(祝퀯)는 종묘(宗廟)를 다스리고, 왕손가(王孫賈)는 군대를 다스린다. 이와 같으니 어찌 그 지위를 잃겠는가?”


仲叔圉는 卽孔文子也라 三人은 皆衛臣이니 雖未必賢이나 而其才可用이요 靈公用之에 又各當其才라

○ 尹氏曰 衛靈公之無道는 宜喪也로되 而能用此三人하여 猶足以保其國하니 而況有道之君이 能用天下之賢才者乎아 詩曰 無競維人이면 四方其訓之라하니라


  중숙어(仲叔圉)는 바로 공문자(孔文子)이다. 세 사람은 모두 위(衛)나라 신하로 비록 반드시 어질지는 못하였으나 그 재능이 쓸만하였고, 영공(靈公)이 이들을 등용함에 또한 각각 그 재능에 맞게 하였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위령공(衛靈公)의 무도(無道)한 행위는 마땅히 지위를 잃어야 할 터인데, 이 세 사람을 등용한 것만으로도 그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다. 하물며 도(道)가 있는 임금이 천하(天下)의 현재(賢才)를 등용함에 있어서이겠는가. 《시경(詩經)》에 ‘인재(人才)를 등용함에 막강(莫强)하게 하면 사방(四方)이 순종(順從)한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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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子曰 其言之不怍이면 則爲之也難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렵다.”


大言不慙이면 則無必爲之志하여 而自不度(탁)其能否矣니 欲踐其言이나 豈不難哉아


  큰소리를 치며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천하려는 뜻이 없어서 스스로 그 능하고 능하지 못함을 헤아리지 않은 것이니, 그 말을 실천하려고 한들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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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陳成子弑簡公이어늘


  진성자(陳成子)가 간공(簡公)을 시해하자,


成子는 齊大夫니 名恒이요 簡公은 齊君이니 名壬이니 事在春秋哀公十四年이라


  성자(成子)는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니 이름은 항(恒)이다. 간공(簡公)은 제(齊)나라 군주(君主)이니 이름은 임(壬)이다. 사실이 《춘추(春秋)》애공(哀公) 14년조(年條)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沐浴而朝하사 告於哀公曰 陳恒弑其君하니 請討之하소서


  공자(孔子)께서 목욕하고 조회하시어 애공(哀公)에게 아뢰셨다. “진항(陳恒)이 그 군주(君主)를 시해하였으니, 토벌하소서.”


是時에 孔子致仕居魯라 沐浴齊戒以告君은 重其事而不敢忽也라 臣弑其君은 人倫之大變이라 天理所不容이니 人人得而誅之온 況隣國乎아 故로 夫子雖已告老//주:고로나 而猶請哀公討之시니라


  이때에 공자(孔子)는 치사(致仕)하고 노(魯)나라에 계셨다. 목욕 재계하고 임금에게 아뢴 것은 그 일을 중히 여겨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신 것이다. 신하가 그 군주(君主)를 시해함은 인륜(人倫)의 큰 변고이니 천리(天理)에 용납될 수 없으므로 사람마다 모두 그를 주벌 할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이웃나라이겠는가?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비록 이미 고로(告老)하고 계셨는데도 오히려 애공(哀公)에게 토벌하기를 청하신 것이다.


 公曰 告夫三子하라


  애공(哀公)이 말하였다. “저 삼자(三子)에게 말하라.”


三子는 三家也니 時에 政在三家하여 哀公不得自專이라 故로 使孔子告之라


  삼자(三子)는 삼가(三家)이다. 당시에 정권(政權)이 삼가(三家)에게 있어서 애공(哀公)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로 하여금 말씀하게 한 것이다.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라 不敢不告也하니 君曰 告夫三子者온여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大夫)의 뒤G:〔末席〕를 따랐기 때문에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금께서는 저 삼자(三子)에게 말하라 하시는구나.”


孔子出而自言如此라 意謂弑君之賊은 法所必討요 大夫謀國하니 義所當告어늘 君乃不能自命三子而使我告之邪아


  공자(孔子)께서 밖으로 나와 스스로 말씀하기를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다. 공자(孔子)의 뜻은 군주(君主)를 시해한 역적(逆賊)은 법에 반드시 토벌해야 할 것이요, 대부(大夫)는 국사(國事)를 도모하니, 의리상 마땅히 아뢰어야 하는데, 임금께서는 마침내 스스로 삼가(三家)에게 명령하지 못하시고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시는가라고 한 것이다.


 之三子하여 告하신대 不可라하여늘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라 不敢不告也니라


  삼자(三子)에게 가서 말씀하자, 불가(不可)하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大夫)의 뒤를 따랐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以君命往告로되 而三子는 魯之强臣으로 素有無君之心하여 實與陳氏聲勢相倚라 故로 沮其謀而夫子復以此應之하시니 其所以警之者深矣로다

○ 程子曰 左氏記孔子之言曰 陳恒弑其君에 民之不予者半이니 以魯之衆으로 加齊之半이면 可克也라하니 此非孔子之言이라 誠若此言이면 是는 以力이요 不以義也라 若孔子之志는 必將正名其罪하여 上告天子하고 下告方伯하여 而率與國以討之니 至於所以勝齊者하여는 孔子之餘事也니 豈計魯人之衆寡哉아 當是時하여 天下之亂이 極矣라 因是足以正之면 周室其復興乎인저 魯之君臣이 終不從之하니 可勝惜哉아 胡氏曰 春秋之法에 弑君之賊은 人得而討之하니 仲尼此擧는 先發後聞이 可也니라


  임금의 명령으로 가서 말씀하였는데, 삼가(三家)는 노(魯)나라의 강성(强盛)한 신하로 본래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어서 실로 진씨(陳氏)와 성세(聲勢)가 서로 의지하였다. 그러므로 계획을 저지한 것인데, 부자(夫子)께서 다시 이 말씀으로 응하셨으니, 그 경계하심이 깊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좌씨(左氏)가 공자(孔子)의 말씀을 기록하기를 ‘진항(陳恒)이 그 군주(君主)를 시해하니 제(齊)나라 국민(國民)중에 편들어주지 않는 자가 반이나 됩니다. 노(魯)나라의 많은 무리에다가 제(齊)나라의 반을 보태면 제(齊)나라를 토벌하여 이길 수 있습니다.’하였는데, 이는 공자(孔子)의 말씀이 아니다. 만일 이 말과 같다면 이것은 힘으로 한 것이지 의리(義理)로 한 것이 아니다. 공자(孔子)의 뜻으로 말하면, 반드시 장차 그 죄를 바로 지목하여 위로는 천자(天子)에게 아뢰고 아래로는 방백(方伯)[패권국(覇權國)]에게 말한 다음 여국(與國)[동맹국]을 거느리고 토벌하려 하셨을 것이니, 제(齊)나라를 이길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공자(孔子)의 여사(餘事)에 해당된다. 어찌 노(魯)나라 사람이 많고 적음을 계산하겠는가? 이 때를 당하여 천하(天下)의 난리가 극에 달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바로잡았으면 주(周)나라 왕실(王室)이 다시 부흥(復興)할 수 있었을 것인데, 노(魯)나라의 군신(君臣)들이 끝내 따르지 않았으니, 애석함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춘추(春秋)》의 법에 군주(君主)를 시해한 역적(逆賊)은 사람마다 모두 토벌할 수 있었으니, 공자(孔子)의 이 일은 먼저 토벌하고 뒤에 천자(天子)에게 아뢰더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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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3장

#R:371//2//4//T//-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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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장(第二十三章)


 子路問事君한대 子曰 勿欺也요 而犯之니라


  자로(子路)가 임금 섬기는 것을 묻자,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속이지 말고 얼굴을 대놓고 간쟁해야 한다.”


犯은 謂犯顔諫爭이라

○ 范氏曰 犯은 非子路之所難也요 而以不欺爲難이라 故로 夫子告以先勿欺而後犯也시니라


  범(犯)은 임금의 얼굴을 대놓고 간쟁하는 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얼굴을 대놓고 간쟁하는 것은 자로(子路)의 어려운 바가 아니요, 속이지 않는 것이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속이지 말 것을 먼저 하고 간쟁하는 것을 뒤에 말씀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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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4장

#R:372//2//4//T//-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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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장(第二十四章)


 子曰 君子는 上達하고 小人은 下達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小人)은 아래로 통달한다.”


君子循天理//주:군자순천리故로 日進乎高明하고 小人은 徇人欲故로 日究乎汚下라


  군자(君子)는 천리(天理)를 따른다. 그러므로 날로 고명(高明)함에 나아가고, 소인(小人)은 인욕(人慾)을 따른다. 그러므로 날로 오하(汚下)[비하(卑下)]함에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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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5장

#R:373//2//4//T//-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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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5장(第二十五章)


 子曰 古之學者는 爲己러니 今之學者는 爲人이로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學問)을 하였는데, 지금에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學問)을 한다.”


程子曰 爲己는 欲得之於己也요 爲人은 欲見知於人也니라

○ 程子曰 古之學者는 爲己하여 其終至於成物이러니 今之學者는 爲人하여 其終至於喪己니라 愚按 聖賢論學者用心得失之際에 其說多矣라 然이나 未有如此言之切而要者하니 於此에 明辨而日省之면 則庶乎其不昧於所從//주:불매어소종矣리라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위기(爲己)는 <도(道)를> 자기 몸에 얻으려고 하는 것이요, 위인(爲人)은 남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옛날의 학자(學者)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學問)을 하여, 끝내는 남을 이루어 주는데 이르렀고, 지금의 학자(學者)들은 남을 위한 학문(學問)을 하여, 끝내는 자신을 상실(喪失)하는데 이른다.”

  내가 상고해보니, 성현(聖賢)이 학자(學者)들의 용심(用心)에 대한 잘잘못G:〔得失〕의 사이를 논한 말씀이 많으나, 이 말과 같이 절실하고도 긴요한 것이 있지 않으니, 이에 대하여 밝게 분변하고 날마다 살피면, 거의 따르는 바에 어둡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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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6장


▣ 제26장(第二十六章)


 蘧伯玉이 使人於孔子어늘


  거백옥(蘧伯玉)이 사람을 보내 공자(孔子)께 문안드리니,


蘧伯玉은 衛大夫니 名瑗이라 孔子居衛에 嘗主於其家러시니 旣而反魯라 故로 伯玉使人來也라


  거백옥(蘧伯玉)은 위(衛)나라 대부(大夫)이니, 이름은 원(瑗)이다. 공자(孔子)께서 위(衛)나라에 계실 적에 일찍이 그의 집에 머물러 그를 주인(主人)으로 삼았었는데, 이윽고 노(魯)나라로 돌아오셨으므로, 거백옥(蘧伯玉)이 사람을 보내온 것이다.


 孔子與之坐而問焉曰 夫子何爲오 對曰 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니이다 使者出이어늘 子曰 使乎使乎여


  공자(孔子)께서 그와 함께 앉고 물으시기를 “부자(夫子)[거백옥(蘧伯玉)]께서는 무엇을 하시는가?” 하시자, 대답하기를 “부자(夫子)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시지만 아직 능치 못하십니다.” 하였다. 시자(使者)가 나가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시자(使者)이구나! 훌륭한 시자(使者)이구나!”


與之坐는 敬其主以及其使也라 夫子는 指伯玉也라 言其但欲寡過而猶未能하니 則其省身克己하여 常若不及之意를 可見矣라 使者之言이 愈自卑約이나 而其主之賢益彰하니 亦可謂深知君子之心而善於詞令者矣라 故로 夫子再言使乎하여 以重美之시니라 按莊周稱伯玉行年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라하고 又曰 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라하니 蓋其進德之功이 老而不倦이라 是以로 踐履篤實하고 光輝宣著하여 不惟使者知之라 而夫子亦信之也시니라


  그와 함께 앉은 것은 그 주인(主人)을 공경하여 그 시자(使者)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부자(夫子)는 거백옥(蘧伯玉)을 가리킨 것이다. 단지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지만 능치 못하다고 말하였으니, 그 몸을 성찰하고 사욕을 이겨, 항상 미치지 못할 듯이 여기는 뜻을 볼 수 있다 시자(使者)의 말이 더욱 스스로 비약(卑約)[겸손]하였지만, 그 주인(主人)의 훌륭함은 더욱 드러났으니, 또한 군자(君子)의 마음을 깊이 알고 사령(詞令)을 잘하는 자라고 할 만하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두 번이나 시호(使乎)라고 말씀하시어 거듭 찬미(讚美)하신 것이다.

  ○ 내가 상고해보니, 장주(莊周)가 이르기를 “거백옥(蘧伯玉)은 나이 50세(歲)에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 하였고, 또 “나이 60세(歲)가 되어 60세에 변화하였다.” 하였으니, 그 덕(德)에 나아가는 공부(功夫)가 늙어서도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천리(踐履)[실천]가 독실하고, 빛나는 덕(德)이 드러나서 오직 시자(使者)만이 그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부자(夫子)께서도 또한 믿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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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7장

#R:375//2//4//T//-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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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7장(第二十七章)


 子曰 不在其位하여는 不謀其政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도모하지 않는 것이다.”


重出이라


  다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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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8장

#R:376//2//4//T//-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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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8장(第二十八章)


 曾子曰 君子는 思不出其位니라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는 생각이 그 지위[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此는 艮卦之象辭也니 曾子蓋嘗稱之라 諸者因上章之語而類記之//주:유기지也라

○ 范氏曰 物各止其所에 而天下之理得矣라 故로 君子所思不出其位에 而君臣上下大小가 皆得其職也니라


  이것은 <《주역(周易)》> 간괘(艮卦)의 상사(象辭)이다. 증자(曾子)가 일찍이 이 말을 일컬으셨는데, 기록하는 자가 위 장(章)의 말을 인하여 같은 유(類)끼리 기록한 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사물(事物)이 각자 제자리에 있으면 천하(天下)의 이치가 올바르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의 생각하는 바가 그 지위[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매, 군신(君臣)과 상하(上下)와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그 직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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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29장

#R:377//2//4//T//-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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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9장(第二十九章)


 子曰 君子는 恥其言而過其行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그 말을 조심하고 행실을 말보다 앞서게 한다.”


恥者는 不敢盡之意요 過者는 欲有餘之辭//주:불감진라


  치(恥)는 감히 다하지 못한다는 뜻이요, 과(過)는 유여(有餘)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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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0장

#R:378//2//4//T//-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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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0장(第三十章)


 子曰 君子道者三에 我無能焉하니 仁者는 不憂하고 知者는 不惑하고 勇者는 不懼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의 도(道)가 세 가지인데, 나는 능한 것이 없다. 인자(仁者)는 근심하지 않고, 지자(智者)는 의혹하지 않고, 용자(勇者)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自責以勉人也라


  자책하여 사람을 면려(勉勵)하신 것이다.


 子貢曰 夫子自道也삿다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부자(夫子)께서 스스로 하신 겸사이시다.”


道는 言也니 自道는 猶云謙辭라

○ 尹氏曰 成德은 以仁爲先하고 進學은 以知爲先이라 故로 夫子之言이 其序有不同//주:기서유부동者는 以此니라


  도(道)는 말함이니, 자도(自道)는 겸사(謙辭)란 말과 같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덕(德)을 이룸에는 인(仁)을 우선으로 삼고, 학문(學問)에 나아감에는 지(智)를 우선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공자(孔子)의 말씀에 차례가 같지 않음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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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1장

#R:379//2//4//T//-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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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1장(第三十一章)


 子貢方人하더니 子曰 賜也는 賢乎哉아 夫我則不暇로라


  자공(子貢)이 사람[인물]을 비교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자공(子貢)]는 어진가보다. 나는 그럴 겨를이 없노라.”


方은 比也라 乎哉는 疑辭라 比方人物而較其短長은 雖亦窮理之事나 然이나 專務爲此면 則心馳於外하여 而所以自治者疎矣라 故로 褒之而疑其辭하고 復自貶以深抑之하시니라

○ 謝氏曰 聖人責人에 辭不迫切而意已獨至가 如此시니라


  방(方)은 비교하는 것이다. 호재(乎哉)는 의문사이다. 인물을 비교하여 그 장단을 따지는 것 또한 궁리(窮理)하는 일이다. 그러나 오로지 이것을 함에 힘쓰면 마음이 밖으로 달려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소홀해진다. 그러므로 자공(子貢)을 칭찬하면서 그 말씀을 의문사로 하셨고, 다시 자신을 폄하(貶下)하여 깊이 억제하신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이 사람을 꾸짖음에 말씀은 박절하지 않으면서도 뜻만은 이미 지극함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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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2장

#R:380//2//4//T//-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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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2장(第三十二章)


 子曰 不患人之不己知요 患其不能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凡章에 指同而文不異者는 一言而重出也요 文小異者는 屢言而各出也라 此章은 凡四見而文皆有異하니 則聖人於此一事에 蓋屢言之니 其丁寧之意를 亦可見矣라


  모든 장(章)에 뜻이 같고 문장도 다르지 않은 것은 한 번 말씀한 것이 다시 나온 것이요, 문장이 조금 다른 것은 여러 번 말씀하여 각각 나온 것이다. 이 장(章)은 네 번 나오는데 문장이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이 이 한 가지 일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이니, 그 정녕(丁寧)[간곡]하신 뜻을 또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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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3장

#R:381//2//4//T//-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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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3장(第三十三章)


 子曰 不逆詐하며 不億不信이나 抑亦先覺者是賢乎인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속일까 역탐(逆探)[미리 짐작]하지 않고,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억측(臆測)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먼저 깨닫는 자가 어진 것이다.”


逆은 未至而迎之也요 億은 未見而意之也라 詐는 謂人欺己요 不信은 謂人疑己라 抑은 反語辭라 言雖不逆不億이나 而於人之情僞에 自然先覺이라야 乃爲賢也라

○ 楊氏曰 君子一於誠而已라 然이나 未有誠而不明者라 故로 雖不逆詐, 不億不信이라도 而常先覺也라 若夫不逆不億이라가 而卒爲小人所罔焉이면 斯亦不足觀也已니라


  역(逆)은 <일이>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을 미리 짐작하는 것이요, 억(億)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억측하는 것이다. 사(詐)는 남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말하고, 불신(不信)은 남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억(抑)은 반어사(反語辭)이다. 비록 역탐(逆探)하지 않고 억측(臆測)하지 않으나, 남의 정위(情僞)[실정과 허위]에 대하여 자연히 먼저 깨달아야 어짊이 된다고 말씀한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성실(誠實)에만 한결같이 할뿐이다. 그러나 성실(誠實)하고도 밝지 않은 자는 있지 않다. 그러므로 비록 남이 나를 속일까 역탐(逆探)하지 않고 남이 나를 믿지 않을까 억측(臆測)하지 않더라도 항상 먼저 깨닫는 것이다. 만일 역탐(逆探)하지 않고 억측(臆測)하지 않다가 끝내 소인(小人)에게 속임을 당하면 이 또한 볼 것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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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4장

#R:382//2//4//T//-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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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4장(第三十四章)


 微生畝謂孔子曰 丘는 何爲是栖栖者與오 無乃爲佞乎아


  미생묘(微生畝)가 공자(孔子)께 말하였다. “구(丘)는 어찌하여 이리도 연연해 하는가. 말재주를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


微生은 姓이요 畝는 名也라 畝 名呼夫子而辭甚倨하니 蓋有齒德而隱者라 栖栖//주:서서는 依依也라 爲佞은 言其務爲口給以悅人也라


  미생(微生)은 성(姓)이고 묘(畝)는 이름이다. 미생묘(微生畝)가 공자(孔子)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 매우 거만하니, 아마도 연치(年齒)와 덕(德)이 있으면서 은둔한 자인 듯하다. 서서(栖栖)는 의의(依依)하는 것이다. 위녕(爲佞)은 말을 잘해서 사람을 기쁘게 하기를 힘쓰는 것을 말한다.


 孔子曰 非敢爲佞也라 疾固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 감히 말재주를 구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집불통(固執不通)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疾은 惡也요 固는 執一而不通也라 聖人之於達尊//주:달존에 禮恭而言直이 如此하시니 其警之亦深矣라


  질(疾)은 미워하는 것이요, 고(固)는 한 가지를 고집하여 변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聖人)이 달존(達尊)에 대하여 예절이 공손하고 말씀이 곧음이 이와 같으셨으니, 그 경계한 것이 또한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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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5장

#R:383//2//4//T//-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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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5장(第三十五章)


 子曰 驥는 不稱其力이라 稱其德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기마(驥馬)는 그 힘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덕(德)을 칭찬하는 것이다.”


驥는 善馬之名이라 德은 謂調良也라

○ 尹氏曰 驥雖有力이나 其稱在德하니 人有才而無德이면 則亦奚足尙哉리오


  기(驥)는 좋은 말의 명칭이다. 덕(德)은 길이 잘들고 성질이 양순한 것을 이른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기마(驥馬)는 비록 힘이 있으나 그 칭찬은 덕(德)에 있는 것이니, 사람이 재주만 있고 덕(德)이 없으면 어찌 족히 숭상할 만한 것이겠는가?”



*논어 ; 헌문 ; 제36장

▣ 제36장(第三十六章)


 或曰 以德報怨이 何如하니잇고


  혹자가 말하였다. “덕(德)[은덕(恩德)]로써 원망[원한]에 갚는 것이 어떻습니까?”


或人所稱은 今見老子書라 德은 謂恩惠也라


  혹자가 말한 것은 지금 《노자(老子)》책에 보인다. 덕(德)은 은혜를 말한다.


 子曰 何以報德고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으로써 덕(德)에 갚을 것인가?


言於其所怨에 旣以德報之矣면 則人之有德於我者를 又將何以報之乎아


  원한으로 여기는 자에게 이미 덕(德)으로써 갚았다면 나에게 덕(德)이 있는 자에게는 또 장차 무엇으로써 갚을 것인가라고 말씀한 것이다.


 以直報怨이요 以德報德이니라


  정직함으로써 원한에 갚고, 덕(德)으로써 덕(德)에 갚아야 한다.”


於其所怨者에 愛憎取舍를 一以至公而無私가 所謂直也라 於其所德者에는 則必以德報之요 不可忘也니라

○ 或人之言은 可謂厚矣라 然이나 以聖人之言觀之면 則見其出於有意之私하여 而怨德之報皆不得其平也니 必如夫子之言然後에 二者之報各得其所라 然이나 怨有不讐而德無不報면 則又未嘗不厚也라 此章之言이 明白簡約하되 而其指意曲折反覆하여 如造化之簡易//주:간이易知而微妙無窮하니 學者所宜詳玩也니라


  원한으로 여기는 자에게 사랑과 미움, 취하고 버림을 한결같이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것으로써 하는 것이 이른바 정직인 것이다. 그 덕(德)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반드시 덕(德)으로써 갚아 주고 잊지 않아야 한다.

  ○ 혹자의 말은 후덕(厚德)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성인(聖人)의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면 유의(有意)의 사심(私心)에서 나와 원한과 덕에 대한 보답이 모두 공평함을 얻지 못함을 볼 수 있으니, 반드시 부자(夫子)의 말씀과 같이 한 뒤에야 두 가지의 보답이 각기 제 자리를 얻게 된다. 그러나 원한을 원수로 여기지 않고, 덕은 갚지 않음이 없으니, 그렇다면 또 후덕(厚德)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 장(章)의 말씀은 명백하고 간략하면서도 그 뜻은 곡절(曲折)이 있고 반복되어서 마치 조화의 간이(簡易)가 알기는 쉽지만 미묘한 진리가 무궁한 것과 같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자세히 완미(玩味)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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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7장

#R:385//2//4//T//-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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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7장(第三十七章)


 子曰 莫我知也夫인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夫子自歎하여 以發子貢之問也시니라


  부자(夫子)께서 스스로 탄식하여 자공(子貢)의 질문을 유발하신 것이다.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잇고 子曰 不怨天하며 不尤人이요 下學而上達하노니 知我者는 其天乎인저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선생님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입니까?” 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 <인간(人間)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나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느님이실 것이다.”


不得於天而不怨天하고 不合於人而不尤人이요 但知下學而自然上達하니 此但自言其反己自修하여 循序漸進耳요 無以甚異於人而致其知也라 然이나 深味其語意면 則見其中自有人不及知而天獨知之之妙라 蓋在孔門에 唯子貢之智幾足以及此라 故로 特語以發之하시니 惜乎라 其猶有所未達也여

○ 程子曰 不怨天, 不尤人은 在理當如此니라 又曰 下學上達//주:하학상달은 意在言表//주:의재언표니라 又曰 學者須守下學上達之語니 乃學之要라 蓋凡下學人事면 便是上達天理라 然이나 習而不察이면 則亦不能以上達矣니라


  하늘에게 <좋은 시운을> 얻지 못하여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에게 합하지 못하여도 사람을 탓하지 않고, 다만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며, 자연히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는 것만 안다는 것이니, 이는 다만 자기 몸에 반성하고 자신을 닦아서 차례를 따라 점점 나아갈 뿐이요, 남보다 심히 다르게 하여 그 알아줌을 이루게 함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의 뜻을 깊이 음미해보면, 그 가운데 스스로 사람들은 미쳐 알지 못하고 하늘만이 홀로 알 수 있는 묘(妙)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공자(孔子)의 문하(門下)에서 오직 자공(子貢)의 지혜만이 거의 여기에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말씀하여 발명(發明)하신 것이다. 애석하다. 자공(子貢)도 통달하지 못한 바가 있었으니.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은 도리(道理)에 있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하학(下學)·상달(上達)은 뜻이 말 밖에 있다.”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모름지기 하학(下學)·상달(上達)의 말씀을 지켜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학문(學問)의 요점이다. 대개 아래로 인간(人間)의 일을 배우면 곧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익히기만 하고 살피지 않으면 또한 위로 통달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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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8장

#R:386//2//4//T//-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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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8장(第三十八章)


 公伯寮★子路於季孫이어늘 子服景伯이 以告曰 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주:고유혹지어공백료하나니 吾力이 猶能肆諸市朝니이다


  공백료(公伯寮)가 자로(子路)를 계손(季孫)에게 참소하니, 자복경백(子服景伯)이 공자(孔子)께 아뢰기를 “부자(夫子)[계손(季孫)]께서 진실로 공백료(公伯寮)의 말에 마음을 의혹하고 계시니, 내 힘이 그래도 공백료(公伯寮)의 시신을 거리에 널어놓을 수 있습니다.”


公伯寮는 魯人이라 子服은 氏요 景은 諡요 伯은 字이니 魯大夫子服何也라 夫子는 指季孫이니 言其有疑於寮之言也라 肆는 陳尸也니 言欲誅寮라


  공백료(公伯寮)는 노(魯)나라 사람이다. 자복(子服)은 성(姓)이고 경(景)은 시호이며 백(伯)은 자(字)이니, 노(魯)나라 대부(大夫) 자복하(子服何)이다. 부자(夫子)는 계손(季孫)을 가리키니, 그가 공백료(公伯寮)의 말에 의혹을 두었다는 말이다. 사(肆)는 시신을 늘어놓은 것이니, 공백료(公伯寮)를 목베고자 함을 말한다.


 子曰 道之將行也與도 命也며 道之將廢也與도 命也니 公伯寮其如命何리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명(命)이며 도(道)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명(命)이니, 공백료(公伯寮)가 그 명(命)에 어떻게 하겠는가?”


謝氏曰 雖寮之★行이라도 亦命也니 其實은 寮無如之何라 愚謂 言此以曉景伯하고 安子路而警伯寮耳니 聖人이 於利害之際에 則不待決於命而後泰然也니라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비록 공백료(公伯寮)의 참소가 행해진다 하더라도 이 또한 명(命)이니, 실상은 공백료(公伯寮)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생각건대, 이를 말씀하여 경백(景伯)을 깨우쳐주고 자로(子路)를 안심(安心)시키고 공백료(公伯寮)를 깨우쳐 주셨을 뿐이다. 성인(聖人)이 이해(利害)의 사이에 있어서 명(命)에 결정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태연(泰然)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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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39장

#R:387//2//4//T//-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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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9장(第三十九章)


 子曰 賢者는 ★(避)世하고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현자(賢者)는 세상을 피하고,


天下無道而隱이니 若伯夷太公이 是也라


  천하(天下)에 도(道)가 없으면 은둔하는 것이니, 백이(伯夷)와 태공(太公) 같은 분이 바로 그들이다.


 其次는 ★地하고


  그 다음은 지방을 피하고,


去亂國, 適治邦이라


  어지러운 나라를 떠나 다스려지는 나라로 가는 것이다.


 其次는 ★色하고


  그 다음은 색(色)을 <보고> 피하고,


禮貌衰而去라


  예모(禮貌)가 쇠하면 떠나는 것이다.


 其次는 ★言이니라


  그 다음은 말을 <어기면> 피한다.”


有違言而後去也라

○ 程子曰 四者는 雖以大小次第言之나 然이나 非有優劣也요 所遇不同耳니라


  말을 어김이 있은 뒤에 떠나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 네 가지는 비록 크고 작은 차례로써 말씀하였으나, 그러나 우열(優劣)이 있는 것은 아니요, 당한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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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40장

#R:388//2//4//T//-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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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0장(第四十章)


 子曰 作者七人矣로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일어나 은둔한 자가 일곱 사람이다.”


李氏曰 作은 起也니 言起而隱去者 今七人矣라 不可知其誰何하니 必求其人以實之면 則鑿矣니라


  이씨(李氏)가 말하였다. “작(作)은 일어나는 것이니, 일어나 은둔하려고 떠나간 자가 지금 일곱 사람임을 말씀한 것이다. 그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니, 굳이 그 사람들을 찾아서 채우려 한다면 천착(穿鑿)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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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41장

#R:389//2//4//T//-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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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1장(第四十一章)


 子路宿於石門이러니 晨門曰 奚自오 子路曰 自孔氏로라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아


  자로(子路)가 석문(石門)에서 유숙하였었는데, 신문(晨門)이 묻기를 “어디에서 왔는가?” 하자, 자로(子路)가 “공씨(孔氏)에게서 왔오.”라고 대답하니, 그는 “바로 불가능(不可能)한 줄을 알면서도 하는 자 말인가.” 하였다.


石門은 地名이라 晨門은 掌晨啓門이니 蓋賢人隱於抱關者也라 自는 從也니 問其何所從來也라 胡氏曰 晨門은 知世之不可而不爲//주:지세지불가이불위라 故로 以是譏孔子라 然이나 不知聖人之視天下에 無不可爲之時也니라


  석문(石門)은 지명(地名)이다. 신문(晨門)은 새벽에 성문을 열어주는 것을 맡은 자이니, 아마도 현자(賢者)로서 관문을 지키는 G:〔抱關〕 직업에 은둔한 자인 듯하다. 자(自)는 부터이니, 어느 곳으로부터 왔는가를 물은 것이다.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신문(晨門)은 세상의 불가능함을 알고 하지 않은 자이다. 그러므로 이 말로써 공자(孔子)를 조롱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聖人)이 천하(天下)를 봄에는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할 때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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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42장

#R:390//2//4//T//-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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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2장(第四十二章)


 子擊磬於衛러시니 有荷튢而過孔氏之門者曰 有心哉라 擊磬乎여


  공자(孔子)께서 위(衛)나라에서 경쇠를 두들기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씨(孔氏)의 문 앞을 지나가는 자가 듣고서 말하였다. “마음이 천하(天下)에 있구나. 경쇠를 두들김이여!”


磬은 樂器라 荷는 擔也요 튢은 草器也니 此荷튢者亦隱士也라 聖人之心이 未嘗忘天下어늘 此人이 聞其磬聲而知之하니 則亦非常人矣라


  경(磬)은 악기(樂器)이다. 하(荷)는 메는 것이요, 궤(튢)는 풀[짚]로 만든 그릇이다. 이 삼태기를 멘 자도 또한 은사(隱士)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일찍이 천하(天下)를 잊은 적이 없는데, 이 사람이 그 경쇠소리를 듣고서 그 마음을 알았으니, 역시 범상한 자가 아니다.


 旣而오 曰 鄙哉라 죓죓乎여 莫己知也어든 斯已而已矣니 深則厲요 淺則揭니라


  조금 있다가 말하였다. “비루하다. 너무도 단단하구나! 나[자신]를 알아주지 못하면 그만두어야 할 것이니,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


죓죓은 石聲이니 亦專確之意라 以衣涉水曰厲//주:이의섭수왈려요 攝衣涉水曰揭라 此兩句는 衛風匏有苦葉之詩也니 譏孔子人不知己而不止하여 不能適淺深之宜라


  경경(죓죓)은 돌 소리이니, 또한 전일(專一)하고 확고(確固)하다는 뜻이다. 옷을 벗어 가지고 물을 건너는 것을 여(厲)라 하고, 옷을 걷고 물을 건너는 것을 게(揭)라 한다. 이 두 구(句)는 《시경(詩經)》〈위풍(衛風) 포유고엽(匏有苦葉)〉의 시(詩)이다. 공자(孔子)가 남들이 알아주지 못하는데도 그치지 아니하여 얕고 깊은 곳에 따라 마땅하게 적응하지 못함을 조롱한 것이다.


 子曰 果哉라 末之難矣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과감하구나! 어려울 것이 없겠구나!”


果哉는 嘆其果於忘世也라 末은 無也라 聖人은 心同天地하여 視天下猶一家하고 中國猶一人하여 不能一日忘也라 故로 聞荷튢之言하고 而嘆其果於忘世하시니라 且言人之出處를 若但如此면 則亦無所難矣라하시니라


  과재(果哉)는 그 세상을 잊는 데 과감함을 탄식한 것이다. 말(末)은 없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마음이 천지(天地)와 같아서 천하(天下) 보기를 한 집안과 같이하고 중국(中國) 보기를 한 사람과 같이하여 하루도 잊지 못한다. 그러므로 삼태기를 멘 자의 말을 듣고서 그 세상을 잊는 데 과감함을 탄식하셨으며, 또 사람의 출처(出處)를 만일 다만 이와 같이 한다면 또한 어려울 것이 없다고 말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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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43장

#R:391//2//4//T//-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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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3장(第四十三章)


 子張曰 書云 高宗이 諒陰三年不言이라하니 何謂也잇고


  자장(子張)이 말하였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고종(高宗)이 양음(諒陰)에서 삼년(三年) 동안 말하지 않았다.’하니, 무엇을 말합니까?”


高宗은 商王武丁也라 諒陰은 天子居喪之名이니 未詳其義라


  고종(高宗)은 상왕(商王)인 무정(武丁)이다. 양음(諒陰)은 천자(天子)가 거상(居喪)[집상(執喪)]하는 곳의 명칭인데, 그 뜻은 자세하지 않다.


 子曰 何必高宗이리오 古之人皆然하니 君薨이어든 百官總己하여 以聽於冢宰三年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하필 고종(高宗) 뿐이겠는가. 옛사람이 다 그러하였으니, 군주(君主)가 죽으면 백관(百官)들은 자기의 직책을 총괄하여 총재(冢宰)에게 <명령을> 듣기를 삼년(三年) 동안 하였다. ”


言君薨이면 則諸侯亦然이라 總己는 謂總攝己職이라 冢宰는 大(太)宰也라 百官聽於冢宰라 故로 君得以三年不言也라

○ 胡氏曰 位有貴賤이나 而生於父母는 無以異者라 故로 三年之喪은 自天子達이라 子張非疑此也요 殆以爲人君三年不言이면 則臣下無所★令하여 禍亂或由以起也라 孔子告以聽於冢宰하시니 則禍亂은 非所憂矣니라


  “군주(君主)가 죽었다.”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제후(諸侯)도 이와 같은 것이다. 총기(總己)는 자기의 직책을 총괄하는 것이다. 총재(冢宰)는 태재(太宰)이다. 백관(百官)들이 총재(冢宰)에게 명령을 들으므로, 군주(君主)가 3년 동안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지위는 귀천(貴賤)이 있으나 부모(父母)에게서 태어남은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삼년상(三年喪)은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까지> 공통되는 것이다. 자장(子張)이 이것을 의심한 것이 아니요, 군주(君主)가 3년 동안 말하지 않으면 신하가 명령을 품할 곳이 없어서 화란(禍亂)이 혹 이로 말미암아 일어날까 의심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총재(冢宰)에게 <명령을> 듣는다고 말씀해 주셨으니, 그렇다면 화란(禍亂)은 걱정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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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44장

#R:392//2//4//T//-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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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4장(第四十四章)


 子曰 上好禮則民易使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위에서 예(禮)를 좋아하면 백성을 부리기 쉽다.”


謝氏曰 禮達而分定//주:예달이분정이라 故로 民易使니라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예(禮)가 통달해져서 분수가 정해짐으로 백성을 부리기가 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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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45장

#R:393//2//4//T//-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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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5장(第四十五章)


 子路問君子한대 子曰 修己以敬이니라 曰 如斯而已乎잇가 曰 修己以安人이니라 曰 如斯而已乎잇가 曰 修己以安百姓이니 修己以安百姓은 堯舜도 其猶病諸시니라


  자로(子路)가 군자(君子)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孔子)께서 “경(敬)으로써 몸을 닦는 것이다.” 하셨다. <자로(子路)가>“이와 같은 뿐입니까?” 하자, “몸을 닦아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다시 “이와 같을 뿐입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함은 요순(堯舜)께서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다.”


修己以敬은 夫子之言이 至矣盡矣어늘 而子路少之라 故로 再以其充積之盛하여 自然及物者로 告之하시니 無他道也라 人者는 對己而言이요 百姓則盡乎人矣라 堯舜猶病은 言不可以有加於此니 以抑子路하여 使反求諸近也시니라 蓋聖人之心이 無窮하여 世雖極治나 然이나 豈能必知四海之內果無一物不得其所哉리오 故로 堯舜도 猶以安百姓爲病이니라 若曰 吾治已足이라하면 則非所以爲聖人矣니라

○ 程子曰 君子修己以安百姓하고 篤恭而天下平이니 唯上下一於恭敬이면 則天地自位하고 萬物自育하여 氣無不和而四靈//주:사령畢至矣라 此는 體信達順//주:체신달순之道니 聰明睿知皆由是出이니 以此事天饗帝니라


  ‘경(敬)으로써 몸을 닦는다.’는 부자(夫子)의 말씀이 지극하고 다하였는데, 자로(子路)가 이것을 하찮게 여겼으므로, 다시 충적(充積)함이 성(盛)하여 자연히 남에게 미치는 것을 가지고 말씀하셨으니,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人)[남]이란 자기와 상대로 말한 것이요, 백성은 모든 남을 다한 것이다. 요순(堯舜)께서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다는 것은 이보다 더할 수가 없음을 말씀하여 자로(子路)를 억제해서 가까운 것에서 돌이켜 구하게 하신 것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무궁하여 세상이 비록 지극히 잘 다스려지더라도 어찌 반드시 천하(天下)에 과연 한 물건이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없다고 알[장담]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요순(堯舜)도 오히려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을 부족하게 여기신 것이다. 만일 나의 다스림이 이미 만족하다고 한다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히 하고 공경(恭敬)을 독실히 하여 천하가 화평해지니, 오직 상하(上下)가 공경(恭敬)에 한결같이 하면 천지(天地)가 스스로 자리를 잡고 만물(萬物)이 스스로 생육(生育)되어 기운이 화평하지 않음이 없어서 사령(四靈)이 모두 이를 것이다. 이는 신(信)[성(誠)]을 체행(體行)하고 순리를 통달하는 방법이다. 총명예지(聰明睿智)가 모두 이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니, 이로써 하늘을 섬기고 상제(上帝)에 제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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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4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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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6장(第四十六章)


 原壤이 夷俟러니 子曰 幼而不孫弟하며 長而無述焉이요 老而不死가 是爲賊이라하시고 以杖叩其脛하시다


  원양(原壤)이 걸터앉아 <공자(孔子)를> 기다리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려서는 공손하지 못하고, 장성해서는 칭찬할 만한 일이 없고, 늙어서도 죽지 않는 것이 바로 적(賊)이다.” 하시고,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두드리셨다.


原壤은 孔子之故人이니 母死而歌라 蓋老氏之流로 自放於禮法之外者라 夷는 ★踞也요 俟는 待也니 言見孔子來而★踞以待之也라 述은 猶稱也라 賊者는 害人之名이니 以其自幼至老에 無一善狀而久生於世하여 徒足以敗常亂俗이면 則是賊而已矣라 脛은 足骨也라 孔子旣責之하시고 而因以所曳之杖으로 微擊其脛하여 若使勿★踞然이시니라


  원양(原壤)은 공자(孔子)의 고인(故人)[친구]로, 어머니가 죽자, 노래를 불렀으니, 노자(老子)의 무리로서 스스로 예법(禮法)의 밖에 방탕한 자이다. 이(夷)는 걸터앉은 것이고, 사(俟)는 기다리는 것이니, 공자(孔子)가 오는 것을 보고 걸터앉아서 기다림을 말한다. 술(述)은 칭(稱)[칭찬]과 같다. 적(賊)은 사람을 해치는 것의 명칭이다. 어려서부터 늙음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도 잘한 내용이 없이 오래 세상에 살아서 한갓 상도(常道)[인륜]를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히니, 이는 바로 적(賊)일 뿐인 것이다. 경(脛)은 정강이이다. 공자(孔子)께서 이미 꾸짖고, 뒤이어 끄시던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가볍게 쳐서 그로 하여금 걸터앉지 말게 하려는 듯이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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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헌문 ; 제47장

#R:395//2//4//T//-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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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7장(第四十七章)


 闕黨童子將命이어늘 或問之曰 益者與잇가


  궐당(闕黨)의 동자(童子)가 <공자(孔子)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맡아보자, 혹자가 묻기를 “학문(學問)이 진전(進展)된 자여서입니까?” 하였다.


闕黨은 黨名이라 童子는 未冠者之稱이라 將命은 謂傳賓主之言이라 或人이 疑此童子學有進益이라 故로 孔子使之傳命하여 以寵異//주:총이之也라


  궐당(闕黨)은 당(黨)[행정구역 단위]의 이름이다. 동자(童子)는 관례(冠禮)를 하지 않은 자의 칭호이다. 장명(將命)은 손님과 주인의 말을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혹자는 이 동자(童子)가 학문(學問)이 진익(進益)[진전(進展)]이 있으므로 공자(孔子)께서 그로 하여금 명령을 전달하게 하여 총이(寵異)하신 것인가 하고 의심한 것이다.


 子曰 吾見其居於位也하며 見其與先生並行也하니 非求益者也라 欲速成者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 그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 선생(先生)과 나란히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으니, 학문(學問)에 진전(進展)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빨리 이루고자 하는 자이다.”


禮에 童子當隅坐隨行이라 孔子言 吾見此童子에 不循此禮하니 非能求益이요 但欲速成爾라 故로 使之給使令之役하여 觀長少之序하고 習揖遜之容하니 蓋所以抑而敎之요 非寵而異之也라


  예(禮)에 “동자(童子)는 마땅히 모퉁이에 앉고, 뒤에서 수행(隨行)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 동자(童子)를 보매 이 예(禮)를 따르지 않으니 학문(學問)의 진익(進益)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다만 빨리 이루려고 하는 자일뿐이다.” 하셨다. 그러므로 그에게 사령(使令)의 임무를 맡겨 어른과 어린이의 질서를 보고 사양하고 공손히 하는 용모를 익히게 한 것이니 이는 그를 억제하여 가르친 것이요, 총애하여 특별히 대우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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