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원전자료/논어

자한 9

황성 2012. 11. 29. 19:17

▣ 자한(子罕) 제구(第九)


凡三十章이라


  모두 30장(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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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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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第一章)


 子는 罕言利與命與仁이러시다


  공자(孔子)께서는 이(利)와 명(命)과 인(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


罕은 少也라 程子曰 計利則害義요 命之理微하고 仁之道大하니 皆夫子所罕言也라


  한(罕)은 적은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利)를 따지면 의(義)를 해치며, 명(命)의 이치(理致)는 은미하고, 인(仁)의 도(道)는 크니, 모두 부자(夫子)께서 드물게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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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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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장(第二章)


 達巷黨人曰 大哉라 孔子여 博學而無所成名이로다


  달항당(達巷黨)의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하구나, 공자(孔子)여! 박학(博學)하였으나 <어느 한 가지로> 이름을 낸 것이 없구나.” 하였다.


達巷은 黨名이니 其人姓名은 不傳이라 博學而無所成名은 蓋美其學之博而惜其不成一藝之名也라


  달항(達巷)은 당(黨)[지역단위]의 이름이다. 그 사람의 성명(姓名)은 전하지 않는다. 박학(博學)하였으나 <어느 한 가지로> 이름을 낸 것이 없다는 것은 그 학문(學問)이 넓음을 찬미하면서도 한 기예(技藝)로 이름을 이루지 못했음을 애석히 여긴 것이다.


 子聞之하시고 謂門弟子曰 吾何執고 執御乎아 執射乎아 吾執御矣로리라


  공자(孔子)께서 이를 들으시고 문하(門下)의 제자(弟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무엇을 전문(專門)으로 잡아야 하겠는가? 말 모는 일을 잡아야 하겠는가? 아니면 활 쏘는 일을 잡아야 하겠는가? 내 말 모는 일을 잡겠다.”


執은 專執也라 射御는 皆一藝나 而御爲人僕하여 所執尤卑라 言欲使我何所執以成名乎아 然則吾將執御矣라하시니 聞人譽己하고 承之以謙也시니라

○ 尹氏曰 聖人은 道全而德備하여 不可以偏長目之也라 達巷黨人이 見孔子之大하고 意其所學者博이나 而惜其不以一善得名於世하니 蓋慕聖人而不知者也라 故로 孔子曰 欲使我何所執而得爲名乎아 然則吾將執御矣라하시니라


  집(執)은 전문(專門)으로 잡는 것이다. 사(射)와 어(御)는 한 기예(技藝)인데, 어(御)는 남의 마부가 되는 것이어서 잡는 일이 더욱 비천(卑賤)하다. “나로 하여금 어느 일을 전문으로 잡아서 이름을 이루게 하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장차 말 모는 일을 잡겠다.”고 말씀한 것이다. 이는 남이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듣고서 겸사(謙辭)로써 받으신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도(道)가 온전하고 덕(德)이 완비되어 어느 한 가지 장기(長技)로 지목할 수 없다. 그러나 달항당(達巷黨) 사람은 공자(孔子)의 위대함을 보고서 생각하기를 그 배운 것이 넓으나 어느 한 가지 잘함으로 세상에 이름을 얻지 못했음을 애석히 여겼다. 그러하니 성인(聖人)을 흠모하였으나 성인(聖人)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로 하여금 무슨 일을 전문적으로 잡아서 이름을 얻게 하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말 모는 일을 잡겠다.’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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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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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第三章)


 子曰 麻冕이 禮也어늘 今也純하니 儉이라 吾從衆하리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베로 만든 면류관이 <본래의>예(禮)이지만 지금에는 관(冠)을 생사(生絲)로 만드니, 검소(儉素)하다. 나는 여러 사람들G:〔時俗〕을 따르겠다.”


麻冕은 緇布冠也라 純은 絲也라 儉은 謂省約이라 緇布冠은 以三十升布爲之하니 升八十縷니 則其經二千四百縷矣라 細密難成하니 不如用絲之省約이라


  마면(麻冕)은 검정 베로 만든 치포관(緇布冠)이다. 준(純)은 실G:〔絲〕이다. 검(儉)은 생략(省約)됨을 말한다. 치포관(緇布冠)은 30새G:〔升〕의 베로 만드는데 1승(升)은 80올이니, 그 날실G:〔經〕이 2천 4백 올이 된다. 이는 세밀하여 만들기가 어려우니, 생사(生絲)를 사용하여 <수공(手工)이> 생략(省約)됨만 못하다.


 拜下禮也어늘 今拜乎上하니 泰也라 雖違衆이나 吾從下하리라


  <당(堂)>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본래의> 예(禮)인데, 지금은 <당(堂)> 위에서 절하니, 이는 교만(驕慢)하다. 나는 비록 사람들과 어긋난다 하더라도 <당(堂)> 아래에서 절하겠다.”


臣與君行禮에 當拜於堂下니 君辭之면 乃升成拜라 泰는 驕慢也라

○ 程子曰 君子處世에 事之無害於義者는 從俗可也어니와 害於義면 則不可從也니라


  신하가 임금과 예(禮)를 행할 때에는 마땅히 당(堂) 아래에서 절해야 하며, 임금이 이를 사양하면 그제야 당(堂) 위로 올라가서 절을 끝낸다. 태(泰)는 교만함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가 처세(處世)함에 있어서 일이 의리(義理)에 위배되지 않는 것은 세속(世俗)을 따르는 것이 괜찮지만, 의리(義理)에 해로울 경우에는 세속(世俗)을 따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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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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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第四章)


 子絶四러시니 毋意, 毋必, 毋固, 毋我러시다


  공자(孔子)는 네 가지의 마음이 전혀 없으셨으니, 사사로운 뜻이 없으셨으며, 기필 하는 마음이 없으셨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셨으며, 이기심이 없으셨다.


絶은 無之盡者라 毋는 史記에 作無하니 是也라 意는 私意也요 必은 期必也요 固는 執滯也요 我는 私己也라 四者相爲終始하니 起於意하여 遂於必하고 留於固하여 而成於我也라 蓋意必은 常在事前이오 固我는 常在事後나 至於我又生意면 則物欲牽引하여 循環不窮矣리라

○ 程子曰 此毋字는 非禁止之辭라 聖人絶此四者하시니 何用禁止리오 張子曰 四者에 有一焉이면 則與天地不相似니라 楊氏曰 非知足以知聖人하고 詳視而黙識之면 不足以記此니라


  절(絶)은 전혀 없는 것이다. 무(毋)는 《사기(史記)》에는 무(無)로 되어 있으니, 이것이 옳다. 의(意)는 사사로운 뜻이요, 필(必)은 기필 하는 것이요, 고(固)는 집체(執滯)하는 것이요, 아(我)는 사사로운 자기를 뜻한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시종(始終)이 되니, 즉 <어떤 일이> 사사로운 뜻에서 시작되어 기필 하는 마음에로 이행되고, 이것이 고집하는 데 머물러 이기적인 자아로 완성된다. 의(意)와 필(必)은 항상 일이 생기기 전에 있고, 고(固)와 아(我)는 항상 일이 생긴 뒤에 있다. <그러나> 아(我)가 다시 사의(私意)를 내게 되면 물욕(物慾)에 이끌려 끊임없이 반복 순환하게 된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여기의 무자(毋字)는 <의도적으로> 금지하는 말이 아니다. 성인(聖人)은 이 네 가지 마음이 전혀 없으시니, 어찌 <의도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겠는가?”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위의 네 가지 중에 하나라도 <마음속에> 있으면 이는 천지(天地)와 서로 같지 못한 것이다.”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지혜가 족히 성인(聖人)을 알 수 있고, 그를 자세히 살펴보아 묵묵히 깨닫는 자가 아니라면 <성인(聖人)의 이와 같은 점을> 기록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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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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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第五章)


 子畏於匡이러시니


  공자(孔子)께서 광(匡)땅에서 경계심을 품고 계셨다.


畏者는 有戒心之謂라 匡은 地名이라 史記云 陽虎曾暴於匡이러니 夫子貌似陽虎라 故로 匡人圍之라


  외(畏)란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있음을 말한다. 광(匡)은 지명(地名)이다. 《사기(史記)》에 “양호(陽虎)가 일찍이 광(匡)땅에서 포악한 짓을 했었는데, 부자(夫子)의 모습이 양호(陽虎)와 유사했으므로 광(匡)땅 사람들이 <공자(孔子)를 양호(陽虎)로 오인하여> 포위했다.” 하였다.


 曰 文王旣沒하시니 文不在玆乎아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문왕(文王)이 이미 별세하셨으니, 문(文)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


道之顯者를 謂之文이니 蓋禮樂制度之謂라 不曰道而曰文은 亦謙辭也라 玆는 此也니 孔子自謂라


  도(道)가 드러난 것을 문(文)이라 하니, 예악(禮樂)과 제도(制度)를 말한다. 도(道)라고 말하지 않고, 문(文)이라고 한 것은 또한 <공자(孔子)의> 겸사(謙辭)이다. 자(玆)는 이것이니, 공자(孔子)께서 자신을 일컬으신 것이다.


 天之將喪斯文也신댄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어니와 天之未喪斯文也시니 匡人이 其如予何리오


  하늘이 장차 이 문(文)을 없애려 하셨다면 뒤에 죽는 사람[내 자신]이 이 문(文)에 참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 하지 않으셨으니, 광(匡)땅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馬氏曰 文王旣沒이라 故로 孔子自謂後死者라 言天若欲喪此文인댄 則必不使我得與於此文이어니와 今我旣得與於此文하니 則是天未欲喪此文也라 天旣未欲喪此文이면 則匡人其奈我何리오하시니 言必不能違天害己也라


  마씨(馬氏)가 말하였다. “문왕(文王)이 이미 별세했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자신을 일러 ‘뒤에 죽는 사람’이라 한 것이다.”

  하늘이 만약 이 문(文)을 없애려고 하셨다면 반드시 나로 하여금 이 문(文)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미 이 문(文)에 참여하였으니, 그렇다면 이는 하늘이 아직 이 문(文)을 없애려고 하지 않으신 것이다. 하늘이 이미 이 문(文)을 없애려고 하지 않으시니, 광(匡)땅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반드시 하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을 해칠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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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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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장(第六章)


 大宰問於子貢曰 夫子聖者與아 何其多能也오


  태재(大宰)가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공자(孔子)는 성자(聖者)이신가? 어쩌면 그리도 능한 것이 많으신가?”


孔氏曰 大宰는 官名이니 或吳或宋은 未可知也라 與者는 疑辭라 大宰蓋以多能爲聖也라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태재(大宰)는 관명(官名)이니, 오(吳)나라 사람인지 혹은 송(宋)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여(與)는 의문사이다. 태재(大宰)는 능한 것이 많은 것을 성(聖)이라고 여긴 것이다.


 子貢曰 固天縱之將聖이시고 又多能也시니라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선생님은> 진실로 하늘이 풀어놓으신 성인(聖人)이실 것이요, 또 능한 것이 많으시다.”


縱은 猶肆也니 言不爲限量也라 將은 殆也니 謙若不敢知之辭라 聖은 無不通이니 多能은 乃其餘事라 故로 言又以兼之라


  종(縱)은 사(肆)[풀어놓다]와 같으니, 한량(限量)을 하지 못함을 말한다. 장(將)은 태(殆)[거의, 아마도]의 뜻이니, 겸손하여 감히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한 말씀이다. 성(聖)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능함이 많음은 바로 여사(餘事)[부수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또’라고 말하여 겸한 것이다.


 子聞之하시고 曰 大宰知我乎인저 吾少也賤이라 故로 多能鄙事하니 君子는 多乎哉아 不多也니라


  공자(孔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태재(大宰)가 나를 아는구나. 내 젊었을 적에 미천했기 때문에 비천(鄙賤)한 일에 능함이 많으니, 군자(君子)는 능한 것이 많은가? 많지 않다”


言由少賤이라 故로 多能이나 而所能者鄙事爾요 非以聖而無不通也라 且多能은 非所以率人이라 故로 又言君子不必多能以曉之시니라


  젊어서 미천했기 때문에 능한 것이 많으나 능한 것은 천한 일들일 뿐이요, 성인(聖人)이라서 통달하지 못함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한 것이다. 또 능함이 많은 것은 사람들을 거느리는[지도하는]것이 아니므로, 군자(君子)는 굳이 능함이 많지 않다고 다시 말씀하여 깨우치신 것이다.


 牢曰 子云 吾不試라 故로 藝라하시니라


  뇌(牢)가 말하였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등용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주를 익혔다.’고 하셨다.”


牢는 孔子弟子니 姓琴이요 字子開요 一字子張이라 試는 用也라 言由不爲世用이라 故로 得以習於藝而通之라

○ 吳氏曰 弟子記夫子此言之時에 子牢因言昔之所聞有如此者하니 其意相近이라 故로 幷記之니라


  뇌(牢)는 공자(孔子)의 제자(弟子)로 성(姓)은 금(琴)이요, 자(字)는 자개(子開)이며, 또 다른 자(字)는 자장(子張)이다. 시(試)는 등용되는 것이니,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주를 익혀 통달했음을 말씀한 것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제자(弟子)들이 부자(夫子)의 이 말씀을 기록할 때에 자뢰(子牢)가 옛날에 <부자(夫子)로부터> 들은 말씀 가운데 이와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하였는데, 그 뜻이 서로 비슷했으므로, <여기에서> 아울러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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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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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장(第七章)


 子曰 吾有知乎哉아 無知也로라 有鄙夫問於我하되 空空如也라도 我叩其兩端而竭焉하노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비루(鄙陋)한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묻되, 그가 아무리 무식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묻는 내용의> 양단(兩端)[양쪽]을 다 말해준다.”


孔子謙言 己無知識이요 但其告人에 雖於至愚라도 不敢不盡耳라 叩는 發動也라 兩端은 猶言兩頭니 言終始本末上下精粗가 無所不無盡이라

○ 程子曰 聖人之敎人에 俯就之若此로되 猶恐衆人以爲高遠而不親也라 聖人之道는 必降而自卑하니 不如此則人不親이요 賢人之言은 則引而自高하니 不如此則道不尊이니 觀於孔子孟子면 可見矣리라 尹氏曰 聖人之言은 上下兼盡하니 卽其近이면 衆人皆可與知요 極其至면 則雖聖人이라도 亦無以加焉이니 是之謂兩端이라 如答樊遲之問仁智에 兩端竭盡하여 無餘蘊矣라 若夫語上而遺下하고 語理而遺物이면 則豈聖人之言哉아


  공자(孔子)께서 겸사로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지식(知識)이 없지만 단 남에게 알려줄 때에는 상대방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더라도 감히 다 말해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고(叩)는 발동(發動)한다는 뜻이다. 양단(兩端)이란 양두(兩頭)[양쪽 머리]라는 말과 같으니, 시(始)와 종(終), 본(本)과 말(末), 상(上)과 하(下), 정(精)과 조(粗)를 다 말해주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이 사람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나아가게 함이 이와 같되, 오히려 사람들이 고원(高遠)하다고 여겨 가까이 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성인(聖人)의 도(道)는 반드시 내려서 스스로 낮추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가깝게 여기지 않는다. 현인(賢人)의 말씀은 끌어올려 스스로 높이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높아지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에게서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의 말씀은 상하(上下)가 겸하여 다하니, 그 천근(淺近)한 데 나아가면 보통사람들도 모두 참여하여 알 수 있고, 그 지극한 것을 다하면 성인(聖人)도 이보다 더할 것이 없으니, 이를 일컬어 양단(兩端)이라 한다. 예컨대 번지(樊遲)가 인(仁)과 지(智)를 물었을 때 <공자(孔子)의 대답이> 양단(兩端)을 다하여 더 이상 남김이 없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만약 형이상(形而上)만 말하고 형이하(形而下)를 빠뜨리며, 이(理)만 말하고 사물(事物)을 빠뜨린다면 어찌 성인(聖人)의 말씀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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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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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장(第八章)


 子曰 鳳鳥不至하며 河不出圖하니 吾已矣夫인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봉황(鳳凰)새가 오지 않으며, 황하(黃河)에서 하도(河圖)가 나오지 않으니, 내 그만이다[끝장이다].”


鳳은 靈鳥니 舜時來儀하고 文王時鳴於岐山이라 河圖는 河中龍馬負圖니 伏羲時出하니 皆聖王之瑞也라 已는 止也라

○ 張子曰 鳳至圖出은 文明之祥이어늘 伏羲舜文之瑞不至하니 則夫子之文章이 知其已矣라


  봉(鳳)은 신령스러운 새인데 순(舜)임금 때에 나타나서 춤을 추었고, 문왕(文王) 때에는 기산(岐山)에서 울었다. 하도(河圖)란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그려진 그림인데 복희(伏羲) 때에 나왔으니, 모두 성왕(聖王)의 상서(祥瑞)이다. 이(已)는 그침[그만]이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봉황새가 나오고, 하도(河圖)가 나옴은 문명(文明)의 상서(祥瑞)이니, 복희(伏羲)와 순(舜)임금과 문왕(文王)과 같은 성왕(聖王)의 상서(祥瑞)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공자(孔子)의 문장(文章)이 그 끝남[행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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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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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장(第九章)


 子見齊衰者와 冕衣裳者와 與瞽者하시고 見之에 雖少나 必作하시며 過之에 必趨러시다


  공자(孔子)께서는 자최(齊衰)를 입은 자와 관(冠)을 쓰고 의상(衣裳)을 차린 자와 봉사를 보시면 그들이 비록 나이가 적더라도 반드시 일어나셨고, 그 곁을 지나실 때에는 반드시 종종걸음을 하셨다.


齊衰는 喪服이라 冕은 冠也요 衣는 上服이요 裳은 下服이니 冕而衣裳은 貴者之盛服也라 瞽는 無目者라 作은 起也요 趨는 疾行也라 或曰 少는 當作坐라

○ 范氏曰 聖人之心이 哀有喪하고 尊有爵하고 矜不成人하니 其作與趨 蓋有不期然而然者니라 尹氏曰 此는 聖人之誠心이 內外一者也니라


  자최(齊衰)는 상복(喪服)이다. 면(冕)은 관(冠)이다. 의(衣)는 상의(上衣)이고, 상(裳)은 하복(下服)[아랫도리]이다. 관을 쓰고 의상(衣裳)을 차려 입은 것은 귀한 자의 성복(盛服)[성장(盛裝)]이다. 고(瞽)는 눈이 없는 자이다. 작(作)은 일어남이다. 추(趨)는 빨리 걸어감이다. 혹자는 소자(少字)는 마땅히 좌자(坐字)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상(喪)이 있는 이를 슬퍼하고, 관작(官爵)이 있는 이를 높이고 불구자G:〔不成人〕를 가엾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앉아 있다가 일어나고, 종종걸음을 하신 것은 그렇게 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신 것이다.”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이것은 성인(聖人)의 성실한 마음이 내외(內外)가 한결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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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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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장(第十章)


 顔淵이 喟然歎曰 仰之彌高하며 鑽之彌堅하며 瞻之在前이러니 忽焉在後로다


  안연(顔淵)이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부자(夫子)의 도(道)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


喟는 歎聲이라 仰彌高는 不可及이요 鑽彌堅은 不可入이라 在前在後는 恍惚不可爲象이니 此는 顔淵深知夫子之道無窮盡, 無方體하고 而歎之也라


  위(喟)는 탄식하는 소리이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다는 것은 <도(道)에> 미칠 수 없는 것이요,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다는 것은 <도(道)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요, 도(道)가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다는 것은 황홀하여 어떻게 형상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안연(顔淵)이 부자(夫子)의 도(道)가 무궁무진하고 또 방향과 형체가 없음을 깊이 알고 감탄한 것이다.


 夫子循循然善誘人하사 博我以文하시고 約我以禮하시니라


  부자(夫子)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문(文)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시고 예(禮)로써 나의 행동을 요약하게 해주셨다.


循循은 有次序貌라 誘는 引進也라 博文約禮는 敎之序也라 言夫子道雖高妙하나 而敎人有序也라

○ 侯氏曰 博我以文은 致知格物也요 約我以禮는 克己復禮也니라 程子曰 此는 顔子稱聖人最切當處니 聖人敎人이 唯此二事而已니라


  순순(循循)은 차서(次序)가 있는 모양이다. 유(誘)는 이끌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문(文)으로써 지식을 넓혀주고, 예(禮)로써 행동을 요약하게 함은 가르침의 차서(次序)이다. 부자(夫子)의 도(道)가 높고 묘하나 사람들을 가르침에 순서가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 후씨(侯氏)가 말하였다. “문(文)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었다는 것은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이요, 예(禮)로써 나의 행동을 요약하게 해주었다는 것은 ‘자기의 사욕(私慾)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간다G:〔克己復禮〕.’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는 안자(顔子)가 성인(聖人)을 가장 적절하고 합당하게 일컬은 곳[부분]이다. 성인(聖人)이 사람을 가르침은 오직 이 두 가지뿐이다.”


 欲罷不能하여 旣竭吾才하니 如有所立卓爾라 雖欲從之나 末由也已로다


  <공부를>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부자(夫子)의 도(道)가> 내 앞에 우뚝 서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를 따르고자 하나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卓은 立貌요 末은 無也라 此는 顔子自言其學之所至也니 蓋悅之深而力之盡하여 所見益親이나 而又無所用其力也라 吳氏曰 所謂卓爾는 亦在乎日用行事之間이요 非所謂窈冥昏黙者니라 程子曰 到此地位면 工夫尤難하니 直是峻絶이요 又大段著力不得이니라 楊氏曰 自可欲之謂善//주:자가욕지위선으로 充而至於大는 力行之積也어니와 大而化之는 則非力行所及矣니 此는 顔子所以未達一間也니라

○ 程子曰 此는 顔子所以爲深知孔子而善學之者也니라 胡氏曰 無上事而喟然歎하니 此顔子學旣有得이라 故로 述其先難之故와 後得之由하고 而歸功於聖人也라 高堅前後는 語道體也요 仰鑽瞻忽은 未領其要也라 惟夫子循循善誘하여 先博我以文하여 使我知古今, 達事變하고 然後約我以禮하여 使我尊所聞, 行所知하여 如行者之赴家와 食者之求飽라 是以로 欲罷而不能하여 盡心盡力하여 不少休廢하니 然後에 見夫子所立之卓然하고 雖欲從之나 末由也已라 是는 蓋不怠所從하여 必求至乎卓立之地也라 抑斯歎也는 其在請事斯語之後, 三月不違之時乎인저


  탁(卓)은 서있는 모습이다. 말(末)은 없음이다. 이는 안자(顔子)가 자신의 학문이 이른 경지를 스스로 말씀한 것이다. 학문에의 기쁨이 깊고, 힘쓰기를 다하여 도(道)를 봄이 더욱 가까우나, 또한 그 힘을 쓸데가 없는 것이다.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이른바 탁이(卓爾)[우뚝하다]란 것은 일상의 행하는 일 사이에 있는 것이요, 이른바 깊고 어두우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 경지에 이르면 공부하기가 더욱 어려우니, 바로 <벼랑처럼> 준절(峻絶)하다. 또한 대단히 힘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선인(善人)으로부터 채워서 대인(大人)에 이르기까지는 역행(力行)을 쌓아서 될 수 있지만, 대인(大人)이 되어서 화(化)하는 성인(聖人)으로 말하면 역행(力行)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안자(顔子)가 <성인(聖人)의 경지에> 한 칸을 이르지 못한 이유인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것은 안자(顔子)가 공자(孔子)를 깊이 알고 잘 배운 것이다.”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안자(顔子)는 <앞에 아무 일이 없이> 깊이 감탄을 하였으니, 이는 안자(顔子)가 학문에 이미 터득한 바가 있으므로, 그 먼저는 어려웠고 뒤에 터득하게 된 연유를 말하고, 그 공을 성인(聖人)에게 돌린 것이다. 높고 견고하며 앞에 있다가 뒤에 있다는 것은 도(道)의 본체(本體)를 말한 것이요, 우러러보고 뚫으며 바라보고 홀연히 라는 것은 그 요체(要諦)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부자(夫子)께서 차근차근히 잘 이끄시어 먼저 나를 문(文)으로써 박학(博學)하게 하시어 나로 하여금 고금(古今)의 일들을 알고 일의 변화를 통달하게 해주셨다. 그런 뒤에 나의 행동을 예(禮)로써 요약(要約)하게 하시어 나로 하여금 배운 것을 존중하게 하고 아는 것을 행하게 하시니, 이는 마치 길을 가는 자가 집에 다다르고, 밥 먹는 자가 배부름을 구하는 것과 같았다. 이 때문에 공부를 그만두고자 하여도 그만둘 수 없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조금도 쉬지 않았다. 그렇게 한 뒤에야 부자(夫子)의 서 계신 모양이 우뚝함을 보고, 비록 따르고자 하였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따르는 바를 게을리 하지 않아 우뚝이 서있는 경지에 꼭 이르기를 구한 것이다. 아마도 안자(顔子)의 이 탄식은 ‘이 말씀에 종사하겠다G:〔請事斯語〕.’고 한 뒤와 ‘3개월을 인(仁)을 떠나지 않았다G:〔三月不違仁〕.’한 때에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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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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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장(第十一章)


 子疾病이어시늘 子路使門人爲臣이러니


  공자(孔子)께서 병(病)이 심해지자, 자로(子路)가 문인(門人)으로 가신(家臣)을 삼았다.


夫子時已去位하여 無家臣이어늘 子路欲以家臣治其喪하니 其意實尊聖人이나 而未知所以尊也라


  부자(夫子)가 이때에 이미 벼슬에서 떠나가신(家臣)이 없었는데, 자로(子路)가 가신(家臣)을 두어 공자(孔子)의 상(喪)을 치르고자 한 것이니, 그 뜻은 실로 성인(聖人)을 높인 것이나, 높이는 방법을 알지 못한 것이다.


 病間曰 久矣哉라 由之行詐也여 無臣而爲有臣하니 吾誰欺오 欺天乎인저


  병이 좀 덜하시자 말씀하셨다. “오래되었구나, 유(由)가 거짓을 행함이여! 나는 가신(家臣)이 없어야 하는데 가신(家臣)을 두었으니, 내 누구를 속였는가? 하늘을 속였구나!


病間은 少差也라 病時不知라가 旣差에 乃知其事라 故로 言我之不當有家臣을 人皆知之하여 不可欺也어늘 而爲有臣하니 則是欺天而已라 人而欺天은 莫大之罪어늘 引以自咎하시니 其責子路深矣로다


  병간(病間)은 병이 조금 차도가 있는 것이다. 병이 심할 때에는 알지 못하였다가 차도가 있은 다음에야 그 일을 아셨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신(家臣)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어서 속일 수 없다. 그럼에도 가신(家臣)을 두게 하였으니, 이는 하늘을 속이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사람이 하늘을 속임은 막대(莫大)한 죄(罪)인데, 이것을 끌어다가 자구(自咎)[자책]하였으니 그 자로(子路)를 꾸짖으심이 깊은 것이다.


 且予與其死於臣之手也론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아 且予縱不得大葬이나 予死於道路乎아


  또 내가 가신(家臣)의 손에서 죽기보다는 차라리 자네들 손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또 내가 비록 큰 장례(葬禮)는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설마 길거리에서 죽겠느냐?”


無寧은 寧也라 大葬은 謂君臣禮葬이요 死於道路는 謂棄而不葬이니 又曉之以不必然之故라

○ 范氏曰 曾子將死에 起而易쾝曰 吾得正而斃焉이면 斯已矣라하시니 子路欲尊夫子로되 而不知無臣之不可爲有臣이라 是以로 陷於行詐하여 罪至欺天하니 君子之於言動에 雖微나 不可不謹이니라 夫子深懲子路는 所以警學者也시니라 楊氏曰 非知至而意誠이면 則用智自私하여 不知行其所無事하여 往往自陷於行詐欺天而莫之知也하니 其子路之謂乎인저


  무녕(無寧)은 차라리 라는 뜻이다. 대장(大葬)이란 군신(君臣)의 예장(禮葬)을 말한다. 길거리에서 죽는다는 것은 시신이 길거리에 버려져서 장례하지 않음을 말하니, 또 반드시 그러할 것이 없는 이유로써 깨우쳐 주신 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증자(曾子)가 임종시(臨終時)에 일어나서 누워 있던 깔 자리를 바꾸도록 하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름을 얻고 죽으면 그뿐이다.’하셨다. 그런데 자로(子路)는 공자(孔子)를 높이고자 하였으나 가신(家臣)이 없어야 할 경우에 가신(家臣)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거짓을 행함에 빠져 죄가 하늘을 속임에 이르렀으니, 군자(君子)는 말과 행동에 있어 비록 하찮은 것이라도 삼 가지 않을 수 없다. 부자(夫子)께서 자로(子路)를 깊이 징계하신 것은 학자(學者)들을 경계시키기 위한 것이시다.”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앎이 지극하고 뜻이 성실(誠實)한 자가 아니면, 지혜를 쓰고 스스로 사사롭게 하여, 무사(無事)한 것을 행할 줄 몰라, 왕왕 거짓을 행하고 하늘을 속임에 빠지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자로(子路)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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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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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장(第十二章)


 子貢曰 有美玉於斯하니 춡퍏而藏諸잇가 求善賈(價)而沽諸잇가 子曰沽之哉沽之哉나 我는 待賈者也로라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여기에 아름다운 옥(玉)이 있을 경우, 이것을 궤 속에 넣어 감추어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하자,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자이다.”


춡은 藏也요 퍏은 ★也라 沽는 賣也라 子貢이 以孔子有道不仕라 故로 設此二端以問也라 孔子言固當賣之나 但當待賈요 而不當求之耳라

○ 范氏曰 君子未嘗不欲仕也언마는 又惡不由其道하니 士之待禮는 猶玉之待賈也라 若伊尹之耕於野와 伯夷太公之居於海濱에 世無成湯文王이면 則終焉而已요 必不枉道以從人하고 衒玉而求첥也리라


  온(춡)은 감추는 것이다. 독(퍏)은 궤이다. 고(沽)는 파는 것이다. 자공(子貢)은 공자(孔子)가 도(道)를 지니고 계시면서도 벼슬하지 않기 때문에 위의 두 가지를 가설(假設)하여 물은 것이다. 공자(孔子)께서는 진실로 팔아야 하겠으나 다만 값을 기다려야 할 것이요, <팔리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일찍이 벼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 도(道)[정당한 방법]를 따르지 않음을 싫어한다. 선비가 예우(禮遇)를 기다리는 것은 옥(玉)이 값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예컨대 이윤(伊尹)이 신야(莘野)에서 농사를 짓고 백이(伯夷)와 태공(太公)이 바닷가에서 은거할 때에 당시 탕왕(湯王)과 문왕(文王)이 없었다면 이들은 그대로 일생을 마쳤을 뿐일 것이요, 반드시 도(道)를 굽혀 남을 따르고 옥(玉)을 자랑하여 팔리기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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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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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장(第十三章)


 子欲居九夷러시니


  공자(孔子)께서 구이(九夷)에 살려고 하시니,


東方之夷有九種이라 欲居之者는 亦乘桴浮海之意라


  동방(東方)의 이족(夷族)에는 아홉 종족이 있다. 공자(孔子)께서 구이(九夷)에 살려고 하신 것은 또한 <공야장편(公冶長篇)의>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고 하신 뜻과 같은 것이다.


 或曰 陋어니 如之何잇고 子曰 君子居之면 何陋之有리오


  혹자가 말하기를 “<그 곳은> 누추하니,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였다. 이에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군자(君子)가 거주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君子所居則化니 何陋之有리오


  군자(君子)가 사는 곳에는 교화(敎化)되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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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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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4장(第十四章)


 子曰 吾自衛反魯然後樂正하여 雅頌이 各得其所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위(衛)나라로부터 노(魯)나라로 돌아온 뒤로 음악이 바루어져서 아(雅)와 송(頌)이 각기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魯哀公十一年冬에 孔子自衛反魯하니 是時에 周禮在魯라 然이나 詩樂이 亦頗殘缺失次라 孔子周流四方하여 參互考訂하여 以知其說이러시니 晩知道終不行이라 故로 歸而正之시니라


  노(魯)나라 애공(哀公) 11년(年) 겨울에 공자(孔子)께서 위(衛)나라로부터 노(魯)나라로 돌아오셨는데, 이때에 주(周)나라의 예(禮)가 노(魯)나라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시(詩)와 음악(音樂)이 또한 많이 손상되고 빠져 순서를 잃었다. 이에 공자(孔子)께서 사방의 나라들을 주류(周流)하시며 <각 나라의 것들을> 이리저리 상고하고 조사하여 그 내용을 아시게 되었는데, 만년에 도(道)가 끝내 행해질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에 노(魯)나라로 돌아와 음악을 바로잡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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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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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장(第十五章)


 子曰 出則事公卿하고 入則事父兄하며 喪事를 不敢不勉하며 不爲酒困이 何有於我哉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가서는 공경(公卿)을 섬기고, 들어와서는 부형(父兄)을 섬기며, 상사(喪事)를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술[주(酒)]에게 곤(困)함을 당하지 않는 것,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說見第七篇이라 然이나 此則其事愈卑而意愈切矣라


  이 내용[해설]은 제7편(第七篇)[술이(述而)]에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일이 더욱 낮고 뜻이 더욱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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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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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장(第十六章)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인저 不舍晝夜로다


  공자께서 시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도다.”


天地之化는 往者過하고 來者續하여 無一息之停하니 乃道體之本然也라 然이나 其可指而易見者는 莫如川流라 故로 於此에 發以示人하시니 欲學者時時省察하여 而無毫髮之間斷也라

○ 程子曰 此道體也니 天運而不已하여 日往則月來하고 寒往則暑來하며 水流而不息하고 物生而不窮하니 皆與道爲體하여 運乎晝夜하여 未嘗已也라 是以로 君子法之하여 自强不息하나니 及其至也엔 純亦不已焉이니라 又曰 自漢以來로 儒者皆不識此義하니 此見聖人之心이 純亦不已也니 純亦不已는 乃天德也라 有天德이라야 便可語王道니 其要只在謹獨이니라 愚按 自此至終篇은 皆勉人進學不已之辭니라


  천지(天地)의 조화(造化)는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이 이어져서 한 순간의 그침이 없으니, 바로 도체(道體)의 본연(本然)이다. 그러나 그 지적하여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시냇물의 흐름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이것을 말씀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으니, 배우는 자들이 때때로 성찰하여 공부에 털끝 만한 간격도 없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는 도체(道體)이다. 하늘의 운행은 쉼이 없어서, 해가 지면 달이 뜨고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며, 물은 흘러 끊임이 없고 물건은 생겨나 다하지 않으니, 모두 도(道)와 일체(一體)가 되어 밤낮으로 운행하여 일찍이 그침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이를 본받아서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으니,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순수함이 또한 그침이 없는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한(漢)나라 이래로 유자(儒者)들은 모두 이 뜻을 알지 못하였다. 이는 성인(聖人)의 마음의 순수함이 또한 그침이 없음을 볼 수 있으니, 순수함이 또한 그침이 없음은 바로 천덕(天德)이다. 천덕(天德)이 있어야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으니, 그 요점은 근독(謹獨)에 있을 뿐이다.”

  내가 상고해 보건대, 이 장(章)으로부터 이 편(篇)의 끝까지는 모두 사람들에게 학문에 진전하여 그치지 말라고 면려(勉勵)하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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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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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장(第十七章)


 子曰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로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덕(德)을 좋아하기를 여색(女色)을 좋아하듯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謝氏曰 好好色, 惡惡臭는 誠也니 好德如好色이면 斯誠好德矣라 然이나 民鮮能之니라

○ 史記에 孔子居衛하실새 靈公이 與夫人同車하고 使孔子爲次乘하여 招搖市過之한대 孔子醜之라 故로 有是言이라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아름다운 여색(女色)을 좋아하고 악취(惡臭)를 싫어함은 <속임이 없는> 성실(誠實)함이니, 덕(德)을 좋아하기를 여색(女色)을 좋아하듯이 한다면 진실로 덕(德)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일반인]들은 이에 능한 이가 드물다.”

  ○《사기(史記)》에 공자(孔子)가 위(衛)나라에 계실 때에 영공(靈公)이 자기 부인과 수레를 함께 타고 공자(孔子)로 하여금 다음 수레를 타게 하고 의기양양G:〔招搖〕하게 시내(市內)를 지나가자, 공자(孔子)가 그를 추하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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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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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장(第十八章)


 子曰 譬如爲山에 未成一튢하여 止도 吾止也며 譬如平地에 雖覆一튢나 進도 吾往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학문(學問)을> 비유하면 산(山)을 만듦에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붓지 않아 산을> 못 이루고서 중지하는 것도 내 자신이 중지하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면 <산을 만드는 데>평지에 흙 한 삼태기를 처음 붓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아감은 내 자신이 나아가는 것과 같다.”


튢은 土籠也라 書曰 爲山九仞에 功虧一튢라하니 夫子之言이 蓋出於此라 言山成而但少一튢하여 其止者도 吾自止耳요 平地而方覆一튢하여 其進者도 吾自往耳라 蓋學者自强不息이면 則積少成多하고 中道而止면 則前功盡棄니 其止其往이 皆在我而不在人也라


  궤(튢)는 흙 삼태기이다. 《서경(書經)》에 “산을 아홉 길을 만드는데, 성공(成功)이 흙 한 삼태기 때문에 무너진다.” 하였으니, 부자(夫子)의 말씀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산이 거의 다 이루어졌는데 다만 <마지막> 흙 한 삼태기가 모자란다 하더라도 그 중지함은 자신이 중지하는 것일 뿐이요, 평지에다가 <산을 만드는데> 막 흙 한 삼태기를 부었다 하더라도 그 나아감은 자신이 나아감을 말한 것이다. 배우는 자들이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으면 작은 것을 쌓아 많은 것을 이루지만, <그렇지 않고> 중도(中道)에서 그만두면 지난날의 공력(功力)이 모두 허사가 된다. 그 중지함과 나아감이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고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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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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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장(第十九章)


 子曰 語之而不惰者는 其回也與인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를> 말해주면 게을리 하지 않는 자는 그 안회(顔回)일 것이다.”


惰는 懈怠也라 范氏曰 顔子聞夫子之言하고 而心解力行하여 造次顚沛에 未嘗違之하니 如萬物得時雨之潤하여 發榮滋長이니 何有於惰리오 此群弟子所不及也니라


  타(惰)는 게으름이다.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안자(顔子)는 부자(夫子)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이해되고 힘써 행하여 조차(造次)[경황없는 시간]와 전패(顚沛)[위급한 상황]라도 일찍이 어긴 적이 없었다. 이는 마치 만물이 단비G:〔時雨〕를 만나 꽃을 피우고 점점 자라는 것과 같으니, 어찌 태만함이 있겠는가? 이는 여러 제자(弟子)들이 미치지 못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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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0장

#R:237//2//4//T//-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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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장(第二十章)


 子謂顔淵曰 惜乎라 吾見其進也요 未見其止也로라


  공자(孔子)께서 안연(顔淵)을 두고 평하셨다. “애석하구나, <그의 죽음이여!> 나는 그가 전진하는 것만을 보았고 중지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進止二字는 說見上章이라 顔子旣死에 而孔子惜之하사 言其方進而未已也라


  진(進)과 지(止) 두 글자의 뜻은 해설이 앞 장(章)에 보인다. 안자(顔子)가 죽자, 공자(孔子)께서 그를 애석히 여겨 그 학문이 진전하고 그치지 않았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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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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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장(第二十一章)


 子曰 苗而不秀者有矣夫며 秀而不實者有矣夫인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싹이 났으나 꽃이 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꽃은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穀之始生曰苗요 吐華曰秀요 成穀曰實이라 蓋學而不至於成이 有如此者라 是以로 君子貴自勉也니라


  곡식이 처음 나는 것을 묘(苗)라 하고, 꽃이 피는 것을 수(秀)라 하며, 곡식이 성숙된 것을 실(實)이라 한다. 학문을 하면서 완성에 이르지 못함이 이러한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스스로 힘씀을 귀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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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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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장(第二十二章)


 子曰 後生可畏니 焉知來者之不如今也리오 四十五十而無聞焉이면 斯亦不足畏也已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후생(後生)이 두려울 만하니 앞으로 오는 자G:〔後生〕들이 나의 지금보다 못할 줄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40∼50세가 되어도 알려짐이 없으면 그 또한 족히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孔子言 後生은 年富力彊하여 足以積學而有待니 其勢可畏라 安知其將來不如我之今日乎아 然이나 或不能自勉하여 至於老而無聞이면 則不足畏矣니 言此以警人하여 使及時勉學也시니라 曾子曰 五十而不以善聞이면 則不聞矣라하시니 蓋述此意니라 尹氏曰 少而不勉하여 老而無聞이면 則亦已矣어니와 自少而進者는 安知其不至於極乎아 是可畏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후생(後生)은 <공부할> 나이가 많고 힘도 강하므로 족히 학문을 쌓아 기대할 수가 있으니, 그 세(勢)가 두려워할 만하다. 그의 장래가 나의 오늘날만 못할 줄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가 혹 스스로 힘쓰지 않아 늙음에 이르도록 세상에 알려짐이 없다면 족히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말씀하여 사람들은 경계해서 그들로 하여금 때에 미쳐 학문에 힘쓰게 하신 것이다.

  증자(曾子)가 말씀하시기를 “50세가 되어도 선(善)하다고 알려지지 못하면 영영 알려지지 못한다.” 하셨는데, 이 뜻을 서술한 것이다.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젊어서 학문을 힘쓰지 않아 늙어서 세상에 알려짐이 없다면 또한 끝장인 것이다. 그러나 젊어서부터 전진하는 자는 그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못할 줄을 어찌 알겠는가? 이것이 두려워할 만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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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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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장(第二十三章)


 子曰 法語之言은 能無從乎아 改之爲貴니라 巽與之言은 能無說乎아 繹之爲貴니라 說而不繹하며 從而不改면 吾末如之何也已矣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법으로[바르게] 해주는 말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완곡하게 해주는 말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뻐하기만 하고 실마리를 찾지 않으며, 따르기만 하고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내 그를 어찌 할 수가 없다.”


法語者는 正言之也요 巽言者는 婉而導之也라 繹은 尋其緖也라 法言은 人所敬憚이라 故로 必從이나 然이나 不改면 則面從而已요 巽言은 無所乖춊라 故로 必說이나 然이나 不繹이면 則又不足以知其微意之所在也니라

○ 楊氏曰 法言은 若孟子論行王政之類是也요 巽言은 若其論好貨好色之類是也라 語之而不達하고 拒之而不受는 猶之可也어니와 其或喩焉이면 則尙庶幾其能改繹矣어늘 從且說矣로되 而不改繹焉이면 則是終不改繹也已니 雖聖人이나 其如之何哉리오


  법어(法語)란 바로 말해 주는 것이요, 손언(巽言)이란 완곡하게 인도해 주는 것이다. 역(繹)은 그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법언(法言)은 <듣는> 사람들이 공경하고 꺼리는 바이므로 반드시 따를 것이다. 그러나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외면으로만 따르는 것일 뿐이다. 손언(巽言)은 마음에 어그러지거나 거슬림이 없으므로 반드시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실마리를 찾지 않는다면 또 은미한 뜻의 소재를 알 수 없을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법언(法言)은 맹자(孟子)께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시행할 것을 논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요, 손언(巽言)은 <맹자(孟子)께서>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女色)을 좋아함을 논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말해주는데도 통달하지 못하거나, 또는 그 말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괜찮거니와, 그 혹시라도 깨달았다면 거의 자기의 잘못을 고치고 또 숨은 뜻을 찾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겉으로만 따르고 또 기뻐하기만 할 뿐, 잘못을 고치거나 은미한 뜻을 찾지 않는다면 이는 끝내 잘못을 고치거나 은미한 뜻을 찾지 못할 것이니, 비록 성인(聖人)인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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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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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장(第二十四章)


 子曰 主忠信하며 毋友不如己者요 過則勿憚改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충신(忠信)을 주장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벗삼으려 하지 말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아야 한다.”


重出而逸其半이라


  거듭 나왔는데, 그 중 반절이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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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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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5장(第二十五章)


 子曰 三軍은 可奪帥也어니와 匹夫는 不可奪志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삼군(三軍)의 장수(將帥)는 빼앗을 수 있으나, 필부(匹夫)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侯氏曰 三軍之勇은 在人하고 匹夫之志는 在己라 故로 帥可奪이나 而志不可奪이니 如可奪이면 則亦不足謂之志矣니라


  후씨(侯氏)가 말하였다. “삼군(三軍)의 용맹은 남에게 달려 있고 필부(匹夫)의 뜻은 자신에게 있으므로, 장수는 빼앗을 수 있으나, 필부(匹夫)의 뜻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빼앗을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뜻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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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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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장(第二十六章)


 子曰 衣敝縕袍하여 與衣狐貉者로 立而不恥者는 其由也與인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해진 솜옷을 입고서 여우나 담비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은 자와 같이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그 유(由)[자로(子路)]일 것이다.”


敝는 壞也요 縕은 쳝著也라 袍는 衣有著者也니 蓋衣之賤者라 狐貉은 以狐貉之皮爲裘니 衣之貴者라 子路之志如此면 則能不以貧富動其心하여 而可以進於道矣라 故로 夫子稱之시니라


  폐(敝)는 해짐이다. 온(縕)은 수삼으로 둔 솜이다. 포(袍)는 옷에 솜을 둔 것이니, 이는 옷의 천한[값싼]것이다. 호학(狐貉)은 여우나 담비의 가죽으로 갖옷을 만든 것이니, 옷의 귀한 것이다. 자로(子路)의 뜻이 이와 같았으니, 그 빈부(貧富)로써 마음을 동요하지 않아서 도(道)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그를 칭찬하신 것이다.


 不忮不求면 何用不臧이리오


  남을 해치지 않으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면 어찌 착하지 않겠는가?


忮는 害也요 求는 貪也요 臧은 善也라 言能不忮不求면 則何爲不善乎리오 此는 衛風雄雉之詩니 孔子引之하여 以美子路也시니라 呂氏曰 貧與富交에 彊者必忮하고 弱者必求니라


  기(忮)는 해침이요, 구(求)는 탐하는 것이다. 장(臧)은 선(善)이다. 해치지 않으며 탐하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선(善)하지 않은 짓을 하겠는가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는 <《시경(詩經)》> 〈위풍(衛風) 웅치편(雄雉篇)〉의 시구(詩句)인데, 공자(孔子)께서 이를 인용하여 자로(子路)를 찬미하신 것이다.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가난한 자가 부자와 사귈 적에 강한 자는 반드시 <부자를> 해치고, 약한 자는 반드시 탐한다.”


 子路終身誦之한대 子曰 是道也何足以臧이리오


  자로(子路)가 <위의 시구(詩句)를> 종신(終身)토록 외우려 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이 도(道)[방법]가 어찌 족히 선(善)하다 하겠는가.”


終身誦之면 則自喜其能하여 而不復求進於道矣라 故로 夫子復言此以警之시니라

○ 謝氏曰 恥惡衣惡食은 學者之大病이니 善心不存이 蓋由於此라 子路之志如此하니 其過人遠矣라 然이나 以衆人而能此면 則可以爲善矣어니와 子路之賢은 宜不止此어늘 而終身誦之하니 則非所以進於日新也라 故로 激而進之하시니라


  종신(終身)토록 외우려 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능함을 기뻐하여 다시 도(道)에 나아가기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다시 이를 말씀하여 일깨우신 것이다.

  ○ 사(謝)씨가 말하였다.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함은 학자들의 큰 병통이니, 선(善)한 마음이 보존되지 못함은 이에 말미암는다. 자로(子路)의 뜻이 이와 같았으니, 그 일반인보다 뛰어남이 멀다. 그러나 보통사람으로서 이에 능하다면 훌륭하다 할 만하다. 그러나 자로(子路)의 어짐은 마땅히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되는데, 종신(終身)토록 <그 시구(詩句)만을> 외우려고 하였으니, 이는 <학문(學問)을> 날로 새롭게 함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격동시켜 나아가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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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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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7장(第二十七章)


 子曰 歲寒然後에 知松柏之後彫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는 것이다.”


范氏曰 小人之在治世엔 或與君子無異하니 惟臨利害, 遇事變然後에 君子之所守를 可見也니라

○ 謝氏曰 士窮에 見節義하고 世亂에 識忠臣이니 欲學者必周于德이니라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소인(小人)이 치세(治世)[태평성세]에 있어서는 군자(君子)와 다를 것이 없으나 오직 이해(利害)를 당하고 사변(事變)을 만난 뒤에야 군자(君子)의 지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선비가 궁할 때에 절의(節義)를 볼 수 있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 충신(忠臣)을 알 수 있는 것이니, 배우는 자들이 반드시 덕(德)에 완비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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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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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8장(第二十八章)


 子曰 知者不惑하고 仁者不憂하고 勇者不懼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의혹하지 않고, 인(仁)한 자는 근심하지 않고, 용맹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明足以燭理故로 不惑이요 理足以勝私故로 不憂요 氣足以配道義故로 不懼니 此는 學之序也라


  지혜의 밝음이 족히 사리(事理)를 밝힐 수 있기 때문에 의혹하지 않는 것이요, 천리(天理)가 사욕(私慾)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 것이요, 기운이 도의(道義)에 배합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학문(學問)의 순서(順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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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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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9장(第二十九章)


 子曰 可與共學이라도 未可與適道며 可與適道라도 未可與立이며 可與立이라도 未可與權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더불어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도(道)에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도(道)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는 있어도 함께 권도(權道)를 행할 수는 없다.”


可與者는 言其可與共爲此事也라 程子曰 可與共學은 知所以求之也요 可與適道는 知所往也요 可與立者는 篤志固執而不變也라 權은 稱錘也니 所以稱物而知輕重者也라 可與權은 謂能權輕重하여 使合義也라

○ 楊氏曰 知爲己면 則可與共學矣요 學足以明善然後可與適道요 信道篤然後可與立이요 知時措之宜然後可與權이니라 洪氏曰 易九卦에 終於巽以行權하니 權者는 聖人之大用이니 未能立而言權이면 猶人未能立而欲行하여 鮮不★矣니라 程子曰 漢儒以反經合道爲權이라 故로 有權變權術之論하니 皆非也라 權은 只是經也니 自漢以下로 無人識權字니라 愚按先儒誤以此章으로 連下文偏其反하여 而爲一章이라 故로 有反經合道之說하니 程子非之是矣라 然이나 以孟子嫂溺援之以手之義推之면 則權與經은 亦當有辨이니라


  가여(可與)란 더불어 함께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더불어 함께 배운다는 것은 도(道)를 구하는 것을 아는 것이요, 함께 도(道)에 나아간다는 것은 나아갈 바를 아는 것이요, 함께 선다는 것은 뜻을 독실히 하고 굳게 지켜 변하지 않는 것이다. 권(權)은 저울이니, 물건을 저울질하여 경중(輕重)을 아는 것이다. 더불어 권도(權道)를 행한다는 것은 일의 경중(輕重)을 저울질하여 의리(義理)에 합하게 함을 말한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자신을 위한 학문G:〔爲己之學〕을 안다면 더불어 함께 배울 수 있는 것이요, 학문이 족히 선(善)을 밝게 알 수 있어야 함께 도(道)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요, 도(道)에 대한 믿음이 돈독한 뒤에야 함께 설 수 있는 것이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조처할 줄을 안 뒤에야 함께 권도(權道)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홍씨(洪氏)가 말하였다. “《주역(周易)》의 아홉 괘(卦)에 ‘손(巽)으로 권도(權道)를 행한다.’는 말로 종결되었으니, 권도(權道)는 성인(聖人)의 큰 용(用)이다. 능히 서지 못하고서 권도(權道)를 말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서지도 못하면서 걷고자 하는 것과 같아서 넘어지지 않는 자가 드물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한(漢)나라 유자(儒者)들은 경도(經道)[상도(常道)]를 뒤집어 도(道)에 합하는 것을 권도(權道)라고 하였다. 이러므로 권변(權變)·권술(權術)의 말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옳지 못하다. 권도(權道)는 다만 경도(經道)일 뿐이니, 한(漢)나라 이래로 누구도 권자(權字)의 뜻을 안 사람이 없었다.”

  내가 살펴보건대, 선유(先儒)들이 잘못하여 이 장(章)을 아래의 ‘편기반(偏其反)’이라는 글을 연결시켜서 일장(一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경도(經道)를 뒤집어 도(道)에 합한다.’는 말이 있게 되었는데, 정자(程子)가 이를 옳지 못하다 하셨으니 옳다. 그러나 《맹자(孟子)》에 “형수가 물에 빠졌을 경우에는 손을 잡아서라도 구원해준다.”는 뜻으로 미루어 본다면 권도(權道)와 경도(經道)는 또한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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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자한 ; 제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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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0장(第三十章)


 唐棣之華여 偏其反而로다 豈不爾思리오마는 室是遠而니라


  당체(唐棣)의 꽃이여! 바람에 펄럭이는구나. 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않으리오마는 집이 멀기 때문이다.


唐棣는 郁李也라 偏은 晉書作翩하니 然則反亦當與쮧同이니 言華之搖動也라 而는 助語也라 此는 逸詩也니 於六義屬興이라 上兩句는 無意義요 但以起下兩句之辭耳라 其所謂爾는 亦不知其何所指也니라


  당체(唐棣)는 욱리(郁李)이다. 편(偏)은 《진서(晉書)》에는 편(翩)으로 되어 있으니, 그렇다면 번(反)도 또한 당연히 번(쮧)과 같아야 할 것이다. 이는 꽃의 흔들림을 말한 것이다. 이(而)는 어조사이다. 이 시(詩)는 일시(逸詩)로서 육의(六義)에 있어 흥(興)에 속하니, 위의 두 구(句)는 뜻이 없고, 다만 아래 두 구(句)의 말을 일으켰을 뿐이다. 여기에 이른바 ‘너’란 것은 그 누구를 가리킨 것인지 알 수 없다.


 子曰 未之思也언정 夫何遠之有리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어찌 멂이 있겠는가?”


夫子借其言而反之하시니 蓋前篇仁遠乎哉之意라

○ 程子曰 聖人이 未嘗言易以驕人之志하고 亦未嘗言難以阻人之進하시고 但曰 未之思也언정 夫何遠之有리오하시니 此言이 極有涵蓄하여 意思深遠이니라


  공자(孔子)께서 시(詩)의 말을 빌어 반론하신 것이니, 이는 앞 편(篇)에 “인(仁)이 멀리 있는가?”라는 뜻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은 일찍이 쉬움을 말씀하여 사람들의 뜻[마음]을 교만하게 하지 않고, 또한 어려움을 말씀하여 사람들의 진전을 가로막지 않는다. 다만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어찌 멂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말은 지극히 함축성이 있어서 뜻이 심원(深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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